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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팀 서울올림픽영광 재현하던 날

    ◎“핸드볼 코리아 새 신화… 온국민 열광/세계 정상확정되자 “만세” 환호/역·터미널서도 TV보며 응원/친지와 어울려 밤새워 웃음꽃/“와병 아버지에 큰선물” 눈물도/선수가족들 우리 여자핸드볼선수들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또다시 우승,한국에 열한번째 금메달을 안겨준 8일 저녁 선수들의 가족과 친지들은 물론 전국에서 TV와 라디오를 통해 승전보를 전해들은 국민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환호성을 올렸다. 이날 여자핸드볼팀의 금메달 획득은 서울올림픽에 이어 구기단체종목으로는 첫 올림픽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것으로 우리팀이 그야말로 세계 최강임을 웅변해주는 것이어서 국민들을 더욱 흐뭇하게 했다. 특히 선수단의 가족들은 갖가지 어려움을 딛고 세계정상에 우뚝 올라선 선수들의 모습을 TV로 지켜보며 벅찬 감격에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 여자 핸드볼이 올림픽 2연패의 신화을 이룩한 8일 하오 광주·전남전역에서도 일제히 환호성. 특히 여자 핸드볼 팀에는 이 지역 출신 선수들이 많이 포함돼 있어 이지역민들이 여자 핸드볼에 걸었던 기대가 더욱 컸다. 선수들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이지역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날 TV앞에 앉아 우리선수들이 탁월한 기량으로 초반부터 좋은 경기를 펼치자 모두가 한마음이 돼 우리선수들을 응원하다 기어코 금메달을 따내자 손뼉을 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박갑숙선수집◁ ○…『부산시 해운대구 우2동 1063의13 여자 핸드볼 주장 박갑숙선수의 집에서 TV를 통해 선전을 지켜보던 아버지 박정환씨(45)와 어머니유월임씨(38)등 가족과 이웃 50여명은 서로 부둥켜 안고 기쁨의 함성을 올렸다. 어머니 유씨는 지난 7일 독일과의 경기에서 박선수가 부딪쳐 쓰러질땐 심한 부상으로 더 이상 뛰지 못하지나 않을까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고. 아버지 박씨는 『갑숙이가 주장을 맡아 선전하는 것을 보니 대견하다』면서 『이 영광은 모든 선수들의 일치된 전력의 결과』라고 촌평. 특히 어머니 유씨는 박선수가 바르셀로나로 떠나기 앞서 공항에서 전화를 걸어 『선배 언니들의 88위업을 계승하겠다고 말해 믿음직스러웠다』고 말했다. ▷장리라선수집◁ ○…88년 서울의 영광을 바르셀로나에서 다시 연출한 한국여자 핸드볼팀의 철벽 수문장 장리라(23·조폐공사) 선수의 집인 광주시 북구 신안동 343에는 아버지 장백렬(57),어머니 박공순씨(52)와 가족,친지등 10여명이 TV를 지켜보며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리라만세』를 연호. 아버지 장씨는 『막내인 리라가 집안에서 곧잘 어리광을 부렸으나 경기내내 침착해 대견스럽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어머니 박씨는 『리라의 건강을 위해 매일 새벽기도를 했다』고 말했다. ▷남은영선수집◁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팀이 난적 노르웨이를 꺾고 우승하는 순간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남은영선수(22·초당약품)의 할아버지 남정호씨(75·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장암주공아파트 101동1202호)의 두뺨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금메달 획득 소식과 함께 남선수의 집으로 몰려온 주민들도 남선수의 인간승리에 환호를 보냈다. ▷이미영선수집◁ ○…8일 하오 한국여자핸드볼팀이 노르웨이를 누르고 구기종목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2연패의 신화를 창조하면서 금메달을 확정짓는 순간 전북 이리시 월성동 536 세계 최고의 사이드 공격수인 이미영선수(22·광주시청)의 집에서는 TV를 지켜보던 가족들과 이웃 친지등 20여명이 일제히 『와!』하는 탄성을 울리며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날 가족들과 함께 TV를 지켜보던 이웃 주민들은 태극기가 올라가면서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대한민국만세!장하다.대한의 딸 미영이 만세!』를 외치며 즉석에서 돈을 모아 수박과 음료수등을 사 놓고 올림픽이야기로 밤을 지새면서 잔치집분위기를 연출. ▷오성옥선수집◁ ○…『성옥아 장하다.드디어 해냈구나』 올림픽 핸드볼 여자 결승에서 한국이 노르웨이를 누르고 올림픽 핸드볼 2연패의 쾌거를 이룩하는 순간 우리나라의 주공격수인 청주시 북문로2가 오성옥선수(21)의 집은 기쁨의 함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이날 오선수의 집에는 중풍으로 몸이 불편한 오선수의 아버지 재균씨(53.여관업) 등 가족들과 이웃 주민 20여명이 시종 애타는모습으로 텔레비전 앞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다 한국의 승리가 확정되자 일제히 『성옥이 만세』를 부르며 감격해 했다. 어머니 이재순씨(54)는 『제대로 해준 것도 없는데 금메달을 따내 딸이 한없이자랑스럽다』며 『성옥이가 목에 건 금메달은 지난해 8월 중풍으로 쓰러진뒤 현재까지 말을 더듬는 등 고생을 하는 남편에게 크나 큰 선물이 될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월간 심상사 주최 「경포해변시인학교」를 가다

    ◎3박4일이 짧은 바닷가의 시잔치/시인·독자 3백여명 진지한 대화/실수연발 시극경연땐 박수로 격려 월간시지 심상사가 주최하는 「경포해변시인학교」가 이틀째 열리고 있는 1일 밤 11시께의 강릉 경포국민학교 강당.방학중 내내 잠자던 이 강당은 시극경연대회에 참가한 3백여명의 뜨거운 열기에 의해 새롭게 깨어났다.이날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시극경연대회에서 해변시인학교 참가자들이 보여준 열기는 이웃주민들의 원성을 살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즉흥극 형식으로 꾸며진 이날 시극경연대회에서 경연자들은 마치 이번 해변시인학교의 참가의의가 거기에 있는 듯 연기에 열과 성의를 다했으며 관람자들도 아는 노래가 나오면 박수를 치며 보조를 맞췄다.젊은이들의 경쾌한 춤과 율동,40∼50대 아주머니들의 시낭송과 어설픈 연기,때론 실수가 빚어내는 폭소등 그 모든것이 어우러지며 참가자들의 욕구를 시심으로 승화시킨 이번 시극경연대회는 참가독자들의 시에 대한 원초적 욕망을 자발적으로 키우고 계발한다는 주최측의 목적에 꼭 부합하는 것이었다.결국 이날 시극경연대회의 최우수상은 「시의 바다에서 온 어린왕자」를 공연한 가족(반)에게 돌아갔다.바닷가에 온 도둑이 시인과 시를 사랑하는 소녀에게 감명받아 개과천선 한다는 내용을 다룬 이 시극은 배(복)에 훔친 물건을 잔뜩 감춘 도둑을 시를 써서 뚱뚱해졌다고 착각한 소녀가 심사위원석의 훌쭉한 시인들을 「바람둥이 시인」이라고 지적하는 바람에 폭소를 자아냈었다. 지난달 31일부터 3일까지 3박4일동안 열린 심상해변시인학교는 시종 이같은 자발적 참여와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 진행됐다.국내에서 열리는 문학캠프로는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이 행사는 올해가 14회째로 박동규교수(서울대)를 비롯하여 김광림 허영자 김종원 장윤우 이건청 이근배 윤강로 박리도씨등 50여명의 시인과 2백60여명의 일반독자가 참가,큰 성황을 이루었다.남녀비율에 있어선 1대5 정도로 여성이 월등히 많았지만 연령에서는 언니를 따라온 10대 소녀부터 76세의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14회에 걸친 행사로 이미 널리 알려진 심상해변시인학교에의 노인층의 대거 참가는 주최측의 새로운 두통거리이자 즐거움의 원천이었다. 이번에 8명의 동아리를 이끌고 세번째 참가한 이미현 할머니(65·경기 분당)는 『시를 좋아하고 즐기던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라며 『강의가 재미있고 젊은이들 노는 것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친구따라 강남가듯 이할머니를 따라온 주중여할머니(74·서울 흑석동)도 『문학에 특별한 관심은 없었지만 강의가 재미있어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앉아 있었다』고 한 마디.이 할머니들은 문학참여도에 따라 나뉜 반편성에서 가장 하위의 C반에 편입되자 주최측에 불만을 표해 이를 조정케 했으며 장기자랑코너에서는 「창부타령」을 춤과 함께 열창해 큰 상을 타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해변시인학교가 결코 오락성만이 중시된 행사는 아니었다.유명시인 초청강의,시창작실기교실,시인과의 대화 시간등은 엄격하고도 진지하게 이뤄졌으며 부진한 담임시인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경고도 주어졌다.시인과의 대화시간에는 원론적인 강론외에 등단절차,작법요령 등 실질적 문제가 다뤄져 호응이 높았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참가독자들이 적극화되면서 시인과 독자간의 긴밀한 소통이 이뤄졌다.특히 젊은 문학지망생들이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모방문제에 있어서는 시인들이 답변에 절절매는 모습도 연출됐다.머리가 희끗희끗한 김광림시인도 『포스트 모더니즘때문에 진땀난다』고 피력할 정도. 이번 해변시인학교에는 또한 8년째 이 모임에 참석해 왔던 정주영 국민당총재도 잠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2일 초청강의에서 그는 자신을 『당총재 이전에 이화여대 명예문학박사』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밖에 주변의 안목해수욕장에서의 임해수련,파하기 전날밤의 캠프파이어 등은 이번 해변시인학교의 낭만을 한껏 돋워준 행사였다. 거의 매년 이 행사에 참여해온 장윤우시인은 『바다가 있는 곳에서 동료 시인과 시를 사랑하는 마음 좋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얼마나 낭만적인 자리인가』하고 말한다.이번 모임에 처음 참가한 유병렬씨(28·회사원)도 『짧은 기일이지만 좋은 강의를 많이 듣고 사람들을 여럿 사귀어 퍽 많이 배운 느낌이 든다』고 소감을 말했다.
  • 조윤정·김수녕선수 양궁개인 금·은 휩쓸던 날

    ◎“장하다 대한의 딸들…” 환호…… 갈채/“선친 꿈 이뤘다” 홀어머니 눈물/조윤정집/이웃주민들과 즉석잔치 한마당/김수녕집 『7년 한을 드디어 풀었구나.윤정아』 2일 하오10시27분 여자양궁 개인전 70m에서 조윤정선수(23)가 최대 라이벌이자 한솥밥을 먹는 후배인 김수녕을 7점차로 누르고 금과녁을 명중시키는 순간. 서울 도봉구 미아동 1268 성원교회에서는 조선수의 홀어머니 박순례씨(53)가 TV를 통해 함께 한국선수끼리의 결승전을 지켜보던 이웃 10여명과 부둥켜 안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채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욕심부리지 말고 한발 한발 정성껏 쏘라고 했더니 기어코…』 감격한 나머지 말문을 잇지 못하는 박씨의 눈에는 무명의 설움을 딛고 마침내 세계정상에 우뚝 선 딸의 맺힌 한이 주마등처럼 지나쳤다. 활시위를 잡은지 13년,국가대표에 발탁된지 7년만의 경사였던 것이다.돌이켜보면 서울 미양국교 5학년때부터 활 쏘는 법을 배운 윤정이가 6년만인 서울체고 1학년때 국가대표로 뽑혔으나 신궁 김수령등의 그늘에 묻혀 번번이 세계제패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더욱이 우여곡절 끝에 2차례 국가대표를 지내면서 지난해 5월 남편 조명기씨마저 『윤정이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는 모습을 저승에서라도 보았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52세의 나이에 지병인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난 터여서 감회가 남달랐다. 박씨는 『선친의 꿈을 이룬 윤정이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정신적인 뒷바라지 때문』이라고 겸손해 하면서도 『며칠전 호박씨를 큰 그릇에 담아 집에 들여오는 꿈을 꾸었는데 이것이 금메달을 담은 길몽이었던 것 같다』고 비로소 웃어 보였다. 고등학생시절인 6년전부터 미아동 산중턱 13평남짓의 두칸짜리 3백만원 전세방에서 어렵게 살면서도 웃음과 용기를 잃지 않았던 조선수는 지난 18일 바르셀로나로 떠나기 전 『이번 대회는 신기할 만큼 마음이 가벼워 한번쯤 욕심을 내볼만 하다』는 말로 오히려 어머니를 안심시킬 정도로 강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이날 TV중계를 지켜보던 조선수의 동생 문정양(22·회사원)과 성주군(19·고3년)은 『꿈만 같다』고 눈물을 쏟으면서 『「악바리」우리 언니가 바르셀로나에서 관절염을 앓고 있는 어머니에게 날마다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며 승리를 다짐했다』고 전했다. 이날 새벽부터 박씨는 집사로 있는 성원교회에서 딸의 승리를 기원하며 14시간 남짓 기도를 하다 교회에서 마련해준 TV를 통해 이역만리에 있는 딸과 금메달의 기쁨을 함께 했다. ◎“금메달 우리선수가 따 다행”/김 선수부모 『잘했다! 수녕아』 신궁 김수녕(21·고려대)이 같은 한국선수인 조윤정(24·동서증권)과 금메달을 놓고 여자 양궁 개인결승전을 벌이는 순간을 지켜보던 충북 청주시 운천동 1014 김선수의 고향집에서는 김선수의 은메달이 확정되자 희비가 교차했다. 아버지 김병선씨(49)는 88년 서울대회에 이어 김선수가 이번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따 2연패를 할 것으로 기대했었으나 은메달에 머물러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같은 한국선수에게 금메달을 내줘 다행』이라며 기뻐했다. 이날 김선수의 아버지 김씨는 현재 3년째근무하고 있는 청주시 부녀상담소에 숙직근무를 하기로 돼 있었으나 동료직원의 배려로 딸이 선전하는 모습을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볼 수 있었다.김선수의 어머니 김영분씨(45)는 『수녕이가 바르셀로나로 떠난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청주시 사직1동 성당에 나가 기도를 했었다』며 딸의 쾌거를 대견해 했다. 여동생 선령양(19·주성전문대)과 남동생 진령군(17·세광고3)은 충주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전화로 소식을 전하고 친척들에게도 소식을 알리느라 바빴다. 평소 김선수가 잘 따르던 막내이모 김영운씨(32·수원 서도국교교사)는 이틀전부터 김선수의 집에 머물면서 승리를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온 이웃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미리 준비해놓은 수박·참외등을 내느라 분주했다. 이날 김선수의 가족들과 함께 김선수가 과녁을 향해 한발한발 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숨을 죽이며 지켜보던 20여명의 이웃주민들도 『우리동네에 경사가 났다』며 환호했다. 동생 선령양은 『언니가 바쁜 선수촌생활속에서도 이틀에 한번씩 집에 안부전화를 해왔었다』며 『사랑니가 아파도 약물검사때문에 진통제도 먹지 못하고 고생한 언니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김선수의 은메달이 확정되자 이원종충북지사와 나기정청주시장이 찾아와 축하를 하기도 했다.
  • 외로운 노인 80여명에 점심도시락 대접 7년(이사람)

    ◎독립문공원서 남다른 경노 김종은씨/“셋방살아도 나누는 기쁨 더 크죠”/양복 원단 행상… 수입 60% 떼어 선행/고아원서 불우한 성장… 노모 굶주렸던 사연듣고 결심/보증 잘못으로 전재산 날리고도 돕기 계속해와 넉넉하게 가진 것도 없고 벌이도 시원찮은 한 소상인이 7년째 하루도 거르지않고 외로운 노인들에게 정성을 다해 점심을 대접하고 있다. 양복원단을 마이크로버스에 싣고 다니며 기성복제조업체에 납품해 버는 수입으로 그날 그날 살아가는 김종은씨(44·서울 중구 순화동1의97). 그는 고달픈 떠돌이 장사를 하면서도 매일 낮12시면 어김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서울 독립문공원을 찾아 이곳에 나와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80여명에게 김밥이며 빵등을 담은 도시락을 대접한다. 행여 도시락사정이 여의치않아 음식을 미처 장만하지 못하는 날일지라도 어김없이 나타나 7백원씩의 음식값을 노인들의 손에 쥐어주며 마치 큰 죄라도 지은듯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날그날 형편에따라 수입이 다르지만 김씨의 한달평균 벌이는 2백50만원 정도. 이가운데 하루 5만∼6만원씩의 도시락값 1백50만∼1백80만원을 빼면 80만∼90만원정도가 8순노모와 부인(43),고등학교에 다니는 두아들등 다섯식구의 생활비가 된다. 그나마 두칸짜리 셋방의 방세 20만원을 제하고 나면 김씨의 생활비는 5인가족 도시근로자의 평균가계지출비 1백만원수준에도 훨씬 못미치는 형편이다. 김씨가 이처럼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남달리 노인공양에 온힘을 기울이는 것은 어린시절의 불우했던 경험때문. 그는 충남부여에서 태어나 네살때 부모의 가정불화로 고아원에 보내졌다.그리고는 국민학교 6학년1학기만 마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수색근처의 농가굴뚝을 껴안고 잠을 자기도 하고 개천옆의 공중변소 한켠에 판자를 깔고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풍선장사·신문팔이등을 하며 겨우겨우 끼니를 이었다.그러다 61년 남대문시장의 한 봉제공장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16살이 되던 67년부터는 재단사가 됐다. 마침내 79년에는 18년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미싱 10대를 받아 독립했다.어엿한 「사장님」이 된 것이다.그리고 그의 이름은 자수성가의 대표적인물로 남대문시장 일대에 짜하게 알려졌다. 그러다보니 경사가 겹쳐 어머니도 찾게 됐다. 성공한 아들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칠순의 백발노모를 반갑게 맞은 김씨는 어머니 또한 수도없이 배를 굶주리며 서러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며칠이고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김씨는 이때부터 「기본생활비」만 떼고는 모든 수입을 털어 양로원과 고아원등을 찾아 김씨 모자처럼 서러운 사람들에게 옷과 음식을 선물하고 오는게 습관화됐다. 지난 85년말부터는 날마다 집에서 가까운 서소문공원을 찾아 외로운 노인들의 찬손을 어루만지며 김밥이나 떡 빵등을 대접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서소문공원의 지하주차장 건설공사로 이 노인들이 독립문공원으로 옮겨가자 함께 따라가게 됐다. 그러나 시련은 또 닥쳤다.지난해말 공장직원이 부탁한 한문투성이의 은행융자보증서에 흔쾌히 도장을 찍어줬다가 5천만원을 날린 것이다. 그는 이때 1천만원짜리 전세방마저 비워야 하는 빈털터이 신세가 됐지만 그래도 노인을 돌보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요즈음엔 고아원시절 이웃 불량배에게 돌로 얻어맞은 왼쪽다리가 부쩍 쑤셔 절뚝거리기까지 하는 김씨는 『부모같은 노인들에게 좀더 나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데 수입이 크게 늘지않아 늘 안타깝다』고 오히려 미안해하고 있다. 김씨에게 한달째 점심신세를 지고 있다는 진모씨(66·서대문구 천연동)는 『친부모도 나몰라라 하는 요즘 세상에 콘크리트숲사이에 버려진 늙은이들을 이처럼 보살펴주는 김씨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고맙다』고 대견해 했다.
  • “병관이도 해냈다” 온동네잔치/금메달 따던날… 진안 고향마을 표정

    ◎가족·이웃 TV앞서 “만세” 환호/“뒷바라지도 못했는데…” 어머니 울먹 『전병관 만세!』장하다 전병관 드디어 해냈구나!』 역도 56㎏급에 출전한 「작은 거인」전병관이 한국에 2번째 금메달을 번쩍 들어 올리는 순간 전북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원강정마을 전선수의 고향 주민과 친지들은 「와」하는 환호성과 함께 서로 얼싸 안으며 장한 쾌거의 기쁨을 나눴다. 이날 일찍 저녁을 끝내고 전선수의 쾌거 기쁨을 함께 나누기위해 전선수집에 모여 TV생중계를 통해 전선수의 역투모습을 숨죽여가며 순간순간 지켜 보았던 30여명의 친지·마을주민들은 우승이 확정되자 모두 두손을 치켜들고 「전병관만세」합창소리와 함께 전선수의 어머니 박옥수씨(49)를 얼싸안았다.독실한 원불교신자인 박씨는 전선수가 서울을 떠나 바르셀로나를 향하는 날부터 매일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원불교 마령교당에 나가 전선수의 무운을 기원했고 자정엔 뒷마당에 정한수를 떠놓고 아들의 장한 소식을 빌었다. 『장하다 내아들아.장하다…』 농사일에 쫓겨 제대로 뒷바라지를 못해 몹시 가슴졸이며 안타까워했다는 박씨는 『병관이가 드디어 큰일을 해내 온국민이 보내준 성원에 보답해줘 무어라고 말할수 없이 기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날 전선수의 아버지 전덕권씨(50·농업)는 TV방송관계로 상경,집을 비웠으나 이웃 주민과 친지들이 많이 찾아와 함께했다. 특히 밤을 지새며 멀리서 전선수의 금메달순간을 지켜본 친척들의 축하전화가 우승직후 박씨에게 쇄도했다. 이 마을출신인 마령면장 이석원씨(59)는 『이마을 뒷산인 마이산줄기의 광대봉(일명 투구봉)이 투구모양으로 생겨 장수가 날 것이라는 옛말이 전해내려왔다』며 『병관이가 세계를 들어올린,우리마을이 낳은 장사가 됐다』고 기뻐했다. 쾌거 소식을 듣고 달려온 전병관의 마령중시절 체육교사 정인영씨(40·현이리고 체육교사)는 『승부욕과 힘이 남달리 강해 이번대회에서 병관이가 금메달을 꼭 딸것이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금메달이 확정된 뒤 이집 앞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동동주와 수박으로 축하잔치를 벌인 마을 주민들은 『바쁜 훈련속에서도 병관이가 가끔 고향을 찾게 되면 할아버지 산소부터 찾는등 효심이 남달랐다』며 전선수에 대한 칭찬과 에피소드로 한여름밤을 새웠다.금메달소식이 전해지자 강상원전북도지사와 신진하진안군수가 전선수의 집을 직접 방문,금일봉을 전달하기도.
  • “모국 발전모델 연변에 적용”/경협모색차 내한한 연길시장 박동규씨

    ◎“서울∼연길 직항노선 중국정부에 요청했다”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연변의 발전을 위해 고국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26일 내한한 중국 연변조선족자치구 박동규연길시장(51)은 모국의 경제발전모델을 연변에 적용시켜 경제발전을 이뤄내는게 자신의 주된 임무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교포 18만명이 살고 있는 연길시가 현지 의란농공단지내에 설립한 만광개발의 한국 합작회사인 기림주식회사의 초청으로 연길시 경제관계자 6명과 함께 왔다. 만광개발은 44㎦의 부지의 대규모 단지에 설립된 중국에서 가장 큰 목장이며 생산품을 식품으로 가공하는 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박시장은 『앞으로 이 합작회사를 중국최고의 식품가공회사로키워낼 계획』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또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서울과 연길을 직접 운행하는 항공노선의 필요성을 절감,올해초 중국정부에 이를 정식으로 요청한데 이어 한국측 관계자에게도 비공식적으로 의사를 타진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 항공관계자들로부터충분한 시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박시장은 또 『국제적으로 유엔개발계획(UNDP)을 통한 두만강개발계획 등 동북아 경제협력이 급진전되고 있다』고 전제,『한국기업의 현지 투자는 양국의 발전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오는 3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투자설명회를 여는 한편 포항제철 현대중공업 기아자동차 등 국내 기간산업시설과 투자유망중소기업 등을 방문할 계획이다. 『모국동포들의 후원에 힘입어 해외최초의 민족대학이자 중국 첫 사립대인 연변조선족기술대가 오는 9월16일 개교를 앞두고 있다』면서 그는 한국의 후원회에 대해 고마워했다. 지난 1950년 충남 홍성 출신인 할아버지가 만주로 이주하면서 이곳에서태어나 줄곧 살아온 그는 길림화공학원을 졸업했다. 이어 연변의학원 부총장을 거쳐 지난89년 시장으로 선출돼 올해말 임기 4년이 끝나지만 한번 더 이 직책을 맡아 연길시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싶다고 희망했다.
  • 예술의전당 야외무대 박동진선생 「수궁가」 공연을 찾다

    ◎소리꾼·관중 어우러진 신명한마당/31도 땡볕속 1천여명 자리 메워/구성진 해학에 넋을 잃은 2시간/노부모·아이들과 온가족 함께 즐겨 시작시간이 한시간이나 남았음에도 햇볕이 내려쬐는 무대측을 제외하면 마당은 벌써 빈틈이 없었다. 멍석대신 깔아놓은 골판지가 사람들로 메워지자 이번에는 집에서 가져온 돗자리가 이어졌다. 연못가 상수리나무 그늘아애 돗자리를 깔고 온가족이 둘러앉아 준비해온 김밥이며 근처 임시매점에서 파는 빙수를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그것은 소풍이었다. 일요일인 19일 하오 예술의전장 축제극장 뒷편 우면지 연못가에서는 「명창 판소리 다섯마당」전의 마지막 무대인 박동진선생의 「수궁가」공연이 있었다.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는 광대와 구경꾼의 교감.그곳이 어느 곳이든 멍석 한장만 펼쳐놓으면 「판」이 된다는 판소리의 본래 모습을 되살려 본다는 것이 주최자인 예술의 전당의 의도였다.그 성과는 미처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날 서울지방의 낮 최고기온은 31·5도,공연은 하루 가운데서도 가장 더운 하오3시에 시작하기로 되어있었다. 이미 1천여명 가까이 불어난 청중들은 2백여명에 불과한 마당은 물론 무대가 바라다보이는 앞산을 가득 메운채 부채질 하기에 바빴다. 15분전.청중사이로 올해 78세의 박명창이 도포와 갓으로 의관을 정제하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서로 사인을 해달라고 손을 내미는가하면 사진을 같이 찍자고 졸라대는 모습등은 여느 「스타」의 출몰때와 마찬가지였지만 노명창에게는 그러면서도 누구나 허리굽혀 깊숙이 경의를 표하는 모습이 다른 점이었다. 무대 대신 평상위의 화문석위에 올라 앉은 노명창이 맨 앞줄에 앉은 비슷한 연배의 노인관객에게 웃으면서 『이렇게 더운디 뭘 볼 것 있다고 여기까지 오셨소』라고 인사를 건네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날 공연은 녹화방송을 준비하던 한 방송사의 장비에 이상이 생겨 한참동안 늦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앞쪽에 앉은 사람들에게는 노명창이 들려주는 세상사는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더 많아졌음을 의미했다. 마당공연의 재미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무대와 객석이 구분되어있는 극장에서라면 지연된 시간은 청중에게 지루한 기다림을 뜻한다.그러나 소리꾼과 구경꾼이 한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당에서는 어쩌면 공연 자체보다 그것이 더 큰 재미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청중들의 표정마다에서 읽혀졌다. 그러나 20분이 지나자 그런 모습을 시샘이나 하듯 대화에서 소외된 뒤쪽 청중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졌다. 공연이 늦추어지고 있는데 대한 야유대신 『빨리 시작하라』는 애교있는 질책인 셈이었다.­ 박명창의 「수궁가」는 완창하려면 모두 4시간30분쯤이 걸린다고 한다.그러나 주최측이 준비한 시간은 2시간.그것도 시작이 늦어지는 바람에 그의 통큰 소리와 재기 넘치는 아니리는 별주부와 토생원이 수인사를 나누는 대목에서 끝을 맺어야 했다. 주최측이 준비한 물은 노명창이 소리를 시작한지 불과 30분도 지나지않아 바닥을 드러냈다.그뒤 땀을 비오듯 흘리는 노명창에게는 청중들이 집에서 준비해온 얼음보리차가 끊임없이 건네졌다. 또 노명창의 걸쭉한 육담에 특유의 욕을 얻어먹기 바빴던 김청만 명고수는 공연이 끝난뒤 곁에 앉은 한 청중이 공연 내내 해주는 부채질 덕분에 더운 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명창판소리 다섯마당」전은 이날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박동진명창과 김제만명고수의 「춘향가」를 시작(3월29일)으로 4월에는 강도근의 「흥보가」 5월에는 성창순의 「심청가」6월에는 한승호의 「적벽가」공연이 같은 장소에서 있었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항상 간단한 해설을 맡은 문화재전문위원 이보형씨는 『공연때마다 평균 7백명정도의 청중이 찾아왔지만 숫자보다는 청중의 구성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만 있지 가족문화가 없는 현실에서 할아버지와 부모 자식이 함께 찾을수 있는 공연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판소리라는 우리전통문화가 이번 기회에 보여주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의의라는 것이다.
  • 물놀이 일가족 4명 참변도

    【춘천=정호성기자】 21일 하오3시30분쯤 동해시 삼화동 산269 무릉계곡내 용추폭포에서 물놀이를 하던 황태상군(10·서울 마포구 성산동 7의1)이 물에 빠진 것을 구하기 위해 태상군의 할아버지 황치하씨(71·경기도 용인군 외사면 오안리 109)등 가족 4명이 물에 뛰어들었다가 이중 3명이 태상군과 함께 익사했다. 태상군의 사촌누나 희상양(11)은 부근에 있던 이정태씨(30·동해시 천곡동 주공4차아파트 4동 201호)에 의해 구조돼 목숨을 건졌다. 희상양에 따르면 태상군과 할아버지 황씨,그리고 할머니 최남득씨(72),태상군의 누나 유상양(15)등 5명이 피서를 와 놀던중 태상군이 바위에 앉아 발을 씻다 미끄러지면서 물속에 빠지자 할아버지 황씨,할머니 최씨,유상양 그리고 자신이 태상군을 구하려고 잇따라 물속에 뛰어들었다가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 또 어린이 방충망 추락사/10층아파트 창가서 놀다

    19일 낮 12시30분작 서울 강동구 천호1동 우성아파트 2동 1001호 손원길씨 (31·무직)집 건넌방에서 소파위에 올라가 놀던 손씨의 외아들 영남군(2)이 낡은 방충망에 기댄 채 밖을 내려다 보다 방충망이 찢어지면서 26m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져 그자리에서 숨졌다. 경찰은 손군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사이 건넌방에 들어가 소파위에서 놀다가 이같은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정착한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미국에의 존경심 회복” 다짐에 피켓물결/전당대회 폐막 이모저모

    ◎고어,“지금은 세대교체해야 할 시기” 열변 ○…뉴욕 맨허턴의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4일간에 걸쳐 열린 미민주당 전당대회는 17일밤 빌 클린턴대통령 후보의 후보지명 수락연설을 끝으로 대미를 장식. 이날밤 10시25분 매머드 실내체육관인 스퀘어가든을 가득 메운 민주당 대의원들의 환호속에 연단에 오른 클린턴후보는 연설 첫머리에 『나는 열심히 일하고 세금을 내고 자녀를 기르며 규칙을 잘 지키는 「잊혀진 중산층」을 위해 대통령후보직을 수락한다』고 말해 그의 백악관탈환의 기반을 중산층으로 삼을 것임을 예고. 그는 미국국민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얘기하면서 홀어머니 아래서 자라온 자신의 성장배경을 설명.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3개월전에 아버지가 빗길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면서 어머니의 희생이 자신을 성장시켜주었다고 말하고,시골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할아버지로부터 인생공부를 배웠으며,자신의 아내 힐라니로부터 자녀들이 어떻게 자라는가를 배웠다며 「가정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다고 말해 「가정의 가치」가 공화당의 전유물이 아님을 은근히 강조. ○…클린턴후보는 부시대통령의 경제정책 실패를 성토하는 가운데 『일본의 총리가 미국국민들에게 동정을 느낀다고 말할 정도로 미국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우리를 연민의 정으로 내려다보지 않고 존경심으로 바라보도록 하겠다』고 말해 장내가 떠나갈듯한 박수와 피켓의 환호를 받았다. ○…이날 클린턴후보의 수락연설이 끝나자 대회장 돔천창에서부터 3만5천개의 오색풍선이 일제히 쏟아져내려 장내는 축제의 도가니가 되었고 단상단하 할것없이 악단의 경쾌한 리듬에 맞춰 춤을 추어 전당대회의 절정을 장식. ○…미국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앨버트 고어 테네시주 상원의원은 지금은 미국이 세대교체를 해야할 시기라고 주장. 고어 의원은 16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거행된 민주당 전당대회 폐막식에서 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통해 『다가올 선거는 20세기의 마지막 대통령이 아니라 21세기의 첫 대통령을 뽑는 자리』라면서 빌 클린턴이야말로 『미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다시 나아가는데 있어서 최선의 기회』라고 말했다.
  • 외언내언

    북한의 김달현 부총리를 신문·방송이 일제히 소개한다.이것 저것 나열하는 가운데 그가 김일성 주석의 「5촌조카」라는 말도 하나같이 빠뜨리지 않는다.◆5촌 조카라면 그가 김주석의 종행간(4촌 형제)의 아들이라는 말.다시 말하면 김주석의 할아버지와 김부총리의 증조부는 같은 사람이다.친족 호칭법은 지방에 따라 혹은 집안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5촌조카라면 보통 종질 또는 당질이라고 한다.그러니까 김주석은 김부총리의 종숙(당숙)이 되는 셈.이러한 호칭법에 익은 사람이 있다면 「5촌 조카」라는 말에 다소 생소함을 느꼈을 법도 하다.◆그런데 처음 알려진 「5촌 조카」와는 달리 『사실은 외6촌 매제』라는 보도가 잇따른다.그 관계는 「5촌 조카」에 비하자면 「남」이나 다름 없이 멀다.나의 어머니와 4촌되는 남자 형제의 딸이 나보다 나이 적을 때 외6촌 누이동생이 되니 그 남편이 외6촌 매제.김주석이나 김부총리의 경우는 성이 같아 그렇지,외6촌 매제라면 「5촌조카」와는 달리 성부터 달라지는 관계다.◆내 외6촌매제는 누구인가 생각해 보게도한다.아예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쉽게 떠오르지도 않는다.하기야 재종제·재종질 같은 당내지친도 얼굴을 모른 채 지내는 경우가 적지않은 것이 현대의 우리들 삶.「하나만낳기」는 친족 호칭을 잃어가게도 만들고 있다.오빠·누나가 없고 보면 이윽고 숙부·고모를 모르는 경우로 이어질 것이다.이모도 모른다.외종사촌에 고종사촌도 없고 또 모르게 되어간다.◆「매제」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여자 형제 남편의 호칭만 두고도 혼선이 인다.자형·매형·인형·매부·매제.지역 따라 집안 따라 달리 쓰이고 매부의 경우는 모호해진다.호칭 때문에 더러 시비도 이는 것이 현실.그 표준화도 있어야겠다.
  • “탈이념”의 순수동화도 펴낸다(오늘의 북한)

    ◎「김부자 우상화」 간접·우회적 표현/“혁명어린이 양성” 집체창작 줄어/생소한 어휘·표현 등장… 언어 이질화 우려/국내서도 북녘동화딥 3권 출간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하나 둘 셋…』 우리 동네 어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 노래가 북한 어린이들이 즐겨읽는 동화「달거울을 본 술래」의 술래놀이 장면에서도 그대로 등장한다. 북한의 어린이들은 어떤 동화책을 읽으며 자라나고 있을까. 통념적으로 북한의 어린이들은 미국=승냥이,지주·양반=싸워 물리쳐야 할「원쑤」로 묘사되는 책들만 읽으면서 용감한「혁명 어린이」로 키워지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어린이들도 남한의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공상과학동화나 전래동화,나아가 이솝우화같은 외국동화도 읽고 있다. 최근 「통일을 준비하는 어린이」라는 큰 제목으로 서울 신구미디어에서 출판한「욕심쟁이 까마귀」,「잿빛토끼와 파란장화」,「로보트가 쏴올린 포탄」등 3권의 북한동화책은 소위 「이념」을 크게 강조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즉 남한과 북한의 어린이들이 결코「깡통찬 거지」나 「뿔달린 도깨비」가 아니며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놀 수 있는 사이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책에 실린 56편의 동화는 대부분 80년대 후반과 90∼92년 상반기에 발행된 어린이 도서 가운데서 뽑았다는 점에서 현재 북한 어린이들이 선호하는 화제가 어떤 것인가를 엿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책을 엮은 사단법인 북한연구소의 고태우씨는 북한동화의 특징과 관련,『집단·혁명의식과 김일성부자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하는 내용들이 많은게 사실이나 일반문학작품과 달리 간접적·우회적 묘사가 대부분』이라고 분석하고 창작동화의 경우도 북한문예의 주요창작방법인 집체창작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동화에는 닭알(달걀) 올롱해졌습니다(휘둥그래졌습니다) 딱친구(친한 친구) 솔벌레(송충이) 닭알침을(군침을) 성수만나누나(잘되는구나)등 우리에게 생소한 어휘나 표현이 많이 등장, 남북한 언어이질화의 정도가 심각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풀이판(해설)」을 따로 보지 않고도 이해가 가능,민족동질성이 깡그리 없어지지는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부지깽이도 바쁜 봄날」,「괜히 말했다가 코떼어 주머니에 넣은」등의 속담이나 관용구 구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순수동화는 대체로 정직성과 성실성,봉사·희생정신,집단주의등을 강조하는 우화나 전래동화,과학동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달거울을 본 술래」「개미와 토끼」「알룩이가 된 고양이」등 3편의 동화는 어린이들에게 교훈과 함께 놀이나 동물들의 습성에 대한 유래를 들려주고 있는데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달거울을 본 술래 얼굴과 마음이 비단결처럼 고운「술래」가 자신을 희생,밤물까마귀의 흉계에 의해 모습을 잃어 버린 친구들을 「달거울」로 구한다는 내용.달거울을 본 사람을 만나면 누구든지 돌이 되기 때문에「술래」는 친구들의 모습을 찾아준 뒤 숨어서 살 수 밖에 없게 됐으며 그날부터 아이들은 『술래야 술래야 어서 나오렴』하고 술래를 찾기 시작,지금의 「술래잡이」놀이가 됐다는 것. ▲개미와 토끼 개미가 원래는 토끼등에 붙어 피를 빨아 먹고 사는 게으름뱅이였다는 가정에서 출발,어느 날 토끼가 자기를 버리고 도망가 버리자 기다리다 못해 부지런히 일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 토끼를 기다리면서 배고픔을 참기 위해 졸라맸던 허리가 펴지지 않아 지금도 개미의 허리는 잘록한 모양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알룩이가 된 고양이 눈부신 은빛털을 가진 고양이가 쌀창고를 지키는 일보다 남눈에 띄는 일만 하려고 하다가 낭패를 당한다는 이야기.달에서 절무질(절구질)을 하는 옥토끼가 주위로부터 칭찬을 받자 은빛 고양이는 옥토끼를 밀어내고 달에서 절무질을 하기 시작한다. 밤새워 일을 한 은빛 고양이는 너무 피곤했으나 보는 눈이 많아 쉴 수가 없었다.먹장구름이 지나갈 때 살짝살짝 엎드려 쉬기로 꾀를 낸 고양이가 며칠을 그렇게 하고나자 등은 새까맣고 배는 하얀 얼룩이가 돼버렸다는 것. 고양이는 그제야 자신의 본분을 깨닫고 쥐잡이를 잘하게 됐다는 내용. 이밖에 청개구리로 변한 선녀가 여우로부터 자기를 구해준 나무꾼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청개구리 선녀」,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내용의 「방울로 잡은 호랑이」등 보은과 지혜를 강조하는 이들 동화는 남한에서도 흔히 읽히는 내용. 한편 북한 과학동화는 모험심보다는 성실한 탐구자세를 강조하고 과학지식이나 원리를 상세히 설명,어린이들로 하여금 과학지식을 습득하도록 기술하고 있는 점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한 예로 과학동화「연필의 소원」은 파랑이와 분홍이라는 의인화된 연필이 등장,연필이 만들어지기까지의 60여개 공정을 설명하고 어린이들에게 학용품을 소중하게 쓰도록 훈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멎었던 시계」역시 똑딱이네집(시계)에서 큰 바늘과 작은 바늘,태엽이 작동하는 원리를 설명하고 시계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협동정신이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태만이가 받은 보물」은 요행수만 바라고 탐구를 게을리한 태만이가 밤이 나오는 보물을 주는 「푸른 할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식물의 엽록체와 광합성과정등을 알수 있게 설명한 동화. 「수탉에게 주었던 「요」자」,「돌배골의 막내노루」등 또다른 몇편에서 볼 수 있는 버릇없는 응석받이 어린이와 이로 인해 속태우는 학부모,교사와의 상담모습은 오랫 동안의 단절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기본적인 정서는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 이같은 기본정서의 「공유」는 통일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염출문제와 함께 큰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남북한주민들의 「정서괴리」극복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시사로 이해되고 있다.
  • 자녀교육/최창신 축구협 수석부회장(굄돌)

    우리나라 각 가정의 자녀교육은 과연 잘 되어지고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필자는 주저없이 「완전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같은 낙제점이라도 59점과 0점은 차이가 많은 것인데,이 경우는 0점에 가까운 낙제점이다. 많이 나돌아 다니지는 않는 편이지만,크고 작은 식당이나 교회,무슨 대합실 같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정해진 자리에 단정하게 앉아 있는 어린이를 거의 본 적이 없다.단순히 자리만을 떠나 있는 게 아니다.많은 사람들이 모여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곳,조용하고 깨끗하게 식사하는 곳이 어린이들에게는 운동장이나 놀이터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마구 뛰어 놀고 소리를 질러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기는 듯 싶다. 불행하게도 어른들에게 제대로 인사하는 어린이 또한 본 기억이 없다.고개만 까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아예 고개 숙이는 것을 모르는 어린이도 의외로 많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지금의 40대나 30대는 대체로 넉넉지 못한 어린시절을 보냈거니와 자기들의 자녀만큼은 풍요롭게 키워보고 싶은 보상심리가 바탕을 이루고,좋은 가정교사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핵가족체제로 잃게 됐고,급변하는 사회조류에 따라 부모가 모두 바쁘게 생활하느라 아이들과 대화할 시간이 없으며,가정마다 하나 혹은 두 명의 자녀밖에 없으므로 덮어놓고 귀여워하는 입장이 된 데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래도 과연 괜찮은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모두 자기가 제일이고 자기만 위해 주어야 하며 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들이 자라서 과연 이 나라가 별 탈없이 제대로 지탱돼 나갈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구약성경 잠언에 이런 구절이 있다.「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내버려 두면,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리라」(29장15절).이와 비슷한 내용이 여러 군데 나온다. 어린이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될 것이다.「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는 속담은 그릇된 게 없다.
  • 민통선 첫 성묘/내무·국방부 지원 조상묘 찾기 첫날

    ◎“50년만에 찾아온 불효 용서하세요”/잡초로 뒤덮인 묘지보곤 목메어 말못잇고/“지뢰지역 못들어간다”에 먼발치서 눈물만 『어머니­ 저 용구가 50년만에 찾아왔습니다.어머니…』 강원도 철원군 김화면 암정리 야산 중턱.잡초에 뒤덮인 자그마한 무덤을 눈앞에 둔채 윤용구씨(70·서울 관악구 봉천1동 960의40)는 목이메어 더이상 말을 잇지못했다. 미수복 경기·강원도민회가 주관하고 내무부 국방부가 지원한 민통선지역내 조상묘찾기 운동 첫날인 1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지역을 찾은 실향민 34가구 87명은 분단 42년의 아픔과 조상묘를 찾은 감격의 눈물을 한없이 뿌렸다. 『바로 저기가 어머니묘입니다.제발 들어가게 해주세요』 윤씨의 눈물젖은 하소연이 계속됐지만 인솔장교는 윤씨 어머니 묘소 주위에 둘러처진 지뢰지역 표시때문에 윤씨를 제지하면서도 고개를 돌렸다. 지금부터 51년전인 1941년 19살의 나이로 병사한 어머니를 고향김화읍 암정리 공동묘지에 모신 윤씨는 그동안 회사 경비원 등으로 일하면서도 묘소찾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강원도민회등을 통해 몇차례 수소문으로 대충 위치를 확인하다가 이번에 민통선지역내 조상묘 찾기운동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 뒤 곧바로 도민회로 달려가 성묘신청을 해 이날 어머니묘소를 확인하게 됐다. 이날 김화지역을 방문한 34가구중 조상묘를 찾은 가구는 갈말면 정연리 일대 4가구,생창리 2가구 암정리 1가구등 총7가구인데 이중 정연리 4가구 유족들은 묘소에서 벌초를 하고 성묘등을 하며 그동안 못다한 효도를 했지만 나머지 가구의 유족들은 묘소주위가 지뢰지역이어서 눈으로 확인하는데 그쳐야했다. 신청자가 54명이나 돼 가장 기대를 모았던 조북면 백덕리·율목리·금곡리지역은 전지역이 비무장지대안에 위치,출입이 통제돼 철책선에 정성스레 차려온 제수를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그쳐 안타까움을 더했다. 백덕리에 할아버지·아버지등 선영이 있는 한명옥씨(56·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659)는 9명의 가족이 찾아와 철책너머로 보이는 오성산 기슭을 가리키며 자신의 옛집을 찾아보고 아들에게 선영위치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회사에 휴가까지 내고 찾아왔는데 못들어간다니 정말 안타깝습니다.바로 저기가 아버님 산소인데두요』 세살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월남한 한춘석씨(43·서울 구로구 시흥2동220의110)는 비무장지대 안쪽에 있어 갈 수 없는 아버지의 묘소를 바라보며 『저기도 우리나라 땅인데 언제 통일이되어 성묘를 할수있느냐』며 인솔장교의 손을 잡고 울먹였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미수복 강원도민회 남궁산사무국장(60)은 『묘소를 못찾은 가족이 많아 실망이 크겠지만 앞으로도 이 운동을 계속 추진,실향민의 아픔을 달래고 2세들에게 조상의 은덕을 기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6·25 42주년을 맞이해 3일까지 계속되는 민통선지역내 조상묘찾기 운동은 지난 6월17일부터 27일까지 이북5도민회 등에서 접수를 받아 강원 2백74명,경기 85명등 모두 3백59명이 신청했으며 추석무렵에 2차로 조상묘찾기를 실시할 계획이다.
  • 상이용사 민병주씨가 맞는 6·25아침(이사람)

    ◎“통일보탬 된다면 누구라도 용서”/18살때 입대… 결혼15일만에 두다리잃어/유아원서 새싹 키우며 「베푸는 삶」실천/전몰군경 유가족돕기 13년째… “이런 비극 다시 없길” 『가끔 철모르는 아이들이 「할아버지 다리가 어디 갔느냐」고 물을때면 「멀리 하늘로 보냈다」고 웃으며 말합니다.그러나 자라는 어린아이들에게는 우리가 겪었던 그 아픔이 다시 있어서는 안됩니다』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서울시립 하정유아원 원감 민병주씨(60). 그는 6·25때 두다리를 조국에 바친 상이용사다.그러면서도 갖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제는 이 나라의 새싹들을 돌보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있다.그리고 그의 얼굴에선 언제나 인자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18살 어린나이로 서울공업중학교 4학년(현 서울공고 1학년)재학중 국민방위군 소위로 입대한뒤 53년 7월 정식 육군소위로 임관돼 미해병 제1연대를 거쳐 제1343 야전공병대에 배속됐다. 이때는 휴전협상이 한창이던 때라 유엔군측에서는 「현재의 전선에서 더이상 전진도 후퇴도 하지말라」는 이른바 미국방성의 「캔자스라인」전략이 수행되고 있었다.그러나 공산군은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최후의 공세를 취해왔다.이에 맞선 미군들과 함께 민씨는 강원도 인제 동북방에서 파상공세를 취해오는 적으로부터 전선을 지키기 위한 보급수송로 가교설치작업을 하고 있었다. 『휴전을 앞두고 서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공병대 주변에만 하루에 3백∼5백발씩의 포탄이 쏟아질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이 그의 회상이다. 때마침 이 지역에는 비까지 억수같이 퍼부어 가교대신 부교를 놓아야 했다.민씨는 이 작업을 하다 날아온 적의 포탄 파편에 맞았다. 『병원에서 눈을 떠보니 오른쪽 다리는 잘려 나갔고 왼쪽 다리마저 심한 골절로 쓸수 없게 돼 있었습니다.결혼한지 보름도 채 안된 때라 아픔이 더욱 컸지요』 갓 시집온 부인에게 짐이 되느니 차라리 죽기로 결심하고 썩어가는 왼쪽 다리의 수술조차 거부하고 비탄에 빠져들었다.그러나 부인 이상옥씨(58)의 간절한 간호와 설득에 힘입어 5차례에 걸쳐 두다리를 모두 수술받은뒤 59년 4월 휠체어를 타고 소령으로 전역했다. 두다리를 잃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사회에 나온 민씨에게는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또하나의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게 된 것이 가슴아파 늘 「돈을 벌어 기숙학교를 세우겠다」던 꿈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우선은 먹고 살기조차 어려웠다. 불구의 몸인 민씨로서는 부인의 음식장사나 삯바느질에 생계를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부인이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변두리의 거의 버려진 땅을 헐값에 사들이곤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74년에 이르러 충남 천안군 성남면 신덕리에 비록 척박한 땅이지만 1만5천평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두다리를 못쓰는 몸을 이끌고 황무지를 일궈내기 시작했다. 부인과 함께 돌을 골라내고 땅을 뒤엎어갈기를 또 몇해.마침내 어엿한 과수원을 소유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생활의 여유를 되찾게 된 민씨부부는 자신들이 겪었던 비참한 생활을 돌이켜보며 장학사업을 벌이고 전쟁희생자 유족들을 돕는 일에 나섰다. 지난 79년부터 「하정장학회」를 설립,불우학생이나 소방관·경찰관·미화원 자녀들을 위한 장학기금을 해마다 3천만∼4천만원씩 내놓았다. 또 달마다 수원에 있는 「보훈원」을 찾아 전쟁으로 희생된 전몰군경의 미망인이나 자녀들을 보살폈다. 민씨는 이때의 심정을 『상이군인은 모두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얼마든지 자립할 수있고 남을 도울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민씨 부부는 보다 뜻깊은 일을 해보려는 생각으로 지난 87년 현재의 유아원을 경영하게 됐다. 『때묻지 않은 아이들을 곱고 바르게 키우는 것 또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유아원 운영에 남은 여생을 바치려 한다』고 했다. 그래서 유아원 운영에 모든 정성을 다했다. 아이들을 위한 각종 놀이시설이나 학습교재는 물론 컴퓨터 시설까지 갖추는등 40년전부터 꿈에 그리던 교육사업에 열정을 쏟았다. 이제는 원생이 1백10여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다른 유아원에서줄을 이어 견학올 정도가 됐다. 개구쟁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민씨의 얼굴에는 이제 지난날의 쓰라린 흔적은 씻은듯이 가시고 없다. 그리고 그는 『비록 나를 불구로 만든 전쟁이었지만 진정 통일의 길로 함께 갈수만 있다면 누구든 모든 것을 용서할수 있다』고 말했다.
  • 멕시코:3/나윤도특파원 현지리포트(중남미를 다시 본다:13)

    ◎한·멕시코 경협확대에 기대 크다/「북미무역협정」전 우리기업 진출 서둘러야/농업이민 한인 3·4세 주축,2만여명 거주/한국회관 건립·전용공단 조속설립 바람직 우리가 멕시코와 인연을 가져온 지난 90년동안 줄곧 멕시코는 한국인들에게 기대와 희망의 땅이 돼왔고 지금도 그 꿈을 찾아 멕시코로 찾아드는 한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와 90여년 인연 멕시코의 그 무엇이 한국인들에게 끝없는 매력이 되고 있는 것일까.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라고 쉽게 얻을수 있다.결국 매력은 미국에 있었고 멕시코는 미국으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는 것이다. 3천2백㎞의 길고 긴 미·멕국경에는 수많은 월경브로커들이 싸고 안전하게 안내(?)해주기 때문에 정당한 방법으로 미국에 들어갈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우회지로서 적격이었던 것이다. 이때문에 실제로 멕시코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한인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중남미등지에서 미국으로의 불법입국을 위해 멕시코에 잠시 머무는 한인들이 불법체류·밀수 등으로 자주 체포되기 때문에 전체 한인들이 「어글리」한 인상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한때 멕시코주재 한국대사관 영사의 업무는 붙잡혀오는 이들 불법체류자나 밀입국 기도자들의 뒷처리가 전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심각했다는 것. 그러나 몇해전부터 이같은 양상은 상당히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한인회장을 맡고 있는 서남수씨(53)의 얘기다.서씨는 『멕시코의 경제가 활성화 되면서 멕시코를 종착역으로 삼고 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면서 『그같은 마음가짐으로 오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멕시코는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고 희망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더욱이 지난해 9월 한국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노태우대통령이 멕시코를 방문,살리나스대통령과 양국의 협력증진을 위한 각종 방안을 마련함에 따라 이곳 한인사회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그동안 숙원사업으로 돼있던 한인회관건립지원을 노대통령이 약속했으며 또 한국전용공단설치,자원 및 수산협력증대,서울∼멕시코시티 직항로개설 합의 등으로 서울이 한결 가까이있음을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한편 멕시코정부도 이곳 한인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지난해 양국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협력방안들의 빠른 결실을 희망하고 있다.경제기획부의 가브리엘 토레스 대외협력국장은 『한국대통령의 멕시코방문은 양국이 보다 가까운 관계에서 문제해결을 노력해가는 계기가 됐다』면서 『양국협력이 보다 확실한 결과를 가져오기 바란다』고 농산물 수입개방등 우리측의 빠른 후속조치를 촉구했다. 현재 멕시코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모두 2만여명.이들중 60년대 후반 기술이민등으로 와서 정착한 사람들은 1천여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1950년 유카탄반도의 어저귀(사이잘삼)농장에 농업이민을 왔던 선조들의 후예로 멕시코인들에게 거의 동화된 한인후손 들이다. ○사회지도층 진출도 구한말 을사조약 이후 일제의 침략이 극에 달했을때 먹을것이 없어 계약노동자로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메리다농장으로 왔던 1천33명이 멕시코 한인의 효시이다.이들은 사기이민으로 갖은 핍박을 받아가며 노예와 같은 생활을 했으나 오직 4년의 계약기간이 끝난후 고국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견뎌냈다.그러나 막상 계약기간이 끝난후 준비기간을 거쳐 1910년 귀국을 서둘렀을때 그들은 일제의 조선합방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조국을 잃고 낯선 멕시코땅에서 오갈 곳없는 신세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후 이들은 고국에의 그리움을 삭이며 한국인 특유의 강인함과 근면성으로 멕시코땅에 뿌리를 내리고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현재 이들 3,4세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한인사회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고 대학교수,행정부국장등으로 멕시코사회의 지도층으로 진출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장사를 하며 어렵게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한민족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비록 말은 할줄 몰라도 한국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60·70년대 뒤늦게 한국에서 이민온 사람들과 같이 한인회를 설립,화합을 이루며 지내고 있다. 지난 4월말 한국정부의 초청으로 일행 4명과 함께 한달간 한국을 다녀온 이민3세 이르바시오 킴(김)문씨(62·멕시코 엔지니어링 이사))는 『처음 가보는 땅이었지만 전혀 낯설지 않아 「핏줄」의 의미를 새삼 깨달을수 있었다』면서 『우리 자손들에게 훌륭한 할아버지의 나라를 일깨워줄수 있도록 한국의 문화와 한국말을 가르쳐줄수 있는 여건을 모국정부가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인능력 높이 평가 70년대 중반,이곳으로 이민와 10여년째 양말공장 「레까 인더스트리」를 경영해오고 있는 최정철씨(45)는 『살리나스정권이 들어선 이래 최근 2∼3년동안 과감한 경제개혁 조치들을 추진해오고 있지만 아직 중소기업에까지는 변화가 느껴지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개방정책을 표방하면서도 외국기업에 대한 여러가지 불리함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들은 이곳 한인기업인들과 사전협의를 거치는 것이 위험부담이 적을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씨는 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금년중 체결된다면 멕시코경제는 어차피 한차례의 구조조정을 겪게되기 때문에 북미시장을 노리고 있는 우리기업들은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 동요집 「물새발자욱」 출간 염근수할아버지(인터뷰)

    ◎“젊은시절의 꿈 나이여든에 이루었죠” 지난해 「서낭굿」에 이어 두번째 동요집 「물새발자욱」(누리기획간)을 펴낸 염근수옹.나이는 여든 여섯이지만 마음은 아직 동심으로 팔팔한 현역시인이다. 이번에 그가 낸 동요집 「물새발자욱」에는 「서진강 물소리」「너와집 굴피집」등 고향에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질박한 토속어로 동심을 노래한 동요 93편이 5부로 나뉘어 수록됐다. 『고요한 아침바다/모래 불가에/종종걸음 발자욱/물새발자욱//무어라고 써놓은/글은 글인데/잔물결이 사르르/지워버려요//너무 예쁜 조갑지/동그란 구멍/어쩌면 이렇게도/동그랄까요//그 이야기 써놓은/글이 아닐까/잔물결이 사르르/지워버려요』(「물새발자욱」) 문학평론가 정원석씨는 이 시집에 대해 『리듬감과 유머감각이 풍부한 근래 보기 드문 동요집으로 이의 출현으로 한국동요 문학사는 다시 쓰여져야 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염옹은 1907년 황해도 백천출생으로 21년 양정고보 재학시절 「피꽃」이라는 시를 동아일보에 발표,문단에 데뷔했다.20년대 아동문학지「별나라」와 「새벗」의 주간을 역임하고 그의 동요 「댕댕이」「할머니 편지」가 홍난파의 「조선동요100곡집」에 실릴 정도로 이미 뛰어난 동요작가였던 염옹은 생활고로 한약업에 종사하기 전까지 다양한 이력을 거쳤다.일제시대 조선일보기자로 필화사건을 겪기도 하고 일제에 대한 저항의 한 방법으로 강릉 농악을 살려 명맥을 이었으며,일제의 금지조치로 사라져가는 정선어러리(아리랑)를 채록,그 유실을 막았다. 서울 갈현동 맏아들네 집에서 틈틈이 동요를 짓는 그는 『속에서 우러나와야 쓰지 일부러 짓지는 않는다』면서 『어렵던 시절을 보내고 이제 젊은시절 동요짓던 동심으로 되돌아간 사실이 되우 기쁘다』고 말했다.
  • 스승의 날 장관상 받는 신안 병풍도국교 조동헌 교사(이사람)

    ◎섬마을 선생님 외길 26년/“고향의 지식등대” 어느덧 환갑/동네마다 공부방 마련… 저녁에도 호롱불 수업/도로확장등 지역개발에도 앞장… “참스승” 칭송 낙도 어린이들을 가르치느라 젊음을 바친 할아버지 선생님.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전남 신안군 증도면 병풍도리 병풍도국민학교 조동헌교사(60)는 1·2학년 학생 10명을 교사에서 50여m쯤 떨어진 바닷가로 데려가 현장수업을 하고 있었다. 싱그러운 바닷바람을 타고 조교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맑게 퍼져나갔고 아이들은 또렷또렷한 눈망울을 굴리며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학생 50명,교사 5명이 전부인 이 외딴 섬마을 학교는 조교사가 처음 교직생활을 시작한 곳이며 교직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조교사는 지난 59년 전남대 상대를 졸업한 뒤 일반회사에 근무하다 「고향발전과 2세 교육」이라는 평소의 꿈을 이루기 위해 66년 교직에 투신했다. 첫 임지로 고향인 병풍도를 자원,그해 초 부임한 조교사는 10여년전 고향을 떠날 당시에 비해 변함이 없는 마을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조교사는 곧바로 3개 자연부락별로 8개의 공부방을 마련해 저녁마다 호롱불 아래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또 아이들에게 공책에 글자를 빽빽이 써 반복연습을 유도하는 「까맣게 쓰기」라는 프로그램을 개발,1∼2학년을 집중교육시켰다. 그 결과 아이들의 성적이 크게 향상돼 병풍도국교는 학력수준이 신안군내 1백여개 국민학교,58개 분교가운데 10위안에 드는 모범학교가 됐다. 그러나 조교사는 아이들의 학력향상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주민들을 설득해 마을공동도로를 확장하고 화장실 개량등에도 앞장섰다. 특히 60년대 후반 이 섬에 들쥐가 극성을 부려 농사에 큰 타격을 입히자 육지에 나가 고양이 20여마리를 구입,마을에 풀어 피해를 최소한도로 줄이기도 했다. 그는 어느덧 병풍국교 교사로서보다 병풍마을의 지도자로서 주민들의 존경을 받게 됐다. 조교사는 69년 임기를 끝내고 인근 증도면 전증국교로 옮겼으나 병풍도 주민들의 성화에 못이겨 2년만에 되돌아와야했다. 이같은 일은 반복돼 조교사는 만26년의 교직생활중 20년을 병풍도에서 보냈으며 이번 근무는 4번째로 83년이후 계속해 오고 있다. 자신과 자녀 모두가 조교사에게 배운 「제자 2대」라고 밝힌 이장 이운학씨(45)는 『선생님은 주민들에게 주체의식과 협동정신을 앙양시킨 낙도의 참스승이자 고향의 상록수』라며 그의 제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조교사는 자신이 낙도에서 학생교육에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 박연례씨(59)가 이해하고 도와주었기 때문이라면서 모든 공을 부인에게 돌렸다. 그의 자녀 6남매는 섬을 떠돌아다니는 생활 속에서도 모두 대학을 마쳐 사회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중 맏아들 용씨(34)는 춘천 한림대 의대교수로,셋째아들 삼구씨(28)는 일류기업체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아직 평교사인 그는 그동안 전남도교육감포상을 4차례,교육연합회장상을 1차례 받았으며 15일 스승의 날에는 교육부장관상을 받는다. 『고향에 남아 못다한 2세교육에 여생을 바칠까 한다』는 그의 미소 속에는 참교육의 의지가 번져 있었다.
  • 노령화사회… 우리 모두가 모셔야할 노인

    ◎어버이날에 돌아본 “대가족제도 마지막세대” 노인문제가 우리사회의 피할 수 없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의술발달과 영양상태 호전,높아진 건강의식으로 성인들의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나 65세이상 고령인구의 비중은 90년에 5%를 넘고,2000년에는 6.8%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인구 고령화 추세와는 달리 노인문제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수용능력은 전무하다.급속한 산업화로 노인들이 설 공간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전통적 대가족제도의 마지막 세대인 노인들이 막상 자신들은 보편화된 핵가족제도아래 피부양권을 박탈당하는 첫세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 노인문제의 비극성은 짙어진다.고령화시대의 실태와 문제점,외국의 사례를 분석하고 전문가의견을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를 찾아본다. ◎오늘의 현실/65세이상 인구 2백14만… 2천년 3백20만명/관련예산 1명당 한해 2만7천6백원 불과 서울 성동구 화양동에 사는 이명재할아버지(69)는 지난 총선과 같은 「눈요깃거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평소같으면 이웃 공원이나 길거리를 헤매며 어떻게든 하루를 보내야 했던 그였지만 선거때는 돈 안드는 좋은 소일거리가 많았었다. 선거가 끝난 사실을 못내 아쉬워하며 며칠후엔 할일없이 이웃 경로당으로 발길을 옮겼다.그러나 이할아버지에게는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경로당의 한 친구가 노환으로 숨졌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져보아도 성의표시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잡히질 않았기 때문이다. 이할아버지의 이같은 상황은 바로 우리시대 노인들의 자화상을 압축한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 노인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하루가 다르게 「젊은 노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보사부가 조사한 고령자 인구비율 통계는 60년 전체인구의 2.9%에 불과하던 65세이상 노인인구가 80년에 3.8%로 1백50만명,90년 5%로 2백14만명,8년뒤인 2000년엔 전체인구의 6.8% 3백20만명,2020년엔 선진국수준인 12.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우리나라 고령화수준은 90년기준 일본의11.9%,미국 12.6%,스웨덴 18.3%비율보다 크게 미치지 못한 것이긴 하다.그러나 급속한 인구고령화 추세로 볼 때 안이하게 노인문제에 대처할 경우 곧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노인인구의 급증에도 불구,올해 노인복지관련예산은 5백77억여원.91년보다 47%가 증가한 것이지만 사회복지예산중 5.8%,우리나라 전체예산의 0.17%에 불과한 실정이다. 65세이상 노인 한명당 1년에 2만7천6백원,하루 75원이 노인복지를 위해 확보된 예산이다.개인적인 소득이 따로 없을 경우 이 돈으로 건강문제·여가선용·생존비용을 충당해야 할 판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의 문제는 소득기회의 확대등 소득보장문제,건강·주택문제,노인보호시설확보등 대체로 3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올해 초 한국소비자보호원이 대도시 60세이상 노인들에 대해 생활실태를 조사한 결과 노인들의 70%가 자식들로부터 용돈을 타쓰고 있으며 또 70%가 6만원미만으로 한달을 보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노인들의 이같은 경제상황은 자녀교육등으로 대부분 노후대비를 못한 탓도 있지만 「복지국가」로서 「국가연금제도」등 정부의 적극적인 보완책도 미흡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현재 정부는 70세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지난해부터 1만원씩의 노령수당을 지급하고 있다.그러나 그 대상이 전체노인의 8.4%인 19만1천명으로 제한되고 있어 미봉책에 불과하다. 지난 88년부터 시작된 국민연금제도가 있으나 현재의 노인들은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다.노인들의 소득보장·여가선용을 위한 일자리도 몇몇 전문적인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소득도 변변치 못하지만 유병률이 높고 대부분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나라 노인들은 일단 몸이 아프면 대부분 대책이 없어진다. 전국민의료보장체계가 돼 있지만 본인부담금액때문에 의료기관이용에 제한을 받고 있고 노인전문병상이나 전문요양기관도 없다고 할만큼 태부족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노인 요양원 병상수는 18개소에 모두 1천4백47개인데 반해 가까운 일본의 경우 2천1백25개소의 15만3천개로 우리나라 보다 65세이상 인구비율로 따질때 무려 15배나 많다. 전문병상도65세이상 1만명당 일본이 32개,캐나다가 1백43개등이지만 우리나라는 일부 병원에서 형식상 시도하고 있을 정도이다. 도시화·산업화의 급진전으로 생긴 핵가족추세도 노인들에게 달갑지 않은 대목이다. 핵가족화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노인부양기능을 약화시키면서 나아가 세대간의 갈등·소외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보사부가 최근 조사한 노인단독가구는 모두 58만7천가구로 우리나라 전체가구의 5.2%,노인가구의 22.9%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들 노인단독가구중 70%가 가족과 함께 살려해도 마땅한 주택이 없거나 세대간의 갈등등 타의로 혼자지내고 있다는 것이 보사부관계자의 귀띔이다. 사회적 여건변화에 따라 생긴 노인들의 소외감,역할상실에 대한 정서적 불안감을 마음놓고 해소시킬 장소도 변변치 못하다. 현재 전국의 크고 작은 경로당은 모두 1만8천여곳.연료비등 운영료만도 20여만원에 이르지만 정부·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하는 월운영비는 1만2천여원 안팎이다.시설이 허술하고 노후화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때문에 많은 노인들은 길거리나 공원을 헤맬 수 밖에 없고 그나마 가까운 이웃에 「복덕방」이라도 있으면 퍽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무의탁노인들을 위한 양로원등 노인복지시설은 전국적으로 1백6곳.전체노인의 0.3%인 6천8백여명이 「수용」돼 있으나 우리나라 무의탁노인 5만여명등 12만명으로 추산되는 잠재적 수요를 감안할 때 그 격차가 몹시 크다. 가까운 일본이 15만명,대만이 6만여명을 수용하고 있는 등 외국의 경우 4∼5%가 노인복지시설에서 「안락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복지시설종사자의 인건비등 운영비 지원수준이 현실과 거리감이 있는 것도 노인들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다. ◎정부대책/정년연장·능력은행 확대로 노후소득 보장 노인복지대책의 관건은 예산의 확보와 실천력이다.실행이 전제되지 않은 관련법규의 제정,미지근한 실천력이 우리 노인정책이 걸어 온 길이다.그러나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고령화시대에 이미 들어선 지금 더이상 노인복지를 미룰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노인문제는 노인이 아닌 우리 자신들의 문제로서 이를 방치할 경우 공동체적 위기로까지 발전될 소지가 크다. 이같은 인식하에 정부는 제7차 경제개발계획(92∼96년)가운데 노인복지부문에 대해 세부계획을 수립,추진중에 있다. 정부는 이 계획의 성패여부가 앞으로 「복지국가」의 문턱을 넘어서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가름하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실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96년까지 모든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월1∼3만원씩 노령수량을 확대,지급할 계획이다. 또 노인들에게 적당한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인능력은행」을 확대,시·군·구마다 1개소씩 설치하고 고령자고용촉진법 시행령을 조속히 제정,노인이 취업할 수 있는 직장에서는 일정비율 의무적으로 노인을 채용토록 할 계획이다.이와 함께 국·공립기관의 정년을 60세이상으로 연장하고 민간기업에 대해서도 정년연장과 재취업을 적극 권장할 방침이다. 보건소에 노인진료실을 설치하고 노인병 전문요원및 가정간호사를 배치,방문간호서비스를 제공할 계획도 마련해 놓고 있다.노인환자 요양을 위해 노인전문병원과 노인전문진료요양 시설을 96년까지 6대도시에 설치한다. 특히 올해부터는 노인의 재가보호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정간호제를 실시하고 가족의 노인부양기능을 대체하기 위해 가정봉사원제도도 정착시켜 나갈 예정이다. 노인종합복지관을 올해 21개소 세우는 것을 비롯,96년까지 모두 1백26개소를 건립한다. ◎외국의 경우/60∼70개국서 연금제… 임대아파트 일반화 선진외국의 경우 노인복지는 정부개입의 증가로 가정에서 전문화된 시설로 옮겨갔다 다시 가정에서의 포괄적인 서비스제공에 주력하는 추세다. 가능한 한 시설보호를 피하고 노인들이 자기집에서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가사보조나 가정원조(Home­Helps)등 재가복지에 최우선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 또 60∼70개국 이상이 이미 완전노령연금제를 실시,이제는 노인복지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노인의 소득보장제도로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녹지관리프로그램」을 만들어 노인들로 하여금 공원 미화작업이나 가로수 돌보기 등의 일을 하게하고 있다.또 「액션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노인들이 유급자원봉사활동을 통해 능력을 활용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노인인재은행」을 주요도시에 설치,취업을 알선하고 있고 55세이상 중·고령자를 전체종업원 수의 6%내에서 의무고용하는 제도가 있으나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중·고령자를 제대로 채용하지 않을 경우 고용주에 대한 처벌이 무겁다는 것이다. 또 유럽 대다수 나라에서는 「노인복지공장」이 마을마다 설치돼 퇴직노인들에게 소득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의료보장의 경우 미국은 재가노인들이 의사나 치료시설을 선택,가정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일본은 「노인보건법」을 기초로 70세 이상의 노인과 거동장애가 있는 65∼69세 노인들을 대상으로 진찰·약제·치료서비스사업을 국가차원에서 펴고 있다.유럽의 경우에도 병원에서 퇴원한 재가노인을 위해 「임시거주보호소」를 운영하는가 하면 각종 「가정건강요양프로그램」이 개발돼 재가노인들이 가정에서 특별물리치료 등을 받을 수있도록 하고 있다. 주택보장으로 미국에는 노인임대아파트가 일반화돼 있고 노인들에 대해 주택세금의 연체 또는 납세연기 등의 혜택을 주고있다. 일본은 호텔식 구조로 노인주택이 운영되고 있는가 하면 주택개량시 무이자 융자제도도 있으며 유럽에서는 자녀주택의 정원에 별도로 세운 소규모 노인주택이 성행하고 있다. 양로원및 요양원 등 노인보호시설은 대부분 국가에서 운영하는 무료시설에서 유료시설로 옮겨가고 있으며 무료의 경우 특정한 노인들에 대해 「주간보호소」「정신질환보호소」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스웨덴 등 유럽 복지국가들은 65세 노인의 5%정도가 각종 시설에 입소해 안락한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다. ◎전문가 진단/“가정·사회적 소외 심각하다”/노령수당·경로우대증제도등 내실 부족/박재간 노인문제연소장 노인들은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생존이 가능하다.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노인들은 가정에서나 사회적으로나 발붙일 곳을 잃어가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시부모와의 동거를 기피하는 며느리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혼령기에 접어든 처녀들은 시부모를 모실 입장에 있는 신랑감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많은 비율의 노인들은 자녀와 동거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사결정권·재산관리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자녀들의 눈치를 보며 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삶의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자살의 길을 택하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노부부 또는 노인 혼자서 사는 가구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80년대초까지만 하더라도 노인단독가구는 전체 노인의 14%에 불과했으나 91년말 현재 그 비율은 29.0%를 상회한다. 10년 후인 2000년에는 42%이상의 노인들이 자녀들과 동거하지 못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가정이라는 울타리는 이미 노인들에게는 삶의 보금자리가 되지 못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에서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금세기초에 노인부양을 국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정책전환을 이룩했다.그들은 지금 국가예산의 15%에서 20%를 노인복지예산으로 할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노인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서두르지 않고 있어 답답하기만 하다.노인복지정책이 전무하다는 것은 아니다. 노령수당제도·경로우대증제도·양로원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모두가 전시효과적 사탕발림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예산중 노인복지를 위해서 지출되는 돈이 0.15%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오늘의 노인들은 지난날 우리를 낳아서 기르고 나라 발전을 위해서 헌신한 「유공자」들임을 잊어서는 안된다.이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결코 홀대받아야 할 존재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그러한 뜻에서도 정책결정자들은 노인문제 해결을 위해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펼 의지를 나타내야 한다.
  • LA한인타운에 미전역서 3천여명 몰려

    ◎“동포의 아픔 나누자” 자원봉사자 줄이어/구호품 배급에 법률상담·조서작성/입원환자 수발까지 “손발역할” 정성 「한인들의 피해는 동포들이 돕자」­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사태로 큰피해를 입은 한인타운 곳곳에 교포자원봉사자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교포자원봉사자들은 피해소식이 미국전역에 알려진 직후인 지난 1일부터 모여들기 시작,5일 현재까지 연인원 3천여명을 헤아리고 있다.이들은 가까운 오렌지카운티부터 심지어 시카고·뉴욕에서 온 사람들도 많다. 20대에서 50대가 주류를 이루지만 칠순할아버지가 『아무일이나 시켜달라』면서 방송국주위를 맴도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들의 모습은 한인방송국행사장·파출소·경찰서·LA시청등 관공서,교회에 이르기까지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이들이 하는 일은 실로 다양하다.방송국·교회등 구호단체에서 피해신고를 받고 성금을 접수하거나 직접 구호품을 나눠주기도 한다. 자원봉사자가 아니면 모두 엄두를 낼 수 없는 일들이다. 우리 영사관이나 시당국에서 조차 하지못한 피해통계는 모두 자원봉사자들이 방송국등 관계기관의 협조를 받아 작성한 것이다. 조금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봉사자들은 교회나 사회단체에서 벌이는 복지·법률상담을 펴기도하며 어떤이들은 직접 경찰서·시청등으로 가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는 교포들의 입이 되고 손발이 된다. 또 가까운 파출소를 찾아온 이들에게 피해조서를 직접 작성해주기도 하고 보상의 종류·방법·내용들을 자세히 알아봐주기도 한다.다른 봉사자들은 이번 흑인 소요때 부상당한 한인들을 위해 입원중인 병원을 방문,음식물을 손수 만들어 배달해주거나 간병일까지도 척척해내고 있다. 영어가 유창한 자원봉사자들은 피해현장이나 접수장소에서 찾아온 외국기자들을 자신들이 맡아 현황을 대신 설명해주기도 한다.LA시청에는 공무원들의 일손이 달리자 피해자료를 직접 컴퓨터에 입력시켜주는 작업도 담당한다. 봉사자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자신 역시 피해자이면서도 『봉사하겠다』며 나온 사람들.이들중에는 일터를 잃어버려 나온 이도 있지만 서로를 위로하고 받으며악몽의 순간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나온 사람도 있었다.자원봉사자들을 쫓아 다니며 이들을 위해 간단한 음료,간식을 제공하는 자원봉사자도 많다. 이처럼 자원봉사자가 많이 몰려들지만 재해보상에대한 정확한 지식·정보,보상을 위한 서류구비를 제대로 안내하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선밸리에서 자원봉사를 위해 1시간거리를 출퇴근하고 있는 권인걸(43)·서인선씨(42)부부는 『구호품도 구호품이지만 많은 한인들은 피해보상 절차나 정보를 잘 몰라 쩔쩔 매고 있다』면서『회계사·변호사·보험전문가등 많은 전문인들이 참가해 이들을 돕는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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