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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할아버지 흉기위협/돈 빼앗은 고교생 영장

    서울 강서경찰서는 8일 친구와 함께 자신의 친할아버지를 흉기로 위협해 돈을 빼앗은 이모군(16·P고 2년·경기 과천시 별량동)에 대해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달아난 최모군(16)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이군은 지난 3일 상오 3시쯤 친구 최군과 함께 복면을 하고 할아버지(88)가 주지인 서울 강서구 등촌동 모암자의 침실에 몰래 들어가 할아버지를 흉기로 위협해 지갑속에 있던 현금 70만원을 털어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 동경성의 대종교(송화강 5천리:27)

    ◎발해 도읍지서 꽃핀 민족종교/1930년대 본거지 구축… 동북3성서 독립운동/발해농장·이상촌 건립… 조선족에 살길 열어/단군섬이던 교인들은 일제탄압에 뿔불이/자금난 본떠 만든 궁궐터엔 깨진 기왓장만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은 해동성국으로 일컬었던 발해국에서 따온 지명이다.발해역사 229년동안 두 번이나 도읍지가 되었던 상경용천부는 바로 발해진에 있다.동경성이라고도 불리는 상경용천부의 도성은 당나라 장안성을 본떠서 조영했다는 것이다.장방형을 이룬 도성은 외성과 내성,궁성을 갖추었다. ○궁궐터를 밭으로 개간 오늘날 남아있는 외성에는 버드나무가 길길이 자라 숲이 되었다.북쪽 외성의 길이는 5.5㎞,남쪽 길이는 5㎞,동서 길이 3.5㎞에 달했다.외성안에는 마차가 다니는 80m의 거리가 질서정연하게 구획되어 당나라 장안을 방불케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이야기다.그리고 내성 역시 장방형으로 그 둘레가 4.5㎞에 이르고 있다.당시 삼성육부가 자리잡았던 내성에는 성터와 금원자리가 그런대로 남았다.이른바 어화원이라고도 하는 2만㎡의금원 자리에는 인공못과 조산흔적이 아직도 보인다. 궁성의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다.궁성의 남문인 오문은 그 흔적이 뚜렷하다.오봉루로 더 널리 알려진 오문은 누각만이 없을뿐 높이 6m,너비 20m 규모로 잘 복원되었다.오문 북쪽 5개의 궁전터에는 크나큰 주춧돌만이 잡초속에 묻혔다.16부 130개 현을 호령했던 왕실의 권력이 오간데가 없는 이 황성을 누가 자금성이라 했던가.가장 큰 궁전터 동쪽에는 팔보 유리정이 있다.왕이 마신 어수가 솟아올랐다는 이 샘의 석축에는 이끼가 창연하다. 용천부를 두루 밟노라면 허무한 생각이 가슴에 쌓인다.세월과 함께 모든 영화가 사라진 궁궐 옛 터전에는 깨어진 기왓장만 나뒹군다.그래도 누군가가 궁궐터를 밭으로 부쳐서 여름이면 옥수수가 검푸르게 자랐다.이 땅은 발해 이전에는 고구려 강토였고,더 올라가면 고조선의 영토였다.청나라때인 강희16년(1677년)에는 청조의 발상지라는 이유로 봉금구가 되어 인적이 끊기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의 변경민들이 사선을 넘나들었다.새벽에 강을 건너 농사를 짓다가 저녁에 돌아가는 조선인들을 더이상 막을수 없게 된 청조는 이른바 「혼춘영고탑초간장정」을 반포했다.이는 조선족을 달래기 위한 조치였는데,영고탑은 오늘날 행정구역상으로는 혼춘이 아니라 발해진에서 15㎞에 불과한 영안시에 있다.그래서 1889년께 이 일대에 조선개간민촌 고려영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고려영은 주로 영고탑성향으로 형성되었다. ○1889년에 고려영 형성 그 당시 조선인은 1천200∼1천400명이었다.이후 조선민은 더 늘어나 1930년에는 3천88명,1932년에는 1만2천767명을 기록했다.이들은 바로 중국 동북3성에서 독립운동을 거의 주도한 대종교의 기반이 되었다.그러다 대종교는 1911년 길림성 화룡시 용성향 청호촌을 거쳐 1920년에는 흑룡강성 밀산시 당백진 등으로 본거지를 옮겨다녔다.1928년에 다시 흑룡강성 영안시 남관으로 들어온 대종교 본부는 1934년 발해의 옛 읍지인 영안시 발해진 동경성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대종교는 총본사를 동경성으로 옮기면서 조직과 기구를 정비했다.3·1학원을 세우고 발해왕궁터 바로 남쪽에 천진전을지었다.교주는 윤단애 선생이었다.그 무렵에 조만춘이라는 사람이 대종교 활동에 참여했다.그런데 조만춘이 만주국 사법과 밀정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그의 밀고로 대종교 요원들이 모두 체포되었다.이를 대종교에서는 임오교변이라 하는데,영안시 삼량향 남향촌의 이인희옹(70)은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그는 대종교 주요 멤버였던 이수원의 손자다. 『우리집은 대종교 총본사와 200m 밖에 떨어지지 않았디요.아침에 깨어보니 할아버지께서 본사에 다녀오신 모양입데다.그리고 나서 밖을 내다보았더니 일제가 동원한 경찰들이 떼로 몰려와 있었디요.할아버지께서는 옷을 챙겨 입으시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식구들이 울면서 만류했디 않았겠습네까.다 잡혀갔으니끼리 뒤에 수습을 하셔야 된다고….그래서 피신을 하셨디요.식구들은 대종교 서적과 서류를 마대에 넣어 한족집에 맡기는 것도 보았디요』 단군을 섬긴 대종교인들은 거의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겼다.영안시 동신촌 이병조(72)의 부친 이련건도 그런 분이었다.일제의 주구 조만춘의 유혹도 뿌리친 그는 옥중에서 동지들한테 보낸 한시에서 이런 구절을 남겼다.「발해성터에서/무엇을 해야 할꼬/나라일 걱정에/하룻밤이 일년 같구나」.나라를 잃고 독립을 위해 망명지에서 어렵사리 살았던 우국지사들의 고뇌가 엿보였다. 백산 안희제선생은 1933년 동경성에 정착한 대종교 요인이다.동만농장 토지를 사서 발해농장을 꾸리기도 했다.당시 논을 개간하며 쌓은 둑은 지금의 아보저수지에 묻혀버렸지만,그가 「발해농장」간판을 걸었던 건물의 잔영은 남아있다.발해진 상경로 17호 발해진청사에 절반쯤 남은 건물이 그것이다. ○격변의 세월 한족촌 탈바꿈 안희제 선생은 임오교변으로 체포되었다가 이듬해 8월3일 병보석을 받았다.그러나 감옥문을 나선뒤 세상을 떴다.그는 동경성일대의 조선족들에게 살길을 열어주어 생전에 많은 추앙을 받았다.그와 더불어 추앙을 받았던 인물을 더 꼽으라면 김소래 선생이 있다.반일투사이자 교육가인 선생은 1928년 오늘의 영안시 와룡향 홍기임장에 이상촌을 건설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모두 바뀌어 한족들이 그 자리에 살고있다.김소래 선생을 아는 사람도 없거니와,본래가 조선족 이상촌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를만큼 변해버렸다.지금 임장사무실로 쓰는 건물 뒤쪽으로 흐르는 실개천 건너의 언덕이 선생의 집자리였다고 한다.물론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그보다 더 애석한 일은 선생의 유해가 묻힌 묘지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아마도 묵묘로 남았다가 세상이 바뀌어 자취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김소래 선생은 1933년에 피살되었다.선생은 피살전에 죽음을 예견했는지 몰라도 책과 서류를 산속 동굴에 감추었다고 한다.그런데 광복후 사냥꾼 이기송이 집으로 가져왔으나,마을 사람들이 담배를 말아 피우는 종이로 사용했다는 것이다.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다.발해 도읍지의 독립운동사는 그렇게 역사 뒤안으로 사라졌다.
  • 이석씨는 누구인가/해남 출신… 최근 서울서 선반기능공으로

    ◎며칠전 부모에 “좋은 회사에 취직” 전화도 숨진 이석씨(23)는 전남 해남군 해남읍 수성리 126이 고향으로 최근까지 수원과 서울의 중소업체에서 선반기능공으로 일했다. 해남군 계곡면사무소에서 민원봉사계장으로 근무하는 아버지 이병욱씨(52)와 어머니 정옥애씨(49) 사이의 3형제중 장남. 92년 2월 해남실고를 졸업하면서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땄다.이어 해남천주교의 추천을 받아 서울대교구(명동성당)에서 운영하는 돈 보스코 청소년센터(직업훈련원)에서 선반기능공 2년 과정을 수료했다. 이씨는 93년 키가 작아(5급판정)병역을 면제받았다.지난 4월 고향집에 들른 이씨는 할아버지 이규림씨에게 『수원에 있는 직장에서 선반 기능공으로 일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으나 최근 서울로 직장을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고교 1·2학년 생활기록부에는 「인사성이 밝고 순박하나 솔직성이 요구됨.천성이 착하고 명랑하나 집중력이 요망됨」이라고 적혀 있었다. 독실한 천주교신자인 이씨는 며칠전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최근 수원에서 서울의 좋은 회사로 옮겼으며 돈을 벌어 용돈을 보내 드리겠다』고 말했다.또 동생 원(21)·경(16)군에게도 자주 편지하는 등 우애가 깊었다고 주위 사람들은 전했다.
  • 「서유기」의 무대 연운항(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9)

    ◎“손오공의 출생지” 화과산 곳곳에 전설이…/삼원궁경내 현장법사의 기념관 우뚝/칠십이동 괴석원에 「저팔계」도 의젓이/지장암·숙성촌에 아직도 신라고승·무역상 체취가… 중국 4대 기서의 하나로 「서유기」의 발상지요,그 주연인 당승 삼장법사와 돌원숭이 손오공의 출생지인가하면 청대의 「홍루몽」과 「유림외사」의 혼성 아류소설로 보여지는 또 하나의 명작 「경화연(경화연)」의 산실은 바로 강소성 북단 항구인 연운항이다. 그곳은 명작의 무대요 산실일 뿐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위도상 부산과 목포에서 줄곧 서쪽으로 황해를 건너면 닿는 곳.일찍이 당나라때는 신라 사람들이 무역하던 해상의 거점이요,신라의 고승들이 도를 닦느라 부락을 이룬 곳이다. 중국문학사상 가장 성공한 신마소설로서 오승은(1504∼1582)의 「서유기」는 시작부터 황당무계했다.화과산 산상에 있던 한덩이 신선 바위.그 바위가 열리면서 알이 나오더니 석란은 바람속에서 돌원숭이로 변하고 돌원숭이는 수렴동 동굴속에서 동천복지를 발견,거기다 뭇 원숭이를 거느리고 깃들이다가 그들로부터 「미후왕」으로 추대되고,그 뒤 천궁과 지부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삼장법사를 도와 팔십일난을 극복,끝내 서천인 인도로 가서 불경을 얻어오기까지 위기를 배제하고 요마들을 소탕하는 용감하고 슬기있는 손오공의 영웅신화인 것이다. 그 돌원숭이 영웅인 손오공과 당승 삼장법사의 출생지인 화과산이 바로 오늘날 연운항시 동쪽 15㎞지점의 운대산이라서 거짓말같은 사실에 누구나 얼얼할 수 밖에 없다. 「서유기」그 첫회를 펼치면 12만9천600년을 1원으로 하는 천지의 역수로부터 망망묘묘한 혼돈의 세계를 말하면서 영기를 통한 원숭이가 태어난 화과산을 묘사했다. 「동승신주,해외일국토,명왈오래국.국근대해,해중유일명산,환위화과산.차내십주지조맥,삼도지래용,자개청탁이입,홍판후이성,진개호산!」 (동승신주의 바다 저쪽에 또 하나의 국토가 있나니 이름하여 「오래국」.오래국은 넓은 바다를 끼고 바다 한복판에 산이 솟았나니 이름하여 「화과산」.이 산은 십주의 할아버지요,3도의 기원으로 천지가개벽되어 청탁이 갈라진 뒤의 정말 명산이었다)고. 물론 중국에는 여러곳에 「화과산」이 있다.1982년 10월,연운항시에서 전 중국의 「서유기」전공학자들이 모여 제1회 「서유기」학술세미나를 개최하여 현지 답사와 많은 문물의 고증을 통해 연운항시외에 있는 화과산이야말로 「서유기」의 발상지임을 공인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서유기」의 저자인 오승은의 고향­회안에서 불과 130㎞요,외가가 연운항인데다 오승은이 두번이나 화과산을 올랐다는 방증 외로도 「서유기」에 묘사된 화과산이 사실과 근접했고,「서유기」의 스토리가 연운항 일대에서 수백년 전래했던 전설과도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필자는 서둘러 화과산으로 차를 몰았다.불과 20분에 작은 어촌을 방불케하는 화과산향에 이르렀다.거기서 동쪽으로 운대산의 주봉인 화과산(해발 625m)까지는 갈수록 비탈이었다.그 산구 왼편에는 대촌댐,댐옆으로 그 유명한 아육왕탑.그것은 40.6m의 높이에 9층8각탑,북송 천성1년(1023)무렵에 고대 인도의 아육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뒤 열네차례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탑.강소 북부지역에서 가장 오래고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산구에는 높이 12m,가로 28m의 아치형 산문,거기에는 원숭이를 비롯,사자·호랑이·돼지·곰등 백쌍의 동물이 형형색색의 조각으로 섰으니 과연 손오공의 고향임을 실감케 했다. 산문을 지나 선인교를 넘고 다시 남천문.한참을 오르자 사로탑,그 옆에 해발 580m의 청풍정에 운대산 그 복부를 굽어보는 삼원궁이 있다.삼원궁은 화과산의 가슴이다.당승 3형제를 기린다는 그 절에는 현장법사의 기념관이 있고 「서유기」의 유적이 모두 삼원궁을 중심으로 분포되었다. 거기서 동북으로 오르면 높은 벼랑에 동굴,그 동굴밖에 드리운 물줄기,이름하여 「수렴동」이라 일컫지만 물은 마른채 「고산유수」라는 각자가 선명했고,그 각자가 쓰여진 명·가정23년(1544)은 「서유기」의 저작시기보다 몇십년 빨랐다.수렴동에서 북으로 오르면 옥황각,내려가면 후원,그 아래로 칠십이동에 괴석원,물론 팔계석도 그 곁에 있다.그 괴석의 숲속을 거닐다 보면 「서유기」의 교과서를 읽는 양 흥미진진했다.어떤 것은 「서유기」의 등장인물에 유사했고 어떤 것은 억지 춘향인데,400여년전 여기 어디쯤 「서유기」를 구상하며 거닐었을 오승은의 발자국이 찍혔으리라. 그렇게 오르내리다가 문득 만난 것이 문자 그대로 바다를 바라본다는 정각­조해정에 이르렀을때,멀리 굽어보아도 바다는 보이지 않고 괴석들만 어수선했다.옳지! 이 화과산이 300년전엔 강소 유일의 해도에 솟은 산이었지.1668년의 대지진때 운대산 해안선이 북으로 14㎞나 이륙된데다 토사에 메운채 1700년대부터 벽해가 상전 되었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그때는 이 산이 출렁이는 황해속에 우뚝 솟았고 사슴과 여우가 뛰놀면서 기화요초와 송백·지란을 품에 안았겠지.뿐만 아니라 이 산의 서쪽 골짜기 지장암과 숙성촌에는 신라의 중들과 신라의 선원들이 도를 닦고 부락을 형성했던 곳이다.하긴 조선 성종때 우리나라 최세진이 엮은 중국어교재인 「박통사언해」속에는 벌써 「서유기」를 소개한 바 있으니 해주(연운항의 옛 이름)는 여러모로 한·중 교류의 거점이었다. 화과산을서둘러 하산한 뒤,필자는 다시 남쪽으로 20㎞지점인 판포까지 단숨에 달렸다.「경화연」의 산실을 찾아서. 당나라 여황이었던 무칙천의 황제 찬탈과 붕괴과정을 겉으로 과거에 낙방한 당오란 사람이 해외 40여개국을 나들이한 견문과 당규신 등 백명의 재녀들이 여권을 신장하는 고사를 안으로 쓴 재자소설로 윤리성·애정성·사회성·무협성·철학성·풍자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 소설의 저자 이여진(1763∼1830)이 스무살무렵 그의 고향인 북경을 떠나 이곳 포구에 와서 그의 불우했던 벼슬살이의 체험을 살려 20년에 걸쳐 완성했는데 1818년에 출판,중국은 물론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그 산실이 여운항시 판포진 동대가에 재현되었는데 지금은 비옥한 농촌이지만 당시는 소금을 만들던 염장.역시 상전벽해를 느끼게 했다. 그런데 「경화연」속의 「군자국」이 예의지국으로 그려졌는데 그 군자국의 모델이 신라라는 설이 있어 우리 입맛을 다시게 했다.
  • 멕시코 자동차부품사 알로이멕스(G7으로 가는 길:71)

    ◎기술혁신·고효율성으로 승부/공정자동화·적정인원 관리로 생산성 높여/완벽한 품질관리… 작년 101개 부품 반품률 “0”/가족경영 40년… 전략회의에 작업반장도 참여 멕시코주 트라네 판틀라시에 있는 「알로이멕스(ALOYMEX)」는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회사다.엔진을 제외한 자동차의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부품은 거의 모두 취급한다.이 회사는 40년 넘게 「가족경영」을 해오고 있다.할아버지가 세운 회사에 손자까지 가세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창업자는 알바레스 페르난데스.그가 작고한 뒤 지금은 아들 마뉴엘 알바레스 일로이사가(65)가 회장을,큰 손자 루이스 알바레스 곤잘레스(34)가 사장,작은 손자 앙구스 알바레스(27)는 재정담당이사를 맡고 있다. 식구들끼리 경영을 하기 때문에 마찰이 많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업무추진에 일관성이 생기고 재정문제등에 잡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중고버스 수리하다 인연 알로이멕스는 지난 53년 주유원,버스운전사등을 하던 알바레스가 지금의 회장인 아들과 함께 중고버스 1대를구입하면서 시작됐다.고장이 잦은 고물버스를 직접 고치다 보니 자동차 스프링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조명,금속부품까지 손을 대게 됐다. 사장인 큰 손자 루이스는 10년전부터 회사에 합류했다.그는 입사하자 마자 판매촉진대리를 맡아 지방 판매망을 넓히는 일부터 배워 나갔다.판매나 제품관리,고객관리는 「경영」의 기본이기 때문에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가족회의」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가족경영」을 하고 있지만 종업원들도 회사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특별한 이슈가 없어도 일주일에 세 번씩 회의를 갖는데 이때는 경영 최고책임자인 「삼부자」뿐 아니라 현장작업반장들이 참석한다.이들은 현장에서 느낀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경영진에서는 이들의 의견을 검토해 실무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수출로 돌파구 열어 노·사간 대화창구가 항상 열려 있는 가족같은 분위기는 회사가 창업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을때 진가를 발휘했다.페소화 폭락으로 94년말 시작된 위기는 95년 초반까지 이어졌다.심할때는 한 달 판매량이 90%이상 격감하기도 했다.임금이 밀리고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품질에 문제가 있어서 생긴 위기가 아니고 급작스런 시장변화로 생긴 외환이었다. 이 때 종업원들이 자청해서 세달동안 20%이상 임금삭감을 감수하겠다며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경영진에서도 이에 화답하듯 수출로 돌파구를 찾았다.그 결과 95년 3월 이후 두달동안은 수출실적이 0에서 지금의 50%수준까지 급성장하면서 위기를 벗어날수 있었다. 「알로이멕스」는 연료탱크,완충스프링,프레싱(금속성형),조명제품을 만드는 4개의 자회사를 갖고 있다.자동차 연료탱크,섀시,범퍼,엔진뚜껑,차 양축에서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 스프링,자동차 외부에 부착하는 플라스틱 판넬,바퀴덮개,뒷트렁크의 물빠지는 홈등을 여기서 제조한다. 플라스틱 부품도 일부 만들지만 주생산품은 자동차의 알루미늄 연료탱크다.연료탱크는 한달에 300∼400개를 만드는데 개당 가격이 400달러(36만원)로 수익성이 가장 높은 주력 품목이다. 이 연료탱크는 세계 유수의 자동차 제조업체에 납품된다.크라이슬러,포드,GM,미국 트럭 회사인 나비스타,메르세데스 벤츠,멕시코의 버스·트럭회사인 디나 등이 알로이 멕스사의 오랜 고객들이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품질관리에 특히 신경을 쓴다.자동차 엔진뚜껑 등을 만드는 프레스회사의 경우,고객사의 주문을 받으면 먼저 마스터제품(제품틀)을 만든뒤 생산된 제품을 컴퓨터 3차원 센서로 분석,오차가 생겨 얇거나 두껍게 잘못 나온 부분 등 원품과 틀린 곳을 꼼꼼하게 체크한 뒤 출고한다.이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불량률은 백만분의 5정도에 불과하다. 프레스회사는 지난 1년동안 제품에 문제가 생겨 고객사에서 돌아온 반품률이 제로(0)가 될 정도로 탁월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이곳에서 만드는 자동차 부품이 101종류나 되며 한달 평균 24∼29만개를 생산하는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포드·GM·벤츠사 납품 「품질관리」만큼이나 중요시하는 것은 효율성이다.가격과 품질,서비스는 모든 기업이 다 신경쓰는 요소이기 때문에 이 회사에서는 최적인원으로 생산량을 늘리는 「고효율성」에승부를 건다.실제로 94년에는 650명의 종업원이 1천8백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데 그쳤지만 올해는 불과 400명의 종업원으로 2천1백만달러의 매출액을 예상하고 있다. 생산성을 높이는데는 기술혁신이 원동력이 됐다.작업의 특성상 현재는 반자동화 공정으로 작업을 하고 있지만 내년에 멕시코 제2의 도시 몬테레이에 자동화 공장을 세우면 멕시코 국내 소비시장에 나가는 부품은 모두 이곳에서 자동생산으로 처리하게 된다. ○미 캐나다에 지사 설치 멕시코에 있는 4개의 회사외에도 미국에 1개,캐나다에 3개의 지사를 갖고 있는데 멕시코 회사가 순이익을 가장 많이 내고 있다.임금이 싸고 나프타(NAFTA)발효 이후 원자재를 수입할때 무관세 특혜를 받는 것이 주된 이유이긴 하지만 선진국 못지 않는 하이테크와 합리적 경영이 이뤄낸 합작품이다. ◎알바레스 곤잘레스 사장/“근로자 1시간 평균임금 2달러/수출시장 가격경쟁서 앞서” 알로이멕스의 루이스 알바레스 곤잘레스 사장은 『철저한 품질관리와 기술혁신,합리적인 인원관리가 생산성을 높이는 원동력』이라고 단언한다. ­중소기업으로 세계적인 자동차부품업체로 부상했는데. 임금이 낮지만 종업원들의 능력이 선진국에 조금도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또 컴퓨터를 이용한 철저한 품질관리로 불량률을 줄여 신용을 얻을수 있었다. ­종업원의 임금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평균임금은 한시간에 2달러로 국내 동종업계에서는 높은 편이지만 선진국의 다른 기업보다는 훨씬 싸다.수출시장에서 가격으로 경쟁할 수 있는 절대적인 요인이다. ­수출은. ▲수출과 내수의 비율이 7대3 정도 된다.미국과 캐나다는 물론 엘살바도르,니콰라과,푸에르토리코 등 중미국가를 포함,8개국가에 수출한다.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수출의 85%이상이 미국과 캐나다에 몰려 있는데 앞으로는 아시아시장 등 다른 곳으로도 수출시장을 넓혀갈 생각이다. ­알로이멕스는 멕시코내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나. ▲성형(프레싱)분야는 멕시코 40개 같은 기업중 2∼4위권,스프링 분야는 2위,연료탱크도 2위권이다.조명분야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약한 편이지만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로 보면 전체적으로는 멕시코내 3위권안에 든다. ­매출액과 순이익은. ▲지난해는 멕시코 시장에서 자동차 부품가격이 의외로 내려 고전했다.매출과 운영을 겨우 맞출 정도로 순이익은 3%선에 그쳤다.올해 순이익은 12%를 넘을 것으로 본다.지난해 매출액인 1천7백만달러를 회사유지선으로 볼때 그 이상 매출이 늘어 나면 바로 순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한국기업에 대해 들어 봤나. ▲한국 업체를 직접 방문해 봤다.품질은 뛰어나다고 느꼈지만 아시아에서만 통할 것이다.한국기업은 수입원자재를 비싸게 사들일 수밖에 없어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고 들었다.가격에서 우리와는 경쟁이 안된다.
  • 조선 이경윤의 「시주도」 노선비(한국인의 얼굴:105)

    ◎근엄하나 인저한 눈길에 도인의 풍모 조선시대 중기 그림에서 인물만을 앞세운 작품이 더러 있다.인물화 성격을 따 이경윤(1545∼1611년)의 「시주도」가 그것이다.그는 이와 비슷한 인물화로 「송별도」도 그렸다.초상화가 아닌데도 배경을 거의 무시한 「시주도」에는 세속에 물들어 보이지 않은 학덕 높은 선비 고사와 동자가 나온다.오늘날 역사소설의 삽화처럼 인물표정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이 그림은 화제부터가 사뭇 낭만적이다.사림세력의 성장에 따라 선비들의 정서가 한껏 푸근했던 시대배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그렇듯 16세기의 선비정신이 짙게 깃들였다.그림의 매력을 다시 말하면,선비의 내면세계가 담긴 고매한 인품을 그려냈다는데 있다.화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최립(1539∼1612년)은 그림 한쪽에 써넣은 글발에서 「그림속의 인물은 비범하고 속기가 없다」고 했다. 「시주도」는 선비가 돈이라는 깔찌에 걸터앉아 술단지를 받쳐들고 선 소년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다.바탕천에 술을 칠한뒤 먹물을 입힌 이른바 선염법으로 둥그스럼하게그린 언덕 말고는 배경이 아무 것도 없다.그래서 인물이 더욱 두드러지게 부각되었다.선비는 옷 둘레에 검은 천을 잇대어 꾸민 학창의를 입었다.몸뚱이는 희고 나래끝이 검은 두루미를 본떴다는 이 두루마기는 글줄이나 읽는 문사들이 즐겨 입은 옷이다. 주인공 선비는 근엄한 표정으로 술이 담긴 항아리를 내려다 보고있다.항아리를 받쳐 든 소년은 고개를 숙였지만 선비의 기색을 살피는 눈치다.눈을 치깔은 선비와 눈동자를 할긋 돌린 소년의 표정이 묘하게 대비되었다.그러나 선비의 얼굴은 근엄할 뿐 무섭지는 않다.심부름 하는 아이를 대하는 것이지만 마치 어린 손자를 내려다 보는 할아버지 눈매처럼 인자한 데가 있다.단지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술항아리를 들고 온 소년이 안쓰러웠는지도 모른다. 선비는 늘그막에 든 연고한 나이라서 머리숱이 아주 적다.그래도 함함하게 빗어 올리고 조그마한 치포관으로 상투만을 덮었다.그래서 도인같은 풍모도 우러났다.몇 가닥 남지않은 머리를 빗어올려 상투를 틀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높은 이마가 훤하게 드러났다.콧날이 젊을 때나 다름없이 여전히 우뚝한 선비는 그리 실하지 않은 수염을 점잖게 길렀다. 이경윤의 그림을 보고 「속기가 없다」고 한 최립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그림의 작가를 만난 적은 없으나 인물에는 자신의 모습이 깃들여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 “산과 들 깨끗이 후손에 물려주자”/새마음선교회

    ◎할아버지 50명 매주 유원지 청소/장기기증운동에도 앞장… 4명이 서명 『깨끗한 산과 들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나이든 사람들의 당연한 도리 아닙니까』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소망교회 새마음선교회 회원 50여명은 매주 유원지를 찾아 쓰레기를 줍는다.모두 65세가 넘은 고령이지만,조상에게 물려받은 깨끗한 자연을 그대로 후손들에게 전한다는 사명감에 숨이 턱까지 차도 힘든 줄을 모른다.22일에는 북한산성 기슭에서 새벽부터 등산로와 계곡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웠다. 김수길씨(78)는 『나이든 사람들이 먼저 모범을 보이자는 생각에서 동이 틀 무렵부터 쓰레기를 청소한다』면서 『노인들은 무능력하고 소극적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바뀌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새마음선교회는 장기기증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장기 기증이야말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길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참여했다. 회장 오병용씨(72·삼립산업 대표))는 『선천적 장애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데 어른들이 앞장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겸손해 했다.가족을 설득하는 일이 무엇보다 어렵지만 지난 3월에 시작한 뒤 벌써 4명이 기증서에 서명했다.
  • PRADA(패션가 산책)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 전역을 여행하고 돌아오던 청년 마리오 프라다가 밀라노에 최고 품질의 가죽제품 전문매장을 두군데 열기로 결심한 것이 오늘날 프라다의 시작이다. 최고에 대한 취향과 뛰어난 심미안,국제적 시야,왕성한 호기심의 소유자였던 마리오 프라다는 평생 여행을 계속하며 당대 최고의 전리품들을 진열하고 공급했다. 70년대 후반 미우치아 프라다가 할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무역업을 확장시키기 시작,프라다가에 흐르는 감수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미우치아 프라다는 가죽제품에 중점을 두어 고품질의 제품들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특히 그가 즐겨 사용해온 포코노(방수천) 핸드백은 특정 시즌이나 스타일에 관계없이 애용되는 이상적 소재로 확대되었다. 실용적이면서도 스포티한 스타일에서부터 우아한 이브닝 스타일의 의상까지 커버할 수 있는 다기능적이고 정교한 핸드백과 액세서리가 디자인되었다. 85년부터 미우치아 프라다는 구두 디자인을 시작했고 89년에는 어패럴라인을 새롭게 탄생시켰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절제된 스타일로기울고 있는 패션흐름과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는 프라다의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은 독특하고 고급스러운 소재와 완숙한 경지에 오른 스타일링 테크닉이 특징이다. 현재 밀라노,파리,마드리드,뉴욕,로스앤젤레스,홍콩,시드니 등 전세계에 매장을 오픈했으며 동남아시아로도 영업망을 확대했다. 국내의 경우 1·2호점인 청담점과 현대본점 2개점은 JOYCE사와 F&F,IPI의 3사 합작법인이 개설했으며 모든 영업은 IPI코리아가 담당한다.국내에는 오는 6월 첫 선을 보일 예정이며 4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 스승의 날 맞은 정의여중·고 윤창흠 이사장

    ◎쓰레기장 찾아 절약 산교육/버려진 문건 손질뒤 학생에 나눠줘/학교급식 남긴 밥 집에 가져가기도 서울 도봉구 쌍문동 정의여자 중·고교 쓰레기 소각장에 가면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챙기는 윤창흠옹(78)을 볼 수 있다. 신입생들이 윤옹을 처음 보면 그저 「허드렛일 하는 할아버지」 정도로 생각한다.늘 면장갑을 낀 손에 손칼과 전등,각종 잡동사니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옹은 이 학교 이사장이다.선친의 뜻을 이어 받아 2대째 학교를 지키고 있다.71년부터 83년까지 정의여중 교장을 지냈다. 윤이사장은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학생들이 먹다가 버린 라면을 깨끗한 물에 씻어 말렸다가 직접 먹기도 했을 정도다.한 울타리안에 있는 한신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급식하고 남긴 밥을 모두 집에 싸들고 가 먹기도 한다. 특히 환경보호를 유달리 강조한다.윤이사장은 학교에 오면 반드시 쓰레기 소각장을 찾아가 쓸만한 것들을 고른다.손질해 직접 쓰기도 하고,원하는 학생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윤이사장은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쓰레기를 재활용하지 않고 태우는 것이 너무나 아깝다』고 말했다. 윤이사장이 6년 전 고온처리 쓰레기소각장을 설치하려 했을때 주위에서는 남들도 하지 않는 일에 2천여만원이나 들일 필요가 있느냐며 만류하기도 했다.하지만 공해를 줄여야 한다는 신념을 꺾을 수는 없었다. 윤이사장은 앞으로 음식물쓰레기 처리를 위해 퇴비화발효기를 들여올 생각이다. 여고 과학담당 고래억 교사(41)는 『묵묵히 솔선수범하는 이사장님의 모습에서 교사·학생들이 무엇이 절약·근검이고,환경보호인지를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 세종탄신 600돌(외언내언)

    지금으로부터 꼭 600년전 오늘,한성부의 북부 준수방에서 정안군 방원의 세째 아들이 태어났다.사가의 이름으로는 이도인 그가 바로 세종대왕이다. 정안군의 집이 자리잡은 준수방이 지금 어디쯤인지 정확히 전하지는 않지만 영추문(경복궁 서쪽문)길 맞은 쪽 의통방 뒤를 흐르는 개천 건너편 일대였던 것으로 짐작된다.청운동을 흘러 내리는 한줄기 맑은 물과 옥인동으로 내려오는 인왕산 골짜기의 물줄기가 만나는 삼각지대 근처쯤인 것이다. 세종이 태어났을때 그의 할아버지 태조는 63세였고 뒷날의 태종인 아버지 정안군은 31세였다.4년후 국권을 잡은 아버지를 따라 왕자(충녕군)로 경복궁에 입궐한 세종은 그 18년후 태종의 양위로 왕위에 오른다.이후 32년의 재위기간 동안 한글 창제를 비롯 빛나는 치적하여 조선왕조를 반석위에 올려 놓는다. 세종이 50년을 머물다 간 경복궁에서 그의 탄생 600돌을 기념하는 성대한 경축행사가 15일 펼쳐진다.못난 후손에 의한 오욕의 역사를 거치면서 찢기고 뒤틀린 경복궁이 제 모습을 찾은후 처음으로 대왕의 탄신하례가 옛모습대로 재현되는 것이다.감축할 일이다. 세종은 우리 민족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다.「스승의 날」이 5월15일로 정해진것도 겨레의 스승으로서 세종을 기억한다는 뜻에서 였다. 세종의 위대함을 가능케 한것은 그의 인간적 성실성과 근면함이었다.생애의거의 절반을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33세의 젊은 나이에 흰머리가 날만큼 노심초사하며 나라일을 돌보았다. 깊은 학문적 성취는 물론 시대적으로 앞선 통찰력과 결단력을 갖추었고 중국문화에 경도하지 않은 주체성을 지녔으며 노비까지 아끼는 따뜻한 마음을 지녔다. 용을 자처하는 대선주자들의 난립을 보며 세종의 위대함을 반추해본다.
  • 5월을 응달의 삶들 생각하는 달로(박갑천 칼럼)

    환과고독이란 말이 「맹자」(양혜왕하)에 나온다.늙고 아내없는 홀아비가 환이고 늙고 남편없는 홀어미가 과이며 늙고 자식없는 사람이 독이고 어리면서 어버이없는 아이가 고이다.허전해지는 삶들 아닌가. 제나라 선왕이 왕도정치에대해 맹자에게 물었을때 한 대답 가운데 나오는 말이다.이들 네부류의 사람이 천하에서 가장 곤궁한 백성들인바 그들은 호소할 곳조차 없다는것.그래서 옛날 선정을 베풀었던 주문왕도 이들을 가장 먼저 구제해 주었다고 덧붙인다.환대신 긍을 쓰기도 한다(「예기」·왕제편 등). 가정의달 5월은 이 환과고독을 생각하게 하는달.우리사회의 환과고독은 엷어져가는 윤리도덕의식과 함께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노년이 외롭고 어린시절이 오갈드는 사연은 복대기는 사회현실속에서 좀 많아지는가.특히 소년소녀가장이 1년새 9.1%나 늘어났다는 보건복지부 집계결과도 쓸쓸한 노년문제 못지않게 우리들 가슴을 저민다.85년의 8천107가구에서 86년말 현재 8천849가구로 늘어났다잖은가. 물론 옛날에도 소년소녀가장은 있었다.「삼국사기」에 보이는 지은같은 효녀도 말하자면 소녀가장이었던 셈이다.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그는 어머니 봉양하노라고 32살이 되도록 시집도 안갔다.장지완의 「비연상초」에 쓰인 이효녀도 그렇다.억울하게 갇힌 아버지 옥바라지를 8년동안이나 해낸 소녀가장이었다.이같은 옛날의 경우와 오늘의 경우는 시대가 흐른만큼 상황도 달라진다.지난 어린이날 모범소녀가장으로 표창받은 박윤주양의 사례(서울신문 5월3일자)에서도 그걸 읽을수있다.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지자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린다.매정스런 모정이다.그에 이어 아버지를 여읜 이 12살 어린이는 할머니를 도와 할아버지 병수발 들면서 동생을 건사해온다. 윤리도덕불감증이 불러들이는 무책임.그것이 늙고 병든 어버이 버리는 현대의 고려장을 낳으면서 소년소녀가장 늘려나가는데도 구실한다.정상하지 못한 환과고독의 가정은 더 슬프기만한 5월.그런 응달의 삶들에도 빛을 비춰주는 5월로 만들어 나가자.〈칼럼니스트〉
  • “자식도 크면 부모말 안듣는 법”/김 대통령의 어버이날

    ◎맏며느리·막내딸이 준비한 꽃달고 집무/부친 홍조옹께 문안·경남 호우피해 걱정 김영삼 대통령과 부인 손명순 여사는 어버이날인 8일 두차례에 걸쳐 꽃을 달았다.김대통령은 장남 은철씨의 부인과 막내딸 혜숙씨가 준비한 카네이션을 달고 집무실로 출근했다.낮에는 영빈관에서 열린 어버이날 행사에서 어린이합창단원들이 패랭이꽃을 달아주었다. 김대통령의 표정은 평온하고 밝은 편이었다.그러나 그를 지켜보는 보좌진들의 마음은 편치않은듯 싶었다.한 관계자는 『어린이합창단원이 김대통령,특히 손여사에게 패랭이꽃을 달아드리는 것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말했다.현철씨를 만나지조차 못하는 부모 마음을 헤아린 탓이다.관계자는 『현철씨가 김대통령에게는 전화도 못했겠지만 손여사에게는 전화인사 정도는 드렸을 것 같다』고 추측했다. 청와대 어버이날 행사에는 전통 모범가족,효자효부,장한 어버이 등 250명이 초청됐다.김대통령 내외는 올해 100세가 되는 정태엽 할머니와 홍흥술 할아버지에게 장수지팡이를 전달하고 건강을 기원했다. 김대통령은 오찬이 끝난뒤 날품팔이 등으로 일곱자녀를 훌륭히 키워 「장한 어버이상」을 받은 이흥덕 할머니(75)에게 『자식이라고 하는게 크면 부모말을 듣지않는 어려운 때에,이할머니께서는 자식들을 훌륭히 키웠다』고 「의미있는」 언급을 했다.이어 『한국이 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될 수 있는 가장 큰 덕목은 바로 효의 정신』이라면서 『이 아름다운 전통을 더욱 발전시켜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출근에 앞서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마산의 부친 홍조옹에게 전화를 걸어 문안하고 경남 일대의 호우피해를 걱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 어버이날 빛나는 선행… 서울 식당주인 오남진씨

    ◎가난한 이웃노인 뒷바라지 13년/연탄보일러·전자제품·가스버너 등 무료수리/때맞춰 술대접·말벗되어 외로움 달래주기도 서울 용산구 청파2동 숙명여대 부근의 허름한 컨테이너 박스.3평 정도의 좁은 공간이지만 외롭고 가난한 이웃 노인들을 향한 50대 식당주인의 사랑이 넘친는 곳이다. 컨테이너 안쪽 벽에는 스패너·쇠줄·바이스 등 각종 공구가 빼곡히 걸려 있다.고장난 수도꼭지·휴대용 가스버너 등 갖가지 잡동사니 앞에서 이동네 「일신기사식당」 주인 오남진씨(54)가 무언가 열심히 수리하고 있다. 홀로 사는 외로운 노인들을 위해 오씨는 13년전부터 집에서 무료수리를 해오다 한달전에 구청에서 제공한 헌 컨테이너를 이용,「무료수리센터」를 열었다. 오씨는 85년 자연보호협회 용산지구 청파분회장을 맡고부터 노인들이야말로 주위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이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충남 부여에서 16살때 무작정 상경,노부모를 모시지 못했다는 한을 지울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도 속수무책인 노인들,한겨울에보일러가 터져도 며칠이고 냉방에서 지내는 노인들,전기곤로가 고장나 밥을 지어먹지 못하는 노인들이 그의 「고객」이다. 『어쩌다 자식들이 들러보고 이웃에서 누군가 돌보고 갔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 배우는 것이 있지 않겠어요』라며 그는 담담히 웃는다.효도는 가르치기보다 눈으로 보고 느끼면 배우게 된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오씨는 또 빈병을 주워 모아 소주값을 마련하는 할아버지들에게 종종 삼겹살을 구워 대접한다. 『장애자용 오토바이만 있으면 일을 할 수 있겠다』는 한 노인의 재활 의지에 감동한 오씨는 고물 오토바이를 고쳐 선물하기도 했다. 손재주가 좋은 오씨가 남들이 버린 폐품을 주워모아 수리한뒤 나눠주고,그 모습에 감격한 한 고물상은 고무파킹 등 각종 수선 재료를 기증하기도 했다.이것이 오씨를 부추기는 삶이다.
  • 김 대통령 동심속 즐거운 한때/어린이날 청와대표정

    ◎모범어린이·소년­소녀 가장 등 360여명 초청/「고향의 봄」 합창… 도시락 함께 들며 격려 김영삼 대통령은 5일 어린이 날을 맞아 낙도오지 어린이,소년·소녀가장,모범어린이 등 36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최근의 시국관련 걱정을 잊고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1시간여 동안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김대통령은 부인 손명순 여사와 정답게 손을 잡고 녹지원에 도착,『대통령 할아버지·할머니 안녕하세요』라며 달려온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김대통령 내외는 어린이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고향의 봄」을 합창한 뒤 어린이들의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라는 노래와 율동을 지켜보았다.어린이들은 김대통령 내외에게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큰 절을 올리기도. 김대통령은 어린이 대표의 제기차기 결승을 지켜보고 우승한 남자어린이에게 상을 주었다.또 사회자가 제기차기 시범을 권유하자 『몇십년을 안 찼는데,허허…』라면서 요청을 받아들였다. 김대통령은 『어린이 여러분은 아름다운 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꿈과 희망』이라며 『여러분이 어떻게 자라느냐에 따라 우리나라가 세계 일류국가,중심국가가 되는 것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특히 불우하고 어려운 어린이들이 용기와 꿈을 갖기 바란다』며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난 어린이중에도 세계를 제패하고 자랑거리를 만드는 어린이들이 많은 만큼 꿈과 용기를 갖기를 거듭 소망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 내외는 어린이들과 기념촬영을 한 뒤 준비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함께 했다.오찬을 마친뒤 어린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작별했다. 행사에는 손학규 보건복지부장관 내외와 김용태 비서실장,윤여준 공보·박세일 사회복지수석 등이 자리를 같이했다.
  • 난장판 박람회(외언내언)

    우리 국민만큼 구경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도 드물듯 싶다.「불구경이 제일」이라는 말도 있거니와 반대편 차선에서 일어난 자동차사고를 구경하느라 서행하는 운전자들 때문에 이쪽 차선이 막히는 경우도 없지 않다. 88올림픽이나 대전엑스포,광주비엔날레가 성공한 것도 사실 구경 좋아하는 우리 국민성 덕분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광주비엔날레의 경우 난해하고 재미없는 설치미술을 주로 보여주는 현대미술제였음에도 두달동안 1백60여만명의 관람객을 동원했다.그 관객의 대부분은 비엔날레의 뜻도 잘 모르는 시골 아주머니와 아저씨,할머니,할아버지들이었다. 하물며 봄날의 소문난 꽃잔치 「고양 세계꽃박람회」에 구경꾼이 몰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일이다.「어린이 날」이 낀 연휴를 맞아 볼거리에 굶주린 인파가 꽃박람회에 몰려 북새통을 이룬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 너무도 당연한 일에 대한 준비에 주최측이 소홀했다는 점이다.4·5일 이틀동안 꽃박람회에 몰려든 인파는 50여만명.박람회장인 일산 호수공원의 하루 적정 관람인원은 10만명에불과하다.박람회 개막전에 이 인파를 분산 수용하는 계획을 세우고 관람안내와 홍보를 했더라면 4일의 난장판은 막을수 있었을 것이다. 일산 호수공원이 31만평 규모라고 하나 실내전시관과 주요 전시장들이 공원 한쪽에 몰려 있어 관람객이 한꺼번에 입장할 경우 혼잡이 일어날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게다가 화장실·공중전화·쉼터등 편의시설까지 부족하다는 것은 주최측의 운영미숙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함부로 쓰레기를 버린다거나 아이들이 잔디밭에 오줌을 누게 하는 시민들의 수준낮은 질서의식도 물론 문제다.그러나 시민들이 질서를 지킬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주최측의 책임이다.광주 비엔날레 기간동안 광주시는 관람객이 몰리는 주말엔 멀리서 찾아 오는 관람객들을 위해 시민들의 관람은 자제하도록 한 바 있다. 세계꽃박람회를 격년제로 열겠다는 고양시의 의욕적인 계획이 성공하려면 이번 박람회가 질서있고 쾌적한 환경속에서 치러져야 한다.
  • 「눈물의 가난」 극복 12살 소녀가장

    ◎포상받은 수원 정자초등교 6학년 박윤주양/고혈압 아버지 숨지자 할아버지 병상에/7순 할머니 함께 어머니없는 집안 돌봐/“가난하고 힘들지만 사랑이 있어 행복…” 『할머니,선생님 모두 사랑해요.가난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는 것이 행복해요』 경기도 수원시 정자초등학교 6학년 박윤주양(13)의 표정은 언제나 해맑다.부모 없이 7순의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는 소녀가장인데도 구김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윤주양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인 92년.전화국에 근무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고혈압으로 쓰러졌다.아버지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1급 고도장애 판정을 받고 병석에 누워 투병생활을 계속했다.이듬해 여름에는 아버지의 병수발을 들던 어머니마저 가족을 두고 집을 나갔다.그 뒤부터 아버지의 병수발은 겨우 아홉살짜리 윤주의 몫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 아버지의 병간호를 했다.일곱살이던 동생 윤미양(11·정자초등학교 4년)도 돌봐야 했다.할머니를 도와 시장을 보는 등잔심부름과 설겆이,청소 등 집안의 궂은 일을 도맡았다. 고생도 아랑곳 없이 지난해 6월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충격으로 할아버지마저 지병인 고혈압이 도져 거동이 어렵게 됐다.윤주 자매는 팔을 걷어부치고 할아버지의 병수발을 들었다. 윤주양은 『조금이라도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 주위 사람들이 불편해 할 것 같아 항상 웃는다』고 어른스레 말했다. 윤주양 가족은 고모부 등 친척들로부터 조금씩 도움을 받아 살림을 꾸려간다.부모가 남긴 17평 아파트 때문에 생활보호대상자에 들지 못해 정부의 보조를 받지 못한다. 윤주양의 장래 희망은 선생님이다. 어려서부터 선생님들에게 의지해 살아왔기 때문이다.4학년때 김순이 선생님,5학년때 서선영 선생님,교감·교장 선생님 등 모두가 보호자이자 부모나 다름없다.윤주양은 『아버지 장례식때 찾아와 도와주며 위로해주신 선생님들의 고마움을 잊을수 없다』고 말했다. 담임 김현숙 교사(33·여)는 『윤주는 집안일을 하는 습관 때문인지 학교에 가장 먼저 나와 적극적으로 청소를 하는 등 모범생』이라고대견스러워 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윤주양은 모든 교사들의 적극 추천으로 「모범 소녀가장」에 뽑혀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상을 받는다. 윤주양은 『대통령 할아버지를 만날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면서 『빨리 훌륭한 사람이 돼 모든 분들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 「늙은 젊은이」 늘어가는 세상인데(박갑천 칼럼)

    태평양전쟁때 일본해군 연합함대사령장관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산본오십육).그 이름이 좀 색다르다.그의 아버지가 쉰여섯에 낳았기에 그리 지었다 하여 당시의 초등학생들끼리 떨떨해하며 낄낄거렸던 기억이 새롭다.『와,할아버지가 애를 낳았대요』 우리에게도 「쉰둥이」라는 말이 있다.아버지나 어머니가 쉰살에 낳은 아이를 이르는데 그 말에는 「드문 일」이라는 뜻이 곁들인다.하지만 쉰여섯에 낳는 것쯤 저리 가라는 사례도 있는 세상 아니던가.이를테면 청천당 심수경같은 사람.조선 선조때 영중추부사에 이르는 청백리였다.그가 75세에 아들을 낳은데 이어 81세에 또 아들을 낳고서 겸연쩍었던지 시 한수를 읊조린다. 『일흔다섯에 아들낳는 것도 세상에 드문일인데/어쩌자고 여든살에 또 아들을 낳는 것인고/알겠노라 조물주가 얼마나 바쁜지를/늙은이몸 하는 짓 내버려두는걸 보면』(한문원문 생략:「대동기문」).그 3년후 타계하는데 건강한 노년이었던 듯하다.세상에는 그런 늙은 젊은이가 있는가하면 골골거리는 젊은 늙은이도 있는 법.그러니 나이로만 늙고젊고를 따지는건 장님 코끼리만지기(군맹무상)같은 겉핥기가 된다고도 할 것이다. 이런 얘기가 더 신기하게 들리는건 70이 고래희이던 시절의 일이기 때문이다.한데 이젠 우리도 남녀 합한 평균수명이 70을 넘어선지 오래다.낳으려들자면 심수경같은 노인이 어찌 하나둘이랴.그렇긴해도 노인이라 할때는 아직까지 65세를 기준삼으면서 경로우대증도 내준다.그 노령은 해마다 늘어가기만.얼마전 통계청도 그 사실을 알려준바 있다.95년 기준으로 65세이상 노인은 2백64만명이었는데 이는 5년전에 비해 22.1% 늘어난 수치였다. 이같은 흐름따라 일본후생성 자문기구는 고령자를 지금까지의 65세에서 70세로 올리자고 초들었다.세계최고장수국인 일본이 고령화사회대책을 연구하면서 나온 결론.『65세면 한창 일할 나이』라는 것이었다.우리도 멀잖아 그뒤를 밟게 되는 것이리라.북한얘기긴 해도 62세 현역씨름선수가 우승도 하는 세상이 돼가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궁극에 이르면 변한다(궁칙변:「주역」계사하)고 했다.흐르는 세월속에 변치않는건 없는터.언젠가 『70은 청춘』이란 말이 안나온다고야 하겠는가.한데,우리 사회 한구석엔 젊은 늙은이 만드는 잘뚜마기도 있구나싶다.〈칼럼니스트〉
  • 치매가정의 비극/고통받는 할머니 살해/7순 남편 12층서 투신

    70대 할아버지가 치매로 고통 받는 아내를 살해한뒤 아파트 12층에서 투신,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8일 상오 6시20분쯤 경남 울산시 남구 야음2동 동부아파트 304동 앞 화단에 이 아파트 1205호에 사는 이상관씨(79)가 숨져있는 것을 아파트 경비원 김영헌씨(63)가 발견했다. 또 같은 시각 이 아파트 이씨 방에서 이씨의 아내 정순진씨(77)가 넥타이로 목이 졸려 숨져있는 것을 아들 세희씨(50·사업)가 발견했다.
  • 요즘 TV드라마(외언내언)

    「별은 내 가슴에」라는 TV 드라마가 방송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았다.중징계에 해당한다는 「시청자에 대한 사과」 명령이다. 방송위원회가 문제삼은 것은 이 드라마의 비윤리적인 내용.아버지가 아들을 요정에 데리고 가서 술을 마시고 요정여자와 동침하도록 주선하는 내용을 방송함으로써 건전한 가족가치와 사회윤리를 해쳤다는 것이다. 「별은 내 가슴에」의 주시청자는 10대와 20대 초반의 신세대들.고아원 출신의 여주인공과 재벌 2세의 사랑에 가슴 설레며 자신들도 그런 사랑에 빠져 보기를 꿈꾸는 순진한 젊은이들이다.이들에게 이 드라마의 비윤리적인 내용이 무비판적으로 흡수됐을 것을 생각하면 방송위원회의 징계는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 드라마만이 아니라는데 있다.술집여자와 아들의 동침을 주선하는 패륜적인 아버지는 모습을 바꾸어 다른 드라마들에도 자주 등장한다.그 왜곡된 모습을 한 방송기사는 이렇게 전한다.『나는 사생아,너는 숨겨놓은 딸,아버지는 동네 처녀를 건드리고 하숙집 딸을 돈으로 사는 파렴치한,떳떳하게 첩장가를 가는 할아버지…』.드라마 속 가정은 온통 불륜으로 왜곡돼 있다는 것이다. 불륜은 TV 드라마의 고정 메뉴다.드라마의 필수 요소인 갈등구조를 위해 불륜에 의한 남녀갈등이 흔히 활용돼 왔다.예전의 드라마에서는 불륜이 음울하고 칙칙한 삼각관계로 그려졌다.그러나 최근엔 자극적이고 세련된 기법으로 포장돼 뒤틀릴대로 뒤틀린 가족관계를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고 있다.또 우리 드라마는 최상류층의 소비향락적인 행태를 주로 보여주어 과소비와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이런 드라마가 전체 방송 시간의 14%를 차지한다.그것도 주시청시간대를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다.KBS 1TV를 제외한 3개 TV가 주시청시간대의 39.3∼62.6%를 드라마와 코미디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방송이 공익적 기능은 외면하고 시청률만 좇은 결과다.방송의 공익성 회복을 위해 문제 프로그램에 대한 징계를 보다 강화할 수 없을까.실효성이 적은 「사과명령」보다는 「벌금 중과」가 방송의 상업주의를 막는데 효과적일듯 싶다.
  • 일의 방사능 유출 은폐/강석진 도쿄 특파원(오늘의 눈)

    최근 일본에서는 머리카락이 허옇게 센 할아버지가 하루가 멀다 하고 관청가를 찾아와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신문 방송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고개 숙인 남자」가 된 할아버지는 동력로·핵연료개발사업단(동연)의 곤도 이사장이고 화난 표정으로 나무라는 사람은 치카오카 과기청장관이다.곤도 이사장이 제출하는 관련 서류는 반성문처럼 보인다. 곤도 이사장이 감독관청과 국민을 향해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게 된 것은 그가 이끄는 동연의 핵관련 시설에서 사고가 잇달아 터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국민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대부분의 사고가 은폐돼고 허위보고된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95년 12월 후쿠이현 고속증식로 몬쥬의 나트륨 누출 사고 당시의 정보 은폐사건에 이어 올해 3월에는 이바라기현 도카이무라의 재처리공장의 화재 폭발사건의 허위보고 사건이 터졌다. 지난 14일에는 고속증식로 몬쥬 부근의 신형전환원형로 후겐(출력 16만5천)에서 방사성물질인 3중수소가 대기중에 새 나갔지만 쉬쉬하다가 30시간이지나서야 발표했다. 이웃나라들이 핵폭탄 제조에 전용될 수 있지 않을까 우려하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이 집요하게 추진해 온 플루토늄 활용의 핵심시설인 몬쥬·도카이무라·후겐 3곳이 모두 엉망진창으로 운영돼 온 인상을 주고 있다.더 심각한 것은 일본의 플루토늄정책이 처음부터 정보폐쇄주의적으로 추진됐고 이번 사고들은 이러한 정보 폐쇄 체질을 확인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체질은 17일 지난 3년동안 후겐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11건이나 발생했었지만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또 다시 확인되고 있다. 동연은 핵연료정책의 생명이라 할수 있는 안전성과 정보공개에 의문을 받고 있다.원자력 발전은 사고가 날경우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하기때문에 안전성과 정보공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원자력의 폐쇄적 운영은 결과적적으로 무서운 재앙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동연의 사고와 은폐 위험성을 거울삼아 우리나라도 보다 안전하고 투명한 원자력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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