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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7세 학장님이 복지과 새내기로/특차전형 이색합격자들

    ◎劉成鍾씨 현도사회복지대 입학/자동차 판매왕 성대 사회계열에/朴殷植 선생 증손녀 ‘독립유공’ 합격 지난 26일 발표된 99학년도 대입 특차전형 합격자 중에는 특이한 경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현직 주성대(충북 청주시 소재) 학장인 劉成鍾씨(67)는 충북 청원군의 현도사회복지대 사회복지학부에 합격했다. 충북도 교육감,국립교육평가원장 등을 지낸 劉학장은 “내년 2월 학장직에서 물러난 뒤 노인복지에 기여하기 위해 응시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취업자 전형’에서는 10년 연속 ‘자동차 판매왕’으로 한국기네스북에 오른 기아자동차판매(주) 퇴계로지점장 金연중씨(42)가 사회계열학부에 합격했다. 연세대에서는 ‘사회 기여자 및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을 통해 독립기념관장 朴維徹씨의 딸 志宣양(18·동덕여고3)이 인문학부에 합격했다. 지선양의 증조부는 朴殷植 선생이며 외조부는 梁起鐸 선생,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인 朴始昌 선생이다. 朴동혁군(18·통진종고3)은 군 하사관으로서 24년 동안 국토방위에 기여한 아버지의 공로를 인정받아 기계·전자공학부에 합격했다. 경희대에서는 金榮民군(18·진주 대아고3)이 대한민국서예인연합회 주최 대한민국원춘서예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실력을 인정받아 사학과에 합격했다. 축구감독 車範根씨의 아들 두리군(18·배재고)은 축구 특기자로 고려대 정경학부에,아시안게임 싱크로나이즈드에서 은메달을 따낸 서현고 張윤경양(18)은 이화여대 체육학부에,390.8점으로 예체능계 수석인 한성과학고 朴지은양(18)은 동국대 연극영상학부(이론연출전공)에 각각 합격했다.
  • 칠순에도 씻지못한 ‘손버릇’/할아버지 소매치기단 검거

    서울 성북경찰서는 22일 柳萬玉씨(76·전과13범·경기 광명시 하안동) 등 할아버지 소매치기단 3명에 대해 특수절도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柳씨 등은 상습 소매치기 전과자들로 이날 오전 8시40분쯤 서울 강북구 미아4동 창문여고 앞길 시내버스 안에서 승객 金모씨(22·여)의 핸드백을 미리 준비한 면도칼로 찢고 현금이 든 지갑 등을 훔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柳씨 등은 승객 金모군(18)에게 발각돼 경찰에 붙잡혔다.
  • 함께사는 외할아버지도 소득공제

    ◎외할머니·외손자 함께… 올부터 100만원씩/퇴직전 저리 대출금 이자차액 비과세로 외조부모와 외손자녀도 함께 살면 올해 연말정산부터 소득세 기본공제대상에 포함돼 내년 1월에 1인당 100만원씩을 소득공제 받는다. 시대변화에 따라 공제대상을 모계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국세청은 21일 처음으로 민간인이 포함된 법령심사협의회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예규개선내용을 확정,시행에 들어간다. 근로소득자나 사업소득자의 소득세 기본공제대상에 지금까지는 부모,조부모,증조부모,자녀,손자녀,증손자녀등 직계존비속만 포함시켰으나 앞으로는 생계를 함께 하는 외조부모와 외손자녀까지 인정해 준다. 외조부모가 65세이상이거나 외손자녀가 6세이하인 경우에는 1인당 50만원씩의 추가공제를 받을 수 있다. 또 외조부모나 외손자녀에 대한 의료비,보험료,교육비에 대해서도 공제혜택을 받는다. 기업의 고용조정으로 종업원이 재직당시 무상 또는 저리로 자금을 대여받은뒤 퇴직했을 경우 일반금리와 실제 대여금리 차이 상당액은 기타소득으로 간주된다. 기타소득으로 간주되면 무주택종업원이 2,000만원이하를 대여받았을 경우 이자차액은 비과세되며,기타소득 금액이 연간 300만원이하인 경우에는 분리과세와 종합과세 중 선택할 수 있다. 수출업자가 수출선수금을 받아 수출하기 이전까지의 이자상당액을 물품으로 지급할 경우에는 이를 이자로 보지 않고 매출에누리(할인)로 간주,이자소득세를 매기지 않는다. 또 제조업체가 임가공업체에게 공정개선,첨단설비,노후시설개체 등의 생산성 향상시설을 무상으로 사용하게 한 뒤 생산량을 모두 납품받았을 경우 투자액의 5%를 법인세에서 공제해준다. 국세청은 이번에 법령심사협의회에 공인회계사 강성원,김익래씨와 변호사 최선집씨 등 3명을 추가로 임명해 기존 예규를 바꾸거나 새로운 세무처리기준을 정하도록 했다.
  • ‘국악 애국가’와 전통음악교육/任泰淳 기자·문화생활팀(오늘의눈)

    국립극장에는 각종 공연이 연중 무성하게 이어진다. 그러나 국립극장을 찾는 주 관객층은 장르별로 다르다. 국립극장장을 지낸 문화관광부 李吉隆 종무실장에 따르면 오페라와 발레는 30,40대 주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은 어린 자녀들 손을 잡고 극장을 찾아 고음의 선율과 율동에 매료된다. 반면 판소리가 공연될 때에는 50대 후반부터 60대 노년층이 객석의 대부분을 메운다. 이들이 판소리에 심취하는 것은 30,40대보다 전통가락에 더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온 20대도 적지 않다. 李 실장은 장르별로 주 관객층이 다른 것은 교육의 영향이 크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30,40대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음악 교과서에는 온통 서양음악 일색이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음악의 어머니 헨델,악성(樂聖) 베토벤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기술돼 있었지만 박연,우륵,거문고 등 우리의 전통음악은 뒷전에 처박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서양음악의 세례를 받아온 30∼40대가 단소나 피리보다는 피아노에,판소리보다는 오페라,발레에 관심을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화관광부는 최근 국악으로 반주한 애국가를 테이프 및 CD에 담아 교육청 등 일선 기관과 단체에 보냈다. 국악 애국가는 정부 고위층 취임식 행사에 선보였다 의외로 반응이 좋아 국립국악원의 협조를 받아 만든 것이다. 국악 애국가가 나오게 된 것은 국악이 과거에 비해서는 훨씬 더 보편화됐기 때문이다. 이제 사물놀이패는 웬만한 행사에서는 으례 등장할 정도로 단골손님이 됐고 탈춤과 농악에 빠져든 대학생들도 많다. 소리꾼의 애환을 다룬 영화 ‘서편제’가 나와 한국영화 사상 최다관객을 기록하기도 했다. 음악교과서에서 국악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국립국악원에 따르면 지난 95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서 국악은 25%가량 차지했으나 지난 96년에는 40%로 높아졌다. 이 때문인지 단소 등 전통악기를 배우는 학생들의 모습도 눈에 띄게 늘었다. 아마 국악애국가가 우리들 귀에 익숙해지면 할아버지,할머니 또는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국립극장을 찾는 꼬마손님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 친일의 군상:16/金羲善(정직한 역사 되찾기)

    ◎상해 臨政에 ‘위장취업’/독립운동 진영에 타격/일본육사 졸업… 구한말군대 간부지내/독립운동 ‘길목’서 체포된뒤 변절/3·1운동후 임정가담… 1922년 재차 변절/1980년 국민장 서훈… 96년 재심서 취소 지난 96년 10월 黃昌平 당시 국가보훈처장은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역대 독립유공자 가운데 徐椿 등 5명에 대해서 독립유공자 예우를 배제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유는 이들의 친일행적이 확인됐다는 것. 이에 앞서 재야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역대 독립유공자 가운데 친일경력자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주장이 수 차례 제기돼 왔었다. 그러나 당국이 이를 공식 확인하여 해당자들의 독립유공자 예우를 박탈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 박탈’이란 서훈취소는 물론 연금지급 중단 등 당국의 각종 보훈혜택을 취소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예우 박탈대상자로 발표한 5명 속에는 金羲善(김희선)이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 그는 상해 임시정부 군무부 차장을 거쳐 대한독립군 참의부에서 활동하다가 일본군과전투중 ‘사망했다’는 이유로 건국훈장을 추서받았다. 63년 내각사무처가 독립유공자를 심사,포상할 당시 그는 훈장급이 아닌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보훈처의 공적 재심사를 거쳐 80년 그는 국민장(3등급,현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국민장이라면 柳寬順 열사나 임정요인급이 받은 등급이니 그의 독립운동 공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그런 그가 서훈이 취소됐다면 친일경력이 문제됐다는 얘긴데 과연 진상은 무엇인가? 김희선(1875∼1950)은 평안남도 강서 출신으로 본관은 전주,호는 옥봉(玉峯)이다. 일본 육사를 졸업(11기)하고 귀국하여 한말 구한국군 육군참령(현 소령)으로서 시위기병대장,시종무관을 지냈다. 1907년 일제의 군대해산에 격분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한 그는 1910년 도산 安昌浩가 주도한 청도회담(靑島會談)에 참석하였다가 중국본토로 가는 도중에 일본 관헌에 체포돼 강제로 귀국당하였다. 독립운동으로 나선 첫 길목에서 좌절당한 셈이다. ○사이토총독 3차례 면회 이무렵 일제는 광범위한 회유정책을 전개하고 있었다. ‘한일병합’ 직후 일제는 조선내에서 그들의 식민정책을 효과적으로 펴나가기 위해 직업적 친일분자를 정책적으로 육성하였는데 여기에 그가 걸려들고 말았다. 1913년 2월8일자 조선총독부 ‘관보(官報)’에 따르면 그는 동년 2월4일부로 조선총독부 군수(평안남도 개천군수,고등관 6등)에 임명되었다. 1915년 5월18일자 ‘관보’에는 동년 5월12일부로 평안남도 안주군수에 임명된 것으로 나와 있다. 물론 그는 임명만 된 것이 아니라 실지로 두 곳의 군수직에 취임했었다. 일제는 김희선과 같은 변절자들에게 경력을 참작하여 각기 능력에 걸맞는 대우와 임무를 부여하였다. 그에게는 군수자리와 거액의 하사금이 내려졌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그와 같이 변절한 申泰鉉은 간도(間島)방면에서 농장 경영권을 부여받았다. 그 대가로 독립운동가를 투항하도록 권유하는데 이용됐다. ‘사이토(齋藤實)문서’에 의하면 김희선은 1919년 8월부터 1921년말 사이에 사이토(齋藤實) 총독을 3차례 면회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 수치는 친일파 尹德榮·李夏榮·尹致昊·申錫麟 등이 사이토를 면회한 횟수와 동일하다. 안주 군수 재직중 1919년 3·1만세의거가 터지자 김희선은 총독부 군수 신분으로 만세운동을 지원하다가 마침내 군수직을 버리고 상하이(上海)로 탈출하였다. 그가 만세운동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원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상하이로 탈출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3·1운동후 상하이에서 조직된 임시정부에서 군무부 차장 겸 육군무관학교 교장,군무총장 대리 등을 역임하였다. 또 1922년 1월에는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이 되기도 했다.(‘독립유공자공훈록’,제5권,국가보훈처 발행) 그러나 그는 어떤 연유에선지 1922년경 두 번째로 다시 친일,변절의 길로 들어서고 만다. “김희선은 아(我)정부에서 중(重)히 등용하여 우우(優遇,우대)하여 왔는데 은의(恩義)를 망각하고 변심하여 드디어 적에게 투귀(投歸,투항)하였다. 그 죄 사면(赦免)하기 어렵다”. 상하이 임시정부의 관보격인 ‘임시공보’ 제2호(1922년 2월25일) 내용중 김희선 관련부분만 발췌한 내용이다. 그의 변절사실을 확인할만한 자료는 또 있다. 상해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獨立新聞)’ 기사를 보면 그의 변절은 인간적인 면에서도 파렴치한 배신이었던 모양이다. 기사내용중 일부를 옮겨보자. ○30여년간 독립유공자로 둔갑 “병학(兵學)배운(김희선이 일본육사를 졸업한 사실을 지칭한 것임) 애국자로 이름높은 김희선은 총독부의 군수노릇 내버리고 반정(反正)하매 그 전과(前過)를 용서하고 그 지기(志氣)를 가상히 여겨 동지들이 그를 채용하여 군무차장(軍務次長)시켰더니 목욕시킨 돼지가 감귤맛을 못 잊어서…제 계집년 도망할제 왜놈에게 재항(再降)하고 귀화장(歸化狀,항복문)을 써 바쳤다.…3년(1919년부터 1922년까지 그가 임정에 참여했던 기간을 지칭함),냄새나는 송장놈을 차장(次長)시킨 책임자의 잘못이다.그 놈 욕해 무엇하리. 이런 놈은 죽은 개니 육시처참(戮尸處斬)할까 말까”(‘독립신문’,1922년 5월6일,제124호) 결국 그가 1920년대 초반 잠시 임시정부에 참여한 것은 순수한 독립운동 차원이 아니라 일제의 스파이 노릇을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초창기 독립운동 진영에 참여하다가 도중에 변절한 사례는 더러 있다. 그러나 김희선처럼 두 번씩 변절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두번째 변절한 이후의 친일행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밝혀진 자료는 별로 없다. 그러나 일제가 그를 다각적으로 회유하려고 노력한 사실이나 임시정부에서 그의 변절사실을 이례적으로 관보·기관지에 게재,공개한 것으로 봐 그의 변절은 민족진영에 큰 타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30년 ‘한일병합’ 20주년 기념으로 일본 천황이 조선내 친일파들에게 내린 대례기념장(大禮記念章)을 그가 받은 사실로 봐도 그의 친일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놀라운 사실은 그의 이같은 친일행적이 보훈처가 간행한 ‘독립유공자공훈록’에 모두 언급돼 있다는 사실이다. 독립유공자의 행적에 조그마한 의문점만 있어도 서훈을 보류해온 보훈처가 그에 대해서는 특별한 배려를 한 셈이다. 독립유공 공적으로 대통령표창(63년)에 이어 다시 80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받은 그는 96년 보훈처가 서훈을 취소할 때까지 30여년간 독립유공자로 둔갑돼왔었다. 뒤늦었지만 보훈처의 ‘서훈취소’는 그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셈이다. 해방후 고향에 머물다가 월남한 김희선은 서울시 임시정부추진회 부회장,육군상이군인유가족회장 등을 지내다가 6·25 발발 후인 50년 9월29일 서울 근교 공릉(현 노원구 공릉동) 근처에서 사망했다. ◎사망일자에 얽힌 치졸한 사연/순국선열 유족 연금 지급/해방전 사망땐 손자까지 혜택/손자 金宗彦 연금수혜 노려 김희선 사망날짜 조작 김희선의 사망일자는 과연 언제인가? 김희선의 사망일자는 서류마다 제각각인데 모두 세가지 설이 있다. 63년 당시 독립유공자 공적심사를 담당했던 내각사무처가 작성한 공적조서에는 ‘1925년 3월 대한독립단 참의부에서 활동중 집안현에서 일본군과 교전중 전사’한 것으로 나와 있다. 80년도에 국민장(현 독립장)으로 훈격이 상향조정될 때 주무부서인 원호처가 작성한 공적조서에도 사망일은 역시 동일하다. 그러나 89년 보훈처가 펴낸 ‘독립유공자공훈록’(제5권)에는 그의 사망일이 광복 직전인 45년 7월6일로 나와있다. 나머지 하나는 그의 후손이 세운 묘비에 적힌 것으로 여기에는 ‘1950년 9월29일 卒’로 나와 있다. 실제 사망일은 그의 묘비에 후손이 새긴 날짜다. 1987년에 출간된 ‘강서군지(江西郡誌)’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김희선의 사망일자가 이처럼 여럿인 이유는 보훈당국의 자료조사 부실에다 그의 손자 金宗彦(70)의 ‘장난질’ 때문이다. 현행 국가유공자예우법에는 해방전에 사망한 순국선열은 손자까지,해방후에 사망한 순국선열은 자식까지만 연금수령 자격을 인정하고 있다. 결국 조부 김희선의 훈장에 대한 연금을 타기 위해 김희선의 사망일자를 조작한 셈이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두 번씩이나 친일로 변절한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라고나 할까?
  • 구의동 사진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14)

    ◎한컷 한컷에 깃든 추억… 인생… 역사/1826년 세계 첫 작품부터 첨단 홀로그래피까지 한눈에/한말 풍물 등 희귀자료 즐비 각양각색 카메라도 볼만/내년 새 전시관으로 이전 영상정보산업 메카 기대 신촌과 대학로·압구정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젊은이의 거리’다.신세대들의 다양한 젊음의 문화가 거리의 풍속도를 바꾸어가고 있다.신세대 문화의 급속한 변화 속에 새로운 젊음의 공간이 만들어진다.그중의 하나가 광진구 구의동에 있는 테크노마트다.지상 38층의 이 건물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모아놓은 새로운 ‘젊은이의 광장’이 됐다.활력 넘치는 ‘젊은이의 광장’으로 등장한 테크노마트 안에 한국 최초의 사진박물관이 만들어졌다. 지난 9월10일 문을 연 300여평의 아담한 박물관은 연인들의 새로운 데이트장소로 옛일을 회상해 보는 추억의 장소로 이미 화제의 공간이 됐다.사진이 누구에게나 익숙한 것처럼 사진박물관은 여느 박물관보다 더욱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에게 너무 친근한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기에 관람객들은 사진이 과연박물관에 전시될 유물이냐는 가벼운 의문부호 하나쯤은 가지고 박물관 문턱을 넘어선다.그러나 오밀조밀 사진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박물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보고 느끼고 체험하다 보면 1시간 남짓의 관람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질 만큼 가치있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음을 알게 된다. 사진박물관에서 우선 눈여겨 봐야할 것은 세계 최초의 사진으로 1826년 프랑스의 발명가 니엡스가 8시간이나 걸려 찍었다는 희미한 정원의 모습이다. 그리고 염화은을 코팅해서 사진의 효과를 낸 초기 사진인 은판사진(다게레오 사진)과 그후 등장한 유리판 사진,최첨단 사진 홀로그래피 등 사진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다양한 사진이 전시돼 있다.국내 사진으로는 처음 사진이 소개된 120년 전의 풍물과 사람들의 모습,정부수립 50년을 총망라한 역사의 현장 등이 전시돼 있다. 가슴을 드러낸 조선시대 서민들 모습과 풍물을 비롯 일본 공사관에 초대된 외교사절들의 모습이 담긴 귀한 자료사진들도 공개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사 김규진 코너도 만들어져 있다.1907년 소공동에 문을 연 천연당사진관의 광고가 8월16일자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에 실렸던 자료도 눈에 띈다. 사진박물관에서는 카메라의 역사도 배울 수 있다.주름상자를 조절해서 피사체의 각도를 수정할 수 있는 뷰 카메라와 옛 소련에서 만든 초기의 주름카메라,국내 한 대뿐인 로라이 마린 수중카메라,자연 풍경사진으로 유명한 앤젤 아담스가 사용했던 디오도르프 카메라와 같은 종류의 카메라,특수카메라,소형카메라 등 여러가지 사진기가 골고루 갖춰져 있다. 필름이 필요없는 디지털 카메라로는 직접 촬영,프린트까지 해 볼 수 있도록 해서 관심을 끌고 있다.일명 바늘구멍사진기로 불리는 카메라 옵스쿠라를 통해 빛이 바늘구멍을 통하면 벽면에 화상이 거꾸로 맺히는 원리를 관찰할 수도 있다. 사진박물관은 현재 3만여장의 사진과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만 전시공간만이 아니라 자료를 발굴하고 역사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는 역할까지 할 예정이다.사진은 바로 역사이기 때문이다. 사진박물관은 특히 한국의 근세사를 정리하기 위해사진자료를 찾는 작업에 들어갔다. 대한매일이 주관하는 ‘전국민 사진자료찾기운동’으로 이름한 이 행사는 각 가정에 보관중인 사진 중에 가치있는 자료를 찾기위한 것이다.이렇게 발굴된 사진은 전직 사진기자들의 분류,정리과정을 거쳐 박물관에 있는 다른 사진과 함께 ‘한국사진자료백서’도 구축된다. 희귀하고 가치있는 대한매일에 보도된다. “사진찾기 행사로 현대사의 한 페이지는 새로 써야할 지도 모른다”며 귀중한 자료 사진 찾기에 기대를 거는 吳岡錫 관장(49)의 말에는 자신감이 배어나온다.그도 그럴 것이 일본 외무성과 협조,일본 NHK에서 한국관련 옛 사진찾기운동을 동시에 전개하게 됐기 때문이다. 사진박물관의 소식만 듣고도 벌써 자료들이 모여들고 있다.대한제국 말기 관료들의 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뉴질랜드 교민이 보내왔는가 하면,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 일본섹션에서 한국의 경치를 담은 사진첩 ‘조선국진경(朝鮮國眞景)’을 안동대 김희곤 교수가 발견,슬라이드에 담아 왔다.‘조선국진경’의 사진들은 일본에도 남아 있지 않은 귀한 자료다.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조선주재 일본 공사관원이던 하야시 타케이치(林武一)로 일본인의 눈을 통해본 청일전쟁 직전의 조선 풍광과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한국 사진기자와 작가들의 염원으로 만들어진 이 사진박물관은 내년 말이면 서대문구 연희3동 53의 1,공원부지에 1,300평의 독립건물로 옮겨간다.카메라를 닮았고 최첨단 스틸하우스로 외관만으로도 화제가 될 사진박물관은 역사기록의 현장이자 영상정보산업의 메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스티커 사진이 신세대들에게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듯 사진은 역사의 기록만은 아니다.사진박물관을 둘러보면 21세기는 사진으로 말하는 영상이미지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미래사회의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될 사진과 친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 될 것이란 吳관장의 귀띔은 사진박물관을 다시 한 번 둘러보게 한다. 미래의 사진은 어떻든 사진은 개인에겐 소중한 추억이다.까까머리 고교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고,이젠 흙으로 돌아간 지 오랜 할아버지도 찾을 수도있다.한 가정의 기록이며 또 역사의 기록이다.사진은 한 치의 거짓도 인정되지않는 투명한 역사이다.역사의 귀중함과 과학의 경이로움도 느낄 수 있다. 역사가 존재하고 미래의 영상을 예상할 수 있는 곳이 국내 유일의 사진박물관이다. ◎대한매일 주관 사진찾기운동 참여/사진박물관 주인 되어보세요 ①전국민 사진자료 찾기운동에 참여한다. 집안 구석구석에 숨겨진 사진을 찾아 사진박물관에 기증하면 박물관에 기증자로 남는다.엄청난 역사적 사료가 아니래도 좋다.시골집 창고 속의 낡은 사진도 귀중한 자료가 될 수도 있으니 이 기회에 한 번 뒤져 보자.이렇게 모여진 사진은 전직 사진기자들의 분석과 고증을 거쳐 대한매일에 소개되고 내년 4월,사진전시회에 출품된다.그리고 사진박물관에 영구 전시된다. ②서대문구 연희동에 설립될 사진박물관에 건축기금을 낸다. 10만원 이상의 건축기금을 내면 1층 벽면에 얼굴 사진이 영구히 보존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얼굴 사진은 12㎝×9㎝ 크기의 특수세라믹으로 제작된다.유명인들과 나란히 얼굴이 전시될 흔치 않은 기회.단 1만명으로 제한되어 있으니 서두르는 편이 좋다. 사진박물관 사무국 전화 02­3424­1291 ◎이렇게 가세요 서울 광진구 구의동 631의 1.테크노마트 9층에 있다. 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 내리면 39층의 최첨단 테크노마트 건물이 보인다. 지하철 역에서 걸어 3분거리.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매월 1,3주 화요일은 쉰다.관람료는 성인 1,000원.어린이는 700원.단체관람료는 30% 할인된다.
  • 비로봉(시조시인 李根培씨 답사기:5·끝)

    ◎내금강에 우뚝 솟은 봉우리 내년 봄 오를 날 왔으면… ●왜 터져나오는 울음인가 정말 금강산을 본 것일까.내금강은 처음부터 예정에 없었으니 먼 눈으로 비로봉의 눈덮인 봉우리를 올려다보는 것으로 끝내야 했지만 외금강도 사흘가지고는 주마간산이 아니었던가.그러나 금강산 가는 길이 열리자마자 첫 산행에 나선 이들은 금강산의 장엄과 신비를 발로 딛고 눈으로 받아들이는 일보다는 반세기 넘게 바라만 보고 살아온 그 분단의 벽을 넘어서는 데에 더 큰 의미를 가슴에 담고 있었다. 금강산이라는 병풍 속에 담긴 단 하나의 그림 국토,민족,역사,동족상쟁,부모형제,이산가족,고향의 낱말이 그것이다.고향이 해주인 원창성씨(70·남)는 산길에서 만난 북측의 젊은 미화원이 꼭 조카만 같아 껴안고 눈물을 흘리자 그 젊은이도 따라서 눈물을 흘리더라며 무언가 손에 쥐어주고 싶었지만 젊은이가 한사코 뿌리쳐서 그냥 돌아왔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뜻을 알겠노라고 했다. 장전항이 고향인 한일환씨(63·남)에게 “이제 고향땅을 밟으셨으니 통일을 만난거나 다름없네요”했더니 “그렇지요.내게는 통일이 반은 된 셈이지요”한다.금강산 관광 안내에서 이미 북한 주민과의 접촉을 삼가달라는 부탁을 받았음에도 산행에서 겨우 한 두번쯤 만나게 되는 북측 미화원(신분과 직함을 확인할 수 없지만 손에 대로 만든 빗자루를 들고 있었으므로)을 붙잡고 피란 오기 전의 주소와 가족 이름들이 적힌 종이를 손에 쥐어주며 “내년 봄에 꼭 올 테니 그때까지 안부를 알아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모습을 보는 일행들은 손수건을 꺼내야 했다. 만물상에서,구룡폭포에서 과일 몇개에 술잔을 올리거나 아니면 얼음 박힌 땅에 엎드려 통곡하는 이들에게 저렇게 울 수 있는 자리라도 마련해준 세월이 한편으로는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원창성씨는 “내가 금강산을 본 것이 아니지요.꿈을 꾼 것이지요”했고 97세의 심재린 할아버지는 “피눈물로 금강산을 올랐다”고 했다. ●비로봉 오를 날을 기약하며 밀리고 밀리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곧 다시 돌아올거라고,전쟁은 그리 길지 않을 거라고 이웃집 마실이라도 가듯 어머니와아들,아버지와 딸,아내와 남편,형과 아우가 그렇게 헤어졌다가 반세기를 넘긴 사람들.사람이 백발이나 200살쯤 살 수 있다면 모르거니와 생사를 확인할 것도 없이 이미 수명을 다했을 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심경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다 안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겨울 개골산(皆骨山)에 왔던 이들은 다시 봄에 오겠다는 말을 한다.적어도 봄,여름,가을,겨울 산의 이름이 바뀌듯이 그 다른 산을 보겠다는 욕심도 들어있지만 더욱 고향이 금강산 가까운 곳이거나 북녘인 사람들은 이제 내디딘 발걸음이니 한 번이라도 더 그리던 땅을 밟아보겠다는 생각에서이리라. 내금강 비로봉구역은 비로봉 정상에 올라 구름의 바다,돌의 바다,물의 바다를 굽어보며 동해 일출을 보는 일말고도 월출봉 일출봉 영랑봉들의 절경을 놓칠 수 없고,만폭동구역에서는 청록감 백록담 흑록담 비파담 진주담 등 폭포와 팬 돌에 솟구치는 물보라와 바위들을 봐야겠고,백운대구역 명경대구역 구성동구역의 장관인들 어찌 빼놓을 것이냐. 내 봄이 오면 다시 가서 비로봉에 오르리라.돌 하나물 하나,나무 하나,흙하나 다시 와서 그 낱낱의 얼굴에 볼 부비고 감추고 있는 말들을 꺼내서 시로 쓰리라.노래부르리라.
  • 司試 합격 700명 발표… 여성이 13.3% 사상 최고

    ◎합격자로 본 특징/최고령 43세 金成奎씨/군법무관 24명도 발표/서울대 297명·고대 147명/대학 재학생 21%나 차지/지방대 출신 합격자 늘어 행정자치부는 27일 제40회 사법시험 및 제13회 군법무관 임용시험 최종합격자 명단을 확정,발표했다. 올해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는 지난해에 비해 96명이 늘어난 700명이고 군법무관 임용시험 최종합격자는 24명이다. 2만755명이 응시한 올해 사법시험 최고득점은 2차시험 평균 63.71점을 얻은 丁진아씨(26·여·서울대 사회학과졸)가 차지했다. 사법시험에서 여성 수석합격자는 이번이 6번째다. 최고령자는 金成奎씨(43·성균관대 법대졸),최연소자는 朴南俊씨(21·서울대 사법학과4)다. 여성 합격자는 전체 수석의 영광을 차지한 丁씨를 비롯해 93명(13.3%)으로 지난해 8.1%(49명)보다 늘었다. 군법무관 임용시험에서 최고득점자는 제2차 시험 평균득점 56.07점을 얻은 尹大海씨(30·영남대 법학과졸),최고령자는 金英洙씨(30·한양대 법학과졸),최연소자는 李東原씨(24·고려대 법학과졸)다. 올 사법시험의 가장 큰특징은 여성 합격자의 급증,지방대학생의 약진 등을 들 수 있다. 올 합격자는 지난해에 비해 100명이 늘어난 700명. 95년 308명에서 해마다 100명 안팎으로 증가한 셈이다. 이처럼 합격자의 절대수가 늘면서 여성합격자도 급증했다. 올 여성합격자는 전체 합격자 700명의 13.3%를 차지해 사법시험 사상 처음으로 10%를 넘어섰다. 여성합격자 비율은 95년 8.8%,96년 7.2%,97년 8.1%로 저조했다. 한편 재학생들의 합격비율도 눈에 띄게 늘었다. 올 재학생 합격비율은 21.1%로 10%대에 머물던 과거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이처럼 올해 여성 및 재학생들이 많이 합격한 것은 선발인원이 증가하면서 합격선이 낮아졌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올해 커트라인 50.71점은 최근 4년간 최저다. 물론 해마다 시험의 난이도가 다르고 2차 시험이 주관식으로 치러진다는 점에서 절대적인 비교는 할 수 없으나 선발인원 증가에 따른 하향화로 풀이할 수 있다. 36세 이상 ‘고령’ 합격자와 20∼23세의 ‘소년’합격자가 크게 늘어난 것도 이채롭다. 96년의 경우 36세이상 합격자는 19명이었으나 97년과 올해 들어 각각 34명과 35명으로 대폭 늘었다. 또 20∼23세 합격자도 96년 39명에서 97년과 올해에는 각각 57명과 56명으로 눈에 띄게 늘었다. 이번 시험의 또다른 특징은 지방대학생들의 합격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충남대가 서울시립대·단국대·경찰대와 함께 4명을 배출했으며 영남대가 3명,충북·관동·대구·강원·동아대는 각각 1명씩 배출했다. 한편 과거 합격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서울대는 이번에도 전체 합격생의 42.4%인 297명으로 가장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다. 이어 고려대가 147명,연세대 56명,성균관대 46명,한양대 39명,중앙대 14명,외대·경북대 13명,이화여대 11명,전남대 및 부산대 9명,경희대 8명 등이다. ◎수석합격 丁진아씨/경찰대 중퇴·서울대 졸업… “통상전문 판사 희망” “꼴찌로 붙은 줄 알았는데 수석이라니요?” 올해 사법시험에 평균 63.71점으로 수석합격한 丁진아씨(26·여·서울대 사회학과 졸업)는 시험을 흡족하게 못봐 ‘수석’은 기대도안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丁씨는 사법시험 사상 여섯번째 여성 수석합격자다. 게다가 ‘경찰대 중퇴,사회학과 졸업생’이라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지난 91년 서울 당곡고교를 전체 2등으로 졸업하고 경찰대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하고 다시 서울대 사회학과에 94학번으로 입학했다. 주변에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싶어서였다’고 농담처럼 얘기했다. 사회학을 전공했지만 학부때 부전공으로 법학을 들으면서 95년말부터 본격적으로 사시준비를 해왔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7학기 만에 조기졸업을 했다. 학점도 4.3만점에 3.63으로 우수한 편이다. 96년 사시에 연습삼아 처음 도전했다가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지난해 1차 시험에 붙었고 곧바로 올해는 최종합격했다. “공부할 때는 공부만 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할까요. 일요일은 푹 쉬고 하루 11∼12시간은 꾸준히 공부했어요.” 丁씨는 지난해 1차 시험에 붙은 뒤 9월부터 석달간 학원을 다닌 것을 빼고는 매일 학교와 신림동 근처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했다. 2차 시험을 앞두고는 매일 아침 8시에 독서실에 가서 밤 11시에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丁씨는 “통상분야를 비롯해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판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며 “두 번이나 진로를 바꿔 선택한 길인 만큼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림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丁乙聲씨(56)와 어머니 王正子씨(56) 사이의 4녀중 둘째. ◎이색합격자/의사 출신 2명·行試출신 5명/韓大鉉 憲裁재판관 두아들 합격 전체 합격자가 늘면서 이색합격자도 많았다. 의사 출신 합격자가 두 명이나 됐다. 張宴華씨(29·여)는 93년 연세대 치과대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 법대에 편입,4년의 도전 끝에 합격했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가정의학 전문의 盧泰憲씨(31)도 의료분쟁 등을 전공하겠다며 법조계의 길을 택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했다가 합격한 사람이 5명이나 됐고 입법고시 출신도 3명이다. 명문집안 자제들의 합격도 적지않다. 吳有邦 전 의원의 아들 政翰씨(28)와 愼久範 전 제주지사의 큰아들 鏞仁씨(32)가 합격했다.특히 鏞仁씨의 합격으로 愼전제주지사 집안은 ‘3부자 3시’를 기록했다. 愼전제주지사는 67년에 행시 5회에 합격했으며 차남인 鏞圭씨(30)가 92년 외시에 합격,현재 외교통상본부 사무관으로 재직중이다. 또 헌법재판소 韓大鉉 재판관의 장남 政洙씨(29)와 知洙씨(27)가 나란히 합격,할아버지 韓聖壽씨(작고·전 대법관)를 포함,3대 법조인 가족이 됐다. 한편 최고령 합격자인 金成奎씨(43)는 2차 시험만 9차례 치른 ‘팔전구기’의 저력을 과시했다.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첫 출항 르포

    ◎금강산에 瑞雪… 민족화합 소망 싣고/수백개 오색풍선 띄워/한·사연 안은채 승선/제수용품 들고 가기도 18일 오후 5시44분쯤 강원도 동해시 동해항. 부둣가에 정박해 있던 현대금강호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부웅’하는 뱃고동 소리가 길게 울려나오자 수백개의 오색풍선이 날아오르고 수십발의 폭죽이 터지며 동해항의 하늘을 밝혔다. 부둣가에 나와 있던 3,000여명의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금강호의 불 켜진 창마다,갑판 층층마다에서 탑승자들은 손을 흔들며 환송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어 황혼의 어스름을 뚫고 2만8,000여t의 육중한 선체는 미끄러지듯 동해항을 빠져나갔다. 시민들은 금강호가 바다 저편 어둠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금강호는 그렇게 떠나갔다. 배 안에는 승객만 탄 것이 아니었다. 금강호의 첫 출항으로 민족 화합의 다리가 놓이길 바라는 이산가족의 꿈과 온 국민의 소망이 실려 있었다. 관광객들에게는 이날 하루는 너무도 길었다. 부둣가에서는 이른 새벽부터 서성대는 노인들을 쉽게 볼수 있었다. 이들은 난생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전날밤 금강산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에 “서설(瑞雪)이 아니겠느냐”며 좋아했다. 설레임이 가득한 눈들. 하지만 모두들 나름대로의 한(恨)과 사연을 담고 있었다. 황해도 신천이 고향인 金昇龍할아버지(70)는 “금강산에 올라 고향을 향해 절을 하겠다. 그리고 못난 불효자를 용서해달라고 부모님께 사죄하겠다”며 눈물을 떨궜다. 이어 “5남매의 장남으로 홀로 월남한 뒤 50년을 하루같이 남몰래 눈물을 흘려왔다”면서 “이 한을 품고 그냥 죽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토록 고향을 그리다 숨진 남편과 함께 갈 수 있었더라면…”. 평북 희천에서 남편과 함께 월남한 金華洽할머니(71)는 “외아들과 함께 고향땅을 밟게 돼 기쁘다”면서도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權萬希씨(70)는 과일과 술을 마련하고 제수용품을 준비했다. 지방도 정성스레 써놓았다. 생가가 강원도 고성군 해금강리에 있어 고향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부인 魚善龍씨(65)는“남편이 관광 신청을 한 뒤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 같았다”고 전했다. 금강호가 떠난 뒤에도 삼삼오오 터미널안 TV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방송사 헬기가 보내오는 금강호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 “불륜횡행 親子 감정 해보자”(뉴스 인사이드)

    ◎日 DNA검사회사 때아닌 호황/20%가 남의자식으로 판명 【도쿄=黃性淇 특파원】 일본에 친자(親子)여부를 가리는 DNA검사가 유행하고 있다. ‘원조교제’ 등 불륜이 유행병처럼 번지면서 ‘예기치 못했거나 원치 않은’ 자식이 과연 내 자식인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산케이(産經)신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일본에서 DNA검사로 친자를 식별해 주는 민간회사가 지난해까지 10곳 가량 생겼다. 전후 최악의 불황으로 기업 도산이 잇따르고 있는 데도 이 회사들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며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이 회사들에 검사를 의뢰하는 사람들의 70%는 남성으로 30∼40대가 대부분. 원조교제나 혼외정사가 가장 활발한 연령이다. 중년층 외에도 뒤늦게 친자관계에 의심을 품은 90대 할아버지가 70대 아들을 데리고 DNA검사를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용도도 단순한 친자확인에서 유산을 받아내기 위한 증명용까지 다양하다. 올 6월부터 도쿄(東京) 신주쿠(新宿)에서 영업을 시작한 ‘진 테크’에는 하루 20∼30건의 문의전화가 걸려온다. 이회사는 지금까지 120여건의 검사를 실시했는데 20%는 친자가 아니었다. 민간회사의 검사요금은 한건에 20만엔(약 220만원) 가량으로 아직은 비싼 편. 타액을 채취해 검사하는 손쉬운 검사법을 쓰고 있다. 진 테크의 구리타(栗田) 사장은 “DNA검사가 급증하는 것은 불륜이 횡행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이라면서 “검사의 수요가 늘어나 검사비가 내려가면 자식이 태어날 때 친자감정서를 기념품으로 선물할 날도 멀지 않았다”고 내다봤다.
  • 독립기념관 朴維徹 관장·梁俊子 교수 부부

    ◎“선조魂 담긴 ‘대한매일’ 부활 감회 새로워”/朴殷植·梁起鐸 선생 손자·손녀로 ‘인연’/“구국 항일정신 계승 국민 선도하는 신문 되길” “선조의 혼(魂)이 담긴 신문이 다시 부활한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독립기념관 朴維徹 관장(60)과 부인 梁俊子 교수(55·안양대 피아노학과)는 ‘대한매일’의 재창간을 보는 느낌이 남다르다. 朴관장 부부에게는 ‘대한매일신보사’와 남다른 인연의 끈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朴관장은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동하면서 항일 구국운동을 이끌었던 백암(白巖) 朴殷植 선생의 친손자이며 부인 梁교수는 1904년 영국인 배설(裵說)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우강(雩岡) 梁起鐸 선생의 친손녀다. 9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만난 朴관장 부부는 어린시절 전해들은 친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하나 둘 꺼냈다. 광복군 사령관을 지낸 朴始昌 선생의 큰아들인 朴관장은 “할아버지는 중국 등에서 항일운동을 하면서도 항상 손에 책을 놓지 않으셨으며 논설과 역사 저술을 통해 민족사상을 고취한 독립운동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고 말했다. 梁교수는 “무장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셨던 할아버지는 고종의 영어통역관을 맡았던 증조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영어에 능통하셨고 최초의 한영 사전을 편찬하는 데 참여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처음 만나 결혼한 것은 지난 67년.같은 시기에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 후손들이었지만 서로 알지 못했다. 朴관장은 “서울고 동창인 처 외사촌 오빠의 소개로 만났는데 교제를 하면서도 梁起鐸 선생의 후손인 줄 몰랐다”면서 “부모님께 소개하는 자리에서 梁起鐸 선생의 종손녀라는 것을 알게 됐고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결혼을 승락하셨다”고 말했다. 朴관장은 “특히 아버님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당시 梁起鐸 선생을 자주 만났었고 존경하는 분이었다며 크게 기뻐하셨다”면서 “두분 할아버지께서 우리의 인연을 점지해 주신 것 같다”고 덧붙였다. 朴관장은 미국 MIT와 영국 헐(HULL)대학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으며 지난 74년 국방과학연구소에 영어 요원으로 특채된뒤 건설부에서 20여년 동안 공무원생활을 했다. 지난 95년 독립유공자들의 추천으로 4대 독립기념관장으로 취임했으며 올해 5대 관장으로 재취임했다. 梁교수는 영국의 리딩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뒤 89년부터 안양대학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슬하에는 2남1녀.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막내딸은 독립운동을 공부하고 싶다며 이화여대 역사학과에 지원,특차에 합격했다. 朴관장 부부는 “뿌리를 찾은 ‘대한매일’은 항일 구국운동에 앞장섰던 ‘대한매일신보’의 정
  • ’98 서울광고대상 신인부문/심사평·최우수상 수상 소감

    ◎심사평/‘채 영글지 않은 신맛” 물씬/이인구 서울예대 광고창작과 교수 학생들의 작품에선 아직은 영글지 않은 신맛이 나야 제격이다.신맛의 매력은 물기가 촉촉한 그 풋풋함에 있기 때문이다. 발상의 의욕쪽으로만 무게를 두다보면 역시 어설픈 점이 마음에 걸리고 완성도쪽으로 따지다보면 너무 상투적인 기성인들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는 점에서 주저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게 된 우수작 세편 중에 “목소리라도 듣고 싶구나”(PCS 016)를 맨 윗자리에 놓기로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광복 50주년이라는 시제에 맞추어 통일의 염원과 제품의 속성을 연계시킨 일종의 기업PR광고이면서도 “전국 어디서나 통화가 가능하다”는 제품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그 속에다 용해시키고 있다는 점을 특히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우수작으로 뽑힌 ‘LG싸이언’도 거미줄과 제품을 연계시킨 비주얼의 발상이 눈에 띄었고 특히 “끊어지지 않는…”이라는 물리적 만족감 외에도 “만족감이 계속되는…”이라고 하는 심리적뉘앙스까지 함축되어 있어서 좋았다. 또 하나의 우수작 ‘그린소주’도 재미있는 작품이다.주당들이면 가장 떠올리기 쉬운 아내와 바가지를 술광고의 소재로 잡았다는 것부터가 그럴 듯한 발상이다.그밖에 장려상에 머문 다섯 사람들에게도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최우수상 수상소감/무게실린 휴머니즘 표현에 초점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던가? 학교의 거리미술전 행사와 교수님들의 무심한(?)많은 과제,그리고 겹쳐진 시험 일정 속에서도 공모전 준비를 하느라 밤을 지새며 아이디어를 내고 때론 서로의 의견차이로 서먹서먹하고 불편했던 작업분위기가 생각난다. 이동통신의 광고를 할 때 누구나 성능면을 강조하는 것을 우리는 뭔가 다른쪽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광고는 어떤 것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그래서 어느 정도의 무게가 실린 휴머니즘의 광고는 사람들을 적게나마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고 모두들 이쪽에 초점을 맞춰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하지만 어느 정도의 울타리를 쳐놓아서 아이디어가 쉽게 나올것이라는것은 우리들의 오산이었고 모두들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한 나머지 어려운 광고만 내놓고 있었다.우리들이 내놓은 아이디어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실향민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목소리를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고,이런 이동통신만 있으면 언제라도 그리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쁨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은 누굴까? 그것은 바로 실향민들이었다.우리는 임진각의 할아버지를 소재로 해서 016PCS폰을 합성하고 할아버지의 애절함이 그대로 느껴지기를 원했다. 끝으로 보잘것 없는 작품에 큰 상을 주신 서울신문과 심사위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서울신문 신인부 최우수상 수상자 이호준,박성철,김민석,진병석(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 3학년)
  • “역시 鄭周永”/‘할아버지 람보’

    ◎한때나돌던 건강악화설 일축/회견장에선 순발력·여유까지 계산된 언론플레이에 감탄도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북한에 갈 때와 올 때의 반응은 극명히 엇갈렸다.재계에서는 그가 가져온 두툼한 대북 경협사업 보따리를 두고 ‘역시 鄭周永’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鄭회장이 지난 27일 북한에 다시 갈 때 이를 가까이서 지켜보거나 TV를 보는 시청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지난 6월16일 방북시와 달리 그의 모습이 초췌해 보여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방북일정이 하루 연장되면서 혹시나 하는 건강악화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31일 귀경직후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鄭회장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다.보따리가 묵직한 탓인지 혈색이 좋아 보였다.鄭회장의 ‘현란한’ 언론플레이도 녹슬지 않았다. 鄭회장은 방북성과로 석유개발사업을 첫손에 꼽았다.그것도 곧 파이프라인을 통해 기름을 남한에 공급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지난 27일 ‘북한과 석유개발사업을 합의하러 간다’고 말한 대목을 떠올리게 했다.(金潤圭 현대건설 사장은 그때마다 보충설명을 통해 원칙적 합의수준이라고 해명했다) 이를 두고 현대 고위관계자조차 혀를 내두른다.‘鄭회장의 계산된 발언이 언론의 허를 찔렀다’고 감탄했다. 鄭회장은 또 현대의 오너로서 고령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총기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호칭을 왜 “장군님”으로 했느냐는 질문에 “북한에선 모두가 다 그렇게 하는 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반문했다.정부의 밀사설 여부에 대해서는 민간경협 차원에서 개인자격으로 간 것뿐이라고 부인했다. 83세의 고령으로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鄭명예회장이 이번 방북성과로 “더 오래 살 것“이란 관측을 낳고있다.
  • 노인은 아름답다/羅潤道 문화생활팀장(데스크 시각)

    27일 아침 83세된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의 방북과 오늘 새벽 77세된 존 글렌 미상원의원의 우주여행 출발은 우리에게 새삼 노인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휴전선을 두번씩 넘고 또 북한의 주요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정 명예회장의 모습을 보노라면 기업하는 사람의 장사속(?)으로만 몰아부칠 수 없게하는 진한 감동이 와닿음을 느낄 수 있다. 미국 최고령 우주인으로 36년전 최초로 우주궤도비행에 성공,우주시대의 개막을 알렸던 글렌이 이제 생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무중력과 노화’의 인체실험을 위해 기꺼이 나선것 또한 감동적이다. ○鄭 명예회장 방북 감동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신선한 감동을 받는 것은 최근들어 우리 주위의 노인들로부터 느낀 실망이 너무 컸기 때문에 상대적인 것인지도 모른다.정치판에서의 노정치인들로부터 또 재계,교육계의 소위 원로라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노인은 긍정적인 이미지 보다는 부정적 이미지로 더 다가와 있다. 연령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자신을 위해서보다는후학에게 무엇인가 남겨주기 위해 왕성한 혈기로 뛰는 노인들의 모습은 아름답고 분명 우리에게 ‘희망’의 대상이 됨에 틀림없다.얼마전 어느 단체에서 ‘노인’이라는 명칭이 공손치 않다하여 ‘어르신’으로 바꿔 불러줄 것을 사회에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을 포함,그같은 요구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것은 호칭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노인 스스로가 존경의 대상이 되기 위하여는 이 사회에 자신들의 바른 자세를 보여줘야 하고 그럴경우 호칭문제는 별의미가 없게 된다.이런 측면에서 미국 노인들의 생활 자세는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뉴욕 맨해튼 42번가에 있는 뉴욕대학에서 10주과정으로 분기마다 개설되는 일반인 상대 국제정치강좌에 들어가본 사람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오전 강의의 경우 200명 정도 되는 수강생의 90%가 60­70세 되는 노인들이다. 꼬부라진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뉴스위크,타임지 등을 끼고 들어와 중동평화협정의 배경,걸프전쟁의 결과 등을 설명하는 강사의 강의에 열중함은 물론 활발한 토론을벌인다.“도대체,저 나이에,왜?”라는 자문이 들다가도 너무도 진지한 자세에서 문득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美 노인들 생활 많은것 시사 4명의 미대통령 얼굴 조각으로 유명한 사우드 다코타주의 마운트 러시모어를 조각한 거츤 보글럼이 1927년 1,700m 정상 바위산에서 첫 정을 내리찍기 시작한 것은 60세때였다.몇십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늙은 나이라는 반대도 있었다.그러나 그는 14년을 한결같이 바위산을 오르내렸다.결국 본인에 의해 완성되지 못하고 아들에 의해 완성되었지만 나이 70의 노인이 매일 바위산을 타는 모습은 상상만해도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결국 이같은 자기희생과 모험정신으로 가득찬 노인들을 볼때 우리는 감격하고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희망은 자라나는 새싹만의 전유물은 아니다.노인들이 이렇게 늘 우리의 ‘희망읽기’대상으로 있을때 우리 사회도 우리 마음도 희망에 차있게 될것이다.
  • 고독한 사령관 경찰서장:3(공직 탐험)

    ◎지역민과 애환 함께하는 마당발/지방서장 지역정화 더 신경/수시로 관내 돌며 애로 청취/승진기회 적어 의욕 잃기도 “영감님,서울 자제분이 연락 자주 하세요?” “뭐라고,허리가 아파”. “지난 번에 말씀드렸잖아요,읍내 약국에 좋은 약이 나와 있으니 사 드세요”. 농촌을 끼고 있는 충청 지역의 C모 서장이 지역 순찰을 나갔다가 논길에서 마주친 70대 할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내용이다. C서장은 수시로 관할지역을 돈다. 특별한 현안이 있어서가 아니다. 노인정도 들르고 마을회관도 들른다. 주민들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나누고 애로사항도 청취한다. 신문이나 TV를 제대로 보지않는 노인이나 부녀자 등에게 유익한 정보를 전해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시골서장은 C서장처럼 범죄 예방 및 단속보다는 지역 주민이 느끼는 불편을 덜어주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도시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사건이 적기 때문이다. 추수철에 정미소 쌀이나 농가의 양파를 훔쳐가는가 하면 소나 인삼 등 농특산물을 차량을 이용,훔쳐가는등의 ‘계절성’도둑이 이따금기승을 부리는 정도다. 때문에 시골서장은 법집행보다 ‘특수사업’에 더 신경쓴다. C서장은 ‘노인에게 인사잘하기 운동’을 벌였다. K모 서장은 ‘도박근절’을 지역정화의 과제로 내세웠다. 도박근절을 강조하자 제보도 많아 1년에 36명을 구속시켰을 정도다. 그는 ‘사망사고 줄이기’도 함께 추진했다. 상습사고 지역이 적지않기 때문이다. 과속 방지턱을 많이 만들어 사고율을 줄였다. 시골서장은 걷는 양이 엄청나다. 주민수는 적으나 지역은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넓을 뿐만 아니라 차로 다닐 수 없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강원도 인제·홍천,충북 괴산 경찰서는 관할 면적이 서울 전체보다 넓다. 홍천서장을 거친 L모 서장은 “관할 면적이 서울의 3배였다”면서 “전체 180개 이(里)를 수시로 돌다보니 1년에 몸무게가 5㎏이나 빠졌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을 상대로 산불조심 등을 당부하거나 간첩용의자 등 거동수상자를 신고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서장이 챙기는 일이다. 접적(接敵)지역이라면 군부대 부대장과 협조하는 것도 필요하다. 해안경계선중심의 치안으로 새벽에 해안초소 순시도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시골서장이 의욕적으로 일하는 것은 아니다. 본청 및 본청 산하기관,서울청에서 일하는 100여명의 총경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약 300명 가량의 총경들은 이른바 ‘지역총경’으로 분류돼,경무관으로 승진할 기회가 거의 없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계급정년이나 연령정년이 임박할수록 승진 욕구보다 퇴직 이후를 생각하느라 부정과 무사안일에 빠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는 결국 지역 주민들의 불신과 외면으로 이어져 치안공백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고양 중남미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11)

    ◎어! 한국속에 중남미 있었네/국내유일의 외국문화 전문관/잉카·마야 유물 등 1,500점 전시/각종 생활용품 라틴문화 한눈에/전통가면 우리탈 보는듯 친근감 가을에는 훌쩍 떠나고 싶다. 발길 가는 곳으로 가자. 지구 반대편까지 갈 수 있다면…. 라틴 아메리카로 떠날까. 마음은 그래도 너무 멀어 라틴 아메리카로 가을여행을 떠나기란 버겁다. 그래,중남미 여행대신 ‘중남미박물관’으로 문화여행 떠나자. 침략자의 눈으로는 ‘발견한’ 땅. 그러나 BC 5,000년부터 이미 감자와 고추를 재배했고 마야문명과 잉카문명을 꽃피운 현란한 문명의 땅이었다. 오늘날엔 천연자원의 보고이지만 늦어진 산업화로 가난에 파묻혔던 이 곳은 현재 ‘새로운 땅’으로 불린다. 베링해를 건너간 2만5,000년 전,선조들이 아시아인이라 그런지 여러모로 우리와 닮았다. 지구 반대편의 그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와 닮았음은 일종의 문화충격이다. 마야와 잉카문명,아즈텍으로 대표되는 중남미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경기도 고양시 고양동에 위치한 중남미박물관은 외국문화 전문 박물관으론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곳이다. 아시아에서 유일한 중남미 전문 박물관이다. 붉은 벽돌 스페인풍의 건축물,잘 가꿔진 정원에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조각가 빅또르 구띠에레스의 여인상을 비롯 곳곳에 놓여진 조각품들이 멋스럽다. 5,000평의 대지에 총 건평 1,600평의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꾸며졌다. 우선 중남미 독특한 문양이 새겨진 묵직한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선 박물관 실내는 경쾌한 라틴 음악과 후엔 데쓰라 불리는 분수대,중남미의 상징인 태양신 아즈텍의 문양이 천장을 장식하고 있어 중남미 분위기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박물관의 라틴 문화유산은 총 1,500여점. 아즈테카 잉카문명 등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남미 각국의 찬란했던 문화유산과 역사 생활상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잉카문명의 토기 석기 목기 등 고대유물은 이 박물관의 첫번째 자랑. 가면과 도자기,가구와 민속공예품과 그림,영상물,전문서적은 물론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중남미의 모든 것이 있다. 이 박물관은 전직 외교관 부부의 콜렉션에서 시작됐다. 전 멕시코대사를 지낸 이복형(李福衡) 박물관장은 “혼을 넣어 만든 곳”이라 자랑한다. 30년을 골동품 시장과 벼륙시장을 뒤져 모았고,전장이라도 유물만 있다면 달려갔다. 그리고 94년,퇴직금으로 박물관 건물을 지어 박물관을 개관했다. 중남미에서만 30년동안 외교관생활을 했기때문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도 있지만 ‘순수하고,따뜻하며 상대적 빈곤감도 느낄 줄 모르는 풍요로운’ 그곳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 것이야말로 박물관 탄생의 첫번째 이유이다. 토기는 중남미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인디오 또또낙 족의 토우를 비롯 마야의 ‘고행하는 사제’,올 메까족의 ‘손가락을 빠는 토우’, 아즈텍시대의 ‘풍요의 신’도 있다. 또 8세기 엘살바도르의 요초아와 요호아상,3세기 따이노족의 토기 파편과 멕시코 꼴리마 지방의 ‘다산의 여신’도 자랑거리이다. 목기와 석기,구리로 생활소품을 많이 만든 멕시코 지방의 구리공예와 청색자기도 함께 볼거리이다. 이 박물관에서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인 곳은 가면의 방이다. 남미 전통의귀신탈과 우리의 천하대장군과 비슷한 멕시코 마추와 칸의 나무탈이 있고 나무와 종이,뿔과 돌,비취와 가죽,구슬 야자수 등 소재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두려움의 대상인 표범과 사슴 독수리 게의 탈도 있다. 죽음의 가면과 쌍가면 등,가면을 반으로 나눠 표정이 두가지 이상을 담고 있는데 이는 오랫동안 수탈을 당해온 민족의 한과 정복자에 대한 반감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중남미 역사에서 식민지배를 빼놓을 수 없듯 이 박물관에서도 루이 15세가 사용하던 바로크 가구세트가 눈길을 끈다. 스페인 정복실에는 기독교와 무력,부에 대한 욕망이 담겨 있는데 그중에는 인디오가 그린 마리아와 스페인 종교화의 대가인 무리요의 화법을 흉내낸 멕시코 과달라하라 대성당 수사들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거칠게 만들어진 목각 예수상,18세기의 천사도 남미문화의 소박함을 엿보게 한다. 안데스 인디오의 대표적인 민속악기 삼뽀냐,케냐,땀볼과 아즈텍 시대의 목각 타악기까지 악기들도 전시되어 있다. 이 박물관은 유물의 전시 뿐아니라 살아있는 문화의 현장.중남미의 대표적인 음식강습이 매일 열리는가 하면 중남미 의상전시회,음악회도 열린다. 지난해 개관한 미술관은 중남미 작가들에게 아시아 진출의 발판이 되고 있다. ◎한마디/李福衡 박물관장/라틴문화 ‘공유정신’도 함께 배우고 가길 기대/멕시코 등 4국서 대사/30여년 수집품 등 모두 문화원재단에 기증 중남미박물관에서는 중남미의 문화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李福衡(67) 洪甲杓(65) 전직 대사 내외의 중남미 문화에 대한 사랑과 집념,그리고 무소유의 인생관도 배울 수 있다. “이 박물관은 아내의 집념과 초인간적인 열의로 이뤄졌어요”라고 李관장은 말한다. 그는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코스타리카·도미니카 등 4개국 대사를 지낸 중남미 전문가. 李관장 내외의 공식명칭은 아내 洪씨가 중남미 문화원 이사장,李씨가 부설 박물관장. 격으로 보면 부인이 한수 위다. 남편 은퇴 후를 미리 준비한 아내에 대한 지극한 애정의 표현이다. 박물관을 지은 터는 30년 전 평당 300원씩을 주고 산 땅이다. ‘은퇴후 살 곳’으로 사뒀던 곳이지만 테마박물관으로 뜻을 정한 후,소유가 아니라 ‘공유의 즐거움’을 실천하게 됐다. 8원씩 사서 심고 펌프물을 길러 키웠던 묘목들도 자식같아 이 곳에 박물관을 세웠다. 자신을 ‘유노동 무임금’성실한 정원사라 말하는 李관장의 손은 막일꾼의 손이다. 땅과 유물까지 ‘엄청난 재산’을 중남미 문화원재단에 기증했고,사후 장기기증까지 결정했다는 이들에게선 중남미의 화려한 문화 뿐아니라 삶의 지혜와 아름다움도 배울 수 있다. “문화의 빈곤이 우리나라의 갖가지 위기를 갖고 왔어요. 있는 자들이 소유하려하지 않고 함께 공유하려는 생각을 해야 해요” “이 다음에 네 아들을 데리고 또 와다오. 그때 이 박물관 만든 할아버지·할머니 만났던 이야기를 아들에게도 해줘야 해” 엘살바도르 민속토기를 싸게 사기 위해 게릴라들이 점거하고 있는 지역에 밤늦게 들어가기도 했던 용감한 콜렉터 洪이사장은 관람온 한 중학생에게 당부한다. ◎이렇게 가세요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 302의 1번지 중남미 박물관은 서울에서 통일로를 따라 문산방면으로 가다 필리핀 참전기념비와 벽제읍을 지나 고양동파출소에서 좌회전해서 마을로 들어간다. ‘이 곳에 박물관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아파트가 들어선 마을길을 따라가면 박물관 안내판이 길을 가르쳐준다. 고양향교와 이웃하고 있다. 개관 시간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5시까지. 년중무휴. 단 평일의 점심시간(12:00∼14:00)은 초등학생이하 어린이는 관람불가. 관람에 필요한 시간은 1시간 정도. 관람료는 어른이 2,500원,학생은 1,000원. 전화 (0344)962­9291·7171
  • “할아버지 나라서 새 생명을…”/조선족 심장병어린이 21명 입국

    ◎현지 의료기술 열악/치료비 부담에 고통/오늘부터 5곳서 수술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중국 조선족 어린이 20명과 한족 어린이 1명등 21명이 한국어린이보호회(회장 李培根)의 초청으로 15일 오후 2시55분 대한항공 860편으로 입국,무료 심장수술을 받는다. 중국 옌볜(延邊)에 살고 있는 이들 어린이는 상태가 위급한 데도 현지의 열악한 의료기술과 치료비 부담 때문에 지금까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한국어린이보호회는 지난해에도 중국 조선족 어린이 등 19명을 초청,새 생명을 안겨줬다. 이날 입국한 어린이들은 서울대병원,서울 중앙병원,삼성 서울병원,연세대 세브란스,부천 세종병원 등 5개 병원으로 옮겨져 16일부터 정밀검사 뒤 심장수술을 받는다.무료수술 행사는 이들 병원 외에 제일생명과 국민카드 등 기업체가 후원하며 항공편은 대한항공이 무료로 제공했다.어린이들은 다음달 8일 퇴원하면 13일 하얏트호텔에서 열리는 자선의 밤 행사에 참석하고 롯데월드,신세계백화점,63빌딩,서울대공원 등에 나들이한 뒤 15일 중국으로 돌아간다.현나양(14·중국 지린성 옌지시)은 “수술을 하고 중국으로 돌아가면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고 싶다”고 말했다.4살 함태룡군의 어머니 崔玉順씨(55)는 “조국의 도움으로 아들의 생명을 건질 수 있게 됐다”면서 “뭐라고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 “모두 상속받은 재산” 주장/축재 의혹 李載五 前 주사

    ◎“뇌물 받아 부동산 투기” 소문… 비리 더 있을듯/간부들에 정기상납 ‘과장도 바꾸는 실세 주사’ 서울시 도심 재개발과 관련,2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2일 검찰에 구속된 전 서울시 재개발과 행정주사(6급) 李載五씨는 200억원대가 넘는 재산이 모두 상속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할아버지 대부터 3대에 걸친 갑부였기 때문에 물려받은 재산일 뿐 뇌물로 받았거나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이용,투기로 불리지는 않았다는 주장이다. 李씨는 91년 사들인 전남 장흥군의 채석장 외에도 온천 개발사업이 진행중인 경북 김천에 200억원대의 임야 1만7,000여평을 소유하고 있다.또 경기도 군포,강원도 고성,전북 군산 부안 고창 등지에 재개발 예정인 임야와 서울에 5억원을 호가하는 단독주택을 갖고 있다. 李씨는 61년 경기도 파주시 금촌우체국 교환원으로 공직을 시작,74년 서울시 세무1과로 옮긴 뒤 84년부터 96년 퇴직할 때까지 12년 동안 줄곧 재개발과에만 근무했다. 李씨는 재개발 구획 선정에서부터 개발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이권이 걸린 업무를담당하면서 막대한 뇌물을 챙겼을 뿐 아니라 이 돈으로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게 주변사람들의 증언이다.81년부터 올해까지 사들인 23건의 부동산 가운데 15건을 되팔아 엄청난 시세차익을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특히 시가 200억원대에 이르는 경북 김천의 온천부지는 92년 매입가가 5,000만원에 불과했으나 온천지구로 개발되면서 400배나 폭등했다. 검찰은 李씨에 대해 서울 중구 신문로 2·3지구 재개발사업과 관련,업자로부터 2억1,5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했으나 비리는 이보다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李씨는 재개발과 근무 당시 간부들에게 도자기,그림 등을 선물하며 친분을 유지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이같은 친분을 바탕으로 자리를 보전했을 뿐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의 전보인사에도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李씨는 지난 88년 5월 영등포구청 주택과로 발령났으나 6일만에 본청으로 복귀하는 실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李씨는 여러 차례 사무관(5급) 승진시험에 응시했으나 번번이 떨어지자 승진을 포기한 채 축재에 열중한 것으로전해졌다.李씨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李씨는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회식을 자주 베풀고 점잖은 노신사처럼 행동했다”고 말했다.
  • 흑인 첫 LA시장 브래들리 사망/20년간 5연임… 인종화합 헌신

    ◎92년 흑인폭동으로 공적 퇴색 미국 로스앤젤레스시에서 최초 흑인시장으로 인종화합에 헌신했던 톰 브래들리 전 시장이 29일 심장질환으로 타계했다.향년 80세. 지난 73년부터 93년까지 20년동안 유례없는 5연임의 기록을 세운 그는 시정부를 소수민과 여성에게 개방하고 이민들이 대부분인 도시빈민에 대한 사회복지혜택을 확대하는 등 다인종 화합에 앞장선 인물. 텍사스 목화농장에서 태어나 노예였던 할아버지와 소작농인 아버지 밑에서 불우한 소년기를 보낸 뒤 경찰관으로 공직을 투신했으나 인종적 한계를 느끼면서 퇴직,정계에 진출했다. LA시장 재직시 휴일도 없이 하루 16시간씩 시정에 몰두한 일벌레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그는 LA를 태평양 연안의 최대 금융도시로 성장시켰고 아시아 시장을 겨냥,항만과 공항을 짓는 등 인프라를 확충,태평양 무역의 LA시대를 열었다.84년에는 올림픽을 개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정치적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두 차례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고 로드니 킹사건의 여파로지난 92년 발생한 LA 흑인폭동으로 20년간 쌓아온 공적에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공직을 떠났다.
  • 오늘 ‘레디 고’(제3회 부산국제영화제:Ⅰ)

    ◎8일간 211편 은막의 감동 촉촉히/수영만 야외상영장서 화려한 개막행사/감독­배우 손도장 개봉식 등 이벤트 풍성/화제작 매진… ‘숨겨진 걸작’ 찾는 재미도/숨져긴 걸작 4선­만월(스위스) 잃어버린 동심 되찾기.검은 고양이(유고) 다뉴브강가 집시이야기.듀오(인도) 음악·춤 가득 ‘맛살라영화’.코미디언(독일) 나치탄압받는 남성중창단 부산은 지금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영화관이다.거리마다 어서 빨리 일상에서 벗어나 영화의 바다로 오라는 유혹의 손짓으로 가득하다. 24일 오후 7시30분 수영만 야외상영장에서 화려한 개막식이 치뤄지고 나면 8일간 41개국 211편의 영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상영된다. 이번 영화제기간에는 제레미 아이언스 등 지난해 부산을 방문했던 세계적 배우,감독들의 손도장(핸드 프린팅)개봉식과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핸드프린팅제작 등 특별 이벤트도 열린다. ‘아시아 영화의 창‘에 초청된 중국 황 지엔신감독의 ‘수면부족’이 중국당국의 검열로 참가하지 못하게 된 것만 빼곤 모든 행사가 차질없이 진행될 전망이다.예매율은 호조를 보이고 있다.영화평론가나 언론의 호평을 받은 화제작들은 발빠른 영화팬들에 의해 일찌감치 좌석이 점령된 상태.22일 현재 개막작인 ‘고요’를 비롯해 총 26편(73회)의 영화가 매진됐다.전체 28만9,362장(게스트 좌석 제외)의 입장권 가운데 15만5,000여장이 팔려 나갔다.올해의 경우 아시아,유럽,미주 등 각 대륙의 작품들이 골고루 인기를 끌고 있으며 특히 한국영화의 선전이 두드러져 눈길을 끈다. 명작을 놓친데 대한 아쉬움은 크겠지만 그러나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입장권이 남아있는 영화중 숨겨진 걸작을 찾아서 보는 즐거움 또한 쏠쏠하기 때문이다.개막직전 집행위에서 추천하는 ‘숨은 보석’들을 소개한다. ◇만월(프레디 M 뮤러)=올 몬트리올 영화제 대상 수상작.신세기를 앞둔 중립 스위스에 대한 극적 아이러니가 넘치는 영화로 잃어버린 동심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고 있다.보름날인 금요일 아침 등교길,곳곳에서 열살짜리 어린이 12명이 동시에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이 아이들의 부모들은 이상한 수수께끼가 담긴 편지를 한통씩 받는데 아이들을 구하려면 다음 보름날까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검은 고양이,흰 고양이(에밀 쿠스트리차)=지난 13일 폐막된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작품.95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평론가들의 독설에 지쳐 은퇴선언을 했던 쿠스트리차가 3년만에 만든 신작.다뉴브강가의 집시사회를 배경으로 할아버지와 손자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우정과 사랑,사라져가는 가치체계에 대해 짚어본다. 유고슬라비아 출품 ◇듀오(마니 라트남)=음악과 춤이 빠지지않는 인도 맛살라영화로 두 남자의 애정과 배반,절망에 관한 이야기.독립투쟁의 소용돌이에서 만난 아난단과 셀밤은 꿈많고 이상에 가득찬 젊은이들.그러나 아난단이 최고의 정치가로,셀밤이 최고의 배우로 각각 성공을 거두면서 두사람간에는 서로를 의식하고 경계하는 마음이 싹튼다. ◇코미디언 하모니스트(조셉 빌스마이어)=독일에서만 3백만 관객을 불러 모은 흥행작.1920년대 후반 히틀러가 집권전 베를린의 남성 6중창단 이야기. 피나는 노력으로 완벽한 아카펠라 하모니를 구사하게 된 이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주목을 받는다.6명중 3명이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나치는 그들을 해체시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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