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할아버지
    2025-08-29
    검색기록 지우기
  • 여성가족부
    2025-08-29
    검색기록 지우기
  • 여배우
    2025-08-29
    검색기록 지우기
  • 논란
    2025-08-29
    검색기록 지우기
  • 트럼프
    2025-08-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917
  • [깔깔깔]

    ●소개팅 영구는 여자 친구를 소개 받으러 나가면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혹시 맘에 안들 경우에 대비해 친구가 9시에 레스토랑으로 전화까지 해주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가 식당으로 걸려왔고 통화 후 영구는 자리로 돌아가 말했다.“저 지금 가봐야 돼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거든요.” 그러자 상대 여자가 대답했다.“천만다행이군요. 내 친구한테서도 ‘우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올 참이었거든요.”●건망증 의사 어떤 사람이 맹장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그런데 담당의는 건망증이 매우 심한 사람이었다. 수술을 하다가 그만 메스를 환자의 뱃속에 넣고 봉합을 했다. 나중에 실수를 깨달은 의사가 다시 뱃속을 열었는데, 이번에는 가위를 넣고 봉합을 했다. 할 수 없이 또 뱃속을 열고 있는데, 수술 예정 시간이 지나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 버렸다. 수술 과정을 알게 된 그 환자는 어이가 없어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지퍼를 다쇼. 지퍼를.”
  •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국내 첫 건물풍수백과사전 내는 이정암 전 경무관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국내 첫 건물풍수백과사전 내는 이정암 전 경무관

    #상황1 지난 봄 어느날이었다. 한 풍수학자와 현직 경찰 고위간부가 서울시내 모처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풍수학자는 “5월을 조심하라. 큰 사건이 벌어질 것이다.”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화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이 터지면서 경찰조직에 줄초상이 났다. #상황2 경찰총수의 퇴진압력이 거세게 일던 얼마 전, 풍수학자와 경찰 고위간부가 다시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앞날을 물어보는 경찰 고위간부에게 풍수학자는 “지금은 (총수가)그럭저럭 넘어가겠지만 올해 안에 한번 더 고비가 올 것”이라고 조심스레 귀띔했다. 앞으로의 일이야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 이택순 경찰청장은 일단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지만 앞날이 불안한 상황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요즘 경찰 내부에서는 ‘푸닥거리’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곤혹스러워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화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사건을 둘러싼 후유증으로 다들 맥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택순 청장이 최근 대국민 사과를 통해 “사건청탁 관행을 일소하고 조직 운영 시스템을 바로잡겠다.”고 역설했지만 일선의 체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사실 경찰은 1991년 현재의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에 둥지를 튼 후 무슨 연유에선지 총수들의 ‘말년 팔자’가 대체로 사납다. 이인섭(2대) 전 청장은 슬롯머신 사업자와의 연루 의혹으로 구속됐으며, 김효은(3대) 전 청장은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밀려났다. 박일용(5대) 전 청장은 초원복집 사건으로 구속됐고, 김광식(8대) 전 청장은 인천 인현동 상가건물 화재참사로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이무영(9대) 전 청장은 수지김 피살사건 내사중단 의혹으로 구속됐으며, 이팔호(10대) 전 청장은 최성규 전 특수수사과장 배후의혹 참고인으로 검찰에 소환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 때문에 2003년 12월 경찰청장 임기제가 확정되자 안팎에서는 오랜 숙원인 ‘수사권 독립’과 달라질 경찰의 위상에 많은 기대를 했다. 하지만 임기제 시행 첫 총수인 최기문 전 청장은 지역구 출마와 관련, 정치권에 휘둘리다가 결국 2004년말 임기 3개월을 남겨놓고 도중 하차했다. 최 전 청장은 퇴임후 한화건설 고문을 맡았다가 이번 사건으로 기소된 상태. 그 뒤를 이은 허준영 전 청장 역시 임기 1년을 남긴 2005년말 농민시위 사망사건으로 그만 뒀으며 지금의 이택순 청장 역시 임기를 채울 것이라고 장담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그렇다면 경찰청 주변에는 풍문대로 ‘불운의 그림자’가 잔뜩 드리워져 있는 걸까. ●26년 경력의 베테랑 수사관 한국 도선풍수 명리학회 이정암(60·본명 이기만) 회장. 전직 경찰 간부 출신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2005년 8월 경기지방경찰청 청문감사관으로 명예퇴직해 최종 계급은 경무관이다. 경찰에 몸담은 26년 중에 17년이 넘게 수사분야에서만 근무한 베테랑이다. 경찰 입문 전부터 배운 풍수·명리학을 적용해 사건을 해결한 것도 한두번이 아니어서 경찰 내부에서는 오래 전부터 ‘용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퇴임 후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밀린 원고를 정리해 ‘풍수 그리고 운명’,‘범위명운수비결’ 등 10여권의 관련저술을 연이어 발간, 주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이달 중 발간 예정인 ‘건물풍수 핵심 비결’은 국내 최초의 건물풍수 백과사전이라는 점에서 벌써부터 관심을 끈다. “경찰청 건물은 마름모꼴의 대지 위에 동향(東向)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정문 출입문이 북동쪽으로 나 있어 풍수상 좋지 않아요. 북서쪽의 후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경찰청장 집무실이 9층인데 바로 여기가 절명궁(絶命宮)에 해당합니다. 즉 관재(官災), 구설(口舌)이나 교통사고로 요절하는 등 단명을 주관하는 흉살(凶煞)방위에 해당되지요.” 그러면서 청장실을 적절한 층(7층)으로 배치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정문을 남쪽(정동향)으로 일부 개조해야 대길(大吉)하다는 것. 사실 이씨는 이택순 청장이 경기청장 재임때 차기 경찰총수로 승진할 것을 이미 예견한 바 있어 주위에서는 이씨의 권고를 그럴 듯하게 받아들인다. 하기야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대한 예언도 그렇거니와 2003년 8월 인천지방경찰청 청문감사관 때 대통령 탄핵건을 비롯, 모 장관의 100일 낙마와 17대 총선 당락여부까지 미리 알아 맞혔으니 그럴 법도 하다. 흥미있는 일화도 많다.2004년 경기도 군포경찰서장 재임 때였다. 평소 군포서장은 단명하기로 소문난 자리였다. 그가 부임해서 서장자리를 풍수적으로 풀어 보니 육살궁(六煞宮)에 해당됐다. 그래서 대문의 방향을 현 교육청 쪽으로 약간 틀었다. 이후 해마다 전체 직원 중 10% 이상 승진자가 계속 생겼고, 지금도 감사의 전화를 받곤 한다고 전한다. 군포시의회 건물도 같은 ‘절명궁’ 자리여서 건강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생기궁’으로 바꾸는 법을 귀띔해 줬더니 단명하던 의장이 연임하는 경사가 겹치기도 했단다. ● 청와대 3층으로 지었어야 “청와대는 3층으로 지어야 합니다. 배산이 탐랑목성(貪狼木星)이고 정문이 정남향에 배치돼 있어 1층은 금(金),2층은 수(水)로 대문과 상극이 되지만 3층일 경우 생기궁이 되어 대길할 운입니다.” 국회의사당의 경우 떠다니는 배의 꼬리에 있어 정치인들의 생각이 이재(理財)에 치우친다고 지적했다. 여의도가 행주형(行舟形)이라면 63빌딩이 돛이요, 섬안에 늘어선 빌딩들은 마치 큰 상선에 짐을 싣고 계류하는 선박의 모습인데, 선미(船尾)가 되는 남동쪽에 국회의사당이 배치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대검찰청 건물도 배산보다 높이 솟은 데다 정문이 남향으로 돼 있어 검찰총장실을 현재의 8층에서 5층으로 옮겨야 복덕궁(福德宮)의 생기가 회복된다고 했다. 반면 재벌가의 경우 비교적 길운의 자리에 위치했다고 설명했다. 삼성과 LG, 현대차 등 국내 10대 그룹 총수들이 사는 동네는 서울 강북의 한남동 등 남산 자락과 성북·평창·가회동 등 북한산 자락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비싼 주택들이 모여 있는 한남동의 경우 남산을 등지고 양 옆에 좌청룡·우백호 격의 언덕이 솟아 바람을 막아주며, 옆에 한강이 감싸듯 흘러 풍수적으로 재물운이 많다는 것. 재벌그룹의 사옥 중에서는 삼성그룹의 서울 태평로 본사가 층수별로 오행상생의 길운을 받도록 잘 배치돼 있다고 풀이했다.SK건설도 풍수경전인 ‘양택삼요’에 따라 집을 짓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고 귀띔했다. 생활풍수 상식에 대해 몇가지를 알려달라고 부탁하자 ▲임신 중에는 집수리를 하지 말 것 ▲아이들이 비뚤어지면 동쪽과 동남쪽을 먼저 살필 것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북서쪽을 살필 것 ▲여자에게 문제가 있으면 남서쪽을 살필 것을 권했다. 또한 주택의 서쪽에 큰 길이 있으면 길하고, 남쪽에는 빈터가 있어야 좋다고 말한다. 과거 각종 사건을 수사하면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집에 가보면 대부분 ‘절명궁’터였음을 알 수 있었다는 그는 현장 경험이 풍수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 풍수 학문적으로 집대성할 것 “풍수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의 지혜입니다. 또 그 역사와 뿌리가 장구하고 경험적 과학의 산물이기에 백발백중, 천발천중 맞아 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한테서 한학과 역경 등 경학을 배웠다.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해군에 지원해 36개월 군복무를 마친 뒤 검사가 되고자 고시 준비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한 스님을 만나 “자네는 검사는 안 될테고 경찰서장은 하겠구만.”이라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이 계기가 돼 3년 동안 스님과 전국을 떠돌며 풍수·명리학을 공부했다.1979년 간부27기로 경찰에 입문한 후에도 틈틈이 스승(스님)한테 물려받은 풍수경전을 익히며 내공을 쌓았다. 퇴임 후에 본격적으로 관련 저술을 발간하는 등 오로지 풍수·명리연구에만 전념하고 있다. 요새는 고미술협회와 대학, 각 단체 등에 초청 강의도 나간다. 이래저래 제자가 130여명에 이를 만큼 따르는 사람도 많아졌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는 “제갈공명과 소강절 선생의 인간 길흉사 요결 ‘황극책수(皇極策數)’ 등 7,8권 정도의 저술을 더 발간해 풍수이론을 학문적으로 새롭게 집대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7년 의성 출생. ▲76년 경북대 졸업. ▲79년 경찰 간부후보 27기로 임관. ▲99∼2004년 강진경찰서장. 군위경찰서장, 군포경찰서장. ▲05년 경기지방경찰청 청문감사관으로 명예퇴직(경무관). ▲주요 저서 풍수 그리고 운명(풍수), 요해 도선비기(풍수), 소설 도선국사(풍수), 비전으로 전하는 한국 최고의 명당(풍수), 옥룡자답산가(풍수), 범위명운수비결(주역), 하락명운수(주역), 적천특수비전(명리), 천운(명리) 등.
  • [女談餘談] 지난한 엄마의 길/윤창수 문화부 기자

    이제 석달이 지난 뱃속 아기의 엄마가 되자 세상 모든 게 뒤바뀌었다. 아기가 생기면 행복하고 기분좋은 줄만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드라마에서는 로맨틱하게만 보이던 입덧도 직접 겪으니 죽을 지경이다. 특히 흔들리는 지하철에만 타면 더욱 메슥거리는 통에 평소 45분쯤 걸리던 출근시간이 두배는 길어지기 일쑤다. 눈물, 콧물과 함께 위액까지 게워내다 보면 정말 하늘이 노랗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회사에서도 상사의 고함소리와 마감시간에 치이다 보면 아기가 뱃속에서 무사히 커가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초음파를 보면 콩알만하던 동그라미가 머리와 엉덩이가 생기고 팔다리와 눈, 코, 입이 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산부인과도 예비 엄마에게 즐겁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태아보험, 제대혈, 유전자 검사 같은 들어보지도 못했던 돈 들어가는 일이 천지였다. 특히 노령의 임신부는 ‘산부인과의 밥’이란 선배들의 귀띔에 의사들이 권유하는 대로 모든 검사를 받아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헷갈리기만 한다. 검사비용은 또 어찌나 비싼지….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출산전 각종 검사비용, 출산병원비, 출산용품 구입비 등을 합하면 5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출산지원금으로 약 50만엔(약 370만원)을 지원해준다고 한다. 지하철에서 다리가 후들거릴 때면 노약자석에라도 앉고 싶지만, 한 할아버지에게 된통 혼난 이후론 엄두가 나지 않는다.‘임신부 배지’란 것도 있다지만 기꺼이 달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령화현상 탓에 출생률 증가에 이바지한다는 자긍심 정도가 생겼을까, 실제 예비 엄마가 맞닥뜨리는 세상은 힘들기만 하다. 게다가 출산의 고통과 키울 생각을 하면 더 막막하다. 육아를 ‘창살없는 감옥’이라고 표현하는 친구를 보면 겁이 더럭 난다. 그래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태교는 감히 꿈도 못 꾸는 모자라는 엄마의 뱃속에서나마 아기가 무럭무럭 크기를 바랄 뿐이다. 방긋 웃는 아기 얼굴을 보면 그간의 걱정과 괴로움이 잊혀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윤창수 문화부 기자 geo@seoul.co.kr
  • [닥터 ‘이지’의 발칙한 치아 얘기] 부러진 치아

    진료를 하다 보면 정말이지 온갖 유형의 환자들과 만나게 된다. 이쑤시개로 치아 사이를 쑤시다가 부러진 이쑤시개가 끼는 바람에 끙끙대다가 온 환자가 있는가 하면 아이의 치아를 실로 잡아매어 뽑다가 그걸 마무리하지 못해 피가 철철 흐르는 아이의 입을 부여잡고 뛰어오는 아버지도 있다. 이 가운데 제일 어이없으면서도 안타까운 사례는 싸우다가 앞니가 부러지거나 깨져서 오는 경우이다. 서로 치고 박고 싸우다 보면 당연히 상처가 나기 마련인데, 특히 치아가 손상되면 이건 문제가 커진다. 특히 수직으로 깨진 치아는 어떤 방법으로도 완벽한 복원이 힘들고, 부러지거나 뽑혀나간 치아 역시 치료가 어렵다. 이런 경우 임플란트나 옆 치아를 깍은 후 같이 걸어주는 ‘브리지’로 치료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비용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4주 이상의 전치 진단까지 나오니…. 상황이 이러니 치아가 손상이 되면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에게 엄청난 손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어떻게 했을까. 변변한 치료술이 없었던 옛날에는 치고 박고 싸우다가 상대방의 치아를 손상케 할 경우 형벌로 엄하게 다스렸다는 기록이 문헌을 통해 전해진다. 고려시대의 한 문헌을 보면, 형제간에 싸우다가 상대방의 이를 부러뜨리면 3년 감옥형, 할아버지의 이를 부러뜨리면 2년형, 형의 부인이나 남편의 형제를 때려서 하나 이상의 이를 부러뜨리면 1년6월형, 두 개 이상이면 2년형에 처한다고 기록돼 있다. 그런가 하면 남편이 아내를 때려서 이를 부러뜨리면 곤장 90대, 두 개 이상이면 100대의 형을 가했다고 한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 왜 다른 사람의 이를 부러뜨리면 감옥형에 처하면서 남편이 아내의 이를 부러뜨렸는데 곤장뿐일까? 이는 바로 당시의 형법까지도 남존여비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아내라도 여성은 일정 부분 남자인 남편에 부속하는 존재로 여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형벌이 정해질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싸울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하겠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뜻대로 다 되지는 않아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투닥거릴 때가 있다. 이처럼 뜻밖에 싸울 일이 생긴다면 제일 먼저 상대방에게 마우스피스를 끼울 것, 여기에 그치지 말고 자신도 얻어맞을 것 같다 싶으면 스스로 마우스피스를 물고 싸우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분한 김에 이리저리 마우스피스를 찾으러 다니는 사이에 서로 화가 삭지 않을까? 어찌 보면 다소 엉뚱한 발상일지 모르나, 모든 다툼은 잠깐의 화를 다스리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어 볼썽사나운 다툼도 피할 수 있고, 나와 상대방의 치아까지도 보호할 수 있으니 ‘마우스피스 대처법’이야말로 일석이조의 대책이 아니겠는가.ㅋㅋㅋ. 이지영(치의학 박사·강남이지치과 원장·www.egy.co.kr)
  • [정책선거 원년으로] 역대 대선공약 대해부

    [정책선거 원년으로] 역대 대선공약 대해부

    ■ 김형준 명지대 교수가 본 ‘대선공약’ 대공황 시기에 치러진 1932년 미국 대선은 정초선거(foundation election)의 원형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15개의 혁명적인 법안을 통과시켜 경기부양과 실업대책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가 국가재건을 위한 이러한 과감한 변혁 조치를 신속하게 취할 수 있었던 근본 이유는 간단하다. 대선 기간 동안 국민에게 약속한 국가 발전 철학과 비전이 담겨 있는 공약을 실천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정초선거는 결코 공약(空約)에 바탕을 둔 구호가 아니라, 국민을 설득시키고 나라를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참 공약(公約)에서 나온다. ●美루스벨트, 국가비전 공약에 담아 한국의 민주주의는 1987년 민주화운동이후 동일한 헌법에서 4차례의 대선을 치를 정도로 절차적 민주주의는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대선 공약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경제전반에 대한 영향이나 재원마련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고 표만 된다면 무조건 남발하는 ‘선심성 공약’, 정부지출의 확대를 약속하면서 오히려 세금을 깎겠다는 ‘허황된 공약’, 정책을 집행할 때 생길 수 있는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평가가 배제된 ‘한 줄짜리 부실공약’ 등이 한국 대선판을 요란하게 장식했다. 결과적으로 대선 공약은 유권자의 선택 기준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선거가 끝나면 애물단지가 되거나 금방 잊혀버리는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안정된 정당체계 속에서 정당들이 공약 개발에 치중하기보다는 기존 정당을 깨고 신당을 만드는 이합집산에만 매몰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념과 노선이 다른 정당과 후보들이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무모한 ‘한탕주의식 선거연합’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는 정책보다 지역과 인물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2007년 대선에서 그동안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선거가 실종되는 위기를 넘어, 어렵게 쌓아올린 선거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퇴보하는 불행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선거가 5개월밖에 남지 않았는 데도 이른바 범여권은 ‘대통합 신당창당’ 타령만 하고 있고, 대선 후보 윤곽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민주성장 불구 허황된 공약 남발 야당인 한나라당 경선은 ‘상생, 정책, 공정’이라는 구호가 무색할 정도로 정책공약에 대한 진솔한 검증은 없다. 금도가 실종된 상대방 죽이기식 네거티브 공방에만 매몰되어 있다. 정책은 없고 네거티브만이 판을 치는 진흙탕 선거에서는 포퓰리즘에 입각한 선심성 깜짝 공약이 부상되게 마련이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이러한 기우가 현실화될 개연성이 크다. 과거에는 보통 대선 7개월 전에 후보를 선출해서 공약을 준비했지만 부실 덩어리였다. 하물며 선거를 2∼4개월 남기고 선출된 후보들이 내실 있는 공약을 제시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하다. ●정책선거가 민주발전 지름길 매니페스토 정책선거를 정립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후보자와 정당이 목표, 우선순위, 절차, 기한, 재원 등 매니페스토 요건을 갖춘 공약만을 제시하도록 하고, 이를 철저하게 검증할 수 있는 절차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언론의 사명·역할과도 부합된다. 언론은 선거 결과보다는 선거 과정을 아름답게 하고, 유권자들에게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 역대 대선공약 탄생의 비화 서울신문 취재팀은 역대 대통령 후보의 공약을 만든 핵심 브레인을 인터뷰해 공약이 나오기까지의 숨은 얘기를 들어봤다. ●친구들과 주고받은 농담이 공약으로 “뭘 그리 고민해. 일단 뽑아달라고 하고, 국민들이 일 못한다고 하면 그만둔다고 해.” 술자리에서 툭 던진 친구의 농담이 귓속을 파고 들었다.1987년 노태우 후보의 선거팀 ‘한가람기획’에서 일하던 전병민(현 한국정책연구원 고문)씨는 여기서 ‘중간평가’ 아이디어를 얻었다. 서울대 법대 교수 두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헌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맥이 풀렸다. 잠을 청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교수 중 한 명이 “헌법적으로는 안 되지만 정치적으로는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동이 트자마자 기획안을 만들어 당시 민정당 정세분석실장이었던 최병렬 의원에게 넘겼다.1987년 10월30일의 일이다. 노태우 후보는 선거 1주일 전 여의도 ‘100만명 집회’에서 중간평가 공약을 불쑥 내놨다.36.7%의 득표율로 아슬아슬하게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은 ‘중간평가’ 공약으로 톡톡히 곤욕을 치른다. 전병민씨는 ‘중간평가대책단장’을 맡은 박철언씨를 비롯한 참모들에게 두고두고 욕을 먹어야 했다. 전병민 고문은 “박철언 주도의 3당합당이 성사되고,DJ의 20억원 수수설이 불거지면서 중간평가 논란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우리가 남이가”에 한 숨 돌린 YS 1992년 민자당 김영삼 대통령 후보는 검증된 ‘선거 기술자들’인 전병민 임팩트 코리아 대표와 최병렬 의원을 선거 캠프에 기용했다.YS 선거기획팀인 ‘동숭동팀’의 전병민씨는 “정주영 국민당 후보는 ‘주책없는 할아버지’로 몰아 세웠고,DJ와는 지역대결로 승부했다.”고 전했다. 대선 직전에 터진 ‘초원복집’ 사건은 YS 캠프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부산시장 등 지역기관장을 부산의 음식점 초원복집으로 불러 가진 대선 대책회의 내용이 정주영 후보 측의 도청으로 공개된 것이다. 최병렬 당시 선거대책위 기획위원장은 “유세를 마치고 돌아온 YS가 고래고래 소리치며 김기춘 장관을 욕하는 등 분위기가 험악했다.”고 전했다. 그는 YS를 63빌딩으로 데려가 “결코 불리한 사건이 아닙니다. 두고 보십시오.”라고 위로했다.YS도 빙그레 웃었다. 다음날부터 경상도 민심은 ‘우리가 남이가’로 모아졌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부터 검토됐던 금융실명제는 YS의 단독 작품이었다. 황인성 전 총리는 “대통령에게 ‘언제 하실 겁니까.’라고 물으면 ‘하긴 합니다.’라는 대답만 했다.”고 회고했다. ●문구까지 감수한 ‘꼼꼼한 DJ’ 1997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의 ‘준비된 대통령’론은 빈말이 아니었다.DJ는 1971년 처음 대선에 나간 이후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꼼꼼히 기록해 놓았다.DJ의 측근인 고재득 통합민주당 사무총장은 “DJ는 공약집 문장의 조사와 부사까지 바로잡고,500여개의 세부공약을 빠짐없이 외울 정도였다.”고 말했다.DJ는 전자정부 실현, 정보통신벤처기업 1만개 육성 등 정보통신국가로의 리모델링을 강조했다. 당시 정무담당특보였던 이강래 의원은 “IT강국은 DJ의 오랜 신념이었다.”고 말했다. 국민회의 정책위의장이었던 김원길 한국여자농구연맹 총재는 “당시 세종대 재단이사장이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제안해 왔으나, 토목사업보다는 IT 육성이 더 시대에 맞는다고 판단해 공약으로 채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로드맵’속에서 길 잃은 참여정부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가장 중점을 뒀던 것은 ‘행정수도 이전’. 김병준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은 “‘균형발전’이라는 대통령의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공약 구상 단계에서는 깊은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브레인들은 ‘평화번영의 동북아시대’라는 공약에 무게를 뒀고,FTA의 대상을 아세안 국가나 일본으로 한정했으나 2005년 8월 갑자기 한·미 FTA가 핵심 정책으로 대두됐다고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전한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나 정 전 비서관 등 초기 브레인들이 청와대를 떠난 것도 이 즈음의 일이다. 이창구 김민희기자 window2@seoul.co.kr
  • “中 다이어트식품이 사람잡아”…부작용 심각

    “건강식품이 사람 잡겠네.” 최근 중국의 한 다이어트 건강식품이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문제의 상품은 ‘푸구이짜이톈차’(富貴在天茶)라는 이름의 중국제 다이어트 식품. 위장기능을 개선해주고 몸 안의 독소와 노폐물을 효과적으로 제거시켜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어 중국에서는 ‘초강력 다이어트 식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난 16일 이 식품을 장기 복용한 충칭(重慶)시의 한 노인이 극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실려가게 되자 식품의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다. 병원에 실려간 볜(變) 할아버지의 장녀는 “이 식품을 복용하기 2개월 전까지 만해도 7층 높이의 건물을 직접 오르락 내리락 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183cm의 키에 겨우 몸무게가 40kg뿐이다.”고 밝혔다. 이어 “위장기능도 떨어지고 나중에는 요독증(소변으로 배설되어야 할 각종 노폐물이 혈액 속에 축적되어 일어나는 중독증세)이 생겼다.”며 환자가 복용한 건강식품을 내보였다. 한편 이 건강식품의 제조공장측은 이에 대해 “아직 허가가 나지 않은 의약품이나 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신청중에 있다.”고 해명했다. 충칭시는 “제조공장측의 설명은 거짓에 불과”하다며 “그 다이어트 식품은 판매자체가 위법”이라고 소비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대선주자 25시] 이해찬 前총리

    [대선주자 25시] 이해찬 前총리

    이해찬 전 총리의 출사표를 요약하면 도덕성과 국정운영 능력, 미래비전이다. 출마를 선언한 뒤 대중 정치인의 자질 면에서 집중적으로 지적받는 부분이 있다. 대중성 부족이다. 오죽하면 ‘버럭 이해찬’으로 불릴까. 여야를 넘나들며 정책위 의장을 거친 데다 지난 1995년 조순 전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필두로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대선본부 부본부장,2002년 새천년민주당 선대위 기획본부장 등을 거치며 미다스의 손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대선이 정책으로만 승부할 수 있는 판인가. ●진정한 대중성은 ‘진실’ 지난 4일 부산을 찾은 자리에서 이 전 총리는 사과 이야기를 꺼냈다. 청중을 향해 “사과가 다섯 개 있는데 이중 세 개를 먹으면 몇개가 남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두 개라고 답했던 청중들은 이 전 총리의 답변에 자지러질 듯이 웃었다.“아니, 먹는 게 남는 건데 세 개지 왜 두 개냐.”라는 게 아닌가. 앞으로는 웃음을 유도하는 후보가 되겠다고 다짐도 했다. 그러면서도 진정한 대중성은 ‘대중 추수주의’가 아닌 진실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용은 왜곡되고 이미지화되면서 형식만 갖추는 게 대중성은 아니다.”고 힘주어 말했다. 진실에 기반한 대중성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변이 이어진다. 대중의 이해에 충실하면서 대중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개혁파 정치인이면서도 현실주의적인 해법을 중시하는 그의 정치적 컬러가 대변하고 있다. 한 핵심 측근은 “진짜 개혁세력이 힘을 얻으려면 주장에만 그칠 게 아니라 관철시키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이 전 총리의 지론”이라고 설명했다.1997년 대선을 앞두고 전교조 합법화를 유보했다가 여당이 과반의석을 넘었을 때 관철시킨 것, 노동법 재개정 당시 국제기준을 준수해 정리해고제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체성과 도덕성 그가 이날 총리 낙마의 결정타를 안겨줬던 부산을 찾아 맨 먼저 들른 곳은 민주공원이었다. 부마항쟁이 유신의 마지막을 가져온 역사적인 사건인데 저평가됐다며 아쉬워했다. 기념관에서 ‘타는 목마름으로’를 부를 때 그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투옥됐을 때를 떠올리는 듯했다. 정체성은 범여권 후보의 자격에서 상대 후보와의 차별화나 마찬가지다. 사형선고까지 받으며 삶의 끝을 오갔던 그였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향해 “대학만 같지 살아온 이력은 다르다.”고 한 것은 뼛속 깊이 체화된 자신감으로 들렸다. 그는 대선 후보의 자질과 관련, 도덕성을 첫손에 꼽는다. 공개 강연이 있을 때마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경선 후보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다.“자기 땅 고도제한 추진은 청문회감”(13일 울산시당 간담회),“이 전 서울시장은 후보를 사퇴해야 한다.”(11일 경주시당 초청강연)며 비수를 꽂았다.16일 이명박 후보 가족의 주민등록초본 불법발급과 유출사건에 대해 정치공작 의혹을 거론하자 “위장전입과 위장 땅투기 의혹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온갖 비리에 연루된 후보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참으로 용감한 사람”이라며 기자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지지율이 높은 이유를 묻자 “후보의 자질과 상관없이 수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집권욕 때문이다. 후보가 정해지면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지난해 3·1절 골프 파문은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같은 진영 후보조차 “이 전 총리에게 검증된 건 골프 실력밖에 없다.”고 공격받았다. 그는 “보도와 실체가 달랐다는 게 드러나지 않았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아직 완벽하게 여과되지 않아 보인다. 그가 본선 무대에 오르면 다시 묻기로 했다. ●세 여자의 등과 이해찬의 눈물 ‘이해찬’ 하면 강팍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 그때마다 “평판에 신경쓰지 않는다. 일로 승부한다.”고 답해왔다. 굳이 사족을 더 붙인다면 “워낙 도덕적으로 결점이 없다 보니 사사로운 것까지 들춰내고 싶은 모양”이라며 대수롭지 않아한다. 그런 그가 한없이 울었던 적이 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안동교도소에 복역 중일 때 어머니와 아내 김정옥 여사, 딸 현주(당시 2살)가 찾아왔다. 그의 서른 살 생일날이었다. 면회를 끝내고 돌아서는 세 여자의 등을 봤던 것이다. 그는 감방에 돌아와 한 시간을 울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딸 현주를 자전거에 태우고 둑 위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어쩌면 아빠보다 할아버지가 더 따뜻하고 포근한 남자였을지 모른다며 애써 위안도 했으리라. 아내 김정옥 여사와는 대학시절 서울지역 사회학과 학생들의 학술모임에서 만났다. 대쪽 같은 정치인 남편을 둔 죄(?)로 서점과 곰탕집, 온갖 직업을 섭렵케 했다며 평생을 미안해 한다. 그는 전국을 다닐 때 아내와 항상 함께한다. 김 여사가 강단에 서서 남편 이해찬을 말할 때도 있다. 김 여사는 “남편이 스킨십 없다고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우리 딸이 생겼을 리가 있겠냐.”며 웃어보였다.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같이 하다가 “주는 대로 그냥 먹자.”라고 결론냈던 남편이었단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본 시트콤의 인기 비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시트콤은 종영해서 유행을 남긴다?’ 거침없이 안방을 휘저었던 MBC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이 남겨 놓은 흔적을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지난 13일 막을 내린 ‘하이킥’은 지난해 11월 6일 첫 방송을 탄 뒤 8개월 여 동안 숱한 화제를 뿌리며 시청자들을 들썩이게 했다. 뿐만 아니라 그저 초코바처럼 가볍고 달착지근한 코미디물로만 여겨졌던 시트콤에 가족미학과 애절한 로맨스를 입힘으로써 시트콤을 더이상 만만치 않은 장르로 보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어떤 요소들이 시트콤으로 하여금 이토록 화제몰이를 하도록 하는 것일까. 시트콤은 무엇보다 ‘변신로봇’이다. 시트콤이란 장르 자체가 하나로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성격을 지녔다.‘하이킥’은 미스터리 스릴러를 방불케 하는 스토리를 선보이는가 하면, 끊임없이 다음 회를 궁금하게 만드는 러브라인으로 극적 중량감을 선사한다. 배우들의 변신도 예측불가다. 말 그대로 ‘파격’이다. 이미지 바꾸기를 서슴지 않는다.‘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앙드레 대교주로 등장한 신해철은 가수 출신이란 선입견을 깨고 배우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박해미, 정준하도 ‘하이킥’을 통해 뮤지컬 배우·개그맨 출신에서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났다. 시트콤은 또한 ‘유행어 제조기’다.‘하이킥’은 제목 자체가 패러디 대상이 됐고 ‘사육해미’‘꽈당민정’‘괴물준하’ 등 등장인물의 4자 별명은 네티즌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대사와 말투 또한 성대모사의 대상이 되며 트렌드를 만드어냈다. 시트콤 ‘세 친구’에 나왔던 안연홍의 “아! 놀라워라.”와 이동건의 “오 마이 미스터리!” 등이 지워지지 않는 잔향을 남겼듯, 톡톡 튀는 대사들은 시트콤이 끝나고서도 시청자의 뇌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다. 시트콤이 ‘완소장르’(완전 소중한 장르) 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시트콤은 거의 모든 세대를 아우른다. 출연자들부터가 아역에서 70대 노인까지 고르게 분포한다. 그들은 각각 제 또래 세대들에게 어필하기도 하지만, 솔직하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로 다른 연령층에게도 큰 호응을 얻는다. ‘하이킥’의 이순재(72)는 칠순이 넘는 나이에도 야동에 빠진 주책바가지 할아버지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젊은층 사이에 ‘야동순재’로 큰 인기를 끌었다. 23일 첫선을 보일 MBC 새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 역시 신구(71)와 김을동(62), 선우은숙(48)이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등장해 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배우 열풍에 가담할 전망이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사설] 코스피 2000시대 맞을 준비 돼 있나

    주식시장이 연일 뜨겁다. 최근 보름새 코스피지수가 200포인트나 급등했다. 그런데도 뭉칫돈의 유입은 그칠 줄 모른다. 증시가 침체한 것보다야 낫겠지만, 올라도 너무 오르니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날만 새면 증시에 신기록이 쏟아지는 판이니 너도나도 돈을 싸들고 ‘묻지마’ 투자대열에 끼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러다가 잘못되면 피해자가 속출할 텐데, 지금은 대책을 세울 틈도, 시장을 제어할 방도도 없이 치솟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현재의 증시는 정상으로 보기 어렵다. 전국 곳곳에서는 지금 할아버지·농민·주부·학생 가릴 것 없이 주식투자 광풍에 휩쓸렸다는 소식이다. 증권사에 억대의 토지보상금을 들고 와서 “아무거나 사달라.”는 고객이 있는가 하면, 주택전세금을 빼거나 은행빚을 얻어 기회를 노리는 투자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자기 책임 아래 하는 투자라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현재의 증시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나 이론을 무색하게 만드는 상황이라고 한다. 정보력 약한 개인투자자들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모자랄 판에, 이렇듯 부나비처럼 뛰어드니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경기 회복세에다 기업의 실적 향상, 넘치는 유동자금이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지만, 일부의 무분별한 투자행태는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본다. 기업의 건전한 자금조달시장이어야 할 증시를 투기장으로 변질시킬 수야 없지 않은가. 증권사 사장단이 오늘 과열증시를 진정시키기 위해 모임을 갖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증권사들은 수익 욕심을 버리고 고객에 대한 창구지도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 증권당국도 증시가 코스피 2000시대를 맞기 위한 건전성·투명성·안정성을 확보했는지 제대로 살피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14일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헤이그 추모 열기

    14일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헤이그 추모 열기

    |헤이그(네덜란드) 이종수특파원|‘1000년을 기억할 100년전 큰 죽음’ 14일은 100년 전 ‘망국의 한’을 호소하러 헤이그로 왔던 특사 3인 가운데 한 분인 이준 열사가 순국한 날이다. 열사의 추모식이 열리는 헤이그를 향해 12일 오전 파리를 출발했다. 파리 북역에서 초고속열차를 타고 벨기에 브뤼셀 미디역에서 내려 일반 열차로 갈아탄 뒤 4시간 만에 헤이그(Den Haag)HS역에 도착했다.100년 전 6월25일 이준, 이상설, 이위종 이른바 ‘헤이그 특사’ 세 분이 내린 곳이다. ●기념관 건물 입구 ‘태극기 휘날리며´ 한국 최초의 검사 이준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전세계에 알리라는 고종의 밀명을 받고 대장정에 나섰다. 일제의 감시가 살벌해 조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길이었다. 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상설·이위종 열사를 각각 만난 뒤 시베리아를 거쳐 독일 베를린, 벨기에 브뤼셀을 거처 64일 만에 HS역에 도착했다. 낯설고 어색한 풍경의 이국 거리를 지나갔을 열사 3인. 헤이그HS역 정면으로 난 길을 따라 10분쯤 걸어가니 와건스트라트(Wagenstraat)124A번지에 자리한 이준 기념관이 나왔다. 울분을 못이긴 열사가 순국한 드 용(De Jong) 호텔을 개조한 곳이다. 방문객을 맞은 것은 건물 입구에 당당하게 펄럭이는 태극기와 정문의 “이 집은 이준 열사가 순국하신 역사적인 집입니다.”라는 문구다. 좁고 가파른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니 이기항 이준아카데미 원장과 송창주 이준기념관 관장이 ‘유럽 한민족 평화제전’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독립기념관의 지원을 받아 이준기념관도 14일 재개관했다. 당시 만국평화회의는 6월15일부터 10월18일까지 열렸다.3인의 특사가 도착한 것은 6월25일. 기념관에서 걸어서 10분 떨어진 빈넨호프의 회의장에 도착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국권을 상실한 나라의 ‘슬픈 숙명’이었다. 주미 공사를 지낸 아버지 이범진을 따라 다니며 서양 문물에 일찍 눈을 뜬 이위종 열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 만행을 고발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 7월14일 이준 열사가 순국하면서 3인의 투쟁도 종지부를 찍는다. 이준 기념관에는 다양한 자료들이 ‘그날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특사 3인의 이동 경로, 고종의 특사 신임장, 을사늑약 무효를 알리는 트리뷴지 기사…. 대부분 이 원장 부부가 손수 일본·러시아·네덜란드 문서보관소와 도서관의 마이크로필름 등을 뒤져서 모은 것이다. 이날 네덜란드를 관광한 뒤 벨기에로 넘어가는 도중에 기념관을 찾았다는 양윤정(33)씨는 “굳이 100주년이 아니더라도 유럽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들러야 할 곳”이라고 말했다. ●獨·佛 교민들 단체방문 줄이어 열사의 넋을 기리는 ‘제의’는 13일 오전 시내 한 호텔에서 국제학술회의로 막이 올랐다. 평화제전 위원장인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헤이그 특사의 사명은 현실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노력이었지만 독립을 지켜갈 수 있는 스스로의 힘과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은 “만국평화회의는 일제가 지칭한 것이고 당신 언론에서는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세계평화회의’ 등으로 표현했다.”며 “이준 열사 순국은 이후 국내외 자결 순국, 의열 투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14일에는 기념식과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헤이그시는 이날을 ‘이준 평화의 날’로 지정했다. 한국·네덜란드 예술가들의 공동 기획으로 헤이그 특사 3인의 도착 장면도 재현한다. 이날 행사에는 김정복 보훈처 장관, 최종무 주 네덜란드 한국 대사,W 데이트만 헤이그 시장 등 국내외 인사 120여명이 참석했다. 독일·벨기에·프랑스 등 인근 국가 교민들도 버스를 동원해 단체로 방문하는 등 700여명이 참석했다. vielee@seoul.co.kr ■대한매일신보 ‘그날의 이준’ ‘이준씨가 만국평화회의에 한국 파견원으로 갔던 일은 세상사람이 다 알거니와, 어제 동경전보에 따르면 그가 충분(忠憤)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하여 만국사신 앞에 피를 뿌려서 만국을 경동(驚動)케 하였다더라.’ 이준 열사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분사(墳死)한 소식을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가 1908년 7월18일 호외로 전한 기사의 한 대목이다. 황성신문은 다음날 대한매일신보의 기사를 받아 ‘이준씨는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자기의 복부를 할부(割剖)하였다는 전보가 도래하였다는 설이 유(有)하더라.’고 이후 오랫동안 믿음을 준 할복자살설을 기정사실화했다. 대한매일신보의 호외는 이준 열사의 서거 소식에 앞서 급박한 대한제국 정부의 움직임을 먼저 다루었다. 기사는 ‘내각대신 여덟분이 회동하여 어제 오후 7시부터 12시까지 황상폐하를 알견하고 해아(海牙·헤이그)에 위원을 파송함으로 당하시는 곤란을 면하실 방책을 올렸다.’고 적었다. 그 방책이란 ▲광무 9년 11월17일에 체결한 신조약에 어보를 찍고 ▲통치를 대신할 황제의 섭정을 추천해야 하며 ▲황제가 직접 동경에 가서 ‘일황폐하’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조약이란 1905년 을사늑약으로, 고종이 이때까지 정식으로 비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대한매일신보는 ‘황상폐하께옵서는 이 세 가지를 다 윤허치 아니하셨다더라.’고 보도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이준열사 외손녀 유성천여사 “100주기 감회 남달라” |헤이그(네덜란드) 이종수특파원|이준 열사의 외손녀 유성천(80) 여사가 열사의 순국 100주년 추모식을 맞는 감회는 뜻깊었다.13일 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는 헤이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유 여사는 어머니(이준 열사의 외동딸)에게 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준 열사와 가족들에 대한 기억을 들려줬다. 그 속에는 독립운동가 가족이 겪은 신산한 삶이 오롯이 녹아 있다. 유 여사는 “외할머니가 헤이그에서 외할아버지가 사망했다는 통지를 받은 뒤 큰 충격을 받아서 심장병으로 고생하시다가 결국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 심장판막증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어 이준 열사 가족의 삶과 관련 “일제 강점기여서 애국 지사 집안은 말도 삼가해야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외할머니는 동지적 입장에서 외할아버지를 이해하고 내조를 잘 하셨다고 들었는데 헤이그 특사로 가기 전에 독립운동하시다가 투옥되셨을 때 굳건하게 옥바라지를 하셨다고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100주기를 맞은 소감에 대해 “90주기에 참석한 뒤 귀국하면서 10년 뒤에 다시 이곳에 올 줄 생각도 못했다.”며 “많은 교민들이 오시고 행사를 위해 여러 분들이 노고를 아끼지 않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vielee@seoul.co.kr ■ 이기항 이준아카데미 원장 “청소년에 민족의식 고취” |헤이그 이종수특파원|1991년부터 이준 열사 기념식을 시작한 이기항(71) 이준아카데미 원장이 열사의 순국 100주년을 맞는 소회는 남달랐다. 12일 헤이그 이준평화박물관에서 만난 이 원장은 기념식 준비에 정신없이 바빴다. 이준 열사 기념사업에 뛰어든 동기를 물었더니 소박하게 대답했다.“우연히 발을 담갔다가 ‘호랑이 등 탄’ 심정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거창한 명분 대신에 매번 상황이 그의 발을 기념 사업에 한 발짝씩 끌어당겼다는 것이다. 1972년 상사 주재원으로 왔다가 사업가로 변신하며 네덜란드에 살던 이 원장은 그저 간헐적으로 열사의 묘적지를 참배하던 교포였다. 격년으로 추모식을 주관하던 이 원장에게 1992년은 이준 기념사업에 큰 전환을 가져왔다. 네덜란드 일간 NRC신문에서 이준 열사가 순국하기 전까지 묵었던 데 용 호텔이 재개발로 매각될 위기에 처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3년 노력 끝에 1995년 사재 20만달러를 쾌척해 ‘사고’를 쳤지만 더 큰 일이 다가왔다. 호텔을 기념관으로 건립하기 위한 자금이 문제였다. 해서 한국에 들어와 소식을 알리고 전경련을 찾아가 기념관 건립 자금을 협찬받았다. “내 나이가 우리 나이로 70이 넘었습니다. 더 바랄 것도 없이 그냥 많이 보고들 갔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와서 민족의식을 고취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vielee@seoul.co.kr
  • [깔깔깔]

    ●별일 아니에요 자동차로 출근하는 남편을 전송하고 난 부인이 이웃집 여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편 월급이 또 오른 모양이죠?” “왜요?” “자동차가 새 고급차로 바뀌었으니 말이에요.” “아, 차요. 차가 아니라 남편을 바꿨을 뿐이에요.”●형제 관계 어느 꼬마가 아빠 엄마를 따라 처음으로 교회에 갔다. 아빠와 엄마가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아버지.” 꼬마도 기도를 했다. “하느님 할아버지.” 그말을 들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얘야, 너도 하느님 아버지라고 해야 하는 거야.” “그럼 하느님은 아빠한테도 엄마한테도 또 나한테도 아버지야?” “물론이지.” 그러자 꼬마가 의젓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형.”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통무용음악 집대성하는 대금산조 명인 이생강 선생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통무용음악 집대성하는 대금산조 명인 이생강 선생

    신적(神笛)이다.‘귀신을 일으키고 거친 바다를 잠재우는 신라의 소리’라고 했다. ‘만파식적’ 설화에 등장한다. 제31대 신라 신문왕(神文王)은 아버지 문무왕(文武王)을 위해 동해안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추모했다. 그러자 죽어서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金庾信)이 합심, 용을 시켜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그런데 이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하나가 됐다. 왕은 이 기이한 소식을 듣고 하루는 현장에 나갔다. 이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었다. 용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왕은 곧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불었더니, 나라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해결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이 피리를 국보로 삼고는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고 이름지었다. 삼국통일 이후, 흩어져 있던 유민들의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 했다는 전설이다. 이처럼 대나무는 3죽(竹)이라고 해서 대금·중금·소금 등 우리 고유의 전통악기의 재료로 사용돼 왔다.‘笛(적)’은 가로 부는 관악기를 가리킨다. 시인 복효근의 ‘어느 대나무의 고백’의 내용도 눈길을 끈다.‘∼내게서 대쪽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내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속에/터질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흰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제 때에 이냥 베어져서/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거나∼/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소리에/어둠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올해로 음악인생 65년째 대금산조의 최고 명인 죽향(竹鄕) 이생강(70·중요무형문화재45호) 선생. 다섯살 때부터 소금(小)을 배웠으니 사실상 올해로 음악인생 65년째를 맞은 셈. 그 세월만큼이나 대나무 악기에 관한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는다. 지난 4월5일 북악산 개방행사때에는 노무현 대통령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감동적인 대금산조를 연주,39년 동안 잠자던 북악산의 정기를 새삼 일깨우기도 했다. 그는 얼마전 우리 음악사의 중요한 획을 하나 더 그었다. 한국 전통무용음악을 집대성한 ‘춤의 소리’(신나라뮤직) 전집음반 50장을 한꺼번에 내놨다. 본인의 평생 숙원사업이기도 하지만 이 전집에는 산조춤, 화관무, 부채춤, 살풀이, 승무, 농악 등이 총망라돼 있어 우리나라 전통 무용음악의 100년사를 담은 ‘대백과사전’이라는 점에서 실로 의미가 크다. 아울러 이번을 시작으로 나머지 350장(최종목표 400장)의 음반을 더 내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늦어도 2∼3년 안에 완결짓겠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주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한 연구실(죽향대금산조 원형보존회)에서 그를 만났다. 괄괄한 목소리에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내뱉으면서 “우리나라의 난다긴다는 예인들은 대부분 전라도 사람들인데 그곳에 가서 대금을 배울 때 경상도 사투리를 함부로 쓸 수 있었겠느냐.”고 하면서 누가 말을 시키면 “그저 대금을 입에 대고 소리만 냈다.”며 웃는다. 얼굴이 50대로 젊어 보인다고 하자 “대금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복식호흡을 하게 된다.”며 나름대로의 비결을 귀띔했다. 20여평 남짓한 연구실 벽면에는 온갖 상장이며 지나온 발자취의 업적이 쭉 내걸려 있었다. 아들 이광훈이라는 이름도 눈에 들어왔다. 중앙대 국악과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자신의 뒤를 잇고 있다면서 “저기봐, 대통령상도 받았어, 아주 잘해.”라며 잠시 자랑끼를 발동한다. 친손자와 외손자들도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금과 가야금 등에 소질이 많다고 부연했다. “11세 되던 1947년, 전주에 계신 스승(한주환)을 만나면서 대금을 본격적으로 배웠지요. 판소리든 민요든 한국의 전통공연은 음악과 무용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종합예술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일제시대 때 우리 문화말살 정책으로 우리 것이 중단되고, 또 6·25때 16개국이 참전하면서 서양음악이 거칠게 들어왔어요. 그래서 국악공부에 더욱 오기가 생겼습니다.” 6·25로 인해 부산으로 피란온 당대 국악의 대가들과 자주 접한 것은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어떨 때는 하루 동안 열심히 뛰어 일곱분의 스승에게 찾아가 ‘한수 한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일취월장, 자신감을 얻은 그는 서양의 7음계를 우리 5음계에 접목시켜가면서 ‘대니 보이’‘엘 콘도 파사’ 등의 팝송과 재즈를 넘나들며 대금의 음역을 계속 넓혀나갔다. 그랬더니 얼마후에는 악보도 없이 ‘눈물젖은 두만강’‘목포의 눈물’ 등 우리의 전통가요까지 자유자재로 불 수 있게 됐다. 결국 그는 다섯살 때 선친에게 단소와 피리를 배우는 것을 시작해 11세 때 한주환 선생을 비롯, 퉁소의 전추산, 피리의 오진석·임동석, 태평소시나위의 김문일 등 여러 스승에게 배우면서 스스로 ‘이생강류’라는 독특한 음악세계, 즉 전통과 현대를 크로스오버하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민속악예술대학 설립이 숙원사업 그의 명성이 세계 무대에 알려진 것은 1960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민속예술제. 이때 단원의 악사로 참가했으나 춘향역을 맡은 주연 무용수 안나영씨가 갑자기 맹장수술을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혼자 13분 동안 최초의 대금독주로 시간을 때운 것. 이때 객석에서는 동양적 음향에 반했다며 많은 찬사를 쏟아냈다. 그러던 1968년 멕시코올림픽 참가공연을 계기로 여기저기에서 초청을 받아 40여개국 순회공연까지 가졌다. “군대생활요? 27사단 정훈부 군예대에서 돌아가신 코미디언 이주일씨와 같이 근무했어요. 나중에는 피리명인 정재국씨와 함께 근무했는데 서로 ‘정악’(피리)과 ‘민속악’(대금산조)을 가르쳐주며 생활했습니다. 무형문화재는 정씨가 먼저 됐지요.” 나이 70을 넘기면서 그에겐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하루속히 자신을 뛰어넘는 제자를 길러내는 것(서울 국악예고와 중앙대 국악대 강의)이고 각종 공연활동과 음악강연을 틈틈이 하면서도 ‘춤의 소리’ 백과사전을 마무리짓는 일이다. 이 사업이야말로 먼저 가신 스승에게 보답하는 길이요, 후배들에게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사명감이다. 오래전부터 단소와 단소교본을 만들어 왔는데 ‘국민1인 1국악기 갖기’운동에도 앞장설 생각이다. 또한 전통 가무악을 전수할 민속악예술대학을 설립하는 것도 숙원사업. 궁중음악은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교육되고 있으나 민속음악은 그러지 못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화합번영과 자긍심을 위해서라도 민속악의 대금소리는 계속 울려퍼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거듭 강조한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7년 일본 도쿄 출생. 해방후 부산 정착.▲42∼60년 이덕희·지영희·전추산·오진석·방태진·한주환 등에게 피리, 단소, 퉁소, 소금, 태평소, 대금 등을 익힘.▲59년 임춘앵 여성국극단에서 음악반주.▲6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민속예술제 참가공연.▲77년 첫 대금산조 개인 발표회. 이후 16차례 개인발표회.▲88년 서울 올림픽폐회식 때 대금독주.▲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지정. ▲2005년 음악인생 60주년 기념공연(세종문화회관). ▲07년 6월 ‘춤의 소리’ 전집음반 50장 제작. 현재 죽향대금산조원형보존회를 운영,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 # 수상경력 전주 대사습대회 장원(78년), 신라문화재 대통령상(84년),KBS국악대상(84년), 한국국악대상(02년), 서울시 자랑스런 시민상(94년), 대한민국 국민상(97년) # 주요 작품 한국 전통무용음악을 집대성한 ‘춤의 소리’(07년, 신나라뮤직) 전집음반 50장 외에 400여 종의 앨범제작.
  • 220V ‘전기 할아버지’ 중국서 화제

    최근 중국에서 자신의 몸에 220V(볼트)의 전기를 꽂아 심신을 단련하는 노인이 큰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신장(新疆)웨이우얼자치구의 장더커(張徳科)할아버지는 마을에서 ‘기인’ 혹은 ‘전기인간’이라고 불리고 있다. 220V의 전기가 흐르는 단자를 자신의 귀등 몸에 꽂아도 아무런 이상이 없기 때문. 뿐만 아니라 몸에서 흐르는 전기를 통해 생선을 구워먹기도 해 사람들의 눈을 의심케 한다. 장 할아버지는 “왼손으로 잡은 전극을 오른손에 놓인 생선에 꽂으면 단 2분만에 조리할 수 있다.”며 노릇하게 구워진 생선을 내보였다. 이어 “같은 방법으로 전등에 꽂으면 불빛의 밝기까지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다.”고 흐뭇해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에게서는 전기 묘기보다 장 할아버지의 독특한 ‘침술 시술’이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20V의 전기가 흐르는 장 할아버지가 자신의 손가락을 이용한 ‘전기 침’을 이웃들에게 놓아주고 있기 때문. 시술을 받은 한 이웃은 “장 할아버지가 무료로 치료도 해주고 관절염이나 류머티즘 질환에 효과가 있어 2-3일이면 금방 낫는다.”고 말했다. 중국과학원신장분원측은 “장 할아버지의 몸에서 왜 이같은 일이 가능한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고 신기해했다.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지참금이 뭐기에…

    생후 2일된 인도 여자아기가 지참금 때문에 생매장됐다 극적으로 구조됐다.BBC방송은 6일 “자기 외할아버지에 의해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산 채로 묻혔던 여자아기가 농부에 의해 발견돼 극적으로 살아났다.”고 보도했다. 이 비정한 사건은 인도 하이데라바드 남쪽 150㎞ 떨어진 마을에서 일어났다. 이 아기를 살린 농부는 땅에 고사리 같은 손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땅을 파헤쳤다고 말했다. 현지 경찰은 아기의 외할아버지인 압둘 라만을 범인으로 체포했다. 라만은 아이를 산 채로 묻어 죽이려 했다고 자백했다.그는 “딸 넷을 아직 결혼시키지 못했다.”면서 “하나뿐인 손녀라도 다섯번째는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말했다고 현지 경찰은 전했다. 아이의 엄마인 라만의 딸이 아기를 버릴 것에 동의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몸무게가 불과 1.7㎏인 이 아기는 아직 이름도 없으며 인근 병원에서 지금 치료를 받고 있다. 인도의 시골지역에서는 남아선호사상과 지참금 때문에 여자 아기와 어린이를 죽이는 일이 아직도 벌어진다. 인도정부는 지난 20년 동안에 1000만명가량의 여자아이들이 태내에서 혹은 태어나자마자 살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06일 TV 하이라이트]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지연은 자신 말고는 다른데 한눈 팔 줄 모르는 태우의 듬직함에 감동해 결혼한다. 그런데 그 해바라기 사랑은 지나친 구속으로 바뀌고, 같은 회사에 다니면서도 불시에 찾아와 감시하는 태우의 행동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도가 지나친 태우의 관심이 사랑이 아닌 심각한 의처증 증세임을 깨닫게 되는데….   ●라이프n조이(YTN 오후 8시35분) 수려한 풍광의 무등산과 유서 깊은 남도문화의 발자취를 찾아간다. 따뜻한 정과 푸근한 인심이 넘치는 광주광역시. 전망 좋은 정자에 앉아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수려한 산수를 화폭과 시 한수에 담아 마음의 휴식을 찾아본다. 맛과 인심 속에, 자연과 사람의 넉넉함을 안고 오는 남도여행 광주로 떠나본다.   ●다큐 여자(EBS 오후 9시20분) 휴일, 관광버스를 타고 대부도로 향하고 바람도 쐬며 카메라로 풍경사진도 찍어본다. 나이 탓인지 깜빡깜빡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삼각대를 잊고 온 윤아병 할머니가 소리친다.“인간 삼각대!” 잠시 뒤 윤할머니 앞에 삼각대를 자청하고 엎드린 박상묵할아버지. 그렇게 그들 곁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신동엽의 있다! 없다?(SBS 오후 6시50분) 모두의 눈을 의심케 만드는 동영상 하나.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오토바이를 능숙하게 운전하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운전하는 네 살 아기가 있는지 없는지 살펴본다. 또 팔뚝으로 사과를 산산조각 낼 수 있는지 없는지,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교하는 학생이 있는지 없는지도 살펴본다.   ●나쁜여자 착한여자(MBC 오후 7시45분) 세영은 영아원을 차리려고 모델로 삼을 만한 곳을 둘러본다. 경선은 사랑이 평생 뜨겁지는 않다며 지우와 태욱의 결혼은 허락할 수 없다고 한다. 건우는 우람과 자신의 머리카락이 든 봉투를 상진에게 건네고, 몰래 검사를 해달라며 부탁한다. 태현은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자며 서경에게 짐을 꾸리라고 한다.   ●이영돈PD의 소비자 고발(KBS1 오후 10시) 최근 일정 연령층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삼은 이른바 떴다방이라는 중소기업 홍보관이 번지고 있다. 그들은 흔한 보통 물건을 ‘명품’이라 소개하며 몇 배씩 폭리를 취하고 있다. 떴다방, 그 요지경 현장의 실체를 파헤친다. 고장이 빈번한 PDP TV의 들쑥날쑥한 애프터서비스의 현장도 찾아가 본다.
  • [주말탐방] 아쿠아리움 24시

    [주말탐방] 아쿠아리움 24시

    ‘바다 속을 유유히 거닐고 돌고래와 장난을 치며 펭귄과 농담을 나눈다.’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 보았을 법한 일이다. 이 같은 상상을 현실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63씨월드의 아쿠아리스트 박선경, 남정훈, 이기원씨가 바로 그들이다. 바다표범과 쇼를 하고 포유류·어류 전문가로 수족관의 생물들을 돌보는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환호하는 관람객들을 보는 것이 더없이 보람차다며 물빛 미소를 짓는 이들. 한여름을 맞아 더욱 활기를 띠고 있는 그들의 도심 속 수중 생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강아연 정서린기자·사진 도준석기자 rin@seoul.co.kr “‘우리 딸은 인어야.´라며 부모님이 만날 주위 분들에게 자랑하세요. 창피해서 이제 그만 좀 하시라고 하지요.” 또렷한 눈매와 콧날을 가진 다이버 박선경(24·여)씨는 서울 63빌딩 씨월드 ‘인어´다. 박씨는 3년 전 관람객으로 씨월드를 찾았다가 수조 속 다이버의 몸놀림에 반해 아쿠아리스트가 됐다.“실기 시험이 유영이었는데 감기에 배탈까지 겹쳐 어떻게 봤는지도 모를 정도였어요. 수조에서 나와서야 내가 이렇게 큰 물고기들 속에서 헤엄쳤나 싶어 깜짝 놀랐죠.” ●4명이 번갈아 들어가 30분마다 쇼 박씨의 하루 일과는 오전 10시에 시작한다. 바다표범 쇼는 하루에 네 번. 대회유 수조 속에서 물고기들과 헤엄치며 먹이를 주는 인어공주 쇼는 하루에 여덟 번 있다. 저녁 6시30분까지 30분 단위로 쇼는 계속된다. 네 명의 미녀 다이버가 번갈아가며 수조 속에 뛰어든다. 이제는 3년차. 처음에 박씨를 만만히 보며 말썽을 부리던 바다표범들도 이제는 그녀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알아듣는다.“얘들도 사람을 알아봐요. 저희가 들어갈 때랑 5개월밖에 안된 막내가 들어갈 때 태도가 달라요. 막내가 들어가면 먹이만 먹어대고 꾀를 피우곤 하죠.” 박씨가 가장 정이 가는 ‘생물´은 6살난 암컷 바다표범 이쁜이다.55㎏의 듬직한 이쁜이는 말 잘 듣는 큰언니 같은 존재.“제일 미운 애는 희동이에요. 쇼 중간에 다른 바다표범들 붙잡아 두려고 주는 먹이를 물고 도망가고 말도 제일 안 들어요.” 물빛 고운 수조 속에서 형형색색의 물고기에 둘러싸인 다이버의 세계가 멋진 것만은 아니다. 박씨는 작년 200t짜리 대회유 수조 속을 유영하다 바다거북에게 머리를 덥썩 물렸다.“거북이가 물기 전에 피했어야 했는데 그때는 거북이가 언제 제 옆에 온지도 몰랐어요. 다행히 거북이 입이 제 이마에서 미끄러져 머리카락만 물리고 끝났죠. 관람객에게 인사를 하다 거북이와 머리를 정통으로 부딪힌 적도 있어요.” 물안경과 마스크가 다 벗겨질 정도로 충격이 컸다. 당시 박씨는 어찌나 아프던지‘내가 이러다 죽는구나.´하면서도 창피해서 애써 태연한 척했다고 한다. 외려 밖에 있던 손님들이 놀라 도우미에게 ‘저 아가씨 정말 괜찮냐.´며 걱정해줬단다. ●물고기 지느러미만 봐도 종류 알아 하루에 많으면 7∼8차례를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니 피부도 말썽이고 감기가 걸려도 잘 낫지 않는다. 옷에 밴 비린내와 공기통 때문에 약해진 기관지도 반갑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제 박씨는 물고기 점의 위치나 지느러미 모양만 봐도 다 구분할 정도로 물길 속 눈이 텄다. 지난해 밸런타인 데이는 박씨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박씨가 한 커플에게 전해준 행복 때문이다. 씨월드에서는 매년 프러포즈 이벤트를 마련한다. 다이버가 수조 속에 들어가‘xx야, 사랑해. 영원히 행복하게 살자.’는 플래카드를 펼쳐주면 남자가 여자에게 꽃다발과 선물을 건네며 사랑을 고백하는 행사다. “수조 안에서는 밖이 환히 다 보이거든요. 여자 분이 감동해 행복해하는 걸 보니 제가 다 눈물이 나는 거 있죠.” 가끔 손가락으로 욕을 하거나 혀를 내밀며 놀리는 아이들도 있어 속이 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이야, 로봇이야?”하며 신기해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나 활짝 웃으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다이버가 된 것이 스스로 대견하다는 그녀. 다이버들은 수조 안에서 빛나고 수조 밖에서 동동거린다. 수조 밖으로 훌쩍 뛰어올라 ‘다이버 누나’들을 굽어보던 바다표범 희동이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둥그런 눈만 깜빡였다. ■ “펭귄도 사람들 처럼 제각각” 씨월드 아쿠아리스트 남정훈(36)씨는 주로 펭귄·물개·수달 등 포유류와 파충류를 돌본다. 출근하자마자 이 아이들이 간밤에 잘 잤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상태부터 살피는 것이 일과다. 쇼도 한다. 하루에 물개쇼는 세 번, 펭귄쇼는 한 번 한다. 축산학과를 졸업해 이 일을 시작한 지도 1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동물들은 알다가도 모를 때가 많다고 말한다.“펭귄이나 물개도 사람처럼 제각기 성격, 생김새, 습관이 다 달라요. 친하게 지내다가도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라치면 이 녀석들과 말이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죠.” 한번은 물개쇼 도중 번식기인 것을 깜빡하고 물개에게 키스를 시도하다 입을 크게 물린 적도 있다.“2002년 3월이었죠. 번식기라 신경이 한창 예민할 때인데 미리 파악을 못하고 입맞춤을 하려 했으니, 제가 미안했죠.” 미소짓는 그의 입가엔 아직도 당시의 상처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 “동물도 쉬고 싶을때 있어요” 어류 담당 아쿠아리스트 이기원(40)씨는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해양생물학과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사육·영양관리·질병관리에서부터 수족관의 수질관리·수조관리까지 어류와 관련된 일을 죄다 담당하고 있다. “생물을 다루는 게 아무래도 가장 어렵죠. 상태가 안 좋을 때 원인을 모를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그래도 그는 조그만 특이점 하나 놓치지 않는 전문가다. 물고기의 눈 색깔이 평소와 다르거나 몸을 비벼대는 경우는 기생충이 붙은 경우다. 물 위에 떠 있으면 용존산소가 부족한 것이고 먹이를 못먹고 무기력해지면 세균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태를 일일이 살펴 약욕을 시키는 등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이씨는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역시 어렵게 구해 전시한 생물을 보고 관람객들이 신기해하거나 즐거워 할 때”라며 “하지만 움직이지 않거나 자고 있는 동물을 보고 화를 내는 분들을 보면 속이 상한다.”고 했다.“너무 사람의 입장에서만 보지 말고,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마지막 당부에는 동물에 대한 사랑이 곡진하게 담겨 있었다. ■ 올 여름 피서 아쿠아리움에서 “상어들이 오싹하게 해준대요” ●다채로운 생물의 천국 ‘63씨월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씨월드는 열대지방·밀림지대·극지방의 바다와 강에 사는 해양생물 400여종 2만여 마리가 특수 수조에서 살고 있는 실내 수중생물 종합 전시장이다. 지하 1∼3층까지 총 1078평에 모두 103개의 수조가 있고, 그 중 여성 다이버가 인어공주쇼를 펼치는 대회유수조는 높이 2m10cm, 둘레 42m, 저수용량 200t 규모를 자랑한다. 300m에 이르는 전시장에는 남극의 킹펭귄, 최고전압 900볼트를 방출하는 전기뱀장어, 코끼리도 잡아먹는다는 식인어 피라니아와 3m의 키다리게, 화려한 산호초 어류 등이 관람객을 맞는다. 파충류관에서는 카멜레온, 턱수염도마뱀, 그물무늬왕뱀 등도 볼 수 있다. 매일 다양한 쇼가 펼쳐지는데 농구·그네타기 등 묘기를 연출하는 바다표범쇼, 링받기·숫자 맞히기 등의 물개쇼, 여성 다이버가 물고기들과 수조 안을 유영하는 인어공주쇼 등 공연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또한 수조 내의 물고기들을 직접 만져보며 관찰할 수 있는 터치풀 수조도 설치돼 있다. ●도심 속 바다 ‘코엑스 아쿠아리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에 위치한 코엑스 아쿠아리움은 650여종 4만 마리의 수중 생물이 전시된 수중 테마파크다. 총면적 1만 4350㎡, 시설면적 8600㎡에 전시수조가 90개, 사육수조가 140개로 규모 면에서도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고산지대부터 해저 깊은 곳까지 다양한 수중세계를 재현하고 있는데,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70여 마리의 대형상어를 비롯해 수천 마리의 해수어가 함께 어우러져 사는 오션탱크다. 수족관 전체 2500t의 물 가운데 2000t을 이 수조가 차지한다. 가로 35m, 세로 20m, 수심 4m의 크기로 마치 바다 그 자체를 연상케 하는 경이로운 곳이다. 이 속에 설치된 총 연장 72m의 ‘해저터널’을 지나다보면 마치 바다 속을 걷는 듯한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인어공주가 숨쉬는 곳 ‘부산아쿠아리움’ 아쿠아리움 하면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의 ‘부산아쿠아리움’을 빼놓을 수 없다. 테마별로 특색을 살린 40개의 수족관과 80m 아크릴 터널,300만ℓ의 메인 수족관,250여종 3만5000여 마리의 심해어류 등을 구경하며 수중생태계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건강 비결은 4kg 쇠구두 덕분”…中 노인 눈길

    “건강의 비결은 바로 쇠구두 덕분입니다.” 최근 중국에서 4kg에 달하는 쇠구두를 신고 심신을 단련하는 할아버지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헤이룽장성(黒龍江省) 출신의 78세 할아버지 가오춘성(高春生). 고희의 나이에도 건장한 청년못지 않은 힘을 자랑해 마을에서는 유명인사다. 가오 할아버지는 자신이 손수 만들어낸 4kg의 쇠구두를 신고 매일 공원 주변을 산책한다. 지난 1988년 정년퇴직한 이후로 점점 몸이 쇠약해지자 이같은 독특한 운동 방법을 고안하게 된것. 가오 할아버지는 “매일 머리가 무겁고 발이 떨리는 등 초조했다.”며 “굽이 높은 구두를 만들어 운동하면 어떨까해서 이 쇠구두를 만들게 되었다.”고 자랑했다. 또 “12살부터 구두를 만들어와서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밝힌 뒤 “지난해 여름 발에 딱 들어맞는 4kg의 쇠구두를 만들 수 있었다.”고 밝혔다. 쇠구두를 신고 다니면서 가오 할아버지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가오 할아버지는 “쇠구두를 신고 산책을 하면서부터 건망증이 없어진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38년째 복무중이라니…”

    “친자식처럼 키운 조카가 38년째 군복무 중이라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김관수(75·경기 안양시) 할아버지는 3일 기자를 직접 찾아와 기막힌 사연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김 할아버지는 형이 ‘6·25 전쟁’을 겪으면서 실종되고 형수마저 재혼하자, 조카 용기씨를 맡아 키웠다. 이후 용기씨는 21세 되던 1969년 3월 육군보병 모사단에 입대했다. 김 할아버지는 같은 해 10월 부대로 면회를 갔지만 뚜렷한 이유없이 면회요청이 거절됐다. 김 할아버지는 “부대측에서는 면회 거절 이유를 얼버무린 채 돌아가라고만 했다.”면서 “이후 조카와의 연락은 끊겼으며,38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이어 “그동안 소속 부대와 시민·인권단체 등을 수없이 찾아갔지만,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한숨을 지었다. 이에 따라 김옹은 최근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조카의 생사를 확인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고충위는 육군수사단에 군무이탈자 명단 등을 의뢰했으나, 용기씨와 관련된 기록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또 용기씨는 국군기무사령부·국군정보사령부·행자부·경찰청 등 관련기관의 어떤 자료에도 전역·탈영·실종·사망 등 행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용기씨의 병적기록표에는 1969년 3월 입대한 후 같은 해 11월까지 복무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12월 이후에는 복무기록이 없으며, 다만 ‘현재원’으로 적혀 있다. 즉 용기씨는 서류상으로는 38년 동안 군복무 중인 셈이다. 육군본부는 용기씨의 행적에 대해서는 “북파공작 등 특수임무 수행 중 숨진 뒤 행정착오로 사망처리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장세훈·이세영기자 shjang@seoul.co.kr
  • UCC 만드는 70대 할머니

    EBS ‘다큐 여자’는 ‘할머니들의 거침없는 도전’ 1부를 4일 오후 9시20분 방송한다. 최고령 변영희(84) 할머니를 비롯해 평균 70세의 할머니들은 “이제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고 외치며 카메라 촬영, 포토숍, 그리고 동영상편집까지도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할머니들의 손놀림이 비록 빠르고 능숙하진 않지만, 배움의 열정만큼은 젊은 사람 못지않다. 이들은 지금 안산의 독립운동가 염석주 선생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경로당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심심풀이 화투와 TV시청으로 시간만 때우던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이에 배움을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 英, 성탄절 선물 1등은 ‘트랜스포머’ 로봇

    英, 성탄절 선물 1등은 ‘트랜스포머’ 로봇

    ”산타할아버지, 선물로 트랜스포머 로봇 주세요.” 영화 ‘트랜스포머’의 흥행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는 가운데 최근 영국에서는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트랜스포머 로봇을 가장 받고 싶다는 재미있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영국의 가장 큰 장난감소매상으로 알려진 ‘울워스’(Woolworths)는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 인기순위를 발표했다. 영광의 1위는 트랜스포머의 관련 상품인 ‘트랜스포머 토이 암 블래스터’(Transformers Toy Arm Blaster)가 뽑혔다. 영화에서 ‘오토봇’들의 리더로 등장하는 ‘옵티머스프라임’의 팔모형으로 아이들이 손에 장착할 수 있다. 2등은 2005년 BBC에서 방영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닥터후’ SF시리즈의 ‘보이스체인저헬멧’이 꼽혔다. 이외도 사람의 말을 흉내내는 전자 앵무새 ‘퍼 리얼 패롯’(The Fur-Real Parrot)장난감과 퍼즐 게임과 비슷한 ‘이터너티II’ (EternityII)보드게임 등이 10위안에 들었다. 울워스의 한 관계자는 “1위로 트랜스포머 로봇이 뽑힌것은 영화의 대중적인 인기가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디스이즈런던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