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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대는 독특한 존재… 성장은 전쟁”

    “성장소설의 주인공인 10대 청소년들은 아이도, 어른도 아닌 독특한 존재라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베스트셀러 성장소설 ‘리버보이’의 작가인 팀 보울러(55)가 세 번째 성장소설 ‘스쿼시’(유영 옮김, 다산북스 펴냄)의 국내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25일 기자들과 만났다. ‘리버보이’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사랑과 믿음 등의 의미를 깨우쳐 나가는 15세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지난해 11월 출간 이후 30만부 이상 판매됐다. 보울러는 이 작품으로 1997년 ‘해리포터’를 제치고 영국의 권위있는 청소년문학상인 카네기상을 받았다. 이번에 출간한 ‘스쿼시’ 역시 성장소설로 스쿼시와 관련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보울러는 “‘성장’은 일종의 ‘전쟁’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성장소설은 10대, 특히 지적이나 감정적, 심리적, 신체적, 성적으로 인생의 그 어느 순간보다도 큰 변화가 일어나는 14∼17세 청소년들이 겪는 전쟁터 같은 환경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50대 중반의 나이에 10대 이야기를 쓰는 것과 관련,“지금 이 나이에 10대 시절을 회상하면 바로 어제처럼 느껴진다.”면서 “10대 때 겪었던 일들에 대한 감성을 연결할 수만 있다면 10대 이야기를 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새싹 예술혼 키우기’ 아이디어 봇물

    ‘새싹 예술혼 키우기’ 아이디어 봇물

    “처음부터 욕심내지 말자. 반드시 원하는 어린이를 중심으로 시작하되, 무관심하던 다른 어린이들이 점차 눈길을 돌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배우는 것으로 끝나면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 공연 등 발표기회를 자주 주어 성취감을 높이고 지역 행사에도 참여시켜 지역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자부심을 갖게 해야 한다.” 초등학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 교육의 새로운 실험이 시작됐다. 문화관광체육부가 전국 10곳의 초등학교를 선정하여 4년동안 해마다 1억원씩 집중 지원하는 ‘예술꽃 씨앗학교’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오는 2학기 본격 추진에 앞서 지난 14일 자문회의와 18∼19일 워크숍에 참여한 문화예술 전문가와 교육 관계자들은 어느 때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면서도 “이제 지원이 부족해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변명은 할 수 없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그만큼 부담도 크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 함께하는 맞춤형 커리큘럼 고심 학교별로 구성된 전담 컨설팅팀은 7∼8월 두 달동안 지역 사회의 전통과 특색을 바탕으로 전교생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맞춤형 커리큘럼을 만드는 한편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지역 사회 문화센터로 기능하게 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심하고 있다.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던 예술교육과는 틀을 달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자문위원인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연출한 박종원(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감독은 “영화 교육이란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의사표현을 위한 하나의 도구라는 점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재미만을 위한 영상 제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어내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만석 경북도립국악단 상임지휘자는 “국악을 가르치려는 교사들은 80%가 사물놀이나 난타를 원하지만 아이들은 이제 식상해 한다.”면서 “국악에 연극적 요소를 가미한 창극이나 비보이가 참여하는 퓨전국악, 궁중의상으로 격식을 갖춘 궁중악 등 국악을 흥미롭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새로운 시각’을 요구했다. ●한국판 ‘엘시스테마´ 가능할지 주목 ‘예술꽃 씨앗학교’가 베네수엘라의 ‘엘시스테마’처럼 의미있는 사회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엘시스테마’는 불우청소년들에게 관현악을 가르쳐 마약과 범죄를 줄이고 세계적인 음악가를 다수 배출해 내고 있는 방과후 활동이다. 다만 오케스트라에 국한된 ‘엘시스테마´와 달리 ‘예술꽃 씨앗학교´는 학교 여건에 따라 서양 관현악, 국악 관현악, 영화를 선택하거나 음악, 미술, 미술, 무용 가운데 몇가지를 동시에 교육 과정에 넣을 수도 있다.‘씨앗학교’로 선정된 ▲남해 삼동(음악, 미술, 발레, 뮤지컬) ▲울산 반천(서양 관현악) ▲광주 지산(국악 관현악) ▲여수 북(〃) ▲속초 대포(〃) ▲순천 승주(서양 및 국악 관현악) ▲포항 송라(〃) ▲경북 봉화(영화) ▲제주 남원(〃) ▲부산 금성(통합) 초등학교는 대부분 문화인프라가 부족한 도시 주변이나 농어촌 지역에 있다. 다문화가정 자녀가 갈수록 늘고 부모 한쪽이나, 할머니·할아버지와 사는 어린이도 적지 않다. ●남해 삼동 등 10개 초등학교 선정 한편으로 ‘예술꽃 씨앗학교’ 프로젝트는 5756개에 이르는 전국의 초등학교 모두를 이번에 뽑힌 학교와 똑같이 획기적으로 지원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 과제로 남는다. 안선국 문화부 문화예술교육과장은 “이 프로젝트는 우수 모델을 키워냄으로써 자발적인 참여를 확산시켜 나간다는 것이 목표”라면서 “지방자치단체나 기업, 학교후원회가 추가 지정을 원하는 학교가 있다면 우리는 컨설팅과 전문강사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면 예산을 절반씩 부담하는 매칭펀드 방식 등으로 공동추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깔깔깔]

    ●오빠, 아저씨, 할아버지 구별하기/ci0009 1. 휴대전화를 목에 걸면 오빠, 허리에 차면 아저씨, 없으면 할아버지 2. 노래방책 뒤에서 찾으면 오빠, 앞에서 찾으면 아저씨, 찾아달라 하면 할아버지 3. 배낭여행 가면 오빠, 묻지마 관광 가면 아저씨, 효도관광 가면 할아버지 4. 덥다고 윗단추 풀면 오빠, 바지 걷으면 아저씨, 내복 벗으면 할아버지 5. 식당에서 물수건으로 손 닦으면 오빠, 얼굴 닦으면 아저씨, 코 풀면 할아버지/ci0000●말을 만드는 사람 딸:“엄마, 나는 말을 만드는 사람을 봤어요.” 엄마:“얘야, 그게 정말이니?” 딸:“그렇다니까요. 내가 그 사람을 봤을 때는 말을 거의 다 만들어가는 중이었어요. 말의 발에 못을 박고 있었거든요.”
  • 가난이 서러워 40리를 걸어 다니며

    경북도의 올해 저축왕으로 65세의 조(曺)병건 할아버지(칠곡군)가 뽑혀 화제. 25일 상오 대구방송국공개「홀」에서 구자춘(具滋春) 경북지사의 표창을 받은 구할아버지의 저축액은 1백 94만원.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난 구할아버지는 대구에서 손국수 장사를 하다 5년전 칠곡군 동명면 구덕동 고향에 돌아가 황무지를 개간, 8백31평의 포도밭을 일구고 밭두렁엔 호박·깨 등을 심는 등 한시도 놀지않고부지런히 일했다. 거둬들인 포도와 호박 들깨를 왕복90원의 차비를 아끼기 위해 지게에 지고 40리길을 걸어 대구에서 팔고 프때마다 꼭 5천원씩 저축했다는 것. [선데이서울 71년 10월 10일호 제4권 40호 통권 제 157호]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독도 명예군수 25년 가수 정광태 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독도 명예군수 25년 가수 정광태 씨

    독도는 ‘돌섬’이다. 전라도에서는 ‘돌’을 ‘독’이라고도 한다. 원래 울릉도와 독도에는 경상도보다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그래서 ‘돌섬’의 의미인 ‘독도’라 불렀다. 하여, 이곳에는 풀이나 자랄 수 있을 뿐이지, 대나무 같은 것은 전혀 없다. 그런데 왜 일본 사람들은 독도를 죽도(竹島)라고 자꾸 생떼를 부리는지 원…. 이참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홍순칠,1929년 울릉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한테 독도가 울릉도의 속도(屬島)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6·25 참전 직후 1953년 4월 45명의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했다. 그해 7월 독도 해상에 나타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PS9함을 발견하고 총격전을 벌이며 쫓아내는 등 독도에 근접하는 일본 함정과 항공기를 여러 차례 격퇴시켰다. 그것도 6·25 때 쓰다 버린 소총과 박격포 등으로 말이다. 뿐만 아니다. 일본의 야욕을 미리 짐작한 그는 독도의 동도(東島) 바위 벽에 ‘韓國領(한국령)’이라는 석 자를 크게 새겨 넣어 대한민국 영토임을 세계 만방에 알렸다. 그러던 1956년 12월, 무기와 독도수비대 임무를 국립 경찰에 인계하고 울릉도로 돌아가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1986년 작고했다. ●노래 인연으로 의용수비대장과 운명적 만남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인 1983년 7월25일.‘독도는 우리땅’을 불러 유명해진 가수 정광태(53)를 울릉도에 초청했다. 평소 이 노래를 자주 불렀던 그는 정씨를 무척 좋아했다. 둘은 ‘독도’라는 공통점으로 운명처럼 뜨겁게 만났다. “이런 훌륭한 노래를 불러줘서 너무 고맙소. 당신 같은 사람이 독도군수를 맡아야 해요.” 그러면서 홍순칠은 마지막 독도의용수비대장 자격으로 감사패와 함께 정씨를 명예군수로 임명했다. 이후 정씨는 25년째 무보수 군수로 장기 집권(?)하게 된다. 뗏목탐사와 수영종단 등 울릉도와 독도를 수십차례 다녀오면서 나름대로 명예군수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뗏목탐사·수영종단 등 수십차례 독도 방문 지난 14일 일본 정부가 중학교 사회과목 지침서인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명기를 감행했을 때에도 “대한민국에 대한 재침략이 시작된 것”이라고 분노하며 정세균 통합민주당 대표 등과 함께 경찰청 소속 헬기를 타고 독도를 방문했다.4일 뒤인 18일 오후에는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롯데 전에서 LG의 초청을 받아 시구자로 나섰고 5회말 종료 후 응원석에서 ‘독도는 우리땅’을 소리 높여 불렀다. 서울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정씨를 만났다. 그에게 ‘군수님’이라고 호칭하자 “무슨 말씀,1984년 독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 예포를 발사하는 등 대통령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기 때문에 군수가 아닌 대통령인 셈이다.”며 웃는다. 이어 “우리나라 대통령이 아직까지 독도에 한번도 간 적이 없다.”면서 “우리나라 영토인데 한번쯤 방문해서 주민이나 근무자들에게 격려하고 그러면 얼마나 모양이 좋겠느냐.”고 했다. 그는 또 8년 전쯤 금강산에 갔을 때 북한 안내원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여자 안내원이 “‘독도는 우리땅’을 부른 가수가 아니냐.”고 먼저 알아보자 옆에 있던 남자 안내원은 “그 노래 부른 지 얼마나 됐습네까. 노래만 불러서 독도를 찾갔시요.”라고 하더라는 것. 북한의 축구 국가대표선수 정대세도 최근 모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독도는 우리땅’을 자주 부른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기분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일본의 만행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예를 들어 부인이랑 함께 즐겁게 나들이를 하는데 일본사람이 대뜸 ‘내 아내’라고 주장하는 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일본의 전략에 말려들 수 있다며 ‘무대응’을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사기꾼들이 사기를 치려면 얼마나 노력하고 궁리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있다니요. 이번 일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재침략하려는 술수를 드러낸 첫 단계입니다.” ●역사 등 근거 정부차원 장기 대응책 마련을 ▶그러면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일본은 역사학자를 정부차원에서 지원하면서 지속적으로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논리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일본이 떠들면 반짝 언론을 통해서 요란을 떨다가 금방 사그라집니다.1954년 무렵 홍순칠 독도수비대장은 독도에 접근하는 일본 순시선을 총칼로 물리쳤고 당시 외무장관은 전투기로 공격하겠다고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일본은 광화문 한복판에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대통령이 독도에는 왜 못 갑니까. 앞으로는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에게 수학여행을 권장해 독도를 꼭 가슴에 두도록 해야 합니다.” ▶일본 비자를 요청했을 때 거부당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12년째 일본 입국비자 거부자로 살고 있습니다.1996년 일본 고위 관료의 망언으로 독도 영유권 논쟁이 촉발된 뒤 SBS와 함께 독도 관련 추석 특집프로그램을 제작키로 했지요. 한국인과 일본인의 독도에 관한 인식을 인터뷰 형식으로 엮는 프로그램의 리포터를 맡았는데 일본 대사관으로부터 비자 발급에 결격 사유가 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참다 못해 저는 대사관으로 찾아가 욕이란 욕을 다 퍼부으며 비자관련 서류를 돌려받아 그 자리에서 박박 찢어버렸지요.” ▶‘독도는 우리 땅’ 노래는 어떻게 해서 부르게 됐습니까. “그 노래는 1982년도에 발표가 됐지요. 당시에 ‘유머 1번지’라는 개그 프로에서 임하룡씨, 장두석씨, 김정식씨, 그리고 저, 이렇게 4명이 포졸복을 입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코믹하게 불렀어요.TV 방영 직후 레코드 제작자가 우리를 만나자고 했습니다. 우리 넷이 약속장소에 갔는데 제작자가 너무 늦게 나왔어요. 임하룡씨, 장두석씨, 김정식씨는 너무 바빠 먼저 자리를 떴지요. 나중에 제작자가 오더니 기다리던 저를 보고는 ‘혼자라도 취입하자.’고 했어요. 얼마후 ‘젊음의 행진’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담당 PD의 주문으로 큰칼 옆에 차고 이순신장군 복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지요.” ●5공화국 땐 ‘독도는 우리땅´ 금지곡 아픔도 ▶방송금지된 적도 있었지요. “5공화국 때였습니다. 왜 금지시켰냐고 따질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지요. 당시 실세였던 허문도 문공부 차관이 하루는 저를 부르더군요. 녹차 한 잔을 주면서 자기는 독도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은데 애로사항이 뭐냐고 하더라고요. 노래가 금지돼 방송에서 안 틀어준다고 했지요. 다음날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렇게 좋은 노래를 누가 금지를 시켰냐고 오히려 저한테 물어보더군요.” ▶독도는 언제 처음 갔나요. “1984년에 해양경찰청에서 초청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접안 시설이 없어서 1987년 돌아가신 독도 최초의 주민 최종덕 할아버지가 마중나온 작은 배에 뛰어내려서 독도에 들어갈 수 있었죠. 최 할아버지의 아들, 딸, 그리고 어부들이 7∼8명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너무 반가워하시면서 미역 등 해산물 선물을 많이 주셨지요. 또 독도 경비대에도 갔는데 예포를 발사하며 크게 환영했습니다.” 그는 현재 뮤직라이프엔터테인먼트 대표로 있으면서 가끔씩 방송출연도 한다. 요즘에는 독도 관련내용이 많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고등학교 때 서울 YMCA에서 열린 ‘만우절 거짓말 대회’에 출전,1등을 차지하는 등의 경력을 쌓으며 개그맨으로 출발했다. 그가 1990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 것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라디오방송국을 경영하는 친구의 끈질긴 권유 때문이었으며 6년 후 귀국한 뒤 본격적인 독도사랑에 나섰다. 슬하에 딸과 아들을 두었으며 ‘기러기 아빠’로 경기도 탄현에서 혼자 살고 있다. 이를 두고 개그맨 전유성씨는 “너는 항상 그 자리에서 독도처럼 사는구나.”라고 표현한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5년 서울 출생. 본적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20번지 ▲74년 서라벌고 졸업.KBS-TV ‘젊음의 행진’ 데뷔 ▲75년 TBC-TV ‘살짜기 웃어예’ 등 출연 ▲78년 수도경비사 병장 전역 ▲81년 명지대 무역학과 졸업 ▲83년 KBS 남자가수 신인상 수상(독도는 우리땅) ▲84년 독도 첫방문.KBS 가사대상 동상수상(도요새의 비밀) ▲85년 김치주제가 발표 ▲90년 미국이민. 샌프란시스코 한미라디오 ‘오후의 희망가요’ 5년 진행 ▲2000년 8월 독도수호대와 울릉도∼독도 뗏목탐사 ▲04년 8월 45명의 애국인사와 울릉도∼독도 수영종단 ▲07년 한국연예제작자협회 이사 ▲08년 현재 동협회 부회장, 독도명예군수. 독도홍보대사. ●주요 히트곡 독도는 우리땅, 도요새의 비밀, 힘내라 힘, 김치 주제가, 화랑관창, 의병대장 곽재우, 계백장군, 광개토대왕 등.
  • [깔깔깔]

    ●친구를 위해서 어느 술집에 거의 매일 들러서 항상 위스키 두잔을 주문해 마시고 가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어느날 바텐더가 물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왜 항상 위스키 두잔을 한꺼번에 주문하시지요?” “나에게는 오랜 술친구가 있었다네. 그 친구가 나에게 유언을 남겼지.‘자네가 술을 마실 때는 언제나 나를 위해 한잔 건배를 해주게.’라고 말일세. 그래서 친구 몫까지 항상 두잔을 마시는 거라네.” 그러다가 얼마 후 할아버지가 찾아와 한잔만 시켜 마시고는 일어서는 것이었다. 바텐더가 이상하게 생각해 물었다. “왜 이번에는 한잔만 드십니까?” “응, 나는 어제부터 술을 끊었어.”●거품 하면 생각나는 것 10대:보글보글, 콜라, 사이다 20대:맥주, 카푸치노, 면도 30대:설거지, 목욕 40대:옷값, 집값, 경제전반 50대:오염된 개천, 치료비, 약값 60대 이후:인생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104세 장수 웰빙] 김금예·이정순 할머니의 장수 비법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104세 장수 웰빙] 김금예·이정순 할머니의 장수 비법

    장수(長壽)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다. 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인간은 수천년 전부터 각종 장수법을 만들어 실천해 왔다. 그러나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장수법을 맹신했다가는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서울신문은 창간 104주년을 맞아 ‘104세 장수법’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장수인이 가장 많다는 강원도를 찾았다. ●김금예 할머니(104·강원도 평창군 최고령자) 강원도 원주시에서 차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평창군 봉평면 창동4리에서 평창군 최고령자인 김금예(104) 할머니를 만났다. 마을 노인정에는 김 할머니 외에도 80대 노인 2명과 90대 노인 2명 등 70대 이상 노인이 8명이나 앉아 있었다. 김 할머니는 기자와 마주하자마자 대뜸 창 밖에 보이는 40㎡ 크기의 게이트 볼 구장을 가리키며 “가끔씩 공도 굴리고, 신나면 춤도 추고 재미있게 살아.”라고 말했다. 여느 70∼80대 노인보다 활력이 넘치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김 할머니의 하루는 초등학생이 방학 일과표를 그린 듯 규칙적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매일 오전 4시30분∼5시 사이. 오후 11시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든다. 일과 중에는 놀랍게도 ‘운동’이 포함돼 있었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 오전 6시쯤 집밖으로 나가 자로 잰 듯 30m를 걷는다. 눈이 많이 쌓이는 겨울을 제외하면 하루도 빼먹지 않는 중요한 일과다. 오전 7∼8시 사이에 아침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12시30분이면 집에서 400m가량 떨어진 마을 노인정을 찾는다. 김 할머니는 “예전에는 한번에 갔는데, 요즘에는 힘들어서 한두번씩 쉬었다가 가곤 해. 그래도 운동이 되니 좋은 일이지.”라고 귀띔했다. 주변 사람과의 대화가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김 할머니는 매일 오후 4시까지 노인정에서 이웃 노인들과 대화를 나눈다.TV를 보거나 자녀 얘기를 하면서 편안하게 앉아 있지만, 등을 바닥에 붙이고 눕지는 않는다. 김 할머니는 “보건소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면 건강훈련도 곧잘 한다.”면서 “워낙 내가 놀기를 좋아하니까 춤도 추고, 몸도 흔들고 나이가 들어도 재미있게 할 일이 많다.”고 몸짓을 섞어가며 설명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다. 바로 술과 담배다. 기자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 할머니는 건강을 과시하려는 듯 단 차례도 쉬지 않았다. 숨이 조금 가쁜 듯 보였지만 지팡이를 짚지도, 허리를 구부리지도 않아 104세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건강한 것이 복(福)이라는 김 할머니는 “생강으로 만든 건강식품을 하루에 두번씩 먹기는 하는데 크게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면서 “병원에 가면 100만원도 더 든다는데 밥만 잘 먹어도 병원 안 가니 좋은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정순 할머니(104·강원도 화천군 최고령자) 춘천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인 평화의 댐 인근에 위치한 강원도 화천군 풍산2리. 군부대와 마주한 작은 집에서 만난 이정순(104세)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어 다소 몸이 불편해 보였지만 “밭일도 한다.”고 했다. 다리가 불편한 것은 2000년 약초를 캐다가 다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할머니는 다리를 다친 상황과 연도를 정확하게 기억했다. 이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자 구부정한 허리가 금세 펴졌다. 9년 전까지만 해도 약초를 캐 돈을 벌었다. 당시 나이가 95세. 하루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주변 산을 찾아다녔다. 이 할머니는 “아침 4시에 나가서 저녁 7∼8시에 돌아오는 것이 하루 일과였지. 산삼도 몇뿌리 캐봤어. 고생을 많이 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건강한 것 같아.”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 할머니도 여느 고령자와 마찬가지로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밤 12시면 잠이 들고, 한번도 깨지 않고 숙면을 취한다. 새벽 4∼5시면 일어나서 집앞 텃밭에서 할 일을 계획한다. 하루 일과에 변화가 있는 날은 일년 중 하루 이틀 정도에 불과하다. 장수인 가운데는 ‘장수 유전자를 타고 났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많다. 이 할머니가 전형적인 케이스. 이 할머니의 할아버지는 102세,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100세까지 살았다. 이 할머니의 딸 3명도 현재 나이가 각각 84,79,54세다. 이는 유전자뿐만 아니라 생활습관이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할머니의 가족들은 대부분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지켰다고 한다. 젊은 시절 몇몇 자식이 일찍 죽은 뒤로 담배를 하루 1∼2개비씩 피우긴 하지만, 즐기는 편은 아니다. 술은 거의 마시지 않는다. 몸에 좋은 건강식품을 많이 먹고 있는지 묻자 “그런 것 안 먹어도 건강한데 왜 먹어.”라고 오히려 되물었다. 이 할머니는 “열심히 움직여야 잘먹고 잘살 수 있다.”고 말했다.“요즘에는 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지만, 다리를 다치기 전인 80∼90세까지만 해도 전국 각지로 관광을 다니며 버스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등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는 것.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집 밖에 있는 변소도 혼자 잘 다닌다고 했다. 워낙 활동적인 성격 탓인지 고혈압, 당뇨와 같은 병은 경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력과 시력도 큰 문제가 없었다. 이 할머니에게 장수 비결을 묻자 “명을 길게 타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격이 무난하고 무엇이든 편안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면서 “또 고기보다 산나물을 좋아해서 명이 길어진 것 같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법원 “가출 부모보다 키운 조부모에 양육권”

    부모가 집을 나간 뒤 조부모 밑에서 안정적으로 자라온 아이라면 부모 이혼시 조부모를 양육자로 지정할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이 부부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양육자로 지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서울가정법원 가사8단독 이헌영 판사는 이모(24·여)씨가 집을 나간 남편(34)을 상대로 낸 이혼 소송에서 6살짜리 아들의 양육자로 할아버지(68)와 할머니(66)를 지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이에 재판부는 이씨의 이혼 청구를 일단 받아들여 이씨를 친권자로 정하면서도 양육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지정해 아이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에 따라 재판부는 이씨에게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월 30만원씩, 중학교에 입학해 성년이 될 때까지는 월 40만원씩을 시부모에게 양육비로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동대문구 ‘웃음 가득한 동네 만들기’

    동대문구 ‘웃음 가득한 동네 만들기’

    26개동 주민센터를 돌며 진행 중인 동대문구의 ‘웃음 가득한 동네 만들기 프로젝트’가 주민에게 미소를 심어주고 있다. 친절한 구를 만들기 위해 공무원에게 실시한 친절교육을 주민에게 확대해 행복바이러스를 온 동네에 퍼뜨리자는 취지인데 반응도 좋다. ●돌부처 배우자 내가 만든다 “남편과 아내에게 ‘사랑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낸 후 반응을 알아보는 겁니다. 내용과 상관없이 가장 먼저 답장이 온 분에겐 선물을 드립니다.” 지난 8일 오후 친절강의가 진행 중인 동대문구 답십리3동 주민센터. 강의 참가자가 모두 휴대전화를 꺼내면서 강당이 어수선해진다. 어색한지 연신 웃음을 참으며 문자를 보내는 주부부터 문자 대신 바로 전화를 거는 할아버지까지 다양하다. 쑥스럽다며 끝내 못 보내는 사람도 있다. 결국 참가자 60명 중 문자를 보낸 사람은 30여명뿐. 첫 번째 돌아온 답변은 ‘더위 먹었구나.’라는 문자. 이어 답장을 받은 주부 10여명도 ‘무슨 일 있어.’ ‘뭐 잘못한 것 있냐.’ 등 퉁명스런 답변이 대부분이다. 다소 엉뚱한 문자를 보내게 한 이유는 평소 부부가 서로를 표현하고 친절을 표하는 데 익숙했는가를 보기 위해서였다. 친절강사 김영희(35)씨는 “대답이 퉁명스럽다고 실망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만큼 가까운 사람에게 나 스스로 친절하지 못했고 또 표현도 안 했다는 방증”이라면서 “조금씩 바꿔 나가면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온다.”고 말했다. ●“마음보다 표현하는 것이 중요” 지난 5월부터 시작된 강좌에 참가한 연인원은 700여명. 이날까지 21개 동에서 강의를 진행했다.1시간 동안 진행되는 친절교육에는 구의원부터 통장, 부녀회원, 주민자치위원,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수강생까지 참여했다. 친절교육에선 늘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비법으로 3가지가 있다고 말한다.‘자신에 대한 애정’과 ‘상대에 대한 감사’, 그리고 ‘칭찬’이다. 또 이를 위해 버릇처럼 “나는 내가 정말 좋다.”“고맙습니다.”“당신이 최고예요.”라는 말을 반복하라고 조언한다. 강의에 참가한 주부 김순선(55)씨는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친절도 웃음도 나올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배운 시간”이라고 말했다. 구청관계자는 “결국 일상 속에 친절의 분위기가 녹아 있어야 동네도 사회도 변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일반인을 위한 친절교육을 진행했다.”면서 “2개월 동안 입소문이 나면서 친절 강의를 듣는 사람들도 늘었고 농협 등 다른 기업으로부터 강의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대문구는 지난 1999년 직원들 가운데 민원안내 도우미를 결성하는 등 구정 속의 친절을 강조해 7년 연속 행정서비스헌장 우수기관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홍사립 구청장은 “친절은 서로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면서 “교육을 통해 주민과 직원이 하나가 돼 친절하고 화합하는 구를 만들어 나가는 동시에 친절이 구 전체에 뿌리내렸으면 한다.”고 밝혔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털복숭이’ 일가족 4명 中서 화제

    최근 중국에 사는 ‘털보 일가족’이 매스컴에 소개돼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 광둥(廣東)성 허위안(河源)에 사는 원(文)씨 가족은 일명 ‘털보가족’으로 유명하다. 온 얼굴과 몸이 일반인보다 더 많은 털로 뒤덮여 있기 때문. 이 가족은 ‘선천성 다모증’이라는 희귀 병을 앓고 있으며 대대로 유전된 탓에 지금까지 다모증을 가진 가족만 9명에 달한다. 현재 가족 중에는 최고령자인 원씨 할아버지를 비롯해 아들·딸·그리고 쌍둥이 손자 중 한명까지 총 4명이 다모증을 앓고 있으며 그 중 가장 심한 사람은 3살 난 쌍둥이 손자. 이 아이는 얼굴 뿐 아니라 팔과 다리에도 하루가 다르게 많은 털이 자라나고 있어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검은색 털로 뒤덮여 있었다. 현재 털 길이는 약 4cm정도 된다.”며 “아이가 털 때문에 사람들의 무시를 받거나 손가락질을 받을 때면 매우 속상하다.”고 말했다. 특이한 것은 쌍둥이 손자 두 명 중 한 명만 다모증에 걸린 채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원씨의 아들은 “공부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면서 “(다모증 때문에)일자리를 구할 때도 매번 거절당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편 이들을 진찰한 선전(深圳)시 병원의 한 의사는 “일가족 전체가 유전적인 다모증을 앓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면서 “특히 3살 된 어린아이는 상태가 심각하지만 아직 너무 어려 치료가 불가능하다 15세 이후부터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천국이 있다면 이곳, 뉴 칼레도니아죠”

    “천국이 있다면 이곳, 뉴 칼레도니아죠”

    “피지, 타히티 등 남태평양의 섬들은 모두 가봤지만, 이곳처럼 아름다운 곳은 없었어요.” 천국을 좇아 뉴 칼레도니아를 찾은 사람이 있다. 누메아에서 청백투어란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우승천(47)씨가 주인공. 국적은 일본이지만, 절반은 한국인이다. “도쿄에서 살다가 스쿠버다이빙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어요. 바쁘게 살던 일본으로 돌아가기 싫어 눌러앉았는데, 벌써 24년이나 흘렀네요.” 천국을 찾아온 그의 과거는 그러나 지옥과 같은 고통스러운 나날로 점철돼 있었다. “일본군이었던 할아버지는 2차대전 와중에 중국에서 할머니와 결혼해 어머니를 낳으셨어요. 일본 패망 후 고국으로 돌아가는 배편에 오른 조부모께서는 일본에 돌아간다 해도 살아갈 길이 막막하자, 중간 기착지인 전남 목포에 무작정 내리셨어요. 그리고는 생면부지의 한국인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떠나셨지요. 언젠가 꼭 찾아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요.” 어른이 된 어머니는 한국인 선생과 결혼을 했고, 우 사장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일본 내 한국인학교로 발령난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일본으로 떠난다. 하지만 생활은 여전히 궁핍해 그만 홀로 다른 집안의 양자로 들어가야 하는 아픔을 겪는다. 그에게 천국을 찾았냐고 물었다. 그는 1960년대 일본 여류 소설가 모리무라 가쓰라(森村桂)의 작품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섬’의 내용을 빌려 완곡하게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어릴 적 아빠에게 들어온 남국의 한 섬에 대한 이야기가 소녀의 뇌리에서 떠날 줄을 몰랐죠.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 어른이 된 소녀는 우연히 광고간판에서 뉴 칼레도니아란 이름을 보고 혹시 아빠가 말한 천국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섬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소녀는 자신이 원하던 곳은 아니었지만, 아빠가 말한 천국이 이곳이었구나 생각하고 섬을 떠나죠. 전 이 섬을 떠나지 않을 거지만요.”
  • [女談餘談] 할머니의 결혼 기념일/유지혜 사회부 기자

    [女談餘談] 할머니의 결혼 기념일/유지혜 사회부 기자

    지난 5월 외국 출장중인 아버지가 이메일을 보냈다.‘집안일’이라며 부탁을 하나 하셨다. “29일이 아빠 결혼 기념일인데 내가 여기 있게 되니 지혜가 할 일이 있다. 그날 31송이의 백합을 엄마에게 아침에 배달시켜라. 그래야 오후에 수다 떨지.” 아버지의 ‘지령’은 매우 구체적이어서 어머니에게 보낼 문구도 특정해 보냈다. “현희야, 더 큰 사랑을 보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부모님의 로맨스라는 것 자체가 좀 어색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버지의 ‘집안일 지령’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혹시 할머니 결혼기념일을 기억하시나 여쭤봐라. 자식이 이렇게 무심하니, 더 늦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야지.” 갑자기 아버지는 왜 할머니의 결혼기념일이 궁금하셨던 걸까.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끌려가서 할머니는 거의 새색시 때부터 혼자였다. 난 “결혼기념일 안 챙긴 지가 벌써 50년도 넘었는데 그걸 기억하시겠어?”라고 심드렁한 답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할머니에게 역시 심드렁하게 여쭤봤다. “할머니, 결혼기념일 기억 못하지?” 그런데 왠걸, 할머니는 바로 “왜 기억을 못해, 음력 3월18일이야. 갑자기 그건 왜?”라고 말씀하셨다. 난 좀 놀랍기도 하고 멍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할머니의 추억을 폄하한 것 같아 죄송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동안 결혼기념일은 두 사람이 부부가 된 것을 축하해 주는 날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사라져서 부부라는 관계도 사라지면 더 이상 큰 의미는 없는 날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결혼기념일은 감사해야 하는 날이다. 아버지 말씀대로 더 늦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고, 내년 음력 3월18일에는 할머니께 꼭 말씀드려야겠다. 할아버지와 만나서 아버지를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전쟁의 암흑기에 어려운 시절을 여자 홀몸으로 굳세게 견뎌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태어나 펜을 잡고 감사하며 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이다. 유지혜 사회부 기자 wisepen@seoul.co.kr
  • [6일 TV 하이라이트]

    ●영상앨범 산(KBS1 오전 7시) 캐나다 앨버타주에 위치한 캘거리 서쪽에서 로키산맥에 둘러싸여 있는 ‘카나나스키스´.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은 넓은 초지와 산, 풍부한 물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아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한적하고 아늑한 카나나스키스로 김재원 아나운서 가족과 함께 떠나본다.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20분) 한판 ‘태양과의 전쟁´을 벌여야 하는 여름이다.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우리 피부와 눈을 보호하는 데 녹색 채소만큼 훌륭한 먹거리는 없다. 뿐만 아니라, 중년이라면 누구나 걱정하는 심혈관질환과 각종 암으로부터도 지켜준다. 녹색채소의 대표주자, 시금치와 브로콜리의 기적을 체험해 본다. ●대결!노래가 좋다(KBS2 오전 8시30분) 무더위를 한 방에 날려버릴 시원한 라이브 무대가 마련된다.‘개그계의 성시경´ 문천식,‘나몰라 패밀리´의 김재우, 라이브 실력이 환상적인 정수영, 연기와 노래 솜씨가 모두 압권인 임대호, 불륜전문 배우로 통하는 민지영…. 가수 뺨치는 연예계의 숨은 노래 실력자들이 총출동해 환상의 라이브 무대를 선사한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50분) 칭얼대는 아기를 잠재우는 자장가 한 곡의 평온함. 선수들과 청중을 하나로 묶어주었던 응원소리. 상대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공통된 소통법,‘소리´. 하지만, 이 소리가 때로는 죽음을 부르는 살생도구가 되기도 하는데…. 무시무시한 ‘소리´의 두 얼굴을 들여다본다. ●굿모닝 세상은 지금(SBS 오전 7시35분) 쇠고기 사태 등으로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이 더욱 커진 요즘.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는 ‘에코테리안´이 등장하고 있다. 영국의 에코테리안 도나카 매카티. 그의 집은 재활용품으로 만들어졌다. 샤워벽의 유리도 모두 길에서 주워온 것들. 자신이 고안한 풍력발전장치는 집에서 필요한 전력수요를 너끈히 감당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SBS 밤 12시20분) 12년 전, 불의의 사고로 척추신경에 큰 손상을 입은 은미는 사고 이후 하반신 마비로 걸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은미가 사고를 당하고 부모님은 이혼했고, 그 후 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아오고 있다. 지금은 은미의 건강뿐 아니라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건강도 좋지 않다. ●희망풍경(EBS 오전 6시) 수원의 서호공원. 매일 오전 9시쯤 허리에 끈이 묶인 채로 산책을 하는 두 남자가 나타난다. 혼자서는 한 걸음조차 떼기 힘들어 보이는 이기독(뇌병변·지적장애 1급)씨와 그런 그의 허리에 끈을 묶어 데리고 다니는 아버지 이온엽씨. 희망을 잃지 않고 장애를 뛰어넘으려는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 눈물겹다. ●인사이드월드(YTN 오후 5시30분)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산자락에 위치한 팡가니강은 물을 둘러싼 분쟁의 중심지다. 최근 몇 해 동안 계속된 가뭄으로 물에 목말라 있다. 또 수자원을 둘러싼 갈등도 심각해지고 있다. 물 부족과 그로 인한 갈등상황, 팡가니 강 유역의 평화대책 등을 살펴본다.
  • 70세 ‘세계 최고령 산모’ 쌍둥이 출산

    최근 인도의 한 70세 할머니가 고령의 나이에 쌍둥이를 출산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인도 뉴델리에 살고 있는 옴카리 판와르(Omkari Panwar)할머니는 올해 70세의 고령에도 최근 제왕절개를 통해 쌍둥이를 출산하는데 성공했다. 남·녀 쌍둥이는 각각 900g의 작은 몸으로 태어났지만 현재 매우 건강한 상태. 이미 두명의 딸과 다섯명의 손자가 있는 할머니가 70세의 나이에 출산을 결심한 이유는 대를 이을 ‘아들’이 필요했기 때문. 할머니는 비용이 많이 들고 어렵다는 체외 수정을 통해 임신에 성공했지만 현재 77세인 할머니의 남편은 이를 위해 소를 포함한 평생 모은 재산을 모두 팔아야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결국은 아들을 낳아 대를 이을 수 있게 됐다.”면서 “난 이제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하다.”며 기뻐했다. 할머니의 분만을 담당한 의사는 “처음 할머니를 봤을 때 임신했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다. 단지 사고를 당했거나 암에 걸렸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녀가 ‘임신했다’고 말했던 순간은 내 20년 의사 생활 중 가장 신기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과다 출혈을 예상해 대량의 혈액을 준비했지만 다행히 큰 무리는 없었다.”면서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놀라워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70세에 아이를 출산한 판와르 할머니는 이로서 ‘세계 최고령 산모’ 자리에 오르게 됐다.”면서 “이전 기록은 지난 2005년 66세의 나이로 딸을 출산한 루마니아의 한 할머니”라고 전했다. 한편 현지의 한 취재진이 “당신이 세계 최고령 산모 기록을 깼다.”는 소식을 들려주자 할머니는 “내가 최고령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며 “아직 아이를 보지 못했다. 아이를 보는 것이 현재의 가장 큰 소망”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밤샘 밥먹듯’ 강력반 형사의 일상

    ‘밤샘 밥먹듯’ 강력반 형사의 일상

    최강의 펀치, 누구나 10분이면 자백하게 만드는 협상력. 이쯤되면 누구나 떠올리게 되는 영화 속 인물이 있다. 바로 강력반 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강철중’이다. 그렇다면, 실제 강력반 형사들의 일상은 어떨까? 2일 오후 10시40분에 방송되는 EBS ‘극한 직업’에서는 범죄와 끈질긴 추격전을 벌이는 강력반 형사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세상이 모두 잠든 야심한 시각. 살인 사건 제보를 받은 서울 광진경찰서 강력반 형사들의 걸음이 갑자기 바빠진다. 현장에 도착하니 한 할아버지가 보험금을 노려 자신을 해치려는 아내를 죽였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집안 곳곳을 이 잡듯이 뒤져도 살해흔적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다. 결국 이 사건은 만취상태로 인사불성된 할아버지의 장난전화로 종결됐다. 인천광역수사대 강력반 형사들은 지난해 12월부터 보이스 피싱 범죄를 추적하고 있다. 국내외의 조직이 워낙 방대해 대포폰, 대포통장부터 일일이 추적해야 하는 만큼 수사과 형사들은 몇 달째 제대로 집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다행히 국내 모집책 한 명을 체포해 협조를 구하는 데 성공한 강력반. 하지만 용의자가 살고 있다는 건물을 찾아가 보니 용의자는 이미 증거인멸을 위해 통장을 찢어놓고, 컴퓨터 본체도 없애버린 뒤였다. 이튿날 김동수 형사는 대포폰과 대포통장의 이용처를 파악하기 위해 퀵서비스맨으로 변장했다. 용의자의 단골 퀵서비스맨이 공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김 형사. 하지만 경찰의 추적을 눈치챈 공범은 달아나고,6개월간에 걸친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강력 사건들 때문에 형사들은 한 달에 고작 이틀을 쉬는 ‘살인적’인 일정을 감당해낸다. 밤샘과 야근은 그들에겐 거의 일상이다. 설령 범인 검거가 끝났다 하더라도 긴장을 풀 수가 없다. 증거물을 정리하는 작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소명의식 하나로 긴 밤을 지새운다는 강력반 형사들. 세상의 그늘을 한뼘이라도 더 걷어낸다는 보람이 있기에 그들은 오늘도 위험천만한 사건 현장 속으로 몸을 날린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직지심경 대모’ 在佛 사학자 박병선박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직지심경 대모’ 在佛 사학자 박병선박사

    “박사님, 올해 여든하나이신데 아주 정정해 보이십니다.” “(잠시 창밖을 응시하더니)세월이 그렇게 흘렀네요.” 짧은 생머리, 나이만큼 백발이 묻어났지만 주름살은 별로 없었고, 눈썹과 입술 화장이 잘 어울려 보였다. “여전히 얼굴이 고우십니다. 젊었을 땐 참 예쁘고 미인이었겠습니다.” “어이구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어릴 때 친척들한테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잘생긴 언니와 오빠, 동생들과는 비교가 안됐지요. 미인이라뇨? 천만의 말씀입니다.” 약간 홍조 띤 얼굴로 변한다. “죄송한 질문이지만 결혼은 왜 안 하셨는지요?” 보통 같으면 증손자까지 봤을 법한 할머니에게 던진 질문 자체가 우스웠나 보다. “뭐 특별한 이유가 없어요. 한 가지 일을 끝내면 또 다른 일을 시작하고, 그것에 파고들다 보면 정신없이 시간 가고, 어디 (연애할) 틈이나 생겨야 말이지요. 호호.” 노(老) 박사의 웃음 짓는 모습은 해맑은 소녀의 그것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하시는 일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젠 나이도 그렇고 쉬셔도 되는데 젊은이들보다도 정열이 더 뜨겁습니다.” 잠시 한숨을 쉰다.53년 동안 도도히 흐르는 역사와 함께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한우물을 팠다. 또한 해야 할 관련 숙제 역시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인 듯하다. “더 늙기 전에, 총기가 사라지기 전에 선명하게, 뚜렷하게 규명해야 일들이 많이 있네요. 개인이 한다는 게 외롭고 어렵긴 하지만….”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는 노 박사의 말과 표정이 경외스럽도록 다가온다. 문득 노 박사를 모델로 한 역사 추리소설(외규장각도서의 비밀)이 생각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까.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한국학중앙연구원 게스트하우스.‘직지심경(直指心經·직지심체요절)’의 대모(代母) 박병선 박사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가 직지심경의 대모로 불리는 까닭은 1967년 파리에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을 발견해내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킨 1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최근 방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언론의 인터뷰가 쇄도했다. 그래서인지 박 박사는 직지심경이나 외규장각도서 얘기는 하도 많이 해서 가급적 피해달라고 먼저 주문한다. 재불(在佛) 역사·서지학자인 그가 잠시 방한한 이유는 1985년 국내에서 발간했던 ‘조선조(朝鮮朝)의 의궤(儀軌)’ 증보판을 내기 위해서다. 이번 증보판은 300쪽 중 100쪽가량을 프랑스어로 썼다는 점이 눈여볼 대목. 그는 평소 프랑스인들이 병인양요를 거의 모른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증보판 앞 부분에 병인양요에 대한 설명과 ‘왜 한국 사람들이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해 달라.’고 요구하는지 등을 프랑스어로 자세히 언급한다. 또한 의궤의 내용과 그것이 프랑스로 가게 된 사연, 당시 프랑스 해군의 일기와 공문서 등도 새롭게 첨부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의 출간을 염두에 두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이번 증보판에는 당시 프랑스 해군들의 행적을 어렵게 추적, 이른바 ‘작전루트’를 처음 공개할 예정이어서 중요한 역사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병인양요와 의궤 반환문제로 프랑스 국영 3TV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이때 방송사 간부한테 ‘프랑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대부분 모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더 이상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때마침 한국학중앙연구원측의 도움으로 이번에 작업을 하게 된 것. 증보판은 한달 후쯤이면 국내에 선보일 예정이다. ▶당시 프랑스 해군들의 흔적과 관련된 자료는 많이 있는지요. “프랑스가 1차 원정 왔을 때 일기를 보면 강화도의 문수산성과 적성산성 등을 왔다갔다는 기록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2차 원정때의 군함, 당시 그림과 자료, 관청의 위치도 등을 종합해볼 때 황해도 연안까지 갔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행적을 찾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최초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최대한 자세하게 그려볼 생각입니다. 현재 이 작업만 남아 있습니다.” 그는 방한에 앞서 당시 프랑스 로즈함대장의 후손을 만나 여러 번 설득 끝에 강화도 등에서 프랑스로 압수해간 ‘압수목록표’를 어렵게 얻을 수 있었다(이번 증보판 부록에 실린다). 그는 “로즈함대장의 후손은 할아버지를 영웅으로 알고 있으며 곧 ‘할아버지 전기’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프랑스인들은 병인양요나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해달라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지요. “도대체 그걸 왜 반환해야 하느냐고 묻는 프랑스인들이 많습니다. 이때마다 ‘만약 루이 14세의 왕실 행사를 자세히 기록한 유일한 문서본이 다른 나라에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되묻지요. 그럼 프랑스인들은 당연히 찾아와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프랑스에서 지내는 50여년 동안 한국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대부분 스크랩해 놓을 만큼 자료 수집에 많은 애착을 갖고 있다. 특히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관 등에서 3·1운동 당시 한국에 주재했던 프랑스 영사관이 본국에 보낸 많은 공문서를 찾아냈다. 또 일제때 일본과 중국에 주재했던 프랑스 공관이 본국에 보낸 공문서 중 한국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모은 자료 등을 합하면 무려 2000상자 1만 5000쪽 분량에 이른다. 이 귀중한 것들을 정리하고 책으로 펴내는 일이 그의 마지막 숙원사업. 파리에도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가 그만큼 많다고 강조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혼자서 어렵게 해왔습니다. “개인이 한다는 게 사실 엄두가 안 나지요. 국가에서는 (반응이)냉랭합니다. 아무튼 어렵게 자료들을 모았으니 그냥 놔둘 수도 없겠고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다가…. 지금이라도 국가에서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1919년 파리 강화회의 당시 독립을 호소했던 김규식 박사의 자취도 추적했다. 파리 시내 서쪽 쇼토 거리에서 이들이 머물던 곳을 찾아냈고 2006년에 겨우 건물 현판 정도만 걸 수 있었다. 기념관이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박 박사의 어릴 적 꿈은 유치원을 설립해 서구식 교육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대 사대에 진학했지만 나중에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방향을 틀었다. 대학 때는 손보기(사학자)·이두현(민속학자) 선생 등과 친하게 지냈다.6·25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유학을 택한 것은 평소 가톨릭 신자로 프랑스 출신 수녀들과 가깝게 지낸 덕분. 이후 소르본대학에서 종교사를 전공한 뒤 파리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던 중 1979년 의궤를 찾아낸 직후 ‘비밀을 누설했다.’는 질책과 함께 파리국립도서관을 그만두었다. 이후 여러 파란곡절을 겪었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고문서와 귀중한 자료들 속에 파묻혀 ‘여자의 일생’을 걷고 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8년 서울에서 5남매 중 셋째딸로 태어났다. 서울대 사대 사회생활학과(역사학과)를 졸업한 뒤 1955년 6·25 이후 민간 여성으로는 첫 프랑스 유학비자를 받고 떠났다. 소르본대학에서 종교사를 전공(석·박사)한 뒤 1967년 파리국립도서관에 근무할 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경’을 발견해 냈다. 이어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책의 역사 종합전람회’에 출품, 구텐베르크의 성경책보다 무려 73년이 앞선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1979년에는 조선 왕조의 의식에 관련된 세세한 기록문인 외규장각 도서 279권을 프랑스국립도서관 창고에서 발견, 한국에 알렸다. 이같은 공로로 대한민국훈장 동백장과 제7회 비추미여성대상특별상 등을 받았다. 특히 1919∼1920년 사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가 있던 청사를 찾아내기도 했다. 현재는 파리 근교에서 살면서 한국 관련 각종 고서연구와 프랑스에서 본 한국의 3·1운동 등에 관한 독립운동사를 정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인쇄사’(프랑스어·스페인어·영어·한국어)가 있고, ‘한국의 무속사’‘한국의 역사’ 등을 프랑스어로 펴냈다.
  • “62세 할머니의 바람을 잡아주오”

    “62세 할머니의 바람을 잡아주오”

    환갑 진갑 다 지난 할머니가 바람나자 40년을 함께 산 할아버지는 타이르고 애원하고 갖은 수단을 다 썼단다. 하지만 「소귀에 경읽기」더라는 것 - 참다못해 경찰에 고소장을 들고 왔는데…. 궁합도 잘맞던 원앙부부 슬하엔 아들넷이 주루룩 최덕겸(崔德兼)노인(가명·70·서울 영등포구 상도동)이 김덕남(金德男)노파(가명·62)와 『여보』사이가 된것은 만 39년전. 그러니까 최노인이 31세, 김노파가 23세때. 이보다 먼저 최노인은 18세때 자기보다 5세 아래인 정(鄭)모여인과 정식 결혼, 딸을 하나 얻었으나 아들을 낳지 못해 별거생활을 하고 있었던것. 김노파 역시 결혼은 일찍했으나 남편이 돈벌러간다고 일본으로 건너간뒤 소식이 끊어져 죽은것으로 단정해버리고 마땅한 자리가 나면 개가를 할 속셈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당시 최노인의 따분한 처지를 잘알고 있던 이웃집 노파가 어느날 최씨집에 들러 김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건네자 즉석에서 중매를 서줄것을 부탁받게 됐던 것. 며칠이 지나자 최씨와 김여인이 한자리에 앉게 되었고 한평생을 함께 할 약속이 쉽게 이뤄졌다. 그래서 김여인은 최씨집 안방에 들어앉게 되었다. 『그 사람이 젊을때부터 색을 좋아하기는 했읍니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던지 얼굴에 홍조까지 띠며 옛날얘기를 했다. 둘사이엔 용케 궁합이 맞았던지 바라던대로 사내아이만 넷을 얻었다. 지금은 다 자라 올해 32세된 큰아들은 서울에 살고 있고, 막내아들은 군에 복무중. 최노인은 원래 서울 토박이였으나 일제때 전남 장흥으로 피난갔다가 거기서 기반을 잡아 살게되었다. 영감님 중풍들자 찬바람 세든 40대 장년과 드디어 거기서 열심히 일한 보람으로 양복점과 양화점을 직접 경영하게 되었고, 새살림을 차린뒤에도 사업은 날로 번창해 생활은 넉넉했다고 한다. 또 나이도 비교적 젊은때라 그런대로 잠자리의 만족을 줄수 있었다는 것. 68년봄. 나이를 먹고보니 아들도 자라 가정도 가져야할 처지에 놓였고 자신도 고향으로 돌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로 가산을 정리해 서울 정릉으로 이사를 했다.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던 최노인에게 비극의 서장이 올려진것은 서울로 이사한 이듬해 여름. 어느날 비탈길을 걸어가다 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뒤 다친 상처가 점점 악화되어 결국 중풍이 되었고, 오른쪽 팔과 다리를 제대로 쓰지못하는 불구가 되면서 부터. 그날로부터 몸이 말을 듣지않게 되었다. 찰떡같은 부부사이가 차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내는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대로 부부간의 잠자리가 이루어 지지않게되니 있을법도 한 일이라고 이해를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날이 갈수록 바가지의 도는 더해 가기만했다. 생각다 못한 최노인은 『피차 늙은 몸이니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 아니겠소』하며 타이르고 분위기를 바꿔볼 생각으로 지난해 봄 공기도 맑고 조용한 상도동으로 이사를 했다는 것. 그러나 이것이 파탄의 결정적인 화근이 될줄이야. 집도 넓고 너무 적적한것 같아 아랫방에다 세를 주었다. 고물상을 한다는 김(金)모씨(42)가 들었다. 김씨는 15년전 결혼했다가 5년전 아내를 병으로 잃고 13세된 딸 하나와 사는 홀아비였다. 김씨가 최노인집에 들어온 뒤인 지난해 가을이었다. 하루는 최노인이 바람쐬러 밖에 나갔다가 밤11시쯤 들어왔더니 아내가 김씨방에서 황급히 옷자락을 여미며 나오더라는 것. 얼핏 보기에도 이상한 예감이 들었지만 『아들같은 사람에게 설마 그럴리가…』하는 생각으로 덮어두었다. 그런일이 있은 뒤 김노파는 거의 매일 저녁 김씨방으로 들어갔다. 어떤날은 아예 김씨방에서 자고 새벽에 돌아오기도했다. 어느날 아침 최노인은 피로한 안색을 한채 아침에야 방으로 돌아온 김노파에게 『어디에서 무엇하고 이제 돌아오는거냐?』고 다그쳐 물었다. 그러나 너무나 엉뚱한 대답-. “나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 찾아가는게 뭐가 나빠요” 『당신은 병든 몸이지만 김씨는 정력이 넘치는 사람이오. 나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 찾아가는 것이 잘못이오?』 최노인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최노인은 할 말조차 잃었다. 완전히 미쳐버렸구나 하는 생각이든 최노인은 그날부터 온갖 방법을 다 써가며 설득을 시키고 다시 마음을 돌릴것을 하소연했다는 것. 그러나 최씨의 간곡한 하소연도 쓸데 없는 말이었다. 김노파의 아랫방 출입은 날이갈수록 뜨거워져 가기만했다. 최노인은 마누라에게 만류를 해도 듣지 않자 비장한 각오를하고 타협점을 찾기로했다. 『초저녁엔 가지말고 새벽에 가서 일만 치르고 오던지 해달라』고 - 제의를 했다는 것. 김노파는 새벽에만 가기로 약속을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얼마가지않아 다시 초저녁부터 가고있다는 것이었다. 『막내며느리가 한집에 살았지요. 남편이 제대할때까지 우리들 뒷바라지 해주기로하고. 그렇지만 눈치를 챈 며느리마저 동네가 부끄럽다고 친정엘 가버렸읍니다』라며 최노인은 한숨을 짓는다. 『지금 생각하니 본처가 좋았읍니다. 말없고 얌전하고. 단지 그게 사내를 낳지못한것이 흠이었단 말입니다. 만약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처량하지는 않을텐데 말입니다. 아마 내가 벌을 받은 모양이지요』본처가 그리운 모양이다. <유창하(柳昌夏)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9월 19일호 제4권 37호 통권 제 154호]
  • [주말탐방] 장기봉사 채현숙·김명원 전직교사 부부

    [주말탐방] 장기봉사 채현숙·김명원 전직교사 부부

    “동료 교사들이 퇴직한 뒤 별 의미없이 사는 모습을 보고 자원봉사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내 채현숙(69)씨와 함께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4년 가까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명원(67)씨는 “보람이 크고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전직 부부 교사다. 꽃동네 노인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김씨는 수용자를 부를 때 “어이, 박○○씨”라며 이름 석자를 호명한다. 그러면 수용 노인들은 “어서 이리 오게”라 손짓을 하면서 반긴다. 두 다리가 기형이고, 곱사등이인 정하윤(78)할아버지는 “김씨와 친구처럼 지내는데, 잔심부름을 시켜도 머슴처럼 다 들어줘서 너무 고맙다.”며 웃었다. 김씨는 경남 거창에서 중·고교 교사생활을 하다가 2004년 8월 퇴직한 지 3개월 만에 이곳에 왔다. 그는 “동료 교사들이 퇴직한 뒤 수시로 모여 술을 먹거나 고스톱치는 모습을 보고 고민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할 일 없으면 학교 앞에서 안전지도나 하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아내 채씨는 1996년부터 꽃동네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거창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생활하고 있었지만 막내 아들(36)이 어릴 적 머리를 다쳐 자폐증과 정신박약증세를 보이자 교사생활을 접고 이곳에서 아들과 같은 처지의 수용자를 돌보고 있다. 남편도 퇴직하자, 부부는 집을 아예 꽃동네 근처로 옮겨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매달렸다. 김씨 부부는 오전 9시 꽃동네로 달려와 수용자들의 수발을 든다. 양치, 면도, 머리빗기 등을 돕고 손톱도 깎아준다. 로션도 발라주고 이불도 갠다. 수용시설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아내 채씨는 “할머니도 여자라 매니큐어를 발라주면 소녀처럼 기뻐한다.”고 했다. 남편 김씨는 “처음에는 출근하듯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8시간씩 꼬박 일하자 몸살이 나는 바람에 요즘은 2∼3일만 일한다.”면서 “꽃동네는 오웅진 신부의 것이 아니라 수용자들의 것인데 오 신부 사건으로 자원봉사자가 크게 줄어든 게 참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몇년전 막내 아들을 이곳에 맡겼다. 김씨는 “수용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실감과 공허감을 채워주는 것”이라면서 “그들이 ‘나도 사랑받고 있구나.’라고 느끼는 모습을 보면 나도 행복감에 젖는다.”고 전했다.“주는 것보다 내가 받는 게 더 많다.”고 했다. 어떤 할머니는 캔커피를 몰래 숨겼다가 채씨에게 슬쩍 건네주고, 어떤 할아버지는 김씨를 만나면 얼굴을 툭툭 치면서 반가움을 표시한다.“형수 왔다.”“오빠”하며 김씨 부부를 부르면서 난리를 피우기도 한다. 김씨 부부는 “기분이 우울할 때에도 이곳에 오면 모두 풀린다.”며 웃는다.
  • [주말탐방] 꽃동네 봉사자와 수용자들

    [주말탐방] 꽃동네 봉사자와 수용자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지난 19∼20일과 24일 두차례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사회봉사명령을 이행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지난해 12월 4일 동안 이곳에서 법무부의 봉사명령을 수행했다.‘빈자의 마을’인 꽃동네가 재벌들의 사회봉사명령 이행 단골 장소로 떠오르자 이곳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두 회장의 사회봉사명령 이행 장소는 법무부 산하 서울보호관찰소에서 사회복지시설 여러 곳을 추천받아 당사자가 결정한다. 꽃동네를 설립한 오웅진 신부의 업무상횡령 등 혐의와 관련된 재판이 끝나고 잠잠했다 두 회장의 발걸음으로 다시 관심을 끌고 있는 꽃동네를 26일 방문했다. 음성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재벌회장 사회봉사명령 단골마을 이날 오후 꽃동네는 수용자 몇명이 주변을 오갈 뿐 얼마전 ‘재벌들의 출동’과 몇년 전 오 신부 사건 때문에 어수선했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부랑인시설 ‘애덕의 집’ 앞으로 다가가자 시끌시끌한 소리를 들었다. 건물 앞에 앉아있던 한 수용자가 누군가에게 뜬금없이 “돼지야.”라고 소리를 질렀다.“학교종이 땡땡땡….”하면서 괴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도 있고 “깽깽” 강아지 소리를 질러 깜짝 놀라게 하는 이도 있다. 여성자원봉사자 보나(세례명·38·서울 성북동)씨는 “이곳은 나를 성찰하게 한다.”면서 “이웃을 돕다보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깨닫는다.”고 말했다. 1976년 오웅진 신부가 음성 무극천 다리 밑에 거적을 치고 거지로 살아가던 최귀동 할아버지를 만나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며 세운 꽃동네는 현재 국내 최대의 종합사회복지시설로 성장했다. 꽃동네는 음성 본원 말고도 서울, 경기 가평과 강화, 충북 청주와 옥천 등에 시설이 있다. 총 4500명의 수용자가 가운데 2160명이 음성에 있다. 이들을 돌보는 수사, 수녀와 직원들도 800명에 이르고 있다. ●먹이고, 입히고, 받아내고… 24시간 대기 수사, 수녀와 자원봉사자들이 ‘가족’이라고 부르는 수용자는 중증장애우, 부랑인, 정신지체자, 치매환자, 행려병자 등이 있다. 증세별로 시설이 분리돼 있다. 미혼모의 신생아들과 버려진 아이들을 받아 입양시키는 시설도 있다. 자원봉사자 없이는 이들을 돌보는 일은 엄두도 못낸다. 연간 20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온다. 일본, 유럽 등에서도 견학을 온다고 한다. 기꺼이 봉사활동을 하는 외국인도 있다. 봉사활동 점수를 따려고 오는 학생이 90% 이상이기는 하지만, 장기 봉사자 중에는 퇴직한 간호사, 언론인 등 다양하다. 자원봉사자의 수용자 수발은 각양각색이다. 죽음을 앞둔 이들의 노인전문요양원에서는 밥 먹여주기는 물론 대·소변 받고 기저귀 채워주기 등을 하면서 24시간 대기한다. 음악, 미술 등을 통한 치료와 물리치료도 돕는다.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있는 특수학교에는 ‘오미란 오성아 오진호 오아라’ 등 오씨 성 가진 어린이가 많다. 신생아 때 버려져 이름을 모르는 탓에 오 신부의 성을 딴 것이란다. ●횡령은 무죄지만 후원금 줄어 오 신부는 2003년 8월 자기 친·인척 명의로 땅을 사 업무상횡령 혐의로 불구속기소됐으나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 기간에 회비와 후원금은 108억여원에서 97억원으로 줄었다. 회원이 100만명이고, 매월 1000원씩 회비를 내는 사람이 20∼30%다. 박마태오 수사는 “가끔 도둑이 꽃동네에 들어와 건축자재 등을 훔쳐가는 일도 있어 정문에 차량통제용 바리케이드를 설치했지만, 그래도 폐쇄적인 곳은 아니다.”며 웃었다.
  • 한국전쟁 참전용사 자손 美 공군장병 14명 초청

    공군작전사령부는 24일 경기도 오산기지에서 근무하는 미 공군 장병 가운데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6·25에 참전했던 장병들을 초청해 격려행사를 가졌다.2∼3대째 대(代)를 이어 한국을 지키고 있는 미 공군 장병 14명을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미 51전투비행단 기지 병원에서 정형외과 군의관으로 복무 중인 션 니컬스(36) 소령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공군에 입대했고 한국 근무도 자원했다.”면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념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에 초청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 앵그스 니컬스는 6·25 때 미 68전대 소속 B-29 폭격기 승무원으로 참전했다. 미 607항공정보대대 소속 줄리 그리저(24·여) 병장의 경우 할아버지가 6·25 때 참전, 시설 부대에 근무하면서 기지 재건축 임무를 담당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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