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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비카인드 리와인드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비카인드 리와인드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주무대는 재개발구역에 위치한 비디오 대여점이다. DVD도 아니고 블루레이도 아닌 비디오테이프라니! 주인 할아버지가 폐업 위기에 처한 가게를 살리려고 길을 떠난 뒤, 대신 가게를 지키게 된 청년과 친구는 대형사고를 친다. 감전 사고를 당한 친구 몸의 자력이 모든 비디오테이프의 기록을 지워 버리자 두 사람은 고객이 원하는 영화를 직접 찍어서 빌려 주기로 한다. 핸드메이드 비디오에서 재미를 발견한 이웃 주민은 물론 먼 도시의 사람들까지 몰려들면서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연출한 미셸 공드리의 첫사랑은 팝뮤직이다. 밴드를 조직해 앨범도 발표했던 그는 그래픽 아트를 배운 실력으로 짬짬이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그 비디오가 몇몇 가수의 눈에 띄었고, 이후 뷰욕, 롤링 스톤스, 매시브 어택, 화이트 스트라이프스, 케미컬 브러더스 등 세계적인 뮤지션의 뮤직비디오와 유명 브랜드의 광고가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공드리의 실제 삶에서 구한 이야기인 것이다. 공드리의 영화는 아이디어와 재능의 산물로 알려져 있다. 기계와 공학에 해박한 공드리가 시도한 갖가지 영상 장치는 그에게 선구자적 지위를 부여했는데, 공드리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그러한 특수효과보다 손으로 제작한 다양한 소품들에서 출발한다. 공드리 영화를 특징짓는 건 비현실적으로 과장된 물건들과 동심을 자극하는 알록달록한 색상, 기법들이다. ‘휴먼 네이처’, ‘이터널 선샤인’으로 호평을 받은 공드리의 영화가 근래 약발을 다했다는 평을 듣는 중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도 성숙함에 이르지 못하는 유치함과 사방팔방으로 뻗어간 끝에 수습되지 못하는 이야기를 문제로 삼는다. 수긍할 수 없는 말이다. 그들이 문제 삼는 게 바로 공드리 영화의 진수이며, 작가란 동일한 주제와 스타일을 계속 탐구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무릇 피터 팬에겐 죄가 없다. 우리는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공드리 영화의 현재형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진짜 팬의 자세다. 위의 글만 읽으면 ‘비카인드 리와인드’가 오로지 반짝이는 재치의 영화로 보일지 모르겠다. 기실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영화 만들기의 즐거움’과 ‘잊혀진 영화의 향수’에 관한 영화다. 관객은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공드리가 관객과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차린다. 공드리 영화의 기발함과 아이디어는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나온다. 따스함, 풍요로움, 유쾌함과 잭 블랙, 대니 글로버, 미아 패로, 시고니 위버 같은 유명배우들의 열연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영화다. 원제 ‘Be Kind Rewind’, 감독 미셸 공드리. 영화평론가
  • 장난꾸러기가 일깨워준 우리구 설화

    장난꾸러기가 일깨워준 우리구 설화

    우리 동네를 무대에서 만난다면 어떨까. 14~17일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되는 아동극 ‘콧구멍이 벌렁벌렁’(극작 윤조병,연출 윤시중)은 노원구에서만 볼 수 있는 색다른 공연이다. 노원문예회관이 노원구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극작가 윤조병과 함께 노원구의 설화를 바탕으로 자체 제작한 작품. 수락산과 불암산 등 지역 주민들에게 친근한 장소가 무대 배경이다. 지난해 3월 초연 때 주민의 호응이 높아 이번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주인공은 노원에 사는 장난꾸러기 ‘대성’이다. 소원은 동생을 갖는 것. 동생을 낳아 달라고 엄마를 조르고 기도하지만 소원은 이뤄지지 않는다. 어느 날 할아버지에게 수락산 내원암자 미륵불 콧가루를 얻으면 동생이 생긴다는 말을 듣고 아기 돼지 달봉을 데리고 수락산에 오른다. 저출산 시대에 ‘동생 만들기 프로젝트’란 의미있는 주제를 쉽고 편하게 풀어낸 점이 돋보인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무대가 완성되는 과정도 특이하다.종이로 제작된 무대세트에 배우들이 직접 붓으로 배경을 그려 넣는다. 14~16일은 단체 관람만 가능하고, 일반 관객은 17일 오후 2, 5시에 볼 수 있다. 전석 1만 2000원. 36개월 이상. (02)3392-5721~5. http://art.nowon.seoul.kr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쇠락한 고향 닮은 아버지와 소 얘기 하고팠다”

    “쇠락한 고향 닮은 아버지와 소 얘기 하고팠다”

    소띠 해 초입, 귀를 솔깃하게 하는 소리가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15일 개봉)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팔순 농부와 마흔 살 소의 30년 우정을 담고 있다. 반짝이는 사금파리를 모아 하나의 그릇을 빚어놓은 것 같은 이 영화 앞에서 잔잔한 감동, 훈훈한 여운 등의 수사는 차라리 무색하다. “(영감은) 소에게는 잘해 주면서 내게는 잘해 준 게 없어.”라는 할머니의 지청구에 빙긋 웃다가도, 소가 숨을 거두자 “우리 가거든 같이 가면 될 건데….” 하는 장면에선 번지는 눈물을 훔치게 된다. 극장 밖을 나설 때는 워낭(소의 귀에서 턱으로 늘여 단 방울)의 정갈한 울림이 마냥 귓가를 맴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15년 동안 주로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이충렬(43) 감독. 막 산고를 끝낸 뒤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그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워낭소리’는 15일부터 열리는 미국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 세계인들과도 만난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자식으로서 좋은 모습 보여주지 못해 부모님에 대한 자괴감이 컸다. 돈도 못 벌고 결혼도 못했으니…. IMF사태가 터지면서 아버지가 화두로 많이 떠올랐는데, 나도 그런 흐름을 탄 것 같다. 나는 고향이 전남 영암인 촌놈이다. 유년의 기억 대부분이 아버지의 소 문화이고, 지금도 아버지가 농사를 짓고 계신다. 그래서 쇠락한 고향을 닮은 아버지와 그를 닮은 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대상을 찾는 데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할아버지와 소를 만나게 됐나. -방송 외주제작 PD로 지내다 2000년부터 프리랜서 독립PD 생활을 했다. 그때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마다 이장, 면사무소, 부녀회장, 축협, 농협 등에 수소문을 했다. 그러다 2005년 이른 봄 경북 봉화군 축협 관계자가 전화를 해왔다. 봉화 하눌마을에 살고 계신 최원균(81) 할아버지와 이삼순(78) 할머니 부부를 만나자마자 ‘이분들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 과정이 녹록지 않았을 것 같다. -2005년에는 촬영과 동시에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 더 주안점을 뒀다. 그해 겨울 젊은 소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7년 4월쯤 촬영을 마무리했다. 후반작업에 1년 남짓 걸렸고, 얼마 전에야 최종본을 프린트했다. 만으로 3년쯤 붙들고 있었던 셈이다. →애초엔 방송물로 기획했다고 들었다. 어쩌다 영화가 됐나. -편집본을 모니터하는 동안 주변에서 “방송하기 아깝다.”, “영화로 가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많이 하더라. 2007년 말쯤 흥행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를 제작하기도 했던 고영재 PD를 소개받으면서 영화로 방향을 틀었다. →영화를 최 할아버지와 이 할머니도 보셨나. -프라이버시 지켜드리고 싶어서 극장으로 모시지는 못했다. 대신 DVD를 보내 드렸다. 할아버지는 보시다가 다른 일을 하셨다하고, 할머니는 끝까지 보셨는데, ‘청춘을 돌려다오.’라는 노래 부분에서 자기 삶이 슬프다며 한참 우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요즘도 일하시나. 말 안 듣던 젊은 소는 이제 길들여졌나. -할아버지는 몸이 편찮으시지만, 여전히 일하신다. 젊은 소도 말을 잘 듣는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소아버지 일을 하고, 젊어서는 소중개사 일을 해서 소 다루는 데 전문가다. →소가 죽는 장면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말이 있던데 맞나. -아니다. 소가 죽을 때 혼자 가서 직접 지켜보면서 찍었다. 소가 자주 발을 헛디뎌서 넘어졌는데, 그 장면을 잡지 못했다는 말이 와전된 것 같다. →귀 어두우신 할아버지가 소 울음소리만 들리면 고개를 돌리는 장면과 소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 등에 대해 작의, 연출이라는 시선도 있더라. -소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돌리신 것은 사실 그대로다. 촬영 초반에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경과하면 일상에서 반복되는 공통분모를 알 수 있지 않나. 그것을 짧은 영상으로 편집해 넣었을 뿐이다. 소가 눈물을 흘리는 것도 실제 장면이다. 소와 이별을 해본 사람들은 소의 눈물을 다 봤을 것이다. 우시장에 가도 흔히 소의 눈물을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인데 흐름이 극영화처럼 너무 완벽하다고 보는 의견에는 어떻게 생각하나. -날것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게 무조건 리얼리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분들 삶의 원형질을 가지고 장난치거나 속인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표현방법의 문제이지 본질의 문제는 아니다. →전체적으로 내레이션을 배제했는데 이유가 있나. -할머니의 대사로 충분히 통하기 때문에 넣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레이션은 사족이라고 하더라. →소가 진짜 마흔 살까지 살았나. 보통 소의 생물학적인 수명은 15세밖에 안 된다던데 신기하다. -25~30세 소도 많이 있다. 축협 기록을 보면 최장수 소가 38세로 돼 있다. 할머니 말씀이 이 소도 장수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하더라. →미국소 관련 시위 장면도 잠깐 등장하는데, 선댄스 관객들이 그 장면을 잘 받아들일지 염려가 된다. -2004년 김동원 감독이 ‘송환’으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표현의 자유상’을 수상할 때, 인사말에서 부시 정권 비판을 했는데 기립박수를 받았다더라. 걱정하지 않는다. 물론 문화적 코드가 다르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다. 남편이 상전대접을 받고, 부모님이 자식들과 겸상을 하지 않는 등 시골에 남아 있는 가부장적인 문화, 남존여비사상 등이 그렇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감수성은 우리와 다르지 않을 듯하다. →영화를 돌아봤을 때 아쉬운 점은 없나. -우직한 면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아버지를 곧 소’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소는 암소다. 그래서 소의 일생을 보여주는 것 같은 노래 ‘봄날은 간다’를 잠든 노인을 태우고 소가 걸어가는 장면에서 썼는데, 저작권과 비용 문제 때문에 빼야 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시를 쓰는 시인처럼 ‘느끼는’ 논픽션을 하고 싶다. 관객과 공감할 수 있다면 극영화도 상관없다. 소재나 장르는 따지지 않는다. 일상과 내면을 다루는 작품을 하고 싶다. 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10일 TV 하이라이트]

    ●해외걸작다큐멘터리 100세 청춘의 비밀 2(MBC 오후 9시45분) 일본에서는 최근 100세 이상의 노인이 2만 명을 넘어서면서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 화두가 되고 있다. 노화를 예방하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길을 밝히는 최근 연구에 따라 인생을 건강하게 즐기고 한계 수명까지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공개한다. ●역사추적(KBS1 오후 8시10분) 1946년 호우총에서는 광개토대왕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호우가 발견된다. 이 호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보다 면밀한 분석을 위해 X선으로 호우를 촬영, 판독해 본 결과 호우에 새겨진 글씨는 광개토대왕의 비문의 글씨체와 흡사했다. 신라왕족의 무덤인 호우총. 신라왕족은 무엇 때문에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호우를 자신의 무덤에 가져갔을까? ●다큐멘터리 3일(KBS1 오후 9시40분) 막다른 골목에 이른 환자들에게 한줄기 빛과도 같은 장기 이식. 이는 그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치료법이다. 생사가 오가는 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는 환자와 그 가족들, 의료진까지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이들에게는 어떤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까. ●내사랑 금지옥엽(KBS2 오후 7시55분) 인순은 일남에게 더 이상 아이들을 만나지 않겠다고 말하고 눈물로 자리를 뜬다. 진호는 기다리고 있던 택시로 인순의 차를 쫓고, 결국 재라와 함께 인순의 식당을 찾아간다. 준식은 세라에게 신호와의 결혼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라며 강요한다. 세라는 끝까지 준식에게 반항하다 집을 뛰쳐나온다. ●천추태후(KBS2 오후 10시15분) 황보수에게 칼을 겨누던 경종은 그녀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만다. 경종이 쓰러지자, 황보수, 강감찬, 강조 등 폭동의 주동자는 옥사에 갇히고, 나머지 발해 유민들은 수용소로 옮겨진다. 한편 고려조정에서는 주동자들을 당장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그것이 알고싶다(SBS 오후 11시10분) 지난 16년 동안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다루어진 돈 관련 소재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돈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정리하고, 2009년을 맞아 실시한 돈에 대한 설문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이는 ‘돈 철학’을 어떤 것인지 알아본다. 또 현재 한국사회에서 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천태만상의 해프닝과 돈의 위력을 확인해 본다. ●효도우미 0700(EBS 오후 4시10분) 소형 트럭을 몰고 사탕을 팔러 다니는 사탕장수 조재경 할아버지. 배우자와 결혼, 슬하에 4남매를 두고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온 지난 세월. 그런데 9년 전 갑작스러운 배우자의 교통사고로 가족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지만,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 눈물을 쏟아내고 만다.
  • [5080] “죽어도 좋아, 아직 설렌다”

    [5080] “죽어도 좋아, 아직 설렌다”

    노인은 ‘욕망에서 자유로운 존재’라는 편견이 있다. 과연 그럴까. 노인이라고 해서 성적 욕구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노인은 더 이상 노인이 아니다. 60, 70대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성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서울신문은 새해를 맞아 장·노년층의 삶을 조명해 보는 연재기획 ‘5080’ 을 신설, 주 1회 싣는다. ●“性에는 정년이 없다니까” 2002년 개봉된 영화 ‘죽어도 좋아’는 70대 노인들도 젊은이 못지않은 성욕을 갖고 있다는 내용을 사실적으로 전달해 화제가 됐다.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예스맨’에서도 나이 지긋한 집주인 할머니가 틀니까지 벗어가며 주인공 칼 알렌(짐 캐리 분)을 유혹한다. 영화 속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런 모습들은 성적 욕구가 더 이상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2001년 2만 7915건이던 성병 발생 건수가 지난해에는 1만 2486건으로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50세 이상 남녀의 성병은 1198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비아그라’ 등 획기적인 발기부전 약물의 보급으로 노인들의 성생활이 활발해졌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령사회정책팀 이소정 연구원은 “노인 문제는 가정문제에서 사회문제로 커질 수 있는 만큼 사회 전체가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몇 달 전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던 A(70·여)씨는 같은 병실을 사용하던 세 살 연상의 B씨와 ‘열애’ 중이다. 신장에 문제가 생겨 쓰러져 병원에 실려 온 A씨는 바로 옆 침대를 쓰던 ‘병실 동기’ B씨를 알게 됐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입원했던 B씨는 바쁘다며 병실을 찾지 않던 자녀들을 대신해 A씨를 정성껏 돌봤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이들은 금실 좋은 ‘잉꼬커플’이 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텔도 찾기 시작했다. 문제는 A씨가 남편과 사별한 ‘싱글’이지만 B씨는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라는 점. 결국에는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병원 구내에서 산책을 하다 B씨의 부인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래도 현재 A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계모임에서 B씨를 만난다. “만나면서도 늘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자상하게 챙겨줄 때마다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부녀 C(66)씨는 지난해 서울의 한 구청 문화센터에서 동년배 유부남 D씨와 만나 ‘황혼의 로맨스’에 빠져 있다. 젊은 세대 같았으면 ‘금지된 장난’으로 지탄받을 수도 있겠지만 환갑을 넘은 C씨는 남편에게 별다른 죄책감 같은 것은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남편이 10여년 전부터 이러저러한 이유로 잠자리를 피해 온 탓이다. 손자·손녀가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며 평온한 삶을 살았다고 뿌듯해하던 C씨지만 성 문제에서만큼은 늘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한때 자신을 ‘여자’로 받아주는 D씨와 새출발할 생각도 해봤지만 자식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은 포기했다. “불륜이라는 것을 알지만 오랫동안 남편에게서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받으니 다시 태어난 기분이랄까…, 나한테 아직 그런 설렘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도 작업할 줄 안다고” 이성을 유혹하는 ‘작업’은 2030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5080 역시 약수터, 식당, 경로당, 계모임, 동호회 등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이성친구 사귀기를 시도한다. 작업 대상 역시 동년배 할머니에서부터 20대 아가씨까지 다양하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서울의 한 성형외과가 성형수술 연령대를 비교 조사한 결과 2006년 60대 이상 노년층 비율은 1.6%로 2001년(0.5%)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이종준 고령화대책사업본부장은 “과거에는 살기 위해 밥을 먹었지만 지금은 음식의 문화를 즐기듯 노인들도 이제는 양성평등과 사랑의 이름으로 이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3년 전 아내와 사별한 E(66)씨는 ‘콜라텍 입성’을 통해 6개월 만에 재혼에 성공했다. 자녀들을 모두 키운 E씨는 “아직도 ‘청춘’이니 더 늦기 전에 재혼하라.”는 주변의 권유에 경험 삼아 서울 종로의 한 콜라텍을 찾았다. 10대 청소년들의 놀이터였던 콜라텍이 시니어들의 ‘작업의 전당’으로 변모한 사실을 E씨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콜라텍은 ‘초짜’들이 쉽게 이성친구를 만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번뜩이는 외모와 현란한 댄스, 상대를 압도하는 화술로 무장한 프로들로 가득한 ‘정글’이었다. 곧바로 E씨는 전략을 짰다. ‘실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집 주변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3개월 간 사교댄스를 배웠다. 성형외과를 찾아가 얼굴에 가득하던 검버섯도 제거하고 몇몇 빠진 치아도 임플란트로 모두 채웠다. 이런 노력 끝에 E씨는 콜라텍 최고 미인 할머니 F씨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검버섯 가득한 ‘영감’ 스타일로는 환영받지 못해. 꽃등심, 냉면 등 상대방이 좋아하는 음식에 돈도 아끼면 안 되고.작업엔 상당한 돈이 필요해.” 대기업 영업직 간부 출신인 G(63)씨는 지난해 만난 한 아가씨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회사 재직 시절 접대를 위해 자주 들렀던 서울 강남의 한 나이트클럽을 지인들과 다시 찾았을 때였다. 장난 삼아 웨이터에게 “20,30대 아가씨로 부킹해달라.”며 팁을 두둑히 챙겨줬다. 하지만 웨이터의 ‘피나는´ 노력에도 아가씨들은 G씨 일행이 모여 있는 방문을 열자마자 깜짝 놀라거나 화를 내며 나가 버리곤 했다. 그러다 뜻밖에도 한 예쁘장한 아가씨가 순순히 들어와 김씨 옆에 앉았다. 29살 학원 강사라고 했던 H씨는 G씨를 잘 따랐고, G씨는 작심하고 스킨십을 ‘감행’했지만 거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화장실에 다녀오다 듣게 된 H씨의 통화내용에 실망하고 말았다. “나 지금 무도회에 왔다가 웬 할아버지하고 있어…돈이나 타 써볼까 하는 거지 뭐.” 그러나 자신을 왜 만났는지 잘 알면서도 G씨는 자식 나이뻘인 H씨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G씨는 나이에 굴하지 않고 H씨에게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펼쳐 몇달간 만남을 유지할 수 있었다. H씨가 결국 ‘더 연락하지 말라.’며 전화번호를 바꾸긴 했지만. ●“자식들아, 나 아직 ‘할 수’ 있거든…” 현대의학의 발달로 ‘노인의 성(性)’은 살아 꿈틀댄다. 실제 서울대병원의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 노인(66∼71세) 가운데 ‘성욕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20% 미만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부분 자식들은 부모의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거나 굳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갈등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홍미령 한국노인복지진흥재단회장은 “노인들은 성 욕구와 관련된 행위를 자녀들에게 간섭받기를 원치 않는다.”면서 “이 때문에 음성적인 방법을 택하는 경우도 많은 만큼 자식들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I(72)씨는 석달째 아들과 ‘냉전’ 중이다. 돈 때문에 재혼을 강하게 반대하는 아들이 서운하기만 하다. 젊어서부터 ‘고집불통’이라는 소리를 곧잘 듣던 I씨는 늘 외로웠다. 사별한 부인과도 관계가 순탄치 못했었다. 그럼에도 마을 노인정에서 만난 동년배 할머니 J씨는 그런 I씨를 잘 이해하고 감싸줬다. I씨에게 주름 가득한 J씨의 눈웃음은 ‘이효리보다도 섹시했고’, 통통해 보이는 몸매 또한 ‘아이비보다도 예뻤다’. 관계가 진전되자 J씨가 적극적으로 결혼을 요구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J씨로서는 I씨가 마지막 기댈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I씨도 이런 J씨의 계산을 잘 알았지만 그 역시 인생의 마지막 안식처가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얼마나 됐다고 재혼이냐.”며 만류했다. 동거는 이해하겠지만 결혼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등 수억원대의 재산이 자칫 J씨에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을 두려워한 탓이다. I씨는 이런 아들의 생각이 미웠다. “내가 낳은 자식인데도 나에게 사랑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을 왜 이해하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 할머니 K(69)씨는 요즘 함께 사는 손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얼마 전 손자가 학교에 간 사이 한씨는 손자의 컴퓨터로 온라인 고스톱 게임을 하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손자가 보고 지운 야동 파일을 찾아냈다. 야동은 남자나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호기심에 한 번 보니 나쁘진 않았다. 한씨는 고스톱을 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야동을 보기 시작했다. 손자에게 들키지 않게 깔끔하게 지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퇴근한 아들이 컴퓨터에서 야동을 발견하면서 불똥이 손자에게로 튀었다. 손자는 “내가 본 게 아니다.”라며 울며 빌었지만 소용 없었다. 손자가 우는 모습에 이실직고하려던 김씨는 아들과 며느리의 대화를 엿듣고는 자백할 용기를 모두 잃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본 것 아니냐고? 울 엄마가 무슨 ‘야동 순재’냐? 그리고 다 늙은 노인네가 무슨 야동이냐. 그것도 여자가.” 류지영 박건형 정현용기자 superryu@seoul.co.kr
  • [10일 TV 하이라이트]

    ●해외걸작다큐멘터리 100세 청춘의 비밀 2(MBC 오후 9시45분) 일본에서는 최근 100세 이상의 노인이 2만 명을 넘어서면서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 화두가 되고 있다. 노화를 예방하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길을 밝히는 최근 연구에 따라 인생을 건강하게 즐기고 한계 수명까지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공개한다. ●역사추적(KBS1 오후 8시10분) 1946년 호우총에서는 광개토대왕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호우가 발견된다. 이 호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보다 면밀한 분석을 위해 X선으로 호우를 촬영, 판독해 본 결과 호우에 새겨진 글씨는 광개토대왕의 비문의 글씨체와 흡사했다. 신라왕족의 무덤인 호우총. 신라왕족은 무엇 때문에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호우를 자신의 무덤에 가져갔을까? ●다큐멘터리 3일(KBS1 오후 9시40분) 막다른 골목에 이른 환자들에게 한줄기 빛과도 같은 장기 이식. 이는 그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치료법이다. 생사가 오가는 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는 환자와 그 가족들, 의료진까지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이들에게는 어떤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까. ●내사랑 금지옥엽(KBS2 오후 7시55분) 인순은 일남에게 더 이상 아이들을 만나지 않겠다고 말하고 눈물로 자리를 뜬다. 진호는 기다리고 있던 택시로 인순의 차를 쫓고, 결국 재라와 함께 인순의 식당을 찾아간다. 준식은 세라에게 신호와의 결혼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라며 강요한다. 세라는 끝까지 준식에게 반항하다 집을 뛰쳐나온다. ●천추태후(KBS2 오후 10시15분) 황보수에게 칼을 겨누던 경종은 그녀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만다. 경종이 쓰러지자, 황보수, 강감찬, 강조 등 폭동의 주동자는 옥사에 갇히고, 나머지 발해 유민들은 수용소로 옮겨진다. 한편 고려조정에서는 주동자들을 당장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그것이 알고싶다(SBS 오후 11시10분) 지난 16년 동안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다루어진 돈 관련 소재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돈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정리하고, 2009년을 맞아 실시한 돈에 대한 설문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이는 ‘돈 철학’을 어떤 것인지 알아본다. 또 현재 한국사회에서 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천태만상의 해프닝과 돈의 위력을 확인해 본다. ●효도우미 0700(EBS 오후 4시10분) 소형 트럭을 몰고 사탕을 팔러 다니는 사탕장수 조재경 할아버지. 배우자와 결혼, 슬하에 4남매를 두고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온 지난 세월. 그런데 9년 전 갑작스러운 배우자의 교통사고로 가족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지만,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 눈물을 쏟아내고 만다.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비카인드 리와인드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비카인드 리와인드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주무대는 재개발구역에 위치한 비디오 대여점이다. DVD도 아니고 블루레이도 아닌 비디오테이프라니! 주인 할아버지가 폐업 위기에 처한 가게를 살리려고 길을 떠난 뒤, 대신 가게를 지키게 된 청년과 친구는 대형사고를 친다. 감전 사고를 당한 친구 몸의 자력이 모든 비디오테이프의 기록을 지워 버리자 두 사람은 고객이 원하는 영화를 직접 찍어서 빌려 주기로 한다. 핸드메이드 비디오에서 재미를 발견한 이웃 주민은 물론 먼 도시의 사람들까지 몰려들면서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연출한 미셸 공드리의 첫사랑은 팝뮤직이다. 밴드를 조직해 앨범도 발표했던 그는 그래픽 아트를 배운 실력으로 짬짬이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그 비디오가 몇몇 가수의 눈에 띄었고, 이후 뷰욕, 롤링 스톤스, 매시브 어택, 화이트 스트라이프스, 케미컬 브러더스 등 세계적인 뮤지션의 뮤직비디오와 유명 브랜드의 광고가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공드리의 실제 삶에서 구한 이야기인 것이다. 공드리의 영화는 아이디어와 재능의 산물로 알려져 있다. 기계와 공학에 해박한 공드리가 시도한 갖가지 영상 장치는 그에게 선구자적 지위를 부여했는데, 공드리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그러한 특수효과보다 손으로 제작한 다양한 소품들에서 출발한다. 공드리 영화를 특징짓는 건 비현실적으로 과장된 물건들과 동심을 자극하는 알록달록한 색상, 기법들이다. ‘휴먼 네이처’, ‘이터널 선샤인’으로 호평을 받은 공드리의 영화가 근래 약발을 다했다는 평을 듣는 중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도 성숙함에 이르지 못하는 유치함과 사방팔방으로 뻗어간 끝에 수습되지 못하는 이야기를 문제로 삼는다. 수긍할 수 없는 말이다. 그들이 문제 삼는 게 바로 공드리 영화의 진수이며, 작가란 동일한 주제와 스타일을 계속 탐구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무릇 피터 팬에겐 죄가 없다. 우리는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공드리 영화의 현재형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진짜 팬의 자세다. 위의 글만 읽으면 ‘비카인드 리와인드’가 오로지 반짝이는 재치의 영화로 보일지 모르겠다. 기실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영화 만들기의 즐거움’과 ‘잊혀진 영화의 향수’에 관한 영화다. 관객은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공드리가 관객과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차린다. 공드리 영화의 기발함과 아이디어는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나온다. 따스함, 풍요로움, 유쾌함과 잭 블랙, 대니 글로버, 미아 패로, 시고니 위버 같은 유명배우들의 열연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영화다. 원제 ‘Be Kind Rewind’, 감독 미셸 공드리. 영화평론가
  • 미네르바 박모씨를 소개합니다

    검찰이 9일 구속영장을 청구한 ‘미네르바’ 박모(31) 씨가 거주하는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S빌라 주변에서 취재한 내용을 간단히 메모 형식으로 소개합니다.개인 신상이 너무 드러나지 않도록 숨겨야 하는 정보는 숨겼습니다.  ■신상 정보  -1978년생(30)  -자택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S빌라  -출신학교 : D공과대학 정보통신과(3년제이지만 박씨 졸업 당시는 2년제)  -1997년 3월 D공과대학 정보통신과 입학  -1998년 11월 군 입대  -2001년 3월 복학  -2002년 2월 졸업  -이수과목은 전공과목 이외 타과목 발견되지 않음(경제학관련 교양과목 수강 기록 없음), 대부분 전공과목 이수  ■창천동 자택 주변 및 주민 전언  -자택은 현대백화점 뒤 서민 빌라촌(3층짜리 건물) 반지하 1층.  -동네 사람들 말에 따르면 박씨는 키 170㎝대의 약간 통통하고 조용한 성격에 말도 별로 없음.바깥 출입도 거의 안해 눈에 띄지 않는 성격. 평소 캐주얼 차림.  -약 15년 전 빌라 입주때 부모,할머니,여동생과 함께 입주해 살다가 2~3년 전 부모가 이사(고양 일산 추정), 여동생과 둘이서 거주. 이후 여동생도 따로 나가 혼자 삼.  -주변 세탁소에도 양복 맡기거나 하는 일 거의 없었음. 음식 배달도 잘 안 시켰고 가끔 재료배달만 시킴.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현재 빌라는 90년 지어짐. 98년 7월부터 미네르바 소유함. 아버지가 증여한 것임. 이전 주소는 경기 고양시 일산구 일산동  -언론에 박씨가 활동한 동아리가 미네르바였다고 나오는데 사실과 다름.D공대 경영학 동아리인 미네르바는 박씨 졸업 뒤인 2005년에 생겼고 여기에 가입 활동한 적 없음.  ▲지하층 사는 장모 할머니  “가끔 인사만 하는 사이다. 떠드는 성격도 아니고, 조용한 성격이다. 어른들한테도 예의 바른 성격이고 인사 잘했다.중간 키에 평범하게 생겼다. 예전엔 말랐는데 최근에는 뚱뚱해졌다. 안경은 끼지 않았다. 오른쪽 라인은 22평인데 왼쪽 라인은 20평 조금 안 된다. 18평~20평쯤 될거다.”  ▲옆집 김모 할아버지  “별로 왕래 없어 누구와 접촉했는지도 모른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어 보인다. 관심 끌만한 사람이 아니고 평범하다. 일류대 아닌 건 알았다. 배다른 여동생과 사이는 좋았다. 건설 계통 회사 다녔다는 말도 있다.”  ”얼마 전에 내가 화장실 고쳐달라고 했을 때도 흔쾌히 고쳐줬다. 착한 친구다. 아버지가 인천, 일산(진술 엇갈림)에서 여관한다고 알고 있다. 여동생은 24~25세 정도로 교회다닌다. 우편물도 별로 없는 집이다. 아버지는 60대 정도, 어머니는 50대 중반일 것”.  ”3일 전에 월급이 늦게 나와 돈이 없다며 아내한테 10만원 꿔갔다. 예전에 2만원 빌렸을 때도 바로 갚아서 빌려줬다. 우리 부인이 예전 미네르바 할머니랑 나름 왕래가 있었다.미네르바가 체포되던 날 검은색 지프차에 두 명이 타고 와서 우리 집에서 신원 확인했다. ”  ▲D공대 정보통신과 지도교수  -조용하고 성실한 친구였다.  -전공 과목은 열심히 했는데, 재능이 탁월하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그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다.  -교우 관계는 여러 사람과 다양한 스타일로 어울리기보다 한 그룹에서 너댓명 정도와 어울리는 정도였다. 동아리 활동은 하지 않았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세계의 화약고 이스라엘·美 vs 팔레스타인 치명적 삼각관계

    세계의 화약고 이스라엘·美 vs 팔레스타인 치명적 삼각관계

    ‘당신이 살고 있는 집에 누군가 쳐들어와 1300년 전에 할아버지들이 살던 땅이었다며 차지한 뒤 ‘공평한 절충안’으로 방 한두 칸을 내주겠다고 제안한다면 당신은 받아들 수 있을까.’(203쪽) 만약 ‘어떤 머저리가 그러겠어. 야구방망이로 패서 쫓아버려야지.’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중동문제의 당사자인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거의 똑같은 입장을 보인 것이다. 그것이 지난 61년동안 ‘세계의 화약고’이자 ‘미래 제3차 세계대전’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중동 문제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최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뿌리를 뽑겠다며 가자 지구에 무차별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600여명,특히 어린이 120여명을 사망케 한 사태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숙명의 트라이앵글’(노엄 촘스키 지음,최재훈 옮김,이후 펴냄)은 중동문제의 본질이 종교와 인종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며 이스라엘과 미국, 팔레스타인 간의 치명적인 삼각관계에 집중했다. 특히 미국 정부와 편향적인 보도를 일삼는 주류 미국 언론을 집중적으로 비판해 언어학자 출신의 정치비평가인 지은이가 왜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지를 잘 드러낸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군사 행위를 용인하는 이유는 누구나 알 만하다. 미국 정부가 세계에서 석유가 가장 많이 묻혀있는 중동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전략적 자산’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1978~1982년 이스라엘은 미국이 전 세계에 제공한 군사원조의 48%, 경제원조의 35%를 제공받았다. 1983년 회계연도의 경우 레이건 행정부는 전체 원조 예산 81억달러의 30%인 25억달러를 의회에 요청했다. 같은 해 미국 의회도 해마다 이스라엘이 상환해야 하는 부채보다 더 많은 원조가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해외원조 수정법안’을 내놓았다. 이스라엘이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하여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살해하는 등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던 1983년에 이뤄진 지원이다. 그런 시기조차 미국 정부와 의회는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유린하면서 거리낌없이 군사 행위에 나설 수 있도록 도왔다고 촘스키는 비판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아랍인으로 둘러싸인 중동에서 ‘안전에 대한 위협’을 토로하는데 그것도 정치선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촘스키는 이런 반문도 한다. 이스라엘 건국을 유럽과 특히 미국정부, 미국 지식인들이 열렬히 지지했다면 팔레스타인 대신 독일 남부의 바바리아나 영국 같은 유럽의 어느 나라, 미국의 매사추세츠나 뉴욕에 유대 국가의 건설을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느냐고. 나치범죄 등 유럽인들이 수 세기 동안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범죄를 보상하는데 왜 아랍인이 희생돼야 하느냐는 것이다. 유대국가 탄생 이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시민적, 종교적 권리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을 전후로 대대적인 군사행동을 개시해 대규모의 팔레스타인 난민을 만들었다. 현재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한 ‘토지강탈’은 지속되고 있다는 보고다. 유대인의 고대 유적을 찾는다며 팔레스타인 사람의 집을 파괴하고,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한 뒤 유대인을 이주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60~70년 사이에 약 500만~600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했다. 촘스키는 중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엔(UN) 결의안과 국제사회가 꾸준히 요구하듯 이스라엘이 국경선을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으로 되돌려 놓고 그 지역에 팔레스타인인이 독립된 국가를 설립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미국이 무차별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외교정책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수 십년동안 국제법과 국제사회의 여론을 무시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 61년간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와 웨스트 뱅크에서 매일 겪어야 하는 신체·사회· 정치적 위협들이 일제 강점기를 35년이나 겪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개정판이지만 번역자가 바뀌면서 원문을 새로 번역해 신간과 다름없다는 평가다.3만 8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英노인 ‘쓰레기 집’ 탈출 못해 숨져 충격

    영국의 한 70대 노인이 집 천장까지 올라온 쓰레기 더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영국 대중지 더선에 보도된 골든 스튜어트(74) 할아버지는 지난 2일(현지시간) 천장에 닿을 만큼 쓰레기로 꽉 찬 집 안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됐다. 특히 경찰조사 결과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탈수로 드러났으며 할아버지가 쓰레기 더미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숨진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옆집에 사는 이웃주민은 “할아버지는 매우 독특한 성격이었으며 혼자만의 세계를 즐기는 것 같았다. 낮에는 홀로 자전거를 타고 나와 쓰레기를 주워 집으로 들어갔다.”고 회상했다. 이웃사람들은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고 그의 집 근처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는 점을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전직 목수로 일하던 할아버지는 은퇴한 후 약 10년간 혼자 살며 쓰레기를 주워와 모으기 시작했으며 집이 쓰레기로 꽉 차자 쓰레기 더미 사이로 좁은 길을 만들어 출입해왔다. 브로튼 벅스의 경찰은 “할아버지가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할때까지 지역사회나 이웃에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아 매우 유감”이라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광주대 2009 신춘문예 돌풍

    광주대 문예창작과 출신의 문림(文林)들이 일간지 신춘문예에 대거 당선되면서 이 학과가 ‘작가의 산실’로 이름을 높였다. 동화부문에서 대학원생인 강순덕(51·여·필명 강남이)씨가 ‘내 사랑 이꽃분’이라는 작품으로 한국일보 2009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그는 지난해 ‘금발의 미녀’로 전남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뽑혔다. 또 양인자(41·여)씨는 ‘천왕봉’으로 전남일보에, 대학원에 재학 중인 장은영(45·여)씨는 ‘걸치기 할아버지’로 전북일보에 각각 당선됐다. 소설 부문에서는 학부 출신인 차노휘(34·여)씨가 단편 ‘얼굴을 보다’로 광주일보에, 석연경(40·여)씨가 ‘맥거핀’으로 영남일보에, 노춘화(34·여)씨가 ‘물고기 목걸이’로 전북도민일보에 각각 당선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시 부문에서는 이명순(47·여·필명 이수윤)씨가 ‘기와 이야기’로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이에 앞서 대학원생인 박현덕(41)씨는 ‘완도를 가다’로 국내 최고 권위의 시조 문학상으로 알려진 중앙시조대상 제27회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1996년 설립된 광주대 문예창작학과는 지금까지 230여명의 등단자를 배출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심사평 - 아이들에게 후련한 카타르시스 주는 작품

    심사평 - 아이들에게 후련한 카타르시스 주는 작품

    동화는,아이들의 삶을 다루는 문학이다.지금 이곳에 사는 아이,작가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아이,상상의 산물이거나 의인화된 동물 혹은 사물이더라도 아이로서의 특성과 보편성을 획득한 캐릭터가 주인공인 문학이다.판타지라 할지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올해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이 불러일으킨 생각이다.계몽적인 주제,시의적절한 소재,좋은 문장과 안정된 플롯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 아이의 삶이 들어 있지 않다면 그 작가의 동화관을 다시 가늠하게 된다.단 한 편으로 작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하는 신춘문예 응모작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빵집 앞’이 그런 경우다.능숙한 문장에,복선을 깔고 독자를 살짝 긴장시키면서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끌고 가다 환하고 따뜻한 결말을 보여주는 솜씨는 놀랍다.빵집 할아버지와 그 앞의 트럭 통닭 장사라는 캐릭터도 생생하고,주제는 감동적이다. 마치 오 헨리의 단편을 읽는 듯한데,바로 그 점이 아쉽다.동화답기보다는 소설 같은 것이다. ‘할머니의 선택’은 집안일에 매여 있다 독립을 선언하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할머니를 보는 아이의 관찰기이다.급속도로 진행되는 노령화 사회를 맞아 노인들의 삶에 대한 인식과 대우도 달라질 필요가 있으니 동화가 충분히 다룰 만한 소재이기는 하지만,단순한 관찰 보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삶과 어떻게 긴밀히 엮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모색도 따라야 할 것이다. ‘책 너머 세상’은 현재 우리 아이들의 삶이 첨예하게 그려진 작품이다.은밀하고 자유로워야 할 독서의 장이 컨베이어 벨트가 굉음을 쏟아내며 돌아가는 공장처럼 변하고 아이들은 마치 직공처럼 기계적으로 손을 놀려 독후감을 생산해내야 하는 독서지도 풍토에 대한 비판 정신과 풍자적 글쓰기가 반가웠다.독후감 쓰기에 괴로워해본 적 있는 아이들에게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을 듯하다. 아이들 현실에 대한 뼈아픈 인식과 도전정신이,약간 거친 문장과 어색한 결말이라는 아쉬움을 덮고 당선작으로 정하게 했다.문장을 정교하게 갈고 다듬는 연단의 기간을 갖기 권하며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조대현 김서정
  • [뉴스 다큐 시선] 공중전화가 본 세상

    [뉴스 다큐 시선] 공중전화가 본 세상

    ‘시선(視線)’은 ‘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 주의 또는 관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이달부터 화요일마다 기존의 ‘라이프&’과 격주로 연재될 ‘뉴스다큐 시선’ 역시 누군가의 ‘눈이 가는 길’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수없이 많고 서로 얽히고 설켜 있습니다. 그 가운데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시선들을 표현할 것입니다. 한순간을 포착하기보다는 뉴스다큐라는 이름처럼 오랜 시간을 지켜보며 충분한 사실·느낌·생각을 전달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세상의 많은 시선들과 함께 긴 여운을 느껴 보세요. ‘뉴스다큐 시선’의 첫 주인공은 공중전화가 들려주는 세상이야기입니다. 휴대전화에 밀려 늘 퇴출될 위기 속에 있지만 묵묵히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공중전화는 경기침체의 터널을 지나야 하는 우리네 처지와 비슷합니다. 새해 첫날과 이튿날 서울 가리봉동 외국인노동자촌, 서울역, 영등포경찰서 민원실에 있는 공중전화를 통해 본 사람들은 저마다 아련한 사연을 안고 있었으며,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에게 공중전화는 차가운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정감어린 소통의 수단이었습니다.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를 많이 찾아요. 불황이 심각해지면서 휴대전화나 집전화 요금이 버거워진 사람들이 주로 저를 이용하죠. 수입은 월 20만원이 넘고요. 사람들은 늘 저를 필요로 하지요. 항상 바쁘지만 사라질 염려가 없어 맘이 편해요.”-가리봉동 외국인노동자촌 공중전화 “저는 ‘신상’ 공중전화기랍니다. 휴대전화처럼 문자메시지까지 보낼 수 있는 최신형이죠. 제 옆에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까지 있어요. 하지만 첨단이면 뭐합니까. 제 발밑에는 항상 노숙자들이 자고 있어요. 저에게 들인 돈이 아까워 당장 철거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없어지겠죠.”-서울역 최신형 공중전화 “월 1000원도 못 번답니다. 회사는 늘 저를 퇴출시키려고 노려보고 있죠. 하지만 경찰서 안에 있기 때문에 버틸 만해요. 공공성 때문에 섣불리 저를 제거할 수 없답니다. 동료 전화기들은 저를 철밥통이라고 부러워하지만 매일 외줄 타는 기분이에요.”-영등포경찰서 민원실 공중전화 ●불황에 중국 가족에게 전화 횟수도 뜸해져 중국동포 밀집지역인 서울 가리봉동 시장 입구에는 공중전화 3대가 나란히 있다. 이 전화기들은 매일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국의 가족들과 나누는 애틋한 대화를 엿듣는다. 1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30여명이 공중전화를 찾았다. 중국동포 박모(52)씨는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새해 안부를 전했다. 박씨의 눈은 전화기 액정화면에 뜨는 전화카드 잔액에 고정돼 있었지만 귀는 가족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하고 싶은 듯 수화기에 꼭 붙어 있었다. 그는 “요금을 못내 두 달 전에 휴대전화가 끊겨 공중전화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2007년말 한국에 와서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박씨는 고향에 있는 가족과 1년에 두세 번밖에 통화하지 못 한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100만원을 보내면 8000위안은 됐는데, 지금은 몇달을 모아 200만원을 보내도 1만위안밖에 안 돼 전화비도 부담스럽습니다.” 중국 옌지에서 온 성모(36)씨는 중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일자리가 여의치 않아 다시 들어가야 할지 상의했다. 그 역시 요금이 부담돼 휴대전화는 쓰지 않았다. “이 동네 공중전화는 외로움을 달래는 소중한 수단이죠. 전화를 걸러 나왔다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전화부스가 약속장소가 되기도 하지요.” ●전화기 앞에서 고개 숙인 사나이 1일 오전 7시 이경수(46·일용직근로자)씨는 가리봉동 시장 공중전화기의 버튼을 만지작거렸다. 정작 전화는 걸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1988년 결혼했지만 경마에 빠져 전 재산 3억 5000만원을 탕진했고, 2001년 이혼하고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이씨는 “새해 첫날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할까 망설였는데, 7년이 지났지만 아직 전화드릴 면목이 없어서 그냥 끊었다.”고 힘없이 말했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알뜰족도 눈에 띄었다. 이해중(55·회사원)씨는 “휴대전화가 있지만 요금을 아끼기 위해 일반전화번호로 걸 때는 공중전화를 고집한다.”고 말했다. “겨울이라 춥다고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휴대전화를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다 낭비죠.” 이씨가 자리를 뜨고 30여분이 지나자 한 할아버지가 전화기를 일일이 수색(?)했다. 자세히 보니 카드투입구나 동전반환구에 쓰다 남은 카드나 동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 할아버지 바로 뒤에 전화기를 쓴 김모(24·여)씨는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결제하느라 휴대전화 요금이 49만원이나 나왔는데, 이 돈을 결제하지 못해 결국 휴대전화가 끊겨 어쩔 수 없이 공중전화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외화내빈 공중전화의 고민 서울역 광장에 있는 공중전화는 현금자동입출금기와 나란히 서 있다. 빨간색 가로기둥이 산뜻한 느낌을 준다. 공중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하루 종일 지켜봐도 이 전화기를 이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다만 오후 5시가 되자 노숙자 3명이 전화기 밑에 앉아서 막걸리를 마셨다. 밤이 깊어지면 노숙자들의 잠자리가 됐다. 서울역 광장 종합관광안내소에서 일하는 직원마저도 신형 공중전화가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주위 상인들은 “기능과 디자인이 아무리 좋아도 유동인구도 별로 없는 곳인데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말했다. 김포 해병대 2사단에 근무하는 김모(23) 병장은 부산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이병 때는 부대 내 공중전화를 아예 붙잡고 살았다.”면서 “군대 오기 전에는 공중전화를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부대 안에서는 정말 소중하더라.”고 말했다. 엄경헌(22) 상병은 “공중전화를 쓰면서 잊어버렸던 전화번호를 많이 외우게 됐다.”면서 “편리함은 종종 사람의 능력을 퇴화시킨다.”고 말했다. ●수익성과 공공성 사이에서 지난 2일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서울 영등포경찰서 민원봉사실에 있는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공중전화를 관리하는 KT링커스측은 “월 1000원 미만의 수익을 내는 곳으로 공중전화 한 대당 연간 관리비가 100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효율성이 최악인 전화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서 측은 공공성을 위해 이 전화기가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등포경찰서 경무계장은 “노인들,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왔거나 배터리가 떨어진 민원인들, 정액제 요금을 다 사용해 휴대전화가 먹통인 중고생들에게는 이 전화가 없어서는 안 된다. ”면서 “수익성을 따지자면 당연히 수지가 안 맞겠지만 한 명의 민원인이라도 전화가 필요하다면 전화기를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 경찰은 “요즘 유행하는 구조조정과 마찬가지로 수익성으로만 보면 세상에 남아날 것들이 얼마나 되겠냐.”면서 “치안서비스처럼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평생에 단 한 번 필요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무언가가 세상에는 정말 많다.”고 말했다. 글 사진 이경주 김민희 장형우기자 kdlrudwn@seoul.co.kr ■ 석춘호씨의 80년대 공중전화 추억 “구멍가게 번성 일등공신… 시위학생 방패막이였죠” “1980년대에는 상점마다 공중 전화를 서로 가까운 데 놔달라고 전쟁을 벌였죠.” 1983년 10월에 입사해 2000년까지 서울 영등포구, 동작구 등지에서 공중전화 설치, 유지보수 등의 업무를 담당한 KT링커스 총무팀 석춘호(44) 팀장은 5일 ‘공중전화 전성시대’였던 80년대를 추억했다. 다이얼을 돌려야 하는 기계식 전화는 요금조절 장치가 너무 조여지면 동전을 넣어도 통화가 안 되고 느슨하면 돈을 넣지 않고도 무료로 통화가 가능하기도 했다. 석씨는 “상점 주인들은 공중전화가 주위에 있어야 장사가 잘된다고 서로 가게 가까이 놔달라고 졸랐다.”고 회상했다. 요즘은 가게 앞에 공중전화를 설치하면 가게 출입문을 가리니 옮겨달라고 항의한다. 그래도 아직 보람을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비상수단으로 공중전화를 찾는다는 것. 하지만 도서지역이 아닌 경우에는 공공성을 명목으로 설치하기가 힘들어 늘 안타깝다.1987년 서울대 공중전화를 관리하러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가다가 급작스럽게 터진 최루탄에 잔디밭을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데모를 하던 여학생들이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남학생들은 정문 쪽에 있던 전화부스를 눕혀 바리케이드로 사용했다. 석씨는 “데모가 끝나면 전화기를 전부 수리하고 교체하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회상했다. 80년대 여의도 국회의사당 1층에 있는 공중전화는 흥행의 보증수표였다. 특히 국정감사 시기가 되면 1층에 공중전화를 쓰려는 공무원들과 기자들이 긴 줄을 섰다. 석씨는 “당시에는 비상근무조가 있어 24시간 근무했지만 요즘은 아예 당직도 없어졌다.”면서 “공중전화가 추억이 되는 것을 보면서 말 그대로 시원섭섭하다.”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워싱턴 입성 오바마 출발 전부터 삐걱 역술인 이철용 “흙기운 센 해…무리하면 불벼락” 박근혜 “국민에 고통”에 “그동안 뭘했다고” 미네르바 “난 악마의 도구…IMF때 도움 못 돼 조국에 죄송”
  • 엄마, 아빠 국내외 명작 보러 미술관 가요

    엄마, 아빠 국내외 명작 보러 미술관 가요

    올 겨울방학은 아이들이 볼 만한 국내외 작가의 대형 전시회가 서울·수도권에 적지 않다. 우선 한강 이북에서 열리는 전시들부터 소개하겠다.관람료가 ‘공짜’인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 동관과 서관에서 3월22일까지 ‘한국근대미술걸작전’을 열고 있다. 이중섭의 ‘흰소’와 은지화,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 장욱진의 ‘자화상’, 오지호의 ‘남향집’, 이쾌대의 ‘군상’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작가 105명의 대표작 232점이 기다린다. 구본웅이 소설가 이상을 그린 ‘친구의 초상’, 마티스의 영향이 느껴지는 이대원의 ‘창변’, 자신의 신산스러운 인생을 담은 천경자의 추상화 ‘그레타 가르보’, 이쾌대가 부인에게 보내는 애살스러운 연애편지도 등도 볼 만하다. (02)757-1800. 서울시립미술관에서 3월21일까지 열리는 ‘퐁피두센터 특별전’도 꼭 봐야할 전시의 하나다. 서양의 유토피아인 ‘아르카디아’를 주제로 풍요로움과 천국의 이미지를 담은 작품 79점을 기획전시한다. 마티스의 ‘붉은 색 실내’와 ‘폴로네시아 연작’, 샤갈의 ‘무지개’, 레제의 ‘여가’, 미로의 ‘블루 Ⅱ’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1만 2000원. (02)2124-8938 ‘루벤스 바로크 걸작전’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3월13일까지 열린다. 녹색 청색 등을 적소에 사용해 신화 속 여인들의 핑크빛 피부를 더 생기있고 화려하게 보이도록 했던 루벤스의 작품 19점과 동시대 플랑드르에서 활동한 작가 46명의 작품 75점이 전시됐다.1만 2000원. (02)722-4595. 경기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은 3월25일까지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을 전시한다. 인상파 작가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피사로의 작품과 인상파에 영향을 준 밀레와 코로 등 바르비종파,르느와르와 마네 등 인상파 작가 19명의 ‘풍경’ 작품 90여점이 전시된다. 1만원. (031)960-0180. 강남으로 내려가보자.우면산 기슭의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는 ‘서양미술거장전:렘브란트를 만나다’를 2월26일까지 연다. 렘브란트의 유화는 단 한 점만 전시돼 있어 ‘낚였다.’는 악평을 받기도 하지만 바로크 시대 작품을 만난다든지,렘브란트의 에칭 판화를 본다고 마음 먹으면 전시회를 즐길 수 있다.1만 2000원. (02)2113-3400.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어린이미술관에서는 내년 11월까지 ‘거울아 거울아’를 개최한다. 주제는 인물로 김호석, 김선두, 권기수, 박형진, 윤석남, 안윤모 등 작가 24명의 회화, 사진, 조각, 설치, 미디어 등 약 70점이 전시된다. 3~13세 어린이를 위한 전시로 체험공간까지 마련해 놓았다.관람료가 없다. 기왕 과천까지 갔으니 현대미술관에서 ‘2008년 젊은작가 모색전’도 보고 오면 좋겠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경향을 30~40대 작가 15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02)2188-6114. 경기 성남아트센터는 2월22일까지 호안 미로의 판화 103점으로 꾸미는 ‘호안 미로-최후의 열정’전을 연다. 7000원. (031)783-8142.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책 너머 세상/신지영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책 너머 세상/신지영

    “너,이게 뭐니?” 엄마가 승민이에게 공책을 내밀며 물었다. “뭐긴 뭐야? 독후감 공책이지.” “그걸 누가 몰라서 물어? 내용을 왜 이렇게 썼느냐는 말이야.” 엄마가 짜증스레 공책 한쪽을 펼쳐 보였다. 플란다스의 개를 읽고……. 되게 슬펐다.무지 슬프다.내가 읽은 책 중에 1등으로 슬프다. “그렇게 독후감 쓰는 법을 알려 줬는데,다 귓등으로 들었니? 슬프다,슬프다 하면 읽는 사람 마음에 와 닿아? 뭐가 슬픈지 써야 할 것 아니야.” “그걸 꼭 써야 돼?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다 느낄 텐데,그냥 마음속에 담아두면 안 되는 거냐구.” “어디서 주워들은 말은 많아서,이제 겨우 사학년인 녀석이 요리조리 빠져나갈 궁리만 하니……,네 미래가 걱정이다,엄마는.” “걱정 마,엄마.난 괜찮을 거야.”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얼른 다시 안 써? 다시 쓸 때까지 컴퓨터 금지야.” 승민이는 터덜터덜 책상 앞에 가 앉았다. 며칠 전,엄마는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다. “책을 많이 읽으면 아는 게 많아져서 공부도 잘하게 되지.앞으로 엄마가 책 빌려다 놓을 테니까 일주일에 세 권씩 꼬박꼬박 읽어야 해.” 엄마는 승민이에게 독후감 공책을 사다 주었다.책을 읽을 때마다 독후감을 써서 검사 맡으라고 했다.엄마는 인터넷을 통해서 ‘독후감 쓰는 법’을 알아냈다.그걸 종이에 정성스레 적어서 승민이의 책상 앞에 떡하니 붙여 두었다. “꼭 저대로 써야 한단 말이야? 수학 문제 푸는 것도 아니고,재미없잖아.” 승민이는 고개를 홰홰 저었다.그러곤 침대에 발랑 드러누워 버렸다.두그르르 앞구르기를 했다.물구나무도 서 봤다.그러는 동안,상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갑자기 승민이는 발딱 일어났다.쇠가 자석에 이끌리듯 책상 앞으로 가 앉았다. 승민이는 신나게 글을 써 내려갔다. 네로랑 파트라슈는 날개를 달고 천국으로 날아간다.그곳은 개들이 주인인 세상이다.거기에서는 네로가 파트라슈의 애완동물이다. 지구에서 개들을 못살게 굴던 주인들은 자기들이 한 나쁜 짓을 그대로 당한다.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개한테 옆차기를 하던 아저씨는 개한테 옆차기를 당한다.개에게 상한 음식을 먹이고 재미있어하던 아이는 상한 음식을 먹고 웩웩 토한다.네 발로 기어 다니며 우유 수레를 끄는 사람도 있다.그건 바로 파트라슈를 채찍으로 때렸던 첫 주인이다. “너 정말!” 엄마가 어느새 승민이의 곁에 와 있었다.엄마는 씨근거리며 공책을 집어 들더니 방바닥에 내팽개쳤다. “천국이 왜 나오고,네로가 애완동물이라는 건 또 무슨 소리야!” “뒷이야기를 상상해서 쓴 거야.플란다스의 개 제2탄.” “파트라슈 옆차기 하는 소리 하고 있네.읽고 나서의 느낌이랑 생각을 쓰랬지,누가 2탄 쓰랬어?” “이렇게 쓰니까 재미있어.” “넌 그게 문제야.그렇게 재미만 찾으니까 공부를 못하지.” 엄마가 한심하다는 눈길로 승민이를 보았다.승민이는 아랫입술을 배쭉 내밀었다. “안 되겠다.공책이랑 필통 들고 마루로 나와.” 엄마와 승민이는 밥상을 앞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엄마는 밥상 위에 독후감 공책을 척 올려놓았다.승민이는 쭈뼛쭈뼛 연필을 쥐었다. “먼저 책을 읽게 된 동기를 쓰자.왜 이 책을 읽었지?” “엄마가 읽으라고 시켜서.” “좀 예쁘게 쓰자.‘엄마께서 권유하셔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하면 좋겠지?” 승민이는 엄마가 말한 대로 받아 적었다. “자,이제 주인공과 너 자신을 비교해 보자.어떤 점을 비교해 쓸까?” “음……네로는 유유 배달을 하지만,나는 우유를 배달시켜 먹는다.” “말장난하니? 그건 중요하지가 않아.” “음……네로한테는 여자친구가 있지만,나는 없다.네로처럼 여자한테 친절해야 누구를 사귈 수 있을 텐데…….나는 마음은 안 그런데 자꾸 쌀쌀맞게 굴고…….” “누가 그딴 거 쓰래? 그게 대체 왜 중요한 거냐고!” 엄마는 벌떡 일어나 발을 쾅 굴렀다. “내가 못 살아.대체 넌 누구를 닮아서 이러니?” 엄마가 털썩 주저앉았다.승민이는 고개를 숙인 채 숨을 죽였다. 얼마 동안,시계 초침 소리와 엄마의 가쁜 숨소리만 들렸다. “다시 해 보자.또 이상한 대답하면 혼날 줄 알아.” 엄마가 승민이 옆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네로는 할아버지 말 잘 들어,안 들어?” “잘 들을 걸.” “넌 엄마 말 잘 들어?” “그럴 때도 있고,아닐 때도 있지.” “어이구,그럴 때도 있으셔? 엄마 말이라고는 징그럽게 안 들으면서,무슨.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쓰면 되겠네.‘네로는 할아버지 말을 잘 듣는다.하지만 나는 엄마 말씀을 잘 듣지 않아 혼나곤 한다.’라고.” 승민이는 그대로 받아 적었다. “네로는 행복해,안 행복해?” 엄마가 물었다.승민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때도 있고,아닐 때도 있지.” “행복할 리가 있니? 고아인 데다가 가난하지,집에서 쫓겨나 어린 나이에 죽기까지 했는데.” 엄마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너는 행복해,안 행복해?” 엄마가 물었다.승민이는 또 고개를 갸웃거렸다. “때에 따라 달라.” “너는 행복한 거야.네가 뭐가 아쉬워? 아빠가 돈 벌어다 주지,엄마가 보살펴 주지.자,적어 봐.‘네로에 비하면 나는 참 행복한 아이다.나는 네로처럼 가난하지도 않고 엄마 아빠도 있다.’이런 식으로.” 승민이는 엄마가 말한 대로 받아 적었다.글씨가 자꾸 비뚤어졌다. “이제 너의 경험과 책의 내용을 비교해서 써 보자.” 승민이의 머릿속에 번뜩거리는 장면들.하얀 털이 몽실몽실한 강아지,똥 한 덩어리,악쓰며 강아지에게 다가가는 엄마,겁에 질려 뒷걸음질치는 강아지……. “몽몽이는 잘 있을까?” 승민이가 혼잣말처럼 말했다.엄마는 흠칫하더니 곧 태연한 얼굴을 했다. “그럼,잘 있지 않구.우리보다 훨씬 좋은 주인이 데려다가 키우고 있는 걸.좋은 사료 먹이고,좋은 옷 입히면서 말이야.” 엄마가 호들갑스레 말했다.승민이는 연필 끝을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었다. “딴 말 하지 말고,쓰던 거나 계속 쓰자.책 내용 중에서 네 경험과 비교할 만한 걸 찾아보자는 말이야.아,그래.네로가 할아버지의 일을 도와 준 것처럼,너도 엄마 아빠를 도와 준 경험이 있지? 그것에 대해서 쓰면 되겠구나.” “차에 치였으면 어떡하지? 몽몽이는 밖에 많이 안 나가 봐서 차 피할 줄도 모르는데…….” “이상한 상상은 그만하고,여기 집중해.” 엄마의 말투에 짜증이 섞였다. “몽몽이,울고 있을지도 몰라.” “상식적으로 말이 되니? 개가 운다는 게…….” “진짜야! 몽몽이는 나 없을 때 외로워서 눈물을 흘렸단 말이야!학원 갔다 와서 보면 눈에 눈물이 꽉 차 있었다구.” 승민이가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는 연필을 책상에 팽개쳤다. “얘가 왜 이래? 버릇없이.연필 똑바로 안 쥐어?” 엄마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날카롭게 말했다. “엄마가 몽몽이를 갖다 버렸잖아.나한테 말도 안 하고…….” “버리긴 뭘 버려? 키워 준다는 집 있어서 데려다 놓았다니까.” “아빠가 그랬어.엄마랑 밤에 공원에 가서 놓고 왔다고.” 승민이가 엄마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엄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밤이지만 바람 쐬러 온 가족들이 많았어.개 좋아할 만한 네 또래 애들이 많았단 말이야.우리가 키우기 힘드니까 다른 집에서 잘 키우면 되겠다 싶었던 거야.” “처음에 몽몽이를 데려온 건 엄마잖아.버릴 거면 아예 데려오지를 말지.” 몽몽이는 승민이의 좋은 친구였다.성적이 좋지 않다고 엄마한테 혼났을 때,친구와 다투었을 때에도 몽몽이를 보면 마음이 풀렸다.몽몽이의 눈빛이 “힘내.”하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승민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렇게 성가실 줄 누가 알았니? 똥오줌도 못 가려,털 날려…….” “강아지는 원래 그래.엄마가 모른 거지.내가 돌봐주면 되는데,꼭 그래야만 했어?” “너 학교 가고 학원 가면 누가 돌보는데? 내가 다 뒤치다꺼리해야 하는 거 몰라서 그래? 엄마 힘든 건 생각 못하니?” “엄마보다,그깟 개 한 마리가 더 중요해?” 엄마가 덧붙였다.엄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승민이는 입을 꾹 다문 채 가만있었다.엄마는 승민이를 등지고 앉았다.그러곤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잠시 후,승민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쓸 얘기 생각났어.” 엄마가 누그러진 얼굴로 돌아앉았다. “몽몽이 얘기를 쓸 거야.” 승민이가 말했다.엄마는 펄쩍 뛰었다. “아니,그걸 왜 써?” “책 내용이랑 비교할 수 있잖아.네로가 파트라슈를 키웠던 것처럼 나는 몽몽이를 키웠고…….파트라슈는 버려진 개였고 몽몽이도 버려졌고…….” “안 돼,다른 얘기를 써!” “싫어.” 엄마가 눈을 부라렸다.승민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필을 쥐었다. 나는 몽몽이라는 강아지를 키웠다. 엄마가 연필을 홱 낚아챘다. “너…….이런 식으로 해 봐.앞으로 영원히 컴퓨터 못 할 줄 알아.용돈도 없어!” 엄마가 윽박질렀다. “지워!” 엄마가 승민이에게 지우개를 건넸다. 승민이는 망설였다.그러다가 마침내 방금 쓴 문장을 지웠다.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져 공책에 번졌다. 나도 네로처럼 어른을 도운 적 있다.엄마가 아플 때 청소를 해서 칭찬을 들었고,아빠의 어깨도 주물러 드렸다.앞으로 나는 네로를 본받아 더욱 착한 아이가 되겠다.어른들 말씀도 언제나 잘 듣겠다.네로같이 불쌍한 아이를 만나면 도와주겠다. 방에 들어온 승민이는 공책을 함부로 내팽개쳤다.침대 위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들썼다.훌쩍훌쩍 울다가 잠이 들었다. 승민이는 낯선 길에 서 있었다.주위가 안개로 둘러싸인 듯 아슴푸레했다.저만치 앞에 몽몽이가 나타났다.몽몽이는 따라오라는 듯 승민이를 히뜩 보고는 곧장 달려갔다.승민이는 몽몽이를 따라 뛰었다. 어느 순간,몽몽이가 멈춰 섰다.‘개들의 천국’이라고 씌어 있는 팻말이 보였다. “와,내 상상이 진짜였구나!” 승민이가 감탄했다. “그렇지,여기에서는 너희가 우리의 애완동물이라구.” 몽몽이가 말했다.그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몽몽이가 팻말이 가리키는 길로 접어들었다.승민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따라갔다.조금씩 안개가 걷혔다.주위의 풍경이 똑바로 보였다.승민이가 서 있는 길에서,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각각 다른 풍경이 보였다. 동쪽은 봄이었다.연둣빛 들판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었다.색색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개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마음껏 들판을 뛰고 뒹굴었다.서쪽은 여름이었다.초록빛 풀들이 다보록한 가운데,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개헤엄을 치는 사람도 있었고,사람 헤엄을 치는 개도 있었다.남쪽은 가을이었다.사과,밤,홍시…….탐스러운 과일을 매단 나무들이 곳곳에 우부룩했다.바닥에도 과일이 수북했다.어떤 개들과 사람들은 사과 바다에서 허우적허우적 헤엄을 쳤다.또 어떤 개들과 사람들은 홍시를 공처럼 주고받으며 옷에 주황 물이 들도록 놀았다. “난 어디로 가야 돼?” 승민이가 몽몽이를 내려다보고 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내 주인이니까.” “네 마음대로 해.여기서는 주인이 애완동물을 돌봐 주지 않아.뭘 시키는 법도 없어.자유롭게 놔 둘 뿐이지.” 어디로 갈까? 승민이는 즐거운 고민에 잠긴 채 북쪽을 보았다. 눈부시게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아이스크림 같은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폴짝폴짝 눈 속을 누비고 다니는 개들과 사람들…….언덕 위에는 승민이 엄마도 있었다.엄마는 배를 깔고 엎드리더니 미끄럼을 타고 내려왔다.엄마의 웃옷이며 바지에 눈이 닥지닥지 묻었다.엄마를 지켜보던 몽몽이가 멍멍 웃었다.엄마는 대답하듯 하하 웃었다.눈투성이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 [대한민국 극&극] 96세 안금림 할머니 vs 12세 양선희양, 소띠들의 ‘세대 소통’

    [대한민국 극&극] 96세 안금림 할머니 vs 12세 양선희양, 소띠들의 ‘세대 소통’

    서울신문은 이달부터 ‘대한민국 극(極)과 극(極)’이라는 기획을 매주 월요일자에 연재합니다.대척점에 선 인물이나 사건 등을 넓은 스펙트럼에서 접근해 독자 여러분에게 균형잡히고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 드리기 위함입니다.상위는 잘났고 하위는 못났다는 것도,‘없는 자’가 떳떳하고 ‘있는 자’가 구린내난다는 식의 극단적인 측면을 부각해 미화하거나 위화감을 조성하려는 뜻도 물론 아닙니다.우리사회의 여러 분야에 상존하는 꼭대기와 밑바닥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시 한번 재조명해보자는 것입니다.때로는 엉뚱하거나 재미있는 우리 사회 현상들을 비교함으로써 여러분의 지적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해소해드리려 합니다.기축년을 맞아 시리즈의 첫 주인공으로 장수촌으로 소문난 전북 순창군 동계면에서 함께사는 ‘최고령 소띠와 최연소 소띠’를 선정했습니다.1913년 태어나 올해 아홉번째로 소의 해를 맞이하는 안금림(96) 할머니와 1997년 태어나 두번째로 소의 해를 맞이하는 최연소 소띠 양선희(12)양을 만났습니다.안 할머니보다 12세 많은 1901년생도 79명이 있었지만 인터뷰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찾다보니 안 할머니를 만나게 됐습니다.같은 이유로 새해벽두에 태어난 ‘진짜 최연소 소띠’들도 배제됐습니다.띠가 같다는 것 말고는 할머니와 소녀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일제 식민통치가 본격화되던 한일합병 3년째 태어나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안 할머니와,IMF 위기 중에 태어났지만 ‘오 필승 코리아’를 들으며 세계 속의 당당한 한국을 경험한 신세대 양양의 세대차는 84년 나이차 그 이상이었습니다.이들간의 세대차는 우리의 어제이자 오늘이고,또 미래입니다. 글 사진 순창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새해 첫날 아침. 전북 순창군 동계면에는 흰 눈이 소담하게 내렸다. 마을을 부드럽게 감싸안은 산 꼭대기에도 설탕가루 같은 눈이 흩뿌려져 있다. 남도의 산은 높고 가파르지 않다. 대신 나지막하면서도 단단하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붉은 흙을 일궈 평생을 우직하게 살아가는 농민 같은 인상이다. 산 허리에 난 길을 달리다 보면 순창군 최고령 소띠인 안금림 할머니가 살고 있는 구미리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니 차가운 겨울 바람이 얼굴에 확 들어온다. 힘껏 청명한 공기를 들이마시니 머리속이 맑아진다. 이곳이 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수마을인지 이해되는 순간이다. 안 할머니와 최연소 소띠인 양선희(동계초등학교 5학년)양은 같은 동계면에 산다. 새해 인사도 드릴 겸 선희 양은 엄마 정은경(36)씨,동생 윤선(5)양과 함께 안 할머니 댁을 찾았다. 방으로 들어가자 분홍색 퀼트 재킷을 단정하게 입은 안 할머니가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계셨다. 할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기억력은 어릴 때 그대로다. 기력도 왕성해서 혼자 산책도 하고 목욕도 할 정도다. 선희 양은 처음 뵙는 할머니가 낯선지 쭈뼛거린다. 지척에 살지만 만난 적은 없다. 그래도 엄마가 “너와 같은 소띠”라고 말하자 배시시 웃는다.때마침 안 할머니의 맏며느리 이이순(71)씨가 집에서 직접 만든 엿을 내왔다. 순창은 고추장뿐 아니라 엿으로도 유명하다. 쌉싸래한 콩가루에 묻힌 엿이 다디달다. 선희와 윤선 자매는 엿을 오물오물 먹으며 안 할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 안 할머니는 1913년 2월23일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10대 때 구미리로 시집왔다. 시집온 이후 쭉 이곳에서 살았다.1913년은 한일합병이 된 지 3년째 되던 해로, 일제의 식민통치가 가혹해지기 시작한 때였다.할머니는 5살 많은 할아버지(1977년 작고)와 벼농사를 지었다.그나마 할아버지 소유의 논 2마지기(200평·661㎡)가 있어 소작농 신세는 면했다.소띠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소처럼 밥먹고 일만 할 팔자를 타고 난다.’는 속설이 있다.안 할머니도 소띠의 운명을 타고 났는지 궁금했다.며느리 이씨는 “아버님의 천성이 부지런해 어머님이 그렇게 고생하시진 않았다.논일은 거의 안 하셨고,길쌈을 주로 하셨다.”고 말했다. 2남3녀를 낳고 가난하지만 단란하게 살던 안 할머니 가족은 1942년쯤 함경북도 은덕군 아오지로 이주를 했다. 돈 벌어 식구들 먹여 살리겠다는 할아버지의 결단이었다. 맏아들 양금섭(74)씨는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간 기억이 난다.”고 했다. 3년쯤 그곳에서 살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가족은 구미리로 돌아왔다. 이후 ‘빨갱이’와 ‘반동분자’ 사이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겨야 했던 서민들에게 북쪽에서 살고 왔다는 경험은 지워 버리고 싶은 흔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때 얘기는 별로 들은 적이 없다. 그 다음에 불이익을 당했는지도 잘 모르겠다.”며 며느리 이씨는 말꼬리를 흐렸다.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은 구미리 같은 심심산골에도 참화를 몰고 왔다. 빨치산이 내려와 동계면 전체에 불을 질렀다. 안 할머니 가족은 이웃 마을인 적성면으로 피란을 가야 했다. 돌아와 보니 집이고 학교고 죄다 재로 변해 있었다. 사람들은 우두커니 강변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해 겨울은 혹독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굶주리고 또 굶주렸다. 안 할머니는 “나락으로 죽을 쒀 먹곤 했다.”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할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얘기를 듣는 선희 양의 눈썹도 덩달아 꿈틀거린다. 1980년엔 이웃 광주에서 변이 났다. “대통령이 광주 사람들을 다 때려 죽인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당시 67세이던 안 할머니는 가족 중에 광주에 사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불똥이 이곳 구미리에까지 튈까봐 할머니는 노심초사했다고 한다.세상이 뒤집어질까 싶어 무섭기도 했단다. 아들 양씨는 지금도 술 한 잔을 할 때마다 그때의 울분을 토한다. 안 할머니의 인생은 우리 현대사만큼이나 사연도 곡절도 많았다. 그러나 주어진 삶을 게을리하지 않아 90 평생 사는 동안 2마지기 남짓 했던 땅은 10마지기로 늘어났다. 슬하의 5남매가 각각 자손도 여럿 낳았고 자신을 극진히 모시는 아들과 며느리 내외는 주위로부터 효자효부라는 칭찬도 듣는다. 안 할머니는 “자식들이 나에게 아주 잘 한다.”고 했다. 할머니의 얘기를 전부 들은 선희 양은 폭 하고 한숨을 쉰다. 할머니가 겪어온 세월이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선희 양은 “내가 1913년에 태어났으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그도 그럴 것이, 1997년생인 선희는 별로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다. 집안 형편도 넉넉한 편이긴 하지만 안 할머니가 겪었던 것 같은 ‘국민적 고통’을 선희 양은 치러본 적이 없다. 1961년 20억달러였던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는 2007년 8000억달러로 400배 늘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들었던 ‘오 필승 코리아’의 추억은 선희 양에게 세계 속에서 당당한 한국의 이미지를 체화시켰다. 선희 양에게 우리나라는 ‘전쟁을 겪은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 10대 강국’으로 각인돼 있다. 선희 양은 “할머니가 사셨던 때보다 지금 우리나라가 훨씬 강해진 것 같다.얼마 전 이소연 언니가 우주선을 탔을 때 우리나라가 정말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선희 엄마 정은경씨에게 맏딸 선희는 ‘복덩어리’다. 정씨는 1997년 대학을 갓 졸업한 선희양 아빠와 결혼을 하고 곧바로 선희를 낳았다. “모은 돈은 없어도 둘이서 벌면 생활이 빨리 안정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결혼을 하고 정씨 부부는 소를 기르기 시작했다. IMF환란 때문에 한 마리에 200만원 가까이 하던 소값이 50만원으로 떨어진 적도 있다. 20마리로 시작해 지금은 50마리를 키우는데, 돈벌이가 쏠쏠해 살림이 많이 불었다. 정씨는 “소띠 해에 선희를 낳고 소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많이 안정을 찾았어요. 선희가 우리 집에 복을 갖고 왔어요. 저희는 여러 모로 소하고 인연이 깊은 집이에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전엔 순창군에서 열린 영어말하기 대회에 동계면 대표로 나가 2등을 차지했다는 선희 양의 장래 희망은 변호사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고 싶어서”가 이유일 정도로 속이 깊다. 선희 양은 “2009년이 나의 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매우 기대돼요. 6학년 올라가면 부모님 실망시키지 않고 공부 열심히 할 거예요.”라며 싱긋 웃는다. 굶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생을 살아온 안 할머니는 10대 때 시집온 일과 하루 종일 길쌈질을 한 것 외에는 이렇다할 어린 시절 추억이 없다. 학교는커녕 서당 근처도 가본 적이 없다. 글을 모르지만 집안의 제삿날과 손자·손녀 생일까지 기억해 내고, 여전히 된장찌개와 숙주나물을 제일 좋은 음식으로 친다. 할머니의 가장 큰 시련이 6·25전쟁이었다면 피자와 햄버거를 좋아하는 선희 양의 시련은 앞으로 치를 대학입시였다. 독서와 인터넷 서핑이 취미인 선희 양의 올해 목표는 시험 성적을 평균 90점에서 95점으로 올리는 것이다. 안 할머니는 건강하게 살다 남편 곁으로 가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서로의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84년 나이차를 뛰어 넘은 안 할머니와 선희양은 툇마루로 나와 얼굴을 맞대고 사진을 찍었다. 지나온 세월만큼 한 가닥씩 파인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주름살과 이제 여드름이 오소소 돋기 시작한 선희 양의 밝은 얼굴은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이뤘다. 대한민국의 20세기 역사를 한눈에 보는 듯했다.할머니의 검버섯이 늘어난 만큼 우리나라는 진화해 왔고, 선희 양의 해맑은 웃음이 계속될수록 우리나라는 더욱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소의 해를 맞아 만난 할머니와 어린 소녀는 그렇게 서로에게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발견하고 있었다.
  • [뉴스 다큐 시선] 공중전화 속의 세상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를 많이 찾아요. 불황이 심각해지면서 휴대전화나 집전화 요금이 버거워진 사람들이 주로 저를 이용하죠. 수입은 월 20만원이 넘고요. 사람들은 늘 저를 필요로 하지요. 항상 바쁘지만 사라질 염려가 없어 맘이 편해요.”-가리봉동 외국인노동자촌 공중전화 “저는 ‘신상’ 공중전화기랍니다. 휴대전화처럼 문자메시지까지 보낼 수 있는 최신형이죠. 제 옆에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까지 있어요. 하지만 첨단이면 뭐합니까. 제 발밑에는 항상 노숙자들이 자고 있었요. 저에게 들인 돈이 아까워 당장 철거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없어지겠죠.”-서울역 최신형 공중전화 “월 1000원도 못 번답니다. 회사는 늘 저를 퇴출시키려고 노려보고 있죠. 하지만 경찰서 안에 있기 때문에 버틸 만해요. 공공성 때문에 섣불리 저를 제거할 수 없답니다. 동료 전화기들은 저를 철밥통이라고 부러워하지만 매일 외줄 타는 기분이에요.”-영등포경찰서 민원실 공중전화 ●불황에 중국 가족에게 전화 횟수도 뜸해져 중국동포 밀집지역인 서울 가리봉동 시장 입구에는 공중전화 3대가 나란히 있다. 이 전화기들은 매일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국의 가족들과 나누는 애틋한 대화를 엿듣는다. 1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30여명이 공중전화를 찾았다. 중국동포 박모(52)씨는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새해 안부를 전했다. 박씨의 눈은 전화기 액정화면에 뜨는 전화카드 잔액에 고정돼 있었지만 귀는 가족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하고 싶은 듯 수화기에 꼭 붙어 있었다. 그는 “요금을 못내 두 달 전에 휴대전화가 끊겨 공중전화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2007년말 한국에 와서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박씨는 고향에 있는 가족과 1년에 두세 번밖에 통화하지 못 한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100만원을 보내면 8000위안은 됐는데, 지금은 몇달을 모아 200만원을 보내도 1만위안밖에 안 돼 전화비도 부담스럽습니다.” 중국 옌지에서 온 성모(36)씨는 중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일자리가 여의치 않아 다시 들어가야 할지 상의했다. 그 역시 요금이 부담돼 휴대전화는 쓰지 않았다. “이 동네 공중전화는 외로움을 달래는 소중한 수단이죠. 전화를 걸러 나왔다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전화부스가 약속장소가 되지도 하지요.” ●전화기 앞에서 고개 숙인 사나이 1일 오전 7시 이경수(46·일용직근로자)씨는 가리봉동 시장 공중전화기의 버튼을 만지작거렸다. 정작 전화는 걸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1988년 결혼했지만 경마에 빠져 전 재산 3억 5000만원을 탕진했고, 2001년 이혼하고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이씨는 “새해 첫날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할까 망설였는데, 7년이 지났지만 아직 전화드릴 면목이 없어서 그냥 끊었다.”고 힘없이 말했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알뜰족도 눈에 띄었다. 이해중(55·회사원)씨는 “휴대전화가 있지만 요금을 아끼기 위해 일반전화번호로 걸 때는 공중전화를 고집한다.”고 말했다. “겨울이라 춥다고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휴대전화를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다 낭비죠.” 이씨가 자리를 뜨고 30여분이 지나자 한 할아버지가 전화기를 일일이 수색(?)했다. 자세히 보니 카드투입구나 동전반환구에 쓰다 남은 카드나 동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 할아버지 바로 뒤에 전화기를 쓴 김모(24·여)씨는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결제하느라 휴대전화 요금이 49만원이나 나왔는데, 이 돈을 결제하지 못해 결국 휴대전화가 끊겨 어쩔 수 없이 공중전화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외화내빈 공중전화의 고민 서울역 광장에 있는 공중전화는 현금자동입출금기와 나란히 서 있다. 빨간색 가로기둥이 산뜻한 느낌을 준다. 공중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하루 종일 지켜봐도 이 전화기를 이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다만 오후 5시가 되자 노숙자 3명이 전화기 밑에 앉아서 막걸리를 마셨다. 밤이 깊어지면 노숙자들의 잠자리가 됐다. 서울역 광장 종합관광안내소에서 일하는 직원마저도 신형 공중전화가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주위 상인들은 “기능과 디자인이 아무리 좋아도 유동인구도 별로 없는 곳인데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말했다. 김포 해병대 2사단에 근무하는 김모(23) 병장은 부산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이병 때는 부대 내 공중전화를 아예 붙잡고 살았다.”면서 “군대 오기 전에는 공중전화를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부대 안에서는 정말 소중하더라.”고 말했다. 엄경헌(22) 상병은 “공중전화를 쓰면서 잊어버렸던 전화번호를 많이 외우게 됐다.”면서 “편리함은 종종 사람의 능력을 퇴화시킨다.”고 말했다. ●수익성과 공공성 사이에서 지난 2일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서울 영등포경찰서 민원봉사실에 있는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공중전화를 관리하는 KT링커스측은 “월 1000원 미만의 수익을 내는 곳으로 공중전화 한 대당 연간 관리비가 100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효율성이 최악인 전화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서 측은 공공성을 위해 이 전화기가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등포경찰서 경무계장은 “노인들,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왔거나 배터리가 떨어진 민원인들, 정액제 요금을 다 사용해 휴대전화가 먹통인 중고생들에게는 이 전화가 없어서는 안 된다. ”면서 “수익성을 따지자면 당연히 수지가 안 맞겠지만 한 명의 민원인이라도 전화가 필요하다면 전화기를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 경찰은 “요즘 유행하는 구조조정과 마찬가지로 수익성으로만 보면 세상에 남아날 것들이 얼마나 되겠냐.”면서 “치안서비스처럼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평생에 단 한 번 필요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무언가가 세상에는 정말 많다.”고 말했다. 이경주 김민희 장형우기자 kdlrudwn@seoul.co.kr ■ 석준호씨의 80년대 공중전화 추억 “구멍가게 번성 일등공신… 시위학생 방패막이였죠” “1980년대에는 상점마다 공중 전화를 서로 가까운 데 놔달라고 전쟁을 벌였죠.” 1983년 10월에 입사해 2000년까지 서울 영등포구, 동작구 등지에서 공중전화 설치, 유지보수 등의 업무를 담당한 KT링커스 총무팀 석춘호(44) 팀장은 5일 ‘공중전화 전성시대’였던 80년대를 추억했다. 다이얼을 돌려야 하는 기계식 전화는 요금조절 장치가 너무 조여지면 동전을 넣어도 통화가 안 되고 느슨하면 돈을 넣지 않고도 무료로 통화가 가능하기도 했다. 석씨는 “상점 주인들은 공중전화가 주위에 있어야 장사가 잘된다고 서로 가게 가까이 놔달라고 졸랐다.”고 회상했다. 요즘은 가게 앞에 공중전화를 설치하면 가게 출입문을 가리니 옮겨달라고 항의한다. 1987년 서울대 공중전화를 관리하러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가다가 급작스럽게 터진 최루탄에 잔디밭을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데모를 하던 여학생들이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남학생들은 정문 쪽에 있던 전화부스를 눕혀 바리케이드로 사용했다. 석씨는 “데모가 끝나면 전화기를 전부 수리하고 교체하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회상했다. 80년대 여의도 국회의사당 1층에 있는 공중전화는 흥행의 보증수표였다. 특히 국정감사 시기가 되면 1층에 공중전화를 쓰려는 공무원들과 기자들이 긴 줄을 섰다. 석씨는 “당시에는 비상근무조가 있어 24시간 근무했지만 요즘은 아예 당직도 없어졌다.”면서 “공중전화가 추억이 되는 것을 보면서 말 그대로 시원섭섭하다.”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깔깔깔]

    ● 공처가의 고민 초췌한 모습의 공처가가 의사를 찾아갔다. “선생님.며칠째 악몽에 시달려요.” “자,진정하고 꿈 내용을 말해보세요.” “매일 밤 10명의 아내와 사는 꿈을 꾸거든요.정말 미치겠어요.”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그게 왜 악몽이죠?좋을 것 같은데….” “뭐라고요?그럼 선생님은 10명의 여자를 위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해 본 적 있으세요?” ● 술취한 할아버지 시골길에서 취한 노인이 비틀거리고 있는 것을 본 젊은이가 얼른 달려가서 말했다. “할아버지.제가 좀 부축해 드릴까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괜찮아.저기 제멋대로 흔들리는 산이나 부축해 주어라.”
  • 죽는 날 1000만달러 복권 남기고 떠난 할아버지

    미국 코네티컷주 댄버리에 사는 도널드 피터스는 지난해 말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도 59년 부부로 지내온 아내에게 뜻깊은 선물을 남겼다.  그는 지난해 11월1일 아내와 함께 늘 해오던 대로 동네 잡화점에 들러 코네티컷주에서 발행하는 복권 두 장을 구입했다.20년 전부터 부부가 늘 함께 해오던 일이었다.그런데 복권을 구입한 바로 그날,그는 마당에서 일하다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세상을 뜨고 말았다.향년 79였다.  미망인 샬럿(78)은 그를 잃은 슬픔에 복권을 구입한 사실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엄청난 행운을 거머쥔 사실조차 모른 채 복권을 썩힐 뻔했다.  샬럿이 보관하고 있던 복권이 무려 1000만달러(약 130억원)에 당첨돼 도널드 피터스는 누구보다 값진 행운을 유산으로 남기게 됐다고 AP통신이 4일 전했다.샬럿은 “잡화점에 있었는데 그들이 날 보고 복권에 당첨됐다고 그러지 뭐유.난 (당첨금이) 얼마인지도 몰랐다니깐요.”라고 말했다.그는 처음에 당첨금이 600만달러쯤 되겠지 생각했는데 1000만달러란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덧붙였다.  샬럿은 앞으로 60일 안에 일시금으로 세금을 제하고 600만달러를 받을지 아니면 매년 47만 7300달러씩 21년에 걸쳐 지급받을지를 결정해야 한다.그러나 샬럿은 이 돈으로 무얼 할지조차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그는 “집에 돌아가 차분히 앉아 생각을 좀 해봐야겠수.”라고 말했다.  세 자녀 중의 한 명인 브라이언은 “살아있었다면 아버지도 무척 좋아했을 것이다.그는 세상을 떴지만 어머니에게 많은 돈을 남겼다.”며 “아버지라면 ‘잘 궁리해봐!”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속삭임⑫] 새덮치기

    [속삭임⑫] 새덮치기

    바람이 차다. 급변하는 사회만큼이나 빠르게 변하는 계절이다. 몇 년 전 친구와 서해안 철 지난 해수욕장에서 밤을 새운 적이 있다. 수많은 피서객이 북적거렸던 흔적만 남아 있는 해변, 삐걱거리는 반쯤 파손된 샤워실 문, 그 위에 내리던 낮보다 밝은 달빛의 쓸쓸함이 문득 생각나는 들판에 서 있다. 가을걷이가 모두 끝난 들판을 계절의 발자국 따라 걷는 일은 쓸쓸하다. 뜰을 비워 마음의 곳간을 채우고 나서도 발걸음 옮길 때마다 자꾸 깊어지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새덮치기는 썰매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우리들의 겨울철 놀이였다. 추수가 끝나면 새들은 들판을 떠나 하나 둘 민가로 날아들기 시작한다. 눈이 오면 상황은 끝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새덮치기를 잘 만드셨다. 노끈을 꼬아 동그랗게 활을 휘어 촘촘히 망을 엮은 후 더 큰 활을 휘어 새끼줄을 두 겹으로 연결하고, 그곳에 미리 만들어 둔 망으로 된 활을 끼우고 큰 활 중간에 짚을 끼운다. 새덮치기가 완성되어 가는 동안 나는 할아버지의 익숙한 손놀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헛기침 서너 번이면 뚝딱 새덮치기 하나를 만드셨다. 할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새덮치기에 새들이 좋아하는 조 이삭을 달고 잡풀이나 짚단 등으로 새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위장을 해놓으면 긴 기다림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요즈음으로 치면 복권을 사고 결과를 기다리는 그런 기다림의 시간이 내 겨울의 긴 공간을 메워주었다. 지금껏 나의 겨울에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새덮치기가 있다. 그때 뒤안에 설치해 놓았던 새덮치기는 내 기억 속에서 아직 새들을 기다리고 있다. 해가 막 서산을 넘어가고 있다. 논둑 미루나무 꼭대기에 달려있던 잎들이 우르르 논으로 내려앉는다. 먹이를 찾는 것인가? 어두워질수록 사랑방 군불에서 막 구워낸 참새구이에 묻은 재를 후후 불어 털어내고는 살이 제일 많은 다리와 가슴살을 떼어 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점점 또렷해진다. 엉덩이를 털고 돌아섰다. 겨울이 코앞에 있어서일까? 가슴이 시리다. 글·사진 문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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