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읽는 동화] 소식 들었어요? /원유순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 산이 있어요. 그래서 이름도 쌍봉산이지요. 쌍봉산 양 봉우리에는 신기하게도 비슷하게 생긴 소나무가 한 그루씩 자라고 있었어요. 오른쪽 봉우리에는 바위틈에, 왼쪽 봉우리에는 산비탈에, 아슬아슬하게 몸을 붙이고 있었지요. 두 소나무는 쌍봉산 봉우리가 마주보듯 그렇게 서로 마주보며 수백 년을 살아 왔어요.
두 소나무는 힘들 때마다 서로를 바라보며 힘을 얻었어요.
오른쪽 봉우리, 바위틈에 사는 늙은 소나무는 비록 삭막한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살아왔지만, 한 번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말라 죽겠다 싶으면 하늘이 죽지 않을 만큼 비를 내려주었고, 얕은 뿌리가 꽁꽁 얼어붙겠다 싶으면 해님이 곧 따스한 햇볕을 쬐어 주었지요. 또 이따금 산새들이 날아와 피곤한 날개를 접고 하룻밤을 지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그래서 늙은 소나무는 하루하루가 즐거웠어요.
어느 날이었어요. 무언가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쿵쿵, 드륵 드르륵.”
처음 듣는 소리였지만 소나무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어요.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별별 요상한 일을 다 겪었고, 그 요상한 일들을 아무 일 없이 잘 견뎌왔기 때문이지요.
소나무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가물가물 잠에 빠져들 무렵이었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붉은머리 오목눈이였어요. 이따금 친구들을 휘몰아 데리고 와서는 재잘재잘 지껄이다 가는 작은 새였지요. 붉은머리 오목눈이는 오늘따라 혼자 와서는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호들갑스럽게 늙은 소나무를 불렀어요.
“왜 그러니?”
늙은 소나무는 심드렁하게 대꾸했어요. 달디 단 낮잠을 깨운 오목눈이가 못마땅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소식 들으셨어요?”
“무슨 소식을 말이냐?”
“아이참, 저 시끄러운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아시냐구요.”
오목눈이는 작은 꽁지깃을 더욱 요란스럽게 까닥까닥 흔들었어요.
“네가 얘기를 안 해 주었는데 내가 어찌 알겠니?”
“아하, 내가 아직 말 안 했구나. 그래서 할아버지는 모르는구나.”
오목눈이는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무슨 일인데 그러니?”
그제야 할아버지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있잖아요. 저쪽 봉우리가 곧 없어진대요.”
“뭐라구? 봉우리가 없어져?”
할아버지는 놀라서 목소리가 커졌어요. 가지가 파르르 떨릴 지경이었지요. 할아버지는 눈을 들어 멀리 보이는 쌍봉산 왼쪽 봉우리를 바라보았어요. 왼쪽 봉우리 비탈에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을 닮은 늙은 소나무가 하늘을 향해 가지를 벌리고 늠름하게 서 있었어요.
“에이, 넌 참 거짓말도 잘 하는구나.”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사람들이 저 봉우리를 깎아 고속도로를 놓는대요. 씽씽 자동차가 지나다닐 거래요.”
“에이, 설마. 쌍봉산 봉우리가 어떻게 없어져? 저 왼쪽 봉우리가 없어지면 쌍봉산이 아니게?”
소나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오목눈이가 갖잖게 보였어요.
“그러게요. 이제는 쌍봉산이 아니라 홑봉산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 걸요.”
오목눈이는 그렇게 말하고 호르르 날아가 버렸어요.
며칠이 지났어요. 잠에서 깬 소나무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어요. 거짓말처럼 쌍봉산 왼쪽 봉우리가 감쪽같이 없어졌기 때문이지요. 자신을 닮은 늙은 소나무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어찌 저럴 수가?’
늙은 소나무는 침침한 눈을 부릅뜨고 보았지만, 쌍봉산 왼쪽 봉우리 산비탈에 있던 소나무는 보이지 않았어요. 늙은 소나무는 왼쪽으로 눈길을 둘 때마다 한쪽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했어요.
붉은머리 오목눈이는 친구들과 놀고 있었어요. 호들짝호들짝 날갯짓을 하며 참나무 가지를 오락가락 하기도 하고, 칡넝쿨이 흐드러진 잎 사이로 숨바꼭질도 했지요. 숲에는 먹을 것이 아직은 풍부했어요. 빨간 산사나무 열매도 있었고, 까만 쥐똥나무 열매도 흐드러졌어요.
그래서 오목눈이들은 신나게 놀다가 헛헛하면 열매를 쪼아 먹으면 되었지요.
“얘들아, 얘들아. 소식 들었니?”
다람쥐 쪼르가 쪼르르 달려오며 오목눈이를 불렀어요.
“무슨 소식?”
오목눈이의 동그란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거렸어요.
“저 봉우리 늙은 소나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
“뭐어?”
빨간 오목눈이 눈이 순간 까맣게 바뀌었어요. 잔뜩 먹구름이 낀 하늘처럼 말이지요.
“며칠 전부터 시름시름 앓았다고 하더라구.”
다람쥐 쪼르의 말을 들은 오목눈이는 가만히 한숨을 쉬었어요.
‘어떡해. 내 말을 듣고 마음이 허전했던 거야. 할아버지는….’
오목눈이는 포르르 날아 산봉우리 늙은 소나무 곁으로 갔어요. 정말 다람쥐 쪼르의 말대로였어요. 늘 푸르던 잎은 누렇게 말라서,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뚝뚝 떨어지고 있었어요. 삭정이처럼 메마른 가지는 오목눈이가 건드릴 때마다 토도독 부러졌고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잘못했어요. 나쁜 소식은 그렇게 빨리 전하지 않는 건데...... .”
오목눈이 가슴에는 차디찬 겨울바람이 불었어요.
다람쥐 쪼르는 추운 겨울을 앞두고 열심히 알밤을 모았어요. 여기저기 알밤을 숨기기 좋은 곳을 찾아 앞발로 땅을 헤집은 다음, 토실토실한 알밤을 감춰두었어요.
‘지난 겨울에는 알밤 숨긴 곳을 찾지 못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원. 나도 참 바보였어.’
다람쥐 쪼르는 알밤 숨긴 곳을 잊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돌아보았어요.
‘저기 저 참나무 밑에 세 알, 뾰족 바위 밑에 네 알, 다래덩굴 밑에 다섯 알.’
다람쥐 쪼르는 작은 머릿속에 알밤 숨긴 곳을 꼭꼭 저장해 두었어요.
해질녘이 되어서야 다람쥐 쪼르는 먹이 저장을 다 마쳤어요.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지. 우리 아기가 눈이 빠지게 기다릴 거야.’
다람쥐 쪼르가 허리를 펼 무렵이었어요.
“쪼르, 쪼르야. 소식 들었니?”
잿빛 털을 가진 토끼, 재눈이었어요. 재눈이는 깡충깡충 뛰어 쪼르에게 다가왔어요.
“무슨 소식?”
다람쥐 쪼르는 까만 눈을 도록거리며 재눈이를 바라보았어요.
“있잖아, 붉은머리 오목눈이들이 쌍봉산을 몽땅 떠난다는구나.”
“아니, 왜?”
“오목눈이 중 하나가 시름시름 앓더니 죽게 생겼다는 거야. 거 왜 있잖아. 어디든 호들짝호들짝 날아다니며 소식 전해주기를 좋아하는, 재잘이 오목눈이 말이야.”
“왜, 어디가 아픈데?”
까닭 모르게 쪼르의 가슴이 턱 내려앉았어요. 몇 달 전 늙은 소나무의 죽음을 전할 때 오목눈이의 슬픈 눈이 퍼뜩 떠올랐어요. 왠지 가슴이 싸하게 시렸어요.
“나도 잘 몰라. 어쨌든 서너 달 전부터 잘 먹지도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대. 오목눈이들은 저 산 아래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병이 났다고 생각하나 봐. 그래서 조용한 숲으로 이사를 간대나.”
잿빛 토끼, 재눈이는 말을 마치자 깡충깡충 뛰어 숲속으로 가버렸어요.
‘어떡해. 소나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 때문이었어. 소나무 할아버지와 오목눈이 사이가 좋았다는 사실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런 소식은 전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
다람쥐 쪼르는 그날 밤 내내 한숨도 자지 못했어요.
겨울바람이 휘잉휘잉 부는 밤이었어요.
잿빛 토끼 재눈이는 먹이를 구하러 집을 나왔어요.
“아이, 추워. 바람 아저씨. 조금만 살살 입김을 불어주세요.”
재눈이가 말했어요. 그 때 겨울바람이 말했어요.
“소식 들었니? 다람쥐 쪼르가 말이다….”
“뭐라구요? 쪼르가 어쨌다구요?”
재눈이는 귀를 쫑긋 세웠어요.
“아니다. 쌍봉산이 홑봉산이 되더니 온통 나쁜 소식뿐이로구나.”
겨울바람은 후우 한숨을 쉬더니, 입을 다물었어요. 재눈이는 자기도 모르게 오싹 소름이 돋았어요. 지난 가을 쪼르에게 오목눈이 소식을 전했을 때, 슬퍼지는 쪼르의 눈망울이 떠올랐어요. 재눈이의 빨간 눈이 더 빨개졌어요.
겨울바람은 재눈이를 잠깐 동안 바라보더니, 다시 휭휭 입김을 불며 하나뿐인 쌍봉산 봉우리를 넘었어요. 바싹 마른 낙엽들이 겨울바람을 따라 하늘 높이 날아올랐어요.
재눈이는 빨간 눈을 들어 뱅글뱅글 맴도는 낙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어요.
‘아, 이제 어디로 가지?’
●작가의 말
흰 눈처럼 포근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 시각, 내가 느끼는 위기감이 큰 탓일 게다. 동화 세계에서는 이미 진부한 소재가 된 환경문제를 진부하지 않게 보이려고 고심을 했다. 외치거나 속삭여도 꿈쩍도 않는 우리의 안일함이 이 한편의 동화로 조금이나마 바뀌었으면 좋겠다.
●약력
1990년 계간 ‘아동문학평론’ 신인상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 MBC 창작동화 대상, 계몽사 아동문학상에 이어 2009년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있었으며, 지금은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 ‘까막눈 삼디기’, ‘얀손 씨의 양복’, ‘색깔을 먹는 나무’, ‘모하메드의 운동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