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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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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무료 노인법률 서비스’ 결실 잇따라

    #사례1 딸이 5개월 전 교통사고로 사망해 슬픔에 빠져 있던 김모(74) 할아버지. “딸이 빌려간 돈을 갚으라.”는 낯선 이의 협박 전화에 줄곧 시달려 왔다. 김 할아버지는 시립 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 무료 법률상담을 요청해 변호사로부터 “딸의 채무에 보증을 서지 않았기 때문에 김 할아버지가 딸의 빚을 갚을 필요가 없고, 계속 독촉 전화가 오면 경찰에 협박죄로 신고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한시름 놓았다. #사례2 노후를 위해 작은 평수의 다세대주택 한채를 월세로 내놓은 송모(80) 할아버지는 세입자가 월세도 주지 않고, 집을 비우지도 않아 속을 썩였다. 법을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지만 시립 강서노인종합복지관의 무료 법률상담을 통해 1심 재판에서 승소했다. 서울시가 19개 시립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시행 중인 ‘무료 법률상담서비스’가 5개월 만에 정착돼 가고 있다. 이 서비스는 이제까지 민원인이 시 청사까지 찾아와 상담을 해야 했던 것을 변호사가 직접 노인종합복지관으로 찾아가 1:1 대면 상담을 하는 방식이다. 각 분야의 전문 변호사 345명이 복지관별로 월 1회 상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상담 횟수와 시간은 탄력적이다. 이제까지 320여명의 노인들이 무료 법률상담서비스를 이용할 정도로 호응도 높다. 주요 상담 내용은 사소한 채권·채무 문제부터 상속, 임금 체불 등 다양하다. 상담을 원하면 복지관에 문의해 미리 상담 일정을 정하고, 예약일에 복지관 상담실을 방문해 변호사와 대면 상담할 수 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출발 드림팀 시즌2(KBS2 일요일 오전 10시 35분) 매회 웅장한 스케일과 스릴 넘치는 종합 장애물 5종 경기를 선보이고 있는 ‘출발드림팀2’가 이번에는 드림팀 종합장애물 경기 사상 최초로 남녀선수가 함께 도전하는 커플장애물 6종경기를 펼친다. 우여곡절 끝에 선정된 10팀의 커플 중 과연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커플 왕좌를 차지할 주인공은 어느 팀이 될까. ●학자의 고향(KBS1 일요일 오전 7시 20분) 송시열이 유배되었던 제주도 글씐바위에는 그의 한이 담긴 글이 아직도 남아 있다. 조선왕조 500년 중 가장 혼란했던 17세기에 살았던 우암 송시열. 그는 당쟁의 중심이자 18세기 조선 성리학의 초석이기도 했다. 그의 유배 흔적이 묻어 있는 그가 은거했던 화양동의 아름다운 절경과 그의 사상, 삶을 들여다본다.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욕망의 불꽃(MBC 토요일 밤 9시 50분) 태진이 있는 별장을 찾아온 나영은 민재를 설득해 데려가려 하지만 민재는 할아버지처럼 살겠다고 거절한다. 밤늦게 다시 태진의 별장으로 찾아온 나영은 어린 날 자신이 보았던 지옥 같은 장면들을 이야기하며 죗값을 치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 날, 나영은 태진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그것이 알고싶다(SBS 토요일 밤 11시) 1990년대 우리를 가슴 아프게 했던 아동범죄의 피해 아동들. 사건 후 부모 품으로 돌아갔던 그들은 잘 지냈을까. ‘추적 사건과 사람들’에서 방송돼 큰 화제를 모았던 서커스 소녀 심주희양과 아버지가 보험금 때문에 아들 손가락을 잘랐던 사건의 주인공들을 찾아가 현재 모습을 살펴본다. ●사랑을 믿어요(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윤희는 우진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셔츠를 선물로 사지만 우진이 아이들을 야간 업소에서 노래 부르게 한 줄로 착각하고 미사리 공연장까지 쳐들어간다. 우진은 자신을 오해한 윤희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윤희는 울음을 터트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한편 승우는 혜진의 재능과 일에 대한 기회들을 하나씩 마련해 준다. ●반짝반짝 빛나는(MBC 일요일 밤 8시 40분) 정원은 금란에게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자고 말한다. 그런 금란은 평창동 집에 가서 나희와 함께 자신이 살게 될 방을 꾸미고 정원의 가족들과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지웅처럼 편집일을 배우게 될 거라고 선언한다. 한편 금란은 승준에게 앞으로 연락해도 되느냐고 묻고, 정원은 승준과 함께 있는 금란의 모습을 보게 된다. ●SBS스페셜(SBS 일요일 밤 11시) 규모 9.0의 일본 역사상 최악의 대지진이 벌어졌다. 대형 쓰나미와 원전 폭발까지 이어졌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순식간에 누군가의 집과 학교와 회사가 사라졌다. 쓰나미가 몰려와 손써 볼 틈도 없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 둔 채 이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현장을 찾아가 본다.
  • ‘히어애프터’ 개봉으로 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인생

    ‘히어애프터’ 개봉으로 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인생

    ‘올해 나이 여든하나!’ MBC ‘무릎팍도사’의 개그맨 유세윤 버전으로 그렇다. 그런데 이 ‘사내’-2008년작 ‘그랜토리노’의 고집불통 참전용사를 떠올리면 할아버지란 표현은 맞지 않는다-는 지칠 줄을 모른다. 환갑을 넘긴 1990년 이후 감독으로 전성기를 맞았고, 19편을 연출했다. 다작이면 작품 수준이 들쭉날쭉할 법한데, 그렇지도 않다. ‘용서받지 못한 자’와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아카데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이야기와 캐릭터의 힘으로 오롯이 두 시간을 끌고 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얘기다. 그의 신작 ‘히어애프터’(Hereafter)가 24일 개봉했다. 1960년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스파게티 웨스턴’(이탈리아에서 만든 서부영화) 3부작-황야의 무법자·석양의 건맨·석양의 무법자-의 총잡이와 1970~80년대 ‘더티 해리’ 시리즈의 망나니 형사가 어떻게 거장이 됐는지 56년 영화인생을 더듬어 봤다. ●선악이 모호한 총잡이와 무대포 형사 1955년부터 B급 영화의 단역으로 나서던 그가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1959년 CBS 서부연속극 ‘로하이드’였다. 주인공 로디 역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때문인지 감독이던 토마스 카는 “게으르다. 한 번도 촬영 시작을 같이한 적이 없다.”고 뒷담화(?)를 남겼다. ‘로하이드’의 인기가 쇠할 무렵 기회가 왔다. 무명에 가깝던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원제:A Fistful of Dollars)였다. 이때가 1964년. 레오네 감독은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을 원했는데 거절당했다. 이스트우드는 “모두에게 친절한 영웅에 신물이 나던 찰나였다. 안티 히어로가 될 때임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저예산 스파게티 웨스턴 3부작은 흥행은 물론,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판초를 뒤집어 쓰고 시가를 씹어대는 고독한 카우보이는 존 웨인으로 대표되는 정통 서부극의 영웅과는 정반대 지형에서 관객의 뇌리에 각인됐다. 1970~80년대는 ‘더티 해리’ 5부작과 보냈다. 샌프란시코의 강력계 형사 해리 캘러헌이 법망을 피하는 악당들을 매그넘44 권총으로 단죄하는 이 영화는 ‘파시스트적인 폭력’이란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관객은 묘한 쾌감을 느꼈다. 전성기에도 그의 연기에 대해 “뻣뻣한 나무 막대기” “얼굴 찌푸리고 서 있는 것 외에 할 줄을 모른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이스트우드는 “연기는 고함치고, 울부짖고, 감정을 쥐어짜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감독 20년 만에 거장 반열 경력이 쌓이면 카메라의 뒷사정이 궁금해지는 모양. ‘더티 해리’ 돈 시겔 감독의 연출 권유에 솔깃해진 그는 1971년 데뷔작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를 찍으면서 제작사 맬파소프로덕션을 차렸다. DJ와 스토커를 다룬 데뷔작은 흥행은 물론, ‘소름 끼치는 스릴러이자 아름다운 음악영화’란 호평을 얻았다.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것은 20년이 지난 뒤. 악명을 떨쳤던 무법자가 은퇴 이후 조용히 살려고 하지만, 악덕 보안관과 피할 수 없는 대결에서 결국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용서받지 못한 자’로 1992년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쓸었다. 배우 출신으로는 5번째 감독상 수상. 2005년에는 30대 여성복서와 늙은 트레이너의 ‘유사 부녀’ 관계를 다룬 ‘밀리언달러 베이비’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또한번 거머쥐었다. 필름 바깥의 삶도 흥미롭다. 1952년 공화당원이 됐고, 68·72년 리처드 닉슨의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지원했다. 하지만 한국·베트남·이라크전에서 미국이 ‘세계의 경찰’인 척하는 것은 질색했다. 스스로는 “리버테리언”(자유지상주의자)이라고 말한다. 1986~88년 카멜시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중소기업과 환경 보호에 힘썼다. ‘아름다운 보수주의자’란 수식어가 붙었다. ●‘히어애프터’는 어떤 영화 기획자로 나선 스티븐 스필버그와의 협업으로도 화제를 모은 ‘히어애프터’(12세 이상 관람가)는 사후세계를 다룬다. 영혼과 대화하는 심령술사 조지(맷 데이먼)와 쓰나미에 휩쓸려 죽다가 살아난 여기자 마리(세실 드 프랑스), 모든 걸 의지했던 쌍둥이 형을 잃은 마커스(프랭키 맥라렌)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한발짝 물러서 관조한다. 죽음의 위험이 일상화된 세상에서도 결국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란 메시지를 던진다. 이스트우드는 “저 세상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저마다 믿는 바는 있지만 모두 가설일 뿐이다. 가 봐야 아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영화 속 사후세계의 영상은 평화롭다. 노감독은 죽음마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25일 TV 하이라이트]

    ●TV 미술관(KBS1 밤 12시 10분) ‘아트데이트’에서는 설치미술가 강익중과 함께 최북단 비무장지대(DMZ)의 유일한 초등학교인 경기 파주시 군내면 대성동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7번째 ‘희망의 벽’을 설치한다. DMZ 분단선에 인접한 대성동 초등학교 아이들의 꿈을 통해 절망의 선이 희망의 선으로 변하길 바라는 강익중, 그의 작품 세계를 함께 만나 본다. ●VJ특공대(KBS2 밤 10시) 폐업 위기에서 가격 파괴로 승부수를 던진 가게들이 있다. 강원 강릉시의 초호화 리조트 부럽지 않은 펜션에서는 매주 화요일마다 1인 9900원의 특가 식사를 제공한다. 화요일 숙박 시엔 황토 찜질방, 노래방, 노천탕까지 무료라는데…. 비수기에 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가격 파괴 풀 서비스로 대박 행진을 하고 있는 현장을 찾아가 본다. ●MBC 파워매거진(MBC 밤 6시 10분) 꽃집 아가씨는 깃털처럼 가볍다, 청초하다,라는 편견을 무참히 깨는 인천의 한 주부가 있다. 화분에 물을 주고 예쁘게 꽃꽂이를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축구 생각뿐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도 직접 체험할 기회는 흔치 않다. 남성 못지않게 그라운드를 누비며 열의에 불타오르는 ‘레이디 사커’를 만나 본다.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SBS 밤 8시 50분) 38살 나이 차이로 아버지뻘인 89세 할아버지를 남편으로 맞이한 여자의 러브 스토리. 여자는 남편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지금의 남편이 여자에겐 인생의 스승이자 모든 걸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데…. 10년의 세월을 보내고서야 비로소 그의 아내가 될 수 있었던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인생 후반전(EBS 밤 10시 40분) 책으로 세상을 꿈꾸는 남자 강수걸씨. 부산 토박이인 그는 10년째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지역에 작은 출판사를 차렸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은 그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었고, 마침내 대학 시절부터 꿈꿔 온 출판사를 열게 된다.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는 그의 특별한 인생 후반전 이야기를 함께해 본다. ●명불허전(OBS 밤 10시 5분) 시사만화가 박재동 교수의 진행으로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 인간문화재인 우봉 이매방 선생의 77년 춤 인생을 들여다본다. 국내에서 두 종목 인간문화재는 그가 유일하다. 전통 춤의 계승과 더불어 한국 춤 형태를 과학적으로 재정립한 춤꾼이자 20세기와 21세기를 잇는 전통 춤의 가교이기도 하다.
  • 송재호·윤소정 “갈 길 머잖은 노년의 사랑 더 순수”

    송재호·윤소정 “갈 길 머잖은 노년의 사랑 더 순수”

    요즘 극장가에 조용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그대를 사랑합니다’(이하 ‘그대사’)이다. 지난달 17일 개봉한 이 영화는 소리 소문 없이 스크린을 장악하더니 마침내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1일 현재 누적관객은 103만여명. 미국 아카데미 수상작과 블록버스터 공세 속에서도 주말 박스오피스 4위를 지키고 있다. 뒷심의 원동력은 입소문. ‘돌풍의 주역’인 송재호(72)와 윤소정(67)을 만나 ‘그대사 신드롬’과 ‘노년의 사랑’ 등에 관해 얘기를 나눠 봤다. ●그레이 로맨스 할리우드 공세 막아 →‘그대사’는 김만석(이순재·76), 송이뿐(윤소정), 장군봉(송재호), 조순이(김수미·60) 네명의 황혼 순애보를 그린 영화다. 주연배우 네명의 평균 나이가 68.8세다. 젊은 톱스타나 화려한 볼거리도 없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같은 제목으로 인기리에 연재된 만화가 원작이지만 원작자인 강풀의 만화 가운데 영화로 성공한 작품이 별로 없어 크게 흥행을 예상하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강풀 징크스’를 깨고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는데. 윤소정(이하 윤) 일단 영화가 아름답고, 완성도가 높다. 솔직히 요즘 너무 난폭하고, 자극적이고, 악만 남은 영화가 많지 않았나. ‘그대사’는 보고 나면 여운이 남고 좋은 기분을 오래 가져갈 수 있는 영화다. 험한 영화를 보면 꿈자리가 사나운데, ‘그대사’는 꿈까지 행복하게 꾸게 만든다. 송재호(이하 송) ‘그대사’의 ‘까도옹’(까칠하고 도도한 할아버지) 순재 형님이 ‘만추’의 현빈을 눌렀다는 얘기를 듣고 희망을 가졌다.(웃음) 생각만큼 홍보를 많이 못해 아쉬웠는데 관객들이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렇게 후폭풍을 타면 롱런할 수밖에 없다. 내가 출연한 영화 ‘해운대’, ‘살인의 추억’ 등의 관객수를 모두 맞혔는데 ‘그대사’는 650만명을 예상했다. →우유를 배달하는 까칠한 할아버지 만석과 폐품을 수집하지만 따뜻한 미소가 아름다운 할머니 이뿐. 치매에 걸렸어도 남편의 사랑만은 잊지 않는 할머니 순이와 그런 아내 곁을 끝까지 지켜주는 ‘로맨티스트’ 군봉. 이 두 커플이 보여주는 노년의 사랑은 젊은이들의 사랑처럼 감각적이거나 요란하지 않지만 더 큰 설렘과 울림을 준다. 윤 사랑이란 교통사고처럼 느닷없이 찾아와 설레고 아무 조건 없이 서로 좋아하는 것인데, 요즘엔 사랑이라는 포장에 계산이 다 들어가 있다. 그래서 그 거품을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들이 사랑하면서 그런 조건을 따지겠나. 그러니까 더욱 순수하게 느껴지는 거다. 송 노년의 사랑은 생김새나 재력, 사회적 지위를 다 떠나서 인간 본성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 아닐까.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생각하는 그게 진짜 사랑인 거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의 속박을 받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강요하지 않아도 흐르는 눈물 →오롯이 실버 세대를 주인공으로 한 본격적인 상업영화는 ‘그대사’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더 특별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송 맞다. 그동안 노인들이 영화 주변부에 놓인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주인공 삼은 영화는 처음인 듯싶다. 그렇기에 이번 영화가 더 잘됐으면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들의 사랑은 분명 젊은이들과는 다르다. 노인들의 사랑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가슴 아프고 멋지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윤 영화에 만석 할아버지가 이뿐 할머니의 리어카에 우유팩을 얹어주고 신나하는 장면이 나온다. 별 장면 아닌데 찍으면서도 가슴이 뭉클했다.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장면이었다.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노년의 사랑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군봉과 순이 커플이 보여주는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사랑, 만석과 이뿐 커플의 죽음 앞에서 절제하는 사랑. 이 두 사랑은 관객에게 진정한 사랑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데. 송 사랑은 서로에 대한 희생과 봉사라고 생각한다. 배우자는 인생의 반려자라고 하지 않나. 군봉의 입장에서는 전혀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고자 한 거다. 윤 늘그막에 어렵게 찾아온 사랑을 두고 뒷걸음질치는 이뿐을 답답하다고 하는 분도 있는데, 젊은 애들처럼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꼭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론 절제하고 사랑을 가슴에 묻고 사는 것도 필요하다. 이뿐은 평생 소외되고 자신감 없는 삶을 살아 온 이다. 만석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해하면서도 발에 안 맞는 꽃신처럼 그 사랑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거다. ●결혼생활 40~50년… 현실 속 사랑은? →실제 삶에서 두분의 사랑은. 송 아내가 첫사랑이다. 결혼한 지 벌써 50년이 넘었다. 군봉의 사랑에 더 공감한 까닭도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집사람이 젊었을 때 고생한 얘기 하는 것을 싫어해서 지금도 토크쇼에 일절 나가지 않는다. 배우 생활 하면서 본의 아니게 스캔들에 휘말린 적도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50년째 누구보다 견고하고 튼튼한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다. 윤 지난달 28일이 결혼 43주년 기념일이었다(윤소정의 남편은 배우 오현경이다). 그런데 그런 날만 되면 꼭 싸우게 되더라고.(웃음) 사랑은 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부부는 서로에 대한 약속이다. 이 나이 되면 신뢰와 믿음으로 살아간다. →‘그대사’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는 사람이 많지만 영화는 결코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연기하면서 힘들지는 않았나. 윤 남편(오현경)이 이 영화를 두번 봤는데, 실제 윤소정의 모습이 영화에 나온다고 하더라. (서구적인) 외모 때문에 번역극에 많이 출연했고, 그로 인해 카리스마가 많이 부각됐지만 실제 윤소정은 영화 속 이뿐처럼 지극히 한국적인 여자다. 집에서 바느질과 토속 음식을 즐기고, 사고도 아주 고지식하고.(웃음) 송 또래의 삶과 사랑이라 연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추창민 감독과는 처음 작업하는데, 영화의 맛을 아는 아주 똑똑한 ‘여우’다. 배우는 언제나 선택을 받는 직업이지만,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간다는 두 사람. 어쩌면 노년의 사랑이란 이들의 모습처럼 겸허한 삶의 자세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저 혼자 어르신 36명 돕지만 오히려 제 마음이 따뜻해져요”

    “저 혼자 어르신 36명 돕지만 오히려 제 마음이 따뜻해져요”

    “어르신을 보살피면서 제 마음이 오히려 따뜻해집니다.” 20일 ‘홀몸 어르신 돌보미’로 뛰는 남정욱(사진 왼쪽 두번째·45·여·서울 관악구 남현동)씨는 이렇게 말하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보라매동 726-3 시립관악노인복지관 3층에서 만난 그는 동료 도우미들과 나란히 앉아 일과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남씨는 2008년 6월 정부에서 도우미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실시하자마자 뛰어들어 벌써 4년째 접어들었다. 남씨는 관악구청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다가 홀로 지내는 노인들을 찾아가 필요한 서비스를 하는 사람을 모집한다는 정보를 접했다. 그는 “딱하게 여기던 차에 일종의 행운이었다.”며 웃었다. 가족을 뒀는데도 마음껏 돕지 못하는 마당에, 연고도 없는 분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팔을 걷어붙이기로 결심했다. 무작정 돕겠다고 나서면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노인들의 심리 파악과 웃음치료와 같은 대처방법 등에 대한 전문교육을 오전 9시~오후 6시 한달간 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어르신은 박해만(왼쪽 세번째·71·인헌동) 할아버지라고 했다. 시각장애 6급으로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왼쪽 눈이 불편한 어르신이다. 무엇보다 딱한 사정이 남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추위가 몰아닥치기 시작하던 2009년 초겨울 할아버지를 만났다. 수도 시설은 둘째치고 화장실도 없어 이웃집을 전전하거나 적잖게 떨어진 고시원을 이용하고 있더라며 당시의 안타까움을 전했다. 남씨는 “우리 집도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처럼 어렵게 살아가는 어르신도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알았다.”면서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돕겠다는 얘기를 꺼내자 처음엔 할아버지가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힘들었다고 했다. 남씨는 “혼자서 어르신 36명을 돌봐야 해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는 전국 노인복지관 평균 수준이다. 두살 터울의 남매를 둔 남씨는 “첫째인 아들이 올해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1 오전 7시 50분)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요즘 시대 애국자 소리를 듣는 부부가 있다. 전남 담양 시목마을에서 소문난 7남매를 키우고 있는 결혼 15년차 나정채, 김영미 부부.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돌보고 엄마 대신 어린 동생들을 챙기며 아빠의 농사일을 돕는 감나무골 남매들. 서로 마주만 보아도 웃음이 나는 7남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위기탈출 넘버원(KBS2 밤 8시 50분)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사랑스러운 내 아이. 하지만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되면 독이 되는 이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충치가 있는 부모님의 신체 접촉으로 인해 옮을 수 있는 충치균이다. 충치균이 옮을 수 있는 경로와 실험을 통해 문제점을 제시하고 예방법을 알아 본다. ●짝패(MBC 밤 9시 55분) 집 안에 숨겨둔 강 포수의 총을 찾으러 간 도갑은 맹돌 일행에게 부상을 당하지만 뒤늦게 나타난 천둥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봉놋방에 장꼭지 내외를 숨겨준 사실을 알게 된 동녀는 그들을 내보내려 하지만 천둥은 그럴 수 없다며 다툰다. 한편, 민 도령 앞에 나타난 귀동은 보잘 것 없는 활솜씨를 보이며 활쏘기 내기를 할 것을 제안한다. ●재미있는 퀴즈클럽(SBS 밤 8시 50분) 새로운 형식의 퀴즈 버라이어티로 소소한 웃음을 주는 난센스 퀴즈부터 마지막까지 시선을 뗄 수 없는 반전형 사진과 동영상 퀴즈까지, 다양한 유형의 퀴즈를 오직 재치로 풀어야 한다. ‘재미있는 퀴즈클럽’은 기존의 컨셉트를 살리되 웃음을 통한 소통이라는 취지를 보완해 좀 더 강력한 웃음으로 찾아간다. ●다큐10+(EBS 밤 11시 10분) 참다랑어는 번식기가 되면 대서양에서 지중해의 따뜻한 물로 이동 후 짝을 짓고 산란한다. 산란이 끝나면 대서양과 지중해 사이의 관문인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 다시 대서양으로 돌아간다. 번식기에 다랑어들이 좁은 해협으로 몰리는 것을 아는 포식자들은 다랑어들이 지나는 길목에 몸을 숨긴 채 다랑어 무리의 출현을 기다리는데…. ●경찰25시(OBS 밤 11시 5분) 배로 국내와 해외를 오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국제여객터미널. 그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불법으로 국내에 밀수품들을 들여오고 있다. 중국에서 마약을 입수한 용의자는 남녀 각각 한 명씩으로 그들이 마약을 갖고 들어오는 방법은 충격적이다. 군산 해양경찰서에서 불법으로 밀수품을 갖고 들어오는 현장을 덮친다.
  • 허달재 매화도는 다르다

    허달재 매화도는 다르다

    외로운 가지 하나 덩그러니 있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나뭇결도 거칠다기보다는 허벅허벅하니 푸근하다. 포인트처럼 찍히는 화려한 꽃송이도 없다. 그보다는 전체적으로 가지와 꽃이 만발한 모양새다. 사군자 가운데 매화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꽃이다. 해서 대개 혹독한 환경을 이겨낸 모양새로 그려진다. 허나 ‘심조화 화조심’(心造畵 畵造心)이란 이름이 붙은 직헌(直軒) 허달재(59)의 매화는 정반대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격조도 중요하지만 시대상도 중요하지요. 컬러를 쓰고 풍성한 것은 그런 현대 사회의 심상이 투영된 게 아닐까요.” 허 작가는 남종화(南宗畫·중국 명나라 때 막시룡 등이 일으킨 화풍으로 장식적인 북종화와 달리 수묵과 담채 위주의 문인화를 중시)의 대가로 꼽히는 의재(毅齋) 허백련(1891~1977)의 장손이다. 그럼에도 현대적 변용을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기초적인 작업방식에서 할아버지를 떠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림까지 할아버지처럼 그리는 게 계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림 크기도 실용적이다. 병풍 모양으로 제작한 작품들도 있는데, 소파나 침대, 사무실 뒤편에 두고 쓸 수 있도록 그림 높이를 현대적으로 조절했다. 4월 25일까지 서울 명동 롯데갤러리. (02)726-4429.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길섶에서] 도그마/김성호 논설위원

    ‘이번 정차할 역은 성내역입니다.’ 사라진 성내역이란다. 지하철 2호선 객차 속 안내방송이 생뚱맞다. 역명이 잠실나루역으로 바뀐 지 반년이 지났는데. 귀에 콕 박히는 성내역의 느닷없는 부활이 혼란스럽다. 내처 육성으로 흐르는 정정방송. ‘잠실나루역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기관사의 낭랑한 목소리가 왠지 반갑다. 망각의 작용은 참 편리하다. 성내역에서 바뀐 이름 잠실나루가 처음엔 어색하기만 했었다. 안내방송 때마다 생경하고 듣기 거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성내는 자연스럽게 잊혔고, 이젠 귀에 거슬리는 이름이 되었으니. 말 그대로 살게 마련인가 보다. 아니, 빠른 전환의 흐름에 익숙한 탓일까. 그 순치의 속도가 놀랍다. 저기 그 노인이 또 보인다. 매일 아침 맞닥뜨리는 ‘좌측통행’ 할아버지. 이젠 오른쪽 걷기가 널리 퍼져 자리잡았는데. 마주치는 이들에게 화까지 내가며 좌측통행을 소리쳐 고집한다. 나름의 도그마일 터인데. 망각의 순치와 꺾이지 않는 도그마의 사수. 어느 쪽이 더 나은 걸까.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힙합의 대부’ 바비 킴

    [김문이 만난사람] ‘힙합의 대부’ 바비 킴

    이 세상에서 고독이라는 말보다 더 고독한 단어가 있을까. 어느 날 한 남자가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바다에 ‘풍덩’ 빠진다. 그러고는 고독하게 헤엄을 친다. 왜 그랬을까. 노래로 답한다. ‘파란 바다 저 끝 어디에선가 있는 꿈과 사랑을 찾아서~/하얀 꼬리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다시 까닭을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 위를 가르네/나를 편히 쉬게 할 꿈인 걸 너는 아는지~’라는 진한 너울뿐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 남자의 꿈은 척박한 토양에서 싹텄다. 어린 나이 때부터 겪은 쓰디쓴 인종차별과 이방인의 외로움이 우선 그러했다. 오죽했으면 착해지는 자신이 나쁘다며 ‘오늘 단 하루만 착하지 말자.’고 외쳤을까. 그런 처절함에서 스스로 험한 바다를 택했고 한 마리의 ‘파랑새’에서 꿈을 찾아 떠나는 큰 고래가 됐다. 하여 아픔이 있어도, 그 어떤 고통이 가로막아도 ‘편히 쉬게 할 꿈’을 향해 거친 파도를 넘고 또 넘었다. 지금도 그렇게 ‘고래의 꿈’은 계속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힙합 뮤지션 바비 킴(38). 그는 요즘 2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층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팬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면 대개 ‘고독과 처절함에서 나오는 특유의 창법이 심금을 울린다.’고 답한다. 특히 대표곡인 ‘파랑새’와 ‘고래의 꿈’에서 흘러나오는 바비 킴의 음악적 향기에는 세대를 뛰어넘는 신선한 냄새가 짙게 깔려 있다고 한다. 사실 그는 무명세월 11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다 2004년에 발표된 앨범 ‘고래의 꿈’으로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반응은 폭발적일 만큼 계속됐다. 그의 노래가 듣는 이에게 위안이 된다는 이유로 세대를 뛰어넘어 많은 마니아들을 탄생시켰다. 2009년부터 전국투어 콘서트에 나서면서 인기스타로서 바비 킴의 존재를 입증한다. 그해 3월부터 지난해까지 그는 30개 도시에서 50회 이상의 공연으로 9만여 관객을 모았다. 이는 불과 2년 만에 이룬 성과로 최고의 티켓 파워는 물론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가수임을 입증한 셈이다. 팬들은 바비 킴을 가리켜 ‘솔의 대부’ ‘힙합의 대부’라고 칭한다. 그는 오는 26일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 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또 한번의 전국 투어 공연에 돌입한다. 상반기에 4개 도시, 하반기에 10여개 도시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5월 중에는 누적 관객 1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객석 수가 한정된 공간에서 콘서트 3년차 만에 10만 관객을 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 공연에는 트로트를 ‘바비 킴’적으로 해석해 불러 볼 예정이어서 또 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한 카페에서 바비 킴을 만났다. 늘 그랬듯이 이날도 특유의 중절모를 쓰고 나타났다.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속으로 ‘그래서 팬들이 힙합의 할아버지라고 하나.’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먼저 이번 공연의 의미와 공연을 앞둔 소감을 물었다. “올해로 단독 콘서트는 3년째입니다. 그 중간에 조인트 콘서트가 있었지만 말이죠. 그동안의 콘서트가 바비 킴이 살아온 인생을 담았다면, 올해 콘서트는 바비 킴이 할 수 있는 음악과 바비 킴이 하고 싶은 음악, 그리고 팬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여러 음악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말 그대로 팬들과 함께하는 ‘솔 투게더(Soul Together)’이지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좀 더 다양해진 콘서트 무대가 될 듯싶다. 어떻게 달라질까. “트로트곡을 제 스타일로 한번 소화해 볼 생각입니다. 물론 실험입니다. 사실 제가 아는 트로트곡은 하나도 없습니다. 트로트곡 10여곡을 선정해 하나 둘씩 들어가면서 선별할 예정입니다. 아직은 이거다 하는 것이 없지만 공연 때 2~3곡 정도 불러 볼 생각입니다. 제가 트로트를 부르는 것은 처음입니다.” 이런 시도는 그를 좋아하는 마니아 계층을 위한 팬 서비스 차원에서 ‘공연의 맛깔’을 더할 것으로 보여진다. 본인도 그런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기서 잠깐, 한국말은 어떻게 익혔을까. 두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스무살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국내 모대학 어학당에서 1년반 동안 배웠습니다. ‘가, 나, 다’부터 배웠죠. 한국인이면서도 한국말을 몰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미국과 한국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 상당히 컸죠. 한국어로 된 노래는 가사에 영어발음을 일일이 적어가면서 익히고 불렀습니다.” 한국에서의 적응은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영어 테이프 녹음, TV드라마 엑스트라, 유아 TV프로그램 영어 강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아울러 힙합 음악을 고집하면서 그룹활동을 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의 적응도 순탄하지는 않았을 터. 그가 미국으로 가게 된 계기는 MBC 관현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아버지 김영근씨가 미국에서 음악활동을 하게 되면서였다. 그의 가족이 처음 정착한 곳은 샌프란시스코. 바비 킴은 초등학교 때부터 적지 않은 따돌림을 당했다. 미국 아이들에게 ‘칭크’(Chink:중국인을 비하하는 속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이때마다 한국인이라고 해도 ‘동양인들은 다들 똑같지 않으냐.’는 대답을 계속 들어야 했다. “제가 살던 곳에는 필리핀과 중국인들이 살았어요. 또 백인과 흑인들도 많이 살았고요. 한국인은 별로 없었는데 어릴 때 미국인은 물론 똑같은 동양인 아이들에게도 왕따를 많이 당했지요. 화가 날 때에는 덩치 큰 선배들과 싸우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패배의식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강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바비 킴은 아버지의 음악적 영향을 받아 중학교 때 트럼펫을 몰래 배웠다. 또 학교 노래 발표회에도 솔로로 여러 차례 참가했다. 그때마다 성적은 아주 우수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보고 혹시 음악 하는 것이 직업이 될까봐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원래 음악적 자질도 타고났지만 운동신경 또한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방망이를 잡기 시작해 고등학교 때는 학교 대표선수로 1번 타자와 포수를 맡았다. 특히 어깨 힘이 좋아 1루에서 2루로 도루하는 상대방 선수들을 거의 다 아웃시켰을 정도였다. 타격면에서는 3할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그러던 중 고 3때 한 스카우트로부터 ‘너는 동양인이어서 체격적으로 밀리기 때문에 서양인보다 3배 이상 훈련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그때 야구도 그만두고 좋아하던 미식축구도 그만두었습니다. 몇날 며칠 방황과 좌절의 연속이었죠. 그러던 중 음악을 취미가 아닌 진짜 인생의 승부수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미국에는 클럽 바에 가면 오픈 마이크라고 해서 누구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자주 갔지요. 또 원맨쇼 코미디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나이트클럽 래퍼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1992년 미국 LA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나자 바비 킴 가족은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이듬해 한국에 온 바비 킴은 아버지의 묵시적인 허락하에 음반사 여러 곳에서 오디션을 봤다. 이때 단골로 부른 노래가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였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리듬은 잘 타지만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바비 킴은 이에 대해 “어릴 때 흑인들과 자주 지내서 그런지 리듬을 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며 웃는다. 1994년 ‘닥터 레게’로 첫 앨범을 냈지만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터보, 젝스키스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의 코러스와 랩 피처링 등을 하면서 실력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저는 무명 11년 세월이 고맙게 여겨집니다. 만약 처음부터 성공했더라면 자만에 빠질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저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열심히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또 깨달았지요. 이제는 공연 때마다 제가 어떻게 살아왔다는 것을 얘기할 수 있고, 또 관객들과의 공감을 통해 하나하나 꿈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제가 (다른 가수들과) 음악의 색깔도 다르고 창법도 특이하다고 하지만 그런 것이 이제는 자신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바비 킴의 본명은 김도균이다. ‘바비’라는 이름은 세살 때 누나가 미국 TV시트콤을 보다가 바비라는 등장인물을 보고 그렇게 정했단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 그는 “음악을 하다 보니 취미가 없어졌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데 그쪽 분야로 연구를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팬들과 함께하는 창조적 음악을 위해 열심히 꿈을 꾸며 살아가겠다고 강조했다. 결혼에 대해서는 “여자친구는 현재 없지만 나이 마흔이 되면 할 생각”이라며 웃는다. 중절모와 콧수염의 바비 킴. 특유의 애달프고 처절하고 고독한 창법이 앞으로 어떻게 깊어질지 기대된다. 편집위원 km@seoul.co.kr ◆바비 킴은 누구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두살 때 MBC 관현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으면서도 음악과 운동을 병행한다. 음악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트럼펫을 배웠고 노래도 했다. 학교 발표회 때마다 우수한 성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야구와 미식 축구 선수로도 활약했다. 특히 야구는 포수와 1번 타자를 맡았는데 고교 때는 학교 대표로 출전해 3할대의 타율을 자랑했다. 고교 졸업 무렵 클럽 바에 가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부르고 래퍼로 활동했다. 1993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가수가 되기 위해 음반사에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1994년 앨범 ‘닥터 레게’로 데뷔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이후 터보, 젝스키스 등을 비롯한 여러 가수들의 랩 피처링 등을 하면서 실력을 쌓아 나갔다. 1999년 룰라 이상민의 14인 프로젝트 그룹 브로스의 멤버, 2000년에는 무브먼트 크루의 멤버, 다음 해 부가 킹즈를 조직하면서 활동범위를 넓혔다. 그러던 중 2004년 8월에 발표한 새 앨범 ‘고래의 꿈’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의 독특한 창법이 SBS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의 ‘나몰라 패밀리’를 통해 패러디되기도 했다. 지난해 세 번째 정규 앨범 ‘하트 앤드 솔(Heart & Soul)’을 발표했으며 ‘쩐의 전쟁’ ‘하얀 거탑’ 등 드라마 OST에도 참여했다. 2009년부터 전국 투어 공연에 나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 10만 관객 앞둔 힙합의 대부 바비킴

    10만 관객 앞둔 힙합의 대부 바비킴

     이 세상에서 고독이라는 말보다 더 고독한 단어가 있을까. 어느날 한 남자가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바다에 ‘풍덩’ 빠진다. 그리고는 고독하게 헤엄을 친다. 왜 그랬을까? 노래로 답한다. ‘파란 바다 저 끝 어디에선가 있는 꿈과 사랑을 찾아서~/하얀 꼬리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다시 까닭을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 위를 가르네/나를 편히 쉬게 할 꿈인 걸 너는 아는지~’라는 진한 너울뿐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 남자의 꿈은 척박한 토양에서 싹텄다. 어린 나이때부터 겪은 쓰디 쓴 인종차별과 이방인의 외로움이 우선 그러했다. 오죽했으면 착해지는 자신이 나쁘다며 ‘오늘 단 하루만 착하지 말자.’고 외쳤을까. 그런 처절함에서 스스로 험한 바다를 택했고 한 마리의 ‘파랑새’에서 꿈을 찾아 떠나는 큰 고래가 됐다. 하여 아픔이 있어도, 그 어떤 고통이 가로 막아도 ‘편히 쉬게 할 꿈’을 향해 거친 파도를 넘고 또 넘었다. 지금도 그렇게 ‘고래의 꿈’은 계속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힙합 뮤지션 바비 킴(38). 그는 요즘 2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층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팬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대개 ‘고독과 처절함에서 나오는 특유의 창법이 심금을 울린다.’고 답한다. 특히 대표곡인 ‘파랑새’와 ‘고래의 꿈’에서 흘러나오는 바비 킴의 음악적 향기는 세대를 뛰어넘는 신선한 냄새가 짙게 깔려 있다고 한다.  사실 그는 무명세월 11년 설움을 견디며 온갖 고생을 하다가 2004년에 발표된 앨범 ‘고래의 꿈’으로 비로소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반응은 폭발적일 만큼 계속됐다. 노래를 듣는 이에게 묘한 위안을 준다는 공통분모로 세대를 뛰어 넘어 많은 마니아들을 탄생시켰다. 2009년부터 전국투어 콘서트에 나서면서 인기스타로서 바비 킴의 존재를 입증한다. 그해 3월부터 지난 해까지 그는 30개 도시에서 50회 이상의 공연으로 9만여 관객을 모았다. 이는 불과 2년만에 이룬 성과로 최고의 티켓 파워는 물론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가수임을 입증한 셈이다. 팬들은 바비 킴을 가리켜 ‘소울의 대부’ ‘힙합의 대부’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는 오는 26일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 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또 한번의 전국 투어 공연에 돌입한다. 상반기에 4개 도시, 하반기에 10여개 도시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5월 중에는 누적 관객 1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객석 수가 한정된 공간에서 콘서트 3년차만에 10만관객을 채우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 공연에는 트로트를 ‘바비 킴’적으로 해석해 불러볼 예정이어서 또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바비 킴을 만났다. 늘 그랬듯이 이날도 특유의 중절모를 쓰고 나타났다.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속으로 ‘그래서 팬들이 힙합의 할아버지라고 하나.’라는 생각을 잠시 떠올렸다. 먼저 이번 공연을 갖는 의미와 소감이 어떠한지 물었다.  “올해로 단독 콘서트는 3년째입니다. 그 중간에 조인트 콘서트가 있었지만 말이죠. 그동안의 콘서트가 바비 킴이 살아온 인생을 담았다면, 올해 콘서트는 바비 킴이 할 수 있는 음악과 바비 킴이 하고 싶은 음악, 그리고 팬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여러 음악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말 그대로 팬들과 함께 하는 ‘소울 투게더(Soul Together)’이지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좀 더 다양해진 콘서트 무대가 될 듯 싶다. 어떻게 달라질까.  “트로트곡을 제 스타일로 한번 소화해 볼 생각입니다. 물론 실험입니다. 사실 제가 아는 트로트곡은 하나도 없습니다. 트로트곡 10여곡을 선정해 하나 둘씩 들어가면서 선별할 예정입니다. 아직은 이거다 하는 것이 없지만 공연때 2~3곡정도 불러볼 생각입니다. 제가 트로트를 부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런 시도는 그를 좋아하는 마니아 계층들을 위한 팬 서비스 차원에서 ‘공연의 맛깔’을 더할 것으로 보여진다. 본인도 그런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기서 잠깐, 한국말은 어떻게 익혔을까. 두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스무살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국내 모대학 어학당에서 1년반 동안 배웠습니다. ‘가,나,다’부터 배웠죠. 한국인이면서 한국말을 몰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미국과 한국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 상당히 컸죠. 한국어로 된 노래가사에는 영어발음으로 일일이 적어가면서 익히고 부르고 그랬습니다.”  한국에서의 적응은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영어 테이프 녹음, TV드라마 엑스트라, 유아 TV프로그램 영어 강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아울러 힙합 음악을 고집하면서 그룹활동을 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외국인으로서 미국에서의 적응도 순탄하지는 않았을 터. 그가 미국으로 가게 된 계기는 MBC 관현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아버지 김영근씨가 미국에서 음악활동을 하게 되면서였다. 그의 가족이 처음 정착한 곳은 샌프란시스코. 바비 킴은 초등학교때부터 적지 않은 따돌림을 당했다. 미국 아이들에게 ‘칭크(Chink:중국인을 비하하는 속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이때마다 한국인이라고 해도 ‘동양인들은 다들 똑같지 않느냐.’는 대답을 계속 들어야 했다.  “제가 살던 곳에는 필리핀과 중국인들이 살았어요. 또 백인과 흑인들도 많이 살았구요. 한국인은 별로 없었는데 어릴 때 미국인은 물론 똑같은 동양인 아이들에게도 왕따를 많이 당했지요. 화가 날 때에는 덩치 큰 선배들과 싸우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패배의식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강해지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바비 킴은 아버지의 음악적 영향을 받아 중학교때 트럼펫을 몰래 배웠다. 또 학교에서 솔로로 노래 발표회에도 여러 차례 참가했다. 그때마다 성적은 아주 우수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보고 혹시 음악하는 것이 직업이 될까봐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원래 음악적 자질도 타고 났지만 운동신경 또한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때 야구방망이 잡기 시작해 고등학교때는 학교 대표선수로 1번타자와 포수를 맡았다. 특히 어깨힘이 좋아 1루에서 2루로 도루하는 상대방 선수들은 거의 다 아웃시켰을 정도였다. 타격면에서는 3할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그러던 고 3때 한 스카우터로부터 ‘너는 동양인이어서 체격적으로 밀리기 때문에 서양인보다 3배 이상 훈련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그때 야구도 그만 두고 좋아하던 미식축구도 그만 두었습니다. 몇날 며칠 방황과 좌절의 연속이었죠. 그러던 중 음악을 취미가 아닌 진짜 인생의 승부수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구요. 미국에는 클럽 바에 가면 오픈 마이크라고 해서 누구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자주 갔지요. 또 원맨쇼 코미디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나이트클럽 래퍼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1992년 미국 LA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나자 바비 킴 가족은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이듬해 한국에 온 바비 킴은 아버지의 묵시적인 허락하에 음반사 여러 곳에서 오디션을 봤다. 이때 단골로 부른 노래가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였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리듬은 잘 타지만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바비 킴은 이에 대해 “어릴 때 흑인들과 자주 지내서 그런지 리듬을 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며 웃는다.  그러던 1994년 ‘닥터 레게’로 첫 앨범을 냈지만 인기를 못얻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터보, 젝스키스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의 코러스와 랩 피처링 등을 하면서 실력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저에게는 무명 11년 세월이 고맙게 여겨집니다. 만약 처음부터 성공했더라면 자만에 빠질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저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열심히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또 깨달았지요. 이제는 공연때마다 제가 어떻게 살아왔다는 것을 얘기할 수 있고, 또 관객들과의 진실한 공감을 통해 하나 하나 꿈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제가 (다른 가수들과) 음악의 색깔도 다르고 창법도 특이하다고 하지만 그런 것이 이제는 자신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바비 킴의 본명은 김도균이다. ‘바비’(Boby)라는 이름은 세살 때 친누나가 미국 TV시트콤을 보다가 바비라는 등장인물을 보고 그렇게 정했단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 그는 “음악을 하다보니 취미가 없어졌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데 그쪽 분야로 연구를 많이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팬들과 함께 하는 창조적 음악을 위해 열심히 꿈을 꾸며 살아가겠다고 강조했다. 결혼에 대해서는 “여자친구는 현재 없지만 나이 마흔이 되면 할 생각.”이라면 웃는다. 중절모와 콧수염의 바비 킴. 특유의 애닯고 처절하고 고독한 창법이 앞으로 어떻게 더욱 깊어질지 기대된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오늘의 눈] 미국목사·한국목사/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오늘의 눈] 미국목사·한국목사/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미국 교회는 어떠할까라는 궁금증에 13일 아침 인터넷을 두드려 찾아간 곳은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커뮤니티 유나이티드 감리교회’였다. 청교도적 신성(神聖)과 고풍스러움으로 찬연한 교회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일생을 성경과 기도로 살았을 법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옹기종기 앉아 백발이 성성한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신도들 자리까지 내려와 문답식으로 설교하는 칼 리플리 목사의 모습은 종교적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윽고 단상으로 올라간 그는 설교 내용(사순절)과 관련한 ‘평범한’ 내용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다 ‘뜻밖에도’ 일본 지진을 언급하면서 일본인들이 속히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고는 리비아에 평화가 깃들기를 간구하는 것으로 기도를 마쳤다. 아, 인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무조건적 사랑은 미국의 어느 시골 교회 한 구석에서도 어김없이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흐뭇한 여운을 안고 귀가해 인터넷으로 한국을 연결했을 때 나는 경악했다. 서울 한복판 초대형 교회의 목사가 일본 지진을 두고 일본 국민이 하나님을 멀리한 데 대한 경고라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이 땅에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면 센다이로 달려가 고통 받는 이들을 치유하고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기적을 베풀까, 아니면 ‘거 봐라, 나 안 믿으니까 그런 꼴 당하지.’라고 고소해할까.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면 원수는커녕 이웃마저 사랑하는 데 인색한, 가진 것 많은 부자 목사의 편을 들까, 종교를 떠나 불쌍한 자들을 걱정하는 시골 목사를 귀하게 여길까. 개신교를 의미하는 프로테스탄트는 원래 ‘항의하다’(프로테스트)라는 말에서 나왔다. 성직자 마르틴 루터가 타락한 로마 가톨릭 교회에 항거한 정신에서 비롯됐다. 부패하고 비뚤어진 한국의 ‘재벌 교회’에 항거하는 일은 이교도의 몫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서약한 기독교인들의 책무다. carlos@seoul.co.kr
  • 컴맹 할아버지, IT 강사 됐네

    “할아버지들이 모두 컴맹이라는 편견을 버려!” 침침한 눈 탓에 돋보기 안경을 썼다. 그래도 잘 보이지 않는지 모니터에 얼굴을 바짝 붙인다. 마우스를 움직이는 속도도 둔하다.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할아버지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름 이 바닥에서는 컴퓨터로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정보기술(IT) 고수들이다. 바로 마포구에서 운영하는 ‘컴퓨터 전문강사 양성반’의 노인 수강생들 얘기다. 이 프로그램은 구의 ‘2011년 노인일자리사업’ 가운데 하나다. 하루 2시간씩 주 다섯차례, 두달에 걸친 교육이 끝나면 지역 경로당에 파견돼 컴퓨터 강사로 활동한다. 월 20만원의 강사료를 받으며 제2의 취업 인생을 시작하는 셈이다. 특히 ‘노인 강사진’은 수강생과 나이대도 비슷하기 때문에 ‘같은 눈높이’ 교육도 가능하단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이호준(73) 할아버지는 14일 “돈을 버는 것보다 직접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내가 아는 걸 가르쳐줄 수 있다는 게 뜻깊다.”며 웃었다. 사업을 위탁·운영하는 대한노인회마포구지회가 지난달 희망자를 모집한 결과 55명이 응모했다. 이 가운데 컴퓨터 활용정도와 강사경험 등을 고려해 1차 서류전형에서 교육생 48명을 선발했다. 한글과 엑셀, 인터넷기초 등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 방법을 교육하며 희망자에 한해 개인블로그와 UCC(사용자 직접제작 콘텐츠) 제작, 사진편집 등도 알려준다. 구는 이번 사업에 구비 2142만원을 포함해 총 사업비 6120만원(시비 2142만원, 국비 1836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3153-8855.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어르신 1대1 매일 안부전화… 폭설땐 하루 2500명 체크

    [독거노인 사랑잇기] 어르신 1대1 매일 안부전화… 폭설땐 하루 2500명 체크

    “제가…, 아무래도 제가 봄되면 죽을 텐데, 내 장례를 맡아 줄 분 어디 없을까요.” 지난 2월 중순, 서울 용강동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내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중랑구에 사는 65세 기초수급자라고 밝힌 이 할아버지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말기 폐암 환자였다. 길어야 두달을 넘기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은 할아버지의 바람은 바로 가족을 대신해 장례를 치러줄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주변 정리를 하던 할아버지는 “비록 가족도, 친구도 없지만 쓸쓸히 죽은 모습이 몸 상한 뒤에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는 정말 싫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곧바로 독거노인지원센터는 할아버지가 거주하는 동 주민센터에 연락해 방법을 물었다. 다행히 방법은 있었다. 동 주민센터는 연고가 없는 기초수급자를 대상으로 한 지자체의 장례서비스를 연결해줬다. 할아버지는 “외롭지 않게 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센터에 고마움을 전했다. 지난 1월 27일 개소한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에는 하루에도 100여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단순히 안부를 묻고 답하는 전화에서부터 ‘저승 가는 길’ 책임져 달라는 전화까지, 전화 한 통화이지만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는 가족을 만나는 것처럼 의미있는 대화들이 유선을 통해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방문한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에서는 상담원과 독거노인의 전화통화가 쉴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센터에 근무하는 인원은 모두 10명. 이들은 오전 7시~오후 9시 2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지원센터의 업무는 ▲노인복지서비스 안내 및 지원 ▲보건복지부 독거노인 사랑잇기사업 관련 업무 ▲민간 참여기관 교육 등 크게 3가지다. 센터가 중점적으로 펼치는 ‘마음 잇는 전화’ 사업은 민간·공공기관 콜센터 상담원이 노인들에게 1대1로 안부 전화를 하며 이들의 안전을 매일 확인하는 일이다. 만약 노인이 안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콜센터는 즉시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에 이 사실을 알리고, 센터 직원들은 곧바로 현장에 나가 노인의 안전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노인들에게 직접 전화도 하지만, 거주지의 이장이나 동장, 경로당 등에 전화해 노인들의 안전을 확인하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독거노인 봉사활동을 펼치는 기업과 기관에 정보와 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센터의 주된 과제 중 하나다. 특히 독거노인 사랑잇기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참여 기관과 대상 노인이 늘어나 업무량도 크게 증가했다. 폭설이나 혹한과 같은 이상기후로 노인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때는 센터의 업무량도 덩달아 급증한다. 실제로 지난 2월 14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폭설 사태 때는 ‘비상근무’ 체제에 돌입해 하루 2500여명의 독거노인 안부를 일일이 확인했다. 평소 통화량보다 10여배나 늘어났으니 업무를 마친 상담원들이 녹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센터 상담원 송미숙(43) 씨는 “‘주변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렸다. 집이 무너질 것 같다’며 걱정하시던 어르신들과 통화하며 이분들이 안전하다는 사실에 감사함도 느꼈다.”면서 “특히 피해가 많았던 지역민들이 더욱 고맙게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독거노인지원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노인종합복지관협회는 우리나라 노인복지의 어제와 오늘을 알 수 있는 ‘현장 지표’다. 복지관을 찾는 노인들의 욕구와 이에 따른 역할 변화에서 고령사회의 흐름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89년 서울 효창공원 내 중부노인종합복지관을 시작으로 현재는 전국에 설립된 노인복지관이 250여곳에 이른다. 19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보호’였다. 이 당시에는 재가(在家)노인을 위한 도시락 배달 등이 노인복지관의 주된 사업이었다. 노인학대와 자살 예방 프로그램처럼 노인에 대한 보호는 지금도 여전히 노인복지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최근에는 노인들이 가진 ‘욕구’에 초점을 맞춘 복지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일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노인일자리사업, 중고령자들을 위한 은퇴 프로그램 등이 그 예다. 최진영 노인종합복지관협회 과장은 “복지관을 찾는 노인 대상자의 연령은 더욱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노인 인구 확대에 따라 민간자원과의 연계 등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두만강’ -희망으로 건너는 마음의 경계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한 옌볜의 조선족 마을. 그곳에 할아버지, 말 못하는 누이와 함께 창호가 산다. 먹을 것을 찾아 도강한 북한 주민들이 마을에 하나둘씩 나타난다. 북한 소년 정진도 그중 한명이었다. 창호는 공차기에 능한 정진과 축구를 하는 게 즐거웠고, 정진은 주린 배를 채울 음식을 얻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조선족 마을에 소소한 피해를 입히면서 갈등이 싹트기 시작한다. 창호 집에도 불행한 일이 벌어지는데, 탈북 남자가 누이를 겁탈한 걸 알아차린 창호는 정진을 다른 태도로 대한다. ‘두만강’은 재중 동포 장률의 여섯 번째 장편영화다.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작지원 작품으로 선정되면서 세 번째 작품이 될 뻔했으나, 작품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 때문에 이후 4년여의 기간을 더 필요로 했다. ‘두만강’ 시사회에서 한 관객은 “북한의 비참한 현실을 더 극적으로 다루지 않았다.”고 따졌다. 염두에 두어야 할 건 ‘두만강’이 경제상황을 포함한 북한의 현실을 고발하는 유의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장률은 한쪽 체제의 입장에서 상대편을 공격하거나 포섭하는 행위를 오히려 저어하는 편이다. 장률의 세 번째 장편영화 제목이기도 한 ‘경계’는 그가 화두로 삼는 주요한 주제 중 하나이며, 그런 점에서 ‘두만강’은 경계의 동의어다. 장률 영화의 인물은 경계를 사이에 두고 산다. ‘벽과 벽, 민족과 민족, 국경과 국경, 체제와 체제, 시골과 도시, 과거와 현재, 남성과 여성’은 점점 더 거대한 경계를 형성해 인간과 인간을 분열시킨다. 장률의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인물인 ‘순희’와 ‘창호’는 동북아시아의 공간을 넘나들면서 인간이 그어놓은 경계를 쓸모없게 만든다. 문제의 본질에 두려움 없이 뛰어드는 순수한 자들에게, 참견하기 좋아하는 어른들은 ‘현실을 먼저 이해하라’고 조언한다. ‘두만강’에서 오누이로 재등장하는 순희와 창호는 그런 인간들에게 절규의 목소리로 저항한다. 경계에 대한 거부감을 품으면서도 장률의 입장은 신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국경 없는 시장을 꿈꾸는 인간들의 그것과 정반대에 위치한다. 그의 영화 가운데 가장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데뷔작 ‘당시’에서조차 장률은 ‘인간의 욕심’을 문제로 삼았다. 장률의 영화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마음과 마음의 연결이다. ‘두만강’에서 장률은 ‘우표를 모으는 소년과 소녀, 북한과 중국의 샛길로 탈북자를 안내하는 남자, 상상 속의 다리를 공유하는 소녀와 할머니’를 여러 차례 비추며 자신의 희망을 노출한다. 우표와 길과 다리는 본디 인간과 인간을 잇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두만강’은 가슴이 먹먹한 클라이맥스와 그것에 이어지는 감탄할 만한 판타지로 끝을 맺는다. 조선족 할머니는 타향으로 건너올 때 그랬듯 다시 다리를 건너 북한에 가기를 바라지만, 다리는 오래 전에 없어졌기에 소원을 이루기란 불가능하다. 그런데 ‘두만강’은 기어코 상상의 다리를 시선 앞으로 불러낸다. 몸을 가누기 어려운 노파가 눈보라 치는 다리 위로 위태롭게 발걸음을 옮기다 마침내 다른 쪽에 도달한다. 영화의 판타지가 매서운 현실을 이기는, 실로 감동적인 순간이다. 17일 개봉 영화평론가
  • “독서도우미 하면서 나이 잊었어요”

    “독서도우미 하면서 나이 잊었어요”

    “건강이 유지되는 한 얼마든지 일할 수 있습니다. 나이는 많아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어르신 독서도우미 중 최고령을 자랑하는 신현자(오른쪽·81) 할머니와 이만균(왼쪽·79) 할아버지는 새로운 즐거움에 흠뻑 빠졌다. 아직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덕분이다. 젊은 시절 교사로 일하며 한평생 아이들과 보낸 신 할머니는 3년 전부터 어린이집의 보육도우미로 제3의 인생을 시작, 지난해부터 독서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같은 노인에게도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신 할머니는 3년간의 외국 생활에서 배운 영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할머니는 “아이들과 함께하니 다시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라며 “아이들을 만나는 게 얼마나 기쁜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누가 나이를 물어올 때가 가장 싫다.”며 “내 자신이 건강하고, 육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했다. 할머니와 단짝을 지어 독서도우미로 활동하는 이만균 할아버지 역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젊은 시절 신문사에서 일한 뒤 문학에 입문, 현재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인 일자리에 관심이 많아 ‘일하는 노인연대’ 사무국장까지 맡았다. 황혼기 일하는 즐거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할아버지는 “우리들과 같은 노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면 젊은 선생들보다 새롭고, 포용력도 넓어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면서 “친손주같이 대할 때 느껴지는 교감이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관악구 “얘들아 책이랑 놀자”

    관악구가 9일 ‘북스타트’를 선포, 지역의 7세 이하 3만 1957명을 대상으로 책을 보급하고, 책과 친숙해질 수 있는 운동을 시작했다. 북스타트는 1992년 영국에서부터 시작돼 책과 함께 인생을 시작하자는 의미의 사회육아 지원운동이다. 관악도서관과 조원도서관, 책이랑놀이랑 도서관에서는 매월 둘째 주와 넷째 주 목요일에 부모와 아이가 책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책놀이와 함께 책꾸러미를 제공하는 ‘북스타트 데이’(Book Start Day)를 운영한다. 14일부터는 15~24개월 이하 유아와 부모가 참여하는 ‘북스타트’, 25~36개월 유아와 부모 대상 ‘북스타트플러스’, 5~7세 어린이가 참여하는 ‘보물상자’ 등 북스타트 후속 프로그램이 5기에 걸쳐 진행된다. 북스타트 전문 강사의 지도와 자원 활동가의 지원 아래 연령에 맞게 촉감놀이, 우리 몸 알기, 색깔, 소리, 냠냠냠, 책읽기, 북아트, 발표하기 등 다양한 주제로 운영되며, 부모 교육으로 영·유아 발달의 이해와 책읽기 지도도 병행한다. 특히 구만의 이색사업으로 맞벌이 가정을 위해 296곳의 관내 전 보육시설에서 ‘어린이집·유치원과 함께하는 북스타트’를 운영한다. 어린이집 270곳은 노인 일자리 창출을 통해 선발된 할아버지·할머니 동화구연순회방문단이 매일 낮잠 시간 30분 전에 ‘머리맡 동화책’ 읽기를 하고, 유치원 26곳은 ‘1원 1독서교육’을 실시하며, 주2회 ‘도서관에 소풍 가요’라는 견학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구는 지난 1월 서울 자치구에서 두 번째로 ‘독서문화 진흥조례’를 제정해 독서문화진흥사업을 추진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한·일외교, 이토 히로부미 후손에…

    한·일외교, 이토 히로부미 후손에…

    재일 한국인 장옥분(72)씨로부터 정치 헌금 20만엔을 받아 물러난 마에하라 세이지 전 외무상의 후임에 마쓰모토 다케아키 외무 부대신이 9일 취임했다. 마쓰모토 신임 외무상은 4선의 중의원 의원으로 이토 히로부미 전 조선통감의 외고손자다.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에 을사조약을 강요하고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일본에서는 근대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되지만,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으로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행위에 대한 역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마쓰모토 외무상의 등장은 한·일 외교관계뿐만 아니라 동북아 외교에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실제로 한·일 관계는 민주당 출범 이후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왔지만 여전히 난제가 쌓여 있다. 이달 말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할 예정이어서 양국 관계에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조선왕실의궤 등 일본이 강탈한 한국문화재 반환도 계속 미뤄지고 있어 갈등의 불씨가 될 조짐이 있다. 양국이 외교적 갈등을 겪게 되면 마쓰모토 외무상은 이토 히로부미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한국 내에서 더욱 혹독한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마쓰모토 외무상은 9일 취임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일 양자 간 대화도 거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마에하라 전 외상의 외교 노선을 이어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북한 핵, 미사일, 납치 문제 해결과 관련해 “(북한이) 적극적으로 성의 있게 대응한다면, 마찬가지로 (성의 있게) 대응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마쓰모토 외무상은 외고조 할아버지와 안중근 의사 간에 역사적인 화해를 이끌 기회를 맞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안 의사의 묘를 찾기 위해 일본 정부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각종 공문서를 소장하고 있는 국회도서관 관할은 당시 중의원 운영위원장이던 마쓰모토 외무상이 책임을 맡고 있었다. 나가시마 아키히사 방위성 정무관은 지난해 5월 “한국에서 안 의사 유골과 매장 장소 등 관련 정보를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마쓰모토 의원이 관련 자료를 찾으면 전부 공개하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마쓰모토 외무상은 당시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나가시마 정무관의 발언은 과장됐으며 한국과 일본 정부의 공식 요청에 의해 조사를 벌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후손들은 일본 정계와 외교가를 주름잡는 명문의 맥을 잇고 있다. 이토의 사위 니시 겐지로와 손녀의 남편인 후지이 게이노스케는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증손자이자 마쓰모토 외상의 아버지인 마쓰모토 주로는 방위청 장관과 중의원 의원을 역임했다. 마쓰모토 외상의 이종사촌형인 후지사키 이치로는 현재 주미 일본대사다. 마쓰모토 외무상은 도쿄대 법대를 졸업한 뒤 부친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씨줄날줄] 폐지 줍는 노인/박대출 논설위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해 보자. 직업(職業)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로 설명돼 있다. 부업(副業)은 ‘본업 외에 여가를 이용하여 갖는 직업’이다. 아르바이트(독일어 Arbeit)는 ‘본래의 직업이 아닌, 임시로 하는 일’이다. 아르바이트는 부업으로 순화됐다. 둘의 사전상 의미는 같아졌다. 하지만 현실에선 뉘앙스가 다르다. 학생들에겐 부업이라고 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로 쓸 뿐이다. 이런 구분들은 노인들에게는 의미 없다. 폐지(廢紙) 줍기. 언제부터인가 이런 일을 하는 노인들이 늘었다. 직업이자, 부업이자, 아르바이트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니 직업이다. 여가를 이용해 갖는 직업이니 부업이다. 임시로 하는 일이니 아르바이트다. 물론 예외도 있다. 지난해 말 80대 노인이 300만원을 장학금으로 쾌척했다. 이종철(80) 할아버지가 폐휴지를 팔아 모은 돈이다. 그에겐 부업이자 아르바이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살기 위해 폐지를 줍는다. 근로기준법에 최저 임금이 정해져 있다. 시간당 4320원이다. 아르바이트 급여는 4500~5000원이 많다. 법적 기준을 살짝 넘기는 수준이다. 얼마 전 폐지된 ‘30분 피자 배달’에선 인센티브가 적용됐다. 시간급 4500원에 배달 한건당 300원. 노인들에겐 먼 얘기다. 하루종일 일해야 7000원 정도 번다. 때로는 찻길을 다니느라 목숨을 건다. ‘30분 배달’처럼 인센티브도 없다. 그나마 손수레를 끌 힘이 있을 때다. 힘이 부치면 장보기용 포터를 끈다. 손에 거머쥐는 건 3000원 안팎이다. 할머니들끼리 폐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83살 할머니가 66살 할머니를 밀어 넘어뜨렸다. 66살 할머니는 덤프트럭에 머리를 부딪혔다. 다행히 생명이 위독하지는 않다고 한다. 폐지 줍기는 이래저래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 됐다. 최근엔 젊은 실업자들도 가세했다. 노인들에겐 무서운 경쟁자다. 차 조심, 사람 조심을 다 해야 할 판이다. 무상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정부는 사상 최대의 복지 예산이라고 한다. 폐지 줍는 노인들에겐 공허하다. 대부분이 절대 빈곤층으로 살아간다. 기초수급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80~90%는 기초수급조차 받지 못한다. 모시지 않는 자식이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노인 복지의 사각지대는 많다. 제도적 맹점을 줄이는 노력이 아쉽다. 이게 정치권의 소임이다. 무상 논쟁에서 헤어나야 할 때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아파트가 좋다고? 고향땅 밟으니 아픈 몸도 금세 다 나았어”

    “아파트가 좋다고? 고향땅 밟으니 아픈 몸도 금세 다 나았어”

    포격으로 폐허가 됐던 연평도 곳곳이 눈에 띄게 깨끗해졌다. 깨져 널려 있던 유리 파편이 사라지고, 거리마다 나뒹굴던 쓰레기들도 말끔히 치워졌다. 피폭으로 집을 잃은 주민들에게는 잠시나마 묵을 수 있는 보금자리도 생겼다. 연평초등학교 운동장에 지어진 임시가옥이 그곳이다. ●“내 마을 내가 돌보니 정말 좋아” 4일 오전 10시. 연평도 남동쪽에 위치한 해경파출소 옆에서는 ‘취로사업’에 참여한 남부리 주민 99명이 부서진 건물 잔해 등 주변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취로사업은 지난달 24일부터 시작됐다. 사업은 5월까지 이어진다. 인천시가 행정안전부로부터 20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아 연평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사업이다. 한 사람당 기본 5만원에 식대를 더해 5만 3000원을 일당으로 지급한다. “아파트든 뒤파트든 그게 무슨 소용이야. 고향 돌아오니까 이렇게 좋은데. 아프던 몸도 금세 다 나았어.” 취로사업에 참여한 조연화(81) 할머니가 밝게 웃으며 동료 할머니들에게 농담을 건넸다. 옆에서 일하던 윤선비(74) 할머니가 “내 고향 내가 치우고, 돈도 벌고, 얼마나 좋아.”라고 말을 받았다. 인천의 찜질방을 전전하다 없던 병을 얻고, 두고 온 집 걱정에 한시도 편하게 잠을 청한 적이 없었던 할머니들이 고향에 돌아오자 기운이 솟는 모양이었다.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조 할머니는 6·25 때 연평도로 피란 와 연평도에서 지금은 돌아가신 남편을 만난 뒤 자식들을 낳아 길러 뭍으로 내보냈다. 60년 넘게 연평도에서만 살았다. 조 할머니는 “처음엔 아파트라고 해서 좋은 줄만 알았지. 그런데 가서 보니 남의 집에 산다는 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임시가옥이지만 친구들 있어서 행복해” “임시가옥에서 살아도 연평도에 오니 좋아요.” 지난 3일 오전 11시, 연평초등학교 4학년이 된 고성현(10)군이 인천연안부두에서 연평도행 코리아나익스프레스 여객선에 혼자서 탔다. 사흘 전부터 연평도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계속되는 기상악화로 인천에 더 머물러야 했다. 연평도 포격으로 피란길에 오른 후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어려서 부모가 따로 사는 탓에 할아버지·할머니 품에서 자랐지만 구김살이 없었다. 되레 맑고 검은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친구들 보러 빨리 가고 싶어요.” 성현이는 새 교과서, 새 담임 선생님과 새 교실에서 공부할 생각에 한껏 기대가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돌아갈 집이 없다. 포격으로 몽땅 파괴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현이는 가족들과 당분간 연평초등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임시주택에서 살아야 한다. 할아버지·할머니·큰아버지·성현이 그리고 강아지 ‘가을이’까지 다섯 식구를 하나로 묶어 주는 소중한 거처다. 전국재해구호협회가 국민 성금으로 지은 임시주택 39채에 포격으로 집을 잃은 32가구 69명이 입주했다. 머리를 감으려면 화장실 문을 열고 엉덩이를 쭉 빼야 할 만큼 좁고, 둘만 누워도 몸을 뒤집지 못할 정도로 협소하지만 성현이 가족은 오히려 감사했다. 할아버지 고영선(72)씨는 “우리를 위해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 마련해 준 집인데 어떻게 불평할 수 있겠느냐.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후 3시. 성현이가 연평도에 도착한 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다. 성현이는 연평마트 앞 인조잔디 축구장으로 나가 반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뒤엉켜 놀았다. 구김 없이 큰소리로 떠들고 까불었다. ‘남의 동네’인 인천에서는 할 수 없었던 ‘놀이’였다. 올해 성현이의 가장 큰 소망은 빨리 새집이 생기는 것이다. 새집이 마련되면 아빠가 새 책상과 침대를 사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아빠도 다시 볼 수 있다. 성현이는 “빨리 새집이 생겼으면 좋겠다.”면서 눈을 반짝였다. ●“가슴의 상처 빨리 치유됐으면…” “이웃들이 돌아오니 내 마음이 부자가 된 거 같아요.” 4일 오전 8시 30분 남부리 연평교회 맞은편. 이기옥(51·여)<서울신문 2010년 12월 22일자 1면>씨가 집을 나섰다. 요즘 매일 아침 9시면 두꺼운 점퍼를 세 겹이나 껴입고 집을 나선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되는 취로사업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내 마을을 내 손으로 다시 세운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사람들 모두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는 큰데 상처는 여전히 깊게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북한의 포격 후 100일 동안 그에게 일어난 일 가운데 가장 기쁜 일은 해병대 연평부대에서 복무하던 아들 성기림(24)씨가 돌아온 일이다. 성씨는 포격으로 숨진 고(故) 서정우 하사의 해병대 입대 동기로, 지난달 10일 만기제대했다. 그간 이씨는 아들을 지척에 두고도 연평도 사태 이후 계속되는 비상근무로 얼굴을 보지 못해 속을 끓였다. 이씨는 “아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온 게 지난 100일 동안 내게 일어난 가장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면서 다시 빗자루를 들며 웃었다. ●주민들에 매달 5만원씩 지원 연평도 복구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날도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직원 11명을 파견해 연평도 곳곳의 전기선로 교체작업을 벌였다. 연평면사무소에 따르면 창문·창틀 교체작업은 99%, 대문·방문 교체작업도 98% 끝났다. 상수도도 수리를 신청한 228가구 중 199가구, 보일러는 171가구 중 160가구가 공사를 마쳤다. 난방용 기름도 차질 없이 공급돼 추위를 덜 수 있게 됐다. 또 올 1월 시행된 ‘서해 5도 지원 특별법’으로 인해 이달부터 6개월 이상 거주한 주민은 매달 5만원씩 정주지원금을 받는다. 여기에다 올 7월 ‘서해 5도 종합발전계획’이 확정되면 노후주택 개량지원, 생필품 구매대금 지원 등 추가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연평도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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