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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孝’ 지자체가 밀어준다

    ‘孝’ 지자체가 밀어준다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들이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경로효친 분위기 조성과 지원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부산시는 경로효친 실천 분위기 조성을 위해 ‘2011년 효행 장려 및 지원시책 추진 계획’을 마련, 본격 추진키로 했다고 2일 밝혔다. 시는 우선 어버이날 기념행사(5월 9일·시민회관), 노인의 날 기념행사(10월 4일·강서체육공원)를 자치구·군과 사회복지관, 노인복지관, 노인교실, 경로당 등과 연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또 민간단체가 주관하는 독거노인 효도관광, 홀로 어른 위로 대잔치, 할머니·할아버지 이야기 경연대회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효행문화 정착을 위해 효의 날 운영 및 효 교육 실시, 노인복지 관련 기관의 경로효행 프로그램 내실화, 복지시설 종사자 교육(연 2회) 등을 추진한다. 아울러 효행자(단체)를 적극 발굴해 표창하는 등 예우 사업도 실시한다. ●양주시 효행수당 50만원 신설 경기 양주시도 어버이날, 노인의 날 기념행사 등을 통해 효행 우수자를 선정해 표창하고, 효행 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지원키로 했다. 또 효행수당을 신설해 4대 이상 양주시에 1년 이상 주소를 두고 거주하고 있는 가구에는 연간 50만원을 지원한다. 민간단체에서 주관하는 효행장려사업(백일장 등) 및 효행교육 등 행사도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한다. 경북 경주시도 지난해 제정된 ‘경주시 효행장려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효의 날 지정, 효행 우수자 표창, 부모 부양자, 효행장려 사업 단체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앞서 김천시는 지난달 30일 4대가 함께 사는 24가구에 효행 장려금 50만원씩, 모두 1200만원을 지급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제정된 ‘김천시 효행장려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른 것이다. 충북도교육청은 효행·모범상을 받는 학생의 학비를 면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학비 감면 및 지원 지침’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대상자는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거나 교육 기관과 외부 기관·단체로부터 모범·효행상을 받는 학생이다. ●충북교육청 효행학생 학비면제 이 밖에 경북도와 인천시, 대구시, 경북 안동시, 충남 공주시, 전남 순천시 등도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경로효친 분위기 조성 등에 힘을 쏟고 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씨줄날줄] 밥퍼/박홍기 논설위원

    ‘저녁때가 되어 먹을 것이 없어 고민할 때 한 어린아이가 내놓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제자들에게 주어 큰 무리를 먹게 하였는데 5000명(어린이와 여자는 뺀 숫자)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고 남았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14장에 나오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다. 1988년 장로회신학대 대학원생이던 최일도 목사는 청량리역 광장에서 나흘 굶고 쓰러진 할아버지에게 라면을 끓여줬다. 청량리 쌍굴다리 밑에서 풍로와 냄비를 놓고 노숙인들에게 라면을 끓여 주던 배식(配食)이 바로 ‘밥퍼’라는 사회운동의 출발점이었다. 노숙인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 목사는 솥에 밥을 지어 노숙인들을 대접했다. 밥은 생명이었다. 본격적으로 ‘퍼주는 사랑’을 실천에 옮기기에 이르렀다. 제때 끼니조차 챙길 수 없던 노숙인을 비롯, 배고픈 이들이 쌍굴다리를 지나 소위 ‘청량리 사창가 588’ 안에 자리잡은 허름한 밥집을 찾기 시작했다. 사회복지법인 다일공동체가 주관하는 ‘밥퍼나눔운동본부’의 본거지다. 165㎡가량 되는 공간에서는 100명 정도가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었다. 본거지는 지난해 12월 25일 성탄일에 문을 닫고 50m쯤 떨어진 지금의 2층 건물로 이전했다. 새 건물 규모는 예전과 비슷하다. 밥퍼 운동은 2006년 300만 그릇을 넘어섰다. 그리고 올 4월 말 500만 그릇의 기적을 낳았다. 23년 만이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대략 하루에 1200명분을 만들어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해 추산한 것이다. 하루 평균 소요비용은 200만원. 지금껏 다녀간 자원봉사자만 20만명에 달한다. 어린이부터 칠순 노인까지 손수 나서서 밥을 짓고 퍼주는 일을 맡았다. 하루에 최소 50명 안팎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나눔과 베풂의 자리를 만들었다. 시민뿐만 아니라 기업·연예인·학부모 모임 등도 참여했다. 현재 베트남·캄보디아·필리핀·네팔 등 4개국에서도 봉사단을 꾸려 어린이를 대상으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다일공동체는 어제 자체적으로 지정한 ‘5월 2일 오병이어의 날’을 맞아 운동본부 앞마당에서 ‘나눔과 섬김, 500만 그릇 돌파’를 기념했다. 비빔밥을 준비했다. 최 목사의 작은 사랑은 큰 사랑으로 발전했다. 평범한 이웃들의 땀과 정성, 사랑의 결실이기도 하다. “종교나 계층을 뛰어넘어 거리에 배고픈 이들이 더는 없을 때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최 목사의 기도가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증조부 고종의 갑옷·투구 6월 日에 반환소송… 반드시 찾아오겠다”

    “증조부 고종의 갑옷·투구 6월 日에 반환소송… 반드시 찾아오겠다”

    “법정 소송을 통해 일본에 있는 증조할아버지(고종)의 투구와 갑옷을 반드시 찾아올 겁니다.” 대한제국의 상징적 적통을 이은 황사손(皇嗣孫·황실의 대를 잇는 후손) 이원(49)씨는 29일 조선왕실의궤 반환 소식이 전해지자 “다음 환수 목표는 왕실의 보물이 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총재이기도 한 그는 유행을 좇는 케이블TV 프로듀서(피디) 출신으로 2005년 황사손이 된 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6년째 전통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옛 문화 살리기에 노력해 왔다는 이씨는 “조선왕실의궤가 일본에서 돌아오면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는 고종의 유품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을 이르면 오는 6월 제기하겠다.”며 의지를 나타냈다. 영국 왕실의 결혼으로 세계가 떠들썩했던 이날 창덕궁이 내려다보이는 종약원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2005년 황사손이 된 뒤 6년간 어떤 일을 하고 지냈나. -제사를 계속 지냈다. 조선왕릉 40기의 제사와 황실의 5대 제향(조경단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건원릉기신친향례·환구대제)에서 초헌관(제사 지낼 때 첫 잔을 올리는 사람)을 맡았다. 1년에 120여회 정도 된다. 600년 넘게 한 왕조의 후손이 애초 양식을 유지하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문화유산이다. 그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말살된 대한제국 때까지의 문화를 복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문화를 이미지로 복원해 내고 싶다. →그동안 성과가 있었나. -대표적인 것이 2008년 환구대제를 복원한 일이다. 일본이 침략 후 지금의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자리에 있던 환구단(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을 없애고 군 장교들이 머무는 철도호텔을 지었다. 일본이 박아 놓은 말뚝을 빼는 것처럼 우선 이 문화를 복원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고증을 거쳐 2008년 제례를 되살렸다. 그러나 원래 터에 건물이 들어선 탓에 환구단 시설을 복원할 수는 없었고, 서울광장에 환구단을 세우려고 했는데 서울시가 긍정적으로 검토하다가도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오해를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 특히 몇 해 전 언론에 ‘황실문화원’을 설립하겠다고 얘기했는데 반발이 컸다. 문화원 이상의 정치적 세력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 종약원 회원이 500만명이다 보니 마음먹고 뭉치면 (정치 세력을)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다. 하지만 혼란스러울 수 있어 안 한다. 순수한 의미로 문화를 찾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황실의 무능함 탓에 나라를 빼앗겼다.”는 이유로 후손들에게 냉소적인 국민도 많다. -대한제국은 대비를 못 해서 망한 나라가 맞다. 그럼 무엇 때문에 망했는지 정확히 역사를 밝혀서 후대가 그 사실을 토대로 50년, 100년을 만들어 가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대한제국 역사는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는다. →왜 지금 대한제국의 문화·역사를 복원하고 기억해야 하나. -현재 상황이 나라를 빼앗겼던 100년 전과 닮아서다. 우리는 항상 주변 국가가 부강할 때 침략당했다. 이제 문화로 당할 수 있다. 성장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봐라. (대한제국의 역사가) 아픔의 역사이기 때문에 더 기억한다. 왜 나라를 빼앗길 수밖에 없었는지 다시 펼쳐놓고 알아봐야 한다. →정부도 문화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부족한 점을 느끼나. -그렇다. 예컨대 문화재청은 ‘살아 있는 궁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궁이 되려면 그 안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내가 창덕궁 낙선재에서 외국인과 학생들을 직접 만나 얘기하면 얼마나 생생하겠나. “내 할아버지가 나라를 제대로 못 지켜서 아들인 영친왕이 일본에 끌려 가셨다. 그분이 사셨을 때 왕자로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시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얘기를 직접 한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내용 등을 담은 ‘낙선재 활용 방안’을 5년 전부터 문화재청과 청와대에 계속 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문화재 위원들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황사손이 들어와서 궁을 활용하느냐.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재산인데…” 하는 논리를 폈다. →피디 경험을 살려도 흥미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자료 속 역사를 드라마로도 직접 제작하고 다큐멘터리로도 만들 것이다. 아주 고급스러운 왕실 문화와 의복, 관습, 혼례, 제례 등 진짜 역사를 담아 만들기 위해 준비해 왔다. 이것을 해외로 수출하면 ‘대장금’처럼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대한제국을 들여다보면 이야깃거리가 엄청나게 많다. 지난해 (고종의 고명딸의 삶을 다룬) 소설 ‘덕혜옹주’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왜 대한민국 국민은 여기에 감정이입을 할까. 우리도 자랑스러워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 것이다. →일본에 있던 조선왕실의궤가 국내로 돌아오게 됐는데, 문화재 반환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지난해 10월쯤 혜문 스님이 찾아와 놀라운 얘기를 했다. 증조부인 고종의 투구와 갑옷 등이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누군가 황실에서 훔쳐 갔거나 도굴당한 물품이 (문화재 수집가인) 오구라 다케노스케에게 넘어갔고 이를 물려받은 오구라의 아들이 박물관에 기증했다는 얘기였다. 사무라이 문화가 남아 있는 일본이 제후국을 침략해 전리품으로 빼앗는 대표적인 것이 (그 나라 왕의) 투구와 갑옷이다. 그런 의미로 도쿄박물관에 보관된 것이다. 치욕적인 일이다. 나에겐 할아버지 얘기였기에 너무 화가 났다(침묵). 한 개인이나 스님 한분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문화재청이 나서면 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혜문 스님은 문화재청 관계자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다고 하더라. 그러나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스님께 물었더니 문화재 반환 운동을 하라면서 “나라가 안 움직이는데 직계손이니까 소송을 해 보라.”고 권했다. 할아버지의 투구와 갑옷을 찾아와서 환구단에 놓고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게 내가 할 일이다. →소송도 할 계획인가. -물론이다. (다음 달로 예상되는) 조선왕실의궤 환수 이후 도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려고 준비 중이다. 애초 3월 중순에 일본에 가 도쿄박물관장을 만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동일본 대지진이 터졌다.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가서 “내 할아버지의 투구와 갑옷을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직계손이 소송을 한다면 문제화·이슈화될 것 같다. 그 이후 혜문 스님이 본인이 쌓아온 노하우를 토대로 분위기를 일으킨다면 찾아올 수 있을 듯싶다. 일본이 바로 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못 돌아온다는 것을 알면 국민이 어떻게 느낄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조선왕실의궤가 반환된다. -왕실의궤가 돌아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의궤 안의 그림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다. 자료에서 어떤 가치를 끄집어내 지금 시대에 재현해 내느냐 하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 의궤에는 모든 왕실의 행사가 기록돼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 안에 들어 있는 행사는 매우 화려하고 세밀한 문화적 볼거리요, 예술이다. 궁에서 이런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복원해야 한다. 문화재를 가지고 와서 다시 책장이나 박물관에만 넣어 둬서는 안 된다. 글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30일 오전 7시와 오후 7시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의 ‘TV 쏙 서울신문’ 방영 ■ 이원씨는 누구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의 9남 이충길씨의 맏아들이다. 부모가 말하지 않은 탓에 어린 시절 출생에 대해 모르고 자랐다. 이름도 왕실 이름인 ‘원’ 대신 ‘상협’을 썼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기 전 아버지가 이씨를 데리고 창덕궁 낙선재를 찾아 영친왕비인 이방자 여사에게 인사를 시켰고 이 자리에서 집안사에 대해 처음 들었다. 미국 뉴욕기술대(NYIT)에서 방송학을 전공한 뒤 유명 케이블방송사인 HBO에서 프로듀서(피디)로 일하다가 6년 만에 귀국했다. 광고회사인 금강기획에서 5년간 일했고, 케이블 채널인 뷰티TV 설립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케이블 채널인 현대방송 피디와 현대홈쇼핑 본부장 등을 지내며 직장인으로 나름의 꿈을 키워 갔다. 황실의 상징적 적통을 이을 수 있다고 직감한 것은 2002년부터다. 당시 한 출판 기념회에서 삼촌인 이구 황태손을 만났는데 영어에 능통하고 국제적 감각을 지닌 이씨에게 호감을 보였다고 한다. 이씨는 2005년 7월 후사가 없었던 황태손이 숨을 거두면서 자신을 양자로 들여 법통을 잇도록 부탁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의 삶은 이때부터 180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문화마당] 시골은 외로워/공선옥 소설가

    [문화마당] 시골은 외로워/공선옥 소설가

    예전에 내가 어렸을 때는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없는 대신 읍내에 극장이 있어서 이따금 부모님 손잡고 극장 구경을 간 적이 있다. 일명 ‘쇼단’ 혹은 ‘유랑극단’들도 심심찮게 들어왔었다. 그뿐인가. 설이나 추석에는 물론이고 정월 보름, 단오절 같은 때도 ‘어마어마’하게 멋지고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정월 대보름날 밤에 일렁이며 타오르는 달집 주위를 돌며 불빛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농악 삼매에 빠진 우리 아버지들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단오절날 당산마당에서 그네를 타던 색시들의 자태는 또 어떤가. 이맘때, 산천에 꽃사태가 나면 또 우리 어머니들은 한복 곱게 차려입고 장구 둘러메고 화전놀이를 갔었다. 그랬는데, ‘조국 근대화’ 바람이 불어 한집 두집 고향을 떠나는 사람이 늘었고, 그렇게 떠난 사람들 중 장구재비 김씨, 상쇠 이씨 등도 있어, 이제 마을 사람들은 정월 대보름날 가슴 두근거리며 지켜봤던 풍물패들의 그 장관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풍물굿에 깊이 빠져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 어머니,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달집을 태우고 풍물을 치고 여름이면 당산 옆 시정에서 시조창을 하던 그 ‘정취’들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당산의 숲들은 베어지고 그 자리에 시멘트 창고와 미곡처리장과 축사가 들어섰다. 단옷날 그네를 매달 나무도 없고 그네를 탈 처자들도 없다. 매미소리와 함께 여름 한낮에 유장하게 흐르던 할아버지의 시조창 대신, 마을 앞으로 새로 뚫린 도로를 씽씽 달리는 차 소리만 살벌하게 바람을 가른다. 마을엔 사나운 개들이 사납게 짖어댄다. 닭과 함께 마당을 놀이터 삼아 잘 놀던 강아지들도 이제 우리 안에서 틈만 나면 닭 잡아먹을 궁리를 하는 것같이 눈동자를 굴린다. 마을 안에 이따금, 그리고 자주, 시시때때로, 끊임없이, 개 사요, 염소 사요, 트럭에서 뿜어져 나오는 확성기 소리가 출몰한다. 천지사방에 봄나물이 돋아나도 그 나물을 캐는 ‘가시내’들이 없다. 어쩌다 노인이 허리 구부리고 ‘돈 살’ 궁리로 쑥을 뜯을 뿐이다. 시장에 나오는 냉이와 달래는 자연적으로 돋아난 것이 아닌, 사람이 재배한 것이라 한다. 사람들은 제 힘으로 돋아난 나물이 아닌, 사람이 기른, 무늬만 나물인 나물들을 먹고 힘없다고 또 영양제를 사먹는 데 돈을 쓴다. 시골사람들도 이제는 집 옆에 돋아난 냉이, 달래를 캐 먹지 않는다. 여름도 아닌데 벌써 나온 참외를 사다 먹는다. 숭늉을 끓일 아궁이, 가마솥이 없어진 지금 시골사람들도 식후에 커피를 마신다. 들녘 한가운데로 다방커피를 배달시키고 자장면을 배달시킨다. 시골에도 도시와 똑같이 비닐, 플라스틱 폐기물이 넘친다. 그것들을 시골사람들은 그냥 태운다. 저녁 무렵이면 어디선가 쓰레기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난다. 하얀 막걸리통, 농약병, 덮개용 비닐이 한데 불 속에서 녹는다. 시골사람들은 그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플라스틱통에 든 30도짜리 ‘과실주’용 소주를 집집마다 모셔두고 아침, 낮, 저녁으로 마신다. 시골노인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 힘들어서 마시고, 외로워서 마시고, 속상해서 마시고, 재미없어서 마신다. 유일한 오락거리인 텔레비전을 켜놓고 잠자리에 든다. 마을 안길까지 검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고, 붉은 가로등은 그 검은 아스팔트와 사람들이 잠든 집과 빈집들을 붉게 비춘다. 길 건너 양계장, 혹은 종계장의 불빛은 밤에도 휘황하고 축사에서는 밤에도 라디오 소리가 난다. 사람이 있는 척하려고 그렇게 라디오를 틀어놓는지는 알 수 없다. 시간은 자정 넘어 새로 한시. 시골의 집집마다 방문 너머로 지직거리는 푸른 빛이 명멸한다. 미처 끄지 못한 텔레비전, 차마 끌 수 없는 텔레비전이다. 힘들고 외롭고 속상하고 재미없어서 ‘틀어 놓은’ 텔레비전의 푸른빛 속에 시골은 그렇게 저 혼자 일하고 저 혼자 놀고 저 혼자 잠든다. 시골이 그렇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알아도 모른 척한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나라 안 누구도.
  • 18개월 아기 축구천재, 프로구단과 최연소 계약

    18개월 아기 축구천재, 프로구단과 최연소 계약

    만 2살도 되지 않은 축구영재가 네덜란드의 한 프로구단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네덜란드 현지 언론매체에 따르면 림뷔르흐 주 벤로의 VVV벤로 클럽은 지난 27일(현지시간) 생후 18개월 배르케 반데르 메이를 선수로 정식 영입했다. 아기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얼마의 계약금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에 안긴 메이는 두 손을 번쩍 들어서 기쁨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메이와 10년 계약을 맺은 VVV벤로는 아기의 할아버지가 뛰었던 클럽으로 더욱 남다른 의미가 있다. 메이는 지난 달 축구공 3개를 장난감 박스에 차례차례 정확히 차 넣는 동영상 덕에 유명해졌다. 이 영상은 메이의 남다른 실력을 보고 깜짝 놀란 아버지가 직접 촬영해 유투브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VVV 벤로의 구단주는 “배르케의 포지션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볼 차는 실력으로 미뤄 배르케가 할아버지의 축구 유전자를 이어 받은 듯하다.”고 만족해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대한항공 승무원 봉사단체 ‘고니회’ 봄맞이 청소 등 나눔활동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에요.” 지난 23일 서울 화곡동의 3층 옥탑방. 12년째 홀로 사는 박태남(85) 할아버지의 방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흘러나왔다. 박 할아버지는 “날개 없는 천사들이 찾아왔구먼.”하며 주름진 얼굴을 활짝 폈다. “이 늙은이가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상대가 바로 이 천사들이야. 얼마만에 사람 얼굴을 대하며 이야기를 나누는지 몰라.” 이날 박 할아버지를 찾은 ‘천사’들은 대한항공 승무원 봉사단체인 ‘고니회’ 회원들. 고니회 회원 등 자원봉사자 50여명은 강서 지역 독거노인과 경로당 등을 찾아 말벗도 돼주고, 봄맞이 청소도 했다. 화곡1동 예촌경로당에서 먼지 쌓인 계단을 쓸던 이윤주(26·인력개발센터)씨는 “오늘 처음 봉사를 나왔는데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힘이 절로 솟는다.”며 흐뭇해했다. 27일 대한항공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내 21개 봉사단체가 분기별로 재능·사랑·희망·행복나눔 등 4가지 주제로 270여 차례의 다양한 ‘나눔’ 활동을 펼쳐왔다. 대한항공은 올해를 ‘사회봉사의 해’로 정했다. 직원들은 2003년부터 ‘끝전모으기’ 운동으로 봉사기금을 마련하고 있다. 임원들은 급여의 1만원 미만, 직원들은 1000원 미만을 모아 매월 1500여만원을 모으고 있다. 회사가 같은 금액의 돈을 내는 매칭그랜트 방식으로 운영돼 지난 1월까지 12억원이 쌓였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38년 동안 한번도 팔 내리지 않은 ‘달인’

    “38년 동안 단 한 번도 오른팔을 내려 본 적 없다.”는 인도의 달인이 나타났다. 인도 언론매체에 따르면 아마르 사두 바라티(70대 초반 추정)는 30여 년 전 오른팔을 머리 위로 번쩍 든 뒤로 자나깨나 한 번도 내려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을 든 달인’으로 1973년 인도의 한 신문에 소개됐던 할아버지는 최근 “최소한 38년 동안 고행을 자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간의 행적을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할아버지의 오른팔은 동상으로 인한 상처가 남겨져 있고 오랫동안 다듬지 않은 손톱이 길게 자라있다. 이제는 내리고 싶어도 오른팔과 어깨 관절이 굳어 내릴 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할아버지가 이처럼 ‘벌 서는 고행을 자처한 데에는 종교적인 이유가 가장 컸다. 자녀 3명을 둔 가장이자 평범한 힌두교 신자였던 바라티는 남은 삶을 종교적으로 헌신하고 깨달음을 얻는 데 바칠 것을 결심하고 집을 뛰쳐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정처 없이 인도 곳곳을 떠돌아다닌 지 3년 만에 할아버지는 하루종일 팔을 드는 ‘고통 수행’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통스러웠지만 이제는 익숙하다.”면서 “이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고통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중요했다.”고 담담히 털어놨다. 진정한 평화를 얻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 중이라는 할아버지는 “인류가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전쟁이나 싸움이 없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한민족학회 27~28일 ‘한국 역사학 연구의 반성과 제언’ 학술대회

    한민족학회 27~28일 ‘한국 역사학 연구의 반성과 제언’ 학술대회

    한민족학회가 27~28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근대 100년 한국 역사학 연구의 반성과 제언’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한민족학회는 식민사학 타파에 앞장섰던 고 손보기 연세대 사학과 교수가 1987년 창립한 학회다. 2006년 들어 윤명철 동국대 사학과 교수가 다시 만들었다. 두 인물만 봐도 알 수 있듯, 이들은 주류 사학계의 실증사학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다. 과녁은 우리 역사를 밝히는데 왜 중국, 일본이 펴낸 관찬(官撰) 사료만 참조하는 문헌 사학에 머물고 있는가 하는 지점이다. 윤 교수가 “일본을 통해 도입된 근대 역사학은 문자 중심의, 그것도 지배계급의 관찬 사료, 그중에서도 우리와 경쟁했던 중국, 일본의 사료만을 중심으로 삼았다.”고 비판하는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역사라는 것이 옛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 목표가 있다면 정치 경제사에 대한 문헌 사료만 뒤적일 게 아니라 “지리학, 기후학, 지형학, 생태학, 생물학, 천체물리학 등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이를 ‘신(新)사학’이라 불렀다. 때문에 첫날인 27일 과학, 정치학, 신화학, 민속학 등 다른 인접 학문을 끌어들인다. 이튿날인 28일에는 중국뿐 아니라 몽골, 거란, 여진 등 주변 민족들이 남긴 기록도 함께 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거란사 전공자인 김위현 명지대 교수, 몽골 연구자인 박원길 몽골학회장 등이 나선다. 유행하는 말을 붙이자면 ‘통섭’이랄 수 있는데, 한마디로 역사학에 더 많은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선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학제 간 학회(SIS)와 새로운 역사 연구 전망’이라는 찬조 강연을 통해 서구 학계가 제기하고 있는 ‘외계 충격설’을 상세히 소개한다. 서구 학자들이 조직한 SIS는 1997년 학술대회에서 기원전 3500년부터 기원전 500년까지 크고 작은 운석들이 지구를 덮쳤다는 결과를 제출했다. 바로 이즈음, 그러니까 하늘에서 뭔가 중대한 변고가 발생했을 때에 신이라는 관념이 전 세계적으로 출현했고 뒤이어 신화가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가령 “그리스 신화는 거인족 티탄의 카오스 신화 뒤에야 제우스의 12신을 등장”시켰고, 단군신화 역시 “단군의 할아버지 환인을 천둥번개신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불교의 법화경에도 수많은 천신(天神)들이 등장해 “꽃비를 뿌리고 수백, 수천의 악기와 큰 북을 울렸다고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화 자체가 외계 충격에서 벗어났다는 인류의 선언이라는 얘기다. 이 위원장이 17세기 조선을 포함한 동북아 정세의 변화를 소빙하기(小氷河期)로 설명하려는 이유다. 김헌선 경기대 국문과 교수는 그래서 신화학의 복권을 요구한다. 역사학의 입장에서 신화학은 허풍쯤에 불과하지만 신화학이 보기에 역사학은 풍부한 이야기들을 다 잘라내 버려 ‘메말라 비틀어진 뼈다귀’다. 김 교수는 “일본의 실증주의는 부분을 전체에서 떼어내고 부분에 대한 증명이 전체인 것처럼 해서 스스로 지리멸렬했다.”고 주장한다. 토론자로는 고대 별자리 연구를 통해 역사 천문학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과 교수가 나선다. 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도 비슷한 입장이다. 민속학을 상상력의 보고로 보기보다 미천한 연구쯤으로 취급해 버린다는 것이다. 가령, 고구려 유민 20만명 가운데 10만명이 남방으로 이주해 지금의 먀오족이 됐다는 주장에 대해 사학계가 단 한마디의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장 연구관은 “기록에 의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전히 차가운 시선만 보낼 뿐 해석과 논리에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준거가 오류인지 굳이 말하려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금붕어 타고 다니는 ‘마법사 개구리’ 순간포착

    금붕어 타고 다니는 ‘마법사 개구리’ 순간포착

    연못에서 금붕어를 타고 다니는 일명 ‘마법사 개구리’가 포착돼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영국 데번 주에 사는 원예가 토니 버틀러(75)는 최근 자신의 집 연못에서 금붕어를 자가용처럼 타고 다니는 특이한 개구리를 발견해 눈을 뗄 수 없었다. 버틀러는 “집에 연못이 2개가 있는데 한쪽은 금붕어만 살고 한쪽은 두꺼비, 개구리 등만 산다.” 면서 “금붕어 연못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나서 뛰어 가봤더니 개구리가 연못에서 가장 큰 금붕어 등에 타고 연못을 휘젓고 있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카메라를 가져와 눈앞에 펼쳐진 신기한 광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개구리가 마법을 부린 것처럼 금붕어는 싫은 기색 없이 연못 곳곳을 헤엄쳐 버틀러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40년 넘게 원예를 하면서 수많은 연못을 만들고 가꿔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 봤다는 할아버지는 “개구리가 금붕어에 해를 끼칠까봐 걱정했었는데 둘은 어느덧 절친한 친구가 된 것 같았다.”며 신기해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머리 2개 ‘희귀 송아지’ 中서 태어나

    머리가 2개 달린 송아지가 중국 농가에서 태어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중국 허베이성의 농촌마을 가오양에서 덩 유바오(65)할아버지가 기르는 소가 최근 머리 2개 달린 희귀한 송아지 한 마리를 낳아 동네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미 소의 출산을 돕던 할머니는 머리 2개 달린 송아지를 보자마자 기절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리 춘후아(60)할머니는 “그간 수많은 소들이 출산하는 장면을 봤지만 머리 2개 달린 송아지는 처음봐서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2개의 머리에 눈 4개, 코 2개, 귀 3개를 가진 송아지의 건강상태는 비교적 양호하지만 혼자서는 일어나지 못해서 젖을 빨지 못했다. 손녀인 진퍽(16)은 양젖을 짜서 송아지에 직접 물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할아버지는 “어미 소가 평범한 송아지들만 낳았는데 이번에 왜 이런 송아지를 낳았는지 모르겠다.”면서 “놀라긴 했지만 앞으로 정성껏 기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2000년 들어서만 그루지야, 에스토니아, 중국 등지에서 머리 2개 달린 송아지들이 태어난 사례들이 잇달아 보고됐다. 환경오염의 영향인지 유전적인 문제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부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탤런트 김인문씨

    [부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탤런트 김인문씨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등 8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 김인문 씨가 25일 오후 6시 34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72세. 손녀딸인 김은경씨는 “할아버지께서 지난해 4월 말 방광암 판정을 받으시고 투병하셨다.”면서 “며칠 전부터 병세가 악화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오늘 저녁 눈을 감으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2005년 8월 뇌경색으로 쓰러졌으나 재활에 성공했다. 당시 병원에서 앞으로 걷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정까지 받았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일어났다. 이후 2007년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에, 2008년에는 연극 ‘날개 없는 천사들’에 출연했다. 지난해 3월부터는 영화 ‘독 짓는 늙은이’의 주인공 송노인 역을 맡아 투병 중에도 촬영을 마쳤다. 동국대 농대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1968년 김수용 감독의 ‘맨발의 영광’으로 데뷔했다. 처음에는 문전박대를 당하였으나 김 감독에게 70여일을 매달린 끝에 배우가 됐다. 1968년 TBC 특채탤런트로 방송에 입문했다. 이후 ‘형’ ‘가시나무 꽃’ 등의 드라마와 ‘저 하늘에도 슬픔이’ ‘달마야 놀자’ ‘바람난 가족’ 등의 영화에서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구수한 연기를 펼쳤다. 특히 1990년부터 2007년까지 방송된 장수 드라마인 KBS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서 정감 넘치는 멋쟁이 아버지 ‘백구두 신사’를 연기해 사랑을 받았다. 뇌경색을 극복한 후에는 장애 배우들을 육성하는 데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2009년 1월 장애인방송연기자협회를 설립, 장애 배우들을 훈련시켰다. 그가 연출을 맡아 무대에 올린 ‘날개 없는 천사’에는 다운증후군, 뇌성마비 환자가 배우로 출연했다. 유가족은 부인 박영란씨와 필주(씨네크루 대표 )·헌주(삼화 F&B 이사)씨 등 두 아들이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8일이다. (02)2227-7500.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무일푼’ 아인슈타인 손녀 쓸쓸한 죽음

    천재 물리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손녀가 매년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할아버지의 유산을 한푼도 물려받지 못하고 평생 가난에 시달리다 쓸쓸하게 죽음을 맞아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와 ABC뉴스 등은 아인슈타인의 장남 한스 알베르트의 양녀 이블린(70)이 지난 13일 캘리포니아주 올버니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블린은 말년에 할아버지가 가족들에게 한푼도 남기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면서 자신이 노숙자로 살며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했다고 비참했던 삶을 털어놓았다. 뒤늦게 지난해 할아버지의 재산을 관리하는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과 상속권을 놓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과를 보지 못하고 결국 눈을 감았다. 생전에 가족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은 1955년 서류 7만 5000건과 자신의 물품을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에게는 한푼도 남기지 않았다. 지난해 포브스 보도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의 얼굴과 이름, 지적재산권 등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1000만 달러로 추산된다. 모든 수익은 법적으로 히브리대학에 귀속된다. 사후 아인슈타인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은 마이클 잭슨 등 전 세계적으로 7명에 불과하다. 이블린의 아버지 한스 알베르트는 아인슈타인이 스위스에서 대학시절에 만난 첫 부인 밀레바 마리치와의 사이에 태어난 장남이다. 아인슈타인은 1919년 마리치와 이혼하고 사촌 엘자와 재혼한 뒤 1933년 미국 이민 길에 올랐다. 아인슈타인은 아들들 결혼에도 불참하는 등 생전에 가족들과는 거리를 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블린은 5개국어를 구사하고 버클리에서 중세문학을 전공한 재원이었지만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전설 속의 원인 ‘빅풋’ 연구에 헌신했던 괴짜 교수 그로버 크란츠와 결혼했다가 13년만에 이혼한 뒤 생활이 어려워져 노숙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블린은 지난해 상속권 반환 소송을 제기한 직후 CNN 방송에 출연해 “히브리대학 측이 믿기 어려우리만치 가족들에게 지독하게 대했다.”며 분노를 표시하기도 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김정은 ‘타임 100인’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이하 타임 100인)에 포함됐다. 타임은 21일 ‘타임 100인’을 발표하면서 김정은에 대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난하고 핵을 보유한 국가의 절대적 통치자로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2004년과 2005년 2년 연속 ‘타임 100인’에 선정된 바 있다. 한류 스타 가수 비는 2006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타임 100인’에 꼽혔다. 온라인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던 비에 대해 타임은 “한국의 팝 스타에서 영화배우로 변신했다.”면서 그가 온라인 투표에서 인상적인 영향력을 보였다고 소개했다. 미국의 공교육 개혁을 주창해 주목을 받았던 한국계 미셸 리 전 워싱턴 DC 교육감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지난해 선정됐던 ‘피겨 여왕’ 김연아는 올해 빠졌다. 이집트 시민 봉기의 영웅인 구글의 중동·아프리카 담당 임원 와엘 고님(30)은 ‘타임 100인’ 명단의 첫 번째로 이름이 올랐다. 무아마르 카디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은 ‘떠버리’라는 소개와 함께 목록에 포함됐다.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넷플릭스 최고경영자 리드 해스팅스,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 창설자 줄리언 어산지도 100인에 포함됐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 중국의 반체제 인사이자 설치 미술가 아이웨이웨이, 오는 29일 ‘세기의 결혼식’을 거행하는 영국의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 커플, 엄격한 교육 방식을 소개해 논란을 일으킨 책 ‘타이거 맘’의 저자 에이미 추도 명단에 들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22일 TV 하이라이트]

    ●세상사는 이야기(KBS1 밤 7시 30분) 47년 전, 스물다섯 처녀가 산골 마을 총각에게 시집을 왔다. 충북 옥천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 푸렁골. 조각배로 강을 건너고, 고개 넘어 몇 시간을 걸어 신랑을 처음 만났다. 하지만 이제 세월이 흘러 모두 자리를 떠났다. 혼자 남아 마지막 남은 꿈이 이루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는 김봉난 할머니를 만나본다. ●금요기획(KBS2 밤 11시 5분) 동해안 최북단 저도 어장이 6배 이상 넓어졌다. 저도어장은 어로한계선 이북의 황금어장으로 고성군 현내면 어민들에게만 매년 한시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저도어장은 통일전망대 남쪽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돌섬이다. 저도어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민·관·군의 어로 보호 작전과 저도 어촌계의 삶을 함께 들여다본다. ●아침드라마 당신 참 예쁘다(MBC 오전 7시 50분) 유랑(윤세아)은 자신도 모르게 강수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강수를 보자마자 쓰러지고 만다. 자신 앞에 쓰러진 유랑을 강수는 밤새 간호하고, 유랑은 그런 강수가 고맙기만 하다. 한편 안나는 마린블루에 면접을 보러 온 유랑의 리조트 친구 수민을 만나 유랑에 대한 정보를 꼬치꼬치 캐묻는다. ●농비어천가(SBS 오후 6시 30분) 이른 아침 느닷없이 청년들 집에 찾아온 이장님. 진정한 농군의 깨달음을 얻게 해 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한다. 잠이 덜 깬 그들이 도착한 곳은 충남 홍성의 명산 용봉산. 청년들은 영문도 모른 채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커다란 사자바위가 나타날 때쯤 청년들의 얼굴은 이미 땀범벅.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용봉산 정상에 도착하는데…. ●세계의 아이들(EBS 밤 8시 50분) 몽골평원의 유목민 베르쿠치 할아버지. 손자에게 말 달리는 법, 독수리로 사냥을 하는 법을 가르치며 소일한다. 투박한 손으로 손주들을 보듬어 줬던 우리의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수천㎞ 떨어진 몽골 평원에 사는 베르쿠치 할아버지에게서 어린 시절 추억 속 할아버지의 애정 어린 마음을 떠올려 본다. ●콘서트 울림(OBS 밤 10시) 록밴드 크라잉넛 보컬 박윤식이 자진해서 스카 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만든 뮤지션, 킹스턴 루디스카가 ‘콘서트 울림’ 무대에 오른다. 자메이카의 음악인 스카(Ska)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9인조 밴드의 신나는 스카를 들어보고, 9명의 신나는 음악 친구들의 생활 이야기와 스카에 맞춰 추는 춤인 ‘스캥킹’도 만나 본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사 사정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KBS 02-781-1800 MBC 02-780-0015 SBS 02-2113-3190 OBS 032-670-5000 EBS 02-526-2000 서울신문STV 02-777-6466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8) 부여 백강마을 ‘부여동매’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8) 부여 백강마을 ‘부여동매’

    매화만큼 옛 선비들의 사랑을 받은 나무도 없다. 고즈넉한 선비의 정원 귀퉁이에 홀로 은은한 향기를 자아내며 피어 있는 매화는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 가는 길목에서 화사한 꽃을 피운다. 선비들은 한겨울에 눈 속에서 고아한 자태로 피어나는 매화의 결기가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제 길을 가는 선비를 닮았다고 보았다. 은근하게 배어나는 매화 향기는 사락사락 책 갈피 넘기는 소리만 살아 있는 극단적 고요 속에서 더 짙게 느낄 수 있다. 옛 사람들이 매화 향기를 귀로 들어야 제격이라며 문향(聞香)이라는 말을 지어낸 것도 그래서다. ●볼모로 잡혀 갔던 청나라서 몰래 들여와 적막감이 감돌 만큼 나른한 봄날 오후 충남 부여 규암면 진변리 백강마을의 깊은 침묵을 깨뜨린 건 은은한 향을 담고 화사한 꽃을 피운 한 그루의 매화나무였다. 마을회관 옆집에 사는 김영갑(83) 노인이 매화 꽃의 봄노래를 한 수 거들고 나섰다. “400년 전 병자호란이 났을 때, 인조의 세 아들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인평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어. 그때 그들이 붙잡혀 간 곳은 압록강보다 더 북쪽인 심양이었지.” 김 노인은 나무를 바라보며 400년 전 조선의 역사부터 아주 느릿하게 풀어 놓았다. “심양은 오줌을 누면 오줌발이 그대로 얼어붙을 만큼 엄청나게 추운 곳이야. 선비 중에 백강 이경여 선생이 왕족을 수행하기 위해 심양까지 갔지. 선생이 어느 날 그 추운 곳에서 환하게 핀 꽃을 본 거야. 얼마나 놀라웠겠어. 이 양반이 나뭇가지를 한뼘만큼씩 꺾어서 몰래 들여와 여기에 심었지. 그중에 두 그루는 빨간 꽃이 피는 홍매고, 한 그루는 하얀 꽃이 피는 백매였어.” ‘부여동매’라는 고유명사로 부르는 백강마을의 매화나무는 그러나 그만큼 오래돼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50년 정도 돼 보이는 나무인데, 일제 침략기에 천연기념물 제105호로 지정됐던 나무라고 한다. 나무의 나이와 나무에 얽힌 이야기의 연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세 그루의 매화나무가 잘 자랐어. 워낙 추운 지방에서 꽃을 피우던 나무여서 여기에서도 추운 겨울에 꽃을 잘 피웠지. 한데 그중에 두 그루의 홍매는 오래전에 죽었고, 백매 한 그루만 남게 됐어.” 이야기가 길어지자 노인은 아예 길가로 이어진 밭 둔덕에 주저앉아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마을 정신적 중심에 놓인 한 그루 나무 김 노인의 말 끝에는 나무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이 마을 선조에 대한 자부심까지 가득 묻어 있다. 노인은 자신의 10대조 할아버지가 조선 중기의 예학자인 김장생 선생인데, 매화나무를 이 자리에 심은 백강 이경여 선생은 김장생의 아들인 김집 선생 때에 이르러 사돈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매화나무 바로 뒤편으로 보이는 부산서원은 이경여 선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손수 세우고, 후학을 양성하던 마을의 정신적 중심이다. 지금은 이경여 선생과 사돈 간인 김집 선생을 함께 배향하고 있다.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마을은 백강마을로 불린다. 매화는 예로부터 선비 정신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부여동매는 조선 중기에 우의정 영의정을 모두 지낸 이경여 선생이 특별히 애지중지하며 키운 까닭에 마을 사람들에게는 보물처럼 여겨질 뿐 아니라 선비 마을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마을의 극진한 보호 덕에 일제 침략기까지만 해도 이 나무는 나라 안에서 가장 훌륭한 매화나무로 자랐다. 일본인들까지도 이 나무의 아름다움에 감탄해 천연기념물로 지정했고, 나무 앞에 ‘조선의 동매’라고 새긴 돌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그때 세운 비석에 새겨진 글씨들은 세월의 바람에 깎여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로 남아 있다. 최근 그 곁에 새로 ‘부여동매’라는 글씨를 선명하게 새긴 새 비석을 세웠고, 부여군에서는 나무의 내력을 담은 큼지막한 안내판을 놓았다. “저 안내판에는 이경여 선생이 심은 나무가 불에 타 죽고 나서 한참 지난 뒤에 죽은 나무의 뿌리에서 새로 싹이 나서 이만큼 자랐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불에 타 죽은 나무에서 어떻게 새 싹이 돋겠는가. 지금 저 나무는 40년 전에 규암면장을 지낸 이가 새로 갖다 심은 거야. 그러니까 겨울에 꽃을 안 피우고, 이렇게 따뜻한 봄에 꽃을 피우는 거지.” 부여동매는 해마다 동지 즈음에 하얀 꽃을 피우고, 이듬해 봄이 되면 다시 또 한 차례 꽃을 피웠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 나무는 겨울에 꽃을 피우지 않고 봄에만 꽃을 피운다. ●천년의 향을 담고 오랜 세월을 살아 나무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척 건강하고 우람했다고 한다. 둘로 나눠지며 자란 줄기 중 하나에는 그네를 매 뛸 만큼 단단했다는 것이다. 동매가 쇠약해지고 죽음에 들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한다. 우선 김 노인은 “나무가 하도 좋아서 일본 사람들이 너도나도 꺾어 가는 바람에 약해졌다가 나중에는 아예 불을 질러 죽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른 이야기로는 일본인들이 물러간 직후 홍수가 들었고, 마을 앞 백마강이 나무를 덮쳐 죽게 됐다고도 한다.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건만 나무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는 알 수 없다. 하지만 400년 전의 역사를 안고 살아 왔던 매화나무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대를 이어 가는 애정만큼은 분명했다. 김 노인이 앉아 있는 밭 둔덕 위로 상큼한 봄 내음을 가득 담은 매화꽃 바람이 건듯 불어 온다. 한 그루의 매화나무는 지금의 김 노인처럼 이 자리에 주저앉아 우리 역사의 한 토막을 서리서리 풀어낼 것이다. 하얗게 센 노인의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드는 봄바람에 1000년의 향이 담겼다. 글 사진 부여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서초 ‘우산 수선교실’ 운영

    서초구가 지역 초·중·고등학교를 순회하며 학생들에게 ‘찾아가는 우산 수선 교실’을 운영해 눈길을 끈다. 자원 재활용을 통해 물자 절약정신을 심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구는 10분 분량의 우산 수선 동영상을 제작했다. 누구나 쉽게 수선 방법을 따라할 수 있도록 방법을 자세히 담았다. 우산 수선에 일가견이 있는 할아버지가 직접 우산을 수선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특히 학생들이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퀴즈 시간도 마련했다. 언뜻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달 초 구가 전국 230개 지자체에 동영상을 배포하자 일부 자치구에서 교육을 해 달라는 요청이 몰리고 있다. 지금까지 12개 자치구에서 신청했다. 또 구 인터넷방송(tv.seocho.go.kr/) 및 구청 홈페이지에 수선 동영상을 올려 누구나 손쉽게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구는 7월부터 수선한 우산을 시민들에게 비가 올 때 무료로 제공할 예정이라고 20일 밝혔다. 현재 양재역 우산수선센터 대여 코너를 사당·이수역 등으로도 확대할 예정이다. 자율대여·자율반납으로 형식으로 운영한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홀몸노인 말벗서비스] “태어나서 처음 케이크 먹어봐요”

    “태어나 처음 케이크를 먹어봐요. 언제 또 이런 날을 맞을지….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19일 중랑구 신내2동에 홀로 사는 김인자(가명·67) 할머니가 일주일 전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받은 생일잔치를 떠올리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김 할머니는 2006년 북한에서 내려온 새터민이다. 북에 자녀 2명을 두고 온 할머니는 2년 전 ‘황혼 이혼’으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쓸쓸히 지내고 있다. 외출하는 것 자체가 괴롭다. 같은 처지에 있는 새터민들과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다. 이따금 집에서 일본어를 공부하며 시간을 때울 뿐이다. 정진경(40) 사회복지사는 “할머니 댁을 찾아가니 잘 정돈됐는 데도 왠지 외로움이 묻어나오더군요. 촛불을 켜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드렸더니 기쁜 탓인지, 회한에 잠긴 탓인지 모를 눈물로 얼굴이 흥건하더군요. 미역국을 끓여 드리지 못해 못내 아쉽습니다.”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생일을 맞아도 한마디 하소연할 가족이 없고, 챙겨줄 이웃도 없는 홀몸 어르신들을 위해 주민자치위원회가 ‘특별한 외출’에 나섰다. 39명을 대상으로 생일 때마다 사랑을 배달한다. 연 200만원의 자치센터 기금을 이용한 작은 나눔이지만 5만원 상당의 케이크와 내복 선물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어 빛난다. 짧은 시간이나마 말벗으로 안마까지 해주며 정(情)을 나눠 더욱 애틋한 시간이다. 주민자치위원회는 6월에는 한국전쟁 때 월남해 혼자 야채장사를 하면서 근근이 살다가 교통사고로 지체3급 판정을 받아 거동이 불편한 황모(68) 할아버지의 생일상을 차려 준다. 7월엔 전처 자식 2명을 키워냈는데 그들마저 암으로, 교통사고로 먼저 보낸 기구한 인생을 사는 황모(87)할머니를 찾아가 위로할 예정이다. 기동원 신내2동장은 “조그마한 정성이라 송구스럽기만 한데 어르신들이 친자녀처럼 맞아주셔서 되레 고마웠다.”며 “앞으로도 소외받는 노인들에게 재정적 지원은 물론 결연사업을 통한 사랑나눔도 적극 펼치겠다.”고 말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北 수용소서 28년 김혜숙씨 “마을 전체 전기 철조망…뚫린 곳은 하늘뿐”

    北 수용소서 28년 김혜숙씨 “마을 전체 전기 철조망…뚫린 곳은 하늘뿐”

    “‘자유’라는 말은 남한에서 처음 들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인 평안남도 북창군 봉창리 제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 수용생활을 했던 김혜숙(49·가명)씨는 “행동과 생각까지 어느 하나 자유가 없었던 북한의 실상을 토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수용소는 겉보기에 평범한 마을같지만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뚫린 곳이라고는 하늘뿐이었다. 그는 “보위부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배고픔과 주민 간의 불신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우리나라 정보기관이 인정한 최장기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인 김씨가 1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침해 신고센터를 찾아 북한 당국과 통일부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 등을 상대로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인권침해 실상을 고발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개인 자격으로 신고센터에 진정을 제기한 것은 김씨가 처음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관리소 들어가서 처음 본 게 공개총살 → 정치범 수용소는 어떤 곳인가. -내가 있던 곳은 평안남도 북창군에 있는 ‘봉창리 제18호 관리소’였다. 평양에서 180리쯤 들어간 산골이다. 정치범 수용소라는 이름은 남한에 와서 알았다. 북한에서는 수용소를 14호 관리소, 18호 관리소 이런 식으로 부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주민이라고 한다. 18호 관리소에만 2만명 정도의 주민들이 있었다. 그 중에 보위부 사람, 병사들, 관리원, 당 사람들 빼고 나면 1만 7000여명 정도가 이주민이었다. →수용소 하면 감옥이 연상되는데 실제로 그런가. -관리소는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18호 관리소는 끝에서 끝까지 100리 정도 된다. 마을 주변을 전기가 통하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서 뚫린 곳은 하늘뿐이다. →13살 때부터 수용소 생활을 했는데…. -1975년 우리 5남매와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까지 전부 수용소에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월남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할아버지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안 돌아오길래 집 나간 줄만 알았지 남조선으로 갔다는 건 알지 못했다. →28년 만에 수용소를 나오게 된 것은 어떤 계기 때문인가. -13살 때 관리소로 들어갔는데 그 안에서 부모님도 다 죽고 없으니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김씨의 아버지는 관리소로 온 직후 보위부에 끌려 갔고, 어머니는 농장일을 하다 1979년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10년 넘게 토끼, 닭, 돼지를 길러서 당 일꾼들에게 바치고 ‘모범일꾼’ 평가를 받아 2002년 2월 16일 해제받았다. →수용소에 처음 가서 받은 인상은. -거기서 처음 본 게 공개 총살이었다. 사람 매달아 놓고 총으로 쏴 죽인 뒤 시체를 가마니에 둘둘 말아서 실어 갔다. 개 죽은 걸 보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가슴이 계속 할랑대고 공포감에 질려 견디기가 어려웠다. →수용소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굶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때 알았다. 배급이란 게 강냉이만 주는데 턱없이 부족했다. 일곱 식구가 한달에 7.5~8㎏을 받았으니…. 강냉이도 다 젖은 걸 줘 놔서 말려놓으면 절반으로 줄곤 했다. 그러니 아이들은 파랗다는 건 모두 뜯어먹고, 한달에 딱 하루 쉬는 날에는 온 가족이 입산증을 받아 산에 가서 도토리나무 잎을 뜯어다 먹곤 했다. ●배고픔보다 무서운 건 주민끼리 감시 →열악한 상황에서 도망칠 생각은 못했는가. -관리소 주위 철조망에는 전기가 흐르는데 멀리서도 ‘징~’ 하고 전기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안전원들이 순회하면서 철조망 주위에서 발자국이라도 보이는 날에는 바로 색출해서 총살한다. 28년을 살면서 도주하는 사람은 못 봤다. →배고픔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었나. -주민들끼리 서로 경계하는 것이다. 3세대를 한 조로 묶어 서로 감시하게 했는데, 서로 말하는 걸 듣고 쪽지에 적어서 한달에 한번씩 담당 지도원 방에 넣어 줘야 했다. ‘어떤 동무가 몇날 며칠에 무슨 말을 했다.’고 아주 자세하게 적어야 한다. 그저 입을 꼭 다물고 생활해야 했다. →노동생활은 어땠는가. -학교 졸업하면 공부를 잘했든 못했든 무조건 탄광일을 해야 했다. 남자들은 돌 깨고, 여자들은 석탄 캐고…, 마흔 살만 넘으면 진폐증으로 쓰러져들 나갔다. 나도 열 일곱살 때부터 탄광에서 일했는데, 얼굴 한번 제대로 씻어본 적이 없었다. 하루 8시간 노동제인데, 말이 8시간이지 막장에서 나와 또 산에 가서 나무 해다가 막장에 들여놓고 하다 보면 16시간이 훌쩍 갔다. →그래도 수용소 안에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뒀는데…. -결혼이라고 자유는 아니다. 남자는 30살, 여자는 28살이 되어야 결혼할 수 있고, 그것도 일을 잘해야지만 승인을 해줬다. 초급당, 보위부, 관리과장, 행정부서장 이렇게 단계를 거쳐서 승인을 받아야 결혼할 수 있고, ‘누구누구는 일 잘했으니 결혼 승인해준다.’ 이런 식으로 공표한다(김씨의 남편은 2001년 4월 탄광에서 얼어 죽었고, 2명의 자녀는 수용소를 나온 뒤 2003년 수해 때 사망했다). →인권과 자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근 30년 동안 ‘불복종하면 죽인다.’는 말만 듣고 살다가 자유란 말을 남한에 와서 처음 들었다. 자유란 내가 제주도 가고 싶으면 가고, 강릉 가고 싶으면 가는 것 아니겠는가. 글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예금 몽땅 나에게”…러시아 최면술 도둑 기승

    “예금 몽땅 나에게”…러시아 최면술 도둑 기승

    러시아에서 최면술을 이용한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노인들을 골라 최면술을 이용해 돈을 훔치는 최면사 도둑이 은행 CCTV에 잡혀 러시아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현지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러시아 스타브로폴의 한 은행 CCTV가 잡아낸 상황을 보면 범인은 은행에 들어서는 노인들에게 최면술을 걸어 계좌에서 돈을 빼도록 한 뒤 훔쳐 달아난다. 현지 경찰은 “도둑이 노인들에게 한 푼도 남김없이 계좌에서 돈을 빼게 했다.”고 말했다. 최면에 걸려 전 재산을 잃은 한 할아버지는 “(은행에 들어서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절실하게 돈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고, 내가 도와주겠다는 말을 한 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면서 “이튿날 은행에 문의하니 전날 내가 평생 모은 돈을 모두 인출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스타브로폴에선 최소한 노인 8명이 이 도둑에게 걸려 최면이 걸린 상태로 돈을 빼 건네주었다. 경찰은 “범인이 이런 식으로 훔친 돈이 수만 루블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러시아에선 이에 앞서 지난달 행인을 상대로 최면을 걸어 현금 등을 훔친 여성 두 명이 체포된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나와 통일] (8) 어희선 치과의사

    [나와 통일] (8) 어희선 치과의사

    2009년 금강산 이산가족상봉행사에서 작은할아버지를 만난 뒤 통일에 대한 나의 생각은 상당히 많이 달라졌다.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는 것에 대해 이의는 없지만 통일이 나의 문제로 다가왔을 때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현실적인 관점에서 통일을 생각하게 됐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 대해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로부터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다. 장남이었던 할아버지를 대신해 둘째, 셋째할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의용군으로 전쟁터에 나가셨다가 북에 남게 되셨다. 명절 때면 고작 5명 남짓한 식구들이 보내는 게 썰렁해 대가족에 대한 부러움이 늘 마음에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단에 선발됐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신청을 한 지 몇년이 지나서였다. 마침 추석을 며칠 앞둔 시기여서 북한의 친척들을 만날 마음에 설레고 또 매우 분주했다. 우리는 가족들의 지난 수십년 동안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사진첩과 약품, 옷가지, 식료품 등을 챙겼다. 상봉행사에 참석한 가족들 모두 어린이 키만 한 이민가방을 두세개쯤 들고 버스에 올랐다. ●경제격차 커 통일돼도 갈등 클 것 상봉장에서 북측 사람들이 들어서는 순간 “아, 우리 작은할아버지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빼닮은 외모. 정정하신 발걸음. 본 적도 없는 작은할아버지를 본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면서 서로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금세 눈물바다가 됐다. 헤어질 때는 버스 유리창 너머 손을 맞대고 “잘 가라.” “잘 있어라.”라며 또 한번 눈물을 흘렸다. 2박 3일 동안 3번을 만났는데 기억에 남는 순간은 이 두번 정도다. 가족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보다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북한사람들에게서 느낀 이질감이었다. 상봉장에 나타난 가족들은 모두 똑같은 중절모에 양복 차림이었다. 작은할아버지는 별다른 얘기를 나눈 것도 아닌데 북측 요원들과 눈이 마주치면 움찔했고, 호텔방에서는 도청을 걱정해 늘 TV를 켜 두었다. 이들이 정말 나의 형제, 가족이고 민족일까. 떨어져 지낸 지난 60년 동안 우리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이때 이후 통일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통일이 되면 우리들이 북한 사람들을 똑같은 국민이라고 인정하고 차별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도 남한에는 지역감정이 남아 있는데 지금 이 상태로 통일이 된다면 갈등이 클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북한 사람들을 내가 먹여살려야 할 식구라고 생각하니 앞이 깜깜했다. 통일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격차를 줄인 다음에 하지 않으면 같이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량 지원 등 남북 교류 회의적 인도적인 차원의 남북교류에 대해서도 회의를 갖게 됐다. 이 행사도 이산가족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대가를 요구하기 위한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쌀을 보내는 사업도 지금은 찬성하지 않는다. 그 쌀이 북한 주민들에게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장기적인 통일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5년 임기를 다 바쳐서 통일에 힘 쏟는다고 해도 될까 말까 한데 정권에 따라 너무 쉽게 변하는 통일정책으로는 통일은 불가능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누구도 손댈 수 없는 10년, 20년짜리 통일 프로젝트가 있어야 한다. 통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북한이 변하는 수밖에 없다. 북한 고위층이 생각을 바꿔 개방을 받아들이는 전향적인 자세가 되지 않는 한 통일은 어렵다. 북한은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는가. 이 물음에 북한이 답을 보여 주기를 바란다. 정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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