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할아버지
    2025-08-24
    검색기록 지우기
  • 김문수
    2025-08-24
    검색기록 지우기
  • 여배우
    2025-08-24
    검색기록 지우기
  • 대전시
    2025-08-2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912
  • [주말 영화]

    ●안녕, 형아(EBS 일요일 밤 11시) 9살 장한이(박지민·오른쪽)는 세상에서 무서울 게 없는 말썽천재이다. 학교 친구들은 모두 자기 똘마니이고 가족들은 부하나 다름없다. 특히 가끔 아프다고 투정부리는 형 한별(서대한·왼쪽)은 최고의 괴롭히기 연습 상대다. 형은 오늘도 아프다. 학원에 가야 한다고 알람시계를 맞춰 놓고 잠든 형 몰래 알람시계를 꺼 버린다. 하지만 엄마한테 딱 걸리고 마는데…. 빠져나올 구멍은 단 한가지, 형이 아프다는 핑계뿐이다. 엄마의 회초리가 무서워 슬금슬금 피하고 있는데 형아가 갑자기 뭔가 울컥 토하고는 쓰러진다. 그래서 가족 모두 하루를 병원에서 보내게 되고, 학원 안 간 것도 덜 혼나고, 엄마랑 의사 할아버지는 뭔가 심각한 듯 대화를 주고받지만 한이는 그저 타이밍 잘 맞춰서 토해 준 형이 고마울 뿐이다. 검사 결과 형아의 머릿속에 나쁜 혹이 있어서 머리를 열어 잘라 낸다고 한다. 머릿속에 있는 혹을 자르는데 왜 머리카락을 빡빡 깎는지 한이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친정엄마(KBS1 토요일 밤 1시 5분) 세상 모든 엄마들이 아들 자식부터 챙길 때, 홀로 딸 예찬론을 펼친 우리 엄마. 마음은 고맙지만 바쁘게 일하는데 그냥 전화하고, 보고 싶다 찾아오고, 별 이유 없이 귀찮게 구는 엄마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나도 결혼 5년차에 딸까지 둔 초보 맘인데 엄마 눈에는 아직도 품 안의 자식으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영화의 시선은 엄마에게로 옮겨간다. 어린 시절부터 말도 잘하고 똑 부러지던 우리 딸, 지숙이.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미스코리아 뺨치는 외모까지 무식하고 촌스러운 내 속에서 어떻게 이런 예쁜 새끼가 나왔을까 싶다. 혼자 서울 가서 대학 다니며 밥은 잘 챙겨 먹는지 걱정이 태산이지만, 일해서 번 돈으로 용돈도 보내주고, 결혼한다고 남자도 데려오고, 벌써 애기 엄마까지 되었다. ●간 큰 가족(OBS 토요일 밤 11시 15분)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마누라 앞에서 북에 두고 온 마누라 타령만 해대는 간 큰 남편 김 노인은 오매불망 북에 두고 온 아내와 딸을 만나는 게 소원인 실향민이다. 여느 때처럼 통일부에 북한주민 접촉 신청서를 내고 돌아오던 김 노인은 그만 발을 헛딛고 계단에서 굴러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제서야 가족들은 김 노인이 ‘간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간암 말기 아버지에게 50억원의 재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 하지만 이 재산은 ‘통일이 되었을 경우에만 상속받을 수 있다.’는 기이한 조항을 달고 있다.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과 자칫하면 통일부로 전액 기부돼 버릴 50억원의 유산을 사수하기 위해 가족들은 통일이 되었다는 담화문을 담은 가짜 뉴스 프로그램을 제작해 아버지에게 보여드리는데….
  • 81세 노인, 떼강도 상대 ‘8대 1 승리’ 화제

    81세 노인, 떼강도 상대 ‘8대 1 승리’ 화제

    홍콩에서 81세 남성이 ‘노익장’을 과시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2일 AFP통신 등 외신은 “홍콩에서 81세 노인이 금품을 뺏으려 덤빈 10대 강도 8명을 상대로 싸워 물리쳤다.”고 전했다. ‘막’이라고만 알려진 이 할아버지는 사건 당일 오전 4시께 새벽 운동을 하러 지하도를 건너던 중 15~19세 사이의 비행 청소년들의 공격을 받았다. 10대 청소년들은 노인을 바닥에 밀치고 금품을 빼았으려 했지만 오히려 노인의 거센 반격에 빈손으로 도망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경찰 관계자는 “아파트 근처에서 혈흔을 발견하고 추적해 당시 도주했던 강도범 8명을 모두 붙잡았다. 이중 3명은 여학생이었다.”면서 “몇몇 학생은 몸싸움을 벌이던 중 가벼운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붙잡힌 10대 청소년들은 폭력과 강도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방송화면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0) 남해 난곡사 느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0) 남해 난곡사 느티나무

    봄바람에 실려 온 편지 한 장 달랑 들고 먼 길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이 마치 조상 모시듯 정성으로 보호하는 나무’라며 할아버지 댁이 있는 시골의 정자나무를 소개한 제자의 편지다. ‘송글송글’이라는 유쾌한 이름의 여(女)제자는 편지에서 “마을 사람들은 농사가 잘될지 아닐지까지도 나무를 보고 짐작한다.”며 나무가 농사를 비롯한 모든 살림을 관장하는 큰 어른 같은 대상이라고 했다. 송양은 여러 각도에서 손수 촬영한 사진까지 첨부했다. 나무가 있는 곳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 은진 송씨 집성촌인 경남 남해군 난음리 난음마을이다. ●女제자가 보낸 편지 속의 느티나무 송양이 편지에서 그려낸 것처럼 느티나무는 마을 앞의 너른 논을 거느리는 듯한 마을 수호목의 융융한 위용을 가졌다. 나무의 풍광을 더 근사하게 하는 건 나무 곁에 서 있는 ‘난곡사’라는 한 채의 아담한 사당 건물이다. 난곡사는 고려 후기에 성리학의 체계를 완성한 유학자 백이정(1247∼1323)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지역 유림들이 세운 사당이다. 난곡사와 느티나무, 그리고 그 앞으로 넓게 펼쳐진 들녘은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난음마을이 정신과 물질 모두의 풍요를 누리는 아름다운 마을임을 짐작게 한다. 송양은 편지에 마을 사람들이 “느티나무의 잎이 예쁘게 잘 돋아나면 풍년이 들고, 잎이 잘 나지 않으면 흉년이 들 것”을 예측한다고 썼다. 오랜 경험을 통해 이뤄진 믿음이겠지만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느티나무에 잎이 나는 계절은 농사를 시작하는 때다. 곡물의 씨앗이 뿌리를 내려야 하는 이 즈음의 날씨는 한 해 농사를 쥐락펴락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느티나무의 잎이 무성하게 돋아난다는 건 곡식의 씨앗이 뿌리를 튼튼하게 내릴 수 있을 만큼 날씨가 좋다는 이야기다. 풍년을 예감할 수 있는 기미다. 그래서 이 같은 이야기는 난음마을뿐 아니라 큰 나무가 서 있는 농촌 마을에서라면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내내 나무를 바라보며 그 그늘 아래서 산다고 해도 되지요. 농사일이 바빠지면 모두 저 나무 앞에 모여들지요. 한여름에는 나무 그늘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선답니다.” 마침 느티나무 앞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노인이 나무 전체에 푸른 잎이 골고루 돋아나는 느티나무를, 풍년을 예감하듯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젊은 시절 대처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사는 송동우(77) 노인이다. ●마을 생활의 중심인 정자나무 농사일과는 무관했을 송양도 마을을 생각할 때마다 맨 먼저 나무가 떠오른다고 했다. “어릴 때 할아버지 댁에만 가면 사촌 형제들과 나무 곁에 나와서 놀았어요. 나무에 기대어 숨바꼭질도 하고 기어오르기도 했지요.” 마을 어귀는 사람들의 모든 들고 남이 스쳐 지나는 곳이다. 나무는 아침저녁으로 들녘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마을을 찾아온 어린 아이까지 긴 세월 내내 모두를 품어 안았다. 느티나무보다 ‘정자나무’로 더 많이 불리는 나무는 얼핏 보아도 난음마을의 중심이자 가장 상쾌한 쉼터임을 알 수 있다. 크고 듬직해서만이 아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 놓은 평상은 여느 마을의 평상과 달리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담겼다. 무성하게 펼친 느티나무 가지를 지붕 삼아 공 들여 지은 정자다. 평상 앞에는 은진 송씨의 조상인 우암 송시열의 흉상이 자존심처럼 꼿꼿하게 세웠다. 얼핏 보아도 이 자리가 마을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 “대전 인근에 살던 조상들이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곳곳을 다니다가 여기까지 내려온 거죠. 이곳에 터를 잡은 게 700년은 됩니다.” 송 노인은 느티나무가 마을이 처음 이뤄졌을 때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나무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군청에서 세운 보호수 표석에는 나무를 650살로 표시했지만 실제 나이는 그보다 더 오래됐다는 이야기다. 700년이라는 긴 세월은 나무 밑동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정성껏 충전재로 메운 커다란 구멍이 나무가 지내 온 긴 세월의 풍상을 짐작하게 한다. 더 안타까운 건 나무 줄기의 윗부분이 부러졌다는 것이다. 하릴없이 나무는 더 이상 키를 키우지 못하고 옆으로만 널찍하게 가지를 펼쳤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담겨 편지에서 송양은 “할아버지는 옛날에 이 나무의 뿌리를 타고 개울을 건너서 이웃 마을로 마실 다녔다고 하셨다.”고 썼다. 물론 송양의 할아버지가 타고 넘었다는 나무 뿌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여느 느티나무 못지않게 큰 나무를 놓고 누구라도 보탤 수 있는 말이지 싶다. 옛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나무는 무척 크다. 가지는 사방으로 20m쯤 펼쳐져 있고 키는 19m, 가슴 높이에서 잰 줄기 둘레는 6m나 된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나무는 실제 크기보다 더 커 보인다. 700살 된 느티나무 곁에 200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는 까닭이다. 마치 한 뿌리에서 솟아나온 것처럼 붙어서 자라는 두 그루는 한 그루의 풍성한 나무처럼 보인다. 두 그루의 나무가 가까이에서 자라는 게 생육에 좋을 리 없다. 그러나 700년의 삶이 지어 낸 넉넉한 품은 젊은 나무를 너그러이 품어 안았다. 두 그루가 전혀 다툼 없이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를 이뤘다. 나무를 한참 바라보자니 송양의 편지에 담긴 속뜻이 살아 오르는 듯하다.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마다 맨 앞자리에 떠오르는 나무의 존재감을 되새기면서 송양은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를 짚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가슴에 품은 젊은 여제자의 편지에서 느티나무 잎새의 연초록 향기가 알싸하게 차올랐다. 글 사진 남해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그래서 오늘도 뜁니다.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그래서 오늘도 뜁니다.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지난 3년간 집에 있는 두 아들 얼굴보다 전단지 속 실종아동 얼굴을 더 많이 봤다. 경남 양산 지역 무연고 보호시설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우리 엄마는 밖에서만 볼 수 있다.”는 아들 핀잔에 미안해하다가도, 잃어버린 자식을 찾고 온몸으로 흐느끼는 부모를 볼 때면 “이래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더 빨리 찾아야 한다.”고 눈시울을 붉힌다. 바로 ‘실종아동의 대모’로 불리는 양산경찰서 유필자(53) 여청계장이다. 3년간 14세 미만 아동 139명 발견, 2008~10년 실종아동 등 보호시설 일제 수색 연속 8회 1위(이 기간만 실종아동 12명 발견). 그는 3년을 그렇게 ‘눈 빠지게’ 사람을 찾으며 살았다. ‘혹시 실종아동이 섞여 있지 않을까.’ 문턱이 닳도록 요양시설을 훑었다. ‘내 자식이라면….’ 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찾았다. 그래서 수색 기간 1등도 했고, 칭찬도 들었다. 하지만 그 ‘격려’가 두렵단다. 찾은 아동 숫자를 밝히지 말아 달라는 부탁도 했다. 아직 아이를 못 찾은 부모에게 상처가 될까 봐서다. 날카로운 눈빛, 강단있는 표정과 달리 천생 여자이자 엄마인 그를 4일 양산서 사무실에서 만났다. →실종아동을 잘 찾는 비결이 있나. -수색기간 중에만 중점적으로 보호시설을 찾는 게 아니라 그냥 집처럼 수시로 드나들었다. 관계자 입회하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지문 찍고 면봉으로 구강 DNA를 채취해 매일같이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등에 보냈다. 결과가 한 달 정도 걸리니 그게 모이고 쌓여서 실적으로 나온 것뿐이다(유 계장은 14세 미만 아동 139명을 발견한 것에 대해서도 동료들과 직원들이 합심해 찾은 것들이 많아 다 내 공으로 돌릴 수 없다며 공을 팀에 돌렸다). →안타까웠던 사례는 없었나. -26년이나 지난 뒤 실종신고가 들어온 경우가 있었다. 2009년에 접수됐는데 1983년 당시 4세, 2세였던 형제가 없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친어머니는 이혼 뒤 집을 나간 상태였고, 재혼한 아버지는 2009년에 사망했다. 새어머니가 호적 정리 차원에서 신고한 것으로 안다. 아이들을 잃어버렸다는 양산시 원동면 지역 주변의 아동보호시설을 탐문했는데 소득이 없었다. 홀트아동복지회 등 입양기관에 연락했더니 형제가 프랑스로 입양됐다는 기록이 있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재혼을 위해 애들을 (고아원이나 입양기관에) 보낸 것이었다. 이후 아이들은 프랑스로 입양됐다. 대사관에 연락해 애들 소식을 들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프랑스법상 입양아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엔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나중에라도 아이가 부모를 찾을까 봐 엄마의 DNA를 실종아동 관련 기관에 등록했다. 그때 친어머니가 참 많이도 울더라. 아이들이 아버지와 잘 지내고 있는 줄만 알았다고. 참 나쁜 어미라면서 그리워하더라. 끊으려야 끊을 수 없고 죽을 때까지 못 잊어 가슴 아픈 게 가족이다. →또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부산에 거주하는 한 할아버지가 1993년 3월 17일에 손자를 찾는다고 실종신고를 했다. 이혼한 어머니는 인천에 살고 있었고,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으로 입원 치료 중이었다. 지방의 한 고아원에서 엄마와 DNA가 일치하는 아이가 있다고 연락이 왔다. 부산에 사는 조부모에게 연락을 했지만 현실적으로 데려다 키울 수 없는 입장이라 부모의 존재를 알리지 못했다. 결국 할아버지가 먼발치에서 손자 모르게 가끔씩 보고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평소엔 어떤 엄마, 어떤 경찰인가. -1979년 순경 공채로 들어와 경찰이 됐다. 지금은 24세, 27세 두 아들을 둔 엄마다. 그래서인지 실종아동이나 가출 청소년들을 찾으면 마음이 더 쓰인다. 특히 여자애들을 찾으면 사무실로 불러 꼭 상담을 한다. 왜 가출을 했는지, 집에서 어떤 점이 불만인지 등을 아이와 엄마를 같이 불러서 듣고 풀어준다. 그때 만났던 애들이 “선생님” 하고 달려와 종종 인사를 한다. 그럴 때 보람을 느낀다. 내 자식 같기도 하고…. →실종신고가 들어오면 수사 과정은 어떻게 되나. -112나 지구대, 182센터로 실종신고가 접수되면 여성청소년계로 보고가 들어온다. 그 즉시 상황을 파악해서 실종 전담팀하고 여청계가 합동으로 현장에 나간다. 수색하면서 여건에 따라 기동대도 부르고 납치가 의심되면 수사 부서도 투입된다. 탐문수사, 전단지 배포, 수배, 보호시설 수색 등으로 이뤄진다. →어린이날을 맞아 아동 실종 예방법을 소개해 달라. -신고가 빨라야 한다. 부모들이 찾다가 신고가 늦어지는 일이 많은데 신속하게 신고되면 기동대 등을 투입해 주변에서 바로 찾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또 아이들에게 평소 부모와 헤어지게 되면 ▲제자리에 멈춰서 기다리기 ▲이름·연락처를 암기하기 ▲낯선 사람 따라가지 않기 등을 가르쳐야 한다. 공중전화가 가까운 곳에 있으면 112에 신고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도 좋다. 인적사항이 적힌 이름표 등을 소지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글 사진 양산 백민경·김진아기자 white@seoul.co.kr
  •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박찬경 감독·영화평론가 이용철 만나다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박찬경 감독·영화평론가 이용철 만나다

    대학(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좋은 화가의 꿈’은 일찌감치 접었다. 미국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돌아온 뒤 한국 근현대사, 특히 분단과 냉전을 소재로 한 설치미술과 사진은 물론 미술계를 겨냥한 날선 평론까지 보폭을 넓혔다. 일반인에게 이름이 알려진 건 형 박찬욱(48) 감독과 아이폰으로 찍은 영화 ‘파란만장’이 올해 독일 베를린영화제 단편부문 금곰상을 수상하면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작가’ 박찬경(46)이 주인공이다. 전주국제영화제(4월 28일~5월 6일) 한국장편 경쟁 부문에 진출한 박 감독의 신작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는 다큐와 극영화를 뒤섞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비행’(2005)이나 ‘신도안’(2008) 등 영화와 설치미술의 경계가 모호한 중단편을 만들던 그가 처음으로 손댄 장편 영화다. 영화는 1988년 경기 안양 그린힐봉제공장 화재-기숙사에 감금된 채 생활하던 여공 22명이 화재로 숨진 사건-를 중심에 놓고 풀어 간다. 더불어 안양천 수재(水災)와 지방선거, 안양사(寺) 발굴과정 등 ‘안양’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다. 지난달 30일 전주 고사동 영화의거리 카페에서 영화평론가 이용철(왼쪽)과 함께 박 감독의 복잡한 뇌 구조를 들여다봤다. 이용철 안양은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위성도시 정도의 이미지였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흥미롭고, 이야기가 많은 도시라는 걸 깨닫게 됐다. 박찬경 어느 도시나 그런 면들은 있다. 이번에 안양예술재단 측의 요청으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 예산은 8000만원 정도로 장편을 하기에 부족했는데 제작 기간이 3개월로 짧아 외려 가능했다. 시나리오, 콘티, 조사, 촬영, 섭외를 동시에 했다. 더 분열적인 걸 구상했는데 보는 사람도 생각해야 될 것 같아서(참았다)…. 이 영화가 현실과 허구를 오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영화 속에 담긴 것도 참신하다. 굿하는 장면은 영화 제작 과정인 동시에 영화 속의 영화이기도 하다. 박 픽션(허구)을 왜 섞었냐 하면 내가 안양을 아는 사람도 아니고 일종의 투어리스트처럼 와서 찍는 작가이기 때문에 배우들도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길 바랐다. 내가 (극 중 다큐 감독으로) 출연한 것도 안내하는 사람이란 걸 보여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뒷모습만 나가려고 했는데, 클로즈업까지 나갔다(웃음). 이 편집이 굉장히 신선하다. 할아버지가 수해로 딸과 손녀가 죽었다고 말하는데 갑자기 기차 소리가 난다거나 여자와 아이가 걷는 장면이 연결된다. 기성 영화인들이라면 못 했을 것 같은데. 박 글쎄…. 전에는 좋은 실험영화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실험적이거나 새로운 편집·기술, 상상력 등 아방가르드한 것들을 광고에 빼앗긴 것 같다. 예술적인 성취도를 얻었지만 많은 관객을 불러모을 만한 영화의 폭이 너무 좁다. 홍상수 감독 영화가 동원 관객 수 2만이라면 정말 문제 있는 것 아닌가. 영화의 폭이 넓어지면, 내 영화도 색다를 수 있지만 더이상 새로운 언어는 아니다. 이 전작 ‘신도안’(계룡산 토착 종교집단의 흥망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표현)과 ‘파란만장’에 이어 또 무속을 담았는데. 박 한국의 종교문화처럼 이상한 게 없다. 한국의 개신교는 샤머니즘을 ‘응용’하면서 성장했다. 새벽기도나 울부짖는 기도들을 생각해 보라. 개신교가 무속을 흡수했다기보다 무속이 개신교에 스며든 셈이다. 무속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적 형태인데 점쟁이로 천시하거나 ‘무릎팍도사’처럼 희화화하거나 여전히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무속의 명예회복 같은 걸 말하고 싶었다. 무속은 굉장히 정교화된 제의(祭儀) 형식을 갖춘 한편 날것의 측면도 갖춘 흥미로운 종교 문화다. 한국 근대를 바라보는 키워드인데 너무 간과됐다. 이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는데 언제부터 다른 길에 관심을 가졌나. 박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다(웃음). 좋은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입학하자마자 학교에 너무 실망했다. 수업은 안 듣고 학내 영화서클 ‘얄라셩’(1979년 만들어진 영화연구모임. 김홍준·박광수 감독이 이곳 출신)에 들어갔다. 그런데 데모하느라고 4년 내내 영화를 한 편도 안 만들더라. 이 최근 활동을 영화감독으로 봐야 하나, 아니면 미술의 한 영역을 확장하는 것으로 봐야 하나. 박 내 미술작품의 80~90%는 영화나 미디어에 관한 것이었다. 미술을 하더라도 영화 언어를 염두에 뒀고, 영화를 할 때에도 여러 가지 예술의 레퍼런스들을 생각했다. 미술과 영화의 장르 구분이란 건 무의미하다. 이 올해에만 두 번 국제영화제(베를린·전주) 경쟁 부문에 올랐다. 영화계에서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미술 자체는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미술계는 너무 답답하다-1990년대 평론가 박찬경은 미술계를 ‘미술관료체제’(아트크라시)라고 꼬집었다-관객이 너무 없고 비평 시스템이 취약하다. 반면 영화는 관객이 새롭고 흥미롭고 궁금하다. 특히 영화제에서 관객을 직접 만나는 일들은 생기를 준다. 주위에선 영화계에 더 있으면 좌절할 거라지만(웃음) 성격이 다른 것 같다. 어쨌든 폐쇄적이지는 않으니까. 이 박찬경에게 박찬욱은 어떤 존재인가. 박 형이 워낙 아는 게 많다.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미술, 사진도 좋아한다. 형은 영화 쪽 정보를, 나는 미술 쪽 얘기를 전해 주곤 한다. 형의 존재가 부담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물론 가끔 곤란할 때는 있다. 못 보던 사람이 전화해서 형과 연결시켜 달라고 한다(웃음). 이 호러영화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박 한국의 공포영화라는 게 대개 일본 호러물에서 온 것들이 많다. 나라마다 특수한 공포영화 화법이 있을 텐데 ‘전설의 고향’의 처녀귀신 이미지조차 일본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만의 무서운 귀신이나 무덤 얘기를 해보고 싶다. 현재 장편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인터뷰 끝자락에 박 감독은 “꼭 써 줬으면 하는 부분은 한국 영화가 너무 마초적인 데 대해 반성이 없다는 점”이라면서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페미니즘 논의가 고조되면서 남자들이 만드는 영화도 신경을 썼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 과장하면 최근 10여년 동안 깡패, 반성이 없는 폭력이 한국 영화를 먹여 살렸고 폭력의 미학으로 포장됐다.”면서 “여성적인 모티프나 그들의 삶에 관심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정리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굶는 사람 한명이라도 있다면 밥 지어드릴 것”

    “굶는 사람 한명이라도 있다면 밥 지어드릴 것”

    “여기 와주신 모든 분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일 오전 11시 서울 전농1동 밥퍼나눔운동본부 앞, 최일도(54) 다일공동체 목사의 외침에 1000여명의 노인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밥퍼나눔운동본부가 청량리 인근의 무의탁 노인들에게 대접한 무료 식사가 500만 그릇을 넘어섰다. 이 나눔의 한가운데에는 23년 동안 노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해 온 최 목사가 있다. 최 목사가 ‘밥퍼’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88년. 그해 초겨울, 전도사로 활동하던 최 목사는 아침 일찍 청량리역을 지나다 길바닥에 쓰러진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할아버지가 4일 동안 굶었다는 말에 깜짝 놀란 그는 주머니를 털어 설렁탕 한 그릇을 대접했다. 그때부터 그는 등산용 버너와 코펠, 라면을 챙겨 들고 매일 청량리역 광장으로 가서 노인들에게 라면을 끓여 대접했다. 이듬해에는 ‘다일공동체’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무료식사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2002년에는 서울시의 지원에 힘입어 ‘밥퍼나눔운동본부’가 설립됐고, 이때부터 노인들에게 대접한 식사를 잠정 집계한 결과 지난 4월 500만 그릇을 돌파했다. 밥퍼 운동이 확산됨과 동시에 다일공동체는 다일교회, 다일복지재단, 다일천사병원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갔다. 몸집 부풀리기에 혈안이 된 여타 대형 교회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이는 ‘교회의 역할은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최 목사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다일교회 재정의 51%는 밥퍼운동과 같은 봉사활동에 사용된다. 최 목사는 지난해 2월 다일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내놓았다. 교회에서 정한 65세 정년을 11년이나 남겨두고도 다일공동체의 사회봉사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은퇴하면서 받은 퇴직금 4억원도 반납했다. 그는 “굶주리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밥을 지어드릴 것”이라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굶주리는 다른 나라에까지 밥퍼나눔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孝’ 지자체가 밀어준다

    ‘孝’ 지자체가 밀어준다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들이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경로효친 분위기 조성과 지원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부산시는 경로효친 실천 분위기 조성을 위해 ‘2011년 효행 장려 및 지원시책 추진 계획’을 마련, 본격 추진키로 했다고 2일 밝혔다. 시는 우선 어버이날 기념행사(5월 9일·시민회관), 노인의 날 기념행사(10월 4일·강서체육공원)를 자치구·군과 사회복지관, 노인복지관, 노인교실, 경로당 등과 연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또 민간단체가 주관하는 독거노인 효도관광, 홀로 어른 위로 대잔치, 할머니·할아버지 이야기 경연대회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효행문화 정착을 위해 효의 날 운영 및 효 교육 실시, 노인복지 관련 기관의 경로효행 프로그램 내실화, 복지시설 종사자 교육(연 2회) 등을 추진한다. 아울러 효행자(단체)를 적극 발굴해 표창하는 등 예우 사업도 실시한다. ●양주시 효행수당 50만원 신설 경기 양주시도 어버이날, 노인의 날 기념행사 등을 통해 효행 우수자를 선정해 표창하고, 효행 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지원키로 했다. 또 효행수당을 신설해 4대 이상 양주시에 1년 이상 주소를 두고 거주하고 있는 가구에는 연간 50만원을 지원한다. 민간단체에서 주관하는 효행장려사업(백일장 등) 및 효행교육 등 행사도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한다. 경북 경주시도 지난해 제정된 ‘경주시 효행장려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효의 날 지정, 효행 우수자 표창, 부모 부양자, 효행장려 사업 단체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앞서 김천시는 지난달 30일 4대가 함께 사는 24가구에 효행 장려금 50만원씩, 모두 1200만원을 지급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제정된 ‘김천시 효행장려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른 것이다. 충북도교육청은 효행·모범상을 받는 학생의 학비를 면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학비 감면 및 지원 지침’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대상자는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거나 교육 기관과 외부 기관·단체로부터 모범·효행상을 받는 학생이다. ●충북교육청 효행학생 학비면제 이 밖에 경북도와 인천시, 대구시, 경북 안동시, 충남 공주시, 전남 순천시 등도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경로효친 분위기 조성 등에 힘을 쏟고 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씨줄날줄] 밥퍼/박홍기 논설위원

    ‘저녁때가 되어 먹을 것이 없어 고민할 때 한 어린아이가 내놓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제자들에게 주어 큰 무리를 먹게 하였는데 5000명(어린이와 여자는 뺀 숫자)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고 남았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14장에 나오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다. 1988년 장로회신학대 대학원생이던 최일도 목사는 청량리역 광장에서 나흘 굶고 쓰러진 할아버지에게 라면을 끓여줬다. 청량리 쌍굴다리 밑에서 풍로와 냄비를 놓고 노숙인들에게 라면을 끓여 주던 배식(配食)이 바로 ‘밥퍼’라는 사회운동의 출발점이었다. 노숙인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 목사는 솥에 밥을 지어 노숙인들을 대접했다. 밥은 생명이었다. 본격적으로 ‘퍼주는 사랑’을 실천에 옮기기에 이르렀다. 제때 끼니조차 챙길 수 없던 노숙인을 비롯, 배고픈 이들이 쌍굴다리를 지나 소위 ‘청량리 사창가 588’ 안에 자리잡은 허름한 밥집을 찾기 시작했다. 사회복지법인 다일공동체가 주관하는 ‘밥퍼나눔운동본부’의 본거지다. 165㎡가량 되는 공간에서는 100명 정도가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었다. 본거지는 지난해 12월 25일 성탄일에 문을 닫고 50m쯤 떨어진 지금의 2층 건물로 이전했다. 새 건물 규모는 예전과 비슷하다. 밥퍼 운동은 2006년 300만 그릇을 넘어섰다. 그리고 올 4월 말 500만 그릇의 기적을 낳았다. 23년 만이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대략 하루에 1200명분을 만들어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해 추산한 것이다. 하루 평균 소요비용은 200만원. 지금껏 다녀간 자원봉사자만 20만명에 달한다. 어린이부터 칠순 노인까지 손수 나서서 밥을 짓고 퍼주는 일을 맡았다. 하루에 최소 50명 안팎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나눔과 베풂의 자리를 만들었다. 시민뿐만 아니라 기업·연예인·학부모 모임 등도 참여했다. 현재 베트남·캄보디아·필리핀·네팔 등 4개국에서도 봉사단을 꾸려 어린이를 대상으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다일공동체는 어제 자체적으로 지정한 ‘5월 2일 오병이어의 날’을 맞아 운동본부 앞마당에서 ‘나눔과 섬김, 500만 그릇 돌파’를 기념했다. 비빔밥을 준비했다. 최 목사의 작은 사랑은 큰 사랑으로 발전했다. 평범한 이웃들의 땀과 정성, 사랑의 결실이기도 하다. “종교나 계층을 뛰어넘어 거리에 배고픈 이들이 더는 없을 때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최 목사의 기도가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증조부 고종의 갑옷·투구 6월 日에 반환소송… 반드시 찾아오겠다”

    “증조부 고종의 갑옷·투구 6월 日에 반환소송… 반드시 찾아오겠다”

    “법정 소송을 통해 일본에 있는 증조할아버지(고종)의 투구와 갑옷을 반드시 찾아올 겁니다.” 대한제국의 상징적 적통을 이은 황사손(皇嗣孫·황실의 대를 잇는 후손) 이원(49)씨는 29일 조선왕실의궤 반환 소식이 전해지자 “다음 환수 목표는 왕실의 보물이 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총재이기도 한 그는 유행을 좇는 케이블TV 프로듀서(피디) 출신으로 2005년 황사손이 된 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6년째 전통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옛 문화 살리기에 노력해 왔다는 이씨는 “조선왕실의궤가 일본에서 돌아오면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는 고종의 유품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을 이르면 오는 6월 제기하겠다.”며 의지를 나타냈다. 영국 왕실의 결혼으로 세계가 떠들썩했던 이날 창덕궁이 내려다보이는 종약원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2005년 황사손이 된 뒤 6년간 어떤 일을 하고 지냈나. -제사를 계속 지냈다. 조선왕릉 40기의 제사와 황실의 5대 제향(조경단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건원릉기신친향례·환구대제)에서 초헌관(제사 지낼 때 첫 잔을 올리는 사람)을 맡았다. 1년에 120여회 정도 된다. 600년 넘게 한 왕조의 후손이 애초 양식을 유지하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문화유산이다. 그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말살된 대한제국 때까지의 문화를 복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문화를 이미지로 복원해 내고 싶다. →그동안 성과가 있었나. -대표적인 것이 2008년 환구대제를 복원한 일이다. 일본이 침략 후 지금의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자리에 있던 환구단(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을 없애고 군 장교들이 머무는 철도호텔을 지었다. 일본이 박아 놓은 말뚝을 빼는 것처럼 우선 이 문화를 복원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고증을 거쳐 2008년 제례를 되살렸다. 그러나 원래 터에 건물이 들어선 탓에 환구단 시설을 복원할 수는 없었고, 서울광장에 환구단을 세우려고 했는데 서울시가 긍정적으로 검토하다가도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오해를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 특히 몇 해 전 언론에 ‘황실문화원’을 설립하겠다고 얘기했는데 반발이 컸다. 문화원 이상의 정치적 세력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 종약원 회원이 500만명이다 보니 마음먹고 뭉치면 (정치 세력을)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다. 하지만 혼란스러울 수 있어 안 한다. 순수한 의미로 문화를 찾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황실의 무능함 탓에 나라를 빼앗겼다.”는 이유로 후손들에게 냉소적인 국민도 많다. -대한제국은 대비를 못 해서 망한 나라가 맞다. 그럼 무엇 때문에 망했는지 정확히 역사를 밝혀서 후대가 그 사실을 토대로 50년, 100년을 만들어 가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대한제국 역사는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는다. →왜 지금 대한제국의 문화·역사를 복원하고 기억해야 하나. -현재 상황이 나라를 빼앗겼던 100년 전과 닮아서다. 우리는 항상 주변 국가가 부강할 때 침략당했다. 이제 문화로 당할 수 있다. 성장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봐라. (대한제국의 역사가) 아픔의 역사이기 때문에 더 기억한다. 왜 나라를 빼앗길 수밖에 없었는지 다시 펼쳐놓고 알아봐야 한다. →정부도 문화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부족한 점을 느끼나. -그렇다. 예컨대 문화재청은 ‘살아 있는 궁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궁이 되려면 그 안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내가 창덕궁 낙선재에서 외국인과 학생들을 직접 만나 얘기하면 얼마나 생생하겠나. “내 할아버지가 나라를 제대로 못 지켜서 아들인 영친왕이 일본에 끌려 가셨다. 그분이 사셨을 때 왕자로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시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얘기를 직접 한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내용 등을 담은 ‘낙선재 활용 방안’을 5년 전부터 문화재청과 청와대에 계속 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문화재 위원들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황사손이 들어와서 궁을 활용하느냐.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재산인데…” 하는 논리를 폈다. →피디 경험을 살려도 흥미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자료 속 역사를 드라마로도 직접 제작하고 다큐멘터리로도 만들 것이다. 아주 고급스러운 왕실 문화와 의복, 관습, 혼례, 제례 등 진짜 역사를 담아 만들기 위해 준비해 왔다. 이것을 해외로 수출하면 ‘대장금’처럼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대한제국을 들여다보면 이야깃거리가 엄청나게 많다. 지난해 (고종의 고명딸의 삶을 다룬) 소설 ‘덕혜옹주’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왜 대한민국 국민은 여기에 감정이입을 할까. 우리도 자랑스러워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 것이다. →일본에 있던 조선왕실의궤가 국내로 돌아오게 됐는데, 문화재 반환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지난해 10월쯤 혜문 스님이 찾아와 놀라운 얘기를 했다. 증조부인 고종의 투구와 갑옷 등이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누군가 황실에서 훔쳐 갔거나 도굴당한 물품이 (문화재 수집가인) 오구라 다케노스케에게 넘어갔고 이를 물려받은 오구라의 아들이 박물관에 기증했다는 얘기였다. 사무라이 문화가 남아 있는 일본이 제후국을 침략해 전리품으로 빼앗는 대표적인 것이 (그 나라 왕의) 투구와 갑옷이다. 그런 의미로 도쿄박물관에 보관된 것이다. 치욕적인 일이다. 나에겐 할아버지 얘기였기에 너무 화가 났다(침묵). 한 개인이나 스님 한분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문화재청이 나서면 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혜문 스님은 문화재청 관계자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다고 하더라. 그러나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스님께 물었더니 문화재 반환 운동을 하라면서 “나라가 안 움직이는데 직계손이니까 소송을 해 보라.”고 권했다. 할아버지의 투구와 갑옷을 찾아와서 환구단에 놓고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게 내가 할 일이다. →소송도 할 계획인가. -물론이다. (다음 달로 예상되는) 조선왕실의궤 환수 이후 도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려고 준비 중이다. 애초 3월 중순에 일본에 가 도쿄박물관장을 만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동일본 대지진이 터졌다.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가서 “내 할아버지의 투구와 갑옷을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직계손이 소송을 한다면 문제화·이슈화될 것 같다. 그 이후 혜문 스님이 본인이 쌓아온 노하우를 토대로 분위기를 일으킨다면 찾아올 수 있을 듯싶다. 일본이 바로 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못 돌아온다는 것을 알면 국민이 어떻게 느낄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조선왕실의궤가 반환된다. -왕실의궤가 돌아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의궤 안의 그림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다. 자료에서 어떤 가치를 끄집어내 지금 시대에 재현해 내느냐 하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 의궤에는 모든 왕실의 행사가 기록돼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 안에 들어 있는 행사는 매우 화려하고 세밀한 문화적 볼거리요, 예술이다. 궁에서 이런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복원해야 한다. 문화재를 가지고 와서 다시 책장이나 박물관에만 넣어 둬서는 안 된다. 글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30일 오전 7시와 오후 7시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의 ‘TV 쏙 서울신문’ 방영 ■ 이원씨는 누구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의 9남 이충길씨의 맏아들이다. 부모가 말하지 않은 탓에 어린 시절 출생에 대해 모르고 자랐다. 이름도 왕실 이름인 ‘원’ 대신 ‘상협’을 썼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기 전 아버지가 이씨를 데리고 창덕궁 낙선재를 찾아 영친왕비인 이방자 여사에게 인사를 시켰고 이 자리에서 집안사에 대해 처음 들었다. 미국 뉴욕기술대(NYIT)에서 방송학을 전공한 뒤 유명 케이블방송사인 HBO에서 프로듀서(피디)로 일하다가 6년 만에 귀국했다. 광고회사인 금강기획에서 5년간 일했고, 케이블 채널인 뷰티TV 설립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케이블 채널인 현대방송 피디와 현대홈쇼핑 본부장 등을 지내며 직장인으로 나름의 꿈을 키워 갔다. 황실의 상징적 적통을 이을 수 있다고 직감한 것은 2002년부터다. 당시 한 출판 기념회에서 삼촌인 이구 황태손을 만났는데 영어에 능통하고 국제적 감각을 지닌 이씨에게 호감을 보였다고 한다. 이씨는 2005년 7월 후사가 없었던 황태손이 숨을 거두면서 자신을 양자로 들여 법통을 잇도록 부탁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의 삶은 이때부터 180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문화마당] 시골은 외로워/공선옥 소설가

    [문화마당] 시골은 외로워/공선옥 소설가

    예전에 내가 어렸을 때는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없는 대신 읍내에 극장이 있어서 이따금 부모님 손잡고 극장 구경을 간 적이 있다. 일명 ‘쇼단’ 혹은 ‘유랑극단’들도 심심찮게 들어왔었다. 그뿐인가. 설이나 추석에는 물론이고 정월 보름, 단오절 같은 때도 ‘어마어마’하게 멋지고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정월 대보름날 밤에 일렁이며 타오르는 달집 주위를 돌며 불빛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농악 삼매에 빠진 우리 아버지들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단오절날 당산마당에서 그네를 타던 색시들의 자태는 또 어떤가. 이맘때, 산천에 꽃사태가 나면 또 우리 어머니들은 한복 곱게 차려입고 장구 둘러메고 화전놀이를 갔었다. 그랬는데, ‘조국 근대화’ 바람이 불어 한집 두집 고향을 떠나는 사람이 늘었고, 그렇게 떠난 사람들 중 장구재비 김씨, 상쇠 이씨 등도 있어, 이제 마을 사람들은 정월 대보름날 가슴 두근거리며 지켜봤던 풍물패들의 그 장관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풍물굿에 깊이 빠져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 어머니,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달집을 태우고 풍물을 치고 여름이면 당산 옆 시정에서 시조창을 하던 그 ‘정취’들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당산의 숲들은 베어지고 그 자리에 시멘트 창고와 미곡처리장과 축사가 들어섰다. 단옷날 그네를 매달 나무도 없고 그네를 탈 처자들도 없다. 매미소리와 함께 여름 한낮에 유장하게 흐르던 할아버지의 시조창 대신, 마을 앞으로 새로 뚫린 도로를 씽씽 달리는 차 소리만 살벌하게 바람을 가른다. 마을엔 사나운 개들이 사납게 짖어댄다. 닭과 함께 마당을 놀이터 삼아 잘 놀던 강아지들도 이제 우리 안에서 틈만 나면 닭 잡아먹을 궁리를 하는 것같이 눈동자를 굴린다. 마을 안에 이따금, 그리고 자주, 시시때때로, 끊임없이, 개 사요, 염소 사요, 트럭에서 뿜어져 나오는 확성기 소리가 출몰한다. 천지사방에 봄나물이 돋아나도 그 나물을 캐는 ‘가시내’들이 없다. 어쩌다 노인이 허리 구부리고 ‘돈 살’ 궁리로 쑥을 뜯을 뿐이다. 시장에 나오는 냉이와 달래는 자연적으로 돋아난 것이 아닌, 사람이 재배한 것이라 한다. 사람들은 제 힘으로 돋아난 나물이 아닌, 사람이 기른, 무늬만 나물인 나물들을 먹고 힘없다고 또 영양제를 사먹는 데 돈을 쓴다. 시골사람들도 이제는 집 옆에 돋아난 냉이, 달래를 캐 먹지 않는다. 여름도 아닌데 벌써 나온 참외를 사다 먹는다. 숭늉을 끓일 아궁이, 가마솥이 없어진 지금 시골사람들도 식후에 커피를 마신다. 들녘 한가운데로 다방커피를 배달시키고 자장면을 배달시킨다. 시골에도 도시와 똑같이 비닐, 플라스틱 폐기물이 넘친다. 그것들을 시골사람들은 그냥 태운다. 저녁 무렵이면 어디선가 쓰레기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난다. 하얀 막걸리통, 농약병, 덮개용 비닐이 한데 불 속에서 녹는다. 시골사람들은 그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플라스틱통에 든 30도짜리 ‘과실주’용 소주를 집집마다 모셔두고 아침, 낮, 저녁으로 마신다. 시골노인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 힘들어서 마시고, 외로워서 마시고, 속상해서 마시고, 재미없어서 마신다. 유일한 오락거리인 텔레비전을 켜놓고 잠자리에 든다. 마을 안길까지 검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고, 붉은 가로등은 그 검은 아스팔트와 사람들이 잠든 집과 빈집들을 붉게 비춘다. 길 건너 양계장, 혹은 종계장의 불빛은 밤에도 휘황하고 축사에서는 밤에도 라디오 소리가 난다. 사람이 있는 척하려고 그렇게 라디오를 틀어놓는지는 알 수 없다. 시간은 자정 넘어 새로 한시. 시골의 집집마다 방문 너머로 지직거리는 푸른 빛이 명멸한다. 미처 끄지 못한 텔레비전, 차마 끌 수 없는 텔레비전이다. 힘들고 외롭고 속상하고 재미없어서 ‘틀어 놓은’ 텔레비전의 푸른빛 속에 시골은 그렇게 저 혼자 일하고 저 혼자 놀고 저 혼자 잠든다. 시골이 그렇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알아도 모른 척한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나라 안 누구도.
  • 18개월 아기 축구천재, 프로구단과 최연소 계약

    18개월 아기 축구천재, 프로구단과 최연소 계약

    만 2살도 되지 않은 축구영재가 네덜란드의 한 프로구단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네덜란드 현지 언론매체에 따르면 림뷔르흐 주 벤로의 VVV벤로 클럽은 지난 27일(현지시간) 생후 18개월 배르케 반데르 메이를 선수로 정식 영입했다. 아기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얼마의 계약금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에 안긴 메이는 두 손을 번쩍 들어서 기쁨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메이와 10년 계약을 맺은 VVV벤로는 아기의 할아버지가 뛰었던 클럽으로 더욱 남다른 의미가 있다. 메이는 지난 달 축구공 3개를 장난감 박스에 차례차례 정확히 차 넣는 동영상 덕에 유명해졌다. 이 영상은 메이의 남다른 실력을 보고 깜짝 놀란 아버지가 직접 촬영해 유투브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VVV 벤로의 구단주는 “배르케의 포지션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볼 차는 실력으로 미뤄 배르케가 할아버지의 축구 유전자를 이어 받은 듯하다.”고 만족해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대한항공 승무원 봉사단체 ‘고니회’ 봄맞이 청소 등 나눔활동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에요.” 지난 23일 서울 화곡동의 3층 옥탑방. 12년째 홀로 사는 박태남(85) 할아버지의 방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흘러나왔다. 박 할아버지는 “날개 없는 천사들이 찾아왔구먼.”하며 주름진 얼굴을 활짝 폈다. “이 늙은이가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상대가 바로 이 천사들이야. 얼마만에 사람 얼굴을 대하며 이야기를 나누는지 몰라.” 이날 박 할아버지를 찾은 ‘천사’들은 대한항공 승무원 봉사단체인 ‘고니회’ 회원들. 고니회 회원 등 자원봉사자 50여명은 강서 지역 독거노인과 경로당 등을 찾아 말벗도 돼주고, 봄맞이 청소도 했다. 화곡1동 예촌경로당에서 먼지 쌓인 계단을 쓸던 이윤주(26·인력개발센터)씨는 “오늘 처음 봉사를 나왔는데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힘이 절로 솟는다.”며 흐뭇해했다. 27일 대한항공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내 21개 봉사단체가 분기별로 재능·사랑·희망·행복나눔 등 4가지 주제로 270여 차례의 다양한 ‘나눔’ 활동을 펼쳐왔다. 대한항공은 올해를 ‘사회봉사의 해’로 정했다. 직원들은 2003년부터 ‘끝전모으기’ 운동으로 봉사기금을 마련하고 있다. 임원들은 급여의 1만원 미만, 직원들은 1000원 미만을 모아 매월 1500여만원을 모으고 있다. 회사가 같은 금액의 돈을 내는 매칭그랜트 방식으로 운영돼 지난 1월까지 12억원이 쌓였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38년 동안 한번도 팔 내리지 않은 ‘달인’

    “38년 동안 단 한 번도 오른팔을 내려 본 적 없다.”는 인도의 달인이 나타났다. 인도 언론매체에 따르면 아마르 사두 바라티(70대 초반 추정)는 30여 년 전 오른팔을 머리 위로 번쩍 든 뒤로 자나깨나 한 번도 내려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을 든 달인’으로 1973년 인도의 한 신문에 소개됐던 할아버지는 최근 “최소한 38년 동안 고행을 자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간의 행적을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할아버지의 오른팔은 동상으로 인한 상처가 남겨져 있고 오랫동안 다듬지 않은 손톱이 길게 자라있다. 이제는 내리고 싶어도 오른팔과 어깨 관절이 굳어 내릴 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할아버지가 이처럼 ‘벌 서는 고행을 자처한 데에는 종교적인 이유가 가장 컸다. 자녀 3명을 둔 가장이자 평범한 힌두교 신자였던 바라티는 남은 삶을 종교적으로 헌신하고 깨달음을 얻는 데 바칠 것을 결심하고 집을 뛰쳐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정처 없이 인도 곳곳을 떠돌아다닌 지 3년 만에 할아버지는 하루종일 팔을 드는 ‘고통 수행’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통스러웠지만 이제는 익숙하다.”면서 “이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고통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중요했다.”고 담담히 털어놨다. 진정한 평화를 얻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 중이라는 할아버지는 “인류가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전쟁이나 싸움이 없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금붕어 타고 다니는 ‘마법사 개구리’ 순간포착

    금붕어 타고 다니는 ‘마법사 개구리’ 순간포착

    연못에서 금붕어를 타고 다니는 일명 ‘마법사 개구리’가 포착돼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영국 데번 주에 사는 원예가 토니 버틀러(75)는 최근 자신의 집 연못에서 금붕어를 자가용처럼 타고 다니는 특이한 개구리를 발견해 눈을 뗄 수 없었다. 버틀러는 “집에 연못이 2개가 있는데 한쪽은 금붕어만 살고 한쪽은 두꺼비, 개구리 등만 산다.” 면서 “금붕어 연못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나서 뛰어 가봤더니 개구리가 연못에서 가장 큰 금붕어 등에 타고 연못을 휘젓고 있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카메라를 가져와 눈앞에 펼쳐진 신기한 광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개구리가 마법을 부린 것처럼 금붕어는 싫은 기색 없이 연못 곳곳을 헤엄쳐 버틀러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40년 넘게 원예를 하면서 수많은 연못을 만들고 가꿔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 봤다는 할아버지는 “개구리가 금붕어에 해를 끼칠까봐 걱정했었는데 둘은 어느덧 절친한 친구가 된 것 같았다.”며 신기해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머리 2개 ‘희귀 송아지’ 中서 태어나

    머리가 2개 달린 송아지가 중국 농가에서 태어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중국 허베이성의 농촌마을 가오양에서 덩 유바오(65)할아버지가 기르는 소가 최근 머리 2개 달린 희귀한 송아지 한 마리를 낳아 동네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미 소의 출산을 돕던 할머니는 머리 2개 달린 송아지를 보자마자 기절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리 춘후아(60)할머니는 “그간 수많은 소들이 출산하는 장면을 봤지만 머리 2개 달린 송아지는 처음봐서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2개의 머리에 눈 4개, 코 2개, 귀 3개를 가진 송아지의 건강상태는 비교적 양호하지만 혼자서는 일어나지 못해서 젖을 빨지 못했다. 손녀인 진퍽(16)은 양젖을 짜서 송아지에 직접 물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할아버지는 “어미 소가 평범한 송아지들만 낳았는데 이번에 왜 이런 송아지를 낳았는지 모르겠다.”면서 “놀라긴 했지만 앞으로 정성껏 기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2000년 들어서만 그루지야, 에스토니아, 중국 등지에서 머리 2개 달린 송아지들이 태어난 사례들이 잇달아 보고됐다. 환경오염의 영향인지 유전적인 문제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한민족학회 27~28일 ‘한국 역사학 연구의 반성과 제언’ 학술대회

    한민족학회 27~28일 ‘한국 역사학 연구의 반성과 제언’ 학술대회

    한민족학회가 27~28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근대 100년 한국 역사학 연구의 반성과 제언’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한민족학회는 식민사학 타파에 앞장섰던 고 손보기 연세대 사학과 교수가 1987년 창립한 학회다. 2006년 들어 윤명철 동국대 사학과 교수가 다시 만들었다. 두 인물만 봐도 알 수 있듯, 이들은 주류 사학계의 실증사학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다. 과녁은 우리 역사를 밝히는데 왜 중국, 일본이 펴낸 관찬(官撰) 사료만 참조하는 문헌 사학에 머물고 있는가 하는 지점이다. 윤 교수가 “일본을 통해 도입된 근대 역사학은 문자 중심의, 그것도 지배계급의 관찬 사료, 그중에서도 우리와 경쟁했던 중국, 일본의 사료만을 중심으로 삼았다.”고 비판하는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역사라는 것이 옛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 목표가 있다면 정치 경제사에 대한 문헌 사료만 뒤적일 게 아니라 “지리학, 기후학, 지형학, 생태학, 생물학, 천체물리학 등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이를 ‘신(新)사학’이라 불렀다. 때문에 첫날인 27일 과학, 정치학, 신화학, 민속학 등 다른 인접 학문을 끌어들인다. 이튿날인 28일에는 중국뿐 아니라 몽골, 거란, 여진 등 주변 민족들이 남긴 기록도 함께 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거란사 전공자인 김위현 명지대 교수, 몽골 연구자인 박원길 몽골학회장 등이 나선다. 유행하는 말을 붙이자면 ‘통섭’이랄 수 있는데, 한마디로 역사학에 더 많은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선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학제 간 학회(SIS)와 새로운 역사 연구 전망’이라는 찬조 강연을 통해 서구 학계가 제기하고 있는 ‘외계 충격설’을 상세히 소개한다. 서구 학자들이 조직한 SIS는 1997년 학술대회에서 기원전 3500년부터 기원전 500년까지 크고 작은 운석들이 지구를 덮쳤다는 결과를 제출했다. 바로 이즈음, 그러니까 하늘에서 뭔가 중대한 변고가 발생했을 때에 신이라는 관념이 전 세계적으로 출현했고 뒤이어 신화가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가령 “그리스 신화는 거인족 티탄의 카오스 신화 뒤에야 제우스의 12신을 등장”시켰고, 단군신화 역시 “단군의 할아버지 환인을 천둥번개신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불교의 법화경에도 수많은 천신(天神)들이 등장해 “꽃비를 뿌리고 수백, 수천의 악기와 큰 북을 울렸다고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화 자체가 외계 충격에서 벗어났다는 인류의 선언이라는 얘기다. 이 위원장이 17세기 조선을 포함한 동북아 정세의 변화를 소빙하기(小氷河期)로 설명하려는 이유다. 김헌선 경기대 국문과 교수는 그래서 신화학의 복권을 요구한다. 역사학의 입장에서 신화학은 허풍쯤에 불과하지만 신화학이 보기에 역사학은 풍부한 이야기들을 다 잘라내 버려 ‘메말라 비틀어진 뼈다귀’다. 김 교수는 “일본의 실증주의는 부분을 전체에서 떼어내고 부분에 대한 증명이 전체인 것처럼 해서 스스로 지리멸렬했다.”고 주장한다. 토론자로는 고대 별자리 연구를 통해 역사 천문학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과 교수가 나선다. 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도 비슷한 입장이다. 민속학을 상상력의 보고로 보기보다 미천한 연구쯤으로 취급해 버린다는 것이다. 가령, 고구려 유민 20만명 가운데 10만명이 남방으로 이주해 지금의 먀오족이 됐다는 주장에 대해 사학계가 단 한마디의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장 연구관은 “기록에 의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전히 차가운 시선만 보낼 뿐 해석과 논리에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준거가 오류인지 굳이 말하려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부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탤런트 김인문씨

    [부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탤런트 김인문씨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등 8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 김인문 씨가 25일 오후 6시 34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72세. 손녀딸인 김은경씨는 “할아버지께서 지난해 4월 말 방광암 판정을 받으시고 투병하셨다.”면서 “며칠 전부터 병세가 악화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오늘 저녁 눈을 감으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2005년 8월 뇌경색으로 쓰러졌으나 재활에 성공했다. 당시 병원에서 앞으로 걷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정까지 받았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일어났다. 이후 2007년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에, 2008년에는 연극 ‘날개 없는 천사들’에 출연했다. 지난해 3월부터는 영화 ‘독 짓는 늙은이’의 주인공 송노인 역을 맡아 투병 중에도 촬영을 마쳤다. 동국대 농대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1968년 김수용 감독의 ‘맨발의 영광’으로 데뷔했다. 처음에는 문전박대를 당하였으나 김 감독에게 70여일을 매달린 끝에 배우가 됐다. 1968년 TBC 특채탤런트로 방송에 입문했다. 이후 ‘형’ ‘가시나무 꽃’ 등의 드라마와 ‘저 하늘에도 슬픔이’ ‘달마야 놀자’ ‘바람난 가족’ 등의 영화에서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구수한 연기를 펼쳤다. 특히 1990년부터 2007년까지 방송된 장수 드라마인 KBS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서 정감 넘치는 멋쟁이 아버지 ‘백구두 신사’를 연기해 사랑을 받았다. 뇌경색을 극복한 후에는 장애 배우들을 육성하는 데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2009년 1월 장애인방송연기자협회를 설립, 장애 배우들을 훈련시켰다. 그가 연출을 맡아 무대에 올린 ‘날개 없는 천사’에는 다운증후군, 뇌성마비 환자가 배우로 출연했다. 유가족은 부인 박영란씨와 필주(씨네크루 대표 )·헌주(삼화 F&B 이사)씨 등 두 아들이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8일이다. (02)2227-7500.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무일푼’ 아인슈타인 손녀 쓸쓸한 죽음

    천재 물리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손녀가 매년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할아버지의 유산을 한푼도 물려받지 못하고 평생 가난에 시달리다 쓸쓸하게 죽음을 맞아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와 ABC뉴스 등은 아인슈타인의 장남 한스 알베르트의 양녀 이블린(70)이 지난 13일 캘리포니아주 올버니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블린은 말년에 할아버지가 가족들에게 한푼도 남기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면서 자신이 노숙자로 살며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했다고 비참했던 삶을 털어놓았다. 뒤늦게 지난해 할아버지의 재산을 관리하는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과 상속권을 놓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과를 보지 못하고 결국 눈을 감았다. 생전에 가족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은 1955년 서류 7만 5000건과 자신의 물품을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에게는 한푼도 남기지 않았다. 지난해 포브스 보도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의 얼굴과 이름, 지적재산권 등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1000만 달러로 추산된다. 모든 수익은 법적으로 히브리대학에 귀속된다. 사후 아인슈타인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은 마이클 잭슨 등 전 세계적으로 7명에 불과하다. 이블린의 아버지 한스 알베르트는 아인슈타인이 스위스에서 대학시절에 만난 첫 부인 밀레바 마리치와의 사이에 태어난 장남이다. 아인슈타인은 1919년 마리치와 이혼하고 사촌 엘자와 재혼한 뒤 1933년 미국 이민 길에 올랐다. 아인슈타인은 아들들 결혼에도 불참하는 등 생전에 가족들과는 거리를 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블린은 5개국어를 구사하고 버클리에서 중세문학을 전공한 재원이었지만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전설 속의 원인 ‘빅풋’ 연구에 헌신했던 괴짜 교수 그로버 크란츠와 결혼했다가 13년만에 이혼한 뒤 생활이 어려워져 노숙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블린은 지난해 상속권 반환 소송을 제기한 직후 CNN 방송에 출연해 “히브리대학 측이 믿기 어려우리만치 가족들에게 지독하게 대했다.”며 분노를 표시하기도 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김정은 ‘타임 100인’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이하 타임 100인)에 포함됐다. 타임은 21일 ‘타임 100인’을 발표하면서 김정은에 대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난하고 핵을 보유한 국가의 절대적 통치자로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2004년과 2005년 2년 연속 ‘타임 100인’에 선정된 바 있다. 한류 스타 가수 비는 2006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타임 100인’에 꼽혔다. 온라인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던 비에 대해 타임은 “한국의 팝 스타에서 영화배우로 변신했다.”면서 그가 온라인 투표에서 인상적인 영향력을 보였다고 소개했다. 미국의 공교육 개혁을 주창해 주목을 받았던 한국계 미셸 리 전 워싱턴 DC 교육감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지난해 선정됐던 ‘피겨 여왕’ 김연아는 올해 빠졌다. 이집트 시민 봉기의 영웅인 구글의 중동·아프리카 담당 임원 와엘 고님(30)은 ‘타임 100인’ 명단의 첫 번째로 이름이 올랐다. 무아마르 카디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은 ‘떠버리’라는 소개와 함께 목록에 포함됐다.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넷플릭스 최고경영자 리드 해스팅스,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 창설자 줄리언 어산지도 100인에 포함됐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 중국의 반체제 인사이자 설치 미술가 아이웨이웨이, 오는 29일 ‘세기의 결혼식’을 거행하는 영국의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 커플, 엄격한 교육 방식을 소개해 논란을 일으킨 책 ‘타이거 맘’의 저자 에이미 추도 명단에 들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22일 TV 하이라이트]

    ●세상사는 이야기(KBS1 밤 7시 30분) 47년 전, 스물다섯 처녀가 산골 마을 총각에게 시집을 왔다. 충북 옥천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 푸렁골. 조각배로 강을 건너고, 고개 넘어 몇 시간을 걸어 신랑을 처음 만났다. 하지만 이제 세월이 흘러 모두 자리를 떠났다. 혼자 남아 마지막 남은 꿈이 이루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는 김봉난 할머니를 만나본다. ●금요기획(KBS2 밤 11시 5분) 동해안 최북단 저도 어장이 6배 이상 넓어졌다. 저도어장은 어로한계선 이북의 황금어장으로 고성군 현내면 어민들에게만 매년 한시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저도어장은 통일전망대 남쪽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돌섬이다. 저도어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민·관·군의 어로 보호 작전과 저도 어촌계의 삶을 함께 들여다본다. ●아침드라마 당신 참 예쁘다(MBC 오전 7시 50분) 유랑(윤세아)은 자신도 모르게 강수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강수를 보자마자 쓰러지고 만다. 자신 앞에 쓰러진 유랑을 강수는 밤새 간호하고, 유랑은 그런 강수가 고맙기만 하다. 한편 안나는 마린블루에 면접을 보러 온 유랑의 리조트 친구 수민을 만나 유랑에 대한 정보를 꼬치꼬치 캐묻는다. ●농비어천가(SBS 오후 6시 30분) 이른 아침 느닷없이 청년들 집에 찾아온 이장님. 진정한 농군의 깨달음을 얻게 해 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한다. 잠이 덜 깬 그들이 도착한 곳은 충남 홍성의 명산 용봉산. 청년들은 영문도 모른 채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커다란 사자바위가 나타날 때쯤 청년들의 얼굴은 이미 땀범벅.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용봉산 정상에 도착하는데…. ●세계의 아이들(EBS 밤 8시 50분) 몽골평원의 유목민 베르쿠치 할아버지. 손자에게 말 달리는 법, 독수리로 사냥을 하는 법을 가르치며 소일한다. 투박한 손으로 손주들을 보듬어 줬던 우리의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수천㎞ 떨어진 몽골 평원에 사는 베르쿠치 할아버지에게서 어린 시절 추억 속 할아버지의 애정 어린 마음을 떠올려 본다. ●콘서트 울림(OBS 밤 10시) 록밴드 크라잉넛 보컬 박윤식이 자진해서 스카 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만든 뮤지션, 킹스턴 루디스카가 ‘콘서트 울림’ 무대에 오른다. 자메이카의 음악인 스카(Ska)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9인조 밴드의 신나는 스카를 들어보고, 9명의 신나는 음악 친구들의 생활 이야기와 스카에 맞춰 추는 춤인 ‘스캥킹’도 만나 본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사 사정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KBS 02-781-1800 MBC 02-780-0015 SBS 02-2113-3190 OBS 032-670-5000 EBS 02-526-2000 서울신문STV 02-777-6466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