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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서 철창에 갇혀 성노예로 산 중국소녀 구출

    英서 철창에 갇혀 성노예로 산 중국소녀 구출

    영국 버밍엄의 한 불법 윤락업소에서 동물 우리를 연상케 하는 철창에 갇혀 성매매의 노예로 살아 온 10대 중국 소녀와 베트남 소년이 구출돼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6일자 보도에 따르면, 중국 출신의 18세 소녀와 베트남 출신의 13세 소년이 끔찍한 환경에서 성매매에 이용되다 어린이구조단체에 의해 구조됐다. 베트남 소년은 그의 할아버지가 더 나은 삶을 살라며 영국으로 보내줬지만, 영국에 도착한 뒤 인신매매업자들에게 붙들려 강제로 성매매에 이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은 세인트메리대성당 수녀원 소속의 헬렌 리안에 의해 알려졌다. 영국 내 불법체류 외국인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리안은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언제나 언급해왔지만 자꾸 감춰지기만 했다.”면서 “특히 철창에 갇혀 성매매에 이용돼 온 중국 소녀를 발견했을 당시엔 매우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어 “13살 된 베트남 소년은 웨스트미들랜드에 도착하자마자 강제로 트럭에 실려 성매매업소로 이동됐다.”면서 “이러한 불법 성매매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안의 주장에 따르면, 버밍엄시티에서는 인신매매업자와 성매매업소가 손을 잡고 소녀들에게 약을 먹인 뒤 강제로 성매매에 종사하게 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피해자 대부분은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어린이 보호 단체인 바르나르도(Barnardo) 역시 지난 해 버밍엄이 영국에서 어린이들의 인신매매가 가장 ‘활발한’ 도시라고 지적한 바 있으며, 현재 이 단체는 성매매에 강제로 동원된 소녀 100명과 소년 5명을 보호하고 있다. 바르나르도의 한 관계자는 “국적을 불문하고 폭력과 성매매, 약물에 노출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모금과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웨스트미들랜드 경찰과 손 잡고 이들을 보호하려 노력중”이라고 전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김승용 “이긴다, 두 자릿수 어시스트로”

    김승용 “이긴다, 두 자릿수 어시스트로”

    “팀의 좋은 성적이 1차 목표이고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두 자릿수 어시스트를 하고 싶다.” J리그에서 1년 만에 K리그로 복귀한 김승용(울산)을 지난 11일 아침 제주 서귀포시 칼호텔에서 만났다. 울산 선수단은 지난달 26일부터 서귀포에서 훈련에 열중하다 이날 오전 서귀포시 시민운동장 훈련을 마친 후 돌아와 잠깐 휴식을 취한 뒤 14일 다시 소집돼 일본 미야자키로 일주일 전지훈련을 떠난다. 푸른빛 훈련복 차림의 그는 다소 이른 시간인데도 생기가 넘쳤다. “떠날 때가 되니까 날씨가 포근해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입을 연 그는 “지난달 괌 전지훈련부터 동료들과 호흡을 맞췄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다. (이)근호가 있어 팀에 적응하기도 한결 수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부평고 동기인 이근호와 감바 오사카에서 뛰던 그는 28경기 출전에 4골 5도움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그런데 또 이근호와 한솥밥을 먹게 됐다. 2년에 옵션 1년 계약이다. 일본 생활에 대해 묻자 “근호가 일본에 둥지를 틀고 있어 어려움이 없었다. 경기 없는 날엔 맛집 찾아 다니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종종 근호 집에서 ‘위닝 일레븐’(온라인 축구 게임)으로 저녁 내기를 했다.”고 답했다. 이근호가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된 것에 대해선 “당연한 것 같아요. 단지 대표팀에 갔다 오면 컨디션 조절을 못 해 경기력이 떨어질 때도 있다고 걱정하더라고요.”라며 웃은 뒤 “대표팀에 뽑히면 영광인 것이고 팀에서 열심히 하다 보면 저절로 다시 뽑힐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반 대항 경기를 하다 코치의 눈에 들어 축구에 발을 들여놓았다. 처음 포지션은 골키퍼. 그러나 다른 선수의 자리를 메우면서 지금의 포지션을 찾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코너킥과 프리킥을 전담하며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켰다. 그러나 시련이 닥쳤다. 2010년 전북 시절 5경기밖에 출전 못 하고 부상의 늪에 빠진 것. 그 무렵 일본행을 결심했다. 김승용은 “전북에서 많이 못 뛰었을 때 정말 힘들었다. 자책도 많이 했다. 벤치 신세만큼 선수를 초라하게 하는 것도 없다.”고 말한 뒤 “주영이가 결장하는 일이 많아 힘들겠지만 잘 이겨내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강한 친구이기 때문이란다. 이어 “J리그에서 많이 배웠다. 선수 생활을 제대로 한 것 같다. 관중들이 많고, 연습 경기 때도 관중들이 많이 몰려와 응원해주는 분위기에 자신감도 많이 회복했다.”고 돌아봤다. “K리그가 타이트하고 강한 반면 J리그는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며 “패스 위주 플레이를 하는 데다 미드필더를 중요시해 내 역할이 많았던 것 같다.”는 풀이도 덧붙였다. 1년 만에 돌아오겠다고 결심한 것은 울산이 국내 구단 중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기 때문. 특히 김호곤 감독이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선수들을 꼼꼼히 챙겨줘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시즌 뒤 선수들과 함께 영화관을 찾았을 정도. 빠른 템포의 축구와 함께 패싱 플레이를 중시하는 것도 자신에게 잘 맞는다고 했다. 헤어지면서 유럽 진출 욕심은 없느냐고 툭 던졌더니 엉뚱하게도 “행복하게 사는 거요.”란 답이 돌아왔다. 서귀포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소변 섞은 맥주 마셔라”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 오인서)는 동창생을 집단 폭행·감금한 이모(16)군 등 3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10일 밝혔다. 이군 등은 지난해 12월 25일 오후 9시쯤 초등학교 동창인 A(16)군을 서울의 한 여관으로 불러 함께 게임을 했다. 세 사람은 사전에 말을 맞춰 A군이 벌칙을 받도록 유도한 뒤, 자신들의 소변을 섞은 맥주를 강제로 마시도록 강요했다. 또 사흘 뒤인 28일 A군 때문에 담배를 피운 사실이 경찰관에게 적발되자 A군의 목 부위 동맥을 양손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기절시킨 뒤 집단 구타하기도 했다. 31일에는 무리에서 ‘대장’ 격인 형모(16)군의 지시에 따라 김모(16)군이 A군을 마구 폭행,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혔다. 이군 등은 지난달 4일 자신들의 폭행사실을 할아버지에게 고자질했다며 A군을 집에서 강제로 끌고 나온 뒤 지하주차장에서 마구 때렸다. 조사결과, 얼굴 등 전신에 상처를 입은 A군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막기 위해 A군을 PC방, 노래방 등으로 끌고 다니며 40시간 동안 감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경찰 수사과정에서 휴대전화 화상통화를 이용, 여자친구에게 A군을 집단으로 폭행, “살려달라.”고 사정하는 장면을 보여준 사실이 밝혀졌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피아노 신동’ 임동혁의 데뷔 10주년

    ‘피아노 신동’ 임동혁의 데뷔 10주년

    8일 밤 12시 35분 KBS 1TV에서 방영되는 ‘클래식 오디세이’는 ‘피아노 신동’ 임동혁(28)을 초대한다. 신동이라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임동혁이 건반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7살 때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임동혁은 10살 때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에 들어갔고, 12살이던 1996년 국제청소년 쇼팽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했다. 그 뒤 2001년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이자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고,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로 꼽히는 퀸 엘리자베스·쇼팽·차이콥스키 등에서 차례로 입상했다. 임동혁 하면 뭐니뭐니해도 부조니 콩쿠르를 빼놓을 수 없다. 2000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이 콩쿠르에서 임동혁은 초반부터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였고 덕분에 모든 전문가들은 임동혁을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았다. 그런데 결선 무대에도 오르지 못하고 탈락해버렸다. 이 사건을 두고 이탈리아 언론들마저 불공정한 심사에 문제가 있다며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고, ‘피아노의 여제(女帝)’라 불리는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임동혁의 후원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아르헤리치의 지원 사격으로 임동혁은 2002년 메이저음반사 EMI 클래식에서 데뷔앨범까지 내놓았다. 그래서 임동혁에게는 올해가 데뷔 10주년이다. 임동혁은 10년간의 가장 큰 변화로 느림을 꼽았다. 그는 “빠른 템포보다 느린 템포를 선호하는 편”이라면서 “좀 더 노래하듯이 연주하고 싶다.”고 밝힌다. 또 음악가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10년보다 앞으로의 10년이 더 중요하다는 뜻도 밝힌다. 스튜디오에서 직접 슈베르트 즉흥곡도 연주한다. 이 외에도 ‘악기탐방’ 코너에서는 바순을 탐구한다. 프로코피에프의 ‘피터와 늑대’에서 타이르는 듯한 할아버지의 목소리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에서 아주 낮은 탄식의 목소리로도 등장하는 악기가 바로 바순이다. 어떤 악기 바순이 어떤 악기인지 살펴봤다. 이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드뷔시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7일 TV 하이라이트]

    ●시사기획 창(KBS1 밤 10시) 임신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 대체 어느 시절 얘기일까 싶지만, 바로 저출산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취재진은 임신으로 인해 직장생활에 고통을 겪었다는 여성들을 만났다. 왜 이들이 이처럼 참담한 현실에 놓여야 하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해법을 모색해 본다. ●복희누나(KBS2 오전 9시) 은주는 아파트로 찾아온 병만에게 금주가 묵는 호텔을 알려 준다. 금주는 병만을 따라 덕천으로 자포자기한 상태로 내려오고, 영표는 복희와 함께 백구의 사무실을 찾는다. 백구에게만은 편하다 못해 왠지 함부로 구는 듯한 복희가 의아하다. 한편 사무실 앞에서 뜻밖에 영표는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던 대성주조 정 부장을 만나게 된다. ●일일연속극 오늘만 같아라(MBC 밤 8시 15분) 상엽에게 효진과 만날 수 없다고 말한 뒤, 집으로 돌아온 해준(김승수)은 지완과의 대화에서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깨닫는다. 지완은 춘복의 주유소에서 다정하게 대화 중인 미호와 경식의 모습에 질투를 느낀다. 한편 유미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해준은 유미와 다시 한 번 얘기하고자 자리를 마련한다. ●태양의 신부(SBS 오전 8시 30분) 자체 내부 사업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박 변호사의 조언에 효원 LK 그룹 홈타운 프로젝트를 연담 건설과 연계시키자는 의견을 낸다. 진혁은 고민 끝에 강로를 향한 복수보다는 효원을 먼저 돕기로 결정한다. 한편 공동대표 이사 대표권 제한 규정서를 알게 된 효원은 인숙에게 아트홀 또는 KDH컴퍼니 한 곳의 대표만 결정하라고 … ●하나뿐인 지구(EBS 밤 11시 20분) 검은머리물떼새. 이들은 머리와 등은 검고 배는 흰색으로 멀리서 보고 있노라면 마치 턱시도를 차려입은 신사처럼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한정된 지역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검은머리물떼새. 약 11종의 검은머리물떼새 중 동북아종은 겨울이 되면, 러시아 캄차카 반도에서 한반도로 이동해 겨울을 난다는데…. ●가족(OBS 밤 11시 5분) 김두석 할아버지의 방 안은 총 28명의 대가족 사진과 6남매를 시집, 장가 보낸 사진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한쪽에 쌓여 있는 두꺼운 노트들은 현재 30권쯤 남아있는데 모두 할아버지의 역사와 추억이 담긴 일기이다. 마흔 살부터 써 내려온 일기에는 농사일이며, 당시 물가와 소일거리들과 가족의 소소한 일상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 어느 40대 형제의 슬픈 동반자살

    어느 40대 형제의 슬픈 동반자살

    장애인 형제는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지난 1일 오후 7시쯤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신푸르름(45)씨는 정신지체 3급, 동생 명균(44)씨는 정신지체 1급이었다. 형제의 주검은 서울 송파구 가락본동 경찰병원에 안치됐다. 형편 탓에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했다. 형제는 남달랐다. 항상 손을 잡고 다녔다. 이웃들은 ‘서수남·하청일’ 같다고 했다. 푸르름씨의 키는 180㎝가 넘었고, 명균씨는 160㎝가량이었기 때문이다. 푸르름씨는 동생에게 형이자 친구이자 부모였다. 38년간 곁을 지켰다. 명균씨가 6살 되던 해 부모를 잃었다. 푸르름씨는 장애가 있는 동생을 장애인시설에 보내자는 친척들의 권유를 뿌리쳤다. “동생은 나 없으면 안 된다.”며 책임졌다. 형제는 13평형짜리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생활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였다. 생계급여, 장애급여 등 월 60만원이 생활비의 전부였다. 꿋꿋하게 열심히 살았다. 푸르름씨는 ‘파란색’ 트럭을 끌고 다니며 도배, 인테리어 설비 등을 하는 일용직이었다. 그러면서도 9만원 정도의 월세를 단 한 번도 미루지 않았다. 독립이 어려웠던 명균씨는 제빵사를 꿈꿨다. 제빵 무료강좌에 참여해 직접 만든 빵을 형과 이웃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형제들은 밝았다. 가까운 이웃들은 “성실했다. 잘 웃었다. 싹싹했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이들의 사망 소식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 이웃 주민은 “얼마 전 집안 벽지를 새로 바른 것을 보고 예쁘게 잘 발랐다고 했더니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명균씨는 특히 같은 층 1310호에 사는 할아버지와 ‘절친’했다. 할아버지는 “마주치면 별다른 표정도 없이 고기나 빵을 주고 간다.”면서 “정이 많은 사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근 푸르름씨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생활고는 심해졌다. 월세만 겨우 냈다. 동생의 치료비 30만원은 크게 부담됐다. 희망의 끈에 매달린 악착같았던 삶도 끝내 좌절과 절망으로 바뀌었다. 푸르름씨는 동생이 눈에 밟혔다. 홀로 남은 동생, 명균을 지켜 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살기가 힘들다. 나 없으면 동생을 보살필 사람이 없어 함께 떠난다. 화장해 달라.’는 내용의 유서 한 장을 썼다. 형제가 떠난 아파트 현관 안쪽에는 푸르름씨가 동생을 위해 사 놓은 동화책이 노끈에 묶여 남아 있었다. 최지숙·이영준기자 truth173@seoul.co.kr
  • [특파원 칼럼] 어느 미국 할머니의 질문/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어느 미국 할머니의 질문/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지난달 10일 미국 뉴햄프셔주 내슈아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 아침 나는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현장을 취재하러 한적한 마을회관에 마련된 투표소에 들어섰다. 거의 백인 일색인 이 동네 투표소에 웬 동양인이 불쑥 나타나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니 책상에 앉아 있던 할머니 중 한 분이 대뜸 “누구냐.”고 묻는 건 당연했다. 70대로 보이는 할머니는 투표진행 자원봉사자인 모양이었다. “한국에서 온 특파원”이라는 대답에 얼굴에서 경계심을 지운 할머니는 이내 “북한에 20대 젊은이가 우두머리로 등장했는데, 한국인들은 그런 상황을 얼마나 위험하게 보느냐.”, “3대 세습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을 물었다.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거푸 질문을 쏟아내는 할머니의 표정은 내 의견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측은함과 노여움이 절반씩 섞인 오묘한 얼굴이었다. 말하자면, 한국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과 북한의 3대 세습을 경멸하는 심경이 얼굴에 잔뜩 반죽돼 있는 듯했다. 그 전날 저녁 내슈아의 한 중학교 강당 유세장에서 만난 60대 할아버지의 표정은 아예 험악했다.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응원하러 왔다는 그는 다짜고짜 “그 토마토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자 그 할아버지는 “토마토처럼 뚱뚱하게 생긴 북한의 그 애송이 있잖아.”라고 목청을 높였다. 김정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기저귀나 차고 있어야 할 바보(nut)가 지도자는 무슨 지도자냐.”라며 독설을 마구 쏟아냈다. 그 앞에서 차마 공화당 경선 얘기는 꺼낼 수 없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달라진 것은 시사에 관심이 별로 없는 평범한 미국시민들도 “김정일”, “김정은”이라는 이름을 얼추 정확히 발음할 정도가 됐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북한을 거침없이 비난하는 세태도 달라진 점이다. 전에는 주로 한국사람의 얘기를 듣는 편이었다면, 지금은 자신의 의견을 더 많이 말한다. 그만큼 ‘굶어 죽는 백성 앞에 등장한 칼로리 과잉의 앳된 지도자’에 대한 비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공화당 성향만 그러는 것은 아니다. 필립 크롤리 전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해 현직에 있을 때 기자들이 김정은의 방중 가능성 등을 질문하면 “아는 게 없다.”면서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4성 장군인데 어디인들 못 가겠느냐.”고 비아냥대곤 했다. 독재를 혐오해 온 미국의 역사를 알고 나면 이런 태도가 이해된다. 미국인들이 ‘대통령 3선 금지’ 조항을 헌법에 넣은 것은 나쁜 대통령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다.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재임 1933~1945년)가 높은 인기로 4선에 성공하면서 거의 ‘종신 대통령’처럼 재임하다 사망하자 미국인들은 이러다 왕정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헌법을 고친 것이다. 대통령 중심제이면서도 의회의 권한이 막강한 것 역시 영국 왕정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이런 미국인들 눈에 현대사에 유례 없는 3대 세습과 ‘어린 지도자’의 등장이 어떻게 비칠지는 불문가지다. 중요한 건 격앙된 여론이 축적되고 일반화되면 선거로 뽑히는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공화당 경선 선두주자인 롬니가 지난달 29일 플로리다 유세에서 김정은을 “최악의 지도자”라며 거칠게 비난한 것은 이미 민심의 밑바닥을 읽었다는 얘기다. 역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새 지도부를 자극하지 않고 살살 다루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악재를 만들지 않으려는 의도와 함께 북한이 새로운 도발을 저지를 경우 미국 국내 정서가 폭발할 수 있음을 직감한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 김정은은 아버지가 앉았던 책상에 앉아 ‘도발’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책상 위에 미국의 민심은 아버지 김정일 때와는 사뭇 다르다는 보고서도 하나 올라와 있었으면 좋겠다. carlos@seoul.co.kr
  • [지금&여기] 진짜 물려받아야 할 유산/유대근 국제부 기자

    [지금&여기] 진짜 물려받아야 할 유산/유대근 국제부 기자

    쉰네 살의 미국인 피터. 네브래스카 오마하 출신으로 이름난 작곡가다. 방송사 로고송과 코카콜라 광고음악을 만들고, 영화 ‘늑대와 춤을’ 사운드트랙 제작에 참여하는 사이 명성이 곰비임비 쌓였다. 지난해에는 중국에서 자서전 ‘너 자신이 하라’(做?自己)를 출간, 명성을 이어갔다. 피터의 이름 앞에는 또 하나의 수식어가 붙는다. ‘오마하의 현인’,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82) 버크셔 해서웨어 회장의 막내아들이다. 버핏은 2006년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천 중이다. 세 자녀가 토를 달았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아버지 버핏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장녀 수전(59)은 abc방송에 출연, “낡은 주방을 넓히려고 아버지에게 돈을 빌리려다가 ‘멀쩡한 주방을 왜 고치느냐’는 타박만 들었다.”고 회고했다. 버핏의 아들, 딸이 불평하지 않은 것은 돈보다 값진 ‘진짜 유산’을 이미 물려받았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른다. ‘기업가정신’이다. 이 가치의 고갱이는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공격성,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도전정신 등일 테다. 피터는 자신의 꿈을 좇으려 명문 스탠퍼드대를 중퇴했다. 그의 형 하워드도 대학을 그만두고 농사일을 시작했다. 집안에 기대지 않고 새 분야를 개척해온 이들은 기업을 운영하지는 않지만 넓은 의미의 기업가정신을 잘 실천하고 있다. 한국 재벌가 손녀들의 빵집이 입길에 올랐다. 정치권의 압력 등에 떠밀려 속속 시장 철수를 선언한다. 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억울해할 만하다. 재벌가의 고급 제과점이 영세 골목 빵집 매출에 큰 타격을 줬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일견 맞는 말이다. 다만, 핵심을 비켜갔다. 정서의 문제다. 대기업들이 새 분야에 도전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 성장을 도와야 할 판에 ‘기업가정신’은 잃고 소상공인 영역까지 침범할 수 있느냐는 분노다. 재벌 1세대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정신으로 국부를 키웠다.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아야 할 것은 경영권만이 아닌 듯하다. 가뜩이나 ‘1%’를 바라보는 ‘99%’의 시선이 사나운 때다. dynamic@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마지막 서커스단 ‘동춘’ 박세환 단장의 서커스 인생 50년

    [김문이 만난사람] 마지막 서커스단 ‘동춘’ 박세환 단장의 서커스 인생 50년

    고독한 예술가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다. 외롭고 쓸쓸한 영혼으로 몸부림치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남긴 ‘곡예사의 가족’ 또한 그렇다. 하여 곡예사를 떠올린다. 그들은 언제나 고독하고 아찔한 인생길을 걷는다. 가느다란 줄에 의지한 채 늘 기적의 안식처를 찾아 헤맨다. 문득 슬픈 어릿광대의 노래가 들려온다. ‘줄을 타며 행복했지/춤을 추면 신이 났지/손풍금을 울리면서 사랑 노래 불렀었지/공 굴리며 좋아했지 노래하면 즐거웠지/~영원히 사랑하자 맹세했었지/~어릿광대의 서글픈 사랑~’ 1970년대 후반 박경애씨가 불러 인기를 끌었던 ‘곡예사의 첫사랑’이다. 허름한 천막극장에서 많은 사람들은 곡예사들의 아찔한 곡예를 보면서 그들의 애환과 고단한 삶을 이해했기에 수많은 남녀노소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로 추억된다.2004년 8월 국립극장 무대.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다. 매우 이례적으로 서커스가 ‘극중극’ 형식으로 등장했던 것. 공연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며 서커스를 관람했다. 이어 만담과 차력, 마임, 트로트, 공중 곡예, 마술, 악극 화술 등이 곳곳에 등장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파격은 이윤택 감독에 의해 이루어졌다. 서커스의 애환과 묘기를 담아 내기 위해 동춘서커스단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 새로운 대중극의 진면목을 보여 주었다. 동춘서커스단은 허장강, 서영춘, 배삼룡, 남철, 남성남 등 당대의 스타를 배출하는 산실이었기에 관객들은 추억의 곡마단을 연상하며 많은 향수를 누렸다. 2009년 11월 동춘서커스단은 서울 청량리 공연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네티즌들은 정부 당국의 무관심한 처사를 거세게 비판했다. 아고라 토론방에 ‘동춘이 문닫으면 유인촌이 무인촌이 된다.’ 등의 게시물이 올라왔고 접속 건수만 무려 16만건에 달했다. 결국 동춘서커스단은 다시 살아났다. 동춘서커스단의 박세환(68) 단장. 올해로 서커스 인생 50년을 맞는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이 시대의 마지막 서커스단’을 꿋꿋하게 이끌어 오고 있다. 박 단장의 열정으로 요즘 동춘서커스단은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지난해 안산시 대부도에서 6개월 동안 장기공연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올해도 지방 공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경기 포천(5일)과 울산 해맞이 공연(6일)에 이어 다음 달 30일부터 6월 10일까지 경남 고성 공룡엑스포장 내 특설빅탑극장에서 공연을 갖는다. 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6월부터 1년간 대부도에서 상설 공연을 할 예정이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 약수동 사무실에서 박 단장을 만났다. 먼저 다음 달 공연 준비가 잘 되는지부터 물었다. 그는 “동춘서커스단의 이미지가 있는 데다 공룡엑스포가 합쳐져 많은 관객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매율도 나쁜 편이 아니라는 얘길 듣고 있다.”면서 “지난해 대부도 공연 때에는 안산시 측과 협의를 통해 특산물과 음식물 판매를 연계했더니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와 함께 달라진 서커스의 모습을 설명한다. “작년에도 시도했지만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아트 서커스’의 면모를 보여 줄 생각입니다. 공중 곡예뿐만 아니라 연극과 음악, 악극, 뮤지컬 등이 다 들어간 한 차원 높은 예술 서커스를 말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앞으로 해외에 나갈 때에는 ‘코리아 로빈 후드 서커스’라는 이름으로 업그레이드된 동춘서커스를 보여 줄 계획입니다.” 그가 밝히는 ‘코리아 로빈 후드 서커스’는 이미 지난해 국내 공연에서 ‘뉴 홍길동 서커스’로 선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막과 막 사이에 홍길동과 포졸, 그리고 사또 등이 등장하면서 곡예 서커스로 이어지는 ‘막간극’ 형태를 새롭게 추가했더니 아주 재미있게 달라지더라는 것이다. 박 단장은 이러한 ‘뉴 홍길동 서커스’에 자신감을 얻어 ‘코리아 로빈 후드 서커스’라는 브랜드로 새로운 한류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다. 특히 내용과 곡예면에서도 세계적인 서커스와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는 수준으로 꾸민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줄타기할 때 한복을 입고 등장하고 부채춤과 국악 곡예 등 한국적 테마를 되도록 많이 삽입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계 모든 관객들에게 100분 공연 내내 1분1초도 따분하지 않게 할 자신이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서커스는 눈속임이 없는 비언어적 공연예술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재미와 감동을 충분히 선사할 수 있다.”고 거듭 자신한다. “저는 ‘태양의 서커스’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태양의 서커스’는 1985년 국가에서 100억원을 지원받아 연간 매출 1조원을 올리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국가에서 지원받지 않고 외롭게 공연을 하면서도 묘기만큼은 ‘태양의 서커스’보다 더 강하다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 이르자 그의 목소리가 다소 높아진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무대예술이 서커스라는 판단 아래 오래전부터 라스베이거스 호텔에 상설 전용극장을 마련했으며 독일 등 유럽은 물론 중국, 일본, 북한 등도 여러 곳에 전용극장을 만들어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뭡니까. 전용극장이라고는 한 곳도 없고 국가에서 관심조차 없습니다. 동춘서커스단이 잘 살려고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유일한 서커스단이 없어지면 문화의 한 장르가 없어질뿐더러 이는 국가적 망신 아니겠습니까.” 이어 박 단장은 68세된 한 노인의 얘기를 꺼냈다. 지난 1월 17일 그 노인이 전화를 걸어와 “서커스단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텐데 3000만원을 기부하겠소.”라고 했던 것. 이에 박 단장은 “우리나라 서커스 발전을 위해 뜻깊게 쓰겠다.”고 여러 번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런 일이 있는가 하면 돈 잘버는 대기업이 동춘서커스단 상표를 무단으로 도용하는 경우도 있어 개탄스럽다고 했다. 그렇다면 서커스단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잘나갈 때는 단원만 150명이 넘었습니다. 무용수만 7~8명이고 가수에 10인조 악단까지 있었지요. 지금은 고정단원이 30명이고 계절별로 50~80명씩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원들의 급여도 조금씩 다르지요. 관객들이 많은 봄과 가을에는 아무래도 많이 지급할 수가 있습니다. 손해볼 때도 있고 이익이 좀 날 때도 있지요.” 요즘에도 서커스를 배우고 싶어 하는 지망생이 있느냐고 하자 “대학에서 7년 동안 강의하면서 느낀 것이기도 하지만 연극과 뮤지컬 배우가 되려는 지망생들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역동적인 서커스를 여전히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50년 서커스 인생을 살아온 소감이 간단치 않을 터. 잠시 벽에 걸린 왕년의 포스터를 쳐다보다가 “참 세월 빠르다. 배삼룡, 남철, 남성남, 이봉조 악단 등 서커스단을 거쳐 간 많은 단원들이 새삼 생각난다.”면서 “송해 형님이 지금도 노래자랑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데 저 역시 계속 사회를 보고 있다.”며 웃었다. 서커스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궁금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트럼펫을 배우고 있었지요. 마침 동춘서커스단 공연을 보게 됐습니다. 까만색 양복에 하얀 머플러를 걸친 사회자가 관객들을 사로잡는 것이 너무 멋있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커스단을 찾아가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지요. 한 3개월 동안 심부름하면서 지내다가 1년쯤 지났을 때 처음 노래를 불렀어요.” 그러던 얼마 후 사회자가 서커스단에서 나가 버리자 사회 보는 연습을 했다. 당시 사회자는 원맨쇼와 가수, 배우 역할까지 했다. 이때 연극 ‘물레방아 도는 내력’, ‘원한 맺힌 두 남매’, ‘홍도야 울지 말아’ 등에 1인 다역으로 출연했다. “동춘서커스단은 1925년 목포에서 창설됐습니다. 일본 서커스단에서 활동하던 동춘 박동수씨가 독립해 30여명의 조선인으로 출발했지요. 노래, 코미디, 연기 등 예능에 자질 있는 사람들은 전부 서커스단으로 몰릴 정도로 인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하지만 박 단장은 계속되는 할아버지의 반대로 1975년 서커스단을 떠나 부산극장에서 선전부장을 지낸 뒤 생필품 도매상을 차려 돈을 벌기 시작했다. 1978년 9월, 인천에서 공연 중인 동춘서커스단 빅탑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과 함께 동춘서커스단이 매물로 나왔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박 단장은 얼른 달려가 500만원을 선금으로 주고 인수한 뒤 오늘날까지 동춘서커스단을 이끌고 있다. 그가 요즘 간절히 바라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서커스 전용극장 설립이다. 이어 서커스 아카데미와 박물관을 만들어 후대에 남기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내년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세계서커스 경연대회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세환 단장은… 1944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경주고 1학년 때 동춘서커스단 공연을 처음 보고 감동해 1962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동춘서커스단에 입단했다. 이후 가수와 연극배우, 사회자 등 1인 다역을 했다. 1975년 서커스단에서 잠시 나와 부산극장 선전부장으로 일했고 부산극장 옆에서 생필품 중간도매상을 운영했다. 이때 번 돈으로 1978년 동춘서커스가 매물로 나오자 인수했다. 이후 서커스단 운영은 물론 총감독과 배우, 사회까지 맡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서커스단을 이끌어 오고 있다. 1982년 연세대 사회과학원을 거쳐 서울예술대 등에서 7년간 강의를 했으며 1989년부터 지금까지 한국곡예협회 총회장을 맡고 있다.
  • 친구 집단폭행에 생중계까지…

    친구를 집단 폭행하는 장면을 생중계한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건 당시 주변을 지나는 시민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함께 어울려 다니던 친구를 집단 폭행한 황모(15)군 등 중학생 3명을 구속하고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30일 밝혔다. 황군 등은 지난달 31일 서울 성북구 길음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박모(15)군을 불러 내 “너 때문에 경찰로부터 훈계를 들었다.”며 마구 때렸다. 박군은 맞은 사실을 할아버지에게 알리자 이 사실을 알게 된 황군 등은 지난 4일 집에 있던 박군을 불러 내 우산과 걸레자루 등으로 구타했다. 또 사흘간이나 PC방 등으로 끌고 다녔다. 박군은 코뼈가 부러지는 등 전치 4주의 부상을 당했다. 이들은 또 폭행 장면을 휴대전화 영상통화를 통해 여자친구들에게 생중계처럼 전송하기도 했다. 경찰은 “조사 결과 당시 지하주차장에서 박군이 폭행을 당할 때 아파트 주민 2명이 현장을 목격했으며, 이들 중 1명이 학생들의 폭행을 말리기는 했으나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황군 등 5명 가운데 4명은 부모가 이혼한 결손가정에서 자랐고, 박군도 10여년 전 부모가 이혼해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박군이 중학교 2학년 때 집단따돌림을 당한 경험 때문에 다시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 폭행 사실을 숨겨 왔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폭행 방법이 악의적이고 폭력적이어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면서 “피해자 박군은 이후 정서불안 증세를 보여 현재 치료 중”이라고 덧붙였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31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1 오전 7시 50분) 경기도 연천. 고요한 시골 마을을 쩌렁쩌렁 울리는 웃음소리가 있다. 소리의 진원지는 바로 일곱 빛깔 무지개를 품에 안은 강용식·이경희 부부의 집이다. 연천군 최대의 다둥이 집이라는 7남매 집. 개성도 성격도 각양각색인 일곱 아이들의 무지갯빛 하모니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진다. 7남매의 가족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 본다. ●김승우의 승승장구(KBS2 밤 11시 15분) 지난주에 이어 MC 스페셜 2탄으로 ‘승승장구’의 MC 이수근을 주인공으로 맞는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인간 이수근의 기쁨과 슬픔, 눈물과 웃음의 인생 이야기가 모두 공개된다. 특히 이수근을 위해 절친한 김병만이 일일 MC로 지원 사격을 나서며 남다른 우정을 과시해 이목을 집중시킨다. ●러브 인 아시아(KBS1 밤 7시 30분) ‘TV 유치원 파니파니’ 제작 현장. 아역 출연자 가운데 큰 눈망울의 귀여운 소녀가 있다. 파키스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민서다. 춤이면 춤, 연기면 연기. 못하는 것이 없다는 당찬 신예다. 아이답지 않은 똘똘함에 다재다능한 끼로 다양한 매력을 발산하는 민서의 깜찍 발랄한 모습을 만나본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 30분) 5살 용준이는 자기 방식대로 줄 세우며 정리하기의 달인이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용준이의 방은 유난히 깔끔하다. 흐트러짐 없이 각 맞춰 정리돼 있는 장난감들. 특히 자신만의 법칙에 따라 장난감을 정리하고 또 정리하는 게 일상이 돼버렸다. 용준이는 이제 누가 장난감을 만질까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다. ●세계테마기행(EBS 밤 8시 50분) 아메리카 대륙의 심장부에 있는 나라 멕시코. 매년 1월 6일 가톨릭 축일인 동방박사의 날이 되면 말을 탄 멕시코 카우보이 차로들이 예수상이 위치해 있는 쿠빌레테 언덕으로 향한다. 55년 전 한 가족이 말을 타고 시작했던 순례길. 이제는 수천 명이 참여하는 행사가 됐다. 가족, 마을 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그들의 여정을 소개한다. ●멜로다큐 가족(OBS 밤 11시 10분) 강원도 홍천에는 앉으나 서나 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고중복 할아버지가 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로지 소를 먹이고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하루에도 열두 번 산에 오른다. 할아버지는 장정이 들어도 무거운 70㎏ 무게의 지게도 거뜬히 들어 올리며, 오늘도 소를 위해 지게를 지고 산에 오르는데….
  • 최민식 “나이 50 넘기니 무엇이 진짜 연기인지 보여”

    최민식 “나이 50 넘기니 무엇이 진짜 연기인지 보여”

    이 남자, 참으로 처절하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서슴지 않고 비리를 저지르던 세관 공무원 최익현. 그는 해고 위기에 처하자 이번엔 먼 친척인 조직폭력배 최형배를 만나 건달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새달 2일 개봉)의 이야기다. 영화 속 최익현은 ‘나쁜 놈’임에 분명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고 연민을 느끼게 하는 구석이 있다. 최익현 역을 맡아 코미디와 누아르를 오가는 팔색조 연기를 선보인 최민식(50)을 지난 27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사회 이후 아쉽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이유는. -영화 상영 시간이 너무 짧다는 거다. 이 작품은 딱히 뒤집어지는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남자가 좌충우돌하면서 살아가는 잡담 같은 영화다. 나쁜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힘든 세월을 오직 생존을 위해서 살아 내야 했던 한 남자에 대한 연가이기도 하다. 이를 두 시간에 딱 잘라서 담기에는 모자란 것 같다. →극중 익현은 건달도 일반인도 아닌 일명 ‘반달’로 나온다. 전에 볼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인데. -그래서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 일반적인 깡패 영화였으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익현은 뭔가 각이 잡히고 샤프한 다른 조직폭력배들과 다르다. 이 영화는 평범한 아저씨가 조폭 건달들과 어울리는 이야기다. 그 속에서 유머와 연민을 전달하려고 했다. →소시민이었던 익현이 우연히 알게 된 먼 친척 조폭 형배(하정우)를 등에 업고 권력자가 되어 가는 과정이 인상 깊다. -극중 익현은 한국 남자들이 가질 수 있는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과 속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인물이다. 그 당시엔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살 수 없었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잖나. 익현은 우리네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의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익현이 한번도 가족을 부양하는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잃거나 포기한 적은 없다. 인물을 관통하는 한 축은 이 사람이 아버지라는 거다. →영화는 조폭과 관료, 그리고 정치인들과 결탁해 각종 이권을 챙기는 익현을 통해 부정부패가 만연하던 1980년대를 풍자하고 있는데. -영화에 풍자와 조소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1980~90년대를 아우르고 있는데, 꼭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패와 비리, 사기는 현대 사회에서도 만연하고 있지 않나. 공권력과 결탁한 부정부패는 조선시대에도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1980년대에서 시대적인 배경을 가져왔을 뿐, 요즘의 세태에도 대입이 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2대8 가르마에 엉거주춤한 걸음걸이, 걸쭉한 부산 사투리로 코미디부터 정극까지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보였는데. -일단 대본에 충실하는 편이고, 대사 한마디를 가지고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인물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다 보면 인물의 과거도 보인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설정을 하기보다는 상황에 맞춰 연기를 한다. 그리고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이번 영화의 연출을 맡은 윤종빈(33) 감독은 80년대를 잘 모르고, 막내 동생 뻘인데 소통이 어렵지 않았나. -창작하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윤 감독은 굉장히 진지하다. 그는 아버지의 시대에 대한 환멸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연민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물론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병폐 등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 시대에 대한 연민을 갖고 그렸다. 나도 그 점에 동의한다. →전작 ‘악마를 보았다’에서 희대의 악역을 맡아 섬뜩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이번에는 다소 반대되는 역할이다. -‘악마’ 같은 연기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웃음). 배우에게 상당히 힘든 작업이다. 처음 그 영화의 제목은 ‘아열대의 밤’으로, 상당히 멋진 제목이었다. 물론 보편적이지는 않고 특수한 사이코패스였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악역이었다. 본래 단순하기보다는 복잡한 캐릭터를 좋아한다. 인간이 아주 고귀하고 성스러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이번 작품도 그런 복잡다단한 인간의 속성을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연기자 최민식도 극중 익현처럼 살기 위해 처절했던 적이 있었나. -성격이 낙천적인 편이다. 이번 영화에 함께 출연한 배우 김성균씨가 직전까지 택배 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구로 아리랑’에 출연했을 때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처음 연극배우로 시작할 때 돈이 없었다. 수중에 1만~2만원만 있으면 불편하다고 느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좋은 차를 타고 유명한 연예인을 꿈꾼 적도 없다. 평생 연극만 하다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올해 벌써 50대가 되었다. 아직도 연기에 대한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나. -괜히 겸손을 떠는 게 아니라, 이제 뭘 좀 아는 나이가 되니까 ‘진짜’가 보인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20대 때엔 주변에서 연기를 잘한다고 하면 우쭐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50대가 되면서 지혜도 생겼고, 적당히 때도 묻었고 무엇인 진짜인지 보인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인간이 살아가는 모양새가 단선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코미디가 됐든 비극이 됐든 진짜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인생사가 어디 계획대로 되더냐.”면서 너털웃음을 짓는 최민식. 그는 배우로서의 꿈을 묻자 “계속 작품을 하면서 연기로 밥먹고 사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어려운 꿈을 밝혔다. 앞으로 그가 펼쳐 보일 ‘진짜’ 연기가 기대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움츠린 젊은이들에게 한가닥 희망 되었으면”

    “움츠린 젊은이들에게 한가닥 희망 되었으면”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의사시험에 합격해 기쁩니다. 그동안 불평 한 번 없이 믿고 응원해 준 아내와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의과대학 졸업 후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해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온 50세 남성이 졸업 16년 만에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해 화제다. 주인공은 최근 치러진 제76회 의사국가고시에서 최종 합격한 영남대 의과대학 82학번 출신의 김윤권씨. ●14년만에 의대 졸업… 사업하다 파산 청운의 꿈을 안고 1982년 우수한 성적으로 의과대학에 입학한 그였지만 대학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의사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답답했습니다. 뭔가 다른 삶의 길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느라 공부도 소홀히 하고 시간을 어영부영 보냈죠. 이러다 보니 등록을 무려 24번이나 했고 입학 14년 만인 1996년 2월 졸업장을 받아들었습니다.” 졸업 때에도 의사가 아닌 다른 길을 찾고 싶다고 생각했던 김씨는 의사국가고시를 치르지 않았다. 대신 그는 휴대전화 대리점 등 여러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부도를 맞았고 2004년에는 채무불이행으로 신용불량자가 됐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을 유지하던 그는 결국 2008년 개인파산을 신청했고 이 와중에 부친을 여의고 모친마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되고 말았다. “대학 다닐 때는 집안 형편이 넉넉해 먹고살 걱정은 평생 안하고 살 팔자려니 했습니다. 그래서 별로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벼랑 끝까지 몰릴 줄은 생각도 못했지요.” 오랜 방황을 끝내야겠다고 결심한 김씨는 2009년 의사국가고시를 다시 치르기로 결심, 영남대 의과대학 도서관에서 기거하다시피 하면서 공부에 매달려 이듬해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달라진 시험제도 때문에 실기시험에 곧바로 합격할 수 없었던 김씨는 또다시 1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8월 극심한 스트레스로 심근경색 수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실기시험도 통과해 의사면허를 받게 됐다. ●요양원서 노인들에게 인술 펼칠 계획 늦은 결혼으로 7살 된 딸과 6살 난 아들을 둔 김씨는 조만간 지역의 한 요양병원으로 출근, 한의사였던 할아버지의 바람처럼 병마와 씨름하는 노인들에게 참된 인술을 펼칠 계획이다. 김씨는 “나이 먹도록 가족 부양도 제대로 못하고 산 것이 부끄럽지만 요즘처럼 팍팍한 세상에 좌절하고 움츠려 있는 젊은이들에게 저의 인생 스토리가 한 가닥 희망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의자왕, 귀족 배신으로 唐에 끌려가”

    “의자왕, 귀족 배신으로 唐에 끌려가”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했을 때 웅진(현 공주)으로 피란 온 의자왕을 사로잡아 당나라에 넘기고 승승장구한 백제 최고위 귀족 예식진을 비롯한 예씨 가문의 무덤이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서 발굴됐다. 신라사학회의 김영관 제주대 교수는 2010년 4월 시안시 문물보호고고연구소가 대학가인 시안시 창안(長安)구 궈두난춘(郭杜南村)이라는 곳에서 당나라 중기 때 무덤 3기를 발굴한 결과 이들이 각각 예식진과 그의 아들 예소사, 손자 예인수의 무덤임을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발굴은 2006년 중국 허난성 뤄양(陽) 시내 골동품상에서 백제의 유민 예식진이라는 묘지명이 발견된 지 4년 만으로, 이 묘지명을 연구해 2007년 8월 ‘백제멸망의 진실-예식진의 배신’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김 교수의 논문을 입증할 수 있게 됐다. 김 교수는 “2007년 논문에서 예식진이 백제가 멸망할 당시 웅진성으로 피신한 의자왕을 당나라에 넘겼다고 ‘구당서(舊唐書) 소정방 열전’에 기록된 ‘예식’과 같은 인물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에 의심을 품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번에 발굴된 예씨 가문의 가족묘 중 예인수의 묘지명에 ‘할아버지가 중국 황제 고종에게 의자왕을 끌고 가서 바쳤다’는 기록이 분명하게 나온다.”고 밝혔다. 또한 예씨 집안 인물 묘지명에서 지난해 7월 중국 학계에서 보고한 예군 묘지명의 예군은 예식진의 형으로 드러났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김 교수는 “예식진의 묘비명에는 백제 웅진 출신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90년 뒤에 손자인 예인수에 이르러서는 백제인의 정체성을 잃고 당의 백성으로 동화되는 과정이 드러난다.”면서 “이 때문에 백제 멸망의 악역을 담당해 놓고도 책임의식이 희박해져 노골적으로 할아버지의 활약상을 묘비명에 거리낌 없이 서술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들 예씨 집안 4명의 묘지명에 대한 분석 결과를 28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서강대 정하상관 610호에서 열리는 제111차 신라사학회 발표회에서 공개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정일 대역배우’ 김영식씨 “김정일 따라 나도 지는 줄 알았는데… 더 떴습네다”

    ‘김정일 대역배우’ 김영식씨 “김정일 따라 나도 지는 줄 알았는데… 더 떴습네다”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과 닮게 태어나 별난 인생길을 걷는 경우가 있다. 특히 유명 인사와 닮은꼴은 더욱 그렇다. 2008년 11월 4일, 하루 종일 초조하게 TV를 지켜보던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가 결정되는 순간 거리로 뛰쳐나갔다. 공원에 몰려 있는 군중을 향해 스피커를 잡았다. 그를 본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오바마! 오바마! 오바마!’ 하지만 그의 이름은 대역배우 레지 브라운(30)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서 그의 삶도 바뀌기 시작했다. 각종 행사 출연과 광고모델 섭외가 이어졌다. 말 그대로 ‘인생역전’이었다. 지난 15일 영국 BBC 방송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가장 슬퍼한 사람은 그와 똑같은 외모로 화제가 됐던 한국의 대역배우 김영식(61)씨’라고 보도했다. 방송은 또 ‘김 위원장의 사망 당시 인민군 병사들이 슬픔을 이기지 못해 주저앉고 일부 여성들은 실신하기까지 했지만 누구도 김씨의 슬픔에 미치지 못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접했을 때 마치 나 자신의 일부가 죽은 것처럼 엄청난 공허감을 느꼈다.’는 김씨의 소감을 덧붙여 눈길을 끌었다. 그럴 것이 김씨는 툭 튀어나온 배와 군턱의 얼굴, 큰 안경 등 김 위원장을 쏙 빼닮은 외모 때문에 영화와 CF 등에서 김 위원장의 대역을 맡으면서 부수입을 올렸기 때문이다. ●해외 언론 “김씨, 김정일 사망에 엄청난 공허감” 사실 김씨는 국내보다 해외 언론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06년 6월 27일 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3면 머리기사에 김씨에 대한 얘기를 실었다. ‘서울에서 인쇄업을 하는 김씨는 자신의 옷장에서 김정일의 상징인 옅은 보라색 안경과 쑥색 정장, 검은 색 단화를 따로 보관할 정도로 김정일과 유사한 자신의 외모를 당당하게 여긴다.’는 내용과 함께 ‘김정일과 닮은꼴로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 다음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전했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한 이후 김씨가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2006년 11월 15일 로이터 TV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을 감행하면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닮은 사람이 한국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화제의 주인공은 56살 김영식씨로 김정일을 닮은 외모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김정일 역을 맡아 출연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방송은 또 ‘김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친애하는 지도자로 불리고 있으며 김정일을 닮기 위해 몸무게를 더 늘리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 밖에도 김씨는 독일 공영방송 ARD(2007년 3월 22일) 등을 비롯해 호주 ABC, 미국 CNN과 뉴욕타임스, 일본 니혼 TV와 후지 TV, 알자지라 잉글리시 TV 등에서 소개됐다. 특히 김씨는 2005년 중동지역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를 닮은 사람과 함께 초콜릿 광고에 출연하면서 아랍권에까지 이름을 알렸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그의 인기는 어느 정도일까. 1995년 김씨는 한 일간지에 난 광고를 보고 오디션에 응모해 12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김진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김정일 역을 맡으면서 영화배우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그는 KBS와 MBC, SBS 등 방송3사의 교양프로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지금은 영화배우협회 자문위원과 국방부 홍보영화위원장 등의 직함으로 김정일 위원장 역에 단골로 출연해 오고 있다. 다음 달에는 첫 음반을 내면서 본격적인 가수활동까지 할 예정이다. ●가게 들어서니 인민복 차림에 ‘김정일 제스처’ 지난 17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위치한 문구점(상폐 및 판촉물 제작)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30년째 점포를 운영해 오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김씨는 김 위원장이 즐겨 입던 쑥색 인민복 차림에다 특유의 김정일식 박수를 치며 “내레 김정일 위원장입네다.”라고 웃으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먼저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어떻게 달라졌느냐고 묻자 “여기저기서 우려의 전화가 많이 걸려 온다.”면서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꼭 제 자신이 죽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대역 부업이 물거품이 될까 봐 걱정”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대역은 죽은 다음에 더 유명해지는 것 아니냐고 위로의 말을 건넸더니 역시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로이터에서 취재했던 기자한테 전화가 왔는데 ‘(실제 주인공이)죽어야 뜬다.’고 합디다. 또 영국 BBC 방송에서는 그렇게 보도하더군요. 유명인사 대역을 전문 조달하는 업체의 운영자 프란체스크 맥더프 밸리의 말을 빌려 ‘정치인 대역은 실제 인물이 죽은 뒤 그를 조명하는 역사물로 인해 역할이 많아진다’며 예를 들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사망했을 때 그를 닮은 대역들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다고 말입네다. 실제로 해외 연예계에서는 슈퍼스타들이 사망한 후 대역들이 더 많은 일거리를 얻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죠. 마이클 잭슨이나 이소룡 대역이라든가 뭐…. 이번 달만 하더라도 생방송에 세 번 출연했습네다.” 곱슬머리에다 검은 선글라스의 표정이 인상적일 만큼 김 위원장을 쏙 빼닮았다. 파마한 머리냐고 물었더니 “원래부터 곱슬머리였지만 김 위원장 머리 스타일로 3개월에 한 번씩 파마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또 김 위원장이 즐겨 입는 옷은 세 벌 정도 있는데 소공동 양복점에서 30만원씩 주고 맞춘 특수복이라고 설명했다. 고(故) 앙드레 김한테 옷을 맞추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는 얘기도 곁들인다. 이어 “선글라스와 금테 안경이 다섯 개, 키높이 검정 구두만 4켤레 있고 가장 신경쓰는 것은 헤어스타일”이라면서 “주민들이 김 위원장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살 좀 빼라는 얘길 가끔 해 그럴 때마다 헬스도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中 단둥서 전화와 “TV에 너무 멋있게 나왔다” 김 위원장과 빼닮아 생긴 에피소드도 많다. 김씨는 최근 중국 단둥에서 걸려 온 전화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여보시라요, 거기 거북사(문구점 이름) 김영식 맞습네까.” “네, 어디시라요?” “여기 신의주 옆에 있는 단둥입네다. TV에 너무 멋있게 나와서 전화했습니데다. 중국 인터넷에 난리가 났습네다.” 김씨는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혹시 저쪽 편(북한 당국)에서 걸려온 전화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본능적으로 하게 된다.”면서 “이젠 자신의 이름이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어서 그다지 걱정은 안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일화 한 토막. “노인들을 위한 행사장이었습네다. 어떤 할아버지가 다가와 ‘북으로 가실 거죠. 우리 이제 통일 좀 시켜 주세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북에서 진짜 내려온 줄 알고 자기집 식당으로 모시겠다고 하더군요. 장소가 북방한계선(NLL) 인근 지역이었는데 북쪽을 향해 손짓을 해서 그런지 더욱 김 위원장으로 믿었던 것 같습네다(웃음).” 2008년 5월22일부터 2박3일 금강산 일정도 기억해 낸다. 가는 길에 남한의 안내원들은 북한 사람들에게는 명함을 주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북한에서는 일반인이 김정일 위원장과 닮았다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 김씨를 처음 본 북한사람들은 김정일 위원장과 닮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감히 위대하신 장군님과 비교하다니 무례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해 난처했던 경험이 있다. 김씨는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25세 되던 해 결혼과 동시에 서울로 올라와 장위3동에서 살았다. 동갑내기 아내와 슬하에 1남2녀를 둔 김씨는 상패·판촉물 및 명함·도장 전문점인 ‘거북사’를 운영하면서 소박한 가정을 이뤘다. ‘짝퉁 김정일’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은 1990년 초.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거울을 보면서 김 위원장을 생각했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김정일 역할을 할 사람을 찾는다는 신문 광고를 보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km@seoul.co.kr
  • [26일 TV 하이라이트]

    ●역사스페셜(KBS1 밤 10시) 다산 정약용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사도 요한’이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신을 향한 믿음은 곧 이단이자 죽음을 의미했다. 그는 왜 신을 믿었을까. 한편 그의 형제 정약전, 정약종 또한 천주교도의 길을 걸었는데…. 유학(儒學)의 명가 나주 정씨의 후손이었던 정약용 3형제는 어떻게 한꺼번에 천주교에 빠져든 이유를 들어본다. ●복희누나(KBS2 오전 9시) 물량을 맞추기 위해서 공장을 늘려야 하나 고민하는 복희(장미인애). 봉제공장 늘리는 일에 관해 백구에게 동업을 제안한다. 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는 백구는 복희에게 사업계획서를 써오면 생각해 보겠다고 얘기한다. 한편 송병만은 전에 없이 허심탄회한 속내를 드러내며, 영표를 향한 마음이 남다름을 표현한다. ●해를 품은 달(MBC 밤 9시 50분) 도성 문을 향하고 있는 가마 속에는 입에 재갈이 물린 채 가마 문을 열려 애쓰고 있는 무녀 월이 있다. 어환을 고치기 위해 궁으로 들어오라는 요청을 거절한 녹영 대신 녹영의 신딸인 월을 인간 부적으로 쓰기 위해 납치한 것이다. 그리고 잠깐의 혼란을 틈타 도망쳐 보려다 궁지에 몰린 월은 한 스님의 도움을 받게 된다. ●태양의 신부(SBS 오전 8시 30분) 효원은 강로와의 관계를 풀기 위해 찾아가지만, 강로는 효원을 절대 놔줄 수 없다고 말하고 매섭게 돌아선다. 강로와 효원의 사이가 틀어져 가는 것이 통쾌한 인숙은 효원에게 해외로 나가 살라고 말한다. 한편 박 변호사는 효원의 차압을 풀어달라는 KDH의 제안에 테마파크의 소유권을 넘겨달라고 회신한다. ●독립다큐관(EBS 밤 12시 5분) 하고 싶어도 차마 하지 못했던 핏빛 시대의 뜨거운 증언.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이 내 가족 안에 있었다. 평생 정신병으로 고생하던 작은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우연히 그분의 일기를 보게 되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슬픈 가족사와 맞닥뜨린다. 바로 역사책에서만 접했던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내 가족 안에 있었다. ●김구라, 문희준의 검색녀(OBS 밤 11시 10분) 개그우먼 김지혜가 남편 박준형은 ‘소 처럼 일한다’고 말해 눈길을 끈다. 어느 날, 남편 박준형이 외박을 했다. 화가 난 그녀는 말도 없이 외박한 남편에게 따졌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녀가 잠든 후 12시쯤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가, 그녀가 다시 잠에서 깨기 전인 아침 6시에 일을 나간 것인데….
  • ‘짝퉁 김정일’ 문방구 주인, 금강산 찾아가서…

    ‘짝퉁 김정일’ 문방구 주인, 금강산 찾아가서…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과 닮게 태어나 별난 인생길을 걷는 경우가 있다. 특히 유명 인사와 닮은꼴은 더욱 그렇다. 2008년 11월 4일, 하루 종일 초조하게 TV를 지켜보던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가 결정되는 순간 거리로 뛰쳐나갔다. 공원에 몰려 있는 군중을 향해 스피커를 잡았다. 그를 본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오바마! 오바마! 오바마!’ 하지만 그의 이름은 대역배우 레지 브라운(30)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서 그의 삶도 바뀌기 시작했다. 각종 행사 출연과 광고모델 섭외가 이어졌다. 말 그대로 ‘인생역전’이었다.  지난 15일 영국 BBC 방송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가장 슬퍼한 사람은 그와 똑같은 외모로 화제가 됐던 한국의 대역배우 김영식(61)씨’라고 보도했다. 방송은 또 ‘김 위원장의 사망 당시 인민군 병사들이 슬픔을 이기지 못해 주저앉고 일부 여성들은 실신하기까지 했지만 누구도 김씨의 슬픔에 미치지 못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접했을 때 마치 나 자신의 일부가 죽은 것처럼 엄청난 공허감을 느꼈다.’는 김씨의 소감을 덧붙여 눈길을 끌었다. 그럴 것이 김씨는 툭 튀어나온 배와 군턱의 얼굴, 큰 안경 등 김 위원장을 쏙 빼닮은 외모 때문에 영화와 CF 등에서 김 위원장의 대역을 맡으면서 부수입을 올렸기 때문이다.  사실 김씨는 국내보다 해외 언론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06년 6월 27일 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3면 머리기사에 김씨에 대한 얘기를 실었다. ‘서울에서 인쇄업을 하는 김씨는 자신의 옷장에서 김정일의 상징인 옅은 보라색 안경과 쑥색 정장, 검은 색 단화를 따로 보관할 정도로 김정일과 유사한 자신의 외모를 당당하게 여긴다.’는 내용과 함께 ‘김정일과 닮은꼴로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 다음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전했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한 이후 김씨가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2006년 11월 15일 로이터 TV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을 감행하면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닮은 사람이 한국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화제의 주인공은 56살 김영식씨로 김정일을 닮은 외모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김정일 역을 맡아 출연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방송은 또 ‘김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친애하는 지도자로 불리고 있으며 김정일을 닮기 위해 몸무게를 더 늘리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 밖에도 김씨는 독일 공영방송 ARD(2007년 3월 22일) 등을 비롯해 호주 ABC, 미국 CNN과 뉴욕타임스, 일본 니혼 TV와 후지 TV, 알자지라 잉글리시 TV 등에서 소개됐다. 특히 김씨는 2005년 중동지역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를 닮은 사람과 함께 초콜릿 광고에 출연하면서 아랍권에까지 이름을 알렸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그의 인기는 어느 정도일까. 1995년 김씨는 한 일간지에 난 광고를 보고 오디션에 응모해 12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김진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김정일 역을 맡으면서 영화배우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그는 KBS와 MBC, SBS 등 방송3사의 교양프로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지금은 영화배우협회 자문위원과 국방부 홍보영화위원장 등의 직함으로 김정일 위원장 역에 단골로 출연해 오고 있다. 다음 달에는 첫 음반을 내면서 본격적인 가수활동까지 할 예정이다.  지난 17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위치한 문구점(상폐 및 판촉물 제작)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30년째 점포를 운영해 오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김씨는 김 위원장이 즐겨 입던 쑥색 인민복 차림에다 특유의 김정일식 박수를 치며 “내레 김정일 위원장입네다.”라고 웃으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먼저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어떻게 달라졌느냐고 묻자 “여기저기서 우려의 전화가 많이 걸려 온다.”면서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꼭 제 자신이 죽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대역 부업이 물거품이 될까 봐 걱정”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대역은 죽은 다음에 더 유명해지는 것 아니냐고 위로의 말을 건넸더니 역시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로이터에서 취재했던 기자한테 전화가 왔는데 ‘(실제 주인공이)죽어야 뜬다.’고 합디다. 또 영국 BBC 방송에서는 그렇게 보도하더군요. 유명인사 대역을 전문 조달하는 업체의 운영자 프란체스크 맥더프 밸리의 말을 빌려 ‘정치인 대역은 실제 인물이 죽은 뒤 그를 조명하는 역사물로 인해 역할이 많아진다’며 예를 들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사망했을 때 그를 닮은 대역들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다고 말입네다. 실제로 해외 연예계에서는 슈퍼스타들이 사망한 후 대역들이 더 많은 일거리를 얻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죠. 마이클 잭슨이나 이소룡 대역이라든가 뭐. 이번 달만 하더라도 생방송에 세 번 출연했습네다.”  곱슬머리에다 검은 선글라스의 표정이 인상적일 만큼 김 위원장을 쏙 빼닮았다. 파마한 머리냐고 물었더니 “원래부터 곱슬머리였지만 김 위원장 머리 스타일로 3개월에 한 번씩 파마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또 김 위원장이 즐겨 입는 옷은 세 벌 정도 있는데 소공동 양복점에서 30만원씩 주고 맞춘 특수복이라고 설명했다. 고(故) 앙드레 김한테 옷을 맞추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는 얘기도 곁들인다. 이어 “선글라스와 금테 안경이 다섯 개, 키높이 검정 구두만 4켤레 있고 가장 신경쓰는 것은 헤어스타일”이라면서 “주민들이 김 위원장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살 좀 빼라는 얘길 가끔 해 그럴 때마다 헬스도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 빼닮아 생긴 에피소드도 많다. 김씨는 최근 중국 단둥에서 걸려 온 전화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여보시라요, 거기 거북사(문구점 이름) 김영식 맞습네까.”  “네, 어디시라요?”  “여기 신의주 옆에 있는 단둥입네다. TV에 너무 멋있게 나와서 전화했습니데다. 중국 인터넷에 난리가 났습네다.”  김씨는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혹시 저쪽 편(북한 당국)에서 걸려온 전화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본능적으로 하게 된다.”면서 “이젠 자신의 이름이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어서 그다지 걱정은 안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일화 한 토막.  “노인들을 위한 행사장이었습네다. 어떤 할아버지가 다가와 ‘북으로 가실 거죠. 우리 이제 통일 좀 시켜 주세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북에서 진짜 내려온 줄 알고 자기집 식당으로 모시겠다고 하더군요. 장소가 북방한계선(NLL) 인근 지역이었는데 북쪽을 향해 손짓을 해서 그런지 더욱 김 위원장으로 믿었던 것 같습네다(웃음).”  2008년 5월22일부터 2박3일 금강산 일정도 기억해 낸다. 가는 길에 남한의 안내원들은 북한 사람들에게는 명함을 주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북한에서는 일반인이 김정일 위원장과 닮았다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 김씨를 처음 본 북한사람들은 김정일 위원장과 닮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감히 위대하신 장군님과 비교하다니 무례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해 난처했던 경험이 있다.  김씨는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25세 되던 해 결혼과 동시에 서울로 올라와 장위3동에서 살았다. 동갑내기 아내와 슬하에 1남2녀를 둔 김씨는 상패·판촉물 및 명함·도장 전문점인 ‘거북사’를 운영하면서 소박한 가정을 이뤘다. ‘짝퉁 김정일’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은 1990년 초.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거울을 보면서 김 위원장을 생각했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김정일 역할을 할 사람을 찾는다는 신문 광고를 보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비무장지대 된 고향… 손주들 만나면 위로돼요”

    “비무장지대 된 고향… 손주들 만나면 위로돼요”

    설 연휴를 하루 앞둔 20일 정오, 경기 파주시 상지석동 괸돌수용소 마을 입구.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정겹다. 50여명의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인 마을회관 옆 경로당은 “할머니! 할아버지!” 하고 곧장 달음박질해 올 손자손녀 이야기로 웃음꽃이 가득하다. 괸돌수용소라는 이름은 지금은 비무장지대(DMZ)가 된 경기 장단군에서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이주해 오면서 국군과 미군에 의해 붙여졌다. 주변의 여러 수용소와 구별하기 위해 ‘고인돌(괸돌)이 있는 수용소’라 해서 ‘괸돌수용소’라 부르기 시작했고, 40~50대 사람들은 지금도 행정구역 명칭인 ‘상지석동’보다 ‘괸돌수용소’를 즐겨 부른다. 한때 400여 가구에 달했던 마을은 1959년 미군이 배급을 중단하면서 지금은 150여 가구만 남아 있다. 윤금순(85) 할머니는 장단군 진동면 서곡리가 고향이다. 당시 폭격을 피해 집 근처 방공호에 숨어 지냈으나 중공군이 새까맣게 몰려 오는 것을 보고 피란을 결심했다. 짐은 머리에 이고, 젖먹이 작은딸은 등에 업고, 여섯 살 난 큰딸의 손을 잡아 끌며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넜다. 윤 할머니는 20일 “파주 금촌국민학교 근처 빈집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는데 군인들이 트럭에 타라고 해서 탔더니 야산이었던 지금의 이곳에 내려놓고 그냥 가버리는 거야.”라고 회상했다. 일주일만 지내면 될 줄 알았는데 60년이나 지났다. 당시 윤 할머니 등에 업혀 있었던 젖먹이는 벌써 환갑이 다 됐고, 여섯 살 딸도 칠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수용소이기 때문에 미군들이 우유가루와 옥수수가루 등 먹을거리를 배급해 줬어. 그런 소문을 듣고 사방에서 피란민들이 몰려들은 거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미군 철수를 주장한다지만, 미군 아니었으면 우리는 굶어 죽었지.” 여섯 살에 장단군 거곡리에서 피란 나와 지금까지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 박여순(66)씨의 또 다른 증언이다. 마을 입구에서 상지식당을 운영하는 노인회장 권진철(75) 할아버지는 “이제 몇 년 더 있으면 우리 피란민 세대는 모두 없어질 것”이라며 “이제 그 어렵던 시절도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청년회에서는 ‘명절 때만이라도 얼굴 한 번 보자.’며 친목을 다지고, 부녀회원들은 수시로 경로당에서 노인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한다. 하지만 공장이 들어서면서 전입 인구는 늘고, 토박이는 직장을 이유로 하나둘 마을을 떠나면서 끈끈했던 이웃 간의 정도 세월이 거듭될수록 느슨해지고 있다. 수용소 배급소 자리에서 40년 가까이 연쇄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형달(64)씨는 “교하에 살면 모두 부자인 줄 알지만, 우리 마을은 일산과 접해 있으면서도 파주시 맨 끄트머리에 위치해 가장 낙후됐는데도, 어느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혔다. 글 사진 한상봉기자 hsb@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책귀신 망태할아버지 (이상배 글, 백명식 그림, 처음주니어 펴냄) 호랑이보다 귀신보다 무서운 망태 할아버지의 빨간 망태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도깨비가 아닌 300권의 책이 우르르 쏟아진다. 떡방아 찧는 마녀와 달나라 토끼가 만난다면? 망태에서 술술 삐져나오는 이야기들이 고소하다. 9500원. ●환경을 지키는 영웅들 (해리어트 로머 글, 줄리 맥로린 그림, 정현선 옮김, 아이앤북 펴냄) 북극의 빙하가 녹아 북극곰의 생존이 위협받고, 아프리카에서 가뭄으로 코끼리들이 가족을 잃고 있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것도 모두 환경 오염 때문이다. 지구와 사람을 살리고, 나도 영웅이 되는 다양한 방법이 나온다. 9500원. ●나에게 키스하지 마세요 (툴리오 호다 글·그림, 김희진 옮김, 글로연 펴냄) 부제가 ‘이대로가 좋아요’다. 딱 감이 오지 않는가? 사람과 키스하면 왕자, 또는 공주가 되는 개구리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이 삐뚤어진 개구리는 100년 만의 축제에서 키스를 거부한다. 이 개구리는 짝을 찾을 수 있을까? 1만 2000원. ●뚜벅뚜벅 우리신 (최재숙 글, 이광익 그림, 솔거나라 펴냄) 우리 신이라고 해서 짚신만 떠올리면 곤란하다. 5000년 전 이집트에서 신었던 샌들, 툰드라에서 신었을 가죽 장화, 고구려 무덤 벽화의 반장화, 왕릉에서 출토되는 스파이크가 달린 금동신발 등이 소개된다. 삽화가 구체적이고 재밌다. 9800원.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3) 전남 무안 석용리 곰솔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3) 전남 무안 석용리 곰솔

    스물 남짓한 가구가 모여 사는 평화로운 농촌 마을,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이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구 밖 나무 곁에 노인이 나타난다. 나무 앞에 놓인 정자 마루에 걸터앉아 쉬노라면 마을 앞 저수지 건너편 조붓한 도로에 노란 색 미니버스가 나타난다. 조무래기 아이들 서넛이 버스에서 내리자 고요하던 들녘에 왁자한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들어찬다. 노인은 고개 너머의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아이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 환한 미소가 배어난다. 저수지 옆 길을 달려온 아이는 노인의 가슴에 가방을 내던지듯 팽개치고 쪼르르 몰려서 마을 골목 안으로 달려간다. ●마을 어귀서 주민의 살림살이 주관 전남 무안군 해제면 석용리 감정마을 동구 밖의 저물녘 풍경이다. 서너 해 전의 어느 봄 날, 이 마을의 당산나무인 곰솔 앞에서 맞이했던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 아이들이 그새 중학생 고등학생이 됐어요. 이제는 노란 색 학교 버스가 아니라,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죠.” 불과 서너 해 사이지만, 아이들은 훌쩍 컸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그때 그 노인도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곰솔 앞에 나오지 않는다. 석용리 곰솔의 풍경은 적잖이 달라졌다. 그러나 나무는 달라진 게 없다. 살아있는 생명으로서의 나무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할 수야 없겠지만, 느릿한 변화이기에 빠르게 변화하는 사람의 깜냥으로는 도무지 알아볼 수 없다. 석용리 곰솔은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어귀에 홀로 서서 마을의 모든 살림살이를 지켜왔다. 나무와 더불어 살아온 감정마을 풍경의 중심이 된 건 당연한 일이다. 누구라도 곰솔을 빼놓고는 감정마을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됐다. 마을 살림살이를 이야기하기 위한 마을회관도 그래서 나무 앞에 세웠다. 싸락눈 흩뿌리는 겨울 오전, 마을 아낙들이 바로 그 곰솔 앞의 마을회관에 모였다. 그중에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강산댁(65)은 나무를 ‘할머니나무’라 하지 않고, 그냥 ‘할머니’라고 부른다. “우리 할머니가 아주 영험한 할머니예요.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주거든요. 마을에 홍역을 앓던 어린 애들 일곱 명이 한꺼번에 죽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모두 모여서 며칠 동안 건강히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치성을 드렸지요. 그 뒤로는 마을 사람들이 아무 일 없이 모두 잘살게 됐지요.” ●사람의 생사여탈권까지 쥐락펴락 강산댁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이야기도 있다고 이야기를 잇는다. 이 마을에 살던 한 사내가 땔감을 하려고, 이 나무의 가지를 꺾어 갔는데, 그날 밤에 사내의 음부에 종기가 났다. 온갖 처방을 동원했지만, 종기는 낫지 않고 3년 동안 고생하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석용리 곰솔은 언제 누가 심은 나무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을을 지켜주는 신령스러운 나무라는 믿음은 마을 모두에게 공통적이다. 나무는 사람살이를 바라보고 지키기만 하는 게 아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될 만큼 삶과 죽음에 개입하는 신비로운 나무가 됐다. 해마다 음력 이월 초하루에 당산제를 지내는 것도 그래서다. 300살 된 석용리 곰솔은 키가 11m, 줄기둘레는 3m를 조금 넘는다. 나무의 중심인 굵은 줄기가 곧게 솟아오른 뒤에 사람 키를 조금 넘는 부분에서는 사방으로 가지를 넓게 펼쳐서, 매우 우아한 자태를 이뤘다. 높이 솟아오르는 생김새로 자라는 바닷가의 여느 곰솔과는 사뭇 다르다. 약간 비탈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오래전에 나무 뿌리 부분에 약간의 흙을 돋우고, 주변에 돌축대를 정성껏 쌓았다. 얼핏 보아도 마을에서 이 나무를 얼마나 공들여 지키는지 알아볼 수 있다. 아름다운 생김새에 사람들의 정성이 보태져 나무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됐다. 담양전씨들이 모여 사는 감정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를 ‘할아버지’가 아닌 ‘할머니’라고 부르는 건 이 마을에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하는 여인이 많았던 까닭이라고 한다. 강산댁은 감정마을이 열녀가 많이 나온 마을이라며, 나무 바로 앞에 세운 두 기의 열녀비가 그 증거라고 가리킨다. 상세한 내력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해도, 마을의 정신과 도덕률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여인들이 대를 이어온 마을이라고 자랑한다. ●나무와 사람이 이뤄가는 소박한 지혜 “얼마 전에는 누가 우리 할머니 앞에 돼지머리와 제수를 차려놓고 밤새 고사를 지내고 갔더라고요. 워낙 영험하다는 게 동네방네 소문이 나니까, 몰래 찾아와서 소원을 빌고 간 거죠.” 강산댁의 나무에 대한 자부심은 끝없이 이어진다. 마을이 넉넉하게 사는 것도 모두 이 나무 덕분이라고까지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게 어디 이 마을뿐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나무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을 이루며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 나무를 중심으로 마을의 모든 살림살이가 이뤄지는 것 역시 농촌 마을에서라면 결코 생경한 일이 아니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나무 앞에 모여 흥겹게 잔치를 벌이고, 궂은 일이 생기면 나무 앞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살림을 이어가는 게 거개의 농촌 풍경이다. 300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나무의 오랜 수고, 그리고 그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농촌 마을 사람들의 소박한 지혜가 이룬 넉넉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글 사진 무안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가는 길 전남 무안군 해제면 석용리 422-1 감정마을회관 앞. 무안~광주 간 고속국도의 북무안나들목으로 나가서 오른쪽으로 난 국도 77호선을 이용해 현경면사무소까지 간다. 해제면 쪽의 국도 24호선을 타고 북서쪽으로 14㎞쯤 가면 토치삼거리가 나온다. 직진하여 해제면 소재지까지 간 뒤, 오른쪽의 낮은 봉대산을 끼고 고개를 넘어간다. KT 기지국을 지나면 왼쪽으로 조그마한 저수지가 나오고, 뒤편으로 마을이 보인다. 마을 입구에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그 앞에서 우회전하여 170m쯤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을 어귀에 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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