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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말은 마음의 거울이다/문흥술 서울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말은 마음의 거울이다/문흥술 서울여대 교수·문학평론가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대학에서 여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요즘처럼 참담할 때가 없다. 국민의 대표로 높으나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공개 석상에서 서슴지 않고 여성을 비하하는 욕설을 하고, 문제가 되자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분’. 그런 ‘분’을 두둔하는 또 다른 높으신 ‘분’들. 나아가 이 사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여성 지도자라 자처하는 ‘분’들.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여름 방학을 시작할 때마다 제자들에게, 여름에 피서 가지 말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열심히 책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사회에 나가 옳고 그름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비판적 지식인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라고 늘 말한다. 그러면서 2학기 개강할 때 시커멓게 탄 모습으로 나타나면 피서 간 것으로 생각하고 엄청난 과제를 낼 테니 각오하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러면 학생들은 눈빛을 반짝이면서 큰 소리로 ‘예’하고 답한다.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그렇게 1학기를 끝낸다. 그런데 이제 그런 엄포도 놓지 말아야 할 듯하다. 앞서 언급한 그런 높으신 ‘분’들이 한국 사회의 지도자로 있는 한, 제자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에 나간다 한들 욕먹는 여성밖에 더 되겠는가. 박완서의 소설 ‘친절한 복희씨’에는, 반신불수가 된 상태에서도 자신의 성욕을 채우려고 할머니를 무던히도 괴롭히는 추악한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런 할아버지 밑에서 평생 고통스럽게 살아온 할머니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버팀목으로 늘 비상약을 품고 있다. 남성의 폭력에 전면적으로 노출된 여성이 비상약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이 소설에서나 일어나면 좋으련만, 이번 일을 보면서 현실에서도 그런 상황이 충분히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여성에게 욕을 하고, 또 그런 행위를 두둔하는 이들의 행동의 이면에는 남성중심주의에 침윤된 무의식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지난 시절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 중심의 사회를 번영시키는 데 필요한 도구처럼 여겨져 왔다. 여성 직원에게 커피를 타게 하는 일, 회식 자리에서 술 시중을 들게 하는 일 등과 같이 여성을 폄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것도 다 남성 중심의 사고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21세기 선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남성의 도구로 보는 시선은 많이 사라져 가고 있다. 여성은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지금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역할에 따른 성 차별은 더는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 모두 고귀한 인간 존재로 존중받으면서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열린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런 인식 덕분에 오늘날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이 분위기를 역행하는 것일까. 혹시나 이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올바른 변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오정희의 소설 ‘옛우물’을 보면, 여성으로서의 어머니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자 탄생의 신비로움과 부활의 풍요로움을 지닌 위대한 존재로 규정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모두 어머니 뱃속에서 생명을 부여받은 존재가 아닌가. 폭염으로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이번 여름, 졸업을 앞둔 제자 두 명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한 명은 교사가 되려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시험 준비를 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12월의 신춘문예를 위해 집에서 밤 새워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두 학생 모두 자신이 꿈꾸는 바를 이루고자 청춘의 끓는 피를 공부와 습작에 쏟아붓는 것이다. 이들의 열정과 노력이 뿌린 만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회야말로 21세기 한국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다. 말은 마음의 거울이다. 여성을 폄하하는 말이 횡행하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진정으로 뜯어고쳐야 할 것이 너무 많은 듯해 심히 개탄스럽다.
  • “친일 할아버지 ‘무사유의 죄’… 15일 또 그 죄 짓고 있지 않나”

    “친일 할아버지 ‘무사유의 죄’… 15일 또 그 죄 짓고 있지 않나”

    밝은 미래 찾기는 어두운 과거를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는 데서 가능하다. 일제시대 지방 군수를 지낸 친일파의 손자가 광복 67주년을 맞아 서울신문 독자와 국민들에게 조부의 친일 행위에 대해 반성하는 글을 보내 왔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반발하는 후손들이 적지 않은 가운데 이 같은 고백은 진정한 광복 정신의 표현과 다름없어 보인다. 다음은 1년 전 친일인명사전에서 할아버지 이름을 발견한 윤석윤(55)씨가 14일 보내온 편지다. 윤씨는 현재 경기도 군포시에 거주하며 독서토론 강사 및 기업체 근로자 교육강사 등으로 일하고 있다. 8월 15일이 왔습니다. 광복절입니다. 올해는 저도 이날에 대한 감회가 새롭습니다. 1년 전, 행적을 몰랐던 할아버지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대한제국에서 개혁과 개방정책을 담당할 인재를 키우고자 1895년 제1회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된 양반 자제 200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일본 도쿄의 게이오의숙에서 3년 동안 공부하고 귀국하여 1900년에 농상공부에서 관리로 공직을 시작했고,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군수로 일하다 1926년 50세에 퇴직하였고, 195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아버지를 찾게 된 것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덕분입니다. 일제강점기 군수를 했다고 하기에 ‘혹시’ 하고 찾아봤는데 그곳에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삶을 알게 된 기쁨과 내가 미워했던 친일파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이 교차해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시대를 앞서 간 선각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제의 앞잡이였다니. 할아버지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병합할 때 왜 관리를 그만두지 못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저는 그 답을 유대인 여성 철학자 해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찾았습니다. 그녀는 유대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담당했던 아이히만의 죄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철저한 무사유(無思惟)’에서 찾고 있습니다. 아이히만은 조직이 요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친일파들도 역시 조직에 순응한 평범한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민족과 역사 앞에 ‘무사유의 죄’를 지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죄도 바로 그것입니다. 할아버지는 평범한 관리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빼앗은 일본의 식민지 관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무사유의 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방해하고 무력화시켰습니다. 오히려 많은 친일 인사들을 관료로 등용하였습니다. 친일파와 그의 후손들은 잘 먹고 잘 살며,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자리에서 생활하는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했던 분들의 후손들은 못 배우고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가슴 아픈 사실 앞에 누가 나라를 믿고 목숨을 바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역사 청산의 문제는 나라 안팎으로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것이 한·일 간의 외교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독도 문제는 단순히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문제입니다. 안에서는 일부 친일파 후손들이 조상의 땅을 찾기 위해 국가와 소송을 벌이고, 조상의 잘못을 덮고 공적비나 동상을 세우는 일에 앞장서는 등 후안무치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역사 앞에 죄를 짓게 되는 것이 아닐는지요. 조선의 대학자인 정약용 선생은 큰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리 판단 기준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을 판단하는 두 가지 기준이 있는데, 하나는 ‘옳고 그름’, 즉 시비(是非)를 따지는 기준이고, 또 하나는 이로움과 해로움, 즉 이해(利害)를 따지는 기준이라 말합니다. 여기에서 시비가 이해보다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역사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후손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 주는 죄를 짓게 됩니다. 역사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8·15를 맞이하여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독립유공자들과 순국선열,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에게 친일파의 손자가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내내 평안하십시오. 경기 군포시 거주 윤석윤 씀
  • 독립유공자 후손 13명 한국 국적 취득

    독립유공자 후손 13명 한국 국적 취득

    “한국에 나와서도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라는 사실에 항상 떳떳할 수 있었습니다.” 13일 오후 3시 경기 과천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 대표로 선서를 한 박도백 선생의 손자 박승천(46)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소감을 말했다. 박도백 선생은 1919년 부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1년 3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했다. 박씨는 “어렸을 때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기억은 없었지만, 역사책을 보고 할아버지의 역사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증손녀 금련(30)씨도 국적을 취득했다. 박씨 등 독립유공자 후손 13명은 이날 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1919년 4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1921년 평양형무소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최일엽 선생의 증손녀 둥하이(37)·둥장(34)씨도 함께 국적 취득의 기쁨을 누렸다. 만주와 간도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이명순 선생의 증손녀 이진숙(49)씨와 러시아령 니콜리스크에서 러시아어 항일신문 ‘학생과 목소리’를 발간하며 민족해방운동을 벌인 김아파시나 선생의 손녀 김율리야(35)씨 등도 국적을 받았다.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김씨는 1998년 고국에 돌아와 한국인 남편과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올 초 국적 획득 신청을 한 뒤 친자확인 절차를 걸쳐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김씨는 “큰 영광”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국적증서 수여식은 2006년 이래 일곱 번째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MB, 독도 전격방문 대신 휴가차 갔더라면…”

    “MB, 독도 전격방문 대신 휴가차 갔더라면…”

    “대통령이 독도에서 휴가를 보냈다면 어땠을까요? 꼭 ‘전격 방문’을 하지 않아도 우리 땅이란 걸 알릴 수 있었을 텐데….”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지난 10일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38) 성신여대 객원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소식으로 전국이 들썩이던 터라 자연스레 독도가 대화의 주제로 떠올랐다. 2005년부터 독도 홍보활동을 이어 오고 있는 서 교수는 “대통령이 독도에 거주하는 김성도 할아버지와 낚시를 하며 휴가를 보내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내놨다. 외신의 관심을 끌어 독도를 분쟁지역화하기보다 실효지배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키자는 것이다. ●‘힘자랑’ 아닌 ‘보다 세련된 방식’ 요구 독도뿐 아니라 동해 표기와 위안부 문제 등 외교적으로 민감한 주제들까지 다뤄 온 서 교수는 인터뷰 내내 홍보의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핏대 높여 싸우거나 ‘힘 자랑’을 하는 대신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정치적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복절을 맞아 가수 김장훈씨 등과 함께 독도까지 헤엄쳐 가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우리 땅이니 당연히 수영해서 갈 수도 있잖아요. 꼭 정색하고 우리 땅이라는 걸 주장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서 교수는 지난 3월 뉴욕타임스의 한국 홍보 광고에도 “한국에는 아름다운 섬들이 많다.”며 독도를 ‘슬쩍’ 집어넣었다. 서 교수는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움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일본이 교과서에 ‘다케시마’(독도)에 대한 영유권까지 기술하는 마당에 방관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동해 표기 문제를 예로 들었다. 지도상 ‘일본해’(Sea of Japan)를 일본의 영해로 생각하는 외국인들이 “독도가 일본해에 있는데 왜 한국 땅이냐.”고 반문한다면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역사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지적에 “정말 중요한 문제”라며 반색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사가 선택과목인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서 교수는 “우리 역사를 등한시하면서 세계를 상대로 어떻게 우리 역사를 지키겠느냐.”고 지적했다. ●정색하고 ‘우리땅’ 주장할 필요 없어 서 교수는 최근 정치외교적 문제 외에 세계에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일에도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다. “경제력·군사력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건 문화”라는 서 교수는 “런던올림픽에서도 스포츠라는 문화를 통해 한국이 세계에 더욱 잘 알려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7~8일 영국 런던에서 소녀시대를 모델로 내세운 한국 홍보 책자 1만부를 배포한 것도 문화를 알리기 위한 전략이었다. 내년 광복절까지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24시간 한국 문화를 홍보하는 전광판을 설치하고 싶다는 서 교수는 “우리가 마이클 잭슨을 즐기듯 외국인들도 소녀시대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깔깔깔]

    ●할머니의 심술 평생을 엄한 할아버지와 살아 바깥출입을 못했던 할머니가 오랜만에 동창회에 다녀왔다. 그런데 동창회에 다녀온 할머니가 심술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 동창회 잘 갔다 와서 왜 그러는 거야?” “별일 아니니까 신경 꺼요!” 그러자 더욱 궁금해진 할아버지. “아니긴 뭐가 아냐.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데….” 그러자 할머니가 화를 내며 말했다. “아, 글쎄 아니라니깐요!”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달래며 다정한 말투로 물었다. “왜 그래, 당신만 밍크코트가 없어서 그래? 사줄까?” 그러자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며 하는 말. “그게 그렇게 궁금하슈? 글쎄, 오늘 나가 보니까. 나만 아직 영감이 살아 있더라고요!”
  • [커버스토리] ‘할아버지 나라’ 찾아온 애니깽 4세 세사르

    [커버스토리] ‘할아버지 나라’ 찾아온 애니깽 4세 세사르

    이 사내의 할아버지는 ‘치노’라는 말만 들으면 화를 냈다. 치노는 흔히 눈이 째졌다는 뜻으로 멕시코 등 중미지역에서 중국 사람을 비하해 부르던 말이다. “나는 중국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야!” 그의 외할아버지 베드로 정(1985년 작고)이 그렇게 언성을 높였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멕시코에서 사회복지상담가로 일하는 세사르 안토니오 로사도 정(30)은 그때 알았다. 자신이 멕시코로 이민 온 한인 4세라는 걸. 여태껏 집안 가전제품이 삼성, LG 등 한국 제품으로 도배돼 있었다는 걸. ●가전제품 온통 삼성·LG 도배 베드로 정의 아버지는 한국인 정학순씨, 어머니는 멕시코인이었다. 1905년, 정의 외고조 할아버지인 정인복씨가 학순씨 등 세 아들과 함께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에 갔다. 부산엔 두 딸과 아내를 남겨 둔 채. 4년의 계약이 끝났지만 일제 강점기여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학순씨가 멕시코인과 결혼해 정착한 뒤 베드로 정을 낳았다. ●“독도 문제 등 日에 적대감” 외할아버지 얘기를 통해 알게 된 ‘또 하나의 조국’이 궁금해서 그는 지난 7일 한국에 왔다. 다른 32명의 멕시코 한인 3·4세들과 함께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멕시코 한인 후손 모국 체험 연수’에 참여했다. 용설란으로 불리는 에네켄 농장에서 일했던 한인들인 이른바 ‘애니깽’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일주일 동안 서울, 경북 경주, 울산 등지를 돌며 ‘외할아버지의 나라’를 둘러본다. 한국에 오기 전 한국을 가슴에 또 한번 새길 기회가 있었다. 런던 올림픽 경기였다. 여자 양궁 개인전에서 멕시코와 한국이 맞붙었다. 금은 한국 차지였지만 멕시코는 은·동을 가져가며 양궁 사상 첫 메달을 땄다. 멕시코팀 지도자 역시 한국인이었다. 어느 편을 응원할 것 없이 마냥 좋았다. 정은 지인들에게 자신의 선조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했다고 말했다. “나는 두 개의 심장을 갖고 있다. 하나는 멕시코, 하나는 한국.” 속된 말로 ‘손가락이 오그라들 것 같은’ 말을 정은 웃음기 없이 말했다. 두 살배기 딸이 크면 정은 한국의 역사를 들려줄 생각이다. “한국은 멕시코보다 자원도 적고 땅도 좁다. 그런데 더 열정적이다. 한 단어로 표현하면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다. 한국 전쟁 이후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걸 바꾼 기적 같은 나라.” 정은 “내 몸 안에 그런 피가 흐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내재돼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내가 사는 캄페체에 한국인들이 놀러 오는데 한국과 비슷하다고들 한다.”면서 “와 보니 많이 다르다. 더 부유하고 발전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두 나라가 다 잘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언제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느끼느냐고 물었다. “독도 같은 문제가 이슈화되면 기분 나쁘고 불쾌하다. 일본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도 생기고…. 하하. 그러고 보니 다음 주가 광복절 아닌가?” 백민경·명희진기자 white@seoul.co.kr
  • [커버스토리] 애니깽 후손들이 말하는 한국 방문 이유는…

    [커버스토리] 애니깽 후손들이 말하는 한국 방문 이유는…

    ‘애니깽’의 후손들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K팝(K-POP)을 좋아하는 10대 소년부터 대학원 진학을 꿈꾸는 청년, 선조의 뿌리를 찾아온 아이 아빠까지 이들이 한국을 찾은 이유와 소감, 한국에 대한 인식 등을 들어봤다. 서울신문과 재외동포재단은 이번 모국체험 연수에 참가한 33명에 대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병행해 이들의 한국관을 살펴봤다. 헤나로 미겔 만사닐랴 김(23)은 예비 요리사다. 한국인의 피가 섞인 만큼 이곳의 음식을 알고, 배우고 싶어 참가 신청서를 냈다. 지난 7일 기자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김은 음식에 대한 질문부터 했다. 점심으로 먹은 음식이 맛있어서 이름을 알고 싶은데, 재료를 알려 줄 테니 무슨 음식인지 가르쳐 달라는 것. 그는 “생선이 들어가 있었고, 두부가 작게 들어가 있는 일종의 해물수프”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을 기다렸다. ‘동태찌개’이라는 재단 관계자의 말을 듣고는 잊지 않으려는 듯 여러 번 되뇌었다. “동태찌개엔 고추장이 들어간다.”고 하자 몇 년 전 멕시코에서 고추장 맛을 봤는데 생각보다 입에 맞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신 그는 “매운 음식이 많은 멕시코와 한국 요리는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했다.”면서 “두 나라 사람들이 모두 좋아할 만한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문화 스포츠 강국인 한국의 위상을 높이 평가했다. 최근 3년간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등 한국 아이돌 가수부터 한국 드라마까지 멕시코에 부는 한류 열풍이 대단하다고 소개했다. 특히 한류열풍에 흠뻑 빠진 참가자들이 많았다. 마누엘 알레한드로 마르티네스 빌랴누에바(19)는 10대답게 소녀시대의 열렬한 팬이다. 최근에는 ‘초콜릿 러브’라는 노래에 푹 빠졌다. 다른 K팝들도 줄줄 꿰고 있다. 티아라를 비롯해 씨스타, 원더걸스, 포미닛 등 걸그룹의 이름도 죄다 외우고 있었다. 아나로사 멘도사 아코스타(17·여)도 한류 얘기가 나오자 거들었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한류가 굉장히 유명하다.”면서 ”그룹 ‘슈퍼주니어’를 좋아하고 드라마 ‘천국의 계단’, ‘유리구두’를 인상 깊게 봤다.”고 말했다. 가장 어린 참가자인 길레르모 안토니오 리 마르티네스(15) 역시 한류 마니아다. 한국에 간다고 하니 친구들이 가장 부러워했다는 그는 “아는 여자아이가 한국에 간다고 하니 한국 남자 한 명만 데리고 오라고 했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는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춤을 똑같이 흉내낼 수 있는 친구들이 많다.”며 K팝을 통해 올라간 한국의 위상도 전했다. 이들에게 한국이란 어떤 이미지로 다가올까? 멕시코에서 나고 자라 눈·코·입·체형 모두 멕시코인에 가까운 그들이지만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려는 경향도 뚜렷했다. 이들은 ‘나에게 한국이란?’ 질문에 ‘제2의 심장’, ‘또 하나의 나’, ‘위대한 나라’, ‘반쪽’, ‘나의 일부’, ‘자랑스러운 조국’ 등의 답변을 내놓았다. 호세 마누엘 마르티네스 김(19)에게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극복’이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다시 일어선 나라이기 때문이다. 김은 애니깽들의 눈물이 어린 멕시코 유카탄 주의 메리다 지역 출신이다. 할아버지 성을 딴 한국의 성씨를 쓰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100여 년 전 선조들이 농장에서 궂은일을 하며 고국을 그리워한 아픈 역사도 알고 있다. 처음 한국에 간다고 했을 때도 “와, 행복하다. 드디어 한국에 간다.”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한국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의 일부라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집으로’다. 이들은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33명 가운데 4명을 제외한 29명이 ‘광복절’의 날짜와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아벨 에사우 데 라 크루스 오초아(25)는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회복한 중요한 날”이라면서 “멕시코 한인회 행사를 통해 광복절에 대해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대부분 한인회나 인터넷, 책 등을 통해 광복절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멕시코 지역 한인회는 매년 8월 14일부터 이틀간 문화행사 등 한인후손 모임을 갖고 광복절의 의미와 역사적 배경에 대해 되새기고 있다. 아벨은 “광복절은 멕시코 한인 후손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게 하는 상징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네오나르도 이슬라스 후암포(24)는 “한국은 선조인 할아버지의 고향이며 나에게는 한국인으로서의 피가 흐르고 있다.”면서 “한국은 나의 뿌리이기 때문에 한국 역사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문화센터에서 2주간 봉사활동을 하며 한국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 빌랴누에바는 한국에 와서 공부하는 것이 꿈이다. 미리 한국을 둘러보고 싶어 이번에 참가하게 됐다. 그는 “대학교를 마친 뒤 한국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선조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버지 성이 ‘이’씨라는 것은 안다. 자신은 민혁, 동생은 현수라는 한국 이름도 있다. 멕시코 한인 4세인 루이스 다니엘 메디나 김(23)도 한국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다. 법학 석사학위를 가진 그는 박사과정생이다. 자연스럽게 아침, 저녁으로 한국 음식을 먹을 만큼 한국 먹을거리에도 친숙하다. 특히 김치는 꼭 빠지지 않는 메뉴다. 그는 “친구들에게 부침개 등 간단한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는데 친구들이 좋아할 때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면서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한국인 같다고 느낀다.”고 웃었다. 그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정책에 힘을 쏟는 한국 모습에 큰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또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역사가 깊은 나라라고 생각했다.”면서 “조만간 지인들과 한국을 다시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런던 올림픽 얘기를 물어봤다. 가장 인상 깊었던 한국 경기에 대해 묻자, 15명이 여자 양궁이라고 답했다. 강풍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집중력으로 과녁을 명중시켰던 선수들에게서 한국인의 강한 정신력을 느꼈다는 것. 증조할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호세 마누엘 알레한드로 멘도사 이(19)는 스포츠 강국인 한국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볼 때마다 기뻐했다. 이는 증조할아버지가 멕시코에 정착한 뒤 시계를 고치는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8살 때 어머니가 한국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는 이번 런던 올림픽 양궁 경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확하게 과녁을 맞히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라며 손뼉을 쳤다. 만일 한국과 멕시코가 축구 결승전에서 맞붙었으면 어느 쪽을 응원했겠느냐고 물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소년은 그냥 말없이 배시시 웃었다. 백민경·명희진기자 white@seoul.co.kr
  • [Weekend inside] ‘응급실 전문의 당직’ 일주일…병원간 온도차

    [Weekend inside] ‘응급실 전문의 당직’ 일주일…병원간 온도차

    지난 9일 밤 10시 인천의 A종합병원 응급실. 10개 남짓한 병상이 환자들로 가득 찼다. 팔을 다친 중학생 소년은 의사가 팔을 주무르자 아프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다급한 얼굴로 응급실을 찾은 할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링거를 꽂자 편안한 표정이 됐다. “입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불안한데….” 젊은 부부가 열이 나 불덩이가 된 아기를 달래며 떨리는 목소리로 의사에게 물었다. “장염 소견이 있네요. 입원수속을 밟아 드리겠습니다.” 응급실 당직의사 2명, 간호사 5~6명이 분주히 오가며 환자들을 살피고 있었다. 이 병원은 지난 5일 시행된 개정 응급의료법에 따라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를 실시하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이 24시간 응급실에 머물며 환자를 진료하고, 필요에 따라 각 과의 의사(당직 전문의)를 호출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제도 시행 닷새가 지나도록 아직 전문의를 호출하는 ‘온콜’(On-call·비상호출)이 이뤄진 경우는 없었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바뀐 제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취재를 하면서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에 대해 알려주자 “그런 게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새 제도를 한목소리로 반기는 분위기였다. 팔을 다친 딸을 데리고 온 김모(41)씨는 “각 과의 전문의에게 신속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은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최모(35·여)씨 역시 “전문의가 제때 병원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환자로서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비해 병원 측은 ‘딱히 달라진 건 없다.’는 반응이다. 병원 관계자는 “기존에도 응급실 당직의가 초진을 하고 과별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한 경우 호출해 전화로 지시를 받거나 직접 진료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제도 시행 이전의 경우 하루 100~200명의 환자가 응급실을 찾는 가운데 전문의 비상호출로 이어졌던 사례는 5% 정도였다고 한다.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전문의가 호출을 받는 건수가 갑자기 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병원 측 판단이다. 또 전문의들 대다수가 병원과 멀지 않은 곳에 거주하기 때문에 1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하기도 어렵지 않다고 병원 측은 설명했다. 그러나 의사들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이 병원의 경우 규모는 큰 편이지만 진료과목이 세분화돼 있어 전문의가 1~2명에 불과한 과가 적지 않다. 실제로 응급실에 게시된 2주일 분량의 당직 전문의 명단에는 안과, 피부과 등 10여개 과에서 한 명의 이름만 올라 있었다. 병원 관계자는 “전문의들이 상시 대기할 것을 제도로 규정하고 과태료 등의 책임을 지우니 의사들이 심적 부담을 토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가 마련된 것은 한 어린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계기가 됐다. 2010년 11월 대구에서 장중첩증에 걸린 4세 여아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돌아다니다 숨졌다. 국회는 지난해 6월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개정했다. 바뀐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응급실 근무 의사가 1차로 환자를 진료하고 다른 과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당직 전문의에게 응급환자의 진료를 요청해야 한다. ‘3년차 이상의 레지던트’가 진료하던 단계를 없앴다. 당직 전문의가 반드시 병원 내부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병원 밖에 있더라도 비상호출을 받고서 병원에 와 진료를 하면 된다. 예전에는 전화로 치료 내용을 지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개정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이런 원격진료는 안 되고 호출을 받은 당직 전문의가 직접 와서 진료해야 한다. 호출을 받은 당직 전문의가 응급실에 오지 않으면 병원은 200만원의 과태료를, 전문의는 15일~2개월의 면허정지 처분을 받는다. 제도가 시행되면서 지방의 중소 응급의료기관들은 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개정 응급의료법에는 응급의료기관에 개설된 모든 진료과목에 당직 전문의를 둬야 하는데 지방의 응급의료기관들은 여력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비교적 낫다는 인천 A병원도 어려움을 겪을 정도니 다른 중소 응급의료기관의 사정은 한층 열악할 수밖에 없다. 경남의 한 병원에서는 정형외과 전문의 3명 가운데 2명이 사표를 냈다. “응급실 당직과 외래 진료를 모두 다 하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게 이유다. 그나마 인력 사정이 나은 병원에서도 특정 과에서 당직 전문의들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고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응급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입원시키는 편법도 등장했다. 입원을 하게 되면 응급의료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꼭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레지던트나 인턴 등이 진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간 응급상황에서의 호출 체계가 갖춰진 대형병원은 전문의 당직제 도입이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수도권의 대형병원들은 법 개정 이전에도 소아청소년과 등 응급환자가 많은 과는 전문의가 당직을 해 왔다. 문제는 이런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은 중소병원들이다. 이 병원들은 전문의에게 전화를 걸어 진료지시를 받거나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대형병원으로 환자를 옮기는 식으로 운영해 왔다. 그런데 개정 응급의료법은 이런 곳에서도 전문의를 반드시 상시 대기시켜 긴급상황에 직접 진료하도록 한 것이다. 모든 응급환자가 전문의의 진료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닌 만큼 실제로 의사들이 밤낮 없이 응급실에 가야 하는 건 아니다. 제도 시행 후 당분간은 병원의 실제적 부담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병원이 감당해야 할 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경기 지역의 한 병원 관계자는 “매일 상시대기를 해야 하는 의사들에 대한 보상체계도 요구될 것이고 인력도 충원해야 할 텐데 그럴 여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응급실 당직 전문의를 두지 못하는 병원들 사이에서는 응급의료기관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5일 개정법 시행 이후 10여곳의 지방 의료기관이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을 반납했다.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이 취소되면 국고보조금이 끊긴다. 환자에게 응급의료관리료도 청구하지 못한다.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들이 적자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지원까지 포기하고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까지 취소한 것은 당직 전문의를 구하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지역 응급의료센터 지정을 반납한 강원도의 중소병원 관계자는 “과목별로 최소한 5~6명의 전문의가 있어야 당직 전문의를 할 수 있는데 거의 불가능해 지정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역시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 반납을 검토하고 있는 다른 병원 관계자도 “당직 전문의를 하려고 전문의를 충원한다는 것은 안 그래도 의사들이 부족한 지방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해 정부가 현실에 맞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꼬집었다. 일부에서는 응급실 당직의가 전문의 호출을 하지 않고 자기 선에서 진료하면 그만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러면 환자로서는 좋은 진료를 신속하게 받을 기회를 박탈당하는 셈이다. A병원 관계자는 “모든 병원에 똑같은 비상진료체계를 구축할 게 아니라, 중소병원을 찾은 응급환자가 빠르게 대형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병원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복지부는 3개월 동안을 계도기간으로 정했다. 당장 11월까지 시간을 번 셈이다. 그러나 시행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개정 의료법이 정착되면 응급실 내 중증환자 체류시간 및 수술 대기시간 단축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연말쯤 응급진료 수가를 현실에 맞게 조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나아가 내심 사정이 열악한 응급의료기관이 정리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복지부의 2009년 지역응급의료기관 평가에서 58%는 인력기준을 채우지 못했다. 김효섭·김소라기자 newworld@seoul.co.kr
  • 문화바우처 카드, 농어촌선 ‘그림의 떡’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 및 차상위 계층 등의 저소득층이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행하는 ‘문화 바우처 카드제’가 농어촌 지역에선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정작 농어촌 지역에서는 문화 바우처 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문화 바우처 카드는 한장에 5만원 상당으로 1년 동안 공연장, 전시장, 영화관, 인터넷 서점 등에서 신용카드처럼 결제할 수 있다. 가구당 1장 발급이 원칙이지만 청소년이 있으면 6장까지 별도로 발급해 준다. 이 사업은 2010년까지 시범 사업으로 시행되다가 지난해부터 전국으로 전면 확대됐다. 7일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따르면 올해 전국 16개 시·도의 문화 바우처 예산은 총 480억원이다. 이 중 문화 바우처 카드 예산은 전체의 70%인 336억원(복권 기금)이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44억 600만원으로 가장 많다. 서울 42억 5600만원, 부산 31억 8700만원, 경북 26억 9200만원, 전북 25억 500만원, 전남 24억 2500만원 등이다. 문화 바우처 예산 중 나머지 144억 100만원은 기획 바우처 사업에 쓰인다. 하지만 문화 바우처 카드 발급률은 문화시설이 많은 도시와 적은 농어촌 지역 간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일 현재 도시 지역의 발급률은 광주 80.1%, 서울 77.4%, 인천 72.1%, 대구 71.5% 등으로 농촌 지역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 지역은 전남 50.3%, 경북 54.8%, 충남 56.3% 등으로 저조했다. 특히 영화관과 서점 등 문화시설이 거의 없는 경북 군위군과 영양군, 의성군은 각각 18.7%와 19.3%, 22.7%로 전국 꼴찌 수준이다. 이 밖에 전남 신안군이 24.5%, 강진군 27.3%, 장흥군 32.5%, 진도군이 34.7% 등으로 발급률이 낮다. 도서 지역 및 산간 오지가 많은 경북과 전남은 전국에서 문화시설이 가장 열악한 반면 고령화율은 가장 높다. 이들 지역에서는 바우처 카드를 발급받더라도 가맹점이 거의 없고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해 사용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김모(73·군위군 군위읍 동부리) 할아버지는 “인터넷으로 바우처 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했지만 컴퓨터가 없는 데다 이용 방법도 전혀 모른다. 바우처 카드는 사실 있으나 마나 한 존재”라고 불평했다. 이에 따라 경북과 전남 등 카드 발급률이 낮은 농어촌 자치단체들은 고령자나 장애인들을 ‘모셔 오거나’ ‘찾아가는’ 기획 바우처 서비스 사업을 확대해 줄 것을 문화부에 요구하고 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12세 소녀, 가족에게 차례로 성폭행 당해

    12세 소녀, 가족에게 차례로 성폭행 당해

    10대 소녀가 나이가 지긋한 가족들로부터 연이어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아르헨티나에서 터졌다. 어린 나이에 큰 충격을 받은 소녀는 당국의 보호 아래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사건이 터진 곳은 아르헨티나 코리엔테스 주의 에스키나라는 곳이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12살 소녀의 악몽은 아버지와 함께 시작됐다. 40살 친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했다. 소녀는 그러나 아버지를 고발하지 못했다. 입을 꾹 다물고 당한 일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다행히 성폭행은 재발하지 않았다. 소녀는 아픈 기억을 잊어버리려 애썼다. 그러다 부모가 이혼을 했다. 이혼 직후 어머니가 70살 노인과 재혼하면서 소녀에겐 2차 악몽이 시작됐다. 어머니를 부인으로 맞아들인 70대 노인이 기회를 엿보다 소녀를 욕보였다. 소녀는 노인의 노리개처럼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 두 남자의 짐승같은 짓을 경찰에 고발한 건 교사들이었다. 웬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소녀를 지켜보던 교사 2명이 상담을 하다가 충격적인 성폭행 사건을 알게 됐다. 교사들은 소녀를 성폭행한 아버지와 새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에서 마무리되지 않았다. 수사 과정에서 친할아버지가 소녀를 성폭행한 사실이 또 드러난 것이다. 어머니가 경찰에 체포된 옛 남편과 새 남편을 면회하려 가면서 딸을 맡긴 사이 친할아버지가 손녀를 성폭행했다. 경찰은 친할아버지까지 긴급 체포했다. 현지 언론은 “소녀가 불과 1개월 새 친아버지, 새 아버지, 친할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면서 사회가 경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는 소녀를 보호하며 심리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사진=에스키나노티시아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2) ‘단성호적’으로 본 노비의 삶

    [선택! 역사를 갈랐다] (22) ‘단성호적’으로 본 노비의 삶

    단성현(현재 경남 산청군)에 사노(私奴) 형제가 살았다. 그들의 아버지는 평민, 어머니는 어느 양반집 종이었다. 17~18세기의 ‘단성호적’에서 우리는 그들 일가족을 만난다. 역사의 주름진 그늘에 숨겨진 ‘노비 정체성’을 이야기하자.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구의 30~40%가 노비였다. 양반은 고작 10~20%였다. 그때 우리가 평민 또는 노비였을 가능성은 80% 이상이다. 노비 일가의 역사는 곧 우리들의 과거였다. ●1678~1789년 13개 호적 추적 노비의 역사를 쓰려고 1678년부터 1789년까지 작성된 13개의 호적을 뒤졌다. 흥룡 형제와 그들의 일가·친척에 관한 기록을 다 모았다. 6세대 167명을 알아냈다. 그들과 결혼했거나 그들의 상전으로 기록된 또 다른 600여명도 조사하였다. 모두 770명가량이었다. 17~18세기 흥종 일가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하였다. 호적이란 본래 무미건조하고 단편적인 기록이다. 이름, 나이, 가족관계 등만 사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정보들을 이리저리 모아놓으면 하나의 서사가 일어난다. 아무런 의미조차 없어 보이는 사실의 단편들이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여기에 미시사 연구의 즐거움이 있다. ●문태리의 종들 1678년 흥룡(당년 53세)과 흥종(당년 51세) 형제는 경남 산청군 문태리에 거주했다. 그들은 기혼이었고 슬하에 자녀를 두었다. 호적에 따르면 그곳에는 마흔 집이 살았다고 했다. 단성에서는 중간 크기의 마을이었다. 문태리는 이를테면 행정리였다. 실지로는 네댓 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골안땀, 동쪽토란땀, 비진동, 진태, 주막거리 등이 있다. 단성현은 토지가 비옥했다. 산수도 아름다웠다. 특히 적벽과 신안강은 절경이라 양반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인구와 농지면적으로 보면 작은 고을이었으나, 명문 양반이 많아서 문과 및 생원진사 합격자 수가 진주 다음이라는 호평이 있었다. 경남 서부지역에서는 선비 많기로 소문났던 고을이었다. 문태리 서편으로는 큰 내(川)가 흘렀다. 남강 상류였다. 강줄기를 따라 양쪽으로 문전옥답이 즐비하였다. 마을 뒤편으로는 야트막한 산자락이 북동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렸다. 밭은 주로 산기슭에 흩어져 있었다. 흥룡네는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문태리에는 그들과 처지가 같은 노비가 아홉 집이었다. 호적에는 빠진 기록이 있기 마련이었다. 실제 숫자는 그보다 많았을 것이다. 남의 종노릇을 하였던 그네들은 주인집을 나와서 독립된 가호를 구성하였다. 양반들이 옹기종기 모인 진태 마을에는 주인에게 얹혀사는 노비들도 많았다. 1678년 문태리의 노비 인구는 46명으로 조사되었다. 전체 인구가 139명이었으니, 대략 3분의1이 노비였다. 평민은 스물한 집으로 노비보다는 많았다. 하지만 문태리에서 평민과 노비를 엄격하게 나누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마을에 뒤섞여 살았고, 들판에서 함께 일하였다. 경제적으로도 처지가 엇비슷했던 데다, 군역(軍役)이나 부역 같은 부담을 똑같이 담당하였다. 노비가 군역을 졌다는 말이 신기할지도 모르겠다. 17세기 말에는 흥룡 형제처럼 주인집에서 멀리 사는 외거노비에게 병역의무가 부과되었다. 18세기 중엽부터는 주인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노비에게 군역을 매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주인집이 가까울수록 노비의 신원이 확실하다고 믿었다. 노비에게 군역을 요구하려면 관청에서는 주인의 양해를 구했다. 물론 형식에 불과한 일이기는 하였다. 여차하면 노비와 평민이 서로 결혼하였다. 법으로는 금지된 일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난한 평민은 노비와 별다를 바 없었다. 이야기의 주인공 흥룡 형제의 경우만 해도 평민 아버지(양대생)가 맹씨댁 여종(덕개)과 결혼하지 않았던가. ●진태리의 양반들 양반들은 ‘진태’ 마을에 몰려 살았다. 박씨들이 주인이었다. 그들은 단성현의 최고 양반들끼리 모여 작성한 ‘향안’에 이름을 올렸다. 그들과의 인연으로 잠시 그곳에 와서 사는 타성 양반들도 있었다. 18세기 말까지도 이런 사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양반의 서자는 평민들과 마찬가지로 군역을 졌다는 사실이다. 17세기 후반까지는 그러하였다. 하지만 18세기부터는 서자들도 그 의무에서 벗어났다. 평민이나 노비와는 달리 그들은 점차 양반 대접을 받았다. 17세기 말 문태리에는 서자까지 포함해 양반이 열 집이었다. 주민의 4분의1이 넓은 의미로 양반이었다. 거기서 만약 서자를 제외한다면 양반은 10%를 조금 넘었다. 한데 양반들 가운데서 재산이 많은 집은 거의 없었다. 벼슬을 한 양반도 없었고, 사역 중인 노비의 숫자도 약간명에 불과했다. 시골양반의 가세는 초라하였다. ●흥종 후손, 종살이로 살거나 도망가거나 1670년대 말 흥종의 어머니 덕개가 사망하였다. 아버지는 그에 앞서 일찍 세상을 떴다. 흥종의 아내 순대(당년 45세)는 건너편 청현마을의 최진사댁(최경) 종이었다. 장인과 장모도 그 집안 노비였다. 관습대로 흥종의 두 딸, 숙굴이와 화구리도 그 집안 종이었다. 화구리는 이미 시집을 갔고, 열 살밖에 안 된 숙굴이도 주인집으로 옮아갔다. 숙굴이는 최진사의 며느리, 과부 조씨의 시중을 들었다. 숙굴이는 이를테면 사역비였다. 그보다 2~3년 전 과부 조씨는 숙굴이의 이모 옥비를 시아버지 최진사에게 바치고 그 대신 순대와 숙굴이 모녀를 받았다. 청현의 최씨들도 단성에서는 이름난 양반이었다. 진사 최경은 1639년(인조17) 진사시험에 합격한 수재로 향안에 이름이 올랐다. 그 할아버지 최기종도 생원시에 합격해 가문의 명성을 떨쳤다. 세월이 한참 지난 18세기 말까지도 흥종의 처가 쪽 사람들은 최씨댁에서 종살이를 하였다. 특히 흥종의 처제 매월대의 자손들은 대대로 그러하였다. 매월대의 손녀 팔례는 진주로 이사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예외였다. 최씨댁은 형편이 곤란해지자 노비를 팔아치우기도 하였다. 1730년쯤 매월대의 손자 삼학의 주인은 한 마을에 사는 이만복이라는 양반으로 바뀌었다. 종살이가 싫어 달아나는 이들도 생겨났다. 1741년 매월대의 손녀 삼랑은 주인집(최덕령)을 떠나 몰래 하동으로 달아났다. 21년이 지난 1762년까지도 삼랑은 돌아오지 않았다. 일찍이 1719년 아내의 고향 남원(전북)으로 도망간 매월대의 아들 광이도 끝내 붙잡혀 오지 않았다. 18세기에는 해마다 도망 노비가 증가하였다. 주인들이 가난해지자 그들은 노비를 통제할 힘이 약해졌다. 종들은 연고지로 도망을 쳤고, 주인들은 그 사실을 알았지만 붙들어 올 힘이 없었다. 종을 붙잡아 오려면(추노) 해당지역 관청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미약한 양반이 노비를 붙잡으려 나타나면 고을의 수령과 아전들이 심하게 방해하였다. 그들은 자기 고을의 세원(稅源)을 지키려고 애썼다. 이래저래 도망 노비의 수가 자꾸 늘어났다. 국가적으로나 도망친 노비 개인에게나 이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노비나 도망을 치지는 못했다. 흥종의 자손은 18세기 말까지도 여전히 종살이에 분주하였다. ●흥룡 후손, 18c후반 평지식인 부상 흥종보다 두 살 많은 형 흥룡의 자손들은 처지가 완전히 달랐다. 그들 중에는 누구도 더 이상 종살이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서히 문태리의 주인으로 성장하였다. 대대로 문태리에 모여 살며 마을 일까지도 좌우하였다. 두 형제의 자손이 고향에 눌러 살았지만 그들의 삶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차이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흥종의 아내 순대는 청현마을 최씨댁 종이었다. 그에 비해 흥룡의 아내는 양인, 즉 평민이었다. 이것이 결정적 차이였다. 따지고 보면 흥룡의 자손들도 서울에 사는 맹씨댁 종이었다. 하지만 서울은 한창 멀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양인으로 행세하였다. 18세기가 되자 흥룡의 자손 중에는 수공업자가 나왔다. 흥룡의 증손 양인필이 ‘옹장’(옹기장) 노릇을 하더니, 출가한 증손 양만득도 ‘인출장’(인쇄기술자)이 되었다. 그 뒤로 이 집안에서는 수공업자가 부쩍 많아졌다. 18세기 후반 숫돌을 만드는 ‘여석장’은 그들의 가업이었다. 그때 문태리에서는 숫돌 만드는 일이 유행했는데, 기술자의 대부분은 흥룡의 후손이었다. 돈을 제법 번 사람들도 나왔다. 그래서 돈 있는 흥룡의 현손자와 5대손들은 서원과 향교에 출입하며 원생 또는 교생 노릇을 하였다. 그들은 군역을 면제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양반대접을 받을 정도로 출세하지는 못했다. 어쨌든 그들은 실력을 갖춘 평민지식인으로 부상하였다. ●비정규직은 ‘현대판 노비’ 진태리 사람들은 문태리 사람들과 통혼하지 않아 현지 방문을 통해 나는 1960년대까지도 문태리 뒷산에서 숫돌이 생산된 점을 확인하였다. 수백년 동안 주민들은 부업으로 숫돌을 만들었는데, 명품으로 거래되었다. 숫돌 덕분에 문태리의 경제형편은 이웃마을들보다 한결 좋아졌다. 이것은 진태 마을 주민들과의 대화에서도 거듭 확인되었다. 현지에서 나는 한 가지 놀라운 증언을 들었다. 1960년대까지도 진태 마을사람들은 문태리 사람들에게 반말을 썼다. 숫돌이나 만드는 천한 사람들이라 여겨서 그랬단다. 토박이 양반 박씨들은 아직도 문태리 사람들과 통혼하지 않는다. 20세기까지도 흥룡의 자손들은 단성의 양반사회로 진입하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서는 조선후기에 양반의 수가 부쩍 늘었다고 가르친다. 19세기 말에는 양반이 8~9할이나 되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흥룡 일가의 역사는 그런 변화가 하나의 희망사항에 불과하였음을 증명한다. 지금도 여러 가지 형태로 신분의 장벽이 존재한다. 학벌도, 재산도, 성별도, 나이도 차이가 아닌 차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현대판 노비인 비정규직 문제도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 하늘 보며 “사랑해, 엄마”…올림픽 감동 세리머니

    하늘 보며 “사랑해, 엄마”…올림픽 감동 세리머니

    올림픽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이나 시청자의 입장에서, 메달 획득에 성공한 선수들의 세리머니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볼거리다. 2012런던올림픽 역시 선수들의 각양각색 세리머니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가운데, 영국의 한 선수의 감동 세리머니가 카메라에 잡혔다. 지난 2일(현지시간) 엑셀 런던 아레나에서 열린 여자 유도 78㎏ 이하급에 출전한 영국의 젬마 깁슨스(25)는 은메달이 확정된 뒤 잠시 위쪽을 바라보며 “사랑합니다, 어머니.”(I love you, Mom)라고 홀로 속삭였다. 이는 2004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세리머니로,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올림픽 무대에서 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그녀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17살에 어머니를 잃은 깁슨스의 곁에는 대신 그녀를 지키고 돌봐준 외조부모가 있다. 올해 80세가 넘은 그녀의 외할아버지, 할머니는 “손녀가 매우 자랑스럽다.”며 “딸(깁슨스의 엄마)의 죽음이 젬마가 성공할 수 있게 해준 동기가 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젬마에게는 생애 최고로 기쁜 순간이자 가장 마음 아픈 순간이기도 한 그 때에, 하늘을 바라보며 읊조리듯 내뱉은 ‘아이 러브 유, 맘’ 세리모니는 영국 전역을 감동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경기가 끝난 뒤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제야 그녀의 자랑스러운 딸이 된 것 같다.”면서 “엄마는 내 전부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사진=BBC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夏夏夏! 폭염에 지친 당신 시원하게 떠나라

    夏夏夏! 폭염에 지친 당신 시원하게 떠나라

    경기불황에 어딜 봐도 온통 ‘안 좋다’는 얘기뿐이다. 얇은 지갑에 한숨이 나오고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기도 힘들지만 일상탈출의 꿈까지 접을 수는 없다. 꽁꽁 언 소비심리 속에서도 꼭 써야 될 때, 써야 할 곳에는 지갑을 여는 게 요즘 소비자들의 행태. 당연히 알뜰 휴가에 대한 열망은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뜨거울 수밖에.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소비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업체들의 경쟁도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그 덕에 저렴한 비용으로 그럴싸한 식탁을 차릴 수 있고, 최대 60% 할인된 가격에 휴가지 패션을 완성할 수 있으며 내 몸 안팎을 다스리며 휴가를 만끽하는 게 어렵지 않다. 발품과 손품을 좀 팔면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맛·있·게 채우자…휴가지서 인기높은 먹거리들 휴가지에서 고민 중의 하나는 배를 채우는 일일 것이다. 현지 맛집 순례도 여행의 묘미지만 예년에 비해 더욱 얇아진 지갑이 받쳐주지 않는다. 게다가 바캉스 특수를 노린 바가지 상술은 여전해 자칫 즐거운 휴가를 망치기도 한다. ●캠핑족 증가에 즉석식품 인기 업 1인 가구와 캠핑족 증가 덕에 날로 진일보한 즉석식품은 먹는 걱정, 돈 걱정을 깨끗이 덜어줄 만하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즉석식품의 성수기는 본격 휴가철인 7~8월. 두 달간 즉석식품 매출은 보통 30% 이상 증가한다. 여름 성수기에 대한 기대를 잔뜩 걸고 오뚜기는 일찌감치 즉석식품 완벽 ‘라인업’을 구축했다. 오뚜기 제품만 가지고 집밥 수준의 상차림이 가능할 정도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참치를 활용한 ‘뚝딱 볶음장 참치’, ‘뚝딱 김치&날치알 참치’, ‘뚝딱 청양고추 참치’ 등 반찬 3종이 밥도둑이 따로 없다는 평가를 얻으며 매출 상승세다. DHA가 풍부한 등푸른 생선인 꽁치를 손질해 담은 ‘한입꽁치’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씻어 나온 맛있는 오뚜기쌀’은 밥 짓는 수고를 덜어줘 특히 환영받는다. 씻지 않고 그냥 물만 부으면 밥이 뚝딱 만들어진다. 특수공법을 이용해 만들어 집밥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1㎏, 3㎏짜리 소용량에 지퍼백 포장으로 휴대도 간편하다. 식후 커피 한잔의 여유는 휴가지에서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 탁 트인 바다와 시원한 계곡에서 음미하는 커피 맛이 도심 여느 커피전문점의 맛을 능가하고도 남을 듯. 커피시장 후발주자들의 공세를 따돌리기 위해 동서식품은 지난해 신개념 인스턴트 원두커피인 ‘카누’를 선보였다. 고급 커피에 대한 수요에 맞춰 나온 카누는 현재 하루 평균 60만개씩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제품으로 등극했다. 커피전문점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방법으로 뽑은 커피를 그대로 냉동 건조한 커피 파우더에 미세하게 분쇄한 볶은 커피를 코팅해 만든 제품이다. 찬물에도 잘 녹는 것이 장점으로 아이스 원두커피가 손쉽게 만들어지니 여행 필수품이 되고 있다. 커피전문점에서 먹는 아이스라테 맛이 그립다고?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아이스’가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남양유업은 2년 전 무지방 우유로 만든 프림을 넣은 커피믹스로 돌풍을 일으킨 뒤 현재 20%대의 점유율로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카페믹스 아이스’는 100% 아라비카 원두를 사용한 데다 우유로 만든 프림이 들어 있으니 제대로 된 아이스라테 맛을 선사한다. 최근 소비자의 기호 변화에 맞춰 종이컵 한 잔에 맞춰 용량을 13.2g으로 줄인 제품도 선보였다. 언제부턴가 음료수는 갈증 해소 외에 멋을 추구하는 패션 소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롯데칠청음료의 ‘데일리C 비타민워터’는 젊은 소비자들의 이런 욕구를 재빠르게 간파해 성공했다. 비타민C와 필수 비타민을 매일 물처럼 즐길 수 있는 제품의 개념과 영국, 독일, 스위스 등 유럽산 비타민을 사용한 프리미엄 음료라는 것보다 슈퍼모델들이 마신 멋있는 음료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 ●젊은층에겐 음료수도 스타일 도구로 지난해 유명 슈퍼모델들이 등장한 TV광고 효과가 크다. 런웨이를 누비는 모델들처럼 세련되게 빼입고 휴양지를 거니는 선남선녀들에게 비타민 음료는 스타일을 완성하는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여름과 막걸리는 사실 그다지 훌륭한 조합은 아니다. 이 같은 편견을 깨고 비수기인 휴가철에 국순당이 지난 6월 내놓은 ‘옛날 막걸리’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60여년 전 할아버지 세대들이 즐기던 막걸리 원형의 맛을 그대로 살려 중장년층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시중 막걸리(1000원대)보다 배나 비싼 가격임에도 인기를 끄는 비결은 입안 가득 퍼지는 묵직한 첫맛 때문이다. 또 그 뒤에 따라오는 새콤달콤함에 반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기 위해 누룩의 양을 일반 제품에 비해 3배나 높였고, 누룩도 전통누룩인 밀누룩을 사용해 전통제법으로 빚었다. 이로 인해 일반 막걸리에 비해 100배 이상 많은 유산균을 함유한 것도 특징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알·뜰·하·게 챙기자…백화점·카드사 할인이벤트 풍성 요즘 소비자들은 정상상품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콧대 높은 백화점에서 알뜰 휴가족을 잡기 위한 특가전을 진행하고, 카드업체가 유명 휴양시설과 연계한 혜택을 강조하는 등 판촉에 나서는 이유다. 롯데백화점은 본점 9층에서 3~5일 ‘물빛 바캉스룩 특집전’을 진행한다. 플라스틱아일랜드, 스파이시칼라 등 6개 브랜드의 의류를 60~8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 행사장을 바닷가처럼 꾸미고 ‘짠물’ 고객들의 발길을 유도할 작정이다. 같은 행사장에서 9일까지 잡화 상품전도 진행해 선글라스, 모자, 샌들 등을 40~60% 싸게 판다. 3~5일 잠실점 9층 행사장에서는 구두, 핸드백 브랜드들을 모아 30~60% 할인전을 펼친다. 탠디 여성구두 6만 9000~11만 5000원, 나인웨스트 여름샌들 2만 9000~12만 5300원, 피에르가르뎅 핸드백을 5만원 등에 살 수 있다. 영등포점 9층에서는 9일까지 수영복 매장을 운영한다. 아레나, 레노마, 엘르, 휠라 등 유명 브랜드의 이월상품을 2만~6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알뜰 휴가족을 겨냥한 이벤트는 카드업계도 마찬가지. 롯데카드는 전국 유명 워터파크 최대 60% 할인을 내세운다. 15일까지 인터파크티켓 홈페이지에서 워터파크 입장권을 롯데카드로 결제하면 전월 실적, 입장 인원에 관계없이 30~60%를 할인해준다. 오션월드, 캐리비안 베이, 설악한화워터피아등 27곳이 참여했다. 해외여행객들에겐 캐시백 서비스로 유혹한다. 31일까지 롯데카드로 항공권을 결제하면 금액에 따라 5~15% 현금으로 돌려준다. 또한 이벤트 기간 동안 롯데카드로 2회 이상 대한항공 항공권을 결제한 고객에게 추첨을 통해 영화표 등 경품도 마련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건·강·하·게 즐기자…자외선 차단·체력 보충 제품들 올여름은 살인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폭염이 이어지고 있어서 휴가지에서 건강관리에 더욱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바닷가, 계곡 등 야외 활동에서 경계 대상 1호는 자외선. 여름철 자외선은 다른 계절에 비해 두 배 이상 많다. 차단 지수가 SPF50 이상 되는 제품은 필수다. 수시로 덧바르는 것이 최상이므로 간편하게 찍어 바르는 팩트나 뿌리는 스프레이 형태가 대세. 여기에 열로 인한 주름까지 예방하도록 피부 온도를 낮춰주는 ‘쿨링’을 내세운 차단제가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헤라의 ‘UV 미스트 쿠션’(SPF50+PA+++)은 미백·자외선·쿨링·메이크업 등의 기능을 한번에 겸비했다. 바르는 즉시 피부 온도를 2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게다가 미스트를 막 뿌린 것처럼 촉촉함도 유지해준다. 퍼프 일체형 제품인 ‘아이오페 선파우더’는 알로에 추출물을 함유, 붉은기를 진정시키는 데 효과가 좋아 인기몰이 중이다. 피부도 몸속을 제대로 다스렸을 때에 비로소 건강해진다.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지만 아무리 좋은 걸 먹어도 기본 바탕이 충실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 현대인이 만성피로와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이유는 효소 부족 때문이다. 효소전문기업 ‘푸른친구들’의 ‘산야초 효소력’은 몸속 부족한 효소를 보충해 기본을 다져주는 제품이다. ‘효소력’은 보리·현미·율무·흑미 등 곡물을 그대로 통발효시킨 것이 특징이다. 과립 형태라 음용이 간편하고 영양분 흡수도 높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아르헨 구두점, 도둑 맞고 이색적인 바겐세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색적인 바겐세일을 하고 있는 구두점이 있어 화제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구두점 마우로 보티에르. 이 구두점은 유행이 지난 모델, 철 지난 여름구두, 사이즈가 고르게 갖춰져 있지 않은 단종상품 등을 세일하고 있다. 구두점 앞 길에는 특히 세일을 알리는 광고판이 설치돼 있다. 이 노란 바탕의 광고판에는 ‘도둑으로 인한 세일’이라고 크게 적혀 있다. 광고판에는 또 1켤레 값을 내면 2켤레를 준다는 의미의 ‘2×1’라는 표시가 있다. 구두점 쇼윈도 유리에도 동일한 광고문이 크게 적혀 있다. 구두점 마우로 보티에르가 대대적 세일을 결정한 건 광고에 적힌 그대로 도둑 때문이다. 지난달 16일 오전 5시쯤 구두점에는 도둑이 들었다. 쇠파이프로 셔터를 부수고 들어간 도둑은 매장에 있던 구두 300여 켤레를 모조리 훔쳐갔다. 구두점 주인 마우로 루나(76)가 아침에 출근하자 가게엔 빈 상자만 가득했다. 그는 “가게에 놔뒀던 내 구두까지 가져갔더라. 새 구두는 한 켤레도 남은 게 없었다.”고 말했다. 50년을 구두생산과 판매에 보낸 마우로 루나는 낙심했지만 재기를 결심하고 공장으로 달려가 남은 재고를 몽땅 가져다 세일을 시작했다. 마우로 루나는 “잃어버린 구두 대부분이 100% 가죽으로 만든 제품이라 상당한 고가품”이라면서 “재기를 하려면 자금이 필요해 있는대로 세일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구두점이 완벽하게 도둑을 맞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마우로 루나는 10년 전에도 비슷한 도둑피해를 입어 지금의 자리로 가게를 옮겼다. 사진=나시온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김민희 기자의 런던eye] ‘헝그리정신’ 흐르는 개천에서, 이제 용 안 납니다

    1980년대 초반 태어난 내게 첫 스포츠의 기억은 임춘애(43)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육상에서 깜짝 3관왕에 등극한 그녀의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말은 어린 마음에도 깊게 남았다. 나중에 왜곡된 기사임이 밝혀졌지만, 어쨌든 그때부터 내게 스포츠는 ‘헝그리 정신’의 다른 이름이었다. 물로 빈 배를 채워가며 뛰고 또 뛰면 저 멀리서 금메달이 기다리고 있고,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금메달을 이로 깨물다 보면 어느새 부와 명예가 한꺼번에 찾아와 있는 전형적인 스토리. 그땐 그랬다. 그때만 해도 개천에서는 가끔 용이 나곤 했다. 스포츠뿐만 아니다. 떡장사를 하는 홀어머니에 손가락 빨고 있는 여섯 동생을 뒤로 하고 쌍코피 흘려가며 교과서를 달달 외면 저 멀리서 소위 명문대 입학 허가서가 기다리고 있고, 졸업을 하면 어느새 부와 명예가 한꺼번에 찾아와 있는 전형적인 스토리. 그런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뭘 하든 등수부터 매기고 보는, 뭘 하든 학연으로 연결짓는 나쁜 버릇을 들여놓긴 했지만, 엘리트의 순환 구조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었다. 그게 고단한 1970~80년대를 헤쳐온 한국의 원동력이었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요즘 개천은 물이 말랐다. 운동이든 공부든 투자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 아이가 서울대에 가려면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란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는 오래된 농담처럼 이제 출발선이 다른 아이들은 공정한 경쟁을 하지 못한다. 스포츠라고 예외가 아니다. 선수의 천부적 재능과 남다른 정신력에만 의존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돈과 관심, 시간을 들인 만큼 선수의 성적은 좋아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불행히도 한국 스포츠계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어차피 메달도 못 따는데 뭐하러 공 들이나.’라며 투자를 등한시하고, 그래 놓고서 줄줄이 예선 탈락하면 ‘그럴 줄 알았지. 우리는 원래 안 되지.’라며 혀를 차고 만다. 물론 정부나 스폰서 등의 도움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문제는 ‘어려워도 해보자.’는 의지도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런던에 와서 보고 들은 일부 종목의 안이함은 놀라울 정도였다. 지금이 어느 땐데 아직도 임춘애 라면 먹던 시절을 얘기하는 건가. 박태환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지났다. haru@seoul.co.kr
  • 三代의 이야기속 질곡의 한국사 100년이…

    三代의 이야기속 질곡의 한국사 100년이…

    일제강점기와 분단, 6·25 전쟁, 1950년대 빈곤과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발전, 1970·80년대 민주화로 이어지는 격동의 세월은 역사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집안이든 삼대(三代)의 인생을 털어 보면 행복 또는 불행의 형태로 100여년의 근·현대사들이 씨줄날줄로 촘촘히 엮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만화가 정용연(44)의 3권짜리 ‘정가네 소사’(휴머니스트 펴냄)에는 그 정씨 집안 남자들과 며느리, 손녀의 인생을 통해 어쩌면 그렇게 한국사가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을까 싶은 내용이 섬세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전남 장성 출신의 증조할아버지는 한학자로, 아버지 정동호에게 명심보감이며 한학을 가르쳤다. 만주로 이전해 농사를 지었지만 수확하기 전에 해방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귀국길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의무병이었던 아버지는 한학을 배운 덕분에 군대에서 일본어 의학책을 읽으며 의술을 익혔지만,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인 탓에 무면허 의사로 살아야 했다. 학업을 연장하기에는 찢어지게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전북 김제평야 천석지기의 아들이던 외할아버지는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식민지 한국에 돌아왔지만 금광을 찾아 헤매다 가산을 모두 탕진했다. 첩에게 남편을 빼앗기고도 무너진 가정을 일으켜 세운 사람은 외할머니. 곱게 자란 양반집 아씨가 비단을 팔러 다니며 자식들을 키웠다. 성냥 공장에서 일하던 소녀는 무면허 의사 아버지와 만나 살림을 꾸렸지만, 서울 산동네를 전전하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밖에 정가네 소사에는 빨치산이 된 육촌 할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엮여 육군사관학교 진학이 좌절된 형이나, 이발 기술로 돈을 벌었지만 못된 아가씨에게 홀랑 날리고 1980년대 중동개발 붐이 일 때 사우디로 간 순호 당숙, ‘청량리 588’의 서러운 아가씨가 있다. 또한 정부가 농가의 수입원으로 세계은행에서 돈을 빌려 양잠을 권유했지만, 핑퐁 외교의 결과로 일본이 비단실 수입처를 중국으로 바꾸는 바람에 모두 빚더미에 올라앉았던 1970년대 농촌 현실 등이 독자들을 매콤하고 아련한 1970~80년대의 추억으로 인도한다. 그래픽 노블 분위기의 자전 만화인데 정용연 작가는 “외할아버지를 방탕하게 그리고 아버지를 무능하게 그리게 돼서 정말 미안한데, 사실과 다르게 포장하기는 어려웠다.”고 30일 말했다. 정 작가는 “기억에 의존해 쓱쓱 그린 만화가 아니라 보이스카우트의 복장이나 순호 당숙의 이발소에 걸린 1983년 3월의 달력, 아버지의 군복 등 대부분 고증을 거친 것으로 생활사 사료로도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헹궈 줄 때 조리개를 이용한다든지, 가스레인지 탓에 사라진 귀한 성냥의 존재 등도 신기하다. 옴니버스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에피소드가 겹치기도 하는데, 기억을 덧댄 부분이 풍성해서 지루하지는 않다. 7년에 걸쳐 600쪽의 원고를 그렸다. 이 책을 기획한 위원석 교양만화 주간은 “100년 역사가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면서 “웹툰에 익숙한 청소년들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적지 않아 한 번쯤 꼭 읽어봐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일성 따라하기’ 외면받는 김정은

    ‘김일성 따라하기’ 외면받는 김정은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부인 리설주를 대동한 파격 행보를 하는 등 할아버지인 김일성(왼쪽) 주석 못지않은 공개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북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제1위원장은 외모·목소리까지 김 주석을 따라하며 민심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보위부를 통한 주민 통제는 더 강화되고 있고, 경제 관리 개선을 위한 ‘6·28 방침’ 발표 이후 물가는 더 올라 주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북 고위소식통은 30일 “김정은이 지난 25일 이름이 공개된 리설주와 함께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에 나타났을 때 군중들은 겉으로는 환호했지만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고 화면에 잡히지 않은 사람들은 냉소적이었던 것으로 안다.”며 “김정은이 김일성 따라하기 등을 통해 3대 세습의 정통성을 확보하려 하지만 주민들은 ‘먹고살기도 힘든 상황이라 새로운 지도자 부부의 행보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반응인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국회 정보위에서 “김정은이 지도자로서의 위상과 이미지 조작을 위해 더블버튼 코트, 중절모 착용, 뒷짐 지기, 음성 흉내 등 김일성 따라하기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주석도 부인 김성애를 자주 대동했다는 점에서, 김 제1위원장은 ‘은둔형’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닌 할아버지를 따라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제1위원장이 부인 대동, 민생 현지지도 등 개방적 이미지를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주민 통제는 심해지고 있고 최고위층의 잇속만 챙기는 김경희·장성택 등 친족그룹 및 신군부 성향을 볼 때 당장 개혁·개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이번엔 이웃 할아버지가 ‘몹쓸 짓’

    손녀뻘 되는 초등학교 여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군 부사관 출신의 ‘학교 배움터 지킴이’와 같은 마을에 사는 딸뻘의 지적장애 여성을 성폭행한 동네 노인 등 인면수심(人面獸心)의 60~70대가 경찰에 검거됐다. 경남 진해경찰서는 30일 배움터 지킴이로 근무하면서 초등학교 여학생들을 수십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A(66)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군부사관 출신으로 2009년 3월부터 진해구 모 초등학교에서 배움터 지킴이로 활동해온 A씨는 지난 19일 오전 10시 30분쯤 이 학교 2학년 B(8)양을 학교 운동장 구석으로 불러 과자를 사먹으라며 1000원을 준 뒤 속옷 안에 손을 넣어 B양의 신체 일부를 만진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조사결과 A씨가 2011년 4월부터 최근까지 이 초등학교에서 B양 자매를 비롯해 저학년 학생 9명을 상대로 사무실이나 창고, 운동장 구석진 곳 등에서 모두 55차례에 걸쳐 성추행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배움터 지킴이는 위촉된 해당 학교에서 등·하굣길 교통지도 및 학교폭력 예방 등의 활동을 한다. 학교장이 위촉하며 한달에 20일 근무를 원칙으로 하루 4만원씩 봉사활동비를 받는다. 학교 측은 최근 경찰로부터 학생들의 피해 사실을 확인한 뒤 곧바로 A씨를 해고조치했다고 밝혔다. A씨는 경찰에서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 옷에 묻은 모래를 털어주려고 만졌을 뿐”이라면서 일부 혐의는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B양의 부모가 돈을 준 적이 없는데도 B양이 돈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A씨의 범행이 드러나게 됐다고 밝혔다. 경남도교육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배움터 지킴이를 운영하는 학교를 대상으로 1년에 4~6차례 실태 조사를 하고 학교폭력 실태를 조사할 때도 배움터 지킴이에 대한 항목을 추가하는 등 관리·감독을 철저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남 통영경찰서는 이날 같은 동네에 사는 지적장애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K(73)씨와 또 다른 K(71)씨 등 60~70대 노인 3명을 조사하고 있다. 이들은 2004~2008년 경남 통영시 산양읍에 사는 이모(42·지적장애 3급)씨를 ‘놀러 가자.’거나 ‘밥 먹으러 가자.’고 꾀어 모텔이나 자신들의 집으로 유인해 2~3차례씩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이들의 범행은 근처 마을에 사는 이씨의 시누이가 소문을 듣고 신고함에 따라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 6월 경남 원스톱지원센터를 통해 고소장을 접수하고 김씨 등을 검거했다. 이씨는 지적능력이 떨어져 경찰조사가 시작된 뒤에도 자신의 피해 사실을 잘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씨의 남편(52)도 지적장애 3급으로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장애인을 강간하거나 강제로 추행하면 무기나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경찰은 이와 함께 등굣길 여자 초등학생을 살해한 혐의 등으로 구속한 김모(44)씨를 이날 검찰에 송치했다. 창원·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31일 TV 하이라이트]

    ●시청자 칼럼 우리 사는 세상(KBS1 오후 6시 55분) 우리 사회를 좀 더 밝고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시청자들의 가슴 절절한 사연들을 소개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오랜 통념 때문에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이나 관행들. 사회통념상 지나쳐버렸던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뜻있는 시청자들의 작지만 큰 노력의 모습들을 함께 한다. ●사랑아 사랑아(KBS2 오전 9시) 승희(황선희)는 노경(오창석)에게 더 이상 자신에게 잘해 주지 말라고 말하고, 노경은 서진(오우정)에게 상견례에 대해서 고민 중이라고 말한다. 한편 승아(송민정)는 명월관에서 노래를 하지만 손님들에게 모욕만 당하게 된다. 그리고 만복당의 윤식(선우재덕)은 양자(김예령)가 삼추(김규철)에게 돈을 빌린 사실을 알게 된다. ●아침드라마 천사의 선택(MBC 오전 7시 50분) 유미는 협박당하는 상호 부부를 목격했다며, 말순에게 이것을 기회로 삼아 한몫 장만하자고 제안한다. 은설(최정윤)은 광고모델로서 입지를 넓혀간다. 한편 황씨의 아들이 헬멧남이 아니란 사실에 상호는 머릿속이 복잡하고, 아들을 따라 상경한 황씨는 은석과 마주치게 된다. ●아름다운 소원(EBS 오전 6시 30분) 전남 해남군 계곡면에서는 네 개의 마을이 모여 만든 특별한 소식지가 발간되고 있다. 각 마을의 대표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해 쓴 기사로 만드는 ‘비슬안’ 소식지가 바로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태인 마을 기자인 77세의 임현진 할아버지는 ‘비슬안’ 소식지의 최고령 기자로 활동 중인데…. ●달라졌어요(EBS 밤 7시 35분) 고등학교 때부터 만나 10년 연애한 부부. 힘든 성장 과정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지낸 남편과 아내는 아이가 생겨 결혼하게 되었다.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 남편과 아내는 결혼 생활 또한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결혼 후 아내는 남편의 잦은 거짓말 때문에 남편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버렸다. ●멜로다큐-가족(OBS 밤 11시 5분) 20년 전, 남매를 둔 과부 김황경씨와 총각 김홍석씨가 만나 가정을 이룬다. 진정한 가족이 되기 위해 홍석씨네 가족 모두는 긴 성장통을 겪어야만 했다. 불협화음으로 살아가던 가족은 우연한 기회에 가족밴드를 결성하면서 하모니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마음으로 연주를 하며 가족애가 생기는 과정을 만나본다.
  • [CEO 칼럼] 기분 좋은 일/최흥집 강원랜드 사장

    [CEO 칼럼] 기분 좋은 일/최흥집 강원랜드 사장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직접 체험하기도 하고 책이나 신문, 방송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세상과 접하기도 한다. 특히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출현한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은 우리의 소통을 더욱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이런 소통 매체들의 기본적 속성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밝히고, 잘못된 점들을 찾아내는 데 있다. 그렇다 보니 대체로 부정적인 소식들이 발굴되고 유통되는 것 같다. 권력층의 비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엔 사사건건 날 선 대립만 가득하다. 글로벌 경제를 전망하는 전문가들은 비관 일변도다. 자영업자와 대기업 사이엔 골목상권을 두고 불신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여성과 아동에 대한 끔찍한 성범죄, 잔혹한 학원 폭력 뉴스도 줄줄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아직 세상은 살아갈 만하다고 생각한다. 어두운 그늘을 밝히려는 일들도 많기 때문이다. 한평생 김밥을 팔아서 번 돈을 장학금으로 흔쾌히 내놓으신 할머니가 있다. 영세민과 노숙자, 그리고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을 위해 무료 의료 활동을 하는 훈훈한 인술(仁術)이 이 시간에도 펼쳐진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 지하철에 뛰어드는 의인(義人)이 있고,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재능기부’가 우리 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재계도 우리 공동체의 소수 약자를 돕는 사회적기업 설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 듣는 사람이 저절로 유쾌해지는 뉴스들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오르는 법이다. 이렇게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처럼 상호작용을 하면서, 우리 사회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살아갈 만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불교에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말이 있다. 남을 먼저 이롭게 하는 나눔과 배려가 결국에는 자신에게 득이 된다는 의미다. 한 가족이 꿈에 부푼 채 놀이동산에 놀러 가 놀이기구를 타려 했지만 돈이 모자라 탈 수 없었다. 그때 그 가족의 뒤에 서 있던 한 신사가 “여기 돈이 떨어져 있네요.”라며 땅에서 돈을 주워 아버지에게 건네주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을 배려한 신사의 행동으로 아버지는 체면을 지키고, 그 가족은 즐겁게 나들이를 할 수 있었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이다. 사람들의 배려가 얼마나 세상을 밝게 해 주고 우리 생을 기쁘게 만드는지 알 수 있다. 기분 좋은 일은 사소한 일이라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긍정적인 마음의 변화는 곧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서비스업에서는 ‘고객 감동’을 말한다. 서비스의 기본은 고객을 위한 배려와 나눔의 정신에서 시작된다. 고객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진심을 담은 서비스가 고객을 감동시키고, 이는 기업의 발전으로 연결된다. 회사로부터 좋은 대접을 받는 사원들이 더욱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렇게 하여 모두가 다 득을 보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다. 기분 좋은 일은 ‘전염성’이 있다.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 주는 행동은 뒤를 잇는 사람들의 입장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타인의 호의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할아버지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아이의 예절 바름은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나눔과 배려가 일상이 되는 사회, 나눔과 배려의 사례들이 천에 물감이 번지듯이 퍼져 가는 사회가 기분 좋은 사회다. 그리고 이런 기분 좋은 일들이 선순환 구조를 이룰 때 우리는 한 차원 높은 살 만한 세상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지금 런던에서는 여름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이 땀 흘리며 열심히 경기하는 모습은 우리를 기분 좋게 한다. 오늘 아침 최선을 다한 우리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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