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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출혈’ 27개월 딸 숨지게 놔둔 엄마… 변사 의심하고도 거짓 진단서 쓴 의사

    지난 4월 인터넷을 달궜던 일명 ‘지향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다. 친어머니는 뇌출혈을 일으킨 27개월 된 딸을 장기간 방치해 숨지게 했으며 의사는 시신을 보지도 않고 허위검안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 달서경찰서는 17일 지향이의 친어머니 피모(25)씨를 유기치사,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피씨의 동거남 김모(23)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또 의사 양모(65)씨를 허위검안서 작성혐의로, 이 허위검안서를 화장장에 내고 지향양의 화장을 도운 장의차량 운전사 김모(47)씨를 위조사문서 행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 밖에도 지향이의 시신이 변사로 의심되는 데도 해당 경찰관서에 신고하지 않은 경북대병원 의사 박모(32)씨와 경북대병원 의료법인도 의료법위반으로 불구속 입건했다. 친어머니 피씨는 지난 2월 초부터 3월 사이 27개월 된 지향양의 머리에 탁구공 크기의 부종 2~3개가 발견되고 음식을 잘 못 먹고 구토를 하는데도 그대로 방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씨는 딸의 증세가 심상치 않은데도 평상시처럼 출근하고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등 지향이를 방치하다 2월 18일 딸의 눈동자가 풀리고 의식이 없는 것을 발견한 뒤에야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도록 했다. 결국 지향이는 2월 20일 오후 좌측뇌경막하출혈로 숨졌다. 지향이가 숨진 뒤 경북대병원 의사 박씨는 변사가 의심되는 데도 “목욕탕에서 넘어져 다쳤다”는 피씨의 말만 믿은 채 관할경찰서에 신고하지 않고 사망원인을 ‘급성외인성 뇌출혈’로, 사망종류를 ‘외인사’로 기재한 사망진단서를 발급했다. 또 검안의 양씨는 박씨가 발급한 사망진단서만 보고 검안도 하지 않은 채 사망원인을 뇌출혈로, 사망종류를 병사로 쓴 허위 시신검안서를 발급했다. 이 때문에 지향이의 시신은 별다른 조사 없이 바로 화장됐다. 경찰은 지향이 할아버지 친구의 제보로 수사에 착수했고, 수사 과정에서 지향이 고모가 인터넷에 관련 글을 올리면서 인터넷을 달궜다. 경찰 관계자는 “변사신고 없이 시신이 화장돼 수사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어린 생명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겠다는 의지로 끈질기게 수사해 피의자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행복한 100세를 위하여] (2부) 일하는 노년을 꿈꾸다 ⑦4대 적을 극복하라

    [행복한 100세를 위하여] (2부) 일하는 노년을 꿈꾸다 ⑦4대 적을 극복하라

    10평 남짓한 작은 임대 아파트에는 전자기타 2대와 통기타 1대가 놓여 있었다. 군데군데 악보들도 눈에 띄었다. 지난 11일 인천 부평구 삼산동 집에서 만난 지연영(79·여)씨는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은 표정이었다. 기타와 음악 이야기를 하는 1시간 내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지금이요? 우울할 틈이 없어요. 신곡 나올 때마다 악보 새로 따야죠, 기타 연습해야죠, 살림도 해야지. 하루가 얼마나 빨리 가는데요.” 일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 호수실버밴드를 창단한 것은 2001년 5월이었다. 이곳에서 밴드 활동을 하기 전 지씨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개인파산 신청을 한 직후였다. “괴로웠죠. 세상이 날 버린 거 같았어요. 난 왜 태어났나.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지씨는 연좌제의 그늘에 묶여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았다. 예순줄에 들어서자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왔다. 자식은커녕 친척붙이 하나 없었다. 가난도 그를 괴롭혔다. 집도 없이 친구네 집을 전전했다. 수렁에서 구해준 것은 음악이었다. 지씨는 1965년 국내 최초의 여성밴드인 ‘세븐 시스터즈’의 창단멤버다. 10년 동안 음악을 했지만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그만뒀다. 이후에는 꽃꽂이, 일본어 번역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극심한 우울증에 세상과 동떨어져 살던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노인복지관에서 밴드를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밴드 연습을 하는 목요일에는 인천에서 버스와 전철을 몇 차례 갈아타고 3시간 걸려 일산에 도착한다. 그래도 지치지 않는단다. 지씨는 “밴드 연습하러 갈 때마다 친구들도 만나고 기타도 칠 생각에 신이 난다. 절대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밴드는 66~87세 노인 6명(남자 4명, 여자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씨는 밴드의 터줏대감이다. 몇몇 멤버들은 세상을 떠났다. 호수실버밴드는 흘러간 가요부터 최신 트로트까지 다양한 장르를 연주한다. 지씨가 제일 좋아하는 곡은 ‘베사메무초’다. 한 달에 세 번 정도 노인복지관 등 각종 행사에 공연을 가는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고등학교에 공연하러 갔을 때다. “학생들이 우릴 보고 환호하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우리 같은 늙은이들도 쓸모 있다는 게 신나잖아요.” 지씨는 지금도 수입이 없고 봉양해 줄 자식도 없지만 “행복하다”고 말한다. 공연을 하고, 무대에 서고, 음악을 흥얼거리는 생활이 그를 지탱하게 한다. 지씨는 “이제는 우울증이 다가올 틈이 없다”면서 “아파도 자연 치유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씨는 시간이 남아돈다고 경로당에서 고스톱만 치지 말고 뭔가를 배우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다. “저는 인터넷 사용법도 자진해서 배웠어요. 100세까지 산다고 하잖아요. 70세 노인이 지금부터 배우면 30년은 써먹을 수 있어요.” 100세 시대의 필수 조건은 건강이다. 그중에서도 노년의 4대 적으로 ‘우울증’, ‘비만’, ‘술’, ‘담배’가 꼽힌다. 우울증은 정신건강을 해치고, 비만·술·담배는 각종 성인 질환을 일으킨다. 지난 12일 찾아간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시립 마포노인종합복지관은 진지한 수업 열기로 가득했다. 이곳에는 다양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있지만 ‘건강’ 관련 강좌가 단연 인기다. 신주애 사회복지사는 “건강체조, 에어로빅, 댄스스포츠, 라인댄스, 한국무용, 요가 수업에는 수강생이 항상 몰린다”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짝을 이루는 춤 종류가 특히 인기”라고 귀띔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한 시간 동안 열리는 건강체조 교실은 강사도 노인이다. 주옥남(78·여)씨는 13년째 이곳에서 체조를 가르치고 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수강생 중 한 명이었던 주씨는 어느 날 강사가 “할머니 정말 잘하시는데 앞에 나와서 해보시라”고 말하면서 보조 강사가 됐고, 얼마 후 정식 강사로 자리잡았다. 고혈압을 앓고 있어 혈압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지만 건강체조를 하면서부터 악화되지 않았단다. 주씨는 “과도하게 무리하지 않으면서 운동할 수 있어 건강에 좋다”면서 “체조를 배우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 나도 신난다”고 말했다. 그가 이끄는 건강체조는 단순 동작으로 구성돼 있지만 노래마다 동작을 달리해 노인들에게 인기다. 차차차, 트위스트, 탈춤, 에어로빅 등을 접목했다. 가수 DJ DOC의 ‘DOC와 함께 춤을’에 맞춰 체조할 땐 어깨와 팔을 양쪽으로 흔드는 가수의 춤을, 설운도의 ‘사랑의 트위스트’에서는 트위스트 춤을 추는 식이다. 뾰족구두를 신거나 치마를 입은 노인들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고 쉽다. 강좌에 참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노인들은 어깨춤을 추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무대에서 시범을 보이는 주씨는 연신 “힘껏 쭉쭉 펴세요. 잘 못해도 괜찮습니다. 자신있게!”를 외쳤다. 한 시간 동안 체조를 하고 나면 땀에 흠뻑 젖는다. 심근경색을 앓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건강체조를 시작한 이현규(75)씨는 “올해 초부터 체조를 했는데 폐활량이 늘어나 심근경색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면서 “노인에게 건강보다 중요한 것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채(76·여)씨는 며느리의 추천으로 올해 초부터 건강체조 강좌를 들었다. 시장 다녀오는 것도 힘들 정도로 다리 힘이 없었던 김씨는 최근에 부쩍 근육이 붙은 것을 느낀다. 김씨는 “우리끼리 단체로 체조하고 끝나고 수다도 떠니까 정신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라면서 “또래 노인이 강사를 하니까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63년 사랑한 노부부 ‘같은 날 같은 시간’ 눈감아

    63년 사랑한 노부부 ‘같은 날 같은 시간’ 눈감아

    한평생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온 부부가 다정하게 함께 눈을 감았다. 63년 전 결혼한 이탈리아의 노부부가 사실상 같은 시간에 나란히 사망했다고 현지 일간지 나지오네가 최근 보도했다. 잔잔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은 할아버지 마르셀로와 할머니 마리아. 6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하면서 두 사람은 한 번도 떨어져 있어본 적이 없으며 죽음마저도 두 사람을 갈라놓진 못했다. 먼저 숨을 거둔 건 할아버지 마르셀로였다. 할아버지는 몇주 전 길을 건너다 쓰러지면서 척추를 크게 다쳤다. 병원에 입원했지만 고령에 허리를 다친 할아버지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같은 날 집에서 할머니 마리아를 살피던 도우미는 숨진 부친의 시신을 수습하려 병원에 있던 노부부의 딸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에게 심장마비가 온 것 같다. 갑자기 숨을 거두셨다” 청천병력 같은 소리에 딸은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는 고운 모습으로 생을 마감한 할머니가 누워있었다. 딸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실을 어머니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며 “두 분이 거의 동시에 돌아가신 건 어쩌면 운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름과 나이는 공개되지 않았다. 현지 언론은 “청년시절에 만나 사랑에 빠진 노부부가 평생 떨어지지 않고 살다가 마지막 길까지 함께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자료사진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연극과 함께 떠나는 비극의 근현대사 여행

    연극과 함께 떠나는 비극의 근현대사 여행

    5·18도, 6·10도 지나갔지만 연극판에서는 현대사의 비극을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다. 5월의 광주나 6월 항쟁처럼 굵직한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들은 아니다. 하지만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 고 장준하 선생 의문사 등 그동안 덜 알려졌던 사건과 현대사의 굴곡에 휩쓸려 고단한 삶을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100연극공동체’의 페스티벌 ‘근현대사 100년을 만나다’는 근현대사 100년에 걸친 사건들과 민중들의 이야기를 총 8편의 연극으로 꾸몄다. 극단 창세의 ‘그날’은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와 재조사 과정을 거치며 유가족이 지내온 세월을 그렸다. 지금도 타살과 실족의 논쟁이 여전한 가운데 선생의 가족들이 겪은 슬픔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극단 제자백가의 ‘이땅은 니캉 내캉(거장 그리고 눈물)’은 1951년 발생한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을 소재로 했다. 섬세한 음악을 바탕으로 피해자들의 고통과 시대적 정서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5월의 광주에서 딸을 구하고 총에 맞아 죽은 아빠가 유령이 돼 딸의 곁을 머물며 도와준다는 내용의 ‘아버지와 살면’(극단 Da), 고문의 후유증을 안은 채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당신은 어느 별에서 왔소’(극단 꿈의동지) 등도 주목할 만 하다. 페스티벌을 기획한 이준석 후플러스 대표는 “민주화 인사들의 가족이나 영문도 모른 채 고통을 겪은 이웃 등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서 치부처럼 여겨졌던 미군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다룬 ‘일곱집매’(극단 연우무대)도 호평 속에 공연되고 있다. 기지촌 여성에 관해 연구하는 작가와 기자가 평택 안정리 미군 캠프 험프리 부근 기지촌에 살았던 할머니들을 찾아 이들의 고단했던 삶과 아픔을 들여다보고, 그녀들을 기지촌으로 오게 한 거대한 구조를 살펴본다. 지난해 열린 제34회 서울연극제에서 우수 작품상과 연기상을 수상했다.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나와 할아버지’는 한국전쟁때 헤어진 옛 여자친구를 찾아 나서는 할아버지의 여정에 손자가 동참하면서 할아버지의 고단했던 삶을 대면한다. 민준호 연출은 “단순히 멜로 이야기라 생각하고 할아버지를 관찰하기 시작한 손자가 몰랐던 할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면서 스스로를 반성하는 과정을 그렸다”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세계 최고령 男女 사흘 간격으로 사망

    세계 최고령 男女 사흘 간격으로 사망

    세계 최고령 남녀가 3일 간격으로 숨졌다. AFP 등에 따르면 9일(현지시간) 1885년 태생의 중국인 루 메이전(오른쪽) 할머니가 127세에 숨을 거둔 지 3일 만에 일본의 기무라 지로에몬(왼쪽) 할아버지가 12일 교토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116세. 1897년에 태어난 고인은 116년 54일을 살았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잠깐 통역으로 일한 것을 제외하고는 1962년 정년 퇴직할 때까지 45년간 집배원으로 근무했다. 지난 4월 ‘기네스 월드 레코즈’는 기무라 할아버지의 116번째 생일을 맞아 세계 최고령자 인증서를 수여한 바 있다. 루 할머니는 그보다 11살이 더 많지만 출생 당시 중국의 호적체계가 정비돼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고령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2010년이 돼서야 정확한 생년월일을 확인했지만 국제적으로는 비공식 최고령 기록으로만 남았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가장 좋은 작품은 멋부리지 않고 미친 듯이 그린 것”

    “가장 좋은 작품은 멋부리지 않고 미친 듯이 그린 것”

    “어린이는 모두 천재다. 함부로 재단하고 가르치면 안 된다. 할아버지가 시인이셨는데 어려서부터 내게 뭘 가르치려 하지 않으셨다. 뭐든지 지저분하게 엉망으로 (그림을 그리도록) 내버려 두셨다. 요즘 교육방식대로라면 난 (모교인)서울대 미대에 입학하지도, 화가가 될 꿈조차 꾸지도 못했을 것이다.” 올해 77세인 ‘설악산 화가’ 김종학 화백이 12일부터 새달 7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희수(喜壽)기념 개인전을 연다. 전시에는 초창기 인물화부터 목판화, 회화 등 60여점을 내건다. 그는 “돌이켜보면 20, 30대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그림을 그렸고 마흔이 넘으면서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50대가 돼서야 내 작품이 눈에 보였고, 되돌아보니 예순은 넘어야 화가가 된다던 우리 할아버지 말씀이 맞더라”고 했다. 이어 “멀고도 험한 창작의 도(道)를 향해 죽는 날까지 붓질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1962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김 화백은 ‘천재화가’로 불렸다. 네 살 때 연필을 쥐자마자 그림을 그렸다. 자신을 스스로 ‘추상적 사실화가’로 부르며 지금도 물감을 섞는 팔레트를 쓰지 않는다. 대형 화폭을 땅에 펼쳐 놓고 밑그림 없이 원색의 물감을 그대로 짜내 붓으로 쓱쓱 그려낸다. 머릿속에 담긴 사물의 형상을 강렬한 색감으로 표현한다. 그는 “다양한 색깔의 물감을 갖춰 놓고 되도록 섞지 않는다”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이 과연 옳은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화가인 장승업의 예를 들어 “가장 좋은 작품은 화가가 멋부리지 않고 미친 듯이 그린 것”이라고 했다. 장르와 형식, 표현기법에 사로잡힌 현대미술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다. 50년째 전업작가로 살아온 김 화백의 별명은 ‘도깨비’다. 혼자 있길 좋아하고 열중하는 데 재주가 있다는 뜻이다. 평생 자연의 신비에 취해 외딴곳에서 미술과 더불어 살아온 덕분이다. 설악산에 들어간 지도 올해로 34년째다. “설악산에 간 것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죠. 맨드라미, 할미꽃이 마음의 싹을 움트게 하는 자태들에 잠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1980년대 추상화가 화단을 지배할 때 그는 ‘타락한 화가’로 불렸다. 꽃그림을, 그것도 달맞이꽃처럼 밤에만 피는 꽃을 그렸기 때문이다. “달맞이꽃은 밤 12시쯤 되면 뭉쳐 있던 봉오리가 핑그르르 돌아 피어납니다. 옆에서 보니 할미꽃도 참 예쁘더군요.” 요즘도 설악산 작업실에서 하루 10시간쯤 화폭과 씨름한다. 치열한 외로움과 골동품 수집이 김 화백에게는 삶의 원동력이다. 30대 초반부터 농기구와 목기를 수집했다. 값이 싼 데다 조각품 같아서 선조의 미학을 배우기 좋았다. 수집품 가운데 300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진정’(眞情)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선 그가 “마누라 몰래 사 모았다”는 알토란 같은 전통 농기구 수집품도 만날 수 있다. 희수에 노 화백은 또 다른 미술인생을 준비하느라 마음이 바쁘다. 힘이 느껴지는 목판 작업에 새롭게 도전하거나 조각으로 인물이나 물고기를 표현해 보고도 싶다며, 말 그대로 노익장을 거침없이 자랑했다. 글 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신이 죽은 남편 살릴 것” 시체와 13개월 동거한 여자

    “신이 죽은 남편 살릴 것” 시체와 13개월 동거한 여자

    죽은 남편과 1년 넘게 동거한 여자가 경찰에 적발됐다. 푸에르토리코 카롤리나에 사는 한 여성이 사망한 남편을 침대에 눕혀놓고 13개월 동안 생활했다고 외신이 10일 보도했다. 75세에 생을 마친 남자의 시체는 이미 부패해 뼈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경찰이 여자의 집을 수색한 건 사망한 남자의 가족들로부터 확인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 집을 방문하곤 했지만 그때마다 부인은 남자가 외출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정 방에는 절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다. 오랫동안 이상한 행동이 계속되자 오빠의 생사여부를 의심하게 된 남자의 여동생은 “오빠가 잘 있는지 확인해 달라.”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집으로 찾아간 경찰에게 여자는 남편의 사망에 대해선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이 방을 일일이 확인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남편의 시체를 발견하자 “신이 남편을 부활시킬 것으로 확신하고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고 진실을 털어놨다. 경찰 발표로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자 기자들을 만나 “남편이 (사망 전) 악마에게 사로잡혀 있는 상태였다.”고 종교적 발언을 이어갔다. 검찰은 여자와 다시 면담한 뒤 기소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한편 경찰 관계자는 “여자가 18살 손녀와 함께 살고 있다.”며 “손녀 역시 할아버지가 사망했지만 침대에 누워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에페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11일 TV 하이라이트]

    ■러브 인 아시아(KBS1 밤 7시 30분) 17년 전, 몽골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온 지수씨는 첫 직장에서 남편 김병열씨를 만났다. 병열씨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 지수씨는 처음에는 한국생활과 문화가 낯설어 힘든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항상 옆에서 다독여 주는 자상한 남편 덕분에 금방 이겨낼 수 있었다는데…. ■초한지(KBS2 밤 12시 30분) 신변의 위협을 느낀 호해는 자신이 살 길은 미친 척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철저하게 미치광이 행세를 한다. 조고가 처음에는 거짓이라 여기지만 궁녀의 말을 듣고 나서 반신반의한다. 한편 역이기는 호형호제하는 진류성 현령한테 유방에게 투항할 것을 권고하지만, 현령은 대로하며 이를 거부한다. ■TV 속의 TV(MBC 낮 12시 20분) 한동안 프로그램 ‘일밤’은 부진과 침체를 거듭하면서 소위 ‘흑 역사’를 써내려 갔었다. 하지만 참신한 기획과 새로운 내용으로 안방극장을 다시 사로잡았다. 일밤이 부활하기까지, 과연 어떤 힘이 뒷받침된 걸까. 이번 시간에는 ‘일밤’의 매력을 요모조모 따져보고, ‘일밤’의 부활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다큐10+(EBS 밤 11시 15분) 서기 1216년, 왕자 루이를 필두로 프랑스군이 영국의 존 왕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영국을 침공한다. 하지만 남동부에 있는 도버의 하얀 절벽, 화이트 클리프에는 천재적인 기술자 모리스가 설계한 도버 성이 있었다. 천혜의 요새였던 도버 성은 바르비칸이라는 이중 입구를 만들어 적의 침입을 차단했는데…. ■장수 가족 건강의 비밀(EBS 밤 10시 45분) 경기 성남시에 흥겨운 노래 한가락으로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는 최응겸 할아버지가 산다. 구순의 나이지만 새하얀 와이셔츠에 나비 넥타이를 맨 모습이 남다른 감각을 자랑한다.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매일매일이 기대된다는 백발의 노신사, 최응겸 할아버지의 일상을 엿본다. ■가족(OBS 밤 11시 5분)밤 10시 45분) 밀양의 깊은 산속에 위치한 물레방아 집에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두 할머니가 살고 있다. 아흔 한 살 백발의 김수분 할머니와 여든 살 안해순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이 두 분은 말만 들어도 어려운 사돈지간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서로에게 단짝 친구가 되어주는 두 사돈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경남 경찰 “몸싸움 그만, 농활 시작”

    “송전탑 공사 현장을 지키느라 농사일이 밀려 있었는데 경찰에서 이렇게 도와주니 한시름 놓게 됐습니다.” 경남지방경찰청이 밀양지역 송전탑 건설 현장 주변 농촌마을에서 일손 돕기 봉사활동을 했다. 경남경찰청 소속 전·의경 2개 중대 160여명은 6~7일 밀양시 단장·상동·상남·산내면 등 5개면 마을에서 농사일 돕기 지원을 했다. 마을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공사현장 주변에서 매일 농성하느라 농사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양파와 매실 수확을 비롯해 농사일이 많이 밀려 있었다. 일손 지원에 나선 전·의경들은 얼마 전까지 공사현장의 질서 유지에 동원됐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 등으로 주민들과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전·의경들은 농가를 찾아 양파를 뽑고 매실을 따는 등 농사일을 거들었다. 점심도 주민들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도시락을 준비해 갔다. 마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일을 도와주는 전·의경들이 손자 같다며 손을 꼭 잡거나 등을 토닥거리며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다. 마늘 농사를 하는 밀양시 부북면 대항1리 최모씨는 “전·의경들이 일손을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마늘 수확을 제때 하지 못할 뻔했다”고 말했다. 김흥진 경비교통과장은 “주민과 경찰이 가까워지고 소통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경남경찰청은 급한 상황이 생기지 않으면 당분간 일손 돕기 지원을 계속할 계획이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문소영의 시시콜콜] 정대세를 ‘종북’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겠나?

    [문소영의 시시콜콜] 정대세를 ‘종북’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겠나?

    1950년 전쟁고아 사진에서 뛰쳐나온 것 같은, 광대뼈가 불쑥 나오고 눈이 위로 쭉 올라간 정대세를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처음 보고 ‘토종 한국인’ 같아 웃었다. ‘못난이 인형’ 같은 그는 요즘 한국의 20대 남자들과 너무 다르게 생기지 않았나! 찾아 보니 정대세는 재일교포 3세. 국적은 한국 국적인데, 2006년 일본 프로축구선수로 뛰었고, 2007년부터 북한 국가대표 축구선수를 하고 있었다. 이력이 특이했다. 게다가 남아공에서는 명색이 ‘국대’ 스트라이커인데 골대를 향해 축구공 한번 제대로 차 보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그때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스코어가 7대0이었던가? 기자는 당시 이렇게 물었다. 정대세는 한국 국적인데 왜 북한 선수로 뛰는 거야? 할아버지는 경북 의성이 고향이고 따라서 정대세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로 한국 국적이다. 다만, 어머니는 ‘조선적’(朝鮮籍)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조선적? 북조선인민공화국 국적으로 오해하지 마라. 조선적이란 단어에는 한반도의 뼈아픈 100년의 근현대사가 녹아 있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이 되자 대한제국은 ‘조선’으로 격하됐고, 일본국적의 조선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내지(內地)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국적의 조선인 정체성은 ‘조선인’이었다. 이쓰키 히로유키의 대하소설 ‘청춘의 문’에 탄광에서 강제노역하는 비참한 조선인들의 삶이 나오듯, 조선인들은 주로 탄광이나 광산, 도시의 공장에서 일했다. 조선인의 본격적인 강제적 일본 이주는 1930년대 태평양전쟁 시기에 이뤄졌는데, 일본의 노동력 부족을 채우는 대체재였다. 조선인구 10명당 한 명꼴로 1945년까지 230만명이 이주했다.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곧바로 재일 조선인들은 국적을 회복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해방된 조국은 건국이 미뤄졌고, 분단됐다. 일본은 1947년 외국인등록제를 실시해 일본 국적이던 재일 조선인들에게 ‘조선적’을 부여했다. ‘조선적’ 탄생의 기원이다. 다시 말해 조선적은 ‘조선의 민족’ 기호, 코드값이자 일본 국적이 아니면서 일본에 사는 조선족, 재일(在日) 조선인 ‘자이니치’ 60만명의 역사다. 한국국적 취득은 1965년에야 한·일 국교 정상화로 가능해졌다. 최근 재일교포 3세인 정대세를 ‘종북’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수원 삼성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느니,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 한다느니 하는 발언들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한반도의 역사에 무지한 탓인지 발언들이 용감하다. 자이니치의 존재를 개인의 선택으로 몰아가는 협소함이 답답하다. 증오와 분노에 기초해 왜곡된 눈으로, 역사에 대한 이해도 없이 색깔을 입히려고 손가락질하는 그 모습을 거울로 들여다보라. 무지와 분노에 가득한 당신을 향한 손가락질이다.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나눠준 혈액만 455리터… ‘사랑의 헌혈’ 할아버지

    나눠준 혈액만 455리터… ‘사랑의 헌혈’ 할아버지

    일생에 한 번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헌혈. 그 헌혈을 지금까지 400회 이상 한 할아버지가 언론에 소개돼 화제다. 디지털신문 팜비치포스트는 미국 마이애미 북부 팜 비치 카운티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해롤드 맨든홀(84)의 헌혈스토리를 최근 보도했다.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최소한 400회 이상 헌혈을 했다. 마지막으로 피를 나눠준 건 지난달 22일이다.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나눠준 피는 최소한 455리터에 달한다. 크기에 따라 차이가 나겠지만 보통 냉장고 10대의 윗칸, 자동차 8대의 기름탱크를 채울 수 있는 분량이다. 할아버지는 1977년 7월 7일 처음으로 헌혈을 했다. 사랑하는 부인이 유방암 판정을 받은 직후였다. 할아버지의 부인은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투병 7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할아버지는 두 명의 아들을 앞세워 보내는 슬픔까지 겪어야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197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헌혈을 중단하지 않았다. 워낙 헐혈을 자주하다 보니 할아버지는 아예 지역 혈액은행에선 유명 인사가 되어버렸다. 시중은행 다니듯 혈액은행을 찾는 할아버지에게 직원들은 “수백 명의 목숨을 살리셨다.”고 고마움을 표시한다. 할아버지는 건강을 나누는 게 감사하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아직까지 살아 있는 데는 무언가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며 “그래서 헌혈을 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건강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의 일부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헌혈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자료사진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EBS ‘부모’, ‘할머니가 간다’ 신설

    EBS 육아정보 프로그램 ‘부모’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자녀가 함께하는 코너 ‘할머니가 간다’를 신설했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조부모가 손자녀를 돌보는 가정이 늘고 있는 가운데 아이도 즐겁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즐거운 황혼육아 노하우를 배울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5일 오전 8시 50분 방영되는 첫 번째 시간에는 탤런트 사미자와 손자 한얼이가 주먹밥 만들기에 도전한다.
  • [제21회 공초문학상] “의심 속에서 움트는 詩語… 뜻대로 써지지 않아 불행”

    [제21회 공초문학상] “의심 속에서 움트는 詩語… 뜻대로 써지지 않아 불행”

    “눈물이 많았어요. 눈물로 쓰는 건 다 진짜인 줄 알았어요. 이제 눈물이 다 말라버리니까 눈물로 쓴 것들이 사실은 가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란 과연 무엇일까…. 진짜라는 게 언어에 담길 수는 없는 거잖아요. 진짜를 예술에 담을 수 있는 능력이 저한테는 없는 것 같아요.” 유안진(72) 시인은 고희를 넘기고서도 여전히 의심하고 탐색하는 작가다. 삶이 여물어도 확신은 흩어지고 의문은 외려 더해진다. “인생이 뭔지 끊임없이 회의하고 발견하고 찾아가는 것 같다”는 시인을 문학평론가 정효구는 “‘진아’(眞我)를 찾기 위해 힘들여 정성을 다한다”고 평한다. 제21회 공초문학상 수상작인 ‘불타는 말의 기하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유리 벽을 지나다가/니가 나니?/걷다가 흠칫 멈춰질 때마다/내가 정말 난가?’ 되묻는다. ‘쉬운 걸 굳이 어렵게 말하고/그럴듯한 거짓말로 참말만 주절대’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왜 나인가, 어떤 게 진짜 나인가 의심할 때가 많아요. 교단에 서는 내가 다르고, 집에서 가면을 벗는 내가 다르죠. 늘 옳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늘 틀린 것도 아니고. 한때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가짜는 아닌가, 산다는 게 뭔가 회의가 들어요. 그러니까 자꾸 시가 나오는 것 같아요.” 시인은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교육심리학을 전공하고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16권의 시집을 냈다. 적지 않은 성취이건만 지금도 “원하는 대로 써지지 않아서 불행하다”고 토로한다. 그는 “시라는 언어 예술은 비틀고 뒤집고 왜곡시키면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며 시를 ‘둥근 세모꼴’에 비유한다. “메밀은 (중략) 시와 너무 닮았다. 세모꼴 메밀과 속의 둥근 알갱이는 (중략) 창조 의도와 오해의, 신뢰와 의심의, 현실과 이상의, 진실과 허상의, 내심과 외형의, 이 시대와 꿈꾸는 시대 등의 모순 충돌과 갈등을 그대로 닮았다.”(산문집 ‘상처를 꽃으로’ 중) 진짜 자아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시인에게 그 자신은 ‘집’이 아니라 ‘짐’(문학평론가 정효구)이다. 그러나 그의 문학적 성취는 ‘둥근 세모꼴’ 삶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자책이나 절망에 그치는 게 아니라 깨달음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철부지도 아니면서 왜 이러고 있지?’ 하고 자문하다가도 ‘의심하고 의심받는 것은 철드는 것’(‘의심의 옹호’)이라고 긍정하고,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면서 허무에 시달리다가도 ‘위대한 허무란/기다릴 게 없는데도 기다리는 것’(‘기다림을 기다린다’)이라고 관조한다. 의심과 회의는 반성으로 이어진다. ‘거꾸로 로꾸거로 생각을 돌려봐도/캄캄한 암흑 속 아몰아몰 아지랑이뿐’(‘거꾸로 로꾸거로’)인 반성의 시간이지만 시인은 끈기 있게 삶을 응시한다. “인생은 한 번 지나면 못 돌아오잖아요. 그동안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걸 거꾸로 해왔어요. 위선과 위장과 허위로 살았어요. 못 하면서 잘하는 척하려고 했고, 남을 앞지르려고 했어요. 똑똑한 질문 하나 해보겠다고 너무 애를 썼어요. 거꾸로 해온 걸 다시 거꾸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로꾸거’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거꾸로 해봐도 나는 너무 썩은 것 같아요.” 수상작이 실린 시집 ‘걸어서 에덴까지’에서 검은색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흰색이 다른 색을 용납하지 않는 배타적 색인 반면 회의와 후회를 포용하는 검은색은 ‘신의 색채’이기 때문이다. “흰색은 조금만 잘못해도 흔적이 생기잖아요. 흰옷에 묻은 얼룩은 아무리 세탁해도 지워지지 않아요. 하지만 검은색은 잘못과 실수를 모두 받아서 감춰 주죠. 인생은 자기를 때묻히면서 사는 거잖아요. 태양 속에 왜 흑점이 있을까요. 밤이 없으면 대낮이 없듯 검은색은 귀향점인 동시에 시작점인 것 같아요.” ‘내 이맛머리 새치는 언제쯤에야 검어질 것인가’(‘아직도 아직도냐?’) 자문하는 시인은 “나이가 들수록 바보가 되고 싶다”며 해사하게 웃는다. “젊을 때는 잘나고 싶었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과 같아지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실수하는 게 좋다”고 덧붙인다. “손자랑 노는 할아버지를 보세요. 나이든 사람의 근엄한 언어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표정과 손짓을 쓰잖아요. 저는 너무 오만하게 살아왔어요. 인생이 후회스럽죠. 다시 살라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가 되고 바보가 되는 것, 그렇게 낮아지는 게 지순해지는 길이 아닐까 싶어요.”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불타는 말의 기하학 쉬운 걸 굳이 어렵게 말하고 그럴듯한 거짓말로 참말만 주절대며 당연함을 완벽하게 증명하고 싶어서 당연하지 않다고 의심해 보다가 문득문득 묻게 된다 유리 벽을 지나다가 니가 나니? 걷다가 흠칫 멈춰질 때마다 내가 정말 난가? 나는 나 아닐지도 몰라 미행하는 그림자가 의문을 부추긴다 제 그림자를 뛰어넘는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확인해야 할 것 같아 일단은 다시 본다 이단엔 생각하고 삼단에는 행동하게 손톱 발톱에서 땀방울이 솟는다 나는 나 아닐 때 가장 나인데 여기 아닌 거기에서 가장 나인데 불타고 난 잿더미가 가장 뜨건 목청인데. ■유안진 시인은… ▲1941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 교육학과, 동 대학원 석사, 미 플로리다 주립대 교육심리학 박사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달하’, ‘봄비 한 주머니’, ‘다보탑을 줍다’, ‘거짓말로 참말하기’, ‘둥근 세모꼴’, 수필집 ‘지란지교를 꿈꾸며’ 등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소월문학상 특별상, 월탄문학상, 한국펜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유심문학상, 구상문학상, 간행물윤리위원회상 등 수상
  • [남미통신] ‘정력 자랑’ 88세 노인, 성관계 가진 뒤 “돈이 없네?”

    [남미통신] ‘정력 자랑’ 88세 노인, 성관계 가진 뒤 “돈이 없네?”

    90세를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50대 초반의 여자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남자는 “성관계를 가진 후 여자가 돈을 훔쳐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건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최근 발생했다. 남자와 여자는 우연히 알게 된 후 급속도로 가까워져 연인이 된 사이였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올해 88세 할아버지는 지난달 지인에게 전화를 걸다 번호 1개를 잘못 눌렀다. 반대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피살된 52세 여자였다. 잘못 건 전화였지만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주소를 알려주며 여자를 집으로 초대했다. 여자가 할아버지의 집을 방문하면서 두 사람은 바로 연인이 됐다. 성관계를 갖기도 했다. 여자는 첫 방문 때 3일간 할아버지의 집에 머물고 돌아갔다. 할아버지는 아파트 열쇠를 여자에게 주기도 했다. 지난달 29일(이하 현지시각) 여자는 다시 할아버지의 집을 찾아갔다. 두 사람은 또 성관계를 가졌다. 할아버지는 사랑을 나눈 뒤 힘이 들었는지 안정제를 찾아 먹고 깊은 잠에 빠졌다. 사건은 이때 발생했다. 할아버지가 눈을 떠보니 여자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현금을 보관한 상자를 찾아보니 온데간데 없었다. 상자에는 미화 1만 달러(약 1130만원)이 들어있었다. 화가 난 할아버지는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고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돈이 없어졌다. 가져간 게 아니냐. 와서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여자는 같은 달 31일 할아버지의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격분한 두 사람은 목소리를 높여 논쟁을 벌이다 급기야 폭행을 주고받았다. 할아버니는 홧김에 여자에게 총을 쐈다. 총소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할아버지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사진=클라린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명사가 걸어온 길] 자수성가 정열과 집념의 여성 CEO 이길여

    [명사가 걸어온 길] 자수성가 정열과 집념의 여성 CEO 이길여

    가천대 길병원은 얼마 전 지역 병원으로서는 유일하게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내로라하는 대형 병원들과 나란히 2013년도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됐다. 또 가천대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의 교수진이 참여해 ‘식욕억제물질’을 처음 발견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연구원은 가천대 길병원·뇌융합과학원 등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뿐만 아니다. 지난달에는 24년 전 가천대 길병원에서 태어난 네 쌍둥이 자매 중 세 명이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네 쌍둥이가 무사히 태어날 확률은 70만분의1 정도였음에도 이길여 회장의 노력으로 모두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었다. 이 회장은 형편이 넉넉지 못한 네 쌍둥이 부모에게서는 병원비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면 등록금을 내 줄테니 연락을 달라”는 당부까지 했다. 네 쌍둥이 자매는 현재 길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열정과 집념의 여인으로 알려진 이 회장의 일생을 상·하로 나눠 2주에 걸쳐 싣는다. 만약 당신이 자식에게 단 하나의 재능을 물려줄 수 있다면 무엇을 줄 것인가. ‘뜨거운 열정’을 주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열정 온도는 몇도나 되는가. 잘 모르겠다면 이런 시 한편 감상해보자.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있다/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스스로 봄길이 되어/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이 흩어져도/보라/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스스로 사랑이 되어/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절망을 극복하고 닦아낸 새 희망의 길을 노래한, 시인 정호승의 ‘봄길’이다. 그 희망의 길은 어떻게 닦아야 할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흔들리지 않는 집념과 6월의 태양처럼 뜨거운 정열. 그렇게 그 길을 만들어냈다. 그랬다. 한 여자의 일생에서 ‘열정의 수은주’는 한번도 눈금이 변한 적이 없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그 열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나온 걸음걸음이 모두 범상치 않은 흔적으로 남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보증금 없는 병원, 최초 진료카드 시스템 도입, 여성의사 최초 의료법인 설립, 국내 최초 해외 교육원 개관 등 ‘최초’와 ‘최고’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들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건국 이후 가장 크게 자수성가한 여성 CEO’라는 평가다. 2011년 경원대, 경원전문대, 가천의대 등을 ‘가천대’로 통합시킨도 것도 의사로서뿐만 아니라 최고경영자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사건’이었다. 또한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선정 ‘2012년 세계의 위대한 여성 150인’에 선정될 만큼 국제적으로도 유명하다. 가천길재단을 진두지휘하는 이길여 회장이다. 가천길재단은 가천대 길병원, 가천대 글로벌캠퍼스, 가천대 메디컬캠퍼스, 가천문화재단, 신명여자고등학교, 새생명 찾아주기운동본부, 가천 미추홀 청소년 봉사단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 회장을 가리켜 어떤 사람이냐고 새삼 물어본다면 답으로 압축할 수 있는 키워드가 몇 있다. 첫번째가 결코 식지 않는 ‘열정’이고, 두번째는 바람을 일으키는 ‘바람개비’이며, 세번째는 남을 위한 봉사정신이 담긴 ‘숟가락’이다. 또한 남들보다 항상 앞서 나가는 ‘개척정신’이다. 지난달 24일 오후 인천 연수구에 있는 가천대 메디컬캠퍼스에서 이 회장을 만났다. 때마침 학교 운동장에서는 체육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 회장은 하얀 체육복 차림에 학생들과 함께 행진을 하고, 달리기 신호를 보내는 등 여념이 없다. 젊은 학생들과 서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이 새삼 놀라웠다. 학생들도 그런 이 회장과 함께 즐겁게 어울리며 화합을 다지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잠시 후 이 대학 총장실에서 마주앉았다. 요새는 어떤 일로 바쁜지 먼저 물었다. “올해는 매력, 담력, 실력 등 세 가지를 키우려고 합니다. 가천대학과 길병원의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 또한 학교통합에 따른 커리큘럼 정리와 구조조정, 그리고 세계적인 대학을 향한 커리큘럼을 새로 짜는 일로 바쁘지요. 특히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는 데 무엇보다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올해로 의사의 길을 걸어온 지 꼭 55년째이다. 소감을 묻자 주저없이 자신만큼 많은 환자를 본 사람도 없을 것이라면서 그만큼 죽어가는 사람도 많이 살렸다고 술회한다. 또한 그동안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는지 물었다. “참된 인생은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사람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살다보면 위기를 겪게 마련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위기는 삶의 일부이며, 중요한 것은 그 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위기 때마다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맞서 왔습니다. 모험과 도전에 익숙해진 탓인지 오히려 위기를 즐기며 기회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온 것 같아요. 바람개비는 맞바람이 강할수록 힘차게 돌아가거든요. 길병원 로비에 큰 바람개비를 설치한 것도 의료진은 물론 환자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어린 시절 수수깡 속을 빼고 막대에 끼워 돌리는 바람개비 놀이를 많이 했다. 이때마다 그는 항상 1등을 했다. 빠른 속도로 달리면 빨리 돌고 바람이 부는쪽으로 달리면 잘 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바람개비는 가만히 있으면 돌지 않는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앞으로 달려나가 바람을 일으켜야 돌아간다는 원리를 터득했던 것. 바람을 만들고 바람에 부딪히며 헤쳐나가는 것, 그것이 이 회장이 살아온 삶이다. 어려움과 시련이 닥칠 때면 항상 이 같은 바람개비를 떠올리곤 했다. 앞으로도 가천대를 모두가 부러워하는 글로벌 명문대로 키우기 위해 맞바람을 이기고 힘차게 나아갈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전북 옥구군 대야면 죽산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한학에 밝았고 아버지 역시 그 영향을 받았다. 길여(吉女)는 딸만 둘을 낳아 시어머니 눈밖에 난 어머니를 위로하는 뜻에서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이름 덕분인지 그에겐 늘 행운이 따랐고 위기가 오더라도 기회로 만들 수 있었고 한눈팔지 않는 외길 인생을 걸을 수 있었다. 그가 가는 곳은 길(Way)이 됐고 좋은(吉)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의사가 된 것을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아주 행복한 길을 걸어오고 있다. 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낸 유승국 박사가 지어준 그의 호 가천(嘉泉) 또한 ‘아름다운 기운이 솟아오르는 샘’이라는 뜻이고 보면 그의 팔자 자체가 천생 행복한 의사가 아닐까 싶다. 또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한테 밥과 반찬은 온데간데없고 놋숟가락만 가득 담긴 광주리에 대한 태몽 얘기를 자주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의사가 되고 나서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할머니한테 자주 구박을 받았다. 이런 모습을 보며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딸이 되겠다고 몇번이고 다짐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이러한 각오로 급장이 됐고 이후 한 가지 목표를 세우면 기필코 그것을 이루어내고야 말겠다는 근성이 생겨났다. 졸업할 때까지 단 한번도 1등 성적을 놓친 적이 없었다. 의사가 되겠다는 강한 생각을 가진 것도 이 무렵이다. “우리 시골집에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웠어요. 주인 없이 길에 돌아다니거나, 다리가 부러지거나, 눈이 다치거나 몸에 심한 상처를 입은 불쌍한 동물들이었죠. 이들에게 약을 발라주고 붕대를 감아주고 또 포대기로 강아지를 업고 다닌 적도 많습니다. 그러다가 강아지가 죽으면 뒷산에 묻고는 한동안 울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의사놀이를 한 셈이다. 또 장티푸스에 감염된 친한 친구가 갑자기 죽는 모습을 보고 의사에게 필요한 두 가지 감정, 즉 생명에 대한 무한한 경외감과 죽음에 대한 철저한 두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의사가 되겠다고 확실하게 다짐한 것은 1948년 35세의 아버지가 급성폐렴으로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면서였다. 이리여고에 진학한 그는 의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를 했다. 1등을 한번도 놓치지 않았고 1951년 전쟁의 와중에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다. 지나온 세월을 생각해도, 밤하늘의 뜬 달을 보면서도 저절로 눈물이 났다. 모든 가능성은 꿈꾸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렇게 대학을 마치고 전북 군산으로 내려가 세계평화봉사단에서 의료봉사로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거기서 영국인 의사 골든을 만났다. 이 회장은 골든의 헌신적인 봉사정신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진정한 봉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얼마 후 골든은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수련의(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소개해줘 군산에서 서울로 자리를 옮겼다. 적십자병원에서의 과정을 마칠 무렵 인천에서 개원한 친구가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동인천역 앞 허름한 2층짜리 적산가옥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첫발을 내딛게 됐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3代 76년 하늘지킨 가족… “공군은 가업이죠”

    3代 76년 하늘지킨 가족… “공군은 가업이죠”

    “공군 제복을 대물림할 수 있다는 건 집안의 영광이자 명예입니다.” 지난 30일 공군 제86항공전자정비창(86창) 항공전산정비팀장을 끝으로 33년 만에 전역한 권재원 예비역 대령의 남다른 ‘집안내력’이 화제다. 권 예비역 대령의 아버지 권삼성(77·준사관 15기) 예비역 준위부터, 큰아들 권선민(27·학사 121기) 대위, 큰며느리 박혜영(25·부사관후보 205기) 하사까지 3대‘가 공군 제복을 입었거나 입고 있는 것. 33년씩을 군에 몸담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비롯해 3대, 4명에 걸쳐 76년을 공군과 함께했다. 이쯤 되면 권씨 집안에 공군은 ‘가업’이다. 권 예비역 대령은 1962년 권 예비역 준위의 장남으로 수원에서 태어났다. 부사관인 아버지를 따라 비행단에서 자랐고, 제복과 전투기에 마음을 빼앗겨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1985년 공사 33기로 졸업한 그는 무장특기 소위로 임관, 제11전투비행단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권 예비역 준위 역시 무장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1954년 공군 사병으로 입대해 제10전투비행단에서 복무 중 직업군인의 꿈을 키워 부사관에 지원했다. 사관 능력평가와 김해 기술학교 교육을 거쳐 하사로 임관했고 1986년 준위로 전역했다. 권 예비역 대령의 장남 역시 가업을 이어 공군 장교를 택했다. 권 대위의 어린 시절 꿈은 교사였다. 대학 재학 중 군 복무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장교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학사장교에 지원했다. 2009년 항공시설 특기로 임관한 권 대위는 공군에 애착을 갖고 직업군인의 길을 걷게 됐다. 권 대위가 박 하사를 아내로 맞이한 것도 아버지 덕분이다. 86창 항공전산정비팀에서 근무하던 박 하사를 눈여겨본 권 예비역 대령이 만남을 주선했다. 못 이긴 척 나갔던 권 대위는 첫눈에 반해 교제를 신청했다. 둘은 2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 권 대위는 “아들이든 딸이든 공군 장교로 키우고 싶다”며 웃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라디오 국민DJ ‘별밤’으로 떠나다

    라디오 국민DJ ‘별밤’으로 떠나다

    국내 라디오 DJ계의 대부 이종환씨가 30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76세. 2011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던 이씨는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열흘 전 서울 노원구 하계동 아파트 자택으로 옮겨 지냈다. 고인은 국내 포크음악이 뿌리내리는 데 산파 역할을 했다. 음악다방 디쉐네의 DJ로 활동하다 1964년 MBC 라디오 PD로 입사한 고인은 1970년대 ‘별이 빛나는 밤에’와 1980년대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의 DJ로 맹활약하며 대중의 인기를 누렸다.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를 진행하는 등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는 1989년 미국으로 떠나 미주 한인방송 사장까지 지냈다. 1992년 귀국해 MBC FM ‘이종환의 밤으로의 초대’로 국내 방송에 복귀했다. 이후 ‘이종환,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이종환의 음악살롱’ 등으로 명실상부한 최고 DJ로 명성을 이어갔다. 1996년에는 MBC가 20년간 라디오를 진행한 DJ에게 주는 골든마우스 상을 최초로 수상했다. 해박한 음악 지식과 특유의 소탈한 입담으로 전국의 청취자를 끌어모으며 김광한, 김기덕과 함께 ‘3대 DJ’로 불리기도 했다. 대중음악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70년대 음악감상실 쉘부르를 만든 주인공. 1973년 듀오 쉐그린(이태원, 전언수)과 함께 종로 2가에 쉘부르를 열어 가난한 음악인들에게 무대를 마련해 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쉐그린, 어니언스, 김세화, 남궁옥분, 신계행, 양하영 등의 스타를 배출해 가수들 사이에서는 ‘대장’으로 불렸다. 돌출 행동 등으로 시련도 있었다. 2002년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진행하면서 자신을 비난한 글을 올린 청취자에게 폭언을 해 DJ 자리를 내놨고, 이듬해 7월엔 MBC FM 4U ‘이종환의 음악살롱’에서 음주 방송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05년 4월 tbs FM ‘이종환의 마이웨이’로 방송에 복귀한 그는 지난해 11월 건강을 이유로 방송을 떠났다. 한편 그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방송·가요계는 종일 술렁거렸다. 그와 함께 1995~2002년 7년여간 라디오 프로그램(지금은 라디오 시대)을 함께 진행했던 방송인 최유라는 이날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어렸을 적 참 무섭고 어려웠던 분이었다. 할아버지 냄새 날까 마이크 돌려놓고 방송하시던 분… 아프실 때도 모습 흉하다며 못 오게 하셨던 분”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쉘부르의 맏형 격인 쉐그린의 이태원은 “쉘부르는 그에게 사업이 아니라 음악을 정말 사랑했기에 시작했던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지는 충남 아산. 발인은 6월 1일 오전 6시 30분. 유족으로는 부인 성성례씨와 1남 3녀(한열·효열·효선·정열)가 있다. (02)2072-2010.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19대 국회 개원 1년… 여야 초선의원들 소회

    19대 국회 개원 1년… 여야 초선의원들 소회

    19대 국회가 30일로 개원 1년을 맞았다.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원 300명 시대를 연 19대 국회는 현역 의원 교체율이 62%로 역대 어느 때보다 물갈이 바람이 거셌다. 초선 의원은 148명으로 49.3%를 차지했다. 지난 1년은 국회 선진화법을 운영한 첫해였다. 전기톱·망치, 소화기 분사 장면은 사라졌지만, 대신 ‘식물국회’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2013년도 예산안은 사상 최초로 새해를 넘겨 처리됐고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회 제출 52일 만에 통과됐다. 이런 탓인지 의안 통과율은 11%에 불과해 15대 국회 62.9% 이후 최저치였다. 과시용 입법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국회에 입성했던 초선 의원들은 지난 1년간 어떤 꿈을 꾸고 좌절을 맛보았을까. ■강은희 새누리 의원 “경험 적어 현안 대처 미흡 아쉬워” 새누리당 비례대표인 강은희 의원은 의원 배지를 달기 전까지 맹렬 여성 정보기술(IT) 기업인이었다. 하지만 냉소의 대상이었던 국회의원이 된 직후 IT·과학기술과 창조경제 정책통으로 변신했다. 지난 대선에선 ‘약속지킴이단’ 일원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민생 공약을 위해 뛰었다. 새누리당 초선 의원 모임인 ‘초정회’ 회원인 그는 최근 원내대변인에 선임되기도 했다. 강 의원은 지난 1년을 “제가 겪었던 ‘여의도 정치 불신’에 대해 되짚어 보는 1년이었다”고 자평했다. “막상 국회에 들어와 보니 의원회관에서 의원들과 마주치는 날이 며칠 안 됐다. 쉴 새 없이 의정활동을 하고 지역구에서 뛰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여의도 정치를 불신하는 것도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가 적어서 그런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19대 국회에서 여당이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고 있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다”면서 “여야 지도부가 자주 만나서 상생·화합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보기 좋다. 국회 선진화도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지도부부터 초선까지 한발 한발 움직여 가는 것 아니겠나”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초선이다 보니 정부 정책 비판이나 여야 대립에 매몰되다 보면 대안제시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강 의원은 “법안 하나가 발의되고 통과돼 시행되기까지 만만치가 않더라”면서 “의원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국회에서는 ‘여당 따로, 야당 따로’가 아니라 ‘합심’이 가장 중요하다. 19대 국회에서 이런 바람이 한결같이 지켜졌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정호준 민주 의원 “국회 개혁 추진하는 데 한계 느껴” “국회 개혁을 추진하는 데 한계를 느꼈습니다.” 정호준(서울 중구) 민주당 의원은 2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지난 1년 동안의 소회를 밝히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 의원은 “선거 때는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등 개혁을 약속했지만 국회에 들어와 보니 혼자서는 이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면서 “정치는 팀플레이이고,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숫자 게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8선 국회의원을 지낸 고(故) 정일형 박사의 손자이자 5선의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의 아들이다. 정치인 가문에서 자라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정치 감각을 익혔지만, 직접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보니 머릿속의 생각과 아주 달랐다는 의미다. 초선 의원으로서의 고민도 컸다. 정 의원은 “국회에서는 다선이 먼저인 문화가 있어서 초선 의원들은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당 안에서의 영향력도 다선 의원에 비해 미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당이 바르게 갈 수 있도록 초선 의원들도 목소리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지난 원내대표단에 이어 2기째 원내부대표를 맡고 있는 정 의원은 최근 여야 젊은 초선 의원 5명과 함께하는 모임인 ‘함께 여는 미래’를 결성하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 모임을 통해 여야가 공약한 정치개혁 과제를 추진하는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다. 정 의원은 “할아버지는 정부수립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다했고, 아버지가 민주화와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일조했다면 현재 저에게 주어진 한국 사회의 과제는 양극화 해소와 경제민주화 실현, 한반도의 평화 정착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시대적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29일 TV 하이라이트]

    ■대한민국 행복발전소(KBS1 밤 7시 30분) 개그맨 윤형빈이 독거 할아버지 댁을 찾아가기 위해 할아버지와 통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윤형빈을 빨리 만나고 싶었던 할아버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리고, 그 바람에 윤형빈은 진땀을 흘린다. 수십 년을 고독하게 살아오신 할아버지에게는 한 통의 전화도 낯설었던 건데…. ■천명(KBS2 밤 10시) 원은 민도생이 남긴 세자독살의 결정적 증거인 처방전과 자술서로 진실을 밝힐 희망에 부푼다. 이호는 원의 도주 소식을 듣고 철저히 소윤파의 보상을 받은 것이라 단정, 오해의 골은 깊어만 간다. 장홍달을 통해 모란꽃의 진실을 안 다인은 오해를 풀기 위해 원을 만나러 가려 하지만, 자신을 미행하는 존재를 감지하고 절망한다. ■불만제로 UP(MBC 오후 6시 20분) 향도 맛도 좋은 과일은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해 맛과 건강을 위해 즐겨 먹는 음식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과일을 먹으면서 ‘왜 이렇게 맛이 없지.’하며 고개를 갸웃거린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겉보기에는 탐스럽고 예쁜 과일, 맛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히든 챔피언(KBS1 밤 10시 50분) 핸즈코퍼레이션은 휠 생산업체로는 드물게 모든 공정에 자동화시설을 도입했다. 또한 불량률 제로에 도전하며 휠 검사실을 따로 마련해두고 있다. 그 결과 생산시스템과 품질을 인정받아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업체는 물론 닛산, 폭스바겐 등 굴지의 자동차업체에도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데…. ■건강한 아침(EBS 오전 6시) 평소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등과 허리 근육이 약해지고 척추 주변 근육이 뻐근하거나 뭉치고 결리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 증상을 방치하게 되면 척추가 비틀어지고 목, 어깨 통증은 물론 골반과 다리까지 휘게 된다. 긴장으로 뭉쳐진 척추 주변의 근육을 풀어주고 휘어진 척추를 바로잡는 운동법을 소개한다. ■리얼대탐험(OBS 밤 9시 50분)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초기 선교사들과 탐험가들은 콩고분지에 사는 희귀한 수중괴물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오늘날 이 지역에 사는 피그미족은 목이 가늘고 길며, 크기는 코끼리만 한 동물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모켈레 므벰베라는 동물이다. 정말정글 어딘가에는 아직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괴물이 존재하는 것일까.
  • ‘동대문’에 열린 교육 신천지… 자녀 위한 강남行은 참으세요

    ‘동대문’에 열린 교육 신천지… 자녀 위한 강남行은 참으세요

    “동대문구를 ‘교육특별구’로 만들어 자녀 교육 때문에 동대문을 떠나는 주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27일 “좋은 대학들이 가까이 있어서 시도한 사업인데 수혜를 받는 학생뿐 아니라 가르치는 대학생들도 보람을 느낀다고 입을 모아 일거양득”이라며 운을 뗐다. 2010년 취임 초부터 교육에 구정 역량을 집중해온 그가 최근 멘토링 교육봉사단 ‘드림스케치’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구 직원 및 구민들을 대상으로 다음 달 30일까지 모집하는 드림스케치 멘토 100명은 7월부터 12월까지 교과목, 예체능 분야, 진로 상담 등에 대해 멘토링 활동을 한다. ‘드림스케치’는 지난해 경희대, 서울시립대, 한국외국어대 등 104명의 멘토와 지역 초·중학생 425명의 멘티가 만나는 학습멘토링으로 좋은 반응을 얻자 확대한 것이다. 교육지원 분야에 대한 서울시 인센티브사업 평가에서 2010~2011년 장려구, 2012년 우수구를 꿰찬 동대문구는 올해 교육경비보조금 중 가장 많은 42억원을 투입해 46개 초·중·고교생들의 학력 신장을 위한 167개 프로그램 운영과 영어 수월성 교육,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구민 사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을 강화하는 데 애썼다. 또 인재 양성을 위해 취임 이후 3년간 6억 5000만원의 기금을 조성하고 고교 입학생과 저소득층 성적우수자 150명에게 1인당 200만원까지 2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유 구청장은 “학력신장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 지원,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한 학교 시설 개선, 교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예산 지원을 통해 학교와 교사, 행정기관이 삼위일체로 학생들의 교육을 돕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대문구의 재정자립도가 25개 자치구 중 14번째인데 구의 교육예산은 자립도 대비 1위, 총액 기준으로는 강남구에 이어 2위다. 교육 문제는 단기간에 승부를 볼 수 없으니 꾸준히 더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유 구청장의 목표는 ‘동대문만의 특색있는 교육’을 살리는 것이다. “단순히 학교 성적만 올리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학력 신장과 함께 인성교육도 제대로 받는 등 전인적인 인격체로 거듭나도록 돕고 싶다. 가령 지역 모든 학생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 밑에서 인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1대1 결연하는 식의 아이디어도 나올 수 있다”고 끝을 맺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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