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할아버지
    2025-08-19
    검색기록 지우기
  • 여성가족부
    2025-08-19
    검색기록 지우기
  • 가왕
    2025-08-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909
  • [2014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전당포/김아로미

    [2014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전당포/김아로미

    때 현대 곳 한적한 거리/ 전당포 안 등장인물 남자 40대 여자 30대 후반, 남자의 아내 노인 전당포 주인 손님 1 손님 2 제1장 배경은 한적한 거리이다. 무대에는 사막(絲幕)이 내려와 있고 사막(絲幕) 뒤로 상점의 흐릿한 불빛이 한번 반짝이다가 꺼진다. 남자와 여자가 무대 오른쪽 끝에서 등장한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걷는다. 여자의 시선은 앞을 보고 있으나 초점이 흐릿하다. 남자 길을 잃은 것 같지? 여자 무엇이 보이는지 자세히 말해 봐요. 내가 당신보다 훨씬 길눈이 밝잖아요. 남자 방금 들어선 골목 입구에는 작은 어린이집이 하나 있었지. 아까도 그랬던가? 여자 노란색 미끄럼틀이 있던가요? 남자 글쎄 노란색이었던가. 우리가 이미 지나온 길이지? 여자 아뇨. 이제야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아요. 그곳은 아주 오래된 곳이에요. 어렸을 때 몰래 담을 넘어 들어가선 친구들과 원형 그네를 타고 놀았죠. 남자 원형 그네? 여자 동그란 새장같이 생긴 그네 말이에요. 네 명이 들어가서 두 명씩 마주보고 앉으면 그 안이 꽉 차곤 했죠.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지 열에 여덟 번은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그네를 밀어야 했어요. 남자 그 어린이집은 이제 막 지어진 새 건물이던데. 물론 어두워서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말야. 여자 그네를 밀다가 심술이 나면 정글짐에 달려가 거꾸로 매달렸어요. 모든 게 거꾸로 보이곤 했죠. (사이) 아주 재미있었어요. 해본 적 있어요? (남자, 고개를 젓는다) 한참을 매달려 있으면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왔어요. 지나가는 발만 봐도 그게 아버지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었죠. 왜냐하면 아버지의 구두는 아주 특별했거든요. (걸음을 멈춘다. 남자 또한 여자가 멈추자 함께 멈추어 선다) 목구멍이 간질거려요. 남자 감기에 걸리면 고생이야.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여자에게 둘러준다.) 여자 아뇨.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단 말이에요. 그게 갈색이었던가, 검은색이었던가. 남자 남성용 구두는 다 비슷하게 생겼지. 여자 아녜요. 그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구두였어요. 남자 그나저나 여기는 우리가 찾던 길이 아닌 것 같아. 점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 여자 좀 더 밝은 곳으로 나를 인도해 줘요. 그러면 뭔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두리번거리다가 왼쪽으로 퇴장.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들린다. 사막(絲幕) 뒤에서 갑자기 조명이 밝아지더니 한 남자의 실루엣이 보인다. 그는 천천히 움직이면서 무언가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몇몇 사람들의 실루엣도 보이지만 그들은 거의 움직임이 없어 마치 물건처럼 보인다.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사막(絲幕) 뒤의 조명이 천천히 어두워진다. 두 사람, 다시 오른쪽으로 처음처럼 입장한다. 남자 다시 그곳이야. 여자 정말요? 남자 응. 모든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그 흔한 택시 한 대 지나다니지 않는군. 여자 원래부터 이 동네는 차가 잘 다니지 않아요. 그래서 아버지와 나는 꽤 오래 걸어 집으로 돌아가곤 했어요. (사이) 역시 여전하군요.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에요. 남자 당신 말이 맞다면 그 분식집은 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여자 분식집이 아니라 문방구. 남자 그러니까 떡볶이를 파는 그 문방구 말야. 여자 무엇이 보이는지 내게 자세히 말해 봐요. 남자 우리가 들어온 골목 입구에는 어린이집이 하나 있었고. 여자 노란색 미끄럼틀이었나요? 남자 어두워서 보지 못했어. 여자 당신은 너무 쉽게 지나치는 경향이 있어요. 그건 중요한 문제예요. 남자 (여자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는 듯) 날씨가 몹시 쌀쌀해. 여자 목도리를 다시 가져가도록 해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여자가 남자의 얼굴을 더듬거린다. 여자 캄캄해서 그런지 이 정도도 잘 보이지가 않네요. 남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커튼 뒤의 불빛 하나가 유난히 반짝 들어온다. 사막(絲幕) 뒤에 있던 남자의 그림자는 사라진 뒤다. 남자 (사이) 요즘엔 깔끔한 게 제일이지. 떡볶이도 마찬가지야. 당신이 그렇게 말하던 그 떡볶이, 지금 먹어보면 오히려 실망만 클걸. 나도 어렸을 적 먹던 삼양라면 맛을 잊지를 못하지. 하지만 정작 슈퍼에 가서 사오는 건 나가사끼 짬뽕이라고. 여자 사실 그건 딱히 맛있지는 않아요. 남자 당신은 나가사끼 짬뽕이 아니라 너구리를 더 좋아하지. 여자 떡볶이 말예요. 남자 그래.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어. 여기는 (둘러본다) 아무것도 없어. 여자 떡볶이는 상관없어요. 그저 당신과 함께 와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바로 이곳을 말예요. (사이) 좀 더 밝을 때 왔더라면 흐릿하게라도 볼 수 있었을 텐데. 남자 추억이 특별해지는 건 마음에서 잊고 났을 때뿐이지. 여자 그래요. 하지만 나처럼 잊어버릴 일만 남은 사람에게 무엇을 추억한다는 건 말예요.(남자, 말을 자른다) 남자 지금 당신 입장에선 이게 꽤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아. 내가 그걸 이해하려 무척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아줬으면 해. 그치만 안타깝게도 여기에 당신이 찾고 있는 거라곤 없어. 이미 우린 같은 자리를 네 번이나 뱅뱅 돌고 있다고. (여자의 손을 잡는다) 꽁꽁 얼었군. 여자 우린 같은 자리를 헤매고 있는 게 아녜요. 당신이 너무 쉽게 지나쳐 버리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라고요. 예를 들면…. (주위를 천천히 둘러본다. 남자 또한 여자의 시선을 따라 둘러본다.) 여자는 남자보다 먼저 그 불빛 가까이로 다가간다. 사막(絲幕)을 손으로 건드린다. 여자 들어가서 물어봐요. 남자 뭘 말이야? 여자 이런저런 것들을요. 남자 그러니까 이런저런 것들이라면? 여자 여기가 입구네요. 제2장 여자가 불빛 바로 앞으로 다가가서 손짓한다. 남자는 하는 수 없이 여자를 따른다. 무대 전체에 내려와 있던 사막(絲幕)이 서서히 올라간다. 사막(絲幕)이 올라가고 하나의 막이 더 설치된 무대의 바닥에는 중앙이 동그랗게 뚫린 철문의 그림자가 있다. 그곳에 노인의 머리통이 어른거린다. 여자 낯설지가 않아요. 뭔가 기억이 날 듯도 한데. 남자 우리 앞에 보이는 건 철문뿐인걸. 아주 단단히 닫힌 것 말이야. 여자 (중얼거리며) 우리 앞에 보이는 건 철문뿐인걸. 남자 아무도 없어. 여자가 막에 손을 뻗으려고 하는 것과 동시에 막 사이로 한 노인의 손이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도리어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노인 (손을 흔들며) 내 놔! 물건부터 내놓고 시작하지. 남자 뭘요? 여자, 노인의 얼굴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 빤히 본다. 노인 곧 문을 닫을 시간이야. 딱 1분 주지. 1분 안에 물건을 팔아봐. 남자 저희는 단지 길을 잃었기 때문에. 노인 다들 그렇게 핑계를 대곤 하지. 처음부터 여길 찾아올 생각은 아녔어요. 어르고 달래야 그제야 슬쩍. 그런 거 다 생략하자고. 혹시 휴지가 필요한가? 그렇다고 고해성사를 하라는 건 아니야. (여자를 슬쩍 보더니) 기다려. 영 귀찮지만 말이야. 여자 어디로 갔죠? 남자 웬 헛소리를 지껄이는군. 그냥 돌아가자고. 여자 역시 우리 앞에 보이는 건 철문뿐이 아니었어요. 남자 여전히 철문뿐이야. 그리고 이 철문 뒤에는 이상한 노인이 하나 있어. 여자 무슨 물건을 내놓으라는 거죠? 남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우리는 길을 물으러 온 것뿐이니까. 여자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어요.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를 생각해 봐요. 남자 당신이 그까짓 떡볶이를 꼭 먹고 싶다고 해서 온 거지. 여자 정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당신 먼저 돌아가요. 노인의 그림자가 다시 어슬렁거린다. 노인 (여자에게 휴지를 건넨다) 아직 필요 없나? 남자 여기 주소를 알 수 있을까요. 지나다니는 택시도 없고, 전화로 부르려고 해도 이곳이 어딘지 설명할 수가 없군요. 노인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외면한다) 여기는 보성당 골목이죠. 남자 보성당이 어디죠? 노인 이미 예전에 없어졌지. 그렇지만 보성당을 기억하는 택시 기사 한 명쯤은 있을 거야. 여자 생각났다. 보성당! 노인 (반가워하며) 내가 말했지. 보성당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거라고. 비록 택시 기사는 아니지만 말야. 여자 아버지가 졸업선물로 손목시계를 사주셨죠. 노인 좋은 아버지를 뒀군요. 여자 벽엔 커다란 괘종시계가 빼곡히 걸려 있고 유리장 속에는 딱딱하고 달콤해 보이는 보석들이 잔뜩 진열이 되어 있었죠. 그 보성당 이름을 어떻게 잊었지? 남자 모든 걸 기억하며 살 순 없는 거니까. 여자 좋겠군요. 당신은 아직 보고 기억할 것들이 많아서. 노인 잠깐 들어오시는 건 어떨까요? (남자에게) 필요하신 건 주소란 말이죠? 남자 보성당 골목이 이곳 주소 아닌가요? 노인 보잘것없이 보여도 저도 명함이란 게 있습니다. 쓸 일이 없어 그렇지. 서랍 어딘가에 있겠죠. 난 무엇이든 버리는 법이 없거든요. (손짓하며) 이쪽입니다. 철문이 열리는 육중한 소리가 들리고 남겨졌던 하나의 막이 천천히 올라가자 물건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는 전당포 내부가 드러난다. 정면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물건의 크기에 알맞게 제작된 조립식 진열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열장은 각각 유리로 된 문이 달려 있어 그 내부를 볼 수 있다. 무대 중앙에는 작은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잡다한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무대의 오른쪽에는 스탠드가 놓인 노인의 사무용 책상과 의자가 하나 덩그러니 있다. 노인, 그들을 테이블 앞 소파로 안내하고는 책상 서랍을 뒤지기 시작한다. 서랍을 빼내어 뒤집어서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몽땅 바닥으로 탈탈 턴다. 바닥에는 구겨진 영수증과 편지봉투, 정리되지 않은 크고 작은 메모지와 아이스크림껍질, 비닐봉지 따위가 쏟아진다. 여자 (유리장을 더듬거리며) 여기 안에 이 작고 반짝이는 건 뭐죠? 남자 커다란 유리구슬이네. 여자 스노우볼. 뒤집어서 마구 흔들어 제자리에 놓으면 천천히 눈이 내려오는 것. 남자 참 난잡하게 물건들을 진열해 뒀네. 아무런 체계도 없이 말이야. 여긴 웬 머리고무줄 하나가 덩그러니 있군. 여자 기분이 이상해요. 남자 맞아. 하는 것 없이 지치는 날이군. (노인을 흘끗 본다) 아무래도 저 노인, 몹시 오래 걸리거나 아예 쓸모가 없을지도 몰라. 그저 잠깐 쉬었다가 나가도록 하자구. 여자 (말없이 남자를 이끌고 걸음을 옮긴다) 여기엔요? 남자 구두 한 짝이 들어있군. 여자 (들여다보며) 희미하게 볼 수 있어요. 남자 흔해빠진 남성용 구두. 여자 아버지의 것과 비슷한 것 같아. 남자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 남자 구두는 다 비슷비슷하니까. 여자 아버지의 구두는 단 하나밖에 없는…. 맞아! (말을 멈춘다) 남자 무슨 일이야? 여자 아버지와 함께 여기에 온 적이 있어요. 노인, 그 말을 듣고 물건을 뒤지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일어나 여자 쪽으로 다가온다. 갑자기 모든 조명이 꺼진다. 여자의 목소리만 들린다. 동시에 1장에서 들렸던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천천히 들려온다. 여자 여기는. 노인 전당포지요. 유리장 속에서 작은 조명이 반짝 켜진다. 오뚝이 모양을 하고 있는 알람시계이다. 무대 가운데에 핀 조명이 떨어지고 무대 끝에서 손님1이 걸어 들어온다. 손에는 진열장에 진열되어 있는 것과 똑같은 알람시계가 들려져 있다. 손님1 이런 것도 받아 주시나요? 어디가 고장 난 모양인지 약을 갈아도 작동되지 않아요. 하긴 요새 누가 알람시계를 쓰나요. (머리를 긁적인다) 그렇지만 담보가 될 만한 것이 물건에 대한 값진 기억이라고 하셔서 고민 끝에 가지고 왔습니다. 제게 잠시만 시간을 내주세요. (손을 내저으며) 아뇨. 휴지는 필요 없어요. 이 시계는 제겐 정말 의미가 컸어요. 이 시계만 있으면 다른 장난감은 필요 없었어요. 노인이 무대 위로 등장해 손님1 옆에 나란히 선다. 그러고는 손님1을 조금씩 조명 밖으로 밀어낸다. 노인 나는 다른 장난감은 필요가 없었어. 이 녀석만 있으면 충분했거든. 손님1 (사이) 이 녀석의 몸뚱이가 볼록하고 통통한 것이 이걸 이불 속에서 끌어안고 있으면 외롭지 않게 잠들 수 있었어요. 어머니는 (노인이 말을 자른다) 노인 나의 어머니는 귀가가 매일 늦었지. 그래서 (손님1에게 어서 이야기하라고 재촉한다.) 손님1 이 녀석의 배에다가 (노인이 동시에 말하기 시작한다.) 노인 귀를 대고 있으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나 혼자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지. 손님1 (노인에게)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 노인 (손님1이 들고 있는 알람시계를 빼앗는다) 여기서 똑딱, 하면 나도 똑딱. 똑딱 똑딱. 똑딱? 똑딱! 손님1 저기요. 이건 제거예요. 노인 (정색하며) 이게 네 거라고? 확실해? (알람시계의 버튼을 누르자 까르르 웃는 소리가 난다) 손님1 약도 들어 있지 않은데 어떻게 된 일이죠? 노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튼을 누른다. 까르르 까르르. 그것을 들으면서 따라 웃는다. 손님1 그래서 값은 얼마를 쳐주신다는 거죠? 조명이 꺼졌다 다시 유리장 속의 조명 몇 개가 차례대로 빛난다. 손님1 퇴장. 남자 요즘에도 이런 곳이 남아 있군요. 쓰던 물건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곳 말이에요. 여자 쓰던 물건을 맡기고 돈을 얻는다니 쓸쓸해지네요. 남자 그 돈을 다시 새로운 물건을 사는 데 쓰고. (사이) 별 다를 것 있나? 노인 아무 물건이나 받지는 않지요. 그 안에 기억할 만한 것이 담겨 있어야 해요. 여자 모든 물건에는 기억할 만한 것들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노인 그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지. 그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여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건을 다시 찾으러 오겠군요. 노인 이곳을 둘러봐요. 이 수많은 물건들을. 지금까지 물건을 되찾으러 온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지요. 여자 어째서요? 노인 요즘 사람들은 제 자신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니까요. 자신이 이곳에 들렀었다는 것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걸요. (남자를 본다) 여자 물건을 되찾으러 왔다는 사람이 맡긴 물건은 뭐였나요? 노인 사실 되찾아갔다고 볼 수는 없지요. 용케도 자신이 무엇을 맡겼는지는 기억해냈지만 그 사람이 찾아간 건 엉뚱하게도 다른 사람의 물건이었거든. 비슷하게 생긴 다른 사람의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집어 들기에 그냥 보고만 있었지. 여자 얼마 전에도 남편과 함께 식당에 갔다가 다른 사람이 제 신발을 신고 돌아가 버려서 남의 신발을 신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남자 똑같은 브랜드, 똑같은 사이즈의 신발이었으니까. 여자 그래도 그건 내 신발이 아니죠. 남자 식당 주인이 결국 신발값을 물어주었으니 손해 본 것은 아니지. 그나저나 제 기억에 전당포라고 하면 아주 캄캄한 내부에 차갑고 단단해 보이는 철창뿐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군요. 노인 이전에 전당포에 와 본 적이 있소? 남자 아뇨. 그저 전당포라고 하면 떠올려지는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노인 그렇지만 기억 속 전당포라는 말을 했지요. 남자 영화나 티브이 혹은 소설 속에도 전당포는 종종 등장하곤 하니까요. 말꼬리를 잡으시는 군요. 여자 그렇지만 여보. 여기에도 아주 튼튼한 철창이 곳곳에 있어요. 남자 아니, 철창이라곤 없어. 아, 그렇지. 당신은 여기가 확실하게 보이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당신이 철창이라고 본 것은 아주 얇은 유리문이야. 여자 제대로 봐요. 당신은 너무 쉽게 지나치고 단정하려고 들잖아요. 남자 내가 지금 눈앞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야? 노인 아주 영리한 아가씨군. 남자 (비아냥거리며) 아가씨라고하기엔 조금 많이 늙었지요. 여자 제가 이곳에 왔던 때에는 아주 어린 꼬마였을 거예요. 아버지가 무언가를 두런두런 이야기하시고 저는 이곳을 둘러보는데 정신이 빠져 있었어요. 노인 아, 기억이 나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왔던 꼬마 숙녀. 여자 저를 기억하세요? 저희 아버지도요? 노인 난 뭐든 잊어버리는 법이 없지. 무대 전체, 조명이 꺼진다. 유리장의 불빛이 하나씩 차례대로 들어온다. 천천히 깜빡깜빡거리는 조명. 그러다 다시 무대 전체가 밝아진다. 여자 저희 아버지가 무엇을 파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노인 물론이지. 그렇지만 그것을 돌려줄 수는 없어. 본인이 아니면. 여자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노인 안타깝군. 인상이 아주 좋은 양반이었는데. 남자 우리는 택시를 부르러 여기에 온 거야 여보. 노인 택시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데에도 그렇게 시간이 걸리다니. 여자 요새 자꾸 깜빡하곤 하더라고요. 노인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거지. 남자 내가 잊어버린 말은 택시가 아니야. 그렇지만 그냥 넘어가도록 해. 내가 제대로 말 한마디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곳에 오고부터 당신이 아주 수다스럽게 내 정신을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자 모든 게 내 탓이군요. 차라리 혼자 오는 것이 더 좋을 뻔했어요. 당신은 내가 이 동네를 찾아오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했어요. 남자 당신이 꼭 이 동네에 있는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했으니까. 내가 비싸고 좋은 선물을 사주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였지. 노인 오늘이 어떤 특별한 날인가? 생일? 결혼기념일? 프러포즈를 한 날? 여자 제 생일은 오늘이 아니라 이 달의 마지막 날이에요. 남편이 바빠 오늘밖에는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요. 남자 그 귀한 시간을 이곳에서 낭비하는 것보다는 밖에 나가서 그 떡볶이 집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소원이라고 했잖아. 여자 내게 중요한 건 떡볶이가 아니라 아버지와의 추억을 다시 새기는 일이에요. 제가 누누이 말했잖아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고 말예요. 사진을 들여다보려고 해도 눈앞이 흐릿하기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다고요. 노인 눈은 언제부터 말썽이었지? 여자 몇 년 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이제 선명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건 절 불안하게 만들어요. 예를 들면, 초록색이란 것을 떠올리려고 해도 쉽지 않아요. 이제 제 눈으로 볼 수 있는 초록이란 아저씨가 입고 있는 짙은 쑥색의 것밖에 없지요. 그럴 때는 기억 속의 초록을 떠올리는 데 열중해요. 신호등의 눈이 부신 녹색, 이제 막 뜨거운 물에 데친 시금치의 색깔 같은 것. 남자 여보, 이 분이 입고 있는 건 쑥색이 아니라 네이비색이야. 아주 짙고 검은 파랑. 노인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라네. 하지만 이건 쑥색이 맞아. 내가 쑥색을 좋아하기 때문에 쑥색인지 아닌지는 내가 제일 잘 알 수 있어. 남자 어르신, 전 색맹이 아닙니다. 노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남자 그건 분명한 파랑색이니까요. 노인 당신의 기억 속에서 파랑색과 녹색의 체계가 멋대로 흔들리고 섞여버린 거라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내게 설명할 수 있지? 남자 그렇담 어르신 말이 옳다는 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죠? 노인 말했듯이 난 뭐든 잊는 법이 없어. 이 옷을 산 지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분명히 나는 쑥색의 옷을 골랐고 종업원은 내게 쑥색의 옷이 아주 잘 어울리시네요, 하고 말했지. 그리고 당신의 부인이 다시 한 번 말해 주지 않나. 남자 말해 봐야 내 입만 아프지. 그나저나 혹시 잊으신 건 아니겠죠. 제가 사장님께 원하는 건 이곳의 주소가 적힌 종이 쪼가리인 것을요. 여자 여보, 제발 그 퉁명스런 태도 좀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계속 이럴 거면 혼자 돌아가도록 해요. 나는 이곳에서 꼭 찾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건 내게 무척 의미 있는 일이지만 당신에게는 시간낭비일 뿐이라면 말예요. 남자 그저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이 주소를 묻기 위해서였다는 걸 당신이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 말이야. 노인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잠시 손님 대접을 했을 뿐이야. 남자 저희는 무엇을 팔러 온 게 아닙니다. 노인 확실해? 그 말을 꼭 기억해 두도록 하지. 노인은 다시 책상으로 가 서랍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때 누군가 문을 급하게 두드리기 시작한다. 노인은 그것을 무시한다.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손님2 사장님! 사장님 안 계세요? 안에 계시는 거 다 알아요. 이번에는 진짜예요. 이번에는 정말 굉장한 것을 가지고 왔어요. 들어보세요. 듣고 계세요? 제3장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 가운데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온 손님2가 등장한다. 그는 가방을 옆에 내려다 놓고 물건 하나를 꺼낸다. 노인은 무대 왼쪽의 책상에 앉아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소파에 앉아서 그를 쳐다보고 있다. 손님2 이 물건으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우선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것부터 알아 두셔야 합니다. 아주 가치 있는 물건이죠. 여기 정중앙에 있는 이 마크가 보이시죠? 이건 88올림픽을 기념하여 캐논사에서 스페셜 에디션으로 내 놓은 겁니다. 1988년 그때를 기억하시죠? 굉장했죠. 어마어마하게 넓은 잔디밭에서 굴렁쇠를 굴리던 그 소년 말이에요. 노인 그 소년이 자넨가? 손님2 아뇨. 그건 아니에요. 노인 자네는 또 내 시간을 뺏고 있어. 손님2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이 카메라는 제가 어렸을 때에 할머니께서 주신 물건이지요. 할머니는 일수쟁이셨는데 돈을 제때에 갚지 못하면 대신 값나가는 물건을 받아오시곤 했어요. 노인 (하품을 한다) 손님2 이 물건의 진짜 가치에 대해 아직 말하지 못했습니다. 이 카메라는 한 여인에게 정말 귀중한 물건입니다. 이 카메라의 주인은 미군부대 앞에서 몸을 팔던 아주 어린 여자였지요. 몸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던 순수한 소녀 말이에요. 상상해 보세요. (노인의 눈치를 슬쩍 본다) 그 소녀에겐 정인이 있었죠. 그 사람이 소녀에게 선물한 카메라예요. 노인, 기지개를 켠다. 그러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장부를 뒤적이는 등 딴짓을 한다. 손님2 자신의 정인이라고 생각한 남자가 주고 간 카메라를 일수쟁이에게 빼앗기게 된 거죠. 어쩌면 돈 대신 이 카메라를 내어준 것은 이미 그 소녀는 이곳에 사랑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정말 슬픈 이야기 아닌가요? 제 애인은 이 이야기를 듣고 울던걸요. 노인 그 일수쟁이는 정말 비정하군. 그런데 말이야. 자네 애인이 이야기를 듣고 울었단 말이지. 손님2 여자들이란 눈물이 많죠. 노인 그것은 이미 그 여자에게 팔렸군. 손님2 지금 제 손에 들려 있는데요? 노인 이 봐, 그 카메라가 자네의 기억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손님2 누군가의 사연이 담긴 물건이잖아요. 노인 전해 오는 이야기일 뿐이지. 차라리 그 사진기로 찍은 사진이나 가져오면 몰라. 손님2 요즘에 누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요. 저는 그렇게 사진을 잘 찍는 편도 아니고요. 노인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나. 나는 드라마틱한 사연을 원하는 게 아니야. 그런 사연이라면 차라리 방송국에 제보하라고. 자네의 것을 가져오란 말이야. 자네의 기억, 추억거리가 담긴 물건들 말이야. 손님2 그치만 저는 그렇게 물건을 오래 쓰는 성격도 아니고 평소 건망증도 심하기 때문에 그럴 만한 것이 없어요. 노인 그런데도 자꾸 이곳에 찾아오는 이유가 뭐야. 돈이 급하면 나가서 은행을 찾아봐. 사채를 쓰든지 장기라도 팔든지. 손님2 할아버지가 자꾸 이렇게 퇴짜를 놓으시니까 제 삶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종일 멍하고 우울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노인 할아버지? 이 봐. 고해성사는 이곳에서 하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는지. 이제 돌아가게. 내 인내심은 바닥이 났어. 손님2 아직 물건이 많이 남았어요. 제가 모조리 긁어 온걸요. 노인 영업은 끝났어. 이 손님들이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지. 노인은 손님2를 데리고 무대를 퇴장하고 남자는 여자의 손을 끌고 소파에서 일어서려고 하지만 여자는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여자 여보, 저 남자는 담보할 만한 기억이 하나도 없대요. 남자 그럴 수도 있지 뭐. 여자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요. 우리에게도 담보할 만한 기억쯤은 있는 거겠죠? 남자 오늘따라 무척 감상적이군. 아무리 생각해도 저 노인은 수상해. 당신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다는 게 말이 돼? 여자 저는 분명히 기억이 나요. 남자 난 저 노인을 말하고 있는 거야. 우린 저 사람에게 휘둘리고 있어. 노인, 다시 무대에 등장한다. 진열장에서 머플러 하나를 꺼내어 목에 두른다. 남자는 그것이 신경 쓰인다는 듯 쳐다본다. 남자 자, 알아들었지?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여자 이제 막 아버지의 물건을 찾아보려고 하는 중이란 말예요. 남자 어차피 당신이 되찾을 수 없는 물건이야. 여자 찾을 수도 있어요. 남자 여기선 아무 물건이나 당신 아버지 것이 될 수도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자, 저기 있는 저 구두 한 짝이 당신 아버지의 구두라고 하자고. 당신은 그저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이겠지. 맞아요, 아버지의 것이 확실해요 라고 말할 거야. 아니면 저기 저 덩그러니 진열된 만년필이 당신 아버지 것이라고 한다면 말이야. 여자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말아요. 노인,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가 흘러내려 바닥에 질질 끌린다. 남자가 움찔한다. 남자 (사이) 여보. 지나간 건 지나간 거야. 중요한 건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야. 여자 그래요 오늘. 내게 오늘은 제대로 볼 수 없는 것들로만 가득해요. 노인은 머플러를 다시 진열대에 곱게 접어 둔다. 그러고는 서랍을 뒤져 장부 하나를 가지고 온다. 노인, 두 사람 가운데에 선다. 노인 (장부를 여자에게 건네며) 이 전당포를 개업하고부터 지금까지 써 왔던 것이니 아버지의 이름이 분명 여기에 적혀 있을 거야. 한번 찾아보시게. 남자 아뇨. 저희는 이제 가 보겠습니다. 잊으신 게 아니라고 하신 그 주소는 이제 필요 없을 것 같군요. 그리고 또 잊으신 게 아니라면 제 아내는 앞이 잘 보이지 않죠. 여자, 소파에 앉아서 장부를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잘 보이지 않는 듯 눈 바로 앞에다 가져다 대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것에 열중한다. 노인 굳이 주소가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해서 일부러 기다리고 있던 거였지. 자네는 이미 이곳에 온 적이 있지 않나? 남자 저는 이곳에 처음 왔습니다. 길을 잃었다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노인 길을 잃었다는 건 확실한가? 자네가 이곳을 찾아낸 건 아닌가? 남자 이곳을 발견하고 저를 이끈 것은 제 부인이었죠. 노인 그렇지만 자네 부인의 눈은 영 말썽이지. 남자 말장난은 이제 그만 하세요. 노인 여기에 맡긴 물건이 하나도 없다는 걸 확신할 수 있나? 남자 네. 물론입니다. 노인 잊어버린 것은 아니고? 남자 잊어버린 것이라면 다시 기억할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 아닐까요. 노인 그래.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도 그렇지. 돈을 받고 기억을 버리는 것. 여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장부를 들고 뒤의 유리장을 기웃거린다. 남자의 시선이 여자를 살핀다. 여자, 결국 유리장 사이로 들어간다. 남자가 그것을 쫓아가려고 하는데 노인이 남자의 팔목을 잡는다. 남자 (노인에게) 왜 이러는 겁니까. 여보, 어디로 가는 거야. 이리 나와. 여자 (목소리) 걱정 말아요. 혼자 찾을 수 있어요. 남자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여자 장부에서 분명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본 것 같아요. 적혀진 번호에 따르면 이쯤에. 여보, 여긴 아주 많은 물건이 있어요. 남자 따라서 들어가 봐야겠으니 이것 좀 놓으시죠. 노인 저 안은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비좁아서 둘은 들어갈 수 없어. 한 명이 들어가려면 한 명이 나와야 하고. 한 명이 나오기 위해선 다른 한 명이 들어가서는 안 되지. 두 명이 한꺼번에 들어간다면 둘 다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고. 저 안에선 길을 잃을 염려가 없으니 안심해. 남자 그 안은 캄캄하지 않아? 여자 캄캄해요. 그래도 보일 건 다 보이는걸요. 노인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지. 연도별로 작은 구멍도 없이 완벽하게. 남자는 노인의 손을 뿌리치고는 소파에 가서 앉는다. 남자 대체 이 따위 것들을 사들이는 이유가 뭡니까? 노인 그야 가치가 있으니까. 남자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죠. 물건에 담긴 고유한 기억요? 노인 그렇지. 남자 그렇다면 아까 그 남자의 물건은 왜 값어치가 없다고 돌려보내신 거죠? 노인 불순물이 없는, 아무와도 공유되지 않았던 기억만이 내게 가치가 있지. 남자 이를테면 최초의 고백. 노인 그렇지. 남자 그런 것들을 돈을 주고 사신다고요. 그러니까 대체 왜요. 노인 원하는 것들만을 기억할 수 있는 거야. 프레임 안에 새로운 필름을 끼워대는 것처럼 나는 다채로운 기억 속에서 숨 쉰다고. 매일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말이야. 남자 남의 것들이잖아요. 당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타인들의 것들. 노인 깊숙이 숨겨져 있던 기억들이야. 내가 아니었으면 제 자신이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을 것들. 남자 순진하시군요. 노인 무슨 뜻이지? 남자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내재되어 있던 기억을 샀다. 당신이 사 모은 것들은 모두 거짓말이에요. 당신은 사람들에게 속은 거라고요. 여자 (목소리) 당신 거기 괜찮아요? 남자 괜찮아. 노인 난 여태껏 한 번도 속아본 적이 없어. 남자 자신이 기억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기억이라면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게 거짓된 말들을 지어낼 수도 있죠. 노인 나는 항상 앞뒤 정황과 맥락을 기억하고 있지. 아까 그 남자도 내게 거짓말을 하려던 걸 귀신같이 잡아낸 걸 보지 못했나? 남자 당신이 사들인 완성된 기억이라는 것. 그건 원래 없었던 것일 수도,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어요. 당신이 끼어들어서 만들어 낸 거겠죠. 노인,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손바닥 위에 올린다. 노인 한 남자가 가져온 머플러지. 냄새를 맡아 보겠나? 아직도 그 여자의 화장품 냄새가 나. (남자는 거부한다) 이게 내 손에 쥐어져 있으면 내 눈 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장면이 있지. 첫사랑과 동정을 떼어버린 날. 그녀의 목을 감싸고 있던 이 부드러운 머플러를 천천히 풀어내는 장면. 그 여자의 머리칼보다 더 부드러운 머플러. 이제 그녀는 없고 그날의 기억들은 이 머플러의 부드러운 결 틈틈이 저장되어 있지. 하나도 막히지 않고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어. 남자, 노인에게 다가가서 머플러를 만져 보려다가 주저한다. 무대의 조명이 한순간에 꺼진다. 진열장에서 차례로 조명이 깜빡거린다. 손님 1, 2가 무대 위로 천천히 등장한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여자 (목소리) 여보! 내가 찾은 것 같아요. 진열장의 깜빡이는 조명의 속도가 느려지더니 꺼진다. 무대 뒤로 사라졌던 여자가 진열장 사이로 걸어 나온다. 여자,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린다. 네 사람은 어둠 속에서 서로를 찾는 듯 더듬으며 서성거린다. 노인은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다. 진열장 사이로 빛이 쏟아진다. 이제 네 사람은 빛 사이를 헤매 다닌다. 노인 번호 7218. 남성용 정장구두. 남자 머리카락의 엉킴. 여자 딱 맞으면 안 돼. 노인 4684 다시 1번. 한 칸씩 밀려났군. 여자 오른발이 더 커야 해. 남자 축축한 곰팡이 냄새. 여자 왼쪽 구두의 앞코는. 노인 여기도 구멍. 남자 캄캄한 방. 여자 좀 더 밝은 빛이 필요해요. 남자가 서성거리다가 손님1과 부딪혀 넘어진다. 알람시계의 까르륵 소리가 들린다. 손님 1과 2가 동시에 말한다. 손님1 한 번도 필요하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일분이라도 늦게 왔으면. 손님2 그 소녀. 아, 내가 전에도 말한 적 있나요? 손님1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면서, 오락실에서 서둘러 뛰어 오면서, 골목 어귀에서 떨어진 꽁초나 주워 모으면서. 손님2 떠난 정인을 기다리는데 카메라라니요. 이건 처음 말하는 거죠? 손님1 그랬나. 손님2 그랬었지. 손님1 그랬었지. 손님2 그랬나. 말들이 어지럽게 뒤섞인다. 등장인물들 때로는 동시에 말하기도 한다. 여자와 남자는 어둠 속을 더듬으며 서성거린다. 노인은 여자가 떨어뜨린 장부를 주워 자세히 들여다본다. 진열장이 제멋대로 천천히 깜빡인다. 노인 여기가 뻥 뚫렸잖아. 여자 뽕따. 꼭다리만 드시고는 했는데. 남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골목에서 노인 만년필 뚜껑. 여자 어금니로 살살. 남자 몇 번이나 머플러는 노인 시집. 여자 잔뜩 찌푸려지면 남자 질척한 바닥에 손님1 (남자에게) 혹시 저 모르세요? 여자 깊게 파인 주름 때문에 남자 미끄러지는데. 손님2 악! 노인 티켓. 여자 너무 진해서 손님1 (여자에게) 내가 어디까지 말하고 있었죠? 남자 쓸모없는 잔상들. 여자 눈썹이 말이야. 노인 목캔디. 남자 분명히 내가 다 버렸었는데. 손님2 (말없이 긴 한숨을 쉰다.) 여자 두 눈 같았던. 노인 카세트 테이프. 남자 뚫려 있는 구멍에. 여자 간신히 기억난 거야. 손님1 내가 말하고 있는 중이잖아! 남자 그랬지. 여자 미안해. 남자 그렇지만. 여자 이제야. 노인 연두색. 뭐라고 써진 거야. 남자 내 것이 아닌. 손님2 (긴 한숨을 쉰다.) 여자 기억. 남자 악몽의 조각조각. 노인 립스틱. 여자 조각난 것들이. 노인 하이힐. 여자 꿰맞춰지고. 노인 새빨간 색이라는 설명이 빠졌군. 남자 반복되는. 손님1 (더듬더듬 말하려다가 실패한다.) 여자 유영하는. 남자 당신? 여자 잘 보이지가 않아요. 노인 어두우니까. 남자 뭐라고? 노인 무슨 껍질? 여자 당신 거기에 있어요? 남자 당신? 여자 분명히 들었어요. 남자 움직이지 마. 내가 갈 거야. 남자와 여자. 어둠 속을 더듬다가 결국 만난다. 여자 당신이지요. 남자 여기 있었군. 점점 어두워지며 무대 전체에 사막(絲幕)이 천천히 내려온다. 진열장의 불이 차례로 꺼지고 육중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 제4장 사막(絲幕)의 앞쪽이 밝아진다. 남자와 여자가 무대 오른편에서 등장한다. 여자 여기는 어디죠? 남자 처음 들어선 곳인 것 같아. 여자 여전히 아무 간판도 보이질 않죠? 남자 날이 몹시 어두워졌어. 여자 찬찬히 봐요. 스쳐 지나지 말고. 남자 저기에 있는 가게는 내부를 다 뜯어냈군. 여자 매일같이 지나던 거리에 있던 가게 하나가 뻥 뚫리고 없어지면 그 자리에 뭐가 있었는지 도무지 기억할 수 없을 때가 있어요. 남자 요새는 상점들이 참 빨리도 들어섰다가 없어지곤 하지. 여자 안타까운 일이네요. 남자 저쪽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 같은데. 남자와 여자, 무대를 가로질러 퇴장. 암전.
  • [2014 신춘문예-평론 당선작] 타자를 소유하는 두 가지 방식/고광식

    1 ‘소유’라는 욕구 모든 주체들, 즉 소유욕에서 자신의 삶을 출발시켰던 세상의 ‘나’는 본질적으로 ‘타자’를 찾아 방랑하는 보헤미안(bohemian)이다. 소유의 주체는 타자를 만나면서 비로소 기쁨과 쾌락의 감정을 깊이 내면화한다. 그러므로 타자를 소유하는 과정에서 온전한 ‘나’가 세상에 드러나며, 타자에 대한 주체의 접촉은 자연스럽게 목적 자체가 된다. 소유욕에 있어서 김선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2007)’의 시는 놀이하는 인간인 호모루덴스(homo ludens)의 몸짓으로 타자를 포착하기도 하고, 대상과의 합일하는 행위로 타자와 하나 되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시적 주체는 “달과 지구의/포개진 다리 아래 // 그대의 다음 세상 첫 울음 놓일 자리까지 / 이미 보아버린 자여”(‘월식 파티-처용, Shall we love?’)처럼 달과 지구가 포개진 파티를 보게 된다. 대상과 합일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 서로 하나가 되어버린 달과 지구를 보며 ‘나’는 춤을 춘다. 달빛 아래 춤을 추고, 다리 아래 춤을 춘다. 춤은 소유욕에 대한 이해이며 환상이다. 때로 소유욕은 “이글거리는 불덩이, 굶주린 호랑이의 둥그렇게 벌린 입속으로 무릎걸음으로 기어들면서야 알았네”(‘여러 겹의 허기 속에 죽은 달이 나를 깨워’)와 같이 두려움의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을 현시한다. 이때 시적 주체는 “살거나 죽었거나 내 몸속으로 들어와 나를 살린 것들 다 이렇게 두려웠겠구나”라고 타자에게 심리적 상태를 투사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나’는 “자옥이 피어오르는 화염을 내려다보며 연꽃을 먹는 사람들이 산다는 어느 평화로운 부족의 마을을 떠올린 적이 있다”(‘주홍 글씨’)고 메타인지(metacognition)적 연민에 빠진다. 자아가 타자를 소유했는지, 타자가 자아를 소유했는지의 불가해성 상태는 “수통 속의 물 부어진/내 몸이 수통인지/수통인 내 몸이/내가 들고 마신 수통인지”(‘水桶’)에 이르러 서로 교차하며 접합되는 휴지 상태가 된다. 반면에 강정(‘키스(2008)’)의 시는 소유하는 과정을 섹슈얼리티하게 그려내어, 대상과의 합일로 소유하기보다는 파토스(pathos)적인 행위로 체현하려 든다. 욕구를 채우기 위해 시적 주체는 타자를 받아들이는 통로인 입을 최대한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입술이 닿는 곳, 타자의 내재성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소유욕은 말라붙은 창공 속에서도, 불탄 돌들이 四海의 포말로 부서져 날릴 때에도 타자의 입을 통해 드러난다. 때로는 허공 한가운데 거대한 물고기의 아가미로 고정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소유로 가고자 하는 욕구는 섹슈얼리티한 감응의 상태에서 “태양이 죽은 자리에서/통째로 바스러진/하얀 밤을 들이마시고”(‘죽은 몸에 白夜가 흐르고’) 있는 것으로 발현된다. 시적 주체는 소유욕에 대한 세상의 순례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하혈하는 어머니, 젖은 땅 위에서 “시인이 울 때, 여자는 시인의 눈물을 받아 마신다”(‘영화’)고 감정의 감염을 토로한다. 보드리야르에 의해 그 자체로 현실을 대체한다고 지적된 원본 없는 이미지가 시뮬라크르(simulacre)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입은 끊임없이 시뮬라크르를 생성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육감적이다. 입은 이처럼 타자를 소유하기 위한 도구이며 통로이다. 여자의 총총걸음을 따라 시적 주체는 “꽃들이 오랫동안 빨판 같은 주둥이를 벌려/내 몸을 나눠 받았다”(‘나비 떼가 떠 있는 방’)고 타자인 꽃들의 소유욕을 적시한다. 자신의 존재 안에 타자를 가두려 하는 욕구는 꽃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꽃내음에 취하고 꽃의 모습에 현혹되는 순간 꽃은 언제든지 주둥이를 들이댈 준비를 하고 있다. 강정의 시적 주체는 “이 오래된 바람의 내력엔 서로 피를 나눠 먹던 종족의 역사가 흐른다”(‘死後의 바람’)고 구명하여 그의 시가 소유욕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김선우의 시는 호모루덴스의 몸짓으로 춤을 추며 타자와 하나 되기를 시도하고, 강정의 시는 섹슈얼리티한 감응의 상태에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대상과의 합일을 시도하는 방식이나, 현란한 시뮬라크르로 타자를 소유하는 방식 모두 타자와 하나 되기를 꿈꾼다는 점에서 동일한 의의를 지닌다. 2 타자와 하나 되기-김선우의 시 존 로크는 오크나무 아래에서 주운 도토리와 숲속의 나무에서 따 온 사과를 먹고사는 사람은 확실히 그런 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소유라는 것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즉 도토리를 줍는 노동과 사과를 따는 노동에서 당위성이 부여된다는 의미이다. 이 경우 타자인 도토리와 사과는 인간에게 희생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사실 이것은 도토리, 사과가 타자와 하나 되기를 원해서 나타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식물은 동물과 하나가 되었을 때 자기 자손을 널리 퍼트리고, 동물은 그 식물과 하나 돼야 생존할 수 있다. 알수록 무서운 소유욕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밥이어야 한다. 식물은 동물의 밥이 되고, 동물은 결국 식물의 밥이 된다. 이왕 밥이 돼야 한다면, 멜랑콜리(melancholy)한 감정이나 연민을 벗어버리고 따뜻한 밥이 돼야 할 것이다. 때로는 환각제를 복용했을 때처럼 그대와 나 동시에 입을 벌릴 수 있지만, 타자라는 밥상 앞에서 나는 내 몸속의 부드러움이나 딱딱함을 점검해야 한다. 내 몸속에서 그대가 아주 편안히 누워 있을 것에 대한 걱정이다. 내 몸속은 아주 아늑하고 부드럽다. 타자와 하나 되기 위해 준비된 몸이다. 그래서인가 내 몸속에 받아야 할 타자가 이 별에는 끊임없이 태어나고, 나는 그들이 소름 끼치게 그립다. ‘나’는 아, 대상과의 합일을 위해 입을 벌리고 사뭇 괴로운 시늉만 한다. 그러므로 김선우에게 있어서 소유 행위는 타자와 하나 되는 호모루덴스적인 동일시의 몸짓이다. 내 몸속 어디에서 내가 나를 향해 아, 입 벌리네 자기 해골을 갈아 만든 피리를 불면서 몸 사막을 건너는 순례자같이 그대가 아, 입을 벌린 순간에 내가 아, 입 벌리네 어둠 깊으니 그 어둠 받아먹네 공기 속에 살내음 가득해 아아, 입 벌리고 폭풍 속에서 비리디 비린 바람의 울혈을 받아먹네 그대를 사랑하여 아, 아, 아, 나 자꾸 입 벌리네 -‘그 많은 밥의 비유’ 부분 문제는 내가 떨림을 잃어간다는 것인데, 일테면 만년 전의 내 할아버지가 알락꼬리암사슴의 목을 돌도끼로 내려치기 전, 두렵고 고마운 마음으로 올리던 기도가 지금 내게 없고(시장에도 없고) 내 할머니들이 돌칼로 어린 죽순 밑둥을 끊어내는 순간, 고맙고 미안해하던 마음의 떨림이 없고(상품과 화폐만 있고) 사뭇 괴로운 포즈만 남았다는 것. -‘깨끗한 식사’ 부분 시적 주체인 ‘나’는 나를 향해 내 몸속 어디에서 아, 입 벌려 “해골을 갈아 만든 피리”를 불고 있다. 미칠 것 같은 영속성으로 드러나는 대상과의 합일을 위한 소유라는 욕구는 불쌍하고 가련하다. 해골을 갈아서 만든, 피리를 부는 전경화로 ‘나’를 투사하는 모습이 연민을 부른다. 말하자면 유전자 속에 배어 있는 소유욕이 주체의 참된 실체다. ‘자기 해골’이라는 피리는 ‘나’도 한때는 타자의 소유였다는 감각적 지각인 아이스테시스(aisthesis)이다. 이러한 전체성을 바탕으로 주체인 ‘나’는 몸 사막을 건너는 순례자같이 “그대가 아, 입을 벌린 순간에/내가 아, 입 벌리네 어둠 깊으니 그 어둠 받아먹는”다고 진술한다. 입을 벌려 타자를 받아들이는 통로를 자궁처럼 활짝 열고 간절히 드러내는 주체의 욕구는 “그대를 사랑하여 아, 아, 아, 나 자꾸 입 벌리는” 환각적인 상태가 된다. 이것은 타자와 하나가 되기 위한 눈물겨운 호모루덴스적인 소유의 방식이다. 타자와 하나가 되는 방식은 그 당위성을 만들기 위해 자아 성찰의 모습으로 지평을 확장한다. ‘깨끗한 식사’의 시적 주체는 “문제는 내가 떨림을 잃어간다”고 ‘나’의 퍼스낼리티를 규명한 후, 어떤 대상에 대한 의식 작용인 노에시스(noesis) 속으로 잠입한다. 따라서 시적 주체는 “내 할아버지가 알락꼬리암사슴의 목을 돌도끼로 내려치기 전, 두렵고 고마운 마음으로 올리던 기도가 지금 내게 없음”을 골똘히 생각한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하나 되기가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자연의 한 조각이 되는 역동성이다. 그 두렵고도 미안한 감정은 타자의 죽음이 상품으로 쌓여 있는 시장에도 없음을 확인하고 시적 주체는 빤히 ‘나’를 쳐다보기 일쑤이다. 천 년 전이나 만 년 전이나 한결같았던 “내 할머니들이 돌칼로 어린 죽순 밑둥을 끊어내는 순간, 고맙고 미안해하던 마음의 떨림”이 ‘나’에게 없어 괴롭다. 즉 시장은 타자와 내가 마주 쳐다보며 꿈틀거리던 욕망이, 고마움이, 두려움이 ‘상품과 화폐’로 거래되는 공간이다. 이런 성찰로 인해 주체는 타자를 현재의 프레임에 가두는 것을 경계한다. 이렇게 정신적 유전자 속에 잠재된 의식을 정치하게 드러내는 것은, 타자와 하나 되기의 당위성에 방점을 찍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되는 타자에 대한 메타인지적 연민 때문이다. 또한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는 나와 타자가 즉자와 대자의 모습으로 고정되게 놓아두지 않는다. 이것은 누가 먼저 소유를 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유동적인 관계이다. 내 밥상 위 “육중한 접시가 언제쯤 깨끗하게 비워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처럼 나도 타자(식물)의 밥상 위에 언젠가는 얹힐 것이다. 시인은 양가적 고민에 빠져 소리친다. “이 무거운, 토막 난 몸을 끌고 어디까지!”라고. 잊고 지난 세월 동안 홀로 된 종이 쓸쓸해서 나무가 쇠종을 품어준 것인지 철사 줄 묶여 어금니 깨물며 오래 아팠던 나무가 팔짱 끼듯 자기의 겨드랑 살 같은 곳을 잠가버린 것인지 겨드랑에 종을 품고 나무가 종 대신 몸을 울어준 것인지 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그 나무가 삼킨 종 이야기’ 부분 어린 새끼를 입에 물고 옮기는 호랑이를 보았다 천천히 클로즈업으로 잡은 호랑이 입속의 호랑이를 보다가 밥 먹던 숟가락을 놓치고 말았다 먹잇감을 물었을 때나 새끼를 물었을 때나 이빨! 잡아먹거나 사랑하거나 드러내거나 숨기거나 그곳에 이빨! 입에 물고 옮기는 호랑이나 입속의 호랑이나 어떤 서늘한 갈등이 등골을 버티고 있으리라는 예감이 지나갔다 -‘카르마, 동물의 왕국’ 전문 입이 없는 식물들은 어떻게 타자를 자기 것으로 만들까. 입이 있는 동물들이야 타자를 입에 넣고 강한 이빨로 저작한 다음 위장에 넣고 소화하면 타자와 ‘나’는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다. 입이 없는 나무가 타자를 소유하려는 방법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적 주체를 아프게 한다. 주체는 입이 없는 나무와 종이 하나가 된 기사를 아침에 본 후, 보름이 지나도록 자신의 몸속이 아픈 것을 자각하느라 괴롭다. 입이 없는 것들은 둘이 하나 되는 관계 속에서, 온전한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구를 꿈꾸는 데 열중이다. 자신의 몸에 철사줄로 매단 종을 잊었다는 듯 “나무가 쇠종을 품어준 것인지”, 아니면 “겨드랑에 종을 품고 나무가 종 대신 몸을 울어준 것인지” 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둘은 하나가 돼 있다. 이렇게 둘은 나에게 네가 없으면 내가 없다는 관계를 형성해서 한 천 년을 견디려는 모습을 취한다. 둘의 존재가 하나로 보완 관계가 돼 특별해졌기 때문이다. 입이 존재하는 동물들은 타자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밀착과 얼룩이라는 데칼코마니(decalcomanie)적 행위를 사용한다. 나의 입을 타자에 밀착시킴으로써 소유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고, 이는 현실 속에서 때때로 부자연스럽고 흉측한 의미체가 되어 시적 주체는 “천천히 클로즈업으로 잡은 호랑이 입속의 호랑이를/보다가 밥 먹던 숟가락을 놓치고”마는 상태에 빠진다. 이처럼 타자와의 관계에서 입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나’의 입이 밥이라는 타자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통로로서의 역할을 했다면, ‘호랑이’의 입은 어린 새끼를 입에 물어 자신과 하나라는 것을 체현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내’가 ‘너’에게로 다가가든지, ‘네’가 ‘나’에게로 다가오든지간에 ‘입’이 차지하는 위치는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나와 타자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 “먹잇감을 물었을 때나 새끼를 물었을 때나” 입은 중요한 상징체이며 동시에 실제적 기능을 하는 도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왕국을 시청하고 있는 시적 주체는 하얗게 드러나는 입속의 ‘이빨!’을 보며 “잡아먹거나 사랑하거나 드러내거나 숨기거나” 하는 입을 기능적인 측면에서 사유한다. 이때 주체에게 다가오는 서늘한 갈등은 나와 타자의 관계성이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관계에서 올 수 있다는 대등적 관계의 깨달음이다. 그러므로 “등골을 버티고 있으리라는 예감”을 할 수 있다.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전문 꽃이 핀다. 봄에도 꽃이 피고, 여름에도 꽃이 피고, 가을에도 꽃이 핀다. 이처럼 꽃들은 시기를 달리하여 경쟁하지 않고 차례대로 그 아름다운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다. 시적 주체는 꽃이 피는 것을 보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그대가 피는 것인데/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라고 의아해한다.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은 ‘너’의 행위가 나를 떨게 하는 이유가 못내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꽃으로 꽃벌 한 마리가 날아들었는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꽃이 나이고, 내가 꽃 같은 상태에서 나는 아득하다. 부버가 ‘너’ 혹은 ‘그것’이 없이는 ‘나’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나’는 ‘너’라는 대상과의 합일을 추구함으로써 충만한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김선우의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에 대한 물음의 끝에는 타자인 ‘꽃’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이 있는 것들의 진정한 삶은 대상과의 합일인 소유이고, 소유는 나와 타자의 관계에서만 온전하게 성취될 수 있다. 대상과의 합일을 시도할 때의 ‘나’는 자연의 한 조각으로 모자이크돼 생명력을 얻게 된다. 이렇게 타자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진정한 ‘나’를 드러내는 본능적 행위이다. 나와 너의 관계는 언제나 주체와 객체가 바뀔 수 있는 관계이다. ‘너’를 소유할 때의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나’지만 그것은 너와 내가 하나가 된 전혀 다른 내적으로 충만한 ‘나’이다. 타자를 소유한 나는 존재 속에 존재자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꽃 피는 것이 내 일임을 이제 알겠다. 3 ‘시뮬라시옹’(simulation)하는 느낌-강정의 시 맥루언에 따르면 시대를 주도하는 매체가 무엇인가에 따라 인간의 ‘감각비’(sense ratio)가 달라지고,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도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유비쿼터스 시대를 예로 들면, 각종 노마딕(nomadic) 기기들로 인해 인간의 감각비는 시각 중심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강정의 시적 주체가 ‘입’을 섹슈얼리티하게 사용하여 ‘시뮬라크르 하기’인 시뮬라시옹하는 느낌으로 타자를 소유하는 것도, 인간은 시대를 주도하는 매체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보드리야르가 맥루언의 영향을 받아 시뮬라시옹이라는 이론을 만들었듯이, 강정은 시적 주체들로 하여금 이전과 달라진 감각비를 사용하여 지금-이곳의 타자를 시뮬라시옹하고 있다. 너는 문을 닫고 키스한다/ 문은 작지만 문 안의 세상은 넓다/ 너의 문으로 들어간 나는 너의 심장을 만지고 내 혀가 닿은 문 안의 세상은 뱀의 노정처럼 굴곡진 그림들을 낳는다/ 내가 인류의 다음 체형에 대해 숙고하는 동안 비는 점점 푸른빛과 노란빛을 섞는다/ 나무들이 숨은 눈을 뜨는 장면은 오래전에 읽었던 동화가 현실화되는 순간이다/ 미래는 시간의 이동에 의한 게 아니라 시간의 소멸에 의한 잠정적 결론, 나의 문 안에서 나는 모든 사랑이 체험하는 종말의 예언을 저작한다/ 너는 내 혀에서 음악과 시의 법칙을 섭취하려 든다/ 나는 네게서 아름다운 유방의 원형과 심리적 근친상간의 전형성을 확인하려 든다/ 그러니까 이 키스는 약물중독과 무관한 고도의 유희와 엄밀성의 접촉이다 -‘키스(1)’ 부분 나는 문을 닫고 너의 몸을 받는다/ 내 안으로 들어온 너는 사뭇 여장부스러운 근골과 큰 키를 과시한다/ 뒷굽이 십 센티미터에 달하는 하이힐을 또박또박 디디며 혓바늘 사이를 배회한다/ 몸 밖으로 빠져나온 네 혀가 나라는 한 세상을 뒤집어 오랫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길몽과 흉몽 사이의 아득한 절대치의 추상화를 구상화한다/ 너는 무용에 어울리는 몸을 가졌다/ 그러나 나는 건축에 어울리는 몸을 가졌다/ 그리하여 너는 내 몸이라는 凶家에서 춤추는 무희가 된다/ 내 혀는 너의 동선을 따라하며 네 가족들의 불편한 심기를 박물화한다/ 이 키스는 한 아이가 태어나고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초현실적 리포트다 -‘키스(2)’ 부분 입은 너를 받아들이는 유일한 통로이다. 단단한 이를 사용하여 타자를 힘으로 소유할 수도, 부드럽고 달콤한 혀를 사용하여 타자를 시뮬라시옹하는 느낌으로 소유할 수도 있다. ‘너’는 주체가 되어 타자인 ‘나’를 소유하기 위한 의식인 ‘키스’를 실행한다. 외부의 문은 이 의식을 치르기 위해 닫혀 있지만, 너로 가는 내부의 문은 아주 넓게 열려 있다. 네 안의 세상에서 나와 너는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분간할 수 없는 “나는 너의 심장을 만지고 내 혀가 닿은 문 안의 세상은 뱀의 노정처럼 굴곡진 그림들”인 카오스의 세계를 경험한다. 우리는 모두 주체가 되어 “나무들이 숨은 눈을 뜨는 장면은 오래전에 읽었던 동화가 현실화되는 순간”인 것처럼 너를 지각하고 소유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너를 보고 있는 순간 너도 나를 보고 있으며 우리 과거의 시간은 소멸해 간다. 이렇듯 달콤한 키스는 뼛속을 파고드는 이빨에 의한 강제적 소유의 확인이 아닌 스스로 충만해 오는 파토스로 서로에게 투사되어 나타나는 현실감을 제공한다. 그러니까 키스는 타자를 시뮬라시옹하는 느낌으로 이미지인 허상을 소유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그것(‘키스(1)’)은 입을 접촉하므로 생성되는 생존의 뜨거운 법칙이다. ‘너’에게만 뜨거운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도 세상의 주체인 대자 존재가 되어 세상의 “문을 닫고 너의 몸을” 받을 수 있다. 대상을 깊게 바라보며 몸과 정신을 하나로 통일하여 “하이힐을 또박또박 디디며 혓바늘 사이를 배회”하는 너를 내가 이룩해낸 견고한 프레임 안에 가두는 행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는 하나였던 아주 오래전의 공간으로 돌아가 “길몽과 흉몽 사이의 아득한 절대치의 추상화”를 구상화한다. 나와 너의 경계는 무너지고 무화되어 얽힌 혀로 세상의 맛을 음미하는 존재로 우리 둘은 거듭난다. 이를 통해 세상의 존재자는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튼튼한 몸을 만들어야 한다. 경계를 허문 자리에서 너는 “내 몸이라는 凶家에서 춤추는 무희가” 되고, 나는 “너의 동선을 따라 하며 네 가족의 불편한 심기를 박물화”하는 존재가 된다. 키스는 폭력으로 타자를 굴복시켜 만들어내는 일체가 아니라, 그것(‘키스(2)’)은 “한 아이가 태어나고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초현실적 리포트”인 느낌의 시뮬라시옹인 것이다. 실제로 타자에 대한 소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부드럽게 열려 있는 교감 속에서 정신적인 소유가 일어났음을 느낀다. 보드리야르식으로 말한다면 현실은 키스라는 이미지에 의해서 지배받게 된다. 나와 너는 이미지를 통해 “인생의 가장 극적인 순간을 탕진”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을 것이므로. 하늘에서 번쩍 갈라진 번개의 크기는 원근법과 아무 상관없다 내가 본 그대로의 모습과 크기로 지구의 틈이 벌어진다 또 이가 가렵다 최초거나 최후거나 나는 분명 처음과 끝을 한 번의 포효로 발설하는 인류의 조상을 임신한 것이다 번개가 빠져나간 항문, 내 턱이 지구의 문지방에서 깊게, 출혈 중이다 -‘번개를 깨물고’ 부분 시적 주체는 하늘에서 번쩍 갈라지는 번개가 너무 크고 강렬해 원근법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 자신이 본 그대로의 모습과 크기로 지구의 틈이 벌어지는 놀라운 자연현상을 보게 된다. 이는 주체가 상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런데 이때 시적 주체의 이가 가렵다. ‘나’는 번쩍 갈라진 번개를 보고 있었을 뿐인데, “또 이가 가려운” 증상이 나타난다. 정신적 유전자 속에 잠재된 소유욕이 타자를 받아들이는 통로의 근육을 움직이게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도끼날처럼 강인한 ‘이’로 번개를 깨물고 저작하고자 하는 불가해성의 소유욕이 ‘나’를 흥분하게 한다. 시적 주체가 번개를 자기 몸속으로 받아들이며 “나는 분명 처음과 끝을 한 번의 포효로 발설하는 인류의 조상을 임신한 것이다”라고 한 진술은 한순간 우리를 지배한 시뮬라크르다. ‘나’는 그렇게 이미지에 지배당하여 “번개가 빠져나간 항문”을 감각적으로 인식하고 번개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상처입은 “내 턱”을 보고 있다. 그녀를 사랑하기 위해선 그녀의 일부를 내 안에 결박해야 한다 만 명의 남자가 입을 댔던 그녀 유방 앞에서 만 명 중의 하나가 되는 일은 만 명의 그녀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 그녀라는 허구의 몸통 안에서 온몸을 친친 감고 나는 그녀의 바깥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녀라는 커다란 숨구멍, 혹은 시선의 감옥’ 부분 여자는 입술을 핥던 혀로 내 얼굴을 핥았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기가 심장에 넘쳐흘렀다 여자는 일그러진 내 얼굴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눌렀다 시간이라는 평상에 톡톡 금이 가고 있었다 발라낸 고등어 뼈를 냄새 맡던 고양이와 고등어 냄새를 물씬 풍기는 내가 한 프레임 안에서 여자의 밥이 되었다 -‘고등어 연인’ 부분 첫 번째 시에서는 그녀를 사랑하기 위한 ‘나’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소중한 것은 ‘내’가 그녀를 소유할 가능성 때문이다. 이것은 그녀를 소유하기 위해선 다른 무수한 타자와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처럼 ‘그녀’는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닌 상태에 있다. 그녀는 내 앞에 있는 즉자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식을 가지고 있는 대자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녀를 ‘내’가 소유하기 위해선 무수한 경쟁자를 물리친 뒤에, 그녀로 하여금 스스로 모호성에서 벗어나 열정적으로 나를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그녀를 소유하기 위해선 “만 명의 남자가 입을 댔던 그녀 유방 앞에서/만 명 중의 하나가 되는 일”에 두려움을 가져선 안 된다. 그녀에게 있어서 ‘나’는 만 명 중의 한 명일 뿐이고, 나는 그녀의 몸 위에서 태어나는 만 명의 남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숙명적인 존재다. 그녀의 커다란 숨구멍 안에서 내 혀가 가장 부드럽고 달콤하다는 것을 입증시키는 데 실패한다면, 온몸을 친친 감고 있던 내 혀는 그녀에 의해 몸 밖으로 던져지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의 혀에 남아 있던 약간의 침방울을 그리워하며 되새김질하다가 아포리아 속에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 데 열중할지 모른다. 그녀라는 허구의 몸통 안을 그리워하며. 그녀가 ‘나’를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반응은 두 번째로 인용한 시에 나타난다. 서로에게 영원한 미지의 소유물로 남을 것 같은 순간, “여자는 입술을 핥던 혀로 내 얼굴을 핥”는 것으로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너와 내가 껴안은 틈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햇빛이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기가 심장에 넘쳐” 흐르는 순간을 클로즈업시키고 있다. 이때 시각적으로 잡히는 지구 밖의 모든 미장센은 심장박동 소리로 대체되었다. 이제 고등어 냄새를 물씬 풍기는 내가 “한 프레임” 안에서 “여자의 밥”이 되어 다시 태어난다. 결과적으로 ‘여자’의 웃는 모습은 소유로써 완벽해지는 인간의 진정한 삶이다. 이는 타자를 소유하는 데 있어서 ‘힘’에 의한 폭력이 아닌 ‘혀’의 달콤함으로도 얼마든지 상대 속에 잠입하여 소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힘을 사용한다면 한순간에 끝낼 수 있지만, 입속의 ‘이’가 아닌 ‘혀’를 사용한다면 서로가 마주한 밥상처럼 행복해질 수 있다. 이처럼 강정의 ‘키스’는 소유하고자 하는 대상을 달콤한 욕구로 이미지화한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가 바뀌어 전개될 수 있는 역동적인 의식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세상의 존재자는 유전자 속에 잠재되어 꿈틀대는 자기 안의 소유욕에 대한 내밀한 외침을 들을 것이며, 소유의 과정은 키스로 시작되어 시뮬라크르인 키스로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4 소유 이후, 주(객)체들 세상의 주체인 ‘나’는 오랫동안 격정적인 파토스로 활동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하며, 세상에 널려 있는 객체인 ‘너’와 하나가 되기 위해 몸부림쳤다. 밀착의 행위를 통해 ‘너’를 ‘나’로 동일시하고 죄를 짓고, 몸을 탐하고, 참회하고, 때로는 마음의 평화를 약속하는 동의를 얻어낸다. ‘나’는 밀착 행위가 미치는 객체인 ‘너’를 찾아 세상 속에서 수없이 많은 ‘너’를 소유하고, 그때마다 나와 너는 암수 구별이 없는 생물처럼 접합되는 바람에 애증의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김선우의 경우, 소유가 중요한 것은 소유하는 방식 또는 행위라는 결과가 진정한 자신을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다. 나와 너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기 위해 ‘나’는 입을 벌려 살 내음 가득한 너를 내 몸속으로 받아들여 하나가 되는 행위를 한다. 그때, 강력한 흡입력을 갖고 있는 입은 너를 온전한 나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하게 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김선우 시의 주체는 객체인 ‘너’ 앞에서 촉각적 감각에 의지해 피리와 노래를 부른다. 식사하는 순간은 아이온의 공간과 시간이 ‘나’에게 열려 있었으므로, 타자의 괴로운 표정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처럼 대상과의 합일을 추구한 주체는 내 행위의 대상인 객체에게 입을 드러내는 것으로 소유의 과정을 정당화한다. 그러므로 김선우 시의 주체에게 소유 행위는 대상과의 합일을 위한 호모루덴스적인 놀이다. 하지만 강정의 경우는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로 객체인 ‘너’를 ‘나’로 동일시하는 호모루덴스적인 놀이를 포기하고, 객체를 시뮬라시옹하는 정신적 소유를 지향한다. 이런 소유의 행위도 ‘소유’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이미지 생산으로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소유의 방식이 된다. 직접적인 소유로 인한 포만감보다는 새로운 감각비로 대상을 달콤하게 시뮬라시옹함으로써 객체인 ‘너’를 ‘나’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현실 속에 드러난다. 대상을 소유하기 위해 객체를 낱낱이 분해하고 동일시하는 것보다는 문을 닫고 키스하는 섹슈얼리티한 행위로 소유를 실재화한 것이므로 강정이 소유하는 방식은 쾌락적이다. 이렇게 탄생한 주체는 타자를 소유하는 각기 다른 방식대로 접합된 상태에서 소멸의 법칙을 견딘다. 바라보는 대상인 객체를 대상과의 합일로 소유했거나, 아니면 쾌락적으로 소유했거나 모두 동일하게 주체와 객체는 존재의 흔적을 지우는 과정을 밟는다. 존재자의 위치에 따라 빠르고, 느리고, 돌발적이고, 순간적으로 다양한 몸짓을 하며 소멸한다. 마음을 찌르는 푼크툼(punctum)을 통해서 아주 완벽하게.
  • [2014 신춘문예-동화 당선작] 심사평

    [2014 신춘문예-동화 당선작] 심사평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는 총 157편이 모였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얼토당토않고 다소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이 많이 사라져 작품들이 차분하다고나 할까, 약간 풀이 죽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심사위원뿐 아니라 이 시대가 신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패기 발랄하면서도 참신한-기성작가들이 감히 꿈꿔 보지 못한-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 둘이 읽다가 하나가 기절해도 모를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런데 작가 자신은 그것이 그렇게 놀랄 만한 이야기라는 것을 몰라야 한다.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을 뿐…”이라는 중얼거림이 들린다면 진짜 새로운 종이 탄생한 것이다! 다른 작품과 비교되지 않으려면 자기 자신이 새로운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그것이 진정 창작의 본질이라는 것도. 대상으로 뽑은 것은 ‘메두사의 후예’다. 은지의 머리카락이 주인공이다. 기발한 주인공을 등장시켜 나만의 각별함(개성)보다는 획일성을 도모하는 요즘의 세태, 아이들에게까지 퍼진 외모지상주의를 화두로 시작해 기성세대의 명령에 순응하면서도 자신의 본질을 놓지 않고 그것을 펼칠 때를 기다리는 자의식으로 마무리를 한다. 이렇게 범상치 않은 것을 주인공으로 할 때는 자기소개를 먼저 하고(예를 들어 “나는 은지의 머리카락입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좋다는 것을 선배로서 말하고 싶다. 결선에 오른 작품은 ‘그림자’ ‘강아지의 꿈’ ‘배고파!’이다. ‘그림자’는 약자를 보듬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그림자와 그 주인인 할아버지를 따로따로 분리해 그린 점은 개성적이다. 그러나 서술 문장이 길게 이어지고 그 때문에 이야기 진행이 늘어진 것이 단점으로 작용했다. ‘강아지의 꿈’은 귀여운 동화다. 주인공의 생생한 심정 토로와 재미난 반전이 돋보이나 데뷔작으로 하기에는 소재가 평이하다. ‘배고파!’는 상상력은 기발하지만 서사의 흐름이 격하고 정돈이 돼 있지 않아 아쉬웠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작품들을 받아 읽어 보니 ‘안녕들 하지 못한 갖가지 사연’을 접하는 기분이다. 내년, 2014년에는 어떤 작품들이 모여들지 기대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다.
  • [씨줄날줄] 친민 행보의 허실/박홍환 논설위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만두 가게 서민 점심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28일 “시 주석이 줄 서 만두를 사고 심지어 직접 계산했는가 하면 쟁반을 들고 음식을 받았다”며 사진과 함께 주요 기사로 전했다. 시 주석의 이날 점심 메뉴는 만두 6개, 야채 볶음, 돼지 간 볶음으로 우리 돈 3650원어치. 시 주석의 ‘소박한 점심’ 이후 식당에서는 ‘시 주석 세트’를 주문하는 손님들이 급증했다고 한다. 서민 식당 방문 등의 친민(親民) 행보는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2011년 8월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방중했을 때의 일이다. 바이든 부통령 일행은 예고 없이 베이징의 한 서민 식당을 찾아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일행 5명이 먹은 음식은 자장면 다섯 그릇과 오이 무침, 두부피 무침 각 한 접시, 찐빵 10개, 콜라 2병으로 79위안(약 1만 4000원)어치. 바이든 부통령은 룸을 마다하고 홀에서 다른 손님들과 어울려 젓가락을 들었다. 중국인들은 바이든 부통령의 친민 행보에 극찬을 보냈고, 해당 식당에서는 ‘부통령 세트’의 주문이 크게 늘었다. 어쩐지 시 주석의 만두 점심이 2년 전 바이든 부통령의 자장면 식사와 지나칠 정도로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당시 부주석이었던 시 주석은 바이든 부통령의 ‘카운터파트’로서 주요 방중 일정을 동행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친민 행보 지도자로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가 꼽힌다. 수십년 애용해 헤질 대로 헤진 잠바를 거리낌 없이 걸치고, 민생 현장이나 재난 피해 지역을 누비는 그에게 중국인들은 ‘원할아버지’라며 마음속에서 우러난 진심 어린 존경심을 표했다. 하지만 중국의 한 반체제 작가는 원 전 총리의 이 같은 친민행보가 정치적으로 철저히 계산된 것이라며 “오스카상 감”이라고 혹평했다. 그에게 ‘중국 최고의 연기자’라는 별칭도 붙였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원 전 총리 일가가 수십억 달러의 부정축재를 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원 전 총리는 이제 잊힌 인물이 되어가고 있다. 시 주석의 서민 점심이 2년 전 바이든 부통령의 자장면 식사를 본떠 ‘연출’한 것이라면 그가 원했던 ‘결과’, 즉 민심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중국인들이 바이든 부통령의 자장면 식사에 환호한 것은 몸에 밴 자연스러운 친민 행보였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이 이례적으로 비쳐지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주요 2개국(G2)인 중국과 미국의 차이점이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꼬꼬댁교실, 추억상자 찾아 나선 길 ‘민우 예지에게 무슨 일이?’

    꼬꼬댁교실, 추억상자 찾아 나선 길 ‘민우 예지에게 무슨 일이?’

    다문화가정 30만 시대에 다섯 꼬꼬마들의 성장기를 쓴다. 지난 28일, tvN의 ‘꼬꼬댁교실’에서 다섯 꼬마들의 외가 여행 중 두 번째 엄마의 추억상자를 찾아 나섰다. 변함없이 쭌삼촌(김민준)과 꽝삼촌(이기광)이 꼬꼬마들과 아침 기상을 같이 한다. 꼬마들을 잠에서 깨우는 몫은 언제나 꽝삼촌이 맡았다. 쭌삼촌은 전날 물놀이로 지쳐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꽝삼촌은 아침식사를 위해 장에 마땅한 음식을 사러 갔다. 반미(베트남식 샌드위치)가 괜찮다고 생각했고, 매운 고추 양념을 넣지 말아 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아이들은 꽝삼촌의 예상대로 반미가 입에 맞았나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다섯 시면 배달되는 추억상자에 관심을 집중했다. 이번에는 유진 엄마의 추억상자가 도착했다. 그러나 추억상자 속에 유진 엄마가 담아 준 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꼬마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등교했다. 오늘은 산수를 공부할 수 있었는데, 민우의 실력이 그리 정확하지 않았다. 막내 예지에게도 벅찬 내용이라 짝꿍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꼬마들에게 낮잠 시간만큼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선생님께 베개를 받아 교실에서 낮잠을 승낙 받다니 꿈만 같았을 것이다. 더운 날씨에 공부로 지친 피로를 아이들 스스로 풀 수 있었다. 삼촌들은 꼬마들이 없는 사이에 민우 외할아버지를 따라 돼지농장에 갔다. 돼지들에게 밥을 주기도 했고, 새끼돼지들 목욕시키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새끼돼지들이 목욕 도중에 뛰쳐나가서 잡아오는 데 애를 먹기는 하였으나 맡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이제 삼촌들이 꼬마들을 데리러 가는 시간이 왔다. 유진과 민우가 교통정리를 하며 친구들의 하교를 안전하게 돕고 있었다. 삼촌들은 부모 된 마음을 느껴 보았을 것이다. 아이들끼리 혼잡한 거리를 질서 있게 통행하는 모습에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유진 엄마가 알려 준 추억상자, 수상양식장으로 안내했다. 베트남에는 지역마다 큰 양식장이 많다고 한다. 거기서 아이들은 배를 타고 재미를 만끽했다. 문득 배 한 척이 들어오더니 유진을 감격시킨 분들이 나타났다. 유진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멀리 메콩강에서 온 것이다. 유진이가 외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동안 꼬마들은 삼촌들과 양식장을 더 구경했다. 또 하루가 시작됐다. 쭌삼촌이 장에 가서 계란 7개와 소고기를 사 왔다. 아침식사 메뉴는 고기양념주물럭이다. 쭌삼촌은 아이들이 당근과 양파를 잘 먹도록 잘게 다져서 테가 나지 않게 했다. 그리고 밥 위에 계란후라이도 올려 놓았다. 아이들은 쭌삼촌의 요리에 만족스러워했다. 막내 예지가 맛있어 했으니 대성공이다. 그런데 민우가 쭌삼촌에게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예지는 딴청부리며 삼촌들의 관심을 돌렸다. 민우는 울며 나갔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예지와 민우가 화해를 하고 두 번째 추억상자가 주는 여행을 계속했을지 궁금해진다. 정이채 연예통신원 blub60@naver.com
  • ‘폐지 할머니’ 3년째 기부 “더 많이 못 줘서 미안하다”

    부산에서 70대 할머니가 폐지를 주워 마련한 돈으로 연말 불우이웃돕기 기부를 3년째 해 오고 있어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부산진구에 사는 김복순(75) 할머니. 김 할머니는 지난 17일 부산진구 당감2동 주민센터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지인을 통해 100만원을 기부했다. 지난해와 2011년 말에도 동주민센터와 부산진구청으로 50만원과 56만원을 보냈다. 당감동에서 6.6㎡(2평) 남짓 조그만 담배가게를 하며 할아버지(82)와 함께 생계를 이어가는 김 할머니는 매일 새벽 3시 동네를 돌아다니며 모은 폐지를 팔아 번 돈을 기부해 왔다. 새벽 내내 주워도 하루 1000∼1500원 남짓하지만 할머니는 건강이 허락하는 날이면 꼬박꼬박 나가 폐지를 주운 것으로 알려졌다. 할머니는 이렇게 마련한 50만원에 올해는 이것조차 부족하다며 자신의 생활비를 쪼갠 돈 50만원을 더 보태 100만원을 기부했다. 정작 자신의 가게에는 한겨울에 난방 한번 하지 않을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도 힘들게 모은 돈을 선뜻 불우이웃을 위해 내놓은 것이다. 할머니는 가족에게도 선행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더 많이 주고 싶지만 형편이 그렇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나라가 어서 빨리 좋아져서 다 같이 잘사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라돈, 비흡연 폐암환자 집에서 발견한 ‘침묵의 살인자’

    라돈, 비흡연 폐암환자 집에서 발견한 ‘침묵의 살인자’

    암 가운데 사망률 1위인 폐암. 폐암 발병의 주요 원인은 흡연으로, 누구나 폐암 하면 담배를 떠올린다. 그런데 평생 담배와는 관계가 없었던 사람들이 폐암에 걸리고 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간접흡연도, 가족력도 없는 사람들. 그들이 폐암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28일 오후 10시 25분 KBS 2TV에서 방송되는 ‘추적60분’은 비흡연 폐암환자 32명을 대상으로 암 발병 원인에 대한 새로운 분석과 결과를 내놓는다. 제작진이 만난 암 환자들은 하나같이 억울하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36살의 젊은 나이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두 딸 아이의 엄마, 물 맑은 지리산 자락에서 암에 걸린 할아버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은 암으로 인한 고통보다 왜 폐암에 걸렸는지 모른다는 답답함에 더 힘들어하고 있었다. 취재를 진행하던 중 제작진은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미국에 사는 한 여성 폐암 환자. 그녀 역시 흡연도, 암에 대한 가족력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폐암 발병의 원인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가 지목한 것은 ‘집’. 집에서 뭔가 위험한 물질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 물질은 바로 ‘라돈’이었다. 미국 환경청(EPA)에 따르면 4피코큐리의 라돈 농도에서 장기간 거주할 경우 흡연자는 1000명 중 62명, 비흡연자는 1000명 중 7명이 폐암에 노출된다. 제작진은 폐암 환자 32명의 집을 전격 조사했다. 도시부터 시골까지, 30대부터 80대까지 사는 곳도 나이도 모두 다른 그들의 집을 분석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토양에서 생성되기에 라돈 수치는 지층에서 가까울수록 높다. 그런데 제작진이 조사한 폐암 환자의 집은 단독주택, 빌라, 지하뿐만 아니라 아파트 고층도 있었다. 한 주에 한 번꼴로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갈 정도로 건강관리에 철저했으나 폐암에 걸린 홍모씨의 집은 아파트 17층인데 라돈 수치가 높았다. 전문가는 집을 짓는 데 쓰인 건축자재에 주목했다. 토양을 원료로 하는 건축자재는 라돈 함량이 높은 토양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특히 천장, 벽, 내장재 등으로 널리 쓰이는 건축자재인 석고보드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건축자재의 라돈에 대한 어떤 조사나 규제도 없는 상황에서 라돈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는 실태를 취재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기고] 장성택 처형과 국정원 개혁/송봉선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기고] 장성택 처형과 국정원 개혁/송봉선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북한에서 피의 숙청이 진행 중으로 ‘김정일 2주기’를 지나면서 정중동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어느 것이 소설인지 혼란스러운데, 김정은이 고모부인 장성택과 그의 측근 몇 명을 총살시켰지만 다른 측근들도 다수 희생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북한에서 피의 숙청은 권력이 바뀔 때마다 있어 왔다는 점에서 놀랄 일도 아니다. 정치적 숙청과는 별도로 지금 북한 전역에서 ‘사회주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음란물, 남한 영상물을 보았다는 이유로 공개총살이 진행돼 주민들이 공포에 질려 있다고 한다. 김정은은 지금 피가 끓는 나이다. 그 나이에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친다. 취직 걱정에 주눅 들어 있는 이 땅의 젊은이와는 영 다르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이 역사상 그 어느 독재자보다 강력하게 만들어 놓은 완벽한 독재 시스템을 제멋대로 활용하고 있다. 김정은은 김정일이 죽고 자신에게 주어진 독재의 칼을 지난 2년간 맘껏 휘둘러보았고 휘두르는 대로 상황은 전개됐다. 아마도 지금 그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북한발 공포통치를 보면서 김정은의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대남도발로 쏠릴 경우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김정은은 측근들에게 “3년 내에 남한을 무력으로 통일하겠다”고 수시로 장담하고 있다고 한다. 대남도발이 여의치 않으면 핵무기 사용도 주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정은이 정말 사고를 쳐서 무력으로 남북을 통일했다고 상상해 보자. 상상하기도 끔찍하지만 지금 북한 땅에서 진행되고 있는 숙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숙청의 피바람이 불 것이다. 60년간 물든 자유와 자본주의 물을 빼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본보기로 죽어야 할까. 군인, 경찰, 공무원, 보수언론, 재벌과 기업가들이 일차적으로 그 대상이 될 것이고 아마도 국회의원들도 처단 대상에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1차 처단 대상보다 더 우선해서 처리해야 할 존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국정원이다. 김정은에게 있어 국정원이야말로 악질 중의 최악질, 눈엣가시일 것이기에…. 그런데 지금 국회에서는 국정원 무력화 작업이 진행 중인 것 같다. 국정원 개혁이라는 명분하에 국내 정보활동과 심리전 활동을 법으로 금지시키겠다는 것이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남조선을 힘 안 들이고 무장해제시키는 반가운 일이 아니겠는가. 2인자 소리를 듣던 장성택이 체포된 지 3일 만에 변호사도 없는 법정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그 즉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법을 만든다는 의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어느 의원은 장성택 실각설이 나오자 국정원이 개혁특위를 앞두고 또 물타기를 한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할는지. 김정은이 피의 내부숙청을 끝내면 대남도발로 참혹한 북한 주민을 또다시 호도할지도 모른다. 의원들이 국정원 흔들기를 그만두고 우리의 어느 부분이 안보에 누수가 되고 있는지 따져 보는 전향적 사고를 할 의향이 없는지 묻고 싶다.
  • 산타 할아버지 마중갈까

    산타 할아버지 마중갈까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저녁 가족, 연인들로 가득한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서 아버지의 목말을 탄 꼬마 산타가 장난스럽게 V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모바일 게임 ‘드래곤 베인’, 크리스마스 맞아 이벤트 실시

    모바일 게임 ‘드래곤 베인’, 크리스마스 맞아 이벤트 실시

    모바일 게임 개발사 ‘디지털 클라우드’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드래곤 베인’ 유저들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실시한다고 24일 밝혔다. 우선 오는 26일까지 게임을 하면서 크리스마스 아이템을 획득하는 ‘크리스마스 트리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번 이벤트에서는 지하 던전, 엘리트 던전, 멀티 전장, 일반 던전 등 곳곳에 숨어있는 크리스마스 장식 아이템을 획득하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면 장식에 따라 골드, 공훈, 마력카, 정혼 등 보너스를 제공한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장식한 아이템 수량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지며, 그 완성도에 따라 다양한 아이템을 증정한다. 완성도는 총 4개 단계로 나뉘며 단계별로 총 4번의 선물을 획득할 수 있다. 이어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크리스마스 이브 이벤트’를 실시한다. 24일 하루 동안 게임에 접속하여 이벤트 인터페이스를 통해 비어있는 양말을 획득한 후 양말을 침대에 걸고 자면 새벽에 산타 할아버지가 다양한 아이템을 넣어준다. 산타 할아버지가 밤사이 채워둔 다양한 아이템은 25일에 이벤트 인터페이스에서 비어있는 양말로 선물이 담긴 양말을 교환할 수 있다. 이밖에 충전 이벤트도 실시한다. 오는 25일까지 게임에 필요한 다이아를 충전하는 유저를 대상으로 충전 다이아의 30%를 보너스로 더 제공해준다. 디지털 클라우드 관계자는 “그동안 보내준 유저들의 성원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이번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진행하게 됐다”며 “드래곤 베인과 함께 풍성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드래곤 베인은 사악한 드래곤과 몬스터가 넘쳐나는 암흑 세상에서 용병이 되어 세상을 구하는 내용의 세계의 MMORPG 체계의 게임으로 현재 구글 플레이와 티스토어, 앱스토어를 통해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집과 무덤을 ‘물물교환’ 83세 할아버지의 사연

    집과 무덤을 ‘물물교환’ 83세 할아버지의 사연

    주택과 무덤을 맞바꾸는 물물교환이 성사됐다. 주인공은 “재산을 친척에게 주지 않겠다”면서 주택을 주고 무덤을 받기로 했다. 83세 우루과이 할아버지가 재산을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할아버지는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북쪽으로 200km가량 떨어진 비샤델카르멘에 살고 있다. 할아버지는 일찍 가족들을 잃고 혼자가 됐다. 80세를 넘기면서 조용히 인생을 정리할 준비를 하던 할아버지. 그러나 조카들이 할아버지의 전 재산인 집을 노리는 걸 알게 되면서 할아버지는 갑자기 분주해졌다. 상속인이 없어 자신이 사망하면 집을 물려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카들이 할아버지의 재산을 상속하기 위해 달려들자 괘씸한 생각이 든 것. 할아버지의 집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2100만원 정도인 서민주택이다. 큰 재산도 아닌 걸 노린 조카들이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솟았다. 할아버지는 “조카들에겐 절대 집을 물려주지 않겠다”면서 시 당국과 접촉에 나섰다. 집을 넘겨줄테니 공동묘지에 무덤 1기를 달라면서 시 당국과 협의에 들어갔다. 할아버지의 사연을 알게 된 시장은 물물교환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망 후 재산(집)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할아버지의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시립공동묘지에 자리를 내주기로 했다. 누베르 메디나 시장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게 되어 기쁘다”면서 “사후에도 모든 일이 할아버지의 유지대로 진행되도록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할아버지는 시와 물물교환 계약을 맺은 뒤 집을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죽어서도 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인다”면서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엘파이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산타 썰매 끄는 ‘루돌프 코’가 빨간색인 이유는?

    산타 썰매 끄는 ‘루돌프 코’가 빨간색인 이유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 할아버지와 함께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배달한다는 루돌프는 왜 코가 빨간색일까? 최근 스웨덴 연구팀이 이에대한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관심을 끌고있다. 동화와 노래에 등장하는 루돌프의 모델은 순록이다. 재미있는 것은 순록의 코가 실제로도 빨갛다는 사실. 루돌프 코가 유독 빨간 이유는 바로 추위로 인한 혈류의 증가 때문이라는 것이 연구팀이 설명이다. 연구를 이끈 룬드 대학교 로날드 크루거 교수는 “순록은 다른 신체 부분과는 달리 코 부분이 털에 덮여있지 않다” 면서 “혈류의 코 부분에 피를 따뜻하게 돌게 만들어야 먹이를 찾을 수 있는 후각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열화상 카메라로 순록을 관찰하며 이같은 결과를 얻어냈으며 이를 사진과 더불어 관련 학술지에 발표했다. 한편 루돌프 코의 비밀을 밝힌 연구결과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에도 네덜란드 연구진이 같은 내용의 논문을 발표해 눈길을 끈 바 있다. 당시 에라무스 메디컬센터 캔 인스 교수는 “순록의 코는 인간보다 25%나 더 많은 혈관을 가지고 있다” 면서 “풍부한 혈관이 충분한 양의 산소를 공급해 뇌의 온도 조절과 동상으로 부터 보호한다”고 밝혔다. 이어 “왜 산타가 전세계를 날아다니며 선물을 배달하는 중책을 순록에게 맡겼는지 그 이유가 드러난 셈”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역대 대통령들이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 공개

    역대 대통령들이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 공개

    역대 대통령들이 받은 크리스마스가 안전행정부 국가기록원의 대통령기록 포털을 통해 공개됐다. 공개된 대통령 기록물은 어린이들이 대통령께 전달한 카드 14점, 사진기록물 6건 등 총 30건이다. 이번에 공개된 기록물은 대통령을 ‘할아버지’라고 쓴 어린이들의 동심이 담겨 있어 특별하다. 리틀엔젤스(대한 어린이 무용단)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카드에는 “박 대통령 각하님과 사모님 저는 요번 크리스마스에 이곳에서 제일 맛있는 햄버거와 뽀뽀를 선물해 드리고 싶답니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웅동중학교 학생들에게 받은 카드에는 “이번 해에 대통령에 당선되시고 우리와의 약속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치하시느라 힘드시죠? 그래도 나라를 위해 하는 일이니깐 힘들더라도 참아내시고 바르고 좋은 정치로 이끌어 주세요” 등의 글이 적혀 있다. 이 밖에도 최규하·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의 크리스마스 메시지 등 역대 대통령의 크리스마스를 엿볼 수 있는 기록물이 소개된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北김정은, 알고보니 ‘반쪽 백두혈통’…외가 ‘친일행각’ 드러나

    北김정은, 알고보니 ‘반쪽 백두혈통’…외가 ‘친일행각’ 드러나

    북한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백두혈통’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면서도 생모 고영희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이유가 고영희 가문의 친일행각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YTN은 24일 구(舊) 일본 육군성의 극비문건을 입수, 확인한 결과 김정은의 외할아버지인 고경택이 일본의 군수공장에서 일한 사실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가치관으로 보면 친일파는 ‘3대에 걸쳐 제거해야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생모와 외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도에 따르면 고영희의 아버지인 고경택은 스스로 일본 오사카에 있는 ‘히로타 군복공장’에서 일을 했다고 밝혀왔다. 고경택은 이 곳에서 고위직인 관리인 신분까지 올라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곳은 일본 육군성의 비밀 문건에 ‘극비’라고 기재된 곳이다. 지난 1962년 북송선을 타고 북한에 간 고경택은 조총련의 공식잡지인 ‘조선화보’를 통해 일본 내 행적을 일부 밝히기도 했다. 고경택의 딸 고영희는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번째 처로 김정철과 김정은, 김여정을 낳았다. 북한은 지난해 김정은 체제가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고영희의 기록영화를 제작, 당 간부들을 중심으로 선전에 나섰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는 방영하지 않았고 이후 고영희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제1위원장의 할머니인 김정숙에 대한 대대적인 우상화 작업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고영기 데일리NK 도쿄지국장은 “귀국자인 고경택이 일본군 협조자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의 가치관으로는 김 제1위원장은 ‘매국노의 손자’가 되기 때문에 ‘3대에 걸친 제거 대상’에 포함될 수 밖에 없다는 설명도 했다. 결국 항일투쟁을 한 김일성을 잡으러 다닌 일본군의 군복을 사돈인 고경택이 만든 꼴이 되기 때문에 김정은의 백두혈통은 ‘반쪽짜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독거 어르신 ‘밀착 보살핌’

    강동구는 독거 노인을 맨투맨으로 보살피는 ‘어르신 살피미’ 사업을 다음 달부터 본격 가동한다고 23일 밝혔다. 구와 동 주민센터가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보호를 필요로 하는 독거 노인을 선정, 살피미를 1대1로 결연해 주는 방식이다. 11~12월 시범운영을 거쳐 노인 782명을 살피미 496명이 밀착해 돌본다. 내년에는 중점관리 대상을 모두 관리할 수 있도록 2000명까지 살피미를 확대한다. 통장과 직능단체원, 동 복지네트워크 위원, 자원봉사자 등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살피미로 참여한다. 이들은 전화나 방문을 통해 주 2회 이상 안부를 확인한다. 이상징후 땐 동 주민센터로 연락해 필요한 서비스를 즉시 요청한다. 생활상태, 심리상태도 꼼꼼히 기록한다. 주민센터는 관리카드와 종합관리대장을 작성해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관리한다. 실제 지난달 살피미가 치매 증상을 보인 백모(90) 할아버지 집을 방문해 조치를 취했다. 현대홈쇼핑과 열린장애인문화복지진흥회 강동지부의 협조로 집안 대청소도 했다. 강동라이온스클럽의 도움으로 주 1회 청소를 하고 밑반찬을 드리기로 했다. 근본적 해결을 위해 미국에 살고 있는 딸에게 연락해 요양원으로 모실 것을 권했다. 현재 백 할아버지는 노인요양병원에 입소해 있다. 구는 올 8~10월 현황조사를 해 독거 노인 4929명 중 중점관리 대상자 1838명을 선정했다. 이해식 구청장은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위기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공동체 문화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를 보듬겠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경로당 방구들 후끈! 뜨끈해진 노인복지 누리세~

    경로당 방구들 후끈! 뜨끈해진 노인복지 누리세~

    서울 관악구에는 경로당이 100곳을 웃돈다. 유종필 구청장은 민선 5기 취임 이듬해 ‘목동’(목요일마다 동장이 되는 구청장)이 돼 경로당을 돌다가 깜짝 놀랐다. 한 곳에 갔더니 할머니 다섯 분이 바닥에 이불을 두 겹으로 깔아 놓은 뒤 발을 넣고 모여 앉아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또 다른 경로당에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한 방에 모여 있어 의아하게 생각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방 난방 시설이 고장나 어쩔 수 없이 함께 사용하게 된 것이었다. 너무 낡은 시설 탓에 복지 시설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로당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유 구청장은 “이게 정말 서울인가 싶어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되돌아봤다. 유 구청장은 곧장 종합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경로당 운영 및 지원에 관한 조례도 제정하고, 지난해 초부터는 경로당 활성화 사업을 본격화했다. 개보수와 리모델링 및 신축 등 시설 개선은 기본. 구는 보조금 지급을 현실화하고 단순 쉼터 정도로 여겨졌던 경로당을 여가 활용을 위한 복합문화 공간 및 일자리 창출 공간으로 바꿔 나가고 있다. 유 구청장은 올해에도 지난 9월부터 이달 초까지 경로당을 모두 돌며 현장 상황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최근 관악에서 경로당이 새로 들어서고 잇따라 리모델링되는 것은 종합 대책을 꾸준히 펼친 결과다. 덕택에 노인들이 더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게 됐다. 미성동 약수경로당은 26일 신축 준공식을 갖는다. 1992년부터 사용하던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3억 7000여만원을 들여 연면적 160㎡, 지상 2층 규모의 아늑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노인 이용 공간을 배려해 지하 대신 지상 면적을 넓혔다. 내부 벽면은 친환경 벽지를 사용하는 등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또 옥상에 텃밭을 조성해 노인들이 관악산 경관을 즐기며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조원동 강남경로당과 신원동 신원경로당도 5개월간 리모델링 공사를 끝내고 각각 18일과 23일 준공식을 치렀다. 외벽 방수 공사를 실시하고 담장을 새로 만드는 한편 보일러 및 배관 등도 갈았다. 실내 인테리어도 편안한 분위기로 바꿨다. 유 구청장은 “새로 단장된 경로당이 고향집 사랑방처럼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 여가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며 “언제나 어르신에게 효도하는 관악구라는 말을 듣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캐나다 속 ‘작은 프랑스’ 퀘벡의 정취에 빠지다

    캐나다 속 ‘작은 프랑스’ 퀘벡의 정취에 빠지다

    북아메리카에서 대서양으로 흐르는 하천 중 최대의 수계(水系)를 이루는 세인트로렌스강은 캐나다 퀘벡주를 관통한다. 퀘벡주 유역은 영국과 프랑스 간의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던 곳. 하지만 퀘벡은 아직까지 프랑스 문화와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 21일 오전 9시 40분 KBS 1TV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 캐나다 최대의 무역항을 자랑하는 도시 몬트리올과 ‘작은 프랑스’라는 별칭을 지닌 퀘벡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본다. 나이아가라폭포보다 30m나 더 높은 곳에서 물이 떨어지는 몽모랑시 폭포의 위용 있는 자태도 만나 본다. 노트르담 바실리카 성당은 몬트리올을 찾는 여행객이라면 한 번씩 꼭 들르는 곳이다. 몬트리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며 북미에서 손꼽히는 최대 규모의 성당인 노트르담 바실리카 성당은 내부의 장식들이 화려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성당 안의 파이프오르간은 캐나다에서 가장 큰 오르간으로 파이프 수만 7000개에 이른다. 미사에 참여하면 관광객들은 이 파이프오르간의 아름답고 웅장한 소리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1976년 올림픽 개최지였던 몬트리올 올림픽경기장은 올림픽 이후 시민들을 위한 스포츠 공원이자 휴식처로 사용돼 왔다. 특히 사이클 경기장을 개조해 만든 바이오돔은 북미와 남미 대륙 다섯 지역을 대표하는 동식물 1000여종과 토양, 환경 등을 재현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명소가 됐다.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성곽 도시 퀘벡. 퀘벡주 안에서도 가장 프랑스적인 정취가 풍기는 도시인 이곳에는 곳곳에 성벽과 군사 요새가 남아 있다. 또 프랑스와 영국이 벌였던 아브라함 평원전투가 있었던 아브라함 평원은 프랑스와 영국의 전투와 퀘벡의 역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또 다른 도시 리비에르뒤루에서는 요즘 다가올 크리스마스의 시작을 알리는 산타 퍼레이드가 한창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퍼레이드에 참가한 인원만 무려 1만 5000명. 피에로부터 꼬마 산타, 미녀 산타, 할아버지 산타까지 참가해 퍼레이드가 한껏 고조될 무렵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거리를 가득 메우며 즐거운 댄스 타임이 펼쳐진다. 1912년 세계 최대의 해난 사고로 1400명의 사망자를 낸 타이타닉호에 이어 2년 뒤 세인트로렌스강에서는 또 한 번의 참담한 해난 사고가 발생했다. 화물선과 충돌 후 14분 만에 배는 침몰했고 1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침몰한 배에서 인양된 각종 물품을 전시하고 있는 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 박물관에서 당시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돈 벌려고 떠난 독일이지만 긍지도 있었다”

    “돈 벌려고 떠난 독일이지만 긍지도 있었다”

    “1965년 군 제대하고 약혼식을 올린 뒤 스물다섯 나이에 독일로 갔지. 당시 월급이 700~800마르크(당시 환율가치로 14만~20만원)였는데 한국의 6배는 됐을 거야. 3년 뒤 그 돈으로 결혼도 하고 신혼집도 마련했어.” 18일 서울도서관 ‘파독 광부·간호사 50주년’ 전시회에서 만난 김기길(73) 할아버지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할아버지는 “1963년 12월 21일 제1기 광부 123명이 독일로 떠났고 나는 1965년 3기로 갔다”며 “광부 시험이 100대1로 경쟁이 치열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난한 시절 돈을 벌려고 떠난 길이었지만 긍지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광부·간호사 파독 50주년을 기념해 독일 정부기관, 전문기록보존소, 사회단체 등에서 수집한 해외 희귀기록물이 기획전시실에서 오는 29일까지 선보인다. 공개되는 기록물은 독일 광산기록보존소와 사회운동기록보존소, 병원협회 등 독일 전문기록관리기관과 사회단체 등에서 수집한 기록물 25만여점 중 150여점이다. 지금까지 개인이 기증한 파독 광부·간호사 기록물은 많았지만 독일 전문기록관리기관에서 기록물을 수집한 것은 처음이다. 전시회에서는 광부·간호사의 당시 근무 모습, 일상생활, 힘겨운 삶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광산근무 때 지켜야 할 수칙 안내문, 광부작업복 제공과 세탁 안내문 등 탄광 내 광부들의 일상사에 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파독 광부들이 부당해고를 당하고 있다는 기사와 한인자치회에서 저임금 해결을 독일 노동조합에 요청하는 서신 등도 포함됐다. 파독 간호사들의 병원 생활상과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싶다는 내용을 적은 서신 등에선 독일에서 문화적 차이로 겪은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 한국 간호사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독일 병원에서 만든 교육 프로그램, 독일병원협회와 한국개발공사 사이에 한국 간호사 업무개선 회의 등의 기록도 공개됐다. 1970년대 초반 재독한인사회의 발전상도 소개돼 눈길을 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뉴스 분석] 김정은 1인체제 ‘정치적 즉위식’

    [뉴스 분석] 김정은 1인체제 ‘정치적 즉위식’

    북한 조선중앙TV는 17일 오전 10시 55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2주기 중앙추모대회를 생중계하며 주석단에 등장한 김정은(얼굴)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주체혁명의 영도자’이자 당과 인민의 최고영도자로 칭송했다. 72분간 진행된 이날 추모대회는 김 제1위원장의 1인 지배체제 수립을 대내외에 선포한 사실상의 ‘정치적 즉위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망한 지도자에 대한 추모보다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절대 충성의 무대였다. 북한은 지난 6월 ‘노동당 10대 원칙’을 개정하면서 ‘공산주의·사회주의 위업’이라는 문구를 삭제하고, ‘당과 혁명 명맥을 백두혈통으로 영원히 이어나간다’는 표현을 넣으며 사실상 왕조식 세습 통치를 명문화한 바 있다. 북한은 당시 배척 대상으로 ‘세도(勢道) 정치’를 내세워 이미 그때 김정은 권력 공고화를 위한 숙청이 예고됐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이날 김 제1위원장을 ‘위대한 원수’로 호칭하며 “영도의 유일 중심으로 일편단심 충직하게 받들자”고 강조했다.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혁명 무력이 김 제1위원장과 생사운명을 같이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장성택 처형과 부친 2주기를 끝낸 김 제1위원장은 이제 할아버지인 김일성(집권 기간 46년) 주석과 아버지인 김 위원장(16년)에 이어 집권 3년차 최고지도자로서 ‘홀로 서기’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추모대회에서는 김정일 시대 당시 주석단 맨 앞줄을 차지했던 김격식 전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 리명수 전 인민보안부장 등 군부 원로 인사들이 사라져 군부의 세대교체를 실감케 했다. 장성택 숙청 공신들은 주석단에서도 김 제1위원장의 지근거리에 포진해 위상 변화를 과시했다.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 제1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 당 비서는 추모대회 등에 모두 불참했다. 김 위원장 2주기 이후 북한은 반(反)김정은 세력 잔당을 솎아 내는 ‘피의 숙청’을 이어 갈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내부 동요를 희석하기 위한 ‘외부로의 도발’ 등 대외 강경 행보로 치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케이블 하이라이트]

    ■아저씨(채널 CGV 밤 1시 10분) 전직 특수요원 태식은 불행한 사건으로 아내를 잃고 세상을 등진 채 전당포를 꾸려가며 외롭게 살아간다. 그에게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러 오는 사람들과 옆집 소녀 소미뿐이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소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태식과 소미는 서로 마음을 열며 친구가 되어 가던 어느 날, 소미가 갑자기 사라진다. ■쇼콜라의 마법(투니버스 밤 8시) 숲 속의 신비한 저택에 사는 쇼콜라. 그녀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마법의 초콜릿을 파는 쇼콜라티에다. 어느 날 소원을 이루고 싶은 소녀 시온이 그녀를 찾아와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다. 알고 보니 시온은 평소에 뛰어난 피아노 재능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고독하고 힘든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더 리턴드:죽은 자의 귀환(AXN 밤 10시 50분) 학생들을 태우고 달리다 벼랑으로 떨어진 학교 버스. 사고가 있고 4년 뒤, 이 버스에 타고 있던 카미유가 멀쩡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한편 오랜 세월 혼자 산 코스타의 집에도, 일을 마치고 돌아온 줄리에게도, 그리고 결혼 준비에 바쁜 아델에게도 죽은 줄만 알았던 사람들이 버젓이 나타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선정 2013 10대 키워드(내셔널지오그래픽 밤 11시) 전 세계의 대통령, 정상들이 연간 700번 이상 방문하는 미국 최대의 도시 뉴욕. 미국 비밀수사국의 요원들은 그들을 경호하는 것 외에도 중요한 임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미국 경제의 중심지, 월 스트리트를 사이버 테러로부터 보호하는 중요한 임무도 포함되어 있는데…. ■버니드롭(스크린 밤 11시) 외할아버지의 죽음으로 몇 년 만에 고향집에 내려온 다이키치. 하지만 외할아버지에게 숨겨놓은 딸 린이 있었다는 사실에 온 집안은 발칵 뒤집혀 있었다. 게다가 린의 나이는 겨우 여섯 살에 불과하다. 그렇게 엄마 되는 사람은 흔적조차 없고 린의 양육 문제를 서로 미루려고만 하는 친척들의 이기적인 태도에 다이키치는 폭발하고 만다. ■몬수노(니켈로디언 밤 8시) 신비의 산악 지대에 있는 테바브 사원. 체이스, 브렌, 비키는 몬수노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테바브 사원의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눈사태를 만나고 브렌이 다리를 다친다. 다행히 테바브 도서관 관장인 벡터라는 이름을 가진 승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도서관에 도착하지만, 그곳에서 대접해 준 음식을 먹다가 갑자기 정신을 잃고 만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