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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끈 잇게해준 내 생명의 동아줄

    삶의 끈 잇게해준 내 생명의 동아줄

     60세 김모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집을 나와 혈혈단신 전국을 떠돌기 시작한 것은 고작 열 살 무렵이었다. 껌팔이, 앵벌이, 구두닦이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스물두 살에 처음 취업을 했지만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지칠 대로 지쳐 10년 남짓 만에 찾은 고향은 김씨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줬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김씨는 막막한 심정으로 고향의 문 닫은 공장 건물에서 숨어 지내다 도둑으로 몰렸다. 억울하다고 항변해도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김씨는 강도, 절도를 반복하며 교도소를 드나들었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은 강원도 춘천 의암댐 부근 야산이었다. 세상을 등지고 그곳에 비닐 움막을 짓고서 살았다. 아무도 찾아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김씨의 지우고 싶은 과거의 이야기다. 똑같을 수는 없지만, 수많은 사람이 김씨와 같은 고통을 안고 산다. 사회보장제도가 이전보다는 촘촘해졌지만 각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현장은 아직 인력과 예산 문제로 허덕인다. 그럼에도 복지공무원들과 통합사례관리사들은 사각지대를 줄이고자 각지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사회보장제도가 한부모가정, 노숙인, 장애인, 결혼 이주여성, 탈북자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힘이 된 사례를 공모했다. 사회보장급여를 지원받은 사례와 복지통(이)장 또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참여해 취약계층을 지원한 사례로 나눠 공모한 결과 전국에서 모두 262건이 응모했고 2차례 심사를 거쳐 지원받은 사례와 지원한 사례 각 5건의 대상을 23일 선정했다. 대상을 포함해 최우수, 우수 등 모두 80건의 사례를 뽑아 포상키로 했다. 수기에 등장한 사회복지 현장 실무자들은 삶이 버거운 이들의 짐을 덜어주고자 한 번 도움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자립할 때까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사회보장제도를 찾아 지원했다. 김씨의 사례가 대표적인 경우다. 김씨는 야산을 찾아온 춘천시 희망복지지원팀의 도움을 받아 사례관리대상자로 선정됐다. 2개월치 월세를 지원받아 주거지부터 옮겼고 임대주택 입주 대상자로도 선정됐다. 보증금은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통해 우체국 공익재단으로부터 지원받았다. 김씨는 수급비와 기관 지원금을 모아 붕어빵 노점을 시작했다. 매출이 오를 때쯤 김씨에게는 푸드트럭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통합사례관리사의 도움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의 사회공헌캠페인인 기프트카를 신청해 지원대상자로 선정됐다. 기프트카를 받아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부지런히 일한 덕에 월평균 500만원의 매출을 냈다. 김씨는 3개월 만에 당당히 소득 신고를 하고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났다. 지금은 보육원·양로원을 찾아 붕어빵 봉사를 하고 있다. 공적복지제도와 민간 분야 사회복지제도가 유기적으로 작동해 상승효과를 낸 사례다. ●남편 잃은 이주여성, 새 보금자리를 찾다  위기의 순간에 작은 도움이 이주 여성에게 희망을 찾아준 사례도 있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필리핀 여성 A(30)씨는 지난해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오갈 데가 없어졌다. 시댁 식구들은 남편이 남긴 집과 땅을 뺏으려 했다. 마을 이장은 A씨의 사정을 전북 완주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완주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A씨의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어 주었고 A씨는 한국어학당을 다시 다니며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완주군 고문변호사는 남편의 유산 문제를 해결해 줬고 군 희망복지지원단은 새집을 선물했다. 지역 협동조합은 A씨의 두 딸을 위해 책상과 의자를 선물했고 완주 문화의 집 홈패션동아리는 A씨의 집에 커튼을 선물했다. 크고 작은 도움이 꼬리를 물고 ‘홀로서기’를 응원했다. 한국어조차 서툴렀던 A씨는 중학교 급식실에 취직해 직접 생활비를 벌고 있다. ●아들 학대받던 80세 노모, 일자리를 얻다  광주시 상무동의 지역복지사들은 의무 부양자와 본인 명의의 집이 있어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된 80세 할머니를 돕고자 머리를 짜냈다. 할머니는 폭력적인 큰아들을 피해 두 아들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생활하고 있었다. 신안염전 노예였던 막내아들은 밖에 나서기를 두려워했고 정신장애가 있는 둘째 아들이 간신히 청소일을 해서 돈을 벌고 있었다. 상무2동 복지협의체는 두 아들을 위해 서구정신보건센터를 소개해 주고 지역 청소년수련원의 폐품을 할머니가 모두 가져갈 수 있도록 조치했다. 고물상 부부는 할머니를 위해 손수레를 무상 제공했다. 할머니를 지원한 상무2동 복지협의체 민간위원 서기수씨는 “단순히 돈을 주는 것보다 이웃들끼리 관심을 두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 줄 방법을 지역에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설렜다”고 돌이켰다. ●세상 등지려던 아버지, 옷가게를 열다  경기 남양주시 호평동 복지협의체는 5년 전 부인과 사별한 뒤 자포자기한 정모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내가 죽고 나서 첫째 아들은 엄마를 잃은 슬픔으로 정신질환을 앓게 됐고, 정씨는 생계·육아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소득 활동을 하지 못했다. 정씨의 취업도 문제였지만 첫째 아들의 심리 치료도 시급했다. 호평동 복지협의체는 관내 동부희망케어센터를 연계해 가족심리치료를 진행했다. 또 외식업체와 반찬업체 등 지역 후원자를 통해 매주 정기적으로 반찬을 지원했다. 지난 6월에는 방송사의 도움으로 거주지 인근에 옷가게를 열 수 있게 됐고, 옷가게를 운영하는 지역주민들이 직접 컨설팅에 나섰다. 호평동 복지협의체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정씨의 가정을 방문하고 있다. 정씨는 현재 자녀와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역 복지사들은 때로 금이 간 가족 관계를 복원하는 데 나서기도 한다. 김모(58)씨는 골절 사고를 당한 뒤 생계가 어려워지자 아들과의 관계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통합사례관리사는 월미도까지 가 김씨의 아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그를 격려하고 김씨에게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줬다. 마음을 다잡은 김씨의 아들은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취득하고 대학에도 합격했다. 한때 자살 기도까지 했던 김씨는 가족과 함께 인생 재도전을 하고 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10억 기부한 70대 부부 “이웃을 보살피라는 조부말씀 실천했을 뿐”

    10억 기부한 70대 부부 “이웃을 보살피라는 조부말씀 실천했을 뿐”

    70대 사업가 부부가 10억원을 기부하며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허동수)의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으로 나란히 가입했다. 23일 오전 서울 중구 사랑의열매 회관에서 진행된 가입식에서 허천구(76) ㈜코삭 회장이 9억원, 부인 김미정(73)씨가 1억원 기부를 약정하며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남편 허씨는 986호, 부인 김씨는 987호 회원으로 등록됐으며, 부부 아너로는 54호가 됐다. 기부금은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청소년 복지시설 지원 등에 쓰일 예정이다. 강원 횡성 출신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허 회장은 현재 소다회를 미국에서 수입해 공급하는 ㈜코삭을 운영 중이다. 20대 직장인 시절, 외국 출장 중 우연히 방문한 사회복지시설에서 나눔문화를 접하고 기부를 시작했다. 허 회장은 삼미그룹 임원 재직 후 고려물류, 아시아냉장을 창업하는 등 40여년 동안 기업가로 활동했다. 모교인 춘천고등학교 학생을 위한 소양장학회에 기부금을 수차례 기탁했고 (재)춘고삼일장학회를 발족해 이사장을 맡고 있다. 또 고향인 강원도 지역사회를 위해 익명으로 15억여원을 기부해오기도 했다. 허 회장은“인생을 의미있게 마무리하기 위해 기부를 결심했고, 함께 기부에 동참해준 아내와 응원해준 두 아들 부부에게 고맙다”며 “어릴적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를 길러주신 할아버지께서 늘 이웃을 보살피고 사랑하라고 말씀해주셨고, 그 말씀이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언젠가 나눔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부부 아너 첫 회원은 2011년 10월 가입한 장선오ㆍ이덕우씨 부부이며 2014년에는 부부 의사인 배기선ㆍ김선화씨가 499호ㆍ500호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지난 10월에는 박종옥ㆍ김종민ㆍ박광재 회원들의 부인인 남명숙ㆍ이재정ㆍ신정윤 회원이 잇달아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며 한번에 부부 아너 3쌍이 탄생했다. 고액 순으로 보면 1위는 2013년 29억원을 독거노인을 위해 기부한 재일동포 익명기부자, 2위는 2008년부터 누적금액 25억원을 기부한 최신원 경기 공동모금회장(SKC회장), 3위는 20억원을 기부한 정몽준 전 국회의원이다.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34년 된 비닐봉투 지금도 사용하는 英할아버지 사연

    대부분 사용자가 한 번 사용하면 미련없이 버리는 비닐봉투. 그런 비닐봉투를 강산이 3번 넘게 바뀌도록 사용하는 남자가 있어 화제다. 영국에 사는 마틴 맥캐스키(72)가 바로 그 주인공. 맥캐스키는 외출할 때면 언제나 비닐봉투 한 장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나간다. 혹시라도 물건을 사면 편하게 운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가 애용하는 비닐봉투는 범상한 물건이 아니다. 맥캐스키는 34년째 이 봉투를 애용하고 있다. 맥캐스키의 비닐봉투에는 영국의 유통업체 테스코의 로고와 함께 50이라는 숫자가 커다랗게 인쇄돼 있다. 비닐봉투는 테스코가 오픈 50주년을 기념해 1981년에 제작한 것이다. 언제 비닐봉투를 손에 넣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제 35년이 되어가는 건 분명하다. 그동안 영국 총리는 5번, 미국 대통령은 6번, 교황은 3번이나 얼굴이 바뀌었다. 만든 지 34년이 지났지만 비닐봉투는 여전히 '건강'하다. 작은 구멍이 났지만 사용이 불편하거나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그만큼 소중하게 다루면서 사용한 덕분이다. 이건 맥캐스키의 품성 때문이다. 그는 "뭐든지 낭비하는 건 질색"이라고 말했다. 맥캐스키는 "그간 보관한 비닐봉투가 많다"며 "모두 오래된 것이지만 아마도 가장 오래된 건 이 (테스코) 비닐봉투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34년 동안 이 비닐봉투는 몇 번이나 사용됐을까? 맥캐스키는 대략 2000번 이상 봉투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도 외출할 때면 그는 비닐봉투를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고 나간다. 그는 "언제든지 봉투가 필요하면 비닐봉투를 꺼내 사용한다"며 "지금은 1주일에 1번 정도 이 봉투를 사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랜 사용자로서 맥캐스키는 비닐봉투에 대한 평가도 잊지 않았다. 맥캐스키는 "예전에 만들어진 비닐봉투가 요즘 것보다 질기고, 더 두터운 것 같다"며 "아마도 그 때문에 오래 사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머큐리프레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님아, 그 강을… ’ 이란 다큐영화제 대상

    지난해 국내 개봉한 진모영 감독의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이란 다큐영화제 ‘시네마베리테’ 국제 경쟁 장편 부문 대상을 받았다고 이란 영자지 테헤란타임스가 22일 보도했다. 시네마베리테는 2007년 시작된 영화제로 이란 정부 지원을 받는 영화 진흥·제작기관인 이란 다큐멘터리·실험영화센터(DEFC)가 주최한다. 국제 부문에 57개국, 600여개 작품이 출품된 올해 행사는 지난 20일 폐막했다. 테헤란타임스는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강계열 할머니가 외딴 산간 마을에서 완전하고 초월적인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담은 다큐”라고 소개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동심아닌 여심 사로잡는 ‘패션 산타’ 화제

    동심아닌 여심 사로잡는 ‘패션 산타’ 화제

    푸짐한(?) 몸매를 지닌 전통적인 산타할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패셔너블한 산타가 등장해 관심을 끌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미러 등 외신은 ‘패션 산타’로 활동하고 있는 30년 경력의 캐나다 모델 폴 메이슨(50)을 소개했다. 메이슨은 지난해부터 캐나다 토론토 주에 소재한 요크데일 쇼핑센터와 계약을 맺고 패션 산타로서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당시 지역 잡지에서는 그를 ‘가장 패셔너블한 인물’ 섹션에 선정했고, 이에 주목한 요크데일 쇼핑센터는 메이슨을 홍보 모델로 기용할 계획을 세웠었다. 그리고 우연히도 이 무렵 메이슨 또한 쇼핑센터에 스스로 찾아와 동업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올해 두 번째로 시작된 패션 산타 프로젝트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요크데일 쇼핑센터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메이슨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려는 고객들이 가득하다. 이러한 손님 중에는 팝스타 저스틴 비버 등 유명인들도 일부 포함돼있다. 올해의 프로젝트에서는 지난해와 다르게 자선행사도 병행된다. 고객들이 메이슨과 함께 찍은 사진을 ‘요크데일패션산타’(YorkdaleFashionSanta)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트위터에 업로드하면 쇼핑센터는 1장당 1캐나다달러(약 850원)의 성금을 아동 환자 지원단체인 ‘식키즈 파운데이션’에 기부하고 있다. 루시아 코너 요크데일 쇼핑센터 마케팅 부장은 “폴 메이슨은 아주 뛰어난 모델로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얼굴 덕분에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객들은 성인의 취향에 맞게 재해석된 산타에 즐거워한다”며 “패션 산타는 어른 고객들에 크리스마스의 환상을 다시 선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요크데일 쇼핑센터/트위터(위에서 세 번째)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매주 손과 발 되어주는데… 딸보다 낫지”

    “매주 손과 발 되어주는데… 딸보다 낫지”

    해마다 12월이 되면 소외되고 그늘진 이웃들의 신산한 삶에는 화려하고 들뜬 세밑 풍경이 그려내는 그림자가 한층 더 길고 진하게 드리워진다. 동시에 그들을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사람들의 손길은 더 바빠진다. 서울신문 기자들이 서울 성북구 ‘정릉골’과 종로구 숭인동 쪽방촌을 담당하는 경찰관과 독거노인 돌보미(재가관리사)를 20일 동행 취재했다. “애기야, 어쩐 일로 여길 다 왔누.” 지난 20일 독거노인 돌보미(재가관리사) 일일체험을 위해 찾은 서울 종로구 숭인동 일대 ‘쪽방촌’ 노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낯선 젊은 얼굴을 ‘애기’라고 불렀다. 16년차 베테랑 돌보미 이진희(54·여)씨도 그들에게는 살가운 ‘막내’였다. 돌보미는 집안일과 잔심부름, 병원 동행 등을 하는 독거노인의 손과 발이다. 그러나 노인들이 그들을 부르는 이름에는 ‘복지 서비스’라는 딱딱한 단어로는 다 담지 못할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를 뚫고 노막례(75) 할머니의 집부터 찾았다. 종로구에만 7명의 돌보미가 각각 하루 평균 서너 곳을 방문한다. 짐을 풀기가 무섭게 청소부터 시작했다. 걸레를 다섯 번 이상 빨아 가며 집안 구석구석을 닦았지만 할머니의 성에는 차지 않는 듯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시집살이하는 기분으로 집안일을 얼추 끝내자 할머니는 따뜻한 아랫목을 내어주었다. 이제 ‘수다 보따리’를 풀 시간인 것이다. 정신없이 신고식을 치르고 나니 점심시간이다. 근처 식당에 들어가 겨우 밥 한 술 뜨려는데 이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내일 방문하기로 돼 있는 김모 할아버지의 김치 심부름이었다. 일정에 없어도 이렇게 연락이 오면 별 수 없다. “원칙대로만 하려고 하면 이 일 못 해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는 이씨를 따라 일어섰다. 치아가 안 좋은 할아버지를 위해 반찬가게에서 사온 김치 한 포기를 잘게 썰어 냉장고에 넣어 두고 예정대로 김복례(84) 할머니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돌보미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일거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씨는 김 할머니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요강부터 집어 들고 깨끗이 닦았다. 경력 서너 시간 남짓인 ‘초짜’ 돌보미도 쭈뼛대며 빗자루를 손에 들었다. 한참을 쓸고 닦은 뒤에는 몸단장에 나선 할머니의 머리를 매만지는 것도 돌보미의 몫이다. 얼마 전 넘어져 뒤통수를 다쳤다는 할머니의 말에 빗질을 하며 상처가 잘 아물었는지도 조심스레 살폈다. 김 할머니는 10여년째 살림을 돌봐주는 돌보미가 가족 같다고 했다. “친자식도 제 부모를 매주 안 찾는 마당에 딸보다 낫지.” 김 할머니의 윗집에 사는 조단림(87) 할머니도 4년째 돌보미의 도움을 받는다. 이날은 조 할머니가 목욕을 하는 날이었다. 최근 할머니가 왼쪽 두 번째 발가락에 동상이 걸려 고생했던 터라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발부터 담그고 목욕을 시작했다. 샴푸 향기를 가득 풍기는 할머니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헌 옷은 비벼 빨았다. 쪽방촌의 모든 빨래는 손으로 이뤄진다. 세탁기는커녕 온수라도 잘 나오면 다행이다. 인기척이 들려 나가 보니 문 앞에 할머니의 ‘일용할 양식’인 우유가 놓여 있었다. 구의 지원으로 독거노인들에게 하루 하나씩 배달되는 180㎖ 들이 팩이다. 대접할 것 없는 텅 빈 냉장고를 아쉬워하던 할머니가 아이처럼 기뻐하며 우유를 한사코 애기의 손에 쥐어 줬다. 못 이기는 척 받아든 우유팩에서 훈기가 느껴졌다. 숭인동 노인들이 이 추운 겨울을 나는 비결인 듯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비탈길 판잣집 자물쇠도 꼼꼼히 점검

    비탈길 판잣집 자물쇠도 꼼꼼히 점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성북경찰서 정릉파출소에서 출발한 순찰차가 산 중턱으로 이어진 도로에 들어섰다. 동행한 경기식(57) 경위, 김기현(44) 경사는 “전방과 양옆을 잘 살피세요, 신고 들어오면 바로 차 돌립니다”라고 연신 강조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보지만 낮 시간대라 그런지 행동이 수상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힘겹게 비탈길을 오른 순찰차는 골목 어귀에서 멈췄다. 성북구 정릉3동, ‘정릉골’ 일대는 서울에서 몇 군데 남지 않은 달동네다. 좁은 골목길 탓에 차로는 순찰이 불가능하다. 2년 넘게 짝을 이뤄 마을을 순찰한 두 경찰관은 익숙한 듯 차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섰다. 마을의 유일한 길인 가파른 계단을 10분 넘게 오르다 보니 숨이 차오른다. 먼저 골목마다 늘어선 판잣집 가운데 빈집에 들어가 외부인의 침입 흔적은 없는지 등을 점검했다. 대문 틈 사이로 빼곡하게 꽂혀 있는 우편물, 먼지 쌓인 문 손잡이는 ‘이곳이 빈집’이라고 알려 주고 있었다. 몇 번이나 재개발이 추진되다 무산된 이 마을은 전체 240가구 가운데 32가구 정도가 빈집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청소년들이나 철없는 어른들의 범죄 장소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수시로 점검이 필요하다. 가파른 계단을 오가는 중에도 무전기가 울릴 때면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신고가 접수되면 곧바로 차로 돌아가 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빈집 점검을 마친 뒤부터는 수첩을 꺼내 메모하느라 정신이 없다. “불(전구)이 잘 안 들어와. 경찰 양반”과 같은 주민들의 하소연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은 순찰을 마친 뒤 파출소로 돌아가 주민센터 등으로 전달했다.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 노인 가구는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혼자 사는 황선분(83) 할머니는 경찰 제복의 두 사람을 보자 “잊지 않고 또 찾아오셨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건넸다. 황 할머니는 지난달 옆집 할아버지와 다퉜다가 작은 부상을 입었다. 경 경위는 할머니 집의 자물쇠 상태를 확인하고, 주변의 위험한 도구들을 한쪽으로 치웠다. 정릉골에서 절도나 폭행 등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훔쳐갈 것 없는 마을이라고 해서 주민들의 불안함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임문석(66)씨는 “가난해서 큰일 날 리 없는 동네라지만 세상이 워낙 무섭잖아”라며 “경찰들이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라고 말했다. 아흔의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임씨는 건강 상태가 악화되면서 건설현장 막일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별 일 없다는 말을 들은 뒤에야 임씨 집을 나서던 김 경사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그에게 잔소리를 날렸다. “오늘 같이 추운 날은 연탄 3장씩 때지 말고, 6장씩 때야 돼요. 연탄 아까워하지 마세요.” 두 사람은 마을을 샅샅이 살피고 나서야 차를 대놓은 골목 어귀로 발걸음을 옮겼다. 2시간 정도의 순찰은 달동네 연탄재 가루에 순찰차가 뿌연 먼지를 쓰고 파출소로 돌아오면서 끝이 났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산골’ 봉화에 산타마을 개장

    ‘산골’ 봉화에 산타마을 개장

    “산골 산타마을로 오세요.” 경북 봉화군은 지난해 겨울 엄청난 인기를 끈 산타마을을 재개장, 운영에 들어갔다고 19일 밝혔다. ‘산타야 놀자! 겨울 추억 신나게 만들어 보자’를 주제로 내년 2월 14일까지 문을 열 산타마을은 봉화 분천역일원을 산타의 나라에 온 것처럼 꾸몄다. 대형 풍차를 비롯해 이글루, 산타레일바이크, 당나귀 꽃마차, 눈썰매장, 국궁체험장 등 다양한 체험거리도 마련됐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캐럴을 부르는 공연도 한다. 또 마을 주민들이 만든 곤드레밥과 메밀부침, 군고구마, 찰옥수수 등 겨울 별미도 맛볼 수 있다. 코레일은 매일 오전 8시 35분 동대구역에서 출발, 분천 산타마을로 향하는 경북순환테마관광열차를 운영한다. 산타마을은 백두대간 협곡열차 출발역(분천역)이 있는 곳으로 낙동강 상류의 협곡 비경을 감상하며 트래킹을 할 수 있는 낙동강 세평하늘길(분천역∼승부역, 12㎞)과 함께 경북의 대표적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지난겨울에는 모두 11만명이 다녀갔다. 봉화군 관계자는 “올해는 지난해보다 규모도 키우고 체험행사도 많이 마련했다”면서 “연인, 가족들과 함께 산타마을에서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봉화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누가 김노인을 죽였나] 1t 트럭 채운 폐지 4만 7000원… 그나마 운수 좋은 날

    [누가 김노인을 죽였나] 1t 트럭 채운 폐지 4만 7000원… 그나마 운수 좋은 날

    [동행1… 끌차 끌며 폐품 줍는 할아버지] “이런 육시럴. 도둑놈 잡아라. 저 노인네가 내 박스 다 훔쳐 간다.”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한 편의점 앞. 길 건너에서 폐지를 줍던 60대 할머니는 종이 박스를 챙기는 노인을 보고 고함을 치며 단숨에 6차선 도로를 무단으로 가로질렀다. 할머니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편의점 쓰레기를 정리해 주는 대가로 받는 폐지를 매번 누군가가 훔쳐 가는데 오늘 범인을 잡았다며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 ‘현행범’으로 지목된 할아버지는 “버려진 걸 주웠을 뿐”이라며 억울한 표정이다. 과자 박스 4개 때문에 시작된 두 노인의 언쟁에 순경 2명이 출동했다. “거리 위 폐지는 소유권이 없어요.” 경찰의 말이 할머니의 화를 더 돋운다. 그렇게 20여분. 결국 박스는 목소리 큰 할머니의 차지가 됐다. “이악스런 여편네 같으니라고. 7년 넘게 폐지를 주웠지만, 나는 남이 모아 놓은 건 절대로 안 건드려. 자네도 며칠간 봤잖아.” 이현복(82·가명) 할아버지는 적극적으로 역성을 들지 않은 기자에게 섭섭함을 드러냈다.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건 3일 전 인근 언덕배기에서다. 정확히 말해 눈에 들어온 건 위태위태 비탈길을 거슬러 오르는 폐품 더미였다. 산더미 같은 폐품 더미 속에 등이 굽은 백발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자는 3일간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폐지를 주웠고 이날이 예정했던 마지막 날이었다. 노인은 하루 세 차례 힘겹게 끌차를 당기며 이 언덕을 오른다. 기력이 약해 많이 나를 수 없다 보니 끌차가 차면 4~5시간마다 한 번씩 폐품을 집에 내려놓는다. 주변엔 운동 삼아 하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는 고단한 밥벌이를 멈출 수 없다. 폐지 일이라도 안 하면 당장 먹고사는 것이 막막해진다. 부부에게 총 32만원이 지급되는 기초연금은 약과 병원비를 빼면 딱 2만원 남는다. 3년 전 아내가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지고 나서 늘어난 고정비용은 끌차처럼 늘 그의 삶을 뒤로 잡아당기기만 한다. “애들이 6남매가 있긴 한데 다들 형편이 그래. 자기들 먹고살기 힘든 걸 뻔히 아는데 부모랍시고 손 벌리기도 그렇잖아.” 폐지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재활용품이 많이 모이는 아파트 단지나 중소형 마트 등은 이미 민간업체와 정기 계약을 맺고 있는 터라 폐지 줍는 노인들은 모두 단독주택가 골목길로 몰린다. 멀쩡하고 깨끗한 박스를 만나는 일은 드물다. 뭐 하나라도 건지려면 역한 냄새가 진동하는 남의 집 쓰레기 봉투에 팔을 넣어 빈병부터 캔, 페트병, 폐플라스틱 등 돈이 될 만한 것을 하나하나 골라내야 한다. 생각 없이 뱉은 가래침이나 도통 내용을 알 수 없는 구정물이 손에 묻고 몸에 튀는 것쯤은 감수해야 한다. 구역질이 나왔다. 쉬지 않고 다섯 시간을 꼬박 모은 덕인지 오늘은 아침나절에 대형 마대자루 4개를 가득 채웠다. 방금 이사 간 집에서 버리고 간 아이 장난감 등 잡동사니를 다른 노인보다 먼저 발견한 덕이다. “일진이 안 좋다 싶었는데 수지맞았어. 젊은 양반이 도와주니 일도 한결 수월하고.” 기를 쓰고 모은 폐품이 책상 3개를 쌓아 놓은 듯한 부피까지 늘어났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급하다. 재활용품 수거 트럭이 오는 시간이 코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일주일을 꼬박 일해 모은 폐지와 재활용품이 1t 수거트럭 적재함을 가득 채웠지만 업자가 건넨 돈은 4만 7000원이다. 일당으로 치면 6700원. 새벽부터 나와 밤 11시에야 퇴근하는 할아버지의 고단한 노동을 생각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형편없지 뭐. 그나마 몇 해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점점 오르는 물가와는 반대로 재활용품의 값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리기만 한다. 4년 전만 하더라도 폐지는 ㎏당 200원 정도를 쳐 줬지만 이젠 60원까지 떨어졌다. 플라스틱류나 페트병, 알루미늄캔 가격도 ㎏당 70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할아버지에게는 최저생계비(2인 가구 102만 7417원, 일당 3만 4250원)를 번다는 것조차 남의 나라 이야기다. 실제 일당 3만 4250원을 벌려면 하루에 박스 570㎏(약 314개)을 주워야 한다. 페트병으로 따지면 하루에 1만 4487개를 모아야 한다. “겨울철엔 길이 얼어서 많이 미끄러워. 손도 곱아서 오랫동안 밖에서 일하기가 어렵고. 몸도 몸이지만 눈이라도 오면 폐지가 다 젖어 버려 낭패야. 업자들이 젖은 폐지는 수거를 안 해 가려고 하거든.” 빈곤층의 겨울은 뼛속까지 시리다. [동행 2… 지하철·버스 택배 할아버지] 김 노인에겐 ‘운수 좋은 날’이었다. 지난 16일 오전 11시,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2시간 넘게 대기 중이던 김순우(80·가명) 할아버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을지로입구역 인근 B꽃집이다. 전날 1만 5000원밖에 벌지 못한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첫 주문이다. ‘선릉역에 있는 한 기업에 승진 축하 난을 배달해 달라’는 내용이다. B꽃집으로 가는 사이 바로 옆 C꽃집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이번엔 건당 1만 5000원을 받을 수 있는 경기도권이었다. 꽃배달 업계는 12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가 성수기다. 연말, 연초 인사이동 등으로 난 화분 등 주문이 쏟아진다. 이런 성수기에 할아버지는 한 달 평균 50만원을 번다. 나머지 8개월은 30만원 벌기도 힘드니 벌 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 11년 전 그는 구청 노인 일자리 박람회에 갔다가 지하철 택배의 길에 들어섰다. 젊을 때 대기업에서 일한 이력이 도움이 됐다. 당시만 해도 지하철 택배는 노인 일자리로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질 낮은 일자리’의 대명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우후죽순 생긴 업체들이 경쟁하면서 배달비는 11년째 그대로다. 업체에서 일을 받으면 수입의 30%를 수수료로 떼줘야 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직접 영업을 뛴다. 두 곳에서 각각 동양란을 받아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은 할아버지가 집 다음으로 오래 머무는 공간이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선릉역으로, 선릉역에서 다시 강남역으로 이동했다. 강남역에서 신분당선으로 갈아탄 할아버지는 판교역 인근 배달을 마치고서야 겨우 햄버거로 끼니를 때웠다. 다시 충정로역 인근 D꽃집에서 용산 한강로 2가로 꽃다발 배송 주문이 들어왔다. “빨리 배달해 달라”는 요청에 할아버지는 지하철이 아닌 버스를 선택했다. 무료인 지하철과 달리 버스를 이용하면 교통비 1200원을 내야 하지만 거래처와의 관계를 생각해 손해를 감수했다. “역에서 멀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꽃집 주인들이 버스비를 잘 안 줘. 버스비를 달라고 하면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지.” 버스에 오르는 노인의 움직임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지난 3월 그는 버스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승차하는 순간 버스가 급히 출발하는 바람에 뒤로 넘어져 머리를 크게 다쳤다. 하지만 2주 만에 다시 일터로 돌아왔다.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젊은 시절 모았던 재산은 사업하는 사위 보증을 섰다가 모두 날렸다. “늙어서 꽃 배달하는 걸 창피해하는데 난 그렇지 않아. 되레 떳떳하지. 이게 뭐 도둑질도 아닌데….” 활짝 핀 백합과 이를 쥐고 있는 손에 핀 노인의 검버섯이 묘한 대비를 이뤘다. 다시 강남과 강북을 오가며 2건의 주문을 처리했다. 잘못 적힌 콘서트장 화환 리본을 갈아 주고 다시 화분 한 개를 배달하는 일이었다. 오후 8시 40분이 돼서야 모든 일이 끝났다.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났다. “저녁까지 사 먹으면 남는 게 없잖아. 자정에 들어가도 무조건 집에서 먹어.” 인천 남동구 구월동 집에 도착하니 시간은 밤 10시 30분. 평소 2~3건에 그치던 주문이 5건이나 들어온 덕에 총 3만 5600원을 벌었다. 하지만 그 돈을 위해 팔순의 노인은 한겨울에 노구를 끌고 11시간 50분 동안 110㎞ 이상을 이동해야 했다. 특별기획팀 tamsa@seoul.co.kr ■ 특별기획팀 유영규 팀장 whoami@seoul.co.kr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아기위해 기도해주세요” 산타 무릎 꿇게 한 4세 소년

    “아기위해 기도해주세요” 산타 무릎 꿇게 한 4세 소년

    “저와 함께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산타할아버지에게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기의 생명을 위해 함께 기도해달라고 부탁한 어느 미국 어린이의 마음이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의식불명에 빠진 생후 2개월 아기 녹스 스틴의 쾌유를 기원하고자 산타와 함께 무릎을 꿇은 4살 아동 프레스틴 바넷의 사진이 현지 네티즌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살고 있는 프레스틴은 최근 이모 로렌 샤프와 함께 동네 쇼핑몰을 찾았다. 쇼핑몰 한편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산타할아버지가 아이들의 소원을 차례로 들어주고 있었고 두 사람 또한 소원을 빌기 위해 산타에게 다가갔다. 자기 차례가 돼 산타의 무릎의 앉은 프레스틴은 먼저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장난감 선물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이후 이어진 프레스틴의 말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프레스틴의 두 번째 소원은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자기보다도 더 어린 아기 녹스 스틴이 건강해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산타할아버지는 의자에서 내려와 프레스틴과 함께 무릎을 꿇었고, 이모는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어린 프레스틴이 녹스의 사연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친할머니를 통해서였다. 프레스틴의 할머니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녹스의 안타까운 상황을 접한 뒤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고, 이를 프레스틴에게도 알려줬던 것. 이모 로렌은 프레스틴이 평소에도 녹스의 이야기에 크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고 전했다. 프레스틴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이번 사진은 현지 네티즌 사이에서 크게 회자돼 결국 녹스의 어머니인 민디 스틴에게까지 알려졌다. 민디는 “고통스러운 상황이지만 프레스틴의 아름다운 마음이 내게 일말의 기쁨을 주었다”며 프레스틴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녹스 스틴은 지난달 30일 집안에서 의식을 잃은 뒤 인근 라스베가스 선라이즈 아동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가족들은 녹스가 회복되기만을 바라며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사진=ⓒ페이스북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지구촌 어린이 선물 주려면 ‘산타’의 썰매 속도는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지구촌 어린이 선물 주려면 ‘산타’의 썰매 속도는

    산타클로스는 동심(童心)의 상징입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산타의 실체를 알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가능하면 오랫동안 산타의 존재를 믿기를 바라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마음이지요.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어른 세대보다 훨씬 일찍 산타를 부정합니다. 아이들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산타를 믿지 않게 된 것일까요. ●산타 안 믿는 美 어린이 나이 7.25세로 낮아져 최근 인터넷 검열 반대 단체인 하이드마이애스닷컴(HideMyAss.com)이 미국 부모 2036명과 그들의 미성년 자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구글이 론칭된 1997년부터 소셜네트워크시스템(SNS)인 페이스북이 론칭된 2005년까지 불과 8년 새, 산타를 믿지 않게 되는 아이들의 평균 나이가 8.05세에서 7.71세로 낮아졌습니다. 2015년 현재 이 나이는 다시 7.25세로 낮아졌습니다. ●구글 서비스 이후 산타 정체 파악 0.8세 빨라져 구글 서비스가 본격화된 이후 산타의 ‘공공연한 비밀’을 알게 되는 나이가 0.8세 낮아진 겁니다. 참고로 이 아이들의 부모가 어린 시절 산타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한 평균 나이는 8.7세였습니다. 아이들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산타’(Santa)를 검색한 뒤 산타클로스의 기원이나 아이들에게 적합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권하는 인터넷 광고를 접하면서 산타의 비밀을 알게 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조사에 참여한 어린이의 8%는 부모가 자신을 위해 인터넷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검색한 흔적을 직접 목격한 뒤 산타를 믿지 않게 됐다고 답했습니다. 인터넷이 산타에 대한 아이들의 믿음을 깨는 주된 범인이라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죠. 산타와 산타를 믿는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 주고 싶다면 다음의 방법을 권합니다. 하이드마이애스닷컴이 제공하는 무료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아이들이 산타와 관련한 검색어를 입력했을 때 관련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또 미국과 캐나다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의 산타 추적 서비스를 통해 산타의 이동경로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NORAD 전화교환국은 크리스마스이브 하루 동안, 산타의 위치를 묻는 어린이들의 전화와 이메일에 일일이 답변해 주는 이벤트를 60년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핀란드인 50만명은 작년 산타에게 편지 보내 산타마을로 유명한 핀란드 라플란드는 전 세계에서 산타에게 편지를 보낸 아이들에게 답장을 보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설마 산타에게 진짜 편지를 쓰겠어?’라는 생각은 동심이 사라진 어른의 착각일 뿐입니다. 라플란드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핀란드에서 산타에게 편지를 쓴 사람은 50만명에 달하며 대부분이 어린이였습니다. 더이상 산타를 믿지 않는 어른이라면 아이와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산타의 존재에 접근해 보는 건 어떨까요. 지난해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북극 또는 핀란드에 살며 크리스마스이브에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일괄적으로 선물을 배달하는 산타의 행적을 과학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초당 822가구·초속 1050㎞로 배달해야 산타가 선물을 줘야 할 어린이는 3억 7800만명, 총 9180만 가구이며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24시간의 절대 시간이 아닌 ‘하루 31시간’의 상대 시간 동안 선물을 배달합니다. 하루 안에 선물 배달을 마치려면 초당 822.6가구를 방문해야 하며 루돌프가 끄는 산타의 썰매는 초당 1050㎞로 달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죠. 선물을 가득 실은 썰매의 경우 선물 하나의 무게를 평균 0.9㎏으로 가정하면 32만t에 달합니다. 또 썰매를 끄는 루돌프, 즉 순록의 평균 몸무게는 135㎏이므로 제시간 안에, 제 속도로 선물을 전달하려면 21만 4200마리의 순록이 필요하게 됩니다. 재미로 해 본 분석이긴 하나, 위의 계산이 실제라 하더라도 산타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하루 ‘31시간’을 뛸 필요가 없을지 모릅니다.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 말 안 듣는 아이, 나쁜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는다고 선언하셨으니까요. 아무쪼록 전 세계의 아이들이 조금 더 오래도록 산타를 믿음으로써 동심 가득한 착한 아이로 자라날 수 있길 희망합니다. huimin0217@seoul.co.kr
  • 산타 무릎 꿇게 한 4세 아이… “의식불명 아기 위해 함께 기도해 주세요”

    산타 무릎 꿇게 한 4세 아이… “의식불명 아기 위해 함께 기도해 주세요”

    “저와 함께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산타할아버지에게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기의 생명을 위해 함께 기도해달라고 부탁한 어느 미국 어린이의 마음이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의식불명에 빠진 생후 2개월 아기 녹스 스틴의 쾌유를 기원하고자 산타와 함께 무릎을 꿇은 4살 아동 프레스틴 바넷의 사진이 현지 네티즌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살고 있는 프레스틴은 최근 이모 로렌 샤프와 함께 동네 쇼핑몰을 찾았다. 쇼핑몰 한편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산타할아버지가 아이들의 소원을 차례로 들어주고 있었고 두 사람 또한 소원을 빌기 위해 산타에게 다가갔다. 자기 차례가 돼 산타의 무릎의 앉은 프레스틴은 먼저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장난감 선물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이후 이어진 프레스틴의 말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프레스틴의 두 번째 소원은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자기보다도 더 어린 아기 녹스 스틴이 건강해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산타할아버지는 의자에서 내려와 프레스틴과 함께 무릎을 꿇었고, 이모는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어린 프레스틴이 녹스의 사연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친할머니를 통해서였다. 프레스틴의 할머니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녹스의 안타까운 상황을 접한 뒤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고, 이를 프레스틴에게도 알려줬던 것. 이모 로렌은 프레스틴이 평소에도 녹스의 이야기에 크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고 전했다. 프레스틴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이번 사진은 현지 네티즌 사이에서 크게 회자돼 결국 녹스의 어머니인 민디 스틴에게까지 알려졌다. 민디는 “고통스러운 상황이지만 프레스틴의 아름다운 마음이 내게 일말의 기쁨을 주었다”며 프레스틴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녹스 스틴은 지난달 30일 집안에서 의식을 잃은 뒤 인근 라스베가스 선라이즈 아동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가족들은 녹스가 회복되기만을 바라며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사진=ⓒ페이스북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경비원 할아버지는 뺨 맞고도 그냥 참습니다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자로부터 폭언과 함께 폭행을 당하는 일이 또 일어났다. 50대 주민이 70대 경비원의 뺨을 때렸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의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의 언어 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경비원들의 인권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비슷한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16일 폭행 등 혐의로 조모(59·무직)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조씨는 지난 15일 오후 11시 50분쯤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 정모(73)씨의 멱살을 붙잡고 뺨을 서너 차례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가 근무하는 경비실에서 난동을 피우며 전화기와 전기난로 등을 넘어뜨리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 발생 당시 조씨는 만취한 상태로 아파트 단지에 들어와 자기 집까지 정씨의 부축을 받고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집 밖으로 나오더니 “왜 나를 몰라보느냐”, “네가 뭔데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일하냐”는 등 반말과 욕설을 섞어 가며 정씨를 위협하고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힌 조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정씨는 그러나 조씨에 대한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정씨가 아파트에서 오래 일을 하면서 조씨의 부모와도 알고 지내는 사이라며 처벌받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단순 폭행사건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이 진행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다. 정씨에 대한 조씨의 폭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정씨는 경찰 조사에서 “조씨가 2013년에도 술에 취해 멱살을 잡고 뺨을 때린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정씨는 이번과 같은 이유로 조씨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경비원들의 일이 대표적인 저임금 노동이다 보니 사회적으로 그 가치를 낮게 보는 인식이 강하다”면서 “특히 대부분의 경비원들이 간접고용으로 일하다 보니 상시적인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폭언, 폭행 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비원에 대한 인식과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단독] [누가 김노인을 죽였나 ] 도시살이 40년 빚더미… 장남 잃고 집 잃은 남편, 삶을 놓았다

    [단독] [누가 김노인을 죽였나 ] 도시살이 40년 빚더미… 장남 잃고 집 잃은 남편, 삶을 놓았다

    “보통 때는 밥 먹으라고 부르면 방에서 바로 나오는데 그날은 아무 대답도 없잖아. 무심결에 방문을 열어 봤는데, 너무 놀라서 ‘미쳤어, 미쳤어’ 하고 소리만 질렀지….” 반년이상 흘렀지만 김지남(75·가명) 할머니는 그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지난 4월 말 1층 쌀가게를 지키던 할머니가 점심을 챙겨 주려고 2층으로 올라왔을 때 남편 조삼용(77·가명) 할아버지는 문고리에 스스로 목을 매 숨져 있었다. 할머니는 “점심 때 잡숫고 싶은 거 있느냐”는 일상적인 질문에 “더 먹고 싶은 거 없어. 실컷 먹었잖아”라고 말한 남편의 자조 섞인 대답이 부부의 마지막 대화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난 10여년 사이 부부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할아버지가 숨진 날은 40여년간 살던 2층집이 경매로 넘어간 지 꼭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내외가 평생 연탄, 쌀, 기름 장사를 해 이룬 집이었다. 그러나 제때 갚지 못한 빚이 순식간에 가족의 보금자리를 삼켜 버렸다. 젊었을 때 경기도에서 서울 ○○동으로 이사 온 내외는 쌀 장사로 기대 이상의 돈을 벌었다. 30대에는 5층짜리 건물을 소유하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부동산 업자의 말만 듣고 무리해서 빚을 내 건물을 지은 게 화근이었다. 그 후 지금의 2층짜리 집은 노부부의 전 재산이었다. “막내아들 사업에 보태려고 5000만원을 꺼내 썼는데 결국 그 돈 때문에 2층 건물이 경매로 넘어갈 줄은 몰랐지. 아들과 난 있는 재산을 처분해서라도 빚을 갚자고 했는데, 남편이 안 된다고 난리를 치는 거야. 그렇게 고집을 부리더니 결국 (집이) 넘어가고 말았지.” 살림집 아래엔 노부부가 반평생 운영해 온 쌀집이 있었지만 도통 벌이가 되질 않았다. 할머니는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세놓고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편히 살자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완강히 거부했다. 쌀집 수익만으로는 살 수 없게 되자 결국 할머니는 폐지를 주우러 거리로 나서야만 했다. “동네 사람들이 가끔 쌀을 팔아 주고 폐지가 생기면 우리 집 마당에 던져 줘서 겨우 입에 풀칠했지. 요즘 세상에 쌀집이 되겠어. 다들 마트에서 사다 먹잖아. 차라리 직장을 다녔으면 연금이나 퇴직금이 나올 텐데 우리 같은 장사꾼은 말년이 참 불쌍해.” 도시 노인들 중에는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4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자살을 생각해 봤다”고 답한 비율이 시골 노인은 33.6%였지만 도시 노인은 42.0%로 더 높았다. “경제적인 이유로 부부 갈등을 겪고 있다”는 응답 비율도 도시 노인(26.2%)이 시골 노인(11.8%)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넉넉하지는 않아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농촌에 비해 도시 노인들은 의식주라는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더 어렵다”면서 “특히 최근 전세나 월세가 오르면서 거주 비용은 도시 노인의 대표적인 고민거리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자기 집이 있던 중장년층이 자녀를 출가시키며 60대에는 전세로 갔다가 70대엔 다시 월세로, 결국에는 고시텔로 흘러가는 사례가 빈번하다”면서 “이러한 추세는 도시 노인의 계층 하락과 궤를 함께한다”고 말했다. 급속도로 나빠진 건강 역시 조 할아버지를 옭아맸다. 2003년 약수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당뇨, 고혈압 등이 차례로 늙은 몸에 찾아왔다. 옆을 지키던 할머니도 지쳐 갔다. “병원 가서 진료 한번 받으면 200만원이 우습게 나와. 돈이 들어도 고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해 보겠지만 유명하다는 종합병원을 다 다녀봐도 그냥 늙어서 그런 거니 어쩔 수가 없다는 거야. 치매기가 도는 건지, 얼마 전부턴 내가 매일 똥 기저귀를 빨아야 했어.” 노부부에겐 꺼내 놓기 싫은 가족사가 있다. “그 양반이 떠난 날은 사실 10년 전 첫째 아들이 저세상으로 간 날이야.” 할머니는 어렵게 지난 이야기를 꺼냈다. 할아버지에게 첫째 아들은 늘 아픈 손가락이었다. 2005년 4월 갑작스러운 사고로 그런 아들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마치고 나서부터 할아버지는 술과 담배에 의지했다. 결국 할아버지는 자신이 떠날 날짜를 아들이 하늘로 간 바로 그날로 고른 것이었을까.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여동생의 죽음도 큰 상처였다. 10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할아버지는 어릴 적 큰아버지댁에 양자로 보내졌다. 외롭게 자랄 수밖에 없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는지 바로 밑 여동생은 늘 살갑고 각별하게 오빠를 대했다. 하지만 그런 여동생마저 3년 전 갑작스러운 폐렴으로 사망했다. 복지부 조사 속엔 우리 시대를 사는 노인들의 외로움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조사 대상 노인 중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나 이웃 또는 친인척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이 절반에 달했다. 그나마도 평균 1.6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적 활동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노인들이 ‘경제 빈곤’ 상태에 들어가면 사회적인 관계에서도 철저히 배제되는 극도의 ‘관계 빈곤’에 빠지게 된다”면서 “아직 이웃 간의 정이 남아 있는 시골 노인은 지역사회에라도 기댈 수 있지만 도시 노인은 그마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tamsa@seoul.co.kr 유영규 팀장 whoami@seoul.co.kr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관악 노인들, 살맛 나는 이유 있었네

    관악 노인들, 살맛 나는 이유 있었네

    ‘관악구 노인들 일할 맛 납니다.’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11.7%를 차지하는 관악구는 15일 다양한 노인 일자리 사업의 성과를 밝혔다. 올해 사업비 28억 3000만원을 투입해 모두 1287명의 노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단순노동을 하는 것보다는 보람과 소득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일자리였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린이집을 방문해 인형극, 미술 공연, 구연동화 등을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는 교육인형극’과 ‘머리맡 동화책 사업’이 인기다. 교육인형극은 평생학습관의 ‘행복을 나르는 실버극단 양성과정’을 마친 노인들이 배운 것을 나누는 사업이다. 교육인형극에 참여한 김윤순(67)씨는 “12명의 동료와 40곳의 어린이집을 순회하며 ‘브레멘 음악대’와 ‘파란점 병 왕자’ 인형극을 공연했다”며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고 말했다. ‘머리맡 동화책’에는 동화구연 자격증을 갖춘 할머니 26명이 참여해 130곳의 어린이집과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손동작, 노래 등을 하며 생생하게 동화책을 읽어 줬다. ‘도시락 배달’ ‘어르신 건강도우미’ ‘독거노인 의류 세탁’ ‘독거노인 밑반찬 배달’ 등 노인들이 혼자 사는 노인을 찾아 말벗이나 복지도우미 역할을 하는 사업도 반응이 좋다. 초등학생의 안전한 귀가를 돕는 ‘하굣길 안전지킴이’, 초등학교 저학년의 점심 배식과 뒷정리를 도와주는 ‘급식도우미’, ‘폐현수막 재활용사업’, ‘경로당 관리도우미’ 등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공익형 일자리에도 많은 노인이 참여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나도 시사회서 처음 만났어, 400㎏ ‘대호’씨

    나도 시사회서 처음 만났어, 400㎏ ‘대호’씨

    영화라는 게 참 묘하다. 운때가 맞아야 한다. 16일 개봉하는 대작 ‘대호’가 그렇다. 조선 마지막 호랑이와 사냥꾼의 이야기는 예전부터 충무로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풍문이 일 때마다 ‘영화쟁이’ 사이에서 한결같이 나온 반응은 “우리나라에서 기술적으로 가능해?”였다. 그런 설왕설래 속에 호랑이 시나리오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2012년 말이었던가, 2013년 초였던가. ‘신세계’를 끝낸 배우 최민식(53)은 호랑이띠 띠동갑인 박훈정 감독과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옛날에 써 놓은 호랑이 이야기가 있는데요”, “떠돌던 게 네 거였어?”, “한번 읽어 보실래요?”, “그럴까?”, “그런데 말야, 이 부분은 이렇게 돼야 하지 않을까?” “형, 하실 생각 있으신 거예요?” “아니 뭐, 생각이 있다는 게 아니라 대본만 놓고 볼 때 말이지….” 정색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의견이 오가며 이야기의 결이 쌓이고 족히 1년 이상 숙성되다 보니 둘은 결국 지르게 됐다. “이야기의 뼈대는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해 줄 수 있는 설화나 동화예요. 거기에 지금은 단절된 그 시대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 삶의 가치관, 모진 인연의 업 등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얹었어요. 단순히 호랑이를 잡는 무용담이 아닌 거죠. 우리가 한국 영화를 끌고 가는 주류라면 이런 도전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죠.”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섭렵한 베테랑이지만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간 이어진 무모한 도전은 당혹감과 어색함의 연속이었다. 연기를 할 때는 마주 선 상대방의 연기도 중요한데 상대역 ‘김대호씨’-그렇게 이름을 지어 줬다고 한다-는 없었다. 오로지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허공에 대고 소리 지르고 총질을 해야 했다. 한겨울 추위에 산속에서 뒹굴어야 하는 것은 애로 사항도 아니었다.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던 최민식은 최근 시사회를 통해서야 비로소 키 380㎝에 무게 400㎏에 달하는 김대호씨와 인사를 나누고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제가 호랑이에게 ‘몸이 많이 상했구먼’이라고 대사를 던지는 장면이 있어요. 큰 상처를 입고 숨을 불규칙하게 몰아쉬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연기했는데 스크린으로 보니 정말 기가 막힌 거예요. 제 상상 이상으로 표현이 됐더라니까요. ‘대호’가 성공적으로 대중과 소통한다면 그 공은 기술팀 몫이라고 봅니다. 솔직히 정말 가능할까 불안하고 의심도 많이 했는데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하고 싶네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그래도 100% 컴퓨터그래픽(CG)으로 탄생한 김대호씨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것은 그와 감정을 주고받았던 최민식의 빼어난 연기력 덕택이 아니었을까. 베테랑은 그러나 몸을 한껏 낮춘다. “중요한 결말로 치닫는 대목들은 촬영 후반부에 많이 찍었어요. 그동안 작품의 질감, 캐릭터의 냄새가 몸에 상당히 배어서 좋은 장면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역 성유빈의 연기를 빼면 전반부가 밋밋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민식의 의견은 달랐다. “만약 지루했다면 일차적으로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의 책임이 크죠. 이야기가 촘촘하고 친절하게 전달되지 못했다는 방증이니까요. 하지만 말을 빠르고 조리 있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눌하게 하지만 결과적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대중의 취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느리게 가는 것도 즐길 수 있었으면 해요. 영화를 바라보고 소비하는 관점 자체가 다양했으면 좋겠어요.” 전작 ‘명량’이 1700만 관객 동원이라는 한국 영화 사상 전무한 기록을 세웠다. 신작의 흥행 결과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대호’는 170억원가량의 총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이 아니던가. 최민식은 사냥꾼 사이에선 ‘범 바람이 분다’는 표현이 있다고 했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를 맡으면 호랑이가 나타날지 본능적으로 안다는 것이다. 베테랑 배우는 흥행 바람을 느낄 수 있을까. “흥행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게 정말 어렵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에요. 한편으론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죠. 요즘에는 영화 투자자들도 창작물에 대한 무형의 가치를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다음 작품에 재투자할 정도로 흥행이 됐으면 좋겠네요. 하하하.”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이란 개혁파의 반란… ‘금기’인 최고지도자 후계 건드리다

    이란 개혁파의 반란… ‘금기’인 최고지도자 후계 건드리다

    미국 등 주요 강대국과 핵 합의를 이끌어낸 이란 개혁파가 ‘금기 사항’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후계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섰다. 내년 2월 총선을 앞두고 하메네이 후계 논의를 선점해 핵 합의 이행 등 개혁·개방 정책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개혁파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혁명 1세대로 대통령을 지낸 중도 개혁 성향의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81)는 13일(현지시간) 이란 통신 ILNA와의 인터뷰에서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전문가의회가 하메네이의 후계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메네이는 올해 76세로 고령이지만 26년간 최고지도자로서 이란의 정치·종교·군사·언론 등 전 부문을 장악해 왔기에 이란에서 하메네이의 후계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금기로 여겨진다. 라프산자니는 인터뷰에서 “새 최고지도자가 임명돼야 할 때가 오면 전문가의회는 행동에 나설 것”이라면서 “전문가의회는 이를 위해 현재 여러 대안을 검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문가의회는 최고지도자 자격을 갖춘 인물의 명단을 작성하기 위해 의회 내에 소위원회를 구성했다”며 이례적으로 최고지도자 선출 과정을 자세히 밝혔다. 국민 직선으로 선출되는 전문가의회는 종신직인 최고지도자 유고 시 후임을 선출할 권한을 갖고 있으며, 최고지도자 감독·해임권도 보유하고 있다. 라프산자니의 하메네이 후계 언급은 내년 2월 치러질 국회와 전문가의회 선거를 겨냥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라프산자니가 금기를 깨고 최고지도자 후계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2개월 남은 선거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하메네이 체제에 염증을 느끼는 개혁파와 청년층을 결집시키고자 한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라프산자니가 개혁 성향의 현직 대통령 하산 로하니(67)의 정치적 동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라프산자니의 발언은 이란 개혁파의 의도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로하니의 최대 치적인 핵 합의의 안정적인 이행을 위해서는 현재 보수파가 장악한 국회에서 개혁파의 영향력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파의 저항은 만만치 않다. 하메네이는 이란의 외교안보정책 총책임자로서 로하니의 핵 합의를 사실상 추인했지만, 로하니와 개혁파가 그 이상의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데에는 반대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하메네이는 “미국이 섹스와 돈을 이용해 이란의 엘리트에게 서양의 사고방식을 침투시키고 있다”며 개혁파에 경고를 보냈다. 이란에서 선거관리와 후보자격심사는 헌법수호위원회가 담당하는데, 보수파가 장악한 위원회가 내년 2월 선거에 출마할 많은 개혁파 후보를 걸러낼 전망이다. 개혁파와 보수파가 내년 2월 선거를 두고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이란 이슬람혁명의 주역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손자 하산 호메이니(43)가 지난 9일 전문가의회 선거 출마를 선언해 주목을 받고 있다. 하산 호메이니는 라프산자니를 비롯한 개혁파 원로들로부터 강력한 출마 요청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개혁파는 2013년 대선 때 규합해 같은 성향의 로하니를 당선시킨 바 있다. 하산 호메이니는 가문적 배경 덕분에 보수파에서도 대놓고 반대할 수 없는 후보라는 점에서 개혁파로부터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받아왔다. 하산 호메이니는 “이란의 청년들이 할아버지 호메이니의 신념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면서 ”할아버지의 유산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란 정치평론가 자에드 라이라즈는 “하산 호메이니의 출마는 법에 의한 지배라는 이슬람혁명의 원칙을 되살리고 혁명수비대로 대표되는 군부의 손아귀에서 이란을 구출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7살 꼬마는 왜 산타를 믿지 않을까?

    [송혜민의 월드why] 7살 꼬마는 왜 산타를 믿지 않을까?

    최근 노르웨이 최대 일간지인 아프텐포스텐(Aftenposten) 온라인판은 “오랫동안 활발한 활동을 펼쳐 온 산타클로스가 향년 227세로 운명했다”는 부고기사를 냈다. 여기에는 “오는 28일 ‘북극 예배당’에서 장례식이 열릴 것”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해당 언론사는 곧바로 오보라고 해명했다. 12월은 세상의 사람이 둘로 나뉜다. 산타클로스를 믿는 사람(아이)과 산타클로스를 믿게 하려는 사람(어른)이다. 산타클로스에 대한 믿음은 동심(童心)의 상징이다. 아이라면 산타클로스의 존재에 그 어떤 의심도 갖지 않아야 한다고 여겨진다. 아이가 세상을 알아가면서 산타의 ‘비밀’도 알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요새 아이들, 지금 어른 세대보다 훨씬 이른 나이부터 산타를 부정한다. 단순히 어른들의 입방정 때문만은 아니다. 투정 부리는 아이에게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주신다”는 말로 협박 아닌 협박을 했을 때, 아이로부터 “산타는 없어. 아직도 그걸 몰라?”라는 면박에 말문이 막히곤 한다. 아이들은 언제부터, 어쩌다가 동심의 상징인 산타를 믿지 않게 됐을까. ◆고작 7살에 알아버린 산타의 비밀, ‘범인’은 인터넷 최근 인터넷 검열 반대 단체인 하이드마이애스닷컴(HideMyAss.com)이 미국 부모 2036명과 그들의 미성년 자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구글이 런칭된 1997년부터 사회적네트워크시스템(SNS)인 페이스북이 런칭된 2005년까지 불과 8년 새 산타를 믿지 않게 된 아이들의 평균 나이는 8.05세에서 7.71세로 낮아졌다. 부모 세대와 비교해보면 어떨까. 3~10세 아이를 둔 부모가 어린 시절 산타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한 평균 나이는 8.7세였다. 반면 현재 아이들은 불과 7.25세에 산타클로스의 실체를 알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는 어른의 입방정이 아닌,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산타’(Santa)를 검색한 뒤 산타클로스의 기원이나 아이들에게 적합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권하는 인터넷 광고를 접하면서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이 산타가 아닌 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조사에 참여한 어린이의 8%는 부모가 자신을 위해 인터넷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검색한 흔적을 직접 목격한 뒤 산타를 믿지 않게 됐다고 답했다. 인터넷이 산타에 대한 아이들의 믿음을 깨는 주된 범인이라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산타와 산타를 믿는 동심을 지키기 위한 어른들의 노력 아이들이 산타의 비밀을 알아채지 않기를 바라는 어른들은 산타를 믿는 동심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행동에 돌입했다. 위의 조사를 이끈 하이드마이애스닷컴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산타클로스를 믿게 하자는 캠페인(Keep Believing in Santa)을 시작했다. 부모가 이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무료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아이들이 산타와 관련한 검색어를 입력했을 때 관련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가 공동으로 운영하며 항공‧우주관측을 담당하는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도 오랫동안 이 운동에 동참해 왔다. 올해로 벌써 60년째를 맞이한 NORAD의 산타 추적 서비스는 영어와 프랑스어, 중국어 등 총 8개 언어로 산타의 이동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NORAD 전화교환국은 크리스마스이브 하루 동안, 산타의 위치를 묻는 어린이들의 전화와 이메일에 일일이 답변해준다. 산타마을로 유명한 핀란드 라플란드는 전 세계에서 산타에게 편지를 보낸 아이들에게 답장을 보내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이들이 설마 산타에게 진짜 편지를 쓰겠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미 오래전 동심을 깡그리 잊은 어른의 착각일 뿐이다. 라플란드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핀란드에서 산타에게 편지를 쓴 사람은 50만 명에 달하며 대부분이 어린이들이었다. ◆애들은 가라!…어른만 알면 되는 ‘산타의 과학’ 이미 동심이 파괴된 어른이라면 아이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산타를 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해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북극 또는 핀란드에 살며 크리스마스이브에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일괄적으로 선물을 배달하는 산타의 행적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산타가 선물을 줘야 할 어린이는 3억 7800만 명, 총 9180만 가구이며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24시간의 절대 시간이 아닌 31시간의 상대시간동안 선물을 배달한다. 하루 안에 선물 배달을 마치려면 초당 822.6가구를 방문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때문에 루돌프가 끄는 산타의 썰매는 초당 1050㎞로 달려야한다. 이는 빛의 속도의 0.35%, 소리 속도의 3000배에 달하는 엄청난 빠르기다. 선물을 가득 실은 썰매의 경우, 선물 하나의 무게를 평균 0.9㎏으로 가정하면 32만t에 달한다. 또 썰매를 끄는 루돌프 즉 순록의 평균 몸무게는 135㎏이므로 제시간에, 제 속도로 선물을 전달하려면 21만 4200마리의 순록이 필요하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어차피 산타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21만 마리의 순록을 이끌고 '하루 31시간’을 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 말 안듣는 아이, 나쁜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는다고 선언하지 않으셨던가. 아무쪼록 전 세계의 아이들이 조금 더 오래도록 산타를 믿음으로써 동심 가득한 착한 아이로 자라날 수 있길 희망한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누가 김노인을 죽였나] 심리 부검을 통해 본 노인 빈곤

    [누가 김노인을 죽였나] 심리 부검을 통해 본 노인 빈곤

    변사사건처리부 한 장에 정리된 노인의 죽음은 냉정하리만큼 간단명료하다. 한 해 노인 35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에서 오늘도 또 다른 노인의 죽음은 늘 하던 방식대로 기록되고 정리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이 부끄럽다고 외치지만, 정작 무엇이 노인들을 벼랑 끝에 서게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 해 벼랑 끝에 서게 되는 노인이 3500명이나 되는 현실을 그리고자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은 심리·정신분석 전문가들과 함께 자살자에 대한 ‘심리적 부검’을 시도했다. 심리부검이란 자살자의 유서나 가족·동료와의 면담 자료 등을 수집해 자살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이다.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 전까지 노인이 거쳐 온 삶의 궤적을 좇아 ‘마음속 지도’를 그리기 위함이다. 높은 자살률로 고민이 많던 핀란드는 1980년대에 행했던 한 해 동안의 자살자 전원에 대한 심리부검을 통해 10년 새 자살률을 20% 포인트 넘게 떨어뜨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걸음마 단계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전국 자살자 가족을 상대로 심리부검을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의 실적은 121건으로 많지 않다. 여기에는 죽음 앞에 침묵하는 문화 탓이 크다. 지난 두 달여 동안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은 100여명의 노인 자살자 유가족 등을 만났지만 실제 심리부검을 허락한 것은 7가족뿐이었다. 이번 심리부검은 서울신문이 중앙심리부검센터에 의뢰해 한국형 심리부검 체크리스트인 ‘K-PAC 2.0’으로 진행됐으며, 유가족 면접은 임상심리 전문가가 진행하되 서울신문 취재진이 사례를 발굴하고 면접 과정에 모두 참관했다. 국내 언론이 다수의 노인 자살자를 대상으로 전문가 집단과 함께 심리부검을 진행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복지부가 구축하고 있는 국가 심리부검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된다.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1858~1917) 사연 없는 주검이 있을까.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사례는 노인을 자살로 이끄는 공통된 키워드를 찾기 위해 중앙심리부검센터와 진행한 총 7건의 심리부검 중 대표적 사례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이나 주소지 등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두 노인을 자살로 내몬 상황과 심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키워드별로 부산, 충남 등에서 진행한 노인 심리부검 98건에 대한 통계(숫자 표시)와 전문가의 해석(알파벳 표시)을 덧붙였다. ■스스로 세상 버린 두 노인… 그들의 심리를 읽다 [주검1] “안방에서 죽었어. 그라목손(ⓐ) 먹고. 여서 꼬꾸라졌는디…거긴 보기도 싫여.” 2개뿐인 앞니에 박유순(69·가명) 할머니의 발음은 샜지만 악몽 같았던 그날 하루의 기억은 방금 전 일처럼 생생하다. 시부모 봉양으로 시작해 남편과 50년 이상을 함께한 흙담집(①)에서 남편 김희준(81·가명)씨는 지난 4월 중순 제초제(②)를 마시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사달이 난 건 7개월 전이다. 그날 아침 달라진 남편의 행동은 할머니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남의 농사일을 돕다 갈비뼈 골절(③)로 한 달여간 누워만 있던 할아버지(④)는 작심한 듯 성질을 부렸다. 밑도 끝도 없었다. 머리맡에 놓인 과도를 들고는 “문 닫고 나가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우리 아저씨는 원래 나한테 군소리 안 하고 다정한디 그날은 이상혔어. 과일 깎아 먹으려고 놔둔 과도를 들고 눈에 불을 싸지르면서 갑자기 나한테 문 닫고 나가라고 하는 거여. 겁이 나 문 닫고 나와 마당서 나물 두 바가지를 씻고 문 열어 보니 제초제를 마시고 쓰러져 있더라구.” 빗속을 뚫고 시속 100㎞ 이상을 달리는 구급차가 마치 경운기처럼 더디게 느껴졌다. 청주 병원을 거쳐 다시 천안의 대학병원으로 갔지만, 할아버지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불행이 다가온 건 지난 4월이다. 할아버지가 집 뒤 대나무 밭에 갔다 넘어져 갈비뼈 2대가 나갔다. 병원에 갔지만 계속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퇴원하고 며칠 후에 남의 삼밭 일을 도와준다며 경운기를 몰고 언덕배기를 오르는데 경운기가 넘어졌다. 다시 갈비뼈 3대가 나갔다. 의사는 “뼈가 다 붙은 뒤 퇴원하라”고 권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보름치 입원비로 내야 하는 90만원도 이미 노부부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돈이었기 때문이다. 퇴원 후 할아버지는 끼니는 물론 화장실 가는 일조차 혼자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늘 곁에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할머니는 가끔 나오는 남의 밭일이나 공공근로를 하러갈 수밖에 없었다. 돈이 원수였다. 주변에서는 병간호하는 사람을 붙이든 당분간 요양원에 보내든 하라고 권했지만, 매달 40만원이 드는 게 문제였다. 그렇게 할머니는 미안한 마음으로 할아버지에게 기저귀를 채우고 일을 나갔다. “먹고살려면 계속 일을 나가야 하니까. 찌개 끓여놓고 조기새끼 가시 다 발라놓고 남의 밭에 쑥 뜯으러 갔어. 그러고는 일 다하고 집에 갔더니 온종일 우리 아저씨가 밥(ⓑ)도 못 먹고 누워 있는 거여. 지 혼자 일어나지를 못하니까 밥도 못 먹고 있더라구. 그렇게 밥 좋아하는 양반이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할아버지 밥 떠먹여 주면서 그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몰라. 그리고 하루 있다가 그렇게 됐어.” 지긋지긋한 가난은 대물림을 받았다. 그나마 젊을 때는 몸뚱이가 재산이었다. 머슴 일부터 남의 농사까지 안 해본 게 없었다. 다들 가난한 때라는 위안을 하며 평생 농사일을 했지만 살림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때는 희망도 있었다. 한 해 농사를 지으면 쌀 7가마니 정도가 나오는 작은 땅도 생겼다. 하지만 그런 꿈도 잠시. 몇 년 전 아들의 빚을 갚느라 전답을 모두 날렸다. 할아버지는 몇 년간 ‘그 땅은 쳐다보기도 싫다’며 애먼 산을 돌아 빙 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그 고단한 삶 속에서 3남매를 키워 출가시킨 것만도 대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노년의 삶은 더 곤궁했다. 몇십만원이 전부인 통장 잔고는 늘 한 달을 못 버텼다. 할아버지가 팔순이 넘으면서 바깥 일은 거의 할머니의 몫이었다. 남의 밭에 일을 나가거나 공공근로를 해서 버는 돈은 20만~30만원 정도, 노령연금 등을 합쳐도 손에 쥐는 돈은 늘 50만~60만원(⑤)을 넘지 않았다. 땅 빌리는 데 드는 돈에 전기요금, 난방비, 약값, 식비, 부조금 등을 내면 남는 돈이라곤 몇만원 정도였다. “한 2년 전에 아저씨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 ‘내가 아파서 드러누우면 스스로 죽어야지, 남한테 피해가 가기 전에… 치료비(⑥) 때문에 산 사람도 못 살게 할 순 없잖아’라고…. 그때는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타박했는데 그때부터 그런 생각을 좀 했었나 봐.” 어려서부터 가난한 삶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점잖고 다정한 남편이었다. 시골 투전판에 낀다든지 바람을 피우는 일도, 그 흔한 주사 한번 부리는 일이 없었다. 덕분에 살아생전 집안에서는 큰소리 한번 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유품을 확인하다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수십년을 써 다 낡고 눅눅해진 남편의 지갑 속에 3만원이 찰싹 들러붙어 좀체 나올 줄을 몰랐다. 시어머니가 읽었던 성경책 등에선 몇 년을 모았는지조차 종잡을 수 없는 꼬깃꼬깃한 지폐 109만원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뒤늦게 발견한 할아버지의 쌈짓돈은 농협에 빌린 200만원을 스스로 갚아 보려는 마음인 듯했다. 가난한 부모는 3남매(ⓒ) 중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못 배우고 없는 부모 밑에서 자라 남들처럼 좋은 것 못 먹이고 부족하게 가르친 것이 항상 미안했다. “생활비 대주는 애들은 없지만, 명절 때는 와요. 자기들 애들 키우고 밥 먹고 살려면 부모까지 챙길 여유가 있나. 자기 쓸 돈도 없을 거야.” 할머니는 못내 후회되는 것이 있다고 했다. “죽으려고 했나. 하도 이불을 걷어차서 3~4개월 전부터 이불을 따로따로 덮었거든. 근데 언젠가 ‘임자, 내 곁에 와서 자’(ⓓ) 이러는 거야. 그래서 ‘더운데 뭘 같이 자’라며 홱 돌아서서 잤지. 그리고는 사흘 뒤에 그렇게 됐어. 그런데 우리 아저씨 돌아가시고 3일장도 못 치렀어. 며칠 지나지도 않아 공공근로 시작했지. 눈물도 안 말랐지만 목구녕이 포도청이니 그래도 나가야지. 일 안 하면 돈 못 받잖우.” [주검2] “아버지는 평생 가난했어요. 그렇지만 한번도 열심히 일하시지 않은 적은 없었죠.” 이명자(44·여·가명)씨는 아버지 이영재(가명)씨의 정확한 기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깝다. 매번 외워 보려 하지만 좀처럼 기억에 남지 않는다. 부친의 죽음은 그만큼 잊고 싶은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일흔일곱 되던 2011년 3월(⑦) 고향인 전남 XX군 시골집에서 숨졌다. 사인은 병사(病死). 하지만 가족들은 아버지가 스스로 곡기를 끊어 사망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자살이라고 여긴다. 마흔살 때 한번 자살하려고 했던 전력이 있었고 사촌형(ⓔ)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가족사에 아픔도 겪었던 아버지였다. 딸 이씨는 “아버지가 자살을 시도했을 때 ‘그렇게 돌아가시면 남은 자식들이 평생 손가락질 당한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병사로 위장하려고 굶는 방법을 택하신 것 같다”고 했다. 이씨가 남긴 전 재산은 현금 200만원. 갚지 못한 농협 대출금 수백만원을 생각하면 실제 유산은 빚밖에 없다. 가난은 촌로의 게으름 탓이었을까. 하지만 딸 이씨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늘 부지런한 소작농(⑧)’이었다. 거둬들인 농작물의 절반은 땅주인에게 주고 남은 것의 절반은 자녀 5명에게 골고루 나눠 줬다. 그리고 남은 곡식을 팔아 푼돈을 벌었고 알뜰히 모았다. 선천성 난치병을 앓던 막내아들(ⓕ)이 있었기에 ‘아이가 먹고살 돈은 남기고 가야 한다’는 부채 의식에 더 악착같이 일했고, 또 모았다. 하지만 그 노력은 전 재산 1800만원을 친척에게 사기당해 모두 잃고 막내는 20살의 나이로 세상을 등지면서 허사가 됐다. 아버지 이씨의 황혼녘에 남은 것이라고는 ‘자식을 앞세웠다’는 허망함, 그리고 가난뿐이었다. 노인성 우울증(⑨)이 찾아왔고 76세 되던 해에는 후두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늙은 부정(父情)은 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아비마저 기대기에는 딸들의 삶이 이미 퍽퍽했다. 빈곤의 대물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아내와 사는 고향집에서 외롭게 앓았다. 뒤늦게 아버지의 투병 사실을 알아챈 딸은 지역 대학병원에 아버지를 모시고 갔지만 의사는 “어차피 돌아가실 분(ⓗ)인데 뭐하러 데려왔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아버지는 음식과 물을 전혀 먹지 않았다. 어머니의 애타는 부탁과 만류에도 곡기를 끊었고 굶은 지 15일 만에 숨을 거뒀다. 빈곤한 노년은 늘 벼랑 끝에 서 있지만 내색할 수 없다. 가족들은 늙은 부모의 자살을 갑작스럽게 받아들이며 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노인은 오히려 충동적으로 자살하는 사례가 드물며, 모든 연령대 중 자살을 가장 치밀하게 준비하는 세대”라고 말한다. 심리부검에 응했던 딸 이씨도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먹먹하게 말했다. “유품 중 아버지 수첩이 있었는데 가족 생일과 제사만 적혀 있었어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가을걷이(ⓘ)를 해 보내주실 만큼 가족만 위하다가 즐기지도 못하고 사셨는데 도대체 왜….” 특별기획팀 tamsa@seoul.co.kr 유영규 팀장 whoami@seoul.co.kr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단독] 사재기 논란…담뱃값 인상 취지와도 상충

    [단독] 사재기 논란…담뱃값 인상 취지와도 상충

    10일 제주공항 면세점. 국산 담배 매장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다. 한 70대 할머니는 “나는 담배를 안 피우지만 아들이 사다 달래서 영감님(할아버지)과 함께 10분째 줄을 서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 옆에는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담배는 1인당 한 보루만 살 수 있다. 내국인도 이용 가능한 제주공항 면세점에서는 이런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다. 올 1월 1일부터 담뱃값이 갑당 2000원 오르면서 생겨난 풍경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도 가족이나 친구 등의 부탁으로 담배를 사기 위해 줄을 선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내국인 면세점에서 담배를 빼기로 한 것은 이렇듯 ‘면세 담배 사재기 논란’이 끊이지 않은 데다 담뱃값 인상 취지와도 상충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담뱃값을 올리면서 국민 건강을 이유로 내세웠다. 그런데 내국인 면세점에서 팔린 담배는 국내(국민)에서 소비된다. 하지만 담배를 싸게 살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통로인 내국인 면세점을 막을 경우 흡연자들의 반발과 ‘또 하나의 증세’라는 논란 등에 부딪힐 소지가 있어 보인다. 애초 정부는 형평성 등을 감안해 내국인 면세점의 ‘면세 담배’도 건강증진부담금과 폐기물부담금 부과 등을 통해 가격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담배 제조사의 비협조와 반대 여론이 형성되면서 포기했다. JDC면세점 관계자는 “정부 입장을 감안해 15대 면세 품목에서 담배를 빼는 것을 추진하고 있지만 매출액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매출액을 보전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획재정부는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JDC면세점의 매출과 수익성에 타격이 가지 않는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JDC 측은 “담배 매출액이 워낙 커서 한두 가지 품목 갖고는 대체가 불가능하니 판매 품목을 (팔지 못하도록 규정한 품목만 빼고 모두 팔 수 있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지금은 팔 수 있는 것만 나열한 포지티브 방식이다. 기재부는 난색이다. “한두 가지 품목을 추가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태도다. 올해 JDC면세점의 담배 매출액은 지난달 말 기준 691억원으로 지난해(269억원) 대비 2.5배가량 뛰었다. 지난해는 화장품과 핸드백·지갑·벨트, 주류에 이은 네 번째 인기 상품이었지만 올해는 담뱃세 인상에 힘입어 화장품에 이어 두 번째가 됐다. 면세 담배의 한 보루 가격은 1만 8700원으로 시중 판매가(4만 5000원)의 절반도 채 안 된다. 일각에서는 내국인 면세점에서의 담배 퇴출이 사실상의 ‘서민 증세’라고 주장한다. 해외여행객들이 들르는 일반 면세점에서는 여전히 면세 담배를 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제주도 여행을 할 수준이면 서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으냐”는 반론도 나온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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