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할아버지
    2025-08-15
    검색기록 지우기
  • 트라우마
    2025-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아카데미
    2025-08-15
    검색기록 지우기
  • 가수
    2025-08-15
    검색기록 지우기
  • 강남역
    2025-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907
  • 관악 “마을 사랑방서 만나요”

    관악 “마을 사랑방서 만나요”

    서울 관악구는 지난 10일 삼성동에 주민 공동 이용시설인 ‘돌샘행복마을 복합시설’의 문을 열었다고 11일 밝혔다.전체면적 414.44㎡, 지하 1층 지상 3층의 규모다. 지하 1층 구립돌샘경로당에는 할머니·할아버지 방과 체력단련실이 마련됐고 지상 1~3층은 동아리방, 마을사랑방, 마을주방, 다목적홀, 어린이 놀이방 등이 들어섰다. 건물은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 인증을 받았다. 해당 시설은 2014년부터 진행된 삼성동 주거환경관리사업의 하나로 신축됐다. 앞서 관악구는 시비 25억원과 구비 4억여원 등 총 29억여원을 투입해 삼성동 일대 주거환경 개선과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시행했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주민 소통 공간이 마련된 만큼 자립 가능한 마을공동체가 조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송선미, 남편 사망 後 눈물 흘리며 남긴 말 “하늘에서 보고 있을 신랑에게...”

    송선미, 남편 사망 後 눈물 흘리며 남긴 말 “하늘에서 보고 있을 신랑에게...”

    배우 송선미 남편을 청부 살해한 30대 남성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가운데, 과거 송선미의 발언이 재조명되고 있다.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조의연)는 배우 송선미 남편을 청부살해한 A(39)씨의 살인 교사 등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앞서 A 씨의 사주를 받아 송선미의 남편을 살해한 B(28)씨는 지난달 16일 다른 재판부에서 징역 22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재판부는 이날 A 씨에 대해 “무엇보다 이 사건으로 송선미 남편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을 잃었고, 유족들은 평생 치유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피고인을 무기한 사회에서 격리해 잘못을 참회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선미는 이날 재판에 직접 참석, 방청석에 앉아 선고 결과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재판정을 빠져나갔다.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송선미가 남편 사망 이후 한 시상식에서 남편 사건을 언급한 내용이 재조명되고 있다. 송선미는 지난해 12월 30일 열린 ‘2017 MBC 연기대상’에서 연속극 여자 부문 우수연기상을 수상, 이에 소감을 전했다. 그는 “감사하다. 앞으로 힘내서 살라는 의미로 (이 상을) 준 것 같다. 같이 출연한 동료,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힘든 상황 속에서 촬영했다. 연기를 통해 이겨내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연기하는 게 참 행복한 일이구나’ 생각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송선미는 이날 소감에서 고인이 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며 “하늘에서 보고 있을 신랑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정의는 꼭 이뤄지고 밝혀진다는 말을 하고싶다. 적어도 제 딸에게 그런 대한민국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한편 송선미 남편은 지난해 8월 서울 서초구의 한 법무법인 내 회의실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송 씨 남편은 재일교포 재력가인 친할아버지 재산을 두고 갈등을 빚은 사촌형 A 씨의 지시로 B 씨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송선미 남편 ‘청부살해’ 30대 1심서 무기징역 선고

    송선미 남편 ‘청부살해’ 30대 1심서 무기징역 선고

    배우 송선미씨의 남편을 청부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30대 남성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조의연)는 살인 교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곽모(39)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가 필요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곽씨는 송씨의 남편인 고모씨와 외종 사촌지간으로, 할아버지의 재산을 두고 갈등을 빚던 중 지난해 8월 조모(28)씨를 시켜 서울 서초구의 한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고씨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곽씨는 재일교포 1세 사업가(99)의 장손이다. 곽씨와 부친(72)은 법무사 김모씨와 공모해 할아버지가 국내에 보유한 6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가로채려고 증여계약서나 위임장 등을 위조하고 예금 3억여원을 인출한 혐의 등도 받는다. 재판부는 곽씨의 부친과 김씨에게는 각각 징역 3년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할아버지 재산을 독차지하려고 이를 빼돌리는 과정에서 고씨와 갈등이 생기자 평소 자신의 오른팔 역할을 한 조씨에게 사주해 대낮에 변호사 사무실에서 고씨를 무참히 살해했다”면서 “피고인의 범행은 그 패륜적 성격과 살해 방법의 계획성·잔혹성 등에 비춰 사회 공동체가 관용을 베풀기 어려운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도 범행을 시종일관 부인하며 잘못을 사죄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며 곽씨를 질타했다. 재판부는 “무엇보다 이 사건으로 고씨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을 잃었고, 유족들은 평생 치유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피고인을 무기한 사회에서 격리해 잘못을 참회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곽씨의 사주를 받아 고씨를 살해한 조씨는 지난달 16일 다른 재판부에서 징역 22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송선미씨도 이날 방청석에서 선고 결과를 들었고, 눈시울을 붉힌 채 아무 말 없이 법정을 빠져나갔다. 송씨는 남편 고씨의 누나 등 가족들과 함께 이들의 재판에 매번 참석해 재판 과정을 유심히 지켜봐 왔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송선미 남편 청부 살해’ 30대 무기징역…“사회 격리 필요”

    ‘송선미 남편 청부 살해’ 30대 무기징역…“사회 격리 필요”

    배우 송선미씨 남편을 청부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조의연 부장판사)는 살인 교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곽모(39)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가 필요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곽씨는 사촌지간이자 송씨의 남편인 고모씨와 할아버지 재산을 두고 갈등을 빚던 중 지난해 8월 조모(28)씨를 시켜 고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곽씨는 재일교포 1세 곽모(99)씨의 장손으로, 부친(72) 및 법무사 김모씨와 공모해 조부가 국내에 보유한 6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가로채려고 증여계약서나 위임장 등을 위조하고 예금 3억여원을 인출한 혐의 등도 받는다. 재판부는 곽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피고인은 할아버지 재산을 독차지하려고 이를 빼돌리는 과정에서 고씨와 갈등이 생기자 평소 자신의 오른팔 역할을 한 조씨에게 사주해 대낮에 변호사 사무실에서 고씨를 무참히 살해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의 범행은 그 패륜적 성격과 살해 방법의 계획성·잔혹성 등에 비춰 사회 공동체가 관용을 베풀기 어려운 범죄”라며 “그런데도 범행을 시종일관 부인하며 잘못을 사죄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특히 “무엇보다 이 사건으로 고씨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을 잃었고, 유족들은 평생 치유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피고인을 무기한 사회에서 격리해 잘못을 참회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씨에게 사주를 받아 고씨를 살해한 조씨 역시 지난달 16일 다른 재판부에서 진행된 1심에서 징역 22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문서 위조 등의 범행에 공모한 곽씨의 부친과 법무사에게는 각각 징역 3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날 법정에 나온 송씨는 눈시울을 붉힌 채 아무 말 없이 법정을 빠져나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월드피플+] 세계 최고령된 112세 日할아버지…장수비결은?

    [월드피플+] 세계 최고령된 112세 日할아버지…장수비결은?

    올해 나이 112세의 일본 할아버지가 세계 최고령 남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지난 10일 기네스 위원회 측은 일본 홋카이도 현 아쇼로에 사는 노나카 마사조 할아버지가 현존하는 세계 최장수 남성으로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다. 노나카 할아버지는 지난 1905년 7월 25일 생으로 10일 기준 112년 259일을 살았다. 기존 기록은 스페인 출신의 프란치스코 누네즈 올리베이라로 지난 1월 11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무려 112년의 세월을 살아왔지만 할아버지의 삶은 평탄했다. 총 8남매로 태어난 할아버지는 지난 1931년 결혼해 2남 3녀를 뒀다. 가업으로 100년 된 온천여관을 물려받아 경영해왔으며 현재는 장남 가족과 함께 살고있다. 이날 기네스측으로 부터 인증서를 받은 할아버지는 여러차례 미소를 짓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감사함을 표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장수비결이다. 할아버지는 평소 단 음식을 즐겨먹는 것을 장수의 비결이라고 밝혔으나 딸들은 근심걱정없는 삶을 꼽았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노나카 할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살고있으나 기본적인 생활은 스스로 해낸다. 매일 아침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으로 스모와 오페라를 보는 것이 취미. 현지언론은 "스트레스 없는 유유자적한 삶이 장수의 비결로 보인다"면서 "이날 마을이 준비한 축하케이크를 스푼으로 떠먹고 '맛있다'를 연발했다"고 보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송혜민의 피플스토리+] 부모 사망한 지 4년 만에 태어난 아기

    [송혜민의 피플스토리+] 부모 사망한 지 4년 만에 태어난 아기

    세상에는 믿기 힘든 기적이 많습니다. 이 아기의 탄생 역시 아기에게도, 가족에게도 믿기 힘들 정도로 기쁜 기적이었을 겁니다. 사연의 주인공은 중국에 사는 ‘톈톈’(甜甜, 가명)입니다. 톈톈이 태어난 것은 지난해 12월, 톈톈의 부모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4년 째 되는 때였습니다. 부모가 사망한 후에 태어난 아기,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시간을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톈톈의 아버지인 션씨와 루씨는 2013년 3월, 장쑤성에서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의료진은 최선을 다했지만 이 젊은 부부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습니다. 사망한 션씨와 루씨의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힘든 일을 겪는 와중에 뜻밖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션씨 부부가 사고 직전 불임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망한 부부의 부모들은 변호사를 고용해 아들 부부의 수정된 배아에 대한 책임 권한을 갖기 위한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배아 상태의 ‘미래의 손자·손녀’에 대한 책임 권한을 요구하는 조부모의 소송은 중국을 떠들썩하게 했죠. 이와 관련한 그 어떤 법적인 판례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국 재판부는 션씨 부부의 부모들에게 수정된 배아를 책임질 수 있는 권한을 줬습니다. 다만 중국 내에서 대리모는 불법이기 때문에 이들은 해외에서 대리모를 찾아야 했죠. 톈톈은 할아버지·할머니, 외할아버지·외할머니가 어렵사리 외국에서 찾은 대리모를 통해 지난해 12월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딸 내외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만에 외손자를 품에 안은 루씨의 어머니는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루씨의 어머니는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눈은 내 딸을 닮았고, 전체적인 얼굴은 사위를 쏙 빼닮았다”며 “나중에 아이가 크면 아이에게 탄생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해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톈톈의 탄생은 기적이 분명하지만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 부모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아이에게는 그 어떤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를 대신해 톈톈의 조부모와 외조부모가 아이를 반드시 사랑으로 지켜주리라 기대해봅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포토] ‘112살 인증케익 먹었습니다’

    [포토] ‘112살 인증케익 먹었습니다’

    올해 112세인 일본의 노나카 마사조 할아버지가 10일(현지시간) 홋카이도 현 아쇼로에서 기네스 관계자로부터 ’최고령 남성 인증서’를 받았다. 노나카 할아버지는 1905년 7월 25일 태어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린재킷이 다가 아니야 …마스터스에서 챙길 수 있는 10가지

    그린재킷이 다가 아니야 …마스터스에서 챙길 수 있는 10가지

    준우승자에겐 은메달·은주전자아마추어 최저타수에는 ‘실버컵’마스터스 토너먼트에 출전하는 87명 선수들의 최종 목표는 당연히 우승자의 상징인 ‘그린 재킷’을 입는 것이다. 이 전통은 1949년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9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파72·7435야드)에서 끝난 제82회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는 패트릭 리드(미국)가 우승을 차지해 그린재킷의 주인이 됐다. 리드는 이외에도 우승 상금 198만 달러(약 21억 1000만원)와 오거스타 내셔널의 클럽하우스를 묘사한 은제 트로피, 그리고 금메달도 받았다. 그러나 마스터스에서는 우승자만이 모든 것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마스터스 정보를 다룬 ‘오거스타닷컴’은 마스터스가 선수들에게 제공하는 10가지 특별한 상을 소개했다. 일단 그린재킷을 눈앞에서 놓친 준우승자는 은메달과 은쟁반을 받는다. 올해는 리드에게 1타 차로 밀린 리키 파울러(미국)가 준우승했다. 마스터스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아마추어 선수들에게도 문호를 개방, 좋은 성적을 거둔 아마추어에게 상도 준다. 컷을 통과한 아마추어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최저타수)을 낸 선수는 ‘실버컵’을 받는다. 이번 대회에서는 최종합계 8오버파 296타로 공동 50위를 차지한 재미교포 덕 김이 주인공이 됐다. 아마추어 최저타수 2위 선수는 은메달을 받는데, 올해 대회에는 6명의 아마추어 참가자 중 덕 김만 컷을 통과해 은메달의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덕 김은 이번 대회에서 총 3개의 이글을 기록, 또 다른 기념품도 가져가게 됐다. 마스터스 기간에 이글을 기록한 선수는 누구나 마스터스 로고가 들어간 크리스털 하이볼 잔 2개를 받는다. 이글상은 마스터스에서 그나마 가장 쉽게 받을 수 있는 상이다. 가장 타기 어려운 상은 더블이글상(파보다 3타 적은 타수)이다. 더블이글을 기록하면 크리스털 그릇(Bowl)을 수여하는데, 이 상은 마스터스 역사에서 단 네 차례만 나왔다. 홀인원을 해도 대형 크리스털 그릇을 받는다. 매 라운드 가장 적은 타수를 기록한 선수는 데이 최저타수상으로 크리스털 꽃병을 받는다. 개막 전 이벤트인 ‘파3 콘테스트’는 상을 챙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골프장 9곳의 파 3홀에서 펼쳐지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대형 크리스털 그릇 모양의 트로피를 받는다. 올해 대회에서는 69세 노장 톰 왓슨이 최고령 우승을 차지했다. 파3 콘테스트에서 홀인원을 하면 크리스털 꽃병을 받는다. 올해 대회에서는 토니 피나우(미국)가 파3 콘테스트에서 홀인원을 하고 격한 세리머니를 하다가 발목을 접질려 정작 본 대회에 못 나올 뻔한 상황이 나오기도 했다. 또 ‘전설’ 잭 니클라우스(미국)의 15세 손자인 G.T 니클라우스도 할아버지에게서 건네받은 클럽으로 티샷했다가 홀인원을 기록했다. 또 파3 콘테스트에서 깃대에 가장 가까이 공을 붙인 선수는 크리스털 항아리를 가져간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숨막히는 현실, 오지 않는 희망… 그래도 나아가라는 거장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숨막히는 현실, 오지 않는 희망… 그래도 나아가라는 거장

    “자, 이제 가자.” “안 돼.”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아, 그렇군.” 바짝 마른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빈 무대에 허름한 점퍼를 입은 두 사람이 앉아 구두를 벗으려 애쓴다. 에스트라공(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는 고도가 올지 안 올지를 두고 대화한다. 도대체 고도는 누구인지,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싱거운 대화만 몇 번이고 반복한다. 주인과 노예가 잠시 등장하고, 소년이 등장하여 고도가 그날은 오지 않고 내일도 오지 않을 거라고 알린다. 고고와 디디는 왠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린다. 두 사람은 무의미한 대화로 시간을 때운다. 1막에서는 고고가 가자고 하고, 2막에서는 디디가 가자고 한다. 쓸데없는 장난과 엉뚱한 대화를 듣는 관객이 왜 내가 여기 앉아 있어야 하나 고민할 때 막은 내린다.●파리로 온 작가·화가·철학자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에서 태어난 사뮈엘 베케트(1906~1989)는 부유한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전공하고, 졸업 후 파리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2년간 영어를 가르쳤다. 1937년 파리 몽파르나스 언덕에 정착한 베케트는 이듬해 장편소설 ‘머피’를 발표했다. 1938년 1월 6일,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나오던 베케트는 소위 ‘묻지마 폭력’을 당한다. 모르는 청년이 느닷없이 그에게 칼을 휘둘렀던 것이다. 법정에서 범인이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하자 충격을 받은 베케트는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인생을 숙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41년 파리에서 그는 조국도 아닌 프랑스 레지스탕스 친구들을 돕는다. 더블린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부잣집 아들이 어떻게 이런 위험을 결심했는지 모르지만, 1942년 동지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베케트는 시골 농장으로 피신하여 ‘와트’라는 소설을 썼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 그는 집중해서 작품을 썼다. 우주의 인연이란 기이한 바, 베케트가 태어나기 5년 전 한 인물이 옆 나라에서 태어났다. 1901년 10월 10일 스위스에서 탄생한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 스위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후기 인상파 화가였던 아버지 덕에 자코메티는 거대한 서가에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자코메티는 10세 때부터 소묘와 그림을 그렸으며, 14세 때 동생 디에고를 모델로 처음 흉상을 만들었다. 18세 때 자코메티는 제네바 미술 공예학교에 들어갔다. 자코메티는 눈앞에서 몇 번의 죽음을 목격했다. 아이를 위해 제왕절개를 거부했던 여동생의 죽음을 보았다. 어제까지 함께 베네치아 여행을 즐겼던 병든 할아버지 이야기도 황당하다. 아침에 깬 자코메티는 죽어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때 자코메티는 깨닫는다. 죽음이란 늘 곁에 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폭격으로 잘린 팔 등 그는 죽음을 목격하고 강제로 성찰해야 했다. 그의 예술은 죽음이라는 한계에서 탄생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베케트처럼 자코메티도 파리에 있었다. 그 무렵에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도 파리에 있었다. 세 사람은 양차 대전을 모두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쟁의 비극으로 아수라장이었던 파리라는 공간을 작가 베케트, 화가 자코메티, 철학자 사르트르는 같은 시기에 체험했다. 세 거장은 죽음의 심연을 극복하는 실존주의 문학(베케트)-미술(자코메티)-철학(사르트르)의 연대를 보여줬다. 이후 1953년 1월 파리 몽파르나스 바빌론 소극장에서 초연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대성공을 거두었다.●기다리는 사람과 걸어가는 사람의 만남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텅 빈 무대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와 디디가 있다. 처음 이 연극을 보았을 때 홀쭉이와 빵빵이 같은 개그맨이 나와서 만담하는 줄 알았다. 노숙자 복장을 한 괴이쩍은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고도가 온다는 확신도 없이, 두 사람은 그저 기다리지만 고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기다림 자체가 희망이다. 반세기를 기다렸건만, 고도는 오지 않고 다만 심부름꾼을 보낸다. 디디는 고도의 심부름꾼에게 “나를 만났다고 말해”라고 부탁한다. 두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버티기 위해 구두끈을 풀었다 다시 감기를 반복한다. 두 인물이 대체 몇 번이나 구두끈을 풀고 다시 묶는지 세어보다가 포기할 정도다. 어찌보면 이 한심한 방법이 아우슈비츠의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꿈꾸었던 생명들이 견뎌내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아니 전쟁이 아니더라도 삶 자체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베케트는 고도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영어 ‘신’(God)이 무의식에 있어서 절대자를 생각하고 썼을 수도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고 한다. 희망이란, 숨은 신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이 연극이 세계에 널리 알려진 배경에는 자코메티가 있다. 1961년 파리 오데옹 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려 할 때 베케트는 자코메티에게 무대 디자인을 맡겼다. 두 거장은 밤새도록 나무 하나를 구부려도 보고, 꺾어도 보고, 부수고, 다시 세웠다. 목매달아 죽고 싶어도 매달리면 부러질 것 같은 연약한 나무를 구상했다. 나뭇잎이 한두 개 달린 앙상한 나무를 석고로 만들어 마치 뼈다귀 같은 느낌을 줬다. 자코메티와 베케트는 바로 이 지점에서 만났다. 석고로 만든 이 나무 하나로 자코메티는 열매 맺을 수 없는 죽은 나무의 비극을 미니멀리즘 무대 양식으로 표현했다.베케트가 무대 디자인을 자코메티에게 부탁한 까닭은 자코메티가 1년 전인 1960년에 발표한 ‘걸어가는 사람’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작품은 사진으로, 모작으로 하도 많이 봐 와서 별 감동이 없었다. 과연 저 삐쩍 마른 철사 같은 존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파리 퐁피두센터 5층에서 저 삐쩍 마른 이상한 작품이 몇 점 있어 한참을 봤지만, 부끄럽게도 모자란 서생은 철사인간의 깊이를 공감할 수 없었다. 뭔 뜻인지 몰랐다. 이번에 예술의 전당 전시회에서 이 작품 하나만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묵상하는 방에서 나는 사십여분을 응시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운명을 쏘아보는 듯 눈알이 크고 둥글었다. 원효의 눈부처를 보듯, 저 둥근 눈에 내 눈을 겹쳐 놓으니 가슴이 떨렸다. 대지를 버티는 두툼한 발, 해골 같은 머리를 촬영하면서 저 철사 같은 인간을 내 삶에 전이시켜 보았다. 183㎝ 키의 철사인간을 자코메티는 비정상적으로 늘어뜨리고 불필요한 것은 다 덜어냈다. ‘덜어냈다’는 표현이 대단히 중요하다. 죽음을 곁에 둔 인간이 덕지덕지 무엇을 품고 걸을 필요는 없었다. 자코메티 이전의 화가들은 ‘본 것’을 만들려 했지만, 자코메티는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하려 했다. 동양철학에 깊이 영향을 받은 자코메티는 쓸데없는 것을 다 덜어낸 인간의 모습을 만들었다. 그는 선배 화가 피카소를 향해 엄청난 말도 했다. “난 피카소가 예술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천재더라.” 자코메티의 말은 무서운 자세를 보여준다. 예술은 명성이나 기술이 아니라, 깊이 있는 사상에서 탄생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피카소는 기술로만 그리는 천재(기술자)일 뿐, 사상을 가진 예술가는 아니라는 비판이다. 나는 피카소와 차원이 다르다는 뜻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라는 자코메티의 생각은 사뮈엘 베케트의 정신과 만난다. “우리는 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걸까요?” “그건 말이야, 인간이 더이상 갈 곳이 없기 때문이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기다리는 인간을 만든 베케트처럼, 자코메티는 걸어가는 인간을 말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걸 포기하는 대신에 계속 걸어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의 순간을 경험한다. 비록 이것이 하나의 환상 같은 감정일지라도 무언가 새로운 것이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계속해서 걸어나가야 한다.”●걸어가는 고도가 만든 실존주의 철학 희망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음이 앞에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기다리는 주인공은 베케트 자신이었다. 동지들이 죽어가는 전쟁 속에서 레지스탕스로 숨어 지내면서 그는 끊임없이 글을 썼다. 고독을 벗하며 쓰고 또 쓰면서 사망 전까지 그는 매년 작품을 발표했다. 자코메티, 베케트, 사르트르는 인간의 비극적인 죽음에서 절망하지 않고, 걷는 인간, 기다리는 인간, 실존주의 철학을 만들어냈다. 그들에게 파리는 창조의 공간인 동시에 죽음을 체험하게 한 공간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두 등장인물의 모습은 요즘도 파리에 많은 집시, 난민, 노숙자의 모습이다. 젊은 시절 나치를 피해 도망쳐야 했던 베케트와 자코메티가 한때 저런 처지가 아니었을까.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삶 자체는 무의미요, 전쟁의 아수라와 유사하지 않은가. 세 사람은 뜬구름 잡는 희망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살을 유도하는 염세주의를 자극하지도 않았다. 숨막히는 현실에서 오지 않는 희망을 기다리는 세 거장의 자세는 운명을 견디는 잔혹한 낙관주의라 할 수 있겠다. 이 땅에서는 식민지의 어둠 앞에서 쫄지 말고 “눈 감고 가라”고 했던 시인 윤동주, 독재 시대에 아마득한 혁명을 꿈꾸었던 시인 김수영, 제주도에서는 4·3의 비극에 숨죽이며 지금까지 많은 눈물을 삼켰던 이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 철사인간이 바로 내 모습,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여 눈시울이 뜨끈해진다. 무의미한 세계에서 베케트는 금욕적인 수도승처럼 살았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글쓰기와 연출에만 전념했던 그는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도 시상식에 가지 않았다. 자코메티와 함께 잔혹한 낙관주의를 가르쳐 준 베케트는 1989년 12월 22일에 조용히 고도가 있는 곳을 찾아 까마득한 여행을 떠났다. 시인·숙명여대 교수
  • 한강과 ‘맨부커상’ 겨룬 인니 작가의 스릴러

    한강과 ‘맨부커상’ 겨룬 인니 작가의 스릴러

    호랑이 남자/에카 쿠르니아완 지음/박소현 옮김/오월의봄/208쪽/1만 2000원조용한 마을에 괴이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칼이나 총 같은 무기를 사용한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의 목을 직접 물어뜯어 죽인 사건이다. 이야기는 아들처럼 여기던 이웃집 청년 마르지오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중년 사내 안와르 사닷의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릴 적 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자란 감수성 짙은 마르지오는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었던 흰색 암호랑이가 자신에게 들어와 있는 것을 깨닫는다. 국내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인도네시아의 소설 ‘호랑이 남자’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세계 문학계의 떠오르는 샛별로 불리는 에카 쿠르니아완의 두 번째 소설이자 대표작으로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함께 맨부커상 후보로 올랐던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는 옛날이야기를 하며 인도네시아의 문화와 현대사를 재현하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인도네시아 곳곳에는 선량한 마을이나 가족을 지켜주는 신비로운 호랑이에 관한 전설이 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전설을 모티프로 사람들의 욕망과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때로는 리얼하게, 때로는 환상적으로 그려낸다. 범죄 스릴러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마을의 모습과 인물의 내력을 풍부하게 묘사해 서정성이 강한 것도 특징이다. 여느 범죄 소설과 달리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범인을 추리할 필요가 없다. 첫 문장에서부터 피해자와 살인자가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된 구전 동화를 들으면서도 그 비극적 결말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어린 청자들처럼 책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마르지오는 왜 사닷을 죽이게 됐을까를 풀어가는 과정은 범인 추리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정말 ‘北 비핵화’는 가능한 걸까

    정말 ‘北 비핵화’는 가능한 걸까

    선을 넘어 생각한다/박한식·강국진 지음/부키/320쪽/1만 6800원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조만간 남북, 북·미 정상이 만난다. 종전처럼 형식적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중대하고 실질적인 변화가 감지된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반신반의다. 정보의 단절, 현실 정치와 언론의 왜곡 속에서 만들어진 편견 탓이다. 그럼 이런 변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새 책 ‘선을 넘어 생각한다’를 펴면 나온다. 책은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가 묻고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가 답하는 형식이다. 북한은 과연 붕괴될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왜 정신병자처럼 행동할까 등 누구나 궁금해했으면서도 여태 매조지되지 못했던 12가지 의문들에 대해 시원하게 답해 준다. 사실 모든 문제는 북한 입장에서 생각하면 간단하다. 예컨대 ‘원자탄’은 원유와 함께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 때부터 체제를 수호하는 두 개의 칼로 인식돼 왔다. ‘원자탄’에 대한 공포 또한 북한이 미국보다 월등히 크다. 이처럼 자기가 곧 죽을 것처럼 느껴지는데 중국이 하지 말란다고 핵개발을 안 하겠나. 사실 우리를 혼돈스럽게 하는 건 이랬다 저랬다 극단을 오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매한가지다. 박 교수는 트럼프를 장사꾼이라 본다. 그는 북한을 악마화해야 이익일지 거래를 트는 게 이익일지 끊임없이 저울질한다. 북한의 인권 운운하는 건 그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박 교수는 만약 북한과 거래를 트는 게 낫다는 계산이 서면 트럼프는 역대 그 어느 정부보다 전격적으로 북한과 손을 잡을 것이라 본다. 그럼 북한의 비핵화도 진짜 가능하다는 건가. 저자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단 북한의 안전보장이 전제다. 북·미 수교와 불가침조약 체결 등 체제 안전이 보장되면 북한은 기꺼이 국제 사찰을 받고 핵개발을 포기할 것이란 얘기다. 책엔 이 밖에도 생경한 논리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두고 “상하이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에서 두 번이나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난 인물”이라거나 “김일성 3대 세습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숭배하고 그의 딸을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 역시 외국인 시각에서는 오십보백보”라는 식의 분석이 그 예다. 국내 한 진영에선 불편해할 수도 있겠지만, 박 교수의 논리 어디에서도 왜곡이나 굴절의 흔적은 찾기 힘들다. 그 덕에 맑고 깔끔하게 북한을 보게 된다. 그게 책의 매력이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꽃내음에 웃음·위안 싣고… 오늘도 달린다, 꽃차 택시

    꽃내음에 웃음·위안 싣고… 오늘도 달린다, 꽃차 택시

    택시 내부 꽃·인조 잔디로 꾸며 뒷좌석엔 안마기·노래 서비스 청년들도 먼저 말 걸며 ‘인증샷’ “승객이 즐거우면 내가 더 좋아”“제 택시를 타는 승객들이라면 백이면 백 모두 먼저 말을 걸어옵니다.” 17년째 택시를 운행하는 정녹현(70)씨의 차량은 여느 택시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내부가 ‘정원’을 방불케 한다. 창문 옆엔 빨간 꽃바구니와 소리를 내는 모형 참새가 걸려 있고, 바닥엔 인조 잔디가 깔려 있다. 전혀 70대 기사의 취향으로 보이지 않는 이 택시에 탑승한 승객이라면 “기사님이 직접 꾸미신 거예요?”라고 묻게 된다. 하루에만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승객들의 똑같은 질문에도 한결같이 그렇다고 웃으며 답한다. 오히려 말 걸어오길 기다렸다가 “안마 받으시겠습니까?”라고 되묻는다. 택시 뒷좌석에는 ‘안마기’가 장착돼 있다. 26년간 전자기기 회사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정씨가 직접 만들었다. 지친 하루를 보낸 승객들이 향긋한 꽃 내음과 안마에 기분이 좋아지면 그는 노래방 기계를 켜고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 한 곡조를 뽑는다. 노래 선택도 승객 연령대나 분위기에 따라 다르다. 지방에서 올라온 승객이라면 나훈아의 ‘고향무정’, 시원하게 강변을 달릴 때는 설운도의 ‘사랑의 트위스트’, 외국인이 탑승할 경우 클리프 리처드의 ‘더 영 원스’를 부르는 식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어요?”, “이런 택시도 타 보고 올해는 뭔가 잘 풀릴 것 같네요.” 택시 안에서 대화하기 싫다며 ‘침묵 택시’ 도입을 외치던 젊은이들도, 그의 택시만 타면 말이 많아진다. 승객들에게 정씨의 택시는 ‘행운’의 상징이다. 젊은 승객들은 이 택시를 타고 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행운의 인증샷’을 남기기도 한다. 이런 특별한 택시는 사실 그의 ‘아픔’에서 비롯됐다. 6·25 전쟁 당시 할아버지, 할머니와 남쪽으로 피란을 온 그는 일찍 조부모를 여의고 20대 초반에 단란한 가정을 꾸렸지만, 부인을 18년 전 먼저 떠나보냈다. 사별 후 법인 택시를 운전하게 된 정씨는 우연히 주유소에 놓여 있는 작은 은행나무 꽃 화분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고, 그때부터 택시를 정원처럼 가꾸기 시작했다. 그는 “나도 즐겁지만 승객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더 좋다”며 활짝 웃었다. 이따금 ‘진상 승객’도 있기는 하다. 술에 취해 “택시가 맞느냐”고 소리를 지르거나, 기껏 꾸며 놓은 잔디나 화분을 손으로 잡아 뜯는 승객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웃어 넘기고, 망가진 정원을 다시 꾸미는 쪽을 택한다. 만만치 않은 택시업에 종사하면서도 늘 밝은 모습으로 행복을 전파하던 정씨는 2015년 서울시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정씨는 “올해는 여름에 승객들에게 아이스박스에 담은 요구르트를 하나씩 서비스로 주고, 겨울에는 커피포트를 설치해 따뜻한 커피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체력이 다할 때까지 승객들을 웃게 하고 나도 웃을 수 있는 택시를 운전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69세 전설 톰 왓슨, 마스터스 최고령 파3콘테스트 우승

    69세 전설 톰 왓슨, 마스터스 최고령 파3콘테스트 우승

    ‘명인 열전’ 마스터스 토너먼트의 개막 전 이벤트인 파3 콘테스트에서 ‘골프의 전설’ 톰 왓슨(69)이 우승을 차지했다.대회 개막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파3 콘테스트에서 톰 왓슨은 6언더파 21타를 쳐 우승했다. 지난 1960년 시작된 파3 콘테스트는 대회 개막에 앞서 골프장 9곳의 파3 홀에서 펼쳐지는 이벤트 경기다. 특히 선수 아내나 애인, 자녀 등이 캐디를 맡아 팬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하고 선수들은 경기 감각을 조율할 수 있는 행사다. 톰 왓슨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39차례 우승을 차지한 그야말로 ‘전설’이다. 메이저 대회에서는 마스터스 두 차례를 포함해 8차레 우승했다. 톰 왓슨은 이날 초반 4개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내는 등 9개 홀에서 6개의 버디를 낚으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냈다. 1982년에 이어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그는 역대 파3 콘테스트 최고령 우승자(만 68세)가 됐다. 1974년 ‘전설’ 샘 스니드가 세웠던 만 61세를 훌쩍 뛰어넘었다. 톰 왓슨은 이날 메이저 18회 우승의 잭 니클로스(78), 마스터스 3회 우승의 개리 플레이어(83)와 함께 콘테스트에 참가했다. 잭 니클로스의 손자인 15세의 G.T. 니클라로스는 홀인원으로 갤러리를 열광시켰다. G.T.는 이날 할아버지의 캐디로 파3 콘테스트에 참가했다. 그는 마지막 홀인 135야드짜리 9번홀에서 할아버지로부토 클럽을 넘겨받아 티샷을 했는데 공은 그린에 튕긴 뒤 그대로 홀로 빨려 들어갔다. 니클라우스는 이를 보고 G.T.를 얼싸안으며 손자의 생애 첫 홀인원을 함께 기뻐했다. 그는 3년 전인 2015년 이 파3콘테스트에서 홀인원을 기록한 바 있다. 마스터스 개막 1주 전 세계랭킹 50위 진입으로 막차를 탄 딜런 프리텔리(남아공)와 토니 피나우(미국)도 이날 각각 8번과 7번홀에서 ‘에이스’를 기록했다. 피나우는 홀인원이 되는 것을 보고 뛰어가다 발목을 접질리기도 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할머니네 똥강아지’ 남능미, ‘훈남’ 야구선수 손자와 ‘찰떡 케미’

    ‘할머니네 똥강아지’ 남능미, ‘훈남’ 야구선수 손자와 ‘찰떡 케미’

    ‘할머니네 똥강아지’ 배우 남능미의 손자가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4일 방송된 MBC ‘할머니네 똥강아지’에는 배우 남능미와 ‘배우 천정명 닮은꼴’ 그의 손자 권희도가 출연했다. 이날 남능미는 야구선수인 손자에게 몸보신을 시켜주기 위해 손수 삼계탕을 준비했다. 삼계탕에 숯불갈비까지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낸 남능미는 손자 수저에 반찬을 올려주며 여느 할머니 같은 따뜻한 모습을 보였다. 손자 권희도는 할머니 사랑에 보답하듯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갈비를 뜯던 권희도는 “이 갈비는 질기다”며 투정어린 말을 했고, 이에 남능미는 “그거 할아버지 드려라”라고 답해 웃음을 줬다. 고기만 먹는 손자에게 남능미는 “이거 유명한 사람이 만든 김치니 먹어봐라”라며 백김치를 권했고, 권희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거부했다. 남능미는 김치를 안 먹는 손자에게 “김치를 안 먹어서 밉다”, “나중에 결혼하면 먹어야 한다”며 잔소리를 했고 권희도는 “김치 안 먹는 사람과 결혼 할거다”라고 말해 또 한 번 웃음을 줬다. 편식하는 손자도 그저 예쁜 남능미는 180cm가 넘는 키에 훈훈한 외모의 손자에 애정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투닥투닥 거리면서도 친근한 할머니와 손자의 모습은 안방극장에 따뜻함을 전했다. 사진=M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우리 똥강아지 딱 한 번만”..죽음 앞둔 환자와 반려견의 만남

    “우리 똥강아지 딱 한 번만”..죽음 앞둔 환자와 반려견의 만남

    한 병원이 죽어가는 환자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서 병원 규정을 완화한 덕분에, 환자가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반려견을 보게 됐다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지난 3월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영국 스코틀랜드 던디 시(市)에 있는 나인웰스 병원은 감염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병원에 동물 출입을 금지했다. 그런데 70세 노인 피터 롭슨은 죽기 전에 한 번만 더 보더콜리 반려견 ‘셰프’를 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었다. 8년 전 강아지 셰프를 입양한 이후 셰프는 롭슨의 가장 친한 친구가 돼줬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큰 위안이 되기도 했다.롭슨 가족은 애타는 심정으로 피터가 죽기 전에 나인웰스 병원에 셰프의 출입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나인웰스 병원은 셰프의 출입을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병원 제3병동 직원들이 철저히 셰프의 감염예방 관리를 한 덕분에 셰프는 지난 3월29일 주인 롭슨과 오랜만에 재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롭슨은 숨을 거뒀다. 피터의 손녀 애슐리 스티븐스는 페이스북에 동영상과 사진을 올리고, 3병동 수간호사 셰릴 화이트를 비롯한 직원들에게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 게시물은 ‘좋아요’ 6600개, 공유 5800회, 댓글 2000개를 각각 기록했다. 스티븐스는 영국 공영방송 BBC와 인터뷰에서 “할아버지는 결코 셰프를 다시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둘이 함께 있는 것을 본 것은 놀라운 순간이었다”며 “셰프가 할아버지를 봐서 정말 신났다”고 전했다. 노트펫(notepet.co.kr)
  • “두 번 다시 우리 같은 비극 없어야”···제주 4·3 피해자의 눈물

    “두 번 다시 우리 같은 비극 없어야”···제주 4·3 피해자의 눈물

    “군인도 민간인 죽이고, 경찰도 민간인 죽이고, 거기에 누구하고 누구하고 할 것 없이 그냥 다 잡아 죽여버리고···. 하다못해 집에 들어가서 가족들 있는데 다 죽이고, 불 붙여 버리고···.”‘제주 4·3 사건’(이하 제주 4·3)의 참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언입니다. 올해로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특별전, 역사기행, 학술대회, 문화제 등 이 사건을 추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마련됐습니다. 또 2009년 이후로 중단됐던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이 재개됐습니다. 제주 4·3은 비단 1948년 4월 3일에 제주에서 있었던 일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1947년 3월 1일 미국 군사정부(미군정) 경찰이 제주도민들을 향해 발포한 사건을 시작으로, 좌익 진영의 무장대가 1948년 4월 3일 일으킨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이어진 무장대와 군·경 토벌대 간 무력 충돌, 그리고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최대 약 3만명의 도민들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6·25 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이기도 합니다. 제주 4·3은 분단을 우려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무장대의 봉기가 있기 전에, 광복 직후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통치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주 독립과 통일된 나라를 요구한 제주도민들의 열망이 스며 있습니다.김용선(73)씨의 아버지는 제주 4·3 이후 행방불명됐습니다. 지금의 제주 조천읍 조천리에 살던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1948년 2월 21일 사망하자 부산에 살던 김씨 가족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당시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뱃길이 막혀 부산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김씨 가족은 같은 해 4월 3일 이후 큰 시련을 겪습니다. 그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김씨의 증언을 통해 제주 4·3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주 4·3이 생존 피해자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를 돌아보고 오랜 기간 우리 사회가 ‘덮어두었던’ 제주 4·3을 어떤 역사로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합니다. 기획·제작 오세진 기자·이승아 PD촬영 곽재순·이승아 PD
  • “아들이 빌린 돈 갚아” 8200만원 보이스피싱 막은 경찰

    “아들이 빌린 돈 갚아” 8200만원 보이스피싱 막은 경찰

    경찰의 신속한 조치로 8200만원에 달하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은 일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인천중부경찰서 송림지구대에 따르면, 지난달 6일 오전 12시 30분 지구대로 80대 할아버지 한 분이 찾아왔다. 당혹스러움에 얼굴이 상기된 할아버지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지구대 안으로 들어온 뒤, 경찰에게 통화 내용 일부를 들려줬다. 그러나 분명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러 온 것으로 보였던 할아버지는 이후 전화를 끊지 못한 채 계속해서 상대와 통화를 이어갔다. 급기야 경찰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치며 지구대 밖으로 나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현장에 있던 손영직(39), 신경관(34) 순경은 보이스피싱임을 직감했다. 먼저 신 순경이 할아버지를 뒤따라가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손 순경은 할아버지 아들이 무사한지를 확인했다. 현장에 있던 경찰의 발 빠른 대처로 할아버지를 타깃으로 한 보이스피싱범들의 파렴치한 연기는 마무리됐다. 이에 대해 송림지구대 허준(53) 대장은 “보이스피싱범들은 자신들이 사채업자라고 했다. 그들은 할아버지 아들이 돈을 빌렸다며, 이자포함 총 8200만원 상당을 요구하며 협박 중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안도의 한숨을 돌린 할아버지는 다음날 해당 지구대를 찾아 피해를 막아준 경찰관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허준 대장은 “유사한 상황에 처할 경우, 보이스피싱범과는 계속 통화를 하면서 경찰에게는 메모를 통해 내용을 전달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고 보이스피싱 대처 방법을 안내했다. 경찰의 신속한 대처로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은 사실은, 지난달 27일 인천지방경찰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유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영상=인천지방경찰청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11살 미아 브룩스 ‘모터홈’에서 올림픽 출전 꿈 키우는 스노보더

    11살 미아 브룩스 ‘모터홈’에서 올림픽 출전 꿈 키우는 스노보더

    이제 11살 소녀인데 부모들은 그녀를 모터홈에서 먹고 재운다. 비싼 유럽의 호텔과 리조트를 돌아다니는 비용을 아껴 스노보드 훈련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란다. 미아 브룩스(영국)의 모터홈 벽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챔피언 클로이 킴(미국)과 안나 가세르(독일)의 서명이 담긴 포스터들이 장식하고 있다. 브룩스는 1일(이하 현지시간)부터 8일까지 스위스 라스에서 열리는 영국 프리스타일스키·스노보드선수권에 참가해 평창 빅에어 동메달리스트 빌리 모건, 엑스게임 메달리스트 제임스 우즈와 기량을 겨룰 예정이라고 BBC가 1일 전했다. 영국의 파크 앤드 파이프 프로그램 매니저인 레슬리 맥케나는 “그녀는 아주 아주 잘해요. 11살 때 할 수 있는 최고로 잘해요”라고 칭찬했다. 방송의 스키 선데이 해설위원인 에드 리는 “슬로프에서 처음 보자마자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영국에서뿐만 아니라 지구를 통틀어 스노보드에서 가장 흥미로운 젊은 인재 중 한 명이란 점을 의심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국이 배출한 인재들을 생각해보자. 6년 동안 여자 슬로프스타일을 지배한 제니 존스와 두 차례 세계랭킹 1위를 차지하고 올림픽 동메달을 딴 모건인데 미아는 쉽게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덧붙였다.체셔주 샌드바흐에서 사는 브룩스는 생후 18개월째에 할아버지 데이비드 딕이 스키 강사로 일하던 키스그로브 스키센터에서 스노보드를 처음 접했다. 부모 니겔과 비키는 스노보드에 빠져 프랑스 샤모니에서 스키 시즌만 다섯 해를 보내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가는 건 당연했다. 니겔은 “눈 위에서 6주를 보냈는데 금방 우리와 수준을 맞췄고 스노파크, 점프대와 레일을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슬로프스타일이 주 종목이지만 하프파이프 경기에도 나선다. 여섯 살 때 영국 실내 대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여러 차례 국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올 시즌 세계루키투어(WRT)로 승격돼 전세계의 15세 이하 톱 클래스 선수들과 대결한다. 니겔은 “이건 다른 차원이고 모두는 훨씬 진지한 선수들이다. 우리야 뭐 모터홈에서 지내는 세 명의 히피일 뿐”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브룩스는 스위스 코르바슈에서 열린 WRT 대회에 처음 데뷔해 슬로프스타일 3위를 차지했다. 아빠는 “딸애는 WRT 역사에 가장 슬퍼 보이는 3위였다”고 했고, 미아는 “기뻤지만 더 높이 올라갔어야 했다고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 다음 이탈리아 리비뇨 대회는 우승했고, 스위스 다보스 주니어 슬로프스타일 대회와 올해 다스 그롬 오픈에서도 시상대 맨 위에 섰다. 리는 “미아가 엄청나게 먼저 출발을 한 것은 맞지만 이제 11살 밖에 안됐다는 것을 기억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며 “최고의 위치에 가는 길은 길고도 길다. 어릴수록 대단한 압력을 느낀다. 케이티 오르메로드가 평창에서 다쳤지 않았느냐. 스포츠는 잔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모들은 지금까지 “밀어붙이기만 하는 부모”가 되지 않으려 애써왔다. 리는 “미아 부모들은 똑똑하다. 스노보드를 알고 이해하기 때문에 그녀를 돌볼 수 있으며 더욱 중요하게는 즐기게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맥케나는 스포츠과학에서 흔히 얘기하는 ‘본래 동기화(intrinsic motivation)’ 개념을 예로 들었다. 기교나 기술을 배우다보면 재미가 반감돼 자신이 왜 도전하는가를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 나이 또래가 참가하는 국내 대회마다 시상대 위에 올랐지만 메인 타이틀이 없는데 그 대회에서 월드컵 우승자인 오르메로드와 올림픽 출전 경험이 이는 에이미 퓰러와 대결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브룩스는 어른스럽게 “내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이다. 올해”라고 다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특파원 칼럼] “인상 쓰지 마라”는 말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윤창수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인상 쓰지 마라”는 말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윤창수 베이징 특파원

    지난 25~2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중국 방문 때처럼 초록색 1호 열차를 타고 베이징에 왔다. 김 위원장의 7년 만의 외출은 북ㆍ미 정상회담이 실패하면 중국에 기대기 위한 대비책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9일 공개한 40분짜리 다큐멘터리에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31살이나 어린 김 위원장을 얼마나 극진하게 대접했는지 잘 나온다. 180㎝ 중반의 시 주석 키를 훌쩍 넘기는 거대한 도자기를 선물하는가 하면 두 번에 걸친 식사 대접을 통해 대를 뛰어넘는 북ㆍ중 우의를 천명한다. 26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북ㆍ중 국빈 만찬장에서는 ‘대를 이은 조중친선’(朝中友意 世代相傳) 영상이 상영됐다. 1953년 김일성 주석의 첫 중국 방문과 1990·2001년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북한 방문, 1983년 방중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習仲勳) 공산당 중앙위원이 두 손을 맞잡은 장면도 담겨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시 주석의 국빈 만찬 연설을 옮기면 이렇다. “내가 기억하기에는 1983년 6월 김정일 총비서 동지가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내 아버지가 김정일 총비서 동지를 역전에서 맞이했고 모진 더위를 무릅쓰고 고궁 참관에 동행했습니다.” 시 주석은 2008년 6월 국가부주석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이 시중쉰의 환대에 매우 감동받았다고 말했던 일도 회고했다고 한다. 중국 관영 중앙(CC)TV는 14분짜리 뉴스를 내보내면서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의 말을 받아 적는 김 위원장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 주었고, 북한 방송은 자신 있게 말하는 김 위원장을 부각했다. 북한이 대화에 나선 것을 두고, 핵 무력을 완성하고 한·미 동맹을 약화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중국이 참여한 유례없는 제재의 영향도 있다. 중국 해관총서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1~2월 북한에 들어간 석유는 175.2t으로, 지난해 상반기 월평균(1만 3552t)의 1.3%밖에 안 된다. 유엔이 규정한 것보다 훨씬 가혹한 조치였다. 중국의 대북 석탄 수출은 지난해 12월 이후 석 달 동안 아예 없었고, 철강은 월 257t에 불과했다. 시 주석은 2016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게 “이미 최빈국인 북한은 제재로 잃을 게 없다”고 말했다. 중국의 제재 참여는 결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권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제재 이후 북한에서는 “중국이 미국과 짜고 우리를 공격했다. 우리 핵무기가 중국을 겨냥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베이징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해법으로 내놓은 ‘단계적 조치’는 오랜 세월 북한을 지켜본 사람들은 ‘새 병에 담긴 헌 술’일 뿐이라고도 한다. 2011년 5월 생전에 마지막으로 중국을 찾은 김정일 위원장도 후진타오 주석에게 비핵화 목표를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개혁 개방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 수행단에 군 인사가 없었고 선대와 달리 민생 의식이 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개혁 개방에 나설 수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지도층에 “인상 쓰지 마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김 위원장의 현장 시찰 영상을 살펴보면 스스로 웃는 표정이 많다. 그가 타고 온 1호 열차가 개방 호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geo@seoul.co.kr
  • “단 한 컷만 찍더라도 대체 불가 배우 돼야”

    “단 한 컷만 찍더라도 대체 불가 배우 돼야”

    영화 ‘덕구’는 소의 순전한 눈망울을 닮았다. 자극적인 소재, 극적 구성이 영화의 ‘필수 조건’이 된 시대에 어떤 억지나 작위도 섞지 않았다. 현실과 맨살을 맞댄 평범한 이야기로 마음 안쪽을 먹먹하게 두드리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홀로 손주들을 돌보는 할아버지가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한다는 시나리오는 62년 경력, 대배우의 마음을 먼저 움직였다. 그래서 신인 감독의 데뷔작, 순 제작비 5억원의 저예산 영화에 기꺼이 노개런티로 뛰어들었다. 다음달 5일 개봉하는 ‘덕구’를 오롯이 이끌어간 배우 이순재(83) 얘기다.“내가 모처럼 90%를 담당하는 영화인데 이건 쉽지 않은 기회잖아요. 그래서 두말없이 하겠다고 했지요(웃음). 돈이야 받아 봤자 얼마 안 되니 작품 욕심이 우선이죠. 감독이 누군지도 모르고 시나리오를 봤는데 ‘아 이건 참 소박하고 진솔한 영화다’ 싶었어요. 요즘은 앞뒤가 안 맞거나 작위적인 영화가 너무 많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일상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갈등보다 사랑을 내세워요. 오랜만에 정감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영화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 없이 손주의 이름을 따 ‘덕구 할배’로 불린다. 아들이 죽은 뒤 사망보험금을 가로챈 외국인 며느리를 쫓아내고 홀로 손자 덕구와 덕희를 돌보는 일흔의 할아버지다. 굽고 휜 노구로 고기 불판을 닦아 손주들을 살뜰히 거둔다. 특히 장남 덕구에겐 책임과 예의를 강조하는 호랑이 할아버지지만 ‘엄마의 빈자리’에 가슴앓이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속은 내내 짓물러 있다. 여든이 넘는 나이에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고된 역할에도 노배우는 “힘은 하나도 안 들었고 외려 신이 났다. 오랜만에 좋은 작품하니까 좋은 연기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있었다”고 미소를 지었다.올해 연기 인생 62년을 맞는 그에겐 ‘쉼’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1950년대 후반부터 연극, 드라마, 영화 등에서 끊임없이 활동을 이어 왔다. 출연한 영화만 100여편에 이른다. “쉬면 할 일이 없단 말이죠. 또래 친구들도 다 없어져 버렸단 말이야. 60년 넘게 연기를 해 올 수 있었던 건 제가 계속해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나의 과제가 있다는 것, 그 과제를 쫓아다닌다는 것, 드러누울 겨를이 없었다는 것. 이런 것들이 지금까지 제가 연기를 해 올 수 있었던 좋은 조건이 아니었나 싶어요.” 지난 2월 종영한 드라마 ‘돈꽃’에 출연하기 전 1년 반가량 공백기를 가졌다. 그는 당시 ‘퇴출됐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텔레비전을 보면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잘 안 보여요. 작품에 따라 성향이 다르니 그걸 나무랄 순 없죠. 앞으로도 공백의 기간은 더 길어지지 않겠나 싶어요. 그럴 때는 연극 무대에 더 활발히 오르며 연기의 끈을 놓지 않죠.” 무대와 역할을 가리지 않는 건 “한 장면이라도 존재의 이유를 보여주면 된다”는 단단한 연기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지금까지 활동하는 동료 배우들)는 원래 시작부터 빛나는 주인공을 맡아 온 사람들이 아니란 말이에요. 나만 해도 연극부터 했는데 첫 역할이 육십 먹은 노인이었지. 역할의 경중을 따지지 않은 거예요. 이제 나이가 들어 주인공 할 수 있는 작품이 있겠어요? 다만 한 신, 한 컷을 찍더라도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이 돼야죠. 존재의 이유를 보이면 되는 거야.” 그는 최근 방송영화계를 덮친 미투 폭로나 방송 현장에서 제작진과 배우와의 갈등 등에 대선 고언도 잊지 않았다. “작업 현장이 열악하면 배우가 현장을 떠나는 불상사가 생기거나 다른 엉뚱한 짓거리(성폭력)를 하는 친구들도 있는 모양이더라고. 배우는 유명하고 커질수록 자신을 과시하기 쉽고 자제력을 잃기 쉬운 직업이에요. 하지만 ‘내가 최고의 배우다’라는 자의식은 혼자 품어야지, 바깥에서 가지면 안 된단 말이야. 연기에 완성은 없어요. 작가의 작품을 뛰어넘는 경지로 가야 ‘예술’이 되는 거죠.”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