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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포토] 북측가족 만나는 이산가족들

    [서울포토] 북측가족 만나는 이산가족들

    남북의 이산가족이 분단 후 65년 만에 다시 만나 진한 혈육의 정을 나눴다. 8.15 계기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우리측 양길용(90) 할아버지와 북측의 동생 량길수(86) 할아버지가 눈물의 상봉을 하고 있다. 이 형제는 한국전쟁 당시 각각 국군과 인민군으로 총부리를 겨눴다. <20180824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
  • [서울포토] 상봉하는 이산가족

    [서울포토] 상봉하는 이산가족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조정기(67?오른쪽)씨가 북측에서 온 아버지 조덕용(88왼쪽) 씨를 얼싸안고 오열하고 있다./20180824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조정기(67왼쪽)씨가 북측에서 온 아버지 조덕용 할아버지를 얼싸안고 오열하고 있다./20180824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에서 온 최성순(85)씨를 남측 가족들이 얼싸안고 오열하고 있다./20180824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 [김유민의 노견일기] “잘가…고마웠어” 홍이와 마지막 인사

    [김유민의 노견일기] “잘가…고마웠어” 홍이와 마지막 인사

    홍이가 떠나던 그 날 폭염 때문인지 며칠째 입맛을 잃어 거의 먹지 못한 홍이를 안고서 영양제 주사라도 맞힐까 싶어 동물병원 세 군데를 돌아다녔어요. 고령이라 주사쇼크 위험이 있어 세 군데에서 퇴짜를 맞고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왔는데 귀가 들리지 않아 오가는 소리도 듣지 못하던 홍이가 어제는 아빠 출장가신다고 짐 챙겨서 나가시는데 갑자기 큰 소리로 짖었었는데... 그래서 홍이가 이제 기운을 차리나 보다 하고 기뻐했는데... 그것이 온 힘을 다한 마지막 인사였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요. 다가올 마지막을 예감한 듯 다리 가눌 힘도 없던 아이가 아빠를 문 앞까지 따라 나가 아주 오랜만에 큰소리로 배웅을 했어요. 아빠한테 잘 지내라는 고마웠다는 온 힘을 다한 홍이의 마지막 인사였을 겁니다. 그리고 오후, 가쁘게 숨을 쉬며 엄마 품에 안긴 홍이는 백내장 때문에 거의 보이지 않았겠지만 엄마를 그리고 저를 마치 눈에 담고 가려는 듯 한참을 바라보더군요. 17년을 함께 했으니 말하지 않아도 홍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이제 아프지 말고 먼 길 잘 가라고 한참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떠난 모습도 잠든 듯 편안해 보이더군요. 8월 15일 그렇게 우리 가족 홍이는 잠들 듯 편안한 모습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가족으로 함께 한 17년, 소중한 추억들2002년 겨울 제가 수능 보던 날,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며 동생이 친구집에서 새벽같이 데려온 홍이는 긴장되고 정신없는 아침에 선물처럼 우리집 식구가 되었어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줌 크기... 까만 하늘을 담은 것 같은 눈동자를 가진 초콜렛색 토이푸들 홍이는 갓 태어나 엄마와 헤어져서 그런지 왠지 슬퍼 보이기도 했습니다. 걸어가다 힘이 없어 픽픽 쓰러지던 홍이가 제법 잘 뛰어다닐 때쯤 저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정신없이 친구들과 놀러다니는 동안 홍이도 어느덧 무럭무럭 자라서 애교 많고 창 밖 내다보기를 좋아하는 강아지가 되었습니다. 맞벌이 하시던 부모님, 철없는 고등학생 동생은 밤낮없이 바빠서 몸이 불편하셔서 경로당에 가시기 힘들어진 저희 할머니 곁은 자연히 홍이 차지가 되었습니다. 할머니 옆에 누워서 애교도 부리고 가끔은 과자도 얻어먹고, 아주 가끔은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짜장면도 한 두 가닥씩 얻어먹고, 대장암 때문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무료하신 삶을 TV와 함께 보내던 할머니 곁을 우리 가족 대신 지켜주던 홍이.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홍이는 참 고마운 강아지였습니다. 몇 년 뒤 저는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가 되어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일찍 결혼을 한 동생의 출산으로 귀염둥이 조카가 태어났습니다.동생 부부는 타지에서 맞벌이를 하게 되어 조카는 자연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손에 크게 되었고 매일 신천이라는 집 앞 작은 개천 앞에서 지민이가 그네 타는 것을 지켜보다가 잔디밭을 숨이 차도록 달리는 것이 홍이의 행복한 일상이었습니다.그렇게 지민이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지민이의 든든한 친구이자 형제자매가 되어주었던 홍이는 참 든든한 강아지였습니다.어느덧 홍이는 열 두살이 되었지요. 여전히 애교 많고 까만 사슴 같은 눈망울을 가진 우리 눈엔 둘도 없는 귀요미였지만 뜀박질에 예전보다 숨을 가빠해서 우리 마음을 심난하게 하기 도 했어요.홍이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야속한 시간은 홍이의 시계만 빨리 돌려서 어느덧 홍이의 까만 하늘을 담은 예쁜 눈동자는 백내장으로 서서히 하얗게 변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홍이눈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게 했어요.그 때문에 처음으로 우리가 홍이와 언젠가는 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그때부터 엄마는 전국 방방곡곡을 홍이와 함께 틈나는 대로 여행을 가시겠다고 했습니다.제주도 유채꽃밭에서, 동해 해수욕장에서, 어느 계곡 그늘 밑에서... 어머니는 몇 년간 홍이를 데리고 다니시며 참 많이도 사진을 찍으셨습니다.홍이가 열다섯살이 되면서부터는 우리가 외출하고 돌아오면 숨이 차도록 뛰어와서 반갑게 맞아주던 홍이가 대문을 열고 우리가 불러도 잘 듣지 못 했어요. 그래서 집에 들어온 우리가 홍이 곁으로 달려가서 홍이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야속하게도 우리의 1년은 홍이의 7~8년과 같더군요. 헤어짐의 시간이 이리도 빨리 올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올 줄은 몰랐어요.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불러줄걸 그랬어요. 시간은 흐르고 흘러 저는 어느덧 30대 중반의 아줌마가 되었고, 열일곱 살이 된 홍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소파에서 누워서 잠을 자거나 가끔 베란다 창밖 풍경을 꿈꾸는 눈으로 멍하니 보고 있기도 했습니다.홍이의 그런 모습은 긴 여행을 계획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홍이는 긴 여행을 떠났어요.홍이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진짜 우리를 무지개다리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나중에 나를 마중 나올지, 마중 나올 때 내가 할머니가 되어 있어도 나를 기억할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17년간 네가 있어서 우린 정말 행복했어. 홍이야 다음 세상에서도 꼭 우리 가족으로 태어나주렴. 너를 영원히 기억하고 사랑하는 채연 누나가.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트럼프 “김정은, 김일성·김정일보다 힘든 상대…대북 제재는 北 비핵화 촉진용”

    트럼프 “김정은, 김일성·김정일보다 힘든 상대…대북 제재는 北 비핵화 촉진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부 김일성 주석보다 힘든 상대라며 최근 미국 정부가 잇따라 대북 추가제재를 가한 것은 북한 비핵화 속도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방송된 폭스뉴스 ‘폭스 앤 프렌즈’ 인터뷰에서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측에 양보만 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김정은)가 내게서 얻어낸 유일한 것은 (나를) 만나 이야기한 것 뿐이다. 나는 그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내가 준 것은 제재 뿐이다. 우리는 북한에 매우 강력한 제재를 부과했다. 어제(21일)도 추가제재를 했다. 왜냐면 (북핵 문제가) 더 빠르게 움직이게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미 재무부는 21일 유엔 안보리가 금지한 북한과의 선박 간 불법 환적에 가담한 러시아 기관 2곳과 선박 6척에 대해 추가 제재를 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대단한 성공이었던 김정은과의 만남처럼 나는 대단한 일들을 할 것이다. 그들(전임 대통령들)은 너무 여러 해동안 이런 일을 하고자 노력해왔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그동안) 미사일이 발사되지 않았고, 로켓 발사도 없으며, 핵실험도 없었다. 우리는 (북한에 있던) 인질들도 돌려 받았다”고 자랑했다. 또 “나는 그(김정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궁합(chemistry)이 좋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는 물론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모두 김 위원장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과 만나지도 못했다”면서 “김정은은 그의 아버지(김정일)나 할아버지(김일성)보다 힘든 상대”라고 말했다. 또 “내가 대통령이 됐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가 북한과 전쟁을 해야할지도 모를 것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은 김정은과 대화를 해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답하더라. 그래서 내가 한 번이라고 시도해보는 게 좋을 수있지 않겠냐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22일) 아침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북한과 관련해 훌륭한 일을 한 것에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다. 일본 국민들이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다더라”고 전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태풍 때문에 걱정했는데…” 남북 이산가족 상봉, 예정대로 진행

    “태풍 때문에 걱정했는데…” 남북 이산가족 상봉, 예정대로 진행

    육상을 지나며 세력이 약해지고 있는 태풍 ‘솔릭’이 24일인 오늘 낮 강원도를 지나 동해상으로 물러날 것으로 예상된 가운데, 이날 2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예정대로 진행됐다.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날 남측 이산가족 2차 상봉단이 이날 오전 빗줄기를 뚫고 금강산으로 출발했다. 2차 상봉행사는 이날부터 오는 26일까지 열린다. 이산가족들은 전날부터 날씨 걱정에, 또 가족을 만날 설렘에 이날 이른 아침부터 부산한 모습이었다. 대부분 아침 일찍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숙소 로비에 나와 날씨 상황을 체크했다. 북에 있는 언니를 만나는 김정자(83)·정숙(81) 자매는 언니를 만날 생각에 들떠 밤늦게까지 얘기를 나누다 잠들었지만 이날 새벽 4시 30분에 깼다고 했다. 김정숙 할머니는 “어제는 좀 믿기지 않고 그랬는데, 오늘 아침에 눈을 뜨니까 아, 오늘 언니를 만날 수 있구나, 진짜 보는 거구나 싶어”라고 말했다. 북에 사는 형을 만나러 가는 목원선(85)·원구(83) 형제도 아침 일찍부터 1층 로비 소파에 앉아 출발을 기다렸다. 목원선 할아버지는 이날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자마자 뉴스로 태풍 경로를 확인했다고 한다. 그는 창밖을 보며 “이 정도면 (날씨가) 양호한 거야. 참 다행”이라고 말했다. 목원구 할아버지도 “그래도 다행인 건 이쪽으로 태풍이 안 왔다. 우리가 버스 타고 가는 데도 지장이 없고”라고 말했다. 형을 만나러 가는 소감을 묻자 “꿈만 같다”고 답했다. 북에 있는 누나와 상봉할 최성택 할아버지(82)는 “(태풍이) 빗겨간다고 하긴 하는데 날씨가 좋지 않네요. 그래도 못 가는 것보다는 좋잖아요”라고 했다. 현장을 챙기고 있는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태풍 때문에 어제 그저께부터 여러 대비 계획을 플랜 B, 플랜 C까지 (마련)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일단 예정된 시간에 출발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상봉단은 이날 낮 1시쯤 금강산 지역에 도착한 뒤 낮 3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단체상봉 형식으로 헤어졌던 가족들과 첫 상봉을 한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이어 환영 만찬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이튿날(25일) 개별상봉과 객실중식, 단체상봉, 마지막 날(26일) 작별상봉 및 공동중식 순서로 총 12시간을 함께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주의 어린이 책] 아빠 따라 간 대중목욕탕…금붕어 몰래 풀어 대소동

    [이주의 어린이 책] 아빠 따라 간 대중목욕탕…금붕어 몰래 풀어 대소동

    팔딱팔딱 목욕탕/전준후 글·그림/고래뱃속/48쪽/1만 3000원어린 시절 주말마다 엄마 혹은 아빠 손에 이끌려 갔던 대중 목욕탕. 뜨거운 탕에서 몸을 불리고 때를 미는 과정이 썩 즐겁진 않지만 아이들에게 목욕탕은 어쩐지 신나는 공간이다. 첨벙첨벙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냉탕이 있으니까. 아빠를 따라 목욕탕에 가게 된 준우는 냉탕을 좀더 특별하게 즐길 수 있는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일명 ‘집 안 어항에 갇혀 있는 금붕어들을 목욕탕에 데려가기’. 준우는 아빠 몰래 검은 봉지에 담아 온 물고기를 냉탕에 슬그머니 풀어 버렸다. 물고기들과 헤엄을 치며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던 준우가 온탕에 있는 아빠를 만나러 간 사이 목욕탕이 발칵 뒤집혔다. 큰 몸집의 민머리 아저씨가 냉탕에 들어갔다가 물고기를 보고 뒤로 나자빠졌기 때문. 준우의 행동에 화를 내던 주변 아저씨들은 “다같이 물고기를 후딱 잡아 버리자”는 한 어르신의 말에 하나둘 냉탕에 모여들었다. 처음엔 시큰둥하더니 물고기를 잡기 시작하던 사람들 얼굴에 어느덧 미소가 어린다. 어린 시절 물고기 잡던 때를 추억하는 할아버지부터 마냥 신난 아이들까지 냉탕은 동네 개울가가 돼 버렸다. 다들 즐거웠는지 ‘금붕어 구하기 대작전’에 참여한 사람들은 음료수도 나눠 먹고, 한국 여행 중 목욕탕에 들렀다가 같이 물고기를 잡았던 미국인 청년과 단체 사진까지 찍는다. 남탕에서 벌어진 대소동을 재치 있게 표현한 작가의 첫 책이다. 목욕탕을 어른과 아이들 모두의 즐거운 놀이터로 그려 낸 작가는 마음을 겹겹이 감싸고 있는 겉옷을 살짝 벗는다면 마음이 팔딱팔딱 뛰는 시원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고 넌지시 일러 준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데스크 시각] 다시 열려야 할 그 길, 금강산/조현석 산업부장

    [데스크 시각] 다시 열려야 할 그 길, 금강산/조현석 산업부장

    금강산이 또 한번 눈물바다가 됐다. 지난 20일 금강산호텔에서 피난길에 잃어버린 네 살배기 아들을 67년 만에 다시 만난 이금섬(92) 할머니는 백발이 성성한 아들 리상철(71)씨의 얼굴을 매만지며 오열했다. 1951년 1·4 후퇴 때 아내와 헤어진 유관식(89) 할아버지도 태어난 것조차 몰랐던 딸 유연옥(67)씨를 만나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남측 이산가족 89명은 꿈에 그리던 북측 가족을 만났고, 한평생을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그들의 이야기는 2박3일의 상봉 기간 내내 금강산에 메아리쳤다.금강산은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는 이산가족 상봉의 상징적인 곳이다. 금강산에서는 2002년 4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모두 17차례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2008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뒤에도 네 차례나 상봉이 이뤄졌다. 그동안 남북한 3512가족 1만 6031명이 그리운 가족과 만났다. 2008년 금강산에 이산가족면회소가 준공돼 상봉 정례화 기반이 마련되면서 이산가족들의 희망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지 20년, 중단된 지 10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금강산은 남북한 소통과 민간 교류의 장으로 활용됐다. 1998년 6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사업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됐고, 같은 해 11월 동해항에서 금강호가 출항하면서 금강산 관광의 막이 올랐다. 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03년 2월 육로 관광길이 열렸고, 다음해 11월 남북 동해선 본도로가 완공됐다. 2006년 화진포 아산휴게소가 개소한 데 이어 2007년 6월 내금강 관광이 재개됐다. 금강산 관광에서 구축된 남북한 신뢰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6·15공동선언)을 견인했고, 개성공단 등 남북 경협 및 남북 교류협력 활성화를 추동했다. 금강산 현지에서는 장관급 회담과 적십자회담, 철도 및 도로연결 실무회의 등 중요한 당국 회담이 개최돼 남북 관계 개선에 기여했다. 금강산에서는 청소년과 대학생, 여성, 노동자, 농민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남북 공동행사가 열렸다. 영농, 축산, 농림 등 다양한 남북 협력사업이 실현되면서 민간 교류의 장으로도 자리매김했다. 2009년 9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금강산을 방문했다. 금강산 관광객은 해마다 급증하면서 2007년 한 해에만 34만 8263명이 금강산 관광을 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2008년 7월 관광객 피살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단됐다. 1998년부터 2008년 관광이 중단될 때까지 10년간 금강산을 방문한 관광객은 195만 5951명에 이른다. 2008년 관광이 중단되기 전까지 금강산 관광에 북한 관련 종사자 1000여명이 근무하면서 남북한 작은 통일 공간으로 활용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 남북 경제협력을 강조하며 금강산 관광 재개 의지를 내비쳤다. 또 지난 20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는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상시 운영을 강조했다. 물론 유엔의 북한 제재와 선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의 반대 등 넘어야 할 산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금강산 관광 재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선결 과제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재개하는 등 대화와 교류 단절로 인해 오히려 남북 관계가 경색됐다. 다음달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린다. 또 다음달 열리는 유엔총회에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석 가능성 얘기가 나오고, 제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보듬고, 민족의 번영을 위해 금강산 관광은 하루빨리 재개돼야 한다. 정부도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내년 봄에는 남북 화해의 디딤돌이 될 금강산을 꼭 볼 수 있었으면 한다. hyun68@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황무지 개간권·을사늑약 부당성 폭로… 항일의 선봉 ‘우뚝’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황무지 개간권·을사늑약 부당성 폭로… 항일의 선봉 ‘우뚝’

    1904년 7월 조선에서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신문을 발간하자마자 항일 투쟁의 선봉에 섰다.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좌절시켰고 을사늑약 체결의 부당성도 전국에 알렸다. 고종이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한 사실을 타전해 일본의 강압적 침략 의도를 세계에 폭로했다. 베델은 한반도 항일 투쟁에 있어 가장 믿음직한 지원군이었다.●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저지 일본은 러일전쟁(1904~1905)을 전후해 한반도를 병합하려는 야욕을 본격화했다. 대장성(현 재무성) 관리를 지낸 나가모리 도키치로라는 일본인을 앞세워 “50년간 전국 황무지의 개간권을 위임하라”고 요구했다. 조선 땅의 개간·정리·척식(개척) 등 모든 권리를 광범위하게 이전하는 것으로 ‘나가모리 프로젝트’로도 불렸다. 나가모리 프로젝트는 다수의 일본인을 조선으로 이주시켜 한반도를 일본의 원료·식량 공급 기지로 삼으려는 의도로 조선 침략의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1903년 12월 조선에 온 나가모리는 이듬해 3월부터 궁내부 대신 민병석과 교섭에 나섰다. 협상이 본격화되자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이런 ‘밀실야합’은 6월이 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소식에 여론이 들끓었다. 이미 국권의 상당 부분을 빼앗겨 울분에 차 있던 국민들은 전 국토의 3분의1에 달하는 황무지를 대가도 없이 가져가려는 일제의 음모를 묵과할 수 없었다. 신보가 창간된 1904년 7월은 이런 일본의 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나 국민의 반발이 가장 거셀 때였다. 베델은 이런 시류를 정확히 읽고 영문판 KDN을 통해 황무지 개간권 요구의 부당함을 알렸다. 당시 주한 영국공사였던 J N 조던(1852~1925)이 본국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베델은 KDN 7월 22일자에 윤치호가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비판한 논설을 독자 투고 형태로 실은 것을 시작으로 일본 비판에 나섰다. 친일 성향의 ‘재팬 메일’과 ‘고베 헤럴드’가 KDN의 8월 4일자 논설에 대해 “(KDN이) 유해한 글을 게재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일본의 너그러움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KDN이) 한국과 일본을 이간질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KDN은 9월 1~6일 5회에 걸쳐 반박 논설을 내보내며 반일 태도를 분명히 했다. 항일단체 보안회도 일제의 음모에 각종 집회를 열며 계몽운동에 나섰다. 결국 일본은 조선인들의 저항이 커지자 8월 10일 개간권 요구를 공식 철회했다. 훗날 나가모리는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서 “황무지 개간권 요구가 좌절된 이유는 KDN과 (KDN의) 기사를 받아 써 이를 공론화한 영국인 소유 신문사들 때문이었다”고 밝혔다.●을사늑약 부당성·헤이그 특사 파견 보도 일본은 러일전쟁이 마무리된 직후인 1905년 11월 17일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고자 을사늑약을 체결했다. 그러자 신보는 일제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려 나갔다. 조선의 외교권 박탈을 스스로 도운 ‘다섯 매국노’(을사오적)인 이완용(학부대신), 이근택(군부대신), 이지용(내부대신), 박제순(외부대신), 권중현(농상공부대신)은 신보의 지속적인 비판 대상이 됐다. 신보는 11월 21일자에서 “을사늑약은 일본이 강압적으로 체결한 것이며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1864∼1921)을 체포하고 이를 게재한 황성신문(1898~1910)을 정간시킨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비난했다. 11월 27일자에서는 호외(특별한 일이 있을 때 내는 신문)를 통해 을사늑약의 진상을 알리고 시일야방성대곡도 영어와 한문으로 번역해 게재했다. 신보는 항일운동 보도에 어느 매체보다도 적극적이었다.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신보는 조선인에게 가장 신뢰받는 언론으로 성장하게 됐다. 베델은 2년 뒤 ‘헤이그 특사 파견’도 집요하게 취재해 알렸다. 일본은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자 한반도 침략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고종은 러시아와 손잡고 운명을 건 저항에 나서는데, 이것이 헤이그 특사 파견이었다. 1907년 7월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세 명의 특사 이상설(1870~1917)과 이준(1859~1907), 이위종(1887~?)을 극비리에 파견했다. 이들은 일제의 방해와 러시아의 변심으로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래도 각국 취재기자들을 상대로 간담회를 열어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는 등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는 고종의 친서를 입수한 베델은 이를 그대로 신문에 실었다. 곧바로 영국 등 세계 주요매체들이 이를 전재했다. 신보 보도에 당황한 일본은 결국 헤이그 특사 사건을 문제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아들인 순종을 왕위에 올렸다.●세계로 퍼질 수 있었던 KDN의 영향력 베델이 신보와 KDN을 창간한 20세기 초에는 이미 중국과 일본에 여러 영자신문이 발행되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규모가 작아 외국에 특파원이나 통신원을 둘 형편이 못 됐다. 이 때문에 영자지들은 외국 신문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해외 소식을 전했는데, 이를 통해 영어신문들은 국가를 초월한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 조선의 유일한 영어 일간지였던 KDN의 기사 역시 동아시아를 비롯한 여러나라의 매체들이 인용 보도했다. 당시 일본은 영국이나 미국, 독일 등 다른 열강보다 힘이 약해 국제 여론에 매우 민감했다. 첫 식민지로 삼으려던 조선에서 항일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린 KDN의 기사는 일본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통감부 초대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1841~1909)는 “나의 수백 마디 말보다도 신보의 신문기사 한 줄이 더 힘이 세다”고 탄식했다. 일제는 신보와 KDN에 대응하고자 1906년 영국인 J W 하지가 운영하던 주간지 ‘서울프레스’를 인수해 일간지로 바꿔 여론전에 나섰다. 하지만 서울프레스는 ‘통감부 기관지’라는 오명을 쓴터라 신보와 KDN의 영향력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는 “신보가 한·일 두 나라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의 민족주의 운동을 지원하는 동시에 일본의 대(對)조선 정책도 강하게 반대해 양국 모두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런던에서 만난 베델의 손녀 수전 제인 블랙(62)은 “당시 할아버지(베델)의 행동은 일본은 물론 고향인 영국에서도 전혀 이해받지 못했다. 열강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라면서 “아무도 진심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할머니(메리 모드 게일)도 이 점을 평생 자랑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서울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런던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할머니네 똥강아지’ 이로운, 1년 만에 만난 엄마에 “누구세요?”

    ‘할머니네 똥강아지’ 이로운, 1년 만에 만난 엄마에 “누구세요?”

    아역배우 이로운이 1년 만에 엄마를 만났다.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할머니네 똥강아지(기획 임남희, 연출 황순규 등)’에 출연 중인 배우 이로운이 사업차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엄마와 1년 만에 만나는 장면이 공개돼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사고 있다. 제작진이 공개한 예고 영상 속 로운이는 하굣길 친구에게 엄마 오시는 날이라 집에 일찍 가야 한다며 설레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엄마를 만난 자리에서 로운이는 “누구세요?”라는 말을 해 엄마를 당황하게 만드는가 하면, 제작진에게 “그냥 나는 말 안 하고 싶었어요”라고 속내를 밝혀 궁금증을 자아냈다. 로운이 엄마 역시 “(가슴을) 칼로 찢는 느낌이었다”고 해 안타까움을 전했는데, 반가워야 할 엄마와 로운이가 어색하기만 한 사연은 다음 주 목요일 오후 8시 55분 MBC ‘할머니네 똥강아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할아버지 생신상 차리기에 나선 똥강아지도 있다. 주인공은 바로 배우 남능미의 손자 권희도. 제작진이 공개한 사진 속 희도는 할아버지 생신을 앞두고 소주, 토마토 등의 재료를 박스 채 구매하는 통 큰 씀씀이를 자랑했다. 이어 수박을 통째로 화채로 만들고, 거대한 문어를 찜통에 통째로 넣고 삶는 등 남다른 스케일의 요리 준비 모습이 포착돼 궁금증을 유발했는데, 야심 찬 손자의 생신 만찬 준비 결과는 다음 주 본방송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리얼 손주와 할머니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상을 담은 MBC ‘할머니네 똥강아지’는 아시안 게임 경기 중계로 오늘(23일) 결방되며, 차주 목요일 오후 8시 55분에 시청자를 찾아갈 예정이다.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서울포토] ‘멋지게 입고 동생 만나려고요~’

    [서울포토] ‘멋지게 입고 동생 만나려고요~’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등록날인 23일 강원도 속초 한화리조트에서 이호길(93) 할아버지가 북측 동생 리준성(86)씨를 만날 때 입을 정장을 들어보이며 밝게 웃고 있다. 2018. 8. 23 사진공동취재단
  • ‘당신의 하우스헬퍼’ 심이영 등장, 하석진X보나 관계에 어떤 영향?

    ‘당신의 하우스헬퍼’ 심이영 등장, 하석진X보나 관계에 어떤 영향?

    ‘당신의 하우스헬퍼’에 심이영이 출연한다. 5년 전 과거가 아닌, 현재의 심이영은 하석진과 보나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2일 KBS2 수목드라마 ‘당신의 하우스헬퍼’ 측은 김지운(하석진 분), 임다영(보나 분), 그리고 이소희(심이영 분)의 스틸을 공개했다. 장씨 할아버지(윤주상 분)가 가지고 있던 소희의 집 주소에 관심을 보였던 다영이 소희를 찾아낸 것인지, 5년 동안 소식이 없던 소희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지,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하고 있다.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특별한 관계임을 예고한 소희와 박가람(연준석 분). 그리고 두 사람의 사진은 소희와의 커플 시계를 강에 던지고, 다영과 연애를 시작하면서 과거를 잊기 위해 노력 중인 지운의 마음을 다시 흔들었다.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소희와 비밀을 숨기고 있던 가람의 정체 때문에 지운은 다시 과거를 정리해야만 하는 기로에 섰다. 앞서 공개된 예고 영상에서 “그 아가씨 연락처는 대체 왜? 꼭 필요한겨?”라는 장 씨 할아버지의 말을 통해 다영이 지운 몰래 소희를 찾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샘한테 말해줘야 하나. 김샘이 알면”이라는 다영의 목소리에는 소희의 주소를 지운에게 알려줘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온다. 소희의 존재는 지운뿐만 아니라 다영의 마음까지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 “과거 회상을 통해서만 등장했던 소희가 22일 방송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라는 제작진의 전언과 함께 공개된 스틸컷 속 우연히 마주친 다영과 소희가 포착됐다.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서로를 보는 눈빛이 두 사람의 첫 만남에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어 스틸컷에는 우편함에 편지를 넣어두는 지운과 이를 발견하고 놀라는 소희의 어긋난 타이밍도 담겨있다. 과거와 현재 속에서 복잡 미묘한 지운, 다영, 소희, 이 세 사람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정리될까. 한편, KBS2 수목드라마 ‘당신의 하우스헬퍼’는 22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사진제공 = KB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전복된 차량서 숨진 엄마와 이틀 간 살아남은 어린 형제

    전복된 차량서 숨진 엄마와 이틀 간 살아남은 어린 형제

    두 명의 어린 형제가 자동차 충돌 사고로 엄마를 여읜 뒤 차 안에서 이틀 동안 살아남았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아소칸주 지역방송 KARK 뉴스에 따르면, 지난 20일 아침 경찰은 와시토 카운티 캠던시에서 24번 고속도로를 따라 방황하고 있는 카일 홀리맨(3)을 발견했다. 아칸소주 경찰 당국은 카일의 부모를 찾아주기 위해 온라인에 아이의 사진을 찍어 올렸고, 수소문 끝에 아이 엄마가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일을 발견한 지역으로 다시 돌아간 경찰은 아칸소주 주도인 리틀록 서남쪽에서 약 85마일(약 137km) 떨어진 지점에서 부서진 자동차 한대를 발견했다. 자동차는 도로 근처 깊은 협곡에 떨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추가로 아이 엄마 리사 홀리맨(25)의 시신이 발견됐고, 살아있는 카일의 1살 남동생을 차에서 구했다. 수사관 나단 그릴리는 “24번 고속도로 동쪽으로 운전 중이던 리사 홀리맨이 중앙선을 넘어 가드레일과 부딪친 후 도랑에 빠졌다”며 “이틀 전에 충돌 사고가 발생했지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음식이나 물도 없이 아이들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면서 “차 썬루프를 통해 빠져나온 카일은 큰 부상 없이 건강상태가 양호하며, 안전벨트에 묶여있었던 동생과 함께 탈수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외할아버지 제임스는 “리사는 어디든 손자들을 데리고 다녔다. 이제는 더 이상 딸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딸은 임신한지 4주였고, 결국 우리는 두 사람을 잃은 셈”이라고 슬퍼했다. 현지 언론은 차량 충돌 및 전복 사고의 정확한 원인을 현재 조사 중이며, 리사 가족을 위한 미국 모금사이트 고 펀드미 계정이 만들어져 현재 목표금액 8500달러(약 951만원)중 400달러(약 45만원) 이상이 모였다고 전했다. 사진=KARK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남북이산가족, 상봉 마지막날 ‘눈물의 작별’

    남북이산가족, 상봉 마지막날 ‘눈물의 작별’

    상봉 마지막 날인 22일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작별상봉에서 남북 이산가족들은 눈물부터 흘렸다. 북측 손자 리 철(61)씨는 작별상봉장에 나타난 권석(93) 할머니를 보자마자 손을 잡더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할머니도 손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한동안 손을 어루만져줬다. 할머니와 동행한 남측 아들이 “철아, 울지마”라고 달래면서도 본인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북측 조카들과 만난 송영부(92) 할머니도 북측 가족들이 “간밤에 안녕하셨느냐”라고 인사하자 흐느끼기 시작했다. 남측에서 함께 온 가족들은 할머니의 등을 쓰다듬으며 달랬다. 작별상봉이라 그런지 상봉 시작 전 연회장에 미리 나와 기다리는 북측 가족들은 애가 타는 모습이었다. 전날 건강 문제로 단체상봉에 참여하지 못한 김달인(92) 할아버지의 북측 여동생과 조카는 현장 관계자들에게 김 할아버지가 작별상봉에 나오는지 여러 차례 물었다. 혹시나 김 할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것 아닌지 하는 걱정에서였다. 김 할아버지가 도착하자 여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큰 목소리로 “이쪽으로 오세요”라며 오빠를 자기 옆에 앉혔다. 작별상봉은 점심을 포함해 오후 1시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된다. 당초 2시간이었다가 남측 제의를 북측이 수용해 3시간으로 늘었다. 남측 가족들은 작별상봉을 마친 뒤 북측 가족을 뒤로하고 오후 1시 30분 금강산을 떠나 귀환했다. 공동취재단·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4살 꼬마에게 ‘용기’ 가르치려 몸소 다이빙한 90대 할아버지

    4살 꼬마에게 ‘용기’ 가르치려 몸소 다이빙한 90대 할아버지

    90대 할아버지가 이웃집에 사는 4살 소년에게 잊지 못할 교훈을 선사했다. 18일(현지 시간) 미국 CBS에 따르면, 오하이오주 캔턴시에 사는 딜런 스티치(4)는 여름 내내 물속으로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이빙대에 서기만 하면 자신이 부서지기 쉬운 달걀이 되는 것처럼 무서웠다. 가족들과의 수영장 파티가 열린 지난 달 4일에도 딜런은 다이빙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엄마 말라는 “‘딜런, 한번 시도해볼래? 해보고 싶지 않아?’라며 아들에게 다이빙을 권유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딜런이 다이빙을 두려워하고 있는 사이, 옆집 할아버지 다니엘 비스(95)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당시 공군에서 복무했던 다니엘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두려움과 용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모두가 딜런을 구슬리고 있었다. 아이에게 확신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난 딜런이 필요로 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몸소 보여줄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길로 다니엘 할아버지는 수영복을 빌려 입고 지팡이를 짚은 채 다이빙대에 올라섰다. 50년 간 다이빙대 근처에도 간적이 없던 할아버지는 딜런에게 용기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일어섰다. 지팡이를 놓고 잠깐 휘청거리긴 했지만 다시 부축을 받은 뒤 과감하게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딜런의 엄마는 “모두 약간 숨을 죽였다. 할아버지가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면서도 “점프는 정말로 깔끔하고 멋졌다. 딜런에게 격려가 됐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이어 “실제 할아버지의 마지막 다이빙은 딜런이 첫 발을 내딛는데 큰 힘이 됐다”며 “지금 딜런은 아무렇지 않게 물속으로 씩씩하게 뛰어 든다”고 덧붙였다. 사진=유튜브캡쳐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이영자 수영복 자태 당당히 공개한 이유 “내 자존감과 싸우는 것”

    이영자 수영복 자태 당당히 공개한 이유 “내 자존감과 싸우는 것”

    방송인 이영자가 당당하게 수영복 자태를 공개한 이유를 전했다. 20일 방송된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는 최현석 셰프와 2PM의 황찬성, 홍윤화-김민기 커플이 게스트로 출연한 가운데 세상의 편견을 마주한 6살 소녀 도연이의 이야기가 방송됐다. 이날 사연의 주인공인 도연이의 엄마는 “제 딸의 한쪽 눈은 파란색입니다”라는 사연으로 등장했다. 어머니는 “시선집중은 기본이고 뒤에서 수군거린다. 인증샷을 찍자는 사람도 있다. ‘눈X 저거 병이지?’라고 묻는 할아버지도 있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도연이 엄마는 “아기일 때는 모자를 씌우거나 얼굴을 엄마 쪽으로 하면 됐지만 이제 6살”이라며 편견을 마주한 부모의 설움을 토로했다. 부모도 가급적 외출을 피하고, 아이는 낯선 사람만 보면 울만큼 낯을 가리고 의기소침해졌다는 것. 특히 “나도 엄마처럼 눈이 검은색이었으면 좋겠다”며 울먹인 적도 있다고 말해 MC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이에 이영자는 최근 화제가 된 수영복 자태 공개에 대해 “나도 내 몸매가 괜찮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도 끊임없이 사회적 편견과 내 자존감과 싸우는 거다. 당당하게 버텨보려고 벗은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앞서 이영자는 올리브 채널 ‘밥블레스유’에서 최화정과 함께 당당히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를 즐겨 화제가 된 바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울포토] ‘65년의 기다림’…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 흘리는 이산가족

    [서울포토] ‘65년의 기다림’…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 흘리는 이산가족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일 오후 고성 금강산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함성찬(99) 할아버지가 북측에서 온 동생 함동찬(79) 할아버지를 보고 얼싸안고 기뻐하고 있다. 2018. 8. 20 사진공동취재단
  • 평양 출신 가수 현미 “이산가족 상봉 신청...두 동생 찾는다”

    평양 출신 가수 현미 “이산가족 상봉 신청...두 동생 찾는다”

    2015년 이후 중단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오늘(20일) 3년 만에 재개된 가운데 ‘MBC 스페셜’이 이산가족 상봉 특집 3부 ‘이산’을 방송한다. 20일 방송되는 ‘MBC 스페셜’에서는 70년 이산의 역사와 이산가족의 비극적 사연을 다룬 ‘옥류관 서울1호점’ 3부 ‘이산’편이 그려진다. 특히 평양이 고향인 실향민 1세대 가수 현미의 사연이 전해질 예정이어서 시청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가수 현미의 이산가족 찾기, 보고 싶은 명자야! 길자야! 올해로 데뷔 61주년을 맞은 영원한 디바 현미. 그가 삼시 세끼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바로 백미, 현미도 아닌 평양냉면. 평양이 고향인 실향민 1세대 가수 현미에게 평양냉면은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울푸드다. 현미(본명 김명선)는 평양냉면을 먹을 때마다 6.25 전쟁 중 헤어진 두 동생 김명자, 김길자에 대한 뼈아픈 기억을 되새긴다.“우리 집이 폭격 때문에 반이 날아갔어요. 할머니가 그럼 6살, 9살은 둬라. 나중에 봄에 데려가라. 언니, 오빠, 나, 동생 둘, 부모님만 평양에서 나왔어요. 피난 가라고 했으면 악착같이 밤새 가서 (동생들까지) 데리고 갔죠. (정부가) 대동강만 건너라. 일주일만 피해 있어라. 일주일이 68년이 된 거예요.”-현미 인터뷰 中 남북 간 정식 교류가 없던 1998년, 현미는 북에 있는 동생 길자를 48년 만에 만나게 된다. 제3국의 중개업자를 통해 연락이 닿은 길자와의 만남은 결코 쉽지 않았다. 북한 당국의 엄격한 신원 확인과 삼엄한 감시 아래 현미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들은 그 난관을 어떻게 이겨내고 만날 수 있었을까? 극적인 상봉의 순간은 당시 MBC 다큐멘터리로 방영돼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서로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20년이 흘렀다. 현미는 상봉의 후유증으로 우울증까지 앓았다. 때만 되면 이산가족 상봉 신청서를 내던 언니와 오빠는 이제 세상에 없다. 살아남은 가족을 대표해 대한적십자사를 찾은 현미! 떨리는 손으로 직접 상봉 신청서를 작성한 현미는 과연 명자와 길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70년의 기다림, 이산가족 헤어져 흩어진, ‘이산가족’. 이번 제21차 상봉 행사의 최종 경쟁률은 569대 1이었다. 신청 대기자들에게 상봉 재개 소식은 희망이자 고통이다. 20차례의 상봉 행사를 통해 2천여 명의 이산가족이 헤어진 혈육을 만났지만 이후 재상봉은커녕 서신 왕래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대한적십자사에 상봉 신청을 한 13만여 명 중 과반수는 사망했고, 생존자 대부분은 70세 이상 고령자다. 그들에게는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나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백령도(白翎島). 본래 황해도에 속했던 이곳은 뱃길로 30분이면 북한에 닿는다. 인천에서는 쾌속선으로 4시간이 걸리는 서해 최북단이다. “보고 싶고 그리운 거 그건 뭐 말로 할 수도 없고...이제 만나도... 딸이 엄마도 모를 거고 내가 딸을 모를 거고요.” - 최응팔 할머니 인터뷰 中 얼굴이 하얗고 곱던 소중한 첫 아이. 네 살 된 아이의 모습이 북에 두고 온 큰딸(김신애)에 대한 기억의 전부다. 그렇게 바다 건너 지척에 서로를 둔 채 70년이 흘렀다. 93세 노모는 큰딸이 사는 고향 땅이 보이는 백령도를 70년 동안 떠나지 못했다. 아직도 고향에 살고 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20년 전 처음 상봉 신청을 한 후 자나 깨나 그려본 큰딸과의 재회. 이번에는 늙어버린 딸, 신애를 품에 안아볼 수 있을까? 최응팔 할머니는 고향 땅이 보이는 심청각에 서서 오늘도 그리움을 노래한다. ■ 그리움을 먹다, 우리 곁의 냉면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며 냉면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장인. 마지막 평양냉면 1세대 창업자 박근성 옹이 세상을 떠났다. 평양 모란봉 냉면집의 장남이었던 그는 1951년 1.4 후퇴 당시 혈혈단신으로 피난을 온다. 그는 피난민이 모여 살던 대전 숯골에 자리를 잡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전통을 지켜왔다. “젊었을 때 자식들 못 보게 돌아서서 많이 울었어요. 그런 모습 볼 때면 불쌍해서 나도 눈물이 나오더라고. 어머니, 아버지가 얼마나 보고 싶으면 저렇게 울까? 그러다 고향에 한 번 못 가보고 저렇게 돌아가셨잖아.” - 부인 한옥산 인터뷰 中 부모님의 생사조차 알 수 없어서 제사도 지낼 수 없었다.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이면 그는 부모님을 떠올리며 목 놓아 울었다. 매일 냉면을 만들며 부모님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던 박근성 옹의 마지막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우리 곁에 그가 남긴 냉면 한 그릇. 이산과 실향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냉면을 먹으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현실은 무엇인가?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가 담긴 박근성 옹의 마지막 냉면 한 그릇을 전한다. 한편 이산가족 상봉 특집 ‘MBC 스페셜’은 이날(20일) 오후 10시 50분 방송된다. 사진=M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 “65년 만에 딸 만나러 갑니다”…오늘부터 1차 이산상봉

    “65년 만에 딸 만나러 갑니다”…오늘부터 1차 이산상봉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하루 앞둔 19일 강원 속초 한화리조트에서 남측 1차 상봉 대상자인 유관식(오른쪽·89) 할아버지와 가족들이 북측 가족에게 전달할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유 할아버지는 딸과 사촌을 만날 예정이다. 20~22일 열리는 ‘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는 남측에서 이산가족 89명과 동반가족 108명 등 총 197명이 참여한다. 속초 사진공동취재단
  • 이산가족 상봉단 오늘 속초 모여···내일 꿈에 그리던 北가족과 만나

    이산가족 상봉단 오늘 속초 모여···내일 꿈에 그리던 北가족과 만나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하는 남측 가족들이 북측 가족들과의 간절한 만남을 하루 앞둔 19일 강원도 속초에 모인다. 통일부에 따르면 20∼22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1회차 상봉행사에 참여하는 남측 이산가족 89명과 이들의 동행가족 187명은 이날 오후 속초 한화리조트에서 방북 교육을 받은 뒤 기대와 설렘 속에 하룻밤을 보낸다. 이산가족들은 20일 오전 8시 30분쯤 한화리조트에서 버스를 타고 꿈에 그리던 가족들을 만나러 금강산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를 위해 방북하는 인원은 이산가족 89명과 이들의 동행가족, 지원 인원, 취재진 등 560여 명이다. 이들은 강원도 고성의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거쳐 북측 통행검사소에서 심사를 받고서 낮 12시 30분쯤 금강산 온정각에 도착한다. 이전 행사 때까지는 전원이 버스에서 내려 통행 검사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거동이 불편한 상봉자의 경우 버스에 탑승한 채로 통행 검사를 받도록 남북 간 합의가 이뤄졌다. 이산가족들은 마침내 이날 오후 3시쯤 금강산 호텔에서 열리는 ‘단체상봉’을 통해 극적인 대면을 하게 된다. 가족마다 헤어진 시점은 다르지만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기준으로 본다면 65년 만에 재회하는 셈이다. 가족들은 2박 3일동안 모두 6회, 11시간에 걸쳐 상봉한다.단체상봉∼환영만찬∼개별상봉∼객실중식∼단체상봉∼작별상봉 및 공동중식 순서로 행사가 진행된다. 특히 두 번째 날에는 2시간의 개별상봉에 이어 1시간 동안 객실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 남북의 가족이 오붓하게 따로 식사하는 건 이번 행사가 처음이다.1차 상봉에 나서는 남측 방문단의 최고령자는 101세의 백성규 할아버지로, 북측의 며느리와 손녀를 만날 예정이다.이산가족 상봉행사가 개최되는 것은 2015년 10월 이후 2년 10개월 만이다. 앞서 남북은 6월 적십자회담 당시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8월 20∼26일 금강산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이후 양측은 생사확인 의뢰서(7월 3일),생사확인 결과가 담긴 회보서(7월 25일), 최종 상봉 대상자 명단(8월 4일)을 순차적으로 교환하고 상봉시설 개보수 등 상봉 행사를 준비했다. 행사는 남측 이산가족 89명이 북측 가족과 상봉하는 1차(20∼22일)와 북측 이산가족 83명이 남측 가족과 만나는 2차(24∼26일)로 나뉘어 진행된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지금까지 대면상봉 20회와 화상상봉 7회가 실시됐다.지금까지 남북 총 4677가족, 2만 3519명이 상봉의 감격을 느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허은정 양 납치 살인사건, 손녀 죽인 범인 숨긴 할아버지

    허은정 양 납치 살인사건, 손녀 죽인 범인 숨긴 할아버지

    고(故) 허은정 양의 납치 살인사건 용의자의 몽타주가 공개됐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 18일 방송을 통해 10년째 풀리지 않고 있는 고 허은정 양 납치 살인사건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2008년 5월 30일 새벽 4시 10분경, 대구 달성군의 어느 빨간 대문 집에 비극이 찾아왔다. 괴한이 침입해 70대 할아버지 허씨를 맨손으로 폭행했고, 그 소리를 듣고 옆방에서 달려온 12살짜리 손녀 허은정 양을 납치해 사라졌다. 허양은 13일 뒤 인근 야산에서 심하게 부패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병원에 옮겨 시신을 부검한 결과 두개골에서 다발성 선상 골절이 관찰됐다. 단단한 둔기로 수차례 맞아 사망한 것이다. 허양의 팔 뼈에는 폭행을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안재경 당시 수사과장은 “산길을 무조건 아는 사람이다. 꼭대기까지 올라올 이유가 없다. 외부에서 왔으면 무조건 다시 외부로 나간다”고 말했다. 범인은 새벽시간에 곧장 할아버지 방으로 향했다. 이 집에 누가 살고, 집에 대해 잘 아는 사람. 범인은 처음부터 할아버지에게 분풀이를 할 생각으로 빨간대문 집에 들어갔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했다. 이어 목격자인 손녀가 범인의 신분을 알 경우 손녀를 그냥 둘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경찰은 여러 사람을 용의선상에 두고 조사했다. 빨간대문 집 근처의 식당에서 살던 폭력전과 1범의 정씨, 사건직전 빨간대문 집을 들여다보던 남자를 봤다는 목격자 진술로 만든 몽타주, 그 몽타주 속 스포츠형 범인의 얼굴과 닮은 생선장수 최씨 등을 수사했지만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 사건 발생 84일 후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던 할아버지는 끝내 범인을 밝히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엉켜버린 사건의 실타래를 풀지 못한 채 10년이 흘렀다. 마을 전체가 없어지고 신도시가 들어섰다.할아버지 허씨의 진술은 오락가락했다. 처음엔 아는 사람이 손녀 데려 갔으니 걱정하지 말고 경찰은 관여하지 마라는 식으로 진술했지만 이를 번복하고 기억이 안난다며 입을 다물었다. 살아남은 은정양의 동생 수정씨도 “당시 할아버지가 범인을 숨겼던 거 같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수정씨는 10년간 얼굴을 모르는 범인을 찾기 위해 사소한 기록까지도 꼼꼼하게 적어뒀다. 수정씨는 제작진에 요청해 법최면을 통해 2008년 5월 30일 오전 4시 10분의 기억으로 간 뒤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이내 “그 집에 가기 싫다. 내가 너무 어려서 미안하다. 내가 언니 대신 할아버지 방에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최면 중단을 요청했다. 허씨의 친척은 은정양이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 그냥 납치사건으로 여겨질 당시에 허씨가 “그 여자에게 가서 사과하면 손녀를 돌려줄 거다”라고 말했다고 기억했다. 제작진은 ‘그 여자’를 추적했다. 당시 할아버지가 식당을 운영하는 여인 박사장과 친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제작진은 수소문 끝에 박사장과 연락이 닿았지만 박사장은 이 일과 관련이 없다며 화를 내고 억울해 했다. 진술과 상황을 종합해볼 때 할아버지 허씨에게 원한이 있었을 ‘그 여자’는, 시장에서 일하고 마을지리를 잘 아는, 폭력전과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스포츠형 머리의 누군가에게 할아버지를 혼내달라 말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분석과의 관계자는 “피해자의 신체에서 피해자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모발 1점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확인되었다”며 “확보한 어떤 유전자형과 경찰의 수사를 통해 이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어떤 결과 값들이 더해진다면 해결되지 않은 이 사건도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어떤 근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했다. 용의자의 인상착의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나이에 신장은 175cm에서 180cm 가량이다. 헤어스타일은 스포츠형 머리고 상의는 흰색 라운드 티셔츠에 하의는 베이지색 건빵바지를 착용했다. 팔과 목은 햇볕에 그을린 구리빛 피부이며 농사일이나 노동을 하는 사람 같다는게 주요 인상착의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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