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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친 장례 8일 만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됐다

    선친 장례 8일 만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됐다

    조회장 “경영이념 계승-현장·소통 중점” 6월 서울 IATA 연차총회 의장직도 수행 선친의 한진칼 지분 안정적 상속은 숙제조원태(44) 대한항공 사장이 한진그룹 회장에 올랐다. 선친인 고 조양호 전 회장 장례를 마친 지 8일 만에 전격적으로 경영권을 계승한 것이다. 할아버지인 창업주 고 조중훈 회장과 아버지인 고 조양호 회장 뒤를 이어 ‘3세 경영’ 시대를 본격화한 것이다.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은 24일 이사회를 열고 한진칼 사내이사인 조 사장을 한진칼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했다. 이에 따라 조 사장은 한진그룹을 이끌어갈 명실상부한 대표가 됐다. 한진칼 이사회는 “조 신임 회장 선임은 고 조양호 회장의 리더십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그룹 경영을 지속하기 위한 결정”이라면서 “조 신임 회장이 그룹의 창업 정신인 ‘수송보국’을 계승·발전시키고 한진그룹의 비전 달성을 차질없이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 신임 회장은 이날 이사회에서 “선대 회장의 경영이념을 계승해 한진그룹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면서 “현장중심 경영, 소통 경영에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선친의 별세로 인한 선임인 까닭에 별도의 취임 행사는 열지 않기로 했다. 조 회장은 2003년 8월 한진그룹 IT(정보기술) 계열사인 한진정보통신의 영업기획 담당으로 입사했다. 2004년 10월 대한항공으로 자리를 옮겨 경영기획팀, 자재부, 여객사업본부, 경영전략본부, 화물사업본부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조 회장은 2017년 대한항공 사장에 취임한 이후 미국 델타항공과 태평양노선 조인트벤처 출범, 아시아·태평양항공사협회(AAPA) 사장단 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이끌었다. 또 조직문화 개선에 앞장서는 한편 노조와도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발전적 노사관계 정립에 힘쓰고 있다. 조 회장은 오는 6월 1일부터 사흘간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 의장직도 수행한다. 조 회장이 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지만 실권을 쥐기 위해서는 선친의 지분을 안정적으로 상속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현재 한진칼 지분은 한진가가 28.8%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조 전 회장 지분이 17.84%(우선주 지분 2.40% 제외)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조원태(2.34%), 조현아(2.31%), 조현민(2.30%) 등 삼남매 지분은 각각 3% 미만이다. 이날 한진칼 2대 주주인 행동주의펀드 KCGI가 지분율을 기존 12.80%에서 14.98%로 늘렸다고 밝히며 경영권 견제를 강화했다. 다만 한진칼의 3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이 4.11%로 종전의 5.36%보다 줄었다고 전날 공시했다. 조 전 회장 지분을 모두 삼남매에게 넘겨주고 두 딸이 상속 지분을 조원태 사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우호 지분으로 남겨둔다면 한진가의 경영권 확보에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분 상속 과정에서 20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상속세를 해결해야 한다. 상속세 신고는 사망 후 6개월 안에 국세청에 해야 하며 규모가 클 경우 5년 동안 나눠서 낼 수 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선친 장례 8일 만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됐다

    선친 장례 8일 만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됐다

    조원태(44) 대한항공 사장이 한진그룹 회장에 올랐다. 선친인 고 조양호 전 회장 장례를 마친 지 일주일 만에 전격적으로 경영권을 계승한 것이다. 할아버지인 창업주 고 조중훈 회장과 아버지인 고 조양호 회장 뒤를 이어 ‘3세 경영’ 시대를 본격화한 것이다.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은 24일 이사회를 열고 한진칼 사내이사인 조 사장을 한진칼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했다. 이에 따라 조 사장은 한진그룹을 이끌어갈 명실상부한 대표가 됐다.  한진칼 이사회는 “조 신임 회장 선임은 고 조양호 회장의 리더십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그룹 경영을 지속하기 위한 결정”이라면서 “조 신임 회장이 그룹의 창업 정신인 ‘수송보국’을 계승·발전시키고 한진그룹의 비전 달성을 차질없이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 신임 회장은 이날 이사회에서 “선대 회장의 경영이념을 계승해 한진그룹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면서 “현장중심 경영, 소통 경영에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선친의 별세로 인한 선임인 까닭에 별도의 취임 행사는 열지 않기로 했다. 조 회장은 2003년 8월 한진그룹 IT(정보기술) 계열사인 한진정보통신의 영업기획 담당으로 입사했다. 2004년 10월 대한항공으로 자리를 옮겨 경영기획팀, 자재부, 여객사업본부, 경영전략본부, 화물사업본부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조 회장은 2017년 대한항공 사장에 취임한 이후 미국 델타항공과 태평양노선 조인트벤처 출범, 아시아·태평양항공사협회(AAPA) 사장단 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이끌었다. 또 조직문화 개선에 앞장서는 한편 노조와도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발전적 노사관계 정립에 힘쓰고 있다. 조 회장은 오는 6월 1일부터 사흘간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 의장직도 수행한다. 조 회장이 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지만 실권을 쥐기 위해서는 선친의 지분을 안정적으로 상속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현재 한진칼 지분은 한진가가 28.8%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조 전 회장 지분이 17.84%(우선주 지분 2.40% 제외)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조원태(2.34%), 조현아(2.31%), 조현민(2.30%) 등 삼남매 지분은 각각 3% 미만이다. 이날 한진칼 2대 주주인 행동주의펀드 KCGI가 지분율을 기존 12.80%에서 14.98%로 늘렸다고 밝히며 경영권 견제를 강화했다. 다만 한진칼의 3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이 4.11%로 종전의 5.36%보다 줄었다고 전날 공시했다. 조 전 회장 지분을 모두 삼남매에게 넘겨주고 두 딸이 상속 지분을 조원태 사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우호 지분으로 남겨둔다면 한진가의 경영권 확보에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분 상속 과정에서 20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상속세를 해결해야 한다. 상속세 신고는 사망 후 6개월 안에 국세청에 해야 하며 규모가 클 경우 5년 동안 나눠서 낼 수 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월드피플+] 75년 함께 산 90대 노부부의 리마인드 웨딩… “비결은 대화”

    [월드피플+] 75년 함께 산 90대 노부부의 리마인드 웨딩… “비결은 대화”

    전쟁통에 부부의 연을 맺은 90대 노부부가 결혼 75주년을 기념해 리마인드웨딩을 치렀다. 잉글랜드 랭커셔주에서 나고 자란 짐 리처드슨(95)과 아이린 리처드슨(94)은 마을 무도회에서 처음 만나 1944년 4월 12일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짐 할아버지는 평생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을 결혼식에서 언급하지 않은 걸 후회했으며 ‘결혼행진곡’에 맞춰 행진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리처드슨 부부의 손녀 산드라 테일러는 할아버지를 위해 돌아가신 증조할머니에게 헌사도 바칠 수 있는 리마인드웨딩을 계획했다. 75년 전 결혼식을 치렀던 동네 교회에 다시 모인 리처드슨 부부는 4명의 자녀와 8명의 손자, 9명의 증손자, 1명의 증증손자와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다시 결혼 서약을 했다. 산드라는 21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사랑스러운 광경이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짐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어머니께도 감사의 기도를 올렸으며 아내와 함께 꿈에 그리던 ‘결혼행진곡’에 맞춰 행진도 했다. 짐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 가진 피로연에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아내와 결혼할 것이다. 우리 가족 모두가 자랑스럽다”고 감사를 표했다. 아이린 할머니 역시 “우리 부부의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어떤 문제가 있든 늘 함께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평생을 농부로 살다 농장을 옮긴 뒤 카페와 호텔일, 버스운전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온 리처드슨 부부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사랑의 서약을 떠올렸다. 리마인드 웨딩을 준비한 손녀 산드라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야말로 백년해로했다. 비결이 무엇이었느냐 물었더니 ‘타협과 절충’이라고 말했다. 아마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기에 장수하신 게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리처드슨 부부는 사랑도 중요하지만 무엇이든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타협하며 문제를 헤쳐나갔다고 설명했다. 또 “매일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했다. 100세를 코앞에 둔 리처드슨 부부는 여전히 매우 정정하다. 짐 할아버지는 아직까지 운전을 하며 아이린 할머니는 꽃꽃이와 케이크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산드라는 “우리는 그저 일주일에 한 번 할아버지 할머니를 마트에 데려다주는 것밖에 하지 않는다. 매우 건강하시고 독립적”이라고 말했다. 자녀들은 리처드슨 부부가 그저 결혼 80주년 90주년이 될 때까지 건강하게만 결혼 생활을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농협 순천시지부, 미세먼지 마스크 지원

    농협 순천시지부, 미세먼지 마스크 지원

    “할머니, 할아버지 마스크 쓰시고 건강도 챙기세요.” 농협 순천시지부는 23일 순천 해룡면 남가마을 회관을 찾아 미세먼지 마스크 1200매(5box)를 지원했다. 본격적인 영농철을 맞아 잦은 야외활동으로 미세먼지 등에 무방비로 노출된 농업인의 영농활동에 작은 도움을 주고자 마련했다. 김회천 지부장은 “미세먼지는 고령층과 영농철 야외 활동이 잦은 농업인에게는 더욱 위험하다”며 “어르신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마스크 지원 사업을 더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英 루이왕자 첫돌 기념사진 공개…“보행기만 타면 폭주”

    英 루이왕자 첫돌 기념사진 공개…“보행기만 타면 폭주”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왕세손비의 막내아들 루이 왕자가 23일(이하 현지시간) 첫돌을 맞는다. 왕세손 부부는 22일 켄싱턴궁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내일 첫돌을 앞둔 루이 왕자의 새로운 사진 3장을 공유하게 돼 기쁘다”는 글과 함께 막내 루이 왕자의 사진 3장을 공개했다. 사진은 이달 초 노퍽에 있는 왕세손 부부의 자택 앤머홀에서 케이트 왕세손비가 직접 촬영한 것이다.사진 속 루이 왕자는 흔히 ‘피터 팬 칼라’라고 부르는 앞쪽 끝이 둥근 깃이 특징인 셔츠에 짙은 파란색 바지 차림으로 이끼로 덮인 정원을 기어 다니거나 앉아 있는 모습이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셔츠 위로 강아지 자수가 들어간 파란색 캐시미어 혼방 니트를 입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이다. 루이 왕자의 모습은 9개월 만에 처음 공개됐다. 루이 왕자는 지난해 7월 런던 세인트제임스 공원내 왕실예배당에서 치러진 세례식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 마지막이었다. 왕세손 부부에 따르면, 루이 왕자는 아직 걷지 못하지만 늘 몸을 일으키려고 하며 거실에서 보행기를 타면 폭주하듯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즐긴다. 한편 루이 왕자의 첫돌 행사는 켄싱턴궁에서 비공개로 치러진다. 큰형 조지 왕자는 곧 학교에 가야 하고 윌리엄 왕세손은 하루 뒤 뉴질랜드 남섬 최대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이슬람사원(모스크) 두곳에서 일어난 총격테러 희생자들을 조문하러 떠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루이 왕자의 정식 이름은 루이 아서 찰스. 지난해 세인트 조지의 날인 4월 23일 오전 11시1분, 몸무게 3.8㎏의 우량아로 태어났다. 루이 왕자는 할아버지 찰스 왕세자와 아버지 윌리엄 왕세손 그리고 큰형 조지 왕자, 누나 샬롯 공주에 이어 영국 왕위 계승 서열 5위다. 사진=켄싱턴궁/트위터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광복 위해 죽는 날까지 싸우겠다”… 임정 자금 대고 발해농장 개척

    “광복 위해 죽는 날까지 싸우겠다”… 임정 자금 대고 발해농장 개척

    “일제의 패망을 확신하니 유한(遺恨)이 없다. 동포의 고난을 네 고난으로 알고 살아가거라. 가사(家事)든 국사(國事)든 오직 자력(自力)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58세의 백산 안희제를 일제는 9개월 동안이나 악랄하게 고문했다. 피가 눌어붙은 죄수복을 입고 반송장이 돼 풀려난 백산은 장남 상록에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몇 시간 후인 1943년 9월 12일 새벽 2시, 백산은 숨을 거두었다.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광복 두 해 전이었다.백산은 1885년 9월 12일 충절의 고장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마을(설뫼마을)에서 태어났다.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의 생가가 지척에 있는 곳이다. 백산의 선조 안기종은 왜병과 싸운 의병장이었다. 입산마을은 낙동강 지류인 유곡천이 마을 앞에 흐르는 비옥한 땅으로 백산의 집안은 700석 부자였다. 안향의 후손인 탐진 안씨가 조선 중기부터 이 마을에 정착했으며 선생의 생가인 ‘백산고가’(白山古家)가 남아 있었다. 부산에서 살고 있는 백산의 장손자 안경하(80)씨를 만나 백산의 일생에 대해 들었다. 안씨의 어머니, 즉 백산의 며느리는 왕산 허위의 형인 방산 허훈 가(家)의 자손과 결혼했다고 한다. 안씨는 “할아버지는 가족이 무슨 일을 하는 줄도 모를 정도로 독립운동을 비밀리에 했다”고 말했다. “새는 한가하여 벽곡(僻谷)을 찾았는데 해는 싫어하여 중천에 떠 두루 비치도다.” 한학에도 뛰어났던 선생이 유년 시절 지은 시다. 백산은 20세에 을사늑약 소식을 듣고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달이 밝은 날 밤 몰래 구국의 일념으로 상경했다.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했다가 1년 후 양정의숙으로 옮겼다. 백산의 조국독립 방략은 무력 저항보다는 실력 양성, 계몽운동이었다. ●발해농장, 실질적인 국외 독립운동기지 1909년 먼저 부산 구포에 구명학교를, 의령에 의신학교를, 입산마을에 창남학교를 세웠다. 그해 9월에는 남형우, 김동삼, 서상일 등과 함께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체인 대동청년단을 결성했다. 26세 때인 1911년부터 3년 동안은 러시아와 만주를 돌아보며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했다. “국민을 교육하는 일이 급선무인데 우리가 가난해서는 어렵습니다. 부산을 일본인 손에 넘겨줘서야 되겠습니까.” 귀국한 백산은 부산으로 가서 이렇게 호소해 1914년 9월 백산상회를 창립했다. 고향 논 2000마지기(40만평, 132만㎡)를 팔아 자금으로 썼다. 백산상회는 곡물, 면포, 해산물을 위탁 판매하는 개인기업이었다. 3년 후 합자회사로 전환, 경남 양산의 대지주 윤현태와 경주 최부자로 유명한 최준 등 영남 자산가들로부터 거액의 협력을 받았다. 중국 상해에서 임시정부 수립 움직임이 일 무렵인 1919년 초 백산상회는 백산무역주식회사로 확대 개편됐다. 주주들의 출자금 대부분은 임정 운영자금으로 보내졌다. 윤현태의 동생 윤현진은 아예 상해로 건너가 임정 재무차장을 맡았다. 백산상회는 국내외 20여 곳에 지점 및 연락사무소를 두었다. 겉만 기업이었지 독립운동 자금원이자 연락조직이었다. 김규식이 파리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할 때 백산은 경비를 제공했다. 낌새를 알아차린 일제는 수색, 고문, 장부 검열을 계속했지만 단서를 잡지 못했다. 독립운동 자금을 장부상 결손으로 꾸며 추적을 따돌렸다. 백산은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겼다. 일본인 여관에 묵었으며 금테 안경을 쓰고 일본식 복장을 했는데 의심을 사지 않으려는 위장술이었다. 그러나 1921년부터 자금난이 심해졌고 주주들 간에 마찰이 생겼다. 경영 부실보다 독립운동 자금 탓이 컸다. 1928년 1월 백산상회는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광복 후 백범 김구가 최준에게 독립운동 자금 장부를 보여주자 최준은 백산의 묘소를 향해 엎드려 통곡했다. 그가 준 돈이 한 푼도 어김없이 임정에 전달됐음을 보았기 때문이다.백산상회를 경영하는 한편으로 백산은 자산가들의 지원을 받아 후학 양성을 위한 기미육영회를 결성했다. 국회의원과 사회부 장관을 지낸 전진한,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 북한 조평통 위원장을 지낸 국어학자 이극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신성모 등이 육영회 돈으로 독일, 영국에서 유학했다. 백산의 눈길은 언론으로 향했다. 이미 1920년 4월 동아일보 발기인으로 창간에 참여했었다. 1928년 6월 당시 3대 일간지의 하나로 필화사건을 겪던 중외일보를 인수, 사장으로 취임했다. 임원진 중에는 독립운동가 최윤동, 임유동도 있었다. 백산은 조석간 발행 등 지면 및 경영혁신을 꾀했다. 그러나 일제 통치를 강도 높게 비판하다 1929년에 26회, 1930년에 31회 신문을 압수당하는 등 탄압을 받았다. 그러는 새 경영은 날로 어려워져 1931년 9월 중외일보는 결국 해산하고 말았다. 조국 땅을 지키며 민중과 더불어 합법적인 조직과 방법으로 독립을 꾀하겠다던 백산의 계획은 뜻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좌절밖에 없었다. 백산은 지인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조국은 감옥이다. 자유 천지에 나가서 활개를 펴고 조국 광복을 기어코 달성하는 데 죽는 날까지 싸워보겠노라.” 백산이 선택한 또 다른 길은 만주였다. 만주 땅을 일궈 빈농의 자립을 돕고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고자 했다. 김태원이라는 경제적 협력자를 구했다. 그는 경북 봉화 금광에서 노다지를 캐내 일약 거부가 되어 백산과 가까이 지내던 인물이었다. 만주 목단강성 영안현에 토지를 매입했다. 발해국 고도인 동경성이 있었던 곳이다. 1932년부터 목단강 상류 일부를 석축으로 막고 수로를 내 황량한 땅을 개간했다. 백산은 발해농장으로 이름 짓고 조선에서 실농 300여호를 이주시켰다. 자작농창제(自作農創制)를 고안했다. 농민에게 분배한 토지에서 생산한 곡물의 절반을 받아 다른 농지를 개간하고 수도를 개설하며 토지는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해 자작농으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1935년까지 농장 직경은 4㎞가 넘었고 수로는 16㎞에 이르렀다. 수차 증자받은 돈은 농장경영 자금 외에는 모두 독립운동 자금으로 몰래 보냈다. 백산은 청년기에 귀의했던 대종교에 심취했다. 발해농장으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대종교로 정신적 결집을 이루고자 했다. 대종교 총본사를 동경성으로 옮겼다. 대종교 서적을 간행하고 단군전인 천진전을 건립했다. 이를 통해 독립투쟁을 벌이고자 했다. 발해농장은 표면적으로는 농장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국외 독립운동기지였다.●백산 장손자 “후손들 할아버지 이름 기억” 농장 규모가 커지고 교세가 나날이 확장되자 위협을 느낀 일제는 백산을 붙잡을 기회만 노렸다. ‘대륙 첩보의 귀신’ 난베가 그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었다.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켰다. 조선어사전편찬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백산을 체포할 빌미를 잡았다. 일제는 조선어학회 이극로가 대동교 교주 윤세복에게 보낸 ‘널리 펴는 말’을 ‘조선독립선언서’로, 글 가운데 ‘일어서라’를 ‘봉기하자’로 조작했다. 일경은 대종교 간부 21명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했다. 이른바 ‘임오교변’이다. 입산마을에서 치병 중이던 백산은 목단강성 경무청으로 포박되어 끌려갔다. 10명이 숨질 정도로 고문은 악랄했다. 사건 배후에는 밀고자가 있었다. 그러나 선생은 숨을 거두기 전 그를 용서하라고 유언했다. 광복 후 후손들은 밀고자를 찾아냈지만, 유언을 따라 응징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안민석 의원과 발해농장에 다녀온 장손자 안씨는 “지금도 개척자의 4~5세가 농장에 살고 있고 후손들은 할아버지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왕이 후궁 처소를 찾을 때 썼던 이 물건, 아시나요”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왕이 후궁 처소를 찾을 때 썼던 이 물건, 아시나요”

    고미술 수집 40년 최형술씨가 말하는 골동품“이 향난로는 아마 한국에서 하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약재를 가루로 만드는 약연과 한약을 달이는 약탕기, 약주전자, 약탕관 등 한약과 관련된 모든 도구가 한 세트입니다. 약주전자와 약맷돌에 새겨진 이 문양을 보세요. 용, 불로초, 사슴, 잉어가 보이죠. 그리고 이번에 청자철제귀면종에 대해 문화재 등록신청을 했습니다.” 골동품 가게 앞에 5층 8각 석탑 두기 서 있어“14세기 청자철제귀면종, 문화재 등록 신청해”서울에서 가장 큰 고미술점을 운영했다는 최형술(81)씨를 인터뷰하려고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청계8가 한국도자기 뒤에 있는 골동품점 갤러리 미(취강당)을 지난 17일 찾았다. 철물점 상가들 사이에서 두 기의 8각형 5층 석탑이 가게 앞을 지키고 섰다.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그의 가게에 들어서자 세월의 더께에 쌓인 갑옷과 놋그릇, 제사용품과 서화, 가구 등이 가득했다. 그는 처음엔 골동품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사진이 나가면 짝퉁이 나돌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사화 하려면 사진이 필요하다고 설득한 끝에 촬영을 허락받았다. 사진을 찍으러 공예품 먼지를 털자, 먼지도 털지 못하게 했다. 최씨는 가리킨 약주전자에는 뚜껑은 용이 똬리를 튼 특이한 모양새다. 물이 나오는 주구 부분 역시 특이하다. 손잡이는 나무로 만들었다. 이 주전자를 끓일 아궁이 역시 커다란 돌덩이로 만들어졌다. 그 옆에는 향난로가 놓여있었다. 사각형의 돌상자에는 다시 작은 돌상자를 넣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사방으로 구멍이 2개에서 4개씩 나 있었다. 들어보니 아주 묵직했다. “장수곱돌로 만든 거예요. 이게 옛날에 임금님이 어느 후궁 처소로 가겠다고 하면 상궁들이 이것을 미리 그 후궁방에 두고 방을 따뜻하게 데우면서 향기롭게 하는 기능을 했다고 합니다. 저도 용도를 몰라 궁금해했는데 수년 전 한 스님이 이렇게 설명해 줬습니다만 좀 더 정확한 용도와 고증이 필요합니다.” 기자가 이 사진을 한의사에 보여줬지만 그 한의사 역시 처음본다고 했다. 이렇게 한약방과 관련된 도구가 100여 점에 이른다. “장수곱돌로 만든 한약방 도구 100여점용 무늬, 불로초, 잉어 등의 그림 새겨져충청도 대갓집에 3년간 공들여 수집해”- 한약 도구세트, 어떻게 소장하게 됐나. “1980년대에 충청도의 한 가문으로부터 수집했습니다. 99칸에 이를 정도의 대갓집이었는데 그 집 할아버지로부터 사들였습니다. 처음엔 안 팔겠다고 했는데, 한번 내려갈 때마다 술, 고기 등을 사들고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팔아달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설득하면 그 할아버지가 한꺼번에 팔지 않고, 한점 팔고, 몇 달 뒤에 또 내려가면 3점 팔고…. 이렇게 해서 다 사모는데 한 3~4년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이 한약방 도구들의 출처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하지 않고, 집안에 내려오는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현재 소장한 가장 비싼 미술품은. “글쎄, 가격을 다 매겨보지 못해 잘 몰라요. 그런데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물건은 있습니다. 고려시대인 14세기 전남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가마터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철제귀면종’은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고 있어요. 청자로 만든 종의 사금파리는 전하고 있지만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청자 종(鐘)으로는 아마 국내에서 유일할 겁니다. 사찰에서 쓰였을 것 같은데, 전문가들의 감정을 받아보면 가치와 용도를 알 수 있겠지요. 또 한가지 백자대호(달항아리)는 다음 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한 달간 전시할 생각입니다. 18세기 전후에 광주 분원리에서 구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고가품은 분청사기…신사동 땅값 100배골동품 안목 수업료로 집 몇 채 값 날아가”- 그러면 최고가 수집품은. “미련을 갖지 말아야지요. 박수근·김환기·이수근의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겸재 정선·단원 김홍도 그림도 제 손을 거쳐 간 것이 제법 됩니다. 한번은 평당 강남 땅값의 100배로 샀던 것도 있습니다. 1976년인가에 분청을 그때 돈 2000만원에 샀습니다. 그때 허허벌판의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비포장이었지만 도로 옆에 붙은 좋은 땅은 평당 2만~3만원이었고, 안쪽 구석에 있던 것은 5000원도 안 되었습니다. 분청사기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겠지요.” - 그 분청 아직도 갔고 있나. “벌써 임자를 만나 나갔지요. 비싸게 매입한다고 다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골동품과 관련해 수업료로 집 몇 채 값은 날아갔습니다. 수십년 골동품을 거래한 저도 사람의 손때를 탄 물건, 어찌 보면 혼이 담긴 물건이기에 알기가 무척 어려워요. 살 때 분명히 진품으로 보였는데, 가게에 와서 보면 다르게 보이고 해서….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일반인도 아닌 전문 장사꾼이라 무를 수도 없고 집 한 채 값 그냥 날아가지요.” - 그 분청사기 누가 사갔나. “이름은 말할 수 없지요. 의사와 변호사, 교수 등이 우리 집에서 물건 많이 사갔습니다. 예술품이나 골동품은 소장자가 누구냐에 따라 가치가 또 확 달라집니다. 같은 분청사기라도 골동품상인 제가 가진 가치와 유명 교수나 학자가 소장한 것의 가치가 다르다는 거죠.” - 현재 보유한 고미술품 수는. “고미술품과 민예품 등을 합쳐서 아마 1만 점이 넘을 겁니다. 중간 상인이 차로 100점~200점 갔고 옵니다. 그중에서 서너 점이 마음에 들면 차떼기로 전부 다 샀던 겁니다. 중간 상인도 값나가는 서너 점을 알거든요. 좋은 것만 사고, 나머지를 사지 않으면 다음엔 거래하러 오지 않아요. 그 서너 점으로 본전을 뽑고, 나머지를 팔아서 이익을 내는 구조입니다. 많을 때 10만 점가량 보유했습니다. 다 보관을 할 수가 없어서 팔기 시작한 겁니다. 가구와 같은 목제품, 그림이나 글씨와 같은 서화는 비바람을 맞아 곰팡이가 피면 안 되잖아요. 여기 가게에도 있지만 개운사 옆 카페 봄에도 삼국시대의 토기 등을 전시하고 있지요. 창고에도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자개 농과 같은 나무 제품은 공간도 많이 차지합니다. 사람이 쓰는 물건이 3만가지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 대부분을 다루어봤을 겁니다.” “50~90년대 광장시장서 복지점으로 돈 벌어1970년대 우리 민예품 해외 마구 팔려나가남아있는 게 없겠다는 생각에 수집 시작박물관 생각에 마구 수집…여건 달라져 포기수집품 한때 10만점쯤 …지금은 1만점가량 보유”- 고미술 수집엔 돈이 엄청 든다. “동대문과 광장시장에서 양복을 짓는 데 쓰는 옷감인 복지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1958년부터인가 시작했는데, 그 당시 신랑이 장가갈 때 양복 한 벌 맞춰 입으려면 쌀 10가마의 돈이 들었습니다. 저는 도매와 소매를 겸해서 전국에 거래상을 두고 팔았지요. 그때 돈을 제법 만졌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닥친 1998년 복지 가게는 다 정리했습니다.” - 왜 고미술에 빠졌나. “1970년대에 보니깐 우리 공예품이 외국으로 많이 팔려나갔습니다. 심지어 수석까지 미국 일본 필리핀 이탈리아 등으로 팔려가가더군요. 소련에도 팔려나갔습니다. 이래서는 우리 것이 남아있지 않겠다는 생각에 수집을 시작했습니다. 좋은 것을 사 모아야겠다는 사명감에 보이는 대로 사서 모았지요. 그러다가 우리 공예품, 민예품을 보는 눈도 생기고, 알게 되니깐 더 애착이 가더라고요. 어느 순간 더 이상 보관할 수가 없게 되어서 골동품 가게를 열었습니다. 매장 면적이 170평으로 전국은 몰라도 서울에서는 가장 컸습니다. 18~19년간 하다가 땅 주인이 건물을 새로 짓는다고 해서 여기로 이사해 소일거리로 하는 겁니다.” - 아무리 고미술에 빠져도 그렇게 사모을 수 있나. “처음엔 박물관을 하나 운영할까 생각했습니다. 서울에다 박물관 하나 하려다 보니 땅값이 엄청나게 올라 있고, 박물관 운영비 마련도 쉽지 않아 보여서, 그냥 나자빠진 거죠. 결국, 이렇게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게 된 거죠. 한창때는 귀하거나 없는 물건을 보면 안 사고는 못 배겼어요.” - 고미술 수집과 복지점 운영하면 물려받은 게 많았겠다. “저는 1939년생으로, 고향이 전남 해남인데, 그때 꿈이 교사였어요. 중학교 졸업하고 해남고등학교에 합격했어요. 그런데 집안이 어려워 진학 대신 농사일을 도우며 서당에 3년가량에 다녔습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싶어서 무작정 상경해서 동대문시장에서 행상을 해서 돈을 아끼고 모으고 해서 복지점을 낸 겁니다. 복지점을 낸 지 3년 만에 해남에서 농사짓는 아버지한데 논 20마지기(4000평)와 기와집을 사드렸습니다.” “아파트 거주공간에 고미술 둘 공간 없어져조상 손때 묻은 골동품, 갈수록 가치 올라”- 고미술 대신 강남에 땅을 샀다면. “강남에 땅을 샀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잖아요. 잘 되었을 거라는 보장이 없지요. 신사동의 좋은 땅이 평당 2만원할 때 고려대 뒤 개운사 옆에 7500만원을 들여 큰 한옥을 지어 살았습니다. 그동안 건강하게, 화목하게 살았으니, 강남에 땅을 사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후회는 없어요. 남들은 뭐라 생각하든 우리 고미술 보존에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 고미술 찾느라 전국 많이 다녔겠다. “복지점을 할 때 전국 거래처를 다녔지만, 고미술을 할 때는 가지 않습니다. 골동품도 수십년 거래한 믿는 중간 상인들이 있습니다. 중간 상인들은 지역별로 골동품을 모아두는 사람들을 두고 있었지요. 그래야 탈도 없고, 외상거래도 떼어먹는 일도 없지요. 집안에서 대대로 쓰던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정말 돈이 급하잖아요. 그래서 언제든지 현금으로 지불할 준비는 해 놓고 있었습니다. 물론 속은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그 또한 제 안목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엔 곁눈질로 한번 보면 10가지 이상이 파악됩니다. 그리곤 가격이 바로 매겨집니다. 수십년 경험이지요.” - 문제는 없었나.“무슨 문제요? 아~, 한번도 경찰에 조사받은 일이 없습니다. 수십년 거래한 중간 상인들이라도 의심스러우면 거래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골동품이라는 것들이 무겁고, 부피도 커고 해서 귀금속과는 많이 달라요. 이 부근 한자리에서 20년가량 장사를 하는데 손님을 속이고 그렇게 운영해서는 오래 못가요. 손님들이 수년 지나서 찾아와 물러달라거나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손님들 요구대로 다 해줬습니다.” - 요즘 고미술 인기는. “한때 한국화가 잘 나갔습니다만 아파트가 못도 박지 못하게 하잖아요. 소품의 유화라도 그림을 걸어둘 곳도 없어졌습니다. 동양화는 액자나 족자를 하게 되면 무겁고 공간도 넓게 차지하는 단점이 있지요. 병풍을 쳐 놓을 공간도 없고, 조상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같아요. 고미술을 사려는 사람도 적지만, 수요는 꾸준히 있습니다. 하지만 고미술, 골동품을 구하기가 정말 어려워졌습니다. 가격도 비싸졌고…. 동묘에도 골동품상이 한두집 밖에 없어요. 요즘엔 물건이 안 나오니깐 못하는 거지요. 그래도 조상들의 혼이 담긴 골동품, 갈수록 가치가 올라갈 겁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치매 아내 돌보기위해 요양보호사 된 구순 할아버지

    치매 아내 돌보기위해 요양보호사 된 구순 할아버지

    치매 아내를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에 도전한 구순의 할아버지가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다.22일 충남도에 따르면 지난 19일 발표된 ‘제27회 요양보호사 자격시험 합격자’ 명단에 예산에 사는 최대식(사진·90) 할아버지가 전국 최고령 합격자로 이름을 올렸다. 요양보호사는 치매나 중풍 같은 노인성 질환 탓에 혼자서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신체·가사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력이다. 자격시험은 나이, 학력제한 없이 누구나 볼 수 있다. 최 할아버지는 지난해부터 치매증세를 보인 아내(81)의 약을 타기위해 올해 초 예산보건소를 찾았다가 직원 추천으로 요양보호사에 도전했다. 지난 1월 요양보호사교육원에 수강 등록한 최 할아버지는 2개월간 강의를 들으며 성실하게 시험을 준비했다. 이론, 실기, 실습 등 총 240시간 수업을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노력은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달 30일 치러진 시험에서 필기·실기 모두 합격선인 60점을 넘어 자격증 취득에 성공했다. 도 관계자는 “최 할아버지가 열심히 준비하셨다”며 “안경이나 보청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건강해 아내를 잘 돌보실 것 같다”고 말했다. 최 할아버지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며 “저를 통해 많은 노인들이 희망을 갖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으면 한다”고 했다. 최 할아버지는 1주일간 보건복지부의 치매전문 교육만 받으면 아내를 돌보며 한 달 50만∼60만원의 요양보호사 급여를 받을수 있다. 이번 자격시험에는 전국에서 5만9175명이 응시해 5만3108명이 합격했다. 예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넘어지고, 부딪히고…실수 연발 웃음 영상

    넘어지고, 부딪히고…실수 연발 웃음 영상

    미국 유명 홈비디오 소개 채널 ‘아메리카 퍼니스트 홈 비디오’가 다양한 실수 장면을 엮은 영상을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9일 공개된 영상을 보면, 샌드백에 매달렸던 여성이 샌드백과 함께 바닥에 떨어지는 상황으로 시작한다. 이어 깜짝 선물 보따리를 받은 어느 할아버지의 반응과 힘껏 주먹을 날린 아이가 스탠딩 샌드백의 반동에 봉변을 당하는 모습이 이어진다. 또 치어리더들이 백 텀블링을 시도하다가 벌어지는 상황과 선수들을 응원하다가 벌어지는 아찔한 실수 장면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아이들의 귀여운 실수 모습도 이어져 보는 재미를 더한다. 현재 해당 영상은 47만이 넘는 조회수와 2200여개의 추천을 받고 있다.사진 영상=America‘s Funniest Home Videos 유튜브 채널 영상부 seoultv@seoul.co.kr
  • 세계적 투자가 짐로저스,.부산대서 명예철학박사받아.

    세계적 투자가 짐 로저스 회장이 부산대에서 22일 명예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산대학은 22일 오전 대학 본관 대회의실에서 짐 로저스(78) 홀딩스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부산대는 독자적인 투자 철학과 세계인의 올바른 경제관 확립, 저서를 통해 통일한국과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준 업적을 평가해 이날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짐 로저스 회장은 감사말을 통해 “훌륭한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게 되어 기쁘다. 나도 대학에서 철학을 배웠는, 학생들이 대학에서 뭘 배울 것인가를 묻는다면 철학과 역사를 배울 것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철학과 역사를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독립적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생각하는 힘을 가져야 위기와 기회가 같이 오는 우리 삶의 여정에서 성공적인 길로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짐 로저스 회장은 ‘한반도의 통일과 미래?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가졌다. 그는 특강을 통해 “19세기는 영국, 20세기는 미국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중국의 세기이고 중국과 북한, 한국으로 바뀌고 있다”며 “곧 38선이 없어질 것이고 8000만 인구와 북한의 풍부한 자원이 함께 하는 한국은 흥미진진한 국가가 될 것이라며 지금 미국과 일본의 투자는 북한을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의 젊은이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열정을 쏟는 게 가슴 아프다. 젊은이들은 다양한 자기만의 꿈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통일이 되면 기회가 많이 생기고, 새로운 한국을 만들어가야 한다. 북한 사람들을 위한 학위 코스를 만들고, 북한 학생이 한국에서 공부하도록 장학금도 조성할 의향도 있다 ”고 말했다. 청중들과의 질의 응답을 통해 “북한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공부와 생활을 해 그의 할아버지(김일성)나 아버지(김정일)와 다르고, 과감한 개혁과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며 “과거 동독에서 일어난 변화처럼 북한에서도 DVD도 보고 중국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교류도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북한은 부채가 없고, 인프라가 바닥이라서 철도나 항구, 건설 등 재건할 기회가 많다. 재앙과 기회는 같이 온다. 북한은 자본이 없고 바닥에 있기 때문에 훌륭한 기회 포착이 가능하다. 바닥이 기회다“라고 강조하며 ”북한과 한국 모두 국방예산을 상당히 많이 쓰는데, 통일 되면 많은 예산을 다른 곳으로 돌려 사용할 수 있는데, 이는 자본력이 생긴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文 “독립유공자 유해 국내 봉환은 정부 임무…독립운동의 완성”

    文 “독립유공자 유해 국내 봉환은 정부 임무…독립운동의 완성”

    계봉우·황운정 지사 부부 오늘 국립묘지로 文 “이국서 생 마감하신 분 최고 예우 보답”카자흐스탄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독립유공자 유해를 (국내로) 모시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임무이며 독립운동을 완성하는 일”이라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누르술탄 국제공항에서 주관한 독립유공자 계봉우·황운정 지사 부부 4위의 유해 봉환식에서 추모사를 통해 “계·황 지사님의 삶은 조국의 독립과 단 한순간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현직 대통령이 국외에서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 행사를 주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네 분 어르신을 (고국에) 보내드리는 일이 어려운 결정이었겠으나 걱정하시지 않게 정성을 다해 모시겠다”고 했다. 이어 “정부는 머나먼 이국에서 생을 마감하신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겠다”며 “독립운동가 한 분, 한 분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우고 미래를 여는 힘을 키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유해 봉환은 임시정부 수립 및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일환이다. 4위의 유해는 22일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2호기로 서울 공항에 도착,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계 지사는 1919년 임시정부 수립 후 북간도 대표로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고 1937년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후에도 ‘조선문법’ 등을 집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황 지사는 함경북도 종성 등지에서 3·1운동에 참여했고 러시아 연해주 일대 일본군 전투에 참가한 공로 등으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정부는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도 조율 중이다. 앞서 이날 문 대통령은 현지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 동포 오찬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계 지사의 증손녀 계이리나씨는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증조)할아버지의 살아생전 꿈이 이뤄져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고려인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카자흐스탄에서 존중받는 모습을 보니 자랑스러우면서도 짠한 심정을 갖고 있다”며 “내 조국이 대한민국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고려인들의 문화·예술 공간인 고려극장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교민들로부터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는 환호를 받았다. 교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문 대통령은 극장 안에서도 기립 박수 등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강제 이주를 내용으로 한 한국어 연극을 관람한 뒤 무대 위로 올라간 문 대통령은 공연단과 악수를 나누고 이들을 격려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소련에 반기 든 1956년 김일성처럼… 장기전 대비하는 김정은

    소련에 반기 든 1956년 김일성처럼… 장기전 대비하는 김정은

    반대파 제거하고 자주·자립 행보 나서 北 “오늘의 정세가 그 나날 돌아보게 해” 하노이 결렬 후 조부처럼 자력갱생 강조북한 매체가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자력갱생’ 전략과 김일성 주석의 1956년 ‘자주·자립’ 행보를 동일시하면서 북한이 장기전을 준비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신문은 21일 ‘위대한 당을 따라 총진격 앞으로’라는 글에서 “강도적인 요구를 내세우는 적대세력의 책동으로 조국과 인민 앞에 시련과 난관이 끊임없이 조성되고 있는 오늘의 정세는 1956년의 그 나날을 돌이켜 보게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만 리 장정에 올랐던 우리 수령님(김일성)께서 무거운 마음을 안고 조국에 돌아오시었던 그 준엄했던 1956년”이라고 덧붙였다. 하노이 회담에서 빈손으로 귀국한 김 위원장의 현 상황을 동유럽 사회주의국가 방문 일정 중 급거 귀국했던 김 주석에게 빗댄 것이다. 당시 김 주석은 ‘연안파’와 ‘소련파’가 ‘중공업 우선 노선’을 수정하라는 소련 지도부에 순응해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소식을 듣자 일정 중단 후 귀국했고 8월 전원회의를 열고 반대파를 제거했다. 당시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공산당 총비서가 ‘중공업 우선 노선’을 주창하는 북한에 경공업 발전을 요구했는데 김 주석이 듣지 않자 반대파를 지원한 것이다. 이후 북한은 소련에 대한 사대주의를 배격하고 자주성을 강조했다. ‘8월 종파사건’으로 지칭하며 김 주석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꼽는 이때가 북미 협상이 결렬되고 대북제재가 지속하는 현재의 정세와 같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첫 문장에서도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실현하는 데서 우리 앞에 나서는 기본투쟁과업은 사회주의 강국 건설 위업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회주의 국가건설사상은 김 주석의 자주·자립 행보를 담은 것으로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 등이 그 내용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대북제재를 넘어설 수단으로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다. 김 주석도 당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부각하며 천리마운동을 탄생시켰고 북한은 이때 국민소득이 2.1배 증가하는 등 고도성장을 이뤘다는 입장이다. 할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면서 경제적 발전과 함께 내부 결집을 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현 국면은 김 주석 때처럼 외교적 고립의 시기이며 국면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보는 것 같다”며 “김 위원장이 이미 밝힌 대로 올해까지 3차 북미 정상회담을 기다려 보겠지만 아니라면 장기전으로 가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사설] 北 강경선회 움직임, 과거 대결시대로 돌아가선 안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달 말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크렘린궁이 그제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에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북·러 경제협력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미국과 비핵화 협상에 임하기 보다 푸틴 대통령을 먼저 만나는 것은 최근 시정연설에서 밝힌 ‘장기전’에 대비한 ‘우군 다지기’의 성격이 강하다. 러시아와 관계를 터 대북 제재 전선에 구멍을 내려는 의도다. 러시아는 북한이 생각하는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방식을 지지하고 있어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기에 앞서 양국이 공조를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미국 외면 작전은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이 차기 북미협상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아닌 다른 인물이 나오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은 그제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에서 “앞으로 미국과의 대화가 재개되는 경우에도 폼페이오가 아닌 우리와의 의사소통이 보다 원만하고 원숙한 인물이 대화상대로 나서기 바란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에 대해 “그가 끼어들면 일이 꼬이고 결과물이 날아간다”면서 “그는 지난주 국회청문회 등에서 우리의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망발을 했다”고 비난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9일(현지시간) 상원에 출석해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썼던 ’독재자(tyrant)‘라는 표현을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쓰겠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라고 답변한 데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최근 군사행보도 북미 협상재개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6일 평양을 방어하는 공군부대를 찾아 전투기 비행훈련을 지도한 데 이어 17일에는 국방과학원의 신형 전술유도무기 사격시험을 참관하며 “마음만 먹으면 못 만들어내는 무기가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잇따른 군사행보는 미국에 경고 메시지를 던지고, 동요하는 군부를 다독이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북한의 최근 강경선회 움직임에 미국은 일단 맞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은 어제 북한의 신형 전술유도무기 사격시험과 관련해 “탄도 미사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PBC방송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5일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김일성 주석) 생일에 축하편지를 보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북한의 도발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비핵화 협상 테이블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교착속에 러시아와의 우호를 다지고, 저강도 시위로 미국을 압박해 다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과거 대결시대로 돌아가는 듯한 이런 모습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북한은 명심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네차례나 찾아간 중국도 제재완화요청을 거부한 마당에 러시아가 미국과 맞설 각오를 하며 제재를 풀 가능성은 희박하다. 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부터 응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협상의 물꼬를 터야 한다.
  • 트럼프, 김일성 생일 축하…美 ‘빅딜’ 위해 정상간 우호 강조

    트럼프, 김일성 생일 축하…美 ‘빅딜’ 위해 정상간 우호 강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을 맞아 최근 축하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미국과 북한 간에 비핵화를 위한 빅딜 수용을 둘러싸고 팽팽한 기싸움이 벌어진 가운데 정상 간의 우호적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대화를 향한 문은 계속 열린 상태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7일(현지시간) 미 P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는 노력에 있어서 지금보다 얼마나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에게 사진을 보내고 편지를 보낸다. 4월 15일 김정은의 할아버지(김일성 주석) 생일에는 축하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말로 대통령은 ‘전면 압박 수비’(full-court press)를 해왔고 우리는 김정은이 어떻게 나오는지 기다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美, 북한에서 민족 제일의 명절로 치는 태양절 축하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 어떤 식으로 김일성 주석의 생일에 대한 축하를 했다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북한에서 중요한 국경일로 기념하는 태양절을 즈음해 김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대해 ‘단계적 접근’이란 표현을 사용했는데, 북한이 미국에 대해 상응조치로 무엇을 해야하는가. 미국은 또 어떤 조치들을 취하게 되나’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우리는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제거에 필요한 전략적 결정과 행동을 볼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이는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지난 주 백악관을 방문했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집중적으로 논의한 주제였으며, 우리가 전념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빅딜’에 대해 북한이 나서지도 않고 수용하지도 않는 모습을 봤다. 그러나 (빅딜)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게 트럼프 대통령이 여전히 김정은과 3차 정상회담을 가지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볼턴 보좌관은 또 ‘스몰딜, 그리고 북한에 작은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게 무엇이 문제인가?’ 라는 질문에는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실패한 협상전략을 따르지 않겠다는 점을 매우 명확히 했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의 제안을 북한이 기꺼이 받아들일지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볼턴 보좌관은 이날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제3차 북미 정상회담 전 미국이 확인해야 하는 사항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는 실질적인 표시”라고 말했다. ●北-美 모두 정상간의 우호 강조, ‘빅딜’에는 여전히 간극 PBS방송은 18일 김 위원장의 신형 전술유도무기 사격시험 현지지도 소식이 알려지기 이전에 볼턴 보좌관과의 인터뷰가 진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볼턴 보좌관의 이같은 발언은 빅딜을 토대로 한 대북 접근을 고수하면서도 김 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강조하며 북미 협상의 문을 열어두려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북한에서 가장 중시하는 태양절을 트럼프 대통령이 챙기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김 위원장에게 다시 한번 우호적 감정을 표시한 것이다. 이에 더해 특별한 메시지도 함께 보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역시 최근 최고인민회의 개최를 전후해 미국과 한국에 대한 비판적 자세를 강화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 개인에 대한 공격적 발언은 삼가고 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을 ‘독재자’라 칭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 대해서는 권정국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의 명의를 빌어 “폼페이오만 끼어들면 일이 꼬이고 결과물이 날아나곤 한다”며 북미 대화에서 빠지라고 비난까지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와 개인적인 관계가 여전히 좋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상 간의 우호 관계와는 별개로 핵 협상과 관련해서는 꽉 막힌 분위기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태양절 축하 메시지로 유화 제스처를 보냈는데도 김 위원장이 미국이 빅딜 접근을 포기하라는 취지로 대미 압박성 현지지도를 강행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법 만든 인간, 인간의 얼굴을 가진 법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법 만든 인간, 인간의 얼굴을 가진 법

    사람들은 종종 법을 만든 게 인간임을 잊는다. 법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음을 잊는다. 한번 만들어진 법은 몇 개의 비정한 숫자를 달고 가차 없는 힘을 행사한다. 그러나 그 법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앞뒤 전후 인간의 의도를 살피는 순간 가능한 것일 게다. 저자인 필립 샌즈는 저명한 인권변호사다. 국제인권법의 권위자이자 영국의 왕실변호사이기도 한 그는 대학에서 법을 가르치고 각종 매체에 시사해설자로 글을 기고하고 출연하며 활발하게 법의 역할을 말해왔다. 콩고, 유고슬라비아, 르완다, 이라크, 관타나모, 캄보디아 등 중요하고 예민한 국제인권변호 재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책에서는 법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이해, 그리고 그의 개인사가 만난다. 무대는 우크라이나의 리비우. 국제법특강 의뢰를 받은 저자는 그 역사적인 작은 도시를 방문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가족의 과거를 찾아보기로 한다. 자신의 과거사를 거의 말하지 않았던 저자의 외할아버지가 그곳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나치 전범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군사법정에 등장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와 ‘인도에 반하는 죄’의 개념이 처음 싹튼 곳이기도 하다. 리비우 대학의 두 법학도 라파엘 렘킨과 허쉬 라우터파하트, 그에 더해 히틀러의 개인변호사였고 나치 독일의 폴란드 총독이기도 했던 한스 프랑크, 그리고 저자의 외할아버지 레온 부흐홀츠. 저자는 역사의 격류 한가운데서 표표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이 작은 도시에서 네 명의 남자와 그들의 생애를 좇는다. 그리고 그들의 악연을 좇는다. 산만할 수도 있는 여정은 리비우라는 도시, 그리고 유대인 학살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긴장감 있게 얽힌다. 저자는 상상력보다는 자료에 의존하지만, 이야기는 웬만한 소설만큼이나 극적으로 펼쳐진다.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끔찍한 범죄를, 굳이 ‘개인에 대한 살해’와 ‘집단학살’로 나눌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가족의 죽음을 목격한 두 유대인 학자, ‘현대 인권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두 법학자의 삶의 궤적을 좇는 동안 우리는 법이 가진 인간의 얼굴을 본다. 그 과정은 국제법에 대해 깊이 탐구해온 저자와 함께하기에 더더욱 명쾌하게 실감 난다. 당연하게도 과거를 탐색하는 일은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게 하며,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하게 한다. 촘촘한 탐색의 과정만큼이나 밀도 있게 생각하게 한다.
  • [인터뷰] “일흔살에 발레리노 꿈꾸는 노인 덕출, 열정 갖고 뒤늦게 꿈 이룬 저 닮았죠”

    [인터뷰] “일흔살에 발레리노 꿈꾸는 노인 덕출, 열정 갖고 뒤늦게 꿈 이룬 저 닮았죠”

    동명 웹툰 원작 ‘나빌레라’ 출연 “작품서 티켓파워란 말 처음 들어, 무용은 몸 대사… 경계를 넓힐 것”“위층 사는 동네 아주머니께서 재밌다고 해서 봤던 웹툰이었는데, 출연 제안을 받고 깜짝 놀랐어요. 제목만 보고 바로 출연하겠다고 했죠.” ‘충무로 대세’로 떠오른 인기 배우의 뮤지컬 출연 이유는 뜻밖에도 너무 소박했다.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서울예술단 신작 뮤지컬 ‘나빌레라’(포스터)에 출연하는 배우 진선규(42)는 지난 1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가진 언론인터뷰에서 “아내에게 ‘이 작품이 공연이나 드라마로 나오면 오디션을 봐서라도 꼭 하겠다’고 했었다”고 소회했다.‘나빌레라’는 일흔을 코앞에 두고 발레리노를 꿈꾸는 노인 ‘덕출’과 현실의 벽 앞에서 방황하는 20대 발레리노 ‘채록’의 이야기를 다룬다. 진선규가 맡은 역할은 노인 ‘덕출’이다. 그는 “노인을 흉내내려고 연기하면 5분도 안 돼 들통이 난다”면서 “‘덕출’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삶의 가치관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덕출’의 생각이 저와 많이 비슷하다”면서 “열정이 있다면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인데, 제가 배우로서 인지도가 없는 사람이었더라도, 70세 때 단역으로 남게 되더라도 똑같은 말을 할 것”이라고도 했다. 영화 ‘범죄도시’의 조선족 조폭 연기로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고 ‘극한직업’의 ‘마 형사’로 ‘천만 배우’ 타이틀을 갖게 된 진선규는 사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공연계에서는 이미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었다. 영화와 드라마로 얻은 인지도로 광고 모델까지 됐지만, 그는 “무대로 돌아왔다는 표현이 사실 어폐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자신이 속한 극단과 함께 연극 ‘나와 할아버지’ 지방 공연을 하는 등 무대를 떠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그이지만, 발레 연기와 뮤지컬에서 많은 넘버(곡)를 소화하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다. 진선규는 “학교 다닐 때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은 배웠지만 발레는 처음이다. 최대한 선을 찾아가고 있다”며 “무용수들은 몸으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냐. 몸(무용)과 말(대사)이 결국 연결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의 개런티가 너무 많다”는 그의 답변에는 ‘천만 배우’ 같지 않은 겸손함과 진정성이 묻어났다. 무명 시절과 달라진 점을 묻자, 그는 “이번 작품에서 ‘티켓파워’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저를 보러 오려고 표를 구매하는 분이 계시다는 것인데, 적응이 아직도 안 된다”고 말했다. 1000석 규모 중극장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서는 것에 대해서도 “이 극장의 깊이 있는 무대를 봤을 때 황홀했던 기억이 있다. CJ토월극장에 너무 서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 위치에 오른 것에 대해 “운이 좋았다”는 그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오래오래 하면서, 무대에서 소통하고 ‘바운더리’(경계)를 넓히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빌레라’는 오는 5월 1~12일 공연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 아니라 자신감”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 아니라 자신감”

    예순 나이·단신 불구 세계적 패셔니스타 “자신에 가장 잘 맞는 옷 찾는 시도 필요 단순하게 입되 엘레강스함 유지해야”“패션의 완성은 얼굴이 아니라 자신감입니다.” 글로벌 패셔니스타 닉 우스터(59)는 외모가 뛰어나면 어떤 종류의 옷이든 잘 어울린다는 의미의 ‘패션의 완성은 얼굴’(패완얼)이란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오히려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본인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표출되고, 이는 스스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스타일링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옷 잘 입는 비결 좀 알려 달라”는 질문에 그는 피식 웃으며 “심플하게 단색으로 입으라”고 했지만 근본적으론 ‘자신감’에 있는 듯했다. 미국 뉴욕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는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옷 잘 입는 할아버지’, ‘간지 할배’로 통하는 패션계 인플루언서다. 인스타그램에 그의 사진 한 장이 올라오면 770만명에 달하는 팔로어들이 들썩인다. 168㎝의 단신에 한국 나이로 올해 예순이지만 흰 머리와 수염은 간결하고 댄디하며 중후한, 그의 세련된 차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그는 이탈리아 브랜드 폴앤드샤크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한 옷을 소개하기 위해 최근 방한했다. 17일 기자와 만나기로 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남성복 편집숍 란스미어에 그는 하늘색 스트라이프 아우터에 형광색 나이키 에어맥스 95를 신고 나타났다. 란스미어는 폴앤드샤크를 독점 수입하는 곳이다. 그는 “한국 날씨가 어떨지 몰라 사흘 일정에 큰 슈트케이스 두 개를 들고 오긴 했지만 사실 옷은 많이 살 필요가 없고 양질의 아이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며 “아우터 4~5개. 슈트재킷 5~6개. 티셔츠 20개, 스웨터 20개 정도만 갖춰도 충분히 ‘패피’(패션피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컬러는 키카 커 보이고 슬림해 보이는 네이비블루가 좋다. 핵심은 내게 맞는 옷을 찾으려 시도하는 자신감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운동을 열심히 해서 성취감을 기르고 활동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하루도 운동을 거르지 않으며 고기보다는 생선과 채소 위주의 식단을 지킨다고 했다. 술도 입에 대지 않는다. 절제에서 오는 자신감은 그의 패션 철학과도 연결된다. 그는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결국 자제의 미학을 보여 줄 수 있느냐의 문제”라면서 “단순하게 입되, 엘레강스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말미 그는 패션과 관련 없는 조언을 하나 했다. “상사가 오기 전에 출근하고 상사가 퇴근하면 퇴근하라”는 것이다. 비로소 그의 나이를 떠올렸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프랑켄슈타인 창조하듯… 죽은 돼지의 뇌를 살려냈다

    프랑켄슈타인 창조하듯… 죽은 돼지의 뇌를 살려냈다

    인식·지각 등 고차원적 기능은 못 살려 ‘몸과 분리된 뇌’ 등 윤리적인 논란도“창조주여, 제가 부탁했습니까? 진흙에서 저를 빚어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절 끌어내 달라고?” 200여년 전인 1818년 영국 작가 메리 셸리(1797~1851)가 쓴 괴기소설 ‘프랑켄슈타인-근대의 프로메테우스’ 서문에 실린 ‘실낙원’의 한 구절이다.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스위스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시체를 이용해 8피트(약 244㎝)의 인조인간을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괴물은 인간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 자신과 똑같은 형태의 신부까지 요구했다. 그렇지만 새로운 인종이 나와 인간을 멸망시킬까 두려웠던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괴물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살해당한다. 셸리는 소설을 쓰면서 영국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의 전기분해 기술,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이 수행한 자연발생 실험 같은 당대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을 활용했지만 사람과 똑같은 형태와 기능을 갖춘 인조인간을 만든다는 생각은 공상에 불과했다. 그런데 최근 생물학과 생체공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프랑켄슈타인’ 몬스터 기술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예일대 의대, 코네티컷 재향군인의료시스템 재활연구센터, 보스턴대 의대, 피츠버그대 신경학과, 이탈리아 파비아대 생물학·생명공학과 공동연구팀은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난 돼지의 뇌를 다시 살려내는 실험 일부를 성공하고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18일자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죽은 생명체의 뇌 기능 일부를 다시 회복시켰다는 점에서 전 세계 과학계와 윤리학계에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연구팀은 보통 동물실험을 할 때 사용하는 실험용 무균돼지가 아닌 식재료 가공시설에서 얻은 생후 6~8개월 된 집돼지의 뇌 32개를 가지고 실험했다. 실험에 사용된 돼지의 뇌는 죽은 뒤 4시간이 지난 것들이었다. 보통 포유류의 뇌는 산소 공급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만 혈류가 중단되더라도 산소와 에너지 공급이 끊겨 회복 불가능한 뇌 손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분리된 돼지의 뇌를 자체 개발한 ‘브레인 엑스’라는 장치에 넣은 다음 보호제와 안정제 등을 섞은 특수 용액을 혈액 대신 뇌 혈관에 주입해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며 뇌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뇌세포 구조, 뇌혈관 구조가 정상적으로 회복되고 신경과 세포를 파괴하는 염증 반응이 줄어드는 한편 시냅스에서 자발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관찰됐다. 그렇지만 인식과 지각 같은 고차원적 뇌 기능을 위해 필요한 전기적 활동은 관찰되지 않았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2013년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가 3조 5000억원을 투자해 진행 중인 뇌연구 프로젝트인 ‘브레인 이니셔티브’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연구를 주도한 네나드 세스탄 예일대 의대(신경과학)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혈관의 촘촘한 연결 네트워크를 통해 뇌에 보호제를 공급하면 심각한 외상후 생존율을 높이고 신경학적 결손을 줄여 뇌사의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생명윤리학자인 현인수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의대 교수는 “죽은 돼지의 뇌를 사실상 살려낸 이번 연구는 포유류의 뇌에 혈액 공급이 중단되면 몇 분 안에 사망한다는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것”이라며 “몸과 분리됐지만 살아 있는 뇌를 인격체로 보아야 하는지, 이런 연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등 논란거리들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가짜 유공자’ 현충원에 버젓이… 전수조사 통해 역사 바로 세워야

    ‘가짜 유공자’ 현충원에 버젓이… 전수조사 통해 역사 바로 세워야

    “제 증조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사실을 바로잡고 싶습니다.” 독립유공자에 이름을 올렸던 김정필 선생의 증손자 김종갑(77)씨는 2015년 광복회 대전충남지부 김영진 감사에게 오랜 세월 숨겨뒀던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는 가짜 독립유공자 문제를 두고 광복회와 시민단체 간 공방이 이어지던 때였다.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따르면 김정필 선생은 75세이던 1920년 만주 봉오동 전투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게 살해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김씨는 증조부가 만주에서 무장 독립 투쟁을 하지 않았고, 사망한 시기도 1920년이 아닌 1925년이었다고 반박했다.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던 김정필 선생은 결국 2017년 8월 허위 공적으로 서훈이 취소됐다. 독립유공자 후손이 스스로 양심고백을 한 최초의 사례다.김씨는 17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름이 같은 동명이인의 공훈을 가로채 나라로부터 혜택을 받아내고자 1968년쯤 당숙이 거짓 서훈 신청을 했던 것”이라며 “사실이 아닌 것을 묻어두는 것이야말로 죄악이고 선대를 욕보이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유공자 전수조사를 실시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가짜 유공자’ 논쟁을 없애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 김진성 선생의 장남 김세걸(72)씨는 20년간 현충원에 안장된 가짜 독립유공자를 추적해 지난해 4명에 대해 서훈 취소를 이끌어냈다. 이들 역시 김정필 선생 사례와 마찬가지로 유족이 다른 사람의 공적을 교묘히 도용해 서훈을 신청했다. 하지만 국립서울현충원에는 가짜 독립운동가들의 묘가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족들이 이장을 거부하고 대통령과 보훈처를 상대로 “서훈 취소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한 탓이다. 김세걸씨는 “아버지를 찾아갈 때마다 가짜 유공자의 묘를 보면 분노를 느낀다”면서 “더이상 정부는 나 같은 개인의 노력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직접 나서서 서훈 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짜 유공자’ 둘러싸고 여전한 갈등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에도 독립유공자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가짜 유공자’를 솎아내는 일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했다고 학계와 시민사회는 입을 모은다. 실제로 보훈처가 내놓은 ‘독립유공자 서훈 취소 현황’을 보면 최근 10년간 서훈이 취소된 ‘가짜 독립유공자’는 39명이나 된다. 2005년 대통령 소속기관으로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내놓은 반민족행위자 1006명을 토대로 2011년 허위 공적자 19명에 대한 서훈을 취소했고, 2017년에도 동일인 중복 서훈 등 가짜 유공자 15명을 가려냈다. 동아일보 설립자인 김성수(1891~1955)는 지난해 2월 서훈이 박탈됐다.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과거 자료가 워낙 부실하다 보니 같은 공적으로 이중 포상이 이뤄진다거나 흠결이 있는 분들까지도 잘못 서훈된 사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보훈처는 2013년 김천보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가 불과 4년 만에 철회했다. 이 실장은 “이미 유공자 명단에 있던 진천보 선생과 이름이 유사해 혼동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보훈처는 가짜 유공자 논란이 끊기지 않자 서훈자 1만 5180명에 대한 전수조사를 밝혔다. 이 가운데 1976년 이전 초기 서훈자 가운데 우선 검증 대상 587명에 대한 1차 조사 결과를 오는 7월 발표한다. 우선 검증 대상 587명은 1949~1976년에 문교부와 총무처가 서훈한 독립유공자 가운데 1990년 재검증에서 빠졌던 이들이다. 1990년 이전에는 건국훈장이 3등급(중장, 복장, 단장)이었다가 이후 5등급(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으로 확대됐다. 당시 보훈처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유공자 가운데 4, 5등급(애국장, 애족장)에 해당하는 인물을 선정하고자 재분류 작업을 진행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교수와 법률가 등 11명으로 구성된 독립유공자 검증위원회와 실무 작업을 도울 석사 이상 전공자 10명을 선발했다”면서 “2023년까지 유공자 전수조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간 유공자 전수조사를 강하게 주장해온 윤석경 전 광복회 대전충남지부장은 “이번이야말로 역사를 바로세우고 보훈처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국회 법안처리 늦어져 독립유공자 전수조사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에서야 겨우 시행이 됐다. 하지만 친일 행적 인물들의 현충원 안장 문제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되고도 국립묘지에 묻히는 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보훈처와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서울현충원에만 37명의 친일 인사가 안장돼 있다. 이 가운데 국가기관(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으로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된 인물도 7명이나 된다. 이들은 친일 행위가 공식적으로 확인됐음에도 현충원에서 독립유공자들과 함께 있다. 7명 가운데 한 사람인 이종찬(1916~1983)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나와 1942년 2월 일본군 최고 영예인 금치훈장을 받을 정도로 일제에 협력했지만, 해방 이후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현충원에 안장됐다. 조선인 출신 일본군 장교 가운데 금치훈장을 받은 것은 이종찬이 유일하다. 2015년 9월 안장된 김홍준(1915~1946)은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하며 동북항일연군, 팔로군 등 항일무장세력을 소탕하는 데 가담했지만 역시 해방 뒤 국방경비대총사령부 근무 경력이 인정돼 안장 자격을 취득했다. 이 밖에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친일인사 28명을 더하면 그 수는 65명으로 늘어난다. 대전현충원에 있는 친일 인사 가운데 일본군 헌병 오장 출신인 김창룡(1920~1956)은 김구(1876~1949) 암살의 배후 노릇을 했다는 의혹을 받지만, 그의 묘는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1859~1939) 여사가 묻힌 곳에서 불과 600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국가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확정된 자는 국립묘지 안장을 할 수 없게 하는 법안(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안)과 현충원 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묘를 강제 이장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법안(권칠승 민주당 의원안) 등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어느 것도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역사학자는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 인사들은 광복 뒤 무공훈장을 받는 등 공로가 인정돼 안장 자격을 취득한 만큼 이장에 반대하는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가 인정한 반민족행위자, 공보다 과가 큰 인물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역사 청산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확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005명 가운데 생존자는 2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국가유공자다. 향후 국립묘지 안장을 둘러싼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바베큐 하려다 산불 낸 이탈리아 대학생 둘에 173억원 벌금 폭탄

    바베큐 하려다 산불 낸 이탈리아 대학생 둘에 173억원 벌금 폭탄

    지난 연말 이탈리아 코모 지방에 있는 할아버지의 숲속 집에 놀러가 바베큐를 해먹으려다 산불을 낸 대학생 둘에게 당국이 1354만 2000 유로(약 173억 5500만원)란 엄청난 벌금을 부과해 논란이 되고 있다고 영국 BBC가 17일 전했다. 문제의 대학생들은 이제 스물두 살인데 당국은 법률이 정한 공식에 따라 두 젊은이가 부담해야 할 벌금 액수를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공식에 따르면 ㎡당 118~593유로로 매기는데 두 대학생은 6840㎡를 훼손한 것으로 계산해 800만~4000만 유로로 책정됐는데 그나마 대학생인 점을 감안해 깎아준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한 학생은 일간 라 스탬파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산불은 다양한 발화 원인을 갖고 있었는데 당국이 모조리 책임을 자신들에게 씌우려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오히려 “우리는 의용소방대에 실수로 불을 냈다고 자진 신고했고 불을 끄려고 무진 애를 썼다”며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화재들에 대해서도 희생양이 됐다. 우리야 말로 진짜 피해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검찰은 발화 원인을 되짚어가면 바베큐가 발원지가 되며 건조한 날씨와 맞물려 확대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두 젊은이 모두 책임이 있으며 집 주인인 할아버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산불은 몬티 베를링게라에서 여러 날 계속돼 1000㏊의 숲을 태웠는데 이 가운데 100㏊ 정도는 복원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학생의 변호인은 “두 소년이 아직 학생이어서 지불할 능력이 없는 것을 뻔히 아는데 행정 처벌에 납득할 만한 점이 이만큼이라도 있느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검찰은 현지 인터넷 매체 ‘일 조르노 코모’에 이번 벌금은 “환경을 보호하는 데 사람들에게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밝혔다. 이탈리아 매체들은 두 학생이 산불로 피해를 입은 토지 소유자들로부터 별도의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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