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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키라 혀 굴리며 괴성 지르는 자흐로타 따라하기 열풍

    샤키라 혀 굴리며 괴성 지르는 자흐로타 따라하기 열풍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던 그녀가 혀를 쑥 내밀고 앞뒤로 빨리 굴리며 요상한 소리를 질러댄다. 자신의 최고 히트곡 ‘Hips Don’t Lie’를 부르면서였다.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 하프타임쇼에 등장한 콜롬비아 출신 팝스타 샤키라(43)의 이색 퍼포먼스가 풋볼 팬들의 뇌리에 각인돼 소셜미디어에서 밈(meme, 재현·모방을 되풀이하는 문화 행위) 열풍을 낳고 있다고 야후 라이프스타일이 4일 전했다. 이날 하프타임쇼에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섹시 스타 제니퍼 로페즈(50)가 10대 소녀들과 마치 새장 속에 갇힌 것과 같은 무대를 연출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을 겨냥했다는 분석을 낳았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미국인 시청자들의 눈에 이색적으로 비친 것이 샤키라의 혀 굴리는 퍼포먼스였다. 친할아버지가 레바논 사람인 샤키라가 선보인 것은 아라비아 반도 일대에서 즐거움, 흥분, 축하의 뜻을 건넬 때 하는 ‘자흐로타(zagrouta)’ 인사법이다. ‘자그루타’로도 표기되는데 원형은 혀가 보이지 않도록 손바닥을 수평으로 코 밑에 댄 채 고음을 낸다. 보통 결혼식이나 연회 때 많이 선보이며 아주 예외적으로 장례식 같은 곳에서 서구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한다. 미시 잠브라나란 누리꾼은 “샤키라가 공연 도중 혀 굴리는 퍼포먼스를 한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며 간혹 유명한 자신의 노래 중간을 아라비아어 가사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그녀는 아프리카에 기반을 둔 ‘아프로 캐리비언’ 스타일의 안무를 추기도 해 미국 시청자들의 눈에 볼거리를 연이어 제공했다. 자신이 태어난 콜롬비아의 바란퀼라 축제 때 사람들이 추는 “손 데 네그로스” 춤사위라고 야후는 전했다. 샤키라는 경기를 앞두고 기자회견 도중 이날 쇼가 “모두를 포용하는 파티, 문화와 다양성을 통합해내는 파티”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녀는 나중에 트위터에 “내게 마팔레, 참페타, 살사, 아프로 캐리비언 리듬을 가르쳐줘 10년 이상 꿈꿔온 슈퍼볼 하프타임쇼에서 이런 무대를 자아내게 해준 콜롬비아에 감사드린다”고 조국에 대한 예를 다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아시아 문화를 연구하는 하템 바지안은 워싱턴포스트에 “샤키라의 모습은 문화적 다양성을 위한 매우 의미 있는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AP통신은 15분 정도 에너지 넘치게 진행된 이날 공연이 “미국 내 히스패닉계 이민자들이 갖고 있는 불안감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의 반이민 정책과 공공연한 인종차별 논란 등 사회적 분열상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경기 전 국가 제창도 히스패닉계 가수인 데미 로바토에게 맡기는 등 2000년 이후 급증한 히스패닉 팬층을 겨냥해 NFL이 로페즈와 샤키라 등을 무대에 올렸다고 분석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죽음 앞둔 이들의 마지막 소원을 싣고 달리는 앰뷸런스

    죽음 앞둔 이들의 마지막 소원을 싣고 달리는 앰뷸런스

    “말기 암 환자였던 어머니는 지난 1월 5일 연명치료를 중단했습니다. 임종을 앞둔 어머니는 죽기 전 손자의 결혼식을 꼭 보고 싶어 하셨어요. 우리는 5월로 예정됐던 결혼식을 1월 17일로 급히 앞당겼습니다. 문제는 어머니를 어떻게 결혼식장까지 모시느냐였어요. 그때 ‘앰뷸런스 소원 재단’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덕분에 어머니는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손자의 결혼식 참석 후 일주일 만에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신 재단에 감사를 전합니다. 모니크 페반-반 스테그 드림.” 네덜란드에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호스피스 단체가 있다. 은퇴한 구급대원인 키스 벨드보어(60)가 설립한 ‘앰뷸런스 소원 재단’(Stiching Ambulance Wens)은 2007년 2월 이후 13년간 1만4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주었다.2000년 처음 앰뷸런스 운전대를 잡은 벨드보어는 오래 전 한 환자와의 인연으로 이 재단을 꾸리게 됐다. 그는 “2006년 겨울, 환자 한 명을 싣고 병원으로 향했다. 대기가 길어져 혹시 가고 싶은 곳이 있느냐 물었더니 바다에 가고 싶다더라. 뜻대로 바다에 데려다주었더니 한참을 울더라. 알고보니 시한부 환자였다”라고 설명했다. 거동이 불편한 탓에 임종을 앞두고도 외출 한 번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이듬해부터 아내와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병원 앰뷸런스를 빌려 썼지만, 이제는 특수 제작된 6대의 앰뷸런스로 네덜란드 전역에서 270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매일 6명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다.고향 마을, 바닷가, 박물관, 미술관, 축구장 등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사람마다 제각각이지만, 앰뷸런스가 닿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달려갔다. 덕분에 어떤 이는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에서 평소 좋아하던 렘브란트의 그림을 감상했고, 어떤 이는 PSV 에인트호번의 경기를 코앞에서 즐겼다. 한 할아버지는 수십 년 만에 고향 땅을 밟았으며, 또 다른 할머니는 손녀의 웨딩드레스를 골라주는 것으로 마지막 소원을 이뤘다. 수족관은 물론이고 영화관부터 모터쇼에 이르기까지 앰뷸런스가 닿지 않은 곳은 없다. 심지어 불치병에 걸린 십 대 소년을 위해 네덜란드에서부터 스위스까지 내달리기도 했다. 집에 가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던 사람도 있었다. 벨드보어는 “한 시간 동안 말없이 집 주변을 둘러본 환자는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에게는 매우 소중한 순간이었던 것”이라고 밝혔다.지금까지 재단을 거쳐 간 사람 중 가장 어린 환자는 호스피스 병실에 있던 10개월 여아였다. 아기의 부모는 단 한 번만이라도 딸과 함께 집 소파에 앉아보고 싶다고 호소했고, 특수장비를 갖춘 앰뷸런스에 의료진을 태운 재단 측은 가족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나이가 가장 많았던 101살 노인은 재단 덕에 말을 타고 싶다던 마지막 소원을 이루고 눈을 감았다. 한 남성은 25년간 일한 동물원을 찾아 기린과 교감하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벨드보어는 “마지막 소원을 이룬 환자들이 평화롭게 세상과 작별하는 모습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라면서 “우리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는 매우 특별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의 가족과 친구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싶다”라는 뜻을 전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고전과 창신이 농울치는 모국어의 연금술사

    고전과 창신이 농울치는 모국어의 연금술사

    내 기억에 이근배 선생은 신춘문예 다관왕으로 가장 선명하다. 신춘문예는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문청들의 최고 로망이다. 선생을 이야기할 때마다 늘 따라다니는 이 화려한 이력은, 한국문학사 전체에서 한 천재 시인의 탄생을 예고한 전무후무한 기록임에 틀림없다.●천재 시인의 탄생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벽’으로 당선된 1961년 경향신문 시조 ‘묘비명’으로 2관왕에 올랐다. 이듬해 동아일보(시조 ‘보신각종’)와 조선일보(동시 ‘달맞이꽃’), 1964년엔 한국일보(시 ‘북위선’) 신춘문예에 줄줄이 당선됐다. 다른 신인상까지 살피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불어난다. 선생은 약관의 나이인 1960년 3월에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를 냈다. 표지는 빨간 빛깔이고 속표지에는 스무 살 ‘청년 이근배’의 사진이 수줍게 들어 있다. 1960년 3월 25일 출간이니까 4·19혁명 한 달 전쯤이다. 서문은 미당 서정주가 썼는데 은사로서 제자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고 있다. “경자년(庚子年) 3월 3일”에 썼으니 미당 서문도 곧 회갑을 맞는 셈이다. 이근배 선생은 백지를 꺼내더니 붓펜으로 멋있게 ‘回榜宴’이라고 썼다. 회방연이란 예전에 과거에 급제한 지 예순 돌을 기념하는 잔치를 이르던 말인데, 면앙정 송순이 회방연을 치렀다고 한다. 말하자면 올해는 첫 시집이, 내년은 신춘문예 등단이 회방연을 맞는 셈이다. 선생은 194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으니 올해 여든하나이다. 하지만 여전히 열정적인 활동으로, 누구보다도 정확한 기억으로, 내내 자신이 걸어온 한국문학의 숲길을 풍요롭게 열어 보여 주었다. ●이근배 시의 뿌리, 아버지 이근배 선생에게 아픈 가족사가 있었고 그것이 선생 시의 원형이 됐다는 것은 알 만한 분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선생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에 몸담았던 아버지에 대해 깊은 자랑과 연민과 원망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왔던 것이다. 김종길 시인은 “일제강점기부터 ‘사상가’였던 부친에 대한 이 시인의 ‘아버지 콤플렉스’가 그로 하여금 조국 분단의 비극을 유난히 뼈저리게 겪게 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선생은 최근에 그 ‘사상가’ 아버지를 독립운동가 유공자로 신청해 놓았다. “할아버지는 유학자셨고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셨어요. 당시 국내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는 사회주의 계열이 많았습니다. 아버지께는 독립운동 근거 자료가 워낙 많아 인정받으실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신청을 겨우 했으니, 그동안 자식 노릇 제대로 못했던 거지요.” 소년 근배에게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나라 찾는 일 하겠다고/감옥을 드나들더니 광복이 되어서도/집에는 못 들어오는”(‘자화상’) 분이셨다. 선생은 자신의 ‘자화상’을 전문 암송하면서 탄복할 만한 기억력을 다시 보였다. 당연히 어머니는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잠 못 드는 평생”(‘냉이꽃’)을 보내셨을 것이다. 그리고 기억나는 대로 이근배 선생과 가까웠던 세 분을 여쭈었다. 공초 오상순, 미당 서정주, 무산 조오현이다. 두 분 스승에 대한 애착과 오현 스님에 대한 애틋함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공초는 무장무애, 미당은 천의무봉, 오현은 능소능대였어요. 공초 선생은 제게 정말 많은 사랑을 주셨어요. 그분이 남기신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와 ‘자유가 나를 구속하는구나’ 하는 말씀은 지금도 ‘우주의 지휘자’로서 그분을 기억하게끔 해줍니다. 문학사에서 그동안 저평가됐는데, 유 교수 같은 분이 정확하게 평가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공초가 지어 준 이근배 선생의 아호 ‘사천’(沙泉)은 ‘오아시스’라는 뜻이다. 시인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도 이 이름을 썼다. ‘사천’은 이근배 시의 본령을 풀어 가는 데 상징적 열쇠가 돼 준다. 스스로도 “사막 같은 세상을 잘 건너가라고?/오아시스 같은 사람이 되라고?”(‘사막 타클라마칸’)라고 노래한 바 있듯이, 그의 시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불우한 역사에서 솟구쳐 오른 모국어의 샘이었기 때문이다. “미당 선생은 한국어가 어떻게 그리 아름답고 풍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살아 있는 현대시의 고전이지요. 제가 선생님 돌아가시고서 쓴 조시가 ‘미당경전’이에요.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작년에 펴낸 시집 ‘대백두에 바친다’에 실린 ‘미당경전’에서 선생은 21세기 첫 성탄전야에 돌아간 미당을 그리워하는 음성을 처연하고도 감동적으로 들려주었다. 스승의 시를 ‘경전’으로까지 명명하는 선생의 마음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그러고 보니 미당과 사천은 등단작 제목이 같다. 1936년에 미당도 신춘문예에 ‘벽’으로 당선했으니 말이다. 스승과 제자는 나이도, 신춘문예 등단도, 모두 스물다섯 터울이다.●이근배 시의 메타포, 벼루 이근배 선생은 시를 일러 “사람의 생각이 우주의 자장을 뚫고 만물의 언어를 캐내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렇게 커다란 스케일과 촘촘한 밀도로 쓰인 그의 시는 사라져버린 것들의 아름다움을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되살리면서 펼쳐져 왔다. 그 은유적 육체를 시인은 ‘벼루’에서 찾아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단단한 돌의 질감과 예술적 조형미를 아울러 갖춘 벼루는 이근배 시의 상징적 메타포로 충분할 것 같다. “할아버지 방에서 나오던 먹 냄새가 원체험이지요. 저는 불가사의한 신의 예술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옛 벼루를 비롯한 선현들의 유묵 또는 청자, 백자 등 유물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에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연벽’(硯癖)이라는 말도 있듯이 선생은 세계 제일의 벼루 컬렉터로 유명하다. ‘시행일여’(詩行一如)라고 했거니와 ‘연행일여’(硯行一如)라도 되는 듯이 선생은 벼루에서 삶과 우주, 시간과 예술을 바라본다. 귀하기 짝이 없는 수백 년 묵은 벼루들을 낱낱이 보여 주면서 스스로도 예술가로서의 존재 방식을 묻고 있는 듯했다. ●대한민국예술원 원로들에 대한 예우 지난해 말 선생은 제39대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으로서 임기를 시작했다. 시인으로는 조병화 선생에 이어 두 번째이고 문인으로 치면 일곱 번째다. “1964년 탄생한 대한민국예술원은 김동리 선생이 추진해 만든 국가기관입니다. 누가 변형시키거나 축소할 수 없지요. 회원 수는 100명으로 정해져 있어요. 이분들은 평생을 예술에 헌신해 온 원로이지만 여전히 쟁쟁한 현역들입니다. 이분들이 국가 위상을 높이는 실질적 역할을 하도록 예술원에 대한 예우 제고가 필요합니다.” 예술원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도 촘촘하게 세웠다. “제 임기 동안 ‘회원’이라는 명칭을 ‘종신회원’으로 바꾸고 국가적 차원의 예우를 통해 예술원의 위상을 높여 가려고 합니다. 또 예술원 단독 청사 입주를 꾀해 보려고 해요.” 예전에 “남들이 막장에 들어가 모국어의 보석을 캘 때 갱구 앞에서 부스러기 돌이나 줍고 있었다”(‘문학적 자전’)라고 겸손해한 그였지만, 이제는 그 선두에 서서 예술의 도약을 꿈꾸는 역할을 맡게 됐다. 그리고 선생은 개인적으로도 고향 당진에서 ‘이근배문학관’을 세우기로 했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곳이 우리 문학의 분열을 통합하는 큰 둥우리가 되리라 상상해 본다. 그러고 보니 선생의 시는 순수나 참여를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가는 우리나라의 산수를 빼닮지 않았는가. 선생은 ‘추사를 훔치다’(2014)에서 성현과 예인들의 흔적을 통해 공동체적 기억을 통합적으로 구축했는데, 거기서도 지금은 사라져간 것들의 품격과 위의를 통해 한국문학의 모뉴멘트를 이루어 가려는 의지를 강렬하게 보여 주지 않았던가. 만물의 언어를 캐내는 일을 시라고 했던 이근배 선생은 스스로도 “스며 나오는 전시대의 전아한 향기, 한지에 진한 먹으로 쓰이고 몇 세대를 넘겨도 여전히 오히려 더욱 은근하게 풍겨오는 선비 시절의 문향”(김병익)을 선사해 왔다. 비록 “글자를 읽을 줄도 모르고/붓을 잡을 줄도 모르면서/지가 무슨 연벽묵치라고/벼루돌의 먹 때를 씻는 일 따위에나/시간을 헛되이 흘려버리기도 하면서”(‘자화상’) 살아왔다고 고백했지만, 우리는 선생이 서재인 ‘신연재’(神硯齋)에서 더 웅숭깊어진 이근배 문학을 완성해 갈 것이라고 믿는다. 고전(古典)과 창신(創新)이 힘차게 농울치는 모국어의 연금술을 보여 주면서 말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박성국의 인터미션] “힘들 거야 우린… 정치 때문에”

    [박성국의 인터미션] “힘들 거야 우린… 정치 때문에”

    클래식 연주회와 뮤지컬, 발레 등 공연 중간 쉬는 시간, 인터미션. 관객은 인터미션에 생리현상을 해결하거나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1부 공연을 반추하며 계속 관람할지 이른 귀가를 할지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간 담쌓고 살았던 공연문화를 뒤늦게 업으로 삼게 된 저의 인터미션에선 무대 안팎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제가 태어난 해부터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온 분이라 처음에는 옆집 할아버지같이 친근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는데, 포디움(지휘대)에 서면 다른 사람이 되더라고요. 팔순이 다 돼 가는데 눈동자는 열여섯 소년처럼 반짝반짝 빛났던 기억이 납니다.” 1992년생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이 떠올린 클래식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78)의 첫인상이다. 이지윤이 태어나던 해, 바렌보임은 1570년 창단한 독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국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4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손에 쥔 이지윤에게 바렌보임이라는 이름은 해외 명반에나 나오는 아주 멀고, 광활한 바다 같은 존재였다. 25년이 지난 2017년 5월, 독일 유학 중이던 이지윤은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디션 무대에 올랐다. 연주가 끝나자 그를 한 노신사가 불러 세웠다. 여전히 음악감독으로 독일 명문 악단을 이끌고 있는 바렌보임이었다. 바렌보임의 눈에 든 이지윤은 그렇게 백인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독일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악단의 첫 여성이자 최연소 악장으로 우뚝 섰다.지난달 이지윤의 귀국 기자회견 현장을 지켜보면서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이뤘고, 또 창창한 앞날이 펼쳐질 이지윤이 아닌, 한 음악감독이 28년이나 계속 같은 악단을 이끌 수 있는 독일의 문화와 시스템에 대해. 오케스트라에서 음악감독과 예술감독은 단순히 단원 지휘 개념을 넘어, 그 단체의 예술적 방향을 결정·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러시아 클래식 ‘차르’(황제)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1988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됐고, 1996년엔 총예술감독으로 올라 30년 넘게 이끌고 있다. 사이먼 래틀은 베를린 필하모닉 예술감독직에 16년간 재임했다. 국내에서 이들과 견줄 만한 단체는 단연 ‘정명훈의 서울시향’일 것이다. 세계 클래식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활동하던 정명훈은 2005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요청을 받고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직을 수락했다. 당시 시향은 61세까지 보장되는 정년에, 호봉제로 인상되는 안정적인 급여 시스템 속에 ‘음악 하는 철밥통’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연간 50억원의 세금을 들이고도 평균 유료 관객 500명을 넘기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정명훈식 개혁과 조율의 결과 서울시향은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의 호평을 넘어 세계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 수준까지 올랐다. 해외의 수준급 연주자들이 서울시향으로 몰려들었고, 유료 객석 점유율은 90%를 웃돌았다. 그러나 끝은 서글펐다. 시향 대표를 향한 내부 직원들의 폭언 및 성추행 등 폭로와 정명훈을 둘러싼 감사 등 이른바 ‘서울시향 사태’ 끝에 정명훈은 2015년 12월 서울시향을 떠났다. “한국은 결국 정치가 문제죠.” 한 클래식 평론가의 입에서 나온 함축적인 진단이다. 이는 예술이라는 영역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활용하는 제도권 정치는 물론 예술계의 오랜 파벌 다툼을 아우른다. 이런 진흙탕 싸움은 예술감독 선임에 정권 입김이 더욱 짙게 작용하는 국립 예술단체에서는 더 심각해진다. 국립오페라단은 2011년 8월 취임한 제9대 김의준 예술감독을 비롯해 8년 사이 4명의 예술감독이 각종 자격 시비 등으로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리를 내놨다. 지난해 국립무용단은 안무가와 단원들의 갈등으로 개막 20여일을 앞두고 공연 자체를 취소하기도 했다. 갈등의 중심에는 원로 안무가의 ‘내 사람 심기’와 반발이 있었다. “누가 더 잘하냐가 아니라 누가 더 친하냐가 이 바닥의 경쟁력입니다.” 공연계 한 인사의 말에 이지윤을 바라보는 바렌보임의 눈빛과 표정이 또 한번 떠올랐다.
  •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정치 때문에”[박성국의 인터미션]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정치 때문에”[박성국의 인터미션]

    정통 클래식의 혁신 보여준 바렌보임‘음악 차르’ 게르기예프·베를린필 래틀16~30년 예술감독으로서 성장 이끌어정치·파벌…국립예술단체 수장의 단명“제가 태어난 해부터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온 분이라 처음에는 옆집 할아버지같이 친근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는데, 포디움(지휘대)에 서면 다른 사람이 되더라고요. 팔순이 다 돼 가는데 눈동자는 열여섯 소년처럼 반짝반짝 빛났던 기억이 납니다.” 1992년생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이 떠올린 클래식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78)의 첫인상이다. 이지윤이 태어나던 해, 바렌보임은 1570년 창단한 독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국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4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손에 쥔 이지윤에게 바렌보임이라는 이름은 해외 명반에나 나오는 아주 멀고, 광활한 바다 같은 존재였다. 25년이 지난 2017년 5월, 독일 유학 중이던 이지윤은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디션 무대에 올랐다. 연주가 끝나자 그를 한 노신사가 불러 세웠다. 여전히 음악감독으로 독일 명문 악단을 이끌고 있는 바렌보임이었다. 바렌보임의 눈에 든 이지윤은 그렇게 백인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독일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악단의 첫 여성이자 최연소 악장으로 우뚝 섰다. 지난달 이지윤의 귀국 기자회견 현장을 지켜보면서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이뤘고, 또 창창한 앞날이 펼쳐질 이지윤이 아닌, 한 음악감독이 28년이나 계속 같은 악단을 이끌 수 있는 독일의 문화와 시스템에 대해. 오케스트라에서 음악감독과 예술감독은 단순히 단원 지휘 개념을 넘어, 그 단체의 예술적 방향을 결정·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러시아 클래식 ‘차르’(황제)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1988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됐고, 1996년엔 총예술감독으로 올라 30년 넘게 이끌고 있다. 사이먼 래틀은 베를린 필하모닉 예술감독직에 16년간 재임했다. 국내에서 이들과 견줄 만한 단체는 단연 ‘정명훈의 서울시향’일 것이다. 세계 클래식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활동하던 정명훈은 2005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요청을 받고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직을 수락했다. 당시 시향은 61세까지 보장되는 정년에, 호봉제로 인상되는 안정적인 급여 시스템 속에 ‘음악 하는 철밥통’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연간 50억원의 세금을 들이고도 평균 유료 관객 500명을 넘기지 못했다.그로부터 10년 뒤, 정명훈식 개혁과 조율의 결과 서울시향은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의 호평을 넘어 세계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 수준까지 올랐다. 해외의 수준급 연주자들이 서울시향으로 몰려들었고, 유료 객석 점유율은 90%를 웃돌았다. 그러나 끝은 서글펐다. 시향 대표를 향한 내부 직원들의 폭언 및 성추행 등 폭로와 정명훈을 둘러싼 감사 등 이른바 ‘서울시향 사태’ 끝에 정명훈은 2015년 12월 서울시향을 떠났다. “한국은 결국 정치가 문제죠.” 한 클래식 평론가의 입에서 나온 함축적인 진단이다. 이는 예술이라는 영역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활용하는 제도권 정치는 물론 예술계의 오랜 파벌 다툼을 아우른다. 이런 진흙탕 싸움은 예술감독 선임에 정권 입김이 더욱 짙게 작용하는 국립 예술단체에서는 더 심각해진다. 국립오페라단은 2011년 8월 취임한 제9대 김의준 예술감독을 비롯해 8년 사이 4명의 예술감독이 각종 자격 시비 등으로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리를 내놨다. 지난해 국립무용단은 안무가와 단원들의 갈등으로 개막 20여일을 앞두고 공연 자체를 취소하기도 했다. 갈등의 중심에는 원로 안무가의 ‘내 사람 심기’와 반발이 있었다. “누가 더 잘하냐가 아니라 누가 더 친하냐가 이 바닥의 경쟁력입니다.” 공연계 한 인사의 말에 이지윤을 바라보는 바렌보임의 눈빛과 표정이 또 한번 떠올랐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클래식 연주회와 뮤지컬, 발레 등 공연 중간 쉬는 시간, 인터미션. 관객은 인터미션에 생리현상을 해결하거나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1부 공연을 반추하며 계속 관람할지 이른 귀가를 할지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간 담쌓고 살았던 공연문화를 뒤늦게 업으로 삼게 된 저의 인터미션에선 무대 안팎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 ‘장정윤 작가♥’ 김승현 딸 “아무나 못 보는 아빠의 결혼식”[종합]

    ‘장정윤 작가♥’ 김승현 딸 “아무나 못 보는 아빠의 결혼식”[종합]

    배우 김승현과 장정윤 작가의 결혼식 현장이 공개됐다. 29일 방송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에서는 김승현과 장정윤 작가의 결혼식 장면이 그려졌다. 이날 결혼식에는 김승현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팝핀현준, 박애리 부부와 최민환, 최양략, 팽현숙 부부 등 ‘살림남’ 식구들이 총출동했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김승현은 “나 장가간다”를 외치며 당당하게 입장했다. 김승현은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를 떠올리며 “많이 떨리고 아무것도 안 보였다. 혼자 힘들게 생활했던 게 떠오르더라. ‘이 순간을 위해 내가 혼자 열심히 살아왔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짠해졌다”고 전했다. 이어서 신부가 입장했다. 김승현은 “아빠가 딸을 시집보낼 때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다. 수빈이 얼굴이 떠올랐다. 수빈이가 나중에 시집갈 때 내가 그 자리에 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예쁜 딸을 보내주셔서 장인어른께 감사했다”라고 말했다. 김승현의 어머니는 “너무 행복하고 너무 좋았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서 내 몸을 꼬집어 봤다”고 했고, 김승현의 아버지는 “결혼식을 보니까 두 사람이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서로 다툼없이 잘 살아라. 그 생각 뿐이었다”고 전했다. 김승현 딸 수빈은 “아빠도 그렇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도 고생했다. 왜 내가 울려고 하지?”라고 울컥했다. 수빈은 이어 “가족이 다 고생한 것 아니까 이제 제발 고생 좀 안 했으면 좋겠다. 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흔히 말하는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 남들은 볼 수 없는 아빠의 결혼식을 봤으니까 좋은 경험이었다. 아빠 결혼 축하해. 잘 살아 제발”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김승현은 “이제 현실이구나. 아내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 앞으로 더 열심히 잘사는 살림남의 모습 보여 드리겠다”며 아내 장정윤에게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저의 아내로서 마음껏 행복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 저란 남편을 믿고 앞으로 열심히 잘 살아보자. 사랑한다”고 마음을 전했다. 한편 김승현은 MBN ‘알토란’에 출연하며 장정윤 작가와 인연을 맺고 연인으로 발전했다. 지난해 10월 열애를 인정한 바 있다. 1997년 잡지 모델로 데뷔한 김승현은 SBS ‘나 어때’ 등에 출연하며 청춘스타로 뜨거운 인기를 얻었다. 이후 2003년 미혼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활동을 중단했다. 긴 공백기를 가졌던 그는 2017년 KBS 예능 프로그램 ‘살림남’으로 방송에 복귀했고 현재 ‘살림남2’, ‘알토란’, SBS ‘진짜 농구, 핸섬타이거즈’ 등에 출연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열린세상] 묘수와 정수/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열린세상] 묘수와 정수/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아주 어릴 적 할아버지로부터 바둑을 배웠다. 처음엔 먼저 흑돌을 무수히 깔아 놓고 내가 이길 때마다 한 개씩 빼 주셨다. 흑돌 두 점 남기는 데 10년이나 걸린 걸 보면, 바둑엔 그다지 소질이 없었던 것 같다. 군 생활 중 휴가를 받아 할아버지를 뵙고 바둑 한 수를 청했다. 접바둑이 아닌 맞바둑이었지만 결과는 완패였다. 할아버지께서는 바둑이 늘었다고 칭찬하시면서 “기교보다 기본을 더 익히라”고 조언하셨다. 그것이 할아버지와 둔 마지막 바둑이었다. 바둑에서 세가 불리할 때 단번에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숨은 수를 묘수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들이 처한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묘수를 찾는다. 그만큼 위험을 감수하고 두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와의 바둑에서 궁지에 몰리면 늘 이리저리 빠져나갈 궁리만 했다. 고민 끝에 두었지만 묘수가 아니라 오히려 패착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묘수는 임시방편으로 부분적인 문제는 해결할지 몰라도 오히려 판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 그래서 장고 끝에 악수 난다는 속담이 있는가 보다. 바둑에서 묘수를 세 번 두면 진다는 격언이 있다. 묘수를 세 번씩이나 고민한다는 것은 그 바둑의 판세가 그만큼 불리하다는 뜻이다. 뻔한 수라면 자칫 상대에게 꼼수를 쓰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지금 남북관계에도 묘수가 필요하다고들 한다. 바둑에서처럼 남북관계를 타개할 묘수를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이고 지금까지 제대로 된 대북정책의 수를 두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은퇴한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의 허를 찌르는 묘수로 인공지능을 이겼다. 그러나 이제 더이상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길 수는 없다고들 한다. 인공지능이 이제는 묘수마저 정수로 기억하고 계산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남북관계에 묘수가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제안된 것만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남북관계를 만들 묘수들은 넘쳐난다. 그럼에도 지금껏 남북관계가 제자리걸음인 이유는 상상력의 부족에서가 아니라 의지와 용기의 부족 때문이다. 인생도 바둑도 타이밍이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2년 넘게 금강산 관광 재개라는 정수를 두지 않았다. 북한이 조건 없이 재개하자고 했음에도 미국 훈수에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제 그 수는 더이상 둘 수 없게 되었다. 여태껏 금강산 관광 재개를 못하고 방 빼라고 하니 이제 와서 기다려 달라고 한다. 그러다가 안 되니 미국 탓하며 개별관광이라는 수를 꺼내 들었다. 나름 묘수라고 생각하는가 보지만 이미 다 아는 수니 묘수라기 쑥스럽다. 개별관광이 가져올 또 다른 문제를 얼마나 예측하고 고민했는지에 따라 국면전환의 한 수가 될 수도 있고 오히려 악수가 될 수도 있다. 바둑판에 덩그러니 돌 한 개 올려놓고 묘수라고 할 수는 없다. 개별관광이 현 남북관계를 타개할 진정한 한 수가 되기 위해선 이와 연결시킬 다른 돌들도 제 위치에 있어야 한다. 개별관광을 하자면서 여전히 미국 눈치 보며 호르무즈 파병을 결정하고 한미연합훈련 계속하며 방위비분담금 협상에 절절매는 남한 정부를 보면서 북한은 어떻게 생각할까? 과연 개별관광이 실행하고자 하는 진정성 있는 제안인지 아니면 진정성 없는 꼼수로 볼지 궁금하다. 긴 호흡으로 가야 할 남북관계에 묘수란 없다. 당장 남북관계에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는 단말마(斷末魔)적 대책은 오히려 판 전체를 망칠수도 있다. 예기치 못한 어려움도 있고 오해도 있고 방해도 있을 것이다. 그럴수록 묘수가 아니라 정직하고 당당한 수를 두어야 한다. 한 수 한 수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는 없다. 어떤 경우이건 판세를 잘 읽고 정수가 뭔지 알고 둘 수만 있다면 질 일이 없다. 북한은 정면돌파전이란 정수를 두고 있다. 이제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의 연결고리를 우리 스스로 과감하게 끊고 남북관계에 ‘정면돌파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기교가 아니라 기본으로 돌아가 북미관계에 연동되어 있고 상호주의에 갇힌 현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남북관계 타개를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묘수를 만들어 낼 상상력보다 정수를 둘 진정성 있는 용기가 아닐까?
  • “소극장 공연 보고 꿈꾸던 소년, 대극장 책임지는 배우로 자랐죠”

    “소극장 공연 보고 꿈꾸던 소년, 대극장 책임지는 배우로 자랐죠”

    “아~멋있다. 나도 저거 해야지.” 연극 초대권이 생긴 중학생 정환이는 150원이던 지하철을 타고 무작정 서울 대학로로 향했다. 지물포를 하는 아버지가 도배일을 하고 받아 온 초대권이었다. 하지만 극장 측은 초대권만 들고 온 정환이에게 ‘팸플릿을 사야 연극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갈 교통비만 있었던 정환이는 금방 풀이 죽었다. 극장 직원은 신나서 혼자 온 소년이 안쓰러웠는지 초대권만 받고 연극 관람을 허용했다. 그렇게 난생처음 본 연극은 곧바로 정환이의 꿈이 됐다. “기국서 선생님의 연극 ‘햄릿4’였어요. 배우가 캄캄한 무대 위에서 톱조명 받으며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대사를 치는데 심장이 막 뛰고 ‘저거다! 내 눈앞에서 하고 있는 저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팍!’ 들더라고요.” 헝클어진 백발 머리를 흩날리며 허겁지겁 뛰어들어온 배우의 눈에서 빛이 났다. 지금은 삶의 터전이 된 대학로에서 인터뷰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렀지만 길이 막혀 늦었다며 숨을 헐떡이면서도 곧바로 인터뷰에 응했다. “배우는 꽃이고, 무대에서 활짝 핀다”는 배우 박호산(48)을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만났다. 15살 정환이의 꿈은 딱 10년 뒤 현실이 됐다. 1997년 뮤지컬 ‘겨울나그네’로 그토록 꿈꾸던 무대에 올랐다. 물론 이름 없는 배역, 앙상블이었다. 그는 긴 시간 대학로 극단 생활을 하며 생계를 위해 몸 쓰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육체의 고달픔보다는 무대 위 희열이 더 컸다. 그런 그를 대중에 알린 건 무대가 아닌 TV 드라마였다. 2017년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문래동 카이스트’로 주목받았고, 이어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인지도를 굳혔다. 그리고 고향인 무대로 돌아와 뮤지컬 ‘빅 피쉬’ 초연의 주역 에드워드 블룸 역을 맡았다. 예술의전당과 같은 대극장 공연의 주연을 맡은 건 23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얼굴과 이름이 얼마나 알려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조금 더 알려졌다고 해서 예전 힘들었던 생활을 반추하지도 않고요. 다만 작품의 퀄리티를 책임지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박호산은 대니얼 월리스 동명 원작 소설과 팀 버턴 감독 영화를 무대화한 뮤지컬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위대한 허풍쟁이’의 삶을 택한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을 연기한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그린 작품을 최근 박호산의 아버지와 세 아들이 다 함께 지켜봤다. 노년의 아버지는 아들 호산의 눈을 보며 말없이 씩 웃을 뿐이었고, 장성한 두 아들은 역시 감정 표현에 인색했다. 관람 제한 연령에 걸려 대기실 모니터로 아버지의 연기를 지켜본 막내아들만 울며 “아빠 이제 친구들 못 만나는 거야?”라며 무대에서 내려온 호산의 품에 안겼다. ‘호산’이라는 예명은 그가 마흔이 되던 해 그간 인생을 반성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고자 선택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함자를 그대로 따왔다. 무대 공연을 향한 애정과 진심이 느껴지는 그에게 최근 연극 화제작 ‘환상동화’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배우 강하늘이 지난해 말 드라마 성공 이후 차기작으로 선택하면서 이미 그가 출연하는 회차는 오는 3월 1일 폐막 공연까지 모두 매진됐다. 박호산은 “강하늘의 선택이 너무 고맙다”면서 “특정 배우에게만 관심이 쏠리더라도 배우에게 객석이 찬다는 건 무조건 행복하고 좋은 일”이라고 했다. 다시 작품 얘기로 돌아가 주연배우이자 세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작품 평가를 부탁했다. “‘빅 피쉬’는 꼭 보셔야 할 작품은 아니지만, 보고 후회하지 않을 절대적으로 유익한 작품입니다. 3대가 함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작품이죠. 드라마나 영화는 ‘다시 보기’가 되지만 무대 공연은 인생처럼 그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네요.”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나치도 유대인들도 똑같은 사람이었지

    나치도 유대인들도 똑같은 사람이었지

    ‘조조래빗’ 독일인 소년·유대인 소녀 ‘세상 끝 동물원’ 생체실험당한 쌍둥이 어린아이 눈으로 바라본 나치·전쟁 참상 그 속에서도 빛났던 인간의 존엄성 전해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지 75년, 그간 나치의 참상을 조명한 작품들은 수없이 탄생했다. 최근 유대계 감독·작가들 손에서 나온 이 작품들은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조조 래빗’과 어피니티 코나 작가의 소설 ‘세상 끝 동물원’이다. ●‘기생충’ 제치고 토론토서 관객상 ‘조조래빗’ 새달 5일 개봉하는 영화 ‘조조 래빗’은 아돌프 히틀러를 우상으로 품고 사는 열살 소년 조조의 얘기다. 전쟁 열기에 한껏 고무된 독일인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병정놀이하듯 유쾌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집에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매켄지 분)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혼란에 휩싸인다. 와이티티 감독이 직접 연기한 히틀러는 과장된 액션으로 아이를 어르고 달랜다. ‘수백만 목숨을 앗아간 전범을 희화화해도 되는가’라는 의문에도, 아이의 상상 속 인물이기에 심리적 방어기제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뿔과 꼬리가 있는 유대인’ 같은 허무맹랑한 우생학을 주장했던 히틀러를 상기하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아이러니로 똘똘 뭉친 게 전쟁일 터. 영화는 ‘희로애락을 가득 담은 롤러코스터’(빅토리아 애드보케이트)라는 외신 평처럼, 러닝타임 108분 동안 인간이 가진 모든 감정을 끄집어내 고양시킨다. 지난해 9월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기생충’ 등을 제치고 관객상을 수상했고, 새달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이유가 충분히 설명된다.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미국 작가 어피니티 코나의 소설인 ‘세상 끝 동물원’(문학동네)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강요당한 쌍둥이 소녀의 눈을 통해 홀로코스트를 증언한다. 서로의 생각을 모두 공유하는 열두 살 쌍둥이 펄과 스타샤는 우생학 연구에 골몰하던 나치 의사 요제프 멩겔레의 눈에 들어 ‘동물원’이라는 막사로 간다. 실제로 멩겔레는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유전적으로 특이한 아이들 특히 일란성쌍둥이 1500쌍을 대상으로 한 잔악무도한 생체실험으로 악명이 높았던 인물이다. 스타샤는 스스로를 멩겔레의 실험 대상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그 대가로 할아버지와 엄마가 수용소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지만 갑자기 사라진 펄 앞에서 절망한다. ●손자뻘 유대계 감독·작가들의 작품 이들 작품을 만든 와이티티 감독과 코나 작가는 둘 다 197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유대계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뉴질랜드 출신으로 유대인 어머니를 둔 와이티티 감독은 어려서 인상 깊게 읽었던 크리스틴 뢰넨스의 소설 ‘갇힌 하늘’을 각색해 ‘조조 래빗’을 만들어 냈다. 폴란드계 유대인인 코나 작가는 생체실험 생존자 쌍둥이의 증언록 ‘불길의 아이들’을 읽고 10여년 조사와 집필 끝에 2016년 ‘세상 끝 동물원’을 발표했다. 끝끝내 살아남은 선대 이야기에서 이들이 상기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조조 래빗’의 조조와 친구 요키는 어른들이 지은 괴담에 맞서 유대인들도 다 똑같은 인간임을 일찌감치 깨닫는다. ‘세상 끝 동물원’ 속 두 자매 옆에는 허기를 달래는 법을 알려 주는 씩씩한 알비노 소녀, 아이들이 좀더 오래 살아남도록 신상정보를 조작하는 일명 ‘쌍둥이 아빠’가 있다. 여기에 두 작품 모두 ‘춤’으로 인간의 자유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조조의 집에 갇혀 지내던 엘사가 해방의 그날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도 춤이며, 우리에 갇혔던 펄이 끝까지 소중하게 간직했던 것도 양심적인 의사 미리가 준 탭 슈즈였다. 아이들에게서 부모, 형제와 함께 춤을 앗아간 전쟁에 대한 반성이 이들 작품에 오롯이 녹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포토] ‘마스크 뚫는 아쉬움’…할아버지의 손녀 배웅

    [포토] ‘마스크 뚫는 아쉬움’…할아버지의 손녀 배웅

    설 연휴가 끝나가는 26일 서울역에서 한 할아버지가 손녀들을 배웅하고 있다. 뉴스1·연합뉴스
  • [슬기로운 문학생활]당신이 설 연휴에 읽어야 할 책

    [슬기로운 문학생활]당신이 설 연휴에 읽어야 할 책

    패기만만하고 호기롭게 적어본다. 설 연휴에 문학책을 읽어보자고. 안 읽어도 상관없지만, 넷플릭스에 지친 당신이 불현듯 활자를 읽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하나만 파다 보면 좀 질리는 법이고, 설 연휴나 되니까 당신이 책을 집어들 수도 있으니. 혹여나 읽어보고 재미가 없으면 기자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도 된다. ●강화길 ‘음복’: 가족 내 진짜 ‘빌런’은 누구인가. 장례식장에서 다른 가족들이 일하는 동안 본인 앞으로 들어온 조의금을 세보는 사람, 식구들이 모이면 너는 성적이 어느 정도이고 취직은 언제할 생각이냐고 묻는 사람.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가. 올해 젊은작가상 대상에 빛나는 강화길 작가의 ‘음복’에 등장하는 시고모의 모습이다. 소설 속 표현에 따르면 ‘집안마다 한 명씩 있는 그런 사람’. 시할아버지 제삿날, 고모의 무례한 질문에 점점 더 기분이 나빠진 ‘나’는 얼결에 ‘음복’까지 한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집안마다 한 명씩 있는 그런 사람’은 과연 시집에만 있을까? 그리고 끝판왕 같은 ‘진짜 악역’은 원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가족 내 진짜 ‘빌런’은 누구인지 다각도로 살펴보게 하는 작품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낸 ‘소설 보다 2019,가을’에 실렸다. ●박해울 ‘기파’(허블): 문턱이 낮은 SF소설 ‘SF가 유행이라며’ 라는 말을 문학에 관심 없는 이들도 한 번 쯤은 들었을 법 하다. 지난해 김초엽 작가 같은 걸출한 신예의 등장, 기존 작가들의 활약, SF 무크지의 등장으로 SF 시장은 더없이 풍성해졌다. 그러나 SF 문학에 입문하는 일은 소설 좀 읽는다 하는 사람도 쉽지가 않다. 특히나 ‘스페이스 오페라’류의 하드한 SF는 문학 담당인 기자에게도 만만치가 않았다. ‘나도 SF 한번 읽어보자’하는 초심자에게 권한다. 지난해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부문을 수상한 ‘기파’다. 향가 ‘찬기파랑가’에 SF를 접목한 작품인 ‘기파’는 신라 시대 화랑으로 널리 알려진 ‘기파’가 해독자에 따라 의사로도, 승려로도 해독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추리 형식의 미스터리 SF다. 사이보그와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근미래에, 예기치 못한 운석 충돌로 난파된 우주크루즈 안에서 벌어지는 추격극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술술 넘어가는데다 어려운 과학적 설정이 없어 조금 조숙한 초등학생 조카와도 나눠 볼 수 있다. SF 못지 않게 요즘 유행하는 단어인 ‘90년대생’의 사회복지사인 작가가 썼다. ●김보라 ‘벌새’(아르테): 시나리오로 다시 보는 ‘벌새’ 영화 아니다. 국내외 영화제 45관왕 달성에 빛나는 영화 ‘벌새’의 시나리오집이다. 영화를 보고 보면 더욱 의미가 풍부해질 것이다. 영화에 담지 않은 신들도 모두 들어가 있기에. 순서를 바꿔도 상관은 없다. 내가 만든 머릿속 영화와 실제 영화를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기에. 인물들 대사의 뉘앙스를 고르고 고르는 김보라 감독 특유의 작법을 되새기는 데 이만한 책이 없다. 가령, 오빠에게 맞아 고막이 터진 어린 은희를 진찰하는 의사의 말 같은 것. “혹시… 진단서가 필요하니?” 모종의 폭력이 일어났음을 눈치챘지만 은희의 의사를 묻는 것이 먼저인 그의 행동을 감독은 섬세한 말의 뉘앙스를 통해 구현해냈다. 뒤에 실린 영화 리뷰도 놓칠 수 없다. 최은영, 남다은, 김원영, 정희진의 글에 이어 그래픽 노블 작가 앨리슨 벡델과 김 감독의 대담까지…. 영화 ‘벌새’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감독의 벌새 같은 날갯짓을 그의 입으로 직접 들을 수 있다. ●창작동인 ‘뿔’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아침달): 90년대생들의 시 90년대생 시인 3명으로 이루어진 창작동인 뿔의 시집이다. 최지인·양안다·최백규 세 명의 시인으로 이루어진 ‘뿔’은 미래를 지향한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미래는 무조건적인 장밋빛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바라보는 슬픔 어린 미래가 마냥 먹빛도 아니다. 이들에게 있어 슬픔은 또한 아름다운 것이거나, 혹은 슬픔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능력이 이들에게는 있노라고 출판사 측에서는 설명한다. 슬픔도 공감을 동반한다면,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것일테다.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너에게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게 계속 일할 의지 계속 살아갈 의지가 없다는 게 슬펐다’(54쪽, ‘기다리는 사람’ 부분) 처럼 현실에 발 디딘 시편이 많다. 그 덕에 시가 일상과 멀리 있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 3명의 시인들은 각 시편마다 이름을 적지 않았다가, 마지막 장에 깜찍하게 밝혔다. 아까 그 시의 마지막은 ‘우리는 가만히 누워 손과 발이 따듯해지길 기다렸다’이다. 따뜻한 설 연휴 되기 바란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빛과 소금이 있었네 - 신안 소금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빛과 소금이 있었네 - 신안 소금박물관

    #신안소금박물관 #천일염 #염전체험 “평양감사보다 소금장수” 우리네 속담에도 소금장수는 귀히 대접받았던 듯 하다. 구황염(救荒鹽)이라 하여 조상님들도 기근이 들었을 때 다른 곡식은 못 내어주어도 소금만큼은 필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주린 배는 소나무껍질이라도 채우면 되지만 체내의 염도(鹽度)가 떨어지면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소금은 곧 생명의 물질이었다. 요사이 들어 ‘3백(白)’ 음식이라 하여 흰 색 먹거리인 설탕, 밀가루, 소금을 피해야 한다고 그리도 외쳐 된다. 특히 ‘소금’, 즉 염화나트륨(Nacl)에 대해서도 너무나도 부정적인 인식이 퍼져 있다. 그러나 인체의 혈액이나 세포 안에는 약 0.7~0.9%의 염도가 유지되어야 각종 병균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엄마 뱃속의 양수 역시 0.9%의 염도가 유지되어야 태아는 각종 전염균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 또한 체내의 염도가 떨어지면 발열, 두통, 의식장애, 간질 등이 일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혈액이 산성화가 되면 위액의 산도가 떨어지고 철분의 흡수가 방해받아 결국 탈진이나 체력저하로 신체는 곧바로 피폐해진다. 생명을 지키는 소금, 신안의 소금박물관으로 가 보자.인류의 역사는 소금의 역사다. 소금을 얻기 위해 일을 하였고 봉급(샐러리. Salary)을 받았다. 여기서 ‘샐러리’ 어원은 누구나 다 알듯이 소금을 뜻하는 라틴어 ‘Sal'에서 왔다. 우리가 먹는 샐러드(Salad) 역시 채소에 소금을 뿌린 음식을 ‘Salade'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되었고 로마시대에는 군인들에게만 소금으로 봉급을 주었기 때문에 군인을 뜻하는 말이 ’Soldior(소금을 받는 자)‘가 되었다. 이외에도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의 삶을 지탱하던 힘은 곧 소금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이런 소금을 얻는 방법은 다양하다. 인류가 최초로 소금을 채취한 방법은 바로 육지의 소금광산에서 소금을 채굴하여 얻은 암염(巖鹽), 흔히들 꽃소금이라 부르는 염도가 높은 정제염, 바닷물을 끓여 얻는 전오염(煎熬鹽), 바닷물을 염전에 담아 햇빛(天日)에 증발시켜 만드는 천일염 등이 있다. 이중 우리나라에서는 천일염(天日鹽)방식의 소금 제작 방법이 서해 갯벌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실제 한해 전세계에서 거래되는 소금은 2억톤에 이르며 이중 60%는 암염이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대개 천일염, 정제염 등이 그 뒤를 잇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서남해에서 한 해 28만여 톤을 생산하는 갯벌 천일염은 세계적으로도 불과 0.2%에 불과한 희귀 제조방식의 천일염이다. 특히 천일염은 칼륨, 칼슘, 마그네슘 등의 미네랄이 풍부하여 천일염으로 만든 음식물의 경우 맛의 풍미가 여지없이 살아난다.바로 이러한 천일염의 제작 방식 및 염전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신안 소금박물관이다. 140만평 규모의 국내 최대 염전인 태평염전에 자리한 소금박물관은 2007년 7월에 개관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소금박물관에는 총 7개의 개별 섹션이 만들어져 소금의 생산 역사, 소금의 체내 역할, 소금의 미네랄 구성, 천일염 생산 방식 등 다양한 전시물들이 마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염전에서 소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특히 현재 소금박물관으로 이용되는 건물은 1945년 염전 설립 초기에 건축된 석조 소금 창고로 이후 목재창고, 자재창고로도 사용되기도 한 곳이었다. 옛모습이 원형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근대 석조 건축사에도 그 의미가 커 2007년 우리나라 염전으로서는 최초로 근대문화유산(제361호)로 지정 등록된 곳이기도 하다. <신안 소금박물관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5개 만점)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행사 단체 관광 3. 가는 방법은? -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지도증도로 1058 - 지도 읍내 사거리에서 증도우전해수욕장 방면으로 좌회전 후 8Km(805번국도) 이동 →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해서 오시면 사옥도 지신개선착장 도착 → 증도 버지선착장 → 소금박물관(도보 10분 거리) 4. 신안 소금박물관의 특징은? - 말 그대로 하얀 소금밭을 만날 수 있다. 드넓은 염전의 풍광이 아름답다. 5. 방문 전 유의 사항은? -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일정을 좀 더 여유롭게 잡을 것. 6. 신안 소금박물관에서 꼭 볼 곳은? - 소금박물관 내의 여러 전시품. 소금박물관 옆의 염전, 소금창고 7. 토박이들로부터 확인한 추천 신안 먹거리는? - 짱뚱어탕은 꼭 먹자. 짱뚱어탕 ‘이학식당’, ‘안성식당’, 삼겹살 ‘미연식당’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saltmuseum.org/ 9. 주변에 더 방문할 곳은? - 태평염생식물원, 소금바람길, 소금동굴 힐링센터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신안에 위치한 소금박물관은 우리나라에 위치한 박물관 중에서 나름의 색깔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박물관이다. 단지 소금의 역사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 주변의 염전과 소금창고 등의 모습에서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들의 땀의 시간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초대권 들고 홀로 소극장 찾은 소년, 대극장 무대 책임지는 ‘대어’로 우뚝

    “초대권 들고 홀로 소극장 찾은 소년, 대극장 무대 책임지는 ‘대어’로 우뚝

    “아~멋있다. 나도 저거 해야지.” 연극 초대권이 생긴 중학생 정환이는 150원이던 지하철을 타고 무작정 서울 대학로로 향했다. 지물포를 하는 아버지가 도배일을 하고 받아온 초대권이었다. 하지만 극장은 ‘팸플릿을 사야 연극을 볼 수 있다’며 팸플릿 구매를 요구했다. 집으로 돌아갈 차비만 있었던 정환이는 금방 풀이 죽었다. 극장 직원은 신나서 혼자 온 소년이 안쓰러웠는지 초대권만 받고 연극 관람을 허용했다. 그렇게 난생처음 본 연극은 곧바로 정환이의 꿈이 됐다. “기국서 선생님의 연극 ‘햄릿4’였어요. 배우가 캄캄한 무대 위에서 탑조명 받으며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대사를 치는데 심장이 막 뛰고 ‘저거다! 내 눈앞에서 하고 있는 저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팍!’ 들어왔어요. 그 마음과 꿈은 그 뒤로 한번도 변한적이 없죠.” 헝클어진 백발 머리에 골전도 이어폰을 걸치고 허겁지겁 뛰어들어온 배우의 눈에서 빛이 났다. 지금은 삶의 터전이 된 대학로에서 인터뷰에 늦지 않게 출발하느라 서둘렀지만 길이 많이 막혀 늦었다며 숨을 헐떡이면서도 곧바로 인터뷰에 응했다. “배우는 꽃이고, 무대에서 활짝 핀다”라는 배우 박호산(47)을 그가 매일 시간여행 중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만났다.15살 정환이의 꿈은 10년 뒤 현실이 됐다. 무대에 서는 배우만을 꿈꾸며 중앙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했고, 1997년 뮤지컬 ‘겨울나그네’로 그토록 꿈꾸던 무대에 올랐다. 물론 이름 없는 배역, 앙상블이었다. 긴 시간 대학로 극단 생활을 하며 그 시절 여느 연극배우가 그랬듯 생계를 위해 고층빌딩 외벽 청소부터 몸 쓰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육체의 고달픔보다는 무대에서의 희열이 더 컸다. 그런 그를 대중에 알린 건 무대가 아닌 TV 드라마였다. 2017년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문래동 카이스트’로 주목받았고, 이어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주인공 동훈(이선균 분)의 형 상훈 역으로 인지도를 굳혔다. 앞서 2014년 개봉한 영화 ‘족구왕’에서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선배 형국 역으로 얼굴을 알렸다.고향인 무대로 돌아와서는 대극장 뮤지컬 ‘빅 피쉬’ 초연의 주역 에드워드 블룸 역을 맡았다. 이미 대학로에서는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 ‘명배우’이지만, 예술의전당과 같은 대극장 공연의 주연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얼굴과 이름이 더 알려지고 안 알려지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조금 더 알려졌다고 해서 예전 힘들었던 생활을 반추하지도 않고요. 다만, 주연과 조연 비교우위를 따지지도 않지만 배역이 커지면서 작품의 퀄리티를 책임지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할 뿐이죠. ‘빅 피쉬’도 그런 고민 끝에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에 하겠다고 했습니다.” 박호산은 다니엘 월리스 동명 원작 소설과 팀 버튼 감독 영화를 무대화한 뮤지컬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위대한 허풍쟁이’의 삶을 택한 아버지 에드워드를 연기한다. 가장 가깝고도 낯선 사이인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그린 작품을 최근 박호산의 아버지와 세 아들이 다 함께 지켜봤다. 노년의 아버지는 아들 호산의 눈을 보며 말없이 씩 웃을 뿐이었고, 장성한 두 아들은 역시 감정 표현에 인색했다. 아직 7살이라 관람 제한연령에 걸려 대기실 모니터로 아버지의 연기를 지켜본 막내아들만이 울며 “아빠 이제 친구들 못 만나는 거야?”라며 무대에서 내려온 호산의 품에 안겼다. ‘호산’이라는 활동명은 그가 40살이 되던 해 그간 인생을 반성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고자 선택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함자를 그대로 따왔고, 개명까지 생각했으나 까다로운 절차 탓에 예명으로 쓰고 있다. 그는 “대출 광고 전화가 오더라도 ‘박호산 고객님~’ 이러면 부드럽게 받게 된다”며 웃었다.무대 공연을 향한 애정과 진심이 느껴지는 그에게 최근 연극 화제작 ‘환상동화’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배우 강하늘이 지난해 말 드라마 흥행 이후 차기작으로 선택하면서 이미 그가 출연하는 회차는 오는 3월 1일 폐막 공연까지 모두 매진됐다. 박호산은 “강하늘의 선택이 너무 고맙다”라면서 “특정 배우에게만 관심이 쏠리더라도 배우에게 객석이 찬다는 건 무조건 행복하고 좋은 일”이라고 했다. 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작품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동료들에게는 자신을 알리고 성장할 기회가 된다”고 덧붙였다. 다시 작품 얘기로 돌아가, 주연 배우이자 세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작품 평가를 부탁했다. “빅 피쉬는 꼭 보셔야 할 작품은 아니지만, 봐서 후회되지 않는 절대적으로 유익한 작품입니다. 3대가 함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작품이죠. 드라마나 영화는 ‘다시보기’가 되지만 무대 공연은 그 순간이 지나가면 끝입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곽상도 “문 대통령의 딸 문다혜씨의 고발 환영한다”

    곽상도 “문 대통령의 딸 문다혜씨의 고발 환영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가족에 대한 의혹을 꾸준히 제기해 온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이 청와대의 고발 조치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곽 의원은 23일 “청와대와 문 대통령의 딸 문다혜의 진실규명을 위한 조치를 환영하고, 무엇이 허위 내용인지 가리는 진상규명에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곽 의원은 지난 21일 청주의 한 사업가가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와 친분을 이용해 부동산을 특혜 매입해 5000억 원대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김정숙 5000억 의혹의 핵심은 문 대통령 부부와 친분이 있는 사업가 장 모씨가 청주시로부터 343억 1000만 원에 매수한 부동산이 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매수인의 현대화사업 제안으로 특혜 용도 변경되어 5000억짜리 사업으로 둔갑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허위라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은 모든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곽 의원은 문다혜씨의 태국 이주에 대해서도 여러 의혹을 제기했으며, 이에 대해 문씨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태국에 간 것 외 나머지는 허위”라고 말했다. 곽 의원은 “왜 대통령 딸이 태국으로 이주했는지, 해외 경호비용은 얼마인지, 또 대통령 사위는 태국에서 직장을 가졌는지, 직장이 없다면 대통령은 딸에게 한 푼도 증여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어떤 식으로 연간 1억 정도 되는 해외체류비용을 쓸 수 있는지도 밝혀달라”고 맞받아쳤다. 문씨의 고발 의사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밝힐 수 있다면 환영한다며 또 다시 고발이 말로만 그칠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감반원에게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검찰수사 정보를 요구했다고 곽 의원이 공개한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도 아직 아무런 조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곽 의원은 “이번 문다혜씨의 고발 예고는 지난번처럼 공갈로 그치지 말고 진실규명을 위해 서로 증거자료를 공개하며 국민 앞에 검증을 받으면 좋겠다”고 비꼬았다. 민주당 측은 곽 의원의 대통령 가족에 대한 의혹 제기에 “경호의 대상인 대통령의 가족 신상에 관한 부분은 보안 사항으로,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문 대통령의 딸 문다혜씨 아들 학비가 과외활동비 등을 포함하면 연간 4000만원이라고 말하는데, 사실도 아닐뿐더러 과장 왜곡의 교묘한 수법”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청와대가 구체적으로 대응하다 보면 학교 이름이 노출되고 대통령 가족의 신상이 노출돼 안전 문제가 우려되는데, 이를 곽 의원이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 의원은 문 대통령의 가족 의혹 제기에 이어 지역구 세습이란 지적을 받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문석균씨도 공격했다. 문씨는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힌 경기도 의정부 대신 국회의장 공관이 있는 한남동으로 자신의 아들을 전입신고해 서울의 초등학교를 졸업하도록 했다. 곽 의원은 “문씨는 국유재산인 국회의장 공관의 세대주가 누구인지, 한남초를 졸업한 아들은 어느 중학교에 진학했는지부터 밝히는 게 국민 앞에 도리”라며 “그러면 논란이 되고 있는 ‘아버지 찬스’ ‘할아버지 찬스’ 비판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정치DNA는 타고날까…세계의 세습정치인은

    정치DNA는 타고날까…세계의 세습정치인은

    문희상 아들 지역구 세습 논란으로 본 해외의 세습 정치일본은 세습정치 천국...日 고이즈미 아들, 차기 총리 물망트뤼도 加 총리 부친도 유명 총리, 美 케네디가家도 유명‘지역구 세습’ 비판이 불거진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문석균 더불어민주당 경기 의정부갑 상임 부위원장의 공천 문제로 정치권 내 논란이 뜨거웠다. 문 부위원장은 앞서 23일 결국 출마를 포기하기로 했지만, 과거에도 이같은 논란이나 실제 대를 이어 정치에 도전하는 사례는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당장 우리는 세계에서도 흔치 않게 부녀 대통령을 낳은 국가이기도 하다. DNA를 물려받는 것일까, 단지 아버지의 후광을 덕본 것일까. 해외 사례들을 살펴봤다. ●日 세습정치 배경된 ‘3반’ 세습 정치의 대표적인 사례로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국가는 바로 이웃인 일본이다. 김해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최고회의 공개 발언에서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정치권력의 대물림에 대해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일본에서는 세습 정치의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아베 신조 현 총리만 해도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중의원에 이어 대를 이어가며 정치를 하고 있다. 젊은 나이와 준수한 외모를 갖췄고, 차기 총리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은 이름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그가 실제 총리가 되면 대를 이어 일본 내각을 이끄는 셈이 된다. ‘패밀리 비즈니스’ 같은 형태가 된 일본의 세습 정치는 해외에서도 연구대상으로 꼽힌다. 일본에서는 ▲기반 ▲칸반(간판·지명도) ▲카반(가방·정치자금)등 ‘3반’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정치적 자원으로 꼽는데, 정치가문에서는 이같은 ‘3반’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치를 처음 시작하는 정치신인들과는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외교안보 전문 매체인 디플로마트는 “2세 정치인은 ‘고엔카이’로 불리는 후원회를 선대로부터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다”면서 “세습 정치인의 승률은 80% 수준으로, 2대, 3대를 넘어 5대 정치인까지도 가능할 수 있다”고 전했다.●정치DNA 물려받나 해외뉴스의 단골손님들인 세계의 현직 지도자들 가운데에서도 정치 명문가 출신은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캐나다 진보의 아이콘이자 40대 젊은 총리로 주목을 받았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대를 이어 캐나다를 이끌고 있는 2세 정치인이다. ‘캐나다의 케네디’로 불리는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는 17년간이나 총리를 지낸 정치의 거목이었다. 2015년 아들 트뤼도의 총선 압승 배경에는 아버지의 후광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부자 총리’의 임기를 모두 합하면 이미 20년을 넘긴 셈이 된다. ‘영국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외조부가 유럽인권위원회 의장을, 아버지 스탠리 존슨은 유럽의회 의원을 지냈다. 영국의 경우 상원은 세습·지명되기 때문에 당연히 세습 의원이 많을 수밖에 없는 제도적 배경을 갖고 있기도 하다. 대를 이어 국가를 이끄는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부시 가문을 꼽을 수 있다.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는 각각 미국의 41대와 43대 대통령을 지내며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미국의 또다른 정치명문가는 케네디 가문이다. 존 F 케네디의 동생 에드워드 케네디의 2009년 타계 이후 미 정가의 혈통주의도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최근 조 케네디 3세 하원의원 등 케네디가 젊은 정치인들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문희상 국회의장 아들 “아들 관사 전학은 불법 아냐”

    문희상 국회의장 아들 “아들 관사 전학은 불법 아냐”

    ‘지역구 세습’ 논란 속에 있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문석균(48) 더불어민주당 의정부갑 상임 부위원장은 23일 “아직 아무것도 결정한 것은 없지만 버티기 힘들다”고 밝혔다.문 부위원장은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있지만 아버지와는 상의하지 않고 있다”며 “주변 많은 분과 상의하고 있는데 당과 지역에 누가 되지 않는 방안을 찾아 조만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식으로 결정을 내리든 최근 아들 학교와 관련해 의혹을 제기한 부분에 대해서는 끝까지 죄를 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 부위원장은 자신의 아들을 국회의장 공관이 있는 한남동으로 전입신고를 하고, 한남동 초등학교를 졸업하도록 해 또 논란이 일었다. 문 부위원장은 지난 22일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곽 의원은 지난 21일 자유한국당 공개회의에서 “문 부위원장의 초등학생 아들이 전교 회장에 당선되는 데 유리하도록 선거 규칙이 변경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문 부위원장의 아들은 한남동 초등학교에서 전교 회장에 당선됐는데 이에 대해서도 곽 의원이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문 부위원장은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끼워 맞추기식 의혹 제기로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 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와 함께 자녀 교육과 관련해 ‘아빠 찬스’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모 언론사 기사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해당 기사는 문 부위원장의 아들 주소를 할아버지인 문희상 국회의장 공관으로 옮기고 전학한 내용을 보도하면서 ‘아빠 찬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문 부위원장 측은 “법적으로나,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사안인 만큼 ‘아빠 찬스’란 표현은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문 부위원장은 아버지인 문 의장이 여섯 번 당선된 지역구에 출마하면서 ‘지역구 세습’이란 지적을 받았지만 지난 11일 연 ‘그집 아들’이란 책의 출간 행사에서 “아빠 찬스를 거부하겠다”고 발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정부갑 지역을 전략공천 대상지에 포함하면서도 경선 지역으로 돌릴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김해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0일 “부모가 현재 국회의원으로 있는 지역에서 그 다음 임기에 바로 그 자녀가 같은 정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 것은 국민정서상 납득하기 어렵다”고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김성환 당대표 비서실장도 22일 “최근 우리 사회에 공정의 가치가 많이 높아져 있어 일단 당의 우려, 국민의 정서를 문희상 의장과 당사자에게 전달했다”고 공개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세뱃돈 적정 금액은?…주는 어른은 “1만원” 받는 어린이는 “5만원”

    세뱃돈 적정 금액은?…주는 어른은 “1만원” 받는 어린이는 “5만원”

    평균 금액은 어른 2만 2천원, 어린이 3만 8천원어른 지갑 사정 생각하는 초등학생 답변도 있어설 명절을 앞두고 세뱃돈을 주는 어른들과 받는 어린이들의 새뱃돈 적정 금액은 얼마나 다를까. EBS가 교육 콘텐츠 전문회사 스쿨잼을 통해 초등학생과 어른 1138명을 대상으로 적정한 세뱃돈에 대해 온라인 설문을 벌인 결과 어른은 1만원이라는 답이 가장 많은 데 비해 초등학생은 5만원이 가장 적당하다고 답했다. 22일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어른 응답자 중 43.0%가 1만원을 택했으며 3만원(20.0%), 2만원(14.5%), 5만원(11.7%), 5000원(3.5%) 순이었다. 어른은 절반가량이 1만원을 택했지만, 초등학생은 1위부터 4위까지 근소한 차이를 보였다. 5만원이 가장 적당하다고 답한 초등학생이 21.3%로 가장 많았고, 이어 3만원(20.1%), 1만원(19.5%), 2만원(18.0%)이 뒤를 이었다. 10만원은 어른 응답자 중 1.1%, 초등학생 응답자의 6.6%가 택했다. 응답자가 답한 세뱃돈 평균 금액은 어른은 2만 2000원, 초등학생은 3만 8000원으로 1만 6000원 차이가 났다.이 금액은 2018년 집계한 세뱃돈과 같은 차이로, 지난 조사에서는 어른과 초등학생의 평균 세뱃돈 금액이 각각 2만원, 3만 6000원으로 조사된 바 있다. 2년 사이 평균 금액은 어른과 초등학생 모두 동일하게 2000원 상승했다. 나이나 학년별로 세뱃돈을 다르게 줘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어른들 대부분은 초등학교 저학년은 1만원, 고학년은 2만~3만원이 적당하다고 답했다. 응답 중에는 초중고생 모두 다르게 줘야 하므로 초등학생은 적은 금액을 줄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초등학생 답변 중에는 어른의 지갑 사정을 생각하는 대답도 많은 점이 눈에 띄었다. 답변 중에는 “우리 할아버지는 손주가 많아서 많이 주면 할아버지 돈을 다 써야 한다”, “부모님 지갑에 있던 몇십만원이 순식간에 없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는 내용도 있었다. 세뱃돈을 받으면 부모님이 가져가는 풍경에 “3만원 정도는 부모님이 가져가지 않아서요”라는 답변도 있었다. 5만원을 택한 응답자들은 초등학교 고학년 비율이 높았으며, 학교 준비물과 참고서 구입, 친구들과 군것질 등을 위해 필요하다고 답했다. 1~2학년은 1만원을 택한 비율이 각각 63.2%, 32.0%로 가장 많았다. 자세한 조사 내용과 결과는 네이버 스쿨잼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사설] ‘지역구 세습’ 논란 문희상 국회의장 아들 공천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최고위원이 어제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석균씨가 문 의장의 지역구인 경기 의정부시갑 출마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 “직전에 부모가 했던 지역구를 바로 물려받는 경우는 우리 정치사에서도 상당히 드문 경우”라며 공천 반대 의견을 밝혔다. 김 최고위원은 그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국민 정서상 납득하기 어렵다”며 석균씨의 공천 불가 의견을 민주당에서 처음으로 제기했다. ‘아빠 찬스’ 논란을 일으키며 문 의장 아들의 공천 여부에 과도한 여론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점에서 김 최고위원의 지적은 시의적절하다. 정치인의 자녀라고 해서 선거 출마 등 정치활동에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정치인 2세의 출마가 다른 정치지망생의 기회와 경쟁을 원천봉쇄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석균씨가 출마하려는 의정부시갑 지역구는 문 의장이 1992년부터 27년 동안 6선을 한 곳으로 현재 ‘전략공천지역’으로 묶여 있다. 민주당은 ‘지역구 세습’ 논란이 이는 석균씨를 전략공천하면 안 된다. 당내 경선 지역으로 돌린다고 해도 문제가 발생한다. 현직 국회의장인 아버지가 지역위원장으로 있는 지역에서 그 자녀가 당내 경선을 한다면, 문 의장의 영향 내에 있는 지방자치단체장, 기초의원, 권리당원 등에서 몰표가 나올 수 있다. 석균씨는 지난 11일 의정부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아버지의 길을 걷되, ‘아빠 찬스’는 거부하겠다”고 밝혔지만 누가 보더라도 국회의장인 아버지의 후광을 톡톡히 보고 있는 중이다. 석균씨가 출마 의지를 꺾지 않자 이번에는 아들이 할아버지가 사는 국회의장 공관으로 이사 와 6개월 만에 초등학교 학생회장으로 뽑혀 특혜 논란이 제기될 정도다. 석균씨가 21대 총선에 반드시 출마하고 싶다면 의정부시을 지역구 등 주변 지역으로 옮겨 아빠 찬스 없이 당당하게 다른 후보들과 경쟁하는 게 정도다. 계속 아버지 지역구 출마를 고집한다면 지역구 세습을 넘어 공정성 논란이 전체 선거 판세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소속당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라는 점을 석균씨는 명심해야 한다.
  • “예(禮)가 필요한 시대”

    “예(禮)가 필요한 시대”

    1934년생. 일제강점기 아래서 학교에 입학했고 십대에 독립과 한국전쟁을 경험했다. 이후 동장으로 마을 개선을 이끌고 지방의회에 진출해 구의원으로 지역에 봉사했다. 그의 삶 안에 한국 현대사가 물결치듯 흐른다. 망우동 동래정씨 집성촌을 지켜 온 정수선 선생의 이야기다. 정수선 선생은 정수선 선생은 1970년 망우동장으로 취임해 1995년6월까지 면목2동, 망우1동, 중화2동 묵1동, 상봉2동장을 거치며 25년 동안 동장으로 일했다. 이후 제2대 중랑구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적인 융합 미술로 세계를 놀라게 한 ‘한유화’의 창시자 강신재 화백의 작업을 후원해 온 예술 후원가이기도 하다. 2020년대가 시작되는 올해, 정수선 선생은 어떻게 이 시대를 바라보고 있을까. 이 화두로 시작된 대화의 결론은 “예와 도덕을 바탕으로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라는 당부였다. 그가 최근 마련한 모임 공간 ‘아송헌(峨松軒)’의 철학도 이에 맥을 같이 한다. 공동체성의 회복,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돌보는 사회. 오랜 세월 지역에 봉사해 온 그의 마음이 여전히 그의 말 안에 묻어났다. 아파트 숲으로 사라지는 ‘정서방네’ - 이렇게 오랜 세월 중랑구 한 지역을 지켜 오신 이유는 “저희 선조 할아버지께서 망우동에 1395년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그러니까 620년이 넘었죠. 제가 16대손입니다. 그때 조선 건국 공신인 저희 선조 할아버지께서 이 일대 토지를 하사받았고, 저희는 그때부터 이곳에 모여 살았죠. 그래서 이 동네는 ‘정서방네’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선조의 뜻을 이어가고자 이 지역을 계속 지키며 살피는 것뿐이고요.” - 지역 일에 참여하기 시작하신 건 어떤 계기였습니까. “군대를 다녀와서 농사를 짓다가 처음엔 망우리 재건 국민운동위원을 했습니다. 여기가 양주군이었을 때죠. 그 다음에 양주경찰서 방첩위원도 했고, 농촌 생활보호위원, 농촌 지도위원 등을 맡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동장으로 오래 일했지요. <정수선 선생은 1970년 망우동장으로 취임해 1995년6월까지 면목2동, 망우1동, 중화2동 묵1동, 상봉2동장을 거치며 25년 동안 동장으로 일했다. 이후 제2대 중랑구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 정씨 집성촌으로 알려졌던 지역이 이제는 주택 개발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많이 아쉬우실 것 같습니다. “정부에서 2010년에 아파트 지역으로 지정 공포하면서 저희도 오래 싸워왔죠. 결국 우리가 진 거나 마찬가지 상황이 됐습니다만, 우리가 양보를 해서 이제 집이 지어지게 됐습니다. 사실은 아파트를 올리기보다 문화재촌으로 키웠어야 하는 동네거든요. 여기 서울에, 그리고 서울 근교에 622년 된 동네, 그 지역을 상징하는 성씨가 있는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을 이렇게 만들어버리니 많이 아쉽지요. 눈에 보이는 것만이 보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왔고, 여전히 22가구가 살고 있던 집성촌의 삶 자체가 보존할 가치가 있었던 것 아닌가요?” - ‘아송헌’을 마련하신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겠군요. “제가 죽더라도 우리 동네의 620년 유래를 영원히 남겨야 하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 남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라도 하나 지어서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죠. 한 공간에서 서로 대화도 하고, 마을의 협의 사항을 토론하고 결정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이걸 정수선이가 만들어놓고 갔다’고 기억되지 않겠어요? 그렇게 주민들에게 주고갈 공간 하나 시작한 겁니다. 지금은 한 층이지만 전용 건물로 옮겨서 나중에 마을에 주고 가려고 합니다.” - 지역 주민들을 살피고 적극적으로 섬기려는 자세를 오랫동안 일관되게 가져오신 것 같습니다. “우리 조상님께서 620년 전에 이곳에 오셨고, 이후로 지역에서 동래정씨라고 하면 모범적인 동네, 점잖은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런 칭송을 받았던 게 우리 동네예요. 선조들의 그 뜻을 받들고 보존하고자 노력해 왔을 뿐입니다.”“교육에 예의·도덕을 채워야” - 지역 사회를 위해 일해오신 것 중에 가장 보람된 기억은 무엇입니까. “제가 망우동장으로 처음 발령받고 왔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는 중학교에도 돈이 없으면 갈 수가 없었을 때라서 중랑천 뚝방에 판잣집 애들이 학교를 가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때 우리 동사무소 창고를 헐고, 면의회 공간을 정비하고 해서 애들 가르칠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새마을학교’라고 해서 제가 교장 노릇을 했죠. 대학생들이 와서 애들을 가르치고 해서 23명을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보냈어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올바른 일이었다 생각합니다.” - 교육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에 학교를 편히 다니실 수 있던 시절은 아니셨을 것 같은데요. “제가 어릴 때는 일제강점기인데,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다녔어요. 지금도 그 생각이 납니다. 학교에 갈 때 서리가 내릴 때까진 맨발로 다녔어요. 눈이 오기 시작하면 짚신이나 일본식 신발인 ‘게다’를 신었죠. 그렇게 발 시렵게 다녔던 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 그렇게 어려운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풍요 가운데에서도 행복을 못 느낀다고들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옛날에는 우리가 서로 지키는 것들이 있었어요. 예의와 도덕을 지키고자 했죠. 배가 고파도 참고,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 정신을 본받아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물질만능주의에 빠져버렸어요. 돈 앞에서 예의도덕은 묵살되지 않습니까. 우리의 윤리, 우리 도덕을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적으로도 이런 교육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교육이 바뀌어야 합니다.” -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적대시하고 배척하는 각박한 사회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서로간의 배려가 부족한 것이겠지요. “지금은 진짜 말세가 됐어요. 부모자식 간에 때리고, 같은 가족끼리 다투고…. 그런데 그 이유가 대부분 돈 때문 아닙니까. 치국(治國)의 근본은 제가(齊家)에 있어요. 사랑이 넘처야 할 가정이 돈으로 무너지는 현실이 저는 너무나 안타깝습니다.결국 교육이 잘못된 거 아닌가 싶어요. 윤리와 도덕을 세우는 교육으로 고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학교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그렇게 가르쳐야 하겠고요.” 선생의 당부는 그가 오랫동안 강조해온 덕목이다. 그 스스로가 타인에게 예를 중시하며 섬겨왔기에, 대화의 끝이 묵직하게 남는다. “오늘 우리는 소망해야 하지 않을까. 만나는 이마다 기쁨을 주는 귀인, 소중한 사람이 되어달라고. 나도 또한 만나는 이마다 기쁨과 비전을 주는 귀인, 소중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금과 은을 줄 수는 없어도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나오는 자비심과 건강한 에너지를 줄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귀인이다.” (정수선 저 <이제야 모든 근심을 잊겠노라> 202p.) 고정화 객원기자 hwa@seoul.co.kr
  • [길섶에서] 황혼 육아/김균미 대기자

    아직 친구 중에 ‘할머니’는 없다. 하지만 딸이나 아들, 며느리가 아이를 봐 달라고 부탁하면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한 적은 있다. 봐줘야지 다른 수가 있겠느냐는 친구들과 가능하면 봐주지 않겠다는 친구들 수가 비슷하다. 젊을 때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 손에 아이를 맡겨 키운 적이 있는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황혼 육아에 긍정적이다. 개중에는 양육 방식과 교육에 대한 생각이 달라 심하게 마음고생을 해 반대하는 친구도 있지만.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자녀에게 돌려주고 싶기도 하고 딸이나 며느리가 육아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못 하는 게 안쓰러울 것 같단다. 주변에 아들딸을 직접 키워 보지 못한 젊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중에 ‘별거’하는 부부도 더러 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개인양육 지원 제공자의 83.6%가 할머니, 할아버지다. 10명 중 7명은 가능하다면 손주 육아를 그만두고 싶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흔쾌히 봐주겠다고 나섰어도 힘든데, 어쩔 수 없이 떠맡은 황혼 육아는 조부모뿐 아니라 모두에게 부담이다. 어른들이 노후를 즐기면서 손주도 돌볼 수 있는 이 적당한 거리를 찾는 것이 우리의 숙제다. k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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