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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세미의 인생수업] 듣기 능력

    [유세미의 인생수업] 듣기 능력

    평일 오전이라 그런가 마을버스는 텅텅 비다시피 했다. 모처럼 회사에 월차를 내고 혼자 영화 보러 가는 길이다. 딱히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가 아니라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싶다.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느낌이라고 할까. 오늘은 자체 묵비권행사가 답이다. 유통업체 고객관리팀에 근무하는 김묵언 부장. 그는 평범하고 성실한 40대 가장이다. 요즘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객과도, 직원들과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에 이제는 공포감마저 느낀다. 한가한 버스 안에서 명랑한 할머니들이 마치 버스를 전세 낸 듯 수다삼매경이다. 처음에는 좀 조용히 해 달라고 할까 망설이다 묵언씨는 어느새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새빨갛게 립스틱을 바른 할머니가 건너편 할머니에게 묻는다. “영화 보러 가려구?” “영어학원은 무슨. 아들네 가는 거여.” 서로 다르게 말하고 엉뚱하게 이해해도 대화는 물 흐르듯 이어진다. 다시 빨간 립스틱 할머니. “김치를 좀 해야 할까 봐. 근데 요즘 배추 맛없어.” “그래? 배추가 만오천 원이나 햐? 많이 비싸졌구먼.” ‘영화’가 ‘영어 학원’이 되고 ‘맛없어’라는 말을 ‘만오천 원’으로 알아들어도 전혀 불편이 없다. 그저 각자 원하는 대로 듣고 자기 말을 하면 그뿐인 유쾌한 그들의 이야기에 실소가 터진다. 아침식사도 건너뛴 묵언씨는 작은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자장면을 주문하고 앉아 있으려니 열 살이나 될 법한 아들을 데리고 아이 엄마가 들어온다. 벽에 걸린 메뉴판을 유심히 보던 그녀가 주문받으러 온 직원에게 “볶음밥도 곱빼기 있어요?”라고 묻자 부루퉁한 얼굴을 한 직원 대답이 가관이다. “일인당 하나 시키셔야 해요.” 손님의 곱빼기 있냐는 질문을 볶음밥 하나만 시킬까 합니다로 이해한 직원이 그 식당의 원칙을 전달한 희한한 대화법. 우리는 자주 남의 말을 내 방식대로 받아들인다. 정확한 의미보다는 내가 가진 듣기 능력에 맞춰 이해하는 셈이다. 지난여름 오지마을로 봉사활동 갔을 때도 그랬다. 젊은이들은 다 떠나고 노인들만 있는 마을이었다. 자질구레한 수선 봉사를 하는 묵언씨 일행은 독거노인들 집을 일일이 방문해서 확인하곤 했다. 아흔이 넘었다는 할머니댁의 벽지를 새로 바르고 일손 필요한 분 안 계시냐고 묻자 할머니는 “쩌그, 구멍가게 시집 안 간 막내딸이 있는데 그 집도 봐 주면 안 될까?” “왜 안 되겠어요. 그거 하러 왔는데요.” ‘그런데 시집 안 간 막내딸이라니 아무리 오지라도 젊은 사람들이 남아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방문한 구멍가게에는 80 넘은 할머니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집 안 간 막내딸이었다. 사람들은 몇 종류로 나뉜다. 자기 말만 하는 사람, 듣는 귀가 없어 남의 말을 내 멋대로 해석하는 사람,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점점 그렇게 변해 가는 사람…. 묵언씨는 자장면을 먹으며 자신이 저 부루퉁한 직원처럼 변해 가고 있는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직원들이 시도 때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면담을 요청해 온다. 고객 불만접수를 하며 폭언에 시달리는 일이 힘든 까닭이다. 묵언부장은 왜 그만두냐고 이유를 묻는다. 그리고 요즘 얼마나 직장 구하는 일이 어려운지 충고랍시고 열변을 토한다. 그게 먹히지 않는다. 왜 그런지 이제야 알겠다. 꼭 ‘퇴사하고 싶다’기보다 ‘힘들다’는 그들의 언어를 그는 말 그대로 해석한 까닭이다. ‘왜 그만두냐’고 물을 게 아니라 ‘많이 힘들지’라고 위로했어야 했다. 묵언씨는 그에게 듣는 방법을 가르치는 모든 이들에게 새삼스레 감사한다. 빨간 립스틱 할머니, 불친절한 중국집 직원, 시집 안 간 막내딸…. 모두가 듣기 능력 스승들이다.
  • “누명 벗었지만 진상규명 안 돼… 특별법에 도민 목소리 반영을”

    “누명 벗었지만 진상규명 안 돼… 특별법에 도민 목소리 반영을”

    “아직도 제주4·3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이를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 특별법 개정안에 도민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어야 합니다.” 지난 1월, 제주4·3 수형인 피해자 18명이 71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법원의 재심 무죄 판결 직후 재심 당사자인 할아버지, 할머니들 못지않게 벅찬 소감을 밝힌 이가 있었다. 2013년부터 2530명의 이름이 적힌 수형인 명부를 근거로 실태 조사에 나섰던 양동윤(69)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대표였다. “오늘 대한민국 법원이 우리 할망, 할아방들한테 무죄 판결을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죄 없댄 말해야 합니다!” 일흔한 번째 4·3을 하루 앞둔 2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양 대표는 “언제나 4월이면 바쁘다. 특히 올해는 연초 있었던 재심 판결 때문에 언론 취재와 행사 지원으로 하루하루를 분주하게 보내고 있다”며 웃었다. 재심으로 누명을 벗은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2월부터 법원에서 형사보상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양 대표는 “무고한 수형 생활을 보상받는 게 형사보상이다. 이분들이 수형 이후 71년 동안 정신적·육체적으로 받았던 고통은 아직 남아 있다”면서 “아들이 좋은 국가기관에 합격하고도 아버지의 수형 전력으로 인해서 불합격 처리가 됐고, 수형 당시 고문을 받은 후유증으로 손가락이 흉측하게 뒤틀려 있는 분도 계시다. 변호인들께서 피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고, 형사보상 절차가 끝나면 국가배상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날 국회에서는 발의 16개월 만에 제주4·3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행정안전위원회의 첫 심의가 이뤄졌지만 의견 대립 끝에 의결이 무산됐다. 양 대표는 이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현재 논의되는 개정안이 도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3년 10월 진상조사보고서는 큰 틀에서 4·3을 정리해 놓은 수준입니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진상이 세세하게 밝혀지지 못한 부분이 많죠. 예를 들어 주민 300여명이 학살된 북촌마을 사건의 경우 보고서에 학살 자체는 기술돼 있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밝혀진 게 없어요.” 양 대표는 “추가 진상조사가 빨리 이뤄져야 앞으로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소송에서도 판단 근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은 과제가 또 있느냐는 질문에 양 대표는 “지난 재심에 수형 생존자 모두가 참여한 게 아니다”라면서 “제주도에서도 아직 재심에 참여하지 못한 3~4명이 살아 있고 서울, 부산 등 육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일본 도쿄에도 수형 생존자가 계신다. 그분들 재심까지 마무리해야 한다”고 했다. 재심 판결 이후 3주 만에 당사자 중 한 명이었던 현창용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며 양 대표의 마음은 더 급해졌다. 그는 “나이라는 건 절박한 거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내일이 추념식인데 재심 당사자 17명 중 8명이 건강 때문에 못 나오신다. 법원이 물론 잘 판단해주실 것으로 믿지만, 속도를 조금 더 내달라고 호소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지난달 별세…진선미 장관 애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지난달 별세…진선미 장관 애도

    또 한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지난달 31일 A 할머니(97)가 대구 자택에서 별세한 사실을 오늘(2일) 밝혔다. A 할머니는 지난 2016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정식으로 등록됐다. 다만 유가족의 요청으로 고인의 신상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로써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는 총 21명으로 줄었다. 여성가족부는 이번에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유가족에 장례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올해 들어 벌써 네 분이나 우리 곁을 떠나신 것에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앞으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께서 보다 건강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실 수 있도록 (할머니들에 대한) 생활안정지원을 더욱 강화하고, 피해 할머님들의 뜻을 기리는 기념사업과 명예 회복을 위한 정책 추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단독] 나눔의 집, 진입로 확장공사 주민 반대에 ‘속앓이’

    [단독] 나눔의 집, 진입로 확장공사 주민 반대에 ‘속앓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공동생활 시설인 경기도 퇴촌면 원당리 ‘나눔의 집’으로 향하는 진입로 확장·포장 공사가 인근 주민들과의 의견충돌로 차질을 빚고 있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지난 1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진입로가 좁아 자원봉사자들을 비롯해 방문객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며 “진입로 확장·포장 공사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하소연했다. 1995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나눔의 집은, 1992년 나눔의 집 건립추진위원회에서 시작한 모금운동을 통해 세워졌다. 이곳은 애초에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좁은 비포장도로였으나, 1996년과 2011년 두 차례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도로포장과 확장공사를 진행했다.문제는 마을 초입부터 나눔의 집까지 총 800미터 구간 중 500미터 도로만 공사가 진행됐다는 점이다. 나머지 300미터는 당시 손을 대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현재 마을 초입부터 시작되는 미 공사 구간은 폭 4미터로 차량 통행에 불편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인지한 일부 의원과 정부 도움으로 지난해 진입로 확장·포장공사를 위해 19억 원의 예산이 확보됐고, 최초 계획했던 800미터 전 구간을 폭 8.5미터로 확장해 공사가 진행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다시 일부 주민들과 의견충돌이 발생하면서 300미터 구간을 폭 6미터로 한정, 확장하는 방향으로 수정됐다. 이에 안신권 소장은 “당시 주민들도 300미터 구간에 대해 확장공사를 원했다. 어렵게 예산을 확보했는데, 일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니 안타깝다”며 “도로가 좁아 불편을 호소하는 방문객이 많다. 나눔의 집을 찾는 외국인 단체관람객은 주로 대형버스를 이용하는데, 버스 진입이 어려워 불편을 호소한다”며 답답한 심경을 밝혔다. 그렇다면 주민들이 이렇게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원당리 마을 이장은 “도로 확장 문제에 대해 마을주민 전체 의견이 반대 기조가 많다. 더욱이 사업 구간의 토지수용 대상자는 전원이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이어 “퇴촌면 쪽은 물류창고 수요가 많은 동네다. 실제로 물류창고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진입로를 넓히면, 이런 물류창고가 더욱 늘어날 테고, 화물차가 들락날락할 것이다. 옆 동네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며 “큰 차들이 다니면, 조용했던 마을이 시끄러워지고, 통행이 더 불편해진다”며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이러한 마을 입장에 대해, 안 소장은 “마을 주민들이 조용하게 살고 싶은 건 이해하지만, 사실상 납득하기는 어렵다”며 “특히 800미터 전체 구간을 폭 8.5미터로 확장하고, 그중 2미터는 인도로 할 계획이기에 더욱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현재 나눔의 집 측은 도로 확장·포장 촉구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3300여명이 동참한 상황. 안 소장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찾는 방문객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진입로가 좁아 불편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 죄송하다”며 “광주시가 방문자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적법한 행정력을 발휘해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한편 광주시청 측은 사업 진행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광주시청 도로사업과 관계자는 “주민설명회를 거치면서 반대 의견이 많이 나온 상황이라 내부적으로 다른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나눔의 집 측과 주민들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해서 확장공사를 진행하겠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나눔의 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공동 생활하는 시설로 복지시설 그 이상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주민들의 이해와 지자체의 사려 깊은 절차 등 적절한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작은미술관 ‘보구곶’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최우수상 수상

    작은미술관 ‘보구곶’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최우수상 수상

    “작은미술관 보구곶으로 봄나들이 오세요.” 경기 김포문화재단이 운영중인 ‘작은미술관 보구곶’이 지난 21일 개최된 ‘2018년도 작은미술관 조성 및 운영지원 성과공유회’에서 최우수 사례로 뽑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국민체육진흥공단 후원을 받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했다. 29일 김포문화재단에 따르면 ‘작은미술관 조성 및 운영사업’은 미술을 전국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문화소외지역에 미술 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번 성과공유회는 전국 9개 작은미술관을 대상으로 사업계획과 운영·성과·지원 유형별 특성화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됐다. 전문 평가단 심의와 관람객 만족도 조사를 거쳐 최우수 사례를 선정해 시상했다. 작은미술관 보구곶은 관람객 만족도와 사업성과·만족도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최우수상을 탔다. 작은미술관 보구곶은 2017년 11월에 개관했다. 월곶면 보구곶리 민방위주민대피소를 리모델링해 운영중이다. 문예공간으로 한강하구 접경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민방위 주민대피소 정체성을 ‘미술’이라는 매개로 주민들과 함께 심리적 안정을 공유하고 있다. 접경 지역 내에서는 최초로 대피소 미술관으로 브랜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덟 번 기획전시했으며 접경마을의 풍경과 사람·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봄·가을에는 시민들과, 여름·겨울에는 주민들이 함께하는 예술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작은미술관에서는 보구곶 마을을 1년간 관찰하고 기록한 ‘접경(接境)의 접경(接景), 보구곶’을 전시하고 있다. 보구곶의 계절과 풍경, 보구곶 할머니들의 일상과 이야기를 기록한 영상 작품은 새싹이 돋는 따뜻한 봄 날 잔잔한 감동을 관람객들에게 선사한다. 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4시까지 운영한다. 전시·미술관 정보는 김포문화재단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bogugot)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재)김포문화재단 전시기획팀(031-996-7340)으로 문의하면 된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장미사진관, 백세건강원… 시간이 멈춘 마을

    장미사진관, 백세건강원… 시간이 멈춘 마을

    속수무책으로 빠른 세상에 현기증이 날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 넘긴 것 같은데 달력 한 장을 또 넘겨야 할 때, 하루만 뉴스를 안 봐도 대화에 끼기 힘들 때, 1년 전 유행가를 듣는 것도 겸연쩍을 때. 그럴 때는 빠름과 정반대에 있는 어딘가로 떠나보는 게 어떨까요. 충남 서천의 판교마을은 모든 것이 느린 마을입니다. 마을의 또 다른 이름이 ‘시간이 멈춘 마을’이니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겠지요. 마을은 1970년대 어디쯤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오래된 골목 따라 녹슨 철문, 빛바랜 간판, 간판 속 예스러운 글씨가 이어집니다. 간판은 마을에 극장, 사진관, 주조장이 있었음을 일러 줍니다. 해묵은 간판이 말합니다.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 아직 변하지 않은 것도 이렇게나 많다고요.키 낮은 집들, 미용실 아랫목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머니들, 낡은 자전거를 탄 어르신 등 마을의 첫인상은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다. 정겹고 소박하지만 낡고 허름하다. 하나 이곳은 서천에서 손꼽히게 잘나가던 마을이었다. ●1930년대엔 인구 8000명 넘었던 큰 마을 1930년, 마을 남쪽에 장항선 판교역이 들어섰고 큰 우시장이 열리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을 인구는 8000명을 넘었다. 우시장이 열리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어깨가 부딪힐 정도였다고. 판교마을의 시곗바늘이 느려진 건 일대가 철도시설공단 부지로 묶이며 건축 제한에 걸리면서부터다. 쑥쑥 크던 마을은 개발이 어려워졌고 1980년대에는 우시장마저 사라졌다. 지금 마을에 남은 이들은 480명 남짓.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젊은이가 떠난 곳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오는 젊은이가 는다. 개발되지 못한 마을은 옛 모습을 간직했다는 이유로 주목받는다. 마을이 입소문을 타는 건 예스러운 분위기 때문이다. 마을 곳곳에 남은 수십 년 된 간판은 과거로 순간 이동을 한 듯, 1970년대를 재현한 영화 세트장을 걷는 듯 특별한 감흥을 선사한다.판교마을 여행은 마을의 옛이야기를 읽어 가는 일이다. 간판에 깃든 이야기를 꺼내어 먼지를 털고 그때를 되짚어 보는 일이다. 수십 년 전 세월을 헤아리느라, 간판에 얽힌 사연을 상상하느라 걸음이 느려지는 것도 당연하다. 마을은 1시간이면 둘러볼 정도로 아담하다. 관광지가 아닌지라 이정표는 없지만, 오성초등학교를 기점으로 마을 중앙에 난 도로를 따라가면 이 골목과도 저 골목과도 이어진다. 판교역이나 판교면행정복지센터에서 스탬프 투어 지도를 챙기는 것도 방법이다. 지도에 가볼 만한 곳이 잘 정리돼 있다. 마을 어귀에 있는 농협 창고는 출발지로 적당하다. 때밀이로 벽을 박박 문지른 듯 외벽은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졌다. 빨간 철문 위에는 ‘협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판매하자’는 표어가 남아 있다. 표어는 마을 농민들끼리 힘을 모아 잘살아 보자는 의지의 표명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젊은이 핫플레이스 된 옛 풍경 간직한 동네 마을 오른쪽 끄트머리, 판교철공소 맞은편 건물은 ‘공관’으로 불리던 극장이다. 새마을운동 당시에 세워졌으니 50세를 바라보는 극장이다. 극장이 드물던 시절 부여, 보령, 서천 등 인근 주민들도 영화를 보러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어둑한 건물에 영사기가 돌아가고, 관객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 문을 열었으리라. 낡은 건물이 극장이었음을 알려주는 단서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같은 1960~70년대 흥행작 포스터와 매표소 창구다. 창구에 새겨진 영화 관람료는 일반 500원, 청소년 200원. 지금의 20분의1 가격이다.공관 건너편, 판교농협하나로마트 옆 골목에 담벼락 벽화가 있다. 사람 반, 소 반, 판교마을에서 열린 우시장을 그린 것이다. 벽화에서 북서쪽 길을 따라가면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을 인 적산가옥이 나온다. 장미사진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카메라를 든 젊은이들이 인증샷을 많이 남기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동면(판교면의 당시 이름) 주민 5500여명을 쥐락펴락한 일본 부호 11명이 살았다. 광복 후에는 우시장에 온 사람들이 묵는 여관이었다가 그 후 반쪽은 쌀가게, 반쪽은 사진관이 됐다. 간판에 ‘쌀, 잡곡 일절’, ‘사진관’ 글씨가 또렷하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수시로 여닫았을 마을 사람들을 상상해 본다. 쌀 한 됫박을 사서 밥을 안치고 기억하고 싶은 날을 사진으로 남겼을 순한 사람들을 말이다.장미사진관 맞은편의 백세건강원은 낡고 빛바랜 것으로 가득한 마을에서도 으뜸이다. 지붕 슬레이트는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벽에 덧댄 나무판자 역시 성한 데가 없다. 건강원 건물은 한때 통닭집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왼쪽 창에 붕어즙, 흑염소 중탕 등 각종 건강식품을, 오른쪽 창에 ‘백숙, 통닭’ 글씨와 ‘근육질’의 닭을 그려 넣었다. 판교마을 여정의 종착지는 마을 북쪽의 주조장이다. ‘동일주조장’ 간판 아래 재미난 숫자가 있다. ‘TEL 45.’ 서천 지역 번호가 041이 아니라 45이던 시절, 그러니까 1996년에 지역 번호가 세 자리로 바뀌기 전에 생긴 주조장이다. 자료에 따르면 건물은 1974년 이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3대째 가업을 이은 주조장은 주민들에게 술을 공급하며 팍팍한 일상을 달래줬다. 쌀이 귀하던 1970년대에 주조장은 밀가루로 막걸리를 빚었다. 덕분에 주민들은 술 마시는 낙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주조장의 시간은 20여년 전에 멈춰 있다. 열린 창 사이로 보이는 달력은 2000년 12월. 주조장은 2000년에 문을 닫았다. 문을 닫았다고 과거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창 사이로 달력 날짜를 짚어볼 때, 마을 사람들이 주조장 앞을 지날 때, 막걸리에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버리던 날이 되살아날 때, 주조장은 모두에게 확실한 기억이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변치 않음’이 판교마을을 지킨다. 1590년대 세워진 문헌서원…4000번을 매만진 한산모시●가정 이곡·목은 이색 정신 깃든 서원 문헌서원은 고려의 대학자 가정 이곡 선생과 목은 이색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사원이다. 서원이 세워진 건 1590년대, 조선 선조 때다. 19세기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됐으나 100여년 뒤 유림들에 의해 지금 자리에 복원됐다. 문헌서원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채는 건 서원을 둘러싼 언덕의 솔숲이다. 대나무처럼 꼿꼿한 소나무 군락이 서원을 에워싸 청신한 기운이 감돈다. 서원은 크게 사당, 강당, 재로 나뉜다. 사당은 선현에 제사 지내는 곳, 강당은 원생들이 공부하는 곳, 재는 원생들이 숙식하는 곳이다.●유생들 모여 학문 논하고 수양하던 진수당 홍살문과 진수문을 지나 마주하는 진수당은 강당에 속한다. 유생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자신을 수양하던 강당이다. 훌륭한 건물은 머무는 사람을 담아야 하는 법. 진수당의 건축 양식은 선비 정신을 반영했다. 복잡한 포나 장식을 피하고 단청 색을 줄여 독서하고 사유하기 마침한 공간이 됐다. 진수당을 마주한 방향에서 서쪽으로 가면 이색 신도비, 북으로 몇 걸음만 더 오르면 목은이색선생영당이다. 영당은 목은 이색 선생의 초상(보물 제1215호)을 모신다. 바로 옆 아름드리 배롱나무는 영당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늦여름 배롱나무에 진분홍 꽃이 환히 피면 한옥과 꽃의 어울림이 아름답겠다.●1500년 역사 자랑하는 대표 공예품 ‘모시’ 모시 풀이 처음 발견된 서천군 한산면 건지산 기슭에 한산모시관이 있다. 한산모시관은 한산모시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전통의 맥을 잇는 공간이다. 한산모시는 1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산의 대표 공예품. 한산모시의 또 다른 이름은 ‘가늘 세(細)’ 자를 써서 한산 세모시, 올이 가늘고 촘촘해 붙은 이름이다. 얼마나 가늘면 ‘밥그릇에 모시 한 필이 다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모시짜기 역사부터 제작까지… 한산모시관 한산모시관은 한산모시 전시관, 전통공방, 한산모시 홍보관 등으로 나뉜다.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ㄱ자 모양의 전통공방이다. 공방에는 한산모시짜기 기능보유자 방연옥 장인 외 여러 장인이 머물며 모시 짜기 시연을 한다. 눈앞에서 장인이 개량 베틀을 돌리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베틀 주변에 가습기를 몇 대씩 놓고 비닐 천막을 친 건 건조하면 날실이 벌어져 끊어지기 때문이란다. 전시관은 한산모시의 역사, 제작 과정과 사용 도구, 모시로 만든 옷 등 한산모시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 준다. 한산모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모시 한 필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고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수확한 모시풀로 모시의 원재료인 태모시 만들기, 이로 태모시를 쪼개 일정한 굵기로 만들기, 모시 올의 머리와 꼬리를 이어 모시실 만들기 등 베틀로 모시를 짜기 전의 과정만 일곱 가지에 이른다. 한국의 전통 여름 옷감 정도로만 여겼던 모시가, 4000번의 손길 끝에 태어나는 귀한 옷감으로 다시 보이는 순간이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 사진 권대홍(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41) →가는 길 : 서울에서 자동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와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지나 서천공주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서천공주고속도로 서부여IC교차로에서 ‘군산, 서천’ 방면으로 우회전한 뒤 대백제로를 따라간다. 수성교차로에서 ‘판교, 현암리’ 방면 좌회전 후 종판로를 따라가면 판교마을이다. →맛집 : 옛 판교역이 있던 자리에 판교음식특화촌이 들어서 식당이 모여 있다. 판교마을 내 삼성식당(951-5578)은 50년 가까이 된 냉면집이다. 메뉴는 단 세 가지로 물냉면, 비빔냉면, 왕만두다. 메밀면을 써서 쫄깃한 식감과 상큼한 육수의 궁합이 좋다. 서천특화시장 맞은편에 자리한 두레분식(953-4305)은 해물칼국수를 잘한다. 바로 앞 수산시장에서 사 온 생바지락이 푸짐하게 들어간다. →잘 곳 : 문헌전통호텔(953-5896)은 문헌서원 안에 자리한 한옥 호텔이다. 8개의 객실이 있으며 호텔 내 식당에서 정갈한 한정식 메뉴를 차려낸다. 휴모텔(952-0077)은 전 객실에서 서해가 보인다. 창밖 경치가 아름다울뿐더러 갯벌 체험이나 바다낚시도 즐길 수 있다.
  • [금요칼럼] 정치란 무엇일까/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금요칼럼] 정치란 무엇일까/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5년 가까이 광화문에 자리잡고 있던 세월호 분향소의 철거 작업이 이번 주 초에 마무리됐다. 가방에 노란색 리본을 단 사람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빈도가 나날이 줄어드는 요즘, 세월호 분향소의 철거를 계기로 지난 시간을 다시금 반추해 본다. 구조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어이가 없는데, 진상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당시의 국가권력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리고 나도 모르게 주먹을 힘껏 쥐게 된다. 냉전시대 반독재민주화 투쟁 때에도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양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민주화 경험을 쌓았다고 믿던 21세기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또 다른 층위에서 정치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정작 답하기는 쉽지 않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역사학자들이 주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학문적으로 설명하려면 단행본 여러 권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묵직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호를 마음에 묻으며, 나는 거창한 질문이 아니라 매일 내 피부에 닿으며 나와 함께 일상을 보내는 가벼운 의미로 정치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비유하자면,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간략하면서도 설득력 강한 답을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누군가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억울한 사람들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억울한 사람이 전혀 없게 하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국가권력이라면 억울함을 최대한 풀어 주는 정치행위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는 것을 나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강하게 체감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후 두 달 만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닷새 동안 머물렀는데, 나는 그때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교황에게 읍소했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교황에게 호소했다. 왜 그랬을까. 필설로 표현하기 힘들 지경의 피맺힌 억울함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당시 국가권력은 그들을 의도적으로 소외시켰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비난하는 데 혈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가권력이 상식적으로만 움직였어도, 그들이 굳이 교황까지 만날 필요는 없었다. 한국 내에서는 말(상식)이 제대로 통하지 않으니,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더 상위의 ‘보편적 존재’에게 호소한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로 어떤 억울함을 당했다면 그나마 덜 억울할 것이다. 그런데 주변의 권력구조 때문에 당한 절대적 억울함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다. 1980년 5월 광주학살의 억울한 피해들을 조롱하고 왜곡하는 자들이 여전히 여의도에서 큰소리치며 2차, 3차 가해를 서슴지 않는 현실. 재판을 조직적으로 지연시키거나 왜곡해 억울한 사람을 오히려 양산한 일그러진 검경과 사법부. 허다한 군 의문사는 이를 나위도 없고, 전쟁도 안 하는 현재조차 군 내부에서 매년 100명가량이 생을 마감하는 현실. 조직적 성폭력을 당하고도 사악한 권력의 벽에 막혀 차라리 자신을 소멸시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여성 피해자들. 진상조사조차 저인망식으로 촘촘하게 방해하는 권력 카르텔. 요즘 한국사회의 억울한 사례들은 몇 밤을 꼬박 새우고도 열거하기에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곧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이라는 의미다. 국민청원에 답해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악의 근원을 밝히라는 취지의 대통령 지시가 이번 주에 나왔다. 늦었지만 환영하며, 진상조사를 방해하는 세력도 함께 백일하에 드러내고 척결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후대 사람들은 2019년 이 땅에 ‘정치가 있었다’고 기억할 것이다.
  • [단독]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써주세요” 월급 모아 나눔의 집에 기부한 의경

    [단독]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써주세요” 월급 모아 나눔의 집에 기부한 의경

    의무경찰로 복무하며 받은 월급을 모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써달라”고 기부한 한 의경 사연이 알려져 훈훈함을 주고 있다. 경기도 광주 퇴촌면에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공동 생활시설인 ‘나눔의 집’은 지난 20일 수서경찰서 맹승주(27) 의경이 의무경찰로 복무하며 받은 월급 700만 5910원과 직접 쓴 손편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맹승주 의경은 편지에서 “이제야 이곳에 발걸음이 향한 것에 그저 부끄럽고 죄송스러울 따름”이라며 “할머니들을 찾아뵐 무수히 많은 시간이 있었지만, 그 시간의 유한함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더 컸다”는 고백과 함께 늦은 인사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내비쳤다.그는 “2년 전 여름, 저는 수서경찰서에 발령을 받았고, 어느 수요일 소녀상 앞에서 근무를 선 적이 있다”면서 “(할머니들이) 외로운 싸움을 지속하는 수요집회를 보며 마음이 너무나 불편했다”며 지난 시간을 반추했다. 이어 “마음속 작은 양심이 할머니들을 외면한 지난날의 시간을 부끄러이 여겼나 보다. (그리고) 그때부터 희미하게 조금씩 오늘을 그렸다. 오늘은 군생활 마지막 수요일이자, 또 마지막 월급날이다”라며 기부 의미를 전했다. 22일 전역을 앞둔 맹순경 의경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위안부 문제를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지만, 여태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웠다”면서 “이제라도 뭔가 할 수 있기에 구원받은 느낌이다. 할머니들이 행복하시면 좋겠다”며 앞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겠다고 다짐했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맹승주 의경이 힘들게 모은 월급을 할머니들에게 기부해줬다. 최근 김복동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할머니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우울해 하셨는데, 맹 의경의 기부 소식을 듣고 많이 기뻐하고 감사해 하셨다”며 그의 진심어린 마음에 고마움을 전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부부싸움/김막동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부부싸움/김막동

    부부싸움 / 김막동 첫 애기 낳고 칠월백중에 놀았소 비석 치고 편을 갈라 갖고 금성댁네 집에서 여자 남자 쳤든가 몰라 남자하고 비석 쳤다고 남편이 뭐라 하네 오늘 저녁에 뭐라 하고 내일도 뭐라 해서 공동산 몬당에 죽어 블라고 갔네 긴그라 먹고 단것 먹으면 죽은단께 갔더니 뒤를 밟았는 갑써 목구멍에 피가 넘어오게 파내네 보둠고 파낸께 그 와중에도 왜 부끄란가 몰라 동네 탄금양반이 지나가네 섬진강 자락 곡성 산골 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이 한글을 깨우치고 평생 처음 시를 썼다. 그 시들이 ‘시집살이 詩집살이’라는 시집으로 나왔다. 백중날 젊은 아낙은 동네 남정들과 어울려 비석치기를 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계속 궁시렁거렸고 시달린 아낙은 죽으려고 공동묘지 언덕에 올라 농약을 마신다. 남편이 쫓아와 목구멍을 파내는데 보듬고 파내니 참 부끄러웠다. 동네 탄금양반이 지나가며 보니 이 일을 어쩌남. 인간 본성의 정직함과 순수함이 그대로 드러난 시. 사이비 수사와 진정성 없는 언어유희로 범벅이 된 오늘의 우리 시가 이 시 앞에서 참 부끄럽다. 곽재구 시인
  • 혼다 전 美하원의원 “아베, 과거사 솔직히 사죄해야”

    혼다 전 美하원의원 “아베, 과거사 솔직히 사죄해야”

    진선미 “김복동 할머니 안 외로우실듯”“아베 총리가 이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솔하게 사죄해야 합니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마이크 혼다(78) 전 의원이 13일(현지시간)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함께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해켄섹의 위안부 기림비를 참배한 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과거사 인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진 장관은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 연례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이다. 해켄섹 기림비는 2013년 버겐카운티 법원 앞 ‘메모리얼 아일랜드’에 세워졌으며 미국 자치정부가 건립한 첫 위안부 기림비다. 미 노예제도로 희생된 흑인, 나치에 학살된 유대인, 아일랜드 대기근 희생자, 아르메니아 학살 피해자 등을 추모하는 기림비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혼다 전 의원은 이날 “위안부 이슈는 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후세대에 역사를 가르쳐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일본은 모든 것을 요구하고, 한국은 많은 것을 내준 불평등한 합의였다”면서 “무엇보다 그 합의에는 할머니들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만약 내 할머니가 그런 치욕을 느꼈다면 외교 무대에서 지금과 같은 예의를 잠시 옆으로 치워두겠다”고 덧붙였다. 이는 2015년 합의가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배려없이 이뤄졌으며 일본 정부가 진실한 사죄 없이 배상금 몇 푼으로 역사를 지우려 했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이어 혼다 전 의원은 “그(아베 총리)에게 사과는 자신의 할아버지와 모든 이들이 잘못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면서 “그의 역사 부정은 미국에 노예가 없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사죄를 촉구했다. 또 그는 “아주 많은 일본인은 이 사실을 잘 알고 마음 아파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없다”면서 “언론이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진 장관은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다 함께하면서 외롭지 않으시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화답했다. 혼다 전 의원은 미 정계에서 일본의 과거사 인식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일본계 3세 정치인이다. 2001년부터 17년간 민주당 소속 하원 의원으로 활동하다 이후에는 위안부 문제 등 인권 운동에 참여해왔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美 캘리포니아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 추모 행사

    美 캘리포니아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 추모 행사

    미국에 처음으로 세워진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침묵을 깨는 여성들’이라는 주제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을 돌아보는 행사가 열렸다. 11일(현지시간) 가주한미포럼에 따르면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지난 9일 캘리포니아 글렌데일 중앙공원에서 한·중·일 지역 공동체 관계자들이 최근 별세한 위안부 피해자 곽예남 할머니의 추모행사와 ‘위안부 목소리’의 유네스코 등재 등을 촉구했다. 행사에서는 중국계 참석자들이 ‘피지 못한 꽃송이’라는 시를 낭송했고, 옥시덴털칼리지 학생들이 여성인권운동 애창곡 ‘콰이어트’를 듀엣으로 불렀다. 참석자들은 ‘우리 승리하리라’를 함께 불렀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지켜봐라, 일본아…피해자 없는 싸움 더 큰 울림될테니

    지켜봐라, 일본아…피해자 없는 싸움 더 큰 울림될테니

    최대 20만명으로 추정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중 우리 정부에 공식 등록된 이는 모두 240명이었다. 이 중 생존자는 22명뿐이다. 올해만 벌써 3명이 별세했다. 28년째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에 놓인 할머니들의 자리는 요즘 부쩍 비어 있다. 할머니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며 생긴 변화다. 일각에선 ‘피해자 없는 위안부운동’이 힘을 잃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위안부운동은 여전히 뜨겁다. 지난 1월 타계한 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한 할머니들의 빈자리는 이제까지 할머니들과 함께해 온 활동가들과 미래 세대가 채워가고 있다. 그들은 “피해자 없는 싸움도 이미 준비됐다”고 말한다. 죽은 이들의 역사를 함께 부둥켜 안고 하는 싸움은 더 강한 메시지로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지난 6일 서울신문은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윤미향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과 이태준 국민대 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세움’ 대표를 만났다. 윤 이사장은 오랜 시간 할머니들의 곁을 지켜왔고, 이 대표는 학내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기 위해 20여명의 학우들과 활동하고 있다. 윤 이사장은 김 할머니가 28년간 뿌린 씨앗이 곳곳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 발자취를 따라 걷는 ‘후발주자’ 이 대표에게는 미래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 엿보였다. 이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물었다. 우선 두 사람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가진 계기가 궁금했다. 윤미향(이하 윤) “어쩌면 대한민국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그 자체가 계기죠. 원래 여성운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신문 기사로 접하고 충격 받았죠. 그들의 고통을 몰랐다는 반성을 했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간사에 자원했죠.” 이태준(이하 이) “제 경우엔 좀 늦은 시기라 부끄럽습니다. 2015년 겨울,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때서야 이 문제를 마주했죠. 당시 수요집회 때 김복동 할머니가 ‘수백억원을 줘도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할 수 없다’고 하셨죠. 비록 남성이지만, ‘우리 엄마였다면, 또 할머니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이 맴돌았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시작으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1년에서야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처음 공론화됐다. 그전까진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을만 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다. 한 예로 김학순 할머니 고백 이후 피해 증언을 받기 위해 개설한 전화엔 할머니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절을 잃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말하고 다니느냐’는 비난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나왔다.할머니들은 더 절박하게 사회에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 문제는 진전과 답보를 오가다 결국 제자리를 맴돌았다. 한일합의는 대표적 예다. 2015년 12월 28일, 일본 정부는 “해당 문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해 일본 정부 예산으로 10억엔(약 100억원)을 출연했다. 하지만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이뤄지지 않는 등 성과보다 문제점이 더 많았다. 할머니들은 합의 파기를 요구했고, 결국 화해치유재단도 해산됐다. 윤 “한일합의가 미친 영향이 컸어요. 한일합의 직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말했죠. 솔직히 안심했었어요. 하지만 그 합의 이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비정부기구(NGO)는 정부와 독립적으로 정부를 비판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걸. 대중의 인식도 변했어요. 피해자들의 절규와 상반된 정부의 모습을 통해 ‘이제 더이상 피해자만의 문제는 아니구나’ 깨달았죠. 각 지역에 소녀상들이 세워지는 등 역동적 활동들이 생겨난 것도 그 즈음입니다. 이 “우리도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소녀상을 학내에 세우려 하는 겁니다. 한 친구가 ‘소녀상은 고통을 듣고 싸우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상징’이라면서 ‘소녀상으로 (학우들이) 할머니의 삶과 온기를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세움’은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학생들 손으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준비했고 성금도 모아왔다.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5일부터 받은 서명에는 3일 만에 1900여명의 학우가 참여했다.윤 “소녀상은 할머니들을 대신하는 존재입니다. 다만 소녀상으로만 활동이 끝나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요. 소녀상을 세운 그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이 “윤 이사장님 말씀에 공감해요. 우리(세움)도 그 부분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끼리 ‘위안부 문제 해결뿐 아니라 강제징용이나 징병, 독립운동가 등 아직 청산되지 않은 친일 문제까지 폭넓게 이야기해보면 좋겠다’는 공감대를 이뤘어요. 하지만 당면 과제는 소녀상을 국민대생의 손으로 제대로 건립하는 것이죠.” 윤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소녀상 건립을 반대하는 건 위안부 문제를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처음 위안부운동을 정치적이라고 말한 건 일본 정부였어요.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 정치적 문제가 아닙니다. 보편적인 여성 인권의 문제죠.” 이 “사실 학교의 반대보다 학생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때 더 뼈 아픕니다. ‘순도 100%’ 학생들이 주체가 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10대부터 소녀상을 세우기 위한 활동이나 기념 제품을 제작해 성금을 했던 학우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윤 “나 또한 청소년들을 통해 우리 운동의 미래를 봅니다. 인권·평화 감수성이 뛰어나더라고요. 내가 강연을 나갔다가 배워올 정도입니다. 우리 세대들은 피해자에게 오히려 책임을 묻는 시대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한 김학순 할머니를 보고 자랐습니다. 일종의 ‘미투’인 셈이죠. 이 ‘미투’를 ‘위드유’로 만든 건 김복동 할머니의 삶이었습니다. 미래 세대들은 그런 김복동 할머니를 보고 자랐죠. 내가 미래 세대에 기대를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가 역사왜곡’이라는 일본 측 주장에 맞서기 위해선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뒷받침할 문서 등 탄탄한 자료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체계적 연구를 이끌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위탁해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를 세우려 했지만 3개월여 만에 초대 소장이 물러나는 등 파행을 빚은 뒤 사실상 활동을 멈췄다. 민간단체 활동에도 한계가 있다. 단적인 예는 얼마 전 불거진 곽예남 할머니의 양녀 사건이다. ‘봉침 목사’로 알려진 한 목사가 곽 할머니의 수양딸이 된 것을 두고 시민단체가 “곽 할머니를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간단체에 권리는 없고, 책임과 의무만 지워진 게 아닌가 고민이 됐다”던 윤 이사장의 말처럼 정부가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틈을 타 선의가 아닌 다른 의도가 개입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존재 자체로 묵직한 울림을 주던 할머니들마저 다 세상을 떠난다면 위안부운동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이 “저 역시 할머니들이 없는 위안부운동을 떠올리면 먹먹해져요. 일본 정부의 사죄도 받아야 하고 아직 싸울 날이 많은데 할머니들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스스로 반성도 하고요.” 윤 “이건 피해자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 같아요. 우리 곁에 육체적으로 없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나요? 그렇지 않죠. 피해자는 없지만 김복동의 정신은 살아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정의연)는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전쟁 성폭력, 여성 인권 등 좀더 보편적이고 글로벌한 이슈로 확장시켜 나가는 데에서 답을 찾았죠. (내전 때 성폭력을 겪었던) 우간다 여성들은 김복동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릅니다. 할머니들을 보면서 희망을 얻었다고 이야기해요. 연대하며 우리의 문제의식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죠. 할머니는 스스로 노력했고, 세계로부터 영웅이라는 칭송을 받으셨습니다. 연대한 세계인들도 일본을 함께 비난하고 있습니다. ‘아직 해결된 게 없다’는 얘기도 있지만 우린 이미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김복동 할머니께서 눈 감으시기 전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 뭔지 아세요? ‘우리가 이겼어’ 였어요.” ‘우리가 이겼다’는 할머니의 말은 곁을 오랜 시간 지킨 활동가들에게 큰 힘이 됐다. 남은 할머니들이 편히 눈을 감으실 때까지, 그 이후에도 할머니들이 쌓아온 인권과 평화에 대한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우리가 살아나갈 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주권이 없었던 식민 시대, 침략 속에서 유린된 평화를 떠올리죠.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살아나가는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윤 “이 문제는 피해 당사자가 스스로 명예회복의 주체가 되는 것과 피해자 인권 감수성이 있는 사회가 되는 것, 그리고 가해자가 제대로 책임지는 것, 이 세 가지를 다 이뤄야 해결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무지개처럼 멀리 느껴지죠. 하지만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이미 사회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음을 느껴요. 그 자체로 우리의 걸음들은 가치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같이 걸어갈 거예요.”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추적60분’ 1인 방송, 담배꽁초 씹어 먹는다? ‘충격 실태’ [종합]

    ‘추적60분’ 1인 방송, 담배꽁초 씹어 먹는다? ‘충격 실태’ [종합]

    ‘추적60분’ 1인 방송 실태를 방송했다. 8일 KBS1 시사 교양프로그램 ‘추적60분’에서는 ‘1인 방송 전성시대, 축복인가 재앙인가’ 편이 방송됐다. 개인이 영상을 기획하고 제작해 다양한 인터넷 방송 매체를 통해 유통하는 1인 방송이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매월 전 세계 19억 명이 방문한다는 한 인터넷 방송 매체의 경우, 1분 동안 업로드 되는 동영상이 무려 400여 시간에 달할 정도다. 문제는 고수익을 내기 위해 1인 방송 진행자들이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영상을 쏟아낸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욕설과 폭행을 일삼는 것은 물론, 심지어 성범죄까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난 2월, 한 1인 방송 진행자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제보가 ‘추적60분’에 연이어 들어왔다. 담배꽁초를 씹어 먹거나, 자해를 하는 등 1인 방송을 통해 엽기적인 행위를 일삼는다는 A 씨에 관한 내용이었다. 심지어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비하 발언까지 했다는 A 씨. 이를 목격한 시청자 최수미(가명) 씨가 시정을 요구하자, 그의 사진을 1인 방송 화면에 띄워놓고 외모를 비하하는 등 공개적으로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는데. 1인 방송으로 인한 폐해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유행한다는 일명 ‘헌팅 방송’에 가벼운 마음으로 출연했다가 술에 취해 유사 성행위를 당했다는 김진희(가명) 씨. 해당 영상이 유출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큰 충격에 빠졌다. 시간이 갈수록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을 생산하고 있다. 2015년 당시 18살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를 방송해 물의를 빚었던 1인 방송 진행자 B 씨. 당시 14분 가량 해당 방송을 송출해 약 600만 원의 수익을 얻었다는데. 결국 한 시청자가 경찰에 신고한 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에 처해졌었다. 그런데 최근 다시 1인 방송에 복귀했다는 B 씨. 그는 교도소 생활 역시 방송 소재로 삼는가 하면, 한 여성과 유사 성행위를 하는 등 반성의 기미 없이 여전히 과거와 유사한 형태의 선정적인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최근엔 아예 ‘1인 성인 방송 진행자’를 양성한다는 기획사까지 등장했다. 실제 제작진이 만난 한 기획사의 관계자는 ‘1인 성인 방송 진행자’가 되면 방송 콘셉트, 대본, 촬영 장소 등을 자신들이 직접 제공하고, 한 달 수백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기획사 역시 한 달에 1,500만 원가량의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제작진을 유혹했다. 실제 한 1인 성인 방송 진행자의 방송 내용을 살펴본 결과, 속옷을 탈의한 채 유사 성행위를 하는 등 자극적인 영상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었다. 사진 = KBS 연예부 seoulen@seoul.co.kr
  • 김구라, 김흥국 나눔의 집 방문…위안부 할머니 위로

    김구라, 김흥국 나눔의 집 방문…위안부 할머니 위로

    방송인 김구라(49)씨와 가수 김흥국(60)씨가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나눔의 집’은 지난 9일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김구라씨와 김흥국씨의 방문 소식을 전하며 여러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나눔의 집은 “매달 할머니를 뵈러 오는 김구라씨가 (이번에는) 김흥국씨와 함께 방문했다”며 “할머니들을 뵌 후 학생 봉사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한편 김구라씨는 2012년부터 꾸준히 나눔의 집을 찾아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직원들을 챙기는 등 따뜻한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방탄소년단(BTS) 슈가, 생일 맞아 소아암 환자 위해 1억원 기부

    방탄소년단(BTS) 슈가, 생일 맞아 소아암 환자 위해 1억원 기부

    그룹 방탄소년단(BTS) 슈가(본명 민윤기·26)가 9일 자신의 생일을 맞아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1억원을 기부했다. 재단법인 한국소아암재단은 “방탄소년단 슈가가 팬클럽 ‘아미’ 이름으로 1억원과 인형 239개를 기부했다”고 밝혔다. 이어 “슈가는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기부하게 됐다고 전했다”면서 “성금을 환아들에게 잘 전달하겠다.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방탄소년단 팬들은 제이홉 생일을 기념해 광주 북구에 330만원 상당의 10㎏짜리 백미 128포를 기부했고, 영국 야생동물 보호단체에 672파운드(약 100만원)를 전달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방한용품과 기부금도 꾸준히 전달해 오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김정숙 여사 편지 받은 ‘칠곡 가시나들’이 눈물 흘린 사연?

    김정숙 여사 편지 받은 ‘칠곡 가시나들’이 눈물 흘린 사연?

    김정숙 여사가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주인공인 할머니들에게 책주머니와 편지를 전달했다. ‘칠곡 가시나들’ 제작사 단유필름은 “7일 칠곡 복성2리 배움학교에 김정숙 여사의 선물이 전달됐다”며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프린팅한 책주머니 여덟 개에 할머니들 각자의 ‘서명’이 따로따로 인쇄돼 있었다”고 8일 밝혔다. 지난 4일 영화를 관람한 김정숙 여사가 보낸 편지에는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처음으로 이름 석 자를 쓰고, 처음 편지를 쓰고, 처음 우체국에 가고, 아무도 ‘꿈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던 세월을 건너, 가수라는 꿈을 찾아 노래자랑에도 나가고…. ‘너무 늦은 처음’, 하지만 이제라도 스스로 찾아내신 ‘그 모든 처음’을 축하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어 “이제 ‘가시나들’이라는 말은, 나이에 굴하지 않고 도전하는 패기, 나이에 꺾이지 않고 설렘과 기쁨의 청춘을 살아가는 지혜, 유쾌하고 호탕한 유머와 사려 깊은 통찰…. 그런 말들로 다가옵니다. 과거와 추억 속에 살지 않고, 날마다 두근두근한 기대로 오늘을 사는 칠곡 가시나들의 ‘내 나이 열일곱’이라는 선언에 박수를 보냅니다.”라는 응원이 담겼다.단유필름은 특히 “‘나는 박금분’, ‘나는 곽두조’, ‘나는 강금연’, ‘나는 안윤선’, ‘나는 박월선’, ‘나는 김두선’, ‘나는 이원순’, ‘나는 박복형’ 당당하게 말하는 그 이름들 앞에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기대됩니다.”라는 대목에서 할머니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이라는 질곡의 삶을 살아온 할머니들을 통해 나이 듦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한 것에 대해 김정숙 여사는 “‘칠곡 가시나들’의 즐거운 감탄이 더 많은 사람에게 번져가도록 해야겠습니다.”라며 고령화 시대의 정서적 복지에 대한 다짐을 드러냈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은 1930년대에 ‘가시나’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박해와 가난 속에서 한글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던 할머니들이 80줄에 들어 한글을 배우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일상의 변화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할머니들은 반세기의 침묵을 깨고 일어섰다”…‘침묵’ 예고편

    “할머니들은 반세기의 침묵을 깨고 일어섰다”…‘침묵’ 예고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침묵’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침묵’은 반세기의 긴 침묵을 깨고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해 일본정부에 사과와 배상, 명예와 존엄 회복을 호소한 15명의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로, 30여 년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재일교포 2세 박수남 감독의 작품이다. 예고편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침략전쟁 안 했다고 자꾸 그러는데 왜 침략전쟁이 아닙니까?”라며 일본 정부를 향해 항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고향에 못 있겠더라고요…”라며 고향을 떠난 이유를 말하는 이옥선 할머니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 그 누구에도 말할 수 없었던 아픔을 상기케 한다. 예고편의 후반부는 그간의 침묵을 깨고, 일본 정부의 사과와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길고 고된 여정을 담아냈다. “우리는 수년간 천황 군대의 포악한 성폭력에 짓밟힌 피해자들입니다”라는 내레이션은 할머니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귀 기울이게 한다. 작품은 한국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감독과 주인공이 모두 80대 노인이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30여 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다큐멘터리 ‘침묵’은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되며 호평을 받았다. 영화는 시민단체, 학교, 동아리 등 각자가 속한 공동체가 원하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관람하는 ‘찾아가는 극장’ 공동체 상영으로 만날 수 있다. 다큐멘터리 <침묵> 공동체 상영에 대한 문의는 배급사 시네마달(02-337-2135)로 하면 된다. 영상부 seoultv@seoul.co.kr
  • [유세미의 인생수업] 봄

    [유세미의 인생수업] 봄

    명자씨의 친구들이 왜 5인방인고 하니 모두 ‘자’로 끝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회장격인 명자씨 외에 순자만 3명이다. 정순자, 주순자, 이순자에 이어 귀염성 있게 민정자가 합세한다. 이름하여 ‘자 시스터스’. 칠순을 바라보는 그녀들은 왠지 촌스럽다고 느껴지는 이름 때문에 평생 불만의 강과 원망의 골짜기를 건너왔으나 운명처럼 모인 ‘자 시스터스’ 덕분에 이름에 딱 한번 고마움을 느낄 만큼 돈독한 우정을 자랑한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면 그녀들의 봄 여행은 올해도 어김없다. 남편 시중에 여러 자식들 키우느라 관절염까지 생긴 판에 이제라도 시간아 멈춰라 싶은 마음으로 일 년에 한 번 여행을 떠난다. 흐드러지게 매화가 피고 온 산천에 새순이 돋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연초록 세상이다. 집에서는 사방 쑤셔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나고, 햇병아리 같은 손주들만 보면 입이 함박만 해지는 할머니들이지만 5인방에 합류하면 다들 열여섯 소녀가 된다. 왜 안 그렇겠는가. 산골 한동네에서 네댓 살부터 함께 자랐으니 그들에게는 서로가 청춘이고 꽃분홍 세월이다. 올해의 봄 여행을 위해 고속터미널에 제일 먼저 도착한 명자씨는 차표에다 회원들의 간식거리를 챙겼다. 연달아 도착하는 ‘자 시스터스’. 얼굴은 이미 여행의 설렘으로 터질 듯 흥겹다. “1박2일 여행에 다들 웬 보따리가 그리 커?” “사돈 남 말하네. 넌 누가 보면 집 나온 줄 알 겄다.” “마음이야 이미 그렇지.” 까르르 웃음보가 터진다. 길가에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는다는 사춘기 소녀들이 따로 없다. 버스를 타자마자 주섬주섬 간식거리를 꺼낸다. 고구마, 콩떡, 삶은 달걀에 왕사탕이 등장한다. 하이라이트는 정자씨가 직접 집에서 만들었다는 팥 양갱. 이럴 때만 맛보는 귀한 간식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이 주순자씨는 왕사탕을 하나 얼른 입에 문다. “귀한 양갱 놔두고 왜 사탕부터 물어?” “널 보면 사탕이 먹고 싶어져.” 웃는 그녀의 마음을 명자씨는 어렴풋 안다. 순자씨의 집은 그녀들 중 유독 가난했다. 7남매의 맏이 그녀는 친구들이 마냥 뛰어다닐 때도 누군가를 업고 있어야 했다. 그저 맨몸으로 고무줄놀이 한번 하는 게 어린 순자의 소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가장 힘이 된 이는 동네 어귀 점방 딸 명자. 그 시절 귀한 과자는 그 점방에서만 구경할 수 있었다. 순자는 늘 동생을 업은 채 명자와 놀러 다녔다. 맑은 잔물결이 흐르는 강가에 밝은 달이 뜨면 자갈밭이 백사장같이 보이는 고향 풍경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그럴 때마다 명자는 점방에서 가져온 왕사탕을 깨물어 아이 업은 순자의 입에 넣어 주고 나머지는 제 입에 넣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또 하나는 순자의 아이 업은 포대기에 단단히 끼워 넣었다. 그 왕사탕 하나에 왜 그렇게 부자가 된 것 같았는지. 집에 돌아오면 깨물어 동생들 입에 한 조각씩 넣어 주는 게 맏이 순자의 기쁨이었다. ‘자 시스터스’, 웃고 있지만 누군들 좋기만 할까. 사실 근심도 한 뭉치씩 가슴에 얹혀져 있다. 평생 해외여행 한번 못 가고 성실하게 살아 변두리에 아파트 한 채 달랑 있는데 그걸 밑천 삼아 사업하겠다는 아들, 위인이 되라는 것도 아니고 제 앞가림만 해줬으면 좋겠는데 기약 없이 공무원시험에만 매달리는 딸, 퇴직하자마자 뇌출혈로 쓰러져 몇 년째 누워 있는 남편, 사흘이 멀다 이혼하겠다고 부모 협박하는 아들, 며느리…. 숨은 사연도 구구절절이다. 아무튼 봄이다. 사노라면 좋은 일도 궂은일도 번갈아 오기 마련이다. 지금 눈앞이 캄캄하다고 봄인 줄 모르고 사는 건 억울하다. 고난을 넘어 꽃처럼 희망을 품고서야 인생의 진정한 새봄을 만끽할 수 있는 건 누구에게나 공평한 선물이다. 그녀들의 봄 여행이 행복해야 할 이유다.
  • [서울포토] 영화 ‘칠곡가시나들’ 관람 온 김정숙 여사

    [서울포토] 영화 ‘칠곡가시나들’ 관람 온 김정숙 여사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좋은영화관 ‘필름포럼’에서 영화 ‘칠곡가시나들’을 관람하고 있다. 영화 ‘칠곡가시나들’은 경상북도 칠곡에 사는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고, 노년에 느끼는 삶의 소소한 기쁨을 관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2019.03.05. 청와대 제공
  • [아이eye]안전·쾌적 통학로, 어린이 목소리에 정답 있다/김태영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기자단

    [아이eye]안전·쾌적 통학로, 어린이 목소리에 정답 있다/김태영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기자단

    내가 사는 곳은 경남 통영이다. 매일 아침 아파트 단지 내 우거진 숲길을 따라 북적이는 등굣길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한다. 저마다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잔뜩 나누며 신나게 학교로 간다. 가끔은 눈살을 찌푸리거나 위험한 일들도 있다. 매일 같이 차가 밀리고 복잡하며 경적이 울리는 등굣길, 나무 아래 지저분하게 버려져 있는 쓰레기들, 어린이 보호구역인데도 불법주차된 차량들, 자칫 딴 생각을 하거나 장난치다가 못보고 걸려 넘어져 다칠 수 있는 울퉁불퉁한 낡은 보도블럭, 소화전들 때문이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빨간 불이어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씽씽 달리는 차들이나 막무가내로 우회전하는 차들로 인해 많이 놀라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의 안전보다 차가 먼저고 어른들의 편의가 우선이 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린로드대장정 ‘우리들이 바라는 학교 가는 길’에 참여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 커졌다. 그린로드대장정은 안전하고 쾌적한 통학로를 만들기 위해 꾸려진 활동이다. 이 활동을 통해 여러 친구들과 안전하고 쾌적한 등하굣길을 만들기 위해 함께 걸으며 의견을 나눴고,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보도블럭에 들어갈 그림도 그리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우리 의견이 반영된 것일까? 지난해보다 올해 길거리 쓰레기들이 자루에 잘 모아지고 있고 경찰관, 선생님, 녹색어머니회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매일 우리들의 등하굣길을 지켜주고 있다. 지난해 2학기부터는 우리 학교 후문에서 인근의 다른 학교까지의 길이 우리들의 꿈과 소망, 이름이 멋지게 새겨진 보도블럭으로 채워져 깨끗하고 예쁜 길로 새롭게 변신했다. 아예 등굣길 전체를 이런 멋진 보도블럭과 안전한 숲길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앞으로도 어른들이 우리 의견에 더욱 더 적극적으로 귀 기울여 아이들이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통학로를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국에 있는 통학로가 아이들의 생각과 개성을 가득 담은 행복한 통학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우리 스스로도 안전을 위협하는 것들을 발견했을 때 이를 고쳐달라고 목소리를 내며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어린이, 청소년의 시선으로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는 ‘아이eye’ 칼럼을 매달 1회 지면에, 매달 1회 이상 온라인에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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