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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픔은 여행이 될 수 있을까, 아픔을 찾아나서는 ‘다크투어’ [세책길]

    슬픔은 여행이 될 수 있을까, 아픔을 찾아나서는 ‘다크투어’ [세책길]

    대학 졸업여행을 제주도로 갔다. 제주도는 처음이었다. 여러 곳을 둘러보고 구경했는데, 지금도 가장 많이 기억나는 건 제주도 남서쪽 대정읍에 있는 알뜨르 비행장이었다. 사실 알뜨르 비행장에는 별로 볼만한 게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크게 틀린 말도 아니다. 주민들이 무심하게 밭일을 하는 너른 평지가 이어지고 그 너머 남해바다가 보이는 다소 심심한 풍경 뿐이기 때문이다. 딱 한가지, 콘크리트로 뭉뚝하게 지은, 건물인지 창고인지 알 수 없는 게 띄엄띄엄 보일 뿐이다. 알뜨르 비행장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미군에 맞서기 위해 건설한 공군비행장이고, 정체모를 콘크리트는 전투기 격납고였다. 우리가 서 있었던 평지는 사실 활주로였다. 근처 바닷가에 있는 송악산에 있는 포진지와 지하동굴까지 함께 연결시키면 뭔가 서늘한 생각이 든다. 일본을 향해 전진하던 미군은 오키나와에서 일본군과 몇 달에 걸친 격렬한 전투를 치렀는데, 생각해보면 오키나와가 겪은 비극이 제주도 몫이 될 수도 있었다. 사실 그게 일본군이 원하는 시나리오가 아니었을까 싶다. 알뜨르 비행장을 둘러본 다음에 제주4·3평화공원과 기념관에 가보면 제주도가 겪었던 비극이 어떤 연속선 속에 존재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평화공원에 길게 늘어선 희생자 추모비를 봤을 때였다. 셀 수도 없이 많은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망날짜가 이어지는데, 어느 순간 똑같은 이름이 연달아 나오는 게 눈에 띄어서 유심히 살펴봤다. “김계생의 자 1, 4세 남, 1948년 11월 13일 사망” “김계생의 자 2, 3세 남, 1948년 11월 13일 사망” “김계생의 자 3, 3세 남, 1948년 11월 13일 사망” “김계생의 자 4. 1세 남. 1948년 11월 13일 사망” 내게 4·3이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죽어야 했던 아이들, 그리고 같은 날 세상을 떠난 네 아들의 어머니로 남았다. 여행이란 즐거운 것이다. 혹은 즐거움을 위해 여행가방을 챙긴다. 어떤 이들은 슬픔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슬픔을 되새기고 그 슬픔 속에서 삶의 희망을 되짚는 여행을 찾아 나선다. 이름하여 ‘다크 투어’다. 이름도 없이 같은 날 죽어야 했던 아기 4형제얄궂은 노릇이다. 제주는 여행하기에 정말 좋은 곳이다. 좋은 경치와 맛있는 먹거리도 많지만 다크 투어를 위한 재료도 차고 넘친다. 알뜨르비행장이나 제주4·3평화공원을 비롯해 마을 곳곳에 양민학살 흔적이 자리잡고 있다. 작심하고 다크 투어를 시민들과 함께 하는 시민단체까지 있을 정도니 할 말 다했다. ‘제주 다크투어’라는 곳이다. 어쩌다 보니 아는 사람이 얼마전에 이 단체 대표가 됐다. 김잔디 대표는 참여연대에서 처음 만났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에서 일하는 활동가였는데 사회복지사 출신이라고 했다. 보건복지 관련 현안이 있을 때마다 여러 차례 의견을 물어보고 사회복지관 시절 경험담을 들었다. 몇 해 뒤에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변신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실력 발휘를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뒤 이번엔 제주도다. 서울 토박이가 어쩌다 제주도까지 가게 된 걸까. 참여연대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이 4·3을 알리기 위해 이 단체를 처음 만들었는데 처음 얼마간 후원회원을 했단다. 그러다가 “사람을 뽑는다는 얘기에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자원했다”고 했다. 그렇게 일하다보니 어느덧 4년차 제주도민이 되었고, 올해 초에는 아예 새 대표로 승진(?)까지 했다. 김 대표는 “여행이라는 활동을 통해서,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역사를 기억하고 현재를 고민하자는 게 단체의 설립 취지”라고 말했다. 이어 “역사적 사실만을 전달하기보다는, 현재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뭔지 함께 고민하고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함께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주로 4.3과 관련한 여행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대만이나 오키나와처럼 제주도와 유사한 역사를 공유하는 곳까지도 찾아가고, 그 곳에서도 제주도를 찾게 하는 다양한 국제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슬픔을 찾아 뚜벅뚜벅 걷는다는 것다크 투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는 여행”이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물론 처음 다크투어를 알게 해준 <다크 투어: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라는 책에 나오는 표현이다. 인권운동단체인 인권연대에선 해마다 ‘올해의 인권책’을 선정하는데 2021년에 선정위원으로 참여하게 됐다. <다크 투어>는 당시 후보작이었다. 저자는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다 이 책을 쓸 당시엔 서울 용산구에서 카페를 운영했다. 카페에서 일하며 알게 된 동네 할머니들의 한국전쟁 기억을 다룬 <그해 여름>으로 2020년 제8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이 책 <다크 투어>로 2020년 제28회 전태일문학상 르포 부문도 수상했다. 목포형무소에 수감됐다 행방불명돼 버린 오빠를 평생 그리워했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저자는 그 오빠의 흔적을 찾아 목포에서 장흥까지 걷는다. 그 길을 따라가며 숱한 양민학살과 전쟁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비극을 직시하기로 결심하면서 저자의 ‘다크 투어’가 시작된다. “할머니의 오빠를 찾기 위해서 걷는 길은 할머니가 나에게 내민 삶의 초대장이었다… 여행의 종착지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오빠처럼 국가 권력에 의해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47쪽).” 그렇게 저자는 1965년 대학살이 벌어졌던 인도네시아, 1948년 바탕칼리 학살의 현장인 말레이시아, 1947년 2.28 사건이 휩쓸었던 타이완을 찾아가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그렇게 돌고 돌아 저자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다시, 제주도다. 토벌대에 아버지를 잃고 열두살에 가장이 돼 버렸다는 김평담 할아버지가 길벗이다. “그는 가매기 모른식게(까마귀도 모를 정도로 비밀리에 지내는 제사) 드리던 시절, 귤 따는 것도 내팽개치고 매일 성산의 마을들을 돌면서 4.3사건의 유족들을 만났다. 그는 매일 밤 피해자의 이름과 학살 장소를 기록하면서 억울하게 학살당한 조부와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는 성산4·3유족회를 만들고 진실규명을 위해 나서기도 했다. 돈을 모아 위령비를 세우고, 성산에서 학살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돌비석에 이름을 깊이 새겨 넣었다(161~162쪽).” 그러고 보면, 2018년 세상을 떠났다는 김평담 할아버지는 저자와 함께 ‘다크 투어’를 했던 것이리라. 잊지 않기 위해서, 아픈 역사를 잊어버리는 순간 비극은 언제라도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나도 되뇌어 본다. “김계생의 첫째 아들 4세, 김계생의 둘째 아들 3세, 김계생의 셋째 아들 3세, 김계생의 넷째 아들 1세.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 [씨줄날줄] 외국인 의인

    [씨줄날줄] 외국인 의인

    지난달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영덕 해안마을까지 확산되자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을 대피시킨 인도네시아 국적 선원 수기안토(31). 그는 “할매가 걸음을 빨리 못하니까” 300m 떨어진 방파제까지 업고 뛰었다고 했다. 비탈길 마을을 몇 번이고 달린 그의 노력이 수십명을 구했다. 법무부는 8년째 한국에서 선원으로 일한 수기안토에게 장기거주(F2) 자격 부여를 검토 중이다. F2 비자는 취업 활동에 제한이 없고 갱신이 쉬워 외국인들이 가장 선망하는 비자 중 하나다. 주로 국내 대학 졸업 유학생, 한국인 배우자, 투자이민자, 그리고 특별공로를 인정받은 외국인에게 발급된다. 202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대사관과 병원, 코이카 등에서 일했던 391명의 아프간인들에게 특별기여자 자격으로 이 비자가 적용됐다. F2 비자와 달리 실질적 체류 자격을 부여하진 않지만 외국인을 우리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으로 환영한다는 의미를 담은 제도로 서울시 명예시민권이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도 수혜자다. 1958년 한국전쟁 이후 서울 재건에 공헌한 외국인들을 위해 시작됐다. 초기엔 재건 지원에 초점을 맞췄으나 점차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외국인들의 헌신을 기리는 상징으로 발전했다. 카자흐스탄 대사관 직원이던 루슬란 카이람바예프는 자동차 화재를 홀로 진압해 대형 참사를 막은 공로로, 수잔네 뵈얼레 한독상의 부대표는 독일식 정비 직업교육인 ‘아우스빌둥’을 도입한 노력을 인정받아 명예시민이 됐다. 지금까지 100개국 950명이 서울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외국에서 오래 추모되는 한국인 의인도 있다. 2001년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희생된 이수현씨는 지금도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올해 1월 일본에서 그를 기리는 24주기 추도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의인의 정신은 이렇게 국적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 산불 덮치자 “대피하세요!”…할머니들 업고 뛴 외국인, 수십명 구했다

    산불 덮치자 “대피하세요!”…할머니들 업고 뛴 외국인, 수십명 구했다

    경북 의성군에서 발생한 산불이 영덕군 한 마을로 번지자 한 외국인 선원이 집마다 찾아가 주민들을 업고 뛰어 다니며 수십명의 목숨을 살린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1일 뉴스1에 따르면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한 산불이 지난 3월 25일 오후 강풍을 타고 영덕군 축산면 등 해안 마을을 덮칠 때 수기안토(31)씨는 마을 어촌계장 유명신씨와 함께 주민 대피에 나섰다. 오후 11시쯤 두 사람은 몸이 불편한 마을 주민들을 먼저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기 위해 집마다 뛰어다니며 불이 났다는 소식을 알렸다. 수기안토씨는 “할머니, 산에 불이 났어요! 빨리 대피해야 해요”라고 외치며 잠이 든 주민들을 깨웠다. 두 사람은 주민들을 업고 약 300m 정도 떨어진 마을 앞 방파제까지 뛰어갔다. 마을은 특성상 해안 비탈길에 집들이 모여 있어 노약자들이 빠르게 대피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90대 마을 주민은 “쟈가(수기안토씨가) 없었으면 우린 다 죽었을 거다.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들었는데 밖에서 불이 났다는 고함에 일어나 문밖을 보니 수기안토가 와 있었고 등에 업혀 집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수기안토씨는 “사장님(어촌계장)하고 당시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빨리빨리’라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할머니들을 업고 언덕길을 내려왔는데 불이 바로 앞 가게에 붙은 것을 보고 겁이 났다”고 전했다. 8년 전 취업 비자로 입국해 선원으로 일하고 있는 수키안토씨는 고국인 인도네시아에 다섯 살 아들과 부인이 있다고 한다. 주민들과 한국말로도 소통이 가능하다. 그는 “한국이 너무 좋다. 특히 마을 주민들이 가족 같다”며 “3년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향에 있는 부인에게 자랑스럽다는 전화를 받았다. 산불로 다친 사람이 없어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경정3리에는 주민 60여명이 살고 있다. 수기안토씨 등의 도움으로 주민들은 모두 방파제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수기안토와 어촌계장 등이 없었으면 아마도 큰일 당했을 것이다. 저렇게 훌륭하고 믿음직한 청년과 함께 일하고 계속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 “기다리다 지쳐 체념했지만… 죽기 전 日사과 좀 받아다 주이소” [월요인터뷰]

    “기다리다 지쳐 체념했지만… 죽기 전 日사과 좀 받아다 주이소” [월요인터뷰]

    아물지 않는 그날의 상처열여섯에 끌려가 악몽 같던 세월변소 수챗구멍으로 필사의 탈출재일동포 도움으로 다시 고향에귀향 후에도 끝나지 않는 고통일곱 자녀 중에 다섯을 일찍 잃어남편 없이 홀로 남은 두 자녀 양육온갖 고생에 손 마디마디 다 휘어그래도 내려놓지 못하는 희망가끔 찾아오던 정부 발길도 뜸해남은 생존자들 나날이 쇠약해져생전 진심 어린 사죄 받을 수 있나을사년은 우리 근대사에서 아픈 손가락이다. 120년 전인 1905년 을사년에는 ‘을사늑약’이 맺어졌다. 보호국화를 명분으로 맺은 을사조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이 넘어가면서 대한제국의 식민화가 시작됐다. 그 후 일제의 폭압적이고 무단적인 식민정책 속에 수백만 명의 우리 국민은 끌려가고 버려지고 죽임을 당해야 했다. 60년 만에 돌아온 을사년(1965년)은 엉킨 과거사 문제를 바로잡을 기회였지만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와 전후 보상 문제 해결이 지상과제였던 정부는 일본과 굴욕적인 ‘한일청구권협정’을 맺었다. 무상 보상금 3억 달러와 차관 2억 달러를 제공받는 대신 일본의 식민 지배와 강제 노역에 대한 모든 배상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 징용자, 독도 문제 등은 ‘모든 배상’이라는 애매모호한 괄호 속에 숨어 버렸다. 해방 이후에도 피해 여성들에게는 해방이 오지 않았다. 어느덧 최고령 위안부 피해 생존자가 돼 버린 박필근(97) 할머니가 그랬다.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일본에 위안부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은 뒤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대부분은 마음속 응어리를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16일 길원옥 할머니의 별세로 생존자는 박 할머니와 대구 이용수 할머니 등 총 7명이 전부다. 남은 생존자의 평균 연령은 95.7세다. 굴욕의 역사 앞에 끌려갔고 버려졌던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살아생전 조금이라도 담아야 한다는 생각에 경북도에서 유일한 위안부 피해 생존자 박 할머니를 만났다. 고령임을 고려해 인터뷰는 지난 2월 8일과 22일 두 차례에 걸쳐 아들 남명식(62)씨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 아직도 생생한 16세 소녀의 기억 “부모님 모두 밭에 일하러 간 사이에 일본 놈이 들이닥쳐 나를 차에 태우고는 가 버렸어. 그때 열여섯이었는데 어디로 가는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그냥 붙들려 가게 됐지….” 월평리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았던 시골소녀는 82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그날이 어제 일처럼 선하다고 했다. 1928년생인 박 할머니는 당시 경북 영일군(현재 포항시 통합) 죽장면 월평리에서 9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그리 넉넉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날이 오기 전까지 말이다. 할머니는 당시 같은 마을에서 또래 한 명이 더 잡혀갔는데 나중에 도망칠 때도 같이 도망쳤다고 했다. 일본으로 끌려갈 당시 어느 지역을 거쳐 갔는지에 대해 박 할머니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고 다시 배를 타고 부산으로 들어왔다는 정도만 기억할 뿐이다. 당시 부관(釜關·부산~시모노세키)연락선이 우리나라와 외국을 연결하는 유일한 연락선이었다는 점으로 미뤄 볼 때 박 할머니는 부산을 통해 시모노세키 야마구치현 부근으로 끌려갔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으로 넘어간 박 할머니는 삼엄한 경비들이 지키는 건물에서 생활했다고 했다. “늘 군복을 입고 하시(젓가락)를 허리춤에 찬 채로 생활했어. 숙소 문을 열고 나오면 도망 못 가게 여기저기 게이비(경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 함께 숙소를 쓰던 이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다지 많은 대화는 나누지 않았어. 달력도 없고 매일 험한 꼴을 당하다 보니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 그곳에서 얼마나 지냈는지도 모르겠더군.” 박 할머니를 비롯해 함께 끌려간 소녀들도 군인처럼 통제된 일상을 보냈다. 새벽에 일본인이 깨우면 점호하고, 군가를 부르며 훈련했다. 그러다 밤이 오면 교대로 창고 같은 방으로 끌려가 몹쓸 짓을 당했다고 한다. 십대의 소녀에겐 참을 수 없는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얼굴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컴컴한 창고였다. 저항해도, 반항해도 몽둥이로 맞아야만 했다. 박 할머니는 인터뷰 내내 당시 상황이 떠오르면 입을 꾹 다물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일 년쯤 지났을 때 할머니는 탈출을 결심했다. 여기가 어딘지,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할지 계획조차 없었지만 더이상 이렇게 살 순 없었다. 함께 지내던 소녀 두 명도 탈출에 동참했다. 변소 아래를 보니 작은 수챗구멍이 있었는데 잘하면 작은 여자는 통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시도조차 못 하고 걸렸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경비가 들이닥쳤다. “한밤중에 왜 모여 있냐”며 죽도록 때렸다. “두 번째 시도 땐 무조건 수챗구멍에 기어들어 갔어. 한참을 기어가다 그대로 개울 바닥에 떨어지면서 온몸이 부러지는 듯 아팠지만 살기 위해 무조건 또 뛰었어. 정말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박 할머니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한 재일동포의 도움이 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달리던 소녀들은 멀리서 탈탈거리는 소음을 들었다. 경운기였다. 박 할머니는 “경운기 주인이 재일동포였는데 일면식도 없는 우리를 많이 도와줬어. 우선 집으로 데려가 먹여 주고, 옷을 갈아입혔고, 주변 수색이 잠잠해질 때까지 며칠간 집에 숨겨 줬지. 바로 돌아다녔다면 바로 다시 잡혀갔을 거야.” 그 재일교포는 도망 나온 소녀들이 군복을 입고 돌아다닐 경우 신고가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깨끗한 새 옷까지 내주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연락선 표까지 끊어 줬다. 우여곡절 끝에 배를 타고 부산으로 들어와 마침내 한국 땅을 밟았지만 가진 것도 없고 기억하는 거라곤 집 주소뿐이었다. 사람들에게 주소를 알려 주면서 같은 방향이면 태워 달라고 빌면서 하소연했다. 그렇게 다시 몇 날 며칠에 걸쳐서 소녀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죄인아닌 죄인’… 아들·딸 보며 견뎠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박 할머니는 ‘죄인 아닌 죄인’으로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박 할머니와 가족들은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다. 박 할머니는 “하루아침에 딸을 잃어버린 어머니 마음은 어땠겠나. 일본에서 돌아와 처음 어머니 얼굴을 봤을 때 비쩍 말라 있어 나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그때 얻은 병인지 어머니는 딸이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19살이 되던 해 박 할머니는 결혼했다. 일곱 명의 자녀를 얻었지만 다섯을 일찍 잃고 겨우 셋째 딸과 일곱째 아들만 남았다. 남편마저 일찍이 세상을 등져 잃은 자식 생각에 마음 아파할 겨를도 없었다. 남겨진 두 자녀를 홀로 책임져야 했다. 남은 두 자녀만큼은 어떻게든 먹여 살리겠다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자식을 키우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내 손 좀 보라. 나물 캐고 남의 집 농사짓고 산에 나무하러 다니면서 이렇게 다 휘었다.” 가난 탓에 아들 남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일자리를 구하러 대구로 떠났다. 박 할머니는 “돈이 없어서 아들에게 좋은 옷도 못 사주고 먹는 것도 제대로 챙겨 줄 수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고등학교 진학마저 포기하고 아들이 돈을 벌러 외지로 나가야만 했던 것”이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 박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 그저 잊고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증언하고 나선 뒤 차츰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2년 후인 1993년 가족들의 지지와 사회적 분위기로 용기를 얻은 박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 신청을 했고 조사를 거쳐 1994년 3월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됐다. 당시엔 죽기 전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을 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뭔가 변할 것이라 믿었지만 이제는 그런 기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갑자기 할머니가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일본이 사과를 안 했는데 (기자분은) 인제 와서 일본이 사과할 거라고 생각해?”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일본의 사과를 받아 내야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 나를 포함한 생존자들 모두 너무 늙어 버렸어”라고 말했다. 아픈 역사를 잊어 가는 후손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정부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는데 어느새 많이 뜸해졌어….” 박 할머니는 그래도 한결같이 지켜 주는 이들이 있어 고맙다고 했다. “활동가들이 엊그제도 전화하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매달 찾아와. 오면 같이 식당 가서 고디(다슬기)탕이라도 한 그릇하고 돌아와. 고맙지 뭐.” 또 할머니는 “경북도와 포항시, 지역 시민단체도 자주 찾아와 말동무해 준다. 그 덕에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낸다”고 했다. 지난달 10일 박 할머니는 독감과 함께 폐렴 증세를 보여 대구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또 다른 피해 생존자인 이 할머니가 병원에 다녀갔지만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 지금은 집으로 돌아와 간병인과 함께 지내고 있다. 일본으로부터 어떠한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할머니가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무언가가 남아 있는 듯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을 나서려는 기자에게 박 할머니는 “기자 양반, 다음에 올 때는 꼭 일본 놈들 사과랑 배상 좀 받아가 오이소”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할머니의 바람을 들어드릴 시간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 “제주 해녀, 미안합니다” 日후쿠시마 할머니들 ‘원전오염수’ 사과

    “제주 해녀, 미안합니다” 日후쿠시마 할머니들 ‘원전오염수’ 사과

    일본 후쿠시마에 사는 원전 오염수 방류 반대 시민단체 회원들이 제주를 방문해 해녀들에게 국가를 대신해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 4일 오후 제주시 한경면 종합복지회관에서는 ‘바다를 잇는 마음, 제주 해녀와 후쿠시마 할머니의 만남’이 민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헌법소원 변호단,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주최로 열렸다. 이날 제주에는 후쿠시마현 할머니 활동가 스즈키 마리, 오가와라 사키 등이 방문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폭발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도쿄전력 원전에서 45㎞ 떨어진 미하루마치에 사는 오가와라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 당시에 아들에게 모유 수유를 했다. 사고 지점과 8000㎞ 이상 떨어진 일본의 수유 여성들의 모유에서 방사능이 검출됐고, 이때 방사능의 오염성에 눈을 떠 지금까지 반핵운동을 하고 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마지막 해녀’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국의 해녀들에게 사과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제주에 오게 됐다”며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에 반대하며 운동을 전개했지만 이를 막지 못해 굉장히 분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 해녀들의 생활 터전이자 일터인 바다를 더럽히게 돼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라며 일본 정부 등을 대신해 사과했다. 고산리 어촌계 현인홍 해녀는 “분하고 억울하다.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가 틀림없는 바다 환경오염의 주범이라 생각한다”며 “힘을 합쳐 오염수 방류를 제발 막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인성 그린피스 기후에너지팀장은 “바다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며 모든 것을 연결한다”며 “개인이 국가의 잘못에 대해 대신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서로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기억을 나누는 것은 변화를 만드는 시작이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민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헌법소원 변호단은 각계의 시민 4만여명을 대신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방기한 한국 정부에 책임을 묻는 헌법소원을 진행 중이다.
  • 80대 할머니 공동 주거시설 덕분에 목숨 구했다

    80대 할머니 공동 주거시설 덕분에 목숨 구했다

    80대 할머니가 독거노인 공동 주거시설 덕분에 목숨을 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8일 충북 영동군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후 9시쯤 영동읍 주곡리 경로당에서 공동생활을 하던 A(82)씨가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A씨가 화장실에서 20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다른 할머니 두분이 화장실 문을 열어 A씨를 발견했다. 당시 A씨는 의식은 있었지만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할머니들의 119 신고로 병원으로 이송된 A씨는 심장질환을 확인하고 긴급 시술 등을 통해 목숨을 구했다. 혼자 있었다면 큰일을 당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퇴원한 A씨는 자녀 집에서 건강을 회복 중이다. 현장에 있던 한 할머니는 “나이가 들면 위급 상황에서 대응이 어려운데, 함께 생활하는 덕분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었다”며 “서로를 돌볼 수 있어 큰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영동군 공동 주거시설 사업은 지난해 12월 시작됐다. 난방비 절감, 고독사 예방 등을 위해 마련된 이 사업은 2월까지 겨울철만 운영된다. 현재 주곡리 경로당 등 10곳의 경로당을 공동 주거시설로 활용해 50명이 생활 중이다. 군은 어르신 5명 이상이 신청하면 공동 주거 경로당을 지정해 한달 50만원의 운영·난방비를 지원한다. 취사도구, 침구류 등 물품구매비 200만원도 준다. 군 관계자는 “이번 사례를 통해 공동 주거시설의 필요성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며 “앞으로도 어르신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 즐겨! 마셔! 찰칵!… 무대로 스며든 관객들

    즐겨! 마셔! 찰칵!… 무대로 스며든 관객들

    ‘원스’ 즉흥 연주 때 관객 무대에 ‘오지게…’ 극중 보물찾기로 교감‘런던 레코드’ 먹으면서 사진 촬영‘알라딘’ 장면 활용한 마케팅 호응 뮤지컬 ‘원스’를 공연 중인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아티움에서는 이색적인 장면이 펼쳐지곤 한다. 본 공연 전에 배우들이 등장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은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술집으로 꾸며진 무대에 올라 이들의 즉흥 연주를 즐긴다. 연주곡은 아일랜드 민요를 비롯해 공연마다 다양하게 달라진다. 지난 19일 개막한 ‘원스’는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거리의 기타리스트와 꽃을 파는 이민자들의 만남을 아름다운 음악을 매개로 해 그린 작품이다. 영화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으로 귀에 익숙한 ‘폴링 슬로울리’, ‘이프 유 원트 미’ 등은 뮤지컬 넘버로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별도의 오케스트라 없이 배우들이 직접 무대에서 피아노, 만돌린, 벤조, 멜로디카 등 16개 악기를 직접 연주한다는 점이다. 객석에 불이 켜진 상태에서 배우들이 3곡을 연주한 뒤 서서히 암전되고 여자 주인공이 객석 뒤편에서 걸어 나오면서 극이 시작된다. 이처럼 마치 관객들로 하여금 극 안에 들어온 것처럼 느끼게 하는 독특한 무대 연출은 2012년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 때부터 시작됐다. 오리지널 뮤지컬을 기획한 연출가 존 티파니는 “관객과 무대라는 벽을 없애고 관객들이 무대 위 배우들에게 완벽히 이입되도록 만들어 유대감을 형성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문해 학교에 다니며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의 실화를 무대에 옮긴 창작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도 관객 참여형 연출로 인기를 끌었다.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27일까지 열리는 이 공연의 후반부에는 소풍을 떠나 보물찾기를 하는 장면에서 할머니들이 객석으로 나가 양갱, 알사탕, 연필, 엽서 등을 직접 나눠 주며 관객들과 교감했다. 스페셜 커튼콜 때는 관객들이 응원봉을 흔들면서 배우들과 함께 대표곡 ‘우리는 가시나’를 부르며 콘서트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 했다. 최근 일명 ‘시체 관극’이라고 불리는 엄숙한 공연 문화를 벗어나 관객들이 공연에 적극 참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영국 런던 외곽의 한 낡은 레코드 가게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런던 레코드’(서울 종로구 엠스테이지 오픈런)는 공연을 보면서 자유롭게 먹고 마실 수 있으며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 ‘콘서트 뮤지컬’을 표방한 이 작품은 공연 막바지에 스탠딩 공연처럼 관객과 배우들이 한데 어우러져 함께 춤추고 노래 부른다. 다음달 31일까지 서울 성동구 캬바레 성수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캬바레 성수-뮤지컬 다이닝’도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공연이다. 공연 중 배우와 관객이 대화하며 식음료 섭취나 이동도 자유롭다. 즉흥극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을 비롯해 ‘지킬 앤 하이드’ ‘맘마미아’ 등 유명한 뮤지컬 넘버가 무대를 채운다. 공연 관람 때 체험을 중시하는 관객들이 늘면서 이를 활용한 마케팅 전략도 호응을 얻고 있다. 인기 뮤지컬 ‘알라딘’을 공연 중인 샤롯데씨어터(서울 송파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몽드샬롯’에서는 직원들부터 음악, 소품, 음식 등에 이르기까지 뮤지컬 ‘알라딘’ 공연 장면을 반영해 꾸몄고 스토리텔러가 나와 작품에 대한 해설까지 곁들인다. 롯데컬처웍스 공연사업팀 윤세인 팀장은 “뮤지컬 ‘스위니 토드’, ‘드라큘라’, ‘헤드윅’ 등 맞춤형 기획을 선보였는데, 작품의 감동과 여운을 체험하려는 관객들의 관심이 높았다”면서 “최근 들어 공연 관람뿐만 아니라 새로운 체험을 중시하는 관객들이 늘고 있다”고 짚었다.
  • “통통한 고사리 손으로 칼질 척척”…놀라운 ‘1살 아기’의 정체

    “통통한 고사리 손으로 칼질 척척”…놀라운 ‘1살 아기’의 정체

    돌배기 아기들이 능숙하게 요리를 하거나 시장에서 생선을 나르는 등의 영상이 중국 노인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 26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중국의 할머니들이 AI(인공지능)로 만든 ‘가짜 아기’ 영상에 매료됐다고 보도했다. 최근 소셜미디어(SNS)에는 1살짜리 아기가 구운 돼지고기를 맨손으로 들어올려 맨발로 할머니 집에 배달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다른 영상에는 기저귀를 찬 아기가 밭에서 가지를 따고 야채를 씻은 후 칼로 재료를 다져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담겼다. 또 살집이 통통한 아기가 고추기름을 뿌린 푸짐한 국수 한 그릇을 능숙하게 젓가락으로 먹는 영상도 있다. 이는 모두 AI로 만들어낸 가상의 영상이지만 일부 할머니들은 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 채 영상에 빠져들고 있다고 한다. 이에 중국 네티즌들은 “할머니들에게 이게 가짜라고 말하지 말고 그냥 즐기게 두는 게 나을 것 같다”, “이제 AI 손주들이 온라인으로 제품을 파는 시대가 올 것 같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네티즌은 “동반자가 없는 외로운 노인들에게 오직 AI 손자만이 위안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해 씁쓸함을 남겼다. 한편 중국의 인구 고령화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달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60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의 22%인 3억 2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칠곡 K-할매 ‘수니와 칠공주’ 다큐, 오는 5월 폴란드서 개봉

    칠곡 K-할매 ‘수니와 칠공주’ 다큐, 오는 5월 폴란드서 개봉

    경북 칠곡군은 할매래퍼그룹 ‘수니와칠공주’의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오는 5월 말 폴란드에서 개봉할 예정이라고 23일 밝혔다. 칠곡군에 따르면 폴란드 출신 파트리차 스카프스카(34) 감독은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노년층이 외로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 등을 표현했다. 그는 “나이가 들면 새로운 도전을 멈추게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분들은 그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다”며 “이 할머니들은 노년의 삶을 새롭게 만드는 선구자”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스카프스카 감독은 지난해 4월 주한폴란드 대사관 관계자와 함께 칠곡군을 방문, 칠곡 지천면 신4리 경로당에서 할머니들의 한글 수업과 랩 가사를 작성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또 조선 시대 양반 주택인 경수당에서 고즈넉한 한옥을 배경으로 수니와 칠공주가 펼치는 랩 공연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어 수니와칠공주의 모든 할머니와 개별 인터뷰를 진행하며 랩이 할머니 인생에 미친 영향과 변화를 취재했다. 주한 폴란드대사관 관계자는 “수니와 칠공주가 폴란드에 알려져 폴란드 어르신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노후를 보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군에 따르면 이번 다큐멘터리는 국내 개봉도 추진 중이며 부산국제영화제 등에 출품한 뒤 스트리밍 플랫폼에 공개될 예정이다. 한편 수니와칠공주는 칠곡군 지천면 신4리에 사는 평균 연령 85세 여덟 명의 할머니가 모여 2023년 8월 창단식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래퍼 할머니들은 창단 이후 지금까지 인생의 애환이 담겨있는 직접 쓴 시로 랩 가사를 만들었고, 창단 초기부터 관심을 받으며 KBS 인간극장과 아침마당 등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내는 물론 로이터 통신, AP, CCTV, NHK 등 세계 주요 외신을 통해 각국에 소개되면서 ‘K-할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장본인들이다. KBS 인간극장과 아침마당 등 프로그램을 비롯 70회에 걸쳐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비롯 로이터 통신, AP, CCTV, NHK 등 세계 주요 외신들에 소개된 바 있다.
  • “위안부, 매춘의 일종” 류석춘 무죄 확정

    “위안부, 매춘의 일종” 류석춘 무죄 확정

    대학 강의 중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해 재판에 넘겨진 류석춘(70) 전 연세대 교수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13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류 전 교수 사건에서 위안부 피해자 명예훼손 부분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류 전 교수는 2019년 9월 연세대 사회학과 전공과목 발전사회학 강의 중 위안부가 매춘의 일종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재판에 넘겨졌다. 1·2심 재판부는 류 전 교수의 발언이 헌법상 보호되는 학문의 자유, 교수의 자유에 해당하며 토론 과정에서 밝힌 개인적 견해라 판단했다. 다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일본군에 강제 동원당한 것처럼 증언하도록 위안부 할머니들을 교육했다’는 취지의 발언은 유죄로 보고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 “위안부는 매춘” 류석춘, 무죄 확정… 정대협 명예훼손은 벌금 200만원

    “위안부는 매춘” 류석춘, 무죄 확정… 정대협 명예훼손은 벌금 200만원

    대학 강의 중 ‘위안부는 매춘’이라는 발언을 해 재판에 넘겨진 류석춘(70) 전 연세대 교수의 무죄가 13일 확정됐다. 다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기억연대 전신) 관련 허위사실 일부 발언은 벌금형이 선고됐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이날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류 전 교수의 상고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류 전 교수는 2019년 9월 연세대 사회학과 강의 중 대학생 50여명에게 ‘정대협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아 강제 동원 당했다고 증언하도록 종용했다’거나 ‘정대협 간부가 통합진보당 핵심 간부로 북한과 연계됐다’는 취지의 허위 사실을 말한 혐의로 2020년 10월 기소됐다. 또 ‘여성들이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매춘에 종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는 허위 사실을 말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도 받았다. 대법원은 “원심의 무죄 부분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명예훼손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앞서 1·2심은 위안부 매춘 발언은 무죄로 판단했다. 류 전 교수의 발언이 명예훼손죄에서 판단하는 ‘사실 적시’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에서다. 재판부는 “피고인 발언은 개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조선군 위안부 전체에 관한 일반적·추상적 표현에 해당하고, 대학 강의의 토론 과정에서 피고인이 개인적으로 밝힌 견해나 평가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류 전 교수가 정대협 임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정대협이 일본군에 강제 동원당한 것처럼 증언하도록 위안부 할머니들을 교육했다’는 취지의 류 전 교수 발언과 관련한 명예훼손 혐의는 유죄로 보고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 칠곡할매래퍼그룹 ‘수니와칠공주’…칠곡 농산물 새 얼굴 된다

    칠곡할매래퍼그룹 ‘수니와칠공주’…칠곡 농산물 새 얼굴 된다

    평균 연령 85세 할매 래퍼 그룹으로 국내외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수니와칠공주‘가 경북 칠곡 농산물의 새얼굴이 된다. ‘할매 힙합의 본고장’ 칠곡군은 오는 27일 칠곡 농산물 브랜드 ‘건강담은 칠곡할매’를 선보인다고 13일 밝혔다. ‘건강담은 칠곡할매’는 수니와칠공주를 비롯한 칠곡 농민들이 가족 건강을 챙기는 할머니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키웠다는 의미를 담았다. 칠곡에서 재배한 참외, 딸기, 오이, 사과 등 각종 농산물이 수니와칠공주를 모티브로 제작된 칠곡할매 캐릭터를 입고 소비자들과 만날 계획이다. 건강담은 칠곡할매는 하얀 피부에 보름달 같은 둥근 얼굴과 주름진 이마에 웃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군은 건강담은 칠곡할매 브랜드 홍보를 위해 수니와칠공주 랩으로 제작한 휴대전화 통화 연결음도 선을 보인다. 2023년 8월 창단된 칠곡할매래퍼 그룹 수니와칠공주는 세계 주요 외신을 통해 ‘K-할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다. 특히 폴란드에서는 수니와칠공주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다뤄 오는 3월 개봉할 예정이다. 래퍼 할머니들은 인생의 애환이 담겨있는 직접 쓴 시로 랩 가사를 만들었고, 창단 초기부터 전국적인 관심을 받으며 이름이 알려지자 회원 150명이 활동하는 팬클럽까지 결성됐다. KBS 인간극장과 아침마당 등 프로그램을 비롯 70회에 걸쳐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물론 각종 언론에서 1500회 이상 기사로 다뤄졌다. 또 신한금융그룹지주, 한국저작권협회 등 다양한 기업과 기관의 요청으로 상업 광고에도 출연하고 국가보훈부, 국무총리실 등 정책홍보를 위한 캠페인 영상에도 출연했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칠곡할매레퍼를 주제로 농산물 브랜드를 선보임으로써 지역의 특색 있는 맛과 차별화된 이미지를 동시에 선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 “아이 10명 낳으면 100세까지 산다”…中대학교수 발언 뭇매

    “아이 10명 낳으면 100세까지 산다”…中대학교수 발언 뭇매

    중국의 한 교수가 ‘10명의 자녀를 낳은 여성은 100세까지 살 수 있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 9일 중국 다샹뉴스를 인용해 네이멍구 자치구의 한 대학 교수의 이러한 발언이 담긴 강의 영상이 지난달 말 현지 소셜미디어(SNS)상에서 급속하게 퍼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한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아이를 낳으면 신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신이) 더 오래 살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어떤 여성들은 직장에서 성공하지만 그들의 수명은 짧다”라며 “8명이나 10명의 아이를 둔 시골 할머니들은 보통 90세 또는 심지어 100세까지 산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큰 질병이 없어 아플 가능성이 작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가 속한 대학은 공개되지 않았다. SCMP에 따르면 이 교수는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며 연봉 30만 위안(약 6009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는 해당 교수를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당신의 관점을 뒷받침할만한 과학적 증거가 있냐”고 따져 물었다. 다른 네티즌은 “여성이 출산하는 데 위험이 따른다는 걸 모르냐. 분만 중 죽는 여성도 신의 축복을 받은 것이냐”며 분노를 드러냈다. 자녀를 낳았다고 밝힌 네티즌은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건 미친 짓이다. 이미 아이를 하나 낳았는데 비용도 많이 들고 육아가 너무 힘들다”라며 “전문가나 정부가 뭐라고 하든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 인구는 2022년부터 감소하는 추세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전체 인구는 2023년 14억 967만명으로 2022년 말보다 208만명 줄었다. 신생아 수는 2022~2023년 연속해 1000만명을 밑돌았다. 2023년 신생아 수는 902만명으로 1949년 중국 건국 이후 가장 적었다.
  • 감성 충만 레트로 맛집? 행당엔 골목마다 가득![서울펀! 동네힙!]

    감성 충만 레트로 맛집? 행당엔 골목마다 가득![서울펀! 동네힙!]

    유튜버 다녀간 가게들 SNS 퍼져 입소문 타고 평일만 9000명 찾아겉절이 맛난 ‘수제비먹는닭갈비’안성재 셰프가 추천한 ‘만두전빵’ 이국적인 분위기 ‘춘향미엔’ ‘포림’옛 경양식 재현 ‘전풍호텔’ 등 인기 지난 2일 서울 성동구 행당시장을 찾아 지하철 2호선 왕십리역 9번 출구로 나왔다. 행당시장으로 추측되는 골목으로 향했다. 그런데 주택가가 들어선 통상적인 동네 골목과 다르지 않은 분위기다. 눈을 씻고 봐도 물건 파는 시장 느낌은 나지 않는다. 이상한 데라고 생각한 순간 ‘수제비먹는닭갈비’라는 간판이 달린 한 가게로 들어서니 행당시장 상점가 이재희 상인회장이 반갑게 맞이한다. 1968년부터 형성됐다는 행당시장은 왕십리의 중심지다. 갑오개혁(1894) 때부터 ‘행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행당초등학교 동쪽 산 일대 아기씨당(堂)이 위치한 곳에 예부터 살구나무와 은행나무가 많이 심겨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시작은 상인 5~10명이었다고 한다. 반 평 정도 되는 자리에 소쿠리, 박스 등을 놓고 노점을 하기 시작한 게 시초다. 이 회장은 “예전에 아줌마, 할머니들이 반찬도 팔고 채소도 팔고 했는데 전통시장 개념은 아니고 상점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2015년에야 회원 10여명으로 행당시장 상인회가 형성돼 그해 8월에 인정시장으로 등록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이 최근 들어 MZ들의 ‘핫플’로 부상한 것일까. 행당시장 상점가 상인회 강창근 매니저는 “2015년 이후 소셜미디어(SNS)가 발달하면서 행당시장 유명 맛집이 자주 노출돼 명물 가게로 자리잡은 점포들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130개 점포 중 80여곳이 요식업인데 2대째 대를 이어 하는 점포도 많다고 한다. 특히 서울시와 성동구의 시장사업 지원으로 전통 있는 상점가로 발전했다. 그 결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찾는 맛집 골목으로 성장해 평일 손님만 900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골목골목에 숨은 맛집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저마다 MZ들의 감성을 자극할 만한 특색 있는 맛집 비결을 갖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회장이 운영하는 ‘수제비먹는닭갈비’ 앞에도 2022년 무렵 구독자 1130만명의 먹방 유튜버 쯔양이 다녀갔다는 입간판이 서 있다. ‘수제비먹는닭갈비’의 자랑거리는 바로 배추김치 겉절이에 곁들여 먹는 항아리 손수제비다. 돌절구통에 직접 배추를 절여서 제대로 양념이 배게 만든다고 한다. 항아리 손수제비 가격이 7500원이라고 하니 가성비가 끝내준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워낙 유명해 줄을 서서 한참을 대기해야 겨우 먹을 수 있다는 ‘춘향미엔’. 알고 보니 중국교포인 사장 부인 성함이 ‘춘향’이란다. 미엔은 면의 중국식 발음으로, 한국에는 없는 독특한 메뉴를 판다. 중국 선양에서 가져온 옥수수면을 이용한 온면, 냉면, 비빔면이 주메뉴다. 위남구 대표는 “선양에서는 보통 냉면으로 드시는데 실험적으로 온면으로 만들어 봤더니 식감이 매우 좋았다”고 귀띔했다. 직접 만든 소스를 활용한 ‘겉바속촉’ 수제 고기만두도 일품이다. 특히 가수 성시경을 비롯한 유명인들이 다녀가면서 SNS에서 입소문이 났다. 다른 골목으로 조금 걷다 보니 오후 4시를 조금 넘긴 시각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가게가 나타났다. 간판을 보니 ‘굴과찜사랑’이라는 해물요리전문점이다. 인터뷰할 짬도 없이 바쁜 사장과 잠시 서서 얘기를 나눴다. 놀랍게도 아침부터 밤까지 항상 손님들로 붐빈다고 한다. 대체 비결이 뭘까. 사장은 그저 신선한 해산물을 맛있고 푸짐하게 손님들께 드린다며 말을 아꼈다. 신선한 재료의 해산물을 사랑한다면 한 번쯤 방문해 볼 만한 곳이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이색적인 맛집을 원한다면 베트남 요리전문점 ‘포림’도 유명하다. 가게에 들어서기 전부터 동남아 여행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아름다운 해변을 연상케 하는 내부 벽화도 일품이다. 임진우 공동대표는 “12시간 이상 우려낸 쌀국수 국물이 기성 체인점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자랑했다. 임 대표는 누룽지통닭구이가 맛있는 행당집과 행당맥주까지 3곳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는데 간단한 안주나 사이드 메뉴는 공유해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행당시장 상점가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있는 ‘만두전빵’.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으로 인기몰이를 한 안성재 셰프가 추천해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만두전빵이라는 캐릭터 매뉴얼북도 있다. ‘집밥 같은 만두’를 내세우는 이 집의 대표메뉴는 만두전골. 유오근 대표는 “안 셰프가 다녀간 뒤로 젊은 층들이 방문해 매출이 30% 정도 늘었다”면서도 “이곳이 먼저 유명해져서 그분이 찾아오지 않았을까”라고 너스레를 부렸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청년 사장 이종만씨가 운영하는 경양식당 ‘전풍호텔’. 1980년대 고급 경양식집을 재현했다는 이 가게에는 중고로 구매했다는 옛날 자개장부터 오래된 피아노까지 MZ들의 레트로 감성을 자극한다.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 촬영으로 유명해졌고, 최근엔 가수 FT아일랜드의 이재진이 이곳에서 팬미팅을 하기도 했다. 이씨 역시 과거 인디음악을 하면서 가수 버스커버스커 1집 에디터로 참여했던 재주꾼이다. 근처에서 함께 운영하는 ‘삼맛호오떡’은 이씨가 여동생과 함께 길거리 장사로 시작해 고생해서 일군 점포로 데이트 명소가 됐다. 유명 먹방 유튜버들이 배달 음식으로 소개하기도 할 정도로 맛으론 정평이 나 있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 하지만 행당시장 상점가의 불빛은 더욱 화려해졌다. 레트로한 감성과 가성비가 좋은 맛집을 찾는다면 입소문과 SNS를 타고 MZ들의 핫플로 떠오른 행당시장 상점가로 맛집 탐방을 떠나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 새로운 시작… 당신이 계신 그곳은 안녕하신가요[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새로운 시작… 당신이 계신 그곳은 안녕하신가요[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윤이상 1956~1961년 유학 시절아내에게 쓴 편지 책으로 묶어기념관 옆에 지은 ‘베를린하우스’서재·응접실 등 그대로 옮겨 놔예술가 사랑의 편지 가득한 통영백석 ‘남행시초2’ 유치환 ‘행복’ 등 곳곳에 연심 담은 시비 찾는 재미 ‘쓰는마음’ 들러 차분히 편지 쓰고박경리기념관서 바다 풍경 만끽서울신문은 10일부터 3주에 한 번 ‘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편지를 찾아서’를 연재합니다. 편지 속 사연, 편지 쓰기 좋은 공간 등을 찾아 떠나고 여행지에서 쓴 편지 형식으로 배달됩니다. 편지는 마음을 담는 여정입니다. 서울신문은 앞으로 다양한 여행지에서 독자 여러분의 안부를 물을 예정입니다. 12월이 가고 1월에 다다랐습니다. 12월이 끝이 아닌 건 1월로 순환하는 까닭일 겁니다. 그러니 1월은 다행한 달입니다. 당신이 계신 그곳은 안녕하신가요? 저는 지금 경남 통영 윤이상기념관 1층 카페 에스파체(Espace)에 있습니다. 통영은 겨울이 따뜻합니다. 남쪽 바다는 변함없이 짙고 푸르러 설렙니다. 금세라도 윤이상(1917~1995)이 작곡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공간I’(Espace I for Cello and Piano)이 울려 퍼질 것 같은 이곳에서 새해의 안부를 여쭙습니다. ●‘여보’로 시작하는 러브레터 카페 에스파체 창밖으로는 1월의 겨울이 보입니다. 야외 경사광장에는 겨울나무 세 그루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이지요. 흙빛을 닮아 버린 잔디는 겨울잠을 잡니다. 그 한편에 윤이상의 생가터 비가 있겠지요. 윤이상이 영혼의 반려자, 이수자씨와 결혼한 때도 1월이었습니다. ‘통영의 러브레터’ 하면 모두들 청마 유치환의 시 ‘행복’을 떠올릴 테지만 저는 윤이상이 유학 시절(1956~1961) 아내에게 쓴 편지가 생각납니다.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남해의봄날)은 그가 아내에게 쓴 수백의 러브레터 가운데 80여통을 묶은 책이지요. 참말로 그의 모든 편지는 ‘여보’로 시작하더군요. 여보는 ‘여기 보오’의 줄임말이라지만 그가 부르는 여보는 ‘보배와 같다’(如寶)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리고 ‘여보’만큼이나 자주 쓴 살가운 표현이 ‘알뜰’이더군요. 1957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한참 지난 1961년 독일 베를린에서 쓴 1월의 편지에도 떨어져 있지만 같이 있는 날들, 윤이상은 그 충실한 하루를 ‘알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당신을 알뜰히 생각하고 하루를 보내야지’라거나 ‘여보, 나의 알뜰한 마누라(편지를 늦게 보내고 애를 먹여서 덜 알뜰하지만-그래도 나의 예쁘고 못나고 미웁고 귀여운) 나의 마누라’라니요. 이 사실이 좀체 믿기지 않는 건 1917년생이라서가 아니라 그의 장엄한 음악 세계 때문일 겁니다. ‘세계 음악사의 행운’이라 불리는 음악의 거장 역시 악보 대신 아내를 향해 펜을 들 때면 그저 한 사람의 사랑꾼일 뿐이었더군요. 그것은 그에게 ‘작품을 써서 유명하게 되는 것에 지지 않을 만치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이었을 테고요. ●윤이상의 부치지 못한 편지 에스파체에서 몸을 녹인 후 계단을 따라 2층 윤이상기념관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그의 친필 메모가 먼저 눈에 띕니다. ‘나는 고향을 떠난 지 30여년... 꿈에도 잊지 않는 나의 고향에 아직도 갈 수가 없다.’ 그의 또 다른 사랑은 고향 통영이라지요. 윤이상은 1967년 ‘동베를린 사건’(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간첩 누명을 쓰고 2년간 복역합니다. 그리고 1971년 독일로 귀화한 후 1995년 베를린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고향 땅을 밟지 못했지요. 또 한편에는 그가 옥중에서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글이 적혀 있습니다. ‘조각달과 단풍’만으로 내 땅을 무한히 사랑할 수 있다는 남편과 기쁨보다 슬픔이 큰 나날 속에도 ‘희망의 싹’을 믿는 아내의 마음이 오갑니다. 기념관을 관람하는 내내 귓가에는 윤이상의 곡들이 따라다닙니다. ‘20세기 중요한 작곡가 56인’, ‘유럽의 현존하는 5대 작곡가’ 등 서양에서 무수한 찬사를 받은 그 음악의 비밀을 우리는 어렵잖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서양의 문법 속에서 거문고, 아쟁 같은 우리 악기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지요. 그는 스스로의 음악을 ‘정의를 향한 절규, 아름다움에의 호소’로 표현했지만 그 음악들은 고향 땅을 향해 띄운 부치지 못한 편지 같아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절절하게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립니다. 저는 그가 분신처럼 아낀 첼로 앞에서 그를 마주한 듯 제법 오래 멈춰 섭니다. 새해에 찾은 첫 희망의 증표, 지금 이 순간의 울림을 당신에게 전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기념관 옆에는 이국적인 디자인의 집이 있습니다. 윤이상의 베를린 집을 축소해 지은 베를린하우스입니다. 2층은 그의 서재와 응접실을 재현했어요. 그가 쓰던 피아노와 대금, 아버지가 누이의 결혼 예물로 만든 장롱 등 시공을 옮겨 놓은 듯합니다. 저는 햇살이 스미는 서재 책상 앞에서 또 오래 머뭅니다. 39년 동안 117편의 곡이 쓰였던 자리에는 오선지와 펜 한 자루가 단정하게 놓여 있습니다. 그는 이 책상에서 무엇을 쓰고 무엇을 남기고 싶었을까요. 어느 날은 ‘여보’ 하는 호칭으로 아내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을 테지요. 옆자리 선반에는 편지와 관련한 작은 물건 하나가 눈길을 끄네요. 메트로놈처럼 보이는 그것은 저울입니다. 가난한 유학생 윤이상은 습자지처럼 가벼운 종이를 사용해 편지를 썼다고 해요. 국제우편 비용을 아끼려 편지를 띄우기 전에는 무게를 재곤 했다지요. 하지만 면면을 가득 채워 빼곡하게 들어찬 글자들,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의 무게를 무심한 저울이 어찌 알 수 있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이 작은 공간 안에 음악 아닌 것은 온통 그리움입니다. 고향 통영에 대한 그리움이고 아내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그에게 음악은 어쩌면 음표로 쓰인, 먼 땅 통영의 바다로 띄운 그리움일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유해는 이제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의 바다를 내려다보며 통영국제음악당 곁에 잠들어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요. ●충렬사 계단에서 쓴 연시 윤이상의 그리움을 뒤로하고 만복아파트 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립니다. 정류장 앞 세탁소에는 백석의 시 ‘남행시초2’가 붙어 있습니다. 문화와 예술의 도시 통영답다 싶습니다. ‘남행시초’는 백석이 창원, 통영, 고성, 삼천포 등을 여행하고 쓴 시입니다. 통영 편인 ‘남행시초2’에는 ‘서병직씨에게’라는 부제가 붙었습니다. 백석은 친구 허준의 결혼 축하 모임으로 통영에 왔다가 한 여인에게 반하지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다시 통영을 찾지만 그를 맞이하고 통영을 구경시켜 준 이는 그녀의 외사촌 오빠 서병직이었어요. 그러니 ‘남행시초2’는 아쉽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시로 쓴 편지라 할 수 있겠지요. 백석은 자신의 작품 안에서 여러 차례 그녀를 그리워하고 고백해요. ‘편지’라는 수필에서는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하였습니다’라고, ‘통영2’에서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앉아 그녀가 사는 명정골을 바라보며 시를 지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충렬사 앞에 백석의 시비가 있는 건 그런 까닭이겠지요. 그거 아시나요? 통영은 사랑의 편지로 가득한 도시입니다. 윤이상과 백석뿐일까요. 유치환을 빠뜨릴 수는 없겠네요. 그는 시인 이영도에게 무수한 연서를 보냈지요. 그가 편지를 부친 통영중앙동우체국 앞에는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던 ‘행복’의 시비가 있어요. 시인이 편지를 쓰는, 음악가가 편지를 짓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통영의 글쓰기 공간 ‘쓰는마음’의 장혜원 대표는 편지를 여행에 비유합니다. 편지가 메일과 다른 점은 그 자신이 ‘여행’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겠지요. 윤이상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는 차를 타고 배와 비행기를 타고 통영에 다다랐을 테지요. 백석의 편지는 사랑하는 이에게 끝내 닿지 못한 채 그의 마음속을 여행했을 것이고요. 그 발자국이 음표가 되고 시어가 되었겠죠. 그러므로 마침내 우리는 그 편지를 빌려 호우시절의 그들과 만날 수 있게 된 것일 테죠. ●타자기와 딥펜과 만년필을 빌려 통영에 오면 봉숫골 ‘남해의봄날’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작은 서점 ‘봄날의책방’에 들르곤 합니다. 통영이 건네는 편지 같아서요. 장 대표는 ‘남해의봄날’에서 편집자로 십여 년간 일했습니다.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권정자 외)를 만든 편집자이기도 해요. 그런 울림이 쓰는 마음의 출발이고 편집자는 그 마음을 다독이는 이일 겁니다. 그래서 ‘쓰는마음’은 통영의 마지막 여행지로 점찍어 둔 곳이에요. 예약하면 1시간 30분 동안 나만의 책상과 쓰는마음 편지지, 편지봉투와 엽서그리고 따뜻한 음료가 주어져요. 책상에 앉아서는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거나, 또 누군가는 책과 더불어 사색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겠죠. 그때 사색은 내 마음에 쓰는 편지일 수 있겠네요. 맞아요. 장 대표가 찾은 쓰는 마음의 물성은 책상에 있어요. 모든 작가들의 첫걸음 자리. 이를 소설가의 책상, 시인의 책상 그리고 음악가의 책상으로 꾸렸어요. 소설가의 책상은 박경리의 책상을 모티브로 했답니다. 책상 위에는 타자기 두 대가 놓여 있어요. 사랑하는 이와 마주 앉아 타닥타닥 말들을 주고받고 싶어지는 자리예요. 시인의 책상은 유치환, 김춘수, 김상옥, 그리고 백석 등의 시 쓰는 마음을 빌려 왔어요. 책상 위에 놓인 딥펜(철필, 잉크에 찍어 사용하는 펜)과 만년필은 시심을 북돋아 주는 응원 도구죠. 음악가의 책상에는 낯익은 책 한 권이 보여요. 윤이상의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입니다. 장 대표는 이 책의 편집자 중 한 사람이기도 했어요. 그러니 그에게 쓰는 마음이란 세계적인 작곡가의 편지나 이제 갓 글을 배운 할머니의 그림일기가 다르지 않았겠지요. 그는 누군가의 글을 귀하게 어루만져 본 이라서 누구보다도 쓰는 마음을 잘 알고 있어요. 편지를 쓰는 첫걸음은 가만히 눈을 감아 보는 것, 세상 만물의 소리에 살며시 귀를 기울여 보는 것, 그때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편지의 첫 문장이 돼 줄 거라 말해요. 오늘 내가 이곳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면 그건 아마도 쓰는마음의 주인장이 정성껏 내린 찻물이 찻잔을 부딪쳐 울리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해요. 장 대표가 때때로 예약자들을 마중하는 손 편지의 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해요. 쓰는마음이 세세하게 마음을 쓰는 방법이지요. ●다정을 ‘쓰는 마음’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쓰는마음’을 나서기 전, 그 마음 가운데 하나려니 하며 누군가 원고지에 필사한 글 한 편을 맘에 담아요. 박경리의 시 ‘옛날의 그 집’의 일부입니다. ‘쓰는마음’에서는 박경리기념관이 멀지 않아요. 살며시 등을 떠미네요. 그러니 박경리의 묘가 있는, 바다가 보이는 기념관으로 기어이 다음 걸음을 옮길 수밖에요. 오늘만은 잠시 편지 쓰는 음악가와 시인의 마음을 따를 수밖에요. 오늘만은 ‘친애하는’으로 시작하는 정중한 표현 대신 ‘여보’ 하는, 당연해서 잊혀 가는 다정함으로 편지를 건넬 수밖에요. 그렇게 우리는 편지글을 빌려 마음 쓰는 방법을 배워 나갈 수 있겠지요. 새해, 우리의 안녕을 바라요. [여행 수첩] ●윤이상기념관 -오전 9시~오후 6시(화~일요일), 월요일 휴관, 베를린하우스는 일·월요일 휴관 ●쓰는마음 -정오~오후 4시(수-금요일, 예약제), 오전10시~오후 5시(토요일), 오전10시~오후3시(일요일), 월·화요일 휴관, www.instagram.com/from.tongyeong.
  • 평범한 운동화에 한땀한땀 수놓다…日지진 피해 마을 할머니들 [스니커 톡]

    평범한 운동화에 한땀한땀 수놓다…日지진 피해 마을 할머니들 [스니커 톡]

    운동화에 한땀 한땀 수를 놓아 특별하게 바꿔주는 할머니들이 소셜미디어(SNS)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독일 패션잡지 하이스노비어티는 일본의 전통 자수 기법인 ‘사시코’로 운동화 같은 기성품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물건으로 만들어주는 자수공예그룹 ‘사시코 갤스’를 소개했습니다. 사시코 갤스는 시판 운동화를 다채로운 색의 두터운 실로 꿰매 독특한 신발로 만들어냅니다. 이 때문에 이 그룹은 평범한 운동화를 신을 수 있는 예술품으로 바꾸는 마법을 부린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습니다. 현재 팔로워 6만 명이 넘는 사시코 갤스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면 이미 다양한 신발이 이 그룹의 손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중 인기가 많은 신발은 뉴발란스에서 이른바 메이드 라인이라고 불리는 990, 991, 992, 993 시리즈 운동화들인데, 댓글도 수십 개씩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는 누리꾼들이 더 많은 신발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각 운동화는 자수를 놓는 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수공예품이기 때문입니다. 사시코 갤스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이와테현 오쓰치 어촌에 사는 여성 15명이 마을을 재건하자는 목표로 모이면서 시작됐습니다. 현재 이 여성들의 나이는 40세부터 80세까지 다양한데 원래 어업 분야에 종사했거나 어부의 아내였습니다. 사시코 자수에 대한 경험도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지난 13년 동안 노력 끝에 일본 최고의 사시코 장인 그룹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제는 한 사람이 운동화 한 켤레를 아름다운 자수 제품으로 바꾸는 데 일주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현재 이들의 작품은 인기가 커지면서 일본 패션 브랜드 쿠온을 통해 자국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 한국에서도 팝업 스토어 형태로 팔리고 있습니다. 사시코 갤스의 멤버 중 한 명인 오사와 할머니는 “손주들이 인스타그램에 남겨진 수많은 외국어 댓글에 대해 얘기해줬을 때 놀랐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유명한지 몰랐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배우 문희경, 국학진흥원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홍보대사로 위촉

    배우 문희경, 국학진흥원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홍보대사로 위촉

    한국국학진흥원은 배우 문희경을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홍보대사로 위촉했다고 27일 밝혔다. 문씨는 향후 2년 간 홍보대사로서 활동하게 된다. 1986년 가수로 데뷔한 문씨는 영화, 드라마, 뮤지컬, 예능까지 종횡무진하는 전천후 엔터테이너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힙합에서 트롯트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열정과 적극성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국학진흥원의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은 여성 어르신이 유아교육기관을 방문해 옛이야기와 선현 미담을 들려주는 사업이다. 올해로 16년째를 맞았다. 사업 첫해인 2009년 1기 30명 선발을 시작으로 현재 3083명의 이야기 할머니가 배출됐다. 이들은 전국 8300여곳의 유아교육기관에서 50만여명의 유아들에게 우리의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문씨는 “저도 50이 넘은 나이에 트롯트 경연대회에 참가해 포기했던 디바의 꿈에 다시 도전했다”며 “시니어 여성들이 현실에 충실하는 동안 잊고 지냈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아직 열려 있음을 더 많이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은 “항상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들의 젊고 활동적인 이미지를 대변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칠곡 할매들 시·그림, 교과서에 실린다

    칠곡 할매들 시·그림, 교과서에 실린다

    인생 팔십 줄에 한글을 익히고 자신의 글씨체를 디지털 글씨체인 칠곡할매글꼴로 탄생시킨 경북 칠곡 할매들의 시가 교과서에 실린다. 칠곡할매글꼴은 윤석열 대통령이 연하장에 사용할 만큼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경북 칠곡군은 할머니들의 시와 그림이 2025년부터 사용될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다고 25일 밝혔다. 해당 교과서는 교과서 점유율 1등 출판사인 천재교과서 ‘2022 개정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대표 저자 노미숙)’다. 주인공은 고인이 된 강금연, 김두선 할머니를 비롯해 박월선(96), 이원순(87) 할머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글을 배우지 못했던 아쉬움과 가난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아픔을 지니고 살아 왔다. 그러던 중 여든이 넘어 칠곡군이 운영하는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깨친 후 2015년 시집 ‘시가 뭐고?’를 발간했다. 인생 황혼에 시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이 시집에는 칠곡의 다른 마을 할머니들(총 89명)의 시도 함께 실렸다. 교과서에는 칠곡 약목면 복성리 도시재생구역 ‘벽화 거리’에 있는 할머니 4명의 시와 그림이 담기며 “70여년 동안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했던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우며 어느덧 자신의 삶까지 시로 표현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강금연·김두선 할머니의 ‘처음 손잡던 날’, ‘도래꽃 마당’과 이원순·박월선 할머니의 ‘어무이’와 ‘이뿌고 귀하다’를 두 면에 걸쳐 실었다. 이 할머니는 “교과서 수록을 누구보다 기뻐할 언니들이 고인이 되거나 거동이 불편해 안타깝다”면서 “어린 학생들이 할머니들의 시를 읽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바른 심성을 길렀으면 좋겠다”고 했다. 칠곡군은 최근 초고령화 시대에 실버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할머니들의 활약상을 재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해 교과서 수록을 자축했다. 군은 교과서 수록을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고 ‘교과서 거리’ 스토리를 입혀 약목면 도시재생구역 정비에도 나설 계획이다 김재욱 군수는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칠곡 할매들은 시를 남긴다”며 “어르신들의 열정을 알리고 실버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 인생 팔십 줄에 한글 익힌 칠곡 할매들이 쓴 시(詩), 중학교 국어 교과서 실린다

    인생 팔십 줄에 한글 익힌 칠곡 할매들이 쓴 시(詩), 중학교 국어 교과서 실린다

    인생 팔십 줄에 한글을 익히고 자신의 글씨체를 디지털 글씨체인 칠곡할매글꼴로 탄생시킨 경북 칠곡 할매들의 시가 교과서에 실린다. 칠곡할매글꼴은 윤석열 대통령이 연하장에 사용할 만큼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경북 칠곡군은 할머니들의 시와 그림이 2025년부터 사용될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다고 25일 밝혔다. 해당 교과서는 교과서 점유율 1등 출판사인 천재교과서 ‘2022 개정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대표 저자 노미숙)’이다. 주인공은 고인이 된 강금연, 김두선 할머니를 비롯해 박월선(96), 이원순(87) 할머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글을 배우지 못했던 아쉬움과 가난과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아픔을 지니고 살아 왔다. 그러던 중 여든이 넘어 칠곡군이 운영하는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깨친 후 2015년 시집 ‘시가 뭐고?’를 발간했다. 인생 황혼에 시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이 시집에는 칠곡의 다른 마을 할머니들(총 89명)의 시도 함께 실렸다. 교과서에는 칠곡 약목면 복성리 도시 재생구역 ‘벽화 거리’에 있는 할머니 4명의 시·그림이 담기며 “70여 년 동안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했던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우며 어느덧 자신의 삶까지 시로 표현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강금연·김두선 할머니의 ‘처음 손잡던 날’, ‘도래꽃 마당’과 이원순·박월선 할머니의 ‘어무이’와 ‘이뿌고 귀하다’를 두면에 걸쳐 실었다. 이원순 할머니는 “교과서 수록을 누구보다 기뻐할 언니들이 고인이 되거나 거동이 불편해 안타깝다”면서 “어린 학생들이 할머니들의 시를 읽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바른 심성을 길렀으면 좋겠다”고 했다. 칠곡군은 최근 초고령화 시대에 실버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할머니들의 활약상을 재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해 교과서 수록을 자축했다. 군은 교과서 수록을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고 ‘교과서 거리’ 스토리를 입혀 약목면 도시재생구역 정비에도 나설 계획이다 김재욱 군수는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칠곡할매들은 시를 남긴다”며 “어르신들의 열정을 알리고 실버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 검찰, ‘횡령 혐의’ 나눔의집 간호조무사 불기소

    검찰, ‘횡령 혐의’ 나눔의집 간호조무사 불기소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지급된 의료급여 카드를 무단으로 사용해 수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받아온 전직 간호조무사가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2001년 7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나눔의 집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한 A씨의 법률 대리를 맡은 B법무법인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이 전날 A씨의 횡령 혐의 사건을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고 21일 밝혔다. A씨는 2014년부터 2020년 8월까지 나눔의 집에 입소한 할머니 10여명의 의료급여 카드를 여성가족부로부터 수령한 뒤 무단 사용해 6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이 사건 수사는 2020년 8월 나눔의집 입소 할머니들의 보호자와 유가족들이 경찰에 고소해 시작됐다 A씨는 2020년 3월 나눔의 집 운영자들의 후원금 횡령 의혹 등을 공익 제보한 내부 직원 7명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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