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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급 공무원’ 이을 봄 코미디의 제왕은?

    ‘7급 공무원’ 이을 봄 코미디의 제왕은?

    지난해 영화 ‘7급 공무원’의 흥행성공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김하늘, 강지환 주연배우 투톱은 반신반의 정도였고, 신태라 감독의 전작은 코미디가 아닌 스릴러 영화 ‘검은 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4월말 개봉이라는 점이 걸렸다. 하지만 영화 ‘7급 공무원’은 남녀 주연배우의 환상호흡과 소소한 잔재미로 가득한 코믹 코드로 전국 400만 관객을 불러들였다. 비수기라는 한계도 뛰어 넘었다. 올 봄 극장가에 제2의 ‘7급 공무원’을 노리는 코미디 영화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올 봄 코미디 영화에는 남녀 커플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남자 셋(‘집나온 남자들’), 여자 셋(‘육혈포 강도단’), 그리고 남자 둘(‘반가운 살인자’) 등 동성 주연들이 짝을 이루고 있다. ◆ ‘마파도’ 뛰어넘는 할머니군단 나오나 ... ‘육혈포 강도단’ 영화 ‘육혈포 강도단’의 경쟁상대는 자의반 타의반 영화 ‘마파도’다. 개성 있는 할머니들의 출연으로 속편까지 제작됐던 ‘마파도’를 뛰어넘기 위해선 그 흥행공식을 그대로 따르거나 전혀 다르게 가거나 둘 중 하나다. ‘육혈포 강도단’의 할머니들은 ‘마파도’의 할머니들보다 조금 더 세다. 도시에 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행경비 837만원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다. ‘마파도’에도 출연했었던 김수미는 걸쭉한 욕설을 속사포처럼 뱉어내는 특유의 김수미표 코믹 연기로 복귀했고, 나문희와 김혜옥 역시 ‘마파도’의 故 여운계, 김을동, 김형자 등과 비교해 절대 밀리지 않는 코믹 연기를 보여준다. 여기에 조연으로 출연한 임창정 또한 ‘마파도’의 이문식과 자웅을 겨룰만한 ‘불쌍한 캐릭터’로 재미를 더한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코믹 연기에도 낯설지 않아 익숙한 웃음을 준다는 점은 흥행에 있어 약인 동시에 독이 될 수도 있어 이 영화의 흥행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오는 18일 개봉. ◆ 지진희의 코믹 연기 통할까 ... ‘집 나온 남자들’ 영화 ‘마파도’의 이문식이 올해도 코미디 영화로 돌아왔다. 하지만 영화 ‘집 나온 남자들’의 주인공은 지진희. 지진희는 역할 비중이나 출연 분량에 있어서만 주인공이 아니라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나 정통 코믹 연기에 도전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감독이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지진희를 고려해 만들었다는 지성희라는 캐릭터는 겉으론 완벽한 품절남이지만 알고 보면 무엇이든 제멋대로인 소위 ‘초딩남’이다. 주로 TV사극에서 보여준 차분하고 온화한 이미지에서 얼마나 완벽하게 변신할 수 있을지가 관건. 연기 변신이 기대되는 배우가 한 명 더 있다. 지난해 영화 ‘똥파리’의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맡아 이목을 끌었던 양익준. ‘똥파리’ 때와는 전혀 다른 영화에 도전한 그의 연기 변신 또한 흥행의 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감독은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을 만들었던 이하 감독. 개봉은 4월 8일. ◆ 여장까지 불사한 유오성과 ‘깝동욱’의 호흡 ... ‘반가운 살인자’ 유오성도 ‘주유소 습격사건’ 이후 오랜 만에 코믹 연기에 도전했다. 여기에 최근 브라운관과 스크린 모두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김동욱이 가세했다. 특히 김동욱은 ‘깝동욱’이란 별명까지 얻으며 코믹 연기를 제대로 소화했다는 평가. 영화는 형사보다 더 형사 같은 백수와 백수보다 더 백수 같은 형사가 한 명의 살인자를 먼저 잡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오성은 이 영화에서 여장까지 불사하며 열연했다. 이 영화는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범인을 쫓는 스릴러 영화의 구조를 가져가면서도 코미디 영화의 요소 또한 놓치지 않았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등 김상진 감독의 코미디 영화에서 연출수업을 받아온 김동욱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4월 8일 개봉. 사진=각 영화 포스터 서울신문NTN 이재훈 기자 kin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할머니들이 쏜다”… ‘육혈포 강도단’ 이색 홍보

    “할머니들이 쏜다”… ‘육혈포 강도단’ 이색 홍보

    ’서울 시내 주요 대학가에 할머니들이 떴다?’ 뽀글뽀글한 퍼머머리 가발을 쓰고 ‘돈 내놔’가 쓰여진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영화 ‘육혈포 강도단’을 홍보하기 위해 나서 화제다. 이들은 대학생들에게 ‘육혈포 강도단’ 포스터가 인쇄된 포스트잇을 배포하는 이벤트를 펼쳤다. 대학생들은 포스트잇을 받아가지 못한 친구들의 몫까지 챙기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육혈포 강도단’은 동호회나 과별로 MT비용 30만원을 지원하는 이벤트도 기획했다. 세 여자의 우정을 다루고 있는 영화 내용에 맞춰 기획한 이 이벤트는 맥스무비, 인터파크, YES24 등의 사이트에서 ‘육혈포 강도단’을 예매한 대학생들 중 추첨을 통해 MT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 나문희, 김수미, 김혜옥의 만남만으로도 화제가 되고 있는 ‘육혈포 강도단’은 오는 1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사진=더홀릭컴퍼니 제공 서울신문NTN 이재훈 기자 kin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윤진, ‘강도단’ 나문희 응원차 부산 찾아

    김윤진, ‘강도단’ 나문희 응원차 부산 찾아

    ‘월드스타’ 김윤진이 ‘육혈포 강도단’의 나문희를 만나기 위해 은행을 찾은 사연이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육혈포 강도단’(감독 강효진)의 제작사 측은 10일 촬영 현장을 찾았던 김윤진의 사진을 공개했다.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서 잠시 귀국했던 김윤진이 나문희를 만나기 위해 촬영장을 찾았다.”고 밝혔다. 김윤진과 영화 ‘하모니’에서 호흡을 맞춘 선배 나문희를 응원하기 위해 바쁜 일정에도 촬영이 진행되고 있던 부산의 한 은행을 찾았다. 그는 나문희 뿐만 아니라 김수미, 김혜옥 등 대선배들과 만나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윤진은 “‘육혈포 강도단’ 속 세 할머니의 사연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마음에 와 닿는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한국 최고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다.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는 영화가 나올 것 같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또 “미국에 있어서 ‘육혈포 강도단’을 극장에서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꼭 챙겨보겠다.”는 약속을 덧붙였다. 후배 김윤진의 아낌없는 응원에 나문희는 물론, 김윤진을 실제로 처음 만난 김수미와 김혜옥 역시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육혈포 강도단’은 평생지기 친구인 3명의 할머니들이 하와이 여행자금을 은행 강도에게 도둑맞고, 그 돈을 되찾기 위해 직접 은행 강도단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나문희와 김수미, 김혜옥 외에도 어수룩한 전직 은행 강도로 임창정이 등장해 즐거움을 더한다. 내달 18일 개봉 예정. 사진 = 전망좋은영화사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나문희 “‘마파도’의 아쉬움, ‘육혈포’로 풀어”

    나문희 “‘마파도’의 아쉬움, ‘육혈포’로 풀어”

    나문희가 친한 후배 배우 김수미와 함께 첫 영화를 찍은 소감을 밝혔다. 두 여배우는 ‘육혈포 강도단’(감독 강효진·제작 전망좋은영화사)으로 호흡을 맞추며 특유의 위트 넘치는 연기 호흡을 선보였다. 3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육혈포 강도단’의 언론시사와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나문희는 “과거 김수미가 주연한 ‘마파도’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 건강상의 문제로 불발됐었다.”고 회상했다. 나문희는 ‘마파도’의 아쉬움을 ‘육혈포 강도단’으로 풀었다. ‘육혈포 강도단’의 시나리오를 받고 출연을 고민하던 나문희는 “이번에는 꼭 함께 하자.”는 김수미의 제안에 두말 않고 뛰어들었다. 김수미의 독특한 연기를 좋아한다는 나문희는 “한때 김수미에게 시련이 찾아오기도 했었다. 담배 피우는 모습까지 재능 넘치는 김수미의 연기를 한동안 보지 못할까봐 걱정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이번 영화에 큰 기대를 갖는 이유는 김수미의 뛰어난 연기 때문이다. 나까지 그녀의 덕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생의 마지막까지 배우로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낸 나문희는 극중 선한 외모와는 달리 거침없는 카리스마를 자닌로 ‘육혈포 강도단’의 리더 정자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지난 제작보고회 당시 나문희는 “정자 역은 나에게 꼭 맞는 옷”이라고 자신한 바 있다. 한편 ‘육혈포 강도단’은 평생지기 친구인 3명의 할머니들이 하와이 여행자금을 은행 강도에게 도둑맞고, 그 돈을 되찾기 위해 직접 은행 강도단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나문희와 김수미, 김혜옥 외에도 어수룩한 전직 은행 강도로 임창정이 등장해 즐거움을 더한다. 내달 18일 개봉 예정.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현성준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위안부 해결없이 해방이란 말 못해”

    “위안부 해결없이 해방이란 말 못해”

    할머니의 숨이 거칠어졌다. 눈물이 촉촉이 맺힌 두 눈이 살짝 감기기 시작했다. 대화를 나눈 지 채 40분이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길원옥(83) 할머니는 꼿꼿하던 등을 소파에 기댔다. 3·1절을 이틀 앞둔 지난 27일, 서울 충정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 ‘우리집’에서 길 할머니를 만났다. “올해가 한일병합 100년이라지? 나라에서는 해방된 지 65년 됐다고 기념하는 모양이지만,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진정한 해방이라고 할 수 있나. 우린 아직도 해방되지 않았어.” 가늘게 이어가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할머니의 답답증은 3·1절, 광복절만 되면 심해졌다. 정부에서 ‘과거는 다 잊고 새로 잘해 보자.’는 말을 할 때면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길 할머니는 “과거를 왜 없애. 인정할 건 하고 사과할 건 해야 앞으로 서로에게 좋은 것 아냐.”라면서 “자기 가족, 지인 중에 위안부 피해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할머니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 그것이다. “죽을 날이 머지않았는데, 뭘 더 바라겠어. 우리는 ‘배상’하라는 말은 안 해. 계속 할머니들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으면 ‘이제 내 차례다.’싶어 불안하지.” 지난 10일 전북 익산에서 치료를 받던 이점례(89)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우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86명으로 줄었다. 수요집회가 처음에는 “망신스러웠다.”고 했다. 텔레비전을 보는데 수요집회 장면이 나왔다. ‘나도 저기 나간다면….’ 잠깐 생각을 했지만 동네 망신스러워서 상상도 못했다. 수요집회를 알게 된 후로 매일 눈물이 났다. 견딜 수 없었다. 92년부터 시작된 수요집회에 길 할머니는 2002년부터 참여했다. 길 할머니는 거의 매일 추운 겨울, 더운 여름 가리지 않고 수요집회를 지킨다. ‘우리 후손이 당하면 안 된다, 알려야 한다’는 심경에서다. 할머니는 “일자무식에다 학교 근처에 가본 적도 없지만 강연에 나가서 증언할 때면 스스로 놀란다.”면서 “말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 우황청심환을 2~3개씩 먹지만 내 할 일이 그것이다.”고 말했다. 쉼터 친구인 이순덕(93) 할머니가 몸이 안 좋다며 병원에 갔다. “일주일에도 몇 번 있는 일이야. 둘 다 안 아픈 곳이 없어. 나도 당뇨가 있는데 오늘은 당 수치가 떨어지지 않아서 괴롭네.” 몸 가누기를 힘들어하는 길 할머니는 “팔십 넘도록 사람답게 한 번 못 살아봤는데, 죽기 전에 일본이 진심으로 사과하면 눈을 편하게 감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마지막 소원을 말했다. 글 사진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나문희 “하이킥은 잊어라…할머니 강도역 대만족”

    나문희 “하이킥은 잊어라…할머니 강도역 대만족”

    “‘거침없이 하이킥’과는 또 다른 나를 봐 달라.” 배우 나문희가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국민 할머니를 넘어 ‘육혈포 강도단’으로 돌아왔다. 26일 서울 롯데시네마 애비뉴엘에서 열린 영화 ‘육혈포 강도단’(감독 강효진·제작 전망좋은영화사)의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나문희는 “엄마가 아닌 캐릭터를 늘 기다렸는데, 할머니 강도 역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영화 ‘하모니’에 이어 나문희가 선택한 차기작 ‘육혈포 강도단’은 평균연령 65세의 할머니 강도단이 은행을 터는 기막힌 사연을 그린 코미디 영화. 나문희는 “지나치게 독특한 설정이 한국 정서에 맞지 않을까봐 처음에는 출연을 망설였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나문희는 선한 외모와 거침없는 카리스마로 무장한 ‘육혈포 강도단’의 리더 정자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그는 “정자 역은 나에게 꼭 맞는 옷”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나문희는 특히 함께 강도단을 꾸린 김수미, 김혜옥과의 연기 호흡을 이번 영화의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우리 셋의 관계 구축이 잘됐다. 덕분에 힘든 줄도 모르고 연기했다.”며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에 함께 자리한 강효진 감독은 “사실 나문희와 김수미, 김혜옥은 감독에게도 부담스러운 배우들이다. 하지만 나문희를 필두로 나를 막내아들처럼 대해주셔서 즐겁게 연출에 임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한편 ‘육혈포 강도단’은 평생지기 친구인 3명의 할머니들이 하와이 여행자금을 은행 강도에게 도둑맞고, 그 돈을 되찾기 위해 직접 은행 강도단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나문희와 김수미, 김혜옥 외에도 어수룩한 전직 은행 강도로 임창정이 등장해 즐거움을 더한다. 내달 18일 개봉 예정.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강정화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칠레 경찰, 마약 판매 할머니들 때문에 골치

    칠레 경찰, 마약 판매 할머니들 때문에 골치

    칠레 마약단속반 경찰들이 돈에 눈이 먼 노인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밀매조직에 고용돼 은밀히 마약을 운반하거나 아예 지역을 맡아 판매책으로 활동하는 노인이 소리 없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는 할머니다. 칠레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올 들어 칠레 경찰이 체포한 노인 마약판매업자는 벌써 16명. 잡힌 사람은 60∼80세 사이다. 칠레 프로비덴시아에서 최근 체포된 70대 2명의 할머니도 마약사범 혐의로 경찰에 적발된 경우다. 각각 72세와 79세 된 두 할머니는 한 집에 살면서 조직으로부터 코카인을 공급 받아 지역 공급책으로 활동하다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칠레 경찰은 할머니들이 코카인을 판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가택을 수사해 코카인 2㎏와 마약을 팔아 챙긴 현금 3800만 페소(약 9200만원)을 압수했다. 칠레 경찰은 “프로비덴시아 할머니들이 웬만한 청년조직 만큼이나 마약을 잘 팔아 왔다.”면서 혀를 내둘렀다. 노인들이 마약밀매 일선에 나서고 있는 건 마약조직의 계획적인 접근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의심을 받지 않는 데다 은밀히 마약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조직이 노인층을 판매책 또는 운반책 고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칠레 경찰 관계자는 “전통적인 범죄자 이미지, 마약밀매조직원의 이미지와는 전혀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노인들을 의심하긴 쉽지 않다.”면서 “게다가 이웃 등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어르신들이 많아 마약을 판다는 의심이 들어도 주민들이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마약조직이 노리는 노인은 연금이나 생활비 보조 등을 받지 못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취약계층이 대부분이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를 해버리면 당장 노인이 끼니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에 마약을 파는 걸 알면서 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고 설명했다. 순간의 유혹에 빠져 마약을 팔거나 운반하다 잡힌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거의 대부분 전과 없는 ‘깨끗한’ 노인이다. 경찰에 적발돼 기소되면 “다시는 마약을 팔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경찰은 “순수한 노인들이기 때문에 보통은 약속을 지켜 마약밀매에서 손을 씻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숙인·요양원 노인들에 위안 됐으면”

    “노숙인·요양원 노인들에 위안 됐으면”

    “색소폰 소리가 참 구슬프네 그려. 저게 도대체 무슨 노래여?” “어떤 선생님인지 잘 모르겠지만 색소폰 한번 기가 막히게 잘 부네.” 지난 7일 오후 2시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북문 인근 공터. 색소폰에서 뻗어나오는 굵고도 한편으론 가녀린 음색에 취해 시장 곳곳에 있던 노숙인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는다. 벌써 15명이 모였다. 말쑥한 연주자의 손길이 색소폰에 닿자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애잔하게 흘러나오고, 자원봉사자도 잠시 국밥 뜨는 손길을 멈춘다. 노숙인들은 공터 가운데 놓인 난로를 바라보며 매서운 추위를 잠시 잊고 피로를 녹인다. 연주가 끝나자 노숙인들은 연신 “잘한다.” “고맙다.”며 박수로 화답했다. 처음 연주를 듣는 사람들은 그가 경찰인지 모른다. 노숙인과 오갈 곳 없는 요양원 노인들을 위해 ‘색소폰 부는 경찰’ 김종욱(52) 경사는 그렇게 또 하루를 보냈다. 서울 송파경찰서 방이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김 경사는 경찰에 투신한 지 25년이 된 베테랑이다. 일선 형사로 15년 이상 활동, 서울시장상을 비롯해 11차례 유공자상을 받았다. 2003년 방이지구대에 배치됐던 그는 ‘항상 우쭐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4년 전 지인의 권유로 우연히 배운 색소폰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그는 근무가없는 날마다 집 근처 탄천2교로 가서 3~4시간씩 연습에 빠졌다. ‘도레미파솔라시도’조차 몰랐던 그가 시간이 지나자 점차 능숙하게 색소폰을 다루게 됐다. 처음에는 행인들이 신기하다고 몰려들었지만, 6개월 뒤에는 작은 연주회를 감상하기 위해 멀리서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용기를 얻은 그는 2007년 여름부터 의지할 곳이 없는 노숙인과 노인들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매주 비번인 날과 주말에는 어김없이 연주봉사에 나섰다. 송파구 인근의 요양원과 가락시장 무료급식소가 주무대였다. 2009년 대표적인 예술봉사단체인 ‘홍정애 국악예술단’과 함께 공연을 갖기도 했다. 김 경사는 “실력 있는 연주자들은 봉사활동을 해도 요양원이나 무료급식소를 찾지 않고 화려한 무대가 갖춰진 곳만 찾아 다닌다.”면서 “실천하는 봉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몸소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주로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과 ‘동백아가씨’를 연주한다. 갈 곳 없는 요양원 할머니들이 요청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는 “색소폰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들을 바라볼 때, 노숙인들과 함께 국밥을 뜰 때 인생의 참 기쁨을 느낀다.”며 웃었다. 글 사진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까막눈 한 푼 산골마을 할머니들

    9명의 산골 할머니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한글을 깨우치고 꿈에 그리던 초등학교 명예졸업장을 받는다. 주인공은 충북 옥천군 안내면 주민자치센터가 운영 중인 ‘행복한 학교’ 수료생들. 70·80대인 이들은 오는 17일 안내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을 예정이다. 학교 문턱도 밟지 못한 이들은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매주 두 차례씩 행복한 학교에 나와 자원봉사자들에게서 한글과 간단한 수학을 배웠다. 처음에는 ‘이 나이에 배워서 무엇에 쓰겠냐.’며 수업을 소홀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문을 읽게 되고 더하기와 빼기를 하게 되자 점점 공부에 욕심이 생겼다. 최고령인 전란식(89·안내면 서대리)할머니는 “평생 까막눈으로 살던 한을 풀기 위해 예습·복습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했다.”며 “아직 서툴지만 책을 읽고 편지도 쓸 수 있다.”고 즐거워했다. 이들의 뒤늦은 향학열을 지켜본 주민자치위원들은 인접한 안내초등학교의 협조를 얻어 초등학교 명예졸업장을 선물하기로 했다. 정규과정은 아니지만 6년간의 글방 수업을 충실히 마친 할머니들의 노력을 빛내주기 위해서다. 안내초등학교는 사각모까지 씌워 할머니들을 축하할 계획이다. 글방을 이끌어온 민병용(52)씨는 “동네에 글을 모르는 분들이 많아 주민자치센터 협조를 얻어 시작하게 됐다.”며 “할머니들이 명예졸업장을 받게 돼 무척 기쁘고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현재 40여명의 할머니들이 행복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옥천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해리포터와 롤플레잉 게임의 공통점은?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밤, 신라의 할머니들은 정화수를 떠놓고 자손들의 무병장수를 빌었고, 어머니들은 동네 여인들과 모여 강강술래 춤을 췄다. 또 누이들은 달의 정기를 몸에 들인다며 숨을 참고 첫 보름달을 마시는 흡월정(吸月精) 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닐 암스트롱이 달에 발을 디딘 날, 아이들 가슴에선 방아 찧는 토끼가 사라졌다. TV가 거실을 차지하면서 사람들은 달의 이야기들을 까맣게 잊었다. 인터넷이 세상을 씨줄날줄로 엮으면서부터는 사람들이 아예 달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신화는 그렇게 사람들 곁을 떠나갔다. ‘신화/탈신화와 우리-21세기를 신화로 읽는다’(이도흠 엮음, 한양대 출판부 펴냄)는 이처럼 과학과 현대문명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진 듯했던 신화가 21세기 들어 귀환하고 있는 현상을 집중 조명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판매 부수가 1억권을 넘어섰고, 롤플레잉 게임이 전해주는 신화와 환상의 세계에 어른 아이 모두 푹 빠졌다. 신화 관련 서적은 연일 상종가다. 신화가 부활하고 있는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책은 총 4부로 구성됐다. 1부 ‘사람의 코드로 신화를 읽는다’에서는 신화와 인간 사이의 의미를 캐는 데 초점을 맞췄다. 2부 ‘우리의 코드로 신화를 읽는다’에서는 왜 한국인은 ‘삼국유사’를 곁에 두고 그리스 신화에 열광하는지, ‘주체로서의 우리’를 상실한 이유를 고민한다. 3부 ‘여성의 코드로 신화를 읽는다’에서는 남성 우월주의가 왜곡한 신화 속 여성상을 다룬다. 4부 ‘해체의 코드로 신화를 읽는다’에서는 신화를 ‘신이 되어 사람을 지배하려는 자의 이데올로기’로 규정하고, 이를 해체한 뒤 다시 구축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3만 2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한·일 국민 1% 서명운동 추진”

    “한·일 국민 1% 서명운동 추진”

    “900회까지 오니까 먼저 간 사람들이 생각나. 1000회까지는 안 갔으면 좋으련만….” 6년 만의 강추위가 서울을 강타한 13일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9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모인 길원옥(82), 강일출(82) 등 4명의 할머니는 목소리를 높였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밑도는 강추위지만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수요집회를 잊지 않았다. 집회 참가자들은 외로운 싸움을 해 온 서로를 격려하고 앞으로도 꿋꿋이 힘든 싸움을 진행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1992년 1월8일부터 진행 수요집회는 1992년 1월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만행에 대한 역사교육 시행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면서 시작됐다. 1995년 1월 발생한 일본 고베 지진 때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 매주 진행됐다. 900회 수요집회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등 40여개 단체가 참가하거나 연대해 힘을 보탰다. 일본 도쿄·후쿠오카·오사카·나고야·교토와 독일의 베를린, 프랑스 파리, 미국 워싱턴·LA·뉴욕에서도 연대집회가 열렸다. ●“국회서도 앞장서줬으면” 윤미향 상임대표는 “앞으로는 일본 정부로 하여금 관련 법을 제정해 배상하고 사과하도록 하는 데 힘을 쏟겠다.”면서 “이를 위해 한국 국민의 1%인 50만명, 일본 국민의 1%인 100만명, 도합 150만명의 서명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집회에 참여한 캐나다인 안젤라(36)는 “900차 집회는 슬픈 기념일이다.”면서 “아직도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현숙씨도 “여성으로서 할머니들에게 감사한다.”면서 “할머니들 덕분에 여성의 인권이 향상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에는 87명의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생존해 있다. 길 할머니는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집회에 직접 찾아와 응원해줘서 감사하다.”면서 “시민들 덕분으로 늙은 몸이지만 하루하루 지탱해 나가는 것 같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강 할머니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앞장서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동작구 ‘老-老 케어’ 봉사 활기

    동작구 ‘老-老 케어’ 봉사 활기

    서울 동작구의 노(老)·노(老)케어 사업이 자리를 잡으며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건강한 노인이 홀몸노인을 돌보는 사업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이 서로 돕는 흐뭇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7일 동작구에 따르면 본동종합 사회복지관의 ‘굿프랜드 가정봉사단’ 등 지역 내 사회복지관을 중심으로 180명의 노·노케어 봉사단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구의 노인인구 비율은 전체 인구의 9.8% 정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홀몸노인은 1064명에 달하고 있다. 김복심(90·사당1동) 할머니는 “말동무도 없이 혼자 외롭게 지내다 비슷한 또래의 할머니들이 매일 와줘 너무 좋다.”면서 “이 사업이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로 더욱 확대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화자(66)씨는 “처음엔 잘 모르는 어르신들을 돕는 게 서먹해서 걱정도 많았지만 매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이들 봉사단은 ▲저소득 와상환자 및 장애인 가정 노인 가사생활 지원 ▲거동 불편 재가 노인 급식제공 및 일상생활 지원 ▲경로당 및 홀몸노인 가정방문 ▲부항, 뜸 등 한방서비스 지원 등 생활밀접형 복지서비스가 주를 이룬다. 이 사업은 서로를 이해하면서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인을 위한 일자리도 늘릴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복지서비스 사업이다. 한편 구는 올해 14억 2100만원을 투입해 모두 911개의 노인 일자리를 제공, 고령화 사회에 노인들에 대한 경제적 자립기회 제공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김우중 구청장은 “앞으로도 노인들이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지역 분위기 만들기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후생연금 99엔 재심 청구” 근로정신대 할머니 기자회견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일본의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 지급 결정에 대해 재심사를 청구하기로 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돕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근로정신대 출신 양금덕(78) 할머니는 4일 오전 11시 광주 서구 미쓰비시자동차 전시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심사 청구계획을 밝혔다. 이들은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돕는 일본인들로 구성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등의 협조를 얻어 청구기한(1월15일)까지 재심사를 청구하기로 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2010 신춘문예-동화 당선작]별똥별 떨어지면 스마일-이 나 영

    [2010 신춘문예-동화 당선작]별똥별 떨어지면 스마일-이 나 영

    우리 옆집에 연예인이 산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놀랍게도 나와 친하다. 과연 누굴까? 오빠는 영화배우도, 가수도 아닌 바로 개그맨이다. 그렇다면 메뚜기 유재석? 무릎팍 강호동? 혹시 독설 왕비호?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내가 아는 오빠는 아쉽게도 그들이 아니다. 오빠의 이름은 있지만. 아직 개그맨의 이름은 없다. 송희동, 오빠의 이름이다. 오빠는 어엿한 방송사 공채 개그맨이다. 내가 아주 어려서 기억도 못 할 때, 공채 개그맨 모집에 당당히 합격했다고 한다. 동네 아줌마들이 자주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 후, 오빠는 자랑스럽게 자신이 이제 개그맨이라고, 뜨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들떠서 다녔다고 한다. 아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빠의 가장 활기차고 적극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한 일 년은 신바람에 실려 다녔고, 삼사 년 동안은 조금만 기다려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하며 다녔다고 한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좀 기대를 했었지만, 나중에는 오빠에게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냐고 아쉬움 섞인 농담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지 벌써 칠년이 되었다. 모두는 오빠를 연예인이라는 특별함을 잊어가고, 그저 웃기게 생긴 옆집 총각으로 기억하게 되었고, 오빠도 지쳤는지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사실 오빠는 성격이 그렇게 적극적이고, 활발한 것은 아니었다. 굳이 특기라면, 그저 잘 웃는다는 것, 얼마나 잘 웃었으면 웃는 것으로 공채 개그맨 시험에 합격했을까? 어느 날, 오빠가 내게 말해주었다. “근데, 오빠는 뭐로 개그맨이 된 거야? 잘하는 성대모사라도 있어?” “아니, 난 그런 것 없어.” “그럼 어떻게 그 어려운 시험을 한 번에 합격한 거야?” “몰라. 그냥 웃었더니, 심사 보시는 선생님들이 같이 웃더라. 그러더니 그놈 참 잘 웃네 하며 나가보라고 하더라.” “뭐야? 그게 끝이야?” “응.” “정말?” “그렇다니까!” “뭐야? 공채 개그맨 시험은 어려운 게 아니었어?” 내가 보기에도 오빠는 웃는 것 말고는 그다지 썩 눈에 띄게 잘하는 것이 없어 보였다. 기뻐도 웃고, 놀라도 웃고, 미안해도 웃고, 심지어 화가 나도 웃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가끔 놀린다. “바보 아니야?” 희동 오빠는 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우리 할머니와 오빠 어머니는 아주 오랜 친구셨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라고 부른다. 우린 가족 같다. 오빠는 내게 사촌 오빠같이 편하게 해주고, 잘해준다. 내게 매번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깍쟁이! 예쁘게 생겨 갖고.” 그럼 내가 콧방귀를 뀌고 걸어가면, 오빠는 내 뒤통수를 보고 계속 웃었다. 희동 오빠네 할머니는 몸이 좀 불편하셨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오빠네 할머니는 동네에서 오랫동안 분식집을 하시며 홀로 희동 오빠를 키우셨다. 할머니가 만드신 떡볶이와 만두가 정말 맛있어서 분식집은 동네 학생들에게 인기가 최고였다고 했다. 바쁘게 몇 년을 일만 하셨던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분식집에서 쓰러지셨다. 너무 힘드셔서 그랬을 것이라고 우리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쓰러지고서 분식집은 닫아야 했다. 할머니는 몸의 반쪽을 잃으셨다. 걸음도 잘 못 걸으시고, 한 손도 잘 못 쓰시고, 말도 정확하게 못 하셨다. 지금까지 말이다. 할머니가 쓰러졌던 해는 희동 오빠가 공채 개그맨으로 합격한 해였다. 희동 오빠는 개그맨으로 성공해 어머니를 모셔야겠다고 생각해서, 할 수 있는 노력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매번 회의에서 오빠의 개성 없는 착한 개그는 번번이 밀려났고, 오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맡을 기회도 찾지 못했다. 오빠는 오랫동안 야간 알바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매일 오빠는 할머니를 부축하고 동네를 산책했다. 할머니를 하루에 한 번씩 운동을 시켜 드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지나가다 어딜 가느냐고 물을 때면, 오빠는 웃으며 말했다. “미녀와 데이트 가요!” 낮에는 할머니와 함께 있기도 하고, 포기할 수 없는 개그맨의 기회를 계속 찾아보고 다녔다. 힘들 텐데, 오빠는 항상 좋다. 그 누가 저 얼굴을 아픈 어머니가 계신 얼굴이라 할까? 누가 저 얼굴이 무명에 서러운 얼굴이라고 할까? 정말 오빠를 보고 있으면 울지도, 웃지도 못하겠다. “무슨 저런 눈물 나는 개그맨이 다 있어?” 동네 사람들은 오빠를 보며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희동 오빠가 꼭 잘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어주고 있었다. “저렇게 착한 애가 또 어디 있어? 저런 애가 잘되어야 하는데…….” 희동 오빠의 꿈은 어쩌면 언제부턴가 우리 모두의 꿈이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그만큼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의 별이 어둠에서 돋아나 반짝이는 빛을 내는 것처럼 언젠간 희동 오빠도 별처럼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희동 오빠의 눈물겨운 소원이 이루어지면 그 별에서 별똥별이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힘든 어둠 속 같은 지금을 잘 뚫고 갈 수 있게, 오빠와 함께 웃어주고, 그 웃음으로 힘을 주고, 격려를 해주고, 조금 기다려 주었다. 오빠가 반짝거리는 그날을! 그날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희동 오빠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 아직 동네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다. 오빠네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만 알고 있으라고 하며 은근히 자랑을 하셨던 모양이다. 그 비밀 같지 않은 비밀을 할머니는 또 나만 알고 있으라고 하며 알려주셨다. 참 어른들이 더 웃기다니까! 내가 들은 비밀이란, 희동 오빠가 만든 개그 아이디어를 요즘 인기 좋은 선배가 뽑아주어 토요일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개그 프로그램 무대에 올리고, 오빠가 역할을 맡아 나온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 두 할머니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텔레비전에, 오직 방송에 나올 수 있다는 그 한마디에 흥분하고 계셨다. 나도 물론 좋고, 기쁘다. 기다렸던 그날이 오는 걸까? 잘 되길 오늘 밤부터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희동 오빠는 여전히 웃고 다녔다. 특별히 좋아서 웃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오빠는 매일 저렇게 웃었으니까. “오빠! 좋은 일 있다며?” “아, 그거….엄마만 알고 있으라니까.” 오빠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웃었다. “오, 오빠, 정말 이번에 뜨는 것 아냐? 확 뜨면, 나 오빠 펜클럽 회장 시켜줘야 해. 내가 오빠 팬 일호니까!” “야, 너 왜 그래? 부끄럽잖아.” 오빠의 뚱뚱한 몸으로 나를 밀어서 넘어질 뻔했다. 오빠가 나를 안아주며 환하게 웃었다. 오빠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하고 싶었던 일이었을까? 나도 벌써 떨리고, 기대가 되었다. 오빠가 말한 녹화하는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오빠는 매일 연습하러 가서 우리 할머니가 오빠네로 출근을 하셨다. 모두가 오빠 때문에 생긴 힘든 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은 날들이었다. 저녁이 되었다. 오빠가 집에 올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 할머니 두 분이 걱정을 하기 시작하셨다. 두 할머니의 걱정이 시작되면,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그것을 아는 나는 얼른 말했다. “제가 오빠 마중 나가 볼게요. 오빠는 제가 나가면 금방 오더라고요.” 나는 할머니들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 휙 돌아 뛰어나왔다. “왜 안 오는 거야?” 어둠 속에서 가로등 불이 한 줄기 내리고 있었다. 그 아래 누군가의 그림자가 길게 서 있다. 그림자는 길어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누군가 자세히 봤더니 긴 그림자의 정반대로 짧고, 뚱뚱한 희동 오빠가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희동 오빠?” 오빠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웃었다. 그런데 어쩐지 오빠는 활짝 웃지 않았다. “수연이구나?” “왜 이렇게 늦었어?” “오빠 마중 나온 거야? 우리 예쁜이.” 오빠는 동네 편의점에 나를 데려가 내가 좋아하는 딸기 우유를 사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놀이터 그네에 앉았다. 나는 신나서 딸기 우유를 먹으며 말했다. “오빠, 방송 준비는 잘 돼가?” 무심코 던진 내 물음에 오빠의 대답은 빨리 돌아오지 않았다. 오빠는 씁쓸하게 웃었다. “오빠, 못하게 됐어.” “왜?” 나는 앉아 있던 그네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음에 하자고 하더라고.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럼 다음이 언제야?”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잘할 수 있었는데…. 웃길 수 있었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빠는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우리 엄마는 모르게 해줘. 일단, 방송만 못 보고 지나가게 하게. 너한테 거짓말 시켜서 정말 미안해.” “아니야. 힘내, 오빠.” 오빠의 부탁에 나는 알았다고 했다. 선의의 거짓말이니까. 그것으로라도 힘든 오빠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난 알고 있었다. 이 비밀 또한 이미 비밀로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기다렸던 녹화 날은 왔다. 오빠는 할머니에게 말하지 않고, 녹화하러 가는 것처럼 외출했다. 나는 마음의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이 비밀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말이다.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나도 오빠의 안 좋은 일 때문인지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학교 끝나고 빨리 집에 가서 일찍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굣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사거리가 있었다. 그곳은 상가가 있어 평소에도 복잡해서 꼭 엄마들이 자원봉사로 아침에 교통정리를 해주었다. 그런데 오늘은 복잡한 그대로였다. 아니, 더 시끄럽고,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좀 걸어 보니,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둘러 서 있었다. 건널목에서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 나는 궁금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길바닥에 케이크 상자가 덩그러니 떨어져 터진 옆구리로 하얀 생크림이 새어 나와 있었다. 앞으로 좀 더 가보니, 헬멧 쓴 아저씨가 쓰러진 오토바이를 세우고 있었다. 나는 다른 쪽을 보았다. 그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내 눈앞에 오토바이에 치여서 쓰러져 있는 사람이 바로 희동 오빠의 엄마였다. “할머니!” 나는 우리 가족들에게 연락해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다. 살짝 부딪힌 접촉 사고였다. 할머니는 가뜩이나 불편한 다리 한쪽에 깁스를 하게 되었다. 다리에 조금 금 간 것 빼고 괜찮다고 하셨다. 천만다행이었다. 병원에서 오빠에게 연락했다. 오빠가 헐레벌떡 병실로 뛰어들어 왔다. “엄마!” “희동이 왔구나?” “엄마, 어떻게 된 거야? 왜 그랬어?” “우리 희동이 첫 녹화 축하해주고 싶어서….” 할머니는 떨리는 입술로 목소리를 내셨다. 오빠는 손으로 엄마의 얼굴을 만져 드렸다. 할머니는 오빠를 축하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제과점에 걸어가 케이크를 사오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나는 내가 한 거짓말을 후회했다. 그날 저녁, 조금 늦은 시간에 우리 할머니가 죽을 쑤셔서 가져다 드리려고 하셨다. 병원이 가까워서 내가 심부름을 하겠다고 했다. 난, 지금 마음이 아플 오빠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다행인지, 오빠의 비밀은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병실 문을 스르르 살짝 열었다. 틈이 조금 생기고, 더 밀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잠시 서서 내 앞에 펼쳐진 모습을 보고 있었다. 촛불 하나 밝힌 케이크를 가운데 두고 할머니가 침대에 기대앉아 계셨고, 오빠는 서서 케이크를 바라보고 환하게 웃고 촛불을 후 불었다. 그들은 소리 안 나게 박수를 치며 마주 보고 웃었다. 그들은 웃었지만, 할머니는 행복해 보였고, 오빠는 더 슬퍼 보였다. 오빠네 할머니는 얼마 후 퇴원하셨다. 오빠는 또 원래 그 모습대로 돌아와 항상 웃고 다녔다. 변함없이 열심히 엄마를 돌봐 드리고, 밤에 일하고, 언제나 머릿속은 개그 아이디어를 찾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오빠가 그동안 열심히 만든 새로운 개그 아이디어를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희동 오빠가 무대에 서고 싶은 역할은 다름 아닌 스마일이었다. 노란 둥근 테를 두른 스마일 얼굴을 떠올려 보니 오빠와 딱 맞았다. 나는 오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눈을 감아본다. 순간, 환한 조명이 무대 위의 주인공인 스마일을 비추어준다. 관객석에서 스마일을 향한 웃음이 빵빵 터진다. 드디어 어둠 속을 뚫고 별이 뜬다. 스타다! 사람들은 스마일을 보고 있지만, 나는 스마일의 웃는 얼굴에 흐르는 땀과 눈물을 보고 있다.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진다. 스마일의 눈물이었다. <끝>
  •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붉은 코끼리/이은선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붉은 코끼리/이은선

    할머니가 사라졌다. 노인정과 공판장을 지나 경찰서로 뛰어가던 엄마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뭐라고? 할머니가, 어디? 엄마, 잘 안 들려요! 모퉁이를 돌아서자 팀장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얼결에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재빨리 칸막이를 닫았다. 어느새 전화가 끊어져 있었다. 아침 식사 시간 전부터 기숙사에 와 잔소리를 해대는 팀장과 이러저러한 일들이 겹쳐 오후 두 시가 다 되도록 한 번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내친김에 변기 위에 걸터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려는데, 옆구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가 울렸다. 곧 리허설을 시작하겠다는 팀장의 목소리였다. 그건 안 됩니다. 코끼리들 상태가 좋질 않아요. 오늘은 무조건 쉬게 해야 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팀장은 무전기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당장 달려오라고 했지만 당장은 가기 싫었다. 무전기의 전원을 끄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어디 가셨다는 거지? 몸도 안 좋으시면서.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삼촌의 이름이 전광판에 떴다. 울고 있던 가족들이 황망히 수골실로 내달렸다. 나는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삼촌의 유골은 대리석 탁자 위에 새카맣게 탄 못들과 뒤엉켜 있었다. ‘냉각’을 거쳤다고는 하나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유골이었다. 할머니가 탁자 모서리에 가슴을 짓찧었다. 망연히 서 있던 아버지가 서둘러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려 했을 때, 나는 할머니가 작은 뼛조각 하나를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탁자 옆에 서 있던 나도 얼른 새카맣게 탄 못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무도 못 본 건가. 주위를 둘러보니 고모들은 아예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내내 울음을 참던 아버지도 할머니를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못을 내 몸에 박아두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쥐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나는 공항에서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나를 데리러 온 사촌 동생의 차를 탈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도 어쩐지 집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례식장 앞에서 선뜻 안으로 들어서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둘째 고모가 내 몫의 상복을 내밀었다. 장례식장 안팎에 삼삼오오 모인 가족들은 삼촌이 왜 죽었을까 답답해했고 삼촌의 동료와 친구들은 경찰서를 오가고 있는 중이었다. 무당이라도 불러 알아볼 수 없을까? 사촌 동생이 불쑥 꺼낸 말이었다. 삼촌의 방에 널브러진 술병들, 불에 탄 이부자리, 종류가 다른 담배꽁초들. 어떤 추측은 가능할 테지만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날 밤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삼촌은 각기 다른 이유들로 죽고 또 죽었다. 효원 장례식장 국화실에 놓인 영정사진 속 삼촌은 너무나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무릎에 올려놓은 상복이 자꾸 무겁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삼촌의 죽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서 삼촌의 시신을 보았다는데도. 거의 녹아내린 새카만 못과 유골을 분리하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뼈가 상하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그만 잠에서 좀 깨어나라고 흔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데 나는 어쩌려고 못을 집어든 것일까. 할머니가 두 주먹을 옹골차게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덩달아 나도 주먹에 힘을 주었다. 내 손이 못과 함께 타들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하설 조장님, 본부 운영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원내 방송이 들려왔다. 잠깐 눈만 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재빨리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숫자를 거꾸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득달같이 일어나 문을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이하설 조장님, 본부 운영실로 와’달라는 방송은 계속 되었다. 운영실이 가까워질수록 방송이 더 자주 들려왔고, 느려터진 두 발은 점점 더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내가 도착하기만 하면 저 공손한 팀장의 말투는 야수로 변해 나에게 돌진할 것이었다. 그때 가로수 사이로 한 여자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남색 기지바지와 연두색 스웨터, 복고풍의 파마머리까지. 혹시 할머니인가 싶어 가던 방향을 바꿔 전속력으로 달려갔다가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뒤돌아섰다. 팀장이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두루마리 휴지가 창문 쪽으로 날아갔고, 내 가슴팍에 내리꽂힌 전화기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박살이 났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고 속으로 되뇌었다. 원내 방송 담당 아나운서가 시디 데크를 만지작거리는 게 보였다. 팀장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사무실 안을 둘러보니 악단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악단장의 발치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란색 나비넥타이가 떨어져 있었다. 기어이 팀장과 한바탕 한 것 같았다. 오전에 병원으로 실려 간 러시아 무용수는 응급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하혈이 심해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악단장과 팀장의 관계를 가장 잘 알고, 더듬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러시아 말을 할 줄 알았던 내가 그 ‘중요한’ 시기에 사라졌다는 것이 팀장이 화를 내는 이유였다. 앞으로 바짝 다가온 팀장의 손이 내 뺨을 향해 날아왔다. 그때 태국인 조련사 푸앙이 운영실 안으로 들어왔다. 푸앙은 코끼리들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퍼레이드를 취소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코끼리의 설사 따위는 팀장에게 먹혀들 만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나는 푸앙의 손을 잡아끌고 코끼리 우리로 갔다. 쏘냐는 계속 설사를 했고, 아프리카 산 일 년 생 코끼리 튀라는 쏘냐의 엉덩이 쪽에 대가리를 박고 누워 있었다. 제때 검사를 하며 건강을 돌보아 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야생과는 달리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동물들은 잔병치레가 잦았다. 그래서 예방 접종, 먹이, 변의 상태 등을 확인하여 제때 사료 혹은 건초 더미를 바꾸어 주는 것들은 무척이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일들이었다.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팀장은 번번이 동물원의 재정 상태를 운운하며 우리가 올리는 건의사항들을 묵살했다. 이하설, 오늘 제대로 하지 않으면 너부터 자를 줄 알아!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팀장님, 직접 오셔서 코끼리들을 살펴보시란 말이에요! 무조건 데리고 나가는 일이 능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뭐야? 푸앙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코끼리 나가지 마, 나 죽어. 푸앙,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어떻게 되겠어. 그러니 나한테 제발 좀 이러지 마! 그러나 푸앙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삼촌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내가 아는 한 삼촌은 아픈 동물은 절대로 퍼레이드에 내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외국인 조련사들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주었고, 윗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그 사람이 원하는 선에 맞추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못을 만졌다. 잠깐이지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울고 있는 푸앙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오늘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퍼레이드의 리허설이 열리는 날이었다. ‘우리를 나온 동물들의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한 달 전부터 신문 및 지역 방송에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나날이 쇠락해가는 테마랜드의 혁신을 위해 팀장이 삼 개월 넘게 심혈을 기울인 행사였다. 만약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삼촌은 일급 코끼리 조련사이자 동물 쇼의 사회자였다. 공휴일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기 한 달 전이면 삼촌의 얼굴이 실린 포스터가 동네 곳곳에 나붙었다. 지역 방송국에서는 매일 테마 랜드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또 어떤 쇼가 진행 중인지 보도해 주었다. 삼촌은 방송에도 자주 나왔다. 나도 삼촌에게 꽃을 건네는 어린이 중 한 명으로 텔레비전에 나온 적이 있었다. 십 년이 지나 스무 살이 된 나도 테마 랜드에 조련사 보조로 들어왔다. 그러다 조련사가 되었지만 그 삼촌에 그 조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내내 업무에 허덕이다 시간이 되면 퇴근하기에만 급급한 나날이었다. 삼촌처럼 되기를 원했지만 그를 뛰어넘을 재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동물 구입 차 태국과 러시아에 출장을 간 사이 삼촌은 직원 기숙사 방문 손잡이에 목을 맸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삼촌의 시신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하루가 지난 뒤 실신한 채 삼촌이 있는 병원으로 실려 왔다. 어린이 날 행사를 며칠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바쁘게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래저래 악단장과 팀장 사이에 생긴 일들을 조율하고 동물원 곳곳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별 탈 없이 생활을 했다는 진술들이 이어졌다. 내가 아는 바와 다를 것이 없었다. 장례식 도중, 나는 삼촌이 행사를 진행할 때 입던 붉은색 조련복을 챙겨두었다. 팀장은 동물원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이유가 사육사들이 동물 관리를 잘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물 구입의 명목으로 예산을 타갔지만,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단란주점에서 여자애들과 놀아났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느 날에는 실내 경마장에서 누군가와 게임을 했다는 말도 들렸다. 건의서를 제출하면 가지고 있는 동물 관리나 잘하라며 번번이 우리의 의견을 무시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동물이 죽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후 사체처리비로 외유를 떠났다. 이사장이 바뀌고 줄을 잘 섰다는 소문이 돌았다. 얼마 후 악단의 인원이 대폭 감소되었다. 게다가 이러저러한 꼬투리를 잡아 악단장의 연봉도 삼십 퍼센트나 감봉시켰다. 대부분이 계약직인 연주자들은 불만을 표시할 수가 없었다. 곧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하나 둘, 동물원을 떠나는 연주자들이 늘자 참다못한 악단장이 팀장에게 항의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악단장은 내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소주를 마시고, 매일 두 갑의 담배를 피웠다. 테마랜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병든 짐승들과 관리되지 않은 채 잡풀이 번다한 식물원, 날만 흐리면 전기가 오르는 범퍼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놀이기구만 모아 놓은 부상 랜드였다. 사육조장에게선 늘 술 냄새가 났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는 이유로, 날이 더우면 덥다는 이유로, 동물들이 발정이 나면 수컷이 없다는 이유로 그는 늘 술을 마셨다. 나도 간간이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곤 했지만 어쩐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그는 술만 취하면 내게 삼촌의 이야기를 하려고 들었다. 삼촌의 성격과 그와의 관계, 동물들을 아끼던 마음, 은밀하게 나누곤 했던 농담들. 하지만 나도 다 아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사육조장과 함께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반쯤 마신 매실 주스에 소주를 타먹곤 하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도 그는 코끼리 우리를 나오면서 빈 매실 주스 병 두 개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없어진 할머니를 이곳에 있는 내가 어찌해 볼 도리는 없었다. 엄마,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요, 지금 좀 바빠! 통화를 끝내자마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조장님, 홍학 우리에 고양이가 들어와 새끼들을 물어뜯고 난동을 부렸어요. 뭐라고? 홍학 한 마리가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알았어, 곧 갈게. 안 그래도 행사 준비 때문에 신경이 무척 곤두서 있는 홍학무리였다. 허겁지겁 바쁘게 뛰어가다 보니 남색 기지바지가 또 눈에 띄었다. 오늘은 동물원에 남색 기지바지가 유난히 많았다. 그 바지들은 여기서도 나타났고 저기로도 지나갔다. 동물원에 온 할머니들은 대부분 남색 기지바지 혹은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모두들 엇비슷한 파마머리를 한 채 손차양으로 햇빛을 가리고 느릿느릿 걷거나 그늘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납골당은 노인들이 게이트볼을 치고 있는 공원을 지나 한참 더 올라가는 산 중턱의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적한 공터인 줄 알았던 공원도 지나가며 살펴보니 있어야 할 것들은 다 있었다. 그물이 벗겨진 하나밖에 없는 축구 골대, 녹슨 시소, 줄 끊어진 그네. 곳곳에 놓인 페인트칠이 벗겨진 벤치와 그곳에 누워 있는 사람들. 공원을 지나 한참을 걸었는데도 납골당이 나오질 않아 잘못 찾았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나와는 달리 할머니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따름이었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산길을 따라 삼십여 분쯤 더 걸어가다 보니 자그마한 분지 위에 지어 놓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우리는 곧장 유골 안치실로 들어갔다. 삼촌의 위패에 쓰여 있는 이름이 낯설었다. 이선빈이 아닌 고(故) 이선빈은 내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알 수 없는 수학공식 같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저쪽 세계의 풀 수 없는 문제 같은 것인가. 돌아갔으나, 되돌아 올 수는 없다는 낙인? 오늘만큼은 할머니가 글자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퍽이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귀신같이 아들 있는 곳을 찾아냈다. 가져간 술과 포를 놓고 준비되어 있는 향을 피웠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훌쩍이는 소리에 혹시나 싶어 뒤돌아보니 할머니는 대꾼한 두 눈을 슴벅이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계시라 해도 한사코 일어서서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술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잔을 쥐고 향 위에 세 번을 돌린 후 상에 올렸다. 두 뺨이 경련이 이는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다. 옆 칸에서 제를 지내던 사람들이 담배에 불을 붙여 제상 위에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분향실의 향내에 짓눌려 있던 나는 생담배 타는 매캐한 냄새가 차라리 반가웠다. 우리도 한 대 필까, 삼촌? 부검 결과 별다른 타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악단장과 몇몇의 연주자들, 팀장에 대한 조사가 차례대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알지 못하던 우울증이 새로 생겨났으며, 사육조장과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알코올 중독이란 말이 덧붙여졌다. 추측성 발언들이었지만 조서에 쓰인 것들은 그대로 사인(死因)이 되었다. 분개한 가족들이 사건 수사를 계속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곧바로 장례 일정이 잡혔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발인 날짜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발인 전날 신발도 신지 못하고 영안실로 달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납골당 쪽을 다시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쉽게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가 저쪽의 삼촌을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할머니의 어깨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듬성듬성하던 머리칼은 그 사이 더 빠졌는지 머릿속이 훤히 다 보일 지경이었다. 올라오는 길을 잘 찾았던 할머니가 돌아가는 길을 헷갈렸다. 납골당에 들어서는 길은 우리가 걸어온 길 하나밖에 없는데도 할머니는 분향실에서부터 출구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맸다. 내가 앞장서 걸을 수도 있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그렇게 이끌고 있는 것만 같아 가만히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지난 주말에 할머니와 내가 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납골당에 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내가 만약 그곳에 할머니를 모시고 간 것을 알면 크게 혼이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의 기억에는 할머니가 한 번도 삼촌에게 다녀온 적이 없다는데, 처음이라는 할머니는 삼촌의 자리를 잘도 찾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홍학 우리 안의 소동이 잠잠해진 뒤였다. 고양이에게 물려 다리를 다친 홍학은 다행히 퍼레이드에 나갈 녀석이 아니라 두 달 전에 알에서 깬 새끼였다. 놀란 홍학들을 진정시키느라 껍질 깐 호두와 아몬드를 두 자루나 뿌려주었다. 어느샌가 팀장도 홍학 우리 앞에 와 있었다. 그는 퍼레이드에 나갈 녀석들을 좀 더 밝은 빨간색 형광 안료로 칠하라며 조련사들을 다그쳤다. 나는 홍학들에게 빨간 안료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해 보았지만 팀장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 같았다. 나는 물끄러미 팀장과 조련사들을 바라보다 문득 이제 여기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삼촌을 보내고도 꿋꿋하게 나오던 곳이고, 그가 하던 일만은 내 손으로 이어받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조련사들이 빨간 형광 안료 통을 들고 사육실 안으로 들어갔다. 퍼레이드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옷장에서 삼촌의 조련복을 꺼내 입었다. 오랫동안 묵혀둔 것이라 혹시 곰팡이라도 슬었으면 어쩌나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의자 위에 놓아둔 전기 총을 집어 들자 푸앙이 비명을 지르며 울어댔다. 미안해, 푸앙.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우리 얼른 끝내버리자. 나는 입을 앙다문 채 쏘냐의 뒷다리에 총을 쏘았다. 쏘냐가 움찔하며 왼쪽 다리를 들었다. 재빨리 엉덩이에도 총을 갖다 댔다. 한참 만에 쏘냐가 일어섰다. 푸앙이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다 울부짖으며 내 왼팔에 매달렸다. 쏘냐의 몸에 멋을 내느라 발라놓았던 노란색 형광안료가 설사에 섞여 줄줄 흘러내렸다. 바닥에 형광 선을 긋는 것 같았다. 무전기에서는 팀장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무전기 소리를 무시하니 그 뜻 없는 말들은 점차 행진곡 풍으로 변해갔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괜찮다고, 얼른 끝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진흙탕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호두를 쪼아 먹고 있던 홍학들이 코끼리 우리 앞에 나와 있었다. 온몸에 빨간색 형광 안료를 잔뜩 바른 홍학 무리였다. 등에 홍학을 둘씩 태운 코끼리들이 정문으로 출발했다. 붉고 노란 머리들이 공중에다 점을 찍었다. 휴대전화와 무전기에서 팀장과 사육조장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어차피 코끼리들이 도착하지 않으면 행렬을 완성할 수 없고 또 사회자인 내가 가지 않으면 시작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물들의 건강을 살피는 것 역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뺐다. 팀장님, 지금이라도 리허설을 취소해 주세요. 뭐, 뭐야? 이대로 가단 코끼리들이 죽습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얼른 데리고 나와! 시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지켜보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니가 나한테, 대든 거냐? 쏘냐와 튀라는 절뚝이고 비틀거리면서도 앞만 보고 걸었다. 푸앙이 코끼리 배에 손을 얹고 함께 걸었다. 저렇게라도 가주기만 한다면 크게 문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쏘냐는 설사를 하고 있었다. 코끼리, 죽어. 나도 죽어. 푸앙이 울며 말했다. 푸앙, 나도 어쩔 수가 없잖아, 미안해! 니가 살려! 푸앙, 죽어가는 것들을 일으키고 이미 죽은 것도 살려낼 수만 있다면야 오죽이나 좋겠니. 푸앙이 이를 악물고 우는 소리와 코끼리들의 거친 숨소리가 마치 한 덩이처럼 느껴졌다. 정문 쪽에 노란 나비넥타이를 한 악단장의 모습이 보였다. 전보다는 풀이 죽은 모습이었지만 잘 다려진 연미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심벌즈 연주자가 그만두는 바람에 탬버린을 담당했던 사람이 심벌즈를 잡고 있었다. 다섯 명이던 작은 북 담당 연주자들은 둘밖에 없었고 심지어 트럼펫 연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행렬이라도 완성해야 한다는 팀장의 고집 때문에 음악은 녹음해둔 것으로 대체되었다. 연주자들이 항의했지만 오늘은 ‘리허설’ 날이니 그렇게 해도 된다는 악단장의 말에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연주자들의 얼굴 표정은 괜찮아진 것 같지 않았다. 안 그래도 불안한 처지인데 악단장마저 번번이 자신들 앞에서 팀장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에 익지도 않은 악기를 든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갔다. 악단장은 연신 나비넥타이만 고쳐 맸다. 동물원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정문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꺼내들고 환호성을 지르거나 직접 코끼리를 만지려고 다가갔다. 놀란 사육사들이 그들을 말리는 사이, 나는 희뿌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이었다. 눅눅한 공기와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 동물들의 우는 소리들이 마구잡이로 내 가슴속에 맺혔다. 그 사이 ‘시’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정문 쪽으로 다가왔다. 행사를 하는 날도 아닌데 무슨 일로 온 거지? 팀장은 ‘시’ 사람들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시’ 사람들은 악단장에게도 다가갔다. 팀장이 활짝 웃으며 악단장의 오른팔을 잡아끌었다. 팀장에게 이끌린 악단장이 지휘봉을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엉거주춤하게 그들과 악수를 했다. 허리를 제대로 굽히지 않은 채 인사를 하는 악단장을 바라보는 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팀장은 악단장에게 당장 연주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악단장은 시디를 틀기로 되어 있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빨리 하라니까! 팀장 자신도 모르게 나온 큰 소리에 본인이 더 놀라고 있는 사이, 악단장이 뒤돌아섰다. 그러나 내내 굽실거리거나 팀장에게 할 말을 다 못하고 돌아서던 악단장의 얼굴이 아니었다. 악단장은 맨 앞줄의 연주자가 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넘겨받았다. 지휘봉을 연미복 허리춤에 찔러 넣은 악단장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축배의 노래였다. 멍한 얼굴의 팀장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악단장의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다른 연주자들의 악기도 조금씩 리듬을 탔다. 때마침 비가 내렸다. 당황한 팀장이 재빨리 ‘시’에서 나온 사람들을 이끌고 자리를 벗어나는 와중에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는 점점 절정으로 향해 갔다. 어느새 굵어진 빗방울들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원숭이와 코알라, 나뭇가지에 걸쳐 놓은 채 들고 나온 나무늘보들을 적셨다. 문제는 코끼리 등 위에 빨간 형광 안료를 덕지덕지 바르고 올라 앉아 있는 홍학들이었다. 진회색의 코끼리 등에 붉은 물이 들어갔고,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는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나는 열심히 연주를 하는 악단장과 ‘시’ 사람들을 서둘러 본관으로 끌고 가는 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바람이 거세지자 동물들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작은 소란이 일었다. 그때 푸앙이 코끼리 등에 앉아 있던 홍학의 다리를 잡아챘다. 푸덕, 푸흐드덕! 홍학이 거센 날갯짓을 했지만 푸앙의 손아귀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푸앙이 정문과 반대쪽을 향해 뛰었다. 마치 홍학 연을 타기라도 한 것처럼 재빠른 속도였다. 홍학 한 마리가 사라지자 코끼리 등에 앉아 있던 다른 홍학 네 마리도 푸앙이 사라진 쪽을 향해 날아갔다. 푸앙은 홍학의 습성도 잘 알았다. 아마도 어미를 데려갔을 거였다. 홍학이 날아가면 코끼리들은 그 자리에 앉아 무릎을 굽혀 반쯤 앉거나 선 채 왼발을 들어 쇼의 시작을 알리게끔 훈련되어 있었다. 내가 말려볼 틈도 없이 정문에서가 아니라 정문으로 가는 도중에 코끼리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붉은 꽃 한 송이를 등에 얹은 코끼리들이 추는 군무가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와 함께 어우러졌다. 그때까지도 정문 앞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거나 사진을 찍어댔다. 쏘냐와 튀라는 설사를 좍좍 갈기면서도 춤을 추었다. 코를 양 옆으로 흔들면서 왼발과 오른발을 차례대로 접고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며 엉덩이춤을 추었다. 코를 하늘 위로 높게 치켜세웠다가 쿵쿵 땅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왼쪽 오른쪽으로 두 차례씩 긴 코를 하늘로 들어올렸다. 빗줄기를 쏟아붓는 하늘을 향해 코를 쏘아 올리기라도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 번 쇼를 시작하면 끝이 날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게 훈련된 코끼리들이었다. 홍학과 함께 한 군무가 오 분, 코끼리만 하는 쇼가 십오 분이었다. 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코끼리들 옆에 전기 총을 든 채 무력하게 서 있었다. 코끼리의 군무가 점점 더 활기를 띠기 시작할 때쯤 다시 축배의 노래가 들려왔다. 악단장은 마치 무한 반복이라도 할 것 같은 완강한 표정이었다. 코끼리들은 덜렁덜렁 코를 흔들며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다. 차례대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후 푸앙이 쏘냐의 어깨 위에 올라가 커다란 횃불을 치켜세우는 것으로 끝이 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푸앙이 없다.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홍학들은 왜 하나도 돌아오지 않는 거지? 본관으로 갔던 팀장이 호루라기를 불며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정문을 가로지르는 팀장의 뒤쪽으로 익숙한 남색 기지바지가 지나갔다. ……할머니? 축배의 노래에 맞춰 자박자박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할머니였다. 나는 재빨리 할머니를 향해 뛰었다. 할머니, 할머니이! 그러나 할머니는 멈춰 서지 않았다. 내 등 뒤에서 악단장이 연주하고 있던 바이올린이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뒤따라 전기 총을 쏘는 소리도 들려왔다. 코끼리들이 거세게 날뛰며 질러대는 울음과 구경하던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였다. 돌아서서 잠시 주춤하던 나는 다시 있는 힘껏 할머니 쪽을 향해 뛰어갔다. 빗물이 자꾸 눈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삼촌의 뼛조각을 손에 쥔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어서인가. 내 손은 자꾸만 할머니의 몸을 움켜쥐려고 했다. 아버지가 못을 골라내자 화장장 직원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바로 삼촌의 뼈를 유골함에 넣어주었다. 고모들은 자신의 혈육이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막힌 듯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촉망받던 조련사였으며, 사람 좋던 막내 삼촌은 그렇게 몇 줌의 유골이 되었다. 옥색 유골함 위에는 삼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제 삼촌은 옥함 겉면의 금박 이름으로만 남게 될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움켜쥐고 있던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크게 우시려는가 싶어 나는 고개를 돌려 유골함 쪽을 쳐다보았다.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단단히 쥐고 있던 두 주먹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두 손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는 천천히 입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수골실의 모든 것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하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가 갑자기 상체를 숙였다. 입 속의 것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가.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오랫동안 할머니 뒤쪽의 흰 벽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잘 움직이지 않았고 무엇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가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지 말고, 동물원에 가보자. 집으로 돌아온 후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처음으로 한 부탁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했지만 그것은 분명 동물원이라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동물원에 데려다주지 않자 할머니는 살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모든 행위들을 다시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기세와 할머니의 고집 사이에서 가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나는 밤마다 할머니 방으로 가서 할머니의 몸을 쓰다듬었다. 여기 어디쯤 삼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할머니의 몸이 무척 단단하게 느껴졌다. 삼촌은 할머니의 쇄골 위에 올라 있었다. 할머니가 들이쉬고 내쉬는 숨 속에서도 삼촌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어느 날엔가 삼촌은 할머니의 팔목을 그러쥔 채 죽이 담긴 숟가락을 할머니의 입 속으로 밀어 넣어주기도 했다. 먹은 음식이 어쩌다 얹히기라도 하면 조용히 할머니의 등을 쓸어주었다. 나는 삼촌이 그렇게라도 여기서 할머니와 함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삼촌, 좋아? 나는 탄 못과 할머니의 무릎을 번갈아가며 만졌다. 할머니는 오래 울었다. 가족들 모두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상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할머니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새벽에 홀로 깨어 화장실에 다녀올 때도, 물에 만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삼촌의 베개를 쓰다듬으며 울었다. 어쩌다 밥상에 삼촌이 좋아하던 창란젓이라도 올라오면 그걸 바라보며 오래 울었다. 눕거나 앉거나 간신히 일어서거나 벽에 등을 기대거나. 언제 어디에서건 어떤 자세로든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속으로 울고 있었지만 나는 할머니가 울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어쩌면 울다 지쳐 손으로 몸을 짚기라도 하면 어디에서건 삼촌이 만져져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러는 것인지도 몰랐다. 살아 있는 유골함이 되는 일은 무척 힘겨워 보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식구들 앞에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고,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오늘 할머니는 혼자서 동물원에 온 거였다. 우리가 걸음을 멈춘 곳은 식물원 입구였다. 할머니를 막 따라잡으려다가 도대체 왜 동물원에 왔고 또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궁금해 뒤를 따랐던 참이었다. 할머니의 남색 기지바지 속에서 끊임없이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원내 방송이 나왔다. 이하설 조장님, 운영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식물원 뒤쪽에는 고사한 나무들이 즐비했다. 희귀한 꽃이나 과실수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팔려가거나 누군가가 빼돌린 뒤였다. 테마 랜드를 재정비한다면 가장 먼저 손을 대야 할 곳도 여기였다. 할머니는 왜 하필 이곳으로 온 것일까. 마침내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단풍나무 둥치에 기대앉았다. 집에서 동물원까지 걸어왔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텐데……. 나는 천천히 할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집으로 모셔 갈 작정이었다. 그때 할머니가 손을 뻗어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나뭇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내 새끼손가락만 한 나뭇조각이었다. 주저할 새도 없이 할머니는 그것을 입에 넣은 후 가슴을 쳤다. 그러다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크으헉, 으흑. 그것은 그동안 가슴에 쌓였던 울음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다가가 말리지 않았다. 할머니도 얼마간은 큰 소리로 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주먹으로 툭툭 땅을 쳤고, 나무 둥치에 등을 짓찧었다. 돌로 만든 조형물에 얼굴을 갖다 박았고 두 손으로 머리채를 쥐어뜯었다. 할머니는 그동안 속으로만 쌓였던 울음들을 모조리 뱉어내려는 것 같았다. 그때 식물원 어디선가 커다란 새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푸앙? 그는 나에게 다른 한국인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향기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자기를 찾는 거라 여기고 또 달아나버리면 어떡하지? 푸드덕거리는 새소리와 할머니의 울음이 식물원 안을 가득 채웠다. 죽은 나무들도 잔잔한 바람을 타며 울음소리와 박자를 맞췄다. 나는 할머니가 울고, 푸앙이 새들과 함께 마음을 삭이고 있는 여기가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누군가에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눈물을 그친 할머니가 다시 걸었다. 나는 할머니를 뒤따라갔다. 할머니는 여전히 뒤에 있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참 동안 동물원 곳곳을 걷던 할머니는 코닥 필름 사진관 앞에서 멈춰 섰다. 우두커니 서서 문 닫힌 사진관의 창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코끼리 등에 올라 탄 삼촌이 붉은 조련복을 입고 활짝 웃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테마랜드 30년의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된 사진들이었다. 오래되어 빛이 바랬을 뿐, 사진 속의 모든 것들은 충분히 식별이 가능했다. 할머니는 손을 뻗은 채로 창가에 바짝 다가섰다. 삼촌의 사진이 언제부터 저곳에 걸려 있었던 걸까. 테마랜드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저 사진을 그곳에 걸어 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 그제야 내가 큰소리로 할머니를 불렀지만 할머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코끼리 등 위에 앉아 밝게 웃고 있는 삼촌과 그것을 향해 말 없이 손을 뻗는 여인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쓸쓸히 바라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사진 속으로도 빗방울들이 쏟아져 내렸다.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푸앙이 우는 소리였다. 푸앙은 팀장에게 멱살을 잡힌 채 이쪽으로 끌려오는 중이었다. 여전히 홍학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야, 이하설! 나는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놀라 나도 모르게 할머니!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내내 그렇게 멈춰 있을 것만 같던 사진 속 초로의 여인이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여인의 핏발 선 두 눈이 멈춘 곳은 내가 입고 있는 삼촌의 조련복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단추를 달고 솔기를 여며준 이 옷을 할머니는 단번에 알아차린 것 같았다. 어느새 창틀에서 떼어 낸 삼촌의 사진을 안고 있는 할머니가 다른 한 손으로 내 옷을 가리키며 다가왔다. 팀장과 푸앙도 이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코끼리 울음소리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쏘냐와 튀라는 우리로 돌아갔을까.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나는 주머니 속에 있던 못을 꺼내 쥐었다. 나는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했다. 누군가 먼저 잡아당기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서 있을 것만 같았다. <끝> ■ 당선소감 - “기꺼이, 조금 더 말랑해지겠습니다” 타슈켄트 동물원에는 코끼리 두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초원을 훑어야 할 우묵한 눈들이 녹슨 푸슈킨 동상을 바라보고 있지요. 어느 날 저도 모르게 코끼리 우리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야 말았습니다. 늙고 병든 코끼리의 두툼하고 너덜너덜한 귓불을 한참 동안 쓰다듬어 주었어요. 그 코끼리들이 저와 함께 아랄 해를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요즘 노인정에서 한글을 배우고 계십니다. 손녀가 쓴 글을 읽겠다고 약속을 하셨어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글을 써나갈 작정이므로 할머니는 기필코 200세 장수하셔야 합니다. 기꺼이, 조금 더 말랑해지겠습니다. 이 소식을 누구보다도 기뻐해주신 ‘동인, 그 섬’의 대장 임철우 선생님(‘그 섬에 가고 싶다’를 필사하던 그 순간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잘 견디고 천천히 나아가겠습니다.), 치열하고 엄중한 소설쓰기가 일상의 진부함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제시해주신 최수철 선생님(선생님의 조언과 응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마음에 누가 되지 않도록 살고, 쓰겠습니다.), 검룡소에서 풀솜대를 뜯어주신 최두석 선생님(돌아가지 못하는 시의 자리가 아직도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글 쓰는 손가락은 절대적으로 겸손해야 함을 일깨워주신 서영채 선생님(밤새 꺼지지 않던 선생님 연구실의 불빛을 바라보며 술 취한 저는 도서관에서 잠들곤 했지요.), 사물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신 주인석 선생님(아, 이제 오디오 튜닝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10년 전 홍성여고 문예반 수업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겁니다, 이정록 선생님. 좋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행운입니다. 그 운명을 결정지어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 무너지려 할 때마다 옆에서 바로잡아주고 격려해준 권오영 시인께는 미처 다 갚을 수도 없는 마음들을 받았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동안 내내 소설 쓰기의 치열함을 온몸으로 가르쳐주던 김도연 선배께 맥주 한 잔 사드리고 싶습니다. 철없는 저를 뒤치다꺼리해 주느라 고생한, 제일 먼저 축하해준 이진희 시인. 정말 고맙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끝까지 손에 들고 계셨던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같이 힘들어도 조금 더 기운을 낼 수 있는 뚝심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얼른 ‘리보통(Ly-botong)’으로 달려가 그곳에 계신 분들과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약력 -본명:이미선. 1983년 충남 보령 출생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신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소설전공 수료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원으로 우즈베키스탄 세계언어대학 한국어 강사 역임 ■ 심사평 - ‘현대인 삶의 축도’ 동물원… 상징적 압축미 탁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모두 열 편. 이 가운데 다시 세 편의 작품을 어렵게 추려 놓고 생각했다. 신춘문예가 필요로 하는 소설은 어떤 소설인가? 우리 소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단편소설은 산문 양식임에도 언어의 경제성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는 이 짧은 언어로는 ‘모든 것’을 쓸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양식은 이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한다. 어떻게? 수사학, 즉 기교가 우리를 지상적인 삶에서 초월적 의미의 세계로 순간이동시켜 준다. 그러니 기교가 모든 것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수도 있다. 상징적 깊이나 환유적 지시 체계를 갖추지 못한 훌륭한 단편소설이란 일종의 형용모순과도 같다. 하이준씨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현대적 일상을 사건으로 만들어 가는 문체가 돋보였다. 강남의 한 미장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조그만 사건은, 일상의 소소함이 그 한계 내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만든 장점도 갖추었다. 김명진씨의 ‘뷰티플 원데이’는 베트남에서 온 아버지와 아버지의 젊은 여인과 ‘나’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나’의 내면의 섬세함이 다문화라는 문제를 사회성 이상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의미를 구성하는 사건이 너무 희박하고, ‘뷰티플 원데이’는 사건을 보편적인 의미로 상승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이은선씨의 ‘붉은 코끼리’는 상징적 압축미가 뛰어나다. 동물원 코끼리 조련사의 이야기 안에 많은 것을 담았다. 동물원이라는 배경 자체가 어떤 상징성을 띤, 현대인의 삶의 축도로 이해하게 한다. 여기서 동물원을 지배하는 어떤 메커니즘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세계의 어떤 축도와도 같다. 이 작품은 쓴 것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면서 독자에게 시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재능과 생각을 겸비한 이은선씨에게 축하의 말씀과 함께 정진을 당부 드린다.
  • “추위에 떨며 우리 기다리는 이웃 있기에”

    “추위에 떨며 우리 기다리는 이웃 있기에”

    여성 경찰로 구성된 봉사 동호회가 100회째 이웃돕기 활동을 펼쳐 눈길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예쁨과 정다움이라는 뜻을 지닌 서울 혜화경찰서 ‘예다움’ 동호회. 혜화서 여경 33명이 참여하는 예다움은 2007년 3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관내 어려웃 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3일 100회째를 기록했다. 예다움은 2007년 노인 대상으로 점심을 무료급식하는 단체 ‘사랑채’를 후원하다가 ‘우리가 직접 봉사에 참여하자.’는 마음으로 시작됐다. 예다움의 활약은 종횡무진이다. 혜화서 관내에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는다. 매달 동숭동에 위치한 지체장애인시설 ‘비둘기집’, 창신동 사회복지관, 이화동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을 방문한다. 장애인 산책, 복지관 청소, 점심식사 준비가 주된 일이다. 연말이면 더 바빠진다. 독거노인이나 조손가정 등에 김장을 담가주거나 월동 준비를 돕는 일도 빠질 수 없다. 동호회 리더인 조보철(53·여) 경위는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방에서 우리가 올 때만 기다리는 독거노인이 주위에 아직도 많다.”며 “할머니들이 ‘우리 딸들’이라고 부르며 껴안아주실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조 경위는 영정 사진촬영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2007년부터 3년간 사진동호회 동료들과 함께 노인 280명의 영정사진을 찍었다. 그는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셨을 때 지방에서 가족들이 올라와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콧등이 시큰해졌다.”고 말했다. 동호회 막내로 봉사활동에 가장 많이 참여한 최희연(29·여) 경장은 “봉사를 할 때마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커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예다움의 101번째 봉사활동은 내년 1월 5일 동숭동 비둘기집에서 이어진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KBS ‘미수다2, 달콤한 밤’ 으로 재도약

    KBS ‘미수다2, 달콤한 밤’ 으로 재도약

    KBS가 ‘미수다’ 는 ‘미수다2’ 로, ‘샴페인’ 은 ‘달콤한 밤’ 으로 새롭게 신설해 시청자들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간다. KBS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2010년 KBS 10대 기획, 부분조정 설명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KBS TV 2010년 부분조정안에 따르면 샴페인, 도전 디미방, 일요일밤으로는 폐지되며 대신 그 자리를 달콤한 밤, 한식탐험대 등이 새로 메꾸게 된다. 루저 파문으로 종영됐던 ‘미녀들의 수다’ 는 ‘미수다 2’ 로 환골탈태한다. 서재석 KBS편성국장은 “외국인들의 참여 비중을 늘려 한국에서 겪는 문화차이와 생활의 지혜 등을 프로그램에 담아 오는 1월부터 내용이 대폭 바뀐다” 면서 “MC는 기존의 남희석이 맡고 여자 아나운서가 새로 캐스팅될 것” 이라고 밝혔다. ‘샴페인’ 은 인연에 관한 이야기로 새롭게 변신한다. 기존의 연예인이 다수 출연해 신변잡기식으로 진행되던 것에서 벗어난다. 또 ‘1인 게스트’ 를 초청해 스타와 아파트 경비원, 고기집 식당 주인과의 이야기 등이 다뤄진다. 이 밖에 ‘한식탐험대’ 와 관련, 서 국장은 “한식탐험대는 도전 디미방과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 될 것” 이라면서 “맛집 위주의 나열보다 음식을 소재로 해 음식을 백과사전만큼 알 수 있도록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앞장설 것” 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상형 월드컵도 60대 할머니들이 보는 사윗감 이상형, 50대 아버지들의 이상형 며느리 등 시청자들이 가능한 한 많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한다. 사진 = KBS 서울신문NTN 백영미 기자 positiv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9일 TV 하이라이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찬바람이 불고 일교차가 심해지는 계절일수록 자신의 혈압 수치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평소 우리는 혈압에 대해 얼마나 알고 관리하고 있을까. 뇌졸중, 심근 경색 등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고혈압의 실체를 밝히고 혈압을 높이는 여러 가지 생활 요인도 함께 살펴본다. ●추적 60분(KBS2 오후 11시15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반복되는 무의미한 생각과 행동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강박증 환자. 제보 접수 기간 3주 동안 수십명의 제보자가 강박증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방송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병을 공개한 음호빈군과 함께 ‘살아있는 죽음’을 경험하고 있다는 강박증 환자들의 모든 것을 취재한다. ●지붕뚫고 하이킥(MBC 오후 7시45분) 세경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낀 보석. 하나만 봐도 열을 안다고,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보석에게 시달리는 세경은 보석이 자신에게 왜 이러는지 영문을 모르는데…. 한옥에 찾아온 비실이 형제, 말 그대로 비실비실의 극치를 달린다. 인나의 미모에 홀딱 반한 비실이 형제의 엽기 행각이 펼쳐진다. ●괜찮아U(SBS 오후 6시25분) ‘충북의 알프스’ 영동에서 고소한 호두체험에 나선 식객단. 호두포대 나르기부터 고난이도 호두 껍데기까기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한편 영화 ‘집으로’의 주무대가 되었던 궁촌리 호두 마을에서는 세계적인 장수식품인 호두의 장수와 기억력 향상 효과를 증명하기 위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장수퀴즈대결이 열린다. ●리얼리티쇼 유아독존(EBS 오후 8시) 2010년 2월, 전 세계가 스포츠로 하나 되는 겨울올림픽이 열린다. 겨울올림픽에 앞서 유아독존에서 미리 올림픽이 열렸다. 자기가 사는 동네의 명예를 걸고 하얀 눈밭에서 짜릿한 스포츠 대결이 펼쳐진다.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겨울올림픽의 감동을 그대로 재현해 낸 아이들의 ‘동네 올림픽’ 현장을 함께한다. ●리얼메디컬 다큐 병원(OBS 오후 11시) 누구나 흔히 겪는 속 쓰림, 복통, 소화불량 등이 지속된다면 한 번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평소 고기와 술을 좋아하는 한 남자가 속이 좋지 않아 검사를 한 결과 대장 외에 신장에서도 암이 발견된 사연을 소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대장암 발병률이 세계 2위. 대장암의 위험성과 치료 과정을 공개한다.
  • 통영·거제시민 위안부문제 팔 걷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이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 청원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기록 영상물 제작 등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일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통영거제시민모임은 4일 거제시의회에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시민모임은 거제시민 4300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은 서명명부도 청원서에 첨부해 냈다. 시민모임은 이날 결의안 청원서 제출과 관련해 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두순(88), 김복득(92) 할머니가 참석해 결의안 채택을 호소했다. 시민연대는 결의안에 ▲일본정부의 위안부 문제 인정과 사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일본정부 전담기구 설치 ▲일본역사교과서에 위안부 피해 기술▲일본국회 및 대한민국 국회의 특별법제정 ▲한국정부의 적극적 외교협상 ▲치유와 복지 등을 위한 거제시의회의 지원 등 8개 항목을 담았다. 통영거제시민모임은 앞서 지난달 2일에는 통영시의회에 통영시민 3300여명의 서명명부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 청원서를 제출해 통영시의회가 같은달 30일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채택했다. 시민 모임은 오는 15일쯤 경남도의회에도 결의안 채택을 요청하는 요청서를 내고 앞으로 경남도 내 20개 모든 시·군의회가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요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전국 지방의회 가운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곳은 지난 7월24일 대구시의회와 9월8일 경기 부천시의회 등이다. 한편 통영거제시민모임은 통영·거제가 고향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8명(현재 3명 생존)의 영상과 사진 등을 수집해 120분 분량의 DVD를 만드는 작업을 지난 6월 말부터 하고 있다. 시민모임은 내년 1월쯤 기록 영상물 작업을 끝내고 시사회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거제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상품사면 자동 기부 기분좋은 ‘사랑 쇼핑’

    상품사면 자동 기부 기분좋은 ‘사랑 쇼핑’

    연말연시를 맞아 선물을 사면 자동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금이 적립되거나 환경을 지키는 ‘일석이조’의 이색아이템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탐스 슈즈’다. 탐스 슈즈 1켤레를 사면 똑같은 신발 한 켤레가 저개발국가의 어린이에게 기증된다. 온라인매장(www.tomsshoes.co.kr)과 신세계백화점, 명동 에이랜드 등 12개 매장에서 이 신발을 구입할 수 있다. 올 8월 현재 전 세계에서 15만켤레에 이르는 신발이 이렇게 마련돼 아르헨티나와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에게 전달됐다. 한국 판매를 맡고 있는 코넥스솔루션 임동준 이사는 “신발도 사고 어려운 아이들도 도울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져 2년 만에 직원이 2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날 정도로 많이 팔리고 있다. ”고 말했다. ●신발 1켤레 사면 1켤레 기증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만든 1만원짜리 다이어리를 사면 위안부 할머니를 도울 수 있다. 정대협이 2005년부터 수요집회 경비와 기금 마련을 위해 제작한 다이어리에는 세상을 떠난 위안부 할머니들의 추모일과 생전의 모습이 등재돼 있다. 안선미 정대협 간사는 “올해 다이어리 주제는 ‘희망을 엮어가는 사람들’로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할머니들을 기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책사면 인세 적립 청소년 도와 책을 사면 동시에 기부가 되는 아이템도 있다. 아름다운재단이 2003년부터 시작한 ‘인세 1% 기부’ 캠페인에 동참한 책을 사면 해당 인세의 1%가 자동으로 기부된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박광수의 ‘참 좋은 사람들’, 안도현의 ‘연어’ 등 현재 작가 192명과 32개 출판사가 참여하고 있다. 또 아름다운 가게가 만든 재활용 디자인브랜드 ‘에코파티메아리’(http://ww w.mearry.com)에서는 재활용품을 수거한 뒤 새롭게 디자인해 만든 사무용품, 옷, 소품 등을 판매한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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