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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드론 공습”… ‘중동 벌집’ 발칵 (영상)

    “이스라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드론 공습”… ‘중동 벌집’ 발칵 (영상)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수뇌부가 이스라엘의 드론 공습에 피살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동 정세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들끓고 있다. 새해 초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일부 병력을 철수하기로 하면서 전쟁 강도도 낮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으나, 이번 사건으로 반(反)이스라엘 세력이 결집하면서 오히려 중동전쟁으로 사태가 확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짙다. 유엔과 서방은 이번 사건에 우려를 표하고 자제를 촉구했으며,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예정된 이스라엘 방문 일정을 연기했다. ● 하마스 2인자로 알카삼 여단 창설한 알아우리, 레바논서 사망 3일(현지시간) 레바논 LBCI 방송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쪽 외곽에 있는 하마스 사무실이 드론 공습과 함께 폭발했다. 하마스 사무실이 있던 다층 건물은 일부 층이 무너졌고, 인근 도로에서는 폭발물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하마스 정치국 2인자 살레흐 알아루리 등 하마스 수뇌부 6명이 사망했다. 알아루리는 하마스 정치국장인 이스마엘 하니예의 부관이다. 그는 하마스 무장조직 ‘알카삼’ 여단 창설 초기 멤버 중 1명으로, 서안지구에서 하마스 조직을 이끄는 동시에 레바논 내 친이란 무정정파 헤즈볼라와의 연락책 역할을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전쟁 발발 전부터 알아루리를 제거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알아루리는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거물급 인사기도 하다. 레바논 국영 매체들은 이번 공격이 이스라엘 드론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했고, AP 통신 역시 이스라엘에 의한 공격이 명백해 보인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이후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거점인 이스라엘-레바논 국경 지역이 아닌,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지역에 대한 공격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가 아닌 타국에서 활동 중인 하마스 수뇌부를 제거한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관련 질의에 “우리는 하마스와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으며, 어떤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높은 수준의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 레바논 “새로운 국면 끌어들이려는 의도”…이스라엘 저항세력 결집 사건 직후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임시 총리는 “레바논을 새로운 국면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이번 사건이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주권을 침해한 사건이라는 내용의 공식 항의서를 제출하라고 정부에 지시했다. 하마스는 이집트와 카타르의 중재로 진행 중이던 휴전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하마스 정치국장 하니예는 이번 공격을 “테러 행위, 레바논 주권 침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적대행위 확대”라며 “반드시 보복하고 응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이스라엘과 진행 중이던 휴전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로이터통신은 하마스 관계자의 말을 인용, 사망한 알아루리가 지난해 11월 말 성사된 일시 휴전 당시 협상을 주도한 인물이었다고 짚었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도 “이스라엘의 알아루리 암살은 묵과할 문제가 아니다. 저항 세력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고 있다”며 복수를 다짐했다.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는 지난해 여름 연설에서 “레바논이 암살의 장이 되는 것을 막겠다”면서 “레바논 영토에 대한 어떤 공격이든 강력한 대응을 촉발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이른바 ‘저항의 축’을 지원하는 이란은 이번 사건을 레바논의 주권과 영토를 침해한 ‘암살’로 규정하면서서,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이 거세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에 따르면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시온주의자 정권이 테러와 범죄에 기반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입증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순교자의 피는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온주의 점령자들에 맞서 싸우려는 저항의 동기를 다시 불붙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무함마드 시타예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총리도 “뒤따를 수 있는 위험과 결과”에 대해 경고했다.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이 이끄는 파타당의 라말라 지부는 알아우리를 살해한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3일 하루 총파업을 예고했다. 총파업은 요르단강 서안에서 하마스의 인기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현지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짚었다. 서안지구에서는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거리로 나와 복수를 외치기도 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이날 예정된 전시 내각 회의를 취소했다. 이스라엘은 종전까지 가자지구 전후 구상 논의를 꺼려왔으나, 전쟁 국면 전환을 앞두고 마련된 이번 회의를 통해 처음으로 관련 논의를 할 계획이었다. ● 유엔·프랑스 등 자제 촉구, “블링컨 이스라엘 방문 연기” 중동 긴장이 고조되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모든 당사자가 극도로 자제하고 역내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긴급 조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또한 계속된 전쟁에 따라 여러 주체들이 큰 오판을 할 위험이 있다면서 확전 방지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촉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전시 내각에 참여한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와 통화에서 “긴장을 고조할 어떤 행위도 피해야만 한다. 특히 레바논에선 더욱 그렇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오는 5일쯤 이스라엘을 방문할 예정이던 블링컨 장관의 방문 일정을 다음 주로 연기했다고 관련 소식통이 이스라엘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말했다. 일정 조정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같은 소식은 알아루리 사망 사건 직후에 알려졌다. ● 저강도 장기전 전환 시도 무색…꼬이는 출구전략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그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주고받는 공격의 강도가 높아지자 레바논-이스라엘 국경 지역에서 헤즈볼라 병력을 철수시키기 위한 협상을 진행해왔다. 새해 초에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일부 병력을 철수하기로 하면서 출구가 보이는 듯 했다. 미 당국자는 “우리가 촉구한 대로 저강도 작전으로의 전환을 위한 출발점으로 보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무렵 미국은 전쟁 직후 동지중해에 급파한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도 복귀시키기로 하는 등 전쟁 국면 전환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번 공격으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전투를 외교로 끝내려 하는 미국의 노력도 복잡해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바이든 행정부 관리들은 알아루리의 사망 보고를 살펴보고 있다면서 사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밝혔다. 또 이번 공격이 헤즈볼라의 도발적인 대응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故이선균 소속사 “허위사실 보도 기자 고소…악의적 보도 유감”

    故이선균 소속사 “허위사실 보도 기자 고소…악의적 보도 유감”

    지난달 27일 세상을 떠난 故 배우 이선균(48) 측이 악성 루머에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고인의 소속사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는 3일 “최근 소속 배우들에 관한 루머 및 허위사실 등이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현재 관련 자료 수집에 들어갔으며 동시에 법적 대응을 진행키로 했다”며 “허위 사실이 유포되는 모든 상황에 대해 단호히 대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소속사는 “지난 3개월여간 이어진 일부 매체의 故이선균 배우를 향한 악의적이고 무분별한 보도에 매우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마지막까지 공정한 경찰 수사 결과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것을 바랐으나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에 당사에서 직접 하나씩 사 관계를 바로잡고자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2023년 12월 27일 밤 허위 내용을 사실인 양 보도한 기자를 지난 2일 고소했으며 해당 기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이후 진행될 법적 절차에 성실히 임할 것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소속사는 “한 가지 부탁의 말씀 드린다. 그동안 수사가 진행 중이었고 현재까지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모든 취재에 응할 수는 없었다”면서도 “출처가 확실하지 않거나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고 보도된 모든 기사와 온라인상에 게재된 게시물 수정과 삭제를 요청하니 부디 빠른 조치 취해주길 거듭 당부 드린다”고 덧붙였다.
  • ‘이재명 피습’ 외신도 신속 보도…“한국 정치 갈수록 양극화”

    ‘이재명 피습’ 외신도 신속 보도…“한국 정치 갈수록 양극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목 부위를 찔린 가운데 외신들은 이를 일제히 보도하며 사건의 전말과 배경, 전망 등을 담은 기사를 보도했다. 이 대표는 지난 2일 오전 10시 27분쯤 부산 가덕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후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60대 남성 김모씨가 휘두른 흉기에 목 왼쪽 부위를 찔렸다. 이 대표는 출혈이 있었으나 다행히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김씨는 이 대표 주변에서 지지자처럼 행동하던 중 사인을 요구하며 펜을 내밀다가 소지하고 있던 18㎝ 길이 흉기로 이 대표를 공격했다. 이 대표는 사건 현장에서 응급 처치를 받은 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부산대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외상 담당 의료진으로부터 응급 치료를 받은 뒤 헬기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대표는 내경정맥이 손상된 것이 확인돼 2시간가량 혈관 재건술 등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실했다.워싱턴포스트(WP)는 “이 대표가 부산 가덕도 신공항 방문 도중 흉기에 습격당했다”면서 용의자의 인적 사항 및 범행 도구 구입 방법 등을 자세히 보도했다. WP는 “이 대표는 2시간의 수술 끝에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이라며 “이 대표는 노동 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야당 지도자로서,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근소한 표 차로 패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서 정치인에 대한 공격은 드문 일이며, 역대 사건들은 국제적 관심을 끌었다”면서 2006년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박근혜 당시 대표 피습과 2015년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미국대사 습격 사건 등을 언급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태의 배경으로 한국의 정치 양극화를 지목했다. NYT는 “한국 정치는 최근 몇년 동안 점점 더 양극화되고 있으며,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과 이 대표의 지지자들 사이의 적대감은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CNN 방송은 “이 대표가 부산 방문에서 습격당하고 현재 병원에서 회복 중”이라며 “이 대표가 혈관 재건술을 받았으며, 민주당에서는 이번 사태를 테러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CNN도 이번 사건을 두고 “한국의 정치는 특히 최근 몇년간 극심한 양극화로 인해 분열됐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과거에도 고위급 정치인에 대한 정치적 폭력 사태에 직면한 사례가 있다”며 2022년 대선 유세에서 민주당 송영길 당시 대표가 한 유튜버에게 망치 공격을 받은 일을 비롯해 박 전 대통령 및 리퍼트 전 대사 사건을 거론했다. NBC 방송은 한국 경찰 등을 인용해 이 대표가 피습당했지만 생명이 위중한 상황은 아니라면서 이 대표는 현재 의식이 있으며 약간의 출혈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한국은) 총기 소지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있고 전반적인 폭력 범죄율은 매우 낮지만, 다른 유형의 무기와 관련된 정치적 폭력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디언은 정치인들이 당한 폭력 뿐 아니라 1980년 군부의 정권 장악에 반대한 학생 봉기의 무자비한 진압, 광주 공수부대 등의 손에 시민 수백명이 사망한 것도 정치적 폭력의 예로 들었다. ABC 방송은 “이 대표는 가덕도 신공항 부지 방문 직후 기자들과 문답 도중 습격받았다”면서 “2022년 대선에서 그를 꺾은 윤 대통령은 우려를 표하고, ‘우리 사회가 어떤 경우에라도 이러한 폭력 행위를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 [사설] 李대표 피습, 선거 앞둔 폭력테러 용납 안 된다

    [사설] 李대표 피습, 선거 앞둔 폭력테러 용납 안 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부산 방문 도중 6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목 부위를 베여 병원에 실려 갔다. 용의자가 지지자로 위장했고,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아닌 탓에 전담 경호팀이 가동되지 않아 습격을 막아 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피습으로 목 부위에 길이 1.5㎝ 정도의 열상과 함께 내경정맥에 손상을 입어 2시간가량 혈관재건수술을 받았다. 만일 경동맥이 손상됐다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었을 거라고 하니 국민들이 느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대표를 죽이겠다”며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진술한 용의자에 대해 경찰은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범행 동기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무방비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흉기를 휘두른 것만으로도 끔찍한 사건이다. 경찰은 이 대표 일정과 관련해 경찰 41명을 배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 대표는 법적인 경호 대상이 아니어서 이번 사태에 속수무책이었다. 경찰이 앞으로 ‘주요 인사 전담보호팀’을 조기 가동하고 당 대표 등 주요 인사 일정 때 당과 연락해 안전대책을 수립하는 핫라인을 구축한다고 하니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전국 단위 선거를 앞둔 시기에 주요 정치인을 겨냥한 폭력테러는 과거에도 있었다. 2006년 5월 2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50대 지모씨가 휘두른 커터칼에 오른쪽 뺨 자상을 입고 봉합수술을 받았다. 당시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신촌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입원 도중 측근들에게 “대전은요”라고 물은 것이 보도되면서 열세였던 선거 판세가 뒤집혔다. 2022년에는 3·9 대선을 앞두고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당시 이재명 후보를 위해 신촌 유세에 나섰다가 유튜버 표모씨가 휘두른 둔기에 머리를 가격당하기도 했다. 송 전 대표는 응급수술을 받은 뒤 ‘붕대 투혼’을 펼쳤지만 대선에서는 민주당이 패했다. 정치테러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양극단으로 치닫는 진영 대결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혹시라도 폭력테러를 통해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진영 대결만을 일삼아 온 정치권은 뼈저린 성찰과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극렬주의자들의 팬덤정치를 자제시키지는 못할망정 부추겨 온 정치인들은 이제라도 부끄러움을 깨달아야 한다. 4월 총선이 100일도 남지 않았다.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기로에 서 있다.
  • 계란부터 흉기까지… 선거철 ‘정치인 테러’ 반복

    계란부터 흉기까지… 선거철 ‘정치인 테러’ 반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흉기로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과거 유력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군부 정권 시절 정치인 테러가 주로 야당 정치인을 대상으로 공권력에 의해 계획적으로 이뤄졌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여야 정치인 모두 흉기부터 계란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테러에 노출돼 왔다. 이 대표의 이날 피습은 총선을 3개월가량 앞두고 20~30㎝ 길이의 흉기로 공격을 당했다는 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커터칼 피습’ 사건과 유사하다. 2006년 5월 20일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전 대통령은 5·31 지방선거를 11일 앞두고 서울 신촌에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의 지원 유세를 하고자 차에 오르다 피습을 당했다. 범인 지충호는 11㎝의 문구용 커터칼로 박 전 대통령의 오른쪽 뺨을 그었고 박 전 대통령은 10㎝가 넘는 상처를 입고 60바늘을 꿰매는 봉합 수술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이 입원 도중 측근들에게 “대전은요?”라며 열세 지역 판세를 물은 것으로 보도되면서 동정 여론이 일었다. 박 전 대통령은 퇴원 직후 대전에서 지원 유세에 나서면서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뒀다. 범인 지씨에 대해 대법원은 2007년 “올바른 선거문화 정착에 큰 걸림돌이 되는 중한 범죄”라며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22년 대선을 이틀 앞둔 3월 7일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도 서울 신촌에서 당시 이재명 대선 후보의 지원 유세에 나섰다 유튜버 표모씨가 내리친 둔기에 머리를 가격당해 상처를 입었다. 송 전 대표는 응급수술을 받고도 바로 유세에 나서며 ‘붕대 투혼’을 펼쳤지만 이 후보는 대선에서 패배했다.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는 2018년 5월 5일 국회 본관 앞에서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다 김모씨로부터 주먹으로 턱을 가격당하기도 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도 열흘 뒤 제주도 제2공항 건설 문제 관련 토론회에서 한 주민으로부터 얼굴과 팔 등을 폭행당했다. 경호 수준이 국무총리급으로 상향되는 대선 후보들도 피해 정도가 크진 않았지만 테러에서 예외가 되진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2002년 11월 ‘우리쌀 지키기 전국 농민대회’에서 연설 도중 야유하는 청중 사이로 날아온 달걀에 아래턱을 맞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인 2007년 12월 경기 의정부에서 거래 유세를 하다 중년 남성이 “BBK 사건의 전모를 밝히라”고 외치며 던진 계란에 허리를 맞았다.
  • 러 ‘킨잘’ 등 미사일 100발 대폭격, 우크라 불바다…폴란드 F-16 긴급 배치 (영상)

    러 ‘킨잘’ 등 미사일 100발 대폭격, 우크라 불바다…폴란드 F-16 긴급 배치 (영상)

    러시아가 연말부터 시작한 공세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새해 첫날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와 동부 드니프로에 대한 드론 공격에 이어 2일(현지시간)에는 수도 키이우와 동남부 하르키우에 100여발의 미사일을 퍼부었다.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과 미콜라 올레슈축 우크라이나 공군 사령관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이날 새벽 남동쪽 방향에서 샤헤드-136, 131 드론 공격을 시작했다. 새벽 3시쯤 수도 키이우에서 폭발이 발생했으며, 우크라이나 전역에 공습 경보가 발령됐다. 우크라이나군은 35대 드론이 대공방어망에 의해 파괴됐다고 밝혔다.오전 6시쯤 러시아군은 투폴례프(Tu)-95MS 장거리 폭격기를 출격시켰고, 16대가 최소 70기의 Kh-101, Kh-555, Kh-55 1, Kh-555, Kh-55 등 공대지 순항미사일 발사했다. 그 사이 키이우는 불바다가 됐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러시아 공격으로 키이우 솔로먄스키 지역 아파트에 화재가 발생했으며, 2명이 죽고 49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주민 117명은 긴급 대피했다. 우크라이나 국영 에너지기업 우크레네르고는 키이우와 주변까지 총 25만 가구가 정전됐다고 전했다. 오전 7시 30분쯤에는 러시아군 미그(MiG)-31K 전투기가 공대지 극초음속 미사일인 Kh-47M2 킨잘 10기를 퍼부었다. 해상에서는 칼리브르 순항미사일 3기가 날아 들었다. 이스칸데르-M, S-300 및 S-400 탄도미사일 12기가 발사됐고, 수호이(Su)-35 전투기가 Kh-31P 공대지 레이더 유도 미사일을 투하했다. 러시아군 폭격으로 하르키우에서는 91세 여성이 1명 사망하고 어린이 2명 포함 47명이 다쳤다. 주거용 건물 및 민간 상업용 건물도 손상됐다. 다만 우크라이나군은 이날 러시아군이 퍼부은 미사일 100기 중 72기가 대공방어망에 의해 격추됐다고 주장했다.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텔레그램에 글을 올려 “러시아가 지난달 31일부터 약 170대의 샤헤드 드론과 수십기의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발사했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도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다른 방공 시스템이 없었다면 매일 밤낮 이어지는 러시아의 테러 공격에서 수백명의 생명을 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미국과 서방의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이어 “러시아는 희생된 모든 인명에 대해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성명을 내고 “추가적 방공 시스템과 여러 종류의 공격용 드론, 사거리 300㎞ 이상의 장거리 미사일 공급을 가속화해 줄 것을 동맹국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지난달 29일 미사일 122발과 드론 36대로 우크라이나 키이우, 하르키우, 오데사, 드니프로 등 전역에 올해 들어 최대 공습을 가했고 약 4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이튿날 러시아 벨고로드 등에 보복성 공격을 감행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집속탄 등을 사용해 자국민 14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 폴란드, 우크라에 러 미사일 쏟아지자 F-16 4대 국경 급파 우크라이나 상황이 악화하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는 2일 우크라이나에 접경한 동부 일대에 F-16 전투기 4대를 추가 배치했다. 폴란드군은 이날 엑스(X)에 올린 성명에서 “폴란드 영공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공중 급유기 1대도 전개했다. 폴란드군은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공습과 관련된 러시아의 장거리 비행 활동이 관찰되고 있다”고 배치 이유를 설명했다. 폴란드에선 지난달 29일 러시아 미사일이 영공을 한때 진입하면서 긴장이 고조된 바 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와 접경해 전쟁 발발 이후 직·간접적 피해에 번번이 노출됐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폴란드가 러시아의 공격을 받게 되면 집단방위 체제인 나토가 전쟁에 직접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2022년 11월에는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의 폴란드 농촌마을 프셰보두프에서 우크라이나의 방공 미사일이 잘못 떨어져 민간인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4월에는 의문의 군용 발사체가 발견됐으며 추후 폴란드 언론들은 이를 러시아 미사일이라고 전한 바 있다.
  • 임금님표이천브랜드본부, 새해 첫업무로 이천쌀 홍보 캠페인

    임금님표이천브랜드본부, 새해 첫업무로 이천쌀 홍보 캠페인

    임금님표이천브랜드본부는 임직원과 농협시지부 직원들이 2일 창전동 농협중앙회 이천시지부 앞거리에서 이천쌀 지정업소 소개 리플렛과 ‘이천쌀명품컵누룽지’를 나눠주며 이천쌀의 우수성을 알리는 홍보 캠페인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새해 첫 날 시무식을 대신해 진행한 이번 캠페인에서 나눠준 리플렛은 임금님표이천브랜드관리본부에 등록해 관리를 받고 있는 이천쌀 사용 관내 지정업소 19개 업소와 관외 16개 업소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천시 지도에 업소 사진을 일일이 넣어 누구나 쉽게 지정업소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날 캠페인에서 시민들에게 선물로 나눠준 ‘이천쌀명품컵누룽지’는 뜨거운물을 붓고 3분이면 먹을 수 있도록 개발되어 홈플러스 등 대형유통업체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이천쌀 가공 간편식으로 시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받았다. 캠페인을 진행한 임금님표이천브랜드본부는 관내 농특산물 홍보를 이천시로부터 위탁받아 SNS 등 온라인 광고와 버스, 지하철, 전광판 등 오프라인 홍보를 담당하고, 임금님표이천쌀의 품질, 성분 검사와 463가지 잔류농약검사 등을 진행하는 등 안전하고, 건강한 쌀을 공급하기 위해 철저한 품질관리도 병행하는 홍보, 품질관리 전문 기관이다.
  • 이재명 대표 공격한 남성, 지난달 ‘이곳’에서도 목격됐다

    이재명 대표 공격한 남성, 지난달 ‘이곳’에서도 목격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2일 흉기로 공격한 남성이 지난달에도 이 대표가 참석한 행사 현장을 찾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대표를 습격한 남성 A씨는 지난달 13일 부산에서 열린 민주당 부산지역 전세사기 피해자 간담회 현장 인근에 있었다. 당시 A씨는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는 이 대표를 기다리는 인파 속에 섞여 있었다. 다만 이 대표와 직접 접촉하지는 못했다. A씨는 당시에도 이날 이 대표를 공격할 때처럼 왕관 모양의 띠를 두르고 있었다. A씨는 이날 이 대표를 공격할 당시 ‘내가 이재명’이라고 적힌 파란 종이 왕관을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A씨가 이 대표의 다른 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냈던 것으로 보아 그동안 이 대표 동선을 따라다녔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소셜미디어(SNS)로 공유한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때도 지지자인 척 범행을 계획하고 참석했던 것 아니냐”며 우려를 표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27분쯤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후 기자들과 문답을 진행하며 이동하던 중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남성 A씨로부터 흉기로 왼쪽 목 부위를 공격당했다. 그는 “사인해주세요”라며 지지자인 척 취재진을 뚫고 접근한 뒤 순식간에 이 대표를 향해 달려들었다.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이 대표는 목 부위에 1.5㎝ 정도의 열상을 입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민주당 관계자는 “경정맥이 손상된 것으로 추정돼 대량 출혈이나 추가 출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부산대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은 뒤 헬기에 실려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부산 강서경찰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범인을 상대로 범행 동기와 계획 범행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A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李 피습, 박근혜 사례 연상시켜”…재조명되는 정치인 ‘피습 수난사’

    “李 피습, 박근혜 사례 연상시켜”…재조명되는 정치인 ‘피습 수난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부산 방문 도중 흉기로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과거 비슷한 사례들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27분쯤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후 기자들과 문답을 진행하던 중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남성 A씨로부터 왼쪽 목 부위를 공격당했다. 이 대표는 피를 흘린 채 쓰러졌고, A씨는 현장에서 검거됐다. 이전에도 여야 당 대표나 대선 후보들이 전국 단위 선거 직전 괴한 피습에 노출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 대표의 흉기 습격 사건과 가장 유사한 사례는 2006년 5월 20일 박근혜 전 대통령 ‘커터칼 피습’ 사건이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이던 박 전 대통령은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신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장을 찾아 단상에 오르다가 50대 지모씨가 휘두른 문구용 커터칼에 11㎝ 길이의 오른쪽 뺨 자상을 입고 봉합 수술을 받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소셜미디어(SNS)에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대표가 피습당한 사례를 연상시킨다”며 “증오의 정치, 독점의 정치, 극단적인 진영대결의 정치가 낳은 비극”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2022년 3·9 대선을 앞두고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당시 이재명 후보를 위한 서울 신촌 지원 유세 중에 유튜버인 표모씨가 내려친 둔기에 머리를 가격당한 일도 있었다. 이 사건도 선거 유세 중 벌어진 당 대표 피습인 데다 박 전 대통령 사례와 지역도 같다. 흉기나 둔기처럼 생명에 지장에 줄 수 있는 ‘테러’ 수준의 습격이 아니더라도 대선 후보나 유력 정치인이 달걀이나 물을 맞거나, 주먹으로 폭행당하는 사례도 있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인 2002년 11월 ‘우리쌀 지키기 전국 농민대회’에서 연설하던 도중 야유하는 청중 사이에서 날아온 달걀에 아래턱을 맞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이던 2007년 12월 경기도 의정부에서 거리 유세를 하다 승려 복장을 한 중년 남성이 “BBK 사건의 전모를 밝히라”고 외치며 던진 달걀에 허리 부근을 맞았다. 같은 해 11월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을 때는 갑자기 한 30대 남성이 달걀 여러 개를 투척하며 소동이 벌어졌다. 당시 이 후보는 이마와 안경에 달걀 파편을 맞았다. 2018년 5월 5일 김성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는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농성 중에 지지자를 자처하며 다가온 30대 남성 김모씨로부터 주먹으로 턱을 가격당했고, 열흘 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주도 제2공항 건설 문제 관련 토론회 중에 지역 주민으로부터 얼굴과 팔 등을 폭행당했다. 민주화 이전 군부정권 시절로 올라가면 더 험악한 사건도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신민당 원내총무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 반대 투쟁을 주도하던 1969년 6월 20일 상도동 자택 인근에서 질산(초산) 테러를 당했다. 괴한들이 뿌린 질산이 자동차 창문에 던져져 차창은 녹아내렸으나, 김 전 대통령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유신 반대 운동을 벌이던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됐다. 김 전 대통령은 동해상으로 끌려가 살해당할 뻔하다 5일 만에 풀려났다. 한편 흉기 습격을 당한 이 대표는 부산대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은 뒤 이날 오후 1시쯤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대표는 목 부위에 1.5㎝ 정도의 열상을 입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경정맥이 손상된 것으로 추정돼 대량 출혈이나 추가 출혈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 한동훈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 빠른 회복 기원”

    한동훈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 빠른 회복 기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괴한에 습격당한 데 대해 “이 대표님의 빠른 회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대전 현충원 방문 직후 피습 소식을 전해 들은 뒤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생긴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그는 “수사 당국은 엄정하고 신속하게 수사해서 경위를 밝히고 책임 있는 사람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어서도, 용납될 수도 없는 일”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어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라며 이 대표에게 “피해가 크지 않길 바란다. 조속한 쾌유를 빈다”고 했다. 앞서 이날 오전 이 대표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후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진행하던 중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남성으로부터 목 부위를 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 이 대표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의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박지수 아님 받을 선수 없네…여농 최초 3연속 라운드 MVP

    박지수 아님 받을 선수 없네…여농 최초 3연속 라운드 MVP

    박지수(청주 KB)가 2023~2024시즌 라운드 최우수선수(MVP)를 싹쓸이할 기세다. 전체 6라운드 가운데 1∼3라운드 MVP를 독식했다. WKBL은 2일 “2023~24시즌 3라운드 MVP에 대한 기자단 투표 결과 박지수가 총투표수 73표 중 65표를 획득해 MVP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이번 투표에서는 김단비(아산 우리은행)가 5표로 박지수 다음으로 많은 표를 받았다. 박지수는 3라운드 5경기에서 평균 24점(1위), 17.6리바운드(1위), 4.2어시스트(4위)를 공헌도 1위(250.90)를 기록하며 팀의 4승1패 성적을 이끌었다. 박지수는 앞서 1, 2라운드 MVP도 휩쓸었다. 여자프로농구에서 한 선수가 3회 연속 라운드 MVP를 받은 것은 박지수가 처음이다. 개인 통산 16번째 라운드 MVP를 받은 박지수는 이 부문 2위 신정자(은퇴), 김단비(이상 12회)와 격차를 크게 벌렸다. KB는 2일 현재 15승2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 우리은행(14승2패)과는 반 경기 차다. KB가 박지수의 활약에 힘입어 고공 행진을 이어가면 박지수의 라운드 MVP 수상은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심판부와 경기 운영 요원 투표로 정하는 기량발전상(MIP)은 이명관(우리은행)이 총투표수 35표 중 25표를 받아 3라운드 수상자로 선정됐다. 1, 2라운드 MIP는 이해란, 이주연(이상 용인 삼성생명)이 받았다. 이명관도 지난 시즌까지는 삼성생명에서 뛰었다.
  • 벼랑 위의 오리엔테이션/송천영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희곡]

    벼랑 위의 오리엔테이션/송천영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희곡]

    등장인물 김영수 (30대 초반) 신대리 (30대 중반) 구과장 (40대 초반) 지부장 (50대 초반) 무대 흔히 보는 산기슭, 나무 한그루. 무대 뒤편은 가파른 절벽이다. 절벽은 연극적인 약속에 의해 무대 앞쪽에 설치되어, 나뭇가지에 매달린 인물의 모습이 관객에게 보이도록 한다. 어둠 속. 서너 명이 크게 외치는 소리. 목소리 김영수! / 영수야! / 미스터 김! 밝아진다. 뒤쪽을 굽어보는 뒷모습의 신대리, 구과장, 지부장. 절벽에 떨어질 듯 매달린 김영수, 나뭇가지 하나를 잡고 있다. 구과장 괜찮아? 지부장 괜찮나? 신대리 괜찮을 리가 있어요? 김영수 괜찮습니다! 지부장, 힘이 풀린 듯 바닥에 풀썩. 신대리와 구과장, 절벽을 외면하며 돌아선다. 신대리 순발력이 정말 대단했어요. 구과장 정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초인적인 능력이 나온다잖아. 신대리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구과장 큰일 날 뻔했다. 신대리 바위에 부딪치기라도 했어 봐요. 지부장 머리 다 터져, 골 쏟아지고……. 신대리 (절벽을 힐끗 보며) 이게 몇 미터야. 구과장 못해도 10미터는 족히 넘겠어. 지부장 이 정도 높이면 즉사야. 신대리 영수야 일단 올라와. 김영수 제가요? 신대리 그럼 네가 올라와야지. 김영수 대리님 저 잡고 올라갈게 없습니다! 신대리, 절벽 아래로 손을 뻗어 내린다. 신대리 자, 올라와. 신대리, 아래를 힐끗하는데 어지럽다. 김영수, 신대리의 팔을 잡으려고 있는 힘껏 손을 뻗지만 닿지 않는다. 신대리 (팔을 거두며) 잠깐, 잠깐 기다려봐. (구과장에게) 과장님 팔이 아예 안 닿는데요. 구과장 에이 비켜봐. 구과장, 김영수를 향해 손을 뻗어본다. 팔을 좀 더 뻗어보려 낑낑거리지만 김영수를 잡아 올리기엔 역부족이다. 구과장, 지부장을 본다. 구과장 부장님? 지부장 에이 비켜봐. 지부장, 절벽 아래로 손을 뻗어본다. 역시 닿지 않는다. 애타게 팔을 뻗어 보는 김영수. 일동은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다. 지부장 … 구과장 쉽지 않겠는데요. 신대리 어떡하죠? 지부장 김영수 사원. 김영수 네 부장님 저 좀 올려주세요. 지부장 평소 운동 안 하지? 김영수 네? 지부장 클라이밍 그런 거 안 해봤지? 김영수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지부장 응 무리지. 스스로 올라오는 건 무리야. 에이 참, 젊은 사람이 운동을 좀 하 지. 김영수 사원 잠깐 대기. 구과장 어떻게 하죠, 부장님? 지부장 끌어 올려야지. 구과장 뭘로요? 신대리 구급대 부를까요? 지부장 구급대는 안돼! 신대리 네? 지부장 우리 팀 사고 났다고 동네방네 소문낼래? 신대리 그렇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지부장 저 새끼는 왜 절벽에서 떨어져 가지고. 아, 사람 골치 아프게. 구과장 정확하게 말하면 떨어진 건 아닙니다. 신대리 구사일생으로 나뭇가지 붙잡고 있습니다. 지부장 뭐가 됐든 왜 떨어져서 이 난리냐고! 신대리 명령에 복종한 결과 아닐까요. 지부장 뭐? 신대리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누군가 내려가라고 시켰으니까요. 지부장 그러게 넌 쟤를 왜 끌어들여! 신대리 제가 언제요? 지부장 오티에 오라고 한 거 너 아냐? 신대리 네 접니다. 지부장 그니까 신대리 너 때문이지. 신대리 근데 절벽에 내려가서 보물을 찾아오라고 지시하신 건 부장님이세요. 구과장 애당초 비정규직 사원을 야외 오리엔테이션 업무에 참여시킨 것부터가 문제 의 시작이군요. 이번 보물찾기는 저희 정규직들만의 행사였습니다. 신대리 그렇다고 쟤만 어떻게 빼고 갑니까. 같은 팀인데. 구과장 (곰곰이) 쟤 보험은 되나? 신대리 비정규직은 따로 보험 등록이 안 되죠. 지부장 거 봐. 보험도 안 되는 애를 왜 오티에 오라고 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 구과장 일이 진짜 복잡해지겠는데요. 지부장 지겠는데요가 아니라 이미 복잡해졌어! 신대리 저는 저 친구 정규직 전환되는데 도움 되라고 부른 거죠. 그런데 부장님께 서 정규직 시켜준다고 절벽에 내려가라고 시킨 건요……. 지부장 됐어! 구과장 부장님, 지금 벌어진 이 상황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시죠. 지부장 그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역분석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 매달린 김영수, 소리친다. 김영수 살려주세요. 대리님! 과장님! 부장님! 신대리 영수야 침착해. 침착하고 있어봐. 구과장, 김영수를 내려다보며, 구과장 김영수 사원. 김영수 구과장님! 구과장 우리가 살리려고 이러지, 죽이려고 이러겠나? 지부장 그래! 해결책이 나와야, 그 해결책이 널 살리는 거야. 구과장 부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팀당 할당된 보물찾기가 3개입니다. 우리 팀은 단 1개도 찾지 못했습니다. 지부장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야. 신대리 맞습니다 부장님. 구과장 언제든 역전은 가능하죠. 지부장 좋아, 신발 끈 단단히 묶고 허리띠 졸라매서 이 상황 원인 분석을 해보지. 구과장, 브리핑을 하듯 자세를 잡는다. 구과장 60초 전 저 친구한테 물리적인 압력을 가한 건, 신대리입니다. 신대리 제가요? 물리적인 압력을 가해요? 구과장 신대리가 후배를 강제로 절벽에 끌고 갔잖아. 지부장 원래 한 다리 위가 제일 무섭지. 신대리 억울합니다. 부장님 뜻대로 행동한 게 죄예요? 무슨 책임이 있습니까, 일개 대리가. 지부장 쟤 안전교육은 안 시켰냐? 구과장 안전교육도 안 시키고 보물 갖고 오라고 시킨 거야? 신대리 정규직인 저도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요. 저부터 뭘 받아봤어야 시키든 하죠! 지부장 안전교육 안내방송 틀어주잖아! 화재 발생 시 비상구로 대피해라, 비상구 문은 상시 잠그지 마라, 지진 발생 시 책상 밑에 들어가라, 안내방송 틀어 줄 때 뭐했어! 신대리의 대답 대신, 김영수가 비명을 지른다. 그 소리에 등을 보이며 후다 닥 뒤쪽 절벽으로 달려가는 신대리, 구과장, 지부장. 구과장 왜 그래! 신대리 떨어졌어? 구과장 몸무게를 지탱 못해? 지부장 팔에 힘이 빠져? 구과장 해충에 물리기라도 한 거야? 김영수, 팔을 부들부들 떤다. 김영수 나무가 부러질 것 같아요! 팔에 힘도 빠지고. 아, 이놈의 모기! 얼굴이랑 겨 드랑이에 물렸는데요. 아, 가려운데 긁지도 못하고. 죽겠어요! 신대리 떨어질 거 같아 죽겠는 거야, 가려워 죽겠는 거야? 구과장, 신대리의 뒤통수를 친다. 구과장 지금 그게 문제야? 지부장 조금만 참아! 지금 구할 방법을 간구 중이야! 지부장, 절벽을 등지고 돌아선다. 뒤 따라 돌아오는 구과장과 신대리. 지부장 자, 빨리 서두르자. 저대로 뒀다간 큰일 나겠어. 지금으로서는 용단이 필요 해. 누군가 내려가서 끌고 와야 할 거 아니야. 신대리 내려가서 끌고 올라오라고요? 구과장 가장 적임자는 신대리라고 생각합니다. 자네가 제일 건장하고! 신대리 무슨 말씀이세요, 다리가 얼마나 약한데……. 구과장 해병대 출신이잖아! 신대리 해병대는 바다에서 활동한다니까요. 산은 타본 적도 없어요. 게다가 저 몸 치에요. 구과장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악으로 깡으로! 신대리 저 곧 한 아이의 아버지 될 사람입니다. 제 몸이 한 가족의 미래이자 희망, 한 가정의 전부라는 말이에요. 김영수 어……! 어! 나무가 부러질라 그런다! 팔의 힘은 더 빨리 빠진다! 지부장 시간 없어, 빨리 가서 구해! 해병대 정신으로! 신대리 고소 공포증 있습니다. 아파트도 5층 이상은 살아본 적도 없어요. 그 흔한 남산타워도 가다 말았구요. 개인 특성상 김영수를 구하는 건, 제게 적합한 일이 아닙니다. 김영수 모기가 떼로 달려든다! 눈꺼풀을 물었다. 아, 따가워! 모기한테 물린 데가 부어오른다! 그래서 더 무거워진다! 신대리 이 문제는 계급장 떼고 공정한 판단으로 선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구과장 공정차원이라면 부장님께 한 표 드리겠습니다. 신대리 동의합니다. 김영수 누가 됐든 동의에, 동의에, 동의합니다! 지부장 조용! 이것들이 수평적인 조직 사회를 위해 오냐오냐 했더니, 내가 니들 친 구야? 내 나이가 몇이야! 혼자 서 있기도 힘들어. 나는 숨만 쉬어도 녹초 야! 이런 일은 공정 차원이 아니라, 효율적인 면을 고려해서 선발을 해야 지! 신대리 효율이라면, 아……, (태도를 바꾸어) 과장님. 제가 평소 본 과장님은 매사 차분하고 빈틈없는 완벽한 일처리!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감정의 동요가 없는 분, 맞습니까? 구과장 감정의 동요, 없으려고 노력하지. 신대리 그런 의미에서 효율적인 면을 고려했을 때, 구과장님이 적합하십니다. 저기, 저 작은 틈을 섬세하게 내려갈 수 있는 사람, 여리여리한 체형! 섬세 한 감각! 절벽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영웅적인 행위는 감정 없이 오직 이성 적인 판단으로만 해낼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지부장 응, 구과장이라면 나 역시 항상 믿고 맡길 수가 있어. 구과장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부장님 늘 저를 믿고 맡겨주시는 점,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구과장, 벌떡 일어나서 잠시 서성이다가 구과장 그러나 부장님 기억하실 겁니다. 지난 봄, 사장님 배 사내 축구대회. 당시 영업 A팀의 박과장이 악의적인 방법으로 부장님께 걸어온 태클을! 제가 온 몸으로 막아냈던 것을요! 저 그때의 사고로 십자인대가 끊어졌습니 다. 구과장, 종아리를 걷어 올려 상처를 보인다. 구과장 보통 통계학적으로 보면 30대 이후로 십자인대가 손상되는 경우 불구가 되 는 가능성이 80프로 이상으로 아주 높다고 하는데요. 저는 운 좋아 겨우 걸 어 다닙니다. 여기서 한 번 더 삐끗 나간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죠. 김영수, 비명을 지른다. 김영수 이젠 환청까지 들려요! 모기들이 귓속에서 토론을 합니다! 신대리, 구과장, 지부장. 서로를 마주본다. 신대리 결국에 우리 세 명, 아무도 적합하지 않은 건가요? 구과장 이 프로젝트 실패입니까? 지부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한 바퀴를 휘 돈다. 지부장 신제품을 만드는 거야. 구과장 무슨 신제품이요? 지부장 김영수를 구할 신제품! 주변을 잘 살펴봐, 뭐가 제일 많지? 신대리 (두리번거리며) 나뭇가지입니다. 지부장 나뭇가지로 줄을 묶어서 일종의 사다리 형태를 만드는 거야. 그리고 그걸 잡고 올라오게 하는 거지! 신대리 나무에 넝쿨을 감고 고정 시켜서요? 구과장 디자인 좋습니다. 부장님! 지부장 자, 실행에 옮겨 볼까? 신대리와 구과장, 지부장의 지시에 따라, 나뭇가지에 넝쿨을 묶고 매듭을지 어 길게 사다리 형태를 만든다. 지부장 그렇지, 그쪽을 더 세게 묶어야지. 아니지! 더 꽉! 세게! 그래, 거기가 가장 힘을 많이 받는 위치야. 좋아! 지부장의 감독 하에 사다리를 만들어 나가는 신대리와 구과장. 이윽고 사다리가 만들어졌다. 구과장 완성했습니다. 지부장 시범테스트! 테스트가 굉장히 중요해. 우리 영업 B팀의 정신! 신대리 테스트가 실패율을 낮춘다! 구과장 정직과 근면성실로 고객에게 완전한 제품을 제공한다. 신대리 불량품이라는 재고가 남을 지라도! 구과장 안전을 위해 사익을 따지지 않는다! 구과장, 신대리 근면 성실 영업 B팀 야호! 지부장 제품을 늘여 뜨려! 구과장과 신대리, 사다리를 나무에 걸어 늘어뜨린다. 구과장 신대리, 자네가 김영수야. 지부장 잡고 올라오게! 신대리, 나무 밑에서 사다리를 잡고 올라오기 시작한다. 한 칸 한 칸 오르는 신대리의 모습, 긴장감이 감돌고, 신대리의 체중이 전부 실리자, 사다리가 팽팽해진다. 그때 매듭이 툭 풀리고 신대리, 엉덩방아를 찧는다. 신대리 테스트 결과, ……실패입니다. 지부장 ……이래서 테스트가 중요한 거야. 바로 실행에 옮겼어봐, 쟤는. 김영수 (비명 소리) 떨어집니다! 구과장 결과는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신대리 영수야! 김영수 물 좀 주세요. 목말라 죽겠어요. 신대리,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각도를 맞춰 던져준다. 김영수, 한손으로 위태롭게 물병을 받으려는데, 물병이 영수의 머리를 맞고 떨어진다. 김영수 아……! 신대리 아씨 미안하다. 괜찮냐? 김영수 신대리님! 신대리 어 그래 영수야. 당은 안 떨어지냐? 김영수 떨어집니다! 신대리 너 여기서 당까지 떨어지면 진짜 큰일 나는 거야. 신대리, 주머니를 뒤져 초콜렛을 깐다. 신대리 손 풀지 말고 입으로 받아. 할 수 있지? 김영수 네 대리님! 신대리, 초콜렛을 던지고 김영수 받아먹으려고 한다. 한 개 두 개 실패하고 세 번째에 성공한다. 신대리 잘했다. 잘했어 영수야. 지부장,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소매를 걷어 올린다.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사이. 지부장 사고의 역발상. 프로젝트 B로 넘어간다. 구과장과 신대리, 놀란 듯 서로 마주본다. 지부장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가 뭐지? 구과장 절벽에서 올라올 수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죠. 지부장 내려가는 거야. 구과장, 신대리 네……? (깨달은 듯, 동시에) 네! 지부장, 뒤 절벽으로 붙어 외친다. 지부장 김영수. 김영수 네. 지부장 올라올 생각을 하지 마. 김영수 네? 구과장 올라오기 힘들잖아. 신대리 그러니까 내려가래. 김영수 뭐라구요? 구과장 손에서 나뭇가지 놓고 절벽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는 거지. 지부장 이게 바로 사고의 역발상! 김영수 내려갈 수 없어서 매달려 있는 거 몰라요! 신대리 저 근데 부장님, 저 아래는 계곡인데요. 김영수 내려가다 발이라도 잘못 헛디디면……! 구과장 대가리 터져 죽는 거지. 지부장 버티다 못 버텨서 떨어지면! 구과장 그것도 대가리 터져 죽는 거지. 그렇게 죽는 건, 사는 것만 못하죠. 지부장 그러니까 가장 궁극적인 해결방법은. 신대리, 두려움에 눈이 커져 구과장과 지부장을 번갈아본다. 사이. 지부장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는 거야. 올라올 수 없는 게 문제니까, 내려가는 거 지. 김영수 내려갈 수 없으면요? 지부장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건가? 구과장 그런 정신으로 정사원 되겠어? 김영수 미치겠네……! 지부장 김영수, 잘 들어. 가장 중요한 건 생각이야. 내려가면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 뇌가 문제를 인지를 하면 인간은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어! 자, 따라해.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김영수 (이성을 잃고)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구과장 조용히 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구 그래? 지부장 사장이 들으면 우리 팀 사고 쳤다고 팀 점수 깎여! 그걸 바라나? 신대리 그건 안 돼, 영수야! 김영수 사람 살려요! 사람! (괴성을 지른다.) 지부장 조용히 하라니까 임마! 구과장 정말 자기 입장만 생각할 거야? 원래 이렇게 이기적이었나? 지부장 사람이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 바닥이 드러나는 거야. 김영수 지금 내가 죽게 생겼어! 신대리 진정해 영수야. 지부장 공동체 의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놈. 구과장 구조 받을 자격도 없는 놈! 지부장, 서성거리며 심사숙고한다. 지부장 큰일이군, 정말 큰일이야. 구과장 가뜩이나 팀 실적도 안……, 지부장 이런데 와서까지 문제 일으킨 팀으로 낙인이 찍힐 거야. 구과장 낙인은 절대적으로……, 지부장 이번 오티는 사장님 직접 명령에, 직접 참석까지. 중차대한 업무연장일세. 행운의 보물찾기. 그래, 그런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 백 프로 불이익이 야. 구과장 그럼요 이게 보통 보물찾기입니까. 신대리 각 팀의 성실도와 능력치를 판단하는 절대 테스트였죠. 구과장 다음 달 인사고과 선반영까지! 지부장 그게 이번 오티의 포인트야. 구과장 그러니 더더욱 구조요청은 안될 일입니다. 지부장 운세니 풍수지리니 사주팔자, 이런 거에 아주 민감한 사장님인데. 구과장, 신대리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김영수의 비명소리. 살겠다고 바둥바둥 한다. 지부장 잘 생각하자. 지금 상황은 물론, 모든 일에는 동기부여가 최우선이야. 신대리 그렇죠, 동기부여! 지부장 결자해지. 구과장 문제를 발생시킨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한다. 신대리 동기부여와 결자해지를 합치면! 구과장 아, 스스로 올라오면 김영수를 바로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준다, 어떻습니까? 신대리 (깨달은 듯) 아! 지부장 좋아! 세 사람, 합의한 듯 손을 하나로 모은다. 그러는 사이, 김영수는 가까스로 발을 뻗어 튀어나온 돌부리 하나에 발을 디딘다. 혁대를 풀어 제 몸과 나뭇가지를 하나로 묶는다. 그렇게 양 손이 편 해지자 알 베긴 팔을 풀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이후 김영수는 세 사람의 대화가 길게 이어질수록 정신이 혼미해지고 힘들어하며 구역질을 하기도 한다. 지부장 그게 가장 좋지만……, 그러나 이미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된 바……. 먼 산을 바라보는 지부장, 이윽고 심오한 눈빛으로 구과장을 쳐다본다. 구과장, 그윽한 눈빛으로 응수하며 구과장 결국 손 쓸 틈도 없이……. 지부장 애석하게도……. 구과장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었던……. 구과장, 어리둥절한 신대리의 고개를 숙이게 한다. 지부장 우리 다 같이 고개 숙여 애도의 마음으로 묵념합시다. 일동 묵념. 지부장, 구과장, 신대리. 절벽을 향해 묵념한다. 묵념을 마치고, 지부장 태도가 바뀌어서 지부장 사고 발생 시 회사차원에서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 찾아. 구과장 (휴대전화를 꺼내 읽으며) 사내 사고 매뉴얼입니다. 사고 상황이 업무의 연장이었는지 확인한다. 사고로 인한 임직원의 건강상 태 체크 및 보험처리 가능 범위 안에 있는지 확인한다. 보험 완료 후 최소 2주에서 최장 6개월의 휴직이 가능. 그 이상의 치료가 요구될 경우 계약기 간이 자동종료, 최대 30프로의 퇴직금이 지급된다. 지부장 좋아 그렇게 처리해. 구과장 아, 그러나 김영수는 정규직이 아니라 이 경우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습니 다. 지부장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구과장 (신대리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 신대리 우선 오티 참석에 따른 초과근무수당 반영여부를 확인해야 하구요. 구과장 오티 참석의 강제성 여부 확인 또한 필요합니다. 신대리 사고에 따른 개인의 손해는 회사와 추후 논의를 요하죠. 구과장 그렇게 되면 회사가 손해배상을 해줘야하는데, 김영수 측에서 소송까지 걸 거고. 구과장 최악의 사태에는 팀 전체 해고로……. 지부장 (벌떡 일어나며 외친다) 안 돼! 신대리, 털썩 주저앉으며 신대리 그럼 어떡하죠? 방법이……. 지부장 신대리 다음 달에 애기 태어나잖아. 신대리 네. 지부장 자네의 비전은 아이의 미래일세. 비정규직 사고사가 알려지면 우리만의 문 제가 아니야. 자네 아이의 문제가 되는 거야. 태어나기도 전에 문제를 안고 태어나는 거야. 신대리 그럴 수가…. 구과장 문제없이 태어나도 문제투성이야. 지부장 자네, 아이, 우리 모두가 사는 건……, 신대리 네, 무슨 말씀인지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구과장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전 그래서 결혼도 안 했습니다. 앞으로도 안 할 계 획입니다. 결국 결혼이라는 것도 주제에 맞는 사람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 기 때문에. 지부장 요즘 사람들 누가 결혼을 해. 일부러도 안 해, 안 하는 게 낫지! 마주보는 신대리와 구과장. 지부장 나 갈라섰다. 구과장 아, 결국, 신대리 사모님과 결국……, 지부장 내 뒤통수만 봐도 숨이 막힌대. 애들 얼굴이라도 보고 싶으면 양육비나 제 때 보내란다. 이 회사 아니면 어디서 애비 노릇을 하겠냐? 나부터 정신 바 짝 차려야 돼. 인생이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아직도 날마다 뭔가 배운다. 오늘이 내 제일 젊은 날이잖아. 그게 또 슬퍼. 체력이 안 되는 거야. 힘이 쭉쭉 빠져. 전기 차단기 내려가듯이 하나씩 뚝뚝. 지부장의 말을 끄덕이며 경청하고 있는 구과장과 신대리. 지부장 세상이라는 게 모든 인간은 평등한데 어떤 인간들은 다른 인간들보다 더 평 등해. 우리 같은 인간들에게 삶은 고뇌이자 투쟁이다, 그 말이야. 김영수, 이전과는 다른 소리로, 크게 괴성을 내지른다. 김영수 사람 살려! 저 미친놈들이 날 죽인다! 사람 살려! 구과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구과장 그래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투쟁의 삶을 견딘다는 것. 제대로 된 줄 하 나 잡으려고, 아등바등, 썩은 동아줄인 줄도 모르고, 매달려 대롱대롱! 김영수 더 이상 힘이 안 들어가! 견딜 수가 없어! 사람 살려! 신대리 (울먹이며) 쟤나 우리나……. 구과장 (김영수에게) 넌 죽으면 그만이지! 우리는 살아야 돼. 사는 게 얼마나 괴로 운 지 알아! 우리는 임마, 하루하루가 벼랑 끝이야. 내 머리에는 태양이 비 추질 않아. 내 삶의 태양은 죽었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왜 때문 에! 살아가는 걸까……. 지부장 모든 게 계획적인 거야. 산 속에서 보물찾기, 이 허무맹랑한 게임. 사고발생 까지 전부. 사장은 소문이 무성해. 누구는 전직 무당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사람 속을 훤히 꿰뚫어 보는 독심술사라고 하지. 팔에 묵주를 다섯 개씩 차 고 요상한 빛깔의 색안경에, 형형색색의 부채를 손에 쥐고 폈다 접었다, 폈 다 접었다……, 마치 우리의 영혼을 다 꿰뚫어보는 듯한 차가운 눈빛. 피라 미드 꼭대기에 위치한 자의 냉엄한 시선……! 오늘 우리는 그 덫에 걸려든 거야. 지부장, 가방에서 소주를 꺼내 잔을 들어 올린다. 지부장 이리 와. 한잔 씩 해. 신대리, 구과장, 지부장. 소주잔을 부딪치고 들이킨다. 구과장 승진은 못하더라도 자리는 붙어있으셔야 됩니다. 신대리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자리는 붙어있어야 합니다. 구과장 산전수전 공중전에 돌려차기까지 하면서 버틴 자리 아닙니까. 신대리 맞습니다. 지부장 이 시점에서 비정규직인 김영수 구하려다 누가 하나 다치면 좋은데. 신대리 네? 지부장 구하려 했다는 증거 같은 느낌으로? 구과장 그 증거 느낌 좋은데요? 신대리 팀 차원 포상도 생기겠죠? 지부장 최소한 상장 하나는 받겠지. 구과장 그렇죠, 보물 따위 못 찾아도 팀워크 가산점에! 벌떡 일어나는 신대리. 신대리 그렇다면 제가 다치겠습니다. 구과장 아니야 자넨 애도 있는데, 제가 다치겠습니다! 구과장, 바닥에서 큼지막한 돌멩이를 들어 올린다. 신대리에게 건넨다. 구과장 날 때려봐. 신대리 구과장님 왜 이러세요. 구과장 (눈을 감으며) 괜찮아. 신대리 동방예의지국에서 후배가 선배를 어떻게 이런 흉기로 때립니까. 구과장 (지부장에게, 소주병을 들게 하며) 머리 한 대 세게 맞고 제가 우리 팀을 위 해 희생하겠습니다! 신대리 아뇨 부장님, 저를 때리세요. 제가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멉니다. 아들이 있어요, 저는. 구과장 애가 있으니까 몸 사려야지. 신대리 지금 사리면 제 아들의 미래는 없습니다! 구과장 저를 치세요! 신대리 (동시에) 치세요! 지부장을 향해 머리를 들이민 구과장과 신대리. 지부장 아니다, 나를 쳐라. 내가 그래도 명색이 부장인데, 어떻게 눈앞에서 너희들 다치는 걸 보고 있겠냐. 내가 대표로 머리 한 번 깨지고 유혈 낭자 한 번 하고, 구과장 그럼 이렇게 합시다. 우리 똑같은 할당량으로 다치는 겁니다. 신대리 시나리오를 짜시죠. 제가 먼저 김영수를 구하러 갔는데. 지부장 아니지, 내가 먼저 가야지. 연장자가. 구과장 상식적으로 상급자가 먼저 행동을 한다는 건 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중간자인 제가 먼저 행동하고, 신대리 막내인 제가 제일 먼저, 그 다음 구과장님, 마지막으로 지부장님이. 지부장 그래. 신대리가 먼저 뛰어가, 그때까지 우리는 심각한 일인 줄 몰랐던 걸로. 신대리 구과장이 내가 미끄러질 것 같은 걸 보고 나선 걸로. 지부장 그 다음은? 신대리 구과장님이 저를 잡고, 그 뒤에 지부장님이 또 구과장님을! 구과장 우리가 힘을 합해서 정의롭게 막내 사원 김영수를 구하려고 한 거죠! 지부장 좋다! 근데……, 구과장 근데? 지부장 이게 사고가 아니야. 신대리 예? 지부장 우리는 김영수를 구하려고 했어. 근데 얘가, 얘가 손을……. 구과장 놓아버린……, 거죠! 신대리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자, 자, 자……살이요? 구과장 (곰곰이) 팀 차원으로 보면 우리는 할 도리를 다 했다는 엔딩……, 좋은데 요? 지부장, 무언의 끄덕임을 한다. 신대리 ……하지만 그렇다고 영수를 이렇게. 지부장 어쩔 수 없어. 인생 각자 사는 거야. 쟤 가도 네 인생은 네가 살아야 돼. 각 자도생. 구과장 예……, 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신대리, 구과장, 지부장. 손을 하나로 붙잡고 도원결의를 한다. 돌멩이를 하나씩 손에 쥐는 세 사람. 지부장 누구부터 갈래? 구과장, 바닥에 몸을 구른다. 흙먼지가 잔뜩 묻은 상태, 팔 다리 다 걷어 부 친다. 그 모습에 신대리와 지부장, 같은 상태로 몸을 만든다. 구과장 자, 가봅시다. 신대리, 돌멩이로 구과장의 머리를 때리려다 말고, 살포시 등짝을 치고 눈치 본다. 신대리 아프세요? 지부장 장난 치냐? 피는 나야지! 그냥 막 함부로 때려. 신대리 구과장님께 사적인 감정 전혀 없이, 사무적으로 한 대 가겠습니다. 구과장 (구호하며) 근면 성실 영업 B팀 야호! 신대리, 구과장의 머리를 향해 돌멩이로 세차게 가격. 그대로 머리 부여잡고 주저앉는 구과장. 머리를 만져서 피가 났는지 확인. 지부장 돌이랑 돌이 만나니까 흠집도 안 나네. 신대리 주먹으로 갈까요? 이게 상처가 티가 나게 남아야 할 텐데요. 구과장 그래 굴러서 다리가 까지든 뭐든. 지부장, 불시에 구과장의 머리를 세게 가격한다. 그대로 나자빠지는 구과장. 지부장 어때! 안 아팠지? 구과장, 일어나서 바닥에 쓸린 무릎을 확인. 살갗이 뜯어진 상태 확인. 구과장 너무 좋았습니다. 부장님! 지부장 그 다음은 나! 신대리, 지부장의 뒤통수를 세 게 가격. 고꾸라지는 지부장, 일부러 더 큰 액션으로 바닥을 구른다. 뿌듯해하는 신대리, 불시에 뒤통수를 가격하는 구과장. 엎어지는 신대리. 지부장과 구과장, 발로 걷어찬다. 감정상한 신대리 일어나 지부장에게 주먹을, 주먹에 얼굴 제대로 가격당한 지부장,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지부장 너 이리 와봐. 신대리 네? 지부장 얼굴 바짝 와봐. 구과장 부장님 감정 섞지 마세요. 이건 업무의 연장입니다. 신대리 전 진정 사무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부장 공평하게! 할댱량 채워! 구과장 그래 신대리, 너만 피가 안 났어.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순서 상관없이 마구 뒤엉켜 쥐여 패기 시작한 다. 한 대 두 대 맞다 보니, 감정이 격해진다. 서로 멱살 잡고, 헤드락 걸고, 물어뜯고 싸운다. 아수라장. 그때 소리치는 김영수. 김영수 보물이다! 지부장 뭐? 구과장 뭔, 물? 김영수 보물! 보물이 여기 있어요! 보물이! 싸움을 멈추고 절벽 뒤로 몰려가는 세 사람.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곳곳에 피가 난 상처들, 어느새 광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대리, 구과장, 지부장. 손을 뻗어 보물을 집는 김영수. 지부장 어떻게 생겼어? 얘기 좀 해봐. 김영수 짙은 고동색의 나무 상자입니다. 지부장 고동색이면 백 퍼센트야. 사장이 똥색을 좋아하잖아! 구과장 맞다! 똥색이나 금색이나 같은 색이라고! 지부장 사장이 일부러 저런 곳에 보물을 숨겨둔 게 틀림없어! 구과장 왜죠? 왤까? 왜지? 신대리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물을 찾아라! 지부장 그렇지! 팀원 협력지수 측정이라는 부가가치까지! 구과장 역시 사장은 아무나 사장이 아니군요. 지부장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보물이었어! 신대리 팀원 누군가 희생하지 않으면 절대 찾아낼 수 없는 보물! 구과장 공동체와 희생정신을 증명해야 할 미션! 지부장 사원의 희생정신이 중요하다! 사장이 일평생 외치며 추구하던 회사의 비전 이야. 구과장 모든 게 계획되어 있었군요. 지부장, 서둘러 겉옷을 벗는다. 지부장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보물을 끌어올리고 김영수를 살려내서 우리 영업 B팀의 훌륭한 공동체 의식을 보여줄 차례야. 신대리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제 아들의 미래를 위해 이 한 몸 받쳐 미션을 성공으 로 이끌어내겠습니다. 지부장 옷들 벗어. 서로 몸을 묶어서 김영수를 끌어올리자구. 구과장 좋습니다. 세 사람, 겉옷을 벗어 밧줄처럼 서로의 몸을 묶고, 나무 밑동에 지지대를 묶 는다. 서로 손에 손을 붙잡아 인간 밧줄을 만든다. 길게 늘어선 세 사람. 신대리, 구과장, 지부장 순으로 절벽을 향해 다가간다. 신대리 김영수. 줄을 잡아! 김영수, 손을 위로 뻗어 올린다. 손에 손을 붙잡은 세 사람, 합동하여 조금씩 절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들이 내린 옷자락이 김영수의 손에 닿을락 말락한다. 지부장 잠깐만. 구과장, 신대리 네? 지부장 보물부터 올리라고 해. 구과장 네. 보물 올린 다음에, 그 다음엔요? 지부장 보물까지 들고 있으면 무거우니까 무게를 덜자고! 그래야 김영수를 올리는 일이 수월하지! 구과장 네! (신대리에게) 해봐! 신대리 보물부터 이 옷자락에 묶어! 김영수 저부터 살려주세요! 신대리 넌 그 다음에 올리래! 구과장 말 똑바로 안 전할래? 신대리 넌 그 다음에 올린대! 김영수 보물만 가져가고 난 안 살려 줄까봐 그런다! 지부장 김영수! 우리 못 믿냐? 김영수 믿고 싶어요! 구과장 보물부터 올리는 건 테스트야, 테스트! 지부장 그래! 테스트! 보물이 올라오는 과정을 시뮬레이션이라고 생각해봐! 신대리 그 다음에 올라와야 더 안전하게 올라오는 거야! 김영수 무섭다니까!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내! 지부장 그냥 산다고 다 사는 거 아니야! 구과장 지금이 네가 제대로 살 수 있는 그 기회야. 신대리 우리를 믿어! 김영수 믿게 해봐! 지부장 우리가 너 살리려고 이러지, 죽이려고 이러냐? 신대리 (앵무새처럼 따라서) 우리가 너 살리려고 이러지, 죽이려고 이러냐? 구과장 김영수! 지부장 시간 없어! 김영수 시간은 내가 없어! 지부장 이 새끼가! 김영수 나 정규직 그딴 거 안 해! 다 필요 없으니까 나 살려내라고! 신대리 영수야 진정해! 일단 다 살아야지 안 그러냐? 김영수, 세 사람이 늘어뜨린 옷자락에 보물을 묶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세 사람. 김영수, 양손으로 줄을 잡고 사람들을 노려본 다. 절벽 위와 아래가 옷자락 줄로 팽팽해진다. 구과장 보물 잡은 손 놔! 지부장 손 놓으라고! 김영수 나까지 끌어올려! 신대리 야! 김영수! 지부장 손 놔! 이 새끼야! 손! 김영수 못 놔! 이 새끼야! (줄을 더 꽉 잡으며) 사람 살려! 이놈들이 사람 죽인다! 사람 살려! 지부장 조용히 하라고, 조용! 김영수 사람 살려! 사람 살려! 구과장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이래? 김영수 (더욱 더 크게) 사람 살려! 사람 살려! 구과장 진정해 이 새끼야! 지부장 이기적인 놈이 지부터 살겠다고! 김영수 올려! 올리라고 이 개새끼들아! 지부장 저, 저, 저! 바락바락 소리 지르는 거 봐! 구과장 부장님 이러다 다 놓치겠는데요? 김영수 야이 개새끼들아. 이 와중에도 니들 밥그릇만 챙기냐. 나는 그릇도 없다! 아무리, 아무리 내가 계약직이라지만 사람 목숨까지 일회용이냐! 천둥번개 치는 소리. 일동 미끄러지며 대열이 흐트러진다. 신대리 어, 어! 구과장 어, 어! 지부장 어, 어! 신대리 미, 미끄러진다. 안 돼! 지부장 야! 구과장 김영수! 신대리 영수야! 구과장 김영수! 번쩍이는 번개, 이윽고 천둥소리. 신대리, 구과장, 지부장, 일동 비명. 그 소리와 함께 어두워진다. 막.
  • 북바인딩 수업/이지혜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단편소설]

    북바인딩 수업/이지혜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단편소설]

    책방 안에 희미하게 레몬빛이 돌았다. 창문에는 아이보리색 커튼이 드리워졌고, 형광등과 보조등에서 퍼져나온 빛이 커튼 위로 어우러져 따듯하면서도 산뜻했다. 윤재는 사람들과 함께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내 기척을 느낀 몇 사람이 얼굴을 돌렸고 윤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줄지어 선 책장을 지나쳐 테이블 쪽으로 걸었다. 중앙에 자리 잡은 매대 위에는 윤재가 만든 책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 있어요, 오래된 자리, 쓰고 만듦. 이모의 환갑을 열흘 앞두고 윤재는 나에게 다시 연락해왔다. 휴대폰 액정에 윤재에게 온 메시지 알림이 떴을 때 나는 윤재가 환갑잔치 일정을 알려주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메시지에 이모 이야기는 없었다. 윤재는 내가 사는 곳 근처 책방에서 북바인딩 수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날짜는 이틀 뒤였다. - 민정아, 와줄 수 있어? 나는 답장하길 망설였다. 윤재와는 한동안 거리를 두며 소원하게 지내고 있었다. 반년 만에 온 윤재의 연락이 반갑기보다는 어색했다. 윤재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여섯 살 때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나를 이모에게 부탁했다. 동생만 외할머니 집에 데려가 함께 살면서 식당에서 종일 일하며 돈을 벌었다. 아빠가 남긴 유산은 없고 병원비와 빚만 쌓여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훗날 엄마는 설명해 주었다. 일이 년 돈을 모아서 방이라도 얻을 수 있게 되면 나를 데리러 올 예정이었다고 덧붙였다. 엄마의 결정과 계획을 당시에는 알지 못한 채로 나는 이모네 집에 들어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사촌인 윤재와 함께 자랐다. 윤재가 한 살 많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윤재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윤재의 형인 윤석을 꼬박꼬박 오빠라고 부른 것과 달리 윤재는 이름으로 부르며 친구처럼 대했다. - 이모 환갑은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되묻자 윤재는 만나서 얘기하자고 답장했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말을 우리는 반년 전에도 나눴다. 당시 그렇게 말한 건 나였고 윤재는 알겠다고 우선 만나자고 선뜻 대답했다. 그때 윤재도 속으로는 내키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윤재에게 답장을 보내 책방으로 가겠다고 말해 놓고도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도 올까 말까 망설였다. 이런 마음을 모르는 윤재는 웃으면서 나에게 손짓했다. 유난히 하얗고 마디가 굵은 윤재의 손. 어린 시절엔 지금보다 훨씬 작은 손으로 윤재가 내 등을 쓸어내렸던 적도 있었다. 처음 이모네 집에 들어갔을 때 나는 잘 웃지 않았다. 울거나 떼를 쓰지도 않았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고, 괜히 말썽을 부렸다가 이모네 집에서 쫓겨나게 될까 봐 불안해했다. 이모나 이모부가 나에게 눈치를 줬거나 윤재나 윤석과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모부는 이 년 동안 나를 거두어 키우면서도 싫은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를 돕는 일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윤재와 윤석을 대할 때는 태도가 엄격했고, 자녀의 교육과 생활 지도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확고했다. 거기 어긋나거나 미치지 못하면 납득이 될 때까지, 원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 사람을 몰아세웠다. 왜 그렇게 했니. 말해봐, 왜.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왜 말을 못 해. 어떻게 할 거냐니까. 윤석은 공부나 생활 면에서 이모부의 기대만큼 해내는 편이었고 이런 말을 듣는 건 대체로 윤재였다. 이모네 집에 들어간 지 세 달쯤 지났을 때 윤재가 이모부에게 크게 혼났다. 그날은 이모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았다. 도중에 이모부가 윤재를 때리려고 해 이모가 말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공부방으로 들어온 윤재가 테이블 앞에 주저앉았다. 윤재 눈에서 눈물이 한두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줄줄 흘러내렸다. 소리 없이 우는 윤재를 보다가 나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왜 그랬는지 윤재가 하는 것처럼 숨죽여 울었다. 한번 터진 울음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 내 등을 다독이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윤재가 테이블 앞으로 몸을 숙인 채 내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윤재의 눈에서도 계속 눈물이 흘렀다. 간식을 들고 온 이모가 우리 둘 사이에서 눈가를 훔치는 모습을 나는 봤다. 와달라는 윤재의 요청을 끝내 거절하지 못한 것, 머뭇거리면서도 뒤돌아 책방에서 나가지 못한 것, 이게 다 그 순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울었고 또 웃기도 했으니까. 단지 그것뿐이라고 속으로 되뇌며 윤재에게 손을 흔들었다. 모두 여섯 사람이 색지와 실, 송곳 등이 놓인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모서리가 둥근 사각 테이블은 밝은 갈색의 원목 상판과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철제 다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벽면 스크린 앞에 서 있던 윤재가 목을 가다듬었다. “저는 책 만드는 박윤재예요. 제 목소리가 좀 작은 편이죠? 혹시 안 들리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빔 프로젝트 화면을 넘기자 윤재가 만든 세 권의 책이 스크린에 올라왔다. “그동안 이 책들을 만들었고요. 여러 책방에서 북바인딩 수업을 진행해 왔어요. 첫 번째 책을 만든 게 벌써 칠 년 전이네요.” 윤재는 책들을 소개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고, 어떤 상황에서 만들었으며,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어려움은 또 어떻게 해결했는지, 하는 내용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낮고 느린 목소리에서 나름대로 강약이 느껴졌다. 가끔 참여자들이 소리 내어 웃기도 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술술 이야기하는 윤재가 나는 좀 낯설었다. 윤재는 참여자들에게도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첫 번째 참여자는 프랑스어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곧 어학연수에 갈 예정이라며 거기서 보고 느낀 것들을 책으로 펴낼 거라고 했다. 두 번째 참여자는 입을 열기 전, 옆에 앉은 세 번째 참여자를 잠깐 봤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사내 커플이었다. 퇴근 후 함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걸 즐긴다고 했다. “우리가 같이 보낼 시간을 책에 기록하고 싶어요.” 두 번째 참여자가 말하자 세 번째 참여자가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했다. 다른 사람들은 웃으며 박수했고 윤재도 따라서 손뼉을 쳤다. 나는 타이밍을 놓쳐 고개만 끄덕거렸다. 속없이 웃는 윤재가 내심 못마땅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저는 호텔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던 호텔에서는 팬데믹 시기에 나와야 했고, 요즘 다른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한다는 말을 덧붙일 순 없었다. 윤재의 사촌이라는 것은 밝히지 않았다. 그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었다. 그 후 대화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마지막 참여자가 평소에 책을 좋아해서 신청했다고 말하는 것만 귀에 들어왔다. 내가 처음 호텔에서 일하기 시작한 때는 윤재가 첫 번째 책을 만들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인턴으로, 정확하게는 프리인턴으로 호텔에 입사했다. 육 개월간의 프리인턴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 일 년제 인턴이 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호텔이라는 공간이 꽤 그럴싸해 보였고 그 안에서 유니폼을 맞춰 입고 구성원이 되면 든든한 소속감을 느끼게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반년이 지나가고 인턴 전환 시험이 다가왔다. 개별 면담과 지필 시험, 조별 면접까지 마치고 며칠간 결과를 기다렸다. 어느 날 쉬는 시간, 직원 로커룸에서 친한 동기가 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내가 뭐 하냐고 묻자 동기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나 집에 가.” 오후 세 시가 되기도 전에 동기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로커룸을 나갔다. 다음 날 나는 인턴이 되어 출근했고 평소처럼 유니폼을 입은 채 일했지만 호텔이라는 공간, 특히 매일 지나는 길고 어두운 직원 통로가 좀 무서워졌다. 나는 이런 일들을 그때그때 윤재에게 알렸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엄마는 이모네 집 가까이에 셋집을 얻었다. 윤재와 따로 살면서도 같이 밥을 먹고 숙제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이미 엄마보다는 이모를, 동생보다는 윤재를 더 친밀하게 느끼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윤재와 가깝게 지냈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윤재에게 연락했다. 내 친구들이 윤재와 내가 연인 같다고 놀린 적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런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호텔에서 있었던 일들을, 윤재는 책 만드는 작업을 주로 이야기했다. 내가 인턴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자 윤재도 첫 번째 작업에 대해 소식을 전해왔다. 윤재가 처음으로 만든 책 <여기 있어요>는 서울아트시네마가 많은 사람의 후원과 노력에도 낙원상가에서 철수하고 서울극장 삼 층에 단일 상영관으로 축소되어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윤재는 일이 벌어지는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위치를 옮긴 서울아트시네마가 오픈하던 날부터 백 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곳에 갔다. 많은 사람이 거기 서울아트시네마가 들어섰다는 데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선 여전히 특별기획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새로운 독립영화가 상영됐고 또 누군가는 계속 극장을 찾았다. 나는 윤재의 책을 통해서 그런 일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윤재는 대학교 사 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윤재가 색지를 테이블 가운데로 옮겨서 색깔별로 펼쳤다. “이 두꺼운 색지는 여러분이 만들 책의 표지가 될 거예요. 좋아하는 색으로 두 장씩 골라주세요.” 같은 크기로 잘린 흰 종이도 색지 옆에 꺼내두었다. “눈에 띄는 색이 없으실까 봐 걱정인데요. 그러면 흰 종이에 색연필이나 펜으로 표지를 꾸미셔도 좋을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표지를 만드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윤재가 혼잣말하듯 덧붙이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여러 색의 색지들은 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진달래색 표지 두 장을 손에 들었다. 조금 촌스러운가 생각했지만 그대로 내 앞에 가져왔다. 진달래색 색지는 묘하게 기시감이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내 매니큐어 색깔과 비슷했다. 며칠 전 나는 발톱에 짙은 분홍색 매니큐어를 발랐다. 꽃잎을 그려 넣듯 하나하나 두 번씩 덧칠했다. 매니큐어가 마른 발을 보면서 색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손을 보며 조금 씁쓸했다. 이제 정직원도 아닌데 적당히 넘어가도 되는 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내가 답답하기도 했다. “이 얇은 종이들도 열 장씩 가져가세요. 이건 책의 내용을 담을 내지가 될 거예요.” 윤재는 표지와 같은 크기인 흰색 종이들도 테이블 위에 죽 늘어놓았다. 어차피 내지는 다 똑같은 흰 종이라 열 장씩 나눠줘도 될 텐데 한 장 한 장 직접 골라서 가져가라고 했다. 참여자들은 테이블 중앙에 세 줄로 놓인 종이들을 훑어보다가 한 장씩 집었다. 옆 사람이 고르기를 기다렸다가 가져가기도 했고 앞 사람과 손가락이 부딪히기도 했다. 그 과정이 나는 좀 번거로웠는데 옆에 앉은 연인 참가자들은 서로 종이를 골라주며 재미있어했다. 나는 윤재를 흘끔 봤다. 윤재는 테이블 반대쪽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윤재가 나를 왜 이곳에 불렀는지 알 수 없었다. 이모 환갑잔치 일정은 전화로도 충분히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이라서 나는 윤재가 그걸 핑계로 나에게 연락해 관계를 회복하려는 게 아닌가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윤재는 나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다 하셨으면 이렇게 표지 사이에 내지를 넣어 보세요. 벌써 책 같은 모양이 됐죠?” 다들 윤재가 말한 대로 표지 사이에 내지를 넣어서 앞뒤로 살폈다. 나도 앞에 놓인 종이들을 한 손에 잡고 어떤 책이 완성될지 가늠해 보았다. 잘 그려지지 않았다. 윤재가 실뭉치와 송곳 두 개를 테이블 가운데로 가져오더니 이제 구멍을 뚫을 차례라고 말했다. 이미 묶어둔 견본을 펼쳐서 우리에게 보여줬다. “구멍을 잘 뚫는 게 중요해요. 그 구멍으로….” 그때 책방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대화 소리가 커서 윤재의 말이 끊겼다. 책방 직원이 다가가 수업 중이니 목소리를 낮춰달라고 말했다. “수업이요? 무슨?” 한 사람이 이쪽을 건너다보며 물었다. “책 만드는 수업을 하고 있어요.” 책방 직원이 목소리를 낮춰가며 대답했고 세 사람은 한 마디씩 말을 보탰다. 책이요? 그래, 책을 만든대. 그런 수업도 하는구나. “그걸 어떻게 만드는데?” 셋 중 한 사람이 물었고 실내가 조용해졌다. 세 사람은 서가 앞에 서서 이쪽을 들여다보더니 테이블 위를 둘러보고 윤재와 참가자들도 훑어봤다. “저렇게 만드는가 보네.” 그런가 보다고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는 책방 직원을 향해 그러면 다음에 오겠다고 말했다. 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세 사람이 나간 뒤 닫힌 문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저걸 왜 만들지.”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윤재는 서너 차례 목을 가다듬었다. 잠깐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곧 견본을 손에 잡고 테이블 앞으로 내밀었다. “구멍을 잘 뚫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죠? 그 구멍으로 한 장 한 장의 낱장들이 모이고 묶여야 책이 되는 거니까요.” 목소리가 조금 흔들리는가 싶었지만 윤재는 막힘없이 말을 마무리했다.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고 마음이 상한 듯해 보이지도 않았다. 당황하고 마음이 흔들린 쪽은 오히려 나라는 것을 깨닫고 있을 때 윤재는 표지를 자세히 보라며 견본을 들어 올렸다. 구멍 사이의 간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모두 다섯 개의 구멍을 뚫어야 했다. 모든 구멍은 왼쪽 끝을 기준으로 가로 0.5cm를 띄워놓아야 했으며, 첫 번째 구멍은 왼쪽 끝 윗면에서 세로 1cm의 간격을 둬야 했고, 두 번째 구멍부터는 세로 2.5cm의 거리가 필요했다. 그렇게 간격을 유지하다 보면 마지막 다섯 번째 구멍은 자연스럽게 네 번째 구멍과는 세로 2.5cm, 종이의 아랫면과는 첫 번째 구멍과 마찬가지로 세로 1cm의 거리가 생겼다. 표지에 윤재가 알려준 간격대로 점을 찍어 두었다. 송곳이 나에게 넘어오길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이 책 만드는 모습을 둘러봤다. 옆에 앉은 커플은 알맞은 위치에 점을 잘 찍었는지 서로 확인하는가 싶더니 책을 바꿔 상대방의 책에 구멍을 뚫어주고 있었다. “제일 끝에 있는 구멍은 잘 안 되는데? 잘못했다간 종이 찢어질 것 같아.” “이리 줘. 내가 해볼게.” 여자가 마지막 구멍을 뚫어서 남자에게 건넨 뒤 나에게 송곳을 전해줬다. 여자가 몸을 돌렸고 두 사람은 테이블에 놓인 하늘색 표지 위로 손을 포갰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송곳을 잡았는데 무언가에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벼려진 바늘 끝으로 오래된 흉터를 짓누르는 기분. 송곳을 고쳐 쥐었다. 진달래색 표지와 흰색 내지들을 모아서 왼손에 잡고 오른손으로 송곳을 들어 첫 번째 구멍으로 가져갔다. 종이 위에 찍어 둔 점을 송곳으로 누른 뒤 힘을 줬지만 종이는 뚫리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종이를 내려놓고 왼손 손바닥으로 고정한 채 송곳을 좌우로 돌렸다. 손의 힘이 풀려 낱장들이 자꾸 흩어졌다. 윤재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윤재는 앞 장 표지만 가져가 송곳을 살살 돌려가며 구멍을 뚫었다. 뾰족한 송곳 끝이 표지 반대편으로 빠져나오자 내지를 서너 장씩 집어서 같은 위치에 구멍을 만들었다. 송곳을 돌리는 윤재의 손. 가까이서 보니까 작은 흉터가 많았다. 윤재가 종이를 다시 내게 건넸다. 가지런히 뚫린 다섯 개의 구멍이 흠집 같았고 그 자체로 고리 같아 보이기도 했다. 윤재는 사람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살펴보며 테이블을 한 바퀴 돌았다. 송곳 두 개를 한쪽에 모아놓고 실뭉치를 풀었다. 미리 준비해 둔 실을 손에 잡고 그 길이에 맞춰서 한 줄씩 잘라나갔다. “이제 구멍 사이에 실을 넣어서 책으로 엮어 볼게요. 실 한쪽 끝에 매듭을 만들어 주세요. 구멍에 매듭이 고정될 수 있도록이요.” 참여자들이 그 말에 따라 매듭을 묶고 있을 때 윤재 앞에 놓인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윤재는 한동안 테이블을 내려보다가 빠르게 말했다. “급한 전화라 잠깐 받고 올게요.”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져 통화를 시작하는가 싶더니 곧 몸을 돌려 책방 서가를 가로질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윤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걱정됐다. 반년간 왕래 없이 지내는 동안 윤재에게도 많은 일이 생겼을 것이다. 그전엔 윤재와 이렇게 오래 연락이 끊긴 적이 없었다. 윤재는 만들고 싶은 책이 떠오르면 나에게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며 작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나갔고, 책이 나오면 나에게 제일 먼저 보여줬다. 그런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는 윤재도 나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함께 있는 게 그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느끼지 못한 동안 윤재와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대학을 졸업한 뒤 윤재는 내가 어디냐고 물을 때마다 대개 카페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도 한 번은 윤재를 만나러 도서관에 갔다. 윤재는 열람실에서 책을 읽다가 나를 만나러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지, 우선 나갈까? 내가 묻자 윤재는 여기에도 식당이 있다며 내려가 보자고 했다. 우리는 도서관 지하 식당에서 라면과 김밥을 사 먹었다. 내가 내려고 하는 걸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 없다며 윤재가 막아섰다. 내가 한 번 더 나서자 윤재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럴 땐 좀.” 식사 후에는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마시며 일 층 만남의 광장에서 조용조용 얘기를 나눴다. 윤재는 당시 구상 중이던 책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내가 딴생각을 하지 않는지 가끔 눈치를 살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 멈추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질문을 부지런히 삼켰다. 그때는 내가 정규직이 된 지 육 개월쯤 지난 시기였다. 인턴 때에 비하면 생활이 조금 나아졌고 해고에 대한 불안감은 없어졌다. 하지만 유니폼이 마치 내 일부인 듯 익숙해지면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나는 뭘 놓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애꿎은 매니큐어만 사서 모으고 있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립스틱이나 아이섀도 같은 값이 더 나가는 것은 사지 못했고 가끔 퇴근길에 매니큐어를 샀다. 화장대 위에 올려둔 매니큐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두세 달이 지나자 두 줄 세 줄로 길어졌다. 업무 규정 때문에 손톱에는 바를 수 없어서 나는 발톱에만 매니큐어를 발랐다. 그날 도서관에서 윤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화장품 가게에 들러 매니큐어를 하나 더 샀다. 일하지 않은 날 매니큐어를 산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윤재를 사랑하는 마음이 발톱에만 바를 수 있는 매니큐어 같다는 생각도 그날 처음으로 했다. 이런 시간이 윤재와 나 사이에 난 구멍처럼, 적당하지 못한 간격처럼 느껴졌다. 구멍을 뚫는 건 종이에 손상을 주는 일인데도 그 구멍을 통과해야 낱장들이 하나로 묶여서 책이 된다는 윤재의 말을 곱씹었다. 지난 반년 새 우리 사이에는 확실히 거리가 생긴 것 같았다. 나는 윤재에게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는 근황을 알리지 못했고 어쩌면 윤재도 나한테 전하지 못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전화를 받으러 나간 윤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불만을 내비치는 사람은 없었지만 하나둘씩 핸드폰을 꺼내기 시작했다. 십 분쯤 지났을 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밖으로 나왔다. 복도는 어두웠고 아무도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층계참에서 방향을 꺾고 뛰어 올라오는 윤재가 보였다. “미안, 많이 늦었지?” 윤재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방금 들은 말과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윤재의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 낯익었다. “아니야, 다들 신경 안 써. 무슨 일이야?” 윤재는 발을 멈추고 주저하다가 그게, 하면서 입을 열었다.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윤재는 참여자들에게 여러 차례 사과했다. “일이 생겨서 시간이 지체됐어요. 죄송합니다.” “그럴 수도 있죠. 괜찮아요. 근데, 괜찮으신 거예요?” “그래요. 작가님 별일 없으면 됐어요.” 참여자들에게서 괜찮다는 반응과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이어졌다. 윤재는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거듭 시간을 확인했다. “매듭을 만드는 데까지 했죠? 이어서 나가볼까요?” 윤재가 테이블을 훑더니 작업하던 것을 위로 올렸다. “이제 표지 뒷장 두 번째 구멍에 바늘을 넣어서 매듭으로 고정해 주세요.” 두 번째 구멍에서 나온 실로 책등을 한 바퀴 돌려서 묶고 두 번째 구멍으로 다시 돌아왔다. 세 번째 구멍으로 이동해서 또 책등을 한 바퀴 돌리고 한 번 더 옆으로 바늘을 움직였다. 윤재의 손을 따라서 나도 구멍 안으로 바늘을 넣었다. 낱장의 종이들을 묶으려고 하니까 표지와 내지가 모이는가 싶다가도 금방 실이 풀려 흩어지고 말았다. “헐거워지지 않도록 적당한 힘으로 당겨주는 게 중요해요.” 윤재의 말을 듣고 손에 더 힘을 줬다. 다시 옆으로 바늘을 돌려 책등을 만들고 아래로 이동해 나가며 종이를 엮었다. “이걸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옆에 앉은 사람이 혼잣말했다. 여러 방향을 오가며 구멍에 바늘을 넣었다가 빼야 하는 과정이라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시간이 지체된 것 때문인지 윤재는 윤재대로 조급해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통화 내용이나 나와 나눈 이야기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졌을지도 몰랐다. 윤재는 사람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는데 일의 진도는 빨라지지 않았다. 내 옆에 앉은 사람도 같은 자리에서 바늘을 넣었다가 빼기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도와드릴까요? 순서가 바뀐 것 같아요.” 내가 손을 내밀자 그는 나에게 자신의 책을 건넸다. 오렌지색 표지 끝부분에 자리 잡은 구멍으로 실을 빼내고 윤재가 알려줬던 순서로 다시 바늘을 넣었다가 뺐다. 다른 사람의 책을 들고 있다는 게 왠지 긴장돼서 조심히 손을 움직였다. 복도에서 윤재에게 들은 얘기가 떠오를 때마다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도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선 느슨해진 매듭을 꽉 묶어두고 바늘로 구멍과 구멍을 옮겨가며 그의 책을 엮었다. 팽팽히 묶인 책을 건네고 나자 반대쪽 테이블에서 참여자들을 도와주던 윤재가 고개를 들었다. 몸을 세우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방식은 동양식 바인딩이라고 말한 뒤 이쪽으로 다가왔다. 옆을 지날 때 윤재가 내 어깨에 잠깐 손을 올렸다. 두 시간 전에 고른 열두 장의 종이가 제법 책의 틀을 갖췄다. 단단하고 부드러운 표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윤재가 입을 열었다. “이제 여러분 책에 내용을 채워 보도록 할 건데요. 책의 제목은 <북바인딩 수업>이라고 정해볼게요. 이 시간 동안에 여러분께 생긴 일, 느낀 감정, 떠오른 생각 등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윤재는 내지 첫 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책을 옆으로 돌려서 그 내용에 대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주는 것으로 책 속 내용을 채워 나가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여기서 함께 시간을 보낸 건 맞지만, 다 같은 시간을 보낸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이 수업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으니 솔직하게 써볼까요.” 참여자들은 손에 색색의 책을 한 권씩 들고 있었다. 색연필을 나눠준 뒤 윤재는 내 맞은편에 와서 앉았다. 옆에 놓인 책장을 곁눈질로 가리켰는데 거기엔 윤재의 세 번째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윤재가 나에게 색연필을 건넸다. 글씨 쓰기 편하도록 끝이 뾰족하게 깎여 있었다. 윤재는 나를 향해 살짝 웃더니 몸을 돌렸다. 앞에 놓인 책의 표지를 넘기고 하얀 바탕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세 번째 책으로 윤재는 독립출판 작가들의 인터뷰집을 만들었다. 다섯 작가의 인터뷰를 싣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책을 만들기 직전, 윤재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윤재는 카페 아르바이트 휴무일에 물류 창고 일을 하러 갔다가 허리를 다쳐 원래 하던 아르바이트도 못 하게 됐다. 당시 나는 정규직 사 년 차로 호텔의 중식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를 거쳐 연회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각종 포럼이나 세미나를 위해 준비해야 했고, 결혼식이 주말마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열렸다. 나는 손님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다가 또 상사에게 웃으며 고개 끄덕이길 반복했다. 정신이 없을 땐 명찰을 착용하는 것도 잊었다. 내가 호텔 얘기를 하면 이모는 그만둬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모가 윤재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는 건 나중에 전해 들었다. 뭘 선택해도 길은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했든 윤재도 나도 마음껏 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윤재가 마지막 통원 치료를 받았다며 전화를 걸어와 독립출판 작가들을 인터뷰해서 책을 만들 거라고 얘기했을 때 나는 윤재가 답답하다고 느꼈다. 윤재가 책을 만들수록 윤재와 함께할 수 있는 미래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애초에 쉬운 관계도 아닌데. 불쑥 눈물이 나왔다.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다. “그걸 왜 만드는데?” 윤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윤재가 다시 입을 닫았고 나도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냥 내가 남았어.” 윤재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 근데 지금 와서 보니까, 그냥 책을 만드는 내가 남았어. 나는 책이 남는 건 줄 알았지.” 윤재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테이블 위에는 손바닥만 한 책이 아홉 권 놓여 있었다. “다 적으셨으면 다른 사람의 책을 같이 완성해 봐요.” 책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윤재 앞에 오른쪽에서 넘어온 책이 놓였고 나도 옆 사람이 만든 책을 건네받았다. 내 앞에 차례로 전해지는 책들은 이 시간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떤 책에는 책방 공간에 대한 묘사와 거기서 얻은 느낌들이 적혀 있었고, 다른 책에는 책 만드는 과정과 재미있었던 점이 쓰여 있었다. 참여자들과 겪은 에피소드를 적어둔 페이지에서 나에 관한 내용을 읽었을 때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윤재의 책이 내 앞에 도착했다. 나는 민트색 표지를 넘겼다. 막상 쓰려고 하니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써봤어요.) 앞으로 북바인딩 수업을 쉬려고 했거든요. 책 만드는 것도 그만하려고 했고요. 엄마가 아프셔요. 큰 병은 아니지만 수술을 받고 잘 관리해야 한대요. 엄마 컨디션 때문에 일정이 당겨져서 오늘 수술을 받으셨는데 다행히 경과가 좋다고 연락이 왔어요. 한동안 엄마 옆에 있으려고 해요. 그래도 북바인딩 수업은 계속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서툴게 진행한 부분이 있어서 이번 참여자분들은 다음 수업에 한 번 더 오실 수 있도록 할게요. (그만 사과하라고 하셨지만 정말 죄송해요.) 책, 책이요. 책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또 솔직하게 써보자면) 어영부영 책 만든다고 놓치고 산 게 많아요. 우선 옆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싶어요. 못 본 척해 온 것을 이젠 제대로 보고 싶고요. (더 솔직하게는) 할 수 있는 한 마음껏 사랑하며 살아보고 싶어요. 오늘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모가 아프다는 말은 복도에서 들었지만 윤재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은 몰랐다. 오늘로 북바인딩 수업을 그만하려는 줄은. 그래서 나에게 와달라고 한 건가. 예전에 윤재에게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윤재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책 만드는 걸 쉬겠다는 윤재의 말도 뜻밖이었다. 페이지를 넘기자 참여자들이 남긴 메시지가 이어졌다. 어머님 쾌차하실 거예요, 작가님 팬인데 책도 계속 만들어 주세요. 다음에 또 뵐 수 있다니 좋네요, 같은 말들이 페이지 가득 적혀 있었다. 내가 윤재에게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병원에 있을 이모가 걱정됐다. 아까 복도에서 윤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수술 전에 엄마가 괜히 겁을 내면서 나한테 당부하더라고. 너를 잘 챙기라고.” 이모는 어째서 윤재에게 나를 부탁했을까. 어째서 윤재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어째서 엄마나 동생이 아닌 윤재에게 나를. 그래도 우선은 수술이 잘 끝난 게 다행이었다. 얼마 전 엄마가 두 번 연달아 전화를 걸어왔는데 아마 이모 소식을 전하려던 것 같았다.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로 나는 엄마의 전화를 피하고 있었다. 그날도 일이 바쁘니 다음에 전화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은 없었다. 선뜻 색연필을 들지 못하다가 윤재의 글을 다시 읽어봤다. 아까는 급하게 읽느라 놓친 것인지 이번에 유독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윤재는 못 본 척해 온 것을 이젠 제대로 보고 싶다고 썼다. 나는 윤재가 어떤 일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반년 전 그날은 이른 장마가 끝난 직후라 여름 한복판에 들어선 듯 무더웠다. 나는 아침에 윤재에게 불쑥 전화해 만나자고 했다. 윤재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와도 만나서 얘기하자고 대답했다. 그동안 만나왔던 루트를 벗어나 윤재와 새로운 곳에 가보면 좋을 것 같았다. 처음 가는 곳에서 윤재와의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우리는 우선 경복궁역에서 만나 같이 버스를 타기로 했다. 윤재가 잠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한 뒤 오겠다고 해서 나는 십 분 정도를 더 계산해 집을 나섰다. 십 분 정도 늦게 나가면 시간이 딱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한 시간이 지나서도 윤재는 오지 않았다. 경복궁역 앞 잡화점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밖으로 나와 다시 십여 분을 기다렸다. 윤재는 일이 좀 꼬인다며 금방 온다고만 말했다. 금방 온다고 하지 않았다면 어디 카페에라도 가서 기다렸을 텐데 윤재는 곧 도착할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윤재와 새로운 곳에 가려고 했으므로 땡볕을 참았다. 원래 약속했던 시간보다 삼십여 분이 지나서야 윤재가 지하철 역사 안쪽에서 뛰어 올라왔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미안하다고 했는데 왜 늦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아니, 윤재가 정말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기분이 상해서 윤재가 사과할수록 서운함만 더 커졌다. “뭐 하느라 늦었어?” “미안해.” “왜 늦었는데?” 진짜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윤재는 대답이 없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게 버스 때문에.” “버스?” “딴생각하다가 정거장을 놓쳐서. 괜히 좀 돌아오느라.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윤재의 답은 계속 늘어졌고 종종 끊겼다. 둘러댈 말을 찾는 것 같기도 했다. “너 지하철로 왔잖아.” 내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그래도 왔잖아.” 윤재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중간에 갈아탔어. 너무 오래 걸려서.” 말을 마치자마자 입을 다물었고 나를 앞질러서 걸어 나갔다. 윤재가 입은 파란색 티셔츠 위에 등을 따라 흐른 땀자국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날 가려고 했던 새로운 곳에 가지 않았고 나는 하려던 말을 하지 않았다.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시켜 놓고 마주 앉았다. 윤재는 유독 말이 없었고 내가 나서서 평소에 하던 얘기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잘되지 않아 곧 일어났다. 그 후로 한동안 윤재와 연락하지 않았다. 뜸하게 업데이트되는 윤재의 SNS 피드를 보며 나는 혼잣말했다. 그냥, 나를 보듯 너를 보며 살아야 했을까. 그날 내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윤재는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윤재의 글을 한 번 더 읽었다. 색연필을 손에 잡고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하얀 종이 위에 윤재의 이름을 썼다. 윤재를 부르고 나니까 쌓여 있던 말들이 술술 풀려 나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대로 모두 적었다. 나만 너무 길게 쓰는 게 아닌지, 내용이 너무 튀는 게 아닌지, 윤재를 난처하게 할 만한 말은 없는지, 신경을 쓰느라 자주 주저했지만 멈췄다가도 다시 적어나갔다. 그동안 못한 이야기들을 모두 적고 나서 추신을 남겼다. - 너의 다음 책이 또 뭘 남길지 궁금해. 색연필을 내려놓고 앞을 봤다. 윤재도 조금씩 손을 움직여 가며 누군가의 책에 메시지를 적고 있었다. 윤재가 잠깐 고개를 들었을 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어떤 책에 답글을 적고 있는지 윤재가 볼 수 있도록 앞에 놓인 윤재의 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윤재가 쓰던 것을 멈추고 책을 덮었다. 나는 윤재의 책을 두 손으로 잡았다가 내려놓고 민트색 표지 위에 내 손을 포개어 올렸다. 나를 바라보던 윤재의 눈매가 조금씩 휘었다. 윤재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우리가 함께 만든 첫 번째 책이야,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죄송하다”... 장범준, 콘서트 티켓 전체 취소 왜?

    “죄송하다”... 장범준, 콘서트 티켓 전체 취소 왜?

    콘서트 업계가 연초부터 암표 문제로 속앓이하고 있다. 가수 장범준은 지난 1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 공지에 “암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일단 공연 관람권 예매를 전부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이어 “다음에 좀 더 공평하고 좋은 방법을 찾아서 다시 공지하도록 하겠다. 죄송하다”고 했다. 애초 장범준은 오는 3일부터 2월 1일까지 서울 홍대 앞 클럽온에어에서 매주 화·수요일 또는 수·목요일에 소극장 콘서트를 열 예정이었다. 회당 공연 시간 60분에 관객 50명만 입장 가능으로, 10회차 500명만 볼 수 있었다. 장범준은 “(암표를 막을) 방법이 없으면 공연 표를 다 취소시키겠으니 표를 정상적인 경로 외에는 구매하지 말아 달라”고 경고했지만, 예매 직후 온라인엔 정상가 5만 5000원을 훨씬 웃도는 가격에 표를 판매한다는 암표 관련 글이 올라왔다. 대중에 사랑받는 장범준을 2년 만에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공연이란 점에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고질적인 암표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장범준뿐 아니라 최근 정상 가수들이 암표 관련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아이유는 부정 관람권 거래 적발 시 팬클럽 영구 퇴출 등 강수를 뒀다. 임영웅 역시 암표와 관련 강하게 대처하는 중이다. 성시경은 지난달 연말 공연 관련 일부 표를 현장 판매하는 방법을 취했다. 성시경은 소셜 미디어에 “시야제한석과 취소 표 합치면 최소 170석 정도 된다. 암표를 사지 않으면 취소 표가 생기니 현장 판매 수량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오는 3월 22일부터는 매크로 프로그램(정보통신망에 지정된 명령을 자동으로 반복 입력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공연관람권 등을 부정 판매하는 행위에 관한 법에 따른 제재가 가해진다. 공연산업 성장에 따라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공연관람권 등을 매입하고 되파는 온라인 암표 매매 행위가 성행한 데 따른 것이다.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 “청년 일자리 초토화시킨 사람을 국회의원 뽑아준다고?”...前경제수석의 일침

    “청년 일자리 초토화시킨 사람을 국회의원 뽑아준다고?”...前경제수석의 일침

    “생업으로 돈을 벌어 세금을 내본 적이 없는 사람, 세상에 ‘공짜’가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 이런저런 법으로 청년 일자리를 초토화시킨 사람,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 입법을 한 사람에겐 4월 총선에서 절대로 표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박병원(72) 안민정책포럼 이사장은 우리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지면서 ‘잃어버린 시대’를 우려하는 상황에 내몰린 가장 큰 이유로 ‘나쁜 정치’를 들었다. 진보·보수 정부에서 경제정책 수립의 중책을 담당했고 우리금융 회장, 은행연합회 회장, 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민간부문 수장으로도 오랜 관록을 지닌 그는 당대의 경제 지략가로 통한다. 서울신문은 한국경제의 심박동을 끌어올릴 방안이 무엇인지 모색하기 위해 지난달 26일 박 이사장과 편집국장 신년 대담을 가졌다.서울 종로구의 사무실 한 켠에 야생화 사진으로 만든 2024년 달력이 걸려 있었다. 지난 여름 보름 남짓 일정으로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의 알프스로 트레킹을 다녀왔다는 그는 “백두대간에는 알프스처럼 케이블카, 등반열차를 설치할 수도 없고 (대피소가 아닌) 제대로 된 산장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국립공원이 불필요하게 많은 것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공원으로 지정해 달라고 국가에 요청한 결과입니다. 그래야 도로 등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국립공원이 되면 규제에 묶여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지금은 지자체들이 국립공원 지정을 풀어달라고 해야 할 상황입니다.” ●규제 때문에 내수로 흐를 돈 놓쳐 -(김태균 편집국장)자연스럽게 규제 이야기로 시작하게 됐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규제 혁신이 핵심 국정과제로 강조되는 것은 그만큼 제대로 된 적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박 이사장)차량호출 서비스 ‘타다’를 금지하는 법이 왜 나왔나. 택시업계가 반대하니까 국회가 앞장서서 입법을 했다. 공인중개사 표를 얻으려고 국회의원들이 ‘직방(부동산 중개서비스)금지법’도 발의했다. 택시기사를 위하고 공인중개사를 위한다는 것인데, 정작 국민 전체를 위하는 의원은 없다. 문재인 정부 때 반도체산업육성특별법을 만들겠다고 하다가 질질 끌었는데 여당 의원 중 한 명이 ‘삼성전자에 이익이 될 테니 못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 논리면 우리는 구멍가게밖에 할 수 없다. 정권과 정치권이 경제 논리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돈 버는 게 죄가 되는 나라에서 어떻게 경제가 잘 되겠는가. 지금도 국회는 끊임없이 규제법안을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정치의 덫에 갇혀 있다.” -4월에 총선이 치러진다. 국민들의 선택이 중요할 것 같은데. “현역(의원) 출마자들이 재임 중 어떤 나쁜 법안을 만들었고, 어떤 낭비성 예산을 통과시키는 데 참여했는지 가려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광주와 대구를 잇는 ‘달빛철도’에 들어갈 돈이 6조~7조원이라고 한다. 예비타당성 면제 특별법을 만든 의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새만금과 무안·양양·울진·가덕도 공항에 헛된 돈을 쓰고, 저출산으로 소멸할 위기에 처한 나라를 만들어놓은 정치인의 잘못도 따져야 한다. 나랏돈을 잘 썼으면 인구 위기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 -국회도 문제지만 정부 정책이 국가경쟁력을 잠식했다는 비판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한답시고 교육, 의료, 교통, 통신비를 최대한 억눌러 소비 지출을 최소화함으로써 국민들이 돈을 쓸 여유를 만들어주겠다 했다. 서비스업을 일자리 원천으로 생각하지 않고, 싼값에만 공급하려고 했다. 애초 가능한 일인가.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공)교육을 만들어놓고 더 좋은 교육은 학원, 해외로 가라고 해놓은 격이니 교육 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 의료 산업도 마찬가지다. 있는 사람들은 병을 고치러 해외로 나간다. 말도 안 되는 규제 때문에 내수로 흐를 돈을 얼마나 놓치고 있는지 봐야 한다. 국민은 돈을 쓸 각오가 돼 있는데 국가는 그럴 생각이 없다. 정부마다 새로 출범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게 통신비 인하, 카드 수수료 삭감이다. 도무지 돈을 벌 수 있게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모두에게 고만고만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건데 이게 과연 국민이 원하는 걸까. 이래 서야 우리 서비스 산업이 바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역대 정부가 예외 없이 서비스산업 발전 방안을 내놓았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싼값에 고급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건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임무)이다.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거짓말이다. 국민 누구도 ‘남보다 더 나은 교육’, ‘남보다 더 나은 의료’ 서비스는 받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교육, 의료에서 유출되는 막대한 외화를 우리 대학, 우리 병원으로 돌릴 수 있다면 등록금과 보험 수가를 덜 올리고도 교육의 질을 높이고 병원 적자를 줄일 수 있다.”대한민국은 ‘정치의 덫’에 갇혔다‘타다·직방 금지법’ 기득권 표심용‘예타 면제법’도 수십조 예산 낭비위기 내몬 정치인 왜 책임 안 지나싼값에 고급 서비스? 미션 임파서블!누구도 만족 못 할 공교육·공공의료그러니 사교육이나 해외로 눈 돌려제조업처럼 외국시장과 경쟁해야인구감소 흐름 ‘뉴 노멀’ 되어선 안 돼태어난 아이도 대학 전액 지원 등파괴적 출산 대책 나랏돈 쏟아야청년고용 안정 위한 노동 개혁도●산업 개방 안 하면 목숨 걸고 안 뛰어 -어디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서비스업을 제조업처럼 하면 세계 최고로 만들 수 있다. 제조업은 걸음마 단계부터 수출을 했다. 그러다 1970년대 중반 시장을 개방했다. 그러자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졌다. 여태껏 시장을 개방해서 해당 분야의 산업이 몰락한 사례가 없다. 오히려 개방을 안 한 산업만 성장을 못 했다. 대표적인 게 의료, 교육, 통신, 교통 같은 서비스업이다. 개방을 안 하니까 목숨 걸고 뛰지 않는다. 전부 규제산업이기도 하다. 규제를 한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기존 시장 참여자들에게 지원과 보호를 해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은 이런 함정에 빠져 있다.” -규제 혁파나 서비스 산업 경쟁력 제고를 외치고는 있는데도 현실에서는 경쟁력이 더 떨어지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비싼 땅값·노동시장 경직, 투자하겠나 “투자가 안 이뤄지면 우리 경제는 한 걸음도 못 나간다. 연구개발(R&D)이나 인적 자원 모두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는 기업에 의해 이뤄지고, 일자리는 기업에 의해 생긴다. 물론 투자는 이익 발생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우리의 치명적인 결함은 땅값은 너무 비싸고 노동시장은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점이다. 미국도 주는 세제 혜택을 안 주는 경우가 많다. 이래서야 어떤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 투자를 하겠는가. 가뜩이나 투자하기에 별 볼 일 없는 나라인데 정부의 투자 유치 노력은 더 미약해졌다. 투자가 늘어나야 좋은 일자리도 늘어나는데 그게 안 되니 ‘편의점 알바’ 자리밖에 안 생긴다. 2002년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가 각각 동북아와 중동의 금융허브를 만들겠다고 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의 성적표를 보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정부부처의 뿌리 깊은 규제 신봉과 행정 일선의 낡은 관행도 문제 아닌가. “총리실 규제개혁 자문위원을 1년째 하고 있는데 답답한 게 많다. 일선 공무원들이 책임지기 싫으니까 안 움직이려고 한다. 국회까지 가지 않고 조례나 시행령만 고쳐도 되는 일들도 안하는 경우가 많다. 의대 정원 증원만 해도 국회에 안 가도 되는 사안이다. 의사협회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증원에 반대하면서도 ‘의사 수가 늘어나면 국민 의료비용 증가가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비슷한 논리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규제와 관련해 대한민국 경제의 ‘암적인 요소’가 토지 공급 부족이라는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서울의 경우 박원순 전 시장 때 재개발 재건축을 금지시킨 게 치명적이었다. 토지 공급 루트는 재개발·재건축 밖에 없는데 그때 완전히 끊겼다. 인재(人災)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가격 폭등도 토지 공급이 끊어진 데서 비롯됐다. 지금 풀고는 있지만 효과는 4~5년 후에 나타난다. 땅값이 비싸니 기업들이 투자를 하기 어렵다. LG필립스가 20년 전 파주 2000만평 부지에 공장을 짓겠다고 했을 때 수도권 인구 집중, 군사시설, 문화재 보호 등을 이유로 인허가를 도저히 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안 해 주면 중국 간다고 하는데 어떡하나’라고 주변을 설득해 결단을 내렸다.” -농사를 안 지을 사람은 농지를 못 사게 해놓은 현행법도 손볼 때 된 것 아닌가. “한국 농지가 미국 농지보다 30배는 비싸다. 누가 농사 짓겠다고 그 큰돈을 내겠는가. 규제 풀어주면 난개발이 이뤄진다는 건 웃기는 소리다. 규제를 없앤다고 해서 설악산, 관악산 꼭대기에 공장을 짓겠나, 만경평야 한복판에 집을 짓겠나. 규제를 풀어도 투자와 개발은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지금은 규제를 풀어주어도 정작 수요가 없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상황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인구 위기 때문에 ‘소멸’이 화두로 떠올랐다. “인구가 감소하는 경제를 운영하는 것은 인구가 증가하는 경제를 운영하는 것보다 100배 이상 힘들다. 일부에서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뉴’도 ‘노멀’도 아닌 극히 비정상적 상황이다. 인구가 감소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수요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인구대책이 경제정책의 제1조가 돼야 한다. 인구 감소는 무조건 반전시켜야 한다. 동원할 수 있는 자원, 낭비되는 재원을 탈탈 털어 출산 장려에 써야 한다. ” -정부는 2006년 이후 저출산 대책에 380조원을 썼다고 한다. 지방정부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우선 380조원을 썼다는 얘기부터 짚어봐야 한다. 덩치 큰 청년임대주택 예산처럼 이것저것 가져다 억지로 짜맞춘 수치다. 가공의 숫자로 국민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인구 정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 예산을 ‘하나의 주머니’에 담는 것이다. 부처별로 실시하고 있는 것들 다 집어치우고 한데로 끌어모아야 한다. 돈은 뭉쳐야 힘이 있다. 위원회 같은 형태가 아니라 보건복지부든 기획재정부든 어느 한 부처에서 확실하게 틀어쥐고 컨트롤타워를 맡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출산하는 아이들은 물론 이미 태어난 아이들도 대학 학비를 다 지원한다는 식으로 해야 한다. 국가·지방재정 따질 것 없이 끌어모아 파괴적인 출산 장려책을 펴야 한다.” ●국가 발전 위해 엘리트 이민 허용해야 -저출산 대책이 효과를 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우선은 외국에서 우수한 노동력과 두뇌를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할 텐데. “마지못해 ‘이민을 허용한다’는 식의 미지근한 자세로는 안 된다. 육체노동 수요 중심의 발상도 깨뜨려야 한다. 국가발전을 위해 고급인력을 스카우트해야 한다. 그걸 못 하면 수렁에서 빠져나갈 길은 없다.” -우리 청년들이 아이 낳을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출발점은 역시 양질의 일자리 확충이 아닐까. “노동개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미 취직한 사람한테 이로운 일은 그 어떤 것도 아직 취직하지 못한 사람에겐 불리한 일이 된다. 대표적인 게 정년 연장이다. 정년은 해고 제한의 반사적 거울이고, 호봉제의 폐해다. 해고가 자유롭거나 연봉제 같은 탄력적 임금체계가 확립되면 정년이 필요 없다. 정년은 회사가 계속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호하는 제도다. 신입사원 3명분의 임금을 가져가는 사람들 때문에 청년들이 희생당하는 제도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유연성 제고라지만, 해고를 쉽게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데. “당장은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양대 노총 눈치를 보는 정치권 때문에 그들의 기득권을 완화하는 것은 어렵다. 대신에 ‘기득권은 건드리지 않을 테니 노동자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해 달라’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테면 신입사원들에 대해서만큼은 연봉제와 성과급, 직무급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임금체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호봉제는 젊은 시절에는 저임금, 나이 들어서는 고임금을 받는 구조다. 평생직장이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제도다. 모든 노동자가 같은 것을 원하지 않는데, 왜 그들이 다른 조건으로 취업하는 것을 가로막나. 최저임금위원회의 노사 대표들도 다 교체해야 한다. 실제 최저임금, 또는 그 이하를 주고받는 사용자·노동자들이 대표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 ■ 박병원 이사장은 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은 1975년 행정고시 17회로 입직한 뒤 재정경제원 예산총괄과장과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차관보 등 요직을 역임했다. 재경부 1차관을 끝으로 30여년 공직생활을 접은 뒤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맡기도 했지만 대통령실 경제수석(이명박 정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후 은행연합회 회장, 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지냈고 윤석열 정부에서 금융규제혁신회의 의장과 서비스산업 발전 태스크포스(TF) 민간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2월 사단법인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그는 “‘제2의 윤미향’을 막자는 취지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대기업의 후원금, 지원을 받는 법인, 비영리기관이 수만 곳인데 제대로 평가하는 기관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 [세종로의 아침] ‘AI 국회 시대’… 의원 중간평가 준비하길/이경주 정치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AI 국회 시대’… 의원 중간평가 준비하길/이경주 정치부 차장

    총선 앞 국회는 4년 전과 매한가지로 상대편 비난에 여념이 없다. 2024년도 예산안은 3년째 법정 기한을 넘겼다. 위성정당 문제로 홍역을 치렀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손질하는 것도 법정 기한을 훌쩍 넘겼지만 해결될 기미가 없다. 서울신문은 지난해 7월 ‘국회법에 따르면 25개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매달 3회 이상 법안심사소위를 열어야 하지만 한 곳도 준수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법안 심사 시간은 법안 한 개당 평균 5분 정도였다. 서울신문이 지난해 10월 보도한 국회사무처 문건에 따르면 미국 하원이 본회의를 100회 열 때 한국 국회는 37회만 열었다. 올해 4월 총선에서 배출될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해 질 높은 법을 만들고, 현실과 괴리된 법을 적극 수정하며, 협치로 각종 민생법안을 때맞춰 통과시켰으면 한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 일하는 국회법 등 거창한 이름의 시스템을 갖춰도 잘 안 되니, 국회의원 개개인에게 의정에 소홀한 책임을 묻는 게 필요하다. 여의도에서는 ‘의원 중간평가’가 자주 언급된다. 정쟁에는 교묘한 정치 기술들을 동원하려 골몰하지만 의정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의원이 적지 않으니, 어떤 법을 내놓았고 어떤 막말을 했는지 등을 지표로 만들자는 것이다. 생각은 좋은데 쉽지 않다. 300명을 한 명씩 평가하자면 업무 자체가 방대한 데다 의원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제도를 만들 리도 없다. 공신력 있는 평가기관으로 심판을 정하자니 여야가 서로 따지며 반목할 게 자명하다. 다만 ‘인공지능(AI) 국회’ 구축 사업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방대한 회의록을 모두 학습한 AI가 의원별 발언 내용, 제출 법안 성향 등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막말 의원 1위인지, 상임위원회나 소위원회에 가장 많이 출석한 의원은 누구인지, 단어 몇 개만 바꾼 수정법이 아니라 제정법을 누가 가장 활발하게 냈는지 등을 분석할 것이다. 최근 만난 국회 관계자는 ‘AI 국회’ 개발 기간을 5년 정도로 봤고, 때가 되면 민간에도 공개하겠다고 했다. 정쟁 속에 연말이 되면 하루에 수백개씩 무더기로 법안이 통과되는 상황을 막으려면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법안 독해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법안 하나당 통상 하원에서 3번, 상원에서 3번 등 총 6번의 강독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원들은 법안의 내용을 숙지할 수밖에 없고, 법안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최소한 내용도 모르고 찬반을 던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의원들의 지역구 행사 참여를 제한할 필요도 있다. 국회 상임위원회나 본회의가 있는 날은 의원들의 국회 상주를 의무화하는 식이다. 지역구에만 몰방하는 의원이 다음 총선에서 재당선된다면 일하는 국회는 요원하다. 표를 받는 대상인 국회의원이 직접 총선 룰을 만드는 것이 적정한지도 검토가 필요하다. 거대 양당은 다당제의 가치를 추구한다지만 과거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나 최근 위성정당을 허용한 준연동형제 모두 결과적으로 양당 체제를 공고히 했다. 독일의 경우 헌법재판소가 선거제도를 담당한다. 국회는 일견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세비를 받고 싸우는 곳이다. 정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정쟁에만 매몰돼 국정이 마비되거나 국가 경쟁력이 침해돼선 곤란하다. 민생법안의 늑장 처리로 사후약방문조차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법의 사각지대에 사회적 약자들이 방치돼선 안 된다. 모두 총선 때면 국민을 위한 대표가 되겠다고 소리치지만 국회 입성 후 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회의원 중간평가를 고민할 때다.
  • 대구 ‘전태일 기념관’ 건립 시민운동…건축비 지원 요청에 시·시의회 난색

    대구 ‘전태일 기념관’ 건립 시민운동…건축비 지원 요청에 시·시의회 난색

    대구에서 전태일 열사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 건립이 시민운동 형태로 추진되지만 대구시는 지원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을 문제 삼아 지원을 꺼린다는 지적과 함께 시의 입장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은 전 열사의 대구 옛집 터에 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1일 밝혔다. 앞서 2020년 전태일의 친구들은 시민 3500여명이 참여해 모은 5억 6000만원으로 전 열사가 살던 대구 옛집을 사들였다. 이 집은 1955년에 지은 집으로 대구가 고향인 전 열사가 1962년부터 1964년까지 1년 6개월 동안 가족과 함께 세 들어 살았던 곳이다. 전 열사는 일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썼다. 전태일의 친구들은 유족과 당시 이웃, 청옥고등공민학교 교사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전 열사가 살았던 셋방 모습을 확인하고 기초석 발굴 작업을 마쳤다. 당시 집주인이 살던 본채는 한옥 원형을 살려 리모델링하고 4평 남짓한 셋방 터는 전 열사의 정신을 담은 공간으로 재현할 계획이다. 문제는 자금이다. 전태일의 친구들은 기념관 건축비 5억원을 마련하기 위한 후원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예상보다 모금액이 저조하다. 이에 이들은 대구시를 찾아 지원을 요청했지만 어렵다는 말만 돌아왔다. 시의회도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이 사안을 전향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송필경 전태일의 친구들 이사장은 “현재 전 열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서울 청계천의 전태일기념관과 대구 옛집뿐”이라며 “대구를 빛낸 역사적 인물을 시가 스스로 외면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기념관 건립은 특정 집단의 소유가 아닌 대구시민의 자랑거리”라고 덧붙였다. 시민 박남숙씨는 “노동운동가라는 이유로 정치색을 입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국민적 추앙을 받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면서 “시의 지원은 정치적으로도 좌우 화합의 상징이 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주민 이현진씨도 “교과서에도 다루는 전 열사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기념관은 지역 볼거리가 될 것”이라며 “국가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단사로 일하던 전 열사는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22세의 나이에 분신했다. 그는 2020년 국민훈장 첫 번째 등급인 무궁화장을 추서 받았다.
  • 규제 혁파 막는 건 ‘나쁜 정치’…대기업이 돈 벌면 죄 되는 나라, 이런 법 만든 이들 또 뽑겠나

    규제 혁파 막는 건 ‘나쁜 정치’…대기업이 돈 벌면 죄 되는 나라, 이런 법 만든 이들 또 뽑겠나

    “생업으로 돈을 벌어 세금을 내본 적이 없는 사람, 세상에 ‘공짜’가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 이런저런 법으로 청년 일자리를 초토화시킨 사람,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 입법을 한 사람에겐 4월 총선에서 절대로 표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박병원(72) 안민정책포럼 이사장은 우리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지면서 ‘잃어버린 시대’를 우려하는 상황에 내몰린 가장 큰 이유로 ‘나쁜 정치’를 들었다. 진보·보수 정부에서 경제정책 수립의 중책을 담당했고 우리금융 회장, 은행연합회 회장, 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민간부문 수장으로도 오랜 관록을 지닌 그는 당대의 경제 지략가로 통한다. 서울신문은 한국경제의 심박동을 끌어올릴 방안이 무엇인지 모색하기 위해 지난달 26일 박 이사장과 편집국장 신년 대담을 가졌다.서울 종로구의 사무실 한 켠에 야생화 사진으로 만든 2024년 달력이 걸려 있었다. 지난 여름 보름 남짓 일정으로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의 알프스로 트레킹을 다녀왔다는 그는 “백두대간에는 알프스처럼 케이블카, 등반열차를 설치할 수도 없고 (대피소가 아닌) 제대로 된 산장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국립공원이 불필요하게 많은 것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공원으로 지정해 달라고 국가에 요청한 결과입니다. 그래야 도로 등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국립공원이 되면 규제에 묶여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지금은 지자체들이 국립공원 지정을 풀어달라고 해야 할 상황입니다.” ●규제 때문에 내수로 흐를 돈 놓쳐 -(김태균 편집국장)자연스럽게 규제 이야기로 시작하게 됐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규제 혁신이 핵심 국정과제로 강조되는 것은 그만큼 제대로 된 적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박 이사장)차량호출 서비스 ‘타다’를 금지하는 법이 왜 나왔나. 택시업계가 반대하니까 국회가 앞장서서 입법을 했다. 공인중개사 표를 얻으려고 국회의원들이 ‘직방(부동산 중개서비스)금지법’도 발의했다. 택시기사를 위하고 공인중개사를 위한다는 것인데, 정작 국민 전체를 위하는 의원은 없다. 문재인 정부 때 반도체산업육성특별법을 만들겠다고 하다가 질질 끌었는데 여당 의원 중 한 명이 ‘삼성전자에 이익이 될 테니 못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 논리면 우리는 구멍가게밖에 할 수 없다. 정권과 정치권이 경제 논리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돈 버는 게 죄가 되는 나라에서 어떻게 경제가 잘 되겠는가. 지금도 국회는 끊임없이 규제법안을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정치의 덫에 갇혀 있다.” -4월에 총선이 치러진다. 국민들의 선택이 중요할 것 같은데. “현역(의원) 출마자들이 재임 중 어떤 나쁜 법안을 만들었고, 어떤 낭비성 예산을 통과시키는 데 참여했는지 가려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광주와 대구를 잇는 ‘달빛철도’에 들어갈 돈이 6조~7조원이라고 한다. 예비타당성 면제 특별법을 만든 의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새만금과 무안·양양·울진·가덕도 공항에 헛된 돈을 쓰고, 저출산으로 소멸할 위기에 처한 나라를 만들어놓은 정치인의 잘못도 따져야 한다. 나랏돈을 잘 썼으면 인구 위기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 -국회도 문제지만 정부 정책이 국가경쟁력을 잠식했다는 비판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한답시고 교육, 의료, 교통, 통신비를 최대한 억눌러 소비 지출을 최소화함으로써 국민들이 돈을 쓸 여유를 만들어주겠다 했다. 서비스업을 일자리 원천으로 생각하지 않고, 싼값에만 공급하려고 했다. 애초 가능한 일인가.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공)교육을 만들어놓고 더 좋은 교육은 학원, 해외로 가라고 해놓은 격이니 교육 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 의료 산업도 마찬가지다. 있는 사람들은 병을 고치러 해외로 나간다. 말도 안 되는 규제 때문에 내수로 흐를 돈을 얼마나 놓치고 있는지 봐야 한다. 국민은 돈을 쓸 각오가 돼 있는데 국가는 그럴 생각이 없다. 정부마다 새로 출범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게 통신비 인하, 카드 수수료 삭감이다. 도무지 돈을 벌 수 있게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모두에게 고만고만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건데 이게 과연 국민이 원하는 걸까. 이래 서야 우리 서비스 산업이 바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역대 정부가 예외 없이 서비스산업 발전 방안을 내놓았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싼값에 고급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건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임무)이다.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거짓말이다. 국민 누구도 ‘남보다 더 나은 교육’, ‘남보다 더 나은 의료’ 서비스는 받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교육, 의료에서 유출되는 막대한 외화를 우리 대학, 우리 병원으로 돌릴 수 있다면 등록금과 보험 수가를 덜 올리고도 교육의 질을 높이고 병원 적자를 줄일 수 있다.”대한민국은 ‘정치의 덫’에 갇혔다‘타다·직방 금지법’ 기득권 표심용‘예타 면제법’도 수십조 예산 낭비위기 내몬 정치인 왜 책임 안 지나싼값에 고급 서비스? 미션 임파서블!누구도 만족 못 할 공교육·공공의료그러니 사교육이나 해외로 눈 돌려제조업처럼 외국시장과 경쟁해야인구감소 흐름 ‘뉴 노멀’ 되어선 안 돼태어난 아이도 대학 전액 지원 등파괴적 출산 대책 나랏돈 쏟아야청년고용 안정 위한 노동 개혁도●산업 개방 안 하면 목숨 걸고 안 뛰어 -어디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서비스업을 제조업처럼 하면 세계 최고로 만들 수 있다. 제조업은 걸음마 단계부터 수출을 했다. 그러다 1970년대 중반 시장을 개방했다. 그러자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졌다. 여태껏 시장을 개방해서 해당 분야의 산업이 몰락한 사례가 없다. 오히려 개방을 안 한 산업만 성장을 못 했다. 대표적인 게 의료, 교육, 통신, 교통 같은 서비스업이다. 개방을 안 하니까 목숨 걸고 뛰지 않는다. 전부 규제산업이기도 하다. 규제를 한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기존 시장 참여자들에게 지원과 보호를 해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은 이런 함정에 빠져 있다.” -규제 혁파나 서비스 산업 경쟁력 제고를 외치고는 있는데도 현실에서는 경쟁력이 더 떨어지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비싼 땅값·노동시장 경직, 투자하겠나 “투자가 안 이뤄지면 우리 경제는 한 걸음도 못 나간다. 연구개발(R&D)이나 인적 자원 모두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는 기업에 의해 이뤄지고, 일자리는 기업에 의해 생긴다. 물론 투자는 이익 발생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우리의 치명적인 결함은 땅값은 너무 비싸고 노동시장은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점이다. 미국도 주는 세제 혜택을 안 주는 경우가 많다. 이래서야 어떤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 투자를 하겠는가. 가뜩이나 투자하기에 별 볼 일 없는 나라인데 정부의 투자 유치 노력은 더 미약해졌다. 투자가 늘어나야 좋은 일자리도 늘어나는데 그게 안 되니 ‘편의점 알바’ 자리밖에 안 생긴다. 2002년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가 각각 동북아와 중동의 금융허브를 만들겠다고 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의 성적표를 보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정부부처의 뿌리 깊은 규제 신봉과 행정 일선의 낡은 관행도 문제 아닌가. “총리실 규제개혁 자문위원을 1년째 하고 있는데 답답한 게 많다. 일선 공무원들이 책임지기 싫으니까 안 움직이려고 한다. 국회까지 가지 않고 조례나 시행령만 고쳐도 되는 일들도 안하는 경우가 많다. 의대 정원 증원만 해도 국회에 안 가도 되는 사안이다. 의사협회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증원에 반대하면서도 ‘의사 수가 늘어나면 국민 의료비용 증가가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비슷한 논리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규제와 관련해 대한민국 경제의 ‘암적인 요소’가 토지 공급 부족이라는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서울의 경우 박원순 전 시장 때 재개발 재건축을 금지시킨 게 치명적이었다. 토지 공급 루트는 재개발·재건축 밖에 없는데 그때 완전히 끊겼다. 인재(人災)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가격 폭등도 토지 공급이 끊어진 데서 비롯됐다. 지금 풀고는 있지만 효과는 4~5년 후에 나타난다. 땅값이 비싸니 기업들이 투자를 하기 어렵다. LG필립스가 20년 전 파주 2000만평 부지에 공장을 짓겠다고 했을 때 수도권 인구 집중, 군사시설, 문화재 보호 등을 이유로 인허가를 도저히 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안 해 주면 중국 간다고 하는데 어떡하나’라고 주변을 설득해 결단을 내렸다.” -농사를 안 지을 사람은 농지를 못 사게 해놓은 현행법도 손볼 때 된 것 아닌가. “한국 농지가 미국 농지보다 30배는 비싸다. 누가 농사 짓겠다고 그 큰돈을 내겠는가. 규제 풀어주면 난개발이 이뤄진다는 건 웃기는 소리다. 규제를 없앤다고 해서 설악산, 관악산 꼭대기에 공장을 짓겠나, 만경평야 한복판에 집을 짓겠나. 규제를 풀어도 투자와 개발은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지금은 규제를 풀어주어도 정작 수요가 없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상황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인구 위기 때문에 ‘소멸’이 화두로 떠올랐다. “인구가 감소하는 경제를 운영하는 것은 인구가 증가하는 경제를 운영하는 것보다 100배 이상 힘들다. 일부에서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뉴’도 ‘노멀’도 아닌 극히 비정상적 상황이다. 인구가 감소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수요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인구대책이 경제정책의 제1조가 돼야 한다. 인구 감소는 무조건 반전시켜야 한다. 동원할 수 있는 자원, 낭비되는 재원을 탈탈 털어 출산 장려에 써야 한다. ” -정부는 2006년 이후 저출산 대책에 380조원을 썼다고 한다. 지방정부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우선 380조원을 썼다는 얘기부터 짚어봐야 한다. 덩치 큰 청년임대주택 예산처럼 이것저것 가져다 억지로 짜맞춘 수치다. 가공의 숫자로 국민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인구 정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 예산을 ‘하나의 주머니’에 담는 것이다. 부처별로 실시하고 있는 것들 다 집어치우고 한데로 끌어모아야 한다. 돈은 뭉쳐야 힘이 있다. 위원회 같은 형태가 아니라 보건복지부든 기획재정부든 어느 한 부처에서 확실하게 틀어쥐고 컨트롤타워를 맡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출산하는 아이들은 물론 이미 태어난 아이들도 대학 학비를 다 지원한다는 식으로 해야 한다. 국가·지방재정 따질 것 없이 끌어모아 파괴적인 출산 장려책을 펴야 한다.” ●국가 발전 위해 엘리트 이민 허용해야 -저출산 대책이 효과를 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우선은 외국에서 우수한 노동력과 두뇌를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할 텐데. “마지못해 ‘이민을 허용한다’는 식의 미지근한 자세로는 안 된다. 육체노동 수요 중심의 발상도 깨뜨려야 한다. 국가발전을 위해 고급인력을 스카우트해야 한다. 그걸 못 하면 수렁에서 빠져나갈 길은 없다.” -우리 청년들이 아이 낳을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출발점은 역시 양질의 일자리 확충이 아닐까. “노동개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미 취직한 사람한테 이로운 일은 그 어떤 것도 아직 취직하지 못한 사람에겐 불리한 일이 된다. 대표적인 게 정년 연장이다. 정년은 해고 제한의 반사적 거울이고, 호봉제의 폐해다. 해고가 자유롭거나 연봉제 같은 탄력적 임금체계가 확립되면 정년이 필요 없다. 정년은 회사가 계속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호하는 제도다. 신입사원 3명분의 임금을 가져가는 사람들 때문에 청년들이 희생당하는 제도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유연성 제고라지만, 해고를 쉽게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데. “당장은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양대 노총 눈치를 보는 정치권 때문에 그들의 기득권을 완화하는 것은 어렵다. 대신에 ‘기득권은 건드리지 않을 테니 노동자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해 달라’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테면 신입사원들에 대해서만큼은 연봉제와 성과급, 직무급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임금체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호봉제는 젊은 시절에는 저임금, 나이 들어서는 고임금을 받는 구조다. 평생직장이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제도다. 모든 노동자가 같은 것을 원하지 않는데, 왜 그들이 다른 조건으로 취업하는 것을 가로막나. 최저임금위원회의 노사 대표들도 다 교체해야 한다. 실제 최저임금, 또는 그 이하를 주고받는 사용자·노동자들이 대표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 ■ 박병원 이사장은 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은 1975년 행정고시 17회로 입직한 뒤 재정경제원 예산총괄과장과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차관보 등 요직을 역임했다. 재경부 1차관을 끝으로 30여년 공직생활을 접은 뒤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맡기도 했지만 대통령실 경제수석(이명박 정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후 은행연합회 회장, 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지냈고 윤석열 정부에서 금융규제혁신회의 의장과 서비스산업 발전 태스크포스(TF) 민간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2월 사단법인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그는 “‘제2의 윤미향’을 막자는 취지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대기업의 후원금, 지원을 받는 법인, 비영리기관이 수만 곳인데 제대로 평가하는 기관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 봉준호 신작에 마동석표 액션까지… 대작·속편에 설레는 극장가

    봉준호 신작에 마동석표 액션까지… 대작·속편에 설레는 극장가

    올해에도 우리를 설레게 할 영화들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봉준호 감독의 새 작품은 물론 오랜만에 속편으로 돌아온 한국 대작들이 관객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극장 문 연 디즈니 100주년작 ‘위시’ 3일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 ‘위시’가 새해 극장 문을 연다. 디즈니 100주년 기념작으로, 마법 왕국에 사는 소녀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왕에게 맞서는 이야기를 그렸다. 10일에는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2부’가 한국 대작들 가운데 가장 먼저 출발선을 끊는다. 인간 몸속에 가둔 외계인 죄수의 탈옥을 막으려다 조선 시대로 가 버린 이안(김태리)이 썬더(김우빈)·무륵(류준열)과 함께 외계인과 싸운다. 24일에는 박영주 감독의 ‘시민덕희’가 뒤따른다.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덕희(라미란)가 중국 칭다오로 건너가 사기단을 직접 소탕하는 이야기다.31일 개봉하는 ‘웡카’도 눈여겨볼 만하다. 가난한 웡카가 세계 최고 초콜릿 업체 사장이 되는 과정을 그린 판타지물이다. 앞서 2005년 개봉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조니 뎁이 맡았던 웡카의 젊은 시절을 티모테 샬라메가 연기한다. 다음달 개봉하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판타지물 ‘듄: 파트 2’는 ‘듄’(2021)의 후속편이다. 아버지를 잃은 폴이 능력을 깨닫고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로, 이 영화도 샬라메가 주연을 맡았다. 같은 달 개봉하는 장재현 감독 ‘파묘’는 거액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 장의사, 무속인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일을 그린다. 배우 최민식과 김고은, 유해진 주연으로 관심을 끈다. 5년 만에 돌아온 봉준호의 SF물올해 가장 주목할 작품 중 하나인 봉준호 감독 신작 ‘미키 17’이 3월 말쯤 개봉한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2019) 이후 5년 만이다. 얼음으로 덮인 우주 행성을 개척하는 작업에 투입된 복제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에드워드 애슈턴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 공상과학(SF)물이다.개봉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속편들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넘은 마동석 주연 ‘범죄도시’가 네 번째 이야기를 선보인다. 괴력의 형사 마석도(마동석)가 이번에는 불법도박 범죄조직을 소탕한다. 류승완 감독의 천만 영화 ‘베테랑’(2015)을 잇는 ‘베테랑 2’가 9년 만에 선을 보인다. 이번 작품도 황정민이 주연을 맡고 정해인, 오달수, 장윤주, 오대환 등이 그대로 등장한다. 할리우드 속편들도 준비 중이다. 로마 제국 시대 검투사의 이야기를 그린 ‘글래디에이터’(2000)의 속편 ‘글래디에이터 2’가 무려 24년 만에 새 이야기로 돌아온다. 1편 주인공인 검투사 막시무스의 아들 루시우스의 이야기다. 24년 만에 만나는 ‘글래디에이터2’ 사람을 숙주로 삼아 번식하는 외계 생명체와 사투를 벌이는 SF 공포영화 ‘에이리언’ 시리즈 신작 ‘에이리언: 로물루스’도 대기 중이다. 이 밖에 로봇 액션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 ONE’은 하반기쯤 국내 관객들과 만날 계획이다. 한국 대표 감독과 대표 배우들의 작품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각본을 맡고 김상만 감독이 연출한 ‘전, 란’(戰, 亂)을 넷플릭스에서 공개한다. 조선 최고 무신 집안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선조(차승원)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돼 다시 만난다. 박찬욱·임상수 등 韓대표감독 등판임상수 감독이 연출한 ‘행복의 나라로’는 최민식과 박해일 주연 영화다. 벼랑 끝에 선 두 남자의 동행을 그렸다.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봉작으로, 올해 정식 개봉하게 됐다. ‘범죄도시’ 시리즈로 한껏 주가를 올린 마동석이 올해 맹활약한다. 악마의 제물이 된 소녀를 구출하는 내용의 임대희 감독 액션물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주연을 맡았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허명행 감독의 재난 영화 ‘황야’에도 나선다. 법이 아니라 힘이 지배하는 폐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벌이는 사투를 그린 작품으로, 시원한 액션을 선보일 계획이다. 강동원 주연의 ‘엑시던트’도 관심을 끈다. 이요섭 감독 연출로, 살인을 우연한 사고로 조작하는 이들이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이다. 우민호 감독의 첩보 액션물 ‘하얼빈’은 일제강점기인 1909년을 배경으로 한 독립운동 투사들의 이야기다. 현빈이 안중근으로 등장한다. 현문섭 감독 ‘사흘’은 죽은 사람의 심장에서 악마가 깨어나면서 유족과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그렸다. 박신양과 이민기가 오랜만에 스크린 나들이에 나선다. 대홍수로 인류가 종말을 맞는 날 물에 잠겨 가는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는 김다미·박해수가 주연을 맡았다. 넷플릭스로 공개하는 김희진 감독 ‘로기완’은 벨기에에 도착한 탈북자 로기완(송중기)과 한국 출신 벨기에인 마리(최성은)의 사랑 이야기다. 부도 위기에 놓인 소주 회사가 글로벌 투자사에 맞서는 내용의 ‘모럴해저드’(유해진·이제훈 주연)도 올해 개봉한다.
  • “한국 경제 좀 낫겠지만, 큰 기대 금물… ‘반도체 부활’ 증시는 낙관”

    “한국 경제 좀 낫겠지만, 큰 기대 금물… ‘반도체 부활’ 증시는 낙관”

    2023년 한국 경제는 1%대 성장이라는 어둡고 긴 터널에 머물렀다. 올해 우리 경제는 저성장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세밑(지난해 12월 21일~28일) 서울신문은 우리나라 경제전문가 20명에게 ‘2024년 경제전망’을 물었다. ‘지난해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아주 조금’. 2024년 경제를 조망한 20인 전문가의 한 줄 평은 대략 이렇다. 희망을 노래하기는 이르다는 이야기다. 지독하게 어려웠던 지난해보다는 사정이 조금 좋아지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전망이 대부분이었다. 경제성장률은 한국은행 전망치(2.1%)를 밑돌 것이라는 예상에 힘이 실렸고, 부동산 경기는 지난해와 비슷할 것이라는 관측이 과반이었다. 그나마 주식시장은 낙관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경제성장률이 1%에 머물 것이라고 답한 전문가가 12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10명이 ‘1.5% 이상 2.0% 미만’ 성장을 예상했고, 2명은 1.5% 성장도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올 경제성장률을 ‘1% 이상 1.5% 미만’으로 내다본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반도체 말고는 성장률을 끌어올릴 동력이 별로 없다. 거기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여파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끝 보이지 않는 터널 ‘경제성장률’12명 “1%대 성장에 머물 것”부동산PF 부실 여파 여전 나머지 8명은 모두 ‘2% 이상 2.5% 미만 성장’을 택했다. 한국은행이 2.1%,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3%, 국제통화기금(IMF)·한국개발연구원(KDI)·아시아개발은행(ADB)이 2.2% 성장을 전망한 것을 생각하면 2% 이상을 택한 전문가들 역시 2%대 초반 성장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높다. 2.5%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답한 전문가는 없었다. 전반적 경제 상황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약간 개선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65%에 해당하는 13명이 ‘다소 나아지겠지만 정도는 미미할 것’이라고 답했으며 4명이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2명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했다. 확실히 나아질 것으로 본 전문가는 1명뿐이었다. 경기 흐름에 대한 시각은 제각각이었다. ‘상저하고’(상반기에 나빴다가 하반기에 좋아질 것)라는 응답이 절반(10명)이었는데 ‘상고하저’(상반기에 좋았다가 하반기에 나빠질 것)라는 대답도 7명으로 적지 않았다. 2명이 ‘상저하저’(상·하반기 모두 나쁠 것)로 매우 부정적이었으며, ‘상고하고’(상·하반기 모두 좋을 것)는 1명에 불과했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상반기까지는 고금리가 지속될 것이다. 하반기 금리가 내려가면서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하반기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상반기에는 그보다는 조금 나을 것”이라면서도 “세계 경기가 나아지고 있지만 우리 물건이 생각보다 많이 팔리지 않는 상황이다. 하반기에는 좋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정환 교수는 “부동산 PF가 관건이다. 건설업계가 잘 버티면 다행이겠지만, 문제가 터지면 상저하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정부 역점 정책 ‘가계부채 연착륙’GDP 대비 부채 100% 넘어OECD 회원 중 유일 국가 정부가 올해 가장 역점을 둬야 할 정책을 세 개 꼽아 달라는 요청에는 ‘가계부채 연착륙’이 가장 많은 11표를 받았다. 좀처럼 줄지 않는 가계부채를 의식한 답변으로 풀이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1.4%로 13개월 연속 100%를 웃돌았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긴 것은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이 9표로 뒤를 이었다. 인구 감소와 급속한 고령화 위기감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출산율은 0.72명에 그칠 전망이다. 올해 출산율은 0.68명으로 0.7명 선이 무너지고, 내년에는 0.65명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한 국가가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출산율은 2.1명이다. 초고령화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해 11월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약 97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8.9%를 차지했다. 올해 말에는 비율이 20%를 넘어 본격적으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 밖에도 부동산 경기 안정화(8표), 수출회복(7표), 잠재 성장률 제고(6표), 신성장 동력 창출(5표)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르면 2분기 ‘美금리 인하’ 전망韓금리 0.5~1%P 내릴 듯물가상승률 2.5~3% 전망 미국 기준금리는 올 2분기, 늦어도 3분기에는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절반(10명)이 2분기부터 미국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고 했고, 7명은 3분기에 인하될 것으로 봤다. 2명이 1분기 인하를 예상했고 1명은 답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3분기부터 내려갈 것이라는 답변이 절반(10명)이었다. 2분기 인하가 5명, 1분기 인하가 2명, 4분기 인하가 1명이었다. 1명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고 1명은 응답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기준금리 인하폭은 0.5% 포인트에서 1% 포인트 사이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등이 0.75% 포인트 인하를 내다봤고,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장은 1% 포인트 인하를 전망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하반기 두 차례 인하할 것이다. 인하폭은 0.25% 포인트 수준일 것”이라고 답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길게 보면 한국, 미국 모두 2% 전후 수준까지 내려야 한다”고 했다. 물가상승률은 ‘2.5% 이상 3% 미만’이 12명으로 한은 전망치 2.6%와 대체로 비슷했다. 6명은 물가상승률이 2.5% 미만일 것이라고 답했다. 2명은 물가가 3% 이상 오를 것으로 봤다. 한은은 “연말로 갈수록 물가상승률이 2% 부근으로 근접해 갈 것”이라면서 올 상반기 물가상승률 3.0%, 하반기 2.3%를 제시한 바 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은 금리를 가파르게 올려 물가를 한 번 꺾었지만, 우리나라 금리는 그 정도로 높지는 않다. 금리 인하가 있기 전까지는 현재 물가인 3%에서 3.5%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는 올해와 비슷할 것이라는 의견이 11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올해보다 나쁠 것이라는 전망도 7명으로 적지 않았다. 서서히 좋아질 것이라는 의견이 1명, 바닥을 치고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의견이 1명이었다. 신진영 원장은 “부동산 경기는 4분기부터 활성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 방안으로는 ‘금리 인하’가 8명의 선택을 받았다. 이 밖에도 ‘공급확대’, ‘실거주 의무 폐지 등 각종 규제완화’가 각각 2명의 선택을 받았다. ‘정책 대출상품 확대’, ‘양도세·취득세 감면 연장’이 필요하다고 각각 1명이 답했다. 반면 5명은 활성화 대책이 필요 없다고 했다. 신진영 원장은 “이미 부동산 가격이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한경 교수 역시 “아직도 부동산 가격은 높은 편”이라면서 “당분간 하향 안정화로 가야 자산 가격의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윤성훈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면 가계부채 감소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반등 계기 보이지 않는 ‘부동산’‘경기 활성화’ 감세 등 제안“여전히 집값 높아” 반박도 역대 최대 수준의 GDP 대비 가계부채는 올해에도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13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4명은 가계부채가 오히려 불어날 것이라고 답했다. 오태동 NH농협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준금리 인상이 마무리되면서 부채 규모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고,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부채가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계부채 감소를 전망한 전문가는 3명이었다. 전문가 20명 전원이 ‘반도체’를 수출 유망 업종으로 꼽았다. 수출 부진이 우려되는 업종으로는 14명이 석유·화학을 택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도체 사이클은 바닥을 지났거나 지나는 중이다. 올해부터는 나아질 것”이라면서 “석유·화학 쪽은 대중국 수출이 상당히 중요하다. 중국 성장률이 낮을 것으로 보여 석유·화학도 낙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동차 수출 전망은 전문가 사이에서도 엇갈렸다. 9명은 유망 업종으로, 6명은 부진 우려 업종으로 자동차를 택했다. 조영무 연구위원은 “지난해 꽤 선전한 자동차는 올해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중심으로 마일드한 경기 침체 양상을 보여 자동차가 올해만큼 팔리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20명 전원 수출 유망 ‘반도체’ 꼽아“바닥 지났거나 지나는 중”석유·화학 업종 부진 우려 원·달러 환율을 올해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했다. 12명은 환율이 1250원에서 1300원 사이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5명은 1300원에서 1350원 사이, 2명은 1200원에서 1250원을 예상했다. 1명은 답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업황 개선을 근거로 올 증시를 낙관했다. 15명이 제시한 코스피 예상 등락범위(밴드)는 2200~3000이었다. 고점 평균은 2830이었다. 신진영 원장과 윤성훈 선임연구원이 각각 올 코스피 밴드를 2500~3000으로 가장 밝게 봤다. 이경수 센터장과 이정환 교수의 상단이 2700으로 가장 낮았다. 올 한 해 세계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지난해보다 커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대다수(16명)가 올해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지난해보다 커질 것으로 봤다. 중국 경기 둔화 지속(9명)과 글로벌 경기 침체(6명)를 올 한 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요소로 지목했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중국, 미국 경기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미중 갈등, 중국·대만 갈등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한다”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으로 인한 글로벌 교역과 관련된 불안 요인도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태상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장은 “인공지능(AI)의 일자리 대체 등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의 영향으로 올해뿐 아니라 앞으로는 뉴 앱노멀(새로운 비정상·New abnormal)이 초래하는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더 커져미중 갈등 속 40개국 선거美 우선주의 심화 가능성 미국 대선의 불확실성(4명)을 꼽은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이 현실화되면 미국 우선주의가 극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을 포함해 올해 세계 40여개 국가에서 국가적인 선거가 치러진다. 거기에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경제가 그간의 호조를 이어 갈지도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대선과 중국 부동산 침체 리스크 등 예측하기 어려운 이벤트 때문에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설문에 참여해 주신 분들(가나다순)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 박태상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장,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장, 오태동 NH농협증권 리서치센터장,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윤성훈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한동환 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장,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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