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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3)

    ◎매신의 인걸들/선각자들 결집… 「국권회복」 구심체로/영국인… 일제탄압에 울타리역할/배설/총무 맡아 항일논조 사실상 주도/양기탁/박은식·신채호는 주필로 민족자부심·독립정신 고취 대한매일신보가 민족의 대변지로서 국권회복운동의 정신적 구심점이 된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그 가운데 하나가 이 신문에 관련 또는 종사했던 사람들의 면면인데 국적과 신분을 뛰어넘어 매우 다채로운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이 신문을 이끈 주역은 영국인 사장 배설과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등 논객이자 사학자이며 항일투사였던 국내 인사들로 돼있다.배설(Ernest T Bethell)은 1872년 11월3일 영국 브리스톨시 북부 애쉴리에서 태어났다.극동상대의 무역상이던 토머스 헨콕과 전도사의 딸인 마서 제인 홀름의 다섯 남매중 장남으로 브리스톨의 머천트 벤처러스스쿨을 나왔다. 이 학교를 졸업한뒤 열다섯살 때인 1888년 일본에 건너와 1904년초까지 16년동안 고베(신호)에 살면서 무역업에 종사했다.1899년에는 동생들과 함께 「베델 브러더스」라는 무역상을설립했다.이 회사는 지금도 런던에 있다.어떻든 배설은 한때 돈을 많이 벌어 러그(rug·깔개)공장을 차리기까지 한것을 보면 사업수완이 대단했던 인물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일인들의 방해로 실패,재산을 모두 날렸다.졸지에 삶의 기반을 잃게 된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성대로 늘 활달한 쾌남아의 풍모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그는 수영 크리켓등 스포츠를 좋아했으며 특히 음악에는 타고난 감수성의 소유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체계적인 음악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청중들 앞에서 곧잘 노래를 부를만큼 빼어난 가창력도 지녔다. ○늘 활달한 쾌남아 서양장기를 잘 두었으며 술과 담배 또한 즐기는 편이었다.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문장력도 여간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다. 학력은 비록 고졸에 그쳤으나 이처럼 다채로운 그의 재능과 기질은 언론인으로서 훌륭한 잠재력을 지녔던 것으로 평가된다.이윤추구가 최대의 목표인 무역업보다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고 창의성을 발휘,정치 사회에 직접 영향을 미칠수 있는 사업인 신문발행이그에게는 적격이었던 셈인지도 모른다. 그가 언론과 인연을 맺은 것은 러그사업에 실패한 직후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지의 특별통신원이 되어 한국에 온 것이 계기가 됐다.그리고 그는 불과 4개월 1주일만에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할 수 있었다.배설의 언론입문은 그의 자질이나 성격과 결코 무관치 않다.당시 한국의 실정 역시 배설과 같은 언론인을 절실히 필요로 한 시대이기도 했다. 그가 양기탁을 만나 대한매일신보의 견본판 「양자신문」을 만들기는 1904년 6월29일이었으며 실제로 신문을 창간하기는 20일 뒤인 7월18일이었다.그로부터 1909년 이 땅에 뼈를 묻히기까지 줄곧 한국인의 편에서 일제에 맞선 항일언론의 선봉장으로 또 신보를 이끌고 지킨 울타리 역할을 다 해냈다. 배설이 신보를 지킨 울타리였다면 양기탁은 신보를 떠받친 기둥이요 대들보로 비유해도 좋다.그는 신보사의 전무와 주필 그리고 편집국장을 겸한 위치인 총무로서 제작 및 운영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항일논조를 사실상 주도한 신보의 분신이었다. 양기탁은 호가우강으로 1871년 4월2일 평양태생이다.배설보다는 1년7개월 먼저 태어난 셈이다.부친은 한학자로 그 지방에서 널리 이름이 알려졌던 양시영이었다.어려서부터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는데 사람됨이 매우 총명하여 보기드문 소년 문장가로 꼽힐 정도였다. 그가 서울에 오기는 배설이 일본에 갔던 같은 나이인 15살 때였다.상경직후 동학및 유림의 명망가이자 우국지사인 나현태를 알게 됐다.이후부터 여러 우국지사들과 접촉하면서 그들의 애국사상에 감화를 받게 되었고 동학당과도 관계하면서 견문과 사상을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외국과의 교섭이 점차 확대되던 국내외 정세에 영향을 받은 그는 한성외국어학교에 들어가 반년동안 영어를 배우기도 했다.따라서 그의 지식과 사상은 어려서 배운 한학의 토대위에 양학문과 기독교 정신이 접목된 것이 아닌가 한다.또 동학과도 관계함으로써 민족주의 사상의 기틀을 다지게 됐다.일제의 가슴에 예리한 비수를 들이대는 듯 했던 신보의 반일논설 필봉은 그의 이런 사상과 학식에 바탕한 것이다. 그는 한때 부친과 함께 캐나다의 선교사 게일(James S Gale)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을 편찬하는 일에도 참여했다.이 한영사전은 1897년 6월에 출판됐는데 인쇄소는 요코하마에 있는 복음인쇄합자회사였고 발행소는 서울야소교서회로 되어 있다. 그는 신보를 이끈 항일지사형 언론인의 전형적 인물이다.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그 총감독으로 활동한 바도 있으며 나라를 빼앗긴뒤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일제에 대항케한 열혈투사이기도 했다.여러차례의 옥고끝에 만주로 도피한 그는 상해에서 광복운동에 종사하던중 1933년 김구에 의해 법무담당 국무위원에 임명,1년4개월간 재임했다.강소성 담양현에서 그 파란의 삶을 마쳤는데 그 해가 1938년이다. 백암 박은식은 황해도 황주태생의 이름높은 성리학자로서 본래 황성신문의 논설기자였다.이 신문이 정간된 뒤 양기탁의 추천으로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논설기자)로 자리를 옮겨 정력적인 항일언론 활동에 나섰다. ○신민회에도 참여 신민회가 결성되자 그 원로회원으로서 교육 및 출판부문을 담당하기도 한 그는 신보를 통해 주로 애국계몽에 관한 글을 집필했다.신교육구국사상·사회관습개혁사상·애국사상·대동사상 등 애국계몽사상을 설파,국권회복운동을 적극 고취하는데 앞장섰던 것이다.한일합방뒤에는 상해로 가서 독립운동에 나서는 한편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등 많은 역사 저술을 통해 민족적 자부심과 독립투쟁정신을 심는데 크게 공헌을 한 인물이었다. 박은식의 뒤를 이어 신보의 주필로 활동한 단재 신채호는 충남 대덕출생으로 명성 높은 사가였다.역시 황성신문의 논설기자였다가 양기탁의 천거로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됐다.민중계몽 및 정부편달 중심의 시론과 우리나라 역사관계 사론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1910년 망명할 때까지 그는 대한매일신보에 「일본의 3대충노」「이십세기 신국민」「서호문답」「금일 대한국민의 목적지」등의 논설과 「독사신론」「수군 제일위인 이순신전」등 역사관계 논문및 시론등을 연재,민족의식을 일깨웠다. 신민회조직에 참여했고 국채보상운동에도 가담했다.한마디로 그는 신보의 국권회복운동을 이끈 주역의 한사람으로서 일제에 대한 저항의 논리를 구축하고 민족운동의 방향을 제시한 사람이었다. 이밖에 대한매일신보를 이끌어온 사람들로는 임기정 이교담 옥관빈 강문수등이 있다.이들은 주로 업무분야 종사자들로 신보의 조직을 통해 일본세력을 몰아내려 했던 사람들이다.
  • 중진서예가 여원구씨 회고전

    ◎서예 70·도서각 50점 등 3백여점 전시/반야심경인존·구당인존 2권도 발간 회갑을 맞은 중진서예가 구당 여원구씨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망라한 대규모 회고전을 20일 조선일보미술관(723­ 6328)에서 열고 있다. 26일까지 열리는 이 회갑전에 출품작품은 서예 70여점,도서각 50여점,전각 2백여점등 자그마치 3백여점.아울러 3백쪽에 이르는 기념서집과 반야심경인존,구당인존 2권을 함께 발간했다. 한학자인 선친 여운필선생으로부터 한문과 글씨를 익힌 그는 오랜 세월을 보내고 40대에 들어서 여초 김응현선생을 만나 다시 글씨를 배웠다.그러나 동아미술제,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수상등의 화려한 경력을 거칠 만큼 늦 경지를 닦았다.지난 89년부터 91년까지 3년간은 한중 서법교류전의 한국대표로 중국에도 작품을 발표,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에게는 「외화를 즐기지 아니하고 진률을 추구하는 서가로 호방한 필법에서 우러나는 천의무봉의 경지를 보인다는 평이 따라 붙는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과 운영위원장,서울서예대전 초대작가 선정위원 등을 역임했고,현재는 한국전각학회와 국제서법예술연한,동방연서회의 이사직을 맡고 있다.예술의전당과 덕성여대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개인적으로 양소헌서회를 운영해 왔다.
  • 남북한학술교류 가능성 타진/민간교류추진협,오늘 학술토론회

    ◎“외국 한국학학자·북학자 연합학회 설립” 제안 핵문제와 남북화해 및 교류에 관한 기본합의서의 부속합의서 채택문제로 제동이 걸린 남북한 관계를 민간학자들과 전문가들의 교류증대를 통한 개선가능성을 모색해 보는 학술토론회가 열린다. 남북민간학술교류추진협의회(공동의장 이상수 김계수)는 오는 29일 숭실대에서 협의회소속 90개 학술단체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한 학술교류 가능성모색과 우리의 대응자세」라는 주제로 학술토론회를 갖는다. 이는 특히 지난 24일 북한의 조선역사학회가 한국역사연구회측에 을사5조약등 일제가 허위조작한 한일관계 조약들에 대한 공동대처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남북역사학자회담을 제의해 온데 대해 정부가 이에 앞서 당국간 「남북합의서」부속합의서 채택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회담의 성사가능성이 불확실한 시점에서 열려 더욱 관심을 모은다. 이번 학술토론회에 참가하는 전득주교수(숭실대·한국미래연구학회회장)는 「남북한 학술교류와 학자들의 자세」라는 발표문에서 『정부당국자간의 문제해결이 난항에 부딪쳤을 때 학자나 전문가의 교류는 오히려 쌍방 정부당국자에게 보다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북한학자들로 하여금 개방화·자유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면서 『그러나 정부의 창구단일화정책은 남북한 학술교류에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이럴 때일수록 학자들에 대한 정부의 신뢰가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전교수는 또 남북학자들의 직·간접적인 교류를 제도화하기 위해 재외 한국학 학자및 북한학자들과 함께 세계한국학연합학회(가칭)등의 설립을 제안한다. 한편 「남북한 학술교류에 대비한 국민의식과 태도」라는 발표문에서 신윤표교수(한남대)는 지난 88년부터 91년까지 일본·중국등지에서 열린 남북한학자들의 학술회의 특히 국제고려학회의 성격과 활동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신교수는 지난 90년 8월 일본 오사카에서 창립총회를 가진 국제고려학회는 한국학의 주체는 남북한인 만큼 현재의 일본과 중국학자중심의 학회운영에서 벗어나야 하며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정부예산사업으로 국제고려학회의 남북한 개최유치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교수는 또 남북학술교류에 대비해 우선 오는 8월19∼23일 중국 북경에서 열리는 학술회의 및 총회에 남한학자들의 개별참가보다는 단체참여를 유도하고 북한이 94년도에 국제고려학회를 개최할 경우 93년 지역총회를 서울에서 준비하거나 평양대회준비에 국제고려학회 임원으로 참여해 남북이 공동협의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교수는 이어 국내학계도 연합학회적인 체제를 갖춰 정기적으로 남북민간공동체의 공동연구과제를 모색하고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한국학 연구가 가능하도록 협조하며 중·장기 남북공동체 이해사업계획을 세워 남북학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한편 외국학자 및 유학생들의 한국학연구를 적극 지원할 수 있는 상설기구를 설치,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요청된다고 강조했다.
  • 연변교포에 농업기술 가르친다/서울대농대·한국과학재단·사업계획 확정

    ◎벼육종학자 허문회박사등 7월초 파견/신품종 개발위한 연구농장도 운영계획/가을엔 공산권교포 농업학자 초청 심포지엄 개최 한국과 중국 조선족간 농업기술을 서로 교환하고 공동연구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북방산업 개발계획」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농업생물신소재 연구센터(소장 박관화교수·식품공학)는 2일 한국과학재단(사무총장 권원기)과 함께 「북방농업 개발 및 연구협력계획」을 확정,오는 7월부터 연구원교류를 시작하는등 사업을 본격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센터내 특수사업부(부장 부경생교수·응용곤충학과) 주관으로 이뤄지는 이 사업은 우리나라의 발달된 농업기술을 연변조선족 연구기관에 이전,우리교포들의 생활수준 향상에 기여하는 한편 우리측도 중국측의 협력으로 현재 국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농업 유전자원의 부족과 연구농장 및 기능인력 부족현상을 해결하는 두가지 목적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국내에서는 연구센터에 소속돼 있는 서울대 경북대 등 9개 농과대학이,중국측에서는 연변농학원(원장 장기건,중국의 학원은 우리의 단과대학에 해당) 및 연변농업과학연구소(소장 장창식) 등 2개 연구기관이 각기 사업에 참여한다. 부경생교수는 『중국 연변의 조선족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연변농학원등 교육연구기관의 인력도 80% 이상이 조선인이지만 농업기술 수준은 매우 낙후된 실정』이라고 밝히고 『이에 따라 우선 연변측에 시급한 내냉성벼 육종기술과 담배건조기술을 1차 공동연구사업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월 서울대 농대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벼육종학의 대가 허문회박사가 7월1일부터 1개월간 서울대학을 찾게 된다. 연구센터는 이와 함께 북방지역의 한민족 농업과학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국제심포지엄도 계획중이다. 올 가을이나 겨울,연변이나 서울에서 중국은 물론 내몽골 옛 소련의 교포농업과학자와 북한학자들까지 초청하는 대규모 학술교류행사를 갖는다는 것이다. 센터측은 이밖에도 중국에 공동시험연구농장을 건설,종자채취등을 위한 작물의 위탁재배와 공동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공동연구과제도 벼 콩옥수수 등의 품종육성과 과수·채소·약용식물 등의 개발을 위한 유전자도입,생물농약 및 백신개발을 위한 유전자원탐색 등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연구센터는 또 생물자원의 보고로 알려진 백두산의 중요한 동·식물을 수집,유지 증식시키기 위해 동·식물원의 개설과 운영도 추진하고 있어 공동연구사업이 계획대로 실현될 경우 국내 농산자원의 다양화 및 개발·이용에 커다란 기여가 기대된다.
  • 청백리의 귀감 이호종 청양군수(이런 공무원)

    ◎「정년군수」 전재산이 달동네 13평 집/민원인이 놓고간 쇠고기 문밖에 매달고/직원 숙소 현관서 청탁막아 「문지기」 별명/결혼 축의금도 돌려보내는 “결벽”… 가족들이 토끼 길러 생계 보태 「청백리」 예부터 이들이 많으면 국운이 성했고 적으면 그렇지 못했다. 한결같이 이들은 국가를 지탱하는 동량으로 국난을 타개 했으며 국민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인공위성이 날고 달을 정복한지도 2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들을 국가는 원하며 상을 내리기도 한다. 「깨끗해야 백성이 따른다」는 이치를 단지 「모든일을 내집일 같이 하되 신세는 지지 않는다」는 소박한 신조로 실천해온 오늘의「청백이」는 천안에서도 승용차로 족히 2시간은 가야하는 내륙의 오지인 충남 청양군에 있었다. 이호종청양군수(59)는 단벌 양복을 5∼6년씩 입으며 한때는 점심을 소금밥으로 대용하는등 근검 절약하는 내핍생활을 해오면서도 그동안 31년간의 공직생활중에서 주위의 유혹에 한눈판 일 없이 오직 「정의」로만 봉직해온 공무원이었다. 그는 지난달에 퇴직원을 내놓았다.면사무소 서기보로 출발해 군수자리까지 올라봤으니 여한이 없다고 했다.그의 전재산은 대전시 중구 대사동 산중턱 달동네에 있는 13평짜리 집이 고작이다. 『공무원은 주민을 위해 일을 잘한다는 칭찬을 들어야지요』그는 공무원이 청빈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공무원의 기본자세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군수의 이런 자세때문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활신조를 귀감으로 삼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도 그는 도시락을 싸오거나 아니면 반드시 청내식당을 이용한다. 공무외에는 관용차를 절대로 타지 않았고,대전시청과 충남도청에 근무할 때는 버스타기도 꺼려 대사동 집에서 꼬박 30분을 걸어 출퇴근했다는 것이 주위의 이야기이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4명의 누이동생을 출가시켰죠.아들 두명은 대학을 나와 결혼해 잘 살고 있습니다.남들은 박봉이라 할지 모르지만 국가에 봉사한 만큼의 월급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어요.공무원의 의무는 무한정합니다.그렇다고 남의 신세를 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신세안지기 신조로 한때는 「결벽증」이 심하다는 비난도 받았다고 했다. 공무원의 의무가 무한정하다는 말은 지나온 그의 발자국을 조명해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40여차례에 걸친 전보 또는 승진발령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발령사실조차 주위에서 알려줄 정도로 무관심했다고 한다. 언제 어떤자리로 옮겨가도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기꺼이 가야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지난 84년 대전시 감사실장에서 충남도 감사담당관으로 발령을 받았었습니다.감사실장은 지방서기관이고 감사담당관은 국가사무관으로 강등이 된 셈이었지요.그래도 저는 그 자리로 기꺼이 갔습니다』 꼭 자신이 적임자라서 불렀다면 오히려 보람있는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고 했다.사실 그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감사·기획·예산·법무계통의 자리에 오랜기간을 있었다. 『공직생활 자체가 보람이었지만 굳이 보람된 일을 꼽으라면 아산군수 시절 군청사를 새로 지어 옮긴 것입니다』 구청사를 팔 때는 일부업자로부터 「싸게 팔면 거액을 건네주겠다」는유혹도 있었지만 그는 이를 뿌리치고 6개월간 업자들과 승강이를 벌인 끝에 예상가격보다 5억원을 더 받아 냈다.당시 이 일을 놓고 「관청이 도둑」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감사관 시절에는 직원들의 숙소 현관 옆방을 차지하고 외부인들의 청탁을 막아내 「문지기」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가 공무원생활을 하면서 4명의 여동생과 두아들을 결혼시키는 동안 단한차례도 동료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사실도 그의 곧은 성품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대목이다. 지난 70년 논산군 감사실장시절 둘째누이를 결혼시켰을 당시 유일하게 동료직원들이 참석했는데 그때는 신랑측에서 보낸 청첩장을 보고 왔으나 이들이 낸 축의금은 곧 돌려 주었을 정도였다. 충남지방공무원 교육원장으로 있던 지난해 3월 맏아들 결혼식 때였다.교육원 간부 한명이 이를 알고 「동료직원만이라도 참석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으나 그는 『그러면 날짜를 바꾸겠다』고 해 직원들이 참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행사를 치르고 나면 그는 꼭 부하직원들을 집으로 불러 평소 때처럼 저녁식사를 함께 해오곤 했다. 그의 강직한 성품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건은 두차례의 「고기 소동」이었다. 처음은 부인 신부희씨(53)와 결혼한지 채 몇달도 되지않았던 60년의 일이었다.동료 2명이 결혼축하차 쇠고기 두근을 사들고 갔다가 부인 신씨만 있어 고기를 건네주고 그대로 돌아갔다.이 사실을 뒤늦게 안 이군수는 신부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 크게 꾸짖었다. 이를 본 주위사람들이 『너무하지 않느냐』고 말하자 그는 『앞으로 오랜기간 공직에 머무를 텐데 지금부터 집사람을 바르게 살도록 가르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그랬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 한번은 공주군청 행정계장으로 있을 때의 「고기소동」이었다.그때도 누군가가 쇠고기 두근을 집으로 전달했다.부인은 한번 혼난 일이 있어 되돌려주려 했으나 고기를 갖고 온 사람이 그대로 가버려 돌려 줄 수가 없자 대문기둥에 이틀동안이나 매달아 놓았다.결국 고기는 썩어 못먹게 되었고 이를 안 동료들이 이웃집에라도 주지 그랬느냐고 하자 『어떻게 옳지 못한 뜻을 남에게 전해주느냐』고 했다는 것이다.이밖에 한 여직원이 이군수가 떨어진 양말을 신고 있는 것을 보고 양말을 선물했다가 돌려 받은 일등 그의 신세 안지기 일화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제가 오랜 공직생활동안 한결같이 자세를 흐트러 뜨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와 집사람,그리고 두아들과 딸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은 어려운 가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토끼를 길렀고 두아들과 딸은 집에서 학교를 다니기 위해 스스로 「서울 유학」을 포기하고 가까운 충남대학에 진학했다. 『공무원은 언제나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래서 틈만나면 「독행불책영 독침불책금」이라는 한학자 김집선생의 말씀을 후배공무원들에게 말해주곤 합니다』 공무원은 혼자 가더라도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혼자 잠을 자더라도 이불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후배공무원들에게 꼭 남겨주고 공직을 떠나겠다는 그에게서 자랑스런 공무원의 참모습을 보았다.
  • 남북 전자공학 관계자/연길서 첫 대좌

    ◎1백여명,전자정보통신학술대회 참석 남북한 전자공학자와 산업계인사 1백여명이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하는 대규모 한민족전자공학학술대회가 19일부터 23일까지 중국 연길시에서 열린다. 「91국제전자정보통신학술대회(ICEIC91)라 명명된 이 학술대회는 중국 연변대학이 주최하고 대한전자공학회(회장 임제탁·한양대전자공학과교수)및 연변 자동화연구소·전자공학연구소가 공동후원하는 형식으로 돼 있으며 소련 미국 일본등의 교포학자들도 다수 초청돼 총 94편의 논문이 발표될 예정이다. 특히 이번대회에는 김용열(김일성대학) 홍기태(과학원) 소종식(김책공과대학) 강민기(자연과학대학)교수등 북한학자 11명이 처음으로 참가,컴퓨터시스템,전자교환기분야등에서 9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5개분과에서는 남한측 학자들과 나란히 공동좌장도 맡게 된다. 이번대회에서는 또 남한측에서 최상규 금성사상무,권승한 삼성전자상무,오계환 현대전자전무등 업계관계자가 별도로 마련된 「산업」분과에 참가,각 전자업체 현황을 소개하도록 돼 있어 주목된다.
  • 고 김종무씨 빈소 조의

    노태우대통령은 14일 하오 원로한학자 김종무박사 빈소에 관계비서관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 북한,서울학술대회 20명 파견/평양방송 보도

    ◎새달 21∼24일 철학자회의 첫 남북학술교류 성사 남북한간의 쌀직교역에 이어 학술부문에서의 남북 직교류가 이뤄지게 됐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27일 방송보도를 통해 오는 8월21∼24일 서울대에서 열리는 「한민족철학자대회」에 학자 10명을 포함한 20명의 학자대표단을 8월20일 서울로 파견하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북한방송은 또 이같은 내용을 담은 편지를 오는 30일 판문점을 통해 한국측에 전달할 계획이며 북한은 서울로 파견될 학자대표단에 대한 신변안전보장각서와 이들에 대한 편의제공을 한국측에 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관계당국은 북한은 이날 하오 북한적십자회 리성호위원장대리 명의의 전화통지문을 김상협대한적십자사총재 앞으로 보내 『사회과학원 김창원 철학연구소장의 요청에 따라 서울대 소광희교수(한민족철학자대회 준비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30일 상오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전달하겠다』며 이에 상응한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청해왔다고 밝혔다. 한편 소교수는 한민족철학자대회에 북한학자들을 초청하기 위해 관계당국으로부터 북한주민접촉승인을 받고 지난 2월 사회과학원 박창곤부원장,사회과학원 김창원철학연구소장,주체과학원 리성갑연구소장등 10명의 북한학자들에게 방한초청장을 보냈었다고 말했다.
  • 북한학자 19명 초청/대북 접촉신청 승인

    정부는 27일 연세대 손한교수(국제한국어 교육회장)가 향가연구의 대가로 알려진 홍기문 북한 사회과학원 부원장(월북작가 홍명희의 장남)과 46년 월북한 원로 언어학자 김수경(현재 북한 인민대학습당 운영방법연구실장) 등 북한학자 19명을 초청하기 위해 낸 북한주민접촉 신청을 승인했다.
  • “「팀스피리트」훈련 관계없이 북,새달 총리회담 참가”

    ◎LA 학술회의 참석 북한학자 밝혀 【로스앤젤레스 연합】 북한의 남북문제담당 고위책임자 중 한사람인 군축 및 평화연구소 김병홍부소장(55)은 22일 『북한은 팀스피리트 훈련과 관계없이 오는 2월 예정된 남북 총리회담에 참가할 것이며 좀더 신축적인 자세로 통일을 위한 대화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사아학회 주최로 UCLA에서 이날 저녁 개최한 학술회의 참석차 로스앤젤레스를 방문중인 김부소장은 연합통신 특파원과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남북한이 금년 안에 하나의 통일방안을 정하고 오는 95년 이전에 통일을 이룩해 분단 50년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오는 2월 평양에서 열기로 예정된 제4차 남북 총리회담에서 북한이 신축적인 자세를 보일 것이라면서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대북접촉 4건 승인

    정부는 16일 남덕우 한국무역협회장등 2명이 오는 9월2일 소련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제2차 아·태지역 대화·평화 및 협력회의에 참가,북한학자를 접촉하기 위한 북한주민접촉 신청을 승인하는 등 모두 4건의 북한주민접촉 신청을 승인했다. 이날 이밖에 북한주민접촉 승인을 받은 사람은 대종필름영화감독 변장호씨,키네마 서울 영화감독 은희복씨,산악인 김태웅씨 등이다.
  • 북한 원로사학자,4남매와 극적상봉/일 「조선학토론회」개막식장 주변

    ◎조총련탈퇴인사 2명,입장 거부되자 항의/“꼭 필요한 사람만 왔다”… 북,「대표단 축소」변명 분단이후 처음으로 갖는 남북한학자들의 본격적인 학술교류라는 점,북한측 대표단 규모의 돌연한 축소,남북이산가족의 상봉실현이라는 점 등에서 국내외의 관심을 끌어온 제3차 조선학 국제학술토론회는 개막초부터 열띤 분위기를 보였다.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김석형씨(75ㆍ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고문)는 3일 상오 11시30분 개막식이 개최된 오사카(대판) 국제교류센터 대회의장에서 동생 4명등 6명의 가족들을 45년만에 한꺼번에 만나 대회 열기를 고조시켰다. 모두 11남매중 셋째인 김씨는 지난 45년 해방 불과 2∼3개월뒤 경성대학 역사학교수로 재직하다 부인 고학인씨(56년사망ㆍ이전피아노과졸) 및 남매를 데리고 월북했다.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김일성대학에서 트럭을 몰고 「모시려」하자 『나를 대우해주는 곳으로 가겠다』며 가족들과 결별했다. 김씨의 부친 선균씨(46년 작고)는 한국인으로 처음 판사가 됐던 인물이며 변호사를 거쳐 초대 민선 경북지사를 지냈다. 모친도 정신여고 1기생으로,인텔리 가문 출신이었다. 이같은 가정환경속에 공산주의에 몰두했던 김씨는 가족들로부터는 거의 백안시되던 입장이었으며,스스로 월북을 선택했다고 가족들은 말한다. 이날 김씨와 상봉한 가족은 동생 석창(69ㆍ과천교회 장로),여동생 석순(65ㆍ성악가ㆍ뉴욕거주) 석수(61ㆍ숭실대 대학원장 최명관씨 부인) 성은씨(59ㆍ부산거주) 등 4명의 동생과 매부 최명관씨(65),최씨의 딸 선혜씨(40ㆍ전 대학강사) 등 6명이었다. 이들은 이날 상오 개막식이 끝날때쯤 식장으로 찾아와 재회를 이루었다. 식장 앞쪽에 앉아 있던 김씨는 여동생들이 『오빠』라며 달려와 포옹하자 말없이 눈물만 글썽였다. 동생들의 소개를 받고 난 김씨는 『여관은 어디 들었나,전화번호는…』하고 물었으며,동생들이 『한방에서 같이 자고 식사라도 하면서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해요』라고 말하자 『그래,전화해서 식사나 하자』라고 대답했다. 한편 이날 개막식장에서는 조총련을 탈퇴한 하수도씨(61)와 김영성씨(67)등 2명이 『왜 초대장을 보내놓고 입장을 거부하는가』라며 격렬하게 항의,주최측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하씨는 주최측에서 보낸 초대장을 꺼내 보이며 『개막식장에 들어가기 위해 등록을 하려하자 명단에서 이름을 빨간줄로 긋고 입장을 거부했다』고 말하고 『이것은 이 대회가 조총련에서 주관하는 것임을 증명하는 것으로서,입장거부 이유를 설명하라』고 버텼다. 이번 대회에는 역시 북한측 참가규모가 당초 통보됐던 1백50명에서 11명으로 대폭 축소된데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에 대해 북한측 김철명단장은 2일 하오 6시30분부터 나니와회관에서 개최된 환영리셉션에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니며 꼭 필요한 사람만 오게 됐기 때문』이라고 애써 변명하고 『참가신청을 했다가 철회하면 못오는 것 아닌가. 너무 참석인원에 집착하지 말라』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리셉션장에서 한국측 대표인 이세기 국방정책연구소장(전통일원장관)과 홍일식 고대교수는 북한의 김철명 단장,김석형씨 등과 만나 건배를 들며 잠시 환담했다. 이소장이 김석형씨에게 『잘오셨습니다. 건강이 좋으시네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김씨는 『네,네』라고만 간단히 대답했고 김철명단장은 보도진의 집중에 『왜들 이렇게 야단스럽지요』라며 짜증스런 반응을 보였다. 홍일식교수가 김단장에게 『너무 오랜만에 만나 이렇습니다. 앞으로 자주 만납시다』라고 말하자 『이번 토론회도 조국통일에 기여하는 것이며 손자ㆍ증손ㆍ고손들을 위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2번째 대화에서 이세기 전장관이 『우리 서로 싸우지 말고 형제같이 다정히 지내자』고 말하고 『다음번 올때에는 북경으로 돌아오지 말고 판문점을 지나 빠른 길로 오라』며 웃으면서 제의했다.
  • 조선학 학술토론회 개막/일 대판서/남북한학자,정치색 배제 합의

    【오사카=강수웅특파원】 일본 오사카(대판)에서 개막된 제3차 조선학 학술토론회에서 남북한 대표들은 『상호간의 차이점을 뒤로 미루고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허심탄회하게 접근하자』는 데 인식의 일치를 보았다.〈관련기사5면〉 3일 상오 10시 오사카 국제교류센터 대회의장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북한측 대표단장 김철명(조선사회과학자협회 제1부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체제와 이념의 차이점은 일단 뒤로 미루고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허심탄회하게 접근하자』고 말하고 『학술적 견해에서는 서로 차이가 난다해도 대결을 조장해서는 안되며 불신과 대결을 씻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종래의 북한측 입장인 정치적 색채를 배제한 발언을 행해 주목을 끌었다. 이에대해 한국측 대표인 이화여대 김대환교수(사회학)도 인사말에서 『개인적으로 북한측 김단장의 말에 전적으로 찬동한다』고 전제하고 『40여년 장벽을 뚫고 남북한 학자의 본격적인 교류가 이루어진 이 순간은 역사의 전환점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일 조선학 학술대회 76명 참가 추가승인

    정부는 30일 단국대 김유남교수등 76명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제3차 조선학 학술대회에 참가해 북한학자들과 접촉하기 위해 신청한 북한주민 접촉을 추가로 승인했다. 이로써 이 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북한주민 접촉승인을 받은 우리측 인사는 모두 1백36명이다.
  • 일 조선학술회 참가 29명 대북 접촉승인

    정부는 21일 덕성여대 김우종교수(국문학)등 29명이 제3차 조선학 학술대회에 참가해 북한학자들과 접촉하기 위해 신청한 북한 주민접촉을 추가로 승인했다. 이로써 오는 8월2일부터 5일까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이 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북한주민 접촉승인을 받은 우리 학자는 모두 60명이다.
  • 북한접촉 5건 승인

    정부는 12일 고윤석서울대교수등 19명의 물리학자와 안세희연세대교수,조태근서강대교수,박성상산업연구원장,허형택 한국해양연구소책임연구원 등이 신청한 5건의 북한주민 접촉신청을 승인했다. 이에따라 고교수등은 오는 16일부터 중국 연변에서 열리는 현대물리학 국제워크숍 기간중 여기에 참가하는 북한학자들과 접촉하게 되며 안교수는 다음달 연세대에서 열리는 제4회 아시아ㆍ태평양 물리학학술회의에 북한학자를 초청하기 위해 김경봉 북한과학원장에게 서신을 발송하게 된다. 또 조교수등도 이번달과 다음달을 해외에서 열리는 각종 국제회의에서 북한대표들과 접촉을 갖게 된다.
  • 한반도 군축 이렇게/3국 대표의 시각

    3일간의 회의를 마치고 7일 폐막된 미 스탠퍼드대 주최 한반도군축 학술회의에 대해 3국의 대표들은 『첫 만남이라는데 의의가 있으며 서로의 입장을 타진하고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는데서 성과가 컸었다』(한국 정종욱 서울대 국제문제 연구소장),『결과적으로 이번 회의는 유익했다고 생각하며 남측도 또 미국도 모두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회의를 계속해 서로 이해를 넓혀야 신뢰를 가지고 문제해결에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북한 이형철 평화군축 연구소 연구실장),『이번 회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앞으로 진전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모두가 가질 수 있었다고 본다』(존 루이스 미 스탠퍼드대 국제전략군축 연구소장)고 말하고 있다. 회의가 끝난후 가진 3국 대표들의 뉴스 브리핑 내용을 간추려 본다. ◎정종욱 한국대표/“「정치관계 정상화」등 접근방법 달라/북한측 「미군 단계철수」등 종래 입장보다 유연” ­정치 군사적 신뢰구축이 이뤄진후 실제 군축을 실시할 경우 어떤 대상을 우선적으로 감축할 것인지 북한측이 구체적 얘기를 한것이 있는가. ▲구체적 얘기는 없었다. 우리는 공세적 무기의 우선 감축을 얘기했지만 북한은 여기에 대한 언급없이 전체로서의 기본적 틀을 강조했다. ­북한이 제시한 군축의 5가지 기본적 틀을 그 개념상으로만 보면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도 없는것 같은데 다만 그속에 주한미군 철수와 핵무기 철거가 들어있고 여기엔 미국이 개입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수락할수 없는 것인지. ▲그런 문제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보다는 이 5가지 기본틀 안에 정치적관계 정상화를 우선시킨다는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정치관계의 정상화를 얘기하면 무조건 분단의 고착화를 들고나와 대화가 엇갈리곤 하는데 우리가 반드시 분단의 고착화를 의미하는 정치관계의 정상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회의에서 우리가 주장한 내용과 북한의 5월31일 평화안을 비교하면 공통점도 상당히 있는데. ▲신뢰구축의 중요성이 조금 부각되고 군사력 감축에서도 남북한간에 합의가 된후 3단계에 걸쳐 3∼4년내에 무력을 감축키로 한점,검증얘기,미군철수가 남북한간 무력감축과 상응해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 등이 다소 융통성을 보인 대목이며 이것이 어느정도 의견접근을 보일 수 있었던 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구체적 조치보다 군축에의 철학적 접근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북한의 기본적 방침은 역시 주한미군 철수와 핵무기 철거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회의이후 다시 이같은 회의가 열린다면 그 전망은. ▲이번 회의에서 토론된 내용이 앞으로 북한의 정책결정에 어느정도 반영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회의를 통해 서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남북한간의 정치관계라 할수 있다. ­이번 회의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을 들수 있는가. ▲북한은 점점 고립되고 있는데,지난 2년간 급변하는 주변정세에 비쳐볼때 이같은 고립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도 서로 쓰는 용어의 개념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랐고 이의 조정을 위해서도 서로 만나 배울 필요가 있고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야 한다. 또 서로 만나는 과정에서 북한도 우리 입장을 좀더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입장에 어떤 모순이 있는지 납득할 수 있도록 대화가 이뤄진다는 것이라 할수 있다. ­북한학자들의 태도가 과거에 비해 달라진 것은 없는가. ▲공격적이 아니었고 대화를 하려는 자세를 엿볼수 있었다. ◎이형철 북한대표/“남한서 미 핵 철수해야 핵 개발 중단/「통일합의 없는 신뢰구축」 분단 고착화 의도” ­북한은 불가침선언은 남북한간에,평화협정 체결은 미국과 북한간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러면서 굳이 3자회담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기본입장은 3자회담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측이 3자회담을 구실로 대화를 거부하므로 하루빨리 대화를 재개할 생각에서 남북이 먼저 회담을 갖자는 것이며 그러다보면 미국문제가 제기돼 결국은 3자회담이 될 것이다. 두 갈래의 쌍무회담제기는 대화교착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라 할수 있다. ­북한은 군축의 5가지 기본적 틀에 대해 먼저 포괄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주장하는데,그러면 이같은 합의가 어떤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가. 가령 고위 당국자 회담인지 아니면 남북정상회담인지. ▲기본입장은 남북한과 미국의 3자가 만나서 얘기하면 군사 당국자간의 직통전화 개설ㆍ운영 같은 것은 쉽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무력감축이나 전면개방 같은 문제에 대한 협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군축이라하면 좁은 의미에서의 군비감축과 넓은 의미에서 군비통제와 군비감축을 모두 합친 포괄적 군축의 2가지 의미가 있다. 북한이 얘기하는 군축은 어떤 의미인가. ▲실질적인 군비감축,영어로는 disarmament라 할수 있다. 이번 회의에서 느낀 것은 남측은 정치적 신뢰구축을 강조하고 있는데 남북한의 불신은 분열에서 생기는 것이다. 남북한이 통일로 나간다는 원칙에 합의하지 않고서 어떻게 군사적으로 서로 대결하지 않을 것을 확신할 수 있느냐. 통일에 합의하지 않고 신뢰 구축조치만을 논의하자는 것은 결국 분단을 고착화 시키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지난 6월15일 한국의 재야 각계 인사들은한반도군축과 평화통일 선언에서 북한에 대해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을 중지하고 핵안전 협정에 조인하라고 요구했는데. ▲가령 남조선에서 미국이 핵무기를 철수시키라는 요구가 받아들여 진다면 우리도 그런 요구를 못받아 들일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것이 전제 조건이다. ­그렇다면 그런 전제 조건이 이뤄지지 않으면 핵안전 협정도 체결되지 않는가. ▲현재로선 그것이 조건이다. ◎존 루이스 미 대표/“다음회의 개최 합의… 성급한 기대 금물/한국ㆍ유럽 현실달라 유럽식 모델 적용 의문” ­이번 회의에서 남북한이 서로 자신의 주장을 했는데,접근한 내용이 있었는가. ▲학자적인 입장에서 같은 이슈를 놓고 이야기 한것은 사실이지만 의견이 서로 달랐으며 합의 된 것도 없었다. 학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뿐이며 합의에 이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나는 이번 회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으며 모두가 앞으로 진전을 이룰 기회를 가질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같은 회의를 다시 개최하기로 합의를 했다는데. ▲다음에 다시 회의를 하기로 한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 다시 기회를 열기로 한것 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 ­한국 대표단은 한반도에서도 유럽식 군축모델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로서는 유럽식 모델이 뭔지도 자세히 모르겠고 유럽에서는 그쪽 나름대로의 현지사정이 있고 한국은 유럽과는 다르기 때문에 유럽모델이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되려는지는 모르겠다. 예컨대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와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서로간에 전쟁을 치른 경험이 없지만 한국에서는 분명히 남북한간에 전쟁을 겪었었다. ­북한은 남북한과 미국간의 3자회담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번 회의는 비록 학술회의라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3자회담의 성격을 띤 것이라고 할수는 없는가. ▲이번 회의는 각국의 학자들이 개인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며 이들이 대표의 자격을 띤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이번 회의를 놓고 3자회담 운운하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남북한간에 2자회담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3자회담문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말할것도 없다. ­이번 회의의 과정과 결과를 보고 군비통제에 있어 남북한이 장단기적으로 보아 협력과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는가. ▲어떤 합의에 도달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이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40년이 되도록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군비통제와 안보등의 어려운 문제가 어느날 갑자기 해결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 북한접촉 5건 승인

    정부는 30일 이항녕 세계평화교수협의회이사장이 제20차 세계평화국제학술회의에 북한학자를 초청하기 위해 신청한 북한주민 접촉을 승인했다. 정부는 또 박승서대한변호사협회장이 북한 사법제도에 관한 자료수집 목적으로 재일본 친북인사인 김규승 조선민주법률가협회위원장을 일본에서 만나기 위해 신청한 북한주민 접촉도 승인했다. 정부는 이밖에 이산가족과의 상봉을 위해 전형무ㆍ백해리ㆍ김재섭씨 등 3명이 각각 신청한 북한주민 접촉을 승인했다.
  • 일서 「한국학」 국제학술대회

    ◎남북한 학자 포함,19국 1천여명 참가/8월2일부터 3일간 【도쿄 연합】 남북한 학자를 포함,세계 19개국의 한국ㆍ조선문제 전문학자 1천2백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한반도의 정치ㆍ경제ㆍ문학ㆍ역사ㆍ의료ㆍ과학기술 등 폭넓은 분야를 종합적으로 토론하는 맘모스국제학술회의 「제3회 조선학 국제학술토론회」가 오는 8월3일부터 3일간 일본 오사카(대판)시에서 열린다. 한국측에서 3백2명,북한측에서 1백50여명이 참가할 예정인 이번 회의는 한반도문제에 관한 이제까지의 어느 국제학술회의보다 규모면에서 압도적으로 큰 것은 물론 특히 북한학자가 한꺼번에 해외에서 열리는 회의에 이처럼 대거 참가하기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내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토론회는 또 남북한학자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정치문제를 논의하는 첫번째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될 것으로 보이며 중국측에서도 1백여명의 학자가 참가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측에서는 이번 회의에 정무원 차관급인 사회과학원부원장 김철식,김일성종합대학 부총장 최장룡등이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5백편 이상의 논문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 북한방문 미 학자들/황장엽과 회담

    【도쿄 AFP 연합】 북한노동당 중앙위 서기국 서기인 황장엽이 19일 북한을 방문한 미 미네소타 대학의 어윈 마퀴트교수가 이끄는 일단의 미학자들을 만났다고 북한 관영 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도쿄에서 수신된 이 통신은 북한 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도 겸임하고 있는 황장엽과 미학자들과의 회담이 만수대 의사당에서 열렸다고 전하고 이 자리에는 한수길주체과학연구원 부원장도 참석했다고 전했다. 미ㆍ북한 학자들간의 교류는 간간이 있었으나 지난 봄 「팀 스피리트」 한미 합동연례 군사훈련기간중 중단됐다가 지난 5월중순 북한학자들이 워싱턴에서 열린 민간주최의 군축세미나에 참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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