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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책 어때요/ 악기(樂記) 외

    악기(樂記) 이영구 엮음 자유문고 펴냄 고대 중국,특히 주나라 때 악(樂)은 예(禮)와 더불어 정치상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다.예가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했다면,악은 인심을 감화시키는 구실을 했다.공자 또한 예와 악을 매우 중시했다.공자시대에는 시·서·예·악이 사대부의 필수교양이었고 후에 주역과 춘추가 추가돼 6경으로 발전했다.이 책은 ‘예기’의 ‘악기’편 전문을 비롯, ‘여씨춘추’‘시경’‘서경’‘효경’ 등 중국고전에 실려 있는 음악론을 골라 묶은 것.부록으로 팔일무(八佾舞,나라의 큰 제사 때에 64명의 악생이 8렬로 정렬해 추던 춤)의 춤사위가 실렸다.1만 2000원. 이산 열국지 최이산 옮김 신서원 펴냄 한학자인 저자가 텍스트 자체의 번역에 초점을 맞춰 새로 펴냈다.주나라가 이방민족인 견융에 쫓겨 낙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부터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까지 550년 간의 춘추전국 시대가 배경이다.노자·공자·맹자·상앙·한비자·장자·손자·오자서·진시황 등 숱한 인물들이 난세를 헤쳐나가는 이야기다.원저자는 명나라말기의 문장가인 풍몽룡.‘삼국지’가 사실상의 주인공인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고 나면 읽는 재미가 반감되는 반면 ‘열국지’는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완수하는 절정에서 막을 내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전12권 각권 1만원. 짜르의 마지막 함대 콘스탄틴 플레샤코프 지음 / 표완수·황의방 옮김 중심 펴냄 1905년 5월27일,유럽중심의 현대세계는 막을 내렸다.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국가가 유럽의 열강을 물리친 것이다.이날 일본은 당시 세계 제1의 육군국이자 제2위의 해군국인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쓰시마 해협에 수장시킴으로써 러·일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었다.이 승리로 일본은 세계적 강국으로 부상,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장악했다.반면 러시아는 혁명의 불길에 휩싸이게 됐으며,결국 볼셰비즘의 제국으로 발전했다.이 책은 레판토,트라팔가,유틀란트,미드웨이 해전과 함께 세계 5대 해전의 하나로 꼽히는 쓰시마 해전에 대한 본격 연구서다.1만 8000원. 세계를 매혹시킨 반항아 말론 브랜도 패트리샤 보스워스 지음 / 정영목·고명섭 옮김 푸른숲 펴냄 1947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근육질의 비천한 노동자 코왈스키로 나와 특유의 웅얼거림과 야수적 즉흥연기를 선보임으로써 신인간형의 등장을 선언한 배우 말론 브랜도.‘워터프런트’의 일자무식 노동자 테리 멀로이,‘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이방인 폴,‘대부’의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지옥의 묵시록’의 광기에 찬 커츠 대령 등 그는 영화를 통해 수많은 초상들을 만들어냈다.하지만 그는 배우라는 직업의 가치를 끊임없이 의심했다.특히 할리우드의 탐욕과 위선,협잡에 경멸감을 감추지 않았다.브랜도의 내면을 밝힌 평전.1만 4000원. 길 위의 천국 이지상 지음 북하우스 펴냄 터키는 수많은 문명과 종교의 지층이 겹겹이 쌓여 있는 ‘동서양의 다리’다.그 지층을 한 꺼풀 벗기면 약 500년간에 걸친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흔적이 나타나고,기독교 초기 유적지와 1000년에 걸친 동로마 제국의 기독교 문화가 드러난다.더 깊이 들어가면 알렉산더 대왕,페르시아,트로이 전쟁의 흔적이 보이며 기원전 20세기 무렵 철기문명을 일으킨 히타이트 족의 유적도 나타난다.맨 밑바닥에는 인류 초기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자리잡고 있다.이런 것들이 바로 여행칼럼니스트인 저자가 터키를 인류의 보물창고라 부르는 근거다.1만 3800원.
  • 고전 읽는 여성들 / “古典속에서 삶의 지혜·가치 배워요”

    서울 서초구 ‘한국인성교육원’의 사무실에 들어서니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한학자 소현(素玄) 노재욱(73·교육학) 박사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천선화(代天宣化),사람 없는 하늘 없다.즉,하늘이 할 일을 사람이 대신한다,인간이 하는 것 같아도 우리가 하는 일이 모두 하늘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지요.그러니 허튼 짓을 하지 말아야 하고,또 작은 일에 겁을 내고 점쟁이를 찾아다니는 등 호들갑을 떨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왜 겁이 나? 하늘이 있는데.또한 하늘이 보고 있으니 방자한 행동을 하지 말자는 가르침까지 함께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도리와 삶의 지혜를 담은 당나라 때의 책 ‘이수합해’(理數合解)를 펴든 이들은 40∼70대의 여성들.모두 열중한 모습이었다.낮 12시면 수업이 끝날 것이라 했지만,강사 소현 선생은 물론 학생들도 30분이나 연장된 수업에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10여년째 고전 공부를 하는 ‘골수 회원’들이 10여명 되고,신참 회원들도 늘고 있어요.그동안 논어·맹자·중용·대학 등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꾸준히 읽었고 현재는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도 단 한권의 해설서나 참고서도 나와 있지 않은 책,‘이수합해’를 읽고 있어요.그래서 더 즐겁습니다.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행복과 보람을 주니까요.” 권명득(65) 원장은 이 클래스의 수준이 대단하다고 자랑했다. 한국인성교육원이 구성된 것은 3년 전.그 이전부터 고전 공부를 시작했던 회원들이 뜻을 모아 교육원을 만들었고,현재는 60여명이 고전을 익히고 있다.고전을 공부하면서 삶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공유하고,지혜를 모아간다는 이들은 ‘세상 이치’를 터득하는 데는 고전 공부가 최고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문옥주(66·서울 마포구 서교동)씨는 “고전을 배우면서 가정생활은 물론 자녀교육까지 도움이 된다.”며 “집안을 경영하는 여성들이,젊은 엄마들이 배워야 할 것이 고전”이라고 말했다.널리 고전 공부를 보급할 수만 있다면 우리 여성과 가정·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전희순(64·서울 동작구 사당동)씨는 아이들을 키운 후 마음이 허했는데,고전 공부가그런 허한 마음을 채워줬다고 웃음을 보였다.“자식과의 갈등,친구와의 문제에서도 쉽게 상처받았지만 공부를 시작한 후에는 조금은 객관적으로 나 자신은 물론 세상사를 보게 됐다.내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나를 사랑하게 됐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의미있는 일이다.” 김정숙(77·서울 마포구 성산동)씨는 고전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헛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인생의 고비에서 풀어지지 않았던 문제들을 지금에사 머리와 가슴으로 동시에 느끼고 풀어간다.”고 고전 공부가 바로 인생 공부라고 말했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고전 공부를 누구나 할 수는 없단다.주위의 친구들과 친지들에게 권해도 막상 나와보고는 손사래를 치며 다시는 오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정말 좋은 공부라 권해도 ‘공부라면 딱 질색’이라는 사람들도 있고,배워보겠다고 나서도 실제로 아무나 고전에 입문하지는 못해요.노래나 스포츠댄스처럼 재미있지 않잖아요.그리고 90분간 가만히 앉아서 강의를 듣는다는 것이 좋은 말씀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고문이거든요.”이종미(50·서울 강남구 세곡동)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들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에 대해 소현 선생은 ‘극성 학생’이라고 말한다.99년,갑자기 암 판정을 받고 수술 후 어쩔 수 없이 휴강을 했는데,3개월만에 다시 강의를 시작한 것도 ‘극성 학생’들 때문이었다.“열심히 하는 분들이니 좋은 말씀을 하나라도 더 전하고 싶은 게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이니까요.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배우는 분들이라 강의 한마디 한마디가 쑥쑥 빨려들어가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대수술 후 3개월만에 강의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의사는 물론 제 가족들도 모두 반대했지요.그러나 이들의 열정과 마주선 덕분에 건강도 찾았습니다.” 이날 처음으로 고전 교실에 출석한 배기화(56·서울 성북구 신영동)씨는 “전통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큰애를 결혼시키면서 격식을 갖춘 함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세상이 변해도 결혼의 소중함은 변함없는 것인 만큼 부모의 정성을 담기 위해 노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이를 계기로 고전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공부가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좋은 말씀을 듣고,인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계속 강의를 듣고 싶다.”고 뜻을 밝혔다. 모임의 청일점,김진돈(44·운제당한의원 원장)씨는 올해 초부터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새로운 교재로 공부하면서 신선한 시각으로 한의학에 접근하게 된다고 말했다.“10여년간 골프를 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바로 그런 시간을 고전공부로 돌렸어요.쉬운 결단은 아니었지만 제게 고전 공부는 삶의 필터,정화기능을 맡고 있는 것 같습니다.고전공부를 하면 1주일이 편안합니다.스트레스가 없어져요.” 김씨는 하늘이 할 일을 사람이 대신한다는 뜻의 ‘대천선화’란 말이 환자와 만날 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겸손함을 잊어버리지 않게 한다고 말했다. 한때 세 동서가 나란히 고전공부를 했다는 최영숙(49·서울 강남구 세곡동)씨는 “옛 성현의 글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잃어버린 나를 찾게 되는 계기를 만나게 됐다.1초 전이 과거라면 1초 후가 미래인 만큼 매 순간을 소홀할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크게 깨닫고,내 삶에 감사하고 만족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환경에 맞게 하라는 가르침을 담은 말 시중처화(時中處和)와,자신의 속을 먼저 들여다보라는 뜻의 정관(靜觀),모든 본성을 다해서 이치를 추구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궁리진성(窮理盡性)의 말을 배웠다는 이들에게서는 편안함이 보인다. 고전을 읽는 여성들은 고전읽기의 즐거움을 “글을 통해 삶의 이치를 터득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고전을 통해 ‘느리게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한 사람들의 얼굴이 해맑았다. 허남주기자 hhj@
  • 말 안듣는 아이 매 약인가 독인가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때때로 매를 든다.아이들을 학대하는 몹쓸 부모가 아니라도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폭력은 그리 멀지 않다. 그러나 부모들은 알고 있다.‘사랑의 매’라고 아무리 변명해도 사실은 순간적으로 감정이 끓어올랐을 뿐,아이의 버릇이나 미래를 생각한 ‘교육적 처신이 아니었음을.그리고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다.”는 자책에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아이에게 매를 들어야하나,말아야하나.이것은 부모들의 공통된 고민 중 하나다. ●잘못된 버릇 어떻게 해야 하나 독자 김영선(39·서울 양천구 목동)씨가 메일로 취재를 요청했다. “아이가 커가면서 가장 큰 고민은 잘못된 버릇을 어떻게 고쳐나가느냐는 문제입니다.처음에는 좋은 말로 시작하지만 때때로 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기도 합니다.오늘도 수학문제를 가르치다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말았습니다.제가 성격이 유난한 편도 아닌데 아이에게만은 이런 식의 ‘저급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속상합니다.‘사랑의 매’라고 말하진 않겠습니다.솔직히 감정적으로 행동한 것이니까요.매를 들지않고 아이를 키울 수는 없을까요?그리고 남들도 저처럼 아이를 때리면서 키우는지 알고 싶습니다.” 독자 김씨의 고민은 ‘아이 키우기’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욱이 가정과 사회적인 분위기가 자유스러워지면서 “아이들의 버릇이 나빠졌다.”는 말에 대부분의 기성 세대는 공감한다.그러나 이전 세대와 달리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고 배운 부모들로서는 지난 세대의 엄격한 가정교육과 다른 새로운 자녀교육을 원한다.과도기적인 어려움은 가정교육에도 고스란히 투영돼 이 시대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이전 세대보다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12,10살난 두 아이의 어머니 성혜란(37·서울 동작구 사당동)씨는 매를 드는 이유를 “이대로 뒀다가는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지 않을 것같다는 조바심 때문에 화를 내게되고,때리기도 하는 것같다.”고 ‘부모의 욕심’이라고 때리는 이유를 분석했다.“솔직히,아이들은 맞으면 당장 조용해지고,말도 잘 듣기 때문에 매를 든다.남편은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접하라고 하지만,하루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도리어 화가 난다.” 회사원 정석준(42·경기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씨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회초리를 걸어두고 키웠다.“실제로 아이를 때릴 기회는 많지 않았다.하지만 아이가 떼를 쓰거나,버릇없이 굴 때는 회초리는 상징적인 효과를 발휘했다.‘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고 믿는 부모님 아래서 자랐고,가끔 형제들이 싸우면 벌을 서기도 했다.매를 들지는 않더라도 부모가 통제할 방법을 모르면 문제가 커진다.”고 ‘가정교육 부재의 시대’를 염려하면서,그럴수록 ‘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매,필요악인가 대부분의 부모들은 ‘매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봐도 매를 맞고난 후,‘정신을 차려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잖았다.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에 난색을 표한다. 동덕여대 우남희교수는 “매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자녀를 부모의 예속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또한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때려서라도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부모가 이성적인 준비 혹은 훈련이 되지않은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버릇은 무서운 것이라 한다.‘사랑의 매’든 ‘교육적인 매’든 결국 매를 맞고,버릇을 가르쳤다면 다음 버릇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더 많이 때려야한다는 것이다.어린 아이에게 매는 단기적으로 ‘착한 아이’를 만들 수 있으나 그런 식의 통제만능 가정교육은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를 결국 어긋나게하는 단초가 된다.즉 부모들은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통제력의 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더욱 철저하게 통제하게 되고 친구에게 전화하는 것부터 공부하는 시간 체크까지 감시의 눈길을 번득이며 통제하게 마련이다.그러나 통제는 결국 부모가 바라는 바와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지고,부모와 자녀간의 갈등만 커지게 된다. 때때로 아이들은 힘든 일과 매,두 개의 선택 중 “맞고 말지.”라는 식으로 부모가 기대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직장인 유현진(35·경기 성남시 분당구효자동)씨는 요즘 자녀교육에 자신감을 잃었다.초등학교 2학년 딸이 어렵더라도 혼자 일기를 써보라는 할머니의 충고에 “엄마는 잠깐 화내고 나면,금방 내 뜻대로 해준다.”며 “한 대 맞으면 된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직장일로 바빠 늘 시간이 없으니 아이가 스스로 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걱정이 많지요.그래서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기보다는 ‘본론’위주로 이야기하게 되고,가끔 때리기도 했어요.물론 그렇게 심한 폭력은 아니었지만,야단을 치고 아이의 자존심을 짓밟았어요.후딱 제가 숙제를 해주는데 아이는 제 속을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다니…” 또한 아이는 너무 아프거나,무서우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할 겨를도 없이 매를 맞아서 아프고,기분이 나쁘며 부모가 무섭다는 기억밖에 하지 않게 된다. 아이들에게 절대로 매를 들지않는다는 김성락(44·서울 강서구 가양동)씨.“실제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타당한 이유없이 그냥 맞았던 기억,부모님이든 선생님에게서든 맞았던 기억은 섭섭함과 불쾌함,상처로 남아있어요.아직도 억울해요.” 그는 매의 ‘무용론’을 강조했다. ●폭력은 학습된다 연세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아동학대라 불리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 보통가정에서 가끔 일어나는 ‘매’도 폭력의 범주에 넣어야하고,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깊이 생각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폭력이 폭력을 부른다는 ‘폭력의 순환(cycle of violence)’은 이미 증명된 명제임을 부모들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는 “3살 전에 버릇을 들이지않으면 아이 키우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만연해있고,최근에는 조기교육까지 극성이라 서너살 때부터 강압적으로 양육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그러나 일찍 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자율성이 없어지고,자아상이 나빠져서 결국 자신감도 잃게된다는 것이다.부모가 자꾸 아이를 야단치면서 했던 말로 인해 아이들은 ‘나는 나쁜 애니까 어차피 좋아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초등학교 4학년 양성호(가명)군은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를 찾았다.착하던 아이가 갑자기 화가 나면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가 하면 도벽까지 생겼기 때문이다.풍족한 가정환경이지만 성호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사내가 약하다.”며 아이를 때려서 키웠고 화가 나면 아이를 던지기까지 했다.심리검사에서 어떤 그림을 봐도 성호는 모든 사물을 무섭게 받아들였고,적개심에 가득차 있었다.성호의 어머니는 “사내아이가 약하다고 남편은 아이가 파랗게 질리도록 야단치고 때리기도 했다.얼마전 일기에 ‘언젠가는 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는 말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맞고 자란 아이는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위험이 크다고 중·고등학교 교사들은 말한다.가정에서의 매가 결국 사회적인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김성훈(가명·13)군은 동생 성호(가명·12)군을 때려서 결국 크게 다치게 했다.문제는 가정폭력의 가해자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폭력에 노출됐던 아이는 폭력에 대한 도덕성을 갖지 못했고,또한 분노를 조절할 줄 모르는 아이로 자랐다.“얌전한 아이인데,왜 동생에게만은 그렇게 폭력적인지 모르겠다.”고 어머니는 말하지만 폭력의 순환고리는 이렇게 때로는 가해자로,때로는 피해자로 이중의 고통을 안겨줄 만큼 치명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형제가 싸우고,서로 폭력을 휘두른다면 그 문제는 형제가 아닌 부모와 자녀간의 문제에서 풀어야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부모들의 의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매 맞는 아이와 학교폭력,사회적인 폭력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 세대들이 모두 폭력을 옹호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한학자 노재욱씨는 ‘이제는 아버지가 회초리를 맞을 때다’라는 자녀교육서에서 “예의범절이나 버릇을 가르치려고 아이에게 매를 때리는 것은 선현들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선현들이 자녀를 때리라고 가르치지는 않았다.오히려 자녀는 부모를 보고 배우는만큼 부모의 행동가짐을 올바르게 할 것을 강조했다.자신들은 예의는 물론 질서와 도덕을 무시하면서 아이에게만 잔소리하고,매를 든다면 결코 진정한 예의를 가르칠수 없을 것”이라며 이 시대 부모들의 이중적인 가정교육을 우려했다. ●매는 절대로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매는 절대로 안된다.”고말하지는 않는다.‘때에 따라서’는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남희 교수는 “부모들이 이를 잘못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아이의 성격에 따라서 결정하라.”고 말했다.논리적으로 따지고 드는 아이에게 매는 금물,반면 감정적이고 행동이 부잡스러운 아이들에게는 “신체적인 가해가 때로는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진정 아이를 위한,감정적인 분노표출이 아닌 ‘교육적’인 매는 어떤 것일까. 우선 △부모가 화를 가라앉히고 난 뒤에도 때릴 이유가 분명히 있다면 그렇게 하라.△“다음에 또 이렇게 행동하면 3대 때린다.”는 식으로 미리 경고하고,똑같은 행동을 했을 때에는 벌할 수 있다.단 가급적 같은 장소에서 체벌을 하나 정해두고 벌한다면 계획성없이 손으로 때리는 그런 폭력의 문제점은 해결할 수 있다.△아이를 때리고 나서는 반드시 달래줘야 한다.또 아이에게 맞고나서의 느낌이나 생각을 묻고,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그래야 아이가 매에 대해 이해하고,상처로 남지않기 때문이다. 결국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대화하는 부모의 자세가 매보다는 효과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허남주기자 hhj@
  • 장군님의 ‘한자예찬’ 30년 / ‘한자교육 전도사’ 이재전 예비역 중장

    이재전(李在田·육사 8기) 예비역 육군 중장은 내년이면 희수(喜壽·77세)인데도 나이를 잊고 산다.현역시절 못지않게 일에 파묻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어릴 적 친구와 군 동기생들은 대부분 현직에서 은퇴했거나,상당수는 이미 작고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요즘 그에게 가장 신명나는 일거리는 한글세대인 청소년들에게 한자(漢字)를 가르치는 일이다. ●한자 보급 전도사 이씨는 매일 아침 (사)한자교육진흥회가 입주해 있는 종로 5가 기독교회관으로 출근한다.한자교육운동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1990년 사재를 털어 이 단체를 만든 뒤 회장을 맡고 있다.10·26 사태 당시 청와대 경호실 차장으로 있다가 군문을 떠난 그는 83년부터 89년까지 성업공사 사장을 지냈다. 그가 한자교육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수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이유도 있지만 약 30년 전 일선 군단장 재직 때 영관급 장교들이 한자를 몰라 신문이나 전문용어가 많은 병서(兵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된 게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 이에 따라 우선 장교들에게 교육용 한자 1800자를 마스터할 것을 지시했다.엉성하지만 ‘교재’도 만들어 배포했다.병사들을 위해 가급적 공부할 수 있는 부대내 여건을 조성해 줄 것도 휘하 지휘관들에게 지시했다. 하지만 일부 부하들 사이에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당시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한글전용 5개년 계획이 한창 추진 중이었는데 정부 방침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다고 물러날 그가 아니었다.그의 입장은 단호했다.한글 전용정책에 숱한 문제가 있는 데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은 군인의 도리가 아니라며 오히려 부하들을 나무랐다고 한다. 이씨는 “우리말의 70% 이상이 한자로 구성된 상태에서 한자 공부를 제대로 시키지 않을 경우 실질적인 문맹자를 양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면서 “초등학교부터 한자를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해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표의문자인 한자와 표음문자인 ‘가나’를 적절히 ‘혼용’하는 일본의 예를 들며 우리나라도 학생들의 교과서와 일선 행정기관 공문서에국한문 혼용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국한문 혼용은 일부 단어에 한해 한글을 쓰지 않고 한자를 쓰는 것을 말하고,병기는 한글을 쓰고 뒤에 괄호를 만들어 한자를 함께 쓰는 것을 말한다. ●새 주민등록증 한자 이름도 그의 작품 진흥회 설립 이후 약 13년동안 한자교육 운동을 추진하면서 적잖은 ‘실적’도 거뒀다. 지난 국민의 정부 때 정부가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면서 이름을 한글로만 표기할 계획을 알게 되자 즉각 육사 동기생인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를 찾아가 최소한 이름만이라도 한자 병기를 요구해 관철시켰다.그는 “우리처럼 동명이인이 많은 나라에서 어떻게 주민등록증을 새로 만들면서 이름을 한글로만 적을 생각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또 지난해 월드컵을 앞두고는 고건 당시 서울시장을 만나 도로표지판에 한자 병기를 강력 요구,이 역시 관철시키는 뚝심을 보여줬다. 군 생활을 오래한 때문인지 장병들의 한자교육에 대한 관심은 더욱 각별하다.1999∼2000년 무렵엔 국방부의 협조로 한자교육을위한 벽걸이용 한자교재를 각급 부대에 배포,내무반에 비치토록 했다. 그는 부모의 이름도 한자로 못쓰는 대학생이 태반인 상태에서는 국가 경쟁력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프라이드 장군’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그는 소형 승용차인 프라이드를 손수 몰고 다녔다.신장 176㎝인 그가 소형차를 몰고다니는 모습이 다소 이상했는지 주변 사람들은 “예비역 3성 장군이 그게 뭐냐.차 좀 바꾸라.”는 핀잔과 함께 ‘프라이드 장군’이란 별명을 붙여줬다고 한다.요즘은 사업을 하는 아들이 ‘제발 나이를 좀 생각하시라.’며 기사가 달린 차를 대줘 이 차를 타고 다닌다고 했다.고령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건강한 편이다.무릎이 약해진 것을 빼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매일 아침 기상하면 강남구 도곡동 아파트 근처 공원에서 약 1시간씩 걷기운동을 한다.또 저녁에는 인근 헬스클럽에서 1시간 반 정도 각종 기구를 이용해 체력운동도 한다.그래서인지 70대로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그는 “젊게 보이는 것은 아마 쉼없이 일을해왔기 때문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씨는 한자교육운동 이외에도 국방일보에 자신의 군시절 주변 얘기 등을 재미있게 풀어쓰는 ‘온고지신’이란 연재물을 벌써 수개월 째 연재할 정도로 정열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한글만 쓸 것으로 보이는 북한에서도 초등학생들에게 한자교육을 시키고 있다.”면서 “젊은이들에 대한 한자교육을 강화하지 않을 경우 자칫 동양문화권에서 스스로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이사람/박세환 동춘서커스단장...’우리 서커스 지키기’광대인생 40년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한강변 아파트 동춘서커스단 숙소 겸 사무실에는 이순(耳順)을 코앞에 둔 중늙은이 대신 다부진 체격의 40대 같은 호남형의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신산(辛酸)한 삶의 궤적은 어쩌지 못했던 것일까.눈과 입가에 촘촘히 접혀 있는 잔주름과 옛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촉촉히 젖어드는 회한 어린 눈빛에서 40년 유랑 세월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동춘서커스 박세환(59) 단장.존재조차 잊혀져가고 있는 국내 서커스의 명맥을 잇고 있는 사람이다. 박 단장의 고향은 경북의 고도(古都) 경주 탑정동 260번지.그의 집안은 신라 왕릉 제사를 손수 모시는 경주 명문가였다.할아버지는 육당 최남선과 교류를 갖고 성균관대와 대구대 이사를 지낸 영남 한학자였다.그에 대한 집안의 기대 역시 남달랐다.그러나 ‘끼’를 숨기지 못했다.당시 지역 명문인 경주고에서 반장까지 할 정도로 공부 잘하던 학생이었지만 배우의 꿈은 저버릴 수 없었다.봉건적인 조부의 생활방식 역시 반항기 넘치는 18세 청춘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소금 버무린 보리밥으로 끼니 때우고… 그러던 어느날,박 단장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은 일이 있었다.당대 최고의 서커스단인 동춘 서커스단이 고향에 찾아온 것이다.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찾아간 공연장 무대 위에는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검은 신사복과 하얀 실크 머플러를 하고 좌중을 휘어잡으며 사회를 보던 고(故) 동춘 박동수 단장이 있었다.그의 모습에 그만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조부의 불호령도 어쩔 수 없었다.어머니의 눈물도 그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그 길로 동춘서커스단을 따라 나섰다.서커스단에 몸을 맡긴 채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접시돌리기,공중곡예,모창,코미디 등 안해 본 게 없었다.소금에 버무린 보리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텐트 조각을 이불 삼아 자는 생활이었다.목과 다리의 통증 때문에 잠자리를 설치는 날도 숱하게 많았다.하지만 ‘박동춘처럼만 된다면…’하는 생각에 고생은 아무렇지도 않았다.그는 “입단 당시에는 200여명의 단원이 있었다.무대에 오르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그러나 운 좋게도 귀공자 스타일의 얼굴로 타고 나서 금세 사회를 맡게 됐다.”고 회상했다. ●어린 단원들 호적에 올려 자식 돌보듯 60년대 초반은 서커스단의 전성기였다.그는 천성적인 끼와 외모,성실함으로 몇 년 만에 최고의 서커스단인 동춘에서 주연 배우 겸 사회자로 올라설 수 있었다.한때 TV 탤런트로도 진출했지만 ‘의리’ 때문에 다시 동춘으로 돌아왔다.박동수씨의 양아들이 되고서는 동춘 서커스단에 그의 인생을 완전히 맡겼다.지금까지 그의 옆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던 부인 신경옥(53)씨도 서커스장에서 인연이 닿았다.60년대 말 서커스가 TV에 밀려 하향세를 타기 시작한 이후에도 동춘은 그의 실질적인 고향이었다.명절 때 경주 본가에 들러도 하루 이상 머문 적이 없었다.어린 단원들은 그의 양아들로 호적에 올리고 자식처럼 대했다.그도 단 한번의 외도는 있었다.결혼 후 화장품사업에 나서 큰돈을 벌기도 했다.하지만 박동춘 단장이 사망한 뒤 ‘동춘이 파산하게 됐다.’는 소문을 듣고는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커스는 점점 외면받고 있었다.한때 30여개에 이르던 서커스단은 서너개만 빼고 모두 문을 닫았다.동춘 역시 해체 위기에 빠졌다.서커스단의 마스코트이자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였던 코끼리 제니도 지난 81년 겨울,광주에서 영하 20도의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그래도 동물을 다시 살 돈이 없었다. “2개월 동안 같이 먹고 자며 링거와 항생제를 보통 사람의 30배 이상 놓아줬지만 결국 살리지 못했습니다.제니를 차디찬 땅에 두고 발길을 옮길 수가 없었어요.그래서 박제를 해 서커스단 옆에 항상 두고 있지요.” ●서커스 전용극장서 사회 보는게 꿈 하지만 동춘은 죽지 않았다.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회생하기 수차례.동생,친구,아내 등 주위의 희생도 큰 힘이 돼 생명을 이어갔다.박 단장은 나라가 버려 놓은 동춘을 국민들이 살려 줬다고 여긴다.그래서 공연 시작 때마다 “여러분이 내신 돈은 단순한 입장료가 아니다.바로 동춘서커스 후원금이다.이 돈으로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는 세계 최고의 서커스를 선사하겠다.”고 말하곤 한다. 그의 희망은 2005년 완공 목표로 올해경기도 부천에서 착공되는 서커스 전용극장에서 사회를 보는 것.단원들이 안정적으로 첨단 시설의 전용극장에서 공연을 펼친다면 세계 유수의 서커스단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서커스 중흥기’를 맞이할 것으로 기대한다.그리고 마음 놓고 동춘을 맡길 수 있는 ‘똑바른 후계자’ 하나 나타나는 것이다.여유가 된다면 고향에 집안의 유물들을 간수할 집을 마련했으면 하는 소망도 있다.올해 2학기부터 강단에도 서게 된다.서커스 곡예가 격렬한 현대무용인 아크로바트와 유사한 점이 많아 서울예전에서 현대무용을 가르칠 예정이다. 박 단장은 “내 돈 들어가고 주위 사람들만 힘들게 하는 서커스를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예전에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서커스장을 찾았을 법한 아들이 세월이 흘러 백발이 성성한 어머니를 업고 다시 찾아와 함께 웃는 모습을 뒤로 한 채 떠날 수 없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서 피에로처럼 꿋꿋하게 지켜왔던 40년 ‘광대 인생’의 자부심이 배어나왔다. 이두걸기자 douzirl@
  • [괴짜인생 별난세상] ‘황칠박사’ 정순태씨

    산을 유달리 좋아했던 한 사람의 집념이 200년동안 야산에묻혔던 보물 황칠(黃漆)나무를 되살렸다. ‘황칠 박사’로 통하는 정순태(54·전남 해남군 마산면 상등리)씨.산속 생활 10여 년,밤잠 설쳐가며 기록을 뒤지고 부르터진 손끝 아물날 없이 황칠나무에 매달려온 산(山) 사람이다. 지난 90년까지 정씨의 일터는 서울 경동시장이었다.타고난눈썰미와 손재주를 밑천으로 뛰어든 사업은 탄탄대로를 달렸다.결혼식 폐백 닭이 그의 주특기 품목.무섭게 입소문을 타며 가게도 2개로 늘었다.폭주하는 주문량을 소화하지 못할정도였고 푹 자보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다. “그렇지만 항상 산생활을 꿈꾸며 살아왔어요.오래전에 작고하신 부친도 ‘너는 평생 산에서나 살아라’라고 말할 정도로 산을 좋아했으니까요.” 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잘 나가던 사업을 정리하고 준비해온 밑그림을 실천에 옮겼다.‘난대림(暖帶林)의 보고’인 한반도 남쪽 땅끝으로 가기로 결심했다.친구를 통해 눈여겨 봐둔 산속 야산 2만여평이 새로운 삶의 터전이다.가족들을 설득하는데애를 먹었고 아내보다는 학교 다니는 두 아이에게 더욱 미안했다.정씨는 이렇게 자청해서 고생길로 들어섰다. 산막을 지어 ‘아침재’라는 문패를 달았다.황칠 묘목 생산에서 보급,수액의 쓰임새와 제품화·부가가치 등을 직접 연구해온 곳이다. 그는 새벽부터 발품을 팔아 서·남해안 일대를 샅샅이 훑었다.완도 보길도,진도 첨찰산,해남 두륜산 등 바닷가 일대 19곳에서 황칠나무 자생지를 확인했다.동·서양을 넘나드는 해박한 논리도 타고난 부지런함에서 비롯됐다.실패를 거듭한끝에 씨앗으로 어린 묘목을 대량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정씨가 황칠을 접하게 된 것은 한학자인 부친의 유고(遺稿)를 정리하면서다.다산 정약용 선생의 ‘황칠’이란 시를 읽고 무릎을 쳤다.천금목(千金木)이니,안식향(安息香)이니 하는 대목에 빠져 들었다. 황칠나무는 중국 진시황이 동방에서 구했다는 ‘불로초’라는 중국 문헌(영파사지)의 기록을 두 군데서 발견했다.또 통일신라 때 청해진(완도)을 근거지로 바다를 제패한 장보고의 최상 교역품도 황칠 수액이었다.정복자 칭기스칸의 황금투구와 이동막사인 오르도,중국 자금성 태화전의 옥좌와 좌대,벽면이 모두 조선의 황칠로 돼 있고 햇볕을 받으면 황금처럼 빛이 난다는 것 등. 이처럼 보물나무인 황칠나무는 우리민족에게는 악의 나무였다.칭기스칸(1160년)에 이어 자금성 완공(1400년)까지 300년 가까이 중국 황실에 대한 공납의 폐해가 극에 달해 극심한민폐를 끼쳤기 때문이다. 현재 황칠나무 쓰임새는 크게 다섯가지다.염료(물감),도료(니스),향료(음식에 맛을 더함),전자파 차단제,신약 등이다. 얼마전까지도 “행정기관이나 농민들은 당장 수익이 나지않는다는 이유로 황칠나무에 고개를 저었다.”고 말한다. 황칠은 중국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고 거대 중국뿐 아니라세계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과학적 분석이 잇따르면서 신문과 방송도 적잖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제 황칠 수액의 약리성분을 활용한 제품 개발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독불장군처럼 무모해 보이기만 하던 그의 신념과노력이 영글고 있다. 정씨는 “말레이시아 국민을 먹여 살린 나무가 고무나무다. 우리황칠나무는 고무나무보다 더 부가가치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061-535-1181)해남 남기창기자 kcnam@
  • 한학자 성백효 교수 중국고전 첫 전문가용 번역

    ‘초등학교 문턱도 넘어보지 못한 교수님’‘전국 각 대학에서 쓰이는 한문학 교재의 저자’. 한문학에 약간의 관심만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말하려는지 금방 눈치챌 것이다.한학자 성백효(成百曉·57) 민족문화추진회 교수.우리나라 중국고전 번역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古文眞寶 前集(고문진보 전집)’을 국역해 내놓았다. 중국 송나라 때 엮은 고문진보는 ‘한문학의 보배’만을모아놓은 책.전집은 한시집(漢詩集),후집(後集)은 산문집이다.고문진보는 이전에도 많이 번역돼 읽혀져 왔지만 성백효 교수의 이번 책은 우리 선학들의 주설(註說)을 일일이 찾아내 풀이하고 각 작품마다 감상과 분석을 겸한 ‘상석’(賞析)을 덧붙여 고전 번역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일본에선 한문 번역이 이를 읽는 대상에 따라 3단계로나뉘어 이루어집니다.한문을 전혀 모르는 사람,한문을 잘아는 일반인,한문을 전공하는 학자가 각각 그 대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지금까지 1,2단계 번역만 이루어졌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3단계 번역,즉 ‘연구번역’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이번 책은 사단법인 전통문화연구회가 1990년부터 십여권을 간행해온 ‘동양고전 역주총서’의 정부지원 첫 성과물이다.지금까지 중국고전 번역은 일반출판사의 영리목적으로 또는 대학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오역(誤譯)이 심해 동양고전을 기초로 하는 한국학연구에 장애가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이에 따라 정부는 동양고전국역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전통문화연구회의 국역사업 10개년 (2001∼2010)계획을 지난해부터 집중지원하고 있다.10년간 70여억 원을 들여 총 69종 157책을 연구번역 형태로 국역할 예정이다. 성 교수는 이번 사업에서 고문진보 이외에도 송나라 성리학 대가 주희의 ‘근사록(近思錄)’과 송대 이전의 수양록을 뽑은 책 ‘심경(心經)’을 번역할 예정이다. 성 교수는 서양교육 없이 전통적 서당교육만 받은 몇 안되는 한학자중 한 명이다.그중 중국고전 국역분야에선 최고봉으로 꼽힌다.전통문화연구회 이계황(李啓晃)회장은 성 교수를 ‘일찌기 한문의 문리(文理)를 깨우친 학자’라고 평한다.중국 고전의 맥을 훤히 꿰뚫고 있어 오역이 거의없다는 것.각 대학에서 성 교수의 책을 교재를 쓰는 것도여기에 까닭이 있다. “한학을 하셨던 부친으로부터 여섯살때 천자문을 배웠습니다.그뒤로 동몽선습,격몽요결,소학,사서삼경(四書三經)를 뗐지요.배운 것을 줄줄 외우지 않으면 진도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18세 이후엔 ‘집에선 더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말한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직접 스승을 찾아나섰다.전북 익산의 월곡(月谷) 황경연(黃璟淵),정읍의 서암(瑞巖) 김희진(金熙鎭) 선생 밑에서 그는 성리학적 관점에서 유교경전과동양고전을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을 거쳤다.국역능력은 77년 민족문화추진회 연수부에 입학하면서 집중적으로 키웠다.임창순(任昌淳),성낙훈(成樂薰) 선생 등이 은사였다. 성 교수는 이후 78년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시작으로‘동사강목’‘다산시문집’등 굵직한 조선 후기 실학 고전들을 번역하는 한편 초학자들을 위한 번역작업으로 ‘사서삼경’을 완역하는 등 무려 50여권을 번역했다.특히 그가 번역한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사서집주(集註)’는한문책으로는 드물게 10만권 이상 팔릴 정도로 스테디셀러가 됨으로써 전국적인 명성까지 얻게 됐다. 그는 요즘 한글전용이니 하는 말들이 하나는 알고 둘은모르는 소리라고 지적했다.우리문화의 기저엔 한문이,중국고전이 자리잡고 있는 데 이를 애써 외면하려 한다는 것이다.그는 우리나라가 동양삼국중 한국학 연구가 가장 부진한 이유도 한문고전 독해력이 낮은 데 있다고 지적했다. “한문해독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요.기초가 부족하다 보니 요즘 대학에선 논어에 나오는 문장 몇줄 배우고 ‘논어를 뗐네’하는 식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지요.사실 기초한자도 제대로 모르는 학생들에게 사서삼경을 가르치는 건 ‘임신도 하지 않고 애를 낳으라는 것’과 마찬가집니다.수능시험에 별도의 한문과목을 포함시켜서라도 한자 기초교육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임창용기자 sdragon@
  • “北단군릉·선사유적 조작”방북 임효재 서울대교수 주장

    남한측 고고학자의 현장 조사결과 북한 단군릉과 평양 인근의 일부 선사시대 유적지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던 임효재(任孝宰·한국선사고고학회장) 서울대 교수는 7일 “북한이 신석기시대에 축조됐다고 주장하는 단군릉은 고구려 장군총과 비슷한 적석분 형태로 도저히 신석기시대의 것으로볼 수 없었다.”는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상당수 남측 인사들이 단군릉 등을 탐방했지만 남한 전문 고고학자로 단군릉과 선사유물들을 직접 탐방·조사하기는 임 교수가 처음이다.그간 북한 단군릉과 일부 선사시대 유물의 조작 가능성이 ‘추론’에 의해 제기돼 왔지만 임 교수가 이를 직접 확인함으로써 조작론에 한층 무게가 실리게 됐다. 임 교수는 우선 북한이 주장하는 단군릉 형태가 4세기경돌로 축조된 적석총인 고구려 장군총과 흡사한 점으로 볼때 5000년 전 신석기시대에 축조된 무덤으로는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신석기시대 무덤은 흙으로 된 토분이 일반적이라는 게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그는 또 단군릉 일대의 고인돌이 기원전 1000년 이후의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데도 북한측은 2000년이나 앞당겨 그들의 ‘단군 고조선시대’의 것으로 꿰어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지난 93년 단군릉을 공개하면서 단군 고조선시대가 기원전 3000여년 전에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임 교수는 평양시 대동강 동편 강동군에 있는구석기 유적지 검은모루동굴의 유물들이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즉 구석기 유물과 비슷한 자연석을 구해 전시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북한측은 대동강 일대를 세계 4대문명 발상지에 추가해놓고 이를 위한 입증작업을 벌여왔다.”며 “단군릉과 검은모루동굴 유물들도 그러한 의도에서 시대를끌어올리거나 맞추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작됐을 가능성이크다.”고 말했다. 이번 임 교수의 방북은 서울시 강동구가 오는 10월 개최할 예정인 제4회 암사동 국제선사문화심포지엄과 관련된것으로 임 교수와 동행한 김충환(金忠環) 강동구청장은 북한학자 참여문제를 협의한 것으로알려졌다. 임창용기자 sdragon@
  • 에듀토피아/ 都心 체험서당 속속 등장

    “父生我身(부생아신)母鞠吾身(모국오신)恩高如天(은고여천)德厚似地(덕후사지)…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셨으니 은혜는 하늘처럼 높고 땅처럼 깊으시니라.” 26일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산수유마을 도립서당.‘기와집 교실’에서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학생들이 훈장 선생님을 따라 ‘사자소학’을 낭낭한 목소리로 읊고 있었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서울,강릉,수원 등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50여명의 학생들은 겨울방학 동안 보름간 숙식을 함께 하며 서당공부와 예절교육을 받는다. 한재홍 훈장(40) 등 3형제는 정규교육 대신 서당공부를한 정통 한학자 집안 출신.3형제 중 막내동생 재훈씨(30)씨만이 검정고시를 거쳐 고려대 동양철학과에 다니고 있다. 한 훈장은 “한문교육은 글 따로,지식 따로 가르치는 학교교육과는 달리 글을 배우며 심성을 닦고 생활의 지혜를길러준다”면서 “한번의 체험으로는 부족하겠지만 스펀지가 서서히 물기를 빨아들이듯 훗날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할아버지의 권유로 왔다는 이송이양(서울 용곡초등 3년)은 “훈장님이 회초리를 들 때면 무섭지만 서당체험이 신기하기만 하다”며 즐거워했다. 최근 서울,부산,광주 등에서는 도립서당과 같은 옛날식서당교육을 가르치는 기관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한문이 영어나 컴퓨터에 밀리고 있는게 현실이지만 서당교육은 지식 전수에 치우친 학교교육의 공백을 메워준다는게 장점으로 꼽힌다.학교수업에서는 교사가 학생 개인의수준이 아닌 교과진도에 맞추지만 서당교육은 전인교육을중시하고 1대1 개별지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당이 새롭게 부상하는 이유로는 한글의 70% 이상이 한자어이기 때문에 국어공부의 기초가 된다는 점과 최근에불기 시작한 중국어 열풍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이런 까닭에 최근 아이들을 보낼만한 서당을 수소문하는 학부모들이 부쩍 늘어났다. 인천에서 심전경작(心田耕作)서당을 운영하는 송우영 훈장은 “요즘 아이들은 너무 똑똑하고 풍요로운게 문제”라면서 “무릎꿇고 불편한 곳에서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성품 수양에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아들 인화(14)군을 중학교에 보내지 않고 한학을 공부하게 했다는 송 훈장은 “사제간의 예절을 중시하는 서당의1대1 교습방식은 글 공부 뿐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기본을 배울 수 있어 매우 소중하다”고 덧붙였다. 훈장들은 “학부모들이 집에서 자녀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다 보면 상형문자가 어떤 모양을 본따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서 “이같은 과정을 통해 자녀들에게 창의성과 사고력을 길러줄 수 있게 된다”며 서당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경기도 일대에서 서당식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는경기도 이천 도립서당(031-634-3357),서울 갈현동 서당(02-355-1710),시습재 (02-2649-5412) 등이 있다. 허윤주기자 rara@. ■추천 할만한 한자CD. ◆한자성의 비밀Ⅱ(웅진미디어)지루하기 쉬운 한자공부를재미있는 어드벤처 게임 형식으로 꾸몄다.총 20단계로 2,000자가 수록돼 있으며 음,뜻,부수,획수,단어별로 찾을 수있도록 한자사전도 담겨있다.‘원리를 찾아서’에서는 상형문자의 유래를 그림으로 보여준다.‘고사성어’에서는고사성어가 나오게 된 배경을 들려준다. ◆이판사판 한자퍼즐(도서출판 매일정보)가로세로 퍼즐 형식을 이용해 흥미롭게 배울 수 있다.문제를 풀 때마다 점수가 올라가고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자동차,보석,비행기,오토바이 등의 ‘보너스’ 사진도 감상할 수 있다.실용한자가 많은 신문기사를 다수 수록해 기사를 읽으며 공부를할 수 있게 한 점이 독특하다. ◆아리수 한자교실(아리수미디어)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캐릭터와 게임을 등장시켜 흥미를 갖고 한자의 기초를 다지는 데 도움을 준다.한자 교본을 이용한 단순한 쓰기에서벗어나 멀티미디어의 기능을 활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학습할 수 있게 구성했다. ◆한자서당(삼성전자)초·중·고생들이 알아야 할 1,800개의 한자를 담고 있는 한자학습사전.애니메이션 등을 활용하여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됐다.한자에 대한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이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 허윤주기자
  • ‘한 우물 인생’은 아름답다

    ■한길을 가야 인생이 보인다/한빛. 한 길을 걷는 것은 아름답다.그래서 ‘영원한 혁명가’ 체게바라의 평전이 지난 해 공전의 히트를 쳤고 칼 마르크스를 다룬 책들이 꾸준히 반응을 얻고 있을 것이다. 눈빛이 내놓은 ‘한 길을 가야 인생이 보인다’에 눈길이가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더구나 ‘외곬 인생’의등장 인물들이 우리와 동시대의 사람들인데다 대부분이 일반인에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 ‘눈빛’을 빛나게 하는 책이다. 책을 열면 다양한 직업의 인물들과 만날 수 있다.산악인,한학자,법학자,카메라 수리기사,고지도 연구가,웨이터 등.주인공들은 ‘한 우물 인생’으로 은은한 빛을 내고 있다. 몇가지 사연만 ?f어보자. ‘11시에 만납시다’라는 프로그램을 10여년 진행하면서 이 땅의 내로라 하는 인사 2,000여명을 만난 김동건 아나운서가 가장 인상 깊에 남은 사람을 질문받고는 한 할머니를 꼽았다고 한다.전라도 두메산골에서 삼베를 짜는 오배분 할머니였다.그가 들려주는 삶은 한편의 소설이고 그가 도달한곳은 “베가 나하고 말을 한다”는 ‘달인의 경지’다. 덧없는 인생을 의미있게 채운 인생은 또 있다. 열여덟살에 시계 수리를 시작하여 칠십여년 동안 외길을 걸어온 이원삼 할아버지.페이지를 계속 열면 ‘한국 시계수리의 역사’를 대변하는 그의 지난 날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서당에서 소학을 배우고 찢어지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만 마친 소년이 집안의 밥줄을 잇기 위해 시계 기술을 배우게 되는 애틋한 이력이 굴비처럼 줄줄이 엮여 나온다.그 바닥엔 “시계 수리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닐까”라는 우직한새끼줄이 버티고 있다. 이렇듯 ‘한 길…’은 각 분야에서 한 눈 팔지 않고 자기길을 걸어온 전문가들을 취재한 기록이다.그 속에는 한국의자생식물 연구에 평생을 바친 ‘농부’,대학교수직을 떨쳐버리고 오로지 그릇만을 굽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 도예가 등이 들어 있다. 모두 돈이나 명예보다는 자신의 ‘애정’을 선택하고 묵묵히 그 길을 걸어온 열정이 배어난다.그러기에 대개는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열정과 활력을 보여준다. 눈빛의‘외길 인생 탐구’는 이번에 20명의 ‘아름다운 고집’을 들려준 데 이어 다음 편에 20명의 ‘감동’을 준비하고 있다.7,500원. 이종수기자 vielee@. ■외길 걸어온 두 외국인 평전. 최근 나온 두 권의 외국인 평전도 외곬으로 파고든 삶이란공통점이 있다. 먼저 ‘나는 내가 아니다’(우물이 있는 집)는 정신분석학의사로서의 명성을 뒤로 한 채 알제리 독립투쟁에 온 몸을바친 프란츠 파농의 일대기를 다루었다.‘대지의 저주 받은자들’로 80년대 운동권의 정서를 촉촉하게 적셨던 파농은흑인해방운동의 선구자였다.25년 프랑스 식민지에서 태어났지만 기득권을 상징하는 프랑스 국적을 버리고 같은 피부색의 영혼을 해방시키려 했던 그의 ‘불꽃 삶’이 가족들의 생생한 증언에 힘입어 되살아 난다. 파농은 “나는 몸을 아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소”라는 신념을 실천하듯 36세의 나이에 세상을 달리했다.하지만 그삶을 기리려는 지은이 패트릭 엘렌의 5년 동안의 노력에 힘입어 현재형으로 살아났다.1만1,000원. ‘생명의 느낌’(양문)은 남성중심의 과학계에서 유전학의 발전에 헌신한 여성 과학자 바바라 매클린 톡의 전기다. 이 책은 1902년 태어나 여성이 과학을 한다는 사실만으로기이하게 여기던 풍조를 아랑곳 않고,최소한의 생계비를 걱정하면서도 생명이 깃든 과학을 찾아나간 그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나아가 과학 지상주의,지배 위주의 과학이 판을 치던 패러다임과 당당히 맞선데서 그의 향기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어떤 상을 받았고,무슨 특허로 돈을 얼만큼 벌었고,얼마짜리 프로젝트를 따낸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던 제도권과학계를 꼬집으며 ‘생명’자체에 의미를 두고 연구활동을지속했다. 그의 이런 일관된 삶은 83년 여성 단독으로는 처음인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으로 보답받았다.1만2,000원.
  • 오리작가 이강소 개인전

    ‘진정한 의미의 현대적 문인화’.오리그림으로 잘 알려진 화가 이강소(58)의 최근 작품에는 이런 평가가 따른다.서울 청담동 카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을 보면 그런 지적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의 그림엔 뭔가 한국적인 정신세계가 담겨 있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직접 그린 벽화를 포함,50여점의 신작이 나와 있다.오리라든가 나룻배,집과 같은 구상적인 요소들은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절제돼 있다.자연으로부터받은 느낌들을 정제해 특유의 선과 여백으로 표현했다.작가는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캔버스 위에 붓자국과얼룩을 남긴다.일찍이 중국의 왕희지가 오리의 형태와 율동을 보면서 행서를 만들어냈듯이 그 또한 특유의 붓놀림으로 획과 선을 창조한다.이것은 그가 한학자이자 서예에 조예가 깊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자란 것과 무관하지 않다.하지만 그의 획은 동양의 서체와 같은 규범을 따르기 보다는 추상표현주의적인 요소가 더 강하다. 전시는 16일까지.(02)511-0668. 김종면기자 jmkim@
  •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 금속활자장 오국진씨

    국내 유일의 금속활자장으로 중요무형문화재 101호인 오국진(吳國鎭·57·충북 청주시)씨는 요즘들어 전에 없는 혼신을 다하고 있다. 청주시가 96년 고인쇄전수관으로 지정,자신에게 관리를 맡긴 옛 수동 동사무소를 작업장으로 삼아 직지심체요절(직지) 상권을 목판본으로 복원하고 이를 금속활자본으로 재현하는 작업에 몰두중인 것. 여주 취암사본인 목판본 직지 상권의 복원을 위해 가로 20㎝,세로 40㎝크기의 판본 43매를 제작중이다.이와함께 금속활자본으로 전해져 오는 직지 하권을 토대로 직지 상권도금속활자본으로 복원하기 위해 7,000여자(字)를 밀랍주조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연말까지 평생의 역작을 마쳐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서 뜻하지 않게 뇌경색이 찾아왔다. 2달전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절망적이었으나 양·한방 치료를 받은뒤 다행히 거동은 할 수 있는 상태다. 44년 청원군 현도면 한학자의 집에서 출생한 그는 ‘금석문을 연구하는 것이 서예’라는 자신의 말처럼 일찍부터 서각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72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도서전시회에서 나온 청주에서 인쇄된 직지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는 보고내용은 그에게 충격이고 동시에 운명이었다.그는 특히 당시서방 학계에서 직지의 금속활자본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대두되자 금속활자본 복원을 자신의 평생의 업으로 택했다. 86년 오씨가 밀랍주조법으로 직지 하권의 첫장을 완벽하게복원해내자 직지 금속활자에 대한 진위논쟁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96년 직지 하권 전체를 완전복원한 그는 같은해 금속활자장으로 인간문화재에 지정됐다. 현재 이곳 고인쇄전수관에서는 40대 초반의 맹찬균(40) 임인호(40)씨와 오씨 아들 춘영(30)씨 등 대여섯명이 금속활자 인쇄술을 배우고 있다.오씨는 “이 조그만 청주에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 인쇄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랑스럽고 흥분된다”며 “그러나 할일은 많은데 몸이 말을 안들어큰일”이라고 걱정했다.연락처 (043)223-0548. 청주 김동진기자 kdj@
  • “먹의 농담-운필에 무게 둔우리글꼴 작품화”

    “95년 독일 베를린교통기술박물관에서 ‘문자의 역사’전을 열면서 한글문자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고암 이응노선생의 ‘서예적 문자추상’에 영향받은 것은 아닙니다.먹의 농담과 운필에 무게를 둔 우리 글꼴을 응용한 작품을 남기고 싶어요.” 한국화가 황인혜(55)는 화단에 그 이름을 드날리는 인기작가는 아니다.하지만 작품에만 매달려온 성실한 전업작가다.7일부터 19일까지 연세대 100주년기념관에서 개인전을 여는그는 “우리 글꼴과의 만남은 내 그림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황인혜는 일찍이 붓맛의 오묘함을 터득한 화가다.여섯 살 때부터 서예를 배워 전·예·진·행·초오체(五體)에 능하다.한학자이자 서화가였던 아버지(의제 황기식)로부터 받은 영향이 무엇보다 컸다는 게 그의 말.“나의 기하학적 추상그림은 흑과 백,색면과 윤곽선 등이 바탕을 이룹니다.거기에다 매듭공예로 만든 단추를 오브제로 활용하지요.내게 단추는 어머니의 품에 대한 그리움을 뜻합니다. ”황씨는 7월말쯤엔 모로코에서 열리는 ‘아실라’문화축제에 한국화가로는 처음 참가할 계획이다.
  • 월간 ‘민족21’ 창간 화제

    ‘남북이 함께 만들고,함께 읽는’잡지가 최근 창간돼 화제다.불과 몇년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다.지난 17일창간호를 선보인 이 잡지의 제호는 월간 ‘민족21’.종래의 북한 관련 잡지가 대개 관변에서 나온 학술용이었다면‘민족21’은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점이 다르다.남북관계,통일문제,민족·역사문제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다룰 예정이다. 잡지의 발행인은 최근 상지대 총장으로 부임한 강만길 전고려대 명예교수. 편집장은 진보적인 시사지 ‘월간 말’의 기자출신으로 지난해 대한매일에서 객원기자로도 활동한 신준영씨다.신편집장은 6차례 방북취재를 한 바 있으며,북한 내에 광범위한 취재인맥을 가진 북한전문기자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지난해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북화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7,000만 겨레의 마음을 이어경의선처럼 교류의 다리가 되겠습니다.통일에 앞서 남북이함께하는 민족정론지가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신편집장은 남북 기사교류 문제와 관련,“북한의 대표적시사종합지인 ‘민족대단결’(계간)과 정식으로 기사교류문제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며 “두달에 한번 정도 방북취재를 하거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기관지 ‘조선신보’평양지국 특파원들의 현지 취재 기사를 실을 계획”이라고 말했다.창간호에는 조선신보 김지영(35)평양특파원의 기사를 선보였다. 그동안 한정적으로 남북간에 매체 반입·반출이 있어 왔으나 ‘민족21’은 공개적으로 북한에 보낼 계획이다.신편집장은 “매달 ‘민족21’을 평양으로 배달하기로 해 이미통일부에 창간호의 ‘대북 물자반출 허가’를 신청해 놓은 상태”라며 “앞으로 ‘민족21’은 남의 ‘국민’과 북의 ‘인민’이 함께 읽는 명실상부한 민족언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북으로 배달할 잡지 양과 관련,박충열 대표이사는 “대북 물자 반출은 통일부의 허가 사항이어서 아직 반출량을 말할 입장이 아니다”며 “그러나 당국의 허가가 나는대로 매월 허가범위 내에서 지속적으로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족21’은 편집장을 포함,기자 6명(취재4,사진1)으로시작했다.그러나 이들 주위에는 북한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세계 최초로 북한 김정일 위원장을 단독 인터뷰한재미언론인 문명자씨가 고문으로,강정구 동국대 교수,손장래 현대모비스 상임고문(민화협 상임공동의장·전 말레이시아 대사),김자동 전 민족일보 기자,김용태 민예총 사무총장 등이 지도위원으로,도진순 창원대 교수,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편집기획위원으로 참여했다. ‘민족21’의 창간자금은 통일운동가이자 한학자인 고 임창순의 유지에 따라 설립된 청명문화재단(이사장 강만길)이 후원하고 386세대 기업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보태 마련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공직인맥 열전](5)행정자치부.중

    중앙부처 ‘국장’은 공직사회의 꽃으로 비유된다.여비서와 별도의사무실,과장들로 구성된 참모진이 국장을 보좌한다.행정고시 출신이라도 중앙부처 보직 국장을 맡지 못하고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행정자치부는 현재 6국 7관 44과로 구성돼 있다.행자부 소속 공무원은 본부 774명,소속기관 1,486명 등 총 2,260명이다.이들 중 국장급2급 공직자는 26명이다. 행자부 국장 중에서도 자치행정국장과 인사국장은 요직으로 분류된다.자치행정국장은 한때 재무부 이재국장,총무처 인사국장과 함께 정부부처 3대 국장으로 불렸다. 현재 이 자리는 김지순 국장이 맡고 있다.경북 영덕 출신인 김 국장은 재정세제국장과 민방위재난국장 등 본부 국장을 세번이나 지낸 ‘행운아’다.한학자 후손답게 맺고 끊음이 정확하며 보스기질도 강하다. 김주섭 인사국장은 중앙부처 공무원 인사를 총괄하고 있다.인사 및고시전문가인 김 국장은 총무처에서 잔뼈가 굵었다. 자치단체의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김주현 지방재정세제국장은 시장·군수를 모두 역임한 지역행정 전문가다.본부내 국장급 중 술이 가장 세고 직원들에게도 자상한 면이 있다. 전남 여천 출신인 황인수 행정관리국장은 전형적인 학자풍이다.내성적이어서 추진력이 미흡하다는 평가도 있다. 한계수 민방위재난관리국장은 전북도 기획관리실장으로 있다가 올 2월 현직을 맡았다.최근 이사관으로 승진,경사가 겹쳤다. 2만3,000여 소방공무원의 ‘총수’인 신주영 소방국장은 그야말로입지전적인 인물이다.고등학교가 최종학력이지만 소방간부 1기로 공직에 들어와 항상 선두그룹을 유지했다.업무에 밝고 일에 대한 열정이 뛰어나다. 장인태 공보관은 덕장으로 알려져 있다.뚝심이 있으면서도 부하직원들을 잘 챙기는 스타일이다.행자부 요직을 두루 거쳐 업무에도 밝은편이다. 육사 25기 출신으로 사관특채 1기인 김호길 의정관은 의정및 상훈을 책임지고 있다.김 의정관은 부하직원들에게 인기가 있다. 정국환 행정정보화계획관과 남효채 복무감사관은 개방형 채용을 통해 행자부에 들어온 케이스다.정 계획관은 미국 워싱턴대에서 계량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이고,남 감사관은 행시 13회 출신으로 정부기록보존소장으로 있다가 응모해 채용됐다. 행자부내 기술직의 대부인 박성득 방재관은 9급 토목직으로 들어와국장급까지 승진한 인물.기술직의 계보가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방재 기술의 달인이다. 지난 7월 이사관으로 승진한 박승주 제2건국운동지원단장은 머리회전이 빠른 것으로 정평나 있다.초반부에는 진급이 늦었다가 최근 고속승진을 하고 있는 편이다. 국민고충처리위에 파견나가 있는 박재택 조사2국장은 의정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비고시 출신(7급 공채)이면서도 업무능력은 뒤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는다. 정부전산정보관리소장인 정택현 이사관은 호탕하면서 장악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고,최근 제주도 기획관리실장직에서 제주4·3사건처리지원단장직을 맡은 김한욱 단장은 일처리가 깔끔하다는 평이다. 부이사관인 권강웅 지방세제심의관은 지방세제에 관한 한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 전문가다.호탕한 성격이면서도 꼼꼼한 세제문제를 깔끔하게 처리,국세청이나 기획예산처에서도 지방세제에 대해서는 자문을 구할 정도다. 국장급 못지 않은 주요 과장의 면면을 보면 우선 김채용 총무과장이 눈에 띈다.9급 면서기 출신으로 지금에 이른 그는 한번 인연을 맺으면 평생 잊지 않는 의리파다.일처리도 정확해 김기재 장관에 이어 최인기 장관까지 2대에 걸쳐 총무과장이란 중책을 맡고 있다. 지방인사를 총괄,한때 최고 요직이었던 행정과장 자리는 이상복 과장이 앉아 있다.행시 22회인 그는 자상하면서 업무처리가 매끄럽다. 홍성추기자 sch8@
  • 金대통령 노벨평화상 받던날… 고향 하의도 표정

    “하늘이 돕지 않으면 커다란 영광을 두번씩이나 주시겠습니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소식이 전해진 13일 오후 6시 김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 마을 일대는 일순간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농번기를 맞아 추수를 마치고 그대로 김대통령의 생가(후광리 1구 121번지)에 모여든 주민들은 “대통령 만세,하의도 만세”를 외치며덩실덩실 어깨춤을 췄다. 섬마을에 어둠이 내리고 후광리와 인근 대리·웅곡리·어운리 등지의 농악팀이 속속 생가로 모여들면서 잔치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주민들은 곧바로 돼지를 잡고 막걸리를 돌리며 김대통령의 평화상수상을 축하하느라 밤이 지새는 줄 몰랐다. 전날 해상에 내려진 태풍주의보로 끊겼던 뱃길이 이날부터 이어지면서 목포에서 준비한 경축 플래카드가 마을 어귀와 생가 주변 등에 내걸려 축제분위기를 북돋웠다. 후광리 이장 김종기(金琮琪·60)씨는 “노벨 평화상 발표시기가 임박해 오면서 97년 대선 결과 발표 때처럼 밤잠을 설쳤다”며 “대통령 탄생에 이은 이번 두번째 경사는 고향의 영광이자 21세기를 맞아이 나라의 장래를 밝게 해줄 뜻깊은 ‘사건’”이라며 흥분을 감추지못했다. 김대통령의 친조카 홍선(弘宣·38·대리1구)씨는 “이번 평화상 수상으로 작은아버지가 그동안 우리나라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고초를 겪었던 일을 보상받고 통일의 초석을 놓은 훌륭한 지도자로 공인받게 돼 기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생가 주변에 모인 주민들은 김대통령의 어린시절과 민주화투쟁 과정등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며 밤을 지샜다. 이 마을 부녀회원 20여명과 이장단 등은 앞서 뱃길이 열리며 섬으로대거 몰려든 국내외 언론 취재진 등 손님 맞을 준비에 분주했다. 부녀회원들은 떡과 음식물을 만드는 등 바쁜 농사철임에도 14일 예정된 전체마을 잔치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후광리 2구 부녀회장 박명심씨(42)는 “아무리 농사일이 밀렸어도이렇게 좋은 경사를 축하하자는 회원들의 결정으로 모든 일을 팽개쳤다”며 좋아했다. 김대통령이 초등학교 시절 한학을 배웠던 ‘德鳳講堂’(대리1구) 관리인이자 이마을 좌장격인 김춘배(金春培·한학자·88)씨는 “이번평화상 수상은 온 국민과 우리나라의 큰 영예”라면서 “그러나 산적한 정치·경제적 문제와 통일준비 등으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마을 축제가 조용한 가운데 치러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축제마당이 펼쳐진 김대통령의 생가는 장남인 민주당 김홍일 의원과종친들이 밭으로 사용되던 생가터 799평을 사들여 99년 9월 건물을지었다.건물은 목조초가 6칸(18평),화장실(3평),창고(5평) 등 모두 3동으로 종친들이 지난 4월 신안군에 기부채납했다. 신안군은 이곳을 최근 향토유적 제23호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하의도 최치봉기자 cbchoi@
  • [대한광장] 홍명희 남북학술회의

    지난 7월25일 청주 예술의전당 회의실.비장한 표정으로 다음 대목을 읽는 도종환 시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마지막 부분을보자.“‘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로 시작하는 6·15남북공동선언이 한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북한당국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주실 것과 아울러남북한 학술회의가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실 것을 정중하게 청하는 바입니다.” 남한의 한 단체가 북한정부에 공식적으로 청하는장면이다.언뜻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그러나 지난 수십년간의 시난고난한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겐 격세지감을 맛보게 하는 제법 감격스런 장면이었다.거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사무친 분단의 한이 별처럼 스쳐간다. 이처럼 다소 특별한 방식으로 북한당국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하는 글의 형식을 택한 것은 ‘남북한 학술회의 준비위원회’였다.이 일은 어제오늘의 갑작스런 것이 아니라 충북 민예총소속 문인들이분단의 모순을 극복해보고자 하는 뜻으로 2년여에 걸쳐 노력해온 결과 표현으로써 학술회의다. 그런데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도 남북학술회의를 열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즉,북한의 학자를 남한으로 초청하고자 할 때 남한정부의 신변보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라.어떻게 안전판이 없이 북한학자가 남한으로 올 수 있겠는가! 북한학자와 벽초의 손자로 소설가인 홍석중이 남한정부의 최소한의 도움이 없다면 남한에 오지 못한다.도움이라는 것은 신변과 안전에 대한 보장이다. ‘남북한 학술회의 준비위원회’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제반절차를 갖춘 후,정부 각 부처에 도움을 청했다.그런데 지난 2년간 남북학술회의를 준비해오면서 느낀 점은 이렇다.무슨 사안(事案)을 설명하면 관계자들은 원칙과 절차,법규 등을 강조한다.아무 것도 모르고 그런 요청을 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때론 퉁명스럽게,때로는 친절하게 절차와 원칙을 지켜달라고 말한다. 어떤 일을 해 보고자 관계기관을 찾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하듯학술회의 준비위원회 역시 원칙이나 절차 정도는 잘 알고있다.이런상황을 비유하자면 주역을 논하러 온 사람에게 명심보감을 가르치려는 식이다.답답한 노릇이다.하여간 답변은 그런 학술회의라면 남북관계 절차가 완비되고 더 중요한 일들이 이뤄진 다음 개최하면 될 일을 왜 하필 이러한 때 하고자 하느냐는,예상대로 매우 전형적인 것이다.늘상 그러하듯 국회는 행정부로,상위기관은 하위 각 부처로,부처에선 관계 부서로 미루는 사이 세월은 구름처럼 흘러가 버린다. 문제는 정책의 우선순위와 실행의 의지일 것이다.현재 산적해 있는남북관계,즉 이산가족문제,경협문제,시드니올림픽 동시입장,면회소설치,고위급회담을 통한 절차와 법령 정비 등 눈 앞에 닥친 일들이산더미처럼 많다는 것쯤은 파고다 공원 앞의 군밤장수도 아는 일이다.거시적으로 무슨 사안에 정부가 관계할 것이냐는 물론 정부가 결정한다.그러나 그 결정이 꼭 타당했는가는 국민이 심판하며 전문가들의 견해를 새겨들어서 시행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 아니던가? 적어도 전문가들이 보기엔 언어적 이질화의 극복과 아울러 역사 문학 분야의 학문적 교류가 다른 사안들보다 덜 중요하지 않다.이런 관점의 차이가 쌓이다 보면 정부의 정책과 의지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높아지는 것은 진리 중의 진리.제한된 지면이기에 긴 설명은 줄인다. 부디 오는 10월6일 북한학자와 벽초의 손자 홍석중씨가 즐거운 마음으로 남한으로 와서 함께 남북한의 문학에 대해 토론하고 또 민족사의 전망을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해 본다.바라건대,반통일 세력의 거대한 공격이 예비돼있다느니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성사될것이라느니 하는 충무로 난전(亂廛) 왜장치는 소리는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무더위도 물러가고 천하에 낙엽이 지는 가을이다. 김 승 환 충북대교수·국문학
  • 새롭게 만나는 스테디셀러

    우리의 정신을 살찌우는 고금의 양서 두 권이 나란히 재출간되어 나왔다. 지난 80년대 ‘난쏘공’이란 애칭과 함께 사회문제 인식의 투명한 창으로애독되었던 조세희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이 출판사를 옮겨 새로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197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첫 출간된 이래 모두 134쇄,54만부 가까이 발행된 이 책은 최근 신생 출판사 이성과힘(대표 조중혁)으로 옮겨 새 모습과 함께 발행됐다.1975년 12월호 ‘문학사상’에 ‘칼날’이 발표되면서 시작된 ‘난쏘공’ 연작은 78년 여름호 ‘창작과비평’에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로 마무리된 뒤 12편의 연작 단편을 모은 소설집으로 그해 6월 단행본 출간되었다.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던 이 책은 지난 96년 최인훈의 ‘광장’과 함께 100쇄를 넘어섰으며 지금도 매년 2만부 가량 팔리고 있다. 한편 만고의 스테디셀러인 ‘삼국지’ 국역본 가운데 가장 품격높은 정통완역본이라고 할 수 있는 김구용역 ‘삼국지’ 7권이 솔출판사에서 다시 나왔다.시인이자 탁월한 한학자인 김구용의 삼국지는 70년대에 첫 선을 보였으며이번의 재간본을 위해 저자는 여러 곳을 가다듬었다.그동안 삼국지 국역본은10여 종이 달하지만 주관적인 해석을 덧붙히거나 원저를 자기 식으로 완전 재구성한 것이 상당수에 이른다.김구용의 ‘삼국지’는 정본 모종강(毛宗崗)본을 바탕으로 의역이나 줄거리의 가감없이 엄격히 번역,고지식할 정도로 정확하면서도 일면 유려한 역문이 최대의 장점으로 꼽힌다. 한 달전 ‘김구용 문학전집’(6권)을 출간했던 솔출판사는 김구용역의 ‘수호전’ ‘열국지’ ‘옥루몽’ 등을 차례로 다시 내놓을 예정이다. 김재영기자
  • KBS 신설 섹션 다큐 ‘VJ 특공대’

    세상 속 숨겨진 이야기,묻혀진 이야기를 찾아내는 섹션 다큐 'VJ특공대'(연출 최종을,진행 심혜진)가 5일 첫 선을 보인다. KBS1TV가 봄철 프로그램 개편에 따라 매주 금요일 밤 10시에 신설한 'VJ특공대'는 기존 다큐멘터리의 형식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 곳곳의 천태만상을돋보기 처럼 자세히 들여다 보는 프로그램.PD가 전담하던 제작 시스템을 오픈해 VJ(비디오 저널리스트)들이 같은 인물,같은 사건이라도 기존의 시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 입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분석한다.또 각 아이템 끝부분에는 시사만화가 박수동 화백이 날카로운 풍자만화로 볼거리를 제공한다. 5일 첫 방송에서는 '초선의원들의 국회 입성기'를 비롯,'대하사극 태조왕건의 국내 최대 촬영현장','교도소 담장 안의 준법교실 깜짝 공개', '21세기형 어린이-디지털키드 VS 댕기동자’등 4편이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초선의원들의 국회 입성기'는 4·13 총선에서 화제를 뿌리며 금배지를단 김부겸,박용호,임종석 등 초선의원들을 밀착 취재했다. '대하사극 태조 왕건의 국내 최대 촬영현장'에서는 드라마 '태조 왕건'의 숨가쁜 촬영현장의 스포트라이트 뒤의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틱 한 이야기를 공개하고,'교도소 담장 안의 준법교실 깜짝 공개'에서는 교통사고 과실범들이 수감된 수원교도소를 찾아 세상과 격리된 담장안에서 한달에 한 차례씩 열리는 교통 준법교실을 공개한다. 마지막으로 '21세기형 어린이-디지털키드 VS 댕기동자'에서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인 디지털 키드 손형규군과 명심보감과 효경을 줄줄 외며 한학자의 꿈을 키우고 있는 댕기동자 송인화군 등 두 초등학교 6학년생을 대비시켜 다양화되고 특화된 새로운 21세기형 어린이를 만나 본다. 연출을 맡은 최 PD는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다양한 문화와 그 변화를 색다른 접근 방식과 시각으로 밀착 취재해 치밀한 르포로 제작하겠다”면서 “화제의 현장과 관련 사건들의 주변 인물의 의견을 들어 뉴스에 담지 못한 뒷이야기와 화면을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김명승기자 mskim@
  • 남북한은 고구려를 왜 다르게보나

    ‘화랑세기’의 진위여부를 둘러싸고 국내 고대사학계가 열띤 논쟁을 벌였던 지난해 북한에서는 해방 이후 북한역사학계의 고구려 연구를 집대성한 ‘고구려사’(전3권)가 완간됐다. 북한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실장 손영종(73)교수박사가 집필한 이 ‘고구려사’가 지난 90년 첫 권(270쪽)이 나온 이래 97년 2권(239쪽)에 이어 지난해 마지막 3권(239쪽)이 북한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에서 출간된 것. 이 책들은 지난해말 북한서적 전문출판사인 서울의 백산자료원에 의해 복사본으로 출간됐다.총748쪽 분량의 방대한 규모인 이 책은 북한이 펼쳐온 지난 반세기 동안의 고구려사 연구결과를 집대성한 것이다. 한편 지난해 8월 서울대 국사학과 노태돈(51) 교수가 고구려사 전체를 연구대상으로 삼은 ‘고구려사 연구’(사계절)를 출간했다.거의 비슷한 시기에출간된 이 책들은 남북한 학계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어 남북한 고대사학계의 인식차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물론 이들 두 책을 평면적으로 비교하는데는 무리가 있다.우선 손영종의 책은 북한학계의공식견해를 반영한 통사(通史) 형식인 반면 노 교수의 책은순전히 개인차원의 연구성과이자 고구려의 정치·제도사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책은 역사관은 물론 역사서술 형식·내용면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우선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의 신빙성 문제의 경우 두 책 모두 초기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지만 시각은 전혀 딴 판이다. 손영종은 고구려 건국연대를 삼국사기(BC 37년)보다 200년 이상을 끌어올린,BC 277년이라고 주장하고 삼국사기의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대폭 받아들인다.반면 노 교수는 고구려 건국연대는 삼국사기를 대체로 수용하는 편이다. 이른바 ‘부(部)체제설’을 두고서는 견해가 완전히 정반대다.노 교수는 “3세기 중반까지 고구려에서는 부체제가 계속됐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손영종은 “고구려는 이미 건국초기 중앙집권 국가였다”면서 이를 부정하고 있다. 또 귀족연립정권 성립여부와 관련,노 교수는 “고구려는 6세기 중반 이후 멸망때까지 왕권이 약화되고 유력귀족들이 회의체를만들어 권력을 나눠 가진귀족연립정권기였다”고 주장하였으나 손영종은 “이같은 주장은 일제 어용사가들이 고구려의 강대성·선진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고의로 역사를 왜곡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손영종은 ‘고구려사’ 3권에서 “남한 역사학계에서 근대적 실증주의 역사학자 등으로 호평받고 있는 이마니시 류(今西龍·1875∼1931)는 일제강점기 한국사를 왜곡·말살시킨 어용식민학자”라고 규정하고 이들에게서영향받은 이병도(李丙燾) 학계(學系)의 남한학자들에 대해서도 혹독한 비판을 가하였다. 이와 관련,한 역사학자는 “고구려·발해사 등은 대다수 유물·유적과 자료가 북한지역에 남아있기 때문에 이 분야 연구는 북한의 연구성과가 남한보다 한 수 위”라면서 “특히 식민사관 극복과 관련한 북한학계의 노력은 남한학계가 본받아야할 대목”이라고 밝혔다. 정운현기자 jwh59@ **北고대사학계 2세대 대표 50년 서울대 재학중 월북 지난해 ‘고구려사’ 전3권 출간을 완료한 손영종(孫永鐘·73)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실장은 북한 고대사학계 2세대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80년대 이후 남한학자들의 논문이나 단행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왕성한 연구활동으로 국내학계에서도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주전공 분야는 고구려·발해사.지난 80년에는 조희승과 ‘발해수공업사’를함께 썼고,박영해와 공동집필한 ‘조선통사’를 지난 87년에 출간했다. 1928년 부산 태생으로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 3학년 재학중이던 50년 10월인민군에 입대,자진 월북한 손씨는 지난 90년 일본 요미우리신문사 초청 학술행사 참석차 일본에 들렀다가 40년만에 아내와 외아들 경한씨(京漢·50·변호사)를 극적상봉,화제가 됐었다. 정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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