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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8) 김도연 포스텍 총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8) 김도연 포스텍 총장

    서울의 낮 기온이 영상 20도까지 올랐던 지난 4일, 덕수궁 근처의 식당에서 만난 김도연(64) 포스텍 총장은 진 웹스터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의 주인공을 연상시켰다. “전에는 진짜로 190㎝였는데 나이 먹더니 좀 줄어든 것 같다”며 유쾌하게 웃는 그에게 척박했던 국내 공학연구의 토양을 개척하고, 교수와 행정가의 길을 거쳐 한국을 대표하는 두뇌집단인 포스텍을 이끌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들어 봤다. -“헤이, 무슈(미스터) 김. 여기 신문 좀 봐봐. 너네 나라 얘기 맞지?” 얼마 전에도 그러더니 기숙사에 같이 있는 녀석이 또다시 아침부터 자존심을 긁었다. 기사 제목이 대략 ‘한국은 세계에서 아기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였다. 버려진 한국 아기들의 해외 입양에 대한 특집기사였다. 그 프랑스인 학생이 아시아 후진국에서 온 유학생을 조롱할 목적으로 기사를 보여준 건지, 단순히 관심을 나타낸 것뿐인데 내 자격지심이 옹졸하게 받아들인 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1976~79년에 걸친 3년 반의 프랑스 유학생활 동안 나는 ‘해외에 나가면 자기 나라 국력만큼 대접받는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절감해야 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결심했다. “열심히 배워 한국으로 돌아가서 너희들이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만들어 다시 돌아오마.”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석사를 마친 1976년 초,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해외 유학은 당초 나의 인생 로드맵에 존재하지 않았다. 공부를 마치면 돈을 벌고 싶었다. 어려서 나의 장래희망은 ‘과학자’도 ‘선생님’도 아닌, 오직 ‘부자’였다. 석사 졸업을 앞두고 박사과정에 진학할지, 취업을 할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카이스트 졸업생 중 프랑스로 유학하는 학생들에게는 프랑스 정부에서 특별 장학금을 제공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당시 대한항공이 자국산 에어버스 여객기를 구매해 준 데 대한 프랑스의 정부 차원의 보답이었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그때 나와 같은 케이스로 프랑스 유학 길에 올랐다. -“돈을 벌려고 해도 석사보다는 박사 학위를 받고 와야 기회가 많이 생기지 않겠나.” 당시 프랑스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우리는 달에 못 가는 게 아니라 가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미국의 달 착륙을 평가절하했던 프랑스였다.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나중에 한국에 수출한 초고속 열차 ‘TGV’, 세계 최고의 원자력 발전 기술 등이 다 프랑스의 대학과 연구실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6개월의 프랑스어 랭귀지 스쿨을 거쳐 그해 가을 미셰린타이어 공장으로 유명한 소도시 클레르몽페랑의 블레즈파스칼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산학협력 연구학생을 자원했기 때문에 유학 생활의 대부분을 파리에 있는 르노자동차 중앙연구소에서 보냈다. 산학협력 과정을 택했던 건 기술의 현장 응용에 관심이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현지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생존 차원의 절박함 때문이기도 했다. 유학 시작 6개월 만에 한국에서 아내가 건너 왔는데, 프랑스 정부가 주는 장학금으로는 나 혼자 살아가기도 빠듯했다. 산학협력 연구학생을 하면 르노자동차에서 추가로 연구비와 생활비를 줬다. 자동차 생산공장에 딸린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다 보니 어떻게 특허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생산라인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실용적인 연구를 할 수 있었다. -평안도의 기독교 집안이었던 우리 가족은 북한 정권의 종교 탄압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왔다. 나는 1952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태어나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왔다. “공부는 반에서 중간 정도만 해라. 대신에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라.” 아버지는 중학교 선생님이셨는데,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왜 다른 집들처럼 공부하라고 얘기를 안 하시지?’ 어린 마음에 섭섭함까지 들 정도였는데, 결과적으로 그 말씀만큼은 참 잘 지켰다. 경기고 우리 교실 60명 중에 30등을 왔다 갔다 했다. 동창 중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며 천재 소리를 듣던 친구가 나노 분야 최고 전문가로 노벨물리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우리 학교의 임지순(65) 석좌교수다. -1974년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마치고 카이스트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그 당시 카이스트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대단했다. 20대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인 병역 의무가 면제됐고, 석사 과정인데도 나라에서 당시 직장인 평균 월급(4만 5000원)의 3분의1이나 되는 1만 5000원을 다달이 생활비로 보조해 줬다. 카이스트 교수들의 월급은 서울대 교수의 3배였고, 아파트도 나왔다. 외국 유학을 마치고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하면 대통령이 공항까지 관용차를 보내 줬을 정도였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1979년 7월 돌아옴과 동시에 아주대 기계공학과 조교수로 임용됐다. 그때 나이 27세. 아주대는 1971년 우리나라와 프랑스 정부의 한·불 기술초급대학 설립에 관한 협정 이행을 위해 설립된 학교였는데, 1977년 당시 김우중 대우실업 사장이 인수를 했다.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을 교수로 많이 채용했다. -아주대에서 나는 ‘빡빡이 교수’로 불렸다. 병역은 면제받았지만 3주 군사훈련은 필수였다. 귀국하고 얼마 후 훈련소에 들어갔는데, 지금과 달리 그때는 박사 학위 소지자를 거의 볼 수 없었다. “박사님이 그 정도밖에 못하나.” 남보다 한참 늦은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고 들어온 나를 훈련소 조교들이 얼마나 괴롭히던지. 훈련소를 나오고 얼마 되지 않은 그해 9월 1일 첫수업을 하러 들어왔을 때 학생들은 내가 교수라고 하자 처음에는 믿지를 않았다. 군인 머리를 한 멀대 같은 청년이 허여멀건 얼굴로 다니면 먼 발치에서도 못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교수 임용 2개월도 안 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는 ‘10·26사태’가 일어났다. 이듬해 5월까지 대 학이 문을 닫았다. 계엄령 초기에는 교수들까지 완전히 통제했는데, 얼마 후 교수들은 연구실 출입이 허용됐다. 학교 정문 앞에서 버스를 타고 연구실로 들어가는 식이었는데, 어느 날 버스에 올라온 계엄군이 출입증을 검사하더니 내 직위에 ‘조교수’로 돼 있는 걸 보고는 “야, 조교는 내려. 교수도 아닌 게 왜 여기에 타고 있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옆에 있는 다른 동료 교수가 ‘조교’가 아니라 ‘조교수’라고 말해 줘서 들어갈 수 있었다. -1982년 서울대 재료공학과에서 학과 졸업생을 교수로 유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 덕에 1969년 재료공학과 창립 이후 2회 입학생이었던 나는 서울대 교수로 옮길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서울대 이외 대학 이공계에서는 인문사회 계열처럼 그냥 강의만 이뤄졌다. 실험실이 갖춰진 대학이 거의 없었다. 절삭공구 하나 변변한 걸 찾기 힘들었다. 아주대에 있을 때도 학교에서 연구를 위한 실험은 거의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중견기업과 손잡고 기술 실용화 연구를 함께 했었다. 사실 아주대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기술회사를 창업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서울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 꿈을 버렸다. 훌륭한 학생들과 함께 좋은 논문을 쓰는 공학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비로소 하게 됐다. -당시 연구환경이 얼마나 척박했는지는 상상도 못 한다. 요즘에야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이 국내에서 연간 5만건 넘게 나오지만 서울대에 부임하던 해에는 전체 100건이 안 됐다. 제대로 된 첫 논문은 일본 정부의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 1984년 일본이 전 세계 청년 학자들을 초청해 일본 문화를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을 가졌는데, 나는 2개월 반 동안 일본무기재료연구소에 갔다. 거기서 현지 연구원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했다. 그때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서울대로 자리를 옮겨 1986년에 처음 SCI급 논문을 낼 수 있었다. -우리 사회 전체에 민주화 바람이 불던 1980년대, 대학은 그 중심에 있었다. 학생과 전투경찰이 아침에 캠퍼스에 같이 등교하던 시절이었다. 1987년 부교수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선배 교수가 연구실에 찾아와 종잇장 하나를 꺼내 놓았다. “김 교수, 여기에 사인해. 나만 믿고 그냥 하면 돼.” 그 선배가 시키는 일이라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아 흔쾌히 사인을 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서울대 교수 4·13 호헌반대’ 성명이었다. 사인을 한 다음날 모든 신문 1면을 그 기사가 장식했고, 해당 교수들 이름이 모두 실명으로 게재됐다. -아침부터 연구실 전화가 불이 났다. 가족이며 친척, 친구들이 “큰일 난 거 아니냐”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걱정은 됐지만 특별히 겁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잘리면 잘리는 거지. 그런데 해직교수가 되고 나면 나는 뭘 먹고살아야 하지? 당초 꿈대로 돈이나 벌까?’ 그러나 6·10항쟁으로 이어지는 도도한 민주화의 물결 아래 우리 서명 교수들에게 특별한 불이익을 주는 조치 같은 것은 취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수시로 어찌해 볼 수 없는 나의 현실을 한탄하며 남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다. 교내에 경찰이 들어와 제자들을 폭력적으로 체포해 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던 나는 30대 나약한 젊은 교수일 뿐이었다. 마음이 참담했고 학생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4·13 호헌반대 성명에 서명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나의 괴로움은 한층 더 컸을 것이다. -조용히 연구나 하던 사람이 2005년 갑자기 동료 교수들의 추천으로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으로 뽑혔다. 1990년대 초에도 학생 담당 부학장이라는 보직을 맡기는 했는데 공대 학장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과학 행정가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2007년까지 공대 학장을 했었는데 졸지에 2008년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를 합친 교육과학기술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됐다. 6개월 정도 하다가 그만두고 울산대 총장으로 갔다. 그러다 다시 2011년에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즐기지도 않지만 일이 주어지면 싫다고 거부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지금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학생들에게 ‘과학’과 ‘기술’은 엄연히 다르다고 강조한다. 당연히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역할도 다르다. 과학자는 ‘새로운 지식과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고 엔지니어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테크닉을 만들어 돈을 벌게 해주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는 노벨상은 엔지니어들이 받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과학자들의 영역이다. 그런 개념도 없이 매년 10월 노벨상 시즌이 되면 기술을 전공한 공학자들에게 “왜 노벨상을 받는 연구를 못 하느냐”고 질타하는 사람들이 있다.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얘기다. -충북 감곡에서 주말농장을 하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과학기술은 농사 짓는 것과 비슷하다. 씨를 뿌리고 움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빨리 채소나 과일을 먹고 싶다고 해서 씨를 뿌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계속 흙을 뒤적이거나 이제 막 싹이 텄는데 키를 키우겠다고 잡아 늘이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노벨상 수상자가 당장 몇 년 안에 나오는 것은 원치 않는다. 지금처럼 사교육이 공교육을 넘어서고, 학생들의 창의성을 북돋우지 못하는 교육을 시키는데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과학기술 정책이나 교육시스템을 지금처럼 운영해도 문제 없구나’ 하는 착각을 낳을 수밖에 없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 그리고 술이 적당히 센 편이다. ‘논어’의 ‘유주무량불급란’(唯酒無量不及亂)이란 말을 자주 인용한다. 내가 좇는 공자의 주도를 압축한 말이다. 공자의 주량은 거의 무한대였는데, 어지러운 데까지 이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나 역시 실제로 이른바 ‘필름’이 끊겨 본 기억은 없다.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프랑스 블레즈파스칼대(클레르몽페랑 제1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재료의 물성을 연구하는 재료공학 중 무기재료(세라믹) 공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발표한 논문이 200편이 넘는다. 세라믹은 전자재료, 내열재료뿐만 아니라 강철을 절단하는 재료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는 물질이다. 연구자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초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을 지내 행정가로서 경험이 풍부하다. 다양한 이력 때문에 고든리서치 콘퍼런스를 포함해 세계적인 학술회의에 40회 이상 초청받아 강연자로 나섰다.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 시절에는 공대 학생들의 결혼식 주례를 도맡다시피 했다. ▲1952년 부산 출생 ▲아주대 기계공학과 교수 ▲서울대 재료공학과 교수·공과대학 학장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울산대 총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장관급)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포스텍 제7대 총장
  • 4억 3000만번 돌려본 ‘태후’ 중국에서 더 떴지 말입니다

    4억 3000만번 돌려본 ‘태후’ 중국에서 더 떴지 말입니다

    한국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는 2014년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도 핫이슈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반부패 사령탑인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위원회 서기가 전인대에서 “중국은 왜 별그대와 같은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느냐”고 한탄할 정도였다. ●‘별그대’보다 평점 높아 유료 시청 마다 안해 2016년 3월 한국 드라마 ‘태양의 후예’(태후)가 다시 중국 대륙을 강타하고 있다. 웨이신 등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인사말이 “태후 봤어?”가 될 정도다. 6회 방송 다음날인 11일 오전 현재 중국 동영상 서비스 업체 아이치이(愛奇藝)의 누적 방영 횟수는 4억 3000만건이나 됐다. 지난달 24일 첫 회 방송 후 24시간 만에 조회 수(방영 횟수)가 3000만건을 돌파한 이후 매일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중국 업계에서는 한·중 첫 동시 방영 드라마인 태후가 누적 방영 횟수 25억건을 기록한 별그대를 능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료였던 별그대와 달리 태후는 유료 업체인 아이치이에서만 볼 수 있다. 이 사이트의 월회비는 최소 15위안(약 2800원)이다. 16부가 모두 끝난 뒤 무료로 전환되면 조회 수가 더욱 늘 것으로 전망된다. ●한류스타 송혜교·송중기 ‘송송커플’의 힘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영화·드라마 전문 평가 사이트인 더우반에서 태후가 9.2점을 받아 별그대(8.5점)를 능가했다”며 “중국팬들이 ‘송송커플’(송혜교·송중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경보는 여주인공인 송혜교 특집 기사에서 “가을동화, 풀하우스 등 송혜교의 작품이 중국에서 모두 인기를 끌었다”며 “30살이 넘어서 진정 연기를 사랑하게 된 ‘여신’”이라고 전했다. 인터넷 매체 펑파이에 따르면 태후는 아이치이가 회당 23만 달러(약 2억 7000만원)를 주고 판권을 샀다. 별그대는 회당 4만 달러였다. 펑파이는 “아이치이가 지불한 총 368만 달러는 신규 회원 60만명이 두 달만 회비를 내면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라면서 “지난해 기준 1000만명인 아이치이의 유료 회원이 태후 덕에 크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태후를 제작한 한국 업체 ‘NEW’의 주식 13.03%를 사들인 중국 드라마 기업 화처잉스의 주가는 최근 23% 폭등했다. ●100% 사전제작으로 中 검열 거쳐 자막 처리 남방도시보는 “태후의 맞춤형 전략이 들어맞았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지난해 4월부터 외국 드라마의 내용과 자막을 모두 심사한 뒤에 방영을 허락하는 방식으로 검열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태후 제작진은 ‘쪽대본’에 의존해 분량을 늘리고 줄이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태후를 사전에 제작하고 자막까지 곁들여 중국 당국의 검열을 통과했다. 중국 시청자들은 방송 후 몇 시간이 지나서야 자막 버전을 볼 수 있었던 별그대와 달리 태후 자막본을 한국 본방 시간에 볼 수 있다. 다만 남북 군인의 교전 장면 등 중국 정부가 불허한 내용은 중국 방송분에서 편집됐다. 남방도시보는 “중국 심의가 늦어져 한국에서도 첫 방송이 한 달 가까이 지체됐지만 중국 시장을 새롭게 개척한 드라마로 평가받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安·千·金 3두 체제 붕괴… 천정배·김한길계 黨 이탈사태 오나

    安·千·金 3두 체제 붕괴… 천정배·김한길계 黨 이탈사태 오나

    安 “하던대로 하면 만년 2등” 연대 일축 金·安 1시간 단독 회동… 이견 못 좁혀 윤여준, 구원 등판 요청받았지만 고사 국민의당이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분열의 갈림길에 선 형국이다. 그동안 내부 갈등설 속에서도 아슬아슬하게 유지됐던 ‘안철수·천정배·김한길’의 3두 지도 체제는 야권 연대를 둘러싼 내분으로 창당 39일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당 지도부가 갈등을 봉합하지 못할 경우 천정배 공동대표 측 국민회의 세력과 ‘김한길계’ 의원들이 당을 이탈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세 사람이 야권 연대를 놓고 양보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데는 이번 총선을 바라보는 인식 차이가 크다는 점이 깔려 있다. 안철수 공동대표는 ‘제3정당 확립을 통한 양당 체제 타파’에 초점을 맞춰 왔다. 반면 천 대표와 김한길 상임선대위원장은 “‘제1여당 독주 저지’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꾸준히 밝혀 왔다. 이들은 국민의당과 국민회의 통합 당시 작성된 합의문의 ‘총선에서 박근혜-새누리당 정권의 압승을 저지하기 위해 합의한다’는 문구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안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안 대표는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하던 대로 하면 만년 야당 2등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연대 불가론을 고수했다. 그는 예비후보 지원을 위해 대전을 찾은 자리에서도 “야권 통합과 정권 교체를 위해 세 번(서울시장 후보직 양보, 대선 후보직 사퇴, 민주당과의 합당)에 걸쳐 희생과 헌신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바뀌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더이상의 철수(撤收) 정치는 없다’는 각오로 이번에는 통합 및 연대 논의의 여지를 열어 두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반면 김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우리 정치 상황에서 3당 체제 시도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것을 처음부터 알았다”며 “여당에 어부지리를 주지 않으면서 3당으로 우뚝 서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선대위원장직에서도 물러나는 등 당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결정하면서 사실상 안 대표와의 결별 수순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향후 거취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말을 아끼겠다”면서도 “왜 오늘 영원히 이별하는 것처럼 말하느냐”고 여운을 남겼다. 천 대표는 이미 안 대표에게 탈당을 포함한 ‘중대 결단’을 예고한 상태다. 천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분당이나 대표직 사퇴 등의 가능성에 대해 “아직은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전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안 대표의 설득에 진전이 없을 경우 탈당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 대표 측 관계자는 “천 대표의 고민은 총선 불출마와 같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당적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발표를 놓고도 지도부 간 반응이 엇갈렸다. 안 대표는 더민주가 김 위원장의 지역구인 서울 광진갑 공천 발표를 보류한 데 대해 “국민의당 흔들기”라며 비판했다. 반면 천 대표는 “(더민주의 공천 심사 결과가) 연대나 단일화 노력에 심대한 영향을 준다”고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과 천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무소속 최재천 의원을 만나 야권 연대의 필요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과 가까운 최 의원은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야권 통합을 제안했을 당시 양측의 통합 논의를 물밑에서 사전 조율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던 인물이다. 최 의원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연대 없이) 이대로 가면 다 죽는데 어쩌자는 것인지, 서로 한탄했다”고 전했다. 안 대표 측은 ‘야권 연대파’들의 이탈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통합 및 연대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안 대표 측 김성식 최고위원은 “본래 창당 취지대로 뚜벅뚜벅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여의도 모처에서 배석자 없이 1시간 동안 이뤄진 안 대표와 김 위원장 간 회동에서도 야권 연대를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 측은 “안 대표가 먼저 연락을 해서 만났지만 (논의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고 전했다. 또 최근에는 당 일부 인사가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에게 구원 등판을 요청했지만 윤 전 장관이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대전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손 잡은 강원 - 경기 ‘상생 열차’ 달린다

    손 잡은 강원 - 경기 ‘상생 열차’ 달린다

    행정구역이 맞닿은 강원·경기 지역 9개 자치단체장이 7일 한자리에 모여 소통과 지속 가능한 교류 협력에 공동 합의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이날 평내호평역에서 경춘선 ITX열차를 타고 춘천으로 이동하며 양 지역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눈 데 이어 춘천 KT&G 상상마당에서 9개 지역 시장·군수, 의회 의원들과 함께 ‘강원·경기 상생협력 토론회’를 열었다. 춘천역에서는 강원도 현안인 서울∼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사업 추진 당위성과 상황 설명도 들었다. 강원도와 경기도는 지난해 4월 14개 분야 34개 세부사업 상생협약을 약속한 뒤 ‘투르 드 DMZ 행사’ 공동 개최, 양 도 사이의 자전거길(한강∼철원) 연결을 위한 국비 확보 등 29개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토론회에는 강원 춘천·원주·횡성·철원과 맞닿은 경기 여주·양평·포천·가평·연천 등 9개 시·군 단체장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광역단체장과 연접한 기초단체장이 함께 상생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다. 최 지사는 “인접할수록 갈등이 많아 상생협력이 힘든데 지난해 상생협력을 논의하면서 보여주기식 모습이 될까 염려했지만 구체적인 협력과제를 논의하고 결실을 거둬 기쁘다”면서 “양 도민이 실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 지사는 “강원도와 경기도는 한반도의 허리로 양 도가 힘을 합하면 대한민국의 안보도 튼튼해진다”면서 “그동안 인접한 시·군 간 갈등이 있었는데 협력으로 상쇄시키면 대한민국 최초로 소통·공감·협력하는 진정한 연정의 모델이 완성되는 만큼 경기도는 평창올림픽 등 협력사업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9개 자치단체장은 5개 주제 11개 안건을 그룹별로 논의하고 토론을 벌여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개최 협력, 연접 교통망 확충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우선 경기도는 강원도가 제안한 평창동계올림픽 공동응원단 구성과 동계 실업팀 창단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또 양 도와 원주시, 여주시, 횡성군은 원주시광역화장시설 건립에 필요한 예산을 분담해 시설을 공동 이용하기로 했다. 철원군과 포천시, 연천군은 한탄강 세계지질공원 인증에 공동 노력하고 조사용역비는 분담(경기도 3분의2, 강원도 3분의1)하기로 했으며 원주시와 양평군은 응급환자 이송을 위한 닥터헬기를 공동 이용하기로 했다. 이 밖에 한탄강 생태순환 탐방로 단절구간 인도교 2곳 설치를 비롯해 춘천시와 가평군 남이·자라섬 관광특구 지정 및 남양주∼춘천 간 자동차전용도로 개설, 국도 3·6호선과 군도 4호선 확장 및 포장 등을 위해 연접 시·군이 공동 협력, 노력하기로 했다. 김보현 강원도 기획관은 “생활권이 같은 9개 시·군은 행정구역의 단절로 지역발전에 제약을 받는 등 주민 불편이 컸다”면서 “전국 처음 시도되며 인접 도 간 상생협력의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주민들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결과를 만들어 나가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수원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아랍S다이어리] “여자도 사람인가?”

    [아랍S다이어리] “여자도 사람인가?”

    지난 주 사우디아라비아의 페이스북 사용자들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한 마디. “여자도 사람인가(Are women human)?” 사우디에서 컨설팅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파하드 알-아흐마디는 이 같은 제목을 단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페이스북에 올려 홍보를 시도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물론 그가 예상한 반응은 아녔다. 그는 한 위성TV 프로그램에 나와 해명도 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에서 쏟아지는 비난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코미디언 라와는 “당신이 저 질문을 여자에게 묻는다면, 그녀는 괴물로 변해 당신을 가르치려고 들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마음 속으로 저 질문을 자문한다면 당신 자신이 괴물”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TV 진행자 파드와 알-타야르는 “사람들을 자극함으로써 관심을 끌려는 의도였어도 저 문구를 쓴 건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또한 심리학자 모하메드 아젭은 “여자는 존경 받아야 하며 국가는 여자를 폄하하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런 식의 타이틀은 남자와 여자 모두의 심기를 건드린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해프닝을 보고 누군가는 “사우디 여성은 ‘물건’ 취급 당한다더니…” 하며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여성의 인권을 논할 때면 항상 빠지지 않는 사우디 여성들. 이들은 정말 남자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비(非)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 사우디 여성은 남성 보호자(마흐람) 없이는 외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활동 제약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쇼핑몰이나 마트에 가면 이는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칼럼니스트 사브리아 자우하르는 ‘사우디 여성에 대해 호도하는 보도’라는 자신의 글에서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녀의 가족은, 특히 남편은 굶주리게 될 것이다. 엄마가 시장에 가지 않고서는 가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지 않느냐”고 한탄했다. 저명한 여성 사회학자인 모나 살라후딘 알-무나젯은 ‘사우디 여성: 성공의 축전’이라는 신간을 발표하며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유학하거나 여행을 할 때 사우디 여성의 지위에 대해 세상이 큰 오해를 하고 있단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 여성은 사회의 절반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발전시킬 원동력이다. 사우디는 여성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여성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고 압둘라 국왕을 칭송했다. 압둘라 왕은 2013년 국왕자문기구(Shoura council)에 첫 여성 위원을 임명했으며, 여성과 남성이 같이 앉아 회의하는 것을 허용했다. 물론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가 사우디 여성에겐 지당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지난해 12월에야 여성이 지방의원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됐고, 건국 이래 처음으로 여성의원이 선출됐다. 정치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여성이 운전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다. 지난 달 뮌헨 안보회의에서 외무부장관 아델 알-주베이르는 “여성의 운전은 종교적인 게 아니라 사회적 쟁점”이라며 사우디 여권신장에 대한 관심이 여성들의 운전 가능 여부에만 고정돼 있는 점을 다소 억울하게 여겼다. 그는 “1960년 여성을 위한 대학 교육이 전무했지만 오늘날 대학생의 55%가 여성”이라며 “여권신장 문제도 다른 나라에서도 그러하듯 점차 발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과 비교하며 “미국이 독립한 후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질 때까지 100년이 걸렸고 첫 여성 하원의장이 선출되기까지 또 100년이 더 걸렸다”며 “그러니 우리에게 200년을 달라는 말이 아니다. 조금 기다려달란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대학까지 마친 사우디 여성들은 차별 없이 사회에 수용되고 있을까. 일간지 알-리야드에 따르면 국내 소규모 사업자의 20%가 여성으로, 사회적 장벽 탓에 취직하지 못하고 있는 사우디 여성들은 창업을 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이곳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장벽은 여성이 일을 하면 결혼을 할 수 있는 확률이 줄고, 이는 수치라고 생각하는 사우디인들의 사고방식이다. 또 여성이 사업을 잘 이끌 수 있다는 믿음도 적다. 어찌됐든 남자가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여성이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자금을 대출해주는 기관이 부족해 대부분의 여성 사업가들은 남자 가족들의 후원을 받아 시작한다. 사우디가 얼마나 여성들을 남자에게 의존하며 살아가게 하는 환경인지 잘 말해주는 결혼제도가 있다. ‘미스야르(misyar) 결혼’이라는 합법적인 이 계약결혼은 ‘여행자의 결혼’으로도 알려져 있다. 정상적인 결혼생활에서 부부가 져야 하는 의무나 권리를 일부 포기한 형태다. 살림을 합치지 않으며 남편이 원할 때만 집에 들어간다. 특히 과부나 이혼녀가 이런 ‘모욕적인’ 결혼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남자 보호자 없이 사우디에서 살아가기가 불리하기 때문이다.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사마르 알-모르겐은 “이 나라에서 여자가 남자 보호자 없이 살아가기는 불가능하다”며 “만약 법으로 여자가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면 여자들이 미스야르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들의 일을 스스로 처리할 것”이라는 의견을 한 매체에 내놓았다. 그는 “우리는 최후의 수단으로써 미스야르를 선택한 여성을 비난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그런 추잡한 삶으로 몰아넣은 법과 제도를 비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최근 보고서에서 여성을 위한 적합한 일자리 확보가 중요한 목표 중 하나라고 언급하며 여성에게 안전한 작업환경을 제공하고 샤리아(이슬람법) 기준에 부합하는 사업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우디 여성이 머리 등 신체를 가리고 바깥을 출입하는 것은 사회적 압박이라기 보다는 신앙에 따른 것이라 치더라도 정치·경제 분야로 진출하는 여성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흐름이다. 이런 추세라면 요새 우리나라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가모장적 발언’이 통하는 날이, 이곳 사우디에도 언젠가 오지 않을까 싶다. 글·사진 윤나래 중동통신원 ekfzhawoddl@gmail.com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대번영의 조건(에드먼드 펠프스 지음, 이창근·홍대운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0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에드먼드 펠프스의 최신작. 저자는 혁신의 문화와 근대적 가치의 추구가 번영의 원천이며, 국가 번영이 단순히 경제적 풍요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한다. 오히려 일로부터 만족을 얻고, 정당한 보상을 받는 이른바 ‘좋은 삶’을 번영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번영은 쇠퇴하고 있으며 이는 근대 경제의 기반이 되는 근대적 가치관 즉, 공동체와 국가를 개인보다 우선시하는 전통이 위협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적 역동성을 잃은 우리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576쪽. 2만 5000원.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양당의 분열과 분당의 배경을 파헤치지만 핵심은 정치의 본질과 인권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야당과 진보의 행태가 정권 교체와는 그동안 거리가 멀었다면서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폐단이자 야당 분열의 주된 원인으로 ‘정치의 종교화’와 ‘인물 중심주의’, ‘지도자 숭배’를 지목한다. 정책과 이슈보단 추종하는 인물 중심으로 모든 걸 환원하는 정치의 종교화 행태가 정치를 피폐하게 만들고 불통하게 만든 주범이라는 메시지다. 312쪽. 1만 5000원. 문제적 인간, 다윗(데이비드 울프 지음, 김수미 옮김, 미래의창 펴냄) 골리앗을 쓰러트린 영웅, 성경 인물 가운데 여성의 사랑을 받았다고 기록된 최초의 남성, 부하 장수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고 반역을 꾀한 아들들과 칼을 겨눴던 왕. 영웅과 죄인의 양 극단을 오간 다윗을 성경과 종교 문헌, 문학과 예술 작품을 바탕으로 입체적으로 그려 냈다. 거대한 적 앞에 굴하지 않는 배짱과 용기는 왕이 되는 힘이 됐지만 불륜녀의 남편이자 부하를 전장에서 죽도록 만든 부정한 욕망은 그가 나약한 인간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저자는 다윗이 메시아를 대표하는 인물로 점지된 이유로 거룩함이 아닌 양면성과 나약함 같은 인간 본성을 꼽는다. 288쪽. 1만 4000원. 비상경보기(강신주 지음, 동녘 펴냄) 우리의 삶을 옥죄는 현재적 위기에 대해 동서양 철학을 종횡하고, 문학과 역사를 끌어와 현실을 직면하는 책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건 권위와 억압을 딛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누군가가 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내가 나를 대변하는 인문 정신이다. 책에서는 구체적인 정치체제로 민주주의가 거론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는 효율을 위한 제도일 뿐 중요한 건 우리가 늘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하는 현실적 삶의 문제에 처해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돈이 안 되는 일을 즐기자는 제안과 함께 묵직하지만 조금이라도 경쾌하게 한 발짝을 뗄 수 있을 때 미래의 길이 보인다는 설명이다. 552쪽. 1만 9500원. 가면사축(고다마 아유무 지음, 김윤수 옮김, 가나출판사 펴냄) ‘회사에 길들여진 가축’이란 뜻의 ‘사축’은 일본에서 유행한 말이다. 국내에서도 직장인을 대표하는 신조어로 떠오르고 있다. 가면사축은 사축인 척하지만 본인의 필요에 따라 회사를 철저히 이용하는 사람을 뜻한다. 저자는 ‘내가 어쩌다 회사의 가축이 되었을까’ 한탄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책에서는 직장 내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방법부터 업무 기술을 높이는 방법 등 가면사축이 되는 42가지 해법을 제시하고, 자의든 타의든 회사에서 나가야 할 상황이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는 시대에 사축으로 도태하지 않는 지침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248쪽. 1만 3800원.
  • [고전으로 여는 아침]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고전으로 여는 아침]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굴까? 소아시아 지역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BC 595~BC 547?)는 자신이 그 주인공이라 생각했다. 동방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왕이었고, 그의 창고에는 금은보화가 가득했다. 그의 명성은 헬라스에까지 자자했다. 크로이소스는 이 주체할 수 없는 행복을 확인받고 싶었다. 때마침 리디아를 찾은 아테네의 솔론을 궁전으로 불렀다. 솔론은 아테네의 민중파와 귀족파가 대립하자 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한 법률을 만들고는 자신을 왕으로까지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뿌리치고 유랑에 나선 현인이었다. 크로이소스는 이 현인에게 진수성찬을 베푼 다음 보물 창고들을 보여 줬다. 그리고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솔론의 입에서 당연히 자기 이름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솔론은 아테네의 텔로스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웃 나라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뒤 장렬히 전사한 그를 기리기 위해 시민들이 국비로 장례를 치르고 그를 흠모했으니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실망한 크로이소스는 그럼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솔론은 아르고스의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를 들었다. 이들은 어머니가 헤라 신전의 축제에 가고 싶어 하는데 달구지를 끌 소가 제때에 돌아오지 못하자 몸소 멍에를 쓰고 달구지를 끌면서 달려갔다. 남자들은 두 청년의 왕성한 체력을, 여인들은 효성스런 자식을 둔 어머니를 칭찬했다. 그런데 두 형제는 탈진하여 제전 후에 죽고 말았다. 크로이소스는 자신의 행복을 무시한 솔론에게 화를 냈지만 솔론은 담담하게 응대했다. “인간이란 전적으로 우연의 산물이옵니다. 전하께서는 거부인 데다 수많은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이시옵니다. 하지만 저는 전하께서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전하의 물음에 답할 수 없사옵니다. 누구든 죽기 전엔 그를 행복하다고 부르지 마시고, 운이 좋았다고 하소서.” 훗날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크로이소스는 장작더미 위에서 불태워질 처지에 놓이고서야 비로소 솔론의 말을 떠올리며 오만했던 자신을 한탄했다. 헤로도토스(BC 484~BC 425)의 저서 ‘역사’에 기록된 이 일화는 인생의 길흉화복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임을 말해 준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명예롭거나 편안하게 죽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솔론의 행복관은 곱씹어 볼 만하다.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kipeceo@gmail.com
  • 주류부터 친 김종인… 살생부 수도권 상륙 땐 탈당 도미노 오나

    주류부터 친 김종인… 살생부 수도권 상륙 땐 탈당 도미노 오나

    1호 타깃 강기정, 전략공천 강력 비판 컷오프 의원들 음모론 제기 등 반격현역들 연판장 돌리는 방안 검토 중문희상 “선당후사 어긴 적 없다… 수용” 더불어민주당은 현역 ‘20% 컷오프’(공천 심사 배제)에 이어 25일 광주 전략공천 지역 발표까지 이어지며 ‘현역 물갈이 행보’를 계속 이어 갔다. 더민주는 전날 현역 10명의 공천 심사 배제로 당사자들이 반발하는 등 어수선한 가운데 이날 주류로 분류되는 3선의 강기정 의원 지역구인 광주 북구갑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광주를 방문한 이날 지역에서 20% 컷오프 명단에 든 호남 의원은 초선 1명(전정희 의원)뿐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더민주는 곧바로 ‘전략공천 카드’를 제시하며 관심을 다시 ‘현역 물갈이’로 돌렸다. 당 중진 의원들이 다시 타깃이 될 2차 컷오프 이후 수도권 등에서 ‘제2의 강기정’이 나올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문재인 대표 체제에서 호남, 비주류 의원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주류 측에 섰던 강 의원은 문 전 대표가 ‘대리인’ 격으로 세운 ‘김종인 체제’에서 첫 ‘전략공천 희생양’이 됐다. 2014년 광주시장 경선에서 전략공천을 지지했던 그였지만 이날 그는 “시스템공천만으로 승리할 수 있다”며 180도 태도를 바꿨다. 당의 총선 전략 등을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인 컷오프에 대한 반발은 이날도 계속됐다. 대구 출마를 준비했던 홍의락 의원에 대한 컷오프로 이번 총선의 대구·경북 공략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성토가 나왔다. 홍 의원이 탈당 기자회견을 한 후 3시간 30분 뒤 대구 수성갑 출마를 준비 중인 김부겸 전 의원이 국회를 직접 찾아 기자회견을 자처해 당 지도부를 질타했다. 김 전 의원은 “저도 탈당을 결심하는 순간이 오지 않게 해 달라”며 당 지도부를 압박했다. 또 경기 의정부갑 문희상 의원과 청주 흥덕을 노영민 의원의 컷오프로 당의 경기 북부벨트과 중원 수성에도 비상이 걸렸다는 한탄도 나왔다. 나머지 현역들은 최근 당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연판장을 돌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원욱 의원은 “(연판장) 초안 작성 중으로 시기는 오늘이나 내일로 예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컷오프 통보를 받은 의원들은 음모론을 제기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고, 일부는 숙고를 거듭했다. 전북 익산을 전정희 의원은 당에 제출한 이의신청서에서 “최근 익산을 지역에서 영입 인사 전략공천 여론조사가 돌고 있음을 인지했고, 이 사실을 접한 지 바로 몇 시간 뒤 제가 컷오프 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영입 인사 전략공천을 위해 성실히 의정 활동을 한 초선 여성 의원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다는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반면 문 의원은 “선당후사를 어긴 적이 없다”며 컷오프 결정을 따른다고 밝혔다. 최대 관심사는 홍 의원과 같은 탈당자가 또 나올지다. 비례대표인 홍 의원은 “대구에서는 더민주나 국민의당이나 도긴개긴”이라며 무소속 출마 의사를 밝히고 의원직을 내놨지만, 지역구 탈당 인사가 1명이라도 나오면 국민의당은 탈당파 무소속 의원들까지 포함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의원 20명 기준을 충족한다. 신계륜 의원은 전날 지인과의 저녁 자리에서 “(거취에 대해) 며칠 더 고민해 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이날 광주 방문에서 전략공천지 발표 및 20% 컷오프 결정과 관련해 “공관위에서 경쟁력에 대해 엄격하게 조사하고 있다”면서 “컷오프 취소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해 ‘물갈이 기조’가 당분간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더민주 컷오프’ 홍의락, 탈당 선언… “대구에서 희망 찾기, 저만의 욕심이었나”

    ‘더민주 컷오프’ 홍의락, 탈당 선언… “대구에서 희망 찾기, 저만의 욕심이었나”

    ‘더민주 컷오프’ 홍의락, 탈당 선언… “대구에서 희망 찾기, 저만의 욕심이었나” 더민주 컷오프 홍의락 더불어민주당의 ‘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 컷오프(공천배제)’ 대상이 된 홍의락 의원은 25일 “당이 대구를 버렸다”며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와 관련, 홍 의원과 함께 4·13 총선에서 ‘험지’인 대구 출마를 준비중인 김부겸 전 의원은 당의 홍 의원에 대한 공천 배제 조치를 즉각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홍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대구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겠다던 포부, 대구를 전략 지역으로 만들겠다던 기대가 저만의 욕심이 아니었는지 한탄스럽다”며 “이의신청은 의미가 없다. 즉시 탈당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또 “무소속 후보로서 대구 정치의 균형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며 4·13 총선 때 대구 북구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는 “지역구도 타파,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당이 부여한 역할에 따라 2012년 비례대표 공천을 받고 국회에 들어왔다”며 “바로 이듬해 망설임 없이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대구로 향했고 야당의 교두보 확대와 전국정당화를 위해 피나는 헌신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제 활동의 목적은 오로지 야당의 외연 확대였다”며 “대구 경북에서 야당 후보가 15% 이상의 득표를 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 다음 대선에선 대구 경북에서 100만 표차를 줄여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으로 여권의 심장부인 대구에 터를 잡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홍 의원은 비례대표 의원이기 때문에 탈당 선언에 이어 탈당계를 제출하면 곧바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또 임기를 120일 이내로 남겨 놓을 경우 비례대표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하더라도 그 직을 승계하지 못하도록 한 선거법 규정에 따라 후임자는 없다. 이로써 더민주의 의석수는 108석에서 107석으로 줄어들게 됐다. 김부겸 전 의원도 성명을 내고 “홍 의원은 더민주와 대구 경북을 잇는 단 하나의 가교였다. 그런데 창구를 닫고 가교를 끊는 짓을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하고 있다”며 “최전선에서 육탄전을 치르는 홍 의원에게 오인사격을 한 공천관리위원회는 사과해야 한다. 배제 조치를 당장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400일 넘게 법 통과 막아… 통탄할 일” 朴대통령, 책상 쿵쿵 내리치며 국회 질타

    “1400일 넘게 법 통과 막아… 통탄할 일” 朴대통령, 책상 쿵쿵 내리치며 국회 질타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야당의 ‘무제한 토론’으로 처리가 지연되는 테러방지법과 관련, “많은 국민이 희생을 치르고 나서 통과를 시키겠다는 얘기인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이날 제8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사회가 불안하고 어디서 테러가 터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경제가 발전할 수가 있겠는가. 이게 다 경제살리기와 연결이 되는 일인데, 그걸 가로막아서 어떡하겠다는 이야기냐”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은 “정말 자다가도 몇 번씩 깰 통탄스러운 일”이라면서 “이건 정말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들”이라고 한탄하다 “국회가 다 막아 놓고 어떻게 국민한테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인 뒤 10초가량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를 비판하는 대목 등에서는 10여 차례 손날로 책상을 쿵쿵 내리쳤으며 목청도 한껏 올라갔다. 박 대통령은 또한 “1400일이 넘는 동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통과시키지 않고 도대체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냐”고 지적하고 “정말 가슴 아픈 일은 우리나라는 얼마든지 저성장을 극복할 수 있고 일자리를 늘릴 방안을 갖고 있음에도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이 법을 가로막으면서 어떻게 일자리가 늘어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19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적어도 국민에게 할 수 있는 도리는 다하고 끝을 맺어야 되지 않겠느냐”면서 “어렵게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마련된 노동개혁 4법이 국회에서 발이 묶여 있다. 사실상 19대 국회의 마지막 문을 열었는데 더이상 미룰 시간도 없다”고 강조하고 “노동개혁 4법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나의 패키지로 엮어져 있는 법안으로 자동차의 4개의 바퀴처럼 함께 가야만 한다”며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3色 기타 선율에 취하리

    3色 기타 선율에 취하리

    명장들의 협연…YB 출신 유병열, 김태원 등과 홍대 무대 속주 연주 대표…박영수, 이희재·문성억과 대학로 공연 가왕이 택한 그…‘조용필과 30년’ 최희선 솔로 2집 콘서트 ‘나는 기타리스트다!’ 흔치 않은 기타리스트 중심의 공연이 잇따라 열린다. 윤도현밴드(현 YB) 출신의 기타리스트 유병열은 오는 21일 서울 홍익대 앞 프리즘 홀에서 ‘기타 매거진’이라는 이름으로 라이브 공연을 연다. 1990년대 중후반 윤도현밴드의 초창기 사운드를 책임졌던 유병열은 이후 비갠후, 바스켓노트 등 밴드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기타리스트로서의 솔로 무대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아이 엠’까지 모두 세 차례 선보였던 솔로 앨범들에 수록된 곡을 중심으로 꾸려진다. 특히 블랙홀의 기타리스트 이원재와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이 스페셜 게스트로 나와 유병열과 협연할 예정이라 더욱 주목된다. 또 소찬휘·울랄라세션 등과 앨범 작업을 했고 현재는 수퍼내추럴이라는 밴드로 활동 중인 베테랑 강선우가 세션을 맡을 예정이라 이번 공연에선 기타리스트만 무려 네 명이 무대에 오르는 셈이다. 3만원. (070)8150-2979. 오는 26~28일 대학로 서울콘서트홀에서는 기타리스트 세 명이 뭉쳐 ‘전설을 노래하다’라는 콘서트를 연다. 지난해 10월 공식 개관한 서울콘서트홀은 연극 공연장이 넘쳐나는 대학로에서 보기 드문 음악 전문 공연장이다. 지하드의 기타리스트 박영수, 활의 기타리스트 이희재, 문선수밴드의 기타리스트 문성억이 무대에 오른다. 박영수는 이현석의 뒤를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속주 기타리스트. 이희재는 원 등 다양한 밴드에서, 문성억은 1990년대 대학가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천지인의 3기로 활동했던 기타리스트다. 하드록에서 블루스, 네오 클래식 메탈, 팝메탈에 이르기까지 음악 팬들에게 친숙한 1980~90년대 록 명곡들과 자작곡들을 들려준다. 김정선(기타), 이봉환(보컬)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관록의 송골매가 초대 손님으로 나온다. 3만원. (02)742-0161. 가왕 조용필과 30년 넘게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밴드 ‘위대한 탄생’의 현재 리더인 기타리스트 최희선이 다음달 25~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단독 공연을 갖는다. 지난달 말 발매한 솔로 2집 ‘마니악’의 수록곡들을 선보이는 자리다. 새 앨범은 12곡 모두 연주곡으로 구성됐다. 1977년 데뷔한 그는 밴드와 세션 연주자, 프로듀서 등으로 활동하다가 1993년부터 위대한탄생에 합류했다. 2013년 첫 솔로 앨범 ‘어나더 드리밍’을 전후로 솔로 활동도 본격적으로 병행하고 있다. 이번 무대는 록 마니아의 기대를 한껏 부풀리고 있다. 최희선은 “1집은 록을 기본으로 하되 처음 연주를 접하는 대중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팝적인 곡들도 일부 담았지만 이번 2집은 정말 하고 싶은 음악만으로 ‘나는 기타리스트’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싶었다. 그야말로 마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6만 6000원. (02)559-1333.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목사 아빠’ 후회하는 기색 없었다

    ‘목사 아빠’ 후회하는 기색 없었다

    주민 야유 속 “우리도 책임” 한탄도 경찰 “덤덤히 재연”… 부부 구속 수감 “왜 얼굴을 가려요. 저런 사람들도 인권이 있습니까.” “뭐 잘한 게 있다고 차에다 모시고 다닙니까.” 딸을 마구 때려 사망케 하고 11개월간 집 안에 시신을 방치한 혐의(아동학대치사 및 사체유기)를 받고 있는 아버지 이모(47)씨와 계모 백모(40)씨를 태운 경찰 호송차가 5일 오전 11시 50분쯤 부천 소사구에 있는 부부의 집 골목에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던 주민 100여명의 비난과 야유가 쏟아졌다. 주민 김모(46)씨는 “시신이 집 안에 있는데도 11개월이나 아무도 몰랐다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며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게느냐”고 한탄했다. 집 앞에 호송차가 멈추자 포승줄에 묶인 이씨 부부가 차례로 내렸다. 이들은 두꺼운 점퍼에 하늘색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둘은 “목사로서 죄책감이 없느냐, 딸에게 미안하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현장검증은 1시간여 동안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씨 부부는 나무막대와 빗자루로 딸의 손바닥, 팔, 허벅지 등을 5시간가량 때리는 것을 재연했다. 딸의 사망 이후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정체불명의 가루를 시신에 뿌린 후 이불을 덮는 모습, 그래도 시신에서 썩는 냄새가 나자 여러 개의 촛불을 피우는 장면 등도 보여줬다. 경찰 관계자는 “부부 모두 그동안 진술했던 내용대로 당시 상황을 태연하고 무덤덤하게 재연했다”며 “후회하거나 당황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현장검증 후 부부는 빠르게 호송차에 올라탔다. 사라져가는 호송차 뒤로 주민들은 다시 한번 비난을 퍼부었다. 집 현관 앞에는 누군가 숨진 막내딸을 기리기 위해 놓아둔 국화꽃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경찰은 이날 오후 이씨 부부를 구속하고 추가 조사를 한 뒤 다음주에 사건을 검찰로 송치할 예정이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길섶에서] ‘먼저 온 미래’/구본영 논설고문

    며칠 전 아침 신문을 읽다가 무릎을 쳤다. 탈북자 출신의 한 여성 공무원이 자신을 ‘먼저 온 미래’라고 표현한 대목을 접하면서다. 올해 통일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토론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탈북민으로서 남북통일의 가교역을 하겠다는 등의 각오도 밝혔다. 하지만 그런 틀에 박힌 얘기보다 그가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북한에선 배고픔과 부자유에, 탈북 후엔 낯선 환경과 외로움으로 그의 삶은 누구보다 힘겨웠을 법하다. 그런 그가 언젠가 통일될 나라에 먼저 온 시민을 자처하고 있다니…. 요즘 우리 사회에서 ‘헬조선’이니 ‘7포 세대’니 하는 자조적 신조어가 넘쳐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취업도 쉽지 않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 안 보이니 나오는 한탄일 게다. 사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는다’는 뜻의 ‘처변불경’(處變不驚)의 경지에 이르는 게 쉬운 일인가. 성현이 아닌, 우리네 보통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러나 누가 그랬던가. 운명의 여신은 여성이라 늘 역경 속에서도 미래를 낙관하는 젊은이의 편이라고. 신산하기 짝이 없을 삶을 살아왔을 탈북 여성의 희망적 사고를 보며 떠올린 경구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연천 남계리서 구석기 유물 1000여점 출토

    연천 남계리서 구석기 유물 1000여점 출토

    경기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 일대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대거 출토됐다. 한국문화유산연구원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진행한 파주 적성-연천 전곡 도로 건설 공사 구간 내 ‘연천 남계리 유적’ 발굴 조사 결과 몸돌, 격지(몸돌에서 떼어 낸 돌조각), 주먹도끼, 찍개, 여러면석기 등 구석기시대 유물 1000여점이 나왔다고 11일 밝혔다. 연구원 측은 “유물들은 주로 석영, 규암 등 석영계 석재로 만들어졌으며 중기 구석기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유물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특히 대형 격지를 이용해 제작된 가로날도끼와 구석기시대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먹도끼 등은 전곡리 선사 유적과 함께 임진강·한탄강 유역의 구석기시대 생활상과 문화 양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천군 일대는 구석기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한 곳으로, 임진강과 한탄강을 따라 선사시대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연천 남계리 유적은 1978년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주목받은 구석기시대 유적인 연천 전곡리 유적(사적 제268호)에서 북서쪽으로 약 2.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전곡리 유적과 동일하게 한탄강 기슭의 대지 상에 놓여 있으며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 지점에서 북동쪽으로 3㎞ 정도 떨어져 있다. 13일 발굴 현장에서 현장설명회가 열린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전문] 김병관 의장 입당회견문

    김병관 웹젠 이사회 의장이 3일 더불어민주당에 공식 입당한다. 다음은 더불어민주당의 20대 총선 외부인재 영입 2호로 이날 오후 국회에서 입당 기자회견을 가질 김 의장의 입장 전문. [김병관 웹젠 이사회 의장 입당의 변] 안녕하세요. 김병관입니다. 3주전, 문재인 대표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습니다. 20년 가까이 정치와 무관하게 기업에 몸담았던 사람에게 왜 영입제안을 했을까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저에게 기대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부분들은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공장 노동자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일해서 사업적으로도 비교적 성공했습니다. 노력과 행운이 함께했고, 무엇보다도 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있었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데, 흙수저와 헬조선을 한탄하는 청년에게 “노오력해보았나”를 물어선 안됩니다. 염치없는 말입니다. ‘꼰대’의 언어일 뿐입니다. 패기와 열정으로 넘을 수 없는 절벽이 청년들 앞에 있습니다. 떨어지면 죽는 절벽 앞에서, 죽을 각오로 뛰어내리라고 말해선 안 됩니다. 저는 열정으로 도전하는 청년에게, 안전그물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가 매우 어렵습니다. 산업화 시대를 이끌었던 중후장대산업들이 글로벌 경제위기와 중국 성장성 둔화 등의 영향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국 수출경제가 큰 타격을 받고 있고, 경제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활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년세대들의 활약이 절실합니다. 우리의 미래 먹거리로 일컬어지는 문화콘텐츠산업, 바이오산업, ICT 등 기존 제조업기반의 산업구조를 넘어 새로운 산업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비정규직문제, 청년고용문제, 청년주거문제 등 청년세대를 좌절하게 만드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청년들이 역동적으로 벤처를 창업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제도적인 준비 없이 창업만을 권장하는 현재 제도는 실패로 인한 새로운 n포세대만 양산할 뿐입니다. 창업안전망을 만드는 일 만큼은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임을 자부합니다. 저의 벤처창업 및 회사경영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를 통해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저는 기업인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 일자리창출의 일등공신인 기업인들이 대우받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산업화 시대에 많은 기업인들이 부정부패, 정경유착 등으로 많은 부를 축적해 오면서 오늘날 존경 받는 기업인들이 매우 드뭅니다. 정치를 통해, 많은 벤처기업들이 성공하고 또 존경 받는 기업인들이 많아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현재의 경제정책은 지나치게 대기업 위주로 맞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으로는 청년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각종 과세특례 제도들이, 이미 많은 것을 가진 대기업에 편중되어있습니다. 벤처창업이 원활히 이루어지고, 중소기업을 넘어서 건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고, 대 기업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게 정치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정치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아직도 정치라는 단어를 마주하면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습니다. 외부에 보여지는 정치는 부정부패, 정치꾼, 싸움 등 부정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평소 모습을 아는 분들은 정치를 왜 하냐고 말립니다. 제가 그 세계에 물들까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하지만 정치는 특별한 성향의 특별한 집단의 사람들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현장에서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해야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정치참여 소식을 듣고 중학생 아들이 부탁한 게 있습니다.지난주에 같이 영화 스타워즈를 보고 오면서, Dark Side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정치인에 대한 인상이 좋지 못한 것은, 다스베이더, 카일로 렌처럼 어둠의 포스에 굴복한 정치인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거기에 물들지 않고 혁신을 물들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40여년 가까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이제 뒤를 돌아보고 청년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고,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들께서 걱정해 주시는 만큼 이상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6 경제, 새 길을 가자] “대형·중소 조선소 함께 회생할 방안을”… 통영의 ‘외침’

    [2016 경제, 새 길을 가자] “대형·중소 조선소 함께 회생할 방안을”… 통영의 ‘외침’

    “조선업을 이대로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31일 경남 통영시에 위치한 조선소 신아에스비(신아sb) 공장 철문 옆으로 “정부는 중소 조선소 회생 방안을 수립하라”고 적힌 빨간 현수막이 바람에 흔들렸다. 신아sb는 지난해 11월 23일 법원에 파산신청을 했다. 2007년 기준 매출액 1조원을 넘기며 수주잔량으로 세계 10위 조선업체로 올라섰던 신아sb는 결국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회사를 정리해야 할 처지에 놓였지만 이대로 회사를 포기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남 통영시는 우리나라 중소 조선사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2000년대 이후 국내 조선업계가 호황기를 맞으면서 ‘빅3’ 조선소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소들에 블록(선박의 일부분)을 건조해 납품하던 중소업체들은 수요가 폭증하자 직접 선박 수주에 나서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몸집을 불렸던 이들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글로벌 선박수요 감소로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저가 수주를 앞세운 중국 중소 선사들과의 경쟁에서도 뒤처지면서 중소 조선사들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현재 15곳에 달했던 통영의 조선업체들은 현재 삼성중공업에서 위탁경영을 하고 있는 성동조선만이 조업을 하고 있다. 통영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통영 시내 중소 조선사들은 거의 전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2000년대 통영 시내 3만명에 달했던 조선 관련 업종 종사자 수는 1만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통영 시내 조선업체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상대로 했던 상권도 동반 침체됐다. 통영에서 17년 이상 음식점을 경영해 온 제순옥(47·여)씨는 “지난해부터 통영 시내 중소 조선소 직원은 물론 삼성, 대우 등 대기업 직원들도 보기 힘들다”고 한탄했다. 제씨가 최근 신아sb 앞에 있던 식당을 관광객들이 몰리는 부두 앞으로 이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소 조선업체들뿐 아니라 조선소에 자재 등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체들에 자재를 납품하는 협력업체의 한 직원은 “대형 조선업체들이 본인들이 어렵다는 핑계로 대금 결제를 미루면서 이를 버티지 못하는 업체들은 하나둘 쓰러지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문을 닫은 협력업체들이 내가 알고 있는 곳만 열 곳이 넘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현지 관계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 이후 시장은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는데 아무런 가이드라인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라면서 “정부나 대형 조선업체들이 당시 위기의 심각성을 조금만 더 인지했더라도 이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현지 중소 조선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한 직원은 “대형 조선업체들이 수조원대의 공적자금을 지원받는 것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면서 “대형 조선업체들이 중소 조선업체들과 함께 회생할 수 있는 제도적 상생 방안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통영상공회의소 관계자는 “15만명이 넘었던 통영시 인구가 2~3년 사이 1만명 이상 줄었고 이마저도 계속해서 감소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통영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사설] 새 길 찾는 희망을 얘기하자

    역사는 긍정의 힘으로 나아간다. 공동체는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얘기할 때 길을 찾는다. 2016년 새해, 대한민국 공동체는 나라 안팎으로 위기의 경보음이 끊이지 않는다. 국가적 난관도 국민들이 소망을 품고 소통하며 다 함께 손을 맞잡을 때 극복될 수 있다. 대내외적으로 경제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안으로는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가운데, 가계부채는 1200조원에 이르고 있어 적신호가 켜졌다. 수출은 마이너스 행진을 거듭하고 소비 절벽, 실업대란 우려 속에 저출산, 고령화로 성장의 잠재력마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바깥으로는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의 경기 둔화, 유럽·일본의 양적완화 지속 등 서로 제 살길에 바쁘다. 국내 정치 일정과 남북한 관계, 동북아 정세를 놓고 볼 때도 정치 환경의 변화가 읽힌다. 국제정치적으로도 한반도 주변 4강의 세력 판도가 미묘하게 재편될 조짐이 없지 않다. 20대 국회를 구성할 4월 총선은 여의도 정치를 진정한 대의정치의 본산으로 거듭나게 할 것인지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총선이 끝나면 하반기에는 내년 11월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 세력 간의 경쟁이 정국을 뒤흔들 수 있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36년 만에 노동당 제7차 당 대회를 5월에 개최한다. 인민생활 개선과 장마당 같은 초기 시장경제를 확산시켜 나갈 것인지를 비롯한 노선 변화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올 동북아 정세는 11월에 대선을 치르는 미국의 변수와 함께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 미·일 동맹과 중·러의 전략적 동반 관계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연말 한·일 관계 개선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위안부 문제 타결을 계기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기류가 조성될 수도 있다. ●가보지 않은 길도 합심하면 개척된다 이 같은 나라 안팎의 불확실한 상황을 감안할 때 새해에는 무엇보다 경제적 위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국가의 총체적인 역량을 결집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한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 쇼크를 견뎌 냈고, 1990년대 말 외환위기도 극복했다. 그때마다 정부, 기업, 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고통스러운 개혁을 감내했고 금 모으기 캠페인과 같은 국민적 합심이 위기 극복의 추동력이 됐다. 외국인들이 한국 경제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라고 한다. 지난 연말 국회에서 노동개혁법을 비롯한 경제활성화 관련 법이 야당의 제동으로 처리되지 못했지만, 연초에라도 제도적 정비를 갖춰야 한다. 기업이 자유롭게 채용을 하려면 성과가 나쁜 사람은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물론 사용자의 일방적인 잣대로 해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완장치는 필수적이다. 업계도 ‘중국 시장은 끝났다’고 한탄하지 말자. 제조업에 문화예술을 결합하면 제3의 잡종강세 융합 상품이 나올 수 있다. 블루오션은 찾으면 있게 마련이다. 남북 관계 개선에 따라서는 북한은 무진장한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바이오, 의약, 전기차 등 새로운 먹거리도 얼마든지 신성장 동력으로 우뚝 설 수 있다. 비록 이 길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두려운 길이라 해도 경제주체들이 용기와 희망을 갖고 함께 나간다면 새 길은 반드시 개척되고야 말 것이다. ●위기 극복의 동력을 만드는 정치 되어야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위기 극복의 동력을 생산하는 정치적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경제를 선심 포퓰리즘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 정치가 판을 치기 쉽다. 유권자들이 여기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정치가 바로 서고 경제가 살려면 정책 노선이 다른 정파라 해도 서로 논쟁하면서도 결국은 타협점을 찾아 대안을 만들어 내는 의회문화가 필수적이다. 총선에서 여당 후보를 찍느냐, 야당 후보를 찍느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이분법적인 진영 논리에 매몰된 현 정치권의 비타협적인 의회 문화를 바로잡는 지혜가 필요하다. 유권자들이 4·13 총선에서 냉철한 투표권 행사를 통해 이를 교정할 수 있다. 올해는 남북 관계를 안정적으로 가져가면서 평화적 관리에 역점을 두자. ‘통일 대박’은 우리 모두의 꿈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분히 준비해 나가는 것이 통일의 지름길이다. 지금은 민족공동체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데 더 노력하자. 남북이 공동으로 작업하고 있는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 ‘개성만월대유적발굴사업’ 등 민족의 뿌리를 공유하는 사업을 더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적교류 접촉은 규모가 크면 클수록, 횟수가 잦으면 잦을수록 신뢰가 더 쌓인다. 인도적 지원 사업도 한 단계 끌어올려 산림녹화 등 작은 프로젝트별 협력 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남북 관계 개선에 촉진제가 된다. 동북아 외교도 과거 냉전시대의 진영 외교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 한·미 동맹 관계와 한·중 전략적 동반 관계가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남북한이 북핵 문제를 다룰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북·미 회담 또는 6자회담과 같은 다자 테이블에서 이뤄질 수 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종속적이 아니라 주도적인 외교 역량을 발휘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내외 여건이 어려울수록 국가 지도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서로 소통하고 나누고 보듬고 품는 대한민국 공동체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기에서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얘기하고 새로운 길로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한 국가의 진운은 국민이 품는 희망의 총량에 따라 달라진다. 그 희망의 총량이 크면 클수록 앞길은 탄탄대로로 펼쳐진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 활기찬 대한민국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자.
  • [문화마당]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정재왈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문화마당]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정재왈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한 해의 끝자락에서 영화 ‘히말라야’를 봤다. 영화를 보면서 ‘숟가락’이란 단어를 떠올린 건 순전히 주연 배우 황정민 때문이었다. 황정민과 숟가락, 연유는 이랬다. 10년 전 거의 무명이었던 황정민은 영화 ‘너는 내 운명’으로 그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지순한 사랑에 올인하는 시골 노총각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쳐 호평을 받았다. 일약 출세작이 된 것이다. 연기도 연기였지만 더 큰 감동은 그다음에 있었다. 수상 소감이 일품이었다.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렸습니다.” 황정민은 눈물을 글썽이며 울고 있었다. 이때다 싶어 감사치레로 그간 도움을 준 사람들을 굴비 엮듯 호명하는 의례적인 수상 소감과는 확연히 달랐다. 영광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밥상을 차려 준 ‘숨은 공로자’에 대한 헌사를 통해 자신을 낮추는 겸양의 미덕을 보였다. 지금도 회자되는 수상 소감의 레전드다. 결정적 순간에 터져 나온 가식 없는 언사는 삶 자체가 그러질 않고는 감동이 따르지 않는다. 그 이전 대학로의 힘든 무명 세월을 알기에 나는 황정민답다는 생각을 했다. 날것 속의 진심이란 것을 알았다. 황정민은 1994년 소극장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초기 멤버로 데뷔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을 무대로 한 기층민들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에서 그는 건달을 비롯해 1인 다역을 묵묵히 소화했다. 이젠 재즈 보컬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나윤선, 영화배우 방은진·설경구·조승우 등이 당시 이 무대에서 활동한 뒤 스타덤에 올랐다. 황정민은 이들보다 늦게 빛을 본 편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온다. ‘히말라야’는 따뜻한 영화였다. 내가 아는 배우 황정민의 삶과 실제 모델이 된 인물(엄홍길)의 그것이 오버랩되면서 극 중 서사(敍事)와 잘 어울렸다. 얼마 전 만난 중견 여성 시인으로부터 신년 벽두에 발표될 모 신문 신춘문예 심사 소감을 들었다. “우리는 지금 심장이 죽은 시대에 살고 있어요.” 인간과 사회에 예민해야 할 요즘 문청(文靑)들의 시는 기교만 앞서지 따뜻한 가슴은 죽었다는 한탄이었다.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본 ‘히말라야’는 큰 위로가 됐다. 무모하지만 숭고한 가치를 좇는 진짜 인간들의 뜨거운 심장이 거기에서는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 이제 숟가락 이야기를 더 해 본다. 어느 조사에서 올해 젊은이들이 꼽은 신조어 1위가 ‘금수저’와 ‘흙수저’라고 한다. 취업 공포에 내몰린 우리 청춘들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은유로 십분 이해하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자발적인 개척 의지와 긍정적인 사회 변화의 가능성 대신 계층적 결정론에 매몰된 게 안쓰럽다. 이런 세태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그렇다고 청춘들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미래는 청춘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경제 호황기 사회 진출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잘 차려진 밥상의 숟가락’ 같은 존재가 아닐까 가끔 자문하곤 한다. 아버지 세대의 피나는 노력으로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고 무임승차한 건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요즘 청춘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영화 ‘히말라야’가 말하듯이 숨은 공로자 없는 성취는 불가능하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청춘들에게 용기와 도전을 요청한다. 보기에 앞 세대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긍정 마인드로 앞 세대를 딛고 힘차게 도약해 달라고. 금수저와 흙수저 처지는 앞으로 펼쳐질 오랜 인생길에서 무시로 바뀔 수 있는 사소한 것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고. 부처님 말씀에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 [손성진 칼럼] 아듀, 2015

    [손성진 칼럼] 아듀, 2015

    주야장천(晝夜長川) 이어지는 싸움질을 보자니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다. 정치인들 이야기다. 뭐 하나라도 풀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치고 박기만 하고 있으니 앞이 캄캄하다. 국회만 본다면 천하무도(天下無道·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행해지지 않음)의 난국이다. ‘헬조선’이니 ‘둠조선’이니 하는 은어들이 판을 쳐도 적어도 정치인들만은 나무랄 자격이 없다. 선진국들도 제로 성장,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판국이니 3%도 되지 않는 성장을 해도 자족해야 할 것인가. 외환위기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탄식도 한두 번 들은 게 아닌 올해였다. 국회 때문에 이 모양이라고, 그래서 삼권분립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이 국회를 맹비난해도 반박할 수 없는 게 당연지사로 여겨진다. 참 힘들었던 2015년이 간다. 지겨우니 어서 가라고 손짓들마저 하는 것 같다. 세월호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에 메르스가 덮쳐서 온 국민이 시름시름 앓는 듯했던 시간이었다. 뇌물 파동은 올해도 비켜가지 못해 국정의 2인자가 쫓겨나서 수사를 받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처음으로 기업 매출이 감소한, 일찍이 없던 경제적 사건도 있었고 ‘무역 한국’의 명성과 걸맞지 않은 수출의 감소도 우리에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런 와중에 ‘먹고사는 데는 쓸모없는’ 이념 대립은 극에 이르러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먹잇감을 놓고 아귀다툼을 했다. 어느 재벌의 상속 다툼도 토악질을 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최선을 다 하는데 여건이 받쳐 주지 않는다면 도리가 없지 않으냐는 것을 무책임하다 할 수만도 없다. 어떤 것은 고질적인 ‘한국병’ 탓이라지만 어떤 것은 외인(外因)에 책임을 돌릴 수 있으니 한탄만 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닐 것이다. 다만 여건이 어떻든 오늘도 내일도 최선을 다해야 하고 거기서 희망의 싹이 틀 수 있다. 수십 년 전 주린 배를 쥐고도 웃을 수 있었던 것은 희망을 품고 살았기 때문이다. 오늘 힘들다고 희망마저 버린다면 우리에게 장래는 없다. 어렵다, 어렵다 하면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새해에는 긍정적으로 살자. 희망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중국의 사상가 양계초는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첫째 힘은 희망이라고 했다. 희망은 더 나은 미래를 예상하고 기대하는 마음이라고도 했다. 이 시간에도 골방에 틀어박혀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이 있다. 끼니 걱정을 하며 비탄에 잠긴 독거노인들도 있다. 그러나 절망과 비탄만으론 현실을 이겨 낼 수 없다.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게 아니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맞겠다는 밝은 마음과, 그와 더불어 힘든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하겠다는 노력을 병행할 때 비로소 행복은 우리 곁에 다가온다. 새해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어려울수록 뭉쳐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돌볼 줄 알아야 한다. 혼자 잘살겠다고 해서 잘살 수 있는 게 세상은 아니다. 경기도 군포의 77세 허위덕 할머니를 반의반만 본받아도 사회는 훨씬 더 따뜻해질 터이다. 20년이란 세월에 김밥을 팔아 한 푼 두 푼 모은 1억원을 선뜻 내놓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는 전진과 퇴보의 갈림길에 서 있다. 자칫하면 지금까지 힘들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우리 경제의 근간은 괜찮다 해도 세계경제의 침체 여파가 도미노처럼 우리에게 들이닥칠 수도 있다. 그런 고난을 이겨 내지 못한다면 선진국 진입 또한 요원하다. 분열, 갈등, 폭력, 대립, 투쟁은 영원히 추방하자. 그 대신 통합, 화해, 대화, 평화, 상생 같은 단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자. ‘헬조선’은 더 입에 올리지 말고 ‘천국 한국’이라는 말이 유행하도록 해야 한다. 싫어서 떠나는 한국보다는 살기 좋아 오겠다는 한국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아듀, 2015. 회한이 남는 한 해였다. 아쉬움은 늘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도 하루가 지나면 새해, 새 아침이 찾아오지 않는가. 그러기에 희망의 끈은 이어진다. 부족한 것은 채우고 잘못한 것은 고치면 될 일이다. 다시 희망을 노래하자. sonsj@seoul.co.kr
  • 박래학 서울시의회의장 신년사 전문

    박래학 서울시의회의장 신년사 전문

    친애하는 천만 서울시민 여러분!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고 대망의 201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더 큰 꿈과 희망을 향해 힘차게 비상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재주가 많은 원숭이처럼 새해에는 우리 모두 지혜롭게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는 많은 문제들로 혼란스러웠습니다. 방위사업 비리와 메리스 사태 그리고 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등의 문제들은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켰습니다. ‘헬조선’, ‘금수저’ 등 2015년의 신조어들은 어두운 현실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됐는지 한탄스러울 정도입니다. 우리 서울시민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일한 만큼 댓가를 받는 보람있는 사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사회였습니다. 서울특별시의회가 원했던 것도 그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존경하는 천만 서울시민 여러분! 저는 진심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지난 해 서울시의회 의장으로서 이루지 못한 꿈을 2016년 새해 다시금 가슴에 품었습니다. 그것은 서민경제 안정을 위해 변함없이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서민경제의 안정은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방자치 분권시대를 맞아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그 동안 추진했던 4대 개혁과제를 위해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정책보좌관제 도입과 인사청문회 법제화 그리고 사무처 인사권 독립과 지방재정개혁이 실현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습니다. 더불어 새해 중점 과제로 「지방의회 자치조직권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방분권 정신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방의회의 자율권과 독자성을 확립해 나가겠습니다. 제9대 의회가 출범하면서 내걸었던 “바꾸고, 지키고, 뛰겠습니다!”라는 혁신 슬로건과 3.3.3 의정비전의 마무리를 위해 끝까지 뛰겠습니다. ‘뜻을 세우고 부단히 노력하면 마침내 이룬다’는 유지경성(有志竟成)의 자세로 2016년 새해를 서울시의원 모두 함께 손잡고 쉼 없이 달려가겠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서울시민과 서울시 공직자 여러분의 관심과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친애하는 서울시민과 공직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6년 1월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박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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