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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희단거리패’ 출신 곽도원, 이윤택 언급...“극단서 쫓겨나 연극 못 하게 됐다”

    ‘연희단거리패’ 출신 곽도원, 이윤택 언급...“극단서 쫓겨나 연극 못 하게 됐다”

    배우 곽도원이 과거 연극 연출가 이윤택을 언급한 것이 재조명되고 있다.20일 성추행·성폭력 파문의 중심에 선 연극 연출가 이윤택에 대한 폭로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과거 배우 곽도원이 한 인터뷰에서 이윤택을 언급한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윤택이 예술 감독을 맡았던 극단 연희단거리패 출신인 곽도원은 지난 2012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연극을 하다 영화에 진출했다고 밝혔다. 곽도원은 “밀양에서 7년을 지냈다. ‘밀양연극촌 한 달 워크숍. 경험자 50만 원, 미경험자 70만 원’이라는 신문 광고를 보고 밀양으로 내려갔었다”며 극단에서 활동했던 사실을 전했다. 이어 연극을 그만두게된 계기에 대해 “선배들 말을 안 듣는다고 극단에서 쫓겨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이윤택 감독은 대한민국 연극계에서 가장 높은 분이고, 내가 어느 극단에서 연극을 해도 ‘저놈 잘라’ 하면 잘리는 정도의 파워를 가진 분”이라며 “그러니 이제 연극도 못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후 술만 먹고 신세한탄을 하니 여자친구도 떠났다”며 “여자친구에게 복수하고, 연기를 못하게 한 이윤택 감독에게 떳떳하게 나서기 위해 영화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사진=뉴스1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라디오 로맨스’ 윤두준-김소현-윤박, 숨막히는 쌩방 전쟁 예고

    ‘라디오 로맨스’ 윤두준-김소현-윤박, 숨막히는 쌩방 전쟁 예고

    ‘라디오 로맨스’ 윤두준, 김소현, 윤박이 쌩방 전쟁의 막을 올린다.13일 오후 10시 방송 예정인 KBS2 월화드라마 ‘라디오 로맨스’가 폭탄급 톱스타 DJ 지수호(윤두준 분), 대본 못 쓰는 작가 송그림(김소현 분), PD 이강(윤박 분)의 ‘쌩방 전쟁’을 예고했다. 지난 4회 방송에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첫 라디오 방송분 녹음을 시작한 3인방. ‘지수호의 라디오 로맨스’라는 프로그램 타이틀과 달리 이들의 라디오 세상 첫 발걸음은 로맨틱하지 못했다. DJ 석에 앉은 수호가 그림의 글이 아닌 따로 준비한 기획 작가의 대본을 읽은 것.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만난 지수호씨는 초면인 것 같다”라면서 서운한 얼굴을 감추지 못한 송그림과 그녀를 위로하려 따라나서는 이강을 수호가 가로막는 엔딩으로 긴장감을 높이며 드라마 팬들의 궁금증을 높이고 있다. 공개된 예고 영상과 스틸에서 라디오 3인방이 다시 들어선 것 라디오 부스에서는 아찔한 ‘쌩방’ 사고가 터질 것으로 예측되는 바. 인도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마스떼”라며 인사는 하지만,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여전한 개망나니 PD 이강과 누구한테든 져본 적 없는 “내가 뭘 포기하고, 그만두고, 그런 거랑은 거리가 있다”라는 톱스타 DJ 지수호. 그리고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톱스타를 DJ로 두고도 “인생이 왜 이렇게 오락가락 하냐”고 한탄을 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작가 송그림의 숨 막히는 쌩방 전쟁에서는 무슨 일이 생길까. 한편, 지난 엔딩에서 그림을 가운데 둔 신경전으로 쫄깃한 긴장감은 선사한 수호와 이강. 이날밤 펼쳐질 ‘쌩방’ 전쟁에서는 완벽한 갑을 계약인 ‘송그림 계약서’를 손에 쥔 톱스타 DJ와 그를 향한 역습을 계획하는 개망나니 PD 중 누가 승기를 들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완벽한 대본이 필요한 톱스타 DJ 지수호와 라디오를 사랑하는 초짜 작가 송그림의 아찔하고 심쿵한 ‘쌩방’을 그리는 KBS2 ‘라디오 로맨스’는 이날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사진제공= 얼반웍스, 플러시스 미디어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서동욱의 파피루스] 올림피아의 황금빛 경기마차를 찾아서

    [서동욱의 파피루스] 올림피아의 황금빛 경기마차를 찾아서

    올림픽이 개막됐다. 지구의 물리 법칙 아래 있는 사물 가운데, 아주 독특한 사물인 인간의 신체가 자신의 지배자인 물리를 뛰어넘으려고 시도하는 장엄한 광경이 올림픽에는 있다. 나에게 올림픽이라면 무엇보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이다. 마라톤 평원을 달려 승전보를 전한 그리스 병사의 고독한 발걸음에서 마라톤이라는 스포츠가 태어난 것처럼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과 떼어 생각할 수 없다. 고대 올림픽은 모든 시대 운동 경기의 이상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를 통해 우리는 운동이란 무엇이고 시합이란 무엇인지, 나아가 인간의 위대함이란 어떤 것인지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최초의 역사학자 가운데 한 명인 헤로도토스는 ‘히스토리아’에서 올림픽에 관해 인상 깊은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스 정벌에 나선 페르시아인들은 그리스인들이 정기적으로 올림피아에서 체육대회에 몰두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경기에서 이긴 승자는 어떤 상품을 얻는가? 금품이 아니라 고작 올리브 가지로 엮은 관이 수여된다는 말을 듣고 페르시아인들은 한탄한다. “그대는 어찌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필이면 이런 인간들과 싸우게 만들었는가? 금품이 아닌 명예를 걸고 경기를 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우리가 잘 알듯 페르시아는 그리스를 이길 수 없었다. 그리스군은 금전을 위해 싸우는 자들이 아니라 명예를 위해 올림피아에서 겨뤘던 운동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짧은 일화만큼 올림픽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다. 그것은 신체라는 보이는 사물을 통해 명예라는 보이지 않는 덕을 드러내는 일이다. 미인 대회처럼 신체 자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행사도 있지만, 아름다운 덕이 보이도록 신체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정치, 사업, 학문, 연예. 세상 어떤 직종도 덕의 현시를 위해 이토록 신체를 알뜰히 활용하지는 못한다. 오로지 스포츠밖에는. 올림픽의 많은 종목의 기원에는 전쟁이 있다(활을 쏘고 창을 던지고 마라톤의 승전보를 전하고). 그럼에도 올림픽이 전쟁 연습 같은 것이 아닌 까닭은 바로 저렇게 신체를 통해 보이지 않는 덕을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올림픽은 개인의 덕뿐 아니라 공동체의 덕도 요구한다. 올림픽 기간에 도시국가들은 전쟁을 멈추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전쟁의 중단은 격한 분노 속에서 살육하던 이들의 내면에서 날뛰는 학살자를 단번에 죽이는 일이다. 모든 민족이 가진 태초의 신화는 인간이 겪은 최초의 사건으로 전쟁과 살해(가령 오시리스의 살해, 아벨의 살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스포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제심이라는 덕 없이는 개최가 불가능한 고대 올림픽은 스포츠가 인간의 타고난 살육 본성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증언하는 것이다. 요컨대 이는 스포츠라는 인간의 문화적 고안물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제도(濟度)하겠다는 도전의 표현이다. 올림픽은 또한 인간에게 운동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영혼의 덕은 타고난 것이 아니고 습관이나 운동을 통해 체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덕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교실에 앉아 선생님의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플라톤은 운동을 통해 덕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정직, 인내, 절제, 용기, 협조 같은 덕은 책상에 앉아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 덕목의 의미를 머릿속으로 외우는 것이 관건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핵심인 까닭이다. 덕의 체득은 몸을 움직이는 노력, 연습, 바로 스포츠를 통해 가능하다. 인내와 절제 없이는 달성할 수 없는 체력, 너그러움과 협조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팀워크를 보라. 스포츠는 신체와 동시에 영혼을 성장시키는 연습장인 것이다. 오래전 올림피아의 부서진 옛 경기장에 서서 횔덜린의 시구를 되뇐 적이 있다. “테베도 아테네도 시들고 올림피아에는 무기도 황금빛 경기마차도 소리 내지 않는다.” 횔덜린은 고대 그리스의 상실을 비가 ‘빵과 포도주’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현대인들의 운동 시합이란 바로 저 황금빛 마차가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던 옛 올림픽을 고대인들보다 더 훌륭하게 복원하려는 시도 아닐까? 책략이나 선전의 노예가 아닌 진정한 덕의 올림픽.
  • 이종현 심경고백 “사는 게 어렵고 무거워, 보고 싶은 사람 많아”

    이종현 심경고백 “사는 게 어렵고 무거워, 보고 싶은 사람 많아”

    씨앤블루 이종현이 SNS에 심경고백 글을 올렸다.지난 1일 밤 이종현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심경고백 글을 올렸다. 이종현은 “29살 먹고 남사스럽지만 참 사는 게 어렵고 무겁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종현은 “어려서 몰랐던 건지 세상이 변한건지, 어른들은 참 대단하다. 그냥 공경하라는 게 아닌 거 같다”며 “가끔 공원에서 해가 질 때쯤 부르시던 부모님 목소리와 그 때가 매우 그립다. 덩치만 커지고 달라진 건 별로 없는데”라고 한탄했다. 이종현은 “이것 역시 혼자 보려 쓰다 왠지 숨는 기분이 싫어서, 하지 말라면 더하고 싶은 심보인지 언제부턴가 사진만 올리는 이 공간이 지겹다. 체질에 맞지도 않고, 오늘은 많은 사랑 받아서 그런지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종현의 심경고백에 많은 이들의 우려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이종현은 올해 방송 예정인 OCN 드라마 ‘그남자 오수’에 출연할 예정이다. 사진=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기자 도읍지는 漢 낙랑군 조선현… 평양은 후대 상상의 산물일 뿐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기자 도읍지는 漢 낙랑군 조선현… 평양은 후대 상상의 산물일 뿐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400여년 전의 17세기 평양으로 돌아간다면 기자(箕子)가 평양에 왔었다고 믿기 십상일 것이다. 평양에 기자의 유적·유물이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서기전 12세기경의 인물인 기자가 평양으로 왔다는 인식은 사후 2400여년 후인 서기 12세기부터, 기자의 평양 유적은 서기 14세기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조선 중기에는 유적이 만들어진 지 이미 400여년이 지났기 때문에 진위 구별이 쉽지 않았다. 기자가 평양으로 왔다는 ‘기자동래설’을 믿고 싶었던 사대주의 유학자들은 굳이 진위를 밝힐 생각도 하지 않았다.●기자의 지팡이 조선 선조 때 윤두수(尹斗壽·1533~1601)는 평양감사 시절 ‘평양지’를 편찬했는데 서문에서 “평양은 기자의 옛 도읍이다”라고 썼다. 윤두수는 “평양성의 남쪽에 기자가 만든 정전(井田)이 있고 … 성 북쪽에 토산(?山)이 있는데 기자의 의관(衣冠)을 묻은 곳이다. … 그 외에도 기자궁(箕子宮), 기자정(箕子井), 기자의 지팡이(箕子杖)가 있다”고 말했다. 평양에 기자의 궁전이 있고, 기자의 의관을 묻은 토산이 있고, 우물인 기자정이 있고 기자의 지팡이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기자가 평양에서 실시했다는 정전제(井田制)의 모형도 만들어 놨다. 사각형 농지를 우물 정(井) 자 형태로 나누면 아홉 구획의 농지가 생기는데, 여덟 가구가 한 구획씩 경작하고 가운데는 공동으로 경작해 세금으로 내는 이상적인 토지제도가 정전제다. 윤두수의 동생 윤근수(尹根壽·1537~1616)는 ‘평안도 감찰사로 나가는 박자룡(朴子龍)을 전송하는 서문’에서 “(평양에는) 기자의 지팡이가 있어서 감사가 관아에 있을 때 그 지팡이 한 쌍을 가지고 앞에서 인도했다”고 말했다. 윤근수는 자신이 등나무(?)로 만든 기자의 지팡이를 직접 보았는데 “임진왜란 때 잃어버렸으니 개탄스럽다”고 한탄했다. ●중국에 역수출된 평양기자 기자가 평양에 왔으니 그 후손들도 있어야 했다. 조선 중·후기 문신 미수(眉?) 허목(許穆)은 ‘동사’(東史)의 ‘기자(箕子)세가’에서 “기자의 후손은 기씨(奇氏), 한씨(韓氏), 선우씨(鮮于氏)”라고 말했다. 조선의 기씨·한씨·선우씨가 기자의 후예라는 것이다. 그런데 송나라의 문인 소식(蘇軾·1037~1101)과 원나라 문인 조맹부(趙孟頫·1254~1322)가 중국의 선우(鮮于)씨들에게 써 준 글들에서 ‘선우씨가 기자의 후손’이라고 쓴 것이 알려졌다. 그래서 광해군 때 예조판서였던 월사 이정구(李廷龜)의 건의에 따라 선우식(鮮于寔)이 평양 기자 사당의 제사를 주관하게 됐다.평양은 중국 사신들이 오가던 지역이었고, 기자 무덤은 이들의 단골 방문지가 됐다. 평양의 기자 유적은 중국에도 널리 퍼졌고, 중국인들이 거꾸로 조선인들에게 물었다.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1731~1783)은 영조 42년(1766년) 청나라에 다녀와서 쓴 기행문 ‘연기’(燕記)에서 중국 허난(河南)성 출신의 한림(翰林) 팽관(彭冠)과 나눈 이야기를 실었다. 팽관이 “기자의 후손이 지금 조선에 있습니까”라고 묻자 홍대용은 “평양에 기자의 무덤과 사당이 있는데 그의 후손들이 세습하면서 사당을 지키고 있습니다. 정전(井田)의 유적지가 아직도 있으니 고증할 만합니다”라고 답했다. 14세기 이후 만들어진 평양의 기자 유적들이 거꾸로 중국인들에게 ‘기자동래설’의 증거로 역(逆)사용됐던 것이다. ●조선 후기 학자들의 의심 그런데 조선 후기 중국의 1차 사료들을 검토하는 학풍이 일면서 “기자가 정말 평양으로 왔는가”라는 의문을 품는 학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강역고’(疆域考)의 ‘조선고’(朝鮮考)에서 “내가 살펴보니 요즘 사람들은 기자조선에 대해서 많이 의심하면서 혹 요동에 있지 않았는가 생각한다”라고 썼다. 기자조선이 평양 일대가 아니라 고대 요동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었다는 뜻이다. 정약용이 사숙(私淑)했던 성호 이익(李瀷·1681~1763)도 그런 학자였다. 그는 기자가 평양에 왔다고는 생각했지만 기자의 강역에 대해서 쓴 ‘조선지방’(朝鮮地方)에서는 기자가 당초에 봉함을 받은 지역이 “연나라에 접근해 있었으니 지금 만리장성 밖 요심(遼瀋·만주) 지역이 모두 강역 내”라고 썼다. 기자조선이 지금의 베이징 부근에 있던 연나라와 국경을 접해 있었으니 요심과 지금의 산해관(山海關) 부근의 만리장성을 넘는 지역이 모두 그 강역이었다는 뜻이다. 이익은 또한 ‘병영’(幷營)이라는 글에서는 ‘기자가 봉함을 받은 지역이 … 순(舜)시대의 병주(幷州)와 영주(營州)가 아니겠는가”라고도 말했다. 병주는 베이징 부근이고, 영주는 산둥성 일대를 뜻한다.●기자조선 위치가 중요한 이유 기자조선의 위치가 중요한 것은 현재 북한 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동북아 역사전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기자조선의 도읍지 평양이 위만조선의 도읍지가 됐고, 그 자리에 낙랑군이 섰으므로 북한 강역이 중국의 역사 영토라는 것이 중국은 물론 국내 식민사학계의 논리다. 그럼 중국 사료도 그렇게 말하고 있을까. 한나라의 정사인 ‘한서’(漢書)에는 한나라의 행정구역을 설명한 ‘지리지’가 있다. ‘한서’의 ‘지리지’ 주석은 낙랑군 조선현이 기자가 도읍한 곳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한서’ 지리지에서 말하는 낙랑군 조선현을 찾으면 된다. 한 무제(武帝)는 원봉(元封) 5년(서기전 106) 전국을 13개 주(州)로 나누어 각각 자사(刺史)를 두었다. 지금의 베이징 지역에 있던 유주자사부(幽州刺史部)는 산하에 여덟 개 군을 두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낙랑군이다. 한나라는 전국에 30리 단위로 설치한 역참(驛站)에서 말을 갈아타 가면서 행정 문서를 주(州)나 군(郡)에 전달하게 했다. 한 주(州) 내의 산하 군들에는 보통 하루나 늦어도 이틀이면 행정문서가 전달되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유주(베이징)에서 광활한 만주벌판을 지나서 천산산맥, 장백산맥, 낭림산맥 등의 험준한 산맥을 넘고, 허베이성 난하와 요녕성 대릉하, 요하를 건너고 압록강과 청천강 등을 건너 하루나 이틀 안에 평양에 행정문서를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기자조선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은 후대 사람들의 상상의 산물이다. 고구려를 침공했던 수(隋)나라 양제(煬帝·재위 604~618) 때 인물 배구(裵矩)는 서역에 관한 지리서인 ‘서역도기’(西域圖記)를 지어 올릴 정도로 지리에 밝은 인물이었다. ‘수서’(隋書)의 ‘배구 열전’에 따르면 그는 수 양제에게 “고려(고구려)의 땅은 본래 고죽국(孤竹國)인데, 주(周)나라 때 기자를 봉한 곳입니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봉함을 받았다는 고죽국에 대해서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의 ‘고죽안시’(孤竹安市)에서 “고죽국은 영평부(永平府)에 있다”고 말했다. 영평부 자리가 기자조선이 있던 자리라는 뜻인데, 명·청 때의 영평부는 지금의 허베이성 루룽(龍)현이다. 청나라 때 역사지리학자 고조우(顧祖禹)가 편찬한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는 “영평부 북쪽 40리에 한나라 낙랑군의 속현이었던 조선성(朝鮮城)이 있다”고 말해서 영평부 자리가 기자조선의 도읍임을 밝혔다. 앞으로 후술하겠지만 지금의 허베이성 루룽현이 옛 한나라 낙랑군 조선현 지역이라는 사료는 이외에도 많다. 평양은 고려 후기 유학자들이 기자의 도읍으로 끌어들였을 뿐 중국의 여러 사료들은 지금의 허베이성 루룽현을 기자의 도읍지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무력화할 중국 사료는 많다. 중국이나 일본의 눈이 아니라 우리의 눈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관의 전환이 시급한 때다. ■기자와 선우씨 조선에서 ‘선’자 따고 우땅 ‘우’를 합쳐 선우…선우씨 정통처럼 인식 ‘상우록’(尙友錄)에는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朝鮮)에 봉했는데, 그 아들 중 한 명인 중(仲)이 우(于)땅을 채지(采地·봉토)로 받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조선에서 선(鮮) 자를 따고 우땅에서 우(于) 자를 따서 선우(鮮于)씨가 됐다는 것이다.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재위 1368~1398) 때 중령별장(中領別將) 선우경(鮮于京)의 7대 후손이라는 선우식(寔)이 평안도 태천(泰川) 평양의 기자 사당인 숭인전(崇仁殿) 곁에 와서 살았다. 그래서 그를 기자의 후예로 인정해 광해군 때 숭인전 전감(殿監)에 제수했고, 그 자손이 대대로 전감직을 세습함으로써 선우씨가 기자의 정통처럼 인식됐다.
  • 최근 한파에 누리꾼들 “3한 4온 다 옛말”

    최근 한파에 누리꾼들 “3한 4온 다 옛말”

    연일 계속되는 한파에 ‘3한 4온’은 다 지난 옛말이란 한탄이 나온다. 일부 누리꾼들은 최근 강추위를 ‘6한 1온’이라 부르고 있다.29일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날씨는 지난 주부터 계속된 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지난 28일 잠시 주춤했던 추위가 다시 심해지는 것이다. 이날 오전 9시 현재 서울 -11도, 춘천 -14도, 광주 -4도, 부산 -4도 등을 기록 중이다. 오후 날씨는 서울이 -6도, 춘천 -4도, 대전 -2도, 대구 0도, 부산 3도 등까지 오를 것으로 예보됐다. 이날 날씨가 -10도를 밑돌면서 한 주 내내 이어진 최강 한파에 시민들의 피로감도 높아졌다. 누리꾼들은 “3한 4온 다 옛말이네, 요즘은 7한이나 6한 1온이라고 말할수 있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한편 오늘 날씨가 -10도 안팎을 유지함에 따라 상하수도관 동파에도 비상등이 켜진 모양새다. 관련해 찬 공간에 위치한 상수도관 및 세탁용수관 등 사용시 동파에 유의하는 게 좋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올해 철원에 두루미 930마리 왔다

    올해 철원에 두루미 930마리 왔다

    환경부는 지난 25일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된 철원평야가 전체 야생 두루미의 30%가 겨울을 나는 세계 최대 월동지역으로 확인됐다고 28일 밝혔다. 철원평야는 임진강과 한탄강 일대 약 150㎢ 규모의 평지로 겨울에도 얼지 않고 여울 등이 어우러져 철새가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환경부에 따르면 19~21일 실시한 철원평야 동시센서스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1급)인 두루미가 930마리 관찰됐다. 1999년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가 시작된 뒤 최대 개체다. 철원평야를 찾는 두루미는 1999년 382마리, 2008년 603마리 등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한국의 조류 가운데 키가 가장 큰 두루미는 지구상에 2800~3300여 개체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멸종위기 2급 야생생물인 재두루미도 전 세계 개체수의 64%인 4300여 마리가 월동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철원평야를 찾은 철새는 49종 3만 9898마리로 2015년(47종, 1만 864마리)과 비교해 3.7배 증가했다. 철원평야가 두루미 천국이 된 것은 환경부가 2004년부터 지방자치단체, 주민과 함께 적극적으로 두루미 서식지 보호 활동에 나선 결과로 풀이된다. 환경부는 지자체·농민과 생물다양성관리계약을 맺고 볏집을 논에 그대로 놔두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논에 물을 가둬 두루미에게 우렁이 등 먹이를 제공하는 ‘철원 두루미 서식지 보전 프로젝트’도 시작됐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宋국방·趙통일·康외교, 3색 대북발언 왜

    宋국방·趙통일·康외교, 3색 대북발언 왜

    최근 세 장관 부처 엇박자와는 차이 평창 이후 北·美 대화 새 전략 관측 中·러 소극적… “北·美 적극 중재를”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외교안보 각 부처 수장(장관)들이 제각기 다른 온도의 대북 발언을 쏟아냈다. 남북 대화는 순항하고 있지만 북한과 주변국들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양측을 중재하며 궁극적 목적인 북한의 비핵화 논의를 이끌어 내려는 전방위적 노력으로 읽힌다. 우리 정부가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남북 대화를 북·미 대화로 연결하기 위해 본격적 새판 짜기에 돌입했다는 관측도 있다. 다만 우리 측이 미국이나 북한에 귀를 기울이는 만큼 우리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메티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 26일(현지시간) 하와이에서 한·미 국방장관회담을 열고 한·미 군사공조 강화에 공감하며 북측을 압박했다. 반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27일 한 인터뷰에서 북측의 대규모 열병식은 평창동계올림픽과 무관하게 ‘내부 결속용’이라며 남북 대화 의지를 표명했다. 북측이 평창올림픽 전날 위협적 수준의 열병식을 할 것으로 관측되면서 국내외에선 각종 우려가 제기된 터였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앞서 25일(현지시간) 대북 제재가 북측을 대화로 이끌어 내고 비핵화 논의로 연결되는 선순환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발언의 온도가 송 장관과 조 장관의 중간 정도다. 세 장관의 대북 온도 차는 부처 간 엇박자와는 거리가 있다. 외려 큰 틀에서 제 역할을 수행 중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장관들의 태도가 다 다르게 보이지만 한·미 동맹과 남북 관계를 함께 가져가려는 문재인 정부의 방향성에서 보면 큰 퍼즐을 짜맞추며 잘 가고 있다”며 “하지만 미국과 북한을 어떻게 회담 석상에 앉힐지 구체적 방안을 강구하는 게 큰 숙제”라고 말했다. 현재 소극적 자세를 취하는 중국이나 러시아를 감안할 때 결국 우리나라가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남북 대화가 북·미 대화의 불씨로 살아 있지만, 미국과 북한의 입장 차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미국은 최근 중·러 등에서 활동하는 북한 국적자, 회사, 선박 등에 추가 독자 제재를 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한·미 양국이 동의했듯 제재와 압박이 북한을 남북 대화 석상으로 끌어내는 효과를 봤다는 평가도 있다. 매티스 장관은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김정은 정권의) 위협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여전히 외교가 주도한다”면서도 “외교관들이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도록 군사적 옵션으로 뒷받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남북 대화에는 적극적이지만 한·미 공조에 대해서는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26일 “지금 겉으로는 대화와 평화의 기류가 흘러도 그 밑에 핵전쟁의 검은 소용돌이가 시한탄처럼 도사리고 있는 조선반도의 정세는 의연히 첨예하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통신도 25일 “남조선 당국이 미국과의 전쟁연습을 영원히 중단하고 남조선에 미국의 핵 전략자산들과 침략무력을 끌어들이는 일체 행위들을 걷어치워야 한다”며 평양에서 열린 정부·정당·단체 연합회의 결과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남북 대화가 북·미 대화로 이어지기 위해 우리 정부에 적극적 중재 역할을 제언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우리 정부가 백방으로 노력하는 모습이지만 아직은 미국, 북한 등 주변국들에 끌려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북측에 열병식 연기를 요청하는 한편 한·미 연합군사훈련 규모나 장소의 조정을 위해 협의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다스 관계자 녹취파일 속 이동형 “이시형, MB 믿고 마음대로”

    다스 관계자 녹취파일 속 이동형 “이시형, MB 믿고 마음대로”

    JTBC ‘뉴스룸’은 25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인 이시형씨와 조카인 이동형씨의 음성이 녹취된 통화파일 888개를 입수해 그 일부를 공개했다.이 파일은 다스의 핵심 관계자가 오랜 기간 다스의 임원 및 전·현직 관계자들과 통화했던 내용들로 이시형 다스 전무와, 이상은 다스 회장의 아들인 이동형 다스 부사장의 목소리가 담겼다. 이시형 전무가 상무로 있을 2016년 7월, 직급이 높은 사촌형 이동형 부사장이 있지만 결정권은 시형씨에게 있는 것으로 읽히는 대화가 들렸다. 이시형씨는 “알아서 한다는 게 여러가지로 시끄러웠잖아요. 이 부사장 잘못도 있고 그렇지만 내부적으로 할 일이고 바깥에서 이 부사장하고의 일이잖아요”라며 상급자인 이동형 부사장을 나무란다. 또 자신을 빼고 논의가 진행된 데 대해서는 “나는 어떻게 들었냐, 이 부사장이 OOO와 만나서 얘기가 끝난다. 난 이렇게 들었다. 내가 또 잘못 들은 거네”라며 화를 냈다. 이동형씨는 사내주도권 싸움에서 한 발 빠져 “갈등구조가 있잖아. 시형이도 내 입장에서는 내가 총괄이사 대표이사로 가는 것은 안되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단을 낼 것 같은 뉘앙스인 거야”라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뒤 실권이 없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말을 했다. 이동형씨는 “회장님 의견이 중요하잖아. 아무리 필요없는 의견이라도 해도 회장님 의견도 중요하잖아”라면서 “시형이는 지금 MB 믿고 자기 것이라고 회사에서 맘대로 하고 있잖아”라며 시형씨가 다스의 실제 주인이라는 결정적인 발언을 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나혼자’ 기안84, 미술학원서 정신수련 “입시생 열정 본받기 위해”

    ‘나혼자’ 기안84, 미술학원서 정신수련 “입시생 열정 본받기 위해”

    ‘나혼자산다’ 웹툰 작가 기안84가 새로 이사한 집을 두고 미술학원에서 숙식을 해결했다.26일 오후 방송되는 MBC 예능프로그램 ‘나혼자산다’에서는 기안84가 미술학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모습이 공개된다. 기안84는 자신의 웹툰 순위가 하락한 것을 확인하고 미술 학원에서 ‘정신 수련’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개된 사진 속 기안84는 미술학원에서 밥을 먹고, 학원 화장실에서 씻은 뒤 난로로 머리를 말리는 등의 생활을 하고 있다. ‘나혼자산다’ 제작진에 따르면 기안84는 치열하게 그림을 그리는 입시생들의 열정을 본받기 위해 미술 학원 숙식을 결정했다. 하지만 그는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과 길에서 만난 학생들이 자신의 웹툰 ‘복학왕’에 대해 ‘팩트폭격’을 하자 오히려 충격을 받고 “소재도 생각 안 나는데 인기도 없고...”라는 신세 한탄을 했다고 전해졌다. 한편, MBC ‘나혼자산다’는 오는 26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사진=MBC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10년 유배·유랑생활에도 새 시대 준비…세상을 피하지 않았던 ‘삼봉’의 신념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10년 유배·유랑생활에도 새 시대 준비…세상을 피하지 않았던 ‘삼봉’의 신념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은 죽는 법/ 구차하게 산들 편할 리 없네.’(自古有一死(자고유일사) 偸生非所安(투생비소안)) 몇 년 전 큰 화제를 모았던 KBS 1TV 대하드라마 ‘정도전’에 소개된 시의 일부다. 신념을 지키는 일이 목숨을 지키는 일보다 중하다는 시구의 울림이 크다. 이는 1375년 여름 정도전이 성균관 사예(司藝)로 있을 당시 지은 ‘감흥’(感興)이라는 시다. 그는 이즈음 정세의 잘잘못을 따졌다가 재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전라도 회진현으로 추방을 당했다. 드라마 작가는 이 시를 어디에서 찾았을까? 이 시는 어떤 배경에서 지어진 걸까? 이 시의 전체 내용은 무엇일까? 이 모든 궁금증을 풀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문집이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구축한 한국고전종합DB(db.itkc.or.kr)에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역사문헌 외에도 ‘한국문집총간’으로 집대성된 문집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옛 선비들이 남긴 기록물을 한 가득 차려 놓은 ‘잔칫상’을 만난 느낌이 들 것이다. 관심 가는 대로 관련 검색어를 넣고, 검색 결과를 읽으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옛 선인들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고, 새로운 콘텐츠를 입체적으로 엮어낼 수도 있다. ‘삼봉집’(三峯集)을 시작으로 한국고전번역원과 서울신문이 격주로 옛 선비들이 남긴 문집을 소개한다.# 하늘이 큰 임무를 맡긴 사람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 소임을 내리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 살과 뼈를 고달프게 하고, 그 신체와 피부를 말라붙게 하고, 그 몸을 궁핍하게 하며, 그가 하는 일마다 잘못되고 어지러워지게 하는데, 이는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격을 강인하게 함으로써 그의 부족한 능력을 키워 주려는 것이다.” 맹자의 ‘고자’(告子)에 실린 구절이다. 큰 임무를 맡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아 힘들 때 이 구절을 읽으면 용기를 되찾게 된다. 하늘의 뜻인지는 몰라도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기면 마음도 강해지고 역량도 커지는 것만은 틀림없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격동기에 역사의 중심에 서서 새 왕조의 정치, 경제, 사회, 외교의 구도를 설계한 인물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1342∼1398). 조선을 개국할 무렵, 정도전은 취중에 종종 “한고조(漢高祖)가 장자방(張子房)을 쓴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고조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왕으로 세워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정하였고, 최고 통치자의 거처인 경복궁의 터를 잡고 건물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훗날 ‘경국대전’의 기초가 되는 법 규정을 마련하였고, 이단(異端)을 배척하고 조선의 중심 사상으로 성리학을 안착시켰다. 이런 큰 임무를 맡기려는 하늘의 뜻이 있어서였을까? 새 왕조를 세우기 이전, 정도전은 유배와 유랑 속에서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하였다. 불우한 시기를 보낼 때의 정도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이 시기에 그는 어떤 마음으로 무슨 일을 했을까? 현인군자(賢人君子)도 진실로 이런 것입니까? 정도전은 향리에서 출발하여 사족(士族)으로 성장한 전형적인 신흥사대부 출신이다. 그는 뚜렷한 정치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채 공민왕의 개혁 정치에 소극적으로 참여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1374년 우왕이 즉위하고 이인임 일파가 집권하게 된다. 이인임 일파는 친원반명(親元反明) 정책을 펴고, 이에 반대한 정도전은 결국 개경에서 쫓겨나 나주 부근의 회진현으로 유배를 간다. 비방이 들끓어 앞으로 어떤 화가 닥칠지 모를 상황이 되자, 정도전의 아내는 두려운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 보낸다. “경은 평소 부지런히 글을 읽기만 했지, 아침저녁으로 끼니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집 안은 종을 걸어 놓은 것처럼 텅 비어 곡식 한 섬도 마련할 길이 없는데, 방 안 가득한 어린 것들은 춥고 배고프다고 울어댔습니다. 제가 끼니 해결을 맡아 그때그때 마련하면서도 경께서 열심히 공부하시기에 언젠가는 입신양명하여 처자들이 우러러 의지할 날이 있겠지, 가문에 영광이 있겠지 하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국법을 어겨 욕을 당하고 쫓겨나, 자신은 남쪽 변방에 귀양을 가서 장독(瘴毒)이나 마시게 되고 형제들은 자빠져서 가문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이 지경까지 세상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현인군자도 진실로 이런 것입니까?” 고생스러워도 언젠가는 좋아질 거라 믿고 생계를 꾸려 왔던 아내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신세를 한탄하며 남편을 책망한 내용이었다. 이 편지를 받은 정도전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당신 말이 참으로 맞소. 나에게는 형제보다도 정이 두터운 친구가 있었는데, 내가 패한 것을 보더니 뜬구름같이 흩어졌소. 그들이 나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본래 세력으로 맺어졌지, 은혜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서 그렇소. 부부의 도는 한번 결혼하면 종신토록 바뀌지 않는 것이니, 당신이 나를 책망하는 것은 사랑해서이지 미워서가 아닐 것이오. 또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과 같으니, 이 이치는 진실한 것으로, 모두 하늘에서 얻은 것이요. 당신이 집을 근심하는 것과 내가 나라를 근심하는 것 외에 어찌 다른 것이 있겠소? 각각 그 직분을 다하면 될 뿐이요. 그 성패(成敗)와 이둔(利鈍)과 영욕(榮辱)과 득실(得失)은 하늘이 정한 것이지,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오. 그러니 근심할 게 뭐 있겠소?”# 삼봉집 제4권 가난 답장의 첫마디는 아내의 문제 제기에 대한 ‘인정’이었다. 아내가 겪고 있을 고충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처지에서 ‘도리’를 부탁할 수밖에 없는 지아비가 건넬 수 있었던 유일한 위로는 아내의 격한 감정에 대한 ‘공감’이었다. 그는 부부의 중한 인연을 강조하면서 운명에 순응하며 현실을 수용하자고 아내를 다독인다.# 현실적 한계 속에서도 꺾이지 않다 삼봉의 동년 친구 이유(李㽥)는 삼봉이 유배 기간에 지은 시와 문을 엮은 ‘금남잡제’(錦南雜題) 서문에서 자신이 지켜본 삼봉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지난해 여름에 선생이 충직한 마음으로 국가의 일을 말했다가 집권자의 비위를 거슬러 호남으로 유배되었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간 적이 있다. 선생은 집 하나를 빌려 좌우에 책을 두고, 갖옷과 베옷 한 벌로 추위와 더위를 맞았다. 아침저녁 나물 반찬을 먹으면서도 성현이 말한 인의, 도덕의 설을 이야기하여 천리와 인욕을 구분해서 밝히자, 남방의 학자들 중에 따르는 자가 많았다. (중략) 얻으면 좋아하고 잃으면 슬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선생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귀양 온 것도 신실해서였고, 그가 스스로 잘 지내는 것도 의리를 편안하게 여겨서였다. 부귀를 뜬구름같이 생각하고, 공명을 흙이나 지푸라기같이 생각하여, 산림과 조시(朝市·조정이나 저자)를 똑같이 보고, 사생과 궁달 앞에서 한결같은 절개를 지켰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자세로 생명을 포기하고서라도 의리 취하려는 일, 그것을 도를 독실히 믿고 스스로를 분명히 아는 자가 아니면 할 수 있겠는가? 역경(易經) 건괘(乾卦)의 문언전(文言傳)에, ‘옳다는 인정을 받지 못해도 걱정하지 않는다’(不見是而無悶)는 것이 바로 선생을 두고 한 말이다.” 삼봉집 제2권에 실린 ‘촌거즉사’(村居即事)에도 이 시기 삼봉의 생활 모습과 신념이 잘 담겨 있다. 띠풀 지붕 이고 있는 몇 칸짜리 작은 집(茅茨數間屋) 깊고도 외지다 보니 절로 먼지 일지 않네(幽絶自無塵) 낮이 길어 책을 보다 게을러지고(晝永看書懶) 바람 맑아 두건을 젖힐 때가 많다네(風淸岸幘頻) 푸른 산은 어느 때고 문으로 들어오고(靑山時入戶) 밝은 달은 밤이면 이웃이 되어 주네(明月夜爲鄰) 어쩌다 번뇌를 내려놓고는 있지만(偶此息煩慮) 원래 세상을 피하는 사람은 아니라네(原非避世人) 외진 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한가하게 지내고 있긴 하지만 자신은 세상을 피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는 10년에 걸친 유배·유랑 생활을 할 때에도 지식인으로서 사회를 걱정하고, 현실적 한계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새 시대를 열어 갈 준비를 했다. 정도전이 나주 동루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면서 나주의 부로들을 일깨우며 쓴 글이 있다. “이 고을은 파괴되어 흩어져 버린 이웃 고을 한가운데, 강포한 왜구의 침략을 받는 곳에 있으면서도 유독 안전하게 있으니, 이는 마치 만 길이나 되는 높은 언덕이 거센 물결을 막아 주어, 파도가 극도로 성난 기세로 분탕 치며 부딪치더라도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방파제가 되는 것과 같다. (중략) 이는 목사(牧使)를 잘 정해 덕의를 베풂으로써 민심이 흩어지지 않게 모아서가 아니겠는가? 또한 부로들이 평소 잘 가르쳐 백성들이 의리를 향할 줄 알아서일 것이다. 아! 가상하다 하겠다. 그러나 요사이 왜구들이 더욱 날뛰어 그 형세가 날로 더하고 덜해지지 않고 있다. 부로들은 지금까지 무사했다 하여 타성에 젖어 있지 말고, 자제들을 격려하여 기계를 수리하고 봉화를 점검하여 주와 현을 지켜 국가에서 남쪽을 걱정할 일이 없게 하라.”(삼봉집 제3권 ’나주의 동루에 올라서 부로들을 일깨우는 글’(登羅州東樓諭父老書) 중에서)# 오늘, 여기서, 세상을 걱정하다 정도전은 나주 동루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면서 산천의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군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를 떠올렸다. 그러고는 남방의 일대 규모가 큰 진이 온전히 유지된 데 대해 나주 부로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이곳을 지킬 구체적인 계책을 이야기하며 더욱 경계할 것을 당부했다. 정도전은 어려운 시기에 학문적인 역량을 기르고 자기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사회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후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설계하고 기반을 닦는 큰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결국은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죽음을 당한다. 하늘은 삼봉에게 큰 임무를 맡기기 위해 어려움을 내려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격을 강인하게 하여 그의 역량을 키워 주었지만 그가 세운 원대한 계획을 다 이루도록 해 주지 않았다. 이는 또 누구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격을 강인하게 하기 위해 내린 모진 결정일까? 산 사람들이 역량을 키워 가며 짊어져야 할 또 다른 큰 임무는 무엇이었을까?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하늘의 뜻이다. 하승현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삼봉집(三峯集)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의 시문집… ‘여말선초’ 역사·정치 등 오롯이 삼봉집(三峰集)은 조선 개국공신이자 나라의 기틀을 세운 삼봉 정도전의 시문집이다. 이 책의 서문을 권근이 고려 말에 쓴 것으로 보아 고려 말에 처음으로 출간된 것으로 보이나 확실하지 않다. 판본은 1397년에 아들 정진이 2권의 문집으로 간행한 ‘홍무초본’(洪武初本), 1465년에 증손 정문형이 수정 보완하여 안동에서 간행한 중간본(重刊本), 1486년에 시문 100여수와 ‘경제문감별집’(經濟文鑑別集)을 첨가하여 간행한 본, 1791년에 정조의 명으로 규장각에서 판본에서 누락된 진법과 시문을 수록하고 비점과 주석을 첨가하여 14권 7책으로 간행한 본이 전해진다. 시와 문을 따로 수록하고 각각 문체별로 구분하였다. 문집의 권1~2는 운문으로, 한시와 악장, 사부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3~4는 산문으로 소, 전, 계 등 공적인 내용의 글과 서, 제발(題跋)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5에는 불씨잡변(佛氏雜辨)이, 권6에는 심기이편(心氣理篇), 심문(心問), 천답(天答)이, 권7에는 진법(陣法)과 습유(拾遺)가 수록돼 있다. 권8은 부록으로, 여기에는 사실(事實), 교고문(敎告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9~10에는 경제문감(經濟文鑑)이, 권11~12에는 경제문감별집이, 권13~14에는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이 수록되어 있다.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역사, 경제, 정치, 사상, 철학, 군사, 문학 등을 이해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은나라 ‘왕실의 후예’ 공자, 二代를 계승한 주나라를 인정하다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은나라 ‘왕실의 후예’ 공자, 二代를 계승한 주나라를 인정하다

    몇 년 전 한국과 중국, 중화민국(대만)의 인터넷상에서 논란이 된 사건 중에 ‘공자 한국인 설’이 있었다. 한국인들이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고 중국인들이 비난한 것이다.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공자가 동이족 출신인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필자의 억측이 아니라 사마천(司馬遷)이 ‘사기’의 ‘공자 세가(世家)’에서 서술한 내용이다.●공자는 동이족인가? 공자는 제후가 아니었음에도 사마천은 공자를 높여서 제후의 사적인 ‘세가’에 서술했다. 사마천은 공자의 만년에 대해 “(제자)자로(子路)가 죽고 공자가 병이 들었다”라고 병들어 쓸쓸한 노후를 묘사하고 있다. 아들 공리(孔鯉:BC 532~481)도 3년 전에 저세상으로 갔다. 공자는 찾아온 제자 자공(子貢)에게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구나. 아무도 나를 존숭하지 않는구나. 하(夏)나라 사람은 동쪽 계단에 빈소를 차렸고, 주(周)나라 사람은 서쪽 계단에 빈소를 차렸고, 은(殷)나라 사람은 양쪽 기둥 사이에 빈소를 차렸다. 지난밤에 나는 꿈에서 양쪽 기둥 사이에 앉아 제사를 받았다. 나는 은나라 사람에서 비롯되었다.”(사기, ‘공자세가’) 하·은·주(夏殷周)는 빈소를 차리는 예법이 각각 달랐다. 은나라 사람들은 양쪽 기둥 사이에 빈소를 차리는데 공자는 사후에 양쪽 기둥 사이에서 제사를 받는 꿈을 꿨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뿌리는 동이족 은나라라는 것이다. 중국학자들도 은나라가 동이족 국가라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공자는 그 7일 후인 노 애공 16년(BC 479) 4월 기축일에 세상을 떠났다. 사마천이 전하는 공자의 유언은 ‘나는 은나라 사람의 후예’라는 말이었다. ‘사기’에 따르면 공자는 송(宋)나라 시조인 미자(微子)의 후예였는데 미자는 은나라 왕 을(乙)의 큰아들이자 은나라 마지막 임금 주왕(紂王)의 서형이었다. 공자는 은나라 왕실의 후예인 동이족이었다.●공자가 ‘춘추’를 쓴 이유 공자는 자신이 ‘논어’(사진ㆍ論語)로 인류의 스승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후에 이름을 날린다면 역사서 ‘춘추’(春秋) 때문일 것으로 생각했다. 공자는 만년에 “군자는 생애가 다하도록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것을 근심한다. 나의 도가 행하지 않으니 내 무엇으로 후세 세상에 드러나 보이겠는가”라고 한탄하면서 ‘춘추’를 지었다. 공자는 다른 일은 제자들과 상의해 처리했지만 “‘춘추’를 지을 때는 기술할 것은 기술하고, 삭제할 것은 삭제했는데 자하(子夏·공자의 제자) 무리도 한마디 더 할 수 없었다”고 전한다. ‘춘추’는 공자 혼자 지었다는 것이다. 공자는 ‘춘추’를 다 쓴 후 제자들에게 보여 주면서 “후세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춘추’ 때문일 것이고 나를 비난하는 자가 있다면 역시 ‘춘추’ 때문일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공자는 ‘춘추’가 아니라 제자들이 그의 어록을 묶은 ‘논어’ 때문에 후세에 이름이 났다. 공자는 “‘춘추’의 의리가 행해지면 천하의 난신적자(亂臣賊子)가 두려워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실제로 공자보다 180여년 뒤의 사람인 맹자(孟子)는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니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하였다(맹자 ‘등문공(藤文公) 하’)”라고 말해서 ‘춘추’를 쓴 공자의 목적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음을 말해 준다.●‘춘추’의 의리 ‘춘추’는 주나라를 정통, 즉 임금의 나라로 보고 다른 나라들은 모두 신하의 나라로 보고 서술한 역사서다. 공자가 말한 ‘난신적자’란 주나라의 종통을 무시하는 자들을 뜻한다. 주나라는 크게 서주(西周·BC 11세기~BC 771년) 시대와 동주(東周·BC 770~BC 256) 시대로 나누는데,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는 동주시대다. 춘추시대는 각지를 차지한 제후들이 힘이 약해진 주나라 왕실을 능멸하고, 각 제후국 내에서는 강한 호족들이 제후들을 능멸하는 패도(覇道)의 시대였다. 그래서 공자는 모든 제후국들이 주나라를 따르는 것이 천하의 순리인 왕도(王道)라고 주창하는 춘추필법을 강조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중국을 황제국가로 보고 다른 모든 민족 국가를 신하의 국가로 보는 이른바 중화사관(中華史觀)이 나왔다. 공자가 제창한 유가(儒家)는 진(秦)나라 때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당할 정도로 큰 탄압을 받았지만 한(漢)나라가 들어선 후 상황이 달라졌다. ‘춘추’에서 정통으로 삼은 주나라를 한나라로 바꾸어서 해석하면 절대 충성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중국의 모든 왕조는 자신들을 정통으로 삼아 역사를 서술하는데 이것이 춘추필법, 즉 중화사관이다. 중국은 역사를 서술할 때 ‘중국을 위해 치욕의 역사는 감춘다’는 ‘위한휘치’(爲漢諱恥)와 ‘중국 내부의 일은 상세하게 쓰고 이민족의 일은 간략하게 쓴다’는 ‘상내략외’(詳內略外) 같은 춘추필법을 사용한다. 모두 ‘중화’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었다. ●공자의 사상적 방황 그러나 공자가 주나라를 정통으로 보는 ‘춘추’를 쓰기까지 많은 사상적 방황이 있었다. 자신이 동이족 은나라 왕실의 후예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은나라를 무너뜨린 주나라는 은나라의 신하국이었다. 임금의 나라인 은나라를 무너뜨린 주나라를 인정할 수 없었던 공자는 사상적으로 방황했다. 그런데 공자가 서른네 살 때인 노(魯) 소공(昭公) 24년(BC 518) 노나라 대부 맹리자(孟釐子)가 세상을 떠나면서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었다. 맹리자의 동생 남궁경숙(南宮敬叔)이 노나라 소공에게 “공자와 함께 주나라에 가고 싶다”고 요청한 것이다. 노 소공은 남궁경숙의 요청을 받아들여 마차와 심부름할 동자를 붙여 주었다. 공자는 드디어 주나라 수도 낙읍(洛邑·낙양)을 여유롭게 답사할 수 있었다. 공자가 방문했을 때 낙양은 퇴락한 주 왕실만큼이나 쇠락해 있었지만 역사에 밝은 공자의 눈에는 달리 보였다. 그래서 공자는 감탄사를 남긴다. “주나라는 이대(二代, 하·은나라)를 귀감으로 삼았으니 찬란하도다 그 문화여!(郁郁乎文哉!) 나는 주나라를 따르겠노라.”(논어 ‘팔일’(八佾)편)” 공자는 주나라가 그보다 앞선 하·은나라의 역사와 문물을 파괴하지 않고 계승했음을 확인하고 주나라를 받아들였다. 동이족 은나라 출신의 공자는 비로소 은나라를 무너뜨린 주나라를 받아들이고, 주나라를 정통으로 삼는 ‘춘추’를 저술할 수 있었다. 동이족 출신 공자가 만든 춘추필법이 역대 한족(漢族) 왕조들이 만든 중화사관의 뿌리가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공자의 유언인 “나는 은나라 사람에서 비롯되었다”라는 것은 그가 진정으로 주나라를 받아들였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해 준다. 단재 신채호는 ‘낭객(浪客)의 신년만필’에서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된다”고 비판했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공자의 끈질긴 고민을 우리가 이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 [그때의 사회면] ‘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

    [그때의 사회면] ‘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

    이탈리아인 지아코모 카사노바(1725~1798)는 희대의 바람둥이였다. 생전에 사귄 여성이 130여명에 이르렀으며 귀부인, 하녀, 수녀, 천민까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군인과 성직자를 꿈꾼 바이올리니스트였고 나중에는 외교관, 복권 창시자, 작가, 탐험가로도 활동한, 시쳇말로 잡기에 능한 ‘뇌섹남’이며 패셔니스트였다.댄스 열풍이 전후 한국 사회를 휩쓸 무렵 ‘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이 터졌다. 박씨는 6·25 때 모 대학 3학년에 다니다 해병대에 입대해 헌병대 대위까지 진급했다고 한다. 1954년 4월 어떤 이유로 불명예 제대한 박씨는 해군장교 구락부, 국일관, 낙원장 등 댄스 홀을 무대로 여성들을 농락하기 시작했다. 훤칠한 외모에 대위 신분증을 갖고 다녀 여성들은 쉽게 유혹당했다. 여대생, 국회의원과 고위 관료의 딸 등 피해자는 70여명에 이르렀다. 카사노바의 엽색 행각은 수십 년에 걸친 것이었지만 이 사건은 1954년 4월부터 1955년 6월까지 겨우 14개월 동안 이뤄졌다. 피해자의 고소로 구속된 박씨는 피해자 70여명 중 미용사 직업을 가진 여성 단 한 명만이 처녀였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나중에 ‘여성이 순결할 확률은 70분의1이다’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신문들은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져 피해자들의 이름과 학교 등 신상을 버젓이 공개했다. 피해자들의 인권 보호 주장에도(동아일보 1955년 7월 4일자) 아랑곳하지 않았다. 피고인 박씨와 피해 여성들의 얼굴을 보려고 연일 1만명에 가까운 방청객이 몰려 재판 진행이 어려웠다. 구름 같은 방청객들을 정리하려고 기마경찰대까지 출동할 지경이었다. 방청객은 주로 여대생과 주부가 많았고 소설가, 갓 쓴 노인도 더러 있었다.(경향신문 1955년 7월 10일자) 그러나 여성들은 대부분 재판에 나오기를 거부하고 잠적했다. 어느 신문은 이 재판을 ‘법정 최대의 쇼’라고 했다. 여론은 박씨보다 무너진 정조 관념을 더 한탄하는 등 여성의 잘못을 더 크게 질책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상제보다 복장이가 더 서러워한다더니 우리는 아무 소리 안 하는데 남들이 왜 떠드는지 모르겠다”며 불쾌해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상 피해자가 아니라는 뜻이었을까. 검찰은 공무원 사칭과 지금은 없어진 ‘혼인빙자간음죄’를 적용해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지만 박인수는 ‘혼빙간’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 여성들이 원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유무죄 논란 속에 1심은 박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는 판사의 논고는 바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2심과 3심은 일부 피해자의 ‘혼빙간’을 인정했고 박씨는 징역 1년형을 받았다. 사진은 박씨 구형공판을 다룬 당시 기사. 손성진 논설주간 sonsj@seoul.co.kr
  • ‘어머니 기일까지 술접대’…고(故)장자연 사건에 네티즌 분노 “처벌해야”

    ‘어머니 기일까지 술접대’…고(故)장자연 사건에 네티즌 분노 “처벌해야”

    고(故) 장자연 사건은 2009년 신인 배우 장자연이 유력인사들에게 성 상납을 강요받고 수차례 폭행을 당하다 이를 폭로하는 내용의 유서와 유력인사 리스트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당시 장자연은 2006년 CF 모델로 데뷔했으며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출연해 이제 막 얼굴을 알린 신인배우였다.유서에는 연예기획사 관계자, 대기업·금융업 종사자, 언론사 관계자 등 31명에게 100여 차례 이상 술접대와 성상납을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서에 자신이 쓴 글임을 증명하기 위해 서명과 주민번호가 적혀 있었다. 당시 경찰은 리스트 속 인사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지만, 의혹이 제기됐던 유력인사 12여 명에 대해서 모두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고 결국 장씨의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만 재판에 넘겨졌다. 이에 대해 JTBC ‘뉴스룸’은 8일 ‘장자연 사건’의 수사기록을 단독 입수, 검찰의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현재 이 사건은 검찰 과거사 위원회가 재조사를 검토 중인 사안이다. 경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지난 2008년 10월 장씨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유흥주점에서 열린 술자리에 불려 나갔다. 장씨의 전 매니저는 이날 장씨 어머니 기일이었고 제사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술접대 자리에 불려 나간 장씨가 차 안에서 눈물을 보이며 신세를 한탄했다고 진술했다. 또 해당 술자리 참석 전 장씨는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했는데, 소속사 실장은 사진을 찍어서 비용 증빙할 것을 요구했다고 적혀 있다. 장씨의 개인적 참석이 아닌 회사 비용으로 이뤄진 술접대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장씨는 숨지기 한 달 전인 2009년 2월 소속사 대표 김모씨로부터 한 영화감독과의 골프 접대 자리를 위해 태국으로 오라고 강요받았다. 장씨는 드라마 촬영 스케줄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고, 소속사 대표는 장씨가 타고 다니던 차량을 처분하는 조치를 취했다. 장씨는 숨지기 5일 전 매니저와 나눈 통화에서 “소속사 대표가 내 지인에게 ‘내가 나이 든 사람과 만난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며 “사장님은 이 바닥에서 나를 발 못 붙이게 조치를 다 취했다”고 말했다.장씨와 같은 소속사 동료 연예인 윤모씨는 소속사 전 대표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소속사 대표가 부른 접대 자리만 40여 차례다”라고 증언했다. 윤씨는 “술자리 같은 곳에 가기 싫어하니까 장자연이 한숨을 쉬면서 ‘너는 아직 발톱의 때만큼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윤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리 배치까지 그림으로 그리며 정치인 A씨가 장씨에게 불미스러운 행동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은 윤씨가 가해자를 번복하는 등 진술에 대한 신빙성이 낮다는 이유로 A씨를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당시 A씨는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거짓’ 반응이 나왔고 “연예인과의 술자리가 알려지면 정치지망생으로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웠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A씨의 편을 들어준 것이 아니고, 진술 외에 혐의를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면서 결국 윤씨의 증언 대신 A씨의 ‘거짓’ 반응에 대한 해명을 믿었다. 네티즌들은 “장자연 몸에, 영혼에 죄지은 31명 전부 밝히고 구속시켜라.(dora****)”, “장자연 실검 1위였다가 순식간에 사라진거 실화냐?(ares****)”, “사실을 적고 목숨을 끊었는데 유력인사 10명은 무혐의. 참.. 우리나라는 돈, 권력이면 죄 지어도 죄가 없네. 죽은 사람만 억울하게 됐다(sell****)” 등의 댓글을 남겼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소방당국 “제천 참사 못막아 죄송하다”

    소방당국 “제천 참사 못막아 죄송하다”

    충북 제천 화재 참사와 관련, 소방당국이 6일 “참사를 막지 못해 송구하다”고 유족들에게 사과했다.제천소방서와 합동조사단은 이날 오후 3시 화재 참사 합동분향소 유가족 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한정된 인력과 장비로 소방관들이 각자 임무에서 사투를 벌였지만, 참사를 막지 못했다”며 “유족과 제천시민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은 “이번 화재는 가동할 수 있는 최대 인력을 동원했어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연소가 비정상적으로 확대됐다”고 화재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화재 원인이나 대응과 관련, 앞으로 전개되는 조사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할 것”이라면서 “다시 한 번 유족과 제천시민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브리핑에는 유족 20여명이 참석해 소방당국이 화재 당시 초동 대처를 제대로 했는지를 두고 집중 질의했다. 한 유족은 “소방본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는 출동 지령 시간이 오후 3시 56분으로 돼 있는데 오늘 소방서가 제출한 자료에는 오후 3시 54분으로 돼 있다”며 “도대체 어떤 게 정확한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소방 관계자는 “화재가 발생했다는 문자가 우리 소방대원에게 온 시간이 오후 3시 54분이어서 그렇게 작성했다”고 해명했다. 지난달 30일 열렸던 브리핑에 이어 사고 당시 소방당국의 부실한 정보교환 체계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무전기 교신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묻는 유족 질문에 소방관계자는 “무전 교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한 유족은 “현장에서 교신도 안 되는 무전기를 오늘도 현장 출동하면서 다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한탄했다. 유일하게 소방상황실과 무선 교신이 가능했던 지휘 차량에 왜 아무도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비판을 쏟아냈다. 소방 관계자는 “당시 인력이 현장에 없어 지휘 차량에서 제대로 교신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현장 지휘부의 판단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유족들은 질타했다. 한 유족은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가 2층으로 진입을 하려다 화염과 짙은 연기 때문에 못했다고 하던데 당시 사신을 보면 전혀 화염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소방 관계자는 “계단 중간까지 올라갔는데 열기 때문에 중간쯤에서 도저히 못 올라갈 것으로 판단했다”며 “이후 지하실이 심각할 것으로 판단해 지하실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2층에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철수했겠냐는 질문에는 “(만약 그런 사실을 명확히 알았다면) 열기를 진압하고 다시 2층으로 진입을 시도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현장 지휘가 적절했는지를 묻는 유족들의 질문에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은 “제가 가진 소방 지식으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3남매 엄마 “내가 죽었어야 했다” 눈물…가난에 텅 빈 냉장고

    3남매 엄마 “내가 죽었어야 했다” 눈물…가난에 텅 빈 냉장고

    엄마가 잘 못 끈 담뱃불에서 시작된 화마에 숨진 4세·2세 아들, 15개월 딸의 장례가 3일 치러졌다.중실화죄 등으로 구속된 엄마는 아이들의 장례가 이날 치러지는지도 모르고 현장감식을 위해 살던 집을 다시 찾아 “내가 죽었어야 했다”며 반성의 눈물을 흘렸다. 정씨는 화재사건 초기 일부러 불을 질러 아이들을 죽게 했다는 의심을 받았지만 주변인들은 평소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아이들을 끔찍이 아꼈다고 증언했다. 세 남매의 할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애를 낳아 손자들을 거의 키우다시피 했다”며 “할아버지, 할아버지 부르며 뛰어오는 손자들의 모습이 선하다”고 오열했다. 세 남매의 아빠도 “애들이 아빠, 아빠라고 하는 모습이 어제처럼 선하다”며 “내가 옆에 있었더라면 애들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한탄했다. 세 남매의 부모는 중학교 때부터 만나 첫애를 임신했다. 2013년 첫아들을 낳고 2015년에 둘째 아들도 나았다. 그해 뒤늦은 결혼식을 올렸다. 엄마 정씨는 콜센터에서 일했고 아버지는 공단, 술집,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 노력했다. 그러나 정씨는 막내딸을 임신하고 낳으면서 다니던 직장을 다닐 수 없게 됐고, 아빠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퇴근하다가 다리를 다쳐 더는 일을 하지 못했다. 어려워진 생계에 집안에는 라면 하나 남아있질 않았고 냉장고는 텅 비어있었다. 정씨는 친정집에서 용돈을 받아 쌀과 간장을 조금씩 사 맨밥에 간장을 비벼 아이들을 먹였다. 아이들은 화재 전날에도 아무것도 먹지 못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얼굴을 보고 “할아버지, 할머니 배고파요”라고 응석을 부렸고, 정씨는 ‘차라리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은 밥이라도 굶지 않는다’며 시부모와 친정부모 앞에서 하소연하며 운 것으로 전해졌다. 부부는 지난해 1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했지만, 그마저도 부양 능력이 있는 부부의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정씨 부부는 성격 차이로 관계가 나빠져 이혼소송을 거쳐 지난해 12월 27일 결국 이혼했다. 그렇지만 이혼한 남편은 자녀와 함께 지냈다. 그러던 지난 31일 새벽 아빠가 답답한 마음을 달래러 피시방으로 외출한 사이, 술 취한 엄마의 담뱃불에 세 남매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일부러 불을 질렀다는 자백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아 정씨가 실수로 불을 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검찰 송치 전까지 추가 조사를 펼쳐 관련 혐의를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본지 부장들이 짚어 본 국내외 현안·과제] 집권 2년차 함정 벗어나야

    [본지 부장들이 짚어 본 국내외 현안·과제] 집권 2년차 함정 벗어나야

    2018년 무술년(戊戌年) 새해다. 일찍이 우리 현대사를 되돌아봤을 때 어느 한 해, 한순간도 순탄하게 지나간 적은 없다. 특히 지난해는 성숙한 시민의 힘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대학교수들은 지난 한 해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그릇된 것을 깨고 바름을 드러냄)을 꼽았다. 그만큼 드라마틱한 한 해였다. 새해가 되면 으레 희망을 화두로 꺼내곤 한다. 그러나 새해를 맞은 우리에게 그럴 만한 정신적 여유와 물질적 공간이 여느 해보다 적다. 민주주의의 철학과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고, 공동체의 삶을 복원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한층 치열해져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막 문을 연 새해는 지난해와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다. 적폐 청산과 북핵 위기 등 지난해 우리 앞에 펼쳐진 수많은 난제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말끔하게 정리된 것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울신문 편집국 정치부·사회부·경제정책부·국제부·정책뉴스부·문화부 부장이 뛰어난 통찰력과 예리한 시각으로 올 한 해 예견되는 국내외 현안과 과제를 짚어 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했다.“이게 나라냐.” 지난해 초까지 촛불을 든 국민들은 한탄했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2년차를 맞았다. 실망은 기대감으로 변했다.7개월여의 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기저효과도 컸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이 그만큼 심했다. 대통령 지지율은 70%를 넘나든다. 여당 지지율도 50% 안팎이다. 이례적인 일이다. 적폐청산은 궤도에 올랐다. 더러는 개혁 피로감을 호소한다. 박수를 보내는 이가 그래도 더 많다. 지지율 고공행진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예측하긴 어렵다. 분명한 건 ‘허니문’은 끝났다. 집권 2년차부터는 다르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 임기 초 같은 맹목적인 지지는 없다. 개혁의 성과를 보여 줘야 한다. 눈으로 봐야 변화를 느낀다. 지지 세력도 늘어난다. 정부는 2년차 국정 기조를 바꿨다. 적폐청산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변화로 방향을 틀었다. 적절한 선택이다. 거창한 정치 구호는 공허하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훨씬 소중하다. ‘거악철폐’도 필요하다. 하지만 작은 변화가 더 큰 감동을 준다. 생활적폐의 청산이다. 불법 도로주차를 없애는 일 등이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지난해 제천 화재 참사에서 뼈저리게 배웠다. 이쯤에선 탕평인사도 해야 한다. 동지(同志)들끼리만 모여 있으면 한계가 있다. 매일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곳만 바라보다간 담장 밖 세상의 진실을 놓친다. 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약속했다.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대원칙으로 삼겠다.” 이제 실천만 남았다. 2년차 함정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자기 확신과 독선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다. 과거 정권이 곧잘 범한 실수다. 개헌은 당장 시급한 현안이다. 올해는 꼭 될 것 같았다. 다시 난항에 부딪혔다. 여야는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안을 동시에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약속했다. 자유한국당은 말을 바꿨다. 지방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올 12월 말까지 미루자고 했다. 여당은 개헌을 해 보려고는 한다. 이미 집권도 했으니 분권형 개헌 등에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의심도 산다. 결국 협치로 접점을 찾아야 한다. 올해 못 한다면 문재인 정부 임기 내 개헌은 물 건너간다. 여야 모두 두고두고 비난받을 일이다. 6·13 지방선거는 정국의 분수령이다. 승자와 패자의 명운이 명확히 갈린다. 여당이 이기면 여소야대 국면 속에서도 정계 개편을 주도하게 된다. 국정 운영에 탄력도 붙는다. 야당이 승리하면 ‘적폐청산=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이 힘을 얻는다. 보수층 재결집도 빨라진다. 외교안보 이슈는 정권을 뒤흔들 최대의 외부 변수다. 북핵 문제가 핵심이다. 진보 정권이라 기대가 컸지만 남북 관계는 이전 보수 정권 때보다 더 경색됐다. 다행히 변화의 전기가 마련됐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어제 신년사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하고 남북 당국자가 시급히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연초로 전망됐던 북한의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 가능성도 일단 줄었다. 북핵 불안감을 늘 머리에 이고 살았던 국민들로서는 불안감을 털어 낼 수 있는 희소식이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물꼬가 트인 셈이다. 다음달 열리는 평창올림픽이 돌파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한·미 군사훈련 연기→남북 당국자 회담→한반도 평화 분위기 정착’이라는 선순환 구도가 이어질 수 있다. 새해, 남북 관계의 훈풍이 불기를 기대한다. 김성수 정치부장 sskim@seoul.co.kr
  • 정청래 “안철수의 철새정치, 긴급기자회견도 이제 지겹다”

    정청래 “안철수의 철새정치, 긴급기자회견도 이제 지겹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20일 대표직을 걸고 바른정당과의 통합 문제와 관련해 당원 전체 투표를 제안했다. 이를 두고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호남도 안철수의 철새 정치 배신감에 치를 떤다”라며 비판했다. 정청래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안철수의 철새 정치를 한탄함”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정청래 전 의원은 “아쉬울 땐 호남에서 호강하고 걷어찰 땐 호남 민심 무시하고. 안철수의 새정치에 호감이던 호남도 안철수의 철새 정치 배신감에 치를 떠네. 초창기 착하디착한 얼굴 어디가고 독불장군 심통가득 국민밉상 등극일세”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 전 의원은 “안철수의 새 정치는 온데간데 없고 걸핏하면 긴급 기자회견 정치만 남았다. 의미도 가치도 영향력도 없는 그의 긴급기자회견 정치. 이제 지겹다”고 말했다. 앞서 안철수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의당이 앞장서서 호남의 민주주의 전통을 왜곡하고 김대중 정신을 호도하는 구태정치 기득권 정치를 끝내야 한다”면서 바른정당과의 합당안을 제시했다. 국민의당 내에서는 통합반대파 의원들은 안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밝혔다는 이유 등으로 의총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의총 소집하고 기자회견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정동영 의원), “끌고라도 오라”(유성엽 의원)는 등과 같은 강하게 항의했다. 의총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발이 있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현장 플러스] 철원 청정공기 듬뿍 머금은 한우…로맨틱 더한 브랜드로 거듭난다

    [현장 플러스] 철원 청정공기 듬뿍 머금은 한우…로맨틱 더한 브랜드로 거듭난다

    건강에 대한 관심만큼 건강한 식재료로 차별화한 식당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10년 전부터 청정 식재료로 앞서 나간 정육식당 ‘민통선한우촌’은 그 대표적인 브랜드다. 민통선한우촌은 강원도 철원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한우 전문 유통기업 ㈜초원육가공이 운영하는 직영 식당이다. ㈜초원육가공은 지난 2001년 국내 최초로 부분육 상장 회사로, 2003년 축산물등급판정소로부터 한우 부분육 등급표시 시행 가공장으로 선정된 국내 대표 한우 유통기업이다. 전문성 있는 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만큼 고기의 신선도와 저렴한 가격이 민통선한우촌의 강점이다.철원 도축장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는 민통선한우촌은 철원의 맑은 공기 속에서 자란 한우만 사용한다. 고기에 자신이 있으니 이곳 직원들은 손님들에게 쇼케이스 앞에서 고기를 자세히 살펴보기를 권한다. 고기의 신선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눈으로 확인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시중에서 자주 접하기 어려운 특수 부위들이 많은 것도 이곳만의 매력이다. 민통선한우촌을 운영하는 ㈜초원육가공 박용수 대표는 “청정지역의 농산물과 고기를 소비자들이 알아보고 인정해 주는 것 같다”고 이제까지의 성공 비결을 설명했다. 박 대표는 한우 유통과 정육식당 성공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철원 해상공원을 인수 확장해 색다른 테마식당을 계획했다. 직접 가져온 음식과 함께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그 옆에는 커피와 한우스테이크를 접목한 스테이크 카페를 만들었다. 올해 연말 론칭이 목표다. 정육식당 민통선한우촌과 새로운 테마식당 계획을 중심으로 박 대표의 식품 철학을 들었다. →민통선한우촌을 소문으로는 많이 들었습니다만, 실제로 보니 외지에서 오신 손님들이 정말 많은 것 같네요. -저희는 고기는 물론이고 참기름이니 고추 대추 등 식재료를 철원지역에서 나는 것으로 사용해요. 정 부족할 때에도 거리를 멀리 벗어나지 않고 인근 지역에서 들여옵니다. 일단 청정지역에서 나는 농축산물을 쓰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그걸 인정해 주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가격이 저렴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어떻게 가격을 맞추시나요. -저희는 식재료를 모두 직거래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지역 안에서 이뤄지고, 그만큼 단가가 낮아지죠. 한우 등심 같은 경우는 일반 식당 기준으론 삼겹살 정도 가격으로 받고 있어요. →한우 전문 유통기업의 직영 식당이기에 신선도와 가격을 모두 잡을 수 있었던 것이겠죠? -그렇게 봐야지요. 저희 쪽에서 유통업체로 하루에 25~30두가 나가요. 그걸 등급별로 판별하고 소비자의 기호에 맞도록 분류를 하죠. 그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식당에서도 여럿이 취향대로 골라서 드실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는 겁니다. 또 모든 부위를 신선하게 유지할 수 있고요. →민통선한우촌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가장 큰 특징은, 아무래도 도축장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이에요. 철원 도축장 바로 앞이기 때문에 신선함을 꼭 확인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손님들께서 직접 쇼케이스 앞에서 등급별로 자세히 살펴보세요. 고기들의 차이, 신선한 고기의 특징을 잘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또 저희는 시중에서 맛보기 어려운 특수부위가 많이 있어요. 안창살 토시살 같은 부위를 골라 드실 수 있습니다. →색다른 메뉴를 추천하신다면. -불고기를 예로 들고 싶어요. 일반 시중에선 불고기 같은 경우에 양념에 재워서 주방에서 나오는 시스템이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생고기를 썰어서 손님이 불고기를 구워서 드실 수 있도록 드립니다. 무엇보다 신선함을 강조한 것이죠.→관광객들도 이곳 민통선한우촌을 많이 찾으실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으니 많이들 오십니다. 더욱이 이제 포천~구리 간 고속도로가 뚫려서 서울 강남에서 1시간권이 됐으니 더 가까워졌지요. 여름에는 젊은이들 모임이나 가족 단위로 래프팅을 하러 많이들 오십니다. 한탄강 계곡을 따라가면 정취가 아주 좋습니다. 또 철원이 많은 야생 조류들이 오는 곳이기도 해요. 사진작가들이나 동물보호 하는 분들도 많이들 오십니다. 군인들이 있는 곳이라서 면회객들도 자주 오고, 또 전역한 군인들이 한우 맛이 생각나서 오기도 하지요. 그런 이유들 덕분에 식당이 잘 된 것 같습니다. →철원 해상공원 자리에서 준비하는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것입니까. -서울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해상공원을 인수해 새롭게 꾸미고 있습니다. 기존에 이미 유명한 곳이었던 만큼 더 새롭고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들기도 합니다. 현재 기존 건물 옆에 하나를 더 지어서 ‘견우성’과 ‘직녀성’으로 테마가 있는 식당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소를 치던 견우의 낭만적인 로맨스라는 테마를 차용한 것이지요.→이미 민통선한우촌에서 맛을 증명했기 때문에 새로운 메뉴가 기대를 많이 모을 것 같습니다. -커피와 스테이크를 묶는 시도를 해보려 합니다. 100평 규모로 신축한 ‘직녀성’에서 100% 한우를 사용하는 스테이크를 커피숍의 분위기에서 커피와 함께 판매합니다. 쉽게 말해 ‘스테이크 카페’가 되는 것이죠. 여기서 가능성을 실험하고 더욱 발전시켜서 수도권으로 진출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존 건물을 활용하는 견우성에는 어떤 메뉴가 있습니까. -그곳에는 셀프 바비큐 공원을 마련합니다. 군인들을 만나러 오는 면회객들이 음식들을 많이 가지고 오시는데, 기존 식당에선 외부 음식을 먹는 게 아무래도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을 배려하고자 자유롭게 음식을 가져와서 먹으면서도, 좋은 고기를 사서 구워 먹을 수 있는 자리를 준비한 겁니다. 여름이면 계곡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해서 환경오염 문제도 있었는데, 그걸 안전하고 깨끗하게 관리되는 곳에서 돗자리 펴고 드실 수 있도록 한 것이죠. 군인 면회객들이나 가족 단위 손님들이 많이 오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대할 만한데, 론칭 예정 시기는 언제입니까. -원래는 크리스마스 전에 해서 많은 분이 크리스마스 전후에 나들이도 오고 군인들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준비하려니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고요. 최대한 빨리 고객들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 서두르고 있는데, 올해 연말에는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준비 중인데도 어떻게 알려졌는지 벌써부터 문의가 오고 있어서 마음이 급합니다만, 철저히 준비해서 맛있는 음식과 좋은 공간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자 합니다. 홍의석 객원기자 hong5960@seoul.co.kr
  • 초등학교 빈교실 ‘어린이집 변경’ 찬반 논란

    복지부 “신축비 10%로 조성 가능” 교육청 “학습권 침해·사고 우려” 빈 초등학교 교실을 국공립어린이집으로 활용하는 문제를 두고 찬반 논쟁이 뜨겁다. 이번엔 참여정부 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58) 작가가 공개 게시판에 초교 내 보육시설 확대를 지지하는 글을 올리면서 불을 지폈다. 유 전 장관은 12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초등교실을 활용한 공공보육시설 확충’이라는 제안글을 올려 “초등학교의 여유 공간 일부를 공공보육시설(국공립어린이집)로 활용할 것을 청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초등학교는 어떤 시설보다 쾌적하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라면서 “예전부터 제법 알려진 정책 아이디어인데 교육은 교육부가, 보육은 복지부와 여성가족부가 관할하는 탓에 실현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 네트워크로 청와대나 총리실에 정책 아이디어를 건넬 수도 있지만 시민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길 바라는 의도에서 공개 청원했다고 덧붙였다. 빈 교실을 국공립어린이집으로 만들자는 의견은 지난달 말부터 국회 논의가 진행됐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초교 유휴교실을 국공립어린이집으로 용도 변경할 수 있다’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 의결을 거쳤지만 법사위에서 “교육계와 충분한 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계류 중이다. 추진 의지를 보이는 복지부는 저출산 여파로 전국에 초교 내 빈 교실이 930여개 있고, 이를 사용하면 어린이집 조성 예산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어린이집 하나를 신축하려면 평균 16억 8000만원이 드는데 빈 교실을 활용하면 1억 2000만원이면 된다”고 설명했다. 또 초교는 보통 인구밀집지역에 있어 이곳에 어린이집을 만들면 접근성이 좋고, 안전하다고 생각해 부모들도 반긴다고 했다. 교육부 측도 “원칙적으로 찬성”이라면서 “부처 간 조율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선 시·도 교육청과 학교들은 대체적으로 반대한다. 특히 서울교육청은 반대 논평까지 냈다. 학령인구는 줄었지만 초등돌봄교실, 교과교실, 급식실, 체육관 등 필요시설이 늘어 빈 교실이 많지 않은 데다 빈 공간에는 어린이집보다 국공립유치원을 먼저 지어야 한다는 논리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국공립유치원에 입학하는 게 로또 당첨보다 어렵다’는 한탄이 나오는 상황에서 우리 담당이 아닌 어린이집을 먼저 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초등학생의 학습권 침해, 학교 개방에 따른 안전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관리감독 주체가 다른 초등학교(교육청)와 어린이집(지방자치단체)이 한 공간에 있으면 사고 시 책임 소재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어린이집 조성은 학교의 선택이지 강제성이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2014년 서울시와 초교 내 어린이집 조성을 합의하고 관련 조례까지 만들었는데 이제 와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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