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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자국민에겐 개인배상 인정 모순…정부·관련 기업 이번 판결 수용해야”

    “日, 자국민에겐 개인배상 인정 모순…정부·관련 기업 이번 판결 수용해야”

    “일본 정부는 역사를 직시하고 거짓과 모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국민들에게는 ‘국가의 청구권과 개인의 배상은 별개’라고 하면서 한국에 대해서는 반대되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일본의 과거사 반성과 전후 배상 등을 촉구하는 활동에 평생을 헌신해 온 다나카 히로시(81)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는 30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결정에 대해 “진작에 이뤄졌어야 할 너무도 당연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경제학자인 다나카 교수는 일본을 대표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팔순에 접어든 나이에도 ‘외국인의 지방참정권을 실현하는 일·한·재일네트워크’ 공동대표 등을 맡으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에 의한 원폭 피해자 문제와 소련에 의한 시베리아 억류 문제에서 일본 정부가 취한 판단을 감안하면 한국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당연한 것입니다. 일본은 미·소와 국가 차원의 배상 청구를 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에 일본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에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국가 차원의 청구권은 포기했지만 개인들의 권리는 살아 있으니 해당 국가에 개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해 권리를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자국민에게는 개인의 권리를 찾으라고 했던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이유로 모든 것이 종료됐다고 주장하고, 언론도 따라서 한국을 비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 정부와 관련 기업들은 이번 판결을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며 “금전적 배상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차후 논의가 더 필요할 수 있겠지만, 우선 중요한 것은 이번 결정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나카 교수는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이 역사를 바로 보는 것이 우선인데, 문제 해결이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자신이 글이나 강연 등을 통해 많은 얘기를 해왔지만, 사실상 변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특히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2016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와서 생존해 있는 원폭 피해자를 직접 만나는 것을 보면서 왜 아베 신조 총리는 한국 ‘나눔의 집’에 가 볼 생각을 못 하나 한탄했다”며 한·일 관계 개선은 아베 총리가 말과 행동을 바꾸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이국종 “의원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사람이 먼저인 사회 만들려면…”

    이국종 “의원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사람이 먼저인 사회 만들려면…”

    “의원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지난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에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국종 교수가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 교수는 우리나라 응급헬기 운용의 어려움과 문제점에 대해 토로했다. 이 교수는 영국에서 응급의료 전용헬기(닥터헬기)로 응급 환자를 이송하는 동영상을 보여줬다. 이 교수는 “영국에서는 헬기가 민원을 신경쓰지 않고 주택가 한복판에 바로 착륙하며 무전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현장에서 무전도 안 돼서 LTE가 터지는 낮은 고도로 비행할 때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응급 환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무전조차 되지 않는 비참한 현실은 방송 영상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난 17일 SBS와의 인터뷰 중에 이 교수는 응급 환자 발생으로 급히 옥상 헬기계류장(핼리패드)으로 이동했다. 헬기 도착 전 장비를 체크하던 이 교수는 무전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인터콤 또 안 돼 이거. 이거 무전기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되는데 뭘 해요!”라고 한탄했다. “무전기하고 이런 거 (정부에) 지원해달라고 한 지가 지금 8년이 지났어요. 민간기업에서 지원받아가지고 하고 있는데 이런 게 없어서 (정부가 지원을) 못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건 (정부 지원) 진정성의 문제인 것 같아요.” 아무리 만져도 무전기가 작동하지 않자 이 교수는 격노하여 무전기를 바닥으로 강하게 던졌다. 이 교수는 또 국정감사장에서 “영국에서는 럭비 경기 중에도 경기를 끊고 응급헬기가 환자를 구조하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관공서 잔디밭에 내려앉아도 안 좋은 소리를 한다”면서 “소음 때문에 헬기장을 폐쇄하거나 방음벽을 설치하라는 민원이 들어오는데, 이런 나라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토로했다. 닥터헬기때문에 시끄럽다며 민원을 제기하는 사회, 오랜 시간이 흘러도 개선되지 않는 응급의료체계에 대해 절규하다시피 한 이 교수는 “의원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면서 말을 이어갔다. “의원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의원님들이 이 힘든 의정 활동을 하면서 구축하고자 하는 세상은, 우리가 진정한 선진사회 내지는 국민 생명이 정말 존중받는, 사람이 먼저인 사회를 구축하려면 이런 것들이 해결돼야 합니다. 의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중략) 저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의료진들과 소방대원들, 항공대원들이 의원들의 여러 입법 활동을 통해 보조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의원들을 향한 이 교수의 간절한 호소는 지난 2월에도 있었다. 그 때 국회 재난안전대책 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 참석한 이 교수는 닥터헬기를 불편해하는 민원을 받아주는 의원들을 지적한 바 있다. “소방청장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 민원 같은 건 돌파하겠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돌파를 못 합니까? 소방도 돌파를 하려는 의지가 진짜 있는 건지. 돌파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정치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지역 주민들이 의원실에다가 민원 넣거든요, 시끄럽다고. 그런데 전 세계 어느 나라 사회에서, 응급구조 소방 헬기들이 비행한다고 그것을 민원 넣으면 그것을 정치권에서 받아주시면 어떻게 합니까? 둘 다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소방은 주민들 핑계 대고 정치권 핑계 대면서 (소방서 옥상에 있어야 할) 헬기장을 없애 버렸고요. 이 헬기장을 중랑천에다 갖다 놨어요, 개천에다가. 여름 내내 비가 오면 비행을 못 해요, 그러니까. 못 써요. 헬기장도 아니라고요. 한국 사회가 왜 이렇게···왜 이렇습니까, 한국 사회가. 말이 됩니까?”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8년이 지났는데···” 이국종 교수가 무전기 바닥에 던지면서 격노한 이유

    “8년이 지났는데···” 이국종 교수가 무전기 바닥에 던지면서 격노한 이유

    경기 ‘닥터헬기’ 도입 지역으로 선정됐지만구체적인 도입 시기는 여전히 정해지지 않아“구조헬기 이착륙 문제삼는 곳 한국밖에 없어”“인터콤 또 안 된다 이거. 이거 무전기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되는데 뭘 해요!” 지난 17일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 중증외상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국종 교수는 이날 ‘닥터헬기’(응급의료 전용헬기) 실태와 관련한 SBS 8뉴스와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응급 환자 발생으로 이 교수는 급히 옥상 헬기계류장(헬리패드)으로 이동했다. 헬기가 도착하기 전까지 취재진은 이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이 교수는 인터뷰를 하면서 장비를 체크했다. “인터콤 잘 들리니 오버? 내 말 들리니?” 이 교수는 무전기 송·수신 상태를 점검했다. 같이 있던 간호사는 잘 들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나는 안 들린다. 인터콤 또 안 돼 또”라면서 한탄했다. 그러면서 “인터콤 또 안 돼 이거. 이거 무전기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되는데 뭘 해요!”라면서 “이런 게 현장에서 필요하다고요”라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무전기하고 이런 거 지원해달라고 한 지가 지금 8년이 지났어요. 민간기업에서 지원받아가지고 하고 있는데 이런 게 없어서 (정부가 지원을) 못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건 (정부 지원) 진정성의 문제인 것 같아요”고 지적했다. 결국 아무리 만져도 무전기가 작동하지 않자 이 교수는 격노했다. “이거 안 된다니까? 안 되는 거야!”라면서 무전기를 바닥으로 강하게 던졌다. 해당 장면은 유튜브 채널 ‘비디오머그’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후 헬기계류장에 닥터헬기가 아닌 소방헬기가 도착했다. 앞서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난 3월 ‘중증외상 의료체계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대책 안에는 닥터헬기 운영 확대 방안이 담겨 있었고,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가 있는 경기 지역에 국내 일곱 번째 닥터헬기가 앞으로 배치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배치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현재 닥터헬기가 배치된 지역은 인천 가천대길병원, 전남 목포한국병원, 강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경북 안동병원, 충남 단국대병원, 전북 원광대병원 등 6곳에 불과하다. 이 교수는 이날도 응급 환자가 발생한 현장에 헬기 이·착륙이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왜 항공헬기를 이용해야 하는지를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요. 인계점(헬기 이·착륙 지점) 가지고 그렇게 하는 데는 전 세계에서 여기(한국)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헬리콥터는, 회전익기는 안에서 최소한의 안전공간만 확보되면 어디든지 내려앉을 수 있는 게 회전익기 장점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착륙지점 제한을 두거나) 하지 않아요”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다른 자리에서도 정부 지원의 ‘진정성 문제’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지난 2월 국회 재난안전대책 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 참석한 이 교수는 “빠른 환자 이송 내지는 구급대원들의 빠른 현장 즉시 투입을 위해서는 고층 건물 옥상에 헬기장들이 원래는 다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면서 “그런데 이게 정부가 바뀌고 이럴 때마다 갑자기 녹색성장이 되거나 그렇게 되면 거기 위에 태양열 집열판이 올라오기도 하고 (중략) 결국은 그게(인계점) 점점 밀려가서 중랑천변까지 밀려 나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프트웨어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굉장히 많은 하드웨어적인 그 갭(차이)도 사람의 소프트웨어적인 능력이나 그리고 사람들의 진정성을 가지고 얼마든지 해낼 수가 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메디온 헬기가 없어서, 국회에서 수많은 그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의원들로부터 메디온 헬기가 없어 가지고 여태까지, 의무 전용헬기가 없어서 그랬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중략) 그런 것들을 다 진정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는 곧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가 다 엮여 있는 것이다. 소방 헬기장이 1년에 몇 달 동안 잠기는 중랑천 헬기장으로 밀려 나가는 것, 중랑천 변으로. 우리 소방 헬기에 소방대원들의 목숨을 담보하고 환자의 죽음과 싸우는 그 헬기장이 가장 있어야 될 소방서 옥상에서 개천 바닥으로 밀려 나가는 그런 한국 사회의 진정성 없는 모습이 그대로 투영돼 메디온 헬기가 없이는 마치 환자를 못 살린다는 것처럼 하는 것”이라면서 “그런 모습이 계속 가서는 절대 개선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이 교수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헬리패드) 없애 버렸는데 둘 다 핑계를 대지요. 소방에서는 여기 아파트 주민들이 민원 넣는대요. 저한테도 민원 넣었거든요. 저희 사무실에 전화한다고요. 전화해 가지고 광교 주민들이 막 쌍욕하고 끊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거는 여기 그러시잖아요. 소방에서도, 여기 소방의 간부분들 다 와 계신데 청장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 민원 같은 건 돌파하겠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돌파를 못 합니까? 소방도 돌파를 하려는 의지가 진짜 있는 건지. 돌파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정치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지역 주민들이 의원실에다가 민원 넣거든요, 시끄럽다고. 그런데 전 세계 어느 나라 사회에서, 응급구조 소방 헬기들이 비행한다고 그것을 민원 넣으면···.”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이것이 정녕 가을인가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이것이 정녕 가을인가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데 비둘기 세 마리가 전깃줄 위에 앉아 있었다. 어쩐지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비둘기들이 에워싸고 따라다니는 바람에 이웃 눈이 무서워서 낮에는 편히 집을 나서지 못한 지 꽤 됐는데 말이다. 새끼를 둥지에 두고들 나왔나. 머릿수건 푹 눌러쓰고 젖은 장바닥을 지키는 아주머니들 같았다.궂은 날씨에도 비둘기들이 먹이를 구하려 동동거리는 건 곧 더 궂은 날씨가 온다는 예보다. 아니나 달라, 냉기가 옷 속을 파고드는 게 이건 숫제 겨울이다. 하긴 이맘때 비는 한번 올 때마다 우리를 한 발 한 발 추위로 몰아가지. 벌써! 무섭다. 올해는 모기들도 망했다. 그 열화를 견디고 비로소 살 만한데 겨울 날씨라니. 어젯밤 고양이밥 셔틀에는 도저히 찬물을 가지고 나갈 수 없어서 물을 데웠다. 겨울에는 뜨거운 물을 따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짐이 더 무거워진다. 중간에 보충할 데가 마땅치 않았는데, 지난겨울에는 아는 카페에서 흔쾌히 제공해 줘 다행이었다. 겨울 점퍼를 꺼내려고 옷장을 열었다가 검은색 공단 바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런 멋쟁이 옷을 입은 게 얼마나 오래전이던가. 맞기나 맞을까. 행복하지 않은 사람답게 울퉁불퉁 살이 쪄버렸으니. 좀 할랑한 바지였으니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젠 어색해서 못 입을 것 같다. 집에서라도 입어 버릇하면 모를까. 내 존재에 낯설어진 것들. 야들야들 보드레하고 화사한 스커트와 원피스들. 그리고 향수와 보석. 내가 좋아했던 것들. 지난 한글날 밤에 후배 시인 정은숙을 만났다. 그의 시를 못 본 지 오래됐다. 이젠 시 안 쓰나? 얼굴 한 번 보기 힘들 정도로 출판에 쏟는 지극한 열정을 미루어 보건데, 달리 열정을 남기기 힘들긴 하겠다. 나는 달랑 새로 낸 책 한 권을 건넸는데, 그는 늘 그랬듯 이번에도 선물을 한 보따리 가져왔다.―내가 선물 좋아하는 티를 너무 내고 사나 보다.선물 중에 불가리 장미향수도 있었다. 이삿날 잃어버린 친구의 고양이를 찾는 데 눈 하나라도 잠깐 보태자고 경기도에 다녀오기도 해서 특히 더 피곤하고 꾀죄죄한 몰골이었는데, 향수를 보자마자 손목을 걷어붙이고 칙 뿌렸다. 고양이 캔 비린내에 쩐 몸에 장미향수라. 그래도 아, 좋은 냄새! 정은숙은 내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이리 잘 아는지. 향수 잊고 산 지 오래라서 집에도 향수가 많이 남아 있지만, 이 향수 먼저 쓰리라. 겨울이 가기 전에 다 쓰리라.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 한 알을 그을 때마다 피어난 환상 같은 불가리 장미향수 냄새. 헤어질 때 정은숙 표정이 어둡고 지쳐 보여서 마음에 걸렸다. 내 행복하지 않음에 그가 감염된 게 아닐까. 그렇지 않기를! 전에는 아니었으나 지금은 익숙해진 것들. 대표적인 게 목도리다. 목에 뭔가를 두르면 숨 막힐 듯 답답해서 목도리나 스카프나 내게는 무용지물이었다. 한겨울에도 목을 훤히 내놓고 다녔다. 그런데 어젯밤에는 목도리를 찾아서 단단히 싸맸다. 감기 기운이 가시지 않아서 병이 깊어질까 봐 겁이 더럭 난 것이다. 서글프지만 이제 병드는 게 무섭다. 아, 무섭다는 말을 벌써 몇 번이나 하지? 무섭긴 뭐가 무서워!? 씩씩하게 살자! 내가 시를 변변히 쓴다면 아무것도 무섭지 않을 텐데. 내 안에 힘이 그득 고일 텐데. 시만이 내 삶을 정당하게 하리라. 한 친구가 어렵사리 충고했다. 시 쓰기에 시간과 힘을 모으라고. 늘 폭삭 지친 채 마감에 쫓기며 시를 쓰니까 쓰나 마나 한 시를 쓰게 되는 거 아니냐고. 뼈저린 말이었다. 시인 조은도 나만큼이나, 어쩌면 이래저래 나보다 더 힘들게 지낸다. 그래도 유머 감각이 살아 있는 게 용하다. 얼마 전 책 낸 걸 축하하는 자리에서도 웃겼다. 머리숱이 적은 걸 한탄하는 친구에게 조은이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 그래도 세상 여자의 1퍼센트는 대머리를 좋아한단다.” 흐흐, 위로하는 거냐, 약 올리는 거냐? 어쨌든 가을이다. 정녕 가을이다. 겨울 또한 머지않겠지만, 아직은 가을이다. 은아, 우리 좋은 시 쓰자! 세상 목숨 달린 것들이 우리를 불행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더라도, 거기에 지지 말자. 가여운 존재들을 위해서라도 이기자!
  •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8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8

    서울신문은 대한제국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찾았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대거 등장합니다. 작가가 실제로 조선과 일본에서 베델 등을 직접 취재해 쓴 이 소설에는 고종의 해외 망명 시도 등 극비 내용이 담겨 있어 관심을 모읍니다. 대한제국이 배경인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이 가운데 하나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12월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 <18회>우리는 말을 몰아 포구 쪽으로 향했다. 황제(고종)와 베델, 민영환 대감이 앞서 달리고, 소녀와 내가 뒤따랐다. 도로에서 올라오는 충격 때문에 가끔 끊기기는 했지만 황제는 달리는 내내 불평과 간청을 반복하는 듯한 하소연을 쏟아냈다. 이 노인은 부모의 강압으로 억지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아이처럼 흐느꼈다. 어둠을 뚫고 5㎞ 정도를 더 가야하는 시점에 큰 사건이 터졌다. 그것도 아주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너무 정신이 없고 혼란스러워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사건의 전말이 머릿 속에 정리됐다. 그때 우리는 한 농가의 오두막 주변을 지나고 있었다. 그 집의 개 한마리가 시끄럽게 짖어대더니 무언가 바닥에 발을 짚고 튀어 오르는 듯한 소리가 났다. 검은 물체 하나가 도로 옆에서 나와 황제의 팔을 세게 쳤다. 곧바로 고양이가 심하게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무서워 소름이 돋을 정도다.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황제의 격노에 비하면 고양이 소리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나는 말을 돌려 황제가 멈춰 서 악다구니를 지르고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베델과 민영환 대감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우리는 황제가 말 안장에 걸어놓은 겉옷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고양이는 왕의 앞에서 그르렁대며 침을 뱉었다. 황제는 이 불길한 고양이에게 너무도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머리 위로 두 손을 쳐 들고는 곧 숨이 넘어가는 사람처럼 헐떡대며 얼굴에 두른 붕대를 반쯤 벗겼다. 얼굴의 윤곽이 드러났다. 붕대에서 풀려난 그의 눈이 마치 만들다 만 조각품처럼 우스꽝스러웠다. 베델이 손을 뻗어 고양이의 목을 낚아채 그대로 던져 버졌다. 하지만 조선의 황제는 이미 말에서 몸을 반쯤 내려놓은 상태였다. 안장에서 미끄러지듯 땅에 발을 한 번 내딛고는 말머리를 돌려 서울 쪽으로 향했다. 도대체 우리가 지금껏 무엇을 한 거지... 즉시 민 대감이 그를 따라 붙었다. 우리는 너무도 놀라 민 대감을 따라갔다. 이 둘은 잠깐 멈춰 서더니 멱살만 잡지 않았을 뿐 왕가 사람의 입에서 나오면 안 될 거친 말을 곧 쏟아낼 것처럼 흥분해 싸우려고 했다. 황제는 화가 매우 많이 난 것 같았다. 그는 민 대감에게 저주의 말을 쏟아내며 씩씩거렸다. 그의 손길도 강하게 뿌리쳤다. 일본군이 언제 추격해올 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나와 소녀 그리고 베델은 말 위에서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지켜봐야만 봤다.마침내 민 대감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이윽고 더듬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고양이......저 고양이 때문라오....황제께서는 자신에게 검은 고양이가 달려든 것을 매우 나쁜 징조로 보고 있소. 그래서 망명을 포기하고 궁으로 돌아가신다고 하오.” 곧바로 내 뒤에서 소녀의 한탄이 터져 나왔다. 베델은 화를 참지 못하고 민 대감에게 소리쳤다. “뭐라고요? 그래서 지금 궁으로 돌아 간다고? 안 됩니다. 조금만 더 가면 요트 있는 곳이 나와요.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요.” 민 대감은 그의 옆에서 훌쩍이고 있는 이 바보 노인(고종)를 달래고 있었다. 우리는 한국어를 몰랐지만 그가 황제에게 뭔가를 간청하는 동시에 항의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제 황제는 거의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는 단계에 와 있었다. 서울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바꿨으니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놓아달라는 것 같았다. 황제는 자신을 위해 지금껏 목숨을 걸고 망명길을 주선한 이들과 싸우고 있었다. 자신과 조선을 모두 구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다. 이렇게 5분이 지났다. 그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황금같은 5분이...조선의 황제는 정체모를 검은 고양이 한마리 때문에 자신의 나라를 세계사에서 스스로 지우기로 결심한 듯 보였다. 일본군의 나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들려왔다. 답답하고 안타까웠지만 우리는 이 상황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황제 납치 프로젝트’는 19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여기는 중국] 게임처럼 고층서 뛰어내리다가…13살 소년, 투신 사망

    [여기는 중국] 게임처럼 고층서 뛰어내리다가…13살 소년, 투신 사망

    최근 중국에서는 모바일 게임에 푹 빠진 13살 소년이 게임 속 장면처럼 고층에서 몸을 던졌다가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중국청년보(中国青年报)는 지난 8월 30일 새벽 난통(南通)에 사는 13살 소년 쉬진(徐锦, 예명)이 투신 사망했다고 전했다. 최근 쉬 군의 부모는 아들의 죽음이 ‘베틀그라운드’ 게임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게임’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악영향과 위험성을 알리고 나섰다. 사고 전날 쉬 군은 친구와 새벽 3시까지 게임을 하기로 약속했다. 휴대폰이 없던 쉬 군은 사촌 누나의 아이패드를 몰래 가져다 밤 10시부터 게임을 즐겼다. 하지만 자정이 되기 전 쉬 군은 오프라인 상태로 전환한 뒤 소식이 끊겼다. 이튿날 쉬 군은 주검으로 발견됐다. 당시 집에는 쉬 군의 식구와 친척들이 있었지만, 쉬 군에게서 아무런 이상 증후도 느끼지 못했고, 여느 때처럼 밝은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쉬 군의 부모는 “아들이 평소 국제 무역 일을 하는 부모를 따라 해외 생활 경험이 많았고, 학업 스트레스도 없었다”고 전했다. 또한 예의 바르고, 교우 관계도 좋은, 밝은 아이였다고 전했다. 다만 몇 년 전 아들이 인터넷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해 집에 있던 컴퓨터를 치우고, 휴대폰과 아이패드도 사주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여름방학 남아프리카 여행 도중 친척들과 생활하면서 ‘베틀그라운드’ 게임을 접하면서 빠져들었다고 전했다. 베틀그라운드 게임은 100명이 모이면 게임이 시작되는데, 마지막 살아남는 한 사람 혹은 한 팀이 우승을 차지한다. 마지막 우승자에게는 ‘Winner, winner, chicken dinner’라는 표어가 떠서 일명 ‘치킨 먹는 게임(吃鸡游戏)’으로도 알려져 있다. 게임에서는 고층 빌딩과 높은 산에서 뛰어내려도 사람이 죽지 않는다. 게임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죽여버려”, “살인” 등의 잔인한 말을 서슴지 않고 외친다. 쉬 군의 부모는 “모방하길 좋아하는 청소년들은 게임 속 행위를 그대로 따라 할 위험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게임이 이토록 잔인하고, 폭력적인 줄 알았다면, 아들에게 절대로 게임을 못 하게 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사진=중국청년보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빅포레스트’ 신동엽 정상훈, 운명적 사랑-뜻밖의 브로맨스 ‘웃음 가득’

    ‘빅포레스트’ 신동엽 정상훈, 운명적 사랑-뜻밖의 브로맨스 ‘웃음 가득’

    ‘빅 포레스트’가 운명적 사랑을 만난 신동엽과 뜻밖의 조력자와 우정을 쌓게 된 정상훈의 에피소드를 다루며 웃음을 선사 했다. 지난 21일 방송된 tvN 불금시리즈 ‘빅 포레스트’(연출 박수원, 극본 곽경윤·김현희·안용진, 각색 배세영) 3화에서는 대림동에서 중국인 여성과 첫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 동엽(신동엽 분)의 웃픈 러브스토리, 대림동 자율방범대원으로 나서 운명적(?) 짝꿍을 만나게 된 상훈(정상훈 분)의 이야기를 그리며 따뜻한 웃음으로 채웠다. 동엽은 미용실에서 만난 미모의 중국인 여성 빙빙(이은채 분)에게 한 눈에 반하고 말았다. 낯선 곳에서 고군분투 중인 빙빙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게 된 동엽은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두 사람은 설레는 ‘썸’을 시작했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의 의사소통이 수월할리 만무했다. 동엽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빙빙의 쪽지를 해석해주게 된 식당 주인 김용(전국환 분)은 시도 때도 없이 통역을 부탁하는 동엽에게 시달렸다. 급기야 두 사람의 데이트에도 강제 소환된 김용은 웃픈 통역사로 활약했다. 동엽과 빙빙의 노래방 데이트에 강제로 끌려가 언어를 넘나들며 노래가사 동시통역까지 도전한 김용의 모습이 폭소를 자아냈다.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눈 동엽과 빙빙이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순탄할리 없었다. 빙빙과 달콤한 밤을 보내려던 동엽은 어김없이 사채업자의 협박에 시달렸고, 동엽의 모든 사연을 알게 된 빙빙은 동엽에게 함께 중국으로 떠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이 적힌 쪽지가 동엽에게 무사히 전달 될리 없었다. 채무자의 도주를 막기 위해, ‘아보카도금융’의 연기 달인 사채업자 추심수(정순원 분)는 빙빙의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오역해 동엽에게 전달했다. 빙빙의 편지를 이별 통보라 전달받은 동엽은 비참한 마음으로 사채업자 제갈부장(정문성 분)에게 험악한 꼴을 당하게 됐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내 주제에 무슨 여자냐”며 한탄하는 그의 모습은 불시착한 사랑을 끝내 잡지 못한 동엽의 웃픈 인생사를 비추며 씁쓸함을 남겼다. 돈도, 명예도 잃었지만 사랑만은 얻고 싶었던 동엽의 실연은 그의 파란만장 대림 생존기의 앞날에 더욱 궁금증을 끌어올렸다. 그런가하면 하나 뿐인 딸 보배(주예림 분)에게 슈퍼맨이 되고 싶은 싱글대디 상훈의 방범도전기로 시작됐다. 학교폭력의 현장을 목격하고도 겁에 질려 몰래 지나치려던 상훈에게 딸 보배는 크게 실망했다. 상훈은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자 대림동 자율방범대원 활동을 자청했다. 하지만 상훈의 방범 활동은 첫날부터 삐걱댔다. 한 눈에 봐도 거친 과거를 짐작케 하는 조선족 길강(허성태 분)과 2인1조로 방범 활동에 나선 것. 길강은 주먹 좀 썼던 어두운 과거를 뒤로 한 채 평화롭고 안전한 대림을 만들기 위해 방범 활동에 열정을 쏟는 상남자였다. 하지만 거대한 덩치의 불량배도 괴력으로 싹쓸이하는 길강의 전투력이 상훈은 두렵기만 했다. 그러던 중 상훈은 악덕 채무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특급 미션을 받고, 길강의 남다른 존재감을 이용해 이자를 받아내겠다고 결심한다. 상훈은 길강이 눈치 채지 못할 교묘한 방법으로 그를 추심 활동에 대동했다. 온통 추심에만 신경이 팔린 상훈과 달리, 유독 자신을 챙기는 상훈을 보며 길강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오해에 빠졌다. 급기야 “남자를 만난 적 없지만 당신이라면 받아 들이겠다” 는 길강의 고백까지 받게 된 상훈. 사실을 고백한 상훈은 길강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지만, 속내만은 따뜻했던 길강은 상훈을 위해 남몰래 세 명의 채무자를 클리어했다. 우여곡절 끝 우정을 회복한 상훈과 길강의 이야기, ‘로맨스’일뻔 했던 아찔한 ‘브로맨스’가 포복절도 에피소드를 완성하며 안방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이날 방송에는 동엽과 빙빙이 함께 방문하는 속옷가게의 주인으로 배우 장소연이 깜짝 재등장해 반가움을 자아냈다. 1화에서 동엽에게 빚 탕감 작전으로 사기결혼을 제안했던 채옥 역을 맡아 강렬한 존재감을 펼쳤던 장소연이 난데없이 동엽과 빙빙 사이의 대화를 통역해주는 모습으로 또 한 번의 빅웃음을 안겼다. 사진=tvN ’빅포레스트‘ 방송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국회 찾은 농민들 “피땀 흘려 지은 농사 제값 받아야”

    추석 연휴를 앞둔 18일 농민들이 국회로 대거 몰려와 한탄을 쏟아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이 개최한 ‘농산물 제값 받기와 가격안정,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다. 강원 춘천에서 온 이재환(63)씨는 “1980년부터 30년 넘도록 성실하게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 빚이 12억원”이라면서 “1987년과 1992년 더덕과 황기 농사를 지어봤지만 매번 중국산 수입으로 인한 가격 폭락으로 빚만 쌓였다”고 토로했다. 충북 진천에서 온 이해자씨는 “올해 고추밭 농사가 대박이 났지만 수익은 고작 500만원에 불과하다”면서 “추석 특수는 옛말”이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황 의원은 “농업은 정권과 상관없이 항상 소외되고 홀대받는다”면서 “농민을 공직자라고 지칭한 문재인 대통령의 다짐과 언약이 어디로 갔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오영훈·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농가 소득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관련 입법에 힘쓰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큰 입술 소유 욕심에 ‘대략난감’ 상황에 빠진 여성

    큰 입술 소유 욕심에 ‘대략난감’ 상황에 빠진 여성

    직접 당하지 않고 그저 보기만 해도 눈쌀이 찌푸려지고 가슴까지 아픈데, 황당한 사연의 주인공 여성 심정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남보다 예뻐지고 싶은 여성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미(美)에 대한 지나친 욕심은 자칫하면 화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 영상이 화제다. 수 많은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던, 지금도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는 성형수술의 부작용에 대한 얘기다.  지난 5일 영국 동영상 공유사이트 라이브릭은 남보다 크고 두툼한 입술을 갖고 싶었던 한 젊은 여성이 잘못된 성형수술로 심하게 망가진 입술을 용기내서 셀프 촬영한 후, 공개한 영상을 보도했다.  영상 속, 한 눈에 봐도 입술에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 여성이 카메라를 보고 30여초 동안 한탄과 욕설, 분노와 좌절이 섞힌 말을 뿜어낸다. 내용의 주제는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거대하게 부풀어진 입술이다.  이 여성이 대략난감 입술 모습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대중에 공개한 이유에 대해선 아직까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영상을 본 많은 누리꾼들, 분명 뭔가 확실히 깨닫게 될 중요한 교훈 하나 얻어갈 수 있음은 확실해 보인다.사진 영상=얼비데오킹덤/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중국 인터넷에 아프리카 형제 감사 인사가 넘쳐난 이유

    중국 인터넷에 아프리카 형제 감사 인사가 넘쳐난 이유

    중국 인터넷에 3~4일 열린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 정상회의’를 계기로 아프리카 형제에 대한 감사 인사가 돌연 넘쳐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600억 달러(약 67조원)을 아프리카 대륙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자 이에 대한 비판을 에둘러 아프리카 형제에 대한 감사 인사로 표현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아프리카 지원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는데 한 웨이보 사용자는 6일 “주변의 국내 기업도 세금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는 판에 멀리 있는 아프리카에 돈을 뿌리다니 약이라도 먹어야 겠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중국 네티즌은 “우리 돈을 모두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를 하는 데 쓰고, 아프리카 형제들을 돕는 데 쓰자”라고 비꼬았다.하지만 인터넷 표현의 자유가 없는 중국에서 이와 같은 직접적인 비난은 금새 삭제되기 때문에 “아프리카 형제들 고마워요. 파란 하늘을 만들어 줘서” “아프리카 형제들 고마워요. 20분 걸릴 길을 2시간 걸리게 해 줘서”라고 풍자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대만과 수교를 유지한 에스와티니 왕국(옛 스와질랜드)을 제외한 53개국의 정상이 모두 베이징에 몰려와 중국의 수도는 극도의 통제 상태에 놓여있다. 호텔마다 간이 검색대가 설치되어 투숙객들도 일일이 공항 수준의 보안검사를 받아야 하고 지하철의 보안검색 수준도 훨씬 높아져 보안요원과 승객 사이에 마찰이 벌어지기도 한다. 2014년 열린 국제회의 에이펙(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때 스모그와 미세먼지로 햇빛조차 보기 어려운 베이징에 교통 및 공장 가동 통제로 파란 하늘이 찾아오면서 ‘에이펙 블루’란 신조어가 생겨냈다. 아프리카 협력포럼 기간에도 미세먼지 지수가 정상 수준을 유지해 중국인들은 국제회의가 열려야만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이냐며 한탄했다. 시 주석은 포럼 개막연설을 통해 “아프리카의 발전은 무한하고 아프리카의 미래는 희망으로 가득하다”며 “누구도 중국과 아프리카 국민 간 대단합을 깨뜨릴 수 없다”고 밝혔다. 중화권 매체 보쉰(博訊)은 “시진핑 주석은 미국이 대표하는 서구 자본주의 진영에 대한 국제 공산주의 진영을 만들려 한다”며 “과거 마오쩌둥처럼 아시아, 아프리카 및 라틴 아메리카 등 제3세계를 돈으로 사서 ‘가난한 나라의 머리’가 되고 싶어한다”고 비난했다. 이어 예산 민주주의를 통해 고무도장이란 비판을 받는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실질적인 예산 사용 결정권을 가져야만 시 주석의 ‘독극물’ 같은 정책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사설] ‘간병 살인’ 비극 없게 사회안전망 촘촘히 짜야

    100세 시대를 축복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들이 많다. 치매나 중풍을 앓는 환자를 둔 집이 주변에 흔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의 터널에 갇힌 이들에게는 100세 시대가 앞이 캄캄한 재앙일 수 있다.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사건은 잊힐 만하면 터져 나온다. 지난달에도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79세 노인이 쓰러져 숨진 상태로 뒤늦게 발견되기도 했다. 간병을 맡은 60대 부인도 치매를 앓고 있었던 안타까운 사건이다. 간병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병상의 배우자나 노부모를 숨지게 하거나 동반 자살하는 참극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간병 살인’의 그림자가 얼마나 짙은지는 서울신문의 탐사기획 기사에서 여실히 확인됐다. 참사를 겪고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가족들은 “아무런 희망 없이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는 한탄을 쏟아냈다. 기획취재 결과 간병 살인의 수치는 해마다 늘었다. 2006~2010년 매년 10건 안팎이던 것이 2015년 한 해 동안은 21건을 기록했다. 간병 살인과 간병인 자살은 간병 기간이 속수무책으로 길어지면서 빚어진다. 극심한 생활고와 감당할 수 없는 간병 비용이 주요 원인임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치매 환자를 간병하는 과정에서 치명적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를 차지하는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1명이 치매 환자인데, 2050년에는 6~7명 중 1명으로 늘어난다는 경고다. 우리 사회가 ‘간병 비극’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음을 가감 없이 보여 주는 수치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노인 질병은 앞으로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치매 환자의 증가는 가까운 미래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임은 예견된 사실이다. 환자를 돌보느라 손발이 묶이는 가족은 당장 소득이 없어지고 건강까지 악화하는 연쇄 고통에 시달린다. 노노 간병이나 돌봄 가족들의 비극적 삶을 돌보려면 사회안전망 차원의 노인복지를 더 촘촘하게 짜야만 한다. 새 정부 들어 치매 지원책이 꾸준히 확대되고는 있지만 그래도 간병 인력 부족 등 메워야 할 구멍은 많다. 지속적인 간병이 필요한 노인을 지원할 수 있도록 장기요양보험의 시간과 서비스를 더 확대해야 한다. 병원, 보건소, 건보공단 등으로 쪼개진 가정간호 서비스 제도도 통합해 일사불란한 지원이 가능하게 손봐야 할 것이다. 한 해 복지예산이 150조원이 넘는데, 빈곤 노인의 간병 참사가 이어진다니 말이 안 된다.
  • [뉴스 in] 200년 된 브라질 국립박물관 ‘큰불’

    [뉴스 in] 200년 된 브라질 국립박물관 ‘큰불’

    2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국립박물관에 대형 화재가 발생해 2000만점에 달하는 브라질의 국보급 문화재와 예술작품 상당수가 소실된 것으로 나타났다. 거대한 화염을 내뿜으며 리우의 밤을 태운 국립박물관은 정확히 2세기 전인 1818년 건립됐다. 현지에서는 초동 화재 대응에 실패한 미셰우 테메르 정부에 대한 비판과 함께 브라질의 200년 역사와 문화 유산이 잿더미가 됐다는 한탄이 쏟아지고 있다.
  • [뉴스 in] 철원 소이산 ‘힐링 생태숲’ 오세요

    [뉴스 in] 철원 소이산 ‘힐링 생태숲’ 오세요

    철원 소이산은 한국전쟁 후 60여년 동안 민간인통제구역이었다. 그 덕에 전쟁의 상처를 딛고 원시림 같은 울창함을 되찾았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초입에는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은 북한 노동당사가 서 있다. 철조망을 끼고 이어진 4.8㎞의 숲길을 걷다 보면 오랜 세월 스스로를 치유한 산이 마음까지 보듬어 주는 듯하다. 인근의 한탄강 기암절벽은 또 다른 볼거리다. 사람과 자연이 빚은 철원의 풍경이 여행객을 기다린다.
  • 60년 전 묻어둔 비극, 풀꽃이 먼저 싸매주었네

    60년 전 묻어둔 비극, 풀꽃이 먼저 싸매주었네

    저 앞의 끝 간 데 없이 이어진 초지가 평강고원이랍니다. 아직은 닿을 수 없는 북한 땅이지요. 시선을 가까이에 두면 초록빛 철원평야가 다가섭니다. 눈앞의 풍경 중 어디까지가 남한 땅이고 어디서부터가 북한 땅일까요. 철책에서 쉬어 가는 잠자리는, 쩌렁쩌렁 울어 대는 매미는 어디에서 날아온 걸까요. 강원 철원의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은 미답의 땅, 북한을 그려 보게 합니다. 녹색길이 특별한 것은 지뢰구역 철조망 옆을 걷다가 북녘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보다는 생각이, 달뜬 걸음보다는 차분한 사색이 어울리는 길이지요. 북녘을 향한 그리움을 부려 놓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길은 걸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철원은 한국전쟁의 흔적이 또렷이 남아 있는 땅이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은 평화전망대나 제2땅굴 같은 안보 관광지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대열에 이름을 올릴 만하다. 해발 362m의 작은 산은 남한 땅과 북한 땅을 가득 품는다. 소이산은 한국전쟁 후 60여년 동안 민간인통제구역이었다. 2010년에 통제구역에서 해제된 뒤에도 지뢰 때문에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었다. 그동안 전쟁의 폭격에 황폐해진 산은 스스로를 치유했고,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은 원시림 같은 울창함을 되찾았다. 그러던 2012년, 철원군과 육군부대가 힘을 합쳐 4.8㎞ 길이의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을 열었다. 길 끝에서 바라보는 북녘 땅은 자연스레 통일의 꿈을 꾸게 한다. 숲길이 주는 미덕도 빼놓을 수 없다. 녹진한 풀 향을 맡고 묵은 낙엽을 밟으며 자연이 낸 길을 따른다. 시간에 맞춰 한 장소에서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 대개의 안보관광지와 달리, 이곳에선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고 바라보고 싶은 만큼 바라볼 수 있다.●전쟁이 남긴 구멍 난 상처 노동당사 철원이 1946년에는 북한 관할구역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노동당사는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 전까지 북한이 조선노동당 당사로 쓴 건물이다. 늦여름 햇덩이가 내리쬐는 낮에도 건물에는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신축 당시 성금이라는 명목으로 한 리(里) 당 쌀 200가마씩 거두었다는 이야기, 기밀 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외에는 건축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공산주의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이야기, 혹은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사람들이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다는 이야기 등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전쟁 중 폭격으로 건물 대부분이 파괴돼 지금은 네 면의 벽체와 군데군데 골조만 남아 있다. 건물 뒤는 앞보다 훨씬 처참하다. 외벽이 거의 무너져 내려 기다란 파이프가 건물을 지탱하는 상태다. 벽에는 깊게 팬 탄알 자국이 무수하다. 손 한 뼘 되는 간격으로 총알의 흔적이 이어진다. 밤중에 노동당사 주변을 지나는 군인들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그곳에 총을 난사했기 때문이란다. 부서지고 구멍이 뻥뻥 뚫린 건물은 남과 북의 서글픈 현실을 말해 준다. 신청 후 단체로 움직이는 철원의 다른 안보관광지와 달리, 노동당사는 민간인통제선 밖에 있어 특별한 절차 없이도 갈 수 있다. 노동당사 맞은편에 소이산이 보인다.●철조망 따라 핀 ‘지뢰꽃’… 소이산 생태숲 아래부터 위로 천천히 고개를 든다. 산수국이 핀 땅, 철조망, 지뢰라고 쓰인 삼각형 표지판, 철조망 안팎을 오가는 잠자리, 새파란 하늘. 숲길 옆으로 철조망이 끝없이 이어진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의 첫 번째 구간은 1.3㎞ 길이의 지뢰꽃길이다. 지뢰와 꽃이라니 얼마나 상반되는 조합인가. 철원 출신의 시인이 쓴 시 ‘지뢰꽃’에서 이름을 따왔단다. ‘지뢰 지대로 출입을 절대 금함.’ 철조망에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이 붙어 있다. 그렇다. 철조망 안은 아직 지뢰 지대다. 지뢰가 있다 한들 뿌리 내리고 잎을 틔우려는 자연의 생명력을 막을 순 없다. 도심 가로수처럼 때 되면 모양을 가다듬어 주지 않는 데도 철조망 안 수풀은 제 알아서 자라 푸르기만 하다. 어떤 나무는 가로로 누워 자라다가 철조망에 막혀 가지 뻗을 곳을 잃었다. ‘지뢰꽃’의 한 구절이 스쳐 간다.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산수국, 벌개미취, 하늘말나리, 노루오줌, 맥문동…. 소담한 꽃들이 철조망 따라 피어나 스산한 마음을 달래 준다.●철원평야 뒤 백마고지까지 파노라마 뷰 두 번째 구간인 생태숲길이 시작되면 철조망이 걷혀 시야가 트인다. 너른 들판에 농촌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지뢰밭을 일궈 세운 대마리 마을이다. 1968년 민간인통제선 북쪽의 농지를 개간한다는 계획에 따라 반공정신이 투철한 제대 군인과 지역 주민들 150가구가 모여 마을을 이뤘다. 농지를 개간하다가 지뢰가 폭발해 팔다리를 잃은 이들도 있다고 한다.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는 마을에는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사연이 있다. 40분 정도 좁다란 숲길을 오르면 마지막 구간인 봉수대 오름길이 나온다. 온통 아스팔트 도로다. 산에 웬 아스팔트 길인가 싶겠지만 이곳에 주둔하던 군인들이 군 작전로로 닦아 놓은 길이다. 소이산은 최근까지 군사적 요지였다. 철원평야를 비롯해 주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형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치열했다고 한다. 봉수대 오름길은 산으로 따지면 깔딱 고개다. 걷는 맛이 적은 아스팔트 길인 데다가 경사가 가팔라 숨이 가쁘다. 고진감래. 옛말에 틀린 것 하나 없다고 묵묵히 걸어 전망대에 오르면 선물 같은 풍경이 기다린다. 너른 철원평야 뒤로 백마고지, 김일성고지, 아이스크림고지 등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전망대 유리판에 지명이 적혀 있어 눈앞의 풍경과 지명을 하나하나 맞춰 볼 수 있다. 낮은 언덕 세 개가 삼자매봉, 삼자매봉 뒤의 봉우리가 백마고지, 저긴 김일성고지, 저 아득한 초원이 평강고원…. 열흘 동안 열두 번의 전투를 하며 심한 포격을 받은 탓에 산등성이가 하얗게 벗겨졌다는 백마고지는 여전히 허옇다. 사람에게나 자연에나 전쟁의 상흔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끝을 알 수 없이 광활한 평강고원 너머 북한의 산 능선이 흐릿흐릿하게 이어진다. 예쁜 꽃도 아니고 눈부신 일몰도 아니지만 그리운 땅이라는 이유만으로 하염없이 바라보고픈 풍경이다. 소이산에 다녀간 이들의 메시지가 전망대 앞 밧줄에 묶여 바람에 나부낀다. “동생과 제가 싸우지 않도록 평화를 주세요. 평화 통일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세요.” 한 아이에게는 동생과 싸우지 않는 것이 평화다. 한 국가에는 갈라진 두 땅이 하나가 되는 것이 평화다. ‘평화’라는 거창한 단어를 읊조리게 되는 곳, ‘통일’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돌아보게 되는 곳, 이곳은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이다.●시간과 자연이 빚은 주상절리 ‘송대소’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의 출발지인 노동당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송대소가 있다. 30m 높이 현무암이 수직 절벽을 이루고 절벽을 휘감는 물줄기가 깊은 소(沼)를 이룬 곳이다. 절벽은 다각형 기둥으로 뒤덮여 있다. 30만년 전,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이 식으며 수직 틈이 생겼고, 풍화작용이 일어나며 여러 모습으로 갈라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송대소 주상절리다. 송대소는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 저마다의 감흥이 있다. 멀리서는 깎아지른 듯한 수직 절벽과 S자로 돌아 나가는 한탄강이 한눈에 담긴다. 절벽이 수면에 비치는 모습은 시 한 수가 절로 나올 법한 풍광이다. 가까이서 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한탄강 얼음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계절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한탄강을 걸으면 주상절리의 기이한 모양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4~8각형의 다각형 기둥이 있는가 하면 널빤지처럼 넓적한 판도 있다. 수십만년의 시간과 비바람이라는 자연이 빚은 합작품이다. 내비게이션에 ‘송대소’를 치면 정확한 주소가 나오지 않는다. 멀리서 송대소를 잘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모닝캄빌리지 펜션 옆 나무데크다. 모닝캄빌리지 정원 한편에 나무 계단이 있는데, 시야가 탁 트여 송대소와 S자로 흐르는 한탄강을 훑을 수 있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 사진 장명확(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서울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신평화로를 거쳐 평화로와 연신로를 지난다. 신평화로로 가다 소요산사거리에서 좌회전 후 평화로를 따라 25㎞가량 직진한다. 신서교차로에서 ‘철원, 도산리’ 방면으로 우회전하고 연신로를 따라간다. 노동당사삼거리에서 ‘관인, 철원읍사무소’ 방면으로 우회전해 금강산로에 다다르면 노동당사다. →맛집:철원은 유독 매운탕 집이 많다. 물살이 거센 한탄강에서 난 민물고기 맛이 좋기 때문이다. 고석정 입구에 있는 임꺽정가든(455-8779) 역시 민물매운탕을 잘한다. 고석정과 한탄강 등 철원의 명소와도 가깝다. 삼정콩마을두부집(455-9284)은 두부전골, 두부청국장 등 각종 두부 요리를 한다. 가게에서 국내산 콩을 직접 삶고 갈아 속이 편안하다. →잘 곳:한탄리버스파호텔(455-1234)은 고석정, 삼부연폭포 등 철원의 대표 관광지와 가깝다. 게르마늄 온천 사우나와 실내 온천 풀장이 있어 물놀이를 하기에 좋다. 백마고지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학마루 철원펜션(010-6711-0818)은 한탄강에서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다.
  • [특파원 칼럼] 일대일로와 스리랑카 기자의 울분/윤창수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일대일로와 스리랑카 기자의 울분/윤창수 베이징 특파원

    중국 관영언론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인 한 스리랑카 기자는 지난 40년간 공산당이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었다고 찬탄했다. 그는 지난 2월부터 10개월 예정으로 중국에서 일하고 있는데 중국어 강습을 받고 영문 기사를 작성하는 것 외에 베이다이허, 광시, 구이저우 등 중국의 개혁개방 40주년 현장과 주요 관광지 등을 둘러보는 출장을 자주 다닌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욕적’이라고 언급한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참여국과 아프리카에서 온 기자 60명이 현재 관영언론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85㎡(25평) 아파트의 평균 월세가 1만 2800위안(약 200만원)에 이르는 베이징에서 외신기자들은 외교관용 아파트에서 머무는 혜택도 받고 있다. 스리랑카 기자는 “우리 조국은 아름답고 자원도 풍부한데 부패한 정치인 때문에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탄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거대한 규모의 대륙을 다스리는 중국 공산당의 지도력에 대해서는 감탄했다. 하지만 자국의 함반토타 항구에 대해서는 “왜 우리 땅을 중국이 차지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여 울분을 토했다. 함반토타항은 중국이 제 살과 같은 영토를 99년간 영국에 식민지로 떼줬던 홍콩과 같은 신세다. 인도양의 요충지 함반토타 항구는 스리랑카 전 대통령 마힌다 라자팍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2010년 일대일로 사업 참여와 중국의 함반토타항 건설을 승인했던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국가 채무가 된 중국 자금을 대부분 자신의 선거에 사용했다. 이미 수도 콜롬보의 항구가 번성 중이었기에 사전 타당성 조사는 분명히 경제적 이득이 없다고 밝혔지만 라자팍사는 항구 건설을 감행했고 그 결과 2012년 겨우 34척의 배가 함반토타항에 정박했다. 중국은 처음 1~2%로 시작했던 차관의 이율을 라자팍사의 묵인 아래 6.3%까지 올렸고 결국 빚의 덫에 빠진 스리랑카는 함반토타항뿐 아니라 주변 60㎢(약 1800만평)의 땅을 중국 회사에 내줄 수밖에 없었다. 지난 10여년간 중국의 지원을 받은 항구는 세계 35곳에 이르고 주로 아프리카 서해안에 밀집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대일로를 모욕적이라고 한 것은 그 속에 담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세계 패권 장악 의도 때문이다. 시 주석은 고대 실크로드의 확대 복원이라는 명분으로 개발도상국에 도로, 철도, 항구 등을 중국 돈과 기술, 노동력으로 건설하고 있다. 중국이 건설한 인프라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군사기지화하려는 함반토타항처럼 결국 중국의 몫이 되고 만다. 한국 정부도 무역 상대국 다변화 등을 목표로 한 신북방·신남방 정책을 중국의 일대일로와 연계하려 한다. 일대일로에 참여한 80여 개국과는 경제 규모 차이가 현저하기 때문에 중국발 빚의 수렁에 빠질 일은 없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장담이다.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일으킨 이유 가운데 하나는 중국이 지난 40년간 미국의 지원으로 거둔 발전 성과를 독차지하려는 데 있다. 중국은 인민의 피와 땀으로 경제발전을 이뤘다고 하지만 미국과의 수교와 미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원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장은 힘들었을 것이다. 중국 상무부 부부장이 22~23일(현지시간) 미국의 초청으로 4차 무역협상을 위해 워싱턴을 찾는다. 그동안 관세폭탄만 주고받던 양국이 오는 11월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에 따른 합의로 무역전쟁을 타결하기 위한 사전 협의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규모 외신기자 초청 연수로 해외 비판 여론까지 통제하려는 중국의 야심을 미국이 어떻게 다룰지 궁금하다. geo@seoul.co.kr
  • [사설] 광복 73년에도 아직 갈 길 먼 독립유공자 발굴과 예우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광복절 경축사에서 “묻힌 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가의 완전한 발굴이야말로 또 하나의 광복의 완성”이라고 말했다.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를 마지막 한 분까지 최선을 다해서 찾아내고, 그 공적을 기리는 일은 후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에도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 완전히 새롭게 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9월 독립운동 사료에 대한 국가 입증 책임을 강화하고, 포상 심사 기준 재검토 등을 담은 ‘독립유공자 발굴·포상 확대 계획안’을 내놓았다. 지난 6월엔 ‘수형(옥고) 3개월 이상’이라는 기준 조항을 없애고, 당시 사회 구조상 관련 공식 기록이 많지 않은 여성은 일기, 회고록, 수기 등 직간접 자료도 폭넓게 인정하는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기준 개선안’을 확정했다. 하지만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인 고(故) 안맥결 여사의 사례에서 보듯 현실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만삭의 몸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던 안 여사는 한 달여 만에 가석방됐다는 이유로 심사에서 탈락해 이번 광복절 독립유공자 포상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조선혁명군으로 활약한 조부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했더니 70년이 넘은 중국 법원의 재판 서류를 가져오라고 했다는 어느 후손의 한탄은 보훈처가 누구를 위한 기관인지 되묻게 한다. 그동안 소외됐던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평가도 시급하다. 지난 1년간 여성 독립운동가 202명이 발굴돼 이 중 26명이 이번에 서훈을 받은 건 다행이다. 하지만 전체 포상자 1만 5000여명 중에 2%에 불과해 갈 길이 멀다. 차별을 딛고 독립운동에 나섰던 여성 애국지사들의 항일 역사가 온전히 복원될 때 광복의 의미가 더욱 빛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그림 하나 제대로 못 보고 인생 마감… 그래서야 되겠나”

    “그림 하나 제대로 못 보고 인생 마감… 그래서야 되겠나”

     “평생 그림 하나, 꽃 하나 제대로 못 보고 마감하는 게 우리 삶입니다.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처음으로 광복절 경축식이 열리기 전날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에 있는 일향(一鄕)한국미술사연구원을 찾았더니 강우방(77) 원장이 3시간여 인터뷰가 끝날 즈음 이렇게 되물었다. 강 원장이라면 문화재 업계에선 꼬장꼬장하기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유홍준 교수가 추사 위작(僞作)들을 무분별하게 대중들에게 진품인 것처럼 소개한다고 지적해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 터였다. 국립경주박물관장이었을 때도 국정감사 나온 국회의원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으면 “검토해보겠습니다” 대신 “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대꾸했던 그다.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중앙박물관 학예사로 “어렵게 취업”해 밤낮 없이 그림과 불상과 도자기 등을 들여다보며 모든 것을 홀로 공부했다. 박물관에 고고학과나 미술학과 나온 인재들은 수두룩했지만 그처럼 매년 몇 편의 논문을 꾸준히 내놓는 이는 많지 않았다.  2000년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옮긴 뒤 2004년 이대 후문 쪽에 연구원을 열었다. 성덕대왕신종(속칭 에밀레종)에 새겨진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 마을이 되었네’ 명문에서 따왔다. 10여년 전 그리스 유적들을 돌아보다 벼락에 맞은 것처럼 깨달았다. 우리가 보는 예수나 부처 그림 가운데 아이콘은 20%에 불과하고 장식(ornament)이 80%를 차지하는데 세상 어느 누구도 이 장식을 연구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학에서 미술사학 강의를 듣지 않고 독학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에 이르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 때부터 장식들에 숨겨진 의미들을 파헤치는 데 몰두했다. 수많은 장서와 슬라이드 책자로 둘러싸인 연구소의 한쪽 방에는 그만의 채색분석 방이 따로 있다. 꽃과 새, 패턴 문양 등이 어떤 순서로 그려졌는지 원리원칙을 톺아봤다. 그렇게 분석하며 색칠한 그림만 9000점이 된다고 했다. 그림의 작업 순서를 표시하느라 한 색 칠하고 스캔 뜨고 다른 색 칠하고 스캔 뜨고 했다. 컴퓨터 화면을 클릭할 때마다 작업 순서에 따라 볼 수 있게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 낼 엄청난 공력이다. 그의 데스크톱 컴퓨터 용량이 웬만한 기업의 데이터 처리 용량에 맞먹는 15테라바이트나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강 원장은 “보통 오전 11시쯤 출근해 연구원에서 밤늦게까지 머무른다”며 “해야 할 일이 잔뜩 밀려 있고 매주 수요일 문하생 수업이 있어 준비하고 논문 쓰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고 했다. 접근하기 쉬운 인상은 아닌데 웃으면 아이 같은 면모가 드러나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종일 연구에 붙들려 있는데도 “시력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게 이상할 정도”라고 했다. 건강의 비결을 물으니 “색채 분석에 몰두하다가 의심이 풀리거나 궁금증이 해소되면 온몸에 희열이 뻗친다. 그 덕에 이렇게 건강한 것 같다”고 큰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15년 채색분석에 매달렸더니 우리의 불화(佛畵)나 중국 자금성의 장식, 프랑스 고딕 양식이나 그리스 이오니아 양식 등이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른바 ‘영기화생(靈氣化生)’론이다.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나 그리스, 독일 학자들을 모아 강연하면 모두들 장식이라고만 치부했던 것에 그렇게 깊은 뜻이 숨어 있다는 그의 주장에 반색했다고 했다.  평소 “죽음만이 정년”이라고 외쳐온 강 원장이지만 이렇게 동서양을 통틀어 자신만이 하는 연구가 질적, 양적으로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매주 수요일 강의를 듣는 이들 가운데 독창적으로 뭘 해보는 이도 있고, 제가 항상 떠들던 얘기를 몇 년 뒤 스스로 깨달았다고 기뻐하는 수강생들도 있어 희망을 가져봅니다. 하지만 이 연구를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고교 때부터 클래식을 들어온 그의 CD 라이브러리 얘기를 꺼냈더니 진지하게 귀 기울일 만한 답이 돌아왔다. “보통 그림은 슬쩍 한 번 보고 지나치잖아요? 그래놓고 다 봤다고 생각들 하죠? 하지만 작품들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그 사이에는 엄격한 조형의 전개원리가 있음을 알아냈지요. 그러므로 채색분석해 보아야 조형예술작품을 한 점 봤다고 말할 수 있고 그 사이에 해석은 자연히 이루어집니다. 작품에 따라 한 시간, 일주일, 혹은 열흘 걸립니다. 그런데 음악은 흔히 시간예술이라 하지 않습니까? 베토벤 운명 교향곡은 30분 걸려 한 연주를 듣지요, 리하르트 바그너의 작품처럼 이틀 걸리는 작품도 처음부터 끝까지 귀 기울여 듣잖아요? 음악처럼 조형예술작품도 채색분석을 하며 시간적인 흐름을 타는 것처럼, 조형예술작품을 시간예술로 바꿔놓았다고 감히 자부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조형예술작품도, 현실 자연의 변화도 눈여겨 보지 않는다. 강 원장은 “뭐가 뭔지 모르는 이들이 수두룩하다”고 개탄했다. 그는 “출근하며 길가의 꽃이 예뻐 카메라를 들이대면 사람들이 ‘그깟 꽃 뭐하러 찍느냐’고 한다. 그런데 꽃 하나를 설명하라고 하면 한두 줄도 못 쓴다. 전문가 연(然)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꽃을 열심히 찍는 까닭은 인류가 창조한 조형들 가운데 꽃 모양이 주류를 이뤄 그 꽃 모양이 세계미술을 푸는 열쇠가 되기 때문에 비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3시간여 인터뷰를 해보니 그는 꽉 막힌 원칙주의자가 아니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내뱉는 기자의 엉뚱한 얘기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다른 이를 웃게 만들었다.  어느 대목에서는 “이제 대충대충 살까 싶어요”라고 했다가 다른 대목에선 “불의를 보고 지나치면 안 된다”고 했다. 수십년 전 좌천되듯 경주박물관 내려가 경주 분지 서쪽의 아름다운 선도산 중턱에 한 대학 병원이 들어서는 일을 극적으로 막아낸 강단도 있다. 최근 충남 예산군이 추사 작품을 매입하겠다고 여기저기 공고를 낸 일을 언급하며 “정말 모르니 이런 짓을 아무렇지 않게 벌이는 것”이라고 혀를 끌끌 찼다.  강 원장은 “평생 정직해야 한다고 믿고 살아왔다.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지 아는 척하면 안된다”고 했다. 이어 “내가 학위나 진급이나 자리 욕심이 있었다면 지금의 삶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사는 건 의미가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세계의 미술을 올바로 풀어주고 선도할 수 있게 된 것은 기적에 가깝다. 세계미술의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복식을 혼자서 풀어내고 있다. 실제로 영기화생론으로 세계의 미술을 풀어낸 저서가 금년에 출간될 예정이라 흥분된다”고 말한다. 앞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선정해 매년 두 권씩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라 한다.  이렇게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수많은 오류가 서양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으며, 그 오류들을 일본이 그대로 받아들인 뒤 우리가 다시 받아들여 결과적으로 연구할수록 오류가 축적될 뿐이라고 한탄했다. 강 원장은 자신의 연구로 세계미술의 르네상스가 이뤄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어찌 보면 돌연한 자신감마저 내비쳤다.  연구원 현관을 나서려는데 강 원장이 “집사람은 늘 나보고 정신연령이 10세라고 해요”라고 말했다. 호기심 어린 소년이 환히 웃으며 문을 닫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독립청년단·후퉁 신혼집… 신채호 13년 베이징 흔적이 사라진다

    독립청년단·후퉁 신혼집… 신채호 13년 베이징 흔적이 사라진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도 참여했던 독립운동가이자 걸출한 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 그의 흔적은 의외로 중국 베이징 곳곳에 새겨져 있다. 그는 1915~1928년 13년간 베이징에서 독립운동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그의 흔적이 남겨진 곳은 90여년 만에 ‘신채호 루트’로 다시 조명되고 있다. 급격한 도시화로 베이징에서 사라지는 신채호의 발자취를 찾았다.14일 신채호의 활동이 기록된 약 24곳의 베이징 유적지인 ‘신채호 루트’는 베이징의 구도심 얼환(二環) 등에 산재해 있다. 서울의 사대문 안과 비슷한 개념인 베이징의 구도심 얼환에는 좁은 골목길인 후퉁 수백개가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한때 수천개에 이르렀던 후퉁은 서민들의 보금자리지만 도심 개발에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단재는 1919년 베이징과 톈진의 대학생들이 무장 군사활동을 위해 조직한 ‘대한독립청년단’의 단장을 맡았다. 대한독립청년단 건물은 샤오시차오후퉁7호에 있었지만 현재는 철거돼 주소만 확인할 수 있다. 단재가 부인 박자혜와 신접살림을 꾸린 진스팡지에21호도 곧 철거될 처지다. 고층빌딩 한가운데 점처럼 박혀 있는 진스팡지에는 현재 9가구가 다닥다닥 붙어서 살고 있다. 사람 몸 하나를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부엌과 작은방이 있고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전형적인 베이징의 서민 주거시설이다. 진스팡지에는 근처에 있는 병원의 증축 공사로 언제 대한독립청년단 건물처럼 헐릴지 모르는 상태다. 진스팡지에서 살고 있는 중국인 노부부는 기자의 방문에 단박 “한국인이냐”며 말을 건넸다. 단재의 흔적을 기억하려는 한국인들이 진스팡지에를 찾기 때문이다.반면 당대의 문학가인 루쉰(魯迅)의 옛집은 단재의 신혼집에서 겨우 500m 거리에 기념관으로 잘 보존되어 대조를 이룬다. 단재는 루쉰을 비롯한 중국의 지식인들과 교류했다. 특히 베이징대 교수 리시쩡(李石曾)의 배려로 베이징대 도서관에서 고서적을 열람하며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등을 출간할 수 있었다. 당시 베이징대 도서관은 베이다 훙루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특히 1920년 베이징대에서 중국 소설 역사를 가르쳤던 루쉰의 강의실은 칠판의 글씨까지 생생하게 재연되어 전시 중이다. 15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단재와의 결혼을 감행한 박자혜는 여성 독립운동가다. 어린 시절 아기 나인으로 입궁해 10여 년간 궁녀로 일했으며 1919년 3·1운동 당시 총독부 의원 간호사로 일하다 간호사들의 독립운동단체인 ‘간우회’를 주도해 체포된다. 병원장의 신병인도로 풀려난 뒤 베이징으로 망명한 박자혜는 회문대 의예과에 입학한다. 1920년 4월 단재와의 결혼과 임신으로 학교에 다닌 기간은 일 년도 채 못 됐다. 회문대 의예과는 한국의 체 게바라로 불리는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과 고려기독교청년회를 만든 독립운동가 이용설이 수학한 곳이다. 베이징대 의예과의 전신이기도 하다. 현재는 베이징의 번화가 왕푸징 거리에서 셰허의원(協和醫院)으로 불리며 여전히 병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단재는 1910년 처음 베이징에 발을 딛는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입경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서였다. 5년 뒤 단재를 베이징으로 이끈 사람은 일가족 전체가 전 재산을 팔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우당 이회영의 동생 이시영이었다.일정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관이나 싸구려 민박을 전전했던 망명객은 1918년부터 보타암과 석등암에서 고대사 연구에 몰두하며 중국 신문에 논설을 기고했다. 당시 중국 신문사로부터 받는 원고료가 수입의 전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때도 단재의 꼿꼿했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신채호는 ‘박’(博)이란 필명으로 북경중화신보에 논설 1편, 시평 101편, 평론 17편 등 모두 119편을 기고했다. 그가 쓴 글은 모두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북경중화신보 1918년 5월 19일자의 ‘정부의 변명’이란 논설에서 단재는 ‘대가안념의’(大可安念矣)란 표현을 썼다. 하지만 신문에는 ‘의’(矣)자가 ‘일소’(一笑)로 마음대로 편집되어 나갔고 바로 다음날 정정 보도가 실렸다. 필자인 단재가 한 글자를 바꾼 것에도 강력하게 항의했기 때문이다. 글자 하나를 바꾼 것은 ‘크게 안심할 수 있다’란 뜻이 ‘크게 안심하고 한번 웃을 수 있다’로 바뀐 것이라 의미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신채호의 며느리 이덕남(74) 여사는 “얼굴 한 번 뵙지 못한 시아버지의 가족관계등록부를 2009년 창설 받아 국적을 회복했지만 사망한 이의 혼인신고는 할 수 없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법적 부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동안 신채호는 일제가 도입한 호적제를 거부하고 무국적자의 길을 걸었기에 그의 장남 고 신수범은 어머니의 호적에 등록된 사생아로 살아야만 했다. 신채호의 국적은 회복됐지만 그의 가족관계등록부에 박자혜는 아내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신산한 삶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글 사진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죽부인과 사랑방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죽부인과 사랑방

    111년 만에 찾아왔다는 폭염이 연일 기승이다. 이럴 땐 사방이 탁 트인 누마루, 거기에 평상 놓고 죽부인을 앉고 낮잠 잔다 생각만 해도 시원하다.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죽부인을 대나무로 엮어 만드는데, 형태는 연통과 같다. 안은 비어 있고, 바깥은 원형으로 반질반질하다. 여름에 이불 속에 팔과 무릎을 쉬게 하는 까닭에 죽부인이라 한다”고 썼다. 죽부인을 다름 말로 죽궤라고도 한다. 옛날에 죽부인은 무더운 여름 최고의 피서용품이었다.고려 때 문신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서 죽부인을 이렇게 시로 썼다. “대는 본래 장부에 비할 것이고, 참으로 아녀자의 이웃은 아니다. 어찌하여 침구로 만들어서 억지로 부인이라 지었나. 내 어깨와 다리를 안온하게 펴고, 내 이불 속으로 찐하게 들어온다. 눈썹과 나란하게 밥상 드는 일은 못 하나 다행히 사랑을 독차지하는 몸은 되었다. 고요한 것이 가장 내 마음에 드니, 어찌 아름다운 서시(고대 중국의 유명한 4대 미녀 중 하나)가 필요하랴.” 어찌 이보다 죽부인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한낱 공예품에 불과한 궤를 죽부인이라 했을까. 중국의 한무제가 무더운 여름날 감청궁이란 곳으로 피서를 갔다. 황후를 비롯해 천여 명의 후궁들이 따라갔으나 정작 황제의 더위를 식혀 주지 못했다. 이를 몹시 송구스럽게 여긴 황후는 장인을 시켜 대나무 궤를 만들어 황제에게 바치고 이름을 죽부인이라 했다 한다. 죽부인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고려 말 대유학자 이색의 아버지 이곡이 쓴 ‘죽부인전’ 덕이다. 그는 죽부인을 이렇게 찬양했다. “부인의 성은 죽씨로, 이름은 빙이고, 은사 운의 딸이다. 그의 조상은 음률을 잘 알아 황제가 그를 뽑아 음악을 관장하는 일을 하도록 했다. 선대부터 사관으로 대대로 내려오다 진나라 때 분서갱유로 한미해졌다. 부인은 처녀 때부터 아름다운 자태가 있어 뭇 남자들의 유혹이 있었으나 뿌리쳤다. 18세 위인 송공(소나무)에게 시집갔으며, 성품이 날로 온후하고 아름다워 호사가들이 몰래 그려서 간직했다. 남편이 신선이 돼 떠나갔지만, 굳은 절개를 지키며 수절을 해 나라에서 절부의 직함을 주었다. 그런데 후사가 없으니 하늘이 무심탄 말이 헛말이 아니구나.” 이 소설은 당시 음란하고 타락한 궁중과 절개를 지키는 부인이 드문 것을 한탄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남자들이 죽부인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이유인즉슨 죽부인은 요란하게 치장도 않고 성품까지 온화하니 얼마나 좋은가. 애인이나 첩을 둬도 질투하지 않는다. 또한 필요 없어 내 물리쳐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때가 되면 소리 없이 물러난다. 거기에다 절개는 굳기가 이를 데 없고, 조상 대대로 정절을 지키며 남에게 몸을 굽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니 얼마나 기특한가. 한마디로 남정네가 좋아하는 점을 다 갖췄다. 첩을 대물림 않듯 죽부인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태워 버린다. 죽부인이 기거하는 곳은 다름 아닌 사랑방이다. 죽부인과 사랑방은 중세부터 남자의 전유물이요 공간을 상징하는 존재들이다. 주거 형태가 서구식으로 변하면서 사랑방이 없어져 졸지에 아버지의 공간도 사라졌다. 사랑방의 소멸은 단순히 죽부인만 쫓겨난 것이 아니라 아버지들도 쫓겨난 것과 다름없다. 사랑방은 그야말로 부권의 마지막 보류요 상징이었다. 사랑방이 없어졌다는 것은 곧 부인에게 모든 것을 싸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백기를 든 것과 다름없다. 이젠 얄팍한 봉급마저도 모두 온라인으로 들어가 버리니 그 알량한 남자의 위세마저 차압당한 심정이다. 이 더위에 남편의 공간인 사랑방은 마련해 주지는 못하지만, 죽부인이라도 선사하면 어떨까.
  • [뉴스 in] 교사들 수년간 여학생 성추행 파문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쳐 사회에 내보내야 할 선생님들이 도리어, 더구나 한 학교에서 무더기로 ‘몹쓸 짓’을 해 도마에 올랐다. 더 조사를 벌여 봐야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겠지만 교육의 도시로 불리는 ‘빛고을’ 광주 사립 D여고에서 벌어진 일이라, 시민들은 가뜩이나 더해 가는 무더위 속에 깊은 한숨을 쏟아내고 있다. “이곳이 과연 학교가 맞기는 맞냐”는 한탄이 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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