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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릭 이슈] 한국노총 끝없는 추락…원인과 돌파구는

    한국노총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한국노총의 실무창구라 할 수 있는 권오만 사무총장이 택시노련 비리로 수배된데 이어 이남순 전 위원장마저 지난 25일 근로자복지센터 리베이트 사건으로 전격 구속됐다. 위원장 출신으론 처음이어서 충격도 그만큼 컸다. 역대 위원장들은 “얼굴을 들 수 없다.”고 한탄했다. 혁신위를 구성,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이려던 한국노총은 57년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았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 짚어본다. ●부정부패 견제할 시스템이 없다. 한국노동연구원 선한승 선임연구위원은 26일 “한국노총 사태는 그동안 곪았던 것이 터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노총의 실질적인 의사결정기구는 ‘산별대표자회의’다. 최고 의결기구인 대의원대회가 있지만 1년에 한 차례 형식적으로 열릴 뿐 기능이 미약하다. 때문에 사실상 모든 권력이 산별대표자회의에 집중돼 있다. 회의 참석 멤버는 산별대표 24명과 한국노총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총장 등 27명이다. 따라서 소수의 노조간부가 주요 사안을 떡주무르듯 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30년 이상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내부에서조차 ‘낡은 시스템’이라고 비판한다. 현장 조합원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고 있으며 견제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회의는 공개원칙이지만 거의 비공개로 열린다. 회의 내용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외부견제로부터 자유롭다. 이와 관련, 한국노총의 한 간부는 “산별대표자회의는 형식적인 민주주의 체계에 불과할 뿐 실질적이고 민주적인 논의를 위한 조직체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임원 선출방식과 검증시스템도 허술하다. 한국노총은 대의원대회를 통해 위원장을 뽑는다. 상근 부위원장 1인과 비상근 부위원장 20여인, 사무총장 1인은 전형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걸러진 뒤 대의원대회에서 찬반투표로 선출된다. 전형위원들은 산별연맹위원장들이 맡는다. 하지만 전형위원회가 검증 시스템으로써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노총의 솔직한 고백이다. 산별연맹별로 나눠먹기식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부족한 예산도 비리의 구조적 요인이다. 한국노총은 위원장을 포함 80여명이 상근하고 있다.1년 예산은 30여억원이다. 한국노총은 이 돈을 회원조합의무금과 재정수익사업으로 마련해 왔다.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의무금 비율은 65%에 불과할 정도로 낮다. 조합원이 내는 돈으로 살림을 꾸려갈 수 없다는 얘기다. 한국노총은 나머지를 노총건물 임대료 등 재정수익사업을 통해 충당했다.2007년까지 의무금을 1인당 50원씩 인상할 방침이지만 대의원대회를 통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위기탈출을 위한 노총 혁신위의 해법은 한국노총은 우선 집중된 권력의 분산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노총 권력기관인 산별대표자회의를 대체할 기구로 ‘중앙위원회’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는 대의원대회와 산별대표자회의의 중간단계로 산별대표자와 지역본부장, 한국노총 실·본부장급 이상 간부들이 참여한다. 중앙위원회가 활성화되면 과도하게 집중된 의사결정권한이 분산되며 일상적으로 열 수 없는 대의원대회의 기능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혁신위는 기대하고 있다. 또 지역본부장이 회의에 참여함으로써 현장의 목소리가 중앙에 신속하게 전달돼 의사결정의 투명성도 담보된다. 한국노총은 임원 선출 방식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부정부패에 연루된 인사는 완전히 배제된다. 또 위원장과 상근 부위원장, 사무총장의 러닝메이트제도 검토하고 있다. 대의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의원 숫자도 현재 800여명에서 5000명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 보다 더 좋은 검증시스템은 없다는 판단에서다. 부정적인 시각도 일부 존재하고 있지만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외부감사제 도입도 확정적이다. 선 선임연구위원은 “외부에서 들여다 볼 수 없으면 부패의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밝혔다. 최용규기자 ykchoi@ seoul.co.kr
  • 한탄강댐 ‘원점 재검토’ 권고

    정부가 임진강 유역 치수대책으로 지난 1999년부터 추진한 한탄강댐 건설사업에 대해 원점에서 사업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감사결과가 나왔다. 또한 한국교육개발원 등 정부출연기관이 예산을 방만하게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은 과다한 차입경영으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23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한탄강댐 건설사업 추진실태’,‘정부출연연구기관 운영실태’,‘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운영실태’ 등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감사청구 기관인 국회에 결과를 보고했다. 우선 한탄강댐 사업 감사결과, 주무 부처인 건설교통부는 기본 홍수량을 산정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도 없이 한탄강댐의 홍수조절효과를 초당 2700t으로 산정했다. 뿐만 아니라 한탄강댐의 경제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애초 댐 대안으로 검토됐던 제방 사업비 규모를 적정수준 보다 3배 가까이 부풀려진 1조 4505억원으로 산정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감사에서는 한국교육개발원과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4개 기관이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능률성과금을 기관장에게 지급하는 등 총 2억 1600만원을 부당집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실패’ 또는 ‘중단’으로 평가된 연구과제의 정부출연금 총 15억원을 환수하지 않고 방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前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前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씨

    1980년 2월4일 오후 서울 서빙고동 국군보안사령부 분실장실.50여일 동안 감방생활을 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운명적으로 만났다. 장 사령관은 전 사령관보다 장교임관 5년선배였다.. “장 선배, 그동안 고생이 많았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나야, 이래저래 죽을 몸인데 건강이 뭐가 중요하겠소. 그런데 전 장군, 난 수경사령관이오. 나의 임무(반란군 진압)가 뭔지 잘 알잖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 사령관은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정승화 육참총장이 김재규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도 조사에 불응했습니다. 정 총장께서 총장직을 내놓고 6개월정도만 집에서 쉬고 계시면 국방부장관이나 더한 자리를 보장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순간 장 사령관은 쿠데타 계획이 매우 치밀하게 짜여져 있음을 직감했다. 전 사령관의 얘기는 계속됐다. “장 선배가 한강다리를 막는 바람에 지금 금값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3만원하던 것이 7만원으로 뛰었고, 국제여론도 좋지 않습니다.” 무슨 생뚱맞는 얘기인가. 장 사령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그쳐 물었다. “전 장군, 정 총장은 나를 수경사령관으로 임명한 상관이요. 총장을 연행해 갔다는 사실을 왜 안 알려줬소.” “장 선배, 사실은 밑에 사람들이 장 선배를 사전에 연금시키자는 것을 내가 야단을 쳤어요.‘그 어른은 우리가 모시고 큰 일을 함께 할 분인데 그렇게 하면 되겠나.’라고 했지요. 장 선배가 그러지만 않았다면 우리들은 그 다음날 장 선배를 중장으로 진급시켜 군단장으로 내보내려 했습니다. 사정을 이해해주시고 6개월 동안 집에서 쉬고 계시면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장 사령관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다.6.25전쟁도 겪지 않은 후배한테 철저하게 유린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장군, 군인이 군생활을 마치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일자리는 무슨 일자리요. 자, 이제 그만합시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소. 승부는 깨끗하게 합시다. 이 패장을 죽이지 않고 집으로 보내준다니 나가야지.” 장 사령관은 다시 감방으로 돌아왔다. 수사관들이 전역지원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령관님, 이거 예편서입니다. 써주셔야 하겠습니다.” “뭐라고 쓰면 돼?” “네, 일신상의 사유로 인해 예편을 상신합니다.” “알았어.”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일제때 태어나 광복의 기쁨도 채 가시기 전 19세 어린 나이에 구국의 일념으로 6.25에 참전했다. 또 베트남전을 겪으며 무수히 많은 사선을 넘었다. 명예롭기는 커녕 12.12 군사반란을 진압하지 못한 불충의 죄인으로 30년 동안 몸담았던 군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전역지원서를 쓴 장 사령관은 연행돼 올 때 입었던 소장 계급장의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때마침 노을지는 저녁무렵이었다. 서울 봉천동의 집에 도착하자 아들과 딸 부인과 누나 내외, 그리고 장모가 울음으로 맞이했다. ●드라마서 전두환을 유비·관우처럼 취급 이후 장 장군의 집안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우선 장 장군은 강제로 전역된 뒤 자택에서 2년동안 가택연금을 당했다. 또 TV뉴스를 통해 보안사에 끌려가는 장 장군의 모습을 본 시골의 아버지는 곡기를 완전히 끊고 매일 막걸리만 마시다가 80년 4월 세상을 뜨고 말았다. 또 82년 2월에는 외아들이 장 장군의 곁을 떠나버렸다. 그것도 할아버지의 산소 근처에서 꽁꽁 얼어붙은 채로. 꼭 25년 세월이 흘렀다. 쿠데타 세력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장 장군은 재향군인회장,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등을 지내며 뒤늦게나마 명예회복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가슴에 묻어둔 천추의 한을 어찌 씻을 수 있으랴. 특히 요즘 TV드라마 ‘제5공화국’으로 그날을 생생하게 되새기고 있다.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장 장군을 만났다. “쿠데타를 하고 나서 집권을 위해 어느 한쪽을 손을 봐야 했지. 그래서 민주화를 외쳐대는 전라도 광주를 친 거야. 서빙고에서 알았지만 놈들은 정부운용 계획까지 치밀하게 짜놓았더군.” 카랑카랑한 특유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는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해. 날 좀 내버려둬.”하면서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거실 의자에 앉자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문제가 많아”하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전두환을 무슨 유비나 관우처첨 취급하고 있어. 나머지는 다 샌님이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생각할거야.” 또한 “쿠데타는 5·16이나 12·12에서 보듯 불과 200∼300명의 군인이 저질러. 이런 것이 미화되면 누가 아들을 군대에 보내겠으며, 목숨으로 나라를 지킨 호국영령들을 욕되게 하는 거야.”라고 했다. 그가 지적한 드라마 ‘제5공화국’의 오류. 첫째 쿠데타의 배경과 대통령 유고 상황에서 국가적 시스템이 전혀 작동되지 않은 부분을 쏙 빼버렸다는 것.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권좌의 안위를 위해 전두환씨를 보안사령관에 임명한 배경과 하나회를 통해 전씨에게 힘이 쏠린 과정, 그리고 10.26때 모든 요직의 책임자들이 우왕좌왕해 사실상 직무유기한 부분 등 교훈적 가치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안사서 정보 완전 장악, 12·12진압 못해 두번째는 국가운영에 필요한 정보가 한곳으로 모아지면 안된다는 부분을 간과했다는 것.10·26직후 보안사령관이 군과 경찰 정보는 물론 중앙정보부까지 완전히 장악, 대통령에게 정보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12·12가 성공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요인임에도 드라마에서는 이를 놓치고 말았다고 꼬집었다. 또한 군사반란이란 어떤 것이며, 발생했을 경우 방어와 진압의 수순 등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수경사는 대통령령으로 방패계획에 의해 창설됐지. 또 수경사의 사전 허락없이 수도권에 군병력이 절대 들어올 수 없어. 지휘관이 몰래 수경사 예하 30경비단을 장악한 그 자체가 중대 반란이야.” 12·12를 진압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을 묻자 “무슨 명령만 내리면 저놈들이 죄다 알고 있는거야.”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마지막으로 수경사 소속 전차를 출동시키려고 부대 정문을 나서는데 이희성 당시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와 ‘출동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더군.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하게 감시당했어. 또 휘하의 지휘관들은 이미 저쪽으로 많이 기울어졌어. 정말 기막힐 노릇이지.”라고 한탄했다. ●일과의 60% 독서… 쿠데타 막는 법 책낼 것 장 장군은 경북 칠곡에서 3남3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상고를 다니던 중 6·25가 터지자 육군종합학교(11기)에 지원, 사선을 넘었다. 육군대학 졸업논문으로 보안사령부 해체를 주장했다가 베트남 참전때 ‘사상 불순자’로 찍히기도 했다.71년 1월 별을 단 그는 5군단 참모장-수경사 참모장-26사단장 등을 거쳐 10·26 직후 수경사령관이 됐다. 요즘 장 장군은 쿠데타를 막지 못한 ‘한’ 때문에 동서고금의 쿠데타 자료를 모으고 있다.1799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군력(軍力)으로 정부를 뒤집은 데서 유래한 쿠데타 막는 법을 생전에 책으로 엮어내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일과의 60%를 독서에 쏟아붓고 있다. “죽기보다 더 괴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시는 쿠데타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제갈공명은 강류석불전(江流石不轉)이라고 했다. 강물은 흘러도 그 안의 돌은 물결따라 이리저리 구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31년 경북 칠곡 출생 ▲50년 대구상고 재학 중 6·25참전. 육군종합학교 11기 졸업. 육군 소위 임관 ▲53년 조선대학교 법학과 졸업. ▲54년 보병학교 전술학교관 ▲71년 장군진급 ▲72년 5군단 참모장 ▲73년 수경사 참모장 ▲75년 26사단장 ▲78년 육본 교육참모부차장 ▲79년 11월 수경사령관 ▲80년 육군소장 예편 ▲82년 한국증권전산 사장 ▲91년 육군종합학교전우회 회장 ▲94년∼2000년 제27대,28대 재향군인회 회장 ▲2000년 새천년민주당 입당 ▲2000∼2004년 전국구 국회의원 ■ 상훈 충무무공훈장, 보국훈장 천수장, 자랑스런 한국인상(96년) ■ 저서 12·12쿠데타와 나(93년, 명성출판사) km@seoul.co.kr
  • 우리당, 당정협의 물먹고…정책주도 정부에

    열린우리당 새 지도부가 출범한 지 40여일을 넘겼지만,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확고한 리더십으로 당내 이견을 수습하지 못해 여당으로서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정책 주도권도 정부에 내줬다는 평가다. 문희상 의장은 4·2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직후 “국정을 책임지는 강력한 여당”,“통합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겠다.”고 강조했다. ●노선 투쟁에 날새는 지도부 그러나 지난 2일 처리된 과거사법 투표에서 여당 지도부의 과반 이상인 4명이 기권 및 반대표를 던져 당에 충격을 던져 주었다. 유인태 의원은 “투표결과를 며칠째 살펴봐도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당론으로 결정된 사안을 지도부에서 기권하고 반대하는 정당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유 의원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상임위원인 염동연 의원도 “당론과 다르게 투표하는 것은 초선의원들이나 가능하지, 지도부가 뒤집는다면 앞으로 원내대책을 어떻게 짜나갈 것이냐.”고 한탄했다. 실용파와 개혁파간의 노선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4·30재보선에서 ‘23:0’으로 전패한 원인을 개혁파는 실용파 때문에, 실용파는 개혁파 때문이라는 상호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혁신위를 꾸렸으나 ‘난닝구(실용)’와 ‘빽바지(개혁)’ 논쟁 등 감정 싸움으로 비화됐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23.2%로 하락해 한나라당(30.7%)에 역전당한 것도 고민거리다. 한 의원은 “재보선의 전패가 역으로 민심을 떠나가게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당내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음에 따라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복지부 장관의 ‘조기복귀론’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여당으로서 정책을 발굴하고 순발력있게 이슈화하는 능력이 정부에 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정협의도 주도적으로 하기보다는 정부에 끌려다니는 인상을 주고 있다. ●정동영·김근태 당 복귀론 힘 실려 ‘5·4 대책’으로 불리는 1가구2주택 양도세 실거래가 과세방침이 발표된데 이어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 12일 2007년 양도세 실거래가 과세방침을 발표했다. 부동산 문제와 세제 개편은 국민 실생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고, 국회의 입법사항이므로 긴밀한 당정협의가 필요했지만, 불충분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은 정부의 양도소득세 실거래가 과세 방침으로 국민의 조세저항 및 경기 위축 효과가 우려된다며 16일 오후 당정간담회에서 보완책 마련을 주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미리 언론을 통해 공론화를 시켜놓은 정부측에 비해 한박자 늦은 대응이라는 지적이다. 공공기관 이전과 수도권 발전대책에 대해서도 여당은 야당을 국회로 끌어들이지 못해 정부에 주도권을 내준 상황이다. 법조계 최대현안으로 떠오른 검·경 수사권 조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정부가 논의를 주도하면서 당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법사위 소속의 한 초선의원은 “정부가 모든 걸 결정하면 당은 그냥 따라야만 하느냐.”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儒林(342)-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42)-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할반지통(割半之痛). ‘몸의 절반을 베어 내는 아픔’이란 뜻으로 형제자매가 죽었을 때의 슬픔을 이르는 말이다. 이미 퇴계는 8살 때 형이 칼에 손을 베어서 붉은 피를 흘리며 아파하는 것을 보자 형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받아들여서 슬피 울던 우애 깊은 소년이었다. 연보에 의하면 퇴계는 6살 때 이미 학자의 법도를 갖추어 매일 아침 자기 혼자서 머리를 빗질하고 몸을 단정히 갖추곤 하였다고 한다. 손윗사람에게는 태도가 공손하였고, 누구에게든 늘 공경하는 태도로 대하였다. 한밤중에 깊이 잠을 자다가도 윗사람이 부르면 즉각 응대할 만큼 조심성이 몸에 깊이 배어 있었다. 특히 형 해는 퇴계와 더불어 집안을 빛낼 아이로 일찍부터 촉망받고 있었다. 퇴계와 해는 아버지의 동생이었던 송재공(松齋公)으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배웠다. 퇴계의 골상에 관해서는 이마가 넓어서 송재공은 퇴계를 ‘이마가 넓은 아이’라 하여 ‘광상(廣 )’이라 불렀는데, 성품이 엄격한 송재공은 어린 퇴계를 가리켜 ‘광상이야말로 반드시 우리 가문을 지키고 빛낼 아이이다.’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또한 퇴계의 넷째 형인 해도 영민하고 똑똑한 것을 꿰뚫어 보고는 항상 ‘형님께서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이 두 아들을 두셨으므로 결코 세상을 떠나신 것은 아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이였으니 두 사람은 금과 같은 형제이자 옥 같은 벗이었으며, 학문으로는 동문수학의 라이벌이기도 했던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남편이 죽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라 하여서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 하였고, 아내가 죽었을 때는 ‘고분지통(鼓盆之痛)’이라 하였는데, 이는 아내가 죽었을 때 물동이를 두드리며 한탄하였던 장자(莊子)의 고사에서 나온 용어였다. 또한 아들이 죽었을 때는 ‘상명지통(喪明之痛)’, 형제가 사망하였을 때는 ‘할반지통(割半之痛)’이라 하였다. 바로 이렇게 각별한 관계였던 형 해가 억울하게 죽자 퇴계는 자신의 몸을 절반이나 베어 내는 할반의 고통으로 받아들여 생각할 때마다 흐느껴 울며 통곡하였던 것이다. 퇴계가 진정한 스승이었던 송재공에게 글을 처음으로 배웠던 것은 12살. 그 전까지는 이웃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웠다고 연보는 기록하고 있다. 퇴계가 학문에 입문한 것은 6살 무렵. 그때는 송재공이 벼슬살이 중이었으므로 집안에서는 천자문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어 부득이 이웃 서당에 글을 배우러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 무렵 송재공은 진주 목사로 있었는데, 셋째 형 의와 넷째 형 해는 각각 13살,11살로 송재공을 따라 진주 월아산(月牙山) 청곡사(靑谷寺)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퇴계는 6살이었으므로 형들을 따라가지 못하였고 이웃 노인으로부터 글을 배웠는데, 훈장은 어린 퇴계를 무척 신망하였다고 한다. 숙부 송재공 이우(李隅)는 안동부사, 강원감사, 승지 등을 지내고 병이 들어 마침내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몸을 조리하고 있었는데, 이때 퇴계는 송재공의 아들인 사촌동생 수령(壽)과 해 셋이서 처음으로 논어를 배우게 되었다. 이로써 퇴계는 학문의 지혜를 열어 준 참 스승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 [7일 TV 하이라이트]

    ●청춘!신고합니다(KBS1 오후 5시10분) 개편 후 첫 방송을 맞아 아주 특별한 부대를 찾았다. 방송을 통해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바로 그 곳.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범죄 없는 밝은 사회’를 위해 국가의 교정시설을 철통처럼 경계하고 수호하는 ‘법무부 경비교도대’를 찾아간다. ●그린로즈(SBS 오후 9시45분) 괴한들과 격투를 벌이던 중원이 칼에 맞을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타오렌이 중원을 막아서며 대신 칼을 맞고 의식을 잃는다. 분노한 유란은 신현태를 찾아가 뺨을 후려치며 왜 장중원을 죽이려 했느냐고 소리친다. 수아는 대륙공사측이 이유를 밝히지 않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하자 의아해한다. ●라이프n조이(YTN 오전 8시20분) 갖가지 종류의 나비를 만나볼 수 있는 함평. 노란 유채꽃 물결이 끝없이 펼쳐지는 청원에서는 요즘 축제가 한창이다. 아이들에게는 교육의 장이 되고,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이곳에는 나비채집, 종이접기 등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부대행사도 가득하다. ●지금도 마로니에는(EBS 오후 10시50분) 김형욱은 김중태에게 “살아서는 한국에서 살 수 없다.”며 “미국으로 가든지, 자신들과 같이 일을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 김중태는 미국행을 선택하겠다고 말한다. 한편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 연극회 일을 하고 있던 김지하에게 사상계에서 원고청탁을 한다. ●김약국의 딸들(MBC 오전 9시) 용숙이 대구를 사들인 일로 김약국이 난처한 입장이 되자 기두는 용숙을 찾아가 대구를 내놓으라고 한다. 가족은 뒷전이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용숙의 행동에 한실댁은 신세를 한탄하며 노심초사한다. 한편 마리아를 찾아간 홍섭은 긴히 쓸 데가 있으니 300만원을 빌려달라고 한다. ●부모님 전상서(KBS2 오후 7시55분) 아리와 서울 나들이에 나선 옥화는 성실, 성미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자 서운해한다. 한편 아리는 형님, 형수 입장에서 차를 바꿔주고 싶다고 말하지만 미연이나 정환이 모두 달가워하지 않는다. 정환의 사양으로 미연 엄마는 옥화에게 큰소리칠 기회가 없어진 것이 내심 아까운 눈치다.
  • “딸에게 내 발견 보여줄 수 있어 흐뭇”

    “한번 와보고 싶었지만 건강이 안 좋아 오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황량한 벌판이었는데 이렇게 바뀐 것을 보니 놀랍습니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일대에서 아슐리안(Acheulean) 주먹도끼를 발견, 한국의 구석기 역사를 뒤바꿔 놓은 미국인 그레그 보웬(53)이 연천군 초청으로 28년만에 한국을 방문, 역사의 현장을 찾았다. 1974년부터 4년간 동두천 주둔 미 2사단 공군부대에 근무했던 보웬은 지난 77년 봄, 지금은 아내가 된 한국인인 상미 보웬(50)과 함께 한탄강 유원지를 찾았다가 특이하게 생긴 돌멩이를 발견했다. 당시 서울대 박물관장이던 김원룡 교수 등 전문가들에게 보내 한국에도 30만년전 전기 구석기 문화가 존재했음을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넓적하고 예리한 모양의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상당한 가공과정을 거쳐야 제작할 수 있는 것으로, 전곡리 일대에서 발견되기 전까지 동아시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학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었다. 그는 주먹도끼를 발견했을 때 “강변에서 깨진 항아리 조각이나 돌들을 살폈는데 다듬은 흔적이 있는 돌멩이가 발견돼 즉각 유물일 것으로 생각했다.”며 “당시의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 애리조나 주립대에서 2년간 고고학을 전공하다 한국에 왔다. 어렸을 때부터 고고학에 관심이 많아 강과 산이 있는 장소에서 특이한 지층이 있으면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그는 당시의 발견이 구석기축제로 발전한 데 대해 “인상적이고 흥미롭다.”면서 “단지 학계에서나 관심을 가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큰 지역행사로 발전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전했다. 아내, 딸(20)과 함께 방한한 보웬은 “한국인들이 내 발견에 관심을 가져준 데 대해 고맙고 특히 내 발견에 대한 모든 것을 딸에게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며 흐뭇해했다. 연천 전곡리 유창호텔에 묵고 있으며 오는 9일 출국한다. 연천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최은희여기자상에 이연섭 기자

    최은희여기자상 심사위원회는 경기일보 이연섭(40) 문화부장을 제22회 최은희여기자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21일 발표했다. 심사위는 “이 부장이 지난해 국토문화의 정체성 찾기 일환으로 연재한 특집기획 ‘한반도의 보고 한탄강’을 통해 분단의 아픔과 역사 등을 총체적으로 다뤄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자료를 집대성하는 결과를 거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4)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中)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4)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中)

    뜻밖에도 ‘정감록’에 경도됐던 사람들 가운데는 부자가 적지 않았다. 영조 때 남원의 부자 김영건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평소 유복해 보였던 김씨 일가가 비결에 쏠리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남원의 벽보 사건을 좀더 밀도 있게 그려보면 그 답이 보일 것 같다. ●남원성에 나붙은 벽보 영조9년 7월 하순. 그믐날이 가까워 달빛조차 희미한 깊은 밤, 김영건의 두 아들은 괴문서를 남원성벽에 붙였다. 장남 원팔이 문서를 내거는 동안 아우 원하가 망을 보았다. 출입이 가장 빈번한 남문 근처에 한 장의 대형 벽보를 붙이는데 실제 소요된 시간은 극히 짧았지만, 그들 형제에게는 견딜 수 없이 긴 시간이었다. 당시 남원은 호남 굴지의 대도회라서 날마다 성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수백 명이 성안을 드나들었다. 그들의 눈에 띈 벽보 내용은 삽시간에 호남 일대로, 그리고 지리산 너머 영남 지방으로도 퍼져나갈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튿날 오전 남원부중은 괴문서 이야기로 들썩였다. 그날따라 몸이 불편해 좀 늦게 출근한 최정도 이방(吏房)은 이미 사령들이 수거해온 벽보를 훑어본 다음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조정대신을 강도 높게 비난한 구절도 그랬지만 ‘자미진주(紫微眞主)’ 운운한 것이 영락없는 반역자의 소행이었다. 이방이 알기로, 자미성(紫微星)은 자미원(紫微垣)에 속한 큰 별이다. 그것은 북두칠성의 북쪽에 있는데 천제(天帝) 또는 국왕을 상징한다. 그런데 벽보에 ‘진주’라고 했으니 한양성안 구중궁궐에 엄숙하게 앉아계신 상감께선 왕도 아니고, 자미성 정기를 받은 진짜 왕이 곧 나온다는 얘기다. 벽보엔 상감이 무도하다는 둥 동궁(사도세자)이 미쳤다는 둥 흉악한 언사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핀 이방은 새파랗게 질렸다. 잠시 후 어느 정도 마음을 가다듬은 이방은 도호부사 조호신에게 긴급사태를 보고하는 한편, 많은 정탐꾼을 풀어 성 안팎에 떠도는 온갖 소문을 즉각 수집토록 했다. 평소 성품이 침착하고 판단력이 있는 이방이었다. 그는 엄하기로 이름난 이 형방, 실무경험이 가장 풍부한 박 호장 등과 함께 수사본부를 구성했다. 그들은 시시각각으로 들어오는 소문들을 비교 종합해 믿을 만한 것을 추려내어 계통별로 분류했다. 범인을 바로 잡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변고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일이라, 수사는 신속히 진행돼야 했다. 최 이방은 진행중인 수사에 관해 남원부의 우두머리인 조 부사에게 여러 차례 보고했다. 그러나 서울 명문대가 출신인 부사는 실무에 워낙 어두워 한숨만 내쉴 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많은 정보를 비교분석해 보니 성안에 거주하는 김영건과 세 아들이 용의선상에 떠올랐다. 이방은 사령들을 급파해 우선 그들을 잡아들이고, 김씨 집안에 소장된 모든 문서(文書)를 철저히 수색했다. 그날 해질 무렵 김씨의 문갑에서 두 장의 수상한 문서가 발견됐다. 큰아들 원팔의 필체가 분명했는데, 놀랍게도 벽보의 초안이었다. 두 장 가운데서도 큰 종이에 적힌 문건은 벽보보다 언사가 훨씬 과격했다. 반역자만이 쓸 수 있는, 대역무도한 ‘불온문서’였다. ●정 노인이 일으킨 해프닝 김영건에 대한 남원 사람들의 평판은 무척 좋았다. 그는 성품이 부드럽고 공손하고 단정한 데다 재산도 많았다. 여느 부자와는 달리 가난한 이웃은 물론, 집 앞을 지나는 거지들에게까지 후했다. 최 이방은 소문으로 그런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섣불리 김영건에게 혐의를 둘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문수사 결과를 무시할 수 없어 망설이다가 사령들을 내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김영건의 집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는 바람에 이방은 기가 막혔다. 김영건에게는 김원팔, 김원하, 김원택 등 세 아들이 있었는데 셋 다 글 잘하고 글씨도 잘 쓴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모두 아버지를 닮아 인물도 훤칠했다. 특히 큰아들 원팔은 과거시험에도 여러 차례 응시했을 정도다. 그는 남원은 물론 호남의 수부(首府) 전주를 비롯해 각지의 선비들과 두루 사귀고 있었다. 최 이방은 사실 김영건 일가와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으론 늘 김영건의 유복함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김영건 일가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하나 있었다. 수사에 동참한 이 형방이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김영건의 ‘근본’ 즉, 신분을 둘러싼 의혹이 있다고 했다. 형방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 이방은 여러 해 전에 있었던 정 노인 사건을 다시금 뇌리에 떠올렸다. 하루는 남원 성 밖에 사는 가난한 양반 정 노인이 읍내에 시장구경을 나왔다가 만취한 상태에서 김영건을 노비의 자손이라고 비방하는 시비가 벌어졌다. 그러나 문제의 정 노인은 평소 행동거지가 단정하지 못해 세인의 평판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인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 뒤 정 노인은 다시 그런 ‘망령된’ 말을 꺼내지 않아 사건으로 비화되진 않았다. 기억력이 비상한 최 이방조차 이 사건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때 정 노인이 입을 다문 것은 김영건이 적절한 조치를 취해서 그런 것이었다. 영건은 노인과 다투지 않고 도리어 그를 살며시 회유했다. 그는 노인을 정중히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약주를 대접했다. 싫은 노릇이었겠지만 그 뒤에도 길가에서 노인을 마주치면 먼저 반색을 했다. 남원 사람들의 눈엔 마치 도량 있는 김영건이 철없는 주정뱅이 노인을 너그러이 용서한 것으로 보였다. 이 사건은 영건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몇 년 뒤에 일어났는데, 적어도 아들인 그만은 진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김영건의 비밀 사실 김영건은 노비나 별 다름 없이 천한 사람이었다. 남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상도 함양에 노씨 성을 가진 한 양반이 살았는데, 그 집에 막산이란 사내종이 있었다. 그 아내는 이름을 분금이라 했다. 본래 가난한 농사꾼의 딸이었다. 그리고 김영건으로 말하면 분금의 아들이 분명했다. 분금은 어릴 적부터 유달리 영리했고 행실도 조심스러웠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그녀의 미색이 너무 뛰어났다는 점이다. 노씨네 행랑것이었던 그녀를 주인양반은 물론 그 집에 드나든 여러 양반들이 다투어 탐을 냈다. 분금은 물론 영건도 이런 집안내력을 꽁꽁 숨기며 살았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영건은 어머니가 세상을 뜨기 직전에야 그 내력을 알게 됐다. 종 막산은 영건이 아직 젖먹이였을 때 돌림병에 걸려 갑자기 죽었다. 그러자 양반들은 아예 마음 놓고 분금에게 집적거렸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대체로 취미삼아 그런 불륜을 저질렀다. 분금은 자신이 노리갯감으로 전락하는 것이 너무 원통했다. 엄밀히 말하면, 분금은 본래 노씨 집안의 여종이 아니었으므로 종살이를 계속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공공연히 노씨네 종으로 간주되는 실정이었다. 한탄으로 나날을 보내던 분금은 남편을 묻은 지 1년 만에 젖먹이 영건을 등에 업고 몰래 주인집을 빠져나와 지리산 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이틀 동안 산길을 헤매던 분금은 지리산의 서쪽 자락에 있는 운봉을 지나 대도시 남원성으로 들어갔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옛말도 있지만, 뼈대 있는 양반집에서 수년 동안 종 아닌 종살이를 한 분금은 양반들의 예의범절에 거의 통달한 편이라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녀는 질병으로 온 가족이 몰살한 어느 한미한 시골선비의 청상과부라고 했다. 영건의 성은 김씨가 됐다. 마침 그 얼마 전 역질이 남원성을 강타했던 탓에 성안엔 주인 없이 텅 빈 집이 여럿이었다. 분금은 그 가운데서도 시장 쪽으로 얌전히 앉은 초가집 하나를 골라 거처로 삼고서 오직 삯바느질에만 매달렸다. 분금은 나이 일흔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원체 부지런해 해마다 조금씩 재산이 늘어났다. 과부 허리춤엔 은이 서 말이란 속담 그대로였다. 영건이 스무 살쯤 됐을 때 어머니 분금은 논을 네댓 마지기나 장만했다. 영건은 어려서 서당을 몇 년 다녀 까막눈은 아니었다. 그는 홀로 고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안타까워 일찌감치 공부를 그만두고 농사일에 전념했다. 잘 모르는 것은 이웃의 경험 많은 노인에게 물었고, 가끔 시장에 들러 쌀, 콩, 면화, 무명 등의 가격을 조사해 비망록에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만일 콩 한 되라도 팔라치면 반드시 시세가 가장 비쌀 때 내놓았다. 이런 식으로 살림을 하다 보니 영건은 곧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됐다. 그런 아들인데도 늙은 어머니는 영건에게 늘 하는 말이 있었다.“누구에게든지 공손해라! 가난한 이웃을 잘 보살펴 주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이만큼이나 살게 된 것은 모두 부처님의 크신 원력 덕택이다. 절간에 시주를 게을리 하지 말라!” 영건은 그 가르침을 묵묵히 따랐고, 이웃사람들이 모두 영건을 존경했다. 어머니는 세상을 뜨기 전날 밤, 아들을 머리맡에 불러 앉혀 놓고 나직이 말했다.“지금까지 네 아버님의 기일(忌日)이라 믿어온 것이 실은 함양 양반 노씨네 종 막산의 제삿날이다. 나는 그 아내 분금이다. 네 아버지는 경상도 하동 사는 김 선비인데, 이름도 모르고 아무 것도 더는 모른다. 부디 죄 많은 이 어미를 용서해라. 이제 비밀을 네게 털어놓으니 내 가슴이 후련하구나!” ●김영건과 예언서의 만남 김영건은 아무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말할 수가 없어 혼자 그저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랬는데 정 노인 사건까지 터져 마음을 안정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천도를 핑계 삼아 절간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는 평생 동안 뭐든 그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던 것인데, 갑자기 하늘이 무너진 것도 같고 인생과 세상에 대한 회의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과연 전생에 무슨 큰 죄가 있어 평생 아버지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는가. 종 아닌 종이 되어 제 근본을 숨기고 가슴을 졸이며 살아야 되는 내 인생은 도대체 얼마나 불쌍한가. 언젠가 이 비밀이 세상에 알려질 경우 자식들의 장래는 또 어찌 될 것인가. 이 놈의 세상이 아주 송두리째 바뀌어야 한다. 나같이 천한 사람도 가슴 펴고 떳떳이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와야 된다. 도무지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하구나!” 김영건이 제기한 질문들은 누구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정 노인 사건 이후 영건은 사람이 달라졌다. 그의 왕성했던 식욕은 오간데 없어졌고, 일할 마음도 사실은 거의 사라졌다. 세상이 허무하다는 한 생각만이 온종일 영건의 머리에 가득했다. 영건은 그런 자기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지 못해 더욱 고민이었다. 그나마 큰 다행은 그가 가끔은 절간에 들러 스님들과 문답을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영건은 태연한 척 여러 가지 사소한 질문을 던졌다. 스님들 가운데는 더러 영건의 깊은 고민을 눈치 채는 경우도 없지 않아 찻잔을 마주한 승방 문답이 해질 때까지 오래 이어지기도 했다. 절간을 오가는 횟수는 점점 많아졌고 영건은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인연설은 물론 장차 미륵부처가 다스릴 용화세계가 지상에 실현된다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밖에 승려 태진이 소지했던 것과 같은 ‘남사고비기’라든지 ‘정감록’에 관해서도 말을 많이 들었다. 정말 그 비결의 내용처럼 세상이 뒤집어져 상놈이 양반도 되는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과연 그런 세상이 올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당시 조정에선 일체의 ‘위험한’ 비결의 독서, 소장, 유포 및 출판을 엄금했다. 금지가 심할수록 비결은 더욱 유행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알게 됐다. 영건도 절간에서 객승이 소지한 ‘남사고’를 한두 번 구경한 적이 있었다. 영건은 비결을 베껴 곁에 놓고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졌다. 그는 점차 비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비결을 직접 소장하지 못했고, 비결대로 세상을 바꾸려는 ‘불온한’ 사람들의 무리에 섞이지도 못했다. 그러기엔 영건의 성격이 너무도 소극적이었고 그는 이미 늙었다. 하지만 큰아들 원팔은 달랐다. 영리한 아들은 아버지의 불안과 고민을 대강 눈치 채고 있었다. 아들에겐 최봉희란 약빠른 친구도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이미 ‘남사고’를 소장하고 있었다. 아들은 최의 책을 필사해가지고 아버지에게 드렸다. 아들은 위험천만한 ‘비결’ 조직에 점차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남원 양반 이유성의 문제제기 김영건 일가에 정체성의 위기가 다시 찾아온 것은 1733년이었다. 이미 칠순에 접어든 정 노인과 다시 문제가 생긴 것인데, 정확히 말하면 정 노인의 외손녀사위인 이유성과 다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술 취한 정 노인이 이유성이 듣는 데서 김영건의 비천한 출신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정 노인의 친구 가운데는 젊은 시절 분금을 유독 탐낸 양반이 하나 있었다. 그 양반이 참으로 우연히 남원 읍내 길가에서 이미 노인이 다 된 분금을 마주친 것이 화근이었다. 친구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정 노인은 김영건을 노씨네 종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김영건의 비밀을 들은 이유성은 반드시 그것을 폭로하겠다고 별렀다. 스스로 양반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혈기 방장한 양반 이유성에게는 신분이 뒤섞이는 것이야말로 나라의 근본을 뒤흔드는 범죄행위였다. 그는 가짜 양반 김영건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유성의 적의를 느낀 김영건 일가는 극도로 긴장했다. 양측의 대립은 갈수록 심각해져 마침내 상대방을 관가에 고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제출된 양측의 문건을 검토한 이 형방은 그들의 주장에 애매한 점이 많은 데다, 시급히 처리해야 할 다른 사건들이 많은 관계로 그에 대한 심리를 뒤로 미뤄놓고 있었다. 김영건의 큰아들이 남원성벽에 붙인 벽보에는 게시자가 이유성의 아버지 이여매라고 적혀 있었다. 김씨들은 자기들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이유성 집안에 역모 죄를 뒤집어씌울 계산이었던 모양이다. 정말 그런 단순한 계산에서 김원팔 형제는 위험천만한 벽보를 붙였을까. 아니면 혹시 어떤 비밀집단이 그들의 배후에서 벽보사건을 기획했던 것일까. 도승 자명과 변산 승려 태진, 최봉희, 김원팔 등의 관계는 정확히 무엇인가. 다음 호에서 따져볼 것이다.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열린세상] 독도, 위기의 순간에 대비를/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일본 역사교과서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여 문제가 된 지 20여년이 넘었다. 한때 전향적인 교과서 서술이 시도되기도 했으나 1995년 일본의 사회당 당수인 무라야마 총리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를 정점으로 오히려 훨씬 심각한 극우화의 길을 달리고 있다. 그나마 교과서 문제는 역사적 사실의 선택과 해석에 있어서 다양성의 가능성을 남긴다는 점에서 학술적 검토의 여지가 있지만, 공민교과서로 옮겨 붙은 독도영유권 문제는 가부의 결단을 향해 치달아 나가는 우려스러운 모습이다. 우리나라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불안으로 모는 것은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절묘한 타이밍 때문이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주장하는 근거인 시마네현에의 편입은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2월 22일에 일어났다. 육전에서 연거푸 승리를 거둔 일본군이 바야흐로 동해에서의 일전을 앞두고 있을 때이다. 이미 일본은 한일의정서를 강요하여 대한제국의 어느 지점이든지 수시로 군사적 목적에 사용할 수 있도록, 영토를 유린한 상태였다. 일본이 추천한 미국인 친일파 스티븐스가 외교고문이 되어 대한제국은 외교권도 침해당했다. 대한제국 국토 전체의 안위와 주권 자체가 유린된 위기의 상황에서 일본의 시마네현이라는 한 지방이 독도를 현에 소속시키는, 자기들만 아는 고시를 발하였다. 일본의 한 지방이 발한 고시가 무슨 국제적 외교적 의미를 지닐까마는 곧이어 진행된 외교권의 탈취와 보호국화, 그리고 일본의 한국병합에 의하여, 독도는 최초로 침탈당한 한국의 영토로서, 병합에 의한 전국토 탈취의 전초요, 상징이 되었다. 일본이 패전한 뒤 전후처리를 위한 강화회담이 195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일본의 적극 반대로 우리나라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석할 수 없었던 이 회의에서, 애초 연합국 측의 초안에 한국영토로 되어 있던 독도가 일본의 적극 로비로 인해 본안에서는 분명하게 명기되지 못했다. 이후 일본은 이를 빌미로 독도영유권 분쟁을 야기했다. 우리가 남북으로 분단된 뒤 6·25전쟁이 일어나고 전후복구에 경황이 없어 제대로 국토를 보살필 겨를이 없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30여년 동안 극심한 무역역조를 겪은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를 당했다. 이웃나라 한국의 위기에 대하여 일본 금융기관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앞장서서 투자액을 회수해 감으로써 위기를 부채질했다. 그리고 그 위기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본정부는 1965년 체결한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외환위기의 극복을 위해 일본의 협조가 절실했던 우리나라는 일본의 안을 받아들여 독도를 한·일간의 공동어업수역에 넣고 말았다. 어업협정이므로 영토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애써 자위하면서. 그로부터 이제 불과 6년여, 일본은 본격적으로 독도영유권을 주장한다. 미·일동맹의 강화가 그 배경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견제와 그들 나라와의 영토분쟁을 위한 전초전과 같은 느낌도 주고 있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계기로 국가의 재도약을 꾀하려는 일본으로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거센 반발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독도문제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되면서 수면 아래로 잠복할지 모른다. 문제는 미래에 올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다. 북핵문제가 원만한 결론을 맺지 못하거나 또는 북한정권의 붕괴와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경우의 위기이다. 상대의 위기를 기다리면서 치밀하게 징검다리를 하나씩 놓아가는 일본이 그것을 놓치지 않고 공민교과서에 올린 주장을 관철하려 들지 모른다. 독도위기의 해법이 결국 한·일간의 교류와 상호이해밖에 없다는 방향으로 흐를 것을 뻔히 알고 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지만, 온축된 상호이해가 한순간에 허물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위기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이웃의 과거행적 때문이다. 나쁜 이웃과 함께 사는 게 불행이라는 한탄은 미래의 위기에 대비하는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대책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 고려말 문신 안축의 작품집 국역 단행본 ‘근재집’ 발간

    고려말 문신이자 학자인 근재(謹齋) 안축의 문집 ‘근재집’(jinhan M&B 펴냄)이 국역돼 단행본으로 나왔다. 근재가 관동지방 존무사(存撫使)로 있을 때 지은 시문집 ‘관동와주(關東瓦注)’를 뼈대로 후손들이 모은 몇 편의 시문들을 덧붙였다. 정우상 서울교대 명예교수 등 국문학자와 한문학자 6인이 번역작업에 참여했다. 근재의 문학적 재능은 특히 고려시대 경기체가인 관동별곡과 죽계별곡에 잘 드러나 있다. 근재의 시는 우국애민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 대부분. 일손이 바쁜 농사꾼에게 할당된 삼을 캐오라고 내치는 관리를 개탄한 ‘삼탄(蔘歎, 인삼을 한탄한다)’ 같은 작품에서는 당시 인삼 공물의 폐해를 그대로 엿볼 수 있다. 또 ‘농두엽부(壟頭 婦, 밭머리에 들밥 나르는 여인)’는 들일 하는 사람들에게 점심밥을 가져다 주는 여인의 정성을 한폭의 풍경화처럼 그린 서정적인 시가다. 알기 쉬운 현대말로 전해주는 고전의 향기가 은은하다. 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그 영화 어때?]‘윔블던’-팡팡 튀는 사랑랠리

    [그 영화 어때?]‘윔블던’-팡팡 튀는 사랑랠리

    ‘브리짓 존스의 일기’‘노팅힐’‘러브 액츄얼리’의 제작사인 영국의 워킹타이틀이 이번에도 한 건 올렸다.25일 개봉하는 영화 ‘윔블던(Wimbledon)’은 재밌고 유쾌하면서도 섬세한 감성이 살아있는 전형적인 워킹타이틀표 로맨틱 코미디의 장점에다 스포츠 영화의 짜릿함까지 더했다. ‘사랑의 힘으로 역경을 극복한다.’는 인류 역사상 가장 뻔하디 뻔한 소재를 다뤘지만, 전혀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자기 성찰을 그치지 않는 캐릭터의 생생함 때문이다. 그리고 그 캐릭터를 바탕으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관객 역시 서서히 모든 상황에 빠져들게 만든다. 한때는 세계 랭킹 11위였지만 지금은 한물간 테니스 선수 피터(폴 베타니). 운좋게 번외선수로 윔블던 대회에 출전하게 된 그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결심한다. 서른한 살에 자신감도 잃고 되는 일도 없는 피터의 신세한탄식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브리짓 존스‘의 남성판 버전이라 할 만하다. 우연히 호텔 방 열쇠를 잘못 건네받는 바람에 세계 최고의 테니스 스타 리지(커스틴 던스트)와 데이트 행운을 거머쥔 피터.“시합전의 섹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당돌하게 다가오는 이 아가씨에게 마음을 빼앗긴 피터는, 지던 시합에서도 그녀의 모습에 힘을 얻어 승리하는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사랑의 달콤함과 긴장감을 녹이는 유쾌한 유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의 긴박한 순간에 흘러나오는 피터의 ‘엉뚱한’ 내레이션 등 영화는 능수능란하게 관객의 마음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이들의 사랑과 윔블던의 생생한 현장에 동참하게 한다. 영화적 재미와 함께 사랑의 힘과 가족의 응원으로 잊었던 자신의 참모습을 하나 둘 끄집어내며 경기에 대입시키는 주인공의 모습은, 열정을 잃어버린 세대들에게 가슴 벅찬 환희를 경험하게 할 듯싶다. 조연 캐릭터가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형의 경기에서 꼭 상대편에 돈을 거는 동생, 으르렁대다가 피터의 경기로 화합하게 되는 피터의 부모, 사랑을 갈라놓으려 하지만 피터의 진심을 알고 승낙하는 리지의 아버지 등 풍성한 캐릭터가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영화의 주제를 확고하게 굳힌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헤로인이 리지로 출연했고,‘리차드 3세’로 96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고 TV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연출한 리처드 론크레인 감독이 연출했다.15세 관람가.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한·일, 민족 초월한 ‘역사관’ 가능할까

    한·일, 민족 초월한 ‘역사관’ 가능할까

    “한·일 양국의 공통 역사인식은 가능한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이 확산되면서 이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19일 한국학중앙연구원 2층 대강당에서 열린다. 연구원 한국문화교류센터 주최로 열리는 이번 심포지엄에는 한국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와 일본의 교직원조합 히로시마지부의 중고교 교사들이 참가한다. 두 단체는 지난 2월 150여쪽 분량의 ‘전쟁과 평화’라는 이름의 역사교과서 부교재를 공동작업으로 완성했었다.(서울신문 2월7일자 보도)일단 ‘임진왜란과 조선통신사’에 초점을 맞춘 이 부교재는 어쨌든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평화주의 원칙에 입각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일본은 악, 조선은 선’이라는 기존의 이분법을 넘어 전쟁은 일본·조선 양국 민중 모두에게 고통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이런 작업은 겉보기와 달리 꽤 어렵다. 양국 모두 민족주의적 관점을 고집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것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 다른 쪽에서는 ‘그런 일도 있었나?’라는 반문을 낳기 일쑤다. 역사교과서 문제에 관심있는 학자들로부터 “중도쪽에 있다는 일본인들조차 설득하기 어렵다.”(서울시립대 정재정 교수)거나 “왜곡 이전에 서로를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게 더 문제”(서울대 신주백 연구원)라는 한탄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도 이런 인식의 차이는 눈에 띈다. 스즈키 히데오 교사가 한·일간 화해를 제창한 사례로 여운형과 함께 20세기 초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를 꼽고 있는 게 한 예다. 야나기는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문화를 전수해준 옛 은혜를 일본이 잊었다.’며 일본제국주의를 통렬히 비판했던 인물. 그러나 한국에서 야나기는 한국의 미를 ‘정한(情恨)’으로 규정한 제국주의 학자라는 비판이 거세다. 그러나 이런 간격에도 불구하고 이번 심포지엄은 공동의 역사인식을 찾아가는 의미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히로시마는 태평양전쟁 당시 원폭 피해지역이고, 대구는 ‘TK’라는 영문약자로 상징되는 한국 보수의 중심지임에도 공동작업을 해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내용 외적으로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이들이 한국과 일본 사회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다. 이들은 한·일 양국 교원노조 소속이면서, 동시에 양국의 ‘자칭’ 보수 우익들로부터 ‘자학사관의 진원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한·일 보수우익은 좌파적 사관에 찌든 역사학자들이 ‘자부심 없는’ 교과서를 만들고, 전교조같은 교원단체들이 이를 채택하는 데 앞장 서고 있다는 의혹을 공유하고 있다. 지금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일본 버전이라면, 지난해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이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를 문제삼은 것은 한국 버전이다. 공통의 역사인식을 찾기 위한 출발선이 어디여야 하는지 암시하는 대목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영화 ‘잠복근무’ 김선아

    영화 ‘잠복근무’ 김선아

    날렵한 발차기와 웃기는 표정연기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을 만한 스타급 여배우에 김선아(30)가 아닌 다른 사람을 떠올릴 수 있을까. 영화 ‘잠복근무’(17일 개봉)에서 김선아는 코믹과 액션의 무늬가 어우러진, 자신에게 딱 맞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전작 ‘S다이어리’에 이어 두 번째 ‘원톱’을 꿰찬 그녀는, 이제 한국영화계에서 뚜렷한 색깔을 드러내며 관객을 큰 힘으로 흡입하는 여배우로 자리잡았다. ●힘들지만 ‘액션 연기’ 한 번만 더∼ “‘S다이어리’가 관객 160만을 돌파한 뒤 여성 원톱이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부담감이 안 생길 수가 없죠.‘잠복근무’까지 잘 되면 여배우의 영역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성의 연애감정과 성장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한 ‘S다이어리’이후 “감정적으로 죽을 만큼 힘들었다.”는 그녀. 그래서 좀 더 유쾌한 것을 찾다 보니 ‘잠복근무’로 눈길이 가게 됐단다.“액션이 가미됐기 때문에 코미디 안에서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라는 게 이 영화를 선택한 또다른 이유다. 영화 ‘잠복근무’에서 김선아는 조직폭력배 부두목의 딸을 감시하기 위해 고등학교에 위장잠입한 여형사역을 맡았다.“다른 세대끼리 부딪치는 상황이 빚는 코미디에 액션이 가미됐고, 혼자 돌아다니는 ‘원맨쇼’에 가까운 영화”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코미디연기야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이다 보니, 그녀의 액션연기가 궁금했다.‘예스터데이’에서도 형사로 출연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전면에 나선 액션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어땠냐고 물으니 솔직한 성격답게 바로 불만섞인 반응이 돌아왔다. “두 달간 준비했다고 하라고 했는데 ‘뻥’은 못 치겠어요. 실제로 3주밖에 준비를 못했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한국영화 제작환경에 대한 쓴소리들.“시나리오를 읽다가 ‘이 작품 언제 들어가?’라고 물으면 보통 한 달 뒤에 크랭크인하는 작품들이죠. 준비하려면 3∼6개월은 필요한데도 그럴 시간이 없어요. 한 달 만에 후닥닥 배워서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몸에 밴 연기를 할 수는 없겠죠.” 그래도 ‘예스터데이’때 준비했던 것과 ‘S다이어리’를 찍기 전 절권도를 2개월간 배웠던 게 많은 도움이 됐다.“몸은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그래도 짧은 기간에 액션연기를 소화하려다 보니 “악으로 깡으로 버티다가 오기까지 생기는” 상황에 다다랐고 ‘다시는 액션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까지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한 번은 더 해야겠어요. 근육으로 덮여 있는 몸이 아까워서요.” ●‘느낌’앞에서는 어쩔 수 없어요.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야하는 배우의 운명을 한탄하면서도,‘느낌’이 꽂히는 좋은 작품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너져버리는 그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고 어떻게 해야지라는 느낌이 오고 자신과 궁합이 맞는다고 생각되는 작품이 있으면 “무조건 해야 된다.”는 그녀는 천상 배우다. 다음 작품은 4월초부터 촬영에 들어가는 MBC ‘내 이름은 김삼순’.4년여 만의 안방극장 복귀다.“성격상 준비를 많이하는 영화와 어울리지만요. 드라마는 제 고향과 같은 곳이에요.” 우리시대의 삼순이와 같은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드라마여서, 무리한 스케줄임에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단다.“소수라도 ‘내 얘기 같다.’며 공감하는 작품을 하고 싶거든요.” 물론 ‘또 코미디야?’라며 비슷한 캐릭터에 식상하는 관객이나 시청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잘 흘러왔고, 앞으로도 ‘느낌’에 맞춰 잘 흘러갈 테니까.“다른 사람들의 만족을 위해서 내 자신을 바꾸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은 밝고 경쾌한 작품이 좋고, 하고싶으니까 하는 거예요.” 힘들지만, 좋고 즐거워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배우. 그녀가 바로 김선아였다. ● 선아셀카 짧은 인터뷰 시간 동안 한 인간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인간 김선아는 이랬다. 내숭 떠는 게 싫어서 시원시원하게 할 말 다하고, 꼼꼼하게 이것저것 다 챙기면서, 자기 일은 확실하게 처리하는…. 그녀는 영화를 하는 동안 이와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고 다녀야 직성이 풀린단다.“이 정도 선에서 어떤 기사가 나오고 반응은 어떤지 체크해봐요. 그래야 마케팅 방향도 잡을 수 있고요.” 이렇게 극성맞은 배우는 처음 봤다.“저와 관련된 게 다 마무리될 때까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요. 어쩔 수 없는 성격이죠.” 적극적인 성격 때문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허덕대면서도 악바리처럼 다 해낸다. 그녀는 최근 경희대 연극영화전공에 편입해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미국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다 휴학한 다음부터, 그녀는 내내 공부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모두 제 재산일 걸요. 해보지도 않고 시기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해보자고요.”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황장석 기자의 아시아 창] 필리핀에 때아닌 살생부 파문

    필리핀에 때 아닌 ‘살생부’ 파문이 일고 있다. 살생부를 작성한 단체는 필리핀공산당(CCP)이며 표적이 된 10여명은 CCP의 강경 노선에 반대해온 인사들로 그 가운데 수명은 이미 암살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03년 작성된 이 살생부에 포함된 인물들의 제거 임무는 CCP 산하 무장조직인 신인민군(NPA)이 맡았다. 살생부에는 필리핀대학 사회학과 월든 벨로 교수가 포함돼 있다. 벨로 교수는 2002년 12월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항의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을 만큼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강대국 중심의 세계화에 반대하며 자신을 좌파로 소개하길 주저하지 않았던 그를 CCP가 암살하려는 것은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체제 전복이 아닌 합법 투쟁을 전개하며 시민사회에서 폭넓은 지지를 확보해 가고 있는 눈엣가시 같은 인물을 없애려 했다는 것이다.CCP는 5%의 상류층이 80%의 토지를 소유할 만큼 필리핀의 빈부격차가 고착화된 이유를 자국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부패 정권의 이익을 보장해준 미국과 그에 동조한 정부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정부와의 타협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지난 16일 필리핀 현지 신문에 한탄과 분노가 교차하는 심정을 담은 벨로 교수의 기고문이 실렸다. 그는 기고문에서 “한때 혁신적 변화의 주체였던 그들이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마피아가 됐다는 생각에 서글프다.”면서 “그들은 (누군가를)라이벌로 간주하면 반혁명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암살자를 보내고 처단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정치적 차이는 암살이 아닌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20세기 초 대지주의 토지 독점에 항거한 빈농들을 지지기반으로 삼았고 마르코스 독재에 맞서 투쟁도 했지만, 폭력적 강경 정책으로 기반이 무너져 버린 CCP를 위한 조문(弔文)인 셈이었다. surono@seoul.co.kr
  • [대정부 질문] 野 “국책사업 표류… 혈세 낭비”

    여야는 국회 본회의 경제분야 대정부질문 이틀째인 16일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공사와 호남고속철도 조기 착공 등 주요 국책사업의 표류 문제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 또 ‘한국형 뉴딜 정책’의 재원이 될 연기금 투자 문제와 생계형 신용불량자 대책도 도마 위에 올랐다. ●야,“원칙·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 여야 의원들은 천성산 터널공사와 새만금 간척사업 등 주요 국책사업의 장기 표류에 따른 예산 낭비 문제를 집중 추궁했다.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은 “천성산 터널공사를 비롯해 수많은 국책사업이 표류하면서 천문학적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며 “정부가 천성산 터널공사 문제를 계기로 ‘사전환경성검토제도’를 도입한다고 하지만 제도 시행 전에 원전수거물관리센터나 한탄강댐, 경인운하 등과 같은 주요 국책사업을 진행하면서 환경문제에 발목 잡힐 경우 또다시 공사를 중단할 것이냐.”고 따졌다. 자민련 김낙성 의원도 “국책사업이 표류하는 것은 원칙이나 일관성이 없고 충분한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 때문”이라며 “새만금 간척사업과 천성산 터널공사 등 대형 국책사업 표류에 따른 막대한 세금 낭비에 대해 누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이냐.”고 추궁했다. 열린우리당 주승용 의원은 호남고속철의 조기 착공을 거듭 주문했으나 이해찬 총리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자 “호남고속철 건설은 국가균형 발전과 새로운 성장축 발굴 차원에서 필요하며, 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데 경제성을 이유로 조기 착공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적절치 않다.”고 몰아세웠다. ●연기금 투자·신용불량자 대책 논란 정부가 추진중인 ‘한국형 뉴딜정책’의 재원이 될 연기금 투자 확대와 의결권 허용 문제도 논란이 됐다. 한나라당 서병수·이혜훈 의원 등은 연기금 투자 확대와 관련,“국민의 노후자금을 경기 부양에 동원하는 꼴”이라며 투자의 안전성에 집중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 총리는 “200조원에 육박하는 국민연금을 국채로만 운용했다가는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조차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며 “블루칩(대형 우량주)에 장기 투자하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맞섰다. 의결권 허용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신종 관치(官治) 전주곡”이라고 비판하자 정부측에선 “쓸데없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 총리는 이에 “투자의 전문성과 객관적 판단능력을 갖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야의 민생국회 표방에 따라 이날 대정부 질문에서는 ▲생계형 신용불량자 대책 ▲청년 실업 등 일자리 창출 대책 ▲서민·자영업자 지원 대책 등 민생 문제와 관련한 추궁도 봇물을 이뤘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송두율칼럼] 사회자본의 미래

    [송두율칼럼] 사회자본의 미래

    한국에서 시민사회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표출된 때가 대략 15년 전쯤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의 영향력은 그동안 대단히 커졌다. 급속한 사회변화에 따라 생긴 환경, 양성평등, 평화, 교육, 정보 등과 같은 다양한 문제는 당연히 새로운 문제의식과 이에 근거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운동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일어난 ‘민중’운동의 자리에 시민사회운동이 들어선 배경에는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세계사적 변화도 한몫을 했다. 그러나 최근 국가보안법의 철폐문제를 둘러싸고 표출된 극심한 사회적 갈등은 시민사회운동도 ‘남북갈등’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족쇄로부터 여전히 자유스러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남북갈등’은 빈부, 지역, 세대간의 ‘남남갈등’과도 서로 뒤엉켜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기까지 한다. 유럽과 미국의 사회학계는 시민사회운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90년대에 사회적 갈등을 억제시키고 사회성원간의 연대성을 강화시키는 규범이나 사회적 연결망, 개인과 집단 사이의 상호신뢰성과 같은 무형의 자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자산을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회자본은 계산될 수 있는 경제적 자본과는 달리 깨끗한 공기처럼 좁은 의미의 공공의 자산으로서 사회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로 보았다. 이러한 추세에 발 맞추어 ‘세계은행’도 사회자본의 축적을 후진사회개발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 평가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강한 스웨덴, 프랑스, 독일과 같은 서유럽형 시민사회, 이탈리아나 스페인처럼 시민사회와 가족·교회와 같은 전통적인 사회관계가 공존하고 있는 남유럽형 사회, 교회나 클럽, 자치단체의 공익활동이 활발한 미국의 사회자본 분석과 함께 일본이나 한국과 같이 혈연, 지연, 학연에 기초한 연고집단의 뿌리가 깊은 사회의 사회자본과의 비교연구도 활발해졌다. 연구결과는 대체로 서유럽형이 개인보다 제도에 대한 신뢰가 더 강하며 사회복지정책으로 인해서 사회자본이 감소되었다고 보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하여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결과로 빚어진 빈부격차의 심화로 인해 미국의 사회자본은 그동안 상당히 손실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는 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아직 낮으며 가족과 친지중심의 비공식적인 연결망에 오히려 국가나 정당, 교회도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사회적 유대와 연대가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는 한탄과 자성의 소리가 여러 곳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연대’라는 단어를 조직이름의 앞이 아니면 뒤에 붙인 사회운동단체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시민사회운동이 양질의 사회자본을 확충할 수 있다고 보는 데 대해 물론 비판적 시각도 있다. 이른바 ‘시민 없는 시민운동’에 대한 지적이 바로 그러한 시각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시민사회는 지난 시기의 압축적 성장이 남긴 사회적 문제와 세계화와 정보화의 충격이 끊임없이 몰고 오는 새로운 사회문제가 서로 얽혀 있는 복잡한 구조 속에 갇혀있다. 따라서 과거처럼 혈연, 지연, 학연 등에 의거한 폐쇄적인 연고집단의 ‘신뢰성’이나 노동자나 농민조직의 ‘집단성’에만 기대어 사회자본을 확충하는 것은 힘들게 되었다. 또 뿌리깊은 정치불신과 신앙생활의 굴절된 세속화 때문에 정당이나 종교적 자성(自省)에 의지한 사회적 연대에 거는 기대도 어렵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끼리끼리의 닫힘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림으로 다가서는 건강한 시민사회운동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남남갈등’과 ‘남북갈등’이 뒤섞인 한국적 상황을 타개하는 데 있어서 열려 있으면서도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은 사회자본의 축적에 있어서 앞으로 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 [토요영화]

    [토요영화]

    ●어바웃 슈미트(KBS1 오후 11시) 보험회사 중역이었다가 현역에서 은퇴한 슈미트. 자선단체를 통해 후원을 시작한 한 탄자니아 어린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지만 자신의 한탄 섞인 독백이 대부분이다. 젊은 시절에는 포천지의 500대 기업인 리스트에 오르겠다는 꿈이 있었지만, 이제 그는 눈가에 자글자글 주름이 잡히고, 목살이 처진 추한 모습의 노인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편지에는 삶을 잘 꾸려가고 있다고 쓰지만, 실제로 그의 삶은 얽힌 실타래처럼 엉망이 되어간다.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자신의 친구와 주고 받은 연애편지를 발견하고 상심한 그가 마지막 의지처로 찾은 딸 제니(호프 데이비스)에게서도 퇴물 취급을 당한다. 게다가 딸이 결혼하려는 사위 렌달(더모트 멀로니)이 맘에 들지 않아 속만 태운다. 슈미트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캠핑카를 몰고 자신의 고향 마을과 모교 등을 돌아다니며 옛 추억을 더듬는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고…. 인생의 낙오자라며 절망에 빠진 그에게 어느날 아프리카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지구의 반대편에 살고 있는 한 소년의 그림 편지에 슈미트는 감격해서 울음을 터뜨린다. 심술 가득한 슈미트와 결혼을 앞둔 딸의 팽팽한 신경전 등을 위트 넘치는 유머로 표현하는 동시에, 미국 중산층 가정의 본질을 현실감있게 포착해냈다. 자신의 인생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힘도 있다. 배불뚝이 뚱보에 대머리인 슈미트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잭 니컬슨의 연기가 볼 만하다. 루이스 베글리의 소설을 영화화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2002년 작품. 골든글러브 남우 주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125분 ●오! 브라더스(MBC 오후 11시40분) 불륜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근근이 살아가는 상우(이정재)에게 어느날 예기치 못한 비보가 전해진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과 함께 그의 빚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상속됐다는 것. 상우는 빚을 떠넘기기 위해 또 다른 상속인인 이복 동생 봉구(이범수)와 그의 어머니를 찾아 나선다. 수소문 끝에 봉구를 찾아내지만, 상우를 반기는 건 12살 어린 동생이 아닌 30대 중반의 아저씨. 알고 보니 봉구는 빨리 늙는 조로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있었다. 상우는 어쩔 수 없이 봉구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는데…. 가족애에 기반한 휴머니즘과 코미디를 적절히 버무려 흥행에 성공했다. 김용화 감독의 20003년 추석 개봉작.110분.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儒林(279)-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79)-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나는 알고 있었다. 조남두란 원로시인은 원래 이곳 단양 출신이었다. 단양 출신이었으므로 누구보다 이곳의 단양팔경과 그 팔경에 얽힌 유래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 도입구에 나오는 ‘퇴계선생 기침소리’와 시 종장에 나오는 ‘미기 두향 옥가락아’는 서로 깊은 연관이 있음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팔짱을 낀 채 자연석에 새겨진 시를 다시 한 번 읽어 보면서 생각하였다. 이퇴계가 노래하였던 ‘푸른 물과 붉은 산’의 단양에서 맺었던 ‘진실된 인연’이란 퇴계와 미기 두향과의 인연을 말함이 아닐 것인가. 그러므로 단양의 군수로 있을 무렵 이퇴계가 ‘꽃과 달이 어울려 시름은 한이 없다.’라고 노래하였던 것은 함께 술을 마시며 꽃과 달을 보던 두향과의 애틋한 추억 때문이 아닐 것인가. 순간 내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항간에 떠도는 이퇴계에 대한 소문 때문에. 율곡(栗谷)은 여색에 매우 근엄하였지만 퇴계는 여색에 매우 호탕하여 ‘낮 퇴계와 밤 퇴계는 다르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퇴계는 이율곡과는 달리 남녀의 섹스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 율곡은 아내와 합방할 때도 의관을 정제하고 들어가 지극히 근엄하게 접했다고 했는데, 이 말을 전해들은 퇴계는 ‘만물이 제대로 생성(生成)하려면 비도 오고 바람도 불어야 하는 법인데, 율곡이 범방(犯房)시에 그렇게 준엄하다면 어찌 자식이 있겠느냐.’하고 한탄하였다고 ‘퇴계언행록’은 기록하고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퇴계는 남녀간의 교접이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인간본연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며, 만물이 생성되는 음양의 조화임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퇴계는 이율곡과는 달리 비록 근엄한 스승이며 학자이긴 하였지만 남녀간의 상애(相愛)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록 때문에 이퇴계가 비교적 여색에 대해 호방하였다는 과장된 소문이 나돌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퇴계는 평생 동안 병약하였다. 단양군수를 거쳐 풍기군수에 재임하였다가 마침내 감사의 허락 없이 임지를 떠나면서 제3기인 말년기를 열었던 이퇴계는 이때 감사에게 올린 글에서 자신의 병환을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는 몸이 허약하고 파리한 데다가 심기의 병까지 겹쳐 기침이 몹시 나고, 가래가 끓으며, 허리와 갈비뼈가 당기고 아픈가 하면 트림이 나고, 신물이 오르며, 등에는 한기가 가슴에는 열기가 번갈아 발작하며, 때로는 눈이 아찔아찔하고 머리가 어지러워 넘어질 것만 같았으며 숱한 일을 그르치고, 또 어제 일을 오늘 잊고, 아침의 일을 저녁에 잊으며, 밤으로 걸핏하면 악몽에 시달리며, 기혈이 마르고, 정신이 흐리며, 헛땀이 줄줄이 흐르고, 눕기를 좋아하며, 곯아떨어지곤 하였습니다.” ‘풍기군수가 감사에게 올리는 벼슬을 사양하는 상소문’이라는 글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퇴계의 그 무렵의 건강상태는 심각하였던 것처럼 보이는데, 물론 그의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고향에 머물 때는 이렇게 심한 병증을 호소하지 않은 데 비하여 벼슬에 나오면 이렇게 상세하게 증상을 호소하는 것은 어쩌면 벼슬에서 물러나려는 칭병(稱病)의 측면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여성포털사이트 명절증후군 호소 급증

    여성포털사이트 명절증후군 호소 급증

    “여성들의 골칫거리 설날이 돌아오네요. 조상님께 죄송하지만 올해 차례는 ‘휴무’하면 안될까요?” 설이 다가오면서 인터넷 여성 포털사이트에는 ‘명절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글이 흘러넘치고 있다. 시댁에 대한 불만을 무작정 털어놓는 한탄조에서부터, 선물에 대한 고민까지 인터넷 게시판도 설 대목을 맞았다. ●부모님 용돈 상담 줄이어 여성 포털사이트 마이클럽의 김문희씨는 “불황탓인지 유난히 시부모에게 드릴 용돈과 선물에 관한 상담이 보름 전부터 게시판에 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사이트 게시판에는 구체적인 액수까지 거명하며 조언을 청하는 글이 빼곡했다. 아이디 ‘tns’는 “지난해 설엔 시부모님께 용돈으로 20만원을 드렸는데 올해는 형편이 어려워 10만원을 드리기에도 벅차다.”고 글을 남겼다. 그러자 곧바로 “저도 어려워서 올해는 10만원밖에 못드리는데….10만원 드리고 과일이라도 한 박스 사시면 어떨까요.”“아무리 힘들어도 액수가 줄면 섭섭하기보다 자식 걱정을 더 하실테니 무리해서라도 20만원을 채우는게 낫지 않을까요?” 등 다양한 충고를 담은 답글이 줄줄이 달렸다. 직장에 따라서는 최대 9일 동안 이어지는 긴 연휴도 여성에게는 큰 스트레스다.“어머니가 올해는 전전날 시댁에 오래요.”라고 울상짓는 며느리의 호소에는 30개가 넘는 답글이 달렸다.‘8년차 며느리’는 “시댁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제는 집에서 전과 식혜 등을 만들어 시댁에 간다.”면서 “명절에 일을 안할 수는 없으니 요령껏 하는 방안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대안없는 명절 증후군 설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나름대로 명절 증후군 해소법을 터득한 고참 주부들은 여유를 보였다. 지난 30일 설 준비를 위해 서울 구로동의 대형할인점을 찾은 최모(42)씨는 “직장에 다니는 맏며느리로 명절마다 전업주부인 동갑내기 동서와 갈등이 깊었다.”면서 “지난해부터 나물과 과일은 내가 준비하고 전과 산적은 동서가 만들게 한 다음 나중에 재료비를 동서에게 전해준다.”고 털어놨다.TV를 보고 이런 방법을 생각했다는 최씨는 “이렇게 하니 지난해 설에는 경기도 일산에 있는 시댁에 가서도 가족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많아졌다.”면서 “올해는 차례 음식 뿐 아니라 동서가 좋아하는 갈치조림도 미리 만들어 고마운 동서를 감동시킬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최상진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는 결혼을 하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가족을 전체 세계로 보는 경향이 있어 명절 일을 노동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면서 “어른과 젊은이들이 서로를 이해하면서 문제를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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