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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무용가 安信姬(이세기의 인물탐구:166)

    ◎섬광 폭죽인듯 폭발하는 춤사위/대한민국무용제서 대상·개인연기상 등 휩쓸어/‘지열’로 일 국제페스티벌 딛고 아시아 스타 浮上 스포트라이트속에 정지된 安信姬의 포즈는 ‘그 자체가 춤의 시(詩)’라고 할 수 있다.신체의 사선(斜線)을 축(軸)으로 삼아 아이키도 돌기며 바운징으로 그가 돌아가야할 ‘길’에서 배회하고 ‘섬과 섬사이’를 떠돌면서 고뇌하는 현대인의 이미지를 불꽃같은 감성으로 춤추어 낸다.‘춤은 춤으로 보여주고 들려준다’는 그는 공연때마다 ‘무진장의 에너지를 폭죽처럼 터뜨리고’‘내쏘듯 날카로운 섬광’을 무대중앙에 흩뿌리기도 한다.안신희란 존재는 이미 ‘춤과 사색,행위의 철학’을 빼고는 말할 수 없는 무용가이다.어느때는 ‘조롱에 갇힌 새’,어느때는 ‘이 세상의 모든 자유를 지닌 해방감’에서 단순한 극과 극이 아닌,중용의 조화를 얻기 위한 내심의 춤을 구축하기 때문이다.‘춤’은 그의 ‘숙명’이자 잠시도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천부의 인연으로 그는 언제부턴가 ‘춤의 심연’에 깊이 빠져버렸다. ○“춤은춤으로 보여준다” 그가 만든 춤중에서 특히 관객의 시선을 끈 것은 지난 83년 일본 현대무용협회와 코파나스회가 공동주최한 제1회 국제 현대무용페스티벌에서 춤춘 ‘지열(地熱)’을 들 수 있다.‘지열’은 서구적인 차별성과 한국적인 특성을강조한 작품으로 춤추고 났을 때의 무용수는 한바탕 굿판을 끝낸 신들린 무녀(巫女) 모습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긴 박수소리와 함께 그가 도취에서 깨어나자 일본 매스컴들은 그를 일약 ‘아시아의 신데렐라’로 부상시켰고 아사히신문과 주간‘아사히 저널’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신비로운 무대’제하로 ‘이번 축제에서 오늘의 춤을 보여준 것은 객석에 시종 싸늘한 긴장을던진 안신희의 지열이 단연 압권’이라는 평을 보냈다. ‘지열’을 전환점으로 그는 다시 대한민국 무용제에 ‘섬’으로 도전했고 시인 정현종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구절과 ‘그 섬에 가고 싶다’는 테마로써 ‘섬은 다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다’는 섬의 이상향을 역동적으로 풀어나갔다.그리고 그는 더이상 여러그룹속의 안신희가 아닌 대한민국 무용가로 떠올랐다.무용인 최대의 영예인 대상·개인연기상·미술상을 한꺼번에 수상하는 과정에서 평론가 박용구 조동화 김영태씨는 ‘뛰어난 리듬감각과 문학적 작품성은 올해 무용계가 얻은 최대의 수확’임을 전제,‘스타성이 있는 현대무용가’로서 ‘박력과 자기춤에 몰입하는집중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며 ‘자기 욕심을 포기할줄 모르는 안무가’로평했다. ○활화산­불생의 무용 안신희는 전남 구례에서 양조장과 정미소,과수원을 경영하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어릴때는 부친 安基浩씨를 따라 풍광이 수려한 지리산에 오르거나 섬진강 지류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춤의 흐름을 몸속에 싹 틔울수 있었다.초등학교 5학년때 집안이 서울로 이사,그때까지는 ‘장래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가 없었으나 배화여중때부터 춤추기 시작하여 ‘악바리’‘연습벌레’라는 별명을 들을만큼 춤에 대한 강한 집념을 불태웠다.그때도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포즈에 한치의 흔들림을 용납하지 않아 이완과 수축,스피드와지속이라는 범위속에서 반드시 명확성과 평정성 민감성을 끌어냈고 ‘완벽’이라는 해답을 얻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첫무대는 74년 스승인 육완순교수가 안무한 ‘슈퍼스타’다.‘늘씬한 키에 쭉뻗은 몸매,아름다운 외모가 풍기는 이지적인 분위기’로 그는 다음해엔 1개월간 미국공연,83년까지 유럽순회공연에 합류했다.그는 크거나 작은 어떤무대도 겁내지 않는 무대체질이 천성이기도 하다.한때는 알렉산더 고두노프의 예술성과 테크닉,극적인 춤의 특성에 매료되었고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적 카리스마,마곳 폰테인의 지고지순한 삶을 선망하면서 직관적인 선택과 엄격한 훈련으로 불균형과 비대칭,현대생활에서의 불확실성과 다양성을 은유적으로 부합시키는 무용구조를 성립해 나갔다. 그의 무용의 길은 한동안 탄탄대로 였으나 대학 3학년때 부친의 사업실패로 대학원진학을 앞두고 고향인 구례에 칩거한 적이 있다.그러나 ‘무용의 길은 너무 멀다’는 것과 ‘예술가는 어려움을 이길줄 알아야만 거듭난다’는뼈아픈 경험끝에 무용없이는 ‘공기없이 사는 것처럼’ 무의미하다는 결론아래 한때는 밤낮없이 기도에 매달려야 했다.끝내 ‘하나님이 대로(大路)를 열어주실 것같은 강한 암시’를 받았고 그 시절에는 적선동에 방한칸을 얻어 신촌까지 걸어다니면서도 다시 ‘춤출수 있다’는 기쁨과 샘솟는 창작의지로 창작무용들을 얼마든지 만들어냈다.‘교감’‘13월의 여행’‘청동무늬’‘전설’등은 그때의 산물이다. ○미­유럽순회 공연도 원로 평론가 박용구씨는 ‘안신희는 마치 불을 보면 뛰어드는 나비처럼 그의 춤은 자신의 몸을 사르는 활화산의 무용이자 불새의 무용이며 그의 춤에접하면 고압선에 감전된듯 강한 전율을 느낀다’고 평한다.최근의 그의 춤은 무르익은 성숙을 보이면서 아무런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지상 최대의 자유를 춤으로 구조화하는 시기다.객석의 애증의 그림자마저 읽게된 그는 자연과 문화와의 경계선을 추구하면서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처럼 더높이 더멀리 날기 위한 모든 과정을 뛰어넘고 있다.실제로 그의 무용언어는 연극적 대사가 느껴지는 절규와 경악과 유기적인 삶의 풍경을 흐르는 강물처럼 표현해 낸다.가족은 그의 무용적 삶을 이해하는 부군 韓基天씨와 아들 누리(12살)가 있다.오늘의 한국무용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별들 중에서 안신희가 이룬 성좌는 누구보다 밝고 극명하다.한때는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슬픈’ 희비애락에 침몰되기도 했으나 이제는 몸속으로부터 솟구치는 득의의 춤을 추게 되었고 쏘는듯 날카로운 춤의 빛줄기는 관객의 가슴에 언제라도 진한 감동을 던져준다.그는 자기 세대에서 만인의 시선을 받는 춤꾼으로서 지금부터가 ‘안신희 무용’을 위한 비상(飛翔)직전의 출발선상에서 고고하게 서있다. ◇연보 ▲1957년 전남 구례출생 ▲1974년 육완순무용단 ‘슈퍼스타’출연 및 미국지역순회 공연 ▲1983년 안신희 무용발표회,육완순무용단 ‘슈퍼스타’유럽순회 공연 ▲1984년 이대 교육대학원졸업,프랑스 소르본대학 무용과수업 ▲1992년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과 레닌그라드국립발레단 합동공연 ‘만가’출연(소련 모스크바·레닌그라드) ▲1993년 대전 EXPO개막축제안무 ▲1996년 서머아트페스티벌 및 빛고을창작무용제 ‘꾼들’안무·출연 ▲1998년 5월 국제현대무용페스티벌 ‘존재’’고향에 대한 보고서’ 안무·출연 한국현대무용협회 및 한국현대무용진흥회이사,21C선교무용위원 현대무용분과위원장,한국예술종합학교강사 대한민국무용제 신인상(81년) 대한민국무용제·대상 및 개인연기상(83년) 코파나스상(84년) ‘2천년대를 달리는 한국의 예술가’(92년)선정,‘부상하는 한국의 아티스트’ 선정
  • “한미 안보체제 계속 유지”/김 대통령 육사졸업식 연설

    김대중 대통령은 16일 “한반도와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한반도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과 평화유지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철저한 안보태세를 위해서는 자주국방의 자세를 굳건히 견지하면서 한미안보체제를 계속 유지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 육군사관학교 제 54기 졸업 및 임관식에 참석,치사를 통해 “이것은 마치 유럽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유럽 전체의 평화와 안정에 불가결의 요소가 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비교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현실적인 입장에서 한미안보체제를 더욱 확고하게 유지하면서,주변 강대국들과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협력을 적극 도모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동북아 안보체제 구축은 주한·주일미군의 주둔을 통한 세력균형이 필수적이라는 천명으로 동북아 지역의 집단안보체제에 대한 김대통령의 향후 구상의 일단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어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국민의 인권을 송두리째 박탈하는 공산주의의 지배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용납될 수 없으며,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한치의 허점도 없는 강력한 안보태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전제,국민과 국군이 하나가 되는 ‘민군일체의 협력체제’ 구축을 역설했다.
  • 세계화의 두 얼굴/송일 외국어대 교수·경영학(시론)

    ○리스트의 ‘세계주의 경고’ 대공황의 전주가 시작된 1929년 10월24일 금요일은 뉴욕 월가에서 ‘암흑의 금요일’로 기억되고 있다.주가가 수직적으로 폭락하면서 미국 경제는 하루 아침에 다운된 컴퓨터처럼 주저앉고 말았다.실업률이 25%를넘어 1천3백만명이 실직했으며 공황의 파고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을 강타했다.시장경제와 세계주의가 조종을 울렸다. 지난 연말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체제로 접어든 한국은 지금 전대미문의 경제 변란을 경험하고 있다.국내외의 전문가들은 IMF 위기의 본질을 국제수준의 규범과 세계화시대에 적합한 경쟁질서를 따라가지 못한 폐쇄된 구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곧바로 보호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요란한 경적처럼 금융,주식,M&A 시장에 남아있던 외국인 투자장벽이 남김없이 무너져 내렸다.세계주의로 회귀를 선언한 미국의 역습이다.E.H 카의 말대로 역사는 반복하며 현재와 과거의 부단한 대화임을 실감한다. 역사학파의 선구자인 리스트의 사상체계는 최근 한치 앞을 예단하기 어려운 불확실성 시대에 한번쯤 반추해 볼 가치가 있다.리스트는 19세기 말 독일 정부의 자유무역정책에 저항하며 고전학파가 복음처럼 신봉하는 시장원리의 초역사성과 세계주의를 비판했다.공업생산력과 무역이 타국을 압도하는 영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세계주의 원리가 국익에 부합되지만 독일과 같은 후진국에서는 자유무역정책이 민족적 실천과제를 해결해 줄 수 없으며,후진국은 선진국의 가치와 공유할 수 없는 고유의 목적과 역사적 개성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논리이다. 90년초 ‘정부’와 ‘시장’의 갈등적 관계가 첨예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가운데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을 서두를 즈음 엘리스 아담스의 ‘아시아의 다음 거인­한국과 후기산업화’가 국제경제학계에 뜨거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그는 이 책에서 산업혁명이나 기술혁신을 주도한 서구의 ‘전기산업화’와 구별하여 ‘후기산업화’란 ‘학습’을 통해 의도적으로 경제발전을 추구한 사업구조로 정의하면서 그 성공적 전형으로 한국을 지목했다.그리고 ‘후기산업화’가 ‘전기산업화’를 추격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이고 인위적인 선택이 필수적이라고 해석했다. ○다국적 기업의 생존방식 그동안 눈부신 고도성장과 함께 세계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역동성을 발휘하던 아시아 각국이 왜 줄줄이 IMF 구제금융의 수혈을 받는 신세로 추락하고 말았는가.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생산성이나 기술향상과는 무관한 것으로 성장결과는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 증가에 단순 반응한 것이라는 폴 크루그만의 주장도 음미할 필요는 있다.한편 한국의 고비용­저효율 시스템에 이르면 더욱 더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준비되지 않은 개방화와 강요된 세계화가 아시아 경제에 고도의 취약성을 제공하고 있다.아시아인에게 세계화란 희망과 재난을 동시에 안겨주는 패러독스일 뿐 결코 유토피아는 아니다.세계화는 열강의 논리이며 경쟁력을 확보한 초일류 다국적 기업의 생존방식이다.이들은 국가의 강약빈부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인 보호주의의 타파가 세계 경제의 후생을 극대화시킨다는 자유경쟁원리의 이론적 옹호를 받으며 지구촌 전역을 공략한다.특히 ‘적자생존’ ‘정글의 법칙’ 등 세계화를 통념화하는 무차별 경쟁윤리 속에는 다윈의 ‘진화론’과 맬더스의 ‘인구론’에서 도출된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적 계율을 정당화시키는 독소가 있음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하버드대 로렌스 교수는 오늘날 국제환경은 열강의 각축전이 극에 달했던 1차 세계대전의 전야를 연상케 한다고 필자에게 말한 적이 있다.세계주의(WTO)와 지역이기주의(EU,NAFTA)의 첨예한 갈등에 미국의 쌍무주의(슈퍼 301조)가 이중,삼중으로 난마처럼 얽혀 열강의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음을볼 때 그의 주장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실감한다. ○실사구시의 노선 세우자 세계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대명제임에 더 이상의 이론이 없다.그러나 국제경제질서를 움직이는 힘의 실체와 방향은 분명히 간파해야 한다.이제 한국시장의 문은 무방비 상태로 열려 있다.개방화에 따른 ‘지킬’적 영향과 ‘하이드’적 영향을 분리해 실사구시의 세계화 노선을 자주적으로 확립할 수 있는 변별력과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한국의 자본주의는 아직 완료형이 아니며 미래형이기 때문이다.
  • 2시간 머리 맞대 가까스로 조율/총무회담 현안 타결 이모저모

    ◎경제 살리기 차원 정쟁 중단 무리없이 합의/총리 인준·헌재 제소 철회 여부 등 난제 남겨 13일 여야 총무회담은 2시간20여분을 넘기는 산고를 겪었다.하오 2시40분쯤 국회의장실에서 시작된 총무회담에서 여야는 밀고 당기는 신경전 끝에 하오 5시 합의문안을 내놨다.국민회의 한화갑 총무는 “국가적 차원에서 경제살리기에 적극 참여한 한나라당 이상득 총무에게 고맙게 생각한다”며 이총무와 극적인 포옹을 나누었다. 그러나 정국의 최대 쟁점인 ‘김종필 총리서리 임명동의안’ 처리 문제는 한나라당과 자민련 사이에 한치의 양보도 없어 결국 유보됐다.이와관련,자민련 구천서 총무는 ▲4월 국회에서의 재투표 실시 ▲헌법재판소 제소 철회 ▲16일 임시국회 개회식때 김총리서리의 본회의 인사 등을 끈질기게 요구했다.그러나 이총무는 “미안하지만 인사도 못받겠다”며 거부했다는 후문이다.또 한나라당에서는 현 각료에 대한 인사청문회 실시를 강력 요구했으나 여당쪽이 일축했다고 한다. 특히 회담도중인 하오 3시55분쯤 의장실에서 나온 이총무가 의장비서실장실에 들어가 이한동 대표 서청원 사무총장 등과 30여분동안 전화통화를 나누면서 회담장 주변의 긴박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혹시 야당이 여권의 재투표 요구를 수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돌았다.회담장 주변을 서성이던 여야 부총무단들도 이총무의 전화통화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그러나 이총무가 전화통화를 끝내고 회담장에 들어가면서 재투표 요구 수용 의향을 묻는 기자들에게 “재투표는 백번 말해도 안된다”고 잘라 말해 기존의 마지노선을 재확인했다.이총무는 지도부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감사원장 서리의 인준동의안 처리 문제 등 여당의 요구사항에 대해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회담 직전 자민련 구총무는 “(지도부에서) 당론은 하나도 변화가 없으니 가서 잘 협의하라고 했다”며 재투표 당론 관철 의지를 드러냈다.그러자 국민회의 한총무는 “나도 1주에 1시간 정도 골프연습을 해야겠다.(총무간 골프회동시) 제가 공 줏어오는 일을 하겠다”라며 조크를 던져 긴장감을 풀었다.
  • 총리서리 헌소·북풍조작 의혹/야­전방위 총공세/여­민생해결 우선

    ◎한나라당 공격/공청회·국회 정보위 소집 방침/“밀리면 당 와해” 일전불사 각오 여권을 향한 한나라당의 전방위 공세가 강도를 더하고 있다.지난 9일 국회에 북풍 관련 국정조사요구서를 소속의원 전원의 이름으로 제출한데 이어 10일에는 김종필 총리 서리체제와 관련,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청구와 총리서리 효력정지 및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때맞춰 당지도부는 헌재가 빠른시일안에 처리해줄 것을 촉구했다.발빠른 행보로 느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총리서리체제의 위헌성을 적극 홍보하기 위해 헌법학자와 시민단체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청회를 개최했다.중앙 일간지에도 ‘초보여당의 난폭운전’이란 제목의 광고를 내 총리서리 및 북풍파문과 관련된 당의 입장을 널리 알렸다.나아가 북풍수사의 진척상황과 진상규명을 위해 빠른 시일내에 국회 정보위도 소집할 방침이다.새 정부 일부장관들의 투기의혹을 추궁하기 위해 관련상임위를 개최하는 문제도 검토중이다. 이처럼 한나라당은 여권을 옥죄기 위해가능한 모든 방안을 동원하고 있는 것 같다.무엇보다 대치정국에 임하는 당지도부와 의원들의 심경에 비장함이 서려 있다.이 시점에서 물러나면 당의 와해는 불보듯 뻔하다는 생각들이다.대여 강공드라이브를 기치로 똘똘 뭉쳐야만 된다는 ‘당위성’을 여기서 찾고 있다.바로 이 점은 한나라당의 전술적 이익과도 연결된다.다시말해 한나라당이 불퇴전의 각오로 밀어붙임으로써 여권도 적지 않은 패착을 두고 있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여권을 더 강하게 밀어부쳐야만 한나라당의 운신의 폭이 넓어지리란 계산을 하고 있는 듯 하다.때문에 아직은 ‘벼랑끝 정국’이 아니란 생각이 강하다.협상전략 측면에서도 벼랑끝 직전에 더 많은 ‘전리품’을 얻을수 있어서다.당지도부는 또 기존 보수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은 한나라당뿐이란 이미지를 다시한번 구축하고 이들 계층을 당의 확실한 지지기반으로 묶어두는 효과도 염두에 둔 것 같다.북풍파문도 결국은 향후 남북관계 등에서 보수층의 목소리를 약화시키기 위한 신여권의 원려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은 그런 맥락이다.이래저래 한나라당의 강공은 당분간 비등점을 향해 치달을 것 같다. ◎국민회의 대응/추예안처리 등 대화정치 모색/북풍의혹 국회차원 정면대응 한나라당이 북풍국정조사권 발동 요구서 제출에 이어 10일 김종필 총리서리 권한쟁의심판청구 등을 통해 대여 총공세에 나서자 여당인 국민회의도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이날 상오 간부간담회를 통해 한나라당의 공세에 일단 ‘정쟁과 민생의 분리’라는 전략으로 대응하기로 가닥을 잡았다.총리인준이나 ‘북풍사건’에 대한 국정조 사등 정치적 쟁점과 추경예산안 처리,경제청문회 개최 등 민생현안들을 분리해 다뤄 나간다는 구상이다.국민회의는 이같은 정경분리 전략이 한나라당에 대한 여론압박용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날 상오 간부간담회에서 국민회의는 김총리 서리에 대한 위헌시비는 사법부의 몫으로 넘기고,북풍사건에 대한 정치보복 시비는 국정조사를 수용함으로써 국회차원에서 가린다는 당론을 재확인했다.추경예산안 처리 등 시급한 민생현안은 이들정치쟁점과 별개로 조속히 국회에서 처리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국민회의는 이날 여야간 쟁점을 일괄타결하기 위한 중진회담을 한나라당측에 거듭 제의했다.정동영 대변인은 “한나라당내에도 경제위기를 걱정하는 양식있는 의원들이 있고,민생현안을 정치권이 외면하는 것을 국민여론이 용납하지 않을 것인 만큼 야당의 긍정적 자세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민회의는 이같은 정경분리원칙을 대야 전략의 기본축으로 삼아 야권과의 대화를 시도하되 정략적인 정치공세에는 정면 대응한다는 방안도 마련했다.특히 북풍사건 국정조사에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한 관계자는 “북풍사건 국정조사는 구정권 정보기관의 용공조작 실체를 파헤치는 작업이 돼야 한다”며 “국정조사를 통해 북풍사건을 정치보복으로 몰아 가려는 한나라당의 의도에는 정면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민회의는 국정조사특위구성과 증인채택,조사계획서 작성 등의 과정에서 철저히 ‘과거사 규명’의 조사원칙을 관철시킨다는 방침이다.다만민생현안 처리에 앞서 이를 둘러싸고 한나라당과의 대립이 격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2∼3일간 냉각기를 통해 한나라당과의 대화를 시도한다는 구상이다.
  • 장관들의 고향/황병선 논설위원(외언내언)

    서울 주재 미국대사관의 한 고위 외교관은 한국말을 거침없이 잘 한다.핑계없는 무덤 없다느니,동상이몽같은 속담이나 고사성어까지 한국사람처럼 적절하게 구사해 ‘징그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그는 ‘전라도 사람’이다.그는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부인이 호남출신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다.50대 초반인 그는 젊은시절 영어를 가르치며 2년여 목포에서 살았는데 이국생활의 불편함 속에서도 그곳 사람들의 훈훈한 인심과 해변의 풍광에 반해 그 지방과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고향(호남)사람’을 만나면 더 정겹게 느껴지고 개인적으로 ‘호남 대통령’ 당선이 기뻤다고 했다. 이 외교관의 조상은 200년전 미국으로 건너간 덴마크인이다.그들은 모국과 기후나 지형이 닮은 미국 중북부 미시간호반 밀워키에 정착했다고 한다.그래서 덴마크계가 많이 살고 맥주가 유명한 밀워키가 이 외교관의 또 다른 고향이다.하지만 그가 국무부 관리로 외교활동을 할때 그 기준은 엄격하다.덴마크,밀워키,목포가 있는 한국이 관계된다 해도 미합중국 국익이란 원칙에서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출신 주에서 수십,많게는 수백명의 심복을 거느리고 수도 워싱턴에 진주한다.카터의 조지아 마피아,레이건의 캘리포니아 사단,클린턴의 아칸소 사단처럼 이들이 백악관을 비롯,정부 요직에 실세로 포진한다.이런 사실은 언론에 보도되고 온 국민이 다 안다.그래도 불평이 터지거나 이를 문제삼는 일은 거의 없다. 한국에서 선거를 치를 때나 조각 또는 개각을 할때면 항상 후보의출신지역,각료의 지역별 안배가 온 국민의 첫 손가락 꼽히는 관심사가 된다.전문성이나 능력보다 지역 안배에 밀려 장관자리를 놓치는 일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자기 고장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또 고장사람을 미더워하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같다.그러나 반드시 할만한 사람들이 요직을 맡기에,업무나 인사에 공사구분이 철저히 지켜져 국민 이해에 문제가 없기에 미국에서는 출신지가 문제되지 않는다.공직을 50여개 주별로 안배하라고 한다면 우스꽝스런 소리가 되고 말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공직사회에서 지연학연에 따른 정실인사를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이번 조각에서도 예의 지역안배가 주요 인선기준이 되었다.이것은 지역주의가 엄존한다는 현실적 증거다.오랫동안 홀대받았던 지역 인사들을 다수 기용한다면 과거와 균형을 맞추는 일이 될까,아니면 또다른 지역 차별이 될까.한국의 출신지문제는 참으로 껄끄럽다.
  • 국태공의 보은(비록 남가몽:2)

    ◎대원군,정권잡사 신세진 쌀장수에 관직/이조판서 홍종응 집서 무참하게 냉대받고/서 강사는 쌀장수 이천일 찾아가 사정하니/쌀 20섬·돈 1천냥 꾸러미·정육 100근 선뜻/아들 보위 오를던날 궁중잔칫상 차려 대접 고종이 즉위하자 아버지 흥선군은 대원군이 되고 세상사람들은 그를 국태공이라 불렀다.운현궁도 초가 삼간에서 대궐같은 기와집으로 탈바꿈했다.당시의 돈으로 1만7천830냥이나 들여 신축하였으니 만일 그 때가 IMF시절이었다면 즉각 공사중지 명령이 내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만에,실로 오랜만에 권좌에 오른 대원군이었던 만큼 그까짓 1만이나 2만냥 같은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겼고 무엇보다 먼저 해야할 일이 나라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그동안 자기를 도와준 사람에게 보답하고 자기를 능멸했던 사람에 대해서는 응분의 불이익을 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먼저 대원군이 손을 보려 했던 사람은 이조판서 홍종응이었다.이사람은 당대 유수의 대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보는데 안목이 없었고 세상일에 너무 각박했다.○하인폭거로 왼손에 유혈 1863년 임술민란(일명 진주민란) 직후의 경제는 특히 어려웠다.요즘과 같은 경제난국이 닥쳐 모든 사람들이 하루 끼니를 잇기가 어려웠는데,흥선군도 예외가 아니었다.그래서 하루는 흥선군이 홍판서 댁을 찾아가 구걸하게 되었는데,홍판서는 문전박대를 했다.문전박대 뿐만 아니라 그 댁 하인이 대원군에게 폭행까지 하여 손가락에 유혈이 낭자하였다. “국태공이 흥선군 시절에 너무 가난하여 늘 꾸워 먹고 살았다.임술민란이후에 인심이 점점 각박하여 먹고 살 길이 막막하였다.이조판서 홍종응의 집에 가서 입을 열고 싶었으나 여러 번 은혜를 입은 처지라서 쉽게 말하기도 어려웠다.그러나 염치를 불고하고 부득이 찾아가니 하인들이 나와서 말하기를 ‘우리 대감께서는 근래에 건강이 좋지 못하여 잠시 산정의 사랑에 쉬러 갔습니다. 소인들에게 분부하시기를 아무라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으니 다른 날 다시 오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고 했다.그러나 세모에 날씨가 너무 추운데다 배도 고프고 목마름이 심하여 일이 성사되건 안되건간에 한번 만나 얘기나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흥선군이 애걸하니 하인들이 차마 거절하지 못하여 협문을 열어 들어오게 하였다. 그러나 홍종응이 답하기를 ‘이왕에 몇번 청구하신 것은 즉시 봉행해 드렸습니다만 지금은 세모를 당하여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구걸하니 이들을 다 구제해주기 어렵습니다.얼마 안되는 이조판서의 봉급으로는 그 사람들을 다 기쁘게 해주기 어려우니 대감께서 금번에 청하시는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차차 형편을 보아 후일에 도와드리겠습니다’ 하고 흥선군의 청을 거절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흥선군이 그 집 문밖을 나설 때에 불상사가 생겼다.뒤를 따라 나온 홍종응의 하인이 발길로 협문의 판자를 찼다.그 조각이 흥선군의 손을 내리치니 다섯 손가락에 유혈이 낭자하였다.” 그러나 서강에 사는 쌀장수 이천일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홍종응의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흥선군은 손에 붕대를 감은 채 그 길로 이천일의 집을 찾아갔는데 맞이하는 태도부터가 홍종응과는 크게 달랐다. ○“집권자 되면 은혜 갚겠다” “부득이 서강에 사는 쌀가게 주인 이천일을 찾아갔다.흥선군을 맞은 천일은 크게 놀랐다.문안을 드린 후에 보니 흥선군의 왼손 다섯 손거락에 피가 엉기어 얼었고 상처의 흔적이 매우 심하였다.천일이 ‘어찌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하고 물으니 대원군은 ‘나귀를 모는 아이가 실수하여 빙판에 떨어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다.천일이 약수로 피를 씻어낸 후에 손을 헝겊으로 싸니 조금 통증이 가셨고 정신이 들었다. 그런 뒤 천일이 ‘대감은 어찌해서 누한 곳(누지)에 행차를 하셨습니까.’고 물으니 대원군은 ‘다른 이유가 없고 몇년 전부터 내가 그대의 은혜를 입어 왔으나 지금 세모를 당하니 추운 절기에 살아갈 길이 막연하여 염치불고하고 찾아왔네’ 하고 답했다.이에 천일이 아뢰기를 ‘형편이 그러시다면 물건 보내라는 패지(메모지) 한 장이면 족하실텐데 대감께서 예까지 친림하셨습니까.송구할 따름입니다.염려하지 마시고 돌아가십시요.내일 아침일찍 조처하여 보내 드리겠습니다’고 황송해했다. 대원군은 집에 돌아왔으나 저녁을굶은 터라 추위가 더욱 혹독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천일은 약속대로 이튿날 아침 일찍이 물자를 보냈다.흥선군이 조반 후에 서강의 이천일에게서 보내 온 목록을 보니 쌀 20섬,돈 1천꾸러미,장작나무 50바리,정육 100근,서초(평안도에서 나는 담배) 30근이나 되었다.흥선군은 ‘이 은혜를 어찌 갚을꼬’ 생각하면서 ‘만약에 하늘이 도와 내가 집권자가 된다면 제일 먼저 그 은혜를 갚겠다’고 맹세하였다.” ○경상감사와 비슷한 녹봉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것.거지 흥선군이 국태공이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1863년 12월8일 젊디 젊은 철종이 갑자기 승하하니 운현궁에 왕기가 서렸다. 아들이 임금이 되고 흥선군이 대원군으로 뜬 것이다. 즉위식 날 대원군이 서강의 쌀장수 이천일을 특별히 부르니 천일이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달려와 운현궁으로 들어섰다. 대원군이 친히 손을 잡고 인도해 가니 천일은 떨리고 황공하여 나아가지 못하고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몸을 굽히고 있었다.그 두터운 은혜를 이루다 헤아리기 어려웠다. 이 때 대원군의부인 민씨가 이천일이 온 것을 알고 궁중의 잔치상을 내어오게하니 천일은 손이 떨려 진수성찬을 다 먹을 수가 없었다.이에 대원군이 친히 천일의 손을 잡아 상에 앉게 한뒤 큰 은반에 홍로주를 가득 부어주니 천일에게 그렇게 큰 영광은 처음이었다.” 대원군은 왕실의 체면을 많이 떨어 뜨렸으나 그 정분은 잃지 않았던 것이다.뿐만 아니었다. “드디어 이천일이 선혜청 고직에 임명되니 그 수입이 경상감사의 봉급보다 못하지 않았다.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경사스런 일이 있다하더니 과연 헛말이 아니었다.” 지금도 홍종응 처럼 한치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천일같이 착한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니 이 일은 두고 두고 후세 사람들이 명심할 일이라 할 것이다.
  • “남북교류 진지하게 추구”/김 대통령 ROTC 임관식서 연설

    김대중 대통령은 2일 상오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경기 성남시 학생중앙군사학교 연병장에서 열린 학군사관후보생(ROTC) 임관식에서 “극소수의 군인이 정치에 개입한 불행한 역사도 있었지만,절대 다수의 국군은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바탕으로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아왔다”고 지적하고 임관장교들에게 새 시대 민주국군으로서 사명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위기상황일 수록 우리는 한치의 허점도 없는 완벽한 안보태세를 확립해야만 한다”고 강조한 뒤 “북한이 어떠한 오판도 할 수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의 이날 임관식 참석은 지난 87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참석한 이후대통령으로는 11년만의 일이다.지난 61년 ROTC제도가 도입된 뒤 임관식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각각 1번씩 참석했으나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이어 “국민과 세계가 남북간의 평화정착과 교류협력을 갈망하고 있으며,최근 북한정권에도 다소간의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면서 “우리는 남북이산가족의 상봉,경제와 문화분야의 협력,그리고 튼튼한 평화체제 확립을 위한 노력을 진지하게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김대통령은 또“북한이 성의있고,적극적인 대응을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육군 최창훈(22·광주교대),해군 김지홍(22·제주대),공군 이재규소위(22·항공대) 등 3명에게 대통령상을 수여했다.이날 행사에는 김영균 국회국방위원장을 비롯 국민회의 천용택·한나라당 박세환 의원,김중권 청와대비서실장,박지원 청와대대변인 내외와 임관장교 및 학부모 등 1만6천여명이 참석했다.
  • 대치·협력 새달 2일 갈림길/회담이후 여·야관계

    ◎총리인준 낙관못해… 부결땐 정계 회오리/여,국민신당 지렛대로 한나라 견제 강화 김대중 대통령과 조순한 나라당 총재의 청와대회담 이후 여야관계는 극한대립국면에서 일단 벗어났다.김종필 총리 인준투표에 아예 불참해오던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 투표장에는 들어가기로 했기때문이다.나아가 여야 영수회담을 매월 정례적으로 갖기로 합의했다. 회담결과만 보면 그 어느 때보다 ‘화기로운’것이다.‘JP총리’인준안이 무난히 국회를 통과한다면 한동안 ‘여야 밀월관계’가 지속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사정은 복잡하다.여론에 밀려 당지도부는 투표 참여를 받아들였지만 원만한 투표가 이뤄질지 불투명하다.백지투표나 기권 등 ‘변칙적 방법’이 동원되면 여야간 긴장의 파고는 다시 높아진다.특히 JP총리인준안이 부결될 경우 여야 관계는 한치앞을 내다보기 힘든 미로에 빠지리라 예상된다. 한나라당측은 이번 영수회담을 앞두고 여권에 몇가지 요구를 했다.여당의 한나라당 의원 영입 자제,기초자치단체장 공천배제,선거관련 고소·고발사건취하 등이다.공식발표에는 없지만 청와대회담에서 이런 문제들이 거론된 것으로 관측된다.하지만 JP총리인준안이 국회에서 부결된다면 여권은 과감한 정계개편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그러면 여야간 대치는 심화된다. 김대통령은 여야 관계가 파국으로 가지않도록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몇가지 ‘장치’를 마련했다.첫째는 영수회담의 정례화다.그 어느때보다 야당을 ‘대우’ 한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신임총리 인준에 있어 한나라당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 또하나는 ‘국민신당 우대’다.국민신당은 소속 의원수가 8명.원내교섭단체도 안되는 미니정당이다.김대통령은 국민신당이 지난해말 대선에서 5백만표나 얻은 점을 강조했다.국민신당을 제2의 야당으로 확실히 대접해줌으로써 한나라당을 견제하는 지렛대를 삼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청와대 총재회담으로 파국을 피한 여야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다음달 2일 JP총리인준 표결과정이 분수령이다.그동안 여야는 물밑 접촉으로서로 탐색전을 펼칠 것이다.
  • 문민정부 5년­김 대통령 퇴임간담회 문답

    ◎“국민에 큰 고통 안기고 떠나 죄송”/DJ와 40년 민주화 동지… 적극 도울것/금융실명제 등 문민평가 역사에 맡겨 김영삼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재임 5년을 마무리하는 기자간담회를 가졌다.다음은 인사말과 일문일답 요지. ▷인사말◁ 저는 며칠 뒤면 제 일생에서 가장 영욕이 크게 점철된 청와대를 떠나 상도동으로 돌아갑니다.그 동안 저로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치 못하였습니다.특히 IMF 금융지원 체제로 국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드리게 되어 어떻게 죄송스런 말씀을 드려야 할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그러나 사태가 이렇게 된 책임은 오직 대통령인 저에게 있으므로 저는 어떠한 책임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저는 김대중 차기대통령에게 너무나도 어렵고 큰 짐을 남기고 떠납니다.그러나 우리 국민은 온갖 시련을 이겨낸 용기와 경륜을 갖춘 김차기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쳐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21세기를 향한 재도약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일문일답◁ ­퇴임후 계획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갈 것입니다.정치활동을 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대통령도 퇴임하면 모든 것을 끝내는게 우리나라를 위해 옳은 일이라고 봅니다.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와의 관계는 어떤지요. ▲이명예총재는 내가 감사원장,총리,당대표로 임명했고 당총재가 되도록 총재자리를 넘겨주었습니다.퇴임후 상도동으로 오겠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문민정부 5년을 스스로 평가해 주십시요. ▲평가는 먼훗날 역사에 맡기겠습니다.대통령으로 일하는 동안 개혁이 성공한 면도 있습니다.그러나 5년을 보내면서 영광의 시간은 짧고 고뇌의 시간은 아주 길었습니다. ­지난 대선때 검찰의 ‘DJ비자금’ 사건 수사유보는 김대통령이 지시한 것입니까.배재욱 사정비서관이 한나라당에 자료를 넘겨준 것을 몰랐습니까. ▲당시 검찰의 조사가 이뤄졌다면 이번 대선은 안됐다고 생각합니다.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불행한 일이 됐을 것입니다.검찰이 독자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이런 생각을 가진 내 입장에서 무엇을 누구에게 전달할 수 있겠습니까.나는 정정당당하게 사는 스타일입니다. ­‘DJ 도쿄 납치사건’ 관련 중앙정보부 극비문서가 발견됐습니다. ▲20년이 더 됐지만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옳은 일입니다.역사상 큰 사건은 묻힌 것이 많은데 영원한 비밀은 없습니다.그러나 현재 안기부는 서류를 안가지고 있다고 어제 안기부장에게 보고받았습니다. ­재임중 어려운 일,보람된 일은. ▲금융실명제 실시와 관련돼 비밀리에 착오없이 단행한다는 것이 어려웠고 매우 고뇌했습니다.30여년만에 지자제의 전면 실시를 단행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했습니다.제일 큰 보람은 지난 12월 대통령선거를 공정하게 치른 것입니다.모든 기관에 강력히 지시했고 한치의 오차라도 있으면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지난 개혁의 결과를 되돌아보면서 “개혁이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절감합니다. ­나사본 오찬에서 ‘DJ 적극지원’을 당부했습니다.상도동계와 동교동계의 재결합까지도 의미하는 것입니까. ▲나의 참뜻인데….김당선자와는 40년 넘게 고락을 같이 했습니다.캄캄하고 어두울 때,누구도 소리를 지를 수 없는 때에 함께 민주화를 위해 고락을 같이 했다고 생각합니다.어려운 때 김당선자가 책임있게 나라를 이끌어 나가도록 뒷받침하는게 국민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외환위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책임이 있다고 봅니까. ▲당시 경제부총리,경제수석을 비롯해 누가 나라가 잘못되기를,국가가 부도나기를 생각한 사람이 있었겠습니까.외환위기와 관련해 대통령인 내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향후 조사를 받을 일이 있다면 응할 생각입니까. ▲내가 얘기한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퇴임후 상도동으로 간 뒤 추후 거제도로 옮길 생각이 있습니까. ▲상도동에서 30년이상 살았으니까 거기로 돌아갑니다.10년,20년후의 일을 얘기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퇴임후 일상생활은. ▲상도동에 가서 모든 생활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도 없습니다.운동을 한다,안한다를 결정하는 것부터 그때 그때 생각해 보지요. ◎문민정부 일지 ▷93년◁ ▲2월 25일=제14대 대통령 취임 ▲2월 27일=대통령 재산공개 ▲3월 4일=정치자금 안받겠다고 선언 ▲7월 1일=신경제 5개년계획 발표 ▲8월 12일=금융실명제 단행 ▲12월 9일=쌀개방 관련 담화 ▷94년◁ ▲7월 8일=김일성 사망,남북정상회담 무산 ▲10월 21일=성수대교 붕괴 ▲11월 17일=시드니에서 세계화구상 발표 ▲12월 3일=재경원 설치 등 정부조직개편 단행 ▲12월 16일=WTO 비준동의안 국회통과 ▷95년◁ ▲1월 9일=부동산실명제 실시결정 ▲6월 14일=고용보험제도 도입 ▲6월 21일=북한에 쌀 15만톤 지원 합의 ▲6월 29일=삼풍백화점 붕괴 ▲11월 16일=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11월 24일=5·18특별법 제정 지시 ▲12월 3일=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 ▷96년◁ ▲4월 16일=4자회담 제안 ▲4월 24일=신노사관계 구상 제시 ▲5월 31일=2002년 월드컵 유치 ▲10월 11일=OECD 회원국 가입 ▲12월 26일=노동법·안기부법 여당단독 국회통과 ▷97년◁ ▲1월 23일=한보철강 부도 ▲2월 25일=한보관련 대국민담화 ▲5월 30일=92년 대선자금관련 담화 ▲7월 15일=기아그룹 부도유예 ▲11월 21일=IMF구제금융 공식요청 ▲12월 3일=IMF 협상타결 ▲12월 20일=전·노 전 대통령 사면복권 ◎퇴임후 거취/상도동 자택으로… 사무실 내지 않기로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 상도동 자택 수리를 끝마쳤다.대부분의 이삿짐도 이미 옮겨졌다.오는 24일 하오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상도동으로 돌아간다. 앞으로 상도동 생활에 있어 김대통령의 마음은 편치않을 것 같다.연금(월 8백여만원)만으로 지내기에는 어려움이 크리라 예상된다. 퇴임후 김대통령을 공식적으로 보좌할 사람은 3명의 법정 비서관.김기수 수행실장(1급)과 표양호 정무비서관,김상봉 부속실비서관(2급)이 그들이다.그리고 김대통령 재임 시절 수석을 지낸 몇몇 인사들이 돕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이원종 전 정무·유도재 전 총무수석과 함께 문종수 민정·신우재 공보·유재호 총무수석 등도 당분간 김대통령을 보좌하겠다는 자세다.특히 경제청문회 등을 감안,법률보좌역이 주목되는데 김광일 정치특보가 그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상도동 측근들은 퇴임후 김대통령이 아주 신중하게처신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이와 관련,김대통령은 퇴임후 비서진 사무실도 따로 내지않기로 했다.차량도 본인의 경비로 국산차(체어맨)를 구입했다.
  • 우토 우기 바이올린 독주회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 우토 우기의 독주회가 오늘 하오 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열린다.낯선 이름이라 스쳐 지나 간다면 후회할지도 모른다.‘20세기의 살아있는 파가니니’.라는 별명의 이탈리아 1인자라는 소문이기 때문. 우기는 네살때 처음 활을 잡고 일곱살때 첫 독주회를 열었으며 조르주 에네스쿠,예후디 메뉴인에게 배웠다.유럽 각지에서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보스턴 심포니,뉴욕필,런던필,BBC,로열필,필하모니아 등 명문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함께 한 지휘자도 첼리비다케,콜린 데이비스,하이팅크,시노폴리,자발리쉬,마주어,메타 등 쟁쟁하다.BMG의 RCA,에르미타쥬 레이블 등에서 음반을 내 국내에 선뵌 것도 있다. ‘치밀한 악보읽기를 토대로 한치 오차없는 비르투오조적 기교를 선보인다’는 평이 따라붙는 테크니션.파가니니에서 내려온 이탈리아 바이올린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이번엔 베토벤 ‘크로이처 소나타’의 주인공 크로이처가 쓰던 1701년산 스트라디바리 크로이처 바이올린으로 바로 그 ‘크로이처 소나타’를 들려준다.파가니니의 카프리치오 1,9,24번,드보르작의 ‘네개의 낭만적 소품’,비에니아프스키의 ‘스케르초 타란텔라’ 등도 준비했다.주한 이탈리아 대사관과 문화원이 주최,후원한다.3474­2354.
  • 20세기를 움직인 지도자들/리처드 닉슨 지음(화제의 책)

    ◎닉슨이 밝히는 세계 지도자들 면모 미국의 제37대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이 펼치는 지도자론.위대한 지도력이란 힘과 비전을 갖춰야하는 매우 독특한 예술이다.그것에는 기교가 필요하지만 그 기교를 뛰어넘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그런 점에서 경영이 산문이라면 지도력은 시라고 할 수 있다.이 책에서는 윈스턴 처칠을 비롯, 지은이가 35년의 공직생활 동안 직접 접했던 지도자들의 면모를 낱낱이 소개한다. 셰익스피어는 일찌기 “어떤 자는 날 때부터 위대하고,어떤 자는 태어나서 위대해지고,어떤 자는 죽어서 위대해진다”고 말했다.닉슨에 따르면 처칠이야말로 바로 이 셋을 모두 실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닉슨이 말하는 처칠은 한마디로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인간’이다.처칠은 전 생애를 통해 자신의 운명,곧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신념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젊은 시절 처칠은 한 친구에게 “우리 모두는 지렁이다.그러나 나 자신은 반딧불 벌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처칠의 오만함은 그로 하여금 값비싼 대가를 치루게 했다. 그는 수많은 적들을 만들었다.작가 찰스 P.스노에 의하면 처칠에 대해 호감을 가졌던 로이드 조지조차도 그를 ‘우둔한 고집불통(a bitof an ass)’이라고 할 정도였다.그의 강철같은 신념은 사람들을 화나게 하기도 하고 감동시키기도 했다.그러나 닉슨은 처칠은 결코 권력 자체를 위해 권력을 원한적이 없으며,권력 속에서 자기만족을 추구한 적도 없다고 단언한다. 닉슨은 “지도자가 도전에 직면했을 때 개성이 강한 지도자는 자기 내면 속으로 들어가 그 자신에게 모든 것을 건다”고 말한다.그럴 때 비로소 국민들은 이러한 지도자의 ‘자신에 거는 정열’을 믿고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박정기 옮김 을지서적 1만3천원.
  • 정부 ‘재벌 가지치기’ 나섰다

    ◎계열사 5개 정도로 유도… 빅딜은 권고만/협조융자 조건으로 구조조정 강력 요구 “빅딜은 없다.그러나 앞으로 재벌로 불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정부의 재벌정책이 급선회하고 있다.빅딜은 ‘권고사항’으로 남겨두고 재벌 ‘가지치기’에 주력한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13일 “대기업간 빅딜을 인위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지만 재벌이라는 간판을 다는 곳은 몇 안될 것”이라며 “10대 그룹 가운데 일부는 5개 정도의 계열사만 거느리는 초미니 재벌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정부는 IMF와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한 대략적인 합의를 끝냈다.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구조조정 촉진방안도 따지고 보면 IMF와의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후속대책에 불과하다.3일 임창열 부총리가 IMF와 금리인하에 합의했을 때도 주요 이슈는 구조조정이었다고 한다. 임부총리는 12일 “빅딜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말했다.30대 그룹 기조실장과 만나서도 기업의 구조조정을 강조했을 뿐 빅딜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고 했다.임부총리는 대신 구조조정의 강도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라고 말했다.한화그룹의 경우 재벌이라는 얘기를 꺼내지 못할 정도로 몇개의 계열사로 정리될 것이며 한화에너지 매각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협조융자를 받는 처지에서 그같은 자구계획서를 마지 못해 냈겠거니 추측하지 말라는 얘기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한화만의 문제가 아니다.10대 그룹을 포함한 모든 재벌에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물론 재벌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며 금융기관과의 거래과정에서 단계적으로 정리될 것이라는 단서를 붙였다.그러나 ‘관치금융’이나 ‘정부개입’ 등의 표현에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는 정부의 입장을 감안하면 예사로운 발언이 아니다. 전경련을 중심으로 재계가 최근 정부의 재벌정책에 대해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정부의 재벌 죽이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임부총리는 상호지급보증을 신용보증으로 전환해 달라는 전경련의 요구에 “정확한 얘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말도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계열사를 정리하기 위해 상호지급보증 해소가 우선되야 하는데 그 자체를 없던 것으로 돌리자는 재벌개혁에 무임승차하려는 생각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재벌이 은행으로부터 협조융자를 받을 경우 대대적인 계열사 정리를 추진토록 하고 결합재무제표와 상호지보를 한치의 양보없이 추진토록 한다는 복안이다.
  • 기획예산처 설치 진통 거듭/국회정상화 여야 협상 이모저모

    ◎고용·기업구조 조정법안 ‘무사통과’/각당 미묘한 입장차 ‘3당3색’ 기류 임시국회 폐회를 하루 앞두고 여야는 13일 자정을 넘기는 마라톤 협상을 통해 막판 타결을 시도했으나 대통령 산하에 기획예산처를 설치하는 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진통을 거듭했다.벼랑끝에 선 여야는 이날 상오 여야 3당 원내총무간 비공식회담에 이어 정책위의장이 가세한 6인회담,그리고 여야 지도부간 물밑 접촉 등 다각도의 대화채널을 총가동해 출구 찾기에 부심했다.그러나 추경예산안 이번 회기내 처리 등 첨예한 쟁점으로 협상은 낙관과 비관이 엇갈리며 종일 출렁였다.한나라당 뿐아니라 신여권인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에도 미묘한 입장차이가 드러나는 등 3당3색 기류가 형성되기도 했다. ○…하오 2시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1차 6인회담은 비교적 순조롭게 시작됐다.기업구조조정 관련법과 고용조정 및 실업대책 관련법 등 노사정 합의안을 회기내에 처리하는 데 별 어려움 없이 의견접근을 이뤘다.그러나 인사청문회 도입과 정부조직개편안 처리로 의제가 바뀌면서 헙상은 뒤틀리기 시작했다.회담의 고비는 이때 찾아왔다.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여야 지도부가 직접 나서 인사청문회와 정부조직개편을 놓고 ‘빅딜’을 시도하고 나섰다.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하오 3시30분쯤 박지원 당선자대변인을 자민련 박태준 총재에게 보내 모종의 대야 협상안을 절충한 뒤 곧바로 한나라당측에 제시했다.인사청문회를 이번 조각에서 유보하는 조건으로 중앙인사위의 청와대 설치방침을 철회하겠다는 내용이다.그러나 한나라당이 기획예산처도 청와대에 설치하지 말 것을 요구하면서 여야는 지리한 대치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여권내 갈등도 표출됐다.자민련 이정무 총무와 한나라당 이상득 총무는 별도 접촉을 통해 인사청문회를 유보하는 대신 기획예산처를 청와대에 두지 않는 협상안을 마련,국민회의 박상천 총무를 설득했다는 전언이다. 특히 한나라당 이총무는 이런 여권의 틈새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그러나 박총무는 “청와대 기획예산처는 행정부 군살빼기의 핵심”이라며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완강히 반대,결국 1차 회담은 결렬됐다. 이후 여야 총무들은 각각 당 지도부에 협상경과를 설명하며 ‘빅딜’의 마지노선을 조율했다.그러나 기획예산처에 대해 서로의 입장을 고수,협상 전망을 어둡게 했다. ○…하오 9시 속개된 2차 회담은 결국 시작부터 자정을 넘어서 까지 평행선을 달렸다.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기존 주장만 되풀이했다.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버티기가 계속되자 국민회의 박총무와 한나라당 이총무는 “새정부 조각을 왜 야당이 하려 드느냐”“정 양보를 않겠다면 단독으로라도 인사청문회법을 처리하겠다”고 고성을 교환,협상을 결렬 위기로 내몰리는 험악한 상황이 계속됐다.
  • 임시국회 쟁점 막판 타결 가능성/여 야 6인회의 표정

    ◎자민련 일부 쟁점 양보 시사 새 국면/오늘 한나라당 수용 여부가 변수로 임시국회 폐회를 이틀 앞두고 12일 하오 속개된 여야 ‘6인회담’의 벼랑끝 협상은 서로의 거리만 확인한 채 실패로 끝났다.그러나 회담직후 자민련측이 국회 총리인준 과정에서 김종필 명예총재에 대한 반대방침을 철회할 경우 정부조직개편안 등에 대해 일부 양보할 뜻을 한나라당측에 밝히는 등 절충의 여지를 남겨 놓아 13일 협상이 주목된다. 하오 3시부터 1시간30분동안 김수한 국회의장실에서 계속된 협상에서 여야 원내총무와 정책위의장들은 추경예산안 등 4대 쟁점에 대해 절충을 벌였으나,한치도 의견을 접근시키지 못했다.특히 여야는 인사청문회 도입을 놓고 격렬한 설전을 벌였다.국민회의 박상천,자민련 이정무 총무는 새정부 첫 조각에 한해 실시를 유보할 것을 주장했으나 한나라당 이상득 총무는 이번 조각에서부터 전면 실시하자며 인사청문회법을 단독 처리할 뜻을 밝혔다. 정부조직법개편안 처리는 전날 회담보다 오히려 후퇴했다.한나라당 이총무가 기획예산처를 재경부에 두고,중앙인사위는 국무총리실 산하로 하는 내용의 한나라당 개편안을 관철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국민회의 박총무와 설전을 벌였다.박총무는 “새정부의 기구를 야당이 짜겠다니 말이 되느냐.우리가 야당할 때도 그렇게 한 적은 없다”고 흥분,이총무와 고성을 주고 받기도 했다. 회담 결렬로 제갈길을 갈 듯 하던 여야협상은 그러나 자민련 이정무총무가 회담직후 한나라당 이상득총무와 별도 회동을 가지면서 반전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당지도부와 타개책을 숙의한 자민련 이총무는 한나라당 이총무에게 “국회 총리인준 과정에서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에 대한 반대 당론을 철회하면 정부조직개편안 처리 등에서 야당의 주장을 일부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13일 고위당직자회의를 열어 수용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어서 막판 극적인 타결 가능성을 남겨 놓았다.
  • 국회정상화 3당 수뇌·6인회담 표정

    ◎등 핵심쟁점 양보없는 설전/여야 팽팽한 이견… 절충 시간 걸릴듯/고용조정법 등 3개사안은 타결 여지 여야는 11일 파행이 계속되고 있는 국회운영 정상화를 위한 3당 총무 및 정책위의장의 6인회의를 열고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여야는 정부조직개편안과 고용조정대책 및 기업구조조정 관련법안 등 3개현안에 대해서는 상임위별로 쟁점을 취합,6인회의에 넘겨 일괄타결을 시도키로 했다.그러나 추경예산안 처리와 인사청문회 실시 등 핵심쟁점에 대해서는 현격한 의견차를 보여 여소야대 정국에서의 여야간 힘겨루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6인 중진회담◁ 여야 수뇌부 회담의 합의에 따라 여야3당 총무및 정책위의장들은 하오 김수한 국회의장실에서 6인회담을 갖고 쟁점사안에 대한 절충을시도했으나 별다른 의견접근을 이루지 못했다. 회담에서는 그러나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고용조정 및 실업대책 관계법 ▲기업구조조정 관계법등 3개 사안의 관련법안에 대해서는 회기내 처리에 최대한 노력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이를 위해 3당 총무들은 행정위통일외무위 재경위 환경노동위 법사위 등에 법안심사소위를 소집,관련법안의 핵심쟁점들을 압축 정리해 12일까지 6인회담에 제출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오 2시30분부터 1시간 남짓 계속된 회담에서 여야는 추경예산안 처리와 인사청문회 실시 문제에 대해 한치의 양보도 없는 설전을 되풀이했다. 국민회의 박상천 총무 등은 5조원의 실업대책 예산 확보와 수출지원자금의 시급함 등을 들어 회기안에 추경예산안을 처리해 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박총무는 특히 “이번 추경예산안은 현정부가 새정부와 충분히 협의,공동으로 제출하는 것인 만큼 현 여당으로서 국회처리에 협조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상득 총무는 정부조직개편이 이뤄지지 않은데다 실행예산으로 대처할 수 있다며 회기내 처리불가 방침을 재확인했다. ▷국민회의·한나라당 수뇌회동◁ 상오 8시 정각 회담장에 들어선 김대중 당선자는 기다리고 있던 한나라당 조순 총재,이한동 대표와 반갑게 악수를 나눈 뒤 테이블로 이동.김당선자는 자신이 앉을 의자가 다른 의자보다 큰 것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똑같은 의자로 교체시키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박총재도 이대표에게 “우리는 한 식구 아니냐”며 구연을 앞세워 분위기정지 작업을 시도하는 등 비교적 화기애애한 가운데 대화를 시작. 배석자 없이 시작된 4인회동은 예상을 넘어 2시간 가량 계속되자 회담장밖에서는 “합의가 도출되는 것 아니냐”며 한때 술렁대기도. 하지만 회담 종료후 회담장을 나서는 김당선자의 표정이 어둡자 분위기는 급변. 이날 회동이 시작되면서 김 당선자는 추경·인사청문회 등 만감한 현안에 대한 양측의 입장 대립이 첨예한 상황을 의식.“야당이 집권초기때는 외국에서도 여야간 ‘허니문’(밀월) 기간이 있는데 경제위기까지 처한 만큼 야당이 적극 협조해 달라”며 분위기 진정을 유도했다고 박지원 당선자대변인이 소개.
  • 벼랑끝 3자협상 18시간/노사정 대타협­이모저모

    ◎김당선자측 일보전진·일보후퇴 전략 주효/최대난제 정리해고는 예상외로 쉽게 풀어 노사정‘대타협’이라는 초유의 역사적 경험이 시작됐다. 하지만 5일 하오 2시 기초위원회를 시작으로 6일 상오 8시30분 공동선언문 낭독까지 숨가빴던 18시간은 한국의 국운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됐다. 각 진영은 막판 배수진을 친 탓에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는 치열한 힘겨루기가 이어졌다.이때문에 회담장 주변에서는 새벽 내내 “결렬” “타결”의상반된 ‘사발통신’이 난무,격렬했던 마라톤 회의의 분위기를 전했다. ○…대타협의 실마리가 잡힌 것은 새벽 5시쯤.새벽 4시 우여곡절 끝에 전체회의가 열렸으나 도중 회담장을 나온 민노총 관계자는 “이런 회담을 뭐하러 하냐”며 사실상 결렬을 선언,회담장은 한때 긴장감이 휩싸였다. 하지만 하오 5시쯤 간사를 맡은 조성준의원이 회담장과 위원장실을 오가며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자 “뭔가 돼가는 것 같다”며 술렁이기 시작.상오 6시쯤 조의원은 기자실에 나타나 “밥이 다 되고 있다”는 말로 극적 타결의 소식을전했고 가슴 졸이던 실무진들은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타결까지는 회의 참석자들은 실로 백병전에 가까운 혈전을 치뤄야만했다.실질적 권한을 위임받은 기초위원들은 자정을 넘으면서 고성을 주고 받으며 한치 양보없는 벼랑끝 대결을 지속했고 이 과정에서 노동계,특히 노동계측은 수차례나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고 재계도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라”고 강공으로 맞받아 정회와 속개를 반복했다. ○…최대 관심사였던 ‘정리해고’의 법제화는 예상외로 풀렸지만 노조 전임자의 임금지급 문제가 막판 최대 걸림돌로 등장. 노동계,특히 한국노총은 “숙원사업인 만큼 내부 설득을 위해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고 배수진을 쳤고,재계는 “무노동 무임금의 대원칙을 깰 수없다”며 완강히 저항.국민회의도 “금지규정에 대한 처벌조항을 삭제한다”는 절충안에서 후퇴,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결국 한국노총 박인상 위원장은 새벽 6시경 “전임자 임금지급보다 실업기금 확충이 더 시급하다”는 말로 ‘고리’를 풀어 대타협이 급류를 탔다.당초실업대책 기금 4조4천억원을 5조원으로 확대시키는 성과를 얻으며 2차 과제로 낙착. ○…이번 대타협은 김당선자측의 ‘일보전진 일보후퇴’라는 절묘한 협상전략이 주효했다는 후문. 김당선자측은 5일 저녁 막후채널을 통해 노동계에 제시했던 양보카드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며 회수,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이 과정에서 한국 주재 미국상공회의소측이 비공식 채널을 통해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문제에 대한 이견을 제시했다는 소문이 회담장 주변에 돌기도. 그러나 밤 9시쯤 막후채널이 총가동됐다.조성준 정세균 조한천의원 등이각 협상주체들을 찾아 최종 ‘마지노선’을 제시,협상 속개를 종용.한위원장도 양노총 위원장과 재계 대표를 위원장실로 불러 각개격파를 시도. 새벽 2시쯤 기초위에서 국민회의측이 다시 노동계측에 제시했던 전교조 합법화,노조정치활동 보장 등 카드를 재차 협상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그동안의 막후접촉이 주효한 듯 불과 2시간만인 새벽 4시께 모든 의제에 대한 협상안의 윤곽이 드러났다.
  • 노사정위 담판­이모저모/밤 잊은 마라톤회의… 반전 거듭

    ◎막판 수차례 정회… 한때 분위기 험악/“제2의 건국 할때” 노 애국심에 호소/한광옥 위원장,노사대표 막후 설득 전력 노사정위원회는 5일 ‘대타협’을 향한 ‘초읽기’에들어간 가운데 막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하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된 회의에서 각 진영은 한치 양보없는 각축속에 수차례나 정회와 속개를 거듭하는 등 혼전의 연속이었다. ○…국민회의측은 막후 총력전에 주력했다.한광옥 위원장은 상오 기자간담회를 자청,“노동기본권 등과 관련해 전향적인 검토를 했다”고 밝혀 타결 가능성을 시사.그러나 “남은 것은 노동계의 결단 뿐”이라며 막후 채널을 총가동,노동계를 압박하는 화전양면 작전을 구사. 고용조정에 대한 국민회의 절충안에 재계가 반발하며 ‘고용조정 백지화’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오자 재계 출신인 정세균 위원을 긴급 소방수로 투입,막후 설득에 주력. 한위원장은 새벽 조성준 간사와 국민회의 당사에서 농성 중인 민노총 관계자를 설득하는 한편 배기선 전 의원과 이용범 대책위원 등은 민노총의 강성세력인 현총련 관계자들을 찾아 사전 정지작업에 착수하는 ‘각개격파’에 돌입. ○재계 “전임자 임금지급 불가”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문제가 막판 최대 걸림돌도 등장.노동계는 “우리의 숙원사업인 만큼 내부 설득을 위해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고 배수진.반면 재계는 “전임자 급여지급 처벌규정을 삭제하는 것은 무노동 무임금의 대원칙을 파기하는 것”이라며 “노동계가 이 문제를 재거론하면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강력 반발.한위원장은 두차례나 회의를 연기하면서 막후 조정에 나서는 등 산고를 거듭. ○…양노총도 긴박하게 움직였다.한국노총과 민노총은 이날 상오 각각 대표자회의와 투쟁본부회의를 열어 최종 ‘마지노선’을 조율.한국노총 박인상 위원장은 숙원사업인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폐지조항의 삭제를 촉구했고 민노총 배석범 위원장직대는 “교원 노조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정리해고에 도장을 찍을 수 없다”고 결의. ○기초위 협상 백병전 방불 ○…하오 2시30분부터 시작된 기초위원회는 6시까지 마라톤 회의를 했으나 일괄타결에 실패,밤 10시 30분에 심야회의를 속개. 한광옥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노사정의 타결은 계층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대전환을 상징하는 것”이라며 “건국의 정신으로 타결에 협조해 달라”고 주문. 그러나 곧바로 협상에 들어간 기초위원들은 막판까지 백병전을 방불케 하는 난상토론을 지속.정리해고의 경우 ‘기업 인수·합병을 포함하되 적대적 M&A만 제외한다’는 절충안을 국민회의가 제시하자,노동계는 “현행 노동법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강력히 반발,결렬 직전까지 가는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자정이 넘어서까지 심야회의를 계속했으나 노사 양측은 막판 쟁점을 좁히지 못해 본회의는 막도 올리지 못하고 지연. 반면 한위원장은 기초위원회가 계속되는 시간에 위원장실로 이기호 노동부장관을 배석시킨 가운데 양 노총위원장,재계대표를 불러 막후 설득에 주력.
  • 시인 김상옥(이세기의 인물탐구:160)

    ◎시·서·화 3절의 시조문학 거두/글자 한자한자마다 ‘도자기의 자해’ 닮은 품격/조춘·옥적·백자부 등 명편 중고교과서에 실려 ‘무거운/덧문을 열고/뜨락을 한참 내다본다/ 이 아침/매연 속에/목련꽃 차츰 벙글어/ 사노라/때묻은 눈에도/봄은 이처럼 부신가!’(조춘) 초정 김상옥 시인의 시는 어느 시를 읽어도 절조를 울리지만 그중에서도 중고 교과서에 실린 ‘조춘’‘옥적’‘백자부’등은 ‘시상의 간명한 처리,아무나 생각할 수 없는 사고의 반전,멋들어진 은유와 섬세한 언어구사’로 더이상의 시를 생각할수 없게 만드는 명편들이다.마치 적설에 파묻힌 보석이 눈이 녹자 자태를 드러내듯이 말속에 숨겨진 온오와 시적 함축은 글자 한자한자마다가 옥구슬처럼 영롱하다.성격도 그렇다.그의 눈에 거슬리고 싫으면 싫은 것이다.이를 두고 소설가 김동리는 ‘인은 곧 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결곡하고 강개한 인품은 족히시에 반영되어있다’고 평한 바 있다. ○초판 1천부 모든 매진 ‘완벽을 기하려는 영악(영오)한 조사와 중속을 떠난 고매한 시혼은 우리문단의 한 이채’로써 ‘전통적 정서나 시인의 인식은 시대가 흐르거나 나이가 들어도 그 광채는 시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자신의 시작에 대해 얼마나 까다롭게 선별하는가는 지난 89년 고희기념시집인 ‘향기남은 가을’을 낼 때 시집 8권과 그동안 써두었던 1천여편중에서 103편을 고른 것만봐도 알수 있다.‘이미 활자화된 것은 어쩔수 없지만 그냥 써두었던 것’중에서 시집 30권에 해당하는 엄청난 분량을 며칠동안이고 찢어버린 것이다.그리고 시집의 서문에다 ‘세상에 시는 넘치도록 흔하지만 정작 시는 드물다’고 자탄하고 ‘한 구절이라도 후일 남을 수만 있다면참으로 분외의 보람이겠다’는 겸양은 후학들의 문학에 대한 자세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경고가 아닐수 없다. 그의 인생역정은 ‘사환에서 점원, 연독이 자욱하던 시골인쇄소의 인쇄공과 도장장이’에 이르기까지 안해본 일이라곤 없다.해방직후 출판된 그의 첫번째 시집 ‘초적’은 편집 교정 문선 조판에서 인쇄 장정의 전과정을 손수해냈고 초판 1천부는 즉시 매진되어 고서점에서도 구할수 없는 희귀본으로 유명하다.고향에서 오랫동안 중고교교사로 봉직하다가 60년초에 서울에 올라와 골동상인 아자방을 경영한 것은 실은 ‘서화 골동을 감식하고 부자도 못한다는 연적 콜렉션’에 가까이 하려는 의도였으며 실제로 그의 서와 전각실력은 의재필선에 이르는 경지다. ○한때 고향서 중고교사로 지난 70년초 신세계미술관초청 ‘시·서·화전 이후 일본 교토초청 전시등 10여차례의 전람회를 가진바 있고 미술평론가 이경성씨와 그의 작품을 구입했던 작가 박완서씨는 ‘이것은 단지 문학의 여기가 아니라’고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이른바 ‘시·서·화 삼절’로 지칭되는 그의 글과 그림은 고루한 화풍에서 벗어나 진취적인 파격성과 독창성,소쇄한 여백처리로 도자의 품격을 흐트리지 않는다.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일화로는 지난 74년 당시 국립박물관장이던 최순우씨의 초청으로 ‘시와 도자’에 관한 특강에서 ‘시는 언어로 빚은 도자기라면 도자는 흙으로 빚은 시’라는 말을 남겼고 이는 지금까지도 ‘도자’나‘시’를 말할 때마다언제나 인용되는 명구다.그는 참으로 시를 사랑하고도 자를 사랑한다.‘일호의 작위도 없는 우리 고도를 나의 시로써 시못지않게 사랑’하여‘나의 치아보다 먼저 이빠진 항아리에게 순금의 의치를 만들어 끼워주는’ 자세이고 시에서도 ‘이빠진 자욱이 눈에 띠면’ 이만하면 되겠다고 마음에 찰 때까지 몇밤을 지새워 퇴고를 거듭한다. 초정은 경남 충무시에서 기호 김덕홍씨와 진수아씨 사이의 6녀1남중막내로 태어난 귀하디 귀한 외독자이다.6세때부터 동네에 있던 한문서당 송호재에서 수강하여 최연소자로서 ‘괴’를 받았고 일찍이 ‘동필’소리를 들었으며 역시 소년시절인 17세에 문단에 등단후 그가 18세때 쓴 ‘청자부’를 읽은 가람은 ‘글이 너무 절정에 올라가 있어 이런 글을 쓰면 단명하다’고 걱정스러워할 정도였다. ‘우기를 머금은 달무리/시정은 까마득하다//맵시든 어떤 품위든/아예 가까이 오지말라//이 적막/범할수 없어 꽃도 차마 못꽂는다’한평생을 그가 사랑해 마지않은 ‘백자’처럼 살아온 초정은 최근에는 금아 피천득과 만나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이따금 인사동에 나가 그가 좋아하는 골동품을 보는 기쁨이 낙이다.그런중에도 그가 보여주는 최근의 시는 누에고치에서 청명한 비단실이 뽑혀오르듯이 ‘밤마다 밤이 이슥토록/묵을 갈다가/벼루에 흥건히 괴는 먹물/먹물은 갑자기 선지빛으로 변한다/사람은 해치지도 않았는데/지울수 없는 선지빛은 온 가슴을 번져난다’고 노래부른다. ○한국시조사의 한획 그어 이미 ‘시’니 ‘시조’니 하는 경계에 묶여있지 않은 ‘무위자연인’으로서 그는 ‘시인의 말은 오직 시일뿐’이라는 것이며 ‘속세의만사는 한낱 군소리에 지나지 않다’는 말로 자신의 삶을 압축해 보인다.부인 김정자씨와의 사이에 3남매,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용산구 이태원동청화아파트에서 자녀들은 출가하고 부부만이 살고 있다. 그의 제자이던 시인 박재삼은 생전에 ‘스승의 시는 도자에 그려진 한송이 백매와 같다’고 찬사해 마지않았다. ‘기막힌 위치에 자리잡고있어 한치도 움직일수 없이 완벽하다’는 것이 이유다.평자들로부터 ‘가람·노산을 뛰어넘어 한국시조사의 한 획을 그어놓은 시조시인’으로 받들어진 것도 이러한 과정에서 얻어진 곡진한 결과일 것이다. 그의 시적 자존심은 사우세풍을 지나 ‘예술 속으로 뚫고 들어간 사람’이라는 찬사와 함께이 시대 고고특절한 품성을 지닌 존재로서 언제까지나 찬연히 빛나게 될 것이다. □연보 ▲1920년 경남충무출생 ▲1926년 한문서당 송호재 수강 ▲1930∼35년 진산 이찬근 완선 김지옥 노제 장춘식사사 ▲1936년 시지 ‘아’동인 ▲1937년 시지 ‘맥’ 동인 ▲1938년 문예지 ‘문장’·동아일보에 시·시조·동요 추천,당선 ▲1945년 해방기념제전 시부 장원,삼천포문화동지회 창립,통영문협회원 ▲1946∼62년 중학교교사 봉직 ▲1947년 시조집 ‘초적’(수향서헌)출간 ▲1948년 시집 ‘고원의 곡’(성문사)출간 ▲1952년 문교부편수국 자문위원 ▲1954년 충무공 시비건립,통영문협재건,‘참새’지 복간 ▲1972년 일본 경도에서 서화화전개최,서울·부산·대구·대전·마산등 개인전 10여 차례 ▲1973년 삼행시집 ‘삼행시’출간▲1974년 국립중앙박물관초청 ‘이조도자’에 관한 특별강연 ▲1977년 육필 몰자귀비 건립 ▲1986년 산청에 시비건립 ▲1989년 고희기념시집 ‘향기남은 가을’(상서각)출간 시집 ‘이단의 시’(49년)·‘의상’(53년)·‘목석의 노래’(56년)‘묵을 갈다가’(80년), 동시집‘석류꽃’ (52년)·‘꽃속에 묻힌집’(58년) 산문집‘시와 도자’(75년)등 12권 제1회 중앙시조대상·제1회 노산문학상·제2회 충무시 문화상 등
  • 삐삐 운세풀이/황병선 논설의원(외언내언)

    IMF한파속 하루하루 사회생활이 고달픈 지뢰밭이 된 까닭인가.삐끗 발을 잘못 내디뎠다 언제 횡액을 만날지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살얼음판 세태 때문일까.근래들어 노소,남녀 가릴것없이 점보는 것이 생활화하다시피 됐다. 정초 길을 지나다 토정비결 책을 펼쳐놓은 점쟁이에게 한해 운수를 보던것은 민속,고전에 속한다.컴퓨터통신이나 신문 지면을 통해 하루운세를 보는 것은 보통이고 이제는 무선호출기(일명 삐삐)를 통해 운세를 알려주는 최첨단 정보 음성서비스까지 등장했다.대학가에는 커피값 정도의 복채를 받고 점을 봐주는 ‘점 카페’가 성업중이고 컴퓨터점을 보는체인점도 40여곳이나 된다.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최첨단 정보통신과 점의 결합이지만 컴퓨터통신망마다 운세풀이를 비롯,관상 수상 궁합 사주풀이 성명풀이 점성술 해몽 등 역술 서비스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1분에 50원을 받는 이 서비스에는 한달에 많게는 22만명,적게는 2만명의 청소년 고객이 접속을 한다.전화정보사업인 ‘700서비스’에서도 600여개 역술 번호가 성업중이다.통신 관계자들은 “결코 손해보지 않는 유망사업”이라고 한다. 한 역술인은 이름 하나 짓는데 16가지 사항을 검토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 불편해 컴퓨터로 작명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한다.컴퓨터의 이진법이 동양철학의 음양과 잘 맞아들어간다는 설명이다.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인터넷에 ‘사이버 역술원’을 개설했다. 전통적 점술업도 호황이다.출판된 역술 서적이 1천500여종이고 한달 수강료가 20만원인 5개월 과정의 역술학원도 2곳이다.하루 2시간씩 주역(주이) 사주 풍수지리 관상학 성명학 5개과목을 가르치며 수료생은 심사를 거쳐 역술인협회 회원자격을 얻는다.무속·역술단체들은 전국의 회원이 40만명은 될것이라고 어림잡는다.‘점술시장’의 규모는 알길 없지만 40만명이 1만원의 복채를 받고 하루 한명씩만 점을 봐준다면 연인원 1억4천만명에 복채 1조4천억원이라는 믿기 어려운 통계가 나온다. 점이란 결국은 세상 조심하며 살라는 충고가 대부분이고 재미삼아 보는것이 뭐 나쁠것 있느냐고도 한다.역술은 수천년 응축된 동양의 지혜를 담은 사유체계라는 주장도 있다.학자들은 불안심리에서 해답을 찾는다.인간의 미래에 대한 불안은 유독 이 시대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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