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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계 우울한 초파일 연휴… 휴양지는 ‘들썩’

    주말에다 석가탄신일인 월요일(28일)이 맞붙은 황금 연휴가 다가오자 각 휴양지가 들썩이고 있다. 일부 펜션은 벌써 예약이 끝났고 해외로 단기 여행을 떠나는 가정도 적지 않다. 특히 최근 불거진 승려 도박 파문의 영향으로 불교 신도들이 사찰 대신 휴양지를 찾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회사원 김영민(36)씨는 이번 연휴에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인파가 몰릴 것을 감안해 이미 두 달 전에 예약을 마쳤다. 김씨는 “천지연 폭포, 섭지코지, 성산일출봉, 만장굴 등을 둘러볼 계획”이라면서 “모처럼 오아시스 같은 연휴를 즐길 수 있게 돼 설렌다.”고 말했다. 휴양지의 펜션 등 숙박업소들은 연휴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인천 강화도에서 B펜션을 운영하는 김모(45)씨는 “이번 연휴 기간 객실 예약은 한달 전에 이미 끝났다.”면서 “석모도 쪽에 많은 관광객이 몰릴 것 같다.”고 말했다. 고속도로도 북새통을 이룰 전망이다. 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 교통량이 연휴 첫날인 26일(토)에는 7.5%(441만대), 27일(일)은 12.9%(393만대)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또 26일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량은 42만여대, 일요일 수도권으로 들어오는 차량은 37만여대로 예상했다. 26일은 지방 방향으로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27일은 서울 방향으로 정오부터 자정까지 서행과 정체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석가탄신일임에도 사찰 분위기는 예전과 다르다. 승려 도박 파문이 불거져 실망감을 가진 불교인들이 적지 않은 탓이다. 경기 남양주에 사는 조모(50)씨는 “20년간 독실한 불교 신자로 살아왔지만 올해만큼은 절을 찾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어 “보도 내용을 믿지 못했는데 거의 사실로 굳어지는 것 같아 너무 실망했다.”면서 “올 석가탄신일에는 아내와 북한산을 오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사는 유모(26·여)씨도 “물론 사람이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높은 도덕성을 갖춰야 할 스님들이 아니냐.”면서 “불교 신자라는 게 이렇게 부끄러운 적이 없었다. 올해는 절에 가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1 한국의 종교 현황’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불교 신도는 1072만 6463명이며 개신교 861만 6438명, 천주교 514만 6147명 등으로 집계됐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책꽂이]

    ●새한국사(이태진 지음, 까치 펴냄) 저자의 10년 화두 외계충격설을 총정리했다. 유성 충돌로 일사량이 줄고 기온이 떨어지는 현상을 키워드로 한국과 동아시아 역사를 풀었다. 가령 저자는 단군을 천둥번개의 신으로 본다. 통일신라기 불국사, 석굴암 같은 불사 역시 재난을 막기 위한 염원이 반영됐고, 발해의 융성도 기온하강으로 주요 수출품인 모피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본다. 2만 3000원. ●휴먼필(공선옥 외 지음, 삶이보이는창 펴냄) 공선옥, 김해자, 권지예, 박범신, 맹문재, 김종광, 나희덕, 노경실, 한창훈 등 작가 54명이 자신이 겪고 들은 인권 이야기를 한 편씩 풀어냈다. ‘방귀희씨가 결혼할 수 있을까요?’(방귀희), ‘니그로? 블랙 피플? 톰?’(정지아), ‘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김별아), ‘꼭 오빠라고 불러야 되나요?’(한혜경), ‘대중문화가 그리 우습더냐’(이영미) 등 소소한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인권이 짓눌리는 현실을 보여 주면서 조화롭게 살기 위한 ‘인권 감수성’에 대해 질문한다. 1만 3000원. ●그림처럼 사는(김지희 지음, 공감의기쁨 펴냄) 2007년 일본 전일전 예술상 수상, 2011년 청작미술상 역대 최연소 수상, 미술전문지 편집팀장 등 화려한 경력만큼 시선을 사로잡는 외모의 화가 김지희가 에세이를 펴냈다. “서른을 눈앞에 두고 아쉬움과 후회가 몰려” 온다는 29살 화가의 삶과 생각을 담았다. ‘삶처럼 그린’은 시리즈 격. 책 사이사이 작가의 대표작 ‘실드 스마일’(Sealed Smile) 그림을 실었다. 각 1만 5000원.
  • [열린세상] 한류의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려면/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열린세상] 한류의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려면/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문화의 속성은 물과 같다.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흐르고 고이면 썩는다. 높이 나는 새의 눈으로 우리 문화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 향방이 보인다. 8세기 통일신라 경덕왕 때 우리는 성명과 지명, 그리고 관직명도 중국식으로 바꾸었다. 이후 천년이란 긴 세월 동안 우리는 중국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이는 수혜자였지만, 이를 소화해 다시 일본에 전해주는 문화 공급자이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흐르던 문화의 동류(東流)현상이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높은 파고가 동아시아 지역을 덮친 근대 이후 역류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때 일본은 재빠르게 서구 선진 문물을 따라 배웠지만, 우리는 쇄국양이를 고집하며 소중화(小中華)란 우물 속에 문화의 흐름을 가둔 결과 문화적 열등자로 전락했다. 1876년 개항은 한국과 일본 간 문화 교류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문화의 강물은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거슬러 흐르기 시작하였다. 1945년 도둑과 같이 찾아 온 해방 이후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문화가 홍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1980년대까지 우리 어린이들은 일본만화에 심취하였고 젊은이들은 미국의 팝송을 따라 불렀다. TV의 황금시간대는 미국 드라마의 독무대였고, 영화관은 미국산 영화에 심취한 할리우드 키드들로 가득 메워졌다. 사실 해방 이후 한국은 미국, 일본, 홍콩 등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대중문화의 소비국이었지 수출국이 아니었다. 1990년대 후반 한류가 발원하기까지 문화의 되돌림은 없었다. 1996년 드라마를 시작으로 중국에서 불기 시작한 한국문화에 대한 열풍은 타이완과 홍콩을 비롯한 화교문화권의 동남아시아로 번져갔다. 2003년 ‘겨울연가’는 욘사마와 지우히메 신드롬이 웅변하듯, 일본열도도 한류 열풍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한류라는 강물이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화 토양을 촉촉히 적시며 흐른 지도 10년 이상 지난 지금, K팝과 우리 드라마는 이제 동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중동, 아니 온 세계를 휩쓸고 있다. 왜 지구마을 사람들은 한국의 대중문화를 향유하고 소비하며 열광할까? 사실 한류는 가요·드라마·영화 같은 대중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지, 우리가 소위 고급문화라고 하는 전통문화의 소산은 아니다. 분명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 같은 댄스그룹이나 ‘엽기적인 그녀’와 같은 영화가 상징하듯이, 현대 한국의 대중문화는 전통과의 결별에서 얻어진 결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몇 해 전 문화적 토양이 유사한 아시아는 물론 열사(熱砂)의 나라 중동에서도 공전의 인기를 끈 ‘대장금’ 같은 드라마는 전통을 현재적으로 재해석한 가공품이다. 또한 일본 주부들의 심금을 울린 ‘겨울 연가’는 인류 보편의 순수한 사랑을 문화상품으로 재포장한 데서, 그리고 ‘쉬리’와 ‘태극기를 휘날리며’와 같은 영화는 냉전과 동족상잔이라는 한국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한 우리만의 독창적 이야기를 그린 데서 그 성공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류의 성공은 근대 이후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온 서구문화를 꼭꼭 씹어 소화해 자기화하고, 이를 소비함으로써 재생산이 가능하도록 해준 한국 시민사회의 문화적 저력과 역동성이 크게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떤 이는 한국문화나 이를 배태한 민족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어깨를 우쭐거리는 반면, 다른 이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미국과 일본문화의 모조품, 즉 짝퉁으로 “진정한 우리 것”이 아니라 “천박한 B급 문화자본의 파생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한류는 한마디로 그 성공 요인을 정의하기 어려운 지금 한창 진행 중인 문화현상이다. 문화 콘텐츠로서 한류가 끊임없이 소금을 쏟아내 바닷물을 짜게 해주는 요술 맷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전통시대 중국에서 흘러들어온 중국문화나 근대 이후 일본과 미국을 통해 파고든 서구문화나 모두 일방적 전파의 오만함을 보였다. 이와 달리 글로벌한 세상을 사는 오늘 지구마을의 문화적 관계망은 상생의 문화 주고받기가 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문화의 쌍방소통만이 우리 문화토양에서 자라난 한류라는 나무가 계속해서 세계를 향해 가지를 뻗을 수 있게 하는 자양분과 수분이 될 터이다.
  • [기획]최고경영자=⑨진로(眞露)그룹 장학엽(張學燁)씨

    [기획]최고경영자=⑨진로(眞露)그룹 장학엽(張學燁)씨

     맨손으로 월남한 지 23년.「진로(眞露)」는 23년만에 연간 1백억원어치가 팔리는 대기업으로 자라났다.「진로(眞露)그룹」의 경영주 장학엽(張學燁·71)씨는 이제 학교를 세워 내일의 인재를 키우는 것만이 남은 소망이라고 말한다. 20살 교사생활 인상 깊어…20년 전부터 장학회 운영  72년 매상액이 소주「진로(眞露)」만 1백억원. 73년 목표가 무려 1백50억원이다. 앞으로 줄곧 매해 50%씩의 성장을 가늠한다는 초「스피드」성장 계획. 그래서 74년 목표를 자그마치 2백억원으로 잡고 있다.  『계획대로 무난히 이루어질 줄로 알고 있읍(습)니다. 68년부터 기획·관리제도를 도입해서 철저히 실행해 왔는데 아직 목표 달성을 못한 적은 한번도 없었읍(습)니다 』  말이 1백억원이지 1백억원어치의 소주라면 보통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다.1백억원어치의「진로(眞露)」는 40개들이 상자로 5백30만상자. 병수로 따지자면 2억1천2백만병이 된다. 어쨌든 71년에 계산해 본 바론 그 해에 팔린 소줏병을 늘어 놓으면 경부고속도로를 21차례 오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이밖에 포도주 판매액이 72년에 10억원. 인삼주는 7년에 50만$(달러)어치를 수출할 예정.그러나「진로(眞露)」의 경우「예정」이란 단어는 곧「꼭 그렇게 되는 것」으로 믿어도 좋다. 아직까지 목표 달성에 미달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니까.  현재「진로(眞露)그룹」에는 크게 잡아 5개 자회사가 있다. 으뜸은 역시「진로주조」.그 다음「서광(西光)산업」이 연간 4백만$(달러)어치의 봉제 가공품을 수출하고 있고「효성병유리」는「진로」에서 쓰이는 각종 병을 자가 생산. 「도원관광」이 7월 준공 예정으로 부산 용두산에 부산「타워」를 건설 중이다. 72년에 인가를 얻은「우천(友泉)학원」은 74년 3월에 문을 열어 중·고교 입학생을 받을 예정.  『본래 꿈이 젊은이들을 가르쳐 보는 것이었어요. 20년 전부터 장학회를 운영해 오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꿈은 교육자였지요. 아직도 내 추억 중엔 나이 스무살 때 황해도에서의 국민(초등)학교 선생 시절이 가장 인상깊게 남아 있읍(습)니다』  오늘의「진로」가 있기까지에는 크게 잡아 3차례의 어려운 고비가 있었다. 그 첫번째가 6·25로 인한 월남. 맨손으로 피난지 부산에 떨어져 오직 성실과 근면으로 뛰었다. 54년에 현재「진로」가 자리잡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으로 이사. 지금은 3천명 종업원이지만 그때 종업원은 고작 1백명. 지금은 소주시장에서의 시장 점유율이 60~70%를 오르내리는 입장이지만 그때는 사정이 달랐다. 더구나 자기 지본은 적고 남에게 빈 돈이 많았기 때문에 이자 부담이 커 더욱 고생이 많았다. 어려운 고비 3차례 겪고…거센 반발 속에 기반 굳혀  이 고비를 넘기는데 소비한 햇수가 4년. 4년만에 웬만한 빚은 다 갚고 새 출발을 할 수가 있었다. 마지막 고비는 10년 후인 65년에 닥쳤다. 당시 정부 양곡관리법에 따라 순곡소주를 없애고 고구마에서 주정을 뽑아내는 새 소주를 만들어 팔아야 했다. 이와 함께 타 업체와의 경쟁이 극심해져 광고선전비·접대비 지출이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외상 판매의 비중이 격증, 67년에는 회사의 존폐가 우려될 정도로 극심했다.  『이때부터 외상을 없애고 현금거래제도로 뜯어 고쳤습니다. 반발이 컸지만 그대로 밀고 나갔어요. 덕분에 오늘의「진로」로 성장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이 마련되었지요』  68년부터「진로」는 종래의 경영 방식에서 탈피, 생산 판매를 모두 치밀한 계획하에 집행하는 기획·관리실 위주의 경영으로 탈바꿈 했다.이에 따라 다달이 경영분석·결산을 하여 경영 합리화에 박차를 가했다. 덕분에 68년 이후 5년 동안에 거든 성장율(률)이 5백%, 해마다 두곱으로 회사가 커온 셈이다. 65년에 비하자면 10배의 성장율(률)을 기록하였을 정도.  『72년 이익율(률)이 11%입니다. 만족할만한 성과였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이제「진로」의 과제라면 세계 무대로의 진출이 남아 있지요. 국제 경쟁력 강화로「세계의 진로」가 되는 것이 당면 과제이지요』  만족할 만한 “이익율(률) 11%”…지금은 한창 새로운 술 연구  현재「진로」는 새 품종 개발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 중. 생활 수준이 점점 높아져만 가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을 새로운 술을 멀지 않은 장래에 선보일 예정이다.  『장(張) 사장의 성격은 한마디로 과묵 실천형이죠. 또 지독한 구두쇠이기도 하셔요. 예전에는「와이샤쓰」한벌에「칼라」만 떼었다 붙였다 하며 헐도록 두고 두고 입으실 정도였어요. 이건 자랑이 아니라 창피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저희 회사 건물부터가 아주 낡고 사무실이 비좁은 것도 이 때문이지요』  부사장이자 장(張) 사장의 동생이기도 한 장학형(張學炯)씨의 말. 아닌 게 아니라「진로」의 신길동 사무실은 여간 흐름하지가 않다. 신길동 공장을 신축하던 54년 당시 종업원 1백명으로 출발할 때의 건물을 모체로 종업원 3천명을 헤아리게 된 오늘까지 그 공장에 덧붙여 하나씩 늘려 왔기에 때문에 이런 현상은 거의 불가피했다고.  그러나 이젠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자신하기 때문에 올해안에 신길동 공장을 재배치, 사무실용 6층「빌딩」을 새로 짓고 공장 건물도 대량 생산 체제로 크게 바꿀 예정이다.  『아시다시피「진로」의「마스코트」는 두꺼비입니다. 51년 부산에서 다시 출발할 때부터 두꺼비로 했는데 아마 두꺼비가 우리「진로」를 여러모로 돌보아 준 모양입니다. 두꺼비 덕을 단단히 보았다고 할까요?』  「진로」는 아직 비공개법인. 현재 주주의 입장에서 주식 공개를 연구 중이라고 했다. 총자산 36억원에 비해 이익율(률)이 높기 때문에 주식 공개시 성공은 자신있다고.  3남 2녀를 둔 진로(眞露)「그룹」의「리더」장학엽(張學燁) 사장은 무취미가 취미.「골프」와 거리가 멀고 오직 바둑을 조금 두는 정도. 앞으로는 74년에 문을 열「우천(友泉)학원」을 돌보는 일이나 재미를 붙여 보겠다고 했다.  <수(秀)>  ◇ 장학엽(張學燁)씨의 약력◇  1923.3 진남포 공립상공학교 상과 졸업   3 황해도 곡산공립보통학교 교원  1927.4 평남 용강군에서 진천(眞泉)양조장 경영(상품명 진로(眞露))  1950.11 월남  1951.3 부산에서 구포(龜浦)양조 합자회사 경영  1954.1 서광주조(西光酒造) 사장  1959 「진로(眞露) 장학회」  1966 「진로주조(眞露酒造)」  1970 「대한교련」에서 교육 독자ㅣㄱ상 수상  1971 은탑산업훈장 수상 [선데이서울 73년 3월 11일 제6권 10호 통권 제230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3대 의혹’ 규명에 초점… 최종 타깃은 ‘從北의 그림자’

    ‘3대 의혹’ 규명에 초점… 최종 타깃은 ‘從北의 그림자’

    통합진보당에 전면전을 선포한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를 위한 채비에 한창이다. 압수수색한 통진당의 서버를 하나하나 분석하며 관련자 소환을 위한 자료를 모으고 있다. 워밍업 단계인 셈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8명 전원이 투입됐다. 검찰 관계자는 “차곡차곡 수사할 것”이라며 속도를 내되 신중하게 접근할 방침임을 내비쳤다. 검찰의 수사 방향은 분명하다. 검찰은 겉으로 드러난 ▲4·11 국회의원 총선거 비례대표 부정경선 의혹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의 여론조사 조작 의혹 ▲핵심 인사들의 각종 금품 의혹 등을 우선적으로 손댈 방침이다. 특히 검찰이 구당권파의 주축인 민족해방(NL) 계열 경기동부연합 인사들의 행적을 쫓고 있는 데다 정당의 심장인 ‘당원명부’를 확보한 상황인 점으로 미뤄 ‘종북(從北) 좌파 척결’에 대한 수사에도 상당한 무게가 실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일단 부정 경선 의혹에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검찰은 현재 부정한 투표용지 사용, 무효표가 유효표로 둔갑한 사례, 한 개의 IP로 최대 47번의 중복 투표가 이뤄진 경위, 구당권파 인물이 온라인 투표 진행 도중 투표 진행 상황을 미리 알 수 있는 ‘소스코드’를 열람한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배후 규명에도 주력하고 있다. 핵심 인사들의 각종 금품 관련 의혹에 대한 실체가 드러날 경우, 파장은 만만찮다. 진보진영으로서는 메가톤급 충격파일 수밖에 없다. 구당권파의 핵심 인사인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가 대표로 재직했던 정치광고기획사 CN커뮤니케이션즈(구 CNP전략그룹)에 구당권파가 선거 관련 일거리를 몰아줬고, 그 돈이 구당권파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나와 있다. 4·11 총선을 앞두고 불거졌던 야권 단일후보 선정 관련 여론조사 조작 의혹도 진보진영의 도덕적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지난 3월 서울 관악을 선거구에서 민주통합당 김희철 의원과 경선을 벌인 이정희 전 공동대표의 보좌관이 전화 여론조사를 조작하기 위해 ‘나이를 실제와 다르게 답변하라.’는 문자메시지를 지지자들에게 보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이른바 ‘3대 의혹’ 이외에 통진당 당원명부에 한층 신경쓰고 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입·탈당한 인사들의 신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2010년 전교조·전공노의 민노당 불법 당비 사건 때 민노당에 가입한 교사, 공무원 119명을 찾아냈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수사 땐 당원명부를 확보하지 못하고 온라인 투표를 관리하는 서버에서 다른 자료를 확보해 일일이 공무원 여부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최종 타깃인 경기동부연합의 ‘종북’ 활동이나 통진당 운영에 불법 개입한 혐의 등을 캐낼 수 있는 주요 단서라는 게 검찰의 말이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내부는 대리석·외관은 95%가 고급유리… 그래도 아꼈다는 국회

    내부는 대리석·외관은 95%가 고급유리… 그래도 아꼈다는 국회

    새달 5일 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23일 준공식을 치른 국회 제2의원회관이 ‘호화판’ 논란에 휩싸였다. 외관상으로만 봐도 벽면의 95% 이상이 유리로 돼 있어 호화롭기 그지없다. 이에 대해 이날 국회 사무처는 일부 언론의 ‘호화판’ 의원회관 보도에 대해 반박하는 보도자료 배포와 함께 이례적으로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외관상 호화롭게 보일 수 있으나 건축비용 최소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는 변명이었다. 그러나 과연 겉에서 보기에만 ‘호화판’인 것일까. 기자는 이날 신축공사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의원회관을 직접 둘러봤다. 구 의원회관 2층에서 제2의원회관 3층으로 통하는 복도로 들어서면서부터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구 의원회관과 달리 벽면이 온통 대리석으로 이뤄져 있다. 구 의원회관은 벽면이 통풍이 안 돼 더운 바람이 빠져나갈 곳이 없다. 하지만 신축회관은 달랐다. 심지어는 각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대리석이었고 엘리베이터 바닥도 대리석을 깔아 놓았다. 벽면이 대리석이다 보니, 층마다 구비돼 있는 소화전과 방수기구함도 철문 대신 대리석문으로 돼 있었다. 공사 관계자는 “대리석은 일반 콘크리트 벽면이나 바닥재에 비해 2배 이상 값이 더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국회 사무처에서조차 호화롭게 보인다고 스스로 인정한 외관은 어떨까. 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외관에 쓰인 유리는 일반 유리가 아닌 ‘고효율 복층 유리’였다. ‘고효율 복층 유리’는 유리 두 장 사이에 공기층이 있어 일반 유리보다 단열효과가 뛰어난 유리다. 또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표면에는 은막 재질로 코팅까지 입혔다. 일반 콘크리트 벽면에 비해 비용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콘크리트 벽면으로 하면 어두운 것이 단점”이라면서 “요즘에는 콘크리트 벽면 대신 복층유리로 외관을 꾸미는 것이 트렌드”라고 둘러댔다. 또한 신축 의원회관은 지하 5층과 지상 10층의 10만 6732㎡(3만 2286평) 크기로 건물 자체가 크게 지어졌다. 의원실도 18대 국회 때 82.64㎡(25평)였던 것에 비해 148.76㎡(45평)로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전기와 통신설비에 들어간 비용도 만만치 않다. 공사 관계자는 “열효율을 높이기 위한 전기 통신 설비에 들어간 비용이 다른 건물에 비해 훨씬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보공개센터가 국회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내용에 따르면 신축 의원회관과 현 의원회관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 비용 가운데 기계·소방·전기·통신 공사에만 900억원가량이 투입됐다. 조경 시설도 마찬가지다. 한 공사 인부는 “식수의 경우 부르는 게 값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정원보다는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회 사무처는 제2의원회관이 ‘초호화 건물’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제2의원회관 건립 비용은 1881억 9600만원”이라면서 건물비용을 최소화했다고 변명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의원실 집기들은 4년마다 새것으로 교체하지 않는다.”며 신규 비품 구매비용을 최저화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준공식을 마친 이날 제2의원회관 내에 있는 책상과 집기들 가운데 새것으로 보이지 않는 집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편 이날 오후 2층 메인홀에서는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예정대로 제2의원회관 준공식이 열렸다. 행사장에는 취재진과 관계자들뿐 아니라 유니폼을 입은 행사 도우미까지 동원됐다. 준공식 행사 관계자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행사 치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에 대해 전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신축 의원회관의 외관 유리라든가 내부 자재들이 굉장히 고급으로 들어갔고 주차장도 당초 계획보다 넓어져 공사비가 늘어났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정부의 예산 낭비를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국회가 도리어 호화판 국회가 된 상태에서 어떻게 그런 역할을 수행할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22일 TV 하이라이트]

    ●시사기획 창(KBS1 밤 10시) 2010년 한국투자자보호재단 조사 결과 금융 사기를 당했거나 당할 뻔했다는 응답이 60대에서 27.9%로 가장 많이 나왔다.취재진이 만난 사기 피해 노인들은 생각과 달리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프로그램에서는 노인을 상대로 한 국내 금융권의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 실태를 취재하고 대안을 알아본다. ●삼국지(KBS2 밤 12시 35분) 유비를 찾아 기주를 향해 가던 관우는 평소 자신을 흠모했다는 주창을 수하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한 작은 마을을 지나다 장비를 만난다. 관우가 조조에게 투항했다는 소식을 들은 장비는 배신감에 휩싸여 관우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때마침 나타난 조조의 수하 장수 채양을 제물로 삼아 장비에 대한 의리를 표시한다. ●천사의 선택(MBC 오전 7시 50분) 유란은 이혼을 망설이는 은설을 답답해하며 채근한다. 유란은 누가 봐도 다정한 은석과 초롱의 모습을 보고 왠지 짠한 마음이 든다. 상호가 바람피우는 것을 목격한 민재는 은설을 위로하려 술 친구를 하겠다고 자청한다. 한편 은설은 유란의 방에서 자신이 쓰던 것과 똑같은 향수를 발견하고 그녀를 신경 쓰기 시작한다. ●세상사는 이야기(KBS1 밤 11시 40) 일흔 살이 넘은 김영문씨는 한번 다니기도 힘들다는 대학을 세 번째 다니고 있다. 베트남전 참전과 30년 군무원 생활을 마감하고 07학번 새내기로 노인복지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졸업하자마자 09학번 마술학과 새내기가 되었다. 한평생 청춘인 줄 아는 할아버지. 이번에는 11학번 새내기로 실용음악과 신입생에 도전하는데…. ●한국기행(EBS 밤 9시 30분) 화왕산은 경남 창녕읍과 고암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발 757m 산으로, 예로부터 화산활동이 활발하여 ‘불뫼’ ‘큰불뫼’로 불리기도 했다. 한편 화왕산 자락 아래 자리한 옥천마을 주민들은 진달래 화전으로 봄 향기를 느끼고 있다. 또 고암면 감리 마을에서는 화왕산의 맑은 물을 이용한 미나리 재배가 한창이다. ●가족(OBS 밤 11시 5분) 경기도 여주에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그림 같은 목장이 있다. 90여 마리가 넘는 젖소부터 강아지, 말, 거위 등 없는 동물이 없다. 이 목장의 여주인은 일명 ‘젖소 엄마’로 통하는 조옥향씨다. 그의 든든한 지원군인 남편 김상덕씨와 믿음직한 첫째 딸, 축산학과를 나와 엄마를 도와주는 둘째 딸까지, 행복한 그들의 일상을 엿본다.
  • [데스크 시각] 괴물이 되어버린 금융/박정현 경제부장

    [데스크 시각] 괴물이 되어버린 금융/박정현 경제부장

    흡혈 오징어는 화석 속의 괴물이다. 1000~4000m의 깊은 바다에 살면서 물고기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징어의 50배 크기인 이 괴물 오징어는 고래도 먹어 치운다. 피냄새만 나면 귀신같이 나타나는 상어의 피까지 빨아먹는다. 작년 말 반(反)월가 시위가 한창일 때 미국의 한 시사잡지는 골드만삭스를 흡혈 오징어에 비유했다. ‘돈 냄새가 나는 것은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무자비하게 혈액 깔때기를 꽂아 넣는 인간의 탈을 쓴 거대한 흡혈 오징어’라고 잡지는 폄하했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모조리 먹어치우는 골드만삭스의 거침없는 탐욕을 비꼰 것이다. 미국 월가와 자본주의의 상징인 골드만삭스에 붙여진 흡혈 오징어라는 표현에 무척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는 뉴욕 컬럼비아 대학을 방문하려다 ‘흡혈 오징어 시위’가 예정돼 있다는 소식에 없던 일로 해버렸다. 표현이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미국 시민들은 흡혈 오징어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자본의 40%를 월가와 금융업계 종사자가 가져간다. 아무리 일해도 금융업계와의 연봉 차이는 커지기만 하고, 금융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월가에 대한 분노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반월가 시위는 바로 금융업계 전체의 탐욕을 겨냥한 서민들의 항의의 몸짓이다. 나눔의 정신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운 월가에 보내는 각성의 메시지다. 금융이란 괴물에게 국경이란 무의미하다. 우리나라의 금융과 자본주의도 미국과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국에서의 흡혈 오징어는 저축은행들이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오너들이 저지른 일들이 검찰 수사에서 양파껍질 벗겨지듯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그들의 불법행위가 드러날 때마다 입을 다물지 못한다. 저축은행 오너들이 저지른 행태는 탐욕의 경계를 넘어선 범죄행위에 속한다. 가짜 서울 법대생 행세와 200억원의 은행 돈을 빼내 밀항하려다 붙잡힌 저축은행 회장의 얘기는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스토리다. 파블로 피카소와 알베르토 자코메티 같은 세계적인 거장의 미술 작품을 사 모은 행태는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궁금하다. 저축은행 경영진의 영업활동 상당수는 정상적인 투자가 아닌 비정상적인 투기행위들이다. 저축은행 대주주의 행태를 보면 애초에 도덕성이란 게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일부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들이 보여준 행태는 도덕적 긴장의 끈이 느슨해지는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수준을 뛰어넘는다. 그들에게는 고객의 돈을 받아 서민을 위해 돈을 굴리고 빌려 준다는 개념 자체가 원래 없었는지 모른다. 한눈 팔지 않고 착실하게 서민과 중소기업 대출에 전념해온 정상적인 저축은행,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에만 충실한 저축은행 직원들은 복장 터질 노릇일 게다. 하지만 영업정지당한 저축은행들이 보여준 행태는 모럴 결핍증을 보여준다. 서민금융기관으로서의 저축은행 기능과 신뢰는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저축은행들이 돈벌이 되는 부동산프로젝트에 몰두하는 사이 신용도가 낮은 서민을 위한 대출 기능은 크게 위축됐다고 평가한다. 저축은행들이 중상위 신용등급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에 집중하는 동안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은 저축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고 대부업체로 내몰리고 있다. 30%가 넘는 저신용자 대출금리는 대부업체와 구별이 가지 않는다. 저축은행의 위기다. 신뢰와 윤리를 되찾지 않으면 위기는 되풀이된다. 실효성 없는 판박이 대책으로는 안 된다. 작년에 솔로몬·미래 저축은행 등에 적기시정조치 유예라는 산소호흡기를 달아줘 사회적 비용만 키운 금융당국은 더 이상 미덥지 않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미 하버드대 교수는 신간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에서 우리 사회가 시장과 윤리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 위에 서 있다고 했다. 윤리와 신뢰 회복 없이는 저축은행의 앞날은 없다. jhpark@seoul.co.kr
  • [Weekend inside] 대학가서 잊혀진 민주화항쟁

    [Weekend inside] 대학가서 잊혀진 민주화항쟁

    “깜빡했네요. 오늘이 5·18인 걸….” 18일 성균관대 2학년 강모(20·여)씨는 저녁에 학교 대운동장에서 열리는 가수들의 공연 생각에 이날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것을 까맣게 잊었다고 털어놨다. 강씨는 “주변 친구들도 소녀시대 멤버들이 온다는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면서 “학내에 5·18과 관련된 행사도 별로 없어 나처럼 잊고 사는 친구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축제가 한창인 대학가에 5·18 민주화운동이 잊혀지고 있다. 과거 1980~1990년대 축제 기간에 빠지지 않았던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사진전과 공연, 토론회가 자취를 감춘 자리를 아이돌 그룹의 공연이 채우고 있다. 이날 성균관대에서는 소녀시대 멤버로 구성된 유닛그룹인 태티서(태연, 티파니, 서현)와 한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차지한 울라라세션의 공연이 열린다. 한국외대에서는 아이돌그룹 걸스데이 공연이, 홍익대에서는 10㎝와 리쌍의 공연이 예정됐다. 고려대 3학년 유모(25)씨는 “여자친구와 함께 다른 학교에서 열리는 가수들의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면서 “학교에 5·18 관련 대자보가 몇 장 붙기는 했지만 학생들 대부분이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수들의 공연은 풍성한 반면 5·18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토론회나 공연 등의 행사는 학교마다 1~2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조용히 치러진다. 성균관대 대학원에 다니는 정모(32)씨는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동아리별로 사진전이나 다큐멘터리 상영을 준비해 5·18 관련 행사가 풍성했는데 최근에는 별로 못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외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총학생회에서 5·18 관련 행사를 준비했지만 예전에 비해 학생들의 관심이 줄어 행사 규모가 축소된 것은 사실”이라면서 “5·18역사기행도 예전에는 버스 2대가 모자랄 정도였다는데 최근에는 20~30명 정도만 참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은 5·18이 절실하게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화여대 2학년 김모(20)씨는 “1980~1990년대 선배들에게는 5·18이 현실의 일이었겠지만 우리에겐 교과서에 나오는 하나의 사건일 뿐”이라며 “중요한 사건임은 분명하지만 꼭 이날을 기억하고 대학생들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적 사건의 의미가 희석되는 것은 어쩔수 없다.”면서도 “기념일 자체를 기억하기보다 민주주의와 인권 등 32년 전 광주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경북 상주·서울 구로 ‘여성 예비군 훈련장’을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경북 상주·서울 구로 ‘여성 예비군 훈련장’을 가다

    때 이른 초여름의 날씨로 신록이 제 빛깔을 온전히 드러낸 5월 초순. 경북 상주시 육군 50사단 상주대대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군복을 입은 한 무리 아주머니들의 구호 소리가 요란하다. “충성! 신고합니다. 강영숙 외 00명은 훈련 입소를 명 받았습니다!” ●아줌마 특유의 억척스러움·진지함… 현역 장병들도 박수 갈채 여성예비군 소대 훈련 입소식이다. 구호와 대열은 엉성해 보여도 표정만은 여느 장병들 못지않게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다. 훈련은 안보교육, 응급 처치술, 화생방, 모의전투 순으로 빡빡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진지함으로 ‘아줌마 부대’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특히 서바이벌 장비를 활용한 모의전투에서는 평균 나이 50대 중반의 전업 주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 현역 장병들도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연령은 4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지만 훈련에 대한 열정과 봉사정신은 한결같이 뜨거워 농번기인데도 전원이 입소했다. 군에 입대한 아들을 둔 강영숙(51) 상주여성예비군 소대장은 “군복을 입어 보니 오히려 아들에 대한 걱정이 줄어든다.”며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예비군 활동에 적극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원들 중 ‘고참병’ 격인 김삼순(63)씨는 “총을 든 순간 여자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군인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기력이 닿는 대로 향토 방위에 힘을 보탤 생각”이라며 의욕을 내보였다. 서울 구로구 여성예비군은 창설된 지 4년째인 도시 여성예비군이다. 평시 급식 지원 활동을 하는 날, 남자예비군들에게 줄 간식을 챙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농촌 지역에 비해 연령대가 낮아서인지 군복을 입었지만 꽃핀을 꽂은 파마머리에 귀고리를 착용한 모습 등이 사뭇 이채롭다.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하니 모두 작업을 멈춘 채 거울 보고 화장을 고치기에 바쁘다. 여성의 부드러움과 섬세함 속에는 ‘금녀(禁女)의 벽’을 허물고 남자들의 아성에 도전한 ‘맹렬 여성’의 패기가 배어 있다. 처녀 시절 여군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신혜숙(39)씨는 “총을 들고 직접 싸우지는 않아도 여성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하는 것 같아 보람 있다.”며 “군복 입은 모습이 잘 어울려요?”라며 수줍어했다. 여성예비군은 향토예비군설치법(1961년 제정, 1968년 전면 개정)에 따른 ‘지원 예비군’으로서 각 지역 군부대가 지자체에 협조하여 소대 1개씩을 편성하고 있다. 1989년 인천 백령도에 첫선을 보인 후 5월 10일 현재 전국적으로 139개 소대에 5382명이 활동 중이다. 국방부 예비전력과 조병철 과장은 “평시에는 향방작계훈련 참여는 물론 재난 재해 구호 활동과 각종 사회 봉사활동을 통해 민·군의 가교 역할을 하고 전시에는 동원 및 향방작전 간 급식 지원, 응급 구호, 후송 지원, 선무 활동 등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1989년 인천 백령도에 첫선… 전국 139개 소대 ‘가동’ 노인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나오는 구로구 여성예비군 김옥휘(46)씨는 “각 가정의 버팀목인 여성들이 국가 안보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예비군 활동에 많이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바람처럼 여성예비군이 여성 국방 안보 참여의 모범적인 모델로 정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패션 인생 60년 기념전 여는 디자이너 노라노

    [김문이 만난사람] 패션 인생 60년 기념전 여는 디자이너 노라노

    세월의 옷 단추를 잠시 풀어보자. 1956년 11월 29일 오후 2시 서울 소공동 반도호텔 그랜드볼룸. 경쾌한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지자 관객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피아노 연주는 ‘마포종점’ ‘초우’ ‘비 내리는 호남선’ 등 수많은 곡을 히트시킨 젊은 작곡가 박춘석씨가 맡았다. 이어 원피스 코트 앙상블 등을 입은 모델들이 등장했다.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 처음 보는 광경에 시선을 집중했다. 1부가 끝나고 2부에서는 바이올린 선율 속에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나온 여인들의 모습에 관객들은 또다시 흥분했다. 마지막으로 그해 최고의 여배우상을 수상한 조미령씨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천천히 등장했다. 관객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모델들이 나란히 무대에 섰다. 사회자가 “오늘의 주인공 디자이너 노라노!”라고 외쳤다. 그러자 관객들은 기립 박수로 답하며 많은 꽃다발을 주인공에게 안겼다.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열정 하나로 60여년 동안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오롯이 패션 인생을 살아온 디자이너 노라노(84)씨. 그에게는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국내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최초의 해외 유학 디자이너, 최초로 패션쇼를 연 디자이너 등이다. 또한 그의 아버지 노창성은 최초의 방송인이었고 어머니 이옥경 또한 최초의 아나운서였으니 말 그대로 ‘최초’라는 수식어를 연이어 만들어낸 특별한 집안이다. ●“50년대 옷 딸에게 물려줄 것”에 큰 감명 노씨는 요즘 또 하나의 ‘최초’를 준비하고 있다. 1952년 서울 명동에 의상실을 처음 연 후 올해로 6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해 오는 23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강남구 신사동 호림미술관 JNB갤러리에서 ‘Nora Noh의 LA VIE EN ROSE展’(노라노의 장미빛 인생전)이라는 전시회를 연다. 패션계에서는 60년 동안 의상실을 운영하면서 한번도 빠짐없이 계절마다 패션쇼를 하고 60주년 행사를 갖는 디자이너는 세계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라고 의미 부여를 한다. 이번 행사는 지난 세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여배우들과 다양한 분야의 VIP 고객들로부터 증정받은 노씨의 작품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또한 작품을 연도별로 전시해 195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의상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울러 노씨의 작품을 오마주한 현재의 내로라하는 스타일리스트, 포토그래퍼 및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품 등도 다수 참여한다. 이번 전시는 유명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씨 등에 의해 기획됐다. 한국 패션의 뿌리를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준비됐다. 특히 노씨가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 4년 동안 과거의 여배우 등 국내외에서 자신의 옷을 소장한 사람들을 만나 시대별로 인기를 끌었던 의상을 다시 수집해 한곳에 모은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84살이란 나이를 뛰어넘어 영원한 현역으로 살아가는 노씨를 지난 14일 오후 서울 강남의 의상실에서 만났다. 검은 커튼 레이스 재킷 차림이 인상적일 만큼 젊어 보였다. 까만색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원래 흑색이라는 것은 상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성에게는 자주 독립을 상징한다.”며 웃었다. 평생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살아온 자신감을 녹여낸 듯한 옷차림이라고나 할까. 물론 예나 지금이나 자신이 직접 옷을 만들어 입는다. 노씨가 앉은 자리 뒤편에는 하얀 웨딩드레스가 걸려 있었다. 궁금해하자 “1959년 미스 코리아 오현주씨가 미스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베스트 드레서 상을 받을 때의 의상이다.”라면서 “이번 전시에 선보이려고 그대로 재현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전시 얘기부터 나왔다. “젊은 친구들이 (전시를) 하는 거고, 저는 단지 지난 60년 동안 만들었던 옷들을 다시 제공받아 전시장에 건네주는 역할을 할 뿐이지요. (잠시 생각하더니) 사실은 나이 80이 넘게 되자 60년 세월에 대해 뭔가 현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여러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편하고 참 오래 입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50년 전에 제가 만들었던 옷을 아직도 갖고 계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분들에게 보답하는 뜻에서라도 어떤 행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이러한 노씨의 생각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에서 그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50년 전 약혼식 때 옷을 입었던 사람과도 연락이 닿았고 1962년 당시 양단 코트를 가지고 있다는 재미교포에게서도 소식이 왔다. 1950년대에 만든 한복 느낌의 ‘아리랑 드레스’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해외 교포에게는 여러 번 사정해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빌려 오기도 했다. 특히 영화 ‘로마의 휴일’이 유명했을 무렵 배우 엄앵란씨가 즐겨 입었던 오드리 헵번의 원피스나 1960년대 TV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나옥주, 사미자, 윤소정, 정혜선 등 유명 스타들이 드라마를 통해 입었던 의상도 어렵지 않게 제공받았다. 또한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가 부임지에 갈 때 입었던 의상도 기증받았다. “해외에 계신 어떤 분은 아리랑 드레스를 지금도 매년 8·15 때 입고 있으며 죽을 때까지 간직했다가 꼭 딸한테 물려주겠다는 얘기를 해주셔서 너무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두 400벌 정도 모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특색 있는 것 위주로 60벌 정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영화배우, 음악가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분들이 아직도 옷을 갖고 있어 참 고맙더군요. 저도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엄앵란씨가 제 옷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알게 됐습니다(웃음).” ●“옷은 잘 절제된 멋 나와야”가 신념 이어 의상의 시대적 변천사와 관련해 잠시 언급한다. “1950년대는 아시다시피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 되던 시절이었지요. 영화나 연주 의상, 쇼 의상, 창극 의상 등을 제작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유행에 따라갔습니다. 1960년대에는 TV드라마가 생겨나면서 의상 협찬을 통해 제 옷이 대중들에게 다가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성복 시대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여성들의 활동이 많아지면서 투피스 형태의 여성용 정장이 생겨나 인기를 끌었지요.” 노씨는 이 무렵 미국 뉴욕의 고급 백화점 ‘삭스’에 진출해 ‘메이드 인 코리아’ 패션을 해외에 알리기도 했다. 아울러 뉴욕에서의 패션쇼 등을 통해 현지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다. “아마 2000년 봄이었지요. 미 브라운대학 초청으로 강의를 할 때였습니다. 참석자 대부분이 교수였는데 제가 1940년대에 미국에서 패션 공부를 했던 일, 1980년대 뉴욕 7번가에 진출해 한국산 실크를 널리 알리며 외화를 벌어들인 일 등 50년을 한결같이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걸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옷이란 잘 절제된 멋이 나와야 한다는 신념을 강조했더니 다들 많은 박수로 대접을 해주더군요. 특히 50년 외길을 걸어온 점에 아주 놀라워했습니다.” 이때 미국의 패션업계에서는 “노라노는 한국에서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창조한 여인이며 그녀의 디자인은 세계적으로 퍼졌다.”고 높이 평가했다. 노씨는 일제강점기였던 1928년 3월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서 유복한 집안의 차녀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혼자 된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과거에 급제한 뒤 영어 공부를 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 이은의 영어 교사 역할을 맡기도 했다. 아버지는 1927년 초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인 경성방송국을 개국한 공로자이며 일본어를 할 줄 알았던 어머니는 방송국 아나운서로 일하게 됐다. 이처럼 일찍부터 ‘멋을 내는 가풍’의 외가 쪽이나 부모들을 보고 자란 덕분인지 자연스럽게 패션 디자이너의 끼를 타고 났다. ●“놀고먹는다는 것은 죽음 기다리는 것” 경기여고 재학 시절에는 책을 무척 좋아하는 문학 소녀였다. ‘이와나미 문고’라는 일본의 문고판 책은 거의 다 읽다시피 했을 정도다. 그러다 고 3때 일제 징집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결혼했으나 얼마 안 가 이혼하게 되면서 원래의 끼를 살려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됐다. 광복 직후 외환은행 설립을 위해 한국에 온 미국인 스미스의 비서로 일하면서 가끔 각국의 대사들과 장관들이 참석하는 파티를 도울 때 직접 드레스를 만들어 본 것이 계기가 돼 스미스의 추천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됐다. 이후 미국과 한국, 프랑스와 일본 등을 오가며 토종 한국 패션을 세계에 알렸다. 학창 시절 읽었던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에서 주인공 ‘노라’가 집을 떠나 자신의 인생을 찾듯 노씨 역시 ‘노라’라는 이름을 갖고 새 인생을 펼쳤던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60년 동안 쉼 없이 일을 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첫째는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계속했고 둘째는 어떤 목적이나 욕심을 두지 않았으며 사람 만나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울러 “산다는 것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고 놀고먹는다는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도전은 하되 욕심을 버렸기에 오늘날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누군가에 의해 한 단계 한 단계 올라설 것”이라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노라노 디자이너는 본명은 노명자다. 1928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여고를 졸업했다. 1947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프랭크 왜건 테크니컬 칼리지’를 졸업하고 귀국했다. 6·25전쟁이 한창일 때 피난지인 부산에서 쇼 의상 등을 만들었고 1952년 서울 명동에 의상실 ‘노라노의 집’을 열었다. 이후 패션의 중심지 파리로 건너가 ‘아카데미 줄리앙 아트스쿨’에서 수학한 뒤 1956년 서울 반도호텔에서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다. 1966년에는 최초의 기성복 패션쇼를 열었고 1970년부터 1973년까지 파리 프레타포르테 패션쇼에 참가했다. 1974년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이후 매년 계절마다 국내에서 패션쇼를 여는 등 60년 동안 왕성한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주요 수상으로 세계 패션그룹 ‘패션대상’(2000) 등이 있다.
  • 김호정 교수가 들려주는 브람스의 매력

    김호정 교수가 들려주는 브람스의 매력

    16일 밤 12시 35분 KBS1 TV에서 방영되는 ‘클래식오디세이’에서는 첼리스트 김호정을 소개한다. 김호정은 서울대 음대, 잘츠부르크 국립음대, 쾰른 국립음대를 거쳐 코리안심포니 첼로 수석으로 활동하고서 경북대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인 첼리스트. 그는 특별히 브람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브람스가 쓴 첼로 소나타는 평생 딱 두 곡이다. 32세에 첫 번째, 53세에 두 번째 소나타를 썼다. 한창 젊었을 때와 이제 웬만큼 해볼 것은 다 해본 나이에 각각 쓴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곡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경우가 많다. 김호정은 올해 연주 테마로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를 정했다. 4월에 1번을 연주했고, 11월에 2번을 연주한다. 김호정은 첼로의 매력에 대해 “일단 들고 다닐 때 폼이 난다.”는 재미난 대답을 들려준다. 브람스 곡에 대한 설명과 자신의 이해와 감상까지 함께 덧붙였다. ‘내 인생의 클래식’ 코너에는 발라드 가수 최성수가 나온다. 최성수는 최근 한 방송의 오페라 경연 프로그램에 참가할 정도로 원래 꿈은 오페라 가수였다. 좋아하는 가수로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꼽고, 인생에 늘 동행하고 싶은 것으로 오디오와 클래식을 꼽는 이유도 여기 있다. 국내외 오페라 무대에서 주목받는 소프라노 한경미의 얘기도 들려준다. 성악 하면 목소리를 타고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기 쉬운데 한경미는 엄청난 노력으로 한계를 이겨낸 경우다. 매혹적인 목소리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으나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 한스 아이슬러에서 오페라 리트과를 수석 졸업하고, 그 뒤 정식 무대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까지 기울여 온 노력은 유명하다. ‘세계음악여행’ 코너에서는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흐르는 가운데 오스트리아 빈을 찾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2) 청주시 흥덕구 두꺼비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2) 청주시 흥덕구 두꺼비로

    그러고 보면 두꺼비는 늘 우리네 삶과 함께해 왔다. 아들을 업고 있는 아낙을 만나면 흔히 “아이고, 그놈, 떡두꺼비처럼 생겼네.”라는 덕담을 건넸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고사리손을 넣어 흙무덤을 만들고 두드리며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라고 노래불렀다. 뿐인가. 멀지 않던 어느날, TV가 툭 끊기면 아버지는 플래시를 들고 집 뒤로 돌아가 ‘두꺼비집’을 열어 끊어져버린 전기 퓨즈를 다시 연결하곤 했다. 또한 오래된 주당(酒黨)들이라면 ‘두꺼비’라는 말에 이미 조건반사적으로 입가를 스윽 훔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뿐만 아니다. 고전작품 속에서 못된 계모의 심술에 곤혹스러워하는 콩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도 두꺼비였다. 비록 영국의 셰익스피어가 ‘…(생명의) 샘을 더러운 두꺼비가 알을 까는 웅덩이로 만들어 버리다니!’(‘오셀로’ 중 독백)라며 추악함의 화신인 듯 표현하기도 했지만, 우리네 사회에서만큼은 두꺼비는 아주 오랫동안 울퉁불퉁 못생긴 외모와 달리 길복(吉福)의 상징이었다. 두꺼비는 충북 청주시에 이르러 ‘생태의 상징’이자 ‘주민자치의 상징’으로 우뚝 섰다. 느릿하지만 끈질긴 생명과 평화의 가치가 개발과 건설의 논리와 어우러져 살아남을 수 있음을 증명했으며,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마을 공동체와 시민사회의 참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 청주시 흥덕구 두꺼비로와 원흥로 주변은 2007년 새롭게 만들어진 택지 지구다. 6800여 가구에 이르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고, 그 안팎으로 상가가 무수히 생겨났고, 청주지검과 청주지법 등 새로운 공공청사 건물이 자리잡았다. 일종의 신도시인 셈이다. 그 한가운데 두 개의 연못이 있다. 3만 6000㎡ 규모의 원흥이 방죽이다. 원흥이 방죽 뒤편으로는 병풍처렁 구룡산이 늘어서 있다. 해마다 2월 말, 3월 초 즈음이면 구룡산에 사는 두꺼비들이 엉금엉금 기어 내려와 알을 무더기로 낳고 올라간다. 두꺼비 생태공원으로 조성된 것은 2006년이었다. ●어린 두꺼비, 생태통로 따라 구룡산으로 때 이른 여름 날씨 속에 원흥이 방죽을 찾았다. 연못가에는 국수나무, 생강나무, 우산나무, 노랑꽃창포 등이 푸릇푸릇하게 우거져 있었다. 또 연못 위에는 물개구리밥, 마름, 생이가래, 연잎 등으로 뒤덮여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한풀 꺾이는 듯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연못 속에서는 두꺼비 올챙이들이 무리지어 신나게 꼬물거리고 있을 것이다. 청주시 도로명주소를 담당하는 김대석 계장은 “3월 초쯤 알을 낳았으니 아마도 지금쯤 뒷다리가 나와 있을 것이고 5월 초쯤 어린 두꺼비들이 생태 통로를 따라 구룡산으로 줄지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2년 전에는 대모잠자리가 처음으로 발견됐고, 흰뺨검둥오리가 찾아오고, 두꺼비뿐 아니라 금개구리, 청개구리, 참개구리 등 다양한 양서류들이 가득하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 맹꽁이, 가재, 고라니, 새매, 황조롱이 등 20여종의 희귀 조류와 수생 생물들도 서식하고 있다는 자랑도 이어졌다. 원흥이 방죽 옆 원흥로 22번길에 있는 두꺼비생태관은 2009년 개관했다가 지금 한창 내부공사 중이다. 조만간 문을 열면 구룡산과 원흥이 방죽 등의 생태를 더욱 풍성하게 담게 된다. ●주민들 서로 대화하며 ‘2년 투쟁’ 지금이야 이처럼 근사한 곳이 됐지만 많은 곡절을 거쳐야 했다. 원흥이 방죽은 당초 흙으로 메워질 뻔 한 곳이었다. 2003년 3월 한국토지공사가 청주시 산남지구 택지개발공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알을 낳기 위해 원흥이 방죽으로 가는 모습이 지역 주민의 눈에 띄었고, 이곳이 두꺼비 집단 산란지임이 확인되면서 지난한 싸움도 함께 시작됐다. 지역주민들이 중심이 돼 시민대책위원회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듬해 학계, 종교계 등 전문가와 충북지역 시민사회가 함께 결합해 ‘원흥이생명평화회의’를 만들었다. 또한 운동 초기에는 ‘두꺼비가 중요하냐, 사람이 중요하지.’, ‘두꺼비가 밥먹여주냐.’라는 비아냥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주민들은 서로 대화하고 논의하는 법을 스스로 깨쳐갔다. 평범한 주민들의 참여가 뜨거웠기에 시위 방법도 창조적이었다. 도청 앞 60만배, 3보 1배, 원흥이 방죽 인간 사슬로 껴안기, 국정감사 사절단 보내기, 충북도청 껴안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펼쳤다. 처음에는 토지공사와의 다툼이 중심이었던 것이 차츰 즐겁고 유쾌한 운동으로 변화한 것이다. 결국 2004년 11월 원흥이 방죽 원형 보전 등 조성에 합의하며, 토지공사가 택지개발 이익금 중 82억원을 공사비로 책정하는 것으로 갈무리됐다. 폭 20~50m, 길이 200여m의 두꺼비길 4개를 원흥이 방죽과 구룡산 사이에 만들었다. ●‘두꺼비 신문’·100인 원탁회의 만들어 원흥이 방죽이 보전되면서 이로워진 것은 두꺼비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삶이 바뀌었다. 아파트별 다양한 협의체를 만들어 나갔고, 2007년에는 ‘산남두꺼비생태마을 아파트협의회’를 만들었다. 아파트 이웃끼리는 물론 단지를 넘어서까지 협의체를 만든 것이다. 2009년 1월부터는 ‘산남 두꺼비 마을신문’을 창간했다. 지난해 한 아파트는 도색 작업을 새로 하면서 벽면에 아예 자랑스럽게 두꺼비 마을이라고 써붙이고 두꺼비가 이동하는 모습을 디자인해 놓기도 했다. 지난달 24일에는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100인 원탁회의’를 열어 주민참여자치의 깊이를 더했다. 그 결과 환경부는 ‘자연생태복원 우수마을’로 지정했고, 건설교통부는 ‘살고 싶은 도시만들기 시범사업지구’로 선정하기도 했다.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벤치마킹을 하러 오고 있기도 하다. ‘두꺼비 친구들’ 박완희 사무처장은 “단순한 두꺼비 지키기를 뛰어넘어 도시 내 마을 공동체의 복원, 주민자치의 확대 발전 등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부한다.”면서 “올 초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0% 이상이 이 마을에 계속 살고 싶으며 80% 가까이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생태공동체마을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두꺼비로, 원흥로에 있는 식당, 부동산 등 가게 앞에는 ‘두꺼비 생태기금 마련’이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여 놓은 곳들이 많았다. 진짜 길복은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는 과정, 그리고 성과와 책임을 나누는 데 있음을 청주시 두꺼비로가 느릿느릿 보여주고 있다. 청주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3회는 전남 여수 돌산읍 ‘방답길’을 소개합니다.
  • [열린세상]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에 거는 기대/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

    [열린세상]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에 거는 기대/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

    올해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10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방문 동기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쇼핑, 음식, 명소 탐방 등을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 최근에는 한류 붐을 탄 공연 등의 문화예술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 파리는 매년 15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한다. 뉴욕타임스는 파리가 외국인을 끄는 매력 중 하나로 분위기 있는 동네문화를 들었다. 카페, 치즈가게, 빵집, 푸줏간 등이 전통적 영업과 형태로 도시 미관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명 ‘라파랭법’으로 불리는 제도가 대형 유통업체로부터 작은 상점들을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파리의 매력은 누라 뭐라 해도 문화예술이다. 세계 문화의 수도답게 사람들은 문화예술 명소를 순례하듯 다닌다. 파리 체류 당시 필자는 이 도시만의 특별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숨은 명소를 추천해 달라는 지인들의 요청을 종종 받곤 했다. 그때 안내한 곳 중 하나가 자크마르 앙드레 박물관이었다. 이곳은 19세기 은행가이며 미술수집가였던 에두아르 앙드레와 그의 부인 넬리 자크마르의 저택으로 티에폴로의 천장벽화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그림, 18세기 프랑스 회화와 당시 풍요로웠던 귀족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전시와 공연 등 풍성한 볼거리도 있다. 프랑스가 세계문화의 중심이 된 핵심 요소는 세계 각지의 문화예술인들이 몰려들 수 있게끔 그 판을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예술인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미술 분야의 경우 주요 인상파 작가를 제외하면 근현대 미술 사조의 프랑스 작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 프랑스 도처에서 피카소와 고흐의 작품을 만날 수 있지만 이들은 프랑스인이 아니다. 명품 패션분야는 어떤가. 샤넬의 제2전성기를 연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독일 출신이고, 150년이 넘는 전통의 루이뷔통에 새로운 감성을 불어넣어 역시 루이뷔통이라는 찬사를 듣게 한 사람은 뉴욕 출신인 마크 제이컵스였다. 파리 오케스트라의 현 지휘자는 에스토니아 출신의 파보 예르비다. 국립 라디오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은 정명훈씨가 맡고 있다. 이처럼 프랑스 문화예술의 강점은 개방성과 다양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예술인들이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이들을 지원한다. 국적은 의미가 없다. 이들의 창작품은 프랑스에서 전시 공연되고 프랑스에 남으며, 메이드 인 프랑스로 판매된다. 이를 보고 즐기고 사기 위해 전 세계인들이 프랑스를 찾는다. 지금 광주에는 아시아 문화전당 건립이 한창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기념하여 광주를 아시아의 문화중심도시로 만든다는 국책사업의 일환이다. 무려 7000억원이 넘는 재원을 투입하여 2014년 개관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아시아 문화예술의 공연·전시·연구·교육 등의 기능을 포괄하는 복합문화예술기관을 지향하며, 다양한 아시아문화 원형자원을 수집 보존하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아시아 예술커뮤니티를 조성할 것이라고 한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는 아시아뿐 아니라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있는 전 세계 예술인들의 작업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함께 고민하고 작업하며 새로운 문화예술을 창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계적 예술가도 배출되고 이것이 다시 전 세계 예술인을 불러 모으는 동력이 될 것이다. 더불어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도 찾아올 것이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여기에 있다. 프랑스는 복합문화공간인 퐁피두센터 운영재원의 80% 가까이를 국가에서 지원한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사업은 단순히 전당의 건립과 운영에 그치지 않는다. 당연히 전당과 연계한 도시의 문화예술적 환경을 조성하고 문화관광산업도 육성해야 한다. 광주비엔날레가 궤도에 올랐지만 아직도 작품의 유통을 담당하는 변변한 갤러리조차 없고 방문객을 위한 숙박시설도 태부족인 현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현재 아시아 문화중심도시가 지닌 의미는 각별하다. 이를 계기로 광주가 아시아 문화예술을 포용하고 융합하는 거대한 판이자 진정한 중심이 되기를 기대한다.
  • 위안부 추모 우표

    뉴욕한인회가 미국에서 위안부를 추모하는 우표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한창연 뉴욕한인회 회장은 12일(현지시간) “미 연방 우정국과 위안부 추모 우표 발행을 협의하고 있다.”면서 “빠르면 이달 말쯤 논의가 끝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 회장은 “미국 연방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됐기 때문에 발행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 “예정대로 논의가 끝나면 다음 달 중순쯤 위안부 추모 우표가 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표가 발행되면 미국에서 나온 첫 위안부 추모 우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표 디자인은 지난해 8월 뉴욕 퀸즈 커뮤니티칼리지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열린 위안부 추모회에 출품됐던 작품과 위안부 관련 디자이너들의 작품 등 10∼20여 점을 검토해 최종 결정할 계획이라고 뉴욕한인회는 전했다. 우표 발행 매수는 최소 10만 장 이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회장은 또 “미주 지역의 한인 단체 회장들이 힘을 모아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추모비)를 미국 전역에 확대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 연합뉴스
  • “좌파들 애국가 못 부를 이유 있나”- 조지 오웰

    “좌파들 애국가 못 부를 이유 있나”- 조지 오웰

    “애국주의가 보수주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점유되는 것이야말로 천부당만부당. 보통 사람들은 이미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있음에도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말해서 문 앞에까지 온 지지자들을 되돌려 내보내는 좌파의 멍청함이다. 보통 사람들의 “가장 평범한 정서도 이해 못 하는 계몽된 좌파 지식인”보다는 “유니언 잭을 보고 가슴 뛰는 보통 사람”이 되라. ‘존 메이너드 케인스’(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번역 등을 통해 영국 정치 경제사에 대한 수준 높은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 고세훈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교수. 두 사람을 더 다루고 싶다 했다. ‘동물농장’과 ‘1984’로 유명한 세계적인 작가 조지 오웰(1903~1950), 그리고 우리에게 낯설지만 영국 노동당의 핵심 이론가인 리처드 토니(1880~1962)다. 케인스가 현대 세계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면 오늘날 한국의 현실에서 이 두 명의 삶은 참고할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그 가운데 ‘조지 오웰-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한길사 펴냄)가 먼저 나왔다. 타이밍도 기막히다. 진보 논쟁이 한창이라서다. 오웰은 평생 외롭고 가난하게 살았다. “최초의 상업적 성공을 안겨 준 ‘동물농장’의 인세가 밀려들기 시작할 무렵 마지막 소설인 ‘1984’가 거둘 놀라울 성공을 미처 누리지 못한 채” 폐결핵으로 숨졌다. 외롭고 가난한 것보다 오웰을 더 괴롭힌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이해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동물농장’을 반공 우화로만 생각하는 세태에 슬퍼하기도 했다. 물론 소련을 비판한 것은 맞다. 2차대전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스탈린의 패악에 눈감고 심지어 아첨까지 하는 좌파 지식인들을 못 견뎌 했다. “거짓을 말하고 진리를 억압하는 것이 정치적 대의를 진전시키는 길이라는 사고”와 “독재 방식, 비밀경찰, 역사의 체계적 조작을, 자기 편인 한 수용할 태세를 완벽히 갖춘 상태”가 파시즘보다 더 무서운 유럽 위기의 뿌리라 봤다. “히틀러가 책을 불태웠다면 스탈린은 책을 다시 썼다.”는 엄연한 진실을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오웰이 보기에 “좌파 지식인이 스탈린을 숭앙”하는 꼴은 “글래스고 빈민가 아이들이 알 카포네를 숭배”하는 것과 똑같다. 1943년 11월부터 영국 노동당 내 좌파그룹 기관지 ‘트리뷴’에 소련 공산당을 극렬하게 비판하는 칼럼을 쓰는가 하면 소련에 아첨한 지식인들에게 아예 대놓고 “한번 창녀는 영원한 창녀”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1949년에는 소련 공산당의 선전 공세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영국 외무부의 정보조사처(IRD)에다 영국 내 공산당 비밀 당원과 동조자들 35명의 명단을 넘기기도 했다. 이런 전력들 때문에 오웰은 좌파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노동계급을 동경했으나 자신의 출신 성분을 배반할 수 없어 결국 중간계층으로 되돌아갔고 그 뒤 비뚤어진 선입관으로 사회주의를 비난한 배신자로 취급받았다. 그의 생각을 이해해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받쳐주지 않을 때면 그의 글과 책은 늘 인쇄가 미뤄지거나 거부당했다. 후대 좌파에게도 비판 대상이었다. 문화 연구로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문화 이론가 레이먼드 윌리엄스도 오웰을 비판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오웰이 ‘비판자들의 상상 이상으로 더 뿌리 깊은 신념을 지닌 사회주의자’였다고 본다. 실제 오웰은 평생 사회주의 혁명을 염원했다. 결혼 6개월 만에 ‘반(反)파쇼’를 위해 트로츠키 민병대원으로 스페인내전(1936~1939)에 참가, 목에 관통상을 입기도 했다. 전간기와 2차대전을 겪으면서 영국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나는 것이 모든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이라 믿었다. 이를 위해 오웰은 영국 노동자들이 식민지 보유로 인한 이득을 포기하고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하락하는 것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도 산업국가의 모든 좌파 정당은 실제로는 가짜”라는 질타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서구 좌파들에게 ‘노동자 국제 연대 운운하면서 잘난 척 그만하고 식민지부터 먼저 포기해 보시지.’라고 말한 것이다. 저자가 오웰을 두고 “사회주의를 국제적 맥락에서 보려 했던, 제국주의 문제를 정직하게 대면하려 했던 마지막 사회주의자”라고,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정직한 우파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이라면 오웰의 내부 고발 행위에 함부로 박수를 쳐댈 수 없을 것”이라 평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영국 전통에 뿌리 박은 사회주의’에 대한 얘기들이다. 오웰은 거창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남을 깔보는 중간 계급적 우월감이라는 최악의 흔적”을 지닌 좌파 엘리트 지식인들을 경멸했기에 노동자 스스로 결정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윤리적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이는 ‘좌파 애국주의’로 이어진다. 애국주의, 하면 벌써 좌파들은 눈꼬리가 올라간다. 그런 단어는 극우 맹동 세력, 반동분자나 쓰는 말 아니던가. 해서 애국가를 그토록 거부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웰은 “애국주의가 보수주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점유되는 것이야말로 천부당만부당”하다고 말한다. 그가 답답해한 것은 “보통 사람들은 이미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있음에도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말해서 문 앞에까지 온 지지자들을 되돌려 보내는 좌파의 멍청함이다. 보통 사람들의 “가장 평범한 정서도 이해 못 하는 계몽된 좌파 지식인”보다는 “유니언 잭을 보고 가슴 뛰는 보통 사람”이 되라고 주문한다. 6장 ‘좌파 애국주의를 위하여’에 등장하는 “늙은 보수주의자의 뼈 위에 사회주의를 세울 수 있는 가능성”이란 말은 두고두고 음미해 볼 만한 묵직한 표현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붙이자면, 1949년 영국 정부에 공산당 동조자 35명의 명단을 넘긴 사건은 ‘세작질’이 아니다. 오웰은 명단만 넘긴 게 아니라 소련 공산당의 선전 선동에 맞설 수 있는 ‘진정한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을 정부에 적극 추천하기도 했다. 전후 영국에서 미국과 같은 매카시즘 광풍이 몰아닥치지 않은 것은 오웰의 그런 세심한 배려 덕분이었다는 평가는 거기서 나온다. 이 평을 누가 했을까. 바로 크리스토퍼 히친스(1949~2011)다. 추악한 독재자들과 거래했다며 마더 테레사에게 독설을 퍼붓는 등 거칠고 직설적인 화법 때문에 여기저기서 희화화되곤 하는 바로 그 다혈질 좌파 히친스 말이다. 2만 4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대전 “웰컴 투 유성온천”

    대전 “웰컴 투 유성온천”

    대전 유성구가 주한 외교사절 관광홍보 설명회를 연다. 주한 대사 등을 상대로 한 관광설명회는 대전에서 처음이다. 유성구는 12~13일 1박2일 일정으로 20여개국 주한 외교관 40여명을 초청해 관광홍보 설명회를 한다고 10일 밝혔다. 이는 지난 9일 유성온천에서 막을 올려 한창 펼쳐지고 있는 대한민국 온천대축제 행사의 하나다. 초청 대상은 슬로보단 마린코비치 주한 세르비아 대사 부부 및 은고비 키타우 주한 케냐 대사 부부와 독일, 미국, 중국, 이탈리아, 베트남 등의 대사·영사관 간부들이다. 김두진 구 온천관광계장은 “주한 외교 사절을 통해 유성의 온천과 과학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면서 “유성온천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매년 온천축제 때마다 외교 사절을 초청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첫날 생명공학 및 전자통신연구소, 화폐박물관을 견학한다. 온천수 물총 쏘기와 닥터피시 등 체험행사도 즐긴다. 족욕체험장에서 발의 피로를 푼 뒤 저녁 때 인터시티호텔에서 있을 관광홍보 설명회에 참석한다. 설명회는 허태정 구청장이 직접 진행하고 만찬도 곁들인다. 허 구청장은 백제 때부터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성온천의 알칼리성 라듐 온천수를 적극 알릴 계획이다. 둘째 날에는 중앙과학관, 엑스포과학공원, 여진불교미술관 등을 둘러본다. 김 계장은 “숯골냉면과 구즉묵 등도 맛보게 해 유성의 토속 음식을 알리는 데도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8) 경북 의성 사촌리 향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8) 경북 의성 사촌리 향나무

    이 땅에 처음으로 초록 세상을 일군 건 나무였다. 초록의 땅에 들어와 살게 된 사람은 나무가 좋았다. 나무 그늘에 들어서서 여름 뙤약볕을 피했고 비바람 눈보라도 나무 둥치에 기대 이겨냈다. 그래서 사람은 나무 곁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사람은 그 보금자리 앞 마당에 한 그루의 나무를 더 심었고 오래도록 나무를 바라보았다. 나무가 아프면 사람도 아팠고 나무가 쓰러지면 사람의 집도 덩달아 무너앉았다. 사람과 나무와 집은 서로 다른 개체이지만 하나로 연결된 생명체였다. 식물과 동물, 심지어 주변의 모든 무생물까지 아우른 ‘천지만물이 본디 사람과 한 몸’이라는 양명학(陽明學)의 만물일체설이 바로 그것이다. ●유성룡의 외조부, 벼슬 버리고 내려와 심어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서부터 벌써 심상치 않다고 할 만큼근사한 정취가 느껴지는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안동 김씨 만취당파의 집성촌인 이 마을의 랜드마크는 김사원(金士元) 선생이 살던 고택이다. 선생의 호를 그대로 따서 만취당(晩翠堂)이라 이름한 이 집의 대청마루에 앉아 내다보면 하늘 가장자리에 걸리는 아름다운 나무가 있다. 바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107호인 의성 사촌리 향나무다. “내가 향나무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이만큼 좋은 향나무는 그리 많지 않을걸요. 500살이나 된 나무가 젊은 나무 못지않게 싱싱한 데다 잘생기기도 했잖아요.” 나무 그늘에 기대어 자리 잡은 살림집에 사는 김재열(79) 노인은 가만히 선조의 얼이 담긴 나무를 바라보며 느릿느릿 이야기했다. 나무를 심고 애지중지 키운 사람은 김 노인의 방계 13대조인 조선시대 문인 김광수(金光粹, 1468~1563)다. 서애 유성룡의 외조부인 김광수는 연산군 때에 진사 시험에 합격했으나 벼슬살이에 나가지 않고 고향인 이 마을에서 시를 읊으며 평생을 보냈다.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그는 강가에 영귀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짓고 자연에 묻혀 안분자족하는 삶을 살았다. 사촌리 향나무는 500년 전에 그가 손수 심은 여러 나무 가운데 한 그루다. 오래전부터 선비들이 살던 사촌리는 여태까지 전통 가옥을 보존하고 덧붙여 몇 채의 초가를 복원해 옛 전통 선비마을의 분위기가 살아있는 평화로운 곳이다. “옛날에는 아주 큰 마을이었지요. 한창 때 400가구가 넘게 살았는데 지금은 죄다 떠나고 고작 60가구만 남았어요. 천천히 돌아보면 알겠지만 옛 모습은 많이 남아 있어도 지금은 빈집 투성이예요.” 사촌리를 대표하는 만취당 역시 지금은 살림을 하지 않는 문화재로만 남았다. 살아있는 생명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건 만취당의 기와가 도도하게 빚어낸 곡선에 맞닿은 채 당당한 기품으로 서 있는 사촌리 향나무다. ●모진 풍파 이겨내고 하늘로 치솟은 가지 사촌리 향나무는 키가 8m에 불과하고 나뭇가지도 사방으로 3m 정도 펼쳤을 뿐이다. 규모에서 결코 큰 나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옛 선비의 전통과 품격이 남아있는 마을 중심을 지키고 서 있는 나무의 기품은 여느 향나무를 훌쩍 뛰어넘는다. 나무를 스쳐 간 모진 풍파를 이겨낸 자취라도 되듯 나무는 몽실몽실 피어나는 뭉게구름처럼 올망졸망 덩어리를 이뤘다. 굵은 줄기를 중심으로 점잖게 뻗은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이 이룬 덩어리는 하늘로 솟구쳤고 저마다 끝 부분은 뾰족하게 마무리했다. 줄기 곳곳에는 가느다란 가지들을 정성껏 다듬어낸 흔적도 눈에 들어온다. 정원수로 잘 가꾸려 애쓴 옛 사람들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김광수가 살던 당시, 마을의 길가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그 소나무를 좋아한 그는 무시로 소나무 그늘을 찾았다. 더불어 그는 권세와 부귀를 좇지 않으며 소나무 그늘에 머무르는 은자의 삶을 실천하겠다는 생각에서 스스로를 송은(松隱) 처사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새로 심고 키운 한 그루의 나무에는 ‘만년을 살아야 할 소나무’라는 뜻에서 만년송(萬年松)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그가 심은 나무는 사실 향나무다. 자연에 묻혀 자연의 생명을 닮으며 살았던 그에게 향나무와 소나무를 구별하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무처럼 제 본분에 만족하는 안빈낙도의 삶을 살고자 한 그에게 세상의 모든 나무는 하나로 연결된 생명이었을 뿐이다. 평생 자연을 벗했던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일생을 모범으로 삼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천성을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던 그의 가르침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연과 하나 되는 만물일체설의 삶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가 많이 오면 나뭇가지가 조금씩 부러지기도 하고 잎이 떨어져 내 집 지붕에 쌓이지요. 청소가 번거롭기야 하지만 그걸 불편하다고 할 수는 없죠. 그게 다 자랑스러운 선조의 정신을 지키는 일이지요.” 선조들이 가꾸어 온 자연을 더 잘 지키기 위해서 그 정도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김 노인의 느릿한 말투에 사람과 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는 옛 선비의 자연주의 정신이 배어 있다. 선조의 정신을 올곧게 이어가기 위해서는 후손들의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천지만물이 모두 하나이되 그 가운데 사람의 마음이 모든 것을 주관한다는 양명학의 정신에 다가선 지혜를 닮은 생각이다. 노인의 지혜로운 말들이 사뿐히 내려앉은 나무 그늘에서는 무더기로 피어난 파란 빛깔의 제비꽃이 생명의 노래를 외장쳐 부른다. 나무와 하나의 생명체를 이룬 사람의 맑은 마음을 따라 피어난 풀꽃이 빚어낸 선비마을의 늦은 봄 풍경이다. 글 사진 의성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205. 중앙 고속국도의 남안동나들목으로 나가서 3㎞ 가면 나오는 운산교차로에서 우회전하여 의성 방면의 국도 5호선을 이용한다. 1.4㎞ 가면 나오는 교차로에서 고운사 방면의 오른쪽 나들목으로 나가 고가도로 아래로 좌회전한 뒤 다시 우회전하여 4㎞ 남짓 간다. 팽목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2.9㎞ 가면 후평 삼거리에 닿는다. 좌회전하여 4㎞쯤 가면 사촌리 가로숲이 나오고 길가에 주차장이 보인다. 나무는 마을 안쪽에 있으나 주차 공간이 없으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걷는 게 좋다.
  • [10일 TV 하이라이트]

    ●가정의 달 특별기획 아버지 제1편(KBS1 밤 10시) 한 마당에 땅콩처럼 붙어 있는 두 집. 건축가 이현욱씨의 작품이자 현재 거주 중인 집이기도 하다. 이 집을 짓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현욱씨의 아들 한세와 딸 은세 때문이다. 한참 커가는 아이들을 위해 고민하던 현욱씨는 빽빽한 주택가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을 선물하고 싶었다는데…. ●TV소설 사랑아 사랑아(KBS2 오전 9시) 승아는 미대에 진학하겠다는 승희(황선희)는 밀어주면서 가수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은 무시하는 아버지 윤식이 섭섭해서 승희에게 심술을 부린다. 소망병원에 텔레비전이 들어온 것을 핑계로 승아는 태범을 보기 위해 소망병원에 방문한다. 한편 태범은 실수로 승희의 석고상을 깨고 만다. ●스탠바이(MBC 밤 7시 45분) 촬영에 쓰였던 토끼가 동창 하수도를 닮았다는 기우의 말에 날카롭게 구는 석진. 기우 역시 까칠한 석진의 태도에 언짢아한다. 그러던 중 수현과 함께 예능국 탁구대회에 나갈 파트너를 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석진과 기우는 수현의 파트너 자리를 두고 묘한 경쟁을 하게 된다. 한편 시완은 전국 40등으로 성적이 떨어져 낙담한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밤 8시 50분) 인천시 강화도의 어느 마을. 호미질을 하다가도, 밭을 갈다가도 농기구를 응용해 운동을 하는 부부가 있다. 농사 준비로 한창 바쁜 시골 마을에서 남다른 부부애를 과시하는 변강쇠 부부다. 제작진은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가뿐히 농사일을 끝마치고, 헬스장으로 향한다는 부부를 뒤쫓아가 본다. ●헬스 투데이(EBS 오전 6시) 노화가 되면 나잇살이 늘고 근육량이 감소하므로 비만이 오기 쉽다. 이번 시간에는 운동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팔과 다리를 동시에 이용하여 협응력을 기르는 동시에 심폐기능을 돕는 유산소 운동을 배워 본다. 또한 뒤로 팔을 굽혔다가 펴는 팔 근육 강화 운동을 순환하여 배워보고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올리브(OBS 밤 11시 5분) 강성범은 개그코너 ‘형님뉴스’를 진행하던 시절 실제로 형님들 행사에서 러브콜이 많이 왔다고 밝힌다. 한 번은 결혼식 사회를 보던 중 웨딩케이크를 자르려는 상황에서 용감무쌍한 애드리브로, 살아 돌아오지 못할 뻔한 아찔했던 상황을 전한다. 그는 이날의 건강주제 ‘대장암과 대장건강’에 맞춰 대장 내시경검사를 진행한다.
  • 아프간서 홍수로 결혼식 하객 수십 명 사망

    아프가니스탄 북부 살에푸르 지역에서 결혼식으로 한창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던 수 많은 하객들이 갑자기 닥친 홍수를 미처 피하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고 현지 카마프레스가 8일 보도 했다. 현지 조사팀은 겨울철 얼어 있던 눈이 녹으며 불어난 물이 마을과 결혼식장을 덮쳐 수 많은 하객들이 목숨을 잃었다며 이번 사고로 최소 30여명이 사망하고 100여명 이상이 실종 됐다고 밝혔다. 구조팀은 숨진 사람들 대부분이 신랑과 신부 집안의 친척들로 어린이와 여성이 많았으며, 신랑 신부의 생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언론은 수 많은 인명 피해로 지역 사회가 큰 슬픔에 빠졌다고 전했다. 해외통신원 K.라지브 k.rajeev08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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