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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림대과학원 국제학술심포지엄

    12∼13일 한림대 한림과학원(원장 현승종) 주최로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국제학술 심포지엄은 21세기의 한국이 선택할 이념과 정책 및 동북아시대의 한·미·일 3국의 「경쟁과 협조」관계를 집중 조명했다.이번 심포지엄에 참여한 와다 하루키(화전춘수)도쿄대교수와 이정걸중국사회과학원 동구중아연구소 부소장이 각각 「일본의 대한 정책 이념」및 「중국의 대외정책과 한중관계」라는 주제로 발표한 논문을 간추려 본다. ◎전후일본의 대한정책 변화/과거 한반도진출 비판세력 늘어/와다 하루키 일 동경대학교 교수 전후 일본정치의 흐름은 보수와 혁신의 정치조류로 크게 나눌 수 있다.문제는 보수의 내부,혁신의 내부의 차이를 구별하는 일이다. 전후 일본의 보수본류는 요시다 시게루(길전무)가 개척했다.자유당총재로서 총리대신과 외무대신을 각각 5차례 역임한 요시다는 전후 개혁기에서 부터 강화 독립에 이르기까지 일본정부의 중심이었다.요시다는 재일한국인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과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요시다의 보수본류는미일관계의 처리에 모든 주의를 집중한 반면 조선 한국 대만에 대해서는 어떤 반성도 없이 낡은 관념에 기초한 나머지 사무적인 대응을 보였다. 보수방류의 대표는 기시 노부스케(안신개)다.기시는 57년 총리대신과 외무대신을 겸직했으며 59년에는 관방장관이 되었다.기시는 구보타(구보전관일낭)발언을 철회했고 한일회담의 재개에 합의했다.기시는 그러나 재일한국인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한국정부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재일한국인의 북한행을 허가했다.기시에 이르러 보수본류는 경제주의로 경도되었다.그리고 보수본류의 경제주의는 시나 에쓰사부로(추명열삼낭)의 아시아주의와 결부해 한일회담을 타결시켰다. 보수본류측에서 생겨나고 있는 흐름을 주도하는 사람으로는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전총리대신을 들 수 있다.미야자와는 82년 관방장관으로 있을 때 일본의 교과서문제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비판에 대한 담화에서 「반성과 결의」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썼다.종군위안부에 대한 문제도 미야자와내각에서 비로소 제기됐다.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는 총리대신이 된 뒤 최초의 기자회견에서 「침략전쟁」,「잘못된 전쟁」이라고 발언했다.호소카와는 곧 좌절했으나 그의 위치는 신보수 리버럴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는 또 다른 신보수의 흐름을 대표한다.오자와는 33년에 낸 「일본개조계획」에서 「보통국가가 되자」라는 슬로건을 주창했다.여기에 대해 신당 사키가케(선구)를 창당한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는 일본은 어디까지나 비군사적인 형태로 국제사회에 공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보수적 지식인 가운데서도 도쿄대 문학부장과 총장을 역임한 하야시 겐타로(임건태낭)와 교토대교수를 지낸 이노키 마사미치(저목정도)처럼 과거 일본의 진출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중국 대외정책과 한중관계/선린우호관계 개혁추진에 큰 도움/이정걸 중 사회과학원 부소장 중국의 대외정책은 일정한 이론에 의해 지도돼왔다.이 이론은 중국 지도층의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과 국가이익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결정됐다. 중국의 대외정책은 50년대에는 좌익 일변도의 정책이었고 60년대는 반미반소 정책,70년대는 범세계적 반소 통일정책,80년대이후에는 각국 자주독립 평화 외교정책으로 발전돼왔다. 50년대 중국의 대외정책 이론은 소련을 우두머리로 하는 사회주의 진영의 이익과 승리만을 위한 정책노선이었다. 중국은 이에 따라 50년대초 조선전쟁에 지원군을 파견했으며 이는 자신의 안전 확보는 물론 미국의 「전쟁정책과 침략정책」을 반대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중국의 이같은 정책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련패권주의에 반대한다는 기치 아래 제3세계와 함께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으로 전환됐다. 당시 중국은 한국을 제3세계로 분류했으나 조선반도의 특수한 정세와 한국·대만간 외교관계 때문에 양국관계는 정상화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새로운 외교노선이 수립된 이후 중국의 한국에 대한 적개심은 분명히 감소되기 시작했고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견해도 변화되기 시작했다. 중국은 80년대들어 다시 대외정책을 조정,중국 외교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국내의 개혁과 발전을 위해 국제환경특히 주변환경을 평화스럽고 안정되게 창조하고,사회제도나 이데올로기의 같고 다름을 이유로 우적관계를 논하지 않으며,평화공존의 원칙위에서 모든 국가와 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키고,자본주의가 발달한 국가가 이룩해낸 모든 선진문명의 결과를 흡수·이용하는데 적극적인 입장을 취한다」는데 두었다. 이제 한국이 중국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살펴보면 최소한 다음 3가지를 확언할 수 있다. 첫째 한국은 중국의 중요한 인접국이기 때문에 양국이 선린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국으로 하여금 국내개혁을 도모하고 평화적이고 안정된 주변환경을 조성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두번째는 한국은 신흥공업국가로서 경제·과학기술상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중국의 대외개방추진에 있어 중요한 합작대상이 되고 마지막으로 한국의 문화·역사·전통등이 중국과 유사해 한국 현대화의 성공은 중국에 특수한 귀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중양국이 선린우호관계와 상호협력관계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전망에는 전혀 변화가 없을것이다.
  • 온건 강석주 배제…평양태도“경화”/북은 격낮춘 북경회담 왜제의했나

    ◎새상황 조성… 시간끌며 추가양보 노려/북권부내 암투… 강경파 득세 가능성도 북한이 11일 불쑥 「갈루치­강석주」 미·북 고위급 회담의 격을 한단계 낮춰 북경에서 개최하자는 의외의 제의를 해와 그 저의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왜냐하면 그들은 줄곳 미­북 접촉의 격을 높여 정치성을 강화하려 애써왔기 때문이다. 북한이 격을 낮춰가며 협상대표를 바꾼 이유는 1차적으로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의 북한 권력구조내 위상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강석주는 북한내에서는 외교부를 대표하는 「비둘기파」로 알려져 있다.이 때문에 강경 군부세력에게는 배척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지난해 10월21일 제네바에서 미·북합의문을 만들어낼 당시 강석주가 「한국형 경수로」를 사실상 받아들이고도 평양에는 뉴앙스가 다르게 보고한것이 뒤늦게 확인돼 거세됐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여하튼 강석주 배제는 경수로 협상에 임하는 북측 태도가 경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미·북 협상은 보다 시간을 끌면서 난항을 겪게될 것으로 전망된다. 갈루치 미핵대사는 방한중이던 10일 우리정부의 고위당국자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은 자신들이 핵연료를 재장전하더라도 협상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오판하고 있는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 권부내에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이들 강경파는 협상을 질질 끌면서 연료봉을 재장전하겠다고 위협,한반도에 긴장감을 고조시켜 ▲중유의 조기공급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추가 완화 ▲송·배전시설등 추가지원등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오판하는것 같다는게 정부 당국자들의 분석이다. 그 과정에서 「허바드­김계관」라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 주목된다.「갈루치­강석주」라인은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가 어려워질때마다 긴장을 푸는 「핫라인」의 역할을 해왔다. 북한측이 기습적으로 협상대표의 격을 「준고위급」으로 낮춘 또다른 속셈으로는 한·미·일 3국의 경수로 전략을 흔들어 보자는 것일수도 있다는지적이다.정부의 한 관계자는 3국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을 불러와 혼선을 일으켜보자는 의도로 보인다는 것이다.협상이 어려운 고비에 처할때면 새로운 제의를 내놓아 상대방을 교란하는것이 북한의 협상전술이라는 것이다.정부는 북한측 의도를 여러각도로 면밀히 분석하면서도 협상국면만은 계속 유지하기 위해 일단 유연한 대응을 하기로 했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경수로 지원」 한국주도는 불변”/나 부총리가 말하는 북핵대응/“북서 수용땐 「한국형」 표현엔 신축성/10억달러 추가지원 검토한 적 없다” 11일 정부는 북한핵문제를 둘러싼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대북 경수로 지원 과정에서 한국의 중심적 역할은 우리측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마지노선임을 확인한 것이다. 나웅배 통일부총리는 이날 상오 이례적으로 기자실에 들러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이 체결하는 경수로 공급협정에는 한국형과 한국의 중심적 역할이 반드시 명기돼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못박았다.이는 전날 열린 한·미·일 3국 전략회의 이후 나온,한국형 경수로 명칭을 양보할 수도 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명백히 부인한 것이다. 사실 10일 3자회의를 마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의 발표문에는 우리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 온 「한국표준형」이라는 문구가 빠졌다.그 대신 「KEDO에 의해 제공되는 경수로」로 표현하는 바람에 마치 한국형을 양보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11일 나부총리나 공노명 외무장관 등 주요 당국자들은 기존 방침이 불변임을 강조했다.표현이 바뀐 것은 북­미 고위급회담 재개를 앞두고 한국형에 대해 「트로이의 목마」라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는 북한을 굳이 자극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해명이다. 다시 말해 KEDO 설립협정문에 명기된 대로 결국 한국형경수로를 북한에 제공한다는 의미일 뿐이라는 얘기다.지난 3월 뉴욕에서 서명·발효된 KEDO 협정은 그 설립목적에서 『KEDO는 약 1천메가와트 용량의 한국 표준형 원자로 2기로 구성되는 대북한 경수로 지원사업의 재원조달과 공급 및 대북한 대체 에너지 공급을 위해 설립된다』고 밝히고 있다.나아가 이 협정은 KEDO가 북한과 경수로 공급협정 등을 체결토록 규정하고 있다. 요컨대 현재로선 우리측으로선 2가지 장치를 통해서 한국의 중심적 역할이 확보돼야 한다는 게 불변의 입장이다.즉 KEDO가 북한과 체결할 공급협정에 「울진 3·4호기를 참조모델로 한다」는 점이 명기되어야 하고,주계약자도 우리측 한전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나부총리 등 당국자들은 『북한이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수용하다면 (경수로 노형의)표현법에 대해선 신축적인 검토가 가능하다』며 여운을 남기고 있다. 다음은 11일 나 부총리의 일문입답 요지. ­한·미·일 공동 언론발표문에 한국형 경수로가 명시되지 않았는데… ▲KEDO에 의해 제공되는 경수로는 당연히 한국형을 의미한다.참조발전소로 한국형이 명기되고 우리가 중심적 역할을 하는 주계약자가 되는 것이다. ­내용이 한국형이면 명칭은 양보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공급협정상 참조발전소로 울진 3·4호기가명기되어야 한다.그리고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10억달러 대북 추가지원은 검토한 바 없다.북한이 한국형을 받아들인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 아닌가.한국의 중심적 역할이 보장된다면 표현법은 신축적으로 검토할 수도 있다. ­한·미·일 공동발표문에서 「성의있는 공동노력」을 계속키로 했다는데. ▲북한이 한국형경수로와 우리의 중심적 역할을 받아들이고 핵동결을 유지한다면 중유제공과 제네바에서 제기된 문제에 관해 호의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신축성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경수로 문제 이외에 연락사무소 개설과 평화협정 등의 문제도 논의될 수 있는 것인지. ▲평화협정 전환문제는 남북 당사자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며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다를 사안이 아니다.미국측도 이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 등이후 한·중 협력의 긴요성(사설)

    한·중 우호협력관계가 착실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김영삼 대통령 방중과 이붕 총리 방한에 이어 이홍구 총리가 중국을 방문중이다.강택민 중국공산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첫 방한도 확정되었다.수교전 이붕총리는 「물이 흐르면 개울이 생긴다」(수도거성)고 한 적이 있지만 지도자들의 빈번한 교류가 양국관계의 꾸준한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홍구총리 방중은 양국 관계가 경제협력차원을 넘어 정치·외교·군사협력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한반도 정전체제의 존속에 대한 중국의 확고한 지지를 확인받았으며 고위장성을 포함하는 군사교류의 실질적 확대 합의도 이루어졌다.한국의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지지약속을 받았으며 원자력공동위 설치도 합의했다. 단순한 우호협력차원을 넘는 양국 관계의 긴밀화를 보여준다.남북 등거리에서 한국 근거리로 다가오는 중국을 느끼게 한다.이붕총리도 지적했듯이 한중 관계는 바야흐로 최적의 시기에 돌입했다고 할 수 있다.중국의 북한특파원 추방과 국경경비강화,북한의 중국어선 나포 및 대만전세기 평양취항 등 사사건건 부딪치는 최근의 북중 관계의 소원함과는 대조적이다. 중국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존재다.작년 교역량 1백17억2천만달러에 한국기업의 대중투자가 4천5백40건 39억8천8백만달러에 달하고 있는 경제관계 때문만은 아니다.물론 중국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우리 경제파트너가 될 것이 틀림없지만 통일안보 차원에서도 우리는 중국의 협조를 필요로 한다.중국을 우리 통일의 후원자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중국은 한반도 안보통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평화와 안정은 한반도의 그것과도 직결된다.그런 점에서 중국의 평화와 안정은 우리의 중대 관심사이기도 하다.등소평이후의 중국도 현재와 같은 평화와 안정을 누리는 동시에 한중협력도 더욱더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나가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 신화통신사장 접견/김 대통령

    김영삼대통령은 9일 상오 청와대에서 아·태 통신사기구(OANA)제16차 이사회에 참석하려 방한중인 곽초인중국신화통신사 사장과 만나 『북한은 핵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형 원자로를 받아들이고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인정하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똑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라면서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 중감위활동 계속 수행/파·스위스·스웨덴대표 3개항 합의

    중립국감독위 북측대표인 폴란드와 유엔측 중감위대표인 스위스·스웨덴등 3개국 대표단은 4일 북한의 정전체제 와해기도에도 불구하고 정전협정에 따른 중감위활동을 계속 펼쳐나가기로 결의했다. 국방부 초청으로 방한중인 폴란드 중감위대표인 크리스토프 옵차렉소장을 비롯한 이들 대표단은 이날 서울 주한미군영내 유엔사령부 군사정전위 비서처 회의실에서 긴급회의를 갖고 이같은 내용이 담긴 3개항의 공동결의문을 채택했다. 결의문은 ▲북한의 강제축출조치로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철수한 폴란드대표단은 일단 바르샤바에서 중감위활동을 계속하고 ▲중감위는 폴란드대표가 불참한 상태에서는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으며 ▲폴란드대표는 앞으로 3개월마다 또는 필요시 한국을 방문,중감위회의에 참석한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 이들은 또한 북한의 강압에 의해 폴란드대표단이 지난 2월 북한에서 철수했으나 북한의 이같은 조치는 명백한 정전협정위반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들은 이같은 내용의 결의문을 5일중 군사정전위 유엔측 수석대표인 황원탁 소장과 북한측에 전달키로 했다. ◎북 중감위 일방폐쇄/정전협정 위반행위/유엔사 경고 주한 유엔군사령부는 4일 북한이 판문점 북측지역 중립국감독위 사무실을 봉쇄한데 대해 성명을 발표,『이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정전협정의 토대를 허물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분명한 정전협정 위반행위』라고 경고했다. ◎정전협정 무효화 책동/정부 “즉각 중지” 촉구 정부는 4일 최근 북한의 중립국감독위 해체기도와 관련,통일원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정전협정 무효화 책동을 즉각 중지하라』고 북한측에 촉구했다. 통일원 김경웅대변인은 이날 전날 북측이 이른바 「인민군 판문점대표부」의 성명으로 중감위 사무실 폐쇄조치를 발표한데 대해 『이는 현 정전협정을 무효화시키고 그들이 말하는 평화보장체제를 북·미간에 교섭해 보려는 의도를 나타낸 것』이라고 논평했다.
  • 중립국감독위 활동재개/파대표단,4일 스위스·스웨덴 대표단의 본회의

    ◎판문점서 북한이 폴란드 대표단을 강제축출함에 따라 중지됐던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활동이 폴란드측 대표단이 오는 4일 판문점에서 스위스 스웨덴등 남한측 중립국감독위 대표단과 본회의를 가질 예정이어서 사실상 재개된다. 국방부 초청으로 방한중인 크리스토프 옵차렉 소장등 폴란드 대표단은 이에 앞서 1일 하오 판문점을 방문,스위스 스웨덴 대표단과 공동으로 주한 유엔사령부 직원 50명을 상대로 강연하는등 감독위 활동에 들어갔다. 폴란드 대표단은 4일 양측 대표가 모두 참석하는 대표급 본회담에서 감독위 활동을 본격화하기 위한 방안을 집중 논의한다. 폴란드 대표단의 판문점 방문은 중립국 감독위를 가동,북한측이 무력화시키려는 정전체제의 틀을 지키려는 폴란드 정부의 노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외무부와 국방부 당국자에 따르면 4일 열리는 감독위 본회의에서는 옵차렉 소장등 폴란드 대표단이 대표 사무실을 판문점 남측지역에 두는 문제를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중립국 감독위 활동은 북한측이 지난 2월28일 폴란드 대표단를 강제 퇴거시킴으로써 본회의 활동이 일시 중지돼 왔다.
  • 중 광케이블 건설 등 5개 사업/경협기금 7천만달러 지원

    정부는 중국이 추진하는 호남성 광케이블 건설사업 등 5개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7천만달러 정도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원조해 줄 방침이다. 20일 재정경제원은 중국이 올해 EDCF 자금 지원을 요청해 온 9개 사업,9천4백50만달러에 대한 심사를 벌인 결과 5개 사업에 7천4백만달러를 원조해 주기로 잠정 결정했다고 밝혔다. 재경원이 현재 중국에 원조 방침을 정하고 협의를 벌이는 사업은 중국 호남성 14개 도시에 8천7백60㎞의 광통신선을 매설하는 사업으로 중국은 3천만달러의 원조를 요청해 놓았다. 이밖에 정부가 자금지원을 추진하는 사업은 산동성 청도 고가도로 건설사업(2천만달러)과 요령성 한중 국제교류센터 건설사업(5백만달러),길림성 연길 상수도사업(9백만달러),광서 장족자치구 북해항 확장공사사업(1천만달러) 등이다.
  • 도무오이 서기장 방한 수행/구엔만 캄 베트남 외무

    ◎원자력분야 등 협력 적극 모색/「북핵」 세계평화 측면서 해결을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입니다』 도 무오이 서기장을 수행,방한중인 구엔 만 캄 베트남 외무부장관은 13일 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두나라간에는 분명히 불행한 과거가 있지만,서로가 진심으로 협력관계를 정립해가면 과거를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월남전 참전 사실을 양국 정부는 어떻게 정리했나.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현재와 미래 속에서 살고자하는 신념이 있어왔다.사람들의 가슴속에 불쾌한 추억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좋은 현실을 통해 극복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경제성장의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평가해달라. ▲기본적으로 긍정적으로 본다.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한국이 이처럼 발전을 했겠는가.정치적 측면에서의 지도력과 경제관리들의 운용이 효과적이었다고 본다.다만 한국이 개발과정에서 겪은 부정적,손실적인 경험도 우리에게 소개해주기 바란다.한국의 개발경험을 베트남의 실정에 맞게 도입하고자 한다. ­한·베트남 간의 원자력 협력방안은. ▲베트남도 성장의 과정에서 반드시 원자력이 필요하다고 예상된다.또 한국이 이 분야에서 큰 성공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실무선에서 이 문제에 대한 토의가 계속될 것이다. ­북한핵 문제에 대한 입장은. ▲최근 이 문제 해결을 위한 긍정적인 진전이 있었다고 본다.관련측들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도 합리적으로 해결해나가기를 기대한다. ­한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노력에 대한 의견은.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캄 장관은 회견도중 10여차례나 『한국측의 따뜻한 환영에 감사한다』고 말하고 『이번 방한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자
  • “경수로자금 한국서 지원 거부땐 미도 비용부담 못한다”

    ◎롭 미의원 “한국형 한미 이견없어” 방한중인 찰스 롭 미국 상원의원은 10일 『북한에 제공되는 경수로는 한국형이어야 하고,지원과정에서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 한·미 정부와 미 의회의 공통된 의견이며,이에 대해 한·미간에 이견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의 동아시아태평양소위 민주당측 간사인 롭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제네바 북­미 합의는 한국형의 제공을 정확히 명시하고 있으며,그 외에 다른 대안이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롭 의원은 『미 의회가 전세계적인 군사지원을 줄여야 한다고 행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지만,한반도에서 미군전력을 감축하라는 압력은 한번도 없었다』고 밝히고 『방한중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을 만나본 결과 한·미간의 군사관계는 상호 바람직하게 유지되고 있으며,전쟁억지력도 완벽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롭 의원은 이어 『북한이 핵시설을 재가동할 조짐은 아직 없다』면서 『궁극적으로 제네바 합의는 이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롭 의원은 『제네바 합의에 따라 다른 이행사항과 함께 남북대화가 진전돼야 하며,미 상하 양원은 이를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만장일치로 통과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롭 의원은 그러나 한국이 재정부담을 하지 않을 경우 미국정부가 부담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 김 대통령,블릭스 접견/남북 비핵화 협조 당부

    김영삼 대통령은 8일 상오 청와대에서 방한중인 한스 블릭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만나 동북아정세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IAEA가 추진중인 핵안전조치의 강화방안(일명 「93+2」계획)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는 물론 남북한 비핵화실현을 위해서도 IAEA가 공정한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 한중 등 13개 공기업 연내 민영화/11사는 일부 처분

    ◎한국통신 하반기 매각·상장 올해 국민은행 등 13개 공기업을 민영화하며 한국통신 등 11개 기업의 경우 정부지분을 일부 매각한다. 특히 정부지분(14%,액면가 2천15억원)의 시가가 1조4천억원 정도로 추정되는 한국통신의 매각방안은 재정경제원 등 관계부처들로 실무작업반을 구성해 4월말까지 확정,하반기에 매각해 상장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 7일 제6차 민영화추진 대책위원회(위원장 이석채 재경원차관)를 열고 공공부문의 생산성향상을 위해 공기업의 민영화계획을 착실히 추진하되 매각물량이 많은 경우는 증시와 통화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키로 했다. 국민은행과 외환은행 등 작년부터 추진해 온 9개사 이외에 가스공사·한국중공업·남해화학·한국신화의 민영화를 올해 새로 추진하고 이중 가스공사와 한국중공업은 각각 오는 7월과 6월까지 나올 연구기관의 용역 결과를 토대로 민영화에 관한 정부방침을 정한다. 정부지분을 매각하는 공기업은 이미 추진중인 이동통신 등 9개 기업 외에 한국통신과 대우중공업을 올해 추가하며,석탄공사와 광업진흥공사의 통합도 마무리한다.
  • 방중 최창윤 이사장 오학겸 부주석 명담/통상·교류확대 논의

    【북경 연합】 최창윤 한국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은 6일 하오 북경 조어대에서 오학겸 중국 전국 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과 한시간동안 면담,한중 양국간의 외교,통상,문화교류의 확대방안을 협의했다. 최이사장은 김철수 전 상공장관의 WTO 사무차장직 내정 사실을 설명하고 한국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진출과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유치계획과 관련,중국정부의 외교적 지원을 요청했다.
  • 항일투사들의 유택(두만강 7백리:7)

    ◎나철·김교헌·서일 선생 묘 새 단장/강양안 마을마다 혁명열사비 우뚝 솟아/한·중수교후 관심 높아져… 모국이장 한창 연길시 사수에서 북쪽 골짜기로 20리가량 올라가노라면 금불동이라는 마을이 있다.이 마을이 등지고 있는 산기슭을 따라 올라가면 자그마한 소나무숲이 나오는데 그안에 유달리 깨끗이 가꾼 묘소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이 묘지속에 누워 있는 사람의 이름을 모른다.누구도 그가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디서 왔으며 부모가 누구인지도 알길이 없다.다만 숨을 거둘 당시 19살이라는 것과 조선족 항일독립군 젊은 전사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마을에서 연세가 높은 이상헌(79)노인은 그 무명의 젊은 전사가 꽃다운 나이에 죽어간 정황을 소상히 기억했다. 『꼭 쉰 일곱해전 일입네다.뒷산에서 드문이 총소리가 들려오더니만 일본놈들과 자위단들이 어린애 같이 앳된 새파란 청년을 끌고 마을로 들어왔디요.그 놈들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내다 보는 앞에서 청년을 신문합데다.이름을 물으니까 「항일독립군」이라고만 기래요.그 날 왜놈 장교의 군도에 목이 잘려 죽고 말았디요.하도 기막히고 딱해서 유체를 마을 사람들이 묻어주었댔습네다』 ○무명열사 묘지는 쓸쓸 두만강 양안 마을마다 양지 바른 언덕위에는 혁명열사비가 세워졌지만 산 언덕 공동묘지에 임자 없이 쓸쓸히 있는 독립투사들의 묘지는 풍우의 시달림에 자취를 잃었거나 훼손되어 가고 있다.용정시 삼합진 안미대골로 얼마간 들어 가다가 화선 누비골에 있는 묘지앞에는 돌비석 하나가 쓸쓸히 서 있었다고 한다.비석에는 김병덕 지묘라고 씌어있었다.부근 마을 사람들은 독립군 대장의 묘라고 했다.똑같은 항일투사의 묘지이다.하지만 계급투쟁 세월에 그 누군들 감히 돌볼 수가 있었으랴.몇해전 김병덕의 묘지는 파엎어졌고 대리석 비석도 도난을 당했다.오소리가 묘지에 굴을 뚫고 보금자리를 꾸민 것을 발견한 부근의 사람이 묘를 헤치고 오소리를 잡아냈다. 그러나 사회주의 계열 항일열사들의 시신은 일찍 북한으로 이장되었다.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한때 친선을 다졌던 터이라 이장이 쉬워 1950년대말에서 60년대 사이에 시신이라도 두만강을 건넜다.이에 비해 한국에 가까운 연고를 둔 항일열사들은 상대적으로 대접이 소홀했다.특히 문화대혁명 당시 항일유적이나 열사들의 묘소가 큰 수모를 겪었다.한중수교가 이루어지고 광복 50주년을 맞는 오늘날은 사정이 달라져 항일열사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그 넋이라도 살아서 가장 슬퍼하다가 다시 기뻐했을 열사가 있다면 나철,김교헌,서일 선생일 것이다.한국 대종교의 3종사로,또 항일독립운동가로 추앙받는 이들의 묘소는 화룡시 삼도구 청호촌에 있다.지금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가 항일역사유적지로 지정한데다 한국의 대종교가 묘역을 정화했기 때문에 제법 볼품이 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청산리전투를 총지휘 이 묘역은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 패거리와 추종자들에 의해 쑥대밭이 되는 수난을 겪었다.비석을 모두 내동댕이 쳐서 청호촌 마을 사람들이 가져다 댓돌로 쓸 정도였다.문화혁명이 가시고 뜻있는 사람들이 묘비석을 찾아내 세웠지만 김교헌선생의 묘비는 끝내 못찾았다.그래서 몇해전에 묘비를 새로 만들어 세웠다.대종교는 독립군조직 서로군정서를 만드는데 주역을 담당했고 서안선생은 그 총재로 1920년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도자였다. 지금은 일본인들까지 유골을 찾으려 두만강변의 연변땅을 방문하고 있다.물론 침략자로 두만강을 건넜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다.얼마전에 한 일본 여인이 용정시 백금향으로 와서 자기의 오빠 묘를 찾았다.묘지 자리를 상세히 그린 지도까지 들고 온 일본 여인을 마을 노인들이 안내했다.묘가 있었다는 장소는 본래 일본 삼림경찰의 묘역이었다.1940년 홍기하 전투에서 겨우 살아남은 일본경찰은 둘 뿐이었다는데 목숨을 살려 평정대 마을까지 이르렀다가 그중 하나가 병으로 죽어 그곳에 묘를 썼던 것이다.그런데 봉분이 사라져서 어방으로 묘자리가 짐작은 가도 딱 짚을 수는 없었다. 독립군 김덕형의사는 웅진,나진 등 두만강 연안의 조선을 다니며 군자금을 모았던 사람이다.1921년 경술년 토벌 때 어느날 저녁 군자금을 가지고 두만강을 건너 북흥에 있는 집으로 들어 왔다가 일본군 토벌대의 포위에 걸려희생되었다.그가 죽은 후 식구들은 군자금을 독립군에 전달할 수 없었다.많은 액수의 군자금은 그 집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다.김덕형의 아들 두 형제는 시름없이 공부를 하였다.광복이 나고 1947년 토지개혁을 하게 되자 생활이 유족했던 그 일가는 청산을 당해 러시아제 금장표 재봉틀마저 빼앗겼다.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던 재봉틀은 얼마전에 고장이 나서 고철로 팔아버렸다.그집 큰 아들은 북한에 들어가 죽고 작은 아들 김성록은 지금 한국에 산다.6·26전쟁 때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혀 북한에 온 김성록은 중국의용군으로 참전했던 북흥의 조선족 친구가 만난 일도 있다.그는 한국군 대좌(대령)군함(계급장)을 달고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정부 보훈처에서는 연변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안화춘 선생의 도움으로 중국내 애국선열들의 묘소를 이장하고 있다.안화춘 선생은 갖은 노고를 아끼지 않고 이 땅을 메주 밟듯 하고 다닌다.이번 두만강 답사길에서 연변 도처에서 희생된 선열들의 자취를 잡을 수 있었다.조창렬노인이 들려준 경신년 대토벌 당시 상황도 그 한토막이다. ○선열들 발자취 곳곳에 부암동에서 독립군 한창준과 이씨가 체포되어 불에 타 죽었댔습니다.시체를 감장하려니 누가 누구인지 가릴 수가 없었디요.일제 놈들은 의병대장 최덕균과 남상윤(남풍수로 불림)선생도 모진 고문을 했다고 기래요.눈에다가 고춧물을 부어 넣고 신문을 했으니끼리 죽을 수 밖에….』 선열들의 비장한 최후는 눈물 없이는 들을수 없었고 일제와 주구들의 만행은 의분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가 흔히 북간도라고 부르는 독립운동의 무대 연변은 이렇듯 많은 항일투쟁의 사연을 안고 있다.나는 옛 용정 대성중학교(현재 용정시 제2중학교)앞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에 새겨진 시 한구절을 머리에 떠올려 보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무수한 선열들처럼 죽는 그 순간까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시련이 아닐 수 없다.
  • 경수로협상 안풀려도/일,북과 수교교섭 재개/정부당국자 관측

    일본정부는 북한이 한국형경수로를 받아들이지 않는등 경수로문제가 진전이 없더라도 북한과의 수교교섭재개에 나설 것으로 3일 알려졌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일­북 수교교섭 재개와 경수로 공급협정체결 연계문제와 관련,『일­북한 수교교섭이 시작되더라도 경수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협상진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경수로문제가 풀리지 않아도 일­북 수교협상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며,정부로서는 이를 막을 방도가 없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한편 방한중인 오부치 게이조(소연혜삼) 일본자민당 부총재는 이날 롯데호텔에서 공로명외무장관과 만나 향후 일­북 수교교섭 추진문제에 대해 『북­미 제네바합의 이행상황과 한­미 우호관계를 고려해 북한과의 수교교섭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한국,불가리아 「민영화」 참여/조선·전자 합작… EU 공동진출

    ◎김 대통령·젤레프 정상회담 김영삼 대통령은 3일 상오 청와대에서 국빈자격으로 우리나라에 온 불가리아의 젤류 젤레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불가리아 국영기업의 민영화에 한국기업이 적극 참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두 정상은 두나라의 관계가 짧은 수교역사에도 불구하고 여러방면에 걸쳐 우호협력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음에 만족을 표시하고 앞으로 신뢰와 우의를 바탕으로 한 실질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이날 회담에서 젤레프대통령은 불가리아 국영기업의 민영화에 한국기업의 참여를 희망했으며 김대통령은 민간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불가리아 국영기업의 민영화작업이 한국기업의 참여아래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두나라 기업의 유럽연합(EU)시장 공동진출도 추진하기로 했다. 젤레프 대통령은 특히 한국기업과의 조선·전자·화학 분야에서의 합작을 강력히 희망했다. 두 대통령은 두 나라의 교류협력 증대방안의 하나로 우선 문화교류에 관한합의서를 두 나라 문화부장관들이 만들도록 했다. 이에 따라 서울과 소피아대학 사이에 예술인의 교류가 이뤄지고 서울에서 불가리아 주간행사,소피아에서는 한국주간행사가 추진된다. 김대통령은 한국과 동구권 국가와의 관계강화에 관심을 표명하고 북한핵 문제의 해결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설명했다. 젤레프대통령은 이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한 뒤 한국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월드컵대회 유치에 대해서도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젤레프대통령은 또 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관계를 강화하려는 불가리아 정부의 방침을 설명하고 국제무대에서 두 나라의 협력관계가 강화되기를 희망했으며 김대통령은 불가리아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다짐했다. 젤레프대통령은 정상회담이 끝난 뒤 경제단체장들이 서울 롯데호텔에서 공동주최한 오찬에 참석한 데 이어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을 시찰했으며 이날 저녁에는 김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개최한 국빈환영만찬에 참석했다. ◎문화협력계획 서명 주돈식 문화체육부장관과 방한중인 게오르기 코스토프 불가리아 문화부장관은 3일 하오 문체부 회의실에서 양국간의 문화협력시행계획서를 체결했다.
  • 동구 「시장경제화」 지원확대(사설)

    김영삼 대통령과 방한중인 젤류 젤레프 불가리아대통령과의 3일 청와대정상회담은 우리나라 대통령이 금년들어서만 구동구권 국가와 가진 두번째 정상회담이다.김대통령이 지난 3월초 유럽연합(EU) 순방길에 체코에 들러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인 것이다.석달동안 두번이나 우리 대통령이 구동구권과 정상회담을 가졌다는 것은 역사의 변화를 새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우리 외교의 지평이 얼마나 넓어졌는가를 내외에 과시하는 것이고 세상이 얼마나 좁아졌는가를 동시에 상기시켜주고 있다.이번 정상회담에서 양정상은 불가리아 국영기업의 민영화에 한국기업이 적극 참여토록 합의했으며 조선·전자·화학분야등에서도 양국이 합작을 추진,EU등에 공동진출을 모색키로 하는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협력관계확대의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불가리아는 또 한국의 유엔안보리 진출,월드컵대회 유치노력에도 협조할 것을 약속했으며 한국은 불가리아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적극지지키로 약속했다. 우리는 두 나라가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협력관계를 확대키로 한 데 대해 만족을 표함과 아울러 두 나라 관계가 앞으로 더욱 강화되고 확대되길 기대한다.불가리아는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룩했으나 경제적으로는 아직 어려운 형편인 것으로 알고 있다.외채가 1백20억달러수준에 이르고 있고 시장경제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흔들리면서 정치적으로도 사정이 평탄치만은 않다. 한국과 불가리아는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외교관계를 수립한 지도 불과 5년여의 일천한 관계에 있다.경제관계도 아직은 미미한 편이다.그러나 두 나라간에는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상호협력을 키워나갈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이제 새출발하는 한국과 불가리아 양국관계는 하기에 따라서는 두 나라 발전은 물론 세계평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 “북핵정책 일관성 유지돼야”/양보가 북 개혁파 돕는 길 아니다”

    ◎이 총리,일 대표단에 강조 이홍구 부총리는 3일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양보하는 것이 북한의 개혁파를 도와주는 길이 아니라 우리가 일관성을 공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개혁파를 도와주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 방한중인 오부치 게이조 일본 자민당부총재 일행을 접견한 자리에서 『미국과 북한간의 제네바합의에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합의를 이행하고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수순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부치 부총재는 『일본과 한국의 일부 언론이 마치 일본이 북한의 주장을 따르는 것처럼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협상을 전제조건없이 자주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고 보도했지만 일본 연립여당의 대표단은 북한방문때 북한핵문제와 남북대화의 중요성을 논의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혈육의 정/연변은 남북이산가족 “만남의 장소”(두만강 7백리:6)

    ◎거의 조선족이 알선… 70년대부터 재회 급증/한달간 머물며 “못다한 정”나누고 여행도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은 허리가 잘려 두 동강이 난 고국 어느쪽의 혈육이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다.남북의 혈육들이 이념적 갈등 때문에 고국땅에서 서로 만날 수 없는 현실과 대조를 이룬다고나 할까.조선족들의 이런 처지는 남북으로 갈라진 혈연들의 상봉을 주선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속된 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에 조선족들이 끼어들게 마련인 것이다. ○문혁이전엔 엄두 못내 그러나 남북 혈연들의 상봉을 주선하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문화혁명 이전에는 상봉을 주선하기는 커녕 조선족 자신들조차도 남한에 혈연,특히 이름깨나 난 혈연이 있다는 사실을 감추었다.문화혁명 당시에는 이런 꼬투리만 잡혀도 호된 투쟁을 받았다.남한에 혈연을 둔 것도 죄가되어 실제 곤욕을 치른 조선족들도 많다. 용정시 백금향에 들렀을 때 백금발전소 최몽필 문화잠장으로부터 생소한 이야기를 들었다.지금은 고인이 된 박정희 대통령의 6촌 계수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발전소에 살면서 좀 떨어진 향 소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밥을 지어준다는 그 여인의 이름은 윤순옥(64).막상 만났더니 오랜 고생 탓인지는 몰라도 노쇠한 그늘이 역역했다. 그녀는 24살이 되던 해에 12살이나 더 먹은 박용태(함북 길주군 태생으로 72년 작고)의 후실로 들어왔다.후취 장가를 들 무렵 3살난 아들이 있었다.박용태의 부친은 박관일,박관세,박관선 3형제였는데 그녀의 주장대로라면 박정희 대통령과 5촌이 되는 사람들이다.보학도 배우지 않았거니와 족보도 확인하지도 못한 나로서 그렇다 아니다를 논할 처지는 못 되지만,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방송국에 편지 부탁 그녀의 말에 따르면 박용태는 박정희 대통령과 군관학교 정문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관하고 있었다.신사복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형제분이 찍은 사진이었다.밤이면 이불 속에서 사진을 보이면서 박정희라고 이야기 할 때 그녀는 모골이 송연했다.그때만 해도 적국의 대통령과 인척관계가 된다는 사실만이라도 감옥 밥을 무던히 먹을 죄였던 것이다.벽에 걸어둔사진틀 뒤에 몰래 보관하고 집식구들끼리만 돌려 보곤 했다. 그러다가 문화혁명 시기에 우연히 사진이 치보주임 최홍운씨의 눈에 띄었다.최 주임은 박정희라는 것은 몰랐지만 해방전 박용태의 신사복차림을 보고는 소각해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귀띔해 주었다.그러나 박씨는 사진을 농속에 깊숙히 감추어 두었다.만약 당시 최주임이 고자질을 했더라면 박정희와의 관계는 뒤로 제쳐놓고도 투쟁을 받았을 것이다.1972년 박씨가 세상을 뜨자 사진을 불살라버렸다. 한중수교가 이루어 진 후 일가 친척 없이 고독하게 살아온 그녀는 한국 KBS사회교육방송국에 친척을 찾아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냈다.그런데 박정희 대통령과 친척이라고 선을 달아 줄 것을 요구한 편지가 꽤나 된다면서 그녀의 혈육을 찾는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주지는 못했다.사회교육방송국에서 종종 보내온 책자와 편지를 지금도 보배처럼 보관중인 그녀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아쉬움이 많다. 『령감은 고생만 하다 너무 일찍 가셨디요.기런 북새통을 살다보니 박대통령 사진도 못 남겼수다.다가저의 불찰이디요.저는 박씨 가문에 들어온 사람이라 남이라면 남일테지만….자식들한테 혈육도 모르고 지내게 하는 거이 가슴 아픕네다』 그러나 두만강을 사이 두고 한동안 친선을 유지해온 중국과 북한은 사정이 달라 혈육간의 왕래가 비교적 잦았다.용정시 대소과수농장의 방승섭(68)은 여기서 김일성주석으로 호칭하는 그의 처형 아들이었다.다시 말하면 김일성주석의 본처 김정숙의 언니가 바로 방승섭의 모친이다.70년대 초 두 나라 정부에서 교섭하여 방승섭부부,어머니,두 아들과 딸하나를 데려갔다.1986년 대소과수농장의 관치성농장장은 조선을 방문하는 기회에 청진시 칠세대에 사는 방씨 댁을 찾아갔다.고향 사람을 만났다고 후한 접대를 해주었다.방씨 부인은 3년 전에 대소과수농장을 찾아온 적도 있다. 용정시 지신(일제시기 화룡현 다라즈)의 출신이고 항일투쟁에 차가했다가 현재 조선인민군에서 장군이 된 김광협의 친척들은 50년대와 60년대에 북한으로 이주했다.김광협의 7촌 조카 김상호는 1946년 참군하여 조선으로 나간 후 소련 유학을 하고돌아와 조선인민군 공군 부사령이 되었다고 한다.김상호는 어머니와 일가친척을 모두 모셔갔다. 연변에 살던 김광협의 친척들은 소작농으로 가정 살림이 째지게 가난했다.세발의 막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 없는 살림인지라 김광협의 동생은 한쪽 눈이 먼 여성을 아내로 맞았다.동생 일가가 평양에 도착하던 날 김광협은 처 유명옥과 함께 역으로 마중을 나왔다.제수를 보는 그의 마음은 참 딱했을 것이다.그런만큼 그는 제수를 끔찍히도 아꼈다고 한다.순 농군으로부터 국가 간부가 된 동생은 처하고 불화했는데 그 일 때문에 형님한테서 모진 꾸지람을 들은 다음부터 가정화목을 지켰다는 것이 용정시 삼합진 북흥촌 노인들의 이야기다. 김광협의 6촌 형님 김병협은 북흥촌 이기희씨의 고모부이다.그 이씨가 회령 사탕공장에 있을때 들었다는 이야기는 김광협 일가의 생활상을 짐작케 한다. 『그러네까 64년도 일입네다.김광협 6촌형의 딸,내게는 고종사촌 되는 누이가 두만강을 건너 평양 갔다 오는 걸음에 우리집에 들렸댔습네다.그 고종4촌 말이 김광협 집 앞대문엔 보초가 다섯이나 서 있더라고 기래요.삼촌을 집에 모신 김광협은 아침 문안을 꼭 드리고 식사도 독상을 대접하더랍데다.김광협은 식구들과 식당칸에서 밥을 먹으면서 요리가 나오면 모처럼 온 조카딸에게 연신 넘겨주었다는 거디요.조카딸도 화룡영화관 해설질을 하던 남편과 함께 나중에 평양으로 불러들였디요』 ○남북 오누이 극적 상봉 그러한 북한과의 일변도 왕래가 변화를 일으켜 딴판을 맞고있다.중국의 조선족은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남쪽의 혈육과도 정을 통하게 되었다.두만강을 훌쩍 건너는 것보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우회하는 먼거리에 남한이 있을지라도 무척 가까워졌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의 일이다.중국 조선족 한 분은 북과 남에 사촌형제들이 있다.그해 북에 건너가 4촌 여동생한테 남에 사는 형한테서 온 편지를 전했다.편지를 받아쥔 여동생은 흐느껴 울었다.얼마나 그립던 오빠였던가!여동생의 남편은 6·25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이 되어 남으로 밀고 내려갔다. 그분은 얼마있다가 남한의 사촌형님 집으로 갔다.형을 만난 그는 깜짝 놀랐다.형님이 앞을 못보는 장님이 되었던 것이다.6·25전쟁 당시 국군에 있었던 형은 어느 한 전투에서 인민군의 총에 맞아 소경이 되었다는 것이다.어찌 보면 매부의 총에 부상을 입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타의에 의해 혈육간에 살생을 해온 우리 민족처럼 뼈에 사무치는 한을 가진 민족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분은 여동생과 형님이 중국에서 만나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그러자 형님은 『소경인 내가 볼수도 없는 신세이고 만나면 여동생한테 서러움만 더 줄것이니 친척 동생더러 대신 가서 만나라』고 했다.결국 친 오누이의 만남은 무산되었지만 다른 혈육이 중국에서 뜻깊은 눈물의 상봉을 가졌다.그들은 만 한달간 한 집에 머물면서 한 많은 회포를 풀었다.그래서 두만강가는 이래저래 눈물 마를 날이 없는 모양이다.
  • 중국서 첫 한국현대미술전/국제교류재단·중 문화부 산하기관 공동개최

    ◎북경 중국미술관서 새달 7일 개막/국내 대표작 69점 전시… 내년 서울서 한국의 현대미술이 한중수교 이후 처음으로 중국에 소개된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최창윤)과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임영방)은 중국 문화부 산하 중국전람교류중심과 공동으로 오는 4월 7일부터 26일까지 북경 중국미술관에서 「한국현대미술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중국 문화부와 공동으로 북경 광주 등 5개 주요도시에서 지난해 개최한 현대한국무용 순회공연에 이은 연속사업으로 기획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현대미술을 주도해온 대표적인 작가 36명의 작품 69점이 선보인다. 출품 작가는 이응로 남관 등 작고작가와 백남준 이우환 김창렬 이강소 등 재외작가외에 김흥수 전혁림 손동진 권영우 이봉열 민경갑 박관욱 박영남 김홍주 김경인 구본창 황인기 황호섭 김종학 박불똥 성선옥 오원배 이기봉 조덕현 등 30대부터 원로까지 총망라돼 있다.작품경향도 미니멀리즘부터 서정적 색면추상,신조형주의,비판적 리얼리즘,비디오설치,사진까지 광범위해 해방이후 한국현대미술의 발생과 전개과정을 입체적으로 소개한다. 출품작들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작이거나 작가 또는 작고작가 유족의 협조를 얻어 수집한 것들이다.이 가운데는 이응로 화백의 「무제」,남관 화백의 「흑과 백의 율동」,백남준의 비디오설치작품 「도시에 비가 내리듯이 내 마음에도 비가 쏟아진다」등 유명한 작품들이 포함돼 있다. 한편 한국국제교류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상호주의 관례에 입각,이번 미술전에 이어 내년에 서울에서 중국화 한국전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번 미술전의 중국측 주관처인 중국전람교류중심은 외국과의 전시교류를 전담하는 문화부 산하기관으로 약 1백30개국과 교류를 갖고 연간 80∼1백회의 국내외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 “아버지 건강 나이비해 양호”/방한중인 등소평 둘째딸 등남

    ◎강택민 중심 집단지도체제 확고 덩 샤오핑(등소평)의 둘째딸인 덩 난(등남)중국국가과학기술위원회 부주임(50)은 28일 하오 과학기술처 상황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의 아버지의 건강은 『90세의 나이에 비해 양호한편』이라고 밝혔다.구본영과학기술처 차관과 한·중 과기차관회의를 가진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덩 부주임은 또 『중국의 지도체제는 장 쩌민(강택민)을 중심으로한 집단지도체제가 확립돼 있어 앞으로도 잘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중국의 장래를 전망했다. ­한국과의 과학기술협력 현황과 전망은. ▲출발은 늦었지만 매우 빠른속도로 발전하고 있다.특히 과학기술협력을 통해 산업협력을 촉진하고자 하며 중형항공기·전자교환기·자동차·고화질TV 외에 원자력분야가 다섯번째 협력분야로 추가될 것이다. ­황해오염문제에 대한 대처방안은. ▲정확한 보고를 받지못했다.중국은 리우환경회의후 세계에서 처음으로 「아젠다21」을 작성,환경규제를 하고 있어 중국은 물론 아시아 주변환경에도 도움이 될것이다. ­황사현상에 대해서 한·중공동연구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데. ▲오염문제는 과학적 근거를 갖고 이야기해야 한다.중국은 청정기술을 주요기술로 간주해 자금투자를 많이 하고 있으며 강서성에는 환경보호사업 공업단지도 조성하고 있다. ­부친을 최근에 만난 것은. ▲어제 한국으로 출발하기전 집에서 인사를 드리고 왔다.90세의 나이에 비하면 부친은 건강한 편이다. ­중국의 개혁정책과 지도체제에 대한 전망은. ▲개방이 실시된지 17년째로 모든 사람이 이의 혜택을 받고 있다.개혁은 지속되며 발전될 것이다.지도체제는 장쩌민을 중심으로 집단지도체제가 확립돼 우리나라를 계속 이끌 것이다. 북경대 물리학과를 나온 덩 부주임은 전기기계공장의 기술자로 출발,중국과학원 자동화연구소·반도체연구소 엔지니어를 지냈으며 79년부터 국가과기위에서 직원·부과장·부국장·국장을 거쳐 91년 부주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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