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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악 미세먼지에 중국도 손 들었다…조명래 “중국, 한국 영향 시인”

    최악 미세먼지에 중국도 손 들었다…조명래 “중국, 한국 영향 시인”

    중국 측이 미세먼지 한국 유입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세먼지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조 장관은 5일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최근 중국에서 열린 한·중 환경장관회의에 참석 소감을 밝혔다. 조 장관은 “중국도 미세먼지가 심각해 국민 불만이 많고 정치 지도자들의 정책적 입장도 있어 장관이 굉장히 많은 압박을 느끼고 있더라”고 전했다. 조 장관은 “양국이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실천 방안을 강구하기로 구체적으로 합의했다”며 “어떻게 이행하느냐에 따라 효과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환경부는 후속 과제를 적극적으로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중 양국이 미세먼지 데이터 교류에 협의하면서 우리나라 예보 정확도는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고농도 미세먼지 ‘사전 대응’에 해당하는 예비저감조치 확대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중국 대기 오염 물질이 한국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부인한다고 해석될 소지가 있는 발언이 전해지면서 국내 여론이 들끓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는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국에 유입된다는 사실을 중국도 시인했다고 조 장관은 전했다. 조 장관은 “(중국도) 저감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국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시인을 하더라”고 전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사설] ‘돌려막기 인사’ 없는 개각은 못 하나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주 후반 개각을 발표한다고 청와대가 그제 밝혔다. 어제는 주요국 대사들도 내정했다. 개각 대상 부처로는 총선 출마가 예상되는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있는 행정안전·해양수산·국토교통·문화체육관광·과학기술정보통신·중소벤처기업ㆍ통일부 등 7곳 안팎의 ‘중폭 개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치인 중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박영선·진영 의원이 각각 문화체육관광부·중소벤처기업부·행정안전부 장관에 거론된다. 비정치인으로는 김병섭 서울대 교수, 정재근 전 행정자치부 차관 등이 물망에 오른다. 이번 개각은 추진력이 강한 중진의원들을 전면 배치해 국정운영 동력을 강화하는 한편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입각 의원의 불출마로 자연스럽게 여권쇄신의 계기로 삼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돌려막기 인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무엇보다 업무능력을 중심으로 한 중립지대 인재 등용이나 전문가를 기용하려는 노력이 미흡해 보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지금은 ‘코드 인사’나 보상 측면의 인사는 끝내야 할 시기다. 역대 정권의 예를 보더라도 정치 이념을 초월한 중립지대 전문가들을 등용하는 탕평인사를 했을 때 국민 통합과 정책 수행에 긍정적 역할을 해 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직 최종 검증이 끝나지는 않아 발표 전까지는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해명했는데 지금이라도 중립적이고 전문가를 영입하는 방향으로 최종 인선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이런 점에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주중대사 내정은 아쉽다. 장 전 실장은 외교 경험이 전무해 현안이 산적한 한중 관계를 해결할 적임자로 보기 어렵다. 한반도 비핵화 등 외교 현안에서 중국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외교관은 현지 언어를 못해도 오랜 훈련으로 상대방의 의도를 읽어 내고, 우리 쪽의 의도도 정확히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경영학과 교수 출신인 장 전 실장이 복잡한 현안이 생길 때마다 그런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 장하성, 주중 대사에… 비핵화 지원·교류 복원 ‘큰 짐’

    장하성, 주중 대사에… 비핵화 지원·교류 복원 ‘큰 짐’

    장, 현정부 국정철학 이해도 높아 ‘강점’ 외교 경험 부족… ‘회전문 인사’ 비판도 주일 남관표, 한일 관계 발전 역할 주목 이석배 러 대사, 非외시 순혈주의 타파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중 대사로 내정되는 등 4강 중 미국을 제외한 중국·일본·러시아 대사가 교체되는 것으로 4일 알려졌다. 주일 대사에는 남관표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 주러 대사에는 이석배 주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실장은 노영민 전 주중 대사가 지난 1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취임하면서 두 달째 공석인 주중 대사직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중국의 협력을 끌어내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분쟁 이후 침체됐던 한중 교류협력을 전면 복원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장 전 실장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만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가 높고 정무적 중량감도 있어 한중 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인사라는 게 여권의 대체적 평가다. 하지만 경제학자 출신으로 외교 경험이 전무하고 중국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정치인 출신인 노 실장의 빈자리를 장 전 실장이 채운다면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장 전 실장은 중국 런민대·푸단대 교환교수를 지내고 중국 증권관리감독위 국제자문위원으로 8년 간 활동하는 등 중국과 인연이 전혀 없지는 않다. 남 전 차장은 외시(12회) 출신으로 주헝가리 대사, 주스웨덴 대사를 역임했다.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문 대통령을 보좌한데다 정무감각까지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일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외교부에서 조약국 심의관을 맡은 경력도 있다. 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데다 한일 간 쟁점인 위안부·강제징용 문제가 한일청구권협정 등 조약 및 국제법과 관련된 만큼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총영사는 러시아 스페셜리스트다. 1991년 러시아 전문관으로 외교부에 특채된 뒤 구주 2과장을 거쳐 2002년부터 17년 간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 동구권 근무를 했다. 공관장 임기는 대개 3년이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주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에 유임돼 4년 넘게 재직 중이다. 특히 비(非)외시 출신인데다 본부 국장도 지내지 않은 그가 4강 대사에 내정된 것은 지극히 이례적으로, 순혈주의를 타파한 파격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간 주러 대사는 우윤근 현 대사처럼 유력 정치인이 맡거나 ‘외교부 에이스’들이 가는 자리였다. 정부는 이날 대사 내정자들에 대한 아그레망(주재국 동의)을 신청했으며, 동의가 나오는 대로 공식 임명할 예정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日은 이성 외교·中은 능구렁이 외교… 한국, 다른 접근법 써야”

    “日은 이성 외교·中은 능구렁이 외교… 한국, 다른 접근법 써야”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을 바라보는 국내외 반응은 제각각이다. 북한이 중국·러시아와 공조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는가 하면, 일본이 현 경색 국면을 국내정치에 이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명확한 것은 한국이 주변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더욱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중·일에서 두루 공부한 보기 드문 국제관계 전문가인 우수근(52) 중국 산둥대 교수에게 3일 한·중·일 관계의 지향점을 들어 봤다. -‘우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이 있더군요. 다른 나라의 최고 지도자의 행보를 언론에서 예측한 것이 맞아떨어진 게 적지 않습니다. “국가관계가 어떤 국면에 들어설 때가 됐는지, 상대국 국민의 마음을 파고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 보면 답이 나와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노력이 부족했던 거죠. 그때 외교부에 쓴소리를 해대다가 ‘친일파’, ‘친중파’라는 딱지가 붙었지요. 요즘은 ‘간첩’이라고 불려요. 외교부 공무원들이 접하지 못하는 사람과 접하며,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정보 등을 취하니까 그렇다는 거였는데.” - 외교라인의 노력을 무시하는 거 아니었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년 가까이 됐는데, 이젠 외교·안보라인의 궤적을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과는 최악, 중국과는 데면데면, 러시아와는 그렇고 그런 사이로 오로지 미국에 ‘올인’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다 어느 날 트럼프 대통령이 노(No)라고 한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아찔한 외교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주요 직위에 거의 모두 미국 등의 서방 출신이 포진해 있어요. 이런 분들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과연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대미 외교를 더 스마트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주변국들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 한국 외교 문제가 많군요. “중국은 일본 외교에 쩔쩔 맵니다. 일본 외교를 냉철하고 앞뒤로 재고 또 재는 ‘철저한 이성 외교’로 본다고 합니다. 중국 외교도 일본 못지않게 매우 우회적이며 간접적인 ‘능구렁이 외교’입니다. 일본은 우리 외교를 ‘감정 외교’, ‘포퓰리즘 외교’라고 놀립니다. 한국은 이슈가 있으면 들불처럼 확 들고 일어났다가 금방 사라지는 것에 동의하시죠. 외교에 감정이 개입되면 쉽지 않은데, 이런 말을 들으면 전 자존심이 많이 상합니다. 제 자존심에 차치하고, ‘밀림의 법칙’과 같은 냉혹한 국제관계에서 감정을 앞세운 우리 외교가 국익을 제대로 챙기기나 할까요. 외교는 국민 감정에서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일본에서 8년 넘게 생활해 식견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해외여행 자유화 바람이 불던 1990년, 군 제대 후 휴학하고 일본에 갔어요. 일본 주재원을 아버지로 둔 친구집에 머물렀는데, 아침은 물론 점심도 반찬 한 가지인 도시락으로 때웠습니다. 저는 흙수저가 아니라 ‘손수저’입니다. 하하. 가보니 ‘쪽바리의 나라’ 일본이 아니었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죠. 일본을 알기 위해 일본 게이오대 대학원에 진학해 국제법을 공부했습니다.”-대일관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듯한데. “우리와 일본은 정말 다릅니다. 예컨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한국은 대성통곡을 하지만 일본인은 남들이 보는 데서는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며 ‘저의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라고 차분하게 말합니다. 오히려 무섭게 느껴집니다. 감정적으로 치고 들어가면 일본은 반발이 생깁니다. 그 차이를 알고 접근해야죠. 아베 총리나 우파 정치인이 한국을 ‘긁는’ 발언을 하면 우리는 ‘사이다’ 발언으로 맞대응합니다. 우파 정치인은 한국 언론의 보도나 국민 감정을 계산하고 발언하기에 우리 대응이 자칫하면 우파에 말려들면서 일본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그 결과 일본 우파만 힘을 키우고, 해결은 까마득해지는 겁니다. 일본의 양식 있는 민간기구를 잘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들에게 잘 다가가서 우리가 아닌, 그들이 일본의 우파 정치권의 어리석은 행태를 계도하고 국민을 설득하도록 움직여야 합니다. 독도나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일본 시민단체도 많이 도와주고 있지 않습니까.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면 일본어로 번역해 시민단체, 민간기구에 전달해서 우회적으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팍팍 치고 들어가면 역효과만 납니다. 그런 결과가 지금의 한일 관계가 아닐까요.” -중국에서 박사 학위를 땄는데 한중 관계는 어떻게 보시나요. “일본에서도 국제법은 미국만 쳐다보니 종주국에서 공부해야 하나 싶어서 2002년 미네소타주립대 로스쿨에 들어갔어요. 그때 같이 유학하던 중국인들이 왜 중국에선 공부하지 않느냐고 묻길래, 2003년 방문학자로 중국에 갔죠. 그때도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곳에 머물면서 박사 과정을 시작하고 그 뒤로 14년간 살았습니다. 한중 관계는 풀렸을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사드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봅시다. 중국 입장에선 자국 안보에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치는 무기가 한국에 들어왔어요. 철회하라고 요구했습니다만, 우리 한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중국 입장에선 변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대국인 중국이 치사하게 경제 제재 조치를 안 푼다’고 여기는데 중국은 자신이 가진 최대 무기인 경제력을 수단으로 삼은 겁니다. 미국이 군사력을 직접 사용하는 것처럼. 당초 중국이 사드 문제와 관련해 4단계의 제재 조치를 준비를 했는데, 최근엔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약간 누그러졌습니다.” -중국 태도가 누그러진 배경은. “그건 우리의 노력이나 외교안보 라인의 성과가 아니라 순전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덕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복관세니 무역전쟁이니 하면서 중국을 하도 흔들어대니 한국에 대한 태도가 완화된 것입니다. 중국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프리카나 중남미, 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에도 공을 들이는데, 한국은 바로 옆에 있는 중견 강국입니다. 여차하면 자신들의 안보나 국익 등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나라이니, 미중 관계가 험난한 상황에서 우리와의 관계를 마냥 나쁘게 가져갈 수는 없는 것이죠. 이럴 때 중국과의 데면데면한 관계를 해소할 명분을 만들어야 합니다. 외교라인이 이런 것을 고민해야 하지만 사실상 트럼프 입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공략해야 할까요. “중국은 지금, 일본의 스모선수처럼 ‘초고도비만증’ 환자입니다. 겉으로는 아무도 못 건드릴 덩치이지만, 속으론 각종 질병이 겹쳐 합병증에 걸린 겁니다. 건강하려면 살을 빼야 하는데 그러면 스모선수로서 생명은 끝납니다. 중국은 부정부패, 빈부 격차, 환경 오염, 민족문제 등이 너무 많습니다.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6개국과 해상분쟁 중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중국을 토닥거릴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중국은 산업 첨단화를 위해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은 기술을 빼앗기고 주도권을 내줄까 봐서 안 해 줍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이 지분을 갖고 합작으로 중국에 들어가 전 세계로 진출하는 것은 어떤가요?” -우리 젊은층이 중국이나 일본을 제대로 알려면 어떻게. “한국 언론도 정치인만큼이나 ‘좀비’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뒤떨어지고, 기괴한 것 위주로 보도해요. 일본은 극우 정치인의 혐한, 반한 발언 보도가 많지 않나요.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에서 살다 온 사람들은 이런 류의 보도를 부인합니다. ‘차이나 현상’, 들어 보셨어요? 중국에 대해 한국 매스컴을 통해 얻은 간접경험과 살면서 직접 경험한 게 엄청 차이가 난다고 해서 그리 이름 붙인 겁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에도 ‘2개의 일본’이 있습니다. 불행했던 역사가 반복된다고들 합니다. 왜 반복되는 걸까요? 바로 우리가 만든 거예요. 언론 책임도 많습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주류 언론들이 보도한 홀대론에 대해 방송에서 아니라고 반박했더니 통째로 편집돼 나가지 않았습니다. 우리 언론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좀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글 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청와대 “4일 주요국 대사 발표”…주중대사 장하성 ‘유력설’

    청와대 “4일 주요국 대사 발표”…주중대사 장하성 ‘유력설’

    이르면 7일쯤 중폭 개각…靑 “언론 하마평 틀릴 가능성”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주 후반 개각 준비를 하고 있다고 3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에 앞서 4일 주요국 대사 내정자도 발표할 예정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에서 “이번 주 후반쯤 개각을 예상하고 있다”며 “대사에 대한 발표는 4일에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중대사에는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연합뉴스가 이날 전했다. 장하성 전 실장은 문재인정부 1기 경제정책 총괄에 관여했던 만큼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여권 관계자는 “노영민 전 주중대사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 공석을 다시 청와대 실장급 출신 인사가 채운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한중관계 발전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주일대사에는 남관표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이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주일대사 교체는 위안부 문제, 징용배상 판결, 초계기 갈등 등으로 한일 양국의 냉기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관계 재정비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남 전 차장은 청와대 안보실 경력을 바탕으로 양국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주러대사에는 이석배 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총영사는 과거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어 통역을 맡을 정도로 현지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고, 주러시아 공사와 주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를 지내는 등 러시아 외교통이라는 점이 발탁의 주요 근거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관계자는 “외무고시 출신이 아닌 이 총영사는 외교부 본부에서 국장을 거치지 않았고, 주로 러시아에서 활동했다. 이 총영사가 러시아 대사로 낙점된다면 매우 파격적인 발탁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아울러 최근 교체된 이상철 전 청와대 안보실 1차장은 주오스트리아 대사 임명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김의겸 대변인은 “대사 인선에도 아직 변수가 있다”고 밝혔다. 또 개각대상 부처로는 총선 출마가 예상되는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있는 행정안전·해양수산·국토교통·문화체육관광·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꼽힌다. 여기에 중소벤처기업부,통일부도 장관 교체가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져, 7곳 안팎의 ‘중폭 개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치인 중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박영선·진영 의원이 각각 문화체육관광부·중소벤처기업부·행정안전부 장관으로 발탁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김 대변인은 언론의 하마평 기사와 관련해 “너무 단정적으로 쓰는데, 틀릴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정치인 세 분에 대해서 거의 단수 후보로 확정된 것처럼 보도하던데, 그렇지 않다”며 “그분들이 후보로 올라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단수 확정된 후보가 아니고 복수 후보다. 여전히 변동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연합뉴스를 통해 “아직 최종 검증이 끝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발표 전까지는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가천대 유학 중국인 예비부부 박사, 중국서 나란히 교수 됐다

    가천대 유학 중국인 예비부부 박사, 중국서 나란히 교수 됐다

    한국에서 학·석·박사를 마친 중국인 유학생 커플이 나란히 중국의 대학에 교수로 임용돼 화제가 되고 있다. 가천대에서 지역개발학과 국어국문학 박사학위를 마친 사문도 박사(司文?·30)와 서전화 박사(徐田?·31·여)가 화제의 주인공들 이다. 두 사람은 가천대 재학 중 대학이 마련한 유학생 추석맞이 행사에서 인연을 맺어 9년간의 열애 끝에 오는 5월에 결혼한다. 사 박사는 중국 산동사범대학교 공공관리학과 교수로 임용돼 3월부터 강의를 맡게 되고 서 박사는 작년 4월 중국 덕주대학교 대외부 대학외국어교학부 교수로 임용돼 현재 한국어 강의를 맡고 있다. 사 박사는 2009년 9월 가천대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산동 덕주고등학교 재학 중 중국 산동대학교와 가천대의 중국고등학교 대상 교류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가천대 유학을 결심했다. 그는 낯선 환경과 한국어 공부가 어려워 중도 포기도 생각했지만 한국에 있는 중국학생 교류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교수, 학생들과 자주 대화하면서 한국어 능력을 끌어올렸다, 때로는 따뜻하게 격려하고, 때로는 강하게 채찍질하는 지도교수 소진광 교수의 역할도 컸다. 사 박사는 학업에 부담도 있었지만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에서 공부하는 중국유학생연합회 부회장과 경인지역회장도 맡으며 유학생들 애로사항 해결하는데 앞장섰다. 사 박사는 학부 졸업 후 2013년 9월 대학원 지역개발학과 입학해 ‘중국의 신농촌건설과 한국의 새마을운동 비교연구’로 석사를 마치고 2015년 박사과정에 입학해 작년 8월 ‘사회적 자본이 지방정부 공공서비스의 공급과 수요에 미치는 영향 -중국과 한국의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 박사는 학부에서 무역학을 전공했으나 유학생활 중 한국에 대해 공부하면서 스마트시티와 새마을운동에 감동을 받게 됐고 중국의 도시개발과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 대학원부터는 지역개발학으로 전공를 바꿨다. 서 박사도 2008년 9월 가천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2018년 8월 ‘김광규 시세계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 박사는 석사학위 과정 중에 사 박사의 영향으로 지역개발학에 관심을 갖고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한국의 발전경험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현재 지역개발학 박사과정도 병행하고 있다. 서 박사는 사 박사를 가르쳤던 소 교수의 지도를 받기위해 현재 중국에서 강의를 하고 일주일에 한번 한국에 와 주말에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 학구파다. 사 박사와 서 박사는 한국에서 배운 학문과 한국의 발전경험 등을 토대로 학생을 가르치고 한중교류 확대에 적극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 박사와 서 박사의 박사과정을 지도한 소진광 교수는 “유학생들의 어려운 사정을 잘 알아 두 박사를 집으로 초대해 식사도 하며 자식처럼 가르쳤다”며 “두 명 모두 학구열이 뛰어나고 연구 욕심이 많아 좋은 학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中 옌타이 산업단지 “2025년까지 유치 100여개 기업에 20억달러 투자”

    中 옌타이 산업단지 “2025년까지 유치 100여개 기업에 20억달러 투자”

    한중 옌타이 산업단지가 오는 2025년까지 국내 기업 100여곳 이상을 유치하고, 이들 기업에 총 20억달러(약 2조 2500억원)를 투자한다고 27일 밝혔다. 전날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한중 옌타이 산업단지 통상 협력 교류회’에 참석한 장 다이링 옌타이시 부시장은 “옌타이 산업단지는 중국과 한국 경제 협력의 전략적 요충지”라면서 “향후 적극적인 정책 지원과 우대 혜택을 통해 기업과 인재를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옌타이 산업단지는 입주 한국 기업에 공업용지 임대 시 지원금을 지급하고, 세제 감면 및 144시간(6일) 체류 시 비자 면제 혜택을 제공한다. 연간 외국인 투자금이 5000만달러(약 560억원) 이상인 신규 건설 프로젝트, 연간 투자액이 3000만달러(약 335억원)인 프로젝트에 대해선 해외 자본 비율에 따라 최대 1억 위안(약 166억원)의 보조금을 수여한다. 또 입주 기업이 사업자 등록 3년 이내에 회계 연도 기준으로 500만위안(약 8억 3000만원)을 옌타이시 재정수입에 기여할 경우 첫 해에 50%, 두 번째 해에 30%, 세 번째 해에 20% 세금 감면혜택을 부여한다. 2015년 12월 발효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2017년 12월 조성된 한중 옌타이 산업단지는 총 80.4㎢에 걸쳐 2곳의 핵심구와 2곳의 확장구로 조성됐다. 핵심구엔 스마트 제조업, 물류, 신에너지 분야가 집중됐다. 확장구는 생명과학, 바이오, 의료 분야 유치를 목적에 두고 조성됐다. 현재 LG전자, 현대차, 포스코, 한화, 두산, CJ, CGV 등이 이 산업단지에 진출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국가 권력이 부풀린 서훈등급…사상·이념 족쇄 풀고 재평가를”

    “국가 권력이 부풀린 서훈등급…사상·이념 족쇄 풀고 재평가를”

    24일 서울신문 심층 설문조사에 참여한 역사학계 전문가들은 “이제부터라도 사상과 이념의 족쇄에서 독립운동가들을 풀어 줘야 한다”고 밝혔다 민족주의자, 자유민주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여부를 떠나 ‘한국의 독립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최우선 기준에 놓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남북 화해 분위기를 반영하고 통일에 대비하고자 우파 독립운동사 위주로 진행됐던 연구 범위도 넓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독립 위해 무엇을 했는지 평가해야 역사학계는 김원봉(1898~1958)과 박헌영(1900~1956)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계열 활동가들을 독립운동사에서 복권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원봉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스무 살이던 1918년 중국 난징의 진링대학(현 난징대학)에 입학한 뒤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이 조선 같은 약소국을 돕지 않을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고 무장투쟁가의 삶을 선택했다. 이듬해 ‘의열단’을 창단하고 광복을 맞아 한국에 돌아온 1945년까지 26년간 일제와 끊임없이 맞서 싸웠다. 조선총독과 친일파, 한국인 밀정을 처단하고자 의열투쟁을 진두지휘했고, 1938년 중국 국민당 정부로부터 첫 한인 무장세력으로 인정받은 ‘조선의용대’도 세웠다. 서울신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 작가는 “만약 그가 해방 뒤 ‘친일 경찰’ 노덕술(1899~1968)에게 치욕스런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면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덕술의 고문은) 일부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보다 우위에 섰던 당시 대한민국의 현실을 상징하는 뼈아픈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김원봉은 해방 뒤 북한 정권 수립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배제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후대에 만들어진 시각으로 역사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라면 그가 어떤 사상을 가졌든지 상관없이 해방을 맞은 1945년까지 무엇을 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학계 “임병직 서훈은 5등급이 적당” 학계에서는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고평가된 인물로 임병직(1893~1976)과 이승만(1875~1965)을 지목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정권을 쥔 이들이 자신과 측근의 공적을 지나치게 부풀렸다는 지적이다. 임병직은 이승만이 미국에 머물던 시절 그를 보좌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위원을 지냈고 해방 뒤 외무부 장관과 주인도 총영사 등을 맡았다. 박정희(1917~1979)의 5·16 쿠데타를 지지했고, 사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에 추서됐다. 그에 대한 서훈등급을 두고 ‘정치적 처세의 결과물’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홍선표 하나역사연구소장은 “임병직은 이승만의 비서 일을 한 것 말고는 한국 독립에 크게 기여한 게 없다. 학계에서는 ‘5등급 정도가 적당하다’는 평가가 많다”며 “그럼에도 그가 김구, 윤봉길 등과 같은 반열의 유공자가 된 것은 1976년 서훈 심사 당시 (임병직이 지지선언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 권력에 의해 포상 체계가 흔들린 대표적 사례로 반드시 거론돼야 할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역사학계는 우리 독립운동사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로 김구(1876~1949)와 안창호(1878~1938), 안중근(1879~1910)을 꼽았다. 외국인으로는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와 장제스(1887~1975), 후세 다쓰지(1880∼1953)를 들었다. 스코필드는 영국 태생의 캐나다 감리교 선교사로 1919년 일제의 제암리 학살사건 참상을 전 세계에 타전해 일제의 만행을 알렸다. ‘석호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3·1 운동 민족대표 제34인’으로도 불린다. 후세는 일본의 인권변호사로 박열(1902~1974) 등 항일운동가들을 변론하며 한국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제대로 된 독립운동사 연구 풍토 마련해야 학계에서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을 맞아 정부가 우리 역사학계의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진단해 제대로 된 독립운동사 연구 풍토를 만들 수 있게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언론 역시 일회성 100주년 기획들로 끝내지 말고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주문했다. 홍 소장은 “역사의 성과는 (국가나 언론의) 각종 기념행사나 기획기사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찾지 않던 자료를 어렵게 발굴해 밤새워 연구하는 외로운 학자들에 의해 피어나는 것”이라며 “우리 역사학계 연구 수준은 매우 미약하다. 인문학이 고사 위기인데 역사학계 역시 마찬가지다. 밤낮 없이 연구실에 처박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연구에 몰두하는 이들에게 희망과 열정이 피어오르게 할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문서가 1932년 윤봉길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와 한국전쟁 등으로 대부분 소실됐다. 아직도 행방을 모른다. 정부는 (일본이나 북한 등과 교섭해) 이것부터 찾아야 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도 “독립유공자 포상이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사이 상당수 자료가 사라져 지금도 연구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아직도 3·1운동, 독립운동과 관련해 포상을 못 받은 분들이 다수다. 보훈처 등에서 연구를 지원한다면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무질서한 서훈 체계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이번 기회에 독립운동가 서훈 체계를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대한민국 건국훈장은 국가 수립에 뚜렷한 공을 세웠거나 국기(國基)를 다지는 데 공적이 있는 자에게 수여한다. 대한민국장(1등급)과 대통령장(2등급), 독립장(3등급), 애국장(4등급), 애족장(5등급) 등 5단계로 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가보훈처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남성 1만 5180명, 여성 357명 등 모두 1만 5537명이다.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가산을 모두 팔아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1867~1932),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1858~1932) 등이 3등급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이승만은 대통령 재임 중 자신을 1급으로 ‘셀프 서훈’해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서훈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며 “정부는 독립운동 주동자 가운데 거사를 벌이다가 죽지 않은 이는 알아주지도 않는다. 이건 정말 아니다. 단순 정량 평가가 아닌 정성 평가를 통해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설문응답자 명단 기유정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김삼웅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 김형목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위원, 노상균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원,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백옥진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이양희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 연구원, 이원규 역사소설가, 장규식 중앙대 사학과 교수, 장석흥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 전성현 동아대 사학과 교수, 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최기영 서강대 사학과 교수,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 홍선표 하나역사연구소장, 익명 요청 2명(가나다순)
  • [단독]“독립운동가 김원봉, 재평가·복권 1순위”

    [단독]“독립운동가 김원봉, 재평가·복권 1순위”

    “이승만 비서 임병직 지나치게 고평가좌파 계열 4명·박헌영도 재평가돼야”독립운동사 연구 우파 편향 지적도친일청산 부재·일관성 없는 서훈 비판역사학계는 가장 먼저 재평가와 복권이 이뤄져야 할 독립운동가로 김원봉(1898~1958)을 꼽았다. 반대로 지나치게 고평가돼 재고가 필요한 인물로는 임병직(1893~1976)을 들었다. 역사학자들은 “우리 독립운동사 연구가 우파에 치우쳐 미진한 점이 많다”며 “정부가 연구 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학계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서울신문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24일 역사학계 전문가 25명을 심층 설문조사한 결과 32%(8명)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재평가가 시급한 인물로 김원봉을 지목했다. 그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출신으로 한국광복군 부사령관과 군무부장 등을 맡아 민족 해방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어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전체(4명), 박헌영·이동휘(각 3명) 등이 뒤를 이었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좌파계열 활동가들에 대한 복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전성현 동아대 사학과 교수는 “김원봉은 경남에서 손꼽히는 인물이지만 북한 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재조명이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진 남북 관계 등을 감안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할 때가 왔다”고 설명했다. 반면 설문에 응한 역사전문가 중 36%(9명)는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지나치게 높게 평가된 인물이 임병직이라고 답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으로, 1976년 건국훈장 가운데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에 추서됐다. 2위 이승만(7명·28%), 3위 김구(2명·8%) 순이었다. 김삼웅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임병직은 이승만의 비서였다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공적 없이) 1등급 훈장을 받았다. 과거에는 이승만처럼 스스로에게 최고 훈장을 주는 ‘셀프 서훈’도 만연했다. 이제부터라도 대한민국 서훈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는 우리 정부의 가장 큰 과오로 ‘제대로 된 독립운동사 연구 틀을 갖추지 못한 점’(32%·8명)을 들었다. 친일 청산 부재와 일관성 없는 서훈(각 6명)도 도마에 올랐다.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최근 정부와 언론이 역사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새 인물 찾기에 주력하고 있는데, 이미 나온 인물에 대한 정확한 연구와 평가가 병행돼야 한다. (요즘 정부와 언론의) 노력이 실제 역할이 적었던 이들을 의도적으로 치켜세우는 식으로 변질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장규식 중앙대 사학과 교수는 “해방 직후 우리 정부가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우리 사회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친일 행적자 대부분이 단죄를 받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 ‘시간’이 대신 친일파를 청산해 줬다”고 꼬집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설문응답자 명단 기유정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김삼웅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 김형목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위원, 노상균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원,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백옥진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이양희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 연구원, 이원규 역사소설가, 장규식 중앙대 사학과 교수, 장석흥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 전성현 동아대 사학과 교수, 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최기영 서강대 사학과 교수,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 홍선표 하나역사연구소장, 익명 요청 2명(가나다순)
  • [르포] 탠디가 쏘아올린 작은 공…제화공의 삶은 달라졌을까

    [르포] 탠디가 쏘아올린 작은 공…제화공의 삶은 달라졌을까

    지난 18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허름한 3층 건물. 시커멓게 먼지 앉은 계단을 올라갔더니 간판도 없는 작업장이 나왔다. 접착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눈이 따가웠다. 동행한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정기만 제화지부장이 말을 건넸다. “냄새 심하죠? 우리 같은 사람은 30년, 40년 매일 맡으니 독한 줄도 몰라요. 내가 자주 깜빡깜빡하거든요? 뭘 기억을 못 해. 일 그만둔 선배들 중에 치매 환자도 많아요. 그게 본드 냄새 때문은 아닐까, 우리끼리 추정만 하죠.” 40년간 가죽을 구두 모양으로 붙이고 꿰매는 ‘갑피’ 작업을 해온 김모씨는 오늘 10켤레 작업을 마쳤다고 했다. ‘켤레 당 얼마 받으시냐’고 물었더니 “1만 5000원씩 받지”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지부장이 정색했다. “형님! 있는 그대로 사실만 얘기해야죠. 그렇게 농담하시면 안 돼요.” “아, 이 사람아, 그렇게 받고 싶다는 바람도 말 못하나.” 대한민국 수제화의 60%가 만들어지는 곳.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는 김씨와 같은 제화공이 3000명 정도 있다. 골이 띵한 냄새가 진동하고 가죽 티끌이 날리는 제화공의 공간은 판에 박은 듯했다.앉은뱅이 의자에 쪼그려 앉은 나이 든 노동자들, 무릎과 허벅지, 앞섶이 닳아빠진 작업복을 입은 채 연장을 재게 놀린다. 못해도 20년, 족히 40년 이상 매일 해온 일이다. 사진을 찍으려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손을 내저으며 하는 말도 하나같이 똑같다. “기자 양반, 얼굴은 찍지 마요. 빚이 많아서 얼굴 나가면 누가 쫓아와.” 제화지부 노조가 생긴 지 20년이 지났지만 노조 가입자는 20명을 넘기지 못했다. 정 지부장 소원은 ‘조합원 50명 만들기’였다. 그런데 최근 8개월 사이 688명이 가입원서를 썼다. 20년 동안 한 명도 늘지 않았던 노조원이 708명으로, 35배나 폭증한 것이다. 구두밖에 모르던 족쟁이(구두장이. 제화공들이 스스로는 지칭할 때 쓰는 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4·26 탠디혁명’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지난해 4월 26일, 서울 관악구 인헌동에 있는 구두 브랜드 ‘탠디’ 본사가 마비됐다. 이 업체에 납품하는 하도급(하청)업체 제화공 100여명이 기습적으로 들이닥쳤다. 엿새 전에 파업에 들어간 이들은 켤레당 7000원 수준의 공임을 2000원 인상해달라고 요구했다. 공임은 8년간 한 번도 오른 적 없었다. 그마저도 탠디는 회사 사정이 나빠 비용을 낮춰야겠다며 500원을 더 깎으려 들었다. 참다못한 제화공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결국 사측은 켤레당 공임을 1300원 올려주기로 했다. 16일 동안 본사를 점거했던 제화공들은 그제야 농성을 풀고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이 불길은 성수동으로 옮겨 붙었다.“탠디는 양반이야. 7000원씩 받았잖아. 여기는 켤레당 5500원이었어. 20년 동안 한 푼도 안 올랐지.” 동대문 시장과 온라인쇼핑몰 등에 구두를 납품하는 하도급업체에서 일하는 이창열씨의 말이다. 성수동에는 미소페, 세라, 소다, 슈콤마보니 등 백화점 브랜드 하도급공장부터 TV홈쇼핑, 아울렛, 온라인쇼핑몰 등에서 팔리는 구두를 만드는 영세 작업장까지 규모가 제각각인 업체가 다닥다닥 모여 있다. 제화공의 수입은 구두 시즌에 따라 다르다. 봄 구두, 샌들, 부츠 등 소비자가 신발을 장만할 성수기에는 일감이 몰려 월 350만원도 번다. 1년으로 치면 5개월 정도다. 그렇지 않은 비수기에는 월수입 200만원을 넘기기 어려울 때도 있다. 문제는 노동시간이다. 350만원을 벌려면, 한 달 중 25일을 매일 아침 7시 출근해서 밤 11시 퇴근해야 한다. 일당 14만원, 시급으로 치면 8750원이다. 올해 최저임금 8350원보다 400원 많다. 30년 넘게 일한 숙련 제화공이 받는 처우가 이런 수준이다.“월 350만원 정도면 괜찮은 벌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 그런데 16시간 궁둥이 붙여야 받는 돈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하더라고. 우리도 하루 8시간 일하고 넥타이 맨 회사원들 퇴근할 때 퇴근하면서 그 정도 받아야 할 것 아냐.” 이창열씨는 ‘탠디혁명’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30년 동안 7000원을 받고 일했는지 믿을 수 없다’,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냐’는 핀잔이었다. ●명동 멋쟁이 신던 싸롱화가 어쩌다 제화공 월급이 대기업 회사원보다 많은 시절이 있었다. 1960년대부터 ‘멋 좀 안다’ 싶은 사람들은 서울 명동거리에 즐비한 양화점에서 구두를 맞춰 신었다. 당시 수제화는 고급지게 ‘싸롱화(살롱화)’로 불렸다. 구두 잘 짓는 족쟁이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솜씨 좋은 제화공을 서로 구하려고 업체들은 스카우트 전쟁을 벌였다. 제화공 몸값도 덩달아 올랐다. “1980년까지 내 월급이 금성전자(지금의 LG전자) 회사원보다 많았어. 진짜 기술자 대접해주던 시대였지. 1988년 서울올림픽 전까지가 싸롱화 전성기야.” 코오롱FnC의 신발 브랜드 슈콤마보니에 납품하는 우리수제화에서 일하는 최경진씨는 옛날 얘기를 묻자 들뜬 표정이었다. 1979년 열여섯살에 상경한 그는 돈을 많이 준다는 말에 제화공이 됐다. 제화공 월급 2년만 모으면 서울에 집 한 채 살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최씨는 기억했다. 잘 나가던 싸롱화는 1992년 한중 수교,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급격히 쇠락했다. 값싼 중국산 제화가 밀려들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자금 사정이 나빠진 싸롱화집들은 문을 닫고 명동을 떠났다. 제화공들은 성수동으로 몰려들었다. 금강제화 본사가 있고 경기 성남의 에스콰이아, 엘칸토 생산공장과도 가까워 하도급공장들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가죽, 악세사리, 부자재 등 구두 재료를 거래하는 업체도 늘어나면서 성수동은 수제화의 메카가 됐다. ●제화업체가 씌운 허울, ‘작은 사장님’ 제화공의 고통은 성수동 시대가 열리자마자 시작됐다. “양화점이 없어지니 구두를 백화점에서 팔기 시작했어. 판매무대가 바뀐 거야. 백화점은 유명 브랜드만 팔잖아. 소비자들도 브랜드화 아니면 거들떠보질 않았지. 그런데 백화점이 판매 수수료를 30% 이상 떼어가니까 구두회사들도 사정이 어려워진 거야. 별수 있어? 제화공 임금 후려치는 거밖엔….” IMF 외환위기 때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제화업체들은 몸집을 줄였다. 이때 제화공이 표적이 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탠디, 소다 등을 시작으로 제화업체들이 직접 고용했던 제화공을 외주로 돌리기 시작했다. 제화공 입장에서 보면 ‘악랄한 제도’가 그때 생겨났다. 이른바 ‘소사장제’다. 말 그대로 제화공에게 ‘작은 사장님’이라는 감투를 씌운 것이다. 하는 일은 전과 같았다. 본사가 지정한 장소에서, 본사가 준 재료로, 본사가 보낸 작업 지시서대로 구두를 만든다. 하지만 근로소득세 대신 사업소득세로 번 돈의 3.3%를 떼어 세무서를 통해 내야 한다. 4대 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 혜택도 없다. 연월차 사용도 보장이 안 되고 퇴직금도 받지 못한다.“가방끈이 길기나 한가요. 초졸·중졸이 태반인데…. 사장들이 주민등록등본 떼오면 공임 올려준다고 어르고, ‘다 같이 죽자는 거냐’고 협박하니까 잘 모르고 하자는 대로 해준 거예요.” 정 지부장은 몹시 안타까워했다. ●김앤장 이기고 퇴직금 받아낸 제화공들 사측의 꼼수에도 법원은 제화공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잇달아 내놨다. 2016년 제화공 9명이 퇴직금을 달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7~14년 동안 탠디에서 구두를 만든 이들이었다. “업계에서 일을 그만두는 제화공에게 한 달치 월급 정도를 주는 관행이 있었어요. 처음엔 그분들도 회사 측에 180만~200만원 정도 챙겨달라고 좋은 말로 부탁했죠. 그런데 탠디에서 ‘제화공은 직접 고용된 직원이 아니고 개인사업자이니 퇴직금을 줄 수 없다’고 야멸차게 나온 거예요. 법대로 하라면서요. 오기가 생겨서 ‘좋다! 법대로 퇴직금 받아내자’는 분위기가 된 거죠.” 정 지부장이 전한 ‘퇴직금 투쟁’의 도화선이었다. 탠디는 1심에서 법무법인 대륙아주를 선임했다. 제화공들은 노동 전문 최승호 변호사에게 변호를 맡겼다. 1심 재판부는 제화공을 근로자로 인정하고 퇴직금을 지급하라며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한 탠디는 2심에서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변호사 3명을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최 변호사님이 80%는 진다고 생각하라고 할 정도로 무모한 싸움이었는데 이겼어요. 판사님들이 작업장으로 직접 현장검증을 나와서 보시곤 제화공은 개인 사업자가 아니라 고용된 노동자라고 판단한 거예요.” 2심 재판부는 ▲탠디가 2000년까지는 제화공을 직접 고용해 4대 보험에 가입시키고 근로소득세를 내게 한 점 ▲이후 이들을 일괄 사업자로 등록하게 한 점 ▲탠디가 작업 분량을 사전에 정해준 점 ▲제화공들의 독자적인 구상이나 생각이 작업에 반영되지 않은 점 등으로 볼 때 “제화공은 임금을 목적으로 피고에게 종속돼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퇴직금으로 고작 200만원을 바랐던 제화공들은 근로 기간에 따라 적게는 1150만원에서 많게는 4500만원의 퇴직금을 탠디로부터 지급받게 됐다. 이후 소다, 베라슈 등의 제화공들도 잇따라 퇴직급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3심까지 가는 법정 다툼 끝에 최종 승소했다. “7건의 퇴직금 소송에서 5건 이겼어요. 판례가 쌓였잖아요. 이제 사측도 소송 안 하고 자발적으로 퇴직금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이에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화공이 노동자로 인정받았다는 거예요. 소사장제가 법적으로 아무 효력이 없다는 것을 법원이 증명해준 게 제일 큰 소득이죠.” 정 지부장은 말했다. ●다음 목표는 재벌과의 싸움 지난해 탠디혁명을 시작으로 슈콤마보니, 미소페 등에서 공임 인상 시위가 이어졌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는 26개 제화 사업장과 단체협약을 맺어 공임을 켤레당 1300~1700원 인상했다. 단체 협약을 맺지 않은 영세 사업장들도 이에 따라 공임을 올려줬다. 20년간 5500원에 머물렀던 성수동 제화공의 공임이 7000원 수준까지 올랐다. 708명이 똘똘 뭉쳐 이뤄낸 기적이었다. 제화지부의 다음 목표는 4대 보험 가입이다. 제화공의 노후 대비와 건강관리, 산재 보상과 고용안정성 보장을 위해서다. 20년간 못 올린 공임을 해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다. 사측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제화공들이 4대 보험 가입에 부정적이다. 먼 미래의 혜택보다는 매달 빠져나갈 자기부담금 걱정이 크다. 수제화 산업의 고령화로 은퇴를 앞둔 60대 이상 노동자가 많아서 더 그렇다. 공임 인상, 퇴직금 지급 등의 요구를 수용한 사측도 4대 보험 가입까지 밀어붙이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정 지부장은 선결과제를 바꿨다. “제화업체 본사, 하도급업체 사정도 있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요구를 가하면 견딜 수 있겠어요? 그래서 방향을 좀 바꾸려고요. 이번엔 재벌하고의 싸움입니다. 백화점 판매수수료율을 낮추는 게 우선이라서요.” ●납품가 5만원, 백화점 가면 30만원 둔갑 구두 한 켤레의 가격 구조를 보자. 성수동 제화공이 받는 공임은 올해부터 7000원 수준으로 올랐다. 제화공은 두 부류로 나뉜다. 재단사가 자른 가죽을 구두 모양으로 꿰매는 ‘갑피공’과 발 모양 틀인 골(라스트)에 갑피를 씌우고 창을 붙여 마무리하는 ‘저부공’이다. 갑피공과 저부공은 각각 7000원을 받는다. 하청업체 사장은 재료비와 재단비용, 공임비에 각종 비용과 마진(이윤)을 붙여 5만~6만원에 본사에 납품한다. 백화점에 가면 이 구두는 30만원으로 둔갑한다. 여기서 나온 판매이익은 제화업체 본사와 백화점이 나눠 갖는다.공정거래위원회가 해마다 조사하는 대규모 유통업체 판매수수료율을 보면, 가장 최근 자료인 2017년도 기준 백화점이 잡화 매출의 31.4%를 판매수수료로 가져가는 걸로 나온다. 계약서에 쓰여있는 ‘명목 수수료’ 기준이다. 잡화에는 구두 외에도 가방 등 소품이 들어가지만 더 세분화된 기준은 없다. 백화점의 잡화 판매수수료율은 2013년 31.2%, 2014년 30.6%, 2015년 31.8%, 2016년 30.6%로 30%대 초반을 유지했다. 2013년과 비교하면 0.2%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백화점 평균 판매수수료율은 28.5%에서 27.6%로 0.9%포인트 하락했다. 백화점 못지않은 주요 판매처인 TV홈쇼핑은 잡화에 2017년 34.7%의 판매수수료율을 부과했다. 2013년(37.3%)보다 2.6%포인트 하락했지만 백화점보다 높은 수준이다. 정 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판매수수료 낮추는 협상은 사측과 백화점이 할 일이지만, 제화업체도 백화점과의 관계에서는 ‘을’이잖아요. 저희가 나서야죠. 사실 말이 쉽지, 노동자가 재벌하고 일대일로 붙을 수 있겠어요? 공정거래위원회에 요청하고,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정의당 등 정치권 도움도 요청할 계획입니다.” ●백화점 “카드수수료도 오르게 생겼는데?” 예상했지만 백화점은 제화공들의 수수료 인하 요구 계획에 난색을 보였다. 최근 신용카드회사들이 연매출 500억원이 넘는 대형가맹점에 카드수수료율을 0.2~0.3%포인트 인상하겠다고 통보하면서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도 벅차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정부와 여당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돕고자 연매출 30억원 이하 가맹점의 카드수수료를 인하하는 대가로 대규모 가맹점 수수료 인상을 묵인하면서 예상됐던 수순이다. 정 지부장은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가능성에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공임 인상, 퇴직금 지급, 대법원 승소…. 다들 질 거라고 했던 싸움이에요. 계란으로 바위 쳐서 안 되는 걸 되게 만든 게 우리 족쟁이들입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中군용기, 또 韓방공식별구역 진입, 울릉-독도사이 첫 통과

    중국 군용기 1대가 23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했다가 이탈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우리 정부는 이날 오후 주한 중국 무관과 공사참사관을 각각 초치해 엄중히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합참은 “중국 군용기 1대가 KADIZ에 진입해 우리 군이 대응했다”고 밝혔다. 정찰기로 추정되는 중국 군용기는 이날 오전 8시3분 쯤 이어도 서남방에서 KADIZ로 최초 진입했다가 8시27분 쯤 이어도 동방으로 이탈했다. 이후 중국 군용기는 일본 방공식별구역인 JADIZ 내측으로 비행하다, 9시34분 쯤 포항 동방 45마일(83km)에서 KADIZ로 재진입했다. 북쪽으로 기수를 돌린 중국 군용기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를 지나 울릉도 동북방 약 60마일(111km)까지 이동한 뒤, 10시 25분 쯤 남쪽으로 선회해 진입한 경로를 따라 낮 12시 51분 쯤 KADIZ를 최종 이탈했다. 합참 관계자는 “올해 중국 군용기가 동해까지 비행한 사례는 처음”이라며 “이번처럼 울릉도와 독도 사이로 진입해 비행한 것은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중국 군용기는 8차례 동해까지 비행한 바 있다. 이 관계자는 “중국 군용기의 오늘 KADIZ 진입 간 대한민국 영공 침범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방공식별구역(ADIZ)는 영공과는 다른 개념으로 미식별 항적을 조기 식별해 영공 침범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별로 임의로 설정한 구역이다. 이어도 주변은 한국과 일본,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이 중첩된다. 우리 군은 이날 중국 군용기가 이어도 서남방에서 식별됐을 때부터 공군 전투기를 긴급 투입해 추적 및 감시 비행과 경고방송 등 전술조치를 실시했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주한 중국 국방무관인 두농이 소장을 국방부 청사로 초치해 엄중히 항의하고 중국 측이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이원익 국방부 국제정책관은 “올해에도 중국 군용기가 사전 통보 없이 KADIZ에 진입, 우리 영해에 근접해 민감한 지역을 장시간 비행한 데 대해 우리 정부와 국민은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이 정책관은 또한 중국 측에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한중 해·공군 간 직통전화 실무회의 개최와 직통망 추가 설치 등 대책 마련을 요청했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앞서 김용길 외교부 동북아국장도 주한 중국대사관 공사참사관을 외교부 청사로 초치해 유감을 표시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특파원 생생리포트] 공사끝난 하얼빈역으로 안중근 기념관 옮겨갈 수 있을까?

    [특파원 생생리포트] 공사끝난 하얼빈역으로 안중근 기념관 옮겨갈 수 있을까?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중국 내 독립운동 유적지들이 조명받는 가운데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거사 장소인 하얼빈역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관심을 끌고 있다. 공사가 끝난 하얼빈역에는 이전 안중근 기념관의 자취가 모두 사라졌다.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현재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시내에 있다. 원래 2014년 1월 19일 하얼빈 기차역에 문을 열었었다. 안 의사는 거사 직전 11일 동안 하얼빈에 머물며 하얼빈 기차역, 조린공원, 하원가(옛 일본총영사관), 삼림가(당시 하얼빈 한민회장이었던 김성백의 집), 채가구 등에 발자취를 남겼다. 기념관은 안 의사가 하얼빈에 머문 행적을 중심으로 그의 인물사와 사상, 거사 및 순국 과정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안 의사 기념관은 2013년 한중 정상회담에서 하얼빈역 거사 장소를 알 수 있도록 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부탁으로 세워졌다. 중국 정부의 주도로 문을 연 하얼빈역 안 의사 기념관은 3년간 30만여명이 방문했다. 하지만 개관 3년 만인 2017년 하얼빈 기차역 공사 때문에 하얼빈 시내 조선족 민속박물관 1층으로 옮겨와야만 했다. 기념관 2층에는 조선족 민속박물관과 조선족 음악가인 정율성 기념관이 있다.하얼빈역에 있었던 기존 기념관은 통유리창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던 격발 장소를 볼 수 있어 110년 전 역사의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각각 안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가 섰던 기차역 플랫폼 위치에는 바닥의 표지를 비롯해 ‘안중근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 사살사건 발생지’란 게시판과 조명도 설치돼 있었다. 현재 안 의사 기념관은 그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조선반도의 독립을 위해 31년 짧은 생애를 바쳤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긴 하지만 조선민족예술관 안에 있어 안 의사가 조선족이란 오해를 낳을 수 있다. 하얼빈 기차역의 전면 개조 공사는 지난해 12월 25일 마무리됐다. 1899년 건립된 하얼빈역은 그동안 6차례 증축공사를 했으며 이번 공사는 2015년 1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3년간에 걸쳐 이뤄졌다. 신설 하얼빈역은 100년 전의 모습을 되살려 유럽의 스타일과 현대적 요소를 조화시킨 ‘동양의 작은 파리’와 같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평가다. 베이징 한국대사관을 비롯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하얼빈 기차역에서 1909년 10월 26일 있었던 안 의사의 거사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대사관측은 하얼빈역으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다시 이전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현재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하얼빈·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뛰어난 주거 인프라 돋보이는 ‘평택 뉴비전 엘크루’ 1396가구 신규 분양

    뛰어난 주거 인프라 돋보이는 ‘평택 뉴비전 엘크루’ 1396가구 신규 분양

    주거 인프라가 뛰어난 평택시 비전생활권에 약 1400가구 규모의 브랜드 대단지 아파트가 공급될 예정이어서 예비 청약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건설㈜ 은 경기도 평택시 합정동 일원에서 ‘평택 뉴비전 엘크루’ 를 이달 중 분양할 예정이다. 지하 1층 ~ 지상 27층의 아파트 15개 동, 전용면적 64 ~ 84㎡ 총 1396가구 규모다. ‘평택 뉴비전 엘크루’는 평택시에서도 주거 여건이 우수해 지역 내 선호도가 높은 비전동 생활권 인근 비전 지하차도 사거리에 자리한다. 비전동에는 평택시청을 중심으로 평택보건소, 평택세무서, 비전2동 행정복지센터, 평택 남부문화예술회관 등 관공서가 몰려 있어 각종 민원 처리가 편리하다. 대형마트 및 병의원, 근린생활시설이 골고루 산재해 있어 거주 편의성이 높다. 롯데마트 평택점을 위시해 굿모닝병원, 뉴코아아울렛, 소사벌 레포츠타운 등 일상 생활에 꼭 필요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할인마트 및 공판장, 세탁소와 미용실, 편의점 등도 밀집해 있어 주거에 불편함이 없다. 아울러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입지에 ‘스타필드 안성’ 이 개점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 내 밀집한 학교와 학원가는 비전생활권의 특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평택고등학교를 필두로 평일초·소사벌초·용죽초(예정)·신한중·신한고 등 각급 교육기관이 밀집해 있다. 또 풍부한 학생 수를 바탕으로 학원가가 형성돼 있어 자녀교육 여건이 탁월하다. 아울러 ‘평택 뉴비전 엘크루’는 단지 내에 법정 2배 규모의 어린이집을 조성할 예정이어서 대학 진학 이전의 모든 과정 졸업이 가능한 ‘원스톱 교육’ 특화단지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우수한 교통여건도 장점이다. ‘평택 뉴비전 엘크루’ 는 평택시를 관통하는 1번 국도와 38번 국도이 교차하는 사거리 코너 입지에 들어서는 평택 유일의 아파트로 광역 교통망을 자유롭게 누린다. 경부고속도로 안성IC 및 평택 ~ 제천고속도로·SRT 지제역을 통한 광역교통 이용도 용이하다. 향후 간선급행버스 (BRT) 와 동부고속화도로, 평택~오송 복복선 등도 조성될 예정이다. 주변 도시에 예정된 호재들도 반갑다. 단지에서 차량 약 10분 거리에 천안 북부 BIT (바이오 생명공학 기반 정보기술 융합 신산업) 일반산업단지는 조성사업 계획승인 신청이 완료됐다. 총 2069억원을 투입, 96만 6000㎡ 규모의 산업시설과 공동시설을 계획 중에 있으며, BIT 산업단지 조성 완료시 10년 간 생산유발효과는 1691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 1175억원, 고용유발효과는 약 1570명으로 추산된다. 또 국립축산과학원 (성환 종축장) 이전 부지가 한국형 제조혁신파크로 개발, 육성될 계획이다. 충청남도는 이 부지를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중국의 선전특구처럼 제조업의 혁신 거점지구로 만들기 위해 ‘천안종축장(국립축산과학원 이전 부지) 활용 기본구상 수립 연구용역’ 에 착수했다. 아울러 스마트팩토리 플랫폼 기술 연구개발센터, 스마트팩토리 원스톱 기업지원체계, 자동차 및 기계부품 테스트베드 조성 등도 제안했다. 충청남도는 성환 종축장 부지 개발로 16조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4만명 규모의 고용 유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분양 관계자는 “‘평택 뉴비전 엘크루’는 평택에서도 가장 주거 선호도가 높은 비전생활권의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로 실제 주거여건이 잘 갖춰져 있어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높을 것으로 본다”며 “평택시는 대기업 투자와 미군기지 이전, 인근 도시의 개발호재로 인한 미래가치가 돋보이는 지역이어서 주택 구입수요도 꾸준히 유입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평택 뉴비전 엘크루’ 견본주택은 경기도 평택시 합정동에 마련될 계획이며, 입주는 2021년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늘도 미세먼지 예비저감조치… 한중 환경장관 26일 회담

    오늘도 미세먼지 예비저감조치… 한중 환경장관 26일 회담

    환경부는 오는 26일 중국 베이징시 생태환경부에서 한중 환경장관 회담을 연다고 20일 밝혔다. 최근 미세먼지 발생 원인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 터여서 양국의 환경 수장인 조명래 장관과 리간지에 중국 생태환경부 장관의 만남에 관심이 쏠린다. 이번 회담은 지난달 22일 한중 환경국장급 회의에서 우리 대표단이 중국 측에 요청해 성사된 것이다. 양국 장관은 미세먼지 저감을 비롯해 환경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환경분야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 장관은 회담 전날인 25일 베이징에서 현지기업 간담회에 참석한다. 26일 오전 한중 장관 회담을 갖고, 오후엔 한중 환경협력센터를 찾아 양국의 미세먼지 협력사업 이행 상황도 점검한다. 양국은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지난해 6월 한중 환경협력센터를 설립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회담 의제를 논의하고 있다. 회담이 끝난 후 자세한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발령된 고농도 미세먼지 예비저감조치가 이틀 연속 발령된다. 환경부는 “21일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서울·인천·경기도 전역에 고농도 미세먼지 예비저감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예비저감조치는 이틀 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 가능성이 높을 경우 다음날 공공부문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선제적 미세먼지 감축 조치를 가리킨다. 수도권 7408개 행정·공공기관 소속 임직원 52만 7000명에게는 차량 2부제가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환경부와 교육부, 보건복지부는 이날 맞벌이 가정과 학사 일정 등을 고려해 유치원·어린이집·학교의 휴업 권고를 제한적으로 시행하고, 이를 결정하더라도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비상저감조치 발령 때마다 휴업 권고가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초미세먼지(PM2.5)가 다음날 ‘매우 나쁨’(75㎍/㎥ 이상)으로 예보됐거나 비상저감조치 시행 중 2시간 이상 초미세먼지 경보(150㎍ 이상)가 발령될 때 검토된다. 서울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단독] “독립운동가 ‘베이징 3걸’ 중 단재만 기념관 없어 초라해”

    [단독] “독립운동가 ‘베이징 3걸’ 중 단재만 기념관 없어 초라해”

    1936년 한줌의 재로 돌아온 시아버지 호적 없어 사망 신고·묘소 허가 못 받아 1991년 남편 죽은 후 ‘가짜 아들’과 소송 10년여간 재판 과정서 단재 호적 되찾아 마지막 꿈은 표지석 세우고 기념관 건립“일제강점기 중국 베이징에서 민족 항쟁의 구심점으로 활동해 ‘베이징 3걸’로 불렸던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심산 김창숙, 단재 신채호 선생 세 분 중 단재만 기념관이 없는 초라한 신세입니다.” 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으로 활동하다 순국한 단재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76)씨는 19일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시아버지가 여전히 홀대받는 것에 대해 이렇게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중국에 거주하는 이씨는 21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리는 단재 선생의 83주기 추도식을 앞두고 서울을 찾았다. 이씨는 단재의 장남 고 신수범씨의 부인으로, 1992년 한중 수교 이전부터 중국에서 단재를 알리는데 앞장 서 왔다. 그는 “시아버지는 1936년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뒤 한줌의 재로 고향에 돌아왔는데 호적이 없어 사망 신고도, 묘소 허가도 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 친척인 면장 덕분에 몰래 매장했는데, 그 친척은 나중에 파면됐다”고 말했다. 단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도입한 호적에 이름 올리기를 거부했고, 광복 후에도 호적에 등재된 생존자들에게만 국적이 부여돼 그동안 호적 없는 무적자 신세였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시아버지가 무국적자로 조국에서 홀대당하는 것을 바로 잡은 것도 이씨다. 단재의 호적을 되찾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이씨는 “1991년 남편이 죽고 난 뒤 자신이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가짜 아들’을 상대로 10여년간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단재의 호적을 되찾게 됐다”고 설명했다. 남편은 사생아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단재 선생의 호적이 없으니 시어머니 박자혜 여사는 혼인 신고를 할 수 없었다. 부득이 아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자신의 호적에 올렸다”고 말했다. 시어머니 박씨 역시 간호사 출신 독립운동가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정부에 수차례 탄원을 한 끝에 2009년 비로소 단재의 호적을 만들었다. 이때 단재와 함께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을 포함해 모두 62명이 국적을 되찾았다. 그는 “남편은 13세 때까지 아버지의 이름도 몰랐다고 해요. 독립운동가 아들이라는 것이 탄로날까봐 시어머니가 아들한테도 아버지를 숨긴 거죠. 남편이 하도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자 시어머니는 칼을 옆에 갖다두고 ‘앞으로 입밖으로 내면 혀를 잘라버릴 것’이라는 다짐을 받은 후에야 아버지 단재의 이름을 알려줬다는 얘기를 남편한테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독립운동을 한 시어버지로 인해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저의 마지막 꿈은 단재가 살던 종로구 삼청동 터에 표지석을 세우고 나아가 단재의 얼을 되살릴 수 있는 기념관을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통용항공, 일자리 새로 만드는 틈새시장이야…몇가지만 해결되면”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통용항공, 일자리 새로 만드는 틈새시장이야…몇가지만 해결되면”

    조일현 협회장이 말하는 ‘비행기 택시’ 시대“‘비행기 택시’ 시대가 곧 온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비웃어요. 1960~70년대, 검정 고무신 신고 다닐 때 자동차 판매장이 고무신 파는 가게보다 더 많을 날이 올 거라고 상상이나 했느냐고 되묻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조용해집니다. 비행기 택시 시대는 가만히 있어도 올 수밖에는 없는 시대적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빨리 시작하면 더 큰 시장을 차지할 수 있지요.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더욱 필요해지고.” 민간용 경비행기를 택시처럼 이용하는 ‘통용항공산업발전협회’가 한국과 중국 사이에 협약을 맺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15일 조일현(64) 초대 협회장을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조 협회장은 17대 국회의원 시절 국회 상임위원회인 건설교통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베이징대학에서 중국 공산당을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중국통으로 통한다. 한국통용항공산업발전협회는 지난해 11월 발족했고, 중국과 업무협약을 맺는 등 소프트랜딩에 탄력이 붙었다. “韓통용항공, 국가적 추진 中겨냥 신생 분야시진핑 ‘비행기’ 시대 개척 야심찬 계획 추진내년까지 경비행기 5천기, 비행장 8백곳 확보”- 통용항공이란 말이 낯설다. “통용항공(通用航空)이란 말은 중국에서 만들어 사용하는 용어인데, 우리는 중국 시장 진출을 겨냥해 이를 가져와 사용하고 있습니다. 군사와 대형 항공 서비스, 항공 수송을 제외한 것으로 영어로는 ‘제너럴 에비에이션(general aviation·GA)’이라 통칭합니다. 보통 4인승에서 100인승 이하의 경비행기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손님을 부정기적으로 실어나르는 택시, 스포츠 및 관광 사업뿐만 아니라 대규모 농장에 하는 농약살포도 통용항공 산업에 포함합니다. 우리나라엔 개념만 들어온 신생 분야이지요.” - 전 세계 통용항공의 규모는.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 캐나다 등에서 먼저 통용항공 서비스가 시작됐습니다. 2016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에 36만대의 통용 항공기가 있고, 미국이 21만대를 보유하고 있지요. 중국엔 3000여 대에 불과합니다. 중국이 2020년까지 경비행기 5000기를 확보하고, 2021년부터 비행기 택시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랍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중국 항공여객 시장은 2016년 5억명에서 20년 뒤인 2036년에 15억명으로 3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예컨대 중국 통용항공기가 3만대 필요할 때 우리가 1만대만 공급한다고 하면 그게 어딥니까. 우리가 차지할 규모가 얼마나 될 것이냐에 대해서는 과거 정주영 회장이 울산에 현대차 공장을 세울 때 한국 자동차시장 크기를 알았을까요. 저도 그런 심정입니다.” - 중국 통용항공 시장, 잠재력이 무섭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통용항공을 미는 것도 다 까닭이 있습니다. 장쩌민 전 주석은 ‘마이카’ 시대를, 후진타오 전 주석은 ‘고속철’ 시대를 열었지요. 이에 시 주석은 ‘비행기’ 시대를 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합니다. ‘중국 제조 2025’에서 통용항공을 10대 육성전략 가운데 하나로 꼽았습니다. 중국 입장에선 통용항공이 고속철도망을 까는 것보다는 더 경제적입니다. 내년까지 경비행장을 전국 800곳을 갖추기로 하고 한창 공사 중입니다. 몇 년 이내에 경비행장이 1000곳이 넘을 겁니다. 중국에서 제대로 된 통용항공 시대가 꽃피우기 위해서는 경비행기 수만 대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중국 파트너(중국 통용항공산업발전협회)에 따르면 경비행기를 사려는 중국 사람이 30만명에 이르고, 조종사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은 100만명이라고 합니다. 또 중국 각 성에서 조종사 면허 발급기관을 확보하는 중이라고도 하더라고요.” “1953년 첫 자체 기술로 ‘부활’ 제작‘반디호’는 ‘하늘을 나는 페라리’ 극찬산업화 ‘실패’ … 하늘길 열리지 않아개발 대기업…생산은 중기 영역 문제”- 의욕만으로 진출할 수 있나. 우리의 항공기 제조 수준은. “물론입니다. 현재도 수원에 있는 베셀은 2인승 항공기(KLA100)를 만들었습니다. 이게 시속 200km로 14시간 비행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경비행기 제조 기술을 이미 확보하고 있습니다. 66년 전인 1953년 10월 대구에서 국산 경비행기 1호인 ‘부활’을 만들어 시험비행에 성공했습니다. 1991년에는 순수 국산 경비행기 2호인 ‘창공91호’를 개발했지만, 판로를 개척하지 못해 산업으로 연결하지 못했지요. 1993년 국산 3호기인 ‘까치’를 제작했지만, 후속 투자가 이어지지 않아 역시 실패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도 진행되면서 경비행기 제작에 필요한 각종 기술을 괄목하게 습득했습니다. 2001년 9월 21일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4인승 ‘반디호(firefly)’ 선진국 경비행기에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우리 경비행기 제조 역사를 보면 연구원들의 피와 땀, 눈물, 목숨이 배여 있지요. 한국 제품은 완성도가 높고 안전하면서도 다른 선진국보다는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중국이 보는 겁니다. 그래서 거래를 하고 싶어하지요.” - 항공기 제조 기술은 상당한 데, 산업화 실패 원인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만든 반디가 2004년 남북극을 경유하는 세계 일주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이를 몰았던 미국 탐험가 거스 매클라우드(64)는 반디호를 ‘하늘을 나는 페라리’라고 평했습니다. 민간 항공기로는 최초로 미국에 수출도 됐습니다. 2011년 한국항공우주산업(KAI)가 KC-100(나라온)은 미국 연방항공청(FAA) 기준을 다 통과했고요. 그러나 역시 산업화는 실패했습니다. 이런 제조 도면은 모두 책상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지요. 판로 개척을 못 하면서 산업화에 실패한 겁니다. 거기에는 ‘하늘길’에 대한 문제도 있고. 경비행기 개발은 최소 1000억원이 들어가는 대기업 영역입니다. 그런데 대당 4억~5억원 정도 주문받아 생산하는데, 그 부분은 중소기업이 할 입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선진국도 잘 못 합니다. 한국이 경비행기 만든다고 해도 군사용이나 대형 항공기가 아니어서 선진국은 국가 차원에서는 별로 신경도 안 씁니다. 날개를 접어 주차장(격납고)에 보관하는 등 첨단 기술이 들어간 것은 이들 국가가 보호하지만.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진출하려도 경비행기 제조 기술이 없습니다. 한국에겐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틈새시장이 될 겁니다.” “정부 지원 없으면 ‘대장간’ 수준 못 벗어나항공 관제 문제, 계기판 인증 문제 해결 시급韓지역별 준비 시급 … 싱가포르도 올해 시작”- 통용항공에 언제부터 관심을 뒀나. “국회 건교위원장을 지낼 때 선진국과 공항 관계자들로부터 ‘비행기 택시’ 시대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인이던 2016년 8월 경남 양산의 자택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나는 대통령이 되어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고 싶다. 남북이 하나가 되어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 때만이 한반도는 당당한 미래를 열 수 있고, 영원한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다. 남과 북이 서로를 위하고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공유와 동질성 회복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이를 위해서는 쉬운 왕래와 진정한 교류가 필요하다. 따라서 빠른 왕래와 효과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한 말씀을 듣고 통용항공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졌습니다. 최근 남북 관계가 급속화되면서 더욱 필요해졌고요.” - 자동차는 정부가 길을 닦아줬는데, 활주로는 어떻게. “도로 건설 비용으로 활주로 충분히 낼 수 있습니다. 자동차 길은 산도 뚫고 강도 메워야 하지만 경비행기 활주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짧아도 됩니다. 경비행기 활주로는 길이 200m 이내면 충분하지요. 민간영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관제 문제 해결이 시급합니다. 무엇보다도 비행기 제조에서 제일 어려운 게 계기판인데…. 경비행기에 장착될 계기판과 관련해 인증기관 설립이 필요합니다. 반도체 제조와 정보통신(IT) 기술이 우리가 세계 최고이니 계기판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분야 전문가들도 공통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걸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인증받아야 합니다. 인증기관 만드는 것만 해도 정부가 크게 도와주는 겁니다.” - 정부 할 일도 많다. “통용항공은 정부가 관심을 두고 집중하지 않으면, 민간에만 맡겨서는 ‘대장간’ 수준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정부가 심기일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보다 훨씬 작은 싱가포르도 올해부터 비행기 택시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우리나라도 전국을 지역별로 어디에 어떻게 비행기 택시 서비스를 시작할지 준비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는 로봇이 못 만듭니다. 거의 전부 사람 손이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기술집약적이면서도 일자리 창출도 많은 분야인 셈이지요. 그러기에 서둘러야 할 일입니다.” “‘中기술 먹튀’ 우려? …‘당연’안주 말고 경쟁력 확보 노력도中과 교류 확대로 신뢰 쌓아야”- 협회가 할 일은. “현재 국내에 경비행기 제조와 관련된 업무를 정리하고 관리하는 곳이 없습니다. 이게 우리 협회가 할 일이지요. 각 분야의 전문 기술과 지식을 엮어서 하나의 토대를 만들고 또 협회에서 구축한 기반을 토대로 회사를 세우거나 합작 회사를 만들게끔 유도하는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정부나 중국을 비롯한 대외 창구 역할도 하고. 제조·정비·조종사 양성·부품공장 계열화 등 꿰맬 일이 많습니다. 현재 20개 기업이 등록돼 있는 데 협회가 출범했다고 하니 문의가 많아. 그리고 경비행기 제조에는 대략 6000개의 부품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후방산업 효과도 막대합니다. 그리고 중국 조종사들을 교육도 우리가 하게 할 계획입니다. 중국에서 딴 조종사 자격증으로 외국에서는 경비행기를 몰 수 없거든요. 한국에서 딴 자격증은 국제운전면허증처럼 다른 나라에서도 다 인정해 줍니다. 중국인들이 그걸 노리고 있습니다.” - 통용항공, 다른 활용 가능성은 많겠다. “사실, 이국종 교수가 말하는 ‘닥터 헬기’는 갖췄다고 해도 평상시엔 사고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처지입니다. 응급헬기를 지역별 비행기 택시회사에 위임사항으로 주는 겁니다. 이걸 중국 시 주석이 추진하고 있습니다. ‘읍급 콜’이 들어오면 이 회사에서 바로 출동하는 겁니다. 중국은 한국 기술로 병원 응급실이 탑재된 헬기를 만들고, 의료진이 탑승하는 한중일 3국 해상재난 체계를 갖추자고 제안한 상태입니다. 중국이 그런 해상재난 헬기를 다 사주겠다는 겁니다. 이거 한대 가격이 얼마인줄 아세요? 600억~700억원입니다. 중의학이라는 게 응급상황에서 별로 쓸모없고, 한국 의료기술은 세계 수준인 것을 중국이 잘 알기에 이런 제안을 한 겁니다.”- 중국의 ‘기술 먹튀’가 우려된다. “중국의 항공 기술은 세계적입니다. 군사용이나 대형 항공기 제조 수준은 거의 미국이나 유럽 수준의 90%에 달했습니다. 드론은 오히려 더 앞섰고요. 다만, 경비행기 분야에서는 우리보다 뒤처졌져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특허가 다 끝나 단종된 ‘세스나’를 만드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우리 경비행기 기술도 중국이 금방 습득할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잡힐 우려도 있지만, 우리도 끊임없이 노력해서 경쟁력을 갖춰야지, 여기에서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 산업을 막 시작하던 시절, 현대나 기아차가 미국에 공장을 지어 진출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습니까. 경비행기도 미국에 진출할 날이 올 겁니다.” - 그래도 너무 중국 의존적이다. 중국, 과연 믿을 만 한가. “시진핑 정부가 확실하게 밀고 있으니, 통용항공은 시간만 지나면 궤도에 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필요한 경비행기를 한국이 생산하면 다 사가겠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제품이 완성도가 높고 안전하면서도 다른 선진국보다는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조건에서 말이죠. 이런 제안을 한 파트너인 쉬창둥(徐昌東·67) 중국 협회장은 시 주석이 애지중지하는 인재입니다. 그의 부친이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하던 이승만 전 대통령과 같이 한 인쇄소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충남 예산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참배합니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일부러 찾아가 아들과 손자까지 3대가 함께 고개 숙여 참배했습니다. 그 전에도 두어번 와서 참배했지요.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과 감정을 갖고 있지요. ‘한국 사람은 중국 사람을 못 믿고, 중국 사람은 한국 사람을 안 믿는다.’라는 말은 옛말이 되고 있습니다. 교류를 통해 서로 확인했고, 신뢰를 쌓아가고 있지요.” “베이징대 박사학위 조기졸업에 한문 실력 발휘어릴 적 가난해 서당 3년 다녀…高2때 군 입대도‘봉이 김선달’ 놀림감 생수도 산업화 성공 전력” - 중국에 대해 얼마나 잘 아나. “개인적으로 내가 박사학위가 2개인데 하나는 중국 베이징대에서 딴 겁니다. 국회의원 선거에 떨어지고 2000년 중국에 갔지요. 가서 지내보니 ‘밥값보다 통역비’가 더 들어요. 그때 베이징대에서 박사학위 과정 모집을 보고 ‘저기 들어가면 말은 배울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지원했지요. 중국정부론을 전공했는데, 이게 사실은 중국 공산당을 연구한 겁니다. 옛날에 서당에서 한문 공부한 게 큰 효과를 봐서 2년 반 만에 조기졸업했습니다. 고생도 무척 많이 했는데…. 학위 수여식에 총장이 불러서 가니 나 혼자입디다. 총장이 ‘100년 역사에 정식 조기졸업한 학생은 두 번째’라고 하더라고요. 2004년 한국 돌아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고, 그해 7월 졸업식장에 갔습니다. 중국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공부할 때 직접 베이징대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고요. 파견교수 자격으로 학생들 점수를 직접 매겼습니다.”- 서당을 다녔다고? “난 화전민의 아들로,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안이 너무 어려워, 할아버지가 하시던 서당에서 3년간 한문을 배웠습니다. 그게 베이징대에서 박사학위 밟을 때 정말 요긴하게 쓰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다 세 살 아래 동생들과 중학교, 고등학교에 같이 들어갔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소집영장’이 나와 군대 갔습니다. 군 제대하고 3학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고…. 25살이던 대학교 2학년 때 국회의원 출마한다고 1500만원 싸들고 선관위 등록하러 갔었습니다. 그때 소 한 마리 값이 30만원이던 시절이야. ‘나이가 적으니 대학교 졸업하고 출마하라.’면서 후보 등록을 안 받아줬어….” 비행기 택시 서비스가 어찌 보면 황당무계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사서 마시는 생수 판매도 당초에 허무맹랑한 사업처럼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생수 판매도 조 협회장이 양성화에 앞장섰던 사업이었다. “1990년대 초쯤이었는데, 생수 판매를 허가하자고 하니 ‘봉이 김선달’이니 ‘국민 위화감 조성’이니 하면서 엄청 반대가 많았습니다. 당시 수출용으로 생수를 판매하는 것은 괜찮다고 허용된 상태였습니다. 주로 미군 PX에 들어갔지요. 업체는 물통 배달료만 받고, 허가 품목도 아니어서 정부가 수질 검사를 못 했습니다. 그게 오히려 맹점이어서 수질이 엉망이었던 것이지요. 결국 판매를 양성화·산업화시켰고, 국민은 더 깨끗한 물을 마시게 됐습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나는 독립운동가들의 100년 전 뜨거운 함성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나는 독립운동가들의 100년 전 뜨거운 함성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한다면,/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하략)’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시인인 심훈(1901~1936)은 시 ‘그날이 오면’에서 조국의 광복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노래했다.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심훈처럼 독립을 간절히 염원했던 선열들의 항일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문화재청이 마련한 특별전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이다. 이번 전시는 19일부터 4월 21일까지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제10·12옥사에서 열린다. 1910년 경술국치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환국까지 긴박했던 당시 상황과 선열들의 발자취를 재조명하는 자리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18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매천 황현 선생의 유물, 이봉창 의사의 선서문 및 의거자금 송금증서 등 살아있는 자료들을 통해 항일 독립의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전시는 도입부를 시작으로 총 3부로 구성된다. 도입부에서는 조선말기 우국지사 매천 황현(1855~1910)의 유물이 눈에 띈다. 1910년 경술국치에 항거하는 황현의 결연한 뜻을 담은 칠언절구 4수의 한시 ‘절명시’를 비롯해 황현의 후손들이 100년 넘게 소장해온 또다른 자료 ‘사해형제’(四海兄弟)와 신문 자료를 모아놓은 ‘수택존언’(手澤存焉) 등이 최초로 공개된다. 특히 ‘사해형제’에는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한용운이 황현의 죽음을 기리며 쓴 애도시 ‘매천선생’(梅泉先生)이 수록돼 있어 눈길을 모은다. 홍영기 순천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한용운이 1913년 ‘조선불교유신론’을 간행한 뒤 전국 유명 사찰을 순회하며 강연을 했다”면서 “구례 화엄사에 갔을 때 황현의 동생을 만나 이 시를 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1부 ‘3·1운동, 독립의 꽃을 피우다’에서는 등록문화재 제730호인 ‘일제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를 만나볼 수 있다. 안창호, 윤봉길, 유관순, 김마리아 등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 4857명에 대한 신상카드가 소개된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지역 3·1운동 수감자와 여성 수감자의 활동 상황도 살펴볼 수 있다. 지난해 각각 등록문화재 제713호와 제738호로 등록된 이육사의 친필 원고 ‘편복’과 ‘바다의 마음’도 전시된다.2부 ‘대한민국임시정부, 민족의 희망이 되다’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련한 다양한 유물이 소개된다.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조소앙이 ‘삼균주의’(三均主義)를 바탕으로 독립운동과 건국의 방침 등을 정리한 등록문화재 제740호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과 두터운 천 위에 일본 국왕을 처단할 의지를 맹세한 ‘이봉창 의사 선서문’ 등이다. 나라의 광복과 환국의 긴박했던 상황을 조명하는 3부 ‘광복, 환국’에서는 백범 김구가 1949년에 쓴 붓글씨 ‘신기독’(愼其獨·‘홀로 있을 때도 삼가다’는 뜻)과 1945년 11월 초판 발행된 등록문화재 제576호 ‘한중영문중국판 한국애국가 악보’가 공개된다. 다만 문화재청은 유물의 보존 환경을 고려해 복제본을 전시하기로 했다. 전시 개막일인 19일과 3월 1일, 4월 11일에만 유물 원본을 전시한다. 이밖에도 문화재청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22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항일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활용’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열고, 3월 1일부터 31일까지는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실에서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가제)을 선보일 예정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부고]

    ●이명호(전 한국여자농구연맹 사무국장)씨 별세 16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 18일 13시 20분 (02)3010-2000 ●손정배(문화일보 부국장 겸 편집부장)씨 부친상 16일 순천향대 구미병원 장례식장, 발인 18일 오전 9시 (054)464-4444 ●한제욱(전 전북일보 이사)씨 부친상 17일 전주뉴타운장례식장, 발인 19일 오전 8시 010-3659-2546 ●임인석(중앙대병원 소아과 교수)이석(임이석테마피부과 원장)씨 부친상 문남주(중앙대 안과 교수)씨 시부상 17일 중앙대병원, 발인 19일 오전 8시 (02)860-3501 ●윤병우(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임상강사)채영(비바리퍼블리카㈜ 변호사)씨 부친상 최유진(연세대 객원교수)씨 시부상 17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 19일 오전 8시 30분 (02)3010-2293 ●이호섭(전 KBS2라디오 희망가요 진행자)·창용·진섭·상섭·연희·은희씨 부친상 김윤수·성영철씨 장인상 신경숙·권민혜·김순남씨 시부상 17일 오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 19일 오전 5시 (02)3010-2263 ●서흥석(전 전북도의원)씨 별세 서하석(전 군산대교수)씨 형님상 서은희·은정씨 부친상 황인욱(수원지방법원 등기관)전영만(메가플렉슨 상무)씨 장인상 17일 전주 뉴타운장례식장, 발인 19일 오전 9시 010-5703-5797 ●김영진(연합뉴스 대전업무팀장)씨 모친상 17일 부산 한중프라임장례식장, 발인 19일 오전 9시 30분 (051)305-4000.
  • ‘유관순 서훈 격상’ 딜레마에 빠진 정부 정책

    ‘유관순 서훈 격상’ 딜레마에 빠진 정부 정책

    “유 열사는 대표 여성독립 운동가… 저평가 우려”“이름 없는 유관순 수없이 많은데… 형평성 훼손”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유관순(1902~1920) 열사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지난달 말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가 ‘이번 3·1절을 맞아 유 열사의 서훈을 상향 조정하면 국민께 좋은 선물이 될 것‘’라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다는 보도(서울신문 2019년 1월 28일자 1면)가 나오면서부터다. 유 열사의 고향인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1919년 3·1운동 당시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 시위를 주도하며 일제의 억압 통치에 저항했던 그의 업적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하지만 학계의 반응은 매우 신중하다. 유관순이 우리나라 독립운동계를 대표할 인물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훈을 높여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이 문제를 두고 국회에서 토론회까지 열렸지만 만족할 만한 해법이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유 열사가 갖는 상징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당위와 ‘국가 상훈제도의 엄밀성과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빅데이터 인지도 4위… 안중근 수준 돼야” 그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3·1운동의 상징적 존재임에도 서훈은 건국훈장 5단계 가운데 3등급에 그쳐 꾸준히 저평가 논란이 제기됐다. 지난 13일 홍문표 자유한국당 의원실 주최로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유관순 열사 서훈등급 격상을 위한 국회 대토론회’에서 시민들은 유 열사에 대한 서훈 격상 요구를 쏟아냈다. 토론장을 가득 메운 청중은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로 시작하는 유관순 노래(강소천 작사, 나운영 작곡)를 제창했다. 유 열사의 서훈 격상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홍 의원의 개회사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신을 ‘유 열사의 이화학당 36년 후배’라고 소개한 박인숙 유관순정신계승사업회장은 “유 열사의 희생정신은 인권 존엄의 영웅 정신”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유 열사의 서훈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갖는 상징성에 비해 등급이 너무 낮아 건국훈장 1·2등급만 받는 대통령 헌화도 받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유 열사의 인기는 매우 높다. 지난해 국가보훈처가 최근 5년간 뉴스·블로그·트위터 등 빅데이터 139억건을 분석한 결과 유관순은 모두 38만 6844번 언급돼 안중근(1879~1910·106만 5844번)과 김구(1876~1949·64만 8084번), 윤동주(1917~1945·56만 1228번)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여성 독립운동가 중에서는 압도적인 1위다. 유 열사가 서훈된 1962년은 박정희(1917~1979) 전 대통령이 5·16 쿠데타(1961) 뒤 정권 정당화 기틀을 마련하고자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건국훈장을 수여하기 시작한 때다. 당시 문교부 산하 공적조서위원회는 저명한 독립운동가 204명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와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저격한 안중근, 상하이 홍커우공원에 폭탄을 던진 윤봉길(1908~1932) 등이 1등급 훈장을 받았다. ●“독립운동 평가 여성에겐 유독 박해” 유관순은 1902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감리교 선교사 엘리스 샤프(1871~1972)의 소개로 1915년 서울 이화학당에 입학했다. 1919년 발발한 3·1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됐다. 그는 모진 고문에 방광이 터지는 중상을 입고 고통받다가 1920년 9월 서대문 형무소에서 1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공적 조서를 보면 그가 옥중에서도 만세를 부르는 등 애국정신이 남달랐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 서훈 공적 심사는 수형 기간과 독립운동 성격 등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유 열사가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활동 기간이 짧았고 당시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이들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해 인지도에 비해 다소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장도 이 점을 지적했다. 유 열사를 비롯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적 공훈이 대체로 낮게 평가됐다는 것이다. 당시 여성이 독립운동 지도자로 부각되기 어려웠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고 독립운동 리더급 인물 중심으로 서훈 대상자를 발굴한 탓에 여성 운동가들의 공적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지금껏 1등급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여성은 중국인 쑹메이링(1897~2003)이 유일하다. 대만 총통 장제스(1887~1975)의 부인으로 한국광복군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1966년 서훈됐다. 아직까지 국내 여성 독립운동가 중 1등급 서훈을 받은 이는 없다. 남자현(1872~1933)이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받아 가장 높다. 그는 3·1운동 당시 중국 둥베이(만주) 지역으로 건너가 무장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동했다. 일본군 장교를 암살하려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영화 ‘암살’(2015)에서 전지현이 맡았던 ‘안옥윤’이 그를 모델로 한 것이다. 지난해 말까지 독립유공 서훈을 받은 여성은 모두 357명이다. 이 가운데 쑹메이링과 남자현을 뺀 나머지는 3등급 이하다. 심 소장은 “유 열사의 훈격 상향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동시에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적 공로도 재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상훈법에 따르면 일단 정해진 서훈은 조정될 수 없다.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공적이 추가로 발굴돼 새로 추천을 받지 않는 한 유 열사의 서훈 격상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두 가지 해법을 내놨다. 하나는 상훈법을 개정해 후대에 역사적 평가가 달라졌다면 서훈을 다시 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홍 의원을 비롯해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이런 내용을 담은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또 하나는 기존 상훈법을 바꾸지 않고 유 열사의 서훈만 올리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지난달 박완주 민주당 의원이 이런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학계 “당시 ‘제 2의 유관순’ 수없이 많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그의 서훈을 높이는 것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저 국민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정확한 근거 없이 훈장 등급을 높이겠다는 것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라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가 유 열사의 서훈을 높여야 한다는 쪽으로 치우치자 역사학자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은 “토론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윤 전 총장은 “정치인들은 (유 열사의 서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학자는 아니다. 학계에선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객석에서 “방금 한 말에 대해 사과하라”는 야유가 쏟아졌다. 반대로 일부 시민은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왔더니 토론회 주최 측이 사실상 답을 정해놨더라. 이것이 무슨 토론회냐”며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이 문제를 냉철한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17일 “1919년 3월 1일 당시 일제에 항거하다가 사라져 간 ‘유관순’ 같은 학생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면서 “한국 최초의 여성 의병지도자로서 25년 넘게 항일활동에 전념한 윤희순(1860~1935)도 5등급인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 데 그쳤다. 상징성 차원에서 유 열사의 서훈만 상향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3·1운동 정신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교수는 유관순이 ‘한국의 잔다르크’로 불릴 만큼 독립운동의 대표적 인물이 된 데에는 이화여대의 대대적 홍보가 결정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그가 대한민국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3·1운동 직후가 아니다. 해방 뒤 친일파 척결 논의가 시작된 1948년 9월부터다. 이때 제헌의회가 친일파 처벌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가동해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대) 교장 김활란(1899~1970)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는 제자들에게 위안부 지원을 독려할 정도로 일제의 충실한 ‘나팔수’였다. 반민특위가 그를 처벌하려고 하자 이대 측은 ‘친일학교’ 오명을 쓰게 될까 봐 걱정이 컸다. 학교 이미지를 쇄신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수소문 끝에 학교 동문 유관순의 사례를 발굴했다. 이대가 그를 통해 학교의 친일’ 이미지를 세탁하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만약 유 열사가 이화학당을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지금까지도 무명의 독립운동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서훈 논의에는 이런 정치적·역사적 배경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형목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위원도 “유 열사를 선열로서 기리겠다는 것은 얼마든지 반길 일이지만 훈격을 바꾸겠다는 것은 형평성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일”이라면서 “독립운동에 전 재산을 쏟아부은 석주 이상룡(1858~1932)도 3등급이다. 유관순을 높이면 이런 분들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것이다. 모든 체계가 뒤집히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유관순 서훈 승격 논란을 계기로 모든 독립유공자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여 전면적 재검토에 나서야 주장도 나온다. 서훈 승격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부풀려진 공적에 대한 강등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원론적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 “반대 입장은 아니지만 신중해야” 이날 토론회에 정부 측 참석자로 나온 황후연 국가보훈처 공훈발굴과장은 정부가 독립유공자 포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설명했을 뿐 유 열사의 서훈 상향 조정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변석영 행정안전부 상훈담당 사무관은 “정부가 마치 유 열사 상훈 승격을 반대하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공무원 역시 유관순을 배우고 자랐다. 신중하자는 것이지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안희정 부인, 2심 작심 비판 “미투 아닌 불륜…진실 밝히겠다”

    안희정 부인, 2심 작심 비판 “미투 아닌 불륜…진실 밝히겠다”

    2심에서 성폭행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부인 민주원씨가 페이스북에 “저와 제 아이들을 위해 진실을 밝히겠다”며 판결을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14일 민씨 페이스북에 따르면 그는 “아직도 이 사건이 믿어지지 않고 지난 1년여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조차 모르겠다”며 “제 한 몸 버티기도 힘든 상태에서 이런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너무 서럽다”고 말했다. 이어 “29년의 결혼 생활동안 오직 아이들과 남편만을 위해 살아온 제게 이런 모욕스러운 일이 생겼다는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더구나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인 제가 같은 일부의 여성들에게조차 욕을 먹어야 하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저는 김지은씨가 안희정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안희정씨를 믿었기 때문에 그 배신감을 감당할 수 없었다”며 “안희정씨를 용서할 수 없지만 재판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2심 재판은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작심한 듯 판결했고 저는 이제 안희정씨나 김지은씨에게 죄를 물을 수도, 벌을 줄 수도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민씨는 “게다가 이제는 안희정씨의 불명예를 아무 잘못 없는 저와 제 아이들이 가족이기 때문에 같이 짊어져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며 “그 불명예를 짊어지고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런 글을 써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참담하지만 저와 제 아이들을 지킬 사람이 이제 저 외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사람(김지은)이 적극적으로 제 남편을 유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김지은씨를 피해자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도 했다. 또 “김지은씨보다 더 나쁜 사람은 안희정씨”라며 “가정을 가진 남자가 부도덕한 유혹에 넘어갔”고 “그의 어리석음으로 지지하던 분들에게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상화원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충남 보령에 있는 콘도 ‘상하원’에서 주한중국대사 초청행사를 연 2017년 8월 18일 상황이다. 행사가 끝난 뒤 별채 2층 침실은 안희정씨 부부가 사용하고, 1층은 김지은씨가 사용했다. 다른 일행들은 각자의 숙소에 머물렀다. 민씨는 “그날 새벽 무렵, 계단으로 누가 올라오는 소리에 저는 잠이 깼다”며 “1층에는 김지은씨 밖에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 사람이 김지은씨라고 생각했고, 자고 있는 안희정씨에게 ‘지은이가 이 새벽에 왜 올라오지?’하고 중얼거렸는데 안희정씨는 잠에 취해 있어 못들었는지 기척이 없었고 저는 그대로 누워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 방안까지 들어와 침대에 누운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까지 봤다고 했다. 그는 “저는 당황해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사이 안희정씨가 잠에서 깼는지 ‘어, 지은아 왜?’라고 물었다”며 “그 소리를 듣자마자 김지은씨는 무척 당황한 듯이 ‘아. 어’ 딱 두 마디를 하고는 후다닥 방에서 달려 나갔다”고 주장했다. 민씨는 이튿날 오후 김지은씨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간밤에 도청직원들과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취해서 술을 깨러 옥상에 갔다 내려오다가 제 방이라 잘못 생각하고 들어갔다’고 사과한 일을 전하면서 “저는 어리석게도 그 말을 믿었다”고 썼다. 재판에서 그날 술을 마신 도청직원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는 김지은씨가 1심에서 설명한 상황을 언급하면서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지은씨가 1심에서 “피고인(안희정)과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길까봐 걱정되기도 하여 2층 계단 앞에 쪼그리고 앉아 깜박 졸다가 일어나 숙소를 찾아가려다가 피고인과 눈이 마주쳤던 것 같다. 2층 방문은 불투명한 느낌이 났던 것 같고 제 기억으로는 실루엣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침실에 들어간 사실이 없고 나를 이상한 사람을 만들 의도를 가지고 한 진술로 보인다”고 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민씨는 ”계단의 아래 중간 끝 어디에 앉아 있었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문과 가장 가까운 계단의 위쪽 끝에 앉아 있었다 하더라도 문까지는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쪼그리고 앉아 있다 일어나면 벽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벽을 통해 실루엣이 비치고 눈이 마주쳤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부부가 잔 침대는 3면이 벽으로 둘러싸여져 있기 때문에 문 뒤에서 누운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는 것도 불가능하다면서 방 사진까지 공개했다. 이어 ”김지은씨가 자신의 방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의 방이라면 왜 그렇게 살며시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와 살금살금 들어와 조용히 있었을까“라며 ”진실만을 이야기하라“고 꼬집었다.그는 1심 재판부는 김지은씨가 안희정씨를 고소하기 전인 2017년 3월 5일에 자신이 구모씨에게 김지은씨가 상화원 부부침실에 들어온 적이 있다고 알리면서 도움을 청했다는 말을 믿었다고 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안희정씨와 부부라는 이유만으로 믿어주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어떻게 있지도 않은 일을 그렇게 빨리 꾸며낼 수 있겠나. 그렇다면 왜 저를 위증으로 고소하지 않으셨나”라고 비판했다. 민씨는 “김지은씨가 상화원에 들어온 날은 김지은씨의 주장에 의하면 바로 2주 전 두 번이나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후”라며 “2번이나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이 ‘수행비서의 업무를 철저히 행하고 한중 관계의 악화를 막으려는 의도로 안희정씨의 밀회를 저지하기 위해’ 성폭력 가해자의 부부침실 문 앞에서 밤새 기다리고 있었다는 김지은씨의 주장을 어떻게 수긍할 수 있다는 것인지 저는 진실로 재판부의 판단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제가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이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글을 쓰는 이유는 제 증언을 인정받지 못하고 배척당했기 때문”이라며 “제가 경험한 사실을 왜 배척당해야하는 지 이유를 알려달라”고 주장했다. 또 “2심 판사님은 어떻게 실루엣이 비칠 수 있다고 하면서 그것만으로 눈이 마주쳤다는 김지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며 사실과 어긋나는 판결을 내리셨나”라며 “왜 제 경험을 거짓말이라고 하셨나. 제가 위증을 했다면 제가 벌을 받겠다”고 밝혔다. 민씨의 주장은 안 전 지사의 성폭행 혐의를 부인하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업무상 위력’에 대한 해석이 1심과 달랐다. 1심은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2심은 김씨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감정을 진술한 만큼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또 업무상 위력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유형적 위력’일 필요는 없다고 봤다. 안 전 지사의 사회적 지위나 권세가 비서 신분인 김씨에게는 충분한 ‘무형적 위력’이었다는 설명이다. 안 전 지사 측이 김씨의 ‘피해자다움’을 거론하며 배척했던 피해 사실 요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김씨 측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했다. 안 전 지사 측은 “김지은씨가 피해를 당한 이후 도저히 피해자라고는 볼 수 없는 행동을 했다”며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수행비서로서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피해자의 모습이 실제 간음 당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며 이런 주장을 배척했다. 2심 재판부는 ‘동의 하에 성관계한 것’이라는 안 전 지사의 진술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017년 7월 러시아 출장에서의 첫 간음이 김씨가 수행비서 업무를 시작한 지 한달밖에 안된 시점이라는 점, 김씨가 체력적으로 힘든 상태였다는 점 등에서 합의된 성관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안 전 지사가 김씨에게 지속적으로 “미안하다”고 말한 부분에서 김씨의 의사에 반한 간음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김지은씨 측 변호인은 ‘2차 피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변호인은 중앙일보에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민씨의 주장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공개된 1심 법정에서 이미 다 주장했던 증언“이라며 ”항소심에서 신빙성에 의심이 있고 다른 객관적 사실에 뒷받침하여 배척당한 것인데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렇게 2차 피해 가하는것에 대해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도 민씨의 긍이 “2차 가해”라고 항의했다. 공대위는 “가해자 가족에 의한 2차 가해는 일반적이고 많이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라며 “2차 가해 행위를 중단하길 바란다”며 “가해자 가족의 글은 1심 재판에서도 펼쳤던 주장이며, 2심 재판부에서는 다른 객관적 사실 등에 의해 배척됐다”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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