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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가 고위공직자의 귀감이라고 실명거론한 강성태 서울시립대 교수

    MB가 고위공직자의 귀감이라고 실명거론한 강성태 서울시립대 교수

    서울시립대를 무작정 찾아간 것은 21일 오후였다. “신문에 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이유로 지난주부터 몇 차례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당한 뒤 마지막으로 한번 부딪쳐 보자고 간 걸음이었다. 운 좋게도 강성태 교수의 연구실 문에는 ‘재실’ 표시가 돼 있었다. 문을 두드리고 “네.”란 응답이 있어 들어갔더니 강 교수는 학생들과 상담 중이었다. 상담이 끝나기를 기다리자 “차나 한잔 하고 가시라.”고 했다. 다음은 황성기 에디터와 강성태 교수의 일문일답 내용. 대담 황성기 에디터 marry04@seoul.co.kr →어떻게 교수가 되었나. -2009년 2월 퇴직을 하고는 공직 시절 못 했던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 시립대 세무대학원 박사과정에 등록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교회를 들렀다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강의도 하면서 밤 12시나 돼야 집으로 돌아왔다. 50살이 넘어 하는 공부는 정말 어려웠다. 암기해도 금세 잊어버렸다. 몇 번이나 울었다. 그렇게 2년을 공부하고는 올 2월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8월에 정년 퇴직을 하시는 지도교수가 국제조세 분야의 후임자로 실무 경험이 있는 나를 학교에 천거해 줬다. 한국에서 국제조세를 가르칠 사람이 전무하다시피 해, 앞으로 2~3년은 강의를 더 해야 할 것 같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기독교) 해외 선교를 비롯한 봉사활동이며,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다. 8월에 미얀마로 단기선교를 떠날 예정이다. →퇴직 후 오라는 데가 많았을 텐데. -6개월간 외부와의 연락을 끊었다. 휴대전화는 꺼둔 채 집에 두고 다녔다. 국세청에서는 나를 행방불명된 사람으로 취급했다.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욕도 먹었지만 내 뜻과 다른 이야기를 계속 들어봤자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대학원 동기들과 연구하고 논문도 쓰고 강의하는 생활을 계속 이어나갔다. 아내와 두 딸도 잘 이해해 주었다. 6개월 이후부터는 연락이 안 오더라. →요즘 공직 부패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데, 어떤 심정인가. -가슴이 아프다. 종전에는 하위직 비리가 많았는데 최근엔 고위직 비리가 많이 불거져 나 역시 책임을 느낀다. →고위직은 나름대로 검증된 엘리트인데,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나. -이 말은 오프더레코드(비보도)로 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건 ‘훈련’이 안 된 거다. 자신이 모신 사람이 어땠느냐에 따라 공무원들은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행정고시에 붙으면 겸손해져야 한다. 검사, 판사 다 마찬가지다. 사무관 되면 정책 판단 기능을 하게 되는데 자기보다 계급이 낮은 사람들은 모두 못나 보이고 자기는 잘났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자기가 모른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계급이 높기 때문에 자기 말은 다 옳고…. 결국은 ‘내 말 들어’ 이런 식이 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무지 많이 경험했다. 이런 사람들은 100% 사고가 나게 돼 있다. 내가 직원들에게 못 하게 했다는 부분이 바로 이런 거다. 높은 계급의 직원들이 스스로 ‘바보’라는 걸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나도 ‘바보’지만…. 어떤 문제에 있어 딱 막히면 나는 전문가인 세무서 말단 9급 공무원을 불러 과장과 같이 앉게 했다. 물론 과장 입장에선 기분이 나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얘기했다. “네가 모르면 전문가에게 물어라. 네가 계급만 높을 뿐이지 아는 게 없으면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계급 갖고 일하는 게 아니다. 계급은 무슨 문제가 발생했을 때 깨끗하게 책임지라고 있는 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문제가 생기면 부하에게 미루고 본인은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혼자 잘났다고 원맨쇼를 하고 아랫사람이 맞다, 그르다,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게 하면 100% 사고가 난다. 하위직에도 똑똑한 사람이 많다. 그 사람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 업무의 완성도로 평가하고 승부하는 선배들을 만난 것이 내가 나쁜 길로 가지 않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고위직 비리가 유독 많게 느껴지는데, 왜인가. -문민정부 이후 모든 과정이 투명해지니깐 그렇다. 종전에는 절차상 투명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았다. 투명해지면 투명해질수록 고위직 하위직 할 거 없이 부패는 다 드러나게 돼 있다. 과거에는 고위직들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평가 속에 비리를 관용한 측면이 있었다. 이제 좀 살게 되고 탈계급화되면서 잘잘못을 분명히 가리는 사회적 잣대가 높아지고 정책 결정자인 고위직에게 청렴을 요구하는 수준이 높아진 거다. →국세청 공무원으로서 현직에 있었을 때 유혹이 많았을 텐데. -많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업무 처리 과정을 기록으로 명확하게 남겼다. 솔직히 내가 봐준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봐준 이유를 상세히 적고 그에 대해 내가 책임을 졌다. 내가 봐준 사람들은 누가 봐도 억울한 사람들이었는데 증빙할 만한 서류가 없었다. 그런 사례들과 관련된 기록을 감사원이 다 들여다봤는데, 내 결정이 감사에 걸린 적은 없었다. →LIG 보험의 사외이사 제안을 받았다던데. -‘국세청에서 일한 경력을 이용하려면 일할 생각이 없고, 국제조세에 관련된 일이라면 받아들이겠다’고 해 수락했다. 나로 인해 LIG에서 1주일 동안 회의를 한 걸로 알고 있다. 그쪽에선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다. 다들 사외이사 하려고 난리인데, 조건을 달아 하느니 마느니 하냐고. 현재 시립대에서 사외이사 겸무 여부를 심사 중이다. →사외이사 제안에 전관예우를 활용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할 수 있나. -나도 그런 걸 우려했다. 회사 측에서는 그런 의도는 전혀 없다고 한다. 하는 일이 감사위원이다. 삼성도 사내 비리가 있다는데 다른 기업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사외이사가 되면 (LIG보험을) 낱낱이 파헤칠 것이다. →2년 전에 마다하다가 지금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전관예우를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아님을 확인했다. 사외이사 월급을 3년 모아 해외 봉사활동 자금으로 쓰겠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칭찬을 많이 했는데, 주변의 반응은. -덤덤하다. 나는 누가 그런 얘기를 하면 다 덮으라고 한다. 교회에서도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내가 다 덮었다. 부담스럽다. 내가 원하지 않는 거다.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칭찬받기를 더 소망한다. 물론 공직에서 물러나 사람들에게 욕 안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드리고 있다. 정리 박홍규PD gophk@seoul.co.kr ■ 그는 이런 사람 국세청 차장 0순위로 물망에 올랐던 강성태 당시 국제조세관리관은 2008년 12월 26일 차장 인사가 발표되기 1시간 전까지 사무실에서 취임사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1기 후배 허병익 부산지방국세청장의 승진 인사였다. 관례에 따라 명예퇴직 신청을 했으나 국세청장의 공석 상황이라 곧바로 처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공직자 재산 신고를 한 번 더 했다. 이때 신고한 재산이 현금 자산 3712만원, 아파트 32평형 5억 4200만원과 쏘나타 승용차였다. 유일한 부동산인 아파트는 1992년 입주한 재정경제부와 감사원 등의 연합 조합주택이었다. 과천에서 전세를 살던 강성태 교수는 이 아파트를 8400만원에 분양받았는데 20년 가까이 단 1평도 늘리지 못하고 부인과 두 딸을 키우며 살고 있다. 지금 타고 있는 96년식 쏘나타 승용차는 1998년 뉴욕 총영사관 근무를 마치고 귀국해 구입한 중고차인데 아직도 타고 있다. 18만㎞를 주행했다는 이 승용차는 아직도 튼튼해 몇 년이고 더 탈 수 있다고 한다. 강 교수는 공직자 시절 비정기적으로 해오던 봉사활동을 지금은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서울 외곽에 있는 보육원에서 주 1회 서울시립대 학생 5명과 함께 초·중·고 원생들의 방과 후 교사 겸 친구 겸 부모가 되어주고 있다. 강 교수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지난 3일 열린 제3차 공정사회 추진 회의에서다. 총리실의 ‘강권’에 못 이겨 퇴직 공무원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 강 교수는 뉴욕에서 만난 연방국세청장의 말을 인용해 발언했다. “(퇴임 후) 경력을 갖고 돈을 벌지만 양심은 팔지 않는다. 공직 생활 중 쌓은 전문적 지식과 경험은 내 소유가 아니므로 퇴직하면 국가와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이 발언이 강 교수를 처음 본 이 대통령의 눈과 귀에 쏙 들어간 셈이다. 1954년 대구 출신으로 대건고, 경북대 법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1회로 공직에 들어섰다. 재정경제부 세제실을 거쳐 국세청 의성·김천·포항·광명 세무서장, 대구지방국세청장을 지냈다. 2009년 2월 국제조세관리관을 마지막으로 30년 9개월간의 공직 생활을 마쳤다.
  • “룸살롱 외상값 대신 갚아달라”

    국토해양부 직원들의 향응수수 파문에 이어 경기도 건설본부 공무원이 공사 현장소장에게 룸살롱 외상값을 대신 갚게 하거나 골프용품 비용을 지불하게 한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은 19일 서울·경기도 건설공사 집행실태를 감사한 결과 이런 사실을 적발해 경기도에 해당 공무원의 해임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본오∼오목천 간 도로 확·포장공사 현장 감독을 담당하던 도 건설본부 6급 공무원 A씨는 해당 공사 현장소장 B씨에게 수차례 자신의 술값을 대납하게 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업무상 먹은 룸살롱 외상값을 처리해 달라.”며 B씨에게 170만원을 대신 내도록 했고 “술 한잔 할 테니 술값은 나중에 갚아 달라.”며 50만원어치의 주점 영수증을 건네 결제토록 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쯤에는 상의, 바지 등 골프용품을 골라 입은 뒤 그대로 가게를 나가버려 함께 간 B씨가 비용 40여만원을 법인카드로 대신 결제했다. 심지어 A씨는 같은 해 10월 B씨에게 “진행 중인 감사가 끝나면 감사관들에게 저녁을 사주려고 공사현장별로 100만원씩 지원을 부탁하고 있다.”며 금품을 요구, 다음날 10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아 챙기기도 했다. 감사원은 이와 함께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서 추진하는 한강 르네상스 주운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며 개선 방안을 강구토록 통보했다. 이 과정에서 경력이 떨어지는 하도급 업자의 불법 하도급을 묵인한 관련자 등 13명을 징계 조치하라고 서울시에 요구했다. 감사원은 또 경기도시공사에서 추진하는 광교 신도시 내 밀레니엄 지하차도 설치 사업도 교통개선 효과가 없다며 사업을 취소하도록 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신흥국 고성장·유가 급등 땐 인플레 장기화”

    인도 뉴델리에 사는 호텔 청소부 산타라(45). 그의 월급은 2500루피(약 6만 650원)다. 그는 최근 치솟는 물가에 도저히 생계를 이어 갈 수 없다고 푸념한다. “물가 때문에 로티(인도의 주식인 빵) 말고는 살 수 없다. 차 한잔도 마실 수 없다. 이제 끼니까지 걱정해야 한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소개한 한 인도 노동자의 사연이다. 요즘 외신들은 아시아 신흥국들의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앞다투어 보도하기 바쁘다. 한국과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신흥국들의 인플레이션이 자칫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인도 중앙은행은 16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7.25%에서 7.5%로 인상했다. 물가 안정책의 일환이다. 올해 상반기 인도의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 대비 7.8% 성장해 목표치인 10%를 크게 밑돌았지만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긴축 카드는 불가피했다. 올 들어 두 차례나 금리 인상을 단행한 필리핀은 이날 시중 은행에 대한 지급준비율을 1% 포인트 올렸다. 한국도 지난 10일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한 3.25%로 결정했다. 지난 3월 이후 석달 만이다. 일각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완화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경제 성장 둔화가 신흥국 수출을 감소시키며 경기과열을 식혔다.”면서 “신흥국들의 통화 절상 움직임도 수입 물가를 낮추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시아 인플레이션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프레데릭 뉴만 홍콩HSBC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신흥국의 경제 성장이 다소 둔화되고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완화된다고 느낄 수 있지만 성장모드로 진입하게 되면 또다시 불거질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유가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 증산 합의에 실패한 것은 중동 석유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신흥국들에 악재일 수밖에 없다. 올해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예측도 있었다. 캐서린 영 피델리티 인터내셔널 투자부문 이사는 “인도의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르면 GDP는 0.5% 포인트 감소한다.”면서 “아시아 인플레이션으로 경기가 위축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공직비리 임기내 척결 밝힌 李대통령 “司正과 다르다… 사회의 새로운 기준이다”

    공직비리 임기내 척결 밝힌 李대통령 “司正과 다르다… 사회의 새로운 기준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7일 공직사회의 비리와 관련, “정부가 이번 기회를 관행적 부정과 비리를 청산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정권 말기에 못된 관습이 남아 있는 걸, 앞으로를 위해서 이렇게 (척결)해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민생 점검 및 공직윤리 확립을 위한 장·차관 국정토론회’에 참석, “이건 사정과 관계없고, 사정과 다르다. 사회를 새로운 기준으로 올려놓기 위한 몸부림”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토론회에서 무려 29분간 공직사회의 무사안일, 향응·접대 문화, 전관예우 등 모든 병폐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참석한 장·차관과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주요 참모 등 70여명은 이 대통령의 지적을 긴장한 모습으로 경청했다. 이 대통령은 장관, 대학 총장, 검찰, 경찰, 교육부 공무원, 관료 출신 공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을 거론하며 작심한 듯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오늘 (청와대에서) 원로회의를 해 보니 공무원이 부패한 듯하고 국민에게 온통 썩은 나라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면서 “이번을 (개선의) 기회로 삼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이 연찬회에 가면 업자들이 좀 뒷바라지해 주던 게 오래전부터 있었다.”면서 “나도 민간에 있었기 때문에 을(乙)의 입장에서 뒷바라지해 준 일이 있다. 법무부 검사들도 저녁에 술 한잔 얻어먹고 이해관계 없이 얻어먹은 거니 아무것도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아왔다.”고 털어놓았다. 공무원의 안하무인격인 태도와 전관예우 문제에 대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 이 대통령은 “우리 교육부 공무원들은 과장만 되면 대학총장들을 오라 가라 했다.”면서 “공기업에 민간 CEO들이 일하는데 그 사람들은 단임을 하면 다 떠나려고 한다. 공무원에, 주무부처에 시달리고, 국회에서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고. 그런데 공직자 출신이 오면 적당히 시간 보내고 돌아오면 되니까, 엔조이(enjoy) 하면서 일을 못해 놓고도 더 하려고 로비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또 “다른 나라들은 우리를 선진국이라고 취급하는데 공직자들이 일하는 자세는 과거 ‘3김 시대’ 행태 아래서 일하는 것을 쭉 이어오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어 TV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얘기를 꺼내면서 이 대통령은 “이 프로그램에서는 투표해서 무자비하게 무조건 떨어져 나간다.”면서 “우리에게도 그런 정신이 필요하다. 공직자는 누구도 탓할 수 없고, 핑계를 댈 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토론회는 당초 민생·생활경제 문제만을 주제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최근 공직사회 비리가 큰 문제가 되면서 이 대통령의 지시로 뒤늦게 토론회 이틀째인 18일에는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엄정한 공직기강 확립 방안’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것으로 일정이 변경됐다. 국무총리실은 공직기강 확립과 관련해 하반기 감사·감찰활동 강화 및 공직비리에 대한 ‘온정주의 처벌’ 근절 방안 등을 내놓을 계획이다. ▲감사·감찰활동 강화 및 엄정한 처벌 ▲행정처리 및 기준의 투명화 ▲반부패 교육 및 의식 제고 등 크게 세 분야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김성수·유지혜기자 sskim@seoul.co.kr
  • 김 총장 “해병대 상륙작전 중 사령부 해체하는 게 말이 되나”

    김 총장 “해병대 상륙작전 중 사령부 해체하는 게 말이 되나”

    김준규 검찰총장이 6일 저축은행 비리에 대한 ‘끝장 수사’ 의지를 명확히 하고, 청와대까지 대검 중수부 폐지 반대 입장을 밝힘에 따라 부산저축은행발(發) 정치권 사정은 주마가편이 됐다. 특히 김 총장이 “수사로 말하겠다. 거악에 맞서 왔다.”고 목소리를 높인 대목은 이번 수사의 강도가 어떨 것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금융감독원, 감사원 등을 맴돌던 사정의 칼이 정계와 권부 핵심에 파고들 태세다. 그래서 “이젠 정치권이다.”는 검찰 안팎의 해석이 더욱 힘을 얻는 모양새다. 검찰은 이미 부산저축은행과 삼화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순히 전화통화 한번 하거나, 골프 한번 치거나, 술 한잔 기울인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사세 확장과 구명 청탁로비 과정에서 이들 저축은행으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들의 일단을 검찰이 파악해 놓은 상태다. “(수사 과정에서) 정치인 ‘몇몇’이 나왔다. 돈 받은 사람(정치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검찰 관계자의 발언은 이를 대변한다. 이는 금융감독원에서 시작한 수사가 감사원을 거쳐 정치권에 ‘안착’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사정 강도 못지않게 폭도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장이 “검찰은 수사로 말하겠다.” “국민만을 바라보고 부패수사에 전념하겠다.”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중수부의 명운을 이번 저축은행 비리 수사에 걸겠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이에 따라 정계 외에 연루 의혹을 산 청와대 인사도 이번 수사에서 비켜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도 구속된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을 비롯해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 등을 겨냥하고 있다. 구명로비 등과 관련해 이들의 연관성을 캐겠다는 것이 현재 검찰의 입장이다. 이들은 이미 수사 초기부터 수사선상에 올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도 수사선상에서 완전히 제외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구명로비와 관련, 권 수석에게 전화를 한 것으로 밝혀진 박종록 변호사를 일단 조사한 뒤 권 수석의 조사 여부도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대검 긴급 간부회의-김준규 총장 성명발표’에 이어 청와대의 중수부 폐지 반대라는 입장이 나오자 환영하는 분위기다. 앞서 김 총장은 오전 11시쯤 검정색 넥타이 차림으로 대검 청사에 나타나 이번 사태에 임하는 자신의 입장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김 총장은 정치권의 중수부 폐지 움직임에 대해 “상륙작전을 시도하는 데 갑자기 해병대 사령부를 해체하게 되면 상륙부대는 어떻게 되겠느냐. ”며 당초 성명 문구에도 없는 내용을 넣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총장이 한번도 직접적으로 언급한 상황이 없었고, 사개특위 전체회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총장이 한 말씀 할 때가 됐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당초 10명 안팎 참석하던 간부회의도 이날은 총장, 차장, 선임연구관, 대변인, 기획관, 과장 등 28명이 참석하는 매머드 회의였다. 이민영·임주형기자 min@seoul.co.kr
  • [저자와 차 한잔] 프랑스 소재 에세이 나란히 펴낸 이중수·강문정 시인 부부

    [저자와 차 한잔] 프랑스 소재 에세이 나란히 펴낸 이중수·강문정 시인 부부

    프랑스 파리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시인 부부가 나란히 책을 냈다. 남편 이중수(48)씨는 ‘그녀가 사랑한 파리’를, 아내 강문정(49)씨는 ‘그가 사랑한 베르사유’라는 제목이다. 샘터사 기획으로 나왔다. 남편의 책은 파리의 랜드마크 22곳에 담긴 이야기를 서정적인 수채화와 함께 소개한 여행 산문집이다. 아내의 책은 프랑스문화의 진수라고 하는 베르사유궁전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문화에세이다. ●파리에서 20년째 생활… 함께 머리 맞대고 기획 책 출간을 위해 일시 귀국했던 부부를 지난달 19일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중앙대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면서 처음 만나 1995년 결혼했다는 이-강 부부. 살짝 들뜬 사춘기 소년 같은 남편, 문학소녀 같은 아내. 왠지 아직 아이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혹시나 하며 물었다. 역시. 아내가 차분하게 말했다. “결혼할 때 아이는 낳지 말기로 약속했습니다. 대신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 그리고 좋은 책을 많이 낳고 살자고 했습니다. 이번 책은 우리 부부가 낳은 자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부가 기획 출판으로 함께 책을 내기는 처음이다. 남편 이씨는 비교문학을 전공한 시인이자 번역가로 많는 시집과 산문집,번역서를 펴냈다. 프랑스문학을 전공한 아내 강씨는 2002년 동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데뷔해 첫 시집으로 ‘양철가슴’을 펴낸 바 있다. 책의 내용이나 성격은 다르지만 부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기획을 하고 아이디어를 주고 받으며 쓴 자식 같은 책이니만큼 네 책, 내 책이 없었다. ●랜드마크 22곳·베르사유궁 역사 인물 이야기 이씨는 아내의 책 ‘그가 사랑한 베르사유’에 대해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처럼 베르사유궁전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역사를 서사로 풀어내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언했다.”면서 “초반은 문화에세이지만 3분의2가 역사소설”이라고 설명했다. 강씨는 3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쓴 이 책에서 프랑스 왕조변천사에서부터 위대한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이 살아있는 베르사유 궁전을 거쳐간 역사 속 인물들의 삶과 사랑에 대해 얘기한다. 프랑스가 예술의 나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 분야에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루이 14세, 사치와 허영에 들뜬 여인으로 치부되며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마리 앙투아네트, 슬픈 운명의 주인공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를 흠모했던 페르젠백작 등.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쉽고 생생하게 풀어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베르사유 궁전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과 조각, 유물들을 곁들여 다채롭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 건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씨는 “단순하게 역사적 인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과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사랑한 파리’는 남편이 아내에게 보내는 연서나 다름없다. 남편이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들을 골라 그 역사와 배경을 문학적 감각으로 풀어냈다. 바스티유 광장과 생마르탱 운하 등. 조용히 미소 짓고 있던 부인 강씨는 “지금까지 나왔던 수많은 파리 관련 도서와는 전혀 다른 감성과 매력을 선사할 것”이라고 남편의 책을 평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더니. 함혜리 문화에디터 lotus@seoul.co.kr
  • 첫 전작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 낸 황석영

    첫 전작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 낸 황석영

    최근 2년간 그만큼 구설(口舌)에 오른 작가도 없다. 2009년 5월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중앙아시아에 동행하면서 현 정부를 ‘중도 실용’으로 언급한 게 발단이었다. 1989년 방북과 망명생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7년간 옥살이를 했던 그였기에 논란이 뒤따랐다. 지난해 발표한 장편소설 ‘강남몽’은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1962년 서울 경복고 재학 시절 ‘입석부근’으로 문단에 나왔으니 햇수로 올해 등단 50년을 맞은 소설가 황석영(68) 얘기다. 지난해 9월부터 황석영은 미얀마·베트남·라오스와 국경을 맞댄 중국 윈난성 리장(麗江)에 칩거했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곳을 찾아 달라.”는 그의 부탁에 강태형 문학동네(출판사) 사장이 수소문 끝에 찾은 곳이다. 해발 2400m에 있는 소수민족 나시족의 고대 도시에서 구상과 집필을 한 황석영은 제주도로 옮겨 소설을 마무리 지었다. 연재 방식이 아닌 생애 첫 전작 장편 ‘낯익은 세상’이다. 소설은 1980년대 초 ‘꽃섬’(난지도의 옛 이름)으로 흘러들어온 ‘딱부리’의 눈에 비친 자본주의 문명의 이면과 쓰레기장 빈민의 삶, 폐허에서 싹트는 희망을 말한다. 리장의 한 호텔에서 1일 취재진과 만난 황석영은 “내 나이 대에 걸맞은 ‘만년문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욕에 불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구설’들과 관련, “지난 2~3년간 정말 욕을 많이 먹었다.”면서 특유의 입담을 늘어놓았다. 이제는 짐을 내려놓은 듯 편해 보였다. →‘낯익은 세상’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내 작품 중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장길산’ 등을 전반기라고 한다면, 방북과 망명, 옥살이 이후 10년여 동안 쓴 작품은 후반기 문학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으로 이어지면서 매너리즘에 빠진 건 아닐까란 본능적인 위기감이 들었다. 변신하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초조함도 있었다. 이 무렵 술자리에서 전에 추구했던 세계나 가치관, 현실에 밀착한 소설이 아니라 훨씬 더 보편적인 것을 그리고 싶다는 얘기를 문인들과 나눴다. 당시 누군가가 쓰레기장에 가면 지난 세월을 보낸 욕망의 존재들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농담처럼 카프카가 난지도를 쓴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얘기를 하다가 시대나 인물을 추상화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배경이 난지도인데. -상황을 빌려 왔지만 세계 어느 도시에나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생산과 소비를 극대화한 인간 욕망에 대한 반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곳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공간이기도 하다. →소설 마지막에 ‘땜통’(주인공 ‘딱부리’의 동생으로 도깨비들과도 소통하는 신비로운 존재)이 죽는데. -처음에는 안 죽었는데 출판사 쪽에서 땜통은 저 세상(정령들의 세계)이 어울리니 보내자고 하더라. 예전에는 발끈했을 텐데 요즘에는 편집자의 생각을 존중하는 아량이 생겼다(웃음). →등단 50년이다. 감회가 남다를 텐데. -얼마 전 마흔 살 먹은 아들과 술 한잔하는데 ‘더는 사나운 형님 말고, 할아버지가 되라.’고 하더라. 후배들도 ‘잘난 척 그만하고, 술자리에서 혼자 말하지 말고, 당신만 옳다 하지 말라.’고 하더라. (나처럼) 어릴 때부터 칭찬받은 이들의 약점은 남을 배려하지 못한다는 거다. 후배 문인들과 얘기하다가 내 또래의 ‘만년 문학’ 얘기가 나왔다. 치매에 걸린 노파가 딸을 몰라보면서도 어린 딸의 사진을 보여 주면 알아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현재에서 가까운 기억들은 지워 버리고 자기가 남겨야 할 기억을 간추리고 재정리하듯 만년 문학은 출발점으로 돌아가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작품이 좋다. 여태 썼던 작품과 달리 가야 할 길이 보이니까 다행스럽다. →다음 작품은. -정확히 따지면 내년이 ‘입석부근’으로 등단한 지 50년이다. 처음에는 평론가 몇 명과 대담집을 낼까 했는데 좀 섭섭할 것 같아서 소설을 쓰기로 했다. 제목도 정했다. ‘이야기꾼’이다. 황석영의 아바타 같은 인물을 만들어서 19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온갖 풍랑을 겪는 이야기꾼의 얘기를 쓸 생각이다. →표절 시비 이후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힐 기회가 없었는데. -한국 문단에서 실제 자료를 다루면서 출처를 밝히는 전례가 없었다. 시대물이나 역사소설에서 창작품이 아닌 자료들은 다 활용을 하지 않나. 팩트(사실)를 소설로 전환시키는 것은 작가적인 권리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놓치고 실수한 거다. 그래도 ‘강남몽’은 후대에 자본주의 근대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억될 만한 작품이라고 본다. →2009년 대통령과 중앙아시아에 갔을 때도 말이 많았다. -나는 남북관계에 한이 맺힌 사람이다. 현 정부의 구성이나 콘텐츠가 내가 살아온 세월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남북관계 변화에 기여하고 싶은 생각은 분명하고 여전하다. 다만 공통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지역 차원에서 풀자는 것이다. 그게 알타이 문화경제연대라는 건데 노무현 정부 때부터 나온 얘기다. 다음 정권이 오면 다시 시도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주변에서는 소설만 열심히 쓰라고 한다(웃음). 글 사진 리장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강남구, 2일 구민회관에서 호국보훈의 달 특별 콘서트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나라를 지키다 스러진 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특별한 콘서트가 열린다. 강남구는 2일 오전 11시 대치동 구민회관에서 ‘나의 사랑 나의 조국’을 테마로 브런치콘서트를 연다고 1일 밝혔다. 브런치콘서트는 강남 심포니오케스트라가 2008년부터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매월 첫째 주 목요일 오전에 개최하는 연주회다. 1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빵과 커피 한잔의 여유를 곁들이며 즐기는 음악 향연이다. 특히 수도권 다른 도시와 지방에서도 찾는 이들이 줄을 이을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강남 심포니 서현석 상임지휘자의 지휘 아래 ‘한국페스티발 앙상블’ 박은희 감독의 맛깔나는 해설이 멋을 한껏 더할 이번 콘서트를 찾아가면 호국보훈의 달에 걸맞은 곡들을 감상할 수 있다. 보헤미아의 국민주의 운동을 주도했던 작곡가 스메타나(1824~1884·체코)의 ‘나의 조국’ 두 번째 곡 ‘몰다우’를 시작으로 슈만(1810~185 6·독일)의 ‘트로이메라이’, 모차르트(175 6~1791·오스트리아)의 ‘클라리넷 협주곡 ‘K.622 2악장’, 그리그(1843~1907·노르웨이)의 ‘홀베르크 모음곡 제1번’, 브르흐(1838~1920·독일)의 ‘콜니드라이’가 각각 연주된다. 이어 러시아로부터 지배를 받은 모국의 암울했던 역사를 음악으로 표현한 시벨리우스(1865~1957·핀란드)의 교향시 ‘핀란디아’가 짙은 감동을 선사한다.콘서트 티켓은 전석 인터파크(www.interpark.com)와 전화예약(3447-0421)을 통해 예매 가능하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옛 검찰 선후배’ 차 한잔 없었다

    옛 부하를 ‘쳐야 하는’ 장수는 인정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29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로 소환됐던 은진수(50) 전 감사원 감사위원은 조사를 받기 전 김홍일 중수부장과 차를 마시거나 별도의 면담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조사실로 향한 것으로 31일 알려졌다. 중수부장은 보통 사회 고위 인사가 피의자로 소환될 경우 자신의 방에서 차를 마시며 분위기를 정돈한 뒤 조사실로 보내는 게 관례지만, 한때 아끼는 후배였던 은 전 위원에게는 이 같은 ‘작은 인사’조차 생략한 것이다. 김 부장과 은 전 감사위원은 1993년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슬롯머신 사건’을 함께 맡았던 선후배 사이였다. 또 김 부장이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재직하던 2007년 ‘BBK’ 사건을 수사할 때, 은 전 위원은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법률지원단장으로 ‘BBK 의혹 대책팀장’을 맡으며 창과 방패의 인연을 이어갔다. 모두 천주교 신자로, 김 부장은 은 전 위원 아들의 대부(代父)를 맡을 정도로 막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춘추전국 커피戰 이번엔 원두혈전

    춘추전국 커피戰 이번엔 원두혈전

    식품업계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5%이지만 흔히 ‘봉지커피’로 통하는 커피 믹스로 유명한 한 업체의 경우 20% 가까이 된다. 기업들에 커피 시장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해 국내 커피 시장 규모는 2조 8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중 인스턴트 커피가 1조 2000억원대, 커피 전문점을 포함한 원두커피 시장이 9000억원, 캔커피류의 RTD(Ready-To-Drink) 커피 시장이 6800억원 규모다. 업계에 따르면 커피 시장은 매년 20%씩 성장하고 있다. 한국인의 1인당 커피 소비량도 1975년 0.1㎏에서 2007년 1.8㎏으로 18배나 증가했다. 업체들이 앞다퉈 뛰어들면서 포화상태가 아닐까 하지만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한 관계자는 “선진국의 경우를 볼 때 소득 2만 달러를 기점으로 커피 수요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관세청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국내에서 커피 한잔의 가격은 원두 원가의 30배로, 커피의 놀라운 부가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그동안 소극적으로 커피 사업에 발만 걸쳐 놨던 웅진식품은 25일 야심찬 커피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동서식품이 독주하고 있던 1조원대 커피 믹스 시장에 뛰어든 롯데칠성, 남양유업과 달리 웅진식품은 원두 중심의 고급 커피 시장을 노린다. 새로 커피 브랜드 ‘바바커피’를 출범시키고 이 이름 아래 원두커피사업, RTD 커피사업, 에스프레소 머신 대여사업까지 전개한다. 새달 RTD 커피 12종을 출시 예정으로, 얼마 전 군복무를 마쳐 주가가 더욱 올라간 배우 조인성까지 발빠르게 잡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예정이다. 9월쯤에는 충남 공주 유구에 최신 설비를 갖춘 로스팅 공장도 세운다. 웅진식품 관계자는 “지난해 인스턴트 시장은 전년 대비 10% 정도 성장한 반면 전문점을 포함한 원두커피 시장은 60%의 성장세를 보였다.”며 “커피시장은 원두커피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단언했다. 커피시장의 파이가 점점 커지면서 과거 시장 공략에 실패했던 대상도 새삼 고삐를 죄고 있다. 다음 달 신제품 ‘바리스타도 몰랐던 커피의 황금비율’을 내놓고 유통망 확대 등 다시 공을 들인다. 또 오는 11월 커피 전문점 ‘로즈버드’의 경영권도 다시 가져와 스타벅스, 카페베네와 맞먹는 규모로 키울 계획도 갖고 있다. 커피 전문점의 활황은 고급 커피에 대한 선호도를 길렀다. 국내 캡슐 커피시장 또한 30%대의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2007년 한국에 진출한 네슬레 계열 커피머신 업체인 네스프레소는 한국이 일본에 이어 아시아 2위 시장으로 급부상한 데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현재 1000억원대에 달하는 이 시장에 스타벅스도 진입해 최근 커피머신용 캡슐 커피를 내놓았다. 정수기 업체인 청호나이스도 커피머신 사업에 뛰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길섶에서] 육체의 버릇/황진선 특임논설위원

    힘든 일을 끝낸 분들이 술 한잔 하는 기분을 안다. 등산을 마치고도 막걸리 생각이 난다. 기자들도 다를 것은 없다. 힘들여 쓴 글이 기사화되고 나면 한잔 생각이 난다. 그런데 한잔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문제다. 2차, 3차를 한 다음 날엔 몸이 괴롭기보다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후회스럽기보다는 우울한 쪽이 더 가깝다. 그래서 잘못인 줄 알면서도 다음 날 또 술을 마시기도 한다. 악순환이다. 얼마 전 청소년용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발견했다. 감정은 육체의 버릇이라는 것이다. 술·담배를 많이 했거나, 운동이 부족했거나, 햇빛을 덜 쪼였기 때문에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울하거나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술은 되도록 적게 마시고 일찍 자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몸이 아니라 마음을 위해서 운동을 하거나 일에 열중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울한 감정은 거의 육체의 버릇으로 생겨난다. 사실 다 아는 얘기인데 요즘 새삼 그런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면 육체 탓이 아닌가 싶다. 황진선 특임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21일은 부부의 날…“낭만이 넘치는 한강에서 오붓한 데이트 즐기세요”

    21일은 부부의 날…“낭만이 넘치는 한강에서 오붓한 데이트 즐기세요”

    ‘부부의 날’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겠지만 주말과 맞물린 21일이다. 데이트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남편들은 더러 값비싼 데이트 장소를 물색하느라 마음 고생이 클 터. 그래서 준비했다. 경제적인 데다 낭만적인 한강을 낀 이벤트 모음이다. 서울시는 반포·여의도·망원·뚝섬·선유도·광나루 한강공원 6곳에서 이벤트를 마련한다고 20일 밝혔다. 서래섬 유채꽃길이 매력적인 반포공원은 세빛둥둥섬 개장식과 다양한 문화공연를 준비했다. 뚝섬공원의 사진전과 벼룩시장도 사랑을 확인하기에 딱이다. 광나루공원에서는 만돌린과 첼로 연주를 감상할 수 있고, 여의도공원에서는 건강 컨설팅을 받아 볼 수 있다. 특히 여의도 요트나루에서 요트를 타고, 강변을 바라보며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선유도공원에서는 캐리커처 그려주기 행사, 망원공원에는 색소폰 동호회의 공연이 준비돼 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저자와 차 한잔] 실명소설 ‘명동시대’ 펴낸 안도섭 시인

    [저자와 차 한잔] 실명소설 ‘명동시대’ 펴낸 안도섭 시인

    작가들은 대체로 실명(實名)소설 쓰기를 꺼린다. 자칫 실존 인물의 과대한 평가나 평가 절하의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격랑의 회오리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편린들을 담은 문학 작품이 희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역사의 엇갈리는 평가와 여전히 진행 중인 그 후유증, 그리고 문학작품으로 평가될 실존 인물들의 입장…. 1958년 조선일보와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나란히 시가 당선돼 등단한 안도섭(78) 시인이 낸 ‘명동시대’(글누림 펴냄)는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끈다. 서울 명동을 배경으로 100명이 넘는 문인, 예술인을 실명으로 등장시켜 해방 전후의 문단 이야기를 담은 첫 소설이란 점에서 문단 안팎의 관심을 적지않게 모으고 있다. “일제의 억압·사슬에서 벗어난 해방, 해방 직후의 좌우 대립, 민족상잔의 6·25전쟁과 분단…. 우리는 세계사적으로도 흔치 않은 결정적 문학 소재들을 태산같이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들을 문학으로 끌어들인 실명의 작품이 드문 것은 비극적인 역사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책 출간에 맞춰 서울신문사 회의실에서 만난 저자 안도섭 시인은 우리 문단·문인들의 태만과 직무유기를 먼저 꼬집었다. “누군가는 실제 겪었던 일을 증언해야 하고 그 증언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서울 명동은 해방정국과 좌우 대립, 전쟁 포화로 인한 폐허 속에서도 숱한 문인들이 모여 사랑을 노래하고 예술을 부르짖었던 문인들의 단골 아지트. ‘명동시대’는 바로 그 문화 특구를 겨냥해 그 속에서 부대끼며 죽고 살았던 문인들의 숨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낸다. ‘명동신사’ 박인환, ‘명동백작’ 이봉구 등 당대를 풍미했던 문인·예술인의 공개되지 않은 면모와 열정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명소설은 허구에 바탕하지만 실존 인물을 그린다는 점에서 팩트(사실)를 크게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그렇다면 저자 안도섭 시인도 그 위험과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터. “직접 교류하고 겪었던 당사자들의 증언을 거듭거듭 확인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자료들을 일일이 발품을 팔아 정리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저자가 ‘명동시대’에서 말하려는 궁극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가파르고 험악한 격동의 시대에 가난한 문인들이 명동을 드나들며 술잔을 기울인 것은 치열한 예술혼의 공감이고 그 끈을 놓을 수 없다는 끈끈한 우정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저자가 등단한 1950년대 후반만 해도 활동 문인이 넉넉잡아 200명 정도였던 데 비해 지금은 시인만 1만∼2만명에 달할 만큼 수적인 확산을 이루었다는 우리 문단. “양적 팽창이 꼭 질적 저하를 부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명동시대’를 살았던 문인·예술인들의 예술혼과 끈끈한 유대는 쉽사리 찾아볼 수 없다고 봐야지요.” 결국 저자는 사라진 ‘명동시대’가 공간의 실종을 넘어선 정신과 영혼의 쇠퇴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글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나는 영국 시골에서 귀족처럼 쉰다

    영국만큼 과거를 부둥켜안고 사는 나라가 있을까? 옛것을 오롯이 간직하고 살며, 그 자부심으로 오늘을 사는 영국인들. 그들이 목숨을 걸고 보존하려는 것은 왕정 체제와 각국에서 강탈해 온 대영박물관의 유적들만은 아니다. 영국만큼 과거를 부둥켜안고 사는 나라가 있을까? 옛것을 오롯이 간직하고 살며, 그 자부심으로 오늘을 사는 영국인들. 그들이 목숨을 걸고 보존하려는 것은 왕정 체제와 각국에서 강탈해 온 대영박물관의 유적들은 아니다. 글 사진 = 최승표 기자 / tktt@traveltimes.co.kr 영국의 중세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코츠월드(Cotswolds) 지방에서는 사람과 자연과 낡은 건물이 공존하고 있다. 누구도 주인공이 아닌, 어울림의 멋을 간직한 풍경은 여행자에게 안식을 준다 나는 영국 시골에서 귀족처럼 쉰다 영국만큼 과거를 부둥켜안고 사는 나라가 있을까? 옛것을 오롯이 간직하고 살며, 그 자부심으로 오늘을 사는 영국인들. 그들이 목숨을 걸고 보존하려는 것은 왕정 체제와 각국에서 강탈해 온 대영박물관의 유적들만은 아니다. 시골 지역이야말로‘옛 영국’의 멋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들의 자부심이다. 런던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보석 같은 마을을 찾아 떠났다.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가진 코츠월드(Cotswolds) 지방에 들러 동화같은 마을을 산책했고, 도자기마을 스토크온트렌트(Stoke-on-trent)에서는 중세 귀족들처럼 고급스러운 찻잔에 애프터눈티를 즐겼다. 21세기로 돌아오기 싫었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주한영국관광청 www.visitbritain.co.kr 1 코츠월드는 영국 중부와 남부에 걸친 구릉지대이다. 푸른 초지 위에서 풀을 뜯는 양떼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 3 버튼온더워터는‘영국의 작은 베니스’라는 애칭이 붙을 만큼물과 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을 자랑한다. 코츠월드의 수많은 마을 중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곳이다 전원에 안겨 누리는 보편적 쉼 COTSWOLDS ‘영국식’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영국 고유의 문화들이란 런던 같은 대도시보다는 지방의 마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영국식 정원, 영국식 휴가 문화, 영국식 아침식사, 심지어 영국식 영어발음까지. 하여 이번 여행에서는 런던을 비껴 북서쪽에 위치한 코츠월드(Cotswolds) 지방으로 향했다. 초록의 풍경 속을 거닐며 심신의 안식을 누렸고, 중세시대의 귀족처럼 500년 묵은 호텔에서 잘 먹고, 잘 쉬었다. 해리 포터를 탄생시킨 동화마을 런던을 출발해 옥스퍼드(Oxford)로 가는 기찻길,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이 어딘가 익숙하다. 완만한 구릉의 초지에는 소 떼, 양 떼가 뒹굴고 있고, 오래된 주택들에서는 장작을 때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유럽의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허나 옥스퍼드역에서 차를 타고 서쪽으로 향해 가자 진한 벌꿀색의 낡은 주택들이 나타나면서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코츠월드의 동쪽 관문 위트니(Witney)에 접어든 것이다. 영국 중서부와 남부, 6개 주에 걸쳐 있는 구릉지대인 코츠월드는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들을 품고 있다. 미국의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은 코츠월드를 여행하고 “영국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하게 꾸며진 전원 풍경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도 분통이 터지도록 그 사실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런데 빌 브라이슨의 지적은 조금 잘못됐다. 코츠월드는 중세시대 양모 산업의 중심지로 부유층이 몰려든 후로 지금까지 부호들의 휴양지로 명성이 자자하다. 런던에 사는 도시인들에게는 코츠월드에 별채를 소유하고, 주말마다 휴식을 취하는 게 로망이라고 한다. 브라이슨은 코츠월드의 상징인 석회석 돌담벽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분통이 터진다고 한 것이리라. 군데군데 남아 있는 야트막한 돌담벽과 목가적인 전원 풍경은 제주도와 어딘가 닮아 있다. 돌담과 가옥의 구성물이 현무암이라는 사실만이 눈에 띄게 다를 뿐이다. 그래서일까? 영국 국립 걷기 코스의 일부인 ‘코츠월드웨이(Cotswolds Way)’는 지난해 제주올레와 ‘우정의 길’ 협약을 맺었다. 코츠월드웨이는 남쪽의 배스(Bath)에서 북쪽의 치핑 캠든(Chipping Campden)에 이르는 160km의 도보여행 코스로 험난한 오르막길은 없고, 느릿느릿 걸으며 풍광을 즐기고 예쁜 마을들에서 농촌 사람들의 일상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올레길과 흡사하다. 코츠월드라는 지명보다 그 풍경이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숱한 영화가 이곳을 배경으로 하는 까닭이다. <해리 포터>의 작가 J.K. 롤링은 코츠월드 지방의 예이트(Yate) 마을에서 나고 자랐으며, 영화 장면 중 일부를 코츠월드에서 촬영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섀도우랜드> 등도 코츠월드를 배경으로 했다. 코츠월드와 인연이 깊은 유명인들도 많다. 영화배우 케이트 윈슬렛은 촬영이 없을 때 북부 코츠월드에 있는 자신의 집에 머문다고 한다. 찰스 왕세자도 어릴 적 이곳에서 자랐고, 폴로를 배웠다고 한다. 차를 타고 목초지가 펼쳐진 길을 달리는데 왕가의 후손처럼 보이는 소년들이 폴로 경기를 즐기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6개 주에 걸쳐 있는 코츠월드에는 약 200개의 마을이 있다. 각각의 마을들은 가옥의 형태가 조금씩 달라 고유한 매력을 가졌으니 머무를 마을을 결정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숙제가 아니다. 돌담과 가옥을 구성하는 석회석은 북쪽 지역은 진한 노란색을 띠고, 남쪽으로 갈수록 검은 빛깔이 강해진다. 코츠월드의 마을 중에서 바이버리(Bibury)는 영국에서 가장 예쁜 마을로 손꼽힌다. 콜른(Coln) 강이 잔잔히 흐르고 송어가 평화로이 헤엄을 치고 있다. 동화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한 집들은 코츠월드의 어느 마을보다 동화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바이버리는 아트 & 크래프트 운동을 주도했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가장 사랑했던 마을이기도 하다. 예술마저 대량생산되던 산업혁명의 시대에 반기를 들고 수공예를 활성화시킨 예술가의 눈에 가장 아름답게 보인 마을이라니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코츠월드에서 가장 대중적인 마을로는 버튼온더워터(Burton on the Water)가 꼽힌다. ‘영국의 작은 베니스’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 마을에는 청계천보다 얕은 냇물을 사이에 두고 아기자기한 앤티크 상점들이 줄지어 있고, 마을 곳곳에 볼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모터 뮤지엄에는 구식 자동차와 오토바이 등이 전시되어 있고, 버튼온더워터 마을을 9분의 1 크기로 축소시켜 놓은 모델빌리지도 흥미롭다. Gardens & Gardeners 영국식 정원은 ‘상상력’이다 코츠월드의 예쁜 마을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원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지만 각 마을마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신비한 정원을 곳곳에 품고 있다. 몸체 속에 작은 인형을 겹겹이 품고 있는 러시아 인형처럼 정원 속에는 작은 텃밭이 감춰져 있고 텃밭에 뿌리내린 각각의 식물들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다. 영국은 도시와 농촌을 불문하고 나라 전체에 숱한 정원을 갖고 있다. 런던에 있는 하이드파크(Hyde Park)도 정원의 확장에 다름 아니다. 영국 시골 정원의 주인은 중세시대 지주들이었고, 런던 정원의 주인은 왕이었기에 권력의 크기만큼 정원의 크기가 차이가 날 뿐이다. 영국을 벗어나도 영국인들이 스쳐간 곳에는 어김없이 근사한 정원이 있게 마련이다. 미국과 영연방 제국에는 어김없이 보태닉 가든, 영국식 정원이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영국인들은 왜 이렇게 정원에 열광할까? 지금의 ‘영국식 정원’은 18세기를 거치면서 급속히 확대됐다고 한다. 당시 영국 귀족들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절대 권력과 엄격한 이념에 대항해 자유로운 정신을 정원에 표현해냈다. 그러니까 영국식 정원이란 자연의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속박에 대한 반동이었으며, 상상력의 표출 창구였던 것이다. 영국식 정원들은 정형화된 정원의 패턴을 과감히 거스른다. 독특한 형태의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진한 풀꽃향기를 맡으면 꿈에서나 보았던 ‘비밀의 화원’에 온 듯한 착각이 절로 든다. 코츠월드에는 영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아름다운 정원들이 많다. 영국 HHA(Historic Houses Association)에서는 매년 ‘올해의 정원’을 선정하고 있는데 코츠월드 지방에 있는 정원들이 단골로 이 상을 거머쥔다. 버튼온더힐(Burton on the Hill) 마을에 있는 버튼하우스가든을 찾았다. 3월의 정원은 초록의 단색만이 그득했다. 나무를 손질 중이던 백발의 정원사는 “4월에 접어들면 거짓말처럼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필 것입니다”라고 소년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2006년에 ‘올해의 정원상’을 받은 이 정원은 18세기 영주가 살았던 곳으로 코츠월드의 정원은 단지 풀과 꽃을 구경하는 공간만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수시로 자선행사가 열리며, 사진전, 미술전도 열리고, 예식장으로도 사용된다. 다음으로 1988년 ‘올해의 정원’으로 선정된 반슬리하우스에 들렀다. 시런세스터(Cirencester)에 위치한 반슬리하우스도 화려한 정원을 가진 17세기 영주의 주택이었으나 2001년 럭셔리한 호텔로 재탄생했다. 수백년 된 건물의 내부를 모던한 분위기로 180도 변화시켰으며, 호화로운 스파까지 갖췄다. 24개 객실은 모두 다른 디자인으로 설계했으며, 독립된 별채는 동남아 풀빌라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랑한다. 투숙객들로 하여금 중세 귀족이 된 듯한 환상에 빠지도록 완벽하게 연출된 공간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2 영국인들은 정원 속에 그들의 상상력을 담는다. 중세 말, 유럽의 정세가 격변할 때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던 영국인들의 자유분방한 의식이‘영국식 정원’의 출발지점이다 3 중세 귀족들의 주택은 20세기를 거치면서 근사한 호텔로 변모했다. 반슬리하우스는 동남아 풀빌라를 무색케 하는 화려함을 갖췄다. 고풍스러운 외관에 모던한 실내는 영국이 아니고서는 경험할 수 없는 조화다 1 코츠월드는 시간마저 17세기에 멈춘 듯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2 테트버리(Tetbury)에는 7세기에 지어진 성모마리아 교회가 있다. 이 교회 또한 코츠월드산 석회석으로 지어져 벌꿀색을 띈다 3 코츠월드는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굳이 촬영을 위한 세팅이 필요 없어 보인다. 오래된 호텔에는 낡은 책들이 세월의 흔적을 안고 있다 4‘ 비교적’번화한 테트버리 중심가에는 앤티크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5 봄을 기다리는 정원은 정원사들의 세심한 손길로 다듬어지고 있었다 6 코츠월드에는 작은 호수가 많고 호수에는 어김없이 백조가 있다. 호텔 이름 중‘스완(Swan)’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7 마을마다 자리한 교회의 한 켠에는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비석이 행렬을 이루고 있다. 묘지의 분위기는 스산하기보다 정겹다 Accomodation 영국 시골 여행을 위한 최선의 선택 영국 시골 여행의 정수는 호텔에서 누릴 수 있다. 코츠월드에서 ‘호텔=잠자는 곳’이라는 등식은 절대 성립되지 않는다. 근사한 정원을 갖추고 있으며,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해 중세 귀족들이 누린 호사로운 문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까닭이다. 호텔 안에 정원이 있다는 느낌보다는 정원 속에 호텔이 있다는 느낌이다. 이른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에 창을 열면 비밀의 화원에서 하룻밤을 난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코츠월드의 호텔들이 가진 미덕이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호텔이 20개 전후의 객실만을 갖고 있으며, 심지어 4개뿐인 곳도 있다. 체인 호텔이란 찾아보기 어렵고 , 어느 호텔을 막론하고 주변의 경관을 해치는 튀는 디자인도 없다. 가격은 런던의 호텔보다 훨씬 저렴하니 오래 머물기에도 좋다. 코츠월드의 호텔들은 한결같이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17세기풍’은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라 실제 17세기부터 시작된 호텔의 역사를 의미한다. 오래된 외관은 우리의 고택을 연상시킨다. 차이점이 있다면 뛰어난 보존정신과 현대 디자인의 요소를 적절히 수용했다는 데 있다. 위트니에 있는 올드스완(Old Swan) 호텔은 15세기 여관이 스파까지 갖춘 고급 호텔로 재탄생한 곳이다. 16개 객실은 최소한의 레노베이션으로 중세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며, 46개 객실은 외관은 그대로 두고, 실내만 모던한 분위기로 변화를 꾀했다. 낚시와 승마 등 각종 레포츠를 즐길 수 있고, 최근에는 스파 시설도 선보였다. 올드 스완은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영문학자 C.S 루이스가 애용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바이버리에 있는 스완 호텔은 콜른 강을 앞에 두고 너른 정원을 간직하고 있어 코츠월드 내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다. 객실은 단 22개뿐이다. 코츠월드에는 호텔뿐 아니라 B&B(Bed & Breakfast), 게스트하우스도 많다. 가이드에게 “미국에서는 B&B란 통상 저렴한 숙소를 일컫는데 코츠월드 같은 부호들의 휴양지에 있다는 게 어색하다”고 말하자, 콧방귀로 답을 대신했다. 그리고는 “코츠월드의 B&B는 비싼 호텔을 가지 못한 여행객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영국 농촌에서의 휴가를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숙소 형태”라고 설명했다. 세대를 거듭하며, 정원을 다듬고, 몇 되지 않는 객실을 애정을 갖고 보존해 온 주인들의 시골 사람 인심을 체험하고 싶다면 호텔보다 B&B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호텔이든 B&B든, 예약은 서둘러야 한다는 것. 야생화가 만발하는 봄철에 코츠월드를 방문하려면 최소한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안전하다. 코츠월드관광청의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다양한 숙소 정보와 유용한 여행 팁도 얻을 수 있다. www.cotswolds.com 1, 4 위트니에 위치한 올드스완 호텔은 6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레노베이션을 최소화한 객실에 머물면 중세시대로 돌아간 듯 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2 영국 시골 여행의 미덕은 영국인들이 애써 지켜온 그들의 휴가문화를 오롯이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17세기 영주들의 주택을 개조한 고급 호텔들은 실내를 모던한 디자인으로 꾸몄다. 햇볕 드는 밝은 객실은 아늑한 분위기를 극대화시켰다 food 미식가, 대식가를 만족시킨 영국의 맛 영국에 대한 가장 ‘억울한’ 편견 중 하나는 음식에 관한 것이다. ‘피쉬 앤 칩스를 제외하고는 먹을 게 없다’거나 ‘양은 많고 짜기만 하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3~4시간씩 수다를 떨며 와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비상식적인 사람들(프랑스)과 지중해의 축복으로 연중 식재료가 풍부한 아랫동네 허풍쟁이들(이탈리아) 때문에 저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영국인들은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시골에서는 이 편견이 여지없이 깨지기 마련. 지방에서 재배한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들은 충분히 우리의 미각을 만족시켜 준다. 코츠월드에서의 아침식사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라는 고유명사를 낳았을 정도로 영국의 아침 밥상은 특별하다. 풀 브렉퍼스트라고도 불리는 영국 조식은 이름처럼 양이 많다. 호텔에 따라 뷔페식으로 알아서 가져다 먹는 방식이 있지만 주문형으로 큼직한 접시에 음식을 꽉 채워서 정성스레 가져다 주는 경우는 양이 정말 많다. 소시지, 베이컨, 블랙푸딩(순대와 비슷한), 스크램블 에그, 칠리 콩, 구운 토마토, 삶은 버섯, 감자 튀김이 기본이다. 식성에 따라 보기만 해도 질릴 수 있다. 각종 빵과 과일, 시리얼까지 곁들여지면 위장이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기자의 식성 탓일까? 어느 나라에서의 조식보다 영국식은 만족스러웠다. 단지 배만 부른 것이 아니었다. 어느 음식 하나 대충 만들어진 것이 없었다. 이에 비하면 시리얼과 빵 조각, 커피로 아침을 떼우는 콘티넨탈 조식은 요기만 면하는 수준이다. 영국에서 먹는 문화의 대표격은 ‘애프터눈 티’라 할 수 있다. 영국은 어디를 가나 호텔이나 찻집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지만 한 폭의 그림 같은 코츠월드의 절경과 함께하는 맛은 비교할 수 없다. 따뜻하게 구워낸 스콘과 함께하는 홍차 한잔은 오후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특히 영국의 홍차 맛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차 때문에 전쟁까지 불사한 나라가 아니던가. 영국에서는 최근 음식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맛없는 음식의 나라’라는 불명예를 떨치기 위해 국가적으로 스타 요리사를 집중 육성시켜 음식관광의 활성화를 노리고 있을 정도다. 이와 별도로 10년 전 구제역으로 나라 전체가 홍역을 앓은 뒤, ‘믿을 수 있는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오가닉푸드(Organic Food)가 대두됐다. 코츠월드에는 유기농 을 ‘라이프 스타일’로 확장시킨 데일스포드(Daylesford)가 유명하다. 최근 한국 백화점에도 진출해 우리에게 익숙한 데일스포드는 직접 농장에서 재배한 유기농과 기른 가축을 판매하는 상점과 식당, 유기농 화장품으로 즐기는 스파 시설까지 갖추고 있으며, 영국인들은 물론 코츠월드를 찾는 외국인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www.daylesfordorganic.com 5 영국은 오가닉 푸드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유기농을 직접 생산해 다양한 제품으로 판매하는 데일스포드는 코츠월드에서도 명소로 꼽힌다 6 영국에서의 세 끼니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햇살 드는 창가에 앉아 조식을 먹을 때다. 잉글리시 풀 브렉퍼스트의 진수를 코츠월드의 호텔에서 누려볼 수 있다 7 홍차 한잔과 달콤한 스낵을 즐기는 오후의 여유는 영국 여행의 백미라 할 만하다. 근사한 애프터눈 티를 위해서라면 점심과 저녁을 희생할 만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길섶에서] 고마움/주병철 논설위원

    가끔씩 만나 소주 한잔을 하는 모임이 있다. 이번 모임에는 평소 잘 나오던 A씨가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궁금해서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물었다. A씨가 모임의 동료인 B씨한테 서운한 게 있어 크게 삐쳤다는 게 공통된 추측이었다. 절친하던 두 사람을 갈라놓은 게 도대체 뭘까. 별거 아니었다. A씨의 부탁을 믿었던 B씨가 들어주지 않으면서 생긴 일이었다. B씨 말로는 자기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사실 A씨가 어려울 때 정말 발벗고 도와준 사람이 B씨였는데, 그만한 일로 A씨가 B씨한테 그렇게 서운해하다니. 하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달라지는 게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문득 ‘고마움’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A씨의 서운함도 따지고 보면 고마움을 망각한 데서 생긴 것 같았다. 누구나 고마움보다는 서운함을 더 잘 기억한다. 반대로 고마움을 잘 기억하면 서운함은 잊을 수 있다. 조만간 A씨한테 고마움에 대해 말해야겠다. “너나 잘하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서운함의 특효약은 고마움이라는 것을.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차 한잔 하실까요] 고재득 성동구청장

    [차 한잔 하실까요] 고재득 성동구청장

    “무상급식은 국민 식생활 개선, 비만 대책 등과 맞물려 실시해야 할 국가적 사업입니다. 급식은 농산물의 유통과 검사, 보관 등 체계적인 시스템과 연계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단체장이나 교육감이 의욕을 갖고 한다고 될 사업이 아닙니다. 국가가 할 사업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다 보니 갈등을 빚게 됐죠. 용어도 무상급식이 아니라 ‘의무급식’으로 하는 게 맞습니다.” 전국에서 유일한 4선 민선 기초단체장은 11일 서울시와 시의회 간의 무상급식 갈등에 대한 해법을 묻자 이렇게 잘라 말했다. 고재득(65) 성동구청장 얘기다. 1995년 초대 때 당선된 뒤 2006년까지 12년 동안 구청장을 지냈다. 3선 출마 제한 때문에 4년을 쉬었지만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다시 구청장에 올랐다. 현재 서울시 구청장협의회장을 맡아 초선 구청장들의 ‘멘토’(mentor·조언자) 역할을 한다. “초대 때보다 살림이 더 어려워졌어요. 정말이지 지방자치제가 고사 위기에 놓였습니다. 고령화 사회로 진행되면서 복지 수요는 크게 늘어나는데 자주(自主) 재원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25개 구청을 아울러야 할 그는 지난달 열린 ‘지방재정 위기 극복 토론회’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자치구 재정 규모는 초대 때보다 커졌지만 구청장이 재량권을 가지고 운영할 수 있는 예산은 점차 줄어 현재 전체의 5%도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와 자치구 간의 불편한 관계도 털어놨다. “서울시 전체 예산은 30조원에 가까운데 자치구 지원금은 25곳을 다 합쳐도 6억~7억원뿐입니다. ‘시민만 있고 구민은 없는’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는 셈이지요. 무조건 사업만 자치구에 떠넘길 게 아니라 예산까지 따라와야 지방자치가 정착될 수 있죠.” 구청장이라는 직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다른 것은 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구는 직원만 1200명이 넘는 거대한 조직이라 직원들이 힘을 모으면 못 할 게 없다.”면서 “상당히 우수한 인력들이라 재정적인 여유만 있다면 훨씬 더 많은 정책을 펼 수 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뉴타운 사업에 대해서도 “살고 있는 사람이 더 잘 살도록 해야지 쫓아내는 개발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동시다발적인 재개발로 34만 명이던 구 인구가 30만 명으로 줄었다.”며 순환 개발을 주장했다. “동네별 소규모 재개발을 추진해 잠시 옆 동네에서 전세를 살다 다시 돌아와 정착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또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위주의 재개발이 아니라 단독주택을 유지하는 개발도 필요합니다.” 시내 25곳 중 18곳이 초선 구청장이다 보니 고 구청장은 이들의 멘토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당선이 발표된 직후 초선 구청장들을 국회 귀빈식당으로 불러 모았다. 그는 “구청장 10년을 해도 모르는 것이 적잖다.”며 “일과 주민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덤벼야 한다.”고 말했다. “조금 안다고 마음을 놓거나 자만심을 가지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8~9급 공무원들에게도 물어봐야 합니다. 아는 체만 해서는 발전이 없습니다.” 취임 1년을 앞둔 초선 구청장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냐고 묻자 그는 “의욕이 넘치고 진취적이다. 아이디어도 저보다 훨씬 많다. 지금은 오히려 그분들의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 그에게도 멘토가 있었다. 특히 김성순 전 송파구청장과 정영섭 전 중랑구청장, 김동일 전 중구청장, 조남호 전 서초구청장 등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함께 구청장을 시작했던 그분들은 전에 관선 구청장 등 행정 경험을 쌓았던 터여서 수시로 전화해 물어봤습니다.” 그와 성동구의 인연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수배를 받았을 때 한양대에 다니며 행당동 철길 인근에 살던 친구 집에서 숨어 지냈다. 그 뒤 1급인 국회 정책연구위원으로 있다가 조세형(1931~2009) 전 국민회의 의원의 권유로 구청장에 나서게 됐다. 그는 지역을 인정이 넘치는 동네로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시골 마을처럼 빈대떡을 부쳐 이웃과 나눠 먹는 도시 속의 시골, 그런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아이들도 그렇게 커야 지역에 애정이 생깁니다.” 그는 주민들에게 동마다 수영장과 도서관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도 했다. “도서관 바닥에 장판을 깔아 그 위에서 아이들이 책을 보며 뒹굴고 잠도 자고 하는 편안한 도서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책과 더 친숙해질 수 있습니다.” 고 구청장은 “‘위정자는 많고 적음이 아니라 고르지 못함을 탓한다’는 말처럼 주민들이 고르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목민관이 되겠다.”며 말을 맺었다.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한방차로 연10억 최승윤 대표 “커피는 진부하죠”

    한방차로 연10억 최승윤 대표 “커피는 진부하죠”

    “스타벅스의 성공, 부럽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커피전문점 ‘스타벅스’가 미국 시애틀의 6m²(2평) 남짓 커피 소매점에서 시작됐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40년 전 미국에서 시작된 ‘스타벅스’의 커피신화는 국내의 점심시간 문화도 바꿨다. 사무실이 밀집한 도심의 점심시간에는 한손에 커피를 들지 않은 직장인들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커피는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왔다. ‘스타벅스’의 아성에 도전하는 수많은 커피 전문점이 생긴 이 때. 정반대의 매력으로 승부수를 던진 청년이 있다. ‘촌스럽다’, ‘쓰다’ 등 고정관념을 깨고 한방차 테이크아웃점 ‘오가다’를 설립한 최승윤(28)대표가 그 주인공. 사장의 중후함 보다는 신입사원의 풋풋함을 가진 최대표는 2010년 10월 법인설립 1년만에 가맹점 100호를 기대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오가다’는 직영점 4호를 포함해 벌써 40호까지 계약을 마쳤다. 법인설립 원년인 지난해에는 가맹점매출을 제하고 10억원의 매출을 거둬들였다. 이런 성공에는 대기업 입사 합격통지서를 휴지조각으로 만든 최승윤 대표의 두둑한 배짱이 있었다. “‘우리 것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면, 실패를 하더라도 충분히 의미 있다.”는 강한 신념이었다. ◆ 대기업 입사도 포기한 ‘사업괴짜’ 육군중위 제대를 1년 앞둔 최 대표는 종로를 찾았다가 한낮 풍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에 길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인파에 놀랐고 이들의 손에 들려 있는 커피에 한번 더 놀랐다. 직장인들이 매달 통신비를 내듯 커피에 고정비용을 쓰는 걸 본 최 대표는 ‘전통차와 테이크아웃의 접목’이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사업 아이템만 있을 뿐 26세 청년은 맨주먹이나 다를 바 없었다. 최 대표는 일단 부모 설득하기 위해서 대기업에 입사원서를 넣고, 2~3곳에 합격했다. “부모님께 취업도 할 수 있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기업의 작은 수레바퀴가 되는 것도 좋지만, 어차피 사업을 할 거라면 지금 도전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제 말을 들으신 부모님도 허락하셨고 1호점의 보증금을 빌려주셨어요.” 사실 대학시절 최 대표는 사업에 ‘미친’ 괴짜였다. 친구들이 자격증 시험, 대기업 입사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을 때 최 대표는 디자인과 친구들을 모아 브랜드디자인(CI) 회사를 세웠다. 타깃은 종로 일대의 중소형 여행사들. 최 대표는 대학생답지 않은 배짱으로 사업설명서를 들고 영업을 다녔다. 입대 전까지 이 사업으로 꽤 짭짤한 수익을 거뒀다. ◆ 광화문 ‘훈남CEO’가 어엿한 대표로 부모의 허락이 떨어지자 최 대표는 디자이너, 마케팅, 한의사 등으로 이뤄진 ‘드림팀’을 꾸렸다. 대부분 최 대표가 대학시절부터 맺은 인연들이었다. 시장조사를 걸쳐 탄생한 곳이 광화문 1호점이었다. ‘스타벅스’처럼 3명만 들어가도 꽉 차는 6m²(2평)이 공간이었지만, 한 달도 안 돼 이곳은 손님들이 줄을 늘어설 만큼 인기를 끌었고 곧 3호점까지 늘어났다. 한방차의 대중화로 거듭난 ‘오가다’가 인기를 끌게 된 건 훈남 찻집’으로 알려진 것도 한몫했다. 최 대표를 비롯해 그의 소대원이나 후임들로 구성된 종업원들은 외모와 성실성을 고루 갖춰 종로일대에서 인기가 높았다. 여기에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인형을 쓰고 춤을 추고, 고객 노트를 만들어 이름을 모두 외운 최 대표의 ‘감동 서비스’는 적중했다. 고객을 기쁘게 하는 걸 모토로 삼은 ‘고객 중심’업체였지만 ‘오가다’에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09년 폭설이 내렸을 때 존립의 위기가 있었다. 최 대표는 “위기였지만 좌절하진 않았다.”면서 “직원들이 사무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단 한잔이라도 배달한다.’고 광고했고 오히려 매출이 더 뛰어올랐다.”고 말했다. ‘오가다’는 현재 스무 명의 직원을 둔 어엿한 프랜차이즈기업으로 성장했고 현재 일본과 미국 등지에 진출이 논의되고 있다. 재즈가수 등의 문화기획도 후원할 정도로 자리도 잡았다. 하지만 최 대표는 늘 ‘초심’을 강조한다. 우리의 전통, 한방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자 모든 걸 내던졌던 무모함이 바로 ‘초심’이라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오가다’의 경쟁상대로 ‘스타벅스’만을 꼽진 않았다. 코카콜라, 맥도날드처럼 해외에서 인정받는 한국의 대표브랜드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외국인들에게 ‘오가다’가 한국에서 꼭 맛봐야 할 음료 브랜드로 거듭날 때까지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최 대표는 힘줘 말했다. 글=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사진·영상=서울신문 나우뉴스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 [저자와 차 한잔] ‘잊혀진 것들’ 펴낸 한국학연구원 김 원 교수

    [저자와 차 한잔] ‘잊혀진 것들’ 펴낸 한국학연구원 김 원 교수

    장기집권을 비극으로 마무리한 통치자, 그가 남기고 간 혼돈을 빚처럼 안고 출발한 1980년대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꽃 한 송이 피워 내지 못한 ‘서울의 봄’, 군부의 등장과 광주항쟁, 넥타이부대까지 불러낸 민주화운동…. 대학에는 절망과 분노가 타올랐고 시위와 분신이 이어졌다. 그 격랑 속을 살았던 사람들은 그 시절을 박제시켜 벽장 속에 감춰두고 싶어 한다. 그렇게 화석화된 ‘80년대’를 꺼내들고 씻김굿을 한판 펼치자는 이가 있다.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이매진 펴냄)을 낸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수. 그는 이 책을 세상에 던짐으로써 자발적 치매라는 고치 안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내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은 1980년대 대학생들의 궤적을 기록한 ‘학생운동에 대한 보고서’다. 그 시대를 몸으로 부딪쳤던 구술자들의 입을 통해 당시 대학생의 일상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1999년에 출간했다가 12년 만에 방대한 보론(補論)을 덧붙여 새로 출간했다. 김 교수가 책을 새로 내놓으면서 화두로 삼은 것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다. “초판은 역사적 리얼리티의 복원에 초점을 뒀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는 80년대가 왜 상처로 남았고 다시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되새김질 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80년대는 비도덕적이고 반국가적인 패륜아의 역사’라는 오명이 덧씌워졌다는 데서 찾는다. 바로 대한민국 건국, 산업화를 이끌어 온 아비를 부정했던 불경스러운 아들·형제들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80년대를 증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물음에도 분명한 답을 내놓는다. “증언하지 않으면 망각되거나 왜곡된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를 역사의 한 페이지 정도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대들도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기억듣기’는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사회의 지향점을 성찰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가 ‘운동권’이었지만 학생운동이 갖고 있었던 문제점에 대해서도 뼈아픈 지적을 한다. “학생운동이 소멸하게 된 외부적 요인은 군부정권의 퇴장이나 노골적인 폭력의 약화 등이겠지요. 더 큰 원인은 학생조직의 내부적 문제였습니다. 조직의 비대화, 대중을 소외시킨 엘리트주의, 분파와 갈등이 균열을 불렀습니다.” 유행처럼 정치권으로 몰려들었던 소위 ‘386세대’에 대해서도 “목적을 위해서 분명히 존재했던 것들마저 부정한 사람들”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진다. 1980년대를 천착해 온 그에게 2010년대 대학생은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80년대에는 광주항쟁 같은 사회적 현실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있었고 스스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로 인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실들을 현대사의 비극 정도로 인식할 뿐 ‘자기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대학이 취업을 향한 경쟁의 장으로 재편되면서 자신의 존재근거에 대해 질문을 던질 여지가 약해진 것이지요.” 그의 바람은 자신의 텍스트들이 80년대의 트라우마를 읽는 창 구실을 하는 것이다. “지금의 세대들이 이 책이나 비슷한 연구서를 보면서 끝없이 질문을 던지다 보면 언젠가 트라우마는 깨질 수 있을 겁니다.” 많은 이들이 잊고싶어 하는 ‘과거’를 낱낱이 전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찾는 단초를 제공하고 싶다는 그의 마음이 엿보인다. 이호준 편집위원 sagang@seoul.co.kr
  • “北에 두고 온 자식 한시도 못잊어…아이 데려오려면 700만원은 줘야”

    “北에 두고 온 자식 한시도 못잊어…아이 데려오려면 700만원은 줘야”

    ‘새터민’ 박미순(44)씨는 사진 촬영을 끝내 거부했다. 북한에 남아 있는 두 아들 때문에 얼굴이 알려지면 절대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박씨는 “남한에서 재혼해 살고 있지만 북에 두고 온 자식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함경남도 함주군에 살던 박씨는 2006년 튜브 하나에 달랑 몸을 싣고 두만강을 건넜다. 이듬해 중국 공안에게 잡혀 북한으로 송환됐지만 2개월 만에 다시 탈출, 중국을 거쳐 2008년 남한땅을 밟았다. 그는 “딴 세상을 맛본 뒤에는 도저히 북에서 살 수가 없었다.”면서 “북으로 송환돼 보위부-집결소-단련대를 거쳐 집에 돌아가자마자 다시 두만강을 건넜다.”고 말했다. →북한에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건가. -북한과 연결된 조선족 브로커에게 돈을 대면 빼낼 수 있다. 대상자 거주지가 국경에서 가까우면 300만원, 그렇지 않으면 500만원을 줘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남한까지 데려오려면 200만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비용이 적지 않지만 남쪽에서 일을 열심히 해 거의 마련했다. →남한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남쪽 사람들이 외래어를 많이 써 처음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취직도 쉽지 않았다. 또 새터민을 차별하지는 않지만 생활문화 차이가 심해 적응하는 데 시일이 걸렸다.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 탓에 남한에 노숙자가 많아졌다.”는 근거 없는 얘기를 들을 때는 속이 상했다. →새터민들은 생활을 어떻게 꾸려가나. -하나원에서 나오면 정부에서 정착금을 일부 주고 6개월까지 매달 1인당 38만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20평형 임대아파트는 보증금 1900만원에다 월 임대료가 20만 5000원이다. 생활비 때문에 일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탈북 과정에서 몸이 망가져 일을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새터민 남성보다 여성의 취업률이 높다. -여자에 비해 남자들의 일자리가 적은 편이다. 여자는 식당이나 공단 등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지만 남자는 그렇지 못하다. 남자가 여자보다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도 있다. 과거의 북한 사고방식 때문이다. →여가는 있나. 어떻게 활용하나. -가깝게 지내는 사람과 술 한잔 하는 게 큰 낙이다. 아니면 가족과 함께 가까운 곳을 드라이브한다. 새터민들은 조금 여유가 생기면 차부터 구입한다. 그렇다고 사치를 부리는 건 아니다. 차를 굴린다는 건 북한에선 꿈도 꾸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차 한잔 하실까요] 이성 구로구청장

    [차 한잔 하실까요] 이성 구로구청장

    “내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람브라스 거리를 예로 들며 광화문 길 한가운데 광장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성(55) 구로구청장은 3일 이렇게 말하며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광화문광장 사업이 추진됐지만 광장을 교보문고 쪽으로 낼 것인지,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낼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며 이같이 덧붙였다. 행정고시 24회 출신으로 29년간 서울시에서 ‘잘나가던’ 그는 2000년 휴직계를 내고 홀연 세계 일주 배낭여행을 떠났다. 아파트 전세금 9000만원을 털었다. 그는 이미 국장급인 시정개혁단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고시 동기들보다 4년이나 빠른 승진 코스를 밟은 터였다. ●2000년 휴직 가족과 45개국 여행 이 구청장은 세계 일주를 결심한 까닭에 대해 “정상적이지 못한 생활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했다.”고 되뇌었다. 이어 “휴가도 없이 새벽에 별 보고 출근해 자정 넘어 별 보고 퇴근하는 생활을 너무 오래했다.”며 “언젠가는 1년 365일 중 359일 출근했다.”고 덧붙였다. 설날과 추석, 경조사를 제외하곤 매일 출근했다는 것이다. 비행기 출발 직후 아버지가 숨지자 “내가 탄 비행기는 ‘홍콩행’이 아니라 ‘불효행’이었다.”고 털어놓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고, 이듬해 어머니까지 숨을 거두자 여행을 중단할까 고민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격려로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24시간 어딜 가도 늘 가족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전우애와 같은 감정이 생기지요. 처음엔 각자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갈등도 빚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들 사이에 절대로 깨지지 않는 신뢰와 사랑이 꽃핍니다.” 이런 이유로 부인과 중3이던 장남 등 아들 둘에다 처조카까지 데리고 한국을 떠난 그는 스페인에서 렌터카를 도둑맞아 고생하고, 오랜 여행 탓에 너덜너덜해진 여권을 지니고 있다가 싱가포르에서 강제출국을 당하기도 했다. 돈을 아끼느라 여행자숙소를 전전했고, 감자와 밀가루를 구입해 끼니를 때웠단다. 이렇게 45개국 200여개 도시를 돌았다. 이 무렵 얻은 별명이 ‘길 위의 가족’이었다. 하지만 세계 일주가 개인적인 감상만 남겨준 것은 아니다. 도시행정가인 그의 눈에 선진도시의 모습이 잡혔다. 자신이 만들 도시의 그림을 늘 머릿속에 채웠다. 이 구청장은 “가장 좋은 도시는 걷는 게 편한 곳”이라면서 “그런 도시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투자)이 모인다.”고 말했다. 또 “프랑스 파리 시민의 평균 보행거리가 서울시민의 2.5배다. 거리에 예술이 널렸으며, 보행하는 게 즐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구청장 복귀후 육교철거 ‘파격’ 1년 뒤 싱가포르를 마지막으로 여행을 마친 뒤 귀국, 구로 부구청장으로 일하던 2002년 그는 육교 철거를 단행했다. 서울시 최초였다. 당시만 해도 육교 하나 더 설치해 달라는 게 중요한 민원일 정도여서 가히 파격적이었다. 이 구청장은 “육교는 장애인, 노인 등 보행 약자들이 이용할 수 없는 데다 보행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시설”이라고 강조했다. 2006년 역시 서울시 최초로 장난감 도서관을 만든 것도 선진 도시에서 얻은 영감 덕분이다. 주변에선 이런 이 구청장을 “늘 사물에 대해 진지하고 학구적으로 임하는 자세에서 가문의 이력이 묻어나온다.”고 말한다. 퇴계 이황의 18대 후손인 그의 선친은 한학자 운강 이창섭 선생이다. 서울시 감사관을 끝으로 지난해 지방선거에 도전한 그는 가장 큰 화두인 일자리 창출과 관련, 주민들이 실제로 취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폈다. 교육 등에 치우친 그럴듯한 프로그램만 늘어놓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관급공사에 구민이 취업할 수 있도록 시공사와 양해각서(MOU)를 교환했고, 민간 건설업체와도 MOU 교환에 나서 올해만 구민 650명을 취업하도록 이끌었다. 신도림동에 호텔, 백화점 등을 갖출 복합단지 건설회사로부터 완공 후 일자리 500개를 약속받은 게 대표적이다. 이 구청장은 “연내 1800~2000명이 취업에 성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취업자 수를 별도로 특별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기획통으로 불리는 그가 낸 아이디어는 또 있다. 노숙인에게 끼니보다 자활의지를 심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 최근 노숙인 축구단을 창설했다. 타인의 선처에만 기대던 그들은 스스로 회의를 열고 “잘해 보자.”며 의지를 불태웠다. 구로구는 일자리 창출 사업에 노숙인들을 우선 배치해 완전 자활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미 5명을 공공근로에 채용했다. 이 구청장은 “이제 희망의 싹을 틔웠다. 자긍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매우 큰 변화”라며 웃었다. 글 사진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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