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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 대통령 “일상 회복되고 있어 기쁘다” 박물관 방문 소감

    문 대통령 “일상 회복되고 있어 기쁘다” 박물관 방문 소감

    문재인 대통령이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온 뒤 “일상이 회복되고 있어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31일 페이스북에 전날 서울 용산구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신 국보 보물전’을 관람한 후기를 올렸다. 문 대통령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으로 지은 월인천강지곡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면서 “먼저 죽은 소헌왕후의 극락왕생을 빌며 부처님 공덕을 칭송한 찬불가인데, 한글음을 큰 글자로 표기하고 한자를 작게 병기해 한글을 백성에게 알리려는 세종의 애민정신이 와 닿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국민도 잠시나마 코로나를 잊고 우리 전통문화를 즐기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며 관람을 권했다. 또 “프로야구 관람이 시작되고 수도권 문화시설도 문을 열어 국민의 일상이 회복되고 있어 기쁘다”면서 “방역을 위해 불편을 감수해 준 국민께 감사드리고, 국민과의 만남을 기다려 온 문화·예술인, 체육인도 응원한다”고 덧붙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디지털 예능으로 돌아온 스타 PD들

    디지털 예능으로 돌아온 스타 PD들

    김민종 PD, 카카오M ‘마스코트 서바이벌’ 제작‘워크맨’ 고동완 PD, 황광희와 첫 예능 공개지상파 출신 스타 예능 PD들이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새로운 예능을 속속 선보인다. MBC와 YG엔터테인먼트를 거쳐 카카오M으로 이적한 김민종 PD는 대한민국 ‘흙수저’ 마스코트들의 서바이벌 예능 ‘내 꿈은 라이언’을 제작한다. 31일 카카오M에 따르면 디지털 예능 ‘내 꿈은 라이언’은 ‘라이언 선배님’이 롤모델인 전국의 ‘흙수저’ 마스코트들이 세계 최초의 마스코트예술종합학교 ‘마예종’에 입학해 펼치는 도전을 담은 서바이벌 콘텐츠다. 마예종은 세계 최초 마스코트 전문 양성 교육기관으로, 전 직원과 촬영 스태프 모두 마스코트로 이뤄져 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마스코트들은 그들만의 세계관 속에서 각기 다른 개성을 발산하며 수석 졸업생이 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수석 졸업생이 되면 카카오톡 이모티콘 출시 혜택을 받아 인생 역전 기회가 주어진다는 설정이다. 현재까지 대전엑스포 ‘꿈돌이’, 한화이글스 ‘위니’ 등의 출연이 결정됐다. 김 PD는 “사람 못지않은 복잡한 세계관을 가진 마스코트들이 한자리에서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는, 본적 없던 서바이벌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SBS ‘런닝맨’, JTBC스튜디오 ‘워크맨’ 등을 연출한 고동완 PD는 에이앤이 네트웍스로 이적 후 웹 예능 ‘네고왕’의 예고편을 31일 첫 공개했다. 황광희가 참여하는 ‘네고왕’은 온갖 소비자 후기들을 모아 본사에 소비자 요청 사항을 직접 네고(Negotiation, 협상)하러 가는 콘셉트다. 고 PD 사단은 유노윤호와 함께 하는 웹 예능도 제작중이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여기는 베트남] 43년 만에 다시 만난 쌍둥이 형제 사연

    [여기는 베트남] 43년 만에 다시 만난 쌍둥이 형제 사연

    43년 만에 가족을 찾은 베트남 남성의 사연이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외로움과 슬픔 속에 성장했던 깐의 사연은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살 무렵 어려운 가정 형편에 병든 아빠의 치료를 위해 엄마는 쌍둥이 아들 둘을 다른 집안에 입양보내기로 했다. 남편의 치료를 위해 집을 팔고, 홀로 이리저리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돈을 벌었지만, 도저히 5명의 자녀와 병든 남편을 돌보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주변의 권유로 쌍둥이 아들 탄과 깐을 각각 박장(Bac Giang)성과 박닌(Bac Ninh)성의 가정에 입양을 보냈다. 깐은 입양되던 날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잠에서 깨었을 때 낯선 집에는 부모님과 형제, 자매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울었던 기억이었다. 다행히 입양 가정은 형편이 넉넉해서 깐은 깔끔한 옷을 입고 학교도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11학년이 되던 해에 갑자기 어떤 사람이 찾아와 깐이 자신의 친아들이라면서 그를 데리고 갔다. 깐은 드디어 생부, 생모와 형제자매들을 만났다고 여겼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새로 온 집에서 그는 노예처럼 일만 했고, 혈육의 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26살이 되던 해, 그 집에서는 “사실 너는 우리의 친자식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털어놨다. 결국 그는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섰다. 수중에 얼마 남지 않은 돈을 들고 정처 없이 남쪽으로 향했다. 깊은 밤이 오면 ‘나에게도 엄마와 아빠가 있었더라면 이토록 비참하지는 않을 텐데…’ 라는 생각에 외로운 눈물을 흘렸다. 그는 목공과 페인트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홀로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도 인생의 동반자가 나타났다. 그의 나이 37살,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의 아내는 “그의 얼굴에는 가족의 부재에서 오는 슬픔이 묻어났고, 가끔은 넋이 빠진 듯 보였다”고 전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가족을 반드시 찾아주겠다”고 결심하고 실종 가족을 찾아주는 공공기관에 깐의 정보를 제공했다. 한편 깐의 부모는 쌍둥이 아들 중 탄을 20년이 지난 뒤 찾았지만, 깐의 소식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온 가족이 깐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그러던 중 실종 가족을 찾아주는 공공기관에서 드디어 깐의 정보를 가족에게 알려왔다. 드디어 지난 6월 온 가족이 드디어 깐을 만났다. 43년의 세월이 흘러서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날 밤을 꼬박 새우며 할 말을 생각했던 깐, 하지만 가족들을 만나는 순간에는 아무 말이 필요 없었다.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또 한 가지, 자신이 쌍둥이였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왔던 깐은 본인과 똑같이 생긴 형제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쌍둥이 형제 탄을 보는 순간, 깐은 “놀라움에 말문이 막혔고, 기쁨에 가슴이 마구 뛰었다”고 말했다. 현재 깐은 부모님 집에 머물면서 형제들을 방문하고 있다. 특히 쌍둥이 형제와는 동일한 취미를 즐기며 일상을 나눈다. 아내는 “48년 만에 가장 완벽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서 피어났다”고 전했다. 가족들은 조만간 그의 결혼식을 다시 열어줄 계획이다. 부모와 형제, 자매가 참여한 풍성한 결혼식이 될 것이다. 이종실 호치민(베트남)통신원 litta74.lee@gmail.com
  • [똑똑 우리말] 비의 종류/오명숙 어문부장

    ‘궂은비 내리는 밤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궂은비는 끄느름하게 오랫동안 내리는 비를 말한다. 예년보다 긴 장마에 장대비를 동반한 ‘궂은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농경민족이었던 우리 조상들에게 비를 가리키는 이름은 수십 가지나 됐다. 안개비, 는개, 이슬비, 보슬비, 가랑비, 실비, 장대비, 여우비, 억수, 웃비, 단비, 바람비 외에 한자어까지 합치면 족히 40~50개는 된다. ‘안개비’는 빗줄기가 매우 가늘어서 안개처럼 부옇게 보이는 비를 말한다. 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조금 가는 비는 ‘는개’다. ‘이슬비’는 말 그대로 이슬처럼 내리는 비로 는개보다 굵고 가랑비보다는 가늘다. ‘가랑비’는 보통 가늘게 내리는 비를 두루 이르는 말이다. 조용히 가늘고 성기게 내리는 ‘보슬비’나 ‘실비’도 가랑비의 일종이다. ‘부슬비’는 보슬비의 큰말이다. ‘여우비’는 볕이 나 있는 날 잠깐 오다가 그치는 비, ‘소나기’는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 곧 그치는 비다. 물을 퍼붓듯 세차게 내리는 비는 ‘억수’, 장대처럼 굵고 거세게 좍좍 내리는 비는 ‘장대비’다. 비슷한 말로 ‘작달비’가 있다. 웃비는 아직 우기(雨氣)는 있으나 좍좍 내리다가 그친 비, 단비는 꼭 필요한 때 알맞게 내리는 비, 바람비는 바람과 더불어 몰아치는 비를 말한다. ‘안개비<는개<이슬비<가랑비<장대비’ 순으로 빗방울이 굵어진다. oms30@seoul.co.kr
  • [경제 블로그] 아시아나 국유화 논란, 정말 ‘해프닝’일까

    그래서 아시아나항공은 이대로 공기업이 되는 걸까요? 지난 28일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검토하고 있다”는 한마디가 연이틀 도마에 올랐습니다. 전날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20%나 폭등했습니다. 금융위원회가 설명자료를 통해 “원론적인 취지의 답변”이라면서 ‘해프닝’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시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현산 포기 시그널에 플랜B… 금융위는 진화 원인을 제공한 쪽은 HDC현대산업개발입니다. 연일 아시아나항공 인수 포기를 염두에 둔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인데요. 지난 26일 아시아나항공 인수 상황을 다시 실사하자고 제안한 것인데, 사실상의 인수 포기 의사를 보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인수가 무산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채권단도 이에 따라 ‘플랜B’를 마련하는 데 골몰하고 있습니다. 손 부위원장의 발언 이후 시장에서는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것은 대우조선해양처럼 되는 것입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지분 과반(56%)을 보유하면서 회사를 관리했습니다. 과거 한화그룹이 인수를 추진하다가 부실이 드러나면서 거래가 성사되지 못했고 이후 정상화를 위한 지원과 구조조정이 이어졌죠. 그러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이 인수하겠다고 나섰고 현재는 세계 각국에서 기업결합심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우조선처럼 산은이 지분 갖고 관리 가능성 아시아나항공도 결국 이런 수순으로 갈 거라는 전망입니다. HDC현산이 인수를 포기하고 당장 새 주인을 찾긴 불가능할 겁니다. 코로나 시국이 한창인 데다 재무 사정도 열악한 회사를 굳이 떠안으려는 기업은 없기 때문입니다. 거래가 무산되면 산은이 관리하다가 적절한 시점에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에 넘긴 것처럼 새로운 주인을 찾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산은과 수출입은행은 아시아나항공 영구채 8000억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36.9%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1대 주주가 됩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항공사 국유화는 우리나라만의 새로운 시도는 아닙니다. 유럽 항공사들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이미 국유화를 열심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알이탈리아’ 국유화 절차에 들어갔고, 유럽 최대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도 정부가 90억 유로(약 12조 6000억원)를 투입하는 대신 2023년까지 지분 20%를 소유하기로 했습니다. ●유럽도 국유화 추진… 구조조정 뒤 팔 수도 29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들불처럼 번지는 국유화 논란을 가라앉히고 나섰습니다. 은 위원장은 “딜이 무산된 뒤 아시아나항공이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신청하면 자격 요건에 해당한다”면서 “유동성이 부족하면 결국 정부 돈이 지원되는 것을 두고 기자들이 국유화라고 표현한 것 같다. 어쨌든 그런 부분은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외에도 산은이 관리하다가 구조조정을 거친 뒤 대한항공이 인수토록 하면서 국내 일반항공사(FSC)를 1곳 정도만 운영해 가는 방안도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이 모든 시나리오는 HDC현산이 결국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하는 것을 전제로 한 가정입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압수 대상은 폰 아닌 유심” 한동훈, 정진웅에 재반박(종합)

    “압수 대상은 폰 아닌 유심” 한동훈, 정진웅에 재반박(종합)

    “압수수색 방해하거나 거부한 사실 없어변호인에게 전화 걸기 위해 잠금 해제”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수사팀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생한 몸싸움에 대해 한동훈(47·사법연수원 27기) 검사장이 재차 수사팀 측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압수수색 대상물은 휴대전화가 아니라 유심(가입자 식별 모듈)이었으며, 변호인에게 전화하기 위해 휴대전화 잠금을 해제한 것이 증거 인멸 시도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한 검사장은 29일 수사팀장인 정진웅(52·29기)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의 입장문에 대한 반박 입장문을 내고 “압수수색을 방해하거나 거부한 사실이 전혀 없다. (몸싸움이) 증거 인멸 시도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허황되다”고 밝혔다. 그는 “정 부장은 ‘휴대전화’가 압수수색 대상물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유심이 압수수색 대상물이라고 고지받았고, 영장에도 분명히 그렇게 기재돼 있었다”고 강조했다. 한 검사장의 설명대로 이날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은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 유심이었다. 수사팀은 이날 오전 한 검사장을 소환 조사하고 유심을 임의제출 받을 예정이었으나 한 검사장이 소환에 불응하면서 압수수색에 나섰다. 한 검사장은 “압수수색에서 변호인 참여권 행사를 위해 정 부장에게 ‘변호인 전화번호가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으니, 이를 사용해 변호인에게 전화해도 되겠는지’를 문의했고, 정 부장은 명시적으로 허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연히 휴대전화는 먼저 잠금 해제를 해야 전화를 걸 수 있으므로 정 부장과 다른 검사들이 보는 앞에서 잠금 해제를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 부장이 언성을 높이고 테이블을 넘어와 밀면서 휴대전화를 빼앗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정 부장은 앞서 입장문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압수물 삭제 등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해 한 검사장을 제지하고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압수수색을 방해하려는 행위가 있었고, 이를 막으려는 과정에서 물리적 접촉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정 부장은 몸싸움을 벌이면서 ‘잠금 해제를 왜 페이스 아이디가 아닌 비밀번호 입력으로 하느냐’는 말을 했다고 한 검사장은 전했다. 페이스 아이디는 얼굴 정보를 카메라로 읽어 사용자를 인식하는 보안 수단이다. 한 검사장은 “내 휴대전화는 페이스 아이디가 아닌 비밀번호를 입력해 잠금 해제하도록 설정돼 있었다. 압수수색에 참여한 실무자들도 이를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또 “수사 검사들이 다수 보는 상황에서 뭐든 지운다면 구속 사유가 될 텐데 그런 행동을 하겠나”라면서 “피의자가 변호인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잠금 해제를 시도한 것이 어떻게 증거인멸 시도 또는 압수수색 거부가 되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결국, 일방적으로 폭행당하면서 정 부장에게 휴대전화를 넘긴 것”이라며 “수사팀에서 당시 상황을 사실상 인정하는 장면과 일부가 한 검사장에게 개인적으로 죄송하다는 뜻을 표시하는 장면 등이 녹화돼 있다”고 밝혔다. “독직폭행” vs “무고·명예훼손” 맞고소 이날 한 검사장은 정 부장을 독직폭행 혐의로 서울고검에 고소하고 감찰 요청했다. 고검은 정 부장에 대한 감찰 절차에 착수했다. 반면 정 부장은 한 검사장이 거짓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수사팀은 한 검사장에 대해 공무집행방해 등 추가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이다. 정 부장은 입장문에서 “한 검사장이 (휴대전화로) 무언가를 입력해 확인하려고 탁자를 돌아 오른편에 서서 보니, 비밀번호 입력 마지막 한자리를 남겨두고 있었다. 마지막 자리를 입력하려면 압수물 삭제 등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 직접 휴대전화를 압수하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부장은 몸싸움 이후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 진료를 받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 검사장의 변호인이 현장에 도착한 이후 긴장이 풀리면서 팔과 다리의 통증 및 전신 근육통 증상을 느껴 인근 정형외과를 찾았다. 혈압이 급상승해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조치를 받았고, 현재는 모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치료 중인 상태”라고 밝혔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육탄전→고소전→여론전…종일 ‘막장’ 검사내전(종합)

    육탄전→고소전→여론전…종일 ‘막장’ 검사내전(종합)

    한동훈-정진웅, 압수수색 도중 몸싸움“독직폭행” “명예훼손” 맞고소 나서“갑자기 넘어뜨려” vs “압수 거부 제지”엇갈린 주장…정 부장 “응급실 치료 중”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수사가 현직 검사들의 몸싸움으로까지 번졌다. 수사팀이 한동훈(47·사법연수원 27기) 검사장의 휴대전화를 추가로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한 검사장과 수사팀장 사이에 ‘육탄전’이 벌어졌다. 한 검사장은 “공권력을 이용한 독직폭행”이라며 수사팀장인 정진웅(52·29기)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을 서울고검에 고소하고 감찰을 요청했다. 고검은 즉각 감찰에 착수했다. 반면 정 부장은 한 검사장이 압수수색을 물리적으로 방해했다며 무고 및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정 부장은 본인이 치료 중인 사진까지 공개하며 ‘여론전’에 나선 모양새다. 수사팀과 한 검사장 측 설명을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29일 오전 10시 30분쯤 법무연수원 용인분원 사무실에서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 유심(가입자 식별 모듈) 압수를 시도했다. 한 검사장이 현장을 지휘하던 정 부장으로부터 허가를 받고 변호인을 부르기 위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푸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한 검사장 측은 입장문을 내고 “갑자기 소파 건너편에 있던 정 부장이 탁자 너머로 몸을 날리면서 한 검사장의 팔과 어깨를 움켜쥐고 한 검사장 몸 위로 올라타 한 검사장을 밀어 소파 아래로 넘어지게 했다. 그 과정에서 정 부장은 한 검사장 위에 올라타 팔과 어깨를 움켜쥐고 얼굴을 눌렀다”고 주장했다. 수사팀은 한 검사장이 현장에서 증거인멸을 시도했다고 반박했다. 정 부장은 입장문에서 “한 검사장이 (휴대전화로) 무언가를 입력해 확인하려고 탁자를 돌아 오른편에 서서 보니, 비밀번호 입력 마지막 한자리를 남겨두고 있었다. 마지막 자리를 입력하려면 압수물 삭제 등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 직접 휴대전화를 압수하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 검사장 쪽으로 팔을 뻗는 과정에서 함께 바닥으로 넘어졌고, 그 상태에서도 한 검사장은 휴대전화 제출을 완강히 거부했다. 압수 거부 행위를 제지하면서 압수물을 실효적으로 확보하는 과정이었을 뿐 탁자 너머로 몸을 날리거나 밀어 넘어뜨린 사실은 없다”고 강조했다. 양측은 몸싸움 이후에도 압수수색의 적법성 등을 두고 계속 실랑이를 벌였다. 양측 충돌은 오후 1시 30분쯤 변호인이 도착하고 정 부장이 현장에서 철수하면서 세 시간 만에 일단 마무리됐다. 정 부장은 몸싸움 이후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 진료를 받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 검사장의 변호인이 현장에 도착한 이후 긴장이 풀리면서 팔과 다리의 통증 및 전신 근육통 증상을 느껴 인근 정형외과를 찾았다. 혈압이 급상승해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조치를 받았고, 현재는 모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치료 중인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 검사장 측은 “수사팀의 입장은 거짓 주장이다. 한 검사장이 일방적으로 폭행당한 것”이라며 “뻔한 내용에 대해 거짓 주장을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재차 반박했다.서울고검, 독직폭행 논란 직접 감찰 나서 서울고검은 이날 오후 한 검사장의 변호인으로부터 정 부장을 독직폭행 혐의로 수사해달라는 고소장과 진정 형태의 감찰요청서를 접수하고 일단 감찰 사건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로 했다. 서울고검 관계자는 “검찰총장이 본 사건에 관해 보고를 받지 않기로 결정된 상황이어서 서울고검이 직접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서울고검은 한 검사장과 정 부장, 현장에서 상황을 목격한 수사팀·법무연수원 관계자들의 진술을 종합해 검토할 방침이다. 수사팀은 향후 증거능력 등에 문제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이날 압수수색을 촬영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몸싸움 부분은 영상에 담기지 않았다. 사태가 발생한 시점은 본격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가기 이전이라 촬영되지 않았으며, 한 검사장의 변호인이 도착한 이후부터의 상황만이 녹화됐다고 수사팀 관계자는 전했다. 수사팀은 이날 오후 4시쯤 휴대전화 유심을 압수하고 영장 집행을 마쳤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佛대통령이 이리도 어여쁜 화병에 담아 고종에게 보낸 첫 마음 무엇이었을까

    佛대통령이 이리도 어여쁜 화병에 담아 고종에게 보낸 첫 마음 무엇이었을까

    132년전 서양국 첫 선물 세상 나와 10월 4일까지… 400여점 한자리 1886년 조선과 프랑스는 양국의 우호와 왕래, 통상을 위한 조약을 체결했다. 2년 뒤 프랑스 대통령 사디 카르노는 초대 조선 주재공사 빅토르 콜랭 드플랑시를 파견하며 고종에게 수교 예물을 보냈다. 예술적 자부심이 높은 프랑스가 고른 선물은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에서 만든 도자기였다. 고종은 답례로 12~13세기 고려청자 두 점과 19세기 후반 제작된 반화(盤花) 한 쌍을 선물했다. 반화는 금속제 화분에 금칠한 나무를 세우고, 각종 보석으로 만든 꽃과 잎을 달아 놓은 장식품이다.조선이 수교를 맺은 서양 국가로부터 받은 첫 수교 예물인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국립고궁박물관이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여는 특별전 ‘신(新) 왕실도자,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에서다. 개항 이후 조선은 서양식 건축물을 짓고, 서양식 연회를 열어 격변하는 주변 정세 속에서도 근대국가로 나아가고자 애썼다. 조선왕실이 사용한 세계 각국의 도자기는 그러한 외교적 노력의 흔적을 보여 준다. 전시에서는 프랑스 필뤼비트사가 제작한 이화(李花) 문양의 양식기 한 벌, 일본 고란샤의 ‘백자 색회 고사인물무늬 화병’ 등 그간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근대 서양식 도자기 40여점을 비롯해 조선왕실 청화백자, 오얏꽃 무늬 유리 전등갓 등 박물관이 소장한 도자기 유물 400점을 선보인다. ‘조선후기 왕실의 도자 소비’, ‘서양식 연회와 양식기’, ‘궁중을 장식한 수입 화병’ 등 5개 주제로 나눠 소개된다. 살라미나 병은 3부 ‘조선과 프랑스의 도자기 예물’에서 만날 수 있다. 높이 62㎝, 입지름 53㎝의 대형 장식용 병이다. 황금빛 바탕에 꽃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 기록을 보면 프랑스 정부는 살라미나 병과 함께 ‘클로디옹 병’ 2점을 고종에게 선물했다. 클로디옹 병은 영친왕이 일본에 갈 때 반출됐다. 현재 도쿄 아카사카 프린스호텔에 전시돼 있다. 김현정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고종이 답례로 보낸 청자 앵무새무늬 대접과 청자 모란무늬 꽃모양 대접, 반화를 프랑스에서 들여와 함께 전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아쉽게 취소됐다”고 전했다. 조선의 서양식 연회와 창덕궁 회정당 권역에 남아 있는 서양식 주방을 영상으로 재현한 공간도 이채롭다. 조선 왕실에서 주문 제작한 필리뷔트 양식기에 안심 송로버섯 구이, 꿩가슴살 포도 요리가 영상으로 담기는 장면은 구한말 서구 외교관들을 위한 연회에 참석한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 밖에 일본 아리타·교토·나고야 지역에서 제작해 세계적으로 유행한 서양 수출용 화병 14점도 처음 선보인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코로나 바캉스’에 빗장 거는 유럽… 또 날개 꺾인 항공·관광

    ‘코로나 바캉스’에 빗장 거는 유럽… 또 날개 꺾인 항공·관광

    여름 휴가철 최대 성수기와 맞물린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유럽 주요 항공사와 관광업계가 또다시 타격을 입고 있다. 여행 제한 조치가 잇따르며 봉쇄 해제 후 반등을 바랐던 유럽 관광대국들의 기대가 여지없이 꺾이는 모습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각국이 새로운 여행 제한 조치를 시행하면서 유럽 최대 항공사들과 관광업계의 주가가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고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저가 항공사 이지젯의 주가는 이날 10%까지 하락하며 유럽 주요 항공사 가운데 가장 큰 급락을 보였고, 영국항공의 지주회사인 IAG는 6%, 독일 루프트한자는 5% 하락했다. 특히 영국 정부가 지난 26일부터 스페인에서 귀국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2주간 의무격리 조치를 시행하기로 전격 결정하면서 ‘7말 8초’의 바캉스 대목을 기다리고 있던 스페인 관광업계는 말 그대로 초상집 분위기가 됐다. 스페인 외국인 관광객의 20%를 차지하는 영국은 스페인 관광산업의 최대 고객으로 꼽힌다. 이번 주에만 60만명 이상이 스페인을 찾을 예정이기도 했다. 스페인은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직접 영국 정부의 이번 결정이 부당하다고 밝히는 한편 발레아레스 제도 등 자국 내 코로나 청정 지역에 대해서만이라도 관광객의 의무격리 조치를 면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BBC가 전했다. 이번 사태로 유럽 최대 여행사 투이그룹은 27일부터 8월 9일 사이 스페인 여행이 예정됐던 고객에게 전액 환불 조치를 하기로 했다. 이날 투이그룹의 주가는 11% 하락하며 범유럽지수인 스톡스600 지수에서 최악의 실적을 보였다고 FT는 전했다. 투이그룹 측은 “영국 정부의 결정으로 인한 혼란과 불확실성은 관광산업에 큰 악영향을 주고 관광객들을 실망시키는 행위”라며 “여행업계와 긴밀히 협력해 달라”고 촉구했다. 독일과 스위스 등 인접국부터 시작해 적극적으로 국경을 개방하던 오스트리아는 중부 호수 마을 장크트볼프강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며 비상이 걸렸다. AP통신은 당국이 이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검사를 진행한 결과 다수의 관광업 종사자를 포함해 53명이 양성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다른 국가들도 최근 출입국 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건 마찬가지다. 독일은 발칸반도와 터키에서 입국한 사람 가운데 확진자가 증가하자 고위험 국가에서 휴가를 보내고 귀국한 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리스는 28일부터 최소 일주일간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서 입국하는 인원에 대해 비행기 탑승 72시간 전 음성 판정 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유럽 관광산업의 주가 흐름을 보여 주는 스톡스유럽600의 여행·레저지수도 국경 개방을 앞두고 있던 6월 초까지 반등을 보였다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 지수는 27일 현재 161을 기록해 지난 5월 18일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여기는 중국] ‘주민 여러분께 죄송’…아파트에 반성문 붙인 어린이 사연

    [여기는 중국] ‘주민 여러분께 죄송’…아파트에 반성문 붙인 어린이 사연

    '11동 2단지 아파트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 그리고 모든 분들 안녕하세요. 오늘 제가 한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작은 메모지가 대규모 아파트 엘리베이터 내부에 부착돼 이목이 집중됐다. 중국 저장성(浙江) 닝보시(宁波市) 소재의 아파트 11동 엘리베이터에 부착된 해당 편지의 주인공은 올해 9세의 만터우 군으로 알려졌다. 만터우 군은 지난 22일 오전 7시 해당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1~32층까지 버튼을 누른 뒤 달아났다. 당시 만터우 군의 행동으로 이 아파트 주민들은 출근 시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못한 채 비상구 계단으로 이동하는 소동을 겪었다. 사건 당일 일부 주민들은 엘리베이터 이용이 불가한 것에 대해 현장 관리 사무소에 불편의 호소하는 등 일대에 소란이 벌어졌다. 이날 오후 만터우 군의 행동을 알게 된 그의 모친 장 모 씨는 자신의 아들이 잘못을 스스로 깨닫도록 유도하기 위해 이 같은 반성문을 써서 이웃주민들에게 사과토록 했다. 실제로 장 씨는 사건이 발생했던 지난 22일 오후 6시 만터우 군이 학원에서 돌아온 직후 방으로 데려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함부로 누른 결과 주민들이 입은 피해들을 설명했다. 그 후 장 씨는 만터우 군에게 반성문을 써서 이웃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했다. 만터우 군이 적은 반성문에는 정식 번체자 대신 병음을 적어 넣은 부분도 발견됐다. 올해 9세의 만터우 군은 일부 한자를 암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적은 반성문을 통해 '다시는 이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며 제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건강을 빌며 제 행동의 용서를 빕니다'라고 적었다. 또 반성문 하단에는 만터우 군이 직접 그려 넣은 90도로 허리 굽혀 사과하는 만화 그림이 그려졌다. 만터우 군은 자신이 그린 그림 옆에 이름을 적어 넣으면서 반성문이 자신 스스로 쓰여진 것이라고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만터우 군의 모친 장 씨는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나면 더 잘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 같은 훈육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면서 “우리 아이가 자신의 재미를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불편을 준 것을 뉘우치고 있다. 비록 악의가 없는 행동이었지만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들이 평소에 이해력이 좋은 편인데 이번 사건 후에도 금방 잘못을 인정했다”면서 “스스로 책상 앞에 엎드려 반성문을 썼다. 다 완성하고 내용을 조금 수정했지만 기본적인 골대는 만터우 군의 반성과 미안한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했다. 이후 이 반성문은 이튿날이었던 23일 아침 6시 30분 11동 아파트 엘리베이터 내부에 부착됐다. 조 씨는 당일 오전 만터우 군 스스로 엘리베이터 내부에 부착토록 했다. 한편, 해당 반성문를 접한 주민들은 만터우 군의 반성문 내용에 대해 흡족하다는 반응이다. 주민 성 모 씨는 “반성문을 아이 스스로 쓰고 엘리베이터에 붙인 것이라는 걸 알고는 매우 놀랐다”면서 “평소 만터우 군의 어머니와 자주 인사를 하고 지냈는데 아이가 저지른 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도록 교육하고 있다는 점을 응원하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 설파 씨는 “아이 교육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직접 몸소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이번 일로 만터우 군은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체험했을 것이다. 조 씨와 만터우 군의 행동에 깊이 감동받았다”고 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송파강 일부 석촌호수·새벽배송 원조 송파장… 원래 강북에 속했대요

    송파강 일부 석촌호수·새벽배송 원조 송파장… 원래 강북에 속했대요

    같은 길을 걸어도 누구에게나, 언제나 같은 세상은 아니다. 서울의 과거를 찾아 색다른 미래를 바라보게 만들어 주는 서울미래유산 코스를 따라 걷다 보면 그 말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몰랐던 역사를 알고 나니 같은 거리도 이전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20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9회 ‘잠실의 추억’ 편이 지난 25일 잠실 일대에서 진행됐다. 장마철 비구름이 잠시 숨을 고르는지 신기하게도 해가 반짝하고 맑은 바람이 불어 걷기 좋은 날이었다. 이날 답사의 출발지점인 잠실 지역은 지상 123층, 높이 554.5m로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인 롯데월드타워를 비롯해 초고층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서울의 마천루를 상징한다. 그런데 잠실의 현재 지형이 불과 반세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예전의 그림과 사진 자료 등 물증들을 보고 또 봐도 참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이다. 이 지역은 원래 뚝섬과 연결된 강북에 속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잠실 쪽 한강은 ‘잠실도’라는 섬이었고, 그 섬을 에워싸며 한강의 샛강인 신천강과 송파강이 흘렀다.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시민들의 쉼터가 된 석촌호수는 송파강의 일부였다.‘잠실’이라는 지명은 조선 초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잠실도회가 설치돼 있던 데서 유래한다. 1930년대만 해도 잠실섬에는 온 섬에 뽕나무가 무성했다. 1945년 해방 이후 채소밭이 됐다가 1971년 한강 공유수면 매립사업으로 물막이 공사를 하면서 육지로 변했다. 이때 송파강의 일부가 남고, 그 유로가 바뀌면서 만들어진 인공호수가 석촌호수다.면적 21만 7850㎡, 평균 수심 4.5m 깊이의 호수는 송파대로를 기준으로 동서로 같은 모양의 동호와 서호로 나뉘었다. 1981년 호수 주변에 산책로와 쉼터 등 공원이 조성됐다. 동호는 새벽 조깅코스와 주변 시민들의 휴식처, 산책로로 이용되고 서호에는 롯데월드의 매직아일랜드와 서울놀이마당이 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호숫가를 산책하는 가족, 건강 달리기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도심공원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 준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됐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바로 이를 두고 한 얘기일 것이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그린 ‘송파진’을 보면 사람들이 모래사장에서 강 건너편 송파진을 바라보고 있다. 저 멀리 남한산성도 보인다. 나루터에는 배들이 정박해 있고, 나룻배가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건너고 있다. 그림 속 유유자적한 한강이 지금의 석촌호수가 된 것이다. 잠실역 3번 출구에 서서 바라보면 예전엔 그 풍경일 테지만 저 멀리 보이는 산 말고는 그림 속 송파진을 상상하기 어렵다. 눈앞에는 서울미래유산 석촌호수가 있을 뿐이다.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걷다 보면 피할 길 없는 치욕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삼전도비(三田渡碑·사적 제101호)다. 삼전도는 1439년(세종 21년) 신설된 나루터로 한강나루, 노들나루와 함께 경강삼진(京江三津)의 하나였다. 원래 삼밭나루로 불렸던 삼전도는 한양에서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성에 이르는 길목에 있었고 영남로를 지나는 상인들이 주로 이용하던 교통의 요지였다. 1636년 12월 청 태종은 대군을 이끌고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항거하다가 결국 청나라 군대가 머물던 한강가의 나루터인 삼전도로 나와 항복의식을 행했다. 항복의 조건은 청과 조선이 군신의 의를 맺고, 명의 연호를 버리며, 명나라와의 국교를 끊고, 인조의 장자와 다른 아들 및 대신들의 자제를 인질로 할 것, 청나라가 명나라를 정벌할 때 원군을 보내고, 통혼하며, 성을 보수하거나 쌓지 말 것 등 굴욕적이고 가혹한 것들이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청 태종은 자신의 공덕을 적은 비석을 세우도록 조선에 강요했다. 인조 17년 세운 삼전도비는 제목이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다. 비석 앞면의 왼쪽은 몽골글자, 오른쪽은 만주글자, 뒷면은 한자로 쓰였다. 비문은 이경석이 짓고 글씨는 오준이 썼으며 비의 제목은 여이징이 썼다. 침략국 황제를 칭송하는 비문의 내용을 반복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임금의 명에 의해 글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백헌 이경석은 글을 배운 게 천추의 한이라며 피를 토하듯 괴로워했다고 한다. 높이 3.95m, 폭 1.4m의 한 덩어리로 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비석을 매일 바라봤을 백성들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삼전도비의 수난도 끊이지 않았다. 조선 임금이 항복했던 나루터인 삼전도에 비석을 세웠지만 1894년 청일전쟁의 패배로 청이 지배권을 상실하자 더는 굴욕적인 비석을 내버려 둘 이유가 없다며 사람들은 이 비석을 강물에 던져 버렸다. 그러나 일제가 우리 민족의 굴욕을 상기시키기 위해 건져다 다시 제자리에 세웠다. 해방 후 주민들은 청나라가 만들게 하고 일본이 도로 세운 치욕적인 비석을 나라를 되찾은 마당에 그냥 둘 이유가 없다며 땅속에 묻어 버렸다. 1963년 홍수로 삼전도비가 드러나자 사적으로 지정하고 석촌동으로 옮겼으며 1981년 문화재 명칭을 ‘삼전도비’로 바꿨다. 석촌호수 주변 현재 위치로 옮겨진 것은 2010년이다.삼전도가 조선 전기에 교통의 요지로 역할을 했지만 조선 후기 들어서는 송파나루가 더 중요해진다. 송파나루는 한양에서 강원도, 광주, 이천으로 가는 아주 중요한 길목이었다. 서울 외곽을 지키는 송파진(松坡鎭)을 설치할 정도로 중요한 이곳은 사람의 왕래뿐만 아니라 한강을 타고 물자의 이동도 활발했던 곳이다. 궁궐이나 집을 짓는 데 사용되는 굵고 튼튼한 나무들이 강원도에서부터 뗏목으로 송파나루까지 왔다. 송파나루 옆에 있는 송파장은 조선 후기 전국 15대 향시에 꼽힐 정도로 번성했다. 실록의 기록을 보면 한양 내에 있던 시전을 위협할 정도였다. 서울 주변의 일반 상인들이 시전 상인들의 독점을 피해 삼남지방이나 관동지방에서 들어오는 물품들을 이곳에서 미리 사들여 많은 이익을 남기는 도가의 근거지가 됐기 때문이었다. 전국의 산해진미가 모이는 송파장에서는 우시장이 특히 유명했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즐겼다는 ‘효종갱’은 송파장에서 그날 잡은 소의 고기와 삼남에서 올라온 전복 등 해산물, 각종 채소를 넣어 끓인 해장국이다. 밤새 푹 끓인 효종갱을 독에 담아 식지 않도록 명주에 싸서 품에 안은 채 말을 타고 달려 사대문이 여는 시간에 맞춰 당도한 뒤 주문한 사대부 집에 배달했다고 하니 이게 바로 새벽 배송의 원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송파장에서는 한양과 경기의 유명한 연희자들을 초청해 큰 규모의 산대놀이를 공연하곤 했다. 송파산대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49호)는 서울놀이마당 전수회관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루터 기능은 1960년대까지 뚝섬과 송파를 잇는 정기선이 운항돼 명맥을 유지하다가 강남 개발과 샛강 매립으로 사라졌지만 그 흔적을 석촌호수 동호 남단 송파대로 쪽에 ‘송파나루터’가 새겨진 표석으로 남겼다. 번성했던 송파장과 관련해 경기도 암행어사 이건창의 활약이 전해 오고 있다. 이건창이 암행어사로 활동하던 시절 송파에 들러 신분을 속인 채 장터의 장사꾼들을 만나 그들의 고충을 듣고 용기를 북돋아 줬다. 그가 떠나고 난 뒤 이건창의 신분을 알게 된 상인들이 그의 공덕과 행적을 기려 1883년 5월 장터 입구에 비석 ‘이건창영세불망비’를 세웠다. 비석은 을축년(1925년) 홍수로 유실됐다가 1979년 발견돼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 그 옆에는 을축년대홍수기념비가 나란히 서 있다. 을축년 대홍수는 1925년 7월 16일부터 3일간 계속돼 수도권 지역에 300~500㎜의 많은 비를 뿌렸다. 이 폭우로 한강과 임진강이 범람해 647명의 사망자와 당시 조선총독부 예산의 58%에 달하는 재산 피해를 냈다.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은 한강변의 이촌동, 뚝섬, 송파, 잠실, 신천리, 풍납동 일대였다. 송파나루터 일대는 특히 피해가 극심해 송파장터 마을이 다 떠내려가고 마을 주민 전체가 지금의 송파동 일대로 이주했다. 수마의 무서움을 체험한 송파 나루터 주민들은 홍수 이듬해에 홍수 피해를 잊지 말고 대비하자는 의미로 기념비를 세웠다. 가락로에 있는 석촌동 고분군은 가락동·방이동 무덤과 함께 백제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다. 일제강점기에 처음 조사가 실시됐으나 270여개에 이르는 돌무덤은 이미 원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 가장 큰 규모의 기단식 돌무지무덤인 3호분이 그나마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었으나 1983년 절반이 잘려 나가는 등 보존과는 거리가 멀었다. 뒤늦게나마 역사적 가치를 깨닫고 발굴 작업이 이뤄지고 있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잠실과 송파나루 길 답사를 마무리한 곳은 2013년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된 가락시장이다. 을축년 대홍수로 가락동으로 옮겨간 옛 송파시장의 의미를 되살리는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는 수산, 축산, 청과 등 전국 최고의 식재료가 거래된다. 특히 싱싱한 수산물이 자랑이다. 펄펄 뛰는 참돔을 회로 떠서 먹으니 쫄깃한 식감이 지극히 훌륭하다. 치욕의 역사를 간직한 삼전도비를 보며 찝찝했던 기분도 어느새 사라지고 입안에는 진한 바다향이 감돈다. 글 함혜리 칼럼니스트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10회 삼청동 ●출발 일시 : 8월 1일 오전 10시 출발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유타 등 세 주 주민에 우편 ‘보석 봉지’, 열어 보니 중국산 씨앗

    유타 등 세 주 주민에 우편 ‘보석 봉지’, 열어 보니 중국산 씨앗

    유타주 오툴에 사는 로리 컬리를 비롯한 미국 전역의 여러 주민들이 한자로 보석이라고 겉에 적힌 봉지를 우편으로 받았는데 그 안에는 중국에서 보낸 정체 불명의 씨앗들이 들어 있었다. 컬리는 26일(이하 현지시간) 폭스 13 KSTU 채널 인터뷰를 통해 “지난 21일 우편 봉지를 받고 열어 보니 씨앗들이 들어 있었다. 분명히 그것들은 보석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버지니아주 농업 및 소비자부(VDACS)도 지난 24일 성명을 발표해 여러 주민들이 중국에서 보낸 것으로 보이는 씨앗 봉지들을 받았다고 확인하면서 씨앗들을 함부로 심지 말고 당국에 신고해줄 것을 당부했다. 유타주 농업 및 식품부도 관세 및 국경보호국과 협력해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유타주에서는 적어도 40명의 주민이 문제의 봉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고 버지니아와 워싱턴 주에서도 수십 명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숫자는 공개되지 않았다. 씨앗의 정체를 밝혀내려면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식물 종을 남의 나라에 함부로 보내는 일은 커다란 위협으로 간주된다. 2016년 국립 과학 아카데미(NAC)가 곤충과 병원균이 얼마나 이 지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살펴 이런 행위가 글로벌 농업에 수십억 달러의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바 있다. 한편 미국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에 대한 보복 조치로 폐쇄 요구를 받은 청두(成都) 주재 미국 총영사관이 27일 오전 10시(현지시간)에 완전히 문을 닫았다. 중국 외교부도 오전 11시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계정을 통해 “중국의 요구에 따라 청두 미국 총영사관이 폐쇄됐다”면서 “중국 담당 부문은 이후 총영사관 정문으로 진입해 접수 업무를 집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 군공사(군비관리사)는 이날 정오 웨이보를 통해 “우리는 정문을 통해 들어가 정당하게 (청두 미 총영사관)을 접수 절차를 집행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청두 미 총영사관은 지난 사흘 폐쇄 준비를 위해 이사용 화물 트럭 5대를 투입했다. 이날 오전 6시 18분 성조기를 내리면서 총영사관 폐쇄 절차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이로써 1985년 문을 연 청두 총영사관은 35년 만에 처음으로 업무를 중단했다. 중국 매체를 비롯해 주요 외신, 청두 주민 수백 명은 폐쇄 시한인 오전 10시를 전후해 총영사관 앞에 모여들어 공안의 총영사관 진입이 이뤄지지 않자 “어서 서둘러라”, “이미 시간이 지났다”, “당장 강제로 끌어내라” 등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청두 총영사관은 쓰촨(四川), 윈난(雲南), 구이저우(貴州), 충칭(重慶) 등과 함께 신장(新疆)과 티베트 지역을 관할해 미국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특히 이곳은 2012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의 실각 사태 당시 미중 충돌이 벌어진 장소로도 유명하다. 당시 보시라이의 부하였던 왕리쥔(王立軍) 전 국장이 보시라이와의 다툼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청두 총영사관으로 뛰어들어 망명을 요청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미국 유타주 오툴에 사는 주민 로리 컬리의 우편함에 배달된 중국산 씨앗 봉지들. 일간 새크라멘토 비 홈페이지 캡처
  • 국보·보물 중 가치 있는 것만 담다… 서고서 꺼낸 ‘의미로 가득 찬 시간’

    국보·보물 중 가치 있는 것만 담다… 서고서 꺼낸 ‘의미로 가득 찬 시간’

    중국 요나라 승려 행균이 997년 편찬한 한자 자전 ‘용감수경’은 본자가 2만 6430여자, 주가 16만 3170여자에 이른다. 전남 나주에서 이를 11세기 목판으로 간행했다. 요나라 시대 음운법을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국보 제291호로 지정됐다. 원본은 고려대 도서관 소장본이 유일하다.고려대가 국보인 ‘용감수경’을 비롯해 보물, 지정 문화재 등 50여권의 귀중서를 모은 단행본 ‘카이로스의 서고’(고려대 출판문화원)를 출간했다. 26일 고려대 도서관에 따르면 도서관 보유 자료는 모두 300만종으로 국가 문헌을 소장한 서울대 규장각을 제외하고 국내 대학 가운데 가장 많다. 근대 한국과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 3국 고서가 12만종에 이른다. 임진왜란 이전 자료, 유일본, 유명인의 수택본 등 귀중서고에 보관된 1만권 중에서도 특히 가치가 있는 것을 골라 책에 담았다. 책은 경·사·자·집·총류의 5개 분야로 나눠 자료를 소개한다. 궁중에서 낸 비단 장정의 호화로운 ‘용비어천가’,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 전에 만든 ‘청구도’, 고려 때 승려인 일연이 낸 역사서 ‘삼국유사’와 같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자료를 비롯해 ‘홍무정운역훈’, ‘중요주자혹문’, ‘동인지문사록’,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자료도 상당수다. 보물로 지정된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는 2미터가 넘는 장대한 조선시대 그림 지도로, 전국 봉화의 위치를 수록했다. ‘계미동경소진첩’은 1703년 출생한 계미년 동갑내기들의 초상화만 수록한 독특한 그림집이다. 순조의 세자인 효명세자가 9살에 성균관에 입학한 것을 기념해 그린 ‘왕세자입학도첩’도 독특하다. 1~5면까지 성균관 입학 의례의 주요한 단계를 묘사하고, 6면은 입학식 이튿날 진하례 장면을 그렸다. 8세기 통일신라 시대 명필 김생이 불심을 담아 금가루로 화엄경을 써낸 ‘금자사경’도 고려대에만 있는 것이다.책의 제목 ‘카이로스’는 고대 그리스어로 ‘의미로 가득 찬 시간’을 뜻한다. 서고에 있는 의미 있는 자료를 일반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기 위해 책으로 냈다는 취지다. 이재용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으로 과감하게 구성하고, 일반 도록과 달리 단행본 형태로 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려대 출판문화원 관계자는 “고려대 귀중서고 자료는 일반 공개를 하지 않기 때문에 고려대 학생들은 물론 일반인 대부분이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른다. 이번에 책으로 내 의미 있는 자료를 알리고, 이를 보면서 교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4흘’이라고 쓴 기자들, ‘사흘’과 ‘부결’이 검색어 되는 요즈음

    ‘4흘’이라고 쓴 기자들, ‘사흘’과 ‘부결’이 검색어 되는 요즈음

    처음에는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다음달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 사흘을 연휴로 쉬게 되자 다음날 실시간 검색어로 ‘사흘’이 올라왔다. 밀레니얼이 시작되기 전에 학교를 모두 마친 이들은 어리둥절했다. ‘아니 그런 것도 몰라’ 싶었던 것이다. ‘사흘’은 ‘3일’을 뜻하는 순우리말인데 일부는 한자어로 잘못 알기도 했다. 급기야 23일 한 조간 신문 오피니언 면의 칼럼에 소개될 정도였다. 수두룩하게 달린 댓글들을 보니 아연 실색할 정도였다. 본인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모른 채 함부로 내갈긴 댓글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장난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꼰대들 놀리느라’ 그러는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화살은 ‘기레기’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창피해서 말도 못하겠고, 내 가슴에 살이 박히는 것 같다. 아래 사진을 보면 어엿한 매체가 내보낸 기사 제목에도 ‘4흘’ 같은 엉터리 표현이 있다. 이건 무지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 훈련의 부재’를 드러낸다. ‘4흘’ 같은 제목을 본 이들은 ‘사흘’을 ‘4일’로 오해하거나 혼동했다고 발뺌할 수 있게 됐다. 그러게 ‘삼흘’이라고 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큰소리를 치는 이도 있었던 것이다.조금 경우와 정도가 다르지만 잠깐만 인터넷 세상을 살피면 이런 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22일 ‘공무원 4개월간 월급 모아 1억8천만원 기부’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별다른 문제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공무원들’이라고 했어야 오해의 여지가 없는 제목이다. ‘넉달 동안 그 돈을 모으려면 한달에 얼마 모아야 하나’ 머리를 굴려야 하는데 제목은 그 자체로 완벽해야 한다. 하기야 조회 수 늘리려고 꼭 들어가야 할 말을 빼거나 주어와 술어를 부러 일치하지 않게 쓰는 경우도 있다. 23일 ‘세계 최대 컨선’이란 제목도 눈에 띈다. 컨테이너선이란 건데 이렇게 말을 마구 줄이는 현상의 폐해도 심각하다. 말과 글의 뜻과 씀씀이를 파악해 쓰고 최대한 지켜야 할 것들은 지켜야 하는데 이런 걸 가르치려 들면 ‘꼰대’란 비아냥 듣기 딱 좋은 요즘이다. 언론사 내부에 교육하고 훈련하는 일의 중요성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빨리 양산하고 이를 부추기는 문화가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다. 이것도 바로잡아야 한다. 23일 오후 검색어 상위 순위에 ‘부결’이 떠올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탄핵하자는 안이 통과되지 못했다는데 이게 또 검색어로 오르내린다. 지하철이나 버스 타면 책 보는 사람은 없고 모두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입시 논술을 파하면 글이란 것을 써보지 않는 영상세대에 벌어지는 현상인가 싶기도 하다. 며칠 전 출판 일에 정통한 선배들과 글과 책 읽는 법을 제대로 훈련시키는 일을 해보자고 뜻을 세우기도 했는데 ‘4흘’이란 만만찮은 벽에 턱 막힌 기분이다. 어찌한단 말인가?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흔한 옥수수? 알고 보면 비밀투성이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흔한 옥수수? 알고 보면 비밀투성이

    올 초여름 초당 옥수수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한동안 들썩였다. 3~4년 전쯤부터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제 봄 도다리, 가을 전어처럼 초여름엔 초당 옥수수가 공식이 된 듯한 분위기다. 생으로 먹는 옥수수라는 데 놀라고, 설탕즙 같은 짜릿한 단맛이 톡톡 터지는 데 또 한 번 놀란다. 한편에선 익숙지 않은 강한 단맛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하지만 이제 초당 옥수수는 누구나 한 번은 맛보고 싶어 하는 농산물계의 아이돌로 자리잡은 듯하다.초당 옥수수의 이름만 들으면 초당 두부처럼 지역 특산 옥수수라 생각하기 쉽다. 초당은 ‘매우 달다’는 한자어로 단옥수수보다 당도가 더 높다고 붙은 이름이다. 미국에서도 단옥수수, 스위트콘보다 당도가 강한 옥수수를 슈퍼 스위트콘으로 부른다. 사람들에게 옥수수는 별 대수롭지 않은 간식거리지만 식물학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옥수수는 참으로 기이한 식물이다. 일단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번식을 인간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옥수수 낟알 하나하나가 씨앗인데 질기고 두꺼운 외피에 쌓여 있다. 다른 식물 열매는 땅에 떨어지면 어떻게든 씨를 뿌려 싹을 틔운다. 그런데 옥수수는 사람이 껍질을 벗겨주지 않으면 씨앗들이 그 안에서 일거에 몰살당하게 된다. 옥수수와 흡사한 식물이 자연에 없고 옥수수의 원산지나 유래에 관해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는 점도 미스터리다. 멕시코 지역에서 7000년 전부터 이미 재배해 온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옥수수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테오신테’라는 식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옥수수의 크기나 모양과 크게 다르다. 마치 빈약한 수수 이삭처럼 생겼다. 남미 원주민들이 옥수수를 어떻게 지금처럼 개량시켰는지는 베일에 싸여 있다.또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익을수록 당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채소나 과일이 무르익을수록 당도가 높아지고 물러지는 것과는 반대다. 노화할수록 수분이 점점 줄어들면서 당분이 점점 녹말로 바뀐다. 그래서 옥수수는 풋옥수수일수록 달콤하다. 흔히 쪄먹는 간식용 옥수수는 너무 익기 전에 따는데 수확한 지 20분 정도가 지나면 당도가 서서히 떨어진다. 그래서 미국에는 이런 속담도 있다고 한다. “옥수수 밭에 나갈 때는 얼마든지 어슬렁거려도 되지만 집으로 돌아갈 땐 죽기 살기로 달리는 편이 낫다.” 가능한 한 빨리 먹어야지 달콤한 옥수수를 맛볼 수 있다는 옛말이다. 미국에서 1950년대 개발된 슈퍼 스위트콘은 돌연변이 유전자로 인해 당분이 녹말로 바뀌는 전환 과정이 중단된 종자다. 늙지 않는 옥수수인 셈이다. 옥수수의 장점들은 대부분 자연적 돌연변이의 결과물이라 열성인자다. 바람을 통해 수분하는 풍매 식물인 탓에 슈퍼 스위트콘을 심었다 해도 주변에 다른 종의 옥수수가 있으면 쉽게 유전자가 뒤섞인다. 최대한 다양한 특성의 후손을 만들어 종족 보존의 확률을 높이려는 옥수수만의 생존법이지만 한 종을 유지하며 키우기에는 까다로운 특성이다. 한국의 초당 옥수수는 단맛이 지속되지는 않아 미국의 슈퍼 스위트콘과는 다소 다른 종자인 것으로 보인다. 스위트콘 종자는 1970년대 국내에 들어왔지만 찰옥수수에 밀려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소비자들이 쫄깃하고 찰진 맛을 더 선호한 것도 이유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달큼한 갓 딴 옥수수를 접하지 못했기에 수요가 생기지 않은 것도 한몫을 했다. 오늘날 초당 옥수수란 이름으로 판매되는 다수의 종자는 일본에서 다시 한번 개량된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초당 옥수수는 외래품종과 국내 개량품종이 혼재해 판매된다. 옥수수에 대한 비밀이 하나 더 있다. 옥수수 하면 알맹이만 먹고 옥수숫대는 버리지만 옥수숫대 속에 달콤한 즙이 들어 있다는 사실. 남미의 원주민들은 옥수수를 이용해 두 가지 술을 만들었다. 하나는 알맹이를 보리처럼 이용한 옥수수 맥주, 그리고 옥수숫대의 즙을 짠 옥수숫대술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국 초기 정착민들은 이 옥수숫대술을 증류시켜 오늘날 버번위스키의 원형을 만들어 마셨다. 이 때문에 일부 고고학자들은 옥수수가 애초부터 알맹이가 목적이 아니라 사탕수수처럼 즙을 짜내기 위해 재배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 맞아!’ 하고 이마를 탁 쳤다면 분명 알맹이를 다 발라먹고 아쉬운 마음에 남은 옥수숫대를 쪽쪽 빨아먹었던 유년 시절이 떠올라서였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에 눈치 없이 끼는 알맹이보다 옥수숫대를 빨아먹는 쪽이 더 달콤했던 것도 같다.
  • 흩어지는 교회·사찰… ‘거리두기’에도 믿음은 더 가까이

    흩어지는 교회·사찰… ‘거리두기’에도 믿음은 더 가까이

    최근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예수교대한성결교회,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로 구성된 한국성결교회연합회(한성련)가 목회자 윤리강령 제정에 돌입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는 시점에 `이른 시일 내에 윤리강령을 발표하겠다´는 돌발 선언이 종교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부를 전망이다. `교회와 목회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다´며 질적으로 건강한 교회 만들기에 앞장서겠다는 대사회 선언이 예사롭지 않다. 한성련의 윤리강령 제정은 교회·목회자의 자성과 바로 서기의 다짐 말고도 종교 활동의 전환이란 측면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지 6개월. 그 사이 종교와 신행 활동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현장의 집합 행사를 대신한 온라인 예배·법회·미사로 전환, 구역회 등 공동체 활동 중단, 교육 프로그램과 대면 전도·포교 중지 등이다. 그런 예기치 못한 변화의 물결은 신앙생활과 관련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종교계에 툭툭 던졌다. 현장의 신앙공간에 모여 하나로 일치되는 기존 오프라인 신앙생활의 새로운 각성과 함께 굳이 특정 시간·장소에 모여야만 하는지에 대한 회의와 의문의 증폭이다. 특히 개신교계에선 `온라인 예배가 교회 건물에서만 예배한 교인들에게 신앙인으로서의 큰 도전과 고민을 하도록 만들 것´이란 식의 주장이 신자와 목회자 사이에 늘어 가고 있다. 일부 목회자와 신학자는 “일상이나 사회,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도 예배하도록 부름받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교구장 주교가 집전하는 미사, 예불과 법회를 TV로 중계하거나 유튜브 영상으로 제공하는 일이 늘고 있는 천주교와 불교계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불교계에선 특히 사람이 모여 법을 논하는 장소인 사찰과 법을 지도하는 스승이며 지도자인 승(僧)의 위상과 역할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쌓여 간다. 이 같은 신행 변화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바로 일선의 성직·교역자들이다. `예배와 미사는 어떤 식으로든 지속돼야 한다´는 종교 교역의 본질과 `사회와 몸을 함께 두어야 한다´는 현실 사이의 갈등이다. 무엇보다 감염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신자들 간 거리두기와 신앙 공간으로부터의 격리를 부추겨 신앙생활의 쇠퇴를 가져올 것이란 우려가 크다. 서울 은평구 열린선원 선원장 법현 스님은 “참선을 통한 깨달음을 강조하는 불교에선 반드시 모이지 않더라도 각자가 생활 속 신행을 충분히 이어 갈 수 있다”면서도 “요즘 크게 번지는 온라인 법회가 사찰에 모여 진행하는 대면 신행보다 신도들과의 정서적 유대나 종교적 친밀감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최근 개신교 최대 연합기구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정부의 `예배 외 모든 집합 금지´ 조치를 `종교 탄압´으로 규정, 철회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선 것도 신앙생활의 쇠퇴를 우선 우려한 집단 움직임으로 해석된다.그럼에도 코로나19라는 엄청난 시련 아래 종교계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찾아야 한다는 `회심의 실천´ 쪽으로 가닥을 잡아 가는 추세다. 부활절 이후 50일째인 지난 5월 31일 한교총이 `한국교회 예배회복의 날´을 선언하면서 “코로나19 이후의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천명한 게 대표적인 예다. 실질적인 실천의 움직임도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영락교회는 지난 6일부터 12월 31일까지 179일 동안 새로운 신앙생활을 위한 `한 친구´(179) 운동을 진행 중이다. 이 기간 성경 일독을 하는 `말씀과 내가 한 친구 맺기´와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소모임인 `말씀을 나눌 한 친구 맺기´, 이미지와 영상을 활용한 비대면 전도인 `말씀을 전할 친구 맺기´를 지속한다. 경기도 파주 한소망교회는 온라인교회를 출범했다. 신도들이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실시간 주일 예배 중계를 비롯해 다양한 신앙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한 독특한 사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이홍정 총무는 “이제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하자는 신학과 목회는 무의미해졌다”며 “신도들이 한자리에 함께 모이는 대형 집회나 행사보다는 일상에서 비대면의 신행과 의미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 작은 친교와 소통을 다지는 `흩어지는 교회´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신학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가르치지 말고 느끼게 해줘야… 땀을 믿으면 흔들림이 없죠

    가르치지 말고 느끼게 해줘야… 땀을 믿으면 흔들림이 없죠

    실업배구 슈퍼리그가 한창이던 2004년 1월 어느 날.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남자 올스타전을 마친 네 명의 감독이 은밀히 한자리에 모였다. 깜깜한 강남 역삼동의 한 골목 어귀. 일요일 밤인데도 어스름 불 밝힌, 크지도 좁지도 않은 카페에서 넷은 무릎을 맞대고 ‘작당’을 시작했다. 신치용 당시 삼성화재, 김호철 현대캐피탈, 차주현 대한항공과 최삼환(작고) 상무 감독. 군 시절 같은 훈련소 동기이기도 했던 이 네 명의 실업배구단 감독들은 ‘배구도 프로화돼야 한다’는 절대 명제를 두고 새벽 동이 밝도록 침이 마를 때까지 토론을 벌였다. 사실 이전부터 배구인들의 프로화 열망은 몇 년을 두고 넓디넓게 퍼졌던 터였다. 결국 그해 12월 31일 프로배구연맹이 탄생하고 이듬해 2월 20일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첫 대결로 프로배구 V리그가 시작됐다. 이들 네 감독은 실업 딱지를 떼고 프로 간판을 단 각 팀의 사령탑으로 그대로 중용됐다. 그러나 특히 ‘지도자’ 신치용에게 실업배구가 ‘서론’이었다면 프로배구는 ‘본편’이었다. 그는 “그때 바야흐로 내 배구 인생 2막이 시작됐다”고 했다. 1995년 첫발을 내디딘 삼성화재에서 꼭 10년 동안 슈퍼리그를 8차례 제패한 그는 비슷한 기간 V리그에서도 8회 우승을 일궈냈다. 햇수로 11년을 프로 코트에 몸담았다가 제자들에게 바통을 물려주고 떠난 지 5년째인 지금 그는 ‘신 촌장’으로 불린다. 진천국가대표선수촌의 수장이다. 지난해 2월 임기 2년의 촌장 자리에 앉았으니 벌써 1년 6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임기 반년을 남긴 신 촌장을 충북 진천선수촌장실에서 만났다. 반색하며 맞았지만 그의 첫마디는 “이제 배구 이야기는 그만합시다”였다.-그렇긴 하지만 배구 이야기를 뺄 수는 없다. 가장 애착이 가는 배구 기록은 무엇인가. “모든 기록이 다 소중하긴 하다. 그중에서도 슈퍼리그 77연승은 내가 생각해도 정말 쉽지 않은 기록이다. 1995년 삼성화재 초대 감독에 앉았을 때 우리 팀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생각했다. 나를 감독으로 발탁한 이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리 팀의 가장 좋은 전략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결론은 ‘경기에서 이기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그게 77연승의 원동력이자 전략으로 발전했다. 매 경기를 목숨 걸고 했다. 77연승은 그 결과다.” -줄가자미라는 생선으로 유명한 경남 거제 출신이다. 그 생선을 닮아서 ‘신치용 배구’가 찰지다는 얘기들을 한다. “일본말로 이시가리라고 하는데, 한번 먹자는 약속을 여태 못 지켜 죄송하다. 그게 봄철에만, 그것도 잠깐 동안만 나오는지라 여간해선 맛보기 쉽지 않다(웃음). 찰지다는 얘기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거제를 떠나기 전부터 시작해 48년 동안 줄곧 배구를 놓지 않았고 그 가운데 32년을 지도자로 보냈다. 한국전력 코치, 감독을 거쳐 삼성화재 감독으로만 21년이었다. 전에는 프로야구 김응룡 감독님이 18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셨는데, 내가 그 기록을 깼다. 일개 선수로 시작해 지도자로 자수성가했다. 야망이 없었다면 못 이룰 일들이다. 이만 하면 몸값 비싼 이시가리에 비유할 만하지 않은가.” -말 나온 김에 지도자 이야기 좀 해 보자. 어떻게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나. “거제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배구를 시작했다. 포지션은 알다시피 세터였다. 1977년 국가대표에 뽑혔지만 늘 후보로 ‘닭장’(대기선수) 신세였다. 밀양에서 배구를 시작한 동갑내기 김호철 감독이 더 잘했기 때문이다. 1980년을 넘기고는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고 소속팀 한국전력에서도 은퇴해 일반 사원으로 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작고한 양인택 당시 감독이 플레잉코치로 호출했다. 이때가 지도자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삼성화재 감독이 될 때까지 12년간 양 감독의 용병술과 전략·전술을 배웠다.” -지금까지 리더십에 관한 강의도 제법 많이 했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최고 덕목은 무엇인가. “난 선수 생활을 길게 하진 않았지만 지도자로서 할 것은 다했다. 지도자는 선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배구판에서는 선수들이 감독이나 코치한테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많이 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제자’라고 부르거나 일컬은 적이 없다. 잘잘못을 스스로 느끼게 한 적은 있어도 이러쿵저러쿵 가르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팀의 중심은 선수이고 감독이나 코치는 선수들을 도와주는 스태프에 지나지 않는다. 감독이 선수를 이겨야 할 이유가 없다. 그들을 잘 보듬어서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나는 지금까지 하루에 한 시간 반분씩 트레드밀(러닝머신) 타는 걸 빼먹은 적이 없다. 술 먹고 그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고픈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선수들의 눈이 두렵다. 피하는 것이 아니라 떳떳해지려고 뛰는 것이다.” -지금 프로배구 감독 중에는 삼성화재 출신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신치용 사관학교’라는 말도 있다. “OK저축은행을 맡았던 김세진, 지금 맡고 있는 석진욱을 비롯해 우리카드 전현 감독 김상우·신영철, 지금도 현대캐피탈을 지휘하는 최태웅, 삼성화재 신진식, 한국전력 장병철 감독 등이다. 그러고 보니 남자부 7개팀에서 지금 현역으로 뛰는 감독만 4명이다. 이들 모두 나와 함께 삼성화재 배구의 전성기를 일궈낸 후배 감독들이다. 리베로 출신은 빠졌지만 이들을 한 팀으로 꾸리면 좌진식·우세진, 가운데 김상우, 왼쪽에 석진욱 등 고스란히 슈퍼리그~V리그 초반의 삼성화재 모습 그대로다.” -가장 애착이 가는 후배 감독은 누구인가. 굳이 한 명을 꼽으라면.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열 개 중 있겠나. 굳이 한 명만 뽑으라면 지금 우리카드를 맡고 있는 신영철 감독이다. 내가 코치 생활을 하던 1988년 한국전력에 입단했고 이후로도 오랜 시간 같이했다. 같은 세터 출신이라 더 각별했던 것 같다. ‘바늘과 실’에 비유되기도 했다. 1996년 삼성화재로 팀을 옮긴 3년 뒤 은퇴한 그를 코치로 기용했다. 우리는 감독과 코치로 실업리그 7연패를 이끌었다. 삼성 출신의 많은 후배 감독들이 코트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래서 신 감독은 내게 특별하다. 말은 어눌한 것 같아 보이지만 두뇌 회전이 남다르다. 그것까지 날 빙의했다고 하더라.” -감독 시절 가장 기억나는 선수는. “수없이 많다. 지금 전현 감독들과 겹치지만 창단 멤버로 첫 우승을 일궜을 때 김세진, 김상우는 말할 것도 없고 누구 하나 허투루 기억할 선수는 없다. 다만 이들에 가려 제대로 뛰어 보지도 못하고 그늘에서 은퇴를 맞았던 선수들이 이들만큼 많다. 그들에게는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감독은 악역이다. 모두를 품고 싶지만 머리 따로, 가슴 따로 돌려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선수들을 마주할 때는 더욱 그렇다. 현대캐피탈에 있던 박철우가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리면서 데려올 당시, 그쪽에서 최태웅을 보상선수로 찍었다. 보호선수로 손을 못 대게 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가장 섭섭했을 것이다. 장병철은 더 하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은퇴한 경우다. 2007년 신진식, 김상우, 방지섭 셋을 한꺼번에 은퇴시켰을 때는 이가 한꺼번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요즘 스포츠계가 고 최숙현 선수 사건으로 어수선하다. 스포츠 폭력을 바로잡을 묘책은 무엇인가. “삼성화재 감독을 지낼 당시 경기 분당체육관 입구에 ‘본립도생’이라고 쓴 커다란 액자가 걸려 있었다. ‘기본이 돼 있으면 자연스럽게 나아갈 길이 보인다’는 뜻이다. 배구 감독 시절은 물론이고 지금 선수촌장으로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비로 이것이다. 사람을 상대할 때 가장 기본은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선수 간, 혹은 선수와 지도자 간도 마찬가지다. 기본을 지키면 폭언과 폭력이 난무할 이유가 없다. 선수는 체력과 기술 연마에, 지도자는 그 선수를 돕는 일련의 프로그램에 집중하면 된다. 한국전력 코치를 처음 맡은 1983년 슈퍼리그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그리고 시대가 분명히 다르다. 선수의 개성과 특성도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정보 시대다. 컴퓨터만 켜면 운동 방법을 비롯한 온갖 정보가 쏟아진다. 선수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거나 훈육하는 시대는 먼 옛날 일이다. 선수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여건과 길을 만들고 보여 줘야 한다. 그게 이 시대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선수들도 훈련 외에는 자신을 지켜줄 사람이 없다고 믿어야 한다. ‘신한불란’(땀을 믿으면 흔들림이 없다)이란 말을 믿어야 한다.” -코로나19로 도쿄올림픽이 1년 미뤄졌다. 임기가 반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지난해 선수촌장 제의를 받고서 남은 일생의 목표를 올림픽에 걸겠다는 각오로 수락했다. 선수촌장으로 발탁된 건 배구 지도자 시절 팀을 잘 관리하고, 최강의 조직력으로 다듬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선수, 지도자, 경영인 등으로 쌓은 경험을 높게 평가받은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넉 달째 텅 빈 선수촌을 바라보니 허탈감마저 느낀다. 선수 없는 선수촌은 팥 없는 찐빵이나 다를 바 없다. 연임에 관해선 내가 말할 입장이 아니다. 인사는 인사권자의 몫이다. 다만 지금의 내 직분에 맞게 선수촌장으로서의 할 일에 집중할 뿐이다. 그게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지켜야 할 ‘기본’이다.” 글 사진 진천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8m 산수화·미인도 납시었네

    8m 산수화·미인도 납시었네

    기록유산·예술품·불교문화재 한곳에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22건도 출품국보·보물 196점 역대 최대 규모 전시내일부터 현장 관람… 온라인 전시도어디에 눈을 두든 온통 귀하디귀한 국보와 보물들이다.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이 공동주최하는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2017~2019’가 21일부터 9월 27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2017년 ‘신국보보물전 2014~2016’에 이은 두 번째 특별전으로, 최근 3년간 새로 지정된 국보·보물 157건 가운데 83건 196점을 선보인다. 국보와 보물 전시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국공립박물관, 대학, 사찰, 개인 등 대여 기관만 총 34곳. 특히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보물 22건이 한꺼번에 출품돼 눈길을 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20일 언론공개회에서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이 문화유산을 통해 위로받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놓치면 후회할 전시”라면서 “교체 전시품을 감안해 최소 두 번은 관람해야 한다“고 소개했다.전시는 기록유산, 산수화와 풍속화, 불교문화재 등 3가지 주제로 구성했다. 1부 ‘역사를 지키다’는 국보로 승격된 다양한 기록 유산들을 모았다. 국보 제322-1호 ‘삼국사기’, 국보 제306-3호 ‘삼국유사’와 국보 제151호 ‘조선왕조실록’ 등 유구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을 한자리에 모았다. 조선왕조실록은 지난해 국보로 승격한 ‘봉모당본’(국보 제151-5호)을 비롯해 정족산사고본, 오대산사고본, 적상산사고본이 전시된다.2부 ‘예술을 펼치다’에선 선인들의 미의식이 담긴 예술품과 마주한다. ‘청자 순화4년 명 항아리’(국보 제326호)는 명문이 있는 가장 오래된 청자로, 고려청자 제작 초기의 상황을 밝히는 가장 확실한 유물로 꼽힌다. 소장자인 이화여대가 처음으로 외부 전시를 허락했다.전시실 하나를 차지한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보물 제2029호)와 심사정의 ‘촉잔도권’(보물 제1986호)은 시선을 압도한다. 길이가 각각 8.5m, 8m에 이르는 대작으로, 전통 산수의 진면목을 선사한다. 46억 화소로 스캔한 높이 3.5m, 길이 32m의 ‘강산무진도’ 영상을 전시장 벽에 병풍처럼 둘러쳐 마치 풍경 속을 거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혜원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보물 제1973호),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보물 제1970호) 등도 나왔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서화류는 3주마다 교체한다. 3부 ‘염원을 담다’는 불교문화재를 집중적으로 살핀다. 백제시대 불교신앙과 정교한 공예기술을 보여 주는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국보 제327호)를 비롯해 세종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고자 지은 찬불가 ‘월인천강지곡 권상’(국보 제320호), 불교 경전을 인쇄하기 위해 새긴 ‘묘법연화경 목판’(보물 제1961호) 등이 전시된다. 수도권 국립문화시설 재개관 지침에 따라 현장 관람은 22일부터 가능하다. 온라인 예약을 통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2시간마다 내장 인원을 200명으로 제한해 운영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주요 전시품을 소개하는 온라인 전시도 병행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여기는 호주] 멜버른 마스크 대란…미착용시 벌금 200달러

    [여기는 호주] 멜버른 마스크 대란…미착용시 벌금 200달러

    호주내 코로나19 2차 유행이 시작되면서 2차 유행의 발원지인 멜버른이 이번주 22일(현지시간) 밤 11시 59분부터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 한다. 외출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경우 200호주달러(약 17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멜버른에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발표되자 마자 마스크를 사기위한 긴 줄이 생기는등 마스크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마스크나 개인 위생품을 판매하는 대표적인 대형 매장인 케미스트 웨어하우스에는 마스크를 사기위한 긴 줄이 만들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멜버른 전역에서 마스크를 사기위해 매장밖으로 길게 늘어진 줄을 담은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다. 마스크 구입을 위한 몰려든 시민들이 오히려 코로나19 확산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생겨나고 있다. 데이비드라는 이름의 멜버른 주민은 “매장 밖으로 긴줄이 서있는데, 절반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만 절반은 마스크가 없어 착용하지 않았다. 이런 군중 모임이 오히려 코로나19 확산을 불러 오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마스크 구입을 위한 매장이 아닌 스포트라이트라는 바느질과 원단을 파는 매장도 특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직접 집에서 마스크를 제작하려고 원단과 재봉틀을 구매하면서 매진 사례가 일어나고 있는 것. 호주 헤럴드 선 저널리스트인 브룩 그래버트-크레이그는 “스포트라이트 매장으로 입장하는 데에만 30여 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알리기도 했다. 마스크 대란을 우려한 제니 미카코스 빅토리아주 보건 장관은 “굳이 수술용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는 없다. 스카프를 사용할 수도 있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한편 호주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한자리 수를 유지하면서 코로나19 종식을 기대했다가 제2의 도시 멜버른을 중심으로 하루 확진자 수가 400명을 넘는 등 2차 유행이 시작되면서 비상등이 다시 켜졌다. 다니엘 앤드류스 빅토리아 주총리는 지난 19일 급기야 “가능한 집에 머물러라. 집를 떠나 외출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경찰이 200호주달러 벌금을 물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20일 오전 현재 호주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1만2069명이며 이중 123명이 사망했다. 김경태 시드니(호주)통신원 tvbodaga@gmail.com
  • [근대광고 엿보기] 독립선언서 낭독 장소 태화관 광고

    [근대광고 엿보기] 독립선언서 낭독 장소 태화관 광고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가 낭독된 장소인 서울 인사동 태화관이 그 전인 1916년 1월 요리점으로 개업했다는 광고다. 태화관 자리는 조선 전기 중종 반정에 가담해 정국(靖國) 공신 2등에 책록된 구수영이 살던 곳인데 태화정(太華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중종은 이곳에 순화공주를 위한 집을 지어 주었고 순화궁이라 불렸다. 조선 후기에는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의 거처가 됐다가 1907년 궁내부대신 이윤용이 차지했다. 이윤용은 순화궁을 1911년 동생 이완용에게 넘겼고 이완용은 1913년 옥인동에 대저택을 짓고 이사하며 임대해 주어 태화관(太華館)이라는 여관이 됐다. 이것을 홍순학이 인수해 요리점으로 바꾼 것이다. 홍순학은 태화관 요리점을 열기 전에 상업회의소 주임 서기로 일했다고 한다. 태화관은 친일 인사들과 조선총독부 고관대작들의 모임 장소로 애용됐다. 그런데 태화관에 1918년 벼락이 떨어져 건물 안에 있던 고목이 둘로 쪼개졌다. 주인인 이완용이 놀라 팔려고 내놓자 광화문 네거리에서 명월관을 경영하던 안순환이 인수해 명월관의 별관으로 운영했다. 이름도 한자가 다른 태화관(泰和館)으로 바꿨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지방에 있던 김병조, 길선주, 유여대, 정춘수 4인을 제외한 29명이 이곳에 모였다. 원래 대표들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려 했다. 그러나 그 전날 서울 재동 손병희의 집에서 논의한 끝에 탑골공원에서 거사를 벌이면 자칫 군중의 과격한 행동을 야기해 유혈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에 따라 태화관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민족대표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주인 안순환에게 조선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민족대표 일동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지금 축배를 들고 있다”고 통보하라고 했다. 일경 80여명이 출동해 태화관을 포위한 가운데 한용운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나머지 대표들이 제창한 뒤 연행에 응했다. 대표들은 일경이 태화관에 인력거를 가지고 오자 자동차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결국 민족대표들은 택시 일곱 대에 나눠 타고 경무총감부에 가서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얼마 후 태화관에 불이 나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장소인 보성사는 화재로 소실됐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일제의 방화로 추정된다. 그 뒤 태화관은 궁정 양악대 출신들이 만든 우미관 양악대와 단성사 양악대가 자주 출연하는 장소로 인기를 끌다가 1921년 미국 남감리교회에 인수돼 태화여자관으로 탈바꿈했다. 남감리교회는 이곳을 전도 사업과 여성 교육 공간으로 사용했다. 현재는 12층짜리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건물(태화빌딩)이 들어서 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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