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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모리총리 인터뷰서 “독도는 일본땅” 삭제 파문

    KBS가 최근 일본 총리의 인터뷰를 내보내면서 일부 문제발언을 삭제,방송편집권의 한계에 관해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26일 KBS와 KBS노동조합에 따르면 KBS는 지난 21일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를인터뷰한 ‘KBS 특별회견 일본 모리총리에게 듣는다’를 방송하면서모리 총리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요지로 한 발언을 삭제했다. KBS 노조는 이와 관련,26일 ‘특보-독도는 일본땅 일총리 망언’이라는 소식지를 내고 “모리 총리가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공식 의견을 밝혔다”면서 “모리 총리가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한일관계를 악화시킬 것이 당연한 독도 영유권주장을 인터뷰에서 밝힌 것은 상당한 의도를 가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보에 따르면 이날 방송에서 독도에 관한 일본 정부입장을 묻는 질문에 모리 총리는 “우리나라는 다케시마(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서도,국제법상으로도 명확하게 우리나라고유영토라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다.이 문제에 대한 일·한 두 나라입장차이가 두나라 국민의 감정대립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답했다.KBS 노조관계자는 “대통령 방일을 앞두고 긍정적 분위기를 형성하자는 것이 이 프로의 기획의도였지만 한·일간 민감한 문제에 대한 일본 총리의 책임있는 발언은 시청자에게 전달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KBS측은 노조의 주장에 대해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반박하고 있다.프로를 만든 이봉희 보도제작국장은 “일본정부는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에 모리 총리의 발언은 새 뉴스가 아니었고,대통령 방일을 앞둔 한·일 정부의 화해협력분위기에서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해 편집했다”고 밝혔다.이국장은 “더욱 이 질문은 모리 총리가 기존 일본 정부입장을 대변할것이 예상됐지만 ‘혹시 다른 답이 나올까’해서 던진 보조 질문성격이었다”며 일상적 편집이었음을 강조했다. 한편 독도수호대는 26일 성명서를 내고 “일본이 의지가 있었다면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부담스런 답변을 피할 수 있었지만 일본 총리는 독도침략 의지를 과감히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장택동기자 taecks@
  • 양승현의 취재수첩/ 金대통령의 外治와 內治

    ‘가깝고도 먼 나라’ 흔히 우리는 일본을 이렇게 칭한다.두나라 관계는 순조롭게 진행되다가도 각료 망언이나 교과서 왜곡사건 같은 일이 생기면 언제 이웃이었나 싶게 냉랭해진다. 이번 아타미(熱海)온천 정상회담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모리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와 불과 반년 사이에 3차례의 정상회담과 3차례의 전화회담을 가졌다.친한파였던 고(故)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총리와 닦아놓은 선린 우호관계를 잘 가꾸고 있는 셈이다. 온천회담은 ‘정보기술(IT)협력 이니셔티브’와 같은 성과가 말해주듯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이미 전화로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했고,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때 만날 수 있었으나 별도 일정으로 아타미를 방문,‘우방의 예’를 갖춘 게 밑거름이 됐다.모리 총리가 환영만찬사에서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라는논어 경구를 인용,감사인사를 표시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사실 한일관계는 예전과 사뭇 다르다.지난 정부때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식의 요철(凹凸)반복이아니라 차분하게 일본을바라보는 기류가 싹트고 있다.김 대통령의 외치(外治)의 결과이다. 하지만 달리 볼 면도 있다.23일 기자회견에서 김 대통령은 일황 방한 수위를 ‘월드컵 이전에 이뤄지도록 하자’고 했던 취임초 보다낮췄다.“먼저 일본이 결정할 문제”라고 접근했다.남북교류협력과북·일관계 개선도 기존 원칙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기자의 눈엔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는 내치(內治)가 힘을 실어주지못하는 것으로도 비쳤다.개인기에 의존하는 외치를 팀워크가 필요한내치로 잇지 못한 때문이다. 아타미 회담이 ‘대통령의 메시지가 아래까지 전해지지 않고,밑바닥민심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는’ 내치의 문제점을 김 대통령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정치팀차장 yangbak@
  • [사설] 남북화해와 新한일협력

    지난 22일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 한편 일본 경제인들을 상대로 활발한 ‘세일즈 외교’를 펼친 뒤 오늘 귀국한다.2박3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21세기를 앞두고 새로운 한·일 협력체제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6·15공동선언 이후 급진전된 한반도 화해시대를 맞아한·일간 외교적 보폭을 조율하고,경제협력 및 문화교류의 폭과 깊이를 한 차원 진전시켰다는 뜻이다. 동북아의 평화정착과 경제발전을 위해선 북한의 경제회복과 개혁·개방을 통한 한반도의 안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그런 점에서 양국이남북관계와 북·일관계가 균형있게 발전하도록 긴밀한 공조를 유지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은 높이 살 만하다.김대통령이 강조했듯이 “북한의 경제회복은 한국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북한이 과거의 어두운 이미지를 벗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자리잡는 데도 북한 스스로의 노력과 함께 미·일과 북한의 관계개선이 관건이다. 특히 우리는 일본이 김대통령의 대규모 대한 투자 요청 등에 화답한점을 퍽 다행스럽게 생각한다.장기적으로 한·일을 포함해 동북아 전체의 공동번영에 기여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양국간 투자협정의 연내 체결,‘정보기술(IT)협력 이니셔티브 선언’ 채택 등에 합의한 것도 일본 아타미에서 열린 이번 정상회담의 실질적 수확이다. 그러나 양국이 종전의 ‘가깝고도 먼’ 관계에서 탈피하기 위해선몇가지 선행조치가 필요함을 이번 기회에 강조하고자 한다.우선 양국이 새로운 세기에 진정한 이웃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도 과거사에 대한정직한 인식이 필수불가결할 것이다.그런 맥락에서 일본은 문부성이앞장서 역사교과서 왜곡을 종용해왔다는 자국 시민단체들의 지적에대해 뼈아픈 성찰이 있기를 바란다. 그 연장선상에서 일본은 한국이 이번에 거듭 요청한 재일동포들의지방참정권 허용 등 법적 지위향상에 전향적 자세를 보여주기를 촉구한다.이같은 과거청산 작업이 경제협력이나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인 공동개최 등 양국간 각종 협력을 증진하는 분위기 조성에 이바지할 수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더 나아가 일본 방송개방 등 문화교류촉진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일본은 알아야 한다. 이처럼 과거사가 말끔히 정리되고 일본이 대한 투자를 더 늘릴 때일본이 요구하고 있는 한·일간 자유무역협정 체결도 장기적으로 가능할 것이다.당장 한·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경우 대일 경제종속이 우려된다는 우리 사회 일각의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단기적으로 무역역조 심화 등 부작용이 예견된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 [발언대] 日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한일협정 개정을

    19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이 북일수교 과정에서 최대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북일 수교를 위한 회담에서 핵심의제는 ‘일본의과거청산’이다.이것은 곧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문제이다. 북한은 식민지배 36년 동안 뿐만 아니라 전후에 대해서도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이에 대해 일본은 사죄와 배상은 물론이고 보상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오로지 재산 청구권이나 경제협력 방식을고집하고 있다.미국에서 진행 중인 강제동원 소송건이나 심지어 정신대 문제까지도 일본은 한일협정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일기본조약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먼저 한일기본조약에는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이 완전히 빠져 있다.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해 어떠한 책임추궁 없이 오히려 일제의 식민지배를 합법화시켜 주는 결과만 낳았다.1995년 일본 국회에서 사죄결의를 이끌어냈던 무라야마 수상조차 “한일합방조약은 당시에는 유효하게 맺어진 조약이었다”라고 발언하였다.결국 1965년의 협정은 바로 일본이 이런주장을 할 수 있게 하는,나아가 이후의 모든 과거사 문제는 이 협정으로 완결됐다는 빌미와 명분을 제공하는 반역사적인 조약이다. 한일협정과 관련해 최근 미국에서 중요한 문서가 공개됐다.미 국립공문서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처음에는 민족해방운동의 공적으로한국을 대일교전국이자 연합전승국의 일원으로 인정했으나 일본의 압력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조인국에서 제외시켰다는 것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했다.원인 제공자의 일방인 우리가 나서 한일협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고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그래야 북일수교에서 진정한 과거청산이 이뤄지고 집단소송에서 정의가 실현되는 데 동참할 수 있지 않겠는가. 동아시아의 평화나 한일간의 우호는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지난 6월19일 미국 하원은 전쟁범죄에 대한 일본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구하는 결의안을 상원과 함께 채택했다.더 늦기 전에,더 부끄럽기 전에 우리가 할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金正日위원장 내년봄 답방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내년 봄 서울 답방이 추진된다. 남북한은 또 오는 27일부터 나흘간 제주도에서 열리는 3차 장관급회담 이전에 적십자회담,국방장관급 회담,경의선 복원 실무접촉,경협제도적 장치마련을 위한 실무접촉 등을 갖기로 합의했다.이에따라 이르면 이번주부터 경의선 복원실무 접촉 등 주춤하던 남북접촉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김용순(金容淳) 북한 노동당 비서 일행은 제주도를 방문중이던 지난12일 밤 임동원(林東源) 대통령특보(국정원장)와 신라호텔에서 만찬회동을 갖고 이같이 합의했다고 정부 고위당국자가 13일 밝혔다. 경의선 복원을 위한 실무접촉은 이르면 이번 주말,적십자회담은 19일쯤 금강산 개최가 유력시된다.국방장관급 회담도 25·26일쯤 홍콩등 제3국에서 개최될 것으로 전망된다. 13일 오전 제주도를 떠나 포항, 경주를 거쳐 서울로 돌아온 김용순비서는 14일 상오 청와대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예방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와 친서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청와대측은 김 비서와의 논의 결과를 정리,발표할 예정이다.김용순 비서는 청와대 예방을 끝으로 방문일정을 마치고 고려항공편으로 북한에 돌아간다. 앞서 김 비서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일행 7명과함께 11일 오전 10시 고려항공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 3박 4일의 방한일정을 시작했다. 북측 일행에는 박재경 인민군 총정치국 선전담당 부총국장,림동옥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권호웅 당중앙위 지도원,박성철 당중앙위과장,김광렬 당중앙위 지도원 등 군부와 당의 실세들이 포함됐다.그러나 박 부총국장 등 2명은 김정일 위원장이 남측 인사에게 선물하는송이버섯 전달식 직후 바로 평양으로 돌아갔다. 공동취재단 이석우기자 swlee@
  • 데라다 주한 일본대사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일관계’ 강연

    데라다 데루스케(寺田輝介) 주한 일본대사는 8일 “북한과 일본이국교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일본인 납치 의혹’ 등의 문제가 먼저해결되야 한다”고 밝혔다. 데라다 대사는 이날 한국언론재단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마련한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일 관계’라는 제목의 조찬강연회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 등의 인도적 문제와 핵·미사일·생화학무기·북한 선박의 일본 영해 침범 등 안보문제가 선행되지 않고는 북-일 관계가정상화될 수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일 경제협력과 관련,“전세계 각 지역에서 자유무역협정이속속 체결되고 있으나 한-중-일의 동북아지역에만 이같은 협정이 없다”면서 “한-일 자유무역협정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시기가 됐다”고 밝혔다. 데라다 대사는 “한-일간에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미국 시장의 3분의2에 해당하는 1억7,000만명의 시장이 생긴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한-일 투자협정을 연내에 체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오는 22일부터 사흘간 일본을 방문하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이같은 경제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일교포의 참정권 문제와 관련,“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가운데 영주 외국인에게 지방 참정권을 인정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면서 “그러나 일본은 전향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데라다 대사는 또 한-일간의 인적 교류의 필요성도 역설했다.구체적인 방법으로 매년 100명의 한국 고등학교 졸업생을 향후 10년동안 일본 일류의 이공학부 대학에 유학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이 급격히 좋아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이는 한-일 양국이 대중문화의 문호를 개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는 ‘독도수호대’ 소속 회원 3명의 기습시위로 강연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김윤배(金允培) ‘독도수호대’ 집행위원장등 3명은 데라다 대사가 강연을 시작하려는 순간 연단의 마이크를 잡고 “독도가 어떻게 일본땅인가”,“데라다 대사 추방하라”는 등의구호를 외치다 행사요원들에 의해 밖으로 퇴장당했다.김 위원장은 “데라다 대사가 최근 한국의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독도는 일본영토’라고 주장한데 대해 항의하기 위해 시위를 벌였다”고 밝혔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金대통령 TV3사 대담 안팎

    3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TV방송과의 특별대담은 남북관계,지식정보화,의약분업 사태 등 국정의 주요 현안에 대해 포괄적으로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TV를 매개로 국민에게 국정현황을 소개한 약식 ‘국민과의 TV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 김 대통령의 기본 인식은 당연히 추진해야 하고 필요한일들을 시행하고 있다는 판단이다.긴장완화와 경제협력,문화·체육교류 분야에서 쉽고 가능한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남북 교류·협력 속도에 대한 일부의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현재의 틀 속에서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국민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양과 속도를 조절해 나가는게 좋겠다”고 말함으로써 여론의 추이를 반영할 뜻임을 분명히했다. 특히 이제껏 진행되어온 남북관계 개선 성과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내리고 있음을 보여줬다.남북 정상회담에 이은 이산가족 상봉,장기수 북송,경의선 철도 복원 합의 등은 남북을 하나로 묶는 ‘한반도 경제권’ 건설을 위한 초석이라는 설명이다. ◆정국 정상화=‘국회 중심의 정치’라는 원론을 여야 대치정국 해소를 위한 해법으로 제시했다.김 대통령은 “정치는 모든 게 국회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여야가 헌법과 국회법에 명시되고 보장되어있는 원칙을 지켜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정치 관행의 근본적인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 봉합은 결국 미봉책에불과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대화와 협상,표결 처리 같은정치 관행이 정착되지 않는 한 여야 영수회담 등은 단기 처방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그런 점에서 “옥외 대회를 한다고 국회가정상화되느냐”는 김 대통령의 반문은 야당에 대한 호소로도 읽혀지는 대목이다. ◆지식정보화,국정개혁=김 대통령은 지속적인 개혁이라는 국정 방향속에서 현안들을 정리했다.공공 부문을 포함한 4대 개혁의 마무리와의료계 폐업사태를 국가 발전의 토대 위에서 해결할 것임을 분명히했다. 무엇보다 지금의 개혁을 하드웨어 부문이라며 소프트웨어,즉 질적개혁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국민의 정부의 성격을규정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내년 2월까지 4대 개혁을마무리짓고 물러날 때는 일류국가 기반을 다져놓겠다”는 약속은 남은 임기 국정운영 방향을 가늠할 단초이기 때문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사설] 북·일 수교 ‘일본의 책임’

    22일부터 일본 도쿄에서 제10차 북·일 수교회담이 열린다.이번 회담은 최근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남한 언론사 사장단과의 회견에서 북·일 수교회담과 관련해 “청산해야 할 과거문제가 있다.일제 36년도 배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한 뒤 열리는 첫 회담이어서 관심을 끈다.김위원장의 이 발언을 놓고 일본 내부에서는 구구한 정치적 해석이 있는 모양이나 김위원장의 언급은 지극히 원칙론을 제기한 것으로 인식된다.따라서 일본이 김위원장의 언급에 이런저런 해석을 붙이는 것은 회담에 임하는 자세가 진솔하지 않다는 느낌을준다. 이번 북·일 수교협상은, 북한이 선(先) 과거청산을 주장하는 반면일본은 북한의 일본인 납북과 미사일 발사 등 현안문제를 동시에 풀자는 입장이어서 순조로울 것 같지는 않다.우리는 북·일 수교가 동북아 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이를 환영한다고 거듭 밝힌 바있다.굴욕적인 한·일 수교회담과 같은 협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이번 북·일 수교회담에서는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정직한 사과와 응분의 배상을 해야 한다.그런 다음 일본이 주장하는 일본인 납북문제 등에 대해 북한도 사과 및 재발방지를 약속하면 될 것이다.그리고 미사일 문제는 북한과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미국과도 연관된 문제다.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관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마땅하다.그러나 일본이 이문제를 일제 식민통치의 죄과와 상쇄하려는 듯한 협상자세는 옳지 않다고 본다.일본은 비슷한 과거를 가진 전범국 독일에 비해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자세 때문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차제에 우리는 일본의 배상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를 느낀다. 이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북·일 수교협상의 핵심으로 같은 민족으로같은 피해를 입었으며 65년 한일협상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당시박정희(朴正熙)군사정부는 무엇보다 정권의 안정에 다급한 나머지 서두르기도 했거니와 경험도 없어 군 위안부 문제,징용민간인 피해,문화재 반환,사할린 교포문제 등은 챙기지 못해 미제로 남겼다.당시 한·일간에 타결된 무상 3억,재정차관 2억,민간차관 1억 달러는 해방전 국내외 한인들이 일본 금융기관들에 맡겼다가 찾지 못한 예금액수에도 못 미친다.일본의 대북 배상액의 적정선을 찾기 위해 북한과 일본이 원한다면 일제 강점하 민간인 피해 등에 대해 남·북한과 일본의공동조사도 한 방법일 것으로 생각된다.일본은 뒤늦게나마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국가로 인식받기 위해서는 북·일 수교와 관련,과거속죄 차원에서 진지하게 임해야 할 것이다.
  • 이희호 여사 “통일의 꽃 피우는데 일본 역할 기대”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는 4일 “일본은 어떤 나라보다 남북의 화해와 통일에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여사는 이날짜 아사히(朝日)신문과의 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일본정부는 종군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여사는 또 “김대통령의 말처럼 인내와 성의,일관성있는 태도가 남북관계의 기본”이라고 거듭 소개하고 “일생을 통해 민족의 화해와 통일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김대통령의 지금까지의 고난이 오늘날 민족의 화해와 협력에있어서 귀중한 밑거름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여사는 최근 평양 방문중 북한의 여성대표들과 회담을 갖고 ‘아시아의평화와 여성의 역할’이라는 세미나의 재개에 대해 협의했으며 구 일본군에의한 성폭력의 책임을 묻는 모의법정 ‘여성국제전범법정’도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아사히는 아울러 전했다. 회견요지는 다음과 같다. ■한일관계 일본정부와 많은 국민은 역사의 청산에 대해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있다. 1970년에 서독의 브란트총리가 폴란드를 방문했을 당시 유대인 시민의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독일과 일본은 이같은 면에서차이가 크다. 그러나, 과거에 구애된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알고 잘못을 고침으로써 새로운 것을 향해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일간 유대 한일 양국의 여성 유대는 국가와 나이를 초월해 친구가 될 수있는 가능성을 보여왔다. 세계적인 문제에 대해 함께 대처하는 ‘지구촌 가족’의 전형이 되도록 기대하고 싶다. ■남북정상회담 북의 대부분 여성이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평양의 어린이들과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불렀을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이 어린이들이 어른이 될 때에는 통일된 조국을 물려 주어야 할 사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남북통일의 길 이산가족의 재회가 정례화돼 남북이 서로의 허물을 감싸고화해와 협력을 하는 것이 더욱 많아지기를 원한다. 도쿄 연합
  • ‘한일·한러’ 연쇄 전화 정상외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일 오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모리 요시로(森喜朗)일본 총리와 연쇄 ‘전화 정상외교’를 펼쳤다.특기할 대목은이날 전화 외교가 모두 상대국의 요청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한반도가 주변 4강의 중심적 위치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징후다. 김 대통령의 전화 외교는 한반도 주변 4강과 ‘상시 대화 채널’ 구축을 의미한다.그만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가 급변하고 있고,이에 우리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초다. [푸틴 대통령 통화] 김 대통령은 먼저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장거리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북한의 입장과 러시아의 평가를 들었다고 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푸틴 대통령은 비교적 상세히 미사일문제 등 지난달 북한방문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 김 대통령은 이에 사의를 표하고 한·러 양국 관계가 더욱 돈독한 관계로발전되길 희망했다.또 푸틴 대통령이 평양에서 남북 대화를 지지한 데 대해거듭 감사를 표시했다. [모리 총리 통화] 이어 모리총리로 부터 G8 정상회의 및 북·일 외무장관회담 결과를 들었다. 김 대통령은 모리 총리가 G8회의에서 ‘한반도에 관한 특별성명’이 채택되도록 노력해준 데 대해 사의를 표시했다.특히 세계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한방안을 제시한 것을 높이 평가한 뒤 북·일 외무장관회담의 성공을 진심으로축하했다. 또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이후 국제 사회와 접촉을 활발히 하고 있다”면서 이런 기회를 통해 한반도 냉전구도 종식과 평화 정착을 위한노력에 일본의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이 있기를 강하게 기대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與野, 대치속 기선잡기 ‘手싸움’

    국회법 변칙처리로 빚어진 대치정국이 쉽사리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27일 국회법의 변칙처리로 빚어진 국회 파행에 유감의 뜻을 밝혔지만 여야는 이를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으로 해석,서로 선(先)사과를 요구하며 대치전선을 이어갔다.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은 ‘밀약설’을 둘러싼 내홍이 계속됐고,자민련 의원들은 시급한 민생현안을 외면한 채 줄줄이 외유를 떠날 예정이어서 빈축을 사고 있다. ◆민주당=국회 파행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을 물어 한나라당에 대한 공세 수위를 한층 높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임시국회 소집을 위한 대화의지를 강조하는 등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날 서영훈(徐英勳) 대표를 비롯한 고위당직자 대부분이 한나라당에 대한공세에 나섰다.특히 박병석(朴炳錫)대변인은 이회창(李會昌) 총재를 직접 겨냥,국회에서의 폭력행사,국회의장단 불법감금,밀약설과 관련한 이중성 등에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김 대통령의 유감 표명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분명한 선을 그었다.김옥두(金玉斗) 사무총장은 “대통령이 국회 파행에 유감의 뜻을 밝힌 것이지,국회법강행처리를 사과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확대해석에 못을 박았다. 그러면서도 임시국회 소집에 대한 야당의 협조를 위한 유화의 손짓은 병행했다.정균환(鄭均桓) 총무는 이날 “8월 임시국회는 처리해야 할 현안이 많은 만큼 될 수 있는 한 빨리 열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임시국회 소집은 야당과 최대한 상의하겠다”고 말했다.이어 “추경예산과 민생법안은 하루빨리 처리해야 하며,약사법은 여야가 합의했고 본회의에도 상정돼 있으므로 늦어도 내주 초에는 국회를 열어 통과시켜야 의약분업이 제대로 시행될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이 임시국회 소집에 응하지 않을 경우 28일 자민련과 함께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국회 파행과 관련한 김 대통령의 유감표명에 대해 ‘조건부 수용’ 의사를 밝혔다.김 대통령의 유감표명을 긍정 평가하면서도,대여(對與) 협상 재개의 필요충분조건이 되기에는 아직 미흡하다는 반응이다.민주당이 국회법 개정안 변칙 처리의 원천 무효를 인정하고,일련의 사태에 대해 사과하는 등 실질적인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대여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의 발언 직후 긴급 소집된 당 3역회의를 마친 뒤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우리 당이 요구한 사과 수준에는 미흡하다”고 전제하면서도 “대통령이 운영위의 행위를 잘못된 것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석했다.권 대변인은 그러나 “대통령의 발언은 운영위의 모든 행위를 ‘원천 무효’라고 선언한 것으로 우리 당은 받아들인다”면서 “그렇지 않다면 민주당은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원천무효 선언이 없다면 여야협상 재개 등 ‘다음 행동’에 나설수 없다는 것이다.그러면서 밀약설과 이면합의설 등을 퍼뜨린 민주당 정균환 총무의 당직사퇴와 사과도 거듭 촉구했다. 정창화(鄭昌和) 총무가 이날 오후 2시30분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이 주선한 여야 총무회담에 불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버티기’ 전략에는 최근 정 총무의 ‘폭탄발언’ 등을 둘러싼 당내 분열상을 일시 봉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게 중론이다.이회창 총재가 28일부터 4박5일간 여름휴가를 떠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이 총재는 이 기간중 칩거하면서 정국주도권 확보 방안을 강구할 것으로 전해졌다. ◆자민련=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사과공방’을 비교적 여유있는 표정으로 지켜보면서도 한나라당 이 총재가 ‘밀약설’에 시달리는 데 대해서는 촉각을곤두세우고 있다.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와 이 총재의 지난 22일 회동으로마련된 양당간 화해무드가 자칫 원점으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다.김종호(金宗鎬) 총재권한대행이 이날 “밀약설은 전혀 근거없는 얘기”라며 거듭 이 총재를 측면지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같은 자민련의 ‘여유’는 의원들의 외유로 이어지는 양상이다.당장 김명예총재가 한일의원연맹 우리측 회장 자격으로 28일 방일한다.의원외교 활동까지 겸해 다음달 9일쯤에나 돌아올 예정이다.이양희(李良熙) 의원도 김명예총재를 수행해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일본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한다.한일의원연맹 우리측 부회장인 조부영(趙富英)부총재는 다음달 2일부터 3일간 일본을 방문,김 명예총재의 외교활동을 지원한다.강창희(姜昌熙) 의원은 이미 지난 26일 동티모르 친선활동을 위해 출국했으며 다음달 2일 귀국한다.이밖에 송광호(宋光浩)·정진석(鄭鎭碩)·김학원(金學元) 의원 등도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 외유를 떠난다. 8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이처럼 외유가 이어지자 오장섭(吳長燮) 총무는 이날 의원들에게 부랴부랴 ‘출국금지령’을 내렸다.가급적 임시국회 기간에는 출국하지 말도록 하고,해외에 있더라도 국회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갈 때는일시 귀국토록 조치했다는 것이다. 진경호 박찬구기자 jade@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8)낯선 땅에서

    *첫 가출길 절집서 먹어 본 쑥밥엔 매캐한 향내... 내가 절집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열 아홉 살 무렵이었다.어느 잡지의 신인상을 받고나서 오랜 숙원이던 고등학교 자퇴와 가출을 동시에 해냈다.나중에대학에 가서 한일회담 반대 투쟁이 한창이던 때에 유치장에서 만난 부랑 노동자와 간석지 공사장엘 찾아갔던 것은 본격적인 방랑이 되었지만. 하여튼 첫 가출은 거의 한 해가 걸렸다.동행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무전여행비슷한 출발이었고 기차를 타고 그렇게 오랫동안 국토를 누벼 본 적이 없었다.내가 바다를 처음 본 것이 중학교 삼학년 무렵이었는데 부둣가에 서자마자 배를 타고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겠다는 강열한 소망에 들떴다. 동행과 청주 대구 마산을 거쳐서 진주 어름의 농가에서 보리 베기를 하며 밥을 얻어 먹다가 중국집에서 -그때는 철가방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상자로 배달을 했는데- 자장면도 배달하다가 빵공장에서 빵 목판을 나르는 일도 했다. 청주에서는 아이스케키 집에서 합숙을 하면서 얼음통을 메고 거리로 나가 팔기도 했다.칠북이란 작은 면에 갔다가 야산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절집에 불목하니로 들어앉게 되었다.우연히 주지 스님과 이야기 해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산하겠다는 말이 나와 버렸던 것이다.스님은 거의 달포 가까이 나를 절에 두고 관찰해 본 다음에 일봉서신과 함께 부산으로 보내 주었다. 내가 절에서 난생 처음 먹어 본 음식이라면 쑥을 넣어 지은 밥과 엉겅퀴로끓인 된장국이다.쑥밥은 그냥 산야에 널린 쑥을 뜯어다가 콩나물밥이나 무밥처럼 넣고 지은 밥을 양념장을 쳐서 비벼 먹는다.역시 들판에 지천인 엉겅퀴를 캐다가 냉이국처럼 된장과 들깨를 넣고 한소끔 끓일 뿐인데 입안에 싱싱한 풀향기가 가득찬다.푸른 물이 든 쑥밥의 매캐한 향내도 입맛을 돋운다. 그리고 내가 끝내 맛을 들일 수 없었던 것은 산초라는 이상야릇한 향내가 나는 열매를 가지 채로 간장에 담근 장아찌였다.열매의 알알이 약간 여물게 씹히는데 입 속에서 톡톡 으깨지면서 독특한 향내를 진동 시킨다.나중에 이 열매나 잎을 가루로 내어 미꾸라지 추어탕에 쳐서 먹던 것이 생각났다. 보살 할머니가 정성을 들여서 가죽잎을 말리던 것도 생각난다.너푼너푼한 가죽나무 잎을 따서 땡볕에 바짝 말린 다음에 찹쌀로 풀을 쑤어서 마른 나뭇잎에다 정성껏 바른다.앞 뒤에 찹쌀풀을 발라서 채반이나 자리에 널어 놓고 다시 말린다.이것을 저장해 두고 먹을 때에 기름에 튀겨낸다.마치 튀긴 미역이나 다시마처럼 아삭거리고 고소했다. 스님은 나를 동래 범어사에 있는 그의 도반이던 고광덕 스님에게 보냈다.광덕은 나중에 대학생불교연합의 지도법사를 거쳐서 불광이라는 잡지도 만들던분이다. 그는 당시에 범어사의 원주를 지내고 있었다.조실은 저 유명한 하동산 스님이었다.편지를 찬찬히 읽어 보고나서 그는 나를 동산 스님에게로 데려 갔다. 어린 아이처럼 곱게 늙은 노스님이 나를 힐끗 보고 나서 한마디 했다. 이 집에 있으면 얼마나 있을라고 그러는고…?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냥 묵묵히 앉았을 뿐이었다.절하고 나오기전에 한 말씀 올렸다. 갈 데가 없으면 쭉 있을랍니다. 그것이 아마 면접에 해당이 되었던지 광덕은 나를 말없이 재우고 나서 이튿날 범어사를 방문한 스님에게 붙여서 보냈다. 그것은 아마도 울산 거의 다 가서 후미진 바닷가에 있는 작은 암자였을 것이다.바로 지척에서 바위를 때리는 세찬 파도 소리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나를 데려간 스님은 불을 때라 밥을 해라 시키더니 저녁 밥으로 밥 한 사발씩에 고구마순 나물과 시어 터진 김치에 국 한 가지로 저녁을 먹고 나서 건너가 자랜다.단칸 오막살이인 줄 알았더니 부처님 모셔 놓은 법당 마루를 지나 왼편에 길죽하고 비좁은 변소 같은 토방이 하나 딸려 있었다.방은 그대로흙을 바르고 오래 되어 꺼풀이 일어난 멍석 한 장이 깔렸다. 파도 소리에 잠을 못이루고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 호통소리가 들렸다.부처님에 귀의하겠다는 놈이 예불 시간도 모르고 쳐질러 잔다고 그 꼭두새벽에 나가라는 소리였다.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을 달려 와서 걷고 또 걸어서 당도한 곳이니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지만 쫓아내니 가방을 달랑 들고 길을 찾아 나오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걷다가 타다가하며 겨우 제 자리로 돌아와 보니 이미 끼니 때가 넘은 저녁무렵이었다.가방을 들고 산문에 들어서니 누구 하나 아는 체 하는 이가 없었다. 마침 요사채 툇마루에 얼굴 아는 동승이 앉아 있었다.그는 내가 범어사를 찾아올 제 버스에서 내려 십여릿길을 함께 걸어오며 이야기를 나눈 아이였다. 나이는 한 열 대여섯쯤 되었을까,살결이 희고 코가 오뚝하며 눈이 맑은 미소년이었다.그는 지금쯤 한소식 하고 큰 스님이 되어 있을지.내가 마루에 가서털썩 주저앉으니 그는 내가 멀리까지 다녀온 것을 모른 모양이었다. 내 얘기를 듣고는 동승이 빙긋이 웃었다. 문을 세 개쯤 지나야 입산이 되어요. 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그가 나에게 왜 스님이 되려느냐고 물었다.나는 표를내는 건 어려서부터 질색이었으므로 이렇게 답했다. 어디 가서 밥 먹을 데가 없어서 여기나 들어오려구 해요. 엊그제 여기서 처음 자려고 할 적에 행자 하나 들어오더니 제법 능숙한 자세로 합장하고 나서 내게 자기를 찾으려고 왔느냐는 둥 소크라테스 같은 폼을잡길래 한마디 했다.집이 없어서찾아 왔을 뿐이라고 대답했는데 동승도 그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일은 집에 갈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뺑뺑이를 돌리는 시험은 몇 번 더 계속 되었고 나는정말 세상에서 아무 데도 갈곳이 없는 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정처를 정하여 주었는데 거기가 참선 공부의 산실인 해운대 금강원이었다. 하루 세 끼를 먹는 공양의식에 참례하기 시작했다.스님들은 모두 목기로 만든 자신의 발우를 보자기에 싸서 대중방 선반에 올려 두고 있었는데 공양 때에는 그것들을 펼쳐 두고 모두 벽을 등지고 늘어 앉는다.제일 먼저 물을 받아 그릇을 씻고 밥과 국과 찬을 자기 먹을 만큼만 덜어 내어 각기의 목기에담아 공양한다. 국은 언제나 채소 된장국이고 찬은 나물 두 가지에 김치다.행사가 있거나 특별한 날에는 기름기 있는 전붙이나 튀김도 나온다.식사를 끝내면 남은 음식물을 모두 제 뱃속으로 버린 다음에 물을 받아서 남겨 둔 김치 쪽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밥풀이며 음식 찌끼들을 말끔히 닦아내고 그 물을 마신다.그리고 다시 맑은 물을 받아헹구고 또 마신 다음에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깨끗이 닦아서 보자기에 싼다. 나는 머리를 깎고 계를 받기 전까지 겉 모양은 스님과 같지만 아직은 연습중인 행자가 되었다.내가 맡은 일은 주로 절집 안팎의 청소와 허드렛일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마당과 앞 뒷뜰을 쓸고 법당에서 선원에 이르기까지 비질 걸레질을 하는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스님들도 빨래는 각자가 알아서 했지만 각 방에 큰 스님들 밥상을 나른다거나 잔심부름 할 일도 만만치 않았다.부엌에 들어가 밥과 반찬을 만드는 일은커녕 불을 때는 일도 내게는 차례가오지 않았다. 황석영.
  • 구국의 뜻 되새기자/ 대한매일 어제와 오늘

    ◆민족 정론의 기수 96년. 이땅에 고고(呱呱)의 성(聲)을 울린 지 아흔여섯 돌,민족정론의 기수로 거듭난 지 두 해.대한매일이 오늘 또 한번의 생일을 맞았다.지난 98년 11월11일새로운 제호로 재탄생한 ‘대한매일’은 그동안 90년을 넘긴 경륜에 새내기의 열정을 뒤섞어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자 온힘을 기울였다.대한매일의 어제와 오늘을 되짚는다. 지난달 14일 남북정상이 만나 제2차 단독회담을 하다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남쪽의 신문더미 속에서 대한매일을 집어들었다. 김위원장은 “옛 ‘서울신문’이 제호가 바뀌었다면서요”라고 물었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곧 “대한매일로 바뀌었다”고 답했다.김정일위원장이서울신문과 대한매일을 줄곧 애독했음을 보여주는 이 에피소드는 항간에 화제가 됐다.하지만 이 ‘실화’는 어쩌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는지도 모른다.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되기 전,아직도 냉전논리에 젖은 사람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지난 5월19일 대한매일은‘내가본 김정일 총비서’란 제목으로 특집을 내 4·5면을 펼쳐 그를 소개했다. 필자는 재미언론인 문명자(文明子·71)씨와 북한문제 전문가인 서대숙(徐大肅·69)미 하와이대 정치학 석좌교수.이들은 김위원장을 “전혀 건강에 이상이 없으며 통이 크고 사나이답다”“박력 있고 한번 한다면 하는 성격”(문명자)이라거나 “정치지도자로서 아버지보다 더 배짱이 있다”(서대숙)고 평가했다.이같은 보도가 나가자 대한매일 편집국에는 그를 의도적으로 미화했다는 비난전화가 빗발쳤다.서방 관측통이 김위원장을 “내성적이며 대인관계를 기피하는”“성격이 괴팍한 영화광”쯤으로나 묘사해 온 탓이었다. 그러나 보름여 지나 김위원장이 TV에 등장했을 때 그 모습은 대한매일이 특집에서 보여준 그대로였다.북한,그리고 북의 지도자와 주민의 삶을 제대로이해한다는 것은 통일을 향한 길목에서 가장 기초적인 요소이다.대한매일은이 시대가 안은 최대의 과제인 민족통일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이제그 결실을 하나씩 맺어가고 있다. 아울러 대한매일은 재창간후 ‘역사 재정립’과 ‘사회 개혁’에도 힘을 기울였다.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근현대사에서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고 가려진 사실을 발굴했다. 98년부터 2년여동안 ‘친일의 군상’ ‘민주열사 열전’ ‘제2공화국과 장면’ ‘의열 독립투쟁’ ‘문명자 회고록’ 등 잇따라 지면을 장식한 ‘정직한 역사 되찾기’시리즈는 국민에게 오늘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하고 내일의 방향을 정하는 나침반 구실을 했다. 또 지면에서의 노력말고도 지난해 창간 95주년 역점사업으로 ‘백범 김구전집’(전12권)을 간행했다든지,북한 지도층에 관한 유일한 인물정보사전인 ‘북한인명 사전’을 거듭 개정해 출간한 일들은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할 일을 더욱 확대한 기념비적 사업으로 인정받고 있다.이밖에도 대한매일이 다른매체와 구별해 독자에게 전하는 정보서비스는 적지 않다.신문사상 최초로 신 문의 첫 면과 마지막 면을 동시에 1면처럼 활용해 마지막 면은 행정뉴스로 특화했다.정부 정책과 이를 수립·집행하는 공무원 사회의 움직임을 빠르게,정확하게,깊이 있게 보도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다른 매체에서는 접할 수 없는귀중한 뉴스를 제공했다. 동시에 정책을 국민에게 올바르게 이해시키는 반면 잘못된 정책은 즉각 고치게끔 하는,국민과 정부 사이의 가교 노릇도 톡톡히 했다. 강만길(姜萬吉)고려대교수 조동걸(趙東杰)국민대명예교수 고은(高銀)시인 등당대의 지성이 번갈아 지면을 장식하는 오피니언 페이지,언론의 자기 성찰과반성을 담은 매체비평,어느 신문보다 애정과 정보가 가득 담긴 지역뉴스면도 대한매일의 자랑거리다. ◆항일운동의 구심점.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이하 대한매일)는 1904년 7월18일 창간됐다. 발행인은 영국인 배설(裴說·Ernest Thomas Bethell),총무는 양기탁(梁起鐸)이었다.일간으로 영문판 4면,국문판 2면을 발행했다. 당시는 한반도를 집어삼키려는 일본의 야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때였다.그해 2월8일 러일전쟁을 도발한 일제는 이어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해 한반도에 주둔하면서 자유롭게 군사활동을 하는 권한을 얻었다. 7월20일에는 ‘군사경찰 훈령’을 공표해 ‘집회나 신문이 치안을 방해한다고 인정되면 그 정지를 명령하고 관계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한마디로 병탄을 앞두고 언론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착착 옥죄어나가는 시절이었다.이같은 상황에서 창간한 대한매일은 ‘한민족과 대한제국의 편에서서 일제침략에 맞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해 민족에게 한줄기 빛처럼 희망을 주었다.발행인이 외국인이라서 일제의 검열을 피할 수 있는 이점을 십분활용,대한매일은 ‘배일호국’(排日護國)운동을 앞장서 이끌었다.이는 양기탁을 비롯해 박은식(朴殷植)신채호(申采浩)장도빈(張道斌)같은 독립운동의거목들이 직접 신문제작에 참여한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양기탁은 배설이라는 보호막을 둘러친 채 실제로는 신문제작과 경영을 도맡다시피했다. 민족주의 사학자로 우뚝한 이름을 남긴 박은식 신채호 장도빈 등 3인은 잇따라 주필 직에 올라 예리하고 품격 높은 논설과 선조의 위업을 찬양하는 소설을 실어 민족정기를 벼리어 나갔다. 이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대한매일이 이루어놓은 성과는 거대했다. 1907년 11월18일자에는 전날 체결된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만천하에 밝혔다.고종황제가 끝까지 조약체결에 반대했으며 따라서 이 조약은 강제로 맺어진 늑약(勒約)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후에도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고 전국적인 의병항일투쟁기에는 ‘처처의병’이란 고정란을 만들어 매일 보도했다.산업진흥과 자주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 민족기업·사립학교 설립을 적극 유도했다. 이같은 대한매일의 업적은 민족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대한매일을 누르고자 일제는 갖은 간계를 부렸지만 당시 발행하는 신문 부수를 전부 합쳐도 대한매일의 절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대한매일신보가 일본의 제반 악정(惡政)을 반대하여 선동함이 끊이질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한탄할 정도였다. 그러나 국운이 결정적으로 기울면서 대한매일도 위기를 맞는다.1908년 4월신문지법이 개정돼 외국인 발행 신문도 발매금지 및 압수가 가능해졌다.다음달에는 발행인이 배설에서 만함(Alfred W Marnham)으로 바뀌었고 7월에는 양기탁이 누명을 쓰고 구속됐다. 배설이 1909년 5월1일 타계하자 영문판 발행이 중단됐다.1910년 5월21일 일제는 만함에게서 대한매일신보사를 사들였다.그리고 국권을 빼앗긴 8월29일대한매일은 종간했다.지령(紙齡)은 1,651호였다. 대한매일은 일제강점기에 ‘매일신보’로,해방후에는 ‘서울신문’으로 명맥을 유지했다.1998년 새 시대가 전개되면서 민족정론지의 뿌리를 되찾고자 신문 이름을 ‘대한매일’,회사명을 ‘대한매일신보사’로 해 재탄생했다. 새로 태어난 대한매일은 이제 ▲공공이익을 앞세우는 신문▲국민복지에 앞장서는 신문▲민족화합을 앞당기는 신문▲2000년대에 앞서가는 신문이라는 네가지 다짐을 묵묵히 실천하며 민족통일과 국가사회 개혁이라는,21세기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용원논설위원 ywyi@
  • 南北외무 이달말 회담 추진

    한국과 미국,일본 3국은 오는 27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 회의를 전후해 북한과 개별 외무장관 회동을 추진할 방침이다. 지난달 30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된 3자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회의에서 한·미·일은 이달 말 방콕에서 북한과 외무장관 회동을 추진한다는 의사를 개진했다고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이 3일 밝혔다. 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 외무장관 회담이 성사될 경우 남북정상회담의 추동력을 살려 한반도 냉전해체가 보다 진일보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백남순(白南淳)-매들린 올브라이트와의 북·미 외무장관 회담은 역대최고위층간 회동으로서 진행중인 양국 미사일 및 관계정상화 협상에 일대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3국은 ARF 외무장관 회의에 북한의 백남순(白南淳) 외무상이 참석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각각 외교채널을 가동,북한측의 의사타진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북중인 시하삭 푸앙켓캐우 동아시아국 부국장을 수석대표로 한 태국 외무부대표단도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 머물면서 한·미·일 3국을 포함한일부 국가의 회동 가능성을 타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올브라이트 장관은 지난달 23일 방한 때 백남순 외무상과의 회동전망에 대해 “내가 많은 사람을 만나는 만큼 기대해보라”고 말해 가능성을 시사했었다. 백남순 외무상은 오는 25∼29일까지로 예상되는 태국 방문기간 ARF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하고 각국 외무장관과 별도의 회동을 추진중으로 알려졌다. 오일만기자 oilman@
  • 러 위상 높이기 동북아 외교 시동

    ‘강력한 러시아’건설을 선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아시아지역 외교가 본격 시작됐다. 푸틴 대통령은 오는 18일 이틀간 중국을 방문하고 이어 19일 러시아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곧이은 행선지는 서방선진 8개국(G8)정상회담(21∼23일)이 열리는 일본 오키나와(沖繩).한국방문은 현재양국간 일정이 협의중이며 9월 방한설,경우에 따라서는 10월 21·22일 ASEM(아시아유럽 정상회의)행사에 맞춰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공식 취임 전인 4월 16일 영국을 방문한 뒤 6월 빌 클린턴 미대통령과의 정상회담등 놀랄만큼 분주한 외교행보를 보이고 있는 푸틴대통령의 기본 정책은 다각 외교 확립을 통한 국가위상 강화.푸틴은 러시아 국가위상 재고에는미 중심의 단극체제 붕괴가 필요 조건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그 첫출발로중국과 일본,남북한이 위치한 아시아 지역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택했을수 있다. ■중국 중국방문에서는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개정을 통한 국가미사일방어망(NMD)체제 구축을 시도중인 미국에 대한 대응책이 주로 논의될 것으로관측통들은 보고있다.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ABM협정 개정움직임에 대해 새로운 군비경쟁을 촉발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북한 베이징-평양-오키나와-서울로 이어지는 푸틴의 방문일정 가운데 핵심은 평양 방문.북한방문에서는 남북한 관계,미사일문제등에 있어 북한측에 중요한 조언자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이를 통해 과거 혈맹관계 복원까지는가지 않더라도 영향력 증대를 모색하려할 것같다.아울러 현재 논의중인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한반도 연계,시베리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등 실질적인 경협논의도 주의제에 포함될 전망이다.러시아의 기존입장인 한반도 문제를 다룰 6자회담 개최 주장도 이런 차원에서 다시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이 경우 오키나와 G8정상회담은 푸틴대통령이 중,북한 방문에서 얻은외교적 성과를 과시하는 무대로 자연스레 활용될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 대해 북·일 관계개선에 대한 조언도 할 것으로 보인다.북방영토 반환과 경협등 러·일간 외교현안도 깊숙히 논의될 전망이다. ■한국 방한일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29일 한·러 외무장관 회담에서언급됫듯이 남북한 관계개선에 따른 여러 문제들,북한에 개방에 대한 러시아의 역할과 함께 한·러 경협등이 주의제가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푸틴대통령의 아시아순방의 제일 목표는 과거 보리스 옐친전대통령 말기 심화된 이 지역에서의 외교적 ‘무기력증’을 탈피하고 ‘주역할자’로서의 위치를 복원한다는 것이라고 할수있다.푸틴대통령의 행보가 가져올 새로운 외교적 파장에 주목해야 할 때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대한포럼] 기대되는 남북군사委 설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6·25전쟁 50주년 기념사를 통해 “남북간에 군사위원회를 설치해 긴장완화와 불가침등 평화를 위한 조치에 대해 적극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이 제의한 남북군사위원회 설치문제는 한반도 냉전종식을 위한 획기적 조치라는 점에서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르면 7월중에 설치될 것으로 보여 6·15 평양정상회담에서 이 문제와 관련,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상당한 의견접근이 이뤄졌음을 시사해주고 있다.평양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상호 무력으로 침략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평화정착에 대한 확고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뒷받침됐다고 하겠다.남북 두 정상이 사실상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통일문제를 대화를통해 해결한다는 원칙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정착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군사적 신뢰구축이 본격 협의될 전망이며 급류를 탈 것으로 보인다. 남북간의 군사위원회설치문제는 가능성과 제약성이 혼재돼 있어 많은 어려움이있을 뿐만 아니라협상시간도 장기간 소요된다는 점에서 남북군사위원회 설치는 어려운 문제로 인식돼 왔다. 김대통령이 제의한 남북군사위원회 설치구상은 한반도의 적대적 긴장상태를청산하고 군사적 신뢰 구축을 통해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의 기틀이 되는 가장 중요한 장치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지난 91년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가동이라는 의미도 함께 하고 있다고 본다.남북기본합의서에 규정된 군사공동위원회를 가급적 빠른 시일안에 가동,군사적신뢰구축 방안을 논의해 나가겠다는 뜻을 강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남북군사위원회가 본격 가동되면 남북한은 기본합의서에 명시된 군사직통전화 설치,상호비방 중지,파괴·전복행위 중지등 당장 실현 가능한 문제들을우선적으로 논의할 수 있기 때문에 한반도 냉전구도를 해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김대통령이 그동안 일관되게 추진해온 대북 포용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그렇다. 엄밀하게 보면 현재의 남북관계는 분쟁과 평화라는 이중적 구조를 갖고 있다.남북간의 경제,사회,문화적 교류협력이 활성화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전쟁의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이와같은 한반도의 불확실한 안보상황을 극복하고 전쟁방지를 논의할 기구가 하루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점에서도 남북군사위원회 설치는 매우 중요하다.지금까지 남한은 먼저 신뢰를 구축한 다음 군축을 하자는 논리를 내세운 반면,북한은 군축을 포함한일괄타결을 주장해 왔던 점을 고려할때 민족의 화해와 협력,상생(相生)을 위해서는 군사위원회 설치를 통한 군사적 신뢰 구축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과제다. 특히 남북군사위원회에서 불가침문제를 합의하는 단계로까지 진전되면 한반도 평화통일은 물론 전쟁종식의 보장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평화정착의 전기가 되기를 7,000만 겨레는 바라고 있다.6·25전쟁 이후 남북한은이념대립에 기초해 ‘적화통일’과 ‘멸공통일’이라는 극단적 대립속에 군비경쟁을 계속해 왔다. 하지만 남북간의 과다한 군비경쟁으로 자칫 민족의 공멸을 자초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만큼 남북이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국제질서가 국가민족의 이익을 앞세우며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상황에서 우리 민족이 대결과 냉전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통일은 고사하고 또다시 세계사의 변두리로 밀려나고 말 것이다. 이같은 역사성에서 남북군사위원회가 조속히 구축되기를 바란다.“더 이상의 전쟁은 없다”는 남북 두 정상의 합의정신을 이행하고 평화통일의 대도를활짝 여는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서 남북군사위원회가 조속히 설치되기를 기대한다. 장청수 논설위원csj@
  • 총선이후의 日 정국

    ‘연립여당이 안정의석은 확보했지만 단독 과반수 획득에 실패한 자민당의실질적인 패배다’‘이념과 정책보다 정권유지만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연정에 대한 국민들의 경고다’.선거 결과에 대한 일본 언론들의 평가다.경기가회복조짐을 보이는 마당에 불확실한 미래보다 불만스럽지만 차선책으로 안정을 택했다는 분석.그러나 자민당은 원활한 국회 운영을 위해 목소리를 높일것으로 예상되는 공명·보수당을 안고가야 하는 새 부담도 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연립여당 271석 확보 의미=경제를 정상궤도에 올리는데 집권 여당 외에 현실적 대안이 없다는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다.이에 따라 재정건전화 정책보다 부양을 통한 경제성장정책이 지속될 게 확실하다. 또 연립여당이 절대안정의석(269석)을 확보,국회를 원활히 운영할 수 있게됐다.이는 연립여당이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독점하고 나아가 모든 상임위에서 수적 우세를 보여 야당의 반대에 상관없이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구도를 갖췄음을 뜻한다. 그러나 해산전 331석에서271석으로 의석수가 급감,사실상 ‘실패한 선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특히 자민당은 목표의석인 229석보다 4석을 더 획득했지만 참의원에 이어 중의원에서도 과반수 확보에 실패,정국 운영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의석수가 크게 준 공명·보수당이 지지자들의 불만을해소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정책을 보다 강하게 밀어부쳐 자민당에게 어려움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127석으로 약진,영국식 양당제로의 발전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의미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공산당이 소선거구에서 전멸한 것은 이데올로기의퇴조로 풀이된다. ◆향후 정국은=7월 오키나와 주요선진8개국(G8) 정상회의까지는 모리 현체제가 유지될 것이 확실하다.그러나 이후 상황은 장담하기 어렵다.잇단 실언으로 모리 총리가 여론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고 주요 각료들이 선거에서 고배를 마셔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 자민당 내에서는 벌써부터 모리체제로 내년 참의원 선거를 치를 수 있겠느냐는 불안이 제기되고 있다.따라서 G8회담 이후 일본 정국은 또 한번 요동칠가능성이 크다. ◆과제=역시 경기대책이다.97년 4월 소비세 인상을 계기로 가라앉기 시작한일본 경제는 대형금융기관의 연쇄파산과 아시아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침체의 늪에 빠졌다.99년 후반기부터 정보기술분야에 대한 투자확대로 99년 실질성장률이 0.5% 성장으로 돌아섰다.그러나 아직 일본경제가 회복단계에 접어든 것은 아니다. 적극적인 재정지출로 경기를 띄우려 애쓰겠지만 모리 총리의 약속처럼 2%대의 안정성장까지는 갈 길이 멀다.중앙 및 지방정부를 합쳐 645조엔에 이르는 재정적자도 문제다.경기부양에 밀려 재정재건은 과연 언제쯤 착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7월 G8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와 미국과의 주일 미군 분담금 협상,국제전화 NTT접속료 인하문제 등도 풀어야 할 과제다. ◆한반도 정책=한일관계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북한과의 관계는 한·미·일 3국 공조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남북정상회담에 자극받아 북-일수교회담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균미기자 kmkim@
  • [문화예술 분단장벽 허무나](5.끝)결산대담

    한국전쟁은 우리 문화예술계에 깊은 파장과 상흔을 남겼다.그 한국전쟁이 50주년 되는 해, 6·15선언으로 획기적인 남북관계의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한국예술종합학교 최민 영상원장과 인하대 국문과 최원식 교수의 대담을 통해남북분단문화의 극복방안 등을 들어본다. ■최원식교수 6·15선언은 오랜만에 우리 정치가 국민을 기쁘게 해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홍콩과 마카오의 중국 반환이 20세기를 마감하는 빅쇼였다면,한국의 통일과정은 21세기를 여는 대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이 시점에서 우리는 통일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독일식 흡수통일이나 베트남식 무력통일만이 통일이 아닙니다.‘극적인 통일’관에서 벗어나 통일을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최민원장 동감입니다.어떤 과정을 통한 어떤 통일이냐가 중요해요.원상복구 차원의 통일은 이제 맞지 않습니다.새로운 통일개념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최교수 먼저 문화예술이 민족의 분단현실을 어떻게 반영하고 나아가 분단극복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되돌아 볼 필요가있습니다.올해는 더욱이 한국전쟁 50돌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최원장 미술의 경우 80년대에 특히 이념적인 작품들이 많이 나왔지만 장르적 특성상 그림으로 통일의 비전을 제시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입니다.한국영화 ‘간첩 리철진’은 북의 간첩도 인간임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합니다.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의 내적인 금기가 많이 깨졌습니다. ■최교수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서문을 보면 “이 작품이 나올 수 있게해준 어린 공화국에 감사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4·19직후인 당시로선 굉장히 전향적인 발언인 셈이죠. ■최교수 예술활동을 제재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통일을 주제로 뭔가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요즘 통일글짓기가 유행이나 6·25가 돌아오면 으레 해오던 반공웅변대회나 글짓기대회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제재론적인 입장에서 통일예술만을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예술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예술에는 자기검열이 필요합니다. ■최원장 늘 ‘반쪽의 시선’밖에 가지지 못했다는 게 문제입니다.한 쪽을봉쇄하니까 역지사지가 안되죠.지난 50년동안 남한사회는 정치적·문화적 고도와도 같았습니다.독일은 브란트총리 시절부터 동서독이 왕래하며 대화를시작해 지방과 지방끼리는 거의 하나가 될 정도로 섞였습니다. ■최교수 일찍이 지방자치를 했던 독일의 교류수준은 무척 깊었으나 막상 통일이 되려하자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통일을 반대했습니다.통일에 관한 모든논의들이 휴지조각이 됐다는 게 그들의 일성이었죠.결국 현실이 이념을 뒤집은 셈입니다.우리의 경우 한번 물꼬가 터지면 엄청난 가속도가 붙을 것이 예상되는 만큼 역기능이 우려됩니다. ■최원장 속도조절이 필요합니다.언론 보도에서도 나타났듯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시각이 급전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준비가 없었는가를반증하는 것입니다. ■최교수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그 차이가 쌓였을 때 더 큰 풍요를 낳을 수 있어요.에커먼의‘괴테와의 대화’에서 인상적으로 읽었던 대목이 생각납니다.“나는 독일이 통일이 되면 좋지만 지방의 발달한 분권적인 문화가 다 없어지고 베를린 문화 일색으로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최원장 민예총이 주최한 6월 인천 황해예술제에서 ‘불가사리’등 북한영화 5편이 상영됐습니다.이미 낮은 단계의 남북영화교류가 시작된 셈이죠.통일논의가 허공에 뜨지 않기위해서는 서로를 먼저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최교수 통일의 힘은 근본적으로 남한에 있다고 봅니다.특히 문화교류의 경우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어야 합니다.상호주의를 꼭 1대1의 계량적인 개념으로 봐서는 곤란해요.문화적 햇볕정책이 필요합니다.한일대중문화교류의 경우를 보면 일본이 먼저 한국가수들을 초청해 개방의 단초를 열었고 결국 한국도 빗장을 풀었습니다.남북문화교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큰 틀에서보면 상호주의로 귀결되는 것이죠. ■최원장 남북교류와 함께 중국과의 문화교류도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고 봅니다.지난달 북경전영학원에서 학술제 형식의 한국영화제가 열렸는데‘아름다운 시절’등 12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돼 호평을 받았습니다.한해 고작 20편의 외국영화를 수입하는 현실에서 새로운 문화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컸는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지요.보다 다각적인 문화개방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최교수 문화예술가의 덕목중 으뜸은 역지사지 능력입니다.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것,자기안의 타자속으로 침투해가는능력이 예술인에게는 있어요.“문학을 하면 여러 삶을 산다”는 말도 있지않습니까.타자에 대한 공감이야말로 문화적 감성의 핵심입니다. ■최원장 현단계에서 남북의 통일문화를 위한 구체적인 처방전을 기대하기는어렵습니다.그때 그때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아요. ■최교수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국민 각자가 깨어있어야 합니다.이른바신자유주의의 환상속에서 IMF체제를 맞아 나름대로 절실한 경험을 했지만 요즘 다시 도덕적 해이의 조짐이 보입니다.어느 원로시인은 금강산 관광길에버스속에서 춤추고 노는 것을 한탄하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일정한 희생을 치르지 않고 통일국민이 되기는 어렵습니다.문화적인 저열성을 드러내지 말고 진정한 겸손을 배울 때입니다. ■최교수 90년대 들어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온갖 포스트주의가 창궐했습니다.경배대상이던 민족이나 민족주의에 대한 해체적 사고가 득세했어요. 신자유주의의 분위기를 거부할 순 없지만 민족주의는 낡은 것이라고 폐기해서는 안되죠.민족주의를 갈무리하면서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지금은 민족예술이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는 실험기입니다. ■최원장 민족주의냐 탈민족주의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민족적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민족이란 게 언젠가는 의미없는 시점이올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봐요. ■최교수 그렇습니다.좋은 세상이란 민족주의가 필요없는 세상입니다. 정리 김종면 황수정기자 jmkim@
  • 한민족사의 뿌리 古代史…南北 인식차이 집중 조명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함에 따라 통일은 이제 꿈이 아닌 실현 가능한 일로 다가왔다.통일의 길로 나아가자면 준비할 사항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그 핵심은 민족 동질성 회복일 것이다.우리에게 하나의 민족임을 일깨워 주는 바탕은 남북이 공유한 경험,즉 역사이다.하지만 남과 북은 역사인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동질성 회복을 위해 메꿔야 할 그 간극을,민족사의 뿌리인 고대사중심으로 짚어 본다. [북한의 한국사 개관] 북한은 정권수립 직후 ‘조선역사편찬위원회에 관한결정서’를 채택해 역사연구와 역사서 간행에 박차를 가했다.그 목적은 인민에게 투쟁과 창조의 역사를 널리 알려 궁극적으로 ‘조선혁명’을 이루기 위해서였다.그러나 내부요인으로 여러차례 변화를 겪은 뒤 70년대 들어서야 ‘조선사’틀이 확정됐다. 지금 북한의 한국사 연구는 기본적으로 주체사상에 바탕을 두었으며,정통성을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로 정리해 이 왕조들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민족활동의 중심지를 평양으로 규정해 역사적 의미를 계속 확장하는 것도 특징의하나이다. [민족의 기원] 한민족은 언제 어디서 비롯됐는가. 그동안 한반도 곳곳에서구석기 유물·유적이 발굴돼 대략 60만∼70만년 전부터 이 땅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구석기인들이 그대로 지금의 우리 민족과 연결된다고 보지 않는 게남쪽 학계의 정설이다.이견이 있긴 하나 대체로 청동기시대가 시작하면서 이주해 온 퉁구스족의 한 갈래를 민족의 조상으로 인정한다. 반면 북한은 구석기인이 혈통변화 없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단혈성론(單血性論)’을 1970년대부터 고수해왔다.이는 주체사관에 토대를 둔 것이긴 해도 웅기 굴포리,상원 검은모루 유적 등의 발굴과 높은 형질인류학 수준에 힘입은 바 크다. [단군릉] 지난 93년 10월 북한은 평양시 강동군 강동읍 대박산에서 ‘단군릉’을 발굴,단군의 인골을 찾았으며 이를 연대측정한 결과 5,011년전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이는 단군의 실체를 인정함은 물론 고조선 건국연대를 삼국유사에 기록된 서기전 2333년보다 훨씬 끌어올린 것이다. 남한 학계는 충격을 받았으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북한의 정치선전으로 치부할 뿐이었다.다만 이형구 선문대교수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이 진지하게 검토했고,95년 8월 일본 오사카에서 분단후 처음으로 남북 학계가 공동 심포지엄을 여는 것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남한 학계의 주류는 여전히 단군의 실체조차 인정하지 않는데다,고조선 건국연대도 빨라야 서기전 10∼12세기로 봐 그 접점을 찾기가 극히 어려운 실정이다. [고구려 건국 연대] 삼국사기에 고구려는 서기전 37년 주몽이 건국했다고 기록돼 있다.남쪽에서는 이 기록대로 고구려 건국연대를 잡으면서도 막상 국가발전 단계를 말할 때면 이를 활용하지 않는다.고구려 뿐만 아니라 백제·신라 등 3국의 건국 연대가 과장됐다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북쪽에서는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때를 서기전 277년이라고 못밖는다.삼국사기 기록보다 무려 240년이나 앞서는 것이다.그리고 고구려의 전신인 구려가서기전 14세기쯤 독자적인 국가로 건국됐다고도 밝힌다(99년간 ‘고조선력사개관’66쪽). 이는 고구려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의도에서 나왔겠지만 남쪽에서 활용하지않는 사료들을 발굴해 내린 결론이어서 앞으로 남북간 논란이 예상된다. 한편 고구려 건국이 당겨 올라가면서 주몽의 아들 온조가 세운 ‘백제 봉건소국’의 연대도 그만큼 따라올라갔다.하지만 남쪽에서 요즘 활발하게 연구하는 백제에 관해 북쪽에서는 새로운 이론이 거의 나오지 않는 실정이다. [고대 한일관계] 일제강점기에 일본 식민사학자들은 한국사를 체계화하면서임나일본부설(일명 남한경영설)을 내놓았다. 서기 4∼6세기에 일본이 한반도남부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해 200년간 다스렸다는 주장이다.이에 대해 남북 학계는 이렇다 할 반론을 세우지 못했다. 그러다 1963년 북한의 김석형이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내 분국들에 대하여’란 논문을 발표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삼한·삼국의 세력이 각기 일본에 진출,수십 군데에 분국(分國)을 세웠다”는 이 학설은 임나일본부설을 일축한 것은 물론 거꾸로 한반도 이주민이 초기 일본 형성에 결정적인 몫을 했음을 강조했다.이후 김석형의 이론은 북쪽에서더욱 다듬어졌고 남쪽에서도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에 불을 댕기는 구실을 했다. 고대 한일관계사에 새 지평을 연 점은 북한 사학계의 큰 공헌이다.상대적으로 남북간에 논쟁거리가 적긴 하지만 남북 학계가 힘을 모으면 더욱 발전시킬 부분이기도 하다. [남북국시대] 백제·고구려가 망하고 신라가 한반도 중부이남을 석권한 시기를 남쪽에서는 오랜동안 ‘통일신라 시대’라고 불렀다. 그러나 요즘은 고구려를 뒤이은 발해를 합해 ‘남북국 시대’로 보는 인식이 학계에 일반화했다. 고교 국사교과서도 ‘통일신라와 발해의 발전’이라는 제목 아래 “남쪽의 신라, 북쪽의 발해가 함께 발전한 남북국의 형세를 이루게 되었다”(64쪽)고표현해 이를 일정부분 수용했다. 북쪽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신라의 통치배들이 당나라 침략자들의 힘을 빌어 제놈들의 정치적 야욕을 실현해 보려고 한 것은 아주 어리석고 옳지 못한생각이었다”(고등중 3년 ‘조선력사’교과서 70쪽)고 강력하게 비난한다.이같은 비판은 물론 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한반도 북부의 역사가 정통임을주장하기 위해서다. 이는 또 현재의 한민족이 언제 형성되었나를 판단하는 것과 직결된다.남쪽에서는 통일신라 때로 보는 반면 북쪽은 이를 부인하고 고려 때로 본다. 이용원기자 ywyi@
  • 남북 정상회담/ 金대통령 기내 영접 全熙正씨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기내에서 영접한 인물은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외사국장 전희정(全熙正)씨라고 국내 북한전문가들은 밝혔다. 전씨는 오랫동안 의전분야에서 일해온 전문가로 지난 80년부터 주석부 외사국장을 맡아 김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전을 담당해왔다.김주석 사후에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는 김위원장과 고위간부들의 의전,외국인 참관안내 등을 담당하는 외사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1930년 3월 북한쪽 강원도에서 출생한 그는 50년대부터 외무성에서 근무하면서 캄보디아 대사관 1등서기관,콩고민주공화국 대사관 참사관 등을 지냈다. 전씨는 직책에 걸맞게 지난 80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82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돼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김일성훈장’ 등 각종 훈장과 상을 받았다. 가족으로 부인과 1남1녀를 두고 있다.장남 영진은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현재 외무성 8국(서유럽국) 프랑스담당 과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한때 프랑스주재 북한일반대표부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최광숙기자 b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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