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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독도 장기전 대비 치밀한 연구 필요/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시론] 독도 장기전 대비 치밀한 연구 필요/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한일간 동해바다 싸움의 파고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애당초 이번 해양 분쟁의 발단은 해저지명 선점 경쟁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이 일본식으로 되어있는 지명을 한국식으로 바꾸어 국제수로기구(IHO)에 등록을 시도하려는데 일본 측이 해저측량으로 맞섬으로써 한국을 자극했다. 이에 한국은 일본 측 도발에 대해서도 정선, 나포 등 초강경 조치를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 자칫하면 물리적인 충돌로 이어질 뻔했던 일촉즉발의 사태는 다행스럽게도 결국 외무차관 회담을 통해 양측이 한발씩 물러남으로써 일단 수습되었다. 일본이 해양측량 계획을 철회하는 대신 한국도 지명등록을 연기하였고 배타적경제수역(EEZ)협상을 재개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일단 최악의 사태는 회피했지만 한·일간 바다싸움은 거칠고도 지루한 장기전에 들어갈 것이다. 당장 5월부터 EEZ 획정을 위한 협상이 개시되겠지만 단기간에 원만한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EEZ 획선 교섭의 최대 난점은 독도 영유권 문제에 있기 때문이다. 독도는 당연히 우리의 땅이고 독도를 지키는 것은 주권 수호 차원의 문제로서 이에 대해서는 한치의 빈틈도 줄 수 없다는 것쯤은 우리에게 절대명제로 인식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한·일관계 특별담화에서 밝혔듯이 독도문제는 단순히 돌섬의 소유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한민족의 해방과 독립의 역사를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우리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과 방법이 무엇이냐에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일본의 독도 정책을 치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장 선행되어야 할 과제다. 유감스럽게도 일본정부의 기본 입장은 독도가 자기들의 고유의 땅이라는 것이다. 일본정부는 1950년대부터 독도가 한국에 의해 불법점유되어 있지만 언젠가 수복해야 할 일본의 영토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최근 독도 침탈행위로 비추어지는 일련의 일본측 행동들은 사실상 이러한 기본 입장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일본의 이러한 기본입장에도 불구하고 현 단계에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빼앗기 위한 총공세에 돌입한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일본의 일관된 독도정책은 한국이 실효 지배하고 독도의 지위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효과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흔들어 놓으려는 것으로 이해되며 이번 사태도 그 예외는 아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해저지명 선점을 둘러싼 갈등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EEZ 획선을 둘러싼 기(氣) 싸움의 측면이 있고 그 핵심에는 독도 영유권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향후 재개될 EEZ 협상이 얼마나 험난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자명하다. 대통령이 조용한 외교기조를 바꾸겠다고 선언한 이상 독도문제의 쟁점화 수준도 전에 없이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럴 때일수록 장기적인 호흡을 가지고 대일교섭의 전략 마련과 그것을 뒷받침할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학문적인 차원에서 독도 영유권을 더욱 확고하게 뒷받침할 역사적 근거를 공고히 하고 국제법적 논리를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필수적인 일이다. 지금 국회에서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동북아 역사재단이 조속히 출범하여 독도 및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 및 조사를 집대성함으로써 종합적이고도 전략적인 차원의 대일 정책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단호한 독도 수호 의지는 국제사회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명확한 근거에 입각하여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된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 “도하아시안게임 남·북단일팀 꼭 이룰 것”

    “도하아시안게임 남·북단일팀 꼭 이룰 것”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박성인(68) 대한빙상연맹회장. 그가 행복해하는 건 종심(從心)을 바라보는 지금, 한 평생을 바친 스포츠가 그에게 돌려준 선물 때문이다. 쇼트트랙을 비롯한 한국 빙상이 동계올림픽 역대 최다의 메달을 수확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파라벨라 쇼트트랙 경기장에서 그는 태극기 물결을 바라보며 지난 10년을 되짚었다.1997년 빙상연맹과 삼성스포츠단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그는 쇼트트랙의도약을 약속했다. 스포츠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선택과 집중’이라고 자신했다. 이후 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과 그 4년 뒤 솔트레이크대회에서 각각 금메달 3개,2개에 그쳤던 한국 쇼트트랙은 토리노에서 역대 최다인 6개의 금메달을 그에게 안기며 10년의 투자를 보상했다. 지금 경영인이나 다름없는 그는 “국제대회 성적은 국가의 브랜드를 제고시키는 외교 첨병”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이어 “쇼트트랙의 파벌 싸움과 동계종목 편식 등 부작용에 대한 치유책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그의 직함은 꽤 많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 도하아시안게임·베이징올림픽 남북단일팀 협상 남측 수석대표 등 하나같이 굵직굵직하다. 또 매년 수백억원의 밑돈으로 한국 스포츠를 움직이는 삼성스포츠단의 단장이다. 한국전쟁 이듬해 스포츠맨이 된 이후 55년간 그는 한국 스포츠의 희비와 궤를 같이했다. 그의 고향은 평양이다. 평양사범대 부속초등학교를 다니다 1·4후퇴 때 월남, 대구에서 대학까지 마쳤다. 대륜중 1년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탁구 라켓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학교 대표선수로 출발, 대륜고를 거쳐 영남대 재학당시 태극마크를 달고 58년 도쿄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65년부터는 계성여중·고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 한일은행 감독을 거쳐 70년엔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82년 총감독에서 물러날 때까지 녹색테이블에 바친 세월은 꼭 31년이다. 그 기간 평생 잊지 못할 대사건은 91년 지바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남북단일팀 출전이었다. 그는 대회를 두 달 남기고 협상 대표로 대한해협을 건넌 뒤 단 두 차례의 실무회담 끝에 최초의 남북단일팀을 성사시킨 주인공이다. 15년만에 그는 똑같은 숙제를 또 떠안았다. 올해 말 도하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의 두번째 남북단일팀 성사다. 당시 지바 단일팀을 함께 만들어낸 현 북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자 동갑내기인 장웅과의 협상은 국내외의 정치적 배려에 탄력을 받아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여건은 좋지 않다. 북측의 ‘포괄적 요구’라는 걸림돌에 지난해 11월 첫 실무협상이 무위로 돌아갔고, 그는 지금 재협상을 기다리고 있다. “10년을 기다려 쇼트트랙의 올림픽 최강을 일궈냈는데 그깟 2∼3개월이야 더 못 기다리겠습니까.” 최초의 국제종합대회 단일팀에 대한 그의 신념은 바위처럼 굳기만 하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한일 항공운항 대폭 증편

    올해 상반기 중 한·일 노선 항공기 운항 편수가 대폭 늘어나 일본여행이 한결 편리해질 전망이다. 건설교통부는 지난해 말 한·일 항공회담에서 확보된 운수권을 대한항공에 11개 노선 주 40.3단위, 아시아나항공에 13개 노선 주 43.4단위를 배분했다고 9일 밝혔다. 항공운항에서 단위는 여객기의 좌석수와 화물기의 운송 중량에 따라 적게는 1.0에서 2.0까지로 구분된다.1.0의 경우는 150석 내외의 여객기나 45t 중량의 화물기,250석 여객기와 60t 중량의 화물기는 1.3,300석 이상 여객기와 100t 내외 화물기는 2.0으로 분류된다. 이번 배분으로 서울∼후쿠오카 노선은 주 21회에서 32회로, 부산∼후쿠오카는 9회에서 11회, 제주∼후쿠오카는 3회에서 9회로 늘어난다. 또한 제주∼오사카는 5회에서 8회로, 서울∼오키나와는 4회에서 5회, 서울∼도야마는 3회에서 5회, 서울∼아키타는 3회에서 4회, 서울∼아오모리는 3회에서 4회, 서울∼나고야 화물노선은 2회에서 4회로 각각 증편된다. 일본측 공항사정 등으로 증편이 어려운 노선은 운항기종을 대형화하기로 했다.이와 함께 서울에서 고마쓰, 아사히가와, 하코다테 노선과 부산에서 삿포로, 히로시마 등 5개 노선에도 신규 취항한다. 건교부 관계자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일본입국 관광목적 비자 영구면제 조치와 함께 항공기 증편과 신규 취항으로 일본여행이 한층 편리해지게 됐다.”고 말했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뉴스피플] 한반도 연구 40년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일본내 자타 공인 최고의 한반도 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법과대학학장이 한국에서 회갑상을 받았다. 한·일 관계를 연구하는 젊은 연구자와 언론인 모임인 ‘한일사회문화포럼’,‘한국오코노기 연구회’(駒八會)가 지난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오코노기 교수를 초청,‘일본에서의 한반도 연구 40년-회고와 전망’출판기념회를 마련한 것. “한반도를 연구함으로써 학문과 인생이 함께 가는 큰 행복을 누리게 됐다.”는 오코노기 교수는 특히 자신의 연구 대상 즉 한국이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발전을 이뤄나가는 과정은 더없는 기쁨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일본내 최초의 한반도 연구자로서, 한·일 및 북·일 관계 전반의 균형잡힌 시각으로 평판이 높다. 오코노기 교수는 현재의 한·일 관계에 대해선 “한·일 두 정상의 신뢰가 완전히 상실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한·일 관계에 관한 한 낙관적 현실주의론을 펴온 그답게 희망을 얘기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간 맺은 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미래의 길을 튼 큰 의미가 있었는데, 현재 상황은 그 길이 닫힐 것 같은 형국”이라면서 “그러나 한·일은 공동의 가치관과 목표로, 미래를 향한 대화로서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장담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한·일 양국 사이엔 교통사고가 났으나 사후처리만 하고 화해는 하지 않은 상태가 길게 이어졌다.”면서 이같은 상황은 전후 도쿄 재판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쿄 재판의 경우 식민지를 그대로 소유한 강대국들이 재판관이 됨으로써 일본의 주변국 점령이 단죄되지 않았고, 이것이 결국 한·일 수교회담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는 “18세기 전후(戰後) 화해는 ‘망각’으로 쉽게 해결했지만,2차 대전 이후의 화해원칙은 과거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2년 8월 한국내 반일감정이 극심하고 일본은 한국에 대해 아예 무관심할 때 한국 연세대에 유학온 오코노기 교수는 한국의 체제문제를 자주 언급했다.“당시 유신헌법이 공포됐고, 일본에 귀국할 땐 김대중 납치사건이 났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대등하게 인식한 것은 불과 10∼15년 전인 것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관계는 엄청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강연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역 연구자는 상대 국가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있어야 한다는 연구의 전형을 보이는 학자”라고 그를 평가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서울신문이 선정한 2005년 국내외 10대 뉴스

    ■ 국내 ●황우석교수 ‘줄기세포 논문’ 조작 파문 ‘국보급 과학자’에서 ‘허풍 과학자’로 전락한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논문조작 파문은 온 국민을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 아직 완전히 조사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세계 최초라고 했던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믿을 수 없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난치병 환자들은 다시 절망에 빠졌고 한국은 국제적인 망신을 샀다. 어떻게든 성과를 빨리 보여주려는 조급성과 과학자로서의 윤리 상실이 부른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안기부·국정원 수천명 불법도청 확인 7월 도청테이프 한 개의 내용이 폭로됐다.1997년 삼성측 인사들이 한 음식점에서 정치권과 검사에게 금품을 주려고 논의하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를 실마리로 국가정보기관의 불법도청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찰이 국가정보원을 사상 처음으로 수색하는 등 다섯달 동안 수사를 벌여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 미림팀이 정·관·재·언론계 인사 수천명을 도청한 사실이 확인됐다. 도청 추방을 외쳤던 김대중 정부에서도 도청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이 구속됐다. ●정부, 8·31 부동산투기 억제대책 발표 연초부터 서울·수도권 신도시 아파트값과 전국 땅값이 폭등해 서민들의 주름살이 더욱 깊어졌다.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서 시작된 가격급등은 일반 아파트로까지 번졌고, 판교 신도시 광풍은 주변 아파트값을 끌어올려 연간 아파트값 상승률이 11%(㈜부동산114 기준)를 넘어섰다. 결국 정부는 강력한 투기억제책이 담긴 ‘8·31대책’을 내놓기에 이르렀고, 연말부터 부동산 시장은 안정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일부 투기억제 법률은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 국회 통과 12부4처2청의 국가기관을 수도권에서 충남 연기·공주로 옮기는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법안이 3월2일 전격적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도 헌법소원에 휘말렸지만 헌법재판소가 합헌취지의 결정을 내리면서 법리논쟁이 일단락됐다. 여권은 청와대까지 옮기려던 당초 계획에서 다소 물러서긴 했지만 대통령선거 공약을 지킨 것으로 자평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정권이 바뀔 경우 재검토되거나 변경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 ●청계천 47년만에 복원 ‘생태하천으로’ 서울 도심을 흐르는 청계천이 47년만에 복원돼 시민들 품으로 돌아왔다.1958년 콘크리트로 복개되면서 땅속에 묻혔던 5.84㎞ 물길이 10월1일 따사로운 햇볕을 되찾아 물고기와 새가 노니는 생태하천으로 거듭났다. 공사 비용을 뛰어넘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성공적 하천복원 사례로 외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도 오랜 단장 끝에 새롭게 문을 열어 시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는 도심의 명소로 거듭났다. ●‘독도 영유권분쟁’ 한·일 감정대립 격화 일본 시마네현이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지정하는 조례안을 상정하고 주한일본대사가 서울 한복판에 앉아 ‘독도는 일본영토’라고 주장하면서 한·일 외교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3월16일 시마네현은 일본 정부의 묵인과 국수주의자들의 응원 속에 조례를 통과시켰다.6월20일 한·일 정상들은 냉랭하게 만났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10월15일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한·일 양국의 감정대립은 격화됐고 연말로 예정됐던 양국 정상간 정례 ‘셔틀회담’도 결국 무산됐다. ●기생충알 김치등 중국산 먹을거리 파동 10월 중국산 김치에서 납 성분에 이어 기생충알까지 검출됐다는 당국의 발표로 중국산 식품 전체가 극도의 불신을 받았다. 검출된 알이 모두 미성숙란이어서 직접적인 위해를 끼치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났지만 한때 한국과 중국은 외교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11월에는 일부 국내산 김치에도 기생충알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먹을거리의 국민건강 위협이 심각하게 부각됐다. 또 중국산 어류에 이어 송어·향어 등 국내 양식 민물고기에서도 발암물질인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됐다. ●한국축구, 월드컵 6회 연속 본선진출 한국축구대표팀이 6월9일 쿠웨이트에서 열린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에서 쿠웨이트를 4-0으로 대파하며 6회 연속 본선진출의 쾌거를 이뤄냈다. 월드컵 6회 연속 진출은 세계에서 9번째이고 아시아에선 최초다. 하지만 8월 초 열린 동아시아축구대회에서 2무1패로 꼴찌를 기록한 데다 8월17일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졸전 끝에 0-1로 맥없이 패배, 조 본프레레 감독이 경질되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새로 영입하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여성 악법’ 호주제 2008년 완전 폐지 50년간 여성계의 숙원사업이던 ‘호주제 폐지’는 2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물꼬를 텄다. 헌재결정후 50일이 안돼 국회는 민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호주제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했다. 호주제는 여성권리의 신장, 한 부모 가족 증가 등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존속시켜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유림을 중심으로 거세게 일었다. 유예기간을 거쳐 호주제가 완전 폐지되는 2008년 1월부터는 가족 관계를 개인별로 관리하게 된다. ●과거사규명·사립학교법 여야의원 격돌 17대 국회는 ‘과거사 규명’과 ‘사립학교법’의 격랑 속에 여야간 극한 대립을 불러왔다. 여야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조사대상과 범위를 놓고 첨예한 갈등을 빚었는데 지난 9일 ‘반쪽 통과’된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두고 여야는 정면 충돌, 연말까지 급랭정국이 이어졌다. 한나라당의 장외투쟁, 종교계의 불복종운동, 사학재단의 신입생 모집 거부 경고 등으로 반발이 확산되자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불가’와 ‘단독 국회 개최’로 맞섰다. ■ 국제 ●카트리나 강타와 구겨진 미국자존심 8월29일 초강력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 멕시코만을 강타해 1306명이 숨지고 6644명이 실종됐다.‘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가 순식간에 물속에 잠겨 유령의 도시로 변하면서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꼬리를 문다. 피해를 키운 연방정부의 늑장 대응은 초일류국가임을 자임해온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특히 재난 대처 과정에서 첨예화된 흑백간 인종 갈등은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국제사회에 그대로 드러냈다. ●파키스탄 강진으로 7만5000명 사망 10월8일 발생한 리히터 규모 7.6의 파키스탄 강진은 7만 5000명의 사망자,350만명의 이재민이라는 엄청난 피해를 낳았다. 재난 앞에서 카슈미르 관할권을 둘러싸고 앙숙 관계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은 국경을 개방, 구조작업에 나선 군인들을 오가게 했다. 그러나 영하 30도까지 수은주가 곤두박질치는 겨울이 닥쳐왔다. 이재민들에게 제공된 텐트는 대부분 겨울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어서 동사(凍死)자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 전세계 확산 비상 ‘21세기 흑사병’으로 불리는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하던 AI가 9월 이후 중국과 동유럽을 거쳐 서유럽, 중동, 미주로까지 번졌다. 세계보건기구(WHO) 집계 결과 현재까지 AI로 숨진 사람은 73명.WHO는 특히 치명적인 H5N1 바이러스의 사람간 감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AI가 역병(疫病)이 될 경우 1억명 이상이 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이슬람계 런던 연쇄 폭탄테러 이라크전에서 미국의 최대 우방인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7월7일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했다.9·11테러 이후 4년만에 세계가 다시 테러공포에 휩싸였다. 출근길 런던 시민들로 붐비던 지하철과 2층버스에서 발생한 테러로 56명이 숨지고 700여명이 다쳤다. 인명피해 못지않게 충격을 준 것은 테러범들이 영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자생적인 이슬람계 이민 2세들이라는 점이다. 이후 테러용의자를 사살하는 과정에서 영국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프랑스 이민자들 ‘인종갈등’ 폭동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가 인종갈등으로 빚어진 폭동으로 불탔다.10월27일 파리 교외 무슬림 빈민가에서 경찰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10대 소년 2명이 감전사했다. 이후 3주 동안 무슬림과 저소득층 이민자들이 사는 파리 외곽 지역에서 분노한 젊은이들의 방화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9000여대의 차량이 불탔고 약 3000명이 체포됐다. 이 소요사태는 이민자 2·3세의 사회통합문제, 실업, 빈부차 등 프랑스 사회가 안고 있던 모순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라크 주권정부 구성 행보 계속 혼란과 갈등이 노출되고는 있지만 주권정부 구성을 향한 이라크의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1월 제헌의회 선거를 통해 구성된 의회가 내놓은 새 헌법안이 10월 국민투표를 통과하면서 이같은 안정화 일정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지난 15일 치러진 총선 개표 결과 발표가 늦춰지면서 정파간 갈등과 혼돈이 초래되고 있지만 내년 1월 총선 결과가 나오면 총리 지명, 내각 구성 등 새 정부 출범을 향한 정치 일정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 교황 보수파 베네딕토 16세 즉위 4월2일 26년 동안 재임해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저는 전부 당신의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선종한 뒤 전 세계의 이목은 바티칸에 쏠렸다.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네번째 콘클라베가 열린 같은 달 19일 오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에 새 교황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제 265대 교황으로 선출된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 시절 ‘하느님의 충견’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데서 볼 수 있듯 대표적 강경 보수주의자로 평가돼왔다. ●자민당 과반의석… 고이즈미 개혁독주 우정민영화를 기치로 중의원을 전격 해산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도박’이 ‘대박’으로 나타났다.9·11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15년 만에 단독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고 개혁 독주를 시작했다.‘제왕적 총리’가 된 고이즈미 우경화도 탄력을 받았다. 취임 후 다섯번째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가 하면 아소 다로 외상 등 극우 인사를 내각에 중용해 이웃나라인 한국·중국과 최악의 외교마찰을 빚고 있다. ●국제유가 고공행진… 세계경제 긴장 연초만 해도 배럴당 40달러 안팎에 머물던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은 6월27일 사상 처음 60달러를 넘어섰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미국 멕시코 만의 석유시설 피해가 생긴 8월 말에는 10월 인도분 WTI 가격이 70달러를 넘었다.3차 오일쇼크가 오리라는 우려는 이후 유가가 하락세로 안정되면서 다행히 기우로 그쳤다. 고유가 쇼크로 정신이 번쩍 든 미국을 비롯한 에너지 소비대국들이 원자력, 석탄, 에탄올 등 대체에너지 사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독일 첫 女총리 메르켈 ‘좌·우 대연정’ 9·18 총선 후 두 달여의 연정(聯政) 줄다리기 끝에 독일 총리직을 거머쥔 앙겔라 메르켈. 조기 선거 승부수를 던진 7년 집권의 게르하르트 슈뢰더를 꺾었다.36년 만이라는 좌·우 대연정의 수장을 맡아 독일병을 치유하고 제2의 라인강 기적을 이룰지 주목된다. 취임 첫 날을 해외순방으로 연 메르켈은 유럽연합 예산안을 막후 조정으로 타결시켜 국제 무대 데뷔전도 성공리에 치렀다. 동독 출신과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제2의 대처’로 탄생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전모] “독재정권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

    ●인혁당, 민청학련사건이란?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은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시위가 거셌던 1964년 8월14일 인혁당이란 반국가단체가 북한 지령을 받고 국가 전복을 시도했다고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사건이다. 서울지검 공안부 담당검사는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를 거부했지만 당직 검사가 관련자 26명을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1965년 9월 대법원에서 전원 유죄판결을 받았다.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사건은 1974년 긴급조치 4호가 발동된 상황에서 비상군법회의 검찰부가 유신반대 투쟁을 주도한 관련자 180명을 구속 기소한 사건이다. 중정이 인혁당 재건위를 그 배후로 지목해 관련자 23명 중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된 것이 2차 인혁당 사건이다.
  • [APEC] 盧 “日 역사인식 받아들일수 없어”

    [APEC] 盧 “日 역사인식 받아들일수 없어”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18일 APEC 정상회의를 마친 뒤 양자 정상회담을 가졌으나 서로의 기존 입장만 전달하는 데 그쳤다. 당초 20분간 예정됐던 회담은 30분 가량 진행됐으나 대부분 신사참배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는 정우성 청와대 외교보좌관의 설명은 회담 분위기가 냉랭했음을 짐작케 한다. 노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일본 국민에게 전하고 싶다.”면서 “우리는 국가 대 국가의 배상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고 개인의 배상요구는 별개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왜곡, 독도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한 불만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에 “노 대통령의 솔직한 의견에 감사하다.”면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는 것은 과거 전쟁에 대한 반성을 하는 것이고, 두번 다시 이런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면서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노 대통령은 “아무리 고이즈미 총리의 생각을 선의적으로 해석하려 해도 우리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면서 조금 전에 얘기한 세 가지는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회담 초반에 “북핵문제에 대한 한·일간 협력이 잘돼 가고 있다.”고 평가하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정상회담에서는 연말 셔틀외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 12월쯤 노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불투명하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인 납치와 북핵문제가 일본에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수능 최종전략] (5) 사회탐구영역(끝)

    [수능 최종전략] (5) 사회탐구영역(끝)

    올해 6월과 9월 모의평가에서는 사회탐구 영역이 과거보다 어렵게 출제되었다. 이는 올 수능에서 난이도가 상당히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인데,2005학년도 사회탐구 영역 가운데 일부 과목의 난이도가 낮아 변별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과 자성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탐구 영역의 대다수 과목은 아직 희망이 있다. 짧은 기간에 상당한 점수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2학기에는 문제풀이 중심으로 공부한다. 그러나 지나치면 교과서의 핵심 개념과 원리에 소홀하기 쉬워 응용력이 떨어질 수 있다. 교과 내용을 다시 심도 있게 정독해 보자. 지난 모의 수능에서 어려웠던 문제는 교과서의 세밀한 부분에서 찾아낸 경우가 많았다. 상위권 학생일수록 핵심 내용과 관련한 부분을 교과서 속에서 찾아내 공부해야 한다. 문제를 푸는 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답노트를 활용하거나 EBS의 파이널 강좌, 핵심 마무리 특강 등을 활용해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탐구 영역 과목을 마무리할 때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시사성이다. 시사 문제가 많이 출제된다. 모의평가에서도 일반사회 교과를 중심으로 시사 문제가 많이 나왔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시사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정리하고 교과서 핵심 개념과 연결해보는 것이 좋다. ●윤리 교과 세계화 시대 인류 공통의 문제로 떠오른 환경오염,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된 생명과학의 발달과 그 윤리적 이견 등이 문제로 나올 수 있다.‘윤리와 사상’,‘전통 윤리’ 등 단원 구분에 신경쓰지 말고 윤리 사상과 종합적으로 연결해 이해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교과서의 소단원 마무리 페이지를 주목해 살피고 전통 윤리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명확히 정리해두는 것이 좋다. ●일반사회 교과 주5일 근무제, 고유가 문제, 행정수도 이전 문제,6자 회담,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문제, 부동산 문제 등 올해 이슈화된 사회 문제들을 정리해 둬야 한다.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적 현안이나 사회적 쟁점과 관련한 문제가 많이 출제되므로 시사 소재를 교과 내용과 연결지어 정리해야 한다. 문제집으로만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 모의평가에서 경험했듯 시사성을 반영한 생소한 용어 등이 자주 등장해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각종 기출문제에 활용되었던 용어 위주로 정리해 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법과 사회는 사회법과 공법에 대해 철저히 비교할 줄 알아야 한다. 정치는 교과 과정과 관련된 읽기 자료를 다시 훑어보자. 경제는 익숙한 문제들을 정확하게 다시 이해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사회문화는 다양한 개념들을 정확하게 이해해 둬야 한다. ●지리 교과 카트리나와 쓰나미, 기업 도시 등 시사문제를 교과 내용과 연관지어 정리해둬야 한다. 문제풀이만 반복하지 말고 교과서에 제시된 핵심 개념을 그래프, 지도, 사진, 참고자료와 연관지어 정리하자. 기본 개념에 충실하면서 지명의 위치를 정확히 숙지해야 한다. 경제지리는 통계 자료 등에 익숙해져야 한다. ●역사 교과 국사는 교과서의 심화 학습과 탐구 자료를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세계사는 기출 문제가 다시 나올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단원별로 기출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 좋다. 한국근현대사는 자신만의 계보와 지도 연표 등을 꼼꼼히 정리해 놓고, 전체적인 흐름과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중국의 한국사 왜곡 문제와 관련해 고구려사와 발해사, 고려의 고구려 계승 의식과 북진 정책, 간도와 독도 문제, 한일협약, 통일 정책 등은 반드시 정리해 둬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자신이 선택한 과목과 관련한 주제는 완전히 소화하는 것이 좋다. 김동린 보성고 교사 교육방송 강사
  • [사설] 한일회담문서 공개와 日의 법적 책임

    정부가 한·일 수교회담 관련 외교문서를 어제 공개했다. 대일(對日) 청구권 협상과 관련한 굴욕외교 논란과 독도 폭파 발언의 실체 등 그동안 제기된 숱한 의혹들이 진상을 드러내면서 한·일 현대사의 질곡을 새롭게 평가하고 정리할 기틀이 마련됐다. 우리는 먼저 광복 60주년을 맞아 어두웠던 과거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정부가 취한 일련의 노력을 평가한다. 나아가 이들 외교문서를 바탕으로 한·일 수교협상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역사적 평가 작업이 뒤따를 것으로 기대한다. 벌써부터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공과를 재단하는 논란이 시작된 듯하나 당장 결론부터 내고 보자는 성급한 태도보다는 광복 이후 현대사를 객관적으로 조망하고 정리하는 차분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일 외교문서 공개를 계기로 정부와 국민들은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 우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일 협정이 담지 못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묻는 일이다. 정부도 문서 공개와 함께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고 볼 수 없다.’고 규정했다. 당연한 결정이고 마땅히 관철돼야 할 사안이다. 중요한 것은 이에 관한 한 그 어떤 외교적 흥정도 배제돼야 한다는 원칙이다. 북핵 6자회담과 동북아 신질서 구축이라는 복잡다기한 외교적 이해가 얽혀 있는 현실이지만 한·일 협정처럼 적당한 선에서 타결하려 든다면 이는 30년전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꼴이 될 것이다. 정부도 그 책임을 인정했듯 일본의 무상자금을 한푼도 받지 못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책 마련에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막대한 자금이 든다고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소홀히 한다면 진정한 광복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한국군 김치통조림 먹을수 있게”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한국군 김치통조림 먹을수 있게”

    당대에 여론을 뜨겁게 달궜던 베트남전 참전과 한일협정 체결 등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의중 대로 밀어붙이고 결정하고 주관한 것으로 26일 공개된 외교문서에서 확인됐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명실상부한 최고권력자로서 총체적인 그림을 그린 ‘지휘자’이자 실무적인 문제까지 일일이 챙긴 사실상의 ‘연주자’였다. 베트남전 외교문서에 따르면,1967년 9월 박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한국군 증파 요청을 받고 외무장관한테는 “미국에는 일단 대통령이 신중히 검토하라고 했다는 취지로 말해 둬라.”고 ‘전략적 지시’를 내린다. 나중에 박 대통령 자신이 미국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되면 직접 의사를 밝히겠다는 심산이었다. 박 대통령은 실제 클리포드 테일러 미 대통령 특사로부터 한국군 증파 요청을 받고 “전투병력 증파는 곤란하다.”고 일단 난색을 표명한다. 앞서 같은 해 3월8일 정일권 당시 국무총리가 방미할 때 박 대통령은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보내는 친서를 쥐어줬는데, 편지의 내용은 뜻밖에도 ‘김치’ 얘기였다. 실무적인 현안까지 챙긴 대표적 사례다. 친서에서 박 대통령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일 매식 빼놓을 수 없는 특이한 고유의 전통 부식 김치만이라도 하루바삐 월남에 있는 우리 군인들이 먹을 수 있게만 하더라도 사기는 훨씬 앙양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일 한국군에 한국음식의 야전식량을 공급하게만 된다면 사기와 전투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할 것으로 확신한다. 각하께서 이 특별한 사정을 양찰하시고 월남의 한국군인들이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는 방안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조치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한국 정부는 한국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월남에 있는 한국 군인들의 소원을 풀어 주기 위해 통조림으로 된 야전식량의 연구, 생산을 이미 9개월 전부터 착수해 성과는 매우 만족스러운 상태”라며 “그 제품의 일부는 미 국방부의 식품연구소에 보내 시험 중인데 중간검사 결과가 매우 좋은 것으로 듣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편지를 받아본 존슨 대통령은 국방장관에게 즉각 ‘조치’를 지시하고, 정 총리는 박 대통령에게 “김치문제는 머지않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는 ‘낭보’를 띄운다. 5·16 직후인 1962년 당시 권력 2인자로서 거의 독자적으로 오히라 일본 외상과 담판을 벌인 것으로 지금껏 알려져 왔던 김종필(JP) 중앙정보부장도 알고 보니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부터 일일이 지시를 받고 움직인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JP는 도쿄에서 ‘의장 각하’에게 친서를 띄워 자신의 동선(動線)과 회담경과를 상세히 보고하는 등 수시로 박 의장의 가이드라인을 구했다. 이에 박 의장은 JP를 ‘귀하’로 칭하는 자필 서신과 훈령 등을 통해 “청구권 명목을 독립축하금 또는 경제협력으로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등의 지침을 하달했다. 나아가 “일측에서 독도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경우에는 한국민에게 일본의 대한 침략의 경과를 상기시킴으로써 회담의 분위기를 경화시킬 우려가 있음을 지적할 것”이라는 등의 협상전략을 하달하는가 하면 “혁명정부라고 해도 6억불 이하로 하강하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청구권 액수를 구체적으로 지시하기도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韓·日협정] “치열한 對日외교전 굴욕·매국 흔적 없어”

    [외교문서 공개-韓·日협정] “치열한 對日외교전 굴욕·매국 흔적 없어”

    “한계는 있지만 한일협정을 굴욕·매국외교로 단죄하기는 어렵다.” 지난 2월부터 ‘외교통상부 민관공동 한일협정 문서공개 심사반’에서 민간위원으로 활약했던 이원덕(43·국민대 역사학부) 교수는 6개월 동안의 ‘산고(産苦)’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독도를 놓고 ‘제3국 거중조정안’을 제안하는 등 졸속협상이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는데. -심사과정에서 법률·증거주의를 내세우며 탄탄한 관료조직으로 무장했던 일본을 상대로 피눈물나는 외교전을 벌였던 외교관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4조에 근거해 전후 배상은 고려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승전국으로서 모든 조치를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독도 문제만 해도 우리 정부는 시종일관 협상의제가 아니라고 주장했고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행을 고집했다. 이 과정에서 제3국 거중조정안이 나왔지만 일본측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의미없는 제안이 되고 말았다. ▶회담에서 미국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당시 강화조약에서 우리는 승전국의 지위를 놓쳤다. 미국은 애초 한국을 승전국 서명대상에 검토했다. 한국전쟁 와중이라 이승만 정권에게 위신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 상황에서 영국이 중국의 대표권을 마오 정부에게 줘야 한다는 주장을, 미국은 타이완에 줘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결과적으로 중국이 서명국에 빠지게 되면서 영국이 “중국도 빠졌는데 한국을 승전국 서명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느냐.”고 문제제기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장면이다. 우리가 강화조약의 서명국 일원이었다면 일본이 불법지배 사실도 받아들였을 것이다.JP의 ‘제3국 거중조정안’도 방미 후 나온 것으로 봐서 미국의 상당한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향후 공개문서의 영향을 고려할 때 한·일 양국이 주력해야 할 점은. -일본은 지나친 법률주의만 주장하면 형식논리에만 빠지게 된다. 미해결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역사적 화해를 시도해야 한다. 한국도 객관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조명하고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는 관용을 가지는 시각이 필요하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韓·日협정] 문서공개 의미·전망

    [외교문서 공개-韓·日협정] 문서공개 의미·전망

    정부가 26일 전면 공개한 3만 5354쪽의 한일협정 문서는 지난 40년간 줄기차게 제기돼 온 ‘굴욕외교’ 시비를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독도를 팔아 6억달러를 챙겼다.”“김종필 전 중앙정보부장이 전권을 행사했고, 밀약이 있다.”는 무수한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햇볕 아래 드러났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들도 “한일협정이 굴욕외교라는 오해의 소지를 없애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물론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등 진정한 과거사 청산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는 주문도 곁들였다. 특히 이해찬 국무총리 주재로 이날 열린 ‘한일회담 문서공개 등 대책기획단 민관공동위원회’는 ‘일본군위안부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에 대해 일본측에 법적 책임을 묻고 1975년 당시 보상 당시 제외됐던 부상자들도 보상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이는 향후 한·일 과거사 청산에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유도하는 데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국 정부의 책임범위와 피해보상 대상자, 재원 마련, 보상 기준 등은 쉽지 않은 논란으로 남을 전망이다. 정부는 피해자들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일본에는 정정당당하게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전략이다. 우선, 정부는 청구권협정 당시 받은 무상자금 중 상당한 금액을 강제동원 피해자의 구제에 사용해야 할 도의적인 책임이 있음을 강조했다. 부상자 문제 해결책이 불충분했다는 자성도 곁들여졌다. 이해찬 총리가 이날 회의에서 “앞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경우 시간 제한을 두지 않고 장기적으로 피해신청 접수를 받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지난 1975년 1차 보상이 이루어지기 전 시기를 정해둔 탓에 피해자 규모도 적었고 사망자 유족 8000여명에게 30만원씩 지급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정부는 일제강점하 피해자들의 보상을 위해 “일본측에 도의적인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협정 당시 청구권이 이미 소멸됐다.”며 소극적으로 대처해 왔던 게 사실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이날 결정에 대해 “한일협정은 합법적 민사상 청구권을 합의한 것이므로 일본 사람이 불법행위를 저지른 부분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해돼 왔다.”며 “이제 일본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불법행위가 일본에 있다는 원칙적인 수준의 언급일 뿐 책임 추궁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구혜영 강혜승기자 koohy@seoul.co.kr
  • 한일 ‘납치문제 의제’ 감정 대립

    |베이징 김수정특파원|4차 6자회담에서 일본이 납치 문제를 의제로 제기하려는 움직임과 관련, 한·일 정부가 감정적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도 납치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국내 여론과 6자회담 다른 참가국의 반대 압력, 북측의 ‘무시’ 전략 속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5일 저녁, 앞서 열린 우리 정부와의 양자협의 결과를 기자들에게 브리핑했다. 일본 정부 당국자는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이 핵심이지만, 납치 문제는 우리 일본 사회의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납치 문제를 이번 회담에서 제기하는 데 대해 한국 정부가 이해를 표했다.”고 밝혔다. 이런 브리핑 사실이 알려지자 우리 당국자는 논평을 자처,“이는 한·일 양자회담 내용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않다.”면서 “우리는 납치 문제는 양자협의나 간접적인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반박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측도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미국이 이해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은 과거와 달리 한·미·일 사전 협의에서 “핵에 우선순위를 두자.”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러시아, 중국도 일본측의 움직임에 대해 불쾌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이날 베이징에 도착한 러시아측 수석대표인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외무차관도 6자회담 과정에 순수 쌍무적인 문제를 제기하려는 일본의 시도는 “비생산적”이라고 지적했다. crystal@seoul.co.kr
  • 마치무라 日외상 서면 인터뷰

    마치무라 日외상 서면 인터뷰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외상은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의 반환과 관련,“신사측은 남북간에 반환처에 관한 공식적인 합의를 하고 일본 정부에 외교채널을 통해 요청하면 반환할 용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남북의 정부당국이 조속히 조정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북관대첩비는 일제에 의해 100년 전 약탈돼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 온 임진왜란 승전비로, 정부가 반환협의를 위해 북측에 문화재회담을 제의해 놓은 상태다. 마치무라 외상은 한·일정상회담을 앞둔 16일 서울신문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현재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대해서는 “한국측이 현 상황인 채로 관세협상을 개시하는 데 신중한 자세”라면서 한국측의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한·일관계 ▶한·일 우정의 해인 올해 초 독도문제가 발생했다. 독도문제로 양국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상했는가. -2005년은 아직 반환점에 오지 않았다. 양국간의 교류를 이어감으로써 우정의 해를 보낸 양국민이 올해를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대단히 의미가 깊은 한해였다.”고 되돌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0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한이 예정돼 있다. 한·일 관계개선에 좋은 복안이라도 있는가. -올해 전반부는 양국관계가 곤란을 겪었다. 양국이 이런 곤란을 뛰어넘어,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공동성명에 있는 것처럼 ‘동북아시대를 향한 한·일협력’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양국간에 더한층 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정상회담은 양국관계를 한때의 긴장상태에서 평정한 상황으로, 나아가 양국의 우호협력을 한층 확고하게 하는 좋은 기회다. 지난달 도쿄에서 ‘한반도 출신 옛 군인·군속 및 민간징용자 등의 유골문제에 관한 한·일협의’를 여는 등 개별적인 문제에 대해 착실히 대응하는 것도 그러한 분위기 조성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항구적인 무비자 전환 같은 성과를 기대해도 좋은가. -일본 각지에서 ‘가깝고 가까운 나라’로부터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을 방문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의 비자면제(아이치 만국박람회 기간 중 시한부)의 성과를 바탕으로 항구적 면제에 대해 검토하겠다. ▶한·일 FTA에 대해 일본 정부는 어떤 로드맵을 갖고 있나. -협상 재개에는 서로 유연성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두 정상간에 확인된 연내 실질합의를 향해 계속해서 한국과 협력해 갈 생각이다. #역사문제 ▶(주변국 침략과 관련해)일본은 독일보다 사과를 더 했다고 발언했는데, 지금도 그런 생각인가. -일본은 전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나 한·일기본조약 등에 따라 국가간 배상 등의 문제를 일괄처리했으나, 독일은 동서로 분단돼 있어 우리같은 국가간 배상문제 등을 일괄처리할 수 없었다. 전혀 다른 상황인 일본과 독일의 대응을 단순히 비교해 평가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어떻게 보는가. -총리 본인이 설명한 대로 전장에 나가 목숨을 잃은 사람에 대해 경의와 감사를 표하는 것으로 참배 때마다 ‘부전(不戰·전쟁을 하지 않는다)’을 맹세하고 있다. 군국주의의 미화나 A급 전범을 위한 참배는 아니다. #국제관계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양국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는 일은 국제사회, 동북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일본과 여러 가지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는 한국에 있어서도 큰 이익이 될 것이다. 한국 국민들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이해와 지지를 해주도록 부탁하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시아 균형자론’을 밝혔는데, 한국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의 실제 외교정책 운영에 있어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주목하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 같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관한 중요한 과제에 대처해 가기 위해서는 일본, 한국 및 미국의 긴밀한 협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 정부 스스로가 ‘균형자론은 어디까지나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한 것’임을 밝힌 점에 유의하고 있다. #북한 문제 ▶북핵문제가 악화될 경우 미국이 무력행사를 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일본은 미국의 무력행사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관계국이 6자회담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중시해 왔다.6자회담의 조기 개최를 위해 한·미·일을 포함한 모든 관계국이 외교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북핵문제의 악화를 상정해 관계국의 구체적인 대응에 대해 예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북·일 수교협상의 재개 전망이 불투명하다. 오히려 대북 제재의 목소리가 일본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북 협상의 조건은 무엇인가. -납치문제와 관련해 북한으로부터 성실한 대응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으로서는 생사가 불분명한 납치피해자와 관련해 생존자의 즉시 귀국 및 진상규명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과의 대화에 응하도록 촉구해 가겠다.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정부 “우리땅… 거론땐 단호대처” 한·일 양국이 20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의제 선정 작업에서부터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의 시각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독도 문제의 경우 정부는 지리적·역사적·국제법적으로 분명한 우리나라 영토인 만큼 의제로 논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경한 입장이다. 반면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주요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은 지난 14일 열린우리당의 인터넷방송에 출연,“이번 정상회담 의제는 첫째 야스쿠니 문제, 다음에 역사왜곡, 세번째 독도문제”라면서 “특히 독도문제는 명백하게 우리 영토가 분명하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가 없고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영유권 문제에 대해 시비를 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 장관의 발언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가 먼저 독도 문제를 얘기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본측이 문제를 제기하면 단호하게 받아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교과서 역사왜곡과 관련, 정부는 이번에 정식의제로 올려 일본의 무성의를 분명히 따지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일본은 가능하면 의제에서 제외했으면 하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도 우리 정부는 중요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 장관은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 인터넷방송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2001년 검토를 약속한 대로 제3의 추도시설 문제를 검토하도록 정상회담에서 강력히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상연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마치무라 외상 ‘왜곡 교과서’ 검정때 문부상 역임 마치무라 노부타카(60) 외상은 중의원 7선의 집권 자민당 내 중진이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 통상산업성에 들어가 13년간 공직생활을 했다.1983년 정계에 입문해 중의원에 첫 당선된 뒤 우리의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 해당되는 문부상을 두 차례 지냈으며, 외무성 정무차관과 자민당 간사장 대리도 역임했다. 2001년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역사왜곡 교과서 검정 때 문부과학상이었다. 지난해 9월 개각의 외교·안보팀 개편 때 외상으로 발탁됐다.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의 과제를 떠안고 있으나 역사왜곡 교과서 파동, 독도, 야스쿠니 참배 문제 등이 겹쳐 유엔에서의 영향력이 큰 중국, 한국의 반발로 벽에 부딪힌 상태다. 역사왜곡 시정을 요구하는 국회 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했던 지난 4월 “한국인에게 대단한 아픔을 드린 데 반성한다.”고 밝히고 5월 뉴욕의 유엔개혁회의에서는 “일본은 역사를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 있지만 독일보다 훨씬 여러 번, 더 많이 사과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4월 일본 NHK에 출연해 “한국과 중국의 역사교과서가 하나밖에 없다니 이런 바보같은 일도 없다.”고 말해, 외교통상부가 “매우 유감스러운 발언”이라고 강력 항의하는 공식논평을 낸 바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최근 한일분쟁 일지 ▲2월22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상정. ▲2월25일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 “독도는 일본 영토” 발언. ▲4월5일 일본 문부성, 왜곡 교과서 검정. ▲5월11일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한국과 북핵 정보 공유 불가” 발언. ▲6월1일 신풍호 한·일 경비정 대치 사건. ▲6월11일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상,“종군위안부라는 말은 원래 없었다.”발언.
  • 막판까지 고민하던 韓·日정상회담 20일 연다

    막판까지 고민하던 韓·日정상회담 20일 연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오는 20일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역사교과서 왜곡 등 양국 현안과 북핵문제 등을 논의한다고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이 14일 발표했다. 김 대변인은 이날 “정상회담에서는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한 역사인식을 공유하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력방안에 대해 폭넓게 협의할 것”이라면서 “정상간 심도있는 의견교환을 통해 올바른 한·일관계를 논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일 정상회담은 지난해 12월 일본의 가고시마에서 열린지 6개월만이고, 참여정부 출범 이후 7번째다. 한·일 정상회담은 지난달 초 모스크바에서 한·중, 한·러 정상회담과 지난주 한·미정상회담에 이어 이뤄지는 것으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당사국 정상 회담의 마무리 성격도 갖고 있다. 노 대통령은 회담에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에 대한 일본의 자세변화를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양국이 그동안 의제와 장소 등을 놓고 협의를 한 끝에 고이즈미 총리가 20일 서울을 방문, 당일 정상회담을 갖고 21일 오전 일본으로 떠나는 1박2일 방한일정으로 합의됐다.”고 말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日 과거청산 5개사안 한일정상회담때 제시”

    |도쿄 이춘규특파원|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독도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14일 보도했다. 노 대통령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일 관계의 상황을 묻자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독도 문제를 언급,“일본과 역사적 인식이 다르다. 일본측의 대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 나종일 주일대사는 13일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와 만나 “교과서 문제와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불안정한 일이 생기고 있다.”고 이 문제가 회담 일정과 의제를 확정짓지 못하는 원인임을 시사했다. 한편 고이즈미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 청산’을 위한 5가지 메뉴를 준비했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이날 전했다.5가지 메뉴는 ▲제2기 역사공동연구위에 발족과 연구대상에 역사교과서 포함 ▲강제징용자 유골반환 ▲한국 거주 피폭자 지원 ▲사할린 거주 한인 지원 ▲북관대첩비 반환 등이다. 신문은 고이즈미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과거 청산’을 위한 이같은 일본 정부의 새로운 대처를 한국측에 전달, 관계개선의 실마리를 모색한다는 구상이라고 전했다. taein@seoul.co.kr
  • ‘6·15방북단 축소’ 딜레마

    지난 1일 북측이 6·15 5주년 기념행사에 남측 인원을 대폭 축소해달라고 제안해오자 정부 당국은 깊은 ‘속앓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로서는 뚜렷한 묘안이 없어 보인다. 북측의 요구를 수용해 30명만 보내자니 “북한에 끌려다닌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고, 수용하지 않고 ‘합의준수’만 외치자니 ‘남북공조 재개’를 위한 첫 무대의 판을 깰지 모른다는 위기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고민은 2일 내내 “회의 중, 검토 중”이라고 언급한 대목에서도 감지됐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측이)통보했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지 않나. 합의준수를 촉구한 뒤 북측의 반응을 봐야 한다.”며 쉽지 않은 상황임을 드러냈다. 북측이 제안한 감축 인원만 놓고 보면 민간측은 애초 615명에서 190명으로 80%포인트 정도 줄었다. 반면 정부당국은 민간에 비해 70명에서 30명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다. 따라서 외형적인 숫자 부분에서 민간측이 느끼는 불만의 강도는 클 수밖에 없다. 차관급회담에서 정부 당국 파견이 합의되기 이전부터 ‘615명 참여’와 행사 내용 등을 합의하는 등 명실상부한 민간 주도의 행사라는 점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남측 준비위원회 관계자는 “정부 당국 규모는 실무협의 결과에 비춰보면 40명이 줄어들었지만 차관급회담에서 합의한 대표단 20명 규모에 대해서는 북측이 감축을 요구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면서 “실무인원을 축소해 파견할 수도 있는데 일부 인원 변경을 두고 북측이 모든 합의를 깼다고 포괄적으로 반박하는 모양새는 궁색하다.”고 주장했다. 자칫 정부 당국이 ‘합의준수’라는 원칙만 강조하다가 행사 자체가 무산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남측 준비위원회는 오는 4일부터 7일까지 평양에서 열리는 행사 실무협의에서 북측의 진의를 자세히 듣고 애초 합의한 사항을 지켜줄 것을 거듭 촉구할 계획이다. 이 문제는 고스란히 정부의 부담으로 연결된다. 민간측 행사라는 점을 복원시키면서 행사를 치러내야 하는 부담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이날 고위 당정협의에서 “민간부문간 합의된 부분은 반드시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이번 행사는 곧이을 장관급회담과 한미·한일정상회담 등 한반도의 주요한 외교안보 정세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측은 남측에 인원감축 요구를 하자마자 조평통과 평양방송, 외무성 대변인 등이 나서서 미국의 대북압박 정책을 집중적으로 맹공격하고 있다. 외교안보라인의 한 관계자가 “이번 행사는 그 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 많다.”고 언급한 것도 정부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비춰진다. 현재로서는 정부가 북측의 요구를 수용하더라도 그전에 원칙 준수를 강조하며 최대한 명분을 갖추기 위한 절차를 밟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지운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독도분쟁 시발점은 미국인 시볼드”

    “독도분쟁 시발점은 미국인 시볼드”

    독도문제는 한·일간 역사적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문제라는 분석이 나왔다. 다음 주 발간될 계간지 ‘역사비평’ 여름호에 실릴 ‘독도분쟁의 시발과 윌리엄 시볼드’를 기고한 목포대 정병준 교수의 주장이다. 정 교수는 이 글에서 1952년 미·일간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배후에 있는 미국의 외교관 ‘윌리엄 시볼드’를 조명했다. 알려졌다시피 이 조약은 일본의 패전처리 문제를 다룬 조약. 당연히 일본이 강점한 영토의 반환문제가 포함되어 있고 독도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회담 초기에 한국령이었던 독도는 회담이 진전되면서 일본령으로 바뀐다. 여기에는 독도를 레이더기지로 쓰자는 시볼드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게 정 교수의 주장이다. 시볼드는 맥아더의 극우 반공주의 노선 덕분에 벼락 출세한 외교관이다. 전후 일본 처리를 두고 미국내에선 두가지 목소리가 있었다. 일본을 철저히 개혁하자는 ‘중국통’ 인사들과 그러면 빨갱이들만 이롭게 한다는 ‘일본통’ 인사들간 대립이었다. 맥아더는 ‘일본통’쪽을 채택했다. 그랬기에 ‘대위’에 불과했던 시볼드를 외교관으로 발탁했다. 미 국무부조차 적절치 않은 인사라고 지적했지만 맥아더는 굽히지 않았다. 정 교수는 ‘맥아더 장학생’ 시볼드가 큰 영향력은 없었다고 봤다. 그러나 미국에게 큰 의미가 없었던 한국 문제에는 시볼드가 개입할 여지가 많았다. 그는 일본계 여자와 결혼하고 일본에서 법률회사를 운영한 경험이 있을 만큼 지일파 인사였다. 그는 일본의 이익을 적극 옹호했다. 전범추방·재벌해체에 반대하고 공산주의자 석방을 비판하는 등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소련에 억류된 일본군 포로의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여기에는 냉전과 매카시즘 영향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할 때 정 교수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생각과 달리 독도문제는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문제라고 결론지었다. 일본이 독도문제만 나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자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이 독도문제에 중립을 표시하는 것도 “독도문제가 한일관계뿐 아니라 한·미, 미·일관계를 폭발시킬 뇌관”임을 알게 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韓 “北·美설전은 북핵 해결임박 징후”

    미,“김정일은 폭군” 비난▶북,“부시는 불망나니” 비난▶북, 동해상에 단거리 미사일 발사▶미,“김정일은 매우 매우 잔인” 비난▶북,“미국은 국가테러의 왕초” 비난. 최근 북한과 미국이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연일 주고받는 공방의 수위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금방이라도 한바탕 물리적으로 붙을 것같이 험악하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즉각적인 반응을 자제한 채 지극히 차분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현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北·美 당장 충돌은 없을것” 2일 기자가 만난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현재의 북핵 국면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인 시각을 표출했다. 이 당국자는 “6자회담이 당장 재개되지 않는다고 해서 금방 북한과 미국간에 무슨 큰 충돌이 생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예측했다. 그는 “다음달이 6자회담 중단 1년째이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심리적인 시한일 뿐”이라면서 “북한으로서는 시간을 끌어서라도 최대한 양보를 얻어내려는 전략이고 그렇다고 미국도 쉽게 양보할 태세는 아니어서 기대하는 것보다 해결 시점이 더 늦춰질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선 본격적인 북핵 문제 해결이 연말이나 내년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北核해결 내년으로 넘어갈수도” 그는 북한의 대응수위가 갈수록 격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행동이 과격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뜻도 된다.”면서 “뒤집어 보면, 해결 시점이 더욱 임박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이같은 언급은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니컬러스 에버슈타트 연구원 등 미국내 일부 전문가들이 지난 2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협상용’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것과 비슷한 시각이다. 물론 북핵 국면이 험악해질 수록 우리 정부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불가피한 운명이다. 다른 핵심 당국자는 “북한이 왜 저렇게 해야만 하는지 당국자인 나로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하면서 “하루속히 대화 테이블로 나오는 것만이 북한으로서는 생존할 수 있는 최상의 길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새달말 한일정상회담

    노무현 대통령은 6월 하순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한국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3일 “한·일 정상회담을 다음달 하순쯤 한국에서 개최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일정을 외교채널을 통해 일본측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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