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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소미아 종료에 미 국방부 “한일 빨리 이견 해소하길 바라”

    지소미아 종료에 미 국방부 “한일 빨리 이견 해소하길 바라”

    미국 국방부가 한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하기로 한 것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 조기에 이견을 해소하길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2일(현지시간)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데이비드 이스트번 미 국방부 대변인은 로이터에 “한일 양국이 이견 해소를 위해 함께 협력하길 권장한다”며 “양국이 신속하게 이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스트번 대변인은 “미국와 일본, 한국이 연대와 우의로 함께 협력할 때 우리 모두는 더 강하고 동북아는 더 안전하다”며 “정보 공유는 공동의 안보 정책과 전략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려는 취지로 지난 2016년 체결한 지소미아를 양국 간 안보협력 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이유로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어떤 우정의 역사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어떤 우정의 역사

    지난 12일 저녁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서경식과 다카하시 데쓰야의 대화록 ‘책임에 대하여’ 북 토크가 열렸다. 한일 사이에 첨예한 갈등이 계속되는 이 미묘한 시기에 두 비판적 지식인은 20여년간의 우정을 회상하며 연대(連帶)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한국 지식사회에 신선한 자극을 선사한 재일 디아스포라 논객 서경식과 일본에서 역사 왜곡과 인권 문제를 통렬하게 지적해 온 도쿄대 교수 다카하시가 한국 독자들 앞에서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 자체가 인상적인 장면이다. 이들은 공저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2002)로부터 잡지 ‘젠야’(前夜) 창간(2004), ‘후쿠시마 이후의 삶’(2013)을 거쳐 ‘책임에 대하여’에 이르는 오랜 세월 동안 서로에 대한 두터운 우정과 신뢰 속에서 일본 사회의 퇴행과 역사수정주의, 천황제, 우경화 흐름에 대해 시종일관 비판하고 저항해 왔다. 일본 지식사회의 지형에서 보면 이 둘은 소수자 중의 소수자다. 둘의 주된 비판 대상이 때로 균형 잡힌 지식인으로 인식되는 가토 노리히로(‘사죄와 망언 사이’ 저자)를 위시한 일본 리버럴파의 퇴락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입지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알 수 있다. 나는 두 사람의 투철한 비판정신,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는 지성의 힘을 통해 한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수행하는 논객이 갖춰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저항하지 않고 패배하기보다는 저항하다 패배하는 쪽이 훨씬 낫다”, “어떤 어두운 시대에도 어둠에 저항하며 사고하고…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타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있었다”는 다카하시의 태도가 바로 그 점을 보여 준다. 서경식은 ‘책임에 대하여’ 한국어판 서문에 “한국의 독자들도 일본에 다카하시씨와 같은 지식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런 인물들을 격려해 주기 바란다”고 적었다. 실상 “다카하시 선생처럼 자신이 중심부 일본 국민이면서, 말하자면 자기 성찰적으로 그것을 비판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이 둘은 일본인과 재일 조선인이라는 각기 다른 포지션의 차이를 딛고 누구보다도 서로 깊이 연대했다. 이들의 우정에 지난 4일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아베 반대 집회에서 ‘NO 아베’라는 팻말을 들고 ‘니칸렌타이’(일한연대)를 힘주어 외쳤던 일본 시민들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그 자리에서 일본의 참의원인 야마조에 다쿠는 한국 시민과의 연대를 강조하며, 아베 정부에 가장 가깝고 오래된 이웃 나라와 제대로 대화할 것을 절박한 목소리로 요청했다. 이즈음 한일 연대를 주창하는 담론을 지켜보며 식민지시대의 비평가 임화와 일본 시인 나카노 시게하루 사이의 문학적 우정과 연대에 대해 떠올렸다. 나카노는 1929년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이라는 시에서 조선인 노동자와 일본인 노동자의 연대를 형상화했다. 그가 보기에 ‘조선의 사나이’는 “머리끝 뼈끝까지 꿋꿋한 동무”에 해당하는 뜻깊은 존재다. 임화는 나카노의 시에 대한 화답으로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를 발표했다. 그 시에서 연인이자 동지인 양국의 노동자는 “우리는 다만 한 일을 위하여/ 두 개 다른 나라의 목숨이 한 가지 밥을 먹었던 것이며/ 너와 나는 사랑에 살아왔던 것이다”라고 묘사됐다. 그 동지적 유대는 역사의 거대한 파고와 군국주의 파시즘 속에서 점차 내셔널리즘에 자리를 내준다. 그로부터 90년의 세월이 흐른 이즈음 다시 한일 연대의 목소리가 퍼져 나온다. 내셔널리즘의 프레임을 돌파한 평화와 공동선을 지혜롭게 실천할 수 있을 때, 그 연대를 향한 주장은 당위가 아니라 현실을 움직이는 구체적인 힘으로 구현되지 않을까. 서경식과 다카하시가 함께한 20여년의 세월은 한일 연대의 모범과 우정의 역사를 보여 준 귀한 예로 기억돼야 하리라. 이들의 목소리가 교착상태인 한일 관계에 의미 있는 돌파구를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특파원 칼럼] 아베 독주에 대항하는 현명한 선택/김태균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아베 독주에 대항하는 현명한 선택/김태균 도쿄 특파원

    1999년부터 14년에 걸쳐 일본 도쿄도지사를 지낸 이시하라 신타로는 혐한(嫌韓) 발언 수위나 빈도에서 레전드급이라 할 만하다. 자신이 가진 서 푼어치 재주로 교만하고 졸렬한 언설을 양산해 출세에 성공한 인물이다. “일본의 조선 통치는 식민지배가 아니라 조선이 스스로 원해 이뤄진 합병”, “일본에 의해 조선이 근대화된 덕에 러시아 속국이 되는 것을 피했다”, “일본군 위안부는 돈벌이를 위한 것” 등의 레퍼토리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는 아흔을 목전에 둔 올해도 징용 배상과 관련해 “일본으로부터 또 돈을 가로채려는 속셈이 천박하다”고 한국을 비난했다. 이시하라의 지원을 받아 후임 지사가 됐던 이노세 나오키도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을 결정하는 등 우익본색을 숨기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이랬던 두 사람도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 있었으니, 매년 9월이면 간토대지진(1923년) 당시 일본인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 고이케 유리코 지사는 ‘극우의 화신’인 이시하라조차 유지했던 ‘최소한의 반성의 끈’조차 싹둑 잘라 버렸다. “추도비에 적힌 조선인 희생자 수가 6000여명이라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우익들 주장에 근거해 2017년부터 추도문을 보내지 않고 있다. 올해에도 안 보낼 예정이다. 과연 이시하라는 고이케에 비해 조금은 더 나은, 온건한 우익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질색하는 조선인을 위해 형식적인 위령이라도 했던 것일까. 이유는 개인에게 있지 않다. 변화한 일본의 ‘공기’에 있다. 무서운 속도로 변해 온 우경화의 흐름 속에 고이케와 같은 인물들이 이제는 그렇게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의 무서운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인물은 과거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제왕적 수상’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아베 신조 총리다. 1차 집권 때인 2007년만 해도 그는 8월 15일 ‘종전의날’ 기념사에서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국민들에게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 전쟁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부전의 맹세를 견지한다”며 ‘손해’, ‘고통’, ‘반성’ 등의 표현을 썼다. 그러나 2012년 12월 2차 집권에 성공하고 나서는 올해까지 단 한번도 전쟁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비상식이 상식으로 굳어지는 과정에는 불감증이 동반된다. 고이케 지사가 올해에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문을 안 보낸다는 뉴스는 지난해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언론에서 작게 다뤄졌다. 비판의 목소리도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분위기 속에 아베 총리는 앞으로 남은 임기 2년을 좌우할 최대의 승부수를 다음달 띄운다. 각료 개각과 자민당 당직 개편이다. 지난해 10월 개편 때는 자기 원하는 대로 하지 못했다. 직전 자민당 총재 선거 승리에 따른 각 파벌 안배 등 논공행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자신의 최측근들을 전면에 배치해 헌법 개정 등 ‘강한 일본으로의 국가 개조’라는 목표를 완성할 제2의 출발점으로 삼으려 할 것이 분명하다. 야당이 아베 독주의 제어장치로서 기능을 전혀 못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주시해야 하는 것은 일본 국민 여론이 어느 정도까지 방어막을 형성해 줄 것인가다. 지난달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에 승리를 안겨 주기는 했지만 당장의 헌법 개정에 국민의 압도적인 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것이 일본 여론의 현실이다. 일본 정부의 부당한 조치에 단호히 대응하되 사람과 사람을 잇는 교류의 연결 고리는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아베 정권의 독주를 이유로 어렵게 쌓아 올린 한일 간 민간 교류의 연들을 이참에 모조리 끊어 낸다면 그것은 오히려 아베 정권에 힘을 불어넣는 일이 될 수도 있다. windsea@seoul.co.kr
  • [홍석경의 문화읽기] 일본의 혐한

    [홍석경의 문화읽기] 일본의 혐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며 발생한 현재 한일 관계의 긴장을 보면서 깊고 긴 상념에 빠진다. 이것은 짧게는 한국 대법원의 결정과 아베 정권의 대응으로 촉발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본 내 오래된 혐한 세력이 그 뿌리이고 원인이다. 장단기적으로 자국에 별다른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오히려 해가 될 위험이 있으며,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개별 정치인의 튀는 결정은 대부분 그의 국내 정치 기반의 지지와 항상 연결돼 있다. 현재 더욱 극렬해지고 있는 일본 극우의 혐한 시위, 서점의 혐한 코너, 한국 학교에 대한 지원 중단 등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본의 과격한 반응을 보면 오히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참으로 크다는 생각이 든다. 자존을 위해 이 정도로 대표적 타자를 만들어 증오할 만큼 일본 사회가 내적 공황 또는 정체성의 위기에 처한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답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역사적이고 인류학적인 진실에서 찾아야 할까. 필자는 프랑스에서 오래 살면서 서구의 선진성에 대한 여러 미망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게 됐다. 식민종주국이었던 유럽 국가들의 부유한 현재가 얼마나 과거의 치욕스러운 식민지 수탈의 덕인지 알게 됐고, 이 나라들의 정부와 국민이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책임을 인정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이 얼마나 그 잘못을 실질적으로 배상했는지는 여러 가지 경우와 맥락이 작동해서 짧은 글 속에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식민 주체였던 강자가 식민지였던 약자에 대한 증오를 저리 끈질기고 험하게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런던에서 혐인도 시위, 파리에서 혐알제리 시위 같은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오히려 과거 식민지 국가들에서 양국 역사에서 부당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소명과 배상 요구가 이어진다. 유럽 극우의 유대인 혐오가 있지만 이것은 결이 다른 문제다. 반인류적 행위로 법이 엄하게 금하고 있기에 드러내 놓고 외치지는 못하고 밤에 몰래 유대인 묘지를 파손하거나 그 위에 나치 문양을 그리는 수준이다. 그런데 일본은 왜 이리도 피해자인 한국을 증오할까. 일본의 혐한 담론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증오 담론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중요한 연구 주제인 증오 담론의 핵심적 사례가 될 정도다. 다행히 일본 내 혐한 인구는 아직 일부에 불과하다. 여전히 한국 가수들의 일본 공연은 문제 없이 판매되고, 한국으로 오는 일본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보도는 없다. 어찌 보면 이번 한일 대립은 일본 국민에게도 기회다. 세계적 자유무역 체인을 거스르고 자국과 이웃 나라, 동아시아를 넘어 다자 간 피해를 입힐 무리한 결정을 한 책임자와 자국의 패권적 욕망의 역사적 피해자인 이웃에게 혐오를 퍼붓는 저 끈질긴 야만과 증오의 세력을 도려낼 기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고립시킬 기회다. 일본이 저러는 한 절대로 일본은 동아시아든 세계에서든 어떤 리더십도 얻을 수 없다. 일본 문화에 매혹된 듯한 서구 지식인들이 일본의 정치에 대해서는 돌아서서 비웃는다는 사실은 일본 엘리트가 그토록 선망하는 서구에서 모두가 아는 비밀이다. 일본의 근대는 경제적으로만 성공한 절름발이 근대다. 일본 국민은 어떤 위로부터의 부당한 힘에 한국민처럼 집단적으로 저항해 본 적이 없고, 일본의 민주주의는 정치적 리추얼로 변질돼 버렸다. 시민은 국가와 사회는 저리 돌아가도 오로지 자신의 삶에 장인적으로 몰두하는 우아한 개인주의로 도피해 버린 듯하다. 한일 간 이처럼 경직된 순간에 개봉된 영화 ‘봉오동 전투’가 이 사태를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될까 조금 걱정했다. 영화는 짓밟힌 민족의 농부들이 떨쳐 일어난 독립군이 양민을 잔인하게 살해한 중무장한 제국군을 총칼로 쓰러뜨리는 장면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민족주의적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상영관을 가득 메운 관객이 후끈 달아오르지 않고, 예상했던 박수도 전혀 없다. 이처럼 성숙한 시민을 두고 ‘노 재팬’ 배너 달기를 주장했던 서울 중구청장 같은 반응은 이제 시대정신에 전혀 맞지 않는다. 한국민이 이번 역경을 통해 더욱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것을 기대한다.
  • 문 대통령 “日 경제보복 대응, 결기 갖되 냉정하게”

    문 대통령 “日 경제보복 대응, 결기 갖되 냉정하게”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대응은 감정적이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렇게 말한 뒤 “결기를 가지되 냉정하면서 또 근본적인 대책까지 생각하는 긴 호흡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일본이 지난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한 뒤 강도 높은 비판과 ‘극일’ 의지를 밝혀 온 문 대통령이 냉정한 현실인식으로 현 국면을 돌파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8일 현 국면을 ‘승자 없는 게임’으로 규정하고 보복조치 철회와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 것과도 맞닿아 있다. 수출규제의 정당성을 강변하면서 대화에 응하지 않은 일본을 겨냥해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강제징용 판결을 빌미로 경제보복에 나선 것은 인류의 보편 가치를 저버린 행위라는 점을 강조하는 여론전의 성격도 있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경제 강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경제력뿐 아니라 인권·평화 같은 가치의 면에서도 모범이 되는 나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이) 일본 정부의 부당한 경제 보복에 대해 결연하게 반대하면서도 양국 국민 간의 우호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연하고 대승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고 했다. 또 “양국 국민이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민주인권의 가치로 소통하고 인류애와 평화로 우의를 다진다면 한일관계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했다. 일본 경제보복 이후 문 대통령이 ▲양국 국민 간 우호관계 ▲한일관계의 미래 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의 광복절 메시지가 한일 갈등의 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과 맞물려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일본에 대한 비판은 잊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큰 고통을 받았던 우리로서는 현재 벌어지는 경제 보복을 매우 엄중한 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며 “그 자체로 부당할 뿐 아니라 과거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광복절을 맞이하는 우리 마음가짐이 한층 결연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밝혔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문 대통령 “일본 경제보복 대응, 감정적이어선 안 돼” [전문]

    문 대통령 “일본 경제보복 대응, 감정적이어선 안 돼” [전문]

    수보회의서 “日경제보복, 3·1 100주년에 매우 엄중”“적대적 민족주의 반대…한일 양국 국민 우호 중요”“국민에 감사…국제사회와 연대해 인류보편 가치 옹호”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감정적이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같이 언급한 뒤 “결기를 가지되 냉정하면서 근본적인 대책까지 생각하는 긴 호흡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사흘 후면 광복절로, 올해는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로 그 의미가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면서 “과거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큰 고통을 받았던 우리로서는 현재 벌어지는 일본의 경제 보복을 매우 엄중한 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일본의 경제 보복을 거듭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경제 보복은 그 자체로도 부당할 뿐 아니라 그 시작이 과거사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면서 “광복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한층 결연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은 “우리 선조들은 100년 전 피 흘리며 독립을 외치는 순간에도 모든 인류는 평등하며 세계는 하나의 시민이라는 사해동포주의를 주창하고 실천했다”면서 “적대적 민족주의를 반대하고 인류애에 기초한 평등과 평화공존의 관계를 지향하는 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우리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런 점에서 우리 국민께서 보여주신 성숙한 시민 의식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또 “일본 정부의 부당한 경제 보복을 결연하게 반대하면서도 양국 국민 간의 우호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연하고 대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양국 국민이 성숙한 시민 의식을 토대로 민주·인권의 가치로 소통하고 인류애와 평화로 우의를 다진다면 한일 관계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본 정부의 부당한 조치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도 이번 일로 한일 국민 간의 우호 관계까지 훼손돼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우리 경제를 더욱 내실 있게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을 정교하고 세밀하게 추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또 “우리의 부족함을 꼼꼼하게 살피면서도 우리 국민·기업의 역량을 믿고 자신 있게 임하겠다”면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고 해낼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경제 강국이 아니다”라면서 “인류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며 사람을 중시하는 평화 협력의 세계 공동체를 추구해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위해 국제 사회와 연대하면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면서 “대한민국은 경제력뿐 아니라 인권·평화 같은 가치의 면에서도 모범이 되는 나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다음은 문 대통령의 12일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 모두발언 전문. 사흘 후면 광복절입니다. 올해는3.1독립운동100주년,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로 그 의미가 더욱 뜻깊게 다가옵니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큰 고통을 받았던 우리로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경제 보복을 매우 엄중한 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제 보복은 그 자체로도 부당할 뿐 아니라 그 시작이 과거사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광복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한층 결연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감정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결기를 가지되 냉정하면서 또 근본적인 대책까지 생각하는 긴 호흡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100년 전 피 흘리며 독립을 외치는 순간에도 모든 인류는 평등하며 세계는 하나의 시민이라는 사해동포주의를 주창하고 실천하였습니다. 적대적 민족주의를 반대하고 인류애에 기초한 평등과 평화공존의 관계를 지향하는 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우리의 정신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국민들께서 보여주신 성숙한 시민의식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일본 정부의 부당한 경제 보복에 대해 결연하게 반대하면서도 양국 국민 간의 우호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연하고 대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국 국민이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민주인권의 가치로 소통하고 인류애와 평화로 우의를 다진다면 한일관계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입니다.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우리 경제를 더욱 내실 있게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을 정교하고 세밀하게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꼼꼼하게 살피면서도 우리 국민과 기업의 역량을 믿고 자신 있게 임하겠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고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경제 강국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며 사람을 중시하는 평화협력의 세계 공동체를 추구해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와 연대하면서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경제력뿐 아니라 인권이나 평화 같은 가치의 면에서도 모범이 되는 나라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 韓경제심장 강남서 일장기 다 철거…시민사회 “분노와 정의 촛불 들자”

    韓경제심장 강남서 일장기 다 철거…시민사회 “분노와 정의 촛불 들자”

    구 관계자 “日경제침략선언에 철거”“日철회 때까지 일장기 떼놓을 것”부산 “허리띠 졸라맬지언정 식민 못 살아”전국서 일제히 日경제보복 규탄 성명서울·대전 등 주말 촛불집회 및 규탄대회한국 경제중심지 서울 강남구에 걸려 있는 일장기가 모두 철거된다. 시민사회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맞서 분노와 정의의 촛불을 들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시민들은 “아베의 정치 만행”이라며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이어가는 한편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대응도 촉구했다. 서울 강남구는 2일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한국 제외’ 조치에 대한 항의 표시로 테헤란로, 영동대로, 로데오거리 일대 만국기 중 일장기를 철거한다고 밝혔다. 화이트리스트는 수출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수출 우대 조치로 일본 아베 정부는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날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지난달 4일부터 한국의 주력 수출품이 반도체 소재들에 대한 대(對)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테헤란로와 영동대로 일대는 국제금융, 무역, 전시·컨벤션이 활발한 서울의 중심지역으로 지난해까지 ‘태극기 특화거리’로 운영됐다. 지난해 7월 민선 7기 출범 후 강남구는 국제교류복합지구 이미지 조성을 위해 태극기와 함께 만국기를 게양했다. 삼성역사거리와 강남역 사이 테헤란로 3.6㎞ 구간에는 외국 국기 137기 중 일장기 7기가 있다. 이외 영동대로에 4기, 로데오거리에 3기 등 총 14기의 일장기가 있다.구 관계자는 “일본의 조치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무역질서를 파탄시키는 경제침략선언이며 스스로 국제사회의 일원임을 포기한 것”이라면서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지 강남은 일본이 이성을 되찾고 조치를 철회할 때까지 항의 표시로 일장기를 떼어낸 자리를 비워둘 방침“이라고 밝혔다. 시민사회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 등 682개 단체가 모인 ‘아베 규탄 시민행동’은 이날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화이트 리스트 배제는 수출 규제에 이은 추가 공격”이라며 일본 정부를 규탄했다. 시민행동은 “일본의 행보는 침략, 식민지배의 역사를 반성하기는커녕 동아시아 평화 체제 추세에 역행하면서 군사 대국화를 추진하고, 한국을 경제·군사적 하위 파트너로 길들이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민행동은 일본 정부를 향해 ‘분노의 촛불’, ‘정의의 촛불’을 들자고 시민 참여를 호소했다. 시민행동은 주말인 3일과 10일 오후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행사를 개최하며 8·15 광복절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촛불 집회를 열기로 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아베 정권의 행보는 우리 국민이, 국제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국민적 의지를 모아서 제2의 자주 독립운동, 제2의 세계 평화운동을 함께 해나가자”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경제 침략, 평화 위협하는 아베 정권 규탄한다”, “아베 정권은 식민지배 사죄하라”고 구호를 외치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적힌 손팻말에 ‘폐기’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했다.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도 이날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아베 정권을 규탄했다.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등 지역 40여개 단체 관계자들은 “지금 아베가 강요하는 것은 한국의 무조건적인 굴종”이라면서 “허리띠를 졸라맬지언정 다시는 식민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 온 겨레의 한결같은 대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동북아시아에서 줄어드는 자신들의 입지를 세워보고자 패악질을 부리는 것이 이번 경제침탈의 본심”이라고 주장했다. 부산운동본부는 주말인 3일 오후 일본영사관 옆 정발 장군 동상 광장에서 ‘일본규탄 부산시민 궐기대회’를 연다. 전북겨레하나는 이날 ‘선을 넘은 도발, 아베 정권 규탄한다’란 제목의 성명을 내고 “아베 정권의 목적은 명확하다”면서 “식민 지배와 전쟁 범죄로 점철된 자국의 과거사를 부정하고 평화헌법을 개정해 군사 행동이 가능한 정상 국가로 돌아가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경제 추격을 따돌리고 평화통일을 방해해 자국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더 큰 분노를 느낀다”고 강조했다. 전북겨레하나는 정부에 일본과의 군사 협력 전면 재검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재연장 불가 통보 등을 주문했다. 광주 진보연대도 “전범국인 일본이 피해자인 우리 민족을 또다시 위협하고 있다”며 강하게 규탄했다. 진보연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식민통치 범죄를 사죄하고 합당한 배상이 마땅한데도 오히려 경제제재를 발동했다”면서 “총칼 대신 경제를 앞세워 제2의 침략을 자행하는 만행으로 명백히 경제전쟁을 선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일본이 한국과의 신뢰와 우의 관계를 파기하고 경제전쟁을 선포한 것인 만큼 일본과 군사정보를 공유할 이유가 없다”면서 “GSOMIA를 파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민주권실현 적폐청산 대전운동본부와 평화나비대전행동도 광복절 전날인 14일 오후 7시 서구 둔산동 갤러리아백화점 타임월드점 앞에서 촛불집회를 연다.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수출 규제에 이어 한국을 백색 국가에서 제외한 일본의 결정에 “한일 관계를 이전과는 다르게 만든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박 사무처장은 “한일 관계는 역사 문제에 있어 다소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다 하더라도 경제 협력이 밀접하게 이뤄져 왔고 한미일 안보 협력에서도 공유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을 배제하겠다는 것은 더는 이런 관계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도 결코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정책국장은 “일본이 정치 문제를 가지고 경제보복을 한 것은 명백히 규탄해야 할 일”이라면서 “한일 간 정치적, 경제적 문제를 모두 악화시키는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권 국장은 “단기적인 피해에 어떻게 할 건지 정부가 국민들에게 명백하게 제시해야 한다”면서 “중장기적으로는 기술형 기업을 키우고 일본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인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우리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는데 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박 공동대표는 “정부는 외교로 풀어야 할 문제를 반일감정을 자극하며 불매운동 등으로 대응하도록 국민에게만 맡기고 있다”면서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 가지 않도록 대통령과 정부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들도 일본 정부의 결정을 비판하며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직장인 정모(32)씨는 “일본의 이번 결정은 경제보복으로 우방 국가 간 신뢰를 무너뜨린 행위”라면서 “아베 총리의 정치 만행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모(23)씨는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더 열심히 참여할 생각”이라면서 “시민들이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것과 상관없이 외교적으로도 해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20회] ‘우병우 바이패스→궤도 수정‘ 靑설득전략 보고서… “양승태에 보고됐다고 들어”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20회] ‘우병우 바이패스→궤도 수정‘ 靑설득전략 보고서… “양승태에 보고됐다고 들어”

    ‘입법추진 BH(청와대) 현황. 전반적으로 견제 분위기이고 전임 비서실장의 영향에 따른 부정적 분위기 고착된 상황, BH 핵심보좌진의 친(親)검찰 구성 변화 없음. 공식 창구는 민정수석실, 6월 임시국회까지 적극 협조 획득 사실상 불가능. - 원인 1. 민정수석 경찰 경험 2. 문고리 권력 행사하며 사법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전달+사법부 부정적 영향 확대 시도. 이에 따라 발상의 전환, ‘바이패스(bypass·우회로)’ 전략 필요’ 2014년 상고법원 설치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통과가 되지 못하자 대법원은 본격적으로 청와대와 국회를 상대로 한 ‘전략’을 세운다. 2015년 3월 26일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명의로 작성된 ‘상고법원 BH 대응전략’에는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기 때문에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협조가 어렵다며 우 전 수석이 아닌 다른 우회로를 접근해야 한다는 방안이 제시됐다.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한 청와대와의 공식 창구는 민정수석실이지만, 우 전 수석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생각에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26일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19회 공판에서는 시진국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시 부장판사는 2014년 2월부터 2015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소속 기획제2심의관으로, 2015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는 기획제1심의관으로 일하며 직속 상사인 임종헌 당시 기획조정실장의 지시를 받아 각종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날 재판은 고 전 대법관의 공소사실과는 관련이 없어 고 전 대법관은 변론이 분리돼 증인신문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시 부장판사가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아 작성한 ‘상고법원 BH 대응전략’에 우 전 수석을 피해 접촉할 우회로는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지목됐다. 이 전 비서실장의 주요 관심사항에 대해 ‘원론적 차원에서의 법원의 협조 노력 또는 공감 의사 피력. 최대 관심사-한일 우호관계의 변화 등. 주일대사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시 삼계탕 1500봉지를 들고 후쿠시마 피해자들을 방문해 한일 양국에서 큰 호응’이란 부분이 별도로 기재됐다. 특히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 사건의 파기환송을 예상한다는 내용이 이 전 실장에게 공감의 뜻을 피력하는 방안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보고서의 최종 작성자인 시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아 작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靑설득전략 ‘우병우 피해 이병기 접촉’…이병기 관심사안인 ‘강제징용’ 언급 다만 시 부장판사는 이러한 ‘바이패스’ 전략이 실행은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민정수석의 영향력이 청와대 내에서 너무 강해서 바이패스 전략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해 7월 20일~28일 사이 몇 차례 수정됐다가 7월 28일자로 완성된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 보고서에는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에 대한 서술내용이 빠졌다. 7월 20일자 보고서에는 ‘바이패스 전략의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적혔다. 이에 대해 시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이 2015년 7월쯤 이병기 실장이 힘이 없고 우병우 민정수석이 건재하다고 판단해 바이패스 전략에 대해 궤도수정을 하자고 했다”, “2015년 7월까지도 우병우의 장악력 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 않아 ‘이병기 우회 전략’이 큰 쓸모가 없다고 판단돼 폐기됐다”고 검찰 조사에서 각각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부장판사는 그렇게 진술한 게 맞다고 이날 법정에서 확인했다. 그해 7월 20~24일 사이 임 전 차장은 시 부장판사에게 “(박병대) 처장님 지시”라며 메모를 하나 전달했다고 한다. 메모에는 청와대를 설득하는 방안으로 ‘정부 협력 사례, 과거 왜곡의 광정, 과거사 사건’이 적혀 있었다. 정부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판결, 정부 운영에 도움이 될만한 정책 제시 등 키워드가 적힌 한 장짜리 메모였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보고서를 보고받고 수정을 지시한 내용을 메모로 넘겨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7월 20일자와 28일자 보고서에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국정원 댓글사건 재판과 관련 ‘현 정권의 민주적 정당성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원세훈 사건은 파기환송심에서 실체 판단의 문제가 남아있다’는 내용도 구체적인 설득방안으로 담겼다. 또 7월 말까지 민정수석실과 회동하고 우 전 수석과의 면담 일정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시 부장판사는 7월 28일자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 보고서가 양 전 대법원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가 완성된 다음날 임 전 차장으로부터 “처장님과 대법원장님께 잘 보고되었습니다”라는 이메일을 받았고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상고법원은 당시 대법원의 역점사업이었기 때문에“ 대법원장에게까지 보고가 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그해 8월 초 양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면담하기 전에 작성된 만큼 양 전 대법원장이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 부장판사는 사법부의 국정 운영 협력 사례를 나열한 것에 대해서도 “법원에 대한 청와대·정부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으려 만든 것이지 재판 개입이 있었다는 사례로 해석하는 것은 굉장한 오해라고 생각한다”며 이른바 재판 거래 의혹을 일축했다. 2014년 11월 10일자로 작성한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검토’의 시나리오를 작성한 문건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경우까지 상정해 대응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문건을 만들면서 재판개입 우려를 전혀 생각해본 적 없었다”고 진술했다. 시 부장판사가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아 작성한 보고서들은 주로 상고법원과 관련됐다. 상고법원 입법의 협조를 얻기 위해 청와대를 설득하는 방안을 작성했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설득하는 방안을 세웠다. 특히 여기에는 판사 출신으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국회의원이 된 서기호 전 의원에 대해 ‘법안심사1소위 심사에서 고립시켜 서 의원의 반대의견을 부기하고 법안 자체는 통과시키는 최후의 방법도 염두’라는 내용도 적혔다. 또 서 전 의원의 재임용 탈락소송을 신속히 종결한다는 문구도 담겼다. 이 역시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적은 부분이라고 시 부장판사는 말했다. “상고법원에 대해 가장 강하게 (반대의 뜻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소송을 계기로 투사 이미지를 하고 있으니 신속히 종결시키자”는 게 임 전 차장의 말이었다고도 전했다. ●”재판 거래·재판 개입 생각지도 못해…보고서 대부분 실현 안 됐을 것“ 그러나 시 부장판사는 “행정처가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일선 법원에서 재판 중인 재판을 신속히 종결시키겠다고 한 계획은 재판의 개입이나 독립을 침해한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당시 임 전 차장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제가 이해한 것은 임 전 차장이 사건이 오래됐기 때문에 종결단계가 왔다, 끝날 것 같으니 그러면 달라지겠다는 것으로 이해를 했다. 그리고 임 전 차장의 당시 지위가 기획조정실장인데 일선 재판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상상조차도 못하고 인식도 못했다”고 답했다. 실제로 임 전 차장이 서 전 의원을 설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 전 의원의 행정소송을 빨리 종결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을 했다면 부적절한 일이 맞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을 비롯한 심의관들이 작성한 다수의 보고서는 임 전 차장의 지시에 맞춰 작성된 것일 뿐 대부분 실현이 안 됐을 것이라는 의견도 내놨다. 지난 24일 법정에 나온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도 자신이 쓰는 보고서가 모두 헌법적·법률적 테두리 안에서 적절하게 활용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5년 2월 14일자 ‘‘이판사판 야단법석’ 다음 카페 현황 보고’ 문건은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고 작성한 뒤에 보고도 하지 않고 “뭉갰다”고 밝혔다. 상고법원 추진을 반대하는 법관들의 목소리가 나오자 임 전 차장은 법관들이 모인 익명 카페의 존재를 알게 됐고 현황과 대응방안을 작성해 보라는 지시를 시 부장판사에게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시 부장판사는 “법관들이 활동하는 익명 카페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은 심의관의 업무라고 생각했지만 ‘대응방안’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카페를 자진 폐쇄하거나 탈퇴하도록 하는 방안 등 여러 대응방안을 써내긴 했지만 “결과물을 내야하니 임 전 차장이 좋아할 만한 표현을 머리를 짜내서 이것저것 생각나는 모든 것을 적어본 것”이라면서 “바람직하지 않아 보고드리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가운데 다른 판사가 같은 주제로 보고서를 보고한 것을 알게 됐고 속으로 잘됐다 생각하고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보고서를 썼다는 말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가장 마지막에 시 부장판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박 전 대법관이) 아까 증인에게 제시한 5개의 문건을 검토하여 보고하도록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게 이 사건 공소사실의 구성이다. 증인이 그 문건을 작성해 보고할 때 의무없는 일을 한다는 인식이나 느낌이 있었느냐?” 그러자 시 부장판사는 “명확하게 그런 인식을 하고 작성한 것 같지는 않다”고 답했다. 밤 10시 가까이에 증인신문을 마치고 시 부장판사의 검찰 진술조서에 대한 증거조사가 이어졌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조서에서 대법원장에게 보고가 됐을 것이라는 내용들은 대부분 추측이고 결과적으로 오늘 법정 증언상 대부분은 보고가 안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 한 부분(2015년 7월 28일자 보고서)도 만약에 임 전 차장의 진술이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하면 오늘 증인의 그 부분 진술은 재전문진술이 돼 증거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李총리 “말 많다” 지적에 김상조 “유념하고 잘 따르겠다”

    李총리 “말 많다” 지적에 김상조 “유념하고 잘 따르겠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11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전날 대정부질문에서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다”고 말한 데 대해 “말씀을 유념하고 잘 따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정청 을지로 민생현안회의’ 모두발언에서 “지금 굉장히 어려운 한일관계 속에서 정부가 차분하고도 신중하게 대응하라는 취지의 말씀으로 이해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국정운영의 중심인 국무총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주의 촉구의 말씀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 실장은 지난 3일 기자들에게 “일본에서만 수입할 수 있는 소재나 부품을 골라내니 ‘롱 리스트’가 나오더라”라면서 “수출 규제 품목은 리스트에서 우리가 가장 아프다고 느낄 1번에서 3번까지를 딱 짚은 것”이라고 말했었다. 이 총리는 지난 10일 대정부질문에서 ‘롱 리스트를 알고 있느냐’는 곽대훈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김 실장이 어떤 것을 얘기했는지 알고 있다”면서 “정책실장으로서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김 실장은 이날 회의에서 “한일관계 문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해 차분히 대응하려 한다”면서 “낙관적인 상황만이 아니라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이것이 상대가 있는 문제다 보니 국민 여러분께 상세히 설명해 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그에 대해선 국민 여러분의 이해와 지원을 바란다”고 요청했다. 김 실장은 “국익을 앞에 두고 정부와 기업이 따로 있을 수 없고,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면서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국익을 지키기 위해, 기업들이 이익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모두가 합심해 차분하고 당당하게 대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김 실장은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해 정부 여러 부처가 협업해 열심히 준비해왔던 성과를 오늘(11일) 발표할 것”이라면서 “공공기관 공정거래 모델이 마련됐고, 특별고용근로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부처 간 협업 틀도 마련됐다”고 알렸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이시언, 때아닌 논란에 결국 SNS 사진 삭제 ‘무슨 일?’

    이시언, 때아닌 논란에 결국 SNS 사진 삭제 ‘무슨 일?’

    배우 이시언이 일본 여행 인증 사진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가운데, 추가로 게재한 일본 여행 사진을 SNS에서 삭제했다. 4일 이시언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절친 송진우와 그의 아내 미나미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시언은 사진과 함께 “초대해주신 송진우 미나미 부부! 미나미 부모님께 너무나 감사 말씀드립니다! 새 식구 송우미애기 넘 기여워. 건강하게만 자라주렴! 깜짝 생일 파티도 감사드립니다! 진우도 더 대박나렴! 파이팅!”, “미나미 집 앞에서 한 컷! 송우미 탄생 축하해!” 등의 글을 적었다. 이시언과 절친 사이로 알려진 배우 송진우는 아내인 일본인 미나미와 유튜브 채널 ‘한일부부’를 운영하고 있다. 이시언은 송진우의 초대로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앞서 일본 여행 시작을 알리는 이시언의 인증 사진이 공개된 이후 이시언은 때아닌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일부 네티즌들이 최근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문제삼으며 경제보복 조치를 시행한 것과 관련해, 이시언의 일본 여행이 불편하다는 의견을 보인 것. 논란이 불거지면서 온라인 상에서는 이시언의 일본 여행 인증 사진이 부적절했다는 비판과 개인의 자유라는 의견 대립이 생겼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시언은 결국 해당 사진을 자신의 SNS에서 삭제했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아르헨전서 재미 본 ‘이강인 시프트’ 한일전서 또 쓰나

    아르헨전서 재미 본 ‘이강인 시프트’ 한일전서 또 쓰나

    강호 아르헨티나에 2-1 승리 조 2위 이강인 투톱 변칙적 기용 효과 만점日에 16년 전 역전패… 설욕할 기회한국 축구가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16강전에서 16년 만에 일본과 맞대결을 펼친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팀은 지난 1일(한국시간) 폴란드 티히 경기장에서 열린 조별리그 F조 3차전에서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를 2-1로 꺾고 2승1패(승점 6)로 조 2위를 차지하며 16강에 올랐다. 두 대회 연속 조별리그를 통과한 한국의 토너먼트 첫 상대는 일본이다. 한국은 5일 0시 30분 폴란드 루블린 스타디움에서 일본과 8강 티켓을 놓고 일전을 벌인다. 한국 축구는 일본과의 남자 각급 대표팀 간 역대 전적에서 모두 앞선다. 성인대표팀이 41승23무14패, U-23대표팀이 7승4무5패로 앞서는 가운데 특히 U-20대표팀 간 전적에선 무려 28승9무6패로 일방적인 우위를 보인다. 하지만 한국은 이 대회에서 아픈 기억이 있다. 지난 2003년 아랍에미리트(UAE) 대회 16강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일본에 1-2로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더욱이 1-0으로 리드하다 후반 동점골을 내준 뒤 연장전에서 골든골을 얻어맞았던 터라 패전은 두고두고 뼈아팠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드러난 일본의 전력을 살펴보면 이번에도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다. B조의 일본은 1승2무(승점 5)의 무패 전적으로 이탈리아(승점 7)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일본은 안정적인 공수 밸런스를 선보이며 이탈리아, 에콰도르, 멕시코 등 강호들을 상대로 4골을 넣고 실점은 1로 묶었다. 한국이 스피드와 피지컬을 앞세운 축구를 구사하는 데 견줘 일본은 점유율 위주의 경기 운영에 능했다. 짧은 패스로 땅따먹기 하듯 야금야금 진영을 압박하는 성인대표팀의 스타일대로였다. 조별리그에서 3득점-2실점을 기록한 한국보다는 적어도 수비에선 더 ‘짠물’이라는 점, 또 최전방 공격수인 미야시로 다이세(가와사키 프론탈레)가 총 4골 가운데 2골을 책임져 경계 대상 ‘1순위’라는 점 등 대처해야 할 공수의 윤곽은 잡혔다. 다만, 멕시코전에서 골을 보탰던 미드필더 다가와 교스케(FC도쿄)와 공격수 사이토 고기가 부상으로 귀국길에 올랐다는 점은 다시 전력을 평가할 요소다. 대체적인 전력 분석 안에서 정정용 감독이 또 한 번 ‘이강인 시프트’ 카드를 내밀지가 주목된다. 그는 1, 2차전에서 이강인을 미드필더로 쓴 데 반해 아르헨티나전에서는 3-5-2의 투톱으로 끌어올려 공격 능력을 극대화시켰다. 수비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장신 공격수 오세훈과 호흡을 맞추게 했다. 단순한 ‘빅-스몰’의 투톱 조합이 아니라 중앙은 물론 좌우의 2선까지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직접 공격 루트를 찾아달라는 주문이었다. 정 감독 의도대로 이강인은 전반 42분 왼쪽에서 예리한 크로스로 오세훈의 헤딩골을 끌어내면서 대회 첫 공격포인트를 신고하더니 후반 11분에도 왼발 스루 패스로 조영욱의 추가골을 뒷받침했다. 정 감독은 “이강인은 공을 소유하는 주체임과 동시에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때 흘리지 않고 공을 연결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전술적으로 중요했다”면서 “선수들이 오늘 경기를 통해서 이기는 방법을 알게 됐을 것이다. 가면 갈수록 체력적으로 떨어질 수는 있어도 조직적 완성도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신의 무지, 인간도 따질 권리가 있다”

    “신의 무지, 인간도 따질 권리가 있다”

    미제로 남은 미모의 여고생 살인사건 시간 흘러 용의자 찾아간 동생 이야기 신의 섭리에 다르게 대할 수도 있는 것 작품 속 노른자·노란옷… 제목도 ‘레몬’ 詩는 마지막 남은 인간적 방식의 위로“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할 수가 있어요?” 영화 ‘밀양’ 속 전도연의 대사를 기억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아들을 앗아간 유괴범을 용서하기로 한 그녀지만 자기보다 한 발 앞서 “용서받았다”는 범인 앞에서는 말문이 탁 막힌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고, 그 말씀에 의탁하며 살기로 했더라도 내 아들을 죽인 자를 나보다 먼저 용서할 순 없는 거다. 그럴 순 없는 거다.한일 월드컵으로 떠들썩했던 2002년 여름, 미모의 여고생 해언이 숨진 채 발견된다. 해언이 마지막으로 목격됐을 당시 타고 있던 차의 운전자인 신정준과 차에 탄 해언의 모습을 목격했던 한만우가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권여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레몬’(창비)은 17년 후 해언의 동생 다언이 한만우가 형사에게 취조 받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해언이 사라진 후 가족들의 생은 이전과는 극명하게 다르다. 엄마는 해언의 이름을 ‘혜은’이라 바꾸는 일에, 언니만큼 예쁘지 못했던 다언은 언니를 닮는 일에 유달리 집착한다. 다언은 다시 만난 그 시절 고교 문예반 선배 상희에게 “이 모두가 신의 무지”라고 일갈한다. 가혹한 운명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이렇듯 신에게 따져 묻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메일로 만난 작가는 “신의 무지를 묻는 일은 신의 섭리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일깨우고 신의 전능함에 구멍을 내는 일”이라며 “삶에서 끔찍한 불행을 당하고 신에 귀의하고 신의 섭리를 정당화하며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와 다르게 신을 대할 권리도 분명 인간에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에 귀의할 뻔 했던 ‘밀양’의 전도연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신의 무지’ 앞에서 다언은 무력하지만은 않다. 그는 직접 용의자 중 한 명이었던 한만우의 집을 찾아 나선다. 거기서 마주하는 만우의 동생 선우가 요리한 계란프라이의 노른자. 해언이 죽기 직전 입었던 원피스의 색깔, 상희가 썼던 시에 등장하는 단어도 ‘레몬’, 노란빛이었다. ‘왜 노란빛, 레몬인가’라는 질문에 작가는 말했다. 소설을 쓰고 있는 와중에는 몰랐는데, 소설이 중편 형태로 계간 ‘창작과 비평’에 실리고 나서 황현경 평론가가 그 사실을 지적했고 그제서야 깨달았다고. 사후에 발견된 노란빛 때문에 제목도 결국 ‘레몬’이 됐다고 말이다. 소설에는 ‘신은 믿지 않아도 시는 믿는다’는 말이 나온다. 다언과 상희가 함께 시를 쓰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표상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인류로 치면 낙원의 시절”이라며 “큰 불행을 통해 다언의 삶이 건널 수 없는 다리를 건넜고, 그래서 신을 부정하게 되었지만,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방식의 위로, 언어를 통한, 시를 통한 위로와 애도의 가능성은 아직 믿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등단 24년차 작가에게도 애도란 참 어려운 일이어서, 역설적으로 계속 글을 쓰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어떤 위로는 너무 값싸고 어떤 애도는 너무 성급해서 당사자를 더 고통에 빠트릴 수 있으니까요. 아무튼 고통의 문제는 참 어렵고 그래서 제가 계속 소설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다시 만나는 책 표지의 노란 레몬은 하는 수 없이 세월호 국면의 노란 리본을 떠올리게 한다. 다언을 살게 하는 계란 노른자의 노란빛, 몸서리쳐지도록 신 레몬의 맛.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란빛은 또 그 자체로 삶은 생생한 감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소용된다. ‘찰나에 불과한 그 순간순간들이 삶의 의미일 수는 없을까.’(199쪽) 돌아 돌아 다언이 얻은 깨달음 앞에서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 “그 찰나를 조금이라도 새로운 언어로 포착하려고 발버둥치는 중”이라고, 이메일 말미에 작가는 적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신파극·서구 영화 활극 요소 버무린 연쇄극에 관객들 ‘매료’

    신파극·서구 영화 활극 요소 버무린 연쇄극에 관객들 ‘매료’

    1919년 10월 27일 조선인 거리의 영화관 단성사에서 조선인 신파극단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義理的仇討)가 처음 상연됐다. 바로 이날을 한국영화의 기점으로 삼아 올해 10월 27일을 한국영화 100주년으로 기념하는 것이다. 연쇄극은 연극 무대를 중심으로 영화의 스크린이 결합한 공연 방식이었다. 왜 온전한 영화가 아닌 연쇄극을 한국영화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일까. 당시 연쇄극이 어떻게 무대 위 배우들의 공연과 영화의 필름을 연결하고 있었는지, 우선 상연 공간의 모습을 그려 보기로 한다. 먼저 배우들이 등장한 무대다. 정의의 주인공은 조력자인 신문기자의 도움으로 악인의 계략을 알게 된다. 전모가 드러난 악인이 줄행랑을 치고 주인공은 이를 뒤쫓는다. 그 순간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옥양목 천으로 만든 스크린이 내려온다. 무대에서 본 인물들이 영화에서 보이니 관객들은 감탄한다. 악인이 자동차를 타고 도망가는데 주인공 역시 자동차를 이용해 추격전을 벌인다. 저 멀리 신문기자가 부른 경찰차까지 3중의 추격전이 벌어진다.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펙터클이 펼쳐지는 것이다. 한편 무대에 있던 배우들은 스크린 뒤로 자리를 옮겨 실감 나게 대사를 입히고 있다. 당시는 소리가 없는 무성영화였기 때문이다. 막다른 길에 달한 악인이 차에서 내려 도망가자 주인공이 그를 붙잡고, 이제 격투가 시작되려 한다. 이때 다시 조명이 켜지면서 스크린이 올라간다. 무대에는 다시 주인공과 악인이 나와 있고, 둘은 악단의 효과음에 맞춰 격투를 벌인다. 관객들은 쉴 새 없이 탄성을 지른다. ●조선영화의 선구자 박승필·김도산·임성구 만약 지금 이런 공연을 본다고 해도 무척 흥미진진할 것 같지 않은가. 조선인 신파극단의 연쇄극은, 아직은 조선인들이 만든 극영화가 등장하지 않았던 시기 조선인 관객들을 위한 최적의 오락이었다. 당시 조선 극장가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비극과 활극이 결합된 신파극이 유행하고 있었고, 눈을 뗄 수 없는 활극 장면이 숨 가쁘게 몰아치는 서구의 연속영화(serial film)가 조선인 관객들을 매혹시키고 있었다. 바로 이때 연쇄극 ‘의리적 구토’가 등장한 것이다. 즉 조선인 연쇄극은 일본의 신파극과 서구 영화의 활극 요소를 버무려 조선식으로 토착화한 공연이자 영화였다.1919년 10월 단성사 무대에서 상연된 ‘의리적 구토’는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일까. 조선 최초의 연쇄극을 제작하고 유행시킨 주역들은 바로 단성사의 경영자 박승필, 신파극단 혁신단의 임성구 그리고 신극좌의 김도산이다. 조선 흥행계의 대부로 불린 박승필(1875~1932)은 일제시기 대중예술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1908년부터 광무대 운영을 맡으며 전통공연과 신파극을 무대에 올렸고, 1918년 4월 단성사의 경영권을 인수해 그 해 12월 개축한 후 조선인 영화상설관으로 개관했다. 일본 흥행사들의 틈바구니에서 유일한 조선인이었던 그는 단성사를 기반으로 서구영화를 소개하며 조선영화 제작을 도모하고 있었다.조선의 신파극 시대를 연 임성구(1887~1921)는 남촌의 일본인 극장 고토부키자(壽座)의 신파극 무대에 영향을 받아 1909년쯤 한국 최초의 신파극단인 혁신단을 조직했다. 가정 비극에 활극을 버무린 공연을 단골 레퍼토리로 올렸던 그는, 비극 연기뿐만 아니라 검극에도 능해 장안에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사실 그의 혁신단은 단성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다. 특히 1918년 8월에는 개축 전 단성사 무대에 혁신단 9주년 기념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의리적 구토’의 연출과 주연을 맡았던 김도산(1891~1921)은 1911년쯤부터 혁신단의 배우로 신파극을 시작했다. 1917년 직접 개량단을 조직해 활동하다 1919년 신극좌를 창립해 단성사의 박승필과 손잡고 조선의 연쇄극 시대를 이끈다.바로 이들이 조선인 최초의 연쇄극 제작부터 이듬해 연쇄극의 유행까지 불과 2년 사이의 숨 가쁜 흐름을 만들어냈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 1904년 처음 시작된 연쇄극이 1916년쯤부터 영화 비중이 높아져 1918년에 크게 유행한 것과 비교하면, 조선에서는 상당히 압축적으로 진행됐다. 처음부터 영화를 지향한 연쇄극이었던 점도 특기할 만하다. 박승필은 왜 연쇄극을 제작한 것일까. 1918년 조선의 극장가에는 서구 연속영화가 크게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18년 12월 단성사를 영화상설관으로 재개관한 박승필 역시 미국의 단편 코미디영화나 연속영화를 상영했고, 이에 덧붙여 조선인 신파극 공연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꾸리고 있었다. 연속영화의 활극적 요소에 열광하는 조선인 관객들을 목도한 그는 우선 연쇄극 방식을 이용해 조선영화 제작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연쇄극을 만들기 위해 박승필은 단성사에 외화를 공급하는 일본의 덴카쓰(天活) 영화사를 활용했다. 1919년 6월 그는 김도산을 덴카쓰 계열의 오사카 소재 극장으로 파견해 전기응용극(관객의 사실적인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무대에 하늘과 바다 같은 이미지를 영사해 입체감 있는 배경을 만들어 주는 방식의 연극)과 연쇄극 공연을 배우게 한 것이다. 서울로 돌아온 김도산은 9월 전기응용극을 무대에 올린 후, 10월에는 ‘의리적 구토’의 흥행을 시작으로 ‘시우정’(是友情), ‘형사의 고심’까지 연쇄극 상연에 성공하게 된다. 당시 연출은 김도산이, 배우는 그를 비롯한 신극좌 단원들이 맡았지만, 촬영은 일본에서 불러온 덴카쓰의 촬영기사가 참가했다. 필름 카메라를 다루고 프린트를 만드는 기술까지는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성사의 연쇄극이 조선인 관객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데 성공하자, 김도산의 선배인 임성구도 뒤를 잇는다. 1920년 4월 단성사 무대에 올라간 임성구의 ‘학생절의’(學生節義)는 더 진화된 연쇄극으로 평가받았다. 연극 무대의 실연을 줄인 반면 서양 활극영화를 지향한 영화 필름의 분량이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이후 김도산 역시 박승필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신파연극과 연쇄극을 열정적으로 무대에 올리다 1921년 7월 31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사인은 연쇄극 촬영 시 몸을 아끼지 않고 활극 연기를 하다 입은 부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록 연쇄극의 영화 장면이 연극의 막과 막 사이에 영사된 부분적인 필름이긴 했지만 그는 한국 최초의 영화감독이자 영화에 출연한 첫 번째 주연으로 평가할 수 있다. ●조선인 연쇄극은 한국의 첫 영화 제작 ‘의리적 구토’의 상연 전날인 1919년 10월 26일자 매일신보의 소개 기사를 보자. “근래 활동사진이 조선에 많이 나와 애극가의 환영을 비상히 받았으나, 첫째 오늘날까지 조선인 배우의 활동사진은 아주 없어서 유감 중에 (중략) 이번 단성사주 박승필씨가 오천여원의 거액을 내어 신파신극좌 김도산 일행을 데리고 경성 내외의 경치 좋은 장소를 따라가며 다리와 물이며 기차, 전차, 자동차까지 이용하여 연극을 한 것을 처처(處處)히 박은 것이 네 가지나 되는 예제(藝題)인 바 모두 좋은 활극으로만 박았으며 (중략) 서양사진에 뒤지지 않을 만하게 되었고”라는 기록은 조선인 연쇄극이 처음부터 영화 매체를 지향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의리적 구토’와 함께 상영된 실사 필름 ‘경성 전시(全市)의 경’도 주목해야 한다. 연쇄극 본편에 앞서 서울 도심 곳곳을 기록한 필름을 상영한 것이다. 조선인 연쇄극을 처음 경험한 조선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1919년 10월 29일자 매일신보 기사는 연쇄극 상연 첫날부터 조선인 관객들이 물밀 듯이 들어온 상황과 함께 다음의 내용을 전한다. “영사된 것이 시작하는데 우선 실사로 남대문에서 경성 전시의 모양을 비치우매 관객은 노상 갈채에 박수가 야단이었고, 그 뒤는 정말 신파사진과 배우의 실연 등이 있어서 처음 보는 조선 활동사진임으로 모두 취한 듯이 흥미 있게 보아 전에 없는 성황을 이루었더라.” 당시 조선인 관객들에게 연쇄극 ‘의리적 구토’의 영화 장면과 실사 필름 ‘경성 전시(全市)의 경’이 조선의 첫 영화로 받아들여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이 발효되면서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 조선이 됐다. 그리고 1919년 병합조약 무효와 독립을 선언하는 3·1운동이 한반도 전역에서 거행됐고, 이를 계기로 중국 상하이에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들의 ‘활동’이 강하게 요구되는 시기였다. 같은 해 10월 27일 단성사의 박승필과 신파극단 신극좌의 김도산이 추진하던 최초의 연쇄극에, 조선 사람이 기차, 전차, 자동차 위에서 조마조마한 활극을 펼치는 ‘활동’이 스크린에 펼쳐졌다. 1919년 이렇게 조선의 ‘활동사진’ 즉 조선영화는 시작됐다. 조선 사람들은 때로는 혼란스럽게 급변해 버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때로는 그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조선영화라는 근대와 대면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문희상 對日 사이다 발언 놓고 고노·강경화 ‘진실게임’

    문희상 對日 사이다 발언 놓고 고노·강경화 ‘진실게임’

    고노 “사과 요구” 강경화 “그런 일 없었다” 일왕 겨냥 역대급 강경 발언 文의장 귀국 “위안부 피해자에 사과, 당연한 요구였다”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5당 지도부 등 대미 의원외교 대표단이 5박 8일간의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17일 귀국했다. 방미 기간 가장 화제가 됐었던 것은 문 의장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발언이었다. 문 의장은 지난 8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키히토 일왕을 ‘전쟁범죄의 주범 아들’이라고 칭하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나 곧 퇴위하는 일왕의 한마디면 된다. 고령 위안부의 손을 잡고 진정 미안했다고 말하면 그것으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문 의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 고노 다로 외무상을 비롯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아베 신조 총리까지 나서 문 의장을 향해 사과하라며 적반하장 격으로 나왔다. 그러나 문 의장은 12일 워싱턴 한국특파원 간담회에서 “근본적 해법 딱 한 가지는 피해자에 대한 진정 어린 사과”라고 부연하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일왕을 직접 겨냥한 문 의장의 발언은 역대 국회의장 가운데 가장 강경한 발언으로, 대다수 국민들은 ‘사이다 발언’이라고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동안 많은 정치인들은 국익을 위한 원만한 한일관계를 이유로 대일(對日) 발언의 수위를 조절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본에 밉보이면 정치인으로서 이로울 게 없다는 속내로 몸을 사린 것 아니냐는 의심도 없지 않았다.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문 의장의 발언은 동북아 평화를 위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은 지금 한일 간 역사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피해자에 대한 진실된 사과가 필요하다는 당연하고도 원론적인 이야기였다”면서 “이를 일본이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소탐대실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교도·지지통신에 따르면 고노 외무상은 16일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일 외교장관 회담 당시) 확실히 이번 건에 대응해 달라고 (했고), 사과와 철회를 재차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같은 날 현지에서 취재진에게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교도통신과 NHK 등 일본 언론들은 17일 고노 외무상이 사과를 요구했다는 재반박 주장을 보도했다. 반면 한국 외교부 관계자는 이 같은 일본 언론의 보도에 대해 “이번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해당 건에 대한 일본 측의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거듭 반박하면서 진실공방 양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문희상 ‘일왕 사죄’ 사이다 발언에…고노, 사과 요구 했나 안했나

    문희상 ‘일왕 사죄’ 사이다 발언에…고노, 사과 요구 했나 안했나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5당 지도부 등 대미 의원외교 대표단이 5박 8일간의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17일 귀국했다. 방미 기간 가장 화제가 됐었던 것은 문 의장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발언이었다. 문 의장은 지난 8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키히토 일왕을 ‘전쟁범죄의 주범 아들’이라고 칭하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나 곧 퇴위하는 일왕의 한마디면 된다. 고령 위안부의 손을 잡고 진정 미안했다고 말하면 그것으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문 의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 고노 다로 외무상을 비롯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아베 신조 총리까지 나서 문 의장을 향해 사과하라며 적반하장 격으로 나왔다. 그러나 문 의장은 12일 워싱턴 한국특파원 간담회에서 “근본적 해법 딱 한 가지는 피해자에 대한 진정 어린 사과”라고 부연하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일왕을 직접 겨냥한 문 의장의 발언은 역대 국회의장 가운데 가장 강경한 발언으로, 대다수 국민들은 ‘사이다 발언’이라고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동안 많은 정치인들은 국익을 위한 원만한 한일관계를 이유로 대일(對日) 발언의 수위를 조절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본에 밉보이면 정치인으로서 이로울 게 없다는 속내로 몸을 사린 것 아니냐는 의심도 없지 않았다.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문 의장의 발언은 동북아 평화를 위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은 지금 한일 간 역사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피해자에 대한 진실된 사과가 필요하다는 당연하고도 원론적인 이야기였다”면서 “이를 일본이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소탐대실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교도·지지통신에 따르면 고노 외무상은 16일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일 외교장관 회담 당시) 확실히 이번 건에 대응해 달라고 (했고), 사과와 철회를 재차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같은 날 현지에서 취재진에게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교도통신과 NHK 등 일본 언론들은 17일 고노 외무상이 사과를 요구했다는 재반박 주장을 보도했다. 반면 한국 외교부 관계자는 이 같은 일본 언론의 보도에 대해 “이번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해당 건에 대한 일본 측의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거듭 반박하면서 진실공방 양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日 초계기 겨눈 韓 구축함, 잘잘못 따져보니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日 초계기 겨눈 韓 구축함, 잘잘못 따져보니

    지난 20일, 독도 동북방 180km 수역에서 북한 조난 선박을 구조하던 한국해군 제1함대 소속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의 일본 초계기 레이더 조준 시비가 한·일간의 외교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 쟁점의 핵심은 한국해군 군함이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를 향해 의도적으로 사격통제레이더를 겨누었는지 여부다. 한국해군은 일본 초계기를 향해 위협적인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일본은 한국 구축함이 초계기를 향해 여러 차례 사격통제레이더를 조준했다고 항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구의 주장이 사실일까? 우선 양측 간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 관계를 확인해보았다. 사건 발생 당시 광개토대왕함의 위치는 독도에서 동북방 방향으로 180km 가량 떨어진 대화퇴어장 인근 한·일 중간수역이었다. 광개토대왕함은 이 일대에서 조난 신호를 송출하고 표류하던 북한 선박을 찾기 위한 인도적 목적의 수색작전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기존 보도와 해군 측 설명에 따르면 당시 광개토대왕함은 조난 선박을 찾기 위해 모든 레이더를 풀가동하고 있었다. 광개토대왕함에는 대공레이더로 AN/SPS-49(V), 대공/대수상 겸용으로 MW-08 3차원 대공감시 레이더, 항법 레이더로 SPS-95K 레이더, 사격통제레이더로 STIR 180 레이더가 갖춰져 있었다. 이들 레이더 가운데 해상에 표류한 선박을 볼 수 있는 레이더는 MW-08과 STIR 180 2종이었다. 사실 평상시라면 MW-08 레이더만으로 목표 선박을 찾을 수 있었겠지만, 이 날은 그렇지 못했다. 기상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MW-08은 우리 해군의 광개토대왕급 구축함 3척,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6척에 탑재된 주력 대공레이더지만, 최근 운용되고 있는 함정용 대공 레이더 가운데서는 가장 낮은 수준의 성능을 가진 레이더다. 소형 표적의 정밀 탐색과는 거리가 먼 G밴드 대역을 사용하며, 출력도 낮아 탐지 거리도 매우 짧다. 이 레이더의 스펙상 최대 탐지거리는 110km지만, 일반적인 중소형 여객기는 80km 정도, 전투기 사이즈의 표적은 20~30km 거리에서 탐지가 가능할 정도로 능력이 형편없다. 사건이 발생했던 12월 20일 일본 인근 해상의 파랑도(Sea wave chart)를 보면, 당시 광개토대왕함이 있었던 한일중간수역 동북방 해역에는 4미터의 너울과 5미터의 높은 파도가 출렁이고 있었다. 즉, 파도가 너무 높아 파도 속에 가려진 작은 목선 크기의 구조 대상 선박을 찾기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구조 대상 선박이 북한 선박이라고 해서 구조작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국내법은 물론, 국제협약에 의거하여 구조작전이 의무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해상 수색과 구조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Maritime Search and Rescue)’ 가입 국가이며, 국제해사기구(IMO)의 SOLAS(Safety of Life at Sea) 협약에도 가입되어 있다. 따라서 광개토대왕함은 국내외 정치적 상황이나 기상 여건 따위는 고려하지 말고 조난당한 북한 선박을 구조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 때문에 광개토대왕함은 사격통제레이더인 STIR 180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 레이더는 I밴드와 K밴드 대역의 전파를 이용해 최대 185km 거리까지 빔 방사가 가능하며, 미사일 유도를 위한 사격통제레이더이기 때문에 MW-08보다 훨씬 더 정밀하게 표적을 찾아낼 수 있다. 문제는 광개토대왕함이 인도적 측면에서의 국제적 협약은 준수했을지 모르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국제 협약은 완전히 어겼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CUES(Code for Unplanned Encounters at Sea), 즉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 기준’ 가입 국가다. CUES 제2장 제8절 제1항에 따르면 사격통제레이더를 이용한 조준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광개토대왕함은 탐지거리 250km가 넘는 AN/SPS-49(V)5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노토반도 인근 상공에서 비행 중인 비행체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했을 것이다. 정밀 수색을 위해 STIR 180 레이더를 가동하려 했다면 레이더 빔 방사 방향 전방에 있는 항공기가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사전에 이를 일본 측에 통보했어야 했다. 특히 노토반도 상공은 일본은 물론 동맹국인 미군, 캐나다, 뉴질랜드 등 우방국 해상초계기들이 동해 초계 비행에 투입될 때 수시로 드나드는 공역이다. 일본 본토와 가까운 해역에서 사격통제레이더를 조사하면서 CUES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것은 광개토대왕함의 명백한 실책이다. 일반적인 대공 레이더와 달리 STIR 180은 사격통제용레이더, 즉 미사일을 유도용 레이더다. 광개토대왕함에 탑재된 시 스패로(Sea Sparrow) 함대공 미사일은 반능동(Semi-active) 유도방식으로 STIR 180 레이더가 쏜 빔이 표적에 맞고 반사되면 그 반사파를 따라 유도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STIR 180의 레이더 빔이 해상자위대 P-1에 맞았다면 당연히 P-1의 레이더 경보 장치(Radar warning receiver)가 울렸을 것이고, 이는 RWR 레코더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일본 측이 ‘증거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물론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함정에 적대적 행위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풍랑이 심한 곳에서 구조작전을 수행하던 중, 구조 대상 선박을 찾기 위해 정밀도가 우수한 사격통제레이더를 켰는데, 그 레이더 전파의 최대 도달거리 근처에 있던 일본 초계기가 우연히 그 빔에 맞은 것뿐이었다. 단순 해프닝이지만, 이것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광개토대왕함의 명백한 실수다. 사격장 안전수칙을 생각해보자. 사격장에서는 오발 사고를 막기 위해 장전된 총이든 빈총이든 절대 총구를 이리저리 돌리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통제한다. 진짜 쏠 의사가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총구 전방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한-일 레이더 갈등도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보면 광개토대왕함의 CUES 규정 위반이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다. 아무리 선박 구조가 급했어도 우방국 항공기들이 자주 다니는 해역, 그것도 일본 해안선과 가까운 곳에서 사격통제레이더를 가동한다면 사전에 이를 통지하고 적대 의사가 없음을 알리는 조치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다급한 구조작전 중 발생한 단순한 해프닝을 확대·왜곡해 외교문제로 끌어가고 있는 일본의 행태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본은 방위성 고위 관계자가 나서 “이번 행위가 일본을 위협하고 자위대원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한 행위”라며 한국을 맹비난하고 있지만, 어불성설이다. 당시 광개토대왕함과 일본 P-1 초계기 사이의 거리는 100km가 훨씬 넘었다. 백번 양보해서 광개토대왕함이 고의를 가지고 사격통제레이더로 P-1 초계기를 조준했다 하더라도, 광개토대왕함에 탑재된 RIM-7P 함대공 미사일의 사거리는 18km를 조금 넘는 수준이기 때문에 죽었다 깨어나도 일본 초계기를 공격할 수 없으며, 당시 사건을 겪은 해상자위대 승무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한국해군 광개토대왕함은 해난 구조와 관련된 국제협약은 충실히 준수하며 구조작전을 수행했지만, 일본 본토와 가까운 바다, 그것도 주요 우방국 항공기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길목에서 사격통제레이더를 켜면서 주변에 경보 전파를 하지 않은 우발적 충돌 방지 규범 위반을 저질렀다. 사실 일본 방위성 관계자의 주장대로 이번 사건은 한국 측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면 깔끔하게 해결될 사안이었다. 그러나 한국 국방부는 함정의 위치와 레이더 가동 여부와 관련하여 몇 번이나 말을 바꾸며 “일본이 저공비행 등 위협 행위를 했다”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광개토대왕함의 사소한 규정 위반으로 촉발된 사건이 이제는 양국 국민들 간의 민족 감정 충돌과 외교적 대립으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양측 언론들은 이 사건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며 민족 감정에 불을 지피고 있고, 국민들 역시 격한 표현을 사용하며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일본 영해 가까이 접근한 것도 한국이고, 그 근처에서 국제 협약상으로 금지된 사격통제레이더를 가동한 것도 한국인데 일본은 그 증거까지 가지고 있다. 일본이 아무리 죽일 듯이 미워도 한국이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맞다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향후 유사 사례를 막기 위한 매뉴얼과 소통 채널도 만들어야 한다. 백해무익한 감정싸움에만 매몰되지 말고 이성을 되찾아야 할 때다. 이일우 군사 (자주국방네트워크 ) finmil@nate.com
  • 최현석 딸, Mnet ‘프로듀스48’ 출연 ‘돋보이는 미모 눈길’

    최현석 딸, Mnet ‘프로듀스48’ 출연 ‘돋보이는 미모 눈길’

    최현석 셰프의 딸 최연수가 Mnet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48’에 출연한 사실이 알려졌다.지난 10일 방송된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는 ‘프로듀스48’ 96명의 연습생들이 단체곡 ‘내꺼야(PICK ME)’를 부르는 모습이 공개됐다. ‘내꺼야’는 Mnet ‘프로듀스 101 시즌2’ 경연곡 ‘네버(NEVER)’와 워너원의 데뷔곡 ‘에너제틱(Energetic)’에 참여한 작곡팀 플로우블로우의 곡이다. 1절은 한국어로, 2절은 일본어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내꺼야’ 무대 공개 이후 출연진들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스타 셰프 최현석의 딸 최연수가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최연수는 지난 2017년 슈퍼모델 선발에 도전한 바 있다. 이에 이번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한편, Mnet ‘프로듀스48’은 한국의 ‘프로듀스101’과 일본의 AKB48 시스템을 결합한 걸그룹 프로젝트 프로그램으로, 한일 양국에서 48명씩 출전한다. 이승기가 국민 프로듀서 대표를 맡았으며, 이홍기, 배윤정, 소유, 치타 등이 트레이너로 참여한다. 오는 6월 15일 오후 11시 첫방송. 사진=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故 한일관 대표 혈액서 녹농균 “패혈증 설명…반려견 감염여부 봐야”

    故 한일관 대표 혈액서 녹농균 “패혈증 설명…반려견 감염여부 봐야”

    이웃집 개에 물려 치료받은 후 6일 만에 패혈증으로 사망한 유명 한식당 한일관 대표 김모씨의 혈액에서 ‘녹농균’이 검출됐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녹농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일관 대표를 치료했던 병원 측은 병원 내 감염 가능성을 부인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고인의 혈액에서 녹농균이 검출됐다면 사망 원인으로 지목된 패혈증이 설명된다’면서 고인을 물었던 개의 혈액과 입속에서 녹농균이 검출되는지를 확인한 후 고인의 녹농균과 같은 타입의 균인지 유전자 검사를 하면 고인의 사인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녹농균은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 감염되면 패혈증, 전신감염, 만성기도감염증 등의 심각한 난치성 질환을 일으켜 사망하게 할 수 있는 위험한 세균이다. 각종 항생제에 내성이 심해 치료가 쉽지 않다. 실제로 과거 일본에서는 항생제 내성 녹농균에 감염된 사람들이 잇따라 숨져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 균은 물에서 잘 증식하는 특성 때문에 습기가 많은 흙이나 우물, 욕탕 등의 고인 물에서 비교적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또 기계 호흡이 많은 병원 중환자실이나 개의 입속, 사람의 피부에서도 이따금 검출된다. 국내에서는 대중음식점과 커피전문점 등에서 제공하는 일회용 물티슈에서 녹농균이 검출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고인의 혈액에서 녹농균이 검출됐다면 사망 원인으로 지목된 패혈증이 설명된다는 입장이다. 모 대학병원 감염내과 A 교수는 “녹농균은 아주 독하기 때문에 사람의 혈액에서 검출됐을 정도라면 패혈증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면서 “녹농균 검출이 맞다면, 1차 사망원인은 녹농균에 의한 패혈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병원 감염내과 B 교수도 “패혈증의 원인이 궁금했는데 혈액에서 녹농균이 나왔다면 패혈증을 일으켰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했다. 논란의 핵심은 이런 녹농균이 고인의 혈액에서 나왔다면 ,과연 어디서 유래했느냐는 점이다. 한일관 대표를 치료했던 병원 측은 24일 “개에 물렸을 당시 응급실에서 소독과 항생제 처방을 받고 바로 귀가했기 때문에 병원에서 녹농균에 감염될 가능성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고 한국일보가 보도했다. 그러나 녹농균 감염 경로가 확인되지 않고 상황이라 여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로써는 개에 물렸을 때 개의 입안에 있던 녹농균이 옮겨졌거나 병원 치료 과정에서 감염됐을 경우의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일뿐이다. 고인을 부검하지 않고 화장함으로써 사인을 밝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다만, 감염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병원 내 감염보다는 개가 감염원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A 교수는 “반려견일지라도 통상 멸균한 물만 먹이지 않는 데다, 산책 등을 하다가 녹농균이 들어있는 물을 먹었다면 물을 당시 입속에 녹농균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와 달리 병원 내 녹농균은 보통 중환자실에 1주일가량 입원한 채 기계 호흡에 의존하는 등의 조건에서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고인이 입원도 하지 않고 치료 6일 만에 사망한 점으로 미뤄볼 때 병원 내 감염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인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고인을 물었던 개의 혈액과 입속에서 녹농균이 검출되는지를 확인한 후 고인의 녹농균과 같은 타입의 균인지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모 대학병원 감염내과 C 교수는 “만약 개한테서도 녹농균이 검출된다면 ‘DNA 핑거프린팅(유전자지문검사)’을 통해 고인의 혈액에서 나온 녹농균과 같은 계열인지 비교하면 녹농균의 유래를 확인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유가족들의 의견이 우선시되겠지만, 사회적으로 논란이 큰 만큼 사인을 규명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스콜라리 광저우 감독 다음달 퇴진,차기 행선지에 벌써 관심

    스콜라리 광저우 감독 다음달 퇴진,차기 행선지에 벌써 관심

    세계적인 명장 루이스 펠리프 스콜라리(68)가 다음달 중국 슈퍼리그 광저우 에버그란데 사령탑에서 물러난다. 스페인 일간 마르카는 20일 “스콜라리 감독이 구단의 재계약 제의를 사양하고 광저우 구단과 작별한다. 그의 계약기간은 다음달을 끝으로 종료된다”고 전했다. 스콜라리 감독은 2002년 브라질의 한일월드컵 우승을 이끈 뒤 포르투갈 대표팀과 잉글랜드 프로축구 첼시, 브라질 대표팀을 맡은 뒤 2015년 광저우 지휘봉을 잡으면서 슈퍼리그에 진출했다.스콜라리는 광저우를 지휘해 슈퍼리그 2연패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축구협회(FA)컵, 중국 슈퍼컵 2회 우승 등을 차지한 데 이어 올해도 슈퍼리그를 제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로선 더 이상 중국에서 이룰 것이 없어 새로운 그라운드에 대한 갈망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지난달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바이에른 뮌헨 감독에서 물러난 뒤 광저우를 새 둥지로 택할 것이란 나오자 “안첼로티는 광저우 제안을 고려해야 한다. 광저우는 안첼로티뿐만 아니라 어느 감독에게도 좋은 클럽이다. 물론 난 11월까지 체결된 광저우와의 계약 기간을 충실히 이행할 생각”이라고 말해 작별하겠다는 결심을 내비쳤다. 마르카에 따르면 스콜라리 감독은 차기 행선지를 고민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클럽 뿐만 아니라 내년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대표팀 감독 자리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저우 구단 역시 스콜라리 감독의 의사를 존중해 새 감독 물색에 나섰는데 최근 독일 언론 ‘키커’는 토마스 투헬 전 도르트문트 감독이 광저우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트럼프, 새달 7일 ‘1박2일’ 방한… 실세 이방카 부부도 온다

    트럼프, 새달 7일 ‘1박2일’ 방한… 실세 이방카 부부도 온다

    “美측, 2박 3일 잡으려 했지만 늦은 밤 도착 의전적 문제 고려”韓서만 하는 국회연설 8일 유력… 트럼프 DMZ 방문 여부도 관심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체류 일정이 1박 2일로 확정됐다.<서울신문 10월 12일자 1면> 트럼프 대통령은 부인 멜라니아와 함께 다음달 7일 오전 국빈 방한해 8일 오후 중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큰딸인 이방카와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 고문도 국빈 방한에 동행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실세’로 꼽히는 이방카는 백악관 보좌관이라는 공식 직책도 가지고 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17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최초로 이뤄지는 방한인 만큼 미국 측에선 2박 3일로 일정을 잡으려 했으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만찬 일정을 마치고 너무 늦은 시간(6일 밤) 한국에 도착하는 데 따른 의전적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7일 오전 도착 일정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방문에 앞서 5~7일 2박 3일간 일본에 머문다. 중국 방문 일정도 2박 3일이다. 한·중·일 3국 중 한국에서만 1박 2일을 머무는 것이다. 일각에선 한국 ‘홀대론’을 제기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러나 “방한일정은 1박 2일이지만 ‘완전한 하루’가 나오고, 방일 일정은 주말(5일)이 끼어 있어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비슷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 도착하는 시간은 5일 오후이고, 방일 마지막 날인 7일에는 아침 일찍 한국으로 출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 첫날 청와대에서 열리는 공식 환영식에 참석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정상회담 직후에는 공동 언론발표가 예정돼 있다. 국빈 만찬과 공연도 개최된다. 한·미 정상 내외의 우의를 잘 보여줄 친교 행사도 준비돼 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일정상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8일이 유력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 연설에 대해 “한·중·일 3국 중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정책 연설을 하는 유일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정은 1박 2일이지만 국회 연설로 ‘실속’을 챙겼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할지도 관심이다.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조지W 부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방한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모두 DMZ를 찾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반도 안보 상황을 고려해 필요한 일정이 있다면 조율해 결정되는 대로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국빈 방문은 한국이 먼저 제안했고, 미국이 응해 확정됐다. 박 대변인은 “국빈 방한은 우리 대통령 임기 중 대통령 명의 공식 초청에 의해 국별로 1회에 한해 가능한 방문으로, 우리나라 최고 손님으로 예우한다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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