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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 되는 혐한…日 출판업계 도 넘는 혐한

    돈 되는 혐한…日 출판업계 도 넘는 혐한

    ‘한반도 지옥’ ‘새빨간 한국’ ‘망상대국’ 대국민 선전구호 같은 원색적 제목들 日대표 출판사까지도 혐한 대열 합류 업계 ‘뭐든지 팔리면 만든다’ 인식 확산 최소한의 책임의식 버리고 판매 혈안 잘 팔리는 책에 혐한서적 끼워팔기도 50대 이상 안정적 독자층이 ‘황금어장’ 한국인 필자 내세워 신빙성 높이기도 뿌리 깊은 한국 차별·우월의식도 작용‘한반도는 왜 항상 지옥이 반복되는 것일까’, ‘새빨간 한국: 김정은에 조종되는 친북정권의 절망적 내막’, ‘숨 쉬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한국’, ‘망상대국 한국을 비웃다’. 일본의 대다수 서점에서는 보편적 상식에 비춰 볼 때 “이런 제목으로, 이런 내용의 책을 만들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혐한서적’들이 자극적인 색깔로 치장한 채 주요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서점이나 편의점 입구 진열대에 꽂혀 있는 주간지, 월간지의 한국과 한국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 비난은 마치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의 대국민 선전 구호를 방불케 한다. 일본 출판계의 고질적인 혐한 선동이 한일 갈등 국면에 편승해 더욱 볼썽사납게 확대, 심화되고 있다. “출판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도, 책임의식도 던져 버리고 오직 판매량에만 혈안이 돼 벌거벗고 달려드는 형국입니다. 일본의 출판 수준이 이렇게까지 저열하게 떨어진 적은 없었는데, 정말 수치스러울 정도입니다.” 서울 특파원 경력이 있는 40대 일본 신문기자는 9일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최근 들어 기존의 우익 성향 출판사뿐 아니라 일본을 대표하는 곳까지 혐한 대열에 뛰어들며 전체 독자 저변을 넓히고 있다는 점이다.켄트 길버트라는 일본 거주 미국인 변호사가 2017년 출간해 50만부가량 판매된 ‘유교에 지배된 중국인과 한국인의 비극’은 일본 최대 출판사인 고단샤에서 나왔다. 매출만 아니라 독자 선호도에서도 최상위인 고단샤 같은 곳에서 이런 책들이 나오면 혐한을 몰랐던 사람에게는 ‘믿음’을, 혐한에 경도돼 있는 사람에게는 ‘확신’을 심어 주기 마련이다. 길버트 본인이 쓴 것인지에 대해서조차 의문이 많은 이 치졸한 내용의 책이 대히트를 기록한 데는 “고단샤에서 나왔으니까 산다”는 독자들의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주간지, 월간지들도 혐한 선동가들을 끌어모아 왜곡되고 날조된 글들을 ‘기사’나 ‘기고’ 형태로 내보내는 데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도 주류 출판사들의 합류가 두드러진다. 최근 ‘한국 따위 필요 없다’라는 특집기사를 실어 물의를 빚자 마지못해 사과했던 ‘주간 포스트’도 일본 내 ‘톱5’에 드는 쇼가쿠칸에서 나온 것이었다. 기존 혐한 사업자들의 전략도 한층 교묘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수법이 한국인 필자들을 내세우는 것이다. ‘한국 사람조차 저렇게 말할 정도’라는 이미지를 통해 주장의 신빙성을 높이려는 속셈이다. 유명한 혐한잡지 ‘하나다’는 최신 10월호에서 ‘한국이라는 병’ 기획특집 아래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의 ‘한국 옥중수기: 문재인의 정치범 수용소’와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문재인의 반일로 한국은 멸망해 버린다’를 실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반일’, ‘친북’을 집중 부각시키는 행위다. 이를테면 ‘하나다’ 10월호에 실린 ‘특종: 문재인에 조선노동당 비밀당원 의혹’ 같은 따위의 글들이다.일본에서 ‘혐한’이라는 개념이 미디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92년이었다. 이후 관련 서적들이 하나둘 출간되고 언론들이 이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심 있게 보도를 이어 가면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굳어졌다. 2005년 출간돼 순식간에 30만부가 팔린 ‘만화 혐한류’는 혐한서적 붐을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이 만화책은 ‘객관성을 유지할 것’(가장할 것), ‘알기 쉽게 쓸 것’이라는 혐한서적의 2대 원칙을 수립했다는 평까지 받았다. 혐한 경쟁 속에 ‘매한’(韓·어리석음), ‘증한’(憎韓·증오), ‘정한’(征韓·정복), ‘치한’(恥韓·수치), ‘붕한’(崩韓·붕괴) 등 파생어들이 속속 등장했다. 2012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혐한 열기가 달아오른 가운데 2014년 등장한 ‘한국인에 의한 치한론’은 혐한서적 붐을 재점화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신시아 리’라는 자칭 한국인이 쓴 이 책은 예약 주문이 쇄도해 발매도 되기 전에 이미 증판이 결정됐고 나온 지 3주 만에 10만부 이상이 팔렸다.출판사들이 혐한 소재에 눈을 돌리는 것은 한번 찍어 내기만 하면 몇 배의 수익을 올려 주는 ‘황금어장’으로 보기 때문이다. 주된 독자층은 어느 정도의 안정적 기반을 갖고 있는 50대 이상으로 추정된다. 30여년간 한국과 관계를 맺어 온 사와다 가쓰미 마이니치신문 외신부장은 최근 칼럼에서 “1980년대까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인상은 ‘군사정권’이라는 부정적인 것이었는데, 이러한 ‘옛날 한국’의 이미지가 영향을 주는 듯하다”며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작고 약했던 한국이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따라와 주제넘은 말을 한다는 등의 인식이 혐한으로 이어진 것 아닌가 한다”고 밝혔다. 혐한서적 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1990년대 이후 지속되고 있는 일본 출판업계의 불황이다. 생존이 어렵다 보니 ‘뭐든지 팔리기만 하면 만든다’는 풍조가 업계에 확산돼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됐던 ‘주간 포스트’도 한때 동종 1위 잡지였다. 그러나 발행 부수가 급격히 줄면서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게 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많은 출판사가 서적 제작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편집 대행업자라는 영세 사업자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에 맞춰 납품할 것을 요구하는 하청 관행도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대행업자들은 계속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비판의식, 책임의식은 뒷전으로 한 채 출판사의 무리한 주문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유능한 혐한 이야기꾼’을 찾게 된다. 혐한단체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모임’(재특회)의 창설자로 2015년 ‘대혐한시대’를 쓴 사쿠라이 마코토 같은 인물도 이런 식으로 발굴된 경우다.이러한 ‘혐한 하청공장’ 제작 관행은 지난 4월 마이니치신문에 실렸던 전직 혐한서적 편집 대행업체 직원(30)의 고백을 보면 잘 나타난다. 주요 부분을 요약하면 이렇다. “2015년 중견 출판사로부터 ‘일본을 비판하는 세계 각국의 주장’에 대해 책을 써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던 사장과 나는 당시 ‘무슨 일이 됐든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나는 한국·중국의 반일 정서, 미국의 일본 때리기뿐 아니라 일본의 고래잡이를 비판하는 국제환경단체까지 아우르는 집필 기획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출판사 측은 대번에 ‘다른 나라는 빼고 한국으로만 가자’고 했다. 그 출판사는 당시 혐한서적들로 상당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혐한서적 제작의 기계가 됐다. 많게는 한 달에 2건씩도 썼다. 일감이 너무 밀려 일주일에 4일을 회사에서 잘 때도 있었지만, 그때는 너무나 신바람이 나서 일했다. 출판사 납기일이 빠듯해 취재는 불가능했고 연합뉴스, 조선일보 등의 일본어판 중에서 일본을 비판한 부분만 뽑아내 집필에 이용했다.” 잘 팔리는 책에 혐한서적을 끼워팔기식으로 억지로 밀어 넣어 서점에 납품하는 일부 출판사의 횡포도 서점들이 혐한서적을 주요 공간에 진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유다. 일본 출판계의 혐한 붐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의식과 우월의식 및 한국에 대한 견제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아시아 최강대국이 중국으로 바뀐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공격을 통해 일본인들의 상실감을 달래고 쾌감을 주려는 목적도 크다. ‘만화 혐한류’로 대박을 낸 다카라지마샤는 ‘보수층과 한국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울분을 달랜다는 것’을 제작의 철칙으로 삼고 있다. 일본 언론에 대한 불만도 이유로 든다. ‘만화 혐한류’의 저자 야마노 샤린은 “혐한류는 한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비판을 터부시하는 일본의 보도 풍조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이라며 일본 미디어의 한국에 ‘과도하게 우호적인 시각’이 동기가 됐다고 말하고 있다. 1923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논픽션 작가 가토 나오키는 “일본에는 혐한도 있고 혐중 정서도 있지만 과거 식민 지배 등 경험이 있는 한국에 대한 시선이 중국보다 훨씬 더 차별적”이라며 “현재의 혐한 분위기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량 학살을 낳았던 유언비어의 현대판”이라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산케이 “아베, 신임 방위상에 고노 외무상 임명 검토”

    산케이 “아베, 신임 방위상에 고노 외무상 임명 검토”

    외무상은 모테기 임명 관측…실용성 중시, 보수·우파 성향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고노 다로 외무상을 방위상에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일본 산케이신문이 8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최근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방침을 밝힌 가운데 한미일 3국의 안전보장 협력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고노 외무상을 방위상에 기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노 외무상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두터운 신뢰 관계를 쌓아 왔으며 아베 총리는 그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계속 시정을 요구한 것을 ‘의연한 대응’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산케이는 전했다. 11일 단행할 개각에서 산케이 보도처럼 고노 외무상이 방위상으로 자리를 옮기면 한일 관계 악화와 관련해 ‘한국 책임론’을 되풀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노 외무상은 최근 각국 언론사에 기고문을 보내 ‘징용 배상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며 지소미아 종료는 동북아 안보 환겨을 오판한 결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직인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은 아베 정권 각료로서는 한국에 대해 비교적 유화적인 입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노 외무상이 방위상으로 임명되면 방위성이 한층 강경 노선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 외무상에는 모테기 도시미쓰 경제재생상이 임명될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관측하고 있다. 그는 도쿄대 졸업 후 미국 하버드대학원을 수료하고 보수 성향 요미우리신문 정치부 기자와 매켄지의 컨설턴트 등으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때 외무부 대신을 역임했다. 이후 중의원 후생노동위원장, 금융·행정 개혁 담당상, 자민당 간사장 대리,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을 지냈으며 2012년 12월 아베 총리가 재집권한 후에는 경제산업상,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정무조사회장, 경제재생담당상 등 요직을 차지했다. 미일 무역 협상을 담당해 온 그는 실용성을 중시하고 실무와 관련해 장악력이 높으며 직원들에게 엄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테기는 앞서 일본 패전일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 계획이 없다고 미리 밝히기도 하는 등 극우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행동과는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고 개헌을 지지하는 우익단체 일본회의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에 참여하는 등 보수·우파의 시각을 견지한 것으로 보인다. 개각 이후에도 한일 관계는 외교·안보 면에서 경색 국면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상층부·하층부로 나뉜 ‘이중의 세계화’… 문화 풍경까지 바뀌고 있다

    상층부·하층부로 나뉜 ‘이중의 세계화’… 문화 풍경까지 바뀌고 있다

    2019년 세계의 화두 중 ‘세계화의 후퇴’가 있다. 세계화의 상징이던 동아시아와 미국의 분업체계는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무역전쟁으로 파열음을 내며 찢어지고 있다. 국적과 문화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이동해 정착하고 공존할 것이라는 다문화주의의 이상 또한 난민 위기와 반이민 운동으로 큰 위기에 봉착했다. 20년 전인 1999년만 해도 ‘세계화의 후퇴’ 같은 이야기는 상상도 하기 힘든 것이었다. 1999년에 반세계화라 함은 세계무역기구(WTO)의 개최를 막고자 세계 각지의 비정부기구(NGO)들이 달려가 싸웠던 ‘시애틀 전투’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었지 주류 정치를 흔들고 강대국 관계를 뒤엎는 거대한 조류와는 정말 큰 거리가 있었다.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해 보자면, 2000년대에는 초등학생인 나조차도 우루과이라운드, 세계무역기구, 자유무역협정 같은 어려운 말들에 비교적 익숙했고 세계화는 한국이 나아가야 할 미래였다고 기억한다. 당연히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같은 반세계화의 구호를 접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지난 20년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세계화는 그 짧은 전성기를 끝내고 위기를 맞은 것일까.●세계화와 다보스맨의 진군 구 공산권이 무너지고 월드와이드웹(www.)이 새로운 차원의 정보혁명을 가져다주면서, 20세기의 마지막 10년간 세계화는 무서운 속도로 진행됐다. 물론 그 밖의 다른 변화들도 드넓은 이 행성을 ‘지구촌’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세기 후반 이루어진 항공 교통의 대대적 확장, 컨테이너 항구의 등장으로 물류비의 혁신적 절감 등 교통에서의 변화가 있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체제를 뒤로하고 등장한 WTO, 유럽통합 산물인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이 변화의 주역이다. 세계화는 각각의 변화가 다른 변화를 자극하면서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진행됐다. 이 변화를 최전선에서 이끈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배경을 공유하던 사람들, 소위 ‘다보스맨’이라고도 불리는 글로벌 엘리트들이었다. 수준 높은 고등교육을 받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유명 세계 도시들을 징검다리 건너듯 돌아다니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세계화라는 연극에서 이들이 맡은 배역이 같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실리콘밸리에서 세상을 바꿀 혁신을 만들었고, 다른 누구는 세계화를 촉진시키려는 규제 개혁안을 입안하고, 누군가는 중국에 새로 지을 공장 부지를 탐색했다. 하지만 국적, 성별, 나이 등이 달랐다 할지라도 세계화가 창출해 내는 거대한 기회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커다란 공통점을 가졌다고 하겠다. 경제적 공통점은 곧 문화적 공통점으로 이어졌다. 성별과 인종에 상관없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세계 도시를 누비고 음악, 미술, 스포츠에서 수준 높은 교양을 확보했다. ‘글로벌 이슈’를 논평할 지식도 갖춘 이들이 세계 각지에서 부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성별과 인종 따위에 연연하는 것은 ‘쿨(cool)하지 못한’, 하층민의 습성으로 간주됐다. 글로벌 엘리트 사회에 녹아들려면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예법을 익혀야만 했다. 이런 세계화에서 움직인 것은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금융자본과 고급 인적자원을 만들어 내는 지식의 흐름이었다. 이를 각각 금융의 세계화와 지식의 세계화라고 하자.●생산력 위해 이주한 하층의 세계화 하지만 영어능력, 자산, 교육수준 등의 문제로 이런 기회를 잡아낼 수 없는 선진사회 하층에게 이런 이야기는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이야기에 불과했다. 물론 그렇다고 세계화가 그들을 아예 비켜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상층의 세계화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한 세계화의 역습이었다. 첫째는 생산의 세계화였다. 정보기술은 연구개발, 단순조립, 마케팅에 이르는 복잡한 생산 사슬을 세분해 세계 각지에 흩어놓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복잡한 도면부터 방대한 회계자료까지 모든 종류의 정보가 디지털 자료로 변환돼 지구 각지를 돌았다. 그 결과 그 이전까지 볼 수 없던 거대한 규모의 산업 이전이 가능해졌다. 고도의 숙련이 필요하지 않았던 단순 제조의 경우 이미 가격이 오를 대로 올라 있던 선진사회의 노동력을 값싼 구 공산권, 제3세계 인력들이 대체해 나갔다. 선진사회의 하층민들이 겪은 생산의 세계화는 그들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었던 셈이다. 둘째는 이주의 세계화였다. 역내 경제통합이 가속화하면서, 더 높은 임금과 계층 상승의 기회를 찾아 개발도상국의 노동력이 선진사회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유럽인·아랍인·터키인은 서유럽으로,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인들은 미국과 캐나다로, 중국인과 베트남인은 한국과 일본으로 이주해 갔다. 물론 이 외에도 수많은 국가에서 수많은 나라로 이주의 흐름이 이어졌다. 이주민들은 자신들만의 디아스포라(타지에 정착한 이주민 공동체)를 만들어 나갔고, 본국에 있던 친척과 지인들을 계속해서 불러들였다. 이들은 선진사회의 원주민들이 더이상 종사하려 하지 않았던 저임금 일자리를 기꺼이 맡았다. 선진사회의 하층민들은 자신들의 전통적 생활공간의 풍경을 계속 바꿔나가는 이주민들의 흐름에서 문화적 불안감을 느꼈고 원주민의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경제적 불안감으로 이어졌다(실제 일어난 현상보다는 심리 상태에 주목한 것이다). 이주의 세계화도 그다지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세계화의 이중성 하지만 ‘금융과 지식의 세계화’에서 이득을 본 상층민이 ‘생산과 이주의 세계화’로 손해를 본 하층민을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사실 생산과 이주의 세계화로 개발도상국 시민들은 전에 경험하지 못한 급속한 생활수준의 향상을 느낄 수 있었고, 이는 세계화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자부심을 느낄 만했다. 또 계속 임금이 올라가는 고임금 직종에 종사하며 이주민들로 다채로워진 문화 콘텐츠와 저렴한 서비스를 즐기게 됐는데 세계화에 반대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반대한다면 그들을 그저 역사의 흐름에 뒤처진 이들로 매도하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이제 글로벌 엘리트에게는 같은 나라의 하층민보다 다른 나라의 글로벌 엘리트가 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상대가 된 지 오래였다. 계층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 세계화는 선진사회에서 이처럼 큰 골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로만 설명할 수 없고 심리적인 문제도 개입된다. 경제 위기, 산업 공동화, 이주 흐름이 이어지며 올라온 심리적 불안감은 안정적인 민족 공동체를 위협하는 외부인과 손을 잡은 타락한 엘리트에 대한 분노라는 형태로 구체화했다. 바로 이것이 2016년 영국의 EU 탈퇴를 결정한 ‘브렉시트’와 ‘트럼프 대통령’을 현실화시킨 가장 큰 공신이었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영국과 미국에서 벌어진 정치 위기 이후 글로벌 엘리트에 속하는 지식인들이 수도 없이 논의한 이 같은 서사를 3년이나 지난 지금 또 꺼낼 필요가 있을까. 이제 계층에 따라 차등적이었던 세계화가 지금의 반세계화 돌풍으로 이어진 것은 알 만한 식자층 사이에서는 상식 아닌가. 굳이 이런 상식을 또 들어야 하나. ●한국에서 일어나는 세계화의 이면 충분히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서사가 다소 진부할지라도 계속해서 사회에 환기돼야 한다. 서유럽과 북미에서 일어난 일들이 다소 시간 차를 두고 동아시아에 찾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확실히 국내에서 이 문제를 다룬 글들을 읽어 보면 하나같이 ‘외국에서 일어나는 일’ 정도로만 소개된다. 하지만 함께 진격하는 상층의 세계화와 하층의 세계화는 분명히 비교적 동질적인 편에 속하는 한국에서도 상당한 골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나는 인구 4만명의 시골에서 자랐고 지금은 세계적 수준의 엘리트를 길러내는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나는 한국에서도 이미 이중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체감했다. 서울대의 많은 학생은 일찌감치 세계를 경험하고 유창한 영어실력을 자랑하며 세계 경제에서 한국이 점하는 위치를 활용해 고소득 직군에 합류한다. 미국과 유럽에 친구를 두고 있고 선진사회에서 상식으로 통용되는 문화적 규범과 글로벌 엘리트들이 즐기는 콘텐츠에 익숙하다. 사실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화의 풍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 고향에 내려가서 느끼는 세계화는 전혀 달랐다. 생산의 세계화로 말미암아 과거 4인 가족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게 해준 제조업 일자리는 사라져 가고 있고, 그 때문인지 지방의 소읍들은 어느 곳이나 고향의 정겨움보다는 쇠락해 가는 을씨년스러움을 풍기고 있다. 대신에 번창하는 것은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해외식품점이다. 작년 추석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고향 재래시장 주변으로 골목마다 삼삼오오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 장을 보고 외식을 하고 있었다. 아마 추석에는 공장도 쉬니 그동안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이주민들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온 것이리라. 예컨대 서울대의 청년들이 미국과 독일에서 친구들을 만든다면 이제 이곳의 청년들은 키르기스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온 노동자들과 밥을 먹고, 식당 아주머니들은 중국과 베트남 결혼이주민과 일을 같이 해야 한다. 이중의 세계화는 관계 맺는 국적에서부터 어느 정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선진사회의 일원으로서 한국 또한 서유럽과 북미에서 일어난 일을 비슷한 시간표로 같이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달라지는 시골의 풍경 지방에서 이 같은 풍경이 만들어 내는 드라마에는 물론 흥미로운 구석과 긍정적인 부분도 무척 많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불안감을 만들어 내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봄, 고향의 한 골목에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노동자 15명이 맥주를 마시면서 길을 점거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러시아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서 이들과 나름 재밌게 소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물음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20년 뒤 우리 고향의 풍경은 대체 얼마나 어떻게 ‘세계화’할 것인가.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운영도 불가능해진 공단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내 고향의 다문화 청소년들은 어떤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상층 세계화의 수혜를 보는 엘리트들은 이 같은 질문이 자신들과 상관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아마 어느 정도로 진행되고 있는지 감도 잘 안 잡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유럽과 북미가 겪었던 정치적 혼란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는 이 같은 질문들에 대해 진지하게 답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특히 공간과 계층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세계화의 변검술에 대해서. 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 ■임명묵은 현재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다. 서아시아 지역을 전공하며, 그 외에도 다양한 지역과 국가들이 20세기 현대 세계를 어떻게 형성해 나갔는지를 방대한 독서를 기반으로 설명하는 데 관심이 많다.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저자.
  • [미래유산 톡톡] 길 위에서 만난 애국지사들의 결의

    [미래유산 톡톡] 길 위에서 만난 애국지사들의 결의

    서울 중랑구 망우동과 면목동,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망우산은 해발 281.7m이며 망우산 일대에는 서울시립장묘사업소 망우묘지가 있다. 이 지역 5.2㎞의 산책로 곳곳에 독립운동가들과 문학과 예술계의 유명인사들이 잠들어 있다. 안창호 선생의 묘도 이장되기 전에는 이곳에 있었다. 산책로의 이름을 공모해 1998년 5월 ‘사색의 길’로 정하고 도시환경과 자연관찰로 종합안내판, 정자, 약수터 등을 설치해 주민들의 휴식 및 자연공원으로 애용되고 있다. 조선의 독립을 외쳤던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올해로 100년이다. 같은 해 11월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으니 이 또한 100년이다. 여느 때보다 망우리 공원의 묘역들을 찾는 발걸음에 묵직한 무게가 실린다. 1920년 9월 경성부 서대문감옥 여자 8호 감방에서 사망한 18세 소녀 유관순은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다가 공동묘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2만 8000명 분묘 화장 때 합장됐다. 오랫동안 ‘이태원묘지 무연분묘 합장비’로만 기억되다 2018년 9월 7일 기념사업회 등에서 ‘유관순 열사 분묘합장묘지비’를 마련하면서 비로소 이름을 얻었다. 참 무심했고, 오래 걸렸다. 상하이 임시 정부에서 도산 안창호의 비서로 일한 유상규의 묘를 볼 수 있다. 묘 앞의 연보비에는 춘원 이광수가 쓴 ‘도산 안창호’에 나오는 “도산의 우정을 그대로 배운 사람이 있었으니 그것은 유상규였다. 모든 시간을 남을 돕기에 바쳤다”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민족대표 33인으로 3·1 독립선언을 주도한 만해 한용운 묘소도 볼 수 있다. 그는 옥중에서 작성한 ‘독립의 서’를 집필하다가 발각되지만 일부를 휴지에 옮겨 형무소 밖으로 빼내는 데 성공했다. 아내 유씨와 나란히 묻힌 공동묘역은 볕이 잘 들고 비교적 잘 관리된 편이다. 4㎞ 남짓한 산책로에 있는 독립애국지사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보니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말이 새삼 다르게 와닿았다. 8·15 해방 74년을 맞은 지금, 망우리에 묻힌 순국선열들의 희생에서 첨예한 대치 국면에 처한 한일 양국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이지현 책마루 연구원
  • 교통망 호재… 마포·강서 집값 상승

    교통망 호재… 마포·강서 집값 상승

    한일 관계 악화 등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전국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하락 폭이 줄어들었다. 대표적으로 서울의 경우 가을 이사철 수요와 선호도 높은 역세권 위주로 상승 폭이 늘었다. 은마 등 강남 재건축 주요 단지들은 하락했지만 마포구(0.05%)는 공덕오거리 인근 위주로, 강서구(0.04%)는 교통 여건 개선(월드컵대교, 강북횡단선) 여파로 전주보다 집값이 올랐다. 경기 지역은 교통망 확충 등 개발 기대감 영향으로 지난해 11월 셋째 주 이후 40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전국 주간 아파트 전세가격은 전주와 비교해 하락 폭이 줄어들었다. 수도권은 상승 폭(0.02→0.04%)이 확대됐다.
  • 금리인하 실탄 아껴둔 한은…연내 추가 인하 가능성

    금리인하 실탄 아껴둔 한은…연내 추가 인하 가능성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30일 기준금리를 연 1.5%로 동결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대내외 경기 상황을 지켜보자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직전에 열린 지난달 금통위에서 금리인하를 단행했다는 점을 감안해 우선 ‘실탄’을 아껴뒀다가 향후 미중 무역분쟁, 한일 경제갈등 등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을 통해 “국내 경제의 성장세가 완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상승압력이 낮은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되므로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과정에서 향후 거시경제와 금융안정 상황의 변화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완화 정도의 조정 여부를 판단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지난달 ‘깜짝 인하’ 결정을 내린 만큼 이번달에는 금리 인하 카드를 아껴 둘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경기가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두 달 연속으로 금리를 내리기에는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경기 상황만 보면 금리 인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이은 인하는 부담이 있다”며 “경기 상황에 따라 추가 금리 인하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은이 한 차례 더 금리를 내리면 역대 최저금리(연 1.25%)와 같아진다. 한은은 지난 2016년 6월 기준금리를 1.5%에서 1.25%로 0.25%포인트 내렸다. 이후 2017년 말까지 역대 최저금리 수준이 유지되다 2017년 11월 1.5%로 인상됐다. 하지만 녹록치 않은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추가 금리인하 여지는 열려 있다. 한은은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세계경제는 교역이 위축되면서 성장세가 둔화됐다”며 “국내경제는 미중 무역분쟁 심화,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 등으로 성장 전망경로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시장의 관심은 추가 인하 시기에 쏠린다. 올해 남은 금통위는 오는 10월 16일, 11월 29일 두 차례다. 한 발 더 나아가 내년 1분기 추가 금리인하가 한 차례 더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윤여삼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내년까지 일본과의 마찰 등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연내 및 내년 상반기 한 차례씩 금리를 내려 기준금리가 연 1%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다”며 “개인적으로는 0.75%까지 내릴 수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인하 속도가 어떻게 달라질지도 지켜봐야 할 변수다. 다만 금리인하가 가계부채 증가, 집값 상승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은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가계 빚 잔액은 1556조 1000억원으로 지난 3월 말과 비교했을 때 16조 2000억원(1.1%) 증가했다. 1분기 증가폭인 3조 2000억원(0.2%)보다 확대된 것이다. 한국감정원 조사에 따르면 이번 주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 대비 0.03% 오르며 9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흉악범 신상공개 논의 필요… ‘조국 논란’ 젊은층 시각 기사 적어

    흉악범 신상공개 논의 필요… ‘조국 논란’ 젊은층 시각 기사 적어

    서울신문은 최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 일본의 수출 규제와 미중 무역전쟁 격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검증을 비롯한 각종 현안을 다룬 지난 한 달간의 보도 내용을 놓고 지난 27일 ‘제120차 독자권익위원회 회의’를 열었다. 김만흠(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위원장과 홍영만(차의과학대 경영대학원장), 심훈(한림대 언론학과 교수), 김재영(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박준영(변호사), 유승혁(경희대 언론정보학과 3학년) 독자권익위원이 참석했다. 아래는 위원들의 의견이다.박준영 흉악범의 신상공개나 변호에 대해 언론이 더 고민해야 한다. 이른바 ‘한강 몸통 시신 사건’에서는 피의자가 자수를 했는데,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맞는가. 강력범 신상공개 관련 법령이 2010년 만들어진 뒤 신상이 공개되는 사건이 많지 않다가 최근에 많아졌다. 잔인한 범행이나 국민의 알권리, 2차 피해 가능성이 줄어드는 경우 등 몇 가지 기준이 있다. 그러나 결정을 내리는 경찰청 위원회의 외부 인사 비중이 높아 여론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는 것처럼 보인다. 흉악범의 신상공개는 주변 사람들의 인권침해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전남편을 살해·유기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도 얼굴이 공개됐다. 이후 강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고유정의 사진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그 피해자의 아들은 성장 과정에서 또 다른 고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에서는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지만 역사나 문화가 우리나라와 다르다. 미국의 경우 로스앤젤레스 호텔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의자 동생이 직접 얼굴을 드러내고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사회여서 우리나라와 직접 비교하기가 어렵다. 흉악범 변호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도 높다. 태극기 부대에 대한 기획 기사와 영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이해를 높였듯, 흉악범 변호에 대해서도 비슷한 접근이 필요한 때다. 우리 사회의 대립각이 깊어질 때 언론이 미처 몰랐던 상대의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한편 서울경찰청에 찾아간 피의자를 돌려보낸 경찰을 비판하는 내용과 검찰에서 발생한 비슷한 사건이 기사로 나왔다. 잘못된 공무집행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지만 인력의 한계나 당시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경찰과 검찰이 보수적이고 소극적으로 일하게 할 수 있다. 심훈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기사가 많았는데 젊은 세대의 시각에서 접근한 기사는 적다는 아쉬움이 있다. 앞서 서울신문은 창간 115주년 기념 특집 ‘90´s 신주류가 떴다’에서 불행을 느끼는 1990년대생에게 행복의 열쇠는 공정과 기회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울신문은 조 후보자와 가족의 탈세나 위장 이혼 등을 주로 다뤘고 대학생들이 조 후보자에게 분노하고 촛불을 들게 하는 자녀의 대입이나 논문, 장학금 관련 의혹에는 집중하지 않았다. 이는 법적으로 하자가 없더라도 불공정성이나 비균등한 기회의 측면에서 중요한 문제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 대한 조사를 한 뒤에 추후 취재와 기사 작성에서도 따로 가지 않았으면 한다. 유승혁 팩트체크 기사는 여러 기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팩트체크를 충실히 하면서도 조 후보자에 대한 대학가나 단체의 시위 등을 더 많이 다뤄 주길 바란다. 김재영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나 일본의 백색국가 배제 결정, 미중 경제갈등, 북한의 수차례 미사일 발사 등 굵직한 외교·안보 이슈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신문에서는 데스크 시각 등 칼럼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선명한 구도를 제시했다. ‘경제주권은 경제구조를 바꿔야 가능하다’거나 ‘미일중은 남북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글은 새로운 각도이면서도 국민들의 정서에 와닿는 콘텐츠였다. 다만 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후폭풍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사설은 위기관리와 후폭풍을 혼동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이 ‘주목 경쟁 시대’에 더 선명하고 와닿는 기사를 작성하면서도 적절한 표현을 골랐으면 한다. 유승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외교부가 방위비 증액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냈는데, 제목에는 미국의 입장만을 담은 것도 아쉽다. 최근에는 제목만 읽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 정확한 팩트를 담는 게 중요하다. 홍영만 오피니언면에는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를 담아 가독성을 높여 줬으면 한다. 이윤경 토론토대 교수의 기고문은 노동에 대해 알기 쉽게 핵심을 골라 써서 눈길을 끌었다. 심훈 ‘이것은 여름방학인가 여름학기인가’라는 유다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기자의 기고가 눈에 띄었다. 묵직한 정치와 경제 이슈가 독자의 숨을 막히게 하는 가운데 초등학생들이 어떤 과제에 짓눌려 있는지 잘 보여 줬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의 애로 사항을 보여 줬으면 한다. 또한 우리나라는 모든 신문의 오피니언 구성이 비슷한데 꼭 똑같이 구성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뉴욕타임스는 오피니언면이 한 면으로 분량이 많지 않고 삶에 밀착된 새로운 소재를 다룬다. 김재영 행정관료의 기고문은 주제가 다소 홍보성 성격이 짙어 아쉬울 때가 있다. 또한 그동안 부족했던 여성이나 문화 관련 칼럼진을 강화하면서 정통 분야는 적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계층의 전문가 기고를 담아 집단 지성으로 내용이 풍부해지길 기대한다. 유승혁 복지 사각지대의 비극을 주목한 시리즈 기획 기사가 눈에 띄었다. 송파 모녀나 탈북 모자처럼 비극적인 사례가 드러난 뒤에야 사회가 복지 사각지대를 주목하곤 한다. 이런 후속 기사가 나오길 바라고 있었다. 언론의 역할은 상처 난 부위를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복지의 허점을 잘 짚었고 짜임새도 좋았다. 김재영 이달에도 호반건설그룹에 대한 집중 해부가 많았다. 독립 언론을 지향하기 위한 기사이지만 지면 사유화라는 시각도 있다. 앞으로는 호반건설에 국한하지 말고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건설업에서 벌어지는 위법적 활동으로 시야를 넓혔으면 한다. 특히 지역 민영방송에서는 건설업계와의 유착이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지만 지역 언론이 나서서 이를 조명하지 않았다. 지역방송의 전반적 문제로 전선을 확대하는 식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도 제안해 본다. 홍영만 사진 선택을 더 신중하게 해 주길 바란다. 최근 반도체 경기가 위축되는 데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전자업계가 어렵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파주의 LCD 공장을 찾은 사진을 신문에 실었는데, 한가로운 전시장의 모습이어서 사진만으로는 경기 불황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사안을 잘 파악하고 있는 독자라면 이해를 했겠지만 반대라면 다른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경제의 어려움을 보여 주는 다른 사진을 골랐으면 좋았을 것이다. 심훈 최근 들어 여성 홍보 모델의 사진이 유난히 화려하게 많이 나왔다. 경제면에서도 행사 사진보다는 서민경제의 현황을 보여 주는 사진이 더 늘어나기를 바란다. 김만흠 정치 기사에서는 다른 언론에서 못 보던 참신한 기사들이 있었다. 양 정당의 연구원장 행보나 여야 청년 대변인 확대를 짚은 기사가 그러하다. 그런데 균형감과 새로운 정보 제공 측면에서 10% 정도 아쉬운 느낌이 있다. 예컨대 독자라면 원장의 행보만큼이나 정당연구원 본연의 역할은 무엇인지도 궁금할 것 같다. 정리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암 이기고 日 적응한 억척순이 “골프엔 한일 갈등 없어요”

    암 이기고 日 적응한 억척순이 “골프엔 한일 갈등 없어요”

    해외여행 갈 수 있다는 말에 운동 시작 日 진출 직전 신장암… 4차 치료만 남아 현지서 옷차림에 혼나고 잔디 적응 ‘진땀’ 좌충우돌 1년 만에 집 마련할 만큼 성장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3년째를 보내고 있는 이민영(27)은 신장암을 극복한 ‘투혼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 4개의 우승컵을 수집한 그는 JLPGA 투어에서도 4승째를 올리며 새 삶과 두 번째 골프인생을 즐기고 있다. 29일 개막하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한화클래식에 출전하기 위해 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이민영을 28일 강원 춘천의 제이드팰리스 골프클럽에서 만났다. 이민영이 골프채를 처음 잡은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당시 맞벌이로 집안 식구를 부양하던 부모님과 놀이공원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이었던 그는 ‘골프를 잘 하면 해외여행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말에 골프에 ‘올인’했다. 데뷔 후 4승을 올린 뒤 미국 진출도 생각했다. 당시 국내 승수가 4~5승 정도 되면 LPGA 투어 진출에 욕심내는 것이 통상적인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민영은 몸을 낮췄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미국 갈 ‘사이즈’는 안 되더라고요”라면서 솔직한 답변을 내놨다. “멘털로 보나 기량으로 보나 무리라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대신 일본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신장암이라는 병마가 덮쳤다. 진행 정도가 비교적 더딘 1기에 병세를 알아차린 이민영은 1년 동안 투어를 중단하고 치료에 나섰다. 급한 불은 껐지만 그는 지금도 항암치료 중이다. 오는 12월 마지막 4차 치료를 남겨놓았다. 이민영은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2016년 J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해 꿈에 그리던 ‘해외여행’을 시작했다. 그는 JLPGA 투어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 경제적인 매력이 있다. 미국 LPGA 투어에 비해 가성비가 좋다고나 할까. 연간 38개 안팎의 대회 상금도 미국에 견줘 뒤지지 않은데 투어 비용도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고 말했다. 데뷔 첫해 몇 개월 동안은 ‘좌충우돌’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모자를 쓰고 클럽하우스에서 식사를 하다 40대의 일본 선배에게 혼쭐이 났고, 청바지 차림으로 코스 구경을 나갔다가 골프장 직원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특히 일본 특유의 ‘고려’(고라이) 잔디에 한동안 적응을 하지 못해 진땀을 흘렸다. 이민영은 “데뷔 첫해 상반기에는 정말 ‘여긴 어디? 난 누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고 돌아봤다. 이민영은 꾸밀 줄 모르는 대신 억척스럽다. 데뷔한 지 1달 반 만에 야마하 레이디스 우승 부상품으로 받은 피아노와 요트를 다 팔아 집 장만의 종잣돈으로 삼았다. JLPGA의 억척순이답게 1년 만에 도쿄타워 근처에 집을 마련했다. 한일 관계가 급속히 얼어붙었지만 이민영은 “골프 코스에서는 두 나라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상대 선수나 갤러리 등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정치와 외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건 오직 TV뉴스뿐”이라고 전했다. 글 사진 춘천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글로벌 In&Out] 130년 전의 한일 관계와 현재의 한국 사회/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글로벌 In&Out] 130년 전의 한일 관계와 현재의 한국 사회/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지방에 있는, 나름대로 큰 회사에서 일하는 외국인 친구와 얼마 전에 만났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인데도 꽤 놀라운 통찰력을 자랑한다. 그의 이번 분석은 현재 한국 정치에 관한 것이다. “알파고! 현 정부가 그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최저임금을 확 올려 주고,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고 대기업들을 힘들게 하는데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냐? 현 정부 뒤에는 젊은층으로부터 나온 어마어마한 분노의 민심이 있어. 그래서 조국 후보 사태 하나만으로 쉽게 힘들지도 않고, 대기업들에 쌀쌀(살살) 하지도 않을 것 같아.” 대충 이해가 됐지만, 선택한 단어 때문에 중간에 우왕좌왕했다. 그래서 물었다. 조금 전에 지적한 “젊은층으로부터 나온 어마어마한 분노”는 무슨 말인가? 그는 일단 자기 회사 경험을 제시해 설명을 시원하게 했다. “우리 회사 사장님이 말 그대로 예의가 없다. 얼마 전에 모두들 앞에서 누구에게 욕을 한 다음에 우리 보고 “내가 준 그 봉급에는 나의 욕설도 담겨 있어”라고 했다. 회식하러 가면 그는 늘 “내가 돈을 내서 마음껏 처먹어라” 하면서 우리 자존심을 상하게 만든다. 물론 나는 외국인이니까 영향을 덜 받지만 한국인 회사원들에겐 큰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조금 전에 말한 분노는 바로 이렇게 쌓인 스트레스다.” 한국 노동시장은 예전보다 물론 많이 변해서 선진국 수준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특히 수도권 쪽에 있는 회사라면 인기 드라마 ‘미생’에서 지적된 수많은 노동환경 문제가 해결돼 있다. 그러나 아직도 곳곳에 이런 직장환경 속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겪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6월 민주화 항쟁의 기억이 생생한 부모 밑에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태어난 사람들은 부모님으로부터 ‘귀중한 자식’ 대접을 받다가 갑자기 그러한 비우호적 환경에 들어가면서 심리적인 갈등이 더 심해진다. 이렇게 직장 갑질에 노출된 젊은이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현 정부는 경제정책을 만들 때 기업들과 동등하게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 아니다. 보수인 야당이 현 정부를 자꾸 사상적으로 비판할 정도로 기업들은 비교적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세대 간에 정치·경제 충돌이 진행 중인 가운데 한국은 예상치 못한 위기에 노출됐다. 바로 한일 경제전이다. 지금의 한일 관계의 그림이 약 130년 전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개항기에 한반도에 욕심이 생긴 일본이 정확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던 상황에 조선은 급진 개화파와 극단 보수파 사이에 왔다 갔다 했다. 통합을 못 한 왕권과 신료들이 결국 조선을 일본이 쉽게 먹을 수 있는 나라로 만들었다. 지금과 뭐가 다를까? 삼성이 주도한 기술력으로 세계적으로 시장을 장악하려고 한 한국의 정보기술(IT) 기업들, 그리고 그 시장을 탐내는 일본. 물론 한일 경제전쟁의 배경에는 다른 정치적 요인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적인 주목에 일본이 경제적인 칼을 휘둘렀다면 경제적인 면을 무시할 수가 없다. 이 위기 상황에서 한국이 통합됐는가. 아니다. 한국의 직장환경을 한꺼번에 싹 바꿔 버리고 싶은 급진세력과 현 상황을 유지하면서 아주 천천히 개혁하자는 세력이 함께 존재하며 서로 충돌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한일이 경제전쟁을 한다면 한국이 이긴다고 해도 큰 피해를 볼 것이다. 필자는 지난 글에서 한일 무역갈등에서 일본을 상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길게 설명하며 국내 통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 글에선 좌우의 이념적 통합을 의미했었다. 이번 글에서 필자가 아주 중요하게 어필하고 싶은 것은 시민과 기업의 계층 통합이다. 일본이 경제적 칼을 들고 나섰다면 경제전쟁이 끝날 때까지라도 두 계층이 잠시 휴전에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 정성장 세종硏 본부장 ‘북한 파워 엘리트 변동 평가’ 발표문

    정성장 세종硏 본부장 ‘북한 파워 엘리트 변동 평가’ 발표문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이 28일 일본 도쿄 중의원 제1의원회관 국제회의장에서 한국 민간남북경제교류협의회와 일본 동아시아총합연구소가 공동 주최하는 동아시아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할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파워 엘리트 변동 평가‘ 발제문을 소개한다. 이번 심포지엄 주제는 ‘한반도 신 경제지도 구상과 국제사회의 역할― 한일 관계 개선과 북일 국교 정상화를 향하여’로 정해졌는데 이수성 전 총리와 하토야마 전 총리가 20분씩 기조 강연을 하고 김덕룡 수석부의장과 아베 도코모 의원이 5분씩 축사를 하게 된다. 정 본부장 외에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안충영 중앙대 석좌교수, 안드레이 란코프(러시아) 국민대 교수, 문호일(북한) 일본 일교대학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등이 주제 발표에 나선다. 다음은 정 본부장의 발제문 요지다. 분량 때문에 ‘Ⅰ. 파워 엘리트 변동 요인’과 ‘Ⅱ.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결과: 세대교체의 완료, 외교?경제 엘리트의 부상, 군부의 위상 약화’는 생략한다.Ⅲ.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 결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정무국의 확대 개편, 내각 엘리트의 위상 강화 ○ 북한은 지난 4월 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개최하고, 4월 10일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와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를 통해 당과 국가기구의 지도부를 대폭 개편했음.-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중에서는 김영남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소환되었음. - 그리고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중에서는 양형섭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소환됨. 리명수 인민군 최고사령부 제1부사령관도 정치국 위원직에서 소환된 것으로 판단됨. - 신임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는 김재룡 내각 총리 내정자, 리만건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 최휘 근로단체 담당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박태덕 농업 담당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수길 인민군 총정치국장, 태형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내정자, 정경택 국가보위상이 보선되었음. 이 중 김재룡과 태형철은 처음으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 진입했고, 리만건, 최휘, 김수길, 박태덕은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승진함. -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으로는 조용원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김덕훈 내각 부총리, 리룡남 내각 부총리, 박정남 강원도당위원장, 리히용 함경북도당위원장, 조춘룡 제2경제위원장이 보선되었음. - 그 결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 수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가장 많은 34명으로 늘어남. ○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이루어진 인사에서 특기할 점 하나는 박봉주가 바로 다음날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내각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되지만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직을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는 것임.- 이는 북한의 경제 개혁과 개방을 주도해온 박봉주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한 신임을 반영하는 것으로써 박봉주는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직을 새로 맡아 김정은의 경제정책 결정을 바로 옆에서 보좌하게 되었음. ○ 리만건의 핵심 실세로의 부상과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인사도 주목할 부분임.- 리만건 전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조직지도부장으로 승진하면서,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국무위원회 위원직도 겸직하게 되어 새로운 실세로 부상하게 되었음. - 김정은 위원장의 공개활동을 자주 수행해온 조용원 조직지도부 부부장은 제1부부장으로 승진하면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도 선출되어 김 위원장의 핵심 측근 지위를 더욱 굳히게 되었음. -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군사 담당 제1부부장도 황병서에서 김조국으로 교체된 것으로 분석됨. 김조국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직에도 보선되어 신 실세로 부상했음. ○ 내각 엘리트의 당내 위상 강화도 이번 당 지도부 개편의 매우 중요한 특징임. -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는 김덕훈, 리룡남 내각 부총리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보선되어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내각 엘리트의 비중이 더욱 커졌음. ○ 박봉주가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임명됨으로써 김정은의 정책결정을 일상적으로 보좌하는 당중앙위원회 정무국 구성원은 역대 가장 많은 13명으로 늘어나고 정무국에서 경제 엘리트가 차지하는 비중도 더욱 커졌음. -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이 최룡해에서 리만건으로 바뀜에 따라 정무국에서 최룡해가 소환되고 리만건이 새로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임명되었음. ○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장금철과 김동일이 새로 당중앙위원회 부장직에 임명되었음. - 장금철은 김영철이 맡고 있었던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장직에 임명됨. - 당중앙위원회 농업부장직을 맡고 있다가 황해남도당위원장직에 임명된 리철만의 후임으로 김동일은 당중앙위원회 농업부장직에 임명된 것으로 추정됨. ○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김재룡 내각 총리, 리만건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 태종수 당중앙위원회 군수공업부장, 김조국 당중앙위원회 군사 담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보선되었음. - 내각 총리에 임명된 김재룡 전 자강도당 위원장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직에도 선출되어 군사정책 결정에 관여할 수 있게 되었음. - 당중앙군사위원회와 국무위원회의 구성원들을 비교해보면 전자는 후자에 포함되지 않은 인민군 총참모장(리영길), 총참모부 작전총국장(박수일), 인민무력성 제1부상(서홍찬)과 정찰총국장(장길성)이 들어가 있어 북한군을 지휘하기에 보다 적절하게 구성되어 있음.Ⅳ.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결과: 국가기구에서의 세대교체 완료, 국무위원장과 국무위원회의 위상 강화 ○ 북한은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를 개최해 헌법을 개정하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김영남에서 최룡해로, 내각 총리를 박봉주에서 김재룡으로 교체하는 등 큰 폭의 국가기구 지도부 개편을 단행했음. - 이번 국가기구 개편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국가 대표’ 권한 명문화, 국무위원회와 외교 라인 및 내각 엘리트의 위상 강화, 지도부 세대교체의 완성 등으로 특징지어짐. ○ 이번 헌법 개정 이전까지만 해도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직책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었음. - 그런데 4월 11일 헌법 개정으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령도자’로 규정됨으로써 ‘국가를 대표하며 다른 나라 사신의 신임장, 소환장을 접수’하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두 명의 지도자가 ‘국가를 대표’하게 되었음. - 물론 미국, 중국, 한국, 러시아 등 중요 국가들과의 정상회담에서는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하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국가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할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두 직책 간의 권한의 충돌은 없을 것임. ○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를 통해 북한의 외교라인이 대폭 강화되고 국무위원회의 역할이 더욱 확대된 것으로 분석됨. - 대외적으로 북한의 ‘국가(국가기구)’를 대표해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고령의 외교 엘리트인 김영남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실세 측근인 최룡해로 교체됨으로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위상이 더욱 높아짐. - 과거에 김영남은 국무위원회에서 그 어떠한 직책도 맡지 못했음. 그러나 최룡해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직뿐만 아니라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직에도 임명되어 필요하다면 리수용 당중앙위원회 국제부장,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등의 외교 엘리트들을 지도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음. - 그리고 국무위원회에 북한의 외교 관련 최고책임자들뿐만 아니라 대미 협상에 참여해온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까지 들어감으로써 외교 라인이 대폭 강화되었음. ○ 박봉주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내각 총리직에서 소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무위원회에서 계속 부위원장직을 맡게 되어 국무위원회 위원에 임명된 김재룡 신임 내각 총리보다 더욱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음. - 박봉주는 내각 총리 해임 이후에도 최룡해, 김재룡과 함께 ‘현지요해’를 계속하고 있음. ○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를 통해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내각 등 국가기구의 핵심 간부들 세대교체가 거의 완성됨.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만 91세의 김영남에서 만 69세의 최룡해로 바뀜으로써 나이가 22세나 젊어졌음.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직에서 94세의 양형섭이 소환되고 대신 만 66세의 태형철 전 고등교육상이 선출되었음. - 최고인민회의 의장도 만 89세의 최태복에서 만 64세의 박태성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바뀜으로써 나이가 25세나 젊어졌음. - 김재룡 신임 내각 총리의 나이도 만 80세의 박봉주 전 내각 총리보다는 훨씬 젊은 것으로 판단됨. ○ 4월 12일자 북한 로동신문은 이례적으로 내각의 총리와 부총리 및 상(장관)들까지 프로필 사진을 공개했음. - 이는 내각 엘리트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어 초고강도 대북 제재로 인한 현재의 경제적 난관을 극복하고자 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됨. Ⅴ. 종합 평가와 전망 ○ 북한은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의 당과 국가 지도부 개편을 통해 사실상 ‘외교?경제 병진정책’을 공식화한 것으로 분석됨. ○ 항일빨치산 2세의 대표주자인 최룡해는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이라는 매우 영향력 있지만 ‘위험한’ 직책을 측근인 리만건에게 넘겨주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이라는 보다 안전한 직책으로 옮김으로써 명예와 영향력 모두 가지게 된 것으로 판단됨. ○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김여정, 현송월, 최선희 등 여성 엘리트들의 부상도 주목할 만한 현상임. - 김여정은 현재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들과 동급의 핵심 지도자 지위에 오른 것으로 분석됨. - 과거 김여정 제1부부장이 맡았던 김정은 위원장의 행사 참가 지원 업무를 현송월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담당하게 되면서 현송월의 위상도 상대적으로 높아짐. -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국무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직에 선출되고 현재 북한의 비핵화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됨. - 공식적으로는 리용호 외무상이 북한의 비핵화 협상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지만 리용호는 과거에 영국과 아일랜드 대사를 지낸 유럽통으로 현재 전세계를 대상으로 외교활동을 전개해야 하는 직책을 맡고 있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임. - 지난 7월 27일 ‘전승절(정전협정체결일)’ 기념 음악회에 김여정과 최선희는 김 위원장 좌우로 각각 두 번째 자리에 앉았음. 두 사람 모두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리수용·김영철보다 김 위원장과 더 가까운 자리에 착석해 실세 지위를 과시함. ○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 파워 엘리트 변동은 외교와 경제, 여성 엘리트의 부상, 군부의 위상 약화, 군수공업 분야 엘리트의 견고한 위상 유지 등으로 특징지어짐. - 이 같은 엘리트 변동 결과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보다 유연하고 실용주의적인 정책을 모색하면서도 군사적으로는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 등 재래식 전력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됨. - 그런데 북한의 비핵화 협상 라인이 군부 출신의 김영철에서 외무성 인사로 교체되었다고 해서 북한의 대미 협상 전략이 단기간 내에 큰 변화를 보이기는 어려울 것임. - 현실적으로 북한 내부에서 누구도 김정은 위원장에게 과감한 비핵화 협상안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외부에서 김정은에게 북한이 핵을 포기함으로써 잃을 것보다 얻을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확신을 주어야 할 것임. - 이를 위해 북한과 미국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한 포괄적 공정표’에 합의하고 이를 단계적?동시적?병행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함. 정리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이준형 서울시의원, 개교 100주년 이상 학교 기록물·자료 관리 시급 지적

    이준형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강동1)은 8월 26일(월)에 열린 서울시의회 제289회 임시회 시정 질문에서 조희연 교육감 및 박원순 시장을 대상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개교 100주년 이상의 학교 기록물 및 자료 관리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고증과 자료 관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날 시정 질문에서 이 의원은 서울시내 3개 학교(배화여고, 경기상업고, 교동초)를 직접 현장 방문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자료들의 관리실태 및 보존의 노력이 제각각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행정의 소홀함을 지적했다. 1898년 설립돼 120여년이 지난 오랜 역사를 지닌 배화여자고등학교의 경우 교육청 차원의 예산 지원이 이루어진 적이 없음에도 졸업생 및 적극적인 역사의식을 지닌 선생님들의 의지로 자료 관리 및 보존이 비교적 잘 되어 있었으며, 향후 역사관을 조성할 계획까지도 준비하고 있었다. 반면, 1894년 개관해 만세보(1906년), 대한매일신보 등 일제 강점기 자료를 상당량 보유하고 있는 교동초등학교의 경우 보존상태가 매우 취약하고 재정비 담당자의 전문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재정력이 있는 몇몇의 사립학교들에서는 별도의 수장고를 마련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빈 교실에 학교의 각종 기록물, 상패, 교육자료 등을 한데 모아 보관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문서 및 골동품의 경우 상태 보존을 위한 적절한 온도 및 습도의 조절 등 보전처리가 시급하나, 환경적 여건을 갖춘 곳은 거의 없었다. 많은 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이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감정 받지 못한 채 버려지거나 방치되고 있었다. 이에 기록연구사 등과 같이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투입돼 자료를 목록화·현행화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보존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난 2월 27일부터 10일간 서울시청 시민청갤러리에서 <3월의 그날, 서울학생! 뜨거운 함성이 되다>를 개최한 바 있다. 3·1만세시위를 독립만세운동으로 확산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음에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서울 학생, 교사들의 활약상과 역사적인 학교 현장 자료를 발굴·수집하여 공개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기록연구사 13명을 포함해 실무추진단을 구성해 개교한지 100년이 넘은 71개 학교의 기초자료를 분석하고, 3·1운동 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21개 학교를 현장 방문해 3·1만세시위에 참여한 학생과 교사들의 학적부, 졸업명부, 학적기록 등 70점, 수형기록표 73점, 판결문 138점, 사진 96점, 재감인명부, 신문조서, 성향조회서 등 기록물 100여점, 기타 태극기, 교복, 교지 등 실물자료를 발해 정리해 전시했다. 행사가 끝난지 5개월여 지난 지금 <3월의 그날, 서울학생! 뜨거운 함성이 되다> 전시에 활용되었던 자료들은 현재 어디에 어떻게 보관되고 있는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에게 질의하고,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의 무관심 속에서 훼손되고 망실된 자료들에 대한 행정의 관리 부재실태를 지적했다. 이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그 필요성과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그동안 예산의 범위 내에서 교육행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선순위에 밀려 추진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이 의원은 “최근의 한일관계와 맞물려 서울학생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되는 이 시기에 기억하고 보존해야할 역사기록물에 대해 서울시교육청과 학교의 역할 재정비가 시급하며,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관리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육해공군, 2배 늘린 전력 투입… 외교적 해결 외면 日에 경고장

    육해공군, 2배 늘린 전력 투입… 외교적 해결 외면 日에 경고장

    세종대왕함 등 해군 7기동전단 처음 참가 軍함정 10여척·항공기 10대까지 총출동 예년과 달리 정예전력 사진 등 적극 공개 기존 日 자극 자제 ‘로키’ 진행서 급선회25일 독도·울릉도 일대에서 시작된 ‘동해 영토수호훈련’은 이전까지 일본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 ‘로키’(저강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과 달리 한국군의 정예전력을 상당 부분 투입하면서 영상을 적극 공개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선언 이후 불과 사흘 만에 실시된 이번 훈련이 강제징용 문제 등과 관련한 외교적 해결을 외면하는 일본에 맞서는 한국 정부의 두 번째 카드라는 점과 맞닿아 있다. 해군 관계자는 “해군 및 해경 함정 10여 척과 육해공군 항공기 10대가 참가해 규모가 예년에 비해 늘었다”고 설명했다. 전체 투입 전력은 예년과 비교해 배 정도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상 처음으로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7600t급)을 포함해 해군 제7기동전단 전력과 육군 특전사가 참가했다. 2010년 창설된 제7기동전단은 세종대왕함을 비롯해 이지스 구축함 3척과 충무공이순신급(4400t급) 구축함 등을 보유한 해군의 최정예 전력이다. 통상 3200t급 구축함이 독도방어훈련에 참여해 왔지만 규모가 큰 수상전투함을 보강한 것이다. 해군 특수전 요원(UDT)도 파견했다. 그동안 해병대와 UDT가 번갈아 참여했지만 이번에는 함께 전개했다. 육군 특수전사령부도 최초로 참여해 울릉도에서 상륙훈련을 진행했다. 육군은 통상 독도방어훈련에 경비정과 항공전력 정도만 투입해 왔지만 상륙 인원을 파견한 건 처음이다.이번 훈련에 육해공군 전력이 모두 참여하며 ‘전방위적 방어’를 기획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일본 정부가 2014년 ‘방위백서’에 유사시 독도에 마이즈루항에 위치한 제3호위대군 본대를 파견해 방어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어 한국도 대응 차원에서 독도에 정예화된 최신 전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군 관계자는 “독도 방어가 가능한 각 군의 정예화 전력들이 모두 참여했다는 점에서 강력한 영토수호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군은 지난 6월 실시하려던 독도방어훈련을 한일 관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두 달 넘게 미뤄왔다. 지난달 일본의 경제보복을 계기로 광복절 전후 실시하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지만, 기상 상황과 한미 연합연습 일정을 고려해 일정을 재조정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군 당국이 한일 관계 등을 고려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국방부는 최근까지도 “시기와 규모는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일본이 경제보복 기조를 누그러뜨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 기류도 지소미아 연장 불가와 맞물려 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해 영토수호 훈련은 건국 초기부터 해군 단독으로 진행해왔다. 1996년 ‘동방훈련’이란 이름으로 지금과 같은 합동 훈련으로 진행되다 2008년 독도방어훈련으로 이름을 바꿔 지난해까지 진행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한미훈련 끝났는데도 北 미사일 발사 “데이터 얻기 위한 것”

    한미훈련 끝났는데도 北 미사일 발사 “데이터 얻기 위한 것”

    청와대가 24일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두 발을 발사한 것과 관련해 강한 우려 표명과 함께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8시 30분부터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열고 한반도의 안보 상황을 종합 점검하고 북한이 최근 비난해 온 한미연합지휘소 훈련이 끝났는데도 단거리 발사체를 계속 발사한 데 대해 강한 우려를 표했다. 앞서 합동참모본부는 “우리 군은 오늘 오전 6시 45분경, 오전 7시 2분경 북한이 함경남도 선덕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미상의 발사체 두 발을 포착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사체의 최고 고도는 97㎞, 비행 거리는 380여㎞, 최고 속도는 마하 6.5 이상으로 탐지됐다. 합참은 “한미 정보당국은 정확한 제원을 정밀 분석 중에 있으며, 일본이 관련 정보 공유를 요청함에 따라 현재(이날 아침)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유효하므로 관련 정보를 공유할 것”이라고 밝혔다.군 당국은 이날 발사체의 비행 특성 등을 고려할 때 사실상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규정했다.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는 사거리에 관계없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위반이다. 북한은 지난 2017년 5월 27일에도 함경남도 선덕 일대에서 KN-06으로 추정되는 지대공 요격 유도무기체계를 한 발 쏜 일이 있다. 2016년 4월 1일에도 이 일대에서 지대공 세 발을 발사했다. 군 당국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 5월 이후 잇따라 선보인 ‘신형 3종 무기세트’ 중 하나를 각도를 높여 발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날 발사체의 최고 고도 97㎞는 북한이 올해 아홉 차례 발사체 가운데 가장 높다. 앞서 발사된 미사일들의 고도는 25㎞(8월 2일)∼60㎞(5월 4일), 비행 거리는 240㎞(5월 4일)∼600㎞(7월 25일)로 탐지됐다. 북한은 올해 들어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을 적어도 다섯 차례 쏘았고, 지난달 31일과 지난 2일에는 신형 대구경조종방사포라고 규정한 발사체를 발사했다. 지난 10일과 16일에는 ‘북한판 에이태킴스’로 불리는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비행 거리를 봐서는 신형대구경 조종방사포는 아니고, 일단 지난 8월 10일 함흥과 16일 통천에서 발사한 북한 표현대로 하면 신형 전술유도탄, 즉 단거리 지대지 탄도미사일(일부에선 북한판 에이태킴스라고 함)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면서도 “최근 발사한 신형 단거리 지대지 탄도미사일, KN-23과 비교해 보면 고도가 2~3배 가량 높게 나왔다는 점에서 두 미사일을 고각 발사했을 가능성도 열어둔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두 차례씩 시험발사를 했지만 수정 보완을 해 개발을 완료하기 위해 두 차례와 다른 형태로 발사해 다양한 시험 결과와 데이터를 얻고자 하는 것 같다는 분석이다.  그는 또 한미 연합연습이 끝났는데도 북한이 발사체 발사를 계속하는 데 대해선 미국에 대한 북한의 기류가 심상치 않은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며 실무회담 재개를 앞두고 기싸움을 하는 측면도 있지만 내부적으로 자신들의 하계훈련이 끝나지 않았고 특히 무장력 현대화 차원에서 필요한 시험발사가 몇차례 더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끄는 것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평소에도 국제 정세 흐름이나 전략적 고려보다 북한 군의 무기 개발이나 전력 체계 향상을 위한 프로세스로 미사일 시험 발사 등을 분석해왔다. 한편 김 교수는 24일로 지소미아가 종료되는 점을 겨냥해 한일 정보교류 단절 상황을 시험해 보려는 것이라고 앞서나갈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일본 정부가 이날 발사체 발사 소식을 우리 국방부보다 12분 먼저 발표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긴 하다. 이와 관련해 지소미아 종료로 인한 북한 관련 정보의 결핍은 일본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日불매 본격 가시화…8월 나리타공항 입국 한국인 35%↓

    日불매 본격 가시화…8월 나리타공항 입국 한국인 35%↓

    지난달부터 시작된 일본 상품·여행 불매 운동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한 달간 방일 한국인 여행객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줄었다는 일본 정부 통계가 공개되자 예상보다 감소폭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나, 8월에는 이보다 감소 폭이 훨씬 클 것임을 예고하는 통계가 공개됐다. 도쿄출입국재류관리국 나리타지국은 23일 여름 성수기에 해당하는 지난 9~18일 도쿄 관문인 나리타(成田)공항을 거쳐 입국한 한국인 단기체류자가 1만23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5% 감소했다고 밝혔다. 단기 체류자의 대부분은 업무가 아닌 관광 목적으로 여행하는 사람이다. 나리타지국은 이 같은 급감 추세에 대해 “현재의 한일관계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한국에서는 지난달 1일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가 발표된 후 ‘일본 불매’ 운동의 일환으로 일본 여행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이 지난 21일 발표한 방일 외국인 여행자 통계(추계치)에 따르면 지난 7월에 일본에 온 한국인 여행자 수는 56만1천7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7.6% 줄었다. 이는 올해 들어 월간 단위로 가장 적은 수치이지만 감소 폭이 의외로 적어 일각에선 통계를 믿을 수 없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관광업계 관계자들은 불매 운동이 시작된 7월에는 수수료 부담 등으로 예약 상품을 취소하기 어려운 현실이 통계에 반영된 것이라며 8월 감소폭은 두 자릿수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추석에 해당하는 ‘오봉’(お盆) 명절이 낀 지난 9~18일 나리타공항을 이용한 내외국인 출국자가 가장 많이 찾은 행선지는 미국, 중국, 한국 순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에 나리타공항을 거쳐 한국으로 간 출국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 많아 일본인의 한국인 여행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교도통신은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22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목적에 대한 국민인식’ 여론조사를 통해 일본 불매운동의 목적으로 응답자의 27.1%가 ‘일본의 과거침략 사죄 및 배상’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는 ‘수출규제 철회’(19.4%)를 웃도는 수치로 국민들이 불매운동을 보다 근원적인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고도 다로 일본 외무상이 지난 21일 중국 베이징 구베이타운에서 열린 한일외교장관 회담 직전 일본인 기자들과 일본 외무성 공식 사진기자에게 접근해 직접 카메라 상표를 확인하며 “캐논? 니콘?”이라고 말한 것이 알려지며 한국 취재진 사이에서 공분을 낳았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탄력근로 기간 6개월까지 확대… 中企 주 52시간제 시행 유예를”

    사용자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일 “우리나라 전반적인 산업구조나 기업의 대응 능력을 감안할 때 주 52시간제를 감당해 나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정부에 유연근무제 개선 사항을 전달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후진적 장시간 노동체제를 찬양하는 노동개악 시도”라고 혹평했다. ●“고소득직 근로·휴게시간 적용 제외를” 경총은 ▲주 64시간까지 초과근무를 허용하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까지 확대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도 현행 1개월에서 6개월 이상으로 확대 ▲경영기획, 인사노무, 재무경리, 홍보, 영업기획 직군에 대해 근로시간을 서면 합의로 정하는 재량근로제 도입 ▲한시적으로 업무량이 증가할 때 연장근로를 할 수 있는 직군을 소프트웨어 개발·사무관리 직군 등으로 확대 ▲고소득·전문직 근로자에 대해 근로시간·휴게시간 적용 제외를 건의했다. 경총은 또 대응 여력을 갖출 때까지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 시행을 유예하자고 주장했다. 전통 제조업, 개발자나 연구자, 관리직군 등 다양한 업무 성격에 맞춰 다양한 유연근무제 시행이 필요하다는 게 경총 제안의 골자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조치 이후 우리 정부가 일부 품목·원료 산업에 한해 유연근무제 개선을 부분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경총은 일본이 한국에 비해 유연한 근로시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일본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이 최대 1년으로 한국의 3개월보다 길고 업무량이 폭증할 경우 노사 합의로 월 100시간, 연 720시간까지 연장근로가 허용된다고 소개했다. ●민주노총 “후진적 노동체제 찬양” 혹평 노동계는 반대 의견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산업 현장의 어려움 해소와 산업 경쟁력 고도화, 기업 경쟁력 강화란 말로 경총이 요구안을 치장했지만 그 내용은 후진적 초장시간 노동체제 유지를 위해 노동법 근본 취지를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라면서 “한일 간 노동시간제를 비교한 것은 일본식 유연노동제 찬양과 이를 흉내 낸 제도 도입 요구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특파원 칼럼] 아베 독주에 대항하는 현명한 선택/김태균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아베 독주에 대항하는 현명한 선택/김태균 도쿄 특파원

    1999년부터 14년에 걸쳐 일본 도쿄도지사를 지낸 이시하라 신타로는 혐한(嫌韓) 발언 수위나 빈도에서 레전드급이라 할 만하다. 자신이 가진 서 푼어치 재주로 교만하고 졸렬한 언설을 양산해 출세에 성공한 인물이다. “일본의 조선 통치는 식민지배가 아니라 조선이 스스로 원해 이뤄진 합병”, “일본에 의해 조선이 근대화된 덕에 러시아 속국이 되는 것을 피했다”, “일본군 위안부는 돈벌이를 위한 것” 등의 레퍼토리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는 아흔을 목전에 둔 올해도 징용 배상과 관련해 “일본으로부터 또 돈을 가로채려는 속셈이 천박하다”고 한국을 비난했다. 이시하라의 지원을 받아 후임 지사가 됐던 이노세 나오키도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을 결정하는 등 우익본색을 숨기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이랬던 두 사람도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 있었으니, 매년 9월이면 간토대지진(1923년) 당시 일본인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 고이케 유리코 지사는 ‘극우의 화신’인 이시하라조차 유지했던 ‘최소한의 반성의 끈’조차 싹둑 잘라 버렸다. “추도비에 적힌 조선인 희생자 수가 6000여명이라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우익들 주장에 근거해 2017년부터 추도문을 보내지 않고 있다. 올해에도 안 보낼 예정이다. 과연 이시하라는 고이케에 비해 조금은 더 나은, 온건한 우익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질색하는 조선인을 위해 형식적인 위령이라도 했던 것일까. 이유는 개인에게 있지 않다. 변화한 일본의 ‘공기’에 있다. 무서운 속도로 변해 온 우경화의 흐름 속에 고이케와 같은 인물들이 이제는 그렇게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의 무서운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인물은 과거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제왕적 수상’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아베 신조 총리다. 1차 집권 때인 2007년만 해도 그는 8월 15일 ‘종전의날’ 기념사에서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국민들에게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 전쟁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부전의 맹세를 견지한다”며 ‘손해’, ‘고통’, ‘반성’ 등의 표현을 썼다. 그러나 2012년 12월 2차 집권에 성공하고 나서는 올해까지 단 한번도 전쟁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비상식이 상식으로 굳어지는 과정에는 불감증이 동반된다. 고이케 지사가 올해에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문을 안 보낸다는 뉴스는 지난해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언론에서 작게 다뤄졌다. 비판의 목소리도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분위기 속에 아베 총리는 앞으로 남은 임기 2년을 좌우할 최대의 승부수를 다음달 띄운다. 각료 개각과 자민당 당직 개편이다. 지난해 10월 개편 때는 자기 원하는 대로 하지 못했다. 직전 자민당 총재 선거 승리에 따른 각 파벌 안배 등 논공행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자신의 최측근들을 전면에 배치해 헌법 개정 등 ‘강한 일본으로의 국가 개조’라는 목표를 완성할 제2의 출발점으로 삼으려 할 것이 분명하다. 야당이 아베 독주의 제어장치로서 기능을 전혀 못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주시해야 하는 것은 일본 국민 여론이 어느 정도까지 방어막을 형성해 줄 것인가다. 지난달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에 승리를 안겨 주기는 했지만 당장의 헌법 개정에 국민의 압도적인 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것이 일본 여론의 현실이다. 일본 정부의 부당한 조치에 단호히 대응하되 사람과 사람을 잇는 교류의 연결 고리는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아베 정권의 독주를 이유로 어렵게 쌓아 올린 한일 간 민간 교류의 연들을 이참에 모조리 끊어 낸다면 그것은 오히려 아베 정권에 힘을 불어넣는 일이 될 수도 있다. windsea@seoul.co.kr
  • 아사히신문 “아베, 과거사 반성 표명해야”

    요미우리 1면엔 “한국에 반응하지 말자” 아베 외교 브레인 호소야 교수 칼럼 실어 일본 내 발행부수 1, 2위인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이 각각의 이념적 성향에 기반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각기 다른 의견을 개진했다. 상대적으로 진보 색채가 강한 아사히는 지난 17일 조간 사설을 통해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뜻을 한국에 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사히는 ‘일본과 한국을 생각한다-차세대에 넘겨줄 호혜관계 유지를’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을 냉대해서는 안 된다”며 “아베 정권에는 과거에 대한 반성에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따라다니고 있으며, 여기에 한국의 씻을 수 없는 불신감이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아베 정권이 다시 한반도에 관한 역사 인식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에 대해 재평가하고 아베 정권은 (진전된) 역사 인식을 표명하는 데 함께 협의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아사히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와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2010년 ‘간 나오토 전 총리 담화’를 언급하며 “아베 총리가 이런 견해에 대해 주체적으로 존중하는 자세를 보이면 한국에 (한일 청구권협정 등) 약속 준수를 요구하는 데 있어 설득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반면 요미우리는 18일자 1면에 미국과 중국의 ‘2강’이 중요하니 한국에는 반응하지 말자는 주장을 담은 기고를 게재했다. 아베 총리의 외교 브레인으로 꼽히는 호소야 유이치(48) 게이오대 교수는 ‘한일 관계 악화-감정론보다 냉철한 시점’이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미중과 비교하면 한국의 중요도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며 “한국과의 관계에 막대한 외교적 자원을 투입해 과도하게 질질 끌거나 필요 이상으로 반응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과의 추가적인 갈등을 피하자고 하면서도 한국과 협의와 화해를 하자는 게 아니라 중요도가 적은 만큼 무시를 하자는 것이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황성기 칼럼] ‘65년 체제’ 깨든가 고치든가

    [황성기 칼럼] ‘65년 체제’ 깨든가 고치든가

    지난 3월 일본 NHK에서 방송한 드라마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가 1986년에 펴낸 같은 이름의 소설이 원작이다. 주인공인 노화가가 일본의 침략전쟁 와중에 일본 정신과 천황을 찬양하는 그림을 그려 부와 명예를 누렸으나, 패전과 동시에 미 군정에 의해 ‘전범’으로 몰려 붓을 꺾고 180도 뒤집힌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는 내용이다. 일견 과거를 반성하고 고뇌하는 듯 흘러가던 드라마는 마지막에 충격적인 대사를 시청자에게 던진다. “스스로를 부당하게 비난할 필요는 없어. 적어도 우리들은 신념에 따라서 행동하고 최선을 다해 일했으니까.” 침략과 전쟁, 식민지배의 음습한 역사를 ‘신념’과 ‘최선’이란 말로 포장하거나 덮으려는 세력이 일본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시구로는 ‘전범 화가’를 통해 암시하려고 했을지 모른다. 패전 70주년을 하루 앞둔 2015년 8월 14일 아베 신조 총리는 담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우리 아이들과 손자, 그리고 그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담화에는 분명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란 옹색한 표현이 있긴 하다. 하지만 아베가 진정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죄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데 있지 않았을까. 노화가가 자신에게 던지는 과거의 합리화 궤변은 ‘전후 레짐(체제)의 탈피’를 역설해 온 아베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죄의 숙명’에서 벗어나려는 아베의 행동은 담화 발표 후 4년 뒤 강제동원 판결을 핑계로 한 백색 국가 제외라는 기습적 조치로 구현된다. 한국에 65년 협정을 지키라며 50여년 지켜 온 양국의 신뢰 관계를 허무는 경제보복은 사실상 ‘65년 체제’의 종언을 일본이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은 54년간 성역이었다. 성역이 뭔가. 들여다봐서도, 만져서도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지금도 한일협정을 깬다는 소리를 하면 기겁부터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비교적 진보 성향의 사람들조차 한일협정에 손상이 가면 나라가 결딴나기라도 하는 양 예민하게 반응한다. 일본과 관계를 끊어서 어쩌자는 거냐며 호들갑 떠는데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을 맺은 ‘65년 체제’는 이제 더이상 성역과 동의어가 아니다. 민주화한 사법부가 2012년 5월 강제동원 피해자의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고, 2018년 10월 30일 그 판결을 확정했다. 이미 그들 판결로 협정은 협정일 뿐 성역이 아니라고 주문을 읽어 내린 것이다. 처음부터 협정에 결함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반세기 넘게 한일의 침묵 카르텔이 유지됐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보복 7·4(반도체 부품 3품목 수출규제), 8·2(백색국가 제외) 조치는 역설적으로 협정에 숨은 모순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줬다. 이제는 그 카르텔이 깨졌다. 누더기로 변한 65년 체제는 기워서 재활용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지난 3일 1965년 한일협정 체제의 청산을 제안했다. 심 대표는 65년 협정의 불평등한 요소를 수용해 우리 국민의 인권을 짓밟는 결정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면서 ‘65년체제청산위원회’를 대통령 산하에 구성하자고 말했다. 왜 이런 소리가 협정이 체결되고 50년이 더 지난 지금에서야 공당의 대표 입에서 나왔는지 놀라울 정도다. 87년 민주화에도 꼭꼭 숨어 있던 65년 협정 신화는 지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세상에 영원불멸은 없다. 국가끼리 맺는 조약, 협정도 예외가 아니다. 한미 군사훈련을 ‘터무니없고, 돈 든다’고 새털처럼 조롱한 트럼프야말로 협정·조약의 탈퇴·파기의 선수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기, 파리협정 이탈 그 모두 트럼프 작품이다. 이란 핵 합의를 내동댕이치고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도 서슴없이 깼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파기를 위협해 미국에 유리하게 개정하고, 일본의 아킬레스건 미일안보조약도 흔들어 댔다. 최강자가 부릴 수 있는 횡포이지만 탈퇴와 파기가 반드시 강자의 전유물은 아니다. 누더기가 된 65년 체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제 그 물음과 솔직하게 대면할 시간이 왔다. 더는 한국과 같은 편이 될 수 없다는 일본 횡포에 우리도 결기를 보여야 한다. 언제까지 피식민국 보는 듯한 무례한 언행을 참고 견뎌야 하나. 65년 체제를 깨든가, 고치든가 양단간에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 8월 반도체 수출 34%, 대일 수출 32% 급감

    8월 반도체 수출 34%, 대일 수출 32% 급감

    9개월 연속 마이너스 가능성 커져 日 규제에 대일 수입도 19% 줄어이달 들어 22%대의 수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일 경제전쟁과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겹악재가 터진 게 하락폭을 더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12월부터 계속된 수출 감소세는 9개월 연속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12일 관세청에 따르면 8월 1~10일 수출액은 총 115억 32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1%(32억 7000만 달러) 줄었다. 전달 1~10일 수출액(134억 8200만 달러)과 비교하더라도 14.5% 감소한 수치다. 특히 반도체 수출 부진이 전체 수출 감소세를 주도했다. 이달 1~10일 기준 반도체 수출은 1년 전보다 34.2% 줄었고, 석유제품, 승용차도 각각 26.3%, 6.0%의 감소세를 보였다. 반면 무선통신기기(41.6%)와 가전제품(25.6%)은 수출이 늘었다. 국가별로는 현재 갈등 상황을 증명하듯 대일 수출이 32.3% 줄어 가장 감소폭이 컸고, 중국(-28.3%), 미국(-19.5%), 유럽연합(-18.7%) 등 대부분 국가를 상대로 한 수출도 감소했다. 수입액은 141억 81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13.2%(21억 5000만 달러) 감소했다. 일본 수입이 18.8% 감소해 중동(-19.0%) 다음으로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미국(3.0%)과 캐나다(117.8%) 수입은 증가했다. 기계류 수입이 22.9% 감소한 것이 눈에 띄는데, 일본의 반도체 부품·장비 수출 규제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달 1~10일 수출입 수치는 조업일수가 1년 전보다 0.5일 적다 보니 감소폭이 크게 나타났다”면서 “수출은 월말에 증가하기 때문에 감소폭이 둔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조진구 “대법원 판결 이미 청구권협정 넘어선 것, 외교로 풀어야”

    조진구 “대법원 판결 이미 청구권협정 넘어선 것, 외교로 풀어야”

    “대법원 판결은 청구권협정을 넘어선 것으로 양국 정부가 외교로 풀어야 하고, 최악의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난 8일 제64차 통일전략포럼 라운드테이블 발표에 나서 “투 트랙 기조 하에 과거사 문제가 협력을 저해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고위급 차원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두 나라의 책임 있는 당국자나 정치 지도자의 감정적이며 자극적인 언행들을 자제해야 한다. 일본 내 양심적인 소수파와의 연대와 더불어 일반적인 일본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외교가 필요하다”고도 주문했다. 조 교수의 발표문을 게재한다. 분량 때문에 (1) 한일 간 복합 갈등의 배경과 특징 (2) 양국 국민의 낮은 호감도와 높은 불신감 (3) 일본 외교청서에 나타난 한국 인식(일한관계, 일한경제관계, 한국정세)은 생략하고 (4)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해석부터 시작한다.(4)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해석 o 식민지배의 불법성 인정, 불법적 식민지배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 인정 → 강제동원 피해자 이외로 재판 확대 소지 있는가?(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나?) -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 불법적인 일본의 법률과 이에 근거한 행위는 모두 불법이며, “독립지사를 체포, 감금, 처벌한 것도 모두 무효”이며 “한반도의 인민을 징용으로 끌고 간 것을 포함하여 한반도 인민에게 피해를 가한 일체의 행위는 모두 불법행위”로 볼 수 있다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개인이 위자료 청구권 존재하는가? o 조약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의 존재 여부 - 한일 간 해석상의 분쟁은 ①징용이나 강제동원이 청구권협정의 대상인가, ②그것이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을 둘러싼 해석의 차이 포함, 청구권협정에 청구권의 원인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도 일부 존재: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영토의 분리·분할에 따른 재정상·민사상의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해야 했으며, 한일교섭과정에서 식민지배의 합법/불법 여부는 최대쟁점, 13년 8개월간의 교섭과정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 인정을 관철하려 했다면 국교수립 불가능, 합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차선책 - 청구권협정이 유효한 상황에 동 협정 제3조에 따른 외교 협의와 중재위원회 설치 요청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의도적 무대응: 국제법 무시,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와 국민의 신뢰감 저하 요인 o 청구권협정, 교섭담당자, 청구권 금액에 대한 인식 - 대법원 판결문 16~17쪽: (1964년의) 협상 과정에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청구권협정은 3억 달러(무상)로 타결되었다. 이처럼 요구액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3억 달러만 받은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도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된 것이라고는 도저히 보기 어렵다.” * 일본 측 자산(적산): 남북 53억 달러(남: 23억 달러, 북:30억 달러) (5) 대법원 판결 이후의 한국 정부 대응에 대한 평가 - 대법원 판결은 청구권협정을 넘어선 것으로 양국 정부가 외교로 풀어야 함 - 2015년 12월의 위안부 합의 비판 근거가 ‘피해자중심주의’, 대법원 판결 이후 피해자와 피해자/유족 단체, 변호인단과 접촉한 결과가 6월 19일 한국 정부 제안인가? * 6월 19일,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대리인단과 지원단의 입장 발표: “한국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한일 양국 간 일제 강제동원 문제의 종합적인 해결을 요구하며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거나 소송절차에 나가지 않은 많은 피해자들을 포함한 포괄적 협의를 요청해온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입장” -‘피해자의 수용성, 국민의 동의’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일본 정부가 당일 오전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오후에 외교부가 공식 발표한 것은 내용과 절차 면에서 문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내외에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음. 대통령이 험악해진 한일관계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6) 독일과 일본의 비교 - 전쟁책임 인정하고 반성하는 독일,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은 일본이란 정형화된 평가는 타당한가? -‘기억책임미래‘ 재단은 독일 정부와 기업이 출연한 재단, 미국에서의 독일 기업 상대 소송이 계기 - 독일정부는 인종차별이나 나치 칭송 등을 법적 처벌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전쟁책임 인정한 적이 없으며, 강제노동에 대한 법적 책임도 인정하지 않아 엄밀한 의미에서 국가배상이 아니며(강제노동은 독일의 연방보상법 적용 대상이 아님), 인도적 차원에서의 자발적 보상임. 2001년 보상 시작해 100개국에 걸쳐 166만 명의 피해자에 대해 총 43.7 억 유로(1인당 보상액은 2560-7670유로) 지급하고 2007년 6월에 종료 (7) 개인적 의견 o 최악의 상황 회피 위해 양국 정부가 노력: 일본 정부는 8월 7일 공포된 개정 수출무역 관리령의 시행을 유예하고 한국 정부는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 동결 위해 피해자 측의 이해와 협력을 얻을 필요가 있음 - 문재인 대통령의 7월 15일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한국 정부 제안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 바 없다”)을 베이스로 한 외교 교섭 시작해야 함 -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배상을 명령한 대법원 판결은 우리 정부의 피해자 구제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가? 한국 정부가 주도하여 가칭 ‘한일화해협력기금’ 만들어 한국과 일본 기업에 참여를 요청하고 나아가 일본 정부가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 - 한국의 경우 청구권 자금 수혜 기업만이 아니라 경제성장 과정에 정부의 각종 혜택을 받아 성장한 기업도 참여하고, 일본의 경우에도 강제동원과 관련이 없는 기업이나 한국과 긴밀한 경제관계를 유지해온 기업이 참여하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강제동원 피해자 등의 구제와 역사교육, 미래세대의 교육과 교류 통해 한일 간의 화해와 협력을 심화해가는 사업 추진 o 새로운 한일관계 구축 모색 - ‘1965년 체제’의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기본조약이나 청구권협정 파기는 대재앙, 현재대로라면 1965년 (국교수립)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 으며, 그 영향은 두 나라와 국민들에게 그치지 않을 것 - 한반도와 동아시아 국제정세 변화에 관한 인식과 미래 비전에 관한 협의 채널(외교국방 장관급 2+2) 신설하고 양국 정상 간 공동선언 준비. - 냉전시기 1969년 11월의 사토-닉슨 미일정상회담에서의 한국조항(한국의 안전은 일본의 안전에 긴요=essential) 초월해 한반도 평화가 일본의 평화에 긴요하다는 인식의 전환 필요o 대일정책의 재검토 후 적극적인 대일외교 전개 -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긴밀한 공조 및 협력 강화를 통한 일본의 건설적 역할 견인”(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전략, 2018년 12월 청와대 국가안보실), “투트랙 기조 하에 과거사 문제가 협력을 저해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고위급 차원의 소통을 강화”(2019 외교부 주요업무 추진계획, 2019년 3월 13일, 외교부) 등에 입각해 적극적인 대일외교 추진 -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고 현재의 한일관계는 북미 및 북일 관계에도 큰 영향 미칠 것. 북일 관계 정상화와 남북일의 삼각협력 체제 모색을 위한 적극적인 대일외교가 필요함(2020년 7월 개막 도쿄올림픽 계기로 남북일 3국 정상회담 개최 추진 필요) -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정권 등장 이후 2013년 12월 일본의 국가안전보장전략 책정, 두 번의 방위계획의 대강 개정 등 일본의 국가전략이나 외교안보정책 변화가 한국에서는 ‘군사대국화, 보통국가화’ 추구로 인식되는 것이 지배적 -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기대할 것인지 자문자답 필요하고 ‘1965년 체제’로의 회귀가 아니라 국내외 환경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한일관계 구축 필요 o 대일 공공외교 적극 추진 - 대법원 판결에 ‘납득할 수 없다’는 약 70%의 일본 국민, 수출우대조치국가에서의 한국 제외를 지지한다는 55%(일본 NHK 8월 2~3일 조사)의 일본 국민을 상대로 한 공공 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칠 필요 - 일본 내 양심적인 소수파와 연대와 더불어 일반 국민 대상 공공외교 필요 - 양국의 책임 있는 당국자나 정치 지도자의 감정적이며 자극적인 언행 자제 -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유지 필요 정리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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