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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개銀 20% 내외 추가 감원/李 금감위장

    ◎슈퍼뱅크 4∼5곳 육성·적정환율 1,350∼1,400원/1∼2개銀 추가합병 시사 정부는 은행권 재편을 위해 슈퍼뱅크(초대형 선도은행)를 4∼5곳 육성할 방침이다. 7개 조건부 승인은행과 제일 서울 등 9개 은행에 대해서는 지난해 말 대비 40∼50%의 인원감축을 강행키로 했다. 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은 20일 문화방송(MBC)의 ‘뉴스와 인물’프로그램에서 이같이 밝혔다. 李위원장은 “적정환율의 명확한 개념은 없지만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달러당 1,350∼1,400원을 적정수준으로 여긴다”며 “올 연말에도 이 수준이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李위원장은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해 “현재의 환율이나 금리수준 때문이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의 혼란으로 제2의 외환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미국을 중심으로 그런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는데다 우리나라도 차별화 전략으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다시 오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의 세계적 자문회사인 맥킨지는 ‘금융시장 보고서’를 통해 4∼5개의 대형선도은행이 우리나라 금융시장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고 강조,상업·한일은행과 하나·보람은행,국민·장기신용은행에 이어 1∼2개의 추가 합병이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李위원장은 금감위가 9개 은행의 인원감축 폭에 대해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한 적은 없으며 다만 공적자금을 투입,현재 1억5,000만원선인 1인당 영업이익을 2000년까지 선진국 수준인 2억6,000만원으로 끌어올린다는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은행들이 환산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올들어 이미 15∼20% 또는 30%의 인원을 감축했기 때문에 지난해 말 대비 40∼50%를 감축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李위원장은 “경기부양과 구조조정은 직접 상관관계가 없다”며 “실물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세금을 내리는 등의 거시정책과 함께 SOC(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하고 서민주택 중심의 주택경기 활성화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 요구하는 대기업 무역어음을 여신한도에서 제외시키는 방안에 대해 관계부처간 협의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親日의 군상:7­2/尹致暎家의 빛과 그림자(정직한 역사 되찾기)

    ◎독립협회 회장 尹致昊/현실 비관… ‘대세 순응주의’ 빠져 민족 외면/日·中·美 유학한 대표적 선각자의 한사람/105인사건 연루뒤 ‘친일전향’ 조건 출옥/日 귀족원 의원까지 역임… 끝내 반성 안해 좌옹(佐翁) 尹致昊(1865∼1945년·창씨명 伊東致昊)는 개화기의 대표적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그는 조선인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자 중국·미국에서 유학한,당시로선 드문 식견가였다.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그는 조선(한국)의 잠재역량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데다 식민지라는 ‘상황논리’에 빠진 나머지 결국 일제와 타협하고 말았다.그의 친일은 갑작스런 변신이 아니라 해외유학 경험을 통한 자기확신에서 비롯한 것이다.그의 친일 행적보다도 친일 논리에 눈길이 쏠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尹致昊는 신식군대 별기군(別技軍) 창설의 주역 尹雄烈(1840∼1911년)의 장남으로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본관은 해평(海平).부친은 무관이었지만 일찍 개화에 눈뜬 사람으로 그의 진로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尹致昊의 첫 유학지는 일본.1881년 일본의 신문물 견학차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의 일원으로 파견된 것이 계기였다.그는 조사(朝士) 魚允中의 수행원으로 따라갔는데 당시 나이는 17세로 일행 62명 중 막내였다.3개월간의 시찰을 마친 후 그는 귀국치 않고 兪吉濬 등과 함께 일본에 남아 신학문을 공부하였는데 이들이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 된다. ○신사유람단 따라 日 시찰 그는 일본 외무경 이노우에(井上馨)의 소개로 중등 과정의 사립학교인 동인사(同人社)에 입학하였다.그는 여기서 일본어와 영어를 공부하였다.이 시절 金玉均 등 국내 개화파 인사는 물론 일본인 개화파 인사,재일 외국인 외교관들과도 교류하며 국제 정세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2년간의 일본생활은 그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아! 슬프다.조선의 현상이여,남의 노예보다 더 심한 처지에 있으면서 어찌 진작(振作)하려 하지 않는가” 당시 그의 눈에 비친 조국의 현실은 이러했다. 1883년 5월 그는 초대 주한 미국 공사(公使)로 부임하는 푸트의 통역관으로 귀국하였다.그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주사(主事)로 임용돼 통역과 공문서 번역 일을 보면서 개화파 인사들과 친분을 쌓아갔다.하지만 개화파 인사들의 급진적 개혁론에는 찬동치 않는 입장이었다.그러나 이들과의 친분 때문에 갑신정변 실패 후 공모자로 몰려 상하이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1885년 상하이로 간 그는 현지 미국 총영사의 알선으로 중서서원(中西書院)에 입학하였다.이 학교는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알렌이 설립한 미션 스쿨로 그는 여기서 3년반 동안 수학했다.그러나 원치 않았던 상하이생활 초창기 그는 한동안 술과 여자로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망명객의 울분과 20대 초반 객지생활의 외로움이 겹친 것이었으리라.그의 방탕한 생활은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막을 내렸다.상하이에서 3년반을 보낸 후 그는 청나라를 ‘더러운 물로 가득 채워진 연못’으로 비유했다.반면 일본은 그에게 ‘동양의 한 도원(桃 園)’이었다. 미국 유학은 그에게 또 하나의 자극이었다.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미국의 ‘위대함’을 목격하고는 미국은 일본보다도 한수 위의 나라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같은 생각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로 깨지고 말았다.그가 강대국 미국·러시아를 제치고 친일로 나선 데는 미국에서 경험한 인종적 편견이 작용한 면이 없지 않다.러일전쟁 무렵 그는 ‘황인종단합론’을 들고 나오는데 이는 당시 일본의 대륙침략자들이 주창한 ‘아시아주의’‘동양평화론’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민족패배주의에 빠져 尹致昊가 친일로 나선 것은 ‘105인사건’(소위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사건’)이 계기다.한일병합 2년 뒤인 1912년 일제는 식민통치의 걸림돌인 민족운동세력과 기독교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이 사건을 조작했었다.그는 이 사건에 연루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15년 2월13일 친일 전향을 조건으로 출감했다.출감 후 첫 기자회견에서 그는 ‘일선동화(日鮮同化)’를 부르짖었다.“…이후부터는 일본 여러 유지 신사와 교제하여서 일선(日鮮)민족의 행복되는 일이든지 일선 양민족의 동화(同化)에 대한 계획에는 참여하여 힘이 미치는 대로 몸을 아끼지 않고 힘써볼 생각이다”(‘매일신보’,1915년 3월14일) 그가 변절한 직접적 요인은 가혹한 고문과 일제의 강요였다.그러나 그 내면에는 오랜 사상적 기반이 모태가 됐다고 볼 수 있다.‘개화기의 尹致昊 연구’의 저자 柳永烈(숭실대 사학과) 교수는 “개화기 이후 그의 의식 속에 잠재돼 있던 ‘민족패배주의’와 현실적으로 일본의 조선 통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대세순응주의’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충량한’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 변신한 尹致昊의 친일 행보를 따라가보자. 1919년 ‘3·1만세의거’ 직전 그는 민족대표로 참여할 것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했다.그리고는 의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강자와 서로 화합하고 서로 아껴가는 데에는 약자가 항상 순종해야만 강자에게 애호심을 불러일으키게 해서 평화의 기틀이 마련되는 것입니다”(‘경성일보’,1919년 3월7일)라며 약자인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제에 순종하는 길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일제가 선전하던 ‘조선독립불능론’‘투쟁무용론(無用論)’ 등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그의 친일논리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다. 1920년대 들어 그는 일제의 ‘문화정치’ 선전과 청년층의 반일 동향을 억제하는 데 이용된 교풍회(矯風會)의 회장을 맡는 등 각종 친일단체에서 일제의 식민정책 선전에 주력했다.당시 그는 민족개량·애국계몽운동을 펼치고 있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는 일제 통치를 수용하는 범위 내에서의 타협적 민족운동이었다. ○학병 참가 전국 순회 강연 그의 친일은 중일전쟁 발발(1937년 7월7일)을 계기로 강도를 더해갔다.총독부 주최 시국강연반의 연사로 전국을 돌며 순회강연을 하는가 하면 이듬해 1938년 육군특별지원병제가 실시되자 이는 ‘내선일체(內鮮一體)에 합당한 조치’라며 환영하였다.또 그해 7월 ‘황국신민화’의 실천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상무이사로 선정돼 창립총회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삼창(三唱)하기도 했다. 1941년 ‘대동아전쟁’ 때는 전시결전단체인 임전대책협의회에 참가하여 ‘우리는 황국신민으로 일사보국(一死報國)의 성(誠)을 맹서하여 협력할 것을 결의함’이라는 결의문을 낭독하였다.징병제에 이어 1943년 학병 동원이 시작되자 ‘조선 학도들에게도내지(內地·일본)동포들과 어깨를 겨누어 싸움터로 나설 수 있는 영광스런 길이 열렸다’(‘매일신보’,1943년 11월18일)며 학도들의 출진을 촉구하였다.이같은 공로로 45년 2월 그는 일본 귀족원의원에 선출돼 부친에 이어 2대에 걸쳐 ‘일본 귀족’ 반열에 올랐다. “…(일제하)조선인은 좋든지 싫든지 일본인이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일본 속국의 상태에서 그가 한 일로 누군가를 비난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질 않습니다….”사망(1945년 12월16일) 2개월 전 그가 남긴 글의 한 구절이다.지식인으로서의 ‘반성’은 차치하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참회’ 한마디도 없다.독립협회 회장과 ‘독립신문’ 사장을 지낸 그가 해방 후 남긴 ‘자기 고백’은 겨우 이런 모습이다. ‘일본의 스코틀랜드화(化)’가 조선이 살 길이라며 일제의 ‘우호적인 식민통치’를 기대했던 그의 나약한 역사관이 결국 그를 친일의 길로 안내하고만 것이다. ◎尹致昊 일기/60년간 쓴 일기 시대상 상세히 담아/사생활도 솔직히 기록 ‘윤치호 일기(尹致昊 日記)’는 한말의 선각자 尹致昊가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60여년간에 걸쳐 기록한 개인적 메모.초창기 일기는 한문·국문으로,1889년 12월 이후부터는 영문으로 기록돼 있다. 일본·청국·미국 등 해외유학 시기의 ‘일기’에는 당시 그 나라의 발전상과 시국 상황,그리고 그곳에 체류중이던 한국인들의 동정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국내 체류기인 1883∼84년 당시의 ‘일기’에는 자신이 목격한 갑신정변과 개화당의 활동이 소상히 기록돼 있다.특히 일제 강점기 그가 국내에서 활동할 당시의 ‘일기’에는 자신의 입장과 국내 지식인들의 동향 등도 담고 있다. 이‘일기’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특히 尹致昊 인물연구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한 사람의 ‘일기’치고는 방대한 분량도 놀랍지만 자신의 행적도 비교적 솔직하게 기록했다. ◎‘尹致昊 일기’에 나타난 親日 어록 “만일 내가 살 곳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면 일본이 바로 그 나라일 것이다.…오,축복받은 일본이여!동양의 파라다이스여!세계의 정원이여!”(1893년 11월1일) “나는 국경일에 일장기의 게양을 반대하지 않는다.왜냐하면 우리가 일본의 통치하에 있는 한 우리는 그 통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1919년 10월1일) “일본은 동양에 있어서 백인 지배의 마력(魔力)을 깬 데 대하여 모든 황인종의 영원한 감사를 받을 만하다” (1941년 12월26일) “우리는 조선의 청년을 영광스런 일본 해군의 자랑스런 대열에 받아들인데 대해 감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1943년 5월12일)
  • 동북아 문화와 한일관계 심포지엄 기조강연/姜萬吉 고려대 교수

    ◎한국문화 독자성 회복까지 韓日 교류 제한 불가피 한·일 문화교류 정책자문위원회(위원장 池明觀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소장)는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동북아시아의 문화와 한·일관계’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姜萬吉 고려대 교수의 기조강연 ‘바람직한 한·일문화 교류정책의 기본방향’을 요약,소개한다. 21세기에는 한·일 문화교류가 불가피하다.앞으로 문화교류는 양국 문화 사이의 독자성과 차별성이 확립된 이후 서로 각기 문화의 창의적, 상승적 발전을 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문화는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다.그러나 이 논리가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해 적용되면 자본주의 선진국과 후진국과의 문화교류는 결코 평화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시장논리로 접근 안돼 따라서 자본주의 문화의 선진국 내지 강대국은,후진국 내지 약소국과 교류할때 그들의 독자성과 이질적 요소가 지니는 가치성을 인정하고 보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전체 세계문화의 다양하고도 창조적 발전에 공헌하는 길은 이 방법 뿐이다. 하나의 민족사회가 다른 민족사회와 교류한다는 것은 강자의 문화에 약자의 문화가 동화되거나,이른바 세계화논리 및 시장논리에 의해 자본주의적 후진지역 문화가 그 선진문화에 획일적으로 포함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1965년에 이른바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한·일간의 문화교류가 제한된 것은 제국주의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한 기간에 일본문화에 강제로 편입되고 동화되어간 한국문화의 독자성과 차별성을 회복하기 위한 시간이 불가결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진 이후 일본문화가 음성적으로 밀려들어 오는 조건 아래서 20세기 전반기를 통해 한국문화가 입은 식민지적 피해가 얼마나 치유됐는가 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해서 식민지 피지배상태가 끝난지 반세기가 지난 이 시점에서까지,그리고 세기가 바뀌는 시점에서까지 일본과의 문화교류를 크게 제한할 수만은 없는 상황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식민지배국과 피지배국관계에 있었던 일본과 한국 사이의 문화교류가 무제한적으로 이뤄질 수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아직은 식민지 시대에 침해된 한국문화의 독자성 및 주체성이 일본문화와 동등한 교류가 이뤄질 수 있을 만큼 치유됐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또 자칫 한국문화가 이번에 동화정책이 아닌 시장원리라는 것에 의해 다시 일본문화에 동화돼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21세기에 들어가서도 두나라 사이에 각기의 차별성이 확립되지 못하고 대등하지도 못하며, 따라서 호혜적이지도 못하고 평화롭지 못한 문화관계가 이루어질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 ○식민지적 독소 잔존 두나라 사이의 문화교류에는 당분간 일정한 제한이 있어야 하며 그것은 식민지 시대를 겪은 한국문화의 독자성을 확립하는 기간으로 인정돼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식민지적 독소가 잔존하고 독자성이 충분히 확립되지 못한 한국문화와의 무제한적 교류는 문화제국주의적 인식을 가지지 않는 한 일본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한일漁協 쟁점 의견 접근

    한·일 양국은 18일 어업협상 실무회의를 열고 조업실적 보장 문제 등 남은 쟁점사항에 대해 상당한 의견 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일본측 배타적 수역(전관수역)안에서의 우리측 기존 어획실적을 당분간 보장하는 문제에 대해 양국이 의견 차를 많이 좁혔다”고 말했다.
  • 은행 부실채권 20조 어치/성업공사 25일 일괄 매입

    정부는 서울·제일은행과 광주·전북은행을 제외한 일반은행의 부실채권 20조여원 어치를 25일쯤 일괄 매입해 주기로 했다. 17일 금융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는 공적자금 50조원 가운데 25조원을 활용,성업공사가 은행의 고정(연체 3개월 이상)이하 부실채권을 매입하기로 하고 19일까지 은행별로 채권목록을 성업공사에 제출하도록 지시했다.매입대금은 성업공사가 발행하는 부실채권정리기금 채권으로 지급할 예정이다. 대상은행은 조건부 승인을 받은 상업·한일은행과 조흥 외환 평화 충북 강원은행과 퇴출은행을 인수한 5개 우량은행,합병을 선언한 국민·장은,하나·보람은행 등이다. 이들 은행의 부실채권은 지난 6월 말 현재 담보 있는 채권이 13조9,164억원,담보가 없는 채권이 6조2,280억원이다.성업공사는 담보부 채권의 경우 45%,무담보부 채권은 3%의 비율로 매입하기로 했다.
  • 금융기관 노·사 극한대립 불보듯/대규모 인원감축안 제출 파장

    ◎경영진­구조조정으로 위기극복 불가피한 선택/노조­부실책임 은행원에 떠넘기는 건 잘못 이달 말까지 끝내기로 돼 있는 1단계 금융기관 구조조정이 대규모 인원감축과 관련한 노·사간 극한 대립으로 그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은행의 건전성 확보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대규모 인원감축의 불가피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은행 경영진도 구조조정을 통한 위기극복을 위해 수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반면 노조는 은행부실의 책임을 은행원에게 모두 떠넘기려는 것은 잘못이라며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맞서는 형국이다. ◇금융감독위원회의 조치 내용은=조흥·외환은행에 대해서는 10월 말까지 합병 또는 외자유치를 성사시키지 못할 경우 전 임원을 퇴진시킬 계획이다. 금감위는 합병하는 상업·한일은행에 4조5,000억원의 재정자금을 지원하면서 내건 조건을 다른 은행에도 적용키로 했다.인원부문의 경우 2000년부터 1인당 영업이익이 외국 선진은행 수준(2억6,000만원)이 되도록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고강도 압박을 가하는 이유=겉으로는 은행의 ‘생산성 향상’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초반부터 기선을 잡겠다는 복안이 다분히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금융감독 당국 관계자는 “정부는 제일·서울은행에 1조5,000억원씩을 지원했으나 지원이후 부실화가 개선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실패한 정책임을 자인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정책 문제없나=은행 부실의 책임을 은행원들에게 100% 묻겠다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인원감축의 경우 2년 안에 1인당 영업이익을 우리와는 금융환경이 판이하게 다른 선진국 은행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인원을 대폭 감축하는 단순 계산법을 동원하고 있다.조건부 승인을 받은 시중은행의 경우 지난 해 1인당 영업이익은 대략 1억5,000만원이다.은행들은 이런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인원을 지난 해 말 기준으로 40∼50% 줄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 “구조조정 끝내라”/9월말 ‘9회말’

    ◎정부 “이달말까지”… 막판 급류/‘늦출수록 침체경기 발목’ 판단 ‘가속폐달’/은행 합병·빅딜 경영주체 확정 등 골격 완성 금융기관과 기업의 구조조정이 이달 말까지 10여일간 숨가쁘게 진행된다. 이에 따라 부실 금융기관의 합병이나 퇴출과 함께 5대 그룹의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의 경영주체가 확정되는 등 구조조정의 큰 골격이 거의 짜여질 전망이다. 구조조정 지연에 따른 경제의 불확실성을 빨리 덜어내 침체 경기를 살리려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구조조정이 급속도로 추진되는 것이다. 16일 재정경제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수출과 내수 등 실물경기가 계속 하락세를 보임에 따라 본격적인 경기 진작에 앞서 금융기관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대부분 이달말까지 조속히 마무리짓기로 했다. 정부는 일단 이 달말까지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작업은 거의 모두 손을 털 방침이다. 5대 그룹의 구조조정 역시 빅딜의 경영주체를 확정시켜 자구계획을 주채권은행에 제출토록 했다. 또 생존가능성이 없는 5대 그룹 계열사에 대한 기업실사를 곧 마무리해 여신중단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금융기관 구조조정과 관련 쌍용,SK등 4개 부실 증권사들로부터 19일 경영개선 계획을 받은 후 이 달말까지 정리여부를 확정한다.또 동화,동남 등 5개 정리은행들에 대한 자산과 부채의 실사 작업을 20일 무렵까지 끝내고 이 달말까지 재정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영업정지중인 한남투자신탁은 신탁계약을 이 달말까지 국민투신으로 이전하고 청산절차를 밟게 된다. 이에 앞서 15일에는 가교금고를 설치,회생가능성이 없는 상호신용금고들의 정리를 추진키로 했다. 이달 30일에는 상업·한일은행이 임시주총을 열어 합병승인을 받게 되며 하나·보람은행, 국민·장기신용은행 등은 이 달말까지 각각 합병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 故 朴斗鎭 시인의 삶과 문학/곧은 詩정신 지켜온 마지막 청록파

    세상의 온갖 유혹에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올곧은 시정신을 지켜온 朴斗鎭 시인은 ‘청록파’의 마지막 증인으로 한국시사의 거대한 봉우리를 이뤄왔다. 보통학교만을 졸업한 뒤 독학으로 문학을 수업,일가를 이룬 朴시인은 자연을 노래한 시인이자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대쪽같은 선비정신을 보여준 ‘지사(志士)’이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는 좌익계열에 맞서 김동리·조연현 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에 참여,문학외적으로도 ‘강기(剛氣)’를 드러냈다. 또 한일협정 당시에는 ‘한일협정,대학,대학교수’라는 정문일침의 시론을 써 대학사회의 무기력을 꾸짖었고, ‘오적사건 감정서’를 통해 김지하의 담시 ‘오적’을 법정에서 옹호하기도 했다. 朴시인의 시세계는 기독교적 이상과 윤리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런 만큼 시인의 시는 언제나 인간존재의 심연을 건드린다. 시인의 시혼(詩魂)은 늙바탕에 이르러서도 조금도 빛을 잃지 않았다. 74세 고령이던 90년 신작시집 ‘빙벽을 깬다’를 냈는가 하면 95년에는 신앙시집 ‘폭양에 무릎 꿇고’를내는 등 뜨거운 문학적 열정을 과시했다. 생전에 수석(壽石)에 심취했던 시인은 변함없는 ‘돌의 마음’을 간직한 채 하나님의 부름을 좇았다.
  • 은행 ‘대량 감원’ 진통예고

    ◎조흥 등 5곳 40∼45% 감축 각서제출에 노조 강력 반발 조건부 승인을 받은 7개 은행 중 조흥 상업 한일 외환 평화은행 등 5개 시중은행들은 총인력을 지난 해 말 대비 40∼45% 감축하는 내용을 담은 이행각서(MOU)를 금융감독위원회와 은행감독원에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은행 노조는 연내 40∼45% 감축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으며 노조와의 합의없는 이행각서는 무효라고 주장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어 향후 실행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16일 금융감독 당국과 금융계에 따르면 조건부 승인을 받은 7개 은행들은 제일·서울은행을 포함한 9개 은행의 공동 단체교섭이 결렬된 것과 상관없이 인원감축 계획과 이를 차질없이 시행하겠다고 확약한 이행각서를 냈다. 은행들은 국제 신인도(信認度)가 떨어져 해외차입이 되지 않고 있다며 신인도 회복을 위해 강력한 자구노력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이같이 대규모 인원정리를 하기로 했다.합병하는 상업·한일은행은 지난 13일 낸 이행각서에서 인원감축 규모를 연내 40%,내년 10%로 명시했다.지방은행인 충북·강원은행은 올해에는 30%,내년에는 10%를 감축할 방침이다.
  • 기로에 선 상업·한일銀 소액주주들

    ◎주식 매수 청구권 행사 싸고 득실 가늠 못해/합병은 상장주가 7,000원 미만땐 행사 유리/감자 경우 5,000원 이상 판단땐 청구 말아야 “팔아야 하나,갖고 있어야 하나”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소액 주주들이 기로에 섰다.합병과 감자결의에 대해 주식매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으나 그에 따른 득실이 분명치 않아 선뜻 판단을 못내리고 있다. ◇합병 매수청구권=지난 9일 현재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만이 행사할 수 있다.매수가격은 시가를 반영해 은행과 주주가 재조종할 수 있기 때문에 다소 낮아질 수도 있으나 600원 이상은 유지될 전망이다.매수 청구는 합병승인 주총이 열리는 30일 이전까지 해야한다.그러면 합병은행은 10월1일부터 20일 사이에 옛 주식을 사준다. ◇감자 매수청구권=17일 현재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만이 가능하다.매수가격은 상업 501원,한일 486원으로 정해졌다.주식매매가 3일 결제로 이뤄지기 때문에 매수청구는 16일부터 25일까지 10일간 가능하다.감자가 이뤄지는 날은 오는 30일이며 매수 대금은 하루전인 29일 지급한다. ◇매수청구권의 득실=합병은행은 10월29일 상장될 예정이다.합병 주식매수 청구가격을 700원으로 가정할 때 상장주가가 7,000원을 넘는다면 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는 게 낫다.7,000원 미만으로 떨어진다고 보면 매수청구권을 행사해 일단 팔았다가 상장된 뒤 다시 사는 게 유리하다.증시 관계자들은 합병은행의 주가를 6,000원 안팎으로 예상하한다.상장 이후의 주가추이에는 부실채권 규모가 제일·서울은행보다 적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과 부족한 정부지원 규모(4조5,300억원)와 증시침체의 여파로 하락할 것이라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감자의 경우 두 은행의 시가(450원 안팎)와 감자비율(10대 1 정도)을 감안하면 상장주가가 5,000원 이상으로 오르리라 판단되면 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는게 낫다. 제일·서울은행의 경우 주가는 990원에서 감자 이후 8,120원으로 감자비율(8.3대 1)을 그대로 반영했다가 최근 1,500원선까지 떨어졌다.
  • 을사조약 國恥(秘錄 南柯夢:23)

    ◎열사 잇단 자결 애태운 고종 “살아서 나를 돕는 것이 충성”/“乙巳年 망국” 예언 적중/日 남산에 대포설치 위협/고종,끝내 조약날인 거부/맨 먼저 민영환 ‘자결순국’ 조병세·송병선 등 뒤따라/의병들 방방곡곡서 궐기 그들이 있었기에 광복이… 1905년 1월17일 덕수궁에서 ‘을사오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었다. 일본군이 남산에 대포를 설치해놓고 위협하는 가운데 체결된 이 조약에 고종은 끝내 국새찍기를 거절했다. 따라서 이 조약은 지금도 원천적으로 무효인 셈이다. 을사오조약이 체결되었다. 일찍이 나는 광무 6년 임인년(任寅年 1902)에 말씀 올리기를 광무 9년 을사년(乙巳年 1905) 11월 갑자일이 주역(周易)으로 따져 건괘(乾卦)의 초구(初九) 효(爻)가 발동하는 날이라 반드시 한시대가 끝난다고 예언했는데 염려했던대로 망국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정의 수구파 원로대신들은 모두 두문사객(杜門謝客)하였고 시정의 상민(商民)도 또한 철시해 가게문을 닫았다. 을사오조약을 강요한 원흉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이다. 이 자는 스스로 한국의통감(統監)이 돼 고종을 농간했는데 뻔뻔하고 교활한 언행은 지금도 한국인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때 이토가 돈덕전(敦德殿)에 와서 상감께 아뢰기를 “동양 3국이 연합해 동맹국가가 되어야 서양의 돌연한 기습을 막을 수 있습니다”라고 구구하게 설명했으며 또한 말하기를 “한일 두 나라가 더욱 사이좋게 지내 소의 두뿔이 적을 막듯 형세를 이루어야 합니다. 시기하시거나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고 하였다. 이토는 또 고종황제에게 “일본은 이미 영국과 동맹을 맺어 서로 가까운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서양의 다른 나라들이 일본을 얕잡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차제에 폐하께서는 한번 일본을 유람하시기 바랍니다. 관광할 것이 많습니다”고 하였다. 이에 상감께서는 “나 또한 그런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하면 가히 선진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명이 아름답고 화려하다고 듣고 있어 한번 가보기를 소원한지 오랬습니다. 그러나 귀국의 명치황제가 유신한지 40년이 됐으나 아직 한번도 서양을 유람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토는 “옳은 말씀입니다” 하면서 대한제국 각료들에게 “광무황제는 총명하시고 영특하신데 좌우에서 보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총명을 가리고 있습니다. 손바닥도 한 쪽만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지금도 일본의 정치지도자,특히 이토의 후예들인 자민당그룹은 공공연히 아시아의 공생 운운하며 허튼 소리를 하고 있는데 모름지기 우리는 여기에 속아서는 않될 것이다. 고종황제가 속지 않고 일본관광을 거절한 것을 보면 그리 호락호락 이토에게 속을 사람이 아니었던 것을 알 수있다. 동양삼국 평화 운운한 이토는 바로 그가 죽음을 당한 뒤 우리 안중근의사에게 진정한 의미의 동양삼국 평화론이 무엇인지 저승에서 듣게 된다. 아무튼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수많은 우국충신들이 목숨을 끓었다. 맨 먼저 민충정공이 순국하였는데 그의 선혈이 대나무로 되살아났다. 전 의정대신 민영환(閔泳煥)은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을 보고 자기 목숨을 끊었으니 5백년 조국의 종사가 왜놈들에게 넘어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 단도로 자신의 몸을 찔러 죽었는데 피가 마루틈으로 흘러 들어가 한 그루의 대나무가 솟아 올랐다. 일본인과 서양인들이 문상차 들러보고 살펴보아도 과연 자생한 대나무이지 사람이 조작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마다 차탄(嗟歎)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또 민영환의 처는 재취한 분인데 나이 30이 못된 여인이었고 말을 배우고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도 남편을 따라 자결했다. 이때 또한 조병세(趙秉世)가 독약을 먹고 죽었으며 송병선도 따랐다. 병정 하사(下士) 김봉학(金鳳學),용인의 전참판 모씨도 따라 죽었다. 용인의 전 참판 모씨란 홍영식의 형인 홍만식(洪萬植)이었다. 동생 홍영식이 갑신정변의 주모자로 나라에 큰 죄를 지은 것을 자책하여 늘 미사신(未死臣)이라 자처하던 홍만식이 끝내 자결한 것이다. 송병선에 대해서는 정환덕이 직접 입대를 주선한 일이 있어 자초지종을 따로 소상하게 쓰고 있다. 송산장(宋山丈:山林=송병선)이 경기도 가평에서 상경하였는데 그의 문인 정석채(鄭奭采)가 내게 와서 말하기를 “송산장이 상경해 황제를 알현하고 싶어 하시는데 어떤 절차로 입대(入對)할 수 있을까요?” 하고 상의하였다. 그래서 즉시 입궐하여 상감께 말씀드렸더니 상감께서는 “이같이 창황한 때 절차를 따질 여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사례(私禮)로 들어와보는 것도 가하다”고 하시었다. 이에 송병선이 입궐하여 상감을 뵈었으나 퇴궐한 뒤 가만히 생각하니 나라의 형세가 기울어지고 있는 이 때에 차라리 한번 죽어서 나라에 보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문인 제자들을 불러 뒷일을 부탁한 뒤 자결하였다. 선생의 뜻은 바다같이 넓고 산과 같이 높다 하겠다. 상감 부자께서 이 비보를 들으시고 가슴 아파하며 감탄하시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심상훈의 경우는 좀 달랐다. 자결 직전 고종의 부르심을 받고 마음을 고쳐 먹었기 때문이다. 이때 전판서 심상훈(沈相熏)도 역시 칼을 빼 목을 찌르려고 했는데 갑자기 상감의 부르심을 받게 돼 입궐했다.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죽어서 국가에 보답하는 것이 살아서 국가에 보답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셔서 죽기를 중단하였다. 그러나 심상훈은 이듬해 을사오적 암살사건에 연루돼 경무청에 구금됐다. 살아서 애국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고 충신들이 목숨을 끊으니 고종으로서는 마음이 아플 수 밖에 없었다. 고종은 정환덕에게 그 심정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내가 함녕전뒤 섬돌복도인 북쪽 반침(半寢) 위에 시립(侍立)하고 있었는데 상감께서는 근심을 잊으시기 위하여 자수(自手)로 난로의 재를 닦아내고 계셨다. 그러다 나를 돌아보시고 말씀하기를 “네가 늘 을사년 11월 갑자일이 어떠하다 하더니 말대로 되었구나. 운명은 모면하기 어려운 것인가. 민영환이 절의로 죽은 뒤에 원로대신들까지 차례로 따라 죽으니 마음이 괴롭구나”라고 하시었다. 이에 엎드려 아뢰기를 “이런 때를 당해 한 사람도 절사(節死)하는 사람이 없다면 도리어 상감께서 수치스러운 일이신데 어찌하여 괴롭다고 하십니까”라고 위로말씀을 드렸다.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이야 그렇다하겠으나 나의 심신이 편안하지 않고 심정을 정돈하기가 어렵구나. 속담에도 ‘충신은 나라가 망할 때 많이 나오고 공신은 나라가 흥할 때 많이 나온다’(忠臣多出其國亡 功臣多出其國興)고 했는데,어찌하여 충신만 많이 나오는가. 이것도 운명인가” 하시었다. 엎드려 말씀드리기를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 충신이 되기는 쉬우나 공신이 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저로 말하면 살아도 국가에 유익하지 않고 죽어서도 공로가 없을 것이니 차라리 죽어 한번이라도 보국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고 하였다. 을사조약은 사실상의 망국이었다. 그래서 많은 순국열사가 목숨을 끊었다. 고종이 이들 충신에게 감사하였으나 그보다 더 감사해야 할 신하는 의병들이었다. 무기를 들고 일제에 항거했던 의병이야말로 바로 공신(功臣)이었고 이들이 있었기에 8·15광복과 건국이 있었던 것이다.
  • 은행노조,行長들 귀가 실력 저지/9개銀 노사 철야협상 결렬

    ◎경찰 투입… 노조원 46명 연행/일부銀,인원감축 각서 제출 은행 노조원들이 노사간 철야협상을 벌이던 은행장들의 귀가를 실력으로 저지하는 등 20여시간 동안 사실상 감금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협상을 벌이던 강원 상업 서울 외환 제일 조흥 충북 평화 한일 등 9개 은행 노조위원장과 秋園曙 금융노련위원장 등 은행노조원 46명이 해당 은행장들을 감금한 혐의로 15일 상오 11시30분경 중부 경찰서로 연행됐다. 노조원들은 지난 14일 하오 4시부터 은행연합회관에서 은행장들과 인원정리에 관한 철야협상을 벌이던 중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자 회의장소를 빠져나가려는 은행장들을 강제로 가로막았다. 은행장들은 상오 2시,상오 11시 등 수차례에 걸쳐 회의장을 빠져나오려고 시도했으나 복도를 가로막은 노조원들의 저지로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갔다. 중부경찰서는 은행요청으로 15일 상오 11시 경찰병력 2개 중대를 투입,회의장 안팎을 둘러싸고 있던 노조원들을 강제해산하고 전원 연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실상 감금에 해당한다. 조사를 진행중이며 결과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강제해산 후 은행장들은 각 은행으로 돌아갔으며 은행노조원들은 금융감독위원회와 중부서에서 연행 노조원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편 조건부 승인을 받은 7개 은행 중 이미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상업과 한일은행 외 다른 은행 일부도 15일 노사협상과 상관없이 인원감축 계획과 이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이행각서를 금융감독위원회에 냈다. 은행감독원 관계자는 “이행각서 제출 마감시한(15일)에 의해 조건부 승인을 받은 7개 은행과 제일·서울은행 등 9개 은행이 공동 단체협상을 폈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일부 은행은 이와 상관없이 이날 밤 늦게 이행각서를 냈다”며 “은행 이름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 상업·한일銀 10대 1 減資 명령

    ◎정부지원금은 4조5,300억원… 금감위 지원안 승인 정부는 합병 절차를 밟고 있는 상업·한일 두 은행에 4조5,300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상업은행에 9.98대 1,한일은행에 10.3대 1의 감자(減資) 명령을 내렸다.두 은행의 기존 주식 10주 정도가 각각 1주로 병합됨을 뜻한다. 감자 명령으로 자본금은 상업이 1조원에서 1,002억원으로,한일이 8,300억원에서 806억원으로 줄지만 합병은행의 자본금은 3조4,508억원의 정부은행으로 거듭난다.정부 지분은 94.76%가 되며 빠른 시일내에 정부지분을 매각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14일 임시회의를 열고 두 은행에 예금보험공사가 현금으로 3조2,700억원을 출자하고 성업공사가 부실채권을 1조2,600억원 어치 매입토록 하는 등 4조5,300억원의 공적자금 지원안을 승인했다. 금감위는 합병승인 주총이 열리는 30일 공적자금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이에 앞서 두 은행은 14일 이사회를 열어 감자와 증자를 결의했다.최소 자본금 미만으로 감자되기는 한일은행이 처음이다. 합병은행은 11월 초 출범하며 공적자금 지원으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자기자본 비율이 10%까지 높아질 것으로 분석된다. 금감위는 또 공적자금 지원조건으로 상업·한일 두 은행의 임원 수를 현재 18명에서 조흥 외환 제일 서울 등 시중은행의 평균 임원 수인 8∼9명 수준으로 줄이도록 했다.6월 말 현재 1만5,320명인 두 은행의 직원 수도 내년 말까지 6,000명 이상(40% 이상) 감축하기로 했다.
  • 하나로통신 1,800억 유상증자/24,25일 일반국민상대로

    내년 4월부터 초고속 멀티미디어 시내전화 서비스를 시작하는 하나로통신이 오는 24∼25일 이틀 동안 일반국민들을 대상으로 1,8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 주당 발행가격은 5,800원이며 1인당 최소 청약단위는 개인 50주,법인 1,000주다. 공모에 참여하려면 24∼25일 동양·대우·동원·삼성·현대·SK 등 6개 증권사나 상업·서울·외환·제일·조흥·주택·평화·한일 등 8개 은행 전국 본·지점에 청약증거금과 청약서를 제출하면 된다.천리안(go hanaro)과 인터넷 홈페이지(www.hanarotel.co.kr)를 통해서도 청약접수가 가능하다. 하나로통신은 이번에 7만여명의 주주를 새로 확보,주주 수를 10만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하나로통신은 지난 1월에도 실권주 996억원에 대한 일반 공모를 실시해 110% 청약신청률을 기록했다.
  • 클린턴 대통령 탄핵위기 등 여파/금융시장 불안감 확산

    ◎환율올라 1불 1,380원대/회사채금리는 13%대로/주가는 6P떨어져 314 금융시장에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위기로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이 확산된 데다 달러 수요의 증가,대규모 국공채 발행 등의 여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화 환율은 달러당 1,360원대에서 1,380원대로 껑충 뛰었고,11%대까지 떨어졌던 회사채 금리는 13%중반대로 뛰었다.종합주가지수는 310선으로 주저앉았다.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 환율은 달러당 1,370원에 거래가 시작돼 한때 1,394원까지 뛰었으며 1,388원에 끝났다.15일 고시될 기준환율은 14일보다 18원40전 높은 달러당 1,388원10전.하루짜리 콜금리는 8.34%로 0.13%포인트,3년 만기 회사채는 13.50%로 0.40%포인트 올랐다. 주식시장은 제주은행에 이어 상업·한일은행에 대한 감자(減資)명령으로 은행주 매물이 쏟아지면서 종합주가지수는 지난 주말보다 6.09포인트 떨어진 314.24로 마감됐다.주식 값이 오른 종목은 상한가 46개 등 344개,내린 종목은 하한가 51개 등 436개,보합은 92개였다.
  • 상업·한일銀 9∼10대 1 減資/금감위 오늘 확정

    ◎정부 지원 4조∼5조원 금융감독위원회는 14일 하오 임시회의를 열어 합병을 추진 중인 상업·한일은행의 감자(減資)비율과 정부지원 규모를 확정한다. 두 은행의 감자비율은 9∼10대 1,부실채권 매입 및 증자지원을 위한 정부지원 규모는 4조∼5조원 선에서 정해질 것으로 알려졌다.금감위 관계자는 “부실은행에 대한 증자지원은 액면가(5,000원) 수준의 주식병합을 전제로 한다”면서 “두 은행의 최근 주가가 510∼520원이므로 9∼10주를 1주로 줄이는 감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30일 예정된 상업·한일은행의 임시 주주총회에서 두 은행의 합병이 승인되는대로 지원할 방침이다.
  • 제주은행 주식 ‘휴지’ 됐다/금감위 100% 減資 결정

    ◎감자比 액면가 기준 변경 외환은행이 은행간 합병 대신 대주주인 한국은행과 독일 코메르츠방크의 추가 출자로 자체 회생할 전망이다. 지난 달 말 경영진단을 받은 제주은행이 100% 감자(減資) 등을 전제로 금융감독위원회의 조건부 승인 판정을 받았다. 따라서 제주은행의 주식은 감자와 함께 휴지조각이 된다. 앞으로 정부 지원을 받는 은행들이 자본금을 줄일 때 감자비율은 순자산 가치가 아닌 주가를 기준으로 액면가가 5,000원이 되도록 정해진다. 예컨대 상업·한일은행의 주가가 500원이면 감자비율은 10대 1이 된다. 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은 11일 경제장관간담회에서 외환은행의 경우 인원감축 등 자구노력과 함께 대주주의 추가출자를 적극 추진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때문에 외환은행은 다른 은행과의 합병을 하지 않고도 살아날 길이 트였다. 외환은행의 대주주는 한국은행(33.6%)과 지난 7월28일 3,500억원을 출자한 코메르츠방크(29.79%)다.
  • 초대형 우량銀 내년1월 출범/국민­장기신용銀 11일 합병공식선언

    국민은행 宋達鎬 행장과 장기신용은행 吳世鍾 행장은 11일 상오 10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합병을 공식 선언한다. 두 은행의 합병은 상업·한일과 하나·보람은행에 이은 세번째 자발적 합병으로,내년 1월 초대형 우량은행으로 출범하게 된다. 두 은행은 합병선언을 통해 국민은행의 소매(가계)금융과 장기은행의 도매(기업)금융 부문을 합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향후 금융권을 선도하는 초대형 우량은행으로 재탄생한다는 청사진을 밝힐 예정이다. 합병비율은 실사후 정하기로 했으며 다음 달 확대 이사회와 합병승인 주총을 열어 합병등기를 한뒤 내년 1월4일 합병은행으로 출발한다. 두 은행은 이달 중 회계법인의 실사를 실시,주식의 시장가치와 순자산가치를 감안해 합병비율을 정할 예정이다. 합병선언후 합병추진위원회와 실무추진단을 만들어 전산시스템과 인원 및 예금상품 정리 등의 구체적인 실무절차를 밟는다. 합병은행은 국민은행의 등기를 존속시키되,은행 이름은 합병은행의 이미지에 맞는 제3의 이름을 공모해 결정키로 했다. 초대 은행장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나 宋達鎬 국민은행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병이후 인원조정 어떻게/덩치 큰 만큼 아픔도 클듯/국민은 부실여신 많아 1,000여명 감축 불가피 11일 합병을 선언하는 국민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은 합병 이후 인원을 어떻게 조정할까. 지난 6월 말 현재 두 은행의 인원(일반직 기준)을 보면 국민은행은 11,731명인 반면 장기신용은행은 1,015명에 불과하다. 장기신용은행의 인원은 국민은행의 10분의 1도 안되기 때문에 얼핏보면 덩치가 큰 국민은행에 흡수될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구체적인 합병비율은 실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장기신용은행은 현 인원을 거의 유지하나 국민은행은 경우에 따라서는 적지 않은 인원감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금융감독 당국 관계자는 10일 “국민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높지만 부실여신이 많다”며 “정부지원이 없으면 몰라도 성업공사를 통한 부실채권의 매입 등 정부지원을 요청할 경우 그에 상응한 조치로 인원감축이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말 현재 국민은행의 무수익여신 비율은 4.5%로 1%대인 세계 유수은행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에 합병 이후 초대형 우량은행으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부지원이 뒤따를 경우 국민은행이 생각하고 있는 자율적인 인원감축(단계적으로 1,000명선)의 폭을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장기신용은행의 경우 인원을 전혀 손대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수준은 국민은행에 비하면 흉내내는 선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宋達鎬 국민은행장과 吳世鍾 장기신용은행장은 합병을 위한 협의에서 인원감축 문제로 티격태격한 일은 없었으며,인원 및 점포정리와 관련한 장기신용은행의 요구를 거의 수용키로 했다는 후문이다.
  • 국민­장기신용銀 합병/내일 공식발표

    ◎자산 97조 국내 최대은행 탄생 국민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이 11일 합병을 공식 선언한다. 두 은행이 합병하면 자산 규모가 96조9,469억원으로 늘어나 국내 최대 은행이 된다.합병 절차가 진행중인 상업·한일은행의 자산 규모는 6월 말 현재 96조1,240억원이다. 9일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계에 따르면 宋達鎬 국민은행장과 吳世鐘 장기신용은행장은 지난 7일 밤 만나 두 은행의 합병에 원칙적으로 합의,11일 공식 발표하기로 했다.국민은행이 장기신용은행의 조건을 대부분 수용하되 자산 규모 등을 감안할 때 국민은행이 장기신용은행을 흡수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은 가계금융과 기업 및 국제금융을 전담해온 은행으로 보완적 기능을 갖춘 상생(相生·Win Win) 차원의 합병이라는 측면에서 유사기능 은행의 합병인 한일·상업은행,하나·보람은행의 합병과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금감위의 경영진단 결과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국제회계 기준으로 8%를 갓넘어 은행간 합병을 최근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장기신용은행도 부실화 가능성이 있어 한미·국민은행과 합병을 검토해오다 국민은행이 장기신용은행의 합병 조건을 대부분 수용키로 함에 따라 합병에 전격 합의했다. 합병 은행의 행장은 두 행장의 협의로 결정키로 했으나 宋達鎬 국민은행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등기는 국민은행 명의로 하되 은행명은 장기신용은행측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로 했다.합병 비율은 다른 은행의 합병처럼 자산실사를 거쳐 결정할 방침이다. 금감위 관계자는 “장기신용은행이 지난 8일 조흥은행과의 합병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면서 국민은행과의 합병 계획을 알려왔다”며 “자발적인 은행간 합병의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며 이로 인해 조흥·외환은행 등의 합병 논의도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두 은행은 합병을 선언한 뒤 즉각 ‘합병추진팀’을 구성,다음주 초 회계법인에 자산실사를 의뢰할 예정이다.국민은행의 6월 말 현재 총자산은 60조4,914억원이며 임직원 수는 1만2,736명이다.장기신용은행의 총자산은 36조4,555억원이며임직원은 1,015명이다.
  • 우량은행끼리 합병… 슈퍼銀 탄생/국민銀­長銀 짝짓기 배경­파장

    ◎소매금융+도매금융 시너지효과/부산∼경남 등 지방銀 결합 잇따를듯 국민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의 합병은 상업·한일이나 하나·보람의 합병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우량은행간 자발적 합병이라는 점에서는 하나·보람은행과 비슷하다.그러나 국민은행의 자산은 98년 6월 말 현재 60조4,914억원으로 장기신용은행과 합하면 90조원이 넘는다.하나·보람은행은 자산규모가 41조원 수준이다. 따라서 두 은행의 합병은 우량은행간 합병인데다 규모도 커 단숨에 슈퍼뱅크(선도은행)로 탈바꿈하게 된다.상업·한일의 합병은 자산규모는 크나 부실은행간 합병이라는 점에서 다르다.그동안 은행권에서 갖가지 짝짓기설이 나돌았으나 두 은행이 ‘합방’한다는 얘기는 거론되지 않았다.두 은행의 합병은 그만큼 전격적이다. 두 은행은 소매금융(국민은행)과 도매금융(장기)을 합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합병키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합병 이후 자기자본비율을 10% 이상 유지하기 위해 정부에 일정수준의 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은 다른 은행과의 합병설이 나돌 때마다 비교적 여유있는 편이었다.한때 외환은행과의 합병설이 나왔을 때에는 “국민은행도 함께 부실화된다”며 공식 부인한 적이 있다. 그러던 국민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8%를 초과한 13개 은행에 대한 금융감독위원회의 경영진단 결과가 나오면서 마음을 바꾼 것으로 분석된다.국제기준을 적용할 경우 자기자본비율이 간신히 8%를 넘으면서 일종의 위기감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국제기준으로 자기자본비율이 8%를 넘긴 곳은 주택 하나 국민 전북은행 등 4곳뿐이다. 장기신용은행은 원래 규모가 작은데다 경쟁상대였던 하나와 보람은행이 합병하면서 생존전략 차원에서 합병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두 은행의 전격적인 합병으로 그 파장이 적지 않을 것 같다.금감위는 조건부 승인을 받은 조흥과 외환은행 등에 다음 달 말까지 외자유치나 합병을 성사시키지 못할 경우 임원진 전원을 퇴진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연이은 합병성사 여파로 지방은행간 합병도 뒤따를 것으로보고 있다.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이 합병할 것이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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