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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 마스코트 ‘골레오’ 인형 인기

    독일 월드컵의 마스코트인 수사자 인형 ‘골레오(Golleo)’가 국내에 상륙, 인기를 끌고 있다. 미식축구 영웅인 하인스 워드가 국내의 한 업체로부터 골레오 인형을 선물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골레오 캐릭터의 정보를 담은 미니홈피가 개설됐을 정도로 네티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수사자를 본뜬 골레오는 독일 캐릭터회사인 짐헨슨이 디자인했다.이름은 아버지 사자가 새끼 수사자의 축구 경기 장면을 보고 ‘Go! Leo’라고 응원한다는 뜻에서 지어졌다.레오는 별자리에서 사자를 의미한다. 마스코트는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있는 ‘골레오 인형’,‘골레오 키체인’, 목에 걸고 응원할 수 있는 ‘긴팔골레오’ 등 5종의 상품 시리즈로 구성됐다. ‘골레오’는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국내 정서에 맞게 외모가 어려지고 귀여워졌다. 한일월드컵 공식응원복인 붉은색 티셔츠와 두건을 착용했다. 골레오는 유진로봇의 관계사인 씨엔에치가 국내 독점 판매권을 획득, 유진로봇의 완구 사업부 지나월드에서 판매한다.가격은 3500원부터 3만 5000원으로 다양하다. 백화점·할인매장 등을 비롯해 완구매장과 지나월드의 직영몰,Kosney 등에서 만날 수 있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긴장속 독도] “日, 역사 미래에 대한 도발” 판단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우리측 동해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수로를 측량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단호한 상황 인식을 내놓았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여야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일본의 EEZ 도발행위에 대해 처음 입을 열었다. 이미 3차례 관련 회의를 열었지만 공개 회의는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조용한 외교’라는 지금까지의 대일 외교 기조를 변경, 일본의 도발에 상응하는 대책을 할 수 있다는 점까지 강하게 내비쳤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직면한 상황인 셈이다. 노 대통령의 시각은 크게 두갈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일본의 잇단 국수주의적 행태, 또다른 하나는 ‘독도 문제’라는 현안과 연관지었다.‘EEZ 경계를 둘러싼 한·일 양국간 분쟁’이 사태의 본질이자 전부라는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게 노 대통령이 EEZ 문제에 대한 기본 인식이다. 노 대통령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문제, 독도에 대한 도발행위 등을 종합하면 일본의 국수주의 성향을 가진 정권이 과거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는 행위이자 미래 동북아 질서에 대한 도전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한일관계에서 ‘과거 앙금을 털고 평화와 번영의 미래 동북아 질서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일본에 대해 ‘책임있고 성의있는 실천’을 촉구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반응은 막무가내식이었다. 결국 노 대통령은 EEZ 문제를 접하면서 “역사의 문제이자 미래 안보전략의 문제”라면서 강경 입장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당장 ‘전면적인 대일외교 기조 수정’으로 해석할 수만은 없다.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은 “지금의 문제는 일본이 먼저 작용하는 것이고 우리는 반작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일본의 조용하지 못한 조치에 우리도 조용히 대처할 수 없다.”고도 했다.‘기조 변화’가 이번 EEZ 문제에 한정되는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또 EEZ 수로 탐사의 철회라는 일본의 ‘현명한’ 선택을 촉구한 점이다. 분명한 점은 송 안보정책실장이 밝혔듯 일본의 행동 여부에 따라 우리의 정책 기조도 바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스포츠 마니아의 계절’ 용품 마케팅 후끈

    ‘스포츠 마니아의 계절’ 용품 마케팅 후끈

    스포츠 소식이 많은 계절이다. 미국 프로풋볼리그(NFL)의 영웅 하인스 워드와 2006 독일 월드컵 임박,WBC 4강 진입과 프로야구 개막 등…. ‘각본 없는 드라마’, 즉 승리 낭보에 마니아의 가슴도 달아오른다. 백화점·할인점 등 유통업체도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다. 동대문운동장 인근 스포츠용품점에도 고객방문 열기가 후끈하다. 유통업체는 벌써 스포츠 매장을 확대하는 등 마케팅 강화에 나서고 있다. 월드컵 특수를 겨냥한 것이다. 월드컵 출전 국가의 국기와 로고가 프린팅된 공식 유니폼과 트랙탑, 공인 축구공과 축구화, 무릎 보호대와 골키퍼 장갑, 축구 영웅 펠레 시리즈, 붉은색 응원복이 대표적 상품이다. 요즘 매장엔 야구 마니아의 발길도 잦아졌다. 야구 방망이와 글러브, 야구공 등 기본적인 것은 물론 운동장에서 보고 즐기는 소형 TV와 망원경도 관심을 끌고 있다. 유통업계는 예년과 다른 큰 스포츠 행사에, 매출 신장 그래프를 상상하기만 해도 즐거움이 다가선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월드컵열기로 스포츠의류·용품 ‘함박웃음’ 올해는 유독 스포츠 이슈가 많다. 야구는 지난달 세계야구클래식(WBC) 4강 진입에 이어 시즌이 시작됐고, 일본에서는 이승엽 선수가 연일 홈런포를 가동하며 일본 열도를 달구고 있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선수는 리그 2호골로 6월 독일 월드컵때의 활약을 한껏 부풀리고 있다. 독일 월드컵은 2002년 서울 월드컵 ‘4강 신화´의 기대로 국민들의 개막 기대 심리는 무척 크다.3월에 시작된 스포츠 시즌은 독일 월드컵때까지 그 열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이벤트가 많으니 당연히 유통업체들도 희색이 만면이다. 마케팅 전략을 짜느라 한창 바쁘다. 매장 등에는 독일 월드컵 출전국가의 로고를 새긴 트레이닝복과 붉은색 응원복, 축구화와 축구공의 매출이 벌써부터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김석주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여성캐주얼 바이어는 “월드컵이 독일에서 열리지만 관련 상품 매출은 2002 한일월드컵 보다 더 좋을 것”으로 예상했다. ●펠레 시리즈 매장 개점 갤러리아백화점 수원점의 푸마 매장은 축구 영웅 펠레의 로고와 디자인이 들어간 운동화·트레이닝복·가방·티셔츠 등으로 구성된 ‘펠레 시리즈’를 갖춰 인기를 끌고 있다. 펠레 운동화는 8만 4000∼9만 4000원, 펠레 티셔츠 3만 4000∼3만 7000원, 펠레 가방은 4만 7000∼5만 4000원이다. 휠라는 가수 김종국을 모델로 내세워 붉은 색에 월드컵 관련 로고가 새겨진 응원용 티셔츠를 1만 9000원에 판다. 애경백화점은 3층 스포츠아웃도어 매장에서 아디다스·푸마·프로스펙스·휠라 등의 월드컵 용품을 판다. 나이키 축구공 3만 9000원, 축구화 5만 9000원, 무릎보호대 3만 2000원, 골키퍼 장갑 1만 9000원, 축구 양말은 8200원에 나와 있다. 아디다스 축구공은 보급용 2만 9000원부터 선수용 15만원까지 다양하다. 월드컵 로고가 새겨진 수영복도 팔 예정이다. 롯데마트는 축구용품의 경우 4월달의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75% 늘었다. 롯데마트는 20일부터 전국 43개 점포에서 월드컵 존을 구성, 월드컵 관련 용품을 집중 판매할 계획이다. 대표 상품으로 나이키코리아의 국가대표 공식 유니폼은 7만 9000원, 월드컵 공식 응원복 1만 4800원, 독일 월드컵 공식 엠블럼 면티를 9800원에 판다. 축구공은 아디다스 팀가이스트 글라이더 2만 7000원, 나이키 머큐리스피드 2만 9000원을 비롯해 다양한 가격대에 나와 있다. ●응원엔 역시 붉은악마 유니폼 현대백화점은 “붉은 악마 공식 응원복인 베이직하우스의 ‘REDS,GO TOGETHER’ 티셔츠(1만 9900원)가 하루 평균 200장 정도 팔린다.”고 매장 분위기를 전했다. 붉은색 티셔츠, 탱크 탑, 핫 팬티 등 붉은색 계열의 캐주얼 의류도 점점 인기를 더하고 있다. 김석주 바이어는 “월드컵이 임박할수록 붉은색 계열의 티셔츠·팬티 등의 판매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홈플러스는 대한축구협회(KFA)의 공식 쇼핑몰을 개설했다. KFA의 응원 티셔츠(1만 4800원)와 붉은악마 응원티셔츠(1만 9900원) 등으로 축구 마니아를 유혹하고 있다. 응원복과 트레이닝복을 9900원부터 5만 5000원까지 다양하게 준비했다. 축구공이 축구 용품 가운데 판매 실적이 가장 좋다. 홈플러스는 “축구공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정도 늘었다.”며 콧노래를 불렀다. 매장 관계자는 “다소 비싸더라도 유명 브랜드의 축구공 매출이 3∼4배나 좋다.”며 “아디다스와 나이키 축구공 상품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랜드마트는 전점에서 6월 말까지 각종 ‘스포츠 기획전’을 통해 10∼30% 싸게 판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브랜드에서 공인구인 팀 가이스트 15만원, 축구공 2만∼4만원, 축구화 4만∼12만원 등에 판매한다. ●야구 용품도 쏠쏠… 지난달 WBC대회 이후 야구 용품의 매출이 쑥 늘었다. 홈플러스는 “야구 관련 매출이 전년대비 600% 이상 신장하는 등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고 밝혔다. 홈플러스는 야구공과 글러브로 이뤄진 기획 세트 등을 보강,3000원∼5만원대에서 팔고 있다. 그랜드백화점은 야구용품 특별가로 방망이와 글러브 세트를 1만 9800원에 균일가 판매한다. 그랜드마트 이윤기 스프츠바이어는 “각종 구기종목 시즌 개막으로 운동용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20% 정도 늘어났다.”며 “운동 용품은 꼭 필요한 것을 구입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근 개막된 야구를 현장에서 즐기는 데 필요한 용품들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를 제대로 보기 위해 소형 망원경(1만 9000∼4만 3000원)과 휴대용 2.5인치 TV(18만원), 아이돌 MP3(11만 9000원) 등도 많이 찾고 있다. ●TV도 덩달아 잘 팔려 응원용품의 경우 다음 달부터 판매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직 고객들이 월드컵 응원도구를 직접 사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월드컵의 생생한 경기를 안방에서 보며 응원할 수 있는 대형 TV들도 잘 팔리고 있다. 현대백화점 경인 7개점의 경우 4월 들어 LCD·PDP TV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늘었다. 고태원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가전바이어는 “LCD나 PDP 등 프리미엄 TV는 화면이 넓고 선명해 스포츠 경기 관람에 제격이다. 올들어 가격 인하와 맞물려 월드컵 특수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부고] 항일 애국지사 심재진 선생

    항일 애국지사 심재진(沈在震) 선생이 12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6세. 춘천중학교에 재학중 몽양 여운형 선생의 항일독립사상에 감화받아 교내에 독서회 운동을 전개하는 등 항일운동에 투신했다.1941년 3월23일 한일 민족차별과 식민지 교육정책과 관련해 한일 학생간에 충돌이 벌어지자 일본인 학생을 구타해 일경에 체포된 뒤 학교에서도 제적당했다.1942년 5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옥고를 치렀다.1986년과 1990년에 대통령 표창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발인은 14일 오전 8시 원주기독교병원(033)741-1994.
  • [사회플러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몫 돌려달라”

    태평양 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등 12개 단체가 포함된 강제동원 진상규명 시민연대는 5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한일협정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 몫으로 받은 3억불을 피해자를 위해 써달라.”고 했다. 시민연대는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일제강점하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법률(안)에 대한 피해자들의 입장을 발표하고 이같이 말했다.
  • ‘데라우치 문고’ 서울 나들이

    경남대가 소장하고 있는 ‘데라우치 문고’가 서울 나들이를 한다. 데라우치문고는 일제하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우리나라에서 약탈해간 유물 가운데 국내로 반환된 일부이다. 경남대박물관은 개교 60주년 및 데라우치 문고반환 10주년을 기념해 오는 25일부터 6월11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데라우치문고 특별전시회’를 갖는다고 3일 밝혔다. 데라우치문고 유물 98종,135점 모두 공개된다. 유물에는 추사 김정희가 자신의 서법을 친필로 기록한 ‘완당법첩조눌인병서(阮堂法帖曺訥人幷書)’와 조선 23대 순조의 왕세자가 세자시강원에 입학하는 광경을 서화로 표현하고 축하시문을 붙인 ‘정축입학도첩(丁丑入學圖帖)’등 국보급 문화재도 포함돼 있다. 이밖에 김생을 비롯한 정몽주, 성삼문, 박팽년, 이황, 이순신 등의 서첩과 윤두서, 심사정 등의 그림이 실린 서화첩과 대원군을 비롯한 김정희, 한석봉 등의 글씨에 대한 자료첩도 볼 수 있다.데라우치문고는 지난 1996년 한일의원연맹과 한일친선협회가 공동으로 추진한 해외유출 문화재 환수사업으로 80년 만에 돌아왔다.소장하고 있던 야마구치(山口)현립대학이 국제학술교류차원에서 자매결연을 하고 있는 경남대에 기증한 것. 야마구치현립대학에는 데라우치가 가져갔던 유물 1000여종,1500여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원규 연구사는 “반환된 유물 전부가 한꺼번에 공개되기는 처음”이라며 “이번 전시회를 통해 해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높여 환수사업을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마산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유엔지명전문가회의 한일 舌戰

    일본의 고등학교 교과서 ‘독도 기술’ 지침으로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오스트리아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지명전문가회의에서도 30일(현지시간) 한·일 양측은 독도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31일 외교통상부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측 대표단 일원인 주성재 경희대 교수는 회의에서 한국 지명의 로마자 표기화를 발표하면서 일례로 독도를 ‘Dokdo’로 표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일본측 대표인 모리야스 가쓰미 외무성 수석사무관은 “독도는 일본 고유영토로 다케시마(Takeshima)로 표기해야 한다.”고 반박, 양측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각국별로 표준화된 해양지명과 관련한 워킹 페이퍼를 제출하면서 우리가 당연히 독도를 영어로 표기한 것을 설명했다.”며 “이에 대해 일본측이 ‘그게 아니라 다케시마다.’라고 해서 양측간에 짧은 설전이 있었다.”고 전했다. 23회째를 맞는 이번 회의는 지난 28일 개막돼 오는 4일까지 계속된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여성축구도 열정은 ‘월드컵 대표’

    여성축구도 열정은 ‘월드컵 대표’

    서울에서 활동하는 여성축구팀은 모두 16개입니다. 모두 구청 소속입니다.. 창단식을 갖고 공식 발족한 팀이 12곳이고, 여성축구교실 형태로 운영하는 팀이 4곳입니다. 여성축구인은 여름을 기다립니다. 서울시 축구연합회장기 여성축구대회가 열리는 계절이기 때문이죠. 연령별로, 지역별로 남성축구인이 참가하는 대회는 많지만, 여성축구인은 오직 8월 대회만 바라보며 땀을 흘립니다.1998년 창단한 송파 구립 여성축구단은 역사만큼이나 실력이 출중하지만,2002∼2004년 조직된 새로운 축구단의 도전도 만만치 않습니다. 2004년 5월에 문을 연 성북구 여성축구교실 회원들도 실력과 열정이 남달랐습니다. 한 주부는 운동하다 발목을 다쳤는데 붕대를 감고 훈련받는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몸싸움을 벌이다 여성 회원에게 정강이를 채여 몇 주동안 운동을 못했다는 남성 회원도 있었습니다.‘대∼한민국’. 축구인으로 거듭난 주부들이 태극전사를 닮았습니다. 글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햇살이 화창한 27일 서울 성북구 월곡 근린공원내 인조잔디구장.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30∼50대 주부들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임옥성 감독이 이끄는 성북구 여성축구교실 회원들이다. 매주 월·수·금요일에 축구훈련을 받는다. ●볼이 자석처럼 발에 달라붙어 곱게 화장한 주부들이 공을 주고받으며 몸을 푼다. 공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자석처럼 공이 발에 착착 달라 붙었다. 굴러간 공을 잡으러 뛰는 발걸음도 가볍다. 회원은 25명. 대부분 2004년 5월 교실이 문을 연 뒤 줄곧 함께 운동해 왔다. 몸을 부딪치며 쌓은 우정이라 가족만큼이나 끈끈하다. 뒤늦게 합류한 주부들도 금세 분위기에 동화된다. 자녀 교육 때문에 잠시 운동을 쉬더라도 가족적인 분위기를 못 잊어 다시 온단다. 팀워크가 좋아 실력도 눈에 띄게 늘었다. ●남성 동호인들과 경기도 꾸준한 연습으로 기본기를 갖춘 여성축구단은 요즘은 50∼60대 남성축구단과 연습경기를 펼친다. 시합이 시작되자 주부들이 공을 쫓아 달렸다. 힘이 달리면 2∼3명이 함께 상대방을 압박하며 수비를 했다. 몸싸움에 밀린 남성이 넘어졌다. 공을 가슴과 머리로 받아 자유자재로 패스했다. “공을 먼저 보내고 빈손으로 움직이라고. 그게 편하잖아. 욕심내지 마.”임 감독의 지시가 쏟아졌다. ●남편따라 왔다 축구광됐어요 주부들이 축구에 발을 들여놓은 이유는 대부분 ‘남편’ 때문이었다. “축구라면 지긋지긋했어요. 남편이 휴일이면 새벽마다 조기 축구를 나가는데…. 뭐가 저리 좋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김순애 주부·42) 축구에 열광하는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아니면 그 남편의 손에 이끌려 축구교실에 등록했다. 남편의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다. 이제 그녀들도 축구광이 됐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TV를 볼 때 축구경기냐, 드라마냐를 놓고 많이 싸웠거든요. 이제는 당연히 축구죠.”새벽 3시까지 축구경기를 보며 장·단점을 분석한단다. 박명숙(39) 주부는 부부끼리, 모자끼리 공유할 것이 많아졌다고 했다. “남편, 아들과 함께 나와서 연습해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죠. 그러다 고민거리도 털어놓고….” 월·수·금 연습도 부족해 휴일에 남편이 조기축구팀에 나가면 따라나가 옆에서 홀로 연습하는 주부도 있었다. ●아이들이 멋있대요 자신감이 생겼다. 날아오면 피하기 바빴던 공을 이제 가슴과 머리로 받아 자유자재로 요리하니까 용기를 얻었단다. “날마다 연습하니까 달라지는 게 느껴져요.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되고요. 몸싸움도 요령이더라고요. 온몸으로 밀어붙이면 남자들이 힘없이 쓰러져요.”박소영(41)씨가 유쾌하게 웃었다. 뚝심과 승부욕을 축구를 통해 배운 셈이다. 자녀에게 엄마의 노력을 보여준 것도 큰 소득이다.“아이들이 엄마 멋있다고 좋아해요. 그럼 ‘뭐든지 마음먹고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다. 너희들도 꿈을 갖고 열심히 달려라.’이렇게 자신있게 말해주죠.” 신미숙(45)씨는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고 했다.“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을 때 느껴지는 시원함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기분입니다. 그 상쾌함이 하루를, 일주일을 기분좋게 하죠.” ●피부에 생기가 돌아요 경기가 끝났다.0대 1로 남성팀 승리. 전날은 여성팀이 1대 0으로 이겼다. 비등한 실력이라 경기마다 재미있다. 주부들은 집에서 가져 온 얼음물을 나눠 마시며 여성탈의실로 이동했다. 이야기꽃과 함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그때 한 주부가 “햇빛이 따가워졌다.”고 말했다. 야외 운동이라 피부가 상할까봐 걱정하는 소리다. 그러자 주부들이 너도나도 노하우를 공개했다. 선크림을 바르고, 화장을 짙게 하라고 조언했다. 피부마사지를 주기적으로 받으면 잡티가 늘지 않는다고도 했다. 한 주부가 “땀으로 노폐물이 많이 나와서 오히려 생기가 넘친다.”고 말하자 여기저기서 “맞다.”“맞다.”며 되받아 쳤다. 5분만 뛰어도 후들거리던 다리가 탄탄해지고, 추리닝이 원피스보다 익숙해진 그들은 이제 멈출 수가 없단다.‘대∼한민국’ 축구인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서울 구립 여성축구단 12팀 송파는 전용 잔디구장 자랑 서울 여성축구단은 모두 12팀이다. 모두 구청 소속이다. 축구단 창단을 준비하며 여성축구교실을 운영하는 구청은 4곳. 송파 구립 여성축구단이 1998년 4월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역사가 깊다 보니 전용 잔디구장을 마련할 만큼 조직이 탄탄하다. 실력도 남다르다. 서울시축구연합회장기 여성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여러번 차지했다. 2000년 7월 마포 여성 축구단이 뒤를 이었다. 난지천 인조잔디구장과 망원 유수지 축구장을 오가며 연습하고 있다. 선수도 35명으로 가장 많다. 그리고 동대문구가 2001년 3월 구민회관 운동장에서 여성축구교실을 열었다. 감독과 선수를 따로 두고 훈련한다.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 열풍과 함께 구청들이 앞다퉈 축구단과 축구교실을 시작했다. 은평 여성축구교실(4월), 중구 여자축구단(4월), 강동구 여성축구단(7월), 종로 여성 축구단(10월), 서대문구 여성축구단(11월), 영등포구 아줌마 축구단(2002년 12월) 등이다. 여성축구단이 호응을 얻자 다른 구로 확산됐다.2003년에는 성북구 여성축구단, 금천 여성축구단이 창단됐고 2004년에는 성북 여성축구교실, 노원구 여성축구단, 동작구 여성축구단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국민생활체육 광진구 여성축구단이 지난해 8월 마지막으로 문을 열었다. 현재 여성 축구단이 없는 구는 용산·성동·중랑·강북·도봉·양천·관악·서초·강남구 등이다. ■ 임옥성 감독의 한마디 성북구 여성축구교실 임옥성(62)감독은 여성축구인이 열정적이라고 칭찬했다. 시작이 힘들지 빠져들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참가한단다.1972년부터 한일은행에서 축구선수, 코치, 감독으로 활약한 임 감독은 1999년 성북구와 첫 인연을 맺었다. 생활체육인으로 활동하다 성북구 50대 축구단 감독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축구 문화를 확산하는 일이라 유쾌하게 승낙했습니다. 축구인으로 살며 누린 은혜를 갚아야겠다 싶었지요.”서울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좋은 성과를 올렸다.2004년부터는 60대 축구단도 맡았다. 그리고 그해 5월 여성축구교실을 열었다.2002 한·일월드컵이 성공하면서 여성들도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처음에 축구단은 오합지졸이었다. “대부분 축구공을 처음 만져봅디다. 공을 차는 것은 고사하고, 공이 날아오면 피하기 바빴습니다.” 그는 유소년에게 축구를 가르치듯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가르쳤다. 달리기가 첫 과제였다. “축구는 달리기가 기본입니다. 순간 스피드는 타고나고, 지구력은 훈련을 통해 키워지죠.” 혹독한 훈련에 주부들은 몸살을 앓았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걷지도, 앉지도 못했다. 몇몇 주부들은 포기했다.“어머니들이 서로 의지하며 몸을 추스르더군요. 체력과 더불어 팀워크가 탄탄해졌습니다.” 여성축구단의 실력이 날이 갈수록 향상됐다. 겨울에도 꾸준히 연습한 덕이다. 운동이 몸에 배지 않은 터라 쉬면 몸이 금세 무거워진다고 임 감독이 채찍질했다. 여성축구단은 이제 50∼60대 남성축구단과 대등하게 경기를 펼칠 만큼 실력이 붙었다. “여성축구단은 불모지를 개척한다는 게 매력적입니다. 그만큼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분야죠.”그는 올해 독일 월드컵이 열리면 여성축구인이 더 많아질 것이라 기대했다. 그래서 여성축구대회를 늘릴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기를 치러야 욕심도 생기고, 실력도 쌓인다.”면서 “서울시가 주최하는 대회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김재록 게이트] 김재록, S·H그룹 M&A도 관여설

    김재록씨는 김대중 정부 시절 공공부문 개혁과 기업 구조조정 사업을 거의 싹쓸이했다. 또한 현대차 이외에도 재계 10위권에 포진한 그룹 1∼2곳을 상대로 경영자문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검찰은 다른 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해도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은 없다고 강조했지만 재계는 김재록 ‘후폭풍’에 대비, 바짝 긴장하고 있다. 김씨는 구조조정 사업에 업종을 가리지 않았고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2003년 진로의 외자유치 자문사와 대우상용차 매각 주간사로 선정돼 국민의 정부에서 보여준 활약상을 이어갔다. 시장 일각에서는 S그룹과 H그룹의 인수·합병(M&A)에도 관여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앞서 2002년에는 대우종합기계 구조조정을 컨설팅했다.2001년에는 하이닉스와 현대석유화학에 대한 실사, 경남기업 매각 등에 참여했다.대한화재·국제화재·리젠트화재 등 보험사 매각 자문사도 맡았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주도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대우조선과 한일, 고합, 우방, 아남, 동방 등이 모두 고객이었다. 대우증권 매각에도 참여했다. 특히 아서앤더슨 한국지사장으로 있던 1999년 자산관리공사(캠코)가 보유한 4억 7500만달러 규모의 서울은행과 제일은행 해외 부실채권 매각사업도 수주했다. 정치권은 캠코가 순위를 조작, 아서앤더슨에 일을 맡겼다고 주장한다. 또한 5대 그룹 빅딜 논의가 한창이던 1998년에는 영화·안건회계법인 등과 함께 반도체 등 7개 사업구조조정 실무작업에 참여했다. 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을 위한 5대 그룹 실사에서는 삼성그룹을 책임지기도 했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김재록, 공기업 경영진단도 독식

    김재록, 공기업 경영진단도 독식

    검찰에 구속된 ‘금융브로커’ 김재록씨가 정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에 개입하기 이전, 옛 기획예산위원회가 발주한 공기업 경영진단 용역을 독식하는 등 공공부문 구조조정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관계자는 27일 “김씨가 세동회계법인에 있을 때인 1998년 초 기획예산위가 발주한 공기업 경영진단 및 평가 용역을 거의 싹쓸이했다.”면서 “당시 세동회계법인을 끼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돌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당시 진념 기획예산위원장은 공기업 민영화를 강력히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사실상 김씨가 주역이었다는 얘기가 적지 않았다.”면서 “이후 김씨는 국민정부 내내 경영컨설팅 분야의 최강자로 군림했다.”고 말했다. 세동회계법인은 5대 그룹 ‘빅딜’이 거론되던 99년에는 한일은행과 계약을 맺어 삼성그룹 계열사를 실사하는 등 빅딜업무에도 참여했다. 삼성과 현대가 통합을 추진한 석유화학 실사도 맡았다. 같은 해 재정경제부의 경영진단도 책임졌고 금융감독위원회가 주도한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워크아웃’ 자문그룹에도 참여했다. 세동회계법인은 99년 안진회계법인에 흡수됐다. 이후 아서앤더슨이 2001년 대우자동차 구조조정 주간사 역할을 맡거나 하이닉스 부채실사에 참여할 때에도 김씨가 개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아서앤더슨 한국지사장을 지냈다. 경제부처의 다른 관계자는 “김씨가 문제가 있다는 정보가 국민의 정부의 경제수장들에게 수시로 보고됐지만 그때마다 그같은 보고는 번번이 무시됐다.”고 말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포니 정’ 장학재단 생겼다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이름을 딴 ‘포니정 장학재단’이 설립됐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27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어윤대 고려대 총장 등이 뜻을 모아 지난달 장학재단 설립 등기를 마쳤다.”고 밝혔다. 장학재단 설립 취지는 생전에 장학사업을 꿈꿨던 고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재단 기금은 우선 33억원으로 시작했는데, 대부분 정몽규 회장이 사재 출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영진은 이사 5명과 감사 2명으로 구성됐으며 사무국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본사에 두기로 했다. 이사장은 사회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김진현 평화포럼 이사장이 맡았다. 이밖에 유희춘 한일이화 회장도 이사로 참여했다. 이 회장은 정 명예회장과 오랜 친구로 자동차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다른 한 사람 역시 정 명예회장과 친분이 두터운데 언론에 등장하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에는 조성호 KDI교수와 오세훈 변호사가 선임됐다. 어 총장은 정 명예회장과 정몽규 회장이 각각 고대 정외과, 경영학과 출신인데다 정 명예회장이 오랫동안 고대 총동문회장을 맡은 것이 인연이 돼 이사로 참여했다. 현산 관계자는 “재단 설립의 취지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면서 “정 전 명예회장은 평소 장학사업을 펼치겠다는 뜻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운영계획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올해 60여명에게 1억 2000만원 정도의 장학금울 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1967년 현대자동차 대표를 맡은 정 전 명예회장은 국산 기술로 만든 포니 승용차로 해외시장을 개척한 뒤 국내 자동차산업을 세계적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으로 ‘포니정’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장학사업을 펼치지 못한 채 지난해 5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국민銀, 외환銀 사실상 인수] ‘리딩뱅크’ 밑그림 8년만에 매듭

    [국민銀, 외환銀 사실상 인수] ‘리딩뱅크’ 밑그림 8년만에 매듭

    국민은행이 외환은행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됨에 따라 국내 은행권은 ‘1강(국민)·2중(신한·우리)·1약(하나)’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리딩뱅크’ 육성을 목표로 금융산업발전 개편안 등을 내놓은 지 8년여 만에 은행권 인수·합병이 일단락되는 셈이다. 당시 금융권 구조조정을 추진한 옛 재정경제원과 금융감독위원회는 국제기준의 자기자본비율을 들이대며 국내 은행은 4∼5개가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이지만 정부의 밑그림은 그대로 적중했고, 참여정부가 주장해 온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과도 부합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23일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리딩뱅크로서 외국 은행과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출 것”이라고 밝혔다. 나머지 3개 은행들도 자극을 받아 앞선 은행들을 따라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는 바람직한 형태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2차 금융개편으로 이어질지 여부에는 다소 부정적이다. 외국계 지분이 100%인 SC제일은행과 씨티은행은 글로벌 경쟁 차원에서 한국내 소매금융을 특화한다는 전략을 유지, 인수·합병(M&A)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2008년 3월까지 정부지분을 매각할 우리금융지주와 현재 시장에 나온 10조원 규모의 LG카드가 은행권의 경쟁 구도에 일부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140조원 규모의 우리금융을 신한금융이나 하나금융이 단독으로 인수하기에는 버거우며,LG카드를 인수했다고 시장판도가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앞으로 은행권의 경쟁은 M&A를 통한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보다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수익률 중심으로 싸움이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LG카드를 대상으로 한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의 경쟁이 치열하겠지만 빅뱅 수준은 아니라는 것. 정부의 이같은 생각은 M&A를 통한 금융권 재편의 무게 중심이 앞으로는 은행에서 증권 등 제2금융권으로 옮겨 갈 것을 예고한다. 자본시장통합법이 올해 통과돼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8년부터 시행되면 증권사간 합병이 본격화할 것이고, 대형 투자은행이 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재경부 관계자는 그러나 “골드만 삭스와 같은 세계적 규모의 투자은행을 바라는 게 아니라 국내 및 지역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한국형 투자은행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규모보다는 투자은행으로서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했다. 자산 기준으로 세계 70위권에서 60위권으로 발돋움할 국민은행 정도면 괜찮다는 설명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하나은행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새로운 4강 구도를 형성한 뒤 ‘진검승부’로 리딩뱅크를 가리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과 외환은행의 합병이 시너지 효과 측면에선 최고라고 하지만 M&A만으로 ‘1강 체제’를 굳히는 게 시장경쟁에 맞느냐는 주장이다. 앨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은 이날 “가격뿐 아니라 다양한 요소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이는 론스타가 ‘먹튀전략’만 구사한 게 아니라 한국의 금융산업 전략까지 감안했음을 애써 강조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편 이번 매각이 성사되면 옛 한일·상업은 우리금융으로, 조흥은 신한금융으로, 서울은 하나금융으로, 외한은 국민은행으로 흡수돼 기존 6대 시중은행의 문패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백문일 이창구기자 mip@seoul.co.kr
  • [골프소식]

    ●니켄트골프가 유틸리티 3DXDC’를 출시했다. 기존 아이언 우드가 롱아이언을 대체한 것이라면 이 유틸리티는 페어웨이우드 대용. 헤드 안쪽에 2개의 텅스텐 웨이트를 삽입한 저중심 설계가 특징이다.29만원.(02)529-9674.●경기도 여주의 한일컨트리클럽이 5년간의 단장 끝에 솔모로컨트리클럽으로 재탄생했다.36홀 모두 코스 리노베이션을 단행했고, 클럽하우스도 3000여평 규모로 늘렸다.‘솔모로’는 ‘소나무가 많은 곳’을 이르는 순 우리말이다.●한국캘러웨이골프가 한국인 전용으로 설계한 신형 드라이버 X-460을 내놓았다. 유효 타구 면적이 기존 제품보다 10% 증가돼 비거리와 방향성이 향상됐다.X-페어웨이우드 시리즈도 함께 출시됐다. 드라이버 53만원, 페어웨이우드 39만원.(02)3218-1900.
  • “한·일전 역사앙금 보는듯해 착잡”

    “한·일전 역사앙금 보는듯해 착잡”

    “한국남자가 자상하고 로맨틱하다구요?천만에요. 한국에 욘사마는 절대로 없어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을 하루 앞둔 18일 오후. 두 나라에 ‘타도 일본!’‘복수 한국!’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을 때 서울 종로구 운니동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는 이색적인 양국 화합의 장이 펼쳐졌다. 공보문화원과 JETAA(일본교환교수프로그램 총동문회)가 주최한 제1회 한·일교류 말하기 대회. 상대국 언어 실력을 겨루는 자리로 일본인 7명, 한국인 8명 등 15명이 10대1의 예선 경쟁을 뚫고 본선무대에 섰다. 얼마나 독창적인 내용을,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과 속도로, 호소력 있게 표현해 내느냐가 관건. 참가자들은 대부분 상대국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과정을 주제로 잡았다. ●미묘한 문화의 차이로 남편과 티격태격 대상(1등)은 ‘욘사마 같은 남자는 없다.’를 주제로 말한 구보 료코(29·여)가 차지했다. 그는 한국인의 아내로 살면서 겪은 에피소드로 관객들에게 내내 웃음을 선사했다.“남편과 연애하던 2000년에만 해도 저를 이해 못하는 일본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엔 욘사마 덕분에 ‘선견지명이 있었구나.’라며 부러워들 해요.” 하지만 그는 “드라마의 환상을 좇아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일본 여자들을 보면 안타깝다.”면서 “한국 남자들은 독립심이 없고 잘난 척과 허풍이 심하다.”고 꼬집었다.“툭하면 ‘하늘 같은 남편이 말씀하시는데 어딜!’이라고 말하는 남편 때문에 수도 없이 싸웠지요.” 한번은 팥빙수 먹는 법을 놓고 다투기도 했다. 팥과 얼음을 비벼서 먹는 남편에게 섞지 않고 그대로 먹는 일본식을 얘기했던 게 불씨가 됐다. 하지만 요즘은 구보가 먼저 비벼서 먹는다고. 남편 방식대로 먹어보니 의외로 맛있단다.“한국에 욘사마는 없어도 남편은 저만의 욘사마죠.” ●“요코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카하시 요코(27·여)는 “튼튼한 다리 덕에 한국을 좋아하게 됐다.”고 국내 체류기를 소개, 한일우정상(2등)을 받았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일본어 강사로 있는 그는 지난해 2월 교편을 위해 한국에 온 뒤 몇달 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살았다. 한국어를 할 줄 몰랐고 배울 엄두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영화 ‘마라톤’을 보고 춘천이란 도시에 반했고 춘천마라톤 출전을 결심했다. 마라톤 연습을 하면서 몰랐던 길도 하나하나 알아가기 시작했다. 장기 두는 할아버지, 수다떠는 아줌마, 고추 말리는 할머니들…. 낯설기만 했던 한국의 풍경들이 하나둘 가슴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한국에서 첫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해냈어요. 영화 속 초원이 엄마가 ‘요코의 다리도 백만불짜리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다카하시는 19일 한·일 야구가 일본의 승리로 끝난 뒤 “한국에 있는 일본 친구들과 일본팀을 열심히 응원했다.”면서 “세번째 만에 일본이 이겨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두 나라간 미묘한 역사적 감정이 스포츠 경기에 지나친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행사를 기획한 JETAA 한국지부 부회장 박성희씨는 “첫 대회인데도 많은 참가자가 몰려 성황을 이뤘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우정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부고]

    ●이기권(광주지방노동청장)씨 모친상 14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16일 오전 8시 (062)250-4407●장종성(전 신안군 지도읍장)씨 별세 현기(통영제일신경외과 원장)현상(동현테크노 대표)현(우리은행 지점장)현철(청와대 행정관)씨 부친상 양치성(약사)박정수(해군 준장)이중호(자영업)씨 빙부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6시 (02)3010-2230●김종훈(대한지적공사 지적팀장)창훈(한일신용협동조합 경리부장)훈(경기관광공사 홍보정책팀장)씨 부친상 14일 안양장례식장, 발인 16일 오전 9시 (031)477-1010●박영호(한아 대표)씨 모친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10시 (02)3010-2631●황호덕(연합뉴스 편집국 행정팀)씨 상배 성욱(현대자동차 연구원)씨 모친상 13일 여의도성모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2)3779-2191●손혜환(전 대우건설 부사장)씨 상배 민석(미국 게인즈빌 한일교회 목사)민주(호주무역대표본부 과장)씨 모친상 최훈규(스피나시스템스 대표)씨 빙모상 14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31)787-1501●심현수(KT 비즈니스기획담당 상무)씨 모친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7시 (02)3010-2292●전영주(셰프라인 상임감사)씨 상배 경환(공무원)씨 모친상 김승호(외무부 제네바대표부 참사관)씨 빙모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3010-2265●곽상도(서울고검 검사)상록(동원약품 이사)씨 부친상 이운식(세무사)이성배(사업)씨 빙부상 14일 경북대 병원, 발인 16일 오전 11시 (053)420-6152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신증권-양재봉 명예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신증권-양재봉 명예회장家

    주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큰 大 믿을 信’ 하면 대신증권을 단박에 떠올린다. 한때 큰 주목을 받았던 광고 카피가 알반인의 뇌리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한 이름만큼 회사의 규모나 역사는 일반인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대신증권은 증권업계에서 여타 대형 증권사와 다른 몇가지 ‘독자적인’ 위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우선 재벌 계열이나 은행 계열이 아니면서 40년간 업계 상위권을 지켜왔다.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이후 재벌이나 은행을 끼지 않은 증권사가 살아남기 힘든 환경속에서도 여전히 ‘빅5’ 안에 든다. 대신증권은 또 선진국형 증권 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으로 꼽힌다. 증권사 흑판에 분필로 시세를 적던 시절 최초로 ‘전광판’을 도입했다. 이후 ‘온라인 거래의 최강자’란 명성을 얻었고 사이버 누적거래 1위 자리를 지켜 오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3세 경영’을 잇게 된다.‘거상(巨商)의 꿈’ 하나로 빈손으로 대신증권을 일군 양재봉(81) 명예회장의 역할을 현재 아들과 며느리, 사위가 잇고 있으며 머지않아 손자가 이 역할을 대물림받을 전망이다. ●빈손 ‘송촌’ 거상의 꿈 양 명예회장은 1925년 전남 나주군 나주읍 송촌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호를 ‘송촌(松村)’으로 지었고 훗날엔 이 명칭을 딴 ‘송촌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그가 거상의 꿈을 품기 시작한 것은 송촌을 떠나 당시 ‘수재의 집합소’로 불리던 목포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15대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나주에서 간 유일한 합격자’가 된 양 명예회장은 이곳에서 ‘일본인들에게 뒤져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공부하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꿈도 키웠다. 그의 첫 목표는 한국은행 전신이었던 조선은행 입사였다. 양 명예회장은 “대학 졸업자들도 번번이 낙방하는 판에 상업학교 재학 중에 그 좁은 관문을 뚫어 자부심이 컸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이 때 생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은 모험에 대한 열망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그는 안정된 은행원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다. 거상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후 장사를 할 기회를 살피며 아이디어만 생기면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목포와 나주 일원의 쌀을 사서 부산에 파는 미곡상을 하기도 했고, 양조 사업에도 손을 댔다. 겁없이 뛰어든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다시 조흥은행 신입 은행원의 자리로 돌아와야 했고, 이후 여러 은행을 거치면서도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끊임없는 새 사업 궁리끝에 시작한 극장 사업에서 성공하면서 그는 자신감을 되찾게 된다. 금융업 경영자로서 본격 나선 것은 한일은행 서울 청량리 지점장으로 재직하던 1970년대초 무렵이다. 지점장 부임 1년도 안 돼 예금 계수를 2배로 만들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어 단자회사 설립을 권유받던 양 명예회장은 미원그룹 임대홍 회장, 해태제과 박병규 사장과 함께 ‘대한투자금융’을 설립했다. 증권 회사 설립은 그로부터 1년 뒤 일본 방문을 계기로 추진한다. 도쿄에 있던 ‘노무라증권연구소’의 선진적 체계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돌아오자마자 증권업 진출을 서둘렀다. 당시 정부는 소규모 증권사 난립을 경계해 새 증권회사 설립 허가를 꺼려했다. 양 명예회장은 75년에 직원 11명의 ‘망해가던’ 증보증권을 전격 인수한다. ●망해가던 증보증권 잘나가는 대신증권으로 증보증권은 경영 실적이 형편없는 하위권 회사였지만 그는 ‘꿈에도 그리던 증권회사를 세웠다.’는 생각에 희망에 넘쳐 있었다. 우선 회사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대신증권’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름을 바꾼 뒤부터 대신증권은 연일 승승장구했다.75년 대기업들이 탐내던 명동 국립극장 입찰에 성공해 ‘주식 투자자들의 베이스 캠프’로 만들었다. 77년 양 명예회장은 대한투자금융 전무이사직을 버리고 대신증권 사장으로 나섰다. 이어 업계 최초로 ‘전광시황 속보판’을 세우는 등 혁신을 거듭한 끝에 업계 2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성공 가도를 달리던 양 명예회장에게도 암흑기는 찾아온다. 사장 취임 4개월만에 회사 영업부장이 고객과 회사의 돈을 빼돌려 피해자만 100명에 이르는 대형 금융사고를 일으켰다. 대신증권과 자신의 신뢰에 엄청난 손상을 입힌 사고였다. 그 여파가 얼마나 컸던지 양 명예회장은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3년간 시골 농장에서 가축을 기르며 은둔 생활을 해야 했다. 다시 증권계로 돌아온 것은 81년. 대신증권의 대주주들이 양 명예회장을 찾아와 쓰러져가는 대신증권을 살려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가 대신증권 사장에 복귀했을 때, 회사는 이미 자본잠식 상태였다. 그는 “죗값을 치르겠다.”는 심정으로 일을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흐트러진 임직원들을 단합시키는 것이었다. ‘구두쇠 100일 작전’,‘개미작전’ 등 전 직원의 단합을 유도하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를 짜냈다. 잘 나가던 대한투자금융 주식을 주고 미원 임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대신증권 주식을 인수, 최대 주주가 됐고, 회사 재건에 ‘올인’했다. 다행히 80년대 중반 국내 증시는 최고 활황의 시기를 맞이한다. 양 명예회장은 대신증권의 회생에 성공해 84년 대신경제연구소,86년 대신개발금융,87년 대신전산센터,88년 대신투자자문,89년 대신생명보험,90년 송촌문화재단,91년 대신인터내셔널유럽 등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대신을 명실상부한 종합금융그룹으로 만들었다. ●신뢰 중시 경영으로 IMF 극복 하지만 그에겐 또 한번의 어려움이 닥친다.IMF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연 20%대의 살인적인 고금리 상황이 발생해 수많은 기업이 어려움에 빠졌다. 대형 증권사인 동서증권, 고려증권이 환매 사태로 하루아침에 부도에 이르면서 ‘재벌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비재벌 단독 증권사인 대신증권에도 이 분위기는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대신증권은 단기 차입금을 모두 상환해 빚이 없는 상황이었다.90년대 말 펀드 열풍으로 시중의 자금도 증권사로 몰렸다. 하지만 양 명예회장은 회사채를 편입한 수익증권 판매를 전면 중지시키고 안전한 국공채 위주의 채권형 펀드만을 취급하라고 지시한다. 예상은 맞았다. 대우그룹 부도, 하이닉스 사태,SK사태 등이 연이어 터지며 회사채로 수익증권을 판 증권사들은 잇따라 위기를 겪었지만 대신증권은 안전한 국공채를 편입한 수익증권만 판매한 덕에 손실을 입지 않았다. 결국 90년대 초반 업계를 대표하는 5대 대형사의 주인이 모두 바뀔 정도로 부침이 심한 증권업계에서 대신증권은 살아남았다. 양 명예회장이 이처럼 오뚝이처럼 일어선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업부문에 대해 과감하게 투자하는 결단력 때문이었다. 오래 전부터 전산부문이 증권회사의 성장을 이끌 것으로 본 양 명예회장은 전산부문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초기 집중 투자를 통해 온라인거래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로 인해 99년 이후 온라인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자 대신증권은 또 한번의 중흥기를 맞게 됐다. ●내실화 일군 고 양회문 회장 양 명예회장은 2001년 현업에서 물러나고, 차남인 양회문(2004년 작고, 당시 53세) 전 회장에게 회사 경영을 물려줬다. 양 명예회장의 4남4녀 중 차남인 고 양 회장은 75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신증권 공채 1기로 입사했다.10년동안 지점영업에서부터 인수, 법인, 자산운용, 기획, 인사 등 증권 전부문에 걸쳐 실무경험을 쌓으면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고 양 회장은 회장 취임후 외형 성장보다는 내실을 다지기 위해 재무 구조 정비에 나섰다. 생명, 정보통신 등을 계열 분리하고 대신증권, 투신운용, 경제연구소 중심으로 그룹을 정리했다. 그는 2002년 초 폐암진단을 받은 후 2004년 작고 때까지 약 3년간 초인적인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리더십을 발휘했다. 대신증권이 외국인 지분율이 가장 높은 내실있는 회사로 재탄생한 것은 고 양 회장의 공이 크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양 회장 작고 이후 대신증권을 이끄는 주역은 고 양 회장의 부인이자 양재봉 명예회장의 둘째며느리인 이어룡(52) 회장이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이 회장은 남편이 투병생활을 하던 3년여동안 집중적으로 경영수업을 받은 뒤 2004년 10월 회장에 취임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종종 비교되는 이 회장은 특유의 세심함으로 회사를 이끌어 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 달만에 109개 전 영업점을 순회방문하면서 직원들을 격려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뿐만 아니라 강단도 함께 갖췄다. 최근에는 자본통합시장법 제정에 따라 일본의 SPARX그룹과 자본 및 업무 제휴를 통해 향후 종합금융투자회사로의 전환에 대비하고 있다. 대만의 IBTS와 제휴하는 등 외국 금융기관과 국제적인 제휴를 진두지휘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 회장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며 조용히 책읽기를 좋아한다. 남편의 투병 중에는 국내·외에서 발간된 대부분의 암 관련서적을 섭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서울과학종합대학 최고경영자과정에 다녔다. 동기로는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SK텔레콤 김신배 사장이 있다. 이 회장과 함께 대신증권의 제2도약을 이끌 인물로는 양재봉 명예회장의 사위이자 차녀 회금(52)씨의 남편인 노정남(53) 현 대신증권 사장이 있다. 연세대 행정학과를 나온 노 사장은 지난해 10월 대신증권 사장에 취임했다. 노 사장은 77년 한일은행에 입사한 뒤 29년간 금융업에만 종사해온 탁월한 금융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87년 대신증권에 입사해 영국 런던사무소장·지점장,IB담당임원, 상품운용본부장, 국제본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99년부터 6년 동안 대신투신운용 대표이사로 재직해 왔다. 런던 소재 코리아유럽 펀드의 이사를 지내는 등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고 강력한 추진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신증권의 1대 주주이자 실질적인 대신증권의 차세대 주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람은 양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이어룡 회장의 아들인 홍석(25)·홍준(22)씨다. 장남인 홍석씨는 현재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며, 차남 홍준씨는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이다. 홍석씨는 올해안에 대신증권에 입사해 아버지인 고 양회문 회장이 밟았던 것처럼 말단에서부터 시작해 경영 수업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이자 장녀인 정연(27)씨는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외국계 컨설팅회사 베어링포인트에서 근무하다 현재 미국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다. ●단출한 혼맥… 정략결혼은 없다 양재봉 명예회장은 부인 최갑순(78)씨와의 사이에 고 양 회장 외 3남4녀를 두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연애결혼을 해 평범한 집안에 시집·장가를 갔다. 양 명예회장이 자식들의 의사를 존중해 정략적 결혼을 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송촌 회장 및 전 광주방송 회장을 역임한 장남 회천(57)씨는 대구 교육자 집안 출신의 문홍근(58)씨와 결혼했다. 회천씨는 처음부터 대신그룹에 근무하지 않고 대신전기 등 제조업체를 경영했다. 문홍집(56) 대신경제연구소 사장이 회천씨의 처남이다. 문 사장은 비즈니스 위크에서 아시아를 이끌 50인으로 선정하기도 한 금융 IT부문 한국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대신증권 IT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개발한 온라인거래 시스템인 ‘U-사이보스’는 지금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격찬을 받는 등 전산부문을 한국 최고로 이끈 실력자로 평가받고 있다. 둘째인 고 양 회장과 현 이어룡 회장 역시 연애결혼을 했다. 이 회장은 충북 괴산 출신으로 부친이 한학자였다. 이 회장 동생인 제봉(43)씨는 대학 교수이고, 제영(41)씨는 대신증권 IB 1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3남인 용호(48)씨는 코스닥 상장 창업투자회사인 대신개발금융회장과 아인스 회장을 역임했다. 아인스는 세계 유명 건축물 모형 전시시설인 경기도 부천의 아인스월드를 운용하는 회사다. 서울시 공무원 집안의 조선미(45)씨와 결혼해 2남1녀를 두고 있다. 4남인 정현(37)씨는 현재 코스닥 상장 금융 IT전문 회사인 대신정보통신 전무이사로 있다. 부인 이현아(30)씨는 조선내화 이훈동 회장의 손녀이자, 민주당 이정일 국회의원의 딸이기도 하다. 장녀 영애(59)씨는 대학때 연애를 통해 만난 나영호(60) 현 경원대 겸임교수와 결혼했다. 재무학 박사인 나씨는 대신경제연구소 사장으로 재직하다가 2005년 은퇴했다. 차녀 회금씨와 노정남 대신증권 사장도 연애결혼했다. 노 사장은 한국행정연구원장을 역임했던 노정현(77) 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의 친동생이다. 3녀 미경(42)씨는 이시영(46) 현 중앙대 교수와 결혼했다. 이시영 교수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받은 뒤 중앙대에서 사회과학대학 상경학부 교수와 동대학 국제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이 교수의 부친은 전북지사와 공보부 차관을 지낸 이춘성씨다. 4녀 회경(41)씨는 이재원(46) 현 대신정보통신 대표이사와 결혼했다. 이 대표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93년부터 금융솔루션 업체인 대신정보통신에 근무하고 있다. s123@seoul.co.kr ■ 슬로건 ‘큰大 믿을信’ 어떻게 지었나 대신증권을 오늘의 위치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은 ‘큰大 믿을信’이라는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은 양재봉 명예회장의 작품이다. 양 회장은 증보증권을 인수해 새 회사를 만들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믿음이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이루어 낼 수 없다.”는 신념으로 ‘대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큰 대 믿을 신’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1986년부터다. 당시 증권 산업은 성장하고 있었지만 국민들의 증권사에 대한 인식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양 회장은 주식 투자의 대중화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회사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홍보활동을 강화했다. 86년 3월 처음으로 TV CF를 제작했지만 시청자에게는 크게 파고 들지 못했다. 새로운 홍보전략을 구상하던 양 회장은 어느 날 열차를 타고 가던 중 열차바퀴가 레일과 마찰하면서 일어나는 소리가 매우 경쾌하다고 느낀다. 그는 “마치 옛날 서당에서 ‘하늘천 따지’하고 천자문을 읽을 때의 리듬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소리가 곧 우리 정서에 잘 맞는 3·3조 가락과 닮았다는 생각에 바로 큰 대 믿을 신 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이후 TV 광고에는 ‘큰 대 믿을 신’ 이라는 슬로건을 빠짐없이 사용하게 됐다. 이 슬로건은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증권회사 하면 ‘큰大 믿을信=대신증권’을 떠올리게 할 만큼 히트했다. 이후 ‘큰大 믿을信’은 20여년간 대신증권 광고의 슬로건으로 사용되면서 대신증권을 증권명가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s123@seoul.co.kr ■ 금융통 대거 배출한 ‘증권계 사관학교’ ‘증권업계 사관학교’로 불리는 대신증권은 금융계에서 내로라할 만한 인물들을 숱하게 배출했다. 주택은행장과 중소기업은행장을 지낸 박동희(76)씨, 정해왕(59)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 김정태(59) 전 국민은행장, 이강원(56) 한국투자공사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1986년 대신경제연구소에 대표이사로 입사한 박 전 중소기업은행장은 대신개발금융, 대신투자자문, 대신증권 대표이사를 거쳐 대신그룹 부회장을 역임했다. 정 금융경제연구원장은 미국 켄터키 주립대에서 경영대 조교수로 있다가 대신경제연구소 상무이사로 입사,89년부터 4년간 대신경제연구소를 이끌었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도 대신증권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조흥은행 출신인 김 전 행장은 양재봉 명예회장이 설립한 대한투자금융에 74년 스카우트됐다. 양 명예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그는 대신증권 비서실장으로 발령났고,80년 34세의 나이로 대신증권 최연소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강원 한국투자공사 사장은 89년 대신증권 국제영업담당 상무이사로 대신증권에 입사했다. 퇴사 후 아시아개발은행을 거쳐 외환은행장, 굿모닝 증권 사장을 역임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이밖에 이준호(61) 대한화재 사장은 77년 대신증권 종합기획실 실장으로 입사한 뒤 이사, 상무이사를 거쳐 94년에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김한(52) 메리츠증권 부회장은 89년 대신증권에 입사한 뒤 만 35세의 젊은 나이에 이사직에 올랐다.97년까지 대신증권에서 국제본부장, 인수본부장, 기획본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증권계의 거목으로 성장했다. s123@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위안부 할머니 ‘수요집회’ 700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벌여온 ‘수요시위’가 15일로 700회를 맞는다.1992년 1월8일 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처음 시작된 수요시위는 정대협 주관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0∼20명이 교대로 참석한 가운데 15년 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계속됐다.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와 배상, 역사왜곡 중단을 통한 명예회복에 일본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온 지난 14년간 할머니 225명 가운데 105명이 생을 마감했다. 정대협은 수요시위 700회를 맞아 전국적으로 집회를 갖는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15일 일본대사관 앞뿐만 아니라 전주·마산·울산·대전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집회를 열고 한·일 협정에서 위안부 피해 배상을 제외한 우리나라 외교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한다. 도쿄·오사카·오키나와 등 일본 7개 지역과 독일·미국·필리핀 등 해외에서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린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한일 항공운항 대폭 증편

    올해 상반기 중 한·일 노선 항공기 운항 편수가 대폭 늘어나 일본여행이 한결 편리해질 전망이다. 건설교통부는 지난해 말 한·일 항공회담에서 확보된 운수권을 대한항공에 11개 노선 주 40.3단위, 아시아나항공에 13개 노선 주 43.4단위를 배분했다고 9일 밝혔다. 항공운항에서 단위는 여객기의 좌석수와 화물기의 운송 중량에 따라 적게는 1.0에서 2.0까지로 구분된다.1.0의 경우는 150석 내외의 여객기나 45t 중량의 화물기,250석 여객기와 60t 중량의 화물기는 1.3,300석 이상 여객기와 100t 내외 화물기는 2.0으로 분류된다. 이번 배분으로 서울∼후쿠오카 노선은 주 21회에서 32회로, 부산∼후쿠오카는 9회에서 11회, 제주∼후쿠오카는 3회에서 9회로 늘어난다. 또한 제주∼오사카는 5회에서 8회로, 서울∼오키나와는 4회에서 5회, 서울∼도야마는 3회에서 5회, 서울∼아키타는 3회에서 4회, 서울∼아오모리는 3회에서 4회, 서울∼나고야 화물노선은 2회에서 4회로 각각 증편된다. 일본측 공항사정 등으로 증편이 어려운 노선은 운항기종을 대형화하기로 했다.이와 함께 서울에서 고마쓰, 아사히가와, 하코다테 노선과 부산에서 삿포로, 히로시마 등 5개 노선에도 신규 취항한다. 건교부 관계자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일본입국 관광목적 비자 영구면제 조치와 함께 항공기 증편과 신규 취항으로 일본여행이 한층 편리해지게 됐다.”고 말했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도하아시안게임 남·북단일팀 꼭 이룰 것”

    “도하아시안게임 남·북단일팀 꼭 이룰 것”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박성인(68) 대한빙상연맹회장. 그가 행복해하는 건 종심(從心)을 바라보는 지금, 한 평생을 바친 스포츠가 그에게 돌려준 선물 때문이다. 쇼트트랙을 비롯한 한국 빙상이 동계올림픽 역대 최다의 메달을 수확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파라벨라 쇼트트랙 경기장에서 그는 태극기 물결을 바라보며 지난 10년을 되짚었다.1997년 빙상연맹과 삼성스포츠단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그는 쇼트트랙의도약을 약속했다. 스포츠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선택과 집중’이라고 자신했다. 이후 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과 그 4년 뒤 솔트레이크대회에서 각각 금메달 3개,2개에 그쳤던 한국 쇼트트랙은 토리노에서 역대 최다인 6개의 금메달을 그에게 안기며 10년의 투자를 보상했다. 지금 경영인이나 다름없는 그는 “국제대회 성적은 국가의 브랜드를 제고시키는 외교 첨병”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이어 “쇼트트랙의 파벌 싸움과 동계종목 편식 등 부작용에 대한 치유책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그의 직함은 꽤 많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 도하아시안게임·베이징올림픽 남북단일팀 협상 남측 수석대표 등 하나같이 굵직굵직하다. 또 매년 수백억원의 밑돈으로 한국 스포츠를 움직이는 삼성스포츠단의 단장이다. 한국전쟁 이듬해 스포츠맨이 된 이후 55년간 그는 한국 스포츠의 희비와 궤를 같이했다. 그의 고향은 평양이다. 평양사범대 부속초등학교를 다니다 1·4후퇴 때 월남, 대구에서 대학까지 마쳤다. 대륜중 1년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탁구 라켓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학교 대표선수로 출발, 대륜고를 거쳐 영남대 재학당시 태극마크를 달고 58년 도쿄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65년부터는 계성여중·고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 한일은행 감독을 거쳐 70년엔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82년 총감독에서 물러날 때까지 녹색테이블에 바친 세월은 꼭 31년이다. 그 기간 평생 잊지 못할 대사건은 91년 지바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남북단일팀 출전이었다. 그는 대회를 두 달 남기고 협상 대표로 대한해협을 건넌 뒤 단 두 차례의 실무회담 끝에 최초의 남북단일팀을 성사시킨 주인공이다. 15년만에 그는 똑같은 숙제를 또 떠안았다. 올해 말 도하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의 두번째 남북단일팀 성사다. 당시 지바 단일팀을 함께 만들어낸 현 북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자 동갑내기인 장웅과의 협상은 국내외의 정치적 배려에 탄력을 받아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여건은 좋지 않다. 북측의 ‘포괄적 요구’라는 걸림돌에 지난해 11월 첫 실무협상이 무위로 돌아갔고, 그는 지금 재협상을 기다리고 있다. “10년을 기다려 쇼트트랙의 올림픽 최강을 일궈냈는데 그깟 2∼3개월이야 더 못 기다리겠습니까.” 최초의 국제종합대회 단일팀에 대한 그의 신념은 바위처럼 굳기만 하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흔들리는 ‘실세 총리실’

    흔들리는 ‘실세 총리실’

    이해찬 총리가 ‘3·1절 골프 파문’으로 사실상 사의를 표명한 가운데 국무총리실의 위상이 어떤 변화를 겪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흔히 국무총리실로 일컬어지는 국무총리 비서실과 국무조정실에는 이 총리 재임 기간 이른바 ‘이해찬 사단’이 곳곳에 포진했다. 이 총리가 ‘실세 총리’로 자리잡으면서 조직도 고건 총리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격히 비대해졌다. 때문에 이 총리의 신상에 변화가 생긴다면 총리실에는 적지 않은 바람이 불어닥칠 전망이다. ●비대해진 조직, 위상 변화에 촉각 국무조정실은 이 총리 취임 이후 조직과 인력을 대폭 늘리면서 ‘국정운영의 중심’으로 입지를 굳혔다.2003년 말 307명에 불과했던 국무조정실 인력은 지난해 9월 563명까지 늘어났었다. 지금은 각 부처 파견인력 210명을 포함, 모두 510명이다. 또 총리실 산하 기획단은 지난 한해에만 용산민족역사공원건립추진단과 제주특별자치도추진기획단, 한일수교문서공개대책기획단 등 3개가 신설돼 지금은 모두 9개가 운영되고 있다. 총리가 위원장인 위원회도 참여정부 출범 당시만 해도 35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 1월 ‘평화적 집회·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민관공동위원회’가 출범하는 등 지금은 50개로 늘었다. 때문에 ‘5·31 지방선거’를 의식해 실권이 없는 ‘얼굴마담형 총리’가 기용된다면 조직 관리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해찬 친위사단, 거취 어떻게 ‘이해찬 친위사단’의 거취도 관심이다. 이 총리가 5선 의원에 이를 때까지 정치 활동을 돕거나, 교육인적자원부 장관과 서울시 부시장 등을 거치면서 관계를 구축한 인물들이다. 이 총리는 2004년 7월 취임 직후인 9월 인사에서 친위사단을 총리실에 대거 포진시켰다. 부산 골프 회동에 동행한 이기우 교육부 차관도 이때 총리 비서실장(차관급)에 기용됐다. 이 차관 이임 이후 비서실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임재오 정무수석비서관(1급)은 당시 이 총리의 서울시 시절 맺은 인연으로 서울시 문화국장에서 자리를 옮겼다.10여년 동안 이 총리를 보좌해온 이강진 공보수석비서관도 같은 시기 발탁된 인물 가운데 하나다. ●‘독수리 5인방’, 원대복귀? 송선태 정무1비서관(2급)과 황창화 정무2비서관, 김희갑 정무3비서관, 정윤재 민정2비서관, 홍영표 시민사회비서관 등 열린우리당 출신 인사 5명도 이때 비서실에 입성했다.40대 학생운동권으로 노 대통령 및 이 총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이들은 청와대와 총리실, 총리실과 정치권의 가교역할을 하면서 내부에서는 ‘독수리 5인방’으로 불리고 있다. 이밖에 지난해 1월 청와대 사회조정2비서관에서 자리를 옮긴 남영주 민정수석비서관 등 총리실에는 15명 안팎이 친위사단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들은 총리와 진퇴를 함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6일 “비상사태 아니냐.”며 ‘이해찬 사람’으로 분류되는 인사들 사이의 심각한 분위기를 전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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