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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락의 기업인맥 대해부](76) 종합금융회사로의 도약에 앞장서는 한국투자금융그룹 CEO

    [이종락의 기업인맥 대해부](76) 종합금융회사로의 도약에 앞장서는 한국투자금융그룹 CEO

    김주원 부회장, 오너와 손발을 맞춰온 그룹의 2인자유상호 부회장, 증권사 최연소·최장수 CEO 기록한국투자금융지주는 국내 금융 지주사 가운데 ‘증권사 중심’의 금융지주회사다. 국내 은행 계열 지주사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한국투자금융그룹은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굵직한 은행 계열 지주사와 비교하면 아직 몸집이 차이가 난다. 한국투자금융그룹의 올해 1분기 관리자산이 234조원인데 반해 신한금융지주는 연결자산이 513조이고, KB금융그룹의 고객관리자산은 490조여원에 달한다. 때문에 김남구(56) 부회장은 증권사 외의 금융회사를 인수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2016년 우리은행 지분 4%를 인수하며 과점주주로 참여했고 카카오뱅크에는 지분 58%를 지닌 최대주주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현재 25곳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그룹의 덩치가 커지자 김남구 부회장은 지난해 말 김주원(61)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을 부회장으로 임명해 ‘2인 부회장’체제를 시작했다. 오너 2세인 김남구 부회장과 전문경영인 김주원 부회장이 함께 호흡을 맞추는 체제인 셈이다. 김주원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겸 카카오뱅크 의장은 청주상고, 성균관대 경영학과,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나온 뒤 동원증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한국투자파트너스 사장 등 한국투자금융그룹의 여러 계열사를 두루 거쳤다. 8년 동안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을 맡으며 김남구 부회장과 손발을 맞춰온 ‘복심’이다. 그룹의 지주가 2인 부회장 체제로 운영된다면 증권은 유상호(59)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이 있다. 고려대 사대부고,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MBA를 마친 뒤 한일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대우증권, 메리츠증권, 동원증권을 거쳐 2007년부터 지난해말까지 11년동안 한국투자증권 사장으로 일해 증권업계 최연소 CEO와 단일 증권사 최장수 최고경영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증권업계에서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10년 이상 CEO를 맡은 경우는 유 부회장이 유일하다. 대우증권 영국 런던법인에서 근무하던 시절 약 7년동안 한국주식 거래량의 5%를 혼자 매매해 ‘전설의 제임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007시리즈의 주인공 인 제임스 본드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였다. 취미는 요리다.이강행(60)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은 김남구-김주원 부회장을 보좌하고 있다. 동원증권 시절부터 경영기획본부장을 맡았을 정도로 그룹내 최고 ‘기획통’이다. 광주 숭일고와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정일문(55)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올해부터 유상호 부회장에 이어 그룹의 핵심인 증권을 책임지고 있다. 광주 진흥고와 단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입사후 ECM(주식관련 IB업무)부 상무, 투자금융(IB) 본부장, 기업금융본부 및 퇴직연금 본부장을 거쳐 2016년부터 개인그룹그룹장 겸 부사장을 역임했다. 올해 1분기에 영업이익 2746억원, 당기순이익 2186억원으로 분기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1974년 국내 최초 투자신탁회사로 설립돼 국내 투자신탁업의 역사와 함께 해 온 회사다. 2005년 동원투자신탁운용과 합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베트남 투자 펀드 등 다양한 상품을 출시했다. 투자 리서치 전문가인 조홍래(58) 사장이 회사를 맡고 있다. 조 사장은 명지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 예일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룹내 인테리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2006년 우리나라 최초의 장기가치투자 전문자산운용사로 출범했다. 기업의 본질적 내재가치에 투자하는 가치투자와 시장의 변동성에 좌우되지 않고 기업의 내재가치가 주가에 반영되기까지 흔들림없이 기다리는 장기투자를 운용철학으로 삼고 있다. 이채원(55) 사장은 2007년 ‘이채원의 가치투자-가슴뛰는 기업을 찾아서’라는 투자 전문서를 출간할 정도로 자산운용전문가다. 일본 도쿄의 세인트메리스 국제학교를 졸업해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하다. 중앙대 경제학과와 국제경영대학원을 나왔다.벤처캐피탈회사인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중소기업 창업자에 대한 투자 및 융자와 창업투자조합자금의 관리, 경영지도 등을 주된 영업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국내에서 유일하게 벤처펀드 운용자산이 1조원을 넘어섰고, 미국,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에서 해외영업을 확장중이다. 화곡고와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백여현(55) 사장이 2008년부터 CEO를 맡고 있다. 한국투자저축은행은 2001년 이후 18년 연속으로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2018년 말 기준 고정이하여신 비율 2.7%, 연체율 2.6%(K-GAAP 기준)로 업계 최고의 자산건전성을 보유하고 있다. 권종로(56) 사장은 전주 완산고와 고려대 무역학과, KAIST MBA과정을 마친 2001년부터 한국투자저축은행에서 줄곧 근무해왔다. 여신전문금융회사인 한국투자캐피탈은 지난해 3월 한국신용평가로부터 신용등급 A0를 부여 받아 지난해 9월 800억원의 기업어음증권 발행을 완료했다. 공인회계사 출신인 오우택(57) 사장은 2014년부터 CEO로 재직중이다. 대일고, 서강대 경영학과, 미 뉴욕 콜롬비아대 MBA를 마쳤다. 모바일 기반의 한국카카오은행은 지난 3월말 기준 고객 수 895만명, 총 수신 14조 9000억원, 총 여신 9조 7000억원을 달성했으며, 당기순이익 66억원을 기록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국내 최대 모바일 메신저앱인 카카오톡을 활용해 중도상환수수료와 ATM수수료를 면제하는 등 기존 금융사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카카오은행을 출범시킨 이용우(55) 공동대표는 그룹에서 투자전략·전략기획실장, 자산·채권운용 본부장, 신탁운용 임원 등을 두루 거쳤다. 가야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월드컵 기록도 풍년…4승 최다승·4도움 이강인

    월드컵 기록도 풍년…4승 최다승·4도움 이강인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사상 첫 결승에 안착한 한국 20세 이하 축구대표팀은 다채로운 기록을 쏟아내며 풍년 농사를 지었다.대표팀은 결승에 이르기까지 4승을 거뒀다. 이는 FIFA 주관 대회에서 남자 국가대표 최다승 기록이다. 지난 9일 승부차기로 승리를 거둬 무승부로 공식 집계된 8강 세네갈과의 경기를 제외한 승수다. 종전 최다승은 1983년 U20 대회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거둔 3승이었다. 정정용호는 4강에서 에콰도르를 꺾으면서 새 역사를 썼다. 여자 국가대표 축구팀은 2010년 U17 대회와 2010년 U20 대회에서 4승을 달성한 바 있다. 대표팀이 16일 새벽 1시(한국시간)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에서 승부차기 없이 우승한다면 최다승도 다시 경신한다. 우리 대표팀은 4강까지 6경기를 치르는 동안 8골(승부차기 제외)을 기록했다. 조별리그에서 3골, 16강 1골, 8강 3골, 4강 1골이다. 종전 최고기록은 2009년 이집트 U20 대회에서 홍명보호가 거둔 9골이다. 결승전 득점 상황에 따라 타이 혹은 신기록이 나올 수 있다. 개인 기록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강인은 1골 4도움으로 FIFA 주관 단일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 기록으로는 역대 최다 도움을 달성했다. 이전에는 2도움이 최고였다. 1983년 멕시코 U20 월드컵에서 이태형과 김종부, 한일 월드컵 때 이을용과 이영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당시 기성용, 2013년 U20 월드컵 때 권창훈과 심상민 등이 모두 2도움으로 공동 1위에 올라 있었다. 한일전에서 극적인 결승골을 넣은 오세훈, 세네갈과의 8강에서 연장 전반 역전골을 뽑아낸 조영욱이 각각 2골을 기록 중이다. 이들 중 추가골을 넣는 선수도 한국 대표팀이 출전한 단일대회 최다골(3골)과 같다. 1983년 멕시코 U20 월드컵에서 신연호, 2009년 이집트 U20 대회에서 김민우가 각각 3골을 달성한 바 있다. 마지막 결승에서 새로운 대기록이 속출할 지 주목된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日, 위안부 문제에 무한책임…징용배상 판결 부정도 부적절”

    “日, 위안부 문제에 무한책임…징용배상 판결 부정도 부적절”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무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피해자들이 괜찮다고 할 때까지 항상 사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일본 내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로 알려진 하토야마 유키오(72) 전 일본 총리는 1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서 “일본은 전쟁으로 상처를 받은 한국과 중국 분들이 더는 사죄를 할 필요 없다고 말할 때까지 항상 사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 일본에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었다”면서 “식민지 지배에서 가해자는 피해자 쪽에서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2015년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 적이 있다”면서 “일본에서는 왜 일본 총리가 한국에서 무릎을 꿇냐며 분노했는데, 저는 옳은 행동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1991년 야나이 지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며 “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 노역 배상 판결과 관련해서 일본이 부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최근 한국, 중국에 대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강경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베 총리는 방위력과 군사력을 강화해 일본이 강력한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시대착오적인 사고”라면서 “모든 문제는 대화를 통해 마지막까지 노력해야 한다. 군사력으로는 진정한 평화를 결코 쌓아 나갈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평화를 지키려면 자위대를 강화할 것이 아니라 주변국과 어떻게 우호적 관계를 형성해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며 “위협을 줄이려면 상대에게 위협의 의도를 없애 주면 된다. 이것이 외교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자신의 저서 ‘탈대일본주의’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책에서 자신의 지론인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재차 주창하며 “일본 정부가 미국의 비호 아래 군사 대국화를 꿈꾸며 헌법으로 금지돼 있음에도 전쟁에 참가할 수 있는 나라가 돼 미국이 시키는 대로 전쟁에 협력하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썼다. 또 “경제 대국의 여세를 몰아 정치대국(그레이트 파워)으로 도약하겠다는 일본인의 희망은 허망한 꿈”이라면서 “팍스 아메리카나, 팍스 차이나 대신 팍스 아시아나”를 지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2009년 제93대 일본 총리를 역임했다. 총리 시절 부인과 노모가 한류 팬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는 등 한국에 호의적인 일본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총리 퇴임 후에도 꾸준히 한일 위안부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현재 동아시아공동체 연구소 이사장 및 국제아시아공동체학회 명예고문을 맡고 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한국, 日 중재위 요청 거부… G20 때 정상회담 아닌 접촉 수준일 듯”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한 일본 측의 중재위원회 설치 요청을 한국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아사히신문이 12일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일본 정부가 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지난달 중재위 설치를 요청한 가운데 한국 정부는 오는 18일 기한까지 중재위원 임명에 응하지 않기로 방침을 굳혔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중재위 설치 조건을 ‘외교 경로에서 해결할 수 없었던 경우’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아직 외교 협의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중재위를 설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한국 정부의 판단”이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9일 한일 청구권협정에 근거해 협의를 요청했고, 지난달 20일에는 제3국을 포함한 중재위 설치를 한국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제반 요소를 감안해 신중히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아사히는 이어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지난달 프랑스 파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하면서 “외교장관 협의를 지속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고 강 장관도 이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오는 28~29일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맞춰 양국 외교장관 회담이 열릴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한국 측이 중재위 설치에 응하지 않아 한층 어려워지고 있다”며 “정상끼리 접촉을 한다고 해도 단시간 또는 서서 이야기하는 정도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끝까지 간다’ 한국, U20 월드컵 사상 첫 결승행…男축구 FIFA대회 우승 신화 도전

    ‘끝까지 간다’ 한국, U20 월드컵 사상 첫 결승행…男축구 FIFA대회 우승 신화 도전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 출전한 막내들이 새로운 역사를 썼다. ●16일 새벽 1시 우크라이나와 격돌 U20 대표팀은 12일(한국시간) 폴란드 루블린에서 열린 4강전에서 최준(20·연세대)의 결승골로 에콰도르를 1-0으로 꺾고 역대 처음으로 결승에 안착했다. 1983년 U20 대표팀 4강 진출과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뛰어넘는 FIFA 주관 남자축구 대회 최고 성적이다. U20 대표팀은 우리 국민에게 FIFA 주관 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장면을 보여 줄 기회를 선사했다. 21명 선수들의 집념과 정정용 감독의 전략이 빚어 만든 ‘거사’다. 오는 16일 새벽 1시 결승전 상대인 우크라이나를 꺾고 정상에 서면 아시아 국가 대표팀 통틀어 역대 첫 FIFA 주관 대회 우승의 영구불변 기록도 쓴다. 1981년 카타르, 1999년 일본이 U20 결승에 올랐지만 각각 서독과 스페인에 0-4로 패했다. ●4강전서 에콰도르 1-0으로 꺾어 정 감독은 “이제 마지막 경기가 남았다. 남은 한 경기도 멋진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대회 최대 스타로 떠오른 이강인(18·발렌시아)은 “결승은 정말 역사적인 날이 될 것 같다. 중요한 경기, 역사적인 날에 이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롭게 등장한 황금세대가 한국 축구의 새로운 신화를 써 가고 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하이라이트] 에콰도르 꺾고 U-20 월드컵 결승행

    [하이라이트] 에콰도르 꺾고 U-20 월드컵 결승행

    한국 U-20 남자 축구대표팀이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12일(한국시간) 폴란드 루블린 경기장에서 열린 2019 폴란드 FIFA U-20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에콰도르를 1-0으로 꺾었다. 전반 39분 이강인(발렌시아)의 프리킥 패스를 최준(연세대)이 받아 마무리했고, 이 골은 결승골이 됐다. 이로써 한국은 16일 오전 1시 우치 경기장에서 우크라이나와 U-20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놓고 마지막 승부를 펼친다. 한국은 1983년 멕시코대회에서 이룬 ‘4강 신화’를 뛰어 넘어 우승에 도전하게 됐다. FIFA 주관 대회에서 남자 대표팀이 우승에 도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자 성인대표팀에서도 2002년 한일월드컵 때 4위가 최고 성적이었다. 여자 대표팀은 2010년 17세 이하에서 우승한 바 있다. 영상=SBS 영상부 seoultv@seoul.co.kr 
  • 오노데라 前일본 방위상 “문재인 정권은 무시하는 게 최고” 발언 파문

    오노데라 前일본 방위상 “문재인 정권은 무시하는 게 최고” 발언 파문

    지난해 9월까지 방위상을 지낸 일본의 유력 정치인이 한국과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폭언을 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59) 전 일본 방위상은 지난 10일 도쿄에서 가진 내외정세조사회 강연에서 한국 해군 광개토함과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 사이의 ‘레이더 조사-저공 위협비행’ 갈등을 언급하며 “문재인 정권에서 한일 관계가 좋아질 것으로는 생각하기 어렵다. 정중하게 무시하는 것이 최고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7선 의원으로 자민당 안전보장조사회장을 맡고 있는 오노데라 전 방위상은 “서로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면 감정적이 되고, 다시 친해진다고 해도 앙금이 남는다”며 “(한국의) 정권이 바뀌어서 이성적 판단이 가능해지면 (그때 가서야) 윈윈 관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오노데라 전 방위상은 지난 5일 자민당 국방부회(위원회) 등 합동회의에서도 앞서 1일 이와야 다케시 현 방위상이 한국의 정경두 국방장관을 만나 회담한 것을 놓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는 당시 “레이더 조사 문제에서 한국 측은 일본의 반론을 자의적으로 사용해 왔다”며 “그런 상대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이와야 방위상을 비판했다. 오노데라 전 방위상은 지난 2월에는 레이더 갈등과 관련해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다른 많은 국가들도 초계활동 중에 한국으로부터 레이저 조준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이 있을 것”이라며 “이런 국가들과 함께 한국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형님들 넘어, 4강을 넘어… ‘꾸역꾸역’ 신화 쓰는 녀석들

    형님들 넘어, 4강을 넘어… ‘꾸역꾸역’ 신화 쓰는 녀석들

    정감독 “세네갈전서 멋지게 놀고 나오라해 우리는 쉽게 지지않는 팀… 잡초처럼 성장” 12일 새벽 남미 에콰도르 상대로 준결승전 당초 목표 넘어 역대 최고 성적·우승 도전36년 만에 ‘4강 신화’를 다시 일궈 낸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의 정정용 감독은 “우리는 꾸역꾸역 가는 팀이다. 쉽게 지지 않는다”면서 끝까지 도전하겠다는 더 큰 포부를 밝혔다. 그는 9일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 경기장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8강전을 마치고 “이제 우리가 한 약속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잘 준비하도록 하겠다. 끝까지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은 아프리카의 강호 세네갈과 연장 혈투 끝에 3-3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2로 승리, 1983년 멕시코 대회 이후 36년 만에 4강에 올랐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정 감독이 목표로 내세운 것은 ‘어게인 1983!’이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그보다 더 큰 꿈인 우승을 이야기했다. 대표팀은 12일 오전 3시 30분 루블린에서 열리는 에콰도르와의 4강전에서 한 단계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세네갈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멋지게 한판 놀고 나오라고 얘기했다”는 정 감독은 “솔직히 한일전보다는 덜 부담스럽지 않더냐. 너희들이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지 더 잘 알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고 선수들을 칭찬했다. 대한축구협회 전임 지도자로서 연령대 대표팀을 두루 맡아 온 정 감독은 이번 대표팀에 대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이 다른 팀보다 더 강한 것 같다”면서 “이들이 여러 힘든 상황을 거치면서 잡초같이 성장했던 거 같다”고 평가했다.정 감독이 그토록 강조하던 ‘원팀’의 모습을 제대로 찾아가기 시작한 U20 대표팀은 이제 한국 축구사의 가장 높은 자리를 향해 도전장을 던졌다. 연령별로 나뉜 대한민국 각급 대표팀 가운데 가장 큰 ‘형님뻘’인 성인(A)대표팀도 이루지 못했던 자리다. 이미 대회 4위를 확보한 대표팀은 12일 새벽(한국시간) ‘남미의 복병’ 에콰도르를 상대로 결승의 관문을 두드린다. 에콰도르를 따돌리면 우리 각급 대표팀을 통틀어 FIFA가 주관하는 대회 참가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일구게 된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A대표팀이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대회 사상 처음으로 4강 신화를 일궈 냈지만 4개 연령별 대표팀을 통틀어 그 이상의 성적을 낸 적은 없다. 홍명보 감독이 이끌던 U23 대표팀이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처음으로 3위의 성적을 낸 적이 있지만 올림픽 축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관한다. 물론 FIFA가 각국 출전권 분배 등 거의 모든 부분을 조율하긴 하지만 대회를 주관하지는 않는다. U20 대표팀의 4강전은 사실 17년 전 ‘형님’들의 월드컵 4강 신화와 묘하게 닮아 있다. 당시 히딩크호 역시 ‘넘사벽’이라던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전·후반과 연장전까지 가는 120분 동안의 접전 끝에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5-3의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 냈다. 스페인의 마지막 키커(호아킨)가 공중으로 공을 날리고 얼굴을 감싸 쥔 채 괴로워하던 모습까지, U20 대표팀의 이날 승리는 17년 전의 ‘거사’를 그대로 빼다박았다. 이제 ‘아우’들의 차례다. 먼 훗날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할 승부를 정정용호의 ‘원팀’은 준비하고 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속보] 정부 “시진핑, G20 때 한국 안 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달 말(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우리나라를 방한하지는 않을 것으로 7일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그러나 G20을 계기로 한 한중정상회담이나 한일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여전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대구보건대 시마네현립대학교 교류 확대

    대구보건대가 일본 시마네현립대학교와 교류를 확대하기로 했다. 대구보건대 남성희 총장과 장상문대외부총장, 김미옥 식품영양과 교수는 시마네현립대의 요청으로 6일과 7일 양일간 이 대학교를 방문, 기요하라 마사요시 총장 등과 교류확대에 대한 간담회를 가졌다. 양 대학교는 지난해 11월 5일 대구보건대학교에서 교류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양 대학교는 이날 회의에서 먼저 교수 연구 협력 및 학생?교직원 교류를 강화하기로 했다. 먼저, 대구보건대학교 식품영양과 학생 3명은 오는 7월 21일부터 2주간 현장실습을 갖기로 했다. 8월 23일에는 2주 일정으로 시마네대학교 교수와 학생이 실습과 문화교류를 위해 대구보건대학교를 방문하기로 했다. 일본 학생들은 한국전통보석함 만들기 등 문화강좌를 배우고 ‘한일 영양사 이야기’를 주제로 토론회를 가질 예정이다. 교수들은 공동연구에 대한 미팅에 나섰다. 올해 4월부터 김미옥 교수와 일본교수 3명은 『한국과 일본의 바른 식생활 교육에 대한 우유·유제품 가치관』에 대해 한일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교수들은 이후 5월 10일 열린 한국식품영양학회에서 공동 포스터를 발표하고 우수상을 수상했다. 양 대학교 교수들은 성공적으로 공동연구를 시작한 만큼 연구의 양적·질적 성장을 통해 양국의 식품영양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남성희 총장은 “양 대학이 짧은 시간 안에 교류를 확대하고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각 국에서 특성화 대학으로 성장한 노하우와 구성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양 대학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류확대가 대학의 발전과 지역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무사귀환 위하여… 24시간 빠듯한 해외지킴이

    무사귀환 위하여… 24시간 빠듯한 해외지킴이

    공관서 사건·사고 접수해 초동조치 지시 강경화 “헝가리 참사 철저히 책임규명”“마지막 한 분의 실종자까지 가족의 품에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현충일인 6일 서울 광화문 외교부 청사 내 해외안전지킴센터에서 만난 전한일 센터장은 각지의 사건·사고가 세계지도에 표시되는 대형 스크린에서 눈을 쉽게 떼지 못했다. 지난해 5월 출범한 센터는 365일·24시간 가동하며 해외 공관에서 사건·사고를 접수하고 초동조치를 지시한다. 지난달 29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발생한 허블레아니호 침몰 사고도 이곳을 통해 정부기관으로 전파됐다. 현재도 해당 사안과 관련해 실무 수준에서 현장과 소통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매년 3000만명의 국민이 해외에 나가면서 이곳에 하루에 접수되는 사고만 수백건이다. 그는 “비중 있는 사고가 발생하면 현지 영사가 출동하는 게 원칙인데 그런 사안만 하루 50여건”이라며 “해외에서 발생하는 지진 등 자연재해는 공관 직원이 퇴근한 뒤에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여기서 잘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직원은 총 17명으로 오전 8시 30분에 나와서 만 24시간을 꼬박 근무한 뒤 이틀을 쉬는 식이다. 하지만 그대로 지키기 쉽지 않다는 게 현장 직원의 전언이다. 해외 해양사고가 늘고 군 수송기를 동원하는 경우도 생기면서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국방부 직원도 포함됐다. 현지 공관의 영사 직원 역시 묵묵히 궂은일을 하는 직책으로 통한다. 주헝가리 한국 대사관의 경우 외교관은 총 8명으로 이 중 영사직은 한 명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관련국의 협조를 위해 고위직의 요청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초동조치 때는 평소 영사가 현지 경찰이나 군을 상대로 비공식 외교를 얼마나 잘했는지가 관건”이라며 “이번 사안에서 헝가리와 주변국이 협조를 잘 해주는 데는 이런 배경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슬로바키아에서 6∼7일(현지시간) 열리는 한·비셰그라드 외교장관 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기 전 인천공항에서 “철저한 책임규명이 강조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7∼8일에는 다뉴브강 하류의 세르비아를 방문해 이비차 다치치 외교부 장관과 만난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文, 미·중·일 정상 만난다…한반도 외교 ‘격동의 6월’

    文, 미·중·일 정상 만난다…한반도 외교 ‘격동의 6월’

    교착 국면 북미 대화 돌파구 기대감 G20서 한일 정상 과거사 해법 찾기 트럼프, G20 직후 방한 이벤트 예고 “북핵·무역 갈등 극복 위기이자 기회”문재인(얼굴) 대통령이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전후로 미·중·일 정상을 연쇄적으로 만날 가능성이 커지면서 비핵화 대화와 한반도 정세가 변곡점을 맞을지 주목된다. 북핵 협상의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에서 미중 무역분쟁, 한일 관계 등 난제들과 동시에 맞닥뜨린다는 점에서 분명 위기이지만,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중 관계에 정통한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6일 “중국 정부가 G20을 계기로 시진핑 주석의 한국 방문을 확정한 것으로 안다”며 “아무래도 북한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서울에서 1박을 하지는 않고 G20 정상회의 직전 한국을 반나절쯤 들렀다가 오사카로 향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시 주석의 당일치기 방한과 오사카에서의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양자회담이 이뤄진다면 G20 직후가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까지 굵직한 외교이벤트가 이어진다. 북미 간 비핵화 해법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중 정상회담은 교착 국면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중국은 여전히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도록 압박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존재이고, 스스로도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 왔다. 한국도 세계식량계획(WFP) 등을 통해 북한 영유아·임산부 등 취약계층의 영양지원 및 보건사업을 위해 800만 달러를 무상 지원키로 하는 등 대화국면 조성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방한 때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 대북 시그널’을 내놓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시 주석은 이번 방한 일정에 북한까지 들르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현 교착 국면에서 북중 정상회담은 북한의 비핵화 입장 등을 표현하는 창구는 되지만, 그 자체로 북미와 남북 관계를 견인하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의 만남은 미중 무역 갈등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목전에 두고 추진된다는 점에서 한국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히 G20을 계기로 열릴 미중 정상회담에서 무역갈등이 극적으로 봉합되지 않는다면 한국으로선 G2(미중)로부터 선택을 강요당하는 ‘잔인한 6월’이 될 수도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화웨이를 둘러싸고 미중이 선택을 강요하는 수순까지 치닫는다면 경제적 측면에 머물지 않고, 북핵 해법까지 엮여 감당하기 힘든 압박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한국이 중국을 잡을 경우 미일과 멀어지는 한편 북핵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며 “외려 미국과의 관계를 분명히 할 때 역설적으로 한미 간 밀착을 막기 위해 중국에서 러브콜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서울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日우익들, 한일 국방회담 트집잡아 방위상에 “사퇴” 비난 빗발

    日우익들, 한일 국방회담 트집잡아 방위상에 “사퇴” 비난 빗발

    한일 국방장관이 지난 1일 싱가포르에서 비공식 회담을 가진 것과 관련해 일본 정치권과 언론계 등의 보수세력들이 자국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에 대해 맹렬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 해군 광개토함과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 사이의 ‘레이더 조사-저공 위협비행’ 갈등에도 불구하고 이와야 방위상이 한국에 유화적인 자세를 보였다는 게 비난의 이유다. 특히 이와야 방위상이 정경두 국방장관과 악수하며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은 데 대해서도 트집을 잡는 주장들이 이어지고 있다. 올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해 한국에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려는 자민당은 공식 회의석상에서 대놓고 이와야 방위상을 비난했다. 지난 5일 열린 자민당 국방부회(위원회) 등 합동회의에서 직전 방위상인 오노데라 이쓰노리 의원은 “레이더 조사 문제에서 한국 측은 일본의 반론을 자의적으로 사용해 왔다”며 “그런 상대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대응하기를 바란다”고 이와야 방위상을 겨냥했다. 다른 의원은 “(이와야 방위상의 태도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방위상의 처신은) 정부 전체에 대한 평가를 나쁘게 해 올 여름 참의원 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비난했다. “레이더 조사 문제뿐 아니라 징용문제에서 한국 측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한 비공식이라 해도 회담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의견도 나왔다.정 장관과 이와야 방위상은 지난 1일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국방장관 회담을 열고 냉각된 국방교류의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 양측은 ‘초계기·레이더’ 갈등을 놓고 의견차를 좁히지는 못했지만 해상 군사갈등의 재발 방지가 중요하다는 점에 합의하는 등 냉각된 국방교류에 다소나마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이와야 방위상은 기자들에게 한국과의 회담에 응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진실은 하나인데, 이야기를 나누면 답이 나오는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미래 지향적 관계를 만들기 위해 한걸음 내딛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익성향의 석간후지는 “해상자위대 초계기에 대한 한국 측의 용납할수 없는 레이더 조사 사건을 마무리하지도 않고 한국 국방장관과 회담을 하며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가 중요하다’는 등 망언을 했다”고 ‘망언’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도쿄스포츠신문는 “레이더 조사 문제를 한국 측이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는데도 이에 대한 추궁을 게을리하고 웃는 얼굴로 악수까지 나눴다. 그 언동은 방위상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고 했다.이런 기사들에는 대부분 찬동하는 내용의 댓글이 기사당 많게는 1만개 이상 따라붙고 있다. “이와야는 일본 역사상 최악의 방위상”, “이와야 사퇴하고 오노데라(전임자)를 복귀시켜라” 등과 같은 내용이다. 극우작가 햐쿠타 나오키는 지난 4일 트위터에 “아니, 웃는 얼굴로 악수를 하는거야? 이런 얼빠진 작자가 방위상이라니. 거짓말이야”라고 비난했다. 메이지 일왕의 고손자인 우익작가 다케다 쓰네야스는 5일 트위터에 “이와야 방위상이 한국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고 말았다. 국방 현장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칠 것인가. 참으로 딱하다”라고 적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초계기 갈등 덮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도 연장하나

    軍 “충분히 검토… 日측 반응 기다려야”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이 지난 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군사교류협력 정상화를 합의하면서 올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군 관계자는 5일 “양국이 차후 국방 교류협력을 위한 실무급 회담을 통해 예정된 교류 계획들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장 관심이 쏠리는 건 한일 GSOMIA 연장 여부다. GSOMIA는 매년 8월을 기한으로 양국이 협상을 통해 갱신 여부를 결정한다. 어느 한 쪽이 연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만기 90일(3개월) 전에 통보해 폐기된다. 통보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연장되는 형태다. 2016년 협정이 맺어진 이후 지난 2년간 반대 여론에도 북핵 위기 등 안보 상황을 고려해 갱신이 이뤄졌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초계기 갈등’이 불거지면서 GSOMIA를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거세졌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GSOMIA는 무용지물이며 실효성이 근본적으로 의심된다”며 폐기를 주장했다. 당시 일본이 한국 함정으로부터 추적레이더(STIR)를 조사(照射·비추어 쏨)받았다는 구체적인 정보를 끝까지 제시하지 않으면서다. 국방부는 이런 주장에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면서도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안을 충분히 검토할 계획”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양국 국방장관 회담으로 초계기 논란이 가라앉으면서 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내부에서는 북핵과 미사일 등 위협이 현존하는 만큼 연장 필요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GSOMIA의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시한인 8월이 얼마 남지 않으면서 물밑에서 이에 대한 접촉이 이뤄질 전망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GSOMIA 연장 여부에 대해 “한국만 필요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닌 일본의 필요성도 지켜봐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반응을 기다려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글로벌 In&Out] 2020년 총선의 프레임/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글로벌 In&Out] 2020년 총선의 프레임/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내년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자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다. 여야 핵심 인사들의 언행을 보면 다들 관심이 내년 총선에 집중돼 있다. 2020년 총선에 큰 영향을 미칠 정치적 프레임은 무엇일까. 한국의 첫 총선은 1948년 실시된 제헌 국회의원 선거였다. 가장 많은 논란을 부른 선거다. 유엔은 한반도에서 남과 북 각각 총선을 결의했지만, 소련의 반대로 북한 지역에서는 선거를 치를 수 없었다. 결국 선거가 가능한 남쪽에서만 총선을 치렀고 남남갈등을 일으켰다. 좌파와 중도세력까지 민족 분단을 우려해 총선을 반대했다. 수많은 정치세력의 반대에도 정치참여율은 95% 이상이었다. 정치참여율이 예상치 않게 너무 높았다지만, 필자는 적당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한국인들이 기억한 것은 해방이었다. 해방의 의미는 보통선거권 등 빼앗겼던 시민권을 찾았다는 것이고, 그동안 나라 없이 살았던 환경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오직 일부 부유층과 친일파에게만 투표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한국인들은 태극기가 휘날리는 국가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가득 차 있었다. 그렇다 보니 계급과 상관없이 태극기가 휘날리는 정부를 세우고자 하는 마음과 남쪽만의 선거이더라도 선거에 대한 욕망이 컸다. 이런 이유로 첫 총선에서 거의 역대급 참여율을 기록한 것이다. 그다음으로 상징적인 총선은 1954년 치른 제3대 국회의원 선거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에 실시된 이 총선에는 보기 어려운 현상이 있었다. 일부 국회의원들의 지역구가 사라진 것이었다. 즉 6·25전쟁 이후 남한의 경계선이 변하면서 아예 북쪽에 남은 지역구나 주민이 없어진 지역구들이 생겼다. 이전에 없었다가 막 생긴 지역구도 있었다. 모두 유권자의 머릿속에 생생히 기억된 것은 ‘전쟁’이었다. 민족 분단, 전쟁으로 발생한 빈곤, 치안 문제가 유권자에게 큰 걱정거리였다. 시민의 이 기억과 마음 덕분에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은 쉽게 여당이 됐다. 제1야당인 민주국민당은 고작 7.9%였다. 물론 이 선거는 민주적인 선거가 아니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자기 손으로 임명한 허정 전 내각총리 서리를 압박해 그가 선거 직전 입후보를 포기하도록 한 적법하지 않은 선거였다. 그러나 사회적 큰 반발이 없었다. 당시 국민은 전쟁에 대한 공포가 너무나 커 이승만 대통령이 그렇게 해도 용인하는 분위기였다. 세 번째로 신기한 총선은 박정희의 첫 무대인 제6대 국회의원 선거다. 군부는 무소속 출마를 금지했다. 민주공화당이 등장했다. 최초의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이 선거의 결과는 오늘날 봐도 유의미하다. 전라남북 지역에서 그 당시 박정희에게 청신호를 켰다. 이러한 결과는 너무나 뻔했다. 쿠데타에 크게 반발하지 않은 국민은 국가재건최고회의의 2년 동안의 업적을 보고 경제성장 기대와 공산화 걱정을 해소했다. 그 안심하는 마음을 기억한 국민이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에 표를 쉽게 내줬다. 다시 2020년 총선으로 돌아와 총선에 임하는 국민은 과연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이 설마 아직도 북한의 적화통일 계획에 불안해할까. 한국전쟁이라는 단어를 교과서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전후세대들이 이제 다수가 됐다. 이들은 6·25전쟁을 기억할 나이가 아니다. 이들이 기억하는 것은 경제성장, 여수엑스포, 한일월드컵, 케이팝의 세계적인 확산, 지나친 교육 경쟁 때문에 번아웃된 청년기, 취업난,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 잃어버린 삶의 재미 등이다. 2020년 선거 때 유권자가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지를 잘 파악하고, 거기에 알맞게 프레임을 짠 정치인들이 총선의 승자가 될 것이다. 이제 한물간 “남북 대화 반대”라거나 “한미동맹 반대” 등의 프레임은 한국인들에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 6·25전쟁이 터졌다, 그래도 카메라는 돌아갔다…군·관 신분이지만 열정 하나로

    6·25전쟁이 터졌다, 그래도 카메라는 돌아갔다…군·관 신분이지만 열정 하나로

    해방 이후 열악한 제작 환경에도 불구하고 영화인들은 ‘한국’ 영화를 찾아가는 데 열중했다. 1948년 22편, 1949년 20편이라는 제작 편수는 영화계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됐음을 수치로 말해 준다. 국가 건설이라는 과제와 영화 예술을 멈추지 않겠다는 영화인들의 의지, 한국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들의 열망이 서로 조우한 결과였다. 하지만 1950년 발발한 6·25전쟁으로 그나마 일궈낸 영화산업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민족상잔의 비극 앞에 10여편의 촬영 현장은 곧바로 중단됐고, 영화인들 역시 피란민들과 같이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주목할 부분은 영화인들은 곧 다시 모였고, 영화 제작에 착수했다는 점이다. 영화인들은 1951년 1·4 후퇴 이후 진해, 대구, 부산 등 후방 도시의 군과 관으로 속속 집결해 뉴스영화와 기록영화 제작에 참가했다. 이른바 종군 활동을 통해 영화 작업을 이어 간 것이다. 또 피란 도시의 영화인들은 극영화를 만들기도 했는데, ‘악야’(신상옥 감독·1952), ‘태양의 거리’(민경식 감독·1952) 같은 작품들이 리얼리즘 화법을 통해 전시의 공기를 담아냈다. 6·25전쟁 기간 영화인들이 보여 준 고군분투는 1954년 이후 한국영화계가 곧바로 가동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국방부·공군·육군본부 등 소속으로 촬영 1·4 후퇴 이후 영화인들은 국방부 촬영대, 공군 촬영대, 육군본부 촬영대, 해군 촬영대 등 군과 미 공보원, 대한민국 공보처 등의 관에 각각 소속돼 뉴스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영화 현장에 복귀한다. 진해에 자리잡은 미 공보원에는 촬영기사 임병호, 임진환, 배성학, 현상기사 김봉수, 김형근, 녹음기사 이경순, 최칠복, 양후보, 편집기사 유재원, 김흥만, 김영희 등이 소속돼 ‘전진대한보’와 ‘리버티 뉴스’를 제작했다. 1950년 8월 대구에서 발족한 국방부 정훈국 촬영대는 1951년 1·4 후퇴 이후 부산 보수동에 자리를 잡고 ‘국방 뉴스’를 제작했다. 촬영기사 김덕진, 김강윤, 김종환, 김학성, 홍일명, 심재흥, 양보환, 이성춘, 변인집, 현상기사 김창수, 노희삼, 편집기사 양주남, 김희수 그리고 정창화 감독 등이 활동했다. 대구의 공군본부 정훈감실 공군촬영대에는 홍성기 감독, 정인엽 촬영기사, 신상옥 감독, 함완섭 조명기사, 전택이, 김일해, 노경희, 황남 등의 배우들이 소속돼 있었다. 한편 1950년 9·28 서울 수복 직후부터 군의 각 부대는 정훈공작대를 조직했는데, 연극과 영화배우들은 이곳에 소속돼 피란 도시와 일선을 오가며 국민과 군인들을 위로했다. 특히 육군은 극단 신협과 악극단, 무용단으로 구성한 문예중대를 창설해 1·4 후퇴 이후 대구 문화극장(이후 한일극장)을 거점으로 공연했다. 제1소대 신협이 연극 공연을 마치면 가요인이 중심이 된 제2소대가 ‘가협’이라는 단체명으로 음악극을 공연하는 식이었다. 특히 신협의 공연은 전쟁 기간 동안 큰 인기를 누렸다. 전시 중에도 불구하고 공연마다 발 디딜 틈도 없는 초만원을 이루었다는 기록에서 그들의 공연이 전쟁에 지친 피란민들에게 잠시나마 현실을 잊는 순간이 됐음을 알 수 있다.●영화 ‘아름다운 서울’→ ‘아름다웠던 서울’로 전쟁 발발 후 극영화와 기록영화를 통틀어 처음 완성된 영화는 ‘아름다웠던 서울’(윤봉춘 감독·1950)이다. 대한민국 공보처의 의뢰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착수한 관광문화영화 ‘아름다운 서울’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의 기록을 추가해서 ‘아름다웠던 서울’로 마무리된 것이다. 극영화 감독들이 다큐멘터리 제작 현장에 투신하게 된 것도 6·25전쟁이 만든 특별한 모습이다. 물론 촬영기사들 역시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전선의 기록을 담당했다. 1951년에는 1사단의 후원을 받은 ‘서부전선’(윤봉춘 감독)과 육군본부의 후원으로 만든 ‘오랑캐의 발자취’(윤봉춘 감독)가 전황의 기록을 전했고, ‘육군포병학교’(방의석 감독)는 육군포병학교 생도들의 생활상과 교육 과정을 세미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았다. 6·25전쟁 시기에 제작된 기록영화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작품은 국방부 정훈국 촬영대가 만든 ‘정의의 진격’(1951·1952) 2부작이다. 3년에 걸친 ‘정의의 진격’ 제작기는 전쟁기 한국영화사의 집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출발점은 한형모 감독이 흰 광목천에 검은 글씨로 직접 ‘국방부 촬영대’라고 쓴 완장을 만들어 차고, 전장으로 촬영을 나간 것이다. 미 보병부대의 전투를 취재하던 촬영기사 김학성과 이성춘이 박격포탄에 맞아 부상을 입기도 하는 등 한국영화사에 다시 없을 열악한 상황에서도 영화인들의 역량을 여실히 드러낸 의미 있는 작품이다. 기록영화뿐만 아니라 극영화도 기적적으로 생명을 이어 갔다. 서울이 아닌 대구, 부산, 마산 등 피란 도시에서 영화가 만들어진 것 역시 6·25전쟁으로 인한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배우 이민의 데뷔작인 ‘화랑도’(1951)는 전쟁으로 촬영이 중단됐다가 피란지 대구에서 완성됐고, 전쟁 발발 전에 서울에서 촬영을 시작했던 신상옥 감독의 데뷔작 ‘악야’(1952) 역시 배우가 모이면 촬영을 이어 나가는 방식으로 대구에서 마무리됐다. 당시 신문 지면은 “한국의 할리우드”라는 아이러니한 표현으로 피란도시 대구의 영화 제작 열기를 주목하고, ‘공포의 밤’(1952), ‘태양의 거리’(1952), ‘베일부인’(1952), ‘청춘’(1953) 등의 제작 소식에 지면을 할애했다. ●극영화 중에서는 ‘태양의 거리’만 보존돼 피란 도시 대구를 배경으로 촬영된 ‘태양의 거리’는 전쟁 시기 만들어진 극영화 중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존된 유일한 작품이다. 2013년 민경식 감독의 유가족으로부터 16㎜ 네거티브(원판) 필름을 입수한 덕분이다. 흥미롭게도 연출을 맡은 민경식은 1930년대 초반부터 대구 만경관에서 극장 간판을 그리고 있었다. 전쟁을 계기로 대구에 영화 제작 붐이 일자 꿈꿔 오던 감독으로 데뷔한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서울에서 잘살던 돌이 가족은 대구로 피란을 내려와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노모(노재신)는 병이 위중하고, 형(전택이)은 무직의 불량배로 지내며, 누나 복희는 냉면집에서 일하고 있다. 돌이 가족과 친했던 문대식(박암)이 신임교사로 부임해 불량소년들을 선도하고, 돌이 가족도 돌보게 된다. 이 영화는 ‘악야’와 함께 ‘코리안 리얼리즘’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마치 1940년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처럼 극영화와 기록영화가 혼재되는 영화미학을 선보인 것이다. 즉 ‘태양의 거리’는 극영화이지만, 영화의 배경으로 당시 피란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기록되는 등 사료적 가치 역시 뛰어나다. 한편 민경식 감독의 동생 민정식이 북한의 두 번째 극영화 ‘용광로’(1950)를 연출한 월북영화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지역에서의 영화 제작 열기는 부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낙동강’(전창근 감독·1952)과 ‘고향의 등불’(장황연 감독·1953) 등이 경남도 공보과의 후원으로 제작됐다. 한편 제2육군병원의 후원을 받은 ‘삼천만의 꽃다발’(신경균 감독·1951)은 마산을 거점으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6·25전쟁기는 영화 제작의 중심이 잠시나마 서울에서 지역으로 이동했던 한국영화사의 유일한 시기로 기록된다.6·25전쟁 동안의 영화 제작은 기재보다는 사람 자체가 테크놀로지인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5㎜ 필름을 구할 수 없었기에 대부분의 극영화는 16㎜ 필름으로 제작됐고, 녹음은 현장에서의 동시녹음이 아니라 무조건 후시녹음이었다. 미공보원에는 자동현상기와 자기(磁氣)테이프식 녹음기 등이 갖춰져 있었지만, 영화인들은 목욕탕에 현상실을 만들어 손으로 직접 현상했고, 가뜩이나 필름 구하기도 쉽지 않은 형편에 녹음 역시 사운드 필름에 바로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라는 악조건과 수공업적 시설에도 불구하고 1950년에서 1953년까지 영화계는 뉴스영화와 기록영화뿐만 아니라 17편의 극영화를 제작해 한국영화의 맥을 이었다. 이는 무엇보다 군이나 각 기관에 소속돼 영화 제작을 뒷받침한 영화기술인들의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처럼 6·25전쟁 시기를 통해 구축된 인적 토대는 1954년 이후 한국영화가 성장하는 토대가 됐음을 기억해야 한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2000자 인터뷰 16]진창수 “강제징용 문제, 정부 확고한 방침 천명해야”

    [2000자 인터뷰 16]진창수 “강제징용 문제, 정부 확고한 방침 천명해야”

    “도쿄에서 일본 정치인들 만나면 한국이 도발해서 지금의 한일관계 문제가 생겼으니 한국이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일관계를 보는 시각이 반드시 도쿄 같지만은 않다. 지방의 목소리 결은 좀 다르다.” 2018년 9월부터 와세다대학, 고베대학, 도쿄대학, 게이오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공개 강좌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9개월간 일본에 체류하면서 다양한 일본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오는 12일 귀국을 앞둔 진 위원은 최악의 한일관계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정부가 분명한 대응 방침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3일 전화통화로 진행된 진창수 위원과의 일문일답 내용. 일본, ‘도발한 한국이 해결하라’는 입장 Q: 일본에서 피부로 느끼는 한일관계를 자세히 말해달라. A: 정치인들은 한국이 한일관계를 포기했다, 도발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이 도발해서 한일 간에 지금의 문제가 생겼으니 한국이 풀어야 한다는 게 기본 생각이다. 경제에 관련된 일본인들은 기업 환경이 나빠지는 것을 우려한다. 한국에서 돈을 빼 다른 나라로 돈을 보낼까 하는 기업도 있을 만큼 한일관계에 전기가 마련됐으면 하고 소망한다. 보통의 일본인들은 한국사람들이 많이 일본에 오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꽤 갖고 있지만 우려하는 분위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지방에 강연하러 가보면 사정은 조금 다르다. 특히 한국 관광객이 많이 가는 후쿠오카, 삿포로, 히로시마, 도야마 같은 곳에서는 중앙이 한국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해서 지방마저 그렇게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중앙과 지방의 목소리가 다른 것이다. 도쿄에서 지내다 보면 피부로 느끼는 것이 식당이다.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면 불친절하게 대하는 곳이 적지 않다. 한국인이기에 푸대접 받는 일도 있다. 일본 우파들 ICJ에서 패소 우려도 Q: 일본인이 말하는 한일관계 해법은 무엇인가. A: 정치권만을 얘기하자면 첫째, 한국이 만든 문제는 한국이 해결하라는 것이다. 둘째,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뒤집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65년 협정에 입각해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돈을 내는 것이 원칙이라고 본다. 셋째, 이마저 어렵다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넘기자는 것이다. 일본 우익조차 ICJ에서 일본이 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지만 법의 지배를 인정하는 수순으로 가야 한다는 게 일본인의 기본 인식이다. 강제징용 해법 2007년 방식 따르든가 외교전쟁 불사를 Q: 진 수석연구위원이 생각하는 한일관계 타개책은 무엇인가. A: 지난해 10월30일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승소 판결이 있었고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피고 측인 일본 기업의 자산에 대한 현금화가 임박해 있다. 한국 정부가 빠른 시일 안에 방침을 세워 발표해야 한다. 즉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일본 기업이 돈을 내라, 혹은 한국 정부가 돈을 내겠다든지 분명한 입장이 있어야 한다. 2005년 한일 외교문서 공개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법을 만들어 2007년 6300억원의 보상을 해줬다. 그 정신에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정부가 보상의 방침을 밝히는 게 기본이다. 그게 아니고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하면, 정부가 국민들에게 일본과 외교전쟁을 불사해야 한다고 선언해야 한다. 한국의 정통성을 지키려면 한일관계가 나빠지는 일은 피해 갈 수 없다고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일각에서 국내 일각에서 ICJ 판단을 구해보자는 의견이 있지만 난 절대 반대다. 6대 4, 7대 3의 애매한 형태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고, 만에 하나 패배한다면 정부나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와 관련된 세계무역기구(WTO) 재판에서 일본이 패소한 뒤에 보인 일본 정부 행태를 보면 잘 알 것이다. 일본조차도 승복을 못한다. ICJ에서 어떤 판결이 나오든 양국 간에 더 큰 불씨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결코 해결책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는 한일 간의 모든 현안을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자는 일이 생길 것이다. Q: 6월 말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지 미정인 상태다. 필요하다고 보는가. A: 한국 정부가 지금 입장에서 변화가 없으면 정상끼리 만날 필요가 없다는 게 일본 생각이다. 하지만 한국 정상이 일본에 갔는데 일본 총리가 안 만나주면 일본 측에 문제가 있다. 한일관계에는 역사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북핵도 있고, 수산물 문제도 있다. Q: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불러들여 많은 성과를 올렸다. 그 중에서도 일본의 호위함 가가에 미일 정상 부부가 함께 오른 것은 인상적이었다. 이 이벤트의 의미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A: 미일 동맹이 남지나해, 동지나해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자세를 보였다고 본다. 해상에서 대 중국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는 조치의 하나로 미일이 힘을 과시한 것이다. 미일 동맹이 건재한 만큼 중국과의 관계에서 안보에서는 우위를 가지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다. 납치문제 타협점 찾으면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 높아 Q: 아베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에 조건을 달지 않고, 이례적으로 의욕을 보인다. 그 배경은 무엇이고, 성사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 A: 하노이 회담 불발 이후 일본이 우리 대신 북미 중재자 역할을 생각하는 것 같다. 일본이 북일 정상회담에 의욕을 보이는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첫째, 일본인 납치자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아베 정권에는 정치적 이익이 있다. 둘째, 북한이 제재해제 노력을 하는데 일본이 가장 큰 구멍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북한이 접근해 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셋째, 일본에서 볼 때 비핵화 국면의 ‘3+1(남북미+중국)’의 구도를 ‘남북미+일본’으로 변화시키자는 전략이 있다. 한국보다는 일본이 미국과 더욱 가깝기 때문에 남북이 안되는 틈새를 노려 새로운 동북아질서의 변환을 모색하자는 중장기 포석인 것이다. 북일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본 내 분위기로 볼 때는 가능하다고 본다. 일본인 납치문제에서 북일이 타협점을 찾으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아베 총리의 만남은 올해 안으로 있을 수 있다. 황성기 평화연구소장 marry04@seoul.co.kr
  • [포토] ‘한일전 승리를 향하여’…맹훈련중인 U-20 대표팀

    [포토] ‘한일전 승리를 향하여’…맹훈련중인 U-20 대표팀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16강 한일전을 앞두고 한국 대표팀 전세진이 2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루블린 근교 푸와비 훈련장에서 족구를 하며 점프해 가위차기를 하고 있다. 2019.6.3 연합뉴스
  • 아르헨전서 재미 본 ‘이강인 시프트’ 한일전서 또 쓰나

    아르헨전서 재미 본 ‘이강인 시프트’ 한일전서 또 쓰나

    강호 아르헨티나에 2-1 승리 조 2위 이강인 투톱 변칙적 기용 효과 만점日에 16년 전 역전패… 설욕할 기회한국 축구가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16강전에서 16년 만에 일본과 맞대결을 펼친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팀은 지난 1일(한국시간) 폴란드 티히 경기장에서 열린 조별리그 F조 3차전에서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를 2-1로 꺾고 2승1패(승점 6)로 조 2위를 차지하며 16강에 올랐다. 두 대회 연속 조별리그를 통과한 한국의 토너먼트 첫 상대는 일본이다. 한국은 5일 0시 30분 폴란드 루블린 스타디움에서 일본과 8강 티켓을 놓고 일전을 벌인다. 한국 축구는 일본과의 남자 각급 대표팀 간 역대 전적에서 모두 앞선다. 성인대표팀이 41승23무14패, U-23대표팀이 7승4무5패로 앞서는 가운데 특히 U-20대표팀 간 전적에선 무려 28승9무6패로 일방적인 우위를 보인다. 하지만 한국은 이 대회에서 아픈 기억이 있다. 지난 2003년 아랍에미리트(UAE) 대회 16강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일본에 1-2로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더욱이 1-0으로 리드하다 후반 동점골을 내준 뒤 연장전에서 골든골을 얻어맞았던 터라 패전은 두고두고 뼈아팠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드러난 일본의 전력을 살펴보면 이번에도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다. B조의 일본은 1승2무(승점 5)의 무패 전적으로 이탈리아(승점 7)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일본은 안정적인 공수 밸런스를 선보이며 이탈리아, 에콰도르, 멕시코 등 강호들을 상대로 4골을 넣고 실점은 1로 묶었다. 한국이 스피드와 피지컬을 앞세운 축구를 구사하는 데 견줘 일본은 점유율 위주의 경기 운영에 능했다. 짧은 패스로 땅따먹기 하듯 야금야금 진영을 압박하는 성인대표팀의 스타일대로였다. 조별리그에서 3득점-2실점을 기록한 한국보다는 적어도 수비에선 더 ‘짠물’이라는 점, 또 최전방 공격수인 미야시로 다이세(가와사키 프론탈레)가 총 4골 가운데 2골을 책임져 경계 대상 ‘1순위’라는 점 등 대처해야 할 공수의 윤곽은 잡혔다. 다만, 멕시코전에서 골을 보탰던 미드필더 다가와 교스케(FC도쿄)와 공격수 사이토 고기가 부상으로 귀국길에 올랐다는 점은 다시 전력을 평가할 요소다. 대체적인 전력 분석 안에서 정정용 감독이 또 한 번 ‘이강인 시프트’ 카드를 내밀지가 주목된다. 그는 1, 2차전에서 이강인을 미드필더로 쓴 데 반해 아르헨티나전에서는 3-5-2의 투톱으로 끌어올려 공격 능력을 극대화시켰다. 수비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장신 공격수 오세훈과 호흡을 맞추게 했다. 단순한 ‘빅-스몰’의 투톱 조합이 아니라 중앙은 물론 좌우의 2선까지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직접 공격 루트를 찾아달라는 주문이었다. 정 감독 의도대로 이강인은 전반 42분 왼쪽에서 예리한 크로스로 오세훈의 헤딩골을 끌어내면서 대회 첫 공격포인트를 신고하더니 후반 11분에도 왼발 스루 패스로 조영욱의 추가골을 뒷받침했다. 정 감독은 “이강인은 공을 소유하는 주체임과 동시에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때 흘리지 않고 공을 연결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전술적으로 중요했다”면서 “선수들이 오늘 경기를 통해서 이기는 방법을 알게 됐을 것이다. 가면 갈수록 체력적으로 떨어질 수는 있어도 조직적 완성도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초창기의 고속버스

    [그때의 사회면] 초창기의 고속버스

    고속버스가 운행된 지도 벌써 50년이 됐다. 서울~부산 간 고속버스가 처음 운행된 날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바로 다음날인 1970년 7월 8일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에는 승객 38명이 탔는데 운전사가 두 명이었다. 승객 전원은 추풍령 위령탑 앞에서 건설공사 중에 희생된 근로자들에게 묵념을 올렸다(경향신문 1970년 7월 8일자). ‘땅 위의 스튜어디스’로 불렸던 고속버스 안내양은 고졸 이상, 키 160㎝ 이상의 학력을 요구받았고, 수십대1의 경쟁을 거쳐 선발됐다. 시험에 붙으면 손님을 상냥하게 응대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월급 3만원으로 당시로는 고임금을 받던 안내양은 선망의 직업에 속했다. 안내양은 나들목을 지날 때마다 마이크를 잡고 안내를 해 줬는데 도리어 성가시다고 생각한 승객들도 있었다. “멀미약을 달라”, “물을 달라”는 등의 주문에 안내양은 결코 편안한 직업이 아니었다. 안내양은 1980년대 후반부터 점차 없어졌다. 처음엔 휴게소가 부족해 운행 도중에 소변을 보게 해 달라는 승객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고속도로에 버스를 세우면 주변의 논두렁이 야외 변소로 변했다. 여성 승객들은 몸을 숨길 곳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어떤 버스는 뒤쪽에 좌변기를 갖추고 있었는데, 승객이 신발을 신고 변기 위에 올라앉아 용변을 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경향신문 1970년 6월 20일자). 고속버스는 처음에 그레이하운드와 같은 중고 버스를 수입해 운행했는데 하루 운행하던 200여대 중 10여대가 고장으로 멈춰 서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고속도로 상에서 고장 난 고속버스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운전 미숙으로 운행 보름 만에 추풍령에서 고속버스가 낭떠러지로 굴러 25명이 사망한 큰 사고가 났다. 논을 가로질러 고속도로가 건설되다 보니 농기구를 든 농부들이 고속도로를 횡단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실제로 고속도로를 건너는 사람 때문에 고속버스가 전복돼 승객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자전거를 갓길로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자주 목격됐다. 버스 선반에 올려 둔 카메라나 현금을 도난당하는 사건도 심심찮게 있었다(경향신문 1970년 9월 16일자). 종합터미널이 없어 버스 회사마다 각자 터미널을 갖고 있었다. 그레이하운드는 서울 동자동에, 한일·한남·천일은 을지로6가에, 유신은 옛 스카라극장 옆에 있었다. 서울 반포에 고속버스종합터미널이 완공된 것은 1977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승객이 강북에 살던 때라 터미널에서 내려 강북으로 이동하는 데 불편이 컸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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