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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포럼] 중국과 WTO, 그리고 한국

    프랑스의 한 여행가는 중국 파악하기가 ‘달리는 말 위에서 산천구경’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중국이 너무 거대하고복잡해서 한마디로 실체를 말하기 어렵다는 뜻에서다. 그래서인지 중국을 보는 눈과 중국을 설명하는 말은 천차만별이다.그 중에는 틀린 말도 많다.우선 “중국은 발전하려고 해도 돈이 없다”는 것이 그렇다.중국에는 현재 7조위안의 개인예금이 있다.그렇지만 이 가운데 기업에 흘러들어가 활용되는 돈은 1조5,000억위안뿐이다.나머지 5조5,000억위안이활용될 경우 중국 경제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는 충분히짐작할 수 있다. 또 “중국 기업은 국유,중국 경영자는 정부관료”라는 것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최근 들어 중국은 젊은 경영자들의 활약과 민간 자본기업의 출현에 힘입어 1980년 전체의 76%이던 국유기업 공업생산액 비중이 1999년에는 28%로 낮아졌다.또 1980년 이래 연평균 9.6%의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다.지난해에는 국가총생산이 사상 처음 1조달러를 돌파해세계 7대 경제대국 대열에 합류했다.오는 2005년까지도 7∼8%의 성장을지속할 것이란 분석이 나와 있다.그러니 중국이 2010년대 세계 총생산의 20%를 차지하면서 미국을 추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올 만하다.요즘 중국의 변화상은 욱일승천(旭日昇天)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1999년 12월31일 밤 베이징 (北京) 한 복판에서는 이른바‘중화세기의 종’ 타종식이 열렸다.이 종은 21세기가 중국의 시대임을 천명하기 위해 무려 50t의 무쇠를 녹여 만들었다.12억 인구의 중국인들은 이날 타종식을 통해 고난과 분투의 20세기를 뒤로 하고 초강대국으로 웅비하는 자신들의위상을 마음껏 뽐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한 미국과 중국간 협상이 타결되면서 ‘중화세기의 종’이 예고한 ‘팍스 시니카(Pax Chinica)’의 도래가 현실화하고 있다.중국의 WTO가입은 세계 경제질서의 재편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21세기국제 경제사회의 초대형 사건으로 평가할 만하다.한국으로서도 연간 5억4,000만달러의 무역수지 개선 효과가 기대되고 중국과 무역분쟁을 WTO 틀 안에서 해결하게 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한다.그러나 우리가 당장 눈에 보이는 기대효과에 자만해서는 곤란하다.중국이 외국 기술을 도입해수출상품의 경쟁력을 강화할 경우 해외 한국시장이 타격을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이것이 중국의 WTO 가입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해선 안되는 이유다. 우선 국내 기업들은 수출상품의 구조를 고도화하고 산업의구조전환 노력에 힘을 쏟아야 한다.정보기술산업에 대한 연구개발을 늘리고 중화학 등 기존 수출산업의 고부가 가치화를 서둘러 꾀해야 한다.또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에 대한일관된 사업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저급한 기술의 중국진출을 지양하면서 서비스시장에 눈을 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기존의 생산비 절감형 제조업 투자 일변도에서 벗어나유통·광고·금융·통신 등 서비스시장을 늘려가는 전략을세워야 한다. 중국의 투자거점 선정에도 세심한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 예컨대 노동집약적 제조업의 경우 연해지역에서 외자기업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만큼 중서부 내륙도시나 도시근교로 투자거점과 생산기지를 다변화해야 할 것이란 지적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중국의 WTO 가입 이후 미국·유럽연합(EU)의 선진 다국적 기업이 한국의 일부 생산기지를 중국으로옮겨갈 가능성에도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무엇보다 중국과 무리한 경쟁 대신 시장진출 초기 단계부터 기술·인력합작방식으로 상호이익을 극대화하는 지혜를 짜내기 바란다. 중국의 WTO 가입은 한국에 ‘기회’인 동시에 ‘위협’이다.기회를 십분 활용해 ‘플러스 섬 게임’이 되도록 해야한다.거대한 빙하가 녹아 내리고 있는데도 정신을 차리지못할 경우 빙하에 그대로 휩쓸려 가버리고 만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박건승 논설위원 ksp@
  • 기자커뮤니티 엿보기/ 공익을 위해 목숨쯤은 잊어라?

    “이씨의 죽음이 일본 젊은이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하고 싶다”(모리 요시로 전 일본총리)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수현씨와 같이 사회에 헌신하는 일본 청년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교육 개혁 밖에 없다”(구로다 가스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이 새로운 국면을 맡고 있습니다. 일본은 새 내각이 들어섰고 한국은 수정을 요구하는 부분을공개했습니다.그러나 수정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은 나오지않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수현씨 죽음의 의미에 대한 의문이 들더군요.정신없이 이씨에게 박수를 보내다보니우리 역시 어느덧 희생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앞의 두 발언을 보시지요.아시다시피 모리 전 총리는 일본을 ‘신의 나라’라고 칭해 물의를 빚었던 보수 정치가입니다. 산케이신문 역시 보수적 신문이구요.두 명의 보수주의자가바라보는 이수현씨의 죽음이라…. 얼마전 동경에 유학가 있는 중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마침 이수현씨얘기가 나왔습니다.전 일본의 ‘실제’ 반응이 궁금했습니다.아무래도 모리 총리가 이씨 빈소에 찾아와 머리를 조아린 것은 한일관계를 감안한 ‘일종의 제스처’ 아니냐는 의심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는 오히려 한발짝 앞선,전혀 다른 말을 해주더군요.제스처는 제스처인데 한국을 향한 제스처가 아니라 일본 젊은이들과 신사에 모셔진 전쟁 영웅(?)들을 향한 제스처란 것이었습니다.그의 말로는 이씨의 죽음에서 일본인들이 발견한 것은 ‘한국 젊은이의 일본인을 위한 숭고한 희생=한일관계 회복’이라는 우리 언론의 희망(?)과는 달리 ‘젊은이의 숭고한 희생=가미가제의 환생’이라더군요.이씨의 죽음으로 일본의 태도가 바뀌리라는 것은 가능성 없는 기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일본 내 우익인사들은 모두 “봐라 한국의 젊은이는 자신을희생했다,그런데 일본의 젊은이들은 어떠한가? 부끄럽지 않나?”라고 합창을 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구로다씨의 발언이 대표적인 예입니다.그가 이씨의 죽음에서 본 것은 국가에 대한 헌신이었습니다.모리 총리의‘일본 젊은이들이 본받아야 한다’는 말의 진의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사회에 대한 헌신입니다.공익을 위해서라면 너 하나쯤의 목숨을 버리라는….(중략)생명을 구하기위해 달려오는 지하철에 맞서는 것은 훌륭한행동입니다.그렇지만 그 개인의 순수한 행동에 ‘일본인을구한 한국인’이란 덧칠이 입혀지면 어떻게 될까요? 죽은 이씨는 산 사람들이 부여한 그런 죽음의 의미가 달가울까요?진정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우라고 말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전문▶kdaily.com)조성태 사회팀 기자
  • 정부 재수정안 최종확정

    30일 역사교과서 왜곡 대책반 4차회의에서 최종 확정된 정부의 왜곡 교과서 분석안과 재수정 요구 내용은 A4용지 1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대학 논문집 형태로 만든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한국관련 내용 검토’라는 제목의최종본은 당초 교육부가 전문가팀의 240쪽 짜리 검토 내용과 이를 검증한 국사편찬위원회의 75쪽 짜리 보고서를 단일화한 것이다. 분석 최종본은 ‘국제화 시대의 역사교과서를 보는 시각’이라는 서론과 역사인식 문제,역사서술에 대한 인식 검토등 크게 3개 부분으로 나눠졌다.최종본의 말미에는 지난 98년 한일간 21세기 파트너십 공동선언 내용을 비롯,각종 국제기구 관련자료,한일관계 관련 자료가 첨부돼 있다. 재수정 요구항목에는 ▲한반도 강제병합 과정의 한국내 여론 왜곡 ▲황민화(皇民化) 정책의 왜곡과 황국사관의 부각▲군대위안부 기술의 은폐·축소 ▲관동대지진 사건 당시조선인 학살사건 축소·왜곡 ▲태평양전쟁의 정당성 부각및 일본 피해 강조 ▲극동 군사재판의 불공평성 주장 등 한일근대사 부문이 집중 포함됐다. 또 ▲신라와 백제 등의 대일 조공 주장 ▲임나일본부설의기정 사실화 등 고대 한일관계를 왜곡한 대목도 재수정 요구대상으로 적시됐다.‘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쪽의 교과서는 물론 기존 7종 교과서가 축소·누락 기술한내용도 담겨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80년대 역사교과서 왜곡 당시에는총론적으로 접근을 했는데,이번에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분석했다”면서 “다만 정부 문서로 전달하는 과정에서는 일본이 시비를 쉽게 걸 수 있는 부분은 가급적 빼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공’은 일본으로 넘어간 형국이다. 고이즈미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가 사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조했지만,일본이 재수정 요구를 성의있게 받아들일지는 예단키 어렵다.도야마 아쓰코(遠山敦子)문부과학상 등‘재수정 불가’를 고수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오는 24·25일 베이징(北京) ASEM 외무장관 모임에서 열릴한 ·일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외교적 해법이 모색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
  • 고이즈미 “”김치는 질색””

    [도쿄 연합] 자민당 총재 당선이 확정적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朗) 후보가 최근 한국의 고위 외교관에게“나는 김치가 매우 싫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이어그는 자신의 말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나는 일본의절인(pickled) 반찬도 싫어한다”고 부연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고이즈미 후보는 방한 경험이 전혀 없는 ‘비지한파(非知韓派)’로 알려져 앞으로의 한·일 관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불거지고 있다.고이즈미 후보가차기 총재로 떠오르자 주일 한국대사관측은 그의 지한인사접촉여부도 꼼꼼히 찾아봤지만,이렇다할 기록을 발견해내지 못했다.한가닥 희망은 과거 한일관계를 적극적으로이끌었던 후쿠다 다케오(福田赴夫) 전 총리의 비서를 지냈다는 것이다.
  • 인터뷰/ ‘후쿠자와 유키치’저자 정일성씨

    ‘후쿠자와 유키치’의 저자 정일성(59)은 “후쿠자와를 통해 100여년 전 격동기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고 우리를 침략했던 상대들의 논리를 확인함으로써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새 시대 새 좌표를 마련하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한국을 이끄는 지도층이라면 반드시 일본에 대한 대처방안과 우리나라의 나아갈 방향을 짜내느라 고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망동에 “우리가 냄비식 감정적 대응으로 일관할 게 아니라 이론적인 연구를 통해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고려대 물리학과를 나와 69년 서울신문(현 대한매일)에 입사,문화부 기자를 하며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됐다.85년 게이오대 연수를 계기로 한일관계사에 천착하기 시작했다.지난해 ‘황국사관의 실체’를 펴낸 데 이어 2년여 준비 끝에 이 책을 완성했다. “개화기 이후 일제 치하까지 역사가 국내에서는 정리된 게별로 없고,일본 고어를 현대어로 해석하는 데 가장 애를 먹었습니다.”현재 집필활동에 전념하고 있다.앞으로 이토 히로부미 등 인물을 통해 한일관계사와 근대사를 정리할 계획이다. 김주혁기자
  • 日 여성학계 원로 오카베 이츠코 “사죄하고 싶어…”

    한 일본 여성학자가 최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참회의표시로 국내 대학도서관에 자신이 저술한 정신대와 여성학관련 서적을 기증했다. 이화여대는 11일 일본 여성학계의 원로 오카베 이츠코(罔部伊都子·79)여사가 지난달 31일 ‘붉은 상자로부터’‘살아있는 메아리’ 등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 국가의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저서 19권을 국제우편을 통해 기증했다고밝혔다. 1923년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난 오카베 여사는 전통문화와 환경문제,여성과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 등 다양한주제를 다룬 110여편의 저서를 발표했다. 오카베 여사는 동봉한 편지에서 “일본 우익단체들이 태평양전쟁을 침략전쟁이 아닌 아시아해방전쟁이라며 전쟁 책임을 부인하고 한국병합,식민지지배,종군위안부 등에 대해 일방적인 주장을 펴는 역사 교과서를 만들면서 역사 왜곡문제가 국제적인 관심사로 부각됨에 따라 한국인들에게 사죄하기 위해 도서 기증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또 “책 몇권을 기증한다고 해서 어처구니 없는 역사 왜곡사태에 대해 용서를 받을 수는 없겠지만 한일관계 개선과문화교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송하기자 songha@
  • 최상룡 駐日대사 소환이후

    정부가 최상룡(崔相龍) 주일대사의 전격 소환 등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 강경 대응으로 선회했다.또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저지 등 초강수의 외교적조치들을 공공연히 제기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의 무관심과 국내의 들끓는 여론 사이에서 만족스러운 대응을 찾기가버거운 형국이다.냉각되는 한일관계도 부담으로 작용하고있다. ◇효과가 있다면 모든 방안 동원=정부는 대사소환이라는‘강수’를 뒀다.임성준(任晟準) 차관보는 10일 서울 주재 외신기자단과의 기자회견에서 “우리 정부가 왜곡된 사실에 대해 객관적으로 지적할 때 일본 정부가 이를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강한 입장을 드러냈다.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반대,일본대중문화의 추가개방 금지 등 다양한 대응책에 대해 정부당국자는 “왜곡된 교과서 수정이라는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데 효과가 있는 방안이라면 고려할 수 있다”고밝혔다. 한·일간 막후채널도 가동될 전망이다.임 차관보는 “현재 모리 내각이 한달 뒤에 물러나지만 교과서 문제는 일본 정치사정과 상관없이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해나가야할 문제”라며 언제든지 협상에 응할 용의가 있음을 드러냈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일본 교과서 거론을 시작으로 국제사회와 연대한 압박도 더욱 가시화할 전망이다.정부는 공식적인 한·중 연대나 남·북 연대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운 입장이지만 비정부기구(NGO)를 통한 연대에는 적극적이다. ◇대사 소환은 상징적 행위=정부 고위관계자는 최 대사의소환 배경을 “우리가 북한과 중국에 비해 계속 약하게 나올 것이라는 일본 정부의 판단에 충격을 주고 최 대사가국내 분위기를 직접 느껴 일본 관계자들에게 보다 강하게어필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임 차관보는 “교과서 문제가 한일관계에 영향을 미치기때문에 취한 상징적 행위”라며 “양국간에 현안이 있을때 쓰는 정상적인 외교관행”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고민=정부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 분위기다.일본측은 최 대사의 소환을 ‘내부용’으로 간주,재수정에 나설 뜻이 없음을 거듭 밝히고 있다.또 한일간의관계가 역사교과서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고,월드컵 공동개최,문화개방,외자유치 등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는 까닭이다. 정부가 역사교과서 문제를 중·장기적인 현안으로 시간을 가지면서 처리하려는 의도도 여기에 있다. 전경하기자 lark3@
  • 日 왜곡 교과서 검정통과

    정부는 3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우익교과서 합격을 포함한역사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근본적인 역사왜곡 방지대책을 강구토록 일본측에 강력히 촉구했다. 정부는 특히 일본 우익단체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측이 신청한 역사교과서의 내용이 ‘자국 중심주의적 사관’에 치우친 것이라며 정부차원의 공식 재수정요구 등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정부는 4일 오전 청와대,국무총리실,외교통상부,문화관광부,교육인적자원부,국정홍보처 등 관계부처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재수정 요구와 대일 문화개방 일정 연기 등 향후대응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특히 외교채널을 통해 강한 유감의 뜻을 전달하는 것은물론 최상룡(崔相龍) 주일대사의 일시 소환도 검토할 것으로 알려져 역사왜곡 문제가 한·일간 외교마찰로 비화될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이날 일제에 의한 군대위안부 동원과 아시아침략전쟁 등 가해사실에 대한 기술이 크게 후퇴한 2002학년도 일본 중학교용 역사교과서 8종이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문부상은 우익계열의‘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 및 도쿄(東京)서적,오사카(大阪)서적,니혼(日本)서적,시미즈(淸水)서원,데이코쿠(帝國)서원,교육출판,일본문교출판 등 기존 교과서 7종에 대해 검정합격 판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검정단계에서 일본의 핵보유 주장 등을 담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새 교과서…모임’측의 중학교 공민교과서도 검정에합격했다. 검정을 통과한 ‘새 교과서…모임’의 교과서는 검정과정에서 한일합방 및 중국침략의 합법성 또는 정당성을 주장한 내용 등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137군데를 수정,문부성검정에 합격했다. 이 교과서는 ▲군대위안부 문제를 기술하지 않는 등 일제의 가해자 행위에 대한 취급을 최소화했고 ▲조선의 군제개혁 지원이 조선 근대화와 독립을 위한 것으로 기술했으며 ▲태평양 전쟁의 피해자로서 일본의 입장을 부각시키는등 교과서 전반에 걸쳐 가해사실을 축소 또는 삭제한 점이두드러져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정부는 이날 일본역사교과서 검정결과에 대한 외교부 이남수(李南洙) 대변인 성명을 통해 “검정을 통과한 일부교과서가 여전히 자국 중심주의적 사관에 입각하여 과거의잘못을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깊은 유감의 뜻을 표했다.이어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그릇된 역사교육을 받게되는 경우 한·일 양국관계의 발전을크게 손상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역사왜곡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일본측이 지난달 말 교과서 검정결과내용을 외교채널을 통해 전달해왔음을 공개하고 이를 교육부 전문가팀에 넘겨 분석한 1차 자료를 발표한 데 이어 앞으로 ▲한일관련 고대사 왜곡 ▲근·현대사 왜곡 ▲일본사미화 여부 등으로 나눠 정밀 검토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주석기자 joo@
  • 섬세함과 역사만행 ‘두얼굴’의 日本문화

    일본의 역사 왜곡이 우리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그러나 일본에서는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란 극우그룹을 조직한 후지오카 노부가츠의 저서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가 80만부 이상 팔렸다.그의 눈에는 억울하게 끌려가 인생을 망친 일본군 위안부가 돈 벌려는 ‘창녀’이고,난징의 피학살자들은 게릴라일 뿐이다. 한편 국내에서는 일본문화가 1998년 단계적 개방을 계기로 형식이나 기교의 섬세함과 감수성을 무기 삼아 우리 토양 위에 자리잡아간다.과거는 과거고 문화는 문화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우리 머리 속에 스며든 것. ‘일본 문화 그 섬세함의 뒷면’(책세상문고)은 이같은인식에 대한 문제제기다.박현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연구원은 일본 문화의 섬세함과 역사의 만행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영화 ‘러브레터’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등을 예시하며 일본문화의 섬세함을 살핀다. 그 기원을 작가의 체험이나 심경을 소재로 한 사회성 적은 사소설에서 찾는다.1907년 발표돼 사소설의 전범으로 자리를 굳힌 ‘이불’등의 작품을 분석해 그 역사적 의도를분석한다.주인공인 중년 작가 도키오는 여제자에게 연정을 느끼며 그녀가 덮던 이불을 부여잡고 우는,시종일관 자신의 내면에 갇힌 인물이다. 일본문학의 사소설로의 귀결은 군국주의의 팽창과 같은뿌리에서 출발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다른 아시아 국가를 이웃이 아닌 영원한 부정적 타자(他者)로 상정하는 근대일본의 군국주의적 이데올로기가 확산되는 한편에서 문학이 현실을 외면하고 그 자리에 섬세함이나 정교함을 놓는과정이 진행됐다는 것. 일본의 근대화는 서구에 대한 열등감을 아시아에 대한 우월감으로 치환하는 형태로 나타나고,우월성의 근거를 천황에서 구함으로써 국가주의의 강조로 이어진다.신화와 가족주의 제도에 기반한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기획과,그 반대편에서 이뤄진 신민의 양산으로 진행됐다.천황-신민의 회로는 일본-아시아라는 회로로 확산돼 주변 아시아 국가에대한 멸시로 직결된다.일본이 4세기 말이래 200여년간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 등신화의 역사화도 거기에 일조했다. 일본 근대문학은 절대적이고 신성화한 천황을 기축으로한 국가체제의 정당성을 합리화하고 신민 스스로 그것을받아들이도록 하는 기능을 요구받았다.현실의 외면과 내면에의 칩거는 문학의 일반적 경향으로 자리잡아갔다.사소설로 귀결된 근대문학의 흐름은 서구의 산물을 쥐어줌으로써 신민들에게 근대적 국민이라고 느끼도록 정체성을 부여하고,천황제의 모순과 비합리성 등 현실을 외면하도록 강제해 국가주의적 팽창을 순조롭게 했다.문학의 구실은 무관심으로 귀결됐고,비합리적인 현실의 모순은 그대로 방치된 것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감정적 반발이 아니라끊임없이 반복,재생산되는 그들 주장의 논리적 근저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일본문화와 역사,한일관계의 핵심을 두루 알기 쉽게 일러준다. 김주혁기자 jhkm@
  • [대한광장] 이수현군의 죽음과 일본

    지난달 26일 저녁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술에 취해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은 이수현군의 죽음은 그야말로 일본열도를 강타했다.어떤 회의에 참가하려고 도쿄에 가 있던 우리 일행은 29일 저녁 신오쿠보역에서 그를 보내는 노제에 참석했다.어머니는 아들의 사진을 가슴에 안은 채 쓰러질 듯했고 아버지는 유골을 담은 흰상자를 안고서 그래도 의연한 자세를 취하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일본신문은 연일 대서특필하면서 아버지의 말로 “내 아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충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내 아들은꿈을 가지고 일본에 공부하러 왔다. 그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렇게 여러분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서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위로를 받는다” “일본 국민이 함께 울어준 것으로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고 전했다.또 어머니는 “내 아들은 장래 큰 일을 해낼 것이라고 기대했다.그런데 이렇게 빨리 가다니 너무나 처참하다”고 하면서 간밤에는 아들이 꿈에라도 찾아올까 했으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수현군의 죽음에 일본국민의 눈이 쏠려서 그만 그와 함께 생명을 잃은 또 한 사람의 일본인 카메라맨 세키네시로(關根史郞)씨의 의로운 죽음은 그다지 화제가 되지 않는것 같아 좀 서글픈 생각마저 들었다.세키네씨는 47세, 이수현군은 26세.이군의 죽음은 너무나 젊은 죽음이었다.그와 사랑을 나눈 여자 친구가 “수현아 난 네가 정말 좋은 일 했다는 것 알아.하지만 남아있는 나는 어떡하니? 어떻게 살아야해… 다시 되돌리고 싶어.타임머신이 있다면…”하고 인터넷에 올렸다니 그 얼마나 애절한가. 이수현군의 죽음,그것은 인정이 메말라가는 세상에 던진 충격이었다.무엇보다도 한 한국인 청년의 죽음이었다는 데 일본인들은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그러니까 아사히(朝日)신문은 톱기사로 다루면서 ‘같은 눈물 일한(日韓)이 함께’라고제목을 달았다. 그리고 일본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2002년의월드컵 명칭을 일본국내에서 ‘한일’이 아니라 ‘일한’으로 하려는 데 대해서 사설을 쓰고 그런 아집은 버리라고 권고했다.“이수현씨의행위는 양국민의 가슴에 감격을 안겨주었다”고 하고 “일본어 표기에 앞이냐 뒤냐 하는 정도의 문제로 귀중한 것을 깨서는 안 된다”고 끝을 맺었다. 이 사설은 또한 이 표기문제에 대해서 한국신문이 신중한태도를 견지하고 보도를 자제하고 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한일 관계란 정말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처럼 취약한 것이라고 해야 할런지 모른다.그래서 다시 한일관계가 악화해서는안 된다고,일본의 언론도 한일 양국이 이수현군의 국경을 넘은 의로운 행위에 눈물을 함께하자고 더욱 호소하는 듯했다. 문득 나는 2002년부터 사용할 것을 목표로 한다는 이른바‘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회’라는 우파 세력이 만드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미 그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고 일본 정부의 검인정 당국이 137군데를 정정하라고 했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그것은 한일합방은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고,3·1운동을 비롯하여 종군위안부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일본의 지난날은 유색인종으로서 유일하게 성공을거두어온 찬양할 만한 역사였다고 한다.나치는 유태인을 학살했지만 일본이 중국 난징(南京)에서 20만 중국인을 학살했다니 그것은 전혀근거 없는 날조된 숫자라고 한다. 이수현군의 죽음에 눈물을 함께한다는 일본인과 이러한 일본 역사교과서란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죽음에 대해서는눈물을 흘리지만 일본을 우파세력으로 좌우하겠다는 정치적목적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일까.그것과 이것은 별개의 것. 그리고 정치 또는 권력욕이 스며들면 인간적인 것은 모두 지워지고 만다는 것일까. 이국의 밤하늘 아래 유난히 희게 보이는 이수현군의 유골상자를 바라보는 눈앞에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생각이었다.정말그런 역사 교과서가 나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것인가.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지명관 한림대 석좌교수
  • 對北화해 반대하는 日극우인사들

    ‘6·15 남북정상회담’은 분단후 반세기만에 한반도의 긴장완화 및 남북화해의 새 장을 연 쾌거로 평가받는다.그러나국내외 극우론자들은 이를 두고 남북 정상간의 기만극이라느니,남한정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략에 놀아난다느니 모략에 가까운 비난을 늘어놓았다.이들 가운데는 일본내 극우세력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한일관계사 전문가인 다카사키 소지(高崎宗司·57)일본 츠다주쿠(津田塾)대 교수는 ‘통일시론’최근호에 기고한 글에서남­북·북­일화해를 반대하는 일본내 극우인사들의 면면을 소개했다.다카사키교수는 이 글에서 이들을 ‘겐다이코리아’그룹,산케이 그룹,기타 인물 등 세 그룹으로 분류했다. 우선 ‘겐다이코리아’그룹은 월간지 ‘겐다이코리아’를 발행하는 겐다이코리아(現代コリア)연구소와 관련된 인물로 그가운데 핵심은 이 연구소 소장이자 월간 ‘겐다이코리아’주간인 사토 가츠미(佐藤勝巳·72).지난 91년 4월 ‘붕괴하는 북조선-북일교섭을 서둘러서는 안된다’등의 책을 쓴 사토는 97년 10월 결성된 ‘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의 회장직도 맡고 있다.니시오카 츠토무(西岡力·45)도쿄(東京)기독대 교수는 ‘북조선에 납치된일본인을 구출하는 동경 모임’회장으로 ‘폭주하는 국가 북조선’‘김정일과 김대중’등을 저술하였으며,남북정상회담직전 ‘Voice’(2000·7월호)에 ‘남북회담은 아무 것도 낳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악의적인 내용의 글을 기고한 바 있다.겐다이코리아연구소 연구부장이자 다큐소큐(拓殖)대학 조교수인 아라키 가즈히로(荒木和博·45)역시 이 그룹의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두번째는 일본신문 가운데 북한에게 가장 비판적이며 남북·북일화해에도 부정적인 ‘산케이(産經)신문’내 극우논객들인 ‘산케이그룹’.남북정상회담 이후 산케이신문은 ‘조일(朝日)교섭-융화무드에 현혹되지 말라’등의 기사를 무더기로실어왔다. 산케이그룹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을 지낸 구로다 가츠히로(黑田勝弘·60)로,그는 지난해 8월호 ‘SAPIO’에 기고한 ‘김정일 열풍은 한국정부 ‘언론통제’의 산물이다’라는글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한국은 어처구니없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며 남북화해를 비판했다. 이밖에 타이 대사 출신으로 현재 하쿠호우도우(博報堂)·치요다(千代田)화공건설 특별고문이며,외교평론가로 활동중인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71),국제정치 저널리스트로 활동중인 오치아이 노부히코(落合信彦·59),가쿠쇼인(學習院)대학 법학부 교수이자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멤버인 사카모토 다카오(坂本多加雄·51),후쿠이(福井)현립대학 조교수 시마다 요이치(島田洋一·44)등이 이 범주에속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필자인 다카사키 교수는 전화인터뷰에서 “이들은 북조선을국제사회로 끌어내기 위해 한국정부나 구미 여러 정부가 기울이는 노력에 대한 정당한 경의가 없다”고 비판하고는 “일본내에서 이들에 맞서는 세력이 있으나 아직 활동이 미미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해외문화원 이래서야…”

    “입만 열면 문화의 세기라고 큰소리치지만,해외홍보 지원마인드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음지에서 체제홍보에 매달릴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우리 문화원이 나가 있는 곳에 살면서 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한국사람이라면 한결같이 보이는 반응이다.문화원이 있다는 소리만 들었지,현지인도 찾지 못할 구석에 밀어놓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해외 문화원은 뉴욕·로스앤젤리스·파리·도쿄 등 4곳에 있다.현지에서 원성을 감당해 온 문화원장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5∼7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관광공사 해외지사장들과의 합동회의가 하소연장이 됐다.한 나라의 문화원이라면적어도 사람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현재 문화원다운 문화원 건물은 로스앤젤레스가유일하다. 뉴욕문화원은 파크애비뉴에 있는 한 건물의 6층에 세들어 있다.뉴욕은 세계문화의 새로운 중심지인데다,한국문화 및 예술인들의 진출도 활발한 곳.도서실과 시사실 규모의 영화관,전시실·강의실은 필수적이다.문화원은 새 건물에 관광공사·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와 같이 입주하여 ‘코리아 센터’로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도 1∼2층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말한다. 파리는 가장 열악한 곳으로 꼽힌다.중심가인 16구에 있지만,8층 짜리 아파트의 반지하에 있고 폭우가 내리면 물이 샐 정도로 낙후했다.245평 짜리 이 공간은 지난 79년 구입한 것. 파리문화원측은 한국문화를 전통적인 문화 중심지인 파리에소개하고,새로운 문화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절한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본문화원도 사정이 비슷하다.도쿄 민단중앙회관 부속아파트의 7∼9층 237평과 민간 강당 153평에 세들었다.일반인의접근이 매우 어려운 것은 물론 낮은 천장에 적재하중 제한으로 1만2,000권 이상의 도서를 수장하기가 불가능하다.한일관계의 특수성이 아니더라도 문화적 자긍심에 부응하는 문화원이 필요한데다,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더불어 우리문화 진출의 전진기지가 되어야 하나 현실적으로 어렵다. 건물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현재 정부에서 각 문화원에 파견한 인원은 문화원장과 문화관 1명 등 2명씩이다.여기에 현지인을 몇사람 쓴다.정부 파견 인원은 99년 6월까지만 해도3명이었으나,정부조직 개편의 회오리 속에 1명씩 줄었다.베이징과 런던 주재 대사관에 둔 문화관 직제가 없어진 것도‘2000년,문화의 세기’를 카운트다운하던 이 때였다. 이병서 뉴욕문화원장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는자세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그러나 20여명의 문화관을 파견한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고사하고 8명이 뛰는 일본을 지켜보고 있노라면,경쟁에서 어떻게 이길지 모르겠다는 생각뿐”이라고 토로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씨줄날줄] 청년 이수현

    “내가 사고현장에 있었더라면 가만 있었을 것이다”지난 26일 일본도쿄의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한국인유학생 이수현씨의 죽음을 본 한 일본인의 말이다.그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그 일본인뿐이겠는가.일본인들뿐 아니라 아마 많은 한국인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그 일본인은 이어 “부끄러운 생각이 앞선다”고 말했다.그런 생각 역시 똑같았을 것이다.산 사람들의 부끄러운 마음이니까. ‘의로운 청년’ 이수현씨에 대한 추모열기가 한국과 일본에서 계속되고 있다.특히 일본사회의 애도열기는 전 일본적이다.한국에서라면저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장소가 어디이건 그의희생정신은 칭찬받고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일제시대를 거치며쌓여온 두나라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이 그런 생각을 들게 한다. 모리 일본총리를 비롯,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이 빈소를 찾아와 일본정부를 대표해 조의를 표하는가 하면 다나카 마키코 중의원 의원 등정·관계 관계자들과 일본 매스컴의 대대적인 보도를 통해 소식을접한 일본인들이 빈소를 찾아 그의 희생정신에 경의를 표했다. 이씨의 죽음이 더 안타까운 것은 그의 가족사 때문이다.증조할아버지는 일본에서 원인 모를 병으로 죽고 할아버지는 탄광에 징용으로끌려갔으며 아버지는 6살까지 오사카에서 살다가 귀국하는 등 3대가맺은 일본과의 인연 때문이다.악연 끝에 4대 들어 의로운 죽음을 택한 것은 그의 아버지 말처럼 정말 ‘이상한 인연’이다. 지하철 승객이 선로에 떨어지는 사고는 한국이나 일본 어디서건 종종 일어난다.그러나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고 이씨처럼 몸을 던진 예는 없었다고 한다.일본사회에 팽배한 이기주의때문일 것이다.그같은 사회에서 죽음을 무릅쓴 젊은 외국인 유학생,그것도 한국의 젊은 청년이 보여준 희생정신은 일본인들에게 충격을주었을 것이다.그의 살신성인은 의로움이나 희생정신이 메말라 있는오늘의 세태에서 발휘되었다는 점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한일우호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일본 관방장관의 말처럼 매사 국민감정을 앞세우는 한일관계에도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박찬 논설위원 parkchan@
  • 在日사학자 故박경식씨 현대사 자료 4만점

    지난 98년 타계한 재일사학자 고 박경식(朴慶植)씨의 현대사관련자료를 후배 강덕상(姜德相·68·일본 시가현립대) 교수 일행이 맡아정리하고 있어 재일교포 사회에 훈기가 돌고 있다. 재일교포와 재일 사학계는 지난 95년부터 박씨가 평생을 바쳐 모아온 자료를 한 군데 모아 ‘재일동포 역사자료관’건립을 추진했었다. 당시 추진위측은 2000년까지 10억엔을 모금,도쿄 인근에 자료관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그러나 98년 박씨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갑작스레타계한데다 이무렵 일본의 경제침체로 성금모금이 부진해 자료관 건립이 아깝게도 무산되고 말았다. 문제는 자료관 건립과는 별도로 박씨의 소장자료에 대한 처리·관리문제다.박씨가 40년간 수집한 자료는 어림잡아 4만점 정도로 상자 1,000개 분량이나 된다.박씨의 자료는 크게 ▲한일관계사 ▲일제 식민통치사 ▲재일교포사 등 3분야의 자료들로 구성돼 있으며,그외 고(古)신문,전단,삐라 등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강 교수는 “박 선생이 모은 자료는 대개가 원본자료로 이제는 구하기 어려운 희귀자료들”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박씨가 수집한 자료는 자료관 대신 강 교수가 재직중인 시가(滋賀)현립대 도서관으로 옮겨져 정리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강 교수는최근 도쿄 신주쿠 소재 자택을 방문한 기자에게 “시가현립대 도서관 사서들이 박 선생 자료를 정리중인데,현재 3분의 1정도는 이미 정리를 마쳤으나 아직 외부공개는 하지않고 있다”고 밝혔다.‘자료관’ 건립문제와 관련,강 교수는 “박 선생께서 타계하신 이후 이 문제에 대한 별다른 진척은 없다”며 “지난해 박 선생 1주기 모임에서도별다른 논의가 없었다”고 말했다. 도쿄 정운현기자 jwh59@
  • 日 개각, 前총리 2명 포진 정국 안정 포석

    2001년 일본 중앙정부의 개편을 앞두고 5일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가 단행한 제2차 개각에서 일본 열도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총리의 입각이다. [내각 안정포석] 모리 총리는 이날 개각을 앞두고 두차례 하시모토전총리와 회동,행정개혁·오키나와·북방대책 담당상으로 입각해 달라고 호소,결국 영입에 성공했다. 하시모토 전총리의 입각은 지극히 불안정한 모리 내각을 떠받치는일종의 지지대 역할로 볼 수 있다.최대 파벌인 하시모토파의 회장을끌어들임으로써 공동정권의 짐을 하시모토에게 지우겠다는 계산이다. 하시모토도 15년 전부터 행정개혁을 부르짖어온데다 러시아와의 북방영토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입각을 수락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내각의 최대 특징은 하시모토 전총리와 재무상으로 유임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전총리가 내각에 참여한 것으로 2차대전 패전후 총리 경험자가 2명 이상 입각한 최초의 케이스가 됐다. 이 역시 내각에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해 위기가 발생했을 때 원활히 대처하겠다는 의미가 있다.때문에 일본 언론들은 이번 내각을 ‘중후(重厚)내각’으로 부르고 있다. [반란자 철저배제] 또다른 특징은 지난달 모리내각 불신임 결의안 때‘반란’을 주도한 인물들을 철저히 배제시킨 점이다.반란의 주역 가토파에서는 미야자와 재무상 등 2명을 기용했지만 이들은 불신임 결의안 투표에는 결석한 사람들로 파벌내 ‘반 가토그룹’이다.가토지지 의원이나 야마사키 다쿠(山崎拓)파에선 단 1명도 입각하지 못했다. 이른바 모리·하시모토·가메이파 등 자민당 주류파의 ‘각료 나눠갖기’가 비정할 만큼 실현됐다.개각을 통해 응징한 것이다.관심을끌었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딸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의원은 입각하지 않았다.‘모리 난파선’에 섣불리 몸담지 않겠다는 의중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국민불만 잠재우기에 역부족] 이번 내각은 외견상 중후한 인물들의대거 포진으로 안정감은 주는 것같으나 추락하는 모리 내각 지지율을반등시킬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팀 컬러가 중후해진 대신 신선하다거나 개혁적인 인상은 전혀 없고 유임된 각료들이 많아 일본 국민들이 얼마나 새 내각에 기대를 갖고 성원할 지 일본 언론도 ‘의문부호’라고 평가하고 있다. 미야자와 대장상의 유임은 경제정책이 답습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어경제회복에 진전이 있을 것이란 기대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당초 23명의 각료직을 13명으로 줄이기로 했지만 각료 배분 등의 문제에 걸려 임시방편으로 17명의 각료를 임명한 것도 정부조직개편에 강력한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한일 관계] 큰 변화 없을 듯 친한파로 널리 알려진 고노 외상의 유임은 현 외교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따라서개각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는 물론 북일 수교교섭 추진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세진기자 yujin@
  • 韓·日 양국 학자 역사교과서 교차 분석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역사교과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정재정(鄭在貞) 서울시립대교수와 가토 아키라(加藤章) 일본 모리오카대 학장이 상대 나라의 교과서를 분석했다.한일문화교류 정책자문위원회(위원장 지명관)가 ‘과거청산과 21세기의 한일관계’를 주제로 지난4일 연 ‘2000 한일 문화 심포지엄’이 발표무대가 됐다. 두사람은 두나라의 역사교과서가 서로를 평가하는 내용과 시각에서크게 인색하다고 지적했다.두나라의 역사교과서가 국제화와 정보화사회에 걸맞는 자질을 기르기에 미흡하다는 데는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도 공존했다.두사람의 발표내용을 소개한다. ■정재정교수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왜곡사건을 빚었던 1982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새로 검정에 제출된 역사교과서는 ‘종군위안부’에 대한 기술이 7개에서 3개 교과서로 줄었다.‘남경대학살’기술도 대폭 축소됐고,‘학살’이라는 용어는 ‘살해’로 바뀌었으며,희생자수는 ‘다수’ 등으로 애매하게 처리했다.‘삼광작전(三光作戰·불태우고,죽이고,파괴했다는 일본군의 작전)’은1개 교과서에만 남았고,731부대(세균전 실험을 했던 부대)에 대한 서술도 사라졌다.‘침략’은 ‘진출’로 바뀌었다.전후 보상을 요구하는 한국 등의 시민운동에 대한 서술도 사라졌다.일본은 교과서 왜곡사건으로 이웃나라들과 심각한 마찰을 빚은 이후 유연한 태도를 견지하여 조금씩 신뢰를 회복했지만,다시 문제가 일어났다.한국과 일본의 우호협력 관계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황국사관으로 회귀하려는 일본의 태도를 묵과해서는 안된다. 황국사관은 한국역사를 짓밟고 더럽히는 가운데 형성된 역사관이기때문이다. ■가토학장 한국 국사교과서는 선사시대를 서술하며 주체적 민족사관에 입각해 한민족의 기원을 첫머리에 두고 독자적 문화를 만들어냈음을 강조한다.그러나 빙하기에는 중국대륙과 한반도·일본열도가 육로로 이동할 수 있었다는 점도 언급해야 한다.한국이 일본에 일방적인 문화 전파 내지는 은혜를 베풀었다는 생각에 치중해있다. 삼국시대인 5∼6세기 왜(倭)와의 관계에서 백제가 압도적으로 우세하지만 당시 한반도의 대응은 합종연횡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왜가결코 수동적 입장만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고려시대의 일본 관련 기술은 ‘왜구’를 포함하더라도 4군데에 지나지 않는다.1980년대 이후 일본의 연구 결과 ‘왜구’는 일본인을 포함하여 고려·조선인의 연합이고,제주도 주민을 포함하여 민족·국가를 초월한 개념이라는 견해가 만연되어 있다. 서동철기자
  • 전남도 여행책자 발간

    ‘책 한권 들고 남도땅으로 가을여행을 떠나보자’ 전남도가 최근 남도의 멋과 맛을 소개한 ‘남도땅 멋길 맛길(287쪽)’을 펴냈다.달랑 가방 하나 메고 길을 나서 1박2일간 찾아가볼만한명승지와 먹거리 등을 담았다. 한승원·안정효·송수권·문병란·김용태·강운구·곽재구·남성숙씨 등 내노라하는 문필가 8명이 여행지를 직접 찾아 음식을 먹어본뒤 저마다의 독특한 문체로 남도여행의 멋과 맛을 감칠 맛나게 묘사했다. 8명의 작가들은 전남지역 22개 시·군을 ‘길’따라 8개 권역으로나눈 다음 각각 2∼3개씩 맡아 1박2일 코스로 꾸몄다.특히 각 시·군으로 이어지는 국도와 지방도,기차역,항구,공항,주요 지점 등을 한장의 지도에 표시했다. 책자는 22개 시·군의 명승유적지에 이어 각 시·군을 대표하는 66개의 남도요리를 담고 있다.전남도가 ‘남도음식의 명가’로 선정한9곳의 음식점도 곁들였다.영광의 1번지 식당,담양의 전통식당,구례의 지리산식당,여수의 한일관,화순의 달맞이흑두부,고흥의 평화한정식,강진의 청자골종가집,목포의 호산회관,무안의 강나무식당이 그곳이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KBS, 모리총리 인터뷰서 “독도는 일본땅” 삭제 파문

    KBS가 최근 일본 총리의 인터뷰를 내보내면서 일부 문제발언을 삭제,방송편집권의 한계에 관해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26일 KBS와 KBS노동조합에 따르면 KBS는 지난 21일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를인터뷰한 ‘KBS 특별회견 일본 모리총리에게 듣는다’를 방송하면서모리 총리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요지로 한 발언을 삭제했다. KBS 노조는 이와 관련,26일 ‘특보-독도는 일본땅 일총리 망언’이라는 소식지를 내고 “모리 총리가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공식 의견을 밝혔다”면서 “모리 총리가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한일관계를 악화시킬 것이 당연한 독도 영유권주장을 인터뷰에서 밝힌 것은 상당한 의도를 가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보에 따르면 이날 방송에서 독도에 관한 일본 정부입장을 묻는 질문에 모리 총리는 “우리나라는 다케시마(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서도,국제법상으로도 명확하게 우리나라고유영토라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다.이 문제에 대한 일·한 두 나라입장차이가 두나라 국민의 감정대립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답했다.KBS 노조관계자는 “대통령 방일을 앞두고 긍정적 분위기를 형성하자는 것이 이 프로의 기획의도였지만 한·일간 민감한 문제에 대한 일본 총리의 책임있는 발언은 시청자에게 전달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KBS측은 노조의 주장에 대해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반박하고 있다.프로를 만든 이봉희 보도제작국장은 “일본정부는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에 모리 총리의 발언은 새 뉴스가 아니었고,대통령 방일을 앞둔 한·일 정부의 화해협력분위기에서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해 편집했다”고 밝혔다.이국장은 “더욱 이 질문은 모리 총리가 기존 일본 정부입장을 대변할것이 예상됐지만 ‘혹시 다른 답이 나올까’해서 던진 보조 질문성격이었다”며 일상적 편집이었음을 강조했다. 한편 독도수호대는 26일 성명서를 내고 “일본이 의지가 있었다면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부담스런 답변을 피할 수 있었지만 일본 총리는 독도침략 의지를 과감히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장택동기자 taecks@
  • 모모세 ‘한국은 변했다‘새저서 출간

    [도쿄 연합]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따라잡는 18가지 이유’라는저서를 통해 한국 사회를 통렬히 비판했던 모모세 다다시(百瀨格·62)전 한국 토멘 사장이 최근 일본에서 ‘한국은 변했다. 일본은 어떻게할 것인가’라는 책을 출간했다. 모모세씨는 이 책에서 1997년 ‘18가지 이유’를 펴낸 이후의 한국사회 변화와 새 한일관계를 조명,양국이 함께 손을 잡을 경우 동아시아의 ‘새로운 번영’을 일궈낼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반일 교육을 많이 받았던 50,60대의 한국인이 변했음을느낀다며 특히 이같은 경향은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지도층에서 두드러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나 이 책에서 한국이 한때 “대일(對日) 카드의 하나로 이용했던 ‘위안부 문제’는 이미 한국에서 과거의 일로 돼 버렸다”고지적하는가 하면 한국을 국제관계나 안보면에서 일본을 지원해 줄 가장 유력한 ‘응원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하는 등 다분히일본 중심적인 사고도 드러냈다.
  • 양승현의 취재수첩/ 金대통령의 外治와 內治

    ‘가깝고도 먼 나라’ 흔히 우리는 일본을 이렇게 칭한다.두나라 관계는 순조롭게 진행되다가도 각료 망언이나 교과서 왜곡사건 같은 일이 생기면 언제 이웃이었나 싶게 냉랭해진다. 이번 아타미(熱海)온천 정상회담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모리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와 불과 반년 사이에 3차례의 정상회담과 3차례의 전화회담을 가졌다.친한파였던 고(故)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총리와 닦아놓은 선린 우호관계를 잘 가꾸고 있는 셈이다. 온천회담은 ‘정보기술(IT)협력 이니셔티브’와 같은 성과가 말해주듯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이미 전화로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했고,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때 만날 수 있었으나 별도 일정으로 아타미를 방문,‘우방의 예’를 갖춘 게 밑거름이 됐다.모리 총리가 환영만찬사에서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라는논어 경구를 인용,감사인사를 표시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사실 한일관계는 예전과 사뭇 다르다.지난 정부때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식의 요철(凹凸)반복이아니라 차분하게 일본을바라보는 기류가 싹트고 있다.김 대통령의 외치(外治)의 결과이다. 하지만 달리 볼 면도 있다.23일 기자회견에서 김 대통령은 일황 방한 수위를 ‘월드컵 이전에 이뤄지도록 하자’고 했던 취임초 보다낮췄다.“먼저 일본이 결정할 문제”라고 접근했다.남북교류협력과북·일관계 개선도 기존 원칙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기자의 눈엔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는 내치(內治)가 힘을 실어주지못하는 것으로도 비쳤다.개인기에 의존하는 외치를 팀워크가 필요한내치로 잇지 못한 때문이다. 아타미 회담이 ‘대통령의 메시지가 아래까지 전해지지 않고,밑바닥민심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는’ 내치의 문제점을 김 대통령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정치팀차장 yangb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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