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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한미銀 자회사 설립

    하나은행과 한미은행의 전산자회사 발족을 전담할 설립사무국이 19일 오전 발족됐다. 김승유(金勝猷) 하나은행장과 신동혁(申東爀) 한미은행장은 이날 현판식을 갖고,“다음달초까지 금융감독위원회에 자회사 설립에 대한인가를 신청한 뒤 11월중에 합작 전산회사를 출범시킬 계획”이라고밝혔다. 공식업무에 들어간 설립사무국은 이른 시일내에 IBM 등 전산전문회사를 상대로 투자의향서를 받을 계획이다. 합작자회사의 초기자본금은 30억원으로,제3의 전산전문회사도 주주로영입할 방침이다. 안미현기자
  • [김삼웅 칼럼] 重慶에서 맞은 광복군 창설60년

    지난 17일 낮 중국 중경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중경(重慶)청사 재복원 개막식과 광복군 창설 60주년 기념행사가 조촐하게 거행되었다. 청사 2층에 마련된 항일군사활동자료전시관도 개막되었다.해방후 처음으로 광복군 창설 기념행사가 중경 현지에서 거행된 것이다. 60년전인 1940년 바로 이날 중경에서는 한국광복군 창군식이 거행되었다. 한민족은 나라를 잃고 세계각지를 유랑하면서 산발적으로 의열투쟁과 독립군의 항전을 계속하였지만 임시정부 산하에 ‘국군’인 광복군이 창설되기는 처음이다. 남의 나라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임정의 지도자들은 중국정부의 협력과 미주 동포들의 성금으로광복군을 창설했다. 비록 창군날에는 병력이 30여명에 불과한 초라한모습이었지만 광복군의 사기는 충천하고 독립운동사적 의미는 각별하다. 광복군 창군의 날 중경의 날씨는 쾌청했다.행사장 가릉빈관(嘉陵賓館)에는 임정 국무위원을 비롯,내외귀빈 20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식장 중앙에는 대형 태극기가 게양되고“초나라는비록 세집만으로도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나무를 베히고 뿌리를 말리는 각오라면 끝내 우리는 고국에 돌아갈 날이 있을 것이다”는 등의표어가 식장을 자못 숭엄하게 하였다(조소앙, ‘광복군총사령부 성립전례기록’). 나라 잃은지 30년만에 이역만리에서 조국을 되찾고자광복군을 창설한 임정의 애국지사들과 대부분 일본군을 탈출하여 참여한 젊은 군인들의 감격과 전의로 대회장은 흥분에 휩싸였다. 김구 주석은 “광복군은 1919년 임시정부군사조직법에 의거하여 중국 총통 장개석의 특별허락을 받아 조직되었으며 중화민국과 합작하여 우리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 저 공동의 적인 일본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기 위하여 연합국의 일원으로 항전을 계속한다”는 ‘광복군선언문’을 발표했다. 임정의 광복군 창군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것이었다. 당시 만주지역에 120만명으로 추산되는 한국인과 중국대륙 각지에 살고 있는 동포청년들,그리고 당시 중국관내 일본 육군 26개 보병사단과 20개 독립혼성여단의 병력 중에는 강제징집된 한인청년이20만여명에 이르는데 이들을 모아서 국토 수복작전으로 빼앗긴 조국을 무력탈환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출범한 광복군은 연합군과 공동작전으로 대일전쟁에 참여했다.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연합하여 대일전쟁을 수행하고 국내진공작전을 위해 미국과 OSS특수훈련을 실시하였다. 시련도 많았다. 우선 중국정부는 ‘한국광복군 행동 9개준승’이란것을 만들어 중국 군사위원회가 통할지휘토록 하였다. 광복군은 중국군의 통제와 간섭을 받게 된 것이다. 나라없는 군대의 한계일 수밖에없었다. 그러나 끈질긴 교섭으로 4년만에 군 통수권을 회복하였다. 대한민국 국군 창설 반세기가 지나도록 작전지휘권이 외국에 넘겨진것과 크게 비교된다. 광복군의 국내진공작전은 일본의 항복으로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김구 주석이 통탄한 대로 임정은 발언권을 잃고 건국과정은 물론 그이후 군의 핵심은 일군과 만군출신들이 차지했다. 임정과 광복군은‘개인자격’으로 귀국하여 소외의 대상이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으로 창설되어 일본과 나치독일에 선전을포고하면서 일군과 싸우고 중국 국부군과 협동하여 각처에서 항일전을 전개했으면서도 광복후에는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자리에 일군·만군출신이 올라섰다. 건국사의 첫자리가 이렇게 왜곡되었다. 임정 중경청사 재복원 행사에는 윤경빈 광복회장을 비롯,김우전 광복군동지회장, 박유철 독립기념관장, 홍순영 주중대사와 중국측에서는 진근은(陳根銀) 중경시 외사부주임등 관계자가 참석하고 행사후에는 광복군총사령부 유적지와 백범선생의 망명지 등을 돌아봤다. 대부분 20대 학도병으로 일군을 탈출하여 광복군에 참여했던 이들은 이제백발이 성성한 80고령의 ‘노병’으로 변했지만 나라사랑의 열정은여전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1940년 9월17일 임시정부의 국군으로광복군이 창군한 날을 국군의 기념일로 지정하여 통일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60년전 그날의 감격을 되새겼다.광복군 회갑날의 중경하늘도 맑고 깨끗했다. ■중국 중경에서 김삼웅 주필kimsu@
  • [기고] 南北관계와 지역패권주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지도 이미 3개월이 지났다.55년간 지속돼온 남북간 냉전의 벽은 점차 허물어지고 있으나,동서간 지역갈등에 의거한 여야간 냉전은 점차 강화돼 가고 있는 실정이다. 여야간 정치적 갈등은 국민의 정부의 국정운영이 성공하면 할수록오히려 심화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한국 정치는 상대의 손해는 나의 이익이라는 영합게임적 정치문화에 뿌리박고 있다.권위주의 산업화 시대에 타지역의 희생을 통하여 사회경제적 자원을 독점적으로 차지했던 영남의 지역패권주의가 바로 그것이다.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러한 정치문화는 지역패권주의에 맞선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가 DJP연합으로 집권에 성공하자 형태만 바뀌었을 뿐내용은 전혀 바뀐 것이 없다.현재 권력금단 상황에 봉착한 영남에서는 차기대선 승리를 통해 철옹성처럼 여겼던 비민주적 기득권을 수호하고자 한다. 상대의 이익은 나의 손해라는 이러한 정치적 의식은 영남지역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한나라당의 대북정책 인식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이회창총재는 남북정상이 만나는 동안 TV를 꺼버렸다고 전해진다.또한 6·15 공동선언에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조항이 없다고 비난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임기중에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고 하자,군사적 신뢰구축 없는 남북간 평화협정은 무의미하다고 비판하면서 김대통령에게 자신의 유식을 한껏 뽐냈다.마치군사적 신뢰구축조치 없이 남북한간 평화협정을 체결하려고 정부가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이회창총재는 서독 브란트 총리가 신동방정책을 추진하면서집권 1년만에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없이 제2차세계대전 교전당사국소련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유럽 긴장완화의 물꼬를 열고 마침내 독일통일을 일궈낸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이회창총재는 어느 대학 강연에서 정부 대북포용정책 추진기조는 동감하나 남북 자유왕래를 조속히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상당히 자유주의적 발상처럼 보인다.그러나 북한 체제위기를 촉발시키는 남북 자유왕래는 북한측이조만간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이러한 과도한 요구가 남북관계를 오히려 경색시킬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자유주의포장을 한 수구 냉전적 발상 뒤에 교묘한 영합게임적 정치논리가 들어 있다. 건설적 비판이 아닌 흠집내기로 일관하는 것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이다.한나라당은 과거 반공포로로 석방한 2만7,000여명의 북한인민군포로문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국군포로 및 납북자문제를 계속 거론하고 있다. 더욱 더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집권시 35억달러 상당의 북한 경수로 건설비용을 국민들 부담으로 돌린 것을 새까맣게망각했는지 현재 2억~3억달러 밖에 안되는 남북 경제협력 비용을 우리측의 일방적 시혜라고 언성을 높이고 있다.한나라당은 통일이전 14년 동안 서독이 동독에게 지원한 금액이 500여억 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을 과연 알고 있을까? 이러한 한나라당의 대북정책 인식은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이 망하더라도 DJ 잘되는 꼴 못본다”는 특정지역의 패권주의적 지역의식에그 뿌리를 두고 있다.반DJ정서는 DJ 개인이 아니라 타지역 희생하에자신의 지역이익을 맹목적으로 수호하려는 지역패권적 반호남정서로바꾸어 말할 수 있다.이러한 반호남 정서에는 모든 지역민이 차별없이 공존공영하는 민주적 정치의식이 아니라 다른 지역은 나의 특권적지위를 위협하는 존재로만 비춰진다. 이러한 비민주적 지역정서에 함몰되어 있는 한나라당에게 대북정책에 대한 건설적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민주야당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연목구어의 무리한 요구일지 모른다.남이 잘하면 잘한다고 박수를 쳐주는 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황병덕 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 뇌성마비 장애인 최창현씨 LA~워싱턴DC 대장정 출발

    [로스앤젤레스 연합]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창현(36·대구장애인인권찾기회장)씨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워싱턴DC까지 5,000여㎞의 미국대륙횡단 대장정을 시작했다. 최씨는 12일 LA 피코와 4가에 위치한 남가주한인장애인협회(회장 신효철) 사무실 앞에서 출발,13일 LA 동부 샌버나디노를 거쳐 애리조나주로 향하고 있다. 전신을 가누기 힘든 최씨는 손과 발 대신 입으로 작동하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시속 10∼20㎞로 하루 약 60∼100㎞씩 달려 11월말∼12월초 워싱턴DC에 도착할 예정이다. 횡단코스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캔자스시티-세인트루이스-인디애나폴리스-콜럼버스-워싱턴DC로 최씨는 당초 라스베이거스 사막지대와 로키산맥을 거쳐 덴버로 가려고 했으나 지방도로가 없어 애리조나를 경유,콜로라도로 가고 있다. 최씨는 지난달 12일 LA에 도착했으나 후원자를 찾지 못해 출발을 미루다가 신효철 남가주장애인협회장과 회원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경비를 마련했으나 턱없이 부족해 하루 두끼 정도만 먹는 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 11월휠체어로 대구에서 임진각까지 1,500㎞ 국토종단을 완주,400만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줬으며 같은해 12월 동료장애인 6명과 지리산 등반에 나서기도 했다. 최씨는 “장애인들도 강한 정신적 의지만 있으면 어려운 일을 해낼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기 위해 미 대륙 횡단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 金正日 국방위원장 구두 메시지

    따뜻한 인사를 드리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당부가 있었고,따뜻한인사를 정중히 전달합니다.역사적인 평양 상봉과 두분이 합의한 공동선언이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고,이를 확실히 실현해 가고 있는 데대해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는 것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특히 김대중 대통령께서 평양에 와서 강조하신 허례허식을 싫어한다는 말씀을하면서 공동선언을 집행하고 관철해 나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동선언의 수표(서명)가 확실히 말라가고 있고, 그것이 굳어지고있다며 이것을 더 굳건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공동선언에 훌륭한내용들을 많이 담았는데, 이것이 또 과거처럼 되돌아가서는 안된다고하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공동선언을 확실히 이행하고 실천해야 한다며 장군께서는 그런 마음으로 충만되어 있음을 전합니다.끝으로 선물로 주신 진돗개가 잘 자라고 있다는 얘기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 [데스크시각] IMT-2000 기술표준 논쟁을 보며

    정보통신쪽에서는 요즘 IMT-2000(차세대 이동통신)서비스의 기술표준이 초미의 현안이다. 동기(미국)식으로 하느냐,비동기(유럽)식으로 하느냐로 업체간 설전이 뜨겁다.당초 업계자율에 맡긴다고 했던 정보통신부도 논쟁의 와중에 끼어들어 “이거 해라,저거 해라” 간섭하는 모양이다. IMT-2000 기술표준은 차세대 휴대폰의 송·수신방식에 관한 문제다. 사업자 선정이 소프트웨어라면 기술표준은 하드웨어다. 사업자 후보인 한국통신과 SK텔레콤,LG는 모두 비동기식을 선호한다. 반면 국내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휴대폰 기술은 동기식.이 분야만큼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때문에 동기식 기술을 갖춘 제조업체들(삼성전자 등)은 서비스사업자가 모두 비동기로 갈 경우 동기식 기술과 설비가 사장(死藏)된다고 아우성이다.비동기에 맞춰 기술개발과설비투자도 새로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비동기 선호논리도 있다.“세계시장의 80%인 비동기 시장을 놓칠 수 없다”“동기식은 사장되는 게 아니라 비동기식과 함께 갈 수있다.동기만 고집하다 우물안 개구리된다”등등… 업체간 논쟁은 ‘돈’이 결부된 탓에 십분 이해가 간다.한편으론 기술에 문외한인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결론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답답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IMT-2000은 2002∼2010년에만 50조원의 생산유발과 50만명의 고용창출이 기대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문제는 이러한 중대사안에 정통부가 안이하게 대처해왔다는 점이다.적어도 미래 수종(樹種)산업의 하드웨어가 어떻게 짜여져야 할지 심각한 ‘정책적 고민’이 있어야 했다.그리고 나서 서비스사업자를 정하는 게 순서다. 정통부는 기술표준을 당초 서비스사업자 자율선택에 맡기겠다고 했다가 아무런 명분없이 “동기식 사업자가 3곳 중 두 곳은 돼야 한다”며 강권한다는 소식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동기든,비동기든,정통부장관이 그룹회장을 찾아다니며 물밑협상할 사안이 아니다.‘보이지 않는 손’은 의혹만 키울 뿐이다. 잠깐 눈을 돌려보자.그간 우리경제를 지탱해 온 산업들이 무엇인가. 자동차 섬유 선박 등 이른바 굴뚝산업이다.이들 산업으로 먹고 살아왔다.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자동차를 보라.쌍용차가 부실끝에 대우로 인수됐고,대우차마저 포드로 인수되기 직전이다.기아차는 앞서 망했고,삼성차는 빚잔치끝에 르노한테 갔다.한때 잘나가던 한국자동차는 이제 현대만이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자동차 뿐인가.섬유업종은 침체고 건설업계는 부도행렬이다.주요 은행들도 외국계로 넘어간지 오래고….내로라 할 산업이 별로 없다. 국부유출을 말하자는 게 아니다.이제 차분하게 우리의 산업을 돌아봐야 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21세기 한국의 수종산업은? 정보통신인가? 벤처인가? 아니면 여전히 굴뚝인가? 이들이 우리의‘커진 밥그릇’을 계속 채워줄 수 있는가? IMT-2000 기술표준 역시 이러한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접근돼야 한다.적어도 IMT-2000에 정보통신의 미래가 있고,정보통신에 우리경제의앞날이 걸려있다면 유관부처와 기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장관이 대그룹 회장과 담판해 해결한다면 IMT-2000사업은 훗날 또 다른 시장실패의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늦지 않았다.기술브레인을 총 동원해 동기와 비동기 기술의 장·단점을 비교,공개해 보라.업계와 지리하리만치 공개토론도 해 보라.정부 산하에 기술표준 관련기관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서 기술표준의 방향을 정해도 늦지 않다.기술료 협상 등을 감안하면 표준결정을 가급적 뒤로 미루는 것도 방법이라는 지적도있다.정부가 스스로 정한 ‘연말 시한’에 쫓겨야 할 하등의 이유가없다. 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IMT-2000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khc@ 권 혁 찬 디지털팀장
  • [21세기 중국의 변신] (5)IT산업 열풍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중국 대륙에도 ‘IT산업 열풍’이 불고 있다.베이징 북서쪽,‘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中關村).5월말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방문한 중국 최대의 컴퓨터업체 롄상(聯想)과 스퉁(四通) 등 IT(정보기술)산업 업체 5,000여개가집결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인근에 중국 과학원 등 230여개의 연구소와 명문대학 칭화(淸華)대·베이징대 등 70여개대학도 몰려 있어 산학협동 연구조건도성숙돼 중국 IT산업의 요람으로 떠올랐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에 힘입어 IT산업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미국의 국제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1999년말 중국의인터넷인구는 900만명을 넘어섰으며,6월말 1,690만명을 돌파했다.중국 정부가 지난해 IT산업의 인프라 육성에 1,200억위안(약 12조6,000억원)을 투입한데 이어,2001년부터 시작되는 10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IT산업을 핵심산업으로 지정한 덕분이다. 이에 따라 99년 IT산업의 생산액은 국내총생산(GDP)의 7%인 7,782억위안(100조5,160억원)을 기록했고,IT산업 수출액도 390억달러(4조2,900억원)로 수출액의 20.6%를 차지했다.IT산업이 중국 경제의 성장을주도하고 있는 셈이다.특히 신랑왕(新浪網 sina.com) 등 중국의 3개IT업체는 미 증시에 상장됐으며,주무랑마(珠穆朗瑪·8848.net) 등 4개 업체는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IT산업 육성을 적극 지원하는 것은 21세기 경제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IT산업을 발전시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에서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정부공작보고를 통해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맞아IT산업의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값싼 컴퓨터 확산과 인터넷 이용료의 인하 등도 IT산업의 성장세를견인하고 있다.600달러(78만원) 미만의 저가 PC가 선풍을 일으키면서 99년 가정용 PC의 판매량은 98년보다 80%가 늘어난 80만대를 기록했으며,지난해 12월부터 인터넷 접속비용을 시간당 4위안(520원)에서 2위안으로 크게 낮췄다. 인터넷 관련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 허용도 IT산업 발전에는커다란 호재다.인터넷 업체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금지하던 중국 정부가인터넷서비스 제공업체에 대해 외국인 지분을 49%,콘텐츠 제공업체에도 50%까지 투자를 허용할 방침이다.물밑 투자를 해오던 미국의 야후와 라이코스 등 외국 기업들의 중국 러시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IT산업 열풍은 중국의 전자상거래 시장규모를 급속도로 확산시키고있다.98년 810만달러에 그쳤던 전자상거래 시장규모는 2001년 5억8,300억달러,2003년 38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전자상거래를 처음도입한 주무랑마의 99년말의 월 평균 매출액은 1,200만위안(15억6,000만원)에 이른다. 그러나 중국의 IT산업 발전은 한계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지난달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16차 ‘세계 컴퓨터회의’에서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은 개막연설을 통해 “인터넷에 쓰레기같은 정보들이 제재를받지 않고 마구 흘러다니고 있다”고 지적,“웹사이트를 검열하는 국제협약을 체결하자”고 제의한 것.IT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중대 발언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khkim@. * IT산업 주역 왕즈둥.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왕즈둥(王志東·34) 신랑왕(新浪網·www.sina. com) 사장은 ‘중국의 빌 게이츠’로 불린다.외국물을 먹지않은 본토박이 벤처 사업가인 그가 98년10월 전 세계의 중국인용으로 개발한인터넷 포털사이트 ‘신랑왕’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독창성 등을 널리 인정받은 신랑왕은 지난 4월 미국 월 스트리트의첨단기술주를 중심으로 거래되는 나스닥에 상장됐다.신랑왕은 주당 20달러대에 상장됐으나 한때 54.5달러를 기록할 정도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중국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한다는 기치를 내건 ‘신랑왕’의 현회원수는 무려 700만명.하루 조회수는 3,400만건이 넘는다.영업시작2년도 채 안되는 IT업체로서는 눈부실 정도다.왕 사장은 특히 지금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로 고객들에게 서비스한다는 목표 아래 한국계 일본인 손정의(孫正義)가 경영하는 야후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등 외자 유치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중국계 최초의 다국적 IT업체로 발전시킨다는 야심찬 구상인 셈이다. 그는베이징(北京)대 무선전자과 출신으로 87년 졸업후 모교 컴퓨터 연구실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컴퓨터와 인연을 맺었다. 왕 사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생을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계기로 삼았다.이때 그는 중국판 윈도프로그램인 소프트웨어 ‘증원즈싱(中文之星)’을 개발,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92년 중관춘(中關村)에 정보통신회사 ‘신톈디(新天地)’를 설립한 데 이어 93년 중국어 소프트웨어개발 업체 스퉁리팡을 창립했다.당시로서는 거액인 650만달러의 외자를 유치함으로써 이후부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왕 사장은 미 스탠퍼드대학 출신 화교 3명이 미국에서 운영중인 중국어 종합정보사이트 사이나 닷컴을 인수,지금의 ‘신랑왕’을 탄생시켰으며,중국·미국·타이완(臺灣)·홍콩 등 4개 지역에 지사를 설치하고 자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 남북 특사회담 이모저모

    14일 오후 발표된 ‘공동보도문’도 최종 문안 작성까지 진통이 컸다.임동원(林東源)특보와 김용순(金容淳) 북한 노동당 비서는 3박4일일정 가운데 이날 가장 긴 하루를 보냈다. 김 비서는 이날 태풍 사오마이 때문에 육로로 북한에 돌아갔다. ▲김용순 비서는 이날 밤 판문점을 통한 북한 귀환에 앞서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경의선 기공식을 남북이 공동으로 할 것인지를 묻자 “공동으로 한다”고 말해 경의선복원공사 기공식을 남북이 같은 날 할 것임을 시사했다.이에 대해 김형기(金炯基) 통일부 정책실장은 “김 비서의 말은 18일 전후,비슷한시기에 착공할 것을 의미하며 공동 착공식을 하는 것은 아니다”고해명했다. 김 비서 일행은 오후 8시30분쯤 판문점 남측지역인 ‘평화의 집’에도착, 차량을 탄채 오후 8시48분쯤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북측 지역으로 넘어갔다. ▲남북은 오후 6시 20분부터 신라호텔 22층 프리덴셜룸에서 양측 대표단이 참가한 가운데 공동보도문 발표 행사를 가졌다.행사장에는 남측에서 임동원 특보·박재규(朴在圭) 통일부 장관·김보현(金保鉉)총리특보·김형기(金炯基) 통일부 정책실장 등 4명이,북측에서는 김용순 비서·림동옥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권호웅 당중앙위 지도원·김광렬 지도원 등 4명이 참석했다. ▲공동보도문은 남측에서 김형기 통일부 정책실장,북측에서 권호웅지도원이 각각 낭독했다.7개항으로 된 공동보도문을 양측이 각각 읽은 후 임 특보는 김 비서 일행의 경주와 제주 방문 장면을 담은 사진첩을 북측에 선물했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하는 선물 내용을 포함해 남측이 김 비서 일행에게전달하는 ‘선물종합 명세서’를 건넸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와 김용순 비서가 신라호텔에서 조우할 뻔 해 취재진이 한때 긴장하기도 했다.이날 오후 6시40분쯤 공동보도문이 발표된 직후 김 비서가 한창 서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때 이 총재와 부인 한인옥(韓仁玉) 여사가 호텔 로비에 들어섰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이 총재는 호텔 23층에서우다웨이(武大偉) 주한중국대사, 이세기(李世基) 전 의원 등과 만찬을 하기위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도 이날 이 호텔 이발소에 들렀다는전언이다. 이석우기자 swlee@
  • 企協회장 누가될까

    오는 28일 박상희(朴相熙)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이 공식 사퇴함에 따라 누가 차기회장이 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앙회장직은 경제5단체장 중 하나로 재계에서 상당한 목소리를 낼수 있는 자리.때문에 차기 회장후보로 거론되는 조합 이사장과 연합회장들이 벌써부터 치열한 물밑경쟁이다. 특히 최근 열린 기협중앙회 긴급이사회에서 내년 2월 말까지 회장보궐선거 등 두번의 선거를 치러야 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내년 회장선거까지 직무대행 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을 이달말 임시총회에 상정,의결키로 해 내년 3월부터 시작되는 3년 임기의 회장직을 노리는 후보들의 행보가 가시화되고 있다. 차기회장의 물망에 오르고 있는 후보로는 서병문(徐丙文) 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김영수(金榮洙) 전자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이국노(李國老) 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 이사장,김직승(金直勝) 대한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 등 4∼5명선이다.특히 서병문 이사장과 김영수 이사장이 유력한 차기회장으로 거론된다. 서 이사장은 중견 주물업체인 ㈜신일금속공업 사장으로 현재 기협중앙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부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박상희 회장의 신임을 받았으며,친화력이 좋아 정·재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 김 이사장은 위성방송 수신기 제조업체인 ㈜케드콤을 경영하고 있으며,줄곧 회장후보로 거론돼 왔다.중소기업계의 정보기술(IT) 선두주자이며,최근 회원업체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는 등 왕성한 대북사업을 펼치고 있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여성 선언] 아이들의 책읽기

    TV와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어 대개의 정보를 전자파가 실어다주는 요즘에도,책읽기가 인간의 지성을 근본적으로 추동한다는 사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문자매체는 음성이나 영상과는 달리 시간에 구애받는 매체가 아니다.책은,자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와 이미지들을충분히 반성하고 심사숙고할 여유를 주는 매체이다. 따라서 아이를현명하게 키우고 싶은 엄마들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어하고,자기 아이가 책읽기를 싫어한다는 것이 고민의 목록이 되어 있다. 그런데, 막상 독서지도 현장에서 바라보면,우리나라 아이들은 책읽기의 사각지대에서 자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니게 될 때가 있다.아이가 초등학교 시절에,학부모 몇 사람과 더불어 교실에 서가를마련해준 일이 몇 차례 있다.그때 내가 받은 도서목록을 보고,아연실색한 적이 있었다.초등학교 6학년 권장도서목록에 ‘돈키호테’와 ‘모히칸족의 최후’,‘삼국지’,‘수호지’가 들어 있다면? 초등학교3학년 권장도서에 ‘걸리버여행기’와 ‘파브르곤충기’가 있다면?출판사와번역자가 명기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책의 수준이 아이들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에 대해 전혀 검증한 것 같지 않은 목록이었다. ‘돈키호테’는,문학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책이라는 것은 제쳐 놓고라도 깨알같은 글씨에 두께가 600여 쪽을 육박하는 책이고 ‘모히칸족의 최후’는 한국에 아직 완역본이 없는 책이다.또 ‘걸리버여행기’는 고도의 풍자로 되어 있어 3학년 아이가 읽기에는 불감당이며,‘파브르곤충기’는 7권이나 되는 시리즈물이다.아이들이 이 책들을 일주일에 한 권씩 읽고 이를 충분히 소화할수 있다고 생각하고 목록을만든 선생님들은 과연 진심일까? 심지어 중학생용 도서목록에 ‘소녀경’이 들어가 있어 물의를 빚은 일조차 있다.‘소녀’란 말이 있어아이들 책이라고 생각했다는 웃지 못할 사건이었다. 서점에 가보았을 때,문제는 더욱 심각했다.아동용이라 표시돼 있는서가에 ‘전쟁과 평화’,‘파우스트’같은 책들이 버젓이 요약본으로꽂혀 있었다. ‘돈키호테’가 6학년용 도서가 될수 있었던 까닭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러한 발상은 특정 초등학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초등교육 전반에만연된 것이다. 교육위원회에서 주최하는 독서토론회 주제도서로 그런 책들이 올라가기도 한다.아이들을 어른들의 축약본이라고 생각한것이 아니라면,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할까? 요약본이 아니면 아이들이 어려워 해 못 읽힌다고? 그렇다면 왜 6학년에게 ‘돈키호테’를읽혀야 하는가. 방정환과 강소천의 동화를 읽히면 된다.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와 현진이의 ‘네멋대로 해라’를 읽히는 것이 낫다. 디테일이 몽땅 생략되고 줄거리만 남은 세계명작도 명작이라고 한 번읽은 아이들은 자라서 다시 그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미묘한 말의 세계와는 등을 돌리고,다양하고 섬세한인간적 차이는 몽땅 무시하고, 결론만 남기는 앙상한 감수성의 소유자로 성장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독서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가장 큰 영역이 바로 ‘타자의 체험’일진대 말이다. 독서는 다른 취미나 작업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경험이다. 많은 권수를 읽었다고해서 더 지성적이 되는 것도아니고,아무 책이나 읽어도좋은 것은 아니다.독서란 부모와 아이가,아이와 다른 독자들이,한 세대와 다른 세대가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특수한 기억의 공간을 형성해주는 대단히 소중한 행위이다.중학생때 똑같이 읽은 ‘데미안’이나와 내 딸에게 ‘인간은 어떤 존재'라고 하는데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일은 몰라도, 아이들을 위한 도서 선정은 정부에서 많은 예산을투자해야 한다. 절판된 도서를 복원하고,번역에 공을 들이고,각급학교 도서관에 정본을 집어넣고,책이라는 매개물을 가지고 어른과 아이들이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지금 아이들의 공통된 세대적 기억이 서태지와 H·O·T 뿐이라면 너무 비극적이지 않은가. 노혜경 시인·부산대 강사
  • LA ‘한국계 시민의 날’ 제정

    [로스앤젤레스 연합]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에서 매년 10월28일 ‘한국계 시민의 날’ 행사가 개최된다. LA 한인시민권자협회(KACL)는 8일 LA 카운티 정부가 최근 10월28일을 ‘한국계 시민의 날’로 제정함에 따라 매년 이날 코리아타운에서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인철 KACL회장은 “한국계 시민의 날이 공식제정됨에 따라 한인사회의 정치적 영향력을 신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내년 3월까지 총 2만여명의 한인 유권자 명단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협회는 9일부터 코리아타운내 슈퍼마켓과 교회 등지를 돌며 유권자등록 캠페인과 투표참여 홍보활동 등을 적극 전개할 계획이다.올 10월28일 행사는 윌셔가와 버몬트가 지하철광장에서 태권도시범,사물놀이,전통무용공연,주부노래자랑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 “교포여러분 IMF성금 감사해요”

    전철환(全哲煥) 한국은행 총재가 외환위기 당시 성금을 보내온 해외 20개 교포단체에 일일이 ‘감사편지’를 쓴 것으로 9일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전총재의 감사편지에는 ‘부끄러운’ 사연이 숨어 있다.총재가 전하는 사연의 내용은 이렇다. 그는 지난달 26일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동남아·뉴질랜드·호주 중앙은행기구(SEANZA) 총재회의에 참석했다.이참에 스리랑카 현지교민들도 만났다.그런데 한 교민이 이런 얘기를 했다. “스리랑카에 1,000명의 교민이 살고 있습니다.외환위기가 터졌다는 말을 듣고 1만달러를 모아서 보냈습니다.몇푼 안되는 돈이지만 우리로서는 정말 비통한 마음으로 어렵게 호주머니를 턴 쌈짓돈이었습니다.그런데 조국은 이제껏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습니다” 총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한다.‘위기극복에 매달린 나머지 가장 소중한 것을 잊고 있었구나 하는 죄책감에 귀국하자마자 편지를 썼다’는 고백이다. 호놀룰루 하와이한인회 등 해외교포들은 외환위기 직후 경제회생에보태달라며 6만여달러를 모금,외교통상부를 통해 한은에 전달해 왔었다. 나머지 감사서한을 보낸 곳은 ▲호놀룰루 하와이 노인대학동문회 ▲토론토 한인교역자협의회 회장단 ▲토론토 공산권선교회 ▲대만 Ocean Pioneer Shipping Co. ▲샌프란시스코 북가주한인연합장로교회 협의회 ▲카자흐스탄 고려극장,고려일보 ▲카자흐스탄 고려인협의회 ▲노르웨이 한인회 회장단 ▲시카고 가나안학교 학생 ▲앵커리지 동양선교교회 ▲중국 중경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직원일동 ▲가나 한인교회 ▲휴스턴 Kings 골프협회 ▲파라과이 한인회 ▲대만 중화민국 한교협회 ▲상해 한국인 유학생회 ▲아르헨티나주재 중앙일보지사 ▲스리랑카 한경회안미현기자 hyun@
  • 權誠·金曉鍾헌법재판관 후보 청문

    여야는 6일 권성(權誠)·김효종(金曉鍾) 두 헌법재판관 후보에 대한인사청문회를 열어 이들의 헌법관 등을 검증했다.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12·12사건 재판 등 과거 이들의 판결에대한 타당성과 호주제 및 보안법 폐지 등 헌법관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민주당은 8일 본회의를 열어 윤영철(尹永哲)헌법재판소장 후보와 권·김 두 재판관 후보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국회 정상화를 위해 민주당이 먼저 성의있는 자세를 보이라며 임명동의안 처리를 오는 14일로 연기할 것을 요구하고있어 여당 단독으로 임명동의안이 처리될 가능성도 있다. 진경호 주현진기자 jade@
  • [해외항일전적지를찾아서] (8)美洲 독립운동 전초기지 하와이

    [호놀룰루(하와이)김삼웅 주필] 지금 하와이 한인사회는 이민 100주년(2003년)을 앞두고 행사준비에 바쁘다.하와이 이민 100년사는 바로한민족 이민사와 같고 미주지역 독립운동사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1903년 1월 13일 대한제국 수민원(綏民院)총재 민영환이 발행한 여권을 소지한 노동이민 97명이 미국상선 갤릭호를 타고 23일 간의 긴항해 끝에 호놀룰루항에 상륙한지 100년이 다가오는 것이다.하와이이민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직전까지 65척의 선박편으로 7,200여명의한인이 하와이섬으로 이민,오아후섬 등 농장에서 사탕수수 재배와 관개사업에 종사했다. 일제시대 미주지역 항일독립운동은 바로 이러한 이민동포들의 힘으로가능했다.그러나 을사조약과 함께 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가 한국인의 해외이민을 봉쇄함으로써 하와이 이민도 중단되었다. 하와이이민 한인들은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근면성을 발휘해 몇년이지나면서부터 일부는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본토로 건너가기도 했다.그러나 대부분이 현지에 정착하면서 역량을모았다. 현지 석간신문 Evening Bulletin지 1903년 2월 26일자에는 “지난 1월 31일 이곳 와이아루아 농장에 도착한 한인들은 몸이 건강하며 농업에 익숙한 사람들이다.그들은 모두 만족해 하며 농장노동일에 힘쓰고 있다.그러나 그들의 임금은 저렴한 것이 현실이다”라고 보도했다.한인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10시간 이상의 노동에 하루품삯이 남자는 69센트,여자는 50센트에 불과했다.교민들은 이렇게 열악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중 일부를 떼어 독립운동자금으로 헌금했다.중국에 세워진 임시정부 운영자금의 상당액이 하와이 한인들이 보낸 돈이었다. 한편 교민들은 1905년 하와이 에바농장에 한인감리교회를 세워서 정신적인 유대를 나누는 한편 애국단체를 만들어 조직적인 항일운동에나섰다.1907년 하와이 각 지방에 분립되어 있던 24개 단체대표 30여명이 호놀룰루에 모여 하와이 한인단체를 총망라하는 ‘한인합성협회’를 조직하고 1909년 2월 1일에 ‘국민회’를 창립했다.국민회는 1910년 명칭을 ‘대한인국민회’로 고치고 조직 강화와 조국해방 사업에 필요한 외교·교육·출판사업 등을 관장할 인재의 필요성을 실감하여 1912년 네브라스카대학 정치학과를 수학한 박용만(朴容萬)선생을 초청했다. 박용만의 출현으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는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고,주정부로부터 경찰권을 부여받는 등 크게 신뢰를 받게 되었다.한인국민회는 1914년 호놀룰루시의 중심가인 밀러 스트리트 1306번지에 회관을 마련했다.초기에는 월세집을 얻어서 사용하다가 김종학 총회장때 회원들의 성금 7,250달러를 들여 목조 2층 양옥을 건축해 1948년현재의 회관으로 이전할 때까지 전후 30여년동안 독립운동과 한인사회 발전의 모태가 되었다. 1층은 상점,2층 회의실,그리고 2층 뒷편의 일부는 국민회 노인들의편의시설로 이용된 회관은 그러나 아쉽게도 하와이 주정부의 토지수용령으로 철거되었다.하와이대학 최영호교수는 국민회관 자리는 현재밀러스트리트의 하와이 주청사와 주지사 관저 사이에 위치한 국기게양대 앞이라고 지목한다. 하와이 지역의 독립운동은 박용만 선생의 등장과 함께 본격화되었다.박용만을 중심으로한 지도급 인사들은 1914년 독립군을 양성하는 사관학교를 세우면서 본격적인 무장투쟁 준비에 나섰다.교포들로 부터의연금을 받아 군용지를 마련하고 대한제국 광무군인 출신의 노동이민을 중심으로 사관학교 간부와 학도 124명으로 ‘조선국민군단’을창설한 것이다. 한인사회에서 ‘산너머 병학교’로 불린 사관학교의 교장은 박용만이었다.그는 조선국민군단 단장도 겸했으며 대대장에 박종수,중대장심세권,소대장 박충식 등의 간부진으로 편성되었다.지금은 주택지로변한 이곳은 호놀룰루시에서 63번 도로를 따라 동북쪽으로 10마일쯤떨어진 해안을 낀 아후이마누언덕에 위치해있다.박용만은 이곳에 조선국민군단 본부와 사관학교를 세워 한때는 311명의 병력을 훈련시켰다.그리고 1909년 헤스팅스에 한인소년병학교를 세우고 국민회의 기관지 ‘국민보(國民報)’를 발행하는 등 독립운동에 열정을 바쳤다. 그러나 박용만 중심의 하와이 독립운동은 국제정세(1차세계대전)의변화와 이승만과의 노선갈등(박용만은 무력독립투쟁,이승만은 외교노선)으로 사관학교도 20마일쯤 떨어진 카후구 사탕수수 농장으로 옮겨졌다가 얼마 안있어 해산되고,박용만은 중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암살됐다. 현재의 대한인국민회 회관은 호놀룰루시 북쪽 룩 애비뉴 2600번지푸노이계곡 언덕위 아담한 스페인풍 2층건물로 자리잡고 있다.1946년현 위치로 이전한 이 건물이 독립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하와이 한인사회를 발전시켜온 상징적 건물이다.300여평의 부지에 2층콘크리트 벽돌 건물의 전시장에는 지금도 국민회의 역사를 입증해주는 각종 문건과 자료가 많이 있다.1910년대에 제작된 태극기와 성조기,국민회 회원들이 납부한 독립운동자금 기록부,독립운동기금을 넣어두었던 두개의 대형금고,1922년 제작되어 각급 회의때 사용한 의사봉 등이 보존되어 있다.그러나 기관지 ‘국민보(國民報)’를 찍었던인쇄기는 본국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졌다. 1918년 12월 이승만 박사와 30여명의 이민신도들에 의해 세워진 호놀룰루시 리리하 스트리트 1832번지의 한인기독교회는 이박사가 하와이 독립운동의 본거지로 삼았던 곳이다.1938년에 4만달러를 들여 신축해 지금까지 사용해온 것을 최근 교회당 재건축을 위해 주정부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교회사무실과 교회예배당,이박사 동상 등은 보존되고 이박사 기념관이 새로 건립중이다.현재 300만 달러의 예산으로1층의 교회당과 2,3층의 광화문 누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이승만박사와 이민 초기 하와이 한인들이 주축이 되어 1903년에 세운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는 그동안 이전을 거듭하여 1948년에 케아우모쿠 1639번지의 현 위치에 2년전 신축돼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와이 항일운동사적지를 살피면서 아쉬웠던 대목은 이승만 전대통령과 관련해서는 상당한 규모로 신축중인 기념관을 비롯해 많은 유적이보존되고 있는데 비해 박용만선생의 사적은 거의 찾아 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하와이 독립운동의 양 날개의 한쪽인 박용만 선생이 너무잊혀지고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박용만선생의 독립운동 역할을상기한다면 지나친 불균형이 아닐 수 없다. 한인회장의 거취를 둘러싸고 교민사회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는것을 빼고는 이민 100주년기념사업을 준비중인 하와이 한인사회는 국권침탈기 하와이 이민 동포들의 고난의 이민사와 독립운동사 발굴·조사·정리에 열정을 모으고 있다.어떤 사람은 이승만-박용만의 뿌리깊은 노선갈등의 잔재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kimsu@
  • [지방 고시촌 르포] (5.끝)기타 중소도시

    정치 ·경제·문화 등 우리 사회 대부분의 분야가 서울로 집중되는속에서 공무원시험·고시 등을 준비하는 수험생도 마찬가지 문제로고민한다.수험생들은 대체로 서울의 활발한 수험문화를 동경한다.하지만 지방에서 자신의 수험 스타일을 개발하며 각종 고시에 대비하는수험생도 적지않다. 지방 수험가도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다.광주·대구·부산 등 대도시는 그나마 안정적인 고시 문화가 형성된 곳이다.하지만 대전·마산·울산·전주·인천 등 대부분의 중소 도시는 독자적인 수험가를 형성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따라서 인천·대전·춘천 등서울 생활권 도시의 수험생들은 서울에서 준비하는 것을 선호한다.이지방들의 학원가는 상대적으로 울상이다. 대전은 중구 은행동 중심으로 6∼7개 정도의 공무원·자격증 시험을준비하는 학원가가 형성돼 있지만 아직까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이는 인천 등지도 마찬가지. 대전 한빛고시학원 손영림(孫永林·40)원장은 “2시간 정도면 서울에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수험문화가 형성되지 못했다”면서 “수준 있는 강사진과 빠른 정보제공으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고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학원 전문가들은 지방 대도시 중심으로 학원가가 확실히 뿌리내리면중소도시도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진단한다.대도시 강사와 수험정보 공유 등을 통해 활로를 모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중소도시학원 관계자들은 “수험생이나 학원측이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것이 현실”이라면서 “지방 대도시에서만 수험문화가 제대로 정착돼도 중소도시에서는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지방 수험생들의 이익과 편의를 돌보려는 자세다. 중소도시 중 그나마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마산 중앙고시학원 김원규(金元圭·41)원장은 “교원 임용고사나 자격증 시험 등 전문적인영역을 다룰 수 있는 학원가가 뿌리내리는 것이 학생들과 학원이 동시에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특히 각 시·도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개채용 등 지방의 훌륭한인력을 뽑으려는 성의있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이와 함께 ‘공무원 처우 개선 문제’ 역시 공무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의욕을 불어넣을 수 있는동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시드니 소식/ D-11

    ●시드니 기상청은 3일 “올림픽이 개막될 15일부터 일주일 동안 비가 거의 오지 않는 맑은 날씨가 계속될 것”이라고 예보.기상청 관계자는 “다만 낮 기온이 섭씨 20∼22도에서 좀 더 올라가는 대신 밤기온이 지금보다 더 떨어져 일교차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독감에걸리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특히 개막식이 오후 7시(한국시간 오후 5시)에 치러지는 까닭에 홈부시베이의 밤바람이 심술을 부릴 것에 대비,주경기장을 찾을 관광객들은 바람막이 등 적당한 옷을 준비해야될 것이라고 충고. ●침실 수요를 충당하지 못한 시드니 올림픽선수촌은 2층 침대를 급조,선수들의 불편을 최소화.각국 선수단의 불만이 잇따르자 그레이엄리처드슨 선수촌장은 3일부터 아예 작업인부를 대동한 채 곳곳을 돌아본 뒤 짧은 침대는 보조기구를 붙여 긴 매트리스를 얹고 비좁은방은 2층 침대를 만드는 방법으로 즉석에서 문제를 해결. ●올림픽 개막이 열흘 앞으로 닥치자 시드니 한ㆍ호후원회를 포함한각 교민단체들이 응원도구를 마련하느라 분주한 휴일을 보냈다.한·호후원회는 전날에 이어 3일 저녁 스트라스필드에서 응원연습을 계속했고 홈부시베이 올림픽파크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성 스타니슬라오 한인천주교회 등 종교단체들도 한국선수단의 선전을 독려하기 위해 플래카드를 제작하는 등 온통 축제분위기.
  • 李仁濟 최고위원 상가 표정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의 모친 김화영(金花榮·84)여사의빈소가 차려진 대전 건양대병원 장례식장에는 3일 정·관계 인사를포함,1,000여명이 조문해 그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 2일 밤 8시쯤 조화와 함께 전화를 걸어 위로했다.민주당 서영훈(徐英勳) 대표,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도 조화를 보냈다.이최고위원과 불편한 관계인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과 지난 대선때 이최고위원을 적극 지원했던 김 전대통령의부친 김홍조(金洪祚) 옹도 조화를 보내왔다. 민주당 고위인사로는 박상천(朴相千) 최고위원이 이날 오후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았고,권노갑(權魯甲) 한화갑(韓和甲) 정동영(鄭東泳) 김근태(金槿泰) 장을병(張乙炳) 최고위원과 김옥두(金玉斗)총장,정균환(鄭均桓)총무도 조화를 보내 위로했다.이최고위원이 경기지사 시절부터 교류를 맺어온 대만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의 조화도 눈에 띄었다.민주당 박병석(朴炳錫)대변인,장영달(張永達) 김명섭(金明燮) 장성민(張誠珉) 송석찬(宋錫贊) 전용학(田溶鶴) 이희규(李熙圭) 김효석(金孝錫) 김경천(金敬天) 이근진(李根鎭) 배기운(裵奇雲)의원 등은 직접 빈소를 방문했다. 이최고위원은 미국 시카고 재미 한인과학기술자협회 주최 학술대회참석차 3일 출국하려던 일정을 취소했다.김화영 여사는 지난 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발인은 6일 오전 8시.장지는 충남 논산시 연산면 어은리 선영.연락처는 (042)545-8093∼5. 대전 주현진기자 jhj@
  • 비전향 장기수 맞는 북한 이모저모

    2일 오전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맞은 북측은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는 비교적 차분하게,그러나 평양에서는 대대적으로 환영행사를 가졌다.93년 이인모(李仁模)씨 북송 때와는 달리 남측을 자극하지않으려고 고심한 북측의 배려가 엿보였다. ■판문점 통일각 43년 10개월 수감으로 세계 최장기 복역 기록을 가진 김선명씨가 중립국감독위 북쪽 출구를 나서자 대기하고 있던 북측 관계자는 김씨를 껴안고 감격적인 인사를 나누었다.빨치산 출신 김국홍씨는 휠체어를 타고 중감위 회의실을 통과하자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통일각 건물 벽에는 ‘백절불굴 통일애국 투사들에게 영광 있으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한편 이들이 북으로 보낸 화물은 세탁기,냉장고,TV 등 가전제품과여행용 가방 등으로 한 관계자는 “한 사람이 많게는 15개 박스,적게는 가방만 2개 보낸 이도 있다”고 설명했다.장기수들은 최고 예우를상징하는 붉은 색 벤츠 승용차에 나눠타고 평양으로 이동했다. ■북측 반응 및 평양 환영행사 평양 거리에는 이들을 환영하기 위한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뤘다.김일성광장에서는 4,000여명의 예술인들이 화려한 환영행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조명록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홍성남 내각 총리,전병호ㆍ계응태 당중앙위원회 비서 등이 이들과 일일이 포옹하며 송환을 축하했다. 이들은 이어 김일철 인민무력상,최태복 당중앙위 비서,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의 안내로 김일성 주석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했다.조선중앙텔레비전방송은 판문점을 출발,개성과 사리원을 거쳐 평양에 도착한 비전향장기수의 동정을 상세히 실황 중계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이석우기자 swlee@
  • ‘수하르토 재판’2주일 연기

    31일 열릴 예정이었던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79)의 부패혐의에 대한 재판은 수하르토의 건강을 이유로 9월14일 열기로 2주간연기됐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재판이 열릴 예정이었던 농업부 앞에 모여있던 학생들은 “드라큘라(수하르토)를 법정에 세워 정의를 되살려라”고 외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수하르토 일가가 착복한 액수가 무려 450억달러에 달하는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비해 수하르토가 겨우 5억7,000만달러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기소된 것부터가 잘못이라며 압두라만 와히드대통령 정부를 맹렬히 비난해 왔었다. 게다가 와히드 대통령은 수하르토가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그를 사면할 것이라고 밝혀 인도네시아 국민들로부터 분노를 사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세기의 재판’으로 불려지는 수하르토 전대통령의 부패 혐의에 대한 재판은 부패와 독재로 점철된 과거와 단절하고 인도네시아에 법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새 정부의 의지를 가늠할 시험대로 여겨져왔다. 수하르토의 재판은 결국 2주간 연기됐지만 그에 대한인도네시아 국민들의 분노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이같은 국민들의 분노는 인도네시아 정국이 안고 있는 시한폭탄으로 남게 됐다. 유세진기자 yujin@
  • 대전·대구 광역권 설정 무산 위기

    대전·대구지역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조정과 도시계획시설 분산배치를 위한 광역도시권 설정작업이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반발에부딪혀 무산될 위기를 맞고 있다. 기초 지방자치단체들이 대전·대구광역권으로 편입되기를 꺼리는 것은 통합도시계획 수립때 혐오시설 등 유해시설이 상대적으로 낙후된기초 지자체에 집중 배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31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대전권은 광역도시계획 편입대상인 충북청주시와 충북도의 반발로 광역도시권 설정작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청주시는 그린벨트에서 전면 해제되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부분해제지역인 대전권에 포함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충북도도 지역특성과 정서를 감안,대전권 통합을 수용할 수 없다는입장이다. 이에 따라 당초 올 연말로 잡혀 있는 대전권 도시권역 설정이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구권도 경북도가 경산 등 관내 핵심지역이 대구권에 편입되고,쓰레기처리장 등 혐오시설도 도내 낙후지역에 무차별적으로 집중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를들어 광역도시권 편입에 강력 반발하고있다. 이들 지자체가 광역도시권 편입에 반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시 고유의 권한인 도시계획 수립권이 대전·대구광역시로 넘어갈 가능성이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반면 수도권은 서울 인천 경기 등 3개 지자체가 관내 33개 시·군을 단일권역으로 묶는 수도권 광역도시권역 설정안에 대략적인 공감대를 형성했으나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과정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되고 있다. 전광삼기자 hi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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