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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7)러시아 우수리스크·수이푼

    아침 일찍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지프를 대절했다.130㎞ 북쪽 우수리스크 시내를 취재하고 서쪽으로 나아가 선열들의 피어린 격전 현장을더듬기 위해서였다. 포장이 잘 돼 있어 지프는 바람을 가르며 내달렸다.한국의 산세를 닮아 마치 시골 국도를 달리는 기분이었다.색다른것은 커다랗게 쓴 러시아어 광고 간판들과 이따금 눈에 들어왔다가물러나는 주말농장 ‘다차’의 러시아식 바라크들이었다. 우수리스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을 연결하는 철도의 분기점에 있으며 우수리강과 면해 있다.옛날 발해 시대 지명은 쌍성자(雙城子),북경조약으로 러시아 영토가 된 직후에는 니콜리스크 우수리스크라고 불리기도 했다.기사년(己巳年·1869년) 함경도의 대기근으로 유민행렬이 이어질 때 일찌감치 한인 집거촌을 이루었다.국운이 기울자 이상설(李相卨)·이동휘(李東輝)·이동녕(李東寧)·홍범도(洪範圖) 등 많은 우국지사들이 찾아와 근거지로 삼았다.그리하여 1917년 고려족회를 열었고 그것은 대한국민회의로 발전했다. 그러나 그 때를 증언하는 흔적은 시내에 없다.군납업으로 많은 재산을 모아 의병대를 조직하고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최재형(崔在亨)이 일본군에 사로잡혀 처형당한 곳이 우수리스크다.이상설이 숨을 거둔 곳도 이 도시다.취재팀은 두 분의 충혼을 되새기며 거리를 이리저리 달려보고 우수리스크역 앞에 차를 멈추었다.우리 선열들이 무수히드나들었을 3층 역사(驛舍)는 낡았으나 산뜻하게 녹색 페인트로 단장된 채 앉아 있다. 치체리나가(街) 54번지의 사범전문학교도 옛 모습그대로 서 있다.1917년 고려족중앙총회가 4만루불의 기금을 모아 만든 이 학교는 수많은 인재들을 길러냈다.국내에서 카프(KAPF)파로 활동하다가 망명한 시인 조명희(趙明熙)가 강의했던 이 학교는 지금 이과(理科)초급사범대학으로 사용되고 있다. 취재팀은 서쪽으로 차를 돌려 시내를 벗어났다.우수리스크에서 중국국경에 이르는 수이푼(秋風) 지역에는 우리의 항일투쟁 현장이 많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박환(朴煥·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취재팀이 이 곳에 갈 것이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다.“꼬르사꼬프까도 가보고 이상설 선생의 유해를 뿌린 수이푼강도 꼭 보십시오.거기 기념비를 세울 겁니다.” 우리 선열들이 재피거우라고 불렀던 꼬르사꼬프까 마을은 유인석(柳麟錫)이 1910년 6월 십삼도의군(十三道義軍)을 결성한 유서 깊은 곳이다.당시 연해주에는 간도관리사로서 북간도에서 투쟁하다가 온 이범윤(李範允),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갔던 이상설,삼수(三水)갑산(甲山)에서 용맹을 떨친 의병장 홍범도,그리고 안중근(安重根)등이 현지의 대부호인 최재형과 동포들의 지원으로 병력을 조련하고이따금 국내진공을 감행하고 있었다.위정척사파의 거두로서 국내 의병전쟁을 이끌다가 망명한 유인석은 그들을 이 곳에서 하나로 응집시켰다.그리고 꼬르사꼬프까 마을을 포함해 근처의 수이푼강과 뿌질롭까,솔밭관은 1920년대 러시아 혁명전쟁 때 국제간섭군으로 출병한 일본군과 그들이 조종하는 마적단에 맞서 우리 항일유격대가 수차 격전을 벌인 곳이다.당시 지휘자는 ‘백마를 탄 김장군’으로 전설처럼회자되었던 김경천(金擎天)과 채영(蔡英)·김규면(金圭冕)·조맹선(趙孟善)·이중집·황운정 등이었다. 출국하기 전 필자는 그들에 대한 자료를 얻기 위해 독립기념관 이동언(李東彦) 연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는 자료를 보내주며 말했다.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니 꼭 신문에 써 주십시오.” 취재팀을 태운 지프는 야트막한 산과 들판이 어우러진 곳을 달리고있었다.우수리스크역에서 눌러놓은 운전석의 타코미터가 3.5㎞를 가리킬 때 차를 세웠다.수청(水淸·현 빨치산스크)에서 활약하던 김경천은 1922년 부하들을 이끌고 이 곳으로 이동해 대한혁명단으로 개칭하고 무관학교를 설립해 500명 정도의 대원을 교육시켰다.그 장소가‘우수리스크 서방 7리’라는 기록이니 이 근처인 것이다.일본 육사출신으로 대위 군복을 벗어 던지고 항일전선에 뛰어든 그는 사관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해 이 곳에 장교양성소를 세웠던 것이다.이리저리노인들을 붙잡고 물었으나 아쉽게도 그 현장은 찾을 수 없었다. 나침반을 꺼내 들고 다시 한참 차를 달리는데 길가 수풀 속에서 꼬르사꼬프까라는 간판이 불쑥 나타난다.1869년에 마을이 처음 생겼다는 표시도 있고 ‘1917부터 1967년’이라는 표시도 있다.우리 동포들이 황무지를 개척하여 곳,우국지사들이 십삼도의군을 창설한,그리고항일 유격대의 근거지 구실을 한 유서 깊은 마을은 큰길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평온하게 자리잡고 있다.차에서 내려 천천히 마을의 고샅으로 걸어 들어갔다.굴렁쇠를 굴리며 노는 아이들과 체스를 두는 노인들만 보일 뿐이었다.노인들에게 뿌질롭까 마을과 솔밭관 마을,그리고 수이푼강 가는 길을 물어 약도를 그렸다.수이푼강은 이름이 라즈달리니야로 바뀌어 있었다.뿌질롭까는 확인했으나 솔밭관은 알 수가없었다.그리고 홍범도가 수이푼의 다아재골에서 최병준의 집에 무기를 숨겨놓고 동지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국내진공의 기회를 기다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찾을 수 없었다.1937년 동포들이 강제이주당해지명도 사라지고 우리 노인들도 없고 전설마저 사라진 때문이다.뿌질롭까는 10여분만에 도착했다.마을의 옛 이름은 육성촌(六城村).조명희 시인이 교장을 지낸 ‘육성촌농업학교’가고색창연한 모습으로취재팀을 반겼다.조명희 교장 집에서 하녀로 일한 노파를 만났다.이곳 출신이었다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는 그녀의 짐작대로라면 솔밭관은 북쪽 1∼2㎞.들길을 달려 찾아가니 마을 자리가 남아 있다.강제이주 후 버려져 있는 것이다. 취재팀은 수이푼강을 찾아갔다.폭이 50m쯤 되는 우수리강의 한 지류였는데 포장도로가 나 있는 다리 옆으로 옛 다리가 보였다.이 강을중심으로 벌어진 수많은 혈투를 생각하며 주변의 산야를 휘휘 둘러보는 필자는 가슴이 아팠다.우리 역사의 소중한 일부인데도 지도자들이름조차 묻혀져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채영은 중국 군관학교 출신으로 1919년 ‘혈성단’이라는 항일유격대를 지휘해 일본군과 싸워 혁혁한 공을 세웠다.이중집은 600명 규모의 ‘솔밭관 유격대’와 ‘우리동무군 유격대’를 지휘해 싸웠다.김규면은 기독교계의 지도자로 국내에서 투쟁하다 연해주로 와서 ‘혈성단’의 단장을 맡았다.조맹선은 국내 의병 지도자로 북간도를 거쳐연해주로 와서 채영과 더불어 항일부대를 지휘해 싸웠다.황운정은 최진동과 함께, 홍범도가 지휘한 봉오동 전투에서 대승한 뒤 연해주로와서 이중집 부대에 합류했다. 박환 교수가 말해준 이상설의 기념비를 세울 자리는 오른쪽 교두보에서 활처럼 휘어져 뻗은 작은 둑 위였다.그 곳을 밟아본 뒤 시든 잡초와 관목들을 헤치고 강변으로 내려갔다.강은 오염되지 않아 맑고깨끗했다.이상설의 유해가 화장되어 이 곳에 뿌려진 것은 1917년 3월.강물은 그 옛날의 선각자의 한을,그리고 이곳에 무수히 뿌려진 피의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흐르고 있었다.취재팀은 강물 앞에국산 소주팩을 꺼내 한 잔 부어놓고 절을 한 뒤 차에 올랐다. 우수리스크 이원규 소설가·동국대 겸임교수
  • ‘부산명물’ 영도다리 철거된다

    6·25피난 시절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부산 영도다리가 철거될 운명에 처했다. 영도다리는 건설된 지 67년째를 맞아 노후된데다 롯데쇼핑㈜이 제2롯데월드 건축을 위한 교통 영향평가에서 현재 왕복 4차선인 영도다리를 6차선으로 넓히기로 했기 때문.시는 교량형식을 강합성형교와넬슨교,트러스교 등 3종류 가운데서 선택할 방침이나 각 장단점이 있어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도다리는 올해안으로 교량형식이 결정되면 실시설계를 거쳐 내년10월쯤 새단장을 위해 철거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향토사료에 따르면 영도다리는 일제 때인 1931년 착공,당시 공사비 700만8,000원을 들여 1934년 개통된 부산 최초의 연륙교로 길이가 214.63m이며,도개식(跳開式)으로 거대한 다리를 하루에 2번씩 하늘로 들어올려 관광명물이 됐다. 개통 당시의 공식 이름은 부산대교였다.부산방향으로 31.3m를 들어올려 1,000t급의 기선이 지나가도록 건설됐으며 당시 가설공사로서는 매우 어렵고 큰 공사였다. 또 영도다리 가설공사는 시작부터 한인(韓人)들의 수난이 점철됐다고 전해진다. 당시 산이었던 영선초등학교 자리의 산을 깎아 영도다리 호안매립공사를 하면서 산이 무너져 노무자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또 다리공사 때에도 희생자가 속출해 밤이 되면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펴졌으며 일제의 가혹한 수탈에 시달렸던 사람과 6·25전쟁 생활고에 쪼들린 피난민 등이 투신자살,한 많은 생을 마감한 장소로도유명했다. 특히 이곳에서 자살자가 속출하자 영도대교에는 ‘잠깐만’이라는팻말이 붙어 있었고,경찰관이 배치돼 감시를 하기도 했다. 교통량이 늘어나자 66년 9월1일부터 다리를 고정시키고 현재의 부산대교가 80년 1월30일 개통됨에 따라 이름도 영도대교로 바뀌게 되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美 대통령 선거/ 선거인단 州의회 임명제도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연방헌법은 각주가 정부기록보관소(National Archive)에 선거인단 명단을 제출하도록 된 마감시한인 오는 12월12일까지 선거인단을 정하지 못했을 경우 주의회가 이를 임명하도록규정하고 있다. 주의회가 어떤 방식으로 자기주의 선거인단을 임명해야하는지는 정해두지 않고 있다.규정에는 단지 ‘어떤 방식으로 든’주의회가 임명토록 한다고만 돼있다.연방선거법 역시 “개별 주법하에 마감시한에도 불구하고 임명치 못했을 경우 주의회는 ‘그들이 정하는 방법’에의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말하면 선거인단을 임명하는 방안은 각주가 고유방법을 채택하되 그것은 주의회가 결정해야할 사항이라고 돼있는 것이다.이럴 경우공화당은 다수당인 점이 절대로 유리한 실정이며 방안은 다수결로 결정한다고 할 때 오히려 법정공방보다도 쉬워질 수 있다. 다만 현재 진행중인 모든 선거개표 과정과 법원의 결정을 무효화하기 위한 선결작업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재적 3분의 2찬성이 있어야 한다.
  • 외국인 주식 투매자제 왜?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의 급등에도 불구하고 97년 말 외환위기때처럼 국내에서 외국인 자금의 이탈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이유는 외국인 투자자금의 성격이 외환위기 당시와는 다르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미래에셋증권은 24일 ‘원화약세가 외국인 매도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라는 자료에서 “원화 환율 급등으로 외환위기 때처럼 국내 증시에서 대규모 자금이탈 현상이 생길 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지만최근의 외국인 자금은 97년과는 달리 비교적 안정적인 움직임을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미래에셋증권은 그 원인을 “국내 주식투자자금 중 환율 등 컨트리리스크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섹터펀드의 비중이 확대되고 투기성이강한 헤지펀드 비중이 축소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섹터펀드란 지역이나 국가보다는 개별 주식의 업종과 성격에 따라구별되는 부문에 집중 투자하는 펀드다.투자대상 지역 안에서의 개별국가 비중이나 개별국가 안에서 각 종목이 차지하는 인덱스 비중에따른 투자를 원칙으로 하는 지역분산펀드와는 다르다. 미래에셋증권은 “실제로 삼성전자의 경우 외국인 자금의 67%가 지난해 말 이후 신규편입된 성장형 펀드”라면서 “이들의 본격적인 매도세 확대 여부는 환율보다는 글로벌 기술주 주식의 자금환매 정도와기술주 비중이 높은 미국 나스닥지수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 증권사는 또 “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촉발한 헤지펀드에 대한인식이 비우호적으로 바뀐데다 타이거펀드 해체,소로스펀드의 보수적인 투자방식 채택 등으로 국제시장에서 헤지펀드의 비중도 크게 줄었다”면서 “실제로 올 2분기 동안 헤지펀드에서 빠져나간 투자금액은 98년 이후 최대인 50억달러”라고 밝혔다. 미래에셋증권은 이에 따라 환율 급등에 따른 외국인 주식자금 이탈현상은 97년보다 제한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재순기자 fidelis@
  • 美 대통령 선거/ 플로리다州 사법·입법부 충돌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대선 개표 혼란으로 아수라장이 된 미 플로리다주에서 이제는 입법부와 사법부가 정면충돌하는 사태가 예고되고있다. 플로리다주 대법원이 수작업 검표 결과를 포함시키고 시한을 오는 26일까지 연장한데 대해 주 의회는 주민들의 대표기관이 제정한 선거법을 무시한 것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면에는 민주당에 유리하게 판결한 대법원 판사들에 대항,공화당이 절대 다수인 의회가 원천적으로 이를 봉쇄하기 위한 민주당과공화당간의 기싸움이 놓여 있다. 대법원의 결정이 나자 톰 리니 주하원의장은 즉각 비상회기를 소집했다. 긴급 소집된 회기에서 의원들은 토론에서 대법원이 의회가 제정한법에 따라 판결만 해야 함에도 이를 무시했다고 성토했다. 원래 규정된 14일 개표마감 시간을 26일로 연장한데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수검표 집계 결과를 최종집계에 포함케 함으로써 주법을무시한 초법적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의회는 직접 사법부 판사들을 탄핵하는 방안은 피해 직접적인 충돌은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대신선거 관련법을 바꿔 의회가 플로리다주 선거인단 25명을 선임하는 쪽으로 개정 입법을 고려하고 있다. 이 경우 대법원의 수작업 관련 판결은 의회에 의해 무용지물이 되는것이며 대법원은 의회에 의해 권위가 무시되는 것이다. 현재 플로리다주 의회는 상원이 공화당 25명,민주당 15명이며,하원은 공화 77명,민주 43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현 선거법의 효력을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상하 양원 각각 재적의원의 3분의2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즉 상원 27석,하원 80석 이상의 찬성이어야 하나 현재 정당의석 분포로는 상하 양원 모두 각각 2석이 부족해 공화당 진영은 민주당 인사 중 독립성향이 강한 인물을선정 설득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민주·공화의 대결구도가 아니더라도 선거인단 결정 마감 시한인 오는 12월12일까지 법정공방으로 결정이 나지 않을 경우 실제로연방헌법은 주의회가 선거인단을 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도해 플로리다주 선거논쟁은 이제 주의원들의 정치싸움까지 가세시킬전망이다. hay@
  • 부시 ‘手검표 중단’ 상고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는 22일 오후(이하 현지시각) 수작업에 의한 검표 결과를 전체 개표에 포함시키도록 명령한 전날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판결은 국민의 ‘동등한 보호’를 규정한 수정헌법 14조에 위배된다며 수검표 중단을 요청하는 2건의 청원서를 워싱턴의 연방대법원에 제출했다. 이에 앞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개표위원회는 논란의대상인 투표용지들의 수검표 작업을 주 대법원이 제시한 시한인 오는26일 오후 5시까지 마칠 수 없다는 이유로 돌연 수검표 전면 중단을선언,부시 진영에게 큰 힘을 실어 주었다.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의 수검표가 중단되면 앨 고어 민주당 후보측은 지금까지 이 카운티에서 수검표로 추가한 157표를 다시 잃는 것은 물론 실낱같은 역전승의 가능성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고어 진영은 이에 따라 즉각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개표위원회의결정을 번복하기 위한 소송을 주 법원에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 THE QUEEN 12월호

    최고급 리빙 문화 정보지 ‘THE QUEEN’ 12월호가 22일 발행됐다. 이번호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엘레강스한 스타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한 이탈리아 하우스를 소개하고 따뜻한 빛 ‘램프’에 대해자세히 알아봤다.또 편리하고 아름다운 부엌 제안,작은 소품 하나로연출하는 크리스마스 데커레이션 아이디어,명품 브랜드의 식기 라인컬렉션 등 품격있는 리빙&인테리어 정보를 가득 담았다. 사각형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디자인의 명품 스퀘어 링 컬렉션을 비롯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선물 아이템,세련되고 럭셔리한 감각으로 연출한 연말 파티웨어,일본 하우스텐보스에서 촬영한 최진실·조성민의 웨딩 룩 등 앞선 감각의 패션 기사와 화보도 다채롭게 마련했다. 이와함께 화려한 축제를 준비 중인 세계의 표정을 담은 ‘유럽의 크리스마스’ 등 삶의 멋과 여유를 더해주는 다양한 레저 기사도 눈길을 끈다. 이밖에 12월 내한공연을 갖는 피아니스트 리차드 클레이더만,뉴욕주상원의원으로 당선된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클린턴 등 궁금한인물 인터뷰도 흥미로운 읽을거리.모든 독자에게 엘리자베스 아덴그린티 보디로션과 해외 톱 브랜드의 Luxury Shoes 카탈로그를 무료로 증정한다. 임시 특가 7,900원.
  • 뮤지컬 ‘명성황후’ 새 목소리 단장

    요즘 메조소프라노 김현주(41)씨와 소프라노 김지현(32)씨는 한껏기대감에 부풀어있다. 오는 12월29일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다시 오르는 뮤지컬 명성황후 공연에서 주연 배우로 캐스팅됐기때문이다.두사람은 지난달 120명이 지원한 1차 오디션을 거쳐 한달여에 걸친 심사를 어렵게 통과,윤석화(1대) 김원정 이태원(2대)의 뒤를이어 또다른 명성황후 역을 소화해낸다. 김현주씨는 뮤지컬에 잘 맞는 메조소프라노에 넘치는 에너지와 함께연기력도 뛰어난 오페라 가수로 평가받고 있다. 중앙대 성악과와 이탈리아 빼스까라 아카데미아 오페라 전문과정을 거쳐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카르멘’‘박쥐’‘심청’ 등 30여편에 주역으로 출연한경력을 갖고있다. “오래전부터 ‘오페라 명성황후는 왜 없을까’하고 아쉬워하다가뮤지컬 명성황후를 보고 주역을 맡고 싶었어요.여장부인 동시에 한인간인 명성황후의 양면을 최대한 보여드리겠습니다” 김현주씨와 함께 행운을 거머쥔 소프라노 가수 김지현은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시립가무단에 수석입단해 활동한 것을 비롯해 ‘그리스’‘네멋대로 해라’등 뮤지컬 공연 말고도 ‘라이온 킹’등 영화음악 녹음·더빙,400여편의 CF노래 녹음을 해낸 재주꾼이다. 메조와 소프라노의 중간 목소리에 가녀린 외모를 지닌 그는 여리고여성스러우면서도 강한 이미지의 명성황후를 선보이고 싶단다. “명성황후는 한국 공연사에 한 획을 그을 작품으로 생각합니다.지금까지의 명성황후들이 발휘했던 연기와 노래 기량을 저만의 색깔로 어울러낼 생각입니다”김성호기자
  • 2000 美 대통령 선거/ 당선자 결정 지연 정권 인수 차질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차기 미 대통령 당선자 결정이 늦어지면서정부 이양 작업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특히 현 민주당 정부와 같은 소속인 앨 고어 후보보다는 반대당인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승자가 될 경우 정부 조각에서 취임 이후 6개월 동안 취해야 할 행정권 행사에 차질이 예상된다. 선거 다음날인 11월8일부터 인수작업이 시작될 경우 보통 취임일까지 73일이 소요되나 현재로서는 누가 이기든 인수기간이 60일도 채못되는 상황이라 구체적 인수작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도 되지 못한다. 현재 양 후보의 인수담당자들은 두손을 놓은 채 ‘미식축구’ 경기에 열중하고 있는 꼴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당장 필요한 작업은 선거유세에서 밝힌 공약을 정책으로 흡수하기위한 작업과 함께 내년 2월말까지가 마감시한인 새해 예산안을 빨리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이와 관련,급한 것들은 내년 1월20일이 마감일인 차기 행정권자의 행정명령으로 만들어 각 부처에 하달하는 것이 보통이나 이 역시 작업에 필요한 시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예산의 경우는 클린턴 행정부 예산안과 고어의 공약 예산과도 차이가 있어 이 부분에 관한 한 양 후보는 모두 시일이 촉박한 실정이다. 예산안 조정은 자신의 공약을 정책으로 바꿔 새 대통령으로서 이미지를 취임 이후 첫해에 가꿔나간다는 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작업으로 지적된다. 정부의 모습을 갖출 고위공무원 선정 문제 역시 중요한 일정 부족을 겪을 전망이다.3,000여명의 임명직 고위공무원중 600여명은 상원의청문회를 통과해야 하는 절차까지 있다. 취임 첫해에는 의회가 9월 가을 휴회에 들어가기 전까지 인사청문회가 빽빽하게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나 지금 상황으로서는 임명할 이들의 신원이나 이력사항,과거 업적 등을 세밀히 정리,인사청문회를 차질없이 통과할 인물을 뽑는 게 어려운 형편이다. 국가안전과 관련,중앙정보국(CIA)이나 연방수사국(FBI)으로부터 차기 정부출범 이후 취해야 할 안보관련 브리핑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 조달·총무부서의 경우도 6개월∼1년 앞서는 정부 행정행위의 보고사항을 누구에게 들고갈지 헤매기는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누가 되든 당선자는 갈가리 찢긴 여론과 촉박한 정권인수 일정에 쫓겨 허겁지겁 달려가야 할 상황이다. hay@. *이모저모.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20일(이하 현지시간) 수작업 재개표의 최종선거결과 산정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심리가 열린 플로리다주 대법정은 팽팽한 긴장 속에 부시-고어 진영 변호인들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대법원 심리는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와 민주당 앨 고어 후보측에서 4명씩의 변호인이 나서 변론하면 7명의 판사들이 이를 듣고 질문하고 공박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전임 민주당 주지사가 임명한 인물들이 대부분인 대법원 판사들은수작업 재개표를 최종 선거결과에 산정해야 한다는 고어측 변호인들의 변론에 대해서는 공박없이 질문만 했다.그러나 부시측 변호인이판사의 질문에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자 “질문에만 답하라”고 핀잔을 주는 등 다분히 고어 편향적 성향을 드러내기도. ◆찰스 웰스 대법원장은 양쪽에 1시간씩 변론시간을 부여했다.정해진시간이 되면 변론을 중단시키고 다음 변호인에게 변론권을 넘겼다. 고어 진영에서는 고어 후보의 수석변호인 데이비드 보이스를 비롯,로버트 버터워스 주 법무장관의 변호인 토머스 바크덜,팜비치 카운티를 대리한 브루스 로고우,브로워드 카운티의 앤드루 마이어스 등이변론에 나섰다. 부시측에서는 캐서린 해리스 플로리다주 국무장관의 변호인 조지프클록이 첫 변론에 나서고,부시 법률팀의 마이클 카빈과 프레드 루이스,유권자를 대표한 해럴드 미덴보로 등이 차례로 나서 공화당의 입장을 옹호했다. ◆미국 국민 대다수는 고어 후보가 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수검표 인증 여부 판결에 따라야 한다는 반응. 20일 NBC방송의 뉴스프로 ‘데이트라인’이 전국 50개주 성인 510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한 결과(오차범위 ±4.5%)에 따르면 62%가 플로리다주 대법원이 결정하면 후보들은 그 판결에 따르고 더이상 법정소송을 제기해서는 안된다고 답했다. USA 투데이-CNN-갤럽 조사에서도 51%는 좀더 최종 대선판정을 지켜보겠다고 말했으나 48%는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고 부정적반응을 보였다. ◆미국 국민 사이에 ‘한 표의 중요성’에 대한 경각심이 확산되는것으로 나타났다.20일 ABC방송에 따르면 15∼19일 무작위로 추출한전국의 성인 1,015명에게 전화로 물어본 결과 ‘2004년 대통령 선거에는 꼭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의견이 54%,‘어느 정도투표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됐다’가 12%로 모두 66%가 2004년 투표에 참가할 의사를 밝혔다. hay@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6)블라디보스토크·빨치산스크

    1910년 국권상실 직후 의병들의 거점이었던 포시에트와 크라스키노를 돌아본 취재팀은 블라디보스토크의 항일투쟁 유적지를 찾아 나섰다.러시아어로 ‘보스토크(동방)’와 ‘블라디’(정복)를 합성한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연해주의 중심도시.금각만(金角灣)을 껴안은이 곳은 극동에 있는 러시아의 유일한 부동항(不凍港)으로 1860년대이래 러시아 극동진출의 발판이 돼왔다.특히 1903년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개통되면서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우리 항일투쟁사에서 블라디보스토크는 항일투쟁이 응집된 중요한곳이다.일제를 피해 포시에트를 떠난 한인들이 새로 자리를 잡은 곳이기 때문이다. 해삼위(海蔘威)라고도 불렸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먼저 찾아 나선곳은 뽀그라니치나야 스라보카 거리였다.구한말 항일운동의 중심역할을 한 개척리가 세워진 곳이다.남향에다 바다로 향한 전망이 좋아 마을이 없던 당시 이주자들이 정을 붙이고 살기에는 최적지로 보였다. 그러나 개척리는 1911년 러시아 당국이 콜레라 근절을 핑계로 수천여명에 이르던 우리 동포들을몰아낸 뒤 병영을 지었고,이후 블라디보스토크 원형극장이 들어섰다.지금은 중국음식점으로 바뀌었다. 한인들은 쫓겨나기 1년전인 1910년 8월 경술국치 소식이 전해지자이상설 이범윤 홍범도 등을 주축으로 ‘성명회(聲明會)’를 조직했다. 그러나 9월 11일 러시아 극동공화국 당국이 일본의 요구에 따라 성명회와 십삼도의군 간부 200여명을 체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대동공보’도 이 곳에서 발행됐다.국내 의병장,계몽운동가들이 모여들면서 이 주변은 한인수가 한때 16만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90여년의 긴 세월은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숨결을 남김없이지워냈다.기왓장 하나 남아 있지 않은 현실에 취재팀은 안타까움을감출 수 없었다. 개척리를 떠난 동포들은 십여㎞쯤 떨어진 언덕에 새둥지를 틀었다.바로 신한촌(新韓村)이다.그러나 신한촌은 북향의 경사진 언덕이다.따뜻한 남향의 옥토에서 칼바람 부는 황무지로 옮겨온 우리 동포들의심정은 어땠을까. 우리 동포들은 신한촌에서 1911년 8월29일 한일합방 1주년을 맞아반대시위를 벌였다.그리고 조국독립과 계몽활동,민족주의교육 등을주창하는 권업회(勸業會)를 창설했다.이 때 홍범도는 20명의 동지와함께 ‘21의형제 동맹’을 결성했다. 1914년에는 대한광복군정부를 조직했다.앞서 1912년 신채호 이상설장도빈 등은 ‘권업신문’을 발간했다.1919년 3월17일에는 고국에서온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규모 시위를 가졌다.이듬해 3·1절에는독립문을 세웠다.이렇게 줄기차게 전개된 투쟁 때문에 독립운동사 연구가들은 독립운동사에서 신한촌을 북간도의 용정과 명동보다 앞선것으로 평가한다. 일본군은 1918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군인 적위군과 차르의 백군간에 벌어진 내전에 국제간섭군이라는 명분으로 파병해 있었다.1920년4월,일군이 러시아군과 한인부대 연합군과 충돌하자 이를 기화로 신한촌을 기습하였다.주요 지도자들은 탈출하였으나 불운하게도 최재형이 동포 60명과 함께 체포되었다.그는 우수리스크로 끌려가서 처형되었다. 취재팀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를 피해 새로 정착한 빨치산스크로 향했다.우리식으로 수청(水淸)이라고 이름지어진 이 곳은블라디보스토크에서 200㎞쯤 떨어진 산세 험한 소 도시이다.백마 탄 김일성장군으로 불렸던 김경천(金擎天) 장군이 이끄는 항일유격대가 치열하게 일본군과 싸웠던 곳이다. 김경천은 창해(滄海)청년단과 수청고려의병대를 이 곳에서 이끌었다. 광복군사령관을 지낸 이청천(李靑天)보다 일본육사 3년 선배로서 조국 독립에 한몸을 던졌던 김경천.그는 1909년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육사에 재학 중 조국이 강점당하는 비운을 겪었다.요코하마에서 그는이청천 홍사익 등과 함께 뒷날 탈출하자고 결의했다.1919년 6월 그는 이청천과 함께 만주로 망명,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으로 일했다. 이청천이 중국 땅에 남은 것과 달리 김경천은 1919년 말 러시아로와서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렀다.1920년 4월 일본군의 신한촌 기습에서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면한 그는 수청으로 가서 한인들을 괴롭히는마적들을 제압하고 일본군과 싸웠다.그는 이 때부터 ’백마 탄 김일성 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김경천은 조국독립을 위해 투쟁하면서도 때때로 러시아 백군과 싸워 볼셰비키혁명에도 공로를 쌓았지만홍범도가 그랬던 것처럼 강제 이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끌려갔다.그리고 1942년 수용소에서 불우하게 사망했다. 광산촌인 빨치산스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자동차는 첩첩산중으로 들어가고 또 들어갔다.간신히 3시간만에 도착한 빨치산스크의중심가는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갑자기 내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한참수소문한 끝에 빨치산스크 시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나탈리아라는여성 관리원의 도움을 얻어 빨치산 사진과 문헌을 샅샅이 뒤졌지만김경천 등 한국식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한인 빨치산에 관한 어떤 기록도 없었다.기록에 따르면 이 곳에 있던 빨치산 중 절반이 한인이었다고 하는데 아마 1936년 강제이주 뒤 자료들이 대부분 멸실된 듯 싶었다.나탈리아는 취재팀의 허탈해 하는 표정을 보고 “수장고에 다른자료들이 있는데 관장이 갖고 외출했고 그는 며칠뒤에야 돌아온다”며 자기가 더 미안해 했다.취재팀은 어쩔 수 없이 벽에 걸린 사진들을 꼼꼼히 살펴보다 한인으로 보이는 몇사람을 발견한 것을 위안으로삼으며빨치산스크를 떠났다. 블라디보스토크 박재범기자 jaebum@. * 빨치산스크의 고려인들. 빨치산스크에는 고려인(카레이스키)이 간혹 눈에 띄었다.1936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전원 강제이주된 한인들의 후손들이다.그들은 최근 몇년새 한둘씩 다시 연해주로 돌아오고 있다.대개 중앙아시아에 가까운 하바로브스크 등 대도시에 자리잡고 있으나 멀리 빨치산스크까지 오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그러나 그들은 이미 선조들의역사를 잊었다.아니 아예 모르고 있었다. 빨치산스크의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러 들어온 한 사람을 만났다. 생김새가 한국사람과 똑같아 “혹시 카레이스키가 아니냐”고 러시아말로 묻자 “그렇다.박이다”라고 대답했다.“4∼5년전에 중앙아시아에서 이 곳으로 왔다”는 그는 “예전에 이 곳이 독립운동의 거점이었음을 아느냐”는 질문에 ‘처음 듣는 얘기’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바로브스크에는 고려인이 빨치산스크보다 훨씬 많다.고려인들은하바로브스크 시내 시장에서 채소와 과일 등을 팔거나 구두를 고치는일 등을주로 하고 있다.그들 역시 중앙아시아가 고향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바로브스크 등 연해주가 그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뿌리내렸던 곳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역시 극히 드물었다. 박재범기자
  •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서도호·마이클 주씨 뽑혀

    내년 6월 개막하는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의 한국관 전시작가로 서도호(38)씨와 마이클 주(34·한국명 주우정)씨가 선정됐다고 한국관 커미셔너 박경미씨가 20일 발표했다. 중견작가 서세옥씨의 아들인 서도호씨는 공간이동 개념을 담은 대형설치조각과 작은 사람 형상의 오브제로 채워진 카펫 형태의 바닥설치작업 등을 해오며 뉴욕화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유망주.그는 총감독하랄드 제만이 기획하는 본전시 작가로도 뽑혔다.마이클 주는 뉴욕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 작가로,제1회 광주비엔날레,미디어시티 서울2000 등 다수의 전시회를 통해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동양적 컨셉을 보편적 조형언어로 구현하는 그는 올해 휘트니 비엔날레에 한인작가로는 유일하게 작품을 내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 국정현안 연내처리 불투명

    위태위태하던 정국이 끝내 검찰 탄핵안이라는 암초에 부닥쳐 좌초했다.19일 여야의 기류를 볼 때 당분간 복원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이에 따라 새해 예산안과 공적자금 국회 동의,각종 민생·개혁법안 등국정현안의 연내 처리마저 불투명해졌다. [정국 대치] 전망 당분간 한나라당의 대응 수위가 정국 정상화의 관건이다.그러나 한나라당의 움직임을 볼 때 정국의 전도는 그리 밝지않다. 한나라당은 이날 주요 당직자회의를 통해 대여 강경 대응 방침을 선언했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민주당의 사과,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 사퇴,검찰 수뇌부 사퇴 등을 촉구했다.나아가 이런 요구가 수용될 때까지 국회 의사 일정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못박았다. 이에 민주당은 한나라당 요구를 일축하고 당분간 냉각기를 가지면서 해빙 기회를 엿본다는 방침이다.당장 단독국회를 강행하지는 않고대신 민생현안의 시급성을 국민들에게 적극 홍보,한나라당을 최대한압박한다는 우회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이같은 양당의 기류에 비춰 이번주부터 시작될 상임위별 예산 및 법안심의는 공전되거나 간담회로 대체되는 파행이 예상된다. 다만 여권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마냥 강경 일변도로 나가기는 어려우리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민생현안 처리가 늦어지면 야당을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질 것”이라며 야당의 투쟁 수위에 선을 그으려 했다.지난달 9일 김 대통령과 이회창(李會昌)총재간의 ‘영수회담 격월 개최’ 합의를 바탕으로 다음달 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 수습의 해법을 찾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기국회 현안] 당장 50조원 규모의 추가 공적자금 처리가 시급한상황이다.정부는 늦어도 이번주 안에 국회 동의를 얻어야 적기 투입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민주당도 23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계획이었다.그러나 한나라당의 반발이 거센 데다 민주당도 당분간 단독국회는 자제한다는 방침이어서 처리가 늦어질 전망이다. 다음달 2일이 처리 법정시한인 101조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도 마찬가지다.당장 20일부터 상임위별로 심의에 들어가야 하나 한나라당의등원 거부로 차질이 불가피하다. 반부패기본법,국가보안법,인권법 등 민생개혁 및 남북 관련 법안 처리도 어렵게 됐다.특히 야권은 검찰 중립과 관련해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인사청문회법·관치금융청산법(이상 한나라당),국회법·남북교류협력특별법(이상 자민련) 등을 추진하고 있어 설사 국회가 정상화돼도 이를 둘러싼 여야간 대립으로 회기 내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다. 진경호기자 jade@
  • 이연택 월드컵조직위 위원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사무총장 인선이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사무총장은 실무와 행정 경력을 고루 갖춘 인물로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인선의 원칙에 대해서는 이미 김한길 문화부장관,정몽준 이연택 월드컵조직위 공동위원장이 16일 가진 회동을 통해 최종조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연택 위원장은 17일 취임후 처음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올림픽조직위나 세계 엑스포 등에서 조직관리와 행정능력을 얻은 차관급 인사를 놓고 막바지 인선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사무총장 후보로 현재 행자부출신 2명,문화부출신 2명과이상철 한체대 총장 등 5명의 이력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행자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문동후 소청심사위원장은 행시 12회로 88서울올림픽조직위에서 경기조정관으로 일한 경험이 있어 가장 유력한인물로 꼽힌다. 또 김범일 기획관리실장도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김실장은 문위원장과 행시동기로 역시 올림픽조직위에서 일했다. 문화부출신으로는 신현웅 전차관이 올라있다. 이 위원장은 “사무총장 인선은 합의된 원칙하에서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해 선임작업이 막바지 이르렀음을 암시했다. 이 위원장은 일각에서 일고 있는 특정인사 내정 소문과 관련해 “김장관도 월드컵조직위원장의 의견을 존중하는 쪽으로 결말을 낼 것으로 본다”면서 “특정인을 내세워 협의한 일은 없다”고 못박았다. 박준석기자 pjs@
  • [대한광장] 냉전유령은 역사의 무덤으로

    세치 혀의 방자함이 이리도 현란할까.지금 우리 사회에는 하나의 냉전유령이 배회하고 있다.그 유령의 정체는 반공과 반(反)북한이며,시대착오적인 유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유령은 등장해야 할 시대를 넘겨 나타났기 때문에 철지난 유령 꼴이 되었다.게다가 어린아이들까지도 유령의 정체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우스꽝스런 코미디 유령이 되고 말았다. 김용갑씨가 예의 철지난 유령 역을 맡고 있다.우리 사회는 1980년대중반 이후의 민주화 과정에서 김용갑씨가 내뱉은 극우적이고 냉전적인 발언목록을 보유하고 있으며,그가 돈키호테식 돌출행동에 익숙한인사라는 사실도 잘 안다.그는 어느 사회에서나 가끔 발견되는,가끔은 희화적인 문학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다.그는언급하기에는 너무 가볍고 비판하기에는 너무 가치가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몰라도 좋은 선남선녀가 아니다.국민의 대표라는 엄청난 직함을 지닌,우리 사회에서는 대표적인 공인 반열에 드는 국회의원 직을 가진 사람이다.그런 그가 국회의 대정부질문 자리에서나라 정책을 책임지는 공당을 향해 “조선노동당의 2중대”니 “남한사회를 김정일에게 갖다바치는 통일전선전술”이니 하는 극히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언을 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어떻게 국회의원이 그렇게 발언할 수 있는지,어떻게 국민이 저런 사람을 대표로 뽑았는지 의심스럽다. 역사는 두 번 되풀이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한 번은 비극으로,또한 번은 희극으로 말이다.이 명언이 지금 재현되고 있다.1986년 가을로 돌아가 보자.역시 대정부질문 자리에서 행한 유성환의원의 ‘통일국시’발언에 대해 전두환 군사정권은 그의 국회의원 직을 박탈하고정치적으로 생매장해 버렸다.그는 단지 통일국시에 대한 총리의 의견을 물었을 뿐인데,군사정권은 사소한 문제를 침소봉대하여 극우 냉전 매카시적 ‘마녀소동’을 벌인 것이다.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런데,당시 ‘마녀소동’을 연출한 냉전주의자들이 14년이 지난 오늘 화해협력적 통일정책을 펴는 여당을 조선노동당의 앞잡이로 모는색다른 냉전소동을 벌이고 있다.정말 웃기는 일이다.지금이 어느 시대인가.사회주의 종주국을 자처한 소련이 무너졌고 모든 사회주의국가들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남한의 국력이 북한의수십배에 달한다는 것이 정설이다.그런 남한이 북한에 먹힌다니 “쥐가 고양이를 잡는다”고 외치는 것보다 더욱 심하다.이것이 희극이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희극일 수 있단 말인가. 정치권은 그의 발언을 국회 속기록에서 삭제하고 소속정당 원내총무가 사과하는 선에서 매듭지으려는 모양이다.정치권은 그렇게 할 수있을지 모른다.그러나 상처받은 국민 자존심은 어떻게 할 것인가.더구나 불량한 대표자를 선출한 유권자들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국회의원을 욕해야 할지 유권자들을 욕해야 할지,그가 책임을 져야 할지 국민이 책임져야 할지 혼돈스럽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따라서 상황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국민 대표인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인정하자.국민이 대표로 선출했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게다가 정치권에서 제명 운운하는 것도 모양 나쁘고 실익도 없어 보인다.결국은 국민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국민이 자괴감과 수치심으로 반성해야 한다.그리고 다음 선거까지 기다려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이 그의 반역사적이고 반통일적인행위를 용서하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방법은결자해지하는 것이다. 김용갑씨는 과거 한때 우리 역사가 그에게 임무를 잘못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도 임기가 만료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국회의원직을 비롯한 일체의 사회적 역할에서 물러나야 한다.더이상의 변명이나 사과는 오히려 역사에 똥칠을 하고 국민을 욕되게 할뿐이다. 유령은 십자가와 함께 무덤으로 간다.극우와 냉전과 반공의 모순적형상물인 김용갑씨 역시 냉전역사의 무덤으로 가야할 시간이다.조용하지만 단호하게 그의 마지막 인간적 결단을 촉구하고 싶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정치학
  • MBC 스페셜, 조선왕조 마지막 황세손비 줄리아

    역사의 소용돌이는 때로 전혀 이방인인 듯한 개인의 삶까지 송두리째 휩쓸어 버리는 법. 17일 밤11시5분 ‘MBC스페셜-줄리아의 마지막 편지’편은 미국인으로 조선왕조 마지막 황세손비가 됐던 줄리아 리 얘기다.한반도가 어디붙어있는 지 모른채 살아갔을지도 모를 줄리아는 MIT공대에 유학중이던 고종황제 손자 이구를 만나 혼약하게 되면서 한민족 격변사의 한복판으로 걸어들어온 셈. 그 줄리아가 지난 9월 77세 중풍든 몸으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한국방문길에 올랐다.남편이었던 이구를 만나려는 것.58년 7살 연하 황세손과 결혼해 신혼단꿈에 젖은 것도 잠시,이국인을 못마땅하게 여긴 종친회에 의해 82년 이혼당한 뒤 쫓겨나다시피 하와이로 돌아와 말년을 보내고 있던 차였다. 하와이에서 한인 양로원이나 남편이 지은 이스트웨스트센터 방문 등으로 그리움을 달래던 줄리아가 모처럼 작심하고 돌아온 한국은 그러나 마냥 따뜻하지 않다.줄리아는 이미 이곳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지워져버린 인물이었으며 종친회의 냉대속에 남편과의 재회에도 실패한다.몰락해간 왕조를 증언해줄 450점의 사진,왕가 문장과 유물 등을덕수궁 박물관에 기증하고 시아버지였던 영친왕의 묘소를 찾는 것이고작,한달만에 하와이로 돌아가고 만다. 이 프로는 줄리아의 이같은 방문길을 내내 동행하면서 역사의 희생자인 한 여인의 입을 빌어 당시를 증언한다.황세손이었음에도 결혼패물 하나 해줄 수 없을 정도로 몰락했던 왕가,볼모로 일본에 끌려가 원치않던 결혼을 당해야 했던 영친왕의 비극적 스토리,왕가 여인들의거처인 낙선재에서 쓸쓸하게 사라져간 윤비,이방자여사,덕혜옹주 등에 대한 회상 등. 3년전 제작진이 최초 접촉했을 때만 해도 고운 모습이 사라진 것을보이기 싫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던 줄리아는 풍을 맞은 뒤 한층 초라해졌지만 이번에는 카메라 앞에 나섰다.스스로 사연많은 개인사에 대한 정리의 필요성을 느꼈을까. 제작을 담당한 이종현 PD는 “한국 근현대사는 가치관에 혼란을 줄만큼 격변을 거듭해왔음에도 우리는 서글프고 부끄러운 역사를 은근슬쩍 지워버리고 넘어온 게 부지기수다.줄리아를 통해 이에 대한 총체적 문제제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손정숙기자 jssohn@
  • 여성 86% “자연분만 선호”

    한국 여성들은 출산시 제왕절개 수술보다 자연분만을 훨씬 더 선호하며 이는 ‘모성애’와 ‘조속한 회복’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의료원이 지난 9·10월 의료원 홈페이지 ‘Live Poll’을 통해 실시한 ‘분만 여론조사’결과 응답자 526명중 86.1%인 453명이자연분만을 희망했다.그 이유로는 ‘모성애’가 39.6%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조속한 회복’(31.8%)‘매스컴 영향’(22%)‘담당의사의권유’(2.5%)‘경제적 부담이 적어서’(2.2%)‘주변의 권유’(1.9%)순이었다. 제왕절개 수술을 희망하는 사람은 13.9%인 73명에 불과했으며 이들은 ‘난산 위험’(39.7%)과 ‘주위의 권유’(34.3%)를 주된 이유로들었다. 이밖에 ‘진료받던 병의원의 권유’(15%)‘담당의사의 권유’(11%)순으로 많았다. 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이규완교수는 “제왕절개술은 마취에 따른 합병증이나 감염이 나타날 수 있으며 수술후에도 회복속도가 느려산모에게 불편함이 많다”면서 “최근 언론보도로 자연분만에 관한인식이 개선됐고 한국적인 정서와도 맞아 임산부들이 더선호하게 된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5)러시아 포시에트·크라스키노

    대한매일은 중국에 이어 러시아에 남아있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나선다.100여년전 대기근으로 발생한 한반도의 유민들은 국경지역인포시에트와 크라스키노 일대로 하나둘씩 이주해 농사를 지었다.이곳은 국권을 잃은 다음에는 무장독립운동가들의 활동거점이 됐다.독립운동가들은 일제 등을 피해 곧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프스크 등 북쪽으로 이동했고,스보보드니를 거쳐 시베리아의 치타와 이르쿠츠크까지 수십만리길을 옮겨다녔다.독립운동가들이 걸은 형극의 길을 4회로나누어 싣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소형승합차를 대절해 북한과 러시아의 국경 쪽으로 달렸다.국경선인 두만강의 하산까지는 270㎞쯤.지리에 밝은 극동국립대의 송지나 교수(러시아 국적 동포)가 동행하는데도 태반이비포장도로인데다 검문이 심해 가는 데만 6시간이 걸렸다. 연해주의 남쪽인 포시에트만 해안가에 자리잡은 포시에트와 크라스키노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본격적인 한인사회가 형성되기 이전 국권회복 운동의 중심지였다.블라디보스토크가 애국계몽운동 위주로 나아간데 비해이곳은 무기를 든 무장투쟁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유인석(柳麟錫)·이범윤(李範允)·최재형(崔在亨)·안중근(安重根)의 투쟁이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취재팀을 태운 자동차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포구 위에 멈추었다.바로 포시에트였다.우리 선열들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던 이 곳을 땀으로 일궈 옥토로 바꿨다.그러나 현재는 그저 황량한 들판일 뿐이었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아도 우리 독립군의 발자취는 아무 곳에도 남아있지 않았다.1936년 강제이주 열차에 실려 단 한 사람도 남김없이 중앙아시아로 끌려간 탓이었다.비록 70여년의 세월에 독립군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지만 취재팀은 선열들이 겪은 어려움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취재팀은 다시 10여㎞쯤 동쪽으로 달려 크라스키노로 갔다.선열들이힘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던 곳이다.경사 없이 수평을 이루는 드넓은벌판이 누워 있는데 그 아래는 바다였다.“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있는 장소가 있어요.” 송지나 교수가 이끄는 대로 차를 몰고 표고 300m쯤 되는 고지로 올라갔다.십여분 뒤 정상에 오르니 하산 전투기념비가 서 있고 사방은 일망무제로 탁 트였다.정면 남쪽 수평의 벌판에앉은 것이 크라스키노의 중심지역으로 우리 선열들이 ‘상안치혜’라고 부르던 곳이고 그 앞은 포시에트만이었다.서쪽으로 나 있는 길은중국과의 국경지역인 훈춘으로 가는 도로였다.그리고 고지의 왼쪽 등뒤쯤에 부락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것이 우리 선열들의 ‘하안치혜’ 마을을 부숴버리고 새로 세웠다는 쭈가노프카촌이었다. 위정척사파의 거두로서 국내에서 의병을 일으켜 혁혁하게 싸웠던 유인석이 이 곳에 온 것은 1908년 8월.그는 이범윤과 최재형을 만나 연해주 의병의 정신적 중추가 되고,블라디보스토크로 진출해 십삼도의군(十三道義軍),성명회(聲明會),권업회(勸業會)의 최고 지도자로 활약했다.전(前) 러시아 공사 이범직의 아우였던 이범윤은 간도관리사로 북간도에 파견되어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러시아로 망명와서는의병대인 창의회(倡義會)를 조직했다. 최재형은 재정적 후원을 책임진 공로자였다.러시아군의 통역을 거쳐군납업으로 거부가 된 그는 재산을 모두 항일투쟁에 바쳤다. 수많은의병이 먹고 입고 훈련할 수 있는 힘은 모두 그에게서 나왔다.그는안타깝게도 1919년 4월 일본군에 의해 우수리스크에서 총살당했다. 안중근은 이범윤과 최재형이 만든 크라스키노 의병대를 지휘하여 국내 진공을 감행한 지휘관이었다.1980년 여름 그는 이 곳을 출발해 두만강을 건너 함경도로 진출해 경흥군에 주둔중인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해 큰 전과를 올렸다.그러나 다음 전투에서 포로를 국제공법에 의해 석방한 일 때문에 참패를 당하고 거의 혈혈단신으로 돌아왔다.격렬한 비판을 받은 안중근은 1909년 3월 김기룡 강두찬 유치현 박봉석강기순 김백춘 등 동지들과 함께 단지혈맹(斷指血盟)을 맺고 몇달뒤하얼빈에서 그를 저격했다. 취재팀은 그런 저런 자료들을 손에 들고크라스키노 중심지를 이곳 저곳 돌아보다가 안중근의 일화를 감추고있는 하안치혜 마을로 향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이주정착했다는 쭈가노프가 마을의 강건너 앞쪽울창한 숲속에 전주들이 줄줄이 서 있는 곳이 바로 하안치혜였다.상수리나무와 졸참나무 들이 관목들과 뒤엉겨 있는 밀밀한 숲 속에 우물자리와 대저택이었음을 알려주는 담장과 벽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안중근이 독립정신을 불태우며 손가락을 끊었던 하안치혜 마을 역시 집터 몇곳만 남아있어 취재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취재팀은 몇시간 동안 그 곳에 머물면서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정신을되새긴 뒤 국경지역인 하산으로 향했다. 크라스키노 박재범기자 jaebum@. * 北·러 국경선 ‘하산' 새단장 한창. 북한과 러시아의 국경선에 위치한 하산은 새단장이 한창이다.옛 역사 앞에 지어진 새 역사의 내부를 대대적으로 보수 중이다.하산은 경의선이 복원될 경우 북한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로 이어지는 관문이된다.러시아는 철의 실크로드가 개통될 것에 대비해 미리부터 준비에나서고 있는 것이다. 하산은 북한에서 가끔 3∼4량 짜리 열차가 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동네주민을 위해 하루 한번정도 열차가 운행되는 자그마한 도시이다.북한과 맞닿아 있는 데다 서쪽으로 40여㎞쯤 가면 중국 국경선이어서경계가 삼엄하다.외국인 출입은 물론,사진 촬영도 금지돼 있다. 두어차례 검문을 거쳐 하산에 도착,국경에서 다소 떨어진 언덕 위에서 망원렌즈로 두만강철교를 사진으로 담고 하산역 앞까지 내려와 역사를 찍는 순간 국경수비대 장교가 뛰어나와 필름을 빼앗았다. 그러나 이들 국경수비대 군인들도 한국에게는 좋은 인상을 지니고있었다.그 장교는 “남북철도가 이어지고 이곳 하산을 통해 각종화물이 시베리아까지 수송되면 남북한·러시아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산 최해국기자
  • [IT 스코프] 보고 못받은 장관·보고 안한 직원

    안병엽(安炳燁) 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9일 모처럼 기자실에 들렀다.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계속 그래왔다.차세대이동통신(IMT-2000)사업에 짓눌린 탓이다.요즘은 어깨까지 아프다고 한다.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목과 어깨 근육이 굳었다.보름이 넘었다. 안 장관은 이날 IMT-2000 사업자 선정심사위에 대해 언급했다.전문성 공정성 객관성 엄정성 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정통부는 엄정한관리 감독을 할 것이라고 거듭 다짐했다. 안 장관의 의지는 굳어보였다.사심(私心)없이 접근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개인적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러나 귀를 의심케 하는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출연금 문제였다. 정통부는 오는 16일 ‘정보통신발전지원계획서’를 보낸다.각 사업자들은 1주일 내에 출연금 액수를 적어 제출해야 한다.기자가 이 부분을 물었다.안 장관은 “보고를 못 받았다”고 했다.순식간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담당 국장들은 도대체 뭘 보고했느냐”“사업계획서와는 별도로 출연금 액수를 제시하는 것을 몰랐느냐”등등.사소한 실수일 수도 있다.그러나 그냥 지나치기에는 지난 일이 너무뇌리에 박혀 있다.출연금은 1조∼1조3,000억원으로 잡혀있다.3개 사업자를 합치면 3조∼3조9,000억원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다.그런데도부하직원들은 안 장관에게 보고하는 책무조차 소홀히 했다.IMT-2000정책이 왜 꼬이게 됐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정통부는 IMT-2000 기술표준의 늪에 빠져 있다.원인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 사업자들이 시키는대로 동기(미국식)로 따라올 줄 알았다.나중에 안 따라가겠다고 했는데도 믿지 않았다.관(官)의 힘을 과신했기때문이다. 둘째 ‘장사꾼’의 말을 너무 믿었다.그들은 이익을 좇는다.상황에따라서는 얼마든지 말을 바꾼다.이런 기본조차 몰랐다.안 장관이 “SK텔레콤과 한국통신이 동기로 간다는 말을 믿었다”고 후회해봐야 이미 때는 늦었다.무능과 안이함에서 비롯된 필연이다.업계 현장의 변화를 읽는 노력이 모자랐다.정통부 담당자들은 책상머리에서 안주하는 복지부동이 가져다준 결과임을 인정해야 한다.그런데도 아직 개선노력이 안보인다.출연금 보고 누락이 그 증거다. 안 장관은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사람을 바꾸든,그 사람의 머리를 바꾸든간에.사업자 선정 시한인 올 연말까지 한달 보름여 밖에 남지 않았다.그래야만 아픈 어깨가 펴질 것이다. 박대출기자 dcpark@
  • 민원 중계실 Q&A

    ■지자체 소유의 체비지에서 영업을 하다가 지난 92년 구청의 철거명령을 받고 이를 철거하고 다른 곳에 이사해 살고 있다.그런데 구청은그동안의 변상금을 체납했다며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압류 처분하려한다.수차례 변상금 부과통지서나 독촉장을 보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변상금 부과통지서를 한번도 받지 못했는데 부당한 법 집행이 아닌가. 현행법상 일반적으로 관청의 행정처분이 대상자에게 적법하게 전달되지 않으면 부과처분은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이 경우 구청 서류에는 92년부터 수차례 변상금을 부과했고,변상금에 대한 독촉처분도 한 것으로 돼 있다.그러나 변상금 부과통지서와독촉장이 민원인에게 전달됐다는 객관적인 증빙 자료는 없다. 특히 구청에서 통지서를 발송한 주소지가 당시 거주지 주소와 다르게 기재돼 있다.따라서 이 경우 부과처분 및 독촉처분은 무효라고 볼수 있으므로 구청의 압류처분은 취소하는 것이 마땅하다.또한 체비지에 대한 변상금 추가부과도 소멸시효 기한인 5년이 지나 자동적으로 없어지므로 이 체비지에 대한 변상금은 징수할 수 없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지난 93∼97년 8월까지 시청 일용근로자로 있으면서 도로공사와 시청이 체결한 도로포장공사 현장에서,97년 8월 이후에는 국토관리청과시청이 체결한 고속도로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98년 퇴직했다.그러나시청은 97년 8월 이후 98년까지의 퇴직금은 줬으나 공무원연금법에의한 기여금 납부의무가 없어 기여금을 내지 않았던 그 이전의 퇴직금은 줄 수 없다고 한다 근로기준법 제34조의 규정에는 사용자는 계속근로연수 1년에 대해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퇴직금으로 근로자에게 지급토록 하고 있다. 이는 국가나 지자체도 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채용과 근로조건의 결정,업무에 대한 지휘감독을 시청이 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시청이다.또 민원인은 공무원법을적용받지 않지만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이다.따라서 98년이전에는 비록 공무원연금법에 따른 기여금 납부제도가 없어 기여금을 내지 않았지만 근로기준법 규정에 의해 민원인의 계속근로연수가1년 이상이므로재직기간의 퇴직금을 정당하게 청구할 수 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
  • 민주당 공청회 “국회 면책특권 제한해야”

    민주당 흑색선전공작정치 근절대책위원회(위원장 鄭東泳)는 10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국회의원 면책특권 무제한인가’라는 주제로 공청회를 가졌다.대한매일 김삼웅(金三雄)주필,이석형(李錫炯)변호사,참여연대 손혁재(孫赫載)박사가 패널로 참석했으며,면책특권이 개인의 명예 침해와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오용되는 만큼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먼저 김주필은 “면책특권은 1689년 영국의 권리장전에서 기원했으며,왕권이나 교회권 또는 독재권력으로부터 국회의원의 발언을 보호하기 위해 ‘회기중 불체포’와 함께 마련된 특권”이라고 기원을 언급했다. 이어 “한국의 정치풍토에서 면책특권은 입법과정의 토론이나 의정활동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적 감정이나 정략적 의도 아래허위사실을 적시,상대정당이나 특정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우리의 정치현실을 비판했다.또 “허위사실을날조하거나 고의적으로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까지 법으로보호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주필은 “면책특권 남용은 언론의 책임과도 연결된다”면서 “의원들이 폭로를 하면 언론이 그대로 보도해 개인의 명예와 인권이 침해된다”고 비판한뒤 “언론은 ‘카더라 방송’의 중계소가 돼 국론분열과 정치불신을 조장해선 안된다”고 촉구했다. 이변호사는 “‘의원은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서 다른 사람을 모욕하거나 사생활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없다’고 국회법 제146조가 규정하고 있다”고 적시했다.즉,면책특권도 무제한적일 수 없고 남용할 땐특권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변호사는 또 “독일 의회는 허위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은 면책특권에서 제외시켰으며,미국도 의원의 행위는 입법적 행위와 정치적 행위로 구분해 입법적 행위에만 특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손박사는 “면책특권은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며 “국회의원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을 전제로 하는 상대적이고 조건부적인 권리”라고 규정했다. 손박사는 그러나 “법으로 규율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는입장을 제시했다.“국회는 여야 대립의 장이 아닌 행정부에 대한 견제의 장인 만큼 국회가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게 좋다”며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활동을 제대로 하는 것이 국회 스스로의 자존을 살리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주현진기자 j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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