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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힐러리, LA한인타운서 첫 모금행사 연다

    미국의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꼽히고 있는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다음달 LA한인타운을 방문한다. 클린턴 상원의원은 오는 13일 오후 7시30분 옥스포드 팔래스 호텔에서 ‘한인 힐러리 클린턴 후원회(후원회장 리처드 박)’가 주최하는 대선 캠페인 후원기금 모금행사에 직접 참석할 예정이다. 클린턴 의원은 그간 캘리포니아주에서 몇차례 기금모금 행사를 가져왔으나 한인타운에서 모금행사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열리는 모금행사에는 100명 내외가 초청되며 목표 모금액은 35만달러다. 클린턴 의원의 한인타운 전격 방문은 재미 한인사회에서의 높은 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올 첫 분기 선거금 기부현황에서 클린턴 의원은 한인 180명으로부터 총 25만1천달러의 기부금을 받았다. 이는 공화, 민주 양당 후보중 기부자 숫자와 액수면에서 최고다. 명 리 미주 통신원 myungwlee@naver.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北에 있는 남편 아직도 사랑… 만나게 해주세요”

    “북한에 있는 남편을 아직도 사랑합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이 제 소망을 북측에 전달해 주기를 바랍니다.” 반세기 가까이 북한인 남편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독일인 이산가족 레나테 홍(70) 할머니의 눈에는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23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홍 할머니는 남북한 정상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소개하며 남편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희망했다. ●남·북한 정상에 탄원서 홍 할머니는 18세인 1955년 동독 예나에 유학 온 북한 유학생 홍옥근(73)씨를 만나 5년 간 열애 끝에 1960년 결혼했다. 하지만 이듬해 4월 남편은 북한 당국의 소환 명령을 받고 귀국한 뒤 1년간 서신왕래를 끝으로 46년째 소식이 없는 상태다. 그동안 홍 할머니는 남편의 생사를 알기 위해 당시 동독 외무부와 동독 주재 북한대사관 등에 여러 차례 문의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초 독일과 한국의 언론에 홍 할머니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독일적십자사의 도움으로 남편 홍씨가 함경남도 함흥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금껏 재혼하지 않고 두 아들을 키워 온 홍 할머니는 22일 방문한 대한적십자사에서 남북 이산가족의 화상상봉 장면을 보면서 화상 상봉에도 희망을 걸고 있다. 홍 여사는 이날 남북 정상에게 전하는 탄원서를 통해 “저는 70세 노인이 됐고 남편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열망은 더욱 커가고 있다.”면서 “남편이 성장한 두 아들을 만나 볼 기회를 갖게 해 달라.”고 말했다. 홍 여사는 “현재 독일 내에 15∼20가구 정도가 나와 비슷한 처지”라면서 “최근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으로 희망이 생긴 만큼 앞으로 재회를 위해 그들과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 이상 미래를 얘기할 순 없지만…” 그는 또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얻은 두 아이는 그동안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면서 “이제 남편과 만나면 더 이상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과거에 대해서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면 무척 기쁠 것”이라고 밝혀 주위를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지난 21일 방한해 대한적십자사를 방문한 홍 할머니는 청와대를 방문해 탄원서를 전달했다.2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난 뒤 31일 돌아갈 예정이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재미교포 에미상 수상등 美서 3인 3색 활약

    재미교포 에미상 수상등 美서 3인 3색 활약

    최근 애니메이터 김상진씨등 재미교포 3명이 3색의 활약으로 본토에서 두각을 나타내 한인사회에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먼저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사 ‘니켈로디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디렉터 김상진(사진 위)씨가 2007년 에미상에서 ‘개인업적상(Individual Achievement Award)’ 수상자로 결정돼 화제가 되고 있다. 김씨는 ‘아바타: 마지막 에어벤더’에서 수석 디렉터이자 애니메이션 디렉터로써 뛰어난 예술적 감각과 구성력을 인정 받았다. 애니메이션 ‘아바타’는 동양 신화에 기초한 판타지로 물과 대지와 공기의 왕국에 맞서 불의 왕국을 지키려는 소년의 모험담을 담고 있다. 김씨는 오는 9월8일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게 된다. 미 명문대 출신 애론 유, 할리우드 영화 출연 미 동부 명문 아이비리그 출신의 재미교포 2세 애론 유(28)가 할리우드 스타 캐빈 스페이시와 함께 영화에 출연한다. 명문 펜실베니아 대학교(UPenn)를 졸업한 유씨는 내년 3월21일 개봉 예정인 케빈 스페이시, 케이스 보스워스 주연의 영화 ‘21’에 출연하게 된 것. ’금발이 너무해’ ‘내생애 최고의 데이트’ 등을 연출한 호주 츨신 로버트 루케틱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MIT에 재학중인 6명의 천재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 진출 수백만 달러를 거머쥐는 실화를 다룬 영화다. 아시아 최고 여성래퍼 꿈꾸는 ‘JiSpott’ 데뷔앨범 재미교포 여성 래퍼 ‘JiSpott(한국명 서지영·22·사진 위)’이 데뷔앨범 ‘BreakThrough’로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장르는 흑인과 남성의 장르 힙합. 할리우드 음악학교를 마친 JiSpott은 학교에서 기본적인 음악 이론은 물론 창법 작곡 등을 배워 기본기도 탄탄하다. JiSpott은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후 지난 2003년 미국 유학까지 해 3개 국어가 가능하다. LA 클럽에서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공연을 통해 실전 무대감각을 익혔으며 유명스타 브랜디와 레이 제이를 길러낸 윌리 노우드가 스승이다. 미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JiSpott은 한국과 일본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JiSpott의 노래는 www.myspace.com/jispott과 www.jispott.com을 통해 들을 수 있다. 나우뉴스 명 리 미주 통신원 myungwlee@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현장 행정] 금천구 ‘장애인 책배달 서비스’

    [현장 행정] 금천구 ‘장애인 책배달 서비스’

    ‘150명 항시대기, 전화 한 통이면 끝까지 책임집니다.’ 유흥가를 지나며 봤던 야한 광고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외출이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의 독서활동을 돕기 위해 이달부터 시작한 ‘장애인을 위한 책배달 서비스’의 선전문구다. 금천구가 서울에서 처음 시작하는 책배달 서비스에 봉사를 자청하고 나선 자원봉사자도 줄을 이으면서 구청도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금천구는 지난 1일부터 도서관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3급이상 장애인들을 위해 ‘대여부터 반납까지’ 책임지는 책 배달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책 배달을 원하는 장애인들은 읽고 싶은 책을 정해 거주지 동사무소 자원봉사캠프에 전화하면, 자원봉사자들이 도서관이나 마을문고 등에서 책을 빌려 장애인들에게 전달해준다. 다 읽은 후에 다시 전화를 걸면 반납하는 일까지 책임진다. 소설부터 잡지, 음반까지 도서관에서 대출 가능한 것이라면 모두 전화 한 통화로 가능하다. 앞으로 책 읽어주는 서비스도 진행할 계획이다. ●전화 한통에 소설부터 음반까지 “번번이 미안해서 어쩌죠. 고맙게 읽을게요.” 22일 오후 서울 금천구 시흥3동 한 가정집. 척추장애인 김수길(67)씨는 책을 건네받으며 미안해 어쩔 줄 모른다. 김씨가 빌린 책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 4,5권. 그간 읽고는 싶었지만 한질을 모두 사기엔 부담스러워 눈독만 들였던 작품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더운 이날 자원봉사자 이해복(63)씨는 김씨의 전화를 받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김씨의 집을 찾았다. 김씨가 반납한 책 3권을 다시 도서관에 돌려줘야 하루 일과가 끝난다. 이씨는 “단순한 일이지만 받아보는 분의 환한 미소를 보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듯 뿌듯한 마음까지 든다.”라며 미소지었다. ●책 읽어주는 서비스로 업그레이드 금천구에 사는 장애인 가운데 중증에 속하는 3급 이상 장애인은 모두 2976명. 이중 10%정도가 책배달 서비스의 단골고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정복지과 전선희 팀장은 “장애를 가진 분들이 책을 좀더 쉽게 읽고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면서 “주위에 좋은 시설의 도서관들이 많지만 여전히 장애인에겐 벽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달에 걸리는 시간은 3∼4시간 정도. 오전에 신청한 책은 대부분 그날 안에 받을 수 있다.150여명이 넘는 책 배달 자원봉사자 덕분이다. 평일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며 책배달 등 각종 자원봉사업무를 담당해주는 귀중한 자원들이다. 책은 마을문고와 가산정보도서관, 금천구립도서관 등에서 대여한다. 이날 처음 전화로 소설 ‘아버지’(점자본)를 신청한 이동열(51·시각장애 1급)씨는 “과거 이동도서관이 있긴 했지만 언제 왔다 갔는지조차 알 수 없어 아쉬웠다.”면서 “점자책은 물론 듣는 책인 오디오 북까지 대여가 가능하다고 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한인수 구청장은 “책 배달을 통해 소외계층에는 책 읽는 문화가, 비장애인들은 나눔의 기쁨이 전해지는 행복한 금천구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정종욱 월드포커스] 한·중 수교 15주년과 중국 중독증/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정종욱 월드포커스] 한·중 수교 15주년과 중국 중독증/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도 모레 24일로 15년이 된다. 그동안 양국관계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수교 당시 63억달러였던 교역이 올해는 1500억달러에 육박하고 양국 간의 방문자도 6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중 한국 유학생이 7만명, 기업체는 4만여개에 달한다.7만명이 모여 살고 있는 베이징의 왕징(望京)을 비롯하여 칭다오·톈진·상하이 등에는 한인촌도 있다. 정치분야에는 3부 수장의 상호교류가 정착되었고 중국이 그토록 주저했던 군사분야에서의 협력도 차츰 본격화되고 있다. 물이 차면 도랑이 생긴다(水到渠成)는 수교 당시의 비유를 빌리면 양국 간에는 이제 고랑이 넘쳐 바다가 생긴 셈이다. 앞으로의 변화는 더 빨라질 것이다.2010년 이전에 교역 2000억달러, 방문객 1000만명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중국에의 무역의존도가 3분의1이 넘고 20∼60세의 한국인 두 명 중 한 명이 매년 중국을 다녀오고, 미국 유학생보다 중국 유학생들이 더 많고, 중국어와 영어가 똑같은 비중의 외국어로 취급되는 현상이 수교 20주년 안에 우리 앞에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중국 인구가 15억명에 육박하고 그 많은 인구가 모두 여유 있는 삶을 향유하는 샤오캉(小康) 사회가 실현되는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에는 한국의 중국 의존도가 경제뿐 아니라 정치·외교·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이 될 수 있다. 이때쯤 한국은 중국 중독증 환자가 될 수도 있다. 중독증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독도 적당히 먹으면 약이 될 수 있다. 어떤 약은 독이 되고 어떤 독은 약이 되기도 한다. 지금처럼 국제사회가 밀접한 상호의존의 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화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강대국이나 약소국이나 모두 서로 얽혀 있다. 문제는 어떻게 얽혀 있느냐이다. 상호의존관계가 어떤 것인가에 따라 중독증은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고 반대로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냉전시대처럼 상호의존이 진영 간의 극한 대립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중독증은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병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며칠 전에 있었던 러시아의 행동은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핵폭탄을 싣고 다니도록 된 러시아의 장거리 전략폭격기가 태평양의 미군 전략 요충인 괌 가까이 비행했다는 것은 미국의 군사적 우위에 도전할 수도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오기와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지난주 상하이협력기구가 실시한 ‘평화임무 2007’이라는 합동군사훈련이다.6년 전 중국과 러시아가 중심이 되어 만든 이 상하이협력기구는 4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회원국이지만 지금까지 옵서버로 참여해온 파키스탄·이란·몽골 등도 조만간 정식 회원국이 될 예정이다. 극단적인 경우 이 기구가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인도로 연결되는 남방 군사 협력 네트워크에 대한 대항마적 성격을 띨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과 일본의 일부 전략가들은 벌써 그런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우리로서는 냉전시대를 상기시키는 새로운 진영적 대결 구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상호의존적 공동체의 등장이다. 서로 편을 갈라 경쟁하고 대립하는 세력 균형적 질서보다 공존·공영하는 다원적 상호의존의 지역공동체가 우리의 목표이다. 수교 15주년을 맞는 한·중 관계는 이제 성년기에 접어들었다. 앞으로의 한·중 관계는 이런 지역공동체 형성에 기여하고 그 속에서 심화 발전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가 발휘될 수 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열린세상] 공교육 살리는 대통령을 뽑자/강경근 숭실대 헌법학 교수

    [열린세상] 공교육 살리는 대통령을 뽑자/강경근 숭실대 헌법학 교수

    노무현 정부에서 보수와 진보의 가장 첨예한 대치 전선은 국가보안법이나 남북관계법 등과 같은 국가 정체성 내지 안보관계 법률이 아니라 언론법과 사학법이었다. 전자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의 일부 위헌 결정이 내려졌고 후자의 일부는 개정되었다. 그렇게 된 근원적인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언론과 사학이 기본적으로는 사적인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능이 가지는 공적 성격을 빌미로 과잉 제한함으로써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2005년도에 거의 새로 제정되었다 할 정도로 전면 개정된 사학법은 올 7월27일 재개정되었다. 사학 측에서는 이 재개정 사학법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새로 제기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로서 이른바 개방형 이사제는 비록 이사 구성 방법의 변화는 있지만 제도 자체가 여전히 공교육의 주체로서 지니는 사학의 자율성을 과잉으로 침해하는 반공익적 제도이다. 임시이사제 역시 그 구성 등을 교육인적자원부 산하의 사학법인분쟁조정위원회에 맡김으로써 사학의 설립과 운영 주체와는 무관한 사람이나 집단이 사학을 탈취할 수 있게 하는 반영구적 관선이사제의 황금의 다리가 되게 한다. 교원인사위원회가 교원 임면 등 인사에 관한 심의기관의 지위를 갖는 것 역시 사학법인의 권한인 인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는 등을 들고 있다. 문제는 이들 법을 둘러싼 논란이 우리 사회에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예로 ‘2006년 강남구 사회통계조사’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가구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69만 4000원이라 한다. 학생 보유 가구수를 최소 8만가구로 잡아도 한 달에 약 560억원이니 1년이면 6700억원에 이른다. 다른 부대비용까지 보태면 1조원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기러기 아빠로 통칭되는 해외유학 가구의 경비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이들 돈을 공교육이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정책의 실패를 상징하는 것이다. 원인은 사학을 관학으로 여기고 그 자율성을 국공립의 학교보다 더 죄는 사학법 체제에 있다. 투명한 경쟁을 통한 수월성 추구와 최저학력 보장을 위한 관학과 사학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학의 손발을 죄는 각종 사학관련 법제의 재편을 종합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학교법인의 회계를 그가 설치·경영하는 학교에 속하는 회계와 법인의 업무에 속하는 회계로 엄격하게 구분함으로써 사학을 앉은뱅이로 만드는 법이다. 또 2003년부터 전국적으로 전면 실시된 중등의무교육경비는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에 의하여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등에도 지방교육재정 보통교부금 산정시 공·사립학교의 교원인건비 전액(법정부담금 포함)을 기준재정 수요에 반영하여 교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의무교육 시행 전인 1973년에 제정된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을 그대로 적용하여 사립중학교 교직원의 법정부담금을 학교법인으로 하여금 부담하게 함으로써, 헌법이 정한 의무교육 무상 수혜권의 기본권의 취지에 합치하지 아니하는 헌법위반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 교육당국은 저소득층을 위한 무상의무교육을 받을 국민의 권리와 돈은 좀 들더라도 고품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실현치 못하고 있다. 대선주자들 역시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사인 이들 문제들에 여전히 벽창호다. 그저 누가 더 못났느냐만 따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학생과 학부모는 공교육을 외면하고 밖으로 나간다. 제17대 대통령은 공교육을 살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강경근 숭실대 헌법학 교수
  • [사설] 송파구 주민참여예산제 기대 크다

    서울 송파구가 예산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예산편성 전과정에 주민을 참여시킬 방침이라고 한다. 현재 전국의 광역·기초단체 10여곳이 이 제도를 운영 중이지만, 대개 관(官)이 결정한 예산편성에 대해 주민의견을 일부 반영하는 수준이다. 반면 송파구는 예산수립 초기단계부터 주민이 예산의견서를 직접 제출·심사하고 공개하는, 보다 적극적인 참여방식이다. 주민대표 주도로 만든 예산편성안을 민·관이 우선순위를 조율한 뒤 구의회에 넘겨 의결한다는 것이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수요자 중심의 예산편성, 재정의 투명성과 낭비요인 제거, 직접민주주의의 실현 등 장점이 많아 권장·확산되는 추세다. 제도가 제대로 정착하면 주민의 불만을 해소하고 지역별 균형발전, 예산의 선택과 집중 등 긍정적인 면이 적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자치구와 의회의 핵심 권한인 예산편성권을 주민과 공유함으로써 구정(區政)의 이해를 높이고 행정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하겠다.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 지역사업을 둘러싸고 주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면 오히려 쓸데없는 민·민 갈등을 유발하거나 포퓰리즘에 빠질 수 있어서다. 특히 전시행정으로 흐르면 행정절차만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선출직 구청장은 제도의 정치적 활용을 삼가야 하며, 지역 사정을 잘 아는 공무원들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송파구가 서울의 자치구 가운데 가장 먼저 시행하는 만큼, 본받을 만한 모델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특허 포기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2005년 발표한 인간배아 줄기세포 논문에 대한 국제 특허를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는 황 전 교수가 자신의 2005년 줄기세포 논문과 관련해 개별국가 특허 진입 시한인 지난 3일까지 등록 의사와 등록에 필요한 비용을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16일 밝혔다. 황 전 교수가 개별국 특허 진입을 하면 특허 소유권자로서 진입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 서울대는 황 전 교수의 진입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으며, 이에 따라 비용 지원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황 전 교수는 자신의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해 2004년과 2005년 두 차례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했고, 두 논문에 근거해 국내·국제특허를 출원했다.이 가운데 2004년 논문 특허는 논문조작 사실이 드러나기 전에 이미 10여개국의 개별국 진입에 성공했다. 반면 2005년 논문 특허는 논문조작 사태로 인해 미국 등 11개국으로의 진입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감독상…영화사 부사장…” 교포들 할리우드서 각광

    “감독상…영화사 부사장…” 교포들 할리우드서 각광

    한인교포들의 미국 영화계에서의 활약이 눈부시다. 한쪽에선 영화제 수상을, 다른 한쪽에선 영화사 부사장으로 임명되는 겹경사가 났다. 한인 2세인 영화감독 김영일(33세ㆍ사진 왼쪽)씨는 지난 14일 (현지시간) 할리우드의 가장 정평있는 아시아계 영화제인 ‘제15회 케이프재단 신 작가상(CAPE)’에서 자신의 영화 ‘형의 제안(Hyung’s overture)’으로 각본 및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홀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재미동포 삼부자의 이민생활을 동생의 눈으로 조명한 작품이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김씨는 2002년 USC에서 영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 할리우드 신생 영화사의 수석 부사장으로 캐나다 출신 한인 여성이 전격적으로 임명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5일 미국의 유명연예 잡지인 ‘버라이어티’는 공포영화로 유명한 영화사인 캐나다 밴쿠버의 ‘라이온스게이트’사의 국제배급 부사장을 지낸 엘리자베스 김씨가 할리우드 독립영화사인 ‘필름 디파트먼트’의 수석 부사장으로 영입됐다고 보도했다. 캐나다의 명문인 맥길대를 졸업한 김씨는 90년대 말부터 해외 영화배급의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한편 이외에도 할리우드에는 ‘무간도’의 할리우드 버전 ‘디파티드’를 리메이크 하는데 산파역할을 한 ‘리메이크 킹’ 로이 리, 토비 맥과이어 같은 스타와 함께 일하는 미국 매니지먼트사의 윌리엄 최(할리우드 매니지먼트 360)등이 한인교포로서 큰 활약을 하고 있다. 나우뉴스 명 리 미주 통신원 myungwlee@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어떻게 지내십니까] 베트남에 5년 억류 이대용 前 주월공사

    [어떻게 지내십니까] 베트남에 5년 억류 이대용 前 주월공사

    한국인 23명을 납치한 탈레반 세력의 인질극이 장기화하고 있다. 이미 2명이 희생된 가운데 여성 피랍자 일부가 가까스로 풀려났으나, 나머지 인질의 석방은 아직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온국민이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낭보가 들려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운데 이대용(83) 전 주월공사를 만났다. 그는 월남 패망 후 공산 베트남 정권에 만 5년간 억류됐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제3국에서의 ‘최장기 인질’이었다. 그로부터 아프간 인질들을 구해 낼 묘책과 근황을 들어봤다. ●“그들도 탈레반이었다.” 월남이 사실상 패망한 1975년 4월30일. 이 주월 경제공사는 운명처럼 대사관 직원과 교민을 본국으로 안전 귀환시키는 철수 본부장직을 맡게 됐다. 김영관 당시 주베트남 대사 등 대부분의 공관원과 교민들이 이미 사이공을 떠난 뒤였다. 사이공 공항까지 북베트남군의 포격을 받는 위기일발 상황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안전하게 귀국시키려 안간힘을 쓰다 베트남 정보공작특별경찰조직인 안녕내정국에 체포됐다. 그는 “생각해 보니 그들은 아프간에서 무고한 외국인들을 납치·감금하는 탈레반과 다름 없었다.”고 회상했다. 치화 형무소에 수감된 그에게 외교관의 치외법권을 규정한 빈협정은 한낱 휴지조각이었다.1평도 안되는 독방에서 10개월 동안 햇빛 한번 못 보고 지낼 때도 있었다. 체중이 78㎏에서 42㎏으로 줄어들 정도로 참기 어려운 고통에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대목에서 이 전 공사는 “아프간 한인 인질들이 기습적으로 납치되는 바람에 충격이 클 것”이라면서 “국가가 구출할 것이라고 믿고 침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건 목숨을 담보로 끊임없이 강요하는 사상전향 요구였다. 그는 공산 베트남 측의 ‘가이따우’(인간개조) 공작에 꿋꿋이 버텼다.‘극한 상황에서 강요에 의한 거짓 전향은 무죄’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물론 이를 알았더라도 전향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납치세력들로부터 이슬람교로 개종 압박을 받고 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한인 피랍자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개종하는 척이라도 하며, 생명을 보전하는 게 우선”이라고. 이 전 공사와 서병호·안희완 두 영사가 억류되자 본국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와 외교 공관망을 총동원해 석방교섭을 펴도록 독려했다. 하지만 베트남과 외교관계가 단절된 데다 냉전하의 남북관계가 큰 걸림돌이 됐다. 북한 김일성 주석이 베트남 통일후 ‘남조선 해방´을 부르짖고 있는 가운데 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휘하는 노동당 제3호 청사가 북송 공작에 뛰어든 것이다. ●석방 교섭, 그때와 지금 78년 인도 뉴델리에서 남북한과 베트남간 비밀 3자회담이 열렸지만, 돌파구는 열리지 않았다. 북한이 이 전 공사 등의 북송을 최대치 목표로, 여의치 않으면 남한내 수감 간첩과의 교환을 추진하려 한 까닭이었다. 이 전 공사는 “탈레반이 피랍자와 탈레반 죄수들을 맞교환하려는 것과 너무 유사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당시 북측은 “중남미 테러세력들도 자국내 미 외교관들을 인질로 잡고 수감중인 도시게릴라들과 맞교환을 요구한다.”고 억지 사례를 들었다.“국제법의 보호를 받는 외교관과 간첩을 바꾸는 건 어불성설”이란 남측 주장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는 금언과 함께 석방의 전기는 왔다. 베트남이 미제 및 소련제 무기 등 막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위협을 느낀 중국이 견제에 나서면서다. 중국과 입장을 같이한 북한도 베트남에 캄보디아 철수를 요구하며 틈이 벌어졌다. 이때 한국정부는 거상 아이젠버그를 활용해 석방교섭을 성공시켰다. 그는 베트남의 외자유치를 도우며 커미션을 챙기던 유대계 미국인이었다. 물론 이는 이 공사가 생지옥 같은 긴 수감생활을 견뎠기에 가능했다. 그 이면에는 끊임없이 비밀 루트를 개척해 억류 외교관들과 접촉선을 유지하려 한 한국정부의 노력도 주효했다. 부패한 베트남 관리들을 구워삶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 일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탈레반과의 공식 접촉 못지않게 다양한 비공식 통로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아프간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사우디 등의 이슬람기구와 단체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요하다면 장사꾼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베트남에도 현지 공장이 있는 한 기업체의 이사로 있다.(주)선진의 장학재단 고문격으로 일선에선 한발 비켜나 있다. 그는 베트남식 개혁·개방 노선인 도이모이 정책과 관련,“86년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웬반린이 서기장으로 취임하면서 반세기 동안 외세 배격을 부르짖던 원로급들을 예우하면서 은퇴시킨 것은 사실상의 쿠데타”라고도 했다. 반면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해선 얼마간 비관적 전망을 했다.“주체사상을 포기, 개혁·개방하면 체제가 무너질 판인데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북한의 웬반린’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었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그는 누구인가 1925년 황해도 금천에서 태어난 이대용 전 주월 공사는 고향의 인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김구 선생을 비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동으로 몰리자 목숨을 걸고 월남했다. 이후 육사 7기로 임관한 뒤 한국전쟁을 맞아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유엔군 참전으로 북진이 시작된 이후엔 압록강에 맨 먼저 손을 담근 제6사단 7연대 1중대장으로 활약했다. 63년 주베트남 대사관 무관으로 파견되면서 베트남과의 굴곡 많은 인연이 시작된다. 소장으로 예편한 그는 67년 베트남 대선서 미 육군지휘참모대학에서 함께 수학한 웬 반 티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 이듬해부터 주베트남 대사관 정무공사로 4년간 근무한 것이다.73년 다시 주베트남대사관 부공관장격인 경제공사로 부임해 베트남과의 질긴 인연을 확인했지만,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된 직후 체포돼 사이공의 치화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 특별경찰과 사이공의 북한대사관 정보원들에 의해 전향과 귀순을 강요받았으나 끝내 거부했다. 이때 나중에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유명해진 박영수 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국장과도 악연을 맺었다. 박 전 부국장은 억류 중인 그에게 투항을 강요했던 북한 대사관의 정보원이었다. 80년 4월12일 베트남서 풀려난 이 전 공사는 화재보험협회 이사장과 생명보험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99∼2003년 육사총동창회장과 명예회장을 역임했다.96년 한·베트남친선협회 회장을 맡아 베트남과 이어진 악연의 고리를 끊었다. ■즈엉 찐 특 前 주한 베트남 대사와의 인연 이대용 전 주월공사가 베트남 억류 후유증을 털어내고 있던 2002년 초 어느 날. 생지옥 같았던 수감생활의 악몽을 되살릴 일이 생겼다. 그를 치화 형무소로 밀어넣은 장본인 중의 한 명이 서울에 온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주한 베트남 대사로. 즈엉 찐 특 제3대 주한 대사.1975년 월남 패망 당시 베트남의 특별경찰조직인 안녕내정국 요원으로서 이 공사를 신문했던 인물이었다. 이 전 공사는 한국말이 능통하고 얼굴이 유난히 하얀 그를 ‘튀기’라는 별명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전 공사는 걸핏하면 “총살하겠다.”고 위협하던 그를 떠올리며 몸서리쳤다.“만나면 죽이고 싶다.”는 게 당시의 솔직한 심경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특 대사가 이 전 공사가 회장을 역임했던 서울남서로타리클럽의 조찬특강 연사로 나오면서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27년 만에 만난 이 전 공사에게 특 대사는 “(신문을 받을 때)‘국제관계에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고 하셨는데, 참으로 선견지명이었다.”고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이미 한-베트남 관계가 북한-베트남 관계보다 더 밀접하게 됐으므로 원한을 누그러뜨리려는 공치사만은 아니었다. 이 전 공사도 “양국이 철천지 원수였던 당시 각자 자기 나라를 위해 충성했을 뿐, 개인적 원한은 없었던 게 아닌가.”라고 화답했다. 이후 두 사람은 평생지기처럼 지내며 서로를 돕는 사이가 되었다. 구본영 논설위원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2) 모문룡의 작폐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32) 모문룡의 작폐 Ⅱ

    인조반정 이후 조선 조정이 모문룡을 ‘은인’으로 여겨 송덕비까지 세우게 되자 모문룡은 기고만장했다. 그는 조선에 군량을 비롯하여 전마(戰馬), 조총, 병선 등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더 큰 문제는 그 휘하의 장졸(모병:毛兵)과 요민들이 끼치는 민폐였다. 모병과 요민들은 청북으로 밀려들었고, 후금을 자극했다.1627년의 정묘호란은 그 같은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밀려드는 遼民과 毛兵들 조선 조정은 모문룡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두 가지 난제에 직면했다. 하나는 모문룡의 진영에 막대한 양의 군량을 보내주어야 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시로 조선으로 들이닥쳤던 모문룡 휘하의 명군과 요민들에게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모문룡은 수시로 차관을 서울로 보내 양곡을 공급하라고 요구했다. 인조반정 직후 조선 조정은 그의 요구를 거의 들어주었다. 책봉 과정에서 모문룡의 ‘은혜’를 입었던 데다 그가 내세운 ‘요동 수복’이라는 슬로건에 공감했기 때문이다.1623년에만 6만석 이상의 양곡이 가도로 운반되었다. 조선을 길들여 모문룡을 지원하는 배후기지로 삼으려 했던 명 조정의 계산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당시 요동의 한인들은 계속 가도로 몰려들었고, 그곳에서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철산 등지로 상륙했다.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 청북 지방의 방어가 허술해지자 요민들의 유입은 극에 이르렀다. 요민들 가운데는 가재도구나 청람포(靑藍布) 등을 가져와 조선 사람들과 식량으로 바꾸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빈 손으로 무작정 몰려왔다. 조선은 후금을 탈출해온 요민들을 가달(假 )이라 불렀다.‘가짜 달자( 子-오랑캐)’를 줄인 말로 한족 가운데 후금에 귀순하거나 포로로 잡혀가 머리를 깎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고향을 떠나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그들은 거칠고 난폭했다. 1624년 3월 의주부윤(義州府尹) 유비(柳斐)의 보고 내용은 끔찍했다. 당시 날마다 수많은 가달들이 청북 지역으로 밀려들었다. 그들은 수십명씩 떼를 지어 들녘에 흩어져 봄갈이 한 곡식과 보리 싹을 죄다 캐 먹었다. 마을로 들이닥쳐서는 약탈하거나 밥을 지어달라고 떼를 썼다. 어느 가난한 백성이 음식을 내어주지 못하자 그들은 가달의 시체를 가져다가 그 집에 내팽개쳤다. 그러고는 ‘조선인들이 그를 때려죽였다.’고 한 뒤 온 마을 사람을 죄다 묶어놓은 뒤 재물을 빼앗아 갔다. 유비는 심지어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으면 서로 뜯어먹는다.’는 내용도 보고했다. 철산, 가산, 선천, 정주, 곽산 등 청북 지역은 몸살을 앓았다. 가달뿐 아니라 가도에서 상륙한 모문룡 휘하의 장졸들이 끼치는 민폐도 심각했다.1625년 2월, 모병들의 작폐를 참다 못한 의주부윤 이완(李莞)은 실력 행사에 나섰다. 그는 난동을 피운 모문룡의 부하 주발시(朱發時) 등을 붙잡아다가 곤장을 쳤다. 모문룡의 부하들은 ‘이완이 상국인을 몰라보고 재조지은을 배신했다.’며 그를 잡아가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다. 조선 조정은 결국 이완의 직급을 한 단계 강등하는 조처를 취했다. ●모문룡의 불장난 모병들은 때로는 청북 지역을 벗어나 함경도 지방까지 몰려들었다.1623년 4월 모문룡은 조선 조정에 사람을 보내 ‘회령(會寧)을 경유하여 오랑캐 지역으로 원정할 것’이라며 군량을 제공해줄 것과 길 안내를 위한 향도(嚮導)를 붙여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회령 너머 두만강 건너편의 여진 부락들은 거의 비어 있었다. 일찍이 누르하치가 조선과의 접경에 살던 여진인들을 포섭하여 내지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두만강을 건너 며칠 동안 깊숙이 들어가야만 여진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문룡이 그럼에도 원정 운운했던 것은 진짜 후금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제스처’이자 ‘쇼’였다. 당시 명 조정에서 조선으로 사신이 올 것이라고 예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문룡은, 가도에 들를 사신 일행에게 자신이 가만히 앉아 군량만 축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후금 원정’을 내세워 조선으로부터 군량 등을 얻어내려는 목적도 있었다. 조선 조정은 고민에 빠졌다. 당시 함경도 지역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어 모병들을 접대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행군하는 도중에 민폐를 자행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장만(張晩) 등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의 함경도 행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의 우려에 귀 기울일 그들이 아니었다.4월16일, 이미 모병들이 함흥까지 들어왔다는 보고가 올라왔다.5월15일에는 군량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함경도 수령들을 포박하고 구타까지 자행하고 있다는 소식도 날아들었다. 수령들은 그들의 협박에 못 이겨 민간에서 곡물을 징색하고, 승사(僧舍)까지 뒤지는 형편이었다. 조선 조정의 예상대로 모병들은 후금 지역으로 원정은커녕 함경도 각지에서 노략질만 자행했다. 그들이 왕래했던 행군로 주변에 거주하는 조선 백성들은 민폐 때문에 몸서리를 쳤다. 모문룡 휘하들이 보였던 이 같은 행태는 1637년 가도가 청군에게 함락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들은 ‘오랑캐 지역 정탐’ 등을 내세워 수시로 압록강을 건너 후금의 점령 지역까지 출몰했고, 그곳에 살던 요민들을 불러모았다. 더욱이 청북의 곳곳에는 모문룡이 설치한 둔전까지 널려 있었기 때문에 요민들은 계속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조정은 후금의 보복을 우려했지만 모문룡을 견제할 이렇다 할 방도가 없었다. ●‘해외천자(海外天子)’의 사기 행각 모문룡은 ‘요동 수복’을 표방했지만 사실 그는 그럴 능력이나 의지가 없었다. 그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후금으로 하여금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산해관(山海關)의 울타리’ 역할을 할 뿐이었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 모문룡은 그저 ‘군량을 축내는 존재’,‘밀수 왕초’로 변해갔다. 가도는 척박한 섬이었지만 해상 교통의 요충이었다. 해마다 봄철이 되면 산동(山東), 절강(浙江) 등지에서 상선들이 몰려들었다. 해로는 험난했지만 명 조정이나 조선 조정의 감시가 제대로 미치지 않는 곳에서 벌이는 밀무역의 이익이 짭짤했기 때문이다. 조선 상인들은 가도에서 은과 인삼으로 비단과 생사(生絲), 청람포 등 중국 물화를 구입했다. 조선 상인들은 그것을 후금 상인들에게 넘기거나, 부산의 왜관으로 가져가 일본 상인들에게 전매하여 이득을 챙겼다. 한족 상인들과 후금과의 사이에 밀무역이 벌어지기도 했다. 모문룡은 가도에 세관(稅關)을 설치하여 왕래하는 상인들로부터 통행세를 징수했다. 때로는 그 자신이 직접 무역을 벌였다. 모문룡의 창고에는 은을 비롯하여 중국의 비단과 직물, 조선 인삼, 후금의 모피 등 온갖 물화들로 넘쳐났다.1624년 3월, 모문룡은 사람을 보내 이괄의 반란이 평정된 것을 축하했다. 그런데 그가 인조에게 보낸 예물 가운데는 춘의(春意)라 불리는 여인의 나체상도 있었다. 조선은 그것을 도로 반송했지만 당시 가도로 온갖 물건들이 유입되고 있었던 실상을 보여준다. 모문룡은 때마다 환관 위충현(魏忠賢)에게 두둑한 뇌물을 보냈다. 천계(天啓) 연간 명의 실권자나 마찬가지였던 위충현은 그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었다. 기록에 따르면 ‘모문룡은 한 번에 오륙십 가지로 차려진 성찬(盛饌)을 들고, 식사 때마다 여덟 아홉 명의 미희(美姬)들로부터 시중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바다 밖의 천자(海外天子)’였다. 명 조정의 감시에서 벗어나 있었고, 수군을 갖추지 못한 후금의 위협으로부터도 안전했다. 더욱이 조선은 그를 ‘은인’으로 섬기고 있었으니 그의 ‘현실 안주’는 어쩌면 당연했다. 모문룡은 노회한 인물이었다. 평소 안락을 즐기다가도 명 조정으로부터 ‘모문룡을 감사(監査)해야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움직였다. 조선 땅에 상륙하여 후금을 공격하는 시늉을 했다. 그 과정에서 조선에 민폐를 끼쳤고, 궁극에는 후금을 자극했다. 정묘호란 직전, 모문룡은 분명 후금의 침략을 불러들이는 ‘인계철선’이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일제때 고국 뜬 한인·일인 할머니들

    KBS 1TV 수요기획은 광복절을 맞아 ‘8·15특집-고향의 봄’을 15일 오후 10시30분에 방송한다. 지난 세기, 그것도 일제강점기의 상처를 아직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지난 7월 일본의 치매환자 요양시설에서 만난 김득생 할머니. 시설 직원에 따르면 ‘일본사람인 척하는 할머니’다.“한국 사람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할머니는 한국말로 “저는 한국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 반면 한국에서 만난 기미코 할머니는 끝까지 인터뷰를 거절한다. 자기가 일본 사람인 것을 이웃이 알게 될까봐 두렵다고 말한다. 서울 하월곡동에 사는 아오키 할머니는 고향 홋카이도에서 어머니가 담가 주시던 우메보시의 맛을 잊지 못한다. 우메보시는 매실을 소금에 절여 만든 일본의 전통음식. 그는 고향을 떠난 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만들어 먹는다. 서울 대방동에는 한국에 사는 일본인 부인의 모임인 ‘부용회’가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에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져 광복 이후에도 한국에 남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 가해자’란 멍에를 쓰기 일쑤이고 자식한테서까지 ‘일본놈’ 소리를 들으며 살아와야 했다. 이밖에 재일한국인 차별의 역사와 현실을 보여주는 우토로 마을, 일본군 비행장 건설에 동원되었던 징용피해자 최씨 할아버지의 고독한 죽음도 살펴본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아프간 피랍사태와 언론의 국제경쟁력/최영재 한림대 교수

    아프가니스탄 한인 피랍 및 피살 사건은 우리에게 충격과 분노, 우려, 당황, 기대, 절망과 같은 복잡하고 착잡한 감정들이 교차하게 만들고 있다.21세기 세계화의 대표적인 부작용 현상인 테러의 희생자 대열에 우리 국민 23명이 연루된 위기사태 앞에서 정부와 언론, 시민들은 엄청난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에서 보듯 테러는 세계화시대에 목격할 수 있는 일종의 현대전이라고 할 수 있다. 탈레반에 의한 한국 국민 피랍사태는 따라서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세계화 공간에서 매우 소규모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탈레반을 압도할 물리적인 힘이나 외교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한국 언론은 관련 정보를 취재할 능력은커녕 테러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정보를 적절히 걸러내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나라밖 분쟁지역에서 발생한 국가적 위기사태에 관한 국내 언론의 취재력 부재는 우리 언론의 취약한 국제경쟁력을 드러냈다. 한국 언론은 외국 언론의 오보를 확대 재생산할 뿐 아니라 탈레반의 언론보도 전략에 어쩔 수 없는 희생양이 되고 있다. 한국 언론의 취약한 국제 취재망은 국가적 차원에서 투자해서 보완하면 된다. 하지만 국가적 위기사건에 관한 우리 언론의 근본문제는 사태의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아 사회적 분란을 일으키는 ‘희생양 찾기’ 보도의 문제를 반복하고 있는 데 있다. 가령 이번 납치 및 살해사건의 범인은 누가 뭐래도 탈레반이다. 어찌 됐든 범인이 명확한 마당에 피랍자와 그 가족, 정부, 그리고 국민 모두 피해자 일 수밖에 없다. 납치자이자 살인자인 탈레반을 처벌할 능력도, 엄두도 못 내고 괴롭힘만 당하고 있는 우리는 안타깝게도 피해자인 우리 자신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우를 범하고 있다. 7월20일 경 피랍 뉴스가 날아들자마자 일부 시민들과 언론은 피랍자들의 위험지역 입국문제 등을 지적하며 피랍을 자초한 꼴이라고 성토했다. 서울신문도 7월21일자 3면 기사와 7월25일자 사설 등에서 피랍의 “주원인으로 일부 개신교회의 무분별한 해외선교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물론 피랍자들이 사전에 좀 더 신중했더라면 불행한 사태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가 명백한 마당에 우리편 희생자를 공격하는 것은 내부의 갈등과 불신을 키우는 적전 분열 효과를 초래하므로 언론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적지 않은 언론들이 또한 피랍의 원인을 아프간 입국 제한조치를 엄하게 하지 않은 한국 정부, 인도주의적 임무 수행을 위해 파견된 아프간 주둔 한국 부대, 심지어 아프간전쟁을 일으킨 미국 등에서 찾으려 했다. 이런 예들은 피랍이 발생한 정황은 될지언정 진정한 피랍의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서울신문도 피랍자의 조속한 석방에 대한 염원이 지나쳐서인지 피랍에 관한 엉뚱한 원인을 나열하기도 하고, 때로는 결과적으로 탈레반의 요구사항에 동조하는 결과를 빚는 비논리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다. 7월23일 사설은 아프간 주둔 부대가 “아무리 인도주의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테러의 표적이 된다면 오래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고,7월30일과 8월1일 사설에서는 탈레반이 요구하는 수감자 맞교환을 위해 아프간 당국과 배후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있을 수 있는 주장이지만 논리와 전략이 빈곤하여 탈레반에 이용 당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몇가지 해결방안이 서울신문안에서 발견된다.“네 탓, 내 탓 공방은 문제가 해결된 뒤에 해도 된다(7월28일 사설).”는 것이고,“미국의 역할을 주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책임론을 주장는 것은 온당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8월4일 사설).”는 것이다. 최영재 한림대 교수
  • [씨줄날줄] 붉은 초승달/구본영 논설위원

    크루아상은 초승달을 가리키는 프랑스어다. 프랑스인들의 아침 식단에 흔히 오르는 빵도 크루아상이다. 모양이 초승달을 닮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 빵의 유래는 다양하다. 가장 그럴싸한 게 17세기말 이슬람제국 오스만 튀르크의 유럽 침공에서 기원한다는 가설이다. 그들은 초승달 깃발을 앞세우고 오스트리아까지 쳐들어왔다. 이때 폴란드 왕이 지원군으로 나서 그들을 물리친 뒤 이 빵을 만들게 했다고 한다. 그 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가 루이 16세에게 시집가면서 이 빵이 프랑스로 건너갔다는 것이다. 초승달(新月)은 한때 중동을 석권했던 페르시아 사산왕조의 문양이었으나, 이후 이슬람 왕국에서 지배권력의 상징처럼 됐다. 폴란드의 소비에스키 3세가 크루아상 빵을 만들게 한 동기가 재미있다.“적의 상징을 씹고 또 씹어라.”라는 의도란 것이다. 일종의 ‘문명 충돌’의 상흔인 셈이다. 여기에서 착안한 이론이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일 것이다. 그는 이슬람과 서구의 충돌을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가치관이 빚는 대립의 산물로 파악했다. 특히 두 종교의 이질성뿐만 아니라 유사성에서도 갈등이 비롯된다고 보았다. 공세적 포교가 그런 공통점의 하나다. 즉 “이슬람은 처음부터 정복을 통해 교세를 넓혔으며, 기독교도 그런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10일부터 탈레반에 인질로 잡혀있는 한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우리 정부와 탈레반 간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이 대면 접촉을 성사시키는 데 현지의 적신월사(Red Crescent Societies)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적신월사는 이슬람권 국가들의 적십자사다. 종교적 거부반응 때문에 십자가 대신 이슬람의 ‘붉은 초승달’을 상징 마크로 쓴다. 기독교인들인 한인 인질들에게 적신월사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 셈이다. 문명 충돌론보다는 문명 조화론적 시각에서 협상해야 피랍자들이 무사히 석방될 것이란 예감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이는 ‘적십자’와 ‘붉은 초승달’이 인류애라는 공통의 지향점에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적대감에서 유래한 크루아상이 프랑스에서 그냥 맛있는 빵으로 자리잡았듯이 말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Metro] 송도국제단지에 아트센터 건립

    인천시는 13일 송도 국제업무단지 내 11만 2000㎡의 부지에 문화단지(5만 6000㎡)와 지원단지(5만 6000㎡)를 갖춘 인천아트센터를 2012년 말까지 건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화단지는 1700석 규모의 콘서트홀과 대·중·소 공연장, 예술학교, 도서관, 프로덕션 스튜디오 등이 들어서게 된다. 지원단지는 장기체류 외국인을 위한 주거단지와 아시아 최초의 ‘슈퍼 명품거리’, 호텔, 한인국제교류센터, 이민사역사관 등이 조성된다. 연말까지 시민 아이디어, 국내외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해 내년 상반기 건축설계를 거쳐 착공할 방침이다.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사설] 탈레반, ‘인도적 결단’ 돌이켜선 안돼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인 인질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한인 23명이 납치된 지 3주를 훌쩍 넘긴 12일 탈레반 측이 한때 생존 인질 21명 가운데 건강 상태가 나쁜 여성 2명을 우선 석방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탈레반 측이 다시 “지도자위원회가 계획을 보류했다.”고 하는 등 오락가락했지만, 일단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풀린 게 아닌가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탈레반 측이 여성 인질 2명을 풀어주었다고 했다가, 보류했다고 번복 발표한 배경을 현재로선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들이 밝힌 대로 석방 의도가 인질 건강을 감안한 “선의의 표시”였지만, 내부 이견이 뒤늦게 불거진 결과일 수 있다. 아니면 한국이 아프간 정부를 움직여 탈레반 죄수를 석방하도록 촉구하는 심리전이었을 개연성도 있다. 경위야 어쨌든, 우리는 인질과 탈레반 죄수의 맞교환을 고집해온 납치세력이 일부나마 인질을 풀어주기로 마음 먹었던 것만 해도 퍽 고무적이라고 본다. 인질극이 평화를 지향하는 이슬람 교리에 맞지 않을뿐더러 무고한 민간인을 죄수 석방 등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것은 인도주의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인질극이 이슬람 세계 내에서도 반이슬람적인 행위로 지적받고 있는 점을 직시, 하루속히 인도적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 아울러 탈레반 측이 다소간 유연성을 보인 만큼 우리 정부도 실기하지 않기를 당부하고자 한다. 그동안 대면 접촉에서 탈레반 죄수의 석방은 한국정부 권한을 벗어난 사안임을 통보한 것처럼, 원칙적인 기조는 지키되 다양한 협상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협상의 고삐를 조이길 바란다. 탈레반의 영향권에 있는 지역에 대한 인도적·경제적 지원 등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도 참고해야 할 것이다.
  • 현역 재미교포 의사, 산드라 블록 영화 조연

    현역 재미교포 의사, 산드라 블록 영화 조연

    현역 한인 의사가 할리우드 스타 산드라 블록 주연의 영화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국 LA에서 내과 의사로 활동중인 켄 정(Ken Jeong)씨는 2008년 초 개봉 예정인 산드라 블록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올 어바웃 스티브(All about Steve)’에 출연한다. 얼굴만 스치는 역할이 아닌 꽤 비중있는 당당한 조연으로 출연하는 것. 이 영화는 인기 TV 시리즈 ‘스푼스’로 잘 알려진 필 트레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올 어바웃 스티브’는 글자 맞추기 퍼즐에만 푹 빠져 있던 산드라 블록이 한 번 데이트 한 CNN의 카메라맨 스티브(브래들리 쿠퍼 분)에게 ‘필’이 꽂혀 전국을 뒤쫓아 다니는 소동을 그리는 코미디다. 켄 정은 이 영화에서 뉴스 프로듀서 역을 맡아 주인공인 스티브와 그의 좌충우돌 뉴스팀을 이끌게 된다. 현역 의사이면서도 할리우드에서는 코미디언으로 유명한 정 씨의 영화 출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씨는 이미 지난 6월 개봉된 세스 로젠, 캐서린 헤이글 주연의 ‘임신(Knocked Up)’에서 산부인과 의사 닥터 쿠니로 출연했으며 내년 8월8일 개봉 예정인 세스 로젠, 제임스 프랑코 주연의 코미디 영화 ‘파인애플 익스프레스(The Pineapple Express)’에도 나온다. ’닥터 켄’이라는 닉네임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켄 정은 원래 듀크 대학과 노스캐롤라이나 의대를 나와 뉴올리언스의 한 병원에서 레지던트까지 수료한 의학도다. 그는 대학 연극반에서 연기활동을 했으며 대학원 시절엔 자신이 살던 뉴올린언스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참가한 코미디 대회에서 입상하면서 NBC 방송국의 회장 브랜든 타티코프와 코미디 극단 ‘Improv& Laugh Factory’ 의 설립자 버드 프리드먼의 제안으로 LA로 건너와 본격적으로 코미디언 활동을 시작했다. ’디 오피스’ ‘보스턴 리걸’ ‘크로싱 조단’ 등의 드라마에 조단역으로 나왔으며, ‘임신’ 이후 ‘엉클 P’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등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37세의 켄 정은 ‘미국에서 가장 웃기는 의사’로 불리며 TV에서 영화를 넘나들며 주가를 높이고 있다. LA에 살고 있는 켄 정의 아내 트랜 호 역시 가정의로 일하고 있으며 슬하에 쌍둥이 딸들을 두고 있다. 나우뉴스 캐나다 명 리 통신원 myungwlee@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바지소송’ 美판사 새 일자리 찾아야

    재미(在美) 한인 세탁소 주인을 상대로 한 5400만달러(약 500억원)짜리 ‘바지소송’으로 유명해진 로이 피어슨 워싱턴 D C 행정법원 판사가 사실상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워싱턴 포스트(WP)는 8일(현지시간) “판사재임용심사권을 가진 시위원회가 피어슨 판사에게 10년 임기의 판사 재임용이 거부될 수 있다는 편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WP는 이번 시위원회의 결정이 피어슨 판사의 부당한 ‘바지소송’뿐만 아니라 지난 2년 동안의 판사로서 자질과 업무 평가도 함께 고려되어 정해졌다고 전했다. 이중에서 이번 재임용 탈락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요소는 ‘바지 소송’으로 인해 제기된 판사로서의 자질 문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피어슨 판사가 아직 정식으로 재임용에 탈락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 15일간 피어슨 판사는 이번 결정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수 있으며,9월에 열리는 다음 시위원회 심사 때 재임용을 다시 요구할 수 있다.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사설] 인질 해법 못 내놓은 美·아프간 정상

    탈레반 세력에 의한 한국인 인질 사태가 벌써 20일을 넘겼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 그제 정상회담을 마쳤지만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양국 정상은 “인질석방 협상에서 탈레반에 보상이 주어져선 안된다.”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질들에 대한 납치세력의 추가 위해 가능성마저 우려된다. 우리는 이번 미·아프간 정상회담이 기대에 못미친 데 대해 퍽 유감스럽게 생각한다.‘테러범들과는 타협이나 거래가 없다.’는 양국의 공식적 입장을 일면 이해하지만,21명이나 되는 무고한 인질의 생사가 걸린 상황이 아닌가. 양국 정상이 “냉혹한 살인자”라고 탈레반 측을 비난하자, 당장 납치단체 측에서 “끔찍한 결과에 대해 미·아프간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는 형편이다. 양국, 특히 미국 정부는 대외적으로 대 테러전의 원칙을 견지하더라도 실제로 석방교섭을 펴는 과정에선 좀더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인질-탈레반 죄수 맞교환 불가 원칙을 큰 틀에서 지키면서도 창의적인 해법을 찾자는 얘기다. 일부 전문가들은 탈레반측이 피랍 한인 여성인질을 풀어주면 비전투요원 출신 탈레반 여성 수감자를 아프간 정부가 사면하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마침 탈레반 측도 여성 수감자를 석방하면 그 수만큼 여성 인질을 내놓겠다고 하고 있지 않은가. 인질 사태가 장기화하지 않도록 우리 정부도 적극적 역할을 할 때임을 강조하고자 한다.9일 지르가(아프간-파키스탄 부족장회의)도 예정돼 있는 만큼 이슬람권을 움직이는 데 외교력을 집중하기를 당부한다. 탈레반과의 대면협상 창구를 조속히 구축하는 한편 이슬람 세계에 영향력이 있는 적신월사의 측면 지원도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1) 모문룡의 작폐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31) 모문룡의 작폐Ⅰ

    인조반정 성공 이후 조선이 표방했던 대외정책의 성격은 ‘친명배금(親明排金)’이었다. 그런데 ‘친명’은 분명 실천했지만 ‘배금’은 쉽사리 실천할 수 없었다.‘배금’을 실천하려 할 경우 필연적으로 후금과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조선의 존망까지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괄의 난을 비롯한 내부 변란을 겪었던 와중에 조선은 후금과 군사적 모험을 벌일 능력도 여유도 없었다. 조선이 1627년 후금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모문룡(毛文龍)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모문룡과 가도 ( 島)의 동강진(東江鎭)은 인조반정 이후부터 병자호란 직후까지 조선, 명, 후금 삼국관계의 ‘키워드´였다. ●모문룡과 가도의 존재 의미 1618년 누르하치에게 무순(撫順)을 빼앗긴 이후 명은 요동에서 연전연패했다.1619년 사르후에서 참패한 직후 개원(開原)이 무너졌고,1621년에는 요양(遼陽)이,1622년에는 광녕(廣寧)이 넘어갔다. 정치, 군사적 거점이자 전략적 요충이었던 요양과 광녕이 함락됨으로써 명은 사실상 요하(遼河) 이동의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했다. 만주의 상실은 조선과 명을 연결하는 육로가 사라진 것을 의미했다. 이제 조선과 명이 연결되려면 철산(鐵山)에서 요동반도 연해를 거쳐 등주(登州)로 이어지는 해로를 이용해야만 했다. 그것은 육로에 비해 불편하고 위험했다. 실제 조선과 명의 신료들은 험악한 해로를 두려워하여 상대방 국가로의 사행(使行)을 꺼리게 되었다. 한 예로 1626년 조선에 왔던 한림원(翰林院) 편수(編修) 강왈광(姜曰廣)은 이 위험한 바닷길을 ‘고래 아가리(長鯨之口)’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요동 길이 사라진 것은 조선에 대한 명의 영향력과 ‘통제력’이 대폭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과거에는 조선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경우, 북경 정부는 요양의 요동도사(遼東都司)를 통해 바로 조선을 견제할 수 있었다. 해로를 통해서는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바로 그때 등장한 인물이 모문룡이다. 앞에서(25회) 언급했지만 광해군은 모문룡을 ‘화근’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를 설득하여 섬으로 밀어 넣었다.1622년 철산 앞바다에 있는 가도( 島)로 들어갔던 모문룡은 가도와 주변의 목미도(木彌島) 등을 아울러 동강진이라는 군사 거점을 만들었다. 일개 섬에 불과한 가도를 거점으로 요동을 수복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 조정은 가도를 매우 중시했다. 후금과 조선을 견제하는 전략 거점으로 보았던 것이다. 특히 1626년 명의 주문욱(周文郁)은 가도의 존재 의의를 명확히 정의했다.‘조선은 비록 약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조선이 후금에 넘어가면 우리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가도는 바로 조선이 반역하는 것을 방지하는 거점이다’. ●‘찬밥’에서 ‘은인’으로 변신 가도는 농토가 적고 척박한 섬이었다. 식량을 자급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모문룡이 가도로 들어간 이후 수많은 요동 출신 한인(漢人), 즉 요민(遼民)들이 가도로 몰려들었다. 모문룡을 ‘비빌 언덕’이자 의지처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도에 식량이 없어 굶주리게 되자 요민들은 다시 조선에 상륙했다. 이미 광해군 말년부터 철산, 용천, 의주 등 청천강 이북(淸北)지역은 요민들로 넘쳐났다. 요민들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식량을 구걸했다.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관아를 습격하거나 민가를 약탈했다. 조선 백성들의 피해가 급격히 늘어났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요민들 때문에 후금의 침략 위협이 높아지는 점이었다. 자신들이 점령했던 요동 지역에서 노비로 부렸던 요민들이 줄지어 가도와 조선 영내로 탈출하자 후금은 격앙되었다. 이미 1621년 12월, 후금은 모문룡을 제거하기 위해 조선을 침략한 적이 있거니와 후금은 조선 조정에 거듭 경고했다. 모문룡을 축출하고, 요민들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요구했다. 광해군은 후금의 침략을 우려하여 모문룡을 채근했다. 휘하 병력을 육지에 상륙시키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요민들을 속히 산동(山東) 지역으로 이주시키라고 요구했다. 모문룡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광해군 또한 식량과 군수 물자를 제공해 달라는 모문룡의 요구를 회피했다. 모문룡은, 자신의 요구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광해군에게 이를 갈았다. 광해군때 ‘찬밥’ 신세였던 모문룡은 인조반정을 계기로 ‘은인’으로 변신했다. 그가 인조가 명 조정으로부터 승인받는 데 힘을 썼던 것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인조대의 모문룡은 광해군때보다 조선에 훨씬 버거운 존재가 되었다. 인조와 조선 신료들은 모문룡이 보낸 차관(差官)을 융숭하게 대접했고, 그때마다 거의 빠짐 없이 ‘인조가 책봉된 것은 모야(毛爺)의 덕분’이라는 상찬을 빼놓지 않았다. 더욱이 이괄의 난 때문에 정권을 잃을 뻔했던 뒤로 모문룡에 대한 의존 심리가 더 높아졌다. 이미 반란 초기에 모문룡에게 원병을 요청했다. 문제는 정권의 모든 역량을 기울여 난을 겨우 진압한 다음이었다. 반란 진압으로 힘이 거의 고갈되자 인조 정권은 후금이 침략해 오는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연히 유사시 모문룡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조 정권은 모문룡의 공적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를 세웠다. 조선을 오가는 명나라 사신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인조반정의 원훈(元勳)이었던 김류(金 )가 붓을 들었다. 그는 비문에서 먼저 모문룡이 진강(鎭江)에서 이룩한 승리의 전말을 기록하고 찬양했다. 이어 ‘모문룡의 은혜를 배신한 광해군의 배은망덕’을 질타했다.1621년 12월, 후금군이 모문룡을 공격한 것은, 실상 광해군의 밀지(密旨)를 받은 의주부윤 정준(鄭遵)이 모문룡을 제거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유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류는 나아가 ‘모문룡이 조선을 후금으로부터 지켜주고 동방의 백성들을 보호해준 덕과 은혜가 하늘과 같다’고 찬양했다. 그러면서 모문룡이 ‘요동 수복’의 대업을 이룰 것이라며 그의 앞길을 축원했다. ●격화되는 모문룡의 폐해,‘은인’의 실상 김류의 찬양과 기대는 오산(誤算)이자 부질없는 짓이었다. 모문룡은 ‘요동 수복’은커녕 조선을 도울 역량이나 의지도 없는 인물이었다. 가도로 들어간 이후, 그가 보였던 행태를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모문룡은 가도와 목미도의 이름을 제멋대로 뜯어고쳤다. 본래 가도와 목미도는 엄연히 조선 땅이지만 모문룡이 점거한 이후 명에 임대되었다. 모문룡은 가도를 피도(皮島)로, 목미도를 운종도(雲從島)로 고쳤다. 순전히 미신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문룡은 자신의 성인 ‘모(毛-터럭)’는 ‘가죽(皮)’이 없으면 붙어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가도를 피도로 바꾸었다. 또 자신은 ‘용(龍)’인데 ‘용은 구름 속으로부터(雲從) 나온다.’는 속설에 따라 목미도를 운종도로 바꾸었다.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데 급급했던 인물이었다. 인조와 조선 조정이 모문룡을 ‘은인’으로 인식하면서 그 휘하의 병력과 요민들에 대한 태도에 변화가 나타났다. 광해군때와 달리 그들이 조선 영내로 상륙하는 것을 제지하지 않고 방임했다. 그것을 계기로 10여만 이상의 요민들이 청북 지방을 휩쓸었다. 휘하의 병력들은 용천, 철산 일대에 둔전(屯田)을 설치했다. 기세등등한 그들의 횡포 앞에 조선의 지방관들은 움츠러들었다. 떼를 지어 다니며 민가를 약탈하고 백성들을 구타하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다. 청북의 백성들은 그들의 횡포를 피해 이주했다.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조정은 연일 대책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모문룡을 ‘은인’으로 여기는 한 뾰족한 방도는 없었다. 이정구(李廷龜)는 요민들을 ‘새로운 홍건적(紅巾賊)’이라 지칭하고, 방치할 경우 청북은 조선 영토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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