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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ekend inside] 박사 4명중 1명 백수시대… 20년 넘게 공부만 한 고학력 실업자의 비애

    [Weekend inside] 박사 4명중 1명 백수시대… 20년 넘게 공부만 한 고학력 실업자의 비애

    박사(博士)는 원래 관직이었다. 삼국시대 고구려에는 태학박사가 있었고 백제와 신라에도 역시 박사라는 관직이 있었다. 시대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존경받는 사표로서 ‘교육’을 담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늘날 박사는 정규 교육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자격이자 ‘학문의 정점’을 의미한다. 걸맞은 영예와 대우가 주어진 시절도 있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박사학위는 선망하는 직업인 대학교수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박사학위가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다. 초·중·고교 12년과 대학 및 석·박사 과정 최소 9년 등 21년 이상을 투자하지만 영예는 소수에게만 허락될 뿐이다. ‘고학력 실업자’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단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1만 1645명. 이 중 취업자는 75.1%에 불과하다. 그나마 시간강사 등 비정규직을 포함한 수치다. 박사 4명 중 1명은 놀고 있다는 얘기다. ●“확실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귀국 포기” 미국 워싱턴과 버지니아, 메릴랜드 일대에는 한국인 박사들이 넘친다. 국립보건원(NIH)을 중심으로 수많은 연구소와 기업, 대학들의 근거지인 이곳에 있는 한인 박사만 줄잡아 500명이 넘는다. 이들의 신분은 대부분 박사후연구원(포닥·post doctor)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포닥 재수생이 급증하고 있다. 포닥을 거쳐 한국에서 취업을 했다가 다시 포닥을 택한 사람들이다. 의대 연구실에서 일하는 김모(36)씨는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4년 정도 포닥으로 있다가 한국 지방대에 강사로 갔지만 시간당 몇만원씩 받고 일하는 것이 비참해 다시 돌아왔다.”면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5년 정도 포닥을 하면 대부분 한국으로 갔는데 최근에는 8~10년차도 있다.”고 전했다. 미국 내에만 수천명에 이르는 포닥들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 동부의 한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정모(34·여)씨는 “기업의 연구원이나 정부출연연구소 비정규직이라도 갔으면 좋겠다.”면서 “하지만 확실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기다리는 것이 낫다고들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예 귀국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김모(43)씨는 “대부분이 한국 복귀를 꿈꾸지만 미국 생활이 길어지면 자녀 교육 등의 문제로 그마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국내 박사들의 고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유명 사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모(39)씨는 대덕단지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을 택했다. 대전 지역에서 교수가 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3년이 넘도록 교수 자리도, 연구소 정규직 자리도 얻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박사학위로 얻은 것은 언제 계약이 해지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신분”이라고 푸념했다. 이씨의 과 동기 중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7명이지만 교수는 단 한 명뿐이고 대부분 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인문계·여성일수록 문제 심각 박사들의 위기는 ‘과잉’의 문제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고등교육통계에 따르면 2000년 6141명이던 박사과정 졸업자는 지난해 1만 1645명으로 거의 두 배에 이르고 있다. 특히 학사와 석사과정 입학생 숫자가 지난 10년간 큰 변화가 없는 반면 박사과정 입학생은 연평균 6%씩 늘고 있다. 대학교수와 연구소 정규직, 기업체 연구직 등 박사학위 소지자가 원하는 자리가 박사학위 소지자만큼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본격화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미석 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1990년대 말만 해도 박사 취업의 가장 큰 문제는 인맥·학연 등 불공정한 채용 관행, 여성 배척 등이었다.”면서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박사급 채용 기회 자체가 줄어든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사 취업난은 이공계보다 인문사회계열이, 남성보다 여성이 더 심각하다. 지난해 공학계열의 박사학위 취득자 2935명 중 2308명(78,6%)이 취업했고, 의약계열은 2091명 중 1690명(80.8%)이 취업에 성공했다. 반면 인문계열은 1064명 중 412명(38.7%)만 취업하는 데 그쳤다. 특히 국문학 박사는 221명 중 64명, 중문학 박사는 44명 중에 14명, 영문학 박사는 96명 중에 25명만 취업하는 등 어문계열의 취업난이 두드러졌다. 사회계열은 2120명 중 1465명(69.1%)으로 비교적 높았지만, 상경이나 법학 등 계열 특성상 졸업생 중 직장을 다니는 사회인이 많아 실제 취업률은 이보다 낮을 것으로 보인다. 예체능 계열의 경우 632명 중 296명만이 취업했지만, 전공 특성상 프리랜서가 많아 뚜렷한 의미가 없다는 것이 KEDI의 분석이다. 한국연구재단 관계자는 “이공계 졸업생이 대학과 연구소, 기업 등 순차적으로 눈높이를 낮출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있는 데 비해 인문계열은 교수 아니면 회사원뿐”이라면서 “인문계는 해외 진출도 힘들다.”고 밝혔다. ●박사 취업난은 구조적 실업 전문가들은 최근 박사들의 취업난을 구조적 실업으로 진단한다. 진 선임연구위원은 “10년 전만 해도 고급 인력은 일자리의 절대적 숫자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정보 부족, 선호도 및 눈높이 등에서 기인한 마찰적 실업이었다.”면서 “그러나 현재는 아무리 눈높이를 낮추고 구인·구직 정보 소통이 활발해도 배출되는 인재를 수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박사가 만능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한편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인재를 선택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맞춤형 인재정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는 한국콜마를 꼽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기업 규모가 작은 한국콜마는 1994년부터 대졸 연구원들에게 업무와 관련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30여명이 학위를 받았다. 연구기관·대학·대기업 등으로 한정된 진로 선택에서 벗어나 지식 기반의 소규모 창업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진 선임연구위원은 “연구·개발(R&D)만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창업하거나 지식서비스를 제공하는 소규모 연구소를 만드는 일을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 주고 인재들도 진취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사 학위 자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석·박사 전문 리크루팅 사이트 ‘하이브레인넷’을 창립한 우용태 창원대 교수는 “젊은 인재들을 해외에 파견해 핵심기술이나 학문을 익힐 수 있도록 하는 등 우수한 박사급 인력에 대해서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도 박사 숫자를 조정하기 위해 대책을 내놓고 있다. 교과부는 대학이 박사과정 정원을 1명 줄이면 석사과정 정원을 2명 늘려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학설립·운영규정’ 일부 개정안을 최근 입법예고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박사과정 입학생의 3분의1을 상위 10여개 대학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머지 대학들에 석사정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박사 학위 남발을 막는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건형·신진호기자 kitsch@seoul.co.kr
  • “독도 세리머니 해명위한 현장사진·동영상 제출”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이 국제축구연맹(FIFA)에 ‘박종우 독도 세리머니’ 해명절차를 마쳤다. 축구협회는 16일 “김 사무총장이 이날 오전 스위스 취리히의 FIFA 본부를 방문해 상벌 관련 담당부서에 박종우 세리머니에 대해 설명했다. 당시 현장상황을 입증할 사진과 동영상도 함께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직접 FIFA를 찾아 해명한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박종우(부산)는 2012런던올림픽 남자축구 3, 4위전에서 일본을 꺾은 뒤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달렸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를 ‘정치적 행위’로 간주해 FIFA에 사건 조사를 맡겼다. 협회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FIFA를 직접 방문했고 조사 마감시한인 16일 브리핑을 마쳤다. 김 사무총장은 박종우의 세리머니가 사전에 계획된 게 아니라 관중이 건네준 종이를 받아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임을 강조했다. 이제 FIFA와 IOC의 결정만 남았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장대비 뚫고 곳곳에서 ‘日 규탄’ 잇따라

    장대비 뚫고 곳곳에서 ‘日 규탄’ 잇따라

    제67주년 광복절인 15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등 서울 곳곳에서 일제의 침략과 이후 일본의 태도를 규탄하는 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시간당 50㎜를 넘는 장대비 속에서도 시위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최근 런던올림픽 축구 국가대표 선수의 ‘독도 세리머니’ 논란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광복절이 때마침 수요집회와 겹쳐 집회 규모를 키우는 기폭제가 됐다. 이날 낮 12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주최한 1035번째 수요시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86)·박옥선(89) 할머니를 비롯해 학생과 시민 등 2000여명(경찰추산 1000여명)이 모였다. 정대협은 성명을 통해 “위안부 범죄와 침략전쟁 등에 대해 일본은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고 공식 사죄, 법적 배상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날 시위에 참석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반드시 묻고 협상할 것”이라면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입찰을 제한하고, 교과서 역사왜곡과 독도 문제에 관해서도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앞선 오전 11시 시민단체인 독도 NGO포럼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의 독도는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서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 주장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후 1시 30분부터는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가 ‘새로운 한·일관계 시대를 열자:반성·사죄·용서·화해’를 주제로 한 세족식이 열렸다. 세족식에는 한국인과 결혼해 우리 국적을 취득한 일본 출신 여성 10명이 참가해 태평양전쟁 피해자 유가족 10명의 발을 씻기는 의식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정대협은 오후 4시부터 밤늦게까지 청계광장에서 별신굿과 각종 공연 등으로 이뤄진 ‘정신대 해원상생 대동한마당’ 행사를 진행했다. 동아시아의 화해와 상생을 기원하는 이 행사는 1993년부터 격년제로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일본 도쿄와 후쿠야마, 미국 워싱턴 등 국외에서도 현지 한인단체를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연대집회가 열었다. 한일협정재협상국민행동 등 4개 단체는 이날 오후 2시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 침탈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자주적 민주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광복의 과제를 아직도 완수하지 못했다.”면서 우리의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국제앰네스티도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는 성노예 생존자들에게 자행한 범죄에 대해 분명히 사죄하고 이들이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국가기록원 ‘해방전후의 사할린 한인 희귀 기록물’ 공개

    국가기록원 ‘해방전후의 사할린 한인 희귀 기록물’ 공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할린에 살던 한인이 절반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소련 정부는 한인 감소 원인 중 하나로 일본군의 대량 학살을 지목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일제 만행에 대한 면밀한 진상조사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광복 67주년을 맞아 14일 공개한 ‘해방 전후 사할린 한인 관련 희귀 기록물’에 따르면 사할린 서북부 에스토루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1만 229명의 한인이 살았지만, 전쟁 후에는 5332명밖에 남지 않아 한인 인구가 5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내용은 소련이 1945년 당시 현장을 누빈 민정국 인구조사 담당자가 작성한 보고서에 담겨 있다. 당시 소련 정부는 한인 인구가 5000명 가까이 줄어든 이유로 피란이나 귀환과 함께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한인 학살을 인구 감소 원인 중 하나로 주목했다. 하지만 정확히 몇 명이 언제 어떻게 살해됐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이강수 국가기록원 연구관은 “일본군이 5000명을 모두 살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당시 소련 정부는 한인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이유로 일본군의 한인 학살도 지목했다.”고 말했다. 기록원은 또 러시아와 일본 등에서 일본이 강제동원한 1만 2000여명의 사할린 한인 명부와 서신, 가족관계 및 활동, 귀환운동 관련 기록도 확보했다. 이번에 확보된 사할린 강제동원 관련 명부는 1950년대 일본이 작성한 일본 귀환자 명부 2권(778명), 1960~1970년대 사할린 귀환 재일한국인회가 조사한 귀환 희망자 명부 4권(1만 2600여명), 1980년대 일본과 한국에서의 귀환운동 과정에서 작성된 명부 14권(6000여명)이다. 중복된 명부를 제외하면 모두 1만 1211명이다. 이는 지금까지 일부 공개된 일본의 사할린 한인 강제동원 명부의 3~4배 규모로, 서신과 가족관계 및 활동 관련 기록은 강제동원 사망·행방불명자 유족에게 보상의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소련의 1급 비밀문서에 따르면 당시 소련 정부는 해방 직후 쿠릴 지역 한인들을 사할린으로 이주시켜 일괄 통제했으며, 이들의 귀환 문제는 언급하지 말라는 보도지침까지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15일 광복절 맞는 독립기념관·문화재청·행안부] 가장 오래된 애국가 음반 공개

    [15일 광복절 맞는 독립기념관·문화재청·행안부] 가장 오래된 애국가 음반 공개

    광복절을 앞두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애국가 음반이 공개됐다. 독립기념관은 13일 서울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광복 전인 1942년 애국가 2종과 무궁화가가 수록된 음반 ‘애국가’를 선보였다. 이 음반은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국치일을 폐지하고 독립을 쟁취해 ‘승리의 날’로 삼자는 취지에서 국치일인 1942년 8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선전문과 함께 1달러에 배포했다. 위원회는 또 LA시청에서 태극기 현기식을 가졌다.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외국 공관에 태극기를 게양한 것은 처음이다. 애국가 2종 중 하나는 작곡가 안익태의 곡조를 사용한 현재의 애국가로 나성(LA)한인청년연합승리창가대의 합창으로 녹음됐다. 나머지 1종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의 곡조에 맞춰 부른 ‘옛 애국가’로 재미 성악가 이용준씨의 독창으로 연주됐다. 또 다른 버전의 애국가로 추정되는 ‘무궁화가’도 연합창가대의 합창으로 녹음돼 함께 실렸다. 독립기념관은 1997년 미주 흥사단에서 음반을 기증받았으나 심하게 손상돼 그동안 재생하지 못하다가 올해 동국대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의 기술로 재생에 성공해 일반에 공개하게 됐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영환씨 고문 후유증 차츰 안정… 4개월 지나 별다른 증상 못 찾아”

    중국에서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해 온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49)씨가 13일 경기 성남시 분당의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은 결과 고문의 직접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분당 서울대병원과 김씨 측 관계자 등에 따르면 김씨는 이날 오전 이 병원을 찾아 가정의학과와 피부과, 성형외과, 정신건강의학과 등에서 정밀 검진을 받았다. 피부과, 성형외과 검진은 전기고문 흔적을 찾기 위해 이뤄졌으며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도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의학과는 “4월에 고문 직후 불안 및 분노 증상이 있었지만 이후 차츰 안정돼 가고 있다. 현재로서는 별다른 증상이 없다.”는 소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부과 등도 “시간이 너무 지나 별다른 소견을 찾을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김씨는 지난 8일 전북 전주의 한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지만 직접적인 고문의 흔적을 확보하지 못한 채 MRI 검사에서 광대뼈와 근육 사이에 타박 흔적이 있다는 소견이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흔적이 고문의 증거가 될지를 놓고는 전문가 사이에 의견이 엇갈린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대기권 진입부터 착륙까지 ‘공포의 7분’, 에어백 대신 로봇·크레인… 7년 같았다”

    “대기권 진입부터 착륙까지 ‘공포의 7분’, 에어백 대신 로봇·크레인… 7년 같았다”

    “착륙 확인!” 지난 5일 밤 10시 32분(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의 미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관제실에서 마이크를 통해 이 말이 흘러나오는 순간 수십명의 연구원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당시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흥분시켰던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화성 탐사로봇 ‘큐리오시티’의 착륙 부문 총괄팀장 앨런 첸(33)이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어려운 과정인 착륙 부문을 책임진 첸 팀장이 12일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서울신문과 전화 인터뷰를 갖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타이완계 미국인으로 코네티컷주에서 태어나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한 그는 당시의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한 목소리였다. →큐리오시티가 화성에 무사히 착륙한 걸 확인했을 때 느낌이 어땠나. -매우 흥분됐고 기뻤고 행복했다.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 그동안의 어려움을 이겨낸 팀 동료들이 자랑스러웠다.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 -화성의 뜨거운 열로부터 큐리오시티를 보호하는 것과 자동차만 한 크기의 큐리오시티를 착륙시키는 일이 힘든 과제였다. 원격 조종이어서 큐리오시티를 통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큐리오시티가 우리에게 착륙했다는 신호를 보내는 데 14분이나 걸렸고, 우리가 다시 큐리오시티에게 명령을 내리는 데 14분이 걸렸다. →큐리오시티가 왜 그렇게 커야 했나. -화성에 연구실이 없기에 연구실을 가져갔다고 보면 된다. 화성 표면에서 데이터를 수집할 10개의 장비를 큐리오시티 안에 장착해야 했고, 그 장비들이 과거에 비해 더 크고 정교해졌다. →화성 대기권 진입부터 착륙에 소요된 7분이 ‘공포의 7분’이라고 불릴 만큼 조마조마했다는데. -처음으로 에어백 대신 로봇과 크레인을 이용해 착륙시키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잘못되면 모든 게 끝이었기에 긴장됐고 초조했다. 돌이켜보면 7분이 7년 같았다. →크레인 사용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 -큐리오시티의 무게가 1t이나 되기 때문에 에어백 방식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 정도 무게를 견딜 에어백은 디자인할 수도, 마땅한 재질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천천히 착륙시키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고 헬리콥터에서 로프로 물건을 내려놓는 원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왜 큐리오시티 탐사를 10년간이나 준비해야 했나. -작은 팀에서부터 시작했고 나중에 차츰 인원이 보강되면서 단계적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됐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다. →일각에서는 25억 달러(약 2조 8000억원)나 들인 이번 프로젝트가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 외에 실질적으로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무용론이 제기되는데. -우주개발은 인류에게 영감을 주고 과학을 고무시키고 기술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인간이 화성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단정하기 힘들다. 보내오는 데이터를 통해 화성을 이해하는 일이 먼저다. →현재까지 큐리오시티의 활동은 어떻게 평가하나. -인상적이다. 처음 며칠 동안은 데이터 전송이 적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정보가 들어올 것이다. →화성 탐사와 관련, 다른 나라가 NASA의 기술을 따라올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이미 유럽 등에서 화성 탐사 시도를 여러 번 했다. 사실 큐리오시티는 NASA만의 프로젝트가 아니다. 다른 나라 기술자들이 많은 기여를 했다. 우리의 노하우를 여러 나라와 공유하고 싶다. →금성 탐사는 안 하나. -여러 번 시도했다. 다만 금성은 화성에 비해 훨씬 뜨겁기 때문에 탐사선 착륙이나 작동이 화성보다 어렵다. →미국에 비해 우주개발 기술이 뒤떨어져 있는 한국에 조언을 해 준다면. -한국에도 훌륭한 과학자가 많고 우주에 흥미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 기술, 리스크, 혜택 등을 공유하는 노력을 경주했으면 한다. →우주 과학자가 되고 싶은 한국 어린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꿈을 좇아라. 우주든 과학이든 꿈을 키우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키워라. →큐리오시티 프로젝트에 한국계도 참여하고 있나. -순항(크루즈)팀에 ‘데이비드 오’라는 한인이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멕시코 한인후손들 전통체험

    멕시코 한인후손들 전통체험

    12일 서울 중구 남산골한옥마을을 찾은 멕시코 한인 후손들이 한복 차림으로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이들은 재외동포재단 초청으로 지난 7일 방한해 한국의 문화와 역사 강연, 멕시코 한인이민사 강연, 산업시찰, 기관 및 기업 견학 등을 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커버스토리] 멕시코 한인후손 33명 모국체험 현장 가보니…

    [커버스토리] 멕시코 한인후손 33명 모국체험 현장 가보니…

    1905년 5월 12일, 한인 1031명이 낯선 멕시코 남단 살리나 크루스항에 내렸다.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한 달여의 항해 끝에 닿은 곳이었다. 19세기 말 열강의 식민지 침탈로 해운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선박 로프의 원료가 되는 ‘에네켄’(Henequen·용설란의 일종)을 대량 재배하는 멕시코의 농장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이민 노동자를 대거 모집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무렵 멕시코 유카탄 주(州)의 에네켄 농장주들이 파견한 이민 브로커인 영국인 존 마이어스는 신문에 광고를 낸다. 4년 계약에 이동 경비 지원, 거주가옥 임대 및 연료 무료 제공, 파격적인 임금, 자녀교육 등을 제시했다. 지독한 가난과 열강의 핍박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은 꿈 같은 기회로 여겨 머나먼 땅으로의 이민을 결행한다. 그러나 모두 사기였다. 당시 회사 측은 가족 단위 이민을 권유했는데 알고 보니 이민 노동자들의 현지 이탈을 막으려는 악랄한 책략이었다. 살리나 크루즈항에 도착한 한인들은 곧바로 기차와 배를 타고 에네켄을 재배하는 농장 여러 곳에 10~50명씩 분산 배치됐다. 농장생활은 노예와 다를 바 없었다. 새벽 4시부터 날이 저물 때까지 땡볕 아래서 에네켄 잎을 자르고 섬유질을 벗기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 하루 1만개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채찍질이 가해졌다. 약속된 임금은 나오지 않았고 무상 지원하겠다던 집과 식량도 거액을 주고 사야 했다. 이들은 결국 일 할수록 빚만 쌓여갔다. 이들의 참상을 듣고 고종은 눈물을 흘렸다. 고종은 이들의 송환을 위해 외부협판(차관급) 윤치호를 멕시코 현지로 보내려 했지만 일본이 가로막았다. . 1909년 5월 계약노동이 끝나 한인들은 자유의 몸이 됐다. 하지만 이듬해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돌아갈 곳을 잃었다. 언어 장벽 때문에 다른 일자리를 찾기도 어려웠다. 살 길을 찾아 많은 한인들이 유카탄 주를 떠났지만 대부분은 이듬해 다시 돌아왔다. 멕시코 혁명의 여파로 동양계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1920년대 인조섬유의 등장으로 에네켄 산업이 몰락하자 한인들은 또다시 멕시코 전역으로 흩어졌다. 지난 8일 오후 1시 서울 강남구 삼정호텔 로즈마리홀. 신정환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 통번역학과 교수가 한국 모국체험에 나선 한인 후손 33명에게 들려준 ‘멕시코 한인 이민사’ 일부다. 신 교수가 강의 참고자료로 이민 1세대 사진을 보여주자, 한인 후손들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인 4세인 엘윈 박 사바라(16)가 사진 속에서 현조 할머니를 발견한 것. 엘윈은 “할머니 사진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면서 “가족 구성원들이 강연 내용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감동적이었고 나의 역사에 대해 더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19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선조들의 멕시코 이주사에 대해 약 두 시간 동안 강의를 들었다. 졸거나 딴청을 피우는 이들은 거의 찾아 보기 어려웠다. 멕시코 유카탄 지역의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는 선조들의 사진이 스크린에 뜨자 디지털 카메라로 강의 내용을 담는 이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그들에게 한국은 이미 자신의 ‘일부’라는 인식이 뚜렷했다. 얼빙 노에 리 구티에레스(35)는 “나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하면서 한국 역사에 많은 관심이 있었는데 오늘 강의로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면서 “오늘 강의한 신정환 교수의 논문을 2편 정도 미리 읽은 적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아는 모든 한국의 문화를 그대로 전수해 주겠다.”고 덧붙였다. 얼빙은 또 “내가 온 캄페체에서는 한인 후손들 사이에 한국 이름을 짓는 게 하나의 유행”이라고 전하면서 “과거 2, 3세대 선조들은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4, 5세대는 이름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각해 놓은 한국 이름이 있느냐는 물음에 “‘이한빛’이라는 이름을 갖고 싶다.”며 주저없이 운을 뗐다. 그는 “한국 이름이 예쁘다.”면서 밝게 웃었다. 같은 날 오후 4시.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아파트 단지 태권도 학원에서는 한국문화체험 행사가 열렸다. 이들은 ‘KOREA’라는 검은 글씨가 등에 새겨진 하얀 도복을 갖춰 입고 맨발로 파란색 고무 매트 위에 섰다. 태권도 체험은 영어로 이뤄졌다. 멕시코 한인 후손들은 박철웅(40) 국기원 외국인 지도사범의 지도에 따라 서툴고 엉성하지만 활기찬 움직임으로 제각기 발차기 실력을 뽐냈다. 이들의 기합에 체육관이 쩌렁쩌렁 울렸다. ‘태, 권, 도’라고 하나하나 끊어 읽으며 한 동작 한 동작 따라 하는 이들의 눈에는 늠름함이 배어 있었다. 박 사범이 “아이 러브 코리아(I love Korea)!, 아이 러브 멕시코(I love Mexico)!” 하면 이들은 더 큰 소리와 함성으로 화답했다. 흐르는 땀을 연신 소매로 훔쳐내던 세사르 안토니오 로사드 총(30)은 “태권도를 배우는 게 내 꿈이었다.”면서 “멕시코에 있을 때부터 태권도를 꼭 배워보고 싶었는데 가르치는 곳이 없었다. 한국에 와서 실제로 태권도를 해 보니까 정말 기쁘다.”면서 감격해했다. 태권도가 한국 운동인지 몰랐다는 안순 구 로만(19·여)은 “직접 옷을 입고 체험해 보니 재미있고 태권도가 한국 운동이라니 정말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또 “태권도의 매력은 운동 전 ‘안녕하세요’라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처럼 예의범절을 준수하는 것”이라는 설명까지 해줬다. 엘윈은 “오늘 나의 문화 가운데 새로운 한 가지를 추가해서 무척 기쁘다.”고 웃음지으며 말했다. 이들은 9일에는 한국인들과 2대1로 짝을 이뤄 서울을 둘러보는 시간도 가졌다. 이날 멕시코 한인 후손에게 인사동을 소개한 강신영(26)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학생은 “멕시코 한인 후손들이 모국을 방문한다는 학교 홈페이지 공고를 보고 통역 봉사를 신청했다.”면서 “멕시코에서 1년 1개월 동안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멕시코 사람을 많이 만나봤지만 이들은 느낌이 뭔가 다르다. 한국사람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씨와 함께 인사동을 둘러 본 세사르는 “언어 문제가 가장 걱정이 됐는데 신영이가 스페인어를 잘해서 지금은 모든 게 완벽하다.”면서 “인사동에 처음 와봤는데 신기한 것투성이”라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세사르는 “날이 더우니 맥주 한 잔 하자.”는 강씨의 제안에 “좋다. 그렇다면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마시자.”라고 말하며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생김새는 달랐지만 한민족으로서의 ‘무엇’인가가 통하는 순간이었다. 한국 가정에서 일일 홈스테이 체험도 가졌다. 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아파트. 박범용(51)씨 집에서 일일 홈스테이를 하게 된 아브라함 박 딥(17)과 루이스다니엘 메디나 김(28)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집안을 둘러봤다. 한국관광공사를 통해 그동안 중국, 스페인 등 외국인 여행객을 맞아 왔던 박씨와 그의 아내 박영미(50)씨, 그리고 네 딸 미선(24), 소영(15), 쌍둥이 소진·소미(14)양이 따뜻하게 그들을 맞았다. 미영씨는 이들을 위해 잡채, 통닭, 불고기, 마파두부 그리고 흰 쌀밥을 수북하게 담아 식탁에 올렸다. 모두가 둘러앉아 ‘와’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아브라함은 따뜻한 잡채를 입에 넣으며 연신 “맛있다.”를 연발했다. 루이스다니엘은 미영씨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아브라함은 “한국에서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줘서 친척 집에 온 것 같다.”면서 “남자 형제밖에 없는데 누나와 여동생들이 생긴 게 특히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둘째딸 소영양도 말을 걸고 싶은 눈치였다. 소영양이 더듬더듬 “하우 올드 알유?(How old are you)”라고 묻자 아브라함이 “세븐틴(seven teen). 내가 오빠.”라고 한국말로 답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소진양은 한국 가정에 대한 첫 인상이 궁금했다. 루이스다니엘은 ‘바닥재’가 인상 깊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은 나무모양의 느낌인 장판이 깔려 있는데 멕시코 가정집의 대부분은 시멘트 바닥으로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한인 후손들에게 불고기, 잡채 같은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모국의 따뜻함과 좋은 이미지를 전해 주고 싶어 일일 홈스테이를 자처했다.”면서 “한국 핏줄 아니냐. 한국인이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모국에 와서 보고 느끼면서 한인 후손들이 한국과 연결고리를 갖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명희진·신진호기자 mhj46@seoul.co.kr
  • [커버스토리] ‘할아버지 나라’ 찾아온 애니깽 4세 세사르

    [커버스토리] ‘할아버지 나라’ 찾아온 애니깽 4세 세사르

    이 사내의 할아버지는 ‘치노’라는 말만 들으면 화를 냈다. 치노는 흔히 눈이 째졌다는 뜻으로 멕시코 등 중미지역에서 중국 사람을 비하해 부르던 말이다. “나는 중국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야!” 그의 외할아버지 베드로 정(1985년 작고)이 그렇게 언성을 높였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멕시코에서 사회복지상담가로 일하는 세사르 안토니오 로사도 정(30)은 그때 알았다. 자신이 멕시코로 이민 온 한인 4세라는 걸. 여태껏 집안 가전제품이 삼성, LG 등 한국 제품으로 도배돼 있었다는 걸. ●가전제품 온통 삼성·LG 도배 베드로 정의 아버지는 한국인 정학순씨, 어머니는 멕시코인이었다. 1905년, 정의 외고조 할아버지인 정인복씨가 학순씨 등 세 아들과 함께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에 갔다. 부산엔 두 딸과 아내를 남겨 둔 채. 4년의 계약이 끝났지만 일제 강점기여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학순씨가 멕시코인과 결혼해 정착한 뒤 베드로 정을 낳았다. ●“독도 문제 등 日에 적대감” 외할아버지 얘기를 통해 알게 된 ‘또 하나의 조국’이 궁금해서 그는 지난 7일 한국에 왔다. 다른 32명의 멕시코 한인 3·4세들과 함께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멕시코 한인 후손 모국 체험 연수’에 참여했다. 용설란으로 불리는 에네켄 농장에서 일했던 한인들인 이른바 ‘애니깽’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일주일 동안 서울, 경북 경주, 울산 등지를 돌며 ‘외할아버지의 나라’를 둘러본다. 한국에 오기 전 한국을 가슴에 또 한번 새길 기회가 있었다. 런던 올림픽 경기였다. 여자 양궁 개인전에서 멕시코와 한국이 맞붙었다. 금은 한국 차지였지만 멕시코는 은·동을 가져가며 양궁 사상 첫 메달을 땄다. 멕시코팀 지도자 역시 한국인이었다. 어느 편을 응원할 것 없이 마냥 좋았다. 정은 지인들에게 자신의 선조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했다고 말했다. “나는 두 개의 심장을 갖고 있다. 하나는 멕시코, 하나는 한국.” 속된 말로 ‘손가락이 오그라들 것 같은’ 말을 정은 웃음기 없이 말했다. 두 살배기 딸이 크면 정은 한국의 역사를 들려줄 생각이다. “한국은 멕시코보다 자원도 적고 땅도 좁다. 그런데 더 열정적이다. 한 단어로 표현하면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다. 한국 전쟁 이후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걸 바꾼 기적 같은 나라.” 정은 “내 몸 안에 그런 피가 흐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내재돼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내가 사는 캄페체에 한국인들이 놀러 오는데 한국과 비슷하다고들 한다.”면서 “와 보니 많이 다르다. 더 부유하고 발전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두 나라가 다 잘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언제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느끼느냐고 물었다. “독도 같은 문제가 이슈화되면 기분 나쁘고 불쾌하다. 일본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도 생기고…. 하하. 그러고 보니 다음 주가 광복절 아닌가?” 백민경·명희진기자 white@seoul.co.kr
  • [커버스토리] 애니깽 후손들이 말하는 한국 방문 이유는…

    [커버스토리] 애니깽 후손들이 말하는 한국 방문 이유는…

    ‘애니깽’의 후손들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K팝(K-POP)을 좋아하는 10대 소년부터 대학원 진학을 꿈꾸는 청년, 선조의 뿌리를 찾아온 아이 아빠까지 이들이 한국을 찾은 이유와 소감, 한국에 대한 인식 등을 들어봤다. 서울신문과 재외동포재단은 이번 모국체험 연수에 참가한 33명에 대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병행해 이들의 한국관을 살펴봤다. 헤나로 미겔 만사닐랴 김(23)은 예비 요리사다. 한국인의 피가 섞인 만큼 이곳의 음식을 알고, 배우고 싶어 참가 신청서를 냈다. 지난 7일 기자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김은 음식에 대한 질문부터 했다. 점심으로 먹은 음식이 맛있어서 이름을 알고 싶은데, 재료를 알려 줄 테니 무슨 음식인지 가르쳐 달라는 것. 그는 “생선이 들어가 있었고, 두부가 작게 들어가 있는 일종의 해물수프”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을 기다렸다. ‘동태찌개’이라는 재단 관계자의 말을 듣고는 잊지 않으려는 듯 여러 번 되뇌었다. “동태찌개엔 고추장이 들어간다.”고 하자 몇 년 전 멕시코에서 고추장 맛을 봤는데 생각보다 입에 맞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신 그는 “매운 음식이 많은 멕시코와 한국 요리는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했다.”면서 “두 나라 사람들이 모두 좋아할 만한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문화 스포츠 강국인 한국의 위상을 높이 평가했다. 최근 3년간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등 한국 아이돌 가수부터 한국 드라마까지 멕시코에 부는 한류 열풍이 대단하다고 소개했다. 특히 한류열풍에 흠뻑 빠진 참가자들이 많았다. 마누엘 알레한드로 마르티네스 빌랴누에바(19)는 10대답게 소녀시대의 열렬한 팬이다. 최근에는 ‘초콜릿 러브’라는 노래에 푹 빠졌다. 다른 K팝들도 줄줄 꿰고 있다. 티아라를 비롯해 씨스타, 원더걸스, 포미닛 등 걸그룹의 이름도 죄다 외우고 있었다. 아나로사 멘도사 아코스타(17·여)도 한류 얘기가 나오자 거들었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한류가 굉장히 유명하다.”면서 ”그룹 ‘슈퍼주니어’를 좋아하고 드라마 ‘천국의 계단’, ‘유리구두’를 인상 깊게 봤다.”고 말했다. 가장 어린 참가자인 길레르모 안토니오 리 마르티네스(15) 역시 한류 마니아다. 한국에 간다고 하니 친구들이 가장 부러워했다는 그는 “아는 여자아이가 한국에 간다고 하니 한국 남자 한 명만 데리고 오라고 했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는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춤을 똑같이 흉내낼 수 있는 친구들이 많다.”며 K팝을 통해 올라간 한국의 위상도 전했다. 이들에게 한국이란 어떤 이미지로 다가올까? 멕시코에서 나고 자라 눈·코·입·체형 모두 멕시코인에 가까운 그들이지만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려는 경향도 뚜렷했다. 이들은 ‘나에게 한국이란?’ 질문에 ‘제2의 심장’, ‘또 하나의 나’, ‘위대한 나라’, ‘반쪽’, ‘나의 일부’, ‘자랑스러운 조국’ 등의 답변을 내놓았다. 호세 마누엘 마르티네스 김(19)에게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극복’이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다시 일어선 나라이기 때문이다. 김은 애니깽들의 눈물이 어린 멕시코 유카탄 주의 메리다 지역 출신이다. 할아버지 성을 딴 한국의 성씨를 쓰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100여 년 전 선조들이 농장에서 궂은일을 하며 고국을 그리워한 아픈 역사도 알고 있다. 처음 한국에 간다고 했을 때도 “와, 행복하다. 드디어 한국에 간다.”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한국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의 일부라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집으로’다. 이들은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33명 가운데 4명을 제외한 29명이 ‘광복절’의 날짜와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아벨 에사우 데 라 크루스 오초아(25)는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회복한 중요한 날”이라면서 “멕시코 한인회 행사를 통해 광복절에 대해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대부분 한인회나 인터넷, 책 등을 통해 광복절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멕시코 지역 한인회는 매년 8월 14일부터 이틀간 문화행사 등 한인후손 모임을 갖고 광복절의 의미와 역사적 배경에 대해 되새기고 있다. 아벨은 “광복절은 멕시코 한인 후손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게 하는 상징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네오나르도 이슬라스 후암포(24)는 “한국은 선조인 할아버지의 고향이며 나에게는 한국인으로서의 피가 흐르고 있다.”면서 “한국은 나의 뿌리이기 때문에 한국 역사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문화센터에서 2주간 봉사활동을 하며 한국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 빌랴누에바는 한국에 와서 공부하는 것이 꿈이다. 미리 한국을 둘러보고 싶어 이번에 참가하게 됐다. 그는 “대학교를 마친 뒤 한국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선조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버지 성이 ‘이’씨라는 것은 안다. 자신은 민혁, 동생은 현수라는 한국 이름도 있다. 멕시코 한인 4세인 루이스 다니엘 메디나 김(23)도 한국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다. 법학 석사학위를 가진 그는 박사과정생이다. 자연스럽게 아침, 저녁으로 한국 음식을 먹을 만큼 한국 먹을거리에도 친숙하다. 특히 김치는 꼭 빠지지 않는 메뉴다. 그는 “친구들에게 부침개 등 간단한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는데 친구들이 좋아할 때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면서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한국인 같다고 느낀다.”고 웃었다. 그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정책에 힘을 쏟는 한국 모습에 큰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또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역사가 깊은 나라라고 생각했다.”면서 “조만간 지인들과 한국을 다시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런던 올림픽 얘기를 물어봤다. 가장 인상 깊었던 한국 경기에 대해 묻자, 15명이 여자 양궁이라고 답했다. 강풍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집중력으로 과녁을 명중시켰던 선수들에게서 한국인의 강한 정신력을 느꼈다는 것. 증조할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호세 마누엘 알레한드로 멘도사 이(19)는 스포츠 강국인 한국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볼 때마다 기뻐했다. 이는 증조할아버지가 멕시코에 정착한 뒤 시계를 고치는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8살 때 어머니가 한국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는 이번 런던 올림픽 양궁 경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확하게 과녁을 맞히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라며 손뼉을 쳤다. 만일 한국과 멕시코가 축구 결승전에서 맞붙었으면 어느 쪽을 응원했겠느냐고 물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소년은 그냥 말없이 배시시 웃었다. 백민경·명희진기자 white@seoul.co.kr
  • 하와이 이민 1세대 가족사에 담긴 한국사

    하와이 이민 1세대 가족사에 담긴 한국사

    국립중앙도서관은 9일 재야 역사연구가 안형주(76)씨가 한인 미국 이민사 자료 등 2492점을 기증한다고 8일 밝혔다. 기증자 안씨는 독립유공자 안재창씨의 종증손이자 안창호 목사의 손자다. 기증 자료에는 구한말 가난을 피해 미국 하와이 이민길에 오른 경기도 양주 죽산 안씨 집성촌 사람들의 이민 1세대의 역사가 들어 있다. 1902년 12월 첫 하와이 이민 배에 오른 안재창씨와 일본 경찰에 쫓기다 선교사 신분으로 하와이로 망명한 안 목사의 자료를 비롯해 안철영 영화감독 등이 일제강점기에 펼친 문화 운동에 관한 문서가 포함됐다. 대한제국 유민원(외국 여행권을 관장하는 궁내부 산하 관서)이 1902년에 발급한 집조(執照·지금의 여권), 하와이 이민자들의 친목회 겸 상조회인 조미구락부 회원증서 등이 눈에 띈다. 특히 1918년 안 목사의 장녀 안인서양이 당시 이화학당을 같이 다닌 유관순 열사와 찍은 사진과 1920년 3월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안재창씨의 농장에서 독립운동가 이승만과 정한경이 함께 찍은 사진 등이 눈에 띈다. 1985년부터 30여년간 자료를 수집한 안씨는 “초기 미국 이민사와 독립운동사를 4대에 걸친 가족사를 토대로 살펴보고 싶었다.”며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사 자료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문서”라고 말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이 기증 자료를 디지털화해 일반에 공개하고 원본은 국가문헌으로 영구 전승할 계획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中수감 한국인 2명 인권침해 추가 사례 확인

    북한인권 운동가 김영환씨에 대한 중국의 전기고문 등 가혹행위 파문을 계기로 외교통상부가 전세계 한국인 수감자를 대상으로 영사 면담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심각한 가혹행위는 아니지만 일부 인권 침해 사례가 확인됐다. 외교부는 오는 9~10월까지 전수 조사를 끝낸 뒤 결과를 상대국에 통보하는 등 조치할 예정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8일 “지난달 31일 중국 내 수감자, 지난 1일 전세계 수감자에 대해 영사 면담을 시작해 현재까지 14개국에 수감된 175명에 대해 영사 면담을 진행했다.”며 “(김씨가 겪은) 가혹행위와 같은 특이 사항은 없었지만 일부 인권 침해를 당했다는 진술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중국 내 4개 공관에서 수감자 13명을 면담한 결과, 1명이 압송 과정에서 휴대전화 충전기로 머리를 맞고 목을 두 번 졸렸다고 밝혔고 여성 재소자 1명은 다른 수감자로부터 뺨을 맞아 당시 영사를 통해 항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외교부는 또 이번 영사 면담을 진행하면서 중국 내 수감자가 지난달 31일 대변인 브리핑에서 밝혔던 625명이 아니라 346명으로 집계됐으며 전세계 수감자도 1600여명보다 훨씬 적은 1169명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한편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선진통일당은 이날 공동으로 ‘김영환 등 한국인 4인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고문 등 가혹행위 의혹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김영환씨 타박 흔적 발견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49)씨에게서 외부충격으로 추정되는 타박 흔적이 발견돼 중국 당국이 고문했다는 증거가 될지 주목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흔적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김씨는 8일 오후 전북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에 있는 삼성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은 결과 양쪽 광대뼈와 근육 사이에서 타박 흔적이 나왔다. 삼성병원 심용식 원장은 “안면 MRI 검사에서 세포 손상의 흔적이 있다. 이 흔적은 외부 충격으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고문 흔적인지 확인하려면 첨단 장비를 갖춘 대학병원 등에서 정밀검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포 손상 흔적만을 근거로 해 구타로 몰아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 법의학자는 “구타를 당한 지 4개월이 지났다.”면서 “지금까지 세포가 손상된 상태로 있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법의학자는 이어 “MRI 검사만으로는 세포 손상이 언제, 어떤 물체로 생겼는지 알기가 사실상 불가능해 고문 흔적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김씨는 “고문 여부를 입증하려면 법의학 전문가와 전문 장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의료진의 소견에 따라 다음 주쯤 정부와 협의해서 정밀검사를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신적 증상도 고문 입증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정부 입장에 따라 김씨는 고문으로 인한 정신적인 손상에 대해서도 정밀검사를 받을 예정이다. 김씨는 “아직 외상 후 스트레스라든지 정신적인 손상은 느끼지 않고 있다.”면서 “전문가들로부터 ‘정신적인 피해 증상이 100% 나타날 것’이란 설명을 들어서 조만간 이에 대한 부분도 검사를 받아 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다음 주 정밀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김씨의 타박 흔적을 놓고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외교 갈등을 자극하지 않는 인권보도/심영섭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강사

    [옴부즈맨 칼럼] 외교 갈등을 자극하지 않는 인권보도/심영섭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강사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 운동권 필독서 가운데 하나가 ‘강철서신’이었다. 자생적 종북주의 이론서라고 할 수 있는 ‘강철서신’은 주체사상을 옹호할 뿐만 아니라, 일종의 주체사상 교과서였다. 이 책의 내용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강철서신’이 준 충격은 컸다. 종북이라는 금기를 깼기 때문이다. ‘강철서신’의 저자인 김영환씨가 중국에서 북한인권보호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약 3개월간 수감생활을 겪고 풀려난 뒤 전기고문과 구타를 당했다고 폭로했다. 서울신문은 첫째로, 김씨에 대한 중국 공안의 가혹행위에 대해 신속보도와 후속보도를 했다. 7월 25일 이후 베이징특파원 등이 후속보도를 했는데, 7월 31일 자에서는 특파원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정부의 공식입장은 합법적인 조사만 있었을 뿐 고문은 없었다.’고 확인했다. 또한, 중국국제문제연구소 한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김씨 일행이 국제기구에 전기고문과 구타 등 가혹행위에 대해 제소하여도 확실한 증거 없이는 승소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도 전했다. 반면 우리 측 관계자의 반응은 미온적임을 지적했다. 그러나 어느 국가의 권력기관이든 부처 간 이기주의와 경쟁이 있다. 김씨 일행을 고문한 중국공안과 중국정부의 공식입장은 다를 수 있다. 서울신문의 보도는 신속하긴 했지만, 현상만 나열할 뿐 심층적인 분석은 부족했다. 둘째로, 우리 정부의 태도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이다. 우리 정부의 재외국민 영사지원 문제에 대한 보도는 자주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자국민이 구속된 지 29일이 지나서야 영사 면담을 한 것은 심각한 사례이다. 또한 영사 면담에서 가혹행위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했을 텐데, 김씨 일행이 귀국하여 언론에 사실을 폭로한 이후에야 우리 외교부의 공식입장이 나온 것을 보면, 분명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듯하다. 서울신문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과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한 7월 31일 이후에야 외교부 대변인은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8월 1일 자 보도처럼 ‘정부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진상을 규명하겠다.’라고 밝힌 데는 서울신문도 크게 이바지했다. 8월 3일 자 보도를 보면 국가인권위원회가 김씨 일행을 조사한 이후 인권침해가 명백하다며 국제기구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8월 4일 자 서울신문에서 베이징특파원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과 다시 인터뷰했을 때, 중국 측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결론적으로 우리 외교부 대변인의 적극적인 의지 표명과 현실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후속보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로, 김씨 일행에 대한 인권침해 보도는 중요하지만, 자칫 한·중 간의 외교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도록 언론이 나서서 자극해서는 안 된다. 8월 4일 자 보도처럼 우리 외교부가 중국에 수감 중인 한국인 625명에 대해 영사면담을 하고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보도는 내용만 나열할 경우 자칫 오해할 여지가 있다. 현실적으로 제한된 영사인력을 가동하여 중국 전역에 분산 수감 중인 한국인을 모두 조사하려면 적어도 수개월은 걸릴 것이다. 또한 중국정부가 영사면담을 금지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인력과 예산문제로 모든 수감자를 영사면담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이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했어야 한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시켜 ‘무능한 한국 외교부’와 ‘오만한 중국 외교부’의 대립으로 보도하면 자칫 민족감정을 자극할 수 있고, 관계기관의 노력을 폄하할 소지가 있다. 김씨는 ‘강철서신’에서 썼듯 어머니의 품성으로 북한과 중국의 인권문제라는 두 번째 금기를 깨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발생한 중국공안의 ‘전기고문’과 같은 문제를 너무 크게 부각시켜서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인권운동가들의 기반을 뿌리째 뽑아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8월 1일 자에서처럼 한·중 간의 지엽적인 문제를 한·일 간의 독도영유권 문제와 동일시하여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보도는 위험할 수 있다. 차분하고 신중하면서도 심층적인 보도 태도가 바람직하다.
  • 美 고속도로에 “日 위안부 사죄하라”

    美 고속도로에 “日 위안부 사죄하라”

    광고 미국 텍사스 휴스턴의 고속도로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광고가 등장했다. ‘이 소리가 들리는가?’(DO YOU HEAR?)라는 제목의 광고에는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진심 어린 사죄와 보상을 해야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지난 1일 설치된 이 광고판은 서경덕 성신여대 객원교수와 휴스턴 거주 한인 13명이 합작해 만들었다. 휴스턴 코리안저널 제공
  • 용인 모현지구 개발 백지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사업 포기로 어려움을 겪었던 경기 용인시 모현지구 도시개발사업이 지구 지정 3년 만에 결국 무산돼 일부 토지주들이 반발하고 있다. 용인시는 7일 처인구 모현면 초부리 216 일원 95만 9442㎡ 부지에 지정된 ‘용인 모현지구 도시개발구역’을 지난 3일 자로 해제했다고 밝혔다. 당초 모현지구는 LH가 중·저층 아파트와 타운하우스, 테라스하우스, 단독주택 등 3911가구 규모의 유럽형 주거단지를 조성키로 하고 시에 제안해 2009년 8월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LH가 재정난을 이유로 지난해 4월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시는 다른 사업 시행자를 모색, 지난해 11월 민간 사업자인 ㈜더원D&C로부터 의향서를 제출받아 사업 추진을 시도했지만 주민 동의율이 43%에 그쳐 이마저도 무산됐다. 시는 결국 도시개발법에서 규정한 기한인 지난 2일까지 실시계획 인가 신청이 접수되지 않아 도시개발구역 지정을 해제했다. 이에 따라 금융권에 대출을 받아 대체 농지를 구입했던 농민들은 수천만원의 부채와 더불어 이자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지구 지정 해제를 항의하는 농민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농민 이모(63)씨는 “농사를 짓던 땅이 도시개발구역에 묶이면서 은행 빚을 얻어 주변 지역에 농지를 샀는데 시에서는 사업 계획을 취소하고 기존 땅은 안 팔려서 대출 이자만 물고 있다.”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토지 임대업자들도 지구 지정 기간 동안 찾는 이가 없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심각하게 침체된 상태에서 각종 개발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비슷한 상황”이라며 “모현지구의 경우 일부 대규모 토지 소유주들의 반대로 민간 개발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재일동포 100년사… 차별·무관심의 흔적들

    재일동포 100년사… 차별·무관심의 흔적들

    8·15 광복절을 앞두고 일제강점기에 생계를 위해 현해탄을 건넜던 재일동포 100년의 역사를 영상과 유물을 통해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열도 속의 아리랑’이 오는 10일부터 개최된다. ‘재일동포’는 ‘1910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결과로서 일본에 거주하게 된 조선인과 그의 자손’을 말한다. 조선총독부가 1910~20년대에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을 펴자 생활기반을 잃어버린 농민들은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넘어갔다. 1920년대 후반 이후 매년 8만~15만명이 이동했고,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으로 부족해진 일본 내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일본 전역의 탄광과 광산, 토목공사 현장에 조선인이 동원되었다. 일본 소설가 이쓰키 히로유키의 ‘청춘의 문’에도 광산노동자로 전락한 조선인들이 나온다. 1945년 광복 후 일본에 잔류한 인원은 약 70만명에 달했다. 재일교포는 한국과 일본을 매개하는 가교가 될 수도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일본은 이들을 차별해 왔고, 한국은 이들에게 무관심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7일 “재일동포의 역사가 100여년이 지나도록 이들의 삶이 한국 사회에 제대로 각인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이번 ‘열도 속의 아리랑’은 동북아역사재단과 서울역사박물관, 일본의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이 공동으로 주최한다. 특별기획전과 역사 영상심포지엄, 영화상영 등으로 구성됐고, 모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다. 우선 특별기획전은 두개 부문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1부는 일본에서 건너온 ‘도항증명서’, ‘외국인등록증’ 등 총 449건 987점의 자료가 전시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온 재일교포들의 마음을 담았다. 2부는 일본의 역사관을 다색판화 ‘니시키에’를 통해 살펴본다. 니시키에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과 황국사관의 형성 과정을 보여 준다.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관장이 지난 40여년간 수집한 다색판화 중, 근대 일본의 역사 왜곡을 보여 주는 ‘진구(神功)황후의 삼한정벌’ 등 총 94건 174점을 엄선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다. 역사 영상심포지엄에서는 ‘영화가 말하는 한·일관계의 심층’에 대해 재일동포 소녀 야스모토 스에코의 일기를 원작으로 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작은오빠’가 상영된다. 이후 한양대 윤상인 교수의 사회로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가 ‘재일동포의 삶을 통해 한·일관계의 변화를 살피다’와 도노무라 마사루 도쿄대 교수가 ‘우리 역사의 재조명, 재일코리안 역사특별전에 즈음하여’라는 주제의 기조발표를 한다. 역사 영상 심포지엄은 영화를 활용해 역사를 논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학술회의와는 다른 신선함과 관중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할 수 있다. 영화상영에는 재일동포 오충공 감독의 기록다큐영화 ‘숨겨진 손톱자국’ ‘버려진 조선인’, 오구리 고헤이 감독의 데뷔작으로 1981년 모스크바 영화제 은상 수상작인 ‘진흙강’, 박철수 감독의 ‘가족시네마’, 재일동포 김수진 감독의 ‘밤을 걸고’ 등 모두 8편이 상영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한식 세계화 앞장선 의사 출신 셰프

    한식 세계화 앞장선 의사 출신 셰프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자리 잡은 한식당 ‘단지’의 한인 셰프 후니 김. 그가 정통 한식으로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7일 오전 9시에 방송되는 아리랑TV의 인터뷰 프로그램인 ‘디 이너뷰’에서는 후니 김 편을 방송한다. 그는 프로그램을 통해 ‘단지’가 미식가들의 성서라고 불리는 ‘미슐랭 가이드’에 한식당 최초로 이름이 올랐을 때의 소회와 뒷이야기를 전한다. 아울러 ‘단지’가 지금처럼 외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레스토랑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실패와 성공 등 전 과정도 공개한다. 후니 김은 3살 때 어머니를 따라 이민 간 뒤 재미교포로서 성공이 보장되는 의사의 길을 과감히 접고, 평소 관심과 열정이 있었던 요리로 전향했다. 사람을 살리는 같은 칼이지만 ‘메스’가 아닌 ‘식칼’을 들기로 결정하기까지 심정과 그로 인해 생겼던 어머니와의 갈등을 고백하며 최고 셰프가 되기까지 여정을 소개한다. 또한 미슐랭 가이드 별 세 개를 받은 유명 프랑스 레스토랑 ‘대니’와 맨해튼의 고급 일식당 ‘마사’를 두루 거친 뒤 친구들에게 열었던 자택 테라스의 주말 파티가 성황을 이루면서 레스토랑 사업의 발단이 된 흥미로운 사연도 밝힌다. 한식 세계화를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는 그는 한식 고유의 맛을 내기 위해 직접 한국에서 재료들을 공수하고,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 진정한 맛으로 뉴요커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성공하며 한식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이와 함께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아내와 아들의 이야기,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삶과 셰프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후니 김의 인생 스토리가 소개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재미 한인과학자 이경욱 박사 美 원자력학회 ‘최고논문상’

    재미 한국인 과학자가 원자력 분야의 세계 최대 규모 학회에서 ‘최고논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NCSU)는 4일(현지시간) 이 대학에서 박사후 과정(포스트 닥터)을 밟고 있는 이경욱(38) 박사의 논문이 미 원자력학회(ANS)가 주는 올해의 ‘마크 밀스 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미 핵 물리학자 마크 밀스(1917~1958)의 이름을 딴 이 상은 ANS가 선정하는 20여종의 학술상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된 논문상으로, 원자핵 연구분야에서 학술적 공헌을 한 과학자에게 주어진다. 이 박사는 1959년 이후 ‘마크 밀스 상’을 받은 전 세계 과학자 54명 가운데 한국인 과학자로는 지난 1972년 강창무 박사에 이어 2번째 수상자가 됐다. 수상작으로 뽑힌 ‘페블베드 원자로(PBR)의 분자동역학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입자추적’ 논문은 차세대 원자로인 페블베드 원자로의 운용시스템을 입자 추적을 통해 규명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미 유학길에 오른 이 박사는 핵공학, 물리학 분야에서 2개의 석사학위와 핵공학 분야에서 1개의 박사학위를 잇따라 받은 뒤 현재 박사후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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