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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 현지조사단 이부영의원의 실태보고(중앙아의 한인사회:상)

    ◎카자흐공의 실상/평등정책 표방속 민족주의 부흥책 도모/일부대학·협동종장서 한인 추방하기도 구소련의 붕괴이후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기본적인 생존권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민족주의의 발호,종파간의 분쟁으로 언제 또다시 「쫓기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실제로 타지크공화국에 거주했던 1만3천여명의 한인들 가운데 절반이상이 인접국에서 난민생활을 해야만 했다.현재 중앙아시아 5개 공화국에는 구소련의 전체 한인 45만명 가운데 4분의3인 32만명의 한인들이 살고있다.국회 외무통일위 소속 안무혁(민자),이부영의원(민주)은 지난 4월30일부터 7박8일 일정으로 한인 10만5천여명이 살고있는 카자흐공화국등 중앙아시아지역을 방문,한인들이 겪고 있는 수난의 실태를 살펴보았다.두의원은 5공 당시 권력과 재야운동권의 핵심이라는 상반된 경력에도 불구,「동반여행길」에 올랐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었다.이의원이 현지조사활동을 통해 체험한 한인동포들의 실상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카자흐공화국의 수도 알마아타로 가기 위해 탑승한 아에로플로트 기내는 마치 우리나라 70년대의 시외버스 속 같았다.좁은 좌석에다 때묻은 시트며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다양한 피부색과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이 기내를 가득 메웠다.우리민족같은 인상을 지닌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1백20여개 민족이 살고 있는 다민족 국가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저렇게 다종다양한 사람들을 아무 분란없이 한 공동체에서 오순도순 살게 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닐 것이었다. 우리는 단일 민족임에도 남북이 갈린데다 남쪽에서마저 호남이다,영남이다 하며 가르는 판이지 않은가.이제 소연방이 붕괴하면서 여러 민족들을 한데 묶었던 사회주의라는 울타리도 급격히 무너져 내리면서 탈러시아화,민족주의화 흐름이 독립국가연합(CIS)내 곳곳에 팽배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바로 이 흐름 때문에 중앙아시아의 우리 한인동포들도 이제 새롭게 변화된 삶을 강요 받고 있는 것이다.특히 지난 1월에서 3월 사이에는 타지키스탄의 내전 상황과 민족 차별로 인해 피해를 당하고 있는 한인동포들의 실태가 보도된 바 있다. 「중앙아시아 한인동포 실태 조사반」이라는 명칭으로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의 공식적인 파견 임무를 띤 안무혁의원(민자당)과 필자 그리고 한백연구재단의 정영국박사 등 우리 일행의 중앙아시아 행은 바로 그들의 변화된 생활과 그곳 현지 상황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서울을 떠나기 전 언론에서 안무혁의원과 필자의 동행에 대해 많은 관심을 표하기도 했지만,지난 시기 냉전으로 세계가 얼어 붙고 군사 독재로 숨죽여야 했던 시절 한반도 남쪽 한켠에 갈라져 살던 우리가 위정자건 재야운동가건 어디 북방의 동포들에게 관심을 둘 여유가 있었던가.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인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5시간여를 날아 알마아타 공항에 도착한 것은 5월31일 이른 아침이었다.가랑비가 간간이 뿌리고 있었다.우중충한 하늘이 정착지를 위협 당하는 동포들의 암담한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떠나기 전부터의 우리들의 문제의식은 바로 변화된 사회속에서 새롭게 다가오고 있는 동포들의 불안한 삶과 미래에 가 있었다. 카자흐공화국은 총인구1천7백여만명 중 44%에 이르는 카자흐인을 비롯,1백20여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이며 우리동포들은 10만5천여명이 살고 있다.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호혜평등의 원칙에 입각해 민족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었고 따라서 표면상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그러나 카자흐공화국은 다른 한편으로 카자흐민족주의의 부흥을 도모하는 2중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견해가 있었다. 나자르바예프대통령 경제고문인 방찬영 박사가 설립한 「카자흐스탄 과학,경영 및 전략센 터」에서 만난 사투발딘 교수는 카자흐인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몽골지역에 거주하는 15만명 정도의 카자흐인들 중 작년에 5만명을 이주시켜 왔다고 전했다. 한인들과 카자흐민족은 각기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해왔기 때문에 시장충돌이 없다는 것도 카자흐민족과의 관계가 상호 조화의 관계라는 하나의 예로 제시되기도 했다.우리가 만나본 카자흐공화국 라크마디예프 문화성 장관이나 토카예프 외무차관 역시 이해관계에서 대립이 없음을강조하고 한인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교 근본주의의 흐름은 중앙아시아에 인접한 이란,아프가니스탄 등지에 상존해 있어 언제 확대될지 모르는 형편이고 타지크에서 내전이 발발하듯이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에 미쳐 종파간의 분쟁이 정권 쟁탈의 위기상황으로 비화되거나 시장경제로의 이행과정에서 카자흐인들이 효율적인 적응에 실패할 경우 발생할지도 모르는 민족분규는 우리동포들에게도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우리는 1920년대 초 연해주에서 「레닌의 기치」로 출발했던 한글신문 「고려일보」를 방문했다.정영환 사장 역시 민족간의 불평등으로 우리 동포들이 당장 피해를 당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으나 몇몇 대학이나 협동농장 등에서 한인이 쫓겨나는 사례가 있음을 지적하고 장기적으로 카자흐민족주의의 변화에 따라 한인 동포들이 불이익을 받을 상황도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을 내놓았다. 고려일보는 매우 전통있는 신문이지만 1년전부터 카자흐정부 보조금이 폐지된 후로는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고 있었다.얼마 못가 파산하리라는 추측들이 있었다.한달 운영비 약 8천달러만 지원받는다면 건재할 것이었다.정부나 민간차원의 지원이 시급한 실정이었다.
  • 참사의 교훈(4·29 폭동 1년 그뒤의 LA:하)

    ◎흑인 등 소수민족간 유대강화 시급/정재계 영향력확대로 피해 줄여야 「4·29폭동」은 교민사회로 부터 많은 것을 빼앗아 갔지만 역으로 한인사회에 많은 것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엄청난 물질적·정신적 피해가 전자에 속하는 것이라면 합중국인 미국사회에서 한인들이 나아 가야할 방향을 곰곰이 따져보게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후자에 속한다. 소수민족인 한인들이 살길은 다른 인종과의 화합과 협조에 달려 있다는 점을 「4·29폭동」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폐쇄적이었던 한인들만의 「끼리끼리의 삶」의 의미가 미국의 두터운 인종의 벽 앞에는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지도 확인시켜 주었다. 미국의 어느 곳을 가도 코리아 타운만큼 넓게 자리를 잡고 영어가 아닌 자국어 홍수속에 「이질집단」을 이루고 있는 소수민족 사회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같은 현상은 다른 인종들의 접근을 아예 막아 버리는 요인으로 작용,스스로의 고립을 자초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4·29폭동」이전까지 로스앤젤레스의 한인사회는 흑인과 그들 사회를 몰라도너무 몰랐던 것같다.살빛이 검고 노예의 후예들이며 가난과 범죄로 얼룩진 사우스센트럴지역에 몰려사는 보잘 것 없는 인종집단쯤으로 치부했던게 인식의 전부였다. 그러나 오랜 인고의 새월속에서도 미국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수적인 성장 못지않게 요소요소에 그들의 지도자들을 진출시킨 흑인들의 질적인 성장은 간과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선 무서운 잠재력을 갖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히스패닉계 사회도 마찬가지다.숫자면에서 흑인들을 제치고 제1의 소수민족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히스패닉계 사회와의 화합,유대의 필요성을 이번 폭동은 교민들에게 여실히 일깨워 주었다. 이제 미국사회속에서의 교민사회가 가야 할 방향은 정해졌다. 많은 교포들이 다른 인종과의 화합,교민끼리의 단결,범죄다발지역인 흑인·히스패닉계 지역으로부터의 탈출등이 동시에 이뤄져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전문직종으로의 전환,부유촌으로의 진출,업종의 다변화 주장도 나오고 있다.말처럼 쉽게 이뤄질 일은 아닐터이지만 어차피 시간을 두고 장기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아닐수 없다. 미국 전체인구의 1%도 못미치는 「수적인 열세」를 「질적인 우세」로 극복해야 한다.즉 6백여만명의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후예들을 정·재계,법조·언론·학계등에 대거 진출시킴으로써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태인들의 정착모델은 우리 교민들에게는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당장에 교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심화되고 있는 불경기속에서 강탈당한 폭동의 「재앙」을 서둘러 해결하는 일이다. 폭동의 후유증이 피해자들의 손실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교민사회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잃은 피해교민들.재기할 자본도 의욕까지도 잃고 있다.그렇다고 영구귀국을 할 수도 없는 한인들.그들은 오늘도 고민속에 좌절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 사건후의 파장(4·29폭동 1년… 그 뒤의 LA:중)

    ◎폭동보다 더 절망적인 복구작업/1천만불 성금 분배싸고 한때 대립/미 정부의 융자기금도 대상 제한적/보험인식 부족… 보상받은 업소는 33%뿐 「4·29」폭동은 LA일원에서 53명의 사망자와 부상자 2천4백여명의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다.1천4백여채의 건물이 전소되거나 반파돼 7억달러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또 1만1천5백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 가운데 한인은 사망1명,부상12명등의 인명피해와 2천2백89개 업소에서 모두 3억9천9백50만달러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피해가 엄청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 민족 특유의 상부상조정신이 발휘됐다.LA 뉴욕 시카고 등지의 교민사회는 물론 다른 나라의 교민까지 성금대열에 참여,무려 9백여만달러(본국모금액 4백45만달러 포함)가 모금됐다.그러나 성금배분을 놓고 교민사회가 한때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성금관리체계가 총영사관,피해자협회,한미구호기금재단,몇몇 언론사등으로 사분오렬돼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데다 그 용도를 놓고 이견이 속출했기 때문이다.소액이라도 고루 분배하자는 측과 교포발전을 위해「종자돈」으로 쓰자는 쪽이 맞서다가 결국 가구당 3천달러씩 지급하는 것으로 매듭이 지어졌다.그러나 1백70여만달러는 아직 모 신문사,한미구호기금재단측이 분배를 하지 못한채 보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복구 자금이 연방정부차원에서 최대한 지원될 것』이라며 연일 홍보에 앞장섰던 미정부의 약속이 하나씩 깨지기 시작한 것도 한인사회의 일체감을 깨는 악재가 됐다.교민들은 사실 성금의 분배보다도 피해복구자금으로 자신들이 든 보험회사의 보험금,중소기업육성자금(SBA),연방정부재해구호기금(FEMA)등에 기대를 걸었었다. SBA융자금은 일시불이 아니라 몇차례 나눠 주었고 월 매상의 5∼6배 하던 가게의 권리금은 인정해주지 않았다.단지 재고와 장비가격만을 인정,융자액을 책정했다.그 결과 많은 한인들이 거액의 권리금을 날리는 또 하나의 수모를 겪었다.말하자면「한국식으로 가꿔온 일터손실을 미국식으로 보상」받음으로써 정신적인 고초까지 겪게된 것이다.. FEMA는 18개월간 지급되도록 돼있으나 폭동발생 8개월만인 지난해 말로 사실상 마감해버렸다.SBA융자를 일부 받고 있기 때문에 미연방정부자금이 이중으로 지급될 수 없다는 것이 당국자의 해명이었다. 현지언론들은 SBA융자금마저도 자금이 바닥이나 앞으로 몇달간은 융자가 어렵다고 전하고 있다. 보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도 우리 교포들이 자기「몫」을 찾지 못하는 이유가 됐다.싼 보험료탓으로 부실보험회사를 선택했거나 보험약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턱대고 가입한 결과였다. 화재로 전소된 업소 1백72곳 가운데 32.69%만이 화재특약에 가입,가까스로 보상근거를 찾았다.그러나 이들 가운데서도 보험금을 타낸 가입자는 44.55%에 지나지 않는다. 한미폭동피해실태조사위원회(KAIAC)가 최근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 한인피해자의 27.8%만이 영업을 재개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조사대상자 1천5백39명의 49%는 영업재개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전소된 리커상및 마켓 1백72곳 가운데 다시 영업을 시작한 곳은 단 1곳 뿐이다.그것도 흑인지역이 아닌 곳에서라는 것이 식품상피해자협회측의조사내용이다. 일부 흑인단체나 정치인들,흑인주민들이 나서 조직적으로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들은 리커상이나 마켓이 주에서 주류판매허가를 반드시 얻어야한다는 주법을 악용,한인들의 영업재개를 정치적으로 막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미 주정부로부터 주류판매허가를 받아놓은 4개 한인업소에 대해 LA시의회가 영업허가를 내주지 말도록 만장일치로 가결하는「제도폭력」도 발생했다. 현재 패해자식품상협회는 남의 사무실 한 구석을 빌려 쓰면서 백방으로 재기의 길을 찾고 있으나 상황은 절망적이다. 이 협회의 한 간부는『염치없는 요구지만 본국의 재산반입이나 친지들로 부터의 자금반입을 위해 해외송금길이라도 터주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하고 있다.
  • LA폭동 1년(외언내언)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이민하면 흔히 유태인의 미국이민을 꼽는다.2차대전직후 밀항선으로 뉴욕항에 밀려든 그들은 흑인빈민가의 야채좌판상부터 시작을 했다.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나는동안 공휴일은 물론 밤과 낮도 없는 노력으로 지하상권을 장악해 나갔으며 마침내 월스트리트를 점령하기에 이른다.그리고 이젠 미국을 좌우하고있다. 로스앤젤리스(LA)의 한인들을 그들과 비교하는 것은 아직 이른 일일지 모른다.그러나 그곳 흑인들은 한인들을 이미 「동양의 유태인」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유태인초기와 비슷한 출발을 했으며 그들을 능가하는 노력과 저축등으로 경제적 성공을 만들어가고 있기때문이란 것이다.호의적 호칭일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나쁜 의미의 별명이라는 것이다.선망과 경외감이 없는것도 아니지만 그보다는 시기 질투의 경계심에서 나오는 견제에 보다 큰 비중이 실렸다는 것이다.1년전의 LA폭동은 물론 최근에도 수그러들지 않는 흑인들의 한인공격·강탈사건등은 흑인사회의 그러한 심리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29일은 그 LA폭동 1주년이 되는날이다.교통위반 흑인에대한 백인경찰의 과잉구타사건 재판 평결에대한 흑인사회의 분노가 엉뚱하게도 무고한 코리아타운의 한인사회를 표적으로 삼았던 사건이이다.그럴수가 있을가 하는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우리의 의문이요,분노지만 이제는 우리쪽에도 문제는 없었던가 새삼 반성도 해보게된다. 흑인사회를 너무 무시하거나 경멸한것은 아닌가.스스로의 이익에만 너무 집착한 것은 아닌가.현지사회에 융화되지못하고 한인끼리만 생활하는것은,현지사회의 복지·발전을 위한 노력에 소홀한것은,작은 성공을 너무 자랑하고 과시하는것은,지나치게 본국지향적인 것은 아닌가.그렇다면 그 시정이야말로 급선무가 아닐수없다.그것이 LA등 미국의 한인사회가 좋은 의미에서 「동양의 유태인」으로 성공하는 최선의 비결이기도 할것이다.
  • 사태를 보는 두 시각(4·29폭동 1년… 그 뒤의 LA:상)

    ◎한·흑갈등 앙금 완전해소 멀었다/“흑인차별정책의 유탄맞은 격”/한인/“돈벌면서 지역발전에 등돌려”/흑인 한인교포들에게 극심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안겨줬던 로스앤젤레스폭동이 일어난지 29일로 1년을 맞는다.당시 사망 1명의 인명피해와 3억9천만달러의 재산피해를 입었던 교포들 가운데 영업을 재개한 교포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대다수는 아직도 장래를 걱정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4·29 LA폭동 1년이 지나는 동안 한흑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으며 생활터전을 잃어버린 교민들의 피해복구는 어디까지 와있는지,또 되새겨야할 교훈은 무엇인지를 3회에 걸쳐 짚어보기로 한다. 인종문제 전문가들은 「4·29LA폭동」이 한흑간의 갈등에서 일어난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미국사회의 구조적 모순」「흑인차별정책」의 결과가 폭동의 원인이며 바로 이 점이 다민족집단인 미국의 숙제라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한인교포사회와 폭동이 전혀 무관하다고 치부하기엔 다소 께름직한 면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60년대로 접어들면서 많은 한인들이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이민길에 올랐다.낯선 땅에 첫발을 내디딘 대다수 한인들은 경제적으로 정착이 용이한 흑인밀집지역의 상권을 파고 들었다. 흑인상권 공략은 한인들에게 경제적인 토대를 마련해 주었고 80년대에 들어 이같은 이유로 한해 평균 5∼6건 정도의 한흑간 시비가 발생하기도 했다.주로 상권을 빼앗기고 있다는 흑인들의 박탈감에서 비롯된 충돌이었다. 90년 1월18일.뉴욕 한인청과상에서 라임 1달러어치를 훔치려던 흑인여성과 한인 매니저 사이에서 빚어진 말다툼이 흑인들의 불매운동으로 확대된 소위 「레드애플사건」은 LA폭동전에 일어났던 가장 대표적인 한흑간의 충돌이었다. 이때부터 한흑공동체 사이에 냉기류가 형성됐고 같은 해 3월 두순자여인의 「흑인소녀 나타샤 살해사건」이 발생하면서 불씨는 동부에서 서부로 옮겨 붙었다. 흑인사회가 그런대로 누그러졌을 무렵 두여인이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나자 흑인사회는 다시 흥분했다.이같은 일련의 반감은 지난해 4월 흑백갈등으로 점화됐던 LA폭동에서 흑인들이 한인업소를 공격대상으로 삼는데 적지않은 요인으로 작용했다.분풀이 상대로 눈부시게 성장한 한인사회를 찍었던 것이다. 다수의 한인들이 흑백간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애꿎은 유탄을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흑인사회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흑인들은 『한인들이 흑인사회에서 돈을 벌면서 재투자는 물론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일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다.『한인들이 흑인종업원의 채용에 인색하며 아주 불친절하다』는 지적도 많다.이같은 지적은 「왜 유색인종이면서 중국교포나 일본인들은 피해가 없었는가」라는 물음과 관련지어 한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퍼스트 에이미교회의 세실 머레이목사(63)는 『누구라도 자신에게 돈을 벌게 해준 고객들을 깔본다면 분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내 흑인인구는 전체의 10%,반면 한인의 수는 1%에도 미치지 못한다.모든 아시안을 합해도 3% 미만이다.이는 같은 소수민족인 한인들이 흑인을 비롯한 다른 소수민족과 화합하지않으면 살 수 없다는 얘기로 귀결된다. 한인사회가 문화와 언어·피부빛깔의 장벽을 넘어 흑인을 이해하려는 자세,나아가 그들의 고난의 역사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지녀야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 불안한 교민사회/남미에 「반한움직임」 확산

    ◎“탈세·불법고용” 아르헨 언론서 첫 비판/한인업소 단속… 브라질서도 문제 제기/“차별 아니냐” 불만속 대사관선 “법준수” 집안 단속 아르헨티나의 한인교포사회가 불법체류 외국인의 고용비리와 비인간적 착취등과 관련,당국의 집중조사를 받고있는 가운데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인교포사회안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3국출신 노동자고용 비리문제가 제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22일 전해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마찬가지로 4만여명의 한인교포가 주로 의류업에 종사하고 있는 상파울루 한인교포사회에서는 아직 제3국출신 불법체류노동자들의 고용비리문제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번 아르헨티나 한인교포사회 사태와 관련,현지언론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상파울루의 한인교포들이 고용하고있는 제3국노동자들은 주로 볼리비아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있다.상파울루에서도 일단 현지언론이 한인사회의 고용비리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할 경우,아르헨티나에서 처럼 상당한 파급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에따라 상파울루주재 한국 총영사관측은 현지언론이 한인사회의 고용비리등에 대한 집중취재에 나설것에 대비,설득력있는 해명자료를 치밀하게 준비하는 등 대비책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르헨티나정부의 관계부처 합동조사반은 지난 20일 한인촌안의 교포의류공장및 식당,식품점등에 대해 집중적인 현장조사를 벌인데 이어 21일과 22일에도 한인촌에서 떨어져있는 의류도매및 소매상점가의 한인교포상점들을 대상으로 불법고용 실태및 탈세여부에 대한 조사를 계속했다. 아르헨티나주재 한국대사관측과 교민회는 22일 각기 발표한 담화문을 통해 모든 한인교포업소들이 현지관계법률을 엄격히 준수하고 작업환경과 종업원에 대한 처우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줄것 등을 촉구했다.
  • 아르헨,한인업소 50곳 탈세조사/정부합동반 기습 단속

    ◎“언론 반한캠페인 이은 조치” 교포들 우려 【부에노스아이레스 연합】 아르헨티나 정부는 한인교포사회 주변의 불법인력시장 실태에 관한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로 파문이 커지고 있는데 따라 20일 관계부처 합동조사반을 한인촌에 급거 파견,고용비리와 탈세혐의 등을 캐기 위한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노동부·내무부·경제부와 국세청 등 관계부처 담당공무원과 경찰 등 80여명으로 구성된 아르헨티나 정부의 특별합동조사반은 이날 현지언론이 한인촌 주변의 인력시장 현황에 대한 경쟁적인 보도 공세에 나선데 때맞춰 한인촌 안의 한인교포의류공장과 식당·식품점 등 50여개 업소에 대해 기습적인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합동조사반은 이날 조사대상이 된 한인교포업소에서 제3국출신 불법체류노동자의 불법고용및 탈세혐의 등을 포착했다고 아르헨티나 신문들이 21일 일제히 보도했다. 조사반은 불법사실이 적발된 한인업소에 대해 48시간 안에 합법적인 절차와 수속을 밟지 않을 경우,상응한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으며 불법체류 외국인의 불법고용과 부당대우 행위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단속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관계부처간에 대규모 합동특별조사반을 편성해 한인촌의 고용·탈세비리 여부에 대한 기습단속에 나선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시의 한인교포 사회에 우려의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합동조사반측은 이번 단속이 불법행위를 저지른 업소나 개인에 대한 인신구속등 제재목적으로 실시된 것이 아니라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의 비정상적인 고용행태를 바로잡으려는 취지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한인교포들은 현지언론의 집중적인 비난성 보도에 이은 당국의 대규모 조사착수가 반한인사회 캠페인의 일환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신문들은 지적했다.
  • 한·흑·백인 모두 “평결 만족”/평온 되찾은 LA현지표정

    ◎시민들,“폭동위기 넘겼다” 축하일색/주지사,주방위군 당분간 철수안해” 로드니 킹 구타사건 재판에서 경찰관 4명가운데 2명에게 유죄평결이 내려지자 폭동위기감이 감돌던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한 미국 전역은 대부분 안도하는 분위기속에 평온을 되찾았다. 배심원 평결이 발표된뒤 지난해 4·29폭동의 진원지였던 사우스 센트럴과 피해가 컸던 코리아타운등 모든 거리는 주말이어서인지 인적이 드문 가운데 조용했고 경찰 순찰차와 보도진의 취재차량만 분주히 움직였다. 17일 상오 7시(한국시간 17일 하오 11시)평결결과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자 「제2의 LA사태」를 우려했던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은 평결결과를 축하하기 위해 거리로 몰려나왔고 사우스 센트럴에서는 흑인들이 손벽을 치며 서로 부둥켜 안는등 축하분위기에 휩싸였다. ○…사우스 센트럴의 여러 교회에서는 TV를 통해 평결결과가 발표되자 환호성을 질렀고 평결발표를 앞두고는 철야기도를 갖기도.교회에 가다 평결소식을 전해들은 한 흑인은 『하느님 고맙습니다.공정한 평결이었습니다』면서 만족감을 표시.또 다른 흑인은 2명에게 무죄가 내려진데 대해 『잘됐다』면서 스스로 위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브래들리 LA시장은 평결발표 2시간뒤 특별담화를 발표,『LA시는 이제 중요한 전환기를 맞았다.로스앤젤레스는 정의의 표본을 만들어 냈고 이를 계기로 고용창출등 시의 당면과제를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자』고 역설.또 윌리 윌리엄스 LA경찰국장은 『앞으로 24시간동안 더 경계상태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하고 주민들에게 정상적으로 생업에 돌아갈 것을 당부. ○…피트 윌슨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17일 하오 2시30분 서울신문사와 뉴스 제휴를 맺고있는 미주한인방송국(KCB)를 방문,한인들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그는 『주방위군을 당분간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앞으로 어떤 사태가 발생할 조짐이 보이기만하면 즉각 출동할 것』이라고 다짐.한편 교포출신 연방하원의원인 김창준씨는 17일 LA를 방문,평결결과에 만족을 표시한데 이어 18일에는 김항경LA총영사를 만나 앞으로 한인사회 발전을 위한 대책을 논의.
  • 클린턴,“정의로운 평결” 환영/“평결 7일만에 매듭” LA시표정

    ◎한인타운 바라케이드 치워 영업재개/“괴한침입” 경보에 경찰헬기 즉각 출동 17일 상오7시 (한국시간 17일 하오11시)로드니 킹을 구타한 4명의 백인경찰관 가운데 두 명에 대해 유죄평결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부분의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은 『적절한 평결』이라며 평결결과에 흡족해 하는 모습. 흑인지도자들과 지난해 폭동진원지인 사우스센트럴 지역의 대부분의 흑인들도 평결결과에 대체로 수긍하는 모습.이에 따라 당초 우려했던 폭동재발은 없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관측. ○…이날 존 데이비스판사가 평결문을 낭독하는 순간 유죄평결이 난 쿤경사는 재판관을 응시하며 입술을 깨물었고 파월경관은 고개를 떨구며 낙담하는 모습. 반면 무죄평결을 받은 윈드와 브리세노경관은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먼저 유죄평결을 받은 동료경관을 쳐다보며 위로의 눈길을 보내기도. ○…피츠버그를 방문중인 빌 클린턴미국대통령은 이날 평결소식을 전해듣고 『드디어 미국의 정의를 실현시켰다』며 소감을 밝힌 뒤 『앞으로 미국의 치안유지를 위해 전국적으로 10만명의 경찰을 증원시키겠다』고 약속. ○“사태 교훈 깨달아야” ○…다른 흑인종교지도자들과 함께 평결발표를 지켜보기 위해 연방법원에 나온 제시 잭슨목사는 평결결과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환영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연방정부가 이번 사태의 교훈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흑인밀집지역의 경제활성화등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할 것』을 강조. 잭슨목사는 『이제 우리 모두가 인종에 관계없이 서로 존중하고 살아나가야 하며 나도 한인지도자들을 만나 이같은 문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겠다』고 밝히기도. ○…평결발표이후 한인지역은 『이제 폭동걱정은 없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코리아타운의 가게를 중심으로 일부에서는 그동안 굳게 닫았던 출입문의 바리케이드등을 치우며 영업재개를 준비하기도. ○불과 15분만에 종결 ○…「제2의 LA사태」가 우려됐던 흑인 로드니 킹 구타사건평결은 7일간에 걸친 지루한 평결심리와는 대조적으로 15분만에 종결. 17일 평결결과는 존 데이비스판사가 법정에서전날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평결한 내용을 배심원들에게 일일이 확인하는 식으로 진행. ○…평결에 앞서 16일 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바로 남쪽에 있는 한인경영의 한 봉제공장에 3∼4명으로 추정되는 청년들이 물건을 훔치러 침입했으나 경보가 울리자 줄행랑.이날 공장에 침입자가 출현했음을 알리는 경보가 울리자 경찰순찰차가 즉각 출동한 것은 물론 경찰헬기도 곧 도착,경찰이 계속 강조해온 「만반의 준비」가 빈말이 아니었음을 입증. ○…한인사회는 4·17평결과 관련,톰브래들리시장과 캘리포니아 주지사,주방위군,LA경찰국장 등 치안관계 고위층이 사전에 유기적으로 대비책을 완비,소요사태의 재발에 재동을 걸었다고 평가.한인들은 또 지난해 4·29 흑인폭동이 톰 브래들리시장과 퇴임한 대릴 게이트경찰국장간의 불화로 초동진압에 실패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유비무환」의 교훈을 새삼 되새기기도. ○…한편 평결결과발표에 앞서 LA시당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6천5백명의 주방위군을 투입했는데 이에 소요된 경계경비가 약 2백만달러라고 발표.
  • 한인단체,핫라인 24시간 가동/LA 현지표정

    ◎“소요땐 한인촌에 병력 즉각 투입” ○…흑인 로드니 킹 구타사건에 대한 평결이 4일째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14일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과 폭동진원지인 사우스센트럴지역은 평결결과에 관심을 쏟으면서도 평상시나 다름없이 분주한 모습. 전날까지 난무하던 악성루머도 잠잠해졌고 이웃 해변가에는 일광욕객이 몰려드는가 하면 프로야구경기에도 입장객들이 모여들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가장 신경쓰는 지역” ○…폭동진압훈련을 시찰하기 위해 13일 잉글우드 주방위군 사령부를 방문한 보우즈먼사령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코리아타운은 주방위사령부가 시민보호차원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지역』이라면서 『소요가 나면 수분안에 방위군의 시가지 투입,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장담. ○교민 궁금증 풀어줘 ○…이날 LA한인상공회의소 한미연합회 한인회 재미한인체육회등 50여개 한인단체들은 소요사태 발생에 대비,홍보분과위,봉사분과위,경비분과위등 3개분과위로 구성된 「한인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 위원회는 웨스턴·올림픽가에 위치한 한인회에 임시본부를 두기로 하고 24시간 핫라인을 설치,이날부터 본격 가동키로 결정.또 LA 한인사회의 각 언론기관과 한인단체들은 비상핫라인을 설치,교민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각종 제보도 접수하는 등 한인사회의 단결력을 과시. ○법원·언론 신경전 ○…평결결과 발표를 둘러싸고 경찰·연방법원·언론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데이비스판사는 『평결5분안에 방송사로 연락하겠다』며 기자들이 철수해줄 것을 요청.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로스앤젤레스 시내 연방정부 건물 주변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2백여명의 취재진이 24시간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LA경찰위원회 마이클 야마키부위원장은 『어떤 한 언론의 특종보도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혹 있더라도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면서『동시발표를 믿어달라』며 언론이 지나치게 예민하게 보도하고 있는데 대해 자제를 촉구.
  • LA한인타운“긴장의 주말”/「로드니 킹」평결 주말에도 이례적 진행

    ◎한인업소 정상영업… 비상연락망 구축 로드니 킹 민권재판 평결을 앞둔 10일(현지시간) LA의 한인사회는 이번 주말을 고비로 「제2의 LA폭동」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긴 하지만 별다른 폭동재연의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있다. 그러나 한인이 경영하는 사우스 센추럴 LA의 D&D주유소(맨체스터247)에서는 이날 경비를 서고있던 흑인 1명이 같은 흑인에게 허벅지에 총을 맞은 사건이 발생했고 한인타운내의 올림픽 세차장에는 히스패닉계 여자 3명이 들이닥쳐 현금을 털어가는 사건이 발생했다.평상시 주말에 일어날 수 있었던 정도의 사건이 있었을뿐 LA 한인타운내 업소들은 정상영업을 계속했다. 한편 LA총영사관(총영사 김항경)은 9일부터 비상근무에 들어갔으며 한인회등 각 한인단체 업소 등은 자경단 또는 비상연락망 등을 조직,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총영사관은 상오8시부터 하오10시까지 부총영사 1명,영사 5명,행정직원 5명등 11명씩 비상근무를 시작했으며 한인회·코리아타운교민회·LA상공회의소·상사지사협의회·한인청소년회관(KYC)등 10여개 한인단체와 비상시 타운 수비에 전위대 역할을 할 수 있는 한미경찰위원회·재향군인회 방범단·코리아타운 워치팀·해병동지회·청년단 등과의 비상연락망도 구축해놓았다. 그러나 LA 경찰당국은 평결결과 발표와 동시에 6천5백여명의 대규모 병력을 코리아타운과 사우스 센추럴 LA등 소요 예상지역에 집중 투입,발생초기에 진압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어 지난해와 같은 피해는 되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로드니 킹 민권재판은 변호인측과 검찰측의 최종토론을 끝내고 10일 하오 배심원 심의에 넘겨진 것으로 보도됐으며,평결결과는 주말께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LA교민/「제2폭동」대비 자위무장

    ◎총기구입 급증… 무장순찰조 배치끝내/주방위군 장갑차 8대·병력 이미 진주 흑인청년 로드니 킹 구타사건에 연루된 경찰관들에 대한 평결이 임박해지면서 흑인소요 재발에 대비,미국 로스앤젤레스 교포들이 자위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사회에선 한인회·청년단등 유관단체들을 중심으로 비상연락망을 조직하는등 인명및 재산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비상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다.이에따라 한인사회 대책본부는 각 교포 언론사에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자원봉사자들을 모집,인명구조·재산피해방지를 위한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강구중이다. 한편 한인사회의 움직임과 관련,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지는 최근들어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에서는 총기판매가 2배로 느는등 폭동재연에 대비한 총기구입이 급증하고 있다고 4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로스앤젤레스 일원의 무기확보」라는 장문의 특집기사에서 한인타운의 잡화상점 주인 리처드 이씨(57)가 여러자루의 총기를 가게에 준비해 놓은 모습을 담은 사진을 싣고 이씨가 이번 재판시작 첫날에 20자루의 소총과 5자루의 권총,그리고 8천발의 총탄을 구입했다고 소개했다. 포스트지는 특히 18세에서 35세의 제대군인 등으로 구성된 약 50명의 한국청년단이 지난번 LA폭동당시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위해 생명을 바쳐 집과 사업을 보호할 결의를 다지고 있다고 전하면서 주류판매소와 전당포앞등에 무장순찰조 배치를 위한 준비가 완료된 상태라고 전했다. 흑인 소요에 대비,한인들의 무기구입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캘리포니아 주방위군 일부 병력이 로스앤젤레스 일원에 배치되고 있다.주방위군의 대변인 부루스 로이 중령은 8대의 장갑차와 일부 병력이 로스앤젤레스근교의 글렌데일시와 일글우드시에 이미 배치됐다고 3일 확인했다.주방위군의 또다른 고급장교들에 의하면 폭동진압 훈련을 위해 2·3일내에 필요한 지역으로 군병력이 배치될 것이라고 말해 로스앤젤레스인근에 군투입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 LA교포 7% “역이민 고려”/남가주대,폭동 1돌 여론조사

    【로스앤젤레스 연합】 4·29 LA폭동이 발생한지 11개월이 지난 현재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LA교포중 7%는 아예 한국으로 역이민할 것을 고려하고 있고 40%는 LA를 떠나 미국내 다른 도시로 옮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USC대학의 다민족문화연구소 조사결과 나타난 것이며 이 연구소는 20일 열린 「4·29 폭동 이후 미주 한인사회의 새로운 발전방향 모색을 위한 범인종 학술회의」에서 이 내용을 발표했다. 한인사업체와 흑인사업체 1백20개를 각각 대상으로 한 이 조사결과 교포들의 사업체가 흑인거주지역에 있는 사람이 많아 삶의 발판이 되고 있는데도 한인교포들과 흑인들은 서로 상대방을 가장 싫어하며 교포들은 같은 아시아계 인종을,흑인들은 유태인과 백인들에게 각각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한민족 탄압에 앞장/일제 「조선군」연구 아쉽다

    ◎독립운동사연 채영국연구원 논문서 지적/1904년 러·일전쟁초 무단통치위해 주둔/3·1운동 폭력진압… 한인 405명 살해/편제·역할·탄압실상 등 체계적으로 규명돼야 한일합방 이후 일제의 한국침략에 있어서 3대지주 역할을 했던 기관은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회사 그리고 조선군(주한일본군).이 가운데 3·1운동을 전후한 일제의 무단통치및 민족탄압의 실상을 규명하기 위하여는 당시 실질적 폭력 행사 기관이었던 조선군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채영국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논문 「3·1운동전후 일제 조선군의 동향」에서 일제통치하에서의 조선군의 편제와 배치,조선군의 역할,조선군의 한민족 탄압실상등 조선군의 군국주의적 활동 실체를 체계적으로 구명했다.이 연구에 따르면 일본군이 한반도에 처음 파견된 것은 한국주차군(주차군)이라는 이름으로 1904년 러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였다.증강된 정규1개사단 규모의 주차군은 초기에는 일제의 한국병탄(병탄)과 무단정치 수행에 전위역할을 했다. 1918년 5월에는 2개사단으로 증강되면서 그 명칭도 조선군으로 바꾸고 산하에 국경수비대(19사단­두만강,20사단­압록강)·헌병사령부·요새사령부(해안경비)등의 새편제로 한반도 전역을 완전히 장악했다.체제를 정비한 조선군은 이듬해 비폭력 평화적으로 전개된 3·1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으며 만주지역을 근거로 국권회복을 위한 무장투쟁을 전개하던 한국독립군의 소탕에도 앞장섰던 것으로 돼있다. 1919년 3월1일부터 6월1일까지 3개월동안 전국적으로 벌어졌던 1백여회의 시위에서 조선군의 진압내용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사망자는 모두 4백5명.이에비해 조선군의 사망자는 2명에 불과해 당시의 시위가 비폭력적이었으나 진압은 폭력적이었음을 입증했다.특히 일제가 3·1운동 이후 표방한 이른바 문화통치는 3·1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시킨후 한민족의 국권회복운동이 다시 일어날 것을 우려,제시한 또하나의 무력진압책이라고 평가했다. 또 조선군 국경수비대는 간도일대를 침입,독립군의 소탕을 기도했으며 나아가 독립군의배후세력으로 있던 간도의 한인사회 붕괴를 위해 경신참변을 야기시켰다.이 참변은 1920년 10월초∼11월말 사이 2개월동안 간도의 훈춘·연길·화룡현등 8개현에서 발생,3천7백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피살되었다.그리고 3천2백채의 가옥과 41개의 학교,16개의 교회가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다. 국경수비대는 또 만주의 관동군과 대등한 입장에서 대륙침략의 첨병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그것은 ▲장작림폭살사건(1928.6) ▲만주사변(1931.9) ▲중일전쟁(1937.7) ▲장고봉사건(19 38.7)등에 주도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요약됐다.조선군은 19 45년 2월11일 「제17방면군」및 「조선군관구사령부」로 명칭이 바뀌어 해방때까지 한반도에 주둔했다. 따라서 한국과 만주침략등 일제의 동북아 지배를 위한 침략야전군으로 그 활동이 두드러졌던 조선군은 특히 한민족의 항일독립운동 과정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연구대상.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채연구원은 『일제 식민통치의 폭력정치화를 주도한 조선군의 활동은 일제식민지배의 새로운 성격규정과 한국민족운동의 새조명을 위해 활발한 연구가 전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교포 5명 당선되던 날 한인타운 표정

    ◎“한인권익 보호 교두보 마련” 환호/“흑인 등 타인종과 화합기여” 고무/“근면한 민족 미국민이 인정” 평가 【로스앤젤레스=홍윤기특파원】 대통령선거와 함께 3일 치러진 미국 각급 선거에서 김창준씨(53)가 연방의원에 당선한것 말고도 또다른 교포 5명이 지역 정계에 진출하게되자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을 비롯한 미국내 한인사회는 5일 온통 축제분위기를 이루었다. 교민들은 특히 이들의 정계진출이 한인들의 권익을 보호할 교두보를 확보한것이라는 의미외에도 흑인을 비롯한 미국내 다른 인종과의 화합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로 크게 고무되어 있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한인은 김씨말고도 오리건주 상원의원에 임용근씨(55·공화당·제약업),워싱턴주 하원의원에 신호범씨(57·슈얼라인대교수),하와이주 하원의원 재키 영,캘리포니아주 가든그로버시 시의원 정호령씨(58·보험업),시애틀 시의원 마사 최 등이다. 김씨를 도와 선거운동본부 홍보부장을 맡았던 옥봉윤씨(56·부동산업)와 사무총장 김광현씨(41·금융업)등은 『김씨의 당선은 1백년이민역사상 최대의 쾌거』라면서 『그동안 소수민족으로서 말할 수 없는 설움을 받아 왔지만 이제 중앙정치무대에서도 우리 교포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교민들은 특히 이들의 당선이 「일벌레」로 불릴 만큼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해온 한인사회를 미국민들이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하면서 이를 자부하고 있다. 교민들은 특히 미국내 주류사회 진출을 위한 「예비군단」으로 성장해가고 있는 교포2세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이들의 정계진출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김창준선거운동본부의 관계자들은 『김씨의 당선을 계기로 「LA동부한인유권자협회」를 결성,한인들이 권리와 의무를 제대로 행사하도록 계몽해나가는 한편 교포 1.5세나 2세들의 정계진출을 적극 후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워싱턴주 하원의원 신호범씨(교민당선자 3명 프로필)

    ◎첫 도전서 3선의원 꺾은 역사학박사 신호범 워싱턴주 제21지구에서 주하원의원에 당선된 신호범씨(57·공화당)는 워싱턴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 20여년간 시애틀 교외의 쇼어라인커뮤니티칼리지에서 재직해온 대학교수. 지난 74년 시애틀한인회장을 지냈으며 워싱턴주의 역대 주지사들과 친분이 두터워 한인사회와 미국 주류사회와의 교량역활을 해왔다. 집이 가난해 6·25당시 「하우스보이」로 지내다 알게된 미국 군의관 폴씨의 양자로 입양돼 18세때 도미한뒤 공부로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지난해까지 3년간 모르몬교회 「한국선교부장」을 지내기도. 뛰어난 영어구사력과 언변,원만한 대인관계가 3선인 현역의원을 꺾고 첫도전에서 당선되는 원동력이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하원의원 당선 「긍지의 한국인」 김창준씨

    ◎미 이민 100년사에 “새 이정표”/대선 공화당열세 극복한 쾌거/61년 유학… 설계전문회사발판 “입지”/시의원·시장거쳐 미 지도자로 우뚝/「아메리칸드림」 실현… 「LA폭동」 상처 치유 계기로 한국인 이민이 미국정치무대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켰다. 1백년 남짓한 한국인의 미국 이민 역사에서 처음으로 우리 교포1세가 하원의원에 당선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다이아몬드바시의 시장에 취임함으로써 이미 한국인의 저력을 과시했던 김창준씨(53).김씨는 3일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러진 연방하원 의원선거 제41선거구(로스앤젤레스 동부)에서 공화당후보로서 상대방후보를 압도적으로 물리치고 당선됐다. 정계에 입문한 이후『이민자라는 불리한 여건속에서 미국인들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사내로서 해볼만한 일』이라고 늘 입버릇처럼 되뇌었듯이 그는 우월감으로 가득찬 미국인들의 지도자로 우뚝 선 것이다. 김씨의 당선은 개인적인 성취감을 넘어 1백만 미주동포에게 긍지와 자신감,용기를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미주한인사회 전체의 승리라 할 수 있다.이민 선배격인 중국인들도 해내지 못한 큰 일을 그가 해냄으로써 경제적으로 기반을 다진 교포사회에 정계진출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교포들은 특히 김씨의 당선이 이민사상 가장 큰 재난으로 기록된「4·29 인종폭동」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될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씨의 당선지역인 제41지구의 전체 유권자 25만명 가운데 동양계는 한국계 3천2백명과 중국계 4천8백명등 고작 3%남짓이다.그나마 대만과의 단교로 중국인들의 반응이 냉담했고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부시가 민주당의 클린턴에 열세인 어려운 상황에서 얻어낸 그의 승리는 더욱 값진 것이다. 그가 혈혈단신으로 미국유학길에 오른 것은 지난 61년.보성고를 거쳐 연세대 법학과 3학년때 「청운의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넜다. 미국도착후 지방신문의 독자부직원 생활을 시작으로 우선 체프리칼리지에서 어학연수를 마친뒤 전공인 법학을 포기하고 남가주대 공대에 들어가 토목공학 학사와 환경공학 석사를 취득하고 환경대학원까지 졸업했다.졸업후 영주권을 신청하고 77년 로스앤젤레스 근교 다이아몬드 바시에 「제이킴 엔지니어링」이라는 설계전문회사를 차렸다.지금은 1백50명의 직원에 4개의 지사까지 거느리게 된 중견기업으로 주정부로부터 교통체계·교도소·유해물질폐기시설등의 설계용역을 맡고 있으며 우수중소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사업에서 성공하자 정치에서 또다른 도전의 출구를 찾아 나섰다.기회는 로스앤젤레스동부의 다이아몬드바시로 회사터전을 옮긴지 1년반만인 90년 4월에 찾아왔다.시의원에 당선된 것이다. 그 이듬해에는 부시장과 시장에 잇따라 당선됨으로써 미국이민사에「동양인시장」이라는 역사적인 획을 긋게 된다.그는 내친 김에 지난 6월2일 예비선거에 출마,공화당 하원의원후보로 선출되어 미정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 39년 서울에서 충남 신탄진이 고향인 아버지와 평북 강계출신인 어머니슬하에서 2대 독자로 태어난 그는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부인 김정옥씨(51)와 2남1녀를 두고 있다. 고향이 그리울 때면 한인타운의 술집에서 흘러간 우리노래를 부른다는 김씨는 이역만리 미국에서 우리나라의 긍지를 한껏 드높인 훌륭한 한국인임이 틀림없다.
  • LA에 첫 한국중학교 개교(단신패트롤)

    ◇미국 한인사회의 첫 정규중학교인 로스앤젤레스한국중학교(교장 에이브러햄 마우러)가 14일 문을 열었다. 남가주한국학원(이사장 김동재)과 LA한인사회의 3년여에 걸친 노력끝에 미국당국의 인가를 받아 문을 연 LA한국중학교는 학생 13명에 정규교사 4명,강사 3명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코리아타운 외곽에 있는 한국학원 안의 말끔하게 단장된 교실에서 남학생들은 흰색 상의에 진한 청색 반바지,여학생들은 흰색 상의와 흰바탕에 체크무늬가 있는 스커트 교복을 입고 수업에 들어갔다.
  • 멕시코:3/나윤도특파원 현지리포트(중남미를 다시 본다:13)

    ◎한·멕시코 경협확대에 기대 크다/「북미무역협정」전 우리기업 진출 서둘러야/농업이민 한인 3·4세 주축,2만여명 거주/한국회관 건립·전용공단 조속설립 바람직 우리가 멕시코와 인연을 가져온 지난 90년동안 줄곧 멕시코는 한국인들에게 기대와 희망의 땅이 돼왔고 지금도 그 꿈을 찾아 멕시코로 찾아드는 한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와 90여년 인연 멕시코의 그 무엇이 한국인들에게 끝없는 매력이 되고 있는 것일까.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라고 쉽게 얻을수 있다.결국 매력은 미국에 있었고 멕시코는 미국으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는 것이다. 3천2백㎞의 길고 긴 미·멕국경에는 수많은 월경브로커들이 싸고 안전하게 안내(?)해주기 때문에 정당한 방법으로 미국에 들어갈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우회지로서 적격이었던 것이다. 이때문에 실제로 멕시코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한인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중남미등지에서 미국으로의 불법입국을 위해 멕시코에 잠시 머무는 한인들이 불법체류·밀수 등으로 자주 체포되기 때문에 전체 한인들이 「어글리」한 인상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한때 멕시코주재 한국대사관 영사의 업무는 붙잡혀오는 이들 불법체류자나 밀입국 기도자들의 뒷처리가 전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심각했다는 것. 그러나 몇해전부터 이같은 양상은 상당히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한인회장을 맡고 있는 서남수씨(53)의 얘기다.서씨는 『멕시코의 경제가 활성화 되면서 멕시코를 종착역으로 삼고 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면서 『그같은 마음가짐으로 오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멕시코는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고 희망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더욱이 지난해 9월 한국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노태우대통령이 멕시코를 방문,살리나스대통령과 양국의 협력증진을 위한 각종 방안을 마련함에 따라 이곳 한인사회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그동안 숙원사업으로 돼있던 한인회관건립지원을 노대통령이 약속했으며 또 한국전용공단설치,자원 및 수산협력증대,서울∼멕시코시티 직항로개설 합의 등으로 서울이 한결 가까이있음을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한편 멕시코정부도 이곳 한인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지난해 양국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협력방안들의 빠른 결실을 희망하고 있다.경제기획부의 가브리엘 토레스 대외협력국장은 『한국대통령의 멕시코방문은 양국이 보다 가까운 관계에서 문제해결을 노력해가는 계기가 됐다』면서 『양국협력이 보다 확실한 결과를 가져오기 바란다』고 농산물 수입개방등 우리측의 빠른 후속조치를 촉구했다. 현재 멕시코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모두 2만여명.이들중 60년대 후반 기술이민등으로 와서 정착한 사람들은 1천여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1950년 유카탄반도의 어저귀(사이잘삼)농장에 농업이민을 왔던 선조들의 후예로 멕시코인들에게 거의 동화된 한인후손 들이다. ○사회지도층 진출도 구한말 을사조약 이후 일제의 침략이 극에 달했을때 먹을것이 없어 계약노동자로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메리다농장으로 왔던 1천33명이 멕시코 한인의 효시이다.이들은 사기이민으로 갖은 핍박을 받아가며 노예와 같은 생활을 했으나 오직 4년의 계약기간이 끝난후 고국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견뎌냈다.그러나 막상 계약기간이 끝난후 준비기간을 거쳐 1910년 귀국을 서둘렀을때 그들은 일제의 조선합방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조국을 잃고 낯선 멕시코땅에서 오갈 곳없는 신세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후 이들은 고국에의 그리움을 삭이며 한국인 특유의 강인함과 근면성으로 멕시코땅에 뿌리를 내리고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현재 이들 3,4세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한인사회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고 대학교수,행정부국장등으로 멕시코사회의 지도층으로 진출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장사를 하며 어렵게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한민족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비록 말은 할줄 몰라도 한국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60·70년대 뒤늦게 한국에서 이민온 사람들과 같이 한인회를 설립,화합을 이루며 지내고 있다. 지난 4월말 한국정부의 초청으로 일행 4명과 함께 한달간 한국을 다녀온 이민3세 이르바시오 킴(김)문씨(62·멕시코 엔지니어링 이사))는 『처음 가보는 땅이었지만 전혀 낯설지 않아 「핏줄」의 의미를 새삼 깨달을수 있었다』면서 『우리 자손들에게 훌륭한 할아버지의 나라를 일깨워줄수 있도록 한국의 문화와 한국말을 가르쳐줄수 있는 여건을 모국정부가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인능력 높이 평가 70년대 중반,이곳으로 이민와 10여년째 양말공장 「레까 인더스트리」를 경영해오고 있는 최정철씨(45)는 『살리나스정권이 들어선 이래 최근 2∼3년동안 과감한 경제개혁 조치들을 추진해오고 있지만 아직 중소기업에까지는 변화가 느껴지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개방정책을 표방하면서도 외국기업에 대한 여러가지 불리함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들은 이곳 한인기업인들과 사전협의를 거치는 것이 위험부담이 적을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씨는 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금년중 체결된다면 멕시코경제는 어차피 한차례의 구조조정을 겪게되기 때문에 북미시장을 노리고 있는 우리기업들은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칠레:3/나윤도특파원 현지리포트(중남미를 다시본다:10)

    ◎산티아고 중심부에 한인교두보 확보/「마포」거리에 교포 밀집… 거의 의류상/작년 일부교민 강제출국… 불안 팽배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를 가로질러 흐르는 마포초강은 그리 넓지 않아 개천정도에 불과하지만 안데스산맥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흙탕물이 일년내 수량변화없이 기세좋게 흐르고 있다. 1천5백여 칠레 한인들의 생활터전이 되고 있는 산티아고의 파트로나토 거리와 안토니아 로페스테발로 네거리는 시내에서 볼 때 이 강 건너에 있기 때문에 한인들 사이에서는 흔히 「마포」로 불린다. 대부분이 봉제의류업 또는 액세서리·가방등의 상점을 경영하고 있는 이곳 한인들은 칠레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사회안정에 힘입어 그 수는 적지만 중남미 어느 국가의 교포들보다도 잘살고 있다. 칠레한인회의 이관석회장(49)은 『우리 교민들의 50%정도는 액세서리·의류등 수입상을 하고 있으며 45%는 봉제업,나머지 5%는 나염·자수등 제조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수입상들은 대부분의 상품을 서울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어느 지역의 교민들보다도 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에서 직접가져와 또한 한국과 칠레와의 교역도 활발하게 이뤄져 지난해 무역규모는 6억4천2백만달러에 달했으며 최근 2∼3년간 연평균 9%이상의 성장률을 나타냈다.한국은 현재 1억달러정도의 대칠레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일부기업이 동광개발에 진출하고 있어 앞으로 자원확보의 측면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이곳에서 자원개발의 선봉에 선 기업은 럭키금성상사.지난 89년부터 산티아고에서 북동쪽으로 2백여㎞ 떨어진 안데스산맥 중턱에 있는 로스 펠람브레동광 개발에 착수한 이래 3년만에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그동안 투자된 개발비만도 7천만달러에 달하며 이달중 1만t을 첫 선적하게 된다. ○동광개발 5만t 수입 이 회사의 김동원지사장(39)은 『칠레는 자원이 풍부한 국가이기 때문에 자원개발에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이곳의 생산량 대부분을 한국으로 수출해 한국의 연 동수입량 45만t중 5만t을 충당하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이곳 한인사회는 칠레이민당국의 일부 한인에 대한 체류권연장 불허 조치로 인해 언제 추방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팽배해가고 있다. 지난해 9월 칠레정부로부터 출국통지를 받은 교민수는 1백90여명.이들중 영주권을 신청했던 1백53명은 3∼7년간 칠레에 거주하며 정부당국의 허가를 얻어 장사를 해오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충격이 더욱 컸고 1년짜리 체류권을 신청해놓고 있던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또 이같은 조치는 교민뿐 아니라 상사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돼 일단 출국후에는 재입국이 안되므로 인접국의 출장도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칠레정부는 한국인에 대한 체류권 연장 불허이유로 불법입국·탈세·뇌물공여·기타 행정법규위반등을 들고 있다. 결국 이문제는 본국정부에서 특사를 파견,1년간의 유예조치를 얻는 것으로 임시 해결됐지만 오는 9월로 유예기간이 끝난 뒤에는 칠레정부가 또 어떻게 나올 것인지 불안하기만 한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고국정부에 호소하기 위해 최근 서울을 다녀온 이교민회장은 『물론 일부 교민들 가운데 그같은 탈법행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한국인에 대한 시기심에서 나온 조치같다』면서 『리우 데 자네이루 환경정상회담에 참석하는 정원식국무총리가 역시 그 회의에 참석하는 에일윈 칠레대통령을 만나 직접 문제해결을 촉구키로 했으므로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9월로 유예기간 끝나 이같은 칠레정부의 한국교민에 대한 대거 추방령으로 말미암아 본인들이 입은 심리적 피해는 말할 것도 없지만 전체 한인들이 입은 피해도 굉장히 큰 것이었다. 현지언론은 물론 인접국 언론에 까지 대서특필돼 마치 아르헨티나나 브라질등에서도 한국인들은 모두가 범법자인 양 비쳐졌다는 것이다. 이같이 칠레인들이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는데 대해 그들의 민족기질 때문으로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즉 스페인·독일·이탈리아계등 유럽계가 전체인구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칠레인들은 유럽인 후예로서의 자부심과 안데스산맥과 태평양으로 고립된 자연환경적 요인에서 온 폐쇄적 기질이 한데 어우러져 냉정하고 양보심 없는차가운 국민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긴밀한 유대관계 필요 그들이 볼 때 돈 몇푼 있다고 거들먹거리고 다니는 동양인들이 곱게 보일리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의 한인사회에서도 교민회를 중심으로 사회적응운동과 예의갖추기운동등을 벌이고 있으며 보다 적극적으로 현지인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갖도록 권유하고 있다.한 예로 칠레인들은 슬리퍼를 끌고 반바지 차림으로 대로를 활보하는 동양인들에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지인들과의 적응문제는 비단 칠레뿐만 아니라 해외 한인들 모두의 문제라 할 수 있다.이러한 문제만 원만히 해결된다면 근면한 한인들의 외국생활은 별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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