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 Disease] 경희대의대 김영설 박사
신경계의 오작동이나 고장이 초래하는 질병이 인간에게 주는 고통은 말로 형언하기가 쉽지 않다.종류가 많고,그 고통이 상상을 초월하는 까닭이다.이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서구형 대체의학 ‘뉴로피드백 시스템(Neurofeedback system)’을 국내에 처음 도입해 신경계 질환 정복에 나선 경희대의대 내분비내과 김영설(55) 박사의 시도는 의학계 안팎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서구 대체의학 ‘바이오피드백’의 신버전
뉴로피드백 시스템은 한마디로 뇌파를 활용한 신경치료법.이전에 서구에서는 뇌파와 심전도,근전도 등을 이용한 바이오피드백(Biofeedback)이라는 대체의학이 한 흐름을 형성했었다.뉴로피드백 시스템은 이 바이오피드백 시스템의 새로운 버전으로,뇌파를 통해 인체의 문제를 파악,조절해 질병의 단계에서 정상의 범주로 유도하는 치료법이다.“인체는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는데,이런 특성이 바로 내분비계의 핵심인 피드백 기능입니다.뉴로피드백은 이런 기능을 임상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라고 보면 됩니다.”
이 뉴로피드백 시스템이 국내 대학병원에 첫 도입된 것이 지난달로,아직은 충분한 임상 결과가 축적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이 시스템을 처음 접하고는 저도 놀랐어요.미국이나 일본의 텍스트를 통해 접했을 뿐인데,제가 직접 임상에 적용해 보니 당장 드러난 성과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성과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지난 5년 간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던 환자가 단 한번의 치료로 숙면을 취했는가 하면,뇌졸중으로 언어중추가 마비돼 말을 못하던 사람이 한번 치료받은 뒤 다섯 개의 단어를 말하기도 했다.이는 중요한 변화라고 봐야 한다.
다른 사례는 없나.
-당뇨합병증으로 발가락을 절단한 환자가 심한 통증을 호소한 적이 있다.일종의 감각과잉 증상인데,이 증상이 오면 이미 제거한 발가락이 아픈 것처럼 느껴진다.인체의 기억중추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건데,이 환자도 뉴로피드백 치료후 안정을 되찾았다.
●반복된 훈련 통해 뇌기능 정상화
뉴로피드백은 치료법이지만 한편으로는 뇌 훈련법이기도 하다.“인간의 뇌는 반복된 훈련을 통해 뇌파를 조절할 수 있고,이는 곧 뇌 기능의 자기조절능력이 향상됨을 의미합니다.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른 훈련을 반복해 뇌기능이 정상화되고,질환이 치료되면 마치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뇌가 이 상태를 기억해 스스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해 나가는 겁니다.”
구체적인 치료원리를 설명해 달라.
-병증에 따라 접근 방법이 달라 일률적인 설명은 곤란하다.예컨대,좌뇌와 우뇌의 기능이 불균형 상태에 빠지면 불면증이 나타나는데,이런 환자의 뇌파를 측정해 인위적으로 불균형을 해소하면 숙면이 가능하게 된다.또 당뇨합병증 가운데 당뇨신경증이 나타나면 특정 부위가 아파 견디지 못하는 고통을 겪는다.이때는 통상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는데,이런 환자에게 뉴로피드백 시스템을 적용,뇌의 통증중추인 시상 부위가 안정되도록 치료하면 통증을 느끼는 강도가 현저히 달라진다.다시 말해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자신에게 적합한 신경상을 만들고 이런 상태를 뇌가 기억하도록 하는 원리다.
●불면증·학습장애·만성피로에 효과
그래도 이해가 안된다는 기자의 푸념에 김 박사는 뇌파를 들어 설명했다.“뇌파에는 다양한 주파수 대역이 존재하는데,이 주파수를 읽으면 뇌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 델타파가 활성화 돼 있으면 숙면상태이고,하이베타파가 활성화하면 긴장,불안상태를 뜻합니다.이걸 모니터로 보면서 환자를 가장 적합한 상태로 유도해 들어가는 훈련입니다.즉,약물이나 물리적 힘이 아니라 스스로가 가장 안정된 뇌파를 찾아 그걸 기억시키는 치료법이지요.이해가 되나요?” 그러면서 김 박사는 치료 장면을 공개했다.간단한 뇌파 측정기구를 머리 부위에 연결한 고령의 환자가 안락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보면서 팩맨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고,옆 모니터에는 환자의 뇌파가 지진계처럼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약물·물리적 힘없이 게임하듯 치료
담당 의사는뇌파상태를 모니터링하면서 안정하라거나 숨을 크게 들이쉬라는 등의 주문을 하고 있었다.
치료효과에 대한 검증은 있었나.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적용중이고,미국 일본 등 외국에서는 집중력,기억력,어린이나 성인의 충동장애,각종 중독증,자폐증,불면증이나 간질에 대한 치료효과가 이미 검증됐다.
우리나라의 임상 결과는 언제쯤 제시되는가.
-기본적으로 6개월간 이 프로그램을 적용한 뒤 결과를 제시할 것이다.상당히 전향적이고 놀라운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
적응증이 많은데….
-뇌의 기능에 영향을 받는 질환이 많기 때문이다.아직 국내에서는 적용한 병증이 많지 않지만,의료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어린이나 어른의 정서·충동장애(ADHD),학습장애,불면증,두통 등 만성 통증이나 만성피로증후군,틱장애,뇌졸중 후유증,고혈압,폭식증,당뇨병은 물론 간질이나 약물중독에 대해서도 주목되는 임상시험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내 경험으로는 불면증의 경우 3회,뇌졸중장애나 폭식증은 20회 정도의 치료로 뚜렷한 개선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스스로 놀랐다고 평하는 뉴로피드백 시스템은 한의학과 함께 현대의학이 드러낸 역량의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보였다.치료 과정도 까다롭지 않다.전문의 상담을 거쳐 치료방법과 목표가 결정되면 환자는 컴퓨터게임을 하듯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면 된다.김 박사는 “이 시스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치료 효과를 정밀하게 분석한 뒤 각 전문과가 공조하는 센터 설립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질병을 이겨내려는 모든 시도는 의미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김영설 박사는
▲경희대의대 및 대학원(의학박사)
▲일본 동경여자의대 연구원
▲경희대 부속병원 내분비분과장,경희의료원 의학정보센터 소장 등 역임
▲대한내과학회 학술상,대한당뇨병학회 학술상 등 수상
▲현,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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