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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수 서울시의원 “지능형 CCTV 조속히 확충해야”

    김태수 서울시의원 “지능형 CCTV 조속히 확충해야”

    서울시의회 주택공간위원회 김태수 부위원장(국민의힘·성북구 제4선거구)은 지난 13일 열린 서울시 디지털정책관 행정사무감사에서 CCTV 통합관제센터 관제인력 확충 및 지능형 CCTV로의 조속한 전환을 주문했다. 올해 6월 말 기준 서울시 25개 자치구 CCTV 통합관제센터의 관제요원 1인당 평균 관제해야 하는 CCTV 대수가 1027대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영상정보처리기기 통합관제센터 구축 및 운영 규정’에서 권고하고 있는 ‘관제요원 1인당 50대’ 보다 20배나 많은 숫자로 영등포구가 1인당 2199대로 가장 많고, 구로구 1610대, 은평구 1551대 순이었으며, 가장 양호한 종로구의 경우에도 1인당 CCTV 관제 대수가 492대로 행안부 권고치의 10배 가까이 됐다. 그런데도 최근 5년간 25개 자치구 CCTV 관제요원 숫자는 2019년 362명에서 2020년 361명, 2021년 370명, 2022년 364명, 2023년 368명으로 거의 제자리 수준에 머물렀다. 또한 정부는 올해 1월 “이태원 참사를 교훈 삼아 국가안전 시스템을 개편하겠다”라며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대책에는 모든 공공 CCTV를 2027년까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지능형 CCTV로 바꾸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올해 6월 말 기준 서울시 25개 자치구에는 총 9만 2991대의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이 중 지능형 CCTV는 2만 4084대로 25.9%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자치구별로 편차가 심하게 발생하고 있어 종로구(100%), 양천구(90%), 성북구(80%) 등은 지능형 CCTV 비율이 높지만, 강북구, 노원구, 마포구 등 3개 자치구는 지능형 CCTV가 한 대도 없고, 중구도 그동안 지능형 CCTV가 없다가 지난 10월에서야 50대를 설치했다. 지난 8월 관악구 등산로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등 CCTV가 없는 등산로가 문제가 된 바 있는데, 서울시 자치구에서 관리하는 서울둘레길 1~7코스의 등산로 구간 CCTV 설치 대수는 고작 104대에 불과, 지능형 CCTV가 설치된 곳은 제3코스 8대뿐이었다. 한양도성길 등산로 구간의 경우 CCTV가 190대 설치되어 있는데 지능형 CCTV는 단 한대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교산자락길·무장애숲길의 경우 총 134대의 CCTV가 있는데, 이 중 지능형 CCTV는 인왕상 자락길 2대와 호암늘솔길 1대 등 3대가 전부였다. 한강길에는 CCTV가 1045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중 지능형 CCTV는 45대로 4.3%에 불과했다. 지천길 구간의 경우 CCTV가 1523대 설치되어 있는데 이 중 지능형 CCTV는 단 한대도 없었다. 김 의원은 이날 행정사무감사에서 CCTV 관제인력의 확충과 더불어 지능형 CCTV로의 조속한 전환을 주문했으며, 현재 둘레길, 한양도성길, 근교산자락길·무장애숲길, 한강길, 지천길 등의 담당 부서가 다르고 특히 지능형 CCTV 비율이 현저히 낮은데 디지털정책관에서 CCTV를 총괄 관리해 지능형 CCTV로의 전환을 추진할 것을 당부했다. 이에 서울시 디지털정책관은 부서별로 산재해 있는 CCTV 업무의 총괄적인 지휘부 역할을 할 것이며, 정부에서 목표로 한 2027년보다 1년 앞당겨 2026년까지 지능형 CCTV로의 전환을 마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 한신 서울시의원 “주민 동의 없는 평창터널 추진보다 강북횡단선 우선되어야”

    한신 서울시의원 “주민 동의 없는 평창터널 추진보다 강북횡단선 우선되어야”

    한신 의원(더불어민주당·성북1)은 지난 2일 재난안전관리실 행정사무감사에서 10년 만에 재개되고 있는 평창터널 사업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했다. 평창터널은 종로구 신영동 신영삼거리에서 성북구 성북동 성북로까지 이어지는 터널이다. 양방향 4차로로 예정돼 있으며, 60개월의 공사기간을 예정하고 있는 사업이다. 해당 사업은 지난 2007년 7월에 민간제안서를 받아 서울시에서 확인했으나, 2010년 8월에 교통혼잡 및 문화재 훼손 우려와 성북동 주민의 탄원서, 신영동 주민의 진정서, 당시 스웨덴 대사의 민원서한 등 다양한 이들의 반대로 인해 사업이 보류됐다. 한 의원은 “지금껏 4차에 걸쳐 평창터널과 관련해 자료요구를 했으나, 간단하게 축약화된 자료만 돌아왔다”라며 “평창터널은 단순히 주민들의 민원뿐 아니라 한양도성, 심우장, 간송미술관, 팔정사 등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곳”이라며 “단순히 노선을 변경하고 이용차종을 변경한다고 해서 영향이 안 갈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새롭게 변경된 평창터널의 출구는 성북초등학교 바로 앞으로 계획돼 있다. 해당 도로는 기존 4차선을 사용하고 있고 현재도 출퇴근길에 교통체증이 심한 구역이다. 한 의원은 “평창터널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교통량은 하루에 2만 3934대”라며 “소음을 줄이기 위해 방음벽을 설치한다고 해도 종일 이동하는 차량의 소음과 공해는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사업을 진행하는데 해당 사업의 편익 분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적인 현장 파악과 주민들의 동의”라며 “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직접 현장에 가서 실태파악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한 의원은 “이렇게 큰 사업을 주민에게 설명도 없이 진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며 “주민설명회는 사업이 다 진행되고 나서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진행을 위해 주민에게 먼저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는 자리”라고 일축했다. 마지막으로 한 의원은 “지금 주민들에게는 동의하지도 않고, 원치도 않는 평창터널이 아니라 강북횡단선이 필요하다”라고 강력히 주장하며 주민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 것을 촉구했다. 강북횡단선은 동대문구 청량리역에서 서대문구 홍제역을 지나 양천구의 목동역을 연결하는 노선으로 지난 2019년 노선 선정 당시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위 노선은 지난 2019년 제2차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안) 대시민 발표에서 신규 선정, 2020년 제2차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이 확정 고시되면서 예비타당성 조사 사업에 선정됐다. 또 2021년 10월 타당성 조사가 착수됐으며, 현재 향후계획은 미정이다.
  • [서울광장] 서울상업사박물관 어떤가/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서울상업사박물관 어떤가/서동철 논설위원

    서울시가 강북 도심의 세운상가 일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계획을 공표했다. 종묘에서 퇴계로를 잇는 상가와 주변을 대규모 녹지공간과 업무·주거용 건물, 문화·상업 시설로 재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상가 건물을 헐어내고 녹지화하면서 그 양쪽을 고밀도 주거·상업시설로 꾸밀 계획이다. ‘녹지생태도심’이란 표현을 앞세웠지만 낙후한 도심을 고층빌딩군(群)으로 바꾸겠다는 속내일 것이다. 도심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세운상가는 1967년 완공됐다. 개발시대의 상징이라는 긍정적 평가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으로 꼽히는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라지만 추종자 사이에서조차 세운상가를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미 그의 작품 연보에서 지워졌다는 얘기도 있다. 세운상가 정비는 스카이라인을 바꾸면서 경제 활력도 크게 높일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자 할수록 오래된 역사를 보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노력도 더욱 치열해야 한다. 지금 세운상가의 겉모습은 그저 낡아빠진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운상가와 주변의 전문업종 밀집지역은 우리 경제 발전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양도성의 4대문 내부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돌아보면서 조상들이 정치지상주의에 매몰돼 실사구시적 사고를 하지 않은 것을 한탄하곤 한다. 그럼에도 문화유산 보존에서조차 정치사 위주로 치달아 막상 사람이 먹고 살아간 역사에는 지극히 소홀한 모습을 보여 준다. 도성 내부지역의 문화유산 보존 실태를 보면 이런 현상은 너무나도 뚜렷하다. 조선은 한양도성을 설계하면서 정치적 권역과 경제적 권역을 분명하게 나눴다. 경복궁과 육조거리가 있는 광화문 일대가 정치 권역이라면 종로거리는 경제 권역이었다. 종로1가부터 동대문에 이르는 종로6가까지 국가가 정책적으로 조성한 육의전 거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은 경제와 상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인식을 도성 조성 계획에서부터 적극 반영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도성 내부 보존은 상업사를 외면하고 있다. 경복궁과 육조거리는 오랜 시간에 걸쳐 복원하는 작업이 오늘도 이루어진다. 하지만 종로의 경제 권역은 오히려 급격하게 파괴되고 있으니 안타깝다. 종로 초입부터 대형건물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지하에 남아 있던 육의전의 흔적도 사라지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종로의 조선시대 상업 역사가 완전히 잊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서울시의 세운상가 재개발 계획에 주목하는 것은 조선시대 상업사를 복원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종묘 건너편 세운상가 초입의 고층빌딩 계획을 두고 맞서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서울시도 초대형 공영개발에 무엇이든 문화 공간을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그 저밀도 문화공간을 종묘 건너편에 자리잡게 하면 논란은 사라진다. 세운상가 재개발 과정에서 부지의 전면적 발굴조사는 불가피하다. 특히 종묘 건너편의 지하에는 당연히 육의전 유구가 남아 있을 것이다. 민간업체의 개별적 개발사업 과정에서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는 조선시대 상업 역사의 흔적이다. 서울시의 공영개발에서도 같은 운명에 처하는 불행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종묘 건너편 세운상가 초입은 서울상업사박물관이 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지하의 육의전 유구를 그대로 전시 콘텐츠로 활용하는 새로운 개념의 박물관을 희망한다. 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서울시의 의지를 드높이고 조선 상업 유적의 영구보존도 현실화하는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 녹지공간 건너에 세운상가역사박물관이 들어서면 더더욱 좋겠다.
  • 서울시의회 ‘자연문화환경탐사연구회’, 한양도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위한 현장 피케팅

    서울시의회 ‘자연문화환경탐사연구회’, 한양도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위한 현장 피케팅

    서울시의회 의원연구단체 ‘서울 자연문화환경탐사연구회’(이하 서자연) 대표를 맡고 있는 박환희 운영위원장(국민의힘·노원2)이 제안하고 단체 소속 의원들이 의기투합해 지난 30일 동대문 근처 낙산에 있는 성곽 앞에서 서울시의원 8인이 각자 피켓을 하나씩 들었다. ‘한·양·도·성·세·계·유·산’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올리자는 서울시의회 차원의 첫 캠페인이었다. 연구회 차원에서는 택지개발로 위협받고 있는 태강릉 보존을 위한 연구용역에 이어 세계유산과 관련한 두 번째 활동이다.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 수도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곽 유산으로 평균 높이 5~8m, 전체 길이 18.6km에 이르며 한국 고유의 축성 기법과 집단 장인 기술로 구축됐다. 서울시는 한양도성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왔으나, 문화재청이 한양도성과 함께 북한산성, 탕춘대성을 하나로 묶어 ‘한양의 수도성곽’이라는 주제로 추진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서울시, 경기도, 고양시가 함께 등재 사업을 추진했고, 지난해 12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수도성곽을 ‘세계유산 우선등재 목록’에 선정하면서 이 사업에도 탄력이 붙었다.이날 의원들은 동대문 성곽공원에 있는 한양도성박물관을 방문해 도성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박물관부터 시작되는 낙산성곽 코스를 따라 걸으며 ‘한양도성을 세계유산으로’라는 한 글자 피켓을 들고 퍼포먼스를 펼치며 시민들에게 한양도성 세계유산 등재의 의미를 알렸다. 박환희 위원장은 “한양도성은 중국, 일본과 또 다른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며 유네스코가 요구하는 탁월하고 보편적인 가치에 부응하는 유산”이라면서 “서울에 소재한 종묘와 창덕궁, 태강릉을 포함한 조선왕릉에 이어 한양도성도 반드시 세계유산에 등재되도록 서울시의회가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서울 자연문화탐사연구회는 올해 광화문 앞 삼군부 문화재 발굴현장 탐방, ESG 서울포럼 개최, 태강릉 지역보존 연구용역 실시 등을 통해 시민들이 서울의 역사와 자연, 문화를 즐기고 보존하는 방안을 찾아왔으며, 이날 피케팅 캠페인에는 박 위원장을 비롯해 김지향, 소영철, 김영철, 서호연, 김혜영, 정지웅, 김규남 의원이 함께했다.
  • 선조 마음 돌린 ‘정탁의 상소’… 명량대첩 승리 만들고 조선을 구하다[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선조 마음 돌린 ‘정탁의 상소’… 명량대첩 승리 만들고 조선을 구하다[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선조는 왜란이 발발하고 마지막 희망으로 삼았던 신립의 중앙군이 충주 탄금대에서 무참히 패하자 황망히 한양도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향했다. 난공불락으로 여겼던 평양성마저 다시 내주자 선조는 요동 망명의 뜻을 굳히게 된다. 결국 광해군을 황급히 세자로 삼고 종묘사직을 받들어 나라를 지키도록 했다. 행재소(行在所)와 더불어 별도 조정인 분조(分朝)를 가동한 것이다. 영의정 최흥원을 비롯해 10명 남짓한 중신이 분조에 배속됐는데, 좌찬성 정탁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분조는 사실상 이후의 전쟁 수행을 주도하다시피 했다. 분조의 실상을 오늘날에도 가감없이 살필 수 있는 것은 정탁이 남긴 ‘피난행록’(避難行錄) 덕분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후세에 뚜렷이 각인된 이유는 따로 있다. 충무공 이순신이 처형 위기에서 벗어나 명량대첩으로 전세를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정탁이 상소로 선조를 설득한 결과다.약포(藥圃) 정탁(鄭琢·1526~1605)이 세상을 떠난 뒤 실록에 실린 졸기(卒記)는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에 각각 전한다. 선조실록 본문은 ‘서원부원군 정탁이 죽었다’는 한 줄이다. 그런데 사관(史官)의 평가가 제법 길다. ‘탁은 인품이 유순하고 온후한 사람인데, 등과했을 당시 명망이 없어 오랫동안 교서관에 머물러 있었다. 일찍이 향실(香室)에서 숙직하던 날 문정왕후가 불공을 드리려 하자 불가한 일이라고 고집하면서 끝내 향을 올리지 않았다.’ 사관은 정탁이 ‘이 사건 때문에 당세(當世)에 중시되고 현로(顯路)가 열리게 됐고 결국 재상에 발탁됐다’고 했다. 명종의 어머니로 수렴청정을 하며 권세을 휘둘렀던 문정왕후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대비를 상대로 유교국가의 정통성을 지켜 세상에서 인정받고 벼슬길도 열렸다는 뜻이다. ‘나이 들어서는 벼슬에서 물러가기를 청했으니 옛사람의 기풍이 있었다. 자리를 탐하여 늙어도 물러가지 않는 자에 비하면 차이가 크다’고 했으니 최상급 추도사다. 그런데 수정실록은 다르다. ‘정탁이 죽었다. 정탁은 예천 사람으로 류성룡과 친해 재상이 되었으나 언제나 우유부단했다. 성룡이 조정에서 떠나자 탁도 해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이때에 이르러 집에서 병으로 죽었다.’ 광해군 시대 북인이 중심이 돼 서술한 선조실록을 인조반정 이후 서인 시각에서 고친 것이 선조수정실록이다. 약포는 젊은 시절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의 문하에 모두 출입했다. 남명과 퇴계는 각각 북인과 남인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다. 졸기의 평가가 바뀐 이유도 정치적 상황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피난행록’을 읽어나가다 보면 약포가 선조수정실록의 서술보다는 선조실록의 평가에 더 근접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1592년 6월 8일 대동강변에 왜적이 나타나자 선조는 영변으로 가겠다고 고집한다. 평양부민들은 떠나지 말 것을 강력히 요구했고 정탁은 10일 이렇게 주청했다. ‘서울을 지키지 못한 것은 돌이킬 수 없다. 다행히 평양은 성곽이 완비되어 있고 식량도 아직은 버틸 만한 데다 패수(浿水·대동강)는 중국의 장강(長江) 같은 천혜의 참호다. 평양을 버리면 큰일을 그르친다. 엎드려 성상(聖上)의 명철한 결단을 바라오니 반드시 대가(大駕)의 행차를 멈추어야 한다’고 했다. 누가 봐도 줄을 잘 서 출세하는 부류의 언동은 아니다. 정탁의 절절한 호소에도 선조는 ‘적의 예봉은 피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선조가 광해군에게 분조를 꾸려 강계로 가도록 명한 것은 영변에서 의주로 출발하기 직전인 6월 14일이다. 분조는 최흥원과 정탁, 형조판서 이헌국, 부제학 심충겸, 형조참판 윤자신, 호조참판 류자신, 병조참의 정사의, 승지 류희림, 익위 류조인 등의 면면이었다. 이후 순변사 이일이 합류하는 등 8월이 되면 분조는 당상관 13인에 당하관 30인에 이르는 체제를 갖추게 된다.평안도 북동쪽 내륙의 강계는 4개의 하천이 합류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그런데 나이 든 대신으로 이루어진 분조는 발걸음이 느렸고 이미 주변 지역에서 왜적이 출몰하고 있었다. 강계를 거쳐 함흥으로 간다는 구상은 실현되기 어려웠다. 함경도는 머지않아 가토 기요마사의 왜적 2군이 휩쓸게 된다. 정탁은 분조의 사정을 이렇게 적어 의주 행재소의 선조에게 올렸다. ‘동궁의 행차를 모시는 인원은 그 수가 본디 적었는데, 늙고 병든 사람이 다수를 차지해 낙오자가 있었던 데다 골짜기와 고개를 치달리느라 마부와 말이 몹시 지쳤습니다. 험한 길에 자빠지고 엎어지며 지금 이천(伊川)에서 관동의 온당한 곳으로 가고자 하나, 적은 이미 철원을 경유해 김화 등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분조는 운산, 개평원, 희천, 영원, 양덕현, 곡산, 이천, 문암, 곡산, 성천, 자산, 순천, 숙천, 안주, 영유, 증산, 함종, 용강, 영유, 영변, 정주 등 안전한 곳을 찾아 불과 며칠 단위로 옮겨다녀야 했다. 장동역에서 설한령으로 가는 6월 19일자에는 이렇게 적었다. ‘왕세자(광해군)는 고개 아래 민가에서 묵었고 신료들은 모두 노숙했는데, 저녁에 가랑비가 내렸다.’ 분조의 과제는 전쟁 수행과 민심 수습이었다. 정탁은 분조가 주어진 역할을 성공적으로 이뤄 내려면 독자적 인사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부왕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광해군은 하지만 임면권 행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정탁은 전시 상황인 만큼 분조가 먼저 관원을 임시로 임명하고 행재소에 보고하겠다고 선조에게 주청한다. 이후 전국에서 올라오는 관리의 장계 등 각종 보고서는 분조가 먼저 열람하고 국왕에게 보내게 된다. 8월 10일자에는 행재소에 보낸 장계가 보인다. ‘나라의 형세가 아슬아슬 위급한 때를 당해 고을의 수령 자리가 빈 곳을 임명해 채우는 것이 하루가 급한 만큼 그 가운데서 가장 급한 여러 곳을 임시로 임명했습니다. 심지어 중첩되게 임명했으니 지극히 황공하옵니다’라는 내용이다. 관리 임명권이 행재소와 분조 두 군데로 나눠져 있다 보니 때로는 서로 다른 인사발령도 없지 않았다.분조는 1000명 남짓한 군졸로 자체적 군사력도 확보했다. 정탁은 의병에도 눈을 돌린다. 실제로 분조가 거쳐 가는 지역에서는 의병이 다투어 봉기했다. 정탁은 12월 의병을 활용해 도성을 수복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경기도에는 의병조직인 의려(義旅)가 40개 남짓이나 있으니 명망 있는 인물을 도순찰사로 관군과 의병을 통합해 이끌게 하면 승산이 있나이다’라고 했다. 첫 번째 분조는 1592년 6월 14일부터 이듬해 1월 20일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평양성 수복 전투에서 승리하고 왜군을 추격하던 명나라 군사는 벽제관에서 대패하자 강화협상에 나서게 된다. 명군은 조선에 세자로 하여금 직접 하삼도 방비에 나서게 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하는데 그 결과 다시 분조가 성립된다. 정탁은 1593년 11월 19일부터 이듬해 8월 25일까지 2차 분조에도 참여한다. 2차 분조는 전라도 전주와 충청도 공주·홍주(홍성)를 오갔다. 시간이 흘러 1597년 2월 1일 선조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하옥시키라 명한다. 조선과 왜를 오간 이중첩자 요시라(要時羅)가 가토 기요마사의 움직임을 미리 알려 주었는데도 ‘바닷길이 험난하고 왜적이 필시 복병을 두어 기다릴 것’이라며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앞서 12월에는 도체찰사 이원익이 주도해 부산포 왜군진을 공격하고 화약고를 불태우는 쾌거가 있었다. 그런데 통제영 군관들이 자신들의 공로인 양 보고했는데 이순신이 그대로 장계를 올린 것도 빌미가 됐다. 1597년 2월 한산도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체포된 이순신은 3월 4일 서울로 압송됐다. 선조는 승정원에 비망기를 내려 ‘죄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으니 이순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1298자로 이루어진 정탁의 상소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순신은 큰 죄를 지었으나 성상께서는 얼른 극형을 내리시지 않으시고 두둔하여 문초하시다가 그 뒤에야 엄격히 추궁하도록 허락하시니, 다만 감옥 일을 다스리는 체모와 순서만으로 그러심이 아니라 인(仁)을 베푸시는 한 가닥 생각으로 기어이 그 진상을 밝힘으로써 혹시나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으시고자 바라심에서 하심이라, 성상의 생명을 중시하는 마음이 자못 죄를 짓고 죽을 자리에 놓인 자에게까지 미치시므로 신은 감격함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언뜻 이해가 어려울 만큼 복잡한 수사(修辭)가 인상적이다. 다음에 나오는 본론은 ‘왜적이 이순신을 무서워하고 있으니 임금께서 너그럽게 용서해 전장에서 공을 세우는 것으로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선조의 복잡한 심경을 헤아리다 보니 완곡하기 이를 데 없는 상소가 됐을 것이다. 정탁은 예천 출신으로 1558년 식년문과에 급제했다. 도승지, 대사성, 강원도관찰사, 대사헌, 예조·형조·이조 판서,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했다. 호종공신 3등에 녹훈됐고 서원부원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 충남 태안읍성, ‘한양도성’ 동대문 축성기술 적용

    충남 태안읍성, ‘한양도성’ 동대문 축성기술 적용

    성벽 지반강화 ‘말뚝지정’· ‘잡석지정’ 흔적조선시대 한양도성 발달한 축성기법 도입가세로 군수 “태안읍성 우수성·가치 확인” 충남 태안군이 복원 사업을 진행 중인 ‘태안읍성’에서 1396년 태조에 의해 축성된 한양도성 동대문의 발달 된 축성 기술이 발견됐다. 발견된 기술은 조선 전기 동대문의 연약한 지반을 강화해 성의 견고함을 높이기 위한 축성 흔적이다. 군은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과 공동조사 결과 15세기 초 태안읍성 남쪽 성벽 축조 당시 대지를 보강하기 위한 ‘말뚝지정’과 ‘잡석지정’ 흔적이 남동성벽 터에서 확인됐다고 27일 밝혔다.‘말뚝지정’과 ‘잡석지정’은 축조 과정에서 연약한 지반을 강화해 성의 견고함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이 흔적은 태안읍성보다 21년 먼저 건립된 한양도성의 발달한 축성기법을 읍성 축조에 곧바로 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 한양도성 동대문의 축성 기술이 태안읍성에도 도입됐음을 시사한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5년(1396)’ 기사에 동대문 부분에는 ‘그 지대가 낮아 말뚝을 박고 돌을 채운 후 성을 쌓아 그 공력이 다른 데의 배가 들었다’라고 기록돼 있다.조사를 담당한 김낙중 원장은 “1417년(태종 17년)에 축성된 태안읍성은 1396년 태조에 의해 축성된 한양도성의 성곽 축성 기술이 충청지역 최초로 도입된 사례로서, 연약지반 이용을 위한 조선시대의 앞선 축성술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가세로 군수는 “연차적으로 남동성곽과 남문 문루(화남문)를 온전히 복원해 태안읍성의 문화재적 가치와 위상을 높이겠다”며 “태안읍성 정비·복원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군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태안군 태안읍 남문리 읍소재지 중심부에 위치한 태안읍성은 전체 둘레는 728m지만 시가지 형성과정에서 대부분 훼손됐으며, 지난해 3월부터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다.
  • 임종국 서울시의원 “공공앱 계획수립 단계부터 신중히 검토·추진해야”

    임종국 서울시의원 “공공앱 계획수립 단계부터 신중히 검토·추진해야”

    최근 5년간 행정안전부의 ‘공공기관의 중복·유사 서비스 개발·제공에 관한 실태조사’ 결과 7개의 서울시 공공앱이 정비권고를 받았다. 또한 올해 서울시 자체 공공앱 실태점검 결과, 서울시의 28개 공공앱 중 각각 4개와 3개의 공공앱이 ‘폐기’ 등급과 ‘개선’ 등급 평가를 받았다. 서울시의회 임종국 의원(더불어민주당·종로2)은 “공공앱은 앱을 개발하고 유지하는데 예산이 투입되는만큼 계획수립 단계에서부터 신중히 검토하고 추진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홍보기획관이 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서울둘레길, 2021년 놀토서울, 서울 한양도성, 2022년 My-T(마이티), 또타지하철, 2023년 서울일자리포털, 서울주차정보 등 서울시 공공앱 7개가 최근 5년간 행정안전부로부터 서비스 폐지, 중복기능 제거, 고도화 중지 등의 정비권고를 받았으며, 이 중 서울시가 2021년 세금 10억원을 투입해 한국교통연구원, BC카드, KST모빌리티 등이 참여해 만든 공공앱 마이티는 올해 서울시 자체 실태점검 결과에서도 최하점인 38점을 받아 28개 공공앱 중 꼴찌를 기록했다. 마이티는 2021년 ‘대중교통 코로나 안심 이용 앱’으로 출시됐다. 이용자가 확진자 동선과 겹칠 때 자동으로 알림이 울리는 서비스를 제공했고 택시·버스 등 대중교통 종사자가 확진됐을 때도 선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했지만, 회원가입 시 오류 발생, 사용 방법의 어려움, 부정확한 정보, 시스템 불안 등으로 시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올해 서울시 자체 공공앱 실태점검 결과(붙임)에서도 마이티, 서울 살피미, 서울시 엠보팅, 소방시설정보알리미 등 4개의 공공앱이 ‘폐기’ 등급을 받았고 서울의료원-서울케어, 서울일자리 포털, 마이 서울이 ‘개선’ 등급을 받았다. 디지털정책관이 운영하는 서울 엠보팅은 2014년 출시되어 서울시가 진행할 예정인 각종 정책에 대해 찬성·반대 투표를 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했다. 서울시 정책 관련 투표가 활발히 진행되고 참여율도 높지만, 2022년 한 해 엠보팅 앱 다운로드 수는 4627회에 불과, 엠보팅 앱을 사용하지 않아도 모바일 웹을 통해 언제든 투표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엠보팅 서비스 운영에는 2021년 2억 5746만원, 2022년 2억 6332만원의 예산이 집행됐으며 이 중 98%는 시스템 유지보수 비용이다.
  • 정준호 서울시의원, 서울시의원 연구단체 ‘서울둘레길연구회’ 둘레길 현장점검

    정준호 서울시의원, 서울시의원 연구단체 ‘서울둘레길연구회’ 둘레길 현장점검

    서울시의회 의원연구단체 ‘서울둘레길연구회’(대표의원 정준호, 이하 ‘연구단체’)는 지난 20일 첫 활동으로 ‘덕수궁돌담길-정동길-한양도성길-인왕산자락길-무악재하늘다리-안산자락길-홍제천’을 잇는 둘레길의 현장점검을 실시했다. 이번 점검은 서울둘레길의 현황을 파악, 이용자들의 불편사항을 개선하기 위해 양세훈 한신대 대학원 초빙교수(숲해설가, 숲길등산지도사)와 함께 진행됐다.연구단체 의원들은 오후 2시부터 덕수궁 돌담길을 시작으로 한양도성길, 인왕산자락길, 무악재하늘다리, 안산자락길을 도보로 이동하며 둘레길의 시설물 상태, 안내판 설치 현황, 이용자들의 불편사항 등을 꼼꼼히 확인했다. 인왕산과 안산은 서울의 대표적인 등산 코스와 둘레길 코스가 있는 산으로 많은 시민이 찾는 곳이다. 이번 점검을 통해 시민들이 더욱 안전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둘레길을 조성하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연구단체는 이번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서울시에 개선사항을 제안할 예정이며, 지속적인 현장점검을 통해 서울둘레길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서울둘레길연구회는 서울시의회 의원들로 구성된 연구단체로 서울둘레길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장점검에는 연구단체 소속 의원들과 서울둘레길 전문가와 담당 조사관도 함께 참여해 둘레길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연구단체 대표의원을 맡고 있는 정준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은평4)은 “이번 점검을 통해 시민들이 더욱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둘레길을 조성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 “앞으로도 서울둘레길연구회는 현장 중심의 활동을 통해 서울둘레길의 입체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 연구단체는 둘레길의 재정비 및 시민친화적이고, 편리성이 확보된 글로벌 명품 트레킹 코스 발굴 등을 위해 지난 7월 구성되어, 정 의원을 대표의원으로 총 15명의 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 ‘빛으로 그린 성북’ 사진 당선작 전시

    ‘빛으로 그린 성북’ 사진 당선작 전시

    서울 성북구가 사진에 담긴 성북의 아름다운 모습을 구민들에게 선보인다. 구는 ‘성북구 사진 공모전 수상작 전시회’를 오는 29일까지 성북구청 1층에서 연다고 23일 밝혔다. 전시회는 다음 달 30일까지 길음역 6·7번 출구 쪽 지하보도에 있는 하늘갤러리에서도 열린다. 구는 ‘빛으로 그린 성북’이라는 주제의 사진 공모전을 열어 수상작 24점을 선정했다. 최우수상의 영예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한양도성의 멋들어진 모습을 담은 ‘성곽길 거닐며’(일반 부문)와 코로나19가 끝나고 찾아온 가을을 아름답게 표현한 ‘길상사의 가을’(스마트폰 부문)에 돌아갔다. 이 외에도 부문별 우수상·장려상 등 22점의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수상작은 성북구청 홈페이지(성북소개→홍보자료관→온라인 사진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성북구만의 특색을 찾아 전국 각지에서 공모전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앞으로도 성북이 지닌 매력과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종로구, 흰개미 피해 예방 ‘목조주택 건강검진’ 나서

    종로구, 흰개미 피해 예방 ‘목조주택 건강검진’ 나서

    서울 종로구가 탄소중립을 선도하는 목재친화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경복궁 서측 도시재생활성화지역에서 ‘목조주택 건강검진’을 추진한다고 20일 밝혔다. 한양도성 내 주거용 한옥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에서 목조건물 천적으로 불리는 흰개미 피해를 예방하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방역 작업을 실시하고 거주민 정주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피해진단 전수조사 ▲방역계획 수립 ▲유형별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을 시행한다.사업 대상은 경복궁 서측 도시재생활성화지역 내 전체 목조주택이다. 오는 12월까지 전체 500여 세대를 방문해 참여 의사를 확인할 예정이다. 상반기 검진을 받은 목조주택은 제외된다. 구는 지역별 피해 현황을 파악하고 흰개미 결혼 비행철인 내년 3월 말에서 4월 전후로 집중 방제를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 종로구는 앞서 지난 상반기 1차 사업 대상으로 목조주택 48채를 선정해 흰개미 피해 정도를 확인한 바 있다. 이때 구축한 피해 유형별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하반기 도시재생활성화 지역 내 목조주택 전체로 사업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정문헌 구청장은 “종로는 풍부한 목조 문화유산의 중심지로 흰개미 피해 예방이 중요한 만큼 실질적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 공덕역 역세권 활성화 팔 걷은 마포

    공덕역 역세권 활성화 팔 걷은 마포

    서울 마포구가 2025년 상반기 착공을 목표로 공덕역 역세권 활성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25일 밝혔다. 사업 대상지인 염리동 일대는 서울시 도시 기본계획상 마포·공덕의 중심으로 지하철 5·6호선, 경의중앙선, 공항철도 등 4개 노선이 만나는 초역세권이다. 아울러 상암, 수색과 용산을 잇는 글로벌 비즈니스 축이자 영등포와 여의도에서 한양도성까지 이어지는 도심 업무 축의 교차점에 위치해 교통 요충지로 평가된다. 구는 사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반상업지역으로 용도지역을 상향해 건축물 2개 동을 건축할 예정이다(조감도). 지상 24층, 지하 6층의 연면적 9만 8015㎡ 규모 업무시설 한 동과 지상 8층, 지하 6층의 연면적 1만 5995㎡ 크기 공공기여 건축물 1개 동이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업무시설에 다우키움그룹의 12개 계열사 임직원 4760명이 입주해 향후 7400여명의 고용 창출과 소비 촉진 등 총 1조 300억원 규모의 경제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기부채납 시설인 공공기여 건축물에는 임신 준비부터 출산, 양육까지 원스톱으로 관리하는 마포구 햇빛센터와 공공임대 상가 및 사무실이 들어설 예정이다.
  • 동대문구, 지역 대학과 함께 평생교육 프로그램

    동대문구, 지역 대학과 함께 평생교육 프로그램

    서울 동대문구는 올해 하반기 지역 내 대학과 연계하여 진행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강생을 모집한다고 25일 밝혔다. 10월 12일부터 11월 30일까지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과 연계하여 ‘한국문화유산의 이해와 우리동네 이야기’를 운영한다. 전문 학예사가 한국의 문화유산과 한양도성, 동대문구의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업으로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 자연사박물관 관람도 함께 진행한다. 희사이버대학교 사회교육원과 연계한 동대문구 평생학습대학 테마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구는 ‘ESD 프로젝트-에코폴리스 아카데미’와 ‘건강한 일상으로의 회복-생활명상 프로그램’을 온·오프라인 병행하여 운영한다. 평생학습 프로그램은 선착순으로 접수되며 무료로 진행된다. ‘한국문화유산의 이해’ 수강을 희망하는 구민은 9월 26일부터, ‘에코폴리스 아카데미’ 등은 10월 10일부터 동대문구 누리집에서 신청할 수 있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평생학습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린다.”며 “앞으로도 질 높은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제공해서 구민의 행복을 여는 성숙한 평생학습도시를 구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마포구 공덕역 역세권 활성화…1조원대 경제효과

    마포구 공덕역 역세권 활성화…1조원대 경제효과

    서울 마포구가 2025년 상반기 착공을 목표로 공덕역 역세권 활성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25일 밝혔다. 사업대상지인 염리동 일대는 서울시 도시 기본계획상 마포·공덕의 중심으로 지하철 5·6호선, 경의중앙선, 공항철도 등 4개 노선이 만나는 초역세권이다. 아울러 상암, 수색과 용산을 잇는 글로벌 비즈니스 축이자 영등포와 여의도에서 한양도성까지 이어지는 도심 업무 축의 교차점에 위치해 교통 요충지로 평가된다. 구는 사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반상업지역으로 용도지역을 상향해 건축물 2개 동을 건축할 예정이다. 지상 24층, 지하 6층의 연면적 9만 8015㎡ 규모 업무시설 한 동과 지상 8층, 지하 6층의 연면적 1만 5995㎡ 크기 공공기여 건축물 1개 동이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업무시설에 다우키움그룹의 12개 계열사 임직원 4760명이 입주해 향후 7400여명의 고용 창출과 소비 촉진 등 총 1조 300억원 규모의 경제효과가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기부채납 시설인 공공기여 건축물에는 임신 준비부터 출산, 양육까지 원스톱으로 관리하는 마포구 햇빛센터와 공공임대 상가 및 사무실이 들어설 예정이다.
  • 문화가 흐르는 성북동의 밤… 22~23일 ‘성북동문화재야행’

    문화가 흐르는 성북동의 밤… 22~23일 ‘성북동문화재야행’

    서울 성북구가 주최하고 성북문화원이 주관하는 ‘성북동문화재야행’이 22~23일 오후 6~10시 성북동 일대에서 펼쳐진다. 19일 성북구에 따르면 성북동에는 한양도성을 비롯해 간송미술관, 심우장, 길상사 등 조선시대부터 근현대 이르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곳곳에 남아있다. 또 한용운, 전형필 등 문화 예술인들이 거주하며 활동한 흔적도 있다. 성북동문화재야행은 이 같은 성북동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행사로 2017년부터 시작했다. 문화재와 문화 시설을 방문하는 것을 비롯해 문화 예술인의 공연과 각종 체험·전시 프로그램, 해설 탐방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이번 행사 기간에는 심우장, 최순우 옛집, 선잠단지, 예향재 등 문화재와 문화 시설은 야간에도 문을 연다. 예약하면 관련 해설도 들을 수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 조영숙 명인의 발탈 공연을 비롯해 성북국악협회, 성북연극협회,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등 성북구 지역 예술인의 공연도 거리 곳곳에서 즐길 수 있다. 성북미술협회와 한성대 예술학부 미술 전공 학생들이 성북구를 그린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아트 마켓과 독립 서점이 책을 판매하는 ‘성북(BooK)장터’도 열린다. 성북동 전역에 걸쳐 진행하는 행사인 만큼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이동식 체험관인 ‘성북전차’도 운영한다. 성북동의 주요 문화재와 문화 시설 정류장에 내려 야행을 편리하게 즐길 수 있다.
  • 청와대, 서울역, 현충원… 한국의 얼굴로

    청와대, 서울역, 현충원… 한국의 얼굴로

    청와대와 서울역, 현충원 등이 ‘국가상징공간’으로 지정될 전망이다.●한양도성·용산공원·태릉·독립문·올림픽공원도 검토 서울시는 11일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청잭위원회(국건위), 국토교통부와 함께 국가상징공간 협의체를 구성하고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3개 기관이 서울 전역의 대표적 국가상징공간 사업을 선정해 추진하며 향후 공동 계획 수립, 선도사업 추진, 공동홍보 및 비전발표 등에 대해 적극 협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가상징공간이란 역사·문화적 가치를 보여주는 공간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별도로 관리해 국가를 상징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미국의 내셔널 몰이나 프랑스의 샹젤리제 거리처럼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과 국민들이 국가적 의미를 느낄 수 있는 대표 공간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세 기관은 추진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보훈부 등 주요 관계부처와 공공기관 등이 참여하는 국장급 실무협의체를 구성한다. 국가상징공간 지정은 향후 이 협의체 논의를 통해 확정할 예정이다. 시는 청와대·서울역·현충원·한양도성·용산공원·태릉·강릉·독립문·올림픽공원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박원순 전 시장의 ‘서울로 7017’ 활용 방안도 논의 세 기관은 협의체 논의를 통해 구체적인 대상 지역을 선정하고, 도시 및 건축적인 관점과 역사문화적 가치를 접목한 통합적인 공간구상 방향을 마련할 계획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10월 광화문과 숭례문, 서울역과 한강을 잇는 약 7㎞를 국가상징가로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를 포함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시절 조성된 ‘서울로 7017’의 향후 활용 방안 등도 협의체에서 논의 될 전망이다. 시는 현재 이와 관련해 ‘서울역 일대 마스터플랜 사전구상’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이 용역에서는 서울역 앞 버스환승센터를 서울역 뒤편으로 이전하고 해당 공간을 열린 광장으로 조성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 시장은 “국가상징공간에서 서울시민들과 국내외 관광객들이 서울과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고궁 탐방, 외교관과의 대화…종로국제서당 여름캠프

    고궁 탐방, 외교관과의 대화…종로국제서당 여름캠프

    서울 종로구가 오는 9일부터 2박 3일 과정의 ‘2023 종로국제서당 여름캠프’를 개최한다고 8일 밝혔다. 구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중학생과 업무협약도시 담양군 중학생, 종로국제서당 청년멘토가 한자리에 모인다. 이들은 해당 기간 동안 종로 일대 한옥과 역사·문화시설을 두루 둘러보고 서당 인문학 교육을 받으며 대사관과 기업 등에서 진로 설계를 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또 영어로 진행하는 문화유산 교육을 듣고 조별 발표회에도 참여한다. 구는 앞서 청년멘토 12명 전원을 대상으로 ‘아동청소년에 대한 이해와 멘토링 소통법’ 주제의 교육을 실시했다. 멘티와 본격적으로 만나기 전 멘토별 역량을 강화하고 자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또 경복궁 탐방 시 필요한 영어 해설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우리문화숨결 궁궐 길라잡이 소속 오수잔나 박사(한양도성 외국인 해설사 제1호)와 영어해설사 도움으로 1차 온라인 교육, 2차 경복궁 현장 실습도 가졌다. 이와 같은 사전 준비과정을 거쳐 열리는 캠프는 1일차인 9일에는 주한 미대사관에서 외교관과의 대화 프로그램,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과 만찬 및 친교 시간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2일차인 10일에는 영어해설사와 청년 멘토가 영어로 이끄는 경복궁 탐방·해설 프로그램, 종로국제서당 훈장이 맡은 서당 인문학 교육, 멘토와 멘티가 조를 이뤄 참여하는 우리 문화유산 관련 발표회 준비 등이 예정돼 있다. 아울러 저녁 시간대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 공연도 관람한다. 마지막 날인 3일차에는 성균관 탐방, 김앤장 법률사무소 외국 변호사 특강에 이어 캠프 발표회 및 수료식을 끝으로 2박 3일의 일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한편 민선8기 종로구 역점사업으로 꼽히는 종로국제서당은 21세기 글로벌 인재에게 필수로 요구되는 영어, 인문학적 소양, 소통 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총체적으로 제공하는 종로만의 청년 교육-일자리 모델이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종로구와 담양군 중학생들이 종로국제서당 청년 멘토와 이번 캠프 자리를 빌려 인연을 맺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가길 바란다”며 “종로의 교육여건 개선과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본 사업 내실화에 힘쓰고 청년과 청소년, 학부모 모두의 만족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 겹겹이 쌓인 시간의 골목길 쉬..엄....쉬...엄[권다현의 童行(동행)]

    겹겹이 쌓인 시간의 골목길 쉬..엄....쉬...엄[권다현의 童行(동행)]

    아이가 커갈수록 시간의 마디도 늘어난다. 오늘과 어제, 내일만 존재했던 아이에게 그저께, 모레가 생긴다.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해 엄마·아빠 결혼식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왜 없어요?” 묻던 아이가 “옛날 사람들은 짚신을 신고 다녔대요” 아득한 시간의 분절을 가늠해 본다. 오랜만에 찾은 전남 나주에서 아이와 난 겹겹이 쌓인 시간 사이를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예스러운 읍성을 따라 먼 과거와 가까운 과거 그리고 현재가 부지런히 교차하는 이곳은 그야말로 ‘시간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전라도가 전주와 나주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니 전라도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나주. 고려 때부터 지금의 광역자치단체에 해당하는 ‘목’(牧)으로 꼽혔고, 이 같은 목사골이 전국에 12개뿐이었으니 그 위세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현종 9년인 1018년, 12목이 8목으로 조정될 때도 전주와 승주(지금의 순천)가 제외되고 나주가 호남의 유일한 목으로 남았다. 조선말인 1895년까지 이 같은 목의 지위를 누렸는데, 당시 한양도성과 같은 사대문에 객사와 동헌을 갖춘 석성이 중세도시의 위용을 뽐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도 나주를 가리켜 “금성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영산강이 흐르니 도시의 지세가 한양과 비슷하고 예부터 이름난 인물이 많이 난 곳”이라고 ‘택리지’에 적었다. 실제로 금성산은 한양의 삼각산을, 영산강은 한강을 닮았다 하여 소경(小京), 즉 작은 서울로 불렸다고 한다. 영원할 것 같았던 전성기는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무참히 허물어졌다. 호남 수탈의 거점으로 활용됐던 나주는 일제의 필요에 따라 읍성이 철거되고 객사는 군청으로 쓰였다. 뱃길이 번성했던 영산포에는 일본인들이 몰려와 집을 짓고 대지주의 풍요를 누렸다. 천년목사골의 유산들이 그렇게 사라지거나 망가졌다. 다행히 1993년 나주읍성의 남문인 남고문을 시작으로 동점문과 서성문, 북망문이 차례차례 복원됐다. 객사인 금성관도 제 모습을 찾았고, 시장통으로 바뀌었던 동헌과 관아도 재건해 옛 나주목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회복했다. 그 사이사이로 지금 나주 사람들의 삶이 덧입혀져 독특한 풍경을 빚어낸다.아이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금성관이었다. 나주 객사 중심에 자리한 금성관은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와 궁궐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예를 올리던 의례 공간이다. 그 때문에 금성관으로 향하는 가운데 길은 어도(御道)라 하여 임금만 다닐 수 있었고, 양쪽에 자리한 익헌 건물보다 기단이 한 단 높게 설계됐다. 아이가 어도를 함부로 걷기에 이 길은 왕만 지날 수 있다고 했더니 “그럼 여길 걸으면 나도 임금님이 되겠네요?”라며 짐짓 위엄 있는 발걸음을 흉내 낸다. 그 천진한 모습이 귀여워 더이상 말리지 않았다. 나주 금성관은 통영 세병관, 여수 진남관과 같은 단일형 객사를 제외하고는 현존하는 객사 정청 건축물 가운데 규모가 제일 크다. 정청은 양옆으로 익헌을 거느리는 형태라 맞배지붕을 얹는 것이 일반적인데, 금성관은 유일하게 팔작지붕으로 설계됐다. 내부구조 또한 대개의 정청보다 오히려 궁궐의 정전과 유사한 모습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나주 군청으로 사용되면서 훼철의 운명을 비껴갔다. 덕분에 지난 2019년 보물로 지정돼 관리 중이다. 아이는 안내판에서 객사란 두 글자를 확인하고는 그 뜻을 궁금해했다. 조선시대 객사는 외국의 사신이나 조정의 고위 관리, 다른 지방에서 온 관리들이 묵어 가던 일종의 5성급 호텔이었다. 나주 목사를 지낸 윤흡의 기록에 따르면 나주 객사는 “규모가 크고 화려해 전국의 객사 중 으뜸”이었다고 한다. 한옥 숙소를 여러 번 경험했던 아이는 이곳이 과거 호텔처럼 사용됐던 건물이라고 하니 “우와, 정말 비싼 숙소였겠어요!” 감탄한다. 금성관 앞은 그 유명한 나주곰탕거리다. 나주 오일장에서 서민들을 위한 국밥 요리로 시작돼 지금은 하나의 고유명사로 통할 만큼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향토 음식이다. 질 좋은 고기를 사용해 맑고 담백한 국물이 특징인 나주곰탕은 아이와 함께 먹기에도 부담 없는 한 끼다. 푸짐한 국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정겨운 외관이 눈길을 끄는 분식점에서 추억의 샐러드빵도 하나 맛보고 사대문을 연결하던 옛 도로의 흔적도 더듬어 걸었다. 담벼락마다 만발한 능소화가 목사골의 정취를 더하는 듯했다. 사대문에 객사·동헌 갖춘 바위성에 영산강… 한양 닮아임금이 머문 듯한 금성관 걸어 보니 임금님 된 듯늠름한 서성문엔 전봉준 이끈 동학군의 소리 없는 함성배 활용 등 다양한 체험·박물관은 아이들 ‘아이 좋아’ 다음 목적지는 금성관과 이웃한 나주목문화관이다. 옛 나주 읍사무소를 활용한 공간으로 나주목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특히 나주 목사의 부임 행차를 재현한 전시모형에 아이의 관심이 쏠렸다. “이 많은 사람 중 누가 나주 목사일까?” 엄마의 질문에 행렬 맨 앞에 선 사람, 말을 탄 사람, 가마에 앉은 사람 등을 유추하며 나주 목사가 얼마나 큰 벼슬이었는지, 그리고 나주목이 얼마나 중요한 행정구역이었는지 자연스레 배웠다. 문화관 옆에는 나주 목사의 살림집으로 쓰였던 목사 내아가 자리한다. 복원 후 현재 한옥 문화체험장으로 사용 중인데, 각각의 방에는 선정을 베풀었던 나주 목사 유석증과 김성일의 이름을 붙였다. 유석증은 백성들이 십시일반으로 쌀 200석을 바쳐 재부임을 요구할 만큼 청렴하고 바른 정치를 펼쳐 나주 목사 중 유일하게 두 번이나 부임했던 인물이다. 김성일은 신문고를 설치해 늘 어려운 백성의 처지를 살폈고, 재임 동안 지혜로운 송사로 억울한 이가 없었다고 전한다. 나주목사 내아엔 벼락 맞은 팽나무도 있다. 수령 500년을 넘겼다는 이 나무는 1980년대 벼락을 맞아 두 쪽으로 갈라졌던 것이 기적처럼 소생해 지금껏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 때문에 이 팽나무를 끌어안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생겼다. 존경받는 목민관들이 머물던 집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팽나무까지 더해지니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목사 내아에서 아기자기한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나주향교를 만나게 된다. 다른 향교들과 달리 앞쪽에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향 공간이, 뒤쪽에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강학 공간이 들어선 이른바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가 흥미롭다. 그뿐만 아니라 향교 안쪽에 공자와 네 제자의 아버지 위패를 봉안한 계성사가 있다. 이는 서울의 성균관을 비롯해 몇 안 되는 향교에만 세워진 건물이다. 성균관의 명륜당과 유사한 형태로 지어진 건축양식 또한 나주향교의 특별한 지위를 짐작게 한다. 나주향교 인근에 나주읍성의 서쪽을 지키고 선 서성문이 자리한다. 1894년 나주를 점령하려는 동학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녹두장군 전봉준이 당시 나주 목사 민종렬과 협의를 위해 나주읍성으로 들어설 때 이 문을 이용하기도 했다. 서성문 안에서 귀한 고려시대 석등도 발견되었는데, 높이 3.27m에 달하는 이 아름다운 석등은 보물로 지정돼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서성문의 현판은 복원 당시 여러 기록을 비교해 영금문(暎錦門)으로 정해졌는데, 두루 나주를 비춘다는 의미를 지녔다. 아이는 서성문에 올라 바라보이는 나지막한 마을 풍경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여기는 시계가 천천히 가는가 봐요. 꼭 옛날로 여행 온 것 같아요.”나주읍성의 매력을 오롯이 느끼고 싶어 서성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숙소를 골랐다. 복합문화공간 3917마중의 목서원 사랑채다. ‘39’는 목서원이 지어진 1939년을, ‘17’은 마중이 처음 문을 연 2017년을 의미한다. 목서원은 의병장이자 해남군수를 역임한 난파 정석진의 손자가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해 지은 집으로, 우리가 묵었던 사랑채는 섬세한 인테리어와 살가운 배려가 돋보이는 근대 건축의 수작이다. 마침 우리가 머물던 날 주인장에게 전라남도 우수건축자산 1호로 지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뻐하는 그의 눈빛을 보며 아이도 “여기가 객사보다 더 멋진 호텔이었네요!”라며 감동했다. 이곳에선 나주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단어, 배를 이용한 체험도 이뤄진다. 실제 배를 꼭 닮은 귀여운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나주배 양갱을 직접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인데, 혹여 아이가 만들기에 어렵지는 않을까 걱정했더니 몰드에서 슬쩍 빼내어 장식만 해주면 끝이었다. 하지만 이 체험을 위해 성장촉진제를 사용하지 않은 못난이 나주배를 직접 칼로 정성스레 다지고, 우뭇가사리와 함께 뭉근하게 끓여낸 후 천연색소를 넣어 냉장고에서 서너 시간 잘 굳힌 것을 전날 미리 준비했단다. 그 진심 어린 과정을 듣고 나니 그저 예뻐서 사 먹을 때보다 백 배쯤 달게 느껴졌다. 숙소 건너편에 자리한 카페에선 나주배의 무한한 변신을 만날 수 있다. 나주배 에이드와 스무디, 파르페는 물론 나주배 빵과 스콘 등 어쩜 모양도 하나같이 정다운 먹거리들이 잔뜩 펼쳐진다.나주배 양갱을 만들었더니 “나주하면 뭐가 유명하다고?” 엄마의 질문에 자동으로 “배요!” 대답하는 아이. 이번에는 나주배박물관에서 나주배가 맛있는 이유와 나주배가 자라는 과정, 배의 다양한 종류와 맛있는 배 고르는 법까지 완벽하게 터득했다. 나만의 과수원을 꾸미는 게임과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나무 목걸이 만들기, 아기자기한 포토존까지 반나절을 알차게 보냈다. 박물관을 나서는 길에 관람객이면 누구나 공짜로 제공되는 시원하고 달달한 배즙까지 먹을 수 있어 아이도 엄마도 두 배로 즐거웠다. 지난해인가, 나주에 취재를 왔다가 다음에 아이와 꼭 다시 와야지 생각했던 곳이 있다. 바로 국립나주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이다. ‘문화재를 지키는 박물관 사람들’이란 주제로 꾸며진 이곳은 고분 속에서 문화재를 발굴하는 고고학자부터 발굴된 문화재의 원래 모습을 되찾아주는 보존과학자, 수장고 속 문화재를 관리하는 소장품관리자, 주제에 따라 문화재를 멋지게 전시하는 전시기획자, 흥미로운 체험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교육연구자 등 박물관 속 다양한 직업을 경험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아이는 물론 엄마도 미처 몰랐던 직업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아이는 박물관처럼 꾸며진 작은 공간에 제 마음대로 물건을 전시하는 게 재미있는지 몇 번이나 주제를 바꿔가며 전시기획자가 되어 보았다.체험 마지막에는 여러 직업 중 하나를 골라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명함도 만들 수 있다. 망설임 없이 전시기획자를 골랐던 아이는 제 이름이 적힌 생애 첫 명함을 보더니 욕심이 난 모양이다. “나는 문화재 찾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문화재를 지켜주는 일도 멋있고요. 그래서 엄마, 난 명함 3개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녀석의 귀여운 속내에 피식 웃음이 났다. 다른 친구들을 위해 1개의 명함만 간직하기로 했지만, 먼 훗날 3개, 아니 5개의 명함도 부족할 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품은 아이로 자라길 응원해줘야겠다. 여행작가
  • 사졸보다 앞장서 일당백… 왜군 떨게 한 ‘노원평 전투’ 승리 이끌었다[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사졸보다 앞장서 일당백… 왜군 떨게 한 ‘노원평 전투’ 승리 이끌었다[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고언백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작원관전투의 밀양부사 박진, 이치전투의 동복현감 황진, 구미포전투의 강원도조방장 원호 장군과 함께 육전(陸戰) 4대 명장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행주대첩 이후 왜적은 한양도성에 웅크리고 있었으니 군량미가 떨어지면 경기도 일대로 노략질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양주목사 고언백은 불암산과 북한산 일대를 거점으로 왜군이 도성 밖으로 몰려나올 때마다 타격을 가했다. 왜적이 결국 도성을 포기하고 남쪽 해안으로 물러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의 하나도 보급이 철저히 차단됐기 때문이다. 고언백은 선조가 총애하는 무장(武將)이기도 했는데, 양주 일대에 몰려 있는 조선 왕릉들을 수호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임진년 4월 14일 부산포에 침입한 왜적은 경상도와 충청도를 차례로 휩쓸며 5월 3일 도성을 점령했다. 경상도는 왜적의 상륙지이자 북상의 통로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경상도 동쪽 지역은 왜적의 침입을 피한 고을도 적지 않았다. 1593년 6월 조정은 명나라의 요구에 따라 전국의 피해 상황을 집계하게 되는데, 그 결과 경상도 지역 67개 고을 가운데 피해를 입지 않은 고을이 22개에 이르렀다. 하지만 경기도는 37개 고을 가운데 섬 지역인 강화와 교동을 제외한 35개 고을이 왜적의 말발굽에 휩쓸렸다. 고언백은 가장 수난이 컸던 경기도를 대표하는 장수다.●선조가 총애… 왕릉 수호 결정적 역할 고언백(高彦伯·?~1608)은 경기도 교동현이 고향이다. 무덤도 이곳에 있다. 지금은 인천시 강화군 교동면이 된 교동도에는 2014년 연륙교가 놓였다. 고언백은 교동의 향리 출신으로 알려졌는데, 18세에 무과에 급제했다니 향리 집안에서 일어선 무관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강화도 서쪽 교동도는 국방의 요지다. 임진왜란 이후인 1629년(인조 7)에는 남양만 화량진에 있던 경기수군절도사영이 교동도로 옮겨 가면서 현에서 부로 승격하기도 했다. 경기수사가 교동부사를 겸임하는 체제였다. 개전 초기 고니시 유키나가의 왜군 선발대가 파죽지세로 북상할 때 고언백은 도순변사 신립의 척후장(斥候將)으로 충주 탄금대 전투에 나섰다. 7000명에 이르는 조선정규군이 그야말로 참패를 당하자 선조가 서둘러 도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피란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 고언백이 이끈 부대는 큰 피해를 입지 않고 후퇴하면서 왜적의 머리 40급 남짓을 베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후 고언백은 양주 일대에서 흩어졌던 군사를 다시 모아 유격전을 펼쳤다. 의병사에서도 고언백을 경기의병장의 한 사람으로 다루고 있는 이유가 됐다. 선조실록에 고언백은 5월 28일자 ‘대신이 대탄(大灘) 방비에 대해 아뢰다’라는 기사에 처음 등장한다. 대탄은 한탄강이다. ‘대탄의 방비는 임진의 방비와 비교할 때 훨씬 허술하고 제장(諸將)의 명칭 또한 정해지지 않았으니 대응책에 미진한 점이 있을까 염려된다’면서 ‘고언백은 조방장(助防將)이란 칭호를 주어 전선 수비에 협력하게 하면 이익이 될 듯하다’고 했다. 임진강 방어선이 이미 무너진 줄 모르고 상류의 한탄강 방어를 논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고언백에 대한 조정의 신뢰는 높았다. 조정은 이때 고언백을 평양으로 부른 듯하다. 선조가 평양성을 버린 이후 고언백은 밤중에 대동강 건너의 적진을 기습해 수백 명을 쏘아 죽이고 300필 남짓한 말을 빼앗아 오는 전과를 올린다. 그러자 선조는 고언백을 당상관인 양주목사로 승진시켜 왕릉을 비롯한 동교(東郊) 방비의 책임을 맡긴다. 당시는 양주 온릉은 물론 서울 정릉·태릉·강릉·의릉, 구리 동구릉, 남양주 광릉·사릉·흥릉·유릉이 모두 양주땅이었다.●실록에도 “위엄·명성 서울까지 퍼져” 9월 12일자 선조실록은 ‘경기감사 심대의 장계를 보니 ‘양주목사 고언백은 한 달 사이에 세 차례나 싸움에 이겨 위엄스러움과 명성이 멀리까지 소문이 나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왕왕 멀리서 호응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도성의 백성은 한 사람도 창의(倡義)한 자가 없었는데 김향린 등이 이번에 군기(軍器)를 바쳐 왔으니 가상한 일입니다. 성 안에서 마음을 다해 내응한 자와 왜적의 목을 베어 군문에 가져오는 자는 모두 전일의 죄를 속해 주고 많은 상을 내리겠다는 뜻을 성안에 알려 백성들로 하여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소서’라 적었다. 고언백의 연승 소식이 전해지면서 도성 내부 백성 사이에 왜적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싹트고 있음을 보여 준다. 11월 들어 경상좌도병마절도사 박진과 양주목사 고언백을 평양성 수복에 투입하라는 선조의 명이 내려진다. 대신들은 ‘도성 백성이 오로지 고언백을 의지하고 있으며 양주 이북을 지킬 만한 장수도 없다’며 거두어 달라고 청한다. 비변사가 ‘고언백이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워 백성들의 마음을 사고 있으며, 도성 백성들이 모의해서 내응한 것도 그의 힘이다. 평양에 와서 다른 장수의 지휘를 받게 하면 그저 한 사람의 용장(勇將)에 불과할 뿐이니 양주에 남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자 임금은 그대로 따랐다. 고언백은 12월 종2품 경기도방어사에 오른다. 명종과 인순왕후의 무덤인 강릉과 중종비 문정왕후의 무덤인 태릉을 파헤치려는 왜적을 격퇴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고언백에게 가의대부를 가자(加資)하는 내용을 다룬 선조실록에는 사관(史官)의 견해가 적혀 있다. ‘언백은 궁마(弓馬)를 잘 다루었는데 적을 만나면 몸을 돌보지 않고 애써 힘을 내 공격했다.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적으로 하여금 있는 곳을 알지 못하게 했다. 또 적의 형세를 잘 염탐해 한밤에 기습하거나 숲속에서 저격했는데 자신이 사졸(士卒)들보다 앞서서 싸웠으며 그가 쏜 화살이 적중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전후해 머리를 벤 것이 얼마인지 모를 정도로 많았으므로 왜적이 매우 두려워했다.’ 이듬해 1월 조명 연합군은 평양성을 되찾았다. 2월에는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도체찰사(都體察使) 류성룡은 도성을 탈환하고자 경기지역에 출몰하는 왜적을 소탕하는 작전을 구상하게 된다. 3월 26~27일 마들평야를 내려다보는 삼각산(북한산)과 수락산·불암산 일대에 매복한 조선군은 약탈에 나선 우키타 히데이에 부대를 공격한다. 도원수 김명원, 황해도방어사 이시언, 평안도좌방어사 정희립, 순변사 이빈, 평안도조방장 박명현, 의승장 사명대사 유정의 연합군이었다. 노원평(蘆原平) 전투다. 주역은 당연히 불암산성을 고쳐쌓아 근거지로 삼고 있던 고언백이었다. 노원평 싸움을 두고 류성룡은 ‘징비록’에 ‘이 전투가 행주산성 전투와 견줄 만하다’라고 했다. 그만큼 큰 승리였다. 도성 외곽에서 조선군이 선전하자 왜군은 활동 범위가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고, 결국 4월 20일 한성에서 물러난다.●임해군 내통죄 몰려 고문 끝 사망 명나라와 일본은 강화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왜군이 한강을 건너자 조선군은 이들을 추격하고자 했지만 방해가 시작됐다. 명군은 행주대첩의 영웅 전라감사 권율을 압송해 한강을 건너간 이유를 따져 물었다. 순변사 이빈과 방어사 고언백은 급보로 ‘명군이 강변에 늘어서 군사가 진격하지 못하도록 했고, 순변사의 중위선봉장 변양준의 목에 칼을 씌워 끌고 가는 바람에 상처가 심해 피를 토했다’고 조정에 알리기도 했다. 고언백의 군대도 명나라 사대수 총병의 20명 남짓한 하인들이 줄지어 서서 전진하지 못하게 하고 힐책하며 억류한 채 놓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에도 고언백은 경상좌도병마절도사와 경상도방어사로 병자호란에 이르기까지 영남지역에서 무공을 쌓았다. 선조는 1597년 1월 21일 그를 불러들인 자리에서 “그동안 몇 곳의 변장(邊將)을 지냈는가” 하고 물었다. 고언백은 “처음에는 북병사의 군관, 다음에는 평안도병마절도사의 군관이 되었고 사신을 따라 북경에도 여덟 차례 갔다. 이후 청성만호를 거쳐 선공감 주부가 됐다. 임진년에 신립을 따라 갔다가 달천에서 패하자 신이 외로운 군사 50명과 양주와 연천 사이를 출입하면서 장정을 불러모으고 있을 때 왜구는 이미 경성에 들어왔다”고 했다. 스스로 밝힌 이력이다. 선무공신 3등에 오르고 제흥군(濟興君)에 봉해졌다. 광해군 즉위년 임해군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고 고문 끝에 죽었다. 인조반정으로 신원되어 병조판서에 추증됐다.
  • “한양도성·북한산성의 가치 세계에 알려야”

    “한양도성·북한산성의 가치 세계에 알려야”

    지배·피지배층 단일 공동체 이뤄위기에 함께 대처한 흔적 곳곳에도심 성곽·다른 성곽 연결성 독특세계문화유산에 등재 가능할 것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등의 가치를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밀라그로스 플로레스 로만 국제성곽군사유산학술위원회(ICOFORT) 전 위원장은 21일 경기 수원시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제성곽군사유산학술위원회는 세계문화유산의 가치 평가와 보존 관리 등을 하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산하 단체다. 지난달 경기문화재연구원이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및 자문을 구하기 위해 초청한 밀라그로스 전 위원장은 한 달 넘게 곳곳을 다니며 국내 성곽이 지닌 문화적 가치를 확인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중 밀라그로스 전 위원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양의 수도성곽이라고도 불리는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이를 잇는 탕춘대성이었다. 경기 고양시와 서울시에 걸쳐 있는 이들 성곽은 지난해 12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 의해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되면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노린다. 밀라그로스 전 위원장은 “다른 성곽들이 왕과 백성으로 명확하게 나뉜 것과 달리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등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함께 살아가면서 ‘커뮤니티’를 이루고, 동시에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함께 대처했던 흔적도 성곽 곳곳에 남아 있다”며 “도심 성곽이 있고, 다른 성곽과 이어지는 연결성이 있는 모습도 실제로 보니 굉장히 독특했다”고 말했다. 밀라그로스 전 위원장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노력과 함께 성곽을 잘 보존할 수 있는 관리 방법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문화유산이 된다면 관광객이 많아지기에 보존 및 관리에도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며 “또한 자연적인 요소가 성곽과 같은 유산에 주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밀라그로스 전 위원장은 “한양도성 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경기문화재연구원을 비롯한 기관들이 협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며 “준비를 잘한다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 중구, 한양도성 다산성곽길 예술문화제 연다

    중구, 한양도성 다산성곽길 예술문화제 연다

    5월의 마지막 주말, 한양도성 다산성곽길에서 예술 문화제가 열린다. 서울 중구는 오는 27일 오후 12~6시 다산 성곽길 일대에서 ‘한양도성 다산성곽길 예술문화제’를 연다고 25일 밝혔다. 다산성곽길은 장충체육관 뒤편에서 다산팔각정에 이르는 1km 구간이다. 가볍게 산책하듯 걸으며 600년 전 조선 도읍의 자취와 도시의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해 2018년 이후 5년만에 개최된다. 악회, 역사강의, 도보 해설투어, 스템프 경품 이벤트, 전시회, 도서교환전, 공예품 만들기 등 풍성한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성곽길 굽이굽이마다 즐길 수 있도록 준비됐다. 다산마을마당(다산동주민센터)에서는 김병찬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주민 화합무대가 열린다. 구성진 민요 가락과 플라밍고 댄스로 분위기가 달궈지면 12시부터 초대가수 송봉주(자전거탄풍경), 남준봉(여행스케치)이 공연할 예정이다. 이후 주민 10팀이 코로나 기간 숨겨놓았던 노래 솜씨를 뽐낸다. 인기 가수 박혜원(HYNN), 이규형, 박상민, 라클라쎄의 공연도 이어진다. KBS‘역사 저널 그날’로 잘 알려진 서울시립대 이익주 교수의 한양도성 역사강의, 해설사와 함께하는 한양도성 도보 투어도 참여할 수 있다. 일정 확인과 사전 신청은 다산성곽길예술문화제 카카오톡 채널에서 가능하다. 김길성 중구청장은 “다산성곽길 예술문화제는 ‘꿀잼’,‘득템’,‘힐링’을 보장하며 건강은 덤으로 얻어갈 수 있다”며, “싱그러운 봄날, 옛 정취가 흐르는 성곽길에서 가족, 이웃, 친구들과 함께 예술과 자연의 풍요를 누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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